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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문화놀이매거진 POT 40호

이북 원문에서 글자만 옮긴 전체 텍스트입니다. 표·그림·사진과 원래 모양은 이북에서 확인하세요.

1쪽

ISSN 2508 6316

춘천문화매거진 2024 가을

2쪽

삶을 사랑하는 최선의 길은 많은 걸 사랑하는 것이다. 반 고흐(Van Gogh)

© 김효주

3쪽

PLAY

문화로 같이 즐기다

OPEN 문화로 마음을 활짝 열다

TALK

문화로 함께 이야기하다

매거진 «pot»에는 ‘(다양한 것을 담는)그릇, 솥’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문화로 함께 즐기고, 소통하며, 이야기할 수 있도록 지역의 다양한 문화 콘텐츠와 이슈, 생동감 넘치는 춘천의 문화예술을 담아내는 그릇이 되고자 합니다.

«pot»에서 이야기하는 춘천문화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시민의 삶 속에서 엿볼 수 있는 일상의 순간, 그 안에 담긴 보석 같은 이야기를 말합니다. «pot»은 춘천 시민과 많은 관계인구가 춘천이라는 지역을 즐겁게 바라보고 깊이 알아갈 수 있도록 다채로운 이야기를 펼쳐 보이겠습니다.

김수영 作 ‹가을›, 2024, ink on paper, 27.0 × 52.0cm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집으로 돌아와 캄캄한 방에 불을 밝히고, 가라앉은 적막 사이에 포옥 안겨본다. 그 품속에 안겨 길게 늘어지는 그림자를 바라보며 조용히 눈을 감는다.

CONTENTS

LETTER

편집장의 여는 글

MOMENT

모두를 안아주는 문장들

POST BOX

내가 품고 있는 «pot»

당신은 어떤 품에서 자라왔나요?

THEME PIECES

SPACE

피하지 않으려고 안다 예술가 김환의 작업실

INTERVIEW 1

숲과 동물 곁에 머무는 자연 순례자 생태환경 시인 최계선

INTERVIEW 2

파란 지붕의 밝은 등불 신흥늘배움터 장채이, 박효경 선생님

POT-PEDIA

«pot»의 10년, 시작과 현재

WALK

곁에 있어 평범하고 소중한 공지천유원지와 상상마당 춘천

PLAYGROUND

어쩐지 근사한 소도시에서의 삶 #7. 틈을 매꾸는 초록 부호, 수세미의 신호

COLUMN

키다리 아저씨가 많은 도시를 위하여

WIDE

품은, 품는 만큼 품이 된다

SCENE 1

외로운 날들이여 모두 다 안녕 ‘안녕을 묻는 정담회’ 이야기

SCENE 2

높낮이는 달라도, 쑥쑥 커지는 도시의 하모니 신나는 오케스트라 2.0

MOOD

결국 우리는 자연의 품 안에서

EDITOR’S NOTE

4쪽

LETTER

여러분의 마음속엔 여유가 있나요?

䢮숨 쉴 틈䢯 같은 곳이라고 느낀다.

나침반이 아닐 수 없다.

데 기여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부탁드린다. 다정한 도시 춘천은 가능하다.

䢬요즘은 다정, 다정함에 대해 자주 생각해요.䢭 하명희 소설집 『밤 그네』(2004)에 수록된 「다정의 순간」에 등장하는 대사이다. 너무나 평범한 말이지만, 묘한 울림이 있는 표현이다. 우리 사는 도시와 사회가 다정하지 못한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소설집 속 「다정의 순간」은 다정한 커뮤니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잘 보여준다. 세월호 참사 등 개인적·사회적 재난을 겪은 사람들이 경기도 광주시 툇골 어느 도서관에 모여 한껏 귀를 열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그러자 그 자리에 함께한 사람들은 작은 도서관이 사람들을 품어주는

다정한 도시는 가능한가. 다정한 도시는 무엇보다 사람들을 품어주는 도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다정한 도시는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도시에서 사람을 밀어내려는 척력(斥力)보다는 인력(引力)이 제대로 작동하는 도시라야 다정한 도시가 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 사회적 소수자를 비롯해 시민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䢮품어주는䢯 도시여야 가능하다. 어느 철학자가 䢬친근함과 경청이 없으면 공동체도 형성되지 않는다䢭고 한 말은 다정한 도시 춘천으로 향하는 지도와

«pot» 가을호 테마는 䢮품䢯이다. 우리나라 장애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이자 아이콘으로 부상하고 있는 김환 작가를 만나 작업장을 탐방했다. 또 수년 전부터 『동물시편』(2017)을 비롯해 『은둔자들』(2021), 『열마리 곰』(2021) 등의 시집을 통해, 생태 위기 시대 심층생태학적 상상력으로 䢮비인간䢯 존재를 한데 품고 있는 최계선 시인을 만났다. 품의 진정한 가치는 인간뿐만 아니라 비인간 존재와 자연으로 더욱 확장되어야 마땅하다. 다(多)른길연구소 공동대표 개미, 품 청소년문화공동체 심한기 대표의 칼럼은 우리 시대에 䢮품䢯이라는 가치는 결국 유연함이 그 본질 아니겠느냐는 질문을 던져준다. 마음연결 사업 䢮정담회䢯, 신나는 오케스트라2.0 같은 활동들이 다정한 도시 춘천을 만드는

춘천시민 및 문화예술인들의 다정한 문화매거진을 지향하는 «pot»이 어언 지령 40호를 맞는다. 춘천 안과 밖 독자들이 보내온 글을 통해 «pot»이 걸어온 길에 대한 소감을 경청했고, 䢮pot- pedia䢯에서는 «pot»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보았다. «pot» 40호 출간 즈음에서는 조촐한 전시회 등의 행사를 준비해 독자 여러분들과 만나는 자리를 마련한다. 앞으로도 변함없는 독자들의 사랑과 관심

고영직 문학평론가, 편집장

5쪽

MOMENT

모두를 안아주는 문장들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등달 몇 낱

사람의 몸은 참 따뜻해 7초간 포옹했을 뿐인데 비 그친 후의 태양처럼 향기롭지

누구든 무엇이든 안아주는 까닭은 물은 0도에서 녹지만 상처로 굳어진 마음은 36.5도에서 녹는다는 믿음 때문이다

-박지연 「안아줄게요」 中

내게 지금 필요한 것은 넌 할 수 있어, 하며 주먹 불끈 쥔 격려보다는 힘들지, 하고 토닥이는 따뜻한 품

-이애경 「눈물을 그치는 타이밍」 中

“어느 정도의 걱정, 고통, 고뇌는 항상 필요한 것이다. 무거운 짐을 싣지 않은 선박이 불안정하여 나아갈 수 없는 것과 같다.”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Arthur Schopenhauer, 1788~1860)

-장석주 「대추 한 알」 中

-신현림 「7초간의 포옹」 中

지구의 성장이 멈추는 곳에서 돌봄이 시작된다. (중략) 돌봄노동을 평등하게 재배치하기 위해서는 서구적인 삶의 양식이 아니면 낙후된 것으로 취급하거나 탄압하고 차별해 온 역사를 성찰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탈성장사회는 이윤이 아니라 삶의 유지와 안녕이 가장 우선시되는 사회이다.

- 김창엽 외 10명 「돌봄이 돌보는 세계」中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난 묵묵히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난 굽신거리지 않았고 이웃이 어려울 때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그들을 도왔습니다. 자선을 구걸하거나 기대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中

“나 좀 안아줄래? 추워.” 엄마가 아기처럼 몸을 말고 부탁한다. (중략) 안아달라는 엄마 … 서로 역할을 바꿔 몇 년 살아도 나쁘지는 않겠지. 아니 20여 년 동안 나는 그런 느낌으로 집안의 가장이었다. 봄옷 대신 안아달라는 주문만 바뀌었다.

-이은주 「돌봄의 온도」 中

‘수라’는 미군의 땅이 아니라 고라니의 영토 ‘수라’는 일곱 빛깔 모습으로 변신하는 칠면초의 영토 ‘수라’는 개개비의 영토 ‘수라’는 겨울을 나기 위해 몽골에서 내려온 잿빛개구리매의 영토 ‘수라’는 쇠제비갈매기의 영토 ‘수라’는 매일 아침 물고기를 먹으러 출근하고 오후엔 잠잘 곳으로 퇴근하는 가마우지의 영토

- 다큐멘터리 〈수라〉 中

6쪽

POST BOX

에디터 이인혜

내가

품고

있는

pot

※ Post box는 춘천 시민들이 찍어주신 사진, 보내주신 이야기를 전합니다.

저편 구석

책을 파는 서점에서 무료 계간지의 자리는 저편 구석. 1년에 네 번 오는 수많은 종류의 무가지를 받아 정리하고 계절이 지난 것들을 치우는 작업을 반복하다 보면 반듯한 한 생명이 사라지는 아쉬움을 느낄 때가 있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사로잡은 춘천의 «pot» 빽빽하게 많은 정보를 전달하려 하지도, 자신들만의 이야기만 그득그득 써놓지도 않은 편안하고 여유가 넘치는 페이지들.

꿈꾸는 일을 멈추지 않기 위해 고향을 떠나왔지만 «pot»을 볼 때마다 진실로 고향의 공기가 그리운데

10년, 40번 계절이 바뀌는 동안 이야기 솥(pot) 하나가 당신의 품에 있었어요.

이것이 䢮향수䢯라는 건지도 모르겠다.

판매하는 수천 권의 책 중, 한쪽에 놓여있는 무가지.

그 솥에서 떠낸 이야기 중 마음에 남은 한 줄 혹은 보고 싶은 누군가가 있나요?

황철준 부산,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서점 ‘인디고 서원’의 문화기획팀장

치열한 매대 위 경쟁이 피곤하다면 눈을 잠시 저편으로 돌려보는 건 어떨까.

7쪽

따뜻한 품이 물들어가는 계절에

«pot»이라는 솥에 담긴 일상의 순간, 각자가 가지고 있는 그리운 희망을 담은 story, 그 안에서 발견하는 보석 같은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편한 쉼, 안식이라는 순간을 경험할 때가 있다.

어느덧 가을이 살랑이는 바람과 함께 성큼 가까이 다가왔다. 가을은 수확과 결별의 계절이라 하지 않는가. 들녘은 허허롭고 나무도 입고 있던 옷을 다 떨구고 나면 성취의 계절이 시린 조락(凋落)의 시간으로 변화한다.

겨울의 조각들이 짜 맞춰지기 전 «pot»을 통해 독자들이 피로를 풀고 다시 활동의 근원이 되는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김성혁 전주, 놀라운 예술터·뜻밖의 미술관 센터장

다른 세계를 엿보는 창

«pot»은 냉수처럼 마음을 시원케 하는 존재보다 뜨끈하게 몸을 풀어준 차 한 잔 같은 존재였다. 다른 세계를 슬그머니 엿보는 일은 생각보다 더 나를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금 사람은 사람으로 인해 치유를 받는다는 것을 알게 한다. 나는 주로 내가 일했던 카페에서 한차례 바쁜 시간이 지난 뒤, 가사 없는 클래식이나 재즈만 널찍한 공간을 메꿀 때 «pot» 안에서의 크고 작은 세계들을 엿보았다. 그리고 마음속에 한 움큼 따뜻함을 채워 넣고 열심히 힘을 내서 밥을 챙겨 먹고, 나를 살리는 일을 하고, 누군가에게 나의 세계를 슬쩍 보여주기도 하고, 또 누군가의 세계를 홱 엿보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내가 엿본 많은 사람들의 세계는 생각보다 흥미롭기도, 애틋하기도, 비좁기도, 뭉클하기도 했다.

장수민 춘천을 애정하는 20대 독립청년

8쪽

춘천의 품으로

나는 «pot»을 통해 춘천을 진하게 사랑하게 되었다.

춘천에 살면서도 낯설었던 춘천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을 부담스럽지 않게 설렁설렁 해주는 친구 같았다.

나는 이제 춘천의 품 깊숙이 빠져들어 완전한 춘천사람이 되었다.

숨겨진 골목, 알지 못했던 사람들의 사연, 계절마다 다른 춘천의 얼굴.

«pot»에서 하나씩 꺼내어보는 이야기들이

당신도 어느새 춘천 속으로 깊이 끌어당길 것이다.

박은수 춘천에 둥지 튼 아들 둘 엄마

애정 어린 시선으로

브랜딩의 시대, 누구나 메시지를 제작하고 소비한다.

지역에 대한 소식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그중 «pot»을 만나면 잠깐 멈춰 서서 천천히 살펴보게 된다.

«pot»은 줄곧 춘천을 느리고 세심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누구나 스며들 수 있는 배려심 넓은 자세로 지역을 이야기해오고 있다.

이경하 춘천을 소개하는 로컬중계자

숏폼과 광고, 마케팅이 넘쳐흐르는 시대다 보니, 어느새 활자들이 자극적이고 피로해졌다.

새로 생긴 카페, 행사 소식 등 너무 많은 정보들이 여기저기에서 쏟아져 나오고 휘발된다.

도시의 이야기를 새로운 시선으로 엮어내어 소중히 바라보게 만들어 주거나

이따금 아는 사람이 나올 때는 반가운 마음이 듦과 동시에 그 사람의 새로운 면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에디터들의 시선이 묻어나는 언어들이 종이에서 사람 냄새를 풍기게 한다.

9쪽

THEME PIECES

사진 김효주

당신은

어떤 품에서

자라왔나요?

11쪽

하루살이는 백 년을 살지만 사람은 하루를 사네 오늘 나는 행복했네 고마운 하루였네

한돌, ‹오늘도 무사히› (1979) 중에서

13쪽

SPACE

포토그래퍼 이종희 에디터 이인혜

피하지 않으려고 안다

현실 위에 이상을 칠하는 예술가 김환*의 작업실

* 1991년 춘천에서 태어난 선천적 뇌병변장애인이자 시각예술가(회화). 목원대학교 서양화 석사를 지냈고, 2019년 서울문화재단 잠실창작스튜디오 10기 입주예술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특별하게 태어나 자신만의 감각으로 세상을 그리는 화가. 오랫동안 그가 꿈꿔왔던 작업실이 세상을 향해 문을 열었다.

14쪽

사람들의 오감이 훤히 보이는 1층. 전면이

넓은 작업실 중앙에는 거의 아무것도 놓여있지 유리로 된 작업실로 들어가는 입구는 더없이 않았다. 그간의 작품들은 깔끔하게 포장돼 편안하고 자연스러웠다. 적당히 기울어진 경사로를 따라 카메라를 실은 캐리어도

오른쪽 벽면에 차곡히 세워져 있었고, 그림을 그리는 책상 또한 벽 한편에 따로 마련되어 부드럽게 굴러 들어갔고, 문턱이 없어 현관과 있었다. 앉은키에 맞춰 이곳저곳 설치된 작업실이 하나로 이어져 있는 것이 오히려 만인에게 열려있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선천적 뇌병변 장애로 휠체어 생활을 하는 시각예술가 김환. 그는 오랫동안 이런 공간을 꿈꿔왔다.

안전바가 보였고, 작업실 한쪽 자동문 뒤로는 침대가 있는 방이 하나 연결되어 있었다. 그가 붓을 놓았을 때 생활하는 공간이다.

작가의 작품에는 현실의 여러 장소들이 담겨 있다. 춘천의 후평동, 모텔촌, 저 멀리 한라산국립공원까지. 이동에 제약이 있는 그의

䢬 공용작업실로 출퇴근하며 작업도 했었어요. 아무래도 불편함이 있더라고요. 작업은 사진에서 시작한다. 지인들이 보내온 자취방에서도 작업을 했었는데 휠체어로 사진을 보고 완성된 분위기가 떠오르면 층간 소음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저는 휠체어를 움직인다. 먼저 사진에 있는 현실을 생활영역과 작업실이 같이 있어야 하는 캔버스로 옮기고, 그 위에 작가의 이상을 한 특수성이 있어요. 편안하게 작업할 수 있는 겹씩, 천천히 쌓아간다. 3개월에서 1년 정도 방법을 열심히 찾아왔고, 올해 이 공간을 외롭지만 따뜻한 시간을 보내며 하나의 작품을 마련하게 됐습니다.䢭 완성한다.

충남 태안군, 캔버스에 아크릴, 색연필, 45.0×53.0cm, 2020, 김환

춘천모텔촌, 캔버스에 아크릴, 색연필, 펜, 130.3×162.2cm, 2019, 김환

15쪽

䢬 태어나보니 특별했고, 어릴 때는 수술과 그가 세상에서 더욱 많은 주목을 받게 한 재활을 반복하며 고통스러웠어요. 단어가 있다. 바로 장애예술. 장애예술가로 사회에선 계속해서 존재를 부정당했고요. 초청되는 자리에 부담을 느꼈지만 나의 그래서 그림으로 도망친 거였죠. 어른이 목소리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는 것을 돼서 사회참여가 가능해지고 사람들을 깨달은 후로는 䢮장애예술가䢯라는 타이틀 역시 만나다 보니 나의 잘못이 아니라 문제는 끌어안아 버렸다. 현실에 있다는 것을 인지했어요. 이후로는 그림 속에 실재를 넣고 거기에 바라는 모습을 그립니다. 피하지 않고 마주하기 위해서.䢭

䢬 현재 장애예술계에 불거진 여러 이념 갈등은 장애라는 특수한 개성을 가진 인간과 사회가 공존하는 것을 받아들일 시기가 되었기에 생기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삶(신체, 정신, 환경)을 포함한 변화된 사회흐름이 만들어낸 문화라고 생각한다면 마치 현대미술과 비슷하지 않나요? 䢮장애예술䢯이 장애인이 하는 예술 활동으로만 정의되는 건 많이 아쉽습니다.䢭

작업을 하면서 사소한 일 하나마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무력함을 마주했을 때, 작가는 피하지 않고 자신의 특수성을 반영한 그만의 작업 방식을 만들어냈다.

① 마스킹테이프를 붙이거나 물을 뜨고 옮기는 일에는 누군가의 손이 필요하다. 활동 보조인이기도 한 매니저님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다. 사람마다 각기 출근하는 날에 맞춰 작업 스케줄을 정한다. 다른 개성과 특성을 가지고 있다. 각자는 그저 자신이 가진 감각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살고 ② 캔버스를 바닥에 눕힌다. 젯소 작업과 물성을 쌓는 일을 할 때는 바닥에 엎드려 있는 것이다. 작가는 같은 맥락에서 䢮장애인䢯이라는 단어는 䢮인간䢯이라는 뜻과 다를 작업하는 것이 편하다. ③ 손이 닿는 위치에 맞춰 캔버스를 돌려가며 것이 없다고 세상에 얘기한다. 그림을 그린다.

“(장애예술이) 개인의 삶을 포함한 변화된 사회흐름이 만들어낸 문화라고 생각한다면, 마치 현대미술과 비슷하지 않나요?”

16쪽

창틀을 매개로 사회 속에서 스스로가 겪는 서로 다른 구분을 재현한 개인전 ‹Frame›

세상의 시선도, 편견도, 현실도 피하지 않으려고 안아버린 김환 작가. 작품과 상품이 주객전도 된 반전으로 재미있는 원하던 작업실을 갖췄으니 목말라 있던 그림을 메시지를 던진 ‹Don䢯t buy coffee here› 전시회, 실컷 그리고 싶다는 작가의 미소에서 멋진 그 밖의 그의 대표작을 포함한 모든 작품에는 미래도 품고 있음을 확인했다. 자유로운 사람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움직임이 가능한 공간이기에 창과 빛을 이용한 마음을 알고 나면 모든 작품 뒤에 䢮누구나䢯가 서 ‹아트박스› 작품처럼 페인팅 외에 작업에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도전할 마음이 있다고 했다.

쉬는날 집에만 있게 된다는 집, 캔버스에 아크릴, 45.0×53.0cm, 2023, 김환

너무 많은 걸 안아버려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예술가. 그가 그려낸 공간들이 이젠 우주만큼 깊고 넓어 보인다.

17쪽

INTERVIEW 1

숲 과 동물 곁에 머무는

자연 순례자

생태환경 시인 최계선

♦ 1962년 춘천 출생. 1986년 계간지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는 «검은 지층», «저녁의 첼로», «동물시편», «은둔자들», «열마리곰», «롱로롱고 숲»이 있다.

♦

숲의 안부 숲의 소식 그리고 숲의 스승들이 나누는 아주 일상적인 대화 그런 숲의 속삭임 나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숲이 나를 허락한다면

䢥 시 䢯숲이 나를 허락한다면䢮 중에서

최계선 시인이 인터뷰를 위해 서면 방동리에 있는 농막으로 초대해주었다. 도착한 곳은 주변이 온통 나무이자 숲이었다. 아직 뜨거운 열기가 가지 않은 날, 숲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한 곳에서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18쪽

“저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유년시절이 제 성장에 큰 도움을 줬죠. 어릴 때는 좋은 학군이 아니라 자연과 가까운 삶이 가장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입구에 고양이 밥그릇이 있네요. 춘천 시내에 있는 집에서 이곳으로 오는데, 차에서 야옹야옹 소리가 나더라고요. 제 카카오톡 소리인 줄 알았어요. 알림음이 고양이 소리거든요. 그런데 메시지가 온 게 없고, 고양이 울음소리는 계속 들리고요. 도착해서 차 문을 열어보니 작은 고양이가 있었어요. 고양이는 시내에서 여기 산골로 오게 된 거죠. 지금은 벌써 새끼들도 낳았어요.

날이 더워 고양이는 그늘에 숨었나 봐요. 작가님의 시는 동물시편 시리즈가 있을 정도로 동물 시가 많아요. 어린 시절에도 동물을 많이 접했을 것 같은데 어떠셨어요? 어렸을 때 살던 집이 남춘천역 근처 개울둑 옆이었어요. 집에 붙어있던 적은 없었고 늘 개울에 가서 물고기 잡고 시간을 보냈죠. 그 나이 때는 뭘 보면 잡아야 하잖아요. 종일 개울에서 물고기 잡고, 산에 가서 새 잡고, 나물을 캐기도 했지요. 그런 저의 유년 시절이 제 성장에 큰 도움을 주었고,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어릴 때는 좋은 학군이 아니라 자연과 가까운 삶이 가장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덕분에 어릴 때 동물하고 아주 친해졌죠.

시집 «동물시편»은 아이들과 함께 보기에도 좋은 시집이에요. 그려져 있고, 시가 어렵지도 않고요. 시는 내가 잘 알고, 마음에서 뭔가를 느껴야 하고, 진실성도 있어야 쓸 수 있거든요. 글을 한동안 쓰지 못한 기간이 있었어요. 시를 다시 쓰려고 할 때 내가 잘 아는 게 뭘까 생각하니 동물들이더라고요. 거기서부터 돌파구가 돼서 동물 시집을 내게 되었어요. «동물시편»은 제가 어떤 시집보다도 완성도에 신경을 썼어요. 아이와 부모가 같이 읽으면서 소통할 수 있는 시집이기를 바랐어요. 세밀화도 넣고, 초등학생이 혼자 읽어도 이해가 되게끔 최대한 쉽게 시를 쓰기도 했고요. 시를 쓰면서 참 즐거웠어요. 시를 쓰면서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을지 몰랐으니까요.

동물에 정말 애정이 많은 게 느껴져요. 배울 것도 많고요. 동물들을 들여다보면 내가 참 부끄러워요. 미안하기도 하고 반성도 많이 하게 되고, 나는 참 무지한 놈이구나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늘 동물들이 스승이라고 생각해요. 스승을 만나는 건 늘 기쁜 일이잖아요.

처음 등단하셨을 때가 20대였는데요, 그때는 주로 어떤 시들을 쓰셨는지 궁금해요. 평론가들이 그때 제 시를 해체시 ♦로 분류했더라고요. 저는 자원공학과를 다녔는데 우리나라에 있는 석탄 매장량이 어느 정도이고, 어떻게 캐낼 것인가 등을 공부하는 학과였어요. 첫 시집 «검은 지층»에서는 주로 지질을 소재로 시를 썼어요. 광물학적 상상력으로 시를 많이 썼고, 암울한 시대를 빗대어 표현하기도 했고요. 졸업 후 실험실에 취직했는데 못 견디게 시를 쓰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경주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했어요. 같이 시를 썼던 친구였는데 시를 쓰고 싶다고 거기 내려갈게 했더니 내려오라고 하더라고요. 바로 사표를 내고 일주일 있다가 내려갔어요. 그 친구가 바닷가에서 살짝 떨어져 있는 단독주택을 통으로 월세를 내서 몇 달을 그곳에서 글을 썼어요. 하루 꼬박 두 편의 글을 썼고, 타자기로 정리한 시로 방을 도배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천장까지 시로 도배되었는데 그때 쓴 시가 거의 첫 시집 «검은 지층»에 들어갔죠.

♦ 시가 갖는 정형화된 틀을 깨고 언어를 개념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새로운 의미를 담기 위해 보다 자유로운 형태의 형식을 수용한 시를 일컫는다.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19쪽

첫 시집을 내신 이후에는 어떤 일을 하셨어요? 서울에서 약 7년간 출판사에서 일했어요. 세 곳의 출판사에서 일했는데 마지막에 있던 출판사가 고려원이라는 출판사에요. 스물아홉 나이에 편집장으로 들어갔어요.

스물아홉이면 정말 젊은 나이네요! 그전에 근무했던 곳이 세계사라는 출판사인데, 창사 때부터 참여하면서 편집장을 맡았어요. «작가 세계»라는 계간지도 만들었고, 좋은 책들을 많이 냈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그래서 갈 수 있었죠. 고려원은 당시 우리나라 가장 큰 종합출판사였는데 편집부가 60명, 영업부가 70명이었어요.

출판사 편집장으로서 아주 바쁘셨겠어요. 출판사는 일단 좋은 원고를 가지고서 출발을 해야 해요. 그래야 책을 만들고, 판매도 하니까요. 제가 맡은 가장 중요한 역할은 좋은 원고를 가지고 오는 거였어요. 6시 퇴근 후부터 제 진짜 일이 시작됐죠. 작가들과 밥 먹고, 술 마시면서 작가들의 원고 상황을 파악하고 필자를 섭외하고, 친목도 도모하고요. 그리고 당시에는 신문이 큰 홍보 수단 중 하나였는데 광고보다 문학 담당 기자들이 써주는 글이 10배는 더 효과 있다고 했었죠. 그래서 신문 기자들도 많이 만나고 그랬죠.

그렇게 바쁜 생활을 하면서 시를 쓰기는 어렵지 않았나요? 고려원에 들어가기 전에는 열심히 썼었죠. 한국 문단에서 꽤 주목받던 시인이었고요. 당시 고려원 사장님과 면접을 끝내고 사장실을 나오려는데 제 뒤에다가 한마디를 하더라고요. 䢮고려원에 계시는 동안에 글은 한 줄도 쓰지 마세요.䢯 문을 열고 나가려다가 다시 앉아서 그게 무슨 말씀이냐고 물었죠. 시는 어차피 회사에서 쓰는 게 아니라 집에서 쓰는 거잖아요. 그런데 사장님이 집에 가서도 글 쓸 시간이 있으면 회사를 생각하라는 거예요. 그 대가는 하겠다고요. 짧은 시간 동안 생각한 후에 나는 말했어요. 䢮그럼 사장님도 제가 기획하는 책에 대해서 결재하지 마십시오. 최종 결정권자는 접니다. 안 팔릴 책도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사장님은 기획에 관여하지 마십시오. 그럼 저도 글 안 쓰겠습니다.䢯 출판사는 많이 팔리는 책을 내는 것도 중요하죠. 하지만 많이 팔리지는 않지만, 가치 있는 책을 내는 것도 중요해요. 제가 시집을 낸다고 몇 명이나 좋아하겠냐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것보다 정말 가치 있는 책을 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거예요. 제가 안 내면 그 원고 자체가 사장 될지도 모르잖아요. 가치 있는 책을 내는 게 우리 문화에 더 필요하죠. 그렇게 편집장 자리를 수락했어요.

저는 사장님의 말에 속상한데요. 아쉬움은 없으셨나요? 머릿속에서 시가 떠오르고 지나가는데 종이로 옮겨 놔야 하잖아요. 그렇지만 제가 약속했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지워버렸어요. 그때 완전히 시와 단절되었죠. 지금 생각하면 좀 아쉬워요. 너무 고지식했고요. 사장님이 알건 모르건 메모라도 해놨으면 좋았을 텐데 약속 지키느냐고 그것도 안 했거든요.

시를 쓰는 과정은 보통 관찰이 먼저인가요? 관심이 먼저겠죠. 관심이 있어야 관찰하게 되고요. 관찰 후에 대상을 내 안으로 끌고 들어와서 일체가 되고, 그다음에 반향으로 쏟아내는 과정이에요. 결국은 자기와 연결이 되어있는 것에서 시가 나와요. 나와 가까운 소재로 시를 써야지요. 아무리 작은 소재라 하더라도, 모래 하나라 하더라도 그게 전혀 작지 않거든요. 거기에서 얼마든지 상상력을 키워나갈 수 있고, 할 얘기가 많아요. 요즘은 여기 농막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고 이 느낌들로 쓴 시들이 시집 «롱고롱고 숲»에 많이 들어가 있어요.

저는 시 ‘숲이 나를 허락한다면’이 인상 깊었어요. ‘롱고롱고 시’라는 시도 있는데, 시집 제목을 «롱고롱고 숲»이라고 지은 이유가 궁금했어요. 시에도 쓰여있지만 롱고롱고라는 문자는 이스터 섬에서 쓰였던 것인데 아직까지도 해독되지 않은 문자예요. 이스터 섬 하면 생각나는 게 모아이 석상이잖아요. 모아이 석상을 어떻게 세웠는지는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섬에 있는 나무들을 잘라서 운반했다고 해요. 석상을 세우느냐고 나무들을 다 베었는데, 그때 없어진 건 나무들 뿐만은 아니죠. 숲에 살던 생명들도 거의 사라졌죠. 섬에 살던 원주민들이 먹을 게 없어지고, 그러다 보니 전쟁하게 되고, 결국 원주민들은 모두 사라졌다고 전해져요. 문자가 있었다는 건 문화가 형성되었다는 의미인데, 원주민들이 사라지면서 그 문자를 읽을 사람도 없어지고, 그래서 지금까지 해독도 안 되고요. 지금 우리의 형태도 이스터 섬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지구 전체에서 똑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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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우리가 이룩한 문자나 문화가 사라질 수도 있네요. 요즘은 정말 숲이 금방 사라져요. 우리가 아마존을 지구의 허파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아마존 열대우림도 어마어마한 속도로 파괴되고 있어요. 아마존 숲 나무들을 잘라서 뭐를 하고 있냐 하면 그 땅을 개간해서 콩을 심고 그래요. 소한테 줄 사료로 쓸려고요.

자연과 동물, 인간은 서로 연결되어 있죠. 그렇지만 인간이 동물들의 삶도, 자연도 결정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보통 사람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잖아요. 제가 보기엔 아주 아니에요. 그런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으면 동물도, 식물도 자기 아래로 생각해요. 우리가 자주 하는 말들이 있어요. 䢮하물며 개도 그러는데.䢯 무슨 䢮하물며䢯예요. 이 말은 우리가 동물을 하등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거죠. 䢮말 못하는 짐승䢯이라는 표현도 자주 쓰죠. 아니 동물들이 말을 왜 못해요? 우리가 그들의 말을 못 알아듣고 있는 거죠. 모든 생명체들은 그들만의 언어로 소통하고 있죠. 䢮동물은 하등하다䢯라는 생각 자체가 하등한거죠.

동물 시집 시리즈 세 권의 시를 합치면 252편이에요. 동물 시를 쓰려면 동물 하나 하나 다 생각해야 하잖아요. 선생님과 같은 시선을 가지면 세상이 얼마나 달라질까요. 배울 게 정말 많거든요. 관찰하다 보면 배울 게 많아요. 저기 보이는 일개미만 하더라도 땡볕에 먹을 거를 구해다 머리에 이고 집으로 가고 있죠. 땅속 개미집에는 환기가 중요합니다. 공기가 흐르지 않으면 개미알들이 곰팡이 슬고 썩어요. 그래서 개미들은 아주 과학적으로 굴을 파요. 청개구리는 겨울에는 자기 몸을 그대로 다 얼려요. 냉동 상태로 겨울을 나죠. 경이롭죠. 자꾸 들여다보면 그들이 우리의 스승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죠.

앞으로는 어떤 시를 쓰고 싶으세요? 적절한 단어를 찾지는 못했는데 선시(禪詩)와 비슷해요. 짧지만 느낌 있고, 깨달음이 있는 시요. 그런 시집을 한 권 내고 싶은데 아직 자연과 동물에 못다 한 얘기들이 많아서 일단은 더 쓰고 싶어요.

농막 앞 밭에는 개구리를 위해 직접 만든 개구리 수영장이 있었다. 한여름 잠깐이라도 물속에서 쉬어가라고. 밭에는 새로 심어둔 작물과 자연 그대로 둔 땅이 공존했다. 하얗고 밝은 부추꽃 위에 나비들이 아주 천천히 그 위에서 쉬고 있었다. 거기에 있으니 숲의 품에 폭 안긴 듯한 느낌이었다. 그곳에는 나무 뒤에 서 있는 나무로, 자연의 순례자로 살고 싶은 사람(‘숲에서 숲속으로’)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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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2

파란 지붕 의

포토그래퍼 이종희 에디터 정승희

밝은 등불

신흥늘배움터 장채이, 박효경 선생님

신흥늘배움터 1983년 2월 문을 열었다. 신흥야간초중고등학교로 불리었다가 2014년 신흥늘배움터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학교형태는 평생교육시설(학력미인정기관)로, 현재는 디딤돌반(성인 한글), 청춘영어교실(기초 생활영어), 말랑영어회화, 시니어스마트교실(스마트폰, 컴퓨터 활용)을 운영하고 있다. 학생회비는 매월 5만 원을 받고 있다.

주소 춘천시 서부대성로184번길 15-6 연락처 033-253-7736

문자는 인간의 언어를 표현하는 도구로, 우리 사회의 통용되는 규칙이다. 우리는 문자로 쓰인 표지판을 읽고, 온갖 정보를 이해하고,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하기도 한다. 문자를 읽을 수 없다는 건 저기 먼 곳 불빛이 모여있는 뭍에서 떨어져 캄캄한 바다에서 표류하는 것과 같다. 혼자 길을 찾지 못하고 미로 속에 헤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여전히 한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이들이 바로 우리 주변에 있다. 야학은 야간 학교의 줄임말로 제때 배우지 못했던 이들을 위한 곳이다. 예전에는 주로 낮에 생업과 돌봄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밤에 문을 열었다. 신흥늘배움터는 1983년 춘천에서 신흥 야학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어 현재까지 문해 교육을 비롯한 기초 영어교육, 디지털 교육을 하고 있다. 이곳에는 망망대해에 홀로 있는 이들을 빛으로 이끄는 이들이 있다. 9월, 뜨거운 여름을 지나 2학기 개학으로 떠들썩해진 신흥늘배움터에서 장채이, 박효경 선생님을 만났다.

장채이 대학생 1학년 때 야학 선생님이 되어 23년째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신흥늘배움터에서 기초 생활영어를 가르친다. 다정함과 꿋꿋함으로 신흥늘배움터를 운영하고 있다.

박효경 오페라를 공부해 20년간 유럽을 돌아다니며 노래를 불렀다. 코로나 때 한국으로 돌아왔다. 신흥늘배움터에서 영어 회화를 가르친다. 톡톡 튀는 매력으로 함께 있으면 즐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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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이 다니는 강원대학교 근처 골목길에 만학도를 위한 장소가 있는지 몰랐어요. 【채이】 이 건물은 2004년도에 지어졌어요. 원래는 중부지구대 건너편에 조립식 건물을 임대해서 쓰고 있었는데 땅 주인분이 지병으로 비워달라고 하셨어요. 이후 철거 전인 건물이나 강원대학교 강의실 등을 빌려서 문은 안 닫고 수업을 이어갔어요. 그러다 우연히 이 땅을 발견했어요. 이 자리가 지번이 없는 땅이라 저희 신흥늘배움터 강종윤 대표님이 춘천시청에 요청해서 지번을 받고, 기부채납 받았어요. 건축비가 필요했는데 집안 식구들 주머니부터 저희 교수님, 주변 아는 분들까지 알음알음해서 적게는 몇천 원부터 많게는 몇백만 원까지 모아서 이 건물을 지었어요. 현재는 기부채납 기한이 끝나서 재계약하고 춘천시에 임대료를 내고 있어요.

〖효경〗 저도 처음에 여길 찾는 게 어려워서 전화했잖아요. 그런데 오히려 여길 찾아오시는 어머님, 아버님은 잘 찾아오시더라고요. 여기가 골목에 있고 계단이 있어 처음엔 툴툴거리긴 하시지만 출석률이 백 퍼센트에 거의 가까워요.

두 분은 어떻게 선생님이 되셨는지 궁금해요. 【채이】 처음에는 뭣 모르고 시작했어요. 대학생 1학년 때 동아리를 여러 개 했는데 야학 선생님을 하게 되면서 다 끊었어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저녁에 3시간 반씩 가르쳤거든요. 지금 대표로 있는 강종윤 대표님이 제게 얼마나 오래 할 수 있을지 물어보더라고요. 시작했으면 3년은 해야 하지 않을까요 했더니 그 말 지킬 수 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제가 한 약속은 지킨다고 했는데 중간에 강종윤 대표님과 결혼까지 한 거예요.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와서 23년 차가 되었네요.

〖효경〗 저는 풍선처럼 날아왔어요. 대학 졸업 후 유럽에서 한 20년 정도 떠돌이처럼 돌아다녔어요. 오페라를 해서 극장 계약을 하며 지냈거든요. 처음 간 나라는 독일이고요, 마지막으로 있던 곳은 영국 런던이에요. 한국에 와서는 공항과 가깝다는 이유로 인천 송도에 살다가 코로나가 터지고 춘천으로 이사 왔어요. 대학 4년간 자매처럼 지낸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춘천에 있어서 따라왔어요. 거짓말 같지만 정말이에요. 추운 겨울, 춘천에 왔는데 도시가스 요금이 35만 원이 나온 거예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제 친구가 악마의 속삭임으로 요즘 도시가스비 두 달 밀리면 끊긴다고 했는데 너무 무서운 거예요. 옆집 어머니에게 토로했더니, 여기 대표님이랑 친하고 해서 소개로 왔어요. 송도에 있을 때는 학생들에게 영어 뮤지컬을 가르쳤어요.

야학의 시작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을 위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디딤돌반은 성인 한글 교육반인데 어떤 분들이 오시나요? 【채이】 디딤돌반은 한 분만 있어도 꼭 열고 있어요. 지금은 8명이 공부 중이에요. 한글반에 오신 분들은 별별 사연이 다 있어요. 어떤 분은 한글 처음 배우고는 병원 탈의실 문에 䢮노크하세요䢯 적힌 글 읽고 얼굴이 너무 뜨거우셨대요. 저희야 문을 두드리는 걸 에티켓이라고 배운 세대이지만, 몰랐다는 거예요. 또 어떤 분은 은행에 가면 바깥 분이 저이는 보여줘도 모른다고 남들 앞에서 나무랐는데, 한글을 배우고는 이제는 읽을 수 있고 서명란에 이름 석 자를 쓸 수 있다고 울면서 얘기하는 분도 계셨어요. 학교에서 보내주는 가정통신문도 못 읽었는데 애들 다 키운 분도 계셔요. 그런데 자녀분들도 어머니가 한글을 못 읽는다는 걸 모르는 분도 있었어요. 이주 여성분들 수업 때는 궁금했던 단어를 물어보라고 했더니 글쎄 욕이 엄청 많더라고요. 집안 식구들이 본인을 부를 때 그렇게 부른다면서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면 대답하기가 너무 난감했죠. 어느 날은 어머님 한 분이 불쑥 찾아오셨어요. 항상 집에서만 계시고 가끔 동네 산책만 하셔서 여기에 글 배우는 데가 있는 걸 모르셨대요. 나도 배우고 싶다고 무작정 동네 분한테 듣자마자 득달같이 오신 거예요. 그날 저랑 한 시간 얘기하다 가셨어요. 본인이 살았던 얘기부터 시작해서 글 몰라서 서러웠던 것까지요. 보통 처음 오신 분들이 많이 그러세요.

신흥늘배움터 앞에서 나란히 서 있는 장채이(좌), 박효경(우) 선생님.

“저는 여기가 문턱이 낮은, 그러니까 소외된 자들의 통로가 되어주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여기 오니까 휴머니즘을 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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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들에게 얼마나 여기가 등대 같을까요. 늦은 나이에 오셔서 한글을 배우면 금방 터득하시는지 궁금해요. 【채이】 사회생활을 해보신 분들은 조금 빠르세요. 공장 일이나 장사 일을 하셨던 분들은 빠르고, 가정주부로만 아이 키우고 살림만 하셨던 분들이나 농사만 지으셨던 분들은 시간이 걸려요. 더듬더듬 읽으시는 데까지는 보통 1년 정도 걸려요. 어릴 때 우연히라도 배울 기회가 있으셨던 분들은 또 나아요. 놀라웠던 사연은 지역명만 유독 잘 읽으시는 분의 이야기였어요. 그분은 아버지가 䢮딸을 어떻게 학교에 보내냐䢯고 해서 학교를 못 다니셨대요. 그래서 동네에 종일 앉아 계셨는데 버스가 지나가잖아요. 사람들이 이건 어디 가는 버스인지 말하는 걸 보고 글자를 외우셨대요. 그런 분들 볼 때는 정말 경이로웠어요. 얼마나 애가 닳고 그러면 그렇게까지 배우려고 하셨겠어요.

〖효경〗 저도 여기 와서 알았어요. 학생 중 한 분은 새벽에 일어나 청소하고 수업 시간 맞춰서 오세요. 학구열이 정말 대단해요.

【채이】 그분은 대학까지 가시는 게 목표거든요. 저는 요즘 학생분들에게 방송통신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가보시라고 바람 넣고 있어요. 실제로 입학하시면 너무 좋아하세요. 안 해본 경험을 하거든요. 학교니까 입학식, 졸업 사진 찍고, 같이 앉아서 수업받고, 점심도 먹고요. 제일 좋은 건 가보니까 나만 못 배운 게 아니라는 걸 깨달으시는 거예요.

요즘에는 한글을 배우시려는 분들보다 영어를 배우려는 학생들이 더 많다고요. 【채이】 예전에는 검정고시를 봐서 학력을 따겠다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지금은 실생활에 필요한 것을 더 원하세요. 학력 자체는 누구랑 얘기해도 잘 티가 안 나잖아요. 그런데 영어 못 읽는 건 너무나 티가 나니까요. 그래서 기초 영어반에 처음 오셔서 카페 메뉴 이름, 자동차 이름, 화장품 이름, 간판 이름 읽는 법을 가르쳐드리면 정말 좋아하세요. 요즘은 상점 간판에 영어로 된 곳이 많잖아요. 예전에는 간판 모양이나 색깔을 외워서 찾아갔는데, 이제는 알파벳을 읽고 찾아가는 분도 계셔요. 어떤 분은 알파벳을 배우고 음식점에서 자연스럽게 맥주 브랜드를 읽었을 때 스스로 놀랐대요. 예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답답해하시는 부분이 달라진 것 같아요.

〖효경〗 노인정을 돌면서 영어 수업이 있다고 홍보하는데 어르신들이 관심이 많으세요. 해외에 자주 놀러 가는 시대니까 가서 영어로 말할 수 있다는 건 또 다르거든요.

신기하네요. 시대가 변하니까 배우고자 하는 것도 달라져요. 요즘엔 디지털 문맹이라는 말도 많이 쓰죠. 시니어스마트교실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채이】 컴퓨터 전원 켜는 것부터 배워요. 어르신들은 키보드보다 마우스 움직이는 걸 더 어려워하셔서 마우스 컨트롤 연습도 해요. 요즘은 어딜 가든 키오스크를 많이 볼 수 있잖아요. 탭을 가지고 키오스크로 결제하는 연습도 해요. 손주들 만나면 맛난 거 사주고 싶어 하시잖아요. 컴퓨터 다섯 대를 이번에 후원을 받아 새로 바꿨는데 정말 좋아하세요. 인기가 많아 두 반을 운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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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늘배움터는 오전에 수업을 열잖아요. 오후에는 어떤 일을 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채이】 코로나 전에는 오후까지 열었어요. 지금 저는 오후에는 온라인 강사로 활동하고 있어요. 온라인 강사 전에는 다양한 일을 했는데요, 프로그래밍도 하고, 입시학원에서 강사도 하고, 새벽에 우유 배달도 하고요. 밤에는 대리운전 콜센터에서도 일했어요. 본업인 여기를 유지하려고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요.

그럼에도 계속해서 이곳을 지키는 이유가 궁금해요. 【채이】 저는 스물둘, 셋부터 여기서 어머님들에게 성교육, 가정교육 받으면서 저도 같이 자랐어요. 제가 가르쳐드리기도 하지만, 배우는 것도 많았죠. 가끔 보람 있냐는 질문을 받는데 그 말이 안 나와요. 보람이 아니라 생활이거든요. 20년을 하니 너무 힘들어서 때려치우겠다고 한 적도 많았는데요, 䢮내가 안 하면 누가 수업하지.䢯 생각이 드니까 계속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사실은 여기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면 다른 일은 안 하고 이것만 하고 싶은데 매년 1월에서 3월이 넘어갈 때는 빚이 늘고 있어요. 아이들 다 키우고, 돈벌이를 더 해서 빚도 다 갚고 나면 정말 편하게 이 일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효경〗 저는 여기가 문턱이 낮은, 그러니까 소외된 자들의 통로가 되어주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채이 선생님이 든든하게 여기를 지켜주잖아요. 학생분들을 이곳에서 더 넓은 세상으로 보내주기 위해 힘써주고 계시고요. 한글반 이름이 디딤돌반인데, 정말 이름대로 디딤돌 역할이 되어주는 곳이에요.

효경 선생님은 올해 신흥늘배움터의 선생님이 되었는데 소감이 듣고 싶어요. 〖효경〗 제가 한국에 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런던에 있었을 때 스승님 밑에 있었어요. 제가 정말 존경하는 멘토거든요. 저는 런던에 있었을 때도 강아지랑 같이 살았는데 제가 하도 강아지를 좋아하니까 선생님이 노이로제에 걸리셔서 저한테 물으셨어요. 䢮효경, 인간과 강아지의 차이가 뭐야.䢯 저는 䢮인간은 때에 따라 머리가 좋아서 거짓말을 하지만 강아지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서 저는 강아지가 좋다고 생각해요.䢯라고 대답했어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휴머니즘이라는 건 동물들이 설명할 수 없는 굉장히 고귀한 인간만이 가진 거래요. 제가 휴머니즘을 사전에 찾아봤잖아요. 䢮인간적인䢯이라는 설명밖에 나오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여기 오니까 휴머니즘을 알겠어요. 사전을 분명히 찾아봐도 몰랐던 걸 채이 선생님의 태도나 방식, 그리고 이곳에 오시는 어머님과 아버님에게서 느껴요.

【채이】 효경 선생님이 오신 후에 분위기가 정말 많이 달라졌어요. 어머님들이 항상 간식을 챙겨오시는 데 처음엔 효경 선생님은 안 먹는다고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일부러 효경 선생님을 끌고 가서 꼭 같이 먹자는 게 아니라 친해지자고 그러는 거라고 알려줬어요. 요새는 아침에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교무실에 있으면 효경 선생님이 어머님, 아버님을 맞이해주고 얘기도 잘 들어주고, 분위기가 정말 화기애애해요.

〖효경〗 이제는 아주 친해졌어요. 처음에는 뭔가 자꾸 주는 어머님의 태도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도시가 달라지니 이게 사람들의 정인 걸 몰랐거든요. 이제는 어머님, 아버님들과 있을 때 편안한 느낌이에요. 저희 반 학생인 한 아버님이 여름방학 때 에너지가 남아돌았다고, 빨리 오고 싶었다고 했는데 사실 저도 같은 마음이었어요.

【채이】 수업 전주에 안내 문자를 드렸는데 우리 아버님이 이렇게 문자를 보내셨어요. 얏호- 개학이다!

모두가 아는 걸 나만 모를 때, 그 답답하고 막막한 마음은 새롭게 배움으로써 타파된다. 정규 학교와 평생학습시설이 있지만 거기까지의 문턱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높다. 가장 기본이자 기초 교육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고, 신흥늘배움터는 약 40년간 그들에게 배움터가 되어주고 있다. 얏호- 개학이다! 외치는 학생의 마음에 기대와 설렘, 즐거움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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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T-PEDIA

일러스트 한선주 에디터 이인혜, 박인옥

40호 기념 의 10년, 시작과 현재

«pot»이 40호를 맞이했다! ‘팟팟’거리며 바쁘게 걸어 온 10년의 스토리와 제작 비하인드를 대방출 해본다.

«pot»의 시작 ¶ 2015년 9월, ‘춘천PLAY’라는 주제로 창간호가 발행되었다. ¶ 원래 두 달에 한 번 발행되는 ‘격월 문화 매거진’으로 시작, 2017년 10호부터 계절별로 나오는 계간지로 발행되고 있다. ¶ 창간 당시 «pot»은 46페이지였다. 현재는 84페이지로 만들어진다. ¶ 2호부터 ‘당신의 이야기’라는 코너를 통해 독자들의 목소리를 함께 싣기 시작했다. 이후 40호인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짐없이 시민들의 글을 함께 싣고 있다. «pot»가 만난 사람들 ¶ 지금까지 70개 이상의 예술단체와 210명이 넘는 예술인을 만났다. ¶ 그동안 다룬 예술분야 중 가장 많은 횟수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회화이다. (인터뷰만 32회) ¶ 2016년 1월 발행된 3호에선 종이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익명의 인터뷰이 7명이 등장한다. (이 청년들의 정체는 현재 에디터들도 모른다.) ¶ 가장 많은 목소리를 담은 것은 2017년 봄 발행된 10호이다. 지역문화예술프로젝트 참여자들을 비롯해 35개 팀 이상의 인터뷰가 담겨 있다. 이때 칼럼을 썼던 고영직 님은 현재 «pot»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 인터뷰한 외국인 예술가로는 2018년 14호에서 만난 오이카도 이치로(마이미스트)가 있다. 그는 매년 5월 마임축제 때마다 찾아오는 춘천을 고향 같다고 했다. 2024년에도 변함없이 찾아와 축제장을 뜨겁게 만들었다. ¶ 2017년 «pot» 에디터였던 유재균 님은 7년 뒤인 2023년 37호 인터뷰이로 선정되었다. 그의 감회는 ‘«pot»과 각별한 사이가 된 것 같다’ 였다.

«pot»를 보는 사람들 ¶ 2024년 현재 «pot»은 16,400부를 인쇄한다. ¶ 구독자는 개인 1,230명, 기관 631곳이다. ¶ 배포처마다 보내는 수량은 1권에서 최대 30권까지다. ¶ 2024 서울국제도서전을 통해 전국의 구독자 수 511명이 증가했다. ¶ 가장 멀리 있는 구독자는 제주특별자치도에 있는 서점 ‘라바북스’이다. ¶ 종종 춘천문화재단으로 전화를 걸어 «pot»을 칭찬하는 춘천 시민들이 계신다. 40호까지 이어진,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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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사랑하는 도시의 방향과 가치를 품어오다

최근 4년 간 «pot»이 담아온 연도별 주제와 호별 키워드들

2020년 ‘도시전환’ 자신의 경험 › 경험의 공유 › 공동체 형성 › 도시전환

2021년 ‘문화다양성’ 나▷너▷ 우리 ▷ 공동체

2022년 ‘도시의 감정’ 희▷노▷애▷락

2023년 ‘소도시 삶의 기쁨’ 일 ▷ 놀이 ▷ 사랑 ▷ 시간

2024년 ‘Stay local, 이곳에 살기 위하여’ 춤▷쉼▷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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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내내 «pot»에 심취해 사는 사람들. ‘팟’하고 주제가 떠오르면 얼마나 좋을까?

1 수능문제 출제보다 더 혹독한(?) 워크숍 계간지인 만큼 한 해 주제를 설정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작업! 감을 잡기 위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바로 워크숍! 편집장, 부편집장, 에디터, 담당자, 포토그래퍼를 포함한 편집부가 모여 영감을 얻기 위한 로컬 투어에 나선다. 그

* 여기서 잠깐! «pot» 편집부만의 특징! 매거진 제작 용역을 맡기는 형태에서 변화를 시도, 2020년부터 독자적인 편집부를 구성했다! 춘천문화재단 담당자와 함께, 지역에서 활동하는 에디터와 작가들이 지역의 문화를 보고 느끼며 바쁜 일정을 소화한다. 쉴 새도 프로젝트 팀의 형태로 매거진을 만들어오고 있다. 일반 없이 앉기만 하면 바~로 회의에 돌입! 한 해 주제와 관련해 기관지와 달리, 주제와 아이템에 대한 자율성을 존중해오고 각자 느낀 점을 나누고, 마인드맵을 통해 주제를 좁혀간다. 있다는 거! 흡사 토론(?) 수준의 회의를 마치면 모두 녹초가 된다.

올해 워크숍 지역은 인제였다. 작은 책방 ‘나무야’에서 권혁소 시인을 만났는데, 올해 주제이기도 한 ‘로컬에서 살기 위한’ 시인의 많은 에피소드를 들을 수 있었다.

2 아이템 회의라고 쓰고 도시연구 모임이라 부른다! 편집장을 중심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호마다 던져진 주제와

3 인터뷰이를 섭외하고 만나는 날짜와 장소를 조율한다. 그 과정에서 섭외가 안 될 수도 있고, 급히 아이템이 바뀌기도 한다. 관련된 학습에 돌입한다. 첫 기획회의에선 곧바로 아이템 회의에 이럴 땐 에디터들 간의 아이템 품앗이(?)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기도 들어가지 않는다. 주제에 대한 자유로운 의견을 먼저 나누는 편인데 철학, 영화, 도서, 사회이슈 등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쏟아져 4 룰루랄라~ 즐거운 만남의 시간! 인터뷰 및 사진촬영을 진행 나온다. 이때부터 에디터들은 호 주제에 심취해 일상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그 다음 아이템 회의에서 비로소 구체적인 코너 별 소재, 인터뷰이를 정한다!

한다.

5 에디터들은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원고 작성 후, 함께 실을만한 추가 자료를 확보한다. 외부 칼럼 원고도 이 시기에 맞춰서 들어온다. 원고가 취합되면 부편집장과 에디터 간 피드백 및 수정작업이 이루어진다. 이후 페이지 구성작업을 거쳐 편집디자이너에게 전달된다. 인쇄 시안이 나오면 수차례 교정 작업이 이루어지는데, ‘털어서 오타 하나라도 나오면’ 그야말로 죽음(?)이기 때문에 크로스 체크가 생명이다!

6 연말에는 꼭! 올해의«pot»을 평가하는 자리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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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K

곁에 있어 평범하고 소중한

의암호를 품은 공지천유원지와 상상마당 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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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지막이 일어난 약속 없는 주말엔 공지천유원지에 간다. 의암호를 끼고 있는 공지천유원지는 여유롭다. 공원엔 한가로이 움직이는 새들과 제멋대로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의암호는 그 잔잔함으로 가만 바라보게 된다. 한 도시의 공원은 그 도시 사람들의 일상적인 장소다. 자주 가기에 익숙하지만, 기분 전환하기에 적절한 장소. 부담 없이 갔다가 산뜻한 기분을 안고 돌아오는 곳. 서울 사람들에겐 한강 공원, 런던 사람들에겐 하이드파크(Hyde Park), 뉴욕 사람들에겐 센트럴파크(Central Park). 춘천 사람들에는 공지천유원지이지 않을까.

공지천유원지에는 두 개의 공원이 있다. 조각공원과 의암공원. 조각공원에는 조각 작품이 설치되어 있어 조각 작품을 보며 걷는 재미가 있다. 강아지와 산책할 때는 청오 차상찬 선생님의 동상 앞 벤치에 앉아 잠시 쉬어간다. 매번 같은 자리에 앉는데 아마도 조각공원을 자주 산책하는 사람이라면 자기만의 자리가 있지 않을까. 주인 없는 벤치들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상상 한다. 의암공원 잔디밭에는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텐트로 자신만의 아지트를 만드는 사람, 돗자리를 펼치고 앉아 노는 삼삼오오 친구들, 어린이와 강아지와 함께 온 가족들도 있다. 공원에 있을 때 안정감을 느낀다. 이 안정감은 누구의 소유도 아닌 공공의 장소에서 긴장을 풀 수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공원에서는 누구도 배제당하거나 소외당하지 않는다. 노키즈존, 반려동물 출입 금지 표지가 없고, 괜히 주눅 들게 하는 키오스크도 없다. 초록의 잔디밭과 따스한 햇볕, 시원한 바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잔디공원을 가로지르면 의암호가 보이는 산책로와 자전거길이 있다. 산책로는 녹음이 우거져 시원하다. 벤치에 앉아 의암호의 잔잔한 물결 위로 오리배와 건너편 옛 경치가 생각나는 풍차 건물을 멍하니 쳐다본다. 공지천유원지는 공원과 호수가 한 곳에 있어 홀로 사색하기에도, 함께하기에도 더없이 좋다. 의암공원에서 춘천 MBC 방향으로 올라 걸어가면 의암호 호수전망대가 있다. 탁 트인 풍광으로 의암호와 춘천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호반의 도시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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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마당 춘천으로 발길을 옮긴다. 춘천 MBC 주차장에서 상상마당 춘천으로 가는 오솔길을 지날 때면 늘 설렌다. 나무 터널로 만들어진 길은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과 그 사이로 부는 바람이 선명히 느껴져 꼭 다른 세상으로 향하는 길 같다. 학창 시절 친구와 이 길을 걸으면서 상상마당 춘천에서 일하면 얼마나 좋을까 희희낙락 수다를 떨었던 기억이 무심코 떠오른다. 그렇지만 가장 좋은 건 역시 일터보다 놀이터인 것 같다. 오솔길 끝에 상상마당 춘천의 야외무대가 먼저 보인다. 절로 옛 기억이 몽글몽글 솟아난다. 춘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은 여러 번 왔던 공간으로 2014년 상상마당 춘천이 개관하기 전엔, 어린이회관으로 불리었다. 어린이회관은 故 김수근 건축가가 지은 건물로, 1980년 5월 개관했다. 머릿돌을 보니 5월 5일에 준공했다고 적혀있다. 그 시절 어린이를 위한 건물이라니. 덕분에 어린이였을 때 어린이회관으로 소풍도 오고, 사생대회와 글짓기 대회에 참가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때와 지금의 건물이 그대로여서 괜스레 뭉클해지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상상마당 춘천 건물은 푸른 의암호와 상대적이다. 건물은 종이비행기 모양으로 건축되어 a와 b 동으로 나뉘고, 두 건물을 잇는 구름다리가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오면 비교적 어두운 실내와 위쪽에 난 창에 눈이 간다. 타이포그래피가 결합해 햇빛 위로 글자가 새겨진다. 건물을 걷다가 2층 전시장을 찾았다.

현재 전시 중인 전시 명은 ‹순간의 순간들(Moment of Moments)›*. 일곱 작가가 우리 삶 속에서의 음악을 다양한 감각으로 풀어내는 전시이다. 그중 김소라 작가의 ‹파독:소라에게›에 마음을 뺏긴다. 1970년대 파독 간호사로 근무했던 공순향이 함께 독일로 건너온 친구 소라에게 쓴 편지 위에 작가 김소라가 이미지, 사진, 글, 음악 등으로 작업했다. 누군가 쓴 편지와 그 마음을 소중히 여겨 작업한 작가에게 흔들린다. 예상치 못한 울림이 퍼진다.

* 순간의 순간들. 올해 7월 27일부터 10월 20일 까지 무료 관람으로 진행됐다. KT&G 상상마당 춘천 홈페이지를 통해 현재 진행 중이거나 다가올 전시는 물론, 공연과 교육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䢬소라! 지금은 대략 6시 반은 지났을 거다. 왠지 답답한 마음에 근무를 마치고 기숙사 방엔 들어가지 않고 가운을 입은 채로 이 잔디밭에 홀로 앉아 넘어가는 저녁 햇살을 마주하고, 네 생각에 깊이를 둔다. 조용한 새들의 지저귐이 쌀쌀한 저녁나절 바람을 타고 내 귓가를 스쳐 지나간다. 오늘 또 하루가 저무는 지금 과연 나는 무엇으로 오늘을 남겼을까 생각해본다. 아무것도 없다. 단지 나의 이런 마음을 네게 전하는 것뿐… 무의미하게 지내버린 이곳에서의 214일. 남은 881일 어떤 자국을 남길 수 있을까?䢭

김소라, ‹파독:소라에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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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이나 낯선 땅에서 분투했던 이의 일상과 먹먹함이 그려진다. 그러는 와중에 친구의 이름을 부르고, 머무는 곳의 풍경을 묘사하고, 그리움을 표현하는 마음을 본다. 공순향의 사진과 약 50년 뒤 작가 김소라가 같은 장소를 방문해 찍은 사진이 겹친다. 그곳에도 강과 잔디밭과 가로수길과 공원이 있다. 여전히 그대로인 모습을 한 장소와 시간이 지나 어딘지 모르게 변해버린 곳이 있다.

문득 뒤돌아봤을 때, 평범하고 일상적이라 여겨졌던 어떤 순간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떠오를 때가 있다. 대개 한 시절을 지났을 때야 가능한 감각이다. 그 시절의 나 혹은 당신은 여기에 없고, 장소는 그대로일 때 우리는 삶의 덧없음과 반짝임을 동시에 만난다. 공지천유원지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춘천시민에게 아주 친숙한 공간이고, 평범하고도 소중한 나날들이 보이지 않게 쌓여 있는 장소이다. 내가 걷고 머무는 공간이 나의 일부가 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공지천유원지에서의 한가로움과 의암호의 잔잔한 물결, 상상마당 춘천에서의 공연과 전시, 축제 등을 만날 수 있을까.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주말을 맞아 다시 걸어본다. 사라질까 두려워하기보다 지금 순간에 머물며.

䢬초록의 잔디밭과 따스한 햇볕, 시원한 바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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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GROUND

어쩐지 근사한 소도시에서의 삶

#7. 틈을 매꾸는 초록 부호, 수세미의 신호

글·그림·사진 공혜진(일상기록공작가)

암호 같은 숫자의 배열은 수세미 꽃의 수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창문으로 가서 담을 타고 자란 수세미 꽃의 수를 세고 기록한다.

덕분에 매일 아침 노란 꽃과 눈을 맞추고 박진감 있게 자라나는 초록의 줄기와 잎의 생명력에 감탄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자람을 내가 눈길을 주기만 마당의 수세미는 지난 2달간 하루도 쉬지 않고 370개의 꽃을 하면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신비로운 일인가? 피웠다. 6월 말부터 새벽이면 매일 등불 같은 노란꽃이 담을 식물은 늘 우리 바로 옆에서 매 순간 성장하고 있다. 타고 길게 뻗은 줄기에 피었다. 굵고 거친 초록색의 줄기와는 상반된 모습으로 처음 곱고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에 자란 땅과 가까운 부분의 식물 여린 꽃이 피었을 때, 반갑고 신기해서 인사하듯 꽃과 하나하나 눈을 맞추곤 했다.

줄기는 시들고 잎도 떨군 채로 담을 타며 길게 자라지만 그럼에도 아직도 줄기 끝부분에서 꽃들이 핀다. 마치 이른 새벽부터 꽃을 피워내곤 점심 때쯤이면 누가 잘라낸 듯 초록색의 줄로 벽과 담을 묶고 그 위에 노란 꽃을 붙여 일제히 꽃이 시들어 떨어지는데, 그 모습을 보다가 문득 나도 마무리한 듯한 모양새이다. 그렇다, 수세미는 초록의 줄기로 수세미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날부터 꽃들과 눈을 맞추며 수를 헤아리게 되었다.

봄의 초입에 동네 종묘사에 가서 수세미 모종 3개체를 데려와 마당에 심었다. 사실, 심을 때 생각은 열매가 열리면 그릇을 닦는 수세미로 수세미를 보던 눈으로 암호 같은 꽃의 수를 중얼거리며 사용하려는 속셈이었다. 친구가 준 수세미 열매로 만든 수세미가 설거지하기 좋아서 직접 키워서 만들어 보고 싶었다.

주변을 돌아본다. 초록의 나무와 작은 식물들이 우리의 모든 공간의 틈을 매꾸고, 우리를 감싸 안으며 채우고 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 우리는 어느덧 식물에게 작은 모종이던 수세미는 심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줄기가 안겨있다. 길게 뻗어 나가더니 집을 휘어 감으며 담을 타고 자라났다.

어두운 색의 집과 마당을 감싸 안았고, 노란 꽃으로 불을 켜서 생기를 불어넣었다. 꽃의 수가 주는 기대와는 다르게 비록 열매는 하나밖에 열리지 않았지만, 매일 아침 석 달 남짓의 시간 동안 그렇게 꽃을 피웠다면, 그런 몸과 마음이라면 어쩌면 그거면 된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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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글 개미(김미연) / 다(多)른길연구소 공동대표

키다리 아저씨가 많은 도시를 위하여

“자식을 낳아봐야 어른이 되지” 주변 어르신들에게 아이를 낳기 전에 종종 들은 말이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솔직한 내 마음은 그랬다. ‘자식을 안 낳으면 어른이 안 된다는 건가? 그럼 자식을 낳지 않은 사람들은 어른이 될 수 없는 걸까? 자식을 낳기만 하면 어른이 되는 건가?’ 하는 물음을 되뇌었다. 그런데 엄마가 되고 보니 이전과는 분명 다른 모습과 생각을 가지게 된 나를 보게 되었다. 전에는 알지 못했고, 무심했던 것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기도 하였고, 나라는 사람을 더 들여다보게 되었다. 육아(育兒)의 과정에서 번번이 별로인 내 모습을 마주하면서 괴롭기도 했지만, 더 괜찮은 내가 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아마도 아이를 키우는 과정이 결국은 나를 키우는 육아(育我)가 되기 때문에 어르신들이 그런 말씀들을 하신 게 아니었을까 어렴풋 그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나는 어떤 엄마, 사람이 되고 싶을까를 고민한다. 아이가 당장은 다 느끼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 엄마는 내가 좀 부족해도, 실수해도, 힘들어하는 순간에도 괜찮대”라고 할 정도로 품이 넉넉하다고 느끼면 좋겠다는 생각에 다다른다. 이내 그 바람은 ‘내 아이뿐만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아이들에게 그럴 수 있다면 어떨까?’로 이어진다. 끊임없는 경쟁과 치열한 입시체제 안에서 각자도생만이 살길이라고 배울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누군가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걸 어떻게 느끼게 할 수 있을까?

청소년을 위한 <맡겨놓은 카페>

지난 시절, 2년 6개월 동안 몸담았던 곳에선 마땅히 갈 곳이 없고, 쉼이 필요한 청소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그렇게 2022년부터 청소년을 위한 〈맡겨놓은 카페〉가 시작되었다. 현재는 춘천사회혁신센터에서 맡아 운영 중인 이 프로젝트는 동네 곳곳에 존재하는 ‘카페’ 공간을 통해 ‘청소년을 응원’하는 시민의 마음과 카페 주인장의 ‘다정한 공존’, 청소년의 ‘즐거움’을 연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맡겨놓은 카페〉를 준비하던 초창기에는 과연 청소년을 위해 동참해 줄 카페가 얼마나 될까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지역의 청소년들을 환대하고 응원하는 〈맡겨놓은 카페〉의 취지에 동감하는 카페 주인장분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였고 2024년 9월 현재 30여 곳에서 함께하고 있다. 〈맡겨놓은 카페〉를 찾은 시민들은 지역의 청소년을 위해 음료값을 미리 더 계산해두고 간단한 응원메시지를 남겨놓는다.

시민 기부자

“존재 자체로 아름다운 청소년들 응원해요!”

시민 기부자

청소년 이용자

청소년 이용자

“너의 미래를 응원해! 그럼에도 오늘을 가장 즐겁게 살기를 바라”

청소년들은 〈맡겨놓은 카페〉를 방문하여 적립된 음료를 마시며 기부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작성한다.

“OOO 선생님 힘내라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힘내’라는 말이 정말 듣고 싶은 수험생인데 정말 감사해요. 저도 꼭 돈 많이 벌어 기부하는 사람이 될게요”

“안녕하세요! 춘여고 2학년인 학생입니다. 덕분에 시원한 음료수 마시고 공부했어요! 감사합니다. 이런 따뜻하신 분이라면 항상 좋은 일만 가득한 하루 보내세요!”

어른들이 기꺼이 내어준 품 덕분에 청소년들에게는 일상에서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공간이 마련되고, 어른들에게는 청소년들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마음을 전할 기회가 생기게 된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이름 모를 누군가와 서로 연결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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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청소년을 지역의 청년으로 <청청로컬캠퍼스 춘천>

우연히 청소년과 관련한 어떤 논문에서 본 내용이 아직도 선명하다. 우리의 아이들이 청소년 시기에 만나서 관계 맺는 어른들은 주로 부모님, 학교 선생님, 학원 선생님이라는 점이다.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는 다양한 모습으로 각자 나름대로 삶을 살아가는 많은 어른들이 있지만 아이들이 그들과 연결되기란 흔치 않다.

“청소년들과 청년들에게 조건 없이 귀 기울여주고 손잡아 주고 품어줄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주세요!”

* ‘키우다’의 ‘키’, 그리고 나 아(我), 언덕 아(阿)의 의미를 담은 ‘아’를 합친 단어

어느 날 함께 일했던 선배 활동가가 개인 SNS를 통해 청소년과 청년(이하, 청청)의 이야기에 귀를 열고, 품어주고 싶은 ‘누구나’를 호명했다. 전국 방방곡곡에 사는 어른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 지 자세히 알지도 못했으나 오로지 아이들을 위한 마음 하나로 나를 키우고 서로를 키우는 청청을 위한 비빌언덕으로서 키아*로

얼마 전 9명의 청청과 5명의 키아가 모여 1박 2일 입학캠프를 가졌다. 19세 청청부터 53세 키아까지 나이도 생각도 경험도 다른 우리들은 왜 여기에 모이게 되었을까, 물음을 던지며 늦은 시간까지 대화를 나눴다. 이 프로젝트가 아니었으면 모르고 살았을 우리들은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지 기대가 된다.

나서주었다. 이렇게 모인 키아들과 청청들을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나를 비롯하여 선배 활동가 해치와 수오, 동료 활동가 사포와 서로는 의기투합하여 청청들의 자기 성장과 삶 찾기를 지원하는 지역 공동체 기반의 교육모델 실험으로서 〈청청로컬캠퍼스 춘천〉 프로젝트를 꾸렸다. 지역사회 지지망으로서 키아들과 함께 6개월간 찐하게 만나는 스쿨링 과정과 단기로 열리는 클래스 과정으로 운영된다. 장기로 운영되는 스쿨링 과정에서는 청청들이 좀 더 본연의 자기모습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힘을 길러내는 것과 삶의 길은 다양하다는 것을 함께 탐색하려고 한다.

우리는 품이 넓은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푸근해지는 걸 느낀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곤경에 처하기도 하고, 난감한 순간이 생기기도 한다. 때로는 사는 게 너무 고되어 외롭고 힘든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그럴 때 우연히 누군가로부터 뜻하지 않는 호의를 받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 베풀며 살아간다. 오늘도 우리가 두 발 딛고 살아가고 있는 춘천이 나를, 우리를, 우리의 아이들을 넉넉하게 품어준다면 삶의 계절에서 찾아오는 차가운 겨울을 맞이하는 때가 올지라도 기꺼이 따뜻하게 마주할 수 있으리라. 지금도 나는 그런 도시, 춘천이 될 거라 마음속 깊이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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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글 심한기 / 품 청소년문화공동체 대표

품은, 품는 만큼 품이 된다

품! 이런 반가운 단어 같으니라고 올해로 딱 33년을 ’품‘이란 단어와 함께 살아왔다. 중간에 ‘숨’(서울시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숨)으로 5년 정도 잠시 외도를 하긴 했지만 나에게 ‘품’이란 삶의 놀이터이자 영혼의 시공간이자 인연의 플랫폼이란 뜻을 지닌 특별한 고유명사이다. 그런데 춘천문화매거진 «pot» 가을호의 주제가 ‘품’이란다. 황량한 모레사막에서 헤어졌던 도마뱀 형제가 조우를 한 기분이다. 여전히 정주의 기준 또는 살만한 도시의 기준은 늘 투자의 조건이나 대학 진학을 위한 조건으로 전제되어 있기에 ‘조건이 좋은 도시가 아닌 여지가 있는 도시’를 꿈꾸는 그런 의도가 반가운거다. 도시를 과도하게 치장하며 맛 집이나 화려한 이벤트로 온갖 호객행위를 해대고 있는 도시정책의 비겁함을 때려줄 수 있기에 더욱 반가운거다.

마을을 품은 품 십대와 청년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품 청소년문화공동체(이하 품)는 거대도시가 요구하는 보편적 흐름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가장 촌스럽지만 정겨운 강북구와 도봉구 언저리에 거주하며 지금의 도시가 품으려 했던 ‘도시의 좋은 조건’이 아닌 ‘도시의

의지이다.

여지’ 즉 ‘도시 속의 품’을 만들어왔다. 중학생 나이에 직업 선택을 강요받아야 하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대학진학이나 취업을 위한 시간에만 갇혀 살아야 하는 십대들과 ‘내 삶은 내가 기획한다’라는 발칙한 시도를 이어오고 있다.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조건과 환경을 따라만 가지 않고 스스로 가능한 조건과 환경을 만들어가겠다는 의도이며

행정구역이 정해준 경계를 무시하고 호기심과 심심함으로 무장한 십대들과 함께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끊임없는 말 걸기를 했고, 동네시장이나 공터를 찾아 엉뚱한 짓을 반복했고, 심지어 구청을 점령하여 경직된 공무원들의 얼굴 펴주기와 같은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이런 시도들이 연결되어 온 동네가 함께 하는 ‘탈세대, 탈동네, 탈문화 장터’가 매달 열렸고 십대와 청년들이 마을을 초대해서 놀아보는 ‘강북청소년문화축제 추락(秋樂)’을 25년간 이어왔다. 25년간의 시간 속에 스스로 가능한

십대들의 일상 문화가 조금씩 만들어지고, 마을 곳곳의 공간과 공간의 문이 열리며 모두의 장소가 되기도 하고, 세대 간의 소통이 가능한 공통의 언어가 만들어지고, 십대가 청년이 되고 청년이 성인으로 연결되어 도시(마을)의 서사를 순환시키는 연결고리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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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이 뛰고, 소득이 올라가고, 강남에 버금가는 학군이 만들어지는 ‘좋은 조건’들이 생겨나지는 않았지만 일상 속의 여유를 마주할 수 있는 호흡이 만들어지고, 드러나지 않았던 사람과 행위 간의 접촉이 생겨나고, 무심했던 것들의 경계가 흔들릴 수 있는 ‘품’이 만들어졌다. 이 모든 것들은 눈에 잘 보이지도 않고 공적인 성과로 내밀기도 힘들지만 ‘착각의 이미지’로만 꾸며지는 도시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삶 속의 여지’가 생겨났음은 확실하다.

가두는 ‘품’보다는 열어주는 ‘품’으로 무엇을 품는다는 것은 ‘내 안으로 가두어두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날려 보내기 위한 따뜻함’의 의미가 있다. 엄마의 따뜻한 품이란 엄마의 품속으로 아이들을 안전하게만 가둬두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자유로운 사유와 행동과 선택을 품어주는 따뜻함이다. 다양함을 품는다는 것은 다양함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것이 아니라 각 각의 다양함들이 서로의 존재를 품을 수 있는 자유로움이다. 그렇기에 무엇을 품는다는 것은 그냥 손만 벌리면 자동으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공감의 이론에서 말하는

가능할 것이다.

수 있기를.

것처럼 늘 살피고, 먼저 말 걸기를 하고, 같은 방향으로 바라볼 수 있고, 생각이나 마음만이 아닌 손과 발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과 환경을 차근차근 만들어갈 수 있는 도시라면 따뜻한 품과 넉넉한 여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영토만을 고집하지 않고 또 다른 영역을 만나보고 꿈꾸며 더 넓은 세상 밖 유목할 수 있는 여지로서의 품도

내 안에 품이 있어야 타자를 품을 수 있고, 집단의 품이 있어야 다른 집단을 품을 수 있고 도시의 품이 있어야 또 다른 도시를 품을 수 있다. 그렇게 춘천의 품이 춘천을 품고, 춘천의 품이 또 다른 세상을 품을 수 있는 품이 될

“그리고 춘천이여 세상을 품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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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1

외로운 날들이여 모두 다 안녕, ‘안녕을 묻는 정담회’ 이야기

춘천문화재단 × 춘천사회혁신센터

7,800세대 중 6,700세대

걱정말아요 그대

효자2동에는 7,800세대가 산다. 그중 1인 가구가 6,700세대다. 대부분 혼자 사는 셈이다. 나 또한 대학에 다니고 첫 직장을 다닐 때까지도 효자2동에 살았으니 이웃 이야기였다. 효자2동 통장협의회장 김영숙은 효자2동에는 자취하는 대학생이 절반, 독거노인과 4, 50대 중장년층이 홀로 오래된 원룸에 산다고 했다. 혼자 사는 이들이 이렇게 많은 만큼 서로에 대한 돌봄과 관심은 우리 사회에 이웃 간에도 제도적으로 필수가 되었다. 춘천문화재단과 춘천사회혁신센터가 지역 내 고립과 외로움을 주제로 ‘안녕을 묻는 정담회’를 열었다. 정담회는 2024 문화로 사회연대*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지역문화진흥원, 춘천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사업. ‹문화로 안녕을 묻는 도시 마음 산책›이란 이름으로 춘천시민들을 비롯해 옆 동네 속초와 인제, 홍천의 유관기관과 함께 강원도민의 안녕을 묻고 있다. 지역 내 외로움 해소를 위해 시민을 대상으로 도시 마음 테스트를 진행하고 맞춤형 처방 프로그램 ‘마음을 잇-길’을 진행 중이다.

사회복지사, 심리상담사를 비롯해 삶과 죽음을 다루는 사람, 관련 주제를 연구하고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어 하는 사람도 참여했다. 지난봄, 관계리더 양성과정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 만났던 심리상담 선생님도 만날 수 있었는데 지역 사람들이 외로움과 고립에 관심을 두고 대화하는 장이 있고,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그대여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 합시다 그대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여 그대 가슴에 깊이 묻어 버리고 전인권 밴드, 䢮걱정말아요 그대䢯 중

정담회를 시작하기에 앞서 전인권 밴드의 ‘걱정말아요’ 노래를 두 번 부르고 시작했다. 매번 정담회를 시작할 때마다 노래를 선정하여 함께 부른다고 했다. 노래 가사가 따뜻하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뭉클함이 느껴졌다. 함께 노래를 부르니 모두의 마음이 연결되는 듯했다. 정담회는 김영숙 통장과 호호방문진료센터 양창모 의사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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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고픈 사람들 김영숙 효자2동 통장협의회장

“효자2동은 춘천에서 퇴계동 다음으로 독거 노인인구가 많은 곳이에요. 퇴계동은 인구가 워낙 많으니 비교하기는 힘들겠죠. 또 면적의 절반은 강원대가 차지하고, 절반은 주택가로 이뤄진 구도심입니다.” 독거노인도 걱정이지만, 혼자 사는 4, 50대 중장년층도 외롭다. 어르신들은 방문하면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잘 없는데, 중장년층은 곧잘 운다고 했다. 사업에 실패한 사람, 가족과 뿔뿔이 흩어져 사는 사람들이 많고, 그중에는 통장님이 자기 누나 같다며 덥석 손을 잡고 우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루 종일 한마디도 못 하고 외롭게 지내는 경우가 많다. 지원사업에 대한 맹점도 꼬집었다. 시에서는 한 달에 2번, 20가구를 위한 반찬이 나온다. 20개의 반찬을 누구에게 배달할지 어려운 실정이다. 줘도 줬다고 말하기도 힘들고, 받는 이도 눈치가 보이는 현실인 셈이다. 좋았던 사업으로는 춘천사회혁신센터에서 진행한 케어카페를 꼽았다. 어르신들은 이동이 어려워 지원 공간은 가까운 게 중요하다며 동네에서 2년 동안 어르신들의 혈압, 혈당 같은 기본적인 건강관리를 해주고 이웃으로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업이어서 좋았다.

내가 외롭지 않으면 된다 시골왕진의사 호호방문진료센터 양창모 의사

우리 모두 외롭다면 외롭다고 말하자. 상대가 외롭지 않으면 내가 외롭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외로움을 인정하고 고립을 이야기할 때 우리 사회는 외로움을 바라보고 돌봄을 이야기할 테다. 서로 돌보는 사회를 꿈꾼다.

시골에 사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양창모 선생님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사진에는 어르신이 간호사 등을 안마기로 두드려 주고 있다. 누가 환자이고 의사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돌봄이 마치 쌍방인 것처럼 말이다. 양창모 의사는 속도가 돈이 되는 진료실에서 외로움을 느껴 시골왕진의사로 활동하게 되었고, 왕진 그 자체로 어르신들과 이웃이 되어 서로를 도로바주고 마음을 나누었다. 한국수자원공사에서 지원을 받아 진행되는 호호방문진료센터는 방문 진료뿐만 아니라, 지역 기관과 연계해 집을 수리하는 작업에도 함께 참여했다. 진료를 다니다 보니 어르신의 환경이 만드는 병이 있었다. 깨진 콘크리트 바닥이나 문지방 같은 것들이 어르신들을 넘어지게 한다. 현재 춘천시가 1년에 집수리를 50채 정도 진행하는데, 김남길 배우와 함께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해 100가구를 집수리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었다.

공공의료시스템의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대학병원 내분비외과에 예약이 몇 개월씩 밀려있다는 것. 가벼운 질환을 겪는 환자들이 몰리기 때문인데, 외래환자를 구분해 고연령, 고위험 환자를 대학병원에서 받고 가벼운 질환을 겪는 환자는 작은 병원에서 받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십 년 넘게 시골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2시간 반씩 걸려 강원대 병원에 다니던 할머니는 정작 입원이 불가능했다. 시스템의 구축과 법과 규정의 개정이면 할 수 있는 일인데 관심이 부족한 게 현실이라며 한탄했다. 내가 외롭지 않으려면, 상대가 외롭지 않아야 한다는 말을 들으니, 우리 모두 서로를 돌보면서 살아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참여자 사이에서는 몇 년째 인사를 계속 건네다 드디어 인사를 해주었다는 이웃 이야기, 직접 수확한 작물로 마음을 나누는 이야기, 정치적으로 외로움과 고립, 그리고 돌봄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지 등 정담회 참가자들은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나눴다. 나도 춘천에 대학을 홀로 오면서 보낸 고립에 대해 말을 보탰다.

춘천문화재단 박민정 담당자는 “프로그램 참여자 중에 외로움이 주제라서 외로운 마음을 맘껏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라고 했다. 또한, “외로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담회에 참여할 수 있고, 정담회를 통해 사람들이 외로움은 개인적인 감정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제라는 인식을 갖게 되고, 외로움을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작은 모임이 만들어지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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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2

포토그래퍼 이종희 에디터 이민율

높낮이는 달라도, 쑥쑥 커지는 도시의 하모니

신나는 오케스트라 2.0

매주 화요일, 목요일 오후 5시가 되면 춘천문화예술회관엔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그리고 이내 들려오는 명랑한 악기 소리. 춘천 신나는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이다.

신나는 오케스트라는 2010년 시작된 ‘꿈의 오케스트라’를 전신으로 한다. 아이들을 위한 무상음악교육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를 모델로 한 문화예술교육 사업으로, 춘천문화재단은 1기 거점기관으로 선정된 후부터 지금까지 15년간 지역의 아이들과 함께 오케스트라를 운영해 오고 있다. 출범 당시 전국 곳곳에 같은 이름의 형제 오케스트라들이 있었지만,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곳은 춘천이 유일하다.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15년간 신나는 오케스트라는 많은 아이들과 인연을 맺었다. 그 중에는 이제 막 학교가 익숙해졌을 무렵 형을 따라왔던 꼬맹이가 대학에 간다며, 또는 나라를 지키러 군에 입대한다며 인사를 전하러 왔었다는 사연도 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악기를 연주하던 아이가 번듯한 성인이 될 정도로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이 오케스트라가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졌다.

아이들의 합주 연습이 있던 어느 날 새어 나오는 소리를 따라 연습실에 방문했다. 마침 기존 단원들의 일부가 ‘졸업’을 하고 새로운 신입단원을 맞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제 몸보다도 큰 악기가 버거워 보이는 작은 아이가 있는가 하면, 교복을 입은 모습이 의젓해 보이는 아이도 있었다.

연습시간이 되자 흩어져 있던 아이들이 파트별로 모여 앉았다. 악기를 잡는 게 아직은 낯선 아이 몇몇이 머뭇머뭇하자 옆에 앉은 친구가 작은 손을 보태어 바로 잡아주었다. 그대로 활을 켜면 따뜻한 음색이 나올 것 같은 모양새였다.

아이들이 활을 고쳐잡자 지휘자 선생님이 부드럽게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이내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의 주제가가 연습실을 가득 채웠다. 중간중간 삐끗하는 소리, 갑자기 ‘와아앙’하고 커지는 소리들이 한 데 뒤섞였지만, 오히려 작은 풀도 있고 큰 나무도 있고 살랑살랑 흔들리는 꽃도 있는 토토로의 숲이 더욱 생생하게 그려졌다.

연습은 서툴게 가는 자동차처럼 가다 서다를 반복하기도, 같은 구간을 빙빙 돌기도 했지만 그 자리에 있는 누구도 재촉하지 않았다. 그저 처음처럼 옆자리 친구가 다시 활을 잡을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그리곤 다시 반짝이는 눈으로 악보를 쳐다볼 뿐이다. 어린 마음엔 얼른 완벽하게 연주해서 무대에 올라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을 테고, 빨리 내가 더 좋아하는, 자신 있는 곡으로 넘어가고 싶을 수도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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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이들끼리 도와줘요. 또 누군가 따라오는 진도가 느리면 같이 기다려주고요. 그래서 처음엔 낯설어해도 주눅이 들거나 어려워서 중도에 그만두는 친구들은 없어요.”

신나는 오케스트라 선생님들이 말했다.

“함께 즐겁고 신나는 시간을 위해, 서로를 다그치지 않고 품는 방법을 아이들이 이미 알고 있어요. 이런 그들만의 문화는 신나는 오케스트라와 인연을 맺었던 친구들이 스스로 시작했고, 또 지금의 아이들이 이어가고 있는 그들의 유산입니다.”

아이들 스스로가 이어온 유산이라는 말에 가슴이 뭉클했다.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신나는 오케스트라를 지켜온 것이 능력 좋은 선생님들이 아닌, 칼 같은 기관의 행정력이 아닌, 속도가 다르고 음의 높낮이가 달라도 서로를 받아들이는 아이들의 문화라는 것이 경이롭고 존경스러웠다.

사실, ‘신나는 오케스트라’의 취재가 결정된 후 ‘품’이라는 호주제에 맞춰 우리가 문화예술을 통해 아이들을 어떻게 품는가를 이야기하려 했지만, 현장에서 내가 본 것은 품속의 아이들이 아닌, 서로를 ‘품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각각의 화분을 차지한 난초들이 있는 온실을 생각하며 들어선 곳에서 나무와 풀들이 뿌리를 섞으며 자라는 작은 숲을 본 기분이랄까?

그런 모습을 보며 대부분의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들이 말하는 ‘아이들을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시킨다’는 목표를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다. 아이들을 성장시키는 것은 누구인가? ‘성장시키는 것’이 아닌 ‘함께 성장하는’ 아이들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한동안 화, 목 오후 5시가 되면 춘천문화예술회관에는 이웃집 토토로의 OST가 들려올 것이다. 그리고 뚱땅거리는 멜로디 속에서 아이들은 또 한 뼘 자랄 것이다.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 속 주인공 메이의 옥수수 싹이 쑥쑥 자라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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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D

결국 우리는 자연의 품 안에서

제사를 지내던 늦여름 밤이었다. 산속 마을인 고지절☀은 가을이 찾아온 듯 선선했다. 제사상 위에는 작은 할머니 솜씨인 고등어, 상어, 문어, 다시마전, 배추전 같은 제사음식이 달력으로 덮여 있다. 달력은 기름으로 얼룩덜룩 번져있다. 한문 글씨가 가득한 병풍 앞에 할아버지와 작은 할아버지, 아버지와 막내 아재가 앉아 있다. 아재는 피곤한지 졸고 있고, 소쩍새 울음소리가 시계 소리와 번갈아 들린다. 모기향 냄새가 코를 찌르는 밤은 텔레비전 소리 없이 고요하다. 마당에는 전등에 몰려온 하루살이와 나방이 빙글빙글 돌고 있고, 나는 전등불 앞에서 딱정벌레를 찾곤 했다. 보고 싶던 사슴벌레, 장수풍뎅이는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 어릴 적에는 소똥구리도 제법 많았다고 하는데 상상이 가지 않는다.

고지절은 나를 보물찾기 하는 소년으로 되돌려 놓는다. 고지절의 행정리 명칭은 월전리다. 한글로 달밭이란 이름처럼, 달빛에 빛나는 산골마을이다. 아버지는 이곳에서 나고 자랐는데, 어릴 적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매 새끼를 잡았다는 이야기나, 단옷날 느티나무에서 그네를 뛰었다는 이야기, 부처님 오신 날 소풍 가듯 할머니 손을 잡고 산을 넘어 봉정사에서 하룻밤 자고 온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아득히 먼 옛날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 번씩 고지절을 가면, 작은 할아버지는 꿩이나 토끼로 요리를 해주셨고 탁주를 마시다 기분이 좋으면 밥상을 젓가락으로 두드리며 창도 하셨다. 또 작은 할아버지와 함께 좋아하는 가재를 잡으러 다니기도 했다. 작은 할머니는 내 인도 여행기를 눈이 초롱초롱하게 들어주셨는데 지금도 그 눈빛이 선하다.

☀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월전리의 마을로, 고지사란 절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바뀌기도 했다.

작은 할아버지 댁 외양간에는 코뚜레를 한 소도 한 마리 살았다. 농사를 짓던 소는 이마를 쓸어 만져도 가만히 있을 정도로 순했다. 외양간 안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여물 냄새가 푸근했고, 아궁이 나무 태우는 냄새가 좋아서 장작을 계속 넣다가 방이 뜨겁다고 혼나기도 했다. 동네 밤나무에서 떨어진 밤을 주워 재 속에 묻어두기도 했는데 매번 태워 먹기 일쑤였다.

할아버지 살아계실 적, 제사는 늘 할아버지 주관이었다. 제사 중에는 길게 절을 하는 순서가 있는데 우리는 다 함께 엎드려 있다가 할아버지의 ‘흠흠’ 하는 기침 소리에 맞춰 일어났다. 한번은 할아버지가 기침을 하기 전에 장난으로 기침 소리를 내본 적이 있다. 막걸리를 몇 잔을 연거푸 마신 탓 같은데 친척들이 내 기침 소리에 우르르 일어나자 할아버지가 당황해했다. 모두들 엉겁결에 웃었다. 좁은 방에 많은 사람들이 엎드리면 누군가는 절을 못하고 약간 서 있기도 하고, 두 번 해야 하는 절을 한 번 하기도 하는 등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는 차례의 순서가 한 번씩

춘천에서 살면서 이따금 고향 생각이 물씬 난다. 그럴 때면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 자꾸만 나이 드는 게 아쉽다. 부모님도 할아버지 할머니도 그러했을 거란 생각을 하면 아득하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을 하다 고지절에 있는 느티나무가 떠오른다. 마을 어귀에 서서 시원한 그늘을 만드는 느티나무. 오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푸른 잎을 피우고 낙엽을 떨어뜨렸을 거란 생각을 하니, 우리는 결국 자연의 품 안에서 반복해서 사랑을 나누고 있구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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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 tor’ s no te

했다. 내가 이제는 누군가의 바쁘지만 품을 나누는 품이 되어줄 차례가 되었다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것도 덜컥 실감이 난다. 아내가 볼 수 있어 좋다. 풍요롭고 너그러운 계절에 태어난 걸 감사하게 생각한다. 생일 축하 카드에 적힌 “가을볕처럼 포근하고 행복하길 바란다”는 말을 보면 당장 같이 있지 인혜 않아도 여전히 그 품 속에 그릇이 큰 사람이 내 품에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떨어져 있어도 서로를 품을 수 있는 그런 계절이다.

승희 살면서 이렇게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던 적이 있었던가. 피로와 고단함, 기쁨과 감탄이 임신을 했기 때문이다. 고스란히 느껴지는 나날들. 건강하게 만날 수 있기를 잠이 오지 않는 밤 작년에 썼던 빌어본다. 일기를 훑어본다. 뱃속의 생명에게 말을 걸며 불안해하고, 짐짓 괜찮은 척하고, 신체적으로 아팠던 있다. 다른 사람을 대하는 순간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 태도에서도 자신의 삶을 순간들 사이로 삐져나오는 채워나가는 방식에서도 ‘그릇이 큰 사람’의 마음 씀은 어떤 기대와 곧 만날 수 있으리라는 설렘도. 울고 웃는 이런 것임을 수시로 배운다. 인옥 아이를 종일 보면 지치다가도 글로 먹고사는 일을 할수록 ‘품’을 주제로 한 가을호를 짧은 한 줄에 연연하게 되고, 작업하고 나니, 연민에 대해 돌연 누구도 답할 수 없는 생각한다. 모르는 사람, 이웃, 물음이 든다. 어떻게 내 배에서 상대의 한 마디를 몇 번을 곱씹어 마음에 담아 두는, 속 나 자신에게도 연민의 자세를 이런 아기가 나왔지. 이 취한다. 하지만 이런 내 모습이 아기를 더욱 크게 품어주고 좁은 인간이 되어 간다는 불쌍하고 가련하지 않다.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싶다. 먼 시간 지나고 보면 알게 되겠지. 우리는 서로를 때마다 앞뒤 없이 하소연을 오히려 연민하다보니 정서적으로 우쭐해진다. 늘어놓는 후배에게 좋은 품어주며 서로를 키우고 작가이기보다 좋은 사람으로 연민의 감정은 사람을 있었다는 걸. 말랑말랑하게 만든다. 반대로 사는 것을 선택하게 하는 악한 사람들에겐 맞설 용기가 그녀는 내 작은 품도 결국 용식 생긴다. 참으로 강력한 감정이 사랑하게 만든다. 이토록 농사를 지으면서 절기가 아닐 수 없다! 변하는 게 느껴지고 자연의 그릇이 큰 사람이 내 품에 있으니, 좁은 내 품에도 품이 점점 더 좋아진다. 빠져나갈 구멍이 있어졌다. 상중도에 오래된 습지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어렸을 적 좋아하던 사슴벌레를 밤에 민율 전등불 앞에서 다시 만났다. 하늘이 높고 가을볕이 팔미천이 흐르는 곳에서 아기 따뜻하다. 날이 좋은 만큼 종개를 한참을 들여다보기도 여기저기에서 행사가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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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t Back Issues

N. 01 춘천PLAY

N. 02 낭만PLAY

N. 03 공감PLAY

N. 04 시작팟팟

N. 05 함께팟팟

N. 06 열정팟팟

N. 09 도움팟팟

N. 10 봄봄팟팟

N. 11 배움팟팟

N. 12 무한팟팟

N. 13 온기팟팟

N. 14 기억팟팟

N. 17 기대팟팟

1N. 18 환경

N. 19 여성

N. 20 문화도시

N. 21 평화

N. 22 나의 안부

N. 25 걷다가 문득

N. 26 환상과 낭만

N. 27 떠오르는 환대

N. 28 멀고도 가까운

N. 29

N. 30 친애하는 나에게 시작하는 기쁨

N.36 마음의 모양

춘천문화매거진 2023 가을

N.37 피어나는 삶

춘천문화매거진 2023 겨울

N.38 둥글게 둥글게

ISSN 2508 6316

ISSN 2508 6316

ISSN 2508 6316

N. 33 기다리던 순간

N. 34

N. 35 우리는 매일매일 이마엔 땀방울

N. 36 마음의 모양

N. 37 피어나는 삶

N. 38 둥글게 둥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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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07 잇다팟팟

N. 08 화음팟팟

N. 15 시작팟팟

N. 16 변화팟팟

N. 23 너의 둘레

N. 24 마주보는 우리

N. 31 솟구치는 용기

N. 32 흩어지는 마음

춘천문화매거진 2024 봄

N.39 나무그늘 아래에서

춘천문화매거진 2024 여름

ISSN 2508 6316

N. 39 나무그늘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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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R 발행인 박종훈

EDITOR IN CHIEF 편집장 고영직

CONTENTS & EDITORIAL DIRECTOR 부편집장 박인옥

EDITOR 에디터 권용식, 정승희, 이인혜

PHOTOGRAPHER 사진 이종희, 김효주

ART DIRECTOR 디자이너 이건하

COVER ARTWORK 표지 작품 김수영

ILLUSTRATOR 일러스트 한선주

ADMINISTRATION 기획총괄 윤행자

MANAGEMENT 운영 김태경, 이민율

CONTRIBUTING WRITER 기고 김미연, 심한기, 공혜진

THANKS TO 고마운 분 황철준, 김성혁, 장수민, 박은수, 이경하

춘천문화매거진 pot 제40호 「당신의 품 안에서」 2024년 10월 발행

발행처 춘천문화재단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효자상길 5번길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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