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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첩 제11호(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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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첩지는 2025년도 부산광역시 비영리민간단체 공익활동 지원사업으로 제작한 간행물입니다.

04p “기술이 경쟁력” 독보적 시장 개척해온 기술경영인

11 제

2025 Spring

Vol. 11

호

07p 충무공 4대 정신, 삶과 기업경영의 최우선 가치

24p 창원서 하동까지 159.8㎞ 경남 이순신 승전지 12개 테마길 이모저모

박수복 대륙금속(주) 회장 (이순신아카데미 총동창회 회장) 위난구 그랜드썬기술단 대표이사 (이순신 아카데미 6기)

김용구 국제신문 사회부 기자

www.busangrandvic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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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발행인 편지 어려운 시대 상황을 이순신 정신으로 극복하자

이용흠 (사)부산대첩기념사업회 (사)부산여해재단 통합 이사장

2025 Vol.11 봄호

04 포커스 대담

박수복 대륙금속(주) 회장 ‘기술이 경쟁력’… 독보적 시장 개척해온 기술경영인

글 유순희 편집위원

07 이순신 정신을 실천하는 사람들

위난구 그랜드썬기술단 대표이사 ‘ 충무공 4대 정신, 삶과 기업경영의 최우선 가치’

글 배재한 편집위원

10 정책제언 북항 문화공원 명칭을 빨리 정해야 한다.

강주택 부산시의원(해양도시안전위원회)

12 사업회 소식 ㈔부산대첩기념사업회 NEWS

16 부산대첩이야기 ⑪ 이야기 부산대첩

김종대 ㈔부산대첩기념사업회 명예이사장

18 임진왜란과 역사 속 인물 ➆ 소산전투와 부산 동래 24별전공신

#표지이야기

김태현 한국해양대학교 전임강사 겸 초빙연구원

지난해 제45회 시민의 날을 맞아 본회가 마련한 부산대첩승전로 탐방행사에 시 민과 회원들이 참여해 기념촬영한 모습.

발행인 이용흠 편집인 유순희 발행처 ㈔부산대첩기념사업회 발행일 2025년 4월 28일 디자인·제작 ㈜프린테크 (051)301-3113

발행인 편지

인사말

21 부산대첩 용어 부산대첩 명칭에 대한 소고(小考)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 동국대 여해연구소 학술위원장

동국대 미래융합여해아카데미 교수

이사장 이용흠

㈔부산대첩기념사업회

24 특집 - 이순신 승전길 창원서 하동까지 159.8㎞… 경남 이순신 승전지 12개 테마길 들어선다

김용구 국제신문 사회부 기자

27 칼럼 계엄사태 때 권력자 부당 명령 거부 국민에 충성한 공직자는 ‘작은 이순신’

배재한 편집위원, 전 국제신문 사장

30 BOOK - 이 한권의 책 이어령의 말

김효정 편집위원, 부산일보 부국장

31 편집후기 회원가입 안내

편집위원 유순희, 배재한, 김태현, 김효정, 하종숙, 유재기 구독안내 (051)923-1000 등록일 2020. 04. 14 등록번호 연제, 사 00004 홈페이지 www.busangrandvictory.com 주소 부산 연제구 중앙대로 1073 부산은행 4층

‘부산대첩’은 ㈔부산대첩기념사업회가 만드는 문화 매거진입니다.

어려운 시대 상황을 이순신 정신으로 극복하자

을사년 올해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태어 내외의 여러 어려움은 그의 사랑, 정성, 정 난 지 48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의, 자력의 정신을 본받아 실천해 나간다면 거뜬히 헤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내외적으로 혼란스럽고 어려움이 지속 되는 이때, 이순신 정신을 되새기고 실천하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되새기며, 우리는 는 자세가 더욱 요구되는 시기입니다. 지금 다음과 같은 자세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 순간에도 국내외 정세는 급변하고 있으 며, 우리는 그 속에서 길을 찾아 나아가야 합

첫째, 단결의 중요성을 기억합시다. 이순 니다. 이러한 도전 앞에서 우리는 이순신 장 신 장군은 부하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힘을 군의 리더십과 정신을 되새기고 실천하며 힘 하나로 모아 승리를 이끌어냈습니다. 우리 을 얻어야 합니다.

도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둘째, 긍정적인 마음 가짐을 유지합시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불리한 상 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나라를 지켜냈습니다. 장군은 언제나 긍정적인 태도로 앞길을 개 부산대첩에서 장군은 왜군의 본거지를 공격 척했습니다. 비록 상황이 어렵더라도, 우리 하여 그들의 보급로를 차단함으로써 전쟁의 는 희망을 잃지 않고 밝은 미래를 향해 나 흐름을 바꾸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아가야 합니다. 이 전투는 단순한 승리를 넘어, 불가능을 가

셋째, 지속적인 학습과 성장을 추구합시 능으로 바꾼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 다. 이순신 장군은 끊임없이 전략을 연구하 습니다. 부산대첩은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 고 자신을 단련했습니다. 우리도 끊임없이 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현재를 살펴보 배우고 성장하며,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 고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며, 우리가 나아가 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그의 전략과 용 기는 단순한 전투 기술을 넘어선, 인간의 한

마지막으로, 나눔과 봉사의 정신을 실천 계를 뛰어넘는 숭고한 정신을 담고 있습니 합시다. 장군은 자신보다 나라와 백성을 먼 다. 그는 우리에게 두려움을 극복하고, 희망 저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주변 사람들을 돕 을 잃지 않으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삶의 고, 사회에 기여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 태도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어 가는 데 앞장서야 합니다.

그의 용기와 지혜는 우리 민족에게 큰 힘이

480주년 이순신 탄신을 맞아 이순신 정 되었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영 신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고 실천하겠다 감을 주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국 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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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경쟁력’… 독보적 시장 개척해온 기술경영인

‘이순신 정신’으로 살면 무슨 일 하든 성공해

박수복 대륙금속(주) 회장 (이순신아카데미 총동창회 회장)

을 뛰어왔던 항공 경영인이다.

왔고 그 선두에 박수복 회장이 있었다.

박수복 회장.

대륙금속은 주로 글로벌 완성차들을 주요 고객사로 두고, 제네시스 등 현대차의 라디에이터 그릴 대부분을 생산 납품 하고 있다. 그간 품질인증과 수상 기록도 수두룩하다. 이러한 공로로 지난 2020년에는 부산상공회의소 부산산업대상(기 술부문) 상을 받기도 했다.

소위 요즘 말하는 스마트 팩토리 시스템도 일찍이 갖추었 다. 이미 오래전부터 생산라인 전반을 자동화했다. 현재 환경 친화적인 3가 크롬도금 제품을 비롯해 자체 개발 생산중인

창사 49년. ‘기술이 경쟁력’이라는 신념으로 반세기 신기

템(Full line Service System)을 갖추고 있다.

술과 신공법 개발에 박차를 가하며 국내 자동차부품산업 발 전을 견인해온 대륙금속(주) 박수복(80)회장. 이미 20여 년 전에 일백만 마일리지가 쌓일 정도로 활발하게 전 세계 현장

화 공정은 2006년 국내 업계 중 처음으로 구축하기도 했다. 현재 울산공장은 이런 자동화 시스템으로, 정부가 인정하는

박 회장이 지난 1977년 설립한 대륙금속은 자동차 범퍼류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한다.

라디에이터 그릴류, 몰딩류, 가니쉬류 등을 제조 생산하는 자 동차 부품 전문회사. 자체 기술향상을 위해 30~40년 전 독일, 미국, 일본 등 선진 여러나라 동종업계를 벤치마킹하며 대륙 금속만의 독보적 기술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데 주력해

자문역을 마다않고, 50년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대륙금속의 사출, 도금, 도장기술은 세계시장에서도 인정받 는 기술. 특히 국내 최초로 자동차 라디에이터그릴(Radiator Grille)의 플라스틱 도금 제품개발은 획기적이었다. 당시만해

영 기반 자연친화적 신기술 신공법 연구에 앞장서온 박수복

도 금속도금은 보편적이었지만 플라스틱류 도금은 흔치 않던

회장의 경영이념이 잘 녹아나 있다.

시절. 박회장은 관련 기술을 갖추기 위해 독학하듯 연구하고 전문서적을 참고해 도금계의 블루오션을 창출했고 대륙금속 의 도금기술은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반열에 올랐다.

지난 2024년 부산대학병원에 발전기금 1억원을 기부한 박 회장(왼쪽).

범퍼류, 몰딩류, 가니쉬류 등 생산제품들은 끊임없는 기술혁 일제치하로부터 해방되어 광복을 맞은 당시 태어났고 유년 신과 품질향상을 통해 세계시장에서 인정받고 있고, 제품의 기 한국전쟁을 경험했으며, 분단이후 나라가 불안정 하던 시 개발단계에서부터 인도에 이르기까지 풀 라인 서비스 시스 기 전방에서 혹독한 군생활은 물론 월남 파병군인으로 격동 의 현대사와 함께 질곡의 삶을 겪었다. 그래서 박 회장은 자 자동차의 얼굴 격인 외관·안전성·통풍 등의 중요 요소인 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의 중요성과 미군의 협조를 누구보 라디에이터 그릴과 범퍼를 한 세트로 조립해 납품하는 모듈 다 감사하게 생각하는 기성세대 중 한 사람이기도하다.

박 회장은 울산시 울주군에서 태어났다. 그 시절 누구나 ‘스마트 팩토리’라 할 수 있다. 박 회장은 능률면에서는 세계 그랬듯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 학업도 녹록지 않았던 때, 부 산으로 유학와 부경대 전신인 부산공업고에 당당히 합격했 지만 누구하나 학비를 지원해줄 사람이 없어 힘들게 공부했 창업주 박수복 회장은 현재 경영권은 큰 아들에게 넘겼지 다. 만만치 않은 타지생활을 하며 학비마련을 위해 신문배달, 만 여전히 정기적으로 출근하며 경영전반을 체크하며 경영 구두닦이, 가정교사 등 안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살 았다. 무엇이든 자력으로 해결하며 난관을 극복해온 박회장 창사 이래 줄곧 대륙금속은 ‘인간가치창조와 자연환경을 은 1970년대 산업기술을 한창 장려하던 때, 모두가 기피하는 생각하는 기업’을 경영모토로 산업발전과 더불어 인간생활 3D 업종을 하면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도금업에 뛰 향상을 위해 노력해오고 있는데, 여기엔 환경 경영과 윤리 경 어들었다. 당시만 해도 국내 도금기술은 아주 미천한 수준이었고, 더 군다나 플라스틱 도금기술이 일천하던 시절, 기술을 익히기 위해 일본 등 해외서적을 구해 공부하며 중소기업진흥공단 박 회장은 자수성가한 기업인이다. 팔십성상에 오른 누구 의 해외 교육에도 열심히 뛰어다녔다. 미국과 유럽의 도금 관 나 경험했던 격변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체험했던 당사자다. 련 전시회가 열리면 열일 제쳐두고 쫓아다니며 자료를 모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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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국내외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며 기술을 터득해 오늘 사 직원들에게 책을 권하고 있는데 요즘은 좋은 취지에도 불 날 최고의 도금기술을 갖추게 되었다.

이처럼 박 회장은 기술경영인이다. 창의적 발상으로 거북 쳤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선을 만들고 장수들을 지휘한 과학자 이순신처럼 박 회장도 산업현장에서 사원들을 통솔하며 창발의 정신으로 기술력을 제고하는데 솔선수범해온 기술전문 리더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박 회장은 많은 위인들 중에서도 이순신장군 회사 마다 이순신 책을 100여권씩 비치해 누구나 손에 잡히 을 특별히 존경한다. 이순신에 더 깊이 매료된 계기는 20여 는 대로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고. 년전 만난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과의 인연에 있다. 이순신정 신의 엑기스를 뽑아 그 가치와 정신을 설파해온 김종대 전 재 판관의 책을 서너 번 탐독하면서 이 시대 이순신정신의 필요 다. 정품, 정량, 정위치 3정과 정리, 정돈, 청소, 청결, 질서라는 성을 누구보다 절감했다. 이렇게 이순신에 매료된 박 회장은 5행입니다. 정직한 제품, 완벽한 제품생산을 위한 엄격한 관 한동안 대륙금속에 입사하는 직원들은 6개월내 이순신관련 리와 자세를 갖추고자 노력하는 것 또한 이순신정신을 실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 내도록 권장할 정도였고, 잘 쓴 독후 하는 사람들의 자세와 맞닿아 있다고 봅니다.” 감을 가려 순위별 상금을 수여할 정도로 이순신 정신을 널리 전파하는데 힘써왔다. 그야말로 박 회장은 이순신 정신을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을 추구하는 정신은 이순신정신 중에서도 정성과 정의로움 기업인이다. 이순신아카데미 1기 출신으로 현재는 전체 9기 에 부합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과정까지 배출중인 부산이순신아카데미의 총동창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고 부산여해재단 및 부산대첩기념사업회 고문으 로 활동하며 이순신정신 선양사업에 기여해오고 있다.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이 쓴 이순신책을 만나기 전에는 그 결된다며 어디를 가든 “이순신처럼”을 강조하며 이순신 정신 저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의 업적이 훌륭하기 때문에 좋아 을 알리는 일에 열심이다. 했는데 이순신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고부터는 광팬이 됐다고 봅니다. 훌륭한 리더들은 반드시 본받을 만한 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반드시 밝고 희망이 있을 것”이라는 점이 많지만 평생을 일관되게 실천하고 살아가기란 쉽지 않 박 회장. 그는 여해재단 이순신리더 양성 교육과정이 지속적 은데 사랑, 정성, 정의, 자력으로 압축되는 이순신장군의 평 으로 운영되고 활성화되기를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유순희 편집위원 생 일관된 내면의 가치와 정신은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이런 이순신 정신을 본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주변사람들과 회

구하고 회사오너가 일방적으로 권하는 것도 사원들을 불편 하게 만드는 것 같아 그만두었지만, 그동안 선한 영향력은 끼

대륙금속은 전국 4개 공장 680여 사원이 근무하는 중견기 업. 온 회사 가족들에게 이순신 정신을 일깨워온 박 회장은

태양광발전사업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국내 대표적 선도

“저희 회사 경영이념과 사훈에는 3정5행이라는 게 있습니

기업으로 자리잡은 그랜드썬기술단 위난구 대표이사는 충무 공 이순신 장군이 우리에게 남긴 가르침을 삶과 기업경영의 최우선 가치로 삼고 있다. 부산 강서구 도시철도 3호선 강서구청역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인 강변로에 자리잡은 그랜드썬기술단 본사 겸 남부 지사 스마트 빌딩에는 12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박수복 회장은 대륙금속 가족들의 화합과 일체감, ‘올바름’

그랜드썬기술단이 창업 20년 만에 태양광발전사업과 IT기 술을 접목한 신재생 에너지 분야 전략기업으로 대한민국을 넘 어 세계적 선도기업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비결이 뭘까? 하는 궁금증을 갖고 회사를 찾았다. 그 궁금증은 위 대표와 인

세계적인 품질로 인정받기 위해 엄격한 품질관리와 검증

터뷰를 진행한지 얼마되지 않아 서서히 풀렸다.

에 부단한 노력을 해온 박회장은 이순신정신으로 일을 하면

태양광발전사업이 주력인 신재생에너지 분야 기업을

세계시장도 인정받을 수밖에 없고 그것이 곧 경쟁력으로 연

창업하게 된 이유는?

“후세대 많은 젊은이들이 이순신을 닮아가기 위해 노력한

을 알게 돼 시작했죠.

창업 초기 상황을 좀 설명해주세요.

‘충무공 4대 정신, 삶과 기업경영의 최우선 가치’

위난구 그랜드썬기술단 대표이사 (이순신 아카데미 6기)

- 창업 20년 만에 올해 매출 1500억 목표…신재생에너지 기업 선도 - 지름길은 없다는 신념으로 정도 경영 신뢰 경영으로 사업보국 실천 - “구국의 지도자이자 정돈된 인격자인 충무공 정신 전 직원 배워야”

위난구 대표이사.

회사를 창업하기 전 이런 저런 업종에서 일을 했습니다. 친 말로 구멍가게에서 맨 땅에 헤딩하는 심정이었죠. 첫해 매출액 환경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사업이 신재생에너지 분야라는 것 이 2000만 원 정도였을 것입니다.

사업과정에서 어려움도 적잖았을텐데….

어려움이야 늘 있었지만 부딪치고 깊이 고민하면 해결책이 2005년 창업 땐 저와 경리 및 사무직원 한 명을 포함해 단 생겼습니다. 운도 따랐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 두 명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자본금이라야 사무실 마련한 것 도움이 되는 미래지향적인 사업, 환경을 중시하는 시대적 트렌 을 포함하면 2000만 원 안팎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야 드, 산업적 수요 등과 맞물려 해를 거듭할수록 기업이 비약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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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성장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 덕분에 오늘의 저와 그랜드썬이 있 전략산업 선도기업(2022년), 전기안전우수시공업체(2022년) 다는 사실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어머니(78세)는 독실한 불교 로 선정되고 대한민국 재생에너지 대상(2024년)을 수상하기 신자입니다. 2020년 코로나19가 오기 전까지 38년 동안 한 달 도 했다. 하동화력 6호기 태양광발전소(1MW), 창녕군 태양광 에 한 번씩 대구 팔공산 갓바위를 직접 찾아 “자식 사업 잘 되 발전소(1.5MW), DSR(주) 태양광발전소(3.6MW) 등 국내 지자 라”는 간절한 기도를 올렸습니다. 한 겨울 추위와 한 여름 폭 체와 기업의 수많은 태양광발전소를 자체 기술로 건설했다. 염 속에서도 한 번도 빼먹은 적이 없었습니다. 건강한 청년도 앞만 보고 달려온 위 대표에게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쉽지 않은 팔공산 산길을 어머니가 40년 가까이 오르내리시 어떻게 첫 인연을 맺었는지 물었다. 는 것을 보고 정신 바짝 차리고 사업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습 니다.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라”는 어머님의 말씀은 어 려울 때마다 저를 지켜준 힘이었으며, 앞으로 기업경영을 하고 문을 보니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배우는 아카데미 강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제 마음 속 좌표가 될 것입니다.

지금 그랜드썬의 업계 내 포지셔닝(위상)을 평가한다면 …

이 분야 업체 수가 1만개 정도는 될 것입니다. 기업 간 경쟁도 력이라는 충무공의 4대 정신을 알게됐고, 이를 삶과 기업경영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본사 겸 남부지사를 비롯해 경기 에 실천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도 안산의 중부지사, 경북 봉화의 경북지사, 경남 김해의 경남 지사 등 4개 사업장에 근무하는 직원 수만 145명에 달합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그랜드썬은 2005년 창업 이후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 다. 창업 11년 만인 2016년 매출액 100억 원을 기록한데 이어 2023년 매출액 1000억 원을 돌파했다. 2024년 매출액이 1100 마다 “이순신 장군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하고 한 번쯤 생각 억 원. 매출액과 성장속도 등을 감안하면 이 분야 상위 10% 안 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어느정도 마음이 정리되고, 나아갈 방 에 듭니다. 대기업과 정부 투자기관, 지자체 등이 우리의 주요 향이 보입니다.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옳고 바른 것, 공동체에 고객입니다. 올 해 매출은 전년보다 40% 가까이 늘어난 1500 도움이 되는 것을 우선하다보니 충동적이고 잘못된 결정을 할 억 원을 무난히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자신감도 생깁니다.

그랜드썬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유엔 산하 글로벌 콤팩트에 가입했다.

그랜드썬은 정부혁신기업 국가대표1000(2021년), 부산시

습니다. 올해도 이미 교육 수강 희망자가 줄을 서고 있습니다.

청년 이순신 아카데미 강좌를 수강한 직원들이 어떤 변화를 보입니까?

하면 안 될 일이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청년 이순신 아카데

이순신 장군과의 인연은 참으로 우연이었습니다. 2022년 신

미를 수강한 직원들이 업무를 대하는 태도와 눈빛이 눈에 띄게

좌가 개설된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전화를 해서 수강신청을 했습니다. 이순신 아카데미 과정 수강생으로 강의를 들으며 이 순신 장군이 평생 동안 일관되게 실천해온 사랑 정성 정의 자

사 전 직원들이 이순신 강좌를 수강토록 할 계획입니다.

기업경영에 이순신 정신을 접목하고 있는 사례를

어떤 결정을 하거나 방향을 정할 때, 삶과 경영의 고비고비

면 큰 축복이자 성공 인생의 보증수표가 아닐까요.

확률이 현저히 줄어듭니다. 이순신 장군을 더 깊이 알게 되고

미래 환경과 신재생에너지 발전에 기여한다는 미션, 홍익인간

내 마음 속에 항상 이순신 장군이 자리잡고 있다는 생각을 하

의 실천이라는 비전을 제시해 놓았는데 이순신 정신과 맞닿아

게 되니 결정도 신중해지고, 한 번 결정한 것은 밀고나가는 데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이순신 장군의 생애와 정신을 제대로 배우고 난 이후 받은 감동과 축복을 우리 직원들과 공

념은 이순신 정신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하기 위해 2022년, 2023년, 2024년 3년 연속 청년 이순신 아 카데미 강좌에 10명씩 보냈습니다. 첫 해에는 솔직히 교육대상 으로 선발된 직원들이 ‘일’이라는 의무감을 갖는 듯 했는데, 교

고 기술력을 갖춘 지금은 옆과 뒤를 돌아보게 될 여유가 생겼

육을 받을수록 흥미를 느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재 습니다. 그래서 결심한 게 있습니다. 이 회사는 사장인 위난구 작년부터는 자발적인 신청자 중심으로 교육생 10명을 선발했 개인의 회사가 아니라 우리 145명 전 직원의 회사라는 것을 분 명히 하고, 그에 걸맞은 경영이념을 새롭게 정립했습니다. 회 사의 차기 경영자는 우리 직원들 중에서 나올 것입니다. 기업 인으로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제대로 실천한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박사처럼 정도경영 나눔경영을 실천하는 대한민국 동 회사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고 일에 정성을 다하는 모습에서 량기업이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달라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 지극한 정성으로 일을 기업경영과 삶의 좌우명이 있다면?

저는 ‘지름길이 없다’는 생각으로 살아왔고, 기업경영에도 이 달라지는 것을 저 뿐만 아니라 임직원들이 체감합니다. 이런 변 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바른 길(正道)만이 있을 뿐이지 지름길 화는 청년 이순신 아카데미를 수강하고, 이순신 장군을 더 깊이 을 찾다가는 오히려 낭패를 보게 되는 경우를 주변에서 많이 봤 알고 난 뒤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래서 올 습니다. 또 기업은 결국 사람(직원), 고객, 거래처(기업)와의 관계 해도 10명의 직원을 이순신 강좌에 보내는 것은 물론 우리 회 속에서 성장하고 발전합니다. ‘하루를 10년처럼, 10년을 하루처 럼’ 사람을 대하고 일을 하겠다고 저 자신에게 주문하고, 직원들 저는 이순신 장군이야말로 우리 역사에서 한 인간이 할 수 에게도 강조합니다. 순간만 모면하거나 넘길 것이 아니라 한 번 있는 지고지선의 가치를 실천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임진왜 하는 일은 10년을 내다보고, 한 번 만난 사람은 10년 지나도 한 란에서 조선을 구한 장수를 뛰어넘어 인격적으로도 우리 역사 결같은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일도 잘 하 에 찾아보기 어려운 성자(聖者)라고 봅니다. 이순신 장군을 알 게 되고, 사람과 사람, 사람과 기업 간 신뢰가 깊어집니다. 저의 게 되면 존경하게 되고, 그 분의 정신을 실천하게 됩니다. 그런 이런 자세가 불과 20년 사이 그랜드썬이 비약적 발전을 넘어 퀀 위대한 인물을 더 깊이 알고, 마음 속 인생의 스승으로 삼는다 덤 점프를 한 바탕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고객 중에는 기존 고객 의 소개로 연결돼 새로운 고객이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랜드썬 홈페이지를 보니 회사의 경영이념으로 사업보국을 충무공 정신을 어떻게 널리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주창하고, 존중 배려 나눔이라는 핵심가치, 세상을 관통하는 바람이 있다면.

오늘의 부산은 이순신 장군의 부산대첩 승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련성이 있는 도시입니다. 이순신대로가 생기는 등 부산대첩 기념사업이 하나씩 하나씩 결실을 맺고 있어 좋습니 기업을 통해 국가와 사회에 기여한다는 사업보국의 경영이 다. 궁극적으로는 부산 북항에 우리 국민과 후손들이 부산대첩 의 의미와 이순신 장군의 업적으로 되새길 수 있는 부산대첩 사실 사업초기에는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기업의 생존과 이 기념관이 반드시 건립될 수 있도록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윤 추구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정도 기업이 성장하 고 생각합니다. 배재한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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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제언

부산시의회 제326회 임시회 5분 자유발언 (2025. 2. 17)

북항 문화공원 명칭을 빨리 정해야 한다.

다음은 부산시의회 제326회 임시회 강주택(해양도시안전위원회)의원의 5분 자유발언이다. 북항 1단계 사업이 차츰 완성되어가고 있는 가운데 아직도 확정되지 않은 문화공원 명칭과 관련 북항일대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적의 본진을 격파하여 육상으로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남해의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함으로써 우리 나라를 지켜낸 역사적 전투 현장인만큼, 이순신을 비롯한 부산대첩 영웅들의 호국정신을 부산시민 정신으로 승화 시켜 부산발전의 소중한 모멘텀이 될 수 있도록 공원명칭을 역사적인 스토리에 부합하는 부산대첩기념공원으로 제정될 수 있기를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있어 소개한다. <편집자 주>

강주택

부산광역시 의원(해양도시안전위원회)

본 의원은 부산항 북항 사업지의 문화공원 명칭이 간이 걸리겠지만, 차근차근 시간을 두고 다양한 아 하루빨리 제정되어 부산시민에게 의미있는 공원으 이디어를 개발하고 콘텐츠를 접목한다면 부산항 북 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공원명 제정에 대해 제언하 항은 부산이 세계적인 도시로 발돋움 할 수 있는 기 고자 합니다.

회의 공간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현재 부산항 북항은 재개발로 인해 큰 변화를 맞 고 있습니다. 부산의 명물이 될 다양하고 새로운 시 를 가지고 있습니다. 파리의 에펠탑, 로마의 콜롯세 설들이 조성되는 1단계 사업이 차츰차츰 완성되어 움,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등 저마다의 스토리를 가 가고 있는 중입니다.

제대로 된 부산의 랜드마크가 탄생하려면 오랜 시

제한 도시의 상징물은 세계인의 공감을 얻기가 힘듭 니다.

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적의 본진을 격파하여 육상 으로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남해의 제해권을 완전히

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전라수군은 전쟁 첫 해에 4 차례 경상 바다로 출진하여 모두 승리를 거둡니다.

이 부산대첩입니다.

세계적인 도시들은 그 도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

항 쪽에 이르는 곳이며, 북항터는 왜적의 침략을 봉 쇄한 국토 수호의 성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역 사적 스토리가 살아 숨쉬는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고 많은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습니다.

스토리는 이야기이며 그 도시가 가진 역사와 일맥

이순신을 비롯한 부산대첩 영웅들의 호국정신을 부산시민 정신으로 승화시켜 부산발전의 소중한 모멘텀이 될 수 있도록 공원명칭이 역사적인 스토리에 부합하는 부산대첩기념공원으로 제정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상통합니다. 역사적인 사실이 스토리로 재 구성되어 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지난해 1월 주 간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고 이로 인해 도시는 세계적인 선도로를 「이순신 대로」라고 명명하여 개통한 것이 도시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역사적 사실을 배 부산대첩과 관련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현재 북항 재개발지역내 공원명칭이 정해지지 않 았습니다. 언론에서는 친수공원이라는 이름으로 기 이런 의미에서 부산항 북항 일대는 1592년 임진왜 사화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난해 11월초 문화공원부지 소유권이 부산시로 장악함으로써 우리나라를 지켜낸 역사적 전투 현장 이전된 만큼, 시민들에게 친수공원이라는 이름이 굳 어지기 전에 빠른 시일내에 공원명칭 제정에 관한 절차를 진행해야 합니다.

도시를 개발할 때는 새로운 시설이나 콘텐츠를 만 옥포승첩, 당포승첩, 한산대첩, 그리고 네 번째 출진 드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새로운 것과 옛 것을 조화롭게 스토리화 하여 역사적인 사실이 스토리로 재구성되면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고 이로 인해 도시 부산대첩의 격전지가 지금 부산진성 앞쪽에서 북 는 세계적인 도시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순신을 비롯한 부산대첩 영웅들의 호국정신을 부산시민 정신으로 승화시켜 부산발전의 소중한 모 멘텀이 될 수 있도록 공원명칭을 역사적인 스토리에 그러나 북항은 부산의 자랑스러운 민족문화 유산 부합하는 부산대첩기념공원으로 제정될 수 있기를 의 현장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기념하고 보존하는 것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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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대첩기념사업회 NEWS

부산대첩 기념식 및 승전로 탐방

지난해 10월 4일(금) 부산시청 대강당에서 부산시와 공동으로 「제45회 부산시민의 날 및 제432주년 부산대첩 기념식」을 개최 했다. 지금까지는 부산대첩의 날이 부산시민의 날임에도 불구하 고 각각 별도의 기념식을 개최해 왔으나, 부산시와 지속적인 협 의를 통하여 공동으로 기념식을 개최하기로 함에 따라 이날 일 반 시민과 부산대첩기념사업회 회원들이 참석하여 많은 시민들 에게 부산대첩의 날이 부산시민의 날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사장 축사(박병대 이사 대독)를 통하여 부산대 첩기념공원 명칭 지정 및 기념관 건립의 필요성과 사업회 추진 의지를 밝힘으로써 시민들에게 관심을 갖도록 하였으며 700여 명의 참석자들에게는 부산대첩지(제10호)를 배부하여 부산대첩과 사업회 주요 활동 사항을 널리 홍보했다. 부산대첩 기념식에 참석한 시민들 중 200여 명은 기념식을 마치고 버스 6대에 탑승하여 시청에서 다대포~송도~북항 코 스를 이동하면서 부산대첩 승전로 탐방을 했다. 당초 부산해경 함정을 타고 바다를 통해 승전로 탐방행사를 가질 계획이었으 나, 태풍 끄라톤 영향으로 함정 운항이 불가하여 부득이 버스 를 타고 육로로 이동하면서 탐방을 하였는데 참가자들 모두가 해설자 해설을 경청하면서 궁금한 사항은 질문을 하는 등 탐방 행사에 적극 참여했다. 참가자 대부분은 부산대첩의 규모나 역 사적 중요성에 대하여 처음 알았다는 반응이었고, 탐방행사를 통하여 한산`명량`노량대첩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부산대첩 의 역사적 의의를 알리고 체험하는 기회가 되었다.

(사)부산대첩기념사업회 고문회의 개최

지난해 10월 24일(목) 고문진과 이사 등 11명이 참석한 가운데 고문회의를 개최하여 주요 추진사항 보고와 향 후 추진계획을 논의했다. 부산시와 공동으로 부산시민의 날 및 부산대첩기념식을 개최한 것은 시민들에게 부산 대첩을 널리 알리는 효과가 있으므로 계속 추진되어야 하고 북항에 부산대첩기념공원과 부산대첩기념관이 조 성되면 부산시민의 날 행사를 거기서 하는 방안도 검토되어야 하므로 우선적으로 북항에 부산대첩기념공원 조 성과 부산대첩기념관을 건립하는데 고문회 차원에서 적극 노력하기로 했다.

제2회 청소년 부산대첩 컨퍼런스 개최

강사 역량 강화 프로그램 운영

이순신 강사 전국 지도자모임 참석

지난해 12월 14일(토) 영광도서 문화홀에서 회원, 시민 및 청소년 등 90여 명이 참석하여 ‘부산대첩과 부산시민의 날’을 주제로 토론과 라운 드 테이블을 진행했다. 당일 토론에 참석한 청소년들에게는 4회에 걸쳐 부산대첩과 부산시 민의 날 연관성에 대한 사전 교육과 학습을 실시하여 보다 효율적인 토 론회가 되도록 했으며, 미래 세대인 청소년들이 자칫 소홀히 할수있는 부산지역의 역사에 대하여 관심을 갖도록 하고 세션별 주제를 달리 함으로써 다양한 토론과 질의를 유도함으로써 부산대첩을 널리 알리는 시간이 되었다.

(사)부산여해재단은 이순신 아카데미 강사과정 수료자를 대상으로 지난해 하반 기부터 올해 4월까지 강의 시연과 강사 평가회 등을 통해 강사 역량 강화와 강의 내용의 일관성을 도모하고자 재교육(2회 26명), 워크숍(1회 15명), 현장학습(1회 63명), 강사평가회(1회 28명)를 시행했다. 특히 현장학습은 아카데미 총동창회 주관으로 여수여해재단이 동참하여 고금도와 고하도 등을 방문했다.

(사)부산여해재단은 지난해 10월 18일(금), 1박 2일 일정으로 서울여해재단이 주최한 이순신 강사 전국모임에 참석하여 부산여해재단 활동 사항을 보고하고 여 수여해재단 및 서울여해재단과의 다양한 업무 교류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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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아카데미 운영

(사)부산여해재단은 이순신의 생애와 정신을 가르칠 강사와 이순신 정신으로 무장된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한 「이순신 아카데미 강사과정」을 지난해 3월 6일부터 12월 4일까지 운영(이론 9회 현장탐방 2회)하여 23명의 수 료생을 배출했다. 아울러 이순신 정신을 실천하고 전파할 『청년 이순신 아카데미』를 지난해 4월 16일부터 11월 26일까지 2회에 걸쳐 운영(이론 18회, 현장 2회)하여 50명(1기 27명, 2기 23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부산시교육청 위탁 교육

(사)부산여해재단은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관내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지역역사 문화 탐방, 이순신 해전 전적지 순례, 인성`리더십 키움교실 등 부산시교육청 위탁사업을 진행하여 청소년들에게 이순신 생애와 정신을 전파했다.

구분

내용

실내교육 이순신 리더십 및 거북선 만들기

초 등 지역역사 문화탐방

1코스 (증산왜성 → 정공단 → 부산진성 → 조선통신사역사관) 현장학습 2코스 (가덕도 ▶ 천성진성 → 외양포 포진지 → 인공동굴)

이순신해전 전적지순례 옥포대첩기념관 → 천성진성 → 북항(이순신대로) → 용두산공원 11회

중등

인성·리더십 키움교실

이순신 리더십 교육 및 토론 발표

「의역 난중일기」 북콘서트

부산민주시민교육 한마당 참여

실적

21회

30회

제9회 이순신 독후감 공모

60회

(사)부산여해재단은 지난해 12월 23일(월) 영광도서 문화홀에서 회원 및 일반시민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김종대 명예이사장이 엮어 펴낸 『의역 난중일기』북콘서트를 개최했다. 저자와의 북 토크, 저자 사인회, 문화공 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했다.

(사)부산여해재단은 지난해 10월 19일(토)부터 20일(일)까지 부산시민공원에서 부산광역시와 평생교육진흥 원이 주최한 부산민주시민교육 한마당 행사에 참여하여 부산대첩 홍보와 거북선 말들기 체험 부스를 운영하여 참가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사)부산여해재단은 임진왜란이라는 위기 상황에서 나라를 구할 수 있었던 이순신 리더십의 뿌리를 배우고, 체화하여 작은 이순신으로 거듭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이순신 독후감 공모전을 개최했다. 지난 1월 13일부터 4월 4일까지 『이순신, 하나가 되어 죽을 힘을 다해 싸웠습니다.(저자 김종대)』 와 『의역 난 중일기.(저자 김종대)』를 지정도서로 정하여 청소년부와 일반부, 가작 부문으로 나눠 공모하였으며 청소년 6명 (최우수 1, 우수 2, 장려 3), 일반부 6명(최우수 1, 우수 2, 장려 3), 가작 9명의 수상자를 선정하여 이순신 탄신 일에 시상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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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첩이야기 ⑪

명예이사장이 들려주는 부산대첩 이야기

이야기 부산대첩

#11

1. 연재를 마감하며

부산대첩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것은 부산에 위대한 호국역사를 선물한 부산포해전 을 만방에 자랑하고, 부산대첩의 주인공인 이순신의 정신을 널리 펴서 건강한 부산, 화 평한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그 작업의 일환으로 총 10회 정도를 예상하고 작년 가을에 『이야기 부산대첩 (1)』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부산대첩 이야기를 좀 더 신속히 널리 알리고 싶은 욕심으로 위 연재 시작 직후부터 이어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 결과 금년 2월 말 『이야 기 부산대첩』이란 제호로 출판사 가디언을 통행 단행본을 발간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부산대첩지에 이야기 부산대첩을 연재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되었

김종대

다. 그래서 이쯤에서 죄송하지만 부산대첩을 재평가할 몇 가지 특징을 말씀드리고 연 재를 끝내고자 한다.

㈔부산대첩기념사업회 명예이사장

2. 부산대첩의 재평가(특이점)

(가) 적의 본진에 대한 유일한 공격이었다. 이순신은 옥포, 당포, 한산에서의 대첩을 거둠으로써 왜적은 더 이상 우리의 바다를 넘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굳이 보통 때의 2배가 넘는 항해 거리를 저어가 적의 본진 을 격파하겠다는 것은 이 전쟁을 끝내고자 하는 대단한 각오가 있어서이다. 전선이 1/5도 안되고, 지리적 이점도 없고, 장거리 항해에 따른 사기와 전력의 저하 가 예상되는대도 23일간의 전라좌·우수군 특별 합동 훈련까지 해가며 출진하는 이순 신의 심정은 다른 어떤 전투보다 비장했고 각오는 대단했다. 이때 이후 조선수군은 단 한번도 적의 부산 본진을 공격한 적이 없다. 부산대첩이 유 일한 적의 본진 공격이었다.

(나) 거북선이 전투에 투입된 마지막 전투다 부산대첩 때 출전한 판옥전선은 이순신의 전라좌수군과 이억기의 전라우수군이 합 해 74척, 원균의 경상수군이 7척이다. 특히 전라좌수군에는 무적전함 거북선 2척이 있

선두를 박살내는 돌격선 역할로 참전할 때마다 조선수군에게 승리를 안겨 주었다.

해도 통쾌하다. 이 거북선 두 척이 전투에 투입된 기록은 부산

새 통제사 원균이 지휘한 칠천량 해전에서 왜적에 의해 거북 선 두 척은 모두 파괴되고 불탔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 자신은 살면서 부하 장수가 전사한 유일한 전투다

수가 전사한 예가 노량해전 전에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부산해전에서 그의 오른팔인 정운 장군이 전사하

타내 준다.

(라) 위기감 속 전투 3일 전에 꿈을 꾸기까지 한 전투였다. 이순신이 전투에 임하는 자세는 “나는 죽어도 좋지만 우리는

할 때에도 용기를 잃지 않았고 정신은 평정 상태를 유지했다.

았다. 처음에는 흉몽같이 생각되었지만 다시 바꾸어 생각해 보니 길몽이라 생각되었다. 가덕에 도착했다.’

시 길몽으로 돌리려 했을까?

었는데 이 거북선은 당포, 당항포 해전과 한산해전에서 적의 움이라 어찌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큰 전투 직전에 꿈꾼 것을 일기에 적은 것은 임진년의 4대 승첩 중에는 부산대첩밖에 없다. (전 전투를 합쳐도 명량해전 부산대첩에서도 거북선 2척이 초량목(지금의 영도다리가 3일 전에 부산해전에서와 비슷한 꿈을 한 차례 더 꾼 기록이 놓인 곳)을 통과해 부산 북항 바다를 제압하던 모습은 상상만 있을 뿐이다.)

대첩이 마지막이다.(4년 후 이순신이 체포되고 백의종군 중에 (마) 이순신은 임진년에 싸운 10차례 승첩(옥포, 당포, 한산, 부산) 중 가장 큰 승첩이라 자평했다. 이순신은 부산포 승첩을 거두고 임금에게 다음과 같이 보 고했다. ‘이때까지 네 번이나 출전하고 열 번을 싸워 번번이 승첩을 거두었으나 장수들과 군졸들의 공로를 논한다면 이번 이순신이 지휘하는 전투에서의 특징 중 하나는 우리 수군의 부산전투 보다 더 큰 싸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왕은 부산승 전사자 수가 적에 비해 월등히 적었고 이순신이 믿고 쓰는 장 첩을 ‘육지에 오르지 못했고 빈 배만 400척 깼다.’며 이긴 전 투가 아니라 하였다. 직접 싸운 장수는 가장 큰 승첩이라 하는데 보지도 못한 왕 는데, 이것은 적의 본진을 공격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위험 은 승첩이 아니라고 평가한 유일한 전투가 부산대첩이다. 그 한 것인지, 그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던 것인지를 단적으로 나 래서 이순신은 옥포, 당포, 한산승첩 시에는 매번 포상을 받았 지만 부산승첩으로는 아무런 포상을 받지 못한다. (5년 후 명 량승첩을 거두고도 포상 받지 못하니 죽기 전에 한산해전으로 포상 받은 정헌대부가 마지막 포상이었다.)

이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무리 열세의 전투를 (바) 임진년 제해권 장악의 열매를 맺은 전투다. 임진년 4대 승첩을 통해 왜적은 더 이상 조선의 바다를 넘 그런데 부산해전의 경우는 좀 달랐다. 8월 24일 여수를 출 보지 못했고 이순신 함대만 보면 도망갔기 때문에 부산대첩 발하여 8월 28일 밤에 가덕도 천성에 도착하는데, 8월 28일 일 후 정유재란이 일어나기까지 5년간 제해권을 두고 적과 싸우 기는 다음과 같다. ‘새벽에 앉아 지난밤의 꿈을 다시 생각해 보 는 일이 없었다. 이것이 결국 7년 전쟁에서 적을 몰아내는 궁극적 승리 요인 이었으니 이순신의 임진년 4대 승첩은 한 번도 패했으면 아니 이순신은 왜 전 날 흉몽을 꾸었을까? 왜 다음날 그 꿈을 다 될 모두가 위대한 전투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4대첩의 상 호 관계를 비유해 말하자면, 옥포해전에서 승리의 씨앗을 심었 본진을 공격하는 일은 그만큼 부담되었다. 장시간 항해한 고, 당포해전에서 그 씨앗이 커서 줄기와 잎이 무성해졌고, 한 우리 70척으로 편안한 곳에서 준비하고 있는 적 500척을 폭 산해전에서 꽃을 피웠고, 부산해전에서 열매를 맺었다고 봐도 파한다는 것은 이때까지 한 번도 싸워본 적 없는 대군과의 싸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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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산전투와 부산 동래 24별전공신

한국해양대학교 전임강사 겸 초빙연구원

임진왜란의 첫 전투지인 부산. 조선 육군은 왜적에 맞 백성들은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이후 가까스로 살아남은 서 잇단 패배를 했지만 의병들은 포기하지 않고, 목숨을 동래부 부민들과 군사들은 다시 모여 일어섰다. 민초가 건 전투를 펼쳤다. 경상좌수사 박홍, 경상좌병사 이각 등 다시 살아나 부산의 의병 활동을 펼쳤다. 지휘부들은 백성을 내팽개치고 도망을 갔지만 버려진 백 성들은 목숨을 바쳐 왜적과 대처하면서 이 땅을 지켰다. 수영성과 금정구 일대에서 일어난 의병들의 모습은 부산 이 엮은 야사 춘파당일월록에 나온다. “좌병사 이각이 소 의 정신을 지켰다.

부산 의병들이 펼친 전투 중에 소산 전투가 있다. 소산 을 공격하겠다며 성을 나가 소산역에 진을 치려고 했다. 은 부산시 금정구 선두구동에 있다. 동래에서 출발해 한 이각은 소산역까지 도망을 치다 왜의 침략 소식을 듣고 양으로 가는 영남대로의 다섯 개의 역도 중 하나다. 동 300여 명의 구원 병력으로 동래성을 향하던 밀양부사 박 래에서 양산을 거쳐 밀양에 이르는 홍산도의 길목 역원 진을 만났다. 박진은 소산을 잃으면 영남은 우리 것이 되 이 소산역이었다. 소산역에는 대마 1필, 중마 2필, 복마 7 지 못한다고 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필, 역리 51명, 노비 24가구가 머물던 동래 교통의 요지였 다.(동래부읍지 역원조)

이곳에서 벌어진 소산 전투 기록은 임진왜란 동래성 전 사로 부임했던 이안눌이 1608년 군공을 세운 24명을 특 투 기록에 흔적이 남아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동래 별히 선정해 임진기의 토적 공신 24인(24 별전 공신)으로 성으로 쳐들어왔을 때 경상좌병사 이각은 동래부사 송상 칭했다. 이후 1766년 동래부사 강필리가 24인을 기렸으 현에게 “소산역에서 진을 치고 협공하겠다”고 핑계를 대 며, 관찰사 김응순이 쓴 ‘포충 속후록’에도 소산 전투가 소 고 도망쳤다. 동래부사 송상현과 양산군수 조영규 등이 개돼 있다. 군민들과 함께 결사 항전했던 동래성 전투에서 대부분의

김태현

소산역 기록은 류성룡의 징비록과 조선 숙종 때 이성령

식을 듣고 좌병영에서 동래로 들어왔다. 부산이 함락되 자 겁에 질려 어쩔 줄 모르더니 핑계를 대며 성 밖에서 적

동래 의병장 김정서의 행적이 전해진다.

소산 전투의 첫 기록은 1736년 동래부 선비였던 이동형 이 24 공신 포상을 청구하는 상소문에 나타난다. 동래부

백취(柏翠) 김정서는 강릉 김씨 북계 김선 선생의 장손

부산 동래구 안락동에 있는 24 별전공신 공적비. 임진왜란 때 전사한 동래부민 24명을 기리기 위해 1987년 세운 비다. 출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소산에서 의병장 김정서가 돌을 운반하는 기계를 설치 냇가에 정자를 짓고 북으로 문을 내어 절하며 스스로 호 해 밤에 적진에 돌을 떨어뜨려 많은 적을 살상해 시신이 를 북계라 짓고 은둔하며 살았다. 오로지 주변의 인재들 계곡에 가득했다. 소산 전투의 시기나 활약했던 의병들의 을 모아 학문을 가르치고 심신을 수련하고 있던 중에 임 구체적인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소산 전투를 이끌었던 진왜란을 당했다. 부산진성과 동래성이 연달아 무너지고 왜군들이 북상할 것이라는 급보를 접했다.

김정서는 주변의 사람들을 급히 불러 모았다. 송창문, 이다. 북계 선생은 조선왕조 문종 때 이조참의를 지냈고, 김근우, 강개련, 김대의, 송남생, 이응필 등 평소 가까이 매월당 김시습 선생의 종질이었다. 그는 단종을 몰아낸 지내면서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목숨을 바쳐 세조 대에 울주부사에 제수됐으나 벼슬을 버리고 동래부 국가와 마을을 지키기로 다짐했다. 이 소식을 듣고 인근 에서도 오지에 해당하는 선동 상현마을로 들어와 은둔생 지역에서도 의병들이 모여들었다. 기장현 하서면 연구동 활을 하면서 평생 충절을 지키며 벼슬하지 않고 지냈다. 출신 오홍과 그의 사촌 동생 오춘수가 300여 명의 의병 뒷날 단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통곡한 후 선동 시 군을 결집시켰다. 철마의 정언룡 의병장도 200여 명의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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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백성들은 왜적과 대치하며 목숨을 바쳐 이 땅을 지켰다. . . .

병군을 모아 소산 고개로 와서 김정서 의병장 부대와 연 어 소산역에 이르자 전진을 멈추고 머물기로 했다. 김정서 합해 왜군 토벌에 나섰다. 동래부 동면 반송동 운송 마을 가 고안한 투석기로 큰 돌을 일본 진영에 쏟아 부었다. 에 거주하는 문세희도 장정들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동래 지역 남평 문씨 문중의 중심인물로서 명망이 높았다. 기 장현 정관면 예림리에 거주하는 3형제 의병장 김일개, 김 를 지속적으로 공격해 왜의 수륙병진 작전을 교란시켰다. 일덕, 김일성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금정문화원이 펴낸 자료는 소산전투를 좀 더 상세히 전 전과는 동래지역 의병장 김정서, 문세휘, 김일덕 휘하 의 한다. “소산 전투에는 동래지역의 14문중에서 향반들을 병들이 거둔 최초의 전과였다. 동시에 이후 임진, 정유란 비롯해 양민, 천민을 포함한 2000여명이 의병군으로 참 을 통해 기울어져 가던 조선을 지켜내는데 결정적인 역할 가했다. 별전공신 24인 중 13인이 참가했다.” 김정서가 의 을 했던 조선 의병 활동의 불씨가 되었다. 병 봉기한 66명의 추대로 의병장이 됐고, 소산 전투의 의 병 배치와 전황이 기술돼 있다. 소산 전투가 왜군들에게 적지 않은 타격을 주었다. 힘이 난 기장 철마 등 인근 마 매복 유격 전술로 곳곳에서 섬멸함으로써 왜적의 진로를 을에서 수천 명이 의병에 참가했다.

소산전투는 왜군이 동래성을 함락시키고 한양을 향해 이 내는 데 힘을 보태었다. 이들은 왜군의 최초 침략지였던 동한 이후에 일어났다. 4월 15일 오전에 동래성을 점령한 부산, 동래지역에서 관군이 지키던 성이 연이어 무너졌는 왜군들은 이미 전열을 재정비해 그 일부는 북진을 시작했 데도 무기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오로지 의기만 다. 동래성은 그들 전부를 수용하기에는 비좁은 편이었다. 으로 뛰쳐 일어나 목숨을 바쳐 의병 활동을 감행했다. 전 그래서 고니시 유키나가를 비롯한 지휘부와 주력군은 그날 국적으로 들불처럼 불타오를 조선 의병 활동의 불씨가 되 밤을 동래성에서 보냈고, 그들의 선발대는 소산 고개를 넘 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만 하다.

지휘부들은 백성을 내팽개치고 도망을 갔지만

노승석(盧承奭)

여해고전연구소장 동국대 여해연구소 학술위원장 동국대 미래융합여해아카데미 교수

지역의 지형과 형세를 잘 아는 의병들이 적의 후방부대

화살을 맞고 쓰러지는 왜군들도 부지기수였다. 죽은 왜군 들의 시체가 소산역 주변 골짜기를 그득하니 메웠다. 이

뒤이어 언양과 울산으로 진격하는 왜군을 결사 항전의

이론이 나오기도 하는데, 그것의 타당성 여부는 상황적인 추론보다는 실증적인 분석에 의해 판단되어야 한다.

차단하고 방해했다. 그들은 나중에 창녕의 화왕산으로 들 어가 망우당 곽재우 의병대장과 합세해 경상우도를 지켜

勰)의 『문심조룡(文心雕龍)』「사류(事類)」에, “사실을 유추 함이란, 문장범주의 밖에서 사실을 근거하여 뜻을 유추하

부산대첩 명칭에 대한 소고(小考)

했듯이, 역사에 대한 유추와 증명은 반드시 정확한 사실 기 록에 의해서 해야 한다. 신하가 임금에게 보고하는 형식의 주문(奏文)은 대체로 기록할 것만 기록하는 필즉필(筆則筆)의 원칙에 따라 작 성되기 때문에 객관적 사실이 주를 이룬다. 이순신이 조정 에 보고한 『임진장초(壬辰狀草)』와 『충민공계초(忠愍公啓 草)』에는 임진왜란 당시 해전상황과 장졸들의 전공이 사실 임진왜란기에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이 세운 전공 적으로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문심조룡』「주계(奏啓)」에 은 그 당시의 여러 역사 기록을 통해 이미 입증된 사실이 서 “주문의 문체는 명철·신의·독실·지성[明允篤誠]을 근본 다. 그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위인으로서 21세기 정보화 으로 한다.”고 했듯이 이순신의 보고문도 주문의 문체를 갖 시대에 더욱 주목을 받다보니 그의 생애사는 각 분야별 다 추고 있다. 때문에 이를 근거한 주장과 이론은 타당성을 얻 양한 영역에서 연구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주장과 기에 충분한 것이다.

최근 이순신이 보고문에서 “임진대첩(壬辰大捷)”이라고 한 내용을 근거하여 1592년 9월 1일 치러진 부산해전(釜山 몇 년 사이 이순신의 역사에 대한 바른 인식을 추구하는 海戰)을 “부산대첩(釜山大捷)”으로 명명해야한다는 여론이 움직임이 일고 있다. 역사란, 사실적인 기록에 근거할 때 일고 있다. “해전(海戰)”이란 말을 왜 굳이 “대첩(大捷)”이 중론을 얻게 되므로, 항상 객관적인 입장에서 주장하고 자 란 말로 고쳐쓰고자 하는 것일까. 우선 이에 대한 바른 의 의적인 해석은 지양해야 한다. 고금에 항상 표본이 되는 춘 미를 알아보기 위해 첩(捷)자와 대첩의 의미를 훈고학(訓 추필법(春秋筆法)의 요체는 엄밀한 공정성이다. 유협(劉 詁學)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허신(許愼)의 『설문(說文)』에 보면, 본래 첩자(捷字)에 고 고사를 근거하여 지금의 관점을 증명하는 것이다”라고 는 “사냥나간 군인이 물건을 획득한다[獵]”는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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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春秋)』의 장공(莊公) 31년 조에, “제후(齊侯)가 와서 융첩(戎捷)을 바쳤다”는 내용이 있는데. 여기서의 첩(捷)은 의 사당에 추배하기를 청하는 장계[請鄭運追配李大源祠 융족을 공격하고 승리하여 얻은 전리품(戰利品)을 말한다. 狀]에서 “부산대전(釜山大戰)”이라고 언급하였다. 그후 9 『시경(詩經)』 「소아(小雅)·미채(采薇)」의 “일월삼첩(一月三 월 17일 이순신이 작성한 「부산파왜병장(釜山破倭兵狀)」을 捷)”에 대한 『모전(毛傳)』주에는 “첩(捷)은 승리하다(勝)”의 보면, 부산포의 해전 상황을 자세히 알 수 있다. 그 요지는 뜻이 있다고 하였다. 진(晉)의 학자 두예(杜預)는 “성공”의 아래와 같다. 의미로 주석하였다. 따라서 첩(捷)은 군인이 전쟁에서 승리 하여 성과를 거두었다는 뜻이 있다. 정리하면, 대첩(大捷) 은 큰 승리를 쟁취했다는 의미로서 전과(戰果)를 강조하는 월 29일 동래 장림포에서 양산에서 온 적의 대선 4척, 소선 측면에서 사용된 용어이다. 이는 본래 『좌전』 희공(僖公) 2척을 경상우수사의 수군이 분멸하였다. … 9월 1일, 화준 32년 조의 “임금이 전쟁을 명하였다. 장차 서방의 군사가 구미(花樽龜尾)에서 왜의 대선 5척, 다대포(多大浦)에서 왜 아국을 지나갈 것이니, 그들을 공격하면 반드시 대첩할 것 의 대선 8척, 서평포(西平浦)에서 왜의 대선 9척, 절영도(絶 이다[君命大事, 將有西師過軼我, 擊之, 必大捷焉]”라고 한 影島)에서 왜의 대선 2척을 삼도수군의 여러 장수와 조방 기록에서 유래한다.

이순신이 임진왜란기에 전쟁에서 승리하고 대첩이라고 순신(李純信), 권준(權俊), 신호(申浩) 등이 먼저 격파하여 기록한 것은 임진대첩(壬辰大捷), 당항포(唐項浦大捷), 명 분멸하였다. … 왜선 대중소선 대략 470여척이 아군의 위 량대첩(鳴梁大捷) 3개이다. 특히 임진년에 치러진 해전인 세에 두려워서 나오지 못하자, 여러 전선이 진격하였다. … 옥포(玉浦), 당포(唐浦), 한산도(閒山島), 부산포(釜山浦) 해 종일 교전하여 적선 백여 척을 삼도의 여러 장수들이 격파 전을 묶어서 임진대첩이라고 하였다. 이순신의 『난중일기』 하였다. 에도 이와 관련한 내용이 있다.

맑았지만 북풍이 크게 불어서 배가 고정할 수 없었다. 꿈이 예사롭지 않으니 임진년 대첩할 때와 대략 같았다. 무슨 징 조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난중일기, 1597. 9. 13)

임진년의 해전에서 이순신이 분멸한 왜군의 전선수를 따 선 470여 척 중에서 백여 척을 격파한 것은 전과가 지대한 져보면, 옥포해전은 왜선 44척(옥포·합포·적진포), 당포해 데, 부산포해전은 비교적 큰 규모의 전쟁이라 할 수 있다. 전은 왜선 67척(사천·당포·당항포·율포), 한산도해전은 왜 선 79척(한산도·안골포), 부산포해전은 약 134척(장림포· 화준구미·다대포·서평포·절영도·초량항·부산포)이다. 배 대부에 승급하는 유서(諭書)[陞資憲大夫諭書]에서 “당항 의 척수는 연구자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이때 치 포 해전에서 비로소 대첩을 거두었다”고 하였는데, 이때부 러진 해전 중에는 부산포해전의 전과가 가장 크다.

1592년 9월 11일 이순신은 정운(鄭運)을 이대원(李大源)

는 교서[起復授三道統制使敎書]에서 “임진대첩 이후 공업 (功業)이 재차 진작되었다[功業再振於壬辰大捷之後]”고 하 여 임진년 해전의 전공을 높이 평가하였다.

전라 좌우도의 전선 74척과 협선 92척이 출동하여 … 8

장 정걸이 협력하여 격파하였다. … 선봉 왜의 대선 4척이 초량항(草梁項)에서 마주나오자, 정운, 이언량(李彦良), 이

위의 장계를 보면 부산포해전은 7개의 해상지역에서 왜 선을 물리치기 위해 삼도의 여러 장수들이 연합하여 치른 전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순신은 이때 ‘결사적으로 나아 가 싸우고[決死進戰]’, ‘목숨을 바쳐 역전했다[效死力戰]’고 하여 결사적으로 격전한 전쟁 상황을 기록하였다. 특히 왜

그 당시 선조(宣祖)는 1592년 9월 12일 이순신을 자헌

터 대첩이 시작된 것으로 평가하였다. 그후 1597년 7월 모

친 상중(喪中)인 이순신에게 삼도수군통제사를 재임명하 기고 죽음을 잊었다”라고 기록하였다.

“임진대첩”이란 말은 선조가 국왕으로서 이순신에게 내 린 교서에서 분명하게 언급하였는데, 왕명에 의한 공식문 서에서 확인된 것이다. 이순신도 “임진대첩”이라 하고, 또 선조가 언급한 바와 같이 임진전쟁의 성과에 대해서는 한 “부산대전”과 “부산주첩”이라고 하여 부산대첩의 규모 이순신도 인식을 함께 하였다. 그는 「장송전곡장(裝送戰穀 가 큰 전쟁이었음을 말하였다. 후대의 학자들은 부산해전 狀)」(1592,12,25)에서 “부산의 승첩을 아뢰는 계본(釜山奏 을 바로 부산대첩으로 기록하였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 捷啓本)”을 말하고, 「진왜정장(陳倭情狀)」(1593, 8,10)에도 보면 부산해전은 실제 임진년의 해전 중에서 전과가 가장 “전년(임진)의 대첩[前歲大捷]”이라고 말하였다. 그 외 택 컸고, 국왕 문서와 보고서에 “대첩”으로 명시되었으므로, 당 이식(李植)은 이순신의 「시장(諡狀)」에서 “임진년 옥포· “부산대첩”이라고 명명하기에 충분하다. 따라서 그 당시 당포·한산도·부산에서 이공(李公)이 홀로 연속으로 대첩 전쟁 상황과 이순신의 전과를 참작하여 대첩이란 말을 사 을 아뢰었다”고 하였고, 최시옹(崔是翁)은 정운(鄭運)의 행 용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므로, 의문의 여지 장에서, “매번 먼저 올라 부산대첩했을 때 몸을 가벼이 여 가 없을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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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서 하동까지 159.8㎞… 경남 이순신 승전지 12개 테마길 들어선다

도, 2030년까지 4000억 투입 / 6개 시·군 여행 코스 등 개발 / 전망대·보도교·안내판 등 확충, 부산·전남까지 연계 콘텐츠화 / “글로벌 관광자원 육성할 것”

경남 사천시 대방동 대방진굴항(大芳鎭堀港). 이곳은 돌무더기를 이용하고도 반듯하게 잘 정비된 활 모양의 호암석축 (護岩石築) 제방을 따라 걸으면 팽나무 고목과 누각 공원은 물론 탁 트인 바

김용구

다가 반기는 힐링 명소이다.

국제신문 사회부 기자

경남도 문화재자료 제93호이기도 한 이곳이 간직한 역사를 알고 나면 또 다른 감동이 다가온다.

조선시대 옛 삼천포 지역을 담당하는 대방진 소속의 인 공 군항으로,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비장의 무기' 거 북선을 건조해 숨겨뒀던 장소였던 것. 이순신 장군은 1592년 5월 29일 인근 앞바다에서 벌이진 ‘사천해전'에 처음으로 거북선을 투입, 조수간만 차를 이용 해 승리를 이끌었다.

경남도는 2030년까지 3302억 원을 들여 창원부터 하동 까지 이런 도내 해양 승전지 12곳을 잇는 걷기 여행 코스 개발에 나선다. 코스 길이는 159.8㎞.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연도를 추모

여했다.

여행하며 주변 관광 콘텐츠를 즐기는 방안을 구상한다. 각각 길이 2.1~21.8㎞로 구성된 승전지별 12개 테마길은

서 지선 형태로 뻗어나가는 형태로 모두 연결된다.

남 땅끝마을 사이 분포한 부산·경남·전남 승전지 총 23곳을 모두 아우르는 글로벌 관광 인프라를 조성하는 게 목표다.

대폭 확충한다.

체적인 코스 등이 담긴 청사진을 마련 중이다.

개마을(합포해전비)~수치마을을 잇는다.

이순신 승전로 현충사유물관.

특히 조선 수군의 명맥을 이어 우리나라 바다를 지키는 하고 그의 뜻을 계승하며 ‘함께 걷는 길'이라는 의미를 부 해군사관학교로 통하는 길(3㎞)이 조성돼 80년 만에 민간 에 개방된다. 진해는 이순신 장군 추모제로 시작한 진해군항제, 대죽 도는 거제 옥포해전에서부터 남해 노량해전까지 시간 선 도 거북선 야간조명, 우리나라 첫 이순신 장군 동상 등을 을 따라 창원, 통영, 사천, 거제, 고성, 남해 등 6개 시·군을 보유한 곳이다.

주요 해전들의 출정지였던 당포항의 위상을 담은 ▶통영 문화체육관광부가 관리하는 남해안 남파랑길(632.5㎞)에 당포해전길(14.9㎞)은 한려해상국립공원 해안 길과 망산 숲길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다. 코스는 착량묘 통영해저터널~통영해양관광공원~산양읍 최종적으로는 부산 오륙도 해맞이 공원에서부터 전남 해 ~당포항~당포성지~달아공원 등으로 구성된다.

임진왜란 양상을 바꾼 ▶통영 한산도해전길(31.3㎞)도 빠 이 과정에서 보도교, 전망대, 체험장, 상징 조형물, 포토 질 수 없다. 이는 내륙(이순신공원~착량묘 6.5㎞), 미륵도 존, 야간 경관 조명 등 즐길 거리와 표지판 등 안내 체계를 (착량묘~도남관광지 20.7㎞), 한산도(제승당~한산대첩기념 공원 4.5㎞) 등 3개 구간으로 이뤄진다. 이곳에선 이순신 장군이 통영에서 3년 8개월간 머물며 도는 2023년 10월부터 한국관광개발연구원에 의뢰해 구 남긴 흔적을 볼 수 있다. 임진왜란 1차 출정의 ‘첫 승리'를 만끽하는 ▶거제 옥포해 일부 계획안을 엿보자면 ▶진해(창원) 합포해전길(15.2 전길(4.6㎞)은 옥포조각공원~옥포항수변공원~팔랑포마을 ㎞)은 해군사관학교~속천항~진해루~정천항~행암마을~학 ~옥포대첩기념공원을 거치며, 인근 대형조선소가 특별한 야경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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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창원), 마산

고성

고성

사천

통영

통영

남해

비교적 덜 알려졌으나 소중한 ‘1승’인 ▶고성 적진포해전 마길이 조성된다. 길(21.8㎞)은 해맞이공원~전도마을~구절산 정상~폭포암 (구절폭포)~화당마을~적진포해전 전망대를 연결한다.

이순신 장군이 전사하고 아군 피해가 커 승전이라 불리 순신 장군이 숙박했던 유숙지를 중심으로 한옥체험관 등 지 않는 ▶남해 노량해전길(11.0㎞)은 이동약자 등 모두가 콘텐츠를 보강한다. 이와 함께 전남도가 개발한 수군재건 안전하고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코스는 충렬사~남해대교 유람선~구포미산~이순신바다 전 역사를 모두 담을 예정이다. 공원~관음포 전망대~관음포 둑방길~고현면(대장경 판각 문화센터) 등이다.

이 외에도 ▶사천 사천해전(20.6㎞, 대방진굴항~선진수 ▹공동 축제 및 이벤트 운영 ▹광역협력사업 추진에도 251 변공원) ▶고성 당항포해전(4.3㎞, 당항포관광지~동고성체 억 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육공원) ▶거제 율포해전(14.7㎞, 구영해수욕장~구율포진 성) ▶창원(마산) 합포해전(11.0㎞, 합포수변공원~가포친수 는 바뀔 수 있다”며 “필요한 국비를 지속적으로 확보하고 문화공원) ▶창원 안골포해전(2.1㎞, 안골왜성~안청공원) 기존 관광자원을 적극 활용해 남해안을 글로벌 관광자원 ▶창원 웅포해전(8.6㎞, 흰돌매공원, 진해해양공원) 등의 테 으로 육성하겠다”고 강조했다.

창원

창원

거제

배재한

거제

편집위원 전 국제신문 사장

도는 447억 원을 들여 내륙 걷기 코스 개발에도 나선다. 합천, 산청, 진주 등에 있는 백의종군로(161.5㎞) 등에 이

의하여 선포할 수 있다(헌법 제 77조)라는 것을 국민들은 알고 있습니다. 당시 상황이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로(500㎞)를 하동, 진주까지 잇는 사업(약 30㎞)을 벌여 승

국가 비상사태는 아니었습니다.

도는 해양·내륙 코스 개발에서 나아가 ▹아카이브 구축 및 홍보마케팅 ▹승전길 상품화 ▹테마상품 개발 및 운영

도 관계자는 “현재 용역을 마무리하는 단계로 일부 코스

판결문에 담았습니다.

국인 대한민국이 자칫 무너질뻔한 위기 속에서도 국민에

계엄사태 때 권력자 부당 명령 거부 국민에 충성한 공직자는 ‘작은 이순신’

- 사표 던진 유일한 고위 공직자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국민 섬긴 참 공직자 - 조성현 수방사 경비단장·윤비나 방첩사 법무실장 등 대령들 “불법 임무 수행 불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2024년 12월 3일 밤 느닷없는 비상 대한 봉사자로서 투철한 사명감과 정의감으로 똘똘 뭉쳐 계엄 선포는 대한민국을 위기로, 국민을 불안 속으로 몰아 위법 부당한 명령을 거부한 공직자를 만난 것은 위안이자 넣었습니다. 비상계엄은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희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벌인 비상사태 때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 비상계엄에 당당히 맞선 공직자 중 첫 손가락에 꼽히는 인 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 법률이 정하는 바에 물은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입니다.

12·3 불법 비상계엄의 밤. 총을 든 군인들이 창문을 깨부 수고 국회에 난입하던 무렵, 류혁 전 감찰관은 박성재 법 무부 장관에게 사표를 던졌습니다. 류 전 감찰관은 비상 12·3 비상계엄은 절차적 실체적 위헌 위법이라는 헌법 계엄 선포 당시 일체의 명령을 거부하며 자신의 직을 던 재판소의 전원일치 판결(4월 4일)이 났습니다. 윤석열 전 진 유일무이한 공직자입니다. 그가 사표를 던질 당시는 대통령은 경고성 계엄, 호소형 계엄이라고 주장하지만 헌 아직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이 통과되기 전이었습 재는 “국회로 달려간 시민의 저항과 투입된 군경의 소극적 니다. 그런 급박했던 순간, 그는 어떻게 그렇게 단호하게 인 임무수행”으로 비상계엄이 신속히 해제될 수 있었음을 ‘NO(노)’를 외칠 수 있었겠습니까? 다른 고위 공직자들과 그는 무엇이 달랐겠습니까? 그의 말을 그대로 옮겨봅니다.

“퇴근 후 집에서 TV로 비상계엄 선포 사실을 알게됐죠. 집 민주주의 선진국이자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문화강 이 마포거든요. 과천 청사에 도착하니 자정 조금 전이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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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서를 썼어요.”

게 교훈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습니다.

부했습니다.

니다. 회의실에 들어가니 박성재 법무부 장관과 간부 열댓 명 정도 모여 실국장 회의를 하고 있더군요. 장관이 말을 하 고 있었는데 제가 중간에 끊었어요. ‘혹시 계엄관련 회의입 니까?’라고 묻자, 박 장관이 아주 언짢은 표정으로 ‘네, 그래 요.’ 하더라고요. 곧바로 ‘그러면 저는 이 회의에 참석할 수 없습니다. 불법 계엄과 관련한 일체 지시나 명령을 따를 생 각이 없으니 사직하겠습니다’라는 의사 표시를 하였습니다. 회의실을 나와 직원에게 종이 한 장 달라고 부탁해 그냥 사

류 전 감찰관의 이야기를 길게 소개한 것은 이번 계엄사 태 때 공개적으로 비상계엄에 반대한 공직자의 목소리를 다시 들음으로써 국민들이 위안을 얻고 후배 공직자들에

회의원을 외부로 끌어내라는 이진우 사령관의 지시를 받

이번 계엄사태 때 또 한 명의 의로운 공직자로 국군수도

았다”고 증언했습니다. 조 단장은 윤 전 대통령 측 변호인 들이 “의인처럼 행동한다”는 비아냥에 “저는 의인이 아닙 을 닮은 ‘작은 이순신’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입니

경비사령부 제1경비단장인 조성현 대령을 꼽지 않을 수 없

니다. 저는 경비단장으로서 제 부하들의 상관이고 부대 지 휘관입니다, 제가 아무리 거짓말을 해도 부하들은 다 알기 때문에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됩니다”라고 말했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으로부터 국회 출동 지시를 받은 조 단장은 부대원들에게 “시민 안전 확보에 중점을

습니다.

두고 민간인과 접촉이나 충돌을 주의하라”는 지시를 내렸 습니다. 그날 밤 11시51분, 이 전 사령관은 조 단장에게 “경 찰 협조를 받아 국회 내부로 진입하라”고 거듭 지시했지만

보와 정치인 체포 임무가 떨어졌던 국군방첩사령부의 윤 비나 법무실장(대령)은 “군 병력이 중앙선관위에 들어가 선 함에도 왜 자신의 이익, 당파적 이해에만 집착하는가”라고

“현장에 사람이 너무 많아 진입이 어렵다”고 답했습니다.

관위의 서버를 확보하는 것은 헌법 및 계엄법에 위반된다”

조 단장은 후속부대에 서강대교를 넘지말고 기다리라고 지시하기도 합니다. 12월 4일 새벽 1시께는 “국회 본청 내

며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부에 진입해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이 전 사령관의 지시 를 받았지만,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작전이 아니다”면서 거

엄선포와 사령관들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거나 지연시 킨 공직자와 현장 지휘관들의 의로운 행동에 따른 결과였

조 단장은 탄핵심판 당시 헌법재판소가 유일하게 직권 으로 부른 증인으로 헌재에 출석했습니다. 정형식 재판관

이 ‘본청 안으로 들어가라,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 해야 할 대상은 국가와 국민 뿐임을 이들이 새삼 일깨워 를 받은 사실이 있는지 묻자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가 국 줍니다. 이들은 우리 역사의 위대한 영웅인 충무공 이순신 장군

다. 이순신 장군은 정의의 길을 걸었기에 승리했고, 조선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12월 23일 <의역 난중일기> 북콘서트에서 저자 인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부산대첩기념사업회 명예이사 장)이 “왜 공직자들이 나라의 안전과 국민의 삶은 안중에 부정선거 증거를 찾겠다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서버 확 도 없는가. 주권자인 국민의 행복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지적한 것은 우리 모두의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김 전 재판관은 “우리는 비판을 넘어 바른(정의) 길을 가야 한다. 바른 길이 이순신의 길이요, 애국의 길이요, (이 자리 에 모인) 여러분 개인이 성공하고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이처럼 계엄사태의 조기종식은 대통령의 불법적인 계 강조했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국민을 하늘처럼 섬기는 음을 알게 됩니다. 류혁 전 감찰관, 조성현 단장, 윤비나 실 우리 시대의 ‘작은 이순신’을 일상에서 더 자주, 더 많이 만 장은 진정한 공직자의 표상입니다. 공직자가 섬기고 봉사 나고 싶습니다.

16쪽

시의회 정책제언 Book - 이 한권의 책

이어령의 말

권의 사전으로 엮어내길 원했고, 후대의 ‘세상은 늘 죽을 만큼 괴로운 것들을 독자들이 작가가 평생 한 지적 탐험을 이 넘어서야 새로운 세계를 보여줍니다. 해하길 바란다는 취지였다.

(…) 당신에게 눈물이 있다는 것은 영혼 이어령은 1960년 27세의 나이로 서울 이 있다는 것, 사랑이 있다는 것, 누군가 신문 논설위원에 발탁되었고 이후 한국 를 사랑하고 애타게 그리워한다는 것, 그 일보, 경향신문, 중앙일보 등에서 12년간 리고 뉘우친다는 것…무지개처럼 아름다 이나 논설을 쓰며 촌철살인 같은 글솜씨 운 것입니다.’ 는 소문이 났다. 1970년대에 여러 출판사 ‘이 시대의 아픔을 보면서도 슬퍼하지 에서 글 중 일부분을 발췌해 책을 만들자 않고 아파하지 않는 저 많은 사람들 틈에 는 제의를 받았지만, 아직은 이르다며 먼 서 당신마저 코를 골며 깊이 잠들어 있어 글과 말은 한 개인을 판단할 때 주요한 훗날 글이 쌓이면 내겠다고 사양했다.

이어령의 말

이어령 지음 / 세계사

서는 안 된다. (…) 당신은 깨어 있어야 한 자료가 된다. 글과 말 실수로 인해 구설수 선생의 마지막 부탁은 결국 남겨진 제 다. 모든 사람이 ‘나는 그들을 모른다’고 에 오르기도 하고 공직 자리에 지명된 후 자들의 사명이 되었다. 선생의 생각을 고 부정할 때, 높은 베개를 베고 코를 골고 보가 사퇴하는 사례도 있었다. 누군가에 스란히 담은 문장과 선생의 의중을 오롯 있을 때 당신만은 눈을 뜨고 깨어 있어야 게 감동을 주는 말과 글을 정제된 형태로 이 이해할 수 있는 제자 수십 명이 3년간 한다. 아파해야 한다.’ 남긴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 매달렸다. 수백 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작 ‘곰하고 호랑이가 쓰디쓴 쑥과 매운 마 이 든다.

물 중 시간성을 초월해 울림을 주는 문장 늘을 먹고 백일을 지내면 인간이 될 수 408쪽이라는 방대한 양의 책 <이어령 들, 지적 상상력에 충격을 주는 문장을 위 있다고 했는데, 호랑이는 참지 못하고 도 의 말>은 제목 그대로 우리 시대의 스승 주로 담았다. 통찰력이 뛰어난 선생이 과 망가 버렸고, 곰은 백 일을 견뎌 사람이 으로 불린 이어령의 말과 글을 모은 어록 거에 했던 예측과 전망이 이제 현실이 된 되었지요. 짐승과 인간의 차이를 한 마디 집이다. 천 개의 제목과 그 제목에 관한 내용은 대상에서 제외했다. 생각을 담은 문장들로 꽉 채워져 있다.

로, 참을성으로 본 거지요. 바로 자기 자 이 책의 편집위원으로 참가했던 김민 신을 자기가 견디면서 이길 줄 알았다는 사실 어록집이라는 형태의 책은 한국 희 <톱클래스> 편집장은 “책을 넘기다 것입니다.’ 출판가에선 아주 드문 형태이다. 자기만 보면 밑줄 긋고 싶은 문장이 페이지마다 2~3개의 문장으로 완결되는 형식이라 의 언어로 사유하는 이가 많지 않고, 어 튀어나오는데, 그것들을 다 긋다가는 ‘밑 책은 술술 읽어진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록집으로 낼 만큼 방대한 저작물(강연 포 줄 전집’이 나와야 할 판이었다. 여전히 찾으며 집중하면 어느새 책의 말미에 와 함)을 남긴 작가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이어령의 반짝이는 언어가 남아있 있다. 유명인들이 선택한 선생의 문장과 이 같은 책이 나왔다는 건 이어령이 가진 다는 뜻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했다.

이어령 선생과 인연에 관한 후기도 재미있 지혜와 사고, 지식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 편집위원의 고충은 충분히 이해된다. 다. 시대의 어른이 남긴 선물 같은 책이다. 는 부분이다.

책을 읽으며 마음에 와 닿는 문장을 표시 <이어령의 말>은 2022년 작고한 선생 하다 보니, 형광펜 밑줄이 너무 많아 알록 의 오랜 뜻이었다고 한다. 암 발병 후, 작 달록 색칠북이 돼 버릴 정도였다. 적절한 고하기 7년쯤 전부터 이런 책을 내고 싶 비유와 명쾌한 정의, 유머까지 담은 문장 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는 것. 선생 에는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가 있고 현실 이 남긴 수백 권의 책 중에서 ‘이어령의 을 이겨내는 소시민에 대한 응원이 가득 언어’로 불릴만한 부분을 추리고 추려 한 하다. 30

편집 후기

혼돈의 시기 어수선했던 사회도 차츰 안정화되어가고 언제 그랬냐는 듯 빠르게 모든게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듯 자연의 이치처럼 인간사도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모든게 물 흐르듯 흘러 순화되고 정화되고 회복이 되는가 봅니다. 벚꽃도 소리없이 폈다가 지고 영화로운 삶도 찰나인데 어떻게 살아야 하루하루가 의미 있을까요 하루동안 겨울 봄 여름을 넘나드는 변화무쌍한 계절에 우리 이순신 사도들은 변함없는 정신무장으로 진득하게 살아가 보자구요. 이순신처럼 …

공지

1. “아름다운 동행” ▶ 산불피해돕기 성금 - 본회 이사 박병대 송월(주) 회장 : 현금 5천만원, 현물 2천만원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전달 - 본회 이사 김영도 동의과학대학 총장 : 성금 1천만원 부산사랑의 열매 전달 - 부산여해재단 부산대첩 기념사업회 아카데미 수료생 황성환 항운병원 원장 : 1천만원 백인아 태진정밀 대표 : 5백만원 외 총 44명 2천20만원 대한적십자사 부산지사에 전달

▶ 부산대첩기념사업회 기탁 - 고진호 (주)퓨트로닉 회장 : 1000만원 쾌척 ▶ 부산여해재단 기탁 - 위난구 그랜드썬기술단 대표이사 : 1004만원 천사기부금 쾌척

글_김효정

2. “이순신 탄신기념세미나 개최안내” - 일시 및 장소 : 4월 28일 오후 4시

편집위원 부산일보 부국장

서면 영광도서 8층 문화홀

2025 봄호 부산대첩 편집위원회 회의 모습 (사진 좌로부터) 유재기 처장, 유순희 위원, 김태현 위원, 배재한 위원, 방영진 팀장, 하종숙 위원.

㈔부산대첩기념사업회는

부산대첩을 시민 누구나 자랑스러워할 역사적 유산으로 복원하고 이순신 정신을 알리고 실천하여, 부산을 품격 있고 건강한 문화도시로 만드는 일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부산시민의 결사항전·호국정신을 재조명합니다. 역사·문화적 유산으로 복원합니다.

부산대첩을 자랑스러운

이순신 장군의 시대정신과 리더십을 재조명하고 시민교육으로 활성화합니다.

부산대첩기념공원과 기념관을 조성합니다.

부산대첩기념식(부산시민의날) 및 축제 부산대첩 기념세미나(심포지엄), 이순신 아카데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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