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문화놀이매거진 POT 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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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여는글 10
희(喜)의 언어 12
1 새로운 소리를 만드는 작곡가, 안성희 16 2 기쁨을 전하는 숲속 무용수, 강충만 26 3 ‘내면 아이’로 타인에게 손을 내미는 동시작가, 황서영 36
또 다른 나를 얻다 48
도시의 낯선 풍경 60
문화다양성과 도시의 창의적 발전 56
기왕이면 유쾌하게, 기왕이면 즐겁게 64 우연한 공동체가 되어 각각의 생이 떨리는 순간 70
아침엔 노트북을 켜지 않기로 했다 74
봄의 도시 춘천에 ‘봄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은 우리 심장을 두근두근 설레게 합니다. 설렘이 있는 도시는 한 도시에 사는 시민들을 나다움의 리듬이라는 낯선 세계로 안내합니다. 그리고 그런 시민들이 모인 도시는 내 몸의 움직임을 통해 발현되는 축제적 리듬을 찾아가도록 합니다. 사회적 리듬과 생체적 리듬이 공존하는 문화시민은 그렇게 탄생하는 것이겠지요. 일상생활, 시간, 공간을 탐구한 20세기 프랑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는 『리듬분석』(1992)에서 “청중이 교향곡을 감상하듯, 집, 길, 도시를 ‘듣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본주의 시공간 속에 ‘현재’(the present)화된 상투적인 리듬이 아니라, 실재적인 ‘현전’(presence)이 가능한 도시와 사람이 탄생하는 것은 ‘리듬’을 바꾸려는 데에서 비롯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 시민들은 더 이상 기능적인 몸이 아니라, 다(多)리듬적이고 조화리듬적인
몸을 가진 살아 있는 몸으로 변신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렇게 탄생한 시민들이 넘쳐나는 도시는 온기가 있고, 소통이 있으며, 해방의 가능성이 있는 기쁨의 도시가 아닐까 합니다. 2022년, 문화도시 춘천은 기쁨의 도시를 추구하며, 사람 · 장소 · 활동과 관련한 재미있는 사업들을 꾸준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시민협의체 봄바람(위원장 이범준)은 ‘도시의 주인은 시민’이라는 점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수행해 나갑니다. 다섯 곳의 빈집을 단장해 조성된 문화도시 거점공간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을 넘어 사람과 지역을 연관시키는 ‘경이로운 충돌’의 공유공간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예술가 및 시민활동 지원 또한 행정이 주도하는 공모 방식에서 벗어나 ‹일당백 프로젝트›처럼 시민들의 자발성에 기초해 ‘딴짓’을 적극 권유하고 지원하는 방식으로, 사업 작풍(作風)을 서서히 바꾸고자 합니다. 이러한 활동의
전환은 결국 위에 언급한 것처럼 관계로서의 리듬을 형성하고자 하는 문화도시 춘천의 의지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희로애락을 느끼듯이, 도시에 사는 일 또한 희로애락의 감정이 없을 수 없습니다. 2022년 «pot»이 춘천이라는 도시에 사는 시민들의 희로애락에 주목하고자 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이번호에서 ‘시작하는 기쁨’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나를 설레게 하는 것들에 주목하고자 한 것이 좋은 예입니다. 특히, 육아문화 관련 수다가 퍽 흥미롭습니다.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 엄마가 활동하기 좋은 도시가 좋은 도시라는 점은 말할 나위 없습니다. 임동근, 한건수의 칼럼에서는 우리의 목표가 ‘더 나은 도시’지 완벽한 도시는 아니라는 점을 강력히 환기합니다. 팬데믹 시대 불평등 해소, 문화다양성 존중 같은 플랜과 실천에 관해 생각하게 합니다. 예년에 비해 활자를 키웠고, 지면을 소폭 증면했으며, 사진 편집 또한 시원하게 변화를 주었습니다. 갈수록 높아지는 음역, 빨라진 박자처럼 리듬의 가속이 득세하는 팬데믹 시절에, 문화매거진 «pot»과 문화도시 춘천의 활동이 우리가 ‘순환적 리듬’을 찾아가는 데 작은 사유의 디딤돌이 되고, 실천의 징검다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른 도시는 가능합니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 편집장
희 (喜) 의 언어
권용식
Every cloud has a silver lining. 영어속담
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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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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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확실한 행복,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 되뇌며 몇 번을 실실 웃었어. 너는 “선아 취했나 봐. 왜 자꾸 웃어.” 했는데 나 사실 안 취했었어. 그냥, 즐거워서 그랬어. 뭐랄까 너와 네 남편은 그걸 잘 알고 있는 것 같더라고. 작지만 확실한 행복. 박선아, 『어떤 이름에게』, 안그라픽스, 2017, p184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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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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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내 부모가 나타나 소란이라도 피울까봐 그러는지 쉬페르를 얼른 차에 태우고 가버렸다. 내가 이 말을 하면 안 믿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 오백 프랑을 접어서 하수구에 처넣어버렸다. 그리고는 길바닥에 주저앉아서 두 주먹으로 눈물을 닦으며 송아지처럼 울었다. 하지만 마음만은 행복했다. 에밀 아자르, 『자기앞의 생』, 문학동네, 2003, p30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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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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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는 새들은 걱정 없이 아름다운 태양 속으로 음표가 되어 나네 이상은, 비밀의 화원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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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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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같이 춤추기 위해 매점에 가 소주를 사 들고 오는 수고를 잃지 않는다면, 그때까지도 당신과 내가 여전히 사랑할 수 있다면.” 김연수, 『사랑이라니, 선영아』, 작가정신, 2003, 8p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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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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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공부를 시키지 않았다면 수현이는 죽지 않았을 거야.” 하고 이야기했던 엄마는 조금 틀린 것 같다. 수현이는 그날, 행복했을 것이다. 그렇게 원했던 사진을 그날도 찍을 수 있어서, 찍고 싶었던 청량리역을 찍고 있어서, 내가 쥐여준 만원으로 맛있는 밥을 먹어서 행복했을 것이다. 요조, ‹나는 당신의 오늘이 행복하길 바란다›, 서울예대 학보, 2009
사람들은 기쁨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책, 노래, 속담 속에서 기쁨의 언어를 수집했고, 하나의 감정 안에 다양한 생각과 행동이 담겨 있는걸 발견할 수 있었다.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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樂爾家室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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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무슨! 맥주나 더 마시러 가자! 언니는 길은 잘 모르겠지만 정말 맛있는 맥줏집을 알고 있다고 했다. ‘수도원’이라고 불리는 곳인데 그곳에 나를 꼭 데려가고 싶다고 했다. 무과수, 『무과수의 기록3 | Praha 프라하』, 황다검, 2019, p15
기쁨도 사랑도 항상 그 순간에 집중하고 흠뻑 느껴야 한다. 기쁨은 냉장고에 보관할 수도 없고 저축할 수도 없다. 그래서 수시로 기쁨을 발견하고 기쁨을 느끼고 사람들과 나눠야 한다. 유인경, 『기쁨채집』, 위즈덤하우스, 2019, p10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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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는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피라미드를 바라보았다. 피라미드는 그를 향해 조용히 미소 짓고 있었고, 그 역시 피라미드를 향해 미소를 보냈다. 솟아오르는 기쁨으로 가슴이 터져나가는 것 같았다. 이제 그는 자신의 보물이 어디에 있는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문학동네, 2001, p260
나는 연화라는 이름을 잘도 마음에 들어한다. 박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2012, p7
사춘기 때 썼던 글들을 보자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레구아르 들라쿠르, 『내 욕망의 리스트』, 레드박스, 2012, p41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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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을 적 내 기억 속에 비행기 타고 가요 거북이, 비행기
자연의 활동에 익숙한 사람만이 충만한 기쁨을 누린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메이트북스, 2020, p26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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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버스를 타는 일은 제가 여전히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불을 밝힌 상점들을 구경하거나 길을 걷는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는 일이 마냥 좋습니다. 박준, 『계절산문』, 달, 2021, p16
우리는 장작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장작을 나눠 주고, 우리 밭에서 난 채소도 많이 나눠 먹었다. 가장 큰 즐거움은 스위트피가 자라면 그 꽃을 한 아름씩 꺾어다가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일이었다. 헬렌 니어링, 스콧 니어링, 『조화로운삶』, 보리출판사, 2000, p39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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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해가는 도중에 우리는 즐거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내 부친이 바로 이 노파의 남편과 함께 일했다는 사실, 내 모친과 이 할머니가 같은 나이라는 것도 알았다. 나는 같이 온 아들 신사에게 "어려서 북진을 떠났기 때문에 지금은 아무 기억도 없습니다. 오래 살았더라면 우리도 친구가 될 뻔했지요?” 라며 웃었다. (…) 한참 뒤 나는 그 노파에게 “혹시 파우어라는 의사를 기억하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럼요, 어떻게 그 이름을 지금까지 기억하세요?” 라면서 놀라는 표정이었다. 놀랄 만한 일이다. 네 살에 북진을 떠났는데 그 외국 의사 이름을 기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김형석, 『영원과 사랑의 대화』, 김영사, 2017, p129
낙이가실, 집안에 기쁨과 즐거움을 가득하게 만들라. 정약용이 딸에게 쓴 편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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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경우를 보더라도 일상생활에서의 이러한 창조의 기쁨은 나이나 직업, 학력 등과는 전혀 관계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히로나카 헤이스케, 『학문의 즐거움』, 김영사, 2001, p75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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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낸 가장 즐거운 시간들 가운데에 봄이나 가을에 비바람이 오랫동안 몰아치던 때를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날 나는 오전은 물론 오후에도 집 안에 틀어박혀 쉴 새 없이 부는 바람 소리와 빗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달래곤 했다. 이런 때는 이른 황혼이 긴 밤을 맞아들여 많은 사념들이 뿌리를 박고 그 나래를 펼칠 시간적 여유를 얻을 수 있었다. 헨리 데이빗 소로, 『월든』, 은행나무, 2011, p201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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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들로부터 한 묶음의 진달래꽃을 선물 받았다. 지금도 나의 기억 속에서 가장 밝은 진달래 꽃빛은 항상 이때에 받았던 진달래 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신영복, 『엽서』, 돌베개, 2003, p49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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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물들었을 때 색연필을 들고 동네를 걸으며 나뭇잎의 색 이름을 각각의 위치에 열거하고, 풍경이 걸린 집들을 조사한 다음 그 소리를 동심원으로 시각화하고, 동네에 사는 개들의 이름을 채워 넣고, 핼러윈에 호박랜턴을 만든 집들만 도깨비 형상으로 그려 넣은 지도를 떠올려보자. 한정원, 『시와 산책』, 시간의흐름, 2020, 24p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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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오는 기쁨은 오래간다. 반복적이기도 하고 소소하기도 하다. 3월, 봄호를 준비하며 익명의 춘천시민들에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일상 속 기쁨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40여명이 넘는 분들이 답해 주었고, 중복된 답변을 제외한 내용을 공개한다.
‘희’의 순간
아기 재워놓고 육퇴 후, 유튜브 몰아볼 때
애인과 나만 통하는 농담으로 시시덕거릴 때
아빠 언제 와? 라고 시작되어 오늘 얼마나 신기했고 좋은 일들이 있었는지 재잘거리는 아이의 말을 듣고 있는 순간
하루 실천 노트의 리스트를 하나하나 실천하고 밑줄 쫘-악 그을 때
사랑하는 존재(요즘은 고양이)를 눈뜨자마자 마주할 수 있는 아침
햇빛 속에서 강아지와 낮잠을 즐기는 순간
재미있는 영화, 드라마, 책을 발견했을 때
마음이 맞는 사람을 알게 되었을 때
하루 일과를 마치고 따뜻한 물로 씻을 때
우연한 순간에 찍힌 사진 한 장. 카메라만이 주는 영원한 찰나의 기쁨
하나의 실수, 실망 없이 완벽한 하루
집 주변 마트에서 포켓몬 빵을 발견했을 때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여행 떠나는 상상
햇살 좋은 날, 커피 한 잔과 함께 흘려보내는 시간
해가 저무는 순간, 그리고 매일 저녁
새롭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캠핑 가서 좋아하는 음악 들으며 멍 때릴 때
새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
짐을 부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보안검색대를 통과해 비행기를 기다리며 커피를 마실까, 맥주를 마실까, 잠을 잘까, 영화를 볼까 고민하는 순간
사랑하는 사람과의 소중한 순간이 떠오를 때
해야 할 일을 기분 좋게 끝냈을 때
여유로운 아침,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향긋한 모닝커피를 마실 때
우연히 간 카페에서 좋아하는 노래가 연속으로 나올 때
기대했던 합격 발표를 들었을 때
지금 이 순간
연주회가 끝나고 커튼콜을 하며 관객들의 함성과 박수갈채가 쏟아질 때
누군가 나를 반가워 할 때
날씨 좋고 밝은 날 퇴근할 때
산 정상에 올라 풍경을 감상하며 이온음료 마실 때
퇴근 후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실 때
오전 내내 일하다 시계를 봤는데 점심시간일 때
Silence can be music, Anxiety can be Joy
새로운 소리를 만드는 작곡가, 안성희
언젠가 인터넷에서 재미난 이미지를 본 적이 있다. 유명한 작곡가들이 직접 그린 높은음자리표를 모아둔 이미지였다. 드뷔시는 정직하고 올곧게 그렸고, 브람스는 감각적으로 그렸다. 그리고 베토벤은 정말 대충 그렸다. 누군가 ‘대충 살자, 베토벤 높은음자리표처럼.’이라는 제목을 달았고 나는 한참 웃었다. 바흐, 모차르트, 슈베르트, 드뷔시, 브람스 등의 작곡가 이름을 알고, 그들이 만든 음악을 몇 안다. 그렇지만 그뿐. 그들은 내게 멀리 있었다. 안성희 현대음악 작곡가를 만난다고 했을 때, 호기심이 일었다. 춘천이 고향이면서 이곳에서 활동하는 그가 가깝게 느껴졌다. 인터뷰 전 그가 만든 음악을 들었는데, 익숙하면서도 낯선 음악들이 섞여 있었다. 춘천을 주제로 한 음악은 포근하고, 따뜻했다. 몇 곡은 마치 우주에 있는 듯 신비로운 느낌이었다. 피아노의 현을 튕기거나 마임, 무용, 영상 등 다양한 장르와 협업한 공연 예술 작품들은 산뜻한 새로움을 주었다. 소리로 다양한 작업을 하는 그를 3월의 어느 날, 그의 교수실에서 만났다.
안성희 춘천에서 태어나고 자란 현대음악 작곡가이다.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고, 연주자가 실제 악기로 연주한 소리를 사랑한다. 강원대학교 음악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이후 2014년 일리노이 대학교 (UIUC)에서 작곡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강원대학교 음악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AK ENM 프로듀서를 역임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2018년 «눈으로 듣는 공감멜로디 ‘우수주(宇受宙)’», 2020년 «WOOSOOZOO-ⅱ» 이 있다. 2021년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달. 해 아이» 작품은 스웨덴 필름 어워드(Sweden Film Awards)에서 파이널리스트(FINALISTS) 로 선정됐다.
“불안은 굉장히 좋은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불안하지 않고 평온함만 있다면 그 누구도 무언가를 더 하려고 하지 않을 거예요.
불안한 마음을 받아들이고, 무언가를 하며 매 순간 기쁨을 찾아가는 게 중요해요.”
안녕하세요, 안성희 작곡가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소리를 제작하는 작곡가 안성희입니다. 강원대학교 음악학과에 교수로 재직 중이고, MO-A라는 이름으로 음악을 만듭니다. 다양한 예술가들과 함께 공연하기도 합니다. 음악 감독으로도 활동했고요.
음악으로 하는 일이 정말 많은데요. 하는 일이 달라질 때마다 역할과 마음가짐도 달라질 것 같아요. 학생들에게 메시지를 담아 창작하고, 청중과 교감하는 법 등을 가르칠 때도 모두 음악과 관련이 있어요. 그래서 일의 역할이 달라졌다고 해서 ‘나는 감독이야, 작곡가야, 교수야.’ 이런 마음보다 음악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한 맥락으로 이어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곡가는 혼자 작업하지만, 음악은 혼자 완성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곡가가 작곡한 곡을 누군가가 듣기 위해서는 연주자나 퍼포머, 그리고 관객이 필요하죠. 창작의 아이디어와 뼈대를 만드는 일은 1차 창작자의 역할이에요. 저의 아이디어로 작곡을 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먼저 아이디어를 주시면, 제가 소리를 입히는 역할을 맡기도 해요. 다른 예술가의 아이디어를 바톤 받아서 작업하죠. 공연 예술은 과거부터 협업으로 진행되어왔던 예술이에요. 영상, 무용, 조명 등 예술가들의 협업이 2차, 3차, 4차로 진행될수록 더 완성도 높은 작품이 만들어진다고 생각을 해서 저는 즐거워요.
함께 작업하실 때 기쁨이 크시군요! 더 기쁘고, 즐거워요. 무언가를 창작하는 일은 어렵잖아요. 주제나 표현, 혹은 창작자의 마음에 관해 설명했을 때, 다른 예술가가 ‘그거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며, 완성도 높게 무대에 올려줄 때 정말 뿌듯해요. 그럴 때 ‘드디어 완성이구나!’ 생각이 들어요. 소리라는 씨앗을 만들었는데, 다른 예술가들이 함께하면서 작품으로 열매 맺는 느낌이지요.
피아노를 배우면서 음악을 시작하셨는데요. 현대음악 작곡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어릴 때 교회에 다니면서 노래도 부르고, 피아노 반주도 하면서 음악과 가까이 지냈어요. 음악이 늘 옆에 있었죠. 그런데 전 악보를 주의 깊게 보고 치는 걸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어요. 어떻게 하면 악보 없이 내 멋대로 음악을 할 수 있을까, 중학생 시절의 생각이 음악을 더 깊이 공부하게 된 계기가 되어줬어요. 과거에 있었던 화성이나 멜로디, 규칙적인 리듬을 벗어나 좀 더 신선하고, 새로운 발명품 같은 소리를 만드는 것이 현대음악인데요, 내 멋대로 음악을 만들고 싶었던 저에게는 현대음악 작곡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새로운 소리를 만드는 과정이 정말 멋져요. 존 케이지John Cage의 ‘4분 33초’라는 음악이 있어요. 소리 없음도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걸 알린 작품이죠. 4분 33초 동안 아무런 연주 없이 공연장 안에서 관객들이 만들어내는 의자 끄는 소리, 기침 소리가 하나의 음악이 돼요. 이런 것들이 현대 음악가의 행보일 수도 있겠죠. 새로운 아이디어로 규칙 안에 없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현대 작곡가의 사명이고, 우리가 하는 일이에요. 이 시대에 힙합, 케이팝 등을 만들어내는 작곡가들이 나중에 바흐Bach라고 칭해질지 모를 일이죠.
처음으로 작곡했던 작품을 기억하세요? 입시 준비할 때 작곡을 처음 해봤어요. 그런데 입시를 위해 만든 것은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대학에 처음 들어와서 ‘꼭 이렇게만 해야 해.’라는 규칙을 벗어나 나만의 생각과 느낌으로
만든 것이 저의 첫 작품이에요. 바이올린 두 대와 첼로 하나, 비올라 하나로 썼던 작품이었어요.
첫 작품은 처음이라 특별하죠. 조금 더 이야기해 주세요. 현악 사중주로 만든 ‘수선화’라는 작품이었어요. 대학 1학년 기말고사 때 무대에 올렸는데, 정말 떨렸어요. 작곡가로서 처음 만든 작품이라 설렘과 떨림이 작품에 녹아있기도 했고요. 동시에 20대의 혼란스러움도 담았는데요. 그저 아름다운 꽃으로 표현하기보다 고뇌 속에서 수선화가 활짝 필 때의 그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제가 처음 만든 작품이라 제목도, 그 무대의 떨림도 여전히 기억에 남아요.
이제는 교수님으로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어요. 학생들을 보면 어떤 마음이 드나요? 저는 모교 출신의 작곡가이자 모교 출신의 교육자예요. 그래서 선배로서, 같이 음악 하는 동료로서, 제자들에게 애정이 많이 가요. 조금 더 많이 퍼주고 싶고, 그들의 설렘을 더 극대화해주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커요.
음악을 공부하고 싶어서 학교에 들어온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무언가를 시작하는 일은 기쁘기도 하지만, 두렵고 불안하기도 하잖아요. 불안은 굉장히 좋은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불안하지 않고 평온함만 있다면 그 누구도 무언가를 더 하려고 하지 않을 거예요. 불안한 마음을 받아들이고, 무언가를 하며 매 순간 기쁨을 찾아가는 게 중요해요.
작업하다 보면 막힐 때도 있잖아요. 그럴 땐 어떻게 하는지, 끝까지 완성하게 만드는 힘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그럴 때 정말 많죠. 4분짜리 작품을 만든다고 할 때 하루에 3초 쓰기가 힘들 때도 있어요. 그날 썼던 게 다음 날 마음에 들지 않아서 싹 밀어버릴 때도 있고요. 마감일보다 더 큰 창조는 없는 것 같아요. 마감일이 없다면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고칠 거예요. 저의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게 하고, 작품이 탄생할 수 있는 건 데드라인deadline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작곡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소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요, 특별히 좋아하는 소리는 무엇인가요? 연주자가 실제 악기로 연주하는 소리요. 요즘에는 실제 악기를 복각해서 만든 가상 악기가 많아요. 그렇지만 실제 악기 소리와 실제 사람의 연주, 호흡하는 숨을 따라갈 수는 없어요. 물론 저는 가상 악기로 새로운 음악을 만들지만, 가상 악기가 실제 악기를 능가하지는 못한다고 느껴요. 연주가가 직접 연주하는 그 소리가 가장 좋고, 그렇게 작업했을 때 가장 아름다워요.
현대음악에는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가 반영돼요. 관심 가는 우리 시대의 모습은 어떤 게 있나요? 요즘 시대에 가장 우리를 대변할 수 있는 게 플라스틱이 아닐까 싶어요. 쉽게 쓰고, 버려도 아깝지 않고, 매일 사용해도 죄책감이 없으니까요. 쉽고, 편한 것을 찾다 보면 지키지 못하는 것들이 생겨요. 지구의 환경이 그렇죠. 우리가 지켜온 학문과 역사, 클래식 음악 같은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를 스스로 질문하고 있어요.
지키고 싶은 것들, 사라질지도 모르는 것을 향한 마음이 이해돼요. 네. 그런 마음을 담아 작품을 만들기도 했는데요, 2019년에 만든 ‘소리의 질감-빗살무늬 앞에서’ 작품과 연장선에 있는 게 2020년에 만든 ‘woosoozoo-ⅱ’예요. 앨범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Plastic Kingdom’이고요. 시대의 모습을 담고,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에요.
작업한 곡 중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도 궁금해요. 2018년에 우수주1) 작품을 처음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이름이 무척 예뻐서 끌렸어요. 뜻을 모르고 들을 때에는 우주의 물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자연스레 지구와 연상이 될 정도로 이름이 아름다웠어요. 우수주는 강원도의 아름다움을 제가 좋아하는 클래식 악기와 영상을 함께 접목하여 만든 작품이에요. 기쁨, 행복감, 설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작품에는 춘천을 배경으로 한 것들이 많은데요, ‘우두길 따라’, ‘은빛 호수’ 같은 작품들이 있어요.
춘천, 강원도와 관련된 작품을 만들어오고 있는데요. 어떤 마음으로 만드는지 궁금해요. “너 어디 출신이야?” 외국에 나가면 듣는 첫 번째 질문이에요. 내가 누구이고, 어디서 자랐고, 지금 무슨 생각을 어디서 하고 있는지가 중요하죠. 특히 지금 저는 강원대학교에 몸담고 있기도 하고요. 어떤 의무감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여기서 나고 자란 작곡가로서 춘천을 더 표현해야 하고, 홍보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작업하고 있어요.
올해 시작하고 싶은 일에 관해 이야기도 부탁드려요! 다이어트요. 작업하면서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 허리도, 다리도 아파서 건강을 위해 올해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싶어요. 그리고 1년에 한 번은 제 작업을 하려고 노력하는데요, 올해에는 2년에 한 번씩 작업하는 우수주의 세 번째 작업을 꼭 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작곡가로서 작업할 때 기쁨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끝세로줄 그을 때요. 영화 만드는 분들은 크레딧 올라갈 때, 글 쓰는 분들은 마침표를 찍었을 때라고 이야기하듯이 저희는 끝세로줄을 그을 때라고 표현해요. 작품 마지막 부분에 한 번만 있어 끝세로줄이 굉장히 중요해요. 끝을 냈을 때의 기쁨, 그때가 가장 행복하죠!
우수주(牛首州)는
1) 춘천의 옛 지명으로, 소양강 상류의 두 갈래 물길이 합쳐지는 지형과 옛 삶의 터전의 모습을 담은 명칭이다.
완전한 기쁨이란 허구라는 사실을 그와 대화를 나누며 깨닫는다. 우리는 매 순간 기쁨만 느낄 수 없다. 그가 끝세로줄을 긋는 순간처럼, 기쁨은 찰나의 순간이다. 그 이전에는 불안과 고민, 애쓰는 시간으로 꽉 채워진다. 그럼에도 그는 불안을 인정하며 기꺼이 그 시간 사이를 걷는다. 새로운 소리를 만들기 위해. 자신이 만든 음악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제자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전하고, 그들의 꿈을 지지하기 위해. 스무 살 무렵 그가 처음 작곡한 작품 ‘수선화’를 이야기할 때, 부끄러워하면서도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시작에는 설렘과 혼란스러움이, 끝에는 마침내 해냈다는 환호와 아쉬움이 깃들어 있다. 기쁨은 어디에 있는가. 그 사이 사이에, 찰나에 존재한다. 소리 없음에도 음악이, 불안에도 기쁨이 있다.
강승원 권용식
기쁨을 전하는 숲속 무용수, 강충만
화려한 의상과 선글라스 뒤에는 수줍음 많고 선한 눈을 가진 작가 강충만이 있다. 그는 자신이 무언가 보여주기보다 공연을 본 관객들이 즐겁기를 희망한다. 고슴도치 섬에서 마임 축제가 열리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그는 자연을 동경하다 못해 숲 속 오두막을 준비 중이다. 한 가지 모습으로 평생 사는 게 아닌, 하고 싶은 일들을 시도할 수 있기에 기쁘다. 원하는 방식으로 삶의 핸들을 자유로이 틀면서.
강충만 전북 순창 출신의 무용수이자 마임이스트.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과 함께하기 위해 숲속 오두막을 짓는 중이다. 강원대학교 무용학과를 졸업하였다. 2017년부터 현재까지 춘천마임축제, 마임시티즌 팀에서 «슈트맨» 공연으로 활동 중이다. 또한 아울러 청년외식창업공동체에서 바리스타도 겸하고 있다. 활동 작품으로는 2020년 ‘치유의 숲 어바웃타임 중도’ «싹은 어둠 속에서 피어난다.» 2021년 «춘천마임축제 개막식 연출작»등이 있다.
“요즘에는 긍정적인 것들을 전달하고 싶은데요.
마임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웃음과 기쁨, 행복을 실제로 전달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춤추고 마임하는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해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춤추고 마임하는 강충만이라고 합니다.
충만님은 무용수로도 일하면서 바리스타로도 활약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각각의 매력과 기쁨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먼저 커피 내리는 일은 커피가 맛있을 때예요. 커피는 신경 쓸 게 많고 조합할 게 많은데요. 커피가 맛있게 나오고 그 커피를 사람들이 좋아할 때 행복해요. 춤을 출 때는 관객이 공연을 보고 좋아해 주실 때 기뻐요. 어릴 때는 무대에서 제가 얼마나 잘하는지, 또 스스로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 자체에 기쁨을 느꼈는데, 요즘에는 저보다 관객이 더 중요해졌어요.
춘천에 오신지 20년 정도 됐다고 들었어요. 충만님에게 춘천은 어떤 곳인가요? 대학을 진학하면서 춘천에 오게 되었어요. 춘천에서 무용을 배웠고 더 큰 무대에서 배우고 공연하고 싶단 생각에 잠깐 떠난 적도 있답니다. 떠나기 전에는 춘천이 작고 답답하단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무척 좋아요. 자연이 좋고, 조용한 게 좋아요. 이제는 제가 여기서 예술 활동을 충분히 할 수 있음에 행복을 느껴요. 저는 여행을 많이 하고 싶고, 외국에서 살거나 세계 일주를 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 후에 다시 춘천으로 돌아오고 싶어요. 어디로 떠나도 춘천이 그리운 도시가 됐어요.
관객과 함께 하는 춤
처음 춤을 췄던 순간을 기억하시나요? 12살 때 반 친구들이랑 비디오 가요톱텐을 녹화해서 보고 수련회에서 춤춘 게 처음이었어요. 그렇게 시작한 걸 중학교, 고등학교 가서도 꾸준히 하고 있더군요. 사람들 앞에서 춤추는 게 성격상 쉬운 일이 아닌데 짜릿했나 봐요. 그렇게 계속 춤을 추다가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이 춤으로 대학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줘서 무용으로 대학 진학을 하게 되었죠.
기억에 남는 공연이나 작품이 있나요? 어릴 때 공연하던 날 어머니께서 생사를 건 수술을 하신 적이 있어요.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지만 저는 어려운 상황에서 공연했던 게 기억나요. 그날 하루가 무척 길었었네요. 또 다른 하나는 마임 공연 때 공원에서 관객들과 함께 춤추는 장면이 있었어요. 아이와 춤을 추는데 살면서 가장 빛나는 눈을 봤답니다. 쌀쌀한 봄밤에 바닥도 축축하고 벌레도 날아다니는 상황이었음에도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게 감사해요.
충만님이 생각하는 가장 최고의 공연 모습은 어떤 그림일까요? 자연이 아름다운 야외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저희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요. 공연은 한참 진행되고 있고, 사람들의 표정에 웃음이 행복으로 가득 차 있어요.
충만님 공연 중에 〈치유의 숲, 어바웃타임 중도〉 공연을 영상을 통해 보았는데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보통 공연을 할 때, 작업에 대한 영감을 어떻게 얻는지 궁금해요. 특별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니에요. 주제에 대해 떠올릴 때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것들이 제 영감이라고 할 수 있어요. 공연을 위해 자료를 찾거나 공부하는 건 작위적인 느낌이 들어서 잘 하지 않아요. 제게 작품은 결국 제가 뭘 느끼고, 보여주고 싶은지 고민
중에 나오는 건데요. 〈어바웃타임 중도〉 같은 경우에는 ‘자연’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였어요. 그래서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려 하다 보니 옷을 최소한으로 입었고요. 그런데 또 밋밋한 느낌이 들어서 시각적인 자극을 주기 위해 형광물질을 몸에 발랐어요. 사실 몸에 바르면 안 되는데 말이죠. 몸에 많이 안 좋거든요. 보통 공연 전에 이렇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많이 해요. 영감은 상상에서 나오는 것 같네요.
주로 마임 공연을 하신다고 하셨는데요. 마임과 무용은 얼핏 보면 다른 분야 같아요. 작가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저는 마임과 무용은 똑같다고 생각해요. 음악에 맞춰서 마임을 하면 무용이 되는 거고. 또 무용을 마임이라고 부르면 그게 마임이 되는 거죠. 경계선이라는 게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마임 축제에서 공연을 하게 된 계기도 운영 측에서 선을 긋고 접근하지 않기 때문에 무용 같은 마임을 할 수 있었어요.
충만님이 생각하는 마임의 매력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느낀다는 거예요. 요즘에는 긍정적인 것들을 전달하고 싶은데요. 마임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웃음과 기쁨, 행복을 실제로 전달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첫 번째 마임 공연을 기억하시나요? 스무 살 때 고슴도치 섬에서 공연 했던 추억이 있어요. 그날 섬에 갔을 때 네버랜드에 온 것 같은 환상적인 기분이 들었죠. 마치 전 세계 예술의 기운이 이곳에 모여있는 것 같았어요. 낮에는 나무 밑에서 누군가 공연하고 있고, 밤에는 어디선가 온 많은 사람들이 다음날 해가 뜰 때까지 공연을 즐기곤 했어요. 저는 피곤하면 강변에 모닥불을 피우고 종이상자 위에서 잠을 자곤 했는데요. 제가 공연자라는 사실에 무척 즐겁고 기뻤던 기억이 나요. 고슴도치섬에서 마임 축제가 열리던 그때가 그립네요.
충만님은 관객분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마임 축제에서 시민들과 여러 워크숍을 진행하시기도 하셨는데 사람들과 소통하며 느낀 점이 있다면 공유해주세요. 워크숍은 관객이 무대 공연자가 되는 컨셉이에요. 관객들이 공연을 보고 박수만 치는 게 아니라, 함께 호흡하는 공연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진행하고 있답니다. 저도 그렇지만 한국 사람들은 수줍음이 많은 것 같아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워크숍에 참여하는 분들이 늘어나게 되면 나중에는 사람들이 무대에 우르르 나와 함께 춤추지 않을까요?
공연을 보면, 선글라스에 화려한 의상이 돋보입니다. 의상을 준비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나요? 관객분들을 즐겁게 하려고 화려한 의상을 입는 편이에요. 그리고 제가 내성적이라 관객과 가까운 거리에서 공연할 때 긴장을 많이 해요. 선글라스를 끼면 용감해지는 효과가 있어서 끼고 있답니다.
원하는 삶의 모양과 기쁨
충만님이 바라는 앞으로의 미래나 목표,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계획해서 사는 건 아니에요. 목표나 계획보다는 삶을 살다 보면 갈림길을 선택하게 되는데 그런 상황에서 유연하게 핸들을 꺾을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어요. 공연도 제 다리가 허락하는 한 계속하고 싶지만 춤을 못 추게 될 경우 연출이나 안무를 할 수 있을 거에요. 스페인에서 살고 싶은 막연한 바람도 있고요.
충만님은 언제 기쁨을 느끼나요? 밥 먹을 때가 좋아요. 예술을 하면서 끼니 걱정 할 때가 많았거든요. 요즘은 밥 사 먹을 돈이 있고 좋아하는 영화를 보며 입에 뭔가를 집어넣고 오물오물하는 게 일상의 큰 즐거움이에요.
공연하면서 기뻤던 순간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코로나 전에 있었던 마임 축제의 도깨비 난장요. 온몸에 술과 물을 뒤집어쓴 채, 사람들을 향해 ‘한 번 더’를 외치던 순간이 기억에 남아요. 그 순간에는 내 동작의 순서와 모양들을 고려할 필요 없이 온전히 즐길 수 있었거든요. 그러려면 많은 게 들어맞아야 하는데 관객들은 마음을 열고 공연을 즐겨야 하고, 공연자들도 충분한 연습과 노련함이 따라와 줘야 하죠.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또 무용을 하실지 궁금해요. 20년 동안 무용을 했으니 음악이나 그림 같은 다른 예술을 해보고 싶어요. 다른 예술을 쉽게 보는 건 아니에요. 무용을 하면서 사진과 영상으로 작품을 기록하지 않는 편이라, 추억만 남은 느낌이 들거든요. 흔적이 선명하게 남는 예술을 하고 싶어요.
20년이면 꽤 긴 시간을 무용수로 활동하신 것 같아요. 활동하기에 쉽지 않은 환경이었을텐데 이제껏 무용을 계속해 온 이유가 있을까요? 서른이 되기 전에는 잘 몰랐어요. ‘계속 이렇지는 않겠지.’ ‘다들 이렇게 사는 거겠지.’ 하고 생각했던 시간이 길었던 것 같아요. 도중에 그만두려고도 했었는데 자연스레 일이 계속 생겼어요. 공연이 있으니 도와달라는 식으로 연결되었던 거죠. 결국에는 춘천마임축제에서 자리를 잡았고, 주최 측에서 무용수로 배려해준 덕분에 계속하고 있어요. 코로나 시국에도 춘천마임축제 덕분에 공연을 하고 있는데, 관객 한 분만 있어도 공연할 수 있게 해주니 감사한 일이죠. 무용을 계속할 수 있었던 건 무용수로서 관객과 만나는 일이 즐거웠고, 춘천마임축제 측의 배려 덕분이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올해 들어 새롭게 시작한 일이 있으신가요? 오두막을 지으려고 계획하고 있어요. 최대한 전기 없이 친환경적인 재료인 나무로 지을 예정인데요. 그래서 공구들을 사모으며 연장 사용법을 배우고 있어요. 아버지가 사놓은 밭이 춘천에 있어서 그곳에 오두막을 지을 예정입니다. 오두막이 만들어지면 그곳에서 쉬면서 과일나무를 심고 채소도 기르면서, 직접 요리해 먹는 삶을 살고 싶어요. 올해는 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오두막을 떠올리면 기뻐요.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시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 같아서요.
김효주 박인옥
‘내면 아이’ 로
타인 에게
손을 내미는 동시작가
황서영
황서영 작가 77년생으로 춘천 출생이며, 시인이자 동화작가다. 음악하는 남편, 중1 아들과 함께 춘천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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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월간문학」 신인작품상 동시 ‹별 하나›로 등단.
2008년 제6회 푸른문학상 중편동화 ‹조태백 탈출사건›이 당선됐다. 이후 건국대학교대학원 동화미디어창작학과 졸업. 현재 동대학원 박사과정 중 동시집으로 ‹네 머릿속엔 뭐가 들었니?›, ‹분노 잼 만들기›와 청소년소설 ‹복권반찬청춘일상›이 있다.
동시 ‘분노잼 만들기’에선 작가가 분노를 삭이는 요리법을 주문한다. 분노를 눈물과 함께 잼 졸이듯이 졸인 다음, 하루든 1년이든 식을 때까지 기다려보란다. 다 식으면 빵에 발라 먹으라고 친절하게 설명까지. 동시에 혼쭐이 난 듯 얼굴이 화끈해졌고, 내 안에 끓고 있는 화부터 식히기로 했다.
황서영 작가와의 인터뷰를 앞두고, 주문한 책이 도착하지 않아 참 난감했다. 사정을 털어놓자, 주문을 취소하라며 수줍게 직접 책을 전달해주던 그. 아이를 대하듯 조심스럽게 그의 세계에 접근해야 할 것 같았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인터뷰 내내 무수히 많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 그에게서 나는 ‘인생 선배’와 아직 자라지 않은 ‘아이’, 두 얼굴을 마주했다. 벽 한 면을 빼곡히 채운 동화책, 베란다 화초들 틈으로 부서지는 햇살, 그리고 아이가 직접 그린 그림이 걸려있는 공간. 동화 같았던 그의 집에서 긴 이야기를 나눠봤다.
“자기를 먼저 안다는 건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들을 추려 나가며 행복을 추구하겠다는 거거든요. 인간은 혼자 스스로 돌볼 수가 없잖아요. 저의 동시를 읽는 동안엔 모두가 미완성이라는 존재를 인식하고, 그 시간만큼은 완성형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
처음 어떻게 시를 쓰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초등학교 다닐 때, 일기 대신 쓰기 시작했어요. 일기는 길게 써야 하는데 시는 몇 줄이면 되거든요. 첫 시작은 ‘귀차니즘’이었네요. 그러다 장 폴 사르트르가 쓴 〈구토〉라는 소설에 깊은 감명을 받았어요. 주인공 로캉탱은 쉽게 예를 들자면 ‘하늘에 나는 새가 있어, 저 새는 무슨 날개를 갖고 있지? 나는 왜 날개에 집중을 하는 거지?’ 계속해서 의문을 가지고 질문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저도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어요. 그때의 질문을 적어둔 에세이 노트가 따로 있을 정도였죠.
첫 등단과 수상, 그리고 첫 작품집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세요. 마음이 황폐해졌을 때 아이들을 자주 만나게 됐고,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상처 대신 꽃으로 가득 차는 게 느껴졌어요. ‘이제는 글을 통해 아이들에게 꽃들을 나눠주자’ 해서 쓴 글이 거의 2천 매 정도 되더라고요. 그러다 우연히 공모전에 〈별 하나〉라는 시를 응모해 등단하게 됐죠. 이후에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는데, 재학 중에 중편동화 〈조태백 탈출사건〉으로 푸른문학상을 수상하게 됐어요. 그리고 등단 11년만에 2017년 첫 동시집 〈네 머릿속엔 뭐가 들었니?〉를 냈죠.
작품의 소재가 왜 아이와 어른일까요? 아동문학 장르에 대한 편견이 있어요. 대부분 성인문학보다 장르의 크기와 범주가 작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사실 반대예요. 동시와 동화는 아이와 어른 모두가 읽을 수 있는 문학이에요. 그리고 저는 늘 나와 타인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왔어요. 어린이문학 강의를 할 때도 ‘너 자신을 먼저 찾아야 글을 쓸 수 있다’, ‘이 강의의 목적은 행복이다’ 라고 계속 강조하고 있죠.
가장 최근작인 〈분노잼 만들기〉, 어떤 시집인가요? 정말 화가 나는 일이 있었는데 1년간 생각하다가 결국 제가 먼저 화해를 요청한 적이 있어요. 그 경험을 계기로 쓰게 됐어요. 사실 분노를 표출하는 것, 특히 욕을 하는 것에 대한 시선이 좋진 않잖아요. 저는 아이들이 정말 화날 때 ‘욕’처럼 해소할 수 있는 창구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나중에 보면 그 아이들 스스로 욕을 하지 않더라고요. 감정을 드러내 봐야 자신을 알 수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인내할 수 없거든요. 저는 아이들이 자신을 알아가며 웃음을 잃지 않기를 바래요. 수많은 고민과 상처가 반복되는 이 시대에 모두를 어루만지는 동시집을 내자고 했어요.
삽화가 굉장히 독특해요. 진짜 아이가 그린 것 같은데요? 그림을 그린 친구가 바로 제 아들이에요. 지금은 중학교 1학년이에요. 아르코 문학나눔 1차 보급도서에 선정되면서, 아이가 그린 그림에 대해 호평이 이어지더라고요. 사실 〈분노잼 만들기〉에 들어간 그림들은 삽화가 아니에요. 삽화란 글의 내용을 그대로 설명해주는 그림이지만, 이 시집 속 그림은 각각의 정체성이 따로 있어요. 모티브가 살아 있는 그림이랄까? 글의 공간은 그대로 놔두고, 그림의 공간을 따로 구성해 나가는 거죠. 일종의 그림책처럼요.
아이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일상을 정말 디테일하게 묘사하셨어요. 평소에 아이와 교감이 많은 편인지, 또 어떤 방식으로 아이의 관점에 서는지 궁금해지더라고요. 모든 이의 내면에는 작은 아이가 살고 있어요. 이것를 ‘내면 아이’라고 해요. 내 안의 내면아이가 기쁜지, 슬픈지, 괴로운지, 누군가를 미워하는지, 심술을 부리는지’를 알아내야 해요. 현재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빨리 눈치채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요. 요약하자면, “지금 내 기분이 왜 이렇지?”에 대해 생각하는 거예요. 쉽지요? 마음 알아채기를 자주 하면 할수록 인간은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어요. 그래서 아마도, 그런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자주 해주고 싶은가 봐요.
저는 작가님이 아이의 입장을 헤아리는 방법을 말씀해주실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답변이네요. 굳이 어린이의 입장을 헤아리려 노력하지 않아요. 제 스스로가 아이이기 때문이죠. 이 내면 아이는 또 어른인 나를 위로해줄 줄 알아요. ‘힘들죠? 내가 도와줄게요’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역시 내면 아이죠. 힘이 들 땐 오히려 밝은 에너지를 내뿜어주고요.
동시가 가진 매력을 이야기한다면? 저는 동시란 ‘소통’이라고 생각해요.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것만이 소통이 아니잖아요. 손을 잡는다는 것 자체가 온기를 나누는 소통이 될 수 있잖아요. 동시는 짧아요. 하지만 내용은 깊죠. 다른 사람과 금방 손잡을 수 있는 글이에요.
첫 번째 동시집에 이어 두 번째 동시집을 내면서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첫 번째 동시집 〈네 머릿속엔 뭐가 들었니?〉는 아이를 낳기 전에 썼기 때문에 사랑하는 방법이 외부에 치우쳐져 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에 더 헌신적이었죠. 이때 작품들이 거의 3인칭이었다면, 〈분노잼 만들기〉는 1인칭 위주예요. 거의 ‘나’ 위주죠. 이렇게 바뀐 이유가 있어요. 아이를 낳고 보니 엄마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이도 행복하지 않겠더라고요. 그래서 제 스스로 행복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첫 번째 청소년소설 〈복권반찬 청춘일상〉 이후, 소설을 집필할 계획은? 〈복권반찬 청춘일상〉은 아이들의 복잡한 속내와 상황을 단편적으로 그려낸 소설이에요. 제가 실제로 겪었던 일을 반영하기도 했죠. 청소년들이 맞닥뜨리는 현실과 상처 속에서 자신의 진짜 감정을 확인하고, 앞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어요. 저는 아침에 눈 뜨자마자 청소년들이 글을 올리는 커뮤니티를 제일 먼저 확인해요. 이 친구들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 놓치지 않기 위함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저는 또래집단에서의 일이 곧 사회적인 일로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시대가 바뀌면서 어른들이 아이들을, 아이들이 어른들을, 서로가 서로를 이해해야 하는 포인트들이 계속 바뀌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바뀌는가를 계속 지켜볼 필요가 있죠. 요즘은 새로운 청소년소설을 준비하고 있어요. 자세히 말씀드릴 순 없지만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순 있을 것 같아요. ‘인생이 인내라고 생각했는데 사랑이었구나’
새로운 작품에 대해 정보를 조금 더 주신다면? 현재 등장 캐릭터에 대한 세계관을 하나씩 구축해 나가고 있는 단계입니다. 모델이 될 만한 분들을 실제로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고 계속 소통하고 있어요. 소설 속 캐릭터에는 모티브가 있어야 하고, 세계관과 스토리가 살아 숨쉬어야 하기 때문이죠.
글을 쓰지 않을 때의 나는 어떤 사람인가요? 엄마죠. 아이가 오늘 무엇을 먹었는지, 화장실은 잘 갔는지 그리고 여드름은 몇 개가 더 났는지 궁금한 보통의 엄마요. 그리고 화분에 물을 주는 일반적인 사람? 1998년부터 함께 한 ‘고드세피아’라는 식물이 있는데 키가 엄청 커요. 집에 온 지 8년 만에 첫 꽃이 핀 데다 아이와 함께 자란 식물이라 애착이 많이 가요. 다른 화분에는 아이와 함께 ‘고마워, 사랑해, 축복해’라고 적은 메시지를 붙였더니, 신기하게 더 잘 자라더라고요. 열매가 열리고 꽃이 피는데도 몇 년이 걸리는데, 아이들도 같지 않을까요? 글을 쓰는 일도 아이를 대하는 것도 관심과 정성, 소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작가 황서영에게 춘천은 어떤 도시인가요? 춘천 태생이니만큼 이곳은 굉장히 익숙해요. 제가 자라온 곳이기도 하고요. 불안정한 감정을 지닌 작가들에게 특히 필요한 것이 안정감인데, 춘천은 그 안정감을 선물해줘요. 머리가 터질 것 같을 때, 잠시 외곽으로 드라이브를 갔다 오면 금세 괜찮아지기도 해요. 아이들에게 있어 춘천은 동시처럼 상상력의 판을 펼쳐 볼 수 있는 도시예요. 유튜브나 게임 콘텐츠처럼 이미 펼쳐진 판이 아닌 거죠. 그리고 춘천은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는 도시예요. 시를 쓰고자 하는 분들이 있다면 당장 펜을 들어 쓰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춘천의 많은 예술가들 중 한 사람으로 시작하시면 됩니다. 저 역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하고요.
인터뷰가 있고 며칠 뒤, 주문한 책들이 뒤늦게 도착했다. 동시집을 사보기는 처음이었다. 기분 좋은 선물을 풀다가 문득, 다른 어른에게도 동시집을 선물하고 싶어졌다. ‘동시집을 선물 받는다는 건, 내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뜻이니까!’ 난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적어도 그가 내게 책을 건네주고, 손을 내밀 때만큼은 내 스스로가 소중한 사람이라고 느껴졌으니 말이다.
기지개를 켜고 가슴 한가득 싱그러운 봄바람을 들이킬 때쯤이면 끓여놓은 분노잼 역시 먹기 좋게 잘 식혀져 있을 것만 같다. 황서영 작가처럼 ‘최초의 나’를 바로 볼 수 있는 데 이만한 계절이 있을까? 태초의 시작으로 돌아가 입에 잼을 묻힌 채, 환하게 웃는 순진무구한 어린이가 되자. 봄바람 부는 춘천에서 꽁꽁 숨겨놓은 내면 아이로 타인에게 기쁜 손을 내밀어 보자.
강승원 박인옥
또
다른나를얻다
이름
목선혜 첫 번째 자아 시각예술작가 두 번째 자아 2021년 첫 출산, 딸 하나 맘 특이사항 프리랜서 남편 덕분에 극강의 효율적인 육아 시스템 가능 TMI 천 기저귀를 장려하는 자연친화적인 육아맘
아이를 맡기고 부랴부랴 달려온 그들의 얼굴에 왠지 모를 탈출의 희열과 걱정의 표정이 공존했고, 순간 전우애가 생겼다. ‘엄마’라는 강력한 공통분모를 가졌기 때문일까? 세 명의 아티스트와 에디터의 첫 만남은 ‘성공적’이었다. 타인의 이해와 공감이 얼마나 절실했을까. 맡겨진 아이의 안부는 잠시 잊은 채 간만에 주말 오후를 열정적인 육아 수다로 꽉 채워버렸다. 엄마라는 생경함, 그리고 나를 찾는 여정의 시작. 잠시 봄바람 난 아티스트 엄마들의 현실수다를 전한다.
이름
이름
박은수 첫 번째 자아 시각디자이너 두 번째 자아 2020년 첫 출산, 아들 하나 맘 특이사항 남편이 육아를 도맡아 하는 흔치 않은 케이스 TMI 출산 후 두 달 만에 회사에 복귀한 디자이너 엄마
정인화 첫 번째 자아 뮤지컬 배우 두 번째 자아 2021년 둘째 출산, 딸 둘 맘 특이사항 독박육아 중이지만, 아이로부터 예술적 영감을 받는 중 TMI 자기중심의 끝판왕에서 출산 후 이타적인 성격으로 변화
함께 한 박인옥 에디터 10살 딸과 3살 아들을 둔 프리랜서 작가이자, 문화기획자
정인화
첫 번째 자아 나는 문화예술가 ○○○입니다
인옥 저도 작가, 엄마, 문화기획자 등 다양한 부캐를 가지고 맞는다고 해야 하나요? 있거든요. ‘엄마’이기 전 문화예술가로서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인화 춘천에 와서 느낀 거지만, 일부 예술인들은 ‘기획자’라는 부캐를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지역에서 먹고 살기 위해 어쩌다 인화 뮤지컬 배우로 서울에서 11년간 활동했어요. 남편과 결혼 멀티플레이어가 되는거죠. 후 춘천에 와서는 극단 활동을 1년 정도 했고, 이후 뮤지컬 ‘활동가’로 전환했어요. 뮤지컬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은수 맞아요. 저는 횡성이 고향인데, 춘천에 와서 시각디자인 운영하고, 행사의 진행을 맡아서 했었죠. 낯선 춘천에서 활동가로 회사를 다니다가 창업한 지 올해 10년 차 됐거든요. 디자인하는 전환한 이후, 오히려 더 주목을 받았던 것 같아요. 배우로서
일이 문제 해결의 과정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획 쪽에도 관심이 주인공이었던 적은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이었는데, 활동가라는 가게 됐어요. 현재는 마음 맞는 직원들과 함께 일하며 타이틀을 달고 난 뒤에는 늘 제가 주인공이었어요. 춘천에서 새로운 자아를 발견했죠.
선혜 저의 본캐는 식물을 그리는 화가이지만 부캐가 또 몇 개 선혜 그게 익숙해지면 나 혼자서도 다 할 수 있다는 희열감이 있어요. 미술 관련 행사를 기획하고 사회도 가끔 보거든요. 또 생기더라고요. 혼자 사업기획안도 쓰고, 정산서류도 직접 대학 출강을 나가거나 초등학교 방과 후 수업도 하죠. 조현병
제출하고 … 이제 서류작업에는 도가 텄어요. (웃음) 그래도 환우 등 다양한 이웃들과 함께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어요. 사실 좋아요. 예술가에 대한 스스로의 가이드 라인이 없었을 때, 계속 부캐였을 때 확실히 에너지가 넘치는 것 같아요. 교육 쪽이랑 잘 일하게 해준 곳이 바로 춘천이기 때문이죠.
시각디자이너이자 콘텐츠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장점을 꼽자면 프로젝트 전체를 보는 눈이 생겼어요.
인옥 저는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도 일을 놓은 적이 없었던 것 육아를 전업으로 하고 있죠. 그 점에 대해선 정말 감사하게 같아요. 물론,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고 있어 가능한 생각해요. 일이긴 하지만요. 다들 일 욕심이 엄청나실 것 같은데, 출산 후 일은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선혜 저 역시 출산 2주 후, 바로 인터넷 강의 6주분 녹화를 떴어요. 아이를 봐주시는 이모님이 오시면 그때 일을 했죠. 인화 첫째 때는 임신 사실을 알고 바로 하던 공연을 그만두었어요. 그런데 둘째 때는 다르더라고요. 둘째 낳기 2주 인옥 교육 위주로 일을 하시는 것 같은데, 개인 작품이나 전시에 대한 미련은 없으신가요? 전까지 버스킹을 했어요.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하잖아요. (웃음) 창작 뮤지컬 한다고 출산 직전까지 작곡 프로그램도 배웠죠. 그런데 출산 이후로는 컴퓨터 마우스를 한 번도 안
선혜 사실 대학원을 졸업하고 5년 정도는 작가로서 굉장히 잡았어요. 산후풍도 심해서 지금은 육아에만 매진하고 있답니다. 힘들었어요. 암흑기였죠. 작품이 잘 팔리는 작가가 되어야 작년 11월에 출산하고 오늘 처음 외출하는 거예요.
하느냐, 예술성만으로 밀고 나가는 작가가 되어야 하느냐 하는 딜레마에 빠졌어요. 오만함과 자만심이 가득했죠. 하지만 결혼과 은수 저는 출산하고 나서 일에 대한 의욕이 더욱 충만해진, 출산으로 전혀 다른 뚜껑을 연 기분이에요. 스스로 내 멱살을 조금 특별한 케이스예요. 거의 두 달 만에 업무에 복귀했는데, 잡아 억지로 끌고 왔었는데, 욕심을 버리니 ‘부캐’를 받아들이게 휴대폰 SNS로는 거의 뭐 병원에서 이미 복귀했죠. (웃음) 사실 됐고 이를 통해 ‘안정감’을 찾게 됐어요. 개인 작품에 있어서도 저는 육아를 거의 하지 않고,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에요. ‘작업’만으로도 만족감을 느끼는 수준으로 복귀한 것 같아요.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데 남편이 일을 잠시 내려놓고 살림과
광활한 무중력 공간을
박은수
유영하던 그들에게 어느 날 작고 소중한 ‘아이’가 생겼다. 변화된 삶의 균형과 조화를 위해 늘 고민해 왔지만 ‘나’라는 존재는 엄마가 된 이후, 더욱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두 번째 자아
인옥 모두 ‘엄마’로서 새로운 시작을 이미 하셨잖아요. 난 어떤 ‘엄마’인가요?
인옥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관점이 바뀌었나요?
인화 예술가로서 늘 전전긍긍했던 내 안의 규칙이 인화 저는 ‘노력하는 엄마’입니다. 뮤지컬 배우로 활동할 당시 사라졌어요. 1년에 몇 회 이상 무대는 꼭 한다! 이런 거 있잖아요. 저는 정말 자기중심의 끝판왕이었거든요. ‘세상의 중심엔 나 밖에 여유가 생기니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사실 아이를 없다’ 식의 마인드였죠. 그런데 첫째가 생기고 ‘희생’이라는 걸 키우면서 제가 애정결핍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제 스스로를 알게 됐어요. 처음엔 적응하기 힘들어서 딸과 자주 싸우기도 했는데 둘째부터 ‘아이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란
돌보기 위해 먼저 언어교정을 시작했는데 아이들에게도 긍정적인 변화로 다가왔어요. 아이가 바뀌니 제가 더 신이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내 안의 이타적인 자아를 결국 인정했죠. 나더라고요.
선혜 저는 ‘쉴 새 없이 말을 건네는 엄마’예요. 마치
은수 그 말에 저도 공감해요. 오은영 박사 나오는 TV 프로그램을 돌리듯 육아를 하고 있는데, 부부가 모두 프리랜서라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내면적인 성장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내 극강의 육아 효율을 자랑하거든요. 정확하게 역할을 나누고 시간제로 아이를 돌봐요. 각자 잘하는 것을 찾아 페어플레이하는 거죠.
은수 보통 아빠들이 집에 오면 잠든 아이를 깨우고 싶어
선혜 제가 낯을 좀 가리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아이를 낳고 하는데, 반대로 제가 그 충동을 느끼고 있어요. (웃음) 사실 저의 보니 남의 아이가 눈에 들어오고, 또 공감하게 되고 반응을 하게 인생계획에 있어 출산은 포함돼 있지 않았어요. 그런데 아이를 되더라고요. 좁고 오래가는 대인관계를 원했는데 그 긴장이 살짝 너무 좋아하는 남편이 모든 육아를 책임지겠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지금의 상황까지 오게 됐어요. 저는 육아용품이 떨어지지 않게 주문해 놓는 정도?
풀렸어요.
인옥 분위기 깨는 질문이라 미안하지만, ‘엄마’가 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까요?
안의 어떤 결핍이 아이에게 갈 수도 있겠구나. 내내 일만하던 사람이 이런 프로그램을 보고 뭔가 느끼게 됐다는 것조차 저에겐 큰 변화예요.
인화 맞아요. 저도 저만의 바운더리가 딱 정해져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나이 불문, 모든 여자들과 다 친해질 수 있어요. 맞춰졌어요. 아이들 키우는 것도 일하는 것도 다 행복하자고 (웃음)
하는 일이니까요. 건강한 삶을 위해 계속 성장해 나갈 생각이에요.
은수 남편이 육아를 정말 잘해주고 있고, 저는 하던 일을 하면 되는 상황이니까 굉장히 뭔가가 달라지진 않았어요. 하지만 디자인 일을 하다 보니 새로운 영역에 눈을 뜨게 됐죠. 신박한
은수 일에 만족하고 나름 행복을 찾았을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아이를 좋아하는 남편을 보며, 가족의 행복을 만들어 준 육아용품부터, 어딜 가든 공간 디자인이 먼저 눈에 띄더라고요. 지금의 제 자신이 좋아요.
유니버셜 디자인의 영역까지 생각하게 된 거죠. 나름 디자이너로서 시각이 확장된 것 같네요. 인화 아이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어요. 배우는 감정을 가지고 연기하는 사람이잖아요. 누구보다 많은 감정을 누리고 선혜 저 같은 경우는 아이와 함께한 시간이 작품에 영향을 있다는 자만심이 컸는데, 지금 느끼는 감정과는 비교할 수가 없어요. 매 순간 기쁨과 희열을 느끼고 있거든요.
줬어요. 이전에 그린 작품들은 식물임에도 역동적이고 자기주장이 강한 느낌으로 표현했었더라고요. 그러다 아이와 함께 하면서 길가에 난 작은 풀, 잡초에 더 정이 가더라고요. 선혜 맞아요. 아침에 일어난 아이의 볼에 둥근 해가 떠 있는 작품에 대한 저의 생각 자체가 아이를 대하듯 많이 안정됐음을 걸 본다면, 생각이 달라질 거예요. 절대 후회하지 않아요. 경험을 느꼈어요. 안 했으면 모를까. 인화_ 맞아요. 아이한테 영감을 정말 많이 얻어요. 저는 곡 하나 인옥 ‘엄마’와 ‘예술가’로서 함께 성장할 수 있을까요? 쓰려면 며칠이 걸리는데, 아이가 흥얼흥얼 노래를 지어 부르는 걸 보면 ‘창작이 저렇게 쉬웠나’ 싶어요. 모차르트를 바라보는 인화 확실히 출산 이후 작품활동의 포커스가 ‘행복’에
살리에리의 심정을 느끼기도 한답니다.
자신의 내면을
목선혜
그냥 내버려 두지 않기를 바라는 모든 엄마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
그래도 나답게
빛나는 순간들
인옥 내 아이의 유년시절에 꼭 심어주고 싶은 춘천의 모습이 곳이더라고요. 아이에게도 당연히 문화적인 끼와 영감이 있을까요? 전달되겠죠.
은수 춘천은 감성적인 부분을 많이 누릴 수 있다는 게 강점이 인옥 삶과 예술 사이를 항해하는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닐까요? 아이가 춘천의 자연을 마음껏 누리고, 문화적인 감성이 자랄 기회를 자연스럽게 제공하는 것.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어요.
인화 요즘 제 삶은 마치 아동뮤지컬을 하는 것 같아요. 육아는 거의 종합예술이죠. 뮤지컬이 한 판 놀고 끝나는 거라면, 육아는 선혜 춘천에는 걸어다닐 데가 참 많아요. 걸음만으로 일상을 매 순간 최상의 컨디션으로 무대를 뛰는 거라고 생각해요. 쫓아갈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이죠. 예쁜 골목과 아름다운 강이 아이와의 일상이 무대가 되는, 그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선 보이는 산책로가 많잖아요. 걸어다닐 수 있는 거리에 친구가 산다는 것도 참 정겹고요. 우리 아이도 그런 삶을 누렸으면 좋겠어요.
인화 이 도시는 참 자연 친화적이에요. 저는 자연과 가까이 있을 때 행복하거든요. 또 엄마가 문화예술인이기도 하지만, 춘천은 곳곳에서 소소한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는
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우선 부딪혀보고 시도해보는 것 역시 나쁘지 않다고 봐요. 결혼하고 활동하는 작가들 중에 남성작가들이 많은 이유는 육아에 동참하지 않아서일 거예요. 육아를 하면서 작품활동을 하는 건 혼자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은수 모두의 입맛에 맞는 디자인이 없듯 모두가 만족하는 육아법은 없죠.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성장이 느린 것 같다고 해서 조바심 가질 필요도 없고요. 엄마가 아닌 아빠가 육아를 전담한다고 해서 눈치 볼 것도 없고요. 나의 삶에 ‘빛’이 나야, 우리 아이도 늘 반짝반짝 빛날 수 있지 않을까요?
정말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제 스스로 새 이름을 가졌어요. 매일 매일 새로운 엄마 ‘새로이’라고요. 예술가 엄마들에 대한 편견, 저는 자부심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오만해질 필요도 있다고 봐요.
선혜 꼭 첫 번째 자아로 돌아갈 필요가 있을까요? 삶과 예술을 균형있게 가져가기 위해선 주변인들과 가족, 배우자의
예술가의 자아가 지배하던 그들에게 도시는 늘 문화적인 영감을 줬고, 예술은 그들을 설레게 하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엄마의 자아가 더해진 이후 삶과 예술의 경계를 끊임없이 항해하고 있다. 각자 추구하는 예술세계가 다르듯, 저마다의 육아 방법으로 나름의 삶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그들. 유쾌한 대화 끝에 에디터가 내린 결론은 어쨌든 이들에게 ‘나를 설레게 하는’ 대상이 하나 더 생긴다는 건 썩 나쁘진 않다는 거다. 아름다운 도시에서 뭔가 시작하는 기쁨은 언제나 설레고 또 두근거리는 법이니까.
한건수
문체부 문화다양성위원회 위원장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문화다양성 과 도시 의
창의적 발전
것인지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물론 학교의 원로
달라지는 면발과 양념의 조화가 만들어 낸다.
도시의 매력은 어찌 보면 막국수의 맛과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시민들이 자유롭고 다양하게 자신들의 고유한 삶의 가치를 발현해 낸다면 그 다양한 삶의 변주가 도시의 매력을 넘치게 할 것이다. 춘천은 법정 문화도시로 지정된 이후 문화의 창안과 향유를 시민이 주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문화도시로 앞서 지정된 국내의 다른 도시들과 비교하면 도시발전의 비전이 그리 새롭지 않다. 법정 문화도시 사업이 촘촘한 사업 규정과 평가체계로 예산의 집행과 사업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도시의 숫자는 늘어나고 있지만 해당 도시들이 추구하는 도시 발전의 비전이나 내용은 대부분 유사한 실정이다.
춘천에 정착한 지 이제 20년이 되어 간다. 낯선 도시였던 춘천이 이제는 좀 익숙해진 느낌이다. 대학 시절 학교 인근에 있던 춘천막국수 집에서 쟁반막국수 먹기를 좋아했던 필자는 춘천에 내려와서야 막국수의 맛이 어떤
교수들은 막국수가 맛있다는 내게 늘 막국수는 한 오 년은 먹어야 그 맛을 조금 알게 될 거라며 아직 멀었다고 핀잔을 주었다. 이제는 모두 정년퇴임을 하신 그분들을 생각하며 나도 막국수를 먹는 신임 교수들에게 막국수의 맛을 알려면 한참은 더 먹어 봐야 한다고 농담을 한다. 막국수 맛의 비결은 역시 메밀의 함량 차이가 만들어 내는 섬세한 면발의 차이에서 나온다. 입안 가득 들어 온 면발이 후드득 끊어지는 질감의 정도가 식당마다 다르고 양념이 섞이는 맛도 다르다. 춘천 막국수의 비밀은 바로 식당마다 메밀의 함량을 다르게 반죽해 내고 그에 따라
도시의 발전은 그 도시의 고유함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도시마다 입지 조건과 산업 생태계가 다르고, 역사적 배경도 상이하다. 더욱이 문화를 통한 도시의 발전, 진정한 문화도시의 수립은 해당 도시 주민의 삶의 경험과 역사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춘천은 같은 강원도의 문화도시인 강릉이나 원주와 달라야 하고, 경기도의 부천이나 경남의 김해, 전남의 목포와 달라야 한다. 춘천을 춘천답게 만드는 길은 무엇일까? 춘천의 문화도시가 다른 도시와 다른 길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법정 문화도시의 정책 기준은 모든 도시에게 똑같이 적용될 뿐이다.
춘천다움은 춘천 시민과 춘천의 자연환경이 서로를 만들어 온 역사에서 형성된 것이다. 인류학에서 설명하는 춘천 문화는 춘천이라는 공동체의 성원이 학습하여 내면화한 가치와 생활양식 그리고 이를 통해 표현되는 창의적 문화 활동, 정체성을 말한다. 춘천 시민은 오랜 역사적 과정을 통해 오늘날의 춘천 문화를 만들어 냈고, 지금도 새로운 문화를 형성해 내고 있다. 청년과 장년, 노인이 자기 세대의 문화를 향유하고 있고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 시민 모두는 각자의 영역에서 세대, 성별, 친족집단, 종교적 공동체, 직종에 따라 고유한 문화를 계승하고 새롭게 혁신하며 발전시키고 있다.
문화도시 춘천이 해야 할 일은 이러한 시민들의 창의적 다양성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스스로 혁신할 수 있는 지원정책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춘천인의 삶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제대로 파악하고 청년과 새로운 세대가 이를 새롭게 창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환경 조성은 다양성이 꽃필 수 있는 도시의 개방성을 강화하는 데 달려 있다.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임을 강조한 바 있다. 이러한
개방성과 포용성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유네스코는 인류 문화의 창의적 발전은 다양성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유네스코의 문화와 발전 세계위원회는 『우리의 창의적 다양성』(1996)이라는 글로벌 리포트를 통해 인류의 생존과 미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의적
창의적 다양성은 창의적 인재를 확보할수록 강화된다. 실제 미국에서 2000년대 이후 혁신적인 도시 발전을 이룩한 사례를 연구한 학자들은 성공한 도시의 공통점이
문화도시 춘천은 얼마나 개방적이고 포용적인가? 김해시의 청년 예술가들은 매년 ‘연어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김해 출신의 출향민 예술가들이 김해로 돌아와 활동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창작공간을 지원하기 위한 사업이다. 지역 소도시의 예술생태계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출향민 예술가들의 귀환과 연대를 통해 지역 예술계의 개방성을 강화하겠다는 시도이다. 이러한 연대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김해와 연고가 없는 다른 도시의 청년 예술가들이 김해에 자리잡을 수 있는 예술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춘천의 문화계 역시 개방성과 포용성을 확대하기 위한 적극적 노력을 해야 한다. 춘천의 고유한 문화 전통은 외부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더욱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의 다양성 증진은 개별 문화를 박제하고 분리하여 보존하는 것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늘 새로운 문화 요소들과 교류함으로써 새롭게 해석되고 발전할 수 있다. 한약방의 약재는 하나하나 정갈하게 손질되어 약재서랍에서 보관한다. 그러나 정작 약재가 효혐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약재를 함께 뒤섞어 탕재로 만들어야 한다. 문화의 다양성은 춘천인이 자신들의 문화를 끼리끼리 움켜안고 있는 것으로 증진되지 않는다. 춘천 시민의 다양한 문화실천은 외부와의 교류를 통해 그 꽃을 피울 수 있다. 따라서 춘천 문화의 고유성과 다양성은 춘천의 개방성과 포용성에 따라 결과를 달리할 수 있는 것이다.
문화도시 춘천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너무나 천편일률적인 법정문화도시 매뉴얼부터 잠시 덮어두자. 창의적 다양성을 시민의 삶에서 확인하고 이를 꽃피울 수 있도록 도시의 경계를 넘어서야 한다. 교류하고 뒤섞일수록 춘천다움은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고, 여기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창의적 다양성은 문화도시의 핵심 자원이기 때문이다.
낯도선시의풍경
임동근
한국교원대학교 교육박물관 연구원
낯도선시의풍경
‘도시’를 다른 이에게 소개할 때면 처음 던지는 말이 있다. “도시는 자신이 먹을 것을 생산하지 않는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사는 곳이다.” 먹어야만 사는 생명체인 사람이 자신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먹을 것을 다른 이에게 완전히 의탁하는 일은, 생물학적으로 보았을 때 좀처럼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국가가, 사회가, 혹은 내가 속한 집단이 나의 생존을 보장하는 먹거리의 운송을 보장해주는 것, 이를 시스템이라 할지 제도라 할지 모르지만 ‘안정’된 무엇인가가 도시 사람들의 삶을 유지시켜 주고 있다.
상점, 시장 등에 산재한 도시의 창고는 기껏해야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식량만을 비축하고 있을 뿐이지만 우리는 아무도 도시에서 먹을 것이 사라지는 일을 상상하지 않는다.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농사를 안 짓고 있음에도 말이다.
도시에 살면서 덮어둔 근본적인 또 다른 질문은 사람들이 움직이는 이유이다. 역사적으로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은 자원이 있는 곳으로, 먹을 것을 찾아 이동했다. 심지어 농경사회라 하더라도 생산기술의 발달, 전쟁 등을 겪으며 사람들의 이동은 계속되어 왔다. 반면 20세기 전쟁 이후의 국가는 사람들을 일자리에 머물게 하고, 국가와 사회가 사람들을 위해 식량을 이동시키는 국민국가 체제를 발전시켰다.
의무교육, 징병제도, 사회보장제도 등 국가는 생산시설과 결합된 국민을 위해 필요한 무역 및 물류시스템을 유지해 왔다. 국민은 먹을 것을 찾아 국경을 넘을 수 없고, 국가는 국민을 위해 국경 너머에서까지 먹을 것을 가져오는 세상을 만든 것이다.
국민국가에서의 도시 발전사는 국경 안에 머무는 사람들을 위한 장치와 먹을 것을 찾아 이동하는 사람들의 삶이 중첩된 모습을 띤다. 국가 경제를 위한 공업단지의 건설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고등교육기관의 운용 등 사회경제발전을 위한 국가의 정책은, 경제개발계획, 국토종합개발계획에서 보듯이 국토 내 산업시설과 인력배치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 결과 우리가 경험한 국가발전에서 경제를 발전시키는 장소들로 필요한 인적 자원들을 불러 모으는 사회 환경이 조성된다. 국가의 발전 전략에 따라 도시마다 산업 기반이 조성되고, 그 특성에 따라 필요한 인력이 전국적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과정들은 지금까지도 우리나라 도시의 주요 풍경들이다.
도시 입장에서 더 많은 발전 잠재력이 있는 시설의 배치를 원하고, 이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을 모으고 싶어하는 바람들은 선거 때마다 겪는 익숙한 도시의 풍경들이다.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자본의 국가 간 이동과 산업구조의 재편이 던진 소위 ‘국가위기’는 바로 이 세 가지 질문의 연결고리 속에 있었다. 다국적기업이 등장하고 외국인 노동자가 국가경제의 주요 이슈가 되었을 때, 도시에 오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도시에 정착하고 살아가는 국민국가의 규범과는 다른 모습을 띤다. 오늘날 우리는 국가산업단지의 시설들도 국가 내 다른 도시로, 국경 밖 다른 나라로 이전하는 소식을 종종 접하고, 도시를 움직이는 주요 시설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본다. 일자리가 있다면 세계 어느 도시에 있어도 먹을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세계무역체계가 안정적으로 굴러가고, 도시에 사는 국민뿐만 아니라 외국인도 포함하는 사회보장보험 및 국가지원체계가 작동하며, 지방분권 등을 통해 강화된 지방자치단체는 국가를 대상으로, 때론 국가를 매개로 해외 자본과 연결되어 발전 전략을 짜는 주체로 등장했다.
2021년 이후의 팬데믹은 소위 ‘세계화’로 일컫던 이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일어난 일이다. 2010년대부터 세계 곳곳의 정치 · 사회불안과 전쟁으로 난민들이 이동하였고, 중국 등 신흥개발국가의 인적 자원과 관광객들이 전세계에 흔적을 남겼다. 특히 성장 위주로 국내 불균형을 경험한 국가들은 균형 발전 정책을 취하며 미개발된 지역의 도시화가 촉진되었고, 항공 등 교통기반시설의 확장과 뉴미디어를 통한 일상생활의 세계화가 새로운 장소의 탐험을 부추겼다. 드러나지 않고 머물고 있던 사람, 물자, 생명체들이 지구상 곳곳으로 흘러가는 흐름들이 빨라지면서 우리는 도시의 낯선 풍경들 만큼이나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것들을 접하는 중이다. 낯선 생명체, 생소한 제도, 당혹스러운 사회갈등 등 몇 년 전이라면 상상할 수 없던 사회적 현상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어제의 경험이 오늘 어떻게 살지 알려주지 못하는 변화의 세상 속에서 ‘국가’는 다시 우리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국가마다 출입국 제한이 일별로 달라지며 국경이 닫히고 통제되며, 국가의 방역체계는 지역의 기준으로 공간적 분할이 발생했다. 재난지원금 등 국가 주도로 진행되는 사회보장정책 또한 지방자치단체 구획에 따라 진행되었고, 산업구조 재편으로 유동하던 인구의 흐름 또한 주택정책 등 여러 이슈와 결합되어 정체되었다. 반면 장소적으로 고정된 사람들을 향해 움직이는 물자의 흐름은 세계적, 국가적, 지역적인 여러 스케일에서 동시에 폭증한다. 항공교통에서 여객 수송량은 감소했지만 화물 수송은 늘어났고, 국가 내 물류센터를 오고가는 화물은 팽창했으며, 예전 도심에서나 보던 배달차량은 이제 동네 곳곳을 다닌다.
과연 예전에 우리가 보았던, 공간적으로 머무는 사람들과 이를 위한 국가가 보장하는 물자의 흐름이 다시 부활한 것인가? 당분간 이 답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20세기 초의 독감 유행이 전쟁 등과 함께 세계를 재편했던 것처럼 현재의 위기들이 새로운 세계 질서를 만들 수도 있고, 발전된 통치기술을 통해 기존의 흐름을 강화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느 쪽으로 진행될지 알려 주는 여러 징후들을 포착할 수 있다.
피해를 입은 자영업 종사자들을 위한 국가의 지원제도는 어떤 형태일지, 이에 파생되는 사회변화는 무엇이 있는지를 추적하면서 기존 국민국가 체제처럼 국가 중심의 인력양성시스템이 찾아올지 판단할 수 있고, 지역별 산업배치를 국가와 몇몇 재벌이 주도하며 국민의 공간적 배치 전략을 다시 꺼낼 수도 있다. 반대로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생산성 위주의 기업 주도 환경이 지역을 넘나들며 구축되고, 이에 필요한 인적 자원들의 전세계적인 유랑을 다시 볼지도 모른다. 그 어느 쪽으로 진행되든 이제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도시를 경험할 테고 그 모습은 이전과 미묘하게 달라진 익숙함을 만들어 낼 것이다. 우리가 선택한 그 익숙함, 사회가 집단적으로 결정하는 그 변화가 미래를 바꾸고 있는 중이다.
이원일 최수현
기왕이면 유쾌하게, 기왕이면 즐겁게
시민의 바람이 문화정책으로 이어지려면 다양한 과정과 조건이 필요하다. 말하는 입, 듣는 귀, 씨앗이 되는 의견, 받아들여지는 토양, 싹이 틀 때까지 끊임없이 지켜보고 물을 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2021년 법정 문화도시로 지정된 춘천은 그한해전 문화도시 예비사업부터, 무엇보다 춘천에 사는 사람들 스스로가 도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다양한 사업을 진행해 왔다. 2022년 3월, ’시민협의체‘로서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도시를 위해 나아가는 봄바람 발대식의 기록을 여기에 담는다.
봄바람이 걸어온 길 2020년 춘천 문화시민모임 봄바람 출범 2021년 봄바람 추진단 활동 시작 시민협의체로 나아가기 위한 운영 규정 제정 등 정기회의 9회 운영 대화 모임 80회 운영, 116개 의견 수집, 200여명 시민 만남 자율프로젝트 3건 운영(시 낭송, 한국무용 알리기 등) 역량강화 3회 운영(퍼실리테이션, SNS 등) 2022년 시민협의체 봄바람 운영위원회 출범
우리의 바람은 도시와 어떻게 연결될까 3월 29일부터 1박 2일간 전국의 문화도시 시민협의체들이 모여 운영 현황을 공유하고 발전 방향을 함께 탐색하는 장이 춘천에서 열렸다. 도시마다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는 시민 활동을 모아내고, 이를 시민이 직접 이야기하며 서로 지지와 30일에 진행된 라운드테이블에는 포럼에서 논의한 응원을 만들어가는 자리가 이번이 처음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사례, 출범 이후 성장과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사례 등 도시마다 조성의 환경과 구조가 달라 더 많은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자리였다. 열띤 토론과 공유가 이어졌다.
내용을 바탕으로 앞으로 시민협의체의 방향과 활동을 위해 필요한 환경이 무엇일지 모색하는 자리가 이어졌다. 이후 봄바람 운영위원들이 직접 기획하고 가이드로 참여한 도시탐방에서 춘천의 주요 문화공간을 둘러보며 행사가 마무리됐다. 앞으로도 시민들 간의 교류를 확대하고 서로 연대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나갔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주를
29일에 진행된 포럼에서는 문화도시를 준비하는 도시부터 3차 법정 문화도시까지 7개 시민협의체·활동가가 발제자로 나섰다. 기존부터 운영해 오던 시민 활동력을 구심점 삼아 문화도시 사업으로 확장한 사례, 기반을 닦아가고 있는 도시의 이루었다.
나 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 포럼과 이어진 3월 29일 발대식 〈움츠린 도시를 깨우는 봄바람이 분다: 바람난 춘천〉은 춘천문화예술회관 공연장에서 열렸다. 문화도시
시민협의체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고민한 사람들답게 엄숙하고 진중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분위기가 바뀌었다. 어쨌든, 함께 재밌게 잘 조성사업의 맥락에서 춘천이라는 도시를 바라보는 살아 보자는 거 아니야? 즐기면서 살자는 거 아냐? 관점을 공유하는 자리이자, 작년의 사업성과와 향후 유쾌하고 즐거운 음악이 이어지며 무대와 객석이 펼쳐질 36개의 사업을 공유하는 설명회이기도 했다. 다같이 어울려 춤추었다. 윗분들도, 감독님도, 예술가도, 아이들도, 무대 위로 올라와 다함께 춤을 피날레로 마이크를 찬 봄바람 운영위원들이 무대에 추었다. 포럼부터 리허설까지 하루 종일 이어진 올랐다. 조각가부터 소방관, 농부, 사회복지사까지 강행군에도 시민협의체의 출범을 축하하며 춤추는 다양한 직종과 개성을 가진 16명의 운영위원들은
운영위원들의 얼굴에는 지치거나 피곤한 기색 없이 각각 지향하는 삶의 바람을 공표하고, 봄바람 활동의 즐거움이 가득했다. 방향성을 담은 선언문을 낭독했다. 문화도시
문화로 도시를 깨우는 봄바람은 이제 나아가기 시작했다. 바람에 깨어난 꽃들이 머리를 맞대고, 온 도시가 꽃밭이 되는 과정을 상상하며 춘천에 사는 사람들은 즐겁게 춤출 것이다. 춤추기가 부끄럽다면, 환호성을 질러 보는 것도 괜찮다. 때로는 박수로도 충분하다. 기왕이면 유쾌하게, 기왕이면 즐겁게.
문화도시춘천 시민협의체 봄바람 선언문 전문 문화도시 춘천 시민협의체 ‘봄바람’은 ‘문화도시 춘천’의 가치와 의미를 소중히 여기며, 춘천시민 누구나가 문화예술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배우고 실천하는 일에 앞장서겠습니다. 또한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며 웃을 수 있는 따뜻하고 다정한 ‘문화공동체’를 지향합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밭을 일구는 마음으로 ‘문화도시 춘천’을 만들어 가며, 그 역할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약속합니다.
하나, 봄바람은 춘천시민의 행복한 문화생활을 위해 충분히 소통합니다. 하나, 봄바람은 더 가까운 곳에서 문화를 느낄 수 있도록 이웃과 나를 연결합니다. 하나, 봄바람은 문화도시 춘천의 시민으로서 일상의 문화실현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합니다. 하나, 봄바람은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문화생활을 위해 다양성을 추구합니다.
조동화 시인의 〈나 하나 꽃피워〉라는 시에는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나 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춘천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꽃을 피우는 그날까지, 문화도시 춘천 시민협의체 ’봄바람‘은, 서로에게 스미는 바람이 되겠습니다.
문화도시 춘천 시민협의체 봄바람은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네이버 카페를 통해 가입 신청을 받습니다.
우연한 공동체가 되어 각각의 생이 떨리는 순간
제목은 목정원 산문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에서 빌렸습니다.
춘천시립교향악단 송유진 상임 지휘자를 만나다
관객은 기대를 안고 공연장에 들어선다. 오늘 공연을 위해 몇 주 혹은 몇 달 전부터 예매하고, 달력에 표시해 둔다. 빨간 펜으로 동그라미 친 날이 다가올수록 기분 좋은 설렘을 느낀다. 저녁 시간 공연장에는 약간의 부산스러움이 있다. 누군가를 만나 인사하는 사람, 자리를 안내하는 하우스 어셔, 줄을 서서 티켓을 발부받는 사람. 분주한 분위기 속에서 관객은 자신의 자리를 찾아 앉는다. 공연장은 이내 차분해지고, 오케스트라와 지휘자가 무대에 오른다. 힘찬 박수 소리와 함께 공연이 시작된다. 객석에 몸을 기댄 뒤 눈은 무대에, 귀는 활짝 열어둔다.
춘천시립교향악단 강원도 최초의 공립교향악단으로 1985년에 창단했다. 참신한 기획과 완성도 높은 연주로 춘천 시민들에게 꾸준한 지지와 사랑을 받으며 현재 국내 정상급 교향악단으로 성장했다.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연주자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우리나라 대표 음악축제인 교향악축제와 평창대관령음악제에 초청되어 호평을 받았다. 최근 코로나 19로 어려워진 공연 환경에서도 이어진 매진행렬을 보면 춘천시립교향악단을 향한 춘천 시민들의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정기연주회와 가족 관객을 위한 패밀리 콘서트, 문화적 혜택이 취약한 곳으로 찾아가는 공연, 실내악 연주회 등 연 30회 이상 참신한 기획으로 시민들 가까이서 클래식 음악의 감동을 전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리고 2022년 제5대 상임지휘자로 송유진 지휘자가 취임하였다.
첫 번째이거나 유일한 작품 2022년에 취임한 송유진 상임 지휘자는 올 한해를 춘천시립교향악단과 알아가는 기간으로 정하였다. 송유진 지휘자는 알아가는 단계에서 필요한 여러 가지 도전을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악이 존재하는 우주 하나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 여러 사람이 공연장에 모인다.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요즘이지만, 그럼에도 많은 관객이 공연장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송유진 준비하고 있다. “춘천시립교향악단에서 해보지 않았던 도전을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와 관객이 함께하는 호흡의 중요성을 해보려고 합니다. 연주의 형태가 될 수도 있고, 연주목록의 변화일 수도 있습니다.” 춘천시립교향악단의 올해 정기연주회는 ‘작곡가들의 첫 번째이거나 유일한 작품’으로
강조한다. “오케스트라는 연주를 위해 기능적, 감정적인 여러 준비를 마치고 무대에 오릅니다. 무대에 오르면 관객이 느껴지죠. 오케스트라와 지휘자의 음악을 고대하고 온 관객이 기획했다. 올해 여섯 번의 정기연주회에서 작곡가들의 첫 번째 많을수록 연주회장의 아우라가 달라요. 그런 관객들과 연주를 혹은 유일한 작품이 포함된 곡 목록으로 신선하고 폭넓은 클래식 음악을 선사한다. 연주가 잘 되었을 때의 기쁨 끊임없이 질문하는 지휘자 송유진 지휘자는 다섯 살 때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지휘자는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리허설을 하기 전부터 악보에 오케스트라 공연연주를 보고, 지휘에 흠뻑 빠졌다. 헤르베르트 대한 분석은 물론이고, 악보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분석하고 폰 카라얀과 같은 지휘자의 몸짓과 움직임에 따라 탐구한다. 이 작품은 작곡가의 몇 번째 작품인지, 이때의 작곡가는 어떤 상황이었는지, 왜 이런 작품을 썼는지, 그 시대에 다른 작품과 어떻게 다른지 등을 끊임없이 스스로
통해 하나 되는 느낌이 좋아요.”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소리의 색깔과 성격이 달라지는 게 인상 깊었다고 한다. 어린 그가 유치원에서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에 맞춰 지휘하자 선생님이 동요를 가지고 지휘해보라고 질문하는 시간을 가진다. 리허설에서 ‘다시’라는 말을 여러 번 권유했다가 한 달 만에 잘린 일화를 이야기하며 웃기도 했다. 반복하며 그가 탐구한 소리를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함께 만든다.
그에게 공연 중 어느 순간에 기쁨을 느끼는지 물었다. “연주가 잘 되었을 때가 가장 기쁘죠. 제가 느끼는 감정과 몸짓에 단원들의 연주가 딱 맞아떨어졌을 때 가장 기뻐요.” 춘천시립교향악단과 송유진 지휘자는 최상의 연주를 전하기 위해 연습하고, 또 연습한다.
2022년 춘천시립교향악단 연주 일정 2월 24일 제159회 정기연주회 4월 14일 제160회 정기연주회 4월 28일 정기회원 음악회 5월 7일 특별연주회 패밀리 콘서트 6월 16일 제161회 정기연주회 7월 1일 특별연주회 패밀리 콘서트2 7월 14일 제162회 정기연주회 7월 21일 특별연주회 실내악 시리즈1 8월 25일 특별연주회 실내악 시리즈2 9월 22일 제163회 정기연주회 10월 20일 제164회 정기연주회 12월 3일 특별연주회 브런치 콘서트2
관객은 공연장에서 보고 듣는 행위의 주체자다. 연주자와 지휘자, 그리고 관객은 하나의 공연장에서 우연한 공동체가 되어 각각의 생이 떨리는 순간을 공유한다. 감동과 전율은 각기 다른 모양으로 새겨진다. 춘천시립교향악단의 연주에서 떨림을 경험한 관객은 또다시 연주회 일정을 확인하고, 다음 공연을 기다린다.
박인옥
을
아침 엔
노트북
나는 가장 먼저, 아침엔 노트북을 켜지 않기로 했다.
켜지
않 기로 했 다
어릴 적 나의 하루는 늘 새벽에 시작됐다. 한밤중인지 새벽인지 구분도 안 되는 어둠 속에서 아빠는 출근 준비를 한 뒤 텔레비전을 켰다. 그리고 느긋하게 담배 한 대를 태우고 집을 나서셨다. 어둠 속에서 혼자 떠들고 있는 텔레비전 전파에 잠을 더 청할 수 없었고, 제대로 눈을 떴을 땐 이미 어스름한 새벽이었다. 소양로에 살 때였는데, 가끔 엄마를 따라 번개시장 구경 갈 때면 나도 덩달아 부지런해지는 기분이었다. 이른 등굣길엔 푸른빛이 도는 아침 공기를 일부러 더 들이마셨다. 가장 먼저 도착한 교실에선 낯선 냄새가 났고 그게 또 나를 설레게 했다.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침의 설렘은 성인이 되고 사라졌다. 괜찮은 무기 없이 세상에 던져진 이후, 지금까지 내 삶은 끊임없이 나를 증명하는 자존감 찾기의 연속이었다. 인정받으려면 일을 잘 해야만 했고, 프리랜서로 지낸 10여 년의 시간 중 대부분을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았다. 직장인이 아닌 나는 게으른 사람 같았고, 결국엔 마감에 치이고 일이 밀리거나 몰리면 새벽까지 일해야 하는 삶이 계속되었다. 올빼미형 인간이 되어, 빨리 밝아오는 아침이 야속하고 미워졌다. 난 뱀파이어가 된 것처럼 아침이 미친 듯이 두려웠고, 밝아오는 해는 부담처럼 늘 나를 짓눌렀다.
아침은 무조건 설레야만 하는가? 그렇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아침이 우울하면 하루가 불쾌하다. 그렇다면 나는 아침에 눈 뜨는 것이 설레는 사람인가, 아닌가. 일본의 정리 전문가 곤도 마리에는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 했다. 물건처럼 내 아침 일상도 정리가 필요했다. 사실 날마다 나를 맞이하는 아침은 늘 새것이다. 무엇이든 그릴 수 있는 백지에 늘 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나. 매일 새로운 아침을 헌것 인양 소모하다 보니, 하루를 시작하는 설렘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뭔가 작전이 필요했다.
늘 일할 시간이 모자랐던 나는 일을 줄이고, 대신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서로에게 든든한 아침이 되어주기로 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첫째와 어린이집 다니는 세 살 막내를 친정엄마로부터 인계(?) 받았다. 원래 내 것이었던 친정엄마의 아침을 되찾아온 것이다. ‘차라리 일을 하고 말지!’ 윽박지르고 또 어르고 달래다 보면, 창가를 바라보며 모닝커피를 즐길 여유 따위는 사라진다. 하지만, 등교&등원 미션을 클리어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상야릇한 쾌감이 찾아온다. 비로소 평화가 찾아오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혹은 라디오를 듣는다. ‘난 멋진 워킹맘이야, 멋진 아침을 보냈어’ 자신감으로 파이팅 넘치는 하루가 될 것을 믿고야 만다. 차창 너머 휙휙 지나가는 소양강의 풍경이 새삼 아름답다. 창문을 살짝 내리자 봄내음이 느껴진다.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에서 난 지금까지 뭘 한 걸까.
아침에 노트북을 켜지 않자, 나름 루틴이 생기기 시작했다. 업무상 일정을 오전 10시부터 시작하기로 정해놓으니 아침밥 먹을 여유까지 생겼다. 내가 아침을 먹는 일은 미뤄둔 행복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 몸은 바빠졌지만 정신이 개운해졌음을 느낀다. 뭔가 건강한 육체노동의 기쁨이라고 해야 하나? 스마트폰 속 가십거리와 업무 톡, 일거리로 가득했던 나의 아침은 정리정돈을 거친 뒤 대체로 가벼워졌다.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난 후 어질러진 집을 둘러본다. 치울 게 산더미지만 업무미팅 전까지 이까짓 것 금방이다. 오늘도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해나갈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는 힘은 ‘설렘’에서 출발한다. 나 역시 고작 ‘아침’이 바뀌었을 뿐인데 많은 것이 달라지고 있다. 그렇게 가슴 설레는 삶은 작고 사소한 것에서 시작하는 듯하다.
올해 2월, 운영하던 책방을 마무리했다. 천천히 정리했다. 공간만 정리하는 데 한 달이 소요되었고, 마침내 텅 빈 공간을 마주했다.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아무것도 없는 공간. 그 공간에서 쌓았던 나날들을 떠올렸다. 거닐면서 무엇이든 다시 할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늘 처음은 이렇게 없음에서
시작하니까. 이번 pot 〈시작하는 기쁨〉에서 음악하는 두 사람을 만났다. 무언가를 만들고자 할 때는 해내는 기쁨과 불안해하며 애쓰는 시간이 있다. 더 나아질 거라는 믿음으로. 이 믿음으로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봄이다. 정승희 코로나에 걸렸다. 자가격리를 하는 내내 아팠다. 아픔은 늘 새로웠지만 혼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지겨웠다. 하지만 이번 호 주제 ‘희’, 기쁨 덕분에 다양한 책과 영화, 노래들을 만나며 무수한 기쁨들을 탐닉했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있었고, 걱정은 잠시 걸어둘 수 있는 지혜를 얻었다. 특히 많은 기쁨들은 고통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었다. 격리가 끝난 날 자정, 여전히 몸은 아팠지만 어두운 새벽을 걸으며 자유를 만끽했다. 우리 동네가
이렇게나 새롭고 반가울 수 있구나 생각했다. 권용식
2022년 봄호의 첫 무드 코너를 맡았다. 올해 달라진 나의 아침 일상을 공유하고 또 정리하는 시간을 통해 내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었다. 〈시작하는 기쁨〉은 어쩌면 나의 이야기다. 사실 작년 pot에 합류하고 얼마되지 않아 갑작스레 찾아온 뇌출혈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 불과 5개월 전인데 이렇게나 멀쩡하게 다시 글을 쓰고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나에게 아침은 환생한 다음 날처럼 설레는 시간이 되었다. 나처럼 누군가의 아침도 늘 설렛으면 하는 마음을 봄호에 보탰다. 세상이 어지러워도 잠시 머리를 식히고 가까운 사람들을 더 바라보자. 나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무엇이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봄이다.
박인옥
한혜진
최수현
올해 봄호 준비는 유독 길었다. 1월에 기획회의를 시작했고 2월엔 워크숍을 다녀왔다. 3월엔 취재를 하며 보냈다. 2년 동안 유지했던 구성도 조금 바꿨고, 그러느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더 자주 만났다. 긴 호흡으로 천천히 퍼즐을 만들어 끼우는 일은 늘 설레고 신난다. 시작하는 기쁨을 오랫동안 누렸던 귀한 시간이었다.
지난 겨울, 매거진을 만드는 크루들과 함께 바다를 보고 왔어요. 독자들에게 보여 주고 싶은 것들, 새롭게 시도해 보고 싶은 것들, 표현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밤늦도록 나눴습니다. 올해도 POT에는 춘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깁니다. 도시의 움직임을 더욱 깊이 있게 다루고 싶어, 크고 작은 변화들을 만들었어요. 수많은 가능성을 품은 겨울 바다처럼 조금 더 긴 호흡으로, 더 넓은 마음으로 2022년의 POT을 함께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춘천문화매거진
ISSN 2508 6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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