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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시에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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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쪽

차례

1. 시의 문을 열며 2

2. 시

1) 수선화 3 2) 개나리 4 3) 비여,비여! 5 4) 목련 6 5) 달팽이 7

6) 하늘과 바다 사이 8 7) 갈매기 노닐다 9 8) 대숲에 안기다 10 9) 메타세쿼이아 11 10) 겨울눈 12

3. 시를 접으며 13

3쪽

시의 문을 열며

세상은 언제나 말을 걸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나뭇잎을 쓰다듬을 때, 햇살이 꽃잎 위에 조용히 내려앉을 때, 내 안에도 조용한 언어가 움텄습니다. 자연은 시보다 먼저 시를 알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뒤늦게 깨닫는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이름 없는 풀잎 하나가 내 마음을 적시는 순간들을 지나 이제야 펜을 듭니다. 이 시집은 풀과 나무, 바람과 계절에게서 배운 말들로 조심스레 엮은 작은 노트입니다. 자연을 바라보며 당신의 마음도 잠시 멈추어 쉬어가기를, 그 쉼 속에서 당신만의 시 한 줄이 피어나기를 바랍니다.

4쪽

수선화

검은 외투 자락 아래로 거친 바람 쌩쌩 지나가고 손길 닿는 것마다 차가워 저절로 움찔하네

서둘러 볼일 마치고 꽉 닫힌 현관 앞에서 외투 탁탁 털다가 포근한 햇살 그리워하네

따사로운 볕이 마냥 그리워 잠시 위로 향했던 눈길이 문득 휑한 화단에 멈췄네

어머나! 웬일이니, 웬일이야 여린 연두빛 줄기가 쏘옥 고개 내밀고 있네

단단하고 메마른 흙을 온 힘으로 밀어내고 찬란하게 빛나고 있네

<문학광장 2021년 제87호 게재>

5쪽

개나리

살랑살랑 봄바람에 노란 별이 까르르 웃으며 피어나네 샤르르 햇살 타고 흐르는 웃음 하나둘 작은 별이 피어오를 때 나뭇가지 끝마다 봄이 톡톡 튀네 아이의 웃음처럼 날아오르는 봄

활짝 피어난 노란 별무리는 따스한 해님의 친구가 되었네 노란 숨결로 피어난 봄친구

2025년 4월 3일

활짝 핀 개나리 보고

6쪽

비여, 비여!

여기저기 산이 울부짖는구나 활활 타오르는 시뻘건 화마火魔에 숨 막히고 뜨거워서 몸부림치네

화마가 지나간 자리는 잿더미구나 눈물인지 땀방울인지 줄줄 흐르고 멈추지 않는 불길에 가슴이 바싹 타네 그토록 갈망했던 비는 보슬비구나 콸콸 쏟아지는 장대비 내려서 어서어서 붉은 화마 잡아주오

속이 시커멓게 타는 이들이 모두 함께 활짝 웃을 수 있도록 억수비 억수로 내려다오 2025년 3월 27일 산불이 꺼지길 바라면서

7쪽

목련

백옥 같은 꽃 송이송이 피어나면 추억도 하나둘 떠오르고 기억 속 풋풋한 얼굴들은 깔깔대고 토라지며 두터운 우정 이어갔지

아, 무정한 세월아 시나브로 만남도 뜸해지니 돈독한 우애 퇴색했네

2025년 4월 3일 목련을 보고

목련은 해마다 찾아와도 친구들은 볼 수 없어 먼 추억 속에서 해후하리

8쪽

달팽이

그렇게 느릿느릿 기어서 언제 목적지에 도착할 거니

딱딱한 화단 벽 오르는 달팽이 보고 말 걸어보네

보는 이 답답해하건 말건 너는 한결같이 느리구나

시력이 약하다고 하더니 정말 내가 안 보이는 거니

옮겨주려고 손 내밀었더니 머리가 쏘옥 들어가버리네

아차, 너처럼 느린 삶도 존중해야 한다는 걸 깜박했구나

<지필문학 2022년 겨울호 게재>

9쪽

하늘과 바다 사이

파란 하늘이 쪽빛 바다를 품고 하얀 구름이 그 위에 깃들 때 깊은 마음속 파도 소리로 바다는 가만히 소곤거린다

거친 바위에 부딪히는 물방울들 세상 모든 아픔을 안고도 결국은 돌아오는 파도처럼 그대도 다시 일어설 수 있으리

바람은 자유롭게 날아가고 물결은 끊임없이 밀려오니 어렵고 힘든 이 순간에도 영원한 사랑을 꿈꾸어 보네

<지필문학 제71호 2024 겨울호 게재>

10쪽

갈매기들 노닐다

하얀 모래 위 갈매기들은 조용히 고개 숙이고 깊은 바다의 속삭임 듣네

작은 파도가 부서지는 숨결 그 아래 스며드는 태양의 온기 바다는 심심하다고 투정하네

갈매기들은 짐짓 모른 체하며 저마다의 그림자를 밟으며 바람의 노래를 읊는다네

파도는 물러서고 발자국은 남아 모래 위 시간을 새기며 사부작사부작 노닐고 있네

그러나 바다가 재촉하기 전에 갈매기들은 이내 날아올라 한없는 자유의 날개 펼치리라

<문학광장 제111호 게재>

11쪽

대숲에 안기다

길게 뻗은 대나무 숲 사이 은은한 햇살이 흐르고 바람이 살며시 몸을 흔들 때 푸른 숲은 어서 오라고 손짓하네요

잎이 떨어져 쌓인 길을 밟으면 사각거리는 소리에 차분해지고 당당하게 쭉 뻗은 줄기 사이 하얀빛은 춤추듯 반짝이네요

바람이 멈추고 고요가 흐를 때 자연의 숨결을 온몸으로 느끼고 햇빛을 품은 잎사귀의 몸짓 따라 포근한 대숲에 폭 안겨 보네요

대나무 향기는 내 안에 스며들어 평온한 기운이 가슴에 흐르고 싱그러운 대나무숲에 기대어 잠시 삶의 무게 내려놓네요

<문학광장 제111호 게재>

12쪽

메타세쿼이아

붉게 물든 나뭇잎들 사이 역삼각형 파란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구나

발걸음 따라 그림자 지고 바람결에 속삭이는 잎새는 겨울의 길목으로 가는구나

나무들은 말없이 서서 계절을 품고 서늘한 향기는 머리 위로 조용히 흐르는구나

하늘로 곧게 뻗은 자태가 참 단정하고 기품있어 그저 친구가 되고 싶구나

<지필문학 2025년 봄호 게재>

13쪽

겨울눈

겨우내 앙상한 가지들을 하늘 향해 뻗친 나무는 한없이 을씨년스러워 보이지만 그건 멀리서 본 모습일 뿐이에요 가지 끝을 온 힘으로 감싸고 파릇파릇 새싹 키울 준비하는 겨울눈의 열정 볼 수 있게 좀 더 가까이 가봐요

일필휘지할 보드라운 붓 딸랑딸랑 앙증스러운 방울 생긴 건 각양각색이지만 뜨거운 마음은 똑같아요 나무가 맹렬한 추위 이기고 새싹 틔울 겨울눈 품고 있듯이 인고의 세월 보내는 이들도 가슴에 희망 품고 있을 거예요

오, 겨울눈이여! 칙칙하고 두꺼운 옷 벗어 버리고 어서 밝고 고운 옷 갈아입어요

<문학광장 2023년 제99호 게재>

14쪽

시를 접으며

시를 쓰는 일은 가만히 귀 기울이는 일이었습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풀잎 하나에도 잊힌 돌멩이 하나에도 세상은 조용히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요. 그 소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천천히 걷고, 천천히 바라보며 한 줄, 한 줄 시로 적어보았습니다. 자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는 나는 매번 달라졌습니다. 결국 이 시집은, 자연의 기록이면서 나라는 존재의 흔적이기도 합니다. 이 시들을 다 읽은 지금, 당신 곁의 나무도 조금은 다르게 보이길 바랍니다. 어느 오후, 당신도 한 줄의 시처럼 피어나기를 바라며 조용히 이 책장을 덮습니다.

* youtube.com/@miokim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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