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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첩 제7호(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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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부산세계박람회 특집 Busan is Ready !

04p

06p 물질보다 정신 … 실천하는 사회분위기 어른들의 “몫” 신기술 친환경 정신깃든 역대급 엑스포 이병찬 (사)부산대첩기념사업회 고문, 선일회계법인 회장 2030부산세계박람회 실사단 부산방문 특집

제 7

2023 Spring

Vol. 07

호

16p 사랑과 정성은 기업의 능률도 향상 백치중 백산테크프렌 대표이사 아카데미 강사 과정 2기

www.busangrandvic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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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호

2023 Vol.07

#표지이야기

백서진 작가의 부채에 수묵화, 바둑을 두고 있는 이순신 장군. 백작가는 중국미술대학 을 박사졸업하고 국내외에서 개인전 및 기 획전을 44회차 이상 연 바 있다. G20정상 회의가 열린 중국 항주 국제박람중심북진 대주점에 3점의 작품이 소장돼있는 촉망 받는 작가다.

발행인 편지 탄신일에 즈음한 이순신 정신을 새기며 …

이영활 ㈔부산대첩기념사업회 이사장

대담 물질보다 정신 … 실천하는 사회분위기 어른들의 “몫”

이병찬 (사)부산대첩기념사업회 고문, 선일회계법인 회장

2030부산세계박람회 특집 신기술 친환경 정신깃든 역대급 엑스포

부산대첩이야기 ⑦ 부산대첩 정신

김종대 ㈔부산대첩기념사업회 명예 이사장

임진왜란과 역사속 인물 ③ 목숨 바쳐 항거한 흑의장군 정발

부산도시공사 감사

김태현 ㈔부산대첩기념사업회 이사

이순신 정신을 실천하는 사람들 사랑과 정성은 기업의 능률도 향상

백치중 백산테크프렌 대표이사 아카데미 강사과정 2기

발행인 이영활 편집인 유순희 발행처 ㈔부산대첩기념사업회 발행일 2023년 4월 28일 디자인·제작 ㈜프린테크 (051)301-3113

기고 임진왜란시 포로로 간 여도공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 소장

기획연재 난중일기 속 꿈(夢)의 예지력

배재한 국제신문 사장

이색맛집 이순신 해전 모티브 광안리 유명 국수집 금신전선 상유십이

김성경 기자

BOOK - 이 한권의 책 오만데 삼총사의 대모험2

김효정 부산일보 부국장

사업회 소식 부산대첩기념사업회 NEWS

부산대첩기념사업회와 함께하는 사람들

편집후기 회원가입 안내

편집위원 유순희, 김태현, 배재한, 김효정, 하종숙, 한규열 구독안내 (051)923-1000 등록일 2020. 04. 14 등록번호 연제, 사 00004 홈페이지 www.busangrandvictory.com 주소 부산 연제구 중앙대로 1073 부산은행 금융센터 4층

‘부산대첩’은 ㈔부산대첩기념사업회가 만드는 문화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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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편지

인사말

탄신일에 즈음한 이순신 정신을 새기며 …

4월 28일은 이순신이 태어난지 478주년이 상에 내놓은 그의 저서‘이순신, 하나가 되 되는 날입니다. 나라가 위기상황에 처했을 어 죽을힘을 다해 싸웠습니다.’에서 재판 때마다 이순신 장군은 시대의 격전지로 불려 관 김 종대는 이순신 정신의 4대 가치를 사 나오길 거듭했는데 그도 그럴것이 임진왜란 랑· 정성·정의·자력으로 규정합니다. 당시 이순신이 보여준 리더십과 백성을 보살 피는 애민정신, 나아가 전장 장수로서의 탁

무엇보다 사랑을 가장 앞세워 강조한 것 월한 전략 등은 그를 성웅 이순신으로 깊이 은 이순신의 삶이 근본적으로는 사랑에 토 각인시키기에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대를 두고 있었음을 알리기 위함이었을 것 입니다. 혈연에 기반을 둔 사랑이, 자신이 400여년 전 이순신은 어떤 지도자였을까 휘하에 둔 병졸과 백성에 대한 사랑으로, 요? 사료에 의하면 공인으로서 그는 어느 하 나아가 나라와 국토에 대한 사랑으로까지 나 흐트러짐이 없었습니다. 당시 위정자들은 확장돼 나가는 과정은 이순신이 어떤 지도 당파싸움으로 나라가 분열된 상황에서 앞다 자였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투어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백성을 나몰 라라 했습니다.

이영활

이사장 ㈔부산대첩기념사업회

이렇게 시작된 사랑은 정성스러운 삶의 자세로 스스로의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하 전쟁이 발발한 급박한 상황에서도 어느 것 고 결국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정의로움 하나 달라지지 않았고, 급기야 국왕이 백성 으로 귀결되어 그의 전 생애에 스며들고 있 과 궁을 버리고 도망가기에 이르렀습니다. 습니다. 이순신은 이 모든 악조건을 딛고 일어서며 국왕과 사대부 위정자에 대한 원망도, 자신

인간으로서나 지도자로서나 최고의 삶을 의 암담한 처지를 한탄하지도 않았습니다. 살다 간 이순신을 떠올리면서 어쩔 수 없이 그는 오로지 자신의 신념대로 선공후사의 자 드는 생각 한 가지, 우리는 과연 삶의 순간 세로 나라와 백성을 지켜냅니다. 그가 명량 순간을 이순신처럼 살 수 있을까요 하는 것 해전에 앞서 올린 장계에 나오는 말, 필사즉 입니다. 장군의 이토록 초월적인 생사관을 생(必死卽生) 필생즉사(必生卽死)는 오늘날 본적이 없습니다. 우리의 가슴에 새겨진 금언이 됐습니다.

삶과 죽음에 대해 고매한 사유를 제시한 철학자는 많지만 장군처럼 자신의 삶과 죽 최근 평생 이순신 연구에 바치며 그의 삶 음을 철학의 반열에 올린 이는 역사에 거의 을 따르고자 했던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이 5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순신 탄신일에 번의 개정을 통해 새로이 이순신 평전을 세 즈음하여 마음에 깊이 새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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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물질보다 정신 … 실천하는 사회분위기 어른들의 “몫”

이병찬

(사)부산대첩기념사업회 고문

“생전 논어를 탐독하시고 가르침대로 실천해오신 선친 의 영향으로 왠만한 논어 글귀는 입에 익숙하다. 이순신 장 군 또한 평소 논어공부를 많이 한 것으로 안다. 난중일기를 보면 이순신 장군이 평생 일관되게 실천해온 4대 내면의 가 치, 즉 이순신 정신의 뿌리는 바로 논어사상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논어의 핵심사상도 충효사상 을 바탕에 두고 있다.”

선일회계법인 회장 이병찬 (사)부산대첩기념사업회 고문 은 “선친께서는 ‘이신교자종以身敎者從 이언교자송以言敎 者訟’을 새기며 평소 ‘행동으로 가르치는 자는 따르고, 말로 써 가르치는 사람은 쟁송이 생긴다’는 논어의 말씀대로 자 식들에게 실천으로 가르침을 주셨다.”며 이순신 공부를 하 면서 더욱 친밀감을 느끼게 됐다고 말한다.

이 고문은 이순신아카데미강사 1기 과정을 수료했다. 이 후 부산여해재단 법인이 설립되면서 초기 감사를 맡아 출 범이후 기반을 다지는데 기여를 했으며, 사단법인 부산대첩 기념사업회 감사를 거쳐 현재 고문을 맡고 있는 이순신 지 도자다. 이 고문이 이순신 교육 및 여해재단 등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평소 존경해온 인생 멘토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과의 인연 때문이다. 김 전 헌법 재판관과는 지인을 통해 30여년 교우를 나눠온 인생 선배이자 멘토로 청목회 단체에서 시 동을 건 이순신 지도자 교육출범에 기여한 초창기 멤버다.

MZ세대 멀리 내다보고 은근과 끈기로 개척하길 이순신 정신의 뿌리는 논어의 충효사상도 한 몫해

“선친은 왜정 때 대구사범 학교를 다니셨는데 항일학생 운동을 하 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년6개월 대전 형무소 에서 옥고를 치르고 죽음직전에 병보석으로 나와 해방을 맞 이했다. 이후 5 · 16혁명 당시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육군형무 소로 끌려가 1년 6개월의 옥고를 치른 독립유공자 여암 이 태길 선생이다. 이규정, 남송우 교수가 공동집필한 책, ‘여암 이태길 선생의 삶과 정신’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돌아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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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친은 평생 나라걱정과 충효사상에 충만했던 분으로 기 억된다.” 그런 선친을 혼내거나 역정 한번 내보신 적 없는 조부님 이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존경스럽다는 이 고문은 “조부께 서 5대 독자인 아버지를 대구사범에 입학시켰던 것은 당시 사범대생들은 징용을 면했기에 자식에 대한 사랑이 앞서 멀리 경남 함안에서 유학을 보내셨겠지만, 한편으로는 대구 사범 졸업 후 교편을 잡아 부모와 나라에 기여하는 사람을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며 그런 귀한 아들이 항일운동 과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니 속이 탈만도 한데 단 한 번도 나 무라신 적이 없었다고. 오히려 동네 사람들이, 자식을 어려운 환경에서도 힘 들게 공부를 시켜놓고 일흔이 넘도록 지게지고 나무하 러 다니는 조부님을 뭐라 했지만, 돌아가실 때까지 원망 이나 질책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이고문은 말한다. 그는 “조부께서는 자식이기도 하지만 나라의 아들로서 도 옳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 며 개인적으로 이순신 공부를 하면서 훌륭한 가르침을 실천으로 보여주신 조부님과 선친의 행(行)은 이순신 장 군의 내면의 가치에서도 찾을 수 있어 참으로 반가운 교 육과정이었다고 말한다.

사랑, 정성, 정의, 자력으로 압축되는 이순신 정신은 개 인적으로도 닮고 싶은 가치요, 덕목이라며 더 많은 주변 사람들이 이순신 정신을 만나고 알아가고 실천하는 계 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같이 근무하는 간부회계 사들부터 교육과정에 투입시키고 있다고. “회계 법인조직은 매우 드라이한 조직이다. 간부회계 사들을 이순신 지도자 교육과정을 이수토록하는 것은 이순신 정신 공부를 통해 조직에 대한 자긍심, 사랑과 정 성이 충만토록 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였다. 실제 교육을 수료한 회계사들이 회사에서도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부산의 다른 기업들도 이순신의 4대 정신을 조직의 내면가치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작은 이 순신을 길러내는데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 고문은 이렇게 이순신 정신을 닮아가고자 하는 사람 들이 늘어날수록 부산이 달라지고 우리 사회가 달라질 것

으로 믿는다. 조부께서 그러하셨듯 행함으로 교육하신 선친으로부터 ‘사 랑’과 ‘충효’를 새겨온 학창 시절, 독립유공자 집안의 살림 살이가 빤해 어머니를 빈곤에서 탈출시켜드리는 일은 열심 히 공부하는 길이라 믿었고 1973년 공인회계사 시험에 응 시, 전국에서 12명 배출된 당시 공인회계사 합격자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려 지금까지 한길을 걷고 있다.

“제가 일흔을 넘긴 지금까지도 공인회계사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이러한 행복의 배경에는 이순 신 장군으로부터 배운 이순신 정신과 선친의 충효사상 기 반이 큰 영향을 미친 덕분이라 생각한다.” 이 고문은 논어의 가르침 중에 ‘내가 하기 싫은 것을 남 (아랫사람)에게도 시키지 말라’(己所不欲勿施於人기소불욕 물시어인)는 것과 사마천의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 을 위해 죽는다’(士爲知己而死사위지기이사)는 글귀를 좋 아한다. “아마도 이순신의 부하들이 이순신을 잘 따랐던 것은 그 의 리더십중 부하를 인정하고 따뜻이 챙기는 인간다운 사랑 의 정신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는 이 고문은 “물질적인 부문만 치중하고 이기적인 풍토가 만연한 오늘날 정신적인 부분을 더 중시하고 옳음을 실천하는 사회분위기 로 전환시키는 일은 어른들의 몫”이라며 시대를 이끌어가는 모범적인 어른들이 보다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강조한다.

이 고문은 요즘 MZ세대(1990년 초~2000년대 초 출생) 들에게도 한마디 잊지 않는다. “단기적으로 살지 말고 멀리 내다보고 장기적으로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 그는 인디오 부족이야기로 끈기와 인내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인디오 부족들이 비가 안오면 추장을 중심으로 기우제 를 지낸다. 그런데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온다. 그것 은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다.”며 “우리 민 족의 정신인 은근과 끈기야말로 바로 이순신 정신이라 생 각한다. 아울러 21세기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이 이순신의 사랑, 정성, 정의, 자력의 정신을 바탕으로 은근과 끈기를 키 웠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유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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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술 친환경 정신깃든 역대급 엑스포

이순신 장군의 혼이 서린 북항 바다 … 부산대첩 정신으로 엑스포 성공신화를

4월 4일 오전 부산역 광장에서 시민 5천500여명이 실사단을 환영하고 있는 모습.

지난 4월 초 2030부산국제박람회 실사단이 부산을 다녀

엑스포기간 부산이 주요 의제로 다루고자 하는 어젠다는 갔다. 온 시민이 하나가 되어 실사단을 뜨겁게 환영하고, 열 자연과의 지속가능한 삶, 인류를 위한 기술, 돌봄과 나눔의 정이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 실사단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 장이다. 세계가 직면한 기후변화 위기를 극복하고 자연과 함 기에 충분했다. 뿐만아니라 부산이 그동안 준비해온 것들을 께하는 삶, 첨단기술의 개발에 따른 여러 양면성 문제를 해 유감없이 보여준 설레는 시간들이기도 했다.

결하고 인류의 행복을 증진하는 등 계층간, 국가간 존재하는 실사단이 가장 주의깊게 살펴보는 시민들의 유치열기와 다양한 격차 문제를 해소하고자 하는게 주 목적이다. 관심, 개최도시의 준비성과 어젠다는 다른 경쟁국가에 결코 인정엑스포와는 달리 각 나라가 직접 자본을 투입해 6 뒤처지지 않는 우리의 강점이었음을 다시한번 돌아볼 수 있 개월간 개최되는 2030세계박람회는 등록 엑스포다. 200 는 계기였다.

여 개 국, 3,480만 명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생산유발 2030부산세계박람회는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고, 43조 원, 부가가치 18조 원, 고용 50만 명 등 엄청난 경제유 변곡점에 서 있는 인류의 대전환을 통해 세계인이 함께 ‘더 발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돼 각 국이 치열하게 경쟁을 벌 나은 미래’로 나아가자라는 주제로 추진되고 있다.

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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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국가적 차원에서 대응하며 사활을 걸고 추진하고 있는 2030부산엑스포는 부산의 명운과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린 국제행사이기도 하다. 윤석열 대통령도 엑스포 유치에 국운을 걸 겠다고 당선인 시절부터 말한 바 있고, 국무회의에서 “세계박람회는 국가를 한 단계 격상 시킬 수 있는 주요사업”이라고 언급했다. 재계 행사에서도 “세계박람회 유치 성공은 기업과 정부가 하나 의 성과를 이룰 수 있는 가치가 있다”고 발언했다. “엑스포 유치 과정을 통해 우리의 새로운 외교 적 지평이 넓어진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국가차원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수도권에서는 관심과 열기가 희박했으나, 실사 단 방문즈음에 이르러서는 전국의 모든 방송 언론매체도 앞다투어 다룰 만큼 깊은 관심을 보였 다. 초창기만 해도 유치가능성에 회의적이던 모습에서 크게 달라진 분위기이다.

현재 강력한 경쟁국은 오일머니로 환심을 사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와 이탈리아 로마. 경쟁국가로 참여했던 우크라이나 오데사는 자격정지를, 러시아 모스크바는 유치의사를 자진 철 회함으로써 당초 5개 국에서 3개 국만 경쟁을 치르게 된다. 무엇보다 대한민국과 부산의 경쟁력은 지구촌이 당면한 과제인 기후변화 위기라는 세계박람회 최초로 주제와 부제를 선택했다. 대한민국은 인류의 대전환을 공유하고 해법을 도출할 최적의 국 가임과 동시에 개최도시인 부산이 세계 4위의 항구도시로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항해와 완벽한 매 칭을 이루고, 메타버스를 통해 언제 어디서 누구나 참여 가능한 진정한 나눔의 세계 박람회를 구 현할 수 있다는 점을 강점으로 제시한다. 실제 가상현실에서 북항의 엑스포 현장을 체험해본 실 사단은 정보통신기술(ICT)강국 한국의 첨단 기술력과 저력에 감탄했다.

4월 4~7일 부산을 방문한 엑스포 실사단. 2030 엑스포 개최 예정 장소인 북항현장을 방문하고 신기술 체험을 하고 있는 실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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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대한민국 부산인가 한국은 식민지와 해방, 전쟁과 분단, 산업화와 민주화 등 급격한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행한 국 가다. 기후위기 대응 및 녹색경제 전환, 인간중심 기술의 구현에 앞장서는 디지털 강국임과 동시 에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발전한 유일한 국가이기도 하다. 이같은 다양한 실질적 경험을 전 세 계와 공유할 수 있는 가교역할을 할 수 있는 역사적, 문화적,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있다. 부산은 대한민국의 전환을 이끌고 대한민국의 과거·현재·미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도시로 과 거 피란수도에서 유라시아 관문도시, 그린스마트 도시로서 기술적 지정학적 모든 조건을 갖춘 도 시이다. 천혜의 경관을 갖춘 도시로 자연과의 공존을 실천하고, 인간 중심의 기술이 구현되는 미 래 도시이자 돌봄과 나눔의 정신이 깃든 도시라는 점에서 최적의 가치를 품고 있다. 뿐만 아니 라 지난 2005년 세계 정상인들이 함께 모여 지구촌의 문제를 논의했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APEC) 정상회의를 비롯해 부산아시안게임, 부산국제영화제 등 다양한 국제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지 부산항 북항일원 어떻게 꾸며지나

개최한 도시라는 점에서 세계 여러나라에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북항 일원 343만㎡(육역 276만, 수역 67만)로 조성되며, 원도심 재개발과 연계해 행사 후 시민 의 품으로 돌려주는 친환경 공간으로 구성된다. 역대 박람회장 규모가 밀라노 110만㎡, 두바이 488만㎡, 오사카 155만㎡ 규모와 비교해서도 적지 않은 규모다. “Re: Earth”라는 컨셉트하에 산업화의 터전인 북항을 자연·기술·인간이 공존하는 지속가능한 공간으로 조성한다는 목표로 관람 동선은 주제와 관련된 하나의 스토리로 이어지도록 구성했다. 효과적으로 주제를 전달하고, 편리한 관람을 돕도록 조성될 계획이다. 교통의 접근성 또한 높은 도심에 위치해 있어 박람회장 위치 및 다양한 교통수단을 통해 어디 서든 편리한 방문이 가능한 교통체계를 완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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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전 실사단이 북항 행사장 부지를 돌아보고 시민단체 간담회 후 기념촬영.

계획이다.

엑 스포를 만들 계획이다. 한국형 공적개발원조 (ODA)와 함께 개도국별 지원수요 를 파악하 고 맞춤형 지원을 통해 개발도상국이 함께 더 불어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들 국가엔 전시관 조성 등 참가비용을 지원하고 개도국 대상 기술전수 및 스타트업 빌리지도 조성할

넷째, 최신 기술을 통해 방문객의 편의를 보 장하는 신기술 엑스포가 되게 할 전망이다. 인 공지능(AI), 드론, 로봇, 6G 등 신기술을 활용하 여 방문객들이 편리하게 관람할 수 있는 박람회 박람회장이 국제공항, 고속철도역, 국제·연안여객터미널, 를 구현한다. 드론배달, 개인 AI 플래너(Personal AI-Planner) 도시철도역에 인접해 방문객들도 편리한 방문이 가능하다. 를 통한 관람, AI 아바타가 대신 줄서기 등이 대표적인 예다. 뿐만아니라 항공·해상·육로(고속철도·셔틀버스·도시철도) 다섯째, 세계인이 문화를 함께 교류하고 즐기는 문화 엑 등 다양한 교통수단과 UAM(도심항공교통)·PAV(개인형 비 스포. 다양한 K-Contents의 활용을 통해 세계인이 하나 되 행체) 등 미래형 교통체계도 활용하여 방문객의 편의성도 는 계기를 마련하고, 이와 함께 각국의 문화를 교류하는 증진한다.

장을 제공한다. K-Culture World Cruise tour 및 다양한 숙박시설은 1일 숙박수요(57,373실)를 넘는 공급(62,520 K-Pop 콘서트, 전시 등을 개최한다. 실)과 템플스테이·한옥스테이·카라반 등 부산만의 차별화 된 숙박경험도 제공하게 된다.

부산엑스포만의 6대 차별화 포인트

점으로 제시한다.

대한민국 부산만이 갖춘 차별화 포인트를 경쟁국 대비 강 아카이브를 구현한다.

여섯째, 국제박람회기구(BIE) 100주년을 기념하고, 박람회 의 역사를 기록하는 엑스포가 되게한다는 계획이다. BIE 설 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박람회 레거시를 구축해 북항 사일 로를 활용한 엑스포 빅데이터 사일로를 건립하고, 메타버스

첫째, 메타버스를 통해 세계인이 함께하는 열린 엑스포가 이번에 부산2030엑스포가 개최되면 한국은 명실공히 지 되게 할 계획이다. 박람회 최초로 메타버스 기술을 활용해 구상 3대 메가 트렌드 엑스포를 모두 개최하는 7번째 나라 언제 · 어디서나 박람회에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현할 가 된다. 이번 유치경쟁에서 부산시민들이 보여준 열정이 예정이다.

투표가 진행되는 오는 11월까지도 꾸준히 전개되길 바란다. 둘째, 친환경 기술을 적용해 탄소중립 엑스포가 되게 한다는 무엇보다 이순신 장군의 나라사랑 혼이 서린 북항앞바다 목표다. 박람회장 조성 때 친환경 기술을 적용하고 녹색 에너 에 서 부산대첩의 정신을 끌어올려 성공적인 엑스포 신화를

셋째, 역대 최대 규모의 개도국 지원을 통한 함께하는

지 활용 등을 통해 탄소중립 엑스포 구현을 조성하는 것이다. 창조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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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첩이야기

명예 이사장이 들려주는 부산대첩 이야기

#7

김종대

㈔부산대첩기념사업회 명예 이사장

부산대첩 정신

포용으로 화합단결, 하나되는 정신

부산대첩에서 승리한 그 정신을 캐어보면 아래 네 가지 정신으로 요약되고 그 정신 속에는 위기에 처한 오늘의 이 병든 사회를 건강케 해 줄 여러 묘방이 들어 있다.

1. 포용으로 화합단결해 하나되는 정신 2. 선공후사의 정신(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자기희생정신) 3. 철저한 준비정신 4. 창의성과 개척정신

첫째, 포용으로 화합단결해 하나되는 정신 부산대첩의 주력군은 물론 이순신이 이끄는 전라좌수군이었다. 그러나 부산대첩 은 전라좌수군의 힘만으로 거둔 승첩은 아니다. 전라우수군과 경상우수군이 하나 가 되어 전라좌수군과 함께 싸우지 않았다면 거둘 수 없는 승첩이었다.

우선 대첩의 주장인 이순신을 보자. 그는 자기보다 16살이나 아래인 전라우수사 이억기와, 매사 주장과 의견이 달랐 고 내내 갈등했던 경상우수사 원균을 나라를 구하자는 대의명분으로 포용해 하나 가 되어 싸웠고, 나아가 호락호락하지 않는 부하장수들도 사랑으로 포용해(정운이 죽고 나서 보여준 이순신의 부하사랑은 이를 웅변해 주고 있다.) 그들의 합력을 이 끌어내 함께 싸웠기에 이길 수 있었다. 이같이 주장(主將) 이순신이 포용으로 화합단결해 하나되는 정신으로 세 수군을 이끌었기에 부산대첩은 이루어질 수 있었다. 하나가 되어 싸우는데 어찌 이순신의 공뿐이겠는가? 7천이 넘는 수많은 삼도수군의 장병들도 하나가 되어 죽을힘을 다해 싸우지 않 았다면 결코 부산대첩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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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이 다르고, 직책과 의견이 다르고, 세대가 달라도 적

이순신은 자신도 전사한 노량해전을 빼고는 한 번도 부하 으로부터 우리의 바다를 지켜내자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장수를 죽게 하는 전투를 감행한 적이 없다. 그런데 부산대 는 나를 놓고 나라를 위해 전 장병이 하나가 될 수 있었기에 첩에서는 그의 오른팔인 정운 장군이 머리에 총탄을 맞고 이길 수 있었던 전투가 부산대첩이다.

전사한다. 얼마나 격렬하고 힘겨운 전투였기에 그는 정운을 그러므로 우리는 포용으로 화합단결해 하나되는 정신을 잃어야 부산바다를 얻을 수 있었단 말인가? 부산대첩의 기본정신으로 삼는다.

부산대첩을 거두고도 이순신은 적의 머리는 베지 못했다 이 정신은 자기 개인이나 자기 조직이나 자기 지역의 이 고 했다. 죽을힘을 다해 하루 종일 싸웠으니 수많은 적을 죽 기적 욕심만 앞세워 우리 모두의 공동체를 위해서는 힘을 였을 터인데 왜 전공의 자료가 될 죽은 적의 목은 베지 않고 합치지 못하고 분열만 일삼는 오늘날 우리들이 가장 먼저 지치고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밤이 늦도록 싸웠으며, 자기 받아들여야 할 부산대첩의 소중한 정신이다.

둘째, 선공후사의 정신(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자기희생 정신) 낙동강 쪽으로 내려오는 적을 치라는 조정의 명령을

에만 전력을 다했을까?

가 가장 아끼던 부하장수를 잃으면서까지 적의 전선 격파

부산대첩의 전사들은 나 개인의 안위와 전공과 편안함은 받고 출전한 이순신은 낙동강 하구 쪽에 보이는 왜적만을 뒤로 돌렸다. 오직 조선이란 공동체의 안위만을 먼저 생각 격파하고 맡은바 임무를 끌낼 수 있었는데도 왜 중과부적의 했다. 적의 본진을 격파해 하루 속히 나라를 건져야 한다는 위험을 안고 왜적의 본진이 있는 부산포까지 공격했을까?

대의(大義) 아래 그들은 모든 것을 놓았다. 이 투철한 선공 후사의 자기희생정신이 있었기에 중과부적의 위험을 극복 옥포, 당포, 한산의 승첩을 거두느라 여수를 떠나 매달 일 하고 부산해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으니 이 공동체를 먼저 주일씩이나 경상바다로 나와 싸웠으니 전라수군은 많이 지 생각하는 자기희생정신이야말로 오늘날 모든 지도자들이 쳐있었다. 더구나 이순신은 사천해전에서 입은 총상이 깊어 깊이깊이 되새겨야할 부산대첩의 소중한 가치인 것이다. 90일이 지났건만 좌측 어깨에 고름이 흘러 활시위를 당길 수도 없었다. 그들은 왜 그 고단함과 부상의 고통을 참아가 며 그 먼 부산으로의 출전을 감행했을까?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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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바쳐 항거한 흑의장군 정발

▲ 정발 1553년(명종 8) ~ 1592년(선조 25) 조선 중기의 무신. 위원군수, 훈련원부정, 부산진첨절제사 등을 역임.

김태현

부산도시공사 감사

㈔부산대첩기념사업회 이사

부산을 지키면서 조선을 살리고 저항정신을 실천한 임진 왜란 인물은 적지 않다. 바다에선 부산포해전을 승리로 이 끈 이순신 장군과 이억기 장군, 부산포해전에서 목숨을 바 친 정운 장군을 꼽는다. 육지에서도 부산의 정신을 이끈 3 대 명장이 있다. 부산진성의 정발 장군, 동래성의 송상현 부 사, 다대포성의 윤흥신 장군이다. 비록 막강한 일본군의 전 투력에 밀려 패전하긴 했지만 수적 열세에도 목숨을 바쳐 부산을 지키려고 노력한 애국열사들이다. 이 가운데 경기 연천 출신의 정발 장군(1553~1592)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 요토미 히데요시의 망상에 맞서 백성과 함께 부산에서 죽 음으로 맨 처음 결사 항전한 결의를 보였다. 끝없는 국가사 랑과 임전무퇴의 군인 정신을 여실히 보여준 충절의 화신 이었다. 정발장군의 흔적과 정신은 부산 중앙로로 이어지는 동구 초량동에서 부산항을 바라보며 호령하는 동상과 동구 좌천동 일신산부인과 인근의 정공단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일 국제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조선의 실수 1592년 4월13일(양력 5월23일) 오후 5시께 일본 적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조선 침 략 선봉군인 제1진의 1만 8700명의 대군은 700여 척의 병 선으로 부산포를 침입했다. 이를 시작으로 일본은 역사상 처음으로 30여만 명의 대병력을 9개 부대로 편성하고, 대 마도를 거쳐 오전 8시께 대마도를 거쳐 부산 앞바다, 조선 땅을 침략했다. 전국시대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선을 일본 밖 으로 확대하고 싶었다. 일본 열도의 통일에 만족하지 않고 중국 명나라까지 정복해 황제가 되겠다는 망상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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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초전으로 감행된 무리수가 조선 침략이었다. 내전이 된 부산포진, 다대포진, 가덕진, 미조항진의 4개 수군 진영 끝난 후 실업자로 전락할 젊은 무사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가운데 경상도 제1의 해상관문이었다. 일본군이 조선에 상 마련하기 위한 전쟁터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따르 륙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할 요충지였다. 부산진성의 민가는 는 가신들이 더 많은 전투 경험을 쌓고 힘을 키워주게 하고 300여호, 병력도 600~1000여명이었다. 일본 대군과 비교 싶었다. 순종하지 않는 불만 세력을 외부와의 전쟁을 통해 가 되지 않았다. 규합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그러나 전쟁에 나선 가장 큰 이

정발은 부임 후 왜적의 침입에 대비해 성곽을 보수하는 유는 전국시대를 통일한 결집된 힘을 과신한 자신감이었다. 등 방어태세를 강화했다. 나라의 관문을 지키는 중요한 성 조선군은 일본군의 부산포 침략을 황령산 봉수대에서 한 으로서 비교적 견고했다. “바다 모래사장에서 성에 이르는 성으로 즉시 보고했다. 침략 당일인 4월13일 일본군은 상륙 사이에는 방어를 목적으로 말뚝을 쳐놓고 있었으며, 성벽 하지 않고, 절영도 전방에서 정박하고, 공격하지 않았다. 다 주위에는 방어설비(참호)가 설치돼 있었다.”(포르투갈 선교 만 일몰 무렵 고니시의 막료인 대마도 도주 소 요시토시가 사 프로이스가 집필한 일본사) 몇몇 군사를 이끌고 상륙해 부산진성 부근의 경계 상황을

조선 정부도 나름대로 전쟁 대비를 하고 있었다. 성벽을 정찰하고 돌아가 부산진성의 방비가 엄중하다는 것을 고니 보수하고 무기들을 손질했다. 뛰어난 무장들을 주요 지역에 시에게 보고했다.

배치하기 위해 이순신 등 인재들을 특채로 선발하기도 했다. 13일 밤을 선상에서 보낸 일본군은 14일 아침 해안으로 하지만 조선의 조정과 일선의 장수들은 큰 착각을 하고 있 상륙해 부산진성 공격 태세를 갖추면서 ‘가도(假道)’를 요구 었다. 일본의 침략이 있더라도 과거 왜구의 노략질 수준의 하는 글을 목판에 써 성 밖에 세웠다. 명나라를 공격할 테니 침략으로 생각하는 실수를 저질렀고, 통일된 막강한 일본 길을 빌려달라는 일본의 부탁을 조선이 들어줄 리 만무했 의 전력을 몰랐다. 조선과 일본 간의 중계무역을 담당했던 다. 부산진성을 관할하는 우두머리는 종3품 무관벼슬로 첨 대마도주가 일본 침략을 경고하며 조총까지 보여줬으나 조 절제사(첨사)가 맡고 있었다.

선은 이를 무시했다. 섬나라 일본이 대륙을 넘본 적이 없고, 부산진첨사 정발장군은 이 요구를 묵살하고 목숨을 건 전 일본이 침략한다고 해도 대국인 명나라가 보호해 줄 것이 투에 돌입했다. 당시 부산진성은 경상도 해안지방에 설치 라는 사대주의적 심리도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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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발 장군 동상

다를 메운 수백 척의 일본 선박을 발견하고, 성으로 돌아와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조선군은 사면에서 화살을 난사하며 총력전을 펼쳤다. 적군은 서문이 쉽게 돌파되지 않자 부산 진성의 후방인 북쪽의 방어가 허술하다는 사실을 알고 집 중적으로 공격했다. 적군은 북쪽 성벽을 넘어 성으로 쳐들 어왔다. 안타깝게도 일본군은 공격 3~4시간 만에 부산진성을 함 락시켰다. 정발은 전투선박에 구멍을 뚫어 가라앉히고, 군 사와 백성들을 거느리고 결사 항전을 펼쳤지만 참패했다. 정발은 화살이 떨어져 적의 탄환에 맞아 전사하자 성이 무 너졌다. 패배 후 만행은 극에 달했다. 1만8000여 일본군이 1천여 조선군을 상대로 한 부산진성 전투는 몸서리를 칠 정 도로 잔혹했다. 전투가 끝난 후 일본군은 지독하게 보복 학 살을 했다. 이 같은 사실은 일본인을 통해 알려졌다. “성안 의 군사는 물론 부녀자, 어린아이, 심지어 개, 고양이 등도 모두 죽였다.”(天荊, 西征日記, 天正 20년 임진) 부산진성 전투는 임진왜란 때 조선군이 적을 맞이해 처 음 치른 싸움이다. 부산진성전투는 조선의 패배로 끝났다. 일본군은 상륙 당일로 부산포진을 점령하면서 조선군의 해 안 방어 세력을 제거하고, 조선 침략을 위한 해양 교두보를

임진왜란의 첫 전투, 부산진성에서의 참패 14일 오전 6시께. 일본군은 조선군의 아무런 저항도 받지 확보했다. 적군보다 열세였음에도 군관민이 나라의 관문을 않고 부산포의 우암에서 세 갈래로 나눠 배를 해안에 정박 지키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결사항전했다는 점에서 큰 한 뒤 상륙해 부산진성을 공격했다. 임진왜란이 발생했을 의미 있는 전투였다. 다른 성의 지휘관들이 성과 백성들을 때 부산은 지리적 위치 때문에 일본군의 조선 침략의 교두 버리고 도망간 것과 비교하면 장군의 국가와 애민정신을 보 역할을 담당했다. 침략 후에는 일본군의 조선 주둔 근거 느낄 수 있다. 일본군 조차도 이러한 정발 등의 목숨을 건 지로서 계속 활용됐다. 강화기 동안에도 조선과 일본 사이 저항을 칭찬했다. 임진왜란 때 가장 용감한 장수는 부산의 를 오가는 관문 역할을 담당했다. 흑의장군이라고. 이 같은 부산의 지리적 특수성 때문에 침략 때도 ‘피해 1 번지’ 노릇을 해야만 했다. 이날도 일본군은 성을 공격하면 정발은 어떤 사람인가 서 흙과 돌로서 참호를 메우면서 성벽에 접근하고 사면으 정발의 본관은 경주. 자는 자고, 호는 백운이다. 임진왜란 로 성을 포위했다. 우월하고 많은 병력을 가진 일본군은 조 때 첫 번째로 사망한 조선군 장군이다. 정발은 1553년 경기 총을 발사하며 부산진성을 공략했다. 도 마전군 군내면(현재 연천군 미산면 광동리 너븐골)에서 정발은 4월 13일 절영도(영도)에서 군사들과 해상훈련을 간성군수를 지낸 아버지 정명선과 관찰사 남국숙의 딸인 실시했다. 일본군이 쳐들어올 것에 대비해 전함 3척에 군사 어머니 함열 남궁씨 사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광동리의 옛 를 나눠 태우고 나가 아침부터 바다와 육지로 부산하게 움 지명은 ‘새능’이다. 조선 개국공신 좌찬성 계림군 희계의 증 직였다. 기동훈련 마친 뒤 절영도에 배를 대고 사냥에 나섰 손 석성현감 수덕 선조가 광동리에 안장한 후 자손들이 조 다. 사냥은 병사들이 훈련하는 방법이기도 하고, 잡은 짐승 상의 묘소를 지킨다는 의미에서 살아온 정씨 집성촌이다. 은 병사들에게 좋은 보양식 먹거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바 정발은 25세 때인 1577년 별시 무과에 병과 7위로 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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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 다. 이후 해남 현감, 거제현령 등의 지방 외관직과 비변사 싸웠다. 적의 무리가 화살에 맞아 죽은 자가 많았다. 그러나 냥관 등 중앙직을 두루 거쳤다. 1598년 비변사에서 무장을 정발이 화살이 다 떨어져 적의 탄환에 맞아 전사하자 성이 성적이나 서열에 관계 없이 등용하는 특채(불차채용)를 할 함락됐다”고 전한다. 때 선발됐다. 같은 해 7월 국경을 넘어 염탐하던 여진족을

아내 임 씨가 진정을 넣고, 임진년 말에 전사가 확인돼 공 쏘아죽여 북방에서 탄탄한 경력을 쌓으면서 유능한 장수로 로도 인정받았다. 1622년 부산진성의 병졸이 왕명을 받들고 인정받았다. 정발은 임진왜란이 터지기 전 3달 전에 부산진 온 사신을 맞이해 정발의 의로운 정신을 알린 것도 공로 확 첨절제사로 부임해 부산진성 수비를 맡았다. 정발과 수비 인에 도움이 됐다. 이 덕택에 인조 때 동래부사가 처음으로 군, 피난민들은 어떤 지원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분전 사당을 세우고, 동래부사 송상현과 함께 모셔 제사를 올렸 했으나 10배 이상 차이 나는 압도적인 수적 열세 때문에 전 다. 충장이라는 편액(액자)을 하사받기도 했다. 1681년에는 투에서 패배하고 장렬히 전사했다.

동래부사의 상소로 공로를 인정받아 품계를 올려 받았다. 정발의 성품은 어떠했을까. 그의 품성과 솔선수범은 성품 1683년에 정려문을 세우기도 해 뒤늦게 오해를 벗어나 제 을 갈고닦은 천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추측해볼 수 대로 된 평가를 받았다. 있다. “공은 어릴 적부터 독서하기를 좋아했고 말수와 웃음

성균관유도회 부산광역시본부와 동구청은 성이 함락된 이 적었다. 소학의 내용 중에 거처할 때에는 부모에게 공경 4 월 14일이면 해마다 부산 동구 정공단로 23에 있는 정공단 을 지극히 한다는 말에 깨달음이 있어 종신토록 외우고자 (부산시 기념물 제10호)에서 충장공 정발장군의 추모제전 했다. 조정에서는 남쪽 지방에 우려가 있어 공을 부산진첨 을 봉행하고 있다. 정발과 함께 순절한 이들을 추모하는 행 사로 제수하고 준례에 따라 절충장군의 품계를 더하였다. 사다. 정공단 계단 아래에는 ‘충복 용월비’ ‘전망 제공비’가 공은 부임하러 떠날 적에 울면서 어머니에게 하직하기를 있다. 제단 중간에는 ‘증 좌승지 이공 정헌 비’와 ‘충장공 정 이 자식이 벼슬하려는 것은 본래 어버이를 봉양하고자 해 발 장군비’가 나란히 있다. 계단 오른쪽에는 열녀 애향비가 서이나, 이미 군주의 신하가 됐으니 또 나라를 위하여 죽어 세워져 있다. 야 할 것입니다. 충성과 효도를 둘 다 온전히 할 수 없으니

정발의 고향인 경기도 연천군도 장군을 기린다. 10월이 바라건대 어머니께서는 이 자식을 엄려하지 마소서.” 어머 면 전곡읍 일원에서 ‘충장공 정발장군 행렬재현과 예술제 니는 눈물을 훔치고 등을 어루만지면서 경계하기를 “잘 부 를 펼치고 있다. 정발은 전쟁으로 시신을 찾지 못해 옷가지 임하라, 네가 충신이 되면 내가 무슨 서운함이 있겠는가”라 로 의관 장례를 치렀다. 무덤은 경기 연천군 미산리 백산리 고 했다.(낙천집 권22, 행장)

에 자리 잡았다. 정발의 애첩 ‘애향’과 노비, 그를 따르던 이 정발은 죽은 뒤에야 국가로부터 포장을 받았다. 첫 전투 들과 함께 연천 야산 중턱에 고이 잠들어 있다. 묘역 입구에 에서 조선인 대부분이 죽었기 때문에 정발의 애국심과 전 는 정발이 타고 다니던 말의 무덤과 비석이 남아있다. 투 상황이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싸움에 져서 달아나 는 혼란한 상황에서 초기 전투상황 파악이 늦어 정발은 한 동안 전사 여부가 확정되지 않았고 평가도 제대로 받지 못 했다. 선조실록(4월13일자)은 정발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기 까지 했다. “왜구가 침범해왔다. 적선이 바다를 덮어오니 정발은 절영도에서 사냥을 하면서 조공하러 오는 왜라 여 기고 대비하지 않다가 미처 진에 돌아오기도 전에 적이 이 미 성에 올랐다. 정발은 혼란스런 전투 중에 전사했다”. 하 지만 다행히 이후에 기록된 선조수정실록은 다르다. “14일 왜적이 크게 군사를 일으켜 침략해와서 정발은 절영도에 사냥갔다가 급히 돌아와 군사와 백성들을 거느리고 대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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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정신을 실천하는 사람들

이순신아카데미강사과정 2기

사랑과 정성은 기업의 능률도 향상

기업현장과 정치권 사회 모두 이순신 정신을 실천해야

백치중 백산테크프렌 대표이사

“평소 ‘진인사대천명’을 좌우명으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 순신의 성공의 특성이 바른 길로써 성공하는 것이고 제 힘 고 결과는 하늘에 맡겨왔다. 그런 나에게 김종대 전 헌법재판 으로 성공하는 것이다.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성공의 뿌리를 관께서 쓰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쳤나이다’라는 책은 다시한 탄탄하게 하기 위해 정의와 자력을, 목표달성을 위해 정성을 번 내 삶을 재정비하고 새롭게 각오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다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밑바탕에서 긍정의 힘을 작용시킬 이순신아카데미강사과정 제2기 출신인 백치중 백산테크 수 있도록 항상 신경쓰고 있다. 프렌 대표이사는 이순신아카데미와의 인연을 이렇게 말했

백대표는 “직원들간이든 클라이언트든 사랑하는 마음을 다. 바쁜 사업과 일상중에도 매월 한번 이순신을 만나는 날 통해 화합되고 좋은 기업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고, 밝은 직 을 손꼽아왔고 의미있는 시간들이었다며 아카데미 수료후 장분위기도 조성할 수 있기도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는 회사 훨씬 단단해진 내면과 여유롭고 담대한 자신을 발견할 수 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위기타파와 동시에 회사발전의 원 있었다고.

동력이 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때문에 그는 항상 자식이든 경남 김해에서 산업전반에 소요되는 스폰지를 생산, 세계 직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강조한다. 여러나라에 수출하는 일을 하고 있는 백 대표는 이순신 장

또한 좋은 제품을 바르게 최선을 다해서 생산하면 그것이 군이 평생토록 일관되게 보여온 4가지 내면의 가치를 매 순 바로 애국하는 길이고 수출국에도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는 간 새기며 사업경영에도 도입하고 있다. 사업현장에서는 이 동시에 회사발전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며 이순신의 4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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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기업현장에서도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고 말한다. 그는 또 기업에서 적당히 남이 하기를 바라고 적당히 대충 넘어가고 적당히 마무리하는 식의 태도는 있을 수 없기에 정성스럽고 열정을 다하는 마음가짐과 바른사고관이 있어 야 완벽한 제품이 탄생할 수 있기에 적당주의는 용납이 안 된다고 덧붙였다. 백대표는 개인적으로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는 이유중에 서도 나라사랑으로 충만한 삶이다. 선공후사의 정신으로 개

회사경영에서도 정성과 사랑은 기본이다.

인의 감정따위는 버리고 항상 나라를 위해 분연히 일어서 란 당시 부산대첩 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기념관과 기념공 고, 나라를 위해 사사로움을 버리고 두 번이나 백의종군했던 원이 함께 들어서 전 세계인들에게 새마을운동을 뛰어넘는 이순신의 헌신적 나라사랑은 존경스럽기 짝이 없다고. 그는 평화정신으로 이순신리더십과 내면의 가치가 승화되기를 “지극한 나라사랑으로 항상 나라의 가치와 이익을 자신의 바란다”고 기원했다. 가치와 이익에 앞세워 생각하고 행동해온 모습들이 본받을 덧붙여 백 대표는 “요즘 우리 사회가 매우 혼란스럽다. 부 만하다”면서 “기업가들 역시 사리사욕과 이윤에만 집착하지 동산 경기도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고, 정치권은 여야정쟁 않고 더 완전하고 우수한 제품을 통해 국익을 선양하는 것 으로 시끄럽다. 기후위기와 아직도 계속되는 전쟁, 저출생으 또한 나라사랑과 국가발전의 바탕이 되리라 생각하며 일에 로 인한 불투명한 미래시대를 대비하고 악화된 경제를 다시 매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회복하기에 총력을 기울여도 모자라는데 위정자들은 도대 체 어디에 신경을 쓰는지 뉴스보기가 불편하다”며 “이순신 그는 또 “부산시가 북항 일원을 2030엑스포행사 개최지 의 사랑정신으로 서로 소통하고 하나되어 협력하기를 소망 로 선정하고 전 세계를 돌며 홍보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반 한다”는 바람을 털어놨다. 드시 부산유치에 성공했으면 한다”며 “이곳 부지에 임진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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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포로로 간 여도공

필자는 임진왜란 때 조선의 문화인을 붙잡아 오라는 명령

부산(웅천 녹산)에서 끌려간 여도공 고려 바바(高麗 媼)

글_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 소장

JR선 나가사키행을 타고 사세보에 내려 다시 시가현을 항 서인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주인장(朱仁狀)을 발 해 승용차로 40분정도 가다보면 빨간 벽돌로 된 높은 굴뚝 견하고 난후 얼마나 많은 문화인들이 잡혀갔는지 궁금하여 이 우뚝 솟아있는 것을 볼수 있다. 이 곳이 임진왜란 때 왜 열일을 제처 놓고 조선인이 잡혀간 내역을 조사하여 “임진 장들에 의해 조선인 200여명이 붙잡혀 온 곳이다. 일본에 왜란은 문화전쟁이다”라는 책을 내었다. 참으로 많은 조선의 문화인이 붙잡혀간 것을 알 수 있었 곳이다. 다. 심지어 바느질하는 사람, 음식 만드는 사람까지 잡혀가

서 유명한 도자기촌을 손꼽는다면 이곳도 두번째 들어가는

이곳의 도자기는 미카와치(三川內)도자기라고 하고 히라 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는 성(城)으로 데리고 간 여인들 도 항구 이름을 따라서 히라도 도자기라고도 한다. 도 있었다.

미카와치 도자기 동리에 사는 한 사람을 만나 미카와치 잡혀간 문화인 가운데는 주로 도공들이 많았지만 도공들 의 동리의 유래를 물었다. 도자기를 배우고 있는 젊은 청년 가운데는 여도공들이 있었다는 것은 우리 역사에서는 찾을 은 옛날부터 이곳은 높은 산과 세 곳으로 흐르는 강이 있어 수가 없지만 일본에서는 많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카와치라 했고 도자기 만드는 흙이 유명하여 임진왜란때 조선 도공들이 이 곳에 와서 가마터를 만들었다고 소개하 필자는 요즘도 일본에서 추앙받는 조선 여인의 발자취를 고 조선에서 들어온 가마터로 안내해 주었다. 찾아 다니고 있다. 이번에 조사된 부산 대명신 고려 할머니 는 나가사키현 사세보(佐世保)에 가면은 부산신사(釜山神 社)가 있다. 사세보는 작은 항구도시이다. 인근에 히라도(平戶)라는 큰 항구가 있다. 고대부터 제법 큰 항구도시로 발전하여 한국·중국·동남아로 가려면 이 곳 에서 배를 타고 출발하였다. 고대 사회 일본 사신들은 이 곳 에서 배를 타고 쓰시마(對島)를 거쳐 우리나라 부산포, 서해 안을 거쳐 중국 당나라로 건너갔다. 당시에는 해상로 사정이 좋지 못하여 배들이 파선되기도 하고 무역선이 침몰되는 일도 허다하였다. 어쨌든 이런 큰

부산 신사 도리 (鳥居)

필자는 안내하는 청년을 따라 그다지 높지 않은 산기슭에 항구 도시를 끼고 있는 탓으로 사세보도 일찍부터 이국 문 부산 신사로 안내받았다. 나무로 세워진 팻말에는 부산신 화가 전해졌던 곳이다.

사(釜山神社)라 써 있고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꽤 오래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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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였다. 팻말 옆에는 신사출입구를 대리석으로 크게 만들 어 세워져 있다. 신사 출입구의 대리석문은 도리(鳥居)라 한 다. 도리의 유래는 먼 옛날 신화에는 일본신(創造主神)이 동 굴에서 나올 때새낯새 세상이 되어 닭이 울었다는 의미로 도리라고 하고 있다. 신사도리에 50층 계단이 있고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오른 쪽에 도자기로 만든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안내문을 보면 고니시 유키나카(小西行長)의 가신인 왜장 마쓰우라 시게 노부의 손에 잡혀 온 여 도공이었던 것으로 알게 되었다. 이름은 알 수 없으나 부산에서 왔다고만 알려졌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당시만 해도 여성들은 이름을 부르는 것이 극히 적었고 어디서 시집왔는가에 따라서 택호를 지 어 부르는 것이 통례였다. 다시말해서 도공업을 하는 사람들은 이름이 없었다. 부산에서 온 여도공은 죽고난후에 고려 할머니라 불렸다.

부산 여인이 만든 가라꼬 도자기

고려는 한국인이란 명칭이다. 할머니라는 존칭은 일본사람 카와치 도자기가 대표적이고 또 한가지 특성은 그림도 특 들이 바바라고 한다. 그래서 고려바바란 위폐를 붙이고 제 이 했다는 점이다. 다시말해서 도자기에 가라꼬(唐子)그림 사를 지내고 있다.

고려 할머니는 도자기의 왕 고세키(巨關)

고세키는 운동선수의 비하면은 챔피온 이란 뜻이다.

명칭을 얻었다.

라쿠니(唐國)라 했다.

임진왜란 후 도자기 기술로 뛰어난 사람들도 고세키라는 주 가라쿠니란 말을 썼다.

이 세계적인 도자기로 각광을 받는다는 것이다. 가라꼬는 ‘한국의 어린이’란 그림이다. 가라꼬는 무슨 뜻 인가 임진왜란시 도요토미히데요시는 조선을 가리켜 가

가라쿠니에 가면 도공들이 유명하니 잡아오도록 자주 자

우리나라에서 도공을 비롯해서 문화인을 잡아와서 도망 을 못가도록 한곳에서 생활을 시켰다. 한곳에 정착시키고 고려 바바여인의 도자기 기법은 남달랐다. 다시 말해서 동리이름은 도오징마찌(唐人町)라 하고 그곳에서만 살도록

어 대나무 막대기로 때려서 도자기를 만들었기 때문에 유 명했다. 보통 반죽한 흙을 빚어 물레를 발로 돌리면서 손으

그 여인은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흙 반죽을 잘하고 흙을 빚 했다. 도오징이란 뜻은 우리말로 당인이란 말이다. 지금도 일본 어느 곳에 가도 도오징 마찌 즉, 당인정이 있 로 도자기를 만드는 것인데 대나무로 때려 만드는 법이 임 다. 당인정에 원주민들은 임진왜란 때 붙잡혀 온 조선사람 진왜란때 붙잡혀간 도공들 가운데도 고려바바 여인이 만든 들이 살았던 집단촌이란 뜻이다. 도자기가 특이했다고 한다.

고려바바가 만든 백자는 푸른 물감으로 조선어린이 즉 가 대나무 막대기로 때려 만든 도자기가 일본 열도에서는 미 라꼬 어린이 그림을 잘 그려서 그때나 지금이나 유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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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었다.

사가 있다. 고려바바의 신사는 조상신을 모신 우지카미신이 에도(江戶)막부는 미카와치 부산 여인이 만든 가라꼬 도 다. 부산 여인 고려바바도 도자기 기술자로 유명했으니 대

하고 나가사키에서 유럽으로 수출하도록 했다. 당시 유럽 사람들은 나카사키 부산여인의 고려 바바의 가 라꼬 도자기를 사기 위해서 나카사키 항구에 와서 밤낮 체류하면서 주문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카사키는 유럽 인의 항구도시로 발돋음하는 큰 역할을 했고 유럽 상인의 주둔지로 활약해서 오늘날에도 나카사키에 가면 유럽풍에 하우스 텐포스 즉 유럽 상인들의 모습을 볼수 있는 관광단 지가 있다.

가라꼬 도자기를 만들 수 있던 고려바바는 도꾸카와 막부 (德川幕府)로부터 도자기로서는 최고가는 뇨엔(如猿)상을 수상했다. 뇨엔은 기술자로서 최고가는 훈장이다. 카라꼬 도자기 그림에는 일자(一子)도자기 이자(二子)도 자기 삼자(三子)도자기 사자(四子)도자기 오자(五子)도자 기 보통 5종류를 만들어 냈다. 일자는 어린이 한 사람의 그 림이고, 이자는 두 사람의 그림이고, 삼자는 세 사람의 그림

자기는 일본 대표적인 도자기로 선정해서 전국에 판매토록 명신이 된 것이다. 고려바바 사당에서 오른 편에 위폐를 모신 장소가 있다.

이고, 사자는 네 사람의 그림이고, 다섯 사람은 다섯 사람의 그림에서 보는 바와같이 부산신(釜山神)이라 쓰여져 있다. 그림인데 모두가 짝을 지어 노는 그림이다.

마침 필자가 방문할 때 한 할머니가 참배를 하고 내려오고 노는 아이들의 그림을 가만히 보면 조선 옷을 입고 있는 있었다. 할머니께 물어보았다. 할머니 이곳은 무엇을 하는 모습이다. 지금의 작품은 어린아이의 머리는 일본 어린이 신사인가 물으니 이 신사는 뿌산(ぶさん)신사라고 했다. 사무라이의 머리지만 (그림참조) 옛날 고려 바바의 그림은 명칭도 바로 부산이라 했다. 조선 양반가의 어린이들의 그림이라고 했다.

죽어서 대명신이 된 부산

대명신(大明神)이란 무슨 뜻인가. 일본신사는 3종류가 있다. 하나는 천황을 섬기는 신궁(神 宮)이 있고 하나는 위대한 조상이 죽으면 섬기는 우지카미

아서 가마부자 부산이라 증언했다.

고려바바의 부산도자기 가마터

원래는 가마야만 신사라 불러야 하는데 부산신사라 했다. 부산은 옛날부터 도자기 가마터가 많았고 도공기술자가 많

고려 바바가 웅천성에서 왔다는 것은 당시 왜군들의 주둔 (氏族神)신사가 있고 또 하나는 청일, 러일전쟁, 태평양 전 지가 웅천산에 성을 짓고 전쟁을 쳤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쟁때 죽은 전몰장병의 혼을 모시는 야스쿠니(靖國神社)신

웅천에는 조선초부터 가마터가 많았다 고려 청자 등 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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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유명했다 필자는 진해 웅천에 가서 조사해보니 당시 가 제사를 지냈다고 했다. 제사는 어떤식인가 하니 조선식 의 가마터 몇곳을 조사했다 한곳은 진해구 두동로198번지 제사라고 했다. 과일과 떡, 나물, 생선을 차려 놓는다고 했 가마터가 있었다. 지금은 도자기 박물관이 있다. 한곳은 현재 부산시 강서구 녹산리 미음리 란곳에 당시 가마터가 있었다고 비문이 서있다.

부산 녹산 미음리 가마터 비문

이곳은 물좋고 산세도 좋을 뿐만 아니라 도자기 만드는데 는 흙이 매우 좋은 곳이다. 녹산 공업단지를 조성하기위해 발굴된 곳이라 비문에 기록하고 있다. 당시 발굴된 도자기 는 5만점이나 된다고 한다. 이곳이 임진 전쟁중때 고려 바 바의 도자기 가마터라 생각 된다.

제문을 한국말로 옮겨보면

거룩한 땅 신이여」

움이 넘치는 제문이라 할 수 있다.

다. 조선식 제사로 절을 하고 제문도 읽는다 했다.

필자는 참배하는 할머니를 따라 제문을 읽어 받았다.

「동쪽해가 떠서 이 산을 비치니 후손들은 손을 모아 복을 빌며

라고 기록되어 있다. 아마도 미카와치 도자기촌 후예들은 부산 여인 고려 할머니의 은덕으로 복을 받고 잘 사는 고마

필자가 방문했던 부산여인의 신사 오른편 위폐가 모셔진 비문에는 부산 여인의 애달픈 노래가 적혀있었다.

「이곳에 내 뼈를 묻거든 제단을 쌓고 향료를 놓아 연기라도 고향에 가도록 하게 꿈에도 그립던 고향 연기 따라 고향산천 밟고 싶네 오는 이 가는 이 한줌의 향을 놓아 꺼지지 않게 모란 모란 고향소식이나 알려주게」

필자는 애달픈 부산여인의 사연을 읽고 뒤돌아서는 마음. 진해 두동로의 가마터와 녹산 가마터는 고려 바바 한사 한층 서글퍼지기 한이 없었지만 한줌의 향을 놓아 꺼지지 람이 경영했는지도 모른다 . 조선시대 도공들은 몇 개의 가 않게 모란 모란 고향소식을 전하고 보니 마음 흐뭇하게 발 마터를 가지고 경영했기 때문이다. 후손들은 부산 가까이 고려 바바가 살았고 웅천에 왜군

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부산에서 고려 바바의 위대한 업적을 길이기 위해 녹산일 들이 주둔하고 있으니 웅천에서 왔다 하지만 부산사람이라 대를 도자기 가마터를 재연해야하고 부산에 위대한 인물로 부산 신사도 만들었다고 한다.

물으니 매년 5월1일부터 5일까지 미카와치 동리의 동 전체

선양해야 한다

참배객들에께 뿌산(부산) 신사는 언제 제사를 지낸는가 을 유치해야한다.

산교육장을 만들어 한민족의 얼과 혼을 심어 세계관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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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난중일기 속 꿈(夢)의 예지력

배재한

국제신문 사장 이순신아카데미강사과정 1기 수료

로 보는 경향도 있습니다.

은 이 사건들과 관련된 꿈을 꿉니다.

자리도 많이 어지러웠다.

니다.

꿈은 주로 욕망과 소망, 무의식의 재현으로 해석됩 니다. 사람의 욕구와 잠재의식을 반영한 게 꿈으로 나 타난다고 보는 게 일반적 견해입니다. 꿈은 개인적 욕 망의 발현보다는 길흉에 관한 일종의 예언이나 계시

임진왜란 때 자신을 던져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진 나라와 백성을 구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꿈 이야기 를 알게 되면 그를 좀더잘알수 있을 것입니다. 충무 공은 자신의 꿈 이야기를 적지 않게 남겼습니다. 충무 공의 꿈 이야기는 난중일기에 40차례, 조카 이분이 쓴 이순신 장군의 첫 전기인 행록에 5차례 나옵니다. 난중일기의 꿈 기록은 일기를 쓴 기간을 기준으로 평균 40일에 1회 정도 나오는 데 꿈 기록이 많이 나오 는 해는 1597년(18회)과 1594년(10회)이었습니다. 특히 1597년은 백의종군, 원균의 패전, 어머니와 아 들의 죽음 등 한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비극적 사건들이 잇따라 일어난 해였고, 공교롭게도 충무공

첫 꿈 이야기는 부산포해전을 목전에 둔 시점입니다. ▷난중일기 임진년(1592년) 8월 27일=이 날 밤은 꿈

-충무공은 선상에서 꿈을 꾼 뒤 “새벽에 앉아 꿈을 기억해보니, 처음에는 흉한 것 같았으나 도리어 길한 것이었다.”며 부산대첩 승전을 위한 예언으로 해석합

▷난중일기 계사년(1593년) 8월 25일=맑음. 꿈에 적 의 형상(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새벽에 각 도의 대장 에게 알려서 바깥바다로 나가 진을 치게 하였다. -충무공은 한산대첩이나 명량해전 등 주요 전투를 앞둔 시점과 삼도수군통제사 임명 직전에 이같이 특 별한 예지몽을 꾸게 되는 것은 놀랍습니다. 셋째 아 들 면의 죽음 뿐만 아니라 백의종군, 원균의 참혹한 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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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등 자신과 조선수군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일어 날 때마다 어김없이 꿈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중요한 것 은 충무공은 그 꿈을 꿈으로 그치지 않고 그 꿈을 적극적 으로, 긍정적으로 해석합니다. 꿈은 미래를 직관적으로 내 다보는 거울이라 믿었고, 그것을 직접 행동으로 옮겼습니 다. 그 결과 적의 기습에 대비하고 전투에서 승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난중일기 을미년(1595년) 2월 9일=꿈을 꾸니 서남방 사이에 붉고 푸른 용이 한쪽에 걸렸는데, 그 형상이 굽어 있었다. 내가 홀로 보다가 이를 가리키며 남들도 보게 했 지만, 남들은 볼 수 없었다. 머리를 돌린 사이에 벽 사이로 들어와 화룡(畵龍)이 되어 있었고, 내가 한참 동안 어루만 지며 완상하는 데 그 빛과 형상의 움직임이 특이하고 웅 장하다고 할만 했다. -붉고 푸른 용이 화룡이 되는 과정을 혼자 감상하는 꿈 이야기는 장군의 미래 모습의 투영이라는 해석도 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난중일기 정유년(1597년)7월 14일=새벽 꿈에, 내가 체 찰사와 함께 어느 한 곳에 갔는데 송장들이 널려 있어 혹은 밟고, 혹은 목을 베기도 했다. -뒷날(15일) 우리 수군 20여 척이 적에게 패했다는 소식 이 날아든 것으로 미뤄 패배를 암시하는 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난중일기 정유년(1597년) 8월 2일=잠시 깼다. 이날 밤 꿈에 임금의 명을 받을 징조가 있었다.

충무공은 꿈을 꾼 다음날(3일) 이른 아침에 선전관이 들 어와 교서(敎書)와 유서를 주었는데, 그 내용은 삼도수군 통제사를 겸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난중일기 정유년(1597년) 9월 15일=(명량해전을 앞 둔) 이날 밤 꿈에 신인(神人·득도한 신선)이 가르쳐 주기 를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이렇게 하면 지게 된다”고 하였다.

무슨 징조인지 모르겠다.

알 수 있습니다.

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장군의 지극한 나라사랑을 하늘이 도운 것임을 꿈은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난중일기 정유년(1597년) 10월 14일=사경에 꿈을 꾸 니 내가 말을 타고 언덕 위로 가다가 말이 발을 헛디뎌 냇 물 가운데로 떨어졌으나 거꾸러지지는 않았다. 막내 아들 면을 붙잡고 안은 형상이 있는 듯하다가 깨었다. 이것은

-이는 결과적으로 아들 면의 죽음을 암시는 꿈이었습니 다. 이날 저녁 어떤 사람이 집안 편지를 전해주는데, 겉봉 에 ‘통곡(慟哭) 두 글자가 씌어 있는 것을 보고, 아들 면이 전사했음을 알게 되어 충무공은 목 놓아 통곡합니다.

충무공은 7년 전란 중 간밤의 꿈을 곱씹으며 악몽 흉몽 마저도 도리어 길몽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장군 은 꿈에서 답을 찾고 위로 받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님을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정성이 지극하면 밝아진다는 이치가 있지 않습니까. 충무공이 나 랏일에 지극정성을 바치다 보니 이런 불가사의한 신통력 과 예지력이 발휘되어 미래를 귀신같이 알아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장군은 고립무원 속 기울어지 는 조선을 구하기 위해 그만큼 절박했고, 꿈은 해법을 제 시하는 예지력으로 나타났는지도 모릅니다. 가족을 걱정 하고 백성과 나라의 앞날을 고민하던 ‘인간’ 이순신은 그 렇게 민족의 ‘영웅’이 됐습니다. 그래서 그의 ‘꿈’은 ‘현실 의 축소판이자 미래의 청사진’이었습니다. 430여년 전 침 략한 왜군과 7년 전쟁을 치른 우리는 일제시대 강제징용 해법을 둘러싸고 또 한 번 국론이 분열되는 등 어수선합 니다. 나라를 위해 우리는 또 위정자는 지금 어떤 꿈을 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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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맛집

이순신 해전 모티브 광안리 유명 국수집

금신전선상유십이

지하철 2호선 광안역 3번출구에서 해수욕장 방면에 위치한 금신전선 상유십이 국수집 입구가 거북선 모양을 형상화 해 꾸며 눈길을 끈다.

‘금신전선상유십이今臣戰船尙有十二’. 다소 이색적인 서 충무공 국수집, 거북선 국수집 등으로 알려진 곳. 대표

십이’는 1597년(선조30) 이순신이 명량해전을 앞두고 선 조임금에게 올린 장계(狀啓).

간판을 단 음식점이 부산 광안리에 있다. ‘금신전선 상유 음식이 면 종류다.

입구부터 독특한 인테리어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거북 이 집 주인이 어지간히 이순신을 흠모하는 자가 아니 선 안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내부는 ‘신에게는 아직 12 고서야 음식은 물론 가게 안팎이 온통 이순신과 관련한 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 라는 장계의 글귀가 거북선 컨셉인 것을 보면 대단한 이순신 광인듯하다. 이름하여 그림아래 한쪽 벽면을 장식하고 정면엔 4대 승첩을 거두 이순신 맛집. 궁금증을 유발하는 상호에 이끌려 맛 투어 었던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를 나섰다.

거북선 판옥선 등 장사진 학익진 해전도가 족자에 단 부산지하철 2호선 광안역 3번출구, 광안리해수욕장 부 정하게 전시되어있고, 초상화, 장검, 장궁 등의 여러 소품

근의 한적한 주택가 골목에 위치한 이곳은 이미 주변에 들이 장식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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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깔았다. 인기가 많은 메뉴중 하나다.

이순신 장군 소품과 해전도로 꾸며진 실내 인테리어

고. 고명고기는 12척에 맞게끔 얇게 썰어 면위에 모양을

이곳의 면은 자가제면을 사용, 부드럽게 잘 끊어지고 소화도 잘 된다. 노량 첨자진(12,000원)은 흑임자 들기름 면으로 ~10월 하절기 메뉴다. 이순신 장군이 탄 배를 중 심으로 첨 자 형태의 진을 이루는 것으로 많은 배의 이동 이나 적군 공격에 유리해 조선수군이 이를 활용해 노량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음을 메뉴설명에 적시하고 있다. 대 표 음식 메뉴는 세 가지 이지만 강황밥, 왕만두, 구만두 이순신 장군 컨셉인 만큼 메뉴도 한산도대첩, 명량해 등 사이드 메뉴도 준비되어있다. 테이블에서 테블릿PC 전, 노량해전을 모티브로 구성했다. 강황 공기밥이 무료 로 주문하면 1인당 쟁반에 소담하게 차려나온다. 면의 밑 로 제공하는 한산 학익진 육개장면(12,000원)은 학이 날 반찬은 장아찌류와 김치. 차림새도 정갈하다. 개를 펼친듯한 형태로 적을 포위하여 공격하는 모습으로 한산대첩에서 왜군을 압도적으로 섬멸할 때 펼쳤던 필승 전법을 모티브로 했다. 주인에 의하면 조선정기 민초들의 기개를 얼큰하게 담아낸 육개장면을 장쾌한 승리의 학익 진법형으로 담아냈단다.

명량일자진면(12,000원)은 맑은 나주식 국물과 면으로 대장선 포함 총 13척의 배로 왜군을 격파한 기적같은 승 리진법을 연상, 육향가득한 맑고 진한 면발을 자랑한다

한산 학익진 육개장면

전화 | (0507)1426-2201

맑은 국물이 일품인 명량일자진면

‘금신전선상유십이(부산시 수영구 수영로 582번길 28)’의 영업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시작하고, 마지막 주문 은 저녁7시 30분에 받는다. 참고로 오후 3시~5시 30분은 브레이크타임이고 매주 월요일 정기휴무다.

김성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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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 이 한권의 책

오만데 삼총사의 대모험2

-이순신 장군과 임진년 영웅을 만나다!

글 박미라 / 그림 김동미

이순신 장군과 임진년 영웅을 만나다!

흥신 장군, 동래성의 송상현 부사의 전투 야기에 힘을 더했다. 현장에 떨어진 삼총사. 자신을 희생하며 박 작가는 무엇보다 부산대첩을 강조 의롭게 싸우는 장군과 병사, 백성들을 만 하기 위해 책 편집자에게 ‘10월 5일은 ‘부 나며 삼총사가 가진 윤도(나침반)를 작동 산시민의 날’…이순신 장군의 부산포해 해 의로운 행동의 수치를 높이면 숫자가 전 승전일이라고 본문에 크게 표시나도 모두 채워져 의로운 행동을 했다는 것을 록 선을 넣어달라고 특별히 부탁했다. 보여준다.

“책을 내기 전 재판관님께 원고를 보내 과제를 완수한 삼총사를 데리고 이순 며 정말 떨었던 기억이 납니다. 재미있게 신 장군이 향한 곳은 부산대첩이다. 삼총 읽었다고 답을 주셨는데 책을 내기까지 “아! 너무 반갑습니다. 부산대첩과 부 사까지 힘을 보태 노를 저었고 거북선까 고생이 한 번에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그 산시민의 날의 유래에 대해 모르는 부산 지 출동하며 부산 앞바다는 화약 냄새가 어떤 칭찬과 격려보다 뿌듯하고 좋더라 시민이 너무 많더라고요. 정말 안타깝습 뒤덮인다. 조선 수군의 함성이 땅과 하늘 고요.” 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려면 만나야 을 흔들고 왜선이 차례로 격파된다. 죠. 언제 만날까요?”

박 작가는 책이 나온 후 오히려 부산대 이순신 장군은 삼총사에게 “임진년 4 첩과 이순신 장군에 대해 더 많이 공부하 박미라 작가에게 연락해 책에 대한 이 차 출정까지 10번을 싸워 모두 이겼지만, 고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겼다고 한 야기를 듣고 싶다고 하니 다짜고짜 부산 장수와 군졸의 공로를 따진다면 부산포 다. 실제로 이순신아카데미 7기 과정도 대첩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게 너무 해전보다 더한 게 없었다”라며 부산대첩 등록했고 올해 부산교육청의 ‘찾아가는 아쉽다고 한탄한다. 얼른 만나자고 재촉 이 얼마나 대단한 전투였는지 설명한다. 작가들의 글쓰기’ 프로그램의 강사로 여 하는 박 작가. 부산대첩과 이순신 장군에 현실로 돌아온 삼총사는 이순신 장군 러 초등학교를 찾아 아이들에게 부산대 대해 박 작가가 얼마나 진심인지 알 수 동상 앞에서 깊은 감사의 인사를 하며 동 첩과 이순신 장군 이야기를 전해줄 예정 있는 대목이다.

화는 끝난다.

이다. 지난해 9월 출간된 동화책 <오만데 삼 동화작가이자 라디오 구성작가로도 활 “부산 앞바다를 비롯해 부산 곳곳의 일 총사의 대모험2-이순신 장군과 임진년 동하는 박 작가는 자신의 프로그램에 초 상 공간들에는 위대한 역사가 숨 쉬고 있 영웅을 만나다!>는 부산에 사는 세 명의 대 손님으로 온 부산대첩기념사업회 이 습니다. 책의 뒤쪽에 그 현장들을 일일이 초등학생인 어진, 보라, 대기가 시간을 거 영활 이사장의 인터뷰를 들으며 부산대 사진으로 정리했습니다. 책을 들고 부산 슬러 임진왜란 전투 현장에 들어간 이야 첩이 얼마나 위대한 전투였는지 알게 되 곳곳의 역사 체험을 떠나보라고 제안하 기이다.

었다고 한다. 이를 알리기 위해 자신이 고 싶습니다.” 수행평가 조사를 위해 세 명은 용두산 잘하는 분야, 동화를 써야겠다고 결심하 박 작가가 헤어지며 전한 인사이다. 공원을 찾았고 노점상 할아버지에게 나 고 임진왜란과 이순신 장군, 부산대첩에 침반처럼 생긴 물건 ‘윤도’를 구입한다. 대해 공부를 시작했다. 윤도의 신비한 기능 덕분에 이순신 장군 최고의 이순신 전문가로 꼽히는 김종 동상이 깨어나고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 대 전 헌법재판관(부산대첩기념사업회 란 당시 부산을 지킨 영웅 3명을 찾아내 명예이사장)에게 의견을 구했고 당시 전 의로움을 담아오면 놀라운 사실을 알려 투 현장들을 일일이 확인하며 사실감을 글_ 김효정 주기로 약속한다. 부산일보 부국장

더했다. 아이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부산진성의 정발 장군, 다대포성의 윤 타임슬립, 모험, 게임 요소 등을 넣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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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대첩기념사업회 NEWS

부산대첩 다큐제작·방영

1592년 10월 5일에 일어났던 부산대첩 전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제작(부산MBC)하여 2회에 걸쳐 방영(22년 10월

부산대첩기념사업회 사무실 이전 현판식

11월)하였다. 부산대첩기념사업회는 재편집(5분, 30분)을 하여 행사에서 활용하고 있다.

우리 사업회는 올해 1월 20일부로 광안동 사무실에서 연산동 BNK부산은행건물로 이전하고, 지난 2월 20일 정기총회

때 이전 현판식을 개최하였다. 부산여해재단 이순신학교도 통합이전하여 업무의 효율성 및 운영경비 절감을 도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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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첩기념공원(도로) 추진 상황

지난해 5월 3일 이영활 이사장은 부산시 환경정책

의역 난중일기 매주 국제신문 연재

(사)부산여해재단은 국제신문과 공동으로 김종대 실장과 오찬 간담회를 갖고 기념공원 조성 협조를 요 전 헌법재판관 검필 “의역 난중일기 – 이순신 깊이 읽 청했으며, 올해 2월 15일에는 동구청을 방문, 부구청장 기”를 4월 10일부터 매주 월요일 연재하고 있다. 과 부산대첩로 명칭에 대한 논의를 하였으며, 부산시 주소정보위원회는 지자체 및 시민 의견을 수렴하여 5 월 초에 도로명을 정할 예정이다.

고문회 친선 골프 및 빈대인 고문 BNK회장 취임

지난해(9월 17일) 사업회 고문회(회장 신한춘)는 고문 12명, 이사 4명이 참석한 가운데 친선도모 및 사업회 현 안 논의를 위해 골프회동과 만찬 간담회를 가졌으며, 우 리 사업회 빈대인 고문께서 제3대 BNK금융지주 회장으 로 3월 17일 취임하였다.

(가덕도~부산포) 행사를 가졌다.

부산대첩 기념식 및 부산대첩 승전로 탐방행 사 개최

제430주년 부산대첩 기념식이 부산시청 대강당에서 시민, 회원 등 3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10월 5 일 15시)되었으며, 온라인으로 부산시민의 날 제정경위 를 맞추는 기념이벤트도 실시(200명 추첨, 오천원권 상 품권 지급)하여 시민들의 관심을 이끌었다. 또한 이순신 독후감 공모전 시상식도 함께 열려 수상자(최우수 1명, 우수 1명, 장려 1명)들의 뜨거운 축하자리가 되었다. 10 월 8일에는 시민 9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승전로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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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이순신학교 운영

부산여해재단 이순신학교에서는 금년 4월 18일부 터 초·중학교(50개교) 대상으로 이론 및 현장체험학 습을 병행, 실시하고 있고, 현재 부산시교육청에서 대 상학교 신청접수를 계속 받고 있으며 예산은 5천만원 이다.

제6차 이순신 강사 전국모임 개최

아카데미 강사과정 및 작은 이순신반 강좌 개설 운영

급할 예정이다.

시간을 가졌다.

부산대첩 Vol.07 _ 봄

부산여해재단은 제7기 아카데미 강사과정을 지난 3 월 8일 개강(수강생 30명)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4월 25일부터는 작은 이순신반을 개설·운영하고 있으며 우 수수료생(대학생)에게 소정의 장학금(소담장학회)을 지

이순신학교 남송우 교장은 금년 3월 고신대 석좌교수 (인문학)로 부임하여 열정적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0월 28일~29일 양일간 부산, 서울, 여수 이순신 강사 1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부산 광안리 (호메르스H)에서 제6차 모임을 개최하였다. 이날 모임에서는 강사 간 친선도모와 각 재단 현안에 대 해 논의하는 자리가 되었으며 다음날에는 유람선을 타고 부산대첩이 일어났던 부산 앞바다를 둘러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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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 및 고문

명예이사장 이 사 장 김종대 이영활 前 헌법재판소 재판관 부산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이사이사 박병대 유순희 송월타올㈜ 회장 부산여성신문 대표

신한춘 신정택 부산대첩 부산대첩 고문회 전 회장, 세운철강㈜ 회장 고문회 회장, 부산화물자동차운송사업협회 이사장 박수관 베트남명예총영사, ㈜YC-TEC 대표이사 구자신 구정회 쿠쿠전자㈜ 회장 은성의료재단 이사장 김경조 김래연 여성경제인협회 부산회장, 경성산업 대표 연산병원 원장 김영도 김윤환 부산대첩 운영위원장, 동의과학대학교 총장 ㈜영광도서 대표이사 김재진 박성훈 경동건설㈜ 회장 재능그룹 회장

사업회를 가꾸는 사람

부산대첩기념사업회와 함께하는 사람들

이사회

이사이사 박수용 김덕길 부산새마을금고 협의회 회장 법무법인 무한 대표변호사 이사이사 김희은 김태현 동의대학교 예술디자인체육과 교수 부산도시공사 감사

고문

박수복 박종호 대륙금속㈜ 회장 센텀의료재단 이사 빈대인 서정의 BNK금융그룹 지주회장 대한적십자사 부산지사 회장, 부산 CC 이사장 윤인태 이경헌 법무법인 해인 대표변호사 성모안과 병원장(세광의료재단) 이병찬 이수태 선일회계법인 회장 ㈜파나시아 대표 이 영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부산지역회의 부의장

회원 및 후원인

이사감사 김지현 반경찬 부산대학교 통일한국연구원 특임교수 선일회계법인 대표 감 사 사무처장 유세종 한규열 손해사정법인 한빛 대표 前 부산광역시 서기관

이용흠 이철승 ㈜일신설계 회장, 부산여해재단 이사장 흥우건설㈜ 회장 우성만 장복만 前 대구고등법원장, 법무법인 무한 대표변호사 ㈜동원개발 회장 정분옥 조용국 (주)장연 대표이사 ㈜코렌스 회장 최삼섭 하선규 (주)대원플러스건설 회장 YWCA 명예이사 이윤희 태금정(주) 회장

강경림 강정임 강경민 강종규 강길중 강종규 강대혁 강충걸 강무근 강필수 강민수 강형구 강보현 고경숙 강석규 고성국 강선영 고인준 강성백 고정자 강순형 고지성 강슬빈 공민성 강승호A 곽영웅 강승호B 곽은정 강영수 곽정환 강예슬 곽종헌 강외희 곽주찬 강우성 곽화숙 강윤정A 구경본 강윤정B 구남수 강인구 구명찬 강재철 구선미 구자신 김경훈 구자영 김경희 구정회 김경희A 구종범 김경희B 구태환 김계용 구학수 김광현 권갑현 김규린 권경훈 김규분 권동렬 김규빈 권성근 김규태 권영배 김금연 권영수 김길수 권예서 김나랑 권재영 김남득 권천애 김대산 권태원 김덕길 김경덕 김덕영 김경아 김덕인 김경옥 김도경 김경조 김도균 김경주 김도근 김경태 김도연 김동근 김병국 김동민 김병민 김동윤 김병욱 김동주 김병은 김동현 김봉진 김둘이 김부재 김래연 김상국 김명수 김상수 김명완 김상오 김명주A 김상훈 김명주B 김서원 김명철 김선명 김문관 김선옥 김미경 김선용 김미애A 김선정 김미애B 김선희 김미정 김성구 김민경 김성규 김민규 김성근 김민주 김성만 김민희 김성미 김배정 김성애 김성원 김연이 김성주 김연호 김성주 김영기 김성준 김영길 김성진 김영도 김소연 김영문 김소영 김영민 김수미A 김영수 김수미B 김영숙 김수진 김영완 김수진 김영욱 김순례 김영주 김승남 김영주 김승모 김영진 김승범 김영한 김승주 김영훈 김승현A 김옥연 김승현B 김용규 김 신 김용대 김신숙 김용완 김신열 김용진 김양제 김우성 김우열 김정원 김원규 김정일 김원율 김정환 김윤경 김정희 김윤기 김종대 김윤아 김종렬 김윤환 김종만 김율국 김종식 김은주 김종완 김응수 김종철 김인보 김종한 김인숙 김주곤 김일성 김주익 김재일 김중곤 김재진 김지성 김재현A 김지영 김재현B 김지원 김정림 김지향 김정묵 김지향 김정민 김지현 김정수 김진규A 김정연 김진규B 김진규C 김향복 김진석 김현규 김진수 김현실 김진옥 김현옥 김진우 김현우 김창덕 김현우 김창환 김현정 김창희 김현주 김채은 김현태 김천수 김형두 김천수 김형보 김철도 김형찬 김충석 김형태 김태명 김혜전 김태봉 김호종 김태우 김홍섭 김태진 김홍희 김태현 김흥관 김한민 김희순 김해몽 김희은 김행남 김희태 김 나수현 향 나은주 문영덕 남기철 문은숙 남상연 문태경 남송우 문해진 남 문형배 영 남요현 민상순 남은진 민옥기 남 민해숙 일 노경자 박검수 노광수 박경석 노보미 박경숙 노선현 박광서 노원길 박국제 노재훈 박기형 노종호 박다은 노태무 박다해 류경희 박다호 류동엽 박도건 류재옥 박명자 류정민 박미라 류정임 박민수 마창규 박병대 박병도 박수관 박봉숙 박수복 박봉환 박수용 박부덕 박수진 박부순 박승제 박상세 박시윤 박상우 박신정 박상준 박연희 박상현 박영도 박상흠 박영숙 박석희 박영욱 박성규 박영인 박성근 박영표 박성민 박영희 박성민 박우현 박성수 박원호 박성심 박윤동 박성훈 박은경 박성희 박은영 박소민 박인순 박소영 박장배 박소윤 박재임 박재호 박현준 박재홍 박형근 박재훈 박혜미 박정빈 박희규 박정수 반경찬 박정재 방민정 박정현 배남규 박정환 배남조 박종필 배미경 박종호 배미희 박주영 배병득 박준성A 배수현 박준성B 배애란 박차석 배우람 박찬호 배윤성 박창현 배헌민 박창희 배현열 박태호 배흥수 박학자 백경선 박현영 백명자 박현주 백인아 박현준 백인화 백치중 서주선 백태균 서해환 변다빈 서향자 변대수 서홍준 변무영 석규열 변해득 석상우 변희자 석희원 봉옥분 설경임 봉현수 설계용 빈대인 성승모 빈서희 성정임 서갑용 성한경 서대용 성희영 서동일 손군환 서만영 손미영 서민우 손숙영 서승신 손쌍용 서영선 손준혁 서영호 손혁준 서재상 손화현 서정우 송계순 서정의 송년순 송동민 심규보 송두환 심덕군 송부희 심부선 송순임 심술진 송윤자 심일욱 송창석 심재녕 송혜자 심재운 신경균 심재훈 신동기 안감찬 신동현 안경환 신미현 안나영 신성목 안명숙A 신승혜 안명숙B 신용달 안상인 신용익 안상철 신정무 안선영 신정택 안수근 신한춘 안순주 신현술 안영숙 신현철 안영욱 신환규 안영자 심국태 안영주 안영태 오정훈 안유섭 오주석 안진환 오태경 양덕복 왕승욱 양명자 우명주 양용치 우미숙 양재생 우양호 양재영 우성만 양종모 우영환 양준호 우주호 양창호 우태웅 양한용 유경연 엄태민 유광옥 염 유선영 숙 예숙희 유세종 예준석 유순희 오덕자 유웅재 오미선 유재진 오미숙 유종철 오용범 유치환 오용섭 유현석 오은택 유현철 윤미영 이광석 윤민근 이광철 윤봉학 이규리 윤성현 이기봉 윤수근 이기식 윤순봉 이기진 윤영술 이기환 윤인태 이달수 윤정아 이대훈 윤태준 이동과 윤화순 이동욱 은종균 이명숙 이강호 이명식 이건녕 이명희 이경균 이문희 이경민 이미용 이경욱 이미화 이경헌 이병찬 이경화 이서영 이경희 이석호 이관옥 이성호 이광렬 이성희 이세맥 이영화 이세휘 이영활 이수인 이예주 이수진 이용신 이수태 이용진 이수진 이용호 이숙희 이용흠 이승미 이운재 이승영 이운재 이승우 이원근 이승욱 이원하 이승은 이유정 이승철 이은지 이승호 이응숙 이승훈 이의경 이신애 이이슬 이연숙 이임선 이 이잠옥 영 이영식 이장호 이영준 이재곤 이영춘 이재윤 이영해 이재현 이재훈 이창우 이정두 이채문 이정숙 이철승 이정숙 이춘우 이정순 이충열 이정옥 이태진 이정은 이태희 이정일 이한석 이정헌 이해숙 이정호 이해천 이종배 이현종 이종윤 이형주 이종인 이혜정 이주식 이호경 이주은 이호석 이주현 이홍계 이준성 이홍재 이진기 이효철 이진서 이현민 이진서 이희승 이진아 임가영 이창열 임경표 임두빈 장윤태 임미경 장일권 임병화 장재석 임승관 장재준 임용순 장종원 임원혁 장지태 임재경 장철훈 임재민 장희경 임종성 전광미 임천섭 전미숙 임태영 전부용 임하늘 전상학 임한수 전상희 임흥규 전숙영 임희정 전영미 장문호 전용범 장미옥 전유리 장민승 전익수 장복만 전재문 장사준 전정민 장영선 전제철 장윤석 전태섭 정경주 정양모 정광모 정연학 정권영 정영동 정다겸 정영원 정대수 정용식 정동수 정원종 정만호 정윤화 정만희 정은숙 정 정은아 미 정미자 정일수 정 정재영 민 정민규 정재은 정봉균 정재현 정분옥 정점자 정상민 정정수 정상영 정지연 정선아 정지형 정선화 정진영 정소정 정창규 정수범 정창기 정순희 정창식 정승연 정철원 정철호 조정훈 정충영 조준희 정태준 조청운 정현돈 조충영 정형권 조태현 정흥태 조한제 조기호 조현재 조무호 조현정 조도민 조현희 조민구 주기연 조병제 주연지 조복정 주혜진 조복제 지영만 조성제 진경열 조시영 진보수 조영자 진선욱 조영자 진하수 조용국 천명성 조유정 최경희 조윤설 최나래 조익래 최남이 조일영 최명숙 최명호 최진홍 최미경 최재경 최봉애 최은탁 최삼섭 최채경 최상휴 최현희 최수기 최혜진 최수식 추성욱 최연경 탁양원 최영식 탁장환 최영애 탁태오 최예성 탁태희 최용석 하근우 최용우 하민숙 최용혁 하병권 최원정 하선규 최윤미 하선영 최은지 하윤수 최인석 하정근 최정자 하종숙 최종철 하태광 최지현 한규열 최진갑 한기춘 한대윤한원우한정구한종호한채은한치용함창오허규민허균도허도빈허동권허영태허정희허준민허창익허태원홍달파홍명희홍석동홍성준홍성희홍수정 홍종관홍준성황금수황맹균황미림황성식황연우황영규황용구황유빈황은경황이선황이선황인경황인철황지백

후원법인

경남스틸(주) / 경성산업 / ㈜골든블루 / 넥센타이어 / 늘곁애라이프온(주) / ㈜대원플러스건설 / 동아타이어공업(주) / ㈜동원개발 / ㈜동성모터스 / ㈜동성케미컬 / 두라해운(주) / ㈜디엔 오토모티브 / ㈜리베라관광개발 / ㈜매직홀딩스 / ㈜맥한상사 / ㈜마비스 / ㈜바이펙스 / 법무법인 국제 / 법무법인 무한 / 법무법인 해인 / 보성신항물류(주)신항지점 / (사)봉사 선일회계법인 / 세광의료재단 성모안과병원 / 송월 인터내셔널 / 송월(주) / 신아파트너스 / 영진에스피공업(주) / ㈜케이엠메드 / ㈜에스디테크 / ㈜와이씨택 / ㈜유성MC / 와 헌신으로 儺라사랑 / 부산도시공사 / 부산원광신용협동조합 / ㈜부산은행 / 부산화물자동차운송사업협회 / 비엔스틸라(주) / ㈜삼성경제연구소 / 삼일회계법인 / 선보공업㈜ / 의료법인센텀의료재단 부산센텀병원 / ㈜이원정공 / ㈜일신설계종합건축사사무소 / ㈜장연다이아몬드관광호텔 / ㈜재능교육 / 제일교통(주)/ ㈜BNK금융지주 / ㈜재능유통 / ㈜코렌스 / ㈜태금정 / ㈜태영티엔티 티지엠씨지점 / ㈜트렉스타 / ㈜퓨트로닉 / ㈜한진산업 / ㈜화신종합운수 / ㈜휴넥트 / ㈜JJK / 청목문화회 / 피터스포라이프(주) / 한황산업(주) / 흥우건설(주) / 흥우산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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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후기

부산포는 지금 임진년 질곡의 역사를 까맣게 잊었는지 오륙도 갈매기 남김없이 슬퍼 슬퍼서 울고 오가는 뱃고동이 혹세를 예감하고 해운대 물결마저 검게 변하고 용두산 일백구십사 계단에 심은 사랑 쓸쓸하여 당신 앞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성정어린 부산포가 아니옵니다. 이지스함이 들이받고 핵잠수함이 설치고 방사능 오염수가 가득 흐르는 부산포는 이제 부산포는 역사의 수렁에서 당신의 구국충정과 위민봉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누가 있어 감히 부산포를 넘본단 말입니까! 누가 있어 감히 평화의 관문을 더럽힌단 말입니까! 누가 있어 감히 떠오르는 태양을 고단하게 한단 말입니까! 이제는 아니될 말입니다. 사랑은 인자로 녹여내고 정성은 질서로 엮어내고 정의는 조화로 담아내고 자력은 지혜로 꿰매내어 당신이 몸소 실천한 길따라 물따라 여해다풍 길이길이 이어 나가겠나이다. <하>

공지

부산여해재단은 올해 역점사업으로 작은 이순신 개설, 운영하고 있다. 양성과정 직장인반을

기 간 4.25 ~ 6.27 (10강)

대 상 만18세~만49세 (정원 25명)

강의시간 오후 7시 30분~9시 30분 (2시간)

강의방법 이론 강의 및 토론, 현장학습

강의교재 ‘이순신 하나가 되어 죽을 힘을 (김종대 지음) 다해 싸웠습니다.’

수강료 200,000원

신청방법 www.bsyeohae.com

문 의 051)923-1000

제6호 편집위원회(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 배재한, 김태현, 유순희, 하종숙, 김효정, 한규열 편집위원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부산시민의 결사항전·호국정신을 재조명합니다. 역사·문화적 유산으로 복원합니다.

이순신 장군의 시대정신과 리더십을 재조명하고 시민교육으로 활성화합니다.

정기후원

□ 회원

특별후원

가입

부산대첩기념사업회

는

부산대첩을 시민 누구나 자랑스러워할 역사적 유산으로 복원하고 이순신 정신을 알리고 실천하여, 품격 있고 건강한 도시문화를 만드는 일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부산대첩을 자랑스러운

부산대첩기념공원을 조성합니다.

부산대첩기념식(부산시민의날) 및 축제 부산대첩기념 기념세미나(심포지엄) 이순신아카데미/ 이순신장학사업 청년해양프런티어 사업 개발 및 운영

부산대첩기념사업회의 주인이 되어주십시오

부산대첩기념사업회는 회원 및 후원인들의 참여와 회비·후원금을 기반으로 운영됩니다.

월납입액 □ 1천원 □ 2천원 □ 3천원 □ 5천원 □ 1만원 □ 기타

가입구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으며 회원으로 가입하면 총회참석의무가 있습니다)

□ 후원인

□ 후원법인

후원금액 부산은행 113-2010-7095-00 ㈔부산대첩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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