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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첩 제9호(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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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쪽

부산대첩지는 2024년도 부산광역시 비영리민간단체 공익활동 지원사업으로 제작한 간행물입니다.

04p “요익중생의 삶 실천하는 봉사자”

제 9

2024 April

Vol. 09

호

13p 임진왜란과 역사속 인물-윤흥신

16p “사랑은 의술의 완성가치”

이윤희 태금정(주) 회장, (사)부산대첩기념사업회 고문 김태현 부산도시공사 상임감사, 이순신아카데미 3기

황성환 부산2항운병원 원장, 이순신아카데미 7기

www.busangrandvictory.com

2쪽

03 발행인 편지 역사의 현장인 북항에 부산대첩기념공원과 기념관을 조성하자

이용흠 ㈔부산대첩기념사업회 ㈔부산여해재단 이사장

2024 Vol.09 봄호

04 대담 요익중생의 삶 실천하는 봉사자

이윤희 태금정(주) 회장 (사)부산대첩기념사업회 고문

07 기획 특집 부산대첩기념공원 지정 관광도시 동·중구 발전과 연계 검토

김성경 기자

08 사업회 소식 부산대첩기념사업회 NEWS 11 부산대첩이야기 ⑧ 부산대첩의 이름에 관하여

김종대 ㈔부산대첩기념사업회 명예 이사장

13 임진왜란과 역사 속 인물 ⑤ 부산 지키고 떠난 다대첨사 윤흥신

김태현 부산도시공사 상임감사, 이순신아카데미 3기

16 이순신 정신을 실천하는 사람들 사랑은 의술의 완성가치

황성환 부산제2항운병원 원장 이순신아카데미 7기

18 현장교육 기고 이순신! 실내교육 현장 속으로

김연이 이순신 아카데미 1기

#표지이야기

표지는 부산항 북항 재개발 사업 1, 2단계 조감도로 1단계는 중간에 ∩ 모양으로 보이는 크루즈 정박지를 포함해서 좌측이 1단계, 우측이 2단계이다. 북항 이순신대로에 이어 부산대첩기념공원 명칭 지정과 기념관이 건립되기를 소망하며 …

발행인 이용흠 편집인 유순희 발행처 ㈔부산대첩기념사업회 발행일 2024년 4월 25일 디자인·제작 ㈜프린테크 (051)301-3113

발행인 편지

인사말

19 현장탐방 후기 부산대첩 관련 초ㆍ중등생 현장 탐방 후기

서만영 이순신 아카데미 1기

20 꽃길따라 이순신 향기 이순신 맛집 기행

이사장 이용흠

21 한국의 이순신 공원 같은 듯 다른 산책명소 이순신 테마공원

㈔부산대첩기념사업회

김성경 기자

23 기획연재 ‘의·정 충돌’에서 드러난 의사들의 민낯

배재한 교통문화연수원 원장, 이순신 아카데미 1기

25 BOOK - 이 한권의 책 이순신의 바다

김효정 부산일보 부국장

26 이순신 독후감 공모 27 편집후기 회원가입 안내

편집위원 유순희, 김태현, 배재한, 김효정, 하종숙, 유재기 구독안내 (051)923-1000 등록일 2020. 04. 14 등록번호 연제, 사 00004 홈페이지 www.busangrandvictory.com 주소 부산 연제구 중앙대로 1073 부산은행 4층

‘부산대첩’은 ㈔부산대첩기념사업회가 만드는 문화 매거진입니다.

역사의 현장인 북항에 부산대첩기념공원과 기념관을 조성하자

지금 부산항 북항은 재개발로 인해 큰 변화를

부산대첩은 조선 수군이 제해권 장악을 맞고 있습니다. 부산의 명물이 될 다양하고 완성시킴으로써 나라를 살려내는 원동력 새로운 시설들이 조성되는 1단계 사업이 연말 이 되었던 전투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부산 이면 거의 마무리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대첩의 격전지가 지금 부산진성 앞쪽에서 제대로 된 부산의 랜드마크가 탄생하려면 북항 쪽에 이르는 곳이고 보면 부산 북항터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차근차근 시간을 는 왜적의 해로 침략을 종결적으로 봉쇄한 두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콘텐츠를 국토수호의 성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접목한다면 부산이 세계적인 도시로 발돋움 역사적 스토리가 살아 숨쉬는 곳이라 할수할수 있는 기회의 공간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있습니다. 세계적인 도시들은 그 도시를 대표하는

부산시는 1980년 손재식 시장 재임시에 랜드마크 하나쯤은 가지고 있습니다. 파리의 부산대첩 승전일인 10월 5일을 부산시민의 에펠탑, 로마의 콜로세움, 뉴욕의 자유의 날로 정하여 기념해 오고 있으나, 대다수의 여신상 등 저마다 스토리를 가지고 많은 시민들은 그 제정취지와 유래를 잘 모르고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있습니다. 그동안 왜적의 침략으로부터 스토리는 이야기이며 그 도시가 가진 역사와 나라를 지켜낸 자랑스러운 역사적 사실이 일맥 상통합니다. 역사적인 사실이 스토리로 스토리화 되거나 활용되지 못하고 있었습 재 구성되어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고 이로 니다. 인해 도시는 세계적인 도시로 발전하게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로 볼 때, 북항 재개발 됩니다. 그래서 역사적 사실을 배제한 도시의 지역에 이를 접목한 스토리가 있는 부산의 상징물은 큰 의미가 없으며 세계인의 공감을 랜드마크룰 조성해야 하는 것은 어쩌면 얻기가 힘듭니다.

당연한 귀결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현재 북항 재개발지역내 친수공원 명칭이 정해지지 그러면 부산항 북항은 과연 역사적인 않았습니다. 우선 공원 명칭을 「부산대첩 스토리가 존재하는가? 부산항 북항 일대는 기념공원」으로 정하고 공원부지내 부산대첩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적의 기념관(이순신기념관)을 건립한다면 역사 본진을 격파하여 육상으로의 보급로를 차단 적인 사실이 스토리화되어 부산의 새로운 하고 남해의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함으로써 랜드마크가 될 것이 확실합니다. 우리나라를 지켜낸 역사적 전투 현장입니다.

지난 1월 31일에는 북항재개발지역내 주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전라수군은 전쟁 첫 간선도로인 이순신대로가 개통되었습니다. 해에 4차례 경상 바다로 출진하여 모두 승리 부산항 북항의 역사적 퍼즐의 완성은 부산 를 거둡니다. 옥포승첩, 당포승첩, 한산대첩, 대첩기념공원과 기념관 조성이라고 할 수 그리고 네 번째 출진이 부산대첩입니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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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요익중생의 삶 실천하는 봉사자

이윤희 태금정(주) 회장

(사) 부산대첩기념사업회 고문

“기업하는 사람으로서 이순신의 리더십은 본받을게 매우 많다. 특히 눈앞에 닥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나 가느냐가 중요한데 그런 면에서 이순신은 자신의 위기, 나라의 위기에 정면돌파해 성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무슨 일을 하든 정성스러움이 있었고, 효심과 애국심으로 충만한 사랑과 정의로움도 바탕이 되었던 위인이기에 주저없이 존경하는 인물로 꼽고있습니다.”

재생용 고철 도매와 수출 무역, 금속재생재료 가공처리 업체인 태금정주식회사 창업주 이윤희 회장. 부산지역 에서 활동하는 사람치고 이윤희 회장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 회장은 지역사회에서 활발히 헌신 봉사 해온 인물이다. 특히 주업보다 더 적극적으로 활동해온 불교관련 단체 활동 이력은 거의 독보적이다. 이 회장은 범어사 방장 정여 대종사와 수불 스님이 범어사 주지였을 당시에도 신도회장을 맡아 8년 동안 봉사한 바 있고 올초 다시 금정총림 범어사 신도회장에 취임했다. 또 부산불교연합 신도회장, 육해공군불교총신도회 후원회 명예회장을 역임하고 있고, 전 국군불교총신도회 후원회장, 전 대한 불교조계종 중앙신도회 수석부회장, 전 (사)부산불교 지도자포럼 부회장을 지냈다. 불교단체나 행사 등에 이름이 빠지지 않을 만큼 불교계와 시민사회의 가교역할을 하는 불교통이다. 그만큼 신실한 불자인 이 회장은 올초 범어사신도회 회장으로 재 임명되면서 정오 주지스님으로부터 ‘요익 중생’, 말 그대로 ‘많은 이들을 이익되고 풍요롭게 이끌어 주기를 바라는 의미’의 휘호를 받았다. 이미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불자다. 복지 사각지대를 찾아내 돕는 게 진정한 봉사라는 삶의 철학을 실천해온 이윤희 회장은 사랑의 열매 사회복지공 동모금회 1억 기부 아너소사이어티 부부 회원으로 각각 2015년, 2021년 가입한 바 있고 2022년 적십자 아너스클럽 부산17호로 1억 이상 기부자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도 했다. 사회에 공의로운 일과 어려운 이웃돕기에 적극 팔을 걷어부쳐온 이 회장은 학교 밖 청소년들의 대안학교 지원과 불우한 청소년들과 자매결연을 통해 부모역할을 해주며 미래의 꿈을 키워주는 BBS중앙연맹과도 오랜 인연을 맺으며 지난 17여년간 매년 5월 탈북민 2세 장학금 2천만원을 꾸준히 지원해왔다.

4년 전 이순신정신 선양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사)부산 대첩기념사업회에도 고문으로 활동하며 1천만 원을 기탁한 이 회장은 “이순신 장군이 우리 부산 앞바다에서 왜적을 크게 물리치고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한 역사적 사건인 부산대첩을 제대로 알리고 우리부산의 역사문화유산으로 기념하고 그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는 일에 동참할 수 있어 기쁘다”며 부산시민들조차 몰랐던 부산대첩의 역사를 이제 부터라도 제대로 알리고 기념비적인 사업들이 원활히 추진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밝혔다.

특히 이 회장은 “부산대첩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정신을 배우고 알리며 실천해 부산을 품격 있고 건강한 문화도시로 만들어가겠다는 취지로 설립한 기념사업회 일에 공감 하기에 동참하게 됐다”며 “최근에 확정된 북항내 주간선 도로명칭이 이순신대로로 명명된 것 또한 반가운 일”이라며

[약력] 부산불교연합신도회장, 금정총림 범어사신도회장, 육해공군불교총신도회 후원회 명예회장, 전 국군불교총신도회 후원회장, 전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신도회 수석부회장, 전 (사)부산불교지도자포럼 부회장, 한국BBS부산광역시연맹 회장, 한국BBS중앙연맹 부총재, KBS한국방송 전국시청자 네트워크 명예상임공동대표, 부산지방검찰청 형사조정위원회 위원장, 재부대구경북도민회 수석부회장, 한국장애인재활협회 이사 부회장, 사랑의열매 아너소사이어티 부부회원, 부일CEO1기 회장, 부산지방경찰청 경찰발전위원회위원장, 부산구치소교정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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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신도회 회장취임 당시

앞으로 “북항 일원에 부산대첩기념공원 조성 등 부산대첩 을 기념하는 기념비적 건축물도 위용있게 들어서길 기대 한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1944년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 후 선친의 고향

을 유익하게 써온 대표적인 기업가다.

인 경북 군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이후 대전을 거쳐 20대 시절 부산에 안착했다. 대구경북지역이 태생적 고향 이라면 지난 50~60년 가까이 살아온 부산은 제2의 고향인 셈이다. 어릴적 뛰놀던 고향 경산은 늘 그리움의 본향. 고향을 떠나온 지가 수십 년이 넘어도 고향발전을 위해 군위 교육발전기금을 매년 500만원씩 쾌척해오기도 했다. 이 회장의 애향심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낯선 타지 에서 정착해 살아가는 향인들을 모아 IMF로 모두가 힘 들었던 1997년 대구경북도민회를 조직해 초대회장을 맡았고 10여명으로 시작해 50여명의 끈끈한 구성원들이 30여년 가까이 돈독한 우애를 다지며 130만 대구경북

게 아쉬울 뿐입니다.”

도민들의 든든한 구심점이 되도록 하는데 일조해왔다.

어떤 모임이든 단체를 만들면 제대로 운영이 되도록 기반을 조성하는 일에 솔선수범하여 기금을 쾌척해온 이 회장은 현재 대구경북도민회 수석부회장으로 회관 마련

자체다.

에도 적극 동참했다. 그는 십시일반 출향인사들이 쾌척한 기금으로 마련한 회관은 향후 대구경북도민들의 단합과

기획특집

(사)부산대첩기념사업회는 지난 3월 14일, 26일 이틀간에

장, 최진봉 부산 중구청장과 각각 면담을 가졌다.

발전을 위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폭 넓은 사회활동을 통한 기부와 나눔활동에도 적극적 인 이 회장은 평생을 나누고 베풀며 살아왔다. 기업의 이윤

“이순신장군도 나라와 백성을 위해 하나되어 싸운 분 아 닙니까. 사사로움을 버리고 언제나 공의에 바탕을 두고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다.

헌신할 줄 알았던 이순신장군은 우리에게 하나됨을 가르쳐 주신 분입니다. 분열과 갈등으로 이분화된 우리 사회에

먼저 동구청장과의 면담에서 김진홍 동구청장이 “명랑

절실히 필요한 정신도 바로 통합의 정신이라 생각합니다. 이 땅에 태어난 우리 모두 사실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가 한민족 한겨례인데 가족같은 이웃들이 어려울 때 손을 잡아주고 역경을 딛고 일어서도록 손을 내밀어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역할 범위내에서 제가 행복하기 위해

있음을 피력했다.

베풀고자 노력해왔을 뿐, 마음만큼 더 많이 베풀지 못한

아울러 사업회는 “동구청 관할에는 정발장군, 부산진성 공원, 윤흥신장군 등 임진왜란 관련 역사적 상징물이 많으므로

이순신의 따뜻하고 곧은 품성이 매우 존경스럽다는 이 회장. 베풀고 나누는 일이 몸에 밴 탓일까. 늘 온화한 표정을 머금고 있는 이 회장의 모습은 부처의 염화미소 그

고 제안했다.

유순희 편집인

부산대첩기념공원 지정 관광도시 동·중구 발전과 연계 검토

사업회, 부산대첩기념공원 명칭 지정관련 동구청 및 중구청장 면담

이에 김진홍 동구청장 역시 “부산대첩기념공원 명칭 걸쳐 부산대첩기념공원 명칭지정 관련 김진홍 부산동구청 추진에 대해 전적으로 찬성하고 공원이 조성되면 기념관 등을 건립해야 하는 바 적극 참고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26일 가진 중구청장 면담에서도 사업회측은 “중구는 14일 오후 2시 동구청장 면담에는 본 사업회 유재기 사무 걸어서 관광하기에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고 자갈치 시장, 처장과 방영진 사업팀장이 참석했으며, 이어 26일 오전 용두산 공원 그리고 롯데타워건설과 북항재개발 등과 연계 10시30분 중구청장실에서 가진 면담에서는 최진봉 중구 하면 도보 관광코스를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말하고 청장, 중구청 기획감사실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부산대첩 덧붙여 “북항재개발 지역은 부산시민의 날로 정한 부산 기념공원 명칭 지정의 필요성과 그간 추진사항을 설명하고 대첩의 역사적 현장으로 공원명칭을 부산대첩기념공원으로 관련자료를 제공하는 등 지명위원회 개최 시 의견반영을 정하여 이와 연계한 관광코스를 개발한다면 좋을 것” 이라고 제안했다.

이에 최진봉 중구청장은 “중구는 부산의 중심구이지만 노량 한산대첩에 비해 부산대첩이 시민들에게 많이 알려져 상주인구가 적은 반면, 유동인구가 많은 편이라서 관광객 있지 않다”는 의견에 사업회는 “부산대첩기념사업회 차원 들이 많이 올 수 있도록 문화관광발전 종합계획을 완료하여 에서 하는 일이 바로 부산대첩과 부산대첩정신을 널리 다양한 과제를 마련하였다”며 “부산대첩과 부산시민의 날 알리는 일”이라고 말하고 지속적으로 홍보에 만전을 기하고 유래와 취지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으니 부산대첩기념 공원으로 지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적극 참고하겠다고 말했다.

상호 발전적 의견을 공유하고 소통한 이날 사업회는 향 부산대첩기념공원으로 지정하여 역사적 유산을 콘셉트로 후 부산시청을 방문, 북항재개발 1단계 사업 소유권 이전 일 하여 동구의 특성을 살리는 것도 좋은 사업이라 생각한다” 정 등을 파악하여 시의적절한 대응을 하기로 했다.

김성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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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회 동정

■ 부산대첩기념사업회 NEWS

2023년도 임시총회 개최

이날 임시총회 개최 배경은 부산대첩기념사업회는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부산대첩 승전을 기념하고 알리는 조직이고, 부산여해재단은 이순신 정신을 교육하고 선양하는 조직으로 양 법인간 유사하고 중복된 기능을 제거하여 새롭게 통합ㆍ운영함으로써 부산대첩기념 사업을 활발히 실천해 나가면서 이순신 정신을 교육 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지속적 으로 제기 됐기 때문이다. 양 법인의 조직과 임원진, 사무처를 일원화하여 업무의 통일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고자 정관개정과 임원진 선임안을 의결하게 됐다.

그동안 양 재단은 이사회를 통해 법인운영의 효율성과 기능적 통합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양 법인 이사장을 비롯한 7명 으로 통합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3차에 걸친 논의 끝에 이날 임시총회를 거쳐 양 법인 통합운영에 따른 제반 절차를 마무리 했다.

2024년도 정기총회 개최

부산대첩기념사업회와 부산여해재단은 지난해 임시 무엇보다 지난해는 북항 재개발 지역내 주 간선도로명이 총회를 거쳐 양 법인을 통합한 이후 처음으로 지난 2월 역사성을 가진 이순신대로로 명명되었고, 올해는 북항 13일 2024년 정기총회를 통합 개최하였다. 이날은 양법 재개발 지역의 친수공원 명칭을 부산대첩기념공원으로 인의 이사장으로 선출된 이용흠 이사장의 취임식과 더불어 지정하고 공원내 기념관 건립을 위한 첫 걸음을 떼는 중요한 2023년도 결산 승인안, 2024년도 예산 승인안, 2024년도 한 해가 될 것이므로 이번 통합 정기총회를 계기로 이순신 사업계획 승인안, 업무관리지침 승인안 등 4건의 안건을 정신을 우리 시대의 정신으로 승화시켜 반드시 목표를 의결하였으며, 기타 회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였고 이룰 수 있도록 참석한 회원 모두가 결의하였다. 앞으로도 보다 발전적이고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 나갈 것을 다짐했다.

북항 ‘이순신대로’ 개통

부산대첩기념사업회와 부산여해재단은 지난해 12월 26일, 2024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양 법인 통합운영에 따라 정관개정, 임원선출을 위한 임시총회를 개최했다.

이순신 아카데미 강사과정 제8기 개강

청년 이순신 아카데미 제13기 개강

부산대첩의 역사적 현장인 부산항 북항재개발지역의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주 간선도로인“이순신대로”가 지난 1월 31일 정식 개통했다. 이용흠 이사장은 “이순대로의 개통은 북항의 역사성과 이날 개통식에는 부산대첩기념사업회 이용흠 이사장이 이순신정신을 되살려 명실공히 부산이 역사문화도시로 참석하여 테이프를 컷팅하였고, 이를 계기로 부산대첩의 가는 첫 발걸음을 떼는 계기가 됐다”며 “향후 기념비적인 역사적인 현장인 북항재개발 친수공원 명칭을 부산대첩 부산대첩사업들이 연속적으로 탄력을 받아 추진되기를 기념공원으로 지정하고 기념관 건립을 위한 추진 동력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부산여해재단에서는 지난 3월6일 이순신 아카데미 강사과정 제8기를 개강(수강생 31명)하였다. 이순신의 생애와 정신을 가르칠 강사와 이순신 정신으로 무장된 지도자를 양성하고자 매달 첫째주 수요일 저녁에 이론 강의 9회, 현장학습 2회 로 구성하여 주입식 교육을 지양하고 자발적 연구와 토론, 발표 방식으로 운영된다.

부산여해재단에서는 지난 4월16일 청년 이순신 아카데미 제13기를 개강하였다. 이순신 정신을 실천하고 전파할 50세 이하 직장인(대학생 포함)을 대상으로 매주 화요일 저녁에 이순신학교에서 이론 및 토론 9회, 현장학습 1회 등 총 10회 실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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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79주년 이순신탄신 기념세미나 열려

- 4월 26일 오후3시 서면 영광도서 문화홀에서

이순신탄신 479주년을 맞아 기념 세미나가 열린다. 오는 이번 세미나의 주제로 선택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4월 26일 오후 3시 부산진구 서면 영광도서 문화홀에서 특히 부산포해전의 경우 부산대첩으로의 명명 가능성을 ‘임진전쟁기의 대첩명명에 그 기준이 있는가?-부산포해전의 살펴보고자 하는데 의의가 있다. 바른 역사적 명명을 위한 시고’를 주제로 남송우 부산여해 이미 임진 전쟁기 대첩 명명과 관련해 문제 제기한 기존의 재단 이순신학교 교장을 초청연사로 토론을 갖는다. 논문도 있다. 김강식 교수의 「임진 전쟁 시기 주요 전투의 이날 토론자는 박화진 부경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가 의미와 성격–대첩을 중심으로」 (『역사와 경계』, 125, 2023) 참여해 임진전쟁기 대첩 명명의 기준과 부산포해전의 에서도 임진 전쟁에서 수행되었던 각 지역 전투에 대한 평가, 대첩 의미를 새겨보는 진지한 토론의 장을 펼친다. 초청연사 남송우 교장은 “임진 전쟁중에 진행된 전투는 이번 토론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토론의 기반으로 하면서 수륙 양면에서 다양하게 치루어졌다. 해전이 24전, 육지전이 그동안 기록상으로 명명되어 있는 ‘대첩’들을 살펴보고, 65전 등 많은 전투가 있었지만 이들 전투에 대한 명명은 해전을 중심으로 그 특징을 정리하고 비교 검토함으로써 대체로 전투가 벌어진 지역명을 따라 이루어지고 있고 그 부산포해전이 왜 대첩으로 명명되어야 하는지를 규명할 규모와 성격에 따라 크게 이긴 전투를 대첩이라 명명하고 예정이다. 있으나 어떤 기준이나 원칙에 의해 명명되었는지에 대한 한편 이날 세미나에서는 강연과 토론에 앞서 특별공연도 근거나 역사학회의 공론화된 합의가 이루어진 적은 없다”며 갖는다. 한산도가 시조창에는 정인경 중요무형문화재 가사 “그동안 우리가 사용해온 임진 전쟁 때의 대첩이란 명명이 이수자의 공연이 그리고 대금산조는 채수만 전 시립국악관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지를 검토하고, 기존의 대첩이란 현악단 수석악장이 공연을 한다. 명명에 의할 때 다른 지역의 전투에도 대첩이란 명명이 김성경 기자 가능한지를 논의해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찾아가는 이순신 학교 운영

부산여해재단에서는 초·중·고등학생에게 이순신 정신을 통한 인성 함양의 기회를 제공하고 부산대첩과 부산시민의 날 제정 취지를 알려 부산시민으로서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고자 찾아가는 이순신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초등학생은 ‘이순신과 부산대첩’을 주제로 실내교육과 현장체험학습을 병행하고 있으며, 중·고등학생은 ‘인성·리더십·청렴’을 주제로 한 특강과 ‘이순신 전적지 순례’ 현장체험을 운영하고 있다.

부산대첩이야기

명예 이사장이 들려주는 부산대첩 이야기

#8

명명 등에 대한 객관적 기준이 필요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김종대

㈔부산대첩기념사업회 명예 이사장

부산대첩의 이름에 관하여

1. 부산대첩이란 이름

이순신이 거둔 각종 승첩들을 시기적으로 크게 구분하면 임진년(1592년)에 거둔 옥포ㆍ당포ㆍ한산ㆍ부산의 4대 승첩과 정유년(1597년)의 명량승첩, 마지 막으로 무술년(1598년)의 노량승첩으로 나눠진다.

위 각 승첩 중 부산승첩을 빼면 승첩을 거둔 장소가 이순신의 의사와는 무관 하게 정해졌고 따라서 승첩의 이름도 그렇게 정해졌다. 옥포해전은 이순신이 경상도 왜적을 치러 갔을 때 옥포에 적이 있다는 탐망군의 보고가 있으므로 그곳으로 가 치른 전투다. 그러므로 이순신이 여수전라좌수영을 출발할 당시에는 전투가 옥포에서 발발할지는 몰랐다. 다른 전투들도 다 같다. 한산승첩도 명량 승첩도 전투 전날 혹은 당일 전투 장소가 정해졌다. 적의 움직임에 따라 전투 장소는 변경될 수 밖에 없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부산승첩만은 이순신이 여수를 출발할 때 이기면 부산승첩이고 지면 부산패전으로 미리 전투장소가 부산으로 정해져 있었다. 나라에서는 낙동강으로 내려오는 적을 치라고 했지만 이순신의 뜻은 부산에 있는 적의 본진이었기 때문 이다. 연달아 옥포ㆍ당포ㆍ한산 승첩을 거두며 9차례 접전에서 모두 승리하고 특히

한산승첩에서 대승을 거둔 이순신이 적의 본진을 격파해 전쟁을 종식시키고 싶었던 심정은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래서 그는 한산승첩을 거두고 귀환한 임진년 7월 중순부터 낙동강 하구를 넘어 부산 본진까지 공격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한 달 가까이 전라좌우수군의 합동훈련 끝에 부산으로 나아간 것이다. 그러므로 부산승첩은 여수를 출발할 때 이미 그 승첩의 이름이 정해져 있었다는 특이성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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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산대첩이란 이름의 타당성

(가) 부산포 승첩이 아니라 부산승첩이다. 여기에 대해 타 지역에서 이의를 제기 한다는 것은 우스운 임진년 8월1일부터 23일까지 기동훈련을 마친 전라좌ㆍ 일이다.

우수군은 8월24일 여수를 출발하여 28일에야 가덕도 천성항에 이르렀고 거기서 밤을 지낸다. 가덕은 종래는 에서 깬 적선이 59척인데 비해 부산대첩은 그 두배가 넘 경남 관할이었으나 지금은 부산의 관할이다.

은 적선을 파괴했다.)

29일 낙동강의 두 지류인 양산강과 김해강을 두루 수색 했고 그 중에 장림쪽에서 적선 6척을 격파했다. 그 후 가덕 임진년 4대 승첩 중 제해권 장악을 확정짓는 종결전이란 북변에 도착해 거기서 1박 하며 내일의 전략을 토의한다. 역사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다음날인 9월 1일(양력으로 10월 5일) 부산포로 진격 한다. 전진 중에 화준구미에서 5척, 다대포서 8척, 서평포 거두었지만 부산승첩이 가장 큰(大) 승첩이라 했고 부산 에서 9척, 영도 앞에서 2척을 연달아 깨고 초량목(영도다리 승첩을 대전(大戰)이라 부른 기록도 있다.(정운을 이대원 있는 곳)을 지나 선봉선 4척을 격파하고 부산포에 늘어선 사당에 추가로 배향해 주시기를 청하는 장계 중에) 500여척의 배를 오후내내 공격해 적선 백 여척을 깨고 다시 가덕으로 돌아온다. 이 1박2일의 전투를 통털어 이름 짓자면 부산포 승첩 지극히 타당하다 할 것이다. 보다는 부산포, 장림, 화준구미, 다대포, 서평도, 영도를 포괄하는 부산승첩이라 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3. 맺는 말

(나) 부산승첩이 아니라 부산대첩이다.

이순신이 거둔 각종 전투에 붙이는 호칭은 해전, 승첩, 대첩이 되어야 할 이유가 자명해 졌으리라 본다. 대첩 등등으로 다양하다. 해전은 승패 불문하고 붙이는 이름이고 승첩은 이긴 전투에 부치는 이름이다. 승첩 중 담겨 있게 마련이다. 부산이 400여년 전 호국의 역사를 에서도 규모나 역사적 의의가 큰 승첩을 우리는 대첩이라 되살려 오늘날 나라를 지키는 새로운 역사를 쓰려고 하는 부른다. 대첩이란 용어는 해당지역 자치단체에서 주민들의 뜻을 부산대첩이란 이름으로 바꿔 부르는 것에 자부심을 가져야 모아 부르면 되는 것이지 이름을 정하는 법적 규정이 있는 할지언정 부산대첩을 부산포해전으로 낮춰 불러야 할 것이 아니다. 실제 승첩의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왜적과의 이유가 없다.

임진왜란과 역사속 인물(5)

해전 중 첫 승리라는 역사적 의의를 살려 옥포승첩을 거제시 에서는 옥포대첩이라 대접해 부르고 거기에 이르는 도로 명도 옥포대첩로라 하고있다. 한산대첩도 같다.

윤흥신 동상

부산대첩은 파괴한 적선의 규모가 엄청나다.(한산대첩

부산대첩의 역사적 의의는 그 어느 해전보다 작지 않다.

이순신 스스로도 한산승첩까지 10차례 가량의 승첩을

이상을 모아보면 종래 부산포해전이라 부르는 것을 부산대첩이라 바꿔 부르는 것은 실체에 걸맞은 호칭이어서

이상에서 우리가 쓰곤 했던 부산포해전(승첩)이 부산

사실 이름에는 이름을 지어 부르는 사람들의 염원이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우리는 종래의 부산포해전을

부산 지키고 떠난 다대첨사 윤흥신

김태현

부산도시공사 상임감사/ 이순신 아카데미 3기

동생인 의사 윤흥제의 비로 순란사민비가 함께하고 있다. 윤흥신은 윤흥제에게 제사를 지내야 하니 도망가라고 했지만, 윤흥제는 충이 효보다 깊다며 끝까지 형 곁을 지켰다. 부둥켜 안고 장렬하게 생을 마감한 형제의 애국정신은 애절함과 처절함, 정부의 준비 부족에 대한 원망과 애환을 한꺼번에 몰고 온다.

윤흥신의 모습을 담은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무덤이라고 알려진 곳도 없다. 전쟁에서 패한 후 성안 연못에 버려졌다. 다대포성(1490년 축조)도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다대포진 수군첨절제사(다대포첨사)윤흥신 장군(1540~ 정도로 오랫동안 폐허로 방치됐기 때문이다. 그를 기리는 1592년). 부산진성의 정발, 동래성 송상현과 함께 죽음으로 표시는 가장 최근 축조된 부산 동구 초량동 쌈지공원에 나라를 지킨 부산의 임진왜란 3대 명장으로 꼽힌다. 부산 마련된 다대첨사 윤흥신 장군 동상에서 만날 수 있다. 시민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고취시켜온 인물 가운데 한 분 2024년 1월 26일 동상 제막식을 가졌다. 왼손에는 활을 들고, 이다. 파란만장한 삶을 산 그의 행적에서 존경심과 애절함이 오른손은 주먹을 쥐고 서 있다. 북항 앞바다를 바라보고 함께 느껴진다. 임지를 지키다 전사한 윤흥신의 흔적을 의연히 서 있는 모습은 위기 속에서도 후퇴를 간청하는 다대포와 초량, 동래 3곳에서 찾아본다. 부하의 말을 꾸짖고 죽음을 택한 결의에 찬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좌대 7m를 포함한 동상 높이는 11.4m. 동상 주변에는 우선 전투를 치른 다대포 일대다. 부산지하철 1호선 다대포항 장군의 일대기를 그림과 글로 기록했다. 역에서 내려 3번 출구로 나와 산쪽으로 10분쯤 거슬러 올라 가면, 윤공단(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9호)을 부산 동구는 6억 원을 들여 동구 초량동(1143-1) 광장의 만날 수 있다. 부산시 사하구 윤공단로 112. 윤공단으로 윤흥신 석상을 동상으로 재건립했다. 그를 기리는 석상은 오르는 계단은 가팔라 저절로 거친 숨을 내쉬게 한다. 존경심과 1981년 세워졌다. 빗물 등이 스며들어 석상 내부 철골 구조물에서 녹물 등이 흘러내리는 등 유지보수가 힘들어 함께 목숨을 바쳐 국가와 백성을 지켰던 그를 생각하니 엄숙한 새로 만든 것이다. 분위기가 저절로 온몸을 짓누르는 듯하다. 동래 충렬사에서도 그의 체온을 느낄 수 있다. 윤흥신은 아미산 아랫자락 고갯마루의 자그마한 소나무 숲으로 선조 때 선무원종공신의 1등 공신이 됐다. 임진왜란이 끝난 둘러쌓인 윤공단은 윤흥신과 군민의 충절을 기려 마련한 1604년(선조 37) 6월 25일에 공포된 선무공신녹권에 원종 1등 단이다. ‘첨사윤공흥신순절비’. 비석 양옆에는 윤흥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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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신으로 올라 있었지만 거부감이 적지 않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다대포진이 잘 알려지지는 않았다. 당시만 해도 낙동강 하구의 외진 곳이고, 전쟁으로 주민이 이 여파로 동래 충렬사 모두 이주했기 때문에 관련 사실도 묻혔다. 일본 쓰시마 제사에서 윤흥신의 위패 (대마도)에서 최초로 고구마를 가져왔던 조엄은 애민 정신이 도 빠졌다. 시호도 없다. 돋보인 목민관이었다. 그는 동래부사로 재임하면서 임진 국가로부터 충신으로 왜란 당시 순직한 다대첨사 윤흥신 장군의 공적을 발굴해 인정 받지 못해서다. 충렬사에 봉안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윤흥신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윤흥신이 왜적 과 싸워 순절한 사실에 최고 권력자의 집안에서 태어나 가문 대대로 부와 권력을 대한 기록은 여러 곳에서 누렸으나 세상 풍파를 겪다 53세의 일기로 전사했다. 파평 윤씨는 4명의 왕비를 배출한 조선 전기의 대표적 외척 드러난다. 선조실록은 순절한 가문이다. 윤흥신은 중종의 왕비인 장경왕후의 조카이고, 대윤 다대진첨사 윤흥신을 기록하고 있다. “윤흥신은 왜적에 윤임의 5번째 아들이다. 중종 말년이 되자 인종이 되는 세자를 항거해 싸우다가 죽었다”. 유성룡의 징비록에는 “다대진 지키려는 윤임의 대윤과 이후 명종이 되는 경원대군을 보호 하려는 윤형원의 소윤 사이에서 정치적 긴장은 높아진다. 첨사 윤흥신은 힘써 싸우다가 죽음을 당했다”고 남겼다. 선조 때 좌천성을 지낸 구사맹의 조망록에는 싸운 내용이 인종이 즉위한 지 8개월 만에 죽고 명종이 왕위에 오르자 구체적으로 담겨있다. “왜적이 성을 포위하자 힘껏 싸운 소윤은 대윤에 역모 혐의를 씌워 대거 숙청한다. 1545년 끝에 이를 물리쳤다. 이튿날 대군의 왜적이 쳐들어오니 군졸은 을사사화다. 윤흥신의 아버지와 형들이 역적으로 몰려 참형에 모두 도망했는데, 윤흥신은 홀로 남아 온종일 활을 쏘다가 처해졌다. 6세의 어린 윤흥신은 목숨을 겨우 유지한 채 32년 성이 함락되자 죽었다”. 인조 때의 학자 신령이 쓴 재조번 동안이나 관노로 살아야 했다. 방지, 1764년(영조 40) 당시 동래부사 강필리가 지은 윤공사 이후 선조가 집권한 후 을사사화 때 희생된 사람들의 신분이 회복됐다. 윤흥신도 1577년 신분을 회복했고, 진천 현감, 진도 절기에도 순절한 윤흥신의 같은 행적이 적혀있다. 이런 기록에도 윤흥신의 죽은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군수을 거쳤다. 윤흥신은 무관 기질을 가지고 있었고, 상당한 임란 이후 166년째 되던 1757년이다. 조엄이 동래부사가 능력을 발휘했던 것 같다. 신분이 회복되기 전까지의 기록은 되면서부터다. 조선통신사 사절단으로 일본에 다녀온 조엄이 찾아보기가 힘들다. 아버지 윤임도 무과에 급제한 무관 출신 으로 1523년 충청수군절도사로 왜선과 싸웠다. 윤흥신은 일본에서 윤흥신의 전투에 대해 듣고 조정에 알렸다. “참으로 하늘이 내린 충신이구나. 내 어찌 이 충신을 역사에 충청수영 11관의 한 곳인 서산군에서 임무를 수행했다. 그대로 묻히게 내버려 둘 수 있겠는가”. 조엄이 윤흥신의 전투와 관련된 공적과 자료를 찾아 조정에 올렸다. 충렬사 제단에 윤흥신의 위패가 모셔져야 한다고 노력한 끝에 조정이 받아들였다. 윤흥신의 위패는 임란 이후 180여 년이 지난 1772년(영조 48년) 충렬사에 모셔졌다. 윤흥신이 늦게 충렬사에 배향된 이유는 뭘까. 조선 후기 정권을 장악한 사림파가 비판적으로 보았던 훈척 출신이라는

윤흥신 비석

윤흥신 비석

다대포지역 구전에 따르면 “윤흥신은 다대첨사청 지붕 까지 올라가 기왓장으로 적에 맞섰고, 끝내는 연못에 뛰어 내려 자결함으로써 결사항전의 모습을 보인 충신이다”고 전해지고 있다. 비록 성은 함락되고 적을 저지하지는 못 하였으나 자신의 목숨을 바쳐 성을 사수하려 했던 기개의

윤흥신은 수군 지휘관으로 역량을 인정받았기에 왜란의 인물이었다. 조엄 조진관 조인영으로 이어지는 풍양 조씨 3대가 윤흥신의 위기가 고조되던 시기 승진해 요충지에 배치됐다. 하지만 장군의 생애는 순탄치 않았다. 문자를 해독하지 못한다는 충절을 기리는 윤공단을 세우기 위한 노력도 본받을만 이유로 관직에서 쫓겨났다. 마흔이 다 되도록 공부와는 하다. 조엄이 윤흥신의 공적을 발굴하고 충절을 기리기 위해 거리가 멀었을 노비 생활을 했던 윤흥신에게는 가슴 아픈 윤공단을 만들지만 권력 다툼 속에 허물어지고, 아들 조진관을 일이 아닐 수 없다. 이후 선조가 당시 우의정 류성룡의 거쳐 손자 조인영에 이르러서야 윤공단과 순절비가 건립된다. 천거로 윤흥신을 다대첨사로 임명했다. 1591년 1월, 그의 나이 84년이나 걸린 3대의 노력은 결실을 거둔다. 52세였다. 임란이 터지기 전 1년전 쯤 일이다. 무공이 뛰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지만 역사 속에서 사장돼 가는 나고 국가관이 강하다는 점이 인정을 받은 것이다. 임진왜란의 영웅을 대를 이어가며 기록하려는 한 가문의 1592년(선조 25년) 4월 14일 오후. 왜적 장수 고니시 유키 노력이 역사적 의미로 다가온다. 사하구는 나라를 위해 용감 나가가 이끄는 조선 침략선봉군은 700여 척의 병선을 거느 하게 싸우다 순절한 윤흥신의 충절을 기려 음력 4월 14일 향사를 지내고 있다. 2005년부터 해군도 제사 집전에 참석 리고 부산포를 침략하고, 다음날 부산진성을 함락시켰다. 왜군은 1만 명이 넘는 병사로 부산 동구 부산진성을 함락 하는 등 윤흥신 장군 기념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1932년 4월 한 뒤 사하구 다대포에 이르렀다. 다대포는 경상좌수영 수군 29일 일왕의 생일 행사장에 폭탄을 투척했던 윤봉길 의사도 진성이 있던 곳. 낙동강으로 향하는 물길을 통제할 수 있는 윤흥신 장군의 12대손이다. 집안 대대로 충절이 빼어났다. 전략 요충지였다. 다대포진에는 종3품 수군첨절제사를 배치 나라와 국민 사랑은 대를 이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했을 만큼 국방의 요지였다. 왜적들도 내륙 진출입에 필요한 낙동강 수로를 확보해야 했기 때문에 다대포진성을 반드시 점령해야 했다. 부하 장수가 “수백 척의 왜선과 1만 명이 넘는 적들이 처들어오고 있습니다. 성을 나가 피하는 것이 좋겠 습니다.”라고 했다. 윤흥신은 “죽음이 있을 뿐이다. 어찌 간다는 것이냐”고 호통쳤다. 윤흥신은 800여 명에 불과한 군사들과 함께 부산포를 침략한 왜적 중 다대포진을 공략한 일부 왜적에 맞서 온종일 전투를 벌였다. 하루를 꼬박 버티면서 성을 지켜냈다. 하지만 부산진성을 함락한 1만여 명의 왜군 들이 다음날 새벽부터 한꺼번에 몰려와 절대적으로 부족한 병력으로 결국 성은 함락됐다. 윤흥신은 동생 윤흥제와 함께 끝까지 성을 떠나지 않고 용기를 내어 왜적에게 대항하다 장렬히 순절했다.

윤흥신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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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정신을 실천하는 사람들

사랑은 의술의 완성가치

황 성 환 부산항운병원 원장, 이순신아카데미 7기

황 원장은 올해로 만 38년차 의사다. 대학과 종합 병원을 거쳐 전문병원을 개원한 지도 만 24년여. 2000년 동래 안락동 소재 부산항운병원에 이어 지난 2018년 범냇골 부산제2항운병원 개원에 이르기까지 실력으로 병원체를 키워온 황 원장은 대장항문외과 전문의로 양성항문질환, 골반저 질환, 대장암, 위암, 복강경수술 등 관련분야 “의사로서 환자응대 시 가장 중요한 실천가치도 바로 사랑 의술을 인정받고 있는 명의다. 입니다. 사랑을 바탕으로 한 의술은 무한신뢰와 함께 치유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황 원장은 그동안 표준화된 술기와 전문적인 진료로 환자의 이순신 공부를 하면서 극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정신, 건강을 우선하며 환자의 안전과 의료 질 향상을 위해 많은 누가 인정해주든 안하든 오직 나라와 백성을 위해 헌신 봉사 투자와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각종 첨단장비와 기술을 도입 하는 공의와 사랑이 와 닿았다는 황성환(외과 전문의) 부산 하고 풍부한 임상경험을 갖춘 전문의들로 구성해 최상의 의료 제2항운병원 대표원장(이순신아카데미 7기)은 이순신의 4대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지방의 의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정신 가운데 ‘사랑’을 최고로 꼽았다. 시키는데 기여해온 것. 이순신 아카데미를 통해 이순신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고 돌아보니 새삼 더 존경스러웠다는 황 원장은 교재인 ‘이순신 일주일 내내 환자를 돌보며 현장을 지키고 있는 황 원장은

황 원장은 사진 속 소중히 안고있는 이순신 책을 10번 넘게 읽어보았을 정도로 이순신 팬이라고

개인적인 시간이 없을 정도로 병원에 매여 살지만 환자를 돌보며 느끼는 보람이 크다. 무엇보다 적성에 맞는 천직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힘든 수술 후 환자들의 만족도가 높고 감사와 칭찬이 감동과 보람으로 이어지다보니 힘든 줄 모르고 달려온 것 같다고 말한다.

“의술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고 환자의 생명과도 직결될 뿐만 아니라 환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준다는 점에서 외과 전문의로서 필수의료에 매력을 느낀다.”고.

하나가 되어 죽을힘을 다해 싸웠습니다.’(김종대 지음, 가디언 출판) 책을 열 번이나 넘게 읽어보 았다고 말한다. 성웅 이순신의 진면목과 성공 가치를 제대로 새기기 위해서다.

최근 의협과 정부갈등을 보며 안타깝기 그지없다는 그는 의료공백을 막고 이제라도 문제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결정을 유예하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말한다. “이미 의협 차원에서도 여러 해법을 제시했고 갈등 봉합을 위해 서로가 노력하고 있는만큼 국민들이 더 이상 피해를 입지 않도록 현장의사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는 결과가 도출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한다.

전문 경영인은 아니지만 의사로서 두 개의 병원을 운영하며 무난하게 이끌어올 수 있었던 것도 이순신 장군이 실천해온 정신들을 나름 접목해오고 있었던 같다고. 황 원장은 평소 ‘서번트 리더십’을 실천가치로 조직원들을 섬기며 ‘솔선 수범’ ‘묵언수행’하는 자세로 경영체를 이끌며 몸소 보여주고 실천하는데 주력해왔다. 이러한 황 원장의 실천력이 환자들에게도 고스 란히 전해져 의술과 인술 모두 인정받는 부산일보 ‘원 오브 베스트 닥터’ 넘버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황 원장은 또 막대한 보건의료 예산의 낭비를 막고 지역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각 구ㆍ군ㆍ면 단위의 보건소 운영의 통합 개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한다. 즉, 지역마다 운영되고 있는 보건소 내 파견된 의사와 공중 보건의를 군단위 의료원 설치로 통합하여 전문의를 추가배치 하고 의료시설과 이송수단을 구축하는 등 제대로 운영하면 산발적으로 흩어진 인력과 예산의 낭비를 막을 수 있는 대안 이라고 강조한다.

“언젠가부터 의사에 대한 규제와 압박의 범위는 점점 넓어 지고 강도는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법이 일례인데, 진료 과정에서 생긴 환자의 피해를 국가가 중재하겠다는 취지의 법률이 편향 작동해서 필수의료 활동을 위축시킨 경향이 있습니다. 모든 범죄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의사면허가 박탈되는 법안으로 의사는 성직자 수준의 생활이 요구되기도 합니다.” 의료현장에서 의사들이 맞닥뜨리는 현실은 단순 의료인 수를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닌데 너무 숫자에만 매몰 되어 현장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개선하는데 집중하지 않는 것 같다고 지적하는 황 원장은 필수의료 분야 의료수가 적용 과 배분의 문제도 지적한다.

부산고등학교 총동창회장 취임식에서

그는 의료행위중 발생되는 변수에 따른 소송의 남발도 의료 활동을 위축시키는 일이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의료정책도 문제라고 제기했다. 특히 “필수의료분야의 경우 의술의 강도에 비해 낮은 수가에 리스크를 감수하며 사명감으로 버티고 있는데 근원적 대책 없이 집단이기주의로 모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며 의료 현장의 고충을 국민들도 제대로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덧붙 였다.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겠지요? 저는 이번에 정부와 의협 갈등을 보면서 이순신정신을 떠올려보게 됐습니다. 이순신은 소통을 통해 하나되는 정신으로 구국의 목표를 달성한 분 아닙니까. 의대생 증원문제도 애초에 소통을 통한 원만한 해결이 요원했습니다.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결정은 언제나 화를 불러오게 마련이거든요. 치밀한 전략과 계획으로 단계별 목표를 설정하고 성공으로 이끄는 이순신장군의 리더십을 본받았으면 합니다.”

의·정갈등으로 결국 국민들만 고충을 겪고 있다는 황성환 원장.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는 정치적 욕구가 반영되어 서도 또 그 본질이 왜곡되어서도 안된다며 오늘날 사회전반에 만연한 여러 문제들을 볼 때 마다 오직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했던 이순신장군의 정신이 떠오른다고 말한다.

한편 지난해 제37대 부산중고등학교 총동창회 회장으로 취임한 황 원장은 동문과 지역사회발전에도 기여해오고 있다.

유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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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교육 기고

이순신! 실내교육 현장 속으로

부산여해재단에서 이순신교육을 하게 된 지도 여러해가 하는 시간입니다. 유소년기를 거쳐 과거에 합격하기 까지의 됩니다. 교직을 은퇴하고 다시 아이들 앞으로 가는 걸음이 마 피나는 노력과, 훗날 장수가 되어 거북선을 만들고 전쟁을 치 고향집 가듯 설레는 마음이었습니다. 이순신이라는 낯설 준비하는 이순신을 아이들은 이 수업을 통해 만납니다. 지 않은 이름 덕분에 학생들에게 부산대첩과 거북선 교육은 특히 난중일기에 잘 드러나있는 어머니에 대한 깊은 마음을 부담감 없이 꽤 친숙하게 전달되는 듯합니다. 라는 아이의 자기고백도 듣게 됩니다. 저는 우선 아이들에게, 이순신 공부는 왜 할까 부터 묻습니다. “판옥선이 있는데 거북선은 왜 만들었을까요?” 라는 질문에 “우리나라를 구해 주셔서”라는 상투적 표현에서부터, “몸은 “백병전을 막기 위해서요.”라는 제법 그럴 듯한 대답을 죽고 나라는 살고” 신망국활(身亡國活)이 내포된 대답을 하는 듣기도 합니다. “백병전은 100명이 배에 올라타서 싸우는 것 대견스러운 학생들도 있습니다. 저는 이 때를 놓칠세라 ‘몸은 입니다.”라고 웃음을 자아내는 답도 있습니다. 1교시 수업의 비록 가셨지만 정신은 살아남아 오늘도 우리 곁에 있습니다’ 핵심은 거북선 제작 과정의 이순신 정신(유비무환, 자력, 라는 얘기로 이순신 교육의 문을 엽니다.

이 얘기가 끝나면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됩니다. 부산여해 워줍니다. 빠트릴 수 없는 한가지, 부산대첩의 의미와 부산 재단이 지향하는 이순신공부의 요체를 전하는 일은 이번 시민의 날에 대한 설명으로 1교시 수업은 마무리됩니다. 교육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랑과 정성, 정의와 자력을 아이들에게 하나씩 설명합니다. 인격이라는 싹이 2교시는 거북선 모형을 함께 만듭니다. 수업에 대한 흥미도 트고 자라기 시작하는 유소년기, 청소년기엔 무엇보다 마음의 못지않게 만드는 기량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보조강사님들이 힘들을 키워줘야 합니다. 그것으로부터 모든 실천이 시작되기 수고를 많이 해주셔야 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빨리 완성한 때문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공부주제는 ‘이순신과 거북선’이지만 니다’라는 장계 속 구절을 새기는 귀한 수업으로 유종의 미를 수업내용은 협소한 주제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거둡니다. 모쪼록 미래의 주인공이 될 청소년들이 부산여해 1학년에서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발달단계에 맞게 흐름은 재단의 이순신 교육사업을 통해 세상의 밝은 빛으로 성장 하길 염원해 봅니다. 같이 하되 4개의 지도안과 자료를 별도로 준비합니다.

1교시는, 이순신은 어떤 사람이었나를 개략적으로 이해

현장탐방 후기

김 연 이 이순신 아카데미 1기

나눌 때면, 자기는 어머니께 거짓말을 많이 해서 불효자

이를 극복한 민족이다.

창의성 등)과 나의 생활을 접목시켜볼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

23회에 걸쳐 548명을 대상으로 역사탐방을 완료하였다.

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다시한번 아이들의 실천의지를 북돋

크게 네 곳이었다.

친구는 부족한 친구들을 도와주기도 합니다. 김종대 전 헌법 재판관의 저서이기도 한 ‘하나가 되어 죽을힘을 다해 싸웠습

부산대첩 관련 초·중등생 현장탐방 후기

서 만 영 이순신 아카데미 1기

우리 부산은 지리적으로 인적, 물적 이동의 중요한 거점지역 위하여 목숨을 다하여 왜군과 싸웠던 정발장군과 당시 조선군, 으로 나라의 관문 역할을 하여 왔을 뿐 아니라 특히 해양세력의 그리고 백성들의 혼령을 위로하는 제단이 정공단이다. 이곳에 침략 시 선제적 피해를 보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1592년에 세워진 비석에 얽힌 애절한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전할 때면 일어난 임진왜란은 계획적으로 준비한 왜의 침략으로 부산 어린 학생들의 먹먹한 눈망울이 떠오른다. 역사공부는 이렇게 진성은 일시에 무너지고 전 국토가 초토화되었으나 우리는 시작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부산진성 공원이다. 이 곳은 한때 자성대로 널리 아직도 부산에는 당시 전란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역사의 알려져 있던 곳으로 임진왜란이 끝나고 조선이 부산진성 유물이 되었다. 이에 부산여해재단에서는 부산 관내 초·중 으로 사용되어왔던 곳인데, 당시의 성벽들과 성문인 금루관 학생들을 대상으로 부산대첩의 역사적 인식을 제고하기 위한 그리고 장대인 승가정 등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이 유적들은 현장탐방을 추진하여 2023년 5월 3일 강서구 신호중학교 지난 1974년 복원이 되었고, 조선의 성문벽과 남아있는 2학년 24명을 시작으로 12월 15일 사하중학교까지 총 14개교 우주석은 4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물로 부산의 지리적 중요성을 교육할 수 있는 귀한 자원이다. 부산진성은 조선의 교육은 답사장소로 이동하는 버스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름답고 견고한 역사적 유산으로 후세까지 잘 보전해야 부산여해재단이 기획제작한 영상을 통해 임진왜란의 실상과 한다는 얘기를 학생들에게 매번 당부한다.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조선의 전쟁준비 상황을 함께 살펴보면서 당시 숭고한 구국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푸르른 느티나무처럼 우리의 미래가 정신으로 승리를 이끈 이순신 장군과 백성들의 나라사랑의 되길 기대해본다. 길을 함께 배운다. 2023년도 현장교육을 위한 탐방장소는 네 번째 조선통신사역사관이다. 이 곳에는 조선통신사와 관련한 역사적 자료와 다양한 콘텐츠 그리고 상영관 등을 갖추고 있는데, 특히 이웃나라와 평화롭게 교린 할 수 있는 첫째, 증산왜성으로 높이 130미터의 낮은 산이지만 부산 앞 방법을 배우고 실천해 나가는 실질적인 내용을 배울 수 있는 바다를 잘 조망할 수 있어 당시 왜군들이 이 곳을 본거지로 삼아 곳이다. 답사교육의 최종장소로, 여름내내 이 곳 에어컨 전쟁의 지휘소를 마련했던 탓에 당시 쌓은 왜성들이 잘 덕분에 우리 아이들이 마지막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보전되어 있는 곳이다. 이 곳에서 우리 학생들은 북항을 내려다 이번 탐방을 통하여 초·중등 학생들이 역사적 유적지를 보며 이순신의 정신과 부산대첩의 역사성에 대한 세세한 돌아보면서 나라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을 직접적 설명을 듣는다. 다시는 이 땅에 그러한 비극이 초래되지 않도록, 으로 키울 수 있었다. 이순신의 도시 부산에서 이순신을 우리땅에 이런 왜성이 쌓아지는 일이 없도록 당부를 거듭한다. 배우고 부산대첩을 알아가는 공부가 더욱 확대되었으면 두 번째, 정공단이다. 임진년 첫 전투 시 부산진성을 지키기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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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마케팅 음식에도 통한다

통영-여수 남해밸트 이순신 맛집

4월은 충무공 이순신 탄신의 달. 한차례 벚꽃이 흐드러지게 지천을 흩날릴 때 즈음, 이순신 전적지의 고장은 북새통을 이룬다. 벚꽃이 지기 전 서둘러 부산과 가장 가까운 통영과 거제일원을 찾았다. 벚꽃을 찾아 남쪽으로 몰려든 사람들이 이 무렵 이순신도 한번쯤 떠올리게 마련. 통영과 거제는 발길 닿는 곳 마다 이순신과 관련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지명, 상호, 심지어 음식명까지 곳곳에 이순신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재밌는 것은 이순신 마케팅이 음식까지 확장됐다는 것. 불멸의 이순신 국밥, 이순신 갈비탕, 이순신 해물삼합, 이순신 수제버거, 이순신 소국밥, 충무공 이순신횟집, 이순신 밥상 정식집, 이순신 장어, 이순신 중화요리, 이순신 충무김밥

이순신 꿀빵 등.

한국의 이순신 공원

이순신을 테마로 한 음식점이 가장 많기로는 단연코 여수가 부동의 1위. 다음이 통영과 거제다.

부산은 부산대첩이라는 큰 전투가 벌어진 이순신 전적지 임에도 관광지로 개발된 곳이 아직은 없다. 다만 이런 이순신전적지로서의 관광테마개발은 불모지 에 가깝지만 모든 음식이름을 다 갖다부쳐도 경쟁이 안 되는 대표적인 이순신테마 음식점이 그나마 한 곳 있다. ‘금신전선 상유십이’ 간판을 단 음식점이다. 메밀국수와 육개장, 곰탕이 주메뉴인데 이순신장군의 스토리 를 한식에 접목해 매장인테리어부터 메뉴명, 음식 플레이 팅까지 재미있게 구성한 게 특징이다. 단순 이름만 갖다붙인 여타 음식점과는 달리 메뉴마다 그럴듯 한 이유가 있어 단연코 이순신테마 맛집으로서는 압권이다.

같은 듯 다른 산책명소 이순신 테마공원 2선

여수에서 부산으로 이어지는 남해권 영역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장군과 관련된 4대 승첩이 있었던 해역인만큼 곳곳 에 이순신 장군의 정기가 서린 관광지가 많다. 특히 통영 과 거제 그리고 여수지역은 발닿는 곳곳이 이순신 관련 관 광명소로 개발되어 있다. 이번호에는 통영과 여수에 소재 한 이순신공원을 소개한다. 두 곳 다 이순신 테마공원으로 조형물과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있고 전망대가 운치있다.

통영 - 이순신 공원

먼저 경상남도 통영시에 소재한 이순신 공원은 한산도 앞 바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통영의 대표 공원이다. 이순신 공원(구 한산대첩기념공원)은 통영시 동호항방파제 인근에 있으며 연 49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는 대표 관광지. 1592년 8월 14일 조선 수군과 일본 수군이 해상 주도권을 다툰 전투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에 대승하여 식량 보급로를 확보하고 일본 수군의 전의를 상실하게 만든 임진왜란의 최대 승첩지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공원이다.

공원 중앙에 정자가 자리하고 있고, 청동으로 만든 높이 17.3m의 이순신 장군 동상이 한산도 앞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며, 통영해상순직장병 위령탑, 해안 수변데크길

수국 산책로, 무장애나눔길, 잔디광장, 어린이놀이터 등의 시설이 있다.

공원 내에는 승전무와 남해안별신굿, 통영오광대의 중요 무형문화재 보유자들이 연습에 전념할 수 있는 통영무형 문화재전수관이 있고, 야외공연장이 마련되어 수시로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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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 이순신 공원

전남 여수시 신월로에 소재한 이순신 공원도 연중무휴이고 반려견 동반이 가능하다. 이곳 또한 입장료와 시간제한이 없는 개방공원. 1시간 정도면 공원일원을 돌아볼 수 있고 곳곳에 조형물과 시설물들이 들어서 있어 지루하지 않게 둘러볼 수 있다. 전망대에서 여수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도시야경도 아름답다. 거대한 바위산 정상에 있는 이 전망대에는 대리석으로 성곽이 둘러싸있고 가운데 봉화대가 멋지게 조성돼있다. 벽면으로는 이순신 장군을 도운 장수들의 사진과 업적들이 기록되어 있고 전망대 아래 삼려통합석 즉 세 개의 큰 바위가 설치된 조형물이 인상적이다. 세 개의 행정구역이 하나로 통합되어 탄생한 여수시를 기리기 위해 설치한 바위 조형물이다. 문의 : 061-659-4629

이 열리고 있으며, 2023년 유아숲체험원이 신 규 조성되어 7월 이후 유아 숲 교육 및 숲 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북쪽은 망일봉, 남으로는 호수 같은 통영항 과 한산대첩의 학익진이 펼쳐졌던 바다의 풍 광이 아름답게 펼쳐져 사진명소이기도 하다. 사계절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않지만 특 히 벚꽃이 필 무렵 곳곳의 산책로가 아름다워

배재한

많이 찾기도 한다. 연중무휴 개방한다. 문의 : 055-650-1411~5

전 국제신문 사장 이순신아카데미 1기

지난 달 부산문화회관에서 열린 ‘부산사람 고 이태석 기념 음악회’에 다녀왔다. 잘 알다시피 의사이자 가톨릭 사제로서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의료활동에 자신을 바친 이태석 신부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행사다. 올해로 13회째인 이태석 기념음악회는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2000명 확대를 둘러싼 의료계와 정부의 충돌로 전공의들이 대거 병원을 떠나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의사의 역할과 직업윤리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전공의들이 떠난 서울대병원, 현대아산병원 등 이른바 한국을

김성경 기자

대표하는 ‘빅5 병원’은 물론 부산대병원 등 전국의 대학병원은 정상적인 진료와 운영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 여기에다 전국의 의과대학 교수들마저 제자들인 전공의들이 피해를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다며 집단적으로 사표를 제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의과대학 정원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방침에

달리 생명을 다루는 ‘신성한 직업’이라 든가 하는 기본적인 사실

'의·정 충돌'에서 드러난 의사들의 민낯

이태석 신부 어른 김장하 처럼 의사가 자리해야할 곳은 환자 곁 백성을 지극히 사랑했던 충무공…의사의 존재이유는 ‘환자 사랑’

없다” 는 등의 발언들을 듣고 있노라면 그들의 엘리트 의식과 무너진 직업윤리 부재에 할 말을 잃게된다. 국민과 환자를 볼모로 잡고 사직서를 던지며 정부에 항의하는 의사들은 “한국 의료계 문제는 다른 데 있다”라고 말한다. “의료계 문제는 지방과 수도권의 격차, 필수의료 과목에 의사 부족 등 구조 불균형에 있지 의사 숫자가 부족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다른 문제’ 해결을 위해선 지금까지 목소리 높여 싸우 지 않았는지 의아할 뿐이다.

유럽 등 선진국의 의료인들도 집단행동을 벌이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이들 의료인들이 내거는 구호는 한결같다. “병상 수를 늘려라”, “의료인력을 확대하라”, “병원 등 의료현장에 더 많은 자원(예산)을 투입하라”고 요구한다. 프랑스는 이 같은 의료인의 요구를 수용해 2021년부터 의대 정원을 1만 명 으로 늘렸다. 프랑스 인구는 6800만 명으로 우리보다 1.3배 많지만 의대 정원은 1만 명으로 우리(3058명)의 3.3배에 달한다. 의사 증원을 반대하며 전공의가 응급실 중환자실 수술실을 떠난 것을 공감할 국민은 얼마나 될까? 겉으로는 환자를 위한 다면서도 환자를 등지는 모진 행태에 국민은 적잖이 놀라고 맞선 의사들의 ‘의료파업’에 대다수 국민들은 공감하지 않는 실망했다. 중증·응급환자만이라도 번갈아 지켰으면 의사들의 분위기이다.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평균 주장에 힘이 실리고, 더 많은 응원을 받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의사 수가 가장 적은 나라 중 하나라든지, 의사가 다른 직업과 남는다.

들을 더는 반복하지는 않겠다. 정원 확대에 반발한 의사들이 이번 사태에서 의사들이 간과한 게 하나 있다. 노환규 전 “국민은 반에서 20~30등 하는 학생들도 의대에 가고, 이런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정부가 의사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의사한테 국민이 진료 받기를 원치 않는다”, “지방에 부족한 것 자체가 어리석은 발상”이라며 정부를 조롱하기까지 했다. 것은 의사가 아니라 민도”라느니, “내(의사)가 없으면 환자도 의사들의 주장대로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을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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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환자를 내팽겨 친 의사는 결코 국민을 이길 수는 없을 그는 왜 그러한 삶을 살았을까? 그의 말에 바로 답이 있다.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의사를 예우하고 흰 가운의 권위를 신뢰하는 없어 그것을 모아 사회에 환원했다.” 그가 가진 돈이 아프고 전통이 강하다. 직업 이름 뒤에 ‘님’자를 붙이는 게 일반적인 괴로운 사람들을 상대로 번 것이라는 윤리의식이 그를 더욱 데도 “의사 선생님”이라고 이중의 존칭으로 부르고, 다른 ‘사’자 겸손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김장하 원장이 보여준 의료인 전문직과는 달리 ‘스승 사(師)’를 써 존중한다. ‘신의 수선공’이 으로서의 삶과 아픈 환자를 내버려두고 병원을 떠난 의사들의 라고 했을 만큼 병들고 아픈 사람을 고치는 의술이 중요하고, 행태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 손길이 고맙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을 분석하는 지배적인 관점은 의사들이 자기 이익과 직역 이기주의에만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의 혈안이 돼 가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러다가는 신의 수선공 요체로 사랑을 빼놓고 설명할 길이 없다. 에서 점점 이탈해 한없이 작아지는 평범한 전문직 또는 개인 이순신 장군의 지극한 나라사랑과 백성사랑이 임진전란을 사업자로 전락하는 것 아닌가 싶어진다.

모두에서 이태석 신부 기념음악회 얘기를 꺼냈지만 이번 나라 동포를 사랑했다. 이 같은 나라와 백성에 대한 지극한 사태를 보면서 머릿 속에 떠오른 또 한 사람은 올 초 많은 사랑은 그의 일대기를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 지극한 사람의 심금을 울린 다큐 ‘어른 김장하’의 주인공인 남선당 나라사랑이 그와 국민을 혼연일체로 만들어 마침내 기적같은 한약방 김장하 원장님이다. 그는 진주에서 한약방을 하면서 승전으로 이어진 것이다. 번 돈을 필요한 곳에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다. 자기처럼 돈이 없어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 교육받을 기회를 주려고 학교를 의사들이 지극히 사랑할 대상은 바로 환자다. 환자를 최우선 세우고 1000명이 넘는 가난한 학생들을 대학까지 아낌없이 순위에 놓고 접근하면 의정 충돌의 실마리도 풀리지 않을까. 지원해 줬고, 결국에는 재산을 털어 세운 학교(명신고등학교)를 이순신 장군의 지극한 나라 사랑 백성 사랑을 생각할 때마다 국가에 기증했다.

Book - 이 한권의 책

“내가 돈을 벌었다면 결국 아프고 괴로운 사람을 상대로 돈을 벌었다. 아픈 사람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을 허투루 쓸 수

이순신의 바다

황현필 지음 / 역바연

승리로 이끌었으며, 위기에 처한 조선을 구했다. 이순신 장군은 자기가 태어나고 죽을 조선을 사랑했으며, 함께 살아가는 이

직역 이기주의보다 환자와 국민을 먼저 생각하며 지극한 사랑을 실천하는 의사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진다.

이순신의 바다

20분짜리 이 영상은 23전 23승 그것도 이순신 장군을 만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모두 KO승으로 이긴 전승 장군의 면모, 한다. 이순신 장군의 개인 일기 <난중일기>가 책은 주로 1~3페이지 부제들로 구성돼 세계기록유산인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 쉽게 넘어간다. 입체 지도를 비롯해 당시 세계 석학이 깜짝 놀란다는 거북선의 무기, 생활상을 그린 그림, 인물들의 초상화 제작과 활용도, 무능한 임금을 비롯해 (일본 장군까지 포함), 간결하게 정리된 자신을 시기하는 이들 사이에서 위대한 표(조선과 일본 비교) 등이 많아 그 어떤 능력을 발휘했다는 점, 심한 고문 끝에 역사서보다 이해가 쉽다. “그 영화 재미있을 것 같던데 봐야지!” 자주 실신할 정도로 몸이 상했지만 백의 이순신의 죽음과 장례 상황까지 나온 “이번에 나온 그 책 읽어보고 싶던데 얼른 종군하며 나라를 지켰다는 점, 효자로서의 후 다음 장에 이순신 장군의 묘소(현충사) 주문해야겠다.” 면모를 조목조목 짚고 있다. 울컥한 마음이 사진이 등장한다. 사진 아래에 저자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갑자기 일이 바빠지며 들 정도이다. ‘이순신 장군 묘소를 가본 적이 있는가? 때를 놓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런 저자가 쓴 이순신 책을 지금에야 갈 때마다 혼자였다.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 이번에 소개하는 책 <이순신의 바다>가 보게 된 것이다. 에는 평일에도 사람이 북적거린다. 그러나 내게 그런 경우이다. 현충사는 한적함이 좋다. 그게 서글프다’ 2021년 12월에 출간된 이 책은 역사 <이순신의 바다>는 이순신의 전 생애와 라고 썼다. 이 페이지에서 한참 넘어가지 바로잡기연구소 소장이며 유튜브 ‘황현필 전투, 승리 상황을 수 많은 실제 자료를 못했다. 먹먹한 여운이 남는다. 한국사’에서 역사 강의를 하는 황현필 통해 짜임새 있게 설명한다. 자칫 지겨운 책의 마지막 장은 장군의 죽음에 대한 소장이 썼다. 황 소장의 유튜브는 한국사 역사 교과서라고 오해할 수 있겠지만, 자살설, 은둔설에 대한 반박 글이다. 실록을 강의 채널로는 드물게 무려 100만 명의 맛깔스러운 저자의 글 솜씨 덕분에 책은 비롯해 여러 자료를 내밀며 정설을 명확 구독자를 달성했고 지금도 매일 구독자가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생동감 넘친다. 하게 설명해 준다. 증가할 정도로 호응을 얻고 있다. 오히려 이순신 장군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한 명의 인물이 한 나라 역사의 큰 줄기와 늘 “역사를 가장 역사답게, 황현필” 보다 이 책이 더 재미있다고 말할 수 있다. 주변 여러 국가의 역사까지 바꾸었다는 이라고 소개하는 저자는 자신의 유튜브에서 저자는 서문을 통해 역사서지만 독자 사실과 더불어 세계 전쟁사를 연구하는 수십차례 이순신 장군이 얼마나 대단한지 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고 눈시울이 붉어 학자들조차 이순신 장군은 모든 면에서 객관적인 자료를 보여주며 명쾌하게 설명 지기를 바란다고 썼다. 이렇게 대단한 완벽해 흠잡을 점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 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에 대한 저자의 열정 인물이 우리 역사 속에 있었음을 알게 한다는 문구로 책은 마무리된다. 적인 강의와 당시 위정자들에 대한 속시 하고 우리가 그의 후손이라는 것을 자랑 원한 일갈은 쾌감마저 느껴질 정도이다. 스럽게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한다.

사실 이순신 장군에 대한 황 소장의 어마 그렇다고 마냥 이순신 장군을 찬양하는 어마한 존경은 3년 전 우연히 본 그의 부담스러운 문장들로 채워진 것은 아니다. 유튜브 채널 이순신 강의에서 확인할 수 오히려 담담하게 이순신 장군을 묘사하 있었다. 며 철저히 객관적인 자료를 내밀어 실제

글_김효정 부산일보 부국장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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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이순신 독후감 공모

부산여해재단은 사랑ㆍ정성ㆍ정의ㆍ자력의 이순신 정신을 널리 전파하고자 「2024년 제8회 이순신 독후감 공모」를 아래와 같이 진행합니다.

공모대상 청소년부(중ㆍ고등학생, 동일 나이 청소년) / 일반부 / 가작 • 청소년부 : 최우수(1명/ 500천원), 우수(2명/각 300천원), 장려(3명/각 150천원) 시상내용 • 일반부 : 최우수(1명/1,000천원), 우수(2명/각 600천원), 장려(3명/각 300천원) (총 510만원) •가작: 9명(각 50천원(문화상품권))

접수기간 2024. 4. 1. ~ 8. 31. • 지정도서를 읽고 독후감을 1인 1편 작성 공모대상 • 홈페이지에 첨부된 [지원신청서 및 독후감 작성양식]을 다운로드 받아 작성

작성요령 글자크기 12포인트(휴먼명조체), A4용지 2매 이상 접수방법 반드시 이메일 접수 | bsyeohae@naver.com / 파일명 : 이름 (예시 : 김순신) • 이미 발표된 작품이나 모방성이 인정되는 작품은 심사에서 제외 (시상 후 발견되면 입상취소 및 시상금 환수조치) 유의사항 • 지원신청서 및 독후감 작성양식의 기재사항 미비할 경우, 심사에서 제외될 수 있음 • 제출된 작품은 일체 반환하지 않음 지정도서 「이순신, 하나가 되어 죽을힘을 다해 싸웠습니다」(김종대 저 / 가디언) • 결과발표 : 2024. 9. 13. 재단 홈페이지 게시 및 개별안내 •시상식: 2024. 10월 중 (부산대첩기념식 개최 시) 결과발표 및 시상식 ※ 수상자는 반드시 참석해야 함

(불참석시, 수상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음) [이순신 독후감 담당자] bsyeohae@naver.com (051) 923-1000

문의

편집 후기

벚꽃이 지고나면 왠지 봄이 가버린 느낌입니다. 찬란한 봄을 마음껏 누려보기도 전에 서둘러 떠나는 봄이 못내 아쉽지만 우리에겐 언제나 새로운 계절이 아쉬움을 채워주고 다시 가고 오기를 반복하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부산 시민 곁으로 다시 이순신장군을 소환한지도 어언 10여 년이 다 되어갑니다.

사철의 변화가 계속되어오는 동안 조금씩 조금씩 시민들의 의식도 깨어나 그동안 크고작은 성과들도 있었고 무엇보다 부산시민의 날과 부산대첩일이 같다는 것을 시민사회에 널리 알려 부산대첩의 의미를 새기도록 한 것은 빼놓을 수 없겠지요.

뭐니뭐니해도 북항에 ‘이순신대로’가 생긴 것은 그동안 노력 해온 운동의 가시적인 성과이자 향후 후속사업 추진에도 탄력을 받게하는 단초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부산대첩 승전의 역사와 불굴의 의지로 발현된 이순신 정신은 부산시민의 큰 자산임을 우리는 믿습니다. 위기의 나라를 구한 위대한 영웅 이순신의 발자취는 부산 에서 그 완성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기념비적인 부산대첩기념 사업들이 잇달아 속속 성과를 내기를 기대하며 아울러 역사문화도시 부산이 더욱 풍요 로워지길 소망합니다.

공지 이순신탄신 479주년 기념 세미나에 초대합니다

(사)부산대첩기념사업회는 오는 4월 26일 오후 3시~5시 부산 진구 서면 영광도서 문화홀에서 이순신탄신 479주년을 맞아 기념 세미나를 개최합니다.

부산포해전의 바른 역사적 명명을 위한 시고(試稿)를 주제로 남송우 고신대학교 석좌교수가 특강을 갖습니다.

참가신청 문의 (051) 923-1000

제9호 편집위원회(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 배재한 편집위원, 김효정 편집위원, 하종숙 편집위원, 유순희 편집위원

부산대첩기념사업회는

부산대첩을 시민 누구나 자랑스러워할 역사적 유산으로 복원하고 이순신 정신을 알리고 실천하여, 부산을 품격 있고 건강한 문화도시로 만드는 일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부산시민의 결사항전·호국정신을 재조명합니다. 역사·문화적 유산으로 복원합니다.

부산대첩을 자랑스러운

이순신 장군의 시대정신과 리더십을 재조명하고 시민교육으로 활성화합니다.

부산대첩기념공원과 기념관을 조성합니다.

부산대첩기념식(부산시민의날) 및 축제 부산대첩기념 기념세미나(심포지엄), 이순신아카데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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