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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문화특화지역조성사업 소식지 오케이속초 Vol.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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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특화지역(문화도시형) 조성사업은

시민들의 참여와 공론화를 통하여 ‘문화도시’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의제를 발굴하고 지역 고유의 문화자원을 활용하여 도시를 문화브랜드로 성장시켜나가는 사업입니다. 속초시는 ‘속초다운 삶의 조화, 공존문화도시 속초’를 목표로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간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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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8

속초 문화특화지역조성사업 소식지 오케이속초

발행처 재단법인 속초문화재단 발행일 2021년 11월 1일 발행인 김철수 시민활동가 김종헌, 김효진, 박경심, 장재환, 전태극, 정미현, 함연화 편 집 박대우 디자인 장민정 표지사진 _ 설악산 구름다리(비룡폭포) 전태극

ⓒ 2021 속초문화재단 저작권자가 표시된 글, 그림, 사진 등의 저작권은 해당 저작권 자가 갖습니다. 다만 저작권자가 표시되어 있지 않은 글, 그림, 사진 등의 저작권은 속초문화재단에 있으며, 전부 또는 일부를 재사용하려면 저작권자의 서면 동의가 필요합니다.

24821 강원도 속초시 번영로 155 (영랑동 570-5) 속초문화예술회관 별관 2층 T. 033-636-0671 (문화특화지역추진팀) F. 033-636-0665 www.sokchocf.or.kr

속초 문화특화지역조성사업 www.oksc.or.kr

목차

문화도시 알기

문화란 어렵지 않다. 바로 우리의 삶이니까!

> 02

엄기동, 속초 도시재생지원센터장

주목 인터뷰

빛나는 순간 그날 그곳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 06

빛나는날들 주상권 대표를 만나다

속초사색

속초 가을

> 10 전태극·박경심

공간의 발견

오래되어 더욱 윤이 나는 공간, 문천당

> 14

문천당 방서호 대표를 만나다

전입 신고합니다

녹록지 않은 세상에 내놓은 우리만의 답변

> 18

박재완, 완앤송 하우스 레스토랑 오너 셰프

이야기 보따리

속초 작은 하천 살리기 생태탐방기

> 20 이수영, 속초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국장

우리 곁의 사람들

속초의 마지막 배 목수라는 자부심

> 24

전용원 배 목수를 만나다

속초 느낌표

자연을 가까이하고 사랑하는 일

> 28

문정아, 어른들의 책 읽는 모임

속초 문화특화지역조성사업 소식

>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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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시 알기

문화란 어렵지 않다. 바로 우리의 삶이니까!

글 속초 도시재생지원센터장 엄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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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많이 가진 것들을 다른 팬들과 서로 공유하고 나누는 새로운 팬 문화를 보면서, 연예인을 좋아하는 팬들을 한심하게 생각했던 나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어쩌면 문화생활과 문화를 다양하게 경험해보지 못해서 이런 생각들을 한 것 아닐까.

2019년 어느 날 아침 일찍 지원이가 좋아하는 트와이스 신세계였다. 트와이스 공연을 공연장 안에서 관람하지는

공연을 보기 위해 서울을 향해 운전대를 잡았다. 들떠 있 못하지만, 공연장 밖에서 팬들을 위한 다양한 행사를 즐 는 지원이와 달리 피곤한 나는 짜증이 밀려왔다. “트와이 길 수 있었다. 간접 경험이었음에도 이를 통해 문화라는 스는 왜 서울에서만 공연한대? 강원도에서도 좀 하지” 하 것이 ‘그것을 즐기는 방식이 다양하고 시간이 흐름에 따 고 말했다. 듣고 있던 지원이는 “속초 사람들은 문화활동 라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도 어렵고 문화적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어. 학생들이 정 었다. 말 갈 곳도 없고 놀 곳도 없어”라며 불만 섞인 목소리로 나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 로컬관광상품을 만들고 기획하 말했다.

는 관광PD 업무를 보고 있다. 그런 내게 어느 날 속초문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문화’라는 말을 들으면 공연문화 화재단에서 법정문화도시 관련 공론화단에 참여해달라고 만을 떠올렸다. 서울 체조경기장에 주차를 하고 공연장으 요청해왔다. 솔직히 문화라는 단어가 낯설어서 선뜻 참여 로 걸어가면서 어린 친구들이 나눔 행사를 하는 것을 보 하겠다고 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속초 이야기를 담고 속 고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많이 가진 것들을 초의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관광상품 개발을 위해 지역 다른 팬들과 서로 공유하고 나누는 새로운 팬 문화를 보 의 문화를 다시 알고 찾아보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는 생 면서, 연예인을 좋아하는 팬들을 한심하게 생각했던 나 각에 공론화단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어쩌면 문화생활과 문화를 다양하 수 개월째 함께 활동해오면서 이제는 그 활동이 속초를 게 경험해보지 못해서 이런 생각들을 한 것 아닐까 싶다. 대표할 수 있는 기념품을 개발하고 있던 나에게는 정말 그 뒤로는 ‘그래, 우리 아이에게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게 로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특히 아바이마을에 대한 이야기 해주자’라는 생각으로 트와이스 팬미팅까지 지원이를 데 를 더 많이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 덕택에 과 려다주었다. 팬미팅은 과연 또 다른 팬 문화를 보여주는 거와 현재의 아바이마을을 보여주는 스토리 엽서를 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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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었고, 실향민에 대한 어둡고 그리움에 가득 찬 기존 공간과 문화가 있으면 정말로 좋겠지?’ 하고 친구들에게 의 이미지에서 가족을 사랑하고 지키기 위한 강인함, 따 질문하면 다들 ‘우린 그런 걸 누리지 못해도 우리 아이들 뜻함을 강조하는 새로운 이미지를 담아 상품을 만들 계획 은 그런 혜택을 받으면 좋겠다’라고 말한다. ‘속초도 그렇 을 세울 수 있었다.

게 하려고 법정문화도시를 준비하고 있어. 그러니 조금 마을의 이야기를 상품화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선택일 있으면 우리도 우리 애들도 좋은 문화 혜택과 우리만의 까? 과연 관광객들에게 잘 팔릴까? 이런 고민도 있었지 활동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올 거야’ 하고 말해준다. 만, 어쩌면 마을의 이야기가 속초의 문화이고 이를 토대 가끔 친구들은 ‘근데 너 관광PD 아니야? 네가 왜 문화에 로 속초의 문화를 보여주는 기념품 하나쯤은 꼭 만들어놓 대해 더 많이 이야기를 하냐?’고도 묻는다. 그러면 나는 았으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초는 관광도시이고, 그런 관광도시에서 지역 주민들을 문화란 어떻게 생각하면 참 어렵고, 또 다르게 생각해보 위한 문화도시로 더 발전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렇게 일 면 쉽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생활하는 것들은 모두 생 하지’라고 대답한다. 속초가 법정문화도시가 된다면 이처 활문화로 포함할 수 있으며, 우리가 먹는 것들은 음식문 럼 기존의 관광문화뿐 아니라 시민들이 두루 누릴 수 있 화로 엮을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 는 문화인프라를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법정문화도시가 여 어울리는 모임문화가 있다. 속초문화재단의 문화로 OK 사업은 이 같은 모임문화를 속초만의 것으로 새롭게 정착하는 데에 크게 일조했다. 요즘은 친구들과 만나게 되면 가끔 문화에 대해 이야기 를 나누곤 한다. 친구들은 ‘문화’라는 말이 어렵고 재미없 다고 말하는데, 나는 ‘우리끼리 이렇게 만나서 이야기 나 누고 행동하는것들 모두가 우리들만의 문화’라고 설명해

‘문화’라는 말이 어렵고 재미없다고? 문화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우리끼리 이렇게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행동하는 것들 모두가 우리들만의 문화다.

준다. 친구들은 또한 속초는 참 문화활동을 누리기 어렵 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참여’라는 가장 중요한 토대를 다고 한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지역문화가 모두 관광객을 쌓아야 한다. 다른 도시들과 공정히 경쟁하는 중에 어떤 위한 편의시설과 관광객 유치를 위한 사업들에 편중되어 도시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문화의 토대를 쌓고 있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반응하는 것일 수 있다. 또한 주말 는지가 선정의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 에는 관광객들로 인해 이동하기 어려워서 집 안에만 있기 리 속초의 시민들도 많은 관심을 갖고 법정문화도시로의 에 관광문화 자체를 편히 못 누려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도전에 함께하길 바란다.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속초가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속초 시민들이 만들고 속초 시민들이 원하는 그런 멋진 빌어본다.

전국에서 제일 가는 관광도시, 문화도시로 자리매김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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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인터뷰

빛나는 순간 그날 그곳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인터뷰 시민활동가 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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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날들 주상권 대표를 만나다

“ 영화 속의 속초에는 어느 누구나 볼 수 있는 관광지로서의 모습을 담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진짜 속초를 살아가는 시민들이 애정하는 장소들을 담고 싶었습니다. 그 아름다운 장소들을 통해 시각적인 위로를 주고 싶었고, 다른 한편 이야기 면에서는 미래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주는 위로를 담담히 전하고자 했습니다.”

‘빛나는날들’이라는 영상업체를 인터뷰하러 가는 날은 에 내려와서 다시금 느낀 것이지만, 여기가 서울보다 오

볕이 참으로 좋았다. 인터뷰하러 찾아간 사무실 또한 히려 기회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은 경쟁이 햇빛이 밝게 내리쬐고 있었다. 빛나는날들 주상권 대 너무 심한데 그에 비해서는 속초가 경쟁도 덜하고 마음도 표는 그날 인터뷰에서 “영상이라는 것이 시간과 사건 편했어요. 일단 내려오자마자 강원영동방송국에 취직해 즉 순간을 담는 일”이라며 “그 순간이 빛이 났으면, 따 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빛나는날들을 연 지는 5년째가

지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뜻했으면, 아름다웠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렇게 이름 되었네요.

이렇게 따뜻하고 청명한 햇살을 앞에 두고 이야 영상일은 어떻게 하다가 시작하게 되었나요? 어떤 계기 기 나누는 곳이 ‘빛나는날들’이라니. 그 오묘한 인연을 로 영상 분야에 발을 디뎠는지 궁금합니다. 하나의 순간으로 포착해 담아내야 할 텐데, 기대와 걱 원래는 사진기 다루는 것을 무척 좋아했어요. 대학에서 정이 섞인 채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전공을 시각디자인으로 하긴 했지만 그전부터 사진을 많 이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처음으로 구입한 사진기 자체가 영상도 같이 찍을 수 있는 카메라 초기 모델이었 속초와의 인연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본래 이곳 어요. 어느 날 지인이 행사를 한다면서 그 행사의 영상 촬 출신이신가요? 영을 의뢰해서 거기 가서 촬영을 했었는데요. 그 뒤로 그 예, 맞습니다. 속초 출신이고 대학교 때와 졸업 후 직장생 촬영본을 갖고 한 편의 영상을 만들게 되었고, 그 영상을 활 초기에만 서울에 있었습니다. 제가 지방 출신이어서인 보면서 사람들이 박수 치고 좋아하더라고요. 그 모습을 지 서울은 잘 맞지 않더라고요. 서울은 ‘천천히’보다는 뭐 보면서 이쪽으로 진로를 결정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습 든 ‘빠르게’잖아요. 스물일곱 살에 다시 내려왔고요. 속초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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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날들’이 영상업체라는 것은 알고 있는데, 정확하 영상일은 촬영과 편집보다는 기획이 더욱 중요한 분야 같 게 영상업체가 어떤 일들을 하는지는 제대로 들어보지 못 아요. 기획이 치밀해야 촬영이나 편집이 수월해지지요. 한 것 같습니다. 단순히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는 일만 그래서 기획적인 측면을 강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시는 것은 아닐 텐데요. 영상 장르가 다큐, 드라마 등 상당히 다채롭잖아요. 그 영 영상일은 후반 작업, 즉 편집 작업이 상당히 고되다고 알 상 장르를 결정하는 것은 고객의 요구입니다. 저희는 장 고 있습니다. 체력도 잘 유지하셔야겠다는 생각이 듭니 르 구분이 없이 고객의 요구에 따라 다큐든 기획영상이든 다. 그 밖에도 영상일 할 때의 어려움은 무엇일까요. 모션그래픽, 디자인 영상까지도 만들고 있습니다. 최근에 맞습니다. 건강이 제일 걱정이에요. 영상일 하는 사람들 는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수요가 많이 늘면서 인터넷 중 끼리는 농담처럼 ‘목숨을 가불한다’라는 말을 하고 있을 계의 비중이 커졌고요.

정도예요. 지금도 계속 밤을 새우고 있거든요. 저희는 특 물론 저희가 잘하는 분야는 분명히 있습니다. 저희는 히 연말에 많이 바빠요. 기업이나 개인이나 한 해를 정리 아카이빙이나 다큐 쪽과 연출영상에 특화되어 있는 팀이 하는 때여서 일이 몰리는 경향이 있지요. 그러다 보니 그 고요. 근래에는 영화 제작도 해보게 됐습니다. 속초 문화 때가 되면 철야작업을 할 때가 많고 체력적으로 많이 힘 특화지역조성사업 ‘문화로OK’ 사업의 지원을 통해 영화 들어지지요. 제작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고요. 지금까지 영상 프로덕 션에서부터 촬영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마친 상황입니다. 코로나19 이후에 문화예술 산업의 판도가 많이 바뀌고 편집 등 후반 작업은 올해 12월부터나 가능할 것 같고요. 있습니다. 영상 분야에서도 타격이 심할 것 같은데요. 어 떻게 극복하고 계신가요?

니 매일 공부할 수밖에 없고요.

있을까요?

ⓒ 전태극

근래 들어 인터넷 중계를 시작했다고 앞에서 말씀드렸잖 아요. 정말 살기 위해서 할 수밖에 없었어요. 코로나 팬데 믹 상황이 된 뒤로는 모든 행사가 올스톱되면서 비대면 회의가 늘어남에 따라 저희가 인터넷 중계를 할지 말지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그 시스템을 도입하려면 비용이 추가 되는 것뿐 아니라 그 흐름에 맞춰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 었고요. 현재 급격히 바뀌어가는 플랫폼을 계속 연구해가 면서 이에 적응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은 듯합니다. 그러

속초를 주제로 한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지금 제작 중인 영화에 대해 소개해주실 수

저희가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우 리가 살고 있는 속초라는 도시에 "이야기"를 덧입히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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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나는날들

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그 이야기를 입히는 데 우리 영상을 찍으시면서 속초의 다양한 예술가들을 만나셨을 가 영상업체로서 할 수 있는 콘텐츠 중 가장 좋은 것이 영 텐데요. 속초의 예술가들을 위해 시청이나 문화재단에서 화였기 때문입니다.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영화 속의 속초에는 어느 누구나 볼 수 있는 관광지 문화재단이 출범하면서 많이 고마웠습니다. 사실 속초에 로서의 모습을 담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진짜 속초를 살 서 청년으로 살면서 많이 외로웠거든요. 이야기할 수 있 아가는 시민들이 애정하는 장소들을 담고 싶었습니다. 그 는 공간도 없었고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도 만날 기회가 아름다운 장소들을 통해 시각적인 위로를 주고 싶었고, 없었던 것이죠. 그런데 재단이 출범하면서 여러 다양한 다른 한편 이야기 면에서는 미래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주 장들이 마련되어서 많이 반가웠어요. 이를 통해 사람들이 는 위로를 담담히 전하고자 했습니다.

편하게 그 장에 설 수 있었고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었 올해 1월부터 영화를 준비했습니다. 촬영을 7개월에 죠. 예술가들이 그 멍석 위에서 좀 더 편히 활동할 수 있 걸쳐 했고요. 지금 시대 청년들의 이야기가 주제입니다. 도록 앞으로도 재단이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서울에 살고 있던 한 청년이 진로 고민과 미래에 대한 부 담감 때문에 갈등하다가 속초의 관광안내소를 찾으면서 일어난 일들을 담았습니다. 11월 말쯤에 영화 전반의 윤 인터뷰를 마치며, 무척 오랜만에 건강한 에너지를 느 곽이 나올 듯하고요. 여기 인터뷰에서는 이 정도로만 이 낄 수 있었다. 주상권 대표가 보여주는 열정과 의지가 야길 해드리겠습니다.(웃음)

잔잔한 빛을 발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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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사색

속초의 가을은 산과 바다의 풍경이 제각각이다. 필레약수터의 단풍(왼쪽)과 등대해수욕장의 방파제 낚시(오른쪽)의 풍경이 사뭇 대 조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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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사색

올 가을은 유난히 하늘이 맑고 볕이 좋았다. 맑은 날 찾은 영랑동과 장사동의 해변(왼쪽), 수확을 앞둔 조양동의 논(오른쪽)이 선명하 게 제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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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발견

오래되어 더욱 윤이 나는 공간, 문천당 방서호 대표를 만나다

인터뷰 시민활동가 함연화

ⓒ 박경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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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심

업종 귀금속점 주소 강원도 속초시 중앙로 149 이용시간 09:00 ~ 18:00 연중 무휴

아뵈었다.

7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하던데요.

니다.

다. 어떤 뜻을 담으셨나요?

계점’으로 하셨던 것이지요.

날씨가 제법 서늘하니 뭔지 모를 쓸쓸함까지 느껴지는 그런 계절이 되었다. 햇살이 따뜻하게 반짝이며 나를 비추는데, 이렇게 반짝이는 햇살만큼이나 눈이 부신 이곳에 나의 시선이 머물렀다. 속초의 상점 중에서 가 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문천당의 방서호 대표님을 찾

안녕하세요. 이곳 문천당은 1951년에 문을 열어 올해가

예, 맞습니다. 1951년에 문을 열 때에는 이 자리가 아니 라 영랑동에 있는 당시 ‘1구 시장’에 있었습니다. 이름도 ‘문천당’이 아니라 ‘문천시계점’이었고요. 그 뒤로 1950 년대 후반에 지금의 명성칼라 자리로 옮겼습니다. 제 가 1957년생인데 제가 태어날 즈음에 옮겼다고 들었습

70년이 된 가게는 정말 손에 꼽을 수 있을 텐데요. 그 역 사가 대단합니다. 문천당이라는 이름의 유래도 궁금합니

저희 부친(故 방태형)께서 함경남도 문천이 고향이십니 다. 원산 위에 있는 도시지요. 부친께서 1922년에 문천 에서 태어나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50년 12월 흥남철수 때에 배를 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걸어서 포 항을 거쳐 부산으로 가셔서 부두노동자로 잠시 일하다가 1951년 11월 말에 속초로 올라오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저희 부친을 포함 대부분의 실향민들이 조만간 북한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점포 이름도 ‘문천시

대표님의 부친께서 월남하셨을 당시 어떤 연유에서 시계 와 귀금속을 판매하게 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아버지께서 본래 시계 기술자였습니다. 속초에 정착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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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 시계 쪽으로 일을 하려고 하셨고요. 속초가 50년대 문천당은 속초 애향장학기금에 거금을 기부해온 곳으로 에만 하더라도 무척 어수선했어요. 속초에 사는 사람들도 도 유명합니다. 기부에 대한 철학을 듣고 싶습니다. 원주민들은 적고 거의 대부분이 피난민들이었지요. 그 피 아버지 20주기 때인 2008년에 처음으로 기부를 했습니 난민들이 가진 것이 없잖습니까. 그래서 당연히 처음에는 다. 저희 부친의 유언이 ‘앞만 보고 살아왔는데 이제는 뒤 금보다는 시계를 수리해주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대표님은 언제부터 문천당에서 일하셨나요?

도 돌아보고 살아야 한다’였습니다. 부친께서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셨거든요. 한 살 때 부모를 여의셨으니 학 업을 제대로 이어갈 수가 없었지요. 그 뒤로는 기술을 배 저는 1988년부터 아버지의 대를 잇게 됐습니다. 그전에 우고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바쁘셨고요. 그래서 공 는 무역회사를 다녔습니다. 3저 호황으로 경기가 좋았던 부에 대한 한을 갖고 계셨어요.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학

았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잘 내려왔다고 생각합니다.

1980년대에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려니 아쉬운 게 많 생들을 돕는 것을 꼭 하고 싶어하셨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당시에 암 판정을 받으시고 급격히 병세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경제 상황이 계속 좋지 가 악화되면서 그 해에 돌아가셨습니다. 여기 내려와 고 않습니다. 가게에 계시면서 경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실 생을 많이 하셨으니, 아버지를 잘 모시는 것이 제 역할이 감하실 수 있나요? 라 생각했고 가업을 잇는 것 또한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 속초는 직장생활 하는 분들보다는 자영업자가 많은 도시 다. 다만 어린 시절에 옆에서 보아오긴 했지만 이 일을 제 대로 배우진 못했지요. 처음에는 막막하기도 했지만 조 금씩 익히면서 지금까지 탈 없이 잘해오지 않았나 싶습 니다.

한국에서는 대를 이어 장사하는 문화가 여전히 드뭅니다. 아버지의 대를 잇고자 하실 때 고민은 없으셨는지 궁금합 니다. 아버지가 잘 가꿔오셨기 때문에 그걸 지킨다는 게 쉽지

“ 속초는 산, 호수, 온천 자연이 주는 혜택이 많은 도시입니다. 시를 이끌어가는 분들께서 이곳의 자연을 잘 지켜가는 것으로 방향을 돌렸으면 좋겠습니다. 개발도 좋지만 관광객들에게 천혜의 자연을 보여줄 수 있도록, 그래서 그들이 재충전하고 갈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주셨으면 합니다.”

않았습니다. 왠지 아버지 이름을 훼손하지 않을까 걱정도 입니다. 경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곳이지요. 경기가 안 많이 되었고요. 하지만 그동안 쌓여온 것들을 저 나름대 좋아지면 집에서 현금화할 수 있는 것들을 들고 나오기 로 발전시키기 위해서 잘 달려왔다고 생각합니다. 삼십대 마련인데요. 전에 비해 그런 분들이 많이 늘었고 그런 모 초반의 아들이 하나 있는데, 직장 생활 중입니다. 일단은 습을 보면서 우리 삶이 팍팍해졌다는 것을 느낍니다. 또 회사 생활을 잘하게끔 응원해주고, 나중에 적당한 시간이 한 결혼식 같은 경조사가 많이 줄었습니다. 금과 보석을 되면 아들에게 물어보려고 합니다. 가업을 잇는 일에 대 좋아하는 세대가 많이 바뀌기도 했고요. IMF 때에도 많 해 이야기는 해두었는데, 아들의 삶은 아들의 몫이기 때 이 힘들었지만, 그때와 비슷하다고 볼 정도입니다. 문에 충분히 논의해보아야겠지요. 속초중앙시장 앞을 꽤 오랫동안 지켜주셨고, 속초시 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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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태극

ⓒ 박경심

의 변화도 지켜보셨을 텐데요. 근래 들어서 엄청나게 발 의 문화가 척박한 상황입니다. 수도권과 많이 가까워졌지 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발전하는 속초시와 속초시민들 만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시민들이 문화의 다 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변화가 많았습니다. 십년 사이에 동해안 바닷가 쪽의 삶 습니다. 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었습니다. 속초는 산, 호수, 온천 자연이 주는 혜택이 많은 도시입니다. 시를 이끌어가는

양한 분야를 접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주시면 감사하겠

분들께서 이곳의 자연을 잘 지켜가는 것으로 방향을 돌렸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 필자도 으면 좋겠습니다. 개발도 좋지만 관광객들에게 천혜의 자 내가 살고 있는 속초가 나에게 그리고 모두에게 힐링 연을 보여줄 수 있도록, 그래서 그들이 재충전하고 갈 수 의 장소로서의 모습을 잃지 않기를 바라며, 우리 모두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주셨으면 합니다. 또한 속초문화재 가 사랑하는 속초의 아름다운 자연이 언제까지나 반짝 단 등 많은 분들이 노력하고 계시지만, 아직까지는 속초 반짝 윤이 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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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입 신고합니다

녹록지 않은 세상에 내놓은 우리만의 답변

박재완 | 완앤송 하우스 레스토랑 오너 셰프 여행과 음식을 좋아하여 틈만 나면 바깥으로 나돌며 음식을 공부했다. 2006년 안나푸르나 여행 도중 만난 배우자 송지은과 함께 각자 이름의 한 글자씩을 딴 완앤송 하우스 레스토랑을 열고 이름처럼 집에서 만든 정성 어린 음식을 내고 있는 조그만 시골 식당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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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여름이 지나갈 무렵이었던 것 같다. 아이의 첫 돌이 지나 다 같이 제주도를 다녀와 ‘제주도 에 한번 살아볼까?’라는 생각을 한 것이. 아내는 서울에서 조그만 음식점을 오픈하려고 준비하는 중이었고 나는 열심히 회사생활을 하 던 그때, 갑자기 제주도에 살고 싶어졌다. 당시만 해도 아직 제주도 이주 붐이 일어나기 전이라 제 주도는 평화롭고 조용하고 저렴한!(이게 제일 중요) 정착지임이 확실했다. 네팔 안나푸르나 여행 도중 만난 우리 부부는 여행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에 익숙해서인지 거주지를 옮기는 것에 대한 아무런 두려움이나 거부감이 없었다. 아내와 나는 몇 번이고 제주도를 찾아가 가장 살고 싶은 동네를 찾기 시작했다. 마침내 제주 동 북쪽 해안 세화리라는 곳으로 마음을 정하고 부동산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서울에 있는 집을 정리 하고 제주도에 조그만 구옥이 달린 농가를 구입하여 그 집에 조그만 식당을 차리고 세 식구 평화롭 게 사는 것이 목표였다. 그 당시만 해도 조그만 바닷가 마을의 시골집은 평당 60~70만원 정도였고 바닷가 땅도 그리 비싸지 않아 서울에 살림을 정리하면 충분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지 않은 편. 갑자기 제주도 이주 붐이 일어나면서 집주인들과 땅주인 들이 물건을 회수하기 시작했고 점찍어두었던(심지어 구두로 계약까지 했던) 집과 땅이 모두 멀리 멀리 안녕히 떠나갔다. 그 뒤로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울에서 제주도를 왕복하며 집과 땅을 알 아보고 계약하고 파기하고, 아니 정확히 파기당하고를 몇 번 겪는 사이에 제주도의 땅값은 하늘 높

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그즈음 제주도에서 돌아오면 몸도 마음도 모두 지쳤다. 평화로운 안식처를 찾아 헤매는 일이 아이러니하게도 일상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로 다가온 것이다. 그럴 때마다 우리 가족은 늘 속초로 향했다. 금요일 늦은 밤 퇴근하여 아내와 함께 잠든 아이를 차에 싣고 홍천까지 고속도로를 내달리 다 인제 원통을 지나 미시령 터널을 통과할 때는 운전의 피로가 싹 가시는 듯했다. 늦은 시간에 숙 소에 도착하여 짐을 부리고 시원한 맥주 한 캔을 꺼내 마시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일 년이 넘는 세월을 제주도에서 뺨 맞고 속초에서 화풀이하기를 반복하다가, 문득 원 효대사가 해골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불쑥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속초에 살아 볼 생각을 못했을까?!’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 같은 느낌으로 제주도 이주 준비를 정리하고 속초의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2014년에서 15년으로 넘어가던 겨울 우리 둘은 영랑호 조그만 카페에 앉 아 ‘이 동네에 살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고 마치 거짓말처럼 3일 만에 지금의 집을 구하게 되 었다. 2015년 가을, 우리는 드디어 속초 영랑호로 이사를 오게 되었고 일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아내 와 나, 오롯이 우리 둘이 원하는 식당을 만들어나갔다. 그리고 2016년 한여름, 마침내 우리는 아내 와 나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와, 완앤송 하우스 레스토랑이라는 이름으로 가게를 열었다. 가끔 누군가가 ‘속초에 와서 행복한지’를 묻는다. 우리가 속초에 이사 온 후 다섯 친구가 우리 가 사는 것을 보고 속초로 이사를 왔고 지금 모두 행복하게 잘살고 있다. 이쯤이면 대답이 되지 않 을까 싶다. 앞으로 우리 이름을 한 글자씩 딴 식당 이름에 부끄럽지 않도록 더욱 정성 어린 음식을 내고 따뜻한 공간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작은 소망이랄까? 우리는 지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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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보따리

속초 작은 하천 살리기 생태탐방기

속초문화재단의 ‘문화로OK’는 3인 이상으로 팀을 구성, 시민들이 속초에 필요하거나 해보고 싶 은 사업을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소정의 활동비(팀당 2백만 원)를 지원하는 주민참여예산제 시범사업이다. 지난 6월 사전워크숍을 통해 26개 팀이 직접 상호 평가해 15개 팀을 선정했다. 7 월엔 중간워크숍을 가졌고 8월엔 최종 성과공유회가 열렸다. 그중 필자가 맡아서 진행했던 속초 실개천팀의 활동보고서를 요약해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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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영 속초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국장

예전엔 속초 시내가 마사토 산으로 이뤄져 지대가 높았다. 폭우 때 지금의 미시령로를 중심으로 북쪽으론 영랑호로, 남쪽으론 청초호로 물이 흘러나갔다. 1960년대 시내 도 처에는 도랑이 흘렀다. 내 기억으론 교동초등학교 정문 인근 소하천, 속초초등학교 정 문 앞과 담벼락을 따라 흐른 도랑, 청학동 낙천회관 건너편 도랑 등이 대표적이었다. 특 히 지금의 생활체육관과 아남프라자 사이를 흐르던 도랑과 온정리 도랑에서는 친구들 과 반두(족대)로 옹고지(쌀미꾸리)를 잡았다. 이젠 모두 복개돼 우리 시야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설악생태학교를 열고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하천 생태체험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 면서, 우리 지역에 산재해 있는 소하천의 실태를 현장탐방을 통해 정리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이를 정리하여 향후 체험장소로 활용할 수 있을지를 판단해볼 필요도 있어 보였다. 우리 속초엔 지방2급 하천이 2개 있다. 청초천과 쌍천이다. 그 아래의 소하천 급은 36개로, 고성 용촌천으로 유입되는 학사 1, 2천을 제외하고 34개 소하천이 속초 곳곳 에서 흐르고 있다.

청초천 지류 소하천 청초천은 설악산 달마봉에서 발원해 노학동을 거쳐 청초호로 유입되는 하천으 로, 속초의 도심 속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굽이진 하천이었으나 긴 세월 동안 풍수해를 입으며 재해복 구사업 등으로 지금처럼 직선화되었다. 청초천으로 유입되는 소하천은 샘골천, 응골천, 목우재천, 물 안골천, 자활천, 청대천이다. 샘골천은 마을 한가운데를 흐르는 시내로 1972년 제방축조 공사 당시 박 경원 강원도지사가 샘에서 나오는 물로 깨끗하다고 해 ‘샘골’이라 이름 지었다. 뒷버덩은 노리, 척산리, 신흥리에 걸쳐 있는 넓은 버덩이다. 신흥리는 뒷버덩 한가운데에 위치해, 노리에서 볼 때 마을 뒤(북서 쪽)에 위치한 버덩이다.

응골은 노리에서 청초천 건너편 방향에 있는 산기슭 마을이다. 응골천은 3개 소하 천(1천, 2천, 3천)이 마을을 통해 청초천에 합류한다. 또한 설악동과 척산리를 연결하 는 높고 긴 고개를 목우재라 하는데, 목우재천은 목우재 쪽에서 흘러내려오다 척산마 을 입구에서 가마소천과 합쳐 청초천에 합류한다. 지난해 태풍으로 제방이 붕괴돼 복구 하기도 했다. 달마봉 쪽에서 내려오는 소위 ‘산삼 썩은 물’이 목우재 도로를 타고 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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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다.

청대리막국수 위 청대산 기슭에서 흘러내려 청초천에 유입된다.

내리고 있는데, 주위 환경만 정비하면 시민들이 생태체험을 누리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물안골은 응골 동남쪽에 위치한 골짜기로 주봉산으로 이어진다. 본래 물방아골이라 는 이름이 물안골로 바뀌지 않았을까 싶다. 가마소는 소(沼) 모양이 가마솥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가마소천은 학사평에서 흘러내려오다 목우재천과 합류해 청초 천에 유입된다. 자활촌은 학사평 벌판 남쪽에 위치한 집단이주 마을이다. 1961년 8월 23일 당시 군사혁명정부가 깡패로 낙인찍힌 사람들을 모아 이곳에 집단 이주시켜 농토 와 농기구를 줘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 했다. 그 마을 어귀에 있는 자활1천은 종합운동 장 야구장 앞을 흐르며, 자활2천은 관광로 순두부촌에서 바람꽃마을로 가는 다리 밑을 흐르는 하천으로 자활1천과 합류한다. 청대천은 청대산 기슭에서 흘러내리는 소하천이 다. 청대1천, 2천, 3천은 청초천 인근 농로를 가로질러 청초천으로 유입되고 청대4천은

청초호 유입 소하천 논산이라는 마을 이름은 지형이 논 가운데 산이므로 순수 우리말로 논뫼라고 하던 것을 한자로 논산이라 표기한 데서 유래했다. 논산리천은 청대산 기슭에서 흘러내린 물길이 논산 마을을 관통해 청초호에 들어간다. 조양이란 명칭은 소야팔경 중 하나인 논산조양에서 따온 것이다. 청 대산 기슭에서 흘러내린 조양천의 물길은 삼성세르빌 아파트를 지나 청초호로 유입된다. 영랑호 (장천천) 지류 장천천은 울산바위 근처에서 발원해 한화콘도를 거쳐 장천마을을 관통해 영랑

앞쪽 쌍천의 모습

왼쪽 속초 물길 지도

오른쪽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01 가마소골천

02 장천 독골천

03 노루목천

04 샘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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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골지천이다.

통하던 소하천으로 하도문에서 설악해맞이공원 쪽 해변으로 흘러간다.

을 거쳐 쌍천으로 흐르는 소하천이다.

도시이므로 발원지 보호 방안 등도 모색해볼 필요가 있다.

호로 들어가는 물길이다. 불미앞골은 마을 남쪽 골짜기 입구를 말한다. 예전에 이곳에 대장간이 있어 풀매(풀무의 사투리)를 사용했다. 대장간 앞이라는 의미로 풀매앞이라 불리던 것이 불미앞 으로 변화했다. 참빛도시가스 앞 삼거리에서 장천마을 쪽으로 들어가다 왼편에 있는 소하천이 불미앞골천이다. 방죽골은 장천마을 북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예전에 방축(防築)이 있었고 이를 따라 방죽골천이 흐른다. 독골은 장천마을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이곳에서 마을을 통해 장천천 으로 흐르는 시내가 독골천이다. 골지는 골짜기를 뜻한다. 장천 골짜기에서 영랑호로 흐르는 물

동해 지류 외옹치는 조선시대 행정상 명칭은 옹진리였는데 일제강점기부터 외옹치리로 바뀌었 다. 외옹치천은 하수도사업소에서 속초해변으로 흘러들어간다. 하도문천은 옛 내물치마을을 관

쌍천 지류 쌍천은 설악동 와선대 하류 1㎞ 지점이 기점이고 대포동 해안선이 종점인 지방2급 하천이다. 속초시와 양양군 경계이며 물치 부근에서 두 가닥으로 흐른다고 해 쌍천이라 부른다. 절골은 옛날에 절이 있었다고 해 붙여진 이름으로 한자로는 사동(寺洞)이다. 절골천은 상도문마 을 쌍천 둑방 밑을 흐른다. 사그막(사금원)은 상도문2리와 중도문2리 사이에 있는 넓은 들판으 로, 중도문 싸리재 밑에 흐르는 시내가 사그매골천이다. 중도문천은 중도문에서 쌍천으로 흘러 들어가는 시내다. 대랑골은 중도문리 마을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떡밭재 도로 인근을 흐르는 시 내가 대랑골천이다. 학무천은 도문농요전수관 앞으로 흐르는 시내로, 학무정은 매곡처사 오윤환 이 세웠는데 정자가 육각이라 일명 육모정이라 부르기도 한다. 노루목은 설악동 B지구 일대로 한자로 노루 장(獐)자를 써 장항(獐項)이라 불렀다. 노루목천의 위치는 국립공원 설악산사무소 인근이다. 핏골천은 신단지C지구에서 남쪽으로 뻗은 골짜기 하천으로 1917년 제작된 지도상에 피동(皮洞)으로 표기되어 있다. 장재터는 마을 서쪽에 장자, 즉 부자가 살던 터가 있다고 붙여진 이름으로, 장재천은 북양양IC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신흥천은 신흥사에서 청동불상 인근

이상으로 속초의 주요 하천들을 살펴보았다. 앞으로의 과제라면, 속초의 주요 하천인 청초천, 쌍천, 장천천의 발원지와 그 지류인 도랑, 각종 샘을 보다 체계적 으로 탐색하는 운동이 필요하겠다. 발원지(샘→도랑→하천→바다)와 그 이야기를 시민 대상으로 공모하는 사업도 시도해볼 만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푯말 붙이 기, 물길의 문화관광자원화를 위한 이야기책 만들기를 벌일 수도 있다. 물이 귀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수도권에 사는 개인, 가족 단위 힐링족들이 철도 개설 등 접근성 개선에 따라 자연 속 휴식처를 찾아 속초를 더더욱 많이 찾을 것으로 예측된다. 향후 이에 대한 맞춤형 체험프로그램으로 소하천 물길을 활용한 생태 체험 공간을 확보하고, 생태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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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의 사람들

속초의 마지막 배 목수라는 자부심

전용원 배 목수를 만나다

인터뷰 시민활동가 정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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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장인정신’이 없어지는 시대라고들 말한다. 새로운 것이 날마다 생겨나는 시대이자, 아쉬울 것이 없다는 듯 옛것에 무관심한 세대. 머지않아 옛 이야기로만 남게 될 ‘배 목수의 삶’을 살아온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사라져가는 것을 지켜낼 방법이 없다는 아쉬움을 감추기 어려웠다.

며칠 째 비가 그치지 않던 흐린 속초의 오후, 이제는 저희 아버지(故 전명종 씨)께서는 함경남도 흥남시 신경

더 이상 목선을 만들 일 없는 배 목수의 하루는 잔잔히 리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전쟁이 나기 전까지 흥남의 조선 흘러가고 있었다. 나무배를 만드는 일에 일평생을 바 소에서 배 목수로 일하셨고요. 6·25전쟁이 나고 1951년 친 속초의 마지막 배 목수. 그의 기억 속에 남은 속초 1·4후퇴 때 빅토리아호를 타고 거제도로 내려오셨어요. 의 역사를 들으며, 그 시절의 풍경을 떠올려본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혈혈단신이거나 많아봐야 서너 명의 이제는 전해들을 수밖에 없는 그날의 속초. 활기가 넘 식솔을 데려왔는데, 저희 아버지는 부모님까지 모시고 배 치던 조선소의 풍경과, 배 목수의 손을 통해 만들어진 에 탔다고 해요. 그렇게 거제도에 도착하니 연로한 어른 목선으로 명태와 오징어를 가득 실어 오던 어민들의 이 계시다고, 집을 곧바로 불하받으셨다고 합니다. 그렇 어업. 그의 이야기를 들으니, 본 적 없던 풍경이 그려 게 거제도의 한 조선소에서 배 목수 일을 시작하셨지요. 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배 목수의 업과 어민의 삶. 희 저는 1952년 거제도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김영삼 전 노애락을 함께하던 그들의 이야기. 청호동의 조용한 대통령의 아버지가 거제도에서 멸치 선망에다 배 사업까 마을, 빛바랜 나무도면을 꺼내어 보여주며 배 이야기 지 크게 했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그 사람 뱃일도 많이 해 를 그치지 않던 그의 눈은 여전히 배를 만들던 젊은 날 주셨지요. 제가 두 살 때는 거제도를 떠나 부산 당감동으 처럼 빛나는 듯했다.

부친께서는 6·25 때 함경도 흥남에서 내려오셨다고 들었 서 뭐하고 있느냐’고요. 습니다. 아버님께서 다른 곳이 아닌 속초로 오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린 시절 이야기를 부탁드립니다.

로 이사를 했고, 아버지는 영도 조선소에서 일을 하셨습 니다. 하루는 속초로 먼저 올라오신 동향의 박수현 씨라 는 지인이 연락을 줬어요. ‘이 사람아, 통일된다는데 거기

흥남에서 거제도로, 또 부산으로… 정말 긴 여정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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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어린 시절 이야기를 좀 더 들려주시겠어요?

목수 일을 시작하신 것은 정확히 언제부터인가요? 속초에서 조선업 아버지는 늘 고향을 그리워하셨어요. 약주를 드신 날이면 달력을 뒤 이 흥했던 시기도 궁금합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잘 가지 않는 집어놓고 그 하얀색 면 위에다 고향의 약도를 그려주셨지요. 흥남의 데, 그 당시의 풍경도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 선산은 어디이고, 증조할아버지 산소는 또 어디이니 나중에 꼭 매일 도시락을 배달해가면서 조선소를 드나들었고, 어깨 너머로 배 찾아가라 하셨어요. 이후에는 이산가족 찾기에도 나가셔서 혈육들 목수 기술을 익혔습니다. 군대 가기 전인 1972년부터 배 목수 일을 을 찾으려 했는데 만나진 못했지요. 이렇게 고향을 그리워하는 분이 배웠고,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1976년도 스물다섯 살이 되었을 때 셨으니 ‘통일’이라는 소릴 듣고는 곧장 속초로 올라오신 거죠. 제가 예요. 군에서 제대한 뒤 청호동의 지금 집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그 다섯 살이던 1957년에 저희 가족은 속초로 올라왔어요.

때부터 집 앞의 원풍조선소에서 배 목수 일을 시작했지요. 당시에는 배 목수 기술자격증이 흔치 않았어요. 속초에서는 저희 아 인디언, 홍대, 공룡, 강원, 영동, 칠성 조선소 등… 당시에는 조선소 버지께서 유일하게 갖고 있었지요. 그러다 보니 어느 조선소든 허가 가 열세 군데나 있을 정도로 배 목수 일이 많았습니다. 그때는 남바 를 내려면 저희 아버지 면허증을 빌려서 내곤 했답니다.

리(타 지역에서 멀리 고기잡이를 하러 오는 배들)가 많아 다른 지역 그 시절 저는 매일 아버지께 점심 도시락을 갖다드리곤 했어요. 그 배들도 수리해줄 정도였지요. 지금은 대창조선소만 남기고 모두 사 런데 학교가 끝난 뒤에야 도시락을 갖다드릴 수 있으니, 매일 두 시 라졌어요. 가 넘었죠. 다른 분들은 모두 식사를 마친 뒤에야 아버지께서 뒤늦 1980년대 초부터 배 목수 일이 사양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작은 배 게 식사를 하시던 것이 아직까지도 마음에 남아요. 아버지께 참 죄 들의 수는 늘었지만, 큰 배들의 수요가 줄어든 것이지요. 1990년대 송스러워요. 못했죠.

중반까지도 게 통발 조업이 활성화되긴 했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는

ⓒ 전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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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도 저는 틈틈이 배를 만듭니다. 1:20 정도의 스케일로 모형을 만들지요. 삼척 장호항의 투명 카누처럼 속초에서도 작은 나무배를 띄워 관광 상품화하면 어떨까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속초의 관광 인프라 발전에 나무배가 일조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 전용원

일을 그만두시기 전까지 원풍조선소에서만 계셨나요? 또 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청초호는 넓고 물살도 세지 않아 어떤 일들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서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속초의 관광 인프 원풍조선소와 부산조선소에서 일했었고, 1980년대에는 라 발전에 나무배가 일조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배를 직접 만들어 팔았습니다. 큰 맘 먹고 20톤 배를 만 들었는데, 그 시기에 고기가 정말 안 잡혔지요. 그래서 배 가 팔리지 않으니, 제가 직접 기관장으로 조업을 하기도 이제는 ‘장인정신’이 없어지는 시대라고들 말한다. 새 했습니다. 저 아래 영덕의 강구까지 내려가서 고기를 잡 로운 것이 날마다 생겨나는 시대이자, 아쉬울 것이 없 아왔었죠. 조선소가 문을 닫은 이후로는, 일감이 들어올 다는 듯 옛것에 무관심한 세대. 머지않아 옛 이야기로

는 바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때마다 대창조선소에서 배를 수리하고 있습니다.

속초를 대표하는 장인으로서 속초시와 문화재단에 바라 쉬움을 감추기 어려웠다.

만 남게 될 ‘배 목수의 삶’을 살아온 그의 이야기를 듣 고 있으니, 사라져가는 것을 지켜낼 방법이 없다는 아

자신의 손으로 만든 배를 바다에 띄우며 평생을 살아 지금 칠성조선소에 만들어놓은 배 '진흥호‘는 제가 1997 온 배 목수. 새로운 바람에도 여전히 비할 바 없는 ‘목 년도에 만들었습니다. 부산조선소를 매립하기 전 그 자리 선’에 대한 자부심을 마음에 품고 있는 그의 장인정신 에서 만든 후, 지금의 칠성조선소로 옮긴 것이지요. 지금 을 보며, 마음에 존경심이 일었다. 도 저는 틈틈이 배를 만듭니다. 1:20 정도의 스케일로 모 빠르게 흐르는 시대에 손 내밀지 않고, 지금껏 걸어온 형을 만들지요. 삼척 장호항의 투명 카누처럼 속초에서도 외길의 마지막 끝을 지키고 서 있는 전용원 목수. 작은 나무배를 띄워 관광 상품화하면 어떨까 생각해보기 흘러가는 시간과 변하는 시대는 붙잡을 수 없다지만, 도 했습니다. 얼마 전에 고성 아야진 항구에서도 투명 배를 띄우려고 남은 우리들의 과제이지 않을까. 했는데 항구 어선들과 충돌할 우려가 있어 성사되진 못했

사라져가는 우리의 문화를 붙잡을 방법을 찾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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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느낌표

자연을 가까이하고 사랑하는 일

『에릭 칼과 친구들의 친애하는 동물들』

에릭 칼과 13명의 친구들 저자

조은수 번역

출판사

웅진주니어

출판년도

12,000원 값

문정아 2013년 속초로 전입 후 독서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독서동아리 어른들의 책 읽는 모임에서 꾸준히 어린이책 토론과 서평집 발간에 참 여해왔다. 중학생과 초등학생을 키우고 있으며, 현재 고성교육지원청 기초학습지원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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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한번쯤 ‘당신이 좋아하는 동물 은 열대 아마존 울럭꿀럭이다. 뱀이 삼켜버린 울 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것이 심리 럭꿀럭. 우린 그 동물이 궁금하지만 뱀의 뱃속에 검사용이든, 나에게 호감 있는 사람이 물은 질문 들어 있어 상상만 해야 할 뿐이다. 또 한 명의 작 이든.

가 스티븐 켈로그는 소를 꼽았다. 끊임없이 동물 들을 그려 방 벽을 그림으로 꽉 채웠던 어린 시절, 여기 이런 질문으로 만든 책이 있다. 원제는 밤마다 그림 속 소들이 살아나는 것 같았단다. 왜 ‘What’s Your Favorite Animal?’ 앞표지에는 냐하면 아침마다 뻗친 머리카락들을 보고 그의 할 화려한 색감의 콜라주로 표현한 상상의 동물과 열 머니가 ‘소가 핥은 머리 같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네 명의 사인이 보인다. 뒤표지에는 열네 마리의 그 외 작가들의 사연과 그림들이 한장한장 넘길 동물들이 그려져 있다. 제목 그대로 ‘당신이 좋아 때마다 흥미롭다. 하는 동물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 14인이 각양각색의 열네 가지 답변 뒷장에는 작가 14인의 어린 시절 사진과 작가 이야 을 한 것이다.

기, 작품 소개가 있다. 그중에서도 에릭 칼이 세 살 때 새끼 고양이 두 마리를 안고 재채기를 하려 하 에릭 칼과 친구들은 세계적인 작가들답게 위트 넘 는 모습의 사진이 이색적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

치고 애정 가득한 이야기들을 담았다. 에릭 칼, 탐 에는 200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애머스트에 설 리히텐헬드, 모 윌렘스, 피터 시스, 크리스 라쉬 립된 에릭 칼 그림책 미술관(THE ERIC CARLE 카, 닉 브루엘, 피터 매카티, 로즈메리 웰스, 레인 MUSEUM OF PICTURE BOOK ART) 전경과 스미스, 존 클라센, 수잔 제퍼스, 스티븐 켈로그, 『배고픈 애벌레』 『프레드릭』 『괴물들이 사는 나 에린 스테드, 루시 커진즈. 내가 좋아하는 작가는 라』의 일러스트로 꾸며진 간판이 시선을 끈다. 올 어떤 동물을 가장 좋아할까?

해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에릭 칼은 사진 속 에서 자신의 책 이야기를 나누며 밝게 웃고 있다. 먼저 색의 마술사로 불리는 에릭 칼은 자신이 가 여러 작가와 편집자, 출판사와 함께 책 만드는 일 장 좋아하는 동물로 반려 고양이 피피를 꼽았다. 을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로 여기며 세계인의 많 그림은 역시 콜라주 기법과 강한 붓터치와 색감으 은 사랑을 받은 작가의 얼굴이다. 로 시선을 잡는다. 어느 날 완두콩 콩깍지에 관심 을 보인 피피. 신발장 안으로 들어가 신발 속에 콩 에릭 칼과 친구들은 자연 속(특히 동물)에서 찾은 깍지를 넣고 마치 지켜주려 하듯이 온 몸을 감싼 상상력과 영감이 창의적인 발상으로 이어지길 바 채 잠들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러 작가들 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이가 있다. 사 고 사랑하는 일을 찾아 해보길 권한다. 인만 보아도 개성 넘쳐 보이는 모 윌렘스(‘MO!’

란다. 자신이 좋아하는 동물은 무엇인지 생각해보 고 떠오르지 않는다면 지금 바로 자연을 가까이하

실제 작가의 사인이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 “당신이 좋아하는 동물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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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문화특화지역조성사업 소식

「내가 그린 그림일기」 결과공유회

구 대포정수장 유휴공간 문화재생 사업 협력워크숍

9월 3일, 구 대포정수장 활용을 위한 <2021 유휴공간 문화 재생 사업 희망 대상지 기본 구상방안 연구> 2차 협력워크숍 이 있었습니다. 1차 워크숍에서는 사업·연구 계획 공유와 향 후 추진방향을 논의하고, 현장 답사를 통해 현안 및 이슈를 파악했습니다. 2차 워크숍에서는 주제별 상호 컨설팅과 방 향 및 키워드를 도출하고 구 대포정수장의 역사와 활용방안 을 공유했습니다.

문화도시 속초 숲속마켓 홍보부스 운영

속초문화재단은 속초 문화특화지역조성사업의 사업 소개와 홍보를 위해 9월 11일 숲속마켓에 참여하여 시민들과 교류 했습니다. 재단 및 문화특화사업의 SNS 팔로우를 한 후 선 물을 드리는 이벤트도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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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시 조성계획 현장검토 인터뷰

「속초인물수첩」

「문화공간 돌담」 10월 15일 개소

속초시는 ‘속초다운 삶의 조화, 공존문화도시 속초’라는 비 전으로 제4차 법정 문화도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난 9 월 15일, 제4차 법정 문화도시 서류전형에 합격한 도시들을 대상으로 현장검토 및 인터뷰가 진행되었습니다. 속초시·속 초문화재단·시민들이 한데 모여 현장검토단과 문화도시 속 초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문화공간 돌담」은 속초 문화특화지역조성사업을 통해 조성 및 운영하는 문화거점공간입니다. 1985년에 지어진 이 건 물은 쌀 창고로 사용되어오다 최근 상도문 문화마을사업을 통해 작품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속초 문화특화지역조성사업 을 통해 속초 시민과 관광객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문화거 점공간이자 여행자센터로 운영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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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733-8134

우) 24821 강원도 속초시 번영로 155 속초문화예술회관 별관 2층 속초문화재단 T. 033-636-0671 (문화특화지역추진팀) F. 033-636-0665 www.sokchocf.or.kr www.oks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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