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북으로 보기

경기옛길 소식지 2023 겨울호

이북 원문에서 글자만 옮긴 전체 텍스트입니다. 표·그림·사진과 원래 모양은 이북에서 확인하세요.

1쪽

contents

04 소식 경기옛길 일곱번째 길, ‘봉화길’ 개통 등

온라인 소식지

겨울

10 코스소개 영남길 10길 이천옛길 11 탐방객 인터뷰 경기옛길 탐방객 이경진님

26 이야기 의주길과 파주의 변화 27 웹툰 경기옛길 탐방기

14 기고문 한양에서 개성 가던 의주길 24 문화유산 삼남길 흰치고개 이야기

4쪽

경기옛길 일곱번째 길, ‘봉화길’ 개통

경기옛길 6대로 조성에 이어 추가로 조성된 봉화길은 하남, 광주, 여주, 이천시를 지나며 9개 구간, 135km로 조성되었습니다. 지난 11월 11일 개통된 봉화길은 조선 시대 간선도로망 6대로 체제에서 평해 로와 영남로(동래로)라는 두 대로 사이 의 간선도로의 하나로 서울에서 경북 봉 화로 이어지는 큰 길이었습니다. 1770 년 신경준의 「도로고」에서 봉화로는 정 식 간선도로망 중 하나로 인정받지는 못 하나 점차 상업의 발전으로 인하여 10대 로의 도로망 확장 체제에서 경북 지역을 연결하던 큰 길이었습니다.

봉화로의 중요성은 역대 조선왕조의 실 록(實錄)과 왕실족보인 ‘선원보’(璿源 譜)가 이운(移運)되던 역사 보장(保藏) 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태백산로라고 불 리기도 한 봉화로는 10대로 중 종점이 유일하게 내륙인 것도 특징입니다. 현재 남겨진 문화유산은 옛 선조들의 생활문화와 직결되는 산물입니다. 생활문화의 큰 줄기가 되는 도로(옛길) 주변에는 다양한 문화유산이 존재하는데, 봉화로 역시 많 은 유산과 지역의 명소와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독특한 매력을 느끼실 수 있는 도보 길입니다. 경기옛길 봉화길은 최대한 원형노선을 따르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옛길의 멸실, 각종 도로에 의 한 노선 단절, 도보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 구간 등은 대체로를 조사하여 조성하였습니다.

5쪽

제1길

제4길

제7길

제2길

제5길

제8길

제3길

제6길

제9길

6쪽

아이들과 함께 한 ‘경기옛길 학교’ 성료

경기옛길에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추진한 탐방 프로그램과 함께 가족을 대상 으로 한 탐방 프로그램도 진행하였습니다. 경기옛길 탐방 프로그램은 단순히 글로서 역사를 학습하기보다는 그 역사가 담긴 길을 직접 걸으며 몸으로 직접 체득할 수 있도록 기획, 운영되었습니다.

특히 지난 10월에 진행된 가족 대상 경기옛길학교 프로그램은 경기도의 다양한 지역에서 오 신 가족분들이 자녀분들과 함께 지평향교 길을 걸으며 우리가 잘 몰랐던 지평리에 깃든 역사 적 사실들, 인물들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가족들 간의 즐거운 경기옛길 나들이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경기도라는 지역 에 대해 더 많이 경험하고 알아가는 기회가 되셨기를 바랍니다.

<백서진 연구원>

7쪽

2023 옛길따라 만나는 문화체험 행사 성료

경기옛길에서는 경기옛길 6대로와 올해 11월 개통한 봉화길을 이루는 4개 시 (광주, 이천, 여주, 하남) 지역에서 ‘옛길따라 만나 는 문화체험’행사를 진행했습니다. 각 길의 특색이 담긴 다양한 테마를 구성하고 이에 따른 여러 체험활동을 즐기실 수 있도록 준 비하였습니다. 모집 대상별 맞춤형 만들기 체험 활동과 버스킹 공연 등을 함께 진행하면서 단순 히 걷기에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탐방 행사로 진행 됐습니다. 또한 추첨 이벤트로 소소한 즐거움을 경험하실 수 있도록 기획하였습니다. 궂은 날씨에도 행사에 참여해주신 분들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앞으로도 경기옛 길센터에서는 옛길을 활용한 다양한 행사를 기획, 운영하여 풍부한 경험을 선사해드릴 예정 이오니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백서진 연구원>

8쪽

경기옛길 탐방로 구간 내 공사안내

경기옛길 각 길별 구간내에 지자체별로 여러 공사가 진행중이어서 탐방하시는데 적잖이 어 려움이 있으실 듯 합니다. 그 점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공사 관계자와 수시로 협조하여 조속 히 정상화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에 각 탐방로별로 공사가 진행중이거나 기타 사 유가 있는 곳을 안내드리오니 참고하시기 바라겠습니다.

삼남길 ♣ 1길 과천 교육원삼거리 ~ 가자우물 입구 도로변 통행 구간

영남길

평해길

♣ 3길 의왕 경찰서 ~ 의왕 시청 구간 ♣ 6길 융건릉 ~ 용주사 고갯길 구간 ♣ 9길 힌치고개 생태탐방로 구간 ♣ 10길 대동법시행 기념비 ~ 소사벌 구간 의주길 ♣ 4길 부곡리 고갯길 (거지무덤 스토리보드 주변) ♣ 1길 금토동 테크노밸리 개발 구간 ♣ 6길 문수봉~농촌테마파크 구간 ♣ 7길 정배산 ~ 조비산 도로 확장 공사 구간 ♣ 9길 죽산교 ~ 장원교 도로 탐방로 정비 구간, 금산교회 주변 구간 ♣ 10길 금산리 차도 통행로 구간 ♣ 5길 신원역 ~ 신원정수장 공사 구간(배수관 연결 공사) ♣ 6길 소노휴양평 ~ 원덕초등학교 공사 구간 ♣ 7길 배미산 산길 구간(경사지 및 낙엽,지장목 구간) 경흥길 ♣ 6길 천주산 능선(황동묘역 사유지 폐쇄 예정) 구간 ♣ 7길 포천따기힐링팜 ~ 포천야구장 중간 펜스 차단 구간 강화길 ♣ 1길 테리 김포대수로 도로 정비 구간 ♣ 4길 군하리 ~ 월곶 초등학교 도로 확장 공사 구간

<정용균 연구원>

9쪽

경기옛길 노후 시설물 교체 관련 진행사항 안내

2023년 12월부터 경기옛길 삼남길, 의주길, 영남길 탐방 안내 시설물이 새롭게 선보입니다. 지난 가을호에 안내드린 바와 같이 종합안내판, 구간안내판, 스토리보드가 변경되었고 기존 의 노후시설 등은 전면 철거되었습니다.이정목, 도보주의 안내판 등 노후시설이 철거되는 관 계로 탐방 노선 안내가 다소 미흡할 수 있음을 기 안내드렸고 보강 차원에서 전신주, 기둥 등 에 간이 안내판, 스티커 등이 추가될 예정입니다. 아울러 길별로 상행, 하행 등의 표시 색깔 도 통일성 있게 정비하여 안내되는데 상행 방향의 색상은 흰색으로 모든 길이 통일됩니다. 안내 부족한 점 다시 한 번 양해 바라고 지속적으로 정비, 확대 해나가겠습니다. 새로운 간이 안내판은 하단 이미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삼남길 간이안내판

의주길 간이안내판

영남길 간이안내판

<정용균 연구원>

10쪽

경기옛길 | 코스소개

영남길 10길 이천옛길

의주길 제10길 이천옛길은 안성시 금산리 하산전 마을 입구를 시작으로 마이산 자락과 산양 저수지를 경유한 뒤 이천시 산양리와 석산리를 지나 어재연 장군 생가터까지 가는 경로입니 다. 지난 가을에 이천옛길을 산양저수지를 경유하는 원형노선으로 복원하였는데 이번에 소 개드릴 내용은 칠장사 입구에서부터 어재연장군 생가터 입구까지가 인도없는 도로변 통행 로 이기에 안전과 불편을 해소코자 경로변경 예정 안내와 함께 생가 주변과 팔성산 산책로 등 을 소개 드립니다. 칠장사 입구에서 칠장사를 경유하여 산길로 진입하면 팔성산 데크 산책길 을 만나고 생가터 뒤로 돌아서 내려오는 경로입니다. 아울어 생가 주변에 쌍충연과 충장사 및 돌원어화공원이 새롭게 정비되었으니 겨울철 한적한 나들이 코스로 손색이 없을 듯 합니다. 탐방노선 변경전 사전 답사 차원에서 둘러보시기를 적극 권유드립니다.

돌원어화정원

영남9길

영남10길

충장사

<정용균 연구원>

쌍충연(두산백과)

11쪽

INTERVIEW

경기옛길 탐방객 이경진님 “시간이 나면 등산이나 트레킹 투어를 합니다.”

경기옛길 명예완주자인 이경진씨는 1987년생으로 경기옛길 참여자의 연령대가 젊어졌음을 실감케 하는 탐방객이다.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하고 현재 서울에서 디자인 및 서비스 관련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간단히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경기옛길 명예 완주자 이경진입니다. 서울에 거주하며 작은 업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걷기(트레킹)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10년 전 우연히 참여한 ‘한양 성곽길 투어’를 통해 트레킹에 매료되었습니다. 당시 대학생이고 뚜벅이 로 여행할 때라 성곽길 루트를 따라가며 펼쳐지는 다채로운 풍경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걷기(트레킹)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트레킹의 가장 큰 장점은 예상 밖의 풍경과 날씨 등 의 변수로 지루할 틈 없이 몸과 마음을 새롭게 환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평소 알고 있던 지역이라도 걷 다 보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변화가 확연히 드러나다 보니 여러 가지 이야기가 생겨나기도 합니다. 심신의 건강은 자연히 따라오는 선물이었습니다.

경기옛길은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트레킹에 관심을 두고 걷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습니다.

12쪽

경기옛길 만의 매력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도심에 있는 걷기 길보다는 숲길도 많고 난이도가 높은 코 스도 많습니다. 그래서 운동 효과가 높다고 생각됩니다. 또 우리 조상 들이 과거를 보러 서울로 올라가는 여정이라 상상하며 걷다 보니 마 치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이 참 용감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용감하고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하는 시기에 경기옛길에서 스스로를 되돌아 보고 많은 생각을 정리할 수 있 었습니다.

걷기(트레킹)하면서 힘들었던 순간이 있다면요? 사실 시작 전 가장 힘든 것은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시간이 생겨 쉴 수 있는 날이면 좀 더 자자, 좀 더 눕자 하는 마음이 드니까요. 하기만 걷기 시작하고 30분만 지나면 금세 가벼워진 몸과 맑아진 시야 덕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걷기(트레킹)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영남길을 통해서 구봉산길-원산면 반도체 국가산단 조성 현장을 접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옛길에서 만난 미래랄까요. 앞으로 그쪽 이 어떻게 변화할지 공사 규모가 커서 매우 놀랐습니다. 옛길 노 선 변경도 있었는데 공지를 확인하지 않고 트래킹을 해서 구봉 산에서 이정표와 스탬프함 찾는다고 고생한 기억이 있습니다. 걷기 여행하실 때 미리 공지 확인하시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13쪽

경기옛길의 추천 코스와 이유를 말씀해 주세요. 영남로와 강화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서울과 수도 권 변화 흐름과 지역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경기옛길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경기옛길이 많은 분들이 찾고 사랑하는 길이 되면 좋겠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개인적 계획 / 걷기 계획 등) 경기옛길보다 먼저 시작했지만, 아직 완주하려면 시간을 많이 만들어 야 하는 여정들이 남았습니다. 서해랑, 남파랑 해파랑길 국토 종주 등 을 하고 있는데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추가로 트레킹을 통한 영감을 작업에 반영하여 개인전도 열고 싶습니다. 더 부지런히 생활해야겠습 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경기옛길을 찾는 사람들에게 역사적인 경험을 할 수 있게 힘써주시는 관계자분들께 감사합니다. 많은 분이 경기옛길을 알게 되어 제가 겪었 던 것 그 이상으로 즐거운 경험과 감상을 갖기를 원합니다. 옛이야기와 시간의 세례를 받은 경기옛길 추천합니다.

오늘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14쪽

한양에서 개성 가던 의주길

한양(서울)을 벗어난 사행단의 첫 숙박지는 한양에서 약 30리 거리인 고양 관아 객관이었다. 사행단의 여정은 <연행록>, <대동지지>와 <도로고>등의 기록에 의거하여 살펴볼 수 있다. 이번호에서는 한양-고양-파주-장단의 남한지역에 남아있는 의주대로와 연행노정의 흔적을 살펴본다.

(경기옛길 ‘의주길’이 조성된 고양-파주 구간의 원형인 셈이니 관심읽게 살펴보자)

한양의 마지막 고개, 박석고개를 넘다

● 신춘호 문화콘텐츠학 박사, 방송대학TV PD

한양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가장 높고 험한 무악재를 넘어 홍제교를 건너고, 녹번현, 관기 현, 양천리, 박석고개를 연달아 넘어야 고양지역으로 들어간다. 양천리는 한양에서 의주 로 1천리, 부산 동래로 1천리거리를 말한다. 박석고개(薄石峴)는 은평구 갈현동과 불광 동을 끼고 구파발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무악재보다는 경사가 완만한 편이지만 고개 가 길고, 풍수 지맥상 인근 서오릉(西五陵)의 결인(結咽印:목구멍)에 해당하는 중요한 곳 이기 때문에 지맥이 각이지 않도록 박석(薄石:얇고 편편한 돌)을 깔았던 데서 유래하였다 고 한다. 박석고개 정상부의 산자락에 3칸 규모의 서낭당이 있어 무당이나 부녀자들이 치 성을 드리던 신목과 돌무더기가 있었다는데, 1973년 남북적십자회담을 위한 도로확장공 사 과정에서 서낭당과 함께 모두 사라졌단다.

15쪽

< 그림 1. 양천리 표석(서울혁신파크 초입) >

< 그림 2. 박석고개 서낭당(우측 산자락) >

박석고개 서낭당은 ‘사신성황당’이라고도 전하는데, 사신은 사신(四神)과 사신(使臣)의 의미가 있다. 사신(四神)은 칠성님‧석가부처님‧男선왕님‧女선왕님을 모시고 있는 것을 말한다. 사신(使臣)은 ‘중국사신’과 관련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는데, 아래는 사신서 낭당 구전설화의 요지이다.

“‌조선조 어느 때, 중국사신인 ‘칙사(勅使)’가 조선에 왔다가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고개 마루에 이르렀는데, 말이 갑자기 발길을 멈추더니 이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채찍을 때려보 고 앞에서 끌어도 움직이지 않자 사신이 매우 화가 났다. 갖은 애를 써도 말이 움직이지 않 는 난처한 상황에 빠졌는데, 이는 박석고개 성황신에게 인사도 없이 오가는 것이 괘씸하여 신령이 노해서 일어난 일이라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이에 사신은 정성스럽게 제물을 준비 하여 서낭당에 제를 지내고 사행의 안전을 기원하는 치성을 드렸더니 말이 움직이고 일행이 무사히 박석고개를 넘어 중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구전설화 정리, 필자)

박석고개는 중국을 오가던 사신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이동경로의 하나였으니, 이지 역의 삶과 문화 속에 사신들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전승되어온 것이 아닌가 생 각된다. 사신서낭당과 중국사신이야기는 사행노정 공간에서 확인하는 스토리텔링의 한 사례인 셈이고, 사행문화 스토리소재의 하나로 참고할 만하다.

구파발, 의주로 파발마를 보내던 역참마을

박석고개 아래 구파발은 옛 파발참인 검암참(黔庵站)이 있던 곳이다. 조선시대 통신의 구

16쪽

실로는 군사 문서의 전달을 주목적으로 하는 파발제(擺撥制) 들 수 있는데, 이는 임진왜란 이후 봉수제의 보완을 위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파발제에서 서로(西路)로 불렸던 의주로 의 파발은 기발(騎撥)이었다. 조선은 중국과의 관계를 중요시 했으므로 신속한 정보전달 과 빈번한 사행 왕래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역참을 설치하였다. 한양에서 의주까지의 파 발참(站)은 약 1,050여리로, 대략 25리마다 하나씩 모두 45참이 설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현재 구파발 옛 도로는 은평 뉴타운 건설과정에서 대폭 정비되어 신작로가 개설되어 통일 로와 연결되고 있다. 과거 사신단의 발길은 고양 파주 방향으로 향하는데, 구파발인근의 덕수천(창릉천), 여석현(숫돌고개), 덕명천, 망객현을 넘어 고양군 관아의 객관인 벽제관 에 도착하였다. 여행자에게는 특정한 장소나 공간 이 내포하는 의미들이 있게 마련이 다. 그것이 공적여행이든 사적여행 이든 모두 포함되는 말이며, 공간에 대한 의미부여는 여행자가 처한 현 실과 심리적 요인에 의해 의미 부 여의 결이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여기 창릉천(昌陵川)일대도 그러 한 공간 중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병자호란(1636~1637년)이후, 조선정부는 정축화약(丁丑和約)의 조항에 따라 왕세자 (빈)와 왕자, 재신, 그리고 백성들이 중국 심양으로 볼모로 끌려가게 되었디. 소현세자 일 행이 인조와 작별하던 공간이 바로 창릉(昌陵)모퉁이 창릉천 일대이다. 전쟁의 상처와 치 욕, 이별의 정서가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공간인 셈이다. 창릉천은 덕수천(德水川)이라고 도 한다. 창릉천에서 서울을 바라보면 멀리 삼각산 연봉과 마루금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옛사람들 은 이곳을 지나 삼송리 고개를 넘으면 한양과 삼각산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를 그 리워하거나 고향을 생각하는 소회를 남기지 않은 이가 없었다. 청음 김상헌(金尙憲,1570 년~1652년) 선생도 그렇다. 병자호란 당시 척화(斥和)를 주창했던 그 였기에 청나라가 그를 위험인물로 지목했고, 결국 심양에서 4년간 투옥되기도 하였는데, 그가 심양으로 가 던 길에 남긴 우국충정어린 시가 전한다.

< 그림 3. 구파발 창릉천과 삼각산 원경) >

17쪽

<가노라 삼각산아> (김상헌)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하여라.

고양 삼송리 고개는 여석현 (숫돌고개)라 하는데, 임진왜 란 당시 명의 이여송장군이 숫돌 성분을 지닌 이 고개의 바위에 칼을 갈았다고 하여 ‘숫돌고개’라는 이름이 붙여 졌다고 한다. 당시 이곳은 이 여송장군이 왜군과 접전하다 퇴패했던 벽제관 전투의 현 장이기도 하다. 한양을 떠난 사행단이 첫 숙 박을 하게 되는 고을이 고양(高揚)이다. 객관으로 사용된 곳은 관아의 부속건물인 벽제관 (碧蹄館)이었다. 객사는 지방 관아의 핵심공간이었다. 지방관은 중앙의 궁궐에 있는 임금 을 상징하는 궐패를 안치하고 매월 초와 보름에 망궐례를 지냄으로서 중압집권의 통치력 을 위임받은 대리자로서의 위상을 확인하였다. 한양에서 중국으로 통하는 의주로에는 이와 같은 역관이 10여 곳 있었다. 역관은 역과 원, 주막 등을 동반하고 있어서 교통 통신의 편의를 최대한도로 이용할 수 있었다. 특히 벽제관은 임금이 능(陵)을 방문할 때에 숙소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또한 중국으로 가는 조선 사행단이 숙박, 휴식하였고, 중앙관리나 공무수행자들이 이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벽제관은 서북로 연로에 설치한 첫 번째 역(驛)이었다는 점 이외에도 중국사신이 반드시 한양 입경 하루 전에 이곳에 머물도록 한 객사자리라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와 역사적 의미가 있다. 한양(서울)에 인접하고 있었으므로 중국사신(勅使)들이 한양에 들어오기 전 에 이 벽제역 객사(客舍)에서 숙박한 후 다음 날 관복으로 갈아입고 예의를 갖추어 들어 가는 것이 정해진 관례였다.

< 그림 4. 고양 관아의 객사였던 벽제관 옛터의 주초석 >

18쪽

벽제관의 기능은 경의선 철도가 놓이면서 상실하게 되고,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에 의해 부속건물 50여 칸이 헐렸으며, 한국전쟁 때 불타버려 폐허가 된 채 객관의 문만 1960년 무렵까지 남아 있었다고 한다. 벽제관 자리는 옛날 역관이 있던 건물터로 현재 고양초등 학교 북쪽에 인접해 있으며, 건물의 기단 주초석만 남아 있다.

人馬가 오가던 옛 고개, 교통로 변화로 기능 약해져

혜음령(惠陰嶺)은 고양군의 북쪽에 위치하여 파주군 광탄면과 접경하고 있다. 혜음령은 해발 164m밖에 안 되는 낮은 고개지만, 고개아래의 양쪽이 모두 낮은 평지여서 고갯마 루가 의외로 높아 보이는 곳이다. 예로부터 고개 위에 그늘이 져서 쉬기에 적합하므로 ‘그 늘의 은혜를 입는다.’하여 혜음(惠陰)이라 이름 지어졌다고 하는데, 과거에 중국 사신들 이 한양으로 가다가 산 아래 고양 벽제관에 이르기 전 고단한 몸을 잠시 쉬어 가는 고개라 해서 ‘쉬엄령 고개’라는 이름을 갖고 있기도 하다. 임진왜란의 원병으로 참여한 이여송장 군 군대가 혜음령 일대에 진을 치고 일본군과 큰 전투를 벌였던 것만 봐도 이 혜음령은 예 로부터 전략적인 요충지로 인식되어오던 곳임을 알 수 있다. 오늘날 고개 아래로 터널이 뚫려 ‘혜음령터널’로 부르니, 주 교통로의 전환점이 되었고, 교통로로써의 옛길은 쓰임이 점차 희미해져가는 현실을 맞는다. 그러나 한편으론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도 한다. 역사와 문화가 스며있는 역사탐방로와 같은 진정한 ‘옛길’로의 전환(활용)을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혜음령을 넘어 파주로 향하는 우측산자락에는 옛 고려행궁 터로 추정되는 혜음사 혜음원

< 그림 5. 혜음령 넘는 필자 >

< 그림 6. 혜음령터널 이전의 옛길 >

19쪽

지가 자리하고 있다. 혜음 원은 12세기 초에 건립되 었던 국영숙박시설이다. 고려 왕의 남행 시 행궁으 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 정되는 곳이다. 파주시의 발굴조사에 따르면, 24개 동의 건물 터와 유물, 유 구들이 출토되어 대단한 규모의 행궁이었음을 짐 작해 볼 수 있다. 혜음령 너머 용미3리는 세류동(細柳洞)이라고도 한다. 예로부터 잔버들이 많아 붙은 이 름으로 조선시대의 역참인 세류점(細柳店)이 있었다. 이 마을에는 병자호란 때 호병(胡 兵:오랑캐)이 이곳에서 후퇴하였다 하여 호주골이라고도 불렀고, 호병들이 많이 죽었다 고 하여󰡐죽골󰡑이라는 별칭도 있었다고 구술로 전해져 내려오는 것을 보면, 혜음령 일대는 이래저래 중국과의 인연이 남다른 곳이라 생각된다.

< 그림 7. 혜음원지 발굴 현장 >

미륵의 화신 석불입상, 의주길의 이정표로 우뚝 서

19세기 후반의 《1872년 지방지도》의 「파주지도」에는 혜음령(惠蔭嶺)-세류점(細柳 店)-석방(石坊)-미륵현(彌勒峴)-분수원(汾水院)으로 이어지는 의주대로(義州大路)에 ‘미륵현’이라는 지명이 나오는데, 바로 석불입상(龍尾里石佛立像, 보물 제93호)이 소재 한 곳이다. 혜음석불, 쌍불, 쌍불입상이라고도 부른다. 용미리 석불입상은 광탄면 용미리 장지산(長芝山) 자락에 위치한 용암사(龍岩寺) 경내 좌측 산 중턱 즈음에 있다. 혜음령을 넘어 세류참에 도착하면 멀리 장지산 중턱에 하얗게 쌍불이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 길을 지나는 과객들은 이 쌍불입상을 이정표로 삼기도 하였다. 용미리 석불입상은 ‘미륵불(彌勒佛)’이다.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 이는 이 석불입상은 천연 바위벽을 이용해 그 위에 목, 머리, 갓 등을 따로 만들어 얹어놓 은 2구(軀)의 거대한 불상이다. 거대한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했기 때문에 위압감은 있어

20쪽

보이나 신체 비율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원립불은 남상(男 像), 방립불은 여상(女像)이다. 용미리 쌍불입상 조성경위와 관련해서는 고려선종(宣宗)과 원신궁주(元信宮主)의 기도 와 불사로 왕자 한산후(漢山候)가 태어났다는 기자전설(祈子傳說이 전해지고 있어서인 지, 지금도 이곳에는 자식 점지를 기원하는 이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쌍불입상은 사행 길의 명소였던 관계로 많은 사신들이 직접 유람하거나 시문을 남겼는데, 이해응의 『계 산기정』(1803년)에도 혜음석불을 묘사한 시문이 전한다.

< 그림 8. 용미리 석불입상 >

혜음석불(惠陰石佛) / 이해응

曇雲如浪護山頭 물결 같은 흐린 구름 산 머리를 지키는데 石佛分身幷兩肩 돌부처 분신하여 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萬劫風磨猶卓立 만겁을 바람에 갈리면서도 그대로 우뚝서서 懸應太始上干天 멀리 태초와 호응하여 위로 하늘을 지르고 있다.

혜음재에는 돌미륵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 있 는데 그 키가 수십 척이나 된다. 머리에 이고 있 는 것은 하나는 네모지고 하나는 둥글다.

사신들이 파주목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만나는 또 다른 명소는 윤관장군 묘이다. 이해응 의 광탄교(廣灘橋)라는 시를 보면, “지나는 곳에 윤시중교자총비(尹侍中驕子塚碑)가 있 다. 예부터 이곳이 윤씨․심씨(沈氏)가 다투어 송사하던 곳이라고 일컬어왔다.”라고 하여, 고려 말 명장이자 문하시중을 지낸 윤관(尹瓘, ?~1111)장군의 묘역을 지나는 소회를 언

21쪽

급하고, 또한 당시 파평윤문과 청송심문의 산송분쟁 사연을 상기하기도 하였다. 1763년 에 처음 산송 분쟁이 생긴이래 두 집안의 분규가 나랏님(영조)의 중재로도 해결되지 못하 다가, 2008년에 두 집안 문중의 합의로 245년간의 산송분쟁이 해결되었다. 2007년 여 름 의주길 답사중이던 필자는 우연히 폭우로 영의정 심지원(沈之源, 1593~1662)의 묘역 과 봉분이 폭우에 훼손되는 것을 보고, 급히 청송심문에 연락하여 대책을 세우길 건의했 었다. 이런 연유로 후일 문중회장님과의 독대자리가 있었는데, 당신 생전에 산송분쟁 해 결 의지를 경청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어른은 선조인 심지원 묘역 이장을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작고하셨으니, 모두들 안타까워했다. 의주대로 길에서 만난 우리네 선조들의 삶과 문화와 역사가 이토록 기구함을 알 수 있다.

파평관에 머물다 이튿날 임진강을 건너다.

사신들이 저녁 무렵 파주목의 파평관에 도착하면 봉서당(鳳棲堂)에서 묵었다. 짐을 푼 아 랫사람들과 말몰이꾼은 인근 역참인 마산참(馬山站)에서 말(馬)에게 먹이를 주고 쉬거나 말을 교체하기도 하였을 테다. 마산리에는 연암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1780 년 중국 연행의 정사였던 박명원(朴明源, 1725~1790)과 화평옹주 합장묘역과 신도 비가 군부대내에 조성되어 있다. 파주의 행정소재지가 지금은 금촌으로 옮겨 진 탓에 옛 파주목 관아가 있던 주내(州內) 는 한적한 시골 소도시로 전락하고 말았지 만, 조선시대 파주읍은 인근의 4개 군현을 관할하는 영향력이 있었다. 파주목 관아 터 는 현재 파주초등학교와 인근의 군부대에 걸쳐 있었다. 객사인 파평관 역시 군부대에 위치한다. 초등학교 교정에 파주목 관아 문 루 주초석과 역대 파주목사들의 선정불망비 군이 있고, 100주년 역사관에는 옛 파주목

< 그림 9. 파주목관아 문루주초석 >

22쪽

관아의 형태를 알 수 있는 사진이 남아있어 옛 모습의 일부라도 확인할 수 있다. 파평관에서 하룻밤을 머문 사행은 아침 일찍 성황당치와 배내(梨川)를 지나 임진나루(臨 陣渡)에 당도하여, 배를 타고 동파나루를 거쳐 장단 임단관에 머물거나, 내친김에 송도 (개성)의 태평관에 들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임진나루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한반도 허리를 동서로 가로질러 흐르는 임진강은 한강과 합류 되어 서해바다로 이어지는 약 700리(274km)에 달하는 긴 강이다. 조선시대에는 바다와 내륙을 연결하는 교통수로 로서 화물선과 인마의 왕래가 빈번하였고, 경기북부와 한양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임진강 물길은 오늘도 수백년 시간을 거슬러 도도히 흐르고 있다. 사행은 임진나루에서 배를 타고 맞은편의 동파나루에서 내려 장단부 임단관에서 점심을 먹고 개성으로 향하였 다. 동파나루는 장단면 동파리에 속하는 지역이며, 현재 나루터의 흔적은 전혀 찾아 볼 길 이 없고, 군부대의 훈련장으로 사용되고 있어 민간인의 출입이 어렵다. 동파나루 인근에

< 그림 10. 옛 파주관아 건축물(파주초등학교 100주년역사관) >

< 그림 11. 임진나루에서 건너편 동파나루를 바라보고 있는 의주대로 답사단 >

23쪽

있었던 동자원(東子院) 옛 터 역시 군부대로 사용되 고 있다. 동파, 장단을 지나 개성으 로 향하는 길은 판문점 경 비대대인 JSA부대를 경유 하여 북측군사분계선을 지 나야 한다. 이 공간은 아무 나 출입할 수 없는 동토(凍 土)의 공간이지만, 불과 백 몇 십여 년 전, 이 공간을 자유롭게 오가던 연행사신들이 있었 다. 지금 당장은 그들의 행적을 문헌기록으로나 상상해야겠지만, 언젠가는 그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만은 놓지 말아야 한다. 경기옛길 의주길은 화석정 앞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의주대로의 원형은 임진나 루에서 강을 건너 동파나루에 닿고, 동파리, 장단을 지나 개성으로 향해야 한다. 의주길은 오늘날 망향의 동산이 있는 임진각으로 이어짐으로서 북녘의 의주대로를 잇지 못한 아쉬 움을 대신하고 있다. 언젠가 남북관계가 개선되어 민간의 교류가 이어지긴다면, 가장 먼 저 달려가야 하는 옛길은 역시 의주길이 아닐까! . 길(路)은 닫힌 공간이 아니라 활짝 열렸을 때 의미가 있게 마련이다. 길을 걷는 이들이 끊 임없이 이어져야 한다. 그 또한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기억하는 방법의 하나일 테니까.

< 그림 12. 화석정에서 바라본 임진강과 북한 개성의 송악산 연봉 >

다음호에 계속 연재

24쪽

길에서 만나는 고개 이야기

- 삼남길 흰치고개 이야기 -

덕암산과 부락산 사이를 넘어가는 흰치고개를 넘어갑니다. 흰치는 말 그대로 흰 고개 (峙)라고 할 수 있는데, 땅의 토질이 석회암층이라서 멀리서 보면 희게 보였기 때문이 라고 합니다. 흰고개라는 뜻을 한자로 그대로 옮긴 ‘백현白峴’, 또는 ‘희도希道’라고 불 리기도 합니다. 고개를 뜻하는 말로는 재라는 말이 있고, 목이나 티라는 말도 쓰입니다. 한자로는 령嶺, 치峙, 현峴, 점岾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매우 큰 고개󰡑란 뜻으로 관關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박달재, 말티재, 노루목, 곰티, 한티, 추풍령, 대관령, 한계령,정 령치, 우금치, 곰치, 아현, 인현과 같은 고개 이름들이 그것입니다. 백두대간 같은 큰 산 맥의 고개는 주로 령을 쓰고 있고, 동네의 작은 고갯마루는 현을 주로 씁니다. 한자로 항이나 점岾과 같은 말도 있었다고 하는데, 영남길의 문경새재가 그 지방 사람들이 ‘억 새풀고개’즉 ‘초점草岾’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고개는 산으로 가로막혀 있는 마을과 마을의 길을 열어주는 통로가 됩니다. 고개가 없 다면, 산의 이쪽과 저쪽은 단절되어 있는 곳입니다. 고개에 따라서는 오금이 저릴 정도 로 산비탈이 급한 곳도 있어, 고개 이름은 자연스레 오금재가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사람들은 이쪽과 저쪽의 생산물을 교환하여 서로의 부가가치를 높이 는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 길을 만들고 이어갑니다. 지게꾼들, 물류가 오고 가기 편한 곳이 고개가 되고, 고개는 이쪽과 저쪽의 생산물들이 오고 가는 길목의 정점입니다. 때문에 늘 산적이 출몰하여 생산물을 강탈당하기 좋은 곳이기도 합니다. 백현원은 삼남대로와 충청대로의 여행자들이 반드시 거쳐 가는 역 원驛院이었습니다. 지역연구자들에 의하면 여기 흰치고개에도 ‘백 현원’이라는 역원이 있었고 답사를 통해 그 터를 확인하였다고 합

25쪽

니다. 조사에 따르면 백현원과 관련된 고사故事 가운데, 세종 때의 재상인 맹사성과 관 련된 이야기가 많다고 합니다. 알다시피 맹사성은 황희와 함께 조선에서 가장 유명한 재상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하면 국역본으로 495건이 나옵니다. 기록이 적은 왕 들만큼이나 많은 수량입니다. 그는 고려 말의 충신 최영 장군의 손녀사위로, 세종 대까지 재상을 했던 인물입니다. 호가 옛부처 즉, 고불古佛 이라고 하며, 조선의 청백리라고 불릴 정도로 청렴결백하였다 고 합니다. 학문을 총괄하는 대제학과 영의정까지 지낸 인물 이지만, 소를 타고 고향을 가거나 하면서 가마 행차와 같은 요란한 행차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침연印沈淵이라는 스 토리도 맹사성의 검소함과 강직함을 말해줍니다. 이야기인즉슨 맹사성은 삼남길의 온 양에 있는 부친을 뵈러 가는 길에도 늘 각 고을의 관가에 들르지 않고 언제나 간소하게 다니며 때로는 소를 타고 다니기도 하였습니다. 어느 날 두 고을의 수령이 그가 내려온 다는 소식을 듣고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오기로 한 정승은 오지 않고 수령들 앞으로 소 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서 수령이 하인으로 하여금 그를 불러 꾸짖게 하였습니 다. 그랬더니 그가 하인에게 자신이 온양에 사는 맹고불이라고 일러라 했더니 두 고을 의 수령이 놀라 달아나면서 언덕 밑 깊은 못에 도장을 빠뜨려 사람들이 인침연印沈淵 이라 불렀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재미있는 이야기는 잘 알려진 공당문답입니다. “한양에는 무엇하러 가는 公?” “과거시험 보려고 갑니 堂” “내가 뽑아 줄 公?” “농담하지 맙시 堂” 맹사성은 늘 길가의 거렁뱅이 견공犬公에게서라도 항상 배울 것이 없을까 생각하는 것이 공인公人의 길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신분의 격차 에도 조금의 허물도 없는空 그의 일화에는 항상 교훈供이 있습니다.

(출처 : 『경기옛길 이야기책』, 경기도문화유산과, 2019, pp23~25)

26쪽

경기옛길 | 이야기

의주길과 파주의 변화

조선 후기 경기 남부의 최대 장시는 누가 뭐라 유통을 한강의 수운에 의지했는데요, 한강을 해도 송파장과 안성장이었습니다. 물론 이후 통해 운송되는 수산물과 소금, 미곡 등은 대부 수원읍장과 같은 다른 장시들이 급성장하며 분 봉일천장을 거쳐 경기 북부로 유통될 정도 송파와 안성을 위협하기도 했지만요. 각 장시 였습니다. 특히 한양과 더불어 조선의 또 하나 의 위상이 변화하는 것은 지역의 성장과 관계 의 경제 중심 도시였던 송도(개성)와 면해 있는 가 있지만 명확한 것은 경기 남부의 유명 장시 지역이기 때문에 그 경제적 파급력은 엄청난 들은 모두 경기옛길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양상은 한국 는 점입니다. 송파장은 영남길, 안성장과 수원 전쟁으로 인해 순식간에 뒤바뀌게 됩니다. 장은 삼남길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지요.

6·25 전쟁이 발발하자 경기 북부에서 서울을 그렇다면 경기 북부의 최대 장시는 어디였을까 잇던 의주길은 일순간에 폐쇄되었고 일제 강 요? 역시 경기옛길을 배경으로 하는 누원장과 점기까지 활발하게 운영되던 한강과 임진강 봉일천장이었는데 이중 봉일천장은 현재 경기 의 수운은 휴전선으로 인해 더 이상 배가 다니 옛길 인근에 위치합니다. 경기옛길로 조성되지 지 못하게 됩니다. 의주길과 한강 수운을 배경 는 않았지만 함흥, 연해주로 향하는 경흥로의 으로 하던 봉일천장은 더 이상 경기 북부 물류 최대 장시가 양주의 누원점이었고 누원점과 쌍 유통의 중심지가 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죠. 벽을 이루는 봉일천장은 현재 경기옛길 의주길 다행인지 불행인지 봉일천의 쇠퇴 이후 군부 (관서대로) 주변에 위치하였습니다. 특히 의주 대의 주둔으로 인해 경제 중심지가 문산과 금 길에 위치한 봉일천장의 경우는 한강의 수운 촌으로 이동하여 파주의 경제는 완전히 몰락 과 옛길 육로가 만나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하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이후 새로운 산업단 조선시대 기록인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 지의 유치와 안보 문화관광지로 파주가 각광 考)』나 조선총독부의 조사 기록인 『조선의장 받게 되면서 파주는 새로운 형태의 도시로 자 시(朝鮮の場市)』 등의 각종 문헌에서도 일제 리매김하게 되지만 봉일천장을 경기 북부 최 강점기까지 문산장과 함께 파주에 있는 경기 대의 장시로 만들었던 의주길이 다시 연결될 북부 최대 장시로 기록하고 있는 곳입니다. 날은 요원하기만 합니다. 조선은 세곡의 운송을 포함한 대규모의 물류

(출처: 『경기옛길 이야기책』, 2017, 경기문화재단, p58)

27쪽

경기옛길 탐방기

글‧그림 박정화

36쪽

- 끝 -

37쪽

‘경기옛길 소식지’ 원고모집

‘경기옛길 소식지’의 원고를 모집합니다. ‘경기옛길’에 관심 있는 누구나 지원할 수 있으며 채택되신 분에게는 소정의 기념품을 보내드립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지원 바랍니다.

주제 분야 분량 마감 혜택

문의

경기옛길 관련 자유주제 제한없음(시, 소설, 수필, 칼럼 등) 200자 원고지 10매 내외 없음(수시접수) 채택 원고는 소식지에 게재하고 소정의 기념품 지급 응모방법 이메일 또는 우편 중에서 선택 이메일 ggcrkr@naver.com 우편

(우16488)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인계로 178, 4층 문화유산팀(경기옛길센터) 경기옛길 소식지 담당자 앞 경기옛길 소식지 담당자(031-231-8576)

경기옛길 소식지를 스마트폰으로 받아 보시려면 경기옛길 홈페이지에서 ‘문자알림 신청’ 하세요.

경기옛길 소식지는 온라인으로 발행되는 계간 소식지로

문자알림, 뉴스레터 수신 동의자에게 발송됩니다.

관련문의 및 수신거부 요청 : 031-231-8576

38쪽

안전한 도보 여행을 위한 안내

- 너무 이르거나 늦은 시간의 도보여행은 삼가주세요. - 혼자 도보여행을 할 경우에는 주변 사람에게 행선지를 꼭 알리세요. - 가급적이면 2명 이상이 함께 도보해주세요. - 긴급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비상 연락처를 미리 알아두세요. - 물, 간식, 응급약은 꼭 가지고 다니세요. - 찻길을 걸을 때는 길가에 붙어서 한 줄로 걸어가세요. - 도보에 불필요한 귀중품, 장신구 등은 가지고 다니지 마세요. - 태풍, 폭우, 공사 등으로 위험지역이 생길 수 있으니 주의 깊게 살피며 걸으세요. - 안전은 결국 본인에게 달려 있습니다. 도보 여행 중에는 항상 안전에 유의해주세요.

경기옛길 홈페이지 www.ggcr.kr

경기문화재단 경기옛길센터 031-231-8524 (16488)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인계로 178, 경기옛길센터(4층)

39쪽

길명

총연장

경기옛길 삼남길 99.6 Km

경기옛길 의주길 60.9 Km

경기옛길 영남길 116 Km

경기옛길 평해길 133 Km

경기옛길 경흥길 88.5 Km

경기옛길 강화길 52 Km

경기옛길 조성현황

구간 제1길 제2길

구간명 한양관문길 인덕원길

제3길 제4길

모락산길 서호천길

제5길 제6길

중복들길 화성효행길 독산성길

제7길 제8길

오산생태하천길 진위고을길

제9길 제10길 제1길

소사원길 벽제관길

제2길 제3길

고양관청길 쌍미륵길

제4길 제5길

파주고을길 임진나루길

제1길 제2길

달래내고갯길 낙생역길

제3길 제4길

구성현길 석성산길

제5길 제6길

수여선옛길 은이성지·마애불길 구봉산길

제7길 제8길

죽주산성길 죽산성지순례길 이천옛길

제9길 제10길 제1길

망우왕숙길 미음나루길

제2길 제3길

정약용길[마재옛길] 두물머리나루길

제4길 제5길

물끝길[양근나루길] 거무내길

제6길 제7길

지평향교길 고래산길

제8길 제9길

구둔고갯길 솔치길

제10길 제1길

사패산길 천보산길

제2길 제3길

축석고갯길 파발막길

제4길 제5길

반월산성길 만세교길 제6-1길 제6-2길 독곡아트밸리길(테마노선)

제7길 제8길

영평팔경길 한탄강세계지질공원길 천등고갯길

제1길 제2길

금릉옛길 운양나룻길 한남정맥길

제3길 제4길

거리 (km) 9.8

소요시간 2시간 30분 1시간

3시간 40분 2시간

2시간 1시간 50분 2시간

1시간 40분 4시간 50분

4시간 2시간 30분 3시간

5시간 10분 3시간 30분

4시간 3시간 30분 2시간 30분

5시간 3시간

4시간 5시간 30분 5시간

4시간 30분 3시간 30분

3시간 30분 2시간 40분

3시간 40분 4시간

5시간 4시간 30분 5시간 30분

3시간 30분 6시간

5시간 20분 2시간 20분

3시간 30분 3시간 20분

3시간 40분 3시간

4시간 10분 4시간

4시간 4시간 30분 3시간

3시간 10분 3시간 20분

4시간 40분 5시간 10분

40쪽

온라인 소식지

겨울

(우)16488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인계로 178, 4층 문화유산팀 경기옛길 홈페이지 : www.ggcr.kr 대표전화 : 031-231-8524 / 대표 이메일 : ggcrkr@naver.com

글이 없거나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쪽은 뺐습니다. 이북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