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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궁동은 걸어서-생태교통2013수원 1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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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쪽

사적기억 마을기록

‘생태교통수원2013’ 10주년을 맞아 마을 사람들을 인터뷰하다

3쪽

Contents

04 프롤로그

인터뷰

11 생태교통수원2013 도종호 13 마을과 사람을 좋아하는 고경아 19 언제나 청년 같은 김광원 23 땅도프로덕션 영화감독 류승진 26 술맛을 아는 팔딱산 대표 박승현 28 이클레이한국사무소장 박연희 32 재롱할머니로 통하는 손선이 할머니 34 동네 골목대장 이강미화 37 마을 그림 그리는 이경아 40 마을 해설사 이혜영 43 두 아이의 엄마 정혜원 46 갈비빵에 진심인 조이화 50 잘 웃는 남자 황영 52 화서문로 코사마트 황철성 56 전 이클레이사무총장 콘라드 오토 짐머만

58 에필로그

4쪽

발행

둥근모서리 발행일 2023. 10. 편집디자인 상아기획 후원

*본 콘텐츠는 수원시와 수원문화재단, 수원시미디어센터의 지원사업을 통해 제작되었습니다.

사적기억 마을기록

5쪽

프롤로그

2013년 9월 행궁동이 들썩였다. 한 달 동안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며, 화석연료가 고갈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동력을 배제한 이동수단 만으로 일상생활을 하는 미래 세계 체험을 하였다.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 0.34㎢ 주거지역을 무대로 2천200가구 주민 4천300명이 차 없이 생활하는 생태교통 현장 드라마를 전 세계에 보여주었다.

7쪽

생태교통이 뭐지?

도시와 함께 생태교통의 미래를 논의하였다.

생태교통은 화석연료가 사라진 지구에서 인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하였다. 세계 최초로 화석연료 이동 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생활하는 프로젝트로 기후변화, 에너지 고갈 등 인류가 추구해야 할 도시 환경의 사례를 제시하였다. 또한 자동차 중심의 교통정책에서 인간과 환경을 고려한 변화의 모델을 보여주었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이색교통수단을 체험하고 6대륙 93개

8쪽

왜 행궁동이지?

행궁동은 2013년 세계문화유산인 화성행궁이 있는 곳이지만 낙후되고 침체된 구도심이었다. 도시를 정비하고, 사람이 걸어다니기 좋은 거리로 바꾸고자 세계 최초로 생태교통 수원 2013 축제를 열었다.

9쪽

운영방식은요?

한 달 동안 자동차가 사라졌다. 모든 주민 참가자는 자전거와 같은 비동력 이동수단과 대중교통만 이용하며 생활했다.

의미는요?

열렸다.

재미있는 이동 수단은요?

- 초소형 전기자동차 벨로모빌 - 리컴번트 자전거 Recumbent Bicycle 누운 자세로 타는 자전거 - 자전거 택시 - 세그웨이 두 바퀴로 달리는 전동이륜평행차

이번 축제 기간에 행궁동을 찾은 국내외 관람객은 100만 명을 넘기며 지구 온난화, 화석연료 고갈에 대비한 생태교통의 필요성을 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였다. 생태교통 축제는 세계적인 축제로 자리매김되었다. 2015년 10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스에서 2회 생태교통세계축제가, 2017년 10월에는 대만 가오슝에서 3회가

수원에서는 2014년을 시작으로 자동차 없는 날 행사가 매년 열리고 있으며 5년째 되던 해

개최 5주년 기념 생태교통 2013리마인드 축제를 개최하였다. 또한 행궁동은 매년 지속 가능한 생태교통마을의 의미를 다지며 생태교통축제를 기념하고 있다.

10쪽

현재는요?

2013 생태교통의 메시지가 담긴 행궁동 거리를 바라보면 점점 그 흔적들이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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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해냈구나. 우리 마을주민들이 해냈구나, 벅찬 마음이었어요”

‘생태교통수원2013’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8월 31일 자정이었다. 9월 한 달 동안 자동차 없이 생활하는 사업이 시작되는 전날, 마을에서 정말로 자동차가 사라질까, 모두 긴장했다. 당시 주민추진단 대표를 맡았던 도종호 단장은 10년 전 그날 밤의 감동이 지금까지 생생하다. 그날 저녁까지도 반대했던 주민들이 자동차를 마을 밖으로 뺐다. 자정을 넘은 거리는 행궁 광장처럼 넓었다.

“10년 전 오늘이 어제같이 또렷하게 기억나요. 그때 다들 마음 졸이며 동네를 걸었어요. 생태교통사업을 찬성하지 않았던 주민들이 차를 바깥으로 얼마나 빼줄 것인지 걱정이 많이 됐어요. 8월 31일 밤 정말로 자동차가 보이지 않았어요. 버스가 다니던 정조로도 비어 있었고, 무궁화 화분이 가운데 놓여 있었어요. 그때 감격했어요. 우리가 해냈구나. 우리 마을주민들이 해냈구나, 벅찬 마음이었어요.”

10년 전 역사적인 ‘그날’을 기억하기 위해 지난 8월 31일 저녁, 행궁 신풍루 앞에 마을주민, 공무원, 당시 수원시장이었던 염태영 경기도경제부지사 등 50여 명이 모였다. 다들 상기된 표정이었다. 함께한 도 단장이 인사말을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함께 고생했던 사람들을 오랜만에 만난 데다 그날의 감동이 물밀듯이 올라왔다.

생태교통수원2013 주민추진단장 도종호

13쪽

10년 전 그날처럼, 도 단장은 함께 모인 이들과 같이 동네를 걸었다. 늦은 시간까지 사람들로 거리는 북적였다. 10년 전 생태교통사업을 진행했을 때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오랫동안 함께 지냈던 주민들이 의견이 갈리면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는 게 무엇보다 가슴 아팠다고 도 단장은 말했다. 힘들고 속상한 일도 많았지만, 마을주민들이 자동차 없이 생활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전 세계에 행궁동의 저력을 보여줬다는 자부심이 지금도 마음 깊숙이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생태교통사업 이후 동네가 좋아졌어요. 물론 그 변화가 다 좋게 작용한 것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우리 마을주민들이 세계 최초로 생태교통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저력이 있으니까 더 좋은 행궁동으로 만들어갈 거라고 생각해요.”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나서 10월 21~22일 열리는 ‘생태교통수원 뉴페스타’에서 다시 보자며, 도 단장이 인사를 했다.

“그때 우리 모두 고생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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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교통은 서로 표현은 달랐지만 공동의 목표가 있었어요”

고경아 씨는

생태교통수원 2013 때 마을 주민들의 고충사무소 격인 마을 사무소를 운영했다. 생태교통 전부터 마을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마을 사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행궁동에서 거주하지 않지만 거의 행궁동주민으로 알려져 있다.

마을과 사람을 좋아하는 고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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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 고경아 씨에게 생태교통이란 뭐였어요? 마을에서 공동의 목표를 세우고 실천했다는 것, 그 바램은 2011년 10월24일 이클레이로부터도 왔고, 지구 미래를 생각하는 수원시로부터도 왔으며, 동네를 돌아보며 화서문로를 바꾸고 싶어했던 주민들에게 닿아 있던 것이었어요. 구체적으로는 “한 달 동안 자동차 없이 생활하기”, “차 없는 도로 연출”, “차 없는 마을 실험”이었어요.

현재 고경아 씨에게 생태교통은 뭐에요? 내 인생에 많은 부분에서 전환점이면서 변곡점이에요. 다양한 마을 활동했지만 아주 밀착해서 1년 반 동안 주민들의 생활 하나하나를 살피면서 진짜 이게 동네구나 이런 느낌을 받았어요. 나한테는 행궁동이 진짜 나의 고향 같은 그 시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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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곳에서 ‘마을 사무소’를 운영하면서 느낀 점이 궁금해요.

생태교통 때 마을과 가장

꽃 잘 가꾸는 사람, 물 잘 받아 쓰는 사람, 새끼 꼬기 잘하는 사람, 동네 사람들이 자기 입에서 입으로 이 사람

기능을 충분히 평가하고 동네 안 거점공간이 어떤 역할을 해야 되는지 잘 들여다보지 못한 거 같아요. 정작 마을 사무소의 기능이 거점 공간에 있으면서 마을 사람들 생활을 살피면서 자원들을 연계하고 네트워킹 했던 여러 기능이 이거 잘해요, 누구네 집 옥상은 서장대가 있었을 거 아니에요? 계승되거나 그럴 보여, 이렇게 동네의 자원을 1년 내내 동네 주민들하고 의논했고요. 토요일, 안타깝지요. 일요일은 청소년들이 와서 회의했어요. 그때처럼 마을에 대해서 우리 마을이 나요. 어떻게 됐으면 좋겠다 우리 마을에는

수 있는 없는 상태에서 정리돼 버린 것이

고경아씨가 울었던 게 기억이

뭐가 있다 뭘 잘한다 이런 거를 그렇게 오토만 짐버만 씨가 왔을 때였는데 활발하게 의논하고 논의하던 때가 없었던 순대국집 옆에 커피숍 있기 전에 철물점 것 같아요.

주민들과의 일이었죠?

동네 안에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예전에 제일 고생했던 게

10년이란 세월이 길다 보니까 좋은 것만 기억되고 시간이 많이 흘렀어요. 생태교통 마을 사무소가 끝나고 나서

같아요.

생각하셨을 거고 많은 분이 생태교통

배운 점은 뭘까요?

안에서 일어났던 정보가 충분히 동에 전달되지 않은 거죠. 왜냐하면 전달할

이용원이 있었는데 철물점 공사하시는 분이 계셨어요. 그분은 공사 관련된 직업이었는데 쫓겨난다고 했어요. 왜냐하면 공사로 복잡해지기 시작하니까 그때부터 이사 가기 시작했어요. 갑자기 현타가 왔어요. 우리가 한 일이 이런 건가? 그때가 정말 많이 울었던 것

생태교통을 통해 가장 많이

많은 갈등을 맞이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지도 않은 상태에서 생각하고 정말 모든 사람들이 다 마을을 해산해버렸어요. 완전히. 아무것도 없이 위하는구나 다 마을을 위한 일이라고 주민추진단도 일방적으로 해산합시다, 얘기해요. 활발하게 뭔가 일어나지 하며 해산시켜버린 거잖아요. 이 짧은 기간에 마을 사무소가 했던 역할이나

않으면 사실 공동의 우리가 목표를 달성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서로 표현은

17쪽

달랐지만 공동의 목표가 있었고 그

며느리라도 만나면 얼굴 붉힐 정도로 공동의 목표를 향해서 달려오는 동안에 너무 좁다는 것. 비 오는 날에는 우산 쓰고 제각각의 갈등이 있었고 그 갈등을 두 사람도 갈 수 없을 정도로 좁다고. 맞이하는 방법을 배우고 우리가 어떻게 그것들을 도종환 회장님이 2011년 10월 사람들과 생활하고 어떻게 관계하고 어떻게 이웃과 더불어 살아갈 것인가

24일 날에 주민참여예산 시민회의가 있는 날 실내체육관이었어. 화서문로를 나는 개인적으로는 마을 만들기에 있어 바꿔달라고 얘기를 한 거에요. 주민들이 마을 만들기가 마을만 있는 곳인가? 마을 자발적으로 동네의 변화를 원한 거에요. 활동가만 있는 곳인가? 마을에 주민도 없는 주민자치가 진정한 자치인가 라고 하는 부분에서 엄청 깊이 있는 영감을 줬어요.

동네의 변화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나요? 생태교통에 참여하겠다라고 하는 표현하는 것조차도 어려운 때 신풍장안 생태교통를 대하는 안과밖의 발전위원회에 참여회원들이 100% 우리는 평가가 좀 다른 것 같은데요? 다각도에서 접근하고 평가해내고 그

지지한다! 우리는 하겠다! 화서문로 상가 번영회가 앞장서겠다고 했어요. 안에서 새로운 비전들을 만들어야 되는데 행정이 하자고 해서 따라한 게 아니에요. 너무 정체돼 있다 보니까 밖에서 볼 때는 그 전에 상가 번영회 상가 앞에 캐릭터 돈 많이 들여가지고 돈이 하는 행사로 보이는 거죠. 생태교통의 씨앗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어 소개할게요. 신풍장안 상가번영회 임원들이 동네를 거죠. 돌아봤어요. 신풍동에는 전봇대가 있고

같은 거 레지던시 작가들이 하나씩 만들어줬잖아요. 그 전부터 상인들을 결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을 한

생태교통을 하기 위해 그 장안동에는 전봇대가 없는 것. 장안동은 전부터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는 건 인도가 1.5m 정도 넓고 신풍동은 또

참신한데요? 좁다는 것. 가로등, 소화전 등 인도 위에 2009년도 행궁동 레지던시 생기면서 있는 것들을 직접 걸어보고 나서 실제로 작가들과 레지던시 운영위원회를 지도로 조사를 해보니까 보였어요. 주민들하고 같이 꾸렸잖아요. 그 도로가. 가게들이 인도를 점유해 물건을 운영위원 하셨던 분들 중에 지역 적재해 걸을 수가 없을 정도로 불편하고 사람들은 실제로 굉장히 적극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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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을 했던 거죠. 동네 주민들이 생태교통하는 동안 굉장히 많은

것들이 싹이 나아서 그 사람들이

문화적인 그런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건 반성하고 있어요. 2009년도부터 레지던시 작가들과 한 활동이 큰 힘이 되었어요. 문화 활동에 대한 경험이 있으셨던 거죠. 눈에 보이지 한다면, 뭘 하고 싶어요? 않지만 그전부터 마을에서 활동했던

성장해서 뭔가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외부 시선으로는 그냥 아까 우리 말한 것처럼 뭔가 지원해가지고 행정이 원하는 방향으로 빵 터트려

성찰하지 않았거나 돌아보지 않았거나 제대로 된 질문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

만일 다시 생태교통 축제를

생태교통의 겉모습만 보면 다들 대성공이라고 얘기하고 있는 거잖아요. 과거나 지금이나 여전히 이 마을이 정말 안녕하냐라고 하는 거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제대로 못하고 있지만. 우리는 과거로부터 시작한다고 하면 제대로 가지고 자기네가 행사하고 끝났다라고 된 평가, 진단 그리고 어떻게 앞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전에 이러이러한 기초 나아갈 것인가라고 하는 거에 대한 단계가 있었다는 거, 그 마을 조직이 동네 합의나 과거에 몇몇 사람 사람들로부터 안에서 발화하고 있었어요. 시작됐던 생태교통 갈등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거를 아직 못하고 있다고 생태교통을 통해 마을 사람들, 생각해요. 갈등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참여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변했나요? 이런 모습이 있는 건데. 10년 동안 지내온 나도 그림 그리잖아요? 동네 사람이 다 이 모습을 반성했으면 하고요. 만약에 이 뭐라도 하잖아요? 근데 방탄소년단도 2013년도에 데뷔했더라고요. 우리가 지금까지 성장해 온 과거와 출발점이 같아요. 작년에 올해 10년이고 다들 막

일을 한다면 과거에 열심히 활동하셨던 분들과 함께 뭘 했으면 해요. 그분들과 함께 10년의 행사를 하면서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그러니 연락처가 군대 가고 하면서 활동이 정지된 상태가 있으면 좀 공유해서 함께 일을 했으면 되니까 작년에 어떻게 성장해 왔는가라고 좋겠다고 말하고 싶어요. 하는 앨범을 냈단 말이에요. 하필 CD 3장짜리에. 이번에 접하면서 우리는 왜 2013년 9월에 멈춰 있는 것인가, 그것으로 성장이 없었던 것이라는 것,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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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원 씨는 행궁동 주민이다. 생태교통수원2013 때에는 행궁청년회와 함께 마을에서 노는 일을 연구했다. 마을의 불편한 점이나 어려운 점이 생기면 적극적으로 민원을 제기하여 시정하도록 노력하기도 했다. 현재는 행궁동에서 더 재미있게 살기 위해 마을 일을 도와주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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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교통을 통해 동네 비전이 생긴 거예요”

10년 전에 생태교통이 시작될 즈음, 생태교통을 어떻게 인식했나요? 10년 전 생태교통을 주도한 행정은 무조건 마을에서 차를 빼는 것에 집중했다면 저는 걷기 좋은 마을이나 주민들 보행 쪽으로 초점을 맞췄거든요. 10년 전에는 차를 완전히 뺐잖아요? 저는 차를 줄이는 방식으로, 차를 웬만하면 이용 안 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쪽으로 생각했거든요. 근데 차를 빼보니까 괜찮더라고요. 차가 사라진 도로는 엄청 넓은 거예요. 지금은 양쪽에 주차를 해버리잖아요. 근데 주차만 없어도 도로가 엄청 넓어서 차가 다녀도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아요. 간간이 도로에 차가 다니는 건 상관이 없어요. 그 많은 면적을 차들이 주차해 있으니까 다니기 불편해지는구나, 처음 느꼈거든요. 생태교통이 이렇게 중요하구나, 도로가 넓어지는구나, 이런 걸 많이 느꼈어요.

생태교통을 겪고 나서 어떤 변화가 왔어요? 꿈이 생겼어요. 그전에는 동네에서 공동체 얘기하면서 동네 사람이 교류하고 소통하고 끈끈하게 뭔가 엮이면서 동네 문제를 같이 풀어나가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생태교통을 지나면서 동네 비전이 생긴 거예요. 비전을 갖고 동네를 바라보니까 훨씬 개념이 달라지는 거예요. 생태교통이라는 비전을 갖고 동네를 바라보면 산책로가, 화성 행궁이, 팔달산이 왜 중요한지, 어떤 식으로 시스템을 깔 수 있는지, 생태교통을 거치면서 많이 배웠죠.

언제나 청년 같은 김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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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교통을 공동주최했던

시스템을 연결하면 되는 건데 연결 이클레이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아는데, 개념이 없잖아요. 이런 여러 가지 사례를 외국의 생태교통 사례도 많이 알고 있죠? 저는 그동안 주민자치나 동네 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참여 예산과 주민자치 활동, 동네 모임을 만들며 재미있게 활동하고 있었어요. 참여 예산을 하다 보니까 예산 감시만 하는 게 아니고

접하면서 알게 되었죠. 이런 게 지원이 되니까 이런 생활 시스템 되는구나, 동네 차를 빼고 걸어 다닐 수 있는 시스템이 되는구나, 이런 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생태교통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광원씨 생각이 듣고 싶어요. 실무도 도와주고 회계 실무도 알아가고 생태교통을 두 가지 견해로 본다면, 있었는데 이런 찰나에 이클레이에서 도와달라고 해서 일 년만 도와준다고

하나는 물류 중심으로 탄소 배출을 줄여서 전기 자동차나 아니면 거리를 그랬다가 지금 발목을 잡혀서 일 년 넘게 줄이거나 이런 방향이 있고요. 또 하나는 하고 있어요. 생태교통이란 게 교통 시스템이죠. 근데 이클레이에 있으면서 외국에서 시행되는 탈 것 위주가 아니라 걷기 좋은 주민들 많은 정책을 접하게 되죠. 벌써 이런 정책을 하는 외국이 있구나, 동네에서

중심으로 가는 거죠. 동네는 주민들 중심으로 걷기 좋은 마을이 돼야 되는 이게 맞을까, 틀릴까 고민하는 문제들에 거예요. 대체 교통수단을 강구할 게 대해 먼저 앞서 나간 외국의 성공사례가 아니라 걷는 마을이 되면 되죠. 거기에 있더라고요. 이런 거를 걱정할 게 아니고 대중교통 시스템이나 먼 거리 주차장과 주민들이랑 설득하면서 같이 만들었으면 연결망은 어떻게 할지 고민하면 되는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어 거죠. 동네 비전을 명확하게 갖고 가야 외국의 차 없는 거리 정책은 도로 중심이 되는데 그런 개념을 잘 못 잡아요. 아니고 거점을 딱 찍고 반경 1km 차를 없애요. 이렇게 성공하면 2km, 3km, 5km 확장하면서 그 사이에 응급차를 어떻게 할지 해결하면서 계속 넓히는 거예요. 우리의 경우는 공유 자전거는

생태교통을 교통 전문가들이 연구하니까 교통 시스템을 전기로 바꾸려고 하는 거예요.

외국의 경우엔 생태교통은 차를 빼고 알아서 타라고 하는데, 빈 공간을 공유 그 공간을 주민들이 걸어 다니면서 자전거나 개인 교통수단을 연결하면서 우발적으로 만나고 만남이 많아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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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이 이루어지고 넓어진 도로에는

녹색, 검은색, 파란색 이렇게 크게 주민들이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구간마다 칠을 해놓고요. 어떤 색깔은 시스템을 만들어 동네와 공동체가 같이 주민 소통하는데, 어디는 교류회장, 이런 가고 있거든요. 우리 연구 결과를 보면 식으로 색만 바꾸고 개념을 도입했는데 전기차 교통 시스템 쪽으로만 자꾸 가는 주민들의 소통이 늘어나고 공동체도 거예요. 동네는 걷기 좋게 만들어야 해요. 발달한 거에요. 우린 도시재생을 경관 유엔 해리티지 이런 문화유산 안에 차를 개선이라든가 집수리 이런 식으로 갖고 들어오는 데가 없어요. 문화유산은 가는데 사실 그것도 필요하죠. 필요하긴 보호하고 밖에 주차장을 만들고 이동성을 한데 주민들이 소통하면서 공동체가 편하게 하죠. 그게 기본이거든요. 그런 만들어지면 훨씬 더 많은 게 해결될 개념을 갖고 주차장을 만들거나 아니면 수 있거든요. 모든 걸 행정 중심으로만 기존의 주차장을 이용해서 접근성을 좋게 풀려고 하니까 모든 게 행정 위주로

연구가 잘 안 되더라고요.

행궁동에는 뭐가 필요할까요?

하는 식으로 고민이 돼야 하는데 그런

걷기 좋은 동네가 되려면

우리도 도시재생을 했잖아요. 집수리나 아니면 기본적으로 프로그램 공유 공간 만들기와 같은 것을 했죠. 외국 북유럽 스웨덴 한 도시를 보면 도시재생 계획 2년 동안 메인 도로에 색칠만 했어요.

진행되죠. 저는 눈에 보기 좋은 마을보다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런 개념 차이가 줄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게 아쉽죠.

24쪽

“생태교통수원2013은 학생이었던 저에게 미래를 만들어줬습니다”

2013년 9월 자동차가 사라진 거리에서 시민영화제가 열렸다. 생태교통을 주제로 한 영화제였는데, 류승진 감독의 다큐영화 「길의 무게」가 마지막으로 상영됐다. 마을 주민 손선이 할머니가 주인공이었다.

“2013년 할머니를 처음 만났을 때, 박스 줍는 일을 자영업처럼 이해하고 일하는 모습이 너무 멋졌습니다. 촬영하면서는 할머니가 몸을 움직여 종이박스를 모아 고물상에 파는 과정이 숭고하다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2013년 우리 행궁동에는 생태교통 페스티벌의 준비로 시끌시끌하고 공사도 많았습니다. 할머니는 그 전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몸과 구닥다리 리어카에 의존해 종이박스와 재활용품들을 모아 삶을 살아내셨습니다. 저는 할머니의 삶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길의 무게」를 만들었습니다.”

땅도프로덕션 영화감독 류승진

25쪽

류승진감독 「길의 무게」 다큐영화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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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영화학도였던 류감독은 졸업영화를 생태교통사업이 끝난 후에 류 감독은 만들기 위해 생태교통마을에 들어왔다. 행궁동에 작업실을 얻었다. 할머니와 마을문화공간 ‘행궁동문화슈퍼’에 짐을 10년째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풀고, 카메라를 들었다. 할머니를 졸졸 따라다녔다. 할머니는 종이박스를 모으기 “2013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위해 자주 차도에 리어카를 세워놓았고, 낯선 사람인데 마을 분들이 환대해줬던 매일 고물상에 팔러 갈 때는 큰 도로를 마음입니다. 지금도 마음속에 따뜻하게

줄 타는 곡예사처럼, 할머니도 흔들흔들했다. 몇 번이나 차들이

건넜다. 그때마다 할머니의 키만큼 박스가 쌓인 리어카는 휘청거렸다.

빵빵거렸다. “카메라를 들고 가면서

있습니다. 할머니도 작업으로 만났지만, 새로운 가족이 되었습니다. 2013년 생태교통사업은 학생이었던 저에게 미래를 만들어줬습니다.”

마음 졸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류감독은 2013년 다큐영화 「길의 류감독은 말했다.

할머니를 따라다니고, 같이 밥을 먹고,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7개월을 할머니와 함께했다.

본다. 10년 전 그때처럼.

할머니의 일상이 마음 깊이 들어왔다.

무게」의 연장으로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장편영화를 만들고 있다. 차 없는 거리에서 마을주민들이 다 같이 모여 류감독의 장편영화를 보는 날을 기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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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 주민들이 행궁동을 한번 만들어봤으면 좋겠어요”

아직 미혼이다.

박승현씨는 행궁동에서 재미 있는 일을 기획하는 기획자이다. ‘팔딱산’이라는 공간을 운영하며 행궁동의 비전에 대해 여러 사람과 방향을 모색하는 젊은이다.

행궁동이 생태교통으로 많이 변화됐어요. 젊은 술맛을 아는 팔딱산 대표 박승현 기획자가 봤을 때 방향은 어떤가요?

일단은 민간에서는 열심히 하는 것 같아요. 행정이나 중간 지원 조직에서도 씨앗은 많이 뿌려놨다고 생각해요. 씨앗을 연결하는 일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각자 떠 있는 듯한 느낌이에요.

28쪽

얘기를 많이 하고 있어요.

필요는 있는 거죠.

제안하고 싶은 거 있어요?

생각해요. 그러니까 생태교통은

생태교통 후 행궁동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이니, 변화니 하는

건물 개보수하고 리모델링하면서 기존에 알던 가게들이 많이 바뀌고 있더라고요.

어떤 모습일까요?

행궁동은 벽화마을이자 주민들이 살기 좋은 동네였는데 그런 것들이 줄어든 거는 사실이죠. 그렇기에 우리 동네가 특색을 갖추고 또 오래 가려면 무엇이 있을까 이런 고민을 진지하게 해볼

생태교통과 관련해서는

행궁동은 차 없는 거리로 가야 한다고

철학이고 약간의 방법론인 건데 어떻게

행궁동, 이제 그런 걸 할 때는 됐다고 봐요. 말로만 하지 않고 주민들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됐으면 좋겠어요.

10년 후 행궁동에서 승현 씨는

제가 생각하는 행궁동은 시간 쿼터가 갖춰져서 낮 동안 사람들이 일할 수 있고 관광할 수 있는 장소, 밤에는 주민들의 삶이 살아 숨 쉬고 쉴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어요. 그러면서 동네 주민도 행복해지고 또 청년 세대들에게는 기회의 땅이 돼서 살고 싶고 창업하고 싶고, 놀러 오고 싶은 곳으로 만들고 싶어요.

생태교통 10주년을 맞았는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어요? 하면 주민들이 더 살기 좋은 곳으로 갈 지역을 관리할 수 있는 회사와 마을 것이냐에 대한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죠. 기금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니잖아요.

난 이런 거 해보고 싶다.

차 막고 사람들이 걸어 다니기 좋다고 해서 모든 게 바뀌고 행복해지는 거는

젊은 기획자로서 제안한다면 저는 상인회가 아니라 주민자치회가

마을 주민들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이야기를 듣고 그 내용을 분석해 실제 주민들의 생각 유형이 나오면 토론도 해보고 그걸 좋겠어요. 통해서 결정을 내려서 실제 구현이 되는

앞으로 자율상권이 법적으로 지정돼서 상권 관리 기금이라는 게 생기거든요. 그러면 상인회가 자율상권 조직의 최고 조직 중의 하나가 될 거예요.

최고 조직이 돼서 그 상권관리기금을 주민기금처럼 운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행궁동은 다른 지역과 다르게 우리 마을 주민들이 한번 만들어봤으면

29쪽

“지속가능한 도시를 구현하는 혁신의 메카로 생태교통의 유산을 이어가면 좋겠어요”

이클레이한국사무소장 박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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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교통수원2013’ 사업이 제안되고 행궁동에서 펼쳐지기까지, 이클레이와 수원시 사이에서 가교역할을 했던 이는 박연희 소장이다. 중요한 결정 과정마다 함께했기에 자부심이 남다르다. 지금도 동네 골목을 걸으며 생각에 잠길 때가 많다. 10년 전 생태교통마을에서의 기억이 새록새록 올라온다. 함께 골목을 걷고 팔달산

취지부터 말씀해주세요.

숲 자락에 앉아 2013년 뜨거웠던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클레이에서 ‘생태교통수원2013’ 사업을 기획한

자동차 없는 일상생활을 어떻게 구현하려고 했나요? 영화에서 쓰이는 city cine 어프로치라는 현재 도시에서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할 때 것에서 착안했어요. 자동차 없는 도시의 그 중심에 기후위기대응 의제가 있어요. 일상을 영화의 장면처럼 연출하는 이클레이는 다양한 시범사업을 통해 각 거였어요. 자동차 없는 마을이 무대이고, 나라가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을 했어요. 그런데 기후위기는 나날이 심각해지는데,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기 위한 혁신의 속도는 너무 더딘 거예요. 어떻게 하면 좀 더 효과적으로 시민들에게 기후위기와

마을주민들이 주연배우가 되어 세계에 보여주는 거였죠. 자동차 없이 생활하는 게 가능하구나, 생각보다 꼭 그렇게 불편하지 않구나, 해볼 만한 거구나, 이런 생각을 세계 시민들이 해볼 수 있게 도시를 연출하는 거였어요. 그 지속가능한 도시를 설명할 수 있을까가 첫 번째 실험이 영어 공식명칭은 이클레이의 고민이었어요. 여러 가지 방법론 중에서 이클레이가 착안했던

에코모빌리티월드페스티벌이었고, 수원에서는 ‘생태교통수원2013’으로 해서 것이 생태교통시범사업이었어요. 자동차 2013년 9월 한 달 동안 진행됐어요.

구체적으로 구현해서 보여주는

의존도를 최소화해서 일상생활을 하면 도시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것이었어요. 전문가의 제안이 아니라 실제로 자동차 없는 생활을 경험한

과정부터 쉽지는 않았을 텐데,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요? 시민들이 자동차를 자발적으로 뺄 수 있도록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가 가장 시민들이 구체적으로 느끼고 생각하는 큰 관건이었어요. 그다음 자동차가 기회를 만들어보는 거였어요. 사라진 마을의 무대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였어요. 자동차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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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존도를 최소화하더라도 일상이 정말 괜찮을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에 대해 논의를 많이 했어요. 이클레이 입장에서는 시민의 생각을 바꾸는 아주 강력한 캠페인이었어요. 시민들이 생태교통마을에서 와서 무엇을 배우고 느끼게 할 것인가가 중요했어요. 정조로의 반은 차가 다니고 나머지 반은 걷는 길로 극명하게 대비되도록 구현했어요. 또한 세계 도처에서 개발 중인 다양한 친환경 이동수단을 소개하고 시민들이 실제로 타 보는 기회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생태교통 콘퍼런스를 잘 조직해서 행궁동에서의 이 무대가 지속가능한 교통과 도시를 이야기하는 사람들, 전문가들에게 회자 될 수 있도록 사회적 메시지로 만드는 데 힘을 기울였어요.

이클레이에서는 ‘생태교통수원2013’ 사업을 어떻게 평가하나요? 한마디로 말하면, 레전드(전설)에요. 이클레이가 이렇게까지 전격적으로 하나의 장면을 실현하기 위해서 이행한 프로젝트가 그동안 없었어요. 기획 자체도 훌륭했지만 수원시가 한 달 동안 사업의 성격을 멋지게 구현했어요. 지금도 ‘생태교통수원2013’ 사업을 전설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아요. 세계적으로 지방정부가 기후위기대응을 위한 교통혁신정책을 추진할 때 벤치마킹해볼 만한 프로젝트로 수원시의 생태교통사례가 소개되고 있어요. 진정성을 갖고 있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사업이 ‘생태교통수원2013’이에요. 이클레이에서도 지금까지 자부심이 크고, 수원시와 행궁동 주민들을 응원하고 있어요.

기억에 남는 장면이 무엇인가요? 가장 울컥한 장면은 2013년 8월 31일 밤이었어요. 정말 자동차가 거리에서 사라졌을까, 걱정과 설레는 마음으로 자정 넘어 거리로 나갔어요. 정조로에 무궁화 화분이 놓인 걸 보면서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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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없네. 정말 차가 없네’ 그랬어요.

구현하는 혁신의 메카로 이어가면 마을 골목 안에도 자동차가 사라졌어요. 좋겠어요. 시가 좀 더 단호한 정책적 그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고, 눈물이 났어요. 느낌표 100만 개 찍고 싶은

선택을 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행궁동 마을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날이었죠. 그리고 생태교통 파빌리온에서 선택할 수 있는지를 좀 더 공론화하면서 행사가 다 끝났을 때였는데, 콘라드씨와 바꿔나갈 수 있도록 하는 토대를 만들면 같이 나와서 골목을 걸었어요. 그동안의 좋겠어요. 생태교통마을에는 주민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면서 기분이 주체들이 있고, 생태교통의 유산도 살아

남았어요.

싶은가요?

묘했어요. 그때의 감정이 오래도록

숨 쉬고 있어요.

올해 ‘생태교통수원2013’ 10년을 맞이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끝으로 나에게 ‘생태교통수원2013’은 무엇인가요? 수원에서 생태교통사업을 진행하기까지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내가 관여되지 지속가능한 도시 패러다임을 이야기할 않은 적은 없었어요. 그때는 이클레이 때 생태계 보전, 기후위기대응 노력은 소속도 아니었는데, 이클레이와 수원시 이제 기본값이 되었어요. 이런 맥락에서 사이에서 가교역할을 했거든요. 너무 기후위기 대응에 맞게 도시 교통체계를 복잡하고 힘든 적도 많았어요. 내가 개편하는 것은 세계 지방정부들의 결정권을 갖고 있지도 않았고, 그래서 공적 책무예요. 적극적으로 교통체계를 그 노고가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역사적 개편하는 도시들을 보면 도심 한가운데 순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자부심이 주차면을 줄이고 있어요. 대중교통만 커요. ‘생태교통수원2013’ 사업은 우선 다니도록 한다든지 아니면 자전거만 나에게 자부심과 그 과정에서 남몰래 다닐 수 있도록 한다든지, 공해 차량의 흘린 땀과 눈물의 결정체예요. 그리고 도심 유입을 제한하는 혁신의 정책들을 그때의 인연으로 얼마 전 행궁동으로 펼치고 있어요. 도시의 교통체계 혁신은 이사 왔어요. 행궁동은 나에게 남다른 시민의 불편을 넘어서는 사회적 필요에 곳이에요. 10년 전 함께 땀방울을 흘렸고

성공 경험을 가지고 수원시가

의한 것이에요. ‘생태교통수원2013’의

이웃들이 있으니까요.

기후위기대응 도시, 지속가능한 도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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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덜 오면 좋겠지”

인터뷰일곱

재롱할머니로 통하는 손선이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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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 차가 없었으니까 그게 제일 좋았지. 좁으니까 차도까지 나와. 그러면 내가

소리지를 일이 없었어.”

리어카 끌고 다니기 편했어. 그때는

종이박스를 모으는 손선이 할머니는

비껴 그러면서 소리를 질러. 차한테 조심하라고 말하는 거야.”

할머니는 지금도 리어카를 끌고 거리를 자주 목소리를 높인다. 차도로 리어카를 오간다. 2013년 이후 10년 동안 마을의 끌고 다니기에, 빵빵대는 차를 향해 또는 변화를 거리에서 지켜봤다. 주말에 옆으로 지나가는 차를 향해 “비껴, 비껴” 할머니는 더 자주 소리를 지른다. 하고 소리를 지른다. 할머니가 스스로의 도로가 주차장으로 변해 버리니까, 차들 안전을 지키는 방법이다. 사이를 비집고 리어카를 끌고 가는 것도 곤혹이다. 그래서 요즘은 사람들이 2013년 9월, 자동차가 사라진 거리에서 붐비는 주말 낮에는 리어카를 잘 끌지 할머니는 소리칠 일이 없었다. 그 대신 않는다. 매일매일 신났다. 적막했던 동네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고, 외국인도 많이 “골목에 엉켜 있는 차들을 정리해줬어. 만났다. “내가 헬로우 하면 외국인들이 불법 주차하는 운전자들 보면 여기 지나가면서 헬로우 하면서 인사했어. 그때 나는 신났었어.” 할머니는 흥이 많고, 잘 웃는다. 음악이 나오면 춤을 추고, 리어카를 끌고 다닐 때도 콧노래를 오면 좋겠지.” 부른다. 그래서 재롱할머니라고 동네 사람들은 부른다. 목소리도 우렁차서

차 세우면 안돼라고 말해. 할머니가 이야기하면 듣더라고. 근데 차가 진짜 많아졌어. 나도 말하기 힘들어. 차가 덜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할머니는 멀리서도 할머니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종이박스를 모아 리어카에 실었다. 정도다.

“지금 동네에 차가 아주 많아졌어. 젊은 신나면 좋겠다. 사람들 네다섯 명이 같이 다니면 길이

차들이 리어카 옆으로 달린다. 2013년 9월 그때처럼, 할머니의 일상이 안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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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궁동은 걸어야 그 매력을 알 수 있어요”

사람들이 골목대장이 부르나 봐요.

대중교통으로 방문하도록 홍보를 많이 해야 해요.

2018년, 5년의 타지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수원에 올 때 행궁동 이외의 곳은 생각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나를 이끄는 곳”이 행궁동이었다고, 이강미화씨는 말했다. 고등학교도, 직장도 행궁동에서 다녀 추억이 많았다. 골목에서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유유자적 살고 싶다는 그녀를 만나, 걷기 좋은 행궁동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골목대장이라고 이웃들이 부르는데 알고 있나요? 그런가요? 들어보긴 했어요.(하하하) 원래 쓰레기,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골목에 쓰레기를 마구 버리니까 동네가 전체적으로 지저분해요. 난 그런 꼴을 그냥 못 지나쳐요. 일단은 치우고, 동네 사람들과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더러는 싸우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면서 청소하고, 그랬더니 골목이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어요. 쓰레기 마구 버리는 사람, 아무 데나 주차하는 사람들을 보면 하지 말라고 한마디 하죠. 내가 먼저 청소하니까 나한테 뭐라고 못하죠. 그래서

행궁동에 이사 왔을 때랑 지금은 많이 달라졌죠? 동네 차들이 특히 주말에 너무 많아요. 점점 골목길로 차들이 들어오고 있어요. 마주보고 차들이 대치하는 광경을 자주 봐요. 차들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몇 번이나 안내했었죠. 솔직히 자동차 문제는 우리 주민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수원시에서 관광객들이

동네 골목대장 이강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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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나요? 그때는 여기 안 살았는데 이야기를 들었어요. 동네 친구들이 자주 2013년

2013년 생태교통사업에 대해 발견하는 즐거움이 새것이 아니라 손때묻은 것들이면 좋겠어요. 누군가에게 필요한, 오랜 시간을 담은 물건들을 나눠 쓰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거리마켓을 열고 생태교통페스티벌에 대해 이야기해요. 있어요. 차 없는 거리가 되면 더 안전하고 그때 차 없는 도로에서 배드민턴 치며 재밌게 할 수 있겠죠. 또 버스킹을 해보고 놀았다고요. 동네에 자동차가 없었다니 싶어요. 걷는 사람들이 보고 즐기는 생각만 해도 즐겁더라고요. 그런데 지금 놀이와 예술마당이 거리 곳곳에 많으면 보면 너무 안타까워요. 생태교통마을과는 좋겠어요. 개인적으로 노래를 좋아해 정반대로 가고 있잖아요. 주말에는 관광객 차들로 골목 안까지 주차장이 되고, 인도를 걷는 것도 불편해요. 생태교통마을이었다면서 왜 이렇게 내버려 두는지 의아해요.

인터뷰하러 올 때 자전거를 타고 오셨는데, 평소에도 자전거로 이동하세요?

취미로 버스킹을 했는데 즐거웠어요. 행궁, 성곽길, 골목과 어우러지는 거리버스킹을 차 없는 거리에서 꾸준히 열어 동네 명물로 만들고 싶어요.

행궁동이 어떤 동네가 되길 바라나요? 더 많이 상업화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너무 상업화되면 인간적인 정서가 동네 안에서는 주로 걷고, 바쁘거나 짐이 사라질까 봐 두려워요. 오래 산 주민들 있거나 아니면 운동 삼아 자전거를 타요. 때문에 지금의 가게가 더 빛이 난다고 근데 주말에는 자전거를 탈 수가 없어요. 생각해요. 골목은 매일 다녀도 새로워요. 사람도 걷기 힘들 정도로 붐비고, 인도에 지루하지 않죠. 혼자 다녀도 쓸쓸하지 개구리 주차한 차들도 많아서 자전거 타는 건 엄두도 못 내요.

있나요?

않고, 이야기가 보여요. 주민들이 있으니까 마을의 이야기들이 만들어지는 거죠. 이런 이야기들이 행궁동을 더 차 없는 거리에서 하고 싶은 게 빛나게 하고, 가게들도 그래서 더 빛나는 거예요. 그리고 ‘차없는거리’를 생태교통마을이면 차없는거리는 물론 지속적으로 하면 좋겠어요. 그래야 친환경적인 생활을 같이 고민하고 여기를 찾아오는 사람들도 차를 가져올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골목을 걷다가 생각을 안 할 거고, 골목을 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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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아홉

마을 그림 그리는 이경아

“생태교통 전에는 마을이라는 걸 정말 느끼지 못했어요”

이경아 씨는 생태교통을 기점으로 삶의 지표가 바뀐다. 생태교통 전에는 집에서 칩거하는 스타일이었다면 생태 교통 후에는 마을의 변화나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아이패드로 드로잉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녀는 특히 동물의 표정을 생생하게 잘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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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교통 때 어떤 일을

했나요? 그때 생태교통에 대해서 잘 이해를 못했어요. 제가 근무한 마을 사무소가 소통창구여서 할 일이 되게 많았어요. 처음에는 매주 한 번 씩 전시하고 마을잡지 마을 소식을 A3 판형으로

같아요. 우리 마을 일이잖아요. 마을은 모두의 마을이니까 열 명이 좋아한다고 해도 한 명이 장사하는데 힘들다면 그 사람의 입장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때, 생태교통이 개최되었을 나갔어요. 한 10회 정도 하지 않았을까? 때 아쉬운 점이 많았나봐요? 계속해서 마을 소식을 뿌렸어요. 행사가 생태교통으로 행궁동이 변화됐다고 많아서 행사 준비도 했고요. 동네 어머님들을 모아놓고 조용필 노래에

성공적이라고 평가하는 측면도 많지만 사실 마을 주민으로서의 경험을 보는 맞춰 춤추기도 했어요. 생태교통을 위한 거는 달라요. 좀 안타까운 게 우리 마을의 내부 행사가 되게 많았잖아요? 매일매일 미래를 생각한다면 충분히 발전 가능성이 일이 많았어요. 행사 준비하고 사람들과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그때 연락할 일이 점점 늘어났어요.

생태교통 10주년인데요. 지금의 의식으로 생태교통을 다시

이후 뭔가 속도가 불안해요. 관광특구로 만들고 그렇게 가속화를 안 붙여도 충분히 어느 수준까지 갈 수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곳을 빨리 뻥튀기해서 한다면, 혹은 만일 기획자라면 어떻게 발전시키려고 하다 보니까 가속화가 하고 싶어요? 모든 곳이 열린 창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젊은 사람들 얘기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 사람 한 사람 목소리가 그 사람의 입장인 거죠.

붙었잖아요. 아쉬운 점이 많잖아요. 근데 아쉬운 걸 되돌리는 방법이 또 없다는 거가 안타깝죠. 또 다시 규제할 수도 없고 제재할 수도 없고 그게 좀 아쉬워요. 이 마을의 경치가 사라지면 도대체 뭐가 들어주고 같이 얘기하고 화합할 때까지. 남는 걸까. 마을에 경치가 사라지면? 그래

해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어요.

뭘 한다는 게 아니라 우리가 공감을 못 그게 좀 걱정돼요. 또 너무 빠르게 변화되는 거 보니까 뭔가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많은 경험을 해서 기반이 허약했던 사람들을 일찍 쫓아내는 얘기도 들어주고 공감해 줄 수 있고 모든 경우가 돼 버렸어요. 그런 약자들은 얘기를 좀 관심을 기울여 줄 수 있을 것 버티지 못하는 거죠. 생태교통으로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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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그런 가정들을 보호하지 못했던 것도 있는 거 같아요. 장점도 많고 성과도 많지만 생각해 보면 조금 마음 아픈 것 같아요. 지금은 너무 획일화 된다고 그럴까요? 그전에는 행궁동 동네는 노후됐었지만 그래도 하나하나 표정이 있었다면 지금은 너무 비슷한 거 같아요.

개인적으로 생태교통을 통해 바뀐 점이 많죠? 생태교통 하면서 제2의 인생이 시작되었지요. 생태교통 전에는 마을이라는 걸 정말 느끼지 못했어요. 아는 사람이라고는 우리 집 앞 골목 사람들만 알았어요. 정말로. 그 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었어요. 마을 일을 함으로 해서 동네 바닥(?)까지 알게 된 거죠. 그러면서 마을 생활을 하게 되었어요. 예전에는 외부 친구들을 성 밖에 나가서 만났어요. 마을에서 논다는 개념이 없었어요. 내 삶에 마을이 들어왔어요. 마을에서 카페에 모여서 얘기하는 건 상상도 못했어요. 완전 생활환경이 바뀐 거죠. 생태교통을 하면서. 그리고 만나는 사람도 달라졌어요. 무슨 공동체나 활동가도 많더라고요. 생소한 느낌이었어요. 평생을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라 신기했다니까요. 이제는 동네 작가, 뭐 동네 활동가라고 불려요. 그러니까 제2의 인생이나 마찬가지에요. 정말 다른 그룹을 만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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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생태교통 마을해설사를 시작하고 현재까지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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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영 씨는 행궁동에서 2대째 살고 있는 행궁동 주민이다. 마을해설사로 생활보호사로 바쁘게 살고 있으며, 늘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집 앞 놀이터가 예쁘게 단장되었다며,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만으로도 행복하다며 웃었다.

마을 해설사 이혜영

생태교통 때 한 일을 소개해주세요. 2013년도에 생태교통 마을 해설사를 뽑았잖아요. 화성 행궁과 마을 만들기를 설명하는 해설사 일을 하면서 마을 일에 참여하게 됐죠. 그전에는 집에서 살림만 하고 아이만 키우는 그런 엄마 40대요 마흔아홉이었네요.

행궁동에서 산 지가 오래됐다고 하는데, 행궁동은 이혜영쌤에게는 어떤 곳인가요? 저의 친정 부모님이 사시던 집인데, 제가 여덟살 때 이사 온 거예요. 51년을 살았어요. 요즘 그런 생각을 해요. 유년을 보냈던 곳에서 노년까지 집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전 행복한 사람이에요. 점점 행궁동에 새로운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는데, 점점 여기서 오래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 같아요. 그 점이 좋아요.

아직도 해설을 하고 계신데 생태교통을 어떻게 소개해요? 마을 사진 찍어놓은 곳에 가면 공간을 설명하면서 마을에 집주인이 바뀌면서, 개보수하면서, 이렇게 변화됐다고 설명하죠. 또 새로운 벽화가 그려져 있는 곳에 가면 새로운 변화를 해설하고 있죠. 저도 몰랐는데 오시는 분마다 원하시는 해설이 다르더라고요. 어르신들 같은 경우에는 문화, 역사 쪽 해설은 별로 관심 없어 하셔요.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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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점이 있나요?

나눠본 적이 있나요?

그런가 봐요.

생태교통 행사했던 것과 마을 만들기, 주민들과의 일을 중심으로, 그런 쪽으로 해설하죠. 학생들 같은 경우에는 그런 쪽에는 별로 관심이 없죠.

생태교통수원2013 때 했던 마을 해설과 현재 마을 해설이

제가 2013년 이전에는 하지 않았으니까 그거는 모르겠고요. 예전에는 오시는 분들이 생태교통 해설을 원하지 않으셨어요. 주민 자치회나 다른 시, 도에서 오시는 분들은 생태교통에 대한 이야기를 궁금해하고요. 또 마을 만들기 쪽으로 원하시는 분들도 있고 그런 것 같아요.

자녀분들이 있는데, 생태교통을 겪은 아이들과 이야기를

큰 아이 같은 경우에는 생태교통 하면서 동네가 많이 바뀐 거에 대해 이야기를 해요. 그리고 요새는 주말이고 평일이고 젊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오고 있잖아요. 우리 애들은 여기서 계속 살았으면 좋겠대요. 하지만 동네에 차가 안 들어왔으면 좋겠다, 걸어 다니는 동네가 되면 더 좋지 않을까, 우리 가족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이게 다양함을 겪어서

현재 행궁동에 대한 생각도 듣고 싶어요. 요새도 그런 거는 안 없어지잖아요? 젠트리피케이션! 정말 그런 현상이 안

어울렸으면 해요.

일어나고 주민들과 상점들이 잘 어울려서 계속 잘 사는 행궁동이 됐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갖고 있죠. 또 이런 얘기를 해요. 나이 드신 분들은 점점 슈퍼도 없어지고 가까운 데 물건 살 때가 별로 없으니까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른들은 인터넷에서 주문할 줄도 모르죠. 현재 변화하고 있는 행궁동이 다 불편한 거예요. 그렇다고 요즘은 자녀들과 같이 살지 않고 어르신 두 분만 사는 데가 많으니까, 동네 집을 팔고 떠나시는 어르신들을 보면, 몇 년 뒤는 나의 모습이 또 저러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이 들때가 있어요. 그런 생각이 들면 동네가 주민들과 상점들이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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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도 했으니, 지금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두 아이의 엄마 정혜원

성안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커진 것은 2013년 9월이었다고, 정혜원씨는 말했다. 그 당시 차 없는 도로를 걸으며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무예24기에서 활동하는 남편 최형국씨도 매일 행궁으로 출근했고, 곧 초등학교에 입학할 아이가 남창초에 다니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녀는 소원대로 2013년 생태교통사업이 끝난 뒤 성안 마을, 행궁동으로 이사 왔다. 큰아이도 생각했던 대로 작은 학교인 남창초에 입학했다. 올해는 둘째 아이가 남창초에 들어갔다. 큰아이가 학교 다닐 때랑은 행궁동이 많이 달라졌다. 동네 골목까지 통행하는 차들이 많아져서, 매일 둘째 아이 학교 가는 길에 동행한다. 2013년 생태교통마을에서의 경험을 다시 살릴 수는 없을까, 정혜원씨는 그런 생각을 종종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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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생태교통 행사 때 참여하셨나요? 그때는 성 밖의 영화동에 살아서 직접 행사에 참여하지는 않았어요. 그 당시 큰애가 여섯 살이었고, 남편이 매일 자전거 뒤에 태우고 시립어린이집에

커졌어요. 다행히 그 이후에 소원대로 성안으로 이사 왔어요.

성안 마을에서의 생활은 괜찮은가요? 장안동에서 살 때 우리 집은 남창초 데려다줬어요. 저는 그때 직장을 다녀서 아이들의 아지트였어요. 작은 마당이 퇴근하고 행궁 광장에서 아이를 만나 자전거 타고 집에 왔어요. 2013년 9월 생태교통마을이 운영됐을 때 매일 차 없는 거리를 다녔고, 주말에는 아이와

있었는데, 아이의 친구들이 거의 매일 놀러 왔어요. 아이도 좋아했고, 우리도 여기 사는 게 좋았어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차가 그렇게 많지 않아서, 큰애 함께 놀러와 차 없는 마을에서 놀았어요. 혼자서 자전거 타고 학교에 갔어요.

기억나는 행사나 프로그램이

있나요? 아이랑 특이한 모양의 자전거도 타고, 분필로 길바닥에 그림 그리고

지금은 엄두도 못 내는 일이지만요.

그러고 보니 장안동에서 남수동으로 이사 갔는데, 이유가 있나요? 예술체험프로그램에 참여했어요. 한번은 5년 전에 이사했는데, 직접적인 이유는 아이랑 광장에서 자전거 타는데 한 집주인이 집을 내놨기 때문이에요. 방송사에서 인터뷰해서 텔레비전으로 생태교통사업을 했던 신풍, 장안동에 방송됐어요. 그때 인터뷰에서 앞으로도 카페들이 들어왔을 때였어요. 집값도 차가 아예 안 다니면 좋겠다고 했어요. 많이 올라서 살 형편도 안 됐지만

차 없는 거리에서 어떤 기분이었나요? 차 없는 거리를 아이가 마음껏

관광객들이 많이 와서 골목 안쪽까지 시끄러웠고 주차도 너무 힘들었어요. 무리해서 계속 여기에 살아야 하나, 고민이 됐어요. 신풍동에 고객마트가 뛰어다니니까 좋았어요. 마을에서 자동차 있어서 채소며 고기며 여기서 샀는데, 없이 생활하는 게 진짜 가능하다는 놀라움, 경이로움, 해방감, 그러면서 이 마을에 들어와 살고 싶다는 마음이

고객마트도 없어져서 시장까지 멀리 장 보러 가야 하고, 사는 게 불편해졌어요. 행궁동을 떠나기는 싫어서 여기저기

46쪽

집에서 학교까지 어떻게 가나요?

골목길을 가야 해요. 큰길보다는

혼자서 학교에 갔었는데, 지금은

가는 게 위험해요.

그런가요?

좀 먼 거리라 자전거를 타고 가요.

와요.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아는

알아보다가 남수동으로 이사했어요. 남수동은 그때만 해도 한적했거든요.

둘째 아이가 남창초에 다니고 있는데

올해 1학년인데, 남수동에서 학교까지 가려면 버스가 다니는 큰길을 건너고

신호등이 없는 골목길이 더 위험해요. 혼자 학교 보내는 게 불안해서 내가 학교까지 따라가고 있어요. 큰애는

행궁동이 많이 바뀌어서 아이 혼자 학교

것들이 많아져요.

골목에 차들이 많아서

아무래도 그렇죠. 아이가 학교 끝나고 집에 와서 저녁 먹고 거의 매일 놀이터에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가요. 놀이터가 신풍동에 있고, 걷기에는

신풍동에 카페와 식당을 찾는 외부 사람들이 차를 갖고 많이 오잖아요. 또 저녁 퇴근 시간에도 우회하는 통과차들이 많고요. 아이 혼자 보내기 불안하니까 아이 따라서 저도 자전거 타고 놀이터에

학부모가 장안동에 사는데 자동차 매연이 창문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와 살기

있게 하면 좋겠어요.

힘들다며 이사 가고 싶어 해요. 동네에

차가 많아지니까 예전과 달리 불편한

2013년 생태교통마을에서의 좋았던 점들을 지금 다시 유지하려면

아이, 장애인, 어르신 등 걷기 불편한 사람이 탄 자동차는 동네에 들어오게 하고, 다른 관광객 차들은 외곽에 주차하도록 하면 좋겠어요. 외곽 주차장에서 성안까지 생태교통수단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하면 돼요. 2013년 생태교통사업 기간에 운영했던 것처럼요. 그때도 했으니 지금도 할 수 있다고 봐요. 화성열차도 중간중간에 타고 내릴 수

47쪽

“생태교통은 제 일생에 있어서 가장 큰 전환점이었어요”

48쪽

갈비빵에 진심인 조이화

조이화 씨는 행궁동에서 맛있는 밥집 ‘화성옥’을 운영했다. 건강한 식재료와 맛깔스런 반찬으로 맛집으로 알려진 집이었다. 현재는 식당은 문을 닫았고, 생태교통 상가번영회, 나혜석생가터 문화제, 꿈의 학교 등의 활동으로 수원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처음에 생태교통에 대해 반대의사를 드러낸 것으로 아는데요. 2012년도에 생태교통에 대해 반대를 했죠. 그 이유는 행정이 상인들과 소통하지 않았을 때는 반대했죠. 차를 막으면 영업에 지장이 생기니까요. 그때 당시 ‘화성옥’을 운영하던 저희는 일 년에 3억 5천 원 정도 손해를 봤죠. 그렇게 반대하다가 우리 건물에 마을 사무소가 들어오면서 마음의 변화가 생기게 되었어요. 환경이라는 것을 달리 생각하게 됐고 주위 사람들하고 같이 얘기도 많이 해보고 또 어떻게 보면 또 아이가 중학교 1학년, 2학년이 되니까 미래 환경에 관한 생각을 많이 했죠. 또 우연히 애들이 외국에서 공부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선진국에서 늘 대두되던 환경문제를 접하게 된 것도 계기가 됐어요.

찬성 쪽으로 기울면서 다양한 일을 한 것으로 아는데요. 2013년도에는 적극적으로 같이 해야 되겠다고 찬성했어요. 시민추진단과 함께 상가분과로서 열심히 활동하기 시작했죠. 마을 사무소와 시민추진단과 상가분과의 상인들과 찬성하는 주민들과 생태교통에 대해 공부도 했어요. 마을해설사 공부도 그때 했어요. 학생들이 오면 내가 해줄 수 있는 거 도와줬어요. 저 굉장히 열심히 일을 했는데요? 생태교통 쌈닭으로 생태교통 홍보를 엄청나게 하기도 했어요. SNS 홍보 활동을 열심히 하고 유일하게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만 까오슝에 가서도 수원생태교통을 홍보했어요. 우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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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 사절단처럼 수원이도 까오슝에 알려놓았어요. 생태교통을 제가 아마

행궁동으로 넘어오기 시작하면서, 또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멀리 가지 못하고 SNS로 제일 많이 알린 사람 중의 한 명일 서울 근교에 있는 지역, 근거리 관광으로 거예요.

생각이 바뀌게 된 이유가

있나요? 저는 생태교통이 제 일생에 있어서 가장 있었나요?

이름나면서부터예요. 여기는 코로나19 때 매출이 한 3배로 오른 곳 중의 하나예요.

생태교통에서 아쉬운 점이

큰 전환점이기도 하고 일생에 있어서 큰 생태교통은 시민들이 도로에서 편안하게, 역사적인 일이기는 해요. 그때 당시 돈에 시민들이 안전하게 하는 취지였잖아요. 미쳤다면, 다른 브로커들처럼 행사에서 근데 행사를 위한 행사를 난 하지 돈을 뜯어내려고 했다면 저도 다른 않는다는 거죠. 보여주기 위한 그런 사람처럼 돈을 뜯어냈었을 거예요. 근데 거를 나는 하고 싶지 않는다는 거죠. 그렇게 하지 않고 고경아 국장님이라는 행사를 위한 행사가 아니라 내 손주의 분을 만나서 미래에 대한 비전과 환경을 미래를 위해서 환경을 생각하면서 풀 한 생각하게 되었어요. 또 내가 떳떳한 부모가 되고 싶다는, 제 나름대로

포기라도 잘 자라게,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는 환경을 물려주기 위해서 생태교통이 정의로움이 있었어요. 아이들이 생태교통 필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가족이 때 엄마는 반대했어? 찬성했어? 이걸 도란도란 얘기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혹시 물어 볼 수도 있잖아요. 진짜 떳떳한 가질 수 있는 게 생태교통인 거지. 행사에 부모가 되고 싶어서 찬성을 한 거고 그것도 지금은 되게 좋아요.

10년이 지난 현재 행궁동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어요. 도로 정비는 됐어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생태교통으로 환경이

매달려가지고 보여주기 위한 식의 그런 생태교통이 아니라는 거죠.

아쉬운 점도 많죠? 생태교통 한 번으로 현재 행정은 거의 외면한 거나 마찬가지고 사람들도 생태교통 한 번 하고 나서 아무도 몰라요. 개선되었다고 하는데요. 오히려 여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동네가 어떻게 발전된 건 2년 전부터 광교 지역이 비싸니까 광교에 있는 젊은 애들이

됐는지도 몰라요. 생태교통마을에 자전거 도로가 없는 것도 모르고 있어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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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도로는 보행자, 유모차도 지나가기 올랐다고 하지만 제가 살고 있는 이 어려운 상태예요. 사람들이 제대로 건물을 팔고 갈 거예요? 아니잖아요. 저는 관심이 없는 거죠. 동네 사람들이 너무 50년을 이 동네에서 살아본 사람이에요. 착한 거예요. 이 동네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에요. 이 그때 당시 우리 집을 폭파를 하네, 하던 동네가 좋아서 앞으로도 살아갈 사람인

올까 봐 옷도 깨끗이 입었던 것을

사람들도 9월 1일이 되니까 외국인이

거예요.

기억해요. 그 때 모습이 생생하거든요.

생태교통이라는 큰 행사를 생태교통을 했던 저는 행리단길보다도 치르고 나서 조이화 씨는 어떻게 생태교통이라는 자부심이 아직도 있어요. 변했는지요. 올해 생태교통 행사를 한다는 것도 처음에 생태교통을 할 당시는 기대도 너무 커요. 하지만 행사하는 거 생태교통이라는 걸 몰랐고 성실하게, 보면 실망도 크고 행정에서는 소통이 있어야 되는데 그런 것 조차 없어서

열심히 돈만 벌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생태교통을 통해 골목도 알게 되고 서운하기도 해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사람도 알게 되면서 사람들과 인사를 더 관심을 갖고 일하는 것은 또 고맙기도 하게 되더라고요. 진짜 사람을 알게 하죠.

뭘까요?

그때 가장 힘들었던 일은

그때 그 역전의 용사들이 아니었으면 행사가 이뤄지지 않았어요. 근데 왜

되고 어떻게 보면 주위의 그런 환경을 인식하게 되고 그다음에 수원, 그다음에 상인들, 그리고 나의 옆 사람을 알게 되다보니 서로 어려움을 나누다보니 지역경제도 알게 되고 우리가 같이 힘을 합쳐야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윗분들은 자기네만 생각하고 밑바닥에서 그러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오지라퍼가 함께 했던 사람, 진짜 눈물 나게 고생했던 돼서 아직까지 상인회장도 맡고 있는 사람들은 챙기지 않는지요. 그때 진짜 거죠. 힘들었지요. 다들. 진짜 고생했거든요. 저도 경제적으로 아주 힘들었고요. 제가 그때 진 빚을 아직까지도 … 빚을 졌거든요. 식당이 어려웠거든요. 근데 지금 행궁동이 생태교통으로 땅값이

51쪽

인터뷰열셋

잘 웃는 남자 황영

반응이었나요?‘

“마을의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이 들어왔다는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라고 봐요”

황영 씨는 늘 웃는 사람이다. 누구를 만나도 먼저 반갑게 인사 나누는 사람이어서 동네 사람들이 좋아한다. 행궁동 저녁길에 산책하게 되면 부부가 나란히 걷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팔달산 기슭 대승원에 산다.

10년 전 생태교통 때는 살고 계시는 남창동에서는 어떤

생태교통수원 2013’ 을 개최하려고 협의할 때 아랫마을도 하고 싶어 했어요. 남창동 팔달로 1, 2, 3가에 있는 분들이 모여 준비 회의를 했는데 어떤 통장님이 반대했어요. 반대의 제일 큰 논리는 남창동은 경사면이 많아 차 없이는 못 다닌다가 요지였어요. 그리고 경사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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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거주자들이 상대적으로 고령이신데 많이 바뀌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10년 그분들이 차 없이 한 달 산다는 건

되었죠.

궁금하네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로 못하게

생태교통이 끝난 후의 반응도 먼저 들어요.

10년 동안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 가는 옆 마을을 지켜보았어요. 이것이 좋은 의미의 발전인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일단 마을에 젊은 친구들이 많이 유입되고

전 인구가 3만 명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만 명도 안 되는 인구와 상권 종사자들이 마을 정체성을 이해하고 평가하는지를 점검해볼 시기가 안 되었나라는 생각이

지난 시간을 새롭게 점검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인가요? 생태교통을 유지 지속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형태의 비전을 가지고 접근할 건지 또 실제로 그것을 할 만한 동력이 있는 마을의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이 건지 또 행정의 의지나 주민의 의지는 들어왔다는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라고 어떤지, 이번에 준비하면서 한 번쯤 봐요. 하지만 이제 뭔가를 해보려는 마을이 된 부분은 긍정적이나 교통이나 들어요. 주차 문제는 해결해야 되는 숙제이죠.

그런 시점에서 본다면

점검해보는 시기가 되면 좋겠다 생각이

개인적으로 황영 님께 생태교통은 어떤 의미예요? 생태교통 10주년을 준비하고 계시는데 생태교통은 삶의 절실한 문제가 된 것 이번 10주년은 어떤 의미를 담고 진행하고 싶으세요?

뭔가라도 해야 하겠다는 게

처음에 시작할 때는 반응이 없어서

같아요. 예전에는 주어진 정책 일부이자 발전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해서 잘 모르고 시작했던 거라면 이제는 해결하지 않으면 마을이 성장할 수 없는 수준까지 출발이었어요. 사실 생태교통에 관해서 온 것 같아요. 마을 변화의 대안으로는 관심과 의지를 가진 분들은 많지 생태교통이 맞다고 생각해요. 관광을 않아요. 또 어떤 분들은 아예 언급조차 위해서도 그렇고 거주를 위해서도 그렇고 싫어하시죠. 저희가 주민총회 의제를 여러 형태의 상업을 위해서도 그렇죠. 통해서 추진위원회도 만들고 준비하고 그런데 어떻게 주민의 합의를 통해서 잘 있어요. 일단은 10년 동안 구성원들이 만들지는 해결해야 되는 문제이죠.

53쪽

“역사문화유산을 걸어서 둘러볼 수 있는 문화콘텐츠가 필요해요”

화서문로 코사마트 황철성

54쪽

스물여덟 살,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신풍동에서 쌀과 연탄 가게를 시작한 게 35년 전이었다. 지금의 새마을금고 자리에서 쌀 10가마, 연탄 1,500장, 짐자전거와 리어카로 출발했다. 지금은 맞은편 길가로 자리를 옮겨 코사마트를 운영하는 황철성 사장님은 동네 상황에 밝다. 통장을 맡아 20년 가까이 마을 일을 살폈다. 2013년, 생태교통사업이 한창 추진되던 해 그는 통장직을 그만두었다. 시가 하는 일에 반대했기에 통장을 계속하는 게 내키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성안으로 외부 차량은 들어오지 않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10년 사이 생각이 바뀌었다.

2013년 생태교통사업이 진행될 때 반대하셨는데, 그 이유가 궁금해요. 주민 의견을 제대로 듣지 않고 사업을 추진하는 행정에 불만이 컸어요. 주민들은 생태교통이 뭔지도 잘 몰랐는데, 한 달 동안 차 없이 생활하라고 하니까 그때는 납득이 잘 안됐어요. 통장이니까 시에서 하는 일에 협조해야 하지만,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성격이라서요. 그래서 그때 통장직을 내려놨어요.

반대했던 주민도 9월 한 달 동안 차 없는 마을 운영에 참여하셨는데, 그때 슈퍼는 어떻게 운영하셨어요? 힘들었어요. 매일 물건을 가져와야 하는데 차가 슈퍼 앞까지 들어올 수 없었으니까, 직접 손으로 날랐어요. 힘들었던 기억밖에 없네요.

‘생태교통수원2013’ 사업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세요? 동네가 밝고 환해진 것은 인정하지만, 솔직히 생태교통사업이 잘된 건지 판단하기 어려워요. 생태교통사업이 성공했으면 여기 동네에 차가 없어야 하고 걸어 다녀야 하잖아요. 살기 좋은 마을이 되어야 하고, 주민들이 떠나지 않고 살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차는 훨씬 더 많아졌고, 시끄럽고, 함부로 버린 쓰레기들이 거리에 넘쳐나요. 살기 힘들다며 이사 가겠다는

55쪽

주민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원래 살던 주민들이 여기 계속 살고 있어야

살고 계시니 더 실감하시겠어요?

마을 주요 도로인 화서문로에

생태교통사업이 잘됐다고 생각하겠는데, 화서문로는 주중에 우회해서 통과하는 다들 떠나고 있잖아요. 생태교통사업 이후 연결된 정책이 없어요.

2013년 이후 많이 바뀌었죠. 주민이 살기에는 환경이 더 나빠졌어요. 골목

차들이 많아요. 가게 2층에 사는데, 한밤중이거나 새벽에 달리는 차들 때문에 잠을 깰 때가 많아요. 집 앞에 속도를 지금 동네의 모습은 어떤가요? 제한하는 방지턱이 있는데, 사고가 몇 번 났어요. 내가 목격한 사고만 해도 3번이었어요. 새벽에 차가 붕 떠서 안쪽까지 카페가 들어오고, 루프탑까지 옆집에 부닥친 적도 있고, 배달하던 영업하니까 주민들 사생활 침해가 심각해요. 모르는 사람들은 땅값이 올라가서 좋지 않냐고 하는데, 동네를 떠나고 싶지 않은 주민이나 떠날 수 없는 자요. 사람들한테는 안 좋게 작용해요.

관광지가 되면서 사람들이 많이 와요.

오토바이도 방지턱에 걸려 날아간 적도 있고. 방지턱에 부딪혀 우리 집으로 차가 들어올까 봐 불안해요. 잠을 제대로 못

방지턱 때문에 사고가 난

차량 통행이 많이 늘었나요? 거예요? 2013년 생태교통사업 할 때 설치한 그만큼 차도 많아졌어요. 공영주차장이 방지턱인데, 속도를 내지 못하게 다른 있지만 관광객들의 차를 수용하기엔 데보다 높게 설치했어요. 방지턱에 차가 턱없이 부족하죠.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이 부딪치는 소리에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오고, 이제 주말에는 안쪽 골목까지 아니에요. 한밤중에는 그 소리가 더 커요. 차들로 꽉 차요. 좁은 골목에서 실랑이를 또 겨울에는 엄청 미끄러워요. 동네 벌이고, 큰 소리가 오가고. 동네 사람들은 어르신들이 미끄러지기도 해요. 몇 차례 주말에는 차 운행을 안 해요. 볼일 보고 민원을 넣었지만, 시정되지 않네요. 들어오면 주차할 데가 없으니까요. 거주자우선주차 공간이 있어도 소용없어요. 외지 사람들이 주차하고

있겠어요?

이사 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연락해도 전화를 받지 않아요. 지금 여기 그렇죠. 나도 떠나야 하나, 그런 생각이 마을에서 가장 큰 문제가 주차일 거예요. 들죠. 여기서 젊은 시절 다 보냈는데

56쪽

결혼하고, 아이 낳고, 제2의 고향인데 계속 살고 싶죠. 진짜 살기 좋은 동네예요. 정도 많이 들었고, 지금도 매일 팔달산을 올라가요. 떠나기 싫죠. 동네의 지금 상황이 너무 안타까워요.

생태교통마을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화서문로 통과 차량을 제한하고, 방지턱도 원래의 목적으로는 쓰임이 없기에 없애거나 낮게 했으면 좋겠어요. 행궁동의 역사문화를 걸어서 둘러볼 수 있는 문화콘텐츠가 필요해요. 슈퍼에 와서 어디 가면 좋을지 물어보는 관광객들이 있어요. 그럴 때 팔달산과 정조대왕 동상을 가보라고, 성곽길을 걸어서 남문시장까지 가보라고 이야기해요. 행궁동에 왔으면 정조대왕 동상, 팔달산, 성곽길을 걷고 역사문화의 숨결을 느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카페거리가 아니라 역사문화가 숨 쉬는 걷는 마을로 만들어야죠.

57쪽

생태교통 축제를 처음 기획안 콘라드 오토 짐머만 전 이클레이 사무총장이 수원에 다시 왔다. 10월 21~23일 열린 ‘생태교통수원 뉴페스타’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자동차 없는 신풍, 장안동 거리를 마을 주민들과 함께 걷는 내내,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모두가 무모한 도전이라고 했던 10년 전 생태교통축제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인터뷰열다섯

“10년 전 경험이 또 다른 지속가능한 미래를 상상하고 실현해 가는 에너지가 되길 기대해요”

전 이클레이사무총장 콘라드 오토 짐머만

58쪽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생태교통수원2013 ’을 생태교통 축제를 수원에서 하게 되었을 통해 생각의 지도가 어떻게 변했는지 때, 어떤 감동을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궁금합니다. 제1회 생태교통 페스티벌을 개최할 도시를 찾는데 시간이 좀 걸렸어요.

이 사업을 통해 새롭게 배운 것이 있다면, 한 마을에서 한 달 동안 승용차 없이 이클레이와 유엔해비타트가 전 세계를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는 정치 향해 행사 유치도시를 찾는다는 공지를 지도자의 비전, 용기, 그리고 인내심과 했을 때, 당시 수원 시장이었던 염태영 끈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이었어요. 경기도 경제부지사가 세계 최초로 이 사업이 잘 이뤄지기 위해선 모든 사안과 행사를 개최하겠다고 발표를 했어요. 정말 비전이 잘 연계되어야 하고, 그 토대 기뻤어요. 유치도시를 확정했다는 것은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대부분 생태교통 페스티벌 준비를 구체적으로 사람은 직접 눈으로 보지 않는다면 시작할 수 있다는 뜻이었어요.

왔나요? 반응을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생태교통수원2013’이 개최되면서 세계적으로 어떤 반응이

있는데요. 첫째는 ‘생태교통’은 무엇을

현재와 다른 현실을 상상하지 못한다는 것, 그래서 생태교통 페스티벌과 같이 사람들이 직접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고 이를 직접 구현하는 사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되새기는 시간이었어요.

‘생태교통수원2013’ 이후 의미하는가였어요. 이클레이는 이 용어를 행궁동은 많은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새로운 개념이었어요.

2007년에 정리하여 소개했기 때문에

행궁동의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또 어떤 기대감이 있는지요? 둘째는 ‘축제’의 의미에 관해 물어봤죠. 저는 행궁동 주민들이 10년 전 새로운

연극처럼 시연하는 프로젝트라고

이클레이는 ‘한 마을에서, 한 달 동안, 자동차 없이’라는 것은 마치 무대 위

경험을 통해 지속가능하고 친환경적인 생활양식이 무엇인지에 대해 친숙해지는 경험을 했던 것처럼, 이러한 경험이 설명했어요. 셋째는 ‘왜 수원인가?’라는 또 다른 지속 가능한 미래를 상상하고 질문이었어요. 수원은 급속하게 성장한 실현해 가는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기를

유산이 살아 있는 도시예요.

아시아의 대표 도시이며, 역사·문화적 기대하고 있어요.

60쪽

에필로그

2023년 10월 21~23일 생태교통 10주년을 기념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저마다 표현방식은 달랐지만 마음은 같았다. 10년 전 생태교통 축제를 기념하며 좋았던 일, 생태교통을 통해 변화된 마을 모습, 앞으로 생태교통의 미래 등 다양한 의견을 나누었다. 10년 전 축제의 열기는 남아 있다. 그 불씨를 통해 마을 사람들은 다시, 행궁동을 설계하고 움직인다. 행궁동은 걸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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