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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첩 제10호(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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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첩지는 2024년도 부산광역시 비영리민간단체 공익활동 지원사업으로 제작한 간행물입니다.

04p “준비하는 자에게 위기는 기회다”

10 제

2024 Autumn

Vol. 10

호

07p

24p “환자가 만족하는 최고의 병원 만들터” “나라사랑과 민족을 아끼는 작은 밀알되었으면” 구자신 쿠쿠홀딩스 회장 〮 ㈔부산대첩기념사업회 고문 박종호 센텀의료재단 이사장 〮 ㈔부산대첩기념사업회 고문 서만영 이순신 아카데미 강사(1기)

www.busangrandvic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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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발행인 편지 북항 터에 부산대첩기념관을 건립하자

이용흠 (사)부산대첩기념사업회 겸 (사)부산여해재단 통합 이사장

04 포커스 인터뷰 “준비하는 자에게 위기는 기회다”

2024 Vol.10 가을호

구자신 쿠쿠홀딩스 회장 (사)부산대첩기념사업회 고문

<글_ 유순희 편집위원>

07 대담 “환자가 만족하는 최고의 병원 만들터”

박종호 센텀의료재단 이사장 (사)부산대첩기념사업회 고문

<글_ 유순희 편집위원>

10 사업회 소식 ㈔부산대첩기념사업회 NEWS 14 정책제언 북항 친수공원, 역사적 현장의 이름으로 !

정채숙 부산시의원 16 부산대첩이야기 ⑩ 이야기 부산대첩(1)

김종대 ㈔부산대첩기념사업회 명예 이사장

18 임진왜란과 역사 속 인물 ⑥ 도망친 관군 대신 싸운 부산 수영25 의용단 30 BOOK - 이 한권의 책

김태현 부산도시공사 상임감사

22 연재 가장 최전선에 서 있던 ‘뒷것’ 김민기, 우리 시대 또 다른 이순신

#표지이야기

지난 8월31일 이순신 아카데미 제8기 강사과정 교육생 현장학습. 여수여해재단 임직원과 함께 여수 이순신 광장에서 기념촬영.

배재한 전 국제신문 사장, 이순신 아카데미 1기

발행인 이용흠 편집인 유순희 발행처 ㈔부산대첩기념사업회 발행일 2024년 10월 4일 디자인·제작 ㈜프린테크 (051)301-3113

발행인 편지

인사말

24 특집 - 탐방후기 “나라사랑과 민족을 아끼는 작은 밀알되었으면”

서만영 이순신 아카데미 강사(1기)

26 특집 - 키움교실 후기 초롱초롱한 눈빛에서 미래를 보다

이사장 이용흠

이종배 이순신 아카데미 강사(4기)

㈔부산대첩기념사업회

27 특집 - 청년이순신 아카데미 리뷰 “밝고 건강한 사회를 위한 중요한 발걸음”

최재국 청년 이순신 아카데미 13기 수료생 대표

28 특집 - 8기 아카데미 리뷰 공직 끝자락에 운명같이 님을 만나다.

신화영 이순신 아카데미 강사과정 교육생

29 이런생각 새 지폐 모델로 충무공 이순신 넣자

배재한 전 국제신문 사장, 이순신 아카데미 1기

다시, 역사의 쓸모

김효정 부산일보 부국장

27 편집후기 회원가입 안내

편집위원 유순희, 김태현, 배재한, 김효정, 하종숙, 유재기 구독안내 (051)923-1000 등록일 2020. 04. 14 등록번호 연제, 사 00004 홈페이지 www.busangrandvictory.com 주소 부산 연제구 중앙대로 1073 부산은행 4층

‘부산대첩’은 ㈔부산대첩기념사업회가 만드는 문화 매거진입니다.

북항 터에 부산대첩기념관을 건립하자

부산대첩 기념사업을 추진하다 보면 이순 지입니다. 이제는 이를 기념하고 널리 알려 신 장군이 부산하고 무슨 관련이 있지? 그리 서 부산시민의 자긍심을 높여 나가야 할 때 고 부산시민의 날이 부산대첩하고 어떤 관련 입니다. 성이 있는지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전쟁을 치른 세계 각국은 자기 나라를 지 이러한 의문을 품는 데는 그동안 이순신과 켜낸 승전을 기념하는 기념관 건립을 당연 부산대첩의 역사적 사실을 잘 알리지 못했고, 이를 기리는 공원이나 교육ㆍ전파할 수 있는 시하고 자랑스러운 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산대첩은 임진왜란 당시 누란의 위기에서 기념관이 없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나라를 구한 승첩으로 이를 기념하는 기념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에 이순신 장군이 관 건립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승리한 4대 승첩은 옥포, 당포, 한산, 부산입니 지금 재개발이 진행중인 북항 터는 부산 다. 그중 부산포해전은 이순신 장군 스스로 대 대첩이 이루어진 역사적 현장으로 부산대첩 (大)승첩이라 했고, 또 대전(大戰)이라 고도 했 습니다. 이렇게 이름 붙인 큰 승첩으로 왜의 수 기념관을 건립하기에 가장 적합한 지역입니 다. 이곳에 부산대첩기념관을 건립한다면 부 륙 병진 전략을 분쇄하여 제해권을 장악한 결 정적인 해전으로서의 의미가 큰데도 우리의 산시민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지역 문화유산 의 자원화는 물론 우리나라의 관문이며 제2 고장 부산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다른 지방자치 단체에서는 수십년 전부터 그 의 도시를 찾는 국내외의 방문객들에게 부 산대첩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번영에 어떻게 승첩을 기념하는 공원과 기념관을 건립하여 홍보하고 있지만 부산에서는 어느 승첩보다도 기여 했는지에 대한 국가적 홍보가 될 것임 이 명백합니다. 나아가 우리 지역경제 활성 역사적 중요성을 가진 큰 승첩임에도 이를 기 화에도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념하는 공원이나 기념관이 없습니다. 지난 6월 20일에는 ㈔부산대첩기념사업회 오는 10월 5일은 제432주년 부산대첩 승전 일이자 마흔 다섯 번째 맞이하는 부산시민의 임원진들이 박형준 부산시장을 면담하여 부 산대첩 기념관 건립의 필요성을 설명하였고 날입니다. 1980년에 이 날을 부산시민의 날로 정하여 기념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부산시민 시장님께서는 긍정적인 답변을 하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부산대첩기념관이 빠른 시일 은 부산대첩 승전일인 10월 5일을 부산시민의 내 추진되어 부산의 문화유산을 전승ㆍ보존 날로 제정한 취지를 잘 모릅니다. 하고 미래세대 육성 등 지역 발전을 견인하 부산시민의 날은 왜적의 침략으로부터 나 는 전시ㆍ교육ㆍ체험의 장으로 탄생하기를 라를 지켜낸 자랑스러운 역사적 날입니다. 부 기대해 봅니다. 산대첩이 이루어진 북항 터는 호국 안보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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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쿠 신화창조에도 이순신 정신

“중요했던 순간마다 안정보다 모험을, 안주보다 도전을 선택해 왔기에 오늘의 쿠쿠가 있었다고 봅니다. 지금의 쿠 쿠가 있기까지 때로는 무모해 보이고 억지스러워 보였던 니 이순신 장군이 평생 일관되게 실천해온 사랑, 정성, 정의, 저의 경영철학과 원칙에 무언의 실천으로 따라준 쿠쿠의 자력이라는 이 4대 실천 정신이 기업경영에도 필수요소라 모든 임직원들과 변함없는 사랑으로 쿠쿠를 믿고 선택해준 는 것을 더욱 느끼게 된다”는 구 회장은 “아마도 오늘날 성 소비자들께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오로지 고객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정성을 다 에성장하고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아울러 그 해 회사를 경영해왔다는 쿠쿠 홀딩스 구자신 회장(사단법 는 그만큼 이순신 정신은 공인된 성공에너지이자 실천가치 인 부산대첩기념사업회 고문). “돌이켜보면 쿠쿠의 역사와 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신화창조의 근원에도 이순신의 사랑과 정성, 정의와 자력의 정신이 있지않았나 생각합니다”

“준비하는 자에게 위기는 기회다”

자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고.

구자신 쿠쿠홀딩스 회장 (부산대첩기념사업회고문)

구축, 확대해 나가고 있다.

쿠쿠와 구자신 회장 그리고 밥솥과의 인연

주해 도시생활을 했다.

“㈔부산대첩기념사업회를 통해 이순신을 제대로 알고 나

복하기도 했을 만큼 그의 대학시절은 녹록지 않았다.

공한 기업 경영 오너들 대부분 본인이 알고 의도적으로 했 건 안했건 이순신의 4대 실천 가치와 같은 신념들이 있었기

이제 창립 반세기를 눈앞에 두고 있는 쿠쿠는 경영방침도

팔)의 비서직이었다. 그렇게 10여년을 김 전의원을 모시다가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아 시대변화에 부응해, ‘디지털

전환과 감성브랜딩’을 회사경영 목표로 설정하고 창사 이 도미(渡美)하면서 구 회장은 자연스럽게 ㈜쌍용으로 다시 자 래 줄곧 ‘최고의 품질로 사회에 봉사한다’는 신념을 지키고 리를 옮겼다. 그렇게 흠모해오던 정치와 이별을 했다. ㈜쌍용으로 돌아온 구 회장은 무역관련 업무를 맡았다. 지금은 지난 2006년이후 경영일선에 뛰어든 구회장의 고철과 비철의 수입과 판매 업무를 주로 하는 철광원료부 장남 구본학 사장이 선장을 맡아 강한 추진력으로 공격적 에서 부장으로 일하며 무역업무를 본격적으로 배웠다. 구 경영에 나서 기술혁신을 선도하며 해외시장도 안정적으로 회장의 성실함은 거래처 담당자와 신뢰구축에 도움이 되 었고 향후 회사를 창립하게 됐을 때 그와 소통해온 해외 거래선이 든든한 기반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경험을 쌓아가던 3년 차에 독립하여 오퍼상을 설 쿠쿠 창립자 구자신 회장은 1978년 11월 서른일곱 나이에 립했지요. 선친이 경영하던 기업의 이름을 딴 ‘성광통상’이 지금의 쿠쿠 전신인 성광전자를 설립하면서 기업경영을 시 었어요. 갈수록 거래처는 늘어났고 사업은 번창했지만 뭔가 작했다. 1941년 경남 진주시 지수면 능성구씨 집성촌에서 아쉬웠어요. 남이 만들어놓은 물건을 판매하는 일이 아닌, 27대 손으로 출생한 구 회장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문중 직접 만들어 판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야심찬 도전에 나 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자라나 초등4학년 때 부산으로 이 섰고 다시 무역상사의 경험을 살려 제조업을 하게 된 거죠.” 첫 설립한 회사, ‘삼신정밀’은 그만의 경영철학과 경영마 학창시절 리더십과 정의감이 강했던 구 회장은 나라가 암 인드를 키워주었고 제조업의 매력에 푹 빠져 지냈다. 그러나 울했던 격변의 시기 고등학교시절 4ㆍ19혁명의 한 가운데로 당시 성장기 사회는 물론 기업세계에서는 온갖 위법과 탈법

뛰어들어 자유와 정의를 외쳤고, 이러한 시대적 사건은 그의 행위가 만연한 분위기였고 삼신정밀도 작게나마 위법적 행 진로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대입시기 올바른 정치인에 대 위의 유혹을 받게 되면서 또 한번 위기와 도전을 직면하게 한 꿈과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정신으로 나라와 국민을 살 된다. 원칙주의자였던 그는 “원칙을 어기면서까지 기업을 리는 학문을 하고 싶은 꿈이 생겼다. 결국 그는 ‘경제’를 선택 운영하고 싶지 않다”는 소신과 원칙이 발동, 과감히 스스로 했고 1961년 고려대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이후 5ㆍ16쿠데타 공동대표직을 내려놓고 금성사

는 또 한번 그를 학생운동의 선두에 세웠다. 고려대 총학생 에 전기보온밥통을 제조해 납품 회장시절 한일회담 반대시위 주도 등으로 투옥과 석방을 반 하는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업체, ‘성광전자’를 창립했다. 이 시련의 연속이었던 대학생활을 끝내고 사회에 첫발을 디딘 회사가 바로 지금의 쿠쿠홀딩스 곳은 뜻밖에도 정치계였다. 그 무렵 선친이 운영하던 기업이 의 전신이고 밥솥과 인연 부도를 맞으면서 가족부양에 대한 책임감으로 취업을 선택했 이 시작된 시점이 고, 첫 직장이 사실 쌍용그룹의 모회사인 금성방직이었다. 신 었으며 세계적인 입사원 연수 후 첫 발령지가 당시 금성방직 대표이사이자 공 밥솥회사가 탄생 화당 재정위원장이던 성곡 김성곤 의원(박정희 전 대통령 왼 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쿠쿠의 ‘10ㆍ2항명사건’으로 김성곤 의원이 국회의원직를 그만두고 역사는 시작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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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M납품업체에서 독립 브랜드 창출에 이르기까지 대기업 들의 공세에 흔들리기는커녕 전기밥솥시장에서 대기업을 퇴 출시켜버리는 놀라운 역사를 내리 썼다. 그리고 여전히 쿠쿠 는 자타가 공인하는 업계 신화적 존재로 국내 전기밥솥시장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쿠쿠홀딩스의 100% 자회사로 탄탄한 구조와 함께 안정속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2001년 미 국을 시작으로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에 판매 법인을, 중국에 생산공장을 그리고 미국 LA엔 영업사무소와 함께 대형 물류창고를 두고 미국, 영국, 일본, 중국, 베트남, 러 시아 등 전 세계 30여 개국에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집무실에서 인터뷰중인 구자신 회장.

쿠쿠는 국내에 2개 생산공장(양산 1공장, 2공장)과 중국 청 도지역에 청도복고전자유한공사 등 3개의 생산기지를 보유 하고 있으며, 생산품목만도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다. 전기 에 언제 탈이 날지 모릅니다. 소비자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밥솥 외에도 IH레인지, 믹서기, 전기그릴, 식기건조기, 전기 하고 빠르게 해결한다는 게 제 철칙이기도 합니다.” 보온포트, 전기주전자, 압력중탕기 등 주방가전 제품과 공기 청정기, 제습기, 가습기, 안마의자, 비데, 클렌저, 의류건조기 선진 경영시스템이 쿠쿠의 성공 키워드라는 구자신 회장. 등 생활가전을 비롯해 냄비, 프라이팬ㆍ웍, 텀블러 등 주방 실패하지 않은 선택의 중심은 ‘초심’에 있다며 ‘초발심시변

용품과 매트리스, 프레임 등 침구ㆍ가구류에 이르기까지 품 정각(初發心時變正覺)’, 화엄사상을 꽃피운 신라 의상대사 목별 종류별 디자인별 규격별로 따지면 그 생산 목록과 규모 의 법성게를 떠올린다. 는 어마어마하다.

준비된 자의 기회 그리고 성공키워드

구자신 회장은 팔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매일 아침 9시면 가 된다는 진리를 쿠쿠의 역사속에서 터득하고 배웠지요. 회사에 출근해 컴퓨터에 올라온 고객의 목소리를 모니터한다. 훨씬 이전에 이순신장군이 철저한 준비와 무슨 일이든 충 그리고 고객들의 불만의 소리는 모든 간부들이 다 볼 수 있도 분한 숙고와 실천으로 성공적 전투를 이끌었듯 현재에 안 록 하여 실시간 빠르게 대응하고 신속히 처리하도록 서비스에 주하지 않고 미래를 관측하며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 만전을 기하고 있다. 늘 고객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온 쿠쿠는 같습니다.” 소비자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지역 곳곳에 가장 많은 서비스센 터를 운영하고 있는 업체로도 유명하다.

“저희 쿠쿠의 고객서비스센터는 LG, 삼성을 넘어섰습니 절히 희망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유순희 편집위원 다. 전자제품은 코드만 꼽으면 살아있는 생물과 같기 때문

앞선 기술, 최고의 품질, 공격적 마케팅, 고객 최우선주의

“늘 승승장구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위기도 많았고요. 그 러나 언제나 위기는 도전이 되었고 준비된 자에게는 기회

“병원 일을 하다보면 경영자 입장이든 환자를 돌보는 의사로서의 입장이든 간에 정성스러움은 정말 필요한 실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야 구성원들의 합심을 유도해낼 수 있고 비로소 리더십도

끝으로 구 회장은 “위대한 이순신장군의 구국 충심의 얼 이 깃든 부산 앞 바다에 부산대첩을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텀종합병원 이사장(사단법인 부산대첩기념사업회 고문).

역사문화공간이 조성되기를 부산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간

고 싶다고 말한다.

“환자가 만족하는 최고의 병원 만들터”

박종호 센텀종합병원 이사장(부산대첩기념사업회 고문)

진심과 지극정성은 성공 열쇠

1천 여명에 달하는 종사자들을 움직이는 종합병원을 경영 하는 의료인으로서 막중한 책임감과 부담감도 없지 않다는 그는 지속적으로 진심진력, 진정성을 갖고 한결같이 ‘정성’을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지극정성으로 임하고 솔선수범해 다하다보면 반드시 좋은 결과들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저는 가끔 생활속에서 이순신을 소환해 제 삶과 비교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다고 말하는 박종호 센텀의료재단 센 보기도 합니다. 이순신장군이 부하들의 단점보다 장점을 찾 아내 동기부여를 하고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만든 소프트 박 이사장은 이순신의 4대 실천정신 모두 따로 생각할 수 카리스마를 가진 분이었던 것처럼 저 또한 조직구성원들의 없을 정도로 소중한 가치이지만 특히 ‘정성’에 포인트를 두 단점을 지적하기 보다 긍정적 동기부여로 솔선수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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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3월 종합병원 그랜드오픈

본격 운영에 나섰다.

유비무환의 자세로 사회변화에 대응해온 박 이사장. 코로나와 의정갈등으 로 어려운 시기에 종합 병원으로 확장 개원하고 도전적 경영에 나서 지역공 공재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고.

수술 후 미팅자리에 앉자마자 이순신 예찬론이 쏟아져 나 갖추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오는 박종호 이사장. 인터뷰를 위해 책을 다시 한번 읽어보 기도 했다며 ‘찐’ 이순신 사랑을 펼쳐놓았다. 박 이사장은 참 정성스러운 사람이다. 엊그제 건강보험심사 외과, 대장항문외과, 심장혈관흉부외과, 신경외과, 신경과, 성 평가원 병원 간담회에서도 사전에 병원 소속 구성원들의 의견 형외과, 유방외과, 소화기내과, 간내과, 심장내과, 류마티스내 을 하나하나 취합해 정성스럽게 간담회를 준비하는가 하면 수 과, 신장내과, 비뇨의학과, 소아청소년과, 정신건강의학과, 가 술 전에도 환자의 상태나 전반적인 상황을 꼼꼼히 점검하는 정의학과, 재활의학과, 핵의학과, 치과 등을 포함해 현재 27개 것을 잊지 않는다고. 매번 하던 일, 잘하는 일이라고 자칫 소홀 진료과목에 60명의 전문 의료진이 진료를 하고 있다. 해지거나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태도를 경계하기 위함이다.

“제가 장기려 박사님을 돌아가시기 전까지 가까이에서 모 의 의료 서비스 제공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서울 아산 삼 신 적 있는데 박사님은 흔한 맹장염 수술도 수술 전에는 꼭 성 등등 수도권 유명 병원에서 건강검진받는 것을 자랑삼아 기도를 하고 외과 책을 한번 더 읽고 들어가셨지요. 그런 정 늘어놓는 게 이제는 부끄러운 일이 될 수 있도록 진료 시스 성을 다하는 모습이 깊은 울림이 되기도 했어요.” 아울러 그는 모든 공직자들의 사표이자 선공후사의 표본 도를 높이는데 힘쓰겠다”고 밝혔다. 박 이사장은 특히 간담

같은 삶을 사신 이순신장군의 애민정신과 정성스러움, 미래 를 준비하는 유비무환의 자세는 병원에서도 미래 사회 변화 에 대응하며 준비하는 의료 환경을 만드는 데 접목하고 있다 고. 박 이사장이 지난 5년여 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올 초 종 합병원으로 전격 전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헌 및 노년층 건강증진 등의 일환으로 ‘실버건강대학’을 무

센텀의료재단 센텀종합병원(이사장 박종호, 초대 병원장

료 개설해 운영하고 있는 것.

박남철)은 올 3월 그랜드 오픈했다. 종전의 부산센텀병원 (2002년 개원한 정형외과 전문병원)에서 지난해 12월 종합 병원으로 승격한 후 의료 서비스 강화를 위해 필수 · 응급의 료 및 중증질환 진료분야 등에 신규 의료진을 대거 영입하며

강대학을 설립해 벌써 3기째 운영 중입니다.”

“‘환자가 만족하는 병원, 직원이 만족하는 병원, 지역사회 에 공헌하는 병원’이란 3가지 비전으로 부산 울산 경남의 최 고 종합병원으로 발전시키겠다”는 박 이사장은 특히 필수 · 응급의료와 함께 질환 예방을 위한 종합건강검진 활성화에 역점을 두는 한편, 중증 질환 등에서 수준 높은 진료 역량을

로그램이 펼쳐지는 실버건강대학은 센텀종합병원의 공공헬 스 프로젝트다.

지역 사회와의 공생하는 병원

센텀종합병원은 기존의 정형외과뿐만 아니라 간담도췌장

“병원은 지역의 공공재로서 지역사회와 주민들과 늘 함께 가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병원은 단순히 치료를 제공하는 곳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고 발전해야 하는 기관이기에 지역사회의 건강 증진과 복지 향상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자 합니다.”

“지역 주민 · 환자분들이 서울 수도권의 대형병원에 갈 필

지역 환자들의 수도권 유출 문제에 대해 박 이사장은 진료

요없이 우리 지역에서 잘 치료하고 관리받을 수 있도록 최상

시스템 개선과 ‘감성치료’를 강조한다. 환자들이 더욱 편리 하게 병원을 이용하고, 신속하고 정확한 진료를 받을 수 있 도록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겠다는 그는 “진료 과정에서 환자들의 마음을 세밀하게 챙기고, 심리적 안정을

템의 지속적인 향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의료서비스 만족

도모하는 감성치료에 주력하겠다”고 밝힌다. 덧붙여 박 이사장은 “부산은 고령 인구가 많아 질병률이

도췌장 질환 치료에서는 서울아산병원 출신의 권위자인 박 전국 광역시 중에서 가장 높고, 건강지표도 낮은 수준”이라 광민 교수를 영입해 의료진의 무게감을 훨씬 더 높이고 있 며 예방과 관리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또 그는 "노년층 환자 고, 신경외과에서도 뇌 질환 분야의 권위자인 이선일(전 해 들은 대부분 여러 질병을 가지고 있어 미리 관리를 받으면 운대백병원) 교수를 영입, 뇌혈관센터장으로 진료에 더욱 건강이 좋아지고, 사회 · 경제적 비용도 줄일 수 있다"며 “특 히, 건강검진과 정기적인 관리를 통해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 센텀종합병원의 야심찬 프로젝트는 또 있다. 지역사회 공 고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부산에서 나고자라 병원을 개원하고 시민건강을 “급속한 초고령 사회에 그동안 산업화 민주화 과정에서 돌보고 있는 부산토박이 의료인인 그는 “곧 다가오는 부산 희생적 삶을 살아온 우리의 베이비부머 세대들을 위해 행복 시민의 날, 올해 처음으로 부산대첩기념사업회와 부산시가 하고 건강한 노후가 보장될 수 있도록 건강증진을 도모하고 공동으로 기념식을 개최하게 된다니 감개무량하다”며 “앞으 후세대들에게는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한 차원에서 실버건 로 역사적인 이순신의 부산대첩을 매개로 부산의 상징성도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념비적인 사업들 실버건강대학은 65세이상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1기수 이 속속 추진되고 부산시 차원에서도 부산대첩정신을 되살 당 60여 명을 모집해 매주 1회씩 10주간 무료로 진행하고 있 려 도시브랜드 가치를 드높인다면 단순한 해양도시가 아닌 다. 병원 전문의들의 건강강좌를 비롯해 어르신들의 건강생 400여년을 훌쩍 뛰어넘는 역사문화도시로 부산이미지가 업 활에 도움이 되는 운동법과 노래 · 레크리에이션 등 각종 프 그레이드 될 것이다.”고 말했다.

프로필 박종호 이사장은 1981년 부산대 의대(75학번) 졸업 후 1989년 부산백병원에서 정형외과 전공의 및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정형외과 전문의이다. 현재 센텀의료재단(센텀종합병원, 서부 산센텀병원) 이사장을 비롯해 부산동부지검 범죄피해자지원 센터 이사장, 대한손상예방협회 이사장, KBS부산방송총국 시 청자위원회 위원장, 부산시립미술관 후원회(BMAN) 이사장 등 을 맡고 있다. 부산대 명예경영학박사 학위(2023년)를 받았다. 특히 지난 2008년 사망자 8만여 명이 발생한 중국 쓰촨성 대지 진 때 응급구호단장으로 국내 최초로 현지에 들어가 진료활동 을 벌였다. 그동안 성실납세자 다수 표창, 대한적십자 박애장 은장, 동명대상 봉사부문 대상, 자랑스러운 부산대인, 부산문 화방송 문화대상 등을 수상했다.

유순희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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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대첩기념사업회 NEWS

박형준 부산시장 방문 현안업무 건의

지난 6월 20일 김종대 명예이사장, 이윤희 고문, 이용흠 이사장, 김영도 ` 박병대 ` 박종필 이사, 남송우 이순신학 교장은 ㈔부산여해재단과 ㈔부산대첩기념사업회의 주요 현안업무 건의를 위하여 박형준 시장을 면담했다. 이날 총 5건의 건의사항에 대하여 필요성과 당위성 등을 설명하고 부산시 차원의 협조를 요청하였으며 시장으로부 터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첫 번째, 부산대첩기념관 건립 관련 박 시장은 기념관 건립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며 건립장소, 규모 ` 성격 ` 콘텐츠 구성 등 종합적인 계획과 시민들이 지속적으로 찾 아올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기획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 울러 기념관 건립 위치는 북항 2단계 구역이 적절하고 타 당성 용역 등 절차가 필요하므로 내년에 관련 예산 반영 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두 번째, 북항 1단계 친수공원 명칭을 부산대첩기념공 원으로 지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관련 절차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적극 협조하겠다고 약속했다.

세 번째, 청소년 대상 이순신 정신 교육 프로그램을 부 산시 차원에서 운영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산시에는 평 생학습 관련 시설이 많이 있으므로 평생교육 대상을 위한 프로그램을 구성하여 제안해 주면 좋겠다”고 하였고, “청 소년수련원 외 각종 센터도 많이 있으므로 관련부서와 협 의해서 진행하면 좋을 것 같다”고 하였다. 네 번째, 부산시민의 날과 부산대첩기념식을 연계하여 추진하는 방안이다. 그동안 부산시민의 날과 부산대첩 기념식을 각각 개최하였는데, 부산대첩 승전일이 부산시민의 날이므로 부산시와 기념사업회가 공동으로 기념식 을 개최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하였고, 관련부서와 협의한 결과, 오늘 10월 4일 부산시와 기념사업회가 공동으로 기념식을 개최하기로 했다.

다섯 번째, ‘이순신 오페라’를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하는 것과 관련 좋은 작품이면 오페라 하우스 예술감독(정 명훈)과 의논해서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양 법인에서 추진하고 있는 주요 사업과 교육프로그램에 대 하여 설명하고 4월 26일 이순신 탄신 기념세미나에서 발표된 부산포 해전의 바른 역사적 명명이 필요함을 요약 설명함으로써 부산대첩의 역사적 사실을 폭 넓게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무엇보다도 주요 현안사항에 대하여 부산시와 공감대를 형성함으로써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한 협력의 시간을 가졌다는데 큰 성과가 있었다.

부산대첩기념관 건립 추진위원회 구성ㆍ운영

회 구성안」을 상정 ` 의결했다.

구상 등이다.

부산연구원 2024년 학술연구 선정 및 추진

성이 있어서 연구과제로 채택되었다.

본 사업회는 지난 6월 20일 박형준 부산시장을 방문해 부산 대첩기념관 건립 타당성 용역 예산을 내년에 반영, 검토하기로 함에 따라 부산시장의 약속 이행과 사업회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별도의 기구 구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어 지난 7월 11 일 통합이사회 안건으로 「(가칭)부산대첩기념관 건립 추진위원

구성인원은 10명 이내로 하고, 위원장은 위원 중에서 호선 하며 회의는 격월제로 하되 필요시 수시로 개최하기로 하였다. 주요 역할은 시장의 예산 반영 약속 이행을 위한 시 간부 및 시의회 의원을 면담 ` 설명하고 우리 법인이 원하는 컨셉트로 기념관이 건립될 수 있도록 논리 개발 과 자료작성, 향후 기념관 건립 기본계획, 설계 등의 절차 이행시 기념관에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지난 7월 29일 제1차 회의를 개최하여 이용흠 이사장을 위원장으로 선출하고 10명의 위원들에게 각각의 역할 을 부여하였다. 8월 8일 제2차 회의를 개최하여 북항 2단계 사업지내 기념관 건립 위치에 대한 의견과 기념관 건립 당위성과 타당성 논리에 대한 의견을 주고 받았다. 추진위원은 이용흠, 박병대, 유순희, 김희은, 박종필, 손준호, 정태준, 정채숙, 전제철, 윤정자 위원이 참여하고 있다

㈔부산대첩기념사업회는 부산연구원의 2024년 학술연구 과제로 지난 3월 26일 「부산시민의 날과 부산대첩」을 제안하여 연구과제로 선정되어 6월 7일 용역계약을 완료하여 11월 3일까지 과제를 수행할 계획이다. 그동안 부산포 해전에 관한 연구는 단편적이고 군사학적인 차원에서 대부분 접근하여 부산포해전이 지니는 역 사적 의미에 대한 해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부산포해전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의 연구를 통해 의미를 재해석하고 그 의의를 현재화하여 부산시민의 날이 지닌 정신적 가치를 새롭게 정의할 필요

남송우 이순신학교 교장을 책임연구원으로 김태현 부산도시공사 상임이사와 이진서 고석규 비평문학관 관장 이 공동연구자로 참여한다. 향후 연구과제가 발간되면 부산시민의 날 제정 취지와 유래에 대해 많은 시민들과 미 래 세대인 초`중` 고생 대상의 교육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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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첩기념사업회 고문회의 개최

지난 5월 17일 ㈔부산대첩기념사업회 고문회(회장 신한춘)은 고문 진과 이사 등 총 13명이 참석한 가운데 상반기 주요 추진사항 보고와 하반기 주요 추진계획을 논의 하였다. 4월 26일 이순신탄신 기념세미나에서 발표된 부산포해전을 부산 대첩으로 명명한 이순신 장군의 역사적 기록이 있으므로 부산대첩이라는 명칭을 자랑스럽게 사용하고 전파하는 데 노력할 필요가 있음을 공유하였다. 부산항 북항 1단계 재개발사업지내 친수공원 명칭을 부산대첩기념공원으 로 정하고 기념관을 건립하는데 고문회 차원에서 적극 노력하기로 하였다.

찾아가는 이순신 학교 운영

㈔부산여해재단은 초`중` 고등학생들에게 이순신 정신을 함양하기 위하여 이순신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초등학생 대상 지역역사 문화 탐방, 중 ` 고등학생 대상 이순신 인성 ` 리더십 키움 교실과 이순신 해전 전적지 순례 등 3개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9월말 현재 운영 및 참여인원은 지역역사 문화탐방 34회 450명, 이순신 인성 ` 리더십 키움교실 55회 1,500명, 이순신 해전 전적지 순례 11회 339명이다.

이순신 아카데미 운영

• ㈔부산여해재단은 이순신의 생애와 정신을 가르칠 강사와 이순신 정신으로 무장된 지도자를 양성하고자 제8기 이순신 아카데미 강사과정(28명)을 지난 3월 6일부터 12월 4일까지 매월 첫째 수요일에 운영하고 있다. 이론 및 토론수업과 함께 한산도, 여수, 남해 등 현장학습을 병행하여 운영한다. • ㈔부산여해재단은 이순신 정신을 실천하고 전파할 청년들을 대상으로 청년 이순신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제13기는 지난 4월 16일부터 6월 11일까지 27명이 수료하였고, 제14기는 9월 24일부터 11월 19일까지 총 10회 에 걸쳐 운영한다.

강사 역량 강화

명)을 개최하였다.

「이순신 해전 골든벨」후원

㈔부산여해재단은 사랑 ` 정성 ` 정의 ` 자력의 이순 신 정신을 배울 수 있는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부 산시교육청 주관으로 9월 21일 KNN 방송국 공개홀에 서 개최한 이순신해전 골든벨 문항 100개를 출제하여 제공하고 이사장 명의의 상장을 후원하였다.

제8회 이순신 독후감 공모

㈔부산여해재단은 이순신 아카데미 강사과정 수료자를 대상으로 공통 강의안 제작 및 강의 시연을 통해 교 육 내용의 일관성을 도모하고 역량 강화를 위하여 워크숍(2회 35명), 현장학습(1회 8명), 강사 재교육(2회 44

㈔부산여해재단은 사랑 ` 정성 ` 정의 ` 자력의 이순신 정신을 널리 전파하고자 이순신 독후감 공모전을 개 최하였다. 지정도서는 「이순신 하나가 되어 죽을힘을 다해 싸웠습니다.(저자 김종대)」이다. 이번 공모전은 4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청소년부, 일반부, 가작 부문으로 나눠 진행하였으며 일반부 6명 (310만원), 청소년부 6명(155만원), 가작 9명(45만원)의 수상자를 선정한다. 수상자 발표는 10월 중 재단 홈페 이지에 게시하고 개별 안내할 예정이며 시상식은 별도로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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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제언

<부산시의회 제321회 정례회 5분 자유발언 요지>

북항 친수공원, 역사적 현장의 이름으로 !

투 현장입니다.

정채숙 시의원 부산광역시의회 행정문화위원회

본 의원은 부산항 북항 친수공원이 우리 부산시민에게 임진왜란 당시 지금의 부산항 북항 일원에서 일어난 부산 더욱 의미 있은 공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포해전의 역사적인 승리를 이끈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기 ‘역사적 상징성을 가진’ 공원명 제정에 대해 제언하고자 리기 위해 ‘이순신대로’로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합니다.

100여 년간 시민들이 밟을 수 없는 금단의 구역이었 대첩대로, 부산항대로 등이 있었으나, 부산포해전 승전 던 북항은, 부산신항 개장 등 여건변화에 따른 부산항 항 일인 10월 5일을 부산시민의 날로 제정한 만큼 부산시 만기능 재편의 필요성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 북항재개발 민의 날 제정의 의의를 다시 한번 알림과 동시에, 부산의 워터프런트 조성사업에 의해 도심 속 친수공간으로 탈바 랜드마크가 될 북항의 도로명을 세계인들도 잘알수있 꿈하여 부산의 랜드마크로 시민들에게 개방되었습니다.

는 이름인 ‘이순신대로’로 선정한 것입니다.

개항초기 부산포로 불리던 부산항 북항은 조선시대부 터 현대에 이르는 부산 역사의 축약본이라 할 수 있습니 다. 북항 일대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적의 본진 지명, 위치 예측성, 해당 도로의 영속성, 역사적 인물 또 을 격파하여 육상으로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남해의 제해 는 사건 등을 반영하여 종합적으로 결정하게 됩니다.

또, 같은 도로명이라도 시〮군〮 구를 달리하면서 도로

권을 완벽히 장악함으로써 우리나라를 지켜낸 역사적 전

또한 우리나라 최초 근대 항구로 문을 연 북항은 일제 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지나, 6ㆍ25 때 군사ㆍ구호물자 수

와 같은 도로명을 선정하게 된 것입니다.

송의 중심지로, 산업화 이후 대한민국 수출 관문으로 세 계 10대 항만으로 우뚝 서기까지 굴곡 깊은 역사가 서린 곳입니다. 현재 북항 친수공원 앞 ‘이순신대로’는 1592년

낸 승전을 기념하는 기념관이나 기념공원 건립이 일반화 되어 있습니다.

세대를 아우르는 역사의식의 함양은 국가의 존립과 번

물론 ‘이순신대로’ 외 후보 도로명으로 북항대로, 부산

은 필수입니다.

「도로명주소법」 시행령 제8조에 따라 지역적 특성과

대첩의 역사적 중심 현장입니다. 1980년, 부산대첩 승전일인 10월 5일을 부산시민의 날 로 제정한 취지를 살리고, 부산대첩을 역사 〮 문화적 유산

우리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도로명을 시작으로 공원명까지 일관될 수 있도록 ‘부산대첩기념공원’이라 명명하여 시민들에게 역사적 자긍심을 고취시켜 줄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는 공간으로 탄생하리라 기대됩니다.

으로 복원할 수 있도록 역사적 현장에 부합하는 공원명을 구간의 반경 5km를 초과하는 경우는 동일 도로명을 중 제정한다면 이순신 장군을 비롯한 부산대첩 영웅들의 호 복하여 사용할 수 있기에 아산, 여수, 창원의 이순신대로 국정신을 부산시민 정신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도로명을 시작으로 공원 이순신대로가 의미있는 과정을 거쳐 잘 제정된 만큼, 명까지 일관될 수 있도록 ‘부산대첩기념공원’이라 명명 이제 우리는 북항 친수공원에 걸맞은 공원명을 고민할 하여 시민들에게 역사적 자긍심을 고취시켜 줄 수 있다 때입니다. 전쟁을 치른 세계 각국들은 자기나라를 지켜 면 더할나위 없는 공간으로 탄생하리라 기대됩니다.

공원명 선정은 주민 의견수렴 또는 공모로 명칭을 선 정하여 구 〮 군 지명위원회의 심의와 의결을 거친 후 시 지명위원회 심의 〮 의결로 명칭을 확정하게 되며, 부산시

영에 반드시 필요하므로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구한 결 는 올 하반기에 공원명 선정 과정을 진행할 것으로 예상 정적인 승전인 부산대첩을 기념하는 특별한 공간의 조성 됩니다.

해양도시 부산이 글로벌허브도시로 도약하는 지금, 부 부산대첩은 가덕도, 다대포, 현 영도다리 인근 초량목 산을 찾는 세계인에게 우리의 역사와 오늘, 그리고 미래 전투에 이어 부산북항 일원과 우암부두에 이르는 바다 를 함께 보여줄 수 있는 공원, ‘부산대첩기념공원’이 공 일원에서 벌어진 해전으로, 현재의 북항재개발지는 부산 원명으로 꼭 제정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발언을 마치도 록 하겠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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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첩이야기 ⑩

명예 이사장이 들려주는 부산대첩 이야기

이야기 부산대첩 ( 1 )

#10

8월 21일 동헌 안 수사의 책상 앞에는 그와 3년 전부터 함께한 연일석 벼루와 족제비 털(황모)로 만든 붓이 놓여 있다. 3년 전 정읍현감으로 부임할 때 어머니가 특별히 마련해 준 붓과 벼루다. 그는 중요한 글을 쓸 때는 언제나 이 붓과 벼루를 이용해 어머니를 모시듯 한 지에 한자 한자 또박 또박 글을 써 문서를 만들었다. 그는 지금 견내량에서 큰 승첩(한산대첩)을 거두고 돌아와 닷세 만에 임금께 승첩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다. 제목을 “견내량 파왜 병장”으로 쓰고 왜적을 무찌런 상황을 일자별로 자세히 썼다. 이어 전투 후 사후 처리 사항까지 다 보고한 뒤 「삼가 갖추어 아룁니다.

김종대

신 이(李)」로 글을 맺고 붓을 정리해 제 자리에 놓았다.

㈔부산대첩기념사업회 명예 이사장

6월 13일 여수 좌수영을 출발해 옥포, 합포, 적진포에서 싸웠고 잠시 귀환해 준비했다가 7월 8일 다시 출진해 사천, 당포, 당항포, 율포에서 싸웠다. 모두가 힘겨운 전투였다. 특히 사천해전에서는 격전 중에 좌측 어깨에 두치 길이로 총탄이 박혀 활을 잡을 수가 없었으나 적을 유인해 박살을 내었고, 부상 후 이틑날은 당항포에서 죽을 힘을 다해 싸워 적장을 죽이고 연거푸 승첩을 거 둔 것은 지금 생각해도 꿈만 같았다. 그러나 그들 전투에 비하면 이번 견내량 전투는 훨씬 더 신나고 화려한 승전 이었다. 그를 잡기 위해 3인의 적장(와키자카, 가토, 구키)이 힘을 합쳐 여수로 몰려 온다는 첩보를 받았다. 그는 그냥 앉아서 적을 맞을 수가 없었다. 나가서 치기로 마음먹고 전라 우수군을 불러 함께 적을 맞아 싸우러 부산 쪽으로 행선 해 나갔던 것이다. 견내량에 있는 와키자카의 선봉 대군을 한산 바다로 유인해 학인진으로 섬멸했고, 이틀 후에는 와키자카를 뒤따라오던 가토와 구키의 수군 을 안골포에서 쓸어 버렸다. 목 벤 적군의 머리수가 250급이라 하나 9,000 가 까운 왜적을 죽였다. 72척의 중대형 적선 중 59척을 깨거나 불 태웠다. 적으로 하여금 다시 싸울 마음이 나지 않을 만큼 두들겨 부숴 버렸으니 이보다 더 화려

하고 빛나는 전투를 어찌 다시 해 보겠는가

해 그 힘이 줄어들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떻게 하면 이 전쟁을 끝낼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책상에 팔을 괜채 상념에 잠긴다.

큰 아들 회가 들어 왔다. 「아버님 안색이 어두우시니 무슨 걱정이 있으신지요?」 이순신이 답했다.

왔다. 어떻게 쳐야 할지 생각 중이다.」

다음을 생각하십니까. 지금 몸도 불편하시고 활도 당기 시지 못하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적도 이젠 바다 쪽으로

고 몸의 총상도 추스르고 전선도 좀 더 만든 연후에 나가 시지요.」

이순신 : 「너의 말이 고맙긴 하나 장수가 어찌 사직과

가 많이 꺾였다. 이때 낙동강을 거쳐 적의 본진이 진치고

있는 부산을 되찾는다면 전쟁을 끝 낼 수도 있지 않겠느 그런데 붓을 놓고 견내량 승첩(사람들은 이를 한산대 냐. 내 힘을 생각하면 너 말처럼 다음을 기약해야 할 듯 첩이라 부른다)을 회상하는 그의 얼굴은 마냥 즐겁지 만 하나 나라를 생각하면 그냥 있을 수가 없다. 내 그래서 은 않았다. 아직도 적의 주력 부대는 부산에 본진을 형성 지금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고 있느니라.」

4월 29일 새벽 한양을 탈출한 임금은 이 때 개성을 거 쳐 평양에 가 있었다. 여차하면 의주로 가 압록강을 넘어 명으로 귀부하려 했다. 백성은 뒷전이요 오직 자기 일신 의 안전만을 지키려 했기 때문이다. 정읍현감으로 있다가 전쟁나기 1년 2개월 전에 전라좌 수사가 되어 여수에 부임한 그는 전쟁에 대비해 좌수영 「방금 낙동강 쪽으로 내려오는 적을 치라는 명령이 또 을 요새화 하느라 좌수영 앞 바다에 철쇄도 설치했다. 거 북선도 만들고 철저한 정신교육으로 전라좌수군을 강군 으로 변모시켰으며 기타 모든 준비를 했기에 그래도 아 회 : 「견내량에서 대첩을 거둔지 며칠 되었다고 벌써 직 바다는 적에게 내 주고 있지 않고 있었다.

그는 전투를 치르면서 피난의 고통으로 신음하고 죽어 함부로 나오지 못할 것이니 이번 겨울은 좀 편히 지내시 가는 민초들의 삶을 뼈저린 아픔으로 지켜보아야 했다. “그들이 무슨 죄가 있어 저 고통을 당한단 말인가. 한 나라의 장수된 자로서 저들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내 어 찌 장수라 할 수 있겠는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다시금 그를 휘감아 왔다. 그러나 백성을 앞에 놓고 자기 몸을 생각할 수 있겠느냐. 지금 어쩌랴 분노만 한다고 저 백성들을 누가 살려낸단 말인가. 임금은 파천하고 백성들은 갈 곳을 잃고 헤메이지 않느 그는 한시 바삐 전쟁을 끝내야 하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냐. 지금 우리가 아홉 번이나 싸워 연전연승해 적의 기세 로였다. < 다음호에 계속 >

이 날 아들에게 한 말은 그가 항시 고민하는 내용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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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친 관군 대신 싸운 부산 수영25 의용단

김태현

부산도시공사 상임감사

왜적의 침략을 당한 임진왜란 7년 동안 전 국토는 폐허가 됐다. 인구는 최소 100만명 이상이 줄었고 경작지도 3분의 1정도까지 소멸됐다. 부산은 임진왜란 첫 격전지로 싸움은 격렬했고, 피해는 컸다. 부산진성과 동래성, 다대포성의 군 관민은 몰살하다시피 처참하게 목숨을 잃었다. 1차로 왜적 은 1만8700명이 들이닥쳤고, 9차까지 총 15만8700명이 부

①

①② 수영25의용이 왜적에 맞선 투쟁을 결의한 부산 수영구 선서바위와 무민사. 부산대첩기념사업회.

조선시대 부산의 이름은 동래부였다. 동래부에는 동래부 산을 침략했다. 조총까지 무장해 군세가 워낙 컸다. 경상도 읍성과 금정산성 등 육상전투를 위한 방어시설과 부산진성 의 수군사령부였던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영(경상좌수영, 수 과 다대진성과 같은 지금의 해군인 수군 진영이 있었다. 수 영좌수영, 수영)은 전쟁 준비 부족 탓에 왜적과 제대로 싸움 영은 왜란 당시 동해 쪽의 해상방어를 담당했던 수군 총지 한번 못하고 주저앉았다.

②

수영25의용을 모신 25위용단 사당(부산광역시 기념물 제12호). 부산대첩 기념사업회.

일도 지나지 않아 점령했다. 부산은 육상과 해상에서의 패배로 임진란 내내 왜의 병참 기지로 전락했다. 하지만 왜적에 굴복하지 않고 목숨을 바 친 선열도 남아 부산의 정신으로 자리잡고 있다. 수영성 일 대에서 지역민이 임진왜란 7년동안 투쟁하면서 수영 일대 를 지킨 의로운 수영25의용이다. 지금은 강과 바다를 매립 해 육지로 변한 탓에 바다와 육지의 경계를 알아보기가 힘 들다. 하지만 부산에서 살아온 60세 이상의 분들은 그 흔적 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수영성은 센텀시티와 동래쪽으 로 올라가는 수영강 왼쪽과 연결되는 곳에 자리 잡았다. 수 영현대아파트 자리도 강을 매립해 만든 곳이다. 서동률 부 산문화관광 해설사는 “수영의용은 하급 군관과 평범한 백 성으로 구성된 보통의 사람들로 이뤄졌던 자발적 의병이라 는 점에서 긍지와 자부심, 강렬한 민족혼을 느낀다”고 말했 다. 리더들이 도망간 상황에서 백성들이 항쟁했다는 점에서 가치있다고 본 것이다. 의용은 의를 위해 일어나는 용기, 충 의와 용기를 뜻한다. 그 의미를 새기면서 의용의 흔적을 따 라가본다. 지하철 2호선 수영역. 연산동 쪽 출구로 올라와 오른쪽으 로 걸어가면 수영사적공원을 만날 수 있다. 조선시대 수영 성이 있던 곳을 현재 수영사적공원으로 조성했다. 수영사적 공원 외벽을 따라 걸으면 목숨을 걸고 수영성을 지켜낸 25 의용을 흙으로 만든 토우를 만날 수 있다(2022년 5월 준공). 수영사적공원 주차장 바로 위쪽에는 수영에서 목숨을 바 쳐 왜적과 싸운 수영25의용단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자리

휘관이었던 좌수사의 진영이 있던 곳이다. 수영은 수사가 머문 진영이라는 뜻. 부산 인근의 바닷가 성들은 경상좌수 사 박홍의 관할에 있었고, 왜적과의 일대 접전이 가능했다. 그러나 관할 사령관이었던 박홍은 800여 척의 왜적 선박 을 보고 놀라 도망가고, 수영성은 지리멸렬됐다. 좌수영은 도대체 뭘 했나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쉽게 왜적의 수중으 로 들어가고 말았다. 류성룡이 쓴 징비록에는 “수영좌수사 박홍는 왜적의 형세가 대단한 것을 보고 성을 버리고 도망 쳤다”고 기록했다. 그렇게 도망친 박홍은 평양으로 몽진(몸 을 피함)하는 선조를 호송하다가 성천에서 우위대장이 됐 다. 하지만 1593년 종군하던 중 병으로 사망했다. 박홍은 울 산 개운포에서 좌수영으로 군사기지를 옮기는 중이라 임진 왜란 대비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하더라도 최후까지 목숨 으로 부산의 성을 지킨 지휘자와 백성들과는 달랐다. 백성 을 버리고 왕 있는 곳으로 달려간 것이 좌수영의 군인 총책 임자로서 할 일은 아니었다. 북상한 왜군은 상주전투(4월25 일, 이일)와 탄금대전투(4월28일, 신립)에서 승리한 후 20일 만에 한성(서울)을 점령했다. 개성과 평양, 함경도까지 60

잡고 있다. 왜적은 수영 일대에 침입해 임진왜란이 끝나는 7년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부녀자와 주민을 약탈과 살육을 자행했다. 이를 보다 못한 혈기왕성한 수영 25명의 젊은이 는 분연히 일어나 죽음으로 끈질기게 대항했다. 이 지역의 지리 지세를 잘 알고 있는 지역 의병이 탄생한 것이다. 그렇 다고 25의용은 국가의 녹을 먹는 관군은 아니었다. 가족과 생계를 돌보면서 나라를 지키는 의병이었다. 25의용이 모여 왜적을 토벌해 나라 지키기를 죽기로 맹세한 곳은 선서바 위. 의병들은 느티나무 바위에 몸을 숨기고 왜군을 물리치 는 작전을 세웠다. 치밀한 계획을 짠 의병들은 최영 장군 사 당에 들러 전승을 기원 한 뒤 반격에 나서 7년 동안 기습작 전으로 왜적을 토벌했다. 선서바위는 수영동 507~509 번지 에 있는 최영 장군 사당 ‘무민사(武愍祠)와 함께 있다. 선서 바위는 안내표시가 없어 찾기가 쉽지 않다. 수영팔도시장에 서 미광운수 쪽 도로를 건너기 전 오른쪽 골목길로 들어서 거나 GS칼텍스 대영주유소 담벼락을 타고 첫 골목에서 우 회전하면 찾을 수 있다. 수영25의용은 왜적과 대항하기 위해 군사 체계로 조직, 운영됐다. 작전은 주도면밀하게 이뤄졌다. 밤에 바람길을 이용해 바닷가에 매어 둔 적선의 닻줄을 끊어 배가 떠내려 가게 했다. 횃불을 왜군의 주둔지에 던져 솟아오르는 불길 에 우왕좌왕하는 적을 창으로 찌르고 몽둥이로 물리쳤다. 의병이 밀어닥친다는 허위 정보를 보내 출동하는 왜군을 협공해 물리쳤고, 주둔군을 산으로 유인해 바윗돌을 굴려 적군을 쓰러뜨렸다. 상륙하는 적군에게는 좁고 깊은 골짜기 로 길을 열어주었다가 화살로 협공하기도 했다. 수영성의 패배로 정규군은 모두 흩어지고 없었다. 하지만 경상좌 도 수군절도사영이란 군사 체계는 존재했고, 군의 수장인 좌수사도 계속 임명되고 있었다. 좌수사가 임명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25 의용은 임명된 좌수사의 거처까지 찾아가 맞이했고, 도중에 적을 맞 아 싸우기도 했다. 1593년 3월 신 임 좌수사 이수행이 장기(경상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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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포항)에서 군대를 모아올 때 화살을 메고 같이 종군하면 서 바다와 육지에서 적을 물리쳤다. 이 같은 저항은 7년 동 안 계속됐다. 경상좌수영이 울산 개운포에서 동래 해운포(당시 남촌, 현재 수영)로 옮겨온 해가 언제인지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 조선시대 동남해안을 관할 했던 해군함대 사령부에 해당하 는 중요한 군영이라는 점이 무색할 정도로 관리 운영이 허 술했다. ‘설마 전쟁이!’. 좌수영의 이전 시기는 문헌비고에 선조 25년(1492년)이라 기록돼 있을 뿐이다. 선조 25년이 사실이라면 그해 4월13일 임진왜란이 일어났으니 전쟁 중 에 좌수영을 옮겼을 리는 없을 것이다. 그 이전 3개월 사이 에 울산 개운포에서 동래의 수영으로 옮겨온 것으로 추측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군이 쳐들어온 4월에는 좌수영을 이전해오는 중이었거나 이전을 해서 얼마 되지 않아 방위 태세를 제대로 갖춰지 않았을 것이다. 경상좌수영의 그 많 던 선박과 군사들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하지만 늘 국토의 운명은 백성들이 살려 냈다. 묻혀있던 25인 의용의 공적이 드러난 것은 임진왜란이 끝난 11년 뒤 인 1609년(광해군 원년). 동래부사(현재 부산시장) 이안눌 이 지방 백성의 청원에 따라 민간에 전해지던 25명의 행적 을 정리하면서부터다. 이안눌은 자신을 돌보지 않고 굳고 단단한 한마음으로 시종일관 왜적을 토벌하다가 왜적의 총 칼에 죽은 25명의 사적을 모아 ‘정방록(旌榜錄)’에 실었다. 의용들의 집에 ‘의용(義勇)’이라는 두 글자를 쓴 액자(편액)

부산 수영사적공원 담벼락을 걸어가면 만날 수 있는 조선의 민초 수영25의용 토우. 부산대첩기념사업회.

를 걸어 포상했다. 이때 실린 25의용은 김옥계, 이희복, 정인 강, 최한련, 최송엽, 최한손, 최수만, 최막내, 박지수, 최말량, 김팽량, 김달망, 박응복, 김덕봉, 심남, 이실정, 이은춘, 김허 롱, 정수원, 주남금, 박림, 김종수, 신복, 김진옥, 이수이다. 25의용의 애국정신을 평생 살펴온 김종수 동흥산업 대표 는 고생 끝에 2020년 9월 의용의 행적을 살펴볼 수 있는 정 방록을 찾아냈다. 의용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 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수영25의용 정방록을 찾다’라는 제 목의 책도 내놓았다. 동래부 부사가 1608년 각 의용의 가정 에 표창하는 정방록의 내용이 담겨 있다. 김옥계, 최막내 집 등에 보낸 정방록의 내용을 보자. “옛사람이 이르기를 ‘세상 이 잘 다스려질 때는 높은 벼슬을 하다가 세상이 변하면 뱀 이나 돼지, 승냥이나 올빼미가 되는 것이 열에 아홉이다’고 하였다. 하물며 이곳 수영은 멀리 바다 한 귀퉁이에 위치하

수영25의용 중 소규모 유격대원들이 야음을 틈타 정박 중인 왜선을 기습공격하는 장면을 그린 수영유격전투도. 부산대첩기념사업회.

여 지난 임진년 영내의 백성들이 왜적의 수중에 함몰되어 악 160cm, 넓이 60cm의 비석이 중앙에 서고, 그 비석 뒷면에 랄한 위협에 복종하면서 얼룩덜룩한 왜놈의 옷을 입고 알아 는 14행의 비명이 새겨졌다. 비석 양쪽 단에는 의사 25명의 들을 수 없는 왜놈의 말을 하는 것도 참으로 괴이함이었다. 이름을 새긴 비석도 마련했다. 하지만 끝까지 중앙정부의 25인 의용은 이에 비분강개로 종군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왜 공식적인 포상을 받지는 못했다. 적을 토벌하면서 7년전쟁에 굳은 한마음으로 용맹과 절의를

제향은 봄 가을 두 차례 열렸다. 제주는 경상좌도수사가 떨쳐 나라에 몸을 바침으로써 그 공로가 현저하고 뛰어난 충 맡았다. 제사는 해마다 음력 3월과 9월의 정일에 올렸다. 의가 늠름하였으니 ‘거센 바람이 불어서야 억센 풀을 알 수 1894년 갑오경장으로 좌수영이 폐지되자 수영면의 면장이 있다’라고 하는 것은 이를 두고 이름이로다. 이제 널리 공론 제사를 주관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 면장이 부임하자 을 수집하고 실제 업적을 조사해 보니 모든 사람이 같은 말 수영기로회가 맡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민 흔적을 찾아 을 하여 그 빛남이 해나 별 같으므로 명백히 구별하여 표창 단을 쌓고 비를 새기고 사당을 지어 뜻을 기린다. 현재 남아 함으로써 격려하고 권장하는 본보기로 삼으려 한다. 이에 의 있는 유적으로 선열의 자취를 재조명해 그날을 되새기는 용의 두 글자를 새겨 25인의 집 대문 위에 달게 하라. 호역을 일은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1972년 6월 26일 수영25의 면제하고 공적에 따라 상을 내리는 일은 마땅히 순찰사에 보 용단은 부산광역시기념물 제12호로 지정됐다. 1974년 부산 고하여 시행하겠으니 그대들은 잘 알고 그대들의 절의를 더 시가 공사를 펼쳐 제단 전역을 건립했다. 내삼문 1채를 세웠 욱 힘쓰면서 길이 영광을 받을지어라. ” 이후 순조 때 동래부사 오한원(재임 1806~1809)도 의용

다. 한국의 정서를 담은 한식으로 담장 공사도 마쳤다. “싸우면 이겨서 살 것이요, 싸우지 않으면 망하리로다. 나 들의 후손에게 부역의 의무를 면제하고, 글을 지어 포상하 라의 존망이 경각에 있거늘 어찌 삶을 구하여 산야로 달아 거나 장려했다. 1853년(철종4) 경상좌수사 장인식은 지금 날 것인가. 단 한 번의 죽음으로 나라에 보답하리라” 수영성 의 수영공원 자리에 비석을 세우고 의용단이라 이름을 붙 을 찾은 후 돌아오는 길에, 선서바위에 모여 맹세한 수영25 이고, 재실 의용단을 지었다. 의용제인비도 설치했다. 높이 의용단의 결의에 찬 각오가 귓가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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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가장 최전선에 서 있던 ‘뒷것’ 김민기, 우리 시대 또 다른 이순신

어른이 없는 시대 존재만으로 마음에 위로가 된 ‘佳人’ 이슬처럼 살다간 성자 같은 삶 ‘혼불’처럼 타올라

배재한

전 국제신문 사장 이순신 아카데미 1기

‘알기와 존경’으로 이어졌습니다.

‘아침이슬’을 만든 가수이자 서울 대학로 소극장 학전(學田) 을 이끌어온 김민기 대표가 지난 7월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났습 니다. 떠난지 3개월 가까이 된 그가 남긴 노래와 불꽃 같은 삶

따스한 마음으로 위로하고 어루만집니다.

의 기억은 여전히 우리 가슴 속에 혼불처럼 타오르고 있습니다. 1951년생, 향년 73세. 너무 이릅니다. 시대의 아픔을 자기 것 으로 품고, 뒷 것(뒤에서 남 돕는 일을 조용히 하는 사람)을 자 처하며 앞 것을 부지런히 좇느라 몸이 일찍 다 닳아버린 탓입 니까? 그가 스스로 진 많은 짐 가운데 하나도 제대로 덜어주지 못한 우리는, 마냥 미안하기만 합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 리 모두는 고 김민기 대표에게 크게 빚졌습니다. 그의 삶은 존 재만으로도 든든한 기둥이 되고, 마음에 위로가 되었습니다. 우리시대의 또다른 이순신이라 불리기에 충분합니다. 존재만으로 기둥이 되고 위로가 된 사람

필자는 고 김민기 대표와 직접적인 인연은 없습니다. 하지만 누 군가를 직접적으로 만나는 것만이 특별한 인연일 이유는 없을 것 입니다. 세상에 없는 그를 먼발치에서조차 단 한번도 마주친 적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가슴 깊이 그를 기억하고 있지 않습니까? 양희은의 노래로 아침이슬을 직접 들으며 함께 부른 감동

꿈밭극장으로 탈바꿈한 학전 소극장.

은 그와의 직접 인연 못지 않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그의 대표곡인 <상록수>는 결혼식도 제대로 올리지 못하 는 공장 노동자들의 합동결혼식 축가로 만들어 불러준 노래 입니다. 이 노래는 양희은의 음반에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 잎처럼’이란 제목으로 실렸으며, IMF(국제통화기금) 환란을 함께 헤쳐가자는 메시지를 담은 국민 캠페인송이 되기도 했 습니다. <늙은 군인의 노래>는 그가 군대시절 전역을 앞둔 선 임하사의 푸념을 듣고 즉석에서 지어 선물했습니다. 빼어난 노랫말이 일품인 <봉우리>는 1984년 LA올릴픽 때 메달을 따 지 못하고 쓸쓸히 귀국하는 선수들을 위해 작곡했다는 사연

2016년 10월 부산문화회관에서 열린 부산대 개교 70주년 기

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당시만 해도 메달을 딴 선수가 귀국

념 음악회. 초대 가수로 무대에 오른 양희은은 ‘대한 민국 유일

하면 공항에서 무개차를 타고 서울시내를 카퍼레이드 하던

의 산업화와 민주화의 주역’ 부산대 개교를 축하하며 아침이슬

시절이었습니다.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는 경기가 끝나는 대

을 불렀습니다. 객석을 가득 채운 2000여 명의 청중과 함께 아

로 귀국해 쓸쓸히 소속팀이나 집으로 향했는데, 메달을 목에

침이슬을 열창한 그때의 가슴 벅찬 감동은 자연스럽게 김민기

건 선수만 박수갈채를 받을 뿐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노메달 선수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노래를 지은 이가 김민기입니다.

그의 노래 탄생 이유와 배경은 특별합니다. 한 번도 빛나는

우리나라 최초의 싱어송라이터라고 할 수 있는 그는 수많은

인생이었던 적이 없었던 노동자와 평범한 우리 이웃들의 삶을

노래를 지었지만 ‘사랑’이라는 낱말이 들어간 노래는 ‘두리번 거리다’ 단 한곡 뿐입니다. 한 언론인터뷰에서 ‘사랑노래’ ‘연애 노래’가 왜 없으시냐는 물음에 그는 “사랑노래를 만들 여유가 없었다”고 답변했습니다. 엄혹한 시대에 고통받는 시민의 삶 을 어루만지는 것이 우선순위였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지극히 낮은 자세로 뒷것을 자처한 우리시대의 거인

20대 이후 그의 50여 년의 삶을 따라가보면 우리는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성자적 삶을 만나게 됩니다. 그의 노래는 불온한 딱지가 붙어 금지곡이 되었습니다. 그 는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잡혀갔습니다. 말할 수 없는 고문도 당했습니다. 그게 트라우마로 남았을 법도 한데 그의 답변은 성자(聖者)처럼 다가옵니다. 그의 증언을 옮깁니다. “70년대 초반 보안사 취조실. 잡혀 가니까 여러명의 군인들이 각목으로 내리치더라고. 그때 아, 내가 여기서 죽는구나. 그런 느낌을 처음 받았어. 한참 맞다 보니까 의식이 희미해지면서 때리는 놈들 모습이 보이는거 야. 죽는 거, 아픈 거는 감각이 멀어지고, 개네들한테 갑자기

꿈밭극장에 새겨진 김광석 조형물.

미안한 생각이 들더라구. 한없이 미안해지는 게, ‘나 때문에 이들이 죄를 짓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때 그의 나이 스물서너살. 고문으로 죽어가면서 고문한 놈들한테 미안하고 죄송했다는 사람…. 괴물과 싸우면서도 괴물을 닮지 않고, 티없는 소년의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가 이런 성자적 심성이라는 것을 알게 하고도 남습니다. 그는 돈 안되는 일을 고집스레 붙들고 늘어졌습니다. 15 년간 71만 명의 관객을 불러모은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4000회 공연을 끝으로 돌연 중단합니다. 매표수입만 100 억 원을 넘긴 작품입니다. 중단이유는 더 놀랍습니다. “돈만 벌다 보면 돈 안 되는 일을 못할 것 같아서.” 관객수 가 줄어서 그런 게 아니고…. 돈벌이가 되는 지하철 1호선을 중단하고 돈이 안 되는 아동·청소년을 위한 작품을 올렸습니 다. 학전 개관 이후 운영비를 충당하기 위해 공장과 보령 탄 광 노동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세상에 돈 되는 일만 다가 아니다. 돈이 안 돼도 사람이 해야 할 일은 해야 된다. 내 가 아동극을 하려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말합니다. 그가 타계하자 가족들은 일체의 조의금과 조화를 받지 않 겠다고 선언합니다. 대학 후배인 이수만 전 SM 총괄이 빈소 를 찾아 조의금을 받지 않으니 조문객들의 밥값으로 쓰라며 5000만 원을 내놓았지만 유족들은 마음만 받겠다고 정중히 거절합니다. 이슬처럼 솔잎처럼 살다간 김민기 대표는 사표가 없는 시 대, 어른이 없는 시대 상록수보다 더 푸르고, 아침이슬보다 더 맑은 삶으로 우리들 가슴속에 영원히 함께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김민기 대표야말로 나라와 백성을 지극히 사랑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삶에 가까이 가 있는 ‘아름다운 그이’ 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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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탐방후기

“나라사랑과 민족을 아끼는 작은 밀알되었으면”

이순신 해전 전적지 순례를 마치며

서만영

이순신 아카데미 강사과정 1기

우리가 살고 있는 부산은 430여 년 전 임진왜란 당시 조 가 되는 이순신 정신을 배워 체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 선의 관문이며 전략적 요충지였던 곳으로 왜군들이 침략의 는 데 있다. 교두보로 삼아 7년 동안 그들의 지휘부가 주둔했던 지역이 다. 아직도 곳곳에 당시 흔적들이 남아있다. 또한 왜군을 맞 련 피피티를 자료로 활용하여 이순신의 탄생과 청년 시절, 아 23전 23승을 한 조선의 영웅 이순신이 크나큰 승전을 거 임진왜란 전의 준비성, 그리고 전쟁 중의 승리의 요건 등을 둔 부산대첩의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와 같 전달한다. 이동 중에 실시되는 버스 교육은 창밖에 펼쳐지 은 역사적 사실과 부산대첩의 의의를 다시 불러내어 자라 는 경관 등 시시각각의 변화하는 환경적 요인으로 약간 산 나는 청소년들에게 이순신의 4대 정신인 사랑과 정성, 정의 만한 감이 없지는 않으나 대부분 학생들은 깊이 있게 알지 와 자력 정신을 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필요에 따라 부산시교육청에서는 올해 처음 실시 중간중간 질문과 답변 등을 이어가는 선순환적 교육에 긴 한 ‘이순신 해전 전적지 순례’ 사업을 계획하였으며, ㈔부산 장감을 늦추지 않고 강의 내내 잘 따라주는 아이들이 대견 여해재단에서 위탁받아 5월 2일부터 6월 7일까지 관내 중· 하였다. 고등학생 315명을 대상으로 진행하였다.

교육의 목적은 임진년 4대 승첩 중 승리의 씨앗을 뿌린 당시 조선수군이 사용하던 천자포 등 각종 포와 칼, 창, 화 거제 옥포와 제해권을 장악하여 나라를 지킨 원동력이 된 살 등 각종 무기류, 수군의 군복 그리고 관련 책자와 조형물 부산대첩 승전지 탐방을 통해 이순신의 리더십과 그 뿌리 들이 잘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야외전시장에는 실물모형의

거북선, 판옥선은 살아있는 현장교육이 되었다. 이어 이순

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에서 당시 감고였던 이등과 서건이 조선을 쳐들어오는 왜선

오는 것을 보니 현장교육의 효과를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교육은 버스가 출발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이순신 관

못했던 이순신 정신의 배워야 할 사례 등을 귀담아듣는다.

첫 번째, 거제도 옥포대첩기념공원이다. 기념관에는 전쟁

부산중 학생들이 서만영 강사의 인솔로 옥포대첩기념공원을 탐방했다.

세 번째는 부산항 워터프런트와 용두산공원이다. 부산항 신의 사당인 효충사와 거충사에서는 애국충신들을 흠모하 워터프런트는 부산국제터미널 주변에 조성된 곳으로 부산 는 묵념을 올렸다. 솔밭길을 따라 이어진 옥포루에서는 푸 대첩의 현장이기도 하다. 임진년 8월 24일 여수를 출발한 른 옥포만을 바라보며 조선의 첫 승리 옥포해전을 절절하 조선수군이 7일간 긴 항해 끝인 9월 1일 왜군의 본거지를 게 들려주었다. 이를 귀담아 듣고 감동하며 환호하는 학생 일자진을 형성해 파죽지세로 왜선 100여 척을 쳐부수는 호쾌한 승첩 강의와 용두산공원의 이순신 동상 참배를 끝 으로 오후 4시경 탐방을 마무리하였다. 이곳에서 “이순신 두 번째, 가덕도 천성진성이다. 지금 성은 거의 무너지고 장군 만세”를 부르는 학생들의 우렁찬 목소리에서 이순신 100여 미터만 거칠게 쌓아져 남아있다. 당시 조선군의 최전방 장군에 대한 존경심과 자부심이 넘쳐나고 있다는 것을 보 이며 이순신의 부산대첩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이곳 연대봉 니 가슴이 뿌듯하였다.

을 처음 발견하고 상황을 전파한 역사적인 사실들과 아울러 앞으로도 현장감 있고 생동감이 있는 전적지 탐방의 기 2036년까지 복원계획도 이야기했다. 아직도 복원되지 못한 회가 더욱 확대되면 좋겠다. 많은 학생들이 이순신정신을 아쉬움에 안타까워하는 한숨소리가 학생들 사이에서 새어나 배우고 나라사랑과 민족을 아끼는 작은 밀알이 되기를 간 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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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키움교실 후기

이순신 인성 · 리더십키움교실 강의를 마치며

초롱초롱한 눈빛에서 미래를 보다

첫 교육은 6월 17일 동수영중학교 1학년 24명을 대상으로 시작 가지의 일화와 함께 이순신 정신을 설명하고 이순신 장군의 업 됐다. 처음 교실에 들어섰을 때 걱정부터 앞섰다. 강연하는 것에 적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들려줬다. 특히 일본 해군이 러시아 발 두려움이 없는 편이지만 초롱초롱한 학생들의 눈빛을 보니 긴장 틱함대와의 일전에 앞서 이순신 장군에게 제를 올렸다는 이야기 도 됐다. 아마도 강의를 통해 학생들에게 이순신 정신의 씨앗을 제 를 했다. 우리가 잊었던 이순신 정신으로 우리가 다시 일본의 침 대로 뿌리고 싶은 욕심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렇게 시작된 이순신 탈을 받게 되는 역사의 아이러니함을 강조했다. 이것이 학생들 인성교육은 7월까지 5개 중·고등학교 학급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교육은 총 2차시로 진행됐다. 1차시에는 이순신 장군에 대한

에게 이순신 정신을 기리고 배워야 하는 교훈이 되었으면 했다. 2차시 교육에서는 사랑, 정의, 자력, 정성의 네 가지 이순신 정 이론 교육, 2차시에서는 각자 배운 내용을 가지고 토론하는 시간 신을 가지고 조별 토론 시간과 발표로 진행했다. 3~4명의 학생 을 가졌다. 요즘 학생들은 쇼츠(짧은 동영상)와 SNS에 익숙하여 모둠을 만들고 네 가지 가치 중 하나를 선택하여 이순신 정신을 잠시도 지루한 것을 참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때문에 학교와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 방안을 토론하고 발표했다. 2차 1차시 이론 교육은 이순신에 대한 짧은 퀴즈로 시작했다. 예상과 시 토론과 발표 내용은 학생들이 얼마나 교육을 충실히 이해했 다르게 학생들이 쉬운 퀴즈도 맞추지를 못했다. 틀리더라도 적 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네 가지 가치에 대해 얘기하려면 깊 극적으로 호응하며 답을 외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이순신 장 은 고민없인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진지하게 토론을 군은 학생들이 모두 알고 있지만 잘 알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위 펼쳤다. 토론 후 다양한 내용이 발표됐다. 놀라웠던 점은 내가 만 인이 아닐까 싶다. 퀴즈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장군의 유년 시절 난 대부분의 학생들은 모두 발표력이 뛰어났다는 점이다. 생각 부터 전라좌수사가 되기까지의 연대기를 설명했디. 옥포해전, 당 한 것을 논리적으로 거침없이 쏟아냈다. 수업이 끝나고 어떤 학 포해전, 한산도 대첩의 역사적 사실과 승리의 의의도 알렸다. 그 생은 청년 이순신 아카데미 과정에 대해 묻기도 했고 어떤 학생 리고 부산시민으로서 자부심을 가질 만한 부산대첩과 부산시민 은 독후감 대회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보람이 컸다. 의 날의 의미도 전파했다. 이러한 값진 이순신 장군의 업적이 있

나의 자평이다. 전반적으로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이 좋 기 전에 이순신이 겪었던 세 번의 파직과 두 번의 백의종군 일화 았다. 그래선지 강의를 경청해준 학생들 한명 한명이 고맙고 기 를 들려줬다. 이순신의 빛나는 업적보다도 순탄치 않았던 이순 특했다. 우리의 이순신 인성교육에 대한 학교의 만족도가 높다 신 장군의 생애를 조명하여 학생들 스스로 의문을 갖게 하고 싶 는 이야기를 사무국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강의 준비시간이 많 었다. 자연스레 이순신 정신의 이야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몇 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행스러웠다. 본격적으로 교육을 시작하기 불과 한 달의 짧은 기간 동안 표준강의안을 마련했다. 여해재단 사무국과 이순신 아카데미 강사, 교육위원회 분들이 힘을 합쳐 이순신 정신을 발휘한 노력의 결실이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조금 더 교육 내용이 정교해져야 한 다. 학년에 따라 맞춤형 교육을 위해 표준강의안의 업그레이드 와 2차시 토론수업에서 학생들이 좀 더 참여할 수 있는 토론주제 와 토론방식을 고민해보겠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더욱 진화될 이순신 인성교육이 기대된다.

인성키움교실 동주여고 수업현장

특집 - 청년이순신 아카데미 리뷰

이종배

이순신 아카데미 4기

최재국

청년 이순신 아카데미 13기 수료생 대표

부산대첩 Vol.10 _ 가을 부산대첩 Vol.10 _ 가을

“밝고 건강한 사회를 위한 중요한 발걸음”

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요즘 세상은 경제적 풍요에 걸맞은 정 신적 풍요를 가졌는가, 오히려 현대의 우리는 비워내는 삶을 살 아야 하지 않는가, 사랑, 정성, 정의, 자력은 누구를 향한 것인 가’라며 물질적 풍요로움만 향해가는 이 시대를 비판하며 이순 신 정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것이 나로부터, 사회로 건강하 게 뻗어 나갈 수 있도록 지도해주었다.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배우며 우리 사회의 근본을 바로 세 ㈔부산여해재단의 귀한 자리에서 ‘청년 이순신 아카데미’에 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자신보다 공 대해 말씀드릴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 이 아카데미는 이순신 동체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되어 국가사회의 위기에 적절히 정신을 선양하고 교육함으로써 사회의 근본을 바로 세워 밝고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건강한 사회를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사랑과 정 청년 이순신 아카데미를 수료한 후, 많은 청년들이 이순신 성, 정의와 자력에 뿌리를 둔 이순신 정신은 우리 사회가 직면 장군의 정신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사랑과 정성, 정의와 자 한 위기를 극복하는 데 중요한 가치를 제공한다. 후손들에게 건 력에 뿌리를 둔 이순신 정신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 얼마나 중 강한 사회를 물려주고자 하는 것이 ‘청년 이순신 아카데미’의 요한지를 깨달았다. 수료생들은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배우 궁극적인 교육의 목표라 생각한다.

며 역사 교과서에서만 배운 인물이 나의 멘토가 될지 몰랐다” 제13기 청년 이순신 아카데미는 4월부터 6월까지 주 1회, 총 고 입을 모았다. 배움의 위대함과 이순신이란 인물의 재발견에 9번의 교실 수업과 한 번의 한산도 현장 답사로 이루어졌다. 교 다들 벅찬 기분으로 수료식을 마쳤다. 아카데미의 교육이 성공 실 수업에서는 김종대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님의 저서인 『이순 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신, 하나가 되어 죽을힘을 다해 싸웠습니다』를 교재로 수업하 였다. 이 책은 이순신 정신의 중요성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청년 이순신 아카데미 수료생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이순신 정 신을 실천하며 활동하고 있다. 많은 수료생들이 자신의 직장과 사 (사)부산대첩기념사업회 명예이사장인 김종대 저자는 “이순 회, 학교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서로 신 정신의 뿌리는 사랑과 정성 그리고 정의와 자력이다. 이 뿌 네트워킹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순신 정신을 전파해나가겠다. 리에서 발현되는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정신만으로도 우리 모 두 나보다 우리를 소중히 아는 사람이 되어 앞으로 다가올 어 우리 사회 전반에 이순신 정신이 널리 퍼지도록 노력할 것이 떠한 국가사회의 위기에도 적절히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다. ㈔부산여해재단과 함께하는 ‘청년 이순신 아카데미’는 우 시급한 일을 지금 이순신 동지들이 아니하고 누구에게 미룰 리 사회의 근본을 바로 세우고, 밝고 건강한 사회를 이루기 위 것인가”라며 이순신 정신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 중요한 발걸음이다. 이순신의 정신 교육을 통해 더 많은 청 강의 중 청년 이순신 아카데미 학교장 남송우 교수님은 우리 년들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27

15쪽

특집 - 8기 아카데미 리뷰

공직 끝자락에서 운명같이 님을 만나다!

8기 탐방현장.

신화영

8기 이순신 아카데미 강사과정 교육생

2024. 8. 31(토) 새벽에 잠을 깼다. 이날이 오다니! 교직신화 정 앞에서 정성을 담아 준비한 꽃다발을 바치면서, 다 내려놓 (직장에서의 별명)의 정년 퇴직일이자 제8기 이순신 아카데 으시고 백의종군하셨던 장군의 정신을 이어받아 퇴직과 더불 미 강사과정 여수 · 남해 탐방의 날이 밝았다. 39년간 교직에 몸담아온 나의 인생 2막을 위한 올초새배 처음 육지로 오른 이락사(李落祠)에서 박정희 대통령 친필로 움으로 선택한 이순신 아카데미, 기온 32도, 체감온도 36도의 현액한 대성운해(大星隕海, 큰 별이 바다에 잠겼다)와 “싸움이 더위 속에서 김종대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 · ㈔부산대첩기념 급하니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유언비를 마주하니 죽음 앞 사업회 명예 이사장, 여해재단 이용흠 이사장 내외 및 재단 관 에서도 흔들림없는 구국충정에 다시 한번 고개숙여졌다. 장군 련자와 18명의 8기생들은 탐방버스에 몸을 실었다. 처음 도 의 업적에 견주어 볼때, 여수·남해 유적지를 하루의 짧은 시간 착한 진남관(鎭南館, 국보 제304호)은 전라좌수영 객사로 임 에 보는 것과 소감문을 A4 1매에 녹여내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 진·정유재란을 승리로 이끈 조선 수군의 중심기지로 현존하 지만 김종대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께서 말씀하신 임진왜란의 는 지방관아 중 최고의 목조건물로 현재 보수정비 중이라 그 3대 의문, 통제영이 여수인가 통영인가?, 거북선이 2척일까 3 모습을 다 볼 수 없었다. 또한 우리나라 최고의 통제이공수군 척일까?, 2층인가 3층인가? 라는 후학들의 궁금증은 결코 중요 대첩비(統制李公 水軍大捷碑, 보물 제571호)를 더위로 가보지 하지 않다. “장군의 우국충정과 애민사상, 즉 이순신 정신을 오 못해 민망( )하여 다시 오리라 다짐하며 아쉬운 발길을 돌 늘에 이어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 가슴에 와닿았다. 렸다. 여수 여해재단의 환대를 받으며 본디 바다였으나 매립 하여 이순신 광장으로 조성된 곳에 위치한 전라좌수영 거북선 쉽고, 체득이 되어야 실행할 수 있다. 사람은 육신과 정신으 홍보관으로 갔다. 임진왜란 때 실존 거북선 숫자가 2척이냐, 3 로 구성되었기에 육신은 죽으면 그만이지만 정신은 불멸하 척이냐?라는 의문은 뒤로 하고 이순신장군이 전쟁 전날 완성 다. 장군의 육신은 관음포 앞바다에서 소멸되었지만 오늘 했다는 이곳 거북선은 1층 생활관과 2층 전함으로 당시의 실물 을 사는 우리가 이순신 정신을 이어받아 작은 이순신으로 태 크기로 제작된 거북선이라 그 안에 있는 내가 마치 임진년의 어나는 것이 우리들의 몫이다. 그 중심에 여해재단이 있다. I 격군(格軍)이 된 기분이었다. 묘도(猫島)는 군선을 감추기에 알 Love&You Love&We Love 이순신, 이순신 정신을 이어받아 맞은 지리적 여건으로 조명연합군의 주둔지이자 장군의 순국 작은 이순신이 되는 그날을 위해 다함께 Fighting~~~.

이런생각

새 지폐 모델로 충무공 이순신 넣자

5만원권 발행 15년 흘러 새 지폐 발행 검토 필요 10만원권 발행 땐 국민적 추앙 충무공 가장 적격

지이기도 하다. 장군께서 정유재란 말기인 1598년 9월 20일부 터 11월 18일까지 1, 2차에 걸쳐 27일간 머물렀으며, 11월 18일 저녁 이곳에서 마지막 출정을 고하고, 11월 19일 새벽 관음포 (노량)로 도주하는 왜적을 쫓던 중 적탄에 맞아 순국하였다. 이

배재한

후 충렬사로 유해가 안치되었다가 아산으로 이장되었으며, 현

전 국제신문 사장 이순신 아카데미 1기

재 충렬사에는 가묘(假墓)와 사당만 있었다. 충렬사의 장군 영

어 작은 이순신으로 재탄생하겠노라 다짐했다. 장군의 유해가

사람은 대상을 가까이 접할 때 자기화(自己化)와 체득이

과 미국의 예에서 보듯이 화폐 인물은 국가의 정체성과 지향 점이 담겨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화폐는 어떤 모습인가. 현재 사용 하고 있는 지폐 4종(1천원, 5천원, 1만원, 5만원)은 2006년부터 2009년 사이 교체되거나 새로 발행된 것이다. 15년 이상 세월 이 흘렀다. 달러나 유로는 다르다. 두 화폐는 마지막으로 지폐 를 교체한 시기가 상대적으로 최근인 2013년 이후 이뤄졌다. 5만원권이 처음 발행된지가 15년이 흘렀다. 새로운 화폐가 발행된다면 우리는 어떤 시대정신을 화폐에 담아야할까. 더 정확히 말하면 어떤 인물이 새 화폐의 모델로 가장 적합할까? 새 화폐의 인물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어야 한다. 충무공의 지극한 나라사랑과 유비무환의 정신은 대한민국 5천년 역사 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아우러는 ‘창조와 혁신’의 아이 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우리 국민 남녀노소 모두 마음으로 이웃 나라 일본이 지난 7월 3일 20여년 만에 지폐 도안을 바 추앙하는 역사적 인물로 충무공 만한 분을 찾기 어렵다. 꾸고 새 화폐 유통에 나섰다. 현금 사용이 많은 나라인 만큼 사즉생의 정신과 혁신적 리더십으로 이루어낸 그의 업적은 화폐 유통으로 기대되는 경제효과는 우리 돈으로 14조 원에 국난 극복을 넘어 전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승리로 달한다는 보도다. 최고액권인 1만엔 지폐에는 일본 메이지 시 평가된다. 광화문 광장에 우뚝 서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충무 대 경제관료이자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시부사 공 이순신 장군이야말로 10만원권 지폐를 새로 만든다면 그 와 에이치’ 초상이 들어갔다. 기존 1만엔권에는 1984년부터 메 에 걸맞은 상징이다. 그의 모습이 100원짜리 동전에 새겨져 이지 유신 시기 계몽운동가 후쿠자와 유키치가 들어갔는데, 있지만, 100원짜리는 요즘 구경하기 쉽지 않다. 우리역사의 이번에 시부사와 에이치로 교체됐다.

단 한 분 뿐인 성웅을 100원짜리 동전에 가둬놓는 것은 부끄 일본이 새로운 화폐를 내놓자 한국도 화폐 인물 교체 또는 러운 일이다. 신권 화폐 발행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우리

참여정부 말기 5만원권 발행논의를 시작할 때 10만원권 발 나라는 1973년 1만원권 지폐의 첫 발행 이후 36년만인 2009년 행도 함께 진행됐다. 당시 화폐에 여성이 없어 5만원권 모델은 6월 23일 5만원권을 발행했다. 5만원권 인물은 신사임당이다. 여성으로 하는 것으로 먼저 정했다. 여성계 등의 의견을 들어 원화 최초의 여성 모델 지폐다. 5천원권 지폐에 사용된 율곡 5만원권에 신사임당을 넣기로 확정했다. 그러나 10만원권 발 이이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혈연관계의 인물이 화 행은 예기치 않은 암초를 만났다. 신용카드 등 전자화폐 시대 폐에 오르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이다.

에 굳이 10만원이라는 고액권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 10만원 화폐에는 한 국가의 정체성과 사회문화적 메시지가 담긴 권이 비자금 용도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등등의 이유로 다. 우리가 해외여행을 가서 접하는 지폐에 담긴 이미지를 통 10만원권 발행 계획은 보류돼 오늘에 이르렀다. 이명박 정부 해 그 나라의 정체성과 역사를 엿볼 수 있다. 오늘날 일본 경 시절 석연치 않은 이유로 중단된 10만원권 발행도 적극 검토 제의 초석을 다졌다고 볼 수 있는 시부사와는 ‘새로운 자본주 할 필요가 있다. 의’를 실현하겠다는 현대 일본 사회의 시대정신을 대표한다

최근 새로운 화폐 발행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만큼 10만원 고 볼 수 있다. 미국 지폐 인물의 경우 1달러는 초대 대통령 조 권 지폐 발행 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화폐에 담아야 한다. 지 워싱턴, 10달러는 초대 재무부 장관 할렉산더 해밀턴, 100 우리 역사에 나라의 정체성과 비전을 제시한 인물로 충무공 달러는 미국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벤자민 프랭클린이다. 일본 은 가장 앞자리에 우뚝 서 있다.

16쪽

시의회 정책제언 Book - 이 한권의 책

다시, 역사의 쓸모

앞서 지적한 대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렌지 따는 일도 정성껏 하면 나라를 위하는 빠르게 변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마치 어지 일이었던 셈이다. 러울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서 살아

저자는 이 일화를 통해 역사를 공부할수록 남으려면, 그 어느 때보다 삶의 기준과 중심 삶이 자신의 노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을 잡아야 한다. 한두 달만 지나도 낡은 것이 는 걸 깨닫는다고 한다. 지금 이 시대를 만들 되어버리는 정보들 대신 수백 년의 시간이 기 위해 삶과 재산을 바친 이들이 있다는 사 검증한 역사의 통찰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실을 역사가 말해주기 때문이다. 자신의 하루 오랜만에 참석한 모임에서 각자의 근황에 책은 역사 속 인물의 이야기를 현대인의 를 정성껏 보내려고 노력하게 되고, 그 시도 대한 이야기를 전하다 우연히 부산대첩기 고민과 엮어 한 편의 이야기로 완성한다. 나 가 모여 세상을 바꾸게 된다고 말한다. 념사업회와 이순신 아카데미에 대한 소식을 라를 일본에 빼앗긴 뒤 조선의 선비로서 양 역사를 통해 입증된 소중한 가치는 현재 전하게 됐다. 대부분 의미 있는 활동을 한다 심을 지키는 선택을 내린 매천 황현의 이야 의 삶을 환기한다. 아버지가 죽는 비극을 겪 고 격려해 주었지만 참석자 한 명이 심드렁 기를 통해 혼란한 세상에서 나의 존엄을 지 었음에도 정조가 연산군처럼 폭군이 되지 한 표정으로 “그걸 왜 하냐”고 묻는다. 인공 키며 사는 법을 생각하게 만든다. 이완용과 않고 성군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세상을 선 지능(AI)의 진화가 놀라울 정도로 빠르고 심 윤동주가 다닌 학교의 교육 목표를 비교하 한 마음으로 보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이 있 지어 우주여행도 갈 수 있는 이 시대에 과거 며 우리나라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함 었기 때문이다. 로의 여행보단 미래에 대한 대비가 더 필요 께 고민한다. 한 정치인의 말실수로 무너졌 오늘날 수많은 가치관이 충돌하고 다른 한 것이 맞다는 말도 덧붙인다. 다고 알려진 베를린장벽의 붕괴 과정을 살 생각을 가졌다고 혐오라는 말을 서슴지 않 그 사람과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 펴보며 평범한 사람들이 공통으로 갖는 시 고 내뱉는다. 저마다 다른 답을 외치는 세상 을지도 모른다. 역사 아카데미는 무료로 운 대정신의 힘을 깨닫게 한다. 에서 선택에 대한 무게는 더 무거워진다. 선 영해도 수강생을 모집하는 게 쉽지 않지만, 역사 지식, 인문학적 통찰, 삶에 관한 조언 택에 후회를 남기지 않고 싶은 당신을 위해 AI와 혁신에 관한 세미나는 인기가 많은 것 이 담긴 20가지 이야기 중 개인적으로 독립 수백 년의 시간을 건너온 지혜로운 생각들 도 비슷한 이유일 것도 같다. 운동가 안창호의 일화가 무척 인상적이다. 을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다. 대한민국 대표 역사 커뮤니케이터로 불 안창호는 오렌지 재배로 유명한 미국 캘 이순신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도, 부산대 리는 최태성이 마침 이 질문에 대한 명쾌한 리포니아에서 직업 소개소를 운영한 적이 첩을 알아야 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저 답을 가지고 왔다. 역사 베스트셀러, 올해의 있다. 한인 이주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구하 자 최태성은 책의 첫 페이지에 “시간이 지나 책으로 선정될 정도로 화제가 된 그의 저서 는 데 어려움을 겪자 직접 농장주들과 협상 도 변하지 않을 가치를 찾아서”라고 직접 글 <역사의 쓸모>가 5년 만에 앞의 책에서 한 해 일자리를 알선해 주었다. 을 써서 책을 보내왔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 걸음 더 나아가 <다시, 역사의 쓸모>라는 후 안창호는 노동자들과 함께 오렌지를 따며 를 넘기며 그 가치가 뭔지 찾은 것 같다. 속편으로 돌아왔다. 700만 명의 가슴을 울린 “오렌지 하나를 따더라도 정성껏 땁시다. 그 명강의의 주인공답게 최태성은 수백 년 전 렇게 하면 낙과가 줄 것이고, 낙과가 줄면 한 일에 생명을 불어넣고 현대에서 유효한 의 국인에 대한 신뢰가 쌓여 취업도 수월해질 글_김효정 미를 찾아 친절하게 설명한다. 역사를 단순 것이고 언젠가 한국이 독립을 호소할 때 미 부산일보 부국장 히 지식 습득이 아니라 삶과 세상을 탐구하 국인이 한국인을 조금 더 믿고 신뢰할 것이 편집위원 는 도구로서 활용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안창호에겐 한낱 오

다시, 역사의 쓸모

최태성 지음

편집 후기

벌써 가을호 발간을 앞두고 보니 쏜살같이 흐르는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게 됩니다. 이렇게 또 한 해가 다 지나가나 봅니다. … 나라는 갈팡질팡 어지러운데 충신으로 나설 이 그 누구인고 서울을 떠난 것은 큰 계획이요 회복은 그대들께 달려 있나니 국경의 달 아래서 슬프게 울고 압록강 강바람에 아픈 이 가슴 신하들아 오늘을 겪고 나서도 그래도 동인 서인 싸우려느냐

선조가 임진년 6월 의주에 이르러 쓴 오언율시입니다. 한 여름이 지난 9월에도 섭씨 30도를 웃도는 열대야 속 팍팍한 살림살이에 무더위마저 괴롭히니 서민들은 죽을 맛인데 정치권의 싸움은 바람 잘 날 없으니 수 백년 전 암울했던 조선의 처지를 한탄하며 시를 쓴 선조의 시가 오버랩 됩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무슨 일이든 시작하면 절반은 이루게 마련이듯 우리가 야심차게 결의하고 시작한 부산대첩기념사업회 일들을 돌아보면 소기의 성과들이 참 많았습니다. 이순신대로 도로명 확정에 이어 이번 부산시민의 날 기념식 또한 부산대첩일 기념식과 함께 개최된다하니 이 또한 큰 진전이자 성과가 아닐는지요. 앞으로 부산대첩기념공원조성과 기념관 건립 등 기념비적 사업들도 하나하나 추진되고 현실화되기를 소망합니다. <희>

공지

(사)부산여해재단과 국제신문이 공동 기획해 2023년 4월부터 2024년 8월까지 총 69회에 걸쳐 「의역 난중 일기 - 이순신 깊이 읽기」를 게재한 내용이 책으로 출간된다. (사)부산여해재단과 (사)부 산대첩기념사업회 명예 이사장인 김종대 전 헌 법재판소 재판관이 쓴 '의역 난중일기'는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고 이해하기 쉽게 원문의 단어나 구절에 얽매이지 않고 전체의 뜻을 살리어 지면에 게재한 내용이다. 1년 4개월 만에 연재를 마 치고 약간의 수정과 보완을 거쳐 한권의 책으로 출판될 예정이다.

제10호 편집위원회(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 유순희, 하종숙, 유재기, 김효정, 김태현, 배재한 편집위원, 방영진 사업팀장

㈔부산대첩기념사업회는

부산대첩을 시민 누구나 자랑스러워할 역사적 유산으로 복원하고 이순신 정신을 알리고 실천하여, 부산을 품격 있고 건강한 문화도시로 만드는 일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부산시민의 결사항전·호국정신을 재조명합니다. 역사·문화적 유산으로 복원합니다. 부산대첩을 자랑스러운

이순신 장군의 시대정신과 리더십을 재조명하고 시민교육으로 활성화합니다.

부산대첩기념공원과 기념관을 조성합니다.

부산대첩기념식(부산시민의날) 및 축제 부산대첩 기념세미나(심포지엄), 이순신 아카데미 등

㈔부산대첩기념사업회의 주인이 되어주십시오

㈔부산대첩기념사업회는 회원 및 후원인들의 참여와 회비·후원금을 기반으로 운영됩니다.

정기후원 월납입액 □ 1천원 □ 2천원 □ 3천원 □ 5천원 □ 1만원 □ 기타

※ ARS 1588-0559 전화를 받아 본인 인증 절차를 거쳐 주시기 바랍니다.

「의역 난중일기」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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