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페이퍼-코로나19시대의 과학 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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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문화 과학창의정책팀 장미경 선임연구원
분야 담당부서 담당자
발행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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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FAC ISSUE PAPER
코로나19 시대의 과학 커뮤니케이션 위험 사회에서 과학 소통이 중요한 이유
코로나19 시대의 과학 커뮤니케이션 위험 사회에서 과학 소통이 중요한 이유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한 다양한 이슈에 맞닥뜨린 우리는 지금 과학과 사회의 조화로운 발전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를 위한 커뮤니케이션 패러다임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중요한 변곡점에 서 있다.
목차
1.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트렌드 변화
2. 과학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흐름
과학 커뮤니케이션 대응 방안 설정의 출발점은 전문가 중심의 판단에서 야기된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실패 체르노빌 과학 커뮤니케이션이 실패한 이유 전문가 집단과 일반 대중의 간극을 줄이려면 암묵지를 학습하고 익히는 것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패러다임 변화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올바른 방향성 설정에 주목 사회적·역사적·문화적·실천적 측면을 모두 고려 대중의 위험 이슈 논의 참여를 통한 과학 신뢰 코로나19 위험 커뮤니케이션은 성공했는가
3.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지향점
과학 커뮤니케이션 패러다임의 진화 결론 도출이 아닌 성찰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으로
과학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문제 발생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한 위험 이슈 과학적인 방법을 통한 합의점 도달이 불가능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분배되는 위험 사회에서의 사회적 성찰과 합의 위험 사회에 만연한 ‘가짜 뉴스’와 정치적 쟁점화
1.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트렌드 변화
“아무것도 만지지 마라! 그 누구도 만나지 마라!”
홍콩 출장을 다녀온 아내(기네스 팰트로)가 갑작스런 고열과 호흡 곤란, 발작을 일으키며 사망한다. 아내를 잃은 남편(맷 데이먼)이 슬픔에서 헤어나기도 전에 아들 역시 비슷한 증세로 사망하고, 곧 동일 증상의 환자 와 사망자가 세계 각국에서 기하급수적으로 쏟아진다. 인류는 공포에 빠지고 과학자들이 구원 투수로 등장 한다. 미국 CDC(질병통제예방센터)의 치버 박사(로렌스 피시번)는 노련한 감염 전문가(케이트 윈슬렛)를 현 장에 급파하고, WHO(세계보건기구)의 오란테스 박사(마리옹 코티야르)는 감염병의 최초 발병 경로를 조사 한다. 이 와중에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주드 로)가 등장해 진실이 은폐됐다고 음모론을 펼치고, 개나리액이 바이러스 치료제라는 가짜 뉴스까지 퍼뜨리며 원인 모를 전염병의 공포를 전 세계로 확산시킨다. 봉쇄된 도 시에서는 사재기와 폭동이 일어나고, 허위 정보가 난무한 혼돈 상태가 펼쳐진다. 실패를 거듭하던 백신 개 발 소식이 점차 들려오자 이번엔 “정부가 만든 백신은 부작용이 크다”는 가짜 뉴스 배포 계획까지 세우게 되는데…. 백신 개발에 성공하면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2011년 개봉한 영화 <컨테이젼(contagion)>은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여주는 듯 바이러스 창궐에 직면한 사회의 현실 묘사가 매우 생생해 관객의 몰입과 감탄을 자아낸다. (이미지 출처 : 영화 <컨테이젼> 스틸 컷)
과학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문제 발생
2011년 개봉한 영화 <컨테이젼(contagion)>은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여주는 듯 바이러스 창궐에 직면한 사회의 현실 묘사가 매우 생생해 관객의 몰입과 감탄을 자아낸다.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2020년의 ‘코로나19’를 예측이라도 한 것일까. 영화 속 팬데믹 상황은 현재 세계 각국에서 펼쳐지는 현실을 놀라울 정도로 똑같이 재현하고 있다.
실제로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은 2003년 전염병 사스, 2009년 신종플루 사태 등을 모티브로 팬데믹 영화를 기획했고, 시나리오 역시 철저한 과학적 고증을 거쳤다. 팬데믹 모델은 세계보건기구(WHO) 등의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고 논의해 설정했고,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신종플루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구체적으로 조사해 탄탄한 스토리를 구성한 것이다. 문학의 상상과 영화의 스케치, 이 과정에서 완성도와 현실감을 높여주는 주체는 바로 ‘과학’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준다.
2011년 개봉작 <컨테이젼>의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은 2003년 전염병 사스, 2009년 신종플루 사태 등을 모티브로 팬데믹 영화를 기획했고, 시나리오 역시 철저한 과학적 고증을 거쳤다. (이미지 출처 : 영화 <컨테이젼> 스틸 컷)
이 영화가 던져주는 또 하나의 시사점은 바로 과학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 질문과 성찰의 필요성이다. ‘과학의 진보’가 위기와 위험이 만연한 현대 사회의 혼란을 완벽하게 잠재울 수는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코로나19 공포가 만연했던 2020년 상반기를 떠올려보자. SNS에 “코로나19를 죽이 려면 마늘을 먹거나 소금물로 입 안을 헹궈라”, “레몬, 오렌지 등이 코로나19 예방식품이다”, “코로나19 감염 자가진단법은 10초간 숨을 참는 것이다” 등 가짜 뉴스가 국내외 할 것 없이 유행했다. 대중의 공포와 불안을 기반으로 퍼져나가는 가짜 뉴스의 특성상 과학적 검증을 거치기도 전에 온라인을 타고 번지는 것 이다. 심지어 백신 개발 초기 단계에는 마치 영화에서처럼 “정부가 만든 백신은 부작용이 크다”, “장기적 으로 건강상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대중의 불안 심리를 자극하기도 했다. 과학의 성과인 백신 개발에 성공한다고 해도 가짜 뉴스로 인한 사회적 혼란, 백신의 안전성 논란, 접종 대상과 시기에 대한 정책 결정, 정부의 예산 투여와 장기적 플랜 등 과학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백신 개발’이라는 과학의 진보만으로는 코로나19 이슈로 인해 파생되는 수많은 문제에 대한 완벽한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지금까지 과학의 권위는 객관성, 정확성, 전문성으로 세워졌지만, 확실한 정답을 찾을 수 없는 이슈에 대해서는 과학만을 해결책으로 삼을 수 없다는 뜻이다.
과학의 성과인 백신 개발에 성공한다고 해도 가짜 뉴스로 인한 사회적 혼란, 백신의 안전성 논란, 접종 대상과 시기에 대한 정책 결정, 정부의 예산 투여와 장기적 플랜 등 과학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 FDA, 화이자)
따라서 우리가 이미 경험했던 광우병, 미세먼지, 메르스, 기후변화, 탈원전, 코로나19 등 불확실하게 찾아오는 이슈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와 합리적인 정답을 만들어가기 위한 사회적 공론화 과정이 끊임없이 진행돼야 한다.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한 다양한 이슈에 맞닥뜨린 우리는 지금 과학과 사회의 조화로운 발전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를 위한 커뮤니케이션 패러다임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중요한 변곡점에 서 있다.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한 위험 이슈
2020년, 갑작스럽게 등장한 ‘코로나19’는 마치 영화에서처럼 우리 사회 전반에 전대미문의 기록을 남겼다. 개인의 일상이 완전히 바뀌었고 기업의 근무 형태가 달라졌으며, 이에 따라 월간·연간 플랜까지도 모두 무의미해졌다. 통제 불가능한 코로나19의 공포 앞에서 기존 질서는 속절없이 파괴됐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변화가 촉발됐다.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위험 때문에 사회 시스템 전반이 흔들 리는 기현상이 나타났고,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시도와 혁신적인 대응 방안이 요구되고 있다. 코로나19 이슈는 미세먼지, 기후변화, 탈원전 등과 같이 정답을 쉽게 찾아낼 수 없는 복잡성과 불확실성을 안고 있으며,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하기에 현대 사회의 대표적인 난제로 떠오르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코로나19의 발생에 대해 과학기술의 급진적 발전에 따른 환경 파괴, 기후변화, 생태계 영향 등을 주요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 www.shutterstock.com)
또한, 코로나19 이슈는 앞서 언급했듯이 과학기술의 발전만으로 완벽한 해결책을 찾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촉발된 이슈라고도 볼 수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코로나19의 발생 원인에 대해 과학기술의 급진적 발전에 따른 환경 파괴, 기후변화, 생태계 영향 등을 주요 요소로 지적하고 있다. 즉 환경 파괴로 인해 변종 바이러스의 주된 감염원으로 여겨지는 박쥐의 서식처가 파괴됐고, 이에 따라 박쥐와 인간의 연계점이 가까워져 새로운 바이러스 생태계가 구성됐다는 주장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이러한 이슈가 만연한 현대 사회, 근대 산업사회의 패러다임 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대 사회의 새로운 모습을 ‘위험 사회’로 정의했다. 벡이 설명하는 ‘위험 사회’의 ‘위험’은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한 불확실성의 위험을 말한다. 사스, 메르스, 미세먼지 등 우리가 이미 경험했던 다양한 위험 이슈를 떠올려보자. 현대 사회의 위험 이슈는 전혀 예고 없이 출현하고 있으며, 개인의 삶과 건강, 더 나아가 조직과 국가 시스템 전체를 끊임없이 흔들며 위협한다. 위험과 공포 앞에서는 그 누구나 예외 없이 혼란의 소용돌이 속을 허우적거리게 된다. 지금까지 인류는 과학기술의 급진적인 발전 덕분에 이루 어낸 문명의 이기로 엄청난 혜택을 누렸지만, 갑작스레 나타나 인류를 위협하는 새로운 위험 변인 앞에서는 뚜렷한 해결책을 찾아내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게 되는 것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설명하는 ‘위험 사회’의 ‘위험’은 예측과 통제가 불 가능한 불확실성의 위험을 말한다. (이미지 출처 : 울리히 벡)
과학적인 방법을 통한 합의점 도달이 불가능
벡이 주장한 위험 사회에서의 위험은 사람들의 예상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우리가 기존에 흔히 인식하고 있었던 근대 산업사회에서의 위험은 통제할 수 있지만, 현대 사회의 위험은 예측도 통제도 불가능하다. 과학기술의 무한한 진보는 새로운 형태의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끊임없이 생산하고 있다. 우리나라 에서도 이미 과학기술 학자들을 중심으로 위험 사회의 특징과 성찰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1994년 성수대교 붕괴 등 대규모 사고가 이어지면서 과학기술 발전에 따른 압축 성장에 대한 비판, 산업화의 부작용 등을 화두로 성찰의 목소리가 커졌고, 이에 따라 벡의 ‘위험 사회’, ‘부작용으로서의 위험’, ‘성찰적 근대성’ 등이 주목받게 된 것이다. 위험 사회(Risk Society)에서 ‘위험’(Risk)은 위험을 산출할 때 정의하는 위험성을 뜻한다. 즉 객관적 수치로 확인할 수 있는 위험을 포함해 이미 일어난 위험이 아니라 미래에 발생하게 될 위험에 대한 예측이자 과학 적인 예측을 의미한다. 이러한 위험을 예측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현대 사회에서 과학의 발전을 살펴보면 유전자조작식품(GMO)의 사례만 비추어보더라도 ‘과학적 조작’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일반 대중들은 정치적 성향 등 주관적·개인적 판단에 따른 불안과 공포로 위험의 정도를 파악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이미지 출처 : What is the “Science of science communication”?, JCOM)
따라서 현대 사회에서 발생하는 위험 이슈에 대해서는 과학의 비약적 발전에 따른 예측에 더 이상 ‘객관성’ 과 ‘전문성’을 담보할 수 없게 됐고, 이에 따라 “과학적인 방법을 통한 완벽한 합의점에 도달하는 것”이 불 가능해졌다. 이제 위험 이슈에 대한 접근과 해결책 모색은 ‘정치적 쟁점’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항으로 재편될 수밖에 없다.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분배되는 위험 사회에서의 사회적 성찰과 합의
또 하나 주목해야 하는 점은 위험 사회에서의 위험이 만인에게 평등하게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근대 산업 사회에서의 생산과 분배는 자본, 권력, 계급 등 경쟁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불평등’ 이슈로 해석되지만, 현대 사회에서 위험에 대한 생산과 분배는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위협으로 다가가기 때문이다. 벡은 “기존 산업사회가 부의 생산과 분배 문제를 중심으로 돌아갔다면, 현대 사회는 이 틀을 완전하게 깨고 새로운 위험 이슈가 논의되는 위험 사회로 탈바꿈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즉 재화의 생산은 경쟁 구도에 의한 양극화를 가져오지만, 위험의 생산은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기에 모두가 떠안을 수밖에 없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자본, 계급, 권력 등에 의한 구분 없이 누구나 평등하게 분배되는 위험에 직면한다는 뜻이다.
벡은 “민주적 절차로 제도화한 정치가 현대 사회의 위험을 인지하지 못했을 때 시민 사이에서 새로운 정치적 요구가 발생하는 현상”을 설명하면서 “과학이 발전하면서 위험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점점 더 늘어 나고 있기 때문에 과학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고, 과학 역시 정치적 이슈로 여겨지며 해결점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현대 사회의 위험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과학만을 내세워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성찰과 합의가 필요하다. 벡이 말하는 “사회적 합리성이 없는 과학적 합리성은 공허하고, 과학적 합리성 없는 사회적 합리성은 맹목적이다”라는 메시지에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강조점을 찾을 수 있다.
발전과 성장을 위한 맹목적인 압축과 추격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우리나라 과학자 집단은 이제 광우병, 미세 먼지, 사스, 메르스, 기후변화, 탈원전, 코로나19에 이르기까지 불가피한 위험 이슈에 과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깊은 성찰을 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산업화와 근대화 논리를 따른 경쟁 구도에서 한 쪽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방법을 취할 것인지, 공존을 위한 공동체의 대안을 찾는 성찰의 방법을 택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 ‘사회적 합리성’과 ‘과학적 합리성’의 조화를 어떻게 이루어가야 할지에 대한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
발전과 성장을 위한 맹목적인 압축과 추격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우리나라 과학자 집단은 이제 광우병, 미세먼지, 사스, 메르스, 기후 변화, 코로나19에 이르기까지 불가피한 위험 이슈에 과연 어떻게 대응할지 깊은 성찰을 해야 한다. (이미지 출처 : 한국과학창의재단 이미지 DB)
위험 사회에 만연한 ‘가짜 뉴스’와 정치적 쟁점화
이렇듯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해 사회적 합의를 찾아가야 하는 위험 사회의 특성에 따라 특정 위험 이슈가 나타나면 이와 관련된 불확실한 허위 정보, 대중의 공포와 불안을 자극하는 가짜 뉴스가 만연하는 사회 현상이 나타나고, 정치적인 쟁점으로 재해석되기도 한다. 위험 사회에서의 위험 이슈가 정치적으로 재해석돼 새로운 형태로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 사회 에 등장하게 되는 위험의 결과물에 책임지는 주체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프레온가스 제품 사용에 따른 온실 효과, 핵폐기물에 따른 방사능 위험, 농약 살포에 따른 환경오염 등을 살펴보자. 변인 생산에의 기여에 따라 위험의 책임이 분배되지 않기 때문에 위험 사회에서의 위험은 통제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들 위험에 대한 인식은 정치적 이슈화를 통해 촉발될 수밖에 없다.
과학기술의 무한 진보는 위험 사회에서 그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2020년 한 해 동안 생생하게 경험했듯 이 우리 생활 도처에는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예측할 수 없는 특정 요인에 의해 시작된 위험은 사회 전체 시스템까지 뿌리째 흔드는 엄청난 변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게다가 위험 사회에서 촉발된 위험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적용된다.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했던 위험 이슈를 살펴봐도 미세먼지, GMO, 사스, 메르스, 광우병, 탈원전, 코로나19까지 모두에게 평등하게, 그리고 불가피하게 적용되는 것이 바로 위험의
위협이다. 결국 위험 사회에서는 “경쟁 구도에서 나는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근대 산업사회와 자본주의 논리가 전혀 적용될 수 없음을 느낄 수 있다.
지금까지 경험했던 위험 이슈를 살펴봐도 미세먼지, GMO, 사스, 메르스, 광우병, 탈원전, 코로나19까지 모두에게 평등하게, 그리고 불가피 하게 적용되는 것이 바로 위험의 위협이다. (이미지 출처 : 한국과학창의재단 이미지 DB)
이러한 위험의 보편성 때문에 일반 대중의 역할과 참여가 더욱 확대되고 있고, 이에 따라 각종 허위 정보와 가짜 뉴스 역시 범람하고 있는 상황이다. 가장 최근 가짜 뉴스 논란으로 매스컴에 쏟아진 월성원전 삼중 수소 논란 역시 전문가와 일반 대중의 인식 차이가 얼마나 심각한지, 과학적 사실에 대한 편견과 여론 호도가 얼마나 자주 일어나고 있는지 느끼게 해준다. 이렇게 가짜 뉴스가 만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 사회의 ‘위험’은 과학자 집단 등 전문가가 인식하는 ‘위험과 재해’, 일반 대중이 인식하는 ‘불안과 공포’가 뒤섞인 형태로 만들어져 출현하기 때문이다. 과학자 등 전문가들은 위험의 정도에 대해 객관적인 사실 관계를 파악하고 분석해 데이터를 제시하면서 해석한다면, 일반 대중들은 주관적·개인적 판단에 따른 불안과 공포로 위험의 정도를 파악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따라 서 과학자 등 전문가의 위험 해석은 일반 대중의 위험 인식과 명확하게 구별된다.
가짜 뉴스가 만연한 이유는 현대 사회의 ‘위험’이 과학자 집단 등 전문가가 인식하는 ‘위험과 재해’, 일반 대중이 인식하는 ‘불안과 공포’가 뒤섞인 형태로 만들어져 출현하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 www.shutterstock.com)
2. 과학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흐름
과학 커뮤니케이션 대응 방안 설정의 출발점은
그렇다면 위험 이슈에 대한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실질적인 대응 방안의 출발점은 어디서부터 설정해야 하는 것일까. 코로나19 이슈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세계는 과학을 중심으로 한 갖가지 이슈에 몸살을 앓고 있다. 새로운 국제 화합과 협의를 위한 소통의 중심을 “과학과 사회의 결합”에서 찾으려는 시도도 눈에 띈다. 예를 들어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기후협약 재가입을 천명하고, 과학 중심의 국정 운영을 강조하며 사회 전반의 여론을 이끌어가려는 모습을 보면 잘 이해가 된다. 과학 소통에 실패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위험 이슈 대응과는 확실하게 차별화하려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이제 기후변화와 탄소중립 등의 이슈는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핵심 키워드로 부상해 전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를 아우르는 의제로 부상하고 있다. 인류의 지속 가능한 안정과 평화를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 되어야 할 시점인 것이다.
결국 전문가 집단의 시각과 해석, 폐쇄적인 소통만으로 위험 문제에 접근한다면 우리가 일찍이 경험했던 촛불시위와 같은 형태의 저항 또는 과학에 대한 불신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례가 바로 체르노빌(Chernobyl)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 때 이루어졌던 전문가 집단의 대응과 과학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다.
전문가 중심의 판단에서 야기된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실패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로 인한 방사능 낙진 이슈는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혼란을 불러 왔고 실질적인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으로 영국 북부 호수지방 컴브리아(Cumbria) 지역의 목양 농부 집단에 대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사례 연구를 살펴보자. 영국 호수지방은 산과 협곡, 깊은 계곡으로 둘러싸인 지형적 특성이 있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생계 수단 으로 농사 대신 목양을 한다. 이 목양에게서 체르노빌 사고로 날아온 방사능 세슘이 지속적으로 상당량 검출 됐고, 이에 따라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방사능이 토양에 고정되지 않고 활성화 상태를 유지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하지만 전문가 집단과 정부 관계자들은 통제된 실험실에서의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고, 이에 반해 방사능이 검출되자 예상치 못한 제약이 몇 주일만 지속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과학자 등 전문가 집단과 정부는 목양 농부들의 신뢰를 상실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불만과 불신을 양산하게 되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로 인한 방사능 낙진 이슈는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혼란을 불러왔고 실질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미지 출처 : www.shutterstock.com, 위키백과)
결국 전문가 집단은 방사능 낙진 토양과 양떼에 관한 실험실 연구에서 실제 토양과 양떼가 처한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양치기 농부의 예측치보다도 정확성이 떨어지는 결과를 도출해 발표 함으로써 과학 연구에 대한 불신은 물론, 훨씬 더 큰 위험을 초래했다. 지금도 당시 연구 결과와 판단에 대한 부작용이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사례에 비추어볼 때 특정 위험 이슈의 장기적 영향력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과학적 예측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라고 해서 정확성을 담보할 수 없으며, 전문가 집단 사이에서도 각기 다른 견해가 도출된다.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는 이러한 경우의 대표적인 사례가 됐고, 아직도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하는 불확실한 위험 이슈로 30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체르노빌 사고와 관련된 전문가 집단의 신뢰성 문제와 위험 이슈에 대한 과학 커뮤니케이션은 무질서하고 두서없는 양상으로 번지며 혼란을 가중시켰고, 이러한 혼란은 위기 상황에서 과학 영역이 갖는 전문적 지식에 대한 의사소통이 얼마나 어려 운지 실질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체르노빌 과학 커뮤니케이션이 실패한 이유
영국의 과학사회학자 브라이언 윈(Brian Wynne)의 분석에 따르면 체르노빌 사고에서 농부와 과학자 집단의 과학 커뮤니케이션 실패의 원인은 크게 네 가지 측면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과학자 집단은 방사능 낙진의 지역 편차와 농부들의 목양 절차 등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경험 편차를 무시했다. 둘째, 과학자 집단은 지역 농업의 실상 등 지역에서 도출된 지식을 무시했다. 셋째, 정부 관계자 들은 농부들의 비공식적인 의사결정 방식을 방해했고, 비현실적인 공식화를 마련해 미리 선택한 시장에 일정 숫자의 양을 판매한다는 엄격한 사전 약속을 요구했다. 넷째, 농부들은 정부 관계자들의 공식 발표를 신뢰하지 않았다. 농부들은 불확실하고 예측 불가능한 힘에 적응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고, 그런 힘을 제어 할 수 있다는 가정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에 대한 과학자 등 전문가 집단의 후속 연구에서 방사능 낙진에 의한 토양의 위험성 예측은 양치기 농부들의 예측보다 정확성이 떨어지는 결과를 만들었다. 이렇듯 과학자 등 전문가 집단조차 위험 이슈에 대한 장기적인 피해와 파급력을 제대로 예측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수많은 사례를 통해 파악되고 있으며, 그들 전문가 집단 사이에서도 동일한 결론을 도출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 펼쳐지게 된다. 2020년을 장악한 코로나19 위험 이슈 대응에서도 마찬가지다.
전문가 집단은 방사능 낙진 토양과 양떼에 관한 실험실 연구에서 실제 토양과 양떼가 처한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양치기 농부의 예측치보다도 정확성이 떨어지는 결과를 도출해 발표함으로써 과학 연구에 대한 불신은 물론, 훨씬 더 큰 위험을 초래했다. (이미지 출처 : 위키백과)
원활한 소통 없이 일반 대중에게 과학적 사실을 전파하고 정책적 결정을 따르라는 일방향 가이드라인 제시 방식의 과학 커뮤니케이션은 불신의 벽에 막힐 수밖에 없다. 위험 이슈를 적극적으로 공개하고 전문가와 대중의 벽을 허무는 공론의 장이 마련돼야 하는 이유다. 브라이언 윈에 따르면 과학자 등 전문가 집단과 정부 관계자들은 추상적인 과학적 입증에만 전적으로 의존 하는 다양한 개입 결과의 두드러진 효과를 정당화하는 데 골몰하곤 한다. 과학지식은 가설과 결합해 보편성 을 뒷받침하는데, 가설의 타당성과 정당성은 연구를 수행하는 전문가 집단은 물론, 과학 자체의 신뢰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과학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는 사회적·문화적 측면을 강조하는 가설과 결과가 활발하게 교류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부분을 고려하지 않은 과학 커뮤니케이션은 효과를 발휘할 수 없거나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체르노빌 과학 커뮤니케이션 사례에서 정부와 관련 전문가 집단의 대응, 목양 농부의 입장과 판단, 전문가 집단과 농부의 소통 과정 등을 살펴봄으로써 교훈을 찾아낼 수 있다.
전문가 집단과 일반 대중의 간극을 줄이려면
그렇다면 전문가 집단과 일반 대중의 간극을 줄이기 위한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방향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 돼야 할까. 위험 이슈와 관련된 소통을 전문가 집단의 영역에서 일반 대중의 인식과 성찰 영역으로 옮기려는 노력은 과학 커뮤니케이션 패러다임 변화와 맞물려 주요하게 고민해야 할 요소이다. 패러다임(paradigm)은 미국의 물리학자이자 과학사학자인 토마스 쿤이 만든 용어다. 쿤이 정의하는 정상 과학은 하나의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과학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는 “세계관의 변화와 같은 혁명적인 변혁을 지칭할 때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이론적 틀이나 개념의 집합체”로 정의된다. 쿤이 말하는 패러다임은 추상적인 세계관이 아니라 과학자들이 세상을 이해 하는 틀이며, 과학자들의 연구를 이끌어주는 모범적인 문제 풀이 방식처럼 구체적인 것이다.
토마스 쿤이 말하는 패러다임은 추상적 인 세계관이 아니라 과학자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틀이며, 과학자들의 연구를 이 끌어주는 모범적인 문제 풀이 방식처럼 구체적인 것이다. (이미지 출처 : 토마스 쿤)
따라서 패러다임은 모형, 법칙, 가설 등 개념적이고 이론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실험기구, 표준, 방식 같은 실험적 요소까지 포함하고 있다. 패러다임은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어떻게 해야 좋은 답을 얻어 낼 수 있을지, 어떤 문제가 더 가치 있는 문제인지 등에 대한 포괄적 기준을 제시한다. 따라서 정상과학은 패러다임을 완벽하게 하고, 더 나아가 패러다임을 확장하게 하는 퍼즐 풀이 형태로 이어진다.
암묵지를 학습하고 익히는 것
패러다임을 습득하는 것은 과학자 사회에서 공유되는 일종의 암묵지, 즉 교과서에 나오는 연습문제를 학습 하고 익히는 것임을 뜻한다. 연습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정의된 이론을 제대로 이해해야 하고, 이론을 기반으로 연습문제를 잘 풀이해나가려면 기존 이론에 대한 이해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응용력, 상상력, 통찰력, 도전정신 등이 발휘돼야 한다. 연습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패러다임이 체화되고, 이러한 과정은 전문가에게 필요한 연구능력을 익히는 훈련 과정의 일부로 자리 잡게 된다. 과학자들은 패러다임과 연구 주제 사이에서 고민하면서 응용력, 상상력, 통찰력, 도전정신 등을 끊임없이 자극받고 발휘하게 되므로 퍼즐 풀이와 같은 정상과학 활동만으로도 흥미와 만족을 느낄 수 있다.
결국 정상과학 속에서 도전하는 과학자들은 기존 패러다임으로 설명되지 않는 변칙 현상을 연이어 발견 하게 되면서, 이 과정에서 정상과학의 위기가 찾아온다. 위기의 뒤를 이어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고 기존 패러다임을 대체하면서 ‘과학혁명’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쿤에 따르면 패러다임에 기초한 정상과학 단계에서 기존 패러다임과 맞지 않는 사례들은 중요하지 않은 것 으 로 무시되거나 패러다임 안으로 포섭된다. 따라서 두 패러다임이 공존하는 과학혁명기에는 기존 패러 다임 고수를 외치는 과학자 집단과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이려는 과학자 집단 사이의 합리적인 커뮤니케이션 을 기대하기가 매우 어렵다. 쿤은 이에 대해 “정상과학 시기에는 패러다임이 복수로 존재하는 것이 거의 불가 능하다. 패러다임의 공존이나 경쟁은 과학혁명기에나 가능하다”고 표현하고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전문 분야 연구가 진행될 때 전문가 집단에서도 받아들이는 패러다임이 각각 달라 동일한 주제에 대해서도 상반된 결론이 도출된다. 의약 분업에 있어서 의사와 약사의 패러다임 간극, 치매 이슈에 대해 치료와 돌봄의 패러다임 간극, 원자력 발전 이슈에서 에너지 활용과 환경 파괴의 패러다임 간극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신기술 출현과 관련된 패러다임 전환은 더욱 복잡하다. 기존 시장을 지배하는 기업들은 신기술 진보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기존 기술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에 치중한다. 따라서 과학 에서의 패러다임 전환과 기술 혁신에서의 변화는 비슷한 양상을 나타낸다. 결국 정상과학 단계의 커뮤니 케이션에 위기가 찾아올 때와 새로운 패러다임이 찾아올 때의 커뮤니케이션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할 수 밖에 없고, 이를 어떻게 조화롭게 극복해나갈 것인지가 과학 커뮤니케이션이 해결해야 할 과제이자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특정 전문 분야 연구가 진행될 때 전문가 집단에서도 받아들이는 패러다임이 각각 달라 동일한 주제에 대해서도 상반된 결론이 도출된다. (이미지 출처 : www.shutterstock.com)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패러다임 변화
패러다임의 변화를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형성 과정에 도입해보자.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변화와 흐름이 어떻게 진행돼 왔는지 살펴보고, 그 과정에서 과학기술 위험 이슈와 관련한 대중의 역할, 위험 이슈가 부각되는 현대 사회에서의 대중의 인식과 성찰의 중요성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근대 산업사회의 과학 커뮤니케이션은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과학의 진리와 전문가 집단의 권위가 지배 논리로 작동했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과학 커뮤니케이션은 근대 산업사회의 논리로 접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통제 불가능하고 예측 불가능한 위험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음을 전제해야 한다. 현대 사회에 존재 하는 불확실한 위험은 근대 사회에서 기획되고 통제됐던 위험 수준이나 범위와는 차원이 다르다. 게다가 과학기술의 끝없는 진보는 위험의 통제와 예방을 담보해줄 수 없으며, 언제 어디서나 돌발 변수가 출현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결국 우리 생활 곳곳에는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며, 예측할 수 없는 어느 시점 에 통제할 수 없는 방향으로 특정 이슈가 촉발됨으로써 사회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양상으로 변화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특정 전문가 집단에 의지해 위험의 통제를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위험 사회의 위험은 모든 사람에게 피해갈 수 없는 형태로 불가피하게 적용되므로 개인의 인식 전환과 성찰은 물론, 사회와 국가 구성원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미세먼지, GMO, 탈원전, 전염병 등 현대 사회에 만연한 위험 이슈는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밖에 없으며, 권력 지배 구조를 이용해 해당 위험 이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방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기존에 진행됐던 과학 커뮤니케이션 방향에서 벗어나 새로운 과학 커뮤니케이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며, 대중의 참여와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미세먼지와 같이 현대 사회에 만연한 위험 이슈는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밖에 없으며, 권력 지배 구조를 이용해 해당 위험 이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방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지 출처 : www.shutterstock.com)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올바른 방향성 설정에 주목
체르노빌 사례에서 전문가 집단과 정부 관계자들의 커뮤니케이션 실패 및 부정적인 파급력을 고려할 때 핵심적으로 기억해야 할 메시지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교훈점이 있겠지만,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올바른 방향성 설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과학 커뮤니케이션이 단지 전문가 집단의 결정사항을 전달하는 도구 가 될 경우 엄청난 역효과와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효율성을 높이고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서는 이슈에 대한 결론을 사후에 설명하거나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결정 과정에서 다양한 사회 집단의 경험과 가정에 대해 소통하며 사회적· 문화적·역사적 맥락을 반영하는 절차가 중요하다. 체르노빌 방사능의 목양 농부 사례에서 전문가 집단의 연구 결과가 신뢰성을 잃은 이유는 전문가 집단 스스로 올바른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배척한 채 사회 집단의 경험과 가정을 무시하고 울타리 안에서 폐쇄적인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실행했고, 그 결과마저 엄청난 부작용을 가져왔다는 데 있다.
사회적·역사적·문화적·실천적 측면을 모두 고려
결국 위험 이슈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전문가 집단 또는 관료 집단이 주도하는 통제적 과학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이슈 자체가 갖는 과학적 접근을 비롯해 정부 차원의 접근, 사회적·역사적·문화적· 실천적 측면 모두를 고려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설정되는 정부 정책 모형의 일반적인 가정, 즉 모든 이슈를 규칙과 제어, 계획과 공식에 의해 기획하고 결정하면 된다는 식의 과학 커뮤니케이션 모델은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뜻이다.
위험 이슈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전문가 집단 또는 관료 집단이 주도해 과학지식을 전달하는 일방향 형태의 과학커뮤니 케이션이 아니라, 이슈 자체가 갖는 과학적 접근을 비롯해 정부 차원의 접근,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실천적, 정치적 측면이 모두 고려돼야 한다. (이미지 출처 : Science communication as political communication, PNAS)
과거 전문가들은 위험에 대한 무지가 행복과 심리적인 안정을 가져올 것이라는 막연한 가정, 불확실성에 대해 최소한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일반 대중을 위험과 불안에서 자유롭게 하리라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어 왔다. 하지만 정보의 소통과 교류가 매우 활발한 현대 사회에서의 과학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전문가 집단 이나 정부 관계자가 불확실성을 과소평가한다면 오히려 과학에 대한 전문성과 신뢰성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따라서 전문가 집단과 일반 대중의 적절한 사회적 관계, 서로 다른 문화 사이의 이해가 절충돼야 성공적인 과학 커뮤니케이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대중의 위험 이슈 논의 참여를 통한 과학 신뢰
일반 대중의 위험 이슈에 대한 인식과 해석은 전문가 집단의 그것과 확실한 차별성을 갖는다. 전문가 집단 은 위험 이슈 연구를 통해 실제 발생한 위험의 정도와 가능성을 수치화하고 통계화해서 제시하려고 노력 하지만, 일반 대중은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서의 불확실한 위험 또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위험에 대해 더 관심을 갖게 마련이다. 즉 대중은 실험실의 제한된 환경에서 제시된 샘플 데이터와 통계적 추론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경험에 기반한 데이터와 해석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대중의 관심사를 고려하지 않는 전문가 집단만의 위험 연구는 주제 접근 자체가 외면받거나, 더 나아가 연구 데이터의 신뢰도조차 불신 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특히 위험 이슈로 인해 피해를 본 경험자가 제한된 환경에서의 실험 데이터에 근거한 연구 결과 발표를 접한 다면 전문가 집단과 정부 관계자를 불신할 수밖에 없는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대중이 직접적으로 위험 이슈에 대해 경험할수록, 위험에 대한 인식과 성찰의 중요성이 강조될수록 전문가 집단과 일반 대중의 과학 커뮤니케이션은 중요하게 부각된다.
전문가 집단과 일반 대중의 적절한 사회적 관계, 서로 다른 문화 사이의 이해가 절충돼야 성공적인 과학 커뮤니케이션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www.shutterstock.com)
코로나19 위험 커뮤니케이션은 성공했는가
우리나라의 경우 2015년 메르스 사태 이전까지는 이렇다 할 과학 소통 전략을 설정하기 어려웠지만, 메르스 라는 엄청난 파고를 경험하면서 2016년 질병관리본부에 위기소통담당관실을 설치했다. 위험 커뮤니케이션의 시스템화를 착수한 것이다. 이를 통해 위험 이슈 대응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관련 기관과의 네트 워크 구축, 국민과의 소통 전략 등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에 대응한 우리 정부의 과학 커뮤니케이션은 전문가와 일반 대중 모두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성패의 결론은 코로나19 사태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이후 시점으로 미뤄야 하겠지만 긍정적 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는 코로나19를 위험 이슈로 즉각 인지하고 보건 당국, 전문가, 미디어를 중심으로 일반 대중에게 실시간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매일 브리핑을 진행하며 코로나19 환자 발생과 동선까지 즉각적인 정보 공개를 추진했다. (이미지 출처 : 질병관리청에서 2020년 작성하여 공공누리 제4유형으로 개방한 ‘중앙방역대책본부, 코로나19 「어린이 특집 정례브리핑」을 진행 하다(2020.4.26.)(작성자:위기소통담당관)’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질병관리청 누리집(홈페이지)(www.kdca.go.kr)에서 무료로 다운가능)
먼저 정보 제공 측면에서 살펴보면 위험 정보를 전달하는 주체는 정부였다. 정부는 코로나19를 위험 이슈로 즉각 인지하고 보건 당국, 유관 단체, 의료기관, 전문가, 미디어를 중심으로 일반 대중에게 실시간으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매일 브리핑을 진행하며 코로나19 환자 발생과 동선까지 즉각적인 정보 공개를 추진했다. 메르스 당시 위험성을 과소평가하고 정보 독점과 통제에만 치중한 정부의 일방향 소통 방식을 버리고, 초기 단계부터 과감하게 정보를 공개해 대중과 양방향 소통을 추진함으로써 두터운 신뢰를 얻게 된 것이다. 메시지 전달 형태 역시 안정적인 브리핑, 과학적 사실을 제대로 표현한 보도자료 배포, 질의응답을 포함한 기자회견, 매일 업데이트하는 감염 현황과 이슈 관련 허위 정보에 대한 팩트 체크까지 대중이 원하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커뮤니케이션을 펼쳤다. SNS, 유튜브를 통해 기하급수적으로 확산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 자세는 위험에 반응하는 일반 대중의 민감도를 감소시키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물론 대중이 받아들이는 공포는 코로나19에 대한 허위 정보, 일명 ‘가짜 뉴스’로 불리는 갖가지 정보의 생산과 유통에 영향을 주며 사회적인 이슈로 부각되기도 했다. 의료 인력과 예산 부족, 전문가 부족으로 인한 고충도 있었고, 지원금에 대한 찬반 논쟁, 거리두기 단계 시행에 대한 이해관계자의 의견 충돌 등 위험 이슈가 안고 있는 문제는 과학적인 사실 정보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임을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특히 변수가 발생할 때마다 끊임없이 파생되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갈등, 정부와 시민사회의 갈등, 정부 와 전문가의 갈등, 정부와 대중의 갈등은 과학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3.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지향점
과학 커뮤니케이션 패러다임의 진화
지금까지 과학 커뮤니케이션 패러다임은 ‘과학 지식의 대중화’에서 ‘과학에 대한 일반 대중의 이해’로, 다시 ‘과학에 대한 사회적인 참여’로 진화해 왔다. 과학 지식의 대중화 단계에서는 대중에게 ‘과학지식’을 전달 하려는 데 집중해왔고, 과학에 대한 일반 대중의 이해 단계에서는 과학지식 전달보다는 이해를 강조하면서 과학을 대하는 긍정적인 태도 형성에 방점을 찍었다. 현대 사회에서 추구해야 할 과학 커뮤니케이션 지향 점인 ‘과학에 대한 사회적인 참여’ 단계에서는 과학자의 연구 결과 전달과 결과에 대한 설득, 즉 전문가의 입장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 이슈와 관련된 의사결정 과정에 일반 대중을 참여시켜 불확실한 시대, 예측 불가능하고 통제 불가능한 위험 이슈에 둘러싸인 위험 사회에서의 올바른 소통을 이끌어가야 한다. 선진국은 1990년대 이후 과학 이슈에 대한 시민 참여 형태의 적극적인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해 왔다. 하지만 코로나19 이슈가 발생하기 전까지 진행됐던 우리나라 과학 커뮤니케이션 실태를 살펴보면 여전히 과학지식 전달과 과학에 대한 대중의 이해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과학기술 이슈에 대한 대중 참여 수준은 매우 낮은 편이다. 또한 광우병, 황우석 사건, 원자력발전소 등 굵직한 사안의 이슈화 과정을 거치며 과학자 집단과 정부 관료, 과학 관련 기관 등에 대한 대중의 시각 역시 부정적으로 형성돼 왔었다.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성공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사례에 대한 분석을 통해 과학에 대한 사회적인 참여 패러 다임으로의 전환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과학자와 과학에 대한 신뢰를 올바르게 쌓아가면서 대중을 위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성화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사회적인 참여 단 계에서는 과학기술 이슈와 관련된 의사 결정 과정에 일반 대중을 참여시켜 예측 과 통제가 불가능한 위험 이슈에 둘러싸 인 위험 사회에서의 올바른 소통을 이끌 어가야 한다. (이미지 출처 : www.shutterstock.com)
결론 도출이 아닌 성찰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으로
결국 불확실성 시대의 시민 참여 과학 이슈에 대한 해결책은 하나의 완성된 결론으로 귀결되기 어렵다. 따라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과학 커뮤니케이션이 아닌 이슈에 대한 진지한 인식과 성찰을 위한 과학 커뮤니케이션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탈원전, GMO 등과 같은 위험 이슈는 그 자체로 한 집단에는 유익을, 다른 집단에는 피해를 안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떤 결과를 내리든지 집단적인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가중시킬 수밖에 없다. 과학이 대중의 계몽 수단이 아닌 사회적 협의와 합의의 대상이 되는 시점인 것이다. 즉 과학지식과 과학에 대한 이해가 대중의 참여와 접목될 때, 그리고 과학 만이 갖고 있던 권위와 권력에서 벗어나 위험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경험 지식을 보강할 때 실질 적인 전문성과 효율성을 발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효율적인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첫째, 일상생활과 밀접한 과학지식 형성과 시민 참여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전문가 집단의 과학지식에 한정되지 않고 대중의 참여를 이끌기 위한 수단으로 대중의 일상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과학지식 주제를 선택해 대중의 경험을 반영한다면 교과서 안에 머무르는 정상과학이 아니라 사회 맥락이 반영된 과학, 시민이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반영된 과학지식이 만들어지면서 모두가 함께하는 위험 인식과 담론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과학 보도를 이끄는 과학전문기자와 과학자 집단의 소통 단계에서 일반 대중의 참여를 보장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과학 이슈 전달의 가장 중요한 채널 중 하나인 과학 보도가 과학자 집단의 연구 결과 홍보와 단순 지식 전달에 머무를 경우 궁극적인 시민 참여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지향점에 도달하기란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과학자 집단의 연구 결과를 아카이브에 취합한 후 과학자, 과학기자,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담론의 장을 마련하고, 미디어가 그 결과를 전달하는 채널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과학 커뮤니케이션 패러다임의 전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효율적인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전문가 집단과 일반 대중이 서로 간의 장벽을 없애고 과학적 객관성과 보편성, 사회적·문화적·역사적 맥락과 해석이 조화롭게 반영되는 대화와 의사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아카이브 참여 광장이 활성화된다면 전문가 집단만이 과학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대중도 과학 이슈 연구의 주체가 되는 과학지식을 형성함으로써 전문가 집단과 일반 대중 사이의 벽을 허무는 이상적인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방향이 설계될 수 있을 것이다.
전문가 집단과 일반 대중이 서로 간의 장벽을 없애고 과학적 객관성과 보편성, 사회적·문화적·역사적 맥락과 해석이 조화롭게 반영하 는 대화와 의사결정을 시도하는 것이 진정한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지향점이다. (이미지 출처 : www.shutterstock.com)
부록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이란?
패러다임(paradigm)은 미국의 물리학자이자 과학사학자인 토마스 쿤이 만든 용어다. 쿤은 저서 『과학 혁명의 구조』(1962년)에서 과학의 발전에 대해 “누적적이지 않은 비축적적인 형태의 에피소드”로 정의하고 있다. 영국의 과학철학자 칼 포퍼를 대표로 한 고전의 인식과 기존 일반 대중의 사고에 따르면 과학은 점진적이고 누적적으로 발전해간다는 게 통념이었다. 하지만 쿤은 과학자들이 정의하고 공유하는 동시대의 패러다임 (법칙) 안에서 ‘이상 현상’이 발견돼 혁명적 전환이 일어나고, 기존 패러다임과 양립되지 않는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지면 바로 새로운 패러다임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과학의 발전이 비축적적임을 강조한다. 기존 제도에 의한 해법을 찾을 수 없을 때 쿤이 설명하는 패러다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정치적인 이슈와 맞물린 사회 현상을 살펴보자. 서로 다른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 사회 집단이 특정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에서 기존 제도가 더 이상 해법을 제시할 수 없다는 의식이 팽배해지면 ‘정치혁명’이 나타난다. 과학에서도 마찬가지다. 과학자가 연구를 수행할 때 기존 패러다임이 자연 현상에 대한 다각적인 탐구 활동에서 더 이상 적절한 역할을 해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 하게 되고, 이러한 과정과 내용이 과학자 사회에 퍼지게 되면 ‘과학혁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과학사학자로서 토마스 쿤은 과학의 역사에서 새로운 이론의 출현과 동화가 이전 패러다임을 파괴하면서 이루어지는 것을 발견한 반면, 전혀 예기지 못한 새로움이 과학의 역사에 차곡차곡 축적되는 누적 현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운동론의 패러다임은 아리스토텔레스, 동역학의 패러다임은 아르키메데스가 처음 만들었으며, 화학의 최초 패러다임은 보일이, 전기학의 패러다임은 프랭클린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지구중심설에서 태양중심설로, 플로지스톤에서 산소로, 입자에서 파동으로 이르는 과정에서 제시되는 개념의 변환은 매우 파괴적이고 혁명적이며, 과학자들이 그것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개념적인 조직망의 변화로서 과학혁명이 이루어진 것이다.
패러다임에 따른 퍼즐 풀이 쿤은 이러한 최초의 패러다임에 바탕을 둔 과학 연구를 정상과학(normal science)이라고 명명했다. 과학자 집단이 특정 분야를 연구할 때 과거의 일정한 과학적 업적과 성과, 즉 패러다임을 받아들이고 이를 기반으로 발전시키는 연구를 정상과학으로 규정지은 것이다. 쿤은 과학 연구를 퍼즐 풀이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다. 과학자는 기존 패러다임에 근거해 문제를 고르고 풀이하면서 마치 퍼즐을 풀 듯 해답을 찾아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상과학은 먼저 제시된 가이드이자 바이블인 기존 패러다임에 따라 빠르게 진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과학 교과서에 정의된 이론에 대해 아무런 의심이나 검증 없이도 완전한 진리로 받아들이고 학습 하며 새로운 탐구를 시도하는 모습을 떠올린다면 쉽게 이해가 된다. 과학자 역시 역사적 검증이 완료된 과학 이론의 바탕 하에 후속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정상과학 퍼즐 풀이 과정에서 나타난 ‘위기’ 한편 과학자가 연구를 수행할 때 정상과학의 기존 패러다임에서 반증 사례나 변칙성을 발견한다고 해도 기존 이론이나 법칙을 부정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방식으로 풀이하느냐에 따라 기존 패러다임으로 풀이될 수 있는 퍼즐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자는 기존 패러다임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깊이 있는 탐구 활동을 펼치면서 새로운 법칙을 발견하기 위한 연구의 동기로 삼게 된다. 쿤은 이러한 과정을 패러다임의 ‘위기’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러한 위기가 기존 패러다임 변화의 가능성을 불러와 정상과학 퍼즐의 법칙을 완화하고 새로운 패러다임 출현의 길을 열어놓는다고 말한다. 결국 쿤이 표현한 ‘과학혁명’은 하나의 패러다임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따라서 쿤에 따르면 과학의 발전은 점진적이고 누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혁명적 변화 패턴의 반복에 의한 것이고, 옛 패러다임이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해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교체되면서 이루어진다. 또한 쿤은 현 패러다임 안에서 이상 현상을 발견한 후 이러한 이상 현상이 현 패러다임의 범주 밖에서 일어 난다는 가능성을 보여줄 때 과학적 발견과 진보의 길이 열린다고 강조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현 가능성을 증대시키는 위기는 기존 패러다임의 적용 범위를 넘어서는 시도를 유도하고, 과학자들이 새로운 과학 이론의 체계를 정립하도록 자극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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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FAC ISSUE PAPER는 과학기술문화, 과학융합인재, 과학·수학·정보 교육에 관한 주요 현안이슈를 심층 분석하고 정책제언을 함으로써, 미래 이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정책 수립 시 활용하고자 발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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