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옛길 소식지 2025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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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03 소식
온라인 소식지
2025년 2분기 평해길 탐방로 노선 변경 / 경기옛길 스탬프함 변경 2025년 3분기 탐방로 노선 변경 예정 2025년 “경기옛길 더하기, 미래” - 유아 탐방 프로그램 “경기옛길 더하기, 환경” 3회차 - 지평향교길에서 열린 특별한 하루 08 코스소개 더운 여름날, 실내에서 즐기는 경기옛길 박물관 여행 10 탐방객 인터뷰 명예완주자 원의연 탐방객님 12 문화유산 초록의 계절, 역사 속을 걷다. 안성 죽주산성 13 이야기 어비리와 어윤중 - 고기가 살찌는 마을이 되다 15 기고문
걷는 발길, 머무는 마음 – 명예완주자 원의연 탐방객의 도보기행기 18 역사탐방 양평양동 동계팔경
여름
죽주산성 전경
2025년 2분기 평해길 탐방로 노선 변경
경기옛길 평해길 구간에 2025년 2분기 중 소규모 노선 변경이 세 차례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변경은 공사나 사유지 통제로 인한 조정이 아닌, 탐방객 편의 향상을 위한 개선과 기존 우회 노선의 원형 복원을 중심으로 이뤄졌습니다. 자 세한 변경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제4길 > 부용리 부용4교 논두렁길 경유 구간 정비 (5월 17일 시행) 부용리 부용교(에듀셀파 기숙학원 앞)에서 부용4교까지 이어지는 논두렁길 대신, 보다 안전하고 걷기 편한 차도 옆 가로수길로 노선을 조정하였습니다.
• 03 •
평해길 제4길 두물머리나루길
< 제5길 > 신원정수장 옆 수변공원 산책로길 원형 복원 (5월 19일 시행) 그간 신원정수장 공사로 인해 자전거도로를 우회로로 사용해왔던 구간이 공사 완료에 따 라 본래 수변공원 산책로로 복원되었습니다. 쾌적한 환경에서 여유롭게 걸을 수 있는 경 로입니다.
평해길 제5길 물끝길(양근나룻길) < 제7길 > 송현리~지평역 구간 탐방노선 개선 (5월 24일 시행) 기존 차도길 대신, 역말2교 옆 하천변 산책 로로 노선을 변경했습니다. 소음과 분진 등 의 불편을 줄이고, 보다 쾌적한 탐방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평해길 제7길 지평향교길
경기옛길 스탬프함 변경
경기옛길 삼남길, 의주길, 영남길의 스탬프함이 올 하반기부터 순차적으로 전면 교체될 예정입니다. 10년 이상 사용된 기존 스탬프함은 반복적인 훼손과 보수로 인해 유지 관리에 어려움이 있었으며, 이번 교체는 탐방 객의 인증 편의성과 관리 효율을 높이기 위한 조치입니다. 새롭게 제작될 스탬프함은 기존 디자인을 바탕으로 하되, 내구성 강화, 보수 용이성, 관리 효율성을 고려하여 개선된 형태로 설치될 예정입니다.
우선적으로 삼남길부터 교체가 시작되며, 예산과 일정에 따라 의주길과 영남길도 순차적으로 교체될 계획입니다. 한 편, 경흥길과 강화길의 스탬프함은 현재 상태를 점검한 후, 필요한 경우 부분 교체 및 보수를 통해 유지할 예정입니다. 새롭게 선보일 스탬프함에도 많은 관심과 이용 부탁드립니다. <정용균 연구원>
• 04 •
2025년 3분기 탐방로 노선 변경 예정
다가오는 3분기에도 일부 노선 변경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현재 현장 조사를 진행 중이며, 아래와 같은 구간이 주요 대상입니다. 의주길 제2·3길 노선 대폭 개선 예정 의주길 제3길 일부 구간은 민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온 소음·분진 불편 구간 4곳을 중심으로 노선 변경이 추진됩 니다. 특히 이번 조정은 옛 의주대로의 원형에 좀 더 근접한 경로를 반영하려는 목적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제2 길 끝부분인 용미2교차로에서 혜음원지까지의 구간도 함께 변경될 예정입니다.
경흥길 제6·7길 구조적 변경 제6길 천주산 묘역 구간은 사유지 통제로 인해 통행에 제약이 있었고, 그간 소유주와 지속적으로 협의를 진행해왔습 니다. 그러나 더 이상 협의가 어렵다고 판단되어, 해당 구간은 노선 변경하기로 최종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제7길 영 평천 인근 구간은 수풀이 급속히 번성하고, 우천 시 습지화로 인해 통행이 어려워짐에 따라 새로운 노선으로 조정될 예정입니다. 포천시와 협력하여 예초 작업을 시도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이 어려운 것으로 판단되어 최종 변경을 결정 했습니다. 대대적인 변경이어서 새로운 경흥길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평해길 제10길 우회 노선 검토 중 평해길 제10길은 현재 안내판 내용 오류, 스토리보드 위치 민원 등이 지속 제기됨에 따라 노선 변경을 적극 검토 중 입니다. 새로 검토 중인 쌍학리 방향 우회 노선은 기존보다 약 2~3km, 소요시간은 1.5시간가량 늘어나며, 난이도도 높아지는 경로입니다. 다만 역사문화 탐방로라는 경기옛길의 특성상 보다 충실한 내용 전달을 위한 조정이 필요하다 는 판단 아래, 일정 수준의 난이도 상승을 감수하더라도 변경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아울러 9·10길의 방향 안내판도 전면 교체되어, 향후 더 나은 이용 환경을 제공할 예정입니다.
그 외의 노선 변경 예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 봉화길 제7길 세종산림욕장 원형 노선 복원 예정 * 영남길 제5길 고속도로 램프공사로 우회노선 변경 예정 * 영남길 제7길 구봉산 진입시 농로길 대신 임도길 노선 이용 예정
탐방객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는 경기옛길의 품질을 더욱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노선 변경 구간을 사전에 확 인하시고, 현장에서의 경험이나 의견도 적극 공유해 주세요. 경기옛길은 앞으로도 편리하고 안전한 탐방 환경을 위해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겠습니다.
• 05 •
<정용균 연구원>
2025년 “경기옛길 더하기, 미래”- 유아 탐방 프로그램
푸른 5월, 강화길 제2길(금릉옛길) 김포 장릉 일대에 는 아이들의 작은 발걸음이 가득했습니다. 금릉옛길은 조선 인조의 부모인 원종과 인헌왕후가 잠든 김포 장릉을 중심으로 이어진 길입니다. 조용한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왕릉의 역사와 선인들의 발 자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장소입니다. 아이들은 눈앞에 펼쳐진 전통건축과 자연 경관을 통해 책에서 보던 역사를 보다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날 탐방은 단순한 산책을 넘어, 과거의 인물들이 걸었을 길을 따라 걸으며 자연스럽게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배 움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고요한 김포 장릉의 자연 속에서 역사의 숨결을 온몸으로 느끼며, 옛길 탐방은 아이들에게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탐방을 마친 후에는 투호던지기, 부채만들기 등 전통놀이 체험이 진행됐습니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조상들의 지 혜와 놀이 문화를 경험했으며, 부채 만들기 시간에는 각자의 개성과 상상력을 담아 다양한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완 성된 부채를 친구들과 자랑하며 웃는 모습이 몹시 사랑스러웠답니다. 경기옛길센터는 이번 유아 탐방이 아이들에게 단순히 재미있는 하루를 넘어, 오래 기억되는 역사 속 산책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경기옛길은 단순한 길이 아닌, 과거의 이야기와 문화를 아이들에게 전하는 소중한 교육 자원입니다. “경기옛길 더하 기, 미래”는 옛길을 통해 유아들이 자연스럽게 역사와 문화를 배우는 경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배주희 연구원>
이 프로그램은 올 하반기에도 계속될 예정입니다. 다음엔 또 어떤 길 위에서 아이들과 마주하게 될까요? 경기옛길은 앞으로도 일상 가까이에서, 차분하지만 꾸준히 그 길을 이어갈 것입니다.
• 06 •
지평향교길에서 열린 특별한 하루
“경기옛길 더하기, 환경” 3회차
지난 6월 22일(일), 양평 지평면에 위치한 평해길 제7길 지평향교길에서 “경기옛길 더하기, 환경” 3회차 행사가 열렸습니다. 이번 행사는 걷기 동호회 ‘발길이 머무는 곳 에’ 회원 20여 명과 함께, 환경정화와 지역문화체험을 결합한 시민참여형 탐방 프로그램으로 운영되었습니다. 참가자들은 약 2.4km 코스를 걸으며 지평향교, 지평의 병·지평리 전투기념관, 지평주조 양조장을 차례로 탐방 했습니다. 이들은 걷는 내내 쓰레기를 줍는 정화활동도 병행하며,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 간을 가졌습니다.
탐방 중간에는 문화해설이 곁들여져 지평지역의 항일운동 역사와 조선 유교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졌고, 특히 지 평주조와의 협업으로 마련된 전통주 제조 견학 및 체험은 참가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한 참가자는 “쓰레기를 줍는 활동이 곧 지역을 이해하는 시간이 됐다”라며 “막걸리 양조장까지 이어지는 구성 덕분 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라고 소감을 전했습니다. 경기역사문화유산원 관계자는 “지평향교길은 유교 전통, 독립운동 의 흔적, 농촌 풍경이 어우러진 특별한 길”이라며 “지역 기업과의 연계가 돋보인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문화유산을 생활 속에서 더 가까이 만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라고 밝혔습니다.
“경기옛길 더하기, 환경”은 하반기에도 예정되어 있습니다. 걷기, 환경 실천, 지역문화가 함께하는 길 위에 여정에 많 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이주영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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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여름날, 실내에서 즐기는 경기옛길 박물관 여행
경기옛길은 조선시대 역사지리서들을 토대로 옛길을 재해석한 역사문화 탐방로입니다. 그만큼 오랜 시간 사람과 이야기가 오갔고, 수많은 역사와 문화가 축적되어 있는 길이기도 하지요. 이러 한 역사적 배경 덕분에 경기옛길에는 특색있는 박물관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무더운 여름, 뜨 거운 햇살을 피해 시원한 실내에서 역사와 문화를 만나는 의미있는 여행은 어떨까요?
영남길 제1길 달래내고개길 – 판교박물관
영남길을 따라 걷다 보면, 삼국시대의 시간을 품은 ‘판교박물 관’을 만날 수 있습니다. 판교는 예로부터 사람들이 오가던 교 통의 중심지였고, 1990년대 이후 신도시 개발이 시작되면서 땅을 팔 때마다 옛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고 합니다. 도시는 계획대로 지어야 했기에, 유물이 나온 땅을 아예 통째로 들어 박물관 안에 옮겨 담은 곳이 바로 이곳, 판교박물관입니다. 외관부터 세련되게 꾸며진 이 박물관은 삼국시대 유물을 중심 으로 다양한 해설과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어, 시원한 실내에 서 역사 이야기를 즐기기에 참 좋습니다.
• 09 •
삼남길 제4길 서호천길 – 해우재
서호천을 따라 걷다 보면, 눈을 의심하게 되는 독특한 건물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해우재’, 세계에서도 드물게 화장 실을 주제로 한 박물관입니다. 한반도의 전통 재래식 화장실에서부터 세계 각국의 다양한 화장실 문화에 이르기까지 해우재는 위생과 일상을 색다른 시선으로 조명합니다. ‘볼일’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에 앞장서 온 전 심재덕 수원시장이 사비를 들여 지은 이 박물관은, 현재 화장실문화 재단까지 출범하며 그 뜻을 더욱 넓혀가고 있습니다. 유머와 정보, 교육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해우재는 경기옛길을 따라 걷다 들러보기에 더없이 흥미로운 공간입니다.
평해길 제7길 지평향교길 – 지평의병 지평리전투기념관
삼국시대 유물도 감상하고, 재밌는 화장실도 구경했다면 다음 은 근현대 역사를 다루는 박물관입니다. 평해길을 따라 양평군 지평면으로 향하면, 한국전쟁의 치열한 전장을 기억하는 ‘지평 의병 지평리전투기념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평은 예로부터 경기 동부의 중심지였고, 그만큼 지역민들의 자긍심도 남다른 곳이었습니다. 독립운동도 활발히 일어났고, 현재의 지평면사무소 자리도 옛날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장소 이기도 합니다. 특히 지평은 한국전쟁 당시 전세를 뒤바꾼 중 요한 전투가 벌어진 곳으로, 기념관은 그 시기를 생생하게 보 여주는 자료와 전시물로 가득합니다. 기념관을 조용히 둘러보 며, 우리나라가 걸어온 시간과 그 속의 희생을 되새겨보는 것 은 어떨까요?
역사도 배우고, 색다른 경험도 쌓고, 더운 여름에 잠시 시원한 실내에서 쉬어갈 수 있 는 일석삼조의 여정! 이번 여름에는 옛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문득 만나는 박물관 하 나에서 여름날 걸음의 여유를 더해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입니다. <이소정 연구원> 참고자료 :《경기옛길 더하기》, 경기옛길센터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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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 쌓인 이야기 기록으로 남은 발걸음
특별 인터뷰
<명예완주자 원의연 탐방객님>
Q.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고양시 일산구에 거주하고 있는 원의연입니다. 원래 등산을 즐겨 하면서 자연스럽게 걷 는 것에도 흥미를 갖게 되었어요. 그러던 중 고양시에 경기옛길이 새로 개통됐다는 소식을 듣고, ‘한번 걸어 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길은 고양시에서 시작해 파주 인근까지 이어지는데, 부담 없이 걸어볼 수 있는 거리라고 느꼈죠. 특히 저는 조선 시대 육대로에 원래 관심이 많았는데, 이 길이 바로 그중 하나인 ‘의주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럼 이게 바로 의주대로가 아니겠나’ 싶었어요. 제 생각이 맞다는 말을 들 으니 이번 기회에 꼭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 먹게 됐습니다. Q. 선생님께서 직접 걸으신 탐방 기록을 정성스럽게 제본해 보내주신 덕분에 이렇게 인터뷰를 모시게 되 었습니다. 걷는 여정을 글로 남기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A. 기록을 남기게 된 건 백두대간 종주 경험에서 비롯됐어요. 2년에 걸쳐 우리나라의 큰 산줄기를 완주했는데, 그때는 아무런 기록도 없이 마무리했거든요. 전날 밤잠도 설쳐가며 새벽부터 걸었지만, 끝나고 나니까 ‘내 가 뭘 한 걸까’ 싶은 허전함만 남더라고요. 그런 아쉬움이 커서 그 다음부터는 ‘글재주는 없어도 기록은 남
겨보자’는 마음이 생겼죠. 이병진 선생도 대변 일기를 썼다는데, 나도 못할 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걷는 길마다 생각과 감정을 적기 시작했고, 이제는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오히려 뭔가 빠진 것 같 아요. 의주길을 걸을 때도, 내가 어떤 마음으로 그 길을 걷고 있는지를 꼭 담아두고 싶었어요. 그 글을 다시 보면, 길 위의 풍경뿐 아니라 그때의 감정, 젊은 시절의 기억까지도 함께 살아나는 기분이에요. 그래서 계속 쓰게 됩니다. Q. 기록을 하시면서 특별히 신경 쓰신 부분이 있을까요? A.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단순히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그 길에 담긴 역사와 이야기를 느끼는 것이었어요. 산 길은 자연을 따라 걷는 느낌이라면, 경기옛길은 실제 사람들이 오가던 길이라 그런지 사람의 땀과 시간이 배어 있는 듯했죠. 설화나 역사, 문화유산이 길 위에서 감동적으로 다가오면서, 저도 모르게 우리 땅에 대한
애정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이 길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냥 지나치지 않으려 노력 했어요. 특히 경기옛길 가이드북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길의 소개는 물론, 관련 문화재나 유산까지 잘 정리 돼 있어서 길을 더 깊이 이해하고 느낄 수 있었죠. 그게 참 큰 힘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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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선생님께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꾸준히 경기옛길을 걸어오셨고, 그 여정이 거의 10년에 달한다고 들 었습니다. 이렇게 긴 시간을 들여 걷는 과정속에서 스스로 느낀 변화나 깨달음이 있으셨을까요?” A. 처음부터 계획을 세우고 시작한 여정은 아니었어요. 저는 그저 계속 길을 걸어오던 사람이었고, 그러다 보 니 ‘어느 날 큰 깨달음을 얻었다’기보다는 걸음걸음마다 조금씩 알게 되는 것들이 쌓여 갔죠. 책에서만 보던 내용들을 길 위에서 직접 보고, 느끼고, 배우는 경험은 정말 특별했어요. 예를 들어 의주길 수색고개에 이르
렀을 때, 그곳과 얽힌 벽제관 전투 이야기를 처음 접했어요. 그 순간 ‘아, 오늘도 또 하나를 배웠구나’ 하고 참 흐뭇하더라고요. 그렇게 역사의 현장을 직접 밟으며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이 저에게는 큰 기쁨이었고, 지적으로도 아주 풍요로운 시간이었습니다. Q. 선생님께서는 기록을 남기면서 탐방을 진행하셨잖아요. 그런 방식이 여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요? 예를 들어 주변을 더 자세히 보게 된다든지요. A. 기록을 하면서 길을 걷다 보니, 하나하나 그냥 지나치지 않게 되더라고요. ‘이 지명은 무슨 뜻일까? 여긴 예전에 어떤 이야기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라요. 예를 들어 ‘지지대비’ 같은 이름을 만나면, 그게 무 슨 뜻인지,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를 찾아보게 되고, 길가에 놓인 비석을 보면 그 안에 어떤 내용이 새겨져 있을
지 꼭 읽어보게 돼요. 그렇게 하나씩 알아가다 보면 선조들이 남긴 유산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커지고요. 그 냥 스쳐 지나가는 게 아니라, 기록을 통해 되새기고 또 나중에 다시 보아도 새롭게 느껴지는, 그런 깊이가 생겨요.
Q. 2025년 올해, 경기옛길 완주를 마치셨잖아요. 앞으로 또 걸어보고 싶은 길이나, 도전하고 싶은 탐방 계획이 있으실까요? A. 물론 계획이라는 건 세우면 좋지만 딱히 정해진 계획이 있지는 않아요. 또 ‘코리안 둘레길’이 있는데, 그길이참 방대해서 아직은 손을 못 대고 있어요. 경기옛길 걷는 동안에 경기둘레길도 완주했고, 서울둘레길도 꾸준히 걸어왔어요. 그래서 앞으로도 좋은 길 이 생기면, 그때그때 가서 걸을 겁니다. 꼭 어디를 가야겠다는 것보다는, 길이 열리면 언제든지 걸을 준비가
되어있어요. Q. 마지막으로, 경기옛길 탐방을 망설이고 계신 분들께 조언이나 응원의 메시지를 부탁드릴게요. 길이 있다는 건 알지만, 선뜻 나서지 못하는 분들도 많거든요. A. 걷는 건 결국 체질화가 되어야 해요. 몸이 익숙해지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길이라도 선뜻 나서기 어렵거든 요. 하지만 한 번 걷는 데 익숙해지면 그다음부터는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이어지죠. 특히 경기옛길은 단순 한 산책로가 아니에요. 조선 시대 6대로를 가능한 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한 길이라, 그 안에는 우리 한반도
의 역사가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길을 걷는다는 건 단순한 걷기가 아니라, 말 그대로 ‘역사 탐방’ 이고 ‘도보 여행’이에요. 차를 타고 스쳐 지나가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죠. 내 발로 직접 그 땅을 밟으며, 그 위에 쌓인 시간과 이야기를 느낄 수 있어요. 그게 정말 큰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저는 망설이는 분들 께 꼭 한번 시작해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677km라는 긴 여정을 완주하고 나면, 그 뿌듯함과 자부심 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겁니다.
<인터뷰 진행 : 이소정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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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옛길 | 유산
초록의 계절, 역사 속을 걷다. 안성 죽주산성
짙어진 녹음과 함께 한층 깊어진 여름, 경기옛길 영남길 제8길 죽주산성길을 따라 걷다 보면 길 위에서 인상 깊은 유적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름에서 짐작하셨듯이 바로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매산리에 자리한 죽주산성(竹州山城)입니다. 이 산성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오랜 세월 동안 사용된 석축 산성으로, 현재는 경기도 기념물 제69호로 지정되어 있 습니다. 죽주산성은 해발 250m의 죽주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내성과 외성을 모두 갖춘 삼중 방어 구조로 이루어 져 있습니다. 성벽의 전체 둘레는 약 1,688m이고, 북쪽에서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주요 성벽 구간이 복원되어 오늘날에도 그 위용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산세를 따라 축조된 성곽은 지형을 최대한 활용해 설계되었고, 치밀하게 짜인 구조 는 방어에 최적화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죽주산성이 역사 속에 중요하게 등장한 시점은 바로 고려시대입니다. 1231년, 몽고군이 고려에 처음 침입했을 당시, 죽주 산성에서는 뜻깊은 항전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죽주방호별감이었던 송문주 장군은 성 안으로 병력과 주민들을 이끌고 들 어가 철저한 준비로 몽골군의 공격에 맞섰습니다. 송문주 장군은 이 전에 몽고장수 살리타(撒禮塔)에 맞서 성을 방어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이에 몽고군의 공격법을 미리 알고 대비해 백성들에게 신명(神明)이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현재 죽주 산성 안에는 송문주의 충절을 기리는 사당이 세워져 그 정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죽주산성은 고고학·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유적이기도 합니다. 고고학 조사에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토기, 기 와류, 자기편 등의 유물이 다수 출토되었습니다. 또한 성벽에는 방어용 각루와 포대가 설치된 터가 곳곳에 남아있고, 성 안팎으로는 전략적으로 배치된 문지와 보루의 흔적도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시대별 성곽의 공간 체계 변화와 축성 기술의 발전을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사료입니다. 과거 전쟁의 최전선이었던 죽주산성은 이제 고요한 자연과 어우러진 역사 탐방로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죽주산성길을 따 라 걷다 보면 성벽 너머로 펼쳐지는 안성의 풍경 속에서, 전란의 시대를 지혜와 용기로 이겨낸 선조들의 숨결을 생생하게 느끼실 수 있습니다. 무더운 여름날, 숲 그늘 속을 걷는 산책과 함께 살아 있는 역사 체험을 원하신다면 죽주산성길에서 그 여정을 시작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이소정 연구원> 참고자료 : <성곽 길라잡이 1> - 전국문화원엽합회 경기도지회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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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비리와 어윤중-고기가 살찌는 마을이 되다
이동면의 어비천은 진위천이라고도 하는데, 본래는 장호천이라고 불렀다. 이 장호천의 한 줄기에 어비울(魚悲 鬱)이라고 불리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경기옛길 | 이야기
경기옛길 이야기
길을 걷다 보면 뜻밖의 이야기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경기옛길을 따라 이동면 어비 리 쪽으로 발길을 옮기다 보면, 조용한 시골 마을 풍경 속에 잊힌 듯 남겨진 역사 한 장면과 마주하게 됩니다. 지금은 평화로운 이 마을이, 한때 격변의 시대 속에서 한 인물의 운명이 갈린 장소였다는 사실은 쉽게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어비리’라는 이 름 속에 담긴 사연을 알고 나면, 이 길 위의 풍경이 조금 다르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한말 일본의 세력을 등에 입은 개화당의 거두 김홍집(金弘集) 내각이 친로파 세력에 붕괴되고 김홍집이 살해되었 을 때였다. 탁지부대신으로 있던 어윤중은 자신의 목숨 역시 위험함을 알고는 밤낮으로 달려서 고향으로 피신하 였다. 일설에 의하면, 어윤중은 여장을 하고 가마를 탄 채 용인현을 겨우 빠져나왔다고 한다. 어윤중을 추격하던 관군은 당시 용인군수였던 김순웅에게 파발을 보내어 길목을 지키도록 하였다. 긴급 명령을 받은 군수는 군인을 대동하고 급히 말을 달려 추격하면서 주민 정원로 등을 가세시켜 포위망을 압축하였다. 서울에서 용인은 백여 리가 넘는다. 밤낮으로 달렸으나 어느 곳까지 당도했는지를 알 수 없는지라 어윤중은 산 고 개를 넘어서자마자 가마꾼들을 쉬게 하고는, 지나가는 아이를 불러 이곳이 어디쯤이며 마을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아이는 서울에서 약 150여 리쯤 되는 곳으로, 마을 이름은 어비울이라고 대답하였다. 이 말에 어윤중이 깜짝 놀라서 어비울의 한자를 어찌 쓰느냐고 하니까, 고기 어(魚)에 슬플 비(悲), 답답할 울 (鬱)자를 쓴다고 말했다. 어윤중은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가마꾼들을 독촉하면서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다 고 다그쳤다. 그리하여 가마에 올라 막 떠나려던 찰나에, 뒤에서 “섰거라!”하면서 관군이 추격해 왔다. 아뿔사! 더 빨리 달리라 고 고함쳤으나 결국 붙잡히고 말았다. 일이 급하게 되자 가마꾼들은 모두 도망가고, 장옷으로 가렸던 얼굴이 드러 나게 되자 정원로 등 군정들은 쇠로 만든 도리깨로 어윤중을 인정사정없이 죽여 버렸다. 사람들은 어윤중이 어비울, 즉 슬프고 답답한 곳을 잘못 지나간 것이라고 하였다. 그 후 1910년에 순종은 어윤중 을 규장각 대제학으로 추증하는 한편, 제관을 보내어 사당에 제사를 지내주고 영혼을 위로하였다. 그 후 그가 죽은
오래된 길이 들려주는 작은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다음 걸음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곳을 어비리(魚肥里), 즉 고기가 살찌는 마을로 고쳐 쓰도록 하여 지금의 마을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1960년대에 마을에 저수지가 들어서면서 그 이름대로 ‘고기가 살찌는 곳’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어비리는 이름처럼 고기가 잘 자라는 평온한 마을로 남아있습니다. 슬 픔이 깃든 옛 이름은 사라졌지만, 그 시절의 이야기는 여전히 이 땅 어딘가에 스며 있습니다. 길을 걷는 일은 때로 그렇게 오래전 누군가의 흔적을 조용히 따라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경기옛길 위에서 만나는 어비리의 이름과 사연은
이야기 발췌 :《경기도 역사와 문화 설화와 민담》경기문화재단 경기학연구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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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길 수여선옛길
「걷는 발길, 머무는 마음」
명예완주자 원의연 탐방객의 도보기행기
석성산에서 하차한 후, 용인 행정타운을 왼쪽에 두고 보도블록을 따라 걷다 보니 금학천에 이 르렀다. 자전거길이 멋지게 조성되어 있고, 냇가의 물도 맑다. 2급수와 3급수의 중간 정도쯤 되는 물 상태처럼, 지금 내 마음도 그 정도인 것 같다. 징검다리도 놓여있고, 매미 소리도 들을 수 있어 좋았지만, 직사광선에 그대로 노출되어 천변에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금 학천을 걸어가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불과 3km밖에 되지 않는 짧은 거리이지만 때가 한낮의 여름으로 폭염특보가발령된 상태였 기에 곧게 뻗어간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걸어갈 의욕이 상실한다. 어쩔 수 없이 햇빛을 맞으며 걸어갈 때 길가에 시청, 용인대역, 명지대역을 가리키는 도로표지판이 눈 에 들어왔다. 그 순간 마음 한구석으로는 이대로 돌아가서 더위가 가시고 난 뒤 다시 오자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이제껏 산에 오를 때 아무리 가파른 길이라도 중도에 쉬는 건 지는 것 이라 여겨 휴식 없이 올랐건만, 평지길을 걷다가 더위에 지고 마는 건 체면 문제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걷는 중, 김량장역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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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량장의 유래에는 여러 설이 있다. 김량이라는 사람이 살던 곳이라는 이야기, 양질의 금이 많이 나는 곳이라는 설, 쇠가 많이 나오는 지역이라는 해석 등이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김량이라는 사람이 장을 열어 ‘김량장’이라 불렸다고 전해진다. 그래서인지 오늘날에도 용인 중앙시장이 있어 김량장동은 과거와 현재의 장터라고 영남길은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에는 김량장의 유래보다도 용인 중앙시장이 더 크게 눈에 띄었다. 여기서 점심을 먹고자 하여 잠시 길을 이탈 하여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의 좌석에 앉아 종업원이 말을 건네기도 전에 물냉면 곱빼기를 시켰다. 냉면을 먹고 나니 생 기가 도는 듯했다. 시간은 가장 강렬한 햇볕이 내리쬐는 2시로 가고 있었지만, 냉면을 먹고 나니 오히려 걸어갈만 했다. 객 기를 부리는 것일까? 콧노래까지 부르며 다시 길을 나섰다.
점심을 먹었더니 더위에도 이렇게 가뿐하게 걸을 수 있었는데, 영남길 제2·3길을 걸을 때는 점심도 먹지 않고 걸어 더 힘 들었다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때 마침, 수여선이라는 옛 철길이 지나던 자리라는 안내 표지를 발 견했다. 수여선 철도는 수원과 여주 간을 잇던 협궤철도 노선으로 일제의 수탈정책에 따라 용인, 이천에서 생산되는 질 좋 은 쌀과 풍부한 임산물 등을 공출해 가기 위해 부설된 철도였다. 일제강점기에 수탈이 목적으로 부설된 아픈 역사의 산물 이지만 이를 망각하고 교통수단으로서 우리들의 삶과 애환을 함께하며 근대화에 기여하였다고 긍정적인 측면을 들먹인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는 제국주의의 야욕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이후 교통수단의 발달과 철도 수요의 급감으로 1972년에 폐선되었다.
송담역을 지나 금학천은 경안천과 합류하고, 이제부터는 경안천변을 따라 걷 는다. 경안천은 일제강점기에는 김량천으로 불렸다. 용인시 호동에서 발원하여 김량장동에서 금학천과 합류하고, 광주에서 곤지암천과 다시 합쳐 한강 본류인 팔당호에 이르는 큰 하천이다. 경안천변을 따라 걷게 될 것을 기대하며 길을 이 어가다 보니, 양지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이르렀고, 영남길은 이곳에서 잠시 방 향을 틀어 양지천을 따라 걷다가 시내로 진입한다. 또다시 따가운 햇볕과의 전 쟁이 계속될 것 같은 우려 속에 용인 정보고등학교를 지나서 봉두산 기슭인 햇 골에 이르렀다.
햇골은 김량장동과 유방동 사이에 있는 골짜기로 임진왜란 당시 원연장군이 용 인의 김량장동에서 의병을 모집하고 햇골에 의병을 매복시켰다가 좌, 우 협곡 에서 왜적을 크게 무찔렀던 곳이다. 이 전투 이후 사람들은 이 골짜기를 화약골 로 부르다가, 차츰 줄여서 햇골로 불린 것으로 보인다고 영남길 책자는 설명하 고 있다. 혹자는 이곳에 적의 해골이 지천으로 깔려 햇골이라고 불렀다고 하는 데, 그렇다면 그 당시 전투에서 우리가 빛나는 승리를 거둔 증거가 아니고 무엇 이겠는가? 봉두산은 산이 높지 않아 오르기 쉽고, 길게 뻗은 산등성이를 따라 평탄한 길이 이어져 여유롭게 오래 걸을 수 있어, 참으로 걷기에 좋은 길이다.
그저 마냥 지나칠 수 없어 잠시 휴식을 취했다. 걷기 좋은 길에는 무엇 때문에 항시 쓰레기가 널려있는 것일까? 사람이 머물다 갔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모이는 곳은 곧 더러운 장소가 되는 것인가? 사람은 보이는 곳보다 보이 지 않는 곳에서 더욱 경계하고 삼가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머문 자리는 자연 그 대로 남겨두어 제 3자가 찾아왔을 때도 똑같은 상태가 유지되도록 훼손하여서 는 아니 된다. 먹다 남은 쓰레기가 여기저기 깔려 있으면 그곳에 또다시 사람들 이 찾아오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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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분명 걷기 좋은 곳으로, 길에 취하여 탄성이 절로 나오지만 가도 가도 끝 이 보이지 않는 길에 지쳐 또다시 휴식을 취했다. 산에 오르면서 이렇게 많이 휴식을 취하기도 처음이었다. 더위가 이렇게 무서운 것인가? 때마침 젊은 청 년 하나가 지나가며 “이곳에 멧돼지 있어요”라는 말과 함께 빠른 걸음으로 지 나간다. 여기에 멧돼지가 있느냐고 묻는 것인지, 아니면 이곳에 멧돼지가 나 타났으니 어서 빨리 피하라는 것인지 알 수 없어 “여기에 멧돼지가 있습니 까?”라고 되물었더니 아무 말 없이 휙 지나간다.
혹시 멧돼지를 보고 너무 놀라 그렇게 빨리 걸어간 것일까 싶어 뒤따라가 보 았지만, 길손은 그 사람처럼 그렇게 빠른 걸음으로 갈 수 없었다. 설령 멧돼지 가 나타났다 하더라도 빠른 걸음으로 달아날 자신도 없었다. 영남길에서 멧돼 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걸어가는데 그렇게 빠른 걸음으로 앞서간 사람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맷돼지의 위험으로부터 벗어 나 쉬고 있는 것일까?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묵묵부답으로 지나친 이에게 다 시 묻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싶어 그냥 지나쳤다. 남곡리 2.7km를 알 리는 표지목이 세워진 지점에서 과일을 꺼내어 먹고 내려서니 시멘트 포장도 로인 소롱골 고개였다. 여기서 남곡리까지는 1.7km이다.
이제 흙길인 산길에서 벗어나 아스팔트의 포장도로를 걸으려니 더 힘들게 느 껴졌다. 1.7km의 짦은 거리였지만 종착지는 보이지 않고 어찌된 일인지 한참 을 걸었다고 생각했음에도 표지목을 확인하니 고작 0.2km밖에 지나지 않았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km가 되지 않는 거리를 4km를 걸어가는 것보다 더 힘들게 진행하여 국도변에 도착하니 용인 장례식장이었다. 더위에 지친 탓일 까? 종착지에 이른 것으로 착각하고 귀가할 교통편이 없다고 불평을 하며 먼 저 이 길을 다녀간 박용석씨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아직 종착지에 이르지 않 았다고 한다. 이곳에는 용인과 진천이 갈라지는 도로표지판이 있었기에 종착 지로 여긴 것이다. 하지만 교통편이 없어 박용석씨의 말대로 더 진행하였더니 은이성지, 마애불길을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진 남곡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10번 버스를 타고 용인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마침 반대편 정류 장에 명지대–강남역을 운행하는 광역버스가 서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터 미널에 도착하자마자 하차해 곧장 그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이것은 참으로 운수가 좋은 것이었다. 본래는 10번 버스를 타고 수원역까지 간 뒤, 전철로 영등포를 거쳐 귀가할 계획이었지만, 우연히 창밖을 보던 중 그 광 역버스를 발견한 덕분이다. 지난번 낙생역길과 구성현길을 마친 뒤 동백이 마트 앞에서 전철역행 버스를 기다리다가, 마침 도착한 광화문행 광역버스 를 타고 일찍 집에 돌아온 적도 있었는데, 오늘 또다시 서울행 광역버스를 우연히 발견해 쉽게 귀가할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힘이 등 뒤에서 지켜주 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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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양동 동계팔경
경기옛길은 단순한 도보 탐방로를 넘어, 역사와 문화의 숨결이 살아 있는 역사문화탐방로 입니다. 이번 소식지부터 3회에 걸쳐 조선시대 4대 문장가 중 한 분인 택당 이식(澤堂 李 植) 선생과 경기옛길의 관련 이야기를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택당 이식 선생은 많은 제자를 길러내며 조선 후기 문학과 학문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입 니다. 특히 평해길 제10길에 위치한 쌍학리와 석곡천 일대는 선생과 깊은 인연이 있는 장 소로, 양평 양동면의 동계팔경 속에서도 자세히 언급된 바 있습니다. 해당 지역은 경기옛 길과 경기역사문화유산원 누리집에도 간략히 소개되어 있으며, 이번 소식지를 통해 선생 의 삶과 발자취를 보다 상세히 조명하고자 합니다.
이번 연재의 내용은 경기도향토문화연구원 영춘 이복재 연구위원의 연구서적을 바탕으로 하였으며, 연구위원님의 승인을 받아 정리·게재합니다. 소중한 자료 공유에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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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택풍당 건물은 1980년대 종중에서 보수한 것으 로 2층 누각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2층 누에는 외각 1칸은 툇마루를 달았다. 지붕은 팔작지붕에 겹처 손꼽히는 문장가로 자는 여고(汝固)이고, 호는 택당(澤 마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외관과 담장을 갖추고 방에 堂), 본관은 덕수(德水)이다. 광해군 2년(1610)에 문과 는 갓을 비롯한 이식의 유품이 보관되어 있다. 에 급제하여 북평사(北評事) 및 선전관 등을 역임하였 으며, 광해군 10년(1618) 폐모론이 일어나자 이곳 양 한편, 택풍당에서 동쪽으로 약 180m 떨어진 야산에는 동면 쌍학리로 낙향하여 택풍당(澤風堂)을 짓고 오직 이식의 묘소가 위치해 있다. 이곳은 덕수이씨들의 세장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호를 택당이라 한 것은 여기에 지지로 이식 외에도 셋째 아들 이단하 등의 묘소도 함 연유하였다. 이식이 지은『택풍당지(澤風堂志)』를 께 있으며, 묘역 아랫쪽 길가에는 영조 25년(1749)에 보면, 그가 이곳에 택풍당을 짓게 된 동기가 자세히 설 세워진 덕수이씨세장지비가 위치해 있다. 명되어 있다. 그는 이곳을 중심으로 자손과 제자들을 강학하였으며, 이후 조선말기까지 택풍당을 거쳐간 그의 후손들 중에 는 정승 3명, 판서급 10명, 문과급제 22명, 무과급제 17명, 생원·진사가 69명이나 배출될 정도(지평향교지) 로 덕수이씨 가문의 자제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중요 한 기능을 수행하였던 곳이다.
택당 이식 이식(李植, 1584~1647)은 조선시대 한문 4대가이자
쌍학리로 은거한 이후 이식은 수차례에 걸친 왕의 출사 (出仕) 명을 계속 거부하자 광해군 13년(1621)에는 왕 명을 어겼다 하여 구속되기도 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이 일어난 후 이조좌랑·예조참의·동부승지·우참찬 등을 역임하였다. 이듬해에 대사간·대사성·좌부승지 등을 지 냈으며, 인조 10년(1632)까지 대사간을 세 차례나 역임 하였으나 사사로이 왕으로 칭호를 내리는 일이 예가 아 님을 논하다가 인조의 노여움을 사서 간성현감으로 좌천 되었다. 그뒤 인조 10년 인조 11년(1633)에 부제학을 거 쳐 대제학과 예조참판·이조참판을 역임하였다. 인조 20 년(1642) 척화를 주장하다가 김상헌(金尙憲)과 함께 심 양(瀋陽)으로 잡혀갔다가 탈출하여 돌아와 대제학·예조 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저서로는『택당집(澤堂集)』이 있다.
한편 『(기전)邑誌』(1863) 지평현조 기록에는 향현 사에 이식이 제향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무술년 설 립, 그 위치는 관문에서 동쪽으로 35리(현재 쌍학리 안 골마을)에 떨어진 거리에 위치해 있다고 기록) 이 향현 사는 완문의 기록에 의하여 그 명칭이 부연사(釜淵祠) 였음이 확인되지만, 현재 사우는 없어지고 그 자리에는 해방 후에 지은 종가집(2001년 현재 이호용씨 댁)이 들 어서 있다.
택당 이식의 석곡천 ‘동계팔경(東溪八景)’
지금 이에 대하여 여기에다 부록으로 남겨두는 것은, 자손들이 선조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함께 산수(山水) 동계팔경의 내용이 들어있는 동계기(東溪記)는 조선시 의 즐거움을 누리게 해 보려 함이요, 이와 동시에 선부 대의 4대문장가이며 여한9대가이기도 한 택당 이식(澤 군(先府君)께서 평소에 이곳의 천석(泉石)을 좋아하셨 堂 李植,1584~1647)이 쓴 계산지(啓山志)에 들어있 던 만큼 자손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선령(先靈)께서 는 여러 글 중의 하나다. 계산지는 택당이 백아곡(白鴉 돌보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또한 있기 때문이다. 谷;지금의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쌍학2리 안골마을)에 택풍당에서 동쪽의 말미산〔현재 부르는 산 이름으로 아버지를 비롯한 조상의 묘소를 모시고 택풍당을 짓기 택당은 이 산을 ‘마산(馬山)’이라고 기록하고 있다〕을 까지의 과정과 백아곡의 위치, 지형, 산세, 선대묘 등에 넘으면 꽤나 넓은 들이 나타나고 들의 북쪽에서 남쪽으 관한 내용을 글로 정리해 놓은 책으로 택풍당지(澤風 로 석곡천(石谷川)이 흘러내리니 이 시내〔川〕가 동 堂志)도 계산지안에 들어있다. 계기(東溪記)의 대상이 된 동계이다. 동계기는 택풍당의 동계(東溪,동쪽에 있는 개울) 2십 택당이 팔경도까지 그려 감상했고 아버지와 자손 들을 여리 중 노닐어 볼 만한 곳을 기록해 놓은 글이다. 택당 위해 고른 팔경을 동계기에서 추려보면 은 동계기에서 택풍당이 있는 백아곡은 볼만한 경치가 제1경 조적대(釣寂臺), 제2경 부연(釜淵), 제3경 건지 없지만 동계에는 그러한 곳들이 더러 있기에 그중 몇 산(搴芝山), 제4경 송석정(松石亭), 제5경 양금합류처 곳을 골라 팔경도를 만들어 감상하기도 했다며 다음과 (兩襟合流處), 제6경 조봉(鵰峯)석벽(石壁), 제7경 승 같이 썼다. 담(僧潭), 제8경 구암(鳩巖)이다.
“내가 처음에 골짜기 어귀에다 터를 잡고서 몇 칸짜리 그러나 현기의 사천장팔경과는 달리 동계팔경은 동계 집을 지어놓고 살았었다. 그런데 얼마 뒤에 보니 그 땅 에 근접해있으면서 즐기며 볼만한 경치를 가진 곳만을 이 관로(官路)가에 위치 해 있는데다가 노복(奴僕)이 대상으로 지정했기 때문에 동계기를 읽는 것만으로는 단약(單弱)해서 역로(驛路)로 왕래하는 사람들을 응접 위치를 확인할 수 없었고 더구나 동계팔경도는 행방조 하기에 고달픈 점이 있었고, 내가 또 잇따라 재난을 당차알수 없어 동계팔경의 위치를 특정하는데 어려움이 하는 바람에 일을 주선할 능력이 부족하기만 하였다. 있었다. 따라서 필자는 동계기의 내용만을 기초로 카 그래서 골짜기 안의 여사(廬舍)로 들어와 살면서 택풍 메라와 GPS를 들고 꽤 오랜 시간을 통해 그 위치를 비 당을 짓게 되었으니, 이것은 처음부터 뜻을 두고 한 일 정(比定)할 수 있었다. 다음은 필자가 비정한 동계8경 은 아니었다. 을 답사하여 동계기에 적힌 내용과 현재를 비교하여 소 아곡(鴉谷)에 본래 기막힌 경치가 없는 것에 대해서는 개하는 것이다. 참고로 동계기(東溪記)의 한글번역문 이미 기록해 둔 바가 있다. 그러나 골짜기 밖에서 바라 은 『택풍당유사록(澤風堂遺事錄)』에서 옮겼으므로 다보면 산이 주위를 에워싸고 물이 휘돌아 나가는 가운 해석상의 이견이 있을 수 있을 것임과 원문은 생략함을 데 은연중에 하나의 동천(洞天)을 이루고 있으며 왕왕 원칙으로 하였음을 밝혀둔다. 한번 노닐어 볼만한 곳들이 눈에 뜨이기도 하였으므로, 내가 일찍이 그러한 곳들을 뽑아 낸 다음에 팔경도(八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景圖)를 만들어 감상하기도 하였다. <정용균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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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안전한 도보 여행을 위한 안내
♣ 너무 이르거나 늦은 시간의 도보여행은 삼가주세요. ♣ 혼자 도보여행을 할 경우에는 주변 사람에게 행선지를 꼭 알리세요. ♣ 가급적이면 2명 이상이 함께 도보해주세요. ♣ 긴급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비상 연락처를 미리 알아두세요. ♣ 물, 간식, 응급약은 꼭 가지고 다니세요. ♣ 찻길을 걸을 때는 길가에 붙어서 한 줄로 걸어가세요. ♣ 도보에 불필요한 귀중품, 장신구 등은 가지고 다니지 마세요. ♣ 태풍, 폭우, 공사 등으로 위험지역이 생길 수 있으니 주의 깊게 살피며 걸으세요.
♣ 안전은 결국 본인에게 달려 있습니다. 도보 여행 중에는 항상 안전에 유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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