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다에자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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냅둬유 제발
인생에 정답이 없어유 그냥 생긴대로 사세유 남 의식하지 말구유 정말로유
매화 꽃이 피는가 싶더니 목련 꽃이 왔고 벚 꽃은 늦게 오더니 확 갔어유 냅둬유
냅둬유 매화 꽃이 피든 지든 벚꽃이 피든 지든 지 생긴대로 살게유
내게도 냅둬유 내 머리를 빨갛게 물들이든 내 마음에 비가 내리든 그냥 보고만 있어유
냅둬유 지 생긴대로 살게 내 생긴대로 살게 제발유
제다에자는 이제야 알았시유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 있시유 자식 사는 거에 간섭 말구유 더더구나 남의 일에 잔소리 말아유
꽃이 피는 순서가 차이가 있어유 꽃이 지는 순서가 달라유 사람도 시간을 달리 꽃을 피우다가 가는 순서는 다 달라유
야생의 땅에서
사람이 무엇인가 나는 무엇인가
무엇인가, 그것을 진심으로 찾고 싶다면 답이 있다고 믿는다면
원시 자연 앞에 서 봐라 야생의 땅에 머물러야 한다
나는 산에 선다 매일 산에 간다 나는 무엇인가 매일 공부한다 그 산 원시 자연에서 야생의 땅에서
산에는 거미가 산다 높은 솔가지에서 내 얼굴 앞까지 거미줄을 짠다 하룻밤 새, 막대기로 후려쳐 거미집을 박살내도 다음날 또 똑같은 집을 지어 놓고 나를 기다린다 그 거미를 볼때마다 나는 한 없이 작아만 진다 나는 거미에 비하면 백치다
나는 산에서 닭을 거둔다 수 년 동안 닭을 기르면서 큰 발견을 했다 그들은 오로지 먹는 거에 대부분 시간을 쓰고 서열 다툼에 힘을 쏟고 암탉 올라타는 것이 전부다
닭을 산에서 키우기 전에는 먹는 일이 삶에서 그렇게 비중 큰 일과인 줄 몰랐다 서열 구분도 올라타는 것도 그처럼 필수과목인 줄 정말 몰랐다 닭을 보고 내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알게 됐다
산에는 멧돼지가 살고, 고라니가 으웩 으웩, 뱀이 스르륵 스르 륵, 두더지가 사그락 사그락, 매가 빙빙, 장끼와 까투리가 푸드 덕 푸드덕, 모기들이 웽웽, 개구리가 펄떡펄떡, 벌들이 윙윙, 참새가 포롱포롱, 개미들이 바글바글, 까치 왜가리 까마귀가 싸우고, 지렁이 달팽이가 꼼지락 꼼지락, 사마귀가 노리고, 토 끼가 후다닥 내달린다 이중에 나는 뭐냐
좋다 푸근하다 하루하루가 다르다 텅빈 자루와 같던 내가 서고 채워진다
책에서 읽어 배워 봤지만 책은 피상적이다 텔레비에서도 보고 들었지만 먼 얘기다 선배 선생들에게도 전수받았지만 들뜨더라
이제 나는 무엇인가 깨쳐야할 시간이 짧다 새 방법으로 낯선 곳에서 시도한다 야생의 거기서 터득한다 매일 간다 야생의 땅
눈에 쎄게 남은 가마니떼기
제다에자
아마 1964년 국민학교 1학년 때일 것이다. 오전반 오후반 있을 때 수업 마치고 한 1시쯤 집으로 혼자 가고 있었다. 우리 집은 서대전역에서 회덕 역 쪽으로 가는 호남선 철길 너머에 있었다.
그날도 대낮에 철길 건널목을 건너려고 언덕길을 올라 철길에 당도한다. 이상하다. 아침에 학교 갈 때 없던 가마니떼기가 길옆에 덮어져 있다. 그 것에 왠지 내 눈이 끌려 들어갔다. 느낌이 서늘하다. 가슴이 섬짓하다. 사 람들이 저만치서 웅성거리고 있다. 어린 마음에도 뭔가 저 속에 기차에 갈 려 죽은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직감한다.
멀찌감치 비켜서 살살 안 보려고 애쓰면서 후다닥 건널목을 건넜다. 슬쩍 곁눈으로 들어온 가마니는 빨간 핏물이 흥건하다. 심장이 쿵쾅거린다. 뼈 다귀 하나가 벌떡 일어나 나를 잡아당길 것 같다. 60년이 지난 지금도 그 피묻은 불룩한 가마니떼기가 눈에 선하다.
어머니 아버지가 부부싸움하실 때 "내가 저 철길에 가서 죽어버리겠다." 두 분이 번갈아 가며 그런 말씀을 했다. 그때마다 나는 '그러면 절대 절대 안되는데' 그 피묻은 가마니 거적떼기가 생각나 소름이 돋았다. 특히 밤에 마당이나 밖에 나갈 때마다 그 철길 건널목 쪽을 바라보며 혹시 거기서 귀신 나오는 거 아닌가. 그쪽을 외면하려 무진 애썼다. 밤이 엄청 무서웠 다. 그 피묻은 불룩한 가마니가 떠올라.
왜 사람은 죽은 송장을 보면 두려울까 왜 시체를 피하고 안 보려 했을까
수만 년 전에 내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죽음의 공포감, 피에 대한 섬뜩 함이 어린 8살 뇌속에도 유산으로 잠재돼 있었다. 인간은 배우지 않아도 원초적으로 아는 게 많다. 본능은 위대하다. 그리고 쎄다. 그러니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가마니가 생생하게 보여진다.
내 인생의 특종
홍성원
1967년 9월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개학한 어느날, 내 인 생의 특종이 발생했다. 왼손 집게 끝마디 손가락이 작두에 짤 려 나가다.
그날도 자치기로 재미있게 놀았다. 방학 때 놀던 가락으로. 저녁이 되니 아버지의 불같은 호령이 퍼뜩 떠오른다. 우리 집 은 아버지가 말 구르마를 끌어 식구들을 먹여 살렸다. 열 살짜 리 내가 맞이라, 날마다 말 먹일 풀을 베어오고 작두로 썰어 일 마친 말을 먹여야 했다. 동생들이 아직 어려 아버지는 내게 만 닥달했다. 말먹이는 오롯이 내 책임이었다.
놀다가 그만 풀 베는 시간이 늦어졌고 작두질을 해야할 시간 이 되자 아예 어두컴컴했다. 그때는 나라에 전기가 없었다. 기 껏해야 호롱불이 그나마 있를 뿐이었다. 외할머니가 한집에 살 고 있었다. 말하자면 못난 아버지는 처가살이를 했다. 외할머 니는 딸을 의당면의 나름 논밭 부잣집으로 시집을 보냈는데, 13년 만에 알거지가 되어 애를 다섯이나 달고 무대뽀로 처가 에 쳐들어온 것이었다.
외할머니는 어린 손자들이 작두질을 하는 것이 못내 불안했던 지 호롱불을 들고 나오셨다. 엄마는 부엌에서 저녁밥을 짓고, 깜깜한 밤 호롱불 밑에서 바로 밑 동생은 발로 작두를 밟고 나 는 두 손으로 풀을 쥐어 작두에 넣었다. 나는 마음이 급했다. 아버지가 말 구루마를 끌고 곧 들이닥칠 것 같았다. 그 당시 아버지는 엄청 무서웠다. 걸핏하면 회초리질을 했다. 열 살이 던 나는 아버지가 너무 두려웠다.
싹뚝. 어, 손가락이 떨어졌다. 빠알간 피가 투두둑. 외할머니 가 승원아! 다급하게 째지게 나를 불렀다. 부엌에서 엄마가 뛰 쳐나왔다. 형용할 수 없는 통증이 밀려 왔다. 눈물이 와라락 쏟아졌다. 으앙 울고불고. 아랫집 동네 사람들도 웅성웅성거렸 다.
된장인지 간장인지가 잘린 손가락에 발려져 천과 실로 묶어 나를 방에 눕혔다. 그사이 외할머니는 썰린 풀을 뒤적여 한 마 디 손가락을 찾았다. 측간이 돌담 울타리 끝쪽에 있었다. 똥숫 간에는 불 땐 아궁이에서 나온 재를 한 켠에 모아 두었다. 거 기에 쥐들이 득실거렸다. 쥐들은 돌담 사이로 다녔다. 그리고 뱀들이 그 길 따라 또 다녔다. 외할머니는 사람 신체 일부를 쥐나 야생 것들이 먹으면 액땜한다 믿었다. 외할머니는 쥐와 뱀들이 잘 다닐만한 돌 틈에 내 잘린 한 토막 검붉은 손가락 마디를 고이 놓으셨다.
아버지가 오기를 방바닥에 누워서 기다렸다. 잘닌 부위의 통 증도 통증이려니와 조심하지 않고 손가락을 잘라먹었다고 혼날 까봐 더 큰 걱정이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 때의 아버지는 정 상이 아니었다. 쫄딱 망한 거지에다 처가살이를 하고, 애는 다 섯에 빚쟁이는 사흘이 멀다 집까지 찾아와 죽치고 같이 삐댔 다.
드디어 아버지가 왔다. 엄마가 말했겠지. 방으로 들어오자마 자 내 왼 손가락을 끌러 본다. 나는 혼이 날까봐 마음을 졸이 며 눈을 감고 기다렸다. 아버지는 내 잘린 왼 손가락을 직접 눈으로 보더니 어흐, 와락 엉엉 울었다. "형님도 손가락 짤렸는 데, 아들도 손가락이 짤렸네." 이때 아버지 나이 설흔 셋이었 다. 어흐 어흐 엉 엉 엉. 한 참 울더니, 그래 잘린 한 토막 손 가락은 어딨냐. 외할머니가 돌담 틈에 두었다고 하자 땅에 묻 지 하고는 가보자는 말도 없었다. 지금 같았으면 즉각 잘린 조 각 들고 충남대 병원으로 구급차를 탔을텐데. 그랬다면 아마
이 글을 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시절 인연 이란 게 있다는 데 나에게는 시절 인연 복이 없었다.
다음날 밝자 나는 어제 외할머니가 말한 그 돌담 틈으로 갔 다. 나는 내게서 잘려 나간 그 손가락 조각을 보고 싶었다. 이 리 저리 샅샅이 찾았는데도 없다. 밤사이 동작 빠른 복 있는 쥐가 내 살과 뼈를 먹었으리라. 혹시 뱀이 먹었을지도 모른다. 그 야생 것들의 후손들 핏속에 내 염색체 쪼가리가 지금도 돌 고 있을 것이다.
엄마는 내 멀쩡한 손을 잡고 들은 게 있는지 공주 읍내나 대 전시가 아닌 장기면 사무소 앞 골목 허름한 집으로 향했다. 아 마 돈 때문에 버젓한 병원으로 못 갔겠지. 아버지가 돈 없다고 그리로 가라 했겠지. 거기에 야매 외과 의사가 있었다. 알콜 램프 위에 칼을 꿉더니 내 잘린 생 손가락 뼈와 살을 사정없이 후벼 팠다. 나는 죽는 재수를 하고 설흔 둘 엄마는 눈물을 흘 리며 참으라 참으라 했다. 또 가위를 꿉어 피부를 짜르고 마침 내 바늘로 꿰맸다. 삐쭉하고 사선이었던 짤려나간 자리가 둥그 스레졌다. 그 위에 아까징끼를 발라 줬다. 열흘 쯤 후에 실밥 을 뽑으러 오라 했다.
수술 후 엄마와 나는 학교에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잊을 수가 없다. 선생님은 안쓰러워 쩔쩔매고 반 애들은 기겁을 했다. 나 는 창피했다. 그때 엄마 마음은 어땠을까. 얼마나 민망하고 가 슴이 아팠을까. 지금 돌아가신지 33년. 나는 '신체발부, 수지부 모, 불감훼상, 효지시야.'에 원초적 불효자다. 아, 엄마, 엄마. 선생님은 출석 처리를 해줬다. 나는 그러면서 국민학교 6년 개 근상을 받았다.
훗날 집안 형편이 안 좋아 육군사관학교를 가려했으나 손가락 하나라도 이상 있으면 지원할 수가 없어 단념했다. 군대도 현 역 아닌 방위를 갈 줄 알았는데 대졸자라 3급 후방 병참대에 배정되었다. 신체검사와 주민등록 지문등록을 할 때 창피했지
만 살아 왔다. 그리고 애들 키울 때 지들 엄마 젖 달라고 보챌 때마다 지 엄마 몰래 내 짤린 뭉툭한 손가락을 물려 줬다. 잘 도 빨아 재키더라. 애들은 속았지. 그때, "짤린 손톱 없는 장애 손가락도 참 쓸모가 있군." 이라 중얼거리며 감사했다.
내 이름 삼 행 시
제다에자
과거
홍 : 홍익인간 단군자손의 우수한 피를 물려받아서
성 : 성적이 평균 100점 수재 소리 들었지만
원 : 원래 꿈은 돈 많이 벌어 돈다발에 깔려 죽는 거였다오
현재
미래
홍 : 홍삼을 먹고 매일 운동하고 신체를 단련해서
성 : 성성하게 몸관리 정신관리 해가지고
원 : 원시인처럼 강인한 수퍼맨 활력자가 되리라
홍 : 홍학의 긴 다리처럼 목숨이 길게만 연명된다면
성 : 성경의 사람 나이 최고 120살을 꽉 채운다면
원 : 원없이 살았다고 빨리 죽게 해주세요 날마다 기도 올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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