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해줄래요?>
이북 원문에서 글자만 옮긴 전체 텍스트입니다. 표·그림·사진과 원래 모양은 이북에서 확인하세요.
< 친구, 해줄래요?>
국어국문창작학과 20240081 송혜빈
아침 7시.
모든 일상이 익숙하다.
아침의 피곤함도, 씻고, 밥을 먹고, 일정을 체크하는 일도.
핸드폰이 울음을 터뜨리면 내가 버튼을 눌러 그를 달랜다.
평범하고 지루하고 빽빽한 삶. 이런 삶에 염증을 느껴 휴학까지 했건만 나는 여전히 ‘하 민’일 뿐이다.
사실 휴학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대가 정말 심했다.
“빨리 졸업해서 취업할 생각은 안 하고 … !”
“그거 힘들다고 휴학하면 앞으로 사회생활하고 그럴 때는 어떡할래? 한 번 뒤처지면 계속 뒤처지는 거 몰라?!”
나는 무서웠다.
붉은 화에 잠식된 부모님의 얼굴이, 버럭 쏟아지는 큰 소리가, 세상과 맞서야 한다는 부담감이.
언제부터였더라?
현실이란 이름 앞에 나는 수도 없이 날개를 접었다. 꿈도, 희망도, 감정도.
가진 것 없는 나는 모든 걸 접고 구겨 숨겨야만 이 사나운 세상에서 사람 구실이라도 할 수 있을테니까.
대학 진학을 부모님 뜻대로 따랐던 때? 포기하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담담히 받아들였을 때? 아, 제인과 헤어진 그 날이구나.
아무튼 처음 말을 꺼냈던 게 2학년 1학기가 끝난 뒤였는데 부모님의 성화에 나는 결국 어영부영 3학년 1학기를 마칠 때까지 조용히 학교를 다녔다.
그런데 문득, 졸업이 한 발 더 가까워지니 변덕을 부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 다.
“정말 이대로 괜찮아?”
끊임없이 내 마음을 두드리던 의문. 애써 외면해왔던 어리석은 환상.
아니, 그것은 내가 숨겨두고 가둬뒀던 어린 날개의 발악이었다.
정말 마지막이었다. 여기서 저 손을 또 뿌리치기만 하면, 나는 완전히 사회의 것이 된다.
쭉 그렇게 살았으니 망설임 없이 해왔던 것처럼 그 손을 놓으면 됐다. 하지만 그 순간,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자 난 강하게 붙들고 있던 사회 의 손을 놓아버렸다.
‘하민으로 살 마지막 기회야’ 난 결국 마음의 목소리를 무시하지 못했다.
부모님은 내 결정이 못마땅한 듯 계속 반대하셨지만 내가 몇 날 며칠을 울며 나날이 말라가니 결국 딱 1년뿐이라며 휴학을 허락하셨다.
날 사랑해주시는 마음을 이용했다는 것에 죄책감이 들었지만 나는 숨을 쉬어야만 했다. 너무 오랫동안 숨을 멈췄다.
그렇게 큰 포부를 갖고 휴학을 했지만 현실이란 것은, 내가 23년을 복종했던 세상이라는 것은 자신의 손을 놓은 나 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렇게 어린 날의 꿈을 다시 살려내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글을 쉬었던 탓일까. 공모전에 도전하는 건 고사하고 글 자체가 써지질 않았다.
노트북 앞에 멍하니 앉아 1시간 동안 고작 몇 문장을 썼다가, 지웠다가 또 썼다가, 지웠다가….
결국은 파르르 떨리는 눈가를 덮고 잠을 청하는 것이 점점 일상이 되어갔다.
그렇게 제자리걸음만 하는 나를 부모님은 가만히 두지 못하셨다.
나는 끊임없이 부모님과 부딪혔다. 몇 개월을 싸우기만 하다가 부모님도 나도 지쳐버렸고 엄마는 체념한 듯 말했 다.
“그럼 일단 알바라도 구해보고 자격증이나 따봐. 지금 하는 것도 잘 안된다 며.”
그 말에 마음이 부서지는 듯했지만 틀린 말이 하나도 없어서 나는 그 말을 따 랐다.
오전 9시부터는 집 근처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고 오후 3시가 되면 집에 들러 공부할 책을 챙긴다.
간단하게 간식을 챙겨 독서실에 가면 어느새 4시가 다 되어간다.
9시까지 공부를 하면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덮치지만
괜히 일찍 들어갔다가 부모님과 마주칠까 봐 10시쯤 느릿하게 짐을 챙긴다.
조금만 … 조금만 … 답답한 마음에 발이 닿는 대로 걷다가 편의점에 들어가서 캔맥주를 3캔 정도 산다.
한 캔을 벤치에서 까먹으면 어느새 시간은 11시. 부모님이 주무실 시간이다.
그럼 난 그제서야 몸을 일으켜 비척비척 집으로 걸음을 옮긴다.
분명 휴학을 했지만 답답한 느낌은 마찬가지다. 반복되는 하루 역시도.
자주 ‘괜히 휴학했나?’ 후회가 밀려들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더러워진 바닥을 닦는 것밖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작고 어두운 방에서 노트북을 켠다. 그리고 또 글을 썼다 지운다. 어째 술만 점점 느는 것 같다.
그렇게 또 멍하니 뭔갈 쓰고 지우다 보면 익숙한 자조가 날 찾아온다.
나는 착각했던 것이다. 내가 다시 웃을 수 있을 거라고, 예전처럼 즐겁게 글을 쓸 수 있을 거라고.
가능할 리가 없잖아. 이미 그때의 나는 내가 내 손으로 묻어버렸으니까. 난 환자였다. 사는 법을 잊어버리곤 삶을 찾는 슬픈 환자.
그냥 얌전히 취업 준비나 할 걸 그랬어, 싶다가도 아, 그건 정말 싫다 하며 피식 웃음이 흐른다. 암울한 현실이 흐려지는 술 한 잔. 이래서 술을 끊을 수가 없다.
막 20살이 되었을 땐 ‘이걸 왜 먹지?’싶었는데
고작 3년 만에 나는 술의 참맛을 깨달았다.
술을 마시면 웃을 수 있다. 억지로 입꼬리를 올릴 필요도 없다. 그냥 히죽거리게 된다.
그건 참 은밀하고도 짜릿한 행위이다. 얼빠진 것처럼 웃다니, 제정신엔 못할 일이니까.
그리고 도망을 갈 수 있다. 나를 짓누르는 세상의 무게를 잊고 몇 번이고 꿈을 꿀 수 있다. 내가 날고 싶다고 하면 날개가 없어도 이곳저곳을 날아다닐 수 있는 그런 달 콤한 꿈.
전부, 내일의 ‘하 민’에게 미루면 된다.
그런데 이런 꿈을 꾸는 이유가 뭘까.
그리고, 내가 멈출 수도 없는 꿈이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꿈에는 5살의 내가 나온다. 내 아픈 상처를 제대로 쑤실 모양이다.
아침이 오면 사라질 능력이지만 적어도 오늘의 ‘하 민’인 나는 더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잠들었던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평소와 특별히 다를 게 없었다.
자각몽. 처음이다. 근데 왜 하필, 하필 내게 가장 아프고 소중한 기억일까.
나는 꿈속 사람들에게 보이질 않는 모양이다.
5살은, 내가 제인과 처음 만났던 때니까..
나는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었고 그날은 선생님이 보물찾기 놀이를 준비한 날 이었다.
어린아이들이 찾기 쉽게 선생님은 보물쪽지를 적당한 곳에 숨겨놓으셨고 아이들이 금방 쪽지를 찾고 선생님께 달려갈 때 나는 쪽지를 찾지 못해 울먹이고 있었다.
결국 모두가 쪽지를 찾았는데 나만 쪽지를 찾지 못하자 나는 크게 울음을 터 뜨렸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달래주기 위해 황급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주셨던 것 같다.
그건 조금 낡은 듯한 하트 머리핀이었다. 그때 상품이 미미 인형, 소꿉놀이 세트, 동화책 등이라 아이들은 금방 흥미를 잃고 자기 보물을 자랑했었다.
그런데 나는 그 머리핀이 정말 맘에 들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사실 디자인이 딱히 고급스럽거나 했던 것도 아닌데 그냥 보자마자 ‘이건 진짜 보물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내게
“선생님이 정말 아끼던 머리핀이에요~ 선생님의 특별한 보물이라 마지막으로 남은 친구에게 주려고 했지요~ 소중히 아껴줘야 해요?” 하고 속삭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임기응변이었겠지.
그 머리핀은 누가 봐도 사용했던 거였고 포장도 되지 않은 채 선생님의 주머 니에서 황급히 나왔으니까.
어찌 됐든 나는 그 머리핀을 꼭 쥐고 집에 갔고 도착하자마자 머리에 핀을 꽂 고 왠지 빛이 나는 듯한 하트 장식을 꾸욱 눌렀던 것 같다.
근데 꾸욱 누르니 빨간 하트 장식이 파랗게 변하는 게 아닌가? 나는 이런 보물을 갖게 된 것이 뛸 듯이 기뻤다.
그 상태에서 한 번 더 누르면 다시 빨개진다는 것을 알고 나는 여러 번 그 장 식을 누르며 놀다가 잠에 들었다.
그러다 깨어나니 낯선 공간이 날 반겼다.
별이 쏟아질 듯 아름다운 밤하늘, 수많은 꽃송이가 피어있는 들판 위 내 침대와 누군가의 침대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어려서 그랬나? 난 무서워 웅크리기보다 아름다운 풍경에 정신이 팔려 이곳저 곳을 탐방하기 바빴다.
“울지마! 씩씩한 어린이는 안 울어!” 라고 대뜸 호통을 쳤었다.
“너는 누구야..?”
그야 서로의 말이 생소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여자아이가 우는 소리가 들려 침대로 돌아가 네게
너는 좀 놀란 듯 보였지만 금세 눈물을 그치고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하민! 우리 어린이집에 다니구 5살이야! 대전에 살구 있어!”
“나는 제인이야.. 로턴 마을에서 엄마랑 아빠랑 살구 있어”
우린 그제서야 서로를 어리둥절하게 쳐다봤다.
이름이 제인 … ? 로턴 마을은 또 어디람..?
그때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착각하고 ‘제이니’ , ‘미니’라고 불렀었는데 그게 어쩌다 보니 애칭으로 굳어졌었지.
그러고 보니 생김새도 무척이나 달랐다.
갈색 머리에, 녹색 눈. 나는 그런 색을 주변에서 본 적이 없었으니 너무 신기했었다.
사실 말이 통하니 외국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못 했던 것 같다.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겁부터 집어먹을 것 같은데 그때의 우리는 아무것 도 모르는 순수한 5살 어린이였기에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서로의 세상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하다가 아침 해가 밝아와 우리는
“늦으면 엄마한테 혼나는데 … 어떡하지 … ?” 하며 우왕좌왕 돌아갈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금방 문 2개를 찾을 수 있었다.
하나는 파란색 문에 빨간 문고리, 다른 하나는 녹색 문에 노란 문고리. 우리는 어디로 나가지..?를 고민하다가 서로의 머리핀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
나는 파란색으로 변한 하트 머리핀을, 너는 초록색으로 빛나는 별 머리핀을 차 고 있었으니까.
우리는 문 앞에서
“오늘 밤에두 핀 색을 이렇게 바꿔놓고 자자!” “좋아! 오늘 밤에 보자!” 하고
손가락을 꼬옥 걸어 약속한 뒤 각자의 문을 통해 자신의 세계로 가 무사히 아 침을 맞았다.
그리고 나는 이 마법 같은 경험을 엄마한테 마구 자랑했던 것 같다.
“엄마! 나 어제 제이니 만났어! 머리는 갈색이구 눈은 초록색인데 되게 되게 귀엽다?”
그 말에 발을 구르며 화를 냈던가?
“새로 나온 인형 얘기니? 근데 우리 민이 이미 인형 많잖아~”
“아이참, 제이니는 인형이 아니라 사람이야! 작은 마을에서 우리처럼 엄마랑 아빠랑 산대! 다음번엔 간식도 주기루 했어!”
“음~ 제이니라는 상상 친구가 생겼구나 우리 딸? 엄마도 어릴 땐 그랬었지~”
“제이니는 살아있다니까!”
볼을 부풀리자 엄마는 웃으면서
“그래 그래 좋은 친구였으면 좋겠네~” 하고 말했었다. 그거 절대로 믿지 않았던 게 분명해.
그 이후로는 뭐 … 영혼의 단짝 수준으로 친해졌었지.
사는 세계가 다르니까 자기 세계 얘기만 해도 시간이 금방 갔다.
“우리 마을은 작은 대신 다들 친해! 제이미 아줌마가 오늘 빵도 나눠주셨어! 폴 아저씨는 맨날 말은 나쁘게 하는데 내가 넘어지면 제일 먼저 일으켜줘! 다 들 너무 좋아!”
“우리 마을은 디저트 가게가 없어.. 수도에는 있다는데 돈이 아주 아주 많은 사람들만 간다지 뭐야.. 그래도 미니가 맛있는 거 많이 갖다줘서 한 개도 안 부러워!”
네가 말하면
“나는 어린이집에 다녀. 선생님이랑 노래도 부르구 애들이랑 놀기두 하고 코코 낸내도 하고 밥이랑 간식두 먹는다!”
“나두 옆집 상미 아줌마랑은 친해! 상미 아줌마는 우리 엄마 후..배?였다는데 나중에 아줌마가 아가 낳으면 내가 잘 돌봐주기로 했어!”
내가 말하고.
참 평화롭고 행복했었지.
우리의 성장 속도가 다르다는 걸 깨닫기 전까지는.
사실 우리는 같이 놀기에도 바빴고 무엇보다 함께 만나는 공간의 풍경이 각자의 하루와 일치했기에 당연히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실을 꽤나 늦게 알고 말았다.
내가 8살이 되어 학교에 입학한다 자랑했을 때 너는 화들짝 놀라 말했다.
나는 그에
“미니 왜 벌써 학교 가..? 미니 세계는 일찍 가는거야?”
“우리는 8살 되면 학교 가는데..? 제이니 세계는 달라 … ?”
라고 대답을 했고 우리는 그날 처음으로 황당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내 세계에서의 3년이, 네 세계에서는 1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하지만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꽤나 순수했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제인과 친구
를 그만둬야 한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그야, 함께 보내온 시간이 있는걸. 우리는 이미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베프 였으니까.
다만 호칭은 ‘언니’라고 바꿨다.
나이가 다르다는 게 친구를 못 할 이유는 되지 않지만 그때의 나는 ‘언니’라는 호칭에 로망이 있었으니까.
너는 금방 받아들였고 그때까지는 우리의 사이에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나는 네가 너무 좋았다.
하지만 이 꿈이 내게 너무 아픈 기억인 이유는 …
내가 11살이 되면서부터 우리의 사이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린이집에 다닐 때처럼 널 자랑하고 다녔다.
그러나 그때와는 어른들의 반응도, 아이들의 반응도 너무 달랐다.
새로 사귄 친구들과 놀면서 다른 친구들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나는
“나도 다른 친구 있어! 6년이나 같이 지낸 친구인데 걔 이름은 ‘제인’이고 눈 은 초록색이야 완전 예뻐!”
그 말에 한 아이가
“그럼 다음에 그 친구도 같이 놀자고 하자! 나 민이 친구 궁금해!” 라고 했고 나는 그때서야 아차 … 하고
“근데 제인은 사는 곳이 멀어서 못 만나 … 너무 아쉽다..”
라고 대답을 했다.
아이들은 궁금한 듯
“제인이 어디에 사는데?” “제인은 몇 살이야? 내 친구는 1월에 태어나서 같은 학년이긴 한데 10살이거 든!”
같은 질문을 했고 나는 곧이곧대로 너는 7살이고 르웬 왕국의 작은 마을 로턴 에 산다고 대답을 했다.
아이들은 내 대답에 떨떠름한 얼굴로 대화 주제를 옮기다가 금방 집에 돌아갔 다.
그리고 다음 날, 내가 학교에 갔을 때
어제까지만 해도 잘 대화하던 친구들이 날 무시하고 반 아이들이 내가 지나갈 때마다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 나는 많이 당황했던 것 같다.
“왜 그냥 가?”
“우리는, 거짓말쟁이랑은 친구 안 해!”
황급히 어제 만났던 아이들 중 하나의 팔을 붙잡고
라고 묻자 그 아이는 팔을 뿌리치고 말했다.
나는 당연히 벙쪄서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을 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거짓말하지 마! 어제 집에 가서 찾아봤는데 르웬 왕국이라는 곳은 있지도 않 았다구!”
그 말에 물꼬가 트인 듯 아이들은
“그래! 6년이나 친구였다면서 친구가 7살이라는 게 말이 돼? 그럼 너 4살일 때 1살짜리한테 친구 하자~ 했단 거야?”
“그리고 우리 엄마가 너희 집은 외국 근처도 가본 적 없다고 했거든? 너한테 초록 눈 친구가 어떻게 있냐? 이 거짓말쟁이!”
라며 날 압박했고 난 그 상황에서 한마디 말도 못 한 채로 눈물만 흘렸다.
그 상황을 담임선생님이 보셔서 우리는 각자 부모님을 모셔 오게 되었고 나는 큰 상처를 받았다.
그때부터 나는 묘하게 그곳에 가는 빈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제인에게는 잘못이 없었지만 내 세상을 다수에게 부정당했던 기억은 파급력이 컸다.
하지만 너는 꽤 그곳을 자주 가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가끔 그곳을 찾을 때마다 네가 없었던 날이 없었으니.
난 여전히 네가 좋았으나 내가 진짜 이상한 아이로 낙인이 찍힐까 봐 무서워 너를 피한다는 사실에 미안한 마음이 있었고
너도 널 대하는 내 태도가 미묘하게 달라졌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점점 말이 줄어 우리의 사이는 빠르게 삐걱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곳에 가는 걸 포기하지는 않았다. 전부 잊자고 하기엔 너무 소중해서 버릴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가 나는 어느새 중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다.
너는 드디어 학교에 입학한다고 방방 뛰었고 나는 그때부터는 너를 거의 동생 으로 여기게 되었던 것 같다.
이 쪽은 글자로 옮기지 못했습니다. 이북에서 보기
이 쪽은 글자로 옮기지 못했습니다. 이북에서 보기
그 말은, 날 정말 깊게 찔렀다.
엄마와 아빠도 내게 정신이상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충격적인 사실과
난 그때부터 서서히 나를 접어갔다.
그럼에도 품고자 할 만큼 날 사랑한다는 사실.
결국 펑펑 울며 네게 작별을 고하려 머리핀을 찾았을 때, 머리핀은 끝 쪽에만 파란 물이 남아있는 흰색이 되어있었다.
더는 아무리 장식을 눌러도 선명한 파란색이나 빨간색이 되지 않았고 나는 이 것이 세상이 내게 주는 운명이라 여기고 머리핀을 차고 잠에 들었다.
그날도 너는 그곳에 있었고 다행히 나도 그곳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 허공을 바라보며 멍을 때렸다. 내 얼굴은 정말 엉망이었다. 그런데 너는 아랑곳하지 않고 너의 얘기를 늘어놓았다.
오늘은 선생님이 몰래 감자 하나를 더 챙겨주셨고, 잭이라는 친구한테 고백을 받았는데 어떡하지? 하는 둥의 그런 얘기.
너는 그대로였다.
나는 그 순간 갈 곳 없는 지친 마음을 버릴 장소로 널 택해버렸다. 원망스러웠다. 너는 왜 내 얘기를 더 이상 묻지 않아? 내가 이젠 음침해져서? 아, 원래부터 그냥 말할 만한 곳이 필요했던 건가?
넌 배려심도 없다.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내 얼굴을 보고도 웃고 떠들 생각이 들어?
등 나는 되는대로 말을 쏟아부었고 정신을 차리니 너는 울고 있었다. 처음 보는 눈물.
힘들고 아팠다면서 나도 너에게 똑같은 짓을 해버렸다.
내가 네게 염치없는 손을 뻗으려던 순간 나는 그곳에서 튕겨 나와 버렸다.
어떻게든 네게 사과하려 머리핀을 붙들고 별의별 짓을 다 해봤지만 머리핀은 아예 흰색으로 물들어 변하질 않았다.
나는 그때 서야 깨달았다.
내가 못된 마음을 품고 기어코 네 앞에 꺼냈기 때문에, 이젠 너와 닿을 수 없겠구나.
눈물을 흘리고 후회를 했지만 세상은 잔인하게도 내게 다시 기회를 주지 않았 다.
나는 그날 이후 나를 전부 버리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그렇게 나 혼자 살겠다고 네게 모진 말들을 던졌는데 뻔뻔스레 죽을 수는 없 고 그렇다고 딱히 살아야만 하는 이유도 없었기에
세상이 원하는 대로 널 잊기 위해 노력하고 부모님의 말대로 공부를 하고 대 학을 가고 웃어야 하면 슬퍼도 웃었다.
이젠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은 삶에 어떤 의미도 없다.
아, 이런 꿈을 꾸는 건 내게 남은 벌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삶을 찾으려는 내 뻔뻔한 태도에, 결국은 제대로 살지도 죽지도 못한 위선자에게 네가 화를 내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할 즈음에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깼다.
상미 아줌마의 딸 ‘이 정’.
“언니, 괜찮아 … ”
오늘 당장에라도 주변을 정리하고 하늘로 날아가리라.
그런 말을 중얼거리던 차에 나는 믿을 수 없는 것을 보았다.
정이가 … 빨간 하트 머리핀을 … 차고 있었다.
그 사실을 인식한 순간 나는 맨발로 정이에게 거의 뛰다시피 달려갔고 정이는 그 조그만 품으로 날 안아 토닥였다.
11살 아이의 한마디에 나는 다시 아이가 된 듯 그 작은 품 안에서 엉엉 울었 다.
조금 진정이 되니 민망했다. 정이가 날 뭐라고 생각할까 …
내가 횡설수설하자 정이는 방긋 웃고는
“정아, 그 머리핀 … ”
“흠, 정아. 이건 언니가 … 그 좀 그리운 꿈을 꿔서.. 그래서 … ”
“언니! 우리 집에 지금 엄마 없어! 나랑 놀자!” 하고 날 경미 아줌마네 집으로 데려갔다.
나는 조심히 숨을 고르며 정이에게 말을 건넸다.
하자 정이가 시무룩한 얼굴로 말을 꺼냈다.
“그게 … 언니 집 놀러 갔다가 아줌마가 언니 방에서 좀만 기다리래서 언니 방 구경하다가 있길래 … ”
우물쭈물하는 그 모양새가 너무 귀여워서 진지한 상황인데도 크게 웃어버릴 뻔했다.
“괜찮아~ 근데 혹시 … 우리 정이 간밤에 뭐 이상한 일 있었다거나 하진 않았 어?”
혹시, 혹시 제인을 다시 볼 수 있는걸까?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이 기대 때문 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알지도 못한 채 정이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언니, 어제 그 꿈에 우리도 있었어.”
정이가 들려준 이야기는 이러했다.
근데, 이 뒤의 얘기는 정말 충격이었다. 전혀 예상 못한.
정이는 일주일 전에 내 방 서랍에 있는 하트 머리핀을 갖고 놀다가 돌려놓는 것을 까먹고 잠에 들어버렸다.
그러다 내가 그랬듯 11살의 제인과 그곳에서 만났고 제인은 혹시 ‘하 민’이라는 사람을 아냐고 물었다고 한다.
정이는 내가 아기 때부터 부둥부둥 키우다시피 예뻐했기에 당연히 안다고 신 나게 대답을 했고 제인과 통성명을 했다고 한다.
친화력이 좋은 두 아이답게 금방 친구가 되었고 제인은 정에게 나와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그리곤 “언니 표정이 안 좋아 보이니까 언니 기운 나라고 일부러 예전에 언니 가 좋아했던 얘기들 위주로 말을 했던 건데 벌컥 화를 내서 무서웠다
하지만 자신이 놀라서 울 때 언니가 울 것 같은 얼굴로 손을 뻗는 걸 보고 이
미 용서했으니 혹시 미안해하면 전해달라
라는 말을 남겼다고.
언니는 언제나 나의 자랑스러운 친구라고.”
그런데 갑자기 어제는 맨날 만나던 곳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만났는데 그게 내 꿈속이었다고 한다.
정확히는 내가 어린 제인과 나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제인과 정이도 밖에서 우는 나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그렇게 제인은 내가 왜 그랬는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전부 알아버렸다 고.
그리곤 씩씩 화를 내며
“미니 언니는 바보야! 우리 사이가 고작 싸움 한 번 했다고 깨질 리가 없잖아! 맨날 말도 안 해주고 … 그래도 언니가 날 사랑하니까 봐주는 거야! 언니는 서 툴지만 따뜻한 사람이고 나도 그런 언니를 좋아하니까 … 그러니까 정이 너 언 니한테 말 잘 해줘야 해? 특별히 너도 절친 목록에 끼워줄 테니까!”
라고 말하다가
“우와.. 언니 글 쓴다구 … ? 멋지다 … 우리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달라고 그러 자!”
하고 금세 말을 돌렸으나 수줍은 듯 볼을 붉혔다고.
나는 그 얘길 들으면서 정말 오랜만에 진심으로 웃었던 것 같다.
여전하다.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 이 따뜻한 빛.
그래, 이제 길이 보인다.
너흴 주인공으로 글을 쓰다 보면 이 지독한 슬럼프도 금방 지나갈 것만 같아.
고마워, 내 친구들.
나아갈게, 너희의 마음을 지고.
세상이 아직 날 사랑하나 봐. 너희의 미소를 다시 내 품에 안겨준 걸 보면.
너희를 지킬 수 있도록 튼튼하고 멋진 울타리가 될게.
우리는 몇 년이 지나도 쭉 서로의 절친일테니까, 그치?
글이 없거나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쪽은 뺐습니다. 이북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