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옛길 소식지 2022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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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04 특별인터뷰 도보여행가 신정일 _(사)우리땅걷기 이사장 08 소식 초등 교과와 연계한 ‘탐방 프로그램’ 추진 등
온라인 소식지
15 코스소개 다 같이 걷기 좋은 무장애 구간, 경기옛길 <평해길 제3길> 등
여름
경기옛길 삼남길 제5길(중복들길)
18 기고문 인간에게 길이란 무엇인가? _신정일/문화사학자(사)우리땅걷기 이사장 21 이야기 <의주길> 벽제관의 개오동
신정일 (사)우리땅걷기 이사장
운명처럼 만난 길
도보여행가 신정일
1954년생. 문화사학자로 역사문화 관련 저술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작가이자 도보여행가다. 1989년부터 문화유산답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한국의 10대 강 도보답사를 기획해 금강에서 압록강까지 답사를 마쳤고, 우리나라 옛길인 영남·관 동·삼남대로를 걸었다. 부산에서 통일전망대까지 걸은 후 해파랑길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2005년 시작된 우리땅 걷기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산림청 국가산림문화자산 심사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영남대로> <삼남대로> <관동대로> <꿈속에서도 걷고 싶은 길> <신택리지> <왕릉 가는 길> <길을 걷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 <조선의 천재들이 벌인 참혹한 전쟁> 등 100여 권이 넘는 책을 썼다.
선생님 소개를 좀 부탁드립니다. 문화사학자라고도 불리는데 저는 도보여행가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주로 국토를 걷 고 그것을 주제로 글을 쓴다. 책도 쓰고 여기저기 강연도 많이 다니지만 ‘신정일의 천년의 길’이라는 JTV 프로그램을 3년째 하고 있다.
처음 걷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시골에 살았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이 강이 어디로 흐르는지, 이 길의 끝은 어디 인지, 그런 게 너무 궁금했다. 81년에 안기부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정신적 육체적 으로 피폐했을 때 어린 시절의 그 호기심이 계기가 되어 무작정 걷기를 시작했다. 걷 기를 시작하면서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고 새로운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그것이 연이 되어 1985년에 ‘황토현문화연구소’를 만들게 됐고 그 이후로 국토 답사를 다니 기 시작했다.
정말 우리나라 전역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길이 있을까요? 낙동강을 따라 걸었던 길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그때 태백에서 부산까지 16일을 혼 자서 걸었는데 봉화군 석포면에서 청량산까지 이어지는 길이 참 좋았다. 우리나라 국토의 아름다움을 깊이 느끼게 한 길이었다.
혼자 걸으면 생각이 참 많아지실 것 같은데요? 나에 관한 생각, 내 주변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한다. 혼자라는 것은 참 고독하고 힘든 것이다. 길을 헤매도, 힘들어도 누군가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다. 그러나 오롯이 혼자 걸음으로서 진정한 자아를 찾는 시간을 맞이할 수도 있다. 내가 나를 만나는 지름길이 혼자 걷기라고 생각한다.
걷다가 재밌는 일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영남대로를 걸을 때, 약 열나흘의 일정으로 4명이 같이 걷게 됐다. 그때 일행들이 장 거리 걷기는 처음이었는지 가방에 이것저것 많이도 챙겨왔더라. 제가 조금 걱정스러 워하자 걱정하지 말라며 큰소리를 쳤다. 본격적으로 걷기가 시작되자 우체국을 방문 하는 것이 일과의 하나가 됐다. 집에다 짐을 부치느라 거의 매일 우체국에 들리는 것 이었다. ‘먼 길 떠날 때는 눈썹도 빼놓고 가라’는 옛말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또 기억에 남는 것이 걷다가 지쳐 처량하게 앉아 있으면 먹을 것을 나눠주고 가는 사 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어떤 사람은 저만치 가다가 차를 돌려 오기도 했다. 그만큼 내가 불쌍하게 보였는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의 정이 살아있다고 느꼈다.
선생님께 걷기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걷기는 나를 치유하는 약이자, 우리나라를 재발견하는 공부라고 생각한다. 동의보감에는 ‘약보(藥補)보다 식보(食補)가 낫고, 식보(食補)보다는 행보(行補)가 낫다’는 말이 있는데 좋은 약이나 음식보다 걷기가 몸에 이로운 최고의 보약이라는 뜻이다. 특히 글쓰는 사람들에는 걷기보다 좋은 활동이 없다. 걸으면서 글감이 많이 떠오른다. 걸으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수첩에 적는데 한번 걸으면 수첩 서너 권은 족히 쓴다.
정말 선생님 혈색도 그렇고 건강해 보이시는데요, 걷기가 건강 비결일까요? 물론이다. 내 주위 또래들을 보면 약을 한주먹씩 먹는다. 나는 지금껏 어디가 아파서 입원한 적도, 먹는 약도 없다. 따로 챙겨 먹는 영양제도 없다. 걷기가 그만큼 좋다.
수첩에 적은 생각들을 정리해서 글을 쓰신다고 하셨는데 컴퓨터는 어떻게 배우셨어요? 2002년에 배우게 됐는데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님과 한국사 이야기를 쓰게 됐는데 처음에는 컴퓨터 안 배워도 된다고 하셨던 선생님이 먼저 아들한테 배웠다며 자랑을 하셨다. 부랴부랴 나도 배우게 됐다. 여전히 잘 다루지는 못하지만 글을 쓰고 인터넷 에서 필요한 자료를 찾아 읽을 수 있어 큰 도움이 된다.
경기옛길 중에서 기억에 남는 길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경기옛길은 조선시대 6대로가 기반이기에 걷고 싶지 않아도 걸을 수밖에 없는 길이 다. 그중에서 평해길(평해로/관동대로)이 참 좋았다. 평해로는 아름다운 옛길의 정 취가 남아있는 곳이다. 평해길이 지나는 양평 구질현(구둔치)이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 명승으로 지정됐다.
경기옛길 사업에도 관심이 많으신데요, 저희 센터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경기옛길센터에서 지금까지 조성한 길의 확장을 해야 한다. 경기도가 6대로 사업의 중심축이 되어서 경기도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까지 다 연결 하면 좋겠다. 쉽지는 않겠지만 맏형으로서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이나 바람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리나라 강을 다 걸었는데 아직 못가본 곳이 있다. 하루 빨리 통일이 되어 대동강, 압록강, 두만강 등 아직 갈 수 없는 강길을 다 걸어보고 싶다. 또 경흥로를 걸어서 이 순신 장군이 근무했던 두만강 서수라까지도 걷고 싶다. 내 다리가 아직 성성할 때 그 런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인터뷰 진행 : 김동현 연구원>
초등 교과와 연계한 ‘탐방 프로그램’ 추진
도내 어린이들의 역사·문화 향유 기회의 확 대를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이 올 가을 시범 운영될 예정입니다. 초등 3~4학년의 사회교과 보조 지역화 교 재 및 『경기도의 생활』 속 경기도의 역사, 지리, 문화 학습 단원과 연계한 현장 탐방 프로그램입니다. 학생들은 문화유산해설사와 함께 경기옛길 을 걸으며 경기도의 문화유산을 만나고 주변 자연 환경을 탐색하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특히 거 리상의 이유로 거주 외 지역 문화유산을 만나기 어려운 학생들에게 전세버스를 지원함으로써 이 동의 안전성과 편의성을 도모할 예정입니다. 참여는 담임선생님이 동행하는 학급별 신청을 기본으로 하며 선착순 마감됩니다. 프로그램에 대 한 더 자세한 내용은 9월을 전후하여 경기옛길 누리집(홈페이지)을 통해 공지될 예정이오니 많
경기옛길 탐방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린이들이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문정인 연구원>
‘경기옛길 문화유산 탐험가’ 인증서 발급 예정
어린이, 청소년 대상으로 경기옛길의 문화유산을 직접 탐방하고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경기옛길 문화유산 탐험가 인증서’를 9월부터 발급할 예정입니다. 경기옛길 모바일 앱을 통해 지정된 경기옛길 문화유산을 방문하고 인증받으면 되는데요, 개별 길에 대한 인증서는 온라인으 로 발급하고 경기옛길 전체(6대로) 탐방 인증 시 ‘경기옛길 문화유산 탐험가 인증서’와 소정의 기 념품을 우편으로 보내드립니다. 또 하나의 희소식!! 문화유산 탐험가 인증자는 봉사활동 점수도 받을 수 있답니다. 자녀들과 함 께 ‘경기옛길 문화유산 탐험가’에 도전해 보세요. 자세한 내용은 경기옛길 홈페이지(www.ggcr.kr)를 참고하세요.
<김동현 연구원>
경기옛길 모바일 앱 ‘완주 포인트’ 도입
새롭게 조성되는 ‘강화길’ 개통에 발맞춰 ‘완주 포인트’가 도입됩니다. 완주 포인트는 말 그대로 완 주를 하신 분께 드리는 포인트로, 경기옛길 모바일 앱 사용자만 완주 포인트를 받을 수 있습니다. 완주 포인트는 경기옛길의 멋진 기념품이나 한정판 배지 등을 구매하는데 이 용될 예정입니다. 아직 ‘경기옛길 모바일 앱’을 사용하지 않는 탐방객분들은 이번 기회에 사용 법을 배워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가지고 계신 스마트폰에서 ‘구글 플레이 스토어’나 ‘애플 앱 스토어’로 들어가 신 후에 ‘경기옛길’ 검색하시고 설치하시면 됩니다. 곧 도입되는 ‘경기옛길 완주 포인트’에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신설 ‘강화길’ 조성 소식
<김동현 연구원>
경기옛길 6대로의 마지막 신설 탐방로인 강화길 소식입니다. 강화로는 서울(한성)과 강화도를 이어주는 주요 교통로로서, 조선시대 대로 중 가운데 하나입니 다. 여암 신경준(申景濬)은 『도로고(道路考)』에서 조선의 간선 도로를 6대로로 분류하였는데, 강화로는 그 가운데 여섯 번째에 해당됩니다. 한양에서 강화도에 이르는 길은 상대적으로 구간 이 매우 짧은데다가 당시 한강을 이용한 수로교통이 더 편리하였기 때문에 육상교통로로서 강화 로가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화로가 줄 곧 ‘대로’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변란 시에 조정과 왕실이 강화도로 대피할 것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부터 북방 유목민족의 침입 때 강화도로 피난하여 항전체제를 정비했던 것은 잘 알려져 있으며, 지금도 그 흔적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경기도는 김포시, 경기문화재단과 함께 강화대로의 원형노선 을 바탕으로 4개 구간으로 이루어진 약 60km의 역사문화 탐 방로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구간
구간명
거리
소요시간
시작점
종점 제1길 천등고갯길 15.2km 4시간 30분 아라김포여객터미널 풍무역(새장터공원) 제2길 제3길 운양나룻길 15.3km 3시간 20분 제4길 한남정맥길 13.2km 4시간 ※ 6월 기준이며, 향후 일부 구간이 조정될 수 있습니다.
금릉옛길 16.3km 3시간 30분 풍무역(새장터공원) 모담폭포마당 통진읍행정복지센터
모담폭포마당 통진읍행정복지센터 강화대교
강화로의 원형노선은 지금의 48번 도로와 거의 일치하며, 한양 도성에서 강화부까지 약 179km 정도이며, 경기도 내 구간은 약 31km 입니다. 강화길은 지금의 서울시 강서구 개화동과 김포시 고촌읍 전호리가 만나는 고촌나들목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현재 고촌나들목 인근은 김포터미널 물류단지가 있고 개화나들목, 김포공항나들목, 경인아라뱃길 등 복잡한 도로망이 생기면서 옛길 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진 상태입니다. 그나마 옛길의 노선을 찾아본다면 경인아라뱃길의 김포아 라대교와 김포나들목 인근입니다. 김포아라대교는 고문헌에 등장하는 굴포교(堀浦橋)인데, 강 화길의 시작점인 아라김포여객터미널 앞의 광장에서 500m정도를 이동하면 굴포천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고촌사람들이 3ㆍ1 만세운동을 하였던 당산미를 지나 8km정도 진행하 면 천등고개를 만나게 되는데 이곳이 고문헌에 등장하는 천등현(天燈峴)입니다. 이곳은 조선왕 조실록 등 연대기 사료에 임금의 능행(陵幸)길에 자주 등장하며, 강화도령 이야기와 천명이 모 여야 넘을 수 있는 고개라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강화길 제1길은 수많은 연대기 사료에 등장하는 지명과 함께 천등고개와 관련된 설화를 기반으 로 천등고갯길로 명명되었습니다.
제2길 금릉옛길은 김포의 옛 지명과 관련이 있습니다. 김포의 옛 지명은 검포(黔浦), 금릉(金陵) 이라 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신라 경덕왕 때 검포를 김포로 지명을 고쳤는데, 당시 김포의 다른 이 름으로 금릉이 등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객사 1)명칭이 중요하였는데, 당시 객사 명칭이 ‘금릉관’이었습니다. 금릉은 김포장릉을 포함하며, 김포의 500년 중심지였던 관아가 있 었던 곳을 포함하는 의미를 담아 금릉옛길로 명명하였습니다.
제3길 운양나룻길은 물류의 중심지였음을 반영하는 의미입니다. 강화로는 한강수로와 나란히 가는 방향성 때문에 한강수로를 따라 많은 나루와 포구가 들어서 있었습니다. 한강수로는 조선 시대에 한양으로 들어가는 물류유통의 가장 중요한 기능을 담당했던 길이고, 이 때문에 조선후 기 상업의 성장과 더불어 나루와 장시가 매우 발달하였습니다. 김포 일대에는 총 11개 2)의 나루 가 있었습니다. 운양나루는 용화사 주차장에서 한강을 바라보면, 희미하게 흔적을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용화사는 오랜 시간 뱃사람들에게 현 위치의 좌표 역할과 함께 마음의 안식처이 기도 하였습니다.
제4길 한남정맥길은 한반도 중서부의 대표적 명산이자 김포시의 진산인 문수산을 의미합니다. 한남정맥은 김포 문수산에서 안성의 칠장산까지 이어지는 198km의 산줄기를 말하는데, 문수산 은 한남정맥의 종결점이기 때문에 그 중요성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강화길의 구간명칭은 지역의 전문가와 함께 고민하여 해당 길의 역사와 지역적 특징을 반영한 명칭을 선정하였습니다. 이번에 조성되는 강화길은 9월경 개통식 개최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8월부터 본격적으로 안내시설물이 설치될 예정입니다. 새롭게 조성되는 경기옛길 강화길에 탐방객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F
제4길 종점 강화대교
경기옛길 강화길
S
제4길 시점 통진읍행정복지센터
제3길 시점 운양나룻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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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길 시점 풍무역(새장터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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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길 시점 아라김포여객터미널
S
1) 고려ㆍ조선시대에 각 고을에 설치하여 외국 사신이나 다른 곳에서 온 벼슬아치를 대접하고 묵게 하던 숙소 2) 섶골나루(고촌읍), 감암나루(운양동), 운양나루(운양동), 전류정나루(하성면 전류리포구), 마근포(하성면), 조강포(월곶면), 강령포(월곶면), 갑곶나루(월곶면), 원머루나루(월곶면), 신덕포나루(대곶면), 대명나루(대곶면)
강화로의 기능과 특징
김포의 주된 길이라면 서울에서 강화까지 이어지는 길로, 조선시대에는 ‘강 화로’라고 불렀다. 과거 강화로는 양화진, 철곶내, 양천, 김포, 백석현, 통 진, 갑곶진을 지났으며, 김포의 동쪽 끝인 현 고촌읍을 지나 천등고개를 넘어 읍치로 들었다. 항일 시대에 강화로는 확장 포장되었고 자동차가 다니기 시작 했는데, 이를 ‘신작로’라고 하였다. 이 길은 영등포에서 양천을 거쳐 김포, 통진 을 지나 성동진, 갑곶진, 강화읍까지 이어졌다. 48번 도로는 오랫동안 비포장 상태로 있다가 1992년 말 누산교(예전 양릉교)까지 포장되었다. 이때 굴포교도 4차선 도로에 맞추기 위해 1989년 12월 30일부터 1992년 12월 29일까지 3년 간 확장공사를 하였다. 현재는 강화대교까지 거의 직선으로 난 4차선 48번 국도가 있으며, 김포 와 통진에서는 가장 중요한 도로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강화로는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였는데, 그 기능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강화로는 물류유통의 기능을 담당했다. 김포는 한강의 물길이 운반한 토사가 퇴적되어 넓은 김포평야를 이루었고,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벼가 재배된 농경문화의 근원지로 알려졌다. 또한 서해안의 물길을 타고 올라온 바닷배로 운반된 새우젓, 조기, 소금 등의 어염이 유통되던 지역이었고, 한강을 사이에 두고 파주, 고양과 마주 보고 있었으므로 나루를 건너 이들 지역과 교류가 빈번했다. 이러한 조건들로 인해 강화로는 물류유통의 기능이 중요했다.
둘째로 강화로는 국방의 기능을 담당하는 주요 도로였다. 강화도에는 강화해협을 통해 한강으로 들어오는 외세를 막기 위한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 화도돈대, 용진진, 갑곶돈대 등의 국방유적 이 남아있다. 조사지역인 경기도 김포시에도 역시 덕포진과 문수산성이 남아 있으며 이러한 국 방유적들은 강화로가 가진 국방의 기능을 증명해주는 문화자원들이다.
셋째로 왕실의 피난로의 기능을 담당했다. 역사적으로 강화파천을 진행했거나, 진행하려 했던 왕은 둘이 있었다. 고려 고종과 조선 인조이다. 먼저 고려 고종의 경우 여몽항쟁기 1232년부터 1270년 개경 환도까지 고려궁지가 있는 강화로 파천하였다. 이 시기 고종이 강화로를 피난로로 얼마나 사용하였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손돌목 전설을 통해 강화로를 이용하였다는 사실은
자체는 확인할 수 있다. 다음으로 조선 인조의 경우 병자호란 시기 강화로 파천하기 위해 봉림 대군과 인평대군을 먼저 강화로 피난 보냈다. 그 후 소현세자와 함께 강화도로 피난가려 했으나, 청군이 이미 한강을 도하하여 강화로의 길목인 김포, 통진에 도착하는 바람에 광주 남한산성으 로 피신한 바 있다. 이 시기 강화로가 막히면 피난처가 바뀔 정도로, 강화로가 피난로로서 얼마 나 중요한 기능을 담당했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넷째로 강화로는 유수 왕족들과 권세가 양반들의 유배로로서 기능을 담당했다. 대표적으로 고려 시대에는 희종이 최충헌 암살에 실패해 폐위당한 뒤 강화로 유배되게 된다. 유배지로는 강화도, 자연도, 교동도로 모두 강화로와 연관이 있는 곳이다. 강화로는 이미 고려시대부터 유배로로서 사용되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유수 왕족인 연산군, 임해군, 영창대군, 광 해군, 숭선군, 화완옹주, 익평군, 영선군 이준용 등이 강화 인근 교동으로 유배된 기록이 있다. 사 실 유배지는 서울인 한양과 멀리 떨어질수록 중형으로 치는 경향이 있으므로 강화는 비교적 가 벼운 유배지로 활용했던 곳이다. 이 때문에 왕족의 경우 대부분 유배를 강화부터 시작하는 경향 이 많았으며, 이 때문에 강화로는 왕족의 유배로로 많이 알려져 있다.
<박부원 연구원>
걸으며 환경도 지키는 <줍킹JUBKING> 프로그램 안내
경기옛길 친환경 탐방 프로그램 <줍킹JUBKING>이 새로운 방식으 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전과는 어떤 점이 달라졌을까요? 지금까지 줍킹은 날짜와 코스가 정해져 있었습니다. 때문에 날짜가 맞지 않거나 교통 여건이 어 려웠던 분들은 참여가 힘들었습니다. 이런 아쉬움을 해소하고 자 활동 기간 및 활동 구역을 확대했습니다. 앞으로 진행되는 <줍킹JUBKING> 프로그램에서는 내가 원하는 날짜와 원하는 경기옛길 코스를 선택할 수 있습 니다. 자세한 정보는 경기옛길 홈페이지(www.ggcr.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앞으로 <줍킹JUBKING> 프로그램은 기업 연계 활동 등 참여 확대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추진할
예정입니다. <문정인 연구원>
완주인증서는 언제 발송되나요?
경기옛길 자주 묻는 질문 BEST 3
완주인증서는 둘째, 넷째 주 수요일~금요일 사이에 발송합니다. 격주로 한 달에 2번 발송되며, 완주인증서를 취합하여 정해진 날짜에 보내기 때문에 발송 전날 인증해주시는 분은 빠르게 받을 수 있고, 발송 후에 인증해주시는 분은 2주 정 도 후에 받게 됩니다.
직접 방문하여 완주인증서를 신청할 수 있나요?
경기옛길센터 직접 방문은 제한하고 있습니다. 다만 불가피한 상황일 경우 사전에 반드시 경기옛길센터에 유선 문의를 해주시길 바랍니다.
경기옛길 프로그램 및 각종 소식들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경기옛길 홈페이지(ggcr.kr) ‘알림마당-문자알림’ 신청을 하시 면 경기옛길 소식을 받아볼 수 있습니다. 또 경기옛길 홈페이지 와 네이버 카페를 통해서도 새로운 소식을 알려드리고 있으니 틈틈이 방문해주시길 바랍니다. :D
다 같이 걷기 좋은 무장애 구간, 경기옛길 <평해길 제3길>
생태공원에서 바라본 팔당호 전경
경기옛길 평해길 제3길에는 다산 정약용이 생의 시작과 끝을 보낸 마재마을이 있습니다. 정약용 스스로 “이 마을에서 취할 점은 오직 강산(江山)의 뛰어난 경치뿐”이라며 상찬할 만큼 마재마을 은 아름다운 자연환경으로 유명합니다. 시원한 강바람과 푸른 잎으로 가득한 생태공원, 정약용 생가, 실학박물관 등의 문화시설이 있는 마을 일대는 비장애인뿐 아니라 휠체어를 사용하는 여 행객에게도 이동이 편리합니다. 공원 초입에 있는 공영주차장에는 무료 장애인 전용 주차 구역 이 있고, 야외 공중화장실에도 장애인 전용칸이 마련돼 있습니다.
사실 평해길 제3길은 팔당역부터 운길산역까지 약 13km를 4시간 정도 걸어야 완주할 수 있는 구간으로 비교적 난이도가 쉬운 코스이지만 장시간 야외 활동이 어려운 노인이나 아이, 장애인 이라면 팔당역부터 정약용 유적지가 있는 마재마을까지(약 8km) 일부 구간만 걸어도 좋습니다.
공영주차장에서 정약용 박물관으로 가는 도보길
보행상 어려움이 있는 장애인 및 노약자의 경우 남양주 관내 출발 시 교통약자 이동지원센터를 통해 차를 예약할 수 있습니다. 문의 1666-5525 (※각 시별 교통약자 이동지원센터 참고)
여름에 꼭 가봐야 할 곳 <영남길 제6길>
드디어 마스크 없이 길을 걸을 수 있는 일상 이 찾아왔습니다. 오랜만에 계절을 만끽하 는 일상 가운데 가을에는 갈대, 겨울에는 물 안개가 명물인 마재마을의 여름 명물을 찾아 다 함께 평해길 산책을 떠나보시는 것도 좋 을 듯합니다.
<문정인 연구원>
경기옛길 영남길의 제6길은 행정구역상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를 시점으로, 원삼면 독성 리까지 이어지는 총연장 15.4km의 코스입니다.
은이성지(여행지 블로그 대한민국 구석구석)
문수산마애불(국가문화유산포털)
이곳에는 김대건 신부의 자취가 깃든 ‘은이성지’와 문수산 마애불, 법륜사 등 천주교와 불교의 문 화유적이 공존하는 종교적 순례길이기도 합니다. 또 ‘농촌테마파크’와 ‘내동 연꽃마을’ 등 풍부한 볼거리가 있는 탐방로입니다.
내동마을 연꽃단지(용인시 대표 블로그)
포천 미륵박물관 <경흥길 제6길>
경기옛길 경흥길 제6길에는 ‘미륵박물관’이 있습니다. 미륵박물관은 2008년에 일만 평의 부지에 조성된 박물관 겸 사찰로 27m에 달하는 동양 최 대 석조미륵상이 위치해 있습니다.
사진출처 : 미륵박물관
내동마을 연꽃단지는 총면적 8.2ha의 규모 로 20여종이 넘는 다양한 연꽃과 수련, 수생 식물들을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이번 여름에는 아름다운 연꽃은 물론 다양한 볼거 리가 있는 ‘영남길 제6길’을 찾아 더위를 이겨내시길 바 랍니다.
<정용균 연구원>
미륵박물관(포천시 영중면 금주리)
사진출처 : 미륵박물관
이곳에는 석불, 석상, 오백나한, 관세음보살 목각 등 다양한 불교 유산이 전시되어 있어 경흥길
탐방과 함께 불교문화를 체험하실 수 있습니다. <정용균 연구원>
인간에게 길이란 무엇인가?
● 신정일 문화사학자,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 이사장
<hwang-sji@hanmail.net>
한 ‘내가 찾아 헤맨 것은 나 자신이었다.’ 라 고 술회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듯 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체로 길은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문을 열고 그 첫 번째가 교통수단으로서의 길이고 두 번 집을 나서면 이리저리 뻗은 수 째가 방도를 나타내는 길, 그리고 세 번째가 많은 길이 나를 유혹한다. 이 길은 강 행위의 규범으로서의 길이다. 변으로 나가는 길이고 그 길을 따라가면 교통수단으로서의 길은 사람이 걸어 다니는 토끼풀, 망초 꽃들이 피어 있는 강 길이며, 이 길을 나타냈기 때문에 『국어사전』에는 ‘사람 길을 십여 분쯤 걸으면 시내버스 승강장이 이나 차들이 편히 다닐 수 있도록 만든 비교 나타날 것이다. 내면에서 내는 그 소리 들이 적 큰길’ 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또한 길을 일 지시하는 그 이끌림에 따라가면 나타나는 보 컬어 ‘사람이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오고 갈 이는 길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의 길 수 있게 된 거의 일정한 너비로 따위에 뻗은 도 있다.
공간적 선형(線形)’이라고 정의 하고 있다. 스스로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절체절명의 기 우리말로 된 길은 규모도 그렇지만 형태 또한 로에서 “칠흑 같은 어둠에서 벗어나 이제 나 다양하다. 강가에 난 길이나 아스라하게 이어 의 길을 찾게 해 달라”고 기원하기도 하며 6 지는 산길, 또는 솔숲 사이에 난 오솔길, 돌담 세기 때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토이스 또 을 따라 꾸불꾸불 이어진 마을의 고샅길, 호
젓한 산길, 뭉게구름 피어오르는 들길, 강변 는 것을 길을 가는 나그네 에 펼쳐진 자갈길, 비 내린 황톳길의 진창길, 의 여정으로 표현하기도 해서 ‘구 가로 질러 가는 지름길 등 길 등 여러 형태로 름처럼 떠돌고 물처럼 흐른다.’는 뜻으로 길은 우리 곁에 존재해왔다. 사람이 걸어 다 떠도는 사람을 운수납자(雲水衲子)라고 니며 조성된 이러한 길들이 교통이 발달함에 표현하기도 한다. 따라 그 개념이 확대되고 다양화되면서 실체 그러나 어떤 계기를 통해 사람들 가 없는 관념적 통로까지로 확대되었다. 강이 은 길에 나서게 되고 그 길을 오 나 바다에도 배가 다니는 길이 만들어지면서 랜 시간 걷게 되고, 결국 그 길이 잃 뱃길이 생겨났고 철로 만든 철궤를 따라 이동 어버린 나를 찾아가는 그 길이 하는 기차나 전철의 통로를 철길이라고 부르 었음을 깨닫게 된다. 고, 하늘을 나는 비행기의 항로를 하늘길이라 고 부르게 되었으며 지금은 유선이 아닌 무선 그와 또 다른 길이 있다. 불교나 유교, 도교 통신의 발달로 수많은 글들과 말들이 허공을 등 동양사상에서 공통적인 이념은 도(道)라 무한히 날아다니고 있다.
고 부르는 길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지켜 야할 심성이나 행위를 도의 또는 도덕이라고 그러한 길이 다른 뜻 즉 방도(方途)로 쓰이게 하는데 그 모든 것은 길로 귀추 되며 그 길은 되었다. 어떤 일을 해야 할 때 쓰는 말로 ‘어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왕 떤 방법이 없을까?’ 또는 ‘길이 열리다.’ 라는 도정치(王道政治), 또는 공맹지도(孔孟之 말은 방도를 나타내는 말이고 그러한 길은 교 道) 등의 말이나 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 통수단으로서의 길이 정신적인 길로 확대 재 즉 ‘왕도(王道)는 치도(治道)’라는 말은 모두 생산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길은 철학적 의 가 올바른 길을 가야 한다는 데에서 비롯된 미를 부여받게 된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인생 말이었다. 을 연극에 비유하고 세상은 무대로, 사람은 그렇듯 길은 도(道)이다. 길이 달라졌다는 것 그 연극에 출연하는 배우로 묘사한다. 셰익스 은 즉 도가 달라졌음이다. 중용에서는 ‘도란 피어가 죽기 전에 ‘연극은 이미 끝났다.’고 말 잠시도 떠날 수가 없는 것’이고 맹자는 ‘도는 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가까운 곳에 있는데 사람들은 먼 데서 찾는 그러나 동양적 관념은 그와 다르다. 동양에서 다.’고 하였으며, 장자는 ‘도는 곧 진리이고 는 인생을 여행에 비유한다. 그래서 세상은 세상의 이치이다.’고 하였다. 여관으로, 사람은 나그네로, 사람이 살아간다 <한비자>에 의하면, ‘도란 만물이 그렇게 되
어 있음을 말하는 근본이다’라고 하였고, 공자 생을 매 순간이 영원처럼 소중한 길에 비유하 는 ‘사람의 길은 하늘의 길에 따르는 것.’이라 기도 했다. 고 하였다. 임금이 임금답고, 스승이 스승다울 그런 의미에서 사람들은 제각각 저마다의 길 때 아버지가 아버지답고 자식이 자식다우면 이 예정되어 있다. 누구나 혼자서 만이, 가야 사람의 길을 올바르게 걸어가는 것일 뿐만 아 하는 숙명의 길이 있다. 그 길을 제대로 찾아 니라 하늘의 길도 지키는 것으로 보았다.
서 가는 사람들은 보편적이고 타당한 세상 사 단테도 『신곡』의 서두에서 ‘인생의 나그네 람들의 눈으로 볼 때 성공했다고 하고 헤매고 길, 반 고비에서 눈을 떠보니, 나는 어느새 길 헤매는 사람은 실패했다고 치부하는 것이다. 을 벗어나 캄캄한 숲 속을 헤매고 있었네.’라 프랑스의 철학자였던 들뢰즈는 다음과 같이 며 얘기의 실마리를 풀어 간다.
말한다. 조선 중기의 문신 신흠(申欽)도 ‘산촌에 눈이 ‘창조한다는 것은 불행한 것들 사이로 자신의 오니 들길이 묻혔세라. 시비를 열지 마라. 날 길을 그어 나가는 것이다.’ 찾을 이 누구 있으리.’라면서 길을 가는 나그 또 누군가는 말한다. ‘창조자는 유랑자.’이다. 네의 외로운 심사를 노래했고, 에라스무스는 이렇듯 길은 인류가 출현하면서부터 비롯되 ‘좀 더 삶에서 중요한 것은 도처에 거기에 있 었고, 사람의 역사와 분리될 수 없는 긴밀한 다.’고 말했으며 프리드리히 니체는 ‘가장 중 관계를 가지고 있다. 대한 것은 길 위에 있다.’고 하면서 사람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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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주길벽제관의 개오동
의주길은 한양 돈의문에서 북경의 천안문까지 왕복 6천 리의 옛길입니다. 한양에서 고양·파주를 지나 평양과 안주를 거쳐 평안도 의주까지 이어지고, 종내에는 지금의 심양과 북경으로 이어집니다.
의주길은 문물의 중심지였던 대륙의 중원을 향해 가는 길이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선 진문물을 배우기 위해서 유학을 가거나 외교관들이 임 지를 향해 가던 길인 셈입니다. 아시아의 중심 국가였 던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 시대 수도인 연경燕京, 즉 지 금의 북경에 정기적으로 외교사절단을 파견하던 사행 使行을 연행燕行이라 하는데, 그 연행길이 바로 이 길입 니다. 오늘날처럼 비행기로 지구상 어디나 하루 안에 도달하는 시대에, 뉴욕이나 파리를 방문하는 일은 그다 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새로운 문명의 빛을 보러 당시 세계문물의 중심지로 인식되던 연경을 향해 두 발로 걸어서 떠나는 옛날 사람들의 그 느낌과 설렘 은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아마 두 발로 걸어서 온몸으로 지각하는 문물은 자동차로 스쳐지나가 는 것보다는 훨씬 더 깊게 각인되었을 것입니다. 많은 선각자들과 사신들의 설렘, 나라 일을 떠나 는 각자의 각오와 상념들이 이 길 속에 켜켜이 퇴적되어 있습니다. 대륙의 길, 역사의 길, 경기옛길 의주길의 첫 발을 내딛는 곳은 삼송역입니다. 삼송역에서 첫 번 째 길동무를 만납니다. 함께 길을 나서지는 못하시겠지만, 친절하게 산나물과 땅콩과 먹거리로 경기옛길 말뚝을 안내해주고 계십니다. 푯말은 삼송역을 기점으로 김지남 묘까지 1km정도입니
다. 말뚝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돌아서 면 제법 듬직한 은행나무가 한 그루 서 있습니다. 우리는 어디를 가나 랜 드마크라고 부르는 크고 인상적인 사 물로 좌표를 인식합니다. 지금은 거대 한 빌딩이 랜드마크가 되어버렸지만, 예전에는 어느 산이나 강, 그리고 어 떤 큰 나무 나 바위를 두고 공간과 위 치를 인식했습니다. 그래서 수백 년 된 고목은 사람들의 공간적 이정표로 써 가장 중요한 랜드마크였습니다. 오 리마다 오리나무, 십리마다 시무나무라는 말이 있듯이 나무는 거리나 공간 감각을 일깨워주는 이정표로서의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은 일종의 대지미술인 나무 옷 입히기를 통해서 가로수나 당산나무를 인상적으로 디자인하기도 하면서, 옛날과는 다른 모습으로 우리네 길 위의 인상을 바꿔주기도 합니다. 지금은 머플러를 벗었지만, 삼송역의 은행나무도 길을 떠나는 이들에게 안 전과 즐거움을 위해 엄지척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현재는 차도가 되어버린 도로를 피해서, 마을 숲길을 따라 숫돌고개를 넘습니다. 숫돌고개는 삼 송역에서 오금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입니다. 이 고개는 노고산 자락 고개길로, 한양에서 벽제관 지로 넘어가는 첫 고개길입니다. 가파르지 않은 편이나 도보 길은 삼송주택 뒷동산으로 우회하 여 걷습니다. 이 길은 마을 뒷동산 숲으로서, 마을 주민들의 산책로입니다. 여기는 노고산 자락의 작은 동산이긴 합니다만, 특별한 지명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의주길 첫 관문으로서, 약간의 숲을 산책하는 기분을 주는 곳입니다. 이곳을 지나면 널찍한 묘역을 만납니다. 이 곳의 대표적인 인물 이 김지남입니다. 김지남은 1600년대 말 즈음에 활동했던 통역관이자 외교관이었는데, 그의 비 석에는 백두산정계비를 세운 공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숙종 대에 백두산에 올라 중국 청나라 사 신들과 담판을 져서 조선의 영토를 명확히 한 백두산정계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길의 본질은 소통(통역)이며, 관계(외교)를 담 는 것 같습니다. 김지남은 그 길의 주인공이었을 것입니다. 뚝방길에서 만나는 덕명교비는 오금천 지류가 만나는 본류인 공 릉천의 석교를 건설했던 교량건설 기념비입니다. 전서체로 새겨
진 高陽新院洞德明橋婢 (고양신원동덕명교비)가 세월의 풍파와 함께한 고 대의 벽화처럼, 당대에 이 길을 만들었던 사람들의 땀처럼 비석의 결 따라 흘 러내립니다. 그때의 석교는 간데없지만, 이제 통일로를 이어주는 벽제교가 그 다리를 대신합니 다. 벽제교 아래의 공릉천은 북한산, 사패산, 개명산, 챌봉, 장군봉 등에서 발원하여, 송추, 일영, 벽제, 고양, 파주시를 관통해 한강에 이르는 큰 하천입니다. 이 하천변에도 천변공원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백로, 왜가리 등 물새들이 한가롭게 거닐며 길을 걷는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합니다. 통일로를 차도와 함께 걸어서 대
자삼거리까지 가면, 벽제관고지古
址, 즉 벽제관의 옛날 터가 있습니 다. 벽제관碧蹄館은 조선시대 역관 驛館터로서 이 의주길을 통해서 오 가는 관리들이 머물던 곳입니다. 명나라, 청나라의 사신들도 한양 에 들어가기 전에 이 벽제관에서 숙박을 하며 의관정제하고 입성 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임진왜란 이후, 현재 고양동의 벽제관지로 이전하였습니다. 이 읍내마을 고양동은 고양, 파주, 양주가 만나는 교통중심지였고, 고려의 개성과 조선의 한양을 연결하는 요 충 지역이었습니다. 특히 의주길의 사신들이 오고가는 길목이었고, 그 길목의 중심이 되었던 건 물이 이곳 벽제관이었던 것입니다. 이 벽제관이 왕의 왕릉행차시에는 행궁으로 쓰였다고 하니, 지금으로 치면 고급 영빈관이나 최고급 호텔과 다름이 없습니다. 벽제관지의 터에 들어서면 역 사의 향기가 물씬 납니다. 비단 고고학자나 사학자가 아니더라도 주춧돌만 남아 있는 벽제관 터 를 보면 저절로 역사의 향수가 일어납니다. 폐허나 유적지가 일깨워주는 감정은 누구든 세월 앞 에 장사가 없음을 실감하게 하고 시간 속의 인간을 숙연한 마음으로 성찰하게 하는 것입니다. 인 근에 늘어선 송덕비와 느티나무 보호수들, 벽제관 터를 고고하게 지키는 향나무가 역사의 시간 들을 고증합니다.
재미있게도 이 벽제관에는 개오 동나무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개 오동나무는 오동나무와는 전혀 다른 나무입니다. 단지 잎이 오동 나무를 닮아서 붙인 이름이지만 능소화과의 낙엽활엽교목인 것 은 오동나무와 같습니다. 7월경 에 엷은 노란 꽃이 가지 끝에 원 뿔모양꽃차례가 가지 끝에 달리 고 열매는 콩깍지처럼 생겼는데 노끈처럼 길게 매달리며 열려서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노끈나무라고도 불리고, 한 방에서는 열매를 자실梓實이라고 부르고 이뇨제 등의 약재로 쓰입니다. 이 열매뿐만 아니라 나무 껍질 등이 다양한 약재로 쓰이는데 본초강목에서는 백가지 나무의 으뜸이라고 해서 목왕木王으 로 부릅니다. 또한 다른 이름으로 목각두, 노나무, 향오동이라고도 부르는데, 무엇보다 재미있다 고 한 것은 이 개오동나무가 벼락을 피해가는 나무인 뇌신목雷神木, 뇌전동雷電桐이라 불리면서 신 성하게 여겨졌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이 나무가 집안에 있으면 천둥이 심해도 다른 재목이 모 두 흔들리지 않는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때문에 궁궐이나 사찰 등의 큰 건물 주변에 심어서 일종 의 피뢰침 역할을 하도록 했습니다. 이 벽제관지 터의 한 귀퉁이에 자라고 있는 뇌신목의 사연을 알 수 없지만, 먼 옛날 고급 영빈관의 재해를 막아주었던 어떤 뇌신목의 후계목일지도 모르겠습 니다. 이제는 건물은 사라지고, 피뢰침이 되어 벼락을 막아줬던 개오동나무만이 자라고 있습니 다. 이 피뢰침 나무가 지키는 벽제관에서 머물렀을 임금과 명나라, 청나라 사신들과 임지로 오고 가며 묵었을 관리들, 연행길에 올랐던 연암 박지원, 추사 김정희를 떠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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