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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수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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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쪽

헌수생각

2018-2022 COVID19와 정체성 혼란의 시대를 살면서 공정과 상식 위에 바로 선 역동적인 나라를 꿈꾸며 살아온 대학총장의 이야기

한헌수 글

3쪽

▷ 책을 열면서..

▷ 개띠찬가

▷ 제1장

▷ 제2장

▷ 제3장

▷ 제4장

▷ 제6장

▷ 제7장

▷ 책을 닫으며..

목차

미래에 대한 걱정, 기독청년의 리더십

원칙과 현실의 조화, 통일과 평화공영

끝없는 되풀이, 정치현실 비판

호치민 3개월, 과거의 극복과 미래

▷ 제5장 COVID19 극복의 도구, 新동물농장

정책의 놀이판 된 대학, 대학개혁의 방향

세상사에 대한 간섭, 헌수생각

4쪽

책을 열면서..

난, 참 자기애가 강한 사람인가 봅니다.

내가 원하는 세상이 뭔가가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으로 사 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공정’하고 ‘상식’적인 사회, 누구 나 안심하고 자신의 발전을 위해 창의적으로 노력하는 나라를 꿈 꿉니다. 그래서 기회 되는대로 신문에 기고도 하고, 틈나면 어디 서든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리기도 합니다. 이제는 그동안 공부하 며 깨달아가는 역사와 기술발전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영상으 로 만들어 블로그에 올리고 있습니다.

박근혜前대통령이 탄핵당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코로나도 발생하면서, 나라도 나 개인도, 지금까지 참 많은 변화를 겪었습 니다. 그 사이에 정권이 또 한 번 바뀌었고요. 어느 나라 국민이 이만큼 많은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적인 변화를 한 시대에 경험 할 수 있을지 궁금할 정도입니다. COVID19을 겪으며 아시아 국 가들에 보여준 미래 통제 사회의 예고편을 보면서, 정권이 바뀌었 다고 모든 정책과 사람을 전방위적으로 바꾸려 하면 국가의 정체 성이 흔들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으니,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정치판에 대해서는 어느 순간 글 쓰는 것은 멈추었습니다. 너무도 똑같은 일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것을 느낍니다. 벌어지 는 일들에 대한 시비하는 글을 쓰다 보면, 이미 이야기했던 것과 같은 내용을 또 쓰고 있는 것을 확인합니다. 5년 전에 썼던 글들 이 지금의 상황에 어찌 그리 잘 맞아떨어지는지 나 자신이 신기 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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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형태든 글을 쓰는 것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정 리하는 일이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2018년부터 썼던 글들 을 다시 읽어보다가 이렇게 글을 모아 다시 한번 주변과의 소통 을 시도합니다.

이 책을 같은 세월을 살아온 58년 개띠들에 대한 찬가讚歌로 시 작하는 강한 자기애를 과시하면서…

2024년 봄

한헌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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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년 개띠 찬가

58개띠 친구들.. 참 고생 많았네… 58개띠 친구들이 드뎌 담주를 지나면 하나씩 회갑을 맞게 된다. 참 수고했다. 친구들아. 금년 출생인구가 40만이 못 된다는데 100만명 가까이 함께 태 어나서, 이 땅의 험한 변화과정을 온몸으로 감당하며 한 세대 동 안 이 나라를 이렇게까지 일으켜 세우는 역사를 이루었으니 스스 로 위로하고 칭찬할 만하지 않은가? 돌아보면 참으로 정신없이 살았지? 일본 군국주의적 잔재를 벗기도 전에 겪은 전쟁의 뒤끝에 출생 하여, 옥수수 급식 빵과 원조 밀가루로 빚은 수제비, 빨간 봉투의 라면으로 배를 채우며, 고무신에 스펀지 점퍼를 입고 성장하면서, 한 반에 7~80명씩 모여 '민족중흥의 사명'을 세뇌받고, 교련으로 총검술을 배우며 조직문화에 충성하는 습관을 몸에 익혔고, 그렇 게 최선을 다해 앞만 보고 살아온 우리들이 아닌가 싶네. 4.19와 5.16이야 우리가 너무 어려서 기억조차 없지만, 10대 초 반 '영장없이 구속가능'하다!는 계엄령과 긴급조치 시리즈, 삼선개 헌과 10월유신부터는 기억이 생생하네. 고교 때에 생활에 큰 변 화들이 있었지? 고속도로가 뚫리고, 전국이 일일생활권이 되고 자 가용 시대를 맞이하는 과정에서 많은 민주투사들이 투옥되고 석 방되고를 반복하고 있었지. 그 와중에 우리세대가 자라서 민주화 투쟁의 전선에 서게 되고, 말 한마디 잘못하면 그냥 군대 끌려가 던 경찰국가시대를 거치면서 보낸 대학생활은 서울의 봄, 10.26, 12.12, 5.18로 마무리되면서 사회의 현장에 내몰리는 아픈 청춘 들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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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만 바꿔 다시 시작한 군사독재의 '잘 살아보세' 구호는 참 오래도 써먹었지. 어찌 보면 신 군부시대에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新 그들이 세운 정책을 따라 30대 초반을 지났고, 6월혁명으로 민주 화를 이루어 냈다지만 그 과정에서 부정과 부패에 익숙해져 버린 사람들이 내세운 다른 용어의 '잘 살아보세'를 위해 30대를 다 보 냈는데, 40세를 바라보며 영문조차 알 수 없던 IMF 사태를 맞아 직장에서 쫒겨나기도 하고, 돈 빌려 집 사고 전세 얻었는데 20% 대의 이자율 폭탄으로 몇 푼 안 되는 재산도 거덜라고.. 참 어려 운 시절이었지. 직장에 붙어있던 친구들은 구조조정의 압박과 위 아래의 눈치로 험한 시절을 견뎠고, 직장에서 나와야 했던 친구들 은 여기저기 일을 찾아 온갖 일을 다 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위 해, 또한 보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참으로 열심히 살면서 오늘에 이르렀네 그려. 돌이켜보면, 우리의 60년은 참 대단한 시간이었네. 창의교육, 원 어민교육이란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고, 태반이 외국구경도 못해 본 선생님들에게 교육받았으면서도, 남의 나라 제품을 뒤집어 보 며 배운 기술로 자동차도 만들고 가전제품도 만들고 반도체를 만 들어 세계 방방곳곳에 내다 팔아서 국민소득 3만달러를 이루었 고, 이 나라를 세계10대교역국의 위치에 올려놓아 남부럽지 않게 사는 나라를 이루어 놓는 데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이 땅을 위해 참 대단한 업적을 이뤄낸 동무들로 역사에 기록되리라 확신하네. 힘차게 회갑을 살아온 친구들아, 그러나, 이제는 인생 3라운드 를 살아야 하니 긴장을 늦추지 마세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는 평균수명 90세시대의 주인공이 될 것이네. 아날로그의 30년 인생 1라운드를 살면서, 그 후 30년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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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까지 디지털의 인생 2라운드를 살면서도, 우리에게 인생 3라운 드가 주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별로 못 해봤겠지만, 건강하게 또 당당하게 사회에 공헌하며 살아야 할 30년 인생 3라운드는 피할 수 없는 일일세. 무엇이 이끌지 모를 혁명적 변화가 기다리는, 어 쩌면 우리가 좀 더 힘을 써서 만들어 가야 할 4차산업혁명의 인 생 3라운드를 힘겹다!하지 말고 희망으로 다시 시작하여 인생역 전을 만들어 보세. 우리가 이 땅에 큰일을 이루어 놓았지만, 이 땅의 현실은 새로 운 어려움으로 도전받고 있잖은가? 우리 자식 세대들은 결혼도 마다하고 자식 낳아 기르기도 포기하는 시대를 살도록 만들었고, 우리 스스로 나라를 지킬 수도 없어 외국의 눈치나 봐야 하고, 사 회적 갈등구조는 심각해서 한 밥상에서 자식들과 편하기 대화 나 누기도 어려운 상황임이, 안타깝지만 현실이지 않은가? 더구나 우 리의 인생 3라운드를 보장해 줄 연금을 부어줄 사람이 없으니 우 리 개띠들의 사명이 회갑으로 끝났다 할 수 있겠나? 우리에겐 건강도 있고 경험도 있네. 30년 전을 기준으로 하면 우리는 불과 40대 초반일세. 이제 인생 2라운드를 준비하는 세대 들의 부족함을 채워주어 그들이 평화롭고 살만한 세상을 살도록 돕기 위해, 우리들은 새롭게 자급할 각오로, 이 땅을 황폐화시켜 가는 갈등구조를 해결하려 화해하고 용서하는 일에 솔선수범하면 서, 남은 30년을 계획하고 실천해 보세. 우리의 인생 3라운드를 우리가 만들고 세워놓은 것들이 서서히 무너져 가는 것을 무관심 으로 목도 하며 살 수는 없잖은가?

目睹 같은 해에 태어나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전쟁 빼고는 다 겪은 개띠 친구들이여, 같이 해주어서 고맙다고, 수고했다고 서로 격려해 주자.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질 인생 3라운드의 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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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 모두가 건강하게, 그리고 넉넉한 맘으로 서로를 돌보며, 다 음세대들이 우리보다는 더잘살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가도록 도와주며 살아가자. 동무들아, 회갑을 축하한다!

환갑을 앞둔 2017년 12월, 인도 여행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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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미래에 대한 걱정

기독청년의 리더십

국가의 지속성은 다음 세대에 달려있다. 그리고 다음 세대에 대한 책임의 한 축은 교회에 있다. 바른 역사관과 신앙을 가진 기독청년들이 이 나라의 갈등을 극복해내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야 한다.

꿈의 계단 만들어야 청년이 뛴다 한국교회여, 다시 민족의 횃불이 되라 기독청년을 위한 화해와 평화의 리더십 우습게 보인 교회에 명령하는 정부 COVID19 이후,한국 교회가 풀어야 할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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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계단 만들어야 청년이 뛴다

청년고용 문제가 정치적 핵심 쟁점이 되어 있다.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다고 선언한 만큼 정부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인력이 부족 한 중소기업에 취업하면 월급을 더 주기도 하고, 공무원 일자리를 늘리기도 하고, 2년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니 비정규직이 라도 취업하라고도 해본다. 유보금을 잔뜩 쌓아두고 있는 대기업 들에 일자리를 만들라고 부탁(?)도 한다. 그런데 백약이 무효해 보인다. 과연 일자리 수의 문제일까. 4대 보험에 최저임금 이상을 받는 일자리 100만개 이상을 외국인 근로자들이 차지하고 있다. 중소기업은 끊임없이 일할 사람을 찾으나 찾을 길이 없는 상황에 서 말이다. 왜 그럴까. 청년들에게 물어본다. 성공을 향해 열심히 노력해서 한 단계씩 올라가야 하지 않겠냐고 물어보면 왜 성공하라 하느냐, 그것만이 행복은 아니지 않으냐고 되묻는다. 다시 물어본다. 청춘 남녀가 마음만 맞으면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어디서든 살림 부터 차리고, 저축하여 집도 넓혀가며 자녀들 교육도 하면서 살아 가는 것이 인생살이 아닐까? 돌아오는 답은 차갑다. 청춘이 힘든 데 힘든 청춘끼리 합쳐서 나아질 것이 있겠느냐고. 당신들이라도 퇴근 시간도 없고, 가족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내는 중소기업에 취업해 집을 사고, 자식을 낳아 교육비와 양육비까지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답이 돌아온다. 그럼, 청년들은 무엇을 위해 사는 건 지, 미래에 어떻게 살아갈지 또 물으면 돌아오는 답은 더더욱 차 갑다. 연줄이나 태어날 때부터 물고 나온 금수저 없이는 능력만으 로는 절대 설 수 없게 만들어 놓은 '헬 조선' 사회구조를 깨뜨

h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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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지 못할 바엔 매달 월급만 나온다면 굳이 꿈을 꾸며 살아갈 필 요가 없다고 한다. 이 나라의 청년들이 현실의 벽에 갇혀 있다. 최저임금 겨우 넘 게 받는 직장이 출발점이라면 절대로 집을 장만하는 것도, 결혼도 육아도 해낼 수 없다는 벽에 막혔다. 동네에서 구멍가게라도 성실 하게 운영하면 더 큰 슈퍼마켓이라도 가져볼 수 있는 방도가 없 다는 벽에 막혔다. 직장에 취업해서 청춘을 바쳐 일한다 해도 정 년까지 일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벽에 막혔다. 학력이 없어도 독 학으로 열심히 공부하면 법조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의 계단이 무너졌다. 밤을 새워서 새로운 상품을 만들고 시장의 관심을 끌라 하면 더 큰 기업이 채가 버리는 벽에 막혔다. 그래서 안정만 추구 한다. 우리 청년들에게 꿈의 계단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미 한다고 하고 있지만 그 정도로는 안 된다. 청년들에게는 저임금 계층에서 일해도 집을 가질 수 있고, 자녀들을 교육할 수 있게 보장해주자. 창업이든 연구개발이든 뭔가 하려는 청년들은 가게도 얻어주고 연구실도 꾸며주고, 성과를 내면 남이 뺏어가지 못하도록 지켜주 자. 새롭게 시도하는 도중에 잘못되면 실패가 아닌, 과정으로 인 정하고 다시 해보게 도와주자. 청년 때에 결혼하면 장려금도 주 고, 두 자녀를 출산하면 공기업에 취업도 시켜주자. 꿈의 계단의 중간이 끊어지지 않도록 소자본가의 사업영역을 보호해 주어서 미꾸라지가 용이 되는 사례가 넘치게 해주자. 우리가 지금 투자해 야 할 곳은 청년이다. 그래야 청년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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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여, 다시 민족의 횃불이 되라

교회가 이 나라에서 외면당하고 있다. 이 틈을 타서 이단 들

異端 은 기성교회를 위협하며 염려스러울 정도로 성장해 가고 있다. 그 런데도 교회가 스스로 변화하지 못하고 불미스러운 뉴스들을 생 산하며 전도의 문마저 닫아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국가가 끝이 보이지 않는 갈등과 혼란에 빠져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국민 에게 아무런 희망도 위로도 전하지 못하고 있다. 교회가 다시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조선 말에 들 어온 복음이 어떻게 민중들의 희망이 됐는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랜 정쟁과 외세의 간섭으로 국력이 쇠진하고 민중들은 수탈당 하던 때에 교회가 전한 복음은 모든 사람은 똑같이 하나님의 자 녀라는 평등의식이었다. 직업은 귀천이 없이 하늘이 준 것이라는 자존감이었고 하나님이 택하신 민족을 사랑하신다는 선민의식이 었다. 선교사들을 통해 세계를 볼 수 있는 국제적 시각도 선물했 다. 이 복음을 실천할 리더십을 훈련하고 교육한 것이 교회조직이 었고 교회가 세운 학교였다. 한국교회는 그런 사명을 감당하며 성장해 왔다. 그러나 다양화 돼 가는 시대에 합당한 새로운 복음적 사명을 찾는 데 실패했다. 오히려 시대에 뒤처진 폐쇄성으로 세속의 의식이나 제도에도 못 미치는 운영방식을 고수하면서 교회의 역할을 약화시켰다. 이 위 기를 극복하는 길은 기독교가 처음 이 땅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 민족의 희망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답을 찾아 주는 것이다. 그 답으로 네 가지를 생각해 본다. 첫째, 이 민족이 빠져있는 갈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화해와 용서를 선포해야 한다. 남과 북의 분단도, 좌파와 우파의 정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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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와 자본가의 대립도, 세대 간의 단절도, 교회 내의 교권 다 툼도 모두 갈등의 문제다. 너무 오랜 기간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쌓여온 것이기에 세상의 어떤 사상이나 원칙으로도 풀 수 없다. 오직 ‘화해와 용서를 통한 평화’라는 십자가의 도를 교회가 교육 하고 실천하면서 평화를 이루는 모델이 돼줘야 한다. 둘째, 이 민족의 계대 를 위태롭게 하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

繼代 하기 위해 육아를 담당하는 것이다. 양육비와 교육비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 저출산의 주원인이라고 하지만,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도 큰 영향을 줬다. 교회가 순수하 게 국가의 지원 없이 누구든 맡길 수 있는 영유아 돌봄센터를 운 영해야 한다. 닫힌 전도의 문을 여는 최고의 방법이 될 것이다. 셋째, 다음세대를 기독교 복음으로 길러낼 대안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유치원을 포함한 기독교 학교에서의 신앙교육은 정부의 지 속적 통제로 불가능해지고 있다. 이제는 교직원을 기독인으로 채 용하는 것까지 인권 침해라고 공격하며 비기독교인까지 채용하라 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교회와 사회를 이끌어갈 복음적 리 더십을 육성하는 길은 대안학교를 만들어 교육하는 것이다. 넷째,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이 땅의 환경을 건강하게 지키는 일을 실천하는 것이다. 환경 파괴는 인간의 탐욕에서 출발한 과소 비의 결과물이다. 우리 국민은 2,500만명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남겨서 쓰레기로 버리고 미세플라스틱을 만들어 내는 플라스틱제 품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교회에서부터 먹는 것 을 줄이고 플라스틱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 교회 부터 절제를 실천해야 한다. 이 같은 대안을 실행하려면 교회도 운영제도와 방법을 바꿔야 한다. 이 나라와 우리 이웃의 당면문제를 교회가 외면하거나 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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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을 위해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이 나라도 국민도 교회에 자리를 내어주지 않을 것이다. 한국교회 발전의 역사와 유 럽교회 퇴보의 역사가 보여주는 준엄한 교훈이다. 이제 교회가 이 민족의 갈 길을 비추는 횃불을 다시 높이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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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청년을 위한 화해와 평화의 리더십

1. 들어가면서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갈등을 경험한다. 갈등은 보지도 움직 이지도 못하는 갓난아이와 낳아준 어머니의 관계에서도 존재한다. 갈등은 서로 다른 가치나 이익이 충돌하는 것으로, 각 사람의 내 면에도 있고 가족, 친구, 직장, 집단, 지역, 민족, 인종 등 어디에 서든 존재한다. 갈등을 표출하는 방법과 수준도 그만큼 다양하다. 갈등이 인격적, 윤리적, 신앙적 차원에서 해결되는 경우도 있지 만, 대부분 법을 통해 조정된다. 그조차도 안 될 때는 시위나 집 단폭력 혹은 전쟁으로 이어지기에, 갈등이 심한 사회에서는 긴장 으로 인한 집단 스트레스가 존재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렇다. 우리나라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다 양하고 골 깊은 갈등에 빠져있다.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경비가 한 해에 수백조 원에 이른다는 연구보고서도 있지만, 정치인들뿐 아니라 일반 국민까지 편을 갈라서 서로 상대방을 이 땅을 떠나 야 할 존재로 대하고 있다. 어느 한쪽이 완전히 굴복하지 않으면 멈추지 않을 기세다. 북한의 핵 문제로 인해 한반도를 둘러싼 안 보·외교적인 이합집산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 국민들이 갈등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면 우리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특별히 기독청년들이 겪어야 하는 갈등은 신앙적 문제뿐 아니 라 기독교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까지 더해진다. 하나님께 서 우리 민족에게 경제적인 복을 부어주신 것은 복음을 세계에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라는 명령이다. 특별히 통일을 이뤄내고 통 일된 나라에서 살아가야 할 다음 세대들이 이러한 사명을 감당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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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게 하려면,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갈등의 원인이 무엇인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훈련해 야 한다. 여기서는 우리가 겪고 있는 갈등의 내용을 구분하여 살 펴보고 이를 해결하는 방안의 하나로 요셉의 리더십 훈련하는 방법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을

Leadership

2. 우리사회에 뿌리내린 갈등 우리는 근·현대사를 거치면서 시대별로 누적된 갈등요소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일제강점기로부터 6.25전쟁, 반공독재, 산업 화독재, 민주화시대를 거치면서 생겨난 갈등들이 지금은 서로 얽 히면서 매우 복합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를 일곱가지로 구분 하여 정리해 보았다. 첫째. 일제강점기가 남긴 친일갈등이다. 20세기를 맞으면서 격 동하던 세상의 변화를 읽지 못한 대한제국은 고조선 이래 처음으 로 한반도의 지배권을 온전히 타민족에게 넘겨주는 수치를 당하 고 있다. 일본을 도왔던 이들은 일본이 주는 혜택을 누렸고 해방 후 그들의 후손까지도 그 덕을 누렸지만, 나라의 주권을 지키고 회복하려 노력했던 이들은 일본의 온갖 탄압에 목숨을 잃기까지 했고, 후손들 역시 고난을 함께하면서 해방 후에도 가난을 면치 못했다. 정부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일본에 부역하며 경험을 쌓았 던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었고, 곧바로 발발한 6.25 전 쟁으로 인해 공산잔당의 처리에 힘을 쏟느라 친일세력을 청산한 기회를 놓쳤다. 민족의 자존심 문제이기 때문에 폭발력이 클 수밖 에 없다 보니 일본과의 관계에 따라 혹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친 일청산이라는 이슈가 수면 위로 떠 오르곤 한다. 일제에서 독립한 지 75년이 되는 시점에서도 친일문제가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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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요소가 되는 것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제라도 친일의 범위와 청산의 방법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3.1 독립선언서에 나와 있는 바와 같이 '세계평화와 인류의 행복 을 위해, 일본의 잘못된 생각을 과감하게 바로잡고, 우리와도 진 정한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사이좋은 새 세상을 만들자!'는 주 장을 친일갈등을 해결하는 기준으로 삼아볼 만하다. 둘째. 6.25전쟁이 남긴 안보와 친북 이념 갈등이다. 일제강점기 에도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세력의 갈등은 있었다. 해방되고 남한 과 북한으로 나뉘면서 본격적인 세력다툼을 시작하게 되었고, 각 각 정부를 수립하고 나서는 반대 진영을 폭력적으로 탄압하게 된 다. 그러다가 북한이 적화통일을 명분으로 일으킨 전쟁은 3년을 넘기게 되었고, 전쟁기간 동안 남과 북의 모두가 큰 상처를 입었 지만, 승자도 패자도 없이 휴전되어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되었다. 그 후에도 북한은 언젠가는 남한을 자신들의 공산이 념에 꼭 굴복시키고야 말겠다는 결의를 다지면서 시시때때로 남 한에 위해를 가했고, 결국 북한은 머리 위에 놓아진 숯불이 되었 다. 이런 상황의 타개 방법에 대한 의견 차이로 생겨난 소위 남남

南 갈등은 민주화운동, 민족주의와 맞물리며 갈등의 깊이를 더해가 南 고 있다. 북한에 대해 동족으로 품어야 한다는 햇볕정책이 등장하 면 우리가 북한에 굴종한다고 반대하고, 북한을 압박하는 봉쇄정 책이 등장하면 전쟁을 원하는 것이냐고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인 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완성하면서 이런 갈등은 더욱 극 에 달하고 있다. 비극은 남남갈등이 교회 내에서도 똑같이 존재한 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 이스라엘과 통혼한 남 유다까지 멸망시 北

南 킨 하나님의 공의와 죄인을 위해 생명을 내놓으신 예수님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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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혼재한다. 다양한 문제가 얽혀있는 만큼 통일문제에 대한 바른 해법은 많 은 갈등을 함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가 앞장서서 답 을 제시해야 할 문제이다. 우리민족의 평화공존을 위한 시대정신 을 이 사회에 제시하고 이를 온 교회가 앞장서서 교육하고 실천 하는 일이 필요하다. 셋째, 독재통치가 남긴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다. 남침전쟁이 종 결된 이후 남한에는 상당기간 독재정치가 진행되었다. 독재의 명 분은 전쟁을 일으킨 공산세력으로부터의 보호, 그리고 가난을 물 리치고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었다. 독재의 기간이 길게 지속 되면서 그런 명분에 참여하는 반공·산업화세력도, 이에 대용하는 민주세력도 모두가 그 층을 두텁게 쌓았다. 독재정권의 탄압은 심 했고, 그에 대응하는 민주세력의 투쟁도 격렬했다. 결과적으로 독 재체제가 무너지자 진보와 보수로 형태를 바꾸어 정권투쟁을 벌 이면서 지역감정과 분배문제, 대북정책에 친일문제까지 엮어놓아 이를 해소하는 문제는 날이 갈수록 복잡도가 증가했다. 그간 정권 이 및 차례 바뀌었지만 두 세력 간의 갈등은 오히려 국가분열을 걱정할 수준까지 심화되고 있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다음 세대 들의 교육에까지 이런 분열의 씨가 뿌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자유와 반공을 추구한다는 면에서 교회는 우파일 수 밖에 없고, 가난한 자를 도우며 소수의 인권과 평등을 추구한다는 면에서 교회는 좌파일 수밖에 없는 복합성을 기독교는 띠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는 산업독재의 편에, 일부는 민주화 세력 편에 적 극 참여하면서 교회가 어느 갈등에도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게 되었다. 대신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교회의 담을 쌓고 개인구원을 중심으로 교회의 부흥에 집중하게 되었고, 대형교회가 등장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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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세력에게는 하나의 이익집단으로 개혁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국교회가 복음에 입각한 사회봉 사의 실천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넷째, 혜택의 불균형이 만들어 낸 지역갈등이다. 한반도에서 지 역갈등의 역사는 길다.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서는 지역별 영주가 인정되어 특별한 지역갈등이 없었으나 유독 북쪽 변방 지역에

邊方 대한 차별은 고려시대에 노골화되었고, 조선시대에는 그 차별이 고착화되면서 북쪽지역에서 반발이 여러 차례 나타났다. 이와 같 은 배경을 생각하면 해방 후 생겨난 남한과 북한의 갈등을 지역 갈등의 측면에서도 평가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남과 북의 갈등은 차치하고 남한의 문제만 보더라도 산업화과정 에서 호남지역이 낙후되고 정치적으로도 소외되면서 호남과 영남 의 갈등은 심화되기 시작했다. 군부독재 하에서 산업화의 혜택이 영남지역에 치우치다 보니 자연스레 호남은 민주화세력의 편에 서게 되고 군사독재 갈등이 지역갈등과 얽혀버리게 되었다. 특별 히 순수 민주화 요구를 군사적 위력으로 제압하면서 많은 사상자 를 낸 5.18은, 전쟁 후 민주화 투쟁기간 동안 벌어진 탄압 중에서 가장 참혹한 것으로 치유 불가능한 상처를 광주지역에 남겼다. 정치권의 지역갈등 해결을 위한 노력은 문제를 겉핥기식으로 해결하는 것일 수밖에 없었고, 한편으로는 이를 통해 정치적 이득 을 얻어 보려는 속내가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었기에 큰 성과를 거두기 어려웠다. 이와는 달리 한국교회의 지역갈등 해소를 위한 노력은 돋보인다. 교단의 대표를 지역별로 순환 선출하는 방법을 시행하기도 하고, 영남과 호남의 교계 지도자들이 매년 정기적으 로 공동교류 모임을 갖기도 하며, 상호 강단교환을 통해 다른 지 역의 정서를 이해하는 노력을 지난 50여 년 동안 꾸준히 기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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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다. 교회 내에서의 지역감정을 없애는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다섯째, 압축성장이 가져온 빈부갈등이다. 해방 직후 최빈국에 서 70년 만에 교역량 세계 10위 국가로 압축성장하는 과정에 많 은 폐해가 발생했다. 정부주도로 정책의 성과를 거두려다 보니 특 정 경제주체들이 이를 도맡아 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정경유착 과 함께 부정과 부패가 만면했다. 이와 같은 배경으로 우리사회에 는 가진 자들이 비정상적이고 불법적인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다 는 의심이 팽배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빈부격차의 해소문제는 노동자 보호, 부패청산, 사회정의 실현의 문제로 전개되면서 민주 화세력과 연계하게 됐다. 독재가 종식된 후 빈부격차 해소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모두의 관심사가 되었지만, 경제발전의 성과를 분배하는 수준과 속도가 또 다른 갈등요인이 되어버렸다. 한쪽은 이만큼 성장했으 니 그 성과를 소외된 계층에게 나누어주어야 한다!했고, 다른 한 쪽은 겨우 가난을 벗어날 수준에 올라왔을 뿐이니 분배보다는 조 금 더 성장을 이루어 나누어야 할 파이를 더 크게 만들어야 한다 는 논리로 충돌한다. 이 둘 사이에는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경제사상이 충돌하는 부분이 존재하면서 자연스레 이념갈등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런 갈등의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는 보이지 않 게 특권층이 형성되었다. 이들은 서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특별 한 혜택을 서로 지원하며 이를 대물림하려 했고 이런 일들이 드 러나면서 우리사회가 극복해야 할 새로운 갈등으로 나타났다. 한국교회가 소외된 이웃을 보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 도 불구하고 기독교에 대한 사회적 반감으로 인해 제대로 평가받 고 있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쉽다. 그러나 교회가 빈부격차를 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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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문제를 구제의 차원을 넘어 근로여성들의 자녀들을 돌보아 주는 일, 자립역량이 없는 노인들에게 소일거리를 연계 시켜주는 일 등을 통해 사회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공헌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 여섯째, 이주민과 종교의 유입으로 발생한 갈등이다. 우리나라 가 이주민을 수용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초부터 산업화에 필요 한 외국인 근로자를 받아들이면서이다. 이후 중국과 러시아와의 외교관계가 정상화되면서 해외동포와 탈북민이 이주해 오게 되었 고, 그 수는 10만 명에 가깝다. 또한 결혼을 목적으로 이주해 오 는 외국인 여성들의 수도 20여만 명에 이르고 있다. 우리가 경제 적·사회적 필요성 및 민족적 역사적 측면을 고려하여 이주민들을 수용하였지만, 이들이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정착하여 더불어 사 는 일은 쉽지 않다. 대다수의 이주민들은 경제적으로, 교육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었고, 우리나라에 와서도 열악한 근로환경에서 저임금으로 일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차별대우를 느끼게 되고, 특히 탈북민 같은 경우 정착의 어려움으로 인해 북으로 다시 돌 아가는 이들도 생겨나고 있다. 이를 받아들이는 우리국민의 입장 에서도 이주민의 숫자가 늘어가고 집단 거주지를 형성하면서 일 자리와 치안문제 등으로 경계심이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경제규 모의 확대와 노동인구의 감소로 이주민의 유입은 불가피한 현실 속에서 이들의 평화로운 정착은 정부뿐 아니라 우리 한국교회의 책임이기도 하다. 특히 이주민들과 함께 기존에 이 땅에 정착한 종교들 외에 새로 운 종교도 유입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다행히도 기존의 종교들 사 이에는 교리 간에 상호 적대시하는 요인은 없어서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으나, 새로 유입되는 종교 중에는 기존의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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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와 마찰의 요인을 갖는 것도 있어서 향후에 새로운 사회적 갈 등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을 경계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일곱째, 가장 오랫동안 존재해 온 세대갈등이다. 세 대갈등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고 그 내용도 별반 다르지 않다. 부모세대는 자녀세대가 자신들이 열심히 살았던 것처럼 사는 것 같지 않아 미덥지 못하고, 자녀세대는 세상이 바뀌었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데 알지도 못하면서 믿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경우는 몇 가지 측면에서 전에 없이 특별하다. 부모시대는 잘 살기 위해 정치적 권리와 인권을 희생하였고, 공동 체의 이익을 당연히 우선시했지만, 자녀세대는 권리와 기회의 평 등, 그리고 개인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또한 부모세대는 컴퓨터가 등장하기 이전 세대로 종이와 연필이 전부였지만, 자녀 세대는 슈퍼컴퓨터인 스마트폰을 호주머니에 넣어 다니며 동영상 과 음성, 그리고 그래픽으로 정보를 교환한다. 자녀세대의 대부분 은 형제가 없거나 한 명 정도이고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없다. 이 들이 누린 혜택은 어느 세대보다 크고 많다. 그럼에도 이들은 부 모세대가 경제적으로 이념적으로 힘든 혼돈의 시대를 살아온 것 을 지켜봤기에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지니게 되었다. 이렇다 보니 부모세대와 자녀세대는 결혼에 대한 생각도, 복지정책에 대한 평 가도, 통일에 대한 방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심지어 동성애에 관 한 생각도 개인이 행복한 것이라면 인정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 다. 이 또한 학교교육이나 정치가 해결하기 어려운 갈등문제이고 교회 내에도 같은 문제로 어려움이 있다. 이제 교회가 나서서 가 정의 회복과 전통의 발전적 계승 방만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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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요셉의 갈등해결 리더십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와 같은 갈등을 줄여보기 위한 정치권의 노력은 대부분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은 정치적 갈등의 피해자들을 치유하기 위해 개별 사건별로 보상해 주는 방 법을 쓰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포괄적인 접근방법을 통해 가해자 와 피해자 모두를 덮고 가려 하기도 했지만, 성과는 거의 없으면 서 오히려 갈등이 커지기도 하고, 잠복했다 다시 나타나기도 한 다. 그 이유는 제시된 방안 대부분이 자신들의 관점에서 만들어졌 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관점의 차이로 인해 정책이 바뀌었기 때 문이다. 어느 한쪽이 양보하지 않는다면 사람이 지혜를 내어 만드 는 방책들로 모두가 만족하는 해결방안을 만든다는 것은 한계가 있음을 역사는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교회마저 갈등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멈출 수는 없다. 지금 당장 이 세대가 갈등구조에서 벗어나기 어 려울 수도 있지만, 이런 문제들을 다음 세대에게까지 넘겨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당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리더십을 세우고 다음세대에게 가르쳐야 한다. 여기서는 구약의 인물인 요셉에게서 지금 찾아보려 한다. 성경의 인물인 요셉을 특 정하여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의 삶이 어느 누구보다도 다양한 고난을 많이 경험했고, 이것들을 성공적으로 이겨내며 자신이 섬 기는 나라와 심지어 주변 국가들도 기근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했 으며, 가정적으로도 자신을 죽이려던 형제들과 화해와 평화를 이 루어냈기 때문이다. 1) 요셉의 배경 요셉은 인생을 가장 요령있게 살았던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열한 번째로 태어나서 아버지로부터 가장 큰 사랑을 받았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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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조할아버지인 아브라함은 당시 세계 최강국인 바빌로니아의 중 심지인 우르에서 경쟁국 이집트와의 접경지 이방인의 땅인 가나 안으로 이주했다. 이후 100년이 지나 아버지 야곱은 그 지역의 족장으로 입지를 다졌고 재력도 튼튼하게 갖게 되었다. 이렇게 안 정된 상황에서 늦게 얻은 아들이었으니 야곱은 요셉에게 무엇이 든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상상해 보면 그는 어려서 아버지의 품 에 안겨 아버지가 들려주는 증조할아버지 아브라함과 할아버지 이삭, 그리고 아버지 야곱 자신의 인생 역정을 통해 하나님이 어 떻게 축복해 주셨는지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고조할아버지 아브라함은 다 신교를 섬기는 지역에서 부유하게 살다가 누군지 모를 신(나중에 자신이 하나님이라 말해주셨지만)의 '떠나라 내가 너를 가나안에 인도할 것이다'라는 직접적인 음성을 듣고 짐을 싼 믿음의 사람이 었다는 사실을 말았을 것이다. 그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멀고 긴 유랑의 길을 떠돌면서 여러 민족과 때론 어울리며 때론 전쟁 을 치르며 갈등을 이겨낸 역경의 여정도, 같이 여정을 출발했던 조카 롯과 재산 갈등으로 헤어져야 했던 과정도, 늦게 얻은 할아 버지 이삭에게 장자 권을 불려주기 위해 이방 여인에게서

長子

異邦 얻은 큰아들을 내치는 일도 있었음을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할아버지 이삭의 이야기, 아버지 야곱이 쌍둥이 형 에 서에게 팥죽으로 장자의 명분을 얻어낸 이야기, 그로 인해 형에게 서 도망쳐서 24년을 숨어 살면서 요셉의 어머니와 결혼하게 되는 과정, 어떻게 부자가 될 수 있었는지, 형 에서와는 어떻게 화해할 수 있었는지, 또 가나안 지역에서 원주민들과의 마찰을 어떻게 극 복하고 정착하였으며 재산을 모으게 되었는지를 들으며 가슴에 새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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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무릎 위에서 듣고 배운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이야 기를 통해 그는 믿음의 역사와 이민족과의 갈등해결방법 등 그에 게 앞으로 닥칠 많은 역경을 이겨낼 지혜를 터득했을 것이다. 2) 꿈에서 시작된 시련과 갈등들 그렇게 행복하던 요셉에게 다가온 시련의 시작은 두 번의 꿈을 꾸면서였다. 첫 번째 꿈에서 아버지와 형제들이 묶은 벼 집단들이 자신이 묶은 것에 머리를 숙이는 그림을 보았고, 두 번째 꿈에서 는 해와 달과 별들이 모두 자신의 별을 향하여 절하는 모습을 보 았다. 요셉은 자신의 미래를 생각해 보지 못하던 때라 그 꿈의 내 용이 궁금하여 아버지와 형제들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이야기한 다. 그리고 그의 고난은 이 꿈을 괘씸하게 생각한 형제들의 미움 에서 시작된다. 시기가 미움으로, 미움이 분노로 바뀌게 된 것이 다. 첫 번째 시련은 형제들이 그를 죽이려고 구덩이에 던져버린 것 이다. 요셉은 형들이 미워하게 된 것도 모르고 멀리 일하러 나간 형들을 찾아갔다가 봉변을 당했다. 성경역사 최초로 일어났던 살 인처럼 형들에 의해 영문도 모른 채 내던져진 요셉은 그 이유를 고민해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형들을 자신과 차별대우 했다는 것도, 자신만 입고 있는 채색옷을 자랑한 것도, 그리고 결 정적으로 꿈 이야기를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도 생각해 냈을 것 이다. 갈등의 원인이 불평등과 차별대우에 있었다. 두 번째는 구덩이에서 건져져 이국땅 이집트 군인의 집에 노예 로 팔린 것이다. 그는 구덩이에서 건져질 때 일말 의 희망을

一抹 가졌을 것이다. 살려주기만 한다면 형들의 화를 품어주고 사이좋 게 지내야겠다고 생각했겠지. 그러나 그 기대는 곧 무너지고, 멀 고 먼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 가게 되고 말았다. 이내 자신이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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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형들의 처사에 분노했을 것이다. 족장의 사랑받는 아들에서 한순간에 다른 족속의 노예가 되었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무기력한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요셉 은 자신이 흥정하는 물건이 되었다는 사실을 안 순간, 자포자기하 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런 분노의 상태에서도, 노예의 신분에서 도, 집사의 신분에서도 어떤 상황에서도 주어진 일을 성실함으로 감당했다. 세 번째는 주인집에서 누명을 쓰고 죄인이 되어 감옥에 갇힌 것이다. 그가 성실함으로 충성을 다한 주인집에서 주민의 부인을 겁탈하려 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주인에게 해명의 기회도 얻 지 못한 채 감옥에 갇혔을 때 그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 이다. 형제들에게 버림받아 이국땅에 팔려 온 것도 모자라 성심을 다한 주인집에서 죄인이 되었다는 현실을, 그는 담담히 받아들였 다. 그리고 심지어 죄인으로서도 같은 죄수들을 섬기는 일에 최선 을 다한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할 수 있게 했을까? 그것은 상황 에 대한 긍정적 판단력이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결백함과 성실 함을 믿었다. 그리고 그 결백함이 언젠가는 명백히 드러날 것이라 는 긍정적 확신을 잃지 않았다. 네 번째는 바로

왕의 꿈을 해몽해야 하는 일이었다. 감옥

Pharaoh 에서 불려 나와 그 큰 나라의 어느 지혜자도 품지 못했던 왕의 꿈을 해석해 내야 했다. 그 나라의 지배층인 주술사들과 관료들 그리고 학자들이 모두 요셉만을 바라보았다. 노예에다 죄수 신분 인 네가 무엇을 하겠냐는 무시, 혹시나 요셉이 꿈을 맞추게 되면 자신들이 밀려나게 될 것이라는 경계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 중앙 에 섰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확신이었다. 그동안 그는 들은 꿈을 한 번도 잘못 해석한 적이 없었다. 그에게는 아무리 많은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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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에게 둘러싸고 있어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리 고 그 자신감으로 주변의 의심과 경계심을 걷어냈다. 다섯 번째는 총리가 되어 풍년과 흉년을 관리해야 하는 것이 였다. 꿈에서 본 것 같이 7년의 풍작과 7년의 흉작이 시작되면서 그 관리의 책임을 요셉이 맡았다. 아무리 왕의 명령이 있었다! 하 나 그는 적대국 변방에서 팔려 온 30세의 젊은 이방인 노예에다 죄수 출신이다. 누구도 그의 명령을 따라 움직이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그가 농산품 관리를 위해 전국에 창고를 짓고 모든 관료를 움직일 수 있었던 힘은 전국을 발로 뛰며 사람들을 일일 이 만나 이것이 모두가 사는 길이라 설득하는 방법 말고는 없었 을 것이다. 실제로 풍년이 끝나고 가혹한 흉년이 시작되고서야 그 의 권위가 확립되었을 것이다. 그는 현장을 정확히 알았다. 그리 고 만나서 진정성을 가지고 설득하면서 함께 답을 찾았다. 흉년이 시작되면서 그에게는 모아놓은 식량을 7년 동안 적절히 풀어야 한다는 과제가 주어졌다. 이집트의 백성들은 물론 적대국 을 포함한 주변국들까지도 요셉만 바라보았다. 흉년이 끝나는 7 년 후, 식량을 어떻게 푸는가에 따라 좌지우지될 이집트 사회의 변화도, 그리고 주변 국가들과의 국제관계도 그는 고려해야 했다. 그가 정한 원칙은 모두가 공존하는 길이었다. 흉년기간 동안 가난 한 백성이 식량을 구하느라 땅을 빼앗기는 일도 없어야 하고, 적 대국의 백성이라 하여 굶어 죽는 일도 없어야 했다. 그는 이 원칙 에 합당한 정책들을 시행했다. 이제 그는 자신의 권위로 모든 관 료를 움직일 수 있었고, 모든 백성이 그의 지시대로 움직였다. 이 렇게 그는 주변국들도 끌어안았다. 여섯 번째는 자신을 적대국의 노예로 팔아버린 형제들을 어떻 게 처분할지에 대한 문제였다. 요셉은 기근의 시기에 식량배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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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권한을 가진 권력자가 되었고, 형제들은 식량을 구하지 못할 경우 죽을 수밖에 없는 이웃 나라의 약자가 된 상태에서 만났다. 요셉은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든지 보복할 수 있었다. 그러 나 곧 자신이 그 자리까지 오게 된 모든 과정을 파노라마처럼 되 새겨보며, 그 출발점을 만든 것이 형제들을 통한 신의 섭리였음을 인정하고 복수가 아닌 용서를 택한다. 그가 형제들을 끌어안을 때 그들은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게 되었고, 끝내 화평을 이루었다. 아마도 억울한 누명을 씌워 그를 감옥에 보낸 보디발 의 집안도 같은 방법으로 용서했을 것이다. 3) 갈등과 시련을 이겨낸 요셉의 리더십 요셉이 어떤 사상과 신념의 리더십을 발휘했기에 이렇게 다양 한 갈등과 시련을 성공적으로 해결하고 극복할 수 있었는지 몇 가지로 살펴보면서 우리 갈등문제에 대한 해결의 단초 를 찾아 보자. 첫 번째는 역사와 자신의 삶을 주관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것이다. 그는 선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 님이 인간의 역사를 주관하시며, 세상은 그의 선하신 계획에 따라 움직여간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특히 그런 하나님께서 할아버 지와 아버지에게 하신 것처럼 자신을 사랑하시고, 어떤 역경 가운 데서도 지켜주시리라는 것을 믿었다. 고난을 당했지만 낙심하지 않고, 정의로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꿈을 이루어 주실 것이 라는 확신으로 그의 생각과 행동을 지켰다. 이런 신앙적 역사관을 가져야 우리의 역사에서 발생했던 일들을 정리할 때에 폐쇄적 민 족주의를 극복할 수 있고, 평화를 유산으로 물려주기 위해 지금 인내하고 희생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수긍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한국교회가 무엇을 해야 할지 방안을 찾아낼 수 있다.

장군

Potiphar

端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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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문제의 본질을 보는 통찰력이다. 모든 문제의 발생 원인은 외형적인 것과 내면적인 것이 있다. 내면적인 문제가 해결 되지 않고 부풀어지는 경우 대부분은 외부의 작은 충격에도 폭발 하기 때문에, 가해진 충격만을 바라보고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 요셉은 자신이 형제에게 미움을 사서 팔려 가게 된 것이 부모의 차별대우와 자신의 과시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집안 에서 부모가 어느 한 자식만을 특별히 사랑하는 것이 다른 자식 들에게는 큰 상처가 되며, 나아가 살인까지 조장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이해했다. 그가 왕의 꿈 이야기를 들을 때는 국가적 사건에 대한 것을 알아냈고, 살진 소와 마른 소가 바로 국가가 흥 하고 망하는 풍년과 흉년이라는 사실을 유추해 냈다. 풍년과 흉년 이 백성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알아 그들을 보호하는 정책을 펼칠 수 있었고, 주변국들과 평화를 이루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일본 과거사를 처리할 때에 당사자들에게 수십 년씩 내재된 갈등의 내면적 상처를 덮어둔 포괄적 해결방법이 적절하 지 못했다고 한다든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에 대응할 때에 그것들을 포기하면 잘 살게 해주겠다! 조건을 거는 것이 바른 답이될수 없는 것처럼, 다른 모든 문제에도 본질에 접근하는 통찰 력을 갖도록 훈련해야 한다. 세 번째, 요셉은 자신에게 어떤 일이 주어지든 소명의식을 가 졌고, 어느 위치와 형편에 있든지 진정성과 성실성으로 남을 먼저 배려했다. 노예의 신분에 있을 때는 주인집의 재산을 관리하는 데 자신의 지혜를 총동원했다. 최고의 예를 갖추어 주인의 가족을 대 했고, 재산을 크게 불려주었다. 감옥에서도 같은 죄인의 심부름조 차 부모를 섬기듯 했다. 총리가 되어서도 자신이 관리해야 할 사 람들을 섬겨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고, 진심으로 이해를 구하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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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라면 아무리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서 그들과 함께했 다. 이해가 충돌하는 현장에서 그는 균형을 잃지 않았다. 노동현 장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지역갈등, 그리고 빈부갈등에서 당사자들 의 이해는 심각하게 충돌한다. 세대갈등, 이주자들과의 갈등에서 는 항상 절대 약자가 존재한다. 네 번째는 화해와 용서의 실천력이다. 누구나 화해하고 용서하 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화해하고 용서해야 할지 모르고 있고, 안다고 해도 실행에 옮기기 는 더욱 어렵다. 요셉은 형제들과의 갈등을 유발한 당사자였고, 죽음의 위기를 겪기도, 노예로 팔리는 경험도 했으며, 주인의 가 족과 생긴 갈등으로 인해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이민족 젊은이로 서 총리가 되는 과정에서도, 총리로 일하는 과정에서도 수많은 반 대와 건제와 모함에 대응하여 싸우지도, 보복하지도 않았다. 자신 을 해하려 했던 형제들을 먼저 용서했고, 그들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기를 기다렸다. 그들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할 때는 진심으로 그들을 용서했고, 가슴으로 품었다. 용서란 보복을 신의 섭리에 말긴 채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잊는 것이다. 용서를 구한다는 것은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용서해 줄 때까지 청하는 것이다. 이 런 화해와 용서를 가르치고 실천하는 훈련은 오직 교회에서만 가 능하다. 다섯 번째는 상생의 미래를 바라보는 포용력이다. 요셉은 총리 의 자리에 오르면서 이집트 내부뿐 아니라 주변의 이민족들까지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당장 의 문제에 집착하기보다 현재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면서 그 결과 가 미래에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지를 생각하는 데 그 힘을 사용 했다. 물자가 풍성할 때 백성들이 불평하지 않을 수준으로 비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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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양을 정해야 했다. 흉년이 왔을 때 많은 식량을 준비해 둔 지 배층이 일반 백성들에게 횡포를 부리지 못하도록 백성들을 보호 하여 흉년이 지난 후에도 백성들이 도산하지 않을 방법을 생각했 고 시행했다. 외교적으로는 주변 민족들을 일거에 흡수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그들에게도 자기 백성에게 하듯이 식량을 나누어주었 고, 기근이 지난 후 주변 국가들과 평화시대를 구가할 수 있었다.

4. 나가면서 지금 우리 사회는 역사적, 정치적, 그리고 사회적인 다양한 갈등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갈등이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지만, 이를 관리할 역량과 리더십이 없다면 그 사회는 발전할 수 없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이러한 갈등에 소극적으로 접근했 다. 그러나 이 땅에 평화로운 통일을 이루어 내고, 통일된 나라를 통해 세계복음화를 이루어야 하는 사명이 한국교회에 주어졌다고 믿는다면. 갈등을 해결하는 문제는 한국교회에 주어진 숙제가 분 명하다. 아쉽게도 그동안 우리 교회는 이러한 사명을 적극적으로 감당하지 못했으며, 이 사명을 다음세대에게 일깨워 주는 일도, 갈등을 해결할 능력을 갖추도록 훈련하는 일도 제대로 하지 못했 다. 하지만 한국교회가 더 이상 갈등문제에 대해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해결을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할 때이다. 이런 고민을 기반으로,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갈등을 친일·이 념·진보와 보수·지역·빈부·이주민, 그리고 세대갈등 등 일곱가지로 구분하여 그 원인과 해결방법을 살펴보았다. 이런 갈등을 한국교 회가 어떤 리더십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다음 세대에게는 무엇을 훈련시켜야 할지를 요셉의 리더십을 통해 정리해 보았다. 요셉이 고난 가운데서도 형제와, 이웃과, 적대적 관계에 있는 이웃나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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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화평을 이루어 낼 수 있었던 것은 신앙적 역사관, 문제의 근본 적 원인을 이해하는 통찰력, 갈등 당사자들 사이에서 유지했던 균 형감, 화해와 용서의 실천력, 그리고 미래의 평화를 담보하려는 포용력을 갖추고 당면한 문제에 대응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리더십을 어떻게 적용하고 교육할 것인지는 여전히 숙 제로 남아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성경과 역사 속에서 구체적인 예들을 찾아서 훈련하고 갈등의 현장들을 직접 체험해 보는 것이 다. 실제로 다른 나라에서는 가정 차원에서부터 민족과 국가의 영 역까지 갈등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프로그램들이 기독교 대학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국가가 분단의 지경에 이를 정도의 갈등을 겪으면서도 이를 해결하기 위한 리더 십은 기독교 학교에서조차 교육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라도 한국 교회가 앞장서서 다음세대에게 가르쳐야 할 갈등해소 리더십을 정립하고 교육한다면, 이들은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이 리더십을 실천할 것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이들이 우리사회에 만연한 갈등 을 걷어내고 한반도의 피 흘림 없는 평화적인 통일과 세계복음화 를 이루어 낼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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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습게 보인 교회에 명령하는 정부

한국교회가 우스워졌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해방 후까지 하나였던 장로교단은 신사참배 문제로 예장고신 이(1952년)

高神 성경해석 문제로 한국기독교장로회 가(1953년) 탈퇴했고, 基長 WCC(세계교회협의회) 가입 문제로 예장통합과 예장합동이(1959 년) 분리된 이래 지금은 대한예수교장로회 간판을 단 교단만도 300여 개에 달한다. 물론 소속 교회의 수가 10개 미만인 것도 수 두룩하다. 어떤 때는 교권 때문에 어떤 경우는 재산 때문에 갈라 지고 갈라진 결과이다. 1945년 해방 당시 신도 수가 46만 명 정도로 전체 인구의 2~3%에 불과했던 한국의 기독교는 일종의 공동체적인 연대성을 가지고 한국 사회를 이끌었다. 대한민국의 건국을 이끌었던 지도 자들이 대부분 교회에서 리더십을 훈련받은 사람들이었고 교회는 이들이 사회적인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국가와 민족이 필요로 하는 사업들을 주도적으로 펼쳤다. 교육의 불모지에 초중고 대학 까지 교육에 힘을 쏟았고 고아원과 모자원, 양로원 등을 운영하면 서 전쟁 후에 국가가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정성을 쏟았 다. 나라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국민들을 위로하고 약자의 편에 서 목소리를 내주었다. 정부는 교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고 필요한 일이 있으면 교회와 협의를 했다. 그 덕분에 교회 는 성장할 수 있었고 국가가 부흥하면서 교회도 같이 성장하여 기독교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가까이 되게 된 것이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교회는 성장의 열매에 도취 하여 시대의 흐름과 요구를 읽어내지 못하는 공룡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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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의 수가 많아지면서 돈도 생겼다. 교회가 엄청난 재산을 가지 게 되면서 일반 사회에서는 엄두도 못 낼 일들도 할 힘이 생겼다. 감히 누가 나를 건들 수 있겠냐는 자만에 빠져버렸다. 각 교단은 분열되고 종교 장사하는 사이비들이 판쳤다. 국민들의 의식은 사 회주의적인 공공성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변해 가는데 교회는 오 히려 자신들을 위한 투자에 몰두하는 가족 사업처럼 변해갔다. 교 회마다 수양관을 짓고 동산을 사들이고 이런저런 명목으로 재산 을 확보해 갔다. 그 재산을 관리하기 위해 헌금의 대부분을 사용 할 수밖에 없었고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갔다. 교 회가 사회 확장성을 포기하고 제집 관리에 온 힘을 집중한 것이 다.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로 이 과정에서 자신의 지분을 더 많이 가지려는 다툼이 생기고 법정 다툼을 벌이며 심지어 성추행까지 온갖 추태들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국민들의 시선으로 볼 때 기독교는 수많은 종교 중의 하나일 뿐 인데 타종교와 비기독교인에게 배타적인데다가 자기들끼리도 매 일 분탕질하는 것이 참으로 우스웠을 것이다. 국민들이 그런 시선 으로 바라보니 정부가 교회를 우습게 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국민들의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에 대해 정부가 두려워하기는커녕 특별히 대우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게 된 것이다. 더구나 정부에 대해 극렬한 반대를 주도하는 몇몇 교회들이 국민들 대부분의 지 탄을 받게 되어 있는 마당에 정부가 교회를 배려할 필요성은 더 더욱 사라진 것이다. 정부가 교회에 대해 집회를 금지하고 예배 중 통성기도나 찬양 을 하지마라!는 행정명령을 내려도 교회가 이에 대해 반발해야 하는지 순응해야 하는지 판단조차도 못 하는 것으로 비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넘어서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 대한민국이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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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나고 어느 시절에 교회에 대해 사전에 상의나 논의도 없이, 협 조의 당부도 아니고, 따르지 않으며 처벌하겠다는 행정명령을 내 린 경우가 있었나 싶다. 어느 정부가 교회에 대해 종교의 자유를 거론하며 공개적인 비난한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게 정부의 무례인가, 아니면 교회의 무력함인가? 정부의 교회에 대한 태도를 뭐라 하기에 앞서 교회의 위상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에 대해 교회는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교 회가 그동안 사회를 위해 얼마나 많은 봉사를 해왔는데 국민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섭섭해할 일이 아니다. 교회가 아무리 큰 봉사 를 했어도 국민들이 바라보기에 교만하고 편협하고 비판할 수밖 에 없는 모습이었다면 교회는 이미 국민들의 마음에서 떠난 것임 을 인정해야 한다. 교회의 어떤 모습이 교만하게 보였고, 어떤 일 들이 편협하게 보였으며, 어떤 행위들이 비판할 수밖에 없었는지 를 찾아내서 바꾸지 못한다면 교회는 정부에게 그냥 행정명령으 로 다스릴 하나의 사회집단으로 취급받을 수밖에 없다. 교회여, 더 이상 우습게 보이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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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ID19 이후,한국 교회가 풀어야 할 숙제

‘신이 바이러스보다 위대하다!’던 미국 목사, 코로나로 사망! 조 선일보의 기사 타이틀이다. 이와 유사한 기사 제목이 차고 넘친 다. ‘성당과 사찰은 온라인으로, 교회는 현장 예배 강행’, ‘부활절 맞아 현장 예배 602곳 증가’, ‘예배당 예배만 고집해선 안 돼. 지 금은 사회적 거리 두기가 더 절실’, ‘종교는 단 한 사람도 살리지 못했다’. 이번 COVID-19 사태를 지나면서 사회가 바라보는 종 교, 특별히 개신교에 대한 시각이다. 대체로 부정적이며 의도적이 고 악의적인 것도 있다. 이보다 심한 것도 많다. 그동안 우리 사 회가 개신교에 대해 가지고 있던 부정적 생각들을 이 기회에 다 표출하는 듯싶고, 일부 세력과 언론이 이런 여론을 유도하는 것으 로 보이기도 한다. 조금 심하게 의심하면 기독교의 영향력을 완전 히 묶어두려는 시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싶을 정도이다. 왜 이럴까? 한국의 개신교가 국민과 나라를 위해 공헌한 것이 이루 말할 수 없는데 왜 이렇게 개신교를 부정적으로 보게 되었 을까? 첫 번째 이유는 근본적으로 우리 민족이 유일신을 섬기는 것에 익숙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다양한 신을 섬기는 무속신앙이 우리 민족의 근저에 깔려있고, 오래전에 들어와 민중의 생활 속에 뿌리내린 불교와 유교 또한 유일신 신앙이 아니다. 그런 기반에서 가장 최근에 들어왔고 유일신을 섬기는 개신교가 단기간에 폭발 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의 근대사 전개 과정에서 교 회가 국민들의 아픔을 달래주었고, 특별히 산업화과정에서 물질주 의와 기복신앙이 교묘하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 라의 국민소득이 3만 불 시대를 넘어서면서, 개신교 기복신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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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이 필요 없게 되었고, 유일 신앙을 오히려 배타적인 종교적 교만으로 여기며 사회의 갈등요소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종교 다원주의의 유전자가 살아난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한국교회가 개혁의 시점을 놓친 것이다. 조선 말 이 땅에 들어와 민중과 사회를 이끌어가던 리더십이 시대변화 의 속도에 맞추어 변화하지 못했다.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넘기면서 값비싼 기념행사만 벌였지, 한국교회의 문 앞에 내걸린 루터의 ‘개혁요구 95개조항’은 보지 못했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교회들은 사회와 교회 법정에서 다투느라 여념이 없었다. 교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이 사회주의적 관점으로 바뀌고 있고, 출 산의 감소로 인해 교회에 청년들의 자리는 비워져 가고 노인들의 자리만 늘어가고 있으며, 교인들은 교회 문밖에 나서기만 하면 온 갖 갈등구조 속에서 숨 막히는 삶을 살아가는 현실에 대해 어떠 한 답도 해결방안도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그러면서 사회의 발전에 도 뒤처지는 운영체계를 고집하며 자격 미달의 성직자들이 사회 문제나 일으키고 거기에다 이상한 이단들까지 양산하는, 일종의 noise로 느끼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COVID-19 사태는 교회가 사회에 유익 한 기관인지를 공개적으로 공격할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고 앞에 서 말한 것과 같은 기사들을 쏟아냈다. 이에 더불어 COVID-19 사태는 예배당 현장 예배 대신 OnLine 예배를 2달 가까이 진행하 게 만들면서 교회 내부에도 새로운 도전과제를 만들어 냈다. 첫 번째는 교회에서 주일예배에만 참석하고 다른 활동을 하지 않는 대다수 교인에게는 그동안 예배당에 가지 않으면 느껴야 했던 찜 찜함을 느낄 필요가 없게 만들었고, SNS를 통한 소규모 집단의 소통이 소속감을 오히려 증대시켜 주는 것을 느끼게 해주면서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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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면 신앙생활의 긍정적 효과를 알게 해주었다. 두 번째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예배드릴 수 있게 됐고, 평상시에는 가 보기 어려 웠던 다른 교회의 예배도 참석이 가능해진 것이다. 물리적 공간을 관리하고 체제를 유지하는데 예산과 인력을 대부분 투입해야 하 는 기존 교회 대신, 사이버공간에서 예배하고 교제하면서 교회의 본질을 추구하려는 인터넷 전문교회의 출범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같이 우리 사회와 시대가 묻고 있는 수많은 질문에 대해 개신 교는 답을 찾아야 한다. 사회와 유리된 교회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유럽교회가 보여주었다. 이제 한국교회는 교회 안팎의 사회적 약 자들이 겪는 어려움에 좀 더 민감해야 한다. 출산과 육아 등 국가 적 과제의 해결에 교회의 공간과 예산을 사용하며 지역사회에 적 극적으로 다가가야 한다. 환경의 변화로 창조의 원형이 바뀌는 것 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분단과 분열의 갈등 문제해결에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해서 는 인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사조 속에서 기독교 사상을 시대정신 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세상을 바꾸어 가는 OnLine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기존의 예배당 교회와 OnLine 교회를 조화 시켜 가야 한다. 다행히 한국교회는 많은 인적, 물적 자산을 가지고 있고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답을 찾아낼 역량을 갖추고 있다. 이제 한국교회 의 리더십들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이러한 자산과 역량을 최대로 활용하여 한국교회가 우리 민족의 마음에 깊이 뿌리 내릴 수 있 는 개혁방안을 만드는 전선에 서야 한다. 이번의 기회가 마지막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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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원칙과 현실의 조화

통일과 평화공영

남과 북은 분명 같은 민족이다. 이렇게 갈라서고 달라진 것은 남의 사람들이 북의 사람들을 주류로 받아주지 않았고 지금 북은 진정 자신들이 주류인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은 서로 헤어지기 싫은 사람들이 합치는 것이다. 그때까지는, 같이 살아도 좋겠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는 평화공영이 답이다.

'통일' 없는 '통일'의 시작 평화를 위한 걸음은 멈출 수 없다 6·25의 교훈과 북핵 협상의 원칙 신라와 고구려, 1350년이 지나 남과 북이 되어 평화공영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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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없는 '통일'의 시작

남북 정상들의 세 번째 만남이 이제 코앞이다. 만남의 모습은 지난 두 번의 것과 같겠지만 회담 장소가 판문점이라는 것과 사 전에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서 이번 회담은 내용과 성과 면에서 크게 다를 것이란 기대하게 된다. 신비주의적 방식으로 남측에는 일정마저도 숨겼던 두 차례의 평양회담과 달리 이번에는 사전에 직통전화로 남측 정상과 인사를 나누자!하고, 자신의 구상을 어렴 풋이나마 공개했을 뿐 아니라 미국, 중국과도 정상회담을 예약하 면서 한반도 역사상 제일 큰 판을 벌여놓았기 때문이다. 주변 4 개국 정상까지 출연시키는 이런 극적인 상황 전개는 정말 오랫동 안 준비해 온 연출가의 시나리오가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것이 라 생각된다. 오가는 얘기들이 워낙 상상을 넘는 반전이라 북측의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온갖 기대와 의심의 추측이 난 무하게 만들어 놓고 정작 회담장에서, 또 회담이 끝난 후 어떤 반 전을 유도하려 하는지 그 결론의 대강을 보려면 인내가 필요할 것 같다. 그 연출가가 누구든, 시나리오가 어찌 되었든 이번 정상회담에 서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를 얻어내야 하는 절박함이 있다. 양측이 '체제보장과 경제지원' 그리고 '핵 폐기'를 조건으로 줄다리기를 하겠지만 실제로는 남과 북 모두 '각자 체제의 안전보장'을 얘기 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남과 북은 두 차례의 정상회담까지 하면서도 서로 국가로 인정하고 있지 않는 모순적 특수 관계를 유지했지만, 이제는 서로를 정상국가로 인정하는 것만이 평화의 시작이라고 커밍아웃

해야 한다.

coming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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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 이후 지난 70년 동안 남과 북은 '한 민족 한 국가'라는 당 위성을 앞세워 통일을 위한 만남과 논의를 계속하면서도 실제로 는 서로 상대방을 굴복시킬 수 있는 무기를 준비해 왔다. 어쩔 수 없는 이런 이율배반적 의심과 힘의 논리가 지배했던 이 기간의 통일 논의와 실천방안은 실현될 리 만무했다. 오히려 '통일'이란 말은 각자가 원하는 방식을 전제로 한 것이었기에 통일이란 말을 쓸수록 적대감은 커지고 서로 멀어져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 해 왔을 뿐이다. 우리 정부가 '평화'를 위해 '북의 체제보장'을 담보해 주는 것은 지금까지 명분론에 눌려서 얘기하지 못했던 북의 실존을 공식적 으로 인정하는 중대한 전환이라 생각한다.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 만, 남과 북이 정상적 관계로 '새로운 시작'을 출발하고 남쪽이 북 쪽을 '지원'하는 대상이 아닌 정당한 교역과 협력의 대상으로 상 호 정당하게 거래하는 관계로 발전시켜야 한다. 북쪽은 체제가 안 정되고 경제를 개방하면 중국이란 벽을 넘어 세계를 상대로 교역 하면서 1970년대의 남쪽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발전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남측도 북의 인적·물적 자원을 정당한 대가로 상당기 간 활용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남측이 당면한 상당히 많은 문제를 해결하면서 새로운 성장을 추동할 수 있다. '통일' 없는 '통일', 통일은 평화를 보장하지 못하지만 평화의 추 구는 통일로 가는 길이 된다. 두 체제를 가지더라도 평화를 지키 며 공동으로 번영하는 것이 통일을 내세우며 다투는 것보다는 훨 씬 바른 통일의 길임을 보았기에, 이번 정상회담의 연출가가 생각 하는 작품의 결론이 이와 같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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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위한 걸음은 멈출 수 없다

일촉즉발의 위기감 속에서 시작된 2018년도가 평화로운 분위기 에서 마지막 달을 맞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헌신적인 노력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이 방향전환으로 화답하면서 불완전하지만 상 호 불가침을 선언하고 비핵화를 위한 협상을 계속하고 있다. 금년 내에 김 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을 만큼 평 화를 향한 발걸음은 한참을 가고 있다. 평화를 이루는 과정은 많은 장벽이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처럼 전쟁을 치르며 상호 막대한 피해를 주고받고서 70년을 적대적인 긴장을 유지하며 살아온 남과 북의 관계에서는 그 장벽이 넘지 못할 만큼 높아 보일 수 있다. 전쟁 당시에 피해받은 당사자와 직 계 후손들이 살아 있고 이념적으로 상호 용인할 수 없는 집단들 이 남과 북의 주류를 구성하고 있으며 남과 북의 문제를 주변국 들이 당사자라 생각하는 상황에서는 장벽의 수와 높이를 가늠하 기조차 어려울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 평화를 이루기 위한 문 대통령의 흔들림 없는 노 력은 격려하고 칭찬해야 마땅하다. 지난 1년 동안 속을 알수없는 북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안보를 포기하며 북의 입장 만을 대변한다는 국내외의 온갖 비난을 무릅쓰면서까지 대화의 불씨를 살려낸 것은 평화를 향한 간절함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 기에 이제 문 대통령의 진정성은 충분히 입증되었다 할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아쉬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남쪽의 갈등은 묻고 가는 것이다. 북쪽의 동조를 이끌어내기 위해 보여주는 양보와 희생에 비해 정부의 정책에 불안감을 느끼는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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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의 반쪽에 대한 설득과 동참 노력이 여전히 미흡하다. 심지어 이들에 대해서는 무슨 생각을 하든 상관없다고 여기는 것처럼 보 이기도 한다. 이들이 야속하겠지만 이들 역시 이 땅의 평화를 간 절히 소망하고 있음을 믿고, 이들을 포용하기 위해 끝까지 노력해 야 한다. 이런 노력만이 평화를 위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종착점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얼마나 더 걸어야 할지 아무도 모르기에 이번 정부가 다 가지 못하면 다음 정권이 이어가게 해야 한다. 12월 5일은 수십년의 흑백 갈등을 종식시키고 남아프리카공화 국에 평화공영을 이루어 낸 만델라가 세상을 떠난 지 5년이 되는 날이다. 만델라는 30년 투쟁 끝에 집권에 성공하자 나라 밖으로 몰아내도 시원찮을 백인정권과 연정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과격 한 흑인 집단의 반발을 누그러뜨리고 동참하게 하는 일은 백인정 권을 껴안는 것보다 더 많은 인내와 설득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흑인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백인정권의 모든 잘못을 샅샅이 찾 아냈지만 누구도 처벌하지 않은 일이 어찌 피해의 경험으로 울분 에 찬 흑인들의 동의 없이 가능할 수 있었겠나? 그 노력의 결과 로 얻은 것은 인종차별 철폐와 함께 해외로 빠져나갈 백인들의 재화와 국가운영의 경험이다. 더 큰 것은 '평화공영'을 남아공의 브랜드 가치로 얻은 것이다.

brand 우리도 이 땅의 평화를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한국의 만델라를 보고 싶다. 아니 한국의 만델라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의 지혜와 인내를 배우자. 평화를 향한 발걸음을 아무도 멈춰 세우지 못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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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의 교훈과 북핵 협상의 원칙

6·25전쟁 69주년이 채 1주일도 지나기 전에 남한과 미국의 대 통령, 그리고 북한의 최고책임자가 분단의 현장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연출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 문제를 해결하 기 위한 3자간의 협상이 중단된 시점에서 예고도 없이 이틀 만에 만남이 이뤄진 것은 극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들의 만남을 지 켜보면서 협상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과 같이 진행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된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협상은 북한의 전쟁위협을 대화 로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고, 그 근원이 한반도를 적화통일하 겠다고 북한이 도발했던 6·25전쟁에 있다는 것이다. 북한군의 남 침은 소련과 중국, 그리고 미국을 포함한 유엔군을 끌어들여 3년 이 넘는 기간 동안 압록강에서 낙동강까지 쑥대밭을 만들어 놓았 고, 170만의 처참한 인명피해를 만들어 냈으면서도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못하고 휴전으로 끝났지만, 우리에게 꼭 기억해야 할 인류 보편적 가치를 교훈으로 남겨주었다. 첫째는 전쟁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전쟁은 필연적으로 살 상과 파괴를 전제로 한다. 인민해방전쟁이니 통일전쟁이니 하는 어떤 대의명분으로도 사람을 함부로 죽이게 되고 삶의 터전을 파 괴하게 되는 전쟁은 일으켜서도 일으키게 놔두어도 안 된다. 둘째 는 자유와 인권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계급투쟁을 내세워 민간인을 살해하고 인간의 생명을 담보로 신 앙과 사상을 바꾸도록 강요하기도 하며 정권의 유지를 위해 인간 의 존엄성을 짓밟는 모습을 북에서도 남에서도 지켜보았다. 어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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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이상세계를 만들려 한다 해도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셋째는 우리 스스로 지킬 힘을 가져야 한다는 것 이다. 불행히도 이 힘을 갖지 못해 우리 민족의 운명은 늘 다른 나라들의 손에 의해 좌지우지 돼왔고 6·25전쟁의 시작과 끝도 소 련과 미국, 중국에 의해 결정됐다. 더 이상 우리의 운명이 다른 나라들의 이익에 의해 결정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아쉽게도 우리는 이 교훈을 온전하게 실천하지 못했다. 북의 도 발을 막지 못했고 책임도 묻지 못했으며, 동포들의 자유와 인권이 억압당하는 것에 눈을 감아버렸고 우리의 안보를 미국에 의지해 야 했다. 그로 인해 우리는 평화와 자유, 인권과 안보라는 너무나 당연한 가치를 놓고도 스스로 당당하지 못했고, 우리가 직접 당사 자인 북핵 협상에서조차 북한과 미국이 결정한 대로 따라야 하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이제라도 6·25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을 북핵협상에서 지켜 내자. 3년 넘는 전쟁이 휴전으로 종결되어 계속된 분쟁의 불씨를 남긴 것처럼 북한과 미국이 자신들이 취할 것을 교환하고 협상을 마무리해 버리도록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핵협상이 한반도에 서 전쟁의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어야 하고, 우리 민족의 자유와 인권이 온전히 보장되는 것이어야 하며, 중재자가 아닌 당 사자로서 우리가 동의하지 않으면 합의할 수 없는 것이 되도록 당당히 요구하고 관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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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와 고구려, 1350년이 지나 남과 북이 되어 평화공영을 말하다!

1. 신라와 고구려, 1350년만의 재대결 한반도가 다시 한번 전면 충돌의 위기에 빠졌다. 1350여년 전, 신라가 영토의 상당 부분을 내주면서 당나라의 힘을 빌려 고구려 를 멸망시키면서 한반도에 최초의 통일국가를 세운 이후, 후삼국 40년을 제외하고 하나였던 한반도가 다시 남과 북으로 나뉘어서 경영의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수 싸움을 벌리고 있다. 그 당시와 상황이 달라진 것은 미국이란 신생 수퍼파워

가 옛 신라

SuperPower 의 땅을 차지한 남한을, 고구려를 멸망시켰던 중국이란 전통적 수 퍼파워가 이번엔 옛 고구려의 땅을 차지한 북한을 지원하고 있다 는 것이고, 미국의 군사력으로 지원을 받는 남한이 경제력으로 북 한을 압도하고 있고 이에 불안한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만들어 남한을 인질로 삼고 미국과 각을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과 미국의 대치 상황이 무력충돌의 수위까지 다다르자, 북 한의 불안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 급한 마음 에, 남한과 북한이, 그리고 북한과 미국이 만났다. 무력충돌이 생 기면 대량 인명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남한이 판을 깔았다. 판 을 깔긴 깔았지만 이 판을 주도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참여한 당사자들의 손익계산이 두 자리 차수의 방정식을 푸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화를 위한 진정성과 선의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을 포기할 수 없기에, 참여 당사자들이 역사적으로 한반도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고 지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면밀히 살 펴서 대응해야 신라와 고구려의 1350년을 건너뛴 제2라운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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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어느 한쪽이 아닌 모두가 성공하는 결말을 맺을 수 있을 것이 다.

2. 현대판 신라, 남한의 오늘 살펴보아야 할 맨 먼저는 남쪽, 우리 자신이다. 해방 후 한반도 의 반쪽만을 돌려받은 남한은 정부를 수립하자마자 북한의 남침 으로 회복조차 어려울듯한 피해를 입는다. 먼바다 건너 있는 미국 의 도움으로 겨우 경계선을 지켜냈지만 북쪽 대륙으로의 진출로 가 완전히 막혀서 섬이 되어버렸다. 그간 대륙만을 바라보며 대륙 에 대항하기도 하고 지배당하기도 하며 살아왔던 대륙국가가 해 양국가로 운명이 바뀌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미국은 남쪽에게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민주주의를 이식시켰다. 천년이 넘는 세월동 안 민본주의를 앞세워 왕권도 흔들며 권력투쟁을 통해 나라를 다 스려 온 방식을 계속할 수 있도록 미국이 민주주의를 들여와서 정당정치라는 틀을 만들어 준 것이다. 미국이 국방을 담당해 주며 경제발전을 지원해 주자 남한은 날 개를 달았다. 배도 함께 띄웠다. 정권과 경제가 한 몸이 되면서 역사상 최고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고 권력투쟁의 DNA를 발현시켜 민주화도 이루어 냈다. 2차세계대전 이후의 신생국가로써는 유일하게 20-50클럽에 진입하였고 세계 10대 교역국으로 성장하면서 북한에 비해 40배 이상의 경제력을 갖게 되었다. 북한에게서 당했던 군사적 침략을 이젠 경제력으로 얼마든지 되갚아 줄 수 있는 수준이 되었고 북한을 후원하는 중 국과 러시아와도 경제력을 활용하여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어 놓 았다. 이제는 오히려 북한을 날개도 배도 없는 섬처럼 만들었다. 그러면서 큰 약점들이 생겼다. 가진 것이 많아져서 작은 무력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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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에도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으니 무슨 수를 쓰 던 전쟁은 피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성장하다 보니 미국에게 경쟁 상대가 되어버렸고 북한과 어떻게든 전쟁을 피해야 하는 입장이 다 보니 미국보다 북한과 중국의 눈치를 더 보면서 미국과 다른 행보를 보여야 할 사안들이 많아졌다. 친구가 되었다! 생각했던 중국과 러시아는 근본적으로 북한과의 군사적 동맹관계임을 고비 마다 드러내 보인다. 먼 나중의 일이야 어떻게 전개되든, 당장은 북한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그들이 다시 대륙으로 해양 으로 나아 갈 수 있게 날개도 달아 주고 배도 만들어 주는 것만 이 남한이 지금까지 이룬 것을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되 어버렸음을 인정해야 한다.

3. 현대판 고구려, 북한의 오늘 다음은 다른 당사자인 북한이다. 한반도에서 북한이 고구려 이 후 처음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게 된다. 신 라가 평양 이북을 포기하고 외교로 통일을 이룬 이래 일제에서 해방되며 남북이 나뉘기 이전까지 한반도는 줄 곳 남쪽 지역 사 람들이 경영을 맡아 왔다. 그 기간 동안 북쪽 지역 사람들은 주인 공이 될 수 없는 주변인이었다. 그러다가 해방 후 비록 외적인 힘 에 의해서지만 북쪽 지역사람들은 1350년만에 자신들만의 국가경 영 기회를 얻었고 공산주의라는 왕정보다 절대 권력을 갖는 체제 를 받아들였다. 고구려인들은 북방의 여러 호전적 민족들로 둘러 쌓여 끊임없이 침입을 전선에서 막아야 했고 워낙이 경작할 경지가 부족하여 늘 먹을 것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중국과 한 번도 타협하지 않고 당시 세계 최강인 수나라 연나라와 당나라와 당당히 맞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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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며 거대한 영토를 다스릴 수 있었던 것은 한반도 3국 중에서 가장 강력한 왕권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들이 내부분열 과 외교의 실패로 나라를 빼앗기고 천년이상을 국가경영의 중심 에 다가가 보지 못하다가 자신들의 땅에 나라를 가지게 되자 벌 인 첫 번째 일은 남침통일 시도이다. 그들은 누구에게 지배받고 간섭받는 것을 거부한다. 그런 그들이 남침전쟁이 미국에 의해 실 패하게 되자 중국의 도움을 받아 겨우 국경을 지킨 것은 너무나 큰 자존심의 상처였고, 일제의 잔재도 청산 못하면서 외세에만 의 존하는 정통성 없는 집단이라 생각했던 남한에게 경제적으로 비 교대상도 못 되는 처지가 된 것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을 것이 다. 얼마 만에 회복한 나라인데 극빈국이라는 오명 에 더해서 나

汚名 라를 다시 빼앗기는 것이 아닌지 걱정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 린 그들이 미국과 남한을 동시에 제압하며 자존심을 회복할 카드 로 핵을 꺼내 들었다. 자신들을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미국의 군 사력과 자신들을 먹여 살려 줄 수 있는 남한의 경제력으로 가해 오는 압박을, 제 국민이 굶어 죽어 나가는 어려움도 이기고 견뎌 내며 자존심 하나로 무려 20년 세월을 버티며 핵을 만들어 손에 쥐었다. 북한이 독립하여 지난 70년간 보여준 모습에서 보는 것 은 1350년 만에 찾아온 고구려 회복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반 도 경영의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확고한 결의이다. 거기에다 진 화된 DNA는 지난 고구려 패망의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내 부의 결속을 철저히 다지면서 이 시대의 당인 미국과 중국을 묶 어 두어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안다.

4. 현대판 당, 중국의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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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중국이다. 3000년이 넘는 시간을 중원에 스스로를 가두 었던 중국이 세계로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그런 중국에게 예 나 지금이나 한반도는 눈엣가시이다. 북방 민족들은 세력이 커질 때마다 중원을 괴롭혔고 심지어는 수도를 공략당한 것도 한두 번 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고구려는 특별했다. 수나라 시절 백만대군 으로 일거에 쓸어 버리려 했지만 오히려 몰살당했고, 연나라 때는 수도를 점령당하기도 하고 당을 건국하고 첫 번 과제로 고구려를 굴복시키려 했지만 처참히 참패하는 수모를 고구려에게 당했다. 그런 고구려를 신라와의 협공으로 멸망시킨 이후 한반도 전체는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일본이 조선을 문 닫을 때까지 중국에 사대하는 제후국에 불과했다. 중원 언저리 국가들을 통제하는 것 으로 만족하며 스스로를 중원에 가두었던 중국은 세계화의 물결 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었고 급기야 조선을 일본의 수중에 넘겨야 했으며 심지어 중국 본토마저 외국군대들에게 유린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서야 제대로 된 통일을 이루면서 공산사회주의 국가로 완전한 탈바꿈을 이루어 낸 것이다. 그리고 50여년의 튜닝 과정을 거치면서 중국은 세계로 그 영향력을

Tuning 넓히면서 세계 최강국의 면모를 갖추어 가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한반도가 핵과 미사일로 또 문제를 일으키고 있 다. 남한은 미국의 도움으로 경제적 경쟁상대가 될 만큼 성장해 버렸고 북한은 수십만의 목숨을 버리며 미군을 막아주었을 뿐 아 니라 힘들 때마다 그렇게 도와주는데도 자존심을 조금이라도 건 들이면 뛰쳐나가 버려서 상대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렇다고 미국의 해결방안을 따르자니 북쪽마저 미국의 영향력 아래 두는 것이어서 절대로 허용할 수 없는 일이다. 세계 지도자국의 역할을 하고 싶은 중국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턱을 받치고 있는 한반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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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이라도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영향권 아래에 묶어두고 싶지 만 사안이 핵과 미사일이라 무조건 편들어 줄 수가 없어 고민이 다.

5. 새로 등장한 당, 미국의 개입 미국은 새롭게 등장한 수퍼파워, 오늘의 당이다. 미국의 한반도 에 대한 관심사와 역할은 신라를 도왔던 당의 것과 참으로 다르 다는 것이다. 당은 고구려를 정벌해야 하는 여러 이유가 있었고 또한 절박했기에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싶어 하는 신라의 요청이 고마웠고 실제로 도와준 후에 자신들에 인접한 영토를 확보하여 통일신라의 국토를 최소화함으로써 변방을 평안케 한 것이다. 하 지만 한반도와 국경도 접하지 않는 미국이 한반도에 관심을 가진 것은 소련과 중국에 대한 방어선으로서의 가치였고 발 붙일 크기 의 땅이면 충분했다. 방어선으로 일본을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면 태평양 한쪽을 다 내어줄 수 있는 위험이 있음으로 한반 도를 택했고 반을 나누어 북쪽은 소련에 넘겨주고 남쪽만 차지했 다. 그런데 북한이 소련의 힘을 빌어 남한을 침략하자 남한을 지켜 내는 것은 전략적 가치에 더해 자존심의 문제였다. 3만6천명 이 상이 사망하고 그 몇 배의 인원이 부상당하는 피해를 감내하면서 도 남쪽을 지켜냈다. 그렇게 지켜낸 남한은 소련이 해체되고 중국 공산당이 개방을 택한 1990년까지 공산주의 확산의 방어선으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다해 주었다. 그뿐 아니라 체제경쟁이 의미가 없어진 후로도 남한은 경제적으로 미국의 파트너가 될 만큼 크게 성장하여 미국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되는 역할까지 해주었고, 세계 최강국으로 성장하려는 중국을 감시하기에는 최적의 군사기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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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해 주고 있다. 그런데 북한이 또 문제를 일으켰다. 이번에는 핵과 미사일로 미 국을 직접 위협한 것이다. 미국과 소련 간의 체제경쟁이 끝나 버 린 상황에서 바뀐 남한의 가치를 넘어 한반도의 가치를 재평가해 야하는 계기를 제공해 준 것이다. 이젠 중국의 태평양과 인도양 진출을 경계해야 하는 상황에서 남한이 자신들의 의도대로 전략 적 역할을 담당하게 하는데 소요되는 정치적 경제적 경비가 부담 스럽기도 하다. 어차피 남한이 북한에 대한 군사행동을 어떠한 경 우에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 분명해진 상황에서 미국은 자국의 최 대 이익이 무엇인지를 판단하는데 있어서 남한과의 관계 재정립 은 어떤 형태로든 시도할 것이다. 이 기회에 북한의 체제를 인정하고 평양에 미국대사관을 설치하 여 북한을 자신들의 우호 지역 아니면 최소한 중립지역으로 만

友好 드는 방안, 남한의 의사는 무시하고 북한을 군사적으로 제압하는 정면승부를 벌인 후 상황에 따라서 일본에게 중국방어의 역할을 넘기는 방안 등도 책상 위에 놓여있을 수 있다.

6. 북한 손에 달린 문제해결의 방향 관계국의 입장이 이렇게 여러 겹으로 얽혀있으니 각자 부지런히 만나지만 누구도 주도적으로 이 판을 끌고 가기 어렵다. 미국은 군사적으로 해결해 버리고 싶지만, 남한이라는 인질이 발목을 잡 는다. 남한은 지금까지 이뤄 놓은 것을 절대 망가뜨릴 수 없다. 중국은 북한까지 미국의 영향권 아래로 들어가는 것을 그대로 둘 수 없다. 북한은 모든 것을 희생하고 만들어 놓은 핵과 미사일은 한 번밖에는 못 써먹을 것이기에 이번 협상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절박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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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의 테이블에 올라와 있는 것은 북의 핵과 미사일의 포기와 미국의 체제보장 및 경제지원을 맞바꾸는 안이지만, 북쪽은 이번 에는 꼭 얻어내야 할 것들이 있기에 특유의 비밀주의적 밀당작전 을 구사하며, 포기의 규모와 속도와 방법, 그리고 보장의 방법과 보상의 규모가 무엇인지는 내놓지 않았다. 모든 조건이 협상과정 에서 바뀔 수 있고 아마 언제든지 원위치 해가면서 미국과 남한 을 끝까지 압박하며 원하는 것을 얻어 내려 할 것이다. 그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협상진행에 따라 있어야 할 종전선 언과 평화협정 체결, 북미수교로 이어지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에서 북한이 어디까지를 목표로 하는지를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이를 알아야 할 이유는 북한이 어디까지 갈 것인가에 따라 우리 남한이 대비해야 할 일들의 심각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남한에게 가장 유리하며 한반도의 평화공영을 정착시키고 궁극 적으로 통일을 기대할 수 있는 방법은 북한이 북미수교까지 완주 해 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남북간 공식적인 외교관계가 맺어지 고 한 민족 두 체제가 완성될 것이다. 기대하기는 이 상태에까지 이루어지면 남북이 합의하여 미군의 철수도 가능할 것이고 한반 도가 완전한 중립국의 입장에서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 다. 다음의 가능성은 평화협정까지 가는 경우이다. 북한의 의도가 무엇인지가 변수이다. 여러 가지 상황이 가능하고 상당한 안전장 치가 필요하다. 평화유지 과정을 통해 미군을 철수시키고 남측의 군사력을 해제 수준까지 감축시킨 후를 기다리며 도모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은 아닌지를 놓고 남북관계를 정립하는 과정마다 남측 내부에서 끊임없는 정쟁이 이어질 것이다. 소위 주변 강국들 의 보장장치가 필수적이지만 그런 보장이 의미 없다는 것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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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말한다. 평화협정이 의미가 있으려면 북측이 주한미군을 인정 하고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완전히 개방하는 것이다. 세 번째 가능성은 종전선언까지만 가는 경우이다. 북쪽의 체제 에 가장 영향을 덜 받는 경우로 핵과 미사일 폐기의 협상카드를 가장 길게 가져갈 수 있는 어찌 보면 제일 선호하는 경우일지 모 른다. UN사를 해체할 수 있고 미국의 군사적 압력 명분을 제거하 고 남쪽의 경제지원을 현 체제의 강화를 위해 효과적으로 사용하 면서 후일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 끌고 가면 핵보유국 묵 인까지는 이끌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남쪽에게는 너무나 많은 숙제를 남겨준다. 어쩌면 남쪽이 감당 못 할 숙제일지도 모 른다.

7. 남한의 현실적 대응방안 이제 남측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너무나도 뻔한 얘기지만, 우리 스스로 지킬 수 있는 힘이 있어야 북측이 상기 첫 번째 경 우를 선택하도록 만들 수 있다. 우리 스스로를 지키는 첫 번째 힘은 지켜야 할 가치와 방법에 대한 공유에 있다. 통일이냐? 평화냐?는 논쟁은 이미 무의미하며 체제보장과 인권 문제 또한 추구할 가치와 우선할 가치의 싸움일 뿐이다. 반면에 북한이 평화를 말하는 것을 의심하는 것은 저들의 천년 꿈인 남침통일을 위한 위장술에 불과할 것이라는 경험에 의 한 합리적 의심임도 인정해야 한다. 또한 무장의 해제는 위협이 걷히는 만큼만이어야 하는 것이 상식인데, 우리 정부가 이보다 앞 서 더 많이 거두고자 한다면 그렇게 해도 안심할 수 있다는 근거 를 제시하고 국민들을 안심시켜야 한다. 거두어 놓고 나서 위험한 상황이 닥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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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이다!는 지적이 수긍 되어야 한다. 이런 시각의 차이를 인 정하고 서로를 이해시키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서 국민 간 의 분열을 넘어 분단까지 가 있는 우리국민들 사이의 간극 을

間極 좁혀야 한다. 이는 정치하는 사람들의 책무이자 사명이다. 북측의 신뢰를 얻으려 노력하는 것의 두 배 이상의 노력을 기울여서 우 리의 내부가 분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두 번째는 미국, 일본, 심지어 중국과 러시아까지도 현대판 당으 로 우리의 힘에 포함할 수 있어야 한다. 모두가 나서 한반도에서 의 전쟁은 없도록 보장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번 미국과 북쪽과의 합의한 내용을 보면 미국이 보는 한반도는 자기 나라의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위해 관리해야 할 대상이고, 그를 위해서 남쪽보다 북쪽을 파트너로 택할 수도 있으며 그들의 군대는 필요에 따라 아무 때고 어디로든 옮겨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더구 나 남과 북이 별 차이가 없어 보일 때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북 쪽은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이미 활용하고 있다. 남쪽은 미국에게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분명히 입증해야 한다. 그래야 미 국이 우리의 힘이다. 일본의 역할은 더할 나위 없이 긴요할 수 있 다. 우리와는 가까이 있어 악연의 뿌리가 간단치 않고 늘 피해를 주던 나라이기에 감정이 앞설 수밖에 없지만 풀어줄 것은 풀어주 면서 그 이상의 군사적, 경제적 효용가치를 냉정하게 활용해야 한 다. 남과 북의 문제가 해결되고 힘이 생기면 우리가 요구하지 않 아도 자발적으로 사과하겠다고 무릎 꿇을 나라가 일본이다. 중국 에게서는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최대 성과는 중립보장이다. 중국의 북쪽에 대한 필요성은 미국의 남쪽에 대한 필요성의 두 배는 되 는데 중국에 대해 기대를 갖는 것은 무리다. 러시아도 중국의 입 장과 같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게 기지를 제공해야만 하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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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줄타기하려 말고 우리의 상황을 인식시키고 중립을 지키도 록 하는 것이 최선이다.

8. 새로운 선택, 남과 북의 평화공영 1350년 전에는 통일이 평화보다 앞섰다.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이룬 통일신라 그리고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한반도에서 나름 대로 탁월한 문명을 이뤘지만 반도에 갇혀 온갖 어려움을 견뎌내 야 했다. 만약 그때에 당에 맞서 싸우는 고구려를 신라가 돕고 왜 의 침략에 시달리는 신라를 고구려가 도우면서 평화공존을 도모 했다면 한반도의 운명은 어땠을까? 혹시 바다로 왜를 정복하고 북으로 말갈을 물리치며 지금의 중국만한 대국이 되어 있지 않았 을까 상상해 보면서 이번에는 평화공영이 앞서는 것이 답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지금의 분단 상황이 자연발생적인 것도 우리의 선 택에 의한 것도 아니라 주변 강국들의 결정에 의한 것이고 통일 은 한반도를 갈라놓은 이들의 이해까지 만족시켜야 하지만 평화 공영은 당사자들이 이루어 낼 수 있다. 이번 위기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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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끝없는 되풀이

정치현실 비판

국가정책, 세상 돌아가는 상황 등에 대해 그때마다 생각을 정리하는 기회를 가졌다. 철들고 지금까지 정권은 여러 차례 바뀌었어도 사람도, 하는 짓들도 그때나 지금이나 똑 같다. 아마 나도 그렇겠지만.. 그래서 이런 글을 다시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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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프레임을 깨고 나와야 문재인대통령은 지켜내자 인구 90억명 시대 성공의 조건 적폐청산을 넘어 비전을 말하자 야당이 분발해야 하는 이유 기해년에는 급할수록 돌아가자 청춘의 시효 국민 손으로 만드는 4차산업혁명 갈등을 넘어야 희망이 있다 공정하다는 착각 친일 이광수와 친북 김원봉의 功過 평가 이순신에게 누가 12척만 남겨주었나? 曺국이여, 祖국이여 2020년의 희망을 얘기하자 COVID-19 사태는 전문가의 책임이다 진짜 별을 찾아라! 3·1 운동, 기념이 아닌 실천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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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프레임을 깨고 나와야

32세의 나이에 교수가 됐을 때 위로 띠동갑 선배 교수들이 계 셨다. 그분들은 열심히 일한다고 하셨지만 내가 보기에는 고리타 분했다. 차라리 저러지 말고 가만히 계시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때가 많았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학생들과 교수들이 원 하는 대학의 모습이라는 믿음으로 동분서주하던 어느 날, 그 선배 교수님들이 회갑을 맞았다는 얘기에 순간 '내가 부임할 때 이 선 배들이 지금의 내 나이였지'라는 생각이 들며 뜨끔함을 느꼈다. 나는 다를 거라고 자위했지만 띠를 한 바퀴를 더 돌고 나서 보 니 나도 그리 보였을 것이 틀림없다. 내가 어른이 돼서야 경험한 것들을 대학 입학 전에 다 체험하는 지금의 학생들과 교수들이 원하는 대학의 모습을, 비록 열심히 적응해 왔다고는 하지만 30 년 전 만들어 놓은 내 프레임 속에 담을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정치집단을 보면 나와 같은 우를 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1987년 군사정권을 종식시킨 후 민 주화 과정, 진보적 개혁 과정, 보수적 경제팽창 우선 과정을 거치 면서 소위 보수로 불리는 그룹은 1970~1980년대의 경제발전 프 레임을, 진보로 불리는 그룹은 민주화 이전 독재와 기득권층에 대 응하던 약자 보호라는 도덕적 우월성 프레임을 만들고 그 프레임 을 더욱 견고히 하는 데 몰두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여기에 북한에 대해서는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압도'라는 프레임과 '우리 끼리 뜨거운 가슴으로'라는 프레임에 갇히면서 자기끼리의 탈법은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며 다른 프레임은 아예 무시해 버린다. 지 난 30년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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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분명한 것은 양 프레임이 서로 위한다는 많은 국민은, 특별히 미래세대의 상당수는 두 프레임의 바깥에 있다는 것이다. 민주화도 진보도 경제팽창 우선도, 군사적 옵션 도 우리 민족

option 끼리도 좀 생뚱맞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지금까지 이만큼 성장한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우면서도 개인적 가치를 더 견고히 인정해 주는 사회가 되기를 원하며, 전쟁의 위협이 사라지기를 바라면서 도 그 협박에 굴복하는 것은 참을 수 없으며, 무리한 통일보다도 그 전에 평화와 자유, 공정한 민주사회가 만들어지기를 원한다. 이런 눈높이를 못 맞추는 정권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촛 불로 교체해 버리는 성숙한 자기표현에 능한 국민들이다. 이렇게 부쩍 성장한 시민의식을 가진 국민을 이끌어야 하는 정 치집단은 각자의 프레임에 갇혀서 나라 전체를 극한 대립의 장으 로 만들고, 이제는 국론 분열을 넘어 내부 분단상태를 만들어 놓 고 있다. 두 프레임이 만들어진 시대적·역사적 배경과 이유가 있 으며 그때 그 상황에서 분명한 역할과 공헌이 있었음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 시효는 벌써 끝났다. 이제 그 프레임의 영역을 이 시대 의 국민을 품도록 넓히든지, 차라리 그 벽을 허물고 밖으로 나오 시라. 그리고 어느 나라도 경험하지 못했기에 우리가 앞설 수 있 는 4차산업혁명 이후의 미래사회를 담을 수 있는 정치적·제도적 새 프레임을 만들어 주시라. 국민은 감동적인 정치극을 즐길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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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대통령은 지켜내자

급기야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 만약 영

前 장이 발부된다면 서울구치소는 이제 대한민국 대통령이 임기 후 거쳐나가는 청와대 후문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대통령이 되면 서 누가 그 문을 거쳐 갈 것으로 상상이나 했겠냐만 결과적으로 모두가 그리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 일이 개인의 수치가 아니고 온 국민의 부끄러움임을 느끼며 함께 책임져야 할 일이라 생각하 게 된다. 이제는 우리 국민들의 자존감을 다시 찾기 위해서라도 현 대통 령부터는 존경받고 사랑받는 전직 대통령으로 세워가야 한다. 문 재인 대통령의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려는 뜻과 노력이 성공하도 록, 선거과정에서 보여준 ‘품격을 지켜보려는 그의 인내’가 국가의 품격을 높이는 데까지 이어지도록, 다음의 두 가지는 반드시 지켜 져야 할 것이다. 첫 번째는 대통령의 의지를 왜곡하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을 만 들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어찌 자기의 생각이 없을 수 있으며,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으며, 기회 있을 때에 해보고 싶은 일이 없을 수 있을까마는 신뢰를 받는 측근이 대통령의 뜻 을 빌어 자신의 생각, 자신의 안위, 자신이 하고픈 일을 도모할 때, 아무도 견제하지 않으면, 견제할 수 없으면, 대통령은 망가진 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자 그때까지 헌신했던 최측근인 소위 3철이 대통령 재임기간동안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선언하 고 그 약속을 지키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들이 떠난 빈자리를 차지한 무수한 다른 3철들이 떠나간 3철만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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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경계하며 대통령의 의지가 왜곡되지 않도록 서로의 일을 살펴볼 수 있어야만 그들의 물러섬이 가치 있을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 없는 타협은 없다!'는 대통령의 의지에, '최소한 자신의 임 기가 시작되고 언론장악 시도는 없었다!'는 대통령의 믿음에, '자 유민주주의의 헌법정신을 지켜가겠다!'는 대통령의 진정성에 누구 도 '私'를 끼워 넣지 못하도록 서로를 경계하고 지키시라. 두 번째는 대통령의 품격을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 모두에게 공 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정의사회’는 온 국민의 소망이기에 누가 대통령이 되든 임기 내내 이를 입에 달고 산다. 문재인 정권이 들 어서면서 과거 정권들의 ‘정의사회구현’이란 구호는 ‘적폐청산’으 로 바뀌었다. 솔직히 적폐 라는 단어는 이번 정권이 사용하면

積弊 서 그 의미를 새삼스레 알게 되었다. 당연히 정의로운 미래를 위 해 나라를 좀먹는 '오래 쌓여 관습이 된 잘못'은 바로 잡아야 하 는 일이기에 환영하면서도, 용어의 생경함과 함께 왠지 조급하면 서 많은 사람의 마음을 편치 않게 만드는 방법으로 진행하는 것 같아 염려스럽다. 방송국 임원에게서 임기 전 사표를 받아내기 위 해 벌어진 일련의 과정들, 잘못된 공관병 활용 관행을 바로 잡는 다고 40년을 군에서 보낸 4성장군을 언론의 도마 위에 올리는 방 법 등이 절대로 문재인다운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긴 호흡으로, 품격을 갖추면서, 대통령에게 무조건적인 반대의사를 가진 국민조차도 수긍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가자. 그래야 어 디 두고 보자는 불필요한 원망이 대통령을 향하게 하는 일의 반 복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현 대통령마저 퇴임 후에 서울구치소로 향하는 경우는 상상도 할 수 없다. 다시는 그런 수치스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우리 가 문재인 대통령을 지켜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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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90억명 시대 성공의 조건

인류의 삶의 형태는 기원후 100년쯤 인구 2억명 시대부터 1800년 인구 5억명 시대까지 커다란 변화가 없었다. 그러던 것이 1850년 인구가 10억명을 넘어서고 현대과학의 기초가 만들어지 면서 1차 산업혁명을, 1925년쯤 20억명 시대를 지나며 새로운 에 너지원을 활용한 2차 산업혁명을, 1970년쯤 40억명을 돌파하면서 컴퓨터를 이용한 3차 산업혁명을 시작해 2017년 75억명 시대를 거치면서 혁명적 변화를 만들어냈다. 인류는 늘어나는 인구수에 비례해 과학기술과 산업을 발전시켜 의식주 문제를 해결했고, 그때마다 이를 주도하는 국가가 있었다. 1차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성공했던 것은 중점산업을 농업에서 경 공업으로 바꿔갈 기술발전이 뒷받침했고, 이로 인해 발생한 수많 은 사회문제를 민주적 방법으로 해결하는 국민적 역량이 있었기 때문이다. 2차산업혁명을 미국과 독일이 주도했던 것은 새로 등 장한 에너지원인 전기와 석유 그리고 핵심 산업재료인 철강 생산 에서 큰 진보를 이뤄냈고, 이를 응용한 제품 개발에 개인과 기업 이 적극적으로 뛰어들 수 있도록 개발의 성과가 개발자에게 돌아 가는 사회적 구조가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3차산업혁명 역시 미국이 주도했던 것은 새로운 창의적 도전을 용인하는 사회구조 를 바탕으로 국가가 필요한 정보화 인프라

를 적극 지

infrastructure 원하고, 이를 응용한 상품 개발과 생산에 산학연이 일체가 돼 뛰 어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인류는 2045년 이전에 달성될 90억명시대를 맞기 위해 새 로운 4차산업혁명을 이야기하고 있다. 4차산업혁명은 지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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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는 달리 그 주도의 주체도 그 수혜의 범위도 일부 지역이 아닌 세계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누구든 그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50여년에 걸쳐 진행된 3차 산업혁명 기간 인구 5000만명을 넘기면서 세계 9위 교역국가로 성장했는데, 이는 국 가 주도적인 기업 지원과 변화를 만들어 내야만 한다는 국민의식 그리고 높은 교육열이 만들어 낸 과학기술 인력의 뒷받침이 있었 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많이 다르다. 정부가 주도적 으로 기업을 지원하는 일은 어려워졌고 고도화된 과학기술을 만 들고 연구할 전문인력 육성도, 유입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많 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저출산 현상, 창업과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 게 만드는 사회적·제도적 환경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아 국가 미래 를 염려스럽게 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는 노력의 출발은 정부가 모든 것을 주도해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과거의 성공 경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정부가 모 든 분야에서 세부적인 것까지 설계하고 지원하며 감독하면 개별 기업이든, 대학이든 민간이 창의적 도전이나 변화를 스스로 만들 어 낼 수 없게 된다.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임금을 지원하는 일보 다 정보화 인프라를 확장해 주고 새로운 사업과 산업을 창출하려 는 시도가 많아지도록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출석을 잘 부르고 있는지, 취업을 얼마나 시키는지로 대학을 평가하려 하 지 말고 시대를 이끌어 갈 인재교육을 위해 각자의 특성에 맞게 투자하도록 지원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정부부터 시대에 맞는 역할이 무엇인지 찾아 먼저 바뀌어야 한다. 4차산업혁명을 주도하기 위한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우리가 인 구 90억명시대에 어디에 서 있을 것인지를 속히 정하고 정부도, 민간도 그 역할을 찾아 지체없이 변화를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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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청산을 넘어 비전을 말하자

시대가 바뀌면 있던 단어도 사라지고, 없던 단어도 생겨난다. 어 떤 말이 생겨나고 없어지는지를 살펴보면 그 시대의 상황을 알 수 있다. '동무'라는 정겨운 말은 공산당이 빼앗아 갔고 '한겨레'라 는 가슴을 울리던 말은 어느 신문사가 가져가 버렸다. 대신 '헬 조선' 'N포시대' '적폐' '甲질' 등이 생겨나 이젠 보통명사처럼

hell 쓰인다. 이렇게 정과 나눔의 상징어들이 사라지고 불만족과 좌절, 대결과 갈등을 함축하는 단어들이 등장한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 큼 살기 어려워지고 무언가를 대상으로 감정을 풀지 않으면 참기 어려워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특별히 이번 정부 들어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적폐와 갑 질이다.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일수록 어감이 강하고 사람들 을 흥분시키는 힘이 있다. 적폐는 과거의 잘못된 것들을 말하고, 갑질은 무엇인가 가진 자들의 횡포를 말한다. 연일 계속해서 적폐 라고 보도되는 내용들을 보면 그간 해도 해도 너무했구나! 하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대통령이 나서고 전 부처가 전담반을 만들 만 하다. 지난 정부의 핵심 공직자들이 대부분 구속되고 법정에 서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나라도 아닌 나라에서 살아온 것 같고, 나 도 무엇인가 공범인 것 같은 죄의식을 느끼게 된다. 더구나 갑질 하는 현장의 모습과 목소리가 방송되는 내용들을 보면 같이 분노 하다가 나도 쥐꼬리만 하게 가진 권한으로 갑질한 것은 없는지 되돌아보며 반성하게 된다. 이렇게 적폐와 갑질을 하나씩 찾아내 온 국민에게 알려서 의식을 깨우고 이 정부 스스로는 이런 일들 이 반복되지 않겠다는 선한 의도는 우리나라의 격을 높여줄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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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동의한다. 하지만 이 작업이 이런 식으로 언제까지 지속되는 것이 타당한 지는 이제 다시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정부가 나서서 적폐청산과 갑질근절 뉴스를 생산하다 보니 매일 언론이 이를 받아쓰고 정작 이번 정부가 만들려는 미래사회의 모습은 어딘가로 감춰져 버렸 다. 적폐라고 보도되는 일 중에서 이런 일도 권력남용인가 갸우뚱 하게 만드는 것들도 끼어 있는 것을 볼 때는 이번 정부가 일하는 사람들이 자율적이고 창의적으로 주도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어 디까지인지 몰라 하게 할 수도 있겠다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이 작업의 뒤끝에는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누구도 희생적으로 일하 려 하지 않고 가진 자들은 베풀려 하지 않는 적막한 사회가 기다 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적폐청산과 갑질근절은 반드시 지속되어야 한다는 데 이론이 없 다. 그러나 이제는 이 정부가 미래 사회의 모습을 제시하고 그런 사회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면서 모든 국민들의 동참을 이끌어내는 방법에 더 힘을 써야 한다. 우리 사회가 지향 하는 목표가 분명하고 시행하는 정책이 일관성이 있으면 적폐라 는 것이 생겨나지 않을 것이며 어떠한 갑질도 용인되지 않을 것 이다. 이 정부도 이제 적폐를 만들어갈 수 있는 시점을 지나고 있 음과 지난 일 년 동안의 청산과 근절 작업 과정에서 국민들이 얼 마나 높은 기준을 이 정부에 요구하게 되었는지 깨달아야 한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이제 청산과 근절을 넘어서서 비전을 보이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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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이 분발해야 하는 이유

불과 1년 반 전에 출범한 정부가 지금 우리나라를 정치, 국방과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변혁의 한복판에 서 있게 만들었다. 지속 되는 적폐청산 작업으로 정치와 사회의 전반에서 갑과 을의 관계 를 재정립하고 있고, 최근 6개월 사이에는 우리 대통령이 북한의 최고지도자를 3차례나 직접 만나고 15만의 평양시민들 앞에서 전 쟁 없는 평화를 선언하면서 DMZ의 비무장화와 NLL 수역의 공동 활용 실천계획을 합의하였으며, 자본가 주도형 경제발전 모델을 근로자 복지향상 주도로 바꾸어 놓았다. 그 범위와 속도가 가히 정책혁명이라 할만하다. 그러나 정부 정책의 방향이 아무리 옳은 것이라 하더라도 이 정 도로 우리 국가의 미래와 당장의 국민 생활경제를 바꾸어 놓을 것들이라면, 국민들이 불안해할 요소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적폐 의 기준이 무엇이고 청산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모르니 나라를 위해 일한 사람들이 내가 한 일도 청산되어야 할 적폐인지 불안 해할 수밖에 없다. 북한에 대한 무한 신뢰를 기반으로 제안되는 상호 병력후퇴가 우리만 불가역적인 수준까지 진전된다면, 말 그 대로 되돌릴 길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걱정할 수밖에 없다. 모든 국민이 행복한 국가를 지향하며 추진하는 경제정책이 자칫 시장의 원리를 무시한 지나친 개입이 되어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현상이 전방위적으로 나타난다면 지금까지 이루어놓은 것 이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할 수밖에 없다. 이런 불안감을 갖는 국민들을 대신해서,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 는 변화의 방향과 속도가 바람직한 것인가!를 점검하고 더 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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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은 없는 것인지 대안을 찾아서 제시해 주는 것이 야당의 할 일이다. 특별히 지금 상황에서 보수야당은 이 일을 잘해야 다음 정권을 기약할 수 있다. 그런데 국민들이 갖는 불안감에 비해 보 수야당의 대응은 너무나 지엽적이고 산발적이어서 마치 잘 훈련 된 특전特戰병력 공격을 훈련병들로 대응하는 느낌을 갖게 한다. 이 느낌이 보수야당에 대한 신뢰를 갖지 못하게 하고 낮은 지지 율로 나타나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보수야당이 국민의 지지도 추락을 아직도 국정농단 사태의 후유 증이라 핑계하고 현 정권의 실수만을 바라면서 지지도를 올리려 한다면 회복은 불가능하다. 지금의 여당은 지난 10년 동안 노무 현정권이 왜 정권을 내어주었는지를 철저히 분석했고 어떻게 해 야 정권을 회복할 수 있을지를 계획하고 실행했다. 보수야당도 그 렇게 해야 기회가 온다. 여당이 20년 집권을 목표로 내걸고 있는 '전쟁 없는 평화와 국민행복 시대'라는 가치를 넘어설 수 있는 대 응 가치를 찾아내고, 그 가치로 스스로를 완전히 바꾸는 모습을 보여야 살길이 열릴 것이다. '자유민주 통일과 청년주도시대'를 내 걸고 한민족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통일정책과 청년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만드는 정책으로 승부해 보면서 40대 대 통령을 내세우는 정당으로 탈바꿈하면 어떨까. 이렇게까지 야당이 제대로 역할하기를 기대해야 하는 이유는 독과점은 정치에서도 불공정한 결과를 낳고 그 피해는 국민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지금 처럼 보수야당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필연적으로 또 다른 국 정농단 정권을 만드는 비극을 국민들이 다시 보게 만들 것이다. 야당이 분발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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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년에는 급할수록 돌아가자

이상할 정도로 조용한 분위기에서 기해년 새해가 밝았다. 작년 무술(戊戌)년이 시작할 때는 북한 핵 문제로 금방이라도 전쟁이 벌어질 것 같은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 과 함께 황금개띠라 하며 요란하게 새해를 맞았었다. 그런데 금년 엔 새해를 전망하는 명사들의 기대 섞인 덕담조차 신문에서 찾아 보기 어렵다. 심지어 단골 메뉴인 새해부터 바뀌는 것들이 무엇인 지 소개하는 기사조차 다룬 곳이 없어 보인다. 무엇이 새해를 이 렇게 조용히 맞이하게 만들었을까. 내일에 대한 두려움이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다섯 가지 본능을 추구하며 사회체계를 만들었고 기술발전을 이뤄왔다. 필자가 판단 하는 우선순위대로 열거해 보면 첫 번째는 의식주, 즉 먹고사는 경제이고, 두 번째는 삶을 위협받지 않는 안전이며, 세 번째는 건 강이고, 네 번째가 즐거움을 위한 여유 그리고 다섯 번째가 한때 는 최우선 순위에 있던 종족보존이다. 그런데 지금 이 본능추구가 복합적으로 흔들리면서 가진 자는 움켜쥐었고, 없는 자는 생존의 위협을 느끼며 움츠러들어 버린 것이다. 의식주를 해결해 줄 일자리 문제는 그 불안감이 극심하다. 미국 과 중국의 기 싸움이 장기화되면서 증시는 끝없이 추락하고, 기

氣 업은 투자를 멈춘 지 오래됐고, 최저임금 인상은 전체 사업자의 30%에 해당하는 자영업자들이 고용을 줄이지 않으면 안 되게 만 들었고, 이로 인해 저소득 일자리가 줄어들고 심지어 대학 졸업자 들의 취업률도 근래 최저치로 떨어져서 일자리는 누구에게나 구 하기 힘든 것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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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문제도 새로운 두려움이다. 도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설치 한 시설물들이 노후되어 언제 어디서 싱크홀이 발생하고, 온수가 터져 나올지 모른다. 이젠 인터넷 연결 없이는 아무것도 할수없는 IT시대에 연결망이 단절돼 온라인 거래가 중지되는 일이 벌어 지고, 개인정보는 이미 시장에서 자유롭게 유통되고 있어 언제 X-피싱

에 걸려들지 모른다.

phishing 전 지구적 환경문제는 우리가 자랑하던 맑은 공기와 물을 오염 시켜 놓았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들어보지 못했던 미세먼지 가 우리 입에 마스크를 씌워놓았고, 미세플라스틱은 이제 우리가 마시는 거의 모든 물에 포함되기 시작했고, 우리가 먹는 음식물 속에 녹아 들어가 있다고 봐야 하는 실정이다. 불량식품은 오히려 비교가 안 될 위협이다. 어떻게 해야 우리를 움츠리게 하는 이 문제들을 해결하고 가진 자도, 없는 자도 모두 새로운 희망으로 생동력을 회복하게 할 수 있을 것인지 답을 내기 쉬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 명하다. 이들 문제 하나하나가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누적돼 온 것들이어서 누구 책임인가를 놓고 서로 갈등하고 분열하는 것도, 하루아침에 해결하려고 무리하는 것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발묘조장 拔錨助長

이란 말이 있다. 뿌리를 잡아 올려 벼가 자란 것처럼 보이게 한다는 말이다. 벼가 자란 것처럼 보이 게 하는 것이 답이 아니다. 벼가 튼실한 알곡을 맺게 하는 것이 목표이다. 급한 마음일수록 돼지띠들의 특성과 같이 뿌리를 다지 듯이 서로 이해를 구하고 이해해 주며 우리의 문제를 함께 풀어 가는 기해년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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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시효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미얀마 국립묘지를 참배하는 과정에서 1983년 미얀마의 건국영웅인 아웅산장군의 묘소를 참배하려다 북 한의 테러로 숨진 17명의 순국자 추모비를 방문하는 보도를 보았 다. 그 덕분에 오랜만에 그들 중 한 분인 연세대 교수이셨던 함병 춘 교수를 다시 떠올리게 됐다. 그를 기억하는 것은 너무나 깊은 인상을 심어준 그의 대학원 입 학식 격려사 때문이다. 요지는 '여러분, 청춘을 불사르지 마십시 오. 지금 이 사회의 주역이 된 4·19세대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20 여년 전 외치던 자유, 정의, 진리가 실현되었나요?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은 그들이 젊음과 함께 그들의 신념을 4·19 때 다 불살라 재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꼭 젊음을 간직하셔서 때가 되면 그 젊음으로 세상을 바꾸십시오.' 본인이 박정희 정권 에서 요직을 거치면서 4·19세대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경험하고 평한 것이어서 특별하게 들렸다. 지금 여와 야, 양측에서 정치의 주역은 군부독재를 종식시킨 586세대다. 그들의 20대도 4·19세대와 같았다. 무모하게 보일 정 도로 기존 통념을 뛰어넘는 그들의 항거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던 넥타이 부대의 참여를 이끌어냈고 투쟁에서 승리했다. 그리고 그 들이 30대를 넘기면서 정치에 참여할 때, 많은 국민들은 그들의 순수한 열정을 지원하면서 우리 사회에서도 특권이 사라지고 정 의와 평등이 보편화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리고 이제 그들도 50 대를 넘어 60세 고지를 향하게 되면서 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동안 그들이 여와 야로 나뉘어 정권을 잡고 그들의 정치를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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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했지만 아쉽게도 우리 사회의 갈등은 더 심화되고, 계층 간 불 평등은 더 커졌다. 그러면서 사회불안 요소는 늘어만 가고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된 원인에 대한 성찰이 없다. 정권을 잡는 것 자 체가 목표이다 보니 이를 위한 것이라면 가짜뉴스도, 여론조작도 거리낌 없이 실행한다. 정치가 전쟁이 되었고, 여느 전쟁에서처럼 정의와 상식은 없고 오직 내편과 네편만이 있다. 이제는 국민마저 도 편을 나눠 길거리에 나오게 만드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이를 아무리 잘 포장하려 해도 지금의 모습은 자신들이 확보한 기득권 을 공고하게 다지려고 애쓰는 것 이상일 수 없다. 그동안 바뀐 것 이라고는 이 사회의 특권을 누리는 주체이고, 대를 이어 누리려 몸부림치는 반칙뿐이라는 말이 안타깝다. 세대만 바뀌었을 뿐 또 다른 청춘의 불꽃이 꺼져가는 모습이다. 청춘은 시효가 있음인가. 286이 586이 되어가는 사이 바깥세상은 그 이상으로 바뀌었다. 죽의 장막은 걷혔고, 안보도 경제도 강하게 연결된 tightly coupled 세계화시대가 됐다. 죽의 장막 시절 컨테이너 크기의 슈퍼컴퓨터 여러 대가 우리 손안에 쥐여지는 스마트폰 안에 들어가 있다. 286 시절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시대를 586이 되어 살고 있다. 역사는 발전하면서 새로운 시대적 과제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그 과제는 그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불꽃이 살아있는 청춘들의 몫이 다. 586세대가 마지막에 성공할 수 있는 길은 청춘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다. 그러지 못하면 역사는 제자리에 머문다. 아쉽게 도 청춘이란 것이 불사르지 않는다고 간직되는 것은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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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손으로 만드는 4차산업혁명

4차산업혁명은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모바일 등 첨 단 정보통신기술이 경제·사회 전반에 융합돼 혁신적인 변화가 나 타나는 차세대 산업혁명'으로 정의된다. 다시 말하면 5G 이상의 초고속 인터넷에 모든 사물과 생물을 연결하고 이들로부터 수집 되는 빅데이터를 인공지능 기법을 적용해 사회와 경제발전에 필 요한 용도에 활용한다는 것이다. 4차산업혁명의 기반이 되는 정 보통신기술(ICT)에서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가 이를 통 해 차세대 먹거리를 만들려는 정부의 노력은 충분히 근거가 있다. 다만 이런 노력이 성공을 거두려면 다음과 같은 3가지 여건을 갖 추도록 정부가 바르게 지도 하고 지원s 해야 할 것이다.

guide

upport 첫 번째는 다양한 ICT 플랫폼이 만들어지도록 이끄는 것이다. 4차산업혁명은 초고속 인터넷에 모든 사물과 생물이 연결돼 수집 된 빅데이터의 활용을 전제로 한다. 이런 일이 가능하려면 무엇이 든 인터넷에 연결시킬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주고, 표준화된 형 태의 데이터를 인터넷에 올려주어 분야별로 필요로 하는 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지능화된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 유튜브처럼 전 세계의 콘텐츠 제작자가 공유하는 플랫폼이 다양한 분야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정부가 공공분야부터 선도적으로 만들어서 사업 화가 가능한 부분에 기업이 스스로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두 번째는 새로운 기술이 만드는 변화를 수용하고 적극 활용하 려는 사회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인터넷에 연결되는 모든 사물 과 생체의 정보를 공유해 활용하려는 4차산업혁명은 새로운 산업 을 만들어 나가면서 기존 산업들을 사라지게도 할 것이다.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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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충돌이 발생하며 예상 못 한 사회문제들을 만들어 내기도 할 것이다.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고 성공적으로 성과를 거두려면 4 차산업혁명이 만들어 낼 긍정적·부정적 미래 상황들에 국민이 친 숙해져야 한다. 그래야 정부가 규제를 통해 새로운 시도 자체를 봉쇄하는 손쉬운 길이 아닌 보호의 장벽(법)으로 새로운 산업이 생겨나도록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는 교육이 창의성과 공유가치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4차산업혁명은 우리 사회를 나의 위치와 역할이 내 밑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는지로 결정되는 피라미드 구조에서 내가 얼마나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있는지로 결정되는 연결형 구조로 바꾸어 갈 것이다. 피라미드 구조에 익숙해져 있다보니 모두가 정보를 공 유하고 활용할 수 있는 블록체인 기술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 어 려운 개념으로 보이는 것이다. 창의적 정보와 자원은 모두에게 연 결가치를 가진다. 내가 가진 정보도 자원도 얼마나 널리 공유되느 냐가 내가 얼마나 많은 다른 이들의 정보와 자원을 활용할 수 있 는지를 결정한다. 이런 공유가치를 교육을 통해 보편화해야 한다. 4차산업혁명 성공의 지름길은 스토리텔링에 있다. 현재와 미래 의 기술로 어떤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얘기들이 모든 언 론 매체에 흘러 넘치게 만들자. 그래야 청년들이 미래사회에서 어 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꿈꾸게 되고 준비하게 된다. 정부는 그 이 야기들 중에 실현가능한 것들이 구현될 수 있게 인도'guide'하고 지원'support'하면 된다. 혁명을 우리 국민 모두가 만들어 내게 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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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을 넘어야 희망이 있다

갈등은 서로 다른 가치나 이익이 충돌하는 것을 말한다. 갈등은 각 사람의 내면에도 있고 가족, 친구, 직장, 집단, 지역, 민족, 인 종 사이 어디에든 존재한다. 갈등을 표출하는 방법과 수준도 그만 큼 다양하다. 갈등이 인격적, 윤리적, 신앙적 차원에서 해결되는 경우도 있지만 시위나 집단폭력 혹은 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아서 갈등이 심한 사회에서는 늘 긴장할 수밖에 없어 집단 스 트레스가 존재한다. 우리 국민에게는 근현대사를 거치면서 기본적 스트레스가 누적 돼 있다. 일제강점기를 살면서, 남과 북이 갈라지고 전쟁까지 치 르면서, 독재와 불공정 사회를 거치면서 생겨난 갈등과 피해의식 등이 제대로 풀리지를 못하고 유전적으로 쌓이기만 했다. 그러다 보니 작은 갈등도 쉽게 분노로 연결돼 모든 것을 위력 으로 해

威力 결하려는 극단적 경향이 생겨나서 세계 10대 교역국의 위상을 자 랑하는 우리나라의 사회통합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 가 중 최하위권이고, 갈등지수는 최상위권이 됐다. 갈등을 조정하는 방법은 질서와 법이다. 질서는 사회를 지배하 는 시대정신에 따라 구성원이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지도자들이 솔선수범해 상식적 원칙을 지킬 때 세워지는 것이고, 법은 질서에 의해 해소되지 못하는 갈등을 국가의 힘을 이용해 강제로 조정하 는 것이다. 따라서 법은 갈등 해결의 마지막 수단이어야 하므로 이성적이고 상식적 선에서 만들어지고 해석되고 집행돼야 하며, 법으로도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는 건강한 공동체라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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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갈등은 질서가 아닌 법에 의 해 조정됨에도 불구하고 법에 대한 신뢰마저 사라져가고 있다. 법 이 정권에 의해 휘둘리기도 했고, 누가 적용대상이고 누가 해석하 느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 으로 인해 우리나라에는 보이지 않는 '법 외의 법'이 존재한다. 국 민정서를 내세우는 '정서법'이 있고, 자신의 이익이 관철될 때까지 떼를 쓰며 버티는 '떼법'이 그것이다. 이런 법들을 국제관계에까지 적용하려 할 정도로 우리 사회 전반에 관습화되면서 법이 갈등 조정의 마지막 수단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고, 이로 인해 지불해야 하는 사회적 경비는 추산조차 어렵다. 그런데도 이를 바로 세워야 할 계층에 있는 사람들이 그러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자신들이 때때로 이 법들의 혜택을 누리고 있고, 앞으로도 그래야 할지 모른다는 기대심리가 있기 때 문이리라. 이젠 이런 혜택을 누구도 누리려 하지 말자. 그렇게 못 하면 정치는 그만두고 경제도 조금도 발전해 갈 수 없고, 우리나 라의 신뢰도는 추락할 수밖에 없다. 법이 모두에게 평등하고, 집 행이 공정하다는 것을 국민이 믿게 만드는 일이라면 조직을 바꾸 든 새로 무엇을 만들든 무엇이든 하되 법의 결정에 따르는 모습 을 지도자들부터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100년 전 3·1운동에서 우리 선열들은 갈등 해결방법으로 평화 질서를 외쳤다. 힘의 상징인 법을 넘어 내편과 네편이 함께 조화 를 이루는 평화질서가 지배하는 문화국가를 꿈꿨다. 그것이 포용 국가라고 믿는다. 이 꿈이 이뤄질 때 국민의 행복도, 경제의 발전 도, 통일도 있다. 구호는 멈추고 실천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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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다는 착각

60년을 넘게 살고도 처음 들어보는 말들이 자꾸 등장하곤 한다. 적폐, 토착 왜구, 갑질, 등의 신조어들은 처음 듣는다 해도 새로 만들어진 말이니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둘러댈 수 있었다. 하지 만 어려서부터 너무도 편히 사용해 온 말인데 그 의미를 다르게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개판이 네’, ‘개판친다’의 경우가 그렇다. 개판을 개들이 정신없이 날뛰어 소란한 모양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사용해 왔다. 그런데 원래 는 전쟁통에 굶주린 사람들에게 밥 나누어주는 곳에서 '개판(開 版, 밥솥의 뚜껑을 열기) 오 분 전'이라고 외치면 서로 앞으로 뛰 어나가느라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해지는 상황을 묘사한 것 이란다. 이 말이 국어사전에 올라와 있고 '개판 오 분 전'으로 표 기해야 맞다. 그래도 교수인데 말뜻도 모르고 사용했다는 것이 민 망해진다. 이렇게 뜻을 모르고도 사용하는 말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의미를 분명히 알면서도 뜻을 자의적으로 변질시켜 사용하는 말 도 많다. 얼마 전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 려진 마이클 샌델이 새로 저술한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책을 받아 읽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말들은 그 의미를 모르고 사용하는 것을 무식의 소치로 넘길 수 있지만, 정의와 공정 그리 고 평등과 같은 가치를 설명하는 말은 이기적 착각에 빠져 잘못 사용하는 것은 비난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공정, 정의 그리고 평등과 같이 민주적 가치를 설명하는 단어들 은 행동을 전제로 하므로 듣는 이의 심장을 뛰게 하는 힘을 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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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래서 뜨거운 심장을 가진 청년들은 이런 말들 앞에 청춘도 인생도 아낌없이 바친다. 60년대를 살았던 청년들은 4.19에 목숨 을 버렸고, 70년대를 살았던 청춘들은 부마항쟁에 피를 뿌렸으며, 80년대의 시민들은 5.18에 목숨을 던졌고 이 시기의 386들은 6.29 독재 포기선언을 이끌어내기 위해 최루탄을 머리로 막았다. 그러면 그 청춘들이 자신을 희생하며 지켜냈고 자신들의 손으로 지키고 이루고야 말겠다던 공정과 정의, 평등과 자유, 그리고 민 주는 이제 이루어지고 있는가? 고등학생일 때 김동길(당시 해직 교수) 박사의 책을 읽고 강연 회에도 참석하곤 했다. 그때 그가 한 말 중에 "미국이 독립선언서 에 '만민은 평등하다'는 위대한 선언을 했지만, 만민에 흑인도 여 자도 포함되지 않았다!"는 말이 '평등'을 말할 때마다 생각난다. 영국의 억압으로부터 미국의 독립을 이끌어 낸 위대한 정치가이 고 사상가로서 미국독립선언문을 작성했던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조차도 자신의 경험과 환경이 만들어 놓은 가치의 프레 임에 갇혀 있었다. 그가 평등의 의미를 몰랐을 리가 없지만, 평생 을 수많은 흑인을 노예로 부렸고 여성을 부속물로 대했으면서도 자신은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생각한다고 착각하고 살았다. 대학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함병춘(1981년 당시 대학원 장) 박사는 시대의 상황을 안타까워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 여러분, 지금 이 나라의 주축은 4.19 세대입니다. 민주와 정의를 위해 피를 흘렸던 사람들이 현 정부와 사회 곳곳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가 더 민주적이 되었나요? 더 자유로워졌나요? 그렇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자유와 민주를 지키겠다고 청춘을 불사르면서 자유도 민주도 같이 태워 버렸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제발 젊음을 간직하고 사십시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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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야 민주도 정의도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청춘을 포기하며 추구 하던 가치도 자신들의 손에 권력이 들어오면 자신의 처지와 이익 에 따라 얼마든지 변질시키며 살아가면서도 자신들은 정의와 공 정 그리고 평등을 최우선 가치로 지키고 있다고 착각한다. 이런 착각과 자기기만(自己欺瞞)이 역사 속에서 끝없이 반복되 는 것이 안타깝다. 얼마 전 NYT의 표지를 'Naeronambul

' 이 장식했다. 대한민국 여당이 선거에서 패한 이유로 선정한 단어 인데 집권세력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한다는 설명이 붙었다. 자유 와 민주에 몸을 던졌던 70년대와 80년대의 청춘들이 나라를 이끌 어가게 되었지만 여든 야든 이미 그들은 2020년대의 청춘들이 몸 을 내던져서 막아야 할 대상이 되어버렸다. 자신만이 그 가치들을 독점하고 자신들 속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 가치를 나 눌 필요가 없는 무시의 대상으로 구분해 버린 결과이다. 시대와 상황이 아무리 바뀌어도, 추구하고 이루려는 목적이 아무리 숭고 해도, 가치의 본질을 변질시켜서는 안 된다. '이 나라가 개판이다'라는 말이 잘못된 말인 것 같이, '공정과 정 의, 그리고 평등'이란 말은 누군가가 자신들 만의 전유물로 착각 하고 사용하는 순간 이미 그 가치는 사라진 빈말이 된다. 정의는 언제나 정의이고, 공정은 누구에게나 공정이고, 평등은 모두에게 평등이어야 한다.

내로남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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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이광수와 친북 김원봉의 功過 평가

역사적 인물을 평가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구 한말에 태어나 망국의 과정, 일제의 강점기와 분단된 독립 그리고 동족끼리 싸워야 했던 6·25 등의 극심한 굴곡의 시대를 살아야 했던 인물들에 대한 평가는 간단할 수 없다. 이 시대를 살았던 두 사람이 최근 이슈의 인물로 떠올랐다. 춘 원 이광수와 약산 김원봉이다. 이광수는 2.8독립선언 100주년 기 념식에 그의 딸이 참석하려 한다!하여 뉴스가 됐다. 2.8독립선언 서 작성에 이광수가 깊이 간여했기에 딸로서 참석하고 싶었겠지 만 주최 측에서는 그의 가족이 참석하는 것이 큰 부담이 됐을 것 이다. 김원봉은 '암살'이라는 영화에서 의열단 단장으로 소개되면 서 강한 인상을 남겼고, '독립유공자로 서훈하고 싶다!' 했다는 고 위층의 말이 전해지고 '이명'이라는 드라마가 만들어지면서 정치 적 쟁론까지로 비화돼 있다. 두 사람 모두 항일 투쟁가였다. 이광수는 당대의 작가이자 언론 인으로서 우리 민족이 처한 시대상황을 아파하며 고민했고, 나라 를 찾는 길은 우리 민족이 개화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민 족을 깨우려는 계몽 소설과 글들을 남겼을 뿐 아니라 상하이 임 시정부수립에 참여했을 만큼 적극적인 행동가이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우리 민족이 독립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다면 일제 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민족의 힘을 키우자는 민족개조론으로 자 신을 합리화하면서 독립 의지를 꺾었다. 김원봉은 당대의 투사였 다. 독립을 이루는 길이라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행동으로 옮겨 서 일제강점기 가장 큰 현상금의 주인공이 될 정도였다. 의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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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이 어려워지면서 공산당 운동에 집중했고, 독립 후 민주진영 인 남쪽으로 환국했으나 결국은 월북해 북한 공산정권의 수립에 참여했고 6·25를 후방에서 도왔다. 두 사람 모두 이 민족이 사랑했던 사람들이었기에 이광수의 변 절이 준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김원봉이 6·25 동족상잔 을 일으킨 무리에 껴서 만들어 낸 상처는 너무 깊었다. 이들의 다 른 공이 아무리 크더라도 용서받을 수 없는 이유다. 우리의 근현 대사는 수많은 이광수와 김원봉을 만들어 냈다. 그러다 보니 이들 뿐 아니라 그 시대를 이끌어 온 상당수가 친일에 이름을 올렸고, 공산정권과 연관된 인사들의 행적은 아예 입에 담지 않아서 역사 에서 지웠다. 그러면서 역사의 곳곳에 빈 곳이 생기게 됐다. 어쩔 수 없었지만 이렇게 자리잡은 이분법적 사고는 근래의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에 선명성을 강조하는 폐쇄적 진영논리로 뿌리를 내렸다. 그러다 보니 같은 진영에 있는 사람이 면 무조건적으로 포용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거리낌 없이 비 판하고 배제한다. 중도의 제3지대가 우리 정치에서 성공할 수 없 는 것은 당연하다. 최근 김원봉의 공과과를 분리해 공을 인정하려는 시도를

功

鍋 주시하게 된다. 많은 도전과 반발이 일고 있다. 이런 시도는, 평 가하려는 대상을 진영논리에 따라 선별하고 힘으로 처리해서는 또 다른 국민적 갈등을 만들어 내지 않아야만 의미를 가질 수 있 다. 진영을 떠나 누구든 과는 분명히 정죄하되, 그 시대와 활동 영역에서 이룬 공을 객관적으로 인정하고 평가하는 과정에서 우 리 정치와 사회 속에 깊이 뿌리내린 부정주의를 긍정주의로 바꾸 는 시작점이 될 수 있겠다는 기대에서다. 이제라도 우리 역사의 빈 부분들을 채워 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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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에게 누가 12척만 남겨주었나?

광복절을 앞두고 북한의 군사위협과 일본의 침략성 수출규제, 주한미군 부담금과 북핵 해법 등을 둘러싼 미국과의 이견, 중

北核 국과 러시아의 상습적 영공침해까지 주변 열강들과의 문제들이 한꺼번에 발생하면서 우리나라가 복합위기에 처해 있다. 그런데 우리 정치권은 경제와 안보, 외교 등 국정 전반에 걸쳐 어느 것 하나 합의된 의견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과거와 현재, 미래의 문 제를 뒤섞어서 편 가르기에 몰두하고 있다.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우리는 이순신을 떠올린다. "신에게는 아 직 12척이 남아 있습니다!"라며 12척의 배로 300여척의 적함을 물리쳐 나라를 구한 그는 특히 일본과의 관계가 뒤틀릴 때면 우 리 국민에게 힘과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유례없는 이번의 복합위 기도 이순신에게서 그 답을 찾아보았으면 한다. 먼저, 왜 전쟁을 막지 못했나 하는 부분은 교훈으로라도 짚어보 아야 한다. 일본이 임진년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첩보는 다양하 게 보고됐다. 심지어 통신사를 파견해 현지 상황을 파악하기까지 했다. 서인인 황윤길의 전쟁 대비가 필요하다는 보고보다 조정을 장악한 동인인 김성일의 안심해도 된다는 보고에 따라 민중을 안 심시켰다. 이 안심이 전란을 방조했고, 민중은 생명과 삶의 터전 을 잃었다. 나라를 지키는 데 희망적 예측은 없다. 다음은 전쟁이 발생했을 때 정확한 상황판단으로 필요한 인재를 사용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 임진년 첫 전쟁에서도, 정유년 두 번째 전쟁에서도 적군의 전략과 전력을 알지 못했다. 과소평가 해 방비를 허술하게 하다 성을 빼앗겼고, 과대평가하여 싸워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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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않고 도망치기도 했다. 적이 두려워하는 이순신의 날개를 묶어 뒀고, 현장도 모르고 왕의 명령만 따르는 원균에게 이순신이 운용 하던 150척 이상의 전함을 맡겨서 12척만 남겨놓았다. 전쟁 상황 에서 편 가르기는 패망이다. 전문가와 경험자들이 나서야 한다. 그리고 고난을 이겨내야 할 국민들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줘야 한다. 12척의 배 외에 군사도, 무기 도, 군량도 공급받지 못한 이순신은 삼남 지방을 돌아다니며

三南 육군이 도망가며 버려둔 무기와 군량을 모았다. 피난가고 도망가 던 군사들을 모았다. 절망하고 포기했던 마음들을 위로하고, 12척 만 있으면 적선이 수백척이라도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었 다. 그렇게 그의 군영에 모여든 민중은 목숨을 걸고 싸웠고, 그를 위해 크고 작은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 힘이 뭉쳐 이순신의 승리를 만들어냈다. 일본의 군사대국을 향한 야망도, 북한의 장사정포와 미사일 위 협도, 우리 국민은 늘 그랬듯이 틀림없이 이겨낼 것이다. 다만 우 리가 '국민이 주인'인 시대를 살고 있다면, 이제는 '우리에겐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다!'는 독려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배가 12척밖에 남지 않은 이유가 뭐며, 어떻게 반복되지 않게 할 것인 지 그리고 그 배를 누구에게 맡겨서, 어떻게 싸워 이길 수 있는지 비전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 시기를 온몸으로 이겨나가 야 할 우리 국민이 믿고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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曺국이여, 祖국이여

무더운 여름의 뒤끝을 난데없이 曺국으로 祖국을 덮었다. 祖국 은 선조의 나라, 나의 나라, 나의 자손이 살아갈 나라이기에 그 말 속에 역사가 있고, 현재가 있고, 미래가 있어서 듣는 이의 가 슴을 뛰게 한다. 그런 우리의 祖국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 꼭 넘어야 할 문제들을 최근의 曺국 사태가 너무도 극명하게 보여주 었다. 첫 번째는 소위 상류층의 특권 공유를 통한 특권 상속이다. 경 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1% 이하에 속하는 고위 관료, 국회의원, 판검사, 교수, 의사, 기업인 등의 상호 밀어주기가 일상화되고 고 착화돼 있음을 확인 시켜줬다. 누가 부탁할 필요도 없다. 서로 알 아서 도와주고 갚아주고 하면서 자신들의 특권을 강화하고 상속 한다. 이를 적폐라 규정하고 청산하겠다던 사람들도 일단 그 구조 에 들어가면 아무런 생각 없이 그 특권을 당연한 것으로 즐기게 된다. 曺국은 딸에게 장학금 달라고도, 제1저자로 등재해주라고 부탁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도 그 구조 안에 들어갔을 뿐이 다. 두 번째는 이제는 돌이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깊어져 버린 갈등구조다. 권력을 잡으면 개혁한다! 하면서 자신들의 세력을 키 우는 데 몰두하고, 못 잡은 쪽은 견제한다! 하면서 기본적 상식에 도 어긋난 억지를 합리적 추론이라고 포장한다. 양쪽 다 극단적 지지층이 버텨주니 그들만을 바라보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만족 시키기 위해 막말도 폭력도 가리지 않는다. 이 싸움의 한쪽 선봉 장인 曺국이 심사대에 올라오자 내세운 쪽은 지키려고 명백한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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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마저도 절차로 덮으려 하고, 반대쪽은 상관없는 일들까지 들추 어 쓰러뜨리려 한다. 세 번째는 모든 정권이 집권 중반을 넘기면서 빠지게 되는 독선 이다. 자칭 촛불정권이라 하며 도덕성과 이념에서 자부심이 남다 른 이번 정권도 그 길로 들어서고 있다. 자신들을 따르지 않는 것 은 수구이거나 촛불에 적대적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이를 입증 한다. 曺국을 내세운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것은 '촛불은 정권을 무너뜨렸지 세우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과거 정권이 국민의 생 존권에 무감각할 때, 국민이 맡겨준 권력으로 祖국의 미래를 자신 들 멋대로 재단할 때 국민들이 든 것이 촛불이다. 촛불은 누구에 게도 예외를 두지 않을 것이다. 이번 정권은 이 문제들을 해결하겠다는 의지로 출범했다. 그것 이 이 정권을 지탱하는 힘이고 사명이기에 그 선의를 믿는다. 그 러나 이번 曺국 사태는 이 문제들이 어느 것 하나 해결되지 못하 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번 曺국 사태의 본질은 특권층의 非不法적 특권 누림에 대한 일반 국민의 박탈감이다. 거기에 더해 진영논리 에 빠져 자기영역 확장에는 사활을 걸고, 祖국의 안보와 경제적 미래에 대해 불안에 빠져 있는 국민의 고단한 생활에는 아무런 대안이 없는 정치권을 향한 절망감이다. 이 정권마저 국민의 소리 에 귀를 닫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다. 촛불이, 경고등이 켜졌다. 이제 본질로 돌아가서 이 과제들을 해 결할 시점을 놓치지 말자. 우리 祖국이 사면초가에 빠져 있는 이 시점에서 이번 정권이 성공해야 祖국이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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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의 희망을 얘기하자

금년은 참 이상하리만큼 조용하게 시작했다. 신문이건 방송이건 연초면 오가던 덕담도, 새해의 희망도 얘기하는 기사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지난 일년을 지나면서 보니 한반도의 정세가 암울하 게 전개될 것을 예언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해방 후 우리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질서 속에서 스스로 자 랑스러울 만큼 발전을 이뤄냈다. 우리의 경제력도 정보력도 군사 력도 커진 만큼 우리는 스스로를 지킬 수 있고, 지난 세기에 당했 던 것처럼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한반도의 운명이 결정되는 일 은 없을 것이라 자신해 왔다. 그런데 중국이 100여년 만에 초강대국으로 당당히 복귀하면서 세계질서의 주도권을 놓고 미국과 힘겨루기를 시작하자 우리의 역량은 시험대에 올랐다. 더구나 중국의 후원을 받는 북한이 군사 적으로 미국까지 위협할 수 있는 한방을 갖추게 되고, 일본은 남 한의 경제성장을 위협으로 느끼고 노골적으로 견제해 왔으며, 미 국마저 주한미군 감축을 고리로 방위비를 올리라고 우리를 압박 하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우리 정치권은 방향을 찾지 못하고 갈팡 질팡하는 모습으로 정말 우리가 한반도의 운명을 주도할 수 있을 지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더구나 국제관계, 대북문제뿐 아 니라 총선거까지 겹쳐서 더 크게 요동칠 2020년을 생각하면 불안 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2020년을 돌파할 수 있으며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버릴 수 없는 수많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국민들의 성숙함과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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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의 문화를 이끌어가는 다음 세대들의 역동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은 수많은 굴곡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며 나라 안팎의 어려움을 극복해 왔다. 정치권이 어느 한쪽 에 치우치면 그에 대한 균형을 맞추는 선택을 통해 국가의 민주 적 진보를 이루어 냈다. 더구나 다음 세대는 우리 문화로 세계를 흥분시키며 우리 선조들이 꿈꿔온 문화대국의 씨를 뿌리고 있다. 다가오는 4차산업혁명 시대의 승부는 문화콘텐츠에 달려있음을 생각할 때 우리의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거둬들일 이유가 없다. 희망의 2020년을 위해서 그간의 어설픔으로 인해 생겨났던 불 안감의 고리를 끊어내는 일은 정치권의 몫이다. 변화의 방향도 크 기도 예측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다 피할 수 있는 실수를 하고 나 서 그 대가를 국민들이 치르게 하는 일은 이제 금년까지로 마감 했으면 한다. 한달밖에 남지 않았지만 국민들의 성숙한 역량과 다 음 세대들의 창의적 역동성을 묶어낼 방법을 찾아서 신년을 희망 과 기대 속에서 맞을 수 있도록 준비해 줄 것을 소망한다. 과거에 얽매인 일들은 금년까지 정리해 내고 신년에는 모든 국민이 미래 의 모습을 그려내고 실천하는 일들로 화제를 삼게 해주기를 바란 다. 이제는 진영논리를 벗어나고 민족감정을 넘어서 우리나라의 세계화 역량에 걸맞은 전문가들이 나서게 하여 우리의 가치가 새 롭게 만들어져 가는 세계질서 속에서 극대화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충분히 할 수 있다. 12월 한달내내 2020년에 할 일들과 기대로 만 신문과 방송을 가득 채우면 된다. 부정적이고 편협한 의식의 부산물들은 지나가는 2019년에 묻어 보내고, 긍정적이고 열린 사 고로 새해에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공정한 희망의 나라를 만들 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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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ID-19 사태는 전문가의 책임이다

세상일은 알 수가 없다. 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희망을 가지고 새해를 시작했다. 그런데 상상도 못 했던 질병이 중국에서 발생해 세계로 번져가면서 우리나라가 최 대의 피해국이 돼 버렸다. 당장에 호치민에 1월에 2달 계획으로 입국해 머물러 있는 나만 해도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지금은 누굴 만나거나 어디 나돌아다니기 눈치 보이는 상황이 돼 버렸다. 우리나라가 마치 바이러스의 숙주국인 것처럼 세계적인 취급을 받는 것에 대해 억울하다고 강변하고 싶은 심정이다. 우리나라는 의료기술의 발전과 의료체계의 효율성으로 인해 감염여부를 가장 신속하게 많은 수를 판단하다 보니 확진자의 수가 많이 나왔을 뿐 피검사자 수 대비 확진자의 수를 따지면 다른 나라와 별반 차 이가 없다고 알려주고 싶다. 우리나라의 경우 확진자의 대부분이 특정종교 집회 참석자들이고 특정지역에 몰려있는 것도 그렇다. 신흥교단의 포교와 집회방법의 특성으로 인해 많은 감염자가 생 겨난 것이고 그들로 인한 지역감염이 심해진 것이라고 알아듣게 알려주고 싶다. 우리나라는 중국이나 베트남과의 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해 우호적 조치들을 취했는데 그들은 앞장서서 우리국민들에 대한 제재를 가하고 있으니 이 또한 억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억울함은 아무리 호소해도 소용이 없다. 이번 바 이러스 사태는 우리의 책임이고 가장 큰 책임은 과학자들에게 있 다. 바이러스의 연구와 관리는 분명 과학의 영역이고 전문가의 영 역이기 때문이다. 알려지기로는 중국의 우한바이러스 연구소와 미 국의 노스캐롤리나

NorthCarolina

대학의 전문가들이 공동으로 연구

91쪽

해 2015년도 네이처 메디슨 내용을 발표했다 한다. ‘중국의 말굽박쥐가 가진 사스 바이러스로부터 얻어진 코로나

Medicine

이라는 저널에 다음과 같은

Sars 바이러스가 치명적이고 전파력이 강해 유행할 가능성이 있으나 이번 연구에서는 치료제나 백신은 개발하지 못했다.’ 이런 연구논 문이 있었음에도 이에 주목하여 대비하지 못한 것은 과학자들의 책임일 수밖에 없다. 온 나라가 뒤집히고 나서 정부가 11조원의 추가예산을 투입하겠다고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 개연성 또한 이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예견하고 있다. ‘이 코로나 바이러 스는 변형의 속도가 매우 빨라서 전파자를 1명 거칠 때마다 돌연 변이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이미 수만명의 몸을 거쳤 고 우리나라에서도 수천명의 몸을 거친 바이러스가 어디에 잠복 했다가 어떤 모습으로 다시 등장할지 모른다는 얘기다. 인류의 종 말을 가져올 수 있는 여러 가지 것들 중에 바이러스가 될 가능성 이 가장 크다는 것에 많은 과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과학자들이 준비하고 대비하지 않으면 누구도 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과학의 문제를 정서적이고 정치적 방법으로 해결하 려는 성향이 매우 크다. 원자력발전소의 문제도 그렇고 환경문제 도 그랬는데 유행성 질병의 문제마저도 그리하려 한다. 그러면 명 분도 있고 시원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게 해결하는 경우 문제는 반드시 다시 발생한다는 것을 이미 경험하고 있다. 전문가들의 목 소리가 뭍이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이번 사태가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전문가들이 예견된 문제들조차도 제대로 대 비하지 못하고 정서적이고 정치적인 결정에 제대로 목소리를 내 지 못하면서 끌려다니면 그 책임 역시 면하기 어렵다. 이제는 전 문가가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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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별을 찾아라!

도시의 밤하늘은 아무리 올려다봐도 별을 찾기 어렵다. 잘 찾아 봐야 몇 개 보일락 말락 할 정도이다. 도시의 불빛이 너무 밝아서 별빛이 뚫고 나오지를 못하는 것이다. 별은 태양과 같이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

을 말하는데 우리가 사는 은하계에는

恒星,fixed star 4,000억 개 정도의 별이 있다. 흔히 지구나 금성 화성도 별이라 고 부르지만, 이들은 태양의 빛을 반사할 뿐 스스로 빛을 만들지 못하는 행성 行星,planet

이다. 별의 크기는 보통 지구 지름의 최소 100배 이상 크다. 태양계에 서는 태양이 유일한 항성이고 그 주변을 8개의 행성들이 돌고 있 다. 별들에게도 수명이 있다. 태양의 경우 중간 나이에 다다르고 있는데 앞으로 50억 년은 더 지금처럼 빛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항성은 진화 과정의 거의 마지막 단계에서 폭발하면서 밝은 빛을 내다가 빛을 잃게 되는데 이런 별을 신성

이라 부르고 큰

新星,nova 항성이 폭발하는 경우 신성보다 수십 배 밝은 빛을 내는데 이런 별을 초신성 supernova

이라고 부른다. 초신성은 폭발과 함께 작은 조각들로 나누어지는데 태양계도 초신성의 폭발로 인해 생겨난 조각들이 뭉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태양은 핵분열을 일 으키는 조각들이 뭉쳐진 것이고 지구와 화성 등은 그렇지 못한 조각들이 중력에 의해 뭉쳐진 것이다. 얼마 전 한 원로 정치인이 '윤 전 검찰총장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하면서 대권 후보자들을 별에 비유하곤 한다. 대권 (대통령 권력)이란 말 자체가 '나라의 모든 것을 다스리는 권한' 이란 말로 대단히 비민주적인 용어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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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질 수 없는 것의 상징인 별에 비유하는 것이리라. 여도 야도 별 의 순간을 잡아보고자 수 많은 사람들이 나섰다. '숭어가 뛰니 망 둥이도 뛴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릴 정도다. 숭어는 수면 위로 뛰어오르기도 하는데 망둥이는 갯벌을 기어다니지, 뛰어오르는 능 력은 없다는 사실에 빗대어 능력도 되지 않는 별의별 사람이 다 나선다는 의미일게다. 사실 별의 크기와 나이 그리고 밝기도 천차만별이다. 별의 수명 은 대개 100억 년이 넘는데 사람처럼 대부분의 기간을 활발하게 살아가는 청년기인 '주계열성'으로 살다가 장년기인 '거성'과 '초거 성'을 거쳐 노년기인 '백색왜성'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밝기에 따라서는 고전적으로 1등급에서 6등급으로 구분하는데 현대에는 측정 기술의 발전으로 수십 등급으로 세분하여 구분하고 있다. 별 의 밝기는 1등급과 6등급 사이에 100배 이상의 차이가 난다. 이 같이 별이라고 다 같은 별이 아니니 대권주자들에 대해 숭어니 망둥어니 하는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대권을 노리는 자칭 별들은 이제 다 뜬 것 같다. 문제는 별을 감별해야 하는 사람들의 역량이다. 별의 밝기나 크기는 지구 로부터의 거리에 따라 달라 보이기 때문에 그냥 보이는 대로 판 단하는 것은 잘못이다. 가까이 있어 새벽에 특별하게 반짝이는 샛 별(금성)은 실제로는 아무 빛도 발하지 못하는 행성에 불과하다. 멀리서 반짝이는 북극성(차 폴라리스)은 육안으로는 바라볼 수도 없는 태양보다도 수천 배 이상 더 밝다. 따라서 천문학자들이 별 을 비교할 때는 모두 같은 위치(지구에서 32.6광년 거리)에 있을 때 얼마나 밝고 크게 보일지를 계산하여 판단한다. 이처럼 우리도 이번 대권을 향해 떠오른 별들을 명확한 기준으로 정확히 감별해 야 한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오판으로 이제 우리나라가 부릴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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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여유는 이미 없어졌다. 별도 아닌데 태양 빛을 받아 반사하는 샛별의 반짝임에도, 멀리 태양계 외곽을 떠도는 혜성의 꼬리에 붙어있다가 현란하게 쏟아 지는 유성에도 현혹되지 않아야 한다. 그냥 조금 밝은 작은 별처 럼 보이는 북극성이 태양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더 크고 밝은 별이라는 것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갑자기 나타나 반짝 이는 신성을 보면 이제 곧 생애주기를 마치고 별로서의 수명을 마치게 될 것도 알 수 있어야 한다. 이번에 또다시 별도 아닌 것 을 별이라 착각하고 순간적인 반짝임에 현혹되는 실수를 반복한 다면 우리가 다시 별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없을 것이다. 진짜 별 을 찾을 수 있는 국민이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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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 기념이 아닌 실천할 일이다

우리 민족의 자긍심이고 임시정부의 촉발점이 됐던 3·1운동 100주년이 한 달을 지나고 있다. 이를 계기로 미래국가를 향한 새로운 사회기풍을 만들어 보자며 정부와 사회 각계가 나서기에 3·1운동 정신이 이 시대에 새로이 부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가 있었지만 이미 우리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3·1운동은 이 나라가 독립국이 돼야 하는 이유와 독립한 나라가 인류를 향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를 독립선언서에서 분명히 했 다. 그런 의미에서 3·1운동은 일본 강점에 항거하는 운동이면서 또한 우리 민족이 세우고자 하는 건국정신 선언이었다. 그 정신에 따라 3·1운동 한 달 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고, 대한민국 헌법에도 그 정신을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렇기에 3·1운동 이 우리에게 말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우리가 그 정신을 이어 받아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것만이 3·1운동을 살아 숨 쉬게 만드 는 것이다. 독립 후 지금까지 온갖 갈등의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우리 에게 3·1 독립선언서는 분명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독립선언서는 우리가 독립국이 되려는 것은 '우리 민족이 자유민으로서 새로운 기술과 풍부한 독창성으로 세계문화에 기여하기 위함'이며 '민족 의 양심과 국가정의를 세워서 각자의 인격을 발달시키고 우리 후 손에게 완전한 행복을 주기 위함'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이 땅에 서는 자유를 억압받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한다. 누구나 새 로운 기술과 독창성을 발휘할 기회를 균등히 갖게 하라! 한다. 우 리가 양심과 정의에 따른 인격을 함양해 세계평화와 세계민이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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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 문화를 만들어 낼 때야 우리 후손이 완전한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 한다. 이것이 우리 사회와 남북의 갈등을 극복하고, 우리 가 통일을 이루는 길임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를 억압했던 일본과의 관계에 대해 3·1 독립선언서 는 분명히 선언한다. '힘으로 누르는 시대는 가고 새롭게 도래한 시대'에서 '세계평화와 인류의 행복을 위해, 일본의 잘못된 생각을 과감하게 바로잡고, 우리와도 진정한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사 이좋은 새 세상을 열자'고 요구한다. 민족의 긍지를 짓밟히고 있 던 당시에도 우리 선열들은 일본에 철저한 복수를 다짐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평화와 인류의 평화를 위해 진정한 이해와 공감을 이 뤄내 새 세상을 함께 만들자는 인류애적 세계관을 말한다. 안타깝 게도 일본은 이런 우리 선열들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지금까 지도 스스로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한다. 하지만 우 리가 힘으로 그들의 생각을 바꿀 수도 없고, 그들과 사이좋은 새 세상을 열기 위한 노력을 포기할 수도 없다. 그들이 잘못된 생각 을 바로잡게 하는 길은 오직 우리가 우리 민족의 문화를 발전시 켜 세계문화를 이루어 낼 때에야만 가능하다. 우리는 3·1운동에서 새 나라의 국가비전을 찾지 못하고 저항만 을 기억하며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데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우 리 선열들이 말한 세계문화의 실체를 구체화해서 우리의 갈등을 극복할 뿐 아니라 북쪽도 포용하고, 일본도 포용하기 위해 노력해 야 한다. 그래야만 3·1운동을 역사 속에 가둬두고 기념일에 꺼내 보는 과거의 사건이 아닌, 살아 숨 쉬며 통일로 이끌어 줄 지름길 로 삼을 수 있다. 3·1운동, 100년을 지나며 살아서 뛰어 달리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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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호치민 3개월

과거극복과 미래

2020년 연구년이었다. 우한에서 시작된 COVID19를 가벼이 생각하고 2달 계획으로 1월2일 베트남에 갔다가 세계의 교통 길이 막히면서 3달을 머물려 베트남을 엿보게 되었다. 호치민의 베트남, 우리에겐 미래가 달려있음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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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의 우리의 모습 호치민의 성당들 전화기 분실 베트남의 구정 성장하는 도시 호치민의 한인들 사회주의 나라에서의 부자 사이공의 젖줄 메콩강 역사 진전의 희생자들 여행객을 노리는 나쁜 손들 호치민의 청년들 1 호치민의 청년들 2 한국여권 입국금지? 호치민 사람들의 작은 사치 호치민 생활 집 엿보기 호치민 나그네의 삶 진짜 싸움은 바이러스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다 호치민市 생활에서 호 치민主席을 만나다 꽃과 총 (Hoa & G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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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의 우리의 모습

강의실에 들어서는데 학생들이 갑자기 다 일어선다. 무슨 일인 가 싶어 쭈뼛쭈뼛 앞으로 나갔는데 다들 내 눈치를 본다. 그때야 학생들이 내가 앉으라고 하기를 기다린다는 눈치를 채고 앉으라 하니 자리를 잡는다. 그래, 내가 선생이구나! 우리도 선생님이 들 어오시면 차렷! 경례! 했었지. 내가 선생임을 알게 해준 학생들이 사랑스러워 보였다. 캠퍼스를 지나면 마주치는 학생들이 고개를 가볍게 숙여 인사한 다. 나를 아는 학생은 없을 텐데 인사하는 것이 너무 좋아 보인 다. 나도 덩달아 인사한다. 하이! 안녕하세요! 그래, 우리도 그랬 지. 학교에 있는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은 다 선생님이었으니 무 조건 안녕하세요? 인사했었지.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귀에 맴돈 다. 영어로 강의하는데 학생 중에 영어를 제대로 알아듣는 학생은 하나도 없다. 내가 몸 개그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똘망똘망하게 쳐다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듣는 척한다. 웃음이 나온다. 그 래, 나도 대학 1학년 때 미국인 교수의 말을 요리조리 꿰맞춰 추 리하면서 아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지! 40년도 더 전의 내가 기 특하여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점심시간이 되면 여기저기 옹기종기 모여 도시락을 꺼내 먹는 다. 학교 식당이 우리 돈으로 750원에서 1,500원 수준인데 도시 락을 싸 가져온다. 밥 위에 반찬 몇 가지, 채소 몇 가지와 볶은 면, 바게트에 채소와 뭔가를 넣은 것. 그래, 우리도 한 푼이라도 아끼려 도시락을 싸가야만 했었지. 함께 캠퍼스 잔디밭에 앉아 밥 을 나눠 먹던 친구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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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의 성당들

베트남이 1975년 공산화된 지 45년이 되어간다. 남과 북의 빠 른 동질화를 위한 대규모 숙청이 있었고, 공산당이 국가의 최고 권위임을 보여주기 위한 사회 정비 작업의 과정을 거친 후, 경제 개방이 이루어져서, 지금은 최소한 경제 체계만큼은 자유시장경제 의 외형을 보여주고 있다. 호치민 시내를 오가다 보면 곳곳에 성당이 보이고 사찰도 보인 다. 자연스레 관심이 생긴다. 어떻게 모진 세월을 견뎠을까? 혹시 그리 모진 것이 아니었나? 공산화되고도 1억 명 가까운 인구 중 에 불교 사찰을 찾는 인구는 3,000만 정도, 천주교인이 700만 정 도에 달하고, 18,000여 개의 불교 사찰과 7,000여 개의 천주교 성당이 관광 장소가 아닌 살아 있는 예배의 장소라는 것이 놀랍 기까지 하다. 마침 학교 정문 건너편에 상당한(8~900석) 규모의 성당이 있어 서 가 보았다. 보통 때는 문이 닫혀있고 집회 시간만 개방된다. 젊은 사람들이 상당수이다. 예배가 제대로 경건하게 진행되는 것 도, 교회의 뜰 안에 납골시설이 깨끗하게 돼 있는 것도 인상적이 었다. 종교도 예외 없이 공산당의 지도하에 있어야 해서 사제들의 교 육과 배출 인원, 예배 시간 등의 제약이 있고 종교를 가지면 공산 당원이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신도들의 수가 꾸준히 증 가하는 것은 어떤 힘일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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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 분실

그동안 참 많은 여행을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일도 많았다. 로마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짐이 다른 나라로 가버렸고, 이집트에서는 비행기가 결항하여 공항에서 밤을 새워도 보았고, 미국에서는 출발 전에 폭발물 위험이 있다고 다 내리게 하여 하 룻밤 자고 다음 날 출발도 해보았다. 그리고 중국 청도에서는 아침에 공항에서 지갑을 떨군지도 모르 고 있다가 오후 늦게 한국 여행사에서 지갑이 공항에 있다는 연 락을 받고 찾은 적도 있다. 여름이라 더워서 재킷을 들고 택시를 타다 지갑을 떨어뜨렸는데 그걸 공안이 주어서 탑승객임을 확인 하고 여행사에 연락하여 내게 찾아준 것이다. 그런 고마운 경험이 중국에서 있었다. 이번에는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 베트남 현지용 임시전화기를 한 대 더 사용하는 과정에서 잠시 소홀했는데 어딘가에 놓아두고 이동해 버렸다. 잠시 후 분실을 알았지만, 되찾을 방법은 없었다. 클라우드 기능을 신뢰하지 않아 백업 을 하지 않아서

Cloud

Backup 전화기의 분실은 상당히 많은 것을 함께 잃게 되는 것 같다. 연락 처, 각종 어플 과 사이트에 가입한 정보들, 은행과 신용카드, APP 단상을 적은 기록들과 사진들, 문자에 남겨진 수많은 연락의 내용 들…. 4년 넘게 적립된 삶의 흔적이 없어졌다. 연결 사회에서 완전한 단절…. 잠시 당황했지만 누구부터 연결해 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이기도 하다. 내가 무엇에, 누 구에 무게를 두고 살았는지 생각하게 된다. 지금 생각나는 한사람한 사람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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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구정

구정은 음력의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명절이 다. 이중과세는 낭비라는 명분으로 일본에서는 일찍이 구정을 없 앴고 우리나라에서도 없애보기도 했지만 결국은 설날로 되살아나 서 공식 공휴일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사흘을 쉬고 중국도 공식적 으로는 사흘이지만 보름 가까이 쉰다. 베트남도 공식적으로는 일 주일 정도이지만 실제로는 3주를 쉰다. 국토의 길이가 1,600km가 넘고 도로 사정이 좋지 않다 보니 그리 쉴 수밖에 없단다. 명절을 맞는 모습이 너무도 흥겹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꽃을 많이 사고 선물하는 것이다. 시장마다 노란 국화 비슷한 HOA Mai Vang (황매)과 돈나무라 부르는 Happy Tree들로 차고 넘친 다. 배달 오토바이 뒤마다 꽃과 나무들이 실려있다. 화려한 열대 지방 꽃들을 한 아름씩 안고서는 모습에서 이들이 느끼는 명절의 풍성함을 느낀다. 다른 한편에서는 걱정도 있다. 명절이 길다 보니 고향에 돌아간 젊은이들이 다시 직장에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물 자가 풍성해서 어딜 가서 뭘 해도 먹고사는 것은 가능하기 때문 에 구태여 바둥바둥 힘들게 살고 싶지 않으면 일단 고향에 눌러 앉는단다. 그래서 기업들은 구정 휴가 후에 발생하는 인력 공백으 로 인해 비상이 걸린단다. 명절은 어느 나라에서나 회복의 시간인 듯하다. 미국에서 공부 할 때 그들의 명절인 부활절과 추수감사절이 되면 모두가 가족을 찾아 고향에 가느라 공항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모습이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가족들, 특별히 부모님들과 함께하는 것은 인류의 공통적인 회복의 방법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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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는 도시 호치민市의 한인들

우리 세대에게는 호치민 보다는 사이공이 익숙하다. 반공교육 시대에 공산 세력에게 넘어가는 사이공 대통령궁에서의 마지막 탈출 모습은 너무나 상징적이었다. 정권의 부패, 국론의 분열, 좌 익계열의 끊임없는 투쟁, 그리고 마지막으로 군부 지도층의 투항 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었다. 사이공은 베트남 통일의 전설인 호치민

의 이름으로 바

Hochimin 뀌었고 부패한 사이공 권력자들이 누리던 모든 것은 북부 정권 지도자들의 것이 되었다. 통일 베트남의 개방(도이머이)은 사회주 의의 확고한 구축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었고, 결과적으로 사이 공을 생동감 넘치는 성장하는 기회의 도시로 바꾸어 놓았다. 이 기회를 잡으려 한인이 10만 명이 넘게 몰려와 있다. LA 다 음으로 거주 한인이 많은 도시가 되어 있다. 정식으로 사업하는 사람이 1/3, 무엇인가 기회를 찾아온 사람이 1/3, 그리고 도피성 으로 머무는 사람이 나머지라 한다. 이들 세 부류가 사는 모습이 호치민의 모습이다. 어떤 이들은 성공하여 선진국의 휴양도시처럼 조성된 2군과 7 군에 모여 살며 5,000원 정도의 쌀국수를 먹고 있고, 어떤 이들 은 기회를 잡으려 번잡한 도심에서 애쓰며 2,500원정도의 쌀국수 를 먹고 있으며, 어떤 이들은 외곽의 여기저기를 떠돌면서 1,000 원 안팎의 쌀국수를 먹는다. 성장하는 호치민은 분명 많은 기회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기회 가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 아님도 사실이다. 애쓰는 만큼 모두가 기회를 잡아 성공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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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나라에서의 부자

우리나라에서 잘 산다는 것은 영화 기생충에서 ‘마당과 정원이 있는 크고 좋은 집에서 전문 도우미가 가사를 대신 해주고 운전 사가 운전해 주는 좋은 차를 여러 가지 가지고 사는 것’으로 정의 해 주었다. 이런 집들이 모여 있는 동네가 있어서 지나가 보기도 했지만, 담이 높아 거의 들여다볼 방법이 없었다. 미국에서 있을 때 성탄절이 되면 베벌리힐스

라는 부

Beverly Hills 자 동네를 차 타고 둘러보곤 했다. 커다란 저택을 다양한 전우들 과 장식물들로 꾸미기 경쟁을 하는 듯 아름답게 꾸며 놓기에 외 국 유학생들에게는 자본주의 부자들의 여유를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대개 담이 없어서 집의 규모를 보면 얼마 정도 가겠구나! 상상이 가능하다.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에도 개방 이후 큰 부자들이 생겨났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이번에 그들이 모여 사는 동네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거의 모든 집이 높은 담장에 둘러싸여 있어서 안 을 들여다볼 수는 없었지만, 사이사이에 식당이나 외국인 유치원 으로 개방한 집을 보면 참 크고 하나하나가 이국적인 독특한 구 조로 되어 있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누가 주인일까? 어떤 사람들이 살까? 여러 생각이 몰려든다. 여러 가지 명분과 이유로 이런 집들의 주인은 바뀌지만 이런 집 이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집들의 주인은 바뀌지 않 는 것은 어디든 같겠지? 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사회이든, 선거 든 혁명과 전쟁이든, 특권층의 교체는 있지만 대다수 평민의 삶은 변함이 없다! 라는 생각이 확신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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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공의 젖줄 메콩강

기원전 3000년경부터 시작한 인류의 4대 문명이 모두 강을 끼 고 있었듯이 강은 문명의 모태이다. 10여 년 전에 가 보긴 했지 만, 이곳 학과장의 고향이 메콩강 델타

지역인 미토

Delta,三角洲 라는 도시여서 그의 초대로 일대를 다시 둘러볼 수 있었다. Tho 길이가 총 4,000km가 넘는 메콩강은 중국 칭하이성에서 출발하 여 라오스와 미얀마의 국경이 되고 다시 태국과 미얀마의 국경이 되어주다가 캄보디아의 중앙을 가로질러 베트남의 남단을 지나 남중국해로 빠져나간다. 베트남을 통과하는 길이는 300km 정도 로 보이지만 호치민시의 3/4을 휘감는 사이공 강을 포함한 Saigon 수많은 지류를 가지고 있어서 상수원과 교통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매년 우기 때마다 강의 범람으로 전 국토의 상당 부 분이 잠기는 캄보디아와는 달리 베트남에 흘러온 강물은 지류들 에서 흘러든 물과 합류하여 엄청난 수량의 거침없는 흐름을 만들 면서 바다로 밀고 들어간다. 이 장관은 베트남의 미래가 이와 같 을 것임을 당당히 예고하는 것 같다. 관광자원으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어 보였다. 메콩강 관광은 자연이 그대로 보전된 여의도 크기의 델타에서 진행된다. 각종 열대과일이 자라는 것을 구경하며 따먹어도 보고 델타에 생 겨난 좁은 샛강을 작은 보트로 따라가며 주변의 자연 생태계를 살펴보는 것인데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구경거리이다. 또한 강과 바다에서 잡히는 풍부한 해산물로 만들어 주는 쌀국수, 생선 튀김, 조림과 토종닭 백숙을 관광지라고 바가지 씌우지 않고 팔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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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호치민시의 외국인 전문 시장 한두 곳을 제외하고 는 휴양지나 관광지에서도 음식이나 상품 가격이 일반 지역과 같 음이 특이하게 느껴졌다. 특별히 지역 시장에서는 본인들이 받을 만큼만 부르고 깎아주는 법이 없다. 깎아달라는 말을 자신이 가격 을 부풀린 것으로 의심받는 것으로 생각하는 반응이다. 상인의 자 존심 같은 것…. 우리도 그랬으면… 바램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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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진전의 희생자들

호치민에 있는 전쟁기념관에 갔다. 그 오랜 기간 전쟁을 치른 것에 비하면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쉽게 지나쳐 버릴 수 있 는 곳은 하나도 없었다. 전시의 핵심은 전쟁이 특별히 민간인들에게 얼마나 참혹한 피해 를 줬는지, 미국 정부가 어떻게 국민을 속여가며 전쟁을 지속했는 지, 자신들이 어떻게 이겨냈는지를 보여주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 져 있었고, 대부분 당시 기사와 사진을 중심으로 채워져 있었지 만, 전쟁의 피해와 고통이 양측에 얼마나 컸을지를 충분히 보여주 고 있었다. 혹시나 한국군에 대한 부정적 이야기가 많이 있지 않을까 조마 조마한 마음으로 둘러보다가 32만여 명이 참전하여 5,600여 명이 전사한 정도의 소개만 하고 있어 한편 안도하면서도 그 많은 우 리의 선배들이 청년 시절에 꿈도 피워보지 못하고 전장에서 쓰러 져 가야 했다는 사실에 너무 가슴이 멨다. 역사는 그런 것 같다. 그 전장이 얼마나 비참하든, 누군가에게 가해졌을 참혹함이 어떠했든, 종전 후 45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비참함도 참혹함도 다 사라지고 그 전장 주인공들의 후대들은 피아의 개념 없이 평화로운 가운데 역사를 관람한다. 이젠 서로 싸울 일이 없기 때문이리라. 한 세대의 희생으로 이룬 평화…. 희생이 없이도 이루어지는 평화를 지향하지만, 역사에서 그런 일은 없어 보이기에 조국의 나누어진 현실에 가슴이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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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객을 노리는 나쁜 손들

다른 나라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여행객에게 많은 감동을 주는 현지인들이 있고 아주 불편한 기억을 갖게 하는 이들도 있다. 한참 전에 이집트의 가자 지구에 있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구경하려고 혼자서 간 적이 있다. 택시로 입구에 도착했는데 젊은 친구가 환영한다며 본인이 공식 가이드라고 소개하면서 다가선다. 나는 혼자 둘러보겠다는데도 무료로 가이드 한다며 방문기념

Guide 품이라고 조잡한 모자를 씌운다. 다시 거절하고 혼자 본다고 했더 니 모자값과 가이드비를 내야 한다고 우긴다. 이런 친구들이 몇이 나 달라붙는지 모를 정도여서 피라미드를 둘러보고 나서 얼마 떨 어져 있지 않은 스핑크스 구경을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호치민에도 나쁜 기억을 만드는 손들이 있다. 대부분의 관광객 들이 구글지도 Google Map

를 보느라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다니는 데 오토바이 소매치기들이 이를 노린다. 길가에 서 있는 관광객들 의 스마트폰과 어깨에 걸친 핸드백, 카메라가 타깃 이다. 얼

Target 마 전 다녀간 친구들도 여럿이 있었음에도 스마트폰을 낚아채였 다. 길을 지나는데 코코넛을 메고 다니며 파는 친구가 한국 사람이 냐며 반가워하면서 박항서 최고를 외친다. 주변에 뭐가 있고 뭐가 있고 한참을 따라오며 친하게 굴더니 그냥 선물로 주겠다며 코코 넛 하나를 건네면서 까주겠다 한다. 뻔한 것이어서 싫다 했지만 벌써 하나를 까고 두 개째를 깐다. 별수 없이 코코넛값을 두 배로 줄 수밖에 없었다. 공항에서는 가까운 지역을 왕래하는 리무진을 타려는데 시간이 조금 일러서 그런지 차가 보이지 않는다. 그 사이 몇 친구들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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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나 리무진이 밖에서 대기하게 되었다며 거기까지 데려다주는 차에 타라고 한다. 긴가민가하며 탔는데 주차장 나가는 비용 1불 은 내야 한다기에 무슨 소리냐, 1불이 어디 있냐 했더니 그럼 잔 돈을 바꿔주겠다고 100불을 달랜다. 호통을 치고 다시 원위치로 돌아와 보니 리무진이 그 사이 도착해서 대기 중이었다. 소위 달 러 소매치기 일당들이었다. 여행사 피켓을 사진 찍어 중간에 손님 들에게 보여주며 마치 자기가 여행사 직원인 듯 속여서 엉뚱한 데로 데려가 돈을 뺏는 친구들이 공항에서 성업 중이다. 여행길이나 인생의 여정이나 똑같다. 눈을 뜨고도, 조심하면서 도, 알면서도 당할 수 있다. 그래도 살피고 또 살피며 순례자의 마음으로 살아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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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의 청년들 1

호치민에 와서 처음 느끼는 것이 오토바이가 많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모든 오토바이 운전자가 헬멧을 쓰고 있다는 것이고, 그다 음은 오토바이 운전자는 대부분 다 젊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하 나를 덧붙이자면 서두르며 끼어드는 오토바이가 없다는 것이다. 헬멧이야 안 쓰면 벌금이 워낙 쎄니까 그렇다지만 인구 1억 명 인 나라에서 평균연령이 30세라는 것은 부럽지 않을 수 없다. 우 리나라는 인구가 5천2백만에 평균연령이 42세를 넘겼고 이 추세 대로라면 30년 후엔 4천만 명대로 떨어지고 평균연령은 60세가 될 처지에 있으니 말이다. (참고로 인도네시아는 인구 2억 7천만 명에 평균연령 29세, 캄보디아는 인구 1,700만 명에 평균연령 28 세, 태국은 인구 6천 5백만 명에 평균연령 38세 등) 직업이 그렇다 보니 어디를 가든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들의 모 습에 관심이 간다. 대학 교정에서, 생활 속에서 마주치는 청년들 을 보면, 몇 가지 느낌이 있다. 첫 번째는 여유롭다. 주어진 환경에 대해 만족하는 삶에 대한 태도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 싶다. 오랜 불교의 전통과 풍부한 자 연의 혜택으로 인해 생겨난 것인지 모르지만, 할 수 있는 만큼 하 고 크든 작든 주어진 보상에 감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두 번째는 자유롭다. 보이지 않는 통제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중국처럼 학교 안이나 길거리를 정치선전 구호로 뒤덮어 놓지는 않고 있다. 시키는 것만 하도록 훈련받은 학생과 자유로운 사고를 하는 학생의 성취도는 비교할 수 없다. 세 번째는 여성의 적극성이다. 모계사회의 전통이 남아있고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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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히 통일전쟁에서 여성들이 남성과 대등한 공헌을 한 탓인지 어 디서든 확실한 지위를 갖고 있어 보인다. 학생활동에서도 여성들 이 주도적이다. 네 번째는 모두가 스마트포너

이다. 어디를 가든 청년

smart phoner 들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다. 대화 중에도 강의 중에도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것은 우리 청년들과 똑같다. 이를 통한 정보 와 재화의 유통이 가져올 변화가 눈에 보인다. 역사의 주인공은 바뀌어왔다. 4대강 유역에서 시작한 인류문명 의 주도권이 에게해, 지중해, 북해, 대서양, 그리고 태평양을 넘어 돌아서 아시아의 그 어디로 방향을 틀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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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의 청년들 2

베트남은 통일을 이룬 후 전통적 우방인 러시아와의 돈독한 관 계를 공고히 하고, 과거 적국이던 미국과 한국과도 화해하며 인도 와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국경을 맞대고 있고 남중국해의 소유권 문제로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중국에 대해 포위망을 구축 하여 견제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많은 군사력이 필요 없게 되고(정규군 47만 정도) 국가 예산을 산업 발전에 집중하면서 매년 7% 이상의 경제성장 을 이뤄내고 있다. 통일전쟁 중의 베트남은 남과 북이 각각 국가 예산의 25%를 상회하는 국방비를 지출하였고 대부분의 청년들이 군복무에 3년 이상의 시간을 보내야 했는데, 지금은 국방비가 국 가 예산의 7%대로 낮아졌고(우리나라는 12%대) 군복무 기간도 18개월로 줄었으며, 주말은 외출과 외박이 가능하다. 군벌 (군

軍閥 대가 재산을 가지고 기업을 운영)의 특성으로 인해 군복무도 군 사 업무 외에 기업에서 일하기도 하고 제대 후 그 기업에 취업하 기도 한다. 입대 연령층이 두텁고 이런 혜택으로 인해 군대에 가 기 원하는 자원이 많아 군대를 가지 않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대 학생의 경우 4주 훈련 후 징집이 면제되고, 징집 인원이 지역별 로 할당되는데 자원하는 사람의 수가 많아 가만히 있으면 자동으 로 면제되기도 한단다. 물론 여성들도 여러 혜택을 받기 위해 자 원하여 입대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런 상황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자체적인 문제 제기도 많 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공직에 나가면서 아들의 군 면제 문제로 발목잡힐 일도 없고, 면제받으려고 멀쩡한 부위를 수술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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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도 없다. 통일 국가의 청년들이 누리는 이러한 혜택을 보면서 우리 청년들에게 국토분단으로 인한 전쟁의 위협과 군복무의 짐 을 지워준 어른으로서 마음이 무거워지면서 여러 가지를 자문하 게 된다. 우리가 지난 수십 년을 이어온 갈등과 혼란을 겪어내면 다음 세 대에게서 어떤 짐을 벗겨줄 수 있을까? 다음 세대는 우리 세대가 무엇을 물려 주기 원할까?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면 다음세대는 특권층이 없는, 기회의 공평함과 소유의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을 까? 다음 세대가 우리가 겪어내고 있는 30년을 무엇을 남긴 세대 라고 평가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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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권 입국금지?

남의 나라에서 사는 이유는 각양각색이겠지만 모습이 다르고 언 어가 다른 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우리 보다 잘 사는 나라에서는 그곳대로, 못사는 나라에서는 또 그곳대 로 조심하고 눈치 봐야 할 일들이 한둘이 아니다. 더구나 베트남 같이 민족적 자존심이 강한 나라에서 살려면 절대로 현지인과 다 투어서는 안 된다. 일단 시비가 붙으면 주변의 베트남인들뿐 아니 라 상대방의 지인들까지 몰려와서 집단적 위해를 가할 소지 가 많기 때문이다. 그나마 베트남에서는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좋기 때문에 지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8천여 개의 기업이 이 나 라 경제발전에 기여하고 있고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인들을 하나 로 묶어 주는 공헌을 한 덕분이다. 외국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나 라가 잘 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디서든 당당해지게 되고 무슨 일을 당해도 우리나라가 지켜주겠지!하는 든든함이 생기기 에 자신 있게 행동할 수 있다. 지금까지 세상을 두루 다니면서 한 국 여권의 힘을 자랑스럽게 누려왔다. 두 달 전 베트남에 입국할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런데 우한 폐렴 사태를 겪으면서 상상도 못한 반전이 생겨났 다. 얼마 전 중국인 출입을 금지한다던 가게에서 지금은 한국인도 같이 취급한다. 중국인 유입을 조기에 막아버리고 방역에 성공한 베트남이 이제는 한국과 일본을 막으려 한다. 경제적 기여도를 고 려한 배려는 일절 없다. 이번 주 베트남 바로 옆에 있는 말레이시 아에 학회가 있어서 갔다 올까 했었지만, 한국여권 소지자에 대한

素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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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격리수용 이야기가 계속 나돌아서 참석을 포기했다. 한국인 이라 입국에 제한받을 가능성으로 학회참석을 포기하는…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을 호치민에서 경험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장사로 먹고사는 나라이다. 우리국민이 세계 160개 도 넘는 나라에 진출하여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함으로써 우리나 라가 경제성장을 이루고 우리가 먹고 살고 있다. 그런데 우한 폐 렴 확산 위험국이라는 오명으로 우리국민뿐 아니라 모든 교민들 의 발을 묶고 있다. 더 이상 한국여권이 무용지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루속히 이 오명을 벗어야 한다. 내 나라가 잘돼야 해외 교민들도 기를 펴고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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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 사람들의 작은 사치

호치민에서 오토바이크만큼 많이 보이는 것이 카페 이다. 서

cafe 울에 있는 커피숍과 같은 형태도 있지만 대부분 5~10평 규모의 가게에 창문이 옆이 트인 공간이고 길거리에 조그만 의자를 내놓 고 길을 보고 앉게 되어있다. 유럽 카페들이 광장을 바라보고 앉 게 되어있는 것과 비슷하다. 어떤 것은 200여백평 규모로 열린 동안에 다양한 분수와 장식을 만들어 놓아 많은 사람이 사진도 찍고 마치 놀이공원에 온 것처럼 보기에도 즐거운 시간을 즐긴다. 재밌는 것은 이런 카페에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하루 종일 사람들이 북적인다는 것이다. 카페 문을 아침 일찍 여는데도 그때도 사람들이 가득하다. 가족 단위로, 친구들끼리 앉아서 시간 을 보낸다. 어떤 카페에서는 Pho(국수)나 Banh Mi(바게트로 만 드는 베트남식 샌드위치)도 팔고 있어서 간단한 식사가 가능하기 때문인 것 같다. 대학가 근방에서는 학생들이 테이블마다 포커 게 임에 삼매경 이다. 큰돈 같지는 않지만 배팅 을 즐기는 三昧境 문화가 뿌리 깊은 것을 알 수 있다. 이곳에서 마시는 커피는 진하고 달다. 베트남에서 세계 커피의 20%가 생산되고 그중 90%가 커피 중에서 제일 쓴 종류라 한다. 19세기에 프랑스 신부가 가져와 재배하기 시작하여 베트남 사람 들도 자연스레 접하게 되었지만, 쓴맛을 피하려 농축 연유를 넣게 되었고 지금은 그렇게 마시는 것이 가장 보편적으로 되었단다. ‘카페 쓰어 다(Ca Phe Sua Da)’가 바로 그것이다. 모든 국민에게 커피 마시는 것이 습관처럼 된 것을 보고 스타벅스뿐 아니라 커 피빈도 들어와서 경쟁하고 있지만 3~4배 비싼 가격 덕에 어느 정도 침투할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왜 이런 형태의 카페 문화가 자리 잡았을까? 이유를 찾아본다.

bat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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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곳은 참 덥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 오랜 시간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학교의 공식 점심시간도 11시 30분부터 1시까지인데 식사 후 3~40분 정도 낮잠을 자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이 매우 좁고 창문이 없는 공간에서 생활한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은 4~5평 정도의 방을 여럿이 함께 쓰고 있는 경우가 많 다. 그래서 눈을 뜨면, 잠자기 전까지 탁 트인 공간에 있고 싶어 한다. 어느 나라든 나타나는 문화현상에는 그 사회가 만들어 낸 배경 이 있다. 호치민에 오토바이크가 넘치는 것은 대중교통 수단이 턱 없이 부족하기도 하고 짧은 거리도 더워서 걷기 힘들기 때문인 것처럼, 카페가 한 집 건너 하나 있는 것은 창문 있는 방 거실 있 는 집을 가지는 것이 극히 어렵기 때문인 것 같다. 카페에서의 차 한 잔은 호치민 사람들이 발전도상의 이 시기에 누려야 하는 작 은 사치이자 위로인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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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머무는 대학에서 이마트

호치민 생활 집 엿보기

(한국기업)까지는 약 1km

E-Mart 정도 떨어져 있다. 걸어서 10분에서 15분 정도 걸리는데, 큰 차 이가 나는 것을 길을 두 번 건널 때 걸리는 시간 때문이다. 오토 바이의 물결이 끊이지 않고 대부분 신호등이 없는 데다 건널목에 서 사람이 건너려고 기다린다고 해서 오토바이나 차량이 멈춰주 지 않는다. 그래서 길을 건너려면 타이밍이 중요하다. 여러 사람 이 건널 때를 기다려 묻어가든지, 용감하게 길에 발을 딛고 내가 지나면서 멈추도록 손을 흔들면서 지나는 방법밖에 없다. 다행히 발을 내딛고 나서면, 오토바이들이 앞뒤로 잘 피해서 지나가 준 다. 교통의 원칙은, 사고내지 말고, 사고당하지 말고 각자 갈길을잘 가라는 것! 이다. 길을 건너 골목길을 지나다 보면, 집의 구조상 측면이나 후면에 창을 내는 것이 불가하여, 대부분 현관을 열어놓고 산다. 공산정 권이 들어서며 한집당 길가 쪽으로 4.5m 폭에 15m 깊이의 땅을 나눠 줬으니, 집들이 다닥다닥 붙여 지을 수밖에 없어서 현관 쪽 을 통해서만 밖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꼭 보려고 하지 않아도 지나다 보면 들여다보게 된다. 좁은 공간에 오토바이는 필 수로 들어있고, 향을 태우는 작은 의자 크기의 불상은 거의 구석 에 모셔있으며, 대부분 대리석 바닥으로 된 거실에 가족들이 각자 무엇인가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같은 동네에서 누구 집에 수저 가 몇 개인지 모를 수 없어 보인다. 신기한 것은 대부분의 집들이 무엇인가 만들거나, 세탁기를 몇 개 놓고 빨래방을 하거나, 테이 블 두어 개 놓고 음식이나 차를 팔거나, 미장원 아니면 이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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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큰돈은 될 것 같지 않지만, 돈 되는 일들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집에는 나이 든 분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소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베트남도 불교가 지배적 종교이고 오랜 유교적인 관습이 있는 모계사회여서인지 부모 형제간의 관계가 끈끈하다. 배우고 못 배 우고를 떠나 부모를 모시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으며 부모들 또한 자식에 손자까지 끔찍이 챙긴다. 그러다 보니 형제들 사이의 관계 도 그래 보인다. 가까운 친구들의 부모님들도 친부모처럼 친한 관 계를 유지하는 것을 보면 내 어렸던 60년대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들의 모습도 3~40년이 지나면 우리처럼 삭막하게 바뀌려나? 그러지 않는 사회도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 있으면 좋을 텐데. 생 각해 본다. 집에서 소일하는 노인들을 보면 상당히 나이 들어 보 이는데 실제 나이는 그렇지 않은 것에 놀란다. 우리나라보다 평균수명이 10년 이상 짧아서 그런지 (남자 73세, 여자 76세) 90세가 넘어 보이는 분들의 연세를 물으면 70대 중 후반이다. 그러니까 집안에서 웃옷 벗고 손자들 껴안고 있는 머리 하얀 할아버지가 내 또래?일 것 같다는 생각에 뭔지 모를 웃음이 나온다. 모두 소식하고 채식주의자도 많은데, 주변에 있는 사람 중 상당수의 부모님들이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으면 참 모를 일이다. 어쩌다 지나는 골목에 상을 당한 집이 있어 기웃거려 보았다. 대부분 자택에서 상을 치르는데 좁은 골목집에서 상을 당하면 그 골목은 막혀버린다. 다들 이해하는 분위기였다. 여기도 전문 업체 가 있는지 골목에 상가 표시도 해주고 골목 입구에서 정복을 입 고 안내를 돕는다. 마침 천주교인 집이었는데 교회에서 나와 예배 를 드리고 있었고 대부분 사람은 밖에 만들어진 텐트 안 의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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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 조용히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고 특별히 음식을 먹거나 술을 마시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크게 곡을 하는 모습도 볼 수 없었 다. 천주교인들은 화장 후에 교회 뜰의 납골당에 모시고 아닌 분 들은 매장이 아닌 석관에 모셔서 1m 정도의 높이 쌓은 단에 모 신다.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왔다 갔다 하면서 사람이 어디에 태어나고 어디에서 사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내 의지로 된 것이 아닌데, 나도 여기에서 전쟁 중에 태어났으면 저기 저 노인 의 모습이었을 텐데…. 이 시기에 한국인으로 살게 해주신 분의 뜻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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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 나그네의 삶

얼마 전 종편의 ‘미스터 트롯’이란 연예프로그램이 시청률 30% 를 넘기는 사고?를 냈다. 음악 프로그램을 워낙 좋아하여 빼놓지 않고 보면서도 트로트는 딱히 찾아서 보지는 않았는데, 제법 알려 진 성악 전공자가 출연했다는 얘기를 듣고 궁금하여 찾아보게 되 었는데, 빼지 않고 보게 되었다.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가 내 이야기이고 내 친구와 가족의 이야기였 기에 그런 흡인력을 만들어 낸 것 같다. 준결승전 팀미션에서 가장 어린 친구가 포함된 팀이 ‘희망가’를 불렀다. 100년 전 일제 치하에서 윤심덕이라는 여인이 불렀던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같도다’를 세계 교역 10대국이 된 나라의 14살 어린애가 부르는데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과 함 께 눈물이 흘렀다. 운 것이 아닌데… 이게 뭐지? 눈물을 흘린 것은 나뿐이 아니었다. 호치민의 교민들도 그랬다 한다. 그 팀이 노래를 잘 불러서였기도 하지만 세계 교역 10대국 인 자유 독립 국가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100년 전 억 압 속에서 종으로 살던 그때와 똑같은, 채워지지 않는 갈망과 허 무함이 늘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그래… 인생이란 그때나 지금이나, 힘들어도 잘살아도, 누구나 인생에 회 한과 아쉬움을 갖고, 이 땅에 잠시 머물다 지나가는 나그네이지.. 내 눈물의 정체를 찾았다. 호치민 교민들은 더 먼 곳까지 떠나온 나그네들이기에 느낌이 더 클 수 있었겠다고 생각해 본다. 호치민에서 사업하는 사람 중에는 중국에서 수십 년 일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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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반을 잡았지만, 공산정권의 예측 불가성, 현지인의 텃세와 임금 인상 등을 견딜 수가 없어서, 또 다른 기회를 쫓아 이곳에 온 경 우가 많다. 어떤 이들은 기회를 잡았고 어떤 이들은 아직도 기회 를 찾아보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남의 나라에서 살려면 나그네의 고달픔을 피할 수는 없다. 언어가 익숙지 않고, 문화가 다르며, 언제 무엇이 어떻게 바뀔지 몰라 늘 조심하고 눈치를 살필 수밖 에 없다. 그나마 여차하면 돌아갈 내 나라 내 땅이 있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며 버틸 수 있는 힘이기에 내 나라가 잘되기를 누 구보다 절실하게 고대하고 바라는 것일 거다. 그런 호치민 나그네들의 발목을 우한 폐렴이 단단히 잡고 있다. 아니 꺾고 있다. 그동안 잘 막고 있던 바이러스 확진자가 갑자기 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인에 대한 경계가 날로 심해져 있 는 와중에 한국인 거류자 중에서 확진자라도 발생할까봐 전전긍 긍할 수밖에 없고, 모든 모임도 자제하며 관망하고 있다. 중국에 서의 자제 반입이 금지된 지 두 달을 넘기면서 생산을 멈춘 공장 들도 생겨났다. 노동집약적 사업장에서는 특성상 밀집 작업이 불 가피하여 혹시라도 감염자가 있을까 봐 작업을 멈추어야 하는데 임금은 70%를 지급해야 한다. 이런 상황이 6월까지 지속된다면 상당수가 나가떨어질 것이라 한다.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잠적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한다. 나그네의 길에는 예상치 못한 일들이 수도 없이 많고 아무리 계 획을 세워도 소용이 없을 때가 있다. 모르는 길을 가기에 항상 긴 장하고 부당한 경우도 감내해야 한다. 특별히 역병의 지역을 지날 때는 죽음까지도 감수해야 한다. 지금이 그런 때로 보인다. 깊어 지는 나그네의 시름과 한숨이 나그네 된 내 마음 깊숙이 와서 박 힌다. 나그네는 고향집에 돌아가기 전에는 안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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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싸움은 바이러스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번 우한 폐렴 사태를 겪으면서 초기 대 확산기의 우리나라에

大 대한 대응 방법을 보며 나라마다 참 많이 다르구나! 새삼 느끼게 된다. 같은 공자의 나라 영역에 속하면서도 의리 없기는 중국과 일본, 베트남이 매한가지였다. 중국은 자기와 아픔을 같이하겠다 는 우리에게 발병의 근원지가 신천지라고 뒤집어씌울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었고, 일본은 우리보다 형편이 나을 수 없 다는 것을 온 천하가 다 아는데도 올림픽에 홀려서 정신줄 놓았 는지 어떻게든 우리나라만 깎아내리려고 얄밉게 굴었고, 베트남은 우리 기업들이 자기 나라 발전의 기반을 깔아주고 있는데도 어? 왜 이러지 싶을 정도로 냉정하게 나와서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처음에는 감정적으로 받아들였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서 모든 나라들이 자신의 대응 역량과 처지에 따라 그럴 수 있겠 구나 이해하게 된다. 호치민에 있으면서 보니 이들이 바이러스의 확산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느끼게 된다. 100명 수준의 확진자 가 발생한 상황에서, 더구나 호치민에는 외국에서 온 10여 명에 불과한 상황에서, 30명 이상 들어가는 식당, 마사지숍 Massage , 골프연습장 등 모든 대중시설을 문 닫게 했을 뿐 아니라 저 shop 녁 6시면 카페도 다 문 닫는다. 학교는 언제 개강할지 기약이 없 다. 마켓에 가도 경비들이 마스크 없는 입장은 막는다. 호치민은 만약 서울 수준으로 확산되면 감당이 불가능하여 아마 도시를 폐 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판단하는 것 같다. 그런 사정을 생각하 니, 그래, 의리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을 것 같다고 이해하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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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베트남에 대해 섭섭한 말을 쏟아내는 유튜버들도 중국이나 일 본과는 많이 다른 이곳 사정을 조금만 더 이해한다면 말이 조금 은 부드럽게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이해하려는 관점 에서 보려 하니, 이제 자리 잡기 시작한 시진핑 장기 집권 체제의 흔들림을 막아야 하는 중국이 속죄양을 찾는 것도, 아시아에 있지 만 아시아와는 다른 나라라는 웃기는 미몽에서 아직도 못 벗어난 아베의 일본이 한국을 꼭 집어 시기하는 것도, 뭐 딱히 이해 못 할 바가 아닌 듯 싶고, 오히려 불쌍하다는 생각하니 섭섭함이 조 금은 누그러든다. 그런데 정작 의외를 넘어 어어? 이거 뭐지? 생각하게 만드는 것 은 우리나라의 이들 나라들에 대한 대응 방법이다. 우리 정부는 너무도 쿨 하다. 일본만 빼고 모든 나라들에게 문을 닫지 않고

Cool 들어와라, 우리 돈 들여서 처리해 줄게 하고 있다. 어찌 보면 대 국의 풍모까지 보인다. 남 탓하지 않고 상대국들(일본은 예외)의 대응을 다 이해해 주기까지 한다. 국민들도 이번엔 너무도 침착하 다. 정부의 대응 방식에 불평하면서도 정책에 순응해 주며 오히려 발 빠르게 각종 창의적 진단 방법을 만들어 내고 세계가 놀랄 침 착함과 자원봉사로 바이러스 확산을 적당한 수준으로 막아내고 있다. 정말 어디에서 생겨난 자신감이고 여유일까? 그동안 국내 정치에서도, 북한에게도, 중국에게도 먹히지 않았던 대통령의 선 행 적 선행 조치가 이번엔 먹힌 걸까? 그동안 낭비적이라 善行

先行 할 만큼의 의료분야에 대한 과도한 우수인력 집중과 모든 종합병 원을 적자구조로 만든 첨단 시설 및 설비에 대한 과다 투자가 이 런 위기 상황에서 제대로 역할을 한 것으로 봐야 하나? 그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별의별 위기 상 황)을 살아내다 보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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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이 딱!하고 맞아떨어진 것일까? 아직은 어느 것도 속단하기는 어렵다. 바이러스가 사라지는 것 이 문제가 아니라 그 후유증을 치유하는데 얼마의 시간과 재정이 투입되고 얼마나 많은 통합의 노력이 필요할지 상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북한은, 중국은, 미국은 가만히 있어 줄 지…. 그렇지 않은 경우는 상상하기도 싫다. 우리가 역량을 보여 줘야만 살 수 있는 진짜 게임이 바이러스 너머에서 우리를 기다 린다. 수백억 투자로 막을 수 있었던 바이러스를 대비하지 못해 수백조를 부어도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고 말았지만, 바이러 스 너머에서 기다리는 진짜 싸움은 꼭 막아내도록 지금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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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市 생활에서 호 치민主席을 만나다

호치민 에 오게 된 주된 목적은 연구 교류였지만, 다른 하나는

市 역사 속에서 오랜 분쟁을 거치며 생겨났을 다양한 갈등을 여기에 서는 어떻게 해소하고 관리하고 있는지 살펴보면서 우리나라의 갈등 문제에 대한 답을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외형적으로 보면 이곳에서는 갈등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언 론에서 정치적인 것은 물론이고 노사문제, 인권문제, 있을 법한 사회문제마저도 부정적인 것은 다루지 않는다. 빈부의 격차가 생 겨나고, 권력과 부가 함께 있고, 부패의 개연성이 보이고, 바이러 스가 부유층 자녀들에 의해 외국에서 유입되는 사례가 여럿 있어 도 사회문제화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같으면 들끓었을 일들이 일 상으로 인정되고 굴러가는 이런 상황이 통제에 의해서만은 아닌 것 같다. 같은 공산국가인 중국에서는 그렇게 통제해도 어떤 식으 로든 종교, 정치, 사회, 부패의 문제가 끊임없이 드러나고 때로는 물리적 충돌까지 생겨나는 것과 큰 비교가 된다. 이곳 사람들도 알 것은 다 알면서도 왜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살아갈까? 궁금해 질 수밖에 없다. 단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베트남의 현 사회체계가 통합을 유 지하는 힘은 호치민 에게서 나오는 것 같다. 그는 자유와 독립 主席 만이 민족의 살길이라는 믿음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실천했다. 프 랑스의 80년 식민지를 종식하고, 베트남 자유 공화국을 건국했으 며,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면서 오늘의 베트남이 있게 했다. 그러기에 그의 숨결은 베트남 곳곳에 살아있 어서 그가 남긴 몇 가지는 나도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다. 첫 번째는 청빈한 지도자의 모습이다. 그는 스스로 군림하는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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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지도자가 아닌 ‘호 아저씨’로 불리며 민중과 같은 수준으로 생 활하며 살았다. 자신의 신념을 철저히 실천하면서 청빈한 삶을 살 았고, 그가 죽은 후 남긴 것은 자유와 독립에 대한 염원과 함께 고무 샌들 뿐이었다. 그는 ‘내가 죽으면 화장하여 흔적을 남

sandal 기지마라!’고 유언하였을 정도로 무엇 하나도 가지려 하지도 남기 려 하지도 않았다. 민중은 그런 그를 존경하고 사랑한다. 호치민 가장 중앙에 위치한 호치민 의 동상을 만들면서 그가 맨발 市

主席 에 고무 샌들을 신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표현했고 그런 그의 모 습을 심지어 전쟁에서 맞서 싸운 남쪽 사람들도 부러워했다. 누가 그의 후계자 자리를 이어가든 혹시 곁길을 걸을 수는 있어도 결 코 그에게서 멀어지지는 어려울 것이라고 믿는 것 같다. 두 번째는 호치민 의 사회주의는 민중을 더 평등하고 부유하 主席 고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믿음이다. 호치민 은 ‘혁명하 主席 고도 민중이 여전히 가난하고 불행하다면 그것은 혁명이 아니다’ 라는 말로 후계자들에게 민중의 삶을 끊임없이 개선하라고 가르 쳤다. 그러기에 1975년 통일을 완수한 지 10여 년이 지나 정치문 제가 안정되자마자 1986년 ‘DOI MOI(새롭게 바꾸다)’라는 개혁 개방정책을 실행할 수 있었다. DOI MOI 시행 후 30년이 지나면 서 최근 들어 베트남 경제는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아직도 주 변의 중국이나 태국 수준까지 가기에는 해결할 일들이 산더미인 것을 잘 알면서도 지금 발생하는 문제들은 당연히 있을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 번째는 소수민족이나 누구든지 차별을 두지 말라는 호치민의 통합 정신이다. 베트남 인구의 87%는 Viet 족이지만 50개가 넘 는 소수민족들이 함께 살고 있다. 그중에는 100만 명이 넘는 소 수민족도 여럿이다. 이들을 차별 없이 포용하고 가라는 호치민 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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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정신은 사회계층 간의 차별도 두지 않는 것으로 이어진 것

席 같다. 간부든 부하이든, 직책의 고하 구분이 별로 눈에 띄지 않고 서로 스스럼없이 격의 없이 대한다. 어디를 가든 윗사람이 아랫사 람을 윽박지르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정책사업이라고 주민들의 동의 없이 밀어붙이지도 않는다. 각 개인이 나도 최소한의 존중은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어느 사회든 갈등은 존재한다. 다만 그 갈등의 수준이 그 사회 가 감당할 수 있을 만한가?가 다를 뿐이다. 베트남이 상대적으로 갈등이 덜 표출되는 것을 단지 사회주의 국가의 통제로만 보기에 는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고, 잠시 머물다가 돌아가는 사람의 눈으로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실을 수용하는 불교문화가 온 국민에게 뿌리 깊이 퍼져있고, 오랜 전쟁을 겪으며 생겨난 ‘꽃과 총(Hoa & Gun) ’이라는 또 다른 질서 등과 같은 1) 많은 다른 요소들이 작동하고 있겠지만, 그 중심에 호치민 이 主席 있다는 것은 분명하게 보게 된다. 호치민 에 와서 호치민 을 市 본 것으로 목적의 상당 부분은 이룬 것 같다.

主席

1) 일본을 설명한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에 빗대어 만든 말. 오랜 기간 총을 가지고 싸우며 만들어진 군인문화와 꽃을 사랑하는 베트남인들의 꽃 문화 를 연결해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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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총 (Hoa & Gun)

어느 나라도 예외 없이 과거에도 현재에도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존재한다. 최소한 기득권층과 소시민층으로는 구분된다. 그 구분 의 기준은 비 불법적 혜택을 누리는 것이 있는가?이다. 하나라도 있으면 기득권층이고 단 하나도 가지고 있지 못하면 소시민층이 다. 비 불법적 혜택은 정치, 금융, 교육, 국방 등 우리생활 어디에 든 존재하며 이를 누려보려 권력을 이용하기도 하고, 재물을 이용 하기도 한다. 모든 갈등은 이 차이에서 시작된다. 개인의 능력에 따른 경쟁을 통해 권력과 재력을 갖게 되는 자본 주의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혜택의 차이를 없애고 모두에게 평등하 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 사회주의이고 공산주의 이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권력자는 필연적으로 출현 할 수밖에 없고, 그 권력을 나누는 기득권층은 그 권력을 유지하 기 위해 이념을 강화하며 일반대중에 대해 갖가지 교묘한 방법을 동원하여 통제를 가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어느 정권이 들어 서든 결국은 그 혜택을 지속해서 누리기 위해 다른 정파를 다양 한 방법으로 통제하면서 권력을 공고히 하고 있을 뿐이다. 결론적 으로 불평등은 체제와 이념에 상관없이 존재하며, 그로 인한 갈등 이 얼마만큼 드러나는 가는 그 사회의 문화적 배경과 정치적 상 황, 그리고 권력을 가진 자들의 양심 수준에 따라 다를 뿐이다. 다만 우리나라의 갈등이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원인이 다 양하며 근대사를 통해 상호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서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경비를 지속적으로 지급하고 있기 때문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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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관점에서 볼 때, 베트남의 갈등 요인들은 우리나라와 달리 단순한 측면이 있다. 우리나라의 친일 논쟁은 과거와 현재가 연결 되는데, 베트남은 과거 식민통치국인 프랑스와는 지리적으로 멀 고, 전쟁을 통해 물리쳤으며, 현재는 이해관계가 적어서 과거사에 대한 논쟁도, 친불 파 시비도 없다. 우리나라의 이념논쟁은 전

親佛 쟁을 거치면서 더욱 극단적으로 되고 정권투쟁과 연계되었지만, 베트남은 전쟁을 통해 사회주의가 승리하면서 정권투쟁은 이념과 는 별개 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분배정의 문제는 빈부의 격차 別個 가 정경유착과 노동착취로 인한 비정상적인 이유로 생겨난 것으 로 보는 반면, 베트남은 군벌에 의한 국가주도경제이기 때문에 국 가권력과 경제를 분리할 수 없는 구조인 것을 인정하면서 자신들 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허용되는 것에 만족하고 있어서 아직 이 런 문제를 제기할 단계는 아닌 듯하다. 우리나라의 노사갈등은 이념과 정파가 연계되어서 협상이 쉽게 투쟁으로 이어지고 극렬해지는 반면, 베트남에서는 노동자의 활동 이 정부의 영향력 아래에 있고 직장에 대한 집착이 심하지 않아 개인에 대한 특별한 불이익이 없고 고용주가 임금을 체불하지 않 는 한 집단투쟁으로 확대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이와 함께 베트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꽃과 총’이 만들어 놓은 문화를 알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호치민에서 가장 놀랐던 것 중의 하나는 구정 어간에 시장을 꽉 메운 ‘꽃’이다. 구정에 자기 집을 치장하기도 하고 남에게 선물하기도 하려는 목적으로 엄청 난 꽃을 구매한다. SNS에 가장 많이 올리는 것도 자신의 집에서 가꾸는 꽃 사진이다. 보통 때도 곳곳에서 꽃을 사는 모습을 쉽게 본다. 이 꽃 문화가 오랜 전통의 불교에 기반을 두고 베트남 사람 들의 마음에 긍정적 사고를 심어 놓았다. 그리고 그들의 근대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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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끌어 온 ‘총’에 대한 의식이다. 긴 기간의 전쟁 경험을 통해 총 은 눈도 인정도 그리고 옳고 그름도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총을 가진자들 앞에서 생존한다는 것의 의미가 이들에겐 남다를 수밖에 없다. 자신을 지켜줄 것은 자신과 가족뿐이다!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호치민 전쟁기념관 전시가 평화에 대한 갈망으로 포장 되어 있지만 이면 에는 총부리 앞에선 인간의 무력감이다. 꽃

裏面 과 총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부의 필요성을 느낀다. 갈등 해결의 문제를 깊은 고민으로 안고 베트남에서 3개월을 지 나면서 확인한 것은, 갈등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 소는 그 집단이 공유할 수 있는 시대정신과 함께 이를 이루어 가 는 지도층이 갖고 있는 역량이라는 것이다. 이를 만들고 세워가는 일을 숙제로 안고 들고 베트남에서의 사유를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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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COVID19 극복의 도구

2020년 4월 2일 돌아오자마자 2주일 자가격리! 동물농장이 떠오르는 통제가 시작되었다. COVID19, 이 시간이 지나면 IOT, AI 기술이 더해져서 완벽한 통제의 시대, 생각을 지배하는 새로운 동물농장이 될 것이라 예측한다.

통제사회

전자팔찌? 우리에게 이웃이 있나? 당신도 그곳에 갔었나요? 재난지원금 그것이 알고 싶다! 바이러스에 눈 달렸나? "코로나 겪으며 권력의 감시망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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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팔찌?

COVID19가 시작될 무렵 베트남에 갔다가 4월 2일 새벽 일찍 입국했다. 입국 전 이미 우리나라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입 국하면서 ‘자가격리자 안전보호’ 앱을 설치했고, 친구에게 부탁하 여 전날 공항에 미리 주차 해놓은 내 차를 직접 운전하여 보건소 에 가서 검진받은 후, 귀가하여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비록 음성판정 문자를 받았지만, 자가격리 지침대로 내가 잠재 적 보균자라 가정하고 집안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2m 이상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식사도 각 방에서 하며 화장실과 침실도 완전히 분리하여 생활하고 있다. 아침과 저녁에 매일 두 차례씩 앱에 접속하여 체온, 기침 여부, 인후염 여부 등을 자가검진 하여 보고하고 있다. 2주라는 시간이 엄청나게 긴 시간이지만 혹시라 도 나로 인해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막아 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이를 감내하고 있다. 그런데 귀국자들 중에 자가격리 위반자가 발생하고 있으니 이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전자팔찌를 채우자는 안을 정부가 논 의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정부 가 도대체 ‘사람이 먼저’라는 구호를 내걸고 출범한 정권이 맞는 것인가? 그 위중한 시기에 바이러스의 발원지인 중국에 문을 활 짝 열어놓고 중국인을 다 받아들인 정부 맞는가? 설령 보균자라 하더라도 범죄자가 아닌 이상 팔찌를 채워 감시하겠다는 발상을 꺼낼 수 없으려만 스스로 자가격리에 협조하고 동참하는 무균자 들에게 팔찌를 채워 감시하겠다는 발상이 가능한 일인가? 그렇게 외국, 특별히 중국 입국자를 막아야 한다고 했을 때는 이웃과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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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을 함께하겠다고 했으면서 우리 국민 입국자는 이웃도 못되나? 어찌 팔찌를 채우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가? 범죄자들에게 전자발찌를 채워 감시한다고 할 때, 대상이 아닌 모두는 ‘그래, 당연히 채워서 감시해야 안전한 사회가 되지’라고 생각한다. 해외 입국자들에게 전자팔찌를 채운다고 할 때, 또 생 각할 것이다. ‘그래, 당연히 채워서 감시해야 전염병 확산을 막지’ 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쉽고 당연하게 남의 몸에 ‘전자X 찌’를 채우는 것에 동의하다 보면 언제 무슨 이유로 내 몸에도 그 것을 채우는 일을 당할지 모를 것이다. 이미 우리는 우리도 모르 게 충분히 많은 ‘X찌’로 가득 채워져 있다. 당신이 광화문에 갔는 지, 서초동에 갔는지, 당신이 ‘A’당에 기부했는지 ‘B’당에 기부했 는지 다 노출될 수밖에 없고 그것이 이미 당신에게 부착된 ‘X찌’ 이다. ‘X찌’를 채우는 일이 편리하다는 이유로 아무 거부 없이 쉽게 동의하는 사회는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교회의 예배가 전염병을 확산할 수 있다는 이유로 예배당에 감시자를 들여보내겠다는 것 을 우리 사회가 인정하는 것 또한 안된다. 결국은 내가 그 ‘X찌’ 를 차는 날이 오고 내 안방에 감시카메라를 달아야 할 날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이 인간의 이성과 양심을 통제하는 수 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헌법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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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이웃이 있나?

역병 이 세계를 할퀴며 지나가고 있다. 역병은 이전에도 많았

疫病 지만 가장 큰 것은 14세기 세계 인구의 3분의 1의 목숨을 빼앗아 간 흑사병이다. 당시 흑사병의 세계적 유행은 비단길로 열린 세계 화 시대의 개막으로 인해 치러야 했던 대가였다. 그리고 21세기 에 들어서 사스 (2002년)와 메르스 (2012년)에 이어 SAR

MERS COVID19로 이어지는 역병은 세계화의 완성 단계에서 인류가 다 시 치러야 하는 여러 가지 대가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인류는 14세기의 흑사병을 비록 100년이 넘게 걸렸지만 회복해 내고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 르네상스, 그리고 종교개혁으로 이어 지는 새로운 역사 발전을 이루어 냈던 것처럼, 이번 사태도 새로 운 발전의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나라가 살아남 기 위해서는, 세계화에 대한 새로운 준비와 대응이 필요하다. 세계화가 인류의 보편적 삶의 질을 향상한 것은 분명하다. 시장 이 하나가 되고 여행이 자유로워졌고, 통신의 장벽이 사라지며 정 보화의 혜택을 누구나 누리고 있다. 각국이 가진 식량과 에너지, 그리고 자원의 정보가 공유되면서, 비록 많은 부작용에도 불구하 고, 분배가 적절히 이루어져 가고 있다. 세계화는 모든 나라를 이 중삼중으로 얽히게 하면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 는 문제를 일으키지 못하도록 억제하기도 하면서 끝없는 팽창을 거듭해왔다. 따라서 내가 어느 나라와 어떤 무게 값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면 큰 낭패를 볼 수밖에 없다. 더구 나 관계의 무게 값이 시시각각 변하기도 하고 그 연결이 끊기기 도 하는 것을 생각하면 관계의 복잡도는 상상 그 이상이다. 당장 베트남과의 관계만 봐도 그렇다. 우리는 베트남을 생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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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베트남 경제의 20%를 감당해 주는 삼성전자와 베트남 축구의 영웅 박항서 감독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베트남은 당연히 우리의 가까운 친구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베트남이 산업구조를 한 단계 높이려고 시도하면서 자동차를 만들려 하고 있고 심지어 항공기 제작도 꿈꾸며 새로운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 리나라는 투자 순위에서 4위로 밀려나고 있다. 이번 사태에서 보 면,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초기에 문을 걸 어 잠갔지만 투자 1위 국인 일본에 대해서는 끝까지 문을 닫지 않았다. 이런 태도 변화는 국제관계에서 전혀 놀랄만한 일이 아니 다. 이번 사태로 인해 세계 경제가 장기간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예 측이 유력하다. 지금부터 개인도 국가도 이 침체의 기간을 누가 얼마만큼 견뎌내느냐에 따라 승부가 결정 날 것이다. 물건을 만들 어 팔아서 먹고살던 우리나라가, 내부적으로 바이러스를 조기종식 시킨다고 해서 우리의 경제만 독자적으로 살아날 방법은 없다. 원 자재의 공급이 없이는 물건을 생산할 수 없고, 물건을 만들어도 운송 수단이 확보되지 않으면 내보낼 수 없고, 구입해 줄 곳이 없 으면 물건을 만들 필요가 없어진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일시에 멈춰버린 이 세 박자가 살아날 때까지 우리와 서로 돕고 도울 이웃이 없이는 살아남기 어렵다. 이번 사태를 같이 넘어갈 우리의 이웃은 누구일까? 그것을 알려 면 이 위기를 넘기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누가 그것을 가졌는지, 그리고 도와줄 수 있는 이웃인지를 알아야 한 다. 우리에게 필요한 첫 번째는 군사적 안정이다. 즉 북한이 군사적 위협을 멈추고 도발하지 않는 것이다. 세간의 예측처럼 북한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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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통제 불능 상태를 경제 개방이 아닌 무력도발로 해결하려고 시도한다면 우리의 모든 노력은 허사이다. 미국이 막아주던, 중국 이 압력을 넣던, 우리가 북한을 설득하던, 북한의 도발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북한이 우리의 친구인가? 중국이 북한? 미국은 우리 를 친구로 생각할까? 두 번째는 자금지원이다. 우리가 꺼져가는 산업과 민생을 살리기 위해 국채를 발행한다지만 수백조 원을 마 련하기엔 어림도 없다. 당장 외국에서 들어올 돈줄은 막혔고 갚아 야 할 외채는 지체할 수 없으니 많은 현금이 필요하다. 결국 빚을 내야 하는데 현금 유동성 문제가 또 기다리고 있다. 일대일로에 엄청난 돈을 쓰고 있고 부실화된 자국 기업들의 부채가 언제 폭 발할지 모른 데다 각국에서 바이러스의 발원지로 지목되어 손해 배상 청구를 받고 있는 중국은 제 코가 석 자이다. 세계 최대의 채무국이지만 달러를 찍어내며 버티는 미국도 지금 3천조 원이라 는 사상 최대의 현금을 풀고 있어 여력이 없다. 국가부채비율이 240%로 세계 최고이지만 그나마 좀 여유가 있을 법한 일본에는 그간 적대시해 온 관계로 볼 때 손 벌리기에는 민망한 상황이 되 어있다. 금융지원을 빙자한 자본 빼내기의 대가인 IMF는 아마 또 기회가 왔구나!하고 좋아할지 모른다. 중국이 친구일까? 미국은? 일본 손을 이대로 놓아야 하나? 그럼, IMF? 세 번째는 에너지와 식량의 확보이다. 미국의 세일가스

확보로 불거진 에너지

Shale Gas 전쟁은 유가를 어떻게 요동치게 할지 전망이 불투명하다. 식량을 수출하던 나라들은 이번 사태를 당하면서 수출문을 닫고 있다. 우 리나라는 두 가지 모두가 절대 부족 국가이다. 어느 나라가 우리 와 에너지와 식량 나누기를 계속해 줄 친구들일까? 중국의 에너 지는 충분한가? 미국은? 네 번째는 수송로의 보존이다. 우리는 섬 이 되면서 눈을 세계로 돌렸고 지금의 국가 위상을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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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로와 항공로가 막히면 끝이다. 해상로와 항공로는 우리가 꼭 지켜야 할 대동맥과 같다. 배도 항공기도 장사 안된다고 팔아 없 앨 수는 없다. 우리는 세계적 해운회사 하나를 통째로 팔아먹고 치른 대가를 기억하고 있다. 특별히 에너지와 식량을 운송할 해상 로를 지켜내야 한다. 누가 우리의 에너지와 식량 해상로를 지켜내 줄 수 있을까? 우리에게 필요한 이것들을 누가 가지고 있나? 그 들이 우리를 도와줄 친구일까? 지금의 COVID19 사태는 세계화의 최대 수혜국 중의 하나인 우리나라에게 세계화의 장미빛 꽃길은 끝났고 험한 돌밭 길이 시작될 것임을 경고하면서 지금이라도 우 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의 손을 잡으라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그런 친구가 있다면 감정도 빼고 허세도 아니고 이념도 버리고, 냉정하게 판단하고 무감정하게 머리를 숙 여서라도 손을 잡아야 한다. 친구 없이 이 길을 걸어갈 수 없다. 그러나 우리와 친구일 수 없는 대상을 친구로 잘못 고르면 돌밭 길이 낭떠러지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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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그곳에 갔었나요?

10월 13일자 유력 일간지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서울 시 생활인구 데이터로 분석한 결과 지난 3일 광화문 집회에…오 후 2~3시에 50대는 7만1천명…. 전체 참석자의 15.2% 규모다. 그중 남성은 3만4천명(48.0%), 여성은 3만7천명(52.0%)…남성이 여성보다 더 많이 참가한 다른 연령대와 비교하면 이례적이다. 전 체 집회 참석자 46만6천명 중 남성은 57.8%, 여성은 42.2%였 다.' 이 기사는 '서울시가 모 통신사와 협업해서 매일 시간 단위로 서울 전 지역에 사람이 얼마나 있었는지를 집계해 열린 데이터 광장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는 데이터를 분석한 것'이라고 밝히 고 있다. 기사대로라면 통신사가 기지국마다 접속하는 사람의 주소지, 나 이, 성별 정보를 시간단위로 서울시에 제공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불현듯 '혹시 내가 하루 종일 어느 기지국에 접속했는지 기록에 남는 것은 아닌가!'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어서 전화를 개통할 당 시에는 동의 서명하지 않으면 개통해 주지 않으니 구태여 그 내 용을 읽어볼 필요도 없었던 '개인정보 활용 동의서'를 찾아 확인 해 보았다. 동의서에는 '통신사에 광고를 의뢰하는 업체, 가입자 명의로 개통되는 다른 전화가 있을 경우 알려주기 위해 한국정보 통신진흥협회 그리고 분실 시 보상을 위한 보험회사 등에 제공된 다!'고만 돼 있어 통신사 홈페이지를 찾아봤다. 거기에는 12개 정 부기관과 공공기관, 25개 금융관련 기관, 3개 신용정보기관, 6개 엔터테인먼트회사 외에 물류업체 등 총 80개를 넘는 곳에 어떤 정보가 제공되는지 나열돼 있었다. 이 중에서 어느 항목을 적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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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에 실시간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지 찾아내지 못했다. 지금 화두가 돼 있는 4차산업혁명의 성공 여부는 빅데이터 수집 과 이의 창의적 활용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개 인정보 보호는 사회질서를 유지해 가기 위해 지켜내야 할 핵심 가치이기에, 정보 수집·활용 필요성과 정보보호의 가치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미 방송도, 통신도, 금융도, 심지어 거의 모든 인 터넷 서비스에서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있으며 위치정보, 거래정 보, 통화정보뿐만이 아니라 안방에서 언제 무슨 방송을 봤는지도, 인터넷으로 무엇을 검색하고 있는지 등의 개인취향도 모두가 정 보로 수집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자신의 어떤 정보가 수 집될 수 있고,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 거의 무방비 상태 다. 그렇다고 비불법 적으로 수집된 정보를 본인에게 알리지

非不法 도 않고 유통시키거나 활용하는 것은, 설령 그것이 공익을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허용돼서는 안 된다. 개인에 대해 수집할 수 있는 정보의 종류와 방법이 무한정 늘고 있는 상황에서 절제된 정보 수집·활용 방법과 함께 완벽한 정보보 호 방법이 동시에 갖춰져야만이 상호신뢰가 쌓이고 빅데이터를 산업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통신사나 케이블사업자와 같이 개인의 사생활을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으면서도 독점적 지 위에 있는 서비스 업자들은 자신들이 취득할 수 있는 정보가 무 엇인지 명확히 알려주고, 그 활용에 대해 구체적인 항목별로 사용 승인을 얻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설령 정보 활용에 동의하지 않 더라도 서비스에 가입하고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앞에 소개한 통계 기사를 보면서 누군가 '당신도 그곳에 갔었지?' 물어볼까봐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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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지원금

상상도 못 했던 COVID-19가 강한 전파력을 가지고 전 세계에 확산되면서 우리나라도 큰 어려움에 처하고 있다. 사람들의 왕래 가 뜸해지면서 250만에 달한다는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직격탄을 맞았고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모든 국민들이 똑같은 어려움을 경 험하고 있다. 정부는 국민이 겪는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세금도 감해주고 모든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나누어주면서 경기가 좀 나아지기를 기대했다. 지난 4월 초에 배분된 COVID19 재난지원금은 국비 12조2천억 원, 지방비 2조1천억원 등 총 14조3천억원 규모이다. 누구에게 얼마를 지원할 것인가로 설왕설래하다가 결국에는 모든 국민에게 가구별로 지원해 주었다. 이 예산이 편성되는 과정에서 이 돈이 얼마나 큰 돈인지를 지극히 단순한 방법으로 생각해 보았다. 14 조3천억원은 평당 건축비를 4백만원 잡으면 15평 아파트를 약 23만8천채를 지을 수 있다. 연간 혼인신고 건수가 24만건 정도이 니 신혼부부들에게 얼추 15평짜리 집 한 채씩을 나누어 줄 수 있 다. 이렇게 큰돈이 쓰였는데 기대한 성과가 있었는지를 분석해 보 았는지, 해보았다면 분석 결과가 무엇인지 매우 궁금하다. 돈의 규모도 그렇지만 나누어주는 대상도 시간을 가지고 좀 더 신중히 논의해 봤어야 했다. 국가공무원이나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처럼 수입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사람들도 그 대상이 되어 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문이다. 대통령이 나서서 이런 대 상들은 자발적 기부를 기대하고 2조8천억원정도가 절약되지 않을 까 기대했지만 자발적 기부는 300억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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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라도 처음부터 나누어주지 않아도 되는 대상들은 제외했어야 했다. 포괄적 의미로는 모든 국민이 피해자이지만 수입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모두 실질적 피해자인지는 의문이다. 지난 4월에 COVID19 재난지원금을 나누어줄 때 많은 사람은 2 차, 3차 재난지원금이 지급될 것이라 예상했다. 다시 말하면 처음 재난지원금을 나누어 줄 때야 선거도 있고 국민적 합의도 쉽지 않아 급하게 모든 국민들에게 나누어 줄 수밖에 없었다! 하더라 도 그 후에 다시 재난지원금을 나누어줄 경우가 발생하면 그 대 상을 어떻게 하는 것이 정의로운 것인지를 논의하고 계획할 시간 이 충분히 있었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런 논의는 없었 다. 그리고 예상대로 2차 COVID19 재난지원금을 나누어줄 것을 거론하고 있다. 금년은 장마가 45일을 넘기면서 홍수로 인해 큰 피해까지 발생 했다. 재밌는 것은 여당은 수해 지원을 위한 추경은 반대하면서 COVID19 2차 재난지원금을 위한 추경의 필요성은 거론하고 있 다. 여러 가지 이유야 있겠지만 불가피하게 COVID19 2차 재난지 원금을 계획한다면 이번에는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잘 분배하여 그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도록 했으면 한다. 이번에는 어떤 효과를 기대하는 지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 효과가 기대한 대로 나타났는지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할 것이 다. 우리에게는 COVID19에 대응하는 것만큼이나 시급한 일들이 흘 러넘친다. 이 중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청년 문제이다. IMF 사태 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는 청년들의 도전정신을 잃었다. 모두가 공 무원 시험에 미래를 걸었다. 또 잃어버린 것은 자녀 출산 의욕이 다. 결혼을 포기하고 출산을 포기한 것이다. 거기에다 이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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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ID19 사태는 맞벌이 부부들이 육아를 담당하는 것이 불가능 하게 만들고 있다. 이번에 다시 재난지원금을 꼭 나누어주어야 한 다면, 이번에는 목표를 분명히 하자. 미래를 내다보고 다음 세대 들이 도전정신을 되찾고 결혼과 출산 계획을 세울 수 있으며 육 아의 짐을 덜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라가 빚내어 나누어 주는 재난지원금이다. 그리고 그 빚은 청년세대와 그 후손들이 담 당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 돈은 청년세대를 위해 최우선으로 사용 되어야 할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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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 싶다! 바이러스에 눈 달렸나?

코로나바이러스가 인류를 덮친 지 20개월이 지나고 있다. 불편 함을 넘어서 개인도 국가도 피해가 막심하다. 나도 해외에 있다가 들어오느라고 자가격리 1회, 확진자 접촉으로 검사 후 24시간 격 리 1회, 밀접 접촉자 접촉으로 검사대기 2회를 경험했다. 내가 감 염되는 것도 염려되지만 다양하게 접촉하는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사람 만나는 것이 위축될 수밖에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 다. 처음 바이러스 감염이 시작되었던 작년 초의 모습을 상기해 보 면 참 난리가 아니었다. 최초 발생지인 우한에서는 사람들이 길 가다가 푹푹 쓰러져서 죽어간다는 보도가 온 국민들을 공포에 몰 아넣었다. 많은 나라들이 앞다투어 국경을 폐쇄했고, 우리나라도 감염 가능자를 찾는다고 K-방역을 내세워 통신과 카드 정보까지 추적하는 난리를 떨었으며, 돈 있는 나라들은 백신을 확보해서 접 종으로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국경을 폐쇄했던 나라들도, 감염자 추적을 통해 확산을 막으려 애쓴 우리나라도, 심지어 온 국민에게 백신을 맞춘 나라들까지도 지금은 똑같이 바이러스의 지배하에 놓여있게 되었다. 한 가지 유의미한 변화는 바이러스가 전염력은 강해졌지만, 치명적 사망 비율은 독감 수준으로 줄어들었다는 것 이다. 방역의 방법과 방역 정책에 대응하는 국민들의 태도는 나라마다 많이 다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정부의 정책에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고 따르지만, 자유 선진국에 가까울수록 자신의 신 념에 따라 마스크 착용도 백신접종도 거부한다. 우리나라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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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국민들이 정부를 믿고 최선을 다해 협조하고 있다. 정부 의 정책이 생계 수단을 막아버리는 것조차도 국가를 우선으로 생 각하여 희생을 감수하고 따른다. 정말 눈물 나도록 착하고 고마운 국민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20개월을 믿고 따라주는 국민들의 협조와 희생 에 비해 지금까지 시행한 정부의 정책은 얼마나 효과적이었으며 투명했고 신뢰할 수 있었던 것인지 궁금해진다. 초기에 방역을 위 해 밤낮없이 고생하던 분들에 대한 고마움이 지금은 과연 그들이 진짜 전문가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의심으로 바뀌고 있다. 오로지 확진자 수만을 발표하며 '이번 주말이 고비다'는 말을 들은 것이 50주는 넘는 것 같다. 정부 방역 정책에 대해 초기에는 소극적으 로 반대의견을 내던 전문가들이 20개월이 지나면서 지금은 구체 적인 통계치를 들이대며 자신들의 분석과 판단이 옳았다고 주장 하고 있다. 그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정부가 빼놓고 있는 이야기들 을 짚어주고 있어서 정부 발표보다 훨씬 신뢰하게 된다. 그것이 알고 싶다. 바이러스에 눈이 달렸는지가 알고 싶다. 바이 러스가 사람 수를 세나? 바이러스가 시계를 보나? 공간의 크기와 상관없이 교회에 19명만 들어간다. 아무리 테이블들이 붙어있어 도 한 테이블에 4명이 앉으면 되고 아무리 큰 테이블도 5명이 앉 으면 안 된다. 6시까지는 4명이 가능하고 이후에는 2명까지만 된 다. 10시까지는 영업해도 되고 이후는 안된다. 이 안에 과학이 있 나? 그것이 알고 싶다. 바이러스 백신 주기는 고무줄인지 알고 싶다. 백신을 생산할 때 3상 실험까지를 거치면서 백신의 주기를 결정 하리라는 것이 상식이다. 제시한 주기가 80%면 이보다 1주일 늦 으면 70% 2주일 늦으면 60% 3주 늦으면 50%, 대충 이런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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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주기가 정해진 것보다 두 배로 늘 어도 효과에 문제가 없다 한다. 그렇다면 제약사가 실험한 통계치 를 보여주고 설명하는 것이 맞다. 이런 백신을 맞아야 하는지, 맞 아도 되는 것인지…. 이 안에 과학이 있나? 그것이 알고 싶다. 바이러스 백신의 교차 접종이 가능한지 알고 싶다. 백신을 제조하는 방법에 따라 생체반응이 다를 수밖에 없 다. 그래서 약을 만들 때는 다양한 대상으로 3차에 걸쳐 철저한 검증을 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교차 접종하는 경우 항체 발생율이 향상되는 사례가 외국에서 있었으니, 우리도 교차 접종하겠다고 한다. 그러려면 최소한 어느 나라에서 몇 건을 교차접종했는데 어 느 정도 비율로 항체 발생률이 향상되었는지 데이터가 없다. 이 안에 과학이 있나? 바이러스는 눈도 귀도 없다. 바이러스 방역은 과학이다. 국민들 에게 백신을 맞추는 것도 과학이다. 아프리카 돼지 열병을 방역하 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알 권리를 보장하라. 국민들의 알 권리 는 정치인의 사생활이나 비리 같은 것만에 한정되지 않는다. 국민 의 생계활동과 종교활동, 집회결사의 자유를 제약하는 이유와 방 법이 과학적인 것인지도 분명히 알아야 할 권리이다. 비과학적인 접근은 바닥이 드러나고 신뢰를 잃을 뿐이다. 이제부터라도 과학 으로 승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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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겪으며 권력의 감시망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아"

◎ "사생활을 어느 정도까지 들여다볼 것인지는 권력자의 의지 에 달려" ◎ "감염자의 확산경로 차단하려 개인의 휴대전화 기록, 신용카 드 내역, CCTV까지 파악" ◎ 新통제사회…"5G 통신의 초정밀성 · 초고속성 · 초연결성이 모든 사물과 사람들을 연결" ◎ "일본은 주민등록증을 만들려고 20여 년을 노력해도 발급자 가 전 국민의 16% 불과"

로봇공학자인 숭실대 한헌수(韓獻洙·62· 전자정보공학부) 전 충 장은 2019년 10월13일자 《조선일보》를 읽다 깜짝 놀랐다. 개 천절 태극기 집회에 관한 기사였는데 인용된 데이터의 양과 질에 혀를 내둘렀다. 신문은 '오후 2-3시 무렵, 광화문 집회 참가자 중 50대는 7만1 천명(참석자의 15.2%)이고 그중 남성은 3만4천명(48.0%), 여성 은 3만7천명(52,0%)'이라 전하며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참가 한 것은 다른 연령대와 비교해 이례적'이라고 했다. 또 '전체 집회 참석자 46만6천명 중 남성은 57.8%, 여성은 42.2%라고 보도했 다. 이 기사에 쓰인 데이터는 어떻게 해서 나온 것일까, 서울시가 KT와 협업해 매일 실시간으로 서울 전 지역에 사람이 얼마나 있 었는지 집계한 '열린 데이터 광장' 홈페이지(cataseoulgo.kr)에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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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된 데이터를 분석한 것이었다. 그나마 올해 개천절은 '재인산성

'을 쌓아 광화문 집회가

在寅山城 원천 봉쇄됐지만, 그는 지난해《조선일보》기사를 떠올릴 때마다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어느 구(區)에 사는 집회 참가자의 성별, 세대까지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정보를 독점한 권력자가 마음만 먹으면 집회 참석자 면면을 다 파악할 수 있고, 잘못하면 국민에게 집회에 참석하지 말라는 경고로 여길 소지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 9월 26일 오전 서울 동작구 숭실대 창의관에서 만난 한헌 수 전 총장은 "이런 정밀한 데이터가 '정보'인지 아니면 (정보를 독점한 권력의) '경고'인지 애매한 경계를 느낀다!"고 우려했다. “한국 사회는 1980년대 후반부터 정보화· 전산화가 이뤄져 정부 가 사실상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고 마음만 먹으면 활용할 수도 있어요. 정보가 과연 개인의 이익을 보전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 면 국가가 (개인을) 통제하기 위한 것인지 되돌아보게 합니다.” 그는 코로나19가 확산할 때 언론지상에 뜨거웠던 전자팔찌 착 용 논란을 떠올렸다. “지난 2월 제가 베트남 여행을 갔다가 돌아와 자가격리 중이었 는데 마침 수천명의 자가격리자 중에서 몇 명이 격리장소를 이탈 한 일이 발생했어요. 질병관리본부에서 ‘이탈 방지를 위해 자가격 리자에게 전자팔찌를 채우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한 보도를 접 했죠. 전염병 전파를 막겠다는 방역 당국에 협조해서 기꺼이 개인 의 자유를 유보하면서 15일간이나 자가격리 중인 사람에게 ‘전자 팔찌를 채워 감시하겠다’는 말을 정부 당국자가 저렇게 쉽게 하는 것이 가당한지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죠.” K-방역이 성공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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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헌수 전 총장을 더 놀라게 한 것은 ‘전자팔찌를 채우 자’는 의견에 거의 모든 국민이 동의한다는 여론조사 결과였다. 사람들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개인의 자유가 침혜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했다. 기꺼이 개인의 자유마저 포기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마스크 쓰지 않으면 3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겠다는 것이나 자 가격리 이탈을 막기 위해 전자팔찌를 채우겠다는 발상은 ‘사회의 안정과 질서유지를 위해 국민의 자유를 일시 유보할 수 있다!’는 유신시대의 계엄포고문과 뭐가 다른가 싶어요. 사람들은 ‘내’가 전자팔찌 해당자가 아니라고 다른 사람의 손에 팔찌를 채우는 것에 동의하면 어느 순간 무슨 일로 ‘내’손에도 팔 찌가 채워질지 알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해요.” 잠시 침묵하더니 이런 말을 덧붙였다. “감염자의 확산경로를 차 단하려는 목적으로 (비록 법이 허용하고 있지만) 감염자의 이동 경로를 휴대전화 기지국의 접속기록과 신용카드 사용내역, 촘촘한 CCTV로 확인합니다. 감염자가 경유한 업소가 공개되고, 같은 시 간대에 방문했던 사람들도 ‘검체검사에 응하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습니다. 이게 바로 K-방역의 작동법이고 K-방역이 성공한 이 유죠.” 그러고 보니 ‘포털사이트에 등록된 성매매 업소는 2,393개로 전 국의 고등학교 수보다 많고, 코로나19 대유행에도 석 달간 600만 명이 룸살롱을 다녀갔다’는 언론 보도가 최근 있었다. 그의 말이 다. “유흥업소에 간 모든 사람이 죄인은 아니고 그들이 자가격리를 어긴 사람도 아닙니다. 이런 식의 보도는 매우 위험한데 ‘코로나 19를 위해 뭐든지 해도 돼. 모든 정보든지 다 이용해’라는 잘못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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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을 심어줄 수 있어요. 코로나19 사태 같은 일이 이번 정권에 만 있겠어요? 더구나 우리는 코로나19 위험보다 더한 남북 군사 충돌 위험이 상존하는 나라잖아요. 어느 권력도 사생활을 마음껏 들여다보고 개인의 행적을 실시간으로 추적할 순 없어요. 그런 권 리를 (권력에게) 허락하거나 양도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이미 완벽한 통제시대에 들어섰다. 5G통신의 초정밀성 초고속성 초연결성이 모든 사물과 사람을 연결하고 있 다. 그 연결에 자신을 내맡기지 않으면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없 다. “이런 감시체계가 완벽하게 동작하도록 만들어 준 것은 컴퓨터 와 정보통신 덕입니다. 30년 전의 슈퍼컴퓨터에 해당하는 스마트 폰을 호주머니에 넣고서 영화 한 편을 1초에 내려받을 수 있죠. 언제 어디서 누구와도 통화하며 문자와 동영상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유비퀴터스

시대니까요.”

Ubiquitous 5G통신은 사람만 연결하는 것이 아니다. TV, 컴퓨터뿐 아니라 모든 시설과 설비를 연결한다. 가정 구석구석 들어오지 않은 곳이 없다. 일상의 편리한 기술이, 그러나 개인의 사생활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는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누구도 권력의 감시망에서 벗어날 수 없어 우리나라는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한다. 사 회생활에 필요한 모든 신분 확인이 이 번호로 이뤄진다. 주민번호 가 개인을 완벽하게 식별하다 보니 이를 매개로 행정, 세무, 경 찰, 보험, 은행 등 모든 기관에서 개인의 정보관리를 주민번호로 파악한다. 한 전 총장의 말이다. “주민등록번호를 활용하는 개개인의 금융거래 내역, 이메일과 소셜미디어(SNS), 메시지 등의 통신 내역, 인터넷의 정보검색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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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즐겨 시청한 TV프로그램 내역, 이동경로 내역, 출입국 내역, 어떤 질병으로 병원 치료를 받았는지, 어디서 누구와 같이 있었는 지 등 모든 내용이 그대로 저장되고 있어 그야말로 ‘뒤지면’ 다 나옵니다.” 심지어 각종 민간업체나 웹사이트도 서비스 제공을 명목으로 주 민등록번호를 요구한다. 이러다 보니 어느 한 곳이 해킹당하면 개 인신상 정보 전체가 공개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코로나19 사태를 관리하면서 개인의 통신과 금융 정보를 이용 해 확진자의 동선을 파악하는 것을 본 서구권 국가들의 시각이 한국 정부에, K-방역에 우호적인 것만은 아니더군요. 개인정보를 국가가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보니 서구인들에게 한국은 이해하기 어려운 나라로 생각 됐을 겁니다.” 서구 사회의 개인식별 방법은 한국과 너무 다르다. “한국의 주 민번호처럼 개인식별 번호를 부여하거나 개인정보를 정부와 공공 기관이 공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영국은 정부가 개인에게 공식적으로 발급하는 신분확인증서는 출생증명서, 운전면허증, 여권입니다. 이는 개인 신분을 보장하기 위한 것일 뿐 국가가 국민을 관리하기 위한 것은 아니죠. 미국 역시 정부기관이 공유하는 개인식별 번호는 따로 없어요. 세금 신고와 사회보장 혜택을 위해 출생신고서와 여권으로 사회 보장 카드를 발급받습니다. 여기에 표기되는 사회보장번호

Social 는 그야말로 일련번호일 뿐이죠. 그 번호로 한국의 Security Number 주민등록번호처럼 개인의 나이, 성별, 주거지역 같은 신상정보는 알 길이 없죠. 심지어 그 번호도 평생 10회까지 바꿀 수 있어요.” 일본에는 한국의 주민등록증과 비슷한 ‘마이넘버 카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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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펜데믹 당시 이 카드를 보유한 국민에게 온라인으로 재난 지원금 10만엔(약 110만원)을 신청토록 했다. 그러나 중앙 정부 와 기초자치단체 사이에 주민정보 공유가 이뤄지지 않아 지급이 지연돼 ‘디지털 후진국’이란 이야기가 나왔다. 그의 말이다. “일본은 주민등록증을 만들려고 20여년을 노력해도 발급받은 사 람이 전 국민의 16%밖에 안 된다고 해요. 반면 우리나라는 간첩 식별을 위해 발급된 주민등록증을 전 국민이 1년 만에 만들 정도 입니다.” 한 전 총장은 “감시와 통제의 권한이 정말 나쁜 의지를 가진 권 력자의 손에 쥐어지거나 남을 해코지하려는 사람의 손에 들어갈 경우 끔찍한 세상이 도래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모든 사람의 개인정보와 사생활까지 들여다보는 것이 가능하다 면 이를 통해 사람들을 감시하고 통제하고 싶은 욕망을 무시할 수 있는 권력자가 있을까요?” 그는 냉정하게 인정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우리 사회의 누구도 권력의 감시망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을 확인하 게 되었다”고, 그리고 “이제 우리의 사생활을 어느 정보까지 들여 다볼 것인지는 권력자의 의지에 달리게 됐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10조, 모든 국민은 행복하다고 느껴야 한다’ 한헌수 전 총장은 최근 조지오웰

의 소설《동물농

George Orwell 장》과《1984》를 다시 꺼내 읽었다. 두 소설이 처음 출간됐을 때는 전체주의 국가나 공산국가에서만 가능한 일이라 여겨졌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 때에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일어날 수 있 음을 보여주었다. “개인의 행정, 금융, 보건, 교육, 통신, 교통 등의 모든 정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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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로 쌓이면서 감시와 통제가 ‘안전’이란 이름으로 충분히 가 능함을 입증했다”는 것이다. 그의 말이다. “여론이 인터넷 포털과 소셜미디어로 형성되는 사회에서 여론만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면, 선출된 권력이라 하더라도 이런 정보 화 기술을 이용하여 자신의 정책을 펼쳐보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 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는 최근 펴낸 저서 《COVID-19 사태로 본 완벽한 통제의 시대》(바른북스)를 통해 2040년 AI(인공지능)가 모든 정보를 통제하는 가상의 나라 ‘오세아니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예측했 다. ‘오세아니아’의 권력자 ‘햇님’의 10계명은 이렇다. ‘햇님’은 《동물농장》의 ‘나플레옹’, 《1984》의 ‘빅브라더’와 같은 권력자 다. 오세아니아의 10계명 1조, 모든 사물에는 오감센서(카메라와 마이크 필수)를 설치 하여 인터넷에 항상 연결되어 있도록 관리해야 한다. 2조, 모든 금융거래는 전자화폐로만 가능하며 거래금지로 지 정된 곳과는 금융거래를 포함한 어떠한 형태의 현물교환 도 할 수 없다. 3조, ‘햇님’과 ‘햇빛당’을 비방하는 어떤 형태의 데이터도 교 류할 수 없다. 4조, 질서를 어지럽히는 언동은 금지한다. 5조, 이성 간 성적 접촉은 잉태 목적으로만 허용하며, 동성 간 결혼도 허용한다. 6조, 종교의 자유를 가지나 집회는 지정한 때와 장소에서 허 용된 방식으로만 할 수 있다. 7조, 외국 여행이나 상거래 등 모든 교류는 사전에 허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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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야 한다. 8조, 범죄행위가 예상되는 자는 사전에 격리한다. 9조, 모든 국민과 기업은 당이 정한 한도까지만 재산을 보유 할 수 있다. 10조, 모든 국민은 행복하다고 느껴야 한다. ‘2040 오세아니아’ 《동물농장》에서 ‘나플레옹’은 7개의 계명으로 통치했다. 7계명 에는 ‘옷을 입지 말 것’ ‘침대에서 자지 않을 것’ ‘술을 마시지 말 것’이 포함되어 있다. 이를 감시하는 것은 9마리의 개와 그 추종 자들의 눈과 귀다. 《1984》에서 ‘빅브라더’는 자신을 숭배하지 않는다고 의심받을 만한 행동을 못 하도록 철저히 금지했다. 금지목록에는 일기를 쓰 거나 이성 간의 성행위, 걱정하는 표정까지 포함한다. ‘빅브라더 ’에 대한 불경스러운 언사는 당연히 금기사항이다.

Big Brother 그러나 2040년 ‘오세아니아’는 훨씬 정교해진 10계명과 감시역 량을 지닌 AI로 국민을 철저히 통제한다.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어떤 처벌을 받게 되는지 끊임없이 방송하고 인터넷과 소셜미디 어로 세뇌시킨다. 한 전 총장의 말이다. “‘오세아니아’ 시민 누구도 임의로 인터넷 연결을 끊을 수 없게 합니다. 목욕탕, 침대, 화장실, 옷장이나 냉장고 등 모든 사물에 명함같이 얇게 제작된 카메라와 마이크가 부착돼 24시간 감시하 죠. 이를 통해 수집되는 정보는 AI를 통해 실시간 자동 저장됩니 다. ‘2024 오세아니아’ 세상은 전체주의적 통제가 시행되는 지금의 여러 나라와 SF 영화에 나올 법한 가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충분히 현실로 나타날 개연성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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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대목에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선출된 권력이 국민의 안전과 건강, 전쟁으로부터 보호를 내세 우고, 공평하고 평등한 사회를 구현하겠다는 명분으로,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겠다고 나설 경우 ‘오세아니아’ 같은 끔찍한 나 라가 생겨날 수 있어요.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 전 총장은 자신의 블로그에 이런 글을 남겼다. 정부가 통성기도 금지하는 나라 《…정부가 교회에 대해 집회를 금지하고 예배 중 통성기도나 찬양을 하지 말라는 행정명령을 내려도 교회가 이에 대해 반발해 야 하는지 순응해야 하는지 판단조차도 못 하는 것으로 비쳐지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넘어서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 이 말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예배시간에 목사님이 ‘정부가 통성기도를 하지 말라고 하니 통성기도라는 용어를 쓰지 말고 합심기도라 부릅시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너무 복잡했습 니다. 교회가 통성기도나 찬양하는 지를 정부 관리가 와서 보고 문제 삼을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인가요? 군사정권 시대에도 설교 내용은 시비했어도 통성기도를 하는지 찬양하는지 감시하러 공무원이 예배를 지켜보는 일은 없었잖습니 까? 실제 감시를 했는지 모르나 목회자가 그런 걱정을 한다는 것 자체가 안타까웠어요. 그런데 절망을 느끼게 만드는 것은, 오랜 역사를 통해 교회가 세속의 권력과는 구분이 되는 것으로 존중받아 왔는데 어쩌다가 사회단체 중의 하나로 취급받으면서도 분노하는 모습도, (교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외침도, 당당한 방어도 없느냐는 것입니다. ‘신천지’와 전광훈 목사의 일로 한국교회 전체가 매도되고 이젠 대놓고 교회가 무시당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는데도 말이죠. 교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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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을 주도하고 실천하는 모범을 보이지 못하고 오히려 교 회 내에서 세속의 기준보다 못한 일들이 벌어지면서 이런 취급을 자초한 것을 인정하고 이제라도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해주었으면 합니다.” 완벽한 통제사회로 옮겨가는 것을 막으려면 … 그렇다면 이런 통제 세상으로의 질주를 막을 수는 없을까? 사회 안전과 국가안보를 내건 통제로부터 개인의 재산과 생명, 그리고 자유를 지켜낼 수 없을까? 한헌수 전 총장은 “완벽한 통제사회로 옮겨가는 것을 막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이 통제를 거부하려는 의지”라고 강조했다. “국민 통제를 허용하는 법안을 만들지 못하도록 철저히 감시하 면서 불가피하게 허용하더라도 반드시 의회와 당사자의 동의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첨단기술들이 통제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 을 자동적으로 감시하는 연구도 반드시 필요하죠.” AI기술이 잘못된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현재 유네스코과 경제협력개발기구 는 각각 AI의 활용원칙을 제시 하고 있다. 유네스코는 ‘AI 개발과 실행, 사용을 위한 포광적 원칙’에서 인 권, 포괄성

inclusiveness

OECD

, 양성

, 책임성, 책무성, 민주성, 그

flourishing 리고 좋은 지배구조를 지킬 것을 정하고 있다. OECD는 ‘AI 원칙’ 에 포괄적이고 지속가능한 성장과 웰빙 Well-being

을 목적으로 사 용할 것과 투명성, 설명 가능성, 강건성, 안정성, 책무성을 천명하 고 있다. “지난 사스 사태가 안정되는데 4년이 걸린 것을 생각하면, 이번 코로나19 사태 역시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고, 이후에 또 어떤 전 염병이 창궐할지 알 수 없어요. 더구나 국가안보와 관련된 위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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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할 수도 있어요. 이런 어려움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일 이 일상화된다면, 그때마다 인간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그 사이에 권력자나 정치세력이 억압과 통제를 강요할지 모를 일입니다. 따라서 국제기구들이 제시하는 방안을 기반으로 위기상황 시 국 민 기본권을 제한하는 방안에 대해, 합의를 도출하고 이를 준수하 는지 감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합니다. 이를 위한 연구와 노력이 코로나19가 창궐한 지금, 시작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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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정책의 놀이판 된 대학

대학개혁의 방향

교육은 항상 개혁의 대상이다. 그래야 한다. 기술과 사회의 발전 속도가 20세기에 비해 3배는 빨라졌다. 개역은 방향과 내용이 대상이다. 그리고 자율적이어야 한다.

호치민에서 찾은 한국대학의 살길 1 호치민에서 찾은 한국대학의 살길 2 대학이 맞닥뜨린 갈림길 대학혁신은 지원의 기대와 통제의 욕심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대학평가 30년을 평가하자 100세시대를 대비한 교육체계혁신, 창의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착한 분배’ 성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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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에서 찾은 한국대학의 살길 1

모든 생명은 주기가 있다. 탄생과 성장, 그리고 번식과 소멸이 그것이다. 모든 생명체뿐 아니고 나라도, 조직도, 권력도, 재산도, 살아있는 것은 무엇이든 그렇다. 그래서 역사는 주인공을 바꿔가 며 같은 과정을 반복하며 발전해 왔다. 얼마나 긴 시간을 주인공 으로 남느냐는 번식의 시기에 얼마나 잘 변신하며 새로운 에너지 를 지속적으로 확보하느냐에 달려있을 뿐, 결국은 그 자리를 넘겨 주고 사라지게 된다. 그렇다고 모두가 주인공이 되지는 못한다. 식물이 그렇듯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는 것이 있고, 꽃은 피웠으나 금방 시들거나 열매 를 맺지 못하는 것도 있고, 열매를 맺었으나 그냥 떨어져 버리거 나 너무 잘아서 맺지 않은 것만도 못한 것도 있다. 가꾸고 공들인 자들에게는 아쉬움이다. 베트남의 대학들을 본다. 꼭 우리의 60년대 후반이나 70년대 초 반으로 보인다. 첨단 IT기술의 시대를 살면서도 그 혜택을 누릴 수는 없다. 19세 학령인구는 150만 명이 넘는데 40만 명 정도가 대학에 진학할 수 있어서 공부하려는 학생들은 흘러넘치는데 실 험·실습 시설, 강의실 환경, 학생 지원시설 등이 턱없이 열악하고 교수들은 아직 박사학위를 갖지 못한 수가 더 많다. 그러나 첨단 교재로 열심히 가르치고 있고, 정부의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가 경 제발전 속도에 맞춰 날로 증가하고 있으며, 20년 후에도 학령인 구가 135만 가까이 유지될 것을 생각하면 베트남은 분명 쫒는 자 의 위치에 있다. 이런 과정에 있는 나라가 베트남뿐 아니다. 인도 네시아도 그렇고 인도차이나반도가 깨어나고 있음을 본다. 한때 우리는 역사의 주인공 자리가 금방이라도 우리 것이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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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럼 호들갑을 떤 적이 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가 쫓는 자의 위 치에 서 있는지 냉정하게 우리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대학에 대 한 투자가 10년 넘게 멈추었다. 대학에 입학하려는 학생의 수는 이미 대학 입학 총정원(54만 명)보다 줄어들었고 2040년이 되면 20만 명 수준으로 줄어든다. 대학들이 지금의 덩치를 유지한 채 살아보겠다고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려 애쓰지만, 세계 유학 시 장의 4% 수준(대체로 유학 선진국에 갈 수 없는)을 유치하며 그 나마 엄청난 적자를 감수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의 대학이 지 난 기간 성장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투자는 멈춰버려 서, 이제는 쫓기는 자의 위치에 서버렸다. 우리나라는 구조적으로 대학의 현재 정원을 유지할 수 없다. 이 민으로, 넘치는 유학생으로 대학을 유지하는 미국과 유럽의 몇 개 대학을 모델로 삼아, 현재의 규모를 어떻게든 유지해 보려고 안간 힘을 쓰지만, 아무런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 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살을 깎는 변신 노력이 없이 지금의 것이 라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쓸수록, 대학을 밖에서도 스스로도 최고 지성들의 이기적인 생활공동체로 생각하도록 만들 뿐이다. 대학의 사명은 국가발전에 필요한 우수인력의 공급이 최우선이 다. 필요한 분야에 필요한 만큼 공급하기 위해 변신하는 대학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베트남은 우리의 이런 고민을 3~40년이 지나서 야 가능하게 될지 모르겠다. 지금은, 우리가 30년 전에 그랬던 것 처럼 대학에서 어느 것을 가르쳐 내보내도 필요한 인재로 살아갈 것이기에 대학은 안정되게 성장할 것이다. 우리는, 성장 후 번식 (변화와 적응)하지 못하여 목표에 근접하기도 전에 쫓기는 처지 가 되었다. 살길은, 이제라도 끊임없이 번식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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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에서 찾은 한국대학의 살길 2

대학교수 눈에는 자꾸 대학만 보인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앞으로 40년 동안 성장과 번식의 과정을 지속하며 발전할 베트남 대학들을 부럽게 바라보며, 입학자원 감소라는 정해진 미래를 마 주하고도 탈바꿈을 통한 번식은 엄두도 못 내고 어떻게든 정원만 지키며 버텨보려 전전긍긍하면서 소멸의 단계에 접어든 한국대학 들의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게 느껴진다. 특별히 사립대학들의 처지가 그러하다. 기회 있을 때마다 얘기 했듯이, 우리나라는 조선말 이래로 사학에 국민교육을 의존했고 해방 후에도 대학교육의 80%를 맡겨왔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당당하게 사학을 멋대로 주물러왔다. 그리할 수 있었던 것은 소위 교육의 공공성을 내세워 사학의 설립 정신에 따른 차별성을 인정 하려 하지 않으면서, 감사와 재정지원을 통해 온갖 간섭과 제재를 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입학정원의 결정권, 대학지 원 예산의 분배권, 입시제도(학생 선발방법) 감독권, 심지어는 등 록금 책정권까지를 행사하면서 사학이 정부의 눈치만 살피게 길 들여 놓았다. 이런 수준으로 사립대학을 관리 감독하는 나라는 최 소한 민주주의를 시행하는 선진국에는 없다. 문제는, 그렇게 모든 것을 시시콜콜하게 간여하면서 사립대학의 자생력을 없애버린 정부가, 학령인구가 20년 이내에 현 대학 입 학 총정원의 반절도 못되게 감소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어서는, 정작 당황하는 사학자들에게 변화의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갈 팡질팡하며 세월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부의 움 직임만 살피는데 길 든 사학자들도 스스로 번식하려 하기보다 어 떻게 하면 현재의 정원을 유지하여 구조조정으로 인한 당장의 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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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만을 피해 볼까 부심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출생인구의

腐心 감소로 이미 정해진 위기 상황에 돌입한 이 시점에서 어떻게 해 야 대학들이 이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의 미래를 이끌어갈 수 있 을까? 그 답을 베트남 대학의 구조에서 찾아보게 된다. 베트남은 다른 공산국가와 비슷하게 거의 모든 학교가 국공립이고, 10%도 못 되는 사립대학은 외국에서 들어온 대학과 사립재단이 설립한 대 학이 있는데, 대부분의 기관과 기업에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국 공립대학 졸업자를 선호하고 있어 입학생을 모집하기가 쉽지 않 다. 다시 말해 사립대학은 무엇인가 특별한 전공이나 역량을 갖추 어 내보내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구조를 살 펴보며 생각하게 되는 것은 우리나라도 이제 교육은 국가가 담당 한다는 원칙을 실현할 시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교육수 요를 사학에 의존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사립대학 중심의 대학교 육을 탈피하여, 정부는 국공립대학의 육성에 집중하고 사학은 자 생력을 키우도록 지원하여, 국공립대학과 사립대학이 경쟁하는 체 계를 갖추는 것이 그 답이 될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현실적으로, 학령인구가 지금의 50% 수준으로 줄어들면 현재 전체 대학의 20% 정도인 국공립대학으로도 50% 가까운 대학 교 육수요를 감당할 수 있어서 더 상 사학에 국민교육의 빚을 지지 않아도 된다. 호치민의 대학들처럼, 지방국립대학의 기숙사 문제 를 해결해주고, 교육여건을 최고 수준으로 만드는 데 대학지원 재 원을 집중하면서, 사학에 대한 간섭을 줄임과 동시에 사립대학이 더 많은 재원을 확충하여 창의적 변화를 이루어 낼 수 있도록 지 원해야 한다. 사학에 완전한 독립권을 주면서, 재단과 대학의 재 정을 통합하여 독자적 자립 운영의 길을 열어주고, 사립대학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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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기부를 장려하며, 대학별 특성에 맞는 전공을 개설하여 학생들 을 그에 맞게 선발하고 교육하게 자율권을 부여함으로써 국립대 학과 경쟁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사립대학 졸업자의 경쟁력은 사학이 책임지고 학생들은 대학의 선택권을 통해 사학의 변신을 유도하면 된다. 지금이 우리나라 사학자들에게 있어서는 소위 골든타임이다. 정 부가 모든 사학의 미래를 책임지지 못할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조 차 모든 것을 통제하고 조정해 가려 하면, 사학들이 독창성과 경 쟁력을 키울 구조조정의 마지막 기회마저 빼앗는 결과를 초래하 여, 아무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지방의 대학들이 우리보다 약한 나라들의 학생들로 채워지고, 충원율이 60%도 안 되는 학교들도 어떻게든 버텨보려 직업학교 수준의 별 의별 전공을 만드는 이 상황을 방치하여 사학이 무너지면 우리나 라의 미래도 없다. 18세기 현대과학의 발전을 선두에서 이끌었던 프랑스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 세계 100대 대학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게 되었 는지, 그 이유를 어디에서 찾고 있는지 살펴보자. 그러면 이제 우 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답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40년 전 우리의 모습에서 우리의 살길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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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맞닥뜨린 갈림길

지금 우리나라를 보면 정말 10년 앞을 못 내다보는 것 같다. 지 금 진행되고 시행되는 모든 사업과 정책이 향후에도 우리의 인구 수, 경제력과 국방력이 현재와 같거나 발전해 갈 것이라는 희망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부분적으로 인구감소에 대비한 정책들이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다. 청년 인구의 지속적 감소에 대 비하여 군대의 규모를 줄이고 전력의 강화를 위한 계획을 세운 다!든지 대학의 구조조정을 통해 입학정원의 수를 줄인다!든지 하 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또한 지난 10여 년 동안 수십조 원을 출산율을 높이는 사업의 명목으로 지출해 오고 있다. 그러나 정말 이런 노력에 대해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절박하고 시급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돈이 제대로 사용되고 성과를 내고 있는지는 전혀 알 길이 없다. 이번 선거에서도 어떤 정당도 이런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다. 이번 COVID19 사태를 지나면서 가장 큰 위기에 빠진 것은 교 육기관이다. 지난 십수년간 학생 수가 줄어드는 것을 가장 앞서 경험하며 체력을 키운 초중고까지는 충격이 덜하겠지만 대학들은 여러 가지 악재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젠 피할 수 없는 선택 의 갈림길에 한 발자국 더 가까이 서 있게 되었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창의성과 생산성을 가진 인재를 공급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대학이 풀어야 할 문제의 핵심은 무엇일까? 한국대학에 닥친 위기는 학령인구의 감소가 첫 번째였다. 지난 7~8년간의 구조조정을 통해 5만여 명의 입학정원을 줄였지만, 여 전히 대학의 입학정원은 50여만 명에 가깝다. 학생 수가 곧 돈이 기에 각 대학마다 학생 수를 지키기 위해 정부가 주문하는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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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따라 했다. 그러나 10년 이내에 입학정원의 30%는 줄어 들어야 하는 것에 대한 대책은 정부도 대학도 없는 것이 현실이 다. 그리고 두 번째는 MOOC만으로 학위를 주는 OnLine 대학의 등장이었다. 10년 전 처음으로 세계적 석학의 강의가 OnLine에 개방되었을 때 많은 이들은 대학의 위기를 예견했다. 이런 강의가 모여 MOOC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고, 한국에서도 이에 대응하는 K-MOOC 사업을 위해 지난 수년 동안 수십억의 예산을 투입했 다. 그러나 행인지 불행인지 지금까지 대면 수업의 전통에 힘입어 총강좌수의 10% 정도만 OnLine에 넘겨주며 버텨올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COVID-19 사태는 OnLine 강좌의 보편화 시대를 여는 촉발제가 되었다. 미국의 몇몇 대도시에서 대학들의 개강을 금지하고 금년 1년을 통째로 OnLine 강좌로 대체하기로 결정하였 다. 우리나라도 봄학기는 OnLine 강의로 대체하기로 했으며 아직 통신망이 열악한 저개발국가들에서도 OnLine 강의를 실시하고 있 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서 대학들은 그동안 애써 무시해 오던 OnLine 강의를 수용하고 그의 교육효과를 높이는 숙제를 하지 않 으면 안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리고 인강(인터넷 강의) 에 익숙한 교육수요자들의 대부분은 평시에도 대학의 OffLine 시 설을 사용하지 않았고 대학에서 제공하는 비교과 과정에도 참여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전혀 불편하지 않다. 그러면서 이제 소속대학 교수들의 강의와 MOOC 강의를 비교하면서 강의 의 질을 평가할 수 있게 되었고, OnLine 강좌의 편의성으로 인해 이를 확대하는 요구가 커질 것이며, 등록금에서 자기들이 사용하 지 않는 서비스만큼의 환불을 요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00% OnLine 강의를 진행하는 Cyber 대학의 등록금이 OffLine 대학의 40%가 못 되는 것을 기준으로 한다면 환불의 요구 규모는 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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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것이다. 이제는 대학과 학생들 사이에서 등록금의 차별책정에 대한 지속적인 줄다리기가 일상화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10년 이 넘게 등록금을 동결해 온 대학의 입장에서 보면 재원의 감소 위협이라는 감당하기 쉽지 않은 또 다른 도전에 부닥친 것이다. 이러한 과제와 도전들 앞에서 미적거리며 선택을 미루어왔던 대 학들은 이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각자가 결정해야 한다. 첫 번째는 대학이 교육할 대상을 정해야 한다. 대학이 제공하는 전공 영역에서 학문할 학생인지 아니면 취업할 학생인지, 리더가 되기 를 원하는 학생인지 아니면 중간 지원 역할을 원하는 학생인지, 정규 학령 층의 학생인지 재교육이나 평생교육을 원하는 학생인 지를 선택해야 한다. 두 번째는 교육하려는 대상에 적합한 전공을 선택하고 투자를 집중해야 한다. 교육의 대상과 개설 전공의 부조 화는 학생들에게는 의미 없는 졸업장을 쥐여주면서 교수들에게는 졸업시킨 학생들이 사회적 역할을 못 하는 것을 못 본 체하며 자 신의 역할에 대한 자괴감만 갖게 할 뿐이다. 대학의 입장에서는 가장 어려운 과제이지만 이 문제의 해결이 대학의 운명을 좌우할 열쇠이다. 세 번째는 교육방법의 선택이다. OnLine 교육과 OffLine 교육의 영역과 역할을 구분해야 한다. OnLine 강좌의 도 입은 이제 불가피하다. 많은 대학이 MOOC와 K-MOOC 수강의 비율을 확대하고 있지만, 실험과 실습이 수반되어야 해서 OffLine 방식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면 OnLine 방식을 수용해야 한다. 네 번째는 대학이 제공해야 할 교육 서비스를 명확히 해야 한다. 대학이 지향하는 목표에 따라서 현장 경험을 지원할 것인 지, 외국어 실력을 강화할 것인지, 유학기회를 확대할 것인지, 사 회봉사로 나눔의 인성을 키워주고 싶은지 등을 정해야 한다. 학생 들이 이 모든 것을 제공하는 지금과 같은 대학교육과 등록금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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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들이 이런 갈림길에서 제대로 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지원 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OnLine 시대에 맞도록 규제를 풀고 대 학이 자신의 몸에 맞는 hardware와 software를 갖추도록 허용하 고 유도해야 한다. 대학이 지금부터 바뀌지 않으면, 우리가 지금 힘들다고 예산을 퍼부으며 계획하고 시행하는 모든 일들은, 지금 의 반으로 줄어들 다음 세대에게 극복할 수 없는 절벽을 만들어 놓을 뿐이다. 이 나라의 미래를 주도적으로 바르게 이끌어갈 사명 이 대학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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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혁신은 지원의 기대와 통제의 욕심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교육이 일반 국민들에게도 시행된 것은 산업혁명 이후 150여 년에 불과하다. 그전까지는 전 세계 인구의 대부분이 농업에 생계 를 의존했기 때문에 교육의 필요성이 없었고 일하지 않아도 되는 지배계층에게만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고 그들이 국가를 이끌었다. 산업혁명을 전후로 도시에 사람들이 몰리고 시민들의 민주 의식 이 확산하면서 일반 국민들에 대한 보편교육이 생겨났다. 교육은 기본적으로 국가의 입장에서는 국가체계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었고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는 교육 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상승시켜 보다 나은 사회적 신분을 확보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일본이 한반도의 강점 시기에 식민 국민인 조선사람에게도 교육시켰던 것은 일본이 조선을 다스리는 데 필 요한 최소한의 것을 조선인들에게 훈련 시키는 것이었고 신분사 회의 틀에서 신음하던 조선인에게는 교육을 통해 신분 상승이 절 실했던 것이었다. 교육에 대한 국가와 국민의 관점은 어느 시대이 고 이와 같은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정부수립 이후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국공립학교가 턱없이 부족했다. 전쟁 후 인구증가와 산업발전으로 교육의 수요 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데 국가는 이를 감당할 재정이 없었다. 특 히 대학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여 70년대 말까지도 대학 진학률은 20%가 채 못 되었다. 당연히 이 수요를 충족시킨 것은 종교적 혹은 교육적 신념을 가진 사학(단체나 개인)들이 나설 수밖에 없 었다. 이들은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을 쏟아서 학교를 세웠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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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을 바쳐 봉사했다. 수요가 워낙 크다 보니 교육이 사업적인 면 에서도 매력적인 것이 되면서 순수한 사명감이 아닌 재산 증식을 위해 교육에 투자하는 경우도 생겨나서 때때로 사회적 문제가 되 기도 했다. 하지만 사학의 헌신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오늘날과 같은 국가적 성과도 이루어 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사학의 설립 권한은 정부의 특권이 되었고 선거 때마다 지역에 대학을 유치하겠다는 공약은 빠지지 않는 단골 메 뉴가 되기도 했었다. 김영삼 정부는 대학설립을 허가제에서 인가 제로 바꾸었고 이때부터 7~80개의 크고 작은 대학들이 지방을 중심으로 설립되면서 우리나라의 사립대학 비율은 80%가 되었고 덕분에 고교 졸업생의 대학 진학률도 최고 83%까지 증가하여 세 계 최고의 고등교육 비율을 자랑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사학, 특히 사립대학들에 대한 통제를 늘려 갔다. 사립대학들의 운영기준을 만들고 교육수준을 유지하겠다고 만든 사립학교법이 몇 번 바뀌면서 사학을 통제하는 강력한 수단 이 되었다. 학교의 규모를 결정하는 입학정원과 학생선발의 권한 만으로도 온갖 통제를 할 수 있었던 정부가 풍성해진 재정으로 사립 초중고의 교사 인건비를 지원하고 대학의 장학금을 지급한 다는 통제의 명분까지 손에 쥐자, 공익성과 투명성을 내세워 사립 학교도 획일적으로 통제하면서 사학의 건학 이념과 관련된 교육 마저 못 하게 하더니 이제는 이사회의 이사선임과 학교의 교원 선발까지 간여하고 나섰다. 21세기 AI가 지배하는 4차산업혁명 시대를 이끌어가야 할 핵심가치는 자율성과 창의성이다. 그런데 이를 교육해야 할 각급 교육기관들이 정부의 강력한 통제로 인해 획일화되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길들어져서 이 사회체계를 유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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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데 필요한 도구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단절하고 교육이 다양한 교육수요를 만족시키면 서 국가가 필요로 하는 미래인재를 길러내는 역할을 감당하게 하 려면 정부도 학교도 과감한 포기를 통해 자기혁신을 이루어 내야 한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부르짖은 교육혁신이 이루어지지 못하 는 이유는 사학은 정부의 지원에 목을 맡겼고 정부는 교육을 통 제하려는 욕심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이 틀을 깨기 위 해서는 정부는 통제를 최소화하고 사학은 정부지원을 포기하는 각오가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핵심적인 몇 가지 변화를 추진해야 한다. 첫 번째는 사학에게 국가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다. 사학 은 국공립학교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서 자 립해야만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학이 학교운영자금 을 정부에서 지원받으려고 하는 순간 정부의 통제를 자초하는 것 이고 자율운영을 포기하는 것이다. 사학은 건학이념에 충실한 개 인과 집단이 자신의 재산이나 동조자들의 후원을 받아 운영해야 한다. 가르치는 사람도 건학이념을 이루어 내기 위해 학교의 수입 범위 내에서 보수를 받고 헌신하겠다는 사람들이 모여야 한다. 그 리고 후원과 헌신으로 국공립대학이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교육 콘텐츠를 만들어 경쟁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없는 사학은 문을 닫아야 한다. 국민교육이란 명분으로 정부지원에 의지하려는 순간 사학은 설립의 정신을 지킬 수 없다. 두 번째는 정부는 국가교육예산을 국공립교육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사용해야 한다. 정부가 교육수요를 감당하지 못해서 사학의 도움을 받아 왔다면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출생률이 줄어 들면서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다. 이런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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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국공립학교의 정원을 늘리고 등록금을 받지 말아야 한다. 그리 고 기숙사도 지원하면서 교육의 질을 파격적으로 높여야 한다. 국 가가 길러야 할 기초학문과 전략산업 분야에 집중하고 다른 영역 은 사학에 넘기면 된다. 그래서 사립대학과 국공립대학의 경쟁체 제를 만들어서 사학이 역량을 총동원하여 교육투자를 늘리도록 유도해야 한다. 사학에 대해 지원을 안 하는 대신 입학정원과 학 생선발권을 돌려주어야 한다. 몇 명을 어떤 학생을 선발하여 무엇 을 가르치든지 사학이 선택하게 해주어서 국공립대학과 경쟁에서 이기는 쪽이 살아남도록 해야 한다. 세 번째는 교육을 기존의 학교라는 플랫폼에서 풀어주어야 한 다. 학교는 학력을 인증해 주는 기관이다. 이제 학력을 누구나 인 증해 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학교가 학력인증이라는 권한을 갖게 되면서 공교육은 체제교육과 이념교육이 지배하고 이를 주 도하기 위한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 이제 정부는 학력인증의 기준 만 제시하고 그 기준을 만족하는 교육은 개인이든 집단이든 맡겨 주어 교육할 수 있게 문을 열어주어야 한다. 2차정보화혁명이 완 성되어 가는 이 시점에 정보의 생성되는 양도, 정보의 유효수명 도, 정보의 습득 방법도 획기적으로 변해 버렸다. 전쟁 후에 채택 되어 유지되고 있는 6-3-3-4제도 하의 공교육 방법과 내용으로 는 이러한 변화를 전혀 수용할 수 없다. 12년의 초중등과정을 10 년으로 단축하고 가르치는 과목의 수도 대폭 줄여야 한다. 공교육 의 교육체계를 따르지 않는 개인교육(홈스쿨 등)과 대안학교도 정식으로 인정해 주어야 한다. 대학도 각 대학의 교수가 자기 강 의를 해야 인정해 줄 것이 아니고 MOOC나 YouTube 등 어떤 자 료를 사용하든 강의 효과를 거둘 방법은 무엇이든 사용할 수 있 도록 통제하지 않아야 한다. 전통적인 4년 교육을 염두에 둔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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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전공-일반선택의 틀을 버리고 대학마다 강점을 가질 수 있는 교육에 치중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교육이 공적 기관의 전유물이 되는 시대는 이미 지나고 있다. 세상은 급변하고 있다. 미래를 이끌어갈 다음 세대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교육혁신은 말로만 하면서 미룰 수 있는 시간이 없 다. 국공립학교와 사학의 역할 분담이 필요하고 공교육과 사교육 의 구분을 없애야 한다. 교육하는 방법도 학력을 인정하는 방법도 교육기관들이 나서서 창의적 변화를 시도할 수 있도록 정부는 교 육을 재단하고 싶은 욕구를 버려야 한다. 교육의 혁신은 사학이 정부에 재정을 의존하려는 기대도 정부가 모든 교육을 통제하려 는 욕심도 버리는 것에서 출발한다. 지금 출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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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평가 30년을 평가하자

대학을 평가하기 시작한 지 30년이 되어간다. 대학이 미래인재 를 육성하는 공공기관이기에 우수한 교육환경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갖추도록 평가하고 지도하는 것은 국가가 할 수 있는 당연 한 일이다. 그동안 이과정을 통해 대부분의 대학이 보편적 기준을 만족해 가고 있는 것은 긍정적인 성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평가 를 통해 대학과 교수, 학생을 규격화해 놓은 결과의 부정적 영향 들도 짚어보아야 한다. 첫 번째가 대학의 규격화에 따른 정체성 상실이다. 우리나라 대 학의 80% 가까이가 사립대학이고, 각각 다양한 설립목적이 있다. 그 목적이 국가의 인재양성 목표를 위배하지 않는다면 그 목적에 따라 학생을 선발하고 가르치고 졸업시킬 수 있게 해줘야 대학들 이 차별화된 인재를 배출하기 위해 경쟁하며 발전할 수 있다. 이 를 인정하지 않고 전국의 모든 대학을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면서 사립대학에 대한 정부지원금의 60% 정도를 상위 20여개 대학이 받는 구조를 고착화해 버렸다. 이제 대학의 관심은 대학 정체성에 맞는 특성화된 인재 육성이 아니라 10년 등록금 동결의 한파를 이겨내고, 대학 구조조정에서 살아남는 것뿐이다. 두 번째는 교수 규격화로 인한 자율성 상실이다. 대학교수는 자 유롭게 마음껏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으로 학문 발전과 인재양성 에 기여한다. 그런 교수들을 대학은 대학 구조조정 평가지표에 따 라 평가한다. 오랫동안 그렇게 평가받는 교수들은 자신의 재임용 과 승급, 연구년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을 만큼만 하게 되고 그 외 에는 관심을 갖지 않게 됐다. 그러다 보니 대학은 교수들의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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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평가점수와 수당으로 유도한다. 우리나라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를 갈등에 빠져 있고, 차세대 먹거리 문제로 고민하는데도 이를 해결할 사상과 기술이 교수들에게서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 렵게 돼버렸다. 최고의 지성집단이 규격에 갇혔다. 세 번째는 학생 규격화로 인한 창의성 상실이다. 대학에 입학하 는 방법이 다양해졌다지만 성적에 맞춰 어느 대학에든 입학하고 나면 서울대학과 동일한, 최소한 유사한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하 고 여전히 주입식 강의를 받고 상대평가로 성적을 받으면서 서열 에 익숙해진다. 평가에서 취업률을 따지니 대학은 학생들의 창의 성을 높일 교육방법을 개발하기보다는 소위 스펙 쌓는 기회를 제 공하는 데 열중하게 되고 학생들은 이를 쫓는다. 이제 대학평가 30년을 평가할 때다. 무엇을 평가하고 결과를 어 떻게 활용해야 규격화를 혁신할 수 있을지 논의해야 한다. 대학은 물리적 여건만큼이나 어떤 교육을 하는지가 중요하다. 대학에 대 한 평가는 공개하되 이를 점수화해서 서열화해서는 안 된다. 더구 나 그 결과를 대학과 학생 지원에 연계시켜서는 안 된다. 학생이 대학을 선택하는 시대에 대학평가 결과의 활용은 학생 몫으로 남 겨야 한다. 그래야 대학 교육과정이 설립목적에 맞게 다양해지고, 교수들이 자유롭게 새로운 세상을 그려낼 수 있으며, 학생들이 창 의적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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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를 대비한 교육체계

우리나라 남성들의 평균수명이 80세를 넘기고 있다. 1970년에 59세가 못 되었는데 50년 사이에 20년 이상이 늘었다. 지금은 평 균수명이 80세니까 1940년께 출생한 사람들은 조금만 관리하면 80대 중반까지 사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다. 평균기대수명이 지 금같이 증가하면 1960년께 출생한 사람들은 평균 90세를, 1980 년께 출생자들은 평균 100세를 살게 될 것이다. 이러한 예측은 우리의 사회체계가 평균수명 100년 시대에 맞추 어 시급하게 변화해야 함을 말해준다. 현재는 평균수명이 60년인 것을 기준으로, 20대 초반까지 사회에서 일할 준비를 해 60세까 지 일하다가 퇴직 후 5~10년을 더 사는 생애주기를 전제로 만든 것이다. 이는 퇴직 후 일한 기간만큼인 30년 이상을 더 살아야 하는 현실에 맞지 않다. 당장에 보험, 연금 등의 사회보장제도에 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고 저출산과 맞물려 생산인력 수급의 차원 에서 정년 문제가 다뤄지고 있지만 교육은 현재의 대학입시 중심 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이런 변화에 대비한 체계전환은 아직 논의조차 못 하고 있다. 현행 초중고, 대학 4년의 교육체계는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구 조 위에 2~3차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기계적 자동화가 이루어진 후기산업사회와 정보사회의 교과과정이 적용된 것이다. 이 체계는 동일직종, 동일직장에서 평생 일하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졌지만, 이제는 대학에서 공부한 전공으로 정년을 맞는 비율이 절반이 되 지 않으며 정년까지 직장을 바꾸는 횟수가 5회(미국은 12회)를 넘기고 있다. 4차산업혁명의 시기에 접어들면서 인공지능이 직종 과 직업의 대변혁을 만들어 내면 직업전환의 횟수는 획기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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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가할 것이고, 건강수명 연장까지를 고려하면 최소한 80세까지 는 생산활동이 가능할 것이기에 교육체계도 이에 맞추어 변화돼 야 한다. 어떻게 바뀌어야 할 것인지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지만, 기본 적으로 정부는 초중고교에서의 기초역량 개발에 집중하고 대학교 육은 완전히 대학에 맡기는 것이다. 초중고의 교육내용은 교육자 치가 되면서 많은 변화가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대학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학교육은 필수가 아니고 선택임을 확실히 하 자. 이제 중등학교까지는 민주시민으로서 살아갈 기본적인 역량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고등학교부터는 기초과목을 강화하면서 한편 으로는 사회진출이 가능하도록 더 다양한 직업교육의 기회를 제 공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가 대학의 정원배정과 재정지원의 권한을 앞세워 대 학의 모형을 설계하고 관리하는 일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대학은 창의성과 독창성 경쟁을 이겨낸 사람들의 집단이다. 스스로 어떤 역할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런 대학 에 짜여진 틀에 맞추는 관료적인 관리기법을 적용하는 일을 계속 한다면 모든 대학들은 한 가지 기준에 맞추어 정형화될 것이고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가 요구하는 시의적절한 교육서비스의 창출 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입학정원, 수업연한, 등록금 책정 등의 모든 권한을 돌려주어야 대학이 교육부의 수준을 넘어 우리 국민 들의 수준으로, 세계의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다. 대학이 자율적 으로 '정년 없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한 교육서비스를 창출 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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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창의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변화의 시기가 되면 꼭 등장하는 단어가 혁신이다. 혁신은 새로 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조직과 제도와 사람을 바꾸는 것이 다. 따라서 혁신의 전제는 정확한 목표의 설정이다. 목표가 그 조 직이 변화에 대응하며 발전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함은 물론이고 자신의 역량에 맞고 실현 가능해야 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번 정부도 출범하자마자 사회전반에 걸친 혁신을 통해 4차산 업혁명시대를 이끌어갈 국가적 역량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부처 별 혁신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기업들도 이에 호응하려고 노력 하고 있지만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다지 눈에 띄는 성과를 거 두는 곳은 없어 보인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경우 혁신을 잘못된 것을 바로 잡 는 감사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예를 들어, 교육부는 정부출범과 함께 ‘사학혁신위원회’를 만들 어 2년 동안 활동한 후 얼마 전에 성과발표회를 가졌다. 사학이 전체대학의 80% 가량을 차지하고 이공계인력의 70%이상을 배출 하는 것을 고려하면, 사학의 혁신은 이공계 역량강화에도 큰 영향 을 끼칠 것이기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내세운 목표는 ‘사학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공공성과 책무성을 요구하는 것’으로 정했다. 그러나 이 위원회가 출범하자 대부분의 언론 보도 타이틀은 ‘사 학 손보기 시작’이었고, 역시나 결과보고서에 포함된 10개의 권고 내용을 보면 사학의 발전을 어떻게 지원하겠다는 것은 거의 없고 어떤 비리를 찾아내서 어떻게 벌주었고 어떻게 감시하도록 제도 를 바꾸라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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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은, 잘못을 바로 잡는 것이 시작이지만, 다음 단계는 그런 잘못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찾아 해결해 주는 것으로 이 어져야 한다. 사학의 예를 이어가면, 사학재단들은 잘못을 지적받 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들을 안고 있다. 대부분의 사학재단들은 학교 설립에 전 재산을 투입해 다른 수 입원이 없다. 근본적으로 매년 대학예산의 2~3% 수준에 해당하 는 법정부담금을 감당할 수 있는 대학재단이 몇이 되지 않으며 거의 대부분의 사학재단이 이 법을 준수할 수 없다. 또한 학생1인당 몇 평이 기준인 교지확보율을 요구하며 교지확 보율이 충족되지 않으면 교지를 처분할 수도 없고, 이 기준을 못 맞추면 국가재정지원사업 등 각종 정부 지원에서 제약을 받는다. 도심에 빌딩만 가진 세계적인 수준의 대학들이 넘쳐나고 교지에 대한 개념이 달라진 4차산업혁명시대에 적합하지 않다. 무엇보다 도 다른 나라와는 달리 재단의 재정이 대학과 분리돼 있어서 학 교부지 내에서는 재단은 어떤 사업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사학 재단에 기부하는 경우 세금혜택이 제한적이어서 기부자가 증여세 를 납부하게 되어있다. 대학의 수익사업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고 등록금도 정부가 통제하고 있다. 더구나 일각에서는 대학의 재정을 책임져야 할 사 학재단 이사의 반을 아무런 책임이 없는 공익이사로 채우게 하겠 다고 한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주어야 한 다. 그리고나서 그 조직이 생명력을 가지고 발전할 수 있는 지원이 따라야 혁신이 가능하다. 사학재단의 생명력은 설립목적의 실현을 독려하고 지원하는 것에 있다. 각 사학들이 자신들만의 특성을 갖는 방법과 목표로 교육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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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이 뒤따라야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다양한 인재의 배출을 통해 혁신이 완성된다. 인구감소로 정원이 축소되거나 폐교되는 대학의 대부분이 사학 일 수밖에 없고, 그럼에도 여전히 4차산업혁명을 이끌어갈 견인 차의 역할을 해주어야 하는 대학의 대부분도 사학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폐교할 수밖에 없는 사학들이 그 시설과 공간을 어떻 게 공익을 위해 사용할 수 있을지 퇴로를 만들어 주고, 정원이 축 소돼도 사학을 유지하려는 경우는 어떻게 특성화시켜서 살려낼 것인지 이끌어 주며, 지속적 역할을 감당해야 할 사학들은 세계유 수의 사학들처럼 수백 년, 천 년을 이어가며 인재육성이라는 시대 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지를 찾아서 지원해 줘야 한다. 다중적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의 어려움을 돌파할 수 있는 방법 은 사회의 모든 분야를 혁신하는 것밖에 없다. 특별히 인재를 육 성하는 사학의 혁신은 공공적 책무를 넘어 미래의 세계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를 지원할 다른 차원의 혁신위원회가 다시 출범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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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분배’ 성공하길

사람이든 제도든 뭔가를 바꾸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더 구나 관련된 사람이 많을수록, 오래될수록 바꾸는 일은 그만큼 더 어려워진다. 대한민국이 독립한 후 가장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지 배한 논리는 ‘잘 살아보세’다. 비록 정권이 바뀌면서 구호는 ‘성장 동력산업’ ‘창조경제’로 바뀌었지만, 항상 초점은 근로자가 힘들어 도 어떻게든 많은 돈을 외국에서 벌어와서 곳간에 쌓아두자는 것 이었다. 그렇게 세워진 경제질서는 소수 가진 자에게 성과가 집중 되게 돼 있으니 이를 바꿔 근로자에게도 애쓴 만큼 분배가 이뤄 지도록 임금을 올려주어 침체한 소비를 놀리고, 그만큼 생산도 늘 려서 ‘모두가 잘 살아보자’라는 새로운 경제질서를 만들자는 것이 현 정부의 착한 생각이다. 수년 전 대학에서 어느 시간강사의 죽음이 큰 이슈 가 됐다.

issue 온 언론이 강사들의 어려운 경제실태를 다루면서 대학이 재정 절 약만 위해 시간강사들을 착취한다고 보도했고, 급기야 국회가 나 서서 소위 시간강사법을 제정했다. ‘시간강사에게도 생계보장이 될 수 있도록 학기당 9시간을 보장하고 연간 고용해야 하며 연구 실도 제공하라’라며 교육부까지 독려하고 나섰다. 모든 대학은 당 황해했다. 특정 과목의 시간강사에게 6시간도 어려운데 9시간을 주라 하고, 그 전공과목이 개설되지 않는 학기에도 9시간 이상을 보장하라는 요구를 법으로 만든 것이다. 이런 요구는 대학이 교수 를 충분히 채용하지 않고 갑산 시간강사를 활용, 돈을 아끼고 있 다는 판단에 근거했을 것이다. 그런데 대학은 물론이고 수혜자여 야 할 시간강사들도 이 법의 시행을 반대해 왔다. 이유는 간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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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 법으로 인해 극히 제한된 수의 인원을 제외하고는 결과적 으로 시간강사 대부분이 설 자리를 빼앗길 것이기 때문이었다. 시 간강사들의 어려움을 해소해 주기 위한 법이었지만 대학의 현실 도, 강사제도의 특별한 취지도 이해하지 못해 5년을 시행되지 못 하다가 결과적으로 빛도 못 보고 이번 국회에서 폐기 운명을 맞 았다.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한 대학의 구조개혁을 지원하겠다고 만든 법안도 마찬가지다. 교육부가 입안해 국회에 올렸지만 4년이 넘 도록 결정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고등교육기관의 80% 가까 이가 사립대학이다. 국가가 담당해야 할 교육을, 개인들이 자기 재산을 투입해 국가가 필요한 인재를 대신 육성해 왔다. 규모에 따라, 설립 목적에 따라 그 역할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 대학 들을 하나의 잣대로 평가해 등급을 나누고 등급이 낮은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에게는 국가장학금 지원을 끊겠다고 한다. 대학이 특정한 기준에 맞추지 못했다고, 학생들이 누려야 할 장학의 권리 를 박탈하는 방법이 옳은 것인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부동산 대책 등 저소득층 을 위한 정책이 시행돼 몇 달 안에 그 성과가 가시화될 것이다. 오랜 기간 만들어진 불균형적 경제운용의 관행을 바꾸는 일이기 에 사용자나 피고용자나 쉽게 적응하기 어려울 것이 틀림없다. 그 어려움의 정도가 우리 사회가 수용할 수 있을 만큼이기를 바란다. 이 시도는 시간강사나 대학과 같이 사회의 특정 일부 계층에 적 용돼 폐기하면 되돌릴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우리 사회 전체를 대 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나타나기 시작한 일부 부작용을 근본적 처방으로 해결해서 고른 분배를 통한 경제발전이라는 착 한 경제질서를 만드는 시도가 반드시 성공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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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헌수생각

세상사에 대한 간섭

2018년 환갑을 앞두고 한참 머리가 아팠다. 엄청난 갈등의 시대를 이겨내고 맞은 환갑인데.. 눈 앞의 현실은 COVID19를 핑계로 나라는 멈추었고 광화문과 서초로 나뉘어 처절한 싸움만 전개되었다. 그래도 세상사를 알만한 나이에 간섭하고 싶은 마음에 온갖 일에 시비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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祖國 대한민국을 향한 소박한 소망 이 소란이 올바른 방향을 찾는 계기가 되기를 나쁜 개는 없다 가을은 아이처럼 철들게 하나 봅니다 돌들이 소리치는 세상 나훈아의 형, 소크라테스에게 묻는다 한국식 사회주의? 한국식 자본주의? 당신의 얼굴은 평안하십니까? 네거티브 신조어의 프레임을 깨자! 이 정부의 드라이브, 運動인가, 改革인가, 실패할 革命인가? 나도 파피용이 되자! 위기 앞에서 그랜드 캐니언을 생각한다. 한 번 더 하면 잘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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祖國 대한민국을 향한 소박한 소망

건강하던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 시름시름 앓다가 드러누웠습니 다. 뛰놀아도 지치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작은 집 울타리가 좁아 동네방네 구석구석 나대지 않는 곳이 없었습니다. 어찌나 재밌게 노는지 온 세계가 흉내 내며 따라 하게 되었고 같은 재미에 빠져 우리의 몸짓하나 흥얼대는 가락 하나에도 열광하게 되었습니다. 그랬던 내 조국이 정권이 바뀜을 거듭하면서 시름시름 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군부독재를 종식하고 나서 들어서기 시작한 정권마 다 아픈 마감으로 교체되면서, 국민들이 승리한 줄 알았는데 결국 은 우리 국민이 서서히 골아가고 있었나 봅니다. 문민 시대를 연 대통령은 개혁 실패로 IMF를 불러드렸고, 뒤를 이은 노벨평화상 의 대통령은 대북 문제와 자녀 문제로 빛이 바랬고, 새 세상을 꿈 꾸던 그다음 대통령도 온갖 정쟁에 휘말려 그 뜻을 제대로 펼칠 기회조차 갖지 못했으며, 기업가 출신 대통령은 광우병 소동에 밀 려 일찍이 권위를 상실해 버렸고, 대를 이은 최초의 여성대통령은 안방에 고립되어 세월호와 함께 침몰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번 에는 우리에게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어 주겠다 고 약속하며 정권을 맡은 사람들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갇혀버린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그 사이 이 나라는 우리 조국의 위대함을 믿는 국민들의 힘으로 지켜져 왔습니다. 우리 기업인들은 온갖 규제와 점점 강해지는 노 조의 압력을 극복하며 국가 경제를 지켜냈습니다. 우리 중소기업 들은 아무리 인력 구하기가 힘들고 인력 빼내 가기가 심해도 끊 임없이 신기술을 개발하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자영업자들은 치솟는 임대료와 재료비, 인건비의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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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3~5명의 고용을 담당해 내며 이 나라의 중산층을 형성해 왔 습니다. 사립대학의 교원들도 지난 12년 동안 임금이 동결된 상 태에서도 연구와 교육을 멈추지 않으며 이 나라 인재 육성에 묵 묵히 매진해 왔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국민들은 우리 조국 대한민 국의 역사가 진보하고 있다는 믿음으로 단 한 가지만을 바라며 새로운 정권을 택해왔습니다. ‘우리는 잘하고 있으니, 당신들끼리 나 제발 그만 싸우고 국민들의 피나는 노력을 방해하지나 말아달 라’는 것이 바로 그 바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모습을 애통하는 심정으로 바라보며, 정권 을 놓고 정쟁을 벌리는 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이 작은 소망 하 나도 못 들어줍니까? 왜 우리 국민을 그냥 두지 못합니까? 왜 매 번 이런 위기를 만들어서, 우리국민들을 이를 버티고 수습해 내는 ‘위대한 국민’으로 만드는 겁니까? 심지어 한 친구는 광화문에, 한 친구는 서초동에 가서 서로 등 돌리게 만드는 겁니까? 어디든 갈 수 있던 대한민국의 여권이 무용지물이 되게 하여 청년들과 기업 인들의 발길을 묶어 놓는 겁니까? 또 우리에게 어떤 세상을 경험 하게 하려 합니까? 이미 우리 국민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한번 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에서 살아왔습니다. 매번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살아가기가 얼마나 버겁다는 것을 왜 모르시나요? 호치민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처지에서 우리 조국 대한민국 을 향해 기도하게 됩니다. 우리 월급이 오르지 않아도 좋습니다. 장사가 좀 덜 되어도 좋습니다. 인력 구하기 좀 어려워도 좋습니 다. 규제만 하고 도와주는 것 없으면서 세금 좀 더 떼어가도 좋습 니다. 바라기는, 그냥 우리국민이 예측가능한 일상생활을 살게 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제 흥에 겨워 세상을 맘대로 휘졌고 다닐 수 있게만 해주기를 원합니다. 국가적 어려움을 당하면 서로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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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이라 말하는 양심있는 정권을 보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저녁 에 친구들이 모여 정치문제로 핏대 올리며 싸우지 않고, 서로 위 로하고 격려하며 술 한 잔 기울이게 해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이렇 게 살면 우리나라의 역사가 진보할 것이라고 믿게 해주기를 간구 합니다. 아직도 우리는 우리 조국 대한민국의 위대함을 믿는 소박 한 민초들의 믿음이 무너지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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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란이 올바른 방향을 찾는 계기가 되기를

조국 대한민국이 조용할 날이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 후 나라를 바로 세우겠다고 내세운 이슈들이 하도 많아 지뢰밭 같다. 다들 초대형 이슈들로 온 국민의 혼을 빼놓고 있다. 검찰개 혁에서 출발해서 북한 핵 문제, 부동산 문제, COVID19 사태, 4대 강의 보 철거 문제, 친일 인사들의 국립묘지 파묘 문제, 수도이

堡 전 문제 등 너무 많아서 열거하기도 힘이 든다. 이들 하나하나에 이유도 있지만 이렇게 소란한 것을 보면 모든 국민이 공감하는 방법으로 해결되고 있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이 이슈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별개인 것 같지만 다 같이 얽혀 있다. 전(前) 정권 심판, 그리고 반미와 반일로 요약된다. 공통적 인 것은 문제해결의 단순한 구도이다. 누군가를 혼내주면 된다. 부동산 문제는 전 정권이 가진자들의 편에 서서 투기를 조장하여 발생한 것이고, 2채 이상을 보유한 사람은 투기 세력이니 재산세 를 매년 부동산가격의 수%를 부과하여 못 견디게 하면 된다. 이 번 홍수로 큰 물난리가 난 것은, 전 정권이 막대한 돈을 허비하면 서 만들어놓은 4대강의 보들이 물을 담고 있다가 넘치는 바람에 발생한 것이니 보를 철거하면 된다. 부동산 문제도 수도권 인구과 밀 문제도 전 정권이 수도권을 집중적으로 개발함으로써 발생한 문제이니 서울을 버리고 세종시로 옮겨가면 다 해결된다. 남북간 의 군사적인 긴장이 계속되는 것은 전 정권의 친미 보수 분자들 前 과 기독교 반공주의자들이 미국과 결탁하여 대결 구도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니 우리 민족이 손을 맞잡고 이를 넘어서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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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모든 문제는 친일 분자들의 후손들이 주도권을 잡고 참여한 전 정권에서 만들어 시행한 정책들로 인해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 니 국립묘지에 누워있는 친일 분자들을 무덤에서 파내버리면 된 다. COVID19가 다시 대유행하게 된 것은 전 정권과 유착된 기독 교 반공주의 세력인 일부 교회가 원인이니 이들 교회를 묶어두면 된다. 과연 이렇게 모든 것을 양분하는 방법으로 이 소란이 잠재워질 까? 한 채에 20억짜리 집을 가진 사람보다 8채에 10억인 사람이 세금을 더 내야 한다면, 정권마다 4대강의 보에 대한 감사결과가 바뀌는 마당에 일단 수천억을 들여 보를 부수었다가 더 큰 물난 리가 난다면, 특정 지역의 부동산가격을 잡기 위해 수도를 옮기겠 다고 전국의 집값만 올려놓아 버린다면, 무엇을 어디까지 한 것이 반민족행위라는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임의 적인 잣대로 친일 분자라고 판정한 사람들을 국립묘지에서 파내 어버렸는데 다시 묻어야 할 상황이 발생하면, 북한과의 화해를 위 해 미국의 간섭은 무조건 배제하고 핵 보유 문제도 덮어둔 채 교 류하고 협력하는 방안만을 추구하다가 북한은 거부하고 UN은 제 재하면, 태생적으로 기독교를 인정하지 않는 공산주의에 대해 기 독교가 반공산주의 사고를 하고 있다고 기독교 교회를 반사회적 인 집단으로 몰아세우면, 이 소란들이 멈추는 것이 아니라 또 다 른 소란들이 계속해서 발생할 것이 너무도 분명하다. 권력을 꿈꾸는 사람은 정권을 잡아서 만들어 보고 싶은 나라의 모습이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기간 동안 아젠다 를

Agenda 제시하고 이들을 해결하고 싶을 것이다. 이를 위해 어떤 이는 정 책을 만들어 10년 20년 후를 기대한다. 어떤 이는 당장 내일 결 과를 보기 위해 혁명을 택한다. 혁명은 희생양이 필요하다.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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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모습은 분명 후자에 속하는 것 같다. 모든 것을 단기간 내 에 다 바꾸어 버리려고 줄달음질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소 란들이 멈추지를 않는다. 어느 정권이든 목표로 하는 세상이 분명 히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세운 목표를 달성하는 것보다 국민들이 생업에만 성실히 종사하면 삶이 더 풍요로워지 게 만드는 것이다. 이 모든 소란의 시작점이 무엇이든 결과가 더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 되려면 이제는 목표를 다시 정해야 한 다. 내가 꿈꾸는 나라가 아닌, 국민들이 행복한 나라가 되어야 한 다. 베트남 혁명을 이끈 호치민의 말이 다시 생각난다. ‘혁명을 하 고도 민중이 여전히 가난하고 불행하다면 그것은 혁명이 아니다.’ 이 소란이 지나면 생활이 더 나아졌다고 생각하는 국민의 수가 더 많아져야 한다. 이 소란이 지나면 삶이 더 나아져서 행복하다 고 느끼는 국민의 수가 더 많아져야 한다. 이 소란이 지나면 우리 의 다음 세대들이 이 나라에서 꿈의 나래를 펼치고 살 수 있어야 한다. 이 소란들이 그렇게 끝나야 한다. 그러려면 이제부터라도 누군가 희생양을 찾아 혼내주는 징벌적 해결하는 방법이 아닌 누 구나 합리적으로 수긍할 수 있는 공감적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목표를 바로 정해야 소란이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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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개는 없다

요즘 즐겨보는 프로그램 중의 하나는 반려견 훈련 전문가인 강 형욱씨가 진행하는 ‘나쁜 개는 없다’이다. 반려동물이 1천만마리 를 넘어서는 시대에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이 반려동물의 행 태를 정확하기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를 전문가가 상담해 주면서 반려견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아 주는 과정을 보 여준다. 이를 즐겨보는 나는 정작 반려동물을 기르지 않는다. 어 려서 물고기도 병아리도 길러보았지만, 생명을 돌보는 일이 쉽지 않았고 또한 죽었을 때 받는 마음의 상처도 작지 않았던 기억 때 문이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 반려견을 기르면서 크고 작은 어려움이 얼 마나 많은지를 확인하게 된다. 간단하게 변을 가리지 못하는 것에 서 자신의 변을 먹는 행동, 자신의 장난감에 집착하는 행동, 자기 주인에게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막는 행동, 모든 것을 입질(무 는 행동)로 표현하는 행동, 자기보다 작은 강아지는 무조건 공격 하는 행동 등 똑같으면서도 매번 다른 경우들이 매 주일 소개되 고 있다. 어떤 경우는 대형견의 공격성이 제어되지 않아 전문가인 진행자를 물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은 늘 좋은 결론으로 끝난다. 반려견 소유자는 이해 하지 못했던 반려견의 행동을 이해하게 되고 반려견도 훈련사의 교육에 따라 행동을 교정함으로써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확신 을 갖게 한다. 프로그램의 제목대로 정말 나쁜 개는 없어 보인다. 문제는 반려견의 소유자들이다. 반려견에 대해 아무런 사전지식도 없고 반려견이 갖게 되는 스트레스를 해소해주기 위해 시간을 내 려 하지도 않는다. 단지 싸고돌면서 자신이 필요한 짧은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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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만족시켜 주기만 하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그나마 무엇인 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이 프로그램에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은 좀 나은 편일 것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반려견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는 공통점이 있다. 훈련사가 시키는 대로 했을 때 칭찬하면서 간식으로 보상하 는 것이다. 반려견이 제 버릇대로 하려 하면 말로 저지하는 것이 아니라 강아지를 막아서는 방법으로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한다. 이 두 가지가 훈련의 기본원칙이다. 이런 방법이 통하는 것은 훈련사 가 반려견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훈련사는 반려견을 두 가지 방법 외에도 통제하고 징계할 방법이 있어서 항상 우위에 있게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반려견은 훈련사에게 대항하여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착한 개가 될 수밖에 없다. 동물농장은 모든 반려견을 행복한 반려견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다. 반려견은 절대로 집의 주인이 될 수 없다. 반려견은 주인이 원하는 대로 행동해야 간식을 먹을 수 있다. 반려견은 자신의 본 성대로 움직이면 제지를 받는다. 그 제지는 반려견이 포기할 때 끝난다. 반려견은 주인의 통제에 순응할 때만 행복할 수 있다. 우리의 모습을 본다. 마치 주인에게 훈련받는 반려견과 같다. 너 희가 몰라서 그렇지 ‘이것이 진실이다’, ‘이것은 문제가 않된다’, ‘이것이 원래 정상이다’, ‘주인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는 주장이 끝없이 이어진다. 우리가 받는 스트레스는 아무 관심이 없다. ‘너 희들은 이렇게 살아야 행복한 거야’라고 지칠 줄 모르고 가르친 다. 때로는 간식도 주고 때로는 여럿이 달려들어 짖지도 못하게 막아선다. 마지막 저항과 의심이 멈출 때까지, 나쁜 개가 없어질 때까지 계속될 기세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서 ‘나쁜 개는 없다’라는 이 프로그램을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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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해서 봐야 할 것인가 하고 고민하게 된다. 훈련사가 반려견의 잘못된 행동을 끝내는 바로잡고야 마는 것을 보면서 나도 결국은 동물농장의 반려견으로 길들여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 싫 어진다. 나는 분명히 집안에 갇혀서 주인의 비유를 맞추는 반려견 이 아닌데 마치 누군가의 반려견이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을 갖 게 되는 것이 싫다. 청년의 시대에 박정희 정권을 살아가면서, 전 두환 정권을 견뎌내면서 이제는 이런 생각을 갖게 되는 시대가 다시 오는 일은 없겠거니 했는데 지금 이 나이에 이 시대에 다시 그런 생각을 또 하고 있다. 잘난 것들의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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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아이처럼 철들게 하나 봅니다

많은 계획을 세우고 시작한 2020년도 별다르게 한 것도 없어 보이는데 벌써 추석까지 지나버렸다. 여름 동안 별 틈도 없이 비 가 오고 태풍이 지나면서 더위를 별로 느끼지 못했는데 아침저녁 으로 선선한 바람이 가을을 느끼게 한다. 더위라는 싸워야 할 대 상이 없어져서 느끼는 평안함과 COVID19라는 위협에 익숙해져서 갖게 되는 편안함이 도전 의식보다는 사색하는 마음을 갖게 만든 다. 아무 생각 없이 TV 채널을 돌리다가 최근 아동문학계의 노벨상 이라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수상자인 백희나 작가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관심사가 아니어서 무슨 상인지도 모르는데 상 이름 의 주인공이 스웨덴 작가로 ‘삐삐’라는 이야기를 쓴 사람이라 한 다. 놀란 것은 상금이 6억 원을 넘고 스웨덴 정부의 지원금이라 는 것이다. 대단한 상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자세히 들어보니 ‘구 름빵’이라는 일종의 그림책인데 그 책이 소위 대박을 터트리면서 스타작가가 된 것이라 했다. ‘구름빵’의 내용을 찾아보니 이렇다. “어느 비 오는 날 아침, 작은 구름이 나뭇가지에 걸려있습니다. 고양이 남매는 구름을 엄마에게 가져가고 엄마는 그 구름을 반죽 해서 빵을 굽습니다. 노릇노릇 잘 익은 구름빵을 먹은 엄마와 아 이들은 구름처럼 두둥실 떠오릅니다.” 인터뷰 도중에 이과 출신인데 어떻게 아동문학을 쓰게 되었냐는 질문에 답한 내용이 마음에 와닿았다.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것 을 보면 마음이 안정된다. 제가 느끼는 아이들의 세상은 안전하 다. 권선징악이 지켜지고 평화롭고 아름답다. 예쁘다. 내가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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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머물고 싶은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예쁜 것, 평화롭고 아 름다운 것을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아니 틀림없이 보았을 텐데 그렇게 느끼는 마음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권선징악이 지켜져야 평화롭고 아름다운데 권선징악을 믿지 않게 된 것이 어 제오늘의 일이 아닌 아주 오래된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사는 세 상에서 권선징악을 기대하고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잘못하 고 살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 은 아닌지 생각하게 만든다. 가을이 되면서 떠나가는 시간과 함께 떠나가는 것들이 많아진 다. 오랜 시간 같이하던 어른들이 세상을 떠나기도 하고 함께 열 정을 가지고 학교를 걱정하며 열심히 일하던 동료들이 정년으로 학교를 떠나고 알량한 자존심으로 만나기를 주저하다가 좋은 친 구들이 곁을 떠나 있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한다. 백희나 작가는 ‘알사탕’이라는 동화의 주인공인 ‘동동이’가 떨어지는 낙엽을 보는 그의 표정에서 독자들이 “할머니도 떠나서 안 계시는데 낙엽마저 도 떠나는구나”라는 슬픈 마음과 함께 “그래도, 동동아, 너에게는 아직 가장 소중한 것이 남아있다. 앞으로 살아갈 시간이.”라는 격 려의 마음을 갖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가을은 왠지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흔히들 말하듯이 지금이 나에게는 가장 긴 시간이 남아있 는 순간이다.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이 넘치는 예쁜 세상을 만들면 서 살 수 있는 시간이 남아있다. 잘못하고도 가진 권력을 이용하 여 막무가내로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지 못하는 권선징악이 지켜 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시간은 있다. 가을 동안 그런 세 상을 꿈꾸며 기도하고 싶다. 가을은 아이처럼 철들게 만드는 마법 이 있나 보다.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를 떠 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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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들이 소리치는 세상

SNS가 이제 세상과 소통하는 제일 빠른 길이 되었음을 신문과 방송을 보면서 확인하고 있다. 신문이든 방송이든 누구누구가 SNS에 뭐라고 썼다는 이야기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적당히 유 명 인사가 시사적인 발언을 했거나 그런 이야기할 사람이 아닌데 그런 글을 올렸다면 바로 일간지 의 한 켠에 옮겨진다. 미국

日刊紙 대통령도 우리나라 대통령도 SNS를 자주 이용하다 보니 그럴만 하다고 생각하다가도 신문지면이 그렇게 채워지는 것을 보면서는 요즘 기자들은 참 쉽게 일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자기 그룹들 끼리 나누는 이야기라고 치부하고 말면 될 이야기들도 퍼다 올려 서 쓸데없이 그런 사람들이 마치 뭔가 비중 있는 사람인 양 만들 어 주는 것도 꼴사납게 느껴진다. 자기 신문 방송에서 하고 싶은 말을 하니 그렇게 마구 퍼 날라 주겠지만 그렇다고 심지어 대통 령 후보에 이름을 올려놓은 것을 보면 한심하기까지 하다. 깊이 있게 고민하고 연구한 내용은 사실 시사성도 떨어지고 신 문 기사로 내기에는 분량도 많다. 뉴스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신 문의 논설도 이런저런 고려를 하고 쓰는 글이라 예전처럼 독자들 의 이목을 끌지 못한다. 그러나 SNS에 올라오는 수백 자 정도의 짧은 글은 소개하기도 좋고 시사성도 있어서 유명인의 글이거나 등 긁는 소리해 주는 글이 있으면 여과 없이 뽑아다 옮긴다. 그러 다 보니 묵직한 글은 소개되기 어렵고 읽히지도 않는다. 더구나 요즘처럼 글이 자기진영을 공격한다고 생각되면 글쓴이의 개인신 상을 공개하고 인터넷상에서 무차별로 공격할 뿐 아니라 문자 테 러를 퍼부어 생활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만든다. 이런 꼴을 당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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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습을 보면서 어지간한 사람은 공개적인 글을 쓰는 것을 포기하 고 만다. 입을 다물고 입을 연다고 하더라도 매가리가 없다. 소위 말하는 자기검열의 시대가 된 것이다. 인터넷 호위무사를 거느리지 못한 경우는 글을 쓰면서도 그 내용이 공격받을 소지가 있는지를 스스로 검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건드려서는 안 되는 성역이 만들어진다. 정작 깊이 있는 문제의 지적과 대안 의 제시가 있어야 할 공간이 SNS 투사들 사이의 극렬한 싸움터 로 바뀌고 말았다. 심지어는 정치인들조차도 공론의 장을 만들기 보다 SNS를 통해 자기 이야기만 한다. 점점 더 자극적이고 극단 적인 용어로 성역을 옹호하거나 공격하는 글이어야 살아남는다. 틀린 것도 맞다고, 맞는 것도 틀렸다는 주장을 끝도 없이 내뱉으 며 듣는 사람들을 지쳐서 포기하게 만든다. 마땅히 나서야 해야 할 사람들이 말을 하지 않으니 돌들이 날아다닌다. 그리고 양쪽 끝에서 던지는 돌들은 중간에 서 있는 사람들 위로 무차별적으로 떨어진다. ‘돌들이 소리칠 것이다!’는 말은 원래 성경에 나오는 말이다. 예 수의 놀라운 행적을 보고 제자들이 하나님을 찬양하자 이를 못마 땅하게 생각한 바리세인

들이 제자들을 책망하자 예수가

Pharisees ‘당연한 일을 하는 제자들을 그냥 두라. 그들이 하지 않으면 돌들 이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지금이 그렇다. 정제된 언어 로 논리적인주장을 펼치며 여론을 이끌어야 할 사람들이 그리하 지 않으니, 돌들이 나서서 정제되지 않은 천박한 언어로 비이성적 인 주장을 쏟아 내고 있는 것이다. 이를 듣는 국민들은 피곤하면 서도 점점 그런 말들에 익숙해진다. 같이 거칠고 비이성적으로 되 어간다. 점점 더 거칠고 사나운 말들을 기대하며 부추긴다. 이런 상황의 책임은 SNS의 글을 퍼다 나르며 지면을 채우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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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른 기존 언론에 있다. 아니 이런 언론에 품위 있는 글을 쓰는 것을 포기한 사람들에게 있다. 스스로 정론을 버리고 자극을 선택 하고 있는 언론의 각성이 없이는 해결이 어렵다. 이번 COVID19 사태 동안 ‘유흥업소 방문자가 600만이다’라는 통계가 나오니까 모든 언론이 이렇게 정신 못 차린 사람들이 많다고 추임새를 넣 었다. 어느 한 곳도 ‘그런 통계를 만들면서 개인정보를 불법적으 로 사용한 소지가 있어 보인다. 유흥업소 출입이 잘못된 것이면 영업을 정지해야지 그곳을 다녀온 것을 비난하는 것은 잘못되었 다’는 지적을 아무도 하지 않았다. 서울시장이 나서서 ‘어느 날 몇 시에 어느 업소를 다녀온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다 가지고 있으니 그 사람들은 가서 감염검사를 받아라’고 했을 때 그것은 국민들을 협박하는 것이라는 얘기를 어느 언론에서도 지적하지 않았다. 떨어지는 돌들의 소리에 국민의 귀가 막히기 전에 공을 들여서 기사를 만들어라. 닫힌 입들이 입을 열어 이야기하게 만들어라. 그래야 돌들이 조용히 물 아래로 가라앉고 나라가 바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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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의 형, 소크라테스에게 묻는다

기원전 400년대를 살면서 ‘너 자신을 알라’고 설파했던 고대 그 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가황이라 불리는 나훈아에 의해 소 환되었다. 나훈아라는 인물이 가지는 특별한 무게로 인해 그가 소 크라테스를 불러낸 이유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정치권에서도 정파적인 논쟁에 그의 노래를 끌어다 써먹고 있다. 테스형에 대해 단순한 가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나훈아가 소크라테스를 불러낸 시점이 절묘하기 때문인 것 같다. 소크라테스가 살던 시절의 그리스는 사회적 혼란이 극심했던 때 였다. 아테네가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패해서 국운은 기울어 가 고 있었고 귀족의 권리를 지키려는 보수와 개인주의적인 진보가 끊임없이 다투고 있어서 국민들은 불안해했다. 탈레스에서 시작된 자연철학은 이런 불안에 답을 주지 못했고 대신 무엇이든 변론을 통해 거짓도 진실로 만들 수 있다는 궤변론자 들이 판을 치

Sophist 면서 정의가 무엇인지 모를 사상적 혼란에 빠져 있었다. 이때 소 크라테스는 이들 모두를 비판하면서 보편타당한 진리에 기반한 이상주의적인 시대정신을 주장했고, 청년들에게 정의와 절제와 용 기 그리고 경건의 가치를 가르치면서 지혜를 깨닫는 삶을 살라고 가르쳤다. 아테네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런 그가 기득권을 누리 던 귀족과 소피스트 모두에게 배척당했고 이상한 사상을 청년들 에게 가르쳤다는 죄목으로 독배를 마시고 죽게 된다. 소크라테스 가 죽고 60년이 지나면서 그리스는 마케도니아에 흡수된다. 이러다 보니 나훈아가 지금의 우리나라 상황을 소크라테스의 시 대 상황에 빗대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지금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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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나라의 모습을 보면 이런 빗댐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아 보인다. 정체성을 상실한 가짜 보수와 가짜 진보가 끝이 보이지 않는 갈 등을 빚고 있고, 여기에 편승한 세칭 먹물들이 미래에 대한 합리 적 논의를 진행하는 것보다 진영논리의 포로가 되어 자기 진영에 서 벌인 일은 분명한 잘못도 무조건 정당하다고 우기고 있다. 궤 변이 판치는 세상이 소크라테스의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모습을 일반 평민들이 보면 정말 믿고 의지할 곳이 없고, 오랜 전 쟁 이후 피폐해진 아테네의 생활 모습을 떠올리며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세상이 왜 이러느냐고 묻고 싶어질 것 같다. 나훈아는 일반 평민들을 대신해서 단도직입적으로 ‘세상이 왜 이리 힘드냐?’고 묻는다. 그는 아무리 크게 웃어 보아도 허탈하고 삶의 고단함만이 아픔으로 밀려오는 것을 느낀다. 그는 오늘 하루 살아있음이 고맙기는 하지만 오늘 같은 삶을 똑같이 살아야 하는 내일이 다시 온다는 것이 두렵다고 말한다. 이런 답답함에 답해주 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답을 기대할 수 없다. 누군가 답을 주면 좋겠는데 주변을 아무리 살펴봐도 묻고 싶은 사람조차 안 보인다. 그러다가 소크라테스를 불러낸다. '테스형, 당신은 예 수, 석가모니, 공자와 함께 4대 성인이라 불리는 사람이니 누구보 다 이런 답답함을 잘 알지 않겠소? 그러니 뭔가 답을 좀 줘보시 오.' 소크라테스가 답할 리 없다는 것을 나훈아가 모를 리가 없다. 천국에나 올라가 봐야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것도 나훈 아는 잘 알고 있기에 그의 노랫말에 적어놓았다. 그냥 소크라테스 의 삶을 통해 남겨놓은 발자취에서 그 답을 같이 찾아보자는 뜻 이라 생각된다. 소크라테스는 그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무지를 아는 것이 곧 앎의 시작이다. 반성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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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왜 이래?'라는 질문에 답할 책임이 있는 자들이여, '너 자 신을 알라! 세상을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만들겠다는 교만을 버 리라. 내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세상에 자유민들을 가두려 하 지 마라. 그것은 무지의 소치 니라! 너의 주장으로 말미암아

所致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반성하지 못하면 네가 세우려는 가 치는 의미가 없다.' 테스형의 답이다. 나훈아의 또 다른 질문인 '사랑은 왜 이래?'라는 질문은 악처를 둔 소크라테스에게는 너무나 아픈 상처가 아닐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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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사회주의? 한국식 자본주의?

70년대에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박정희 대통령 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좋은 기억도 나쁜 기억도 함께 있 다. 그는 자신의 철학을 많은 말들로 남겼다. 그중에서 요즈음 이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자주 떠오르는 말이 ‘한국식 민 주주의’이다. 그는 우리 국민들이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국민 들의 패배주의적인 사고를 ‘우리는 할 수 있다’라는 적극적인 것 으로 바꾸어야 하고 목표를 정하고 일부의 반대가 있더라도 일사 불란하게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군인 출신 인사 들을 중용했고 ‘유신’이란 이름으로 종신집권의 길까지 만들어 놓 았다. 자신이 아니면 정해놓은 목표가 중간에서 무산되고 말 것이 란 믿음에서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방법이 민주적이지 않 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의 목표를 달성하는 일이 민주적 방법만 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만들어 낸 말이 ‘한국식 민주주의’이다. 최소한 자신의 방법이 완전한 민주주의가 아닌 것을 스스로 인정했기에 만들어 낸 말이다. 1972년 ‘10월 유신’ 당시 우리의 국민소득은 300달러 수준이었 다. 그는 ‘한국식 민주주의’를 통해 이루려는 국가의 모습과 국민 의 생활수준을 간단하게 정리해서 설명했다.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양보하는 대신 ‘1980년도 국민소득 1천 달러’, ‘각 가정마다 자가 용 1대씩’, 그리고 ‘서울에서 아침 먹고 부산에서 점심 먹고 다시 서울에서 저녁 먹는 시대’를 열어주겠다고 분명한 목표를 제시했 다. 1980년도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은 약속보다 훨씬 많은 1,700 달러를 넘겼다. 서울과 부산을 하루에 왕복하게 되었다. 국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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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용을 가질 수 있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자본주의의 원칙이 작 동하는 사회를 만들었다. 그는 ‘한국식 민주주의’를 시행하면서 생 겨난 죄과를 자신이 제시한 목표 달성으로 갚을 수 있다고 생각 했다. 그래서 그에 대한 평가는 다면적일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느 시절보다 민주적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 만 자본주의에서는 벗어나고 있다. 대통령도 나라와 국민 걱정뿐 이다. 나라가 성장했다고는 하지만 성장의 혜택을 누린 것은 오직 10~30%의 소수 계층뿐이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소외되었거나 혜 택을 누리지 못했는데 공정한 사회가 되려면 이들에 대한 지원을 국가가 감당해야 한다고 믿는다. 가진 자는 더 많이 내놓아야 하 고 그것으로 많은 이들이 더 많은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다. 그래서 좀 가진 것처럼 보이는 계층의 것을 가져가는 것을 조 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이러한 정책들이 수립되고 법제화되어 가 고 있다. 기업에게도, 사학재단에게도 공공성의 의무를 강화한다. 사학재단의 개방 이사가 현재 1/4인데 이를 1/2로 늘리라 한다. 사립학교의 교장과 총장을 학내 교직원들이 추천한 두 사람 중에 서 선택하라고 한다. 국가의 기금으로 투자한 민간기업에서 주식 의결권을 행사하겠다면 이제는 민간기업의 대표도 국가나 사원들 이 선출하는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이처럼 국가가 생산을 책임지 고 분배도 책임지는 나라를 사회주의국가라고 한다. 그런데 왜 지 금의 집권자는 자신이 추구하는 나라의 형태가 ‘한국식 사회주의’ 국가라고 떳떳하게 말하지 못할까? 박정희만 못하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체제가 민주주의가 아니었음을 알고 있었고 민주주의라고 주장하기에는 부끄러운 줄 알았다. 그래서 그는 ‘한국식 민주주의’라는 말로 둘러댔다. 그러 나 지금의 집권층은 자신들이 만들려는 국가의 모습이 사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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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국가체계라는 것을 구태여 숨기려 한다. 누가 봐도 모든 기관 을, 공공성을 내세워 개인의 재산권을 제약하겠다고 하는 것은 사 회주의 국가인데 자본주의국가라는 말을 버리지 못한다. 소외되는 계층이 없이 모두가 복지의 혜택을 누리는 나라, 모두 가 평등하고 기회가 균등한 나라, 자신의 역량에 따라 얼마든지 계층 간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나라를 바라지 않는 국민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면 가진 자들도 내 것을 빼앗긴다는 생각을 갖지 않고 기꺼이 내놓을 것 이다. 세금을 걷기 위해 집값을 올리는 정책을 쓰고 공시지가를 올리는 치사한 방법을 쓰지 않아도 된다. 개인 재산권을 유보하기 때문에 온전한 자본주의는 아니지만 의적 일지매와 홍길동이 꿈 꾸었던 모두가 복지의 측면에서 평등한 ‘한국식 사회주의’, 혹시 사회주의가 정 내놓고 말하기 힘들면 ‘한국식 자본주의’를 주창하 는 것이 맞다. 박정희처럼 무엇을 희생해서 무엇을 얻으려 하는지 명확하게라도 하자. 그래야 국민들도 헷갈리지 않고 선택할 수 있 다. 좀 떳떳하게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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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얼굴은 평안하십니까?

얼굴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링컨이 젊었던 시절 친구가 추천서를 부탁하러 왔다. 링컨은 그 친구의 부탁을 받은 후 한참 생각하다가 이를 거절했다. 친구는 섭섭한 마음에 거절한 이유를 묻자, 링컨의 대답은 이러했다. “사람은 나 이 40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네!” 참으로 많은 의미 를 담고 있다. 얼굴은 그 주인의 인생 역정을 다 보여준다고 한다. ‘최후의 만 찬’이란 그림에서 가롯유다의 모델이 되었다는 어느 죄수가 어렸 을 때는 ‘아기예수’의 모델이었다는 얘기도 유명한 가십거리이다. 고단하고 지치고 힘든 삶을 살았어도 마음이 평안했던 사람의 얼 굴은 평안하지만 아무리 높은 직책을 가지고 좋은 집에서 살았어 도 마음이 불편했던 사람의 얼굴에는 그 표시가 그대로 나타난다. 나만 하더라도 8년 전 총장이 되기 전의 사진과 4년 전 총장을 그만둘 때의 사진을 지금의 얼굴과 비교해 보면 내가 저랬었나 싶다. 총장을 마칠 때쯤의 사진을 보면 웃어도 예쁘지 않다. 무엇 인가 탐욕스러워 보이기까지 한 것도 있다. 그런데 다행히 지금 내 얼굴을 보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평안해 보인다!’ 혹은 ‘자유로 워 보인다!’고 말해주고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얼굴 이야기에 몇 사람이 떠오른다. 정치판에서 한마디 하면 논 란의 중심에 서는 Y씨가 있다. 학생 시절 민주화운동을 했고 공 부도 많이 해서 여러모로 탁월한 사람이지만 말하는 모습이 별로 예쁘지 않아서 호감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 사람을 다시 보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어느 방송프로그램에 나와서 자신이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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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를 그만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을 보고 나서이다. 그는 그 이유 를 ‘정치판에 뛰어들어 10여 년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언론과 방 송에 비친 자신의 얼굴 사진들을 보면 한 장도 기쁜 모습이 없더 라. 그래서 그만두었다!’고 설명했다. 이 말이 너무도 마음에 와닿 았고 그 사람의 얼굴이 정말 많이 평안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 었다. 물론 그 후에 변해 버린 지금의 얼굴에 대해서는 또 다른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깝다. 오늘 뉴스에 어느 검사가 C장관이 젊은 시절 김대중 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올려놓고 ‘채시라 닮았다!’는 글을 올린 것이 화제가 되었다. 정말 언 듯 보니 그래 보이기도 했다. 젊고 자신감에 찬 활기찬 얼굴이 보기 좋았다. 그런데 지금의 얼굴을 보면 스스로 어떤 생각을 할까? 다른 사람들과 다투고 정죄하고 스스로의 신 념에 가득 차서 때로는 조소하고 때로는 화내는 사진들로 각종 매체에 온통 도배되고 있는 자신의 얼굴을 보면 Y 씨와 같은 생 각을 할까? 다시 채시라를 닮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질까?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 거의 매일 볼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얼굴이 있다.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얼굴이다. 그의 얼굴은 나라를 대표하고 그의 표정에 따라 국민들의 마음이 평안해지기 도 하고 불편해지기도 한다. 그의 얼굴표정이 국민들의 마음 상태 와 같으면 국민들은 ‘대통령이 국민들의 마음을 알고 있구나.’하고 믿게 되고 국민들의 생각이나 감정과 동떨어져 있으면 ‘대통령이 딴 세상을 살고 있구나.’라고 불안해하게 된다. 비교할 수 없지만 대학의 총장만 해도 하루에 수십 번씩 나도 모르게 ‘근심하고 걱 정하는 마음’도 ‘섭섭하고 아쉬워하는 마음’도 ‘기쁘고 즐겁게 생 각하는 마음’도 스쳐 지나가며 얼굴의 모습이 망가지는데 한 나라 의 대통령이야 오죽 할 것인가 생각하지만 우리 대통령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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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 하고 있을지 궁금하기는 할까? 궁금해진다. 지난 주말 친구 딸의 결혼 주례를 부탁받고 제일 먼저 생각이 든 것은 내 얼굴이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는 젊은 부부에게 어떻 게 비칠까 하는 스스로의 질문이었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 내 얼 굴의 모습과 표정에서 신혼부부가 무엇을 읽을까? 다시 질문했다. 내가 어떤 얼굴 모습과 표정을 보여주어야 할까? 최소한 주례사 에 걸맞은 정도는 되어야 할 터인데…. 다행히 코로나 덕분에 주 례를 마스크를 쓰고 해서 이런 고민은 일거에 해결되었지만, 다시 생각해 본다. 나는 이제라도 어떤 얼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나? 소망해 본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흔적으로 남은 주름 살과 검버섯이야 어찌할 수 없지만, 누구에게도 평안하고 믿고 싶 고 따라가고 싶은 얼굴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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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거티브 신조어의 프레임을 깨자!

Negative

우리는 매년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참으로 어렵다.’ 예전에는 그 말이 그냥 의례적으로 하는 말이었는데 금년에는 그렇지 않고 진심을 담아 공감하게 된다. 주위에서 조그만 가게를 가족 단위로 운영하는 친구들은 물론이고 제법 규모 있는 제조· 업체를 운영하 는 친구들도 거의 자포자기 상황으로 임대료 빚을 쌓아가는 것을 보면서 매달 월급 받으며 안정적 생활을 하는 것이 미안할 정도 이다. 특별히 청년들의 상황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청년실업률 (15~29세)은 2009년 8.0%였는데 2018년 8.9%였다가 금년에는 10.4%로 증가하고 있다. 인생의 꿈을 펼치기 시작한 청년들에게 는 어려움이 아니고 벼랑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된다. 사실 청년들은 지금 같은 어려움을 당하기 훨씬 전부터도 세상 에 발을 내딛기가 힘들었다. 정보화시대를 겪으면서 경제의 구조 가 바뀌어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는 성장의 시대를 20년도 넘게 경험하고 있다. 부동산값은 해마다 뛰었다. 이에 따라 청년세대는 우울했다. 청년들의 상황을 단적으로 표현해 주는 신조어 들

新造語 이 등장한 것도 이 시기이다. 연애와 결혼 그리고 출산을 포기했 다는 ‘3포세대’(2011년 등장)를 넘어 다 포기했다는 의미의 ‘N포 세대’라는 말이 생겼다. 그리고 ‘갑질’(2013년 등장)이란 신조어 로 가진 자들의 횡포를 고발하더니, 이 나라가 청년이 살기에는 지옥같이 되었다는 ‘헬(Hell) 조선’(2014년 유행)이란 말도 생겼 다. 돈 없고 연줄이 없으면 출세하기 힘들다는 의미의 ‘흙수 저’(2015년 유행)도 등장했다. 그런데 이런 신조어들이 청년세대의 어려움을 표현하는 데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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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않고 청년들의 마음을 지배했다. 신조어는 간결하고 전달력이 뛰어나다. 그래서 쉽게 공감을 얻고 모든 사람의 생각을 지배하게 된다. 이 당시 만들어졌던 신조어들은 한결같이 ‘우리나라 청년들 은 참으로 불쌍하다. 이렇게 만든 기득권층은 악 이다.’라고 생각

惡 하게 만들었다. 청년들에게 무엇인가 잘 안되면 그 책임을 떠넘길 확실한 유형 의 대상을 만들어 준 것이다. 이런 생각이 청년세 有形 대를 지배하면서 자신의 역량과 상관없이 더 나은 일자리를 원하 게 되고 그렇지 못하면 차라리 부모에 의지하며 취업을 포기했다. 이로 인해 중소기업은 일할 사람을 찾지 못해 속이 탔고 공식적 집계에서 2008년 57만 명이던 외국인 근로자는 2019년 133만 명을 훌쩍 넘기며 계속 증가하는 기형적인 현상이 심화되었고 신 조어의 주술대로 청년들이 취업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하여 지금 우리는 출산율 0.9 시대를 살고 있다. 최근에는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양상이 다른 신조어들이 등 장했다. 청년세대가 처한 어려움을 표현하던 이전의 신조어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마치 우리나라가 최고 호황인 것으로 착각할 만한 것들이다. 있는 것은 다 쓰는 재미를 느끼며 살자는 ‘탕진 잼’, 한 번뿐인 인생인데 현재를 즐기자는 ‘욜로 ’, 가진 돈을 YOLO 막 쓰면서 자랑하는 ‘플렉스’가 주류이다. 무엇인가 어려운 현실의 책임을 떠넘길 대상을 찾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역으로 ‘플렉스 ’가 될 수 없으면 그냥 다 써버리고 살자, 열심히 일해 봐야 Flex 어차피 안 될 것이라는 자포자기하자는 것으로도 느껴진다. 염려 되는 것은 이런 신조어가 또다시 청년세대의 마음을 지배하면 어 떤 미래가 우리에게 닥쳐올까? 이런 부정적인 신조어들이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라 생각하진 않는다. 시대가 그러니 누군가가 사용한 용어를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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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받아쓰면서 불길처럼 전파되었을 것으로 믿는다. 하지만 의도 했든 하지 않았든 신조어들은 청년들을 단단한 프레임 안에 가두 어버렸다. 자신도 모르게 내 책임인 줄 알면서도 나는 책임이 없 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중사고

’에 익숙해지게 만

二重思考 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상황을 무조건 이해하고 도와 주면 내 편이고 조금이라도 그렇지 않으면 적으로 생각하는 이분 법적사고 二分法的思考

의 함정에 빠지게 만들었다. 이 함정에 빠지 면 정의도 진실도 의미가 없다. 내 편과 내 편만 있을 뿐이다. 어 른들의 생각도 ‘라떼'(내가 너만 했을 때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꼰 대의 의미)라는 한마디로 희화화시켜 버린다. 밥상머리 교육이란 말은 이미 사라져 버렸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일본도 호황기를 지나며 정규직은 포기하고 자유로운 아르바이트나 하자는 '프리터 ', 어려운 일 하느니 그냥 부모 품에서 편하게 살자는 '

フリーター 니트 족', 구직도 세상에 나가는 것도 싫다는 '고립무직자 ニート (SNEP)' 등의 신조어가 결국은 일본의 청년들을 무기력의 함정 에 빠뜨려 버렸고 경제문제의 책임을 다른 나라에 돌리는 극우주 의가 판치게 만들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도 젊음은 힘들다. 모든 청년에게 미래 는 항상 불완전 Incomplete

하고 불확정적

이기 때문이다. 이

Ambiguity 말은 반대로 누구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 이기도 하다. 그래서 청년들이 기회를 잡고 성공하기 위해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며 넘어져도 새로운 꿈을 꾸며 노력하게 되는 하는 것이다. 이렇게 청년이 자신의 미래를 자신의 책임으로 생각하며 정당한 성공을 인정하고 자신의 능력만큼 얻은 것을 당연하게 받 아들이는 사회는 발전한다. 하지만 청년들이 자신의 만족하지 못 하는 상황에 대한 책임을 떠넘길 무엇인가 대상을 찾는 순간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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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의 미래도 사회의 발전도 사라진다. 지금의 상황이 어렵다. 그러나 미래의 주인공인 청년들을 실패 와 좌절과 포기의 신조어 프레임에 가두려 하면 우리의 미래마저 사라진다. 우리 청년들이 이런 프레임을 깨고 나와야 우리의 미래 에 희망이 있다. 이제라도 편 가르고 힘자랑하며 오래오래 기득권 을 누리려고 벌려놓은 굿판을 거두고 청년들이 그들을 가두고 있 는 네거티브 프레임을 깨고 나와서 어디에도 갇히지 않고 자유로 운 사고로 자신들의 미래를 설계하고 도전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자. 그것이 앞선 세대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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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부의 드라이브 , 운동 인가, 개혁 인가, 실패할 혁명 인가?

改革

Drive

革命

運動

역사적 전환이 이루어진 때에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 사 람들이 그 가치에 순응하며 생활에 적용하는 시대정신이 있었다. 시대정신이 생겨나는 과정에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하나는 그 전환을 만들어 내는 사건들이 연속해서 발생하고 그 사건들로 인 해 사람들의 생각이 모아지면서 시대정신이 생겨난다. 다른 경우 는 특정인이나 세력이 시대의 답답함을 타파할 목적으로 시대정 신을 제시하고 이를 실천하는 사건들을 발생시키면서 변환을 만 들어 내기도 한다. 개혁의 과격한 형태가 혁명이다. 개혁을 광범 위한 영역에서 힘으로 한순간에 만들어 낸다. 전자의 대표적인 예가 르네상스

이다. 르네상스는 13

Renaissance 세기부터 무역과 경공업으로 도시의 자본이 충분히 여유로워져서 도시민들이 무엇인가 창작활동을 할 여력이 생겨났고 부자들은 어디엔가 투자할 대상이 필요했다. 이런 시점에 14세기와 15세기 에 걸쳐 아랍을 통해 전달된 고대 그리스 문화유산들이 인간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음에 자극받아 예술작품의 중심을 성경의 이야기에서 인간으로 돌려놓는 작가들이 등장하게 되었고 자본가 들이 이런 작가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 런 변화가 과학기술과 사회 전반에 널리 수용되고 보편화되면서 사람들의 가치 기준을 바꾸어 놓았다. 후자의 대표적인 예는 1517년에 독일에서 일어난 종교개혁이다. 당시 절대 권력을 가졌던 교회가 비대해지고 자신의 체제를 유지 하기 위해 신앙의 본질을 훼손하며 사람들을 착취하던 상황을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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떻게 바로잡을 것인지를 고민하던 마틴 루터

가 ‘신앙

Martin Luther 의 본질로 돌아가서 인간을 교회의 속박에서 풀어주자’는 시대정 신을 제시했다. 그는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구체적인 사건(95개 조 반박문 게시)을 일으켰고 이를 저지하는 교회에 저항하면서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함께 행동에 나서게 함으로써 역사적 전환을 만들어 냈다. 모두가 공통으로 느끼던 문제의식에 대한 답 을 내놓고 실제 행동에 옮김으로써 일순간에 변화를 만들어 냈다. 루터의 종교개혁을 시대의 전환점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게 만들 어 준 것은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 Francis Bacon

(1561~1626년)이 다. 종교개혁이 번지던 루터의 다음 세대에 등장한 베이컨은 사람 들이 보편적 진리라고 믿는 것들에 대해 맹신할 것이 아니고 이 성적이고 논리적인 방법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서 나서 진리로 받아들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사실 확인 과정에서 실 수하지 않으려면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네 가지의 우상 을 경 계해야 한다고 했다. 첫 번째는 인간의 감각은 불완전하고 이성적 능력에 한계가 있 기 때문에 감정과 욕망에 치우쳐서 판단하려는 '종족 '이라는

Idol

tribe 우상이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쉽게 빠지는 착각이 함정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두 번째는 개인의 편견과 선입견으로 인해 사고 가 갇혀버리는 '동굴 '이라는 우상이다. 사람은 모두 자기 경험 cave 이 전부인 것으로 믿고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다른 면 을 보지 못하는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마치 장 터에서처럼 실체도 없이 떠도는 말을 자신의 판단 기준도 없이 받아들이고 재생산하는 '시장 market place

'이라는 우상이다. 우리가 판단 근거로 사용하는 정보라는 것 자체가 왜곡되어 있어서 실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네 번째는 세칭 여론을 주도하는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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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이나 영상물의 선전·선동에 따라 판단하는 '극장 '이라는

theater 우상이다. 사람은 작든 크든 자신이 속한 조직의 논리에 매어서 판단하기 때문에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지혜를 모으는 협동 작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 면서 이런 일이 이루어지려면 선한 관리자(정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새로운 아틀란티스 The New Atlantis 로 René DESCARTES

’라는 소설을 통해 설 파했다. 이와 같은 베이컨의 주장은 데카르트 이어지면서 기계적 철학관으로 발전했으며 다양한 자연현상과 사 회현상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데 보편적으로 적용되면서 근대과학 의 발전을 이끌었고 산업혁명을 일으키는 시대정신이 되었다. 200여년에 걸쳐서 있었던 르네상스는 문예부흥운동이라 하고 100여년동안 진행된 종교개혁에는 말 그대로 개혁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이처럼 운동이든 개혁이든 꾸준히 긴 시간에 걸쳐 사람들 의 마음을 바꾸고 제도를 바꾸어 나갈 때 성공할 수 있다. 단시간 에 다 바꾼 것처럼 보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되돌려지는 것은 실패한 혁명일 뿐이다. 지금 이 나라에서 불과 3년에 걸쳐 광풍 처럼 만들어지고 있는 대변화는 운동 인가, 개혁 인가? 이를

運動

改革 이끄는 사람들은 이를 개혁이라 말한다. 그들은 '이 개혁을 통해 공평과 공정 그리고 정의가 지배하는 완전한 민주국가를 만들 것' 이라고 말한다. 이 목표를 위해 집권했고 2/3에 육박하는 의석수 를 갖도록 국민들이 지지해 주었으니 이 목표의 실현은 시대정신 이고 사명이라 말한다. 따라서 주어진 시간 내에 모든 계획한 것 을 다 바꾸어 놓아야 한단다. 일종의 종교적 믿음이다. 그렇기 때 문에 절차도 과정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순교의 각오로 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의 이 믿음, 그렇게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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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할 시점에 된 것 같다. 그 믿 음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동의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그들은 베이컨이 말한 '네 개의 우 상' 중 어느 우상을 섬기고 있는지 하나씩 따져보기를 진심으로 권한다. 자신들이 원하는 세상이 진정으로 대다수 국민들이 원하 는 모습일지, 자신들이 세운 목표가 진짜로 국민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지, 자신들이 하는 일이 극히 소수의 집단이 내리는 명 령대로 생각 없이 맹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이 믿고 있는 신념이 잘못된 경험과 정보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아닌지를 깊이 있게 평가해 보기 바란다. 그래야만 이 대변 혁이 국민들이 수긍하고 국가가 성장하는 성공한 개혁으로 마무 리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지금 이 나라에는 이 변혁을 이끌어가는 세력에게 조언할 수 있는 사람도 대응 세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스 스로 깨우쳐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엄청난 변화들 이 실패한 혁명이 되어버리고 이를 되돌리기 위해 후대들까지 대 가를 감내하게 만드는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함께 후 손들에게 죄를 짓게 하는 것이다. 설령 바꾸지 않더라도 살펴는 봐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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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파피용 이 되자!

Papillon

파피용은 나비라는 의미인데 1930년대 중반의 프랑스를 배경으 로 1973년도에 만들어진 영화의 제목이다. 영화는 앙리 샤리에르 라는 프랑스 해군 출신 건달이 살인사건에 휘말려서 종신형을 선 고받고 악마의 섬이라는 기아나에 설치된 카옌 형무소에 수감되 면서 벌어진 일을 그리고 있다. 아무도 탈옥할 수 없다는 카옌 형 무소에서 샤리에르는 10여 년에 걸쳐서 탈옥을 시도하였고 결국 에는 성공하여 베네수엘라에 정착하여 살면서 자신의 경험을 소 설로 쓴 내용을 영화로 제작한 것이다. 파피용은 주인공이 자신의 팔에 새겨 넣은 나비 문신으로 인해 생겨난 주인공의 별명이다. 당대 최고의 배우였던 스티브 맥퀸이 주인공을 맡았고 가장 절친 한 동료인 위조지폐범인 드가의 역에는 더스틴 호프만이 열연하 여서 당시 최고의 흥행을 만들어 냈다. 영화는 밀림과 늪으로 둘러싸인 감옥에서 생활하는 죄수들의 처 참한 생활을 보여준다. 낮에는 힘든 노역을 감당해야 하고 저녁에 는 옥사에서 지저분한 벌레들과 싸워야 하며 부족한 식량을 해결 하기 위해 바퀴벌레까지도 잡아먹어야 한다. 질병에 걸려도 치료 받기는커녕 내다 버려지는 물건 취급을 당한다. 이런 환경에서도 뇌물은 통하고 친구는 생겨난다. 하나의 사회가 만들어지고 그 안 에도 질서가 존재한다. 이런 환경을 견디다 못해 탈옥을 감행하는 이들도 있지만 인간 사냥꾼에 가까운 간수들의 눈길을 피한다 해 도 망망대해 가운데 있는 외딴섬에서 탈옥할 수 있는 사람은 없 었다. 하지만 주인공은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탈옥 시도를 끊임없 이 감행한다. 자신의 억울함을 풀 수 있는 방법은 탈옥밖에는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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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고 믿었다. 그리고 결국은 친구 드가의 도움으로 수도 없이 시 도 끝에 11년 만에 탈출에 성공한다. 나도 이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아마도 최소한 20여 차례는 보 았을 것 같고 지금도 강의의 첫 시간에는 이 영화에서 나오는 다 음의 장면을 학생들에게 보여준다. 주인공이 누명을 쓰고 종신형 을 선고받아 지옥의 섬에 보내져서 온갖 죄를 지은 죄수들과 인 간 이하의 취급을 받게 되자 억울함에 분을 삭이지 못하며 밤잠 을 뒤척이다가 꿈을 꾸게 된다. 너른 사막의 한가운데에 여러 명 의 재판관이 나란히 앉아서 죄수인 주인공을 호출한다. 재판관들 앞에서 파피용은 외친다. ‘나는 무죄이다.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그러자 재판장은 응답한다. ‘그래, 너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그 러나 너는 너의 인생을 허비한 죄를 지었다.’ 이 말에 파피용은 할 말을 잃고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조용히 독백한다. ‘그렇구나, 내가 죄인이다.’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쯤으 로 기억된다. 이 장면은 내게 큰 감동을 주었고 ‘인생을 허비하는 것은 죄이다’라는 그 말이 내 삶의 좌우명처럼 되어주었기에 내가 느낀 감동을 제자들에게도 전달하고 싶어서 아직도 첫 강의에서 보여주고 있다. 2020년, 우리는 바이러스라는 감옥에 갇혀서 살았다. 너무도 당 연하게 누리던 일상이 사라지고 일상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던 수 입이 사라졌다. 가까운 사람들과의 대면조차도 혹시나 하는 마음 에 가슴 졸이며 피하게 된다. 감옥이다. 억울하다. 우리는 죄를 짓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그 책임을 묻고 싶지만, 그 누구도 책임 질 사람이 없고 보상받을 방법도 없다. 더구나 이런 감옥에서 최 소한 1년은 더 살아야 할 것 같다. 나도 파피용처럼 외치고 싶다. ‘나는 무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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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나는 무죄인가?’ 내 강의를 듣던 학생들 이 내 강의가 그리워서 학교에 나오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의 강 의를 해왔는지 되돌아본다. 매주 집에서 온라인 예배를 드리면서 참 편하다는 생각하는 스스로에게 내가 정말 교회를 사랑했는지 를 의심하게 된다. 늘상 시간을 같이 보내던 형제 같은 친구들이 사업이 어려워지고 생활이 어렵게 되었는데도 호주머니를 만지작 거리기만 할 뿐 선뜻 나누지 못하는 모습에 내가 진정한 친구인 가를 고민해 보게 된다. 마땅히 찾아뵈었어야 할 어르신들을 시간 날 때 가면 되지!하는 핑계로 미루고도 아무런 미안함이 없었는 데 이제는 시간이 되어 찾아뵙고 싶어도 그렇게 못하게 되니 내 마음이 부족했던 것을 깨닫게 된다. 정의가 강물과 같이 흐르는 나라가 되기를 말로는 기도하면서도 판을 치는 불의 앞에서는 혹 시나 불이익을 당할까봐 입을 다물고 살아왔던 나의 모습이 아프 게 찌른다. 파피용처럼 수긍할 수밖에 없다. ‘그렇구나, 나도 죄인 이다.’ 바이러스가 만든 감옥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탈출하는 것 뿐이다. 어디로 가도 바이러스를 피해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탈출을 시도하고 또 시도하자. 나 스스로를 죄인 으로 만들었던 일들로부터 벗어나자. ‘또 보겠지’, ‘준비 잘 하면 나아지겠지’, ‘다음에 하면 되지’, ‘기회가 되면 나누지’, ‘어떻게 하다 보면 바뀌겠지’ 하면서 나를 가두었던 감옥에서 벗어나자. 지금 하나씩 바꾸자. 다 바꾸면 우리도 이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 다. 2021년은 단 한 번뿐이고 2022년은 지금의 내가 만든다. 모 두 함께 탈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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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앞에서 그랜드 캐니언을 생각한다.

어느 조직이든 규모에 상관없이 다양한 위기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어떤 위기는 가벼운 감기 같이 좀 지나면 넘어갈 수 있지만 어떤 것은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다. 지혜 로운 조직은 크든 작든 위기 요소를 민감하게 감지하고 미리 대 응하여 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지만, 우둔한 조직은 위기가 턱밑까지 다가와도 모르고 있다가 대책 없이 망하고 만다. 그러나 대부분 위기 상황인 것을 몰라서 당하는 경우는 없는 것 같다. 단 지 그 위기의 경고에 둔감할 뿐이다. ‘우리는 괜찮겠지’, ‘어떻게 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에 의지하면서 위기에 대비하는 흉내만 낸다. 그 끝은 대비하지 않은 것과 똑같은 결과가 기다린다. 우리에게 나라가 망할 수준의 위기는 무엇이 있을까? 이미 무뎌 질 대로 무뎌져 버린 북한의 군사적 도발 가능성은 제쳐두고 보 면, 20년 전에 예고된 저출산 문제가 일 번이다. 출생 인구의 감 소로 인해 나라가 망할 지경에 이를 것이라는 것은 이미 정해져 있는 사실이다. 세계 인구는 2050년에 90억 명을 넘길 것인데 우 리나라는 오히려 500만 명은 감소할 것이고 60세 이상 인구는 50%를 넘기게 될 것이란 것은 정해져 있는 위기이다. 이에 대비 한다고 20년 가까이 수백조의 예산을 사용하고 있지만 아무 소용 없이 출산율은 감소만 한다. 그러나 아무도 책임을 묻지 않고 책 임져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그 많은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따지지 조차 않는다. 시급함을 인정하고 예산을 승인 해 주었으니, 국민도 정치인도 내 책임은 다했다고 넘어간다. 2050 년, 대한민국은 인구감소로 인해 헤어 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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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것이다. 환경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이산화탄소와 미세플라스틱 그리고 쓰레기로 대변되는 환경문제는 지구상의 생물들의 모습을 100년 뒤에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지금 경험하는 코로나 바이러스도 기존의 바이러스가 환경변화에 의해 돌연변이 를 일으킨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지난 100년 전까지는 지구상 에서 사용하지 않던 종류의 자원들을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로 사 용되면서 만들어 낸 환경변화에 인류는 스스로를 실험 대상으로 던져 놓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마시는 생수의 90%에 미세

微細 플라스틱이 들어있고 우리가 숨 쉬는 공기는 폐를 손상시키는 미 세먼지로 가득 차 있으며 쓰레기 섬들이 태평양을 메워가고 있다 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오늘 살아있고 건강하다는 사실에 가려서 미래의 일그러진 우리 의 모습은 보지 못한다. 아마도 2100년, 우리의 증손자뻘 인류는 신체의 일부가 변형된 모습이 정상인 세상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 다. 어찌 치명적인 위기가 이뿐일까? 어찌 우리 개개인에게는 이런 위기가 없을 수 있을까? 그런데도 개인도 내가 속한 조직도 나라 도 어찌 이리 둔감할까?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미국 유학 시절 수차례 둘러보았던 미국 서부의 그랜드 캐니언 Grand Canyan

을 떠 올리게 된다. 국립공원인 그랜드 캐니언은 20억 년에 걸친 지구 의 변화를 볼 수 있는 협곡으로 1,500m 깊이 아래로 콜로라도강 이 흐르고 있고 6~30km 사이로 폭이 변하면서 300킬로미터 이 상 이어지는 그야말로 거대한 골짜기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랜 드 캐니언은 대부분의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는 캐니언 중앙 부근 에 위치한 South Rim(남쪽 테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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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수백 혹은 수천 km를 날라서 이곳까지 오는 사람들이 갖는 기대는 국립공원에 들어서자마자 거대한 장관이 눈 앞에 펼 쳐지는 것이다. 그러나 공원 입구를 지나 한참을 지나도 울창한 숲이 펼쳐질 뿐 작은 골짜기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랜드 캐니언에 왔다는 것은 표지판을 보면 분명한데 사진으로 본 절경은 어디에 도 없다. 슬슬 실망하며 짜증이 난다. 그렇게 한참을 가서 주차장 에 차를 세우고 내려서면 그때야 발끝에 바로 수백 미터 낭떠러 지의 캐니언이 펼쳐진다. 충격적이다. 그 거대한 모습은 정말 나 라는 존재가 이 대자연 안의 한 티끌로라도 남을 수 있을까 생각 하게 만든다. 캐니언은 그 끝자락에 서기 전까지는 그 모습을 감 추고 보여주지 않는다. 그랜드 캐니언은 우리에게 말한다. '공원에 들어서면 당신은 캐 니언에 도착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미 그 안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끝에 서보기 전에는 아무도 캐 니언의 거대함을 실감하지 못한다. 남의 얘기가 아니다. 나와 우 리의 모습이다. 이대로 두면 100년 후에 우리나라 인구가 반토막 나는 것도, 인간의 모습이 어딘가 바뀌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다 알고 있다. 이대로 두면 내일이라도 우리 머리 위에 재래식 포탄 과 핵폭탄이 섞여서 비처럼 내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이 나라 가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바뀌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 자신을 던지는 사람은 없다. 그런 일은 먼 훗날 있을까 말까 한 일이고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인류 는 그런 상황에 적응하며 살아갈 것이며 우리나라도 어떤 형태로 든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안심시킨다. 당장의 눈에 보 이는 내 이익을 지키며 사는 것이 훨씬 실속 있는 일이다. 아무리 외쳐도 듣고 실천하는 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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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니언의 모서리 끝에 서고 나서야 어떻게 건널까 생각하면 건 널 수 없다. 맨몸으로 건너려 하면 열에 아홉은 죽는다. 깊은 골 짜기가 나타날 것을 안다면 이를 건너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 인지 준비하고 갖추어야 한다. 아무리 무거워도 아무리 커도 건널 도구들을 이고 지고 끌고 가야 한다. 위기를 알면서도 대응하지 못해 망한 나라와 사라진 민족은 역사 속에 수도 없이 많다. 앞 시대의 사상가 함석헌 선생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외 쳤고 성경의 선지자 호세아는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패망한다!' 고 외쳤다. 외침에 응답하자.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는 우리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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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더 하면 잘 할 수 있을까?

시간은 참 빠르게 지난다. 임기가 있는 자리에 있어 보면 더욱 더 그렇게 느끼게 된다. 임기 5년에서 4년이 지나버린 대통령도 지금쯤은 ‘시간이 어찌 이리 허망하게 흘렀나?’ 싶을 것이고 업적 보다는 아쉬운 것들이 훨씬 많이 생각날 것이다. 임기 1년을 남 긴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 그런 생각이 여실히 드러났다. 대통령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 잘하고 싶었다. 평등과 공정 그 리고 정의가 시대정신으로 지배하는 나라를 만드는 길이 보였다. 나라 곳곳에 편만한 적폐를 찾아내 뿌리째 뽑는 일부터 시작했다. 전임자들의 권한 남용을 사법처리하면서, 본인은 결코 그리되지 않겠다! 자신한다. 국가의 미래를 환경에서 찾았다. 원전을 버리 고 태양광과 풍력발전을 활용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정했다. 인 위적으로 막아놓은 4대강 보 는 허물어서 자연적인 물의 흐름을

堡 회복시켜야 놓아야 했다. 약자를 보호하는 일에 특별한 사명감을 가졌기에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성공시키고 싶었다. 부자세 를 富者稅 많이 거두어 기본소득을 보장해 줌으로써 빈부격차도 줄이고 모 두가 잘사는 나라로 만들고 싶었다. 서민과 청년들이 집값이 비싸 서 집 갖는 것을 포기하고 전세 연장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傳貰 너무도 안타까웠다. 부동산 문제는 재건축을 억제하고 부동산 세 금을 두 배로 올리고 부자들의 대출을 막아서라도 꼭 해결하고 싶었다. 우리민족이 머리에 이고 살고 있는 숯불인 북한의 전쟁위 협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욕을 먹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북한을 대화의 자리에 이끌어 내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어찌 해보지 못한 최후의 기득권 수호 세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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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을 뿌리부터 바꾸어야 국민들의 법적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 이기에 이를 기획하고 실천하다가 가족까지 희생한 사람들에게 너무도 미안하고 빚진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민주화의 어려 운 시기부터 함께 동고동락한 사람들을 어떤 식으로든 돌보아 주 어야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인데 잘못된 인사청문제도로 인해 흠 결만 드러나게 만들어 준 것이 참으로 안타깝고 미안하다. 4년을 어떤 비판과 비난에도 흔들림 없이 달려 올 수 있었던 것은 모든 일을 이같이 사심 없는 국가 비전과 약자에 대한 순수한 사랑을 가지고 처리했다는 확신 때문이다. 그런데 국민들은 이런 나의 마 음을 몰라줄까? 4년짜리 대학 총장을 해보았던 나의 마음도 그랬다. 다 해봐야 2만명도 안 되는 조직을 이끄는 것과 국가를 이끄는 것은 비교할 수도 없지만 대통령이 지금쯤 무엇을 생각할지를 충분히 유추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앞서 일했던 전임자들이 일하는 것을 보면 서 왜 저렇게밖에 못할까? 나라면 모두가 환영하고 다시 연임해 달라고 지지를 보낼 수 있게 잘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맘으로 시 작했다. 조직개편을 통해 조직의 동력을 만들어 내고 인사를 통해 소외되었던 사람들에게도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주고자 했다. 다 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곧 닥칠 미래의 위협을 대비하는 것이 리더로서 꼭 해야 할 책임이라는 확신으로 여러 반대에도 불구하고 돌파하려고 했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무조건 대안없이 반대하는 사람들 탓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임기가 끝나갈 무렵에는 내가 어렵게 욕먹으며 만들어 놓은 것을 후임자가 무너뜨리면 어쩌나 하는 염려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진정으로 사심 없이 대학의 미래와 구성원들의 발전만을 위 해 일한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4년을 일할 수 있었고 퇴임 후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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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학교 안에서 버틸 수 있었다. 임기를 끝나가는 시기에 서운한 감정이 생기는 이유는 여러 가지일수 있지만 가장 큰 것은 본인이 선한 의도로 한 일이 왜곡 되어 오해를 받는 것이다. 분명히 자신들을 위해 한 일인데

歪曲 당사자들이 나서서 반대하고 비난하며 온갖 의혹을 제기할 때면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힌다.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보인 서운함도 이러한 것이었으리라 추론해 본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스스로 나서서 그 자리를 맡은 리더가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일 뿐이다. 그래서 이런 시간을 가져야 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선한 의도가 선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서운해하는 것은 자신의 덕이 부족함을 나타내는 것에 불과하고, 내가 소중하게 이들을 위 해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겠다고 한 일에 대해 당사자들이 반대하 는 것을 섭섭하게 생각하는 것은 본인의 경륜이 모자랐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언제까지나 함께 해줄 동반자로 믿 었던 사람들이 레임덕을 앞장서서 당기는 것에 배신감을 토로하 는 것은 인생이 무엇인지를 깨달으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것을 보 여주는 것일 뿐이다. 스스로 생각해 보라. 한 번 더 하면 이런 생각들이 들지 않게 더잘할수 있을까? 그런 기회는 없다. 그래서 주어진 남은 시간 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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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닫으며..

그간 책을 몇 권 썼습니다. 신입생들에게 전공을 가르치다가 기본 지식이 필요하다 싶어서 (전자정보통신공학 2004), 고 학년생에게 전공을 좀 쉽게 정리해 주고 싶어서 (지능형 로봇제어공학 2009, TV 방송기술 2009), 학교를 오가며 느꼈던 학교에 대한 애정과 감상을 담아서(꿈 2012), 코로나 사태를 통해 확인한 통제 시대에 대해 경고하기 위해서 (완벽한 통제의 시대 2020), 그리고 역사와 기술의 발전 과정을 통해 미래 세상을 그려보고 싶어서 (역사와 과학 2023) 대여섯 권을 발간했습니다.

발간은 못 했지만 2016년, 레위기와 민수기 그리고 신명기를 쉽 게 읽을 수 있게 해보고 싶어서 ‘알기 쉬운 모세오경’을 써보았던 일도 기억납니다.

그런데 매번 확인하고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만큼 잘 쓰지 못했다는 것을, 책을 읽는 사람들이 그 리 많지 않다는 것을, 책의 내용을 쉽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별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책을 한 권 쓰는 데는, 잘 썼든 못 썼든,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됩 니다. 때문에, 책을 발간하고 나서는 '다시는 글 쓰는 일은 안 하 겠다!' 다짐합니다. 그러면서도 또 이렇게 썼던 글들을 모아서라 도 책을 만들어 봅니다.

자기애 때문만은 아닙니다. 2018~2022년, 격동의 시간이었습니다. 촛불로 집권한 정권이 시 작한 적폐 청산은 거칠게 많은 사람을 정죄했습니다. 북한과의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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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는 상상을 넘는 단계로 뛰어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바뀐 정권은 카르텔을 없애겠다는 말로 적폐 청산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바라 는 마음은 한 가지, 국가와 국민과의 약속,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지켜져야 이 나라의 미래가 있다는 생각이어서 이를 말하고자 했 습니다.

특히 미래세대를 책임질 대학과 교회는 끊임없이 선도적으로 개 혁해가야 한다는 믿음입니다. 스스로 바뀌지 않으면 밖에서 바꾸 려 합니다. 바뀌는 속도가 늦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책이, 이 기간을 같이 살아온 사람들에게 공감이 되고 같은 방 향을 향해 외치겠다는 다짐이 되길 소망하면서 이 책을 닫습니다.

한헌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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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한헌수 는 전북 군산에서 출생, 중앙국민학교를 졸업, 남중학교를 2년 마친 후 광주 조대부속중학교를 졸업했음. 광주 살레시오고 등학교 졸업 후 숭전대학교( 숭실대학교) 전자공학과 졸업, 연세

現 대학교 대학원에서 자동제어로 석사과정 졸업. 석사장교 6개월을 마친 후 미국 LA의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컴퓨 터공학 박사학위(Robot Vision 전공) 취득. 그 후 바로 숭실대학 교 전자공학과에 조교수로 부임, 부교수, 교수를 거치는 동안 학 과장, 학부장, 이부부장(야간대학장), 어학원장, IT대학장, 총장을 역임. BK21과 ITRC 등 대형국책과제를 수행했고 현대자동차 등 기업과 다수의 산학과제를 수행하면서 IEEE를 비롯한 저명 저널 에 많은 논문을 게재. 31년의 재직기간 중 80여명의 석·박사를 배출. 그간 ‘전자정보통신공학(개론)’, ‘지능형로봇제어공학’, ‘TV 방송기술’, ‘꿈’, ‘완벽한 통제의 시대’, ‘역사와 과학’ 등의 저서 출 간. 현재는 숭실사이버대학의 총장, 노량진교회 장로로 봉직 중.

230쪽

이 책에 수록한 글들은 모두 한헌수의 블로그에 게재되어 있다. (BLOG.NAVER.COM/HAHNS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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