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weeks in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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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하이커
글·사진·그림 김소영 진행 박지현
영화 속 아멜리에가 일했던 몽마르트르 언덕의 빨간 풍차 카페를 찾았을 때
낯선 이의 질문에 나는 3일을 머무른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는 이 아름다운 도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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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당신은 아멜리 풀랑을 좋아하는군요. 파리에는 얼마나 머물죠?”
고작 3일밖에 머물지 않느냐며 안타까워했다. 파리를 사랑하는 파리지앵 아저씨의 말은 옳았다.
파리에서 보낸 2주일은 내게 잊을 수 없는 꿈처럼 남아 있으니까. 젊은 시절 한때 파리에 머물 수 있는 사람은 행운아이며
파리는 마치 ‘움직이는 축제’처럼 남은 인생에 당신이 어딜 가든 늘 당신의 곁에 머무를 거라고 했던 헤밍웨이의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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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11월의 초겨울, 테제베 가 리옹 역에 다 다르고, 나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선로에 내려섰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무관심한 얼굴로 바쁘게 지나쳤다. 따스했던 남부 프랑스에서 막 올라 온 내게 대도시의 빠른 속도와 싸늘함이 살갗으로 스 며들었다. 메트로에 오르자, 온통 검은 옷의 파리지앵 들 틈에서 빨간 목도리를 두르고 빨간 배낭을 멘 나는, 마치 흑백영화 속의 유일한 빨간 점처럼 튀어버렸다. 겨우 빈자리가 나서 엉덩이를 반쯤 걸쳐 앉았을 때 갑 자기 정전이 되더니 메트로가 멈췄다. 벽에 기대어 잡 담을 나누던 청년들이 야유를 했다. 백년이 넘은 노장 메트로는 잠시 숨을 가다듬었는지, 다시 눈을 껌뻑이 며 덜컹덜컹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파리에 도착 하자마자 만난 이 순간에 맞은편에 있던 할아버지와 눈이 딱 하니 마주쳤다. 우리는 웬일인지 동시에 터져 나오는 웃음보를 참느라 얼굴이 이상하게 됐다. 파리 는 그렇게 나를 반겨줬다. 10구역 모퉁이에 있는 조레스 역 근처의 싸구 려 호스텔에 짐을 풀었다. 키가 크고 능글맞은 주인은 내가 들어서자 ‘강남 스타일’을 틀며 반겨줬다. 2층의 값싼 방은 빼곡히 들어선 3층 침대와 여행자들의 짐 으로 위태로웠다. 좁은 침대에서 몰래 속옷을 말리며 잠들었지만, 그런 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 는 지금 파리에 있으니까. 호스텔을 나와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너면 아멜리에가 영화 속에서 물수제비를 뜨 던 생 마르탱 운하가 나왔고, 철교 위로 메트로가 지나 다녔다. 아침이면 거리는 구수한 빵 냄새로 가득했고
TGV
jaurès
Au revo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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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지앵들은 빵집 앞에 줄을 서서 크루아상을 사갔 어 다녔다. <아멜리에>의 흔적을 찾아 파리 동역을 헤 다. 나는 늘 같은 빵집에서 아침을 먹으며 지도를 펼치 치고, 에펠탑을 향해 무작정 걸었다. 천천히 걷다 보 고는 오늘은 어디를 가볼까 계획을 짰다. 열린 문틈으 면 파리의 아름다움과 마주쳤다. 노천카페의 사람들, 로 들어온 차가운 아침 공기가 다리 사이를 맴돌아 나 오래된 문고리와 작은 공원의 노부부, 센 강 위를 나는 갈 때, 주인과 손님들이 나누는 “봉주르 !”와 “오 갈매기와 유람선, 튀일리 공원의 겨울나무와 녹 레부아 !”가 반복해서 리드미컬하게 들려왔다. 색 의자, 생 제르망 거리의 서점들…. 열흘 후에는 바스티유에 있는 호스텔로 옮겼는데, 나중에야 알았지만 근처에는 영화 <비포 선셋>에 나 왔던 셀린의 집이 있었다. 베르사유 궁전에 다녀와서 아픈 다리를 두드리며 침대에 누워 있을 때, 동글한 얼 굴에 곱슬곱슬한 갈색 머리를 어깨까지 늘어뜨린 한 소녀가 들어왔다. 프랑스의 작은 시골에서 올라온 그 녀는 오자마자 원더우먼이 그려진 파란색 시트와 이 불보, 베갯잇까지 모두 갈아 끼우고 나서야 조용히 누 워 책을 읽었다. 새벽이면 일찍 일어나서 바이올린을 메고 오페라 가르니에에 연주를 하러 갔다. 우리는 별 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지만 나는 그녀와 있는 것이 편 안하고 좋았다. 11월의 파리는 추웠다. 하늘은 늘 창백했고, 얼마 남지 않은 잎사귀 사이로 앙상한 나뭇가지가 드러났 다. 몽마르트르 언덕에 오르면 굴뚝이 솟은 회백색 지 붕의 도시가 늘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그러나 한 번씩 햇살이 닿은 파리는 마치 하나의 거대한 유원지처럼 아름다웠다. 개선문에 올라 보았던 파리의 전경과 햇 살의 움직임에 따라 변하던 노트르담 성당의 영롱한 장미창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나는 목도리를 코까 지 올리고 몸을 움츠린 채 방사형으로 뻗은 도시를 걸
Bonjour
tuilerie
d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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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예술의 중심지였던 파리는 서양미술 사가 테마의 한줄기였던 내 여행의 종착점으로, 넘칠 만큼 가득 한 예술의 향연을 안겨줬다. 나는 예술가들의 흔적을 더듬으며 몇백년된 거리를 행복하게 걸었다. 카유보트가 그린 모스크바 거리, 마네와 모네가 자주 그린 생 라자르 역, 피사로의 오페라 대로,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만난 예술가들이 살았던 집들과 안 개 속에서 16구역의 마르몽탕 미술관을 찾아 걸었던 길, 토요일 오후에 만난 쇠라의 그랑자트 섬. 아를에서 느꼈던 고흐의 영혼 을 다시 마주한 오르세 미술관의 ‘별이 빛나는 론 강’과 기차역이 던 미술관의 커다란 시계 뒤로 보인 파리 야경의 감동, 로댕 미술 관 정원의 가을 낙엽과 루브르에서 가장 즐거웠던 네덜란드 회 화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찾은 퐁피두 센터에서 만난 피카소와 다다 까지….
밤이면 파리는 더욱 아름답게 물들었다. 에펠탑이 쏘아 대는 레이저가 도시의 구석구석을 비췄고, 정시가 되면 이 낭만적인 철탑은 10분 동안 반짝였다. 루브르 박물관의 한 구석에서는 고독한 예술가의 색소폰 연주가 빛나는 피라미 드를 바라보며 수십 개의 기둥 사이로 울려 퍼졌다. 관광객 이 빠져나간 리슐리외관의 조각상들은 그들만의 비밀스러 운 대화를 나누는 것만 같았다. 센 강둑의 가로등 불빛 아래 에서는 학생들이 연극 연습을 하고, 밤하늘 위로 우뚝 솟은 노트르담 성당 앞에서는 예술가들이 모여 춤을 추었다. 샹 젤리제는 벌써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한껏 달아올라 있었다. 거리는 불빛으로 수놓이고, 동화 속에 나오는 집 같은 상점 들이 초콜릿과 치즈, 양초와 갖가지 물건들을 팔았다. 나는 뜨거운 와인 한 잔을 마시며 거리를 걸었고, 그 끝에서 만난 콩코르드 광장에서 용기를 내어 혼자 관람차를 탔다. 내 한 줌의 용기에 파리는 아름다운 야경과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 했다. 관람차가 돌아갈수록 에펠탑이 솟은 밤의 도시는 점 점 아래로 내려갔고, 샹젤리제의 불빛은 프랑스 국기처럼 블 물이 났던지. 그의 묘는 단출했고, 소박한 화분 두 개만이 놓 루, 화이트, 레드로 반짝였다. 여 있었다. 파리지앵은 무뚝뚝하며 불친절하다는 이야기가 걷는 것이 지칠 때면 10장을 묶어 파는 카르네를 사서 메 많지만, 그들의 창백한 얼굴 뒤에는 따스한 친절이 숨어 있 트로나 버스를 타고 파리 시내를 빙글빙글 돌았다. 2호선, 6 었다. 에디트 피아프 공연을 하는 극장을 찾다가 길을 물었 호선은 유일한 지상철이었고, 나는 매일 보는 에펠탑이 또 던 신문 가판대 아저씨처럼, 엉터리 프랑스어로 도움을 요청 보고 싶어 일부러 메트로를 빙 둘러 돌아갔다. 메트로에는 하면 그들은 미소를 띠며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다. 언제나 예술가들의 아코디언 연주가 흘렀고, 밤이 되면 스 ‘밀로의 비너스’까지 본 후 나는 본의 아니게 영화 <몽상 쳐 지나가는 건물들 사이로 불빛이 밝은 파리지앵들의 멋스 가들>의 주인공들처럼 루브르 박물관을 뛰어나갔다. 그날 러운 집들이 보였다. 마지막으로 노트르담 성당의 종탑에 올라 파리의 석양을 꼭 비가 내리던 날 아침, 에릭 로메르 영화감독의 묘가 있다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퐁네프 다리를 건너 10분 만에 달려 는 몽파르나스 묘지를 찾았다. 비 내리는 묘지 사이를 30분 간 노트르담 성당. 우리의 인생처럼 여행도 늘 내가 원하는 동안 헤매고 있을 때, 좀 전에 만났던 흑인 관리인 아저씨가 장면만 안겨주는 것은 아닌가 보다. 가쁜 숨을 안고 도착한 “앙, 드, 투아…” 하며 묘지 하나하나를 손가락으로 세면서 내 앞에는 ‘오늘 저녁부터 종탑이 수리에 들어간다’라는 안 다가오셨다. 아저씨는 동쪽에서 37번째, 북쪽에서 13번째 내문이 붙어 있었다. 파리에서 머무는 2주일 동안 나는 에펠 에 있던 에릭 로메르의 묘지를 찾아주시곤 돌아가셨다. 존경 탑에도, 노트르담 성당의 종탑에도 오르질 못했다. 그러나 하는 영화감독의 묘 앞에 혼자 남게 되었을 때 왜 그렇게 눈 그렇기에 언젠가 파리를 다시 찾아올 수 있는 이유들이 생 긴 것은 아닐까. 75일 여정의 마지막 밤은 몽마르트르 언덕의 한 호스텔 에서 엽서를 쓰며 조용히 보냈다. 다음날 아침, 집으로 돌아 가는 내게 호스텔 직원들은 “봉 보야주 !” 하며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들을 뒤로한 채 배낭을 메고 다시 길을 나섰다. 그래…. 나의 여행은 이제부 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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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bon voyage(좋은 여행 하세
김소영 미술교사 임용고시를 그만두고 홀로 12개 유럽 도시를 여행한 후, 유럽에서 만난 사람들을 그림으로 담은 책 <손그림 여행 in Europe>을 펴냈다. sylove1015@naver.com 문윤정 여행하고 글쓰면서, 글쓰기카페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즐겁게 살고 있다. blueyun6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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