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의 추억
이북 원문에서 글자만 옮긴 전체 텍스트입니다. 표·그림·사진과 원래 모양은 이북에서 확인하세요.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은 섬이었다. 인천 강화 바다 건너, 조그만 섬동네인 우리 마을은 ‘절아래 동네’라 불렸다. 이름 그대로, 마을 뒤편 화개산 중턱에 작은 절이 있었고, 그 절(화개사) 아래에 우리가 살았다. 그냥 거기가 세상의 전부였고, 나의 중심이었다. 국민학교 3학년 무렵까지, 우리 동네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해가 지면 온 마을이 어둠에 잠겼다. 그 어둠을 밝혀주던 건 ‘호야’라 불리던 남포불이었다. 호롱불과 비슷하게 생긴 등잔에 심지를 꽂고, 기름(석유)을 부어 불을 밝히면 따스한 불빛이 퍼졌다. 그 불빛 아래서 책을 읽고, 받아쓰기를 준비하고, 일기를 썼다. 바람이라도 불면 불꽃이 흔들렸고, 그 그림자는 벽에 아롱져 춤을 추었다.
여름 밤이면 마당에 멍석을 깔고 누워 하늘을 보았다. 전기가 없던 그 시절, 밤하늘은 참으로 또렷했다. 별들은 하늘에 촘촘히 박혀 있었고, 어른들이 ‘은하수’라고 불렀던 그 뭉실거리는 별무리는 나에게 신비로운 강처럼 느껴졌다. 마당 옆 풀섶에서는 반딧불이 날아 다녔다. 우리는 반딧불(개똥벌레)를 손으로 살살 잡아 호박꽃 안에 넣어 두고는 누구 것이 더 밝으냐며 깔깔 웃고, 친구들의 손등 위에서 반짝이던 빛을 보며 마냥 즐거워했다. 어린 시절의 여름은 그렇게 반딧불빛과 별빛 속에서 깊어갔다.
시골 마을에 전기가 처음 들어 오던 날
2025.04.15 쟝글
그 시절, 촌에서는 남포불(호야등불)은 그나마 최소한의 문명 利器였다. (사진 : TV 드라마에서)
호야남포등잔 : 하부의 유리통에 석유를 부으면, 그 석유가 헝겊 심지에 스며서 꼭지까지 올라온다. 호야등을 들어올리고 꼭지의 심지에 성냥불을 부치면, 호야등불이 환하게 비춘다.
전기가 들어오기까지는 긴 여정이었다. 한전 작업자 아저씨들이 동네를 돌며 전봇대를 세우고, 집집마다 배전선을 연결하는 모습을 우리는 매일같이 구경했다. 송전 철탑이 세워질 땐 멀리까지 가서 그 웅장한 철구조물을 올려다보았다. 우리 마을에도 드디어 도시처럼 전기가 들어온다는 사실에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모두 다 들떴다. 그건 단순한 불빛 이상의 의미였다. 마치 세상이 우리에게 한 발짝 더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상여바위 : 섬과 섬 사이의 바다 한가운데 있는 이 바위섬에 송전 철탑을 세웠다.
대략 1년 이상의 긴 공사가 이어지는 동안 한전 작업자들은 우리 동네에서 숙식을 하였 다. 그분들은 가끔 상여바위 철탑 공사장에서 가져온 석영같은 돌을 가져다 주었고, 송전 선(알루미늄연선) 자투리를 이용하여 솜씨좋게 촛대를 만들어 우리들에게 선물하였다.
그러던 어느 겨울, 정확히는 내가 국민학교 3학년 겨울방학 쯤 이었으리라. 크리스마스 무렵 어느 날, 마을에 전기가 들어왔다. 정말이지 산타클로스가 다녀간 것만 같은 기적 같은 순간이었다. 처음 본 30촉 전기다마(30W 전구) 스위치를 켜자마자 방 안 가득 퍼지던 그 강한 빛, 환하고 선명한 그 광경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나는 한참을 그 불빛 아래 서서 눈을 깜박였다. 불빛이 너무 밝아 방 안에 있던 낡은 가구며 책상, 그리 고 벽지의 무늬까지도 처음 보는 것처럼 또렷해 보였다. 광명을 봤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그날 밤, 우리는 호야불 대신 전깃불 아래에서 저녁을 먹었다. 어른들도 신기했던지 얼 굴엔 함박 웃음을 띄우며, “이제 세상 좋아졌네”라고 중얼거리셨다. 나를 비롯한 아이들 역시 그 순간만큼은 어른들과 같은 기분이었다. 불빛 하나에 세상이 달라졌고, 우리도 조 금은 달라진 듯했다. 그 겨울밤의 전깃불처럼, 내 어린 시절의 기억도 아직 가슴 한 켠에서 은은하게 반짝이고 있다. 그리고 그 빛은 지금도,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내 마음을 따뜻하게 밝혀주고 있다.
고향 뒷산(화개산-259m)에서 북쪽을 바라본 전경! 이쪽 들판 끝 강같이 보이는 것은 강이 아니고 엄연히 서해 바다다. 그 건너편 들과 산은 북녘땅이다. 내 선친의 고향 땅! 지금은 갈 수 없는 …
글이 없거나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쪽은 뺐습니다. 이북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