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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사람 2024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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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사람

와

2024 Spring Urban & Hu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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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가 시작하는 3월입니다. 입학과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는 현수막과 함께 3월을 반갑게 맞고 있습니다. “봄 이 온줄 알았더니 24학번이 온 거로구나!”라는 새내기 환영 문구처럼 다정한 환대의 마음을 담아 <도시와 사람>을 발간했습니다. 매년 3월과 9월에 발간되는 <도시와 사람>은 본 연구소에서 진행한 다양한 행사와 개발 교과목 등 을 소개하며, 그간의 연구소 성과들을 시민들과 공유합니다.

이번 호에는 많은 문인들이 영감을 받았던 프랑스 에트르타 도시 기행을 시작으로, 다양한 문화 정체성을 지닌 도시 홍콩의 이모저모를 찾아 떠납니다. 근대적 여행의 기원을 고찰하며 여행자의 태도에 대해 고민하는 도시 산책 자의 이야기와 함께, ‘호혜성’을 기반으로 문화 다양성을 추구하는 대구 경북지역의 문화도시 달성을 소개합니다.

본 연구소는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소 2단계 사업을 시작하며 해외 여러 도시 및 지역의 다양한 기관과 연 대하여 ‘동아시아 도시인문학 연구와 교육’의 장을 확장하고자 합니다. 그간에 교류 협력해온 일본과 대만의 대학과 지역활동가를 초청하여 해외전문가 초청 콜로키움을 수차례 개최했으며, 지역 문화예술교육의 미래를 모색한 대 구문화예술교육포럼도 공동주최하였습니다. 또한 대구경북학회, 영남일보와 공동으로 대규모 시민강좌를 기획 · 운영했으며, 지역 도서관과 함께하는 시민 인문아카데미를 진행했습니다.

이와 함께, 연구소에서 개발 및 운영하는 교과목 <공연기획 기초의 이해>, <문화예술과 미디에이터>을 소개하고, 본 연구소 교과목과 연계한 국내현장실습 프로그램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의 활동과 함께 학생들의 연구 활동도 소개합니다. 이와 같이, 본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활동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지역과 도시, 그 너머의 다양한 삶터를 살펴보고 더 나은 미래를 탐색하는 작업입니다. 동아시아 도시와 인문교육의 혁신, 지역 인문생태계 활성

화를 지향하는 본 연구소의 활동에 관심과 응원을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24년 3월 1일 인문과학연구소장 권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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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Spring

CONTENTS

02 소개말/인사말 03 목차 04 권응상의 도시기행 ┃프랑스 에트르타 10 류영하의 홍콩 산책 2 ┃홍콩을 걸으며 문화를 읽다 16 권상구의 도시관상학 ┃우리의 여행은 여행이냐 착취냐 21 도시이야기 ┃호혜성을 화두로 던진 매력적인 문화도시 달성 26 연구소 성과 1 ┃해외전문가 초청 콜로키움 Ⅰ 28 연구소 성과 2 ┃해외전문가 초청 콜로키움 Ⅱ 30 연구소 성과 3 ┃해외전문가 초청 콜로키움 Ⅲ 31 연구소 성과 4 ┃2023 대구문화예술교육포럼 32 연구소 성과 5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학술대회 34 연구소 성과 6 ┃국내현장실습활동 36 연구소 성과 7-1 ┃공동시민강좌 6강 38 연구소 성과 7-2 ┃공동시민강좌 7강 40 연구소 성과 7-3 ┃공동시민강좌 8강 42 연구소 성과 7-4 ┃공동시민강좌 9강 44 연구소 성과 7-5 ┃공동시민강좌 10강 46 연구소 성과 8 ┃2023년 고산인문아카데미 48 교과목 소개 1 ┃공연기획 기초의 이해 50 교과목 소개 2 ┃문화예술과 미디에이터

도시와 사람

발행일┃2024년 3월 1일 발행인┃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장 권응상 발행기관┃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경북 경산시 진량읍 대구대로 201 인문대학 교수연구동 인문과학연구소(3103호) Tel. 053) 850-5821 Fax. 053) 850-5824 http://ihs.daeg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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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응상의 도시기행

프랑스 에트르타

Etretat

한번 보면 좀처럼 잊히지 않는 풍경, 그것이 에트르타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닌가 보다. 이곳엔 수많은 문인 예술가들 이 쓰고 그리며 영감을 받은 장소이기도 하다. 에트르타는 노르망디 레지옹 센마리팀 데파르트망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이곳의 명성은 단연 알바트르 해안을 끼고 있는 팔레즈 다발과 다몽 절벽의 기이함과 아름다움 때문이다. 이곳은 19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한적한 어촌 마을이었다. 이곳이 처음으로 주목을 받은 것은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때문이다. 그녀에게 진상할 굴을 이곳 바다에서 채취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마을의 아름다움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19세기 소설가이자 평론가였던 알퐁스 카에 의해서였다. 그는 풍자소설 《파 디에즈》로 명성을 날렸는 데, “친구에게 처음으로 바다를 보여줘야 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에트르타를 선택할 것이다.”라며 에트르타의 아름다움 을 알렸고, 이후 수많은 명사들이 이곳을 찾으면서 유명 관광지가 된 것이다. 그러나 나를 에트르타로 이끈 것은 모파상 의 《여자의 일생》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손바닥 크기의 삼중당 문고본으로 책상 밑에서 몰래 읽었던 그 소설의 감동은

에트르타 다운타운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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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떠나지 않았는데, 그 소설의 배경이 이 도시였던 것이다.

팔레즈 다발 위에서 본 아빠 코끼리 바위

벨기에 브뤼헤에서 에트르타까지는 380km나 되는 거리였지만 잔느의 슬픈 일생이 묻어 있는 그곳을 찾아간다는 생 각에 운전도 즐거웠다. 노르망디 해안도로의 한적한 풍경을 즐기다보니 해가 제법 어둑해서야 에트르타의 예정된 캠핑 장에 도착했다. 바다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바람에 묻어오는 내음이 바다가 가까이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비좁은 암 막 텐트 한 쪽을 제쳐 별빛을 들여 놓고 잠이 들었다. 아침에 나를 깨운 것은 신선한 해풍에 실려 온 새소리였다. 후각과 청각이 한꺼번에 깨어나면서 바다를 처음 보는 알퐁스 카의 친구처럼 들뜨기 시작했다. 에트르타 다운타운은 크지 않았다. 한번만 지나가보면 다 외울 것 같은 작은 마을길을 급히 빠져나갔다. 방파제 가까 이 차를 세우고 고개를 들자 ‘처음 본 바다’가 거기 있었다. 굵은 자갈돌이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며 바다 가까이로 가보 는데 해변을 에워 싼 하얀 절벽이 시선을 빼앗는다. 모파상이 ‘코끼리가 코를 바다에 담그고 있는 모습’이라고 형용한 그 코끼리 바위였다. 주인공 잔느가 자살하려고 섰던 바로 그 바위였다. 모파상을 ‘자연주의’ 작가로 키워낸 것은 이곳 에트르타의 자연이었던 것 같다. 그는 노르망디 투르빌쉬라르크에서 태어났는데, 8세 때 부모가 별거하면서 어머니를 따라 이곳 에트르타로 와서 자랐다. 그는 에펠탑을 보고 싶지 않아 에 펠탑 안에서 점심을 먹었다는 일화로도 유명한데, 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자란 그가 파리의 거대한 철탑을 혐오한 것 은 당연해 보인다. 어쨌든 이 해변에서 가장 인상 깊은 풍경은 모파상에 의해 이름 붙어진 ‘코끼리 바위’이다. 85m의 석회암 절벽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팔레즈 다발로 불린다. 이 바위 앞에는 또 삐죽한 바늘 형상의 바위가 함께 서 있다. 바로 모리스 르블 랑의 《기암성 》에서 ‘괴도 뤼팽’이 보물을 숨겨둔 바위이다. 그 속은 비어 있고 해저터널로 연결되어 비밀창고로

(奇巖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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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즈 다몽 위에서 본 마을과 해안. 멀리 보이는 것이 엄마 코끼리 바위이며, 그 옆의 뾰족한 바위가 ‘바늘 바위’이다.

쓰인다는 설정은 실물로 보니 더욱 그럴 듯했다. 이 소설에서 뤼팽은 이곳을 떠나기로 결심하면서 “그보다 더 괴로운 것 은, 이 경치와 이별하는 것이네. 얼마나 아름다운가? 끝없이 펼쳐진 바다, 하늘, 좌우로 연결된 에트르타의 절벽, 절벽에 연결된 세 개의 문. 세 개 모두 이 성의 주인을 위한 개선문이지. 그리고 성주는 바로 나였네. 모험왕! 에귀이유 크뢰즈의 왕! 기괴하고 초자연적인 왕국!”이라고 슬프게 읊조린다. 보물보다 더 귀한 경치라니. 내가 이곳을 보지 못했다면 공감하 지 못했을 대사이지만 ‘신비롭고 초자연적인’이 절벽 앞에서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모리스 르블랑이 ‘절벽에 연결된 세 개의 문’이러고 한 것은 세 개의 코끼리 바위를 말한다. 이 세 바위는 크기도 모양 도 제각각이라 엄마, 아빠, 아기 코끼리로 부르기도 한다. 가장 안쪽에 있는 아빠 코끼리는 두툼한 덩치로 듬직해 보이고, 가운데에 있는 엄마는 콧날이 날렵하다. 엄 마 오른쪽에 있는 녀석은 작고 뭉실한 게 통 통한 아기 같다. 아빠 코끼리는 엄마 코끼리 언덕에 올라야만 볼 수 있으며, 엄마 코끼리 는 해안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팔 레즈 다발이고, 아기 코끼리는 언덕 위에 교 회가 있는 팔레즈 다몽이다. 모파상과 르블랑 외에도 이곳에 흔적을 남 긴 문인 예술가들은 수 없이 많다. 《삼총사》, 《몬테크리스토 백작》 등으로 유명한 알렉상 드르 뒤마는 아들과 함께 한동안 거주하기도 했으며, 《좁은 문》의 작가 앙드레 지드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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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레 미제라블》의 빅토르 위고와 《고도를 기다리며》의 사무엘 베케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서》의 마르셀 푸르스트, 작곡가 쟈크 오펜바하 등도 이곳에 머물며 예술적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곳은 특히 화가들을 매료시켰다. 마티스, 부댕, 루소, 들라크루아 등 수많은 화가들이 이곳을 오브제로 삼았다. 당시 상업적으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던 유명 화가 쿠르베 역시 에트르타 절벽에 사로잡혀 이곳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모네는 <폭풍 후의 에트르타>를 그리고 있는 쿠르베를 보고 “그것이 내게 벅찬 일일지라도 쿠르베가 그림을 훌륭하게 완 성하고 나면 나 역시 에트르타의 절벽을 그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방식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쿠르베가 사실

모네는 파리에서 태어났지만 에트르타 인근의 르아브르

적으로 이곳의 풍경을 그렸다면 모네는 이곳의 인상을 담으려 했던 것이다.

(Le Havre)

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인상주의의 출발을 알린 그의 <인상, 일출>도 르아브르 항구의 일출을 그린 것이다. 그에게 에트르타는 진작 노르망디 최고의 풍경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특히 그는 볼 때마다 달라지는 에트르타의 바다와 하늘에 주목했다. 그리고 쿠르베의 사실주의 화풍과는 완전 히 다른 느낌의 <에트르타 절벽의 일몰>을 그렸다. 이 그림은 모네가 1883년 2월 무렵 3주간의 이곳 방문 기간 동안에

완성했다. 이 그림은 예술계를 들썩이게 했다. 어떤 천문학자는 절벽의 높이와 태양의 고도를 분석하여 ‘1883년 2월 5

팔레즈 다몽의 노트르담 교회와 팔레즈 다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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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오후 4시 53분’에 완성된 그림임을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그는 1886년까지 매년 이곳의 풍경을 담았다. 이 시기에 모네는 이곳에서 모파상과도 자 주 만났다. 그래서인지 모파상이 묘사했던 이곳 풍경을 모네 그림의 ‘인상’과 결부시키 는 비평가들도 많다. 어쨌든 두 예술가의 만 남을 주선한 것은 바로 이곳의 아름다운 풍 경이었던 셈이다. 모파상의 대표작들이 이 곳에서 집필되었듯이 모네 역시 이곳의 풍 경을 50점 넘게 그렸으니, 에트르타의 기기

묘묘한 색과 풍경은 모파상의 소설적 영감의

팔레즈 다몽 위의 노트르담 교회

원천이기도 하고, 모네의 인상주의 화풍을 확립시킨 중요한 오브제이기도 헸다. 코끼리 바위를 비롯하여 에트르타의 마을과 해변까지 조망할 수 있는 곳은 팔레즈 다몽 언덕이다. 좁은 골목을 지나 잠시 비탈길을 오르니 제법 넓은 평원이 나타났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한 노트르담 교회가 황량함을 가려주었다. 1927년 이곳 하늘 위를 날아 대서양 횡단에 도전하였던 뇡제세르와 콜리를 기리는 기념관도 있었다. 마을 쪽으로 시선 을 돌리니 나무와 흙으로 만든 콜롱바주 형식의 노르망디 전통 가옥이 장난감처럼 올망졸망 늘어서 있다. 마을에서 해안 으로 이어지는 대로는 모파상을 기념하여 ‘기 드 모파상 길’이라고 불린다. 이 길 15번지의 르블랑이 살던 집이 ‘아르 센 뤼팽의 집’으로 공개되고 있고, 모파상의 기념관도 있다. 이 언덕의 묘미는 이곳이 내어주는 시야와 상념들이다. 절벽 끝에 자리를 잡고 찬찬히 둘러보았다. 흰색 해안에 의해 구분된 마을과 바다, 그곳을 하나로 감싸는 푸른 하늘은 시선을 따라 여러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곳에는 사진으로 담지 못하는 많은 것들이 있었다. 파노라마에도 담지 못할 길고 먼 경치, 연속촬영으로도 잡히지 않는 찰나의 색감들, 초목의

알바트르 해안에서 본 팔레즈 다몽. 언덕 위의 왼쪽이 노트르담 교회이고. 오른쪽이 뇡제세르와 콜리의 대서양 횡단 비행 기념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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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트르 해안의 몽돌과 팔레즈 다발

움직임으로만 드러나는 바람, 마리 앙투아네트의 식탁에서나 날법한 바다 내음. 거기에 자살을 결심 하고 절벽 위에 서 있는 잔느, 절벽의 둥근 아치 사 이를 드나드는 뤼팽, 부러운 눈으로 쿠르베를 바라 보는 모네가 겹쳐진다. 이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아 본다. 떠들고 뻐기며 북새통이다. 모파상이 조용한 마을을 온통 소란스 럽게 만든다고 투덜댄다. 르블랑도 이제 그만 가 라며 불평한다. 알퐁소 카가 은근히 비꼰다. “어떤

사람들은 아름다운 장미꽃에 가시가 있다고 늘 불 평하는데, 나는 쓸데없는 가시나무에 장미가 핀다 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지.” 마르셀 푸르스트가 거 든다.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보다 새로운 시각을 갖는 데 있지.” 모네는 빙그레 웃으며 반 짝이는 은빛 물결을 재빨리 캔버스에 잡아넣는다.

권응상 ┃대구대학교 문화예술학부 교수

아르센 뤼팽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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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 전차

류영하의 홍콩 산책 2

홍콩을 걸으며 문화를 읽다

홍콩에서 공부할 때 가장 신기했던 장면 중의 하나는, 선생님이나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차를 마시는 것이었다. 그들 은 학과 사무실에 자신의 찻잔을 하나씩 두고 있었고, 뜨거운 물이 항상 그 옆에 준비되어 있었다. 학생들은 수업시작 전 에 선생님의 차를 준비해 드린 후, 그들 자신도 차를 준비해서 자리에 앉는다. 그렇게 선생님도 한 모금, 학생도 한 모금 마시면서 갈증을 달래는 모습은 수업 중의 긴장을 푸는 여유로 보였다. 선생님도 학생도 따뜻한 차를 앞에 두고 담소하 는 분위기여서 수업 분위기가 더욱 안정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내게는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홍콩에는 음료수가 아닌 따뜻한 차 한 잔, 양복이 아닌 아주 헐렁한 청바지 같은 교통수단이 있다. 그것이 바로 전차 다. 나는 홍콩의 전차가 홍콩의 긴박한 리듬을 거부하는 하나의 중요한 장치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현대화되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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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효율만을 추구할 것 같은 홍콩에서 전차는 가장 홍 콩답지 않은 장면의 주인공이다. 전차 덕분에 긴박하게 돌아가는 홍콩식 리듬 속에서 그나마 한 박자 쉬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1900년대부 터 홍콩섬을 누볐다는 전차는 의외로 높디높은 현대적 빌딩숲과 기묘하게 잘 어우러진다. 나는 홍콩을 진정으 로 홍콩답게 만들어주는 두 가지가 공원과 전차라고 생 각한다. 앞의 공원 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삭막한 홍콩에서 공원은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공원과 전 차는 습하고 더운 홍콩의 여름날 불어오는 한 줄기의 시

원한 바람 같다. 내가 홍콩사람들이 똑똑하다고 느낄 때가이두 가지 즉 공원과 전차를 보고 있을 때이다. 홍콩의 긴박감이나 협소함이 한참 미워지다가도, 전 차와 공원을 보면 슬쩍 미소 짓게 된다. 홍콩의 전차는 전 세계적으로 현존하는 유일한 이층 전차다. 전차가 처음으로 홍콩에 등장한 것은 1904년 이고,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전차는 161대라고 한다. 그래서 움직이는 골동품으로 불리고 있다. 뒷문을 통해 전차에 오르면 타임머신을 타고 순식간에 백 년 전으로 돌아가는 듯하다. 우선 들어서는 입구부터가 심상치 않 다. 쇠막대기로 만든 회전문이 기다리고 있다. 홍콩 전차의 회전문 앞에서 바로 뉴욕의 지하철 입구 에서 느낀 당혹감과 비슷한 것을 느끼게 된다. 뉴욕 지 하철의 회전 철창문을 통과하면서, 나는 타임머신을 타 고 1백 년 전의 세계로 넘어가는 것 같은 착각을 했다. 전 세계의 모든 유행을 가장 빨리 받아들인다는 홍콩 이 골동품 같은 전차의 운행을 고수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관광객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전략 때문이다. 불편한 교통수단일 수 있지만, 홍콩만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우리도 배워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홍콩의 전차도 뉴욕의 지하철과 마찬가지다. 당연히 긴박하게 돌아가는 홍콩에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느림보 전차의 미학은 홍 콩 작가들의 글감으로 자주 이용되고 있다. ‘땡땡’ 하는 전차의 경적은 홍콩인들에게는 아침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자신들이 홍콩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 인시켜주는 확인 도장 같은 것이기도 하다. 또 세계의 예술가들은 물론 관광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홍콩의 중요한 아 이콘이다. 홍콩의 전차는 홍콩섬에만 있다. 궤도는 홍콩섬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해안 가까이의 대로를 따라 간다. 전차는 홍콩의 최고 번화가를 통과한다. 홍콩에는 1백 미터 이상의 건물이 1,268개가 있고, 숫자로 볼 때 세계 최 대라는데, 그 빌딩숲을 통과한다. 전차의 궤도는 세계 금융의 현주소를 거치고, 배우 장국영을 기억하고 있는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을 지나면서, 우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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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퍼시픽 플레이스 같은 거대한 쇼핑센터를 보여주기도 하고, 노먼 포스터 같은 세계 최고의 건축가들이 설계한 빌딩의 자태도, 구운 돼지 한 마리가 통째로 걸려 있는 완자이의 전통시장도, 아름다운 빅토리아공원도, 도심의 중앙도서관도, 서민 아파트의 안방도 보여준다. 그것도 더 이상 착할 수 없는 가격으로 말이다. 뒷문을 통해 전차에 오르면 바로 이층으로 올라가는 것이 좋다. 이층의 제일 앞자리에 앉는 것이 좋다. 빈자리가 없으 면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가 빈자리가 나면 바로 뛰어가서 잡자. 전차의 이층 맨 앞자리에 앉아서 앞을 내다보고 있으면, 말을 타고 도시를 산책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홍콩 자본주의의 실체, 이층버스

이층버스는 내가 홍콩에 가기 전부터 나의 로망이었다. 이층버스의 내부는 어떻게 생겼을까? 이층버스의 이층에 타면 도대체 어떤 기분일까 매우 궁금했다. 홍콩에 도착하 는 즉시 만사를 제치고 타볼 것이라는 다짐을 하곤 했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홍콩에 도착하고 이층버스를 타게 되었다. 이층버스는 하나의 새로운 세계였다. 우선 앞문 쪽을 통해 탑승하면 요금 함 앞에 요금이 표시되어 있다. 지금은 물론 디지털 코드로 표시되지만, 당시만 해 도 종이인가 플라스틱 카드에 표시했다. 종점까지 남은 운행거리가 짧아질수록 액수가 줄어드는 요금이 표시되어 있었 다. 이것이 내게는 매우 신기하고도 행복한 일대 사건이었다. 한국의 버스 시스템과 달랐기 때문이다. 평소에 나는 한국의 버스 요금 체계의 비합리성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멀리 가나 가까이 가나 요금이 똑같았기 때문이 다. 종점에서 종점까지 가면 많이 받아야 하고, 두 코스 정도 타면 싸게 해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현실을 늘 불만스럽 게 여겼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홍콩은 내 생각대로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버스 요금에 대해서 불만을 표시해온 나를 아주 이상한 사람 취급 해 온 한국의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적어도 내 생각이 아주 이상한 생각은 아니라고. 내 생각에 홍콩은 정확한 사회였다. 영화관에서 좋은 자리는 돈을 많이 받았으니까. 버스를 오래 타면 그만큼 돈을 더 내고, 영화를 편하게 보고 싶은 만큼 돈을 더 내고, 아파트 주차장도 따로 사야 하 는 사회랍니다. 돈이 정확하게 요구되고 적용되는, 그야말로 자본주의 사회다. 그런데 또 다르게 볼 수도 있다. 돈의 액 수만큼 정확하게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융통성이 없는 사회라는 뜻이 되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약자가 받을 수

站)

있는 혜택이 그만큼 줄어든다 고도 볼 수 있다. 가까이 가는 사람이 멀리 가 는 사람을 위해 대신 부담해주는 가치 를 누릴 수 없다. 그러면 이층버스를 타고 어디로 갈 것인가? 두 곳을 추천하고 싶다. 한국 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스탠리 마

(赤柱)

켓과 홍콩 섬의 꼭대기 산정상 이

(山頂)

다. 먼저 스탠리 마켓으로 가볼까? 센 트럴 의 종합버스터미널

(中環)

(巴士總

로 가서 6, 6A, 6X, 260번 등의 버 스를 타면 된다. 가는 코스는 비슷하 고 특히 260번은 직행인데, 나는 가급 적 6번을 타라고 권한다. 다른 버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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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섬의 동서를 관통하는 터널로 지나가는데 비 해, 6번 버스는 빅토리아산을 넘어서 간다는 점이 다 르다. 시간은 좀 더 걸리지만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버스가 산으로 진입하면서 도심의 공동묘지가 눈 에 들어온다. 산으로 올라가면서 왼쪽으로 보이는 공동묘지가 우리 눈에는 생소하다. 아마도 한국의 도심에서는 볼 수 없는 낯선 풍경이기 때문이다. 살 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의 공간이 명확하게 구분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한국인으로서는 수용하 기가 어려운 장면일지 모른다. 그것도 땅값이 금만 큼 비싼 홍콩의 도심 한가운데 공동묘지가 있다는

사실은 높이 평가할만하다고 생각한다. 동네에 묘 지를 두는 영국 전통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그 다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장면은 경사가 급한 산 비탈에 50층 높이의 초고층 아파트가 자리 잡고 있 다는 사실이다. 건설에 문외한인 내 눈으로 볼 때도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기술이다. 산비탈을 평평하게 만들지 않고서도, 그 자리에 그대로 초고층 빌딩을 짓는데 남다른 기술력이 필요할 것 같다. 자연파괴 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기술이다. 그런 면에서 공간 활 용률은 세계 최고로 보인다. 그런 아파트를 이층버스의 이층에서 바라보고 있 노라면, 촌토도 아끼는 마음, 개발할 곳만 했다는 생 각, 난개발로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 리를 물고 지나간다. 그런 것들이 선진국의 기본 조건이 아닐까? 이제 이층버스를 타고 산 정상으로 가볼까? 올라갈 때 트램을 이용했다면? 내려올 때는 꼭 이층버스를 이용하는 것 이 좋다. 센트럴 스타페리 부두

(天星碼頭)

나 센트럴 버스 터미널

(中環巴士總站)

에서 15번 버스를 타면 홍콩섬에서 제일 높은 산인 빅토리아산 정상에 갈 수 있다. 피크에서는 인종 차별, 신분 차별의 식민지 역사의 흔적을 볼 수 있다.

(太平山)

산 정상 동네는 식민 초기에는 중국인들은 살 수 없었던 매우 특별한 거주지였다. 지금도 부자들과 톱스타들이 사는 곳이니 매우 특별한 공간이다. 별장, 고급 주택 등이 즐비해서, 시내 아파트와는 완연히 다른 삶을 볼 수 있다. 더불어 홍 콩이 여전히 신분 사회이자 자본 중심의 사회라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래도 배울만한 점은 난개발이 없고, 개발과 보존 구역이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다는 점이다. 의외로 홍콩 면적의 70% 가 녹지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이것 역시 서구적 근대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되는데, 원시림으로 보호되어야 할 곳은 그렇게 보호되고 있다. 마음이 편안하다.

‘더 피크 룩아웃 식당

(太平山餐廳)

의 트레킹 코스는 홍콩 여행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홍콩 섬에서 제일 높은 552미터 정상에 있는, 수많은 영화에 등장한 고풍스러운 식당 ’에서 맛있는 볶음밥에 아이스 레몬티를 한 잔 하고, 트레킹에 나서기를 추천한다. 정상

(1901년에 가마꾼들의 휴식처로 세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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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푸람 야외 공원

,산정화원

(Pok Fu Lam Country Park, 薄扶林郊野公園)

,루가드 로드

(Victoria Peak Garden, 山頂花園)

로의 트레킹을 권한다. 빌딩숲으로 기억된 홍콩과는 완전히 다른 홍콩을 볼 수 있다. 공원과 저수지

(Lugard Road, 盧吉道)

그리고 숲이 나타나고, 산으로 오르는 전차나 에스컬레이터가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천 가지 표정을 가지고 있는 도시 라고 하는 것 같다.

야경의 이유, 라이트 오브 심퍼니

야경이야말로 홍콩을 대표한다.

(Light of Symphony)

홍콩에 잠시라도 방문했거나 또는 살고 있거나를 막론하고 누구나 홍콩을 말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아이콘일 것 이다. 아니, 홍콩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도 홍콩 하면 야경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매일 저녁 여덟시면 이름도 거창한 심포니 오브 라이트

(Symphony of Light)

를 보려고 항구 이쪽저쪽에서 몰려들기 시작 한다. 클래식 메들리와 함께 빅토리아 항구 양안의 대표적인 빌딩 수십 개에서 쏟아져 나오는 레이저 빔 쇼는 우리가 마 치 별천지 4차원의 세계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만들어준다. 군중의 감탄사와 함께 그 황홀한 빛의 세계에 취하게 된다. 이런 순간이야말로 옆에 있는 누군가와 같이 소리 지르고 싶고 공감하고 싶다. 따라서 야경 감상에는 친구가 필요하다.

심포니 오브 라이트

(Symphony of Light)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좋겠다. 아니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금방 가까워질 수 있다. 가 중매 역할을 충분히 해줄 것이다. 초고층의 빌딩들은 그야말로 형형색색의 빛과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홍콩 야경을 만드는 데 일조를 하고 있다. 빅토리 아 항구를 끼고 나누어져 있는 구룡 반도와 홍콩 섬은 홍콩 야경의 밑그림이다. 저 멀리 구룡 반도를 동서로 가로질러 병 풍처럼 펼쳐져 홍콩을 보호하고 있는 ‘사자산

(Lion Rock, 獅子山)

’도 빼놓을 수 없는 배경이다. 홍콩 섬의 거대한 빅토리아 산, 제 각기 세련된 빌딩들, 빅토리아 항구는 ‘백만 불’짜리 홍콩 야경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나를 옥죄는 관습이나 전통이나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그 무엇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으니 세계적이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이 동전의 양면처럼 ‘양’이 있으면 ‘음’이 있는 법, 홍콩의 야경은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안고 있는 만물의 이치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야경의 아름다움이 ‘양’이라면, 야경으로 인해 잠을 방해받는 것은 ‘음’이다. 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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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난 밝기의 광고판 때문에 편안한 잠을 위협받는 다는 이웃이 많다. 언젠가 시민들이 ‘빛 오염’ 문 제를 강하게 제기하기도 했다. 그렇게 본다면 24 시간 동안 작동하는 전자 광고판은 근처의 주민들 에게는 가해자인 것이다. 그래서 이제 밤 열한 시가 되면 홍콩의 야경도 서서히 잠이 든다. 또 전기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야경은 녹색 시 대를 역행하는 애물단지다. 자연보호주의자들은 야경을 자연 파괴 주범의 하나로 생각한다. 전기 소모량이 클 것이니 석탄이나 석유 등 화석 연료

가 많이 들어갈 것이고, 그만큼 자연을 파괴해야 할 것이다. 언젠가 전 세계 환경 운동에 동참하는 차원에 서 홍콩에서 며칠 동안 야경이 사라진 적이 있었 다. 하지만 홍콩의 정체성을 유지시켜 나가야 한 다는 논리가 득세를 했다. 홍콩의 수장인 행정장 관이 당시 금융 위기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극복 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야경의 확대를 결정한 것 을 보면 경제는 이제 절대 진리가 되었다. 그래서 홍콩의 야경은 유지되고 있다. 다시 말해 말 많고 탈 많은 야경이지만, 전 세계의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홍콩을 한 번 이상 다녀 온 친구들에게 홍콩의 야경이 왜 아름다운지를 아는가 하고 물어서 친구들을 당황스럽 게 하곤 한다. 밤의 경치가 화려하게 보이자면? 우선 높은 빌딩이 있어야 하고, 더욱이 그것들이 밀집되어 있어야 한다. 듬성듬성하게 배치된 건물 속에서 만들어지는 ‘밤의 경치’는 그것 나름대로 아름다울 수는 있겠지만 화려할 수는 없다. 홍콩의 야경은 밀집된 빌딩 숲이 공동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초고층 빌딩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연출하는 빛의 쇼인 것 이다. 홍콩의 야경은 인구 밀도와 건물 임대료가 세계 최고인 도시 홍콩이 만들어낸 부산물이기에 화려하면서도 슬프다. 마지막으로 야경을 어디서 보는 것이 좋을까 하는 고민이 생긴다. 밧줄 하나에 의지해서 아슬아슬하게 올라가는 트램을 타고 빅토리아 피크에서 볼 것인가, 인적 뜸한 피크의 루가드 로 드

(Lugard Road)

주 한잔 하면서 즐길 것인가, 침사추이 해변의 영화인의 거리

에서 나 홀로 조용하게 감상할 것인가, 센트럴 프린스 빌딩

(太子大廈) (Avenue of Stars)

의 옥상 야외 바인 세바 에서 맥

(Sevva)

나 스타 페리 시계탑에서 세계 각지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소리 지르면서 볼 것인가, 아니면 홍콩의 새로운 성장 동력인 서구룡 지역의 리츠 칼튼 호텔 118층의 오 존 바

(Ozone Bar)

에서 칵테일 한잔 시켜놓고 교만하게 내려다볼 것인가, 선택은 여러분의 자유에 속한다. 다만 참고해야 할 것은 맑은 날 밤에 빅토리아 피크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이 하늘에 가득한 별의 모습과 같다 하여 홍 콩 8경의 첫째로 손꼽힌다는 점이다.

류영하 ┃백석대학교 중국어학 전공 교수 *이 글은 『홍콩 산책』 (류영하, 산지니, 2019)에서 수정,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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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구의 도시관상학

우리의 여행은 여행이냐 착취냐

“산책자는 시장의 관찰자이다. 그의 지식은 경기 동향에 관한 비밀스러운 학문과 밀접한 관련이 있 다. 그는 소비자의 왕국으로 파견된 자본가들의 스 파이다.” <발터 벤야민, 아케이드 프로젝트, 2013>

착취를 뜻하는 영어단어 ‘익스플로잇 ’과 여행하다는 의미의‘익스플로어 닮아 있다. 신기하게 한국의 현실도 닮아 있다. 최근 10년간 대구 김광석길, 부산의 감천문화마을, 통영 동피랑 등의 뉴스를 접하면 알게 된다. 여행자들의 방문이 여행지에 오랫동안 살아온 원주민들의 질서 를 파괴하고 쫓아내게 된다고. 한국의 마추피추라고 불리는 감천문화마을에 코 로나 직전 2019년에 약 300만명이 다녀갔다고 한 다. 또한 이 통계는 감천 동네에 살고있는 어떤 할머 니 집 앞으로도 똑같은 숫자의 여행자들도 지나갔 다는 말이다. 어느 방문사업이 잘 된다는 것은 로컬 공무원들에겐 승진을 위한 업적일 수 있지만, 원주 민 할머니 입장에서는 원하지 않는 고통일 수 있다. 도시지역의 여행은 낭만적인 뉴스만 만들어 내는 행위가 아니었다. 어떤 로컬 일상을 바꿔버리고 변 질시키는 단계까지 왔다. 교토 기온의 게이샤 보존

explore or exploit!

(exploit)

’두 단어는

(explore)

발터 벤야민, 아케이드 프로젝트, 2013

지구 자치조직은 2019년 12월 부터 허가받지 않은 관광객의 사진 촬영을 금지하였다. 게이샤가 되기 전의 견습생으로 불리는 ‘마이꼬’를 찍으려고 대기하고 있는 관광객이 늘면서다. 사진 찍히기를 거부했던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두려움에 찬 태도를 보고 유럽 사회는 미신이다고 해왔다. 과연 미신이 아니라 현실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한국 원주민들도 영혼이 털리고 재산이 털려 쫓겨난 것이다. 김광석길은 땅값이 치 솟고 임대료가 상승하면서 젠트리피케이션

(gentrification)

현상이 일어났다. 또한 김광석 길을 만들었던 예술가들은 비싸

18쪽

진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게 된다. 김광석길을 형성한 본질적인 사람자원이 사라졌다. 과연 이곳은 계속 김광석을 그리 워하는 사람들이 있는 김광석길이라 부를 수 있을까? 결과적으로 한국사회의 여행은 착취였다.

여행의 시작은 어디일까

여행 의 시작은 어디였을까 다시 질문한다. 2천년 전에도 여행이 있었을까. 한자로 ‘여 ’라는 어휘는 원래 ‘군

(旅行)

(旅)

대 ’를 의미한다. 한자의 상형을 봐도 등짐을 진 군인의 모양이 연상된다. 고대나 봉건제의 정착민들은 이동이 쉽지

(軍隊)

않았을 것이다. 이동할 여유는 통치자나 곳곳에 영토가 있는 귀족들의 전유물이었을 것이다. 유목민의 잦은 이동도 방목 을 위한 목초를 찾는 행위이지, 100%로 여가 를 위한 여행이라고는 말할 순 없다. 출신지와 신분을 벗어나 이동이 나름 자유 로웠던 행위는 ‘순례

(pilgrimage)

종교는 국경과 민족을 넘는 우호적 계약이다. 아랍과 인도, 티벳 등지의 순례길은 그런 의미 에서 전통사회에서도 가능했을 것이다. 오체투지는 인도에서 시작된 인사법이라고 하는데. 티벳인들의 오체투지 학적으로만 보면, 타민족의 국경을 넘나들며 죽음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선택된 하나의 ‘ 인사법’,‘자구책’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볼 수 도 있다. 국경을 넘어야되는 전통시대의 여행 은 이렇게 힘들고 살벌했다. 이에 비해 현대의

’였을 것이다.

를 인상

(五體投地)

오체투지, 불교신문 2023. 5. 4

여행은 너무 쉽다. 이런 여행의 일상성은 교통의 발달로 상징되는 근대문명의 출발로부터 시작된다.

‘익스플로어

(explore)

식민지의 시작은 근대적 여행의 시작과 일치한다

’라는 어휘는 라틴어 ‘explorare’에 기원하며 ‘조사하다

’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investigate)

‘expedition ’이라는 어휘는 라틴어 ‘expeditio’라는 어휘로 군사작전, 원정, 행진을 의미한다. 투어 는 고대

(탐험)

(tour)

프랑스어 ‘tourn’에 기원하며, 영국 중세시대 경찰들이 구역을 순찰한다는 의미다. 전통사회에서 여행을 의미는 하나같 이 국가 행위, 통치행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16세기 이후 대항해시대가 되면서 여행의 의미는 개인화되기 시작한다. 영국, 스페인, 프랑스와 같은 유럽 국가들은 개인의 탐험을 통해 땅을 발견하고 식민지를 개척하게 된다. 식민지에 앞서 등장하는 풍경은 영화 <미션>에서도 볼 수 있 듯이, ‘친절한 얼굴을 한 여행자의 조사’와의 만남이었다. 문화인류학이라는 학문의 시작도 식민지 지역의 현지 조사에 기원했다. 전통사회에서 타문명의 무덤을 발굴하거나 그 민족의 일상을 기록하는 일은 첩보행위로 간주되어 금지되었고 위험한 행위였다. 그러나 대항해시대, 식민지 시대가 되 면서 국가와 민족적 의무에서 이탈된 개인의 여행이 낭만화되었다. 학자, 군인, 신부, 목사, 지리학자, 인류학자들이 제일 먼저 개척지로 간다. 그들은 ‘여행자’이면서 ‘조사자’ 혹은 ‘ 종교인’이기도 했다. 그들이 기록하고 가져간 수많은 현지 자료들은 유럽 근대학문 형성의 기원이 된다. 식물학의 성립 도 전세계 식물표본을 수집해온 유럽인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이들은 여행은 우리에게 ‘동방견문록’으로 친숙한 13

19쪽

세기 마르코 폴로의 여행과는 분명 다르 게 보인다. 스페인의 알렉산더 훔볼트의 여행은 상징적이다. 그가 남미에서 채집한 기나 나무는 최초의 말라리아 치료제 ‘키니 네’의 기원이 된다. 또한 훔볼트가 보고 한 원주민들 사냥독 ‘쿠라레’를 응용하 여 유럽은 외과수술을 가능케 한 근이완 제를 개발하게 된다. 또한 페루 연안 새 의 배설물 ‘구아노’가 일반 비료의 33 배의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을 훔볼트는

알게 되었고, 이 비료는 유럽에 전파되 어 농업혁명의 기폭제가 된다. 유럽인들의 남미여행은 이렇게 유럽

훔볼트가 그린 남미대륙 고도에 따른 식물분포지도, Wikimedia Commons

인들에겐 거대한 획득이 되었지만, 남미에게는 거대한 수탈이 되었던 것이다. 여행자의 시선과 체류는 늘 온유하고 여유 로우며 평화적이라고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점이다.

북극을 여행하고 나서야 빙하기라는 개념이 탄생했다

20세기 북극, 남극의 발견은 인류에게 ‘빙하기’어휘를 탄생시켰다. 아직도 얼어있는 지구를 목격했고, 1만년 전에 툰 드라, 온대 지역이 녹았다는 사실도 발견하면서 지구 전체를 이해하게 된다. 지구 전체를 여행하지 않으면 지구 전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여행은 지구에 대한 이해를 발생시키고 과학의 토대를 쌓은 긍정적인 결과가 있었다. 또한 여행은 염탐이며 원주민의 생산물과 영혼을 터는 결과를 낳는다. 문명적 우위와 열세를 고려하지 않는 여행자는 약탈자일 뿐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1세기의 관광지에서 만날 수 있는 많은 여행자들은 원주민 착취자일 수도 있다 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관광 은 빛 을 본다는 의미에서 영어‘sight

(觀光) (光)

는 고대 독일어 ’sihtiz’로 ‘보여진 것’을 의미한다. 라틴어 스펙타클

(빛, 시야)

(보다) (spectacle, 라틴어 spectaculum)

+seeing ’와 그 의미구성이 같다. ‘sight 도 ‘보다’는 의미다. 한마디로 시각적으로 멋진 곳, 눈이 확 뜨이는 곳을 보는 것이 여행이다. 여행인 이렇게 시각의 확장이자, 결과적으로 개 념의 확장을 낳는 인류 행동이다. 여행지 풍경을 ‘경관

(landscape)

사회의‘경관

’이라고 하며 지자체들은 앞다투어 자신의 지역의 경관을 창출하는 행위를 한다. 현대 ’이라는 어휘는 출발지점을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도시가 아닌 시골 지역을 의미한다. 런던스모

(landscape)

그가 상징하는 근대문명의 우울함을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에서 ‘landscape’라는 여행 트렌드가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landschap

(네델란드어)

: ‘농장이나 울타리를 친 평원, 때로는 소규모 사유지나 행정 단위들의 집합’을 의미. 16세기 말 영국으로 건너간 이 단어는 세속에 뿌리를 내리고 예술에서 귀중한 의미를 획득했다. 경 관

(landscape)

은 특수한 입각점에서 바라본 전망을 뜻하게 되었다. 즉 전망의 예술적 재현이었다. 또한 공 식 초상화의 배경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어떤 자세의 ‘장면’이었던 것이다. 이로써 경관은 가장의 세계로 완전히 통합되었다. <이 푸 투안, 토포필리아, 2011>

20쪽

인간이 아닌 자연을, 도시가 아닌 시골을 보는 것이 ‘경관’이라는 어휘의 출발이었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시사점을 준 다. 최근 10년 여행 트렌드를 보면, 도시보다 시골을 복잡한 곳보다 한적한 곳을 찾아가는 트렌드와도 맞닿아있다. 경관 가치는 역사적으로 이렇게 현실에서 볼수 없는 대안적 장소가 새로운 경관이 됨을 알 수 있다. 현재 내가 있는 무미건조한 장소가 아닌 주류에서 이탈된 장소, 신선함을 느끼게 하는 곳, 처음 보는 낯선 곳, 우리 지 역과는 다른 곳, 오프라인이 아닌 가상의 세계 등 다양한 것들이 새로운 경관으로 창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류는 이렇게 미래를 장소에서 시간을 장소에서 확인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 쉽고 간결하며 비교하기 쉬우며 늘 즉각적 반 응을 일으키는 곳들이 바로 경관이다.

인생샷, 인증샷의 시대에서 다시 여행을 생각하다

최근 10년 도시 여행과 관광의 키워드는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본 ‘경관’이다. 온라인 스펙터클을 창출하고 있다는 말 이다. ‘나도 다녀감’을 연속적으로 인증하며 대규모 방문가치를 일으키고 있다. 촉각, 미각, 청각 시각 등 여행에서 느 껴지는 다양한 감각 중에 시각적 소비가 단연 앞서고 있다. 장소는 더 풍부해졌지만 싸이클이 더 짧아지고 더 몰리게 되 는 부작용을 보여준다. 인스타그램 인증샷 중심의 경관 창출은 문제가 있으며 발터 벤야민의 이 글에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귀로 듣지 않고 눈으로 보는 사람은, 보지 않고 듣는 사람보다 훨씬 더 불안하다. 이러한 원리는 분명 대도시의 사회학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를 갖고 있다. 청각의 작용보다 시각의 작용이 훨씬 더 우세한 것이… 대도시 인간 관계의 특징이다. 바로 여기서 다른 무엇보다 공공 운송수단이 발달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19세기 승합마차, 철도, 전차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몇분 동안 몇시간씩 말 한마디 없이 서로 멍 하니 쳐다볼 수 있거나 쳐다 보아야만 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발터벤야민, 아케이드프로젝트, 2013>

목숨이 위태로운 2차세계대전 전쟁기에 유행하는 ‘Kilroy was here’ 벽 낙서

21쪽

시각에만 집중하는 사회, 즉 ‘보여주기식’ 사회는 전통적으로 공무원 사회와 닮아 있다. 또한 전시 나 전염병이

(戰時)

발생한 사회와도 비슷하다. 전쟁이 터지고 전염병이 발발하면, 인구이동이 집단화되고 시장이 새롭게 개설되고 소비가 획일적으로 바뀌게 된다. 또한 ‘죽기 전에 꼭 해야할 것’이라고 하는 본능적 행위가 집단화된다. 인스타그램 인증샷이

서를 했던 행위가 연상된다.

바로 그런 경우다. 이 행위는 2차세계대전에서 한 군인이 유행시킨 ‘킬로이 다녀감

’이라고 하는 벽에 낙

(Kilroy was here)

여행을 가는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갈까.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이라 여행을 가는 건가. 인생 버킷리스트

(bucket

, 인생샷 등의 샵 트렌드들은 여행자로서의 우리를 더 위축시키고 자유롭게 만들지 못하는 느낌이다. 유럽 여행지

list)

(#)

를 가보면 눈으로 즐기지 않고 항상 휴대폰으로 먼저 찍는 스포츠웨어를 입은 한국인 중년들의 모습을 보면서 심란했다.

자신만의 리듬이 있어야 도시는 지켜진다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는 시라쿠사, 바르셀로나, 나폴리, 마르세유, 지중해의 도시들은 오버투어리즘 으로도 파괴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스도 로마도 고트족도 사라센인도 파괴시키거나 소멸시키지 못한 도

(over-tourism)

시국가들이다. 그가 쓴 <리듬 도시>에서 지중해의 도시들은 왜 생존했는지, 그 이유로 ‘도시국가성’에서 찾는다. 지중해의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여러 언어들을 듣고 성장한 데서 찾는다. 다양한 리듬을 선천적으로 받아들여 ‘타 자의 리듬’ 이나 ‘중심성’이라는 관념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다양하고 수용적인 사회였다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오버투어리즘으로 파괴된 동네들은 언어가 하나밖에 없다. 한국어. 또한 방문객의 리듬에 대응할 원주민 나름의 리듬도 없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자본 앞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관광이나 여행이라는 어휘의 역사적 기원과 관련하여 살펴본 바, 외지인이 어떤 동네에 방문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위험한’ 일이며 동시에 ‘가치로 운’ 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또한 여행의 주체인 여행자의 태도도 중요함을 알 수 있

미래도 바뀜을 알 수 있었다.

다. 여행지에서 발견한 것을 착취의 대상으로 보느냐, 아니면 그냥 리스펙

(respect)

하느냐에 따라 나의 삶도, 관광지의

결론적으로 여행은 본능이라 변할 수 없고, 여행자의 태도는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신은 어떤 태도로 여행을 합니 까?’라고 하는 질문이 유의미해지는 순간이다.

권상구 ┃사)시간과공간연구소 이사

22쪽

도시이야기

호혜성을 화두로 던진 매력적인 문화도시 달성

관련 국제학술대회를 회상하며 …

현대 사회는 도시 중심적이다. 직장과 자녀 교육, 문화 등의 이유로 사람들은 도시에 살기를 원한다. 하지만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 대한 소속감과 책임 의식을 가지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많은 사람이 또 다른 기회를 찾아 이주하거 나 고향을 찾아 귀향하기도 한다. 도시 역시 타지인에게 야박하다. 도시 안에 축적된 공유의 시간과 기억은 가끔 타지 인을 외롭게 만든다. 단절된 과거와 불확실한 미래, 그리고 현재의 느슨한 연결은 결국 중소도시의 위기로 몰리게 된다.

달성은 젊다. 생산 공간이자 삶의 터전이며, 휴식의 도시이기에 많은 가능성을 품은 청년들이 모여든다. 하지만 그만큼 떠나는 이도 많다. 최근 5년간 인구의 58.7%인 15만 명이 유입이 되고 그 중 32.8%가 떠났다. 문화와 교육 등 많은 이 유가 있겠지만 결국 이주 결정의 순간은 지역과 주민의 연결성에 판가름 난다. 지역에 대한 애착이나 책임이 없기에 새 로운 기회를 찾아 쉽게 떠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느슨한 연결은 결국 도시의 해체를 불러올 수 있다. 도시는 생명을

시민들의 소통창구가 된 조형물

23쪽

도시문화캠프 등을 통해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시민들과 나누고 있다.

가지고 있다. 그리고 도시의 생명력은 사람이다. 사람이 떠나는 도시는 쇠퇴하고 사라질 뿐이다. 그렇다면 도시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도시와 사람을 어떻게 단단하게 연결할 수 있을까? 달성은 그 답을 문화에서 찾았다.

‘달성에 살면 달성사람, 들락날락하는 누구에게나 호혜로운 문화도시’ 라는 타이틀을 내세우며 달성은 정부에서 지원 하는 법정 문화도시로 선정되었다. 달성에 살면 누구나 달성사람이라는 이 오픈 마인드가 대구 권역에서 유일하게 문화 도시 조성사업에 선정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달성사람이라는 슬로건에 맞게 지역민들을 뭉치게 만들고 스스로 의 시간과 기억을 쌓아 문화를 만들게 했다. 문화도시 준비과정에서 100명의 지역 예술가를 찾고, 120명의 생활문화동 호회원과 함께 방향을 고민하며 온·오프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문화적 경험을 나눴다. 이 과정에서 지역민들은 달성의 시간을 공유하고 지역 문화를 함께 성장시켰다. 이제는 29만 명의 주민들이 함께하는 달성 문화도시는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고유의 문화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느슨했던 연결은 문화를 통해 단단해지고, 함께 한 노력은 단단한 과거가 되어 미래를 확신하게 한다. 함께 나누고 함께 책임지는 것, 그렇기에 함께 성장하는 것, 호혜로운 문화도시, 달성이 추구하는 가치처럼 말이다. 이렇게 사람들을 하나로 묶게 만드는 것, 호혜성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지난해 12월,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등 4개국 학자들이 대구 달성군에 모여 “호혜적 문화도시 설계와 성장”이라는 주 <2023년도 달성문화도시센터X콘텐츠문화학회 국제학술대회> 를 진행했다. 대구 달성문화센터의 후원으로 디아크 제로 문화관에서 개최한 국제학술대회는 “호혜성”과 공동체에 대해 연구자들과 학문후속세대의 발표로 구성되어 다채로우 면서 깊이 있는 학문의 장이었다.

24쪽

김시덕 도시문헌학자의 기조강연을 시작으로 “호혜성”에 대한 담론은 조관연 , 김병수 등 국내 학자와 더불어 WeiQun

(대구대)

kamura & ZonSakai

(부산대)

, Taylor Moon Castagnari

济宁大學校 ) (

의 해외 학자들로 이어졌다. 또한 심사에 의해 선정된 학문후속연구자들은

田主丸藝術研究所 , TIAR) (

, 임동욱

(달성문화도시센터)

, Kaori Na­

(California State University)

호혜성과 관련하여 다양한 분야에서의 연구를 공유하며 학문의 장을 열었다.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연구와 제언들이 훌 륭했지만, 학술대회의 핵심 주제였던 호혜성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호혜성이란 무엇인가? 라틴어로 ‘주고받음’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는 이 낯선 단어는 사람 혹은 집단 간의 도움이나 혜택을 주고받는 것을 뜻한다. 이 교환에는 단순한 물건 간의 거래만이 있는 건 아니라 거래를 통해 발생하는 강한 연대감 혹은 책임감은 분리된 사람들을 연결하여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는데 기여한다. 내가 주었으니 다음에 받을 거라는 기 대, 내가 받았으니 나 또한 주어야 한다는 책임 의식이 발생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강제가 아니란 점이다. 일반 적인 거래는 반드시 거래 당사자와의 상호교환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호혜성에는 거래 당사자가 제3자로 나타날 수도 있

다. 거래의 원칙 또한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의무가 아닌 자발성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점 또한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어 휘로 접근하면 언뜻 어려워 보이나 어찌 보면 일상에서 늘 함께해 온 체화된 개념인지도 모른다. 예전부터 행해져 왔던 농 촌의 ‘두레’ 말이다. 그럼 오늘날은 이런 연대가 사라졌을까? 결혼식과 장례식의 ‘축의/부의금 문화’는 어떠한가? 주고 받음에 있어 강제성은 없지만 책임감은 가지고, 그 행위를 통해 연대감을 부여하는 것. 이게 바로 호혜성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호혜성에 대해 주목 해야 하는가? 발표를 맡은 대구대학교 문 화예술학부 임동욱 교수는 바로 도시의 미 래에 대한 해답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수도권을 제외한 많은 지역 도시가 해체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저출산과 함께 수도권 집중화로 인한 지역 경제의 몰 락이다. 지역 소멸의 시대가 된 것이다. 도 시의 쇠락은 비단 경제력에만 국한되는 것 이 아니다. 그에 따른 문화 쇠퇴는 공동체 의 내적 해체로 이어진다. 또 다른 문제는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적인 문제인 사회 갈등이다. 지역감정에서부터 남녀, 세대별 갈등은 이미 심각한 문제가 되어 엄청난 사 회, 경제적 비용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회 적 갈등으로 인한 우리나라의 경제적 손실 은 무려 연간 246조 원이라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 주거, 경제, 신분의 분리는 결국 차 별을 확산시키고 결국 사람들 간의 배제, 혐오, 갈등이라는 문제를 야기했다. 사회갈 등은 사회적 공감과 연대의식의 실종과 더 불어 결국 공동체를 해체하는 결과를 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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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성장사회에서 성숙 된 다음 단계의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이에 대안으로 떠 오른 것이 포용적 성장이다.

포용적 성장이란 성장이 사회 전체에 공평하게 분배되며 모두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경제성장 모델로, 포용을 통해 발 전의 지속가능성을 찾는 데 있다. 이때 지속가능한 포용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도시가 제공하는 자원과 기회의 균등한 배 분을 추구함과 동시에 사회 구성원 역시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공감과 연대의식을 품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포용은 통합과는 다른 개념으로 봐야 한다. 기존의 시스템에 소외된 개개인을 적응시키는 것이 통합이라면 포용은 소외된 그룹 이 사회 시스템 안으로 편입되어 서로에게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변혁에 가까운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즉, 통합되 는 과정을 거쳐 화합이 일어난다. 여기에서 필요한 것은 바로 ‘상호작용적’이라는 점이다. 단순히 일방적 흡수나 통합이 아닌 사회와 구성원 간의 책임과 의무가 상호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배제가 아닌 포용으로, 다름이 아닌 공감을 통해 혐 오와 같은 사회갈등 문제가 해소될 수 있으리라 보는 것이다.

하지만 포용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신뢰이다. 일방적인 복지나 혜택과 달리 사회 의 기능과 더불어 사회구성원의 노력도 필요한 것이다. 사회 유지를 위해 구성원이 자신의 책무를 다하고, 사회 역시 구

성원에 대한 책임을 다한다는 신뢰를 바탕 으로 사회 공동체가 이뤄지는 것을 포용이 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신뢰가 바탕이 된 다면 구성원은 사회 문제에 대한 공감과 책 임감, 연대의식이 생성된다. 이러한 포용과 신뢰를 바꿔 말하면 호혜성이라 할 수 있 다. 일방적인 특혜나 수혜가 아닌 공동원으 로 참여함으로써 사회구성원이 자신이 속 해있는 사회에 책임감과 연대의식을 느끼 게 된다면 공동체의 해체 문제 역시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공동체의 변화는 개개인 혹은 소수의 집단이 이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먼저 사회구성원이 심 리적 만족과 함께 공동체적 책임감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이에 대한 다양한 사례도 살펴볼 수 있 었다. 먼저 달성군은 지역민의 이주 문제의 해결책을 문화와 호혜성에서 찾았다. 달성 문화센터 김병수 센터장은 발표에서 문화 도시 사업 사례를 통해 문화 정책이 어떻 게 사회적 호혜성을 구축하는지 알려주었 다. 달성군은 신사업단지의 발달로 인해 다 른 지역에 비해 유입인구가 늘었지만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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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교육의 문제로 타지역으로 이전하는 비율도 늘어났다. ‘들락날락하는 누구에게나 호혜로운 문화도시 사업’이라는 슬 로건에 맞게 달성군은 문화의 호혜성에 집중하여 정책을 수립, 시행하고 있다.

달성군의 문화사업을 살펴보면, 먼저 ‘문화 슬세권’이라는 권역사업을 통해 지역민들이 자신들이 문화권역 사업을 스 스로 기획하고 운영하게 했다. 이를 통해 주민들은 문화향유와 함께 스스로 만들어가는 책임감과 프로그램에 대한 애착 을 형성하여 공동체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달성 대구현대미술제’나 ‘달성 100대 피아노’, ‘뮤지컬 <귀신 통 납시오>’와 같이 달성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문화콘텐츠를 발굴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지역주민들의 애향심을 고취 시킨다. 여기서 공통점은 지역민들이 스스로 만들어나간다는 점이다. 문화 정책을 통해 문화향유의 기회를 지원하되, 일 방적인 제공 방식이 아닌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구성원들에게 책임감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는 주고받음이라는 호혜적 관점을 문화 정책에 적용한 것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호혜성은 일방적인 혜택 수용이 아닌 주고받음의 따른다. 이 주고 받는 과정에서 책임감과 고마움, 연대의식이 생성된다. 이러한 책임감과 연대의식은 다시금 지역사회의 관심과 애정으

로 돌아오고 결국 공동체를 공고히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구 달성군의 사례와 함께 중국, 미국, 일본의 사례를 통해 어떻게 호혜성이 사회에 적용되고 있는지, 사회구성원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 있었다.

모든 발표가 끝나고, 필자는 호혜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다. 우리는 왜 오늘날 호혜성에 대해 논하고 있는가? 그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아마도 주고받은 과정에서 무형의 새로운 가치, 관계가 형성되는 매커니즘은 사람은 사 회적인 동물이라는 진리를 다시 한 번 더 확인시켜 주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공동체 안에서 안정감을 얻는다. 그 안정 성이란, 결국 호혜성을 통해 형성된 책임감과 기대, 공동체 의식이다. 영향을 준다는 건,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기대와 책임을 진다는 건 미래을 꿈꾸는 것이다. 끊임없는 경쟁 사회에서 혐오와 배척, 갈등이 만연한 와중에 호혜성은 잠시 어 깨를 빌려주는 존재이지 않을까?

노창현 ┃대구대학교 문화예술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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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성과 1

해외전문가 초청 콜로키움Ⅰ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는 2023년 9월 5일 일본 교토 리츠메이칸대

立命館大 ) (

안자코 유카

교수를 초청

庵逧由香 ) (

하여 해외전문가 콜로키움을 개최했다. 강연자는 리츠메이칸대 문학부 문학연구과 안자코 유카 교수로, ‘일본인 교수의 한국 근대 도시 답사기’라는 제목으로 초청 강연을 진행했다. 이 프로그램은 인문지식확산을 위해 동아시아 인문교육의 혁신적 사례를 탐구하고 그 결과를 대학과 지역사회, 그리고 지역 인문교육 생태계에 환류하고자 실시됐다.

초청 강연은 인문과학연구소에서 개발하고 있는 교과목 ‘동아시아 항도인문기행’ 수강생들과 함께 진행되었다. 안 자코 교수는 “한·일 국가 간 관계와 사람들과의 관계는 다른 부분이 있다. 일본에서는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한국어, 한국문화, 한국 음식, 대중문화에 관심이 있으며, 그 열풍이 금방 식을 것 이라고 했지만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국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일본 학생들과 한국 현지답사를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대구대학교는 유학생 교류 프로그램이 잘 갖추어져 있고 대구대학교에서 학생교류를 경험한 일본 학생들의 평가 도 좋기 때문에 앞으로도 리츠메이칸대학과 대구대학교 학생들과의 교류가 다양한 형태로 지속되기를 바란다.”며 소감 을 밝혔다.

안자코 교수는 한국 근현대사, 국제관계사 전공으로 한국 고려대학교에서 유학을 경험했다. 연구주제와 관심은 식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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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전쟁동원체제. 식민지지배정책과 사회변동 등이며 최근에는 이와나미 서점에서 ‘한일관계의 미래를 역사문제로부터 시작하자’는 논고를 썼다

(공저, 2022)

. 현재, 리츠메이칸대학 코리아연구센터 부센터장, 국제부 부부장, 국제교육센터장을

필요가 있다.

맡고 있다. 한편, 안자코 교수는 1992년부터 거 제도, 진해, 제주도 등 한국 각지의 답사를 진행 하고 있으며, 10여 년 전부터는 리츠메이칸대 학 학생들을 데리고 부산, 서울, 부평 그리고 이 번에는 대구에서 답사를 진행하면서 ‘현지에서 배우는 한일교류’를 실천하고 있다.

대구·경산 지역은 지역민에게는 익숙한 장 소이지만 타자의 눈으로 보면 전혀 다른 도시가 된다. 이번 강연은 동아시아 도시 연구의 인문 학적 성과를 직접 대학 교과목에 접목하여, 학 문연구가 교육에 직접 연결되는 시스템을 구축 하는데 참고가 될 수 있다. 향후 동아시아 각 도 시의 변화를 역동적 관계 속에서 파악하여 동아 시아를 넘어서 세계로 확장시키기 위해 동아시 아 각 대학과 대학생들과의 교류는 확대해나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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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성과 2

해외전문가 초청 콜로키움 Ⅱ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는 2023년 10월 25일에 국외 전문가 초청 세미나를 개최했다. 강연자는 타이완 사회 활 동가 리자팅 선생이다.

(李佳庭)

리자팅 선생은 타이완 출신 활동가로서 타이완 중산의학대학

(中山醫學大學)

을 졸업하고 타이완의 대표적 사회단체인 < 망차오신 ) 자선협회>에서 타이베이시의 사회적 약자를 위한 활동을 지속해 왔고, 특히 여성을 위한 사회 활동과

(芒草心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타이완 홈리스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어 냄으로써 2017년 타이 완 디지털 매체인 <뉴스 렌즈

>에서 “미래 중요 인물

(The News Lens)

(未來大人物)

”로 선정되어 크게 주목받았다. 현재 리자 팅 선생은 다양한 강연과 저술 활동을 통해 홈리스 문제를 위한 국제 연대 활동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리자팅 선생은 이날 강연에서 ‘다원 집단과 디지털 포용[多元族群與數位融合]’이란 제목으로 대만의 홈리스를 위 한 사회 지원 활동을 디지털 리터러시 좌를 진행하였다.

강좌 주제

(Digital Literacy)

디지털 인클루젼 : 대만 사회 운동 시야에서 사회 유민의 디지털 리터러시적 도전과 기회

의 관점에서 강의를 진행했으며, 다음과 같은 구성과 내용으로 강

사회복지 종사자로서의 현장 경험을 통해 대만 홈리스가 직면하고 있는 디치털 리터러시적 위기와 기회를 소개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함으로써 국제적 연대 의식을 가질 수 있다.

강좌 개요

• 디지털 격차와 홈리스 : 홈리스가 디지털 격차에 대처하는 방법과 사회에 더 잘 통합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 • 디지털 자원의 획득과 활용 : 홈리스가 제한된 자원을 활용하여 공공 도서관, 사회 복지 기관 등에 서 디지털 자원을 확보하고 사용하는 방법

강좌 내용

• 사회 서비스에서의 디지털 도구 활용 : 홈리스 문제의 해결을 위한 사회복지 분야에서 소셜 플랫 폼을 통한 일선 경험 공유, 자금 모금, 사회 운동 등을 소개 • 홈리스와 나 사이에 다리 놓기 : 과거의 삶 속에서의 홈리스 문제에 관한 경험 공유 • 디지털 익스클루전과 유민 : 유민이 디지털 익스클루전에 도전하는 방법과 사회에 좀 더 잘 융합 할 수 있도록 하는 디지털 리터러시 도입 방법

• 디지털 자원의 취득과 사용 : 제한적인 자원 조건에서 홈리스가 공공 도서관, 사회 복지 기관 등과 같은 디지털 자원을 확보하고 활용하는 방법

토론 내용

• 사회 서비스적 디지털 도구 활용 : 유민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소셜 플랫 폼을 통한 경험 공유, 자금 모금, 사회 운동 등의 디지털 방법론

• 홈리스 문제에 관한 참여 : 홈리스 문제에 대한 확장된 인식을 통해 바라본 미래 도시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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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자팅 선생은 우선 홈리스를 포함하여 도시 에서 소외된 계층을 지칭하는 용어로 자주 사용 해 온 “사회적 약자”라는 단어의 부정적 의미와 모호성을 지적하고 이를 대신하여 “다이버스 에 스닉 그룹

多远族群 , diverse ethnic group) (

어로 이들을 포괄하여 지칭하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이어서 본인의 사회복지 활동 경 험을 토대로 강의와 청중들의 실습을 병행했는 데 “홈리스는 어떻게 생겨나는가?”에 관한 질문 을 시작으로 홈리스가 처한 상황, 홈리스 문제를 발생시키는 개인적·사회 구조적 문제에 관한

강의를 진행했다.

강연의 과정에서 눈길이 갔던 부분은 청중의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이었다. 리선생은 청중들 에게 나누어준 카드를 매개로 삼아 홈리스에 자 신을 대입하고 또한 그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상 상해 봄으로써 생소한 경험을 보다 친숙한 경험 으로 환원시켜 강의의 집중도와 참여도를 높였 다. 본인의 아픈 과거를 딛고 사회 활동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온 리자팅 선생의 강의는 타 이완 사회에 존재하는 홈리스의 문제가 어느 사 회에나 존재할 수 있으며 동시에 우리 자신과도 멀리 떨어진 문제가 아닌 직접적인 문제로 인식 될 수 있도록 했다.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리자팅 선생으로부터 사회적 활동가로서 풍부한 활동을 통해 경험된 정보를 바탕으로 제시되는 타이완 사회의 유민 문제와 타이완 사회의 포용과 복지를 위한 노력 과 비전을 학습하고 토론하는 기회를 접할 수 있었다.

”이란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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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성과 3

해외전문가 초청 콜로키움 Ⅲ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는 2023년 10월 28일 일본 교토 리츠메이칸대 정책과학부 교수 겸 코리아연구센터 센터 장 가츠무라 마코토 교수를 초청하여 해외전문가 콜로키움을 개최했다. 가츠무라 교수는 ‘기억과 연대의 도시-교

(勝村誠)

토 우토로지구 재일조선인들의 거주권투쟁’이라는 제목으로 초청 강연을 진행했다. 2011년부터 우토로지구 문제를 지 원하고 2022년 개관한 ‘우토로 평화기념관’ 의 개관 준비를 공동기획한 가츠무라 교수에 게 경험을 바탕으로 한 생생한 우토로의 이야 기를 들을 수 있었다. 특히 1989년부터 시작 된 교토 우토로 재일조선인 집주지구의 거주 권 투쟁을 통해 형성된 한일 양국 시민사회의 연대, 재일조선인의 거주권, 생존권에 대한 논 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가츠무라 교수는 “리츠메이칸대학은 다른 대학보다 빨리 한국 관련 교육과 연구를 시작 하였으며, 2005년 한일 관계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리츠메이칸대학 코리아연구센터를 설립하게 되었다.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상호 이해, 협력을 실현하기 위해서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와 향후 학술대회 공동기획과 연구성과를 공유 해 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인문과학연구소와 리츠메이칸대학은 2022년부터 상호교류를 진행해왔다. 2022년 12월 오사카 도시 탐방을 계기 로, 리츠메이칸 코리아연구센터를 방문하여 교류가 시작되었다. 2023년 5월에는 리츠메이칸대학의 교토학 전문가를 초청하여 동아시아 도시인문학 프로그램 개 발 및 운영을 위한 상호 협력을 추진해왔다. 향후 인문과학연구소는 리츠메이칸대학 코 리아연구센터와 지속적인 교류를 확장해나 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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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는 대구문화예술진흥원 대구문화 예술교육지원센터

(문화예술교육팀)

교육포럼’을 개최했다. 행사는 2023년 10월 6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대구중앙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

‘대구 문화예술교육의 미래를 묻다’를 주제로 개최되는 이 번 포럼은 제2차 문화예술교육 종합계획 시행 및 급변하는 문 화예술교육 환경변화 속에서 지역 문화예술교육의 현재를 진단 하고, 대구형 문화예술교육의 모델 수립방안 모색 등을 목적으 로 마련됐다.

포럼은 김혜인 예술정책연구실장 연

(제2차 문화예술교육 종합계획 특징 및 정책 방향을 통해 본 지역 문화예술 교육 발전방안)

협력방안’, 2세션 ‘사회문화예술교육의 진단과 발전방안’, 3세 션 ‘미래 환경변화에 대응한 지역 문화예술교육의 혁신방안’ 등 총 3개 세션에 걸쳐 발제 및 토론이 진행되었다.

연구소 성과 4

2023 대구문화예술교육포럼

와 함께 ‘2023 대구문화예술

이 기조 강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에 이어 1세션 ‘학교문화예술교육과 지역 공동체의

박순태 대구문화예술진흥원 문화예술본 부장은 공동주최한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 구소와의 협업과 관련하여, “이번 포럼을 계기로 지역 문화예술교육 미래에 대한 관 련 분야 전문가와 시민의 다양한 의견을 바 탕으로 대구 문화예술교육의 방향성을 찾 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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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성과 5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학술대회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는 연구 아젠다 ‘LMS-ACE 교육과정 개발 및 인문교육 시스템 구축-철길로 이야기하는 동아시아 도시인문학’ 을 바탕으로 다양한 학술 활동을 전개해 나가기 위해 관련 단체들과 협력하여 2023년 11월 18일 한국외국어대학교 브릭스홀에서 국제 학술대회를 기획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K-콘텐츠를 큰 주제로, K-콘텐츠의 급격한 세계화를 맞이한 현시점에서 K-콘텐츠 글로벌 정체성에 대해 재론하고 그 지속가능성에 대한 논의의 확산에 뜻을 모은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글로벌문화콘텐츠학회, 경 희대 K-컬쳐·스토리콘텐츠연구소, (재)문화영토연구원 총 4개 기관이 공동으로 주최했다. 1부와 4부로 나누어 진행된 기조강연에서는 캐나다, 말레이시아, 중국, 대만, 일본, 한국 등 세계 각국에서 한류를 연 구하는 저명한 학자 8명이 K-콘텐츠를 둘러싼 다각도의 관점과 문제의식을 논의하고 K-콘텐츠의 글로벌 정체성 확립 을 위한 의견을 교환하였다.

‘한류에서의 K-모든 것, 디지털 플랫폼 시대의 넷플릭스-문화적 지속가능성의 문제’라는 주제로 기조강연의 시작을 연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 대학 진달용 교수는 한류의 배경과 현황을 설명하고 문화적 ‘근접성’의 차원에서 설명되면 서 아시아 주변국에서 소비되던 한류가 확장되는 것을 ‘초국가적 근접성의 출현’으로 설명했다. 여기에는 디지털 기술 의 발전과 넷플릭스로 대변되는 OTT의 발전이 한국의 특수성을 내포하는 문화콘텐츠의 발전을 견인하고 있으며, 한류 의 접두어 ‘K’가 가지는 의미와 지속가능한 한류를 위한 발전 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어 발표를 진행한 말라야 대학 지민박 교수는 K-pop의 K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경희대학교 남윤재 교수는 국가브랜드와 한류

(K-wave)

의 연관성 그리고 한국의 관광에 대해, 한신대 신광철 교수는 새롭게 등장한 ‘콘텐츠 투어리즘’현상을 하나의 담론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소개했다.

후반부에 진행된 두 번째 기조강연 세션에서는 대만국립정치 대학 궈치 우원 교수, 리쓰메이칸 대학의 야마 모토 조호 박사가 각각 대만과 일본 의 한류 현상과 발전해 온 양상에 대 해 드라마, 대중음악 등의 장르를 중 심으로 상세하게 정리하여 그 흐름 을 정리해 발표를 하였고, 토호쿠 대 학의 사노 마사토 교수는 한류와 일 본 문화가 각각 어떤 식으로 해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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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 수용되는지를 비교하여 이를 하나의 ‘대중 문화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시각으로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 임대근 교수는 한 류와 K-콘텐츠 연구의 쟁점들에 대해 설명하면 서 앞으로의 한류 연구에 대한 다양한 시각의 연 구 관점들을 공유해 한류에 대한 해석에 깊은 논 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전, 후반부로 나누어 진행된 기조강연을 통해 각 나라의 한류에 대한 동향과 앞으로 한류 연구 에 대한 다양하고 새로운 학술적 논의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학술대회 2부와 3부는 3개의 세션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제1세션에서는 K-콘텐츠의 장르를 큰 주제로 각각 개별적 장르의 사례, 장르의 혼종화에 대한 논의들이 소개되었다.‘K-영화와 드라마의 이미지’(2부), ‘교차하는 K-콘텐츠의 장 르’(3부)라는 주제로 영화, 드라마, 웹툰, 역사콘텐츠와 관련한 연구자들의 발표가 이어졌다.

제2세션은 ‘확장하는 K-콘텐츠’를 큰 주제로 ‘한류와 K-콘텐츠 성장의 역사’(2부)와 ‘확장하는 K-콘텐츠의 영토’(3 부)라는 주제아래 중국의 한류수용 변화 양상, 드라마사(史)에 내재된 맥락에 대한 새로운 시각적 해석, 한글, VR과 같 은 새로운 장르와 한류의 관계 등에 대한 연구자들의 연구와 이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었다.

제3세션은 ‘K-콘텐츠에 대한 비판적 시각들’을 큰 주제로 ‘K-콘텐츠의 문제적 지형들’(2부), ‘진화하는 K-콘텐츠의 수용’(3부)이 각각 진행되었다. K-콘텐츠의 비판적 지점과 창조적 향유, 포스트 프로덕션의 확장, 장르의 융합 등 다변 화된 수용 양상에 대해 발표와 그에 대한 토론이 라운드테이블 형태로 진행되었다.

이번 학술대회는 동시대 K-콘텐츠의 글로벌적 수용과 동향을 진단하고, 앞으로의 영향력 확산과 경쟁력 제고를 검토 하는 동시에 K-콘텐츠가 세계의 문화콘텐츠 생태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핵심 키워드임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또한 ‘한류’라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진행하고 있는 다양한 K-콘텐츠와 한류 관련 최신의 연구 동향을 분석하고 세 계 각지의 한류 연구를 한 자리에서 들을 수 있어 한류 연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학술 적 외연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대구대학교 인문과학 연구소는 이번 공동 개 최를 계기로 관련 기관들과 함께 앞으로도 인문 학술 교류 및 연구 등에 관한 지속적인 협력을 진 행하여 연구의 지평을 넓혀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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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성과 6

국내현장실습활동

안동과 서울에서 만나는 동아시아 도시인문학,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는 2023년 10월과 11월에 두 차례 걸쳐 문화예술학과 대학원 학생들을 대상으로 국내 현 장실습 프로그램인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

’를 안동과 서울 일원에서 시행했다.

(To Infinity and Beyond)

(담당: 한령 대구대학

인문과학연구소가 기획한 이 프로그램은 동아시아 도시의 문화체험을 기반으로 하며 도시의 다양한

교 국제어문학과 교수)

문화를 현장에서 체험한 후 분석하여 콘텐츠를 개발하는 활동으로 이어진다.

두 차례로 진행된 안동, 서울 현장실습 프로그램은 인문과학연구소에서 개발한 교과목인 ‘동아시아 도시인문기행’ 및 ‘동아시아 수도인문기행’의 심화 프로그램이다. 한국 유교 문화의 뿌리 깊은 도시 안동,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글로벌 도시 서울은 학생들이 전통과 현대를 체험 하기 좋은 도시이다. 2023년 10월 5일부 터 10월 6일에 걸쳐 진행된 안동 유교 문 화 탐방은 특히 중국인 유학생들에게 인기 가 좋다. 중국인 학생들은 안동의 유교 문 화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가지고 도시 곳곳에 존재하는 유교 문화 흔적들을 찾아다니며 유교 문화가 안동에서 자리 잡고 발전해온 이유 등에 대해 심도 있는 조사를 진행하였 다. 학생들이 유교 문화 색채가 강한 안동 의 문화 흔적 탐방을 통해 유교 문화가 공 존하는 중국, 일본과 비교하며 안동만의 문 화코드를 분석하여 보고서로 제출하는 학 습성과로 이어졌다.

그리고 2023년 11월 10일부터 11월 11일에 걸쳐 진행된 서울 현장실습을 통해 학생들이 안동과 상반된 성격을 띤 한국의 대표적인 현대 도시 속에 전통과 현대가 공 존하는 곳곳을 다니며 다양한 체험을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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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전통문화공간의 현대적 재해석을 보여 준 대표적인 장소인 익선동은 학생들이 손 꼽은 서울의 대표 명소이다. 학생들은 MZ 세대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국적 막론하고 많은 방문객이 익선동을 찾는 이유를 조사 하고 분석하며 공간 콘텐츠와 스토리에 관 심을 집중하였다. 아울러 학생들은 서울과 관련된 다양한 영역의 면모를 직접 접하면 서 공간 속에 존재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도 그려보며, 이를 기반으로 서 울에 대한 자신만의 시각을 담은 영상콘텐

츠를 제작하였다.

안동과 서울 현장실습을 계기로 도시와 도시 문화, 도시 문화콘텐츠에 관심을 갖게 된 일부 대학원 학생들은 2023년 12월 2 일에 개최된 인문콘텐츠학회 동계학술대회 와 2023년 12월 8일에 개최된 콘텐츠문화 학회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하여 학문 후속 세대 포스터 논문을 발표하였다. 인문콘텐 츠학회에 참가한 학생은 ‘동물원 판다 IP와 문화마케팅 사례 분석 - 한·중·일 삼국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학문 후속세대 포스터논문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 였다. ‘호혜적 문화도시 설계와 성장’을 주제로 한 콘텐츠문화학회 국제학술대회에는 총 3명의 대학원 학생들이 포스터 논문을 발표하였고 한 명은 ‘드라마를 통한 도시 브랜딩 전략 연구 - 중국 장먼시 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우수 상을, 한 명은 ‘영화 <양자탄비

>의 스토리텔링 연구’로 장려상을 수상하였다.

(讓子彈飛)

(江門市)

이처럼 학생들은 현장실습 프로그램을 통해 문제를 분석할 때 한국, 중국, 일본과의 영향 관계를 직간접적으로 살펴봄 으로써 안목을 넓혀 다양한 시각에서 동아시아 도시와 제반 사항을 심도 있게 분석할 수 있다. 아울러 영상콘텐츠 기획 능력과 실무 능력을 함양하는 학습성과로 이어지기 때문에 학생들의 호응이 좋다.

37쪽

연구소 성과 7-1

"포구서 물물교환해 생계유지… 5m 안팎 작은 배서 주거생활"

6강 : 사진으로 만나는 말레이시아 '바다 집시' 이야기

바다 위, 전통어선에서 생활하는 바자우 족, 바다 집시들은 이제 소수만 남아있다. 말레이시아와 필리핀, 인도네

(Bajau)

시아 등 각 국가들은 뭍에 정착한 바자우족에게 영주권을 준다. 그러나 그냥 바다에서 선상생활을 하는 바자우족은 영해 에 있다 하더라도 그 나라 영주권이 없다. 그러므로 뭍에 발을 내딛는 순간 불법 입국자가 된다.

이미 오래전부터 말레이시아 사바주 산간마을 등에 정착한 ‘육지 바자우’와 여전히 바다 곁에 붙어사는 바다집시 바 자우족은 ‘같으나 다르다’. 본 뿌리는 같되, 생활 모습은 확연히 다르다는 얘기다. 예전에는 자신들만의 언어를 사용했

영주권 없어 뭍 내딛으면 불법 바다에 없는 생필품 싣고 떠나 레가타 레파 기간 몸·배 치장 말레이시아서 '레파 퀸' 선정

오랑 라우트

(orang laut: 물의 민족)

으나, 지금은 물물교환 등 생활을 위해 말레이시아어도 알아듣고 말도 한다.

라고도 불리는 무국적 바자우족들은 이제 뭍사람들의 눈치까지 잘 살필 수 있어야 바 다 위에서의 유랑생활이 그나마 무난해진다. 표해민 답게 잡은 해물을 해안에 늘어선 상인들에게 넘기고 대신 받

(漂海民)

아 든 생필품을 챙기자마자, 단속 경찰의 사나운 눈길을 피해 서둘러 바다로 되돌아가야 하는 게 오늘날 바자우족들의 모습이다. 뭍이라는 곳은 셈포르나 해 있고 어부들은 타위타위

(TAWI TAWI)

로 말레이시아 사바주 동쪽 해안에 들어선 어촌이다. 인도네시아와 인접

(SEMPORNA)

섬 등 필리핀과 같은 바다를 삶터로 여기며 살아간다. 말레이시아 바다로 흘러든 바자우들이 물물교환 등을 위해 발을 딛는 이곳은 셈포르나에서 가장 번잡하다는 포구 주변이다. 매일 이른 아침이면 바 자우들은 레파에 싣고 온 말린 가오리, 해삼 등 다양한 건어물을 뭍에 올리고, 대신 자신들의 주식인 쌀과 녹말, 설탕과

커피 등 바다에서는 얻을 수 없는 생필품을 레파에 싣고 서둘러 떠난다.

38쪽

바다를 유랑하는 표해민 들에

(漂海民)

게 있어서 뭍은 그리 익숙지 않은 곳이 다. 레파에 올라 바다로 나가야 마음의 안정을 되찾는다. 레파 는 뭍에 정

(Lepa)

착하는 대신 여전히 이 바다 저 바다를 떠도는 바다 집시들에게 어구로서의 배 이자 주거장소로서의 집이기도 하다.

바다 위에서 마주친 전형적인 한 바자 우의 배는 저래도 될까 싶은 정도로 작 다. 선체 길이는 5m 안팎, 좌·우현 흘

수 까지 낮아 파도가 치면 바닷물이

(吃水)

쉽게 배 안에 넘칠 듯하다. 지붕에는 그물 따위가 실려 있고, 곳곳에 알록달록 빨래가 걸려있다. 돛대가 보이지 않으니 오 로지 상앗대와 근력만으로 배를 몰아갈 터인데, 뜨거운 햇볕과 더위 방지는 좌·우현을 막은 판자가 전부다. 밥 짓기 위 한 화덕과 어느 만큼의 장작, 한밤중 조업을 위한 등불이며 얇은 이불 따위도 실려 있다.

다른 사람의 눈으로는 추레하달 수밖에 없는 배가 화려하게 치장되는 시기도 있다. 바로 레가타 레파

기

(Regatta lepa)

간이다. 우리가 집 안팎을 치장하듯 이물과 고물을 전통무늬로 조각을 하거나, 선체에 알록달록한 페인트로 색을 입히기 도 한다. 다양한 천으로 꾸민 역삼각형 모양새의 태피스트리 돛을 걸어 갈무리를 하고 보란 듯이 배를 몰아 셈포르나 포 구로 모여든다. 동족들끼리 배 모는 솜씨를 겨루는 축제니 셈포르나는 물론 주변 섬에 정착한 바자우족들도 크고 작은 레

물론, 상금까지 챙겨주면서 적극 장려해 오고 있는 것이다.

파를 직접 몰거나 도선을 이용해 축제장으로 찾아온다. 이날만큼은 제복들 의 눈치 따위를 살피지 않는 대신 뭍에 오르면 생긴다는 ‘땅멀미’를 각오하 고 나선 길이니 특히 여성들은 옷매무시나 얼굴에도 신경을 쓴 듯이 보인다.

이렇게 레파고 몸이고 치장하느라 애쓰는 바자우들보다도 이를 구경하는 사람들의 눈이 더욱 즐거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민족 국가인 말레이시아 사바주 정부에서는 이리 별나고 화려한 모양새로 시선을 끄는 바자우 전통 어선 레파를 관광자원이자 문화유산으로 여겼다. 해마다 아름답게 꾸민 배를몇척 선정해 소유자인 바자우족에게 상품으로 모터엔진과 상금까지 곁 들여 주는 한편, 바자우 여성 중에서 ‘레파 퀸’을 선정해 왕관 대관 은

(戴冠)

*이 글은 공동시민강좌(2023. 4. 20) 강의 내용으로, 영남일보에 게재되었습니다.

김상수 ┃해양다큐멘터리 사진작가·전) 월간 '우리바다' 편집장

39쪽

연구소 성과 7-2

"日 후쿠오카 박물관 시민과 소통. 대구, 청년과 역사 접점 늘려야"

7강 : 뮤지엄을 통해 본 동아시아 도시의 잠재적 가치

서양의 오랜 타자였던 동양을 두고 영국시인 R. 키플링은 “동양과 서양 이 쌍둥이들은 더 이상 만날 수 없으리”라고 노래했지만, 백남준의 작품 ‘바이 바이 키플링’으로 허사 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하지만 다시 정의될 아시아는 이

(虛辭)

제까지 알고 있던 아시아와는 많이 다른 모습일지 모른다고들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일본은 많은 도시를 ‘창조도시’로 발 빠르게 출발시켰고, 도시환경보다도 문화적 환경에서 창의성이 나타날 거라는 생각을 일깨워 주었다. 하지만 시민은 도시의 역사적 맥락과 지역 문화의 독특함을 이어가지 못하면 ‘경험의 소비시대’를 향한 꾸준한 변화는 진행되지 않을 거라 우려하고 있었다.

문화유산으로 도시 이해 높여 지역 이야기 예술작품에 담아 시민들 역사 통해 책임감 배워 도시가 젊은이들에 유도해야

명치유신 이래 ‘탈아입구

(脫亞入歐)

’ 노선을 택했던 일본의 새로운 선택은 ‘탈구입아

’인 듯 보인다. 이걸 후

(脫歐入亞)

쿠오카 시민들은 문화적 교류 확대 때문이라 생각했다.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겪었고 먼저 실험하고, 먼저 절망하고 먼 저 희망을 찾았다. 21세기에 들면서 후쿠오카는 ‘아시아의 현관’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웠고, ‘도시의 매력이 곧 도시의 경쟁력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들의 오만한 캐치프레이즈가 곳곳에서 단순히 ‘오만’에만 그치는 것이 아님을 보 여주고 있었다. 일본은 다른 문화와 충돌하고, 모방하고, 융합함으로써 문화가 발전한다고 생각했고, 후쿠오카는 자신의 문화와 독창성을 발전시킴으로써 국제경쟁력을 개발하게 될 거라 기대하고 있다.

본질적으로 예술적이거나 전통적인 활동의 지원에 늘 적극적인 이 도시는 국제공항의 이름은 후쿠오카 , 기차역

(福岡)

의 이름은 하카타 이다. ‘모두를 위한 예술, 미래를 위한 예술’이라는 예술문화진흥 비전으로 다양한 시민 활동, 예

(博多)

술·문화를 통한 도시브랜드의 출발을 알린 후쿠오카는 어느새 많은 수의 문화 관련 시설, 특히 극장과 박물관을 자랑삼

40쪽

는 도시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도시를 알게 할 박물관이 지금도 과거는 낯설게 다루고, 현재는 회피하며, 미래는 무시하 고 있다”는 어느 전문가의 표현은 박물관이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한 도시의 가치를 그 역사가 담긴 박 물관이 오롯이 드러내 보이기란 쉽지 않겠지만, 후쿠오카와 인근 박물관 세 곳이 보여주는 잠재 가치는 부럽기 그지없다.

먼저 ‘향토역사를 올바르고 알기 쉽게 전시하며, 문화유산을 활용하여 시민과의 소통의 장이 되고, 향토의 역사와 여 러 조건을 종합적으로 자리매김하여 후쿠오카를 올바르게 이해시키는 박물관이 되어야 한다’는 ‘후쿠오카 시립박물관’ 의 이념은 결코 허언이 아님을 전시장에서 알게 한다. 그리고 ‘간몬해협박물관’은 수많은 사건의 무대인 지역의 이야기 를 예술작품으로 재현하고 있으며, 모지항의 변화를 레트로 분위기로 보여준다. 또한 전쟁의 역사를 표현한 최첨단 애 니메이션 영상에서도 역사가 주는 큰 선물을 받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후쿠오카현 다자이후 의 ‘

(太宰府)

규슈국립박물관’은 ‘일본은 아시아와 어떤 관계를 맺으며 독자적 문화를 형성해 왔는가’를 콘셉트로 2005년에 개관한 네 번째 국립박물관으로 ‘바다의 길, 아시아의 길’이라는 슬로건을 테마로 한 상설전시로 일본의 교류사를 드라마틱하 게 체감할 수 있다. 박물관 1층의 어린이박물관 ‘아짓파’에서는 ‘다문화-공존’을 전해주고 있다.

에 있든 박물관은 이상적인 학교이기 때문이다.

1266년 동안 한 이름으로 존재해 온 ‘대구’를 우리는 어느 곳에서, 얼마 나 공감할 수 있는가. 역사 속에서 배워야 할 자존감이 결여된 도시는 책임감 을 갖기 어렵고, 책임감이 결여된 시민이 정의롭기는 더욱 어려운 법. 역사를 사랑한다지만 알지 못하고, 알았으되 힘들어했다면 대구는 지금 몇 시인가.

어쩌면 지금 이 시간은 청춘세대와 역사의 접점을 어떻게 더 늘려갈 것인 가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뿐만 아니라 젊은이들로 하여금 바른 역사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수업인지를 경험케 했으면 좋겠다. 어디

*이 글은 공동시민강좌(2023. 4. 27) 강의 내용으로, 영남일보에 게재되었습니다.

김정학 ┃대구교육박물관장

41쪽

연구소 성과 7-3

"베이징 후퉁 다양한 사람 모여 새 공간에 주민들 활기 남겨야"

8강 : 베이징의 도시문화와 공간, 장소-후퉁(胡同)을 중심으로

중국 베이징의 특징적인 뒷골목, 후퉁 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은 동일한 장소가 사람에 따라 어떻게 인식되고

(胡同)

활용되는가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특히 전통적인 장소를 보존하거나 개발하는 방식이 다르게 나타나는데 이런 과정들 을 추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퉁은 다양한 종족과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진 매력적인 장소이다.

도시 전통 주거문화 잘 보여줘 문화대혁명때 '항진붕' 영구화 市, 역사문화도시 만들기 진행 새로운 건축 대체 문제점 제기

베이징 후퉁은 원나라 때부터 형성되기 시작해 오늘날까지도 그 큰 틀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언어학자인 쟝칭창

(張

에 따르면 후퉁은 몽고어 ‘xutok’, 즉 우물 에서 파생된 말이다.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출판한 ‘현대한어사전

淸常)

(水井)

(

’에 후퉁은 ‘작은 골목길’이라고 설명되어 있고, 중국의 백과사전 격인 ‘사해 ’에는 ‘원나라 사람들이

現代漢語辭典)

(辭海)

골목을 후퉁이라고 지칭했다’고 되어 있다. 후퉁은 현대 베이징의 2차 순환도로 내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베이징의 전통적인 주거문화를 잘 보여 준다. 전통 건축인 사합원 이 일렬로 늘어 서 있고 그 사이에 형성된 통로가 바로 후

(四合院)

퉁, 즉 뒷골목인 것이다. 이들은 각기 베이징이라는 도시 공간의 세포와 신경이다. 왜냐하면 베이징은 거대한 사합원이 라고 할 수 있는 자금성 과 더불어 수많은 사합원과 후퉁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紫禁城)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 베이징의 구시가지와 기존의 주민거주구역에는 대규모의 변화가 일어났다. 베이징 의 옛 성벽과 성문이 대부분 철거되었기 때문이다. 천안문광장이 웅장한 자태로 건설되었고 장안대가

가 확장되

(長安大街)

었으며, 공장·학교·상점·기관·호텔 등과 같은 공용시설이 대규모로 건설되기 시작했다. 또한 인구의 증가로 인하여 주거공간은 더욱 부족해졌다. 이때부터 사합원 안의 정원과 같은 여유 공간에는 가건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현대화 과

정에서 후퉁은 이미 베이징의 발전과 건설에서 '천덕꾸러기'가 되고 말았다.

42쪽

문화대혁명 시기는 베이징의 후퉁 과 사합원의 공간이 가장 치명적으로 훼손되는 기간이었다. 1960년대 홍 위병 들은 사합원의 각종 조각

(紅衛兵)

품과 문양 그리고 예술품들을 마구잡 이로 훼손하였을 뿐만 아니라 평범 한 인민들의 전통적인 문화체계 또 한 마음껏 유린하였다. 설상가상으 로 1976년에는 베이징 근처의 당산 에서 대지진이 발생하게 된다. 이때 지진에 대비하기 위해 이미 복

(唐山)

잡해지기 시작한 사합원의 공간 안에 많은 ‘항진붕 ’이 들어서게 된다. 이때 만들어진 ‘항진붕'들은 계속되는 인구의 증가로 인해 가건물에서 영구적

(抗震棚)

인 건물이 되고 말았다.

1980년대 이후, 베이징 후퉁에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통과 과거에 대한 향수를 지닌 화교 들과 개

(華僑)

혁개방의 과정에서 부를 획득한 중국인들이 낡은 사합원을 사들여 그것을 허물어 새로운 사합원을 짓기 시작한 것이다. 1990년대에 들어서서는 베이징에 장기 거주하는 외국인 중에도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는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러한 과정에서 ‘대잡원 ’이 되어 버린 사합원의 거주자들은 베이징 교외의 허름한 집 한 채 구입할 자금도 안 되

(大雜院)

는 보상금을 받고 이주를 강요받았다.

2000년대 와서 베이징 후퉁은 소위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베이징시

(市)

차원에서 ‘역사문화도시’ 다시 만들기의 일환으로 공표된 ‘보호계획’은 현 재진행형이다. 하지만 방법론에서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바로 오래된 집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전통 건 축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새로운 공간은 의도와는 달리 죽은 공 간으로 변모할 수 있다. 그 속에 살던 사람이 흔적들이 사라지고 공허한 건축 만이 남아 있는 식이다. 베이징 역사문화도시 프로젝트가 성공하기 위해서 는 후퉁을 화석화된 박물관으로 만드는 데 힘을 소비할 것이 아니라, 지역 주 민의 활기가 느껴지는 장소로 재탄생시키는 데 주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공동시민강좌(2023. 5. 4) 강의 내용으로, 영남일보에 게재되었습니다.

최경호 ┃영남대박물관 학예연구원·문화인류학 박사

43쪽

연구소 성과 7-4

"지역사회 역사, 연구자·주민이 함께 살펴보고 후세대에 전달해야"

9강 : 지역사회 역사, 연구자·주민이 함께 살펴보고 후세대에 전달해야

일본에서 교토는 ‘고도’ ‘문화수도’ 등으로 평가받는 관광도시이다. 2023년 4월 현재 코로나19 이전을 연상케 하는 국내외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또 교토의 각 대학에는 ‘교토학’ 강좌가 설치되어 다수의 학생이 배운다. 나는 2006년 부터 교토학 수업을 담당하며 연구와 교육 현장에 관여해 왔다.

일반적으로 이미지화되는 ‘교토학’은 교토의 전통예능·전통공예, 의식문화의 성립, 사찰이나 시가지가 즐비한 독특 한 경관, 혹은 기온마쓰리나 아오이마쓰리 등 오랜 역사를 지닌 제례 등 독특한 지역문화에 대한 문화사적 연구이다. 한 편으로는 근현대 교토의 정치운동이나 사회문제의 실태를 해명하고 장래의 거리조성을 전망하는 연구도 많다. 역사학, 지리학, 사회학, 건축학, 문학, 미술사, 인류학과 같은 연구방법이 확립된 인문학 분야의 기법에 따라 연구자가 각각의 문 제의식에서 자료를 수집하여 구체적 대상에 접근하는 연구 등이며, 단일적인 ‘교토학’이라는 것은 아직 없다. 이외에도 ‘에도학’ ‘도호쿠학’이라는 지역학도 있지만, 독자적인 방법론을 구축하려는 의지가 명료한 것은 많지 않다.

日 문화수도 교토 지역 이미지 역사학이 밝히는 실상과 달라 단편적인 지식 익히는 것 지양

한 문학연구자는 ‘교토학’을 ‘생활의 일부’ ‘역사지식’ ‘지역봉사’ ‘독자적 학문영역’ 등 4가지로 분류했다. 학생들 은 이 자유로움을 보고 교토라는 역사의 장에 관한 소박하고 다양한 흥미를 살린 연구를 할 수 있다고 느끼고 있다. 그 렇다면 ‘교토학’ 연구는 학생들이 지역사회를 마주하며 하루하루 얻고 있는 실감과 그 일의 역사적 의미에 대한 설명을 연결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단순히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단편적인 지식을 익히는 것만으로는 현대사회에 넘쳐 나는 ‘교토'를 둘러싼 불확실한 언설의 바다로 흘러갈 뿐이다.

나는 대학 강의에서 도시로서의 긴 역사, 기온마쓰리 등의 제례나 전통 산업, 하나마치의 화려한 ‘문화의 수도’라고

44쪽

하는 일반적인 교토 이미지와 역사학이 실증적으로 밝히고 있는 실상과의 격차를 다룬다. 고아와 들개가 서성거리고 사 취가 감도는 헤이안쿄, 니시진오리와 시미즈야키를 지탱하는 다수의 외국인 직공, 난징을 침공해 필리핀에서 전멸한 교 토 출신 육군 병사들 등 실제 역사를 알 때 관광도시 ‘고도’상은 교토의 극히 일부를 강조한 허상임을 실감할 수 있다.

현대사회에 공유되어 소비되는 ‘교토의 역사’란 후세의 역사관에 기초한 사료해석을 집성하여 만들어진 이미지로 사 료를 남긴 주체, 시대나 연구자, 학문 분야가 다르면 역사상 자체도 바뀐다. 1천200년 동안 수도였던 교토에는 다양한

로 만들어 나갈 것인가.

결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

이미지가 쌓여 지금에 이르고 있으므로 이를 자각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비 로소 일견 자료로 보이지 않는 신문기사 스크랩, 사찰 범종이나 길가 초석에 적힌 명문, 수백 년 지속되는 지역 풍습, 전쟁 중 체험 증언, 유젠염색의 종이 본이나 대장 등 지역에 오래 존재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지역의 역사자료’ 의 가치를 알 수 있다. 이러한 생생한 역사의 기억을 어떻게 발굴해 공공재

지역사회가 걸어온 역사에 대해 연구자와 주민이 함께 살펴보고 이야기 를 듣고 기억하며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일상적인 문화운동을 구축할 필요 가 있다. 이 실천적 지역학이야말로 폐색된 현재의 인문학을 다시 사회로 연

*이 글은 공동시민강좌(2023. 5. 11) 강의 내용으로, 영남일보에 게재되었습니다.

다나카 사토시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문학부 교수

45쪽

연구소 성과 7-5

"문화적 동질성 가진 동아시아 도시와 교류해 지방소멸 극복하자"

10강 : 문화적 동질성 가진 동아시아 도시와 교류해 지방소멸 극복하자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이 큰 화두다. 수도권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고, 정치인들은 필요할 때만 적당히 레토릭을 쓴 다. 갈라치기가 유행인가 보다. 수도권 집중은 수도권 사람들 문제이고, 지방 소멸은 지방 사람들 몫이 되어버렸다. 그러 니 아무도 믿지 말고 우리가 우리 지역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혁신도시부터 국가공단까지, 정부가 지자체가 정치인이 시도한 무수한 지방 살리기는 모두 실패했음을 인정하자. 지방 소멸에 가속도만 붙었다. ‘지방에 살아보니 못 살겠더라’ 라는 경험사례만 더 보탰다. 가시적 성과나 즉시적 효과에만 초점을 맞춘 정치적 계획, 물리적 지원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지역의 시민이 주체가 아니라, 대상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도시혁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시민이 주도하는 우 리 지역 살리기 ‘운동’이 필요하다. 우선 문화적 동질성을 가진 동아시아의 도시들과 접속해보자. 그리고 상호의 고민 과 관심사를 공유하는 시민을 연결하자. 이러한 과정 자체가 지역을 재발견하고 지역민의 마음을 재정립하는 에너지가 될 것이다. 메가시티의 물리적 질량에 맞서 동아시아 도시의 문화적 정신과 이야기를 연결하고 재구성해 보자는 것이 다. 효과나 성과에 연연할 필요 없이 생각하는 대로, 내키는 대로 접속하고 연결해 보자는 것이다. ‘리좀’식으로 말이다.

경주·시안·교토 도시 정체성 오랜 교류로 전통·개성 가져 시민 주도로 지역 재인식해야

그 속에서 우리 지역의 정체성을 새롭게 인식하게 될 것이고, 자랑스러워하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이곳에 살고 싶 어질지도, 나아가 살기를 권하고 싶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우리의 접속과 연결은 효과나 성과 같은 수량 단어나, 실패와 성공 같은 포폄 단어로 형용할 필요가 없다. ‘접속과 연결’ 자체가 우리 스스로 펄럭이는 작은 날갯짓이고

(褒貶)

또 그 자체가 우리 삶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국가에, 자본에, 권력에 매몰되지 않는 소소한 문화적 삶이야말로 ‘서울의 삶’이 흉내 낼 수 없는 우리의 삶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동아시아 도시에 주목하는 이유이다. 세계적으로 천년 수도는 다섯 곳에 불과하다고 한다. 유럽의

46쪽

로마와 이스탄불, 동아시아의 시안과 교토, 그리 고 우리 지역의 경주이다. 동아시아의 천년 고도 경주, 시안, 교토는 이처럼 한·중·일 삼국의 역 사와 문화를 대변하는 도시이다.

경주는 기원전 57년 박혁거세를 시작으로 935년 경순왕까지 992년간 이어진 신라의 수도 였다. 시안은 서주 부터 당 나라 시기까지

(西周)

(唐)

1천100년간 13개 왕조의 수도였다. 교토 역시 헤이안 시대부터 도쿄 천도까지 1천75년 동안 일본의 수도였다. 세 도시는 역사와 전통을 고스

란히 간직하고 있으며, 도시 전체가 유적지이다. 동아시아적 동질성에다 나름의 개성과 특징을 가진 세 도시의 정체성은 오랜 역사와 문화의 상호 교류로써 형성되었다. 세 도시의 현재 모습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비슷한 면은 오랜 교류와 영향에서 비롯되었고, 다른 것은 도시 발전과 근대화 과정에서의 서로 다른 방향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세 도시를 대하는 우리의 느낌은 친밀하면서도 신선하고, 익 숙하면서도 낯설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어릴 때 친구를 다시 만난 것 같기도 하다. 지난 추억도 함께 나누고 싶고 살 아온 과정이 궁금하기도 하다.

철들 무렵부터 세 친구는 서로가 서로를 키웠다. 세 친구가 가장 친했던 시기, 즉 전성기만 보아도 추억거리가 많다. 아 명이 서라벌, 장안 , 헤이안쿄 이다. 장안성을 모델로 한 계획도시인 것도 공통점이다. 서라벌의 아버지는 삼

(長安)

(平安京)

국을 통일하고 찬란한 황금 문화를 꽃피운 신라였다. 장안의 아버지는 11명이나 되지만 그 가운데 당나라가 제일이었 다. 장안성은 인구 100만이 넘는 세계 최고의 국제도시였다. 이리저리 떠돌다가 자기 집을 가진 것처럼 헤이안쿄 시대 부터 일본 고유의 고쿠후 문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여왕의 추억도 공유한다. 서라벌에는 선덕여왕, 장

(國風)

안에는 측천무후, 헤이안쿄에는 스이코여왕이 최고 통치자의 자리에 있었다. 이들은 동아시아적 편견을 무너뜨린 의미 있는 여성 지도자들이었다.

진다. 그리고 설렌다.

세 도시를 오고간 수많은 사람, 그들이 실어 나른 수많은 생각과 솜씨들 이 역사와 문화, 유적으로 남았다. 이 세 도시를 관통하는 공동의 문화콘텐 츠를 바탕으로 ‘동아시아 천년고도’ 문화거리나 테마파크 같은 것을 조성해 보면 좋겠다. 경주의 황리단길, 시안의 대당불야성 거리, 교토의 기온 거리 에 세 도시의 영화를 재연하고 연결하는 문화표지판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황룡사 9층 목탑, 자은사 대안탑, 도지 5층 목탑을 한곳에 모아 이야기를 연 결하면 멋지지 않을까. 선덕여왕, 측천무후, 스이코여왕을 접속하여 동아시 아 여성 지도자를 톺아보면 서양 사람들도 깜짝 놀라지 않을까. 생각이 많아

*이 글은 공동시민강좌(2023. 5. 18) 강의 내용으로, 영남일보에 게재되었습니다.

권응상 교수┃대구대학교 문화예술학부

47쪽

연구소 성과 8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와 함께하는 2023년 고산인문아카데미

인문과학연구소

(소장 권응상)

는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소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대구 수성구립 고산도서관과 공동 주관하여 시민 인문강좌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지난해에 이어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와 함께하는 2023년 고산인 문아카데미”라는 타이틀로 진행된 이 프로그램은 11월 2일부터 11월 23일까지 매주 목요일 오후 2시에 대구 수성구립 고산도서관

(지하 1층 시청각실)

일본문화연구자

(대구대학교 일본어일본학과 허영

가 들려주는 교토 마쓰리, 동양철학자

은 교수) (대구대학교 성산교양대학 안효성 교수)

동아시아 놀이의 철학 세계, 지역축제 미디에 이터

(TBC 미디어광고사업팀 서명욱 국장)

는 대구 경북 축제 이야기, <대만산책> 저자 가 들려주는 대만의 마조

석대학교 중국어학 교수)

문화와 축제 등 동아시아 여러 지역의 축제와 문화에 관한 전문적이면서도 흥미진진한 강 연이 이어졌다.

매회 2시간 동안 진행된 강연에는 일본과 대만 등 국가 간의 문화 차이뿐 아니라 그 국 가와 개별 지역 간의 문화 차이나 특징, 그리 고 대구 경북 지역축제에 관한 지역민의 관심 과 염원을 담은 질문 등 동아시아 지역 문화에 관한 수강생들의 높은 관심도 뒤따랐다. 교토 마쓰리와 대만 마조 문화에 대한 질문과 함께 이 지역을 여행할 경우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을 질문하는 한편, 대구 경북 지역의 여러 축제에 관한 시민들의 제언도 이어졌다.

에서 “호모 루덴스, 동아시아 도시의 놀이와 축제”라는 주제로 열렸다.

가 들려주는

가 들려주

(백

48쪽

이처럼,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와 함께 하는 고산인문아카데미는 도서관을 방문하는 여러 시민들의 호응 속에서 진행되었다. 이는 동아시아 도시 인문학을 아젠다로 하는 본 연 구소와 고선도서관이 공동으로 수년간 매년 상 하반기

에 지속적으로 운영하며 시민

(5월, 11월)

들의 관심과 성원에 호응한 결과라 하겠다.

고산도서관 서명혜 관장은 “수년간 지역 도 서관에 정기적으로 동아시아 지역 문화에 관한 연구성과를 지역주민과 함께 나누는 대구대학

교 인문과학연구소의 활동에 감사드리며, 앞으 로도 이러한 프로그램이 지속적으로 기획, 운 영되길 기대한다”며 소감을 밝혔다.

본 연구소는 연구 아젠다 ‘LMS-ACE 교육 과정 개발 및 인문교육 시스템 구축-철길로 이 야기하는 동아시아 도시인문학’을 바탕으로 다양한 학술 활동을 전개해나가고 있으며, 연 구성과를 지역주민, 학생 등을 대상으로 한 지 식 나눔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인문생태계에 환류하고 있다.

49쪽

1. 공연기획 기초의 이해에서는 무엇을 배우나요?

교과목 소개 1

공연기획 기초의 이해

이 교과목은 공연콘텐츠의 정의와 분류, 역사와 발전과정, 특성과 본질, 공연기획과 평가 등 전반에 대해 학습하는 교과목 입니다. 먼저, 공연예술 관련 개념 이해를 바탕으로 뮤지컬, 콘서트, 페스티벌, 연극, 무용, 클래식뮤직 등 공연 장르에 따른 기본 지식과 극장 의 기본 구조에 관한 기본지식을 학습합니다. 다음으로, 단순 지식을 넘어 공연예술의 감성적 영역

(시설)

인 엔터테인먼트 속성에 대해 관련 이론을 토대로 한 실제 사례를 통해 확인하는 과정을 진행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수 강생 스스로 관심분야의 공연콘텐츠를 바탕으로 기획서를 작성해 실제 현장과의 접목을 시도해 보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

2. 어떤 특징이 있나요? •공연기획 기초를 통한 공연콘텐츠 전반에 대한 이해

을 통해 공연예술과 관련산업 등에 대한 시야와 분석력을 높일 수 있게 됩니다.

문화예술학부 학생들에게 필수적인 공연예술관련 개념을 바탕으로 단순한 콘텐츠 수신자로서의 공연을 넘어 공연이 기획, 제작되는 방식과 그와 관련된 산업과의 연계 등 발신자적 차원의 공연콘텐츠에 관해 탐색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PBL(Project-Based Learning) 방식의 수업 : 공연콘텐츠 관련 현재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이슈나 최신 트렌드에 대해 자신만의 생각을 투영해 강의소재인 공연기획 기초를 바탕으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훈련합니다.

•조별 토론 및 발표, 질의응답 수업:본 수업은 이론강의를 바탕으 로 해당 분야 및 산업에 관해

(장르)

교수자와 학생, 학생과 학생 간의 소통과 협력을 통해 주제에 접근 하는 참여형 수업입니다.

3. 누가 수강하면 좋을까요? 공연예술에 관심이 있는 학생 • 단순 관객을 넘어 기획자로서 • 공연기획/제작의 과정에 대해 관

심이 있는 학생 문화콘텐츠 변화에 따른 콘텐츠 트렌드에 관심이 있는 학생 • 문화산업의 역할과 그 위상 등에 관심이 있는 학생 •

그림 1 공연장(극장)의 형태

50쪽

4. 주차별 강의 내용

4주

5주

6주

7주 8주

중간고사

9주 10주

11주

12주 13주 14주 15주

기말고사

공연기획 기초와 콘텐츠 기획 1 : 공연예술과 엔터테인먼트 1 - 공연의 본질과 핵심가치 공연기획 기초와 콘텐츠 기획 2 : 공연예술과 엔터테인먼트 2 - 쟁점으로 살펴본 공연콘텐츠

공연기획 기초의 주체 : 공연기획 실무 1 - 기획서의 구성과 공연기획 전략

공연기획 기초와 글로벌 문화산업 : 공연기획 실무 2 - 장르별 기획/제작의 특성 공연기획 기초의 변화 : 공연기획 실무 심화 1 - 공연 기획/제작 플로우 공연기획 기초 비즈니스의 이해 : 공연기획 실무 심화 2 - 공연예술의 트렌드와 이슈분석

공연기획 기초의 실제 1 : 공연기획 실무 심화 3 - 공연기획/제작의 사례분석 1 공연기획 기초의 실제 2 : 공연기획 실무 심화 3 - 공연기획/제작의 사례분석 2 공연기획 기초의 방향성 : 공연 엔터테인먼트 기획의 방향성

그림 2 공연장(극장) 무대의 형식

강의

강의 및 토론

강의 및 토론

강의

강의 강의

강의 및 토론

발표 및 토론 발표 및 토론 강의 및 토론

담당┃ 노창현 교수

51쪽

1. ‘문화예술과 미디에이터’에서는 무엇을 배우나요?

교과목 소개 2

문화예술과 미디에이터

• ‘문화예술과 미디에이터’ 과목은 전문지식과 실무역량을 고루 갖춘 매개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매개’는 양 쪽을 이어주고 중재한다는 뜻인데 영어로 미디에이션

•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거나 전면에 나서는 크리에이터

(mediation)

주고 지원자를 연결하는 등 다양한 매개를 실행하는 인력을 ‘미디에이터

’라 하죠.

(mediator)

(creator)

이라 합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창작자와 소비자를 이어

와 달리, 미디에이터는 창작자와 소비자 간의 연결을 촉진 하거나 구성원 간의 소통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국내 로컬 콘텐츠뿐만 아니라 해외 글로벌 문화예술에 있어서도 미디에이터의 매개 역할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 이 수업에서는 문화예술 및 콘텐츠 시장의 독특한 환경을 이해하기 위해 인문학과 타 학문을 연계한 창의적 융합교육을 실시합니다. 예비 미디에이터들의 기본소양을 기르는 동시에 산업적 가치 창출의 능력을 기르기 위함입니다. 이론과 실제 를 결합한 체계적인 교육을 거쳐 기획가, 교육자, 전략수립가, 재원조성가, 마케팅 전문가, 조직관리자, 프로그램 개발자, 프로젝트 매니저 등으로 활동할 수 있습니다.

2. 어떤 특징이 있나요? •문화예술 및 콘텐츠 분야의 구조에 대한 이해력 증진 : 문화예술과 문화콘텐츠 분야는 여러 주체들이 얽혀 있습니다. 창 작자가 있으면 그에 관심을 가지는 소비자가 있고 이를 돕기 위한 지원자도 있게 마련입니다. 미디에이터는 이 주체들 간 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서로에게 필요한 부분을 전달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맡습니다. •유연한 소통 능력과 창의적인 문제해결력 배양 : 여러 주체 간의 소통과 연결을 효과적으로 늘리려면 예상치 못한 상황

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순발력이 필요합니다. 또한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해답을 만들어내는 창의적인 문제해결 능력도 필 수적입니다. 이 수업은 토론과 실습을 통해 뛰어난 대처능력을 지닌 미디에이터들을 길러낼 것입니다. •트렌드를 읽고 활용하는 기획력과 분석력 훈련 : 미디에이터는 문화예술 작가도 아니고 콘텐츠 크리에이터도 아니지만 그와 관련된 모든 요소들을 파악하고 이용하는 사람 입니다. 현재의 시장 상황을 읽어내고 앞으로의 트렌 드 변화를 예측하면서 소비자들이 원하는 문화예술 콘텐츠를 발굴하고 소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3. 누가 수강하면 좋을까요? • 문화예술 및 콘텐츠 분야에서 활동하고 싶은 학생 • 소통과 연결을 좋아하는 학생 • 사람들의 심리와 성향에 관심이 많은 학생 • 원활한 사회생활의 비결을 얻고 싶은 학생

52쪽

주차별 강의 내용

중간고사

9주 10주 11주 12주 13주 14주 15주

기말고사

지역전문가로서 미디에이터의 역할, 분야별 용어 이해하기 갈등 중재와 미디에이션, 대립 상황에서 합의 도출해내기 문화예술 콘텐츠 분석하기, 콘텐츠 큐레이션의 접목 개인별 사례 분석 및 발표 1 : 발표 피드백 및 토의 개인별 사례 분석 및 발표 2 : 발표 피드백 및 토의 개인별 사례 분석 및 발표 3 : 발표 피드백 및 토의

강의 및 실습 강의 및 실습 강의 및 실습 발표 및 토론 발표 및 토론 발표 및 토론

담당┃ 임동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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