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문화놀이매거진 POT 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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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 6316
춘천문화매거진 2024 여름
Requi é sco ergo sum (레퀴에스코 에르고 숨) 나는 쉰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 김효주
PLAY 문화로 같이 즐기다
OPEN 문화로 마음을 활짝 열다
TALK 문화로 함께 이야기하다
매거진 ‹pot›에는 ‘(다양한 것을 담는)그릇, 솥’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문화로 함께 즐기고, 소통하며, 이야기할 수 있도록 지역의 다양한 문화 콘텐츠와 이슈, 생동감 넘치는 춘천의 문화예술을 담아내는 그릇이 되고자 합니다.
‹pot›에서 이야기하는 춘천문화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시민의 삶 속에서 엿볼 수 있는 일상의 순간, 그 안에 담긴 보석 같은 이야기를 말합니다. ‹pot›은 춘천 시민과 많은 관계인구가 춘천이라는 지역을 즐겁게 바라보고 깊이 알아갈 수 있도록 다채로운 이야기를 펼쳐 보이겠습니다.
김수영 作 ‹여름›, 2024, ink on paper, 27.0 × 52.0cm
그늘에 몸을 여유로이 누인다. 우릴 훑는 뜨거운 바람을 느끼고 있자면 비로소 올해도 점점 짙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CONTENTS
LETTER
편집장의 여는 글
MOMENT
휴식의 말들
POST BOX
시원한 그늘 속, 당신의 쉼표를 찾아서
스르륵, 낮잠
THEME PIECES
TOOLS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사각사각 쉼을 만드는 목공예 작가 원유선
INTERVIEW 1
행복한 결말의 이야기를 짓는 동화작가 김윤희
INTERVIEW 2
가슴은 뜨겁고, 시대는 차갑고 그대, 서림에서 쉬어 가시게
POT-PEDIA
가까운 곳에 이웃과 같은 그늘 Chuncheon City park
WALK
자세히 보면 얼마나 예쁜지! 원미경 작가와 우두벌을 걷다
PLAYGROUND
어쩐지 근사한 소도시에서의 삶 #6. 작은 자연물이 가져다 준 세계
COLUMN
상담을 통해 사유와 쉼을 기록하다
WIDE
존엄하게 쉬기
SCENE 1
사람하는 도시, 사랑하는 도시 2024 문화도시 박람회
춘천이 그리는 ‘후이늠’, 그리고 «pot» ‹2024서울국제도서전›
SCENE 2
MOOD
이제 각성 좀 그만 하고!
EDITOR’S NOTE
LETTER
여러분은 꿀잠 자고 계신가요?
있는 충만한 시간이었습니다.
소환되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생각하고 즐겁게 행동해야 합니다.
䢮사람하는 도시, 사랑하는 도시䢯 춘천의 여름은 지난 5월 말에 열린 ‹2024 문화도시 박람회›와 함께 본격 시작되었습니다. 28개 문화도시별 매력이 넘치는 홍보 부스가 꾸려졌고, 다양한 도시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포럼과 라운드테이블은 䢮나는 어떤 도시에 살고 싶은가?䢯를 즐겁게 고민하는 자리였습니다. 춘천마임축제와 서로 손잡고 진행됨으로써 문화도시 춘천의 남다른 䢮공기䢯를 느낄 수
풀어야 할 숙제가 적지 않습니다. ‹지역과 문화포럼›에 참여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성연주 교수의 말처럼, 소위 로컬(Local)의 시대가 도래했지만, 로컬이란 개념이 손쉽게 소비되는 것은 아닌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䢮문화가 곧 사람䢯이라는 가치가 슬로건에 그치지 않으려면, 지역 사회의 의제를 문화적 관점으로 풀어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다시 䢮시민력(市民力)䢯이 강조되고, 분권과 자치가
‹로컬감각포럼›에서 화제를 모은 고윤정 부산 영도문화도시센터장이 최근의 로컬 붐 현상에 대해 䢬브랜드(brand)만 있고, 브랜딩(branding)은 없다䢭고 한 말의 행간을 찬찬히 곱씹어야 합니다. 결국 브랜딩화는 시민력에서 나옵니다. 문화도시 춘천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 기후 위기 같은 지구적 의제뿐만 아니라, 빈집 증가 등 지역 소멸 이슈 같은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 문화적으로 대응할지
문화 매거진 «pot» 여름호는 지난호 䢮춤䢯에 이어 䢮쉼䢯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쉼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첫 이미지는 䢮꿀잠䢯입니다. 시인 송경동은 䢬전남 여천군 쌍봉면 주삼리 끝자락 / 남해화학 보수공사현장䢭에서의 꿀잠 경험을 시 「꿀잠」으로 썼습니다. 그리고 이 시가 실마리가 되어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비정규노동자의집 䢮꿀잠䢯이 탄생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제대로 된 쉼을 갖지는 못합니다. 넷플릭스 창립자 리드 헤이스팅스가 䢬우리는 수면과 싸운다䢭고 한 말은 무엇이 우리의 쉼과 주의집중을 방해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잠이 든 것이 아니라 잠에 먹힌 것이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1996년 폐업 이후 28년 만에 팔호광장에 다시 문을 연 䢮춘천서림䢯은 도시의 문화 쉼터가 되기를 갈망합니다. 목공예 작가 원유선, 동화작가 김윤희는 춘천에서의 쉼에 대해 말합니다. 그리고 정치학자 이승원, 강원이주여성상담소 탁운순 소장의 칼럼은 䢮존엄한 쉼䢯은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할 권리라는 점을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특히 이승원은 䢬존엄한 쉼이 우리 존재를 지속시킨다䢭고 한 명제는 나와 우리가 사는 도시에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환기합니다. 䢮나는 쉰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레퀴에스코 에르고 숨)䢯고 한 명제를 문화적으로 잘 풀어내는 일이 문화도시 춘천의 성장과 성숙을 위한 길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䢮달맞이꽃䢯의 한자 이름은 월견초(月見草)입니다. 꿀잠을 자고, 제대로 된 쉼을 누리는 삶이 진짜 좋은 삶입니다. 여기에 밤의 노래이고, 잠의 노래인 쇼팽의 ‹녹턴›이 함께한다면 한결 충만한 쉼이 함께하는 삶이 되겠지요? 잠과 쉼을 잊은 그대에게, 달맞이꽃을!
고영직 문학평론가, 편집장
MOMENT
휴식의 말들
가끔은 쉬어야 한다. 그저 멈추고, 쉬고, 하늘을 바라보며, 지금 여기에 있는 자신을 느껴야 한다. 그렇게 쉬고 나면, 우리는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힘을 얻게 된다.
﹁에덴의동쪽﹂
존스타인벡
﹁살에지아크금라하이르﹂트순간톨을레
나는 숲으로 갔다. (중략) 나는 서두르지 않고, 이른 아침의 고요한 물가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그 순간들은 내게 영원의 한 조각처럼 다가왔다.
﹁월든﹂
헨리데이비드소로
﹁뒤류새돌시는아화날보아지가않면는서다﹂
(1874~1965)
낮잠을 잔다고 일을 덜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생각이야말로 상상이라고는 모르는 아둔함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윈스턴처칠
생각건대 휴식에는 반드시 ‘안녕하다’는 감각이 필요하다. 무탈하고 편안하며 안전한 상태를 갖춰야만 비로소 제대로 쉬며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고로 휴식에 대해 생각하는 일은 나와 타인의 안녕을 가늠해 보는 일과 같다.
﹁휴식의말들﹂
공백
﹁커피의위로﹂
정인한
어쩌면 삶을 소화하기 위해서 커피를 마시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외부의 휴식이 아니라, 내면의 쉼이다. 내면의 깊은 평화와 고요 속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충전된다. 지금 이 순간에 완전히 존재할 때, 우리는 진정한 휴식을 경험하게 된다.
﹁대드롱사라베마중케에이서션﹂
인생은 쉼표 없는 악보와 같기 때문에 연주자가 필요할 때마다 스스로 쉼표를 매겨 가며 연주해야만 한다.
(1564~1616)
윌리엄셰익스피어
(1724~1804)
칸트
노동 뒤의 휴식이야말로 가장 편안하고 순수한 기쁨이다.
왜 있잖아요. 뭘 해도 잘 안될 때가요. 뭘 해도 안 되는 그럴 때. 그럴 때는 뭐랄까 … 말투는 좀 이상해도 신이 주신 휴가라고 생각해요.
(1225~1274)
단잠과 목욕, 한 잔의 와인은 슬픔을 누그러뜨린다.
토마스아퀴나스
우리는 꿈들이 만들어지는 것과 같은 존재이며, 우리의 짧은 삶은 잠에 둘러싸여 있다.
﹁그래도괜찮아﹂
우근철
바쁘게 사는 걸 잘 사는 걸로 착각할 때가 있지 뭐야. 쉼이 어색하니, 일단 무작정 뛰는 것처럼 말이야. 숨 고르기, 그리고 잘 바쁘기.
POST BOX
시
에디터 권용식
원한
그늘 속
당신의
쉼 표를
찾아서
※ Post box는 춘천 시민들이 찍어주신 사진, 보내주신 이야기를 전합니다.
생명을 돌보는 쉼
작은 텃밭을 관리하며 채소를 돌보는 건 저에게 휴식이자 기쁨이에요. 텃밭에서 옹기종기 자라는 풀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넉넉해지죠. 자연에서 스스로 자라는 다양한 나물, 채소들은 덤 같고요. 며칠 전에는 텃밭에서 자란 곤드레 나물로 밥을 하고 방아잎과 비름잎으로 전과 나물을 만들어 사람들과 함께 나눠먹기도 했어요.
해가 뜨거운 오후 네 시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서늘한 바닥에 누워 책을 읽는다.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지고 이내 눈이 완전히 감기면 달콤한 낮잠 속에 서서히 빠져들며 나의 휴식은 시작된다.
사람들이 맛있게 먹으니 저도 무척 즐겁더라고요. 살아있는 땅을 만지며 생명이 커가는 걸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김민순 자연 속에서 편안한 휴식을 찾는 60대 어른
나랑 노는 쉼
세상이라는 교실에서 나답게 살아내기 위해 엄마와 함께 홈스쿨링을 시작했어요. 책을 교과서 삼고, 주변의 모든 이들과 자연을 벗 삼아 우리의 속도대로 스스로 배움을 찾아나가요. 도서관, 농장, 산, 수영장, 바이올린, 체스, 합창단 … 열정을 다해 배우고 나만의 아지트에서 만화책과 놀아요. 그리고 나랑 놀아요. 놀이터이자 쉼인 이 공간은 다시 나를 에너자이저 수다쟁이로 만들어줘요. 엄마와 나는 가장 친한 친구이자 서로의 휴식처예요.
김지안 세상이라는 교실에서 나답게 살아가는 10살 어린이
온전히 두 다리로 찾는 쉼
서울에서 회사를 다닐 때, 취미 삼아 휴일마다 가죽공방에 갔다. 휴식 같은 취미를 지속하고 싶은 생각에 퇴사하고 춘천에 가죽공방을 열었다. 상상 속 물건을 만드는 기대감과 집중의 즐거움이 컸지만 휴식처라 생각했던 일상이 반복되자 지루함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백패킹 관련 영상을 보게 되었다. 또 다른 휴식처를 찾은 기분이었고 가방 하나로 보낸 자연 속 하룻밤은 온전한 휴식으로 찾아왔다. 하룻밤을 책임질 장비를 챙겨 온전히 내 두 다리로 오르막 내리막길을 반복해 걷다 보면 도시에서 가져온 잡생각은 가쁜 숨과 함께 희미해졌고, 목적지를 향해 걷는 단순한 하루가 되었다. 그렇게 백패킹 배낭을 만드는 일은 내 직업이 되었고, 일과 취미가 연결된 삶을 살아가며 어디서든 내 휴식과 휴식처를 찾아 떠나며 일하고 있다.
용상순 춘천에서 배낭을 만드는 ‘고프빌리’ 주인장
이 쪽은 글자로 옮기지 못했습니다. 이북에서 보기
THEME PIECES
사진 김효주
스르륵, 낮잠
나른한 시간, 일렁이는 빛과 그림자 그냥 스르륵 잠들어버릴래요?
SPACE
목공예 작가 원유선*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사각사각 쉼을 만드는
* 윈저체어를 만드는 목공예 작가. 2023년 10월 첫 개인 전시회를 열었다.
춘천 시내에서 벗어나 사암리로 조금만
의자를 만드는데 이렇게 복잡한 설계도가 들어가면 䢮사이로숲䢯이 있다. 사이로숲에 서면 필요하다니 새삼 놀랐다. 영광스럽게도 작업 뻥 뚫린 파란 하늘 아래 멀리 산의 능선과
중인 의자에 앉아 원유선 작가와 이야기를 집들이 보이고, 눈앞에는 초록 풀들과 나무가 나눌 수 있었다. 부드러움과 편안함에 괜히 보인다. 자연의 품에 있는 듯한 사이로숲에는 팔걸이를 쓰다듬게 만드는 의자였다. 전시관인 䢮아트스페이스사이로䢯와 의자를 만드는 원유선 작가의 오두막 작업실이 있다. 원유선 작가에게 의자란 서지 않고, 눕지 않은 마침 원유선 작가의 전시1)가 있는 날에
적당한 텐션감이 있는 쉼, 약간의 책임감이 방문하여 전시관과 오두막 공간을 둘러보았다. 있는 쉼이다. 너무 릴렉스해도 불안하고, 서 있으면 다리 아프니 그 중간. 쉴 수 있는 가장 오두막의 열어둔 문으로 새소리가 자연스럽게 작은 단위. 돌에 앉아도 앉는 순간 의자가 되고, 들어왔다. 오두막 한쪽 벽면에는 의자를 만드는데 필요한 도구들이 걸려 있었는데, 드로우나이프2), 스포크쉐이브3) 등 목공
나무에 걸터앉아도 앉는 순간 의자가 된다. 원유선 작가는 최근 몇 년간 윈저체어를 주로 작업하고 있다. 다른 작업을 하면 의자에 도구였다. 책상 위에는 의자 도면이 있었는데 집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의자를 만들다가 윈저체어4)를 만드는 데 필요한 크기와 각도, 중간에 맥락이 끊기면 머릿속에 공정을 다시 두께와 모양 등이 숫자로 표시되어 있었다. 가구 중에서도 가장 만들기 어렵다는 의자.
떠올려야 한다. 의자를 만들 때는 끊기지 않는 흐름이 필요하다. 마치 매일 요가하는 몸처럼.
1) 전시명: ing. 기간: 2024.05.02.-2024.06.12. 이재복, 원유선, 김영훈 작가의 전시. 전시 기간 동안 작가는 전시장에서 작업함으로써 관람객들에게 창작 과정을 공유하고, 소통한다. 원유선 작가의 전시는 5월 17일에서 5월 29일에 진행되었다. 2) drawknife. 양손으로 당겨 깎는 날 도구 3) spokeshave. 나무를 다듬거나 마무리면 작업 시 사용하는 날 도구 4) 영국 윈저(Windsor) 지방에서 유래한 의자. 등받이가 있고, 상부와 하부를 따로 만든 뒤 결합하여 만든다. 현대에는 다양한 모양의 윈저체어가 있다.
䢬의자를 만들 때, 정교하거나 세련되거나 멋진 외형에는 관심이 많지 않아요. 다 만들고 났을 때 왠지 모르게 느낌이 괜찮은 의자를 좋아해요.
친환경이라고 하지만 아무리 계산해도 환경에는 마이너스이다. 원유선 작가는 지역에서 벤 통나무를 가져온다. 한 번의 이동 경로만 있으면 의자를 만들 사랑스러운 뭔가가 있다고 느껴지는 의자요. 아주 수 있다. 정교하지 않지만 그래서 괜찮기도 하고요. 그런 느낌이 나려면 그런 마음을 갖고 작업을 해야 해요. 䢬예전에는 기계를 써서 목공을 했는데 기계를 쓰면 때로는 하와이 음악을 틀어놓고 해변을
아무래도 그 소리가 크죠. 그런데 카빙으로 손으로 상상해보기도 해요. 하얀 모래 해변 위 내가 만든 깎아 작업하면 기계 소음이나 강한 분진 없이 의자에 앉아 맥주 한 잔 마시면 분위기가 근사하지 작업할 수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작은 오두막에서도 않을까. 이런 마음들이 모여져서 작업하면 느낌이 만들 수 있고, 전시장 안에서도 작업할 수 있죠. 괜찮은 의자가 돼요. 기계의 완성도와는 비교할 수 공간의 제약이 없어요. 무엇보다 쉐이빙홀스5)에 없는 부분이죠.䢭
앉아 나무를 깎으면 원시적인 삐그덕 소리가 나요. 삐그덕 소리, 사각사각 소리와 더불어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지금 우리가 듣는 새소리, 바람 소리
원유선 작가가 윈저체어를 만드는 방식은 그린우드워킹(Green Wood Working) 방식. 생나무를 들으면서 작업하는 순간, 쉼에 가까워요.䢭 이용하며 작업한다. 원유선 작가는 자연에 피해 주지 않는 방식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했다. 그러나 목공을 원유선 작가는 자신이 만든 무언가가 다시 자연으로 한다 해도, 건조목을 주로 사용한다면 탄소 배출에 돌아가도 해가 되지 않는 방식을 고려한다. 무관할 수 없다. 특히 우리나라는 수입 목재에 대한 윈저체어는 나무와 나무를 끼워 만들기 때문에 의존도가 매우 높다. 나무가 우리나라에 오기까지의 플라스틱이나 금속 등이 들어가지 않는다. 손으로 과정은 간단하지 않다. 산에 사람들과 기계가
만들기 때문에 전기나 기계를 사용하지 않을 수 들어가서 벌목하는 순간부터 탄소 배출이 시작된다. 있다. 오두막 작업실 또한 마찬가지다. 오두막 트럭과 굴착기를 이용하여 벌목한 나무를 옮기고, 작업실의 지붕재는 대나무 가지이고, 창문의 유리를 제재소에서 거대한 기기를 돌려 나무를 켜고
제외하고는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도 해가 되지 선박으로 이동한 후 한국에 들어온다. 우리나라에 않도록 고려하여 직접 만들었다. 들어오고 나서도 지역까지 운송이 필요하다.
5) Shaving horse. 나무를 깎는 의자. 긴 목재를 깎을 때 다리로 고정하고 나이프를 이용하여 나무를 결대로 깎는다.
전시관에서는 원유선 작가가 윈저체어를 만드는 과정을 전시 중이었다. 작업할 때 필요한 각도기
나무가 의자로 변신하는 과정을 눈으로 보니 그린우드워킹 방식으로 만든 의자가 특별한 이유를 빗자루, 수평계, 목공풀, 장갑, 시계 등이 전시되어 알 수 있었다. 기계가 아닌 손으로 모든 과정을 직접 있었고, 종류별로 구분한 목재들, 작업 중인 의자와 하며, 그 과정에서 나뭇결은 살아나고, 작가의 완성된 의자 또한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원유선
생각과 감정이 고스란히 녹아든다. 자연 속에서 작가가 쉐이빙홀스에 앉아 나무를 깎기도 했는데 그 나무를 깎으며 의자를 만드는 기분은 어떨까. 동작이 가벼웠다. 생나무라 가벼운 것도 있었지만, 같은 동작을 수없이 한 사람의 군더더기 없는 가벼움이었다.
䢬나무를 계속 깎다 보면 내 행위는 의미가 없어지고, 공간만이 쫙 펼쳐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완벽하다 느끼는 순간이죠. 나무를 깎으며 나와 사람에게만 좁혀있던 시각이 확장되는 걸 경험해요.
전시를 통해 그린우드워킹 방식으로 윈저체어를 만드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작업 방식은 이곳에는 새 종류도 무척 많고, 꿩도 걸어 다니다가 다음과 같다.
날아가고, 고라니도 나와서 눈 마주치고 가요. 그럼 저도 자연의 한 존재라는 걸 느껴요. 자연스럽게.䢭
통나무를 가져와 결대로 쪼갠다. 쪼갠 나무를 용도에 따라 다듬는다. 스팀 밴딩으로 머리판을 구부린다. 의자의 앉는 부분을 카빙한다. 다리 부분 목재를 슈퍼드라이 후 좌판과 결합한다. 상부와 하부를 조립하고, 마지막으로 다듬는다. 원하는 색으로 도장하면 완성.
이토록 편안하게 인터뷰한 적은 처음이었다. 인터뷰 도중 적당히 불어오는 바람과 끊이지 않는 새소리가 몸을 이완시키고, 곳곳에 있는 나무의 따뜻함과 너른 품이 마음의 긴장도 놓게 했다. 몸과 마음이 쉴 수 있는 자연에서 원유선 작가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쉼이 되어주는 의자를 만든다.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는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뜨개질하고, 잠깐 졸고, 간식을 먹고, 음악을 들으며 쉬고 있는 누군가가 그려졌다.
INTERVIEW 1
행복한
결말의
✱ 2021년 첫 책 「쥐꼬랑지」, 2023년 두 번째 책 「사랑의 작은 책자」를 쓰고 펴냈다. 1인 출판사 필리파노트(filipanote)를 운영하고 있다.
이야기를 짓 는
동화작가
김윤희✱
어른이 되고 나서는 동화를 읽은 적이 손에 꼽는다. 동화란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러나 좋은 이야기는 장르와 세대를 구분하지 않고 삶을 살아가는 다양한 방식을 안내한다. 김윤희 작가의 책을 읽으며 동화 속 세상에 빠져들었다. 결점이 많고, 사랑스러운 인물들. 사랑과 우정과 마법의 순간들이 녹아든 동화. 뻔하고 예상 가능한 기존의 문법을 가진 이야기가 아니었다. 다 읽고 나니 몸과 마음의 근육이 붙어 씩씩해진 기분이 들었다. 날이 좋은 5월의 오후, 어린아이처럼 명랑한 김윤희 동화작가를 죽림동 성당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 어도비(Adobe) 회사에서 만든 출판 레이아웃 소프트웨어.
작가님의 책 작가소개에 이렇게 적혀있어요. ‘춘천에서, 어린이가 주인공인 행복한 결말의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쓰고자 하는 글의 방향에 확신이 느껴지는 소개예요. 제가 쓰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모두 어린이거든요. 그 어린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행복한 결말로 끝내기 때문에 이렇게 제 소개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린이를 단지 초등학생 이전의 사람으로 한정하지는 않고요, 어른의 마음속에 자라지 않는 어린아이까지 포함해서 어린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행복한 결말을 쓴다는 것이 인상적이에요. 동화에서는 행복한 결말이 필수적인가요? 네, 필수예요. 중학생 시절에 처음 한국소설을 읽고 놀랐던 적이 있었는데, 어른들의 세계를 다룬 대부분의 한국문학이 너무 우울한 거예요. 그래서 䢮정말 어른이 되면 이렇게 인생이 우울해지는 걸까?䢯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저는 꼭 그렇지는 않을 거라는 결론을 내리고 책을 덮었어요. 어른이 된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고요. 물론 현재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시는 분이 분명히 계실 거라 조심스럽기는 해요. 하지만 그렇기에 저는 절망에 빠진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는 문학이 꼭 있어야 한다고 믿고, 저 역시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행복하다는 건 어떤 의미예요? 행복을 간단히 정의하기는 좀 어려운데… 제가 궁극적으로 만들고 싶은 행복한 결말은 거창하거나 반전이 있는 건 아니거든요. 신경 쓰지 않으면 그냥 스쳐 지나가도 모를 평범한 찰나예요. 무지개 끝에 묻힌 보석을 찾기 위해 먼 길을 떠나는 여정으로 삶을 비유한다면, 보석을 손에 쥔 순간이 아니라, 빈손으로 집에 돌아오는 길에 진짜 소중한 무언가를 우연히 발견하는 순간에 더 가까워요. 이 얘기를 하니, 갑자기 생각나는 일이 있는데, 제가 올해 4월에 여기 죽림동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거든요. 작년에 우연히 친구들과 함께 죽림동 성당에 오게 되었는데, 너무 아름다워서 그 이후 혼자서도 자주 찾아왔어요. 그러다가 성당의 마리아 막달레나 수녀님의 권유로 10개월 동안 죽림동 성당에서 천주교 예비 신자 수업을 듣게 되었죠. 열 달 동안의 수업은 무척 행복했고, 신부님과 수녀님, 다른 신자분들 모두 참 좋았어요.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제 성향이나 가치관으로 볼 때 제대로 된 신앙심을 갖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아 세례를 받아야 할지 세례식 직전까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가톨릭 신자인 친구가 제게 이런 말을 해주더라고요. 䢬윤희 씨, 물론 세례를 받고 어떤 일에 실망해서 오랫동안 성당에 나가지 않게 될 수도 있지만, 이것만은 꼭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윤희 씨에게는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을요.䢭 이 말을 듣는데 정확하게 표현은 안 되지만 이게 왠지 제가 생각하는 행복과 맞닿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두 권의 책 「쥐꼬랑지」, 「사랑의 작은 책자」 모두 독립출판으로 책을 내셨어요. 작가 역할 뿐만 아니라 디자이너, 마케터 등 다양한 역할을 하셨을 것 같은데 직접 책을 출간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처음에는 출판사에서 제 동화가 완전히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렇지만 저는 출판사의 의견에 맞춰 굳이 고치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전 쓰고 싶은 이야기가 명확하게 있어서, 출판사의 조언에 따르면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희석될 것 같았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동네책방에서 독립출판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출판 과정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책을 만드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더라고요. 그때부터 인디자인✱도 배우고, 좋아하는 일러스트 작가님인 여름밤 작가님께 표지 그림도 의뢰했어요. 하지만 䢮마케터䢯로서의 자질이나 노력은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제 책을 입고해주시는 책방 사장님들과 제 책에 대한 후기를 남겨주신 독자분들이 진짜 제 책의 마케터 같아요.
직접 책을 만들면 힘들지만 좋은 점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원하는 대로 글을 쓰고, 책을 만들 수 있다는 게 가장 좋았어요. 출판사에 투고해서 책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는, 스스로 자꾸 검열하게 되더라고요. 䢮이 이야기는 어린이가 주 독자층일까? 이런 에피소드를 써도 되나? 그렇다고 성인 독자를 생각하고 쓰기에는 너무 동화 같고.䢯 이런 생각들. 하지만 막상 책을 내보니 성인 독자분들도 많이 좋아해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은 고민하지 않고 제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쓰고 있어요. 책의 디자인, 판형도 제가 원하는 스타일로 하고 있고요. 직접 책을 만들다 보니 책이 이런 과정을 거쳐서 나오는구나 체험할 수 있어서 의미가 있었고요. 또 좋은 건, 전국의 동네책방 사장님들과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점이에요. 요즘 같은 시대에 동네책방을 운영하시는 분들은 어딘지 남다르게 느껴지거든요. 실제로 자기만의 세계와 취향, 감성이 분명한 멋진 분들이고요.
책을 세상에 내보이기 전과 후의 삶이 많이 바뀌었나요? 많이 달라졌어요. 가장 달라진 건 고독감을 더 이상 느끼지 않게 되었다는 거예요. 「쥐꼬랑지」를 내기 전에는 제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받을 가능성이 없을 것 같아서 외롭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책을 내고 독자분들을 직간접적으로 만나게 되었을 때 정말 기뻤어요. 독자분들께 얼마나 감사함을 느끼는지, 또 제가 독자분들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독자분들은 모르실 거예요. 또 달라진 건 지금은 불확실성이 사라졌다는 점이에요. 직접 책을 출판하기 전에는 세 개의 불안이 있었거든요. 䢮내가 과연 책을 완성할 수 있을까, 완성한다 해도 출간해줄 출판사가 있을까, 출판사를 구한다고 해도 내 책을 읽어줄 독자가 있을까.䢯 지금은 이런 불안이 없어요. 그냥 후회가 없게 최선을 다해서 글을 쓰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동화는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도 궁금해요. 전에 같은 회사에서 일했던 분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정말 모르겠지만, 동화를 써보라고 해서 별생각 없이 동화를 가르쳐주는 학원에 등록했어요. 하지만 수업 초기에는 동화를 계속 쓸지 말지 확신이 들지 않더라고요. 그러다가 우연히 중고 책을 파는 부암동의 작은 카페에서 䢮필리파 피어스䢯라는 영국 동화작가의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라는 책을 사게 되었어요. 대학 다닐 때 포르투갈어 수업에서 쓰던 이름이 䢮필리파䢯여서 그 책이 눈에 띄었던 것 같아요. 책을 다 읽고 엄청 감동받아서 䢮나도 이런 이야기를 쓰고 싶다.䢯라는 꿈을 갖게 됐어요.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 씩씩해지기도 하고, 사랑받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글을 쓸 때 자주 생각하는 것이 있나요? 책 「쥐꼬랑지」 앞부분에도 적은 고바야시 잇사의 하이쿠✱요. 䢮여윈 개구리 / 지지마라 잇사가 / 여기에 있다䢯 이 하이쿠는 제가 매일 마음속으로 외우는 잠언 같은 거예요. 잇사의 삶은 무척이나 기구해서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불행의 연속이었거든요. 살면서 한 번쯤은 행복할 수도 있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하지만 잇사의 삶에 행운의 반전 같은 건 없더라고요.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䢮어쩌면 진짜 반전은 잇사가 남긴 하이쿠가 아닐까.䢯 그렇게나 불행한 삶을 산 시인이, 이렇게나 따듯한 위로와 희망을 주는 하이쿠를 남길 줄이야! 잇사의 하이쿠에는 개구리, 파리, 반딧불이, 나방, 모기 등 현실에서는 무시 받는 동물이나 곤충이 주로 나오는데 잇사는 사랑스럽게 바라보거든요. 그 다정한 시선이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잇사의 하이쿠를 읽으면 눈물이 날 것 같아요. 저는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잇사가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저 역시 힘내라고, 잘 될 거라고 작은 개구리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요.
✱ 5ㆍ7ㆍ5의 3구(句) 17자(字)로 된 일본 특유의 단시(短詩). 특정한
달이나 계절의 자연에 대한 시인의 인상을 묘사하는 서정시이다.
얼마 전 출판사를 내셨다고 들었어요. 출판사를 차린 이유가 있나요? 우선 세금 문제가 있었어요. 책을 판매하니 수익이 발생하잖아요. 당연히 낼 세금은 내야죠. 다른 이유로는 저만의 개성이 뚜렷한 책을 계속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제가 쓴 책으로 해보고 싶은 일이 많은데 이걸 하려면 출판사를 차리는 게 좋겠더라고요. 그중 하나가 제 책을 영문으로 번역해서 아마존에 전자책으로 출간하거나, 일본어로 번역해서 일본 책방에서 일본 독자를 만나는 건데, 큰 비용이 드는 번역 작업을 다른 출판사가 해주지는 않을 것 같았어요. 그렇다면 䢮내가 직접 해보자.䢯 해서 출판사를 차렸죠.
어떻게 영문번역 할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작년 겨울, 홍대 근처에 있는 초록귤 책방 사장님이 「쥐꼬랑지」를 읽고 전화를 주셨어요. 혹시 전자책으로 아마존에 책을 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냐는 거예요. 제 책 배경이 서양이다 보니, 이 이야기라면 서양 독자들도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면서 한번 생각해보라고요. 저 역시 영미권 판타지 고전문학을 정말 좋아해서 영미권 독자들이 제 책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어요. 얼마 후, 정무 작가님의 䢮아마존 전자책 출간하기䢯 클래스를 보고 바로 신청했죠. 그리고 번역가분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몰라서 알아보다가 한국문학번역원 아카데미에 연락했어요. 운이 좋게 한국문학번역원 아카데미에서 김소영 번역가님을 소개해주셨어요. 놀랍게도 춘천에 살고 계셔서 직접 뵙고 이야기를 나눴죠.
멋져요.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알고, 직접 길을 만들고 있잖아요. 감사합니다. 저는 하고 싶은 일은 다 해보고 싶어요. 독립 출판하면서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일이 좋았기에 지금 이 과정도 즐기려고요. 며칠 전, 김소영 번역가님께 「쥐꼬랑지」 1차 번역본을 받았는데, 번역가님께서 고민해서 만들어내신 섬세하고 유려한 영어 문장들이 무척 아름답더라고요. 그 문장들을 하나씩 읽으면서 䢮어쩌면 이 번역본 자체가 선물이 아닐까䢯 싶었어요.
꼭 동화 속 주인공 같은 마음이네요! 어른이 되어 동화를 읽어보지 않은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동화 속 세상은 사실 복잡하지 않거든요. 단순한 진리와 지혜를 담고 있어요. 䢮우정은 좋은 것이다. 절망적인 상황에도 살아날 구석은 있다. 행복의 열쇠는 우리 가까이에 있다. 용기를 내어 모험을 떠나면 귀한 것을 얻을 수 있다.䢯 이런 식으로요.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단순한 서사와 행복한 결말을 비현실적이라고 여기지만, 저는 마냥 비관적으로 복잡하게 상황을 바라보는 것도 현실적이라고 보지는 않아요.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불안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럴 때는 동화 속 주인공처럼 용기와 희망을 갖고 씩씩하게 걸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죠. 마음이 지치실 때는 어린 시절에 좋아했던 동화책을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단순한 그 이야기에 예상하지 못했던 감동과 위로를 얻게 되실 거예요.
인터뷰가 끝나는 게 아쉽네요. 작가님은 쉴 땐 어떻게 쉬어요? 쉴 때는 주로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요. 평소에는 혼자 글을 쓰기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서 시간을 보내면, 혼자 글을 쓸 때와는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거든요. 지난날을 돌아보니 저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은 기쁨을 얻고, 삶의 변화를 만들어 여기까지 왔더라고요. 오늘 제가 에디터님과 사진 작가님을 만난 것도 놀랍지 않나요? 이토록 많은 사람 중에 어떻게 우리가 만났는지 묘하고, 신기해요. 누군가를 만난다는 게 그 사람이 지금껏 살아온 시간을 만난다는 생각이 들어서 특별하기도 하고요. 많은 사람이 자기 삶은 평범하다고 생각하지만, 들여다보면 다들 말도 안 되는 특별한 삶을 살아왔어요. 그런 생각을 하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빈손이라도 소중한 무언가를 발견하는 순간이 행복한 결말이라고 말한 작가는 알고 있을까. 누가 뭐라 해도 쓰고 싶은 동화를 묵묵히 쓰고, 스스로 길을 만듦으로써 자기 삶도 행복으로 이끌었다는 것을. 사람들의 빛나는 부분을 먼저 알아채고, 발견함으로 타인뿐만 아니라 자기 마음에도 반짝 빛나는 것들을 모아두었음을. 다정하고, 명랑한 작가가 건네는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그 이야기를 통과한 후에 내 안에 어떤 것들이 남겨질지도.
INTERVIEW 2
그대
서림에서 쉬어 가시게
눈에 띄는 듯, 띄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앞에 나서서 뽐내기보다 주변인들과 발맞추며 걷는 사람들. 배우이자 연출가인 김미아는 춘천에서 긴 시간 연극을 하며 항상 옆과 뒤를 살펴왔다. 연극 안에서 기꺼이 손을 건네기를 마다하지 않는 김미아 배우와 겨울의 초입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슴은 뜨겁고
시대는 차갑고
춘천서림을 만들고, 지켜온 사람들 1982 ~ 1989 제1대 하광윤 1989 ~ 1996 제2대 나환목 2024 ~ 현재 제3대 류재량
1980년대 초 민주화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가 뜨거웠던 시절. 그 뜨거웠던 열망을 탄압하는 세력도 참 드세던 시대였다. 특히 민주화에 열정적이던 학생들에겐 더없이 억울하고 답답했던 당시 1982년 팔호광장에 인문사회과학서점 ‘춘천서림’이 문을 연다. 평범한 서점인 듯 보였지만 민주화 운동가들의 쉼터이자 아지트였던 곳. 세 명의 춘천서림지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서림을 처음 조성한 사람, 하광윤›
‘춘천서림’은 어떻게 문을 열게 된 건가요? 1980년 서울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 시대 많은 젊은이들이 그랬듯 저도 학생운동을 시작했고 1981년 민주화운동 시위로 구속되었습니다. 출소 후에도 어떻게든 민주화운동에 기여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며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는데요. 당시 사회과학서적들이 출간되기 시작하면서 과학적인 사회변혁운동도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에 사회과학서적을 보급하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책을 보면서 한 세월을 보내자는 생각도 있었고요. 마침 고모부께서 유학을 권유하며 당시 400만 원이라는 큰돈을 도와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 돈으로 서점을 열고 싶다는 뜻을 말씀드렸는데 기꺼이 허락해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서울 신촌 부근에 개업을 준비했는데요. 서울에는 이미 사회과학서적의 보급망이 만들어져 있으니 지방에서 개업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그 말에 공감해 고향인 춘천에 1982년 5월 춘천서림을 열게 되었습니다.
‘-서점’, ‘-문고’가 아닌 ‘서림’을 붙이셨어요. 䢮서적䢯, 䢮서점䢯이라는 단어는 어쩐지 책을 거래하는 대상으로 보는 느낌이었고, 䢮서림䢯은 䢮책이 만든 숲䢯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책을 주체로 보는 느낌이어서 䢮서림䢯을 선택했습니다.
춘천서림이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이유는 일반적인 서점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1980년대 초 주로 어떤 분들이 이곳을 찾아왔나요? 당시 사회과학서적들의 출간이 봇물 터지듯 이어지던 때였습니다. 사회비평, 역사, 철학, 경제, 문화,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좋은 책들이 나오자 진실과 사회가 나아갈 바에 갈급했던 분들이 서림을 찾아주셨습니다. 다른 서점들은 여러 이유로 이런 책들을 취급하지 않았거든요. 도내 각 지역에서 근무하시던 선생님, 학생운동 활동가, 노동운동가, 문화운동가, 종교인 등 䢮이 사회가 변해야만 한다.䢯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서림을 찾아왔습니다. 서울에서 저의 선후배들도 찾아와 교류를 했고요.
민주화에 대한 수많은 대화가 이곳에서 오갔다고 들었어요. 기억나시는 게 있으실까요? 춘천서림은 읽을만한 책을 소개하는 건 물론이고 각자의 활동 분야에 대해 고민을 나누고 서로 조언도 하는 곳이었습니다. 연락이 끊긴 동료들의 소식을 이어주기도 했고요. 밥과 술을 나누는 일이 다반사였죠. 한마디로 사랑방이었습니다.
사회운동가들의 사랑방이라니! 그래서 경찰의 압수수색까지 있었던 거군요? 아마 당시 정보경찰은 서림을 24시간 감시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림 안에 방을 하나 만들어 생활했으니까요. 경찰의 압수수색은 몇 차례나 있었고, 서림에서 강제 연행되는 일도 몇 번이나 있었어요.
그 시대를 겪어보지 않은 저로서는 20살에 시작한 첫 사업, 첫 사회생활이 그 정도였다니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곤욕을 겪으면서도 지켜왔던 서림을 1989년 나환목 대표님께 넘기셨어요. 이유가 있었나요? 1986년 전후 시기는 반독재투쟁과 이에 대한 탄압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시기였어요. 당시 저는 민주화운동에 집중하던 시기라 서림을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없었고, 마침 나환목 선배를 만나 동업을 하다가 1989년 완전히 손을 떼었습니다.
춘천서림에서의 추억들 중 마음에 깊게 새겨진 것이 있다면요? 지금도 회환으로 남은 일이 있습니다. 군사독재와의 싸움과 사회변혁에 집착하여 여러 선후배, 동료들의 다양한 정체성과 지향을 폭넓게 포용하지 못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각자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상상력이
춘천서림의 초대 주인장, 하광윤 강원민주재단 이사
1982년 개업당시의 춘천서림과 하광윤 대표 (오른쪽), 그리고 강원대학교 총학생회장을 지낸 이진기 씨(왼쪽)
부족했던 탓입니다. 그 시절 저의 말과 행동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으신 분들이 있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서림에서 만난 인연들이 지금도 제 인생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라고 고백합니다. 함께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꾸었고, 같이 승리하기도 했고, 같이 좌절하기도 했으니까요. 뜨거웠던 그날들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서림형님 나환목을 기억하며›
안타깝게도 ‘서림형님’이라고 불렸던 제2대 나환목 대표는 2022년 2월 별세했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로부터 1989~1996년 사이 춘천서림에 대해 전해 들었다.
아무래도 대학교 근처여서 그런지 청년들이 많이 오갔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䢮서림형님䢯은 그런 청년들을 늘 따뜻하게 맞아주셨어요. 청년들의 고민에 해결책을 내어주기 보다 그저 라면을 끓여다 주는 그런 분이셨대요. 청년들에겐 그게 더 큰 위로였을지 모르겠네요.
다리가 불편하셨다고 들었어요. 12살이던 1966년 야산에서 뛰어놀다가 6.25 당시 매립된 폭발물이 갑자기 터지면서 두 다리를 잃는 사고를 당하셨어요. 이 사고로 평생 의족과 목발에 의지해 생활하셨죠.
청년들에겐 참 멋진 형님이셨나 봐요. 좋은 기억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많아요. 정말 좋은 어른이셨대요. 운동권 학생들의 든든한 후견인 역할을 해주셨거든요. 당시 서림을 이용하던 학생 중 외상값 없던 학생이 없었고, 라면과 소주를 안 얻어먹은 사람이 없었다더군요. 심지어 용돈도 줬다고 하고 … 말 수가 적었던 분이었다고 하는데 그냥 힘들 때 찾아가면 마음이 편해지고 그랬대요. 청년들의 어른이자, 진정한 벗이었던 거죠.
듣기만 해도 당시의 춘천서림 모습이 그려지네요. 그때 춘천서림에서 느꼈던 온정으로 다들 좋은 어른이 됐을 것 같아요. 춘천서림은 1996년 문을 닫았어요. 아마 학생들이 인문사회과학 서적이 아니라 수험서나 자기계발서를 보는 시대가 되면서 문을 닫게 된 것 같아요. 소문에는 적지 않은 외상값도 이유였을 거라고 하죠. 그런데 서림이 사라진지 한참 후인 2012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어요. 당시 춘천서림을 들락거리며 크고 작은 도움을 받았던 학생들이 SNS에서 캠페인을 벌여서 무려 5,000만 원의 기금을 모았습니다. 그 돈으로 나환목 대표에게 장애인 전용 차량과 유지비를 선물했어요. 단순한 서점 주인과 고객의 관계였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䢮서림형님䢯이 춘천의 청년들에게 어떤 분이셨는지 아시겠죠? ‹현재의 서림지기 류재량›
한참 전 문을 닫은 춘천서림이었는데요. 새로운 서점을 열며 어떤 마음으로 그 이름을 쓰신 건지 궁금합니다. 2023년 6월 말, 24년 동안 근무한 광장서적이 부도로 문을 닫았습니다. 이후 다시 서점을 내기로 결정했죠. 이름을 정해야 할 시기가 왔는데 주변 친구들이 한결같이 䢮무조건 춘천서림䢯이라고 하더라고요. 이름 정도는 알았지만 왜 제 또래 친구들이 과할 정도로 감정이입을 하는지 처음엔 몰랐어요. 나환목 대표 추모식에 참여하신 분들께 형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들은 춘천서림과 서림형님에 대한 추억은 생각보다 여러 사람에게 진심처럼 보였습니다. 엄혹했던 군부독재 시절 분노와 정의감 그리고 이제 갓 성인이 된 청년들의 갖가지 사연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거기엔 사랑과 실연도 있었을 것이고 … 서림이 학생 운동가들의 자양분 역할을 했고, 든든한 뒷배 같은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 서림형님의 일화들을 듣고 䢮무조건 서림䢯에 동감했습니다. 춘천서림의 정신과 뜻을 계승하기로 마음먹은 거죠.
지금의 춘천서림에는 어떤 분들이 찾아오나요? 놀랍게도 학생들이 80% 정도 됩니다. 데이트하는 학생들이 제일 많은 것 같아요. 매장이 달달해집니다. 서림이 자기계발서와 수험서, 주식, 코인 관련 책을 취급하지 않아서 전화문의가 들어오면 미안하긴 한데, 취급할 생각은 없습니다. 젊은 고객은 주로 문학과 심리학 코너를 좋아하고, 기성세대들은 인문학 코너에 관심이 많아 보입니다. 주말에 매장이 꽉 들어차면 참 보기가 좋습니다. 䢮요즘 애들은 책을 안 읽어䢯가 아니라 좋은 공간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는지, 반문해 보기도 했습니다.
중앙서적, 춘천문고 만천점, 데미안 등 춘천의 대표적인 서점들이 사라진 시대예요. 가뜩이나 서점의 생존이 어려운 상황에서 인문사회과학 서점을 선택하셨어요. 서점 생태계는 생존 임계점을 지나 절멸의 위기에 서 있습니다. 이 흐름에 경종을 울리지 않으면, 지구가 사라질 위기처럼, 서점도 사라질 겁니다. 서점이 사라진다는 것은 인간 문명의 실핏줄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피가 공급되지 않아 마침내 살아있으나 죽어있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사유하지 않는 인간이 많아지면 세상은 망가집니다. 다행히 책은 䢮가독(加讀)䢯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변에 도서관이 많아지고, 중대형 서점은 줄어들지만, 최근엔 독립서점들이 많이 생겨나서 작은 희망을 봅니다. 서점은 크건 작건 숫자가 많아져야 합니다. 그리고 책의 공공성에 견주어 국가가, 사회가 생존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춘천서림을 지키고 있는 류재량 대표
춘천서림에서 독특한 프로그램이 눈에 띄었어요! ‘시민의 서재’. 어떻게 시작됐으며, 현재까지 누구의 서재가 공유되었나요? 처음엔 䢮명사의 서재䢯로 기획된 것이었습니다. 䢮우리 지역 유명 작가나 정치인, 이런 분들의 서가를 옮겨보자䢯 이런 것이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䢮명사가 누구고 그게 왜 중요하지?䢯 싶었어요. 인테리어가 끝나고 책이 들어오는 날 5000권의 책을 혼자 나르고 정리하고 있는데 선배 한 분이 도와주러 오셔서 그날 밤늦게까지 함께 일했습니다. 그때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䢮내 이웃들이 이 서재의 주인공이 돼야 해!䢯 그래서 䢮시민의 서재䢯 첫 번째 참여자는 그날 저와 함께 땀 흘린 후평동 주민 정영준 씨가 되었습니다. 엄청난 내공의 독서력을 가지고 계시더라고요. 두 번째 참여자는 지역신문 [춘천사람들] 이사장이자 효자동 시민 전흥우 씨였습니다. 역사 관련 도서가 주를 이뤘습니다. 세 번째 참가자는 올해 87세이신 후평동 주민 이원상 선생님입니다. 선생님의 서재는 䢮죽음학䢯과 관련된 책이 많습니다. 䢮잘 죽는법䢯에 대한 책들이죠. 책을 보면 그 사람이 보입니다. 이웃의 서재를 함께 보는 일은 한 사람의 인생을 보는 것과 같아 보입니다.
과거의 춘천서림이 격변의 시대, 민주화 운동 인사들의 사랑방이었다면 현재의 춘천서림은 ‘어떠한 시대의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시는 궁금합니다. 그 시대 서림이 䢮하나의 가치䢯, 䢮단일한 대오䢯같은 저항의 가치를 가진 공간이었다면, 지금의 서림은 䢮다양한 가치의 혼종䢯, 䢮자유로운 연결망䢯이라는 초 고도화된 사회의 가치를 품은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은 䢮민주주의적 방법䢯에 의한 소통이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춘천서림이 인문사회과학 서점을 표방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세대 간 소통이 중요합니다.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의 말과 행동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낯설겠지만 그들이 서로 연결하는 방식을 존중해 줘야 합니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는 것을 서로 인정하고 만나고 얘기해야 합니다.
춘천서림의 사연을 알고 나니, 이런 장소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춘천에 대한 자부심이 커지는 것 같아요. ‘춘천서림’의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개업한 지 두 달이 지났는데, 벌써부터 䢮너의 현실은 이런 거야䢯하고 매출이 말해줍니다.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고, 서점 생태계의 현실도 잘 알고 있고, 특히나 인문사회과학이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시작했기에 좌절하거나 하진 않습니다. 다만 생존을 위한 기반을 잘 마련하려고 합니다. 많은 분들이 방문할 수 있도록 작가초청 강연회를 만들고, 춘천지역 독서 모임을 유치하고 모임끼리 연결해 주는 작업도 계획 중입니다. 음악회도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 매달 한 번씩 진행하려고 합니다. 좋은 신간을 꾸준히 들여놓고 주제별로 편집진열도 계속해 나갈 예정입니다.
종이책이 가지는 느림, 여백, 성찰의 가치를 젊은이들과 공유하는 곳. 나아가 그들의 아픔과 열정을 끌어안아 주는 곳. 과거에도 지금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춘천서림은 차가운 시대에 뜨거워 어쩔 줄 모르겠는 ‘청년’들을 품어주는 곳이다. 갈 곳 없는 청년들, 갈 길 잃은 청년들 그대, 나에게로 오라. 서림으로 오라.
POT-PEDIA
일러스트 한선주 에디터 권용식, 박인옥
가까운 곳에 이웃과 같은 그늘 Chuncheon City park
그저 배경이 되고 길목이 될지언정 이웃처럼 늘 우리 곁을 지키는 작은 숲이 있으니, 바로 도시공원이다. 분주한 보행자 거리 속 작은 쉼터에는 시민의 감정이 있고, 대화가 있고, 삶의 패턴이 있다. 그래서 도시에는 공원이, 디자인이 필요하다.
도시공원 [명사] 1. 자연 경관을 보호하고 시민의 건강, 휴양, 정서 생활을 위하여 도시나 근교에 만든 공원
의암공원(312,251㎡), 우두산공원(152,848㎡) 순이다.❶
1 공원은 크게 국가도시공원, 생활권공원, 주제공원으로 분류되는데, 우리가 주택가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원은 생활권공원(Living space park)이다. 크게 근린공원, 어린이공원, 소공원으로 나뉜다. 3 춘천시의 근린공원은 총 18개이며, 가장 규모가 큰 공원은 봉의산 공원(602,421㎡)이다. 그 다음으로 석사공원(335,078㎡)
4 어린이 공원은 총 105개, 소공원은 총 4개가 있다. 이른 아침이면 형광색 조끼를 입은 어르신들을 가까운 공원에서 만날 수 있는데, 대부분 잠시 숨을 돌리는 등하교 안전 지킴이 또는 환경 지킴이 참여 어르신들이다. 오후의 공원에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어르신들이 많다. 5 어르신들의 공원 이용 행태를 살펴 본 연구❷가 있다. 대구광역시 4개의 근린공원에서 수집된 총 290부의 설문을 토대로 분석했는데, 응답한 노인들의 43.4%가 ‘걷기 또는 산책’을 위해 공원을 방문하였으며, 응답자의 50%는 주 5회 이상, 2시간 내외로 공원을 방문한다고 답했다. 이동수단은 보행, 평균 이동거리는 15분 이하가 가장 많았다. 공원 환경에 대해선 ‘공원까지의 거리’, ‘충분한 녹지면적’, ‘충분한 그늘’ 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6 공지천변 의암공원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있다. 의암공원 야간 보행자를 대상으로 직접관찰법(블라인드 관찰법)을 적용한 연구❸인데 다소 흥미롭다. 저녁 8시부터 밤 10시 사이 보행자들의 특징을 분석했는데, 편도형 보행자가 71.8%로 왕복형 보행자에 비해 높게 나타났고, 체류 시간은 왕복형 보행자일수록, 동행자가 많을수록 길었다. 이동뿐만 아니라 야경감상과 체류, 대화, 관찰, 사진촬영의 빈도가 높게 나타났는데, 이를 바탕으로 머물고 싶은 공원의 요소가 뭔지 고민해볼 수 있지 않을까? 7 공원 벤치가 아닌, 도심 속 벤치는 또 어디에 있을까? 공공데이터포털에서 춘천시 벤치 현황을 찾아 파일을 열어보면, 정류장 현황이 쭉 뜬다. (총 672개의 정류장 벤치가 있다) 무심코 지나친 버스정류장의 벤치도 어쩌면 잠깐의 사색의 시간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버스를 기다리던 학창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이어폰을 끼고 멍 때리기를 시전하던!
❶ 자료 출처는 춘천시청 홈페이지 ❷ 박영은, 정성관, 이우성, ‹노인의 공원환경 인식이 공원이용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 Journal of East Asian Landscape Studies, 2019 ❸ 유지건, 진신, 윤희정, ‹야간 근린공원 보행자의 이용행태 차이분석: 춘천시 의암근린공원을 대상으로›, 관광연구저널 제37권 제2호, 2023
나만의 쉼터를 찾아서
누구나 충분한 쉼이 필요하다. 도심 속 오아시스 같은, 혹은 자연 속 아지트와 같은 공간을 찾아보았다.
1 춘천시립청소년도서관 옆 소공원 옛경춘로 830-24 청소년도서관 옆에는 작은 공원이 있다. 도서관을 몇 년째 다녔지만 잘 몰랐던 곳이다. 무인 반납함에 책을 반납하면서 우연히 알게 되었다. 인적이 드문 이곳에는 앉아 쉴 수 있는 벤치가 많고 나무 그늘 밑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책 읽기 좋다. 정겨운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며 산책하기에도 좋은 공간이다.
2 춘천 자전거 여행자의 집 근화동 소양강 처녀상 앞 자전거로 춘천을 여행하는 사람을 위한 쉼터가 있다. 자전거를 갖고 입장해야 하는 이곳은 간단한 자전거 정비와 자전거 보관이 가능하다. 자전거를 타며 땀을 흘리거나 비를 흠뻑 맞았을 때는 무료로 샤워도 할 수 있다. 자전거로 지친 몸을 이곳에서 쉬면서 3층 호반 전망 루프에 올라가 잠시 의암호 풍경을 바라보자.
3 용왕샘터 신북읍 영서로 3502 춘천댐으로 가는 길가에 약수터가 있다. 이무기가 이 샘물을 마시고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는데, 듣기만 해도 기운이 저절로 솟아나는 것만 같다. 화천을 가거나 춘천호를 드라이브할 때 잠시 들러, 약수 한 바가지로 목을 축이면 청량한 기분이 든다. 약수를 마시며 계곡물이 내려오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도 함께 시원해진다.
4 혼자만의 시간, 조용한 게스트하우스 하룻밤, 고요한 공간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보는 건 어떨까. 숲과 호수 근처에서 조용히 사색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나비야 게스트하우스와 오월학교를 추천한다. 오 헨리의 소설 속 로터스 호텔과 같은 곳을 꿈꾼다면, 인성병원 뒷골목 오래된 여관을 리모델링한 컷아웃 스테이도 좋다. 천천히 쉬면서 일기를 써도 좋고, 맥주 한 잔과 함께 생각에 잠겨도 좋다. 긴장했던 마음이 풀어지고 잠이 들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다.
에디터‘S pick - 나비야 게스트하우스 (서면 툇골길 15) - 오월학교 (서면 납실길 160) - 컷아웃 스테이 (소양고개길 50-7)
5 금병산 잣나무 숲 춘천시 동내면 영서로 1543-86 금병산 하산 길은 잣나무 숲이 우거져 그늘이 시원하고 상쾌한 피톤치드가 가득하다. 숲속 선배드에 누워 크게 숨을 쉬어보자. 상쾌한 공기가 내 몸 구석구석 들어오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쉬다 보면 등산을 하며 흘렸던 땀도 식는 것을 느낄 수 있고 후들거렸던 두 다리도 원래대로 돌아오게 된다. 금병산에 있는 캠핑장에서 프라이빗한 캠핑을 즐겨보는 것도 좋겠다. 깊은 밤 우듬지 끝에 걸린 별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쉼의 격이 달라질 것이다.
WALK
산책 말벗, 원미경 작가와 우두벌을 걷다
자세히 보면 얼마나 예쁜지!
춘천에는 ‘다리 건넛동네’에 대한 편견이 있다. 우두동 한쪽에선 춘천의 미래를 짓느라 바쁘지만 다른 춘천시청에서 차로 15분이면 도착하는 ‘우두동’을 아주 먼 한쪽, 강변마을의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고 했다. ‘건넛동네’ 취급을 한다. 나룻배로만 오갈 수 있던 골목골목으로 이어진 강변마을은 우두벌을 일구며 살던 소양강이 여전히 거대해 보이나 보다. 그런데 최근 우두동의 변화가 심상치 않다. 신축 아파트와 새로운
예전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과거와 달라진 게 있다면 타지에서 와 정착한 젊은 주민이 몇몇 생겼다는 것과 새 상권, 학교가 연이어 생겼고 춘천~속초 고속전철이 지나갈 단장을 마친 지붕들이 한둘 늘었다는 것이다. 골목길 거라는 계획까지 더해지며 후한 재평가를 받고 있다.
구석구석 숨어있는 마을의 역사와 소식들을 원미경 가깝지만 먼 동네 우두동. 이곳의 집들을 하나하나 펜화로 작가는 자랑하듯 설명했다. 기록한 원미경 작가에게 물었다. ‘이 동네, 솔직히 어떤가요?’
“자세히 보면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원미경 작가를 따라 어느 골목을 하나 빠져나오니 키를 집주인은 누군지 모르지만 마당의 존재들을 만난 가늠하기 힘든 나무 한 그루가 논두렁에 뾰족하게 서 있다. 것만으로도 그 집의 생기와 분위기가 느껴졌다. 담벼락 강 건너 봉의산을 가둬둔 논물도 그림 같았지만 우두벌의 넘어 스리슬쩍 옆집을 구경하고 있는 감나무는 그 대가로 수호신처럼 홀로 서 있는 나무가 꽤 인상적이었다. 나무의 감도 몇 개 내어주겠지. 이런 자연스러움과 여유로움이 품종은 모르나 마음에 들어 자신의 호인 ‘세하’를 붙여 오히려 구옥 마을을 세련돼 보이게 만드는 듯했다. ‘세하나무’라고 이름을 지어줬다는 원미경 작가. 동네에 원미경 작가는 우두동의 사랑스러운 집을 발견하면 나만의 비밀을 숨겨둔 사춘기 소녀가 옆에 서 있었다.
사진을 찍어와 천천히 그림으로 남기는 작업을 한다.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두동의 매력은 과거와 또 다른 골목으로 이어진 집들은 하나같이 작은 마당을 현재의 공존이거든요.” 가지고 있었다. 어느 집 마당은 빨간 장미 넝쿨이 한쪽에 가득했고, 어떤 집은 오래된 살구나무가 마당의 지붕 역할을 하고 있었다.
강변마을 사람들은 소양강에 기대 살아왔다. 물놀이도 하고, 낚시도 하고, 빨래도 했다.
둑길에는 아직도 아낙네들의 사랑방이었던 빨래터의 흔적이 남아 있고, 배를 타고 학교에 가고 일을 나가던 시절이 우두배터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이곳 사람들에겐 도심이라 불리는 저곳이 오히려 ‘건넛동네’였겠지. 소양강에 기대 사는 이곳이야말로 이들에겐 진정한 ‘춘천살이’일테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원미경 작가에게 우두동에 살아야 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랬더니 대뜸 상고대 이야기를 한다. 운이 (이후 수십 가지의 이야기를 더 들려주었다. 나머지 좋은 겨울에만 볼 수 있는데 하얀 새의 깃털 같은 것들이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원미경 작가의 「우두동동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고, 마치 여름인 지금 상고대가 우두두두동」책을 추천한다.)
도서출판 산책의 대표이기도 한 원미경 작가는 기록의 중요성에 주목한다. 정감있는 우두동의 구석구석, 펜드로잉에 수채물감으로 채색한 그림으로 담아냈다.
원미경 작가가 그린 세하나무
펼쳐져 있는 것처럼 눈을 반짝이며 설명했다. 더운 요즘은 그늘이 커다란 버드나무가 눈에 들어오고 금계국이 화려한데 금계국은 번식력이 너무 강해 오히려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졌다는 진지한 고백도 했다. 저쪽 어딘가에는 토끼풀 군락이 왕방울만 하게 꽃을 피웠는데 그 어느 꽃보다 탐스러워 놀랐기도 했다고. 또 카누를 타고 산책을 하면 소양강이 새롭게 보이는 흔치 않은 경험도 할 수 있고, 겨울에는 이름 모를 철새들이 찾아오는데 …
세상에 조용한 우두동이 이렇게 다채로운 곳이었던가? 산책로를 걷기만 해도 매일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니, 이곳에 살아야 하는 이유로 이보다 완벽한 답이 있을까.
꿈이 있다. 일과 여가의 비율이 반반쯤 되는 삶을 사는 것. 그러면서도 통장 잔고는 조금씩 늘려가는 것. ‘그렇게 되면 일주일에 세 번은 조깅을 하고, 작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 텃밭도 가꿔봐야지. 엄마의 온갖 김치 비법도 꼼꼼히 전수받을 거야.’ 막상 시간이 생기면 누워서 휴대폰만 붙들고 있으면서 동경하는 삶을 적어두는 나의 꿈 리스트는 쉬지 않고 업데이트가 된다. 초여름 말벗과의 우두동 산책으로 추가된 목록은 ‘우두동 소양강 근처에서 가장 춘천스러운 삶을 살아볼 거야.’이다.
PLAYGROUND
글·그림·사진 공혜진(일상기록공작가)
어쩐지 근사한 소도시에서의 삶
#6. 작은 자연물이 가져다 준 세계
우리는 여러 이유들로 대부분 바쁘다. 늘 여유가 없다. 그렇기에 자유로운 어디인가로의 여행을 꿈꾸게 되는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는 여러 이유들로 늘 떠날 수는 없다.
스트로마톨라이트. 어제부터 계속 들여다보고 있는 이 작은 돌멩이는 오억 년 전 지구의 시간을 품고 있는 돌이다. 눈으로 보면 그냥 작은 돌멩이 하나인데 사연을 들여다보면 놀라운 역사 그 자체다. 오억 년 전의 시간. 돌이 보고 겪었을 시간들은 감히 내가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다. 우리가 쉽게 접하고 있는 돌, 나무, 하늘, 흙, 모래, 바다, 산 … 그들의 시간을 우리는 가늠할 수도 없는 것이다.
시간들이 힘겹게 느껴질 때면 돌멩이 하나, 나뭇잎 한 장, 조개껍데기 하나를 앞에 두고 그저 바라본다. 그것들은 언젠가 산과 들, 강, 바다에서 하나 둘 데려와 내가 지내는 공간 어딘가에 배치해둔 것이다. 어딘가로 떠날 여유는 없는데 단바람 같은 환기가 필요할 때면 그들을 꺼낸다. 어느 날은 무늬가 있는 돌멩이를. 또 어느 날은 병든 나뭇잎 한 장을.
작은 잎에 난 무늬와 잎맥들을 따라 바느질을 하기도 하고 조개껍데기를 보며 시간 여행을 하기도 한다. 돌멩이가 주는 질감을 느끼며, 돌멩이를 줍던 그 날의 소리와 풍경을 떠올린다. 손가락만한 크기의 작은 자연들을 보면서 시공간을 넘어 어디로 간다. 몇 분의 시간동안 나는 여기 있지만, 여기가 아닌 곳에 있다.
COLUMN
글 탁운순 / 강원이주여성상담소 소장
나는 이주민의 모든 것이에요. 나는 캘커타*이고, 거지이며, 메콩강이고, 식민지 전체예요. 모든 식민지들의 쓰레기통이 바로 나예요. 그건 확실해요. 나는 거기에서 태어났어요. 그곳에서 태어났고 그곳에 대해 썼어요.
상담을 통해
사유와 쉼을 기록하다
*인도 북동부에 있는 인도 최대의 항구 도시 ‘콜카타’의 전 이름
나는 존재하느라 제 모든 삶이 으깨어진 것 같아요.
오래전이었다. 늦은 업무처리로 야근을 마치고 돌아가던 길. 라디오에서 뒤라스의 생애를 두고 이야기를 했다. 겨울이었고 밤이었다. ‘존재하느라 온 삶이 으깨어진 것’ 같았다는 뒤라스의 서사는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뒤라스는 메콩강 지류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이주한 이민자였다.
*
더 나은 삶과 더 나은 기회를 얻고자 조국을 떠난 사람들이 현재까지 2억 8천만 명 이상이다. 그들 중 5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수천 명이 실종되었다. 현재 우리나라 이주민은 250만이고 강원도에는 4만여 명의 이주민이 산다. 중앙로 67번길 54번지에는 이주민이라 부르는 그들의 이야기가 분투한다. 폭력과 차별, 고통과 슬픔에 사유를 담아 ‘쉼’을 획득하는 공간이다.
K는 난민 신청 중이었다. 벌써 두 번째 난민 신청이 불허되었다. 실핏줄이 보이는 그의 뺨, 윤기를 찾아볼 수 없는 머리칼이 들쑥날쑥 이마를 덮었다. 테이블에 올려놓은 손마디가 굵다. 세로줄이 선명한 회색빛 손톱과 각질이 생긴 손등은 스치기만 해도 피가 날 듯 거칠다. 4억 5천만 년 전에 살았던 최초의 척추동물 코테름에게는 턱과 이빨이 없었다는데. K의 유순함에 화가 났다. 계단을 내려가는 그의 등 뒤로 폭설이 내렸다.
얼마 전에 이 아래 건물 짓는 데서 일했어요. 이쪽 길 잘 알아요.
다음에 한 번 더 난민 인정 신청서를 내기로 하고 K가 돌아갔다. K가 나간 후 그가 놓고 간 사진을 돌려주기 위해 쫓아갔으나 이미 그는 없었다. K에게 사진을 보관 중이라는 문자를 보내고 다음에 상담소를 한번더꼭 방문하라고 했다. 사진 속에 그는 군중 앞에 서서 두 손을 번쩍 올리고 있었다.
돌아갈 수 없어요. 저는 정부를 반대하는 시위를 앞장서서 했어요. 돌아가면 공항에서 바로 체포될 거예요.
사진 속에 K는 패기로 가득 찬 빛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
R을 만난 것은 5월이 막 지나던 날이었다. 구도심의 언덕을 올라와 상담소에서 그녀가 긴 셔츠를 들어 올렸을 때 보이던 푸른 멍, 시누의 식당에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이어지던 무급의 노동, 삶을 바꾸고 싶어 찾아왔다는 그녀와 함께 남편을 만나고 시모와 시누를 만나면서 타인과 나의 경계를 지우는 긴 상담이 이어졌다.
그리고 더 많은 C와 U가 J가 한 때의 뒤라스처럼 으깨어진 삶을 안고 중앙로 67번길 54번지를 다녀갔다. 뒤라스가 으깨어지면서도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악의 평범성을 말했던 한나 아렌트의 어머니가 “누가 너를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공격한다면 너는 네가 유대인이라는 사실로 공격해야”한다며 이주는 사유의 근거이지 차별이 될 수 없음을 함께 공부했다.
이곳에서의 상담은 사유와 ‘쉼’을 전제로 한다. 상담하는 동안 생애를 돌아보면서 자신을 돌본다는 것에서 사유와 치유와 쉼을 하나로 연결하는 공간이 된다. 오늘도 중앙로 67번길 54번지에서는 저항과 분투를 담은 상담과 사유와 ‘쉼’이 이어진다. 인간이 지나간 모든 위치는 무효임을 사유하면서. 당신과 내가 이곳에 조금 일찍 도착한 것이 더 나은 권리를 가질 이유가 될 수 없음을 사유하면서.
WIDE
글 이승원 / 서울대 아시아도시사회센터 부센터장
존엄하게 쉬기
꿀잠을 잘 수 있다는 건
어느 마을 한 교회에서 예배가 끝난 후, 신도 한 명이 목사에게 찾아가 걱정 하나를 전했다.
“목사님, 제가 보니 매주 목사님 설교가 시작되자마자 많은 신도가 기다렸다는 듯이 졸기 시작하더라고요.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진 분도 꽤 있고요. 이러다 우리 교회 신도 수가 줄면 어떡하죠? 목사님은 설교하실 때 신도들이 잘 듣지 않고 졸기만 하면 속상하지 않으세요?”
걱정이 깊은 신도에게 그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5~6일을 열심히 일하신 분들이 집에서 편히 쉬지 못하고, 주일 낮에 교회에 오시니 얼마나 피곤하겠어요. 저도 모든 분이 제 설교 듣고 마음의 평안을 얻기를 바라지만, 그보다 제 설교가 피곤한 채 교회에 오신 분들에게 잠시라도 꿀잠과 쉼의 기회를 줄 수 있다면, 그 또한 제게는 큰 기쁨이고 영광입니다. 그렇게 꿀잠을 경험한 분들이라면, 돌아오는 주일이 또 얼마나 기다려지겠어요.”
기독교의 신도 여섯 날 동안 세상을 만들고, 일곱 째 날에는 쉬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에게도 일곱 째 되는 날에는 가축과 일꾼들을 포함해서 모두가 노동을 멈추고 반드시 쉬도록 했다. 이것이 크게는 일곱 해가 일곱 번 지난 후에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모든 빚도 다 탕감되어야 하는 것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인간의 욕심이 만든 어떤 것도 영원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쉰다는 건 인간이 만든 모든 부족한 제도와 관계를 넘어서 그 자체로 신성을 느끼는 소중한 상태일 수 있다. 그 자체가 인간이 존엄해지는 존재 이유일 수도 있다.
쉼, 존엄성과 자기 결정권이 보장된
잠과 쉼은 참 신기하다. 내 몸의 피곤함을 사라지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가 잠이다. 잠은 우리가 신진대사 이외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상태이지만, 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우리를 회복시킨다. 다른 한편, 잠은 반드시 깨어날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한다. 깨어나지 않는 잠은 죽음이다.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다는 건 피곤함도, 신진대사도, 회복도, 그리고 어떤 고통도 불안조차도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 깨어난다. 자려고 애쓰면서도 깨어나려 노력한다.
잠이, 쉼이 피곤함과 노동을 영원히 막을 수는 없다. 더군다나 쉼이 그 자체로 존엄한 존재 이유가 아니라 노동 효율성을 위한 재충전 시간이 되면 ‘아무리 쉰다 한들’ 결코 불안한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 얼마나 효율적으로 재충전 되었는지에 따라 잘 자고 잘 쉬었는지가 평가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자면서도, 쉬면서도 그 이후를 걱정하느라 불안해서 제대로 쉴 수가 없다.
잠과 피곤함 혹은 쉼과 노동, 이 둘은 우리가 ‘살아있는 한’ 분리될 수 없다. 잔다고 해서 세상이, 내 삶이, 지금 내가 처한 힘들고 불안한 상태가 잠들어 버리거나, 자고 일어나면 다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자는 동안 상황은 더 나빠질 수 있고, 오히려 안 자고 일해도 뭔가 조금 나아질까 말까 한데, 졸리기 시작한다는 건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자다가 악몽을 꾸거나 가위에 눌릴 때도 있고, 다가올 위협에 맞서 경계해야 할 땐 잠 드는 것이 더 무섭기도 하다. 쉬는 듯 하지만 갈수록 더 불안할 때도 있고, 일하고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고 힘이 날 때가 있다.
쉼이란 자든 일하든 나 자신이 편안하고 존엄하다고 느껴지는 상태, 누구를 초대하고 누구를 배제해야 한다는 골머리를 앓지 않고서, 모두가 함께 서로의 필요한 것을 빼앗지 않고, 서로를 해치지 않으면서 필요한 자원에 함께 접근하고, 함께 사용하고 관리하는 상태, 그리고 이 상태가 내일도 모레도 계속될 수 있다는 믿음을 서로 나누고 있는 상태, 즉 쉼이란 외부의 강제성을
벗어나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자기 존엄성이 유지되는 상태라 할 수 있다. 이 자기 존엄성은 ‘자기 결정권’이 보장된 상태에서 가능하며, 이건 단순한 의지의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자기에게 필요한 자원에 접근할 수 있고 그 자원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건 일정 수준의 지적 대화와 소통이 가능한 자들끼리만 누리는 특권이 아니라, 어떤 신체적, 정신적, 정치사회문화적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도 공평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누군가의 희생이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강요되거나 다수의 조건이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건 다른 누군가의 잠과 쉼을 빼앗아야만 내 쉼이 보장되는 상태, 나의 쉼이 타인에게 야만적 폭력으로 다가가기 때문이다.
‘오멜라스’를 넘어선 춘천을 위하여
우리가 잘 쉬고 잘 자기 위해선 일하거나 깨어있는 상태가 안전해야 한다. 언제든 이 피곤함이 달래질 수 있고, 너무 힘들면 언제든지 잠시 땀을 닦고 쉴 수 있어야 한다. 과로나 안전사고로 사망한 노동자, 가혹행위로 사망한 군인, 고문에 의한 죽음. 뿐만 아니라, 가계부채에서 벗어나 지 못한 채 선택한 생계형 자살, 자기 계발, 좋은 대학, 취업만이 성공이라는 억눌림에 갖힌 젊은 세대, 가혹한 돌봄의 무게로 무너진 아픈 이들의 가족. 얼마나 더 많은 삶의 모습을 더 열거해야 할진 모르지만, 이들의 비극은 스스로 자신의 쉼과 잠을 선택하지 못하는 자기 결정권과 존엄성이 무너지며 시작된 것은 아닐까?
어슐러 르 귄의 아주 짧은 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에서 오멜라스는 모두가 행복한, 마치 유토피아가 실현된 듯한 도시다. 하지만 오멜라스 사람들에게는 모두가 알고 있는 한 가지 참혹한 비밀이 있다. 오멜라스의 행복은 지하실에서 헐벗은 채 갇혀 지내는 버려진 아이 때문이다. 오멜라스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 아이의 고통에 대해 서로 침묵한다. 그리고 그 침묵이 힘든 이들은 오멜라스를 떠난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서로 대화를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서로 그 침묵이 힘들고, 지하실에서 신음하는 아이에 대해 함께 걱정하면서, 지금까지 누린 행복이 아니면 어떠냐고, 그래도 저 아이를 구했다는 이야기를 나누면 더 행복하지 않겠냐고 하면서, 뭔가 같이 힘을 모을 수 있는 것을 찾기 시작했다면 어떨까? 어쩌면 그때 오멜라스는 진정한 유토피아를 향하는 구원이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오멜라스와 달리 오래전부터 춘천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대화가 펼쳐지고 있다.
SCENE 1
사람하는 도시 사랑하는 도시 2024 문화도시 박람회
사진 춘천문화재단 에디터 정승희
문화도시 춘천 시민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 춘천에서는 한 해 내내 행사와 축제가 열리고, 좋은 공연과 전시를 만날 수 있다. 도시 곳곳에 사랑방이 될 수 있는 공간들이 있고, 그곳에선 공통 관심사를 가진 이들과 연결될 수 있는 멋진 모임들이 있다.
예술인을 지원하고 있고, 좋은 기획과 아이디어가 있다면 무엇이든 시도할 수 있는 판도 마련되어 있다. 예술교육과 체험 또한 빠질 수 없다. 2021년 춘천이 법정문화도시*로 지정된 후로 춘천문화재단을 비롯하여 춘천시는 문화로 다양하고, 다정한 길을 만들어왔다.
한편으로는 문화도시가 되어서 어떤 변화가 있는지 몰라 궁금증을 가진 이들이 있다. 시민과 관광객에게 문화도시를 알리고 소개하는 문화도시 박람회. 2024 문화도시 박람회는 춘천의 대표축제인 춘천마임축제와 함께 5월 30일부터 6월 2일까지 레고랜드 코리아 주차장 일대에서 열렸다. 설렘을 가득 안고 2024 문화도시 박람회에 방문했다.
* 지역의 고유한 문화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문화창조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역문화진흥법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정하는 도시.
문화도시 특별여권 박람회에 들어오자마자 가장 먼저 반긴 건 전국 28개의 문화도시 홍보관. 단어만 들어도 지루한 홍보관. 그러나 문화도시 박람회 홍보관은 달랐다. 각 지역의 부스를 특색에 맞춰 꾸려 한곳 한곳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미션을 수행하면 문화도시 특별여권에 도장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작은 여권 덕분에 전국 문화도시를 여행하는 기분이 났다. 충주 홍보관에서는 커다란 거울에 그래픽 스티커를 붙여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부스를 꾸렸다. 청주 홍보관에서는 꽝 없는 뽑기를 할 수 있었다. 영월 홍보관에서는 흑백 스냅 사진 촬영으로 오늘의 순간을 남길 수 있었고, 반려돌을 선물로 받을 수 있었다. 속초는 홍보관을 식료품점 콘셉트로 꾸렸다. 고창 홍보관에서는 마음 문진표를 작성하고 마음처방전을 받을 수 있었다. 강원특별관은 따로 마련되어 있었는데, 강원의 문화도시 춘천, 원주, 영월, 속초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었다. 강원의 매력을 느끼며 강원의 다음을 그려보게 되었다. 홍보관 하나하나 구경하며 각 지역 문화도시가 무엇을 중심을 두고 문화를 꾸려나가는지 알 수 있었다. 한 번쯤 살고 싶은 도시도, 참여하고 싶은 문화 활동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다채로운 문화도시 슬로건
충주 살면 충주사람
충주
2024년 올해의 문화도시 기록문화 창의도시 청주
청주
반 박자 느린 반올림 행복, 문화충전도시
영월
맛으로 엮어가는 도시의 멋
속초
당신의 일상에 치유가 필요한 순간
고창
라이프스타일에 낭만을 더하면
춘천
문화도시박람회×춘천마임축제×춘천인형극제 홍보관을 둘러보고 나니 포럼장과 중앙 쉼터, 그리고 마임축제 공연장, 슬로우빌리지가 눈에 들어왔다. 중앙 쉼터에서는 천막이 있어 편히 앉아 쉴 수 있었다. 박람회장과 춘천마임축제 공연장은 경계가 없어 이리저리 돌아다닐 수 있었는데, 돌아다닐 때마다 인형들이 거리를 활보하며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화들짝 놀라고 이내 함박웃음 짓게 만드는 인형들이었다. 할머니, 마녀, 곰, 고릴라 등 다양한 얼굴을 한 인형들의 출현이 반가워 함께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많았다. 인형들은 춘천인형극제에서 참여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마임 축제 공연은 4곳의 메인 무대에서 낮부터 밤까지 진행되었다. 인상 깊었던 공연은 아르헨티나 무용수인 아드리아노 칸게미의 ‘나구알 바람과 함께 춤을’이라는 공연. 무대 높은 곳 그네 하나에 몸을 의지해 움직이는 모습에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해가 질 무렵이라 하늘은 뭉게구름과 함께 노을빛으로 물들고 있었는데, 몽환적인 하늘 배경으로 춤을 추는 모습이 아슬아슬하면서 아름다웠다. 메인 공연인 ‘Firework 불파티;자유분방’은 춘천마임축제의 주제인 ‘따뜻한 몸;웜바디(WARM BODY)’에 어울리는 공연이었다. 사람의 모습을 한 6m 조형물에 불을 붙이고, 태우자 그 열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바로 옆에서 슈트를 입은 무용수들의 춤과 타악기와 첼로 연주가 흥을 돋우고, 박람회와 축제에 방문한 모두를 한바탕 난장 속으로 빠트렸다.
박람회와 축제를 즐기다 보니 이번 문화도시 박람회의 슬로건이 자주 눈에 띄었다. ‘사람하는 도시, 사랑하는 도시’. 도시를 사랑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문화도시 박람회에서는 사람을 가리키고 있었다. 도시에 머물게 하고, 그곳에서 숨통을 트게 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이유가 결국은 사람이라고. 박람회와 마임 축제를 기획하고 만든 이들 또한 사람이었다. 문화도시를 홍보하는 28개 도시의 문화도시 관계자들, 멋진 무대를 만들어 황홀경에 빠지게 한 여러 나라에서 온 공연자와 춘천의 공연자들, 도시가살롱을 운영하는 공간 주인장들,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 사람들. 이 외에도 춘천 시민과 관광객들이 박람회와 마임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힘써준 사람들이 있었다. 문화도시 박람회 포럼장에서 이 사람들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주황색 하트를 볼 수 있었다. 이 도시를 따뜻하게 만드는 이름들이었다. 문화도시 춘천 시민으로서 자부심을 가졌던 이유가 새롭게 정의되었다. 다양한 문화를 누릴 수 있는 도시여서가 아니라 그 도시를 만드는 사람들 덕분이라는 것을.
SCENE 2
춘천이 그리는 ‘후이늠’
포토그래퍼 이종희 에디터 권용식
그리고 «pot» ‹2024서울국제도서전›
서울국제도서전 ‘후이늠’
이번 서울국제도서전은 䢮후이늠䢯이라는 주제로 6월 26일부터 30일까지 열렸다. 䢮후이늠䢯은 조너선 스위프트의 소설 «걸리버 여행기»에서 나오는 나라 이름이다. 이 나라는 말(馬)의 나라로 이상적인 질서를 구축하며 살고 있는 반면 감정이 없는 무정서의 세계다. 䢮후이늠䢯이라는 주제는 앞으로 어떤 미래를 그려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담긴 단어다. 이 세상이 올바른 사회로 성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인이 느끼는 행복 또한 중요하다는 의미를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었다.
‘걸리버는 여행에서 이런 면이 전혀 없는 종족, 후이늠을 만난다. 이성적, 상식적으로 완벽한 ‘후이늠’의 세상을 만들면, 우리는 전쟁을 그칠 수 있을까? 유능한 인공지능은 우리 미래에 ‘후이늠’이 되어 줄 것인가? ‘후이늠’의 세계가 해법이 아니라면 우리는 어떤 미래를 그려야 할까?’ — 2024 서울국제도서전 ‘후이늠 ‘소개글 중 일부
춘천문화재단이 매거진«pot»과 함께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여했다. 유일한 지역문화재단 참가사로, 지역에서 도서출판을 꾸준히 이어온 ‘달아실 출판사’가 함께 참가했다.
춘천 가는 청춘 열차
춘천문화재단 부스는 춘천 가는 청춘 열차로 꾸며졌다. 춘천가는 기차는 과거 청춘 세대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젊은 세대에게는 아날로그 감성을 보여줄 수 있는 컨셉으로 제격이었다. 부스를 통해 춘천이 하나의 브랜드이자 자신의 색깔을 표현하는 출판사처럼 느껴졌다.
객실 안에서 «pot»과 «춘천인», 달아실에서 나온 책을 읽는 승객 그림이 벽 전체에 디자인되어 있었고, 진열대에는 여러 이벤트로 가득했다. 방문하는 사람을 위해 춘천 기차티켓 책갈피를 선물했고, 책과인쇄박물관에서 레터프레스를 빌려와 사람들이 활자를 손으로 직접 찍어볼 수 있는 순수한 경험도 선사했다. 이밖에도 «pot»에서 발췌한 문구가 새겨진 엽서도 준비했는데, 엽서에는 우리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문구로 가득했다. 마치 «pot»이 그리는 미래의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내게 알맞은 속도와 리듬을 찾아’ ‘불안정한 세상에서 유쾌함과 사랑으로 겹겹이’ ‘나다움은 나의 다음이 될 거야’
‘우리가 사랑한 것들이 언젠가 우리를 구원할지도 몰라’
«pot»과 2024 문화도시 박람회 슬로건에서 발췌한 문장들
왠지 오늘 나에게 행운이 ‘팟’ 올 것 같다!
춘천문화재단 부스를 본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특히 춘천에 연고가 있는 사람들은 춘천문화재단 부스를 보며 반가워하고 자랑스러워했다. 특히 서울에 사는 춘천 사람들은 춘천을 그리워하고 춘천으로 돌아오고 싶어 했다. «pot»과 «춘천인»을 보며 춘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들여다 보고, 우리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을 보며 놀라워했다. 그런 관심은 자연스럽게 «pot» 구독으로 이어졌다. 과월호도 사람들의 지속적인 관심에 금방 동이 났다. 지역 출판사 달아실에서는 최승호 시인의 «눈사람 자살 사건»이 완판됐다. 이 책은 19쇄까지 인쇄된 베스트셀러다. 지역 출판사의 힘이 느껴졌다.
올해 «pot»이 주제로 다루는 䢮안식처䢯처럼, 이번 도서전에서도 춘천문화재단 부스는 누군가에게 추억 가득한 안식처가 되어주었다고 생각한다. 춘천에서 개인들이 겪었던 순수한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준 셈이다. «pot»은 올해 가을, 40호를 맞이하고 창간 10주년이 된다. 이번 서울국제도서전을 통해 «pot»이 전국의 구독자를 만나게 된 것처럼, 앞으로 춘천을 대표하는 문화예술 매거진으로서 춘천의 䢮후이늠䢯을 잘 담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가장 지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처럼, «pot»이 이야기하고 바라는 모습으로 어디서든 읽히고 공감받길 바란다.
MOOD
에디터 박인옥
이젠 각성 좀 그만 하고!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양복 만드는 일을 했다. 대체로 ‘○○라사’라는 간판을 달았던 양장점에서 말이다. 깔롱쟁이*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일이 너무 많았다고 한다. 카페인
* 멋쟁이의 경상도 사투리
성분의 각성제인 노도스까지 먹어가며 밤샘 노동에 시달렸다고. 하지만 대기업 기성복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일자리를 잃었고, 사촌형을 따라 어쩔 수 없이 건설 현장으로 향했다. 30년이 지난 지금, 아버지는 숙련된 조적공으로 일하고 계신다. 하지만 여전히 잠이 부족하다. 참을 먹고 난 뒤 낮잠을 자긴 하지만, 시멘트 가루가 날리는 스티로폼 위에서의 낮잠이 편할 리가 없다. 그래도! 30년의 낮잠 바이브(?) 덕분인지 아버지는 언제나 머리만 닿으면 코를 곤다. 심지어 배게도 제대로 받치지 못 한 채, 세상 불편한 자세로! “아빠 아직 안 잔다”가 아빠들의 단골멘트가 되어버린 건, 늘 각성해야 하는 가장의 삶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약간 억지스럽지만 일과 각성에 대해 잠시 생각해본다.
‘각성’의 한자는 각각 깨달을 각(覺), 깰 성(醒)으로 깨어 정신을 차린다는 의미다. 하지만 요즘 세대들에겐 그 의미가 사뭇 다른 것 같다. 뭔가 게임 속 캐릭터가 탈피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 드래곤볼에서 손오공이 초사이언으로 변신하는 것 같은. 일에 권태감이 오거나 졸음이 몰려올 때 특히 필요하다. 각성을 통해 전혀 다른 종류의 무적의 내가 등장하고, 그 날의 과업을 무사히 마치는 임무를 맡는다.
그러고 보니, “각성해야지!” 라는 말을 자주 쓰는 나를 발견할 때가 많다. 오랜 시간 주어진 일에 집중해야 할 때, 밤새 원고를 써야 할 때 주로 쓴다. 그럴 때 외치는 마약 같은 단어가 있으니 …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악마의 음료 커피다.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마도 커피는 기호식품으로 찾는 경우보다 각성효과를 위해 찾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커피의 카페인은 뇌와 중추신경계를 자극하여 각성효과를 내는데, 카페인의 양이 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를 지나면 오히려 피로감이 몰려온다. 잠깐의 각성 뒤에 그만한 책임이 따르는 것이다. 커피중독은 아니 각성중독은 다양한 부작용을 가져오니까. 차라리 우리 아버지처럼 “에라 모르겠다” 일터 한 쪽에 박스라도 깔고 한 잠 자고 일어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살기 위해, 때로는 저마다 욕망을 채우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일을 한다. 일과 쉼의 경계가 흐려지는 삶을 살고 있다. 각성을 요구하는 사회, 한 숨 자고 일어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에서 서서히 자신을 잃어간다. 불특정 다수의 글이 올라오는 SNS에선, 자발적으로 저임금 단순노동을 택하겠다는 젊은이들이 많이 보인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 걸까?
오늘 나의 아메리카노 섭취량은 한 잔이다. 그것도 디카페인으로! 두 눈 부릅뜨고 각성하는 재미에 살던 내가 우리 아버지처럼 소파에서 졸기도 한다. 그래! 눈이 감기면 그대로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원고 하나 포기하니, 소파에서 자는 잠도 달디 달다.
Edi tor’ s no te
승희
있다. 나무 아래에 누우면 솔솔 부는 바람에 땀이
부산스러움이 눈이 부실까 가려주는 누군가의 손바닥과 같이 느껴진다. 나무의 넉넉한 품에서 옹졸해지고 조급해진 마음이 스르르 풀리곤 했다. 언제든 연락해. 모든 게 버겁거나 그냥 누군가가 필요할 때. 같은 사람이 말했다. 그와 보낸 시간이 내겐 나무 아래와 다르지 않았다. 이번 여름호를 준비하면서 의자를 만드는 원유선 작가와 사람에 애정을 품으며 글을 쓰는 김윤희 작가를 만났다. 그리고 사람과 사랑이 넘치는 문화도시 박람회를
싶다.
용식 공동농사를 지은지 한 계절이 지났다. 벼, 들깨는 키가
좋다. 예전부터 원하던 생각들이 덜컥 진행되어
찌는 여름이라서 그늘에서 쉼이 더 달콤하다.
인혜 삶이 ‘일’ 아니면 ‘쉼’. 오직 둘로 나뉘는 것 같아 속상했었다. 일하는 시간은 스트레스와 긴장의 연속이고, 프리랜서의 쉬는 시간엔 늘 불안이
동행했으니까. 산다는 게 일과 쉼 둘 중 하나라는 게 힘들 땐 나무 아래 10분만 있어 봐. 얘기해준 사람이 참 별로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번 여름호를 준비하며 ‘쉼’의 의미가 달라졌다. 일을 하지 않는 식고, 흔들리는 나뭇잎과 그 사이로 햇빛이 보이고, 시간이 ‘쉼’ 아니라 나를 회복하거나 새로운 것으로 하늘에 구름이 지나간다. 구름은 언제나 생각보다 충전하는 시간만이 ‘쉼’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 것 빠르게 흘러갔다. 눈을 감고도 느껴지는 나뭇잎들의 같다. 아무것도 없이 흘려보낸 나의 시간들은 쉼보단 ‘대기’였달까? 일과 일 사이의 대기 상태. 진짜 ‘쉼’에 대해 일만큼이나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됐다.
민율 요즘 나는 ‘은은한 쉼’에 빠져있다. 잘 쉬겠다며 좋아하는 것들로 꽉꽉 채우는 순간이 아니라, 정신없이 일을 하다가도 사무실 천장에 찍힌 검은 점을 아무 생각 없이 보는 시간, 가사 없는 멜로디를 즐겼다. 사람과 자연에 기대며 올여름도 잘 보내고 들으며 잠깐 눈을 감는 시간들이 내게는 은은한 쉼이다. 일상 안에 있는 ‘느슨한 순간들’덕분에 나는 오늘 하루도 잘 살았다.
인옥 크고 텃밭에는 온갖 푸성귀가 땅을 채운다. 더욱이 작정하고 게을러지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다. 이들은 토종이라서 해를 거듭해 씨를 받아 키우기도 처음엔 내가 게을러지고 난 이후의 것을 먼저 생각했다. 돈을 덜 벌게 됐을 때를 걱정했다. 그리고 얼떨떨하다. 땅과 생명에 가깝게 살고, 좋은 사람들과 맡고 있던 여러 임무들은 어떻게 할지와 살이 찔 것을 함께 땅을 만지고 일하니 마음이 편안하고 웃을 일이 걱정했다. 그러다보니 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일단 많다. 아침마다 신선한 초록 잎을 먹는 것도 감사하다. 게을러지고 보니, 걱정했던 모든 것들에 대한 답이 보이기 시작했다. 순서만 바꿨는데 훨씬 좋은 효과를 보다니! 늘 조급하게 마감했는데 여름호는 그냥 운명에 맡긴다!
Pot Back Issues
N. 01 춘천PLAY
N. 02 낭만PLAY
N. 03 공감PLAY
N. 04 시작팟팟
N. 05 함께팟팟
N. 06 열정팟팟
N. 09 도움팟팟
N. 10 봄봄팟팟
N. 11 배움팟팟
N. 12 무한팟팟
N. 13 온기팟팟
N. 14 기억팟팟
N. 17 기대팟팟
1N. 18 환경
N. 19 여성
N. 20 문화도시
N. 21 평화
N. 22 나의 안부
N. 25 걷다가 문득
N. 26 환상과 낭만
N. 27 떠오르는 환대
N. 28 멀고도 가까운
N. 29
N. 30 친애하는 나에게 시작하는 기쁨
N.36 마음의 모양
춘천문화매거진 2023 가을
N.37 피어나는 삶
춘천문화매거진 2023 겨울
N.38 둥글게 둥글게
ISSN 2508 6316
ISSN 2508 6316
ISSN 2508 6316
N. 33 기다리던 순간
N. 34
N. 35 우리는 매일매일 이마엔 땀방울
N. 36 마음의 모양
N. 37 피어나는 삶
N. 38 둥글게 둥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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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07 잇다팟팟
N. 08 화음팟팟
N. 15 시작팟팟
N. 16 변화팟팟
N. 23 너의 둘레
N. 24 마주보는 우리
N. 31 솟구치는 용기
N. 32 흩어지는 마음
춘천문화매거진 2024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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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R 발행인 최연호
EDITOR IN CHIEF 편집장 고영직
CONTENTS & EDITORIAL DIRECTOR 부편집장 박인옥
EDITOR 에디터 권용식, 정승희, 이인혜
PHOTOGRAPHER 사진 이종희, 김효주
ART DIRECTOR 디자이너 이건하
COVER ARTWORK 표지 작품 김수영
ILLUSTRATOR 일러스트 한선주
ADMINISTRATION 기획총괄 윤행자
MANAGEMENT 운영 김태경, 이민율
CONTRIBUTING WRITER 기고 이승원, 탁운순, 공혜진
THANKS TO 고마운 분 김민순, 김지안, 용상순, 장경주, 한진욱, 원미경
춘천문화매거진 POT 제39호 「나무그늘 아래에서」 2024년 7월 발행
발행처 춘천문화재단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효자상길 5번길 13
인쇄 강원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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