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문화놀이매거진 POT 41호
이북 원문에서 글자만 옮긴 전체 텍스트입니다. 표·그림·사진과 원래 모양은 이북에서 확인하세요.
ISSN 2508 6316
춘천문화매거진 2024 겨울
오늘 하루도 욕심내지 말고 딱 너의 숨만큼만 있다 오거라. 고희영, 『해녀입니다』 중에서
PLAY
문화로 같이 즐기다
OPEN 문화로 마음을 활짝 열다
TALK
문화로 함께 이야기하다
매거진 «pot»에는 ‘(다양한 것을 담는)그릇, 솥’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문화로 함께 즐기고, 소통하며, 이야기할 수 있도록 지역의 다양한 문화 콘텐츠와 이슈, 생동감 넘치는 춘천의 문화예술을 담아내는 그릇이 되고자 합니다.
«pot»에서 이야기하는 춘천문화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시민의 삶 속에서 엿볼 수 있는 일상의 순간, 그 안에 담긴 보석 같은 이야기를 말합니다. «pot»은 춘천 시민과 많은 관계인구가 춘천이라는 지역을 즐겁게 바라보고 깊이 알아갈 수 있도록 다채로운 이야기를 펼쳐 보이겠습니다.
김수영 作 ‹겨울›, 2024, ink on paper, 27.0 × 52.0cm
한 해라는 긴 숨 끝에 당신을 위한 글을 적습니다. 마치 내 일처럼 함께 웃고 ‘춤’ 춰주어 더욱 즐거웠다고, 언제든 ‘쉬어’갈 수 있게끔 다정한 ‘품’을 내주어 지치지 않을 수 있었다고. 다시 한 번 들이마시고 내쉴 ‘숨’ 끝에도 함께할 수 있길 바란다고.
CONTENTS
LETTER
편집장의 여는 글
MOMENT
지켜주고 싶은 당신의 틈
POST BOX
계절의 끝에서 묻는 안부
당신의 일상에 밝혀진 빛은 어떤 색인가요?
THEME PIECES
SPACE
예술이 숨 쉬는 그 곳에서 화가 한동국의 작업실
INTERVIEW 1
삶의 아름다움을 자연을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 한보나
INTERVIEW 2
갈 곳 없는 유기동물들의 비빌 언덕 강원반려동물보호협동조합
POT-PEDIA
작은 틈이 모여, 말랑말랑해지는 도시 책이 있는 레푸기움을 찾아서
WALK
외딴섬, 강대 로맨틱
PLAYGROUND
어쩐지 근사한 소도시에서의 삶 #8. 책상아래 비밀의 문
COLUMN
춘천의 오늘을 연결하는 숨들
WIDE
겨울밤, 신호등 앞에서 별빛의 악!(ARGH!)이 들리시나요?
SCENE 1
훨훨 아이들의 꿈은 날개를 달고 꿈의 극단
SCENE 2
숨 한 번 고르고, 첫발 딛기 2024 춘천 모두의 미술—처음
MOOD
숨어있어야 하는 숨
EDITOR’S NOTE
LETTER
여러분은 언제 숨을 고르시나요?
지난 여름 30도를 웃도는 날씨에 관람한 홍나겸 작가의 〈숨,〉전(서울 상계예술마당)이 떠오른다. 숨이라는 단어에 쉼표(,)를 찍은 것이 퍽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숨이라는 단어에서 쉼을 연상하는 것은 그렇게 자연스럽다. 숨을 테마로 한 홍나겸의 작품에는 자연의 빛, 윤슬, 파동 그리고 자연의 소리들이 넘쳐났다. 불다, 피어오르다, 흐르다 같은 자동사로 구성된 홍나겸의 자연 영상을 관람하며 30분 남짓 고요히 명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멍상’을 했다. 숨 쉬지 않고 살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오직 생존하기 위해 사는 현대인들에게 숨 쉬며 산다는 일은 만만치 않다. 독일 철학자 벤야민이 ‘깊은 심심함’이라고 명명한 삶은 현대인들에게 좀처럼 허락되지 않았다. 진짜 숨과 쉼은 노동과 생산의 질서에 속하지 않은 자유로운 시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말이면 여가생활을 누리지만 그것은 노동사회의 연장에 불과하다. 내가 사는 도시 곳곳에 나를 위한 ‘숨구멍’이 필요하다. 저 갯벌의 생명력이 뭇 생명들의 숨구멍 덕분에 살아있는 터전이 되는 것처럼. 이번호 테마는 ‘숨’이다. 겨울은 한 해를 마무리하고, 또 한 해를 준비하는 시간이다. 숨을 고르는 시간이다. 싱어송라이터 한보나, 강원반려동물보호협동조합을 인터뷰했고, 회화작가 한동국의 작업실을 탐방했다. 어떻게 글로벌 복합위기 시대에 숨 쉬며 살아가야 할지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팟-페디아’ 지면은 춘천이라는 도시에서 작은 오아시스 구실을 하는 작은 책방, 작은 도서관 그리고 기록장 등을 집중 소개했다. 지난 10월, 소설가 한 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은 어둡고 답답했던 하늘의 먹구름이 일순 걷히는 듯한 기쁨을 선물했다. 참았던 숨을 내쉬며 내가 여기 살아있다는 환희를 느끼는 ‘숨비소리’ 같았다. 하지만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옳은 것,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을 지키기 위해 나서지 않으면 로컬의 미래는 어둡다. 강원대 오은정 교수와 퍼포머 흑표범이 자신의 숨을 쉬고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짚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오은정은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의 삶이 ‘안도’하는 삶이어야 하고, 도시에서의 삶이 안녕하려면 안전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써주셨다. ‘간증’의 언어로 중학교들과 함께한 예술 수업을 소개한 흑표범의 칼럼이 퍽 흥미진진하다. 중학생들과 풍선을 한껏 불며 ‘악’ 쓰며 샤우팅했던 아이들이 이후에 믿기 어려울 정도로 고요해졌다는 이야기를 주목해 보시라. 숨을 쉬고 산다는 것은 나의 리듬과 여유를 갖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유가 없으면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자신의 선함을 마음껏 발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누군가가 “이벤트와 구경거리에는 관조적인 쉼이 없다”(한병철)고 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끝과 시작이 교차하는 이 겨울, 제발 숨들 좀 쉬고 삽시다. ‘멍상’을 해야 한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편집장
MOMENT
“I’m not a … I’m not a … I’m not a good man. But I’m your friend.” (저는 … 저는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의 친구입니다)
영화 〈그린북〉 대사 중에서
숨이 벅차올라도 괜찮아요 아무도 그댈 탓하진 않아 가끔은 실수해도 돼 누구든 그랬으니까
이하이의 노래 〈위로〉 가사 중에서
오늘 같은 날 마른 줄 알았던 오래된 눈물이 흐르면 잠들지 않는 이 어린 가슴이 숨을 쉰다 고단했던 내 하루가 숨을 쉰다
박효신의 노래 「숨」 가사 중에서
지켜주고 싶은 당신의 틈
아름다운 수궁이었다. 물이 깊고 물풀이 우거지고 물속에서는 밖이 내다보여도 밖에선 안을 잘 들여다볼 수 없는 못. (…) 그런데 삼척으로 돌아온 모든 연어들이 한 번 쉬고 올라가던 그 못이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사람들은 그 최적의 자연의 늪을 불도저와 삽을 동원해서 메워버리고 그 위에 테니스장을 설치했다. 연어의 운명이, 그들의 태반이, 그들의 요람이, 그들의 들이, 그들의 집이, 그들의 고향 모천이, 그들의 여행이, 그들의 길이 테니스장 아래 묻히고 말았다.
“난 그런 걸 바란 건 아니었어.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다”
영화 〈어른 김장하〉 대사 중에서
고형렬, 『은빛 물고기』 중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네가 모르는 전투를 치루고 있다. 친절하라, 그 어느 때라도.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중에서
한국인은 이상하게도 정확하게 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되나 말을 일부러 부정확하게 사용한다. 속일 때 속이더라도 한국인이 되질을 하는 것을 보면 고봉으로 담아서 몇 번이나 흘러내리고 또 흘러내리도록 수북이 담는다. 풍성하게 넘쳐나지 않으면 야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어령, 『우리 문화 박물지』 중에서
“이제야 엄마의 편지가 어렴풋이 이해가 갈 것 같다. 그동안 엄마에게는 자연과 요리, 그리고 나에 대한 사랑이 그 만의 작은 숲이었다. 나도 나만의 작은 숲을 찾아야겠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대사 중에서
슬픔에 빠진 아이는 늘 구석에 가서 웅크린다. 겁에 질린 동물들이 찾는 곳도 구석이다. 세상에서 버려진 기분이 들 때 우리는 구석으로 숨는다. 바슐라르에 따르면 구석이야 말로 안전에 대한 몽상을 충족시켜주는 진정한 집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편안하게 거주한다고 말할 수 있는 곳은 상처받는 순간에 숨을 수 있고 비밀의 은신처가 될 수 있어야 하니까. 어쩌면 집은 “세계 안의 우리들의 구석”이라고 표현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진은영, 『나와 세계는 맞지 않지만』 중에서
숨, 소리를 내어보면 사이가 생각나 손과 손, 귀와 입, 사람, 사람 서서히 스밀 수 있게 천천히 흐를 수 있게 너와 나 사이 부는 바람 숨, 숨
시와(Siwa)의 노래 〈숨〉 가사 중에서
POST BOX
사진 정은자, 주피리오, 김지은, 오시언, 박솔 에디터 정승희
계절 의
끝에서 묻 는 안부
※ Post box는 춘천 시민들이 찍어주신 사진, 보내주신 이야기를 전합니다.
바쁘게 달려온 올 한 해 잠시 멈춰 숨 고르기
옆에 있는 이의 이름을 불러보고 잊고 지냈던 이의 안부를 묻습니다.
우리가 우리였던 때를 기억하고 고마운 마음과 보고 싶은 마음을 고백하는 것으로 가득 채워지는 마음
이 마음으로 새로운 해를 반겨봅니다.
푸른 시절에 만났던 우리
하늘이 높고 낙엽이 떨어지는 계절이 오면 문득 만나고 싶고, 우리의 시절이 생각나. 푸른 시절에 만났던 우리. 루이제 린저와 전혜린에 빠져 있던 우리. 그 시절은 별로 갈 곳도 없던 때였다. 내 기억 속에 너는 참 배려가 많았지. 유난히 잿빛 색 하늘과 안개 낀 도시를 사랑했던 너였지. 지금 난 안개 낀 도시 춘천에 살고 있어.
창원 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해 가면서 한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아이를 키우고 사는 게 버거워지면서 연락이 두절 되어 버렸지.
훌쩍 세월 저편에 와 서 있는 우리. 나는 잘 지내. 지금은 젊은 친구들과 일하면서 잘 지내고 있어. 너도 어디서 잘 지내고 있겠지. 정숙아. 보고 싶다. 지금 만나면 알아볼까. 서로 너무 변한 모습을. 내가 사는 춘천은 온통 노란색이야. 나태주 시인의 시 마지막 구절로 인사할게!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
옛친구 정숙에게 정운자.
정은자 운자는 친구들 사이에서 불린 이름. 축제와 행사를 만드는 나누스페이스에서 일하고 있다.
안녕? 작은 사람
네가 태어나고 나서 귀담아듣지 않던 노래가 선명히 들리는 체험을 종종 해. 오래전 담아둔 플레이리스트에서 Dance With My Father를 들었어.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내용의 가사가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우선 너를 포근하게 안아주고, 애틋하게 눈을 맞추며 안녕을 물어야지. 깊은 마음부터 사랑을 간직하도록. 언젠가 네가 홀로서는 날, 너의 존재 자체가 여전한 나의 사랑임을 느끼길. 그리움으로 시공간을 넘어 네게 닿을게. 노래가 끝나고 뭔가 여운이 남더라고. 그래서일까? 그때 나와 함께 춤춰주지 않을래? 쑥스럽지만, 나도 네게 그리운 사람이 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주피리오 주니어에게 주피리오가.
주피리오 올해 만난 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와 주고 싶은 사랑이 가득한 아빠.
늘 네가 궁금했어
네 편지는 지금까지 내 마음이 기댈 수 있는 튼튼한 벽이 되어줬어.
산 높은 곳에 있던 우리 학교, 기억하지? 춘천의 저녁 풍경을 보며 언젠가 360도 산으로 막힌 이 둥지 같은 춘천을 떠나겠다고
아무도 우리를 모르는 곳으로 날아가 보겠다고 했었어. 서투르게 문장을 적어가면서 이제야 답장을 보낸다. 춘천은 누군가의 고향일 테고, 소중한 늘 궁금했어. 네가 건강하게 잘 지내는지. 포스터물감 같은 너의 색채들로 주위를 어떻게 환히 꾸미고 있을지, 너와 주변의 풍경을 그려보기도 했어. 계절마다 작품 같은 시간이었기를 바래.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너는 일로 타지로 나간다고 했잖아. 이제야 말하지만, 그때 이곳에서 계속 함께 이웃으로 살 수는 없는 걸까 생각했어.
사람들이 있는 곳인데 여행해 본 도시 중에서 사람들과 대화하기 어려운 곳 같다는 기분이 들어. 먼저 고향을 떠났던 너도 이런 기분을 느꼈을까. 편지를 쓰며 네가 느꼈을 감정을 감히 헤아려 보게 돼. 혹시 네 마음과 시간이 괜찮다면, 만날 수 있기를 바랄게. 항상 응원할게! 아니 사실 항상 응원하고 있었어.
학창시절 친구 E에게 지은이가.
김지은 서울과 춘천을 오가는 직장인. 자신에게 맞는 일과 장소를 열심히 탐색하고 있다.
당신이 잘 지낸다면 잘 되었네요. 저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Si vales bene est, ego valeo. 오전 업무 내내 시무룩했던 기분이 산책을 하며 좋아졌습니다. 왜 그랬을까 궁금해하며 고개를 들어보니 오늘 하늘이 참 맑더군요. 당신의 환한 미소가 생각났습니다. 당신의 오늘은 어떠신가요? 맑은 하늘처럼 늘 행복한 미소를 가진 채 살아가십시오.
오시언 춘천에서 직장을 다니고,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다. 다섯 권의 시집을 냈다.
안도하는 마음
당신의 새 애인에 대해서는 지인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늘 맑은 하늘만을 보고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당신의 영원 속에서 단 한 사람의 태양만이 빛나길 바랍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이 잠든 하늘 속 닿을 수 없는 거리에서 어스름히 빛나고 있겠습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7년 전쯤으로 기억해요. 더운 여름날 어느 페스티벌에서 '비온다' 부르는 모습에 온몸에 소름이 돋은 이후로 매년 공연을 찾는 팬입니다. 크게 울리는 사운드, 그 소리를 뚫고 나오는 언니의 목소리, 예상을 벗어나는 자유로운 변주와 스캣에 즐거워하다가 별안간 엉엉 울고 있는 저를 발견해요. 아마도 노래 속에서 ‘잊을 만하면 자꾸 나타나는 어린 내’ 모습을 자꾸 마주쳐서, 나만 삐뚤어진 마음을 가진 건 아니구나, 안도하는 마음에 흐르는 눈물인 것 같아요.
지나간 연인에게 지나간 연인으로부터.
언니의 노래에는 사랑,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선명하게 드러내기엔 조금은 쑥스러운 인간의 내면, 결국 나는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일관되게 담겨 있어 늘 큰 감동과 위로를 받아요. 다음 선우정아의 여정은 어디로 향할까요? 예측불가 변박이 계속되기를 멀리서 힘껏 응원합니다!
노래하는 사람 선우정아에게 박 솔 드림
박솔 평범한 직장인.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들으러 콘서트장에 찾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는다.
THEME PIECES
사진 김효주
당신의 일상에
밝혀진
빛은
어떤 색인가요?
나의 작은 책상을 하나 놓아두어야겠다 지우개똥 수북히 주변은 너저분하고 나는 외롭게 긴 글을 한 편 써야겠다 세상의 그늘에 기름을 부어야겠다 불을 지펴야겠다
‒ 박철의 시 <불을 지펴야겠다> 중에서
SPACE
포토그래퍼 이종희 에디터 권용식
예술이 숨 쉬는 그 곳에서
화가 한동국의 작업실
숨 쉴 공간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예술을 사랑하는 우리는 모두 예술인이다. 전시도 여는 등 시각예술 작가로 성장할 수 이런 예술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춘천에 있도록 지역 예술인을 키우는 역할도 하고 있다. ‘예술소통공간 곳’이다. (이하 ‘곳’) 곳은 6년째 운영 중인 춘천의 대표적인 시각예술 레지던시로, 시각 작업을 하는 쌀쌀한 초겨울의 어느 날, 곳에서 한동국 청년 작가들의 보금자리이자 아지트 같은 작가를 만났다. 공간이다. 곳은 춘천의 청년 작가들은 물론, 작가는 2층 작업실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며 외부 작가들에게 거주비를 지원해 주며 작업을 지원한다. 입주작가 기획전이 꾸준히 열리고 있으며, 지난 가을에도 《숲바닥:포자는 미지의 목적지를 향해
있다.
따뜻한 미소로 환영해 주었다. 한동국 작가는 목탄으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의 삶의 화두이며, 성찰의 도구이다. 날아가고》 전시가 열렸다. 전시는 창작을 작가가 초등학교 4학년 시절, 여느 날처럼 이어온 작가들의 이야기를 담았고
아침을 먹기 위해 할아버지 댁 현관문을 작가들의 작업 공간을 공개하는 아티스트 열었을 때, 할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했다. 그 토크, 오픈스튜디오와 함께 진행되었다.
이후부터 집으로 들어가는 게 두려워졌고 또한 시각 분야 전문 예술인을 희망하는 문을 여는 행위가 죽음을 마주하는 것처럼 청년들을 모집해 예술가로 성장을 돕는 느껴졌다. 그에게 문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멘티가 멘토’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입주작가와 청년들을 만나게 하고 함께
되었고 그는 열면 안 될 것만 같은 칠흑 같은 어두운 문을 그렸다.
예술소통공간 곳 입주작가(2019~) : 이승호, 이덕용, 장우진, 오흥배, 서슬기, 홍기하, 김경원, 김민지, 이한나, 오세경, 성필하, 신민, 최은빈, 한동국, 한선주
목탄은 참 좋은 재료다. 단순하고 명료하다. 숯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사람을 화장시킬 때와 꽤 닮았다. 단순하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같다.
‒ 한동국 작가노트 중에서
비상문, 캔버스에 목탄, 145×112cm, 2023
작가는 목탄만을 사용해서 그림을 그린다. 생각보다 검게 그려지지 않는 까다로운 나무를 태운 게 목탄이듯, 만드는 과정이 특성이 있는데 그는 매우 세밀한 작업도 화장과 닮아있다. 그가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 마치 죽음을 애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목탄은 또한 쉽게 부러지고
목탄을 사용함으로써 작업 과정을 인격적인 성숙과 성장의 과정으로 삼는다.
섬광 속 마지막 산책, 캔버스에 목탄, 73×93cm, 2024
‒ 한동국 작가노트 중에서
핵폭탄이 떨어지기 3초 전 그는 일상에서 죽음을 떠올린다. 어느 소방관이 집을 깨끗하게 늘 정리한다는 이야기가 공감되었다. 대형 작업을 할 때면 목탄이 사방으로 날린다는 이야기와는 다르게 작업실은 무척 깨끗하게 정리
않았다고 덤덤히 말한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작가는 환기가 안 되는 좁은 방에서 목탄과
스프레이 가루를 마시며 작업을 하다보니 점점 답이 없어지고 하기 싫어지는 마음이 정돈되어 있었다. 그는 핵폭탄이 떨어지기 들었다. 그러다 곳에 입주하면서 작업을 3초 전이라는 명제로, 우리의 불안정한
계속 끌고 갈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 삶을 이야기한다. 거창한 게 아니라, 주변 그전에는 체계가 없었는데, 곳에 오면서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대하고 미뤄둔 공부도 하고 사랑도 하자는 이야기를 자신에게 하고 있다.
작업을 준비하고 완성하는 과정에 대한 체계가 생겼다. 동료 작가들도 생겼고, 입주 작가인 한선주 작가와 함께 9시부터 6시까지 시간을 정해 직장인들처럼 출퇴근하며 곳에서 작업한다.
작가는 졸업하고 2년 동안 작업이 쉽지
핵폭탄이 터진 후 번쩍이는 섬광에 파묻히고 있다. 나에게 있어 소중했던 순간들이 폭탄의 섬광을 맞이하는 동시에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그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이곳이 청년 예술인들의 공간이란 점이 좋고, 저처럼 청년 작가들이 이곳에 계속해서 입주해서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예술소통공간 곳 입주작가 정원은 5명인데, 새롭게 작가를 뽑지 않는다는 게 마음에 걸립니다.”
예술소통공간 곳 춘천시 춘천로 112 몸짓극장 옆
작가 한동국 1997년생. 원주 출신. 중앙대 서양학과 졸업
레지던시 예술소통공간 곳, 춘천문화재단, 2024
개인전 핵폭탄 떨어지기 3초 전, 개나리미술관(춘천), 2024 현관문, 개나리미술관(춘천), 2024
단체전 및 기획전 역력, 문화공간역(춘천), 2024 숲바닥: 포자는 미지의 목적지를 향해 날아가고, 춘천문화예술회관(춘천), 2024 나른한 오후, 검은차 한입 머금을 때, 개나리미술관(춘천), 2024
INTERVIEW 1
포토그래퍼 김효주 에디터 이인혜
삶 의 아름다움을
자연 을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 한보나
한보나 싱어송라이터이자 일러스트레이터
2016.10 솔로앨범 〈떠나〉로 데뷔 프로젝트 듀오 ‘모노앤보나’ 메인보컬 활동(-2018.) 〈그 섬을 해치지 마요〉, 〈홀로 남은 새〉, 〈강 길 따라〉 등 15곡 발매 2024.11 춘천 모두의 미술 [처음] - 나의 첫 전시 참여
강아지와 시골에서 천천히 흘러가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다 마음에 닿은 이야기를 노래로 짓고 부르고, 마음에 남는 풍경은 따뜻한 시선을 담아 일러스트로 기록한다. 잔잔하게 흐르지만 반짝이는 물결처럼, 차분한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는 잔잔하게 반짝거렸다.
푸르른 하늘 밑 투명한 강가에 오리가 떠다니고 폭신폭신한 공지천 잔디밭에 노닥거리며 아이 좋아라 한보나, 〈춘천〉 中
먼저, 가수로 데뷔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언제부터 음악을 좋아했고, 기타를 연주했는지도요. 엄마가 기타를 치셔서 어린 시절 집에 기타가 있었어요. 덕분에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 거 같아요. 노래도 어릴 때부터 좋아했고요. 학창 시절엔 성가대 활동도 하고, 가요제에도 나갔어요. 커서는 인디가수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차차 ‘내 노래를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이후 작곡 공부를 하고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취직해 일을 하고 있던 2016년 드디어 첫 앨범을 발매했죠. 가수로서의 시작은 투잡이었어요.
보나님의 노래 중 〈춘천〉이라는 곡이 있어요. 춘천과는 어떤 인연이 있나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춘천에 살다가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대도시로 나갔어요. 그런데 어디든 사람이 들어찬 풍경이 숨이 막힌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유년시절 춘천에서 봤던 탁 트인 강, 푸른 산이 너무 그리웠어요. 대도시에서 오래 살았음에도 나는 이방인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마침 지금은 남편이 된 당시 남자친구가 춘천으로 가서 사는 게 어떻겠냐고 먼저 제안을 하더라고요. 반가웠어요. 〈춘천〉이라는 곡은 타지에서 춘천이 그리울 때 만든 곡이에요. 발매는 결국 춘천에 와서 했지만요.
〈춘천〉 외에도 보나님의 노래에서 춘천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느껴졌어요. 춘천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춘천은 정말 사랑스러운 도시예요. 내가 살고 있는 도시니까 더 사랑해야 하는 곳이기도 하고요. 춘천은 숨쉬기에 참 편안한 도시인 것 같아요. 그렇다고 제 노래를 듣는 모든 분이 춘천만을 떠올리길 원하지는 않아요. 〈강 길 따라〉라는 곡을 듣고 누군가는 섬진강이나 한강 또는 내가 사랑하는 나만의 강과 함께 추억을 떠올릴 수도 있거든요. 감상은 듣는 이들에게 맡기고 싶어요.
〈홀로 남은 새〉, 〈기억, 아름다운〉처럼 자연을 담고 있는 곡들이 많아요. 이유가 있을까요? 어릴 때부터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항상 있었고,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정들이 있어요. 〈홀로 남은 새〉는 새만금을 비롯한 우리나라 갯벌에 찾아오는 철새에 대한 이야기예요. 서식지 파괴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수가 죽어가고 있음에 마음이 아팠거든요. 그 새들이 얼마나 강인하고 아름다운 존재인지 이야기하고 싶었고, 홀로 남겨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힘차게 비행하는 새들의 모습을 담았어요. 〈기억, 아름다운〉은 영화 ‘수라’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간척사업으로 말라버린 새만금 갯벌에 바닷물이 다시 들어오길 기다리며 오래오래 살아 있던 흰발농게를 생각하며 가사를 적었어요. 어릴 적 제가 사랑했던 생명력 넘치는 바다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했고요.
〈만날 수 없는 날〉이라는 곡의 소개를 읽어 보니 이태원 사고의 슬픔을 담은 곡이더라고요. 곡을 소개하는 글에도 심혈을 기울이는 것 같아요.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히 청취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노래 속 스토리를 전달하는 이유는 저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이에요. 저는 저의 노래라는 언어로 개인을 둘러싼 이야기나 환경문제 같은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곤 하는데요. 곡 소개를 관심 있게 본 사람들이 한 번쯤 그 문제에 대해 같이 생각해 봐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곡 작업은 어떤 방식으로 하세요? 가사를 먼저 쓰기도 하고요, 가사와 멜로디를 동시에 떠올리기도 해요. 기타를 치면서 멜로디를 구체화하고요. 강아지와 산책을 하면서 흥얼거리다 녹음을 하기도 해요. 가사와 멜로디의 조각들이 언젠가 노래가 되기도 하거든요. 물론 버리는 것들도 많지만 조각들을 붙이고, 조금씩 다듬어 곡을 완성시키는 것 같아요.
곡을 만들 때 가장 신경쓰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모든 과정에 마음을 쏟아요. 그런데 굳이 하나를 꼽자면 … 가사가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떻게 아름답게 전달할까. 어떻게 하면 듣는 사람의 마음에 녹아 들어가게 전달할까. 저는 노래하는 사람이니까 ‘노래’라는 저의 부드러운 언어로 전달하려고 노력하죠.
모두 다 떠나고 누가 남았을까 조용한 꽃들이 여기 피었는데 아무도 없지만 내가 사랑했던 그 향기 그 온기 아직 여기 그대론데 한보나, 〈사라진 동네〉 中
많은 고민 끝에 노래가 만들어지면, 바로 앨범 발매가 되는 건가요? 전혀 아니에요. 곡을 음원으로 발매하는 것은 또 다른 고민과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해요. 녹음을 해서 길이길이 남긴다는 건 더 이상 수정이 불가하다는 뜻이잖아요. 어떤 방향으로 편곡을 할지, 누구를 연주자로 섭외해서 어떻게 녹음할지, 코러스는 어떻게 입힐 건지, 커버는 어떤 분위기로 할지 등등 녹음한 것들을 편집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쳐 음원으로 발매하기까지는 많은 노력과 결정이 필요해요.
곡이 나오면 앨범 발매는 훨씬 수월한 작업일 줄 알았어요. 그런 과정을 통해 올가을 [반짝이는 물빛들 이어지는 시간들]이라는 앨범도 나온 거군요! 맞아요. 이번에 발표한 앨범은 강이 흘러 흘러 바다까지 가는 모습을 상상했어요. 그 강 주변에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사람들의 삶의 시간이 강물처럼 다 이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사람들은 모두 강과 바다에 관한 추억이 있고 물은 그들의 시간을 품어주고 있는 것 같았고요. 사실 5년 전 춘천으로 돌아왔을 때 자연과 많이 교감하며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는데 결국 관성처럼 바쁜 일상에 빠져 강을 보러 가지 못하고 있더라고요. ‘강과 가까운 곳에 살아도 이럴 수 있겠구나’라는 마음이 들어서 사랑하는 사람과 강 옆에서 살아가는 소중한 일상을 노래로 만들게 되었어요. 우리를 살게 하는 아름다운 기억들이 강처럼 마르지 않고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너의 시선이 머무는 곳엔 조용한 달 짙은 한숨 그리움 모든 것을 알아주는 너 그 강 앞에서 다시 꼭 잡는 손 우리 한보나, 〈우리의 강 앞에서〉 中
싱어송라이터에게 관객과 호흡을 같이 하는 라이브 공연은 의미가 남다를 것 같아요. 어떠신가요? 공연은 정말 긴장되고 떨리면서도 설레는 자리예요. 공연 전에는 커피도 안 마셔요. 혹시 잠을 못 자서 컨디션을 망칠까 봐요. 그런데 공연을 진행하면 이 모든 긴장과 떨림이 아름답게 해소되는 느낌이 들어요. 감사하다는 생각으로 다시 채워지고요. 이렇게 노래를 만들고, 부르고,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잖아요.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전시도 하신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이번 전시의 개인 주제가 ‘숨: 일상속 푸른 숨의 기억’이네요. 어떤 전시인가요? 저는 춘천 외곽 지역에 살고 있는데요. 매일 강아지와 산책을 해요. 그러면서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푸르른 숨을 쉬고, 위로받고, 힘을 얻어 살고 있죠. 음악을 할 때는 종종 어둡고 슬픈 기억과 만날 때가 있지만 그림을 그릴 때는 가장 순수하고 밝은 것들이 꺼내져요. 저의 그림에 담아 둔 행복과 사랑, 일상 속 푸르른 숨을 전하고 싶어요.
보나님이 음악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방법이라고 해야 할까요? ‘숨’을 충전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일상을 잘 사는 거예요. 힘들어도 끼니를 잘 챙겨 먹고, 매일매일 산책을 하면서 계절을 만나고, 텃밭을 돌보면서 생명을 느끼고,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사는 것이 제 음악에 건강한 숨을 불어넣는 방법인 거 같아요. 사실 그게 가장 힘든 일이기도 하지만요.
앞으로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세상엔 정말 많은 가수가 있잖아요. 정말 많은 음악이 있고요. 화려하진 않지만 사람들 곁에 저와 같은 가수가 있다는 것이 잔잔하게 기억되면 좋겠어요.
타지에 다녀올 때면 춘천역에 도착해서야 숨이 트이는 것 같다는 그녀. 집에 가까워질수록 숨이 잘 쉬어진다는 그녀는 풀향기 풀풀 풍기는 작은 새 같았다. 둥그런 춘천을 둥지 삼아 어느 나무 아래에서, 어느 강가에서, 삶의 아름다움과 자연을 노래하는 새. 춘천에 이토록 고운 목소리를 가진 어여쁜 새가 있다는 걸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가 알게 될 것 같다.
INTERVIEW 2
갈 곳 없는
포토그래퍼 이종희 에디터 정승희
유기동물들의 비빌 언덕
강원반려동물보호협동조합
박희진 고양이 춘심이의 보호자. 연극배우
김종선 고양이 깜, 꽁의 보호자. 양서류와 파충류를 게스트하우스 운영, 카페 첨첨을 운영하는 연구하고 있다. 차분함과 든든함으로 팀에 힘을 더하고 있다. 행사 사진 기록을 맡고
전연진 대형견 두 마리, 고양이 6마리를 키우고 있다. 임시 보호하고 있는 고양이의 수는 조금씩 바뀐다. 강원반려동물보호협동조합 등 다양한 일을 넘나들며 동물 보호에도 대표. 동물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관심을 쓰고 있다. 동물들의 구조, 이송을 있다. 2005년부터 동물 보호 활동을 해오고 있다. 맡고 있다.
우리 곁에는 반려동물도 있지만, 버려진 동물도 있다는 사실을 자꾸 잊는다. 춘천에 있는 유기동물을 향해 손을 내미는 팀이 있다. 치료를 도와주고, 보호해주고,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동물들에게 안전한 숨구멍이 되어주는 곳. 강원반려동물보호협동조합의 연진, 희진, 종선과 동물 이야기로 초겨울의 저녁을 보냈다.
강원반려동물보호협동조합의 출발이 궁금해요! 연진 저희는 2021년에 만들어졌어요. 그전부터 동물 보호 활동을 하고 있었기에 조합을 만든 건, 공식적으로 뭔가를 해보자는 의미였어요. 2011년에 ‘춘천유기동물보호연대’ 라는 카페를 만들었는데, 유기동물 구조나 입양에 관심 있는 분들이 많은 문의를 주셨고, 구조와 입양을 꾸준히 해왔어요. 강원반려동물보호협동조합은 특별히 뜻과 마음이 맞는 이들과 함께 성숙한 반려동물 문화를 만들고, 다양한 프로그램 및 행사를 함께 하고 싶어 만들게 되었어요. 지금은 춘천시와 함께 TNR(길고양이 중성화)을 하고 있고, 어린이들과 어른들을 대상으로 생명존중 교육을 하고 있어요. 반려동물 행사도 기획하고, 저희의 도움이 필요한 유기동물 구조, 치료, 입양에도 힘을 쓰고 있어요.
동물 보호에 관심 가지게 된 계기를 듣고 싶어요. 연진 대학생 때 어떤 분이 잠시 일본에 해외 연수를 다녀온다고 제게 고양이 임시 보호를 요청하셨어요. 갔다 오면 다시 데려가시기로 하고요. 그런데 연락이 두절 되고 사실상 버린 고양이가 돼버린 거예요. 이 아이가 저한테 있으면서 고양이에 대한 사랑이 생기니까 한 마리를 더 키울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어디서 데려올까 하다가 춘천에 보호소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찾아갔어요. 그때는 시에서 개인에게 위탁하여 운영하였는데 시설이 너무 열악한 거예요. 그곳에 고양이 하나가 있어 너무 불쌍해서 데리고 왔어요. 데리고 와서 키우니까 아주 건강하고 예뻐진 거예요. 내 손으로 이렇게 좋아질 수 있구나. 재미가 붙어서 한 마리씩 데려와서 돌봐주고 친구가 키운다고 하면 보내주고, 또 한 마리 데려오고 입양을 보내는 일을 했어요.
희진 형부가 군인이에요. 군대에서 자리를 잡고 있던 고양이가 갈 곳이 없어서 제게 오게 되어 처음 고양이를 키우게 되었어요. 야생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있지만, 생각보다 버려지는 아이들도 많다는 걸 알게 되었고, 연진님을 만나며 자연스레 활동하게 되었어요.
종선 처음 고양이를 입양했을 때 단순히 동물이 좋고, 외로움을 많이 타서 데려왔어요. 그 당시에는 고양이에 대해 아는 게 아예 없었고요. 배우려고 춘천에 고양이 키우는 사람들 모임에 들어가서 전연진 대표님을 만나고 동물 보호 하는 단체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어요. 직접 참여하다 보니 보이는 게 많아졌어요. 동물 보호 단체가 어떻게 운영하는지도 알게 되고, 여러 시행착오도 경험하고요. 특히 주민들이나 여러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 간의 마찰도 종종 있는데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어요.
각자의 본업도 궁금해요. 어떤 일을 하고 계세요? 본업을 하면서 동물 보호 활동을 하는 게 힘들지는 않은가요? 희진 본업은 배우예요. 연극하고 있고요. 게스트하우스도 운영하고, 친구들과 카페도 같이 운영하고요. 직업이 여러 개다 보니 내가 진짜로 행복하게 살기 위한 길에 대한 고민이 좀 있었어요. 결론은 힘듦과 행복은 다른 거라는 생각이에요. 힘들 수 있지만, 힘들다고 해서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니라는 거죠. 머리로 알았는데 삶으로 느끼게 되었어요. 체력적으로는 안 힘들 수는 없어요. 사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부터 힘들잖아요. 그렇지만 여러 일들 사이에서 내 삶을 의미 있는 것들로 채워나가는 그 시간이 힘듦에도 행복하기에 버텨낼 수 있는 것 같아요. 힘드냐는 질문보다 행복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좋겠어요.
연진 동물병원에서 간호 일을 하고 있어요. 제가 10년 정도 봉사도 하고, 동물 구조를 하면서 많은
동물의 치료를 맡겨야 했는데 저와 맞는 의사 선생님을 만나는 게 쉽지가 않았어요. 그러다 강남동물병원 원장님을 만났는데 정말 쿨하셨어요. 제가 사회 초년생 때는 비용도 많이 내기 어려웠는데 원장님은 개의치 않으셨어요. 원장님도 사회 환원을 위해 고민하고 있던 시점에 저를 만나서 다행이라는 말씀도 해주셨고요. 그때부터 10년 넘게 같이 동물을 보다 보니까 저도 어느 정도 구조한 동물들 약 먹이고, 간단한 처치를 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그러다가 원장님이 본인 밑에서 더 배우고, 일하라고 권유하셨어요. 저는 수술 같은 경우도 궁금했거든요. 이 아이가 어떤 상태이고,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선생님이랑 같이 고민하고, 공부했어요. 2년 전에 동물보건사가 국가 자격증으로 바뀌어서 다시 열심히 공부해 자격증도 땄고요. 이 일은 돈을 많이 벌거나, 별로 멋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험한 모습도, 죽는 아이들도 최전선에서 많이 보니까요. 그렇지만 저한테는 딱 맞는 직업이에요. 동물들이 나아지는 걸 보는 그 과정이 재밌어요. 그 과정에 제가 있다는 게 좋아요.
종선 양서류와 파충류를 공부하고 있는 대학원생이에요. 20년 전 자연 속에서 사라져가는 뱀, 개구리를 구하고자 시작한 초심을 잃지 않고 현재 학문에 힘을 쓰고 있어요. 개나 고양이, 뱀이나 개구리 등 모두 하나의 작은 생명체이자 동물로써 보호하고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활동하기에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어요.
“여러 일들 사이에서 내 삶을 의미 있는 것들로 채워나가는 그 시간이 힘듦에도 행복하기에 버텨낼 수 있는 것 같아요. 힘드냐는 질문보다 행복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좋겠어요. ”
“동물들이 나아지는 걸 보는 그 과정이 재밌어요. 그 과정에 제가 있다는 게 좋아요. ”
유기동물엔 유난히 고양이가 많죠. 개는 법적으로 보호받지만, 야생 고양이는 그렇지 못하니까요. 길고양이를 보면 많은 생각이 들어요. 길에서 사는 고양이들은 평균 수명이 2, 3년이고 사람들의 개입이 없으면 죽는 경우도 많아요. 그렇지만 어디까지 인간이 개입해야 하는 걸까 고민을 한 적이 있어요. 희진 제가 키우는 고양이도 밖에서 생활하다가 집에 온 경우에요. 집에서 우울해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병원 선생님께 여쭤보니 이런 얘기를 해주셨어요. 인간의 행복과 동물의 행복을 동일시하면 안 된다고요. 우리가 실내에서 사는 게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모든 동물이 실내에 사는 게 안전하고 행복하지 않다는 거예요. 밖에서 살아남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는 아이들이고, 바깥에 위험 요소가 물론 있지만 그곳이 그 아이들의 터전이라면 그걸 인정해야 하지 않냐는 이야기를 해주는데 맞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동물들의 행복이 뭔지를 모르면서 나의 행복을 기준으로 행복을 강요할 수는 없는 거 아닐까요. 저는 꽤 오래 외출냥이로 키우다가 이제 나이가 들면서 집 안에서 돌보는 상황이에요. 인간은 삶에 집착하잖아요. 죽음이 두렵고요. 그렇지만 동물들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연진 2, 3년을 살더라도 동물의 본능을 누리고 생활을 해봤냐 아니면 독방에 갇혀서 올드보이처럼 사료만 먹느냐로 비교해도 좋을 것 같아요. 10년 독방에 갇혀 있으면 행복하게 잘 살고 죽은 거라곤 딱 얘기할 수 없죠. 전자가 나을 수도 있어요. 짧게 살았어도 온갖 것 다 보고, 자기가 해보고 싶은 대로 살아보고요. 제가 동물을 보면 볼수록, 경험하면 할수록 나름의 룰이 있고, 그 안의 생태가 있다는 걸 알게 돼요. 굳이 개입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희진 영 먹을 게 없는 동네면 한쪽 구석에 사료나 물 같은 걸 조금 제공해주거나 너무 추운 날에는 바람막이 할 수 있는 것 정도를 제공하는 정도가 인간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생각해요. 길고양이들이 그다음 해를 또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요.
연진 그것보다 더 넘어서 길고양이를 함부로 집에 데리고 오는 건 어찌 보면 학대라는 생각이 들어요. 버려지거나, 학대받거나, 다친 동물의 인간 가족을 찾아주기도 하지만, 잘 치료해서 원래 장소에 방사하는 경우도 많아요.
지난 10월에는 춘천시 동물보호센터와 함께 유기견 걷기 대회를 개최했다고 들었어요. 소감을 듣고 싶어요. 연진 유기견 걷기 대회 2주 전에 반려동물 문화축제가 있었어요. 그중 걷기 행사가 있어 춘천시 동물보호센터에 있는 아이들도 잠깐이라도 답답한 환경을 벗어나게 해주면 어떨까 요청해서 열다섯 마리와 같이 걷고 나가게 되었어요. 유기견 걷기 대회에서는 보호소에 있는 유기견들을 데리고 나와 걸었어요. 이 아이들을 걷게 해주실 분들을 초청했고, 200팀이 넘게 오셔서 함께 걷는 시간을 가졌어요. 같이 걸었던 분 중에는 직접 데려가고 싶다고 한 분들도 있어요.
희진 인상 깊었던 팀이 하나 있었어요. 강아지 한 마리가 보호소에서 나와서 긴장을 한 거예요. 그러다 보니 훈련사에게 안긴 채로 똥을 싼 거예요. 훈련사님이 이 아이가 긴장을 많이 한 것 같으니 다음으로 넘기자고 하셨어요. 강아지가 너무 안에만 갇혀 있다 보니까 걷는 걸 무서워해서 결국 품에 안은 채 걷고 오셨어요. 그때 제가 표정을 봤는데 정말 정말 행복해하시는 거예요. 강아지도 무척 안정돼 있고 행복했지만, 강아지를 품에 안고 걸은 사람의 표정이 무척 행복해 보였어요. 강아지도, 사람도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는 것만으로 이 행사를 한 의미가 있었어요.
종선 제가 처음 동물에 관심을 가졌을 때도, 펫샵과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는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돈을 주고 고가의 동물을 분양받고 있는 사실에 안타까움이 많았어요. 하지만, 유기견 걷기 대회에 참여한 사람을 보면서 유기동물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많이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를 받았어요. 단순하게 행사로 끝난 게 아니라 이러한 좋은 마음들이 사람들에게 스며 들어가지 않았나 생각했어요.
유기 동물들에게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주는 일을 하시는데요. 가족이 생긴다는 건 엄청나게 새로운 세상을 선물하는 거잖아요. 동물에게도, 사람에게도요. 지금까지 입양을 해오시면서 그 변화를 느끼실 것 같아요. 종선 심경의 변화를 많이 느낀 것 같아요. 첫 고양이를 키울 때는 저도 잘 몰라서 분양을 받아서 키우게 되었거든요. 둘째는 길고양이를 입양하게 되면서 길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게 되었어요.
연진 저는 임시 보호를 하다가 입양을 보낼 때 울기도 하고 그랬어요. 정도 들고, 특별히 예쁜 애들도 있었거든요. 입양을 보냈는데 몇 년 만에 연락 와서 못 키우겠다고 되돌려 가라고 하는 사람들도 꽤 많기도 했어요. 그럼 무척이나 속상하죠. 반대로 제가 10년 넘게 이 일을 하다 보니까 입양할 때 다시 절 찾는 분들도 있어요. 제게 입양 받아 고양이랑 잘 지내다가 10년이 넘어 고양이가 별이 되었는데, 다시 고양이를 입양하고 싶어 제게 연락 준 분도 있었어요. 그때는 또 뿌듯하죠. 그 사람의 10년이 고양이와 함께한 좋은 기억으로 가득했고, 그 기억을 제게 되돌려줬다는 게 무척 고마워요.
희진 사실 저는 길에서 구조된 아이들을 병원으로 이송하는 일을 하면서 손이 덜덜 떨리는 경우가 꽤 많아요. 상황이 안 좋아서 끝났다는 생각이 드는데 병원에서 무사히 치료받고 생명을 보전해서 다시 돌아가면 정말 뿌듯해요. 무사히 치료받고 나가는 아이들 보면서 앞으로 살아갈 길거리의 삶이 너무 고단하지 않기를 기도해요. 때로는 길고양이임에도 사랑을 많이 받아 윤기 흐르는 애들도 종종 있거든요. 그런 애들을 만나면 밖에서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예쁨도 받고, 먹을 거 자는 거 걱정 없이 지금처럼 잘 살기를 바라며 응원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희진 각자의 생에는 각자의 행복이 있다는 걸 꼭 인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제가 응원하는 사회거든요. 나의 행복이 너의 행복이 아니라는 것. 이건 사람에게도 똑같은 것 같아요. 왜 어떤 부모는 자기가 이렇게 살면 행복할 거라는 믿음 때문에 자식들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러다 보면 갈등을 겪기도 하고요. 저는 아직 결혼을 안 했는데 결혼이 행복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저의 부모님은 혼자 살면 행복할 수 없다는 철저한 믿음을 가지고 계셔요. 지금은 웃으면서 넘길 수 있지만 나와 타인의 삶의 행복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사회가 조금 평화로워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타인과 다른 생명체의 행복을 강요하지 않는 사람이 진정한 어른이 아닐까 생각해요.
“유기견 걷기 대회에 참여한 많은 사람을 보면서 유기동물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많이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를 받았어요. 단순하게 행사로 끝난 게 아니라 이러한 좋은 마음들이 사람들에게 스며 들어가지 않았나 생각했어요.”
반려동물과 유기동물은 반대편이 아닌 바로 옆에 붙어있음을 알게 되었다. 유기동물은 언제든 반려 가족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의 가족이 되기보다 단독자로 살아가는 게 더 행복한 길고양이 같은 동물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각자의 생에는 각자의 행복이 있다는 말이 맴돈다. 동물들의 비빌 언덕이 되어주는 이들과 대화하며 동물과 인간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 힌트를 얻어간다.
POT-PEDIA
일러스트 한선주 에디터 이인혜, 박인옥
작은 틈이 모여, 말랑말랑해지는 도시 책이 있는 레푸기움*을 찾아서
* 라틴어로 레푸기움(refugium)이란 피난처, 은신처를 의미하는 단어다.
유연한 도시를 만드는 심폐소생술, 바로 틈을 찾아 숨기! 잠시 숨 고르기를 위해 자신만의 공간으로 피신하는 건 이곳에서 살아가는 데 있어 굉장히 필요한 생존법이다. 그리고 동시에 흙을 뒤집는 지렁이처럼, 영양가 있는 일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이 되기를 멈추고, 잠시 나 자신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곳. 그렇게 찾은 피난처에는 다정함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작은 안식처에는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잃어버린 나를 되찾고, 단절에서 연결로 또는 연결에서 단절로 나름대로의 숨 쉴 틈을 찾아내고야 만다.
우리동네, 책이 있는 피난처에 대한 TMI 1. 네비게이션에 ‘춘천서점’을 검색하면 30개 이상의 크고 작은 서점과 동네책방들을 찾을 수 있다. 2. 춘천에는 보통의 서점, 중고책 서점은 물론 어린이전문서점, 기독교서점, 카톨릭서점도 존재한다. 3. 춘천에 공공도서관은 총 10곳, 사립작은도서관은 16곳이 있다. 4. 춘천 공공도서관 중 도서 수가 가장 많은 곳은 춘천시립도서관이다. (총 257,430권) 5. 춘천시립도서관의 2024년 1월~10월까지의 대출횟수는 305,889회이다. 2023년 총 대출횟수는 315,992회였다. 6. 음료와 디저트와 함께 책을 즐길 수 있는 공간 ‘춘천 북카페’를 검색하면 총 15곳이 검색된다. 7. 춘천시에선 2019년부터 2023년까지 한 도시 한 책 읽기 사업을 진행했다. 지난해 선정도서는 다음과 같다.
(성인)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우종영 지음, 메이븐 / (아동·청소년) 「소리를 보년 소년」 김은영 지음, 서해문집
사라락, 스윽- 읽고 쓰는 나만의 사유의 공간
지나친 소란에서 벗어나, 다정한 활자와 대화하면서 내면의 속삭임에 귀 기울여 보자.
1. 기록장 성장을 기록하기도 하고, 기록으로 성장하는 경험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도시-공간-기록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춘천의 ‘기록장’이다. 각각의 다른 사연들, 다른 시선들이 기록되고, 여러 문화 모임으로 공유된다. 춘천에서의 삶이 따뜻해지는 곳이다. 누군가가 남긴 숨결을 느끼고 싶다면 기록장에 앉아보자. 강원 춘천시 백령로 33-1
2. 담작은 도서관 효자동 벽화마을과 딱 어울리는 예쁜 공간. 좁은 골목길 안쪽 독특한 건물이 눈에 띈다. 마음을 툭 내려놓듯 신발부터 벗고 들어가야 하는 작은 도서관. 구석구석 탐방하는 재미를 주는 내부 공간은 넓지 않지만 책장에 쌓인 수많은 이야기로 무한하게 확장된다. 숲속 구새통에 앉아 책 속에 빠져드는 기분이랄까.
강원 춘천시 효자문길7번길 10
강원 춘천시 춘천로145번길 36
4. 유정북카페 김유정역에 멈춰서 있는 무궁화호 내부에 들어가 본 적이 있는가.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무료 북카페가 숨어 있다. 까치발을 들어 짐을 구겨 넣던 머리 위 짐칸에는 제법 많은 책들이 꽂혀 있고, 드문드문 걸려있는 흑백 사진들이 과거로 시간을 돌려놓는다. 이제 작은 창 앞에 앉아 책을 펴보자. 당신의 기차는 어디로 출발했는가.
강원 춘천시 신동면 김유정로 1435
3. 첫서재 사방이 벽으로 막힌 공간들에 숨이 턱턱 막힐 때, 마당이 있는 나만의 서재가 있다면 얼마나 개운할까. 60년 된 폐가를 수리해 공유서재로 빌려주는 곳이 있다. 예약을 한 날에는 오롯이 나만의 집이 된다. 책을 보러 오기도, 그림을 그리러 오기도, 그저 마당에 앉아 실컷 숨을 쉬러 오기도 하는 이곳은 알음알음 문화예술가들의 충전소 같은 곳이 되고 있다.
5. 본책 시청 옆, 오래된 책 냄새로 가득한 골방 서점이 숨어있다. 책방이지만 책은 판매하지 않는 특별한 이곳. 그저 읽고 싶은 책을 찾아 들고 아무 의자에나 앉으면 된다. 선생님, 공무원, 기자, 신부가 협동조합을 설립해 만든 춘천 최초의 공유책방 ‘본책’은 회원제로 운영한다. 월 1만 원의 회비를 내면 책 대여도 가능한데, 비회원이라면 3천 원에 1회 입장이 가능하다. 몸과 마음을 녹여주는 커피는 그저 덤이다.
강원 춘천시 옥천길 25-1
WALK
포토그래퍼 김효주 에디터 권용식
외딴섬, 강대 로맨틱
✦ 정지용의 시 〈오월소식〉에서 제목 차용
✦
좀처럼 강원대학교 캠퍼스에 가지 않는다. 대학생이 아니기에 당연한 걸까. 적지 않은 시간을 캠퍼스에서 보냈는데 일상에서 단절되었다는 건 아쉽게 느껴진다. 효자동 주민이라면 산책하듯 왔겠지만, 학교에 올 일이 거의 없거니와 도서관 출입이 불가능하고, 학교를 차로 지나가더라도 통행세 같은 주차료를 내야 한다. 어느 날에는 캠퍼스 옆을 지나면서 학교가 마치 섬처럼 느껴졌다. 춘천시 도심 한 가운데 효자2동 절반을 차지하는 섬. 도심은 점점 늙는다는데, 캠퍼스만큼은 젊음으로, 청춘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듯하다. 마치 다른 공기가 흐르는 것 같다.
대학 시절이 그리운 건, 청춘이 그리운 이유와 같다. 사회에 나오기 전에 순수했던 자기 모습이나, 온전히 사랑에 몰두하며 보낸 시간이 그리울 수 있겠다. 그렇다. 대학은 결국 대학생의 공간이다. 청춘들이 자유롭게 사랑하기 좋은 장소인 셈이다. 짝사랑했던 누나가 있었다. 스무살 갓 학교를 들어갔을 때, 미대 교양 수업을 들었다. 호모 에렉투스라는 책을 쓴 교수님이 수업을 했고, 철도의 역사라는 책을 읽으며 공부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책은 지루했지만,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본 게 그때가 처음이었다. 우리도 그림 속 새벽의 쓸쓸한 사람들처럼 카페에 앉아 시간을 보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추억을 회상하며 오랜만에 문화예술대학에 들어가보았다.
학기말 대학은 졸업전 준비로 치열했던 흔적이 가득했다. 복도에는 이젤과 캔버스가 수북히 쌓여있었고, 화실 문에는 마치 보물을 숨겨놓은 듯 관계자 외 출입금지, 법적 조치와 관련된 문구들이 큼지막하게 적혀 있다. 졸업전은 미술관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었다. 작품들이 보고 싶어졌다. 오랜만에 천지관에서 학식을 먹고, 전시를 보러 동문쪽으로 걸었다. 별도(별관도서관)와 산림대(산림환경과학대학)가 나온다. 별도에서는 밤을 새워 공부를 하고 시험을 망친 기억과 산림대 옥상에 몰래 올라가 별을 봤던 기억이 났다. 이제는 안전 때문에 옥상 출입은 불가능할 테다. 강원대 미술관은 처음 가보았다. 전시실은 아직 채 마르지 않은 유화 냄새로 가득했다. 학생들이 남긴 작품과 작업을 응원하는 선물들이 작품 아래 놓여져 있다. 첫 전시를 시작으로 이들 중 누군가는 예술을 사랑하는 작가로 살아갈테다.
연적지에 달이 떠있을 때, 누군가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요령이 없고 환상이 가득한 시절이었다. 같은 동아리였던 그녀와는 아주 오랫동안 볼 수 없었다. 초겨울에 접어든 연적지에는 커플이 군데군데 앉아 있다. 쌀쌀한 날씨 탓인지 그들의 거리는 더 가깝다. 연적지를 둘러싼 숲에는 구석구석 벤치가 꽤 많이 숨어 있다. 얼마나 많은 커플들이 벤치에 앉아 사랑을 속삭였을까. 학교 운동장을 걸으며 산책하는 커플, 통금시간에 맞춰 기숙사에 데려다주며 아쉬워하거나, 통금시간이 끊겨 로비에 함께 앉아 새벽을 새는 커플, 함께 수업을 듣고 함께 공부하는 연인들이 캠퍼스에 있다. 이제는 중앙도서관 앞 계단에 포스트잇으로 거대한 하트를 만들어 고백을 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사랑은 필요하고, 캠퍼스는 청춘이 사랑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다.
p.s 같은 단과대학을 나온 아내와는 사실 학교에서 마주쳐 본 적이 없었다. 이제는 아내와 종종 학식을 먹으러 강대에 가고, 산책을 다녀야겠다. 사랑이 가득한 캠퍼스에서.
PLAYGROUND
어쩐지 근사한 소도시에서의 삶
#8. 책상 아래 비밀의 문
글·그림·사진 공혜진(일상기록공작가)
상자라면 일단 들어가고 보는 고양이에게 택배상자를 접어 집처럼 만들어주다가 문득 작은 상자에 몸을 구겨 넣듯이 들어가는 고양이의 마음이 궁금해졌다. 들어가면 몸이 꽉 끼어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작은 종이 상자의 어디가 그렇게 좋은 걸까?
고양이의 상자 취향이 궁금해서 상자를 크기별로 준비하고 어느 쪽으로 먼저 들어갈 것인지를 본적이 있다. 고양이는 신기하게도 커다란 상자보다는 눈으로 볼 때 자신보다 조금 작게 보이는 상자를 선택했다. 몸의 모든 부분이 상자의 벽면에 닿고 고개를 낮게 숙이면 눈이 밖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의 크기를 선택했다. 고양이의 유전자에 기본적로 포함되어있는 습성이 작용했을 테지만, 어쩐지 나는 고양이의 마음을 알 것만 같다. 내가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공간은 남들이 보기에 크고 근사한 곳이 아니라 구겨져서 들어가더라도 내가 선택하는 편안한 공간,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곳이면 되는 것이 아닐까?
유난스레 아까워 보이는 흰색의 택배 상자를 보다가 문득 나도 그런 공간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골판지 끝에 난 작은 구멍에 동네를 걷다가 데려온 작은 식물들을 꽂아보았다. 동네를 걷다가 각종 틈에서 나온 작은 풀꽃들을 하나둘 데려와 선반에 올려 두었었는데, 홈이 맞는 똑딱이 단추를 잠글 때처럼 딱 맞아 들어갔다. 상자를 방의 책상 아래 구석에 넣어두고 한 번씩 책상 아래에 들어가서 보곤 했다. 가끔은 책상 아래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상자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풀꽃 하나가 들어가는 작은 상자가 있고 없고는 너무도 다른 문제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상자에 넣어 깊숙한 곳에 숨겨두는 마음 하나만으로도 내가 숨을 공간 하나를 만든 것과 같은지도 모른다.
COLUMN
춘천의 오늘을 연결하는 숨 들
글 오은정 / 강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오늘 김밥〉은 점심 수업이 끝나면 들르는 단골 밥집이다. 오래되었지만 아직 쓸만한 냉장고, 에어컨, 김치냉장고, 세탁기, 전자렌지 중고제품이 길게 늘어서 있는 알뜰매장 옆에 있어 눈에도 잘 띄지 않는 조그마한 가게다. 소박하지만 정갈한 식당의 순두부찌개는 아직 6천원이다. 음식 솜씨가 좋고 부지런한 사장님은 매번 직접 만드신 반찬들을 함께 내어놓으신다. 마른 호박 나물, 명이와 갓 장아찌, 계란 장조림, 사과 마요네즈 샐러드, 총각무 김치, 감자조림, 어묵볶음. 손님이 각자 가져가게 두었는데 이것저것 담기에는 낸 돈이 너무 적어 겸연쩍다. 최근 기타를 배우기 시작해 참으로 재미가 있다는 단골 손님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면서도 파를 다듬는 사장님의 손놀림은 숨 돌릴 틈 없이 분주하시다. 육개장의 토란대를 골라 먹으며 마을 조사를 위해 들렀던 신동면의 산골 할머니를 생각한다. 산에서 뜯은 고사리, 남새밭에서 기른 채소를
중앙시장에 나가 파신다. 새벽녘 제일 이른 〈봄봄〉 마을버스를 타고 나가 어스름한 저녁이 되어야 돌아온다. 마을버스는 산골 할머니들에게 가장 필요한 스마트 모빌리티다. 버스가 어느 시간에 마을에 들어오고 나가는지 다들 훤하다. 마을버스에 탄 이웃 동네 할머니들과 왁자지껄 인사를 주고 받는 할머니의 달뜬 숨소리를 떠올린다. 할머니들이 이제는 나물을 캐러 가지 않는 앞산에는 100미터 정도 되는 커다란 굴뚝이 생겼다. 춘천시 환경사업소에서 쓰레기를 태우고 나오는 연기가 배출되는 곳이다. 환경부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춘천의 29만 인구가 배출한 연간 생활폐기물은 12만 2000톤, 그중 재활용 쓰레기가 3만 2,000톤, 소각 쓰레기가 5만 톤, 매립 쓰레기가 1만 7,000톤, 음식물 쓰레기가 2만 3,000톤이다. 춘천 시민 한 명이 하루에 약 0.8kg 정도의 쓰레기를 버리는 셈이다. 춘천 시내에서 버려진 이 많은 쓰레기가 향하는 곳이 신동면 혈동리 환경사업소다. 1998년 매립장을 시작으로 2011년부터는 폐기물 소각도 진행되고 있다. 춘천 시내의 깨끗한 거리는 이른 새벽부터 도심 곳곳의 쓰레기를 수거하는 미화원, 재활용품을 선별하고 밤낮없이 소각로를 가동하는 노동자들의 고되고 더운 숨으로 만들어진다(『녹색평론』 178호, 양창모, “수면 아래의 삶과 기본소득”). 소각로 남쪽으로 이리저리 겹쳐 있는 산 가운데 하나는 채석장을 품고 있다. 1990년대 초부터 이곳에서 채취한 골재는 지금도 춘천 시내의 여러 건물과 도로를 짓는 데 쓰인다. 채석장에서는 매일 정오에 발파작업이 이루어진다. 근처 마을 사람들은 이제 점심을 알리는 소리로 받아들이지만, 처음에는 발파 소리가 날 때마다 놀란 숨을 삼켰다. 이곳에서 캐낸 돌들은 다른 곳보다 방사선량이 높게 측정되어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인 2010년대 후반 이를 감시하는 춘천방사능시민감시단 활동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 활동은 현재
골재로 만들어지는 콘크리트와 건축물을 생활방사선법상의 원료물질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소송으로 이어졌다. (『경향신문』, 2023/7/11). 식사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오는 길가 화원 앞에는 가지런히 쓸어모아 하트 모양이 된 노란 은행잎 더미 위에 작은 인형이 찰나의 숨을 내쉬고 있다. 가을은 더 짧아져 활엽수의 단풍이 다 들기도 전에 흰 눈이 나무에 소복이 쌓였다. 오후에는 ‘강원 지역사회와 기후변화’ 수업을 진행한다. 교실에는 활기차게 떠드는 학생들의 입김으로 가득하다. 춘천의 연평균 기온은 11.5°C이지만 1월 평균 기온은 –5°C, 8월 평균기온 25°C로 30°C나 차이가 난다. 평균 기온은 50년 전에 비해 0.5°C 이상 상승했고, 강수량 변화는 크지 않지만 강수 패턴은 불규칙해졌다. 여름 홍수는 국지적으로 단시간에 집중되는 경우가 많아 산사태 발생 빈도가 높아졌다. 분지 지형에 댐이 많아 공기 정체가 심한 춘천의 도시 구조상 폭염일수가 늘어 온열질환 발생 빈도도 높아졌다. 학생들은 도심 공원을 조성해 작은 물길과 바람길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탈석탄 기조에 따라 탄광이 폐쇄되고 있는데 춘천에는 아직 연탄을 연료로 하는 고령 가구들이 많아 대책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있다. 노선이 적어 불편한 춘천의 공공 모빌리티의 확장도 필요하단다. 2년 전 힌남노 태풍으로 온 도시가 침수되어 많은 인명피해를 입었던 포항시가 지속가능한 물순환 도시를 조성하고 있다는 사례가 제시된다. 광우병 사태와 화물연대파업을 겪으며 전환도시 운동을 시작한 영국의 토트네스의 실험, 에콰도르의 ‘부엔 비비르(Buen Vivir, 좋은 삶)’를 위한 파차마마(Pachamama, 어머니 대지) 정신이 새겨진 2008년 신헌법 제정 운동과 2023년 야수니 국립공원 원유채굴 반대 국민투표 사례도 알아본다.
결국 기후변화는 단지 온도 상승이라는 대기물리학적인 현상만이 아니라, 화석자본의 전지구적인 대량 채굴-생산-소비-폐기 체계의 필연적인 부산물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불행하게도 자연을 사물화시키고 그로부터 분리된 근대적인 인간 주체(서구/백인/남성)의 지배력과 예속화가 심화될수록 가장 가난하고 주변적인 이들에게 그 피해가 불평등한 방식으로 전가된다. 호주의 여성주의 철학자인 발 플럼우드(Val Plumwood)는 이 문제와 대면하기 위해서는 서구적 인간- 자연관을 넘어 “인간은 생태적 존재로, 비인간은 윤리적 존재로 (재) 위치”시키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지구타자(earthothers)를 서로 연결되어 있는 “관계적 자아(relational self)”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연결된 존재들의 목소리를 경청(attentive listening)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그레타 가드, 『비판적 에코페미니즘』) 숲과 물이 가까이 있고, 도시와 농촌이 가까우며, 아직은 대도시의 빠른 리듬보다는 조금 더 여유가 있는 도시. 분주하게 음식을 준비하시는 사장님과 오늘도 나물을 다듬어 시장에 나가는 버스에 오르는 할머니, 새벽녘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쓰레기를 수거하는 미화원 덕분에 평안하게 움직이는 도시. 기후변화의 속도를 체감하는 지금 춘천의 평범한 오늘이 더 나은 방식으로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어떤 관계들이 더 구축되어야 할까? 사람이 다른 사람, 그리고 생물과 무생물, 공기와 물, 지구를 구성하는 모든 물질과 서로 얽힌 존재이며 서로의 신체를 횡단하며 관계 맺는 존재로 이해될 때, 우리는 이 도시의 사물, 먹거리와 공기, 골재와 건물, 상품과 쓰레기의 흐름에 더욱 주의를 기울일 것이다. 지금 이토록 평범하다고 여겨지는 일상, 나의 몸과 마음으로 연결되는 숨들과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작은 움직임에 감응하며, 그로부터 요청되는 관계들을 맺어보기로 하자.
WIDE
겨울밤, 신호등 앞에서 별빛의 악!(ARGH!)이 들리나요?
글 흑표범 / 퍼포먼스 미술 작가
퍼포먼스 미술 작가인 나는 서울 끄트머리에 살고 있다. 중심부보다는 살기 만만하다 해도, 여기도 보통 번잡한 것이 아니다. 집에 돌아가는 밤길엔 차들의 소음과 눈이 시릴 정도의 불야성이 달려든다. 어느새 겨울이 왔다. 이제 밤은 까맣게 깊어져야 하지만, 대도시는 자연의 순환이 주는 검은 여백조차 허락하지 않고 인공의 빛으로 메꿔버린다. 신호등 앞에 서서 눈이 부신 나는 그러나 차에라도 치일까 누군가 시비라도 걸까 잠시 눈을 감을 여유도 없이 피로한 눈을 뜬 채로 별빛을 떠올린다. 어느 고요한 시골 밤 작은 별빛이라도 알고 지내는 듯이 헛헛한 마음으로 그리워한다.
겨울은 순수 작업을 하는 나 같은 작가들에게, 한 해의 일정이 모두 종료되고, 다음 해의 사업을 기다리는 보릿고개다. 이 시기를 잘 버텨야 한다. 버틴다는 것은 알뜰살뜰 살림을 아끼며 수입이 없는 시간을 견뎌낸다는 것도 있지만, 전시 등의 공식 활동이 없고 언제 다시 전시가 열릴지도 막막한 동굴의 시간 동안 꿋꿋하게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 더 크다.
돌아보면 첫 개인전을 열고 미술 작가로 살기 시작한 지 벌써
‘언젠가는.’
20년이 흘렀다. 쏜살같이 흐르는 시간 동안 나는 내내 퍼포먼스 미술을 했다. 팔기도 어렵고, 제도권 안에 영입되기도 어려웠는데, 고집스레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왜였을까. 이십 대에는 허황된 욕망이 있었다. 욕망은 도깨비 방망이처럼 막연하기에 막강했고, 현실의 고달픔을 무작정 견디게 했다. 나는 단순히 말했다.
삼십 대는 어느 정도 현실을 분별하게 되었고, 다른 길로 가기엔 이미 늦었다는 두려움이 컸다. 두려움 또한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큰 동력이다. 막연한 욕망과 밥벌이의 두려움 사이에서 예술은 예술교육으로 이어졌다. 그즈음 지금은 사라진 아쉬운 사업, 서울문화재단의 “예술가교사(Teaching Artist)”가 시작되었다.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과 둘 셋이 팀을 이루어, 중학교 수업에 투입되었다. 작업과 병행할 수 있는 생업에 뛰어든 것이었지만, 작업과 교육이 순환하며, 인문학적 접근과 예술적 상상력으로 청소년과 미적 경험을 만든다는 사업 취지가 좋았다. 이때의 경험은 예술이 공동체 감각을 어떻게 형성할 수 있는지, 사람이 예술을 통해 어떻게 성장하고 서로 만나는지에 대한 공부가 되었다.
“우리도 이런 교육을 받았으면 달랐을 텐데.”
예술가교사 대부분이 90년대에 학교를 다녔고, 줄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체벌을 받았던 억압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했기에 십 년 전 우리는 이 사업을 무척이나 획기적으로 느꼈다. 지금은 오히려 무너진 교권과 교육을 서비스처럼 생각하는 일부 학부모들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지만.
“자, 하나, 둘, 셋에 이 마음 오브제를 빵 터뜨리며 다함께 소리를 질러 볼게요. 내 안의 부정적인 감정을 다 내보낸다고 생각해 보세요. 하나, 둘, 세엣~! 으아악!!!!!”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악악악!!!!!!!!!!!!!” 한번은 중학생들과 과자 봉지나 재활용 비닐 등에 숨을 불어넣어 각자의 마음 모양을 만들고, 공기로 부풀어 오른 그 오브젝트들을 교실 바닥에 설치한 뒤 동시에 발로 밟거나 몸으로 뭉개 터뜨렸던 적이 있다. 열넷, 열다섯 살의 청소년들은 숨 막히게 바쁜 일과에 쫓기듯 살았고 학업과 가족, 친구 문제 등으로 스트레스를 앓고 있었다. 각자 마음속의 불안과 공포, 분노 등 부정적인 감정을 호흡으로 형상을 만들고 그것을 터뜨리며 해소하는 과정이었다. 공기가 가득 든 봉지들이 일제히 터지며, 굉음에 가까운 모두의 악~~~~!(ARGH!) 소리는 학교를 뒤흔들었다. 옆 반에 졸고 있던 사람이 있다면 미안한 마음이다.
겨울 밤하늘 외로운 별빛은 사실 수십억 년 전 지구가 존재하기 전 은하에서 출발한 별빛이 이제야 내 앞에 도착한 것이라고 한다. 그 후 별은 어떻게 되었을까. 만일 별이 폭발했다면, 내가 아니라 다시 수백 년의 시간이 지나고서야 후손이 별의 죽음을 알게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바라보는 이 별빛은 사실 기적 그 자체이다.
고마워.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발산하려는 듯이 악을 쓰고 난 뒤, 그들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요해져 있었다. 코로나 이전을 떠올려보라. 악동들과도 같은 중학생의 평소 모습을 생각하면 그때의 정적은 정말 놀라운 순간이었다. 모두의 얼굴은 금방의 흥분으로 고양된 동시에, 마치 깊은 요가 수행이라도 마친 듯이 맑은 기운이 흘렀다. 비로소 우리는 자기 자신과 예술 행위를 연결해서 감각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로에게 깊게 연결된 상태로 다음 활동을 이어나갔다. 이 기억은 내가 청소년들과 시도하였던 많은 과정 중에 하나로, 사실 메인 활동이기보다는 몸과 마음을 이완시키는 준비 단계의 과정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이 기억은 계속 선명하게 남아있다. 아마 나 스스로 가두었던 예술의 틀에서 처음으로 벗어났던 경험이자 본능적으로 예술교육에서 무언가 다른 것을 느꼈던 첫 기억이었을 것이다. 그날 학교를 나와 집으로 가는 내내 알 수 없는 쾌감을 느꼈다. 그날의 함성에 무언가 깨어났다.
도시의 하늘에서 더 이상 별이 보이지 않는 원인으로 눈이 아플 정도로 요란한 ‘빛 공해’를 지적한다. 그런데 막상 우주선을 타고 대기권 밖으로 나가면 빛이 굴절될 공기가 없으므로 별은 반짝거리지 않고 가만히 빛나 보인다고 한다. 별과 나 사이의 시간과 거리, 환경 문제, 중력 등등 우리가 만날 수 없는 수많은 경계가 있지만, 내가 별빛을 보려고 하지 않고 들으려고 하면 어땠을까. 눈을 감는 용기를 낸다면, 그건 적어도 새로운 나를 만나는 기회가 된다. 사십 대가 된 지금은 그저 미술을 계속 할 수 있는 것 자체에 마음을 둔다. 예술 워크숍을 비롯해 생계를 위한 미술 노동의 기회와 그 속에서 시간을 쪼개 느리지만 꾸준하게 이어나가는 하루하루의 작업 행위를 소중하게 바라본다. 과거의 나보다 욕망과 두려움이 작아진 만큼, 내 몸의 속도와 에너지도 줄어들었다. 대신 자기 리듬의 숨을 쉬면서 계속 나아가는 연습을 한다. 멀리서 나는 드디어, 포기하지 않고 길을 탐색해 온 나를 알아본다.
흑표범, 24년 11월, 서울에서
참조 [네이버 지식백과] 별빛 - 지금 보는 북극성은 430광년 전의 빛이다. (대단한 하늘여행, 2011. 4. 8., 윤경철)
SCENE 1
에디터 권용식
훨훨 아이들의 꿈은 날개를 달고
꿈
의
극
단
다른 누군가로 살아보는 경험. 악당이 될 수도, 주인공이 되어볼 수도 있는 연극은 놀이처럼 즐겁다. 무대 위에서 마음껏 끼를 뽐내는 배우들을 보며 그들의 삶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다. 연극은 좀처럼 경험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 꿈의극단의 정식 사업명은 2024 꿈의극단 〈즐거운 연극교실 춘천–몸으로 쓰는 편지〉이며, 2024년 9월부터 11월까지 진행된 아동·청소년 대상 연극교육 프로그램이다. 꿈의극단 홍보대사 극단 즐거운 사람들이 춘천문화재단과 협력하여, 이중섭 화가의 작품을 모티브로 마임과 인형을 응용해 총 8회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축제극장 몸짓에서 연극 무대를 선보였다.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최, 주관했다.
즐거운 사람들의 꿈의 극단 *
극단 ‘즐거운 사람들’은 춘천 어린이 14명과 함께 ‘즐거운 연극 교실’을 운영했다. 영화배우가 꿈인 어린이, 무대에 서는 게 좋고 자신의 연기를 보여주고 싶은 어린이들이 자발적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아이들은 연극 교실을 통해 연극을 다양한 매체로 이해하고 배워보고 실제로 공연까지도 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연극 수업에서는 호흡과 발성, 동작까지 연극의 기초에 대해 이해하는 전문적인 과정부터 놀이하듯 이야기를 만들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물과 수증기를 온몸으로 표현하는 법, 몸으로 쓰는 편지 등 창의적인 방식으로 몸을 이용해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다.
아이들과 함께 한 선생님, 김선혜 인터뷰(연극 연출, 주강사)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시간을 많이 보내셨을 텐데 소회 부탁드려요. 오디션 현장에서부터 주저함 없이 마음껏 표현하는 모습이 너무 멋졌어요. 연습하는 동안 서로를 챙기는 모습과 대본 모둠을 스스로 꾸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작품이 잘 나오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도 작품이 정말 잘 나왔고요. 그렇죠?(웃음)
아이들 절반이 주인공을 원해서 정말 난감했어요. 누구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건, 저 역시도 마찬가지지만요.(웃음) 고심 끝에 아이들 서로가 심사위원이 되어 오디션을 보기로 결정했죠. 누가 주인공에 적합한지, 지원자들이 어떤 배역에 어울릴지 토론도 진행했어요. 평화로운 방법으로 모든 배역을 정하고 캐스팅을 마무리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연극뿐만 아니라 진행 과정도 멋진데요. 수업하면서 아이들이 꼭 배웠으면 하는 게 있었을까요? 수업을 구성할 때 아이들이 자신의 가치관을 스스로 표현할 수 있도록 진행해요. 남들과 다른 나만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거죠. 왜냐하면 연기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는 배우 자신이기 때문이에요. 같은 대사라도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거든요. 하나의 배역은 존재하지만, 배우는 단 한 명밖에 존재하기 때문이고요. 아이들이 일상에서도 연극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색다르고 재밌게 바라봤으면 좋겠어요. 상상력과 창의력, 표현력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연극이라는 판타지를 경험했잖아요. 연극에서는 상대방의 감정을 알아야 나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어요. 연극에서 경험했던 다양한 감정 표현을 일상에서도 표현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의 꿈의극단 4행시 꿈 꿈 같은 시간이에요 의 의도하진 않았지만 이제 꿈이 생겼어요 극 극 속에서 내 모습을 멋지게 만들어 가는 이곳! 단 단같이 외쳐볼까요? 꿈의 극단 파이팅!
꿈을 짓는 아이들 *
* 꿈을 짓는 아이들 김수지 · 김예지 · 김하늘 박산호 · 박소연 · 박연우 이루리 · 이예린 · 이우진 이재인 · 정해인 · 한재현 홍다예 · 최수아
아이들은 직접 연극을 만들어 보는 시간도 가졌다. 등장인물 간의 관계가 어떻게 되고 전체적인 이야기를 함께 만들었다. 반복연습을 통해 작품을 완성해 나갔고, 최종 리허설까지 진행하며 꿈의 극단은 공개 발표회를 열었다. 김병호 예술감독(꿈의극단 홍보대사, 극단 즐거운사람들 단장)은 이중섭 그림 속 아이들 모습에서 행복을 보았다. 현실의 고통 앞에서 아이들에게 밝은 희망을 보고 그림으로 전했던 그의 마음을 극으로 풀어내려고 했다고. 예술감독은 아이들이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도 행복하기를 상상하며 대본을 썼다. ‘꿈의 나라로 총총 나아가길 바란다.’
연극은 아이들이 달님과 함께 춤추고 소원 빌고 꿈을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아이들은 달님과 숨바꼭질하며 미래를 만나기도 한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따뜻한 꿈을 꾸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개성 있는 연극 배우가 된 아이들의 메시지 “처음 무대에 서게 됐는데, 생각보다도 더 많이 떨렸지만, 너무 재밌었어요. 기회가 있다면 다시 도전하고 싶어요.”
“사람들 앞에서 발표해 본 게 동아리 발표회밖에 없어서 많이 해보고 싶었어요. 이렇게 하게 되니 재밌어요. 악역을 한 번 해보고 싶어요!”
“맨 처음에는 연극에 대한 관심이 엄청나게 많았어요. 여기서 배우고 나서 앞으로 어떻게 배울지 기대가 되고, 또 연극을 한다고 하니 저도 한 번 주인공이 되고 싶어요.”
훨훨 아이들의 꿈은 날개를 달고 꿈을 짓는 아이들의 꿈은 어떻게 피어날까. 아이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연극을 통해 아이들의 꿈이 더 즐거워졌으면. 연극을 통해 더 신나는 세상을 그려보았으면.
SCENE 2
숨 한 번 고르고, 첫발 딛기
포토그래퍼 이종희 에디터 이민율
2024 춘천 모두의 미술 - 처음
우리는 처음을 동경해 우리는 처음을 사랑한다. 모든 남자의 이상형은 ‘첫사랑’이고 좋은 ‘첫인상’은 앞으로의 날들을 좌우한다고 믿는다. ‘첫 만남은 너무 어려워! 계획대로 되는 게 없어서’라는 아이돌 노래가 올한해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처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시소를 탄다. 설렘으로 부풀어 올라가는 듯하다가도 걱정과 불안에 금방 곤두박질치는 상황이 그려진다. 이런 짜릿한 경험 때문일까? 모든 처음은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다. 나의 경우, 대체로 못생기고 어설픈데 사랑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래도 용서가 되는 건 처음이 주는 순수함과 그 순수함에 대한 동경 때문이겠지.
우리가 생각하는 ‘처음’ ‘처음’은 이번 2024 춘천 모두의 미술 전시회의 이름이기도 하다. 전문작가, 시민작가, 학생들까지. 참여작가만 225명, 작품 수는 379점에 달한다. 각자가 생각하는 ‘처음’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이다. 전문작가들은 예술의 길을 걷기 시작했을 무렵의 다짐을, 첫 전시에 참여하는 시민작가들은 자신만의 개성을, 꿈을 그리는 학생들은 설렘과 열정을 담았다.
처음의 작은 불씨 전시장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춘천에서 오랜 시간 활동해 온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첫 작품이라기보단 ‘초기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작가들 본인이 인정하는 열정과 애정을 담고 있는, 예술가로서의 인생에 전환점이 되어준 작품들이 걸려있다. 작가들의 활동 기간에 차이가 있는 만큼 작품들의 제작연도 역시 제각각이고 제작 방식도 모두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작품들에선 시간을 넘어오는 의지가 느껴진다. 과거 어느 한 시점, 한 개인의 예술혼이 네모난 틀 안에서(또는 네모난 좌대 위에서) 아직도 따뜻하게 불씨를 태우고 있다. 꺼지지 않는 작은 불씨는 계속해서 창작을 이어가는 근원이 되기도 하고 타인의 마음으로 옮겨붙어 또 다른 누군가의 처음, 시작이 되기도 한다.
다시 1학년 마음에 작게 타오르는 불씨를 안고 걸음을 옮기면 ‘후후’하고 숨을 불며 불씨를 키워내는 학생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춘천중학교 1학년 공공디자인반 학생 53명이 함께 만든 작품이다. 작품은 아이들의 감정을 적은 시로 구성이 되어있는데, 전시장 한 벽면을 가득 채운 문장들을 보고 있자면 거대한 귀여움에 굳었던 얼굴이 무장해제 된다.
“6년이 지나고 다시 1학년” “중간고사도 처음이었다. 성적표를 받은 것도 처음이었다. 엄마에게 혼이 난 것도 처음이었고.” “1학기는 지났고 2학기부터” “중학교에 와서 너를 처음 보았다”
‘그래 처음은 이런 거였지’하는 생각과 함께 아무것도 몰랐던 1학년, 사춘기 시절의 잊고 있던 설렘과 약간의 수치가 저 멀리서 달려오는 기분이다. 이렇게 나는 타인의 ‘처음’을 통해 내가 가졌던 설렘을 다시 상기시킨다.
전시장 한 켠 나의 첫 공간 전시장의 마지막 공간으로 걸음을 옮기면 규칙적으로 배치된 13개의 작업대를 만나볼 수 있다. 일정하게 놓인 작업대와는 반대로, 작업대 위 작품들의 모습은 저마다 개성이 뚜렷하다. 회화 작품에서부터 화분, 뜨개실로 만든 작품, 음악CD까지. 전시 참여가 확정되고 시민작가들은 주어진 시간 동안 저마다 정성과 열정을 작업물에 쏟았다. 자신 안에 있는 예술성을 직면하고, 그걸 ‘나답게’ 다듬어서 세상에 내놓은 작품들은 저마다의 고유성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렇게 전시장 한 켠의 공간을 당당하게 차지한 작품을 통해 그들도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새로운 첫발을 내딛은 것이다.
모두의 처음 이번 전시를 보며 타인의 처음을 관찰하고, 나의 처음을 돌아보고, 다가올 우리의 처음을 상상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처음’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감각하게 된다. 우리는 처음을 단순히 ‘첫 번째 시도’에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애정 또는 열정이라는 요소가 섞인 그 시점부터를 ‘처음’이라고 생각하는구나. 또는 그렇게 여기고 싶어 하는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그리고 “한 순간으로 휘발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국면을 열고 지속해가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처음을 사랑한다. 애정이 담겨 있기 때문에 사랑스럽다. 기대가 되기 때문에 설렌다. 아이가 뒤집고, 걷고, 뛰고, 말하는 것을 놓치고 싶지 않은 것처럼 우리는 모두 춘천의 새로운 ‘처음’을 기대하고 있다.
MOOD
에디터 이인혜
숨어있어야 하는 숨
잊고 있던 나의 ‘숨’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는 어떻게 숨을 쉬고 있는지, 왜 숨을 쉬고 있는지, 나를 숨 쉬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러자 그림자처럼 당연해서 각성하지 못하고 있던 존재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지금 우리 부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반려견은 우리 집에 온 첫날부터 걷는 것이 어색했다. 산책을 시작하고 나서는 갑자기 깨갱 비명을 지르며 뒹구는 일도 잦아졌다. 진단을 받아보니 작은 견종들이 가지고 있는 유전병, 무릎뼈가 빠지는 슬개골 탈구가 이미 심각한 상태였다. 이제 막 태어난 앞으로 살날이 창창한 녀석을 주저앉게 만들 수는 없었다. 몇 달 후 성장판이 닫혔다는 확진을 받자마자 고민 없이 뒷다리를 모두 수술해 주었다. 2주의 입원이 끝나는 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안 그래도 2킬로가 겨우 넘는 녀석이 한 계절은 밖에서 떠돌아다닌 꼬라지로 집에 돌아왔다. 다리에 칭칭 감긴 붕대 때문에 걷지도 못하면서 녀석은 병원에서 느낀 공포에서 도망치려는 듯 품으로 계속 파고들었다. 그런 가녀린 녀석을 전처럼 혼자 자라고 문밖으로 떨쳐 낼 수가 없어 그날이 우리의 첫날밤이 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바닥에 요를 깔고 녀석과 나란히 누워 잠이 든다. 내 손바닥 두 개 만한 작은 몸을 천천히 쓰다듬으면서 구슬 같은 눈이 감기는 걸 가만히 지켜본다. 심란해 잠이 오지 않는 밤에도, 악몽을 꾸다가 눈이 번쩍 떠진 새벽에도, 어둠 속에서 녀석의 작은 숨소리가 들려오면 평온이 덮어진다. 강이 흐르는 도시에 살아서 좋은 점이 훨씬 많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외면하기 힘든 단점도 분명 있다. 강은 우울도 더 깊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는 점, 안개 낀 아침이 굉장히 잦다는 점이다.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님과 한집에 살면서도 엄마의 숨소리가 거슬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대학교 입학 후 어느 날, 엄마의 숨소리에 귀가 뜨였는데 구멍 난 풍선이 내는 ‘쉭, 쉭’ 소리와 비슷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물었더니, 춘천으로 이사 온 후부터 조금씩 심해진 것 같다고 했다. 그때부터 엄마는 10년이 넘도록 병원에 다니고 있다. 안개가 자욱한 날, 어쩐지 심해지는 증상에 대비해 손가락만 한 흡입제도 가방에 넣고 다닌다. 본가에서 독립한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은 엄마를 만나는데 일주일 치 수다 사이 잠깐의 침묵이 흐를 때 얼른 엄마의 숨소리를 확인한다. 전처럼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고 있지는 않은지. 혹시 엄마에게서 또 다른 게 빠져나가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묻는다. 나는 어떻게 숨을 쉬고 있는지, 왜 숨을 쉬고 있는지, 나를 숨 쉬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런 생각은 다신 하지 않는 게 좋겠다. 필요하다고 느껴지지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고, 의식되지도 않아야 하는 것. 분명 있지만 존재감이 없어야 좋은 것. ‘숨’은 숨어 있을 때 완벽한 것이다.
Edi tor’ s no te
승희 숨 쉬며 살아있다는 감각은 자주 잊어버리는데
용식
인혜 실내에서 답답함을 느껴 창문을 활짝 열면, 계절의 숨이 훅하고 밀려들어 온다. 그중 겨울의 숨결이 가장 날카로운데 깜짝 놀랄 만큼 차지만 가슴의 얹힌 것을 확 내려가게 하는 신기한 효능이 있다. 한 해의 마무리와 한 해의 시작이 얼기설기 섞여 복잡한 마음속. 나도 모르게 이어지는 한숨을 단박에 끊어줄 겨울다운 겨울의 숨결을 기다리고 있다.
민율 '매 순간 기쁘고, 매 순간 슬플 수 없으니 다만 기쁨과 겨울은 다른 계절보다 내가 살아있는 존재라는 걸 슬픔을 헛되이 쓰지 않기를' 바랐던 연초의 다짐을 각인시켜준다. 귀까지 얼려버리는 추위로. 자고 나니 떠올려본다. 일단 <pot>을 통해 다양한 안식의 온 세상을 고요하고 하얗게 만드는 눈으로. 크리스마스 순간들을 찾으며 감정에 충실했던 시간들을 돌이켜 조명이 가득한 반짝임으로.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보면 다짐대로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는 것으로. 겨울은 숨이 눈으로 보이는 계절. 입김은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무탈히 한 해를 보낼 수 이내 사라지지만 따뜻함은 차가웠던 손에 남는다. 있었음에 감사한다. 추위를 녹이는 건 소소한 기쁨과 호. 호. 호.
사랑이다. 건네받은 2천원어치 붕어빵 한 봉지가 아직도 따끈하다.
인옥 올해는 책상보다 야외에서 시간을 많이 보낼 수 드라마의 숨 쉴 틈 없는 전개가 좋았다. 어쩌다보니 있어서 행복했다. 내가 숨쉬고 싶은 장소는
내 삶도 같은 템포로 흘러가고 있었다. 감정도 같이 자연이라는 것을 더 잘 알게 되어 기쁘고 감사하다. 휘몰아쳤다. 올해 <pot>에선 춘천이란 도시에 겨울에는 띠뜻한 차를 호호 불어가며 여유로운 시간을 머물기 위한 네 가지 요소에 충실했다. 춤, 쉼, 품, 많이 보내고 싶다. 지금은 책상 앞에서 시간을 많이 숨을 읊으며, 나의 템포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보내지만 잠깐 창문을 열고 겨울 공기를 폐끝까지 고속주행 중인 자동차 같았던 내 감정에 제동이 마신다. 시원하다. 참 시원하다.
걸렸다. 올겨울엔 소복소복 눈 오는 소리가 잘 들렸으면 좋겠다.
Pot Back Issues
N. 01 춘천PLAY
N. 02 낭만PLAY
N. 03 공감PLAY
N. 04 시작팟팟
N. 05 함께팟팟
N. 06 열정팟팟
N. 09 도움팟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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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11 배움팟팟
N. 12 무한팟팟
N. 13 온기팟팟
N. 14 기억팟팟
N. 17 기대팟팟
1N. 18 환경
N. 19 여성
N. 20 문화도시
N. 21 평화
N. 22 나의 안부
N. 25 걷다가 문득
N. 26 환상과 낭만
N. 27 떠오르는 환대
N. 28 멀고도 가까운
N. 29
N. 30 친애하는 나에게 시작하는 기쁨
N.36 마음의 모양
춘천문화매거진 2023 가을
N.37 피어나는 삶
춘천문화매거진 2023 겨울
N.38 둥글게 둥글게
ISSN 2508 6316
ISSN 2508 6316
ISSN 2508 6316
N. 33 기다리던 순간
N. 34
N. 35 우리는 매일매일 이마엔 땀방울
N. 36 마음의 모양
N. 37 피어나는 삶
N. 38 둥글게 둥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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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07 잇다팟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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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15 시작팟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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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23 너의 둘레
N. 24 마주보는 우리
N. 31 솟구치는 용기
N. 32 흩어지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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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39 나무그늘 아래에서
춘천문화매거진 2024 여름
N.40 당신의 품 안에서
춘천문화매거진 2024 가을
ISSN 2508 6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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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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