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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간: 우린 왜 제주에 왔을까

이북 원문에서 글자만 옮긴 전체 텍스트입니다. 표·그림·사진과 원래 모양은 이북에서 확인하세요.

1쪽

MAGAZINE 2025-07 JEJU GAPYEAR

WHY? 우린 왜 제주에 왔을까 WHO? 제주귀어귀촌지원센터 <관자재한의원> 이욱진 원장 <뀰제주> 최지훈 대표 <씬오브제주> 강보람 대표 <해녀의 부엌> 표은지 매니저

WHAT? 비하인드 스케치

신들이 임무교대를 하는 기간

신구간

NO.1

CHOI

JEONG

2쪽

신구간

NO.1

발행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발행인 최한결

편집인 정지원 기획·취재·편집 정지원 최한결

디자인 정지원 사진 최한결

교정·교열 정지원 최한결

3쪽

신구간이란

3p _

3p _

제주 사람들은 아무 때나 이사를 하지 않습니다. 신들이 자리를 비운 시기, '신구간'이라는 틈을 기다려 새로운 삶을 준비합니다

우리가 준비한 것들

4p _

8p _

우린 왜 제주귀어귀촌 <관자재한의원> <뀰제주> 제주에 왔을까

지원센터

이욱진 원장

최지훈 대표

18p _

14p _

비하인드 <해녀의 부엌> 스케치

표은지 매니저

11p _

<씬오브제주> 강보람 대표

4쪽

각자의 신구간을 거쳐 제주로 이주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왜 이 곳을 선택했는지, 무엇이 달라졌는지, 그리고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묻고 담았습니다.

1 우린 왜 제주에 왔을까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문득 학교의 울타리 너머 세상의 이야기가 궁금해졌습니다. 그 질문의 끝에 제주가 있었고, 이곳에서 나의 기록이 시작됐습니다. 제주의 푸른 바다에 뛰어드는 사람들처럼 망설임 없이 삶의 방향을 제주로 바꾼 이들의 이야기를 따라가고 싶었 습니다. 풍경에 기대어 스스로를 들여다보기도 했고 나와 다른 삶의 결을 지닌 사람들과 마주하며 나의 고민도 다시 쓰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제주는 비일상의 공간입니다. 제주 공항에 착륙하자마자 들려오는 “즐거운 여행 되십시오”라는 한 마디에 괜시리 마음이 설레고, 버스의 창문 밖 풍경에도 눈을 떼지 못합니다. 이런 나는 제주에서의 일상들이 궁금해 <신구간>을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가진 채 살아가는 이들이 궁금했고, ‘이곳이다!’라는 소신으로 새로운 땅에 돌진할 수 있는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이런 질문을 바리바리 싸 들고, 의문을 해소하고자 우린 제주에 왔습니다.

각자의 신구간을 거쳐 제주로 이주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왜 이 곳을 선택했는지, 무엇이 달라졌는지, 그리고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묻고 담았습니다.

5쪽

제주귀어귀촌 지원센터는 어떤 곳인가요?

제주 입도를 위한 첫 걸음!

제주 귀어 귀촌 지원 센터

귀어귀촌 이준호 센터장에게 묻다

제주귀어귀촌 지원센터는 한국어촌어항공단 소속으로 귀어귀촌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어촌의 진입장벽을 넘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상담, 체험 프로그램 운영, 귀어귀촌 홍보, 귀어희망인 멘토링, 사후관리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농어촌 출신이 도시에서 다시 타 농어촌으로

귀어귀촌에도 유형이 있나요?

J턴

도시에서

농어촌 출신이 도시에서 다시 농어촌으로

농어촌으로

I턴

U턴

6쪽

이주 환경

- 현실에 대한 이해도 만족도가 낮은 청년들은 대개 제 주에 대한 기대치가 높지만, 현실 에 대한 준비가 부족한 경우가 많 습니다. 생각보다 높은 물가, 주 거 비용, 일자리 부족, 교통 불편 등의 현실적인 장벽을 마주했을 때, 회의감이나 소외감을 느끼기 쉽습니다. - 지역과의 연결성 지역 주민, 다른 이주민들과의 관 계망을 잘 구축하고, 로컬 문화나 가 처음에는 낯설게 다가올 수 있 행사, 협업 프로젝트 등에 적극적 습니다. 또한, 생활 방식에도 실 으로 참여할 때, ‘내가 이곳의 일 질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부’라는 정체성이 형성됩니다. - 문화 측면 제주만의 마을 중심 공동체 문화 가 있으며, 지역 주민과 신뢰 형

제주로의 이주는 단순한 장소 이동이 아니라, 삶의 리듬과 가치관을 바꾸는 선택입니다. 자연 속에서 여유롭고 느린 삶, 새로운 기회를 꿈꾸며 제주를 찾는 분들이 많지만, 현실적인 어려움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제주에 살고 싶다’는 마음만큼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을 먼저 그려보시길 권해드립니다.

① ‘섬이라는 지리적 특수성’과 ‘자연 성에 시간이 필요합니다. 폐쇄적 중심의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합 이라는 인식도 있지만, 일정 시간 니다. 맑은 공기, 바다와 산이 가 이 지나고 나면 오히려 더 따뜻한 까운 자연환경은 심리적 안정감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을 주며, 도시 생활에 지친 이주 이주민에게는 이 부분이 적응의 민들에게 새로운 리듬을 제공합 관문이자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① 니다. 어촌에서의 실제 생활과 어업 활 - 교통 측면 동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해 볼 수 ② 제주 내부의 대중교통 인프라는 있는 '귀어·귀촌 체험 프로그램' 제주만의 공동체 문화도 독특합 육지에 비해 부족한 편이기 때문 교육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단순 니다. 지역 주민들과의 관계 형성 에 차량이 사실상 필수품입니다. 한 체험이 아닌 이주 가능성을 고 에는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일 병원이나 관공서, 학교 등의 접근 려할 수 있도록 시행하고 있습니 단 신뢰가 쌓이면 정이 깊고 유대 성도 거주지에 따라 크게 달라집 다. 감이 강한 편입니다. 니다. ② ③ 제주로 귀어를 희망하는 예비 귀 제주에는 다양한 이주민 커뮤니 어인에게 현장 어업 실무연수(선 티가 잘 형성되어 있기에 비슷한 원) 기회를 제공하는 '제주형 귀 고민을 가진 사람끼리 소통하고, 어 인턴십 지원 사업'을 운영하고 협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있습니다. ③ 예비 귀어인과 귀어·귀촌 분야 전 - 이주 목적의 명확성 문가를 매칭하는 '도시민 유치지 만족도가 높은 청년은 단순히 '제 원 멘토링 프로그램 사업'을 시행 주가 좋아 보여서' 이주한 것이 하여 귀어·귀촌 활성화를 도모하 아니라, 명확한 삶의 방향성과 목 고 있습니다. 표를 가지고 이주한 경우가 많습 니다. 예를 들어, 자신만의 창업 센터는 그 여정 속에서 진심 어린 아이템을 실현하거나, 농어업·예 - 기후 측면 동반자가 되어, 제주에서의 새로 술·디지털 노마드 같은 직업적 기 겨울에 비교적 온화하고 사계절 반을 갖추며 제주에서의 삶을 '장 운 삶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지속 이 뚜렷한 점이 매력적이지만, 여 기적인 프로젝트'로 바라보는 사 적으로 지원할 계획입니다. 름철 태풍과 겨울철 강풍, 습도 람들이죠.

제주 고유한 환경

이주 만족도 차이

이런 지원책을 제공합니다!

7쪽

관자재한의원 정착 기간 정착 만족도

이욱진 원장 제주 제주시 월광로 140 202호 9개월 ★★★★

8쪽

제주로 이주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자유 때문에 내려왔어요. 서울에서는 주로 자연에서 자유를 찾았고, 그때마다 기분이 좋았거든요. 제주에서는 자연을 가 까이 둘 수 있으니 내려와도 괜찮겠다는 확신이 섰어요. 직업 적으로는 여유롭게 환자를 볼 수 있는 공간을 갖추고 싶었어 요. 서울에서는 최대한 많은 환자를 보기에 급급했으니까요. 또, 제주에서 한의원을 운영하시는 선생님께 한약을 쓰는 방 법을 배우고 싶기도 했고요. 두 가지를 동시에 얻으며, 서울 에서의 스트레스도 탈피하고자 제주에 왔어요.

서울과 제주에서의 진료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한의학은 다양한 체질이나 이론을 고려하고, 증상을 해석해 야 합니다. 사람마다 다른 처방을 내려야 하기에 더욱 심도 있는 진료가 필요하지만, 서울에서는 그러지 못했어요. 많은 환자를 대하기 위해서는 관례적인 처방을 빠르게 할 수밖에 없었죠. 여기서는 환자와 온전히 소통할 수 있어요. 환자와 대화하면서 침을 놓고, 방향을 찾아가며 진료할 수 있죠.

맞아요. 새로운 것도 좋아하는 편이에요. 자꾸 새로운 요리를 시도하고, 수제 맥주도 만들어 보고, 아무도 하지 않는 전자 음악 장르에 뛰어들기도 하고요. 처음에는 망하면 어떡하냐 는 두려움도 있지만, 실패마저도 알아가는 과정이잖아요. 직 접 만든 결과물의 퀄리티가 좋아질 때 희열도 느끼고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있네요. 맞아요. 얼마 전부터는 수제 맥주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친구 에게 스테인리스 통을 선물 받아 일단 50병을 만들어 뒀죠. 처음에는 집 근처에 수제 맥줏집이 없어 시작했는데, 숙성하 는 과정이 생각보다 재밌더라고요. 서울에서는 무엇이든 쉽 게 얻을 수 있었다면, 제주에서는 하나씩 직접 체험하며 배우 는 중이에요. 내 공간에서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고, 누군가와 만나서 알아가는 재미를 얻었죠. 오히려 더 바쁜 것 같기도 하네요.

제주 정착에 어려운 점도 있나요? 제주는 지역 사회의 성격이 강해요. 예를 들어 서울에서는 공 적인 절차를 거쳐야 했다면, 제주에서는 사람과의 관계로 더 빠르게 해결할 수 있더라고요. 이미 관계를 맺은 사이라면 더 욱 편한 점도 있을 테고, 아니라면 어려울 수도 있어요. 커뮤 니티가 끈끈하게 형성돼 있는 거죠. 제주가 고향인 사람과 잠 깐 머무르는 사람 간의 마음가짐은 다를 테니까요. 저도 노인 복지관에서 봉사를 하면서 복지사분들을 알게 됐고, 복지관 한의사는 각자의 특화 분야가 있어요. 원장님은 어떤 분야 의 소개를 통해 많은 환자를 뵐 수 있었어요. 에 특화된 사람인가요? 저는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자신 있어요. 최근에는 한 제주살이에서 가장 필요한 세 가지는 무엇인가요? 의학에서 소실된 맥을 공부하며 저만의 이론을 쌓아가고 있 첫째로는 차가 가장 중요해요. 교통이 썩 좋지 않거든요. 그 고, 일상적인 면에서는 진지하게 음악을 만들고 있어요. 그 리고 취미가 필요해요. 제주가 타지이기에 가족 관계에 시간 중 이미 녹음된 소리를 따오고, 이를 조립하는 전자 음악을 을 쏟을 필요가 없고, 하고 싶은 활동 위주로 생활하고 있어 하고 있어요. 단순히 소리를 갖다 붙이는 것만으로는 리듬이 요. 스노클링이나 서핑, 장을 보는 것처럼요. 혼자서도 할 수 생기지 않거든요. 정말 사람이 연주하는 생생한 느낌을 담고 있는 취미가 있다면 시간을 더욱 잘 보낼 수 있죠. 마지막으 자 노력이 필요하죠. 로는 여유가 중요해요. 아무래도 섬이기 때문에 물류가 천천 히 오거나, 아예 배송이 불가한 상품도 있어요. 서울에서 당 취미로 서핑을 시작한 이유가 궁금해요. 연하게 충족했던 욕구를 채울 수 없으므로 천천히 기다리거 2016년에 서귀포에 놀러 오면서 처음으로 서핑을 배웠어 나, 스스로 해소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죠. 요. 이후에는 양양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했고요. 원래는 수영 도 못했지만, 서핑을 배우며 바다에서 놀 수 있게 됐죠. 이제 앞으로도 제주살이를 계속 이어 나갈 예정인가요? 는 스킬에 집착하며 아쉬워하지 않고, 서핑을 즐기는 서퍼가 이제 33살이 되고 나니 다음 스텝이 무엇일지 고민하게 돼 되고 싶어요. 대단하지 않아도 되니 물 흘러가듯이 섞이는 것 요. 여기서 한의원을 개원하는 모습이나 방식, 그리고 생활을 처럼요. 아직 되돌아보는 중이에요. 꼭 정착해야 한다는 강박감보다 는 이런 방식으로 살아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도전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신 것 같아요.

글/ 정지원 부장

9쪽

이욱진의 스펙트럼

전자음악

캐나다의 한 레코드사와 인 연이 닿아 앨범을 발매했어 요. 최종 목표는 제 노래로 공 연을 하는 거예요.

한의학

선생님을 따라 제주로 내려 와 약을 쓰는 방법이나 운영 방식을 배우고 있어요. 확실 히 제주에서 환자를 더욱 심 도 있게 볼 수 있더라고요.

서핑

양양에서 서핑을 시작했어 요. 신기하게도 제주는 계절 에 따라 서핑을 할 수 있는 장 소가 달라요.

요리

또 다른 취미가 요리거든요. 최근에는 수제 맥주도 만들 고, 맛있는 요리를 위해 바질 도 키우고 있어요.

10쪽

뀰제주 / 그남자의 CARE 정착 기간 정착 만족도

- 모든 꿈을 제주에서

최지훈 대표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세성로 374 2년 ★★★★★

11쪽

그래도 시간 대비 더 많이 벌 수 있고, 나의 노력에 따라 결과 안녕하세요, 저는 육지에서는 엔지니어였고, 제주에서도 가 달라지는 점은 좋아요. 중소기업을 다니다 보면 많은 것을 에어컨 청소를 하며 엔지니어의 일을 이어 나가고 있습니 포기하게 되지만, 지금의 일이 훨씬 더 큰 가치를 가지고 있 다. 또, 부모님의 감귤 농사와 양봉을 병해하는 청년 농부 기도 하고요 이기도 합니다.

제주에서 꼭 필요한 세 가지는 무엇인가요? 첫째로 최소한 나의 특기 한 가지는 필요해요. 내가 자신있게

제주로 언제 이주했으며, 이주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제 제주에 정착한 지 2년이 지났어요. 당시 안양에 혼자 거 할 수 있는 기술이요. 둘째로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열린 마 주하고 있었는데, 축구를 하다가 다리를 다쳤거든요. 주변에 음이 중요하죠. 사람들은 제주도 현지인들이 텃세를 부린다 친구나 동생도 많았지만, 가족의 위로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고 말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거든요. 내가 먼저 인 저때문에 부모님이 제주에서 올라오시는 모습을 보며, 부모 사하면 그 사람들은 침 뱉지 않아요. 다 좋은 마음으로 인사 님을 따라 제주로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기회 해 주시고, 어려운 일에 발벗고 도와주시려 해요. 결국 사람 에 부모님의 귤 농사도 배우고, 사업도 제주에서 계속 이어 을 대하는 마음이 중요한 거죠. 마지막으로는 에너지가 필요 나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섰죠. 조금이라도 젊을 때 내려가야 한 것 같아요. 제주에 내려온 사람들을 잘 살펴 보면, 모두 쉬 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럼 제주가 고향인 걸까요? 제주가 고향인 어머니를 따라 고등학생 때 내려 왔어요. 대학 까지 제주에서 나왔고,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육지로 올 라갔어요. 24살이었으니까 12년을 육지에서 살았던 거죠.

육지와 비교했을 때, 제주만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다들 제주가 불편한다고들 말하지만, 욕심만 버리면 굉장히 편한 곳이에요. 제주에서 살았던 23살 때는 한 달에 200만 원만 벌고 살아도 되겠다고 생각했었어요. 왜냐면 돈을 벌어 도 돈을 쓸 데가 없거든요. 여기 유일한 쇼핑센터는 이마트밖 에 없어요. (웃음). 오히려 편해요. 내가 경험할 수 있는 분야 가 좁으니까 하나씩 온전하게 살펴볼 수 있거든요. 그리고 자 연이 가장 큰 장점이죠. 에어컨 청소 일을 하면서 제주도의 곳곳을 다니다 보면, 언제든 바다와 산이 펼쳐져요. 꼭 일하 러 가는 게 놀러 가는 것 같아요.

제주살이는 여유롭나요? 육지 생활을 하면서는 여유를 찾으려고 했죠. 워라밸을 챙기 거나, 주말에 시간을 내야만 하잖아요. 당시에는 워라벨이 없 었어요. 일주일에 한 번 즐기는 축구가 유일한 낙이었죠. 그 정도로 일에 매진하며 살았고, 특별하게 삶의 보람을 못 느끼 고 살았어요. 처음 입사하면서 특정 수준의 목표와 봉급을 설 정해 뒀고, 이를 이루려고 열심히 일했죠. 제주에서는 여유를 찾을 필요가 없어요.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기에 자유롭게 휴 무를 정할 수 있고, 내 주변을 챙길 수 있어요.

자유롭지만, 불안하지는 않나요? 일하는 만큼 벌기 때문에 정기적인 수입이 있는 건 아니죠.

아내 분도 제주에서 만나신 걸까요?

러 왔다고 말하면서도 쉬지 않아요. 오히려 한가한 사람들은 제주에서 살아남기 힘들죠. 조금만 부지런하다면 제주는 정 말 살기 좋은 곳이에요.

적극적인 성격이 제주 정착에 도움이 됐나요? 많이 도움됐죠. 사실 저도 집에 있는 걸 더 좋아하지만, 필요 하니까 더 열심히 움직였죠. 적극적으로 주변의 일을 도우려 들고, 의무적으로 모임에 참석하곤 했어요. 그리고 저의 어머 니가 세화리에 살고 계시는 만큼 모임에 나가서도 완전한 외 지인처럼은 여겨지지는 않았어요. 처음 제주에 왔을 때도 부 모님 집의 한 칸에서 살았고, 한 두달간 동네 삼촌들의 밭일 도우면서 자연스럽게 친목을 쌓았거든요. 그래서 제주 정착 이 조금은 수월하지 않았나 싶어요.

아/ 저는 제주에 1년 살러 왔다 자연스레 정착했어요. 처음 1년은 서귀포에서 살았고, 이후에는 제주시로 넘어 갔어요. 당시에 모임을 여러개 운영하며, 남편을 알게 됐죠. 마케팅 목적으로 SNS 운영 방식을 공부하고, 정부를 공유하는 모임 이었어요. 남편은 농부로서 마케팅을 배우려고 모임에 들어 왔고, 공부를 하다가 친해졌어요.

12쪽

제주의 어떤 점을 계기로 제주에 정착하게 됐나요?

아/ 원래 호주에서 3년 간 살다가 제주에는 잠시 쉬러 왔어 요. 이전까지는 일만 열심히 하다가 운동, 독서, 일을 반복했 더니 스스로 정화되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세상도 넓은 시각 으로 보고,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자신감도 얻고요. 그래서 제주에서도 나의 일을 찾을 수 있겠다는 확신을 얻었던 것 같 아요. 그렇게 마케팅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프리랜서로 조금 씩 외주를 받던 중에 남편을 만났죠.

동시에 여러 업종에 종사하고 계세요. 지금은 어떤 일을 하 고 계신가요? 감귤은 판매를 안 할뿐이지 밭 관리는 계속 하고 있어요. 약 을 주거나, 풀을 제거하면서 오는 11월에 귤을 수확할 수 있 는 환경을 만드는 거죠. 그리고 지금 당장의 수익을 병행하기 위해 ‘그 남자의 Care’라는 상호로 에어컨 청소를 병행하고 있어요. 육지에서 하던 일이었기에 부업으로 시작한 거죠.

‘뀰제주’ 스마트스토어에서는 고사리도 판매하고 있더라 고요. 아는 삼촌이 농사를 짓고 계세요. 농협 공판장에 팔지 않고, 저희가 사서 다시 판매하고 있는 거예요. 일종의 위탁 판매예 요. 비교적 유통 과정을 줄이고, 마진을 최소한으로 남기면서 진행하고 있어요.

농장 근처에서는 가옥을 리모델링하고 계시더라고요. 정부 지원 사업인 ‘신사업창업사관학교’의 지원을 받고, 농장 에서 5분 거리에 양봉 공방을 준비 중이에요. 농장에서 꿀을 채밀하는 과정을 구경하거나 직접 보호복을 입기도 하고, 벌 집 아이스크림도 먹어보는 거죠. 또 양봉의 부산물인 밀랍으 로 초를 만드는 체험도 준비하고 있어요. 특히 아이들을 대상 으로요. 지금 임신 중인 저도 그렇고, 제주에는 아이들이 놀 여러 가지 일을 병행하는 게 어렵지는 않나요? 수 있는 공간이 적다는 피드백을 많이 듣거든요. 아무래도 지 아내를 만나기 전에는 큰 돈이 없어도 어떻게든 먹고 살 수 원 사업이다 보니 발판처럼 쉽게 시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가장으로

양봉과 감귤 농사를 함께 하고 있어요. 원래 할머니께서 감귤 농사를 평생 해오셨고, 어머니도 귀농 을 하신 거예요. 그러나 8년 전에 우연치 않게 벌통 하나를 보관하게 됐어요. 시간이 지나다 보니 벌이 늘어나 벌통 하나 를 늘렸고, 점점 그 규모가 커지더니 사업으로 정착했죠.

메밀꿀은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벌들은 자기 집을 딱 인식하면, 그 장소로만 돌아올 수 있어 요. 집을 옆으로 조금만 옮겨 두면 못 찾아가는거죠. 그래서 해가 뜨기 전, 새벽 세네시에 집을 옮겨 메밀밭에 갖다둬요. 해가 뜨면 벌들이 집을 나가 메밀밭을 열심히 돌아다니고요. 메밀이나 아카시아들은 자가 수정을 못하니 벌의 도움을 받 아 수정을 하는거죠. 이런 식으로 메밀밭과 공생을 하는거죠.

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책임감도 있죠. 솔직하게 조금은 편하게 살아도 살아가는 데 지장은 없지만, 여름에는 에어컨 시원하게 켜고 살고 싶잖아요. 겨울에는 난방도 계속 틀고요. 제주에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있는 미래를 만들고 싶 어요.

지금 인터뷰를 진행하는 농장에서는 귀촌 교육도 하고 있 더라고요. 제 부모님이 도청에서 교육비를 받고, 이제 막 귀촌을 한 이 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고 계세요. 1년 주기로 모집을 받아 대략 10명 정도를 대상으로요. 이제 막 귀촌하신 분들은 특 정 시기에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모르고, 정책적으로도 무지할 수밖에 없거든요. 특히 막연한 이상을 가지고 오시는 분들도 많아요. 일단 어디서 무엇을 시작해야 하는지부터 알아야 하 죠. 예를 들어, 육지에서 1시간의 출퇴근은 예사지만 제주에 서는 모두가 비난하거든요

다시 선택하더라도 제주일까요? 저는 무조건 제주로 올 것 같아요. 오히려 36살에 제주로 내 려온 게 늦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조금이라도 더 빨리 왔으 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남아요. 이제 사업도 안정됐고, 농 장만 마무리되면 제가 평생 바라던 것들이 다 이루어져요. 제 가 항상 바라던 것들이 모두 제주에서 이뤄졌거든요.

글/ 정지원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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씬오브제주 정착 기간 정착 만족도

강보람 대표 제주 제주시 애월읍 금성3길 21 5년 ★★★★

14쪽

본인을 소개해 주세요. 저는 제주에서 ‘씬오브제주’를 이끄는 강보람입니다.

‘자연 염색’이라는 소재로 브랜드를 만든 계기가 궁금해요. 제주에 처음 내려왔을 때, 패션 에디터로서 귤 모자나 귤 선 글라스처럼 단순 관광 상품에 그치지 않고, 기념품들이 더욱 트렌디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주만의 감

제주로 언제 이주했으며, 이주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서울에서 7년 차 패션 에디터로 일하는 어느 순간, 매너리즘 성이 담긴 상품을 찾기 위해 편집숍과 소품 숍을 돌아다녔죠. 에 빠지게 됐어요. 더 이상 명품이 명품 같지 않아 보였고, 그 그러던 중 길을 걷다가 ‘갈옷’에 대한 설명이 적힌 표지판을 만한 가치가 있는 상품인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어요. 사치품 보게 됐는데,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어 이때부터 천연 염색을 을 만드는 사람들의 세계에 회의감이 느껴졌던 거죠.

배우기 시작했어요. 문득 ‘하와이안 셔츠는 있는데 왜 제주 처음 에디터를 꿈꿀 때는 화려한 삶을 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 셔츠는 없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염색을 배우다 보니 매 는데, 돌아보니 저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였어 번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을 기다리는 설렘에 스스로 힐링 됐 요. 제가 글을 쓰면 봐주는 사람이 있고, 제 말에서 가치를 느 던 것 같아요. 낄 수 있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예요. 스스로에게 ‘나 에게 진짜 가치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던 시기였고, 비 로소 제주에서 진짜 가치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주에서는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가 생기더라고 요. 2021년도에 처음 제주에 내려와 반년간 살았고 서울로 돌아가 창업 준비를 했어요. 그리고 2022년도에 다시 제주 로 내려와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제주에서 어떤 꿈을 펼치고 싶으셨나요? 중학교 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라는 영화를 보며 화려 한 세계를 동경하게 됐고, 패션 에디터가 되어야겠다고 다짐 했어요. 하지만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친구들이 취업을 준비 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친구들을 따라 취업 준비를 했죠. 그 러다 어느 순간 제가 하고 싶은 게 아닌 다른 길을 좇고 있다 는 걸 깨달았어요. 이후에는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 시원과 셰어하우스를 전전하며 잡지사 어시스턴트를 시작했 고, 패션 칼럼을 쓰고 다양한 비주얼 화보도 찍으며 하고 싶 은 일을 펼쳐나갔어요.

제주에서 창업하기까지 어떤 시간을 보내셨나요? 제주에 내려오고 나서는 필라테스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필 라테스는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 일이기에 배워 둔다면 생 계를 유지할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필라테스 자격증을 따면서 창업 준비도 함께 이어 나갔어요.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아이템이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가장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특히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처럼 언젠가 휘발되는 것보다 오랫동안 남아있는 아이템을 찾고 싶었어 요. 그래서 비즈 공예를 배우기도 했고 화장품 브랜드를 생각 해 보기도 했죠. 그러던 중 필라테스 수업에서 만난 한 분이 제주 창업을 위한 정부 지원 사업을 소개해 줬어요. 지원서를 쓰며 제가 무엇을 해왔는지 다시 한번 저를 돌아볼 수 있게 됐죠.

‘씬오브제주’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2022년 8월에 씬오브제주가 탄생했고, ‘제주의 풍경을 당 신의 옷장에’라는 슬로건으로 의류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저 는 자연 염색이 결과물뿐만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브랜드의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천연 염색이 잊히지 않 게 많은 사람들에게 알린다는 사명감도 생겼고요. 또한 클래 스를 진행하면서 단순한 공예가 아니라 장인 정신을 담은 브 랜드로 기억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염색하는 과정에서 ‘제주스럽다’고 느꼈던 순간이 있는지 궁금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염색은 나뭇잎 염색이에요. 나뭇잎은 그 자체의 실루엣이 그대로 찍히기 때문에 원하는 모양을 구현 할 수 있거든요. 오려낸 나뭇잎이 옷감에 그대로 남는 것이 신기했어요. 그래서 원데이 클래스에서도 손님들이 원하는 모양을 낼 수 있도록 저희 스토어 앞에 나무를 심었어요. 직 접 나뭇잎을 따서 하나뿐인 무늬를 구현하는 거죠. 이러한 과 정이 제주다운 염색 방식이 아닐까 싶어요.

브랜드 이름인 ‘씬오브제주’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나요? 자연 염색의 무한한 가능성과 제주의 자연이 잘 어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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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의미로 브랜드명을 씬오브제주라고 지었어요. 자연 염색 적당하겠다고 생각했죠. 너무 붐비지도 너무 고요하지도 않 을 하다 보면 같은 색이 두 번 다시 나오지 않아요. 이런 특성 은 장소를 원했는데, 곽지 해수욕장 근처이면서도 적당히 조 때문에 제품화나 대량 생산에 어려움이 있지만, 저는 오히려 용한 지금 이 공간이 마침 조건에 딱 들어맞았어요. 색감의 다양성과 편차가 좋았어요. 저는 자연의 풍경을 좋아 하는 사람이라 제주의 청정한 자연을 옷에 담고 싶었습니다. 이장님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가게를 차리고 1년쯤 지나서 이장님을 처음 뵙게 됐어요. 그 자신감의 원천은 제주였기에 가능했던 걸까요? 날도 평소처럼 옷을 염색하던 중, 마을을 순창 중이던 이장님 자신감은 ‘제가 얼마나 고민해 봤느냐’의 깊이에서 나오는 것 이 부녀회 행사에서 염색 체험을 할 수 있느냐고 제안하셨어 같아요. 예를 들어 사업 아이템을 발표할 때도 ‘이 아이템에 요. 사실 마을과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에 긍정적이지는 않 대해 나만큼 고민한 사람은 없다’는 마음으로 임하기 때문에 았거든요. 염색 체험은 비용이 많이 들기에 괜찮으시다면 진 그 자리에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거든요. 또 제가 얼마나 고 행하겠다고 답했고, 이후 꾸준히 이장님이 찾아와 주시며 협 민했는지를 스스로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사업에 대해서 상 끝에 행사를 진행하게 됐어요. 뒤늦게 알았다면 이장님의 도 쉽게 평가하려 하지 않아요.

사비로 행사 비용을 충당했던 거였어요. 이후 이장님에 대한 신뢰가 쌓였고, ‘나에게 기회를 주시는 분이구나’라는 깨달음 을 얻었죠.

현재 마을과 브랜드가 관계를 맺게 된 것이 큰 장점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럼요. 금성리 마을 잔치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이 잔치 가 페스티벌처럼 커져 외지에 있는 친구들도 방문하게 만들 자는 아이디어를 냈었거든요. 제가 직접 포스터를 제작하고, 보도 자료를 만들어 언론사에 전화도 돌렸어요. 실제로 외지 에서 찾아주시는 걸 보며 이장님도 신기해하셨죠. 이후에 마 을과의 연계 프로그램도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마을과의 협업은 씬오브제주의 방향성과도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 자 제주에 와서 ‘나를 소개하는 아이템은 뭘까’라는 고민을 했 연 염색이라는 순수하고 따뜻한 이미지가 지역 주민들과의 다고 들었어요. 지금 ‘강보람’을 소개하는 아이템은 무엇인 융화와 일맥상통하잖아요. 이런 관계들이 브랜드의 진정성 가요? 을 더해주는 것 같아요. 지금은 ‘씬오브제주’ 그 자체가 나를 설명해 주는 아이템이라 고 생각해요. 제가 잉태한 아이 같다고 할까요. (웃음) 그래 현재 대표님의 모습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어떤 서 더 애착이 가고, 정말 예쁘게 잘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 들 캐릭터와 가장 닮아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어요. 저는 당시에 앤 해서웨이가 되고 싶었는데 메릴 스트립이 돼 버린 것 같아요. (웃음). 애월 쪽에서 ‘씬오브제주’를 운영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궁 금해요. 씬오브제주를 통해 앞으로 더 이루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씬오브제주가 제주라는 공간에서 이뤄지는 사업이 라는 점이 가장 큰 차별점이라고 생각해요. 육지에 있을 때는 요? 관심 없던 상품들도 ‘제주에 온 김에’라는 이유로 구입하고 천연염색을 거짓으로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요. 진정성 있는 브랜드, 그리고 사람들에게 천연염색을 소개해 주고 싶 싶어지는 심리를 활용한 전략이기도 했고요. 제주에 내려와서 필라테스를 배우지 않는 날에는 거의 제주 다는 생각이 들게끔 만드는 브랜드가 되고 싶어요. 전 지역을 돌아다녔어요. 그러면서 깨달았다면 현지인들은 관광객들과 달리 시내에서 멀리 이동하는 걸 꺼리더라고요. 제주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부담이 없으면서 관광객들에게 글/ 최한결 부장 도 접근성이 좋은 위치를 고민하다가 애월에서 삼양 사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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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의 부엌 정착 기간 정착 만족도

표은지 책임 매니저 제주 제주시 구좌읍 해맞이해안로 2265 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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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로 올라가는 비행기에서 다시 제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제주의 삶에 잘 맞는다고 들었어요. 제주 와 잘 맞는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일까요? 확실히 여유가 다른 것 같아요. 제주에 와서 다양한 일을 해 왔지만 이전처럼 제 업무에 매몰되진 않았던 것 같아요. 육 지에서 일할 때는 야근은 당연했고 바쁘면 주말에도 출근하

제주로 언제 이주했으며, 이주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27살 겨울에 첫 직장을 그만두고 다음 일자리를 구하기 전 는 게 자연스러웠거든요. 그런데 제주에서는 이런 순간이 확 까지 공백의 시간이 다신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히 덜했던 것 같아요. 제주에서도 일할 때는 집중해 최선을 그래서 ‘하고 싶은 걸 다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제주 한 달 살 다하지만, 업무 외 시간까지 내 삶을 갈아 넣으면서 일하진 이를 하게 됐죠. 처음에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스태프로 일하 않고 있어요. 오히려 일과 삶의 균형을 조금 더 찾게 된 느낌 며 자유를 즐겼어요. 육지에서 지낼 때보다 제주에서의 생활 이에요. 이 훨씬 편안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점점 한 달이 두 달, 석 달 ‘해녀의 부엌’에서 일하게 이 됐죠. 어느 날 부모님과 통화를 하는데, ‘제주가 그렇게 좋 된 계기가 궁금해요. 으면 거기서 살아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웃음) 농담처럼 던 제가 공정 여행사에 다니던 지신 말씀이었겠지만 저는 오히려 이 말씀을 계기로 진지하 시절, 당시 회사 대표님과 함 게 제주살이를 고민하게 됐어요. 께 동쪽에 새로 생긴 ‘해녀의 부엌’이라는 곳에서 직원들 과 함께 공연을 보고 식사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제주에 정착하신 것 같아요. 육지에서 러 갔던 기억이 있어요. 저희 경험했던 인프라뿐만 아니라 친구들, 가족들과 멀어지며 는 공정 여행 코스를 만들면 힘들진 않으셨나요? 서 마을의 로컬 식당이나 숙 처음 직장을 구할 때부터 어려움이 있었어요. 육지에서 할 소를 직접 발굴하고 소개하 수 있는 일보다 제주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수 자체가 적기 는 일을 주로 했거든요. 그러 도 했고 원래 하던 일과 다른 분야의 일을 하고 싶었거든요. 다 육지에 다녀온 뒤 다시 제 그렇게 제주에서 처음 들어간 직장이 공정 여행사였어요. 저 주로 내려오면서 ‘정적인 공간은 나에게 우울감을 주는구나’ 는 여행 기획자로서 가이드부터 숙소, 식당까지 마을과 연계 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좀 더 동적인 공간에서 일하고 하는 여행을 만들어 나가는 일을 했어요. 당시 친구를 만들고 싶었고, 제주에 내려온 김에 ‘제주스러운 곳’에서 일해보자는 싶은 마음에 사진 모임도 운영했는데 3년 정도 같이 지내던 생각이 들었죠. 두 번의 퇴사 후 구직 활동을 할 때 마침 ‘해 또래 친구들이 거의 1년에서 2년 정도 살다가 더 큰 꿈을 찾 녀의 부엌’에서 채용 공고가 올라와 망설임 없이 지원하게 됐 아서 육지로 떠나기 시작했어요. 동시에 코로나로 인해 여행 어요. 업이 타격을 받게 되면서 자연스레 저도 새로운 직장으로 이 직을 생각하게 됐죠. 두 번째 직장은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는 센터였어요. 처음엔 ‘해녀의 부엌’ 책임 매니저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나요? 안정적인 직장이라 만족하며 지냈는데, 활발한 성향 때문에 해녀의 부엌은 공연과 요식업이 결합된 독특한 형태의 공간 사무적인 일이 재미없다고 느껴졌어요. 그러다가 타지에서 이에요. 저는 책임 매니저로서 공연 준비부터 마무리까지의 의 근본적인 외로움이 찾아온 것 같아요. 전반적인 일을 총괄하고 있어요. 공연 전에는 공연에 사용될 해산물을 관리하고 공연 중에는 조명과 음향 오퍼레이팅을 직접 맡고 있어요. 또 배우분들을 관리하는 역할도 제가 맡고 그리고 다시 제주로 돌아온 걸까요? 있죠. 무엇보다 매일 새로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게 제주에서 두 번의 이직 후 본가에 올라가 지냈어요. 근데 가 제 성향과 잘 맞는 것 같아요.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는 만큼 족들과 떨어져 살다 보니 삶의 방식이 너무 달라져 있었고 제 늘 역동적이고 활발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주와 달리 도심의 빽빽한 빌딩과 복잡함이 버겁더라고요. 그 래서 다시 제주로 내려가기로 했죠. 다만 이번에는 제가 그동 안 해왔던 일과 전혀 다른 활동적인 일을 해보자는 목표를 가 ‘해녀의 부엌’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분위기나 매력이 졌어요. 있다면 어떤 점일까요? 우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정말 다양해요. 배우분들은 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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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내려오시는데 20대에서 30대 초반 분들이 많고요. 주 을까란 생각이 들었죠. 생각해 보니 또래 친구 중에서도 1년 혹은 방에서는 종달리에 거주하시는 50대, 60대 이모님들이 함께하시 2년 차에 제주를 떠나는 경우가 많았고. 제주분들은 유입되는 사 고 공연의 주인공은 올해로 88세인 실제 해녀 할머니세요. 제가 람들만큼 떠나는 사람도 많이 봐오신 거예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 처음 입사했을 때는 91세 할머니도 계셨어요. 이렇게 정말 20대 럽게 ‘이 사람도 잠깐 있다 떠나겠지’라는 인식이 자리 잡은 것 같 부터 90대까지 다양한 세대가 한 공간에서 함께 소통하고 일하는 아요. 물론 사람마다 제주에 온 이유도 다르고 머무르는 목적도 다 르니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조금 씁쓸하기도 했어요. 곳이에요. 특히 프리랜서 배우분들은 3개월에서 6개월 주기로 교체되는데 그만큼 정말 많은 분과 함께 일할 수 있었어요. 그 과정에서 배우 육지 생활과 비교했을 때, 독자에게 알려주고 싶은 제주의 특징 분들에게 받는 에너지가 정말 크더라고요. 공연을 올리면 관객분 은 무엇인가요? 들이 오시잖아요. 공연 후엔 감동하거나 즐거워하는 모습을 직접 제주는 특히 ‘괜당’ 문화가 강한 편이에요. 괜당이 친척 혹은 인 보는 것도 큰 힘을 얻게 되는 것 같아요. 연이라는 뜻인데 제가 있는 종달리 같은 시골 마을은 다 연결되 어 있어서 건너 건너 다 아는 사이거든요. 저 같은 이주민이 이 곳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기는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에요. 그래 도 해녀의 부엌에서 일하면서 특히 어르신들과 함께 지내며 마 음이 열리는 순간들을 많이 느꼈어요. 지금은 이곳 사람이 아 니어도 정말 딸처럼, 손녀처럼 챙겨주시는 정이 있다는 걸 많 이 느껴요. 그럴 때마다 제가 정말 이 지역에서 조금씩 자리 잡 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로컬에서 일하고 있기 때 문에 이런 감정을 조금 더 빨리 느낄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제주살이에 어느 정도 적응한 것 같으신가요? 지역에 애정을 갖고 생활하는 건 어느 정도 적응한 것 같아요. 그 런데 한동안 ‘내가 정말 제주도민일까’라는 고민이 들었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때 저도 제주에 와서 만난 토박이분들과 이주민분들 을 직접 인터뷰하면서 책자를 만들었죠. 인터뷰를 해보니 보통 제 주 토박이분들은 ‘제주에 살면 제주도민이지 그 기준을 왜 궁금해 ‘은지모임’을 만드신 계기가 궁금해요. 은지모임은 어떻게 운영 하느냐’고 의아해하셨어요. 그 말을 듣고 저도 스스로 제주도민인 되고 있나요? 지 궁금해하는 이유가 사실은 도민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 제가 학교 다닐 때에는 은지라는 이름이 굉장히 흔했어요. 그래서 라는 생각이 든 거예요. 제가 도민이라고 느끼면 굳이 그걸 고민할 어릴 땐 제 이름을 좋아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어요. 30대가 넘어 필요가 없었겠죠. (웃음) 가니까, 어느 날 문득 은지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만날 일이 별 로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름이 같은 사람들을 모아보면 재밌지 않 을까란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의 제주살이는 어떤 모습이길 바라나요? 은지모임을 열기 위해 제주 내 커뮤니티에 홍보하고 주변 지인들 지금은 제주가 정말 좋아서 계속 살고 싶은 마음이에요. 하지만 이 을 수소문했는데, 신기하게도 제주에 있는 은지들이 하나둘 연락 삶이 영원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제주에서 집을 을 주셨어요. 이름만 같을 뿐, 각자 직업도 다르고 성격, 관심사도 사거나, 결혼을 해 생활의 기반이 완전히 이곳으로 옮겨진다면 그 다 다르잖아요. 그래서 서로 취향을 공유하고 새로운 걸 함께 경험 때는 정말 정착했다고 느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아직까진 새로 해 보자는 취지로 모임을 시작했어요. 지금까지도 한 달에 한 번씩 운 목표가 생기면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요. 정기 모임을 하며 평소 해보고 싶었던 취미나 활동을 함께 즐기고 있어요. 앞으론 제주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은지들까지 연결해 보는게제 목표예요.

제주에 정착하며 마을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겪은 가 장 큰 변화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제주에 온 지 1년 정도 됐을 때 사람들을 만나면 ‘금방 가겠네’란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처음엔 왜 제가 금방 떠날 것이라고 단정지

글/ 최한결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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