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사람 2023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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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Autumn
도시 사람
와
Urban & Human
폭우와 폭염의 계절을 지내고 가을의 길목인 9월을 맞이하는 시간입니다. 흔히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쾌적한 기후 덕분에 산책과 여행이 더 어울리는 계절입니다. 이번에 발간한 <도시와 사람>은 세계 곳곳의 다양한 도시를 걸으며 그곳의 문화와 생활상을 깨쳐가는 이야기를 풍성하게 담았습니다.
칠레 산티아고 도시 기행에서 사랑과 절망을 노래한 시인 네루다의 흔적을 따라가 보고, 홍콩의 거리와 공원, 도서관과 시장을 걸으며 홍콩이라는 도시를 탐색해봅니다. 이러한 도시 산책은 그 장소에 대한 각자의 고유한 감응 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그것이 장소에 대한 사랑-토포폴리아 흥미롭습니다. 8월에 있었던 '동아시아 포용도시 네트워크
(Topophilia) (The East-Asian Inclusive Cities Network)
여 사회 구성원 모두를 끌어안는 포용도시 타이페이의 다양한 모색들을 알아봅니다.
를 이끌어낸다는 도시 산책자의 이야기도 ' 워크숍에 참가하
본 연구소는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소 2단계 사업을 시작하면서 지역의 다양한 기관과 연계하며 도시와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올해 3월에서 5월까지 진행된 ‘새로운 도시를 위한 시민 강좌’는 그러한 본 연구소의 새로운 시도라 하겠습니다. 우리 연구소와 대구경북학회, 영남일보가 공동으로 주최한 이번 시민강좌는 탈국가주의와 도시혁명을 모색하는 대구 경북 지역의 새로운 도시적 대안을 찾고자 기획되었습니다. 시민강좌 총 10개의 강연 중에 전반부 5개의 강연 주제를 <도시와 사람> 지면을 통해 간략하게 소개합니다. 시민들과 호응하는 강연장의 열기를 전달하기는 어렵지만, 새롭게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과 도전을 전합니다. 아울러 올 하반기에는 본 연구소가 위치한 경산에서 공동시민강좌를 진행하고자 하오니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이와 함께, 연구소에서 진행한 다양한 행사와 함께 연구소에서 개발 및 운영하는 교과목 등을 소개합니다. 일 본 리츠메이칸대학 문학부 다나카 사토시 교수를 모시고 진행한 해외 전문가 초청 특강 <아주 특별한 지역학>은 고도의 이미지를 넘어 새로운 교토학을 추구하는 교토의 사례를 흥미진진하게 다루었습니다. 영화감독 박문칠 교수 초청 <시네마 포럼>을 비롯하여, 본 연구소와 인문콘텐츠학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국내 학술대회 소식도 전합 니다. 또한 2023년 2학기에 개설되는 교과목 <K-Contents의 이해>, <동아시아 항도 인문기행>을 소개하고, 동아 시아 항도인문기행> 교과 활동사례로 학생의 글을 함께 실었습니다.
이번 <도시와 사람>은 본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활동들을 더욱 풍성하게 담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그 너머, 동아시아 여러 도시들과 연결되는 상상이 지금보다 더 살만한 삶터를 꾸려나가게 할 것입니다. 본 연구소는 그러한 도시와 지역에 관한 다양한 모색과 탐색을 시도해나갈 것입니다. 모쪼록 여러분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응원을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23년 9월 1일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장 권응상
2023 Autumn
CONTENTS
02 소개말/인사말 03 목차 칠레 산티아고 04 권응상의 도시기행┃ 걸으면서 발견하는 홍콩의 얼굴 11 류영하의 홍콩 산책 1┃ 장소의 영혼 19 권상구의 도시관상학┃ 여름만큼 뜨거웠던 타이베이의 포용력 22 도시답사기┃ 공동시민강좌 1강 : 4차 산업혁명인가, 도시혁명인가 28 연구소 행사 1-1┃ 공동시민강좌 2강 : 국가주의 너머: 도시혁명과 지역학 30 연구소 행사 1-2┃ 공동시민강좌 3강 : 대구! 새로운 하이브리드 도시공간을 열다 32 연구소 행사 1-3┃ 공동시민강좌 4강 : 도시와 대학-해외사례를 중심으로 34 연구소 행사 1-4┃ 공동시민강좌 5강 : 이상하고 낯선, 만남과 마주침의 도시 36 연구소 행사 1-5┃ 아주 특별한 지역학 - 리츠메이칸 대학의 교토학 38 연구소 행사 2┃ 시네마포럼 40 연구소 행사 3┃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학술대회 개최 41 연구소 행사 4┃ K-Contents의 이해 43 교과목 소개 1┃ 동아시아 항도 인문기행 45 교과목 소개 2┃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추억 영화 '화양연화' 46 교과 연계 활동-도시 영화 보고서┃
도시와 사람
발행일┃2023년 9월 1일 발행인┃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장 권응상 발행기관┃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경북 경산시 진량읍 대구대로 201 인문대학 교수연구동 인문과학연구소(3103호) Tel. 053) 850-5821 Fax. 053) 850-5824 http://ihs.daegu.ac.kr
권응상의 도시기행
네루다의 ‘사랑의 시와 절망의 노래’
칠레 산티아고
펄떡이는 사람이 그립다. 문정희가 노래했듯 “싱싱하게 몸부림치는, 가물치처럼 온 몸을 던져오는”(「다시 남자를 위하 여」) 그런 사람 말이다. 네루다를 다시 펼친다. 파블로 네루다! 온갖 영욕이 뒤범벅된 사랑과 욕망의 화신, 한 나라의 상징이자 역사가 된 인물.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콜롬비아의 마르케스는 “어떤 언어로 보나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다.”라고 했다. 그의 시가 태어난 칠 레로 간다. 칠레는 세상에서 가장 길고 날씬한 나라이다. 남위 18도에서 56도까지 뻗친 남북의 길이는 무려 4,329km이다. 반면 태평양과 안데스산맥 사이의 동서 폭은 175km에 불과하다. 그래서 칠레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사막은 물론 얼음으 로 뒤덮인 극지방까지 모두 품고 있다. 이 날씬한 나라의 수도가 산티아고이다. 칠레 중앙부 해발 450~650m의 고지대 에 위치한 산티아고는 1541년 에스파냐의 정복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지진과 홍수, 대화재 등 파괴와 재건을 거듭 하면서 오늘날 남미의 대표 도시로 성장하였다. 산티아고로 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 투어를 마치고 칠레 최북단 국경 마을 산페드로데아타
산티아고 대성당
네루다가 다녔던 칠레대학교
카마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인기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주인공 도민준이 늘 그리워하던 아타카마 사막이 있는 마 을이다. 이곳에서 산티아고까지는 1,630km, 버스로 24시간을 가야 했다. 남미여행 자체가 늘 상상 이상의 경험을 안겨 주곤 했지만 24시간 버스 여행은 지레 겁부터 났다. 최면을 걸었다. 24시간 동안은 이 버스가 호텔이다. 아예 잠자기 편한 복장으로 버스에 올랐다. 어라? 나쁘지 않은데! 화장실이 딸린 커다란 2층 버스는 우리 우등고속버스처럼 좌석도 편했다. 게다가 와인을 곁들인 기내식(?)까지. 포만감에다 알코올까지 가세하자 일순 긴장이 풀렸다. 그제야 버스 안의 풍경이 눈 에 들어왔다. 주변 승객들과 가볍게 눈인사도 주고받았다. 갑자기 이 버스가 정겨워졌다. 칠흑 같은 밤거리를 관통하는 차 창 너머로 간혹 점처럼 묻어있는 불빛들을 좇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한참 만에 눈을 뜨니 다시 승무원이 식사 서 비스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12시간을 더 달렸다. 그렇게 내 생애 가장 길었던 버스 여행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끝이 났다. 산티아고에서의 첫 밤을 느긋하게 보내고, 다음 날 일찍 칠레대학교를 찾았다. 네루다가 시를 빚었던 곳이다. 네루다의 초기 두 시집이 이 대학 재학 시절에 발표되었다. 네루다는 1904년 칠레 남부 국경 마을 파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가난한 노동자였고,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네루다가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되어 죽고 만다. 2년 뒤 가족은 남부의 새로운 땅 테무코에 자리 잡았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재혼했고, 네루다는 계모를 친어머니처럼 따랐다. 그는 10세에 시를 쓰기 시작했고, 12세 때 칠레의 저명한 시인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마치고 대학 입학을 위해 산티아고로 갔다.
(남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를 만나 문학적 소양을 다졌다. 그리고 1921년 중등과정을
그는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칼날처럼 비쩍 마른 나는 1921년 3월 시인의 필수품인 검은 양복에 양철 트렁크 를 손에 들고 야간열차 삼등칸에 올라탔다. 열차는 하루 밤낮을 꼬박 달려서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 소개장을 들고 마루리 거리 513번지 자취 집을 찾아갔다. …… 잔혹한 수줍음에 시달리던 나는 시(詩)에서 피난처를 찾았다. 매일 시를 두 편 이상 썼다.” 그는 교사가 되고자 사범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공부보다는 창작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낯선 도시 산
티아고에서 시를 피난처로 삼았던 네루다는 1923년 첫 시집 <황혼 일기>를 발표하여 문학계를 놀라게 하였다. 이 시집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당시 네루다가 우르러보았던 칠레 시인 페드로 프라도는 “확신컨대, 나는 이 땅에서 그 나이에 그 만한 높이에 다다른 시인을 따로 알지 못한다”라고 칭송했다. 1년 만에 두 번째 시집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1924)가 나왔다. 그는 “이 시집은 산티아고의 로 맨스이다. 학생들이 다니는 거리, 대학, 인동덩굴의 향기가 묻어있다. …… 산티아고 부분은 에차우렌 거리와 에스파냐 거 리 사이에서, 즉 낡은 사범대 건물 안에서 썼다.”라고 했다. 산티아고 대학 시절의 사랑과 욕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 시집은 평생 그의 시와 삶의 화두가 되는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그의 사랑은 도발적이고 관능적이며, 때로 고독과 죽음 이 변주된 쓸쓸한 애조를 띠고 있다. 이 시집은 고향에서 만난 소녀 테레사와 산티아고에서 사귄 친구 누나 알베르티나를 동시에 사랑하면서 쓴 욕망과 고통의 산물이다. 그는 “이 시집에 등장하는 여자가 누구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다. 이 우울하고 열정 적인 시집에 등장하는 두세 명의 여자 이름을 편의상 마리솔과 마리솜브라라고 해두자. 마리솔은 무수한 별과 테무코의
젖은 하늘처럼 검은 눈을 가진 매력적인 시골 처녀이다. 명랑하고 생기 넘치는 모습은 산 위로 떠 오른 반달이나 항구의 물결과 함께 시집 전편에 걸쳐 나타난다. 마리솜브라는 산티아고 학생이다. 또한 회색 베레모이고 부드러운 눈길이며, 학 창 시절의 연애 편력에 스며든 인동덩굴 향기이자, 도회지 은밀한 곳에서 열정적인 해후를 나눈 뒤 찾아드는 육체적 평화 이다.”라고 했다. 마리솜의 문자적 의미는 ‘바다와 태양’이고 마리솜브라는 ‘바다와 어둠’이다. 전자는 고향 테무코의 소 녀 테레사이고, 후자는 산티아고 학생 알베르티나일 것이다.
아르마스 광장. 왼쪽이 산티아고 대성당, 중앙에 보이는 건물이 중앙우체국, 옆의 첨탑 건물은 국립역사박물관이다.
대통령 집무실이자 관저인 모네다 궁
수많은 ‘마리솜브라’가 들락거리는 ‘낡은 사범대 건물’ 사이에서 ‘시인의 망토’를 걸친 청년 네루다를 만날 것도 같았 다. 퇴적된 시간의 더미 사이로 불쑥 튀어나와 말을 걸 것도 같았다. ‘잔혹한 수줍음’에 시달렸던 네루다의 “미지의 바다 는 바로 산티아고 시내였다. 그동안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오래된 대학 건물과 쓸쓸한 자취 집만 오갔기 때문에 시내를 돌아다녀 본 적이 거의 없었다.”고 고백했다. 수줍은 시골 청년 네루다를 데리고 ‘산티아고 시내’ 아르마스 광장으로 가본다. 산티아고의 중심이자 관광지가 몰려 있는 곳이다. 역사적 명소인 산티아고 대성당, 산티아고 중앙우체국, 산티아고 최고법원이었던 칠레 국립역사박물관, 대 통령 관저인 모네다 궁을 비롯하여 산티아고의 관공서와 옛 시의회 건물 등으로 에워싸여 있다. 거리와 광장 곳곳에 둥근
이 광장을 광장답게 만드는 것은 정복자 와 원주민의 두 상징물이다. 1541년 원주 민들을 몰아내고 산티아고를 세운 정복자 발디비아 장군의 기마상과 원주민 마푸체 족 독립운동 지도자의 석상 알론소 라우타 로 석상이 그것이다. 정복자의 동상과 정 복자에 맞선 원주민 전사의 동상이 공존 하는 이곳이야말로 오늘날 산티아고의 역 사를 그대로 증거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 집무실이자 관저인 모네다 궁은 민주적 선거로 당선되었던 네루다의 정치 동료 아옌데 대통령이 피노체트 쿠데타 세
원이 피어있다. 길거리 공연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사람 꽃’이었다.
아르마스 광장의 원주민 전사 알론소 라우타로 석상
알론소 라우타로 석상을 배경으로 힙합 공연을 하는 젊은이와 관객들
력에 끝까지 저항하다가 폭격으로 사망한 곳이기도 하다. 피노체트 정권이 무러난 후 궁의 남쪽에 시민광장이 만들어졌고, 광장 지하 벙커는 문화센터로 개조되어 개 방되고 있다. 이렇게 민주화는 건물의 성 격과 주인을 바꾸어놓았다. 광장 동쪽 산타루시아 언덕에 있는 칠레 국립도서관은 남미 최고의 도서관으로 손 꼽힌다. 1813년에 개관한 이 도서관은 시 민의 힘으로 최고의 도서관을 만들었다는 자랑스러운 역사를 갖고 있다. 칠레가 중
남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브리엘 라 미스트랄을 배출하고, 네루다라는 위대 한 시인을 낳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광장 북쪽의 산티아고 중앙시장은 각종 농산물은 물론, 긴 해안선을 가진 수산물 강국답게 생선을 판매하는 곳이 특히 많았다. 이곳에서 네루다가 즐겨 먹었다는 칼디요 데 콩그리오로 점심을 먹었다. 콩그리오가 붕장어이니, 감자와 토마토 를 넣은 붕장어탕인 셈이다. 광장 동북쪽으로 마포초 강을 건너 네루다의 집이 있는 산크리스토발 언덕으로 향했다. 언덕 초입에 있는 네루다의 집 은 ‘라 차스코나
’라는 명패
(La Chascona)
를 달고 있다. 케추아어로 ‘헝클어진 머 리’라는 뜻이란다. 이 집은 네루다의 애 인 마틸데 우루티아와 살림을 차렸던 곳 이다. 마틸데의 풍성한 머리숱 때문에 이 런 별명을 붙였다. 집을 보면 그 사람도 보인다. 네루다는 바다를 좋아해서 집을 배처럼 꾸몄다. 정 원도 문 앞에 물이 찰랑이는 것처럼 보이 도록 설계했다고 한다. 집안은 선실 같았 다. 유리창은 동그랗고, 식탁은 길고 좁 다. 벽도 선실의 느낌이 나도록 유선형으 로 장식했다. 네루다는 인생이 항해와 같 다고 생각했다. 그의 떠돌이 삶이 알려준 교훈일 것이다. 외교관으로서 여러 나라 에 거주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외국 망명 생활도 해야 했다. 그러고도 모 자라 끊임없이 여행하는 삶을 살았다. 망 망대해의 끝없는 항해 같은 인생길에서 마틸데는 그의 세 번째 부인이자 마지막
네루다의 집 ‘라 차스코나’
기억과 인권 박물관
동반자였다. 그의 시집 <100편의 사랑 소네트>는 마틸데에게 바친 헌사이다. 산티아고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기억과 인권 박물관’이었다. 이곳 역시 네루다의 기억이 담겨 있다. 네루다를 잘 이 해했던 스페인의 국민시인 로르카는 그를 ‘철학보다 죽음에 더 가깝고, 지성보다 고통에 더 가까우며, 잉크보다 피에 더 가까운’ 가장 위대한 라틴 아메리카 시인의 한 사람이라고 했다. 이처럼 네루다의 삶에는 사랑 못지않게 혁명이 관통하 고 있다. 1930년대 스페인 내전 당시 바르셀로나 영사로 있으면서 겪었던 그의 경험이 전환점이었다. 절친이었던 로르카는 재 판도 없이 처형되었고, 또 다른 동료 시인 미겔 에르난데스가 옥사하는 등 파시스트의 잔혹함을 직접 목도하였다. 귀국 후 그는 공산당에 입당하여 시인이자 혁명가로서 삶을 시작하였다. 네루다는 칠레 민중의 곁에서 함께 가슴 아파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의 펜은 총보다 강했고, 그는 칠레의 민주화를 상징하는 민중시인으로 우뚝 섰다. 그는 197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지만 “민중시인, 이것이 내가 받은 진짜 상이다.”라고 했다. 그는 “칠레는 변하고 있었다. 칠레 민중운동이 들끓어 올랐고, 학생과 작가들에게 강력한 지지를 호소했다. …… 그 시절부터 정치는 내 시와 삶의 일부를 차지했다. 시를 쓸 때 젊은 시인의 가슴을 적시는 사랑, 삶, 기쁨, 슬픔을 외면할 수 없듯이 나는 길거리 일 또한 외면할 수 없었다.”라고 하였다. 1973년 9월 11일 화창한 봄날에, 칠레 국영 라디오에서는 “지금 산티아고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는 엉터리 일기예보 를 반복했다. 이 멘트는 쿠데타 작전개시를 알리는 암호였다. 칠레 정부의 국유화 조치로 구리광산을 빼앗긴 군인 피노 체트가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전투기로 대통령궁을 폭격했다. 선거로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정권을 열었던 아옌데 정 권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암 투병 중이던 네루다는 병상에서도 격렬하게 항의하는 시를 쓰다가 쿠데타 발발 열이틀 뒤 에 세상을 떠났다. 칠레 국민도 침묵하지만은 않았다. 네루다의 장례식에는 피노체트의 통행금지 명령에도 불구하고 수천 명의 시민이 모 여들었다. 칠레 군사독재정권 최초의 시민 항거였다. 빅토르 하라는 노래로써 자유를 소리 높여 외쳤다. 그는 5천여 군중 이 지켜보는 운동장에서 개머리판으로 손목이 으스러진 채 총살당했다. 남편과 두 아들, 며느리를 잃은 아나 곤잘레스는
산티아고 대성당 내부. 천장의 성화가 특히 아름답다.
독재정권의 진상을 세계에 알린 ‘실종-구금자 가족연대(AFDD)’를 만들어 끝까지 저항했다. 죽을 수조차 없었던 그녀는 300여 건의 국가범죄로 기소됐지만 2006년 91세로 사망한 피노체트가 죽은 후에야 눈을 감았다. 17년간의 피노체트 독재정권 동안 칠레에서는 수많은 실종자와 사망자, 고문 피해자가 생겨났다. 이 ‘기억과 인권 박 물관’은 이러한 칠레의 어두운 역사를 ‘기억’하고 ‘인권’을 역설하는 곳이다. 3개 층에 걸쳐 법적 서류, 신문 스크랩, 사 진, 편지, 단편 영화, 라디오 방송과 시청각 자료로 구성한 다양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피노체트의 모네다 궁 폭격 소 식을 전하는 뉴스, 아옌데 대통령의 마지막 연설, 강제수용소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 폭행당하는 시민과 독재에 항거하는 시민 등 전시물 하나하나가 모두 분노와 탄식을 끌어낸다. 특히 ‘양심의 형태’라는 알프레도 야르의 작품은 이런 감정들 을 한꺼번에 모아놓은 것 같았다. 벽면 전체에 500여 명의 사진이 흐릿하게 전시되어 있는데, 이들은 독재정권 17년 동 안 칠레에서 실종된 시민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시」)라고 노래했듯이 네루다는 어디서 온
것인지도 모르는 시를 통하여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며 칠레의 역사가 되었다.
참고문헌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 박병규 옮김, 민음사, 2008.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파블로 네루다, 정현종 옮김, 2017, 민음사. <네루다 시선>, 파블로 네루다, 정현종 옮김, 2020, 민음사.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우석균 옮김, 2022, 민음사. <정현종 시인의 사유가 깃든 네루다 시 여행>, 정현종, 2015, 문학판.
권응상 교수┃대구대학교 인문대학 문화예술학부 *이 글은 <월간 국토> 2023년 2월호에 실렸습니다.
류영하의 홍콩 산책 1
걸으면서 발견하는 홍콩의 얼굴
도심의 오아시스, 빅토리아공원 (維多利亞公園)
홍콩에 가면 꼭 봐야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아파트의 현관문이다. 쇠로 만든 창살로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홍콩 아파 트의 현관문은 이중으로 되어 있는데, 바깥쪽의 문이 철창으로 되어 있다. 그 문을 여닫는 소리는 영화에 나오는 감옥 문 의 철커덩하는 그것과 똑같다. 그렇게 아파트의 현관을 들고날 때마다 철창문 소리를 들어야 한다. 지금도 그 문소리는 내게 트라우마인가 보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막막했던 유학 시절의 아픔을 떠올리게 된다. 중국에서 홍콩으로 이민 온 어떤 작가는 홍콩에 막 도착해서 그 소리를 듣자 그냥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현관문을 두 개 그것도 하나는 철창으로 해야 안심이 된다는 것은 불안하고 각박한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리라. 나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냥 한국식으로 현관문 하나를 달면 안 되는 것일까 하고 말이다. 아니, 사실은 걱정이 된다. 앞으로 우리 아파트 현관문이 홍콩을 흉내 내어 철문으로 바뀌는 것이 아닌가 하고. 게다가 한 뼘의 공간 없이 연달아 빼곡히 붙은 빌딩들은 보는 사람들에게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홍콩에 도착하면 나 는 바로 긴장하게 된다. 거대한 콘크리트 숲에 갇 힌 느낌이 들면서, 조금의 간격도 없이 늘어선 초 고층 아파트 숲이 큰 스트레스를 준다. 게다가 아 파트 현관의 쇠창살문 여닫는 소리를 상상하게 만 들기에 더욱 그렇다. 또 하나는 도시의 특징이겠지만, 홍콩 전체가 콘 크리트로 도포되어 있다. 큰 길, 작은 길, 동네 골 목 나아가서 학교의 운동장조차 콘크리트로 되어 있다. 이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우리의 가슴은 답 답해진다. 흙 땅은 어디 가서 밟아보아야 하는가?
이렇게 삭막한 환경 속에서 오아시스 역할을 성 실하게 담당하고 있는 것이 공원이다. 특히 홍콩 의 도심에서 만나는 공원은 달디 단 생명수 같은 느낌을 준다. 어떻게 보면 홍콩이라는 콘크리트 도시가 미안한 마음에 홍콩의 시민들에게 선사하 는 선물로 보인다. 그만큼 홍콩의 공원은 가치 있 게 보인다.
홍콩에서 공원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것은 분명 한국에서의 공원과는 좀 다른 차원이 다. 우선 홍콩의 일반적인 주거공간을 주목해야 한 다. 왜냐하면 한국과 홍콩 아파트의 넓이가 다르다. 물론 홍콩에도 넓은 아파트가 있지만, 홍콩인들은 한 국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매우 좁은 아파트에 살고 있 다. 일반 서민의 아파트로 들어서는 순간 바로 답답 함을 느끼게 된다. 나아가서 그 좁은 공간에 일가족 여러 명이 생활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답답한 마음은 바로 불편한 마음으로 바뀐다.
또 하나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아파트의 밀집 정도와 초고층이라는 점이다. 이런 정도의 거리인데 어떻게 건축허가가 나올까할 정도 로 아파트와 아파트는 마주하고 있다. 이쪽 아파트 에서 저쪽 아파트의 거실 텔레비전 화면을 볼수있을 정도이고, 주방에서 만드는 음식 냄새가 우리 아 파트로 넘어 올만큼 가깝다. 그런 거리에 4-50층 되 는 높이의 아파트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 글의 독자들도 벌써 답답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 당연히 한국의 공원과 홍콩의 그것은 가치가 다르다. 홍콩 사람들은 그렇게 집에 들어가기도 곤란하고, 계속 걸어 다니기도 곤란할 때 공원으로 간다. 답답한 마음을 잠시라도 풀어준다는 점에서 홍콩 공원의 값어치는 매우 높 다고 하겠다. 일반적으로 매우 좁은 아파트나 아파트 숲이 자리 잡은 면적에 비해 홍콩의 공원은 넓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공 원을 중시하는 영국적 전통이며, 식민지 영국이 남긴 장점이라고 칭송되기도 한다.
구룡공원(Kowloon Park 九龍公園) 은 아편전쟁 당시 중국군의 요충지로서 포대가 있었다. 1861년 영국군이 점 령한 이후 영국군의 주둔지였는데, 1970년에 군대가 시민에게 돌려 준 케이스이다. 영국군의 막사 건물은 리모델링되 어 지금의 ‘홍콩문물박물관’이 되었다. 식민지를 경영하기 위해서는 군대가 중요하기에, 군대는 교통이 가장 편리한 곳 에 터를 잡는다. 시내 요지의 군대 주둔지를 시민에게 돌려준다는 관용은 사회가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는 뜻이 아닐까? 이제는 어느 정도 긴장을 풀어도 된다는 군대의 판단과 양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점에서, 1970년이라는 시점은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홍콩 경제의 규모가 비약적으로 성장한 홍콩 사회의 전환기였다. 구룡반도의 최대 번화가인 ‘침사 추이(尖沙咀)’에서 한적한 곳으로 도망가고 싶다면, 구룡공원이 가장 적절한 곳이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관광객이나 쇼 핑객들의 흐름에서 벗어나서 구룡공원으로 들어가 보면, 공원 안팎의 대비를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 공원 밖의 소란함에 비하면, 공원 안은 매우 조용하여 별천지 같다. 백조원에서는 38개 품종이나 되는 새를 볼 수 있는데, 특히 홍학떼의 재롱이 볼만하다.
홍콩섬의 홍콩공원(Hong Kong Park,香港公園) 은 비교적 최근인 1991년에 개장하여 홍콩 도심의 허파 구실 을 톡톡히 하고 있다. 홍콩은 도심의 금싸라기 같은 공간을 아파트촌으로 만들지 않고, 숲이 우거진 공원으로 만드는 힘
이 있다. 도심의 비좁고 비탈진 땅을 이용하여 아름다운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곳이다. 홍콩섬의 최대 쇼핑몰인 ‘퍼시픽 플레이스(太古廣場)’와 연결되어 있다. 쇼핑하다가 지치면 지하 음식 코너에서 먹거리와 음료수 를 사가지고 공원에 살짝 가보아도 좋겠다. 온갖 열대 식물로 가득한 식물관과 무려 90 종이 넘는 새들이 살고 있는 조류관이 유명하다. 특히 홍콩공원 내의 ‘다구박물관(茶具博物館)’은 건물이라는 하드웨어나 그 안의 매점에서 파는 다구 등의 소프트웨 어 모두가 한번 둘러볼 만하다. 차와 다구를 파는 매점은 그 종류에 있어 내가 아는 한 최고의 장소다. 건물은 식민지 시 대 영국군 사령관의 저택인데, 식민지 시대 특징적인 건축물 중의 하나라고 한다.
빅토리아 공원(Victoria Park, 維多利亞公園) 은 홍콩에서 가장 크다. 바다 매립 사업의 성공적인 모델이다. 홍콩정부는 홍콩이 산지가 많고 평지가 적기에 바다 매립으로 토지를 확보하는 정책을 줄곧 유지하고 있는데, 매립 역사는 오래되어 중국으로부터 할양받은 다음 해인 1842년부터 시작되었다. 빅토리
아 항구의 이쪽저쪽이 모두 매립지이다. 매립지가 이미 홍콩 총면적의 7%를 차지한다니, 150년 전의 지도와 완전히 달 라졌다고 할 수 있겠다. 빅토리아 공원은 1955년에 개장되었는데, 공원에는 축구장, 농구코트, 테니스코트, 수영장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특히 정문에는 전성기 영국을 상징하는 빅토리아 여왕
(1837-1901 재위)
동상이 자리 잡고 있는데, 한번 주목해 볼만하다. 태평양전쟁 막바지 전쟁물자 마련에 일본정부가 얼마나 다급했던지 녹여서 총알을 만들고자 동상을 일본으로 운반해 갔 다. ‘간신히’ 살아남은 여왕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노라면, 식민지 역사와 전쟁의 아픔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다.
빅토리아 공원
홍콩에 가면 먼저 제일 좋아하는 소고기면 식당에 가서 면을 한 그릇 맛보고 일정을 시작한다. 시간 여유가 되면 코즈 銅鑼灣 )의 최대 마트인 웰컴(惠康)으로 이동하여 한국에서는 맛보기 힘든 두리안을 사고, 빅토리아 공원 남쪽 웨이베이( 입구 쪽의 벤치에 앉아 천천히 두리안을 음미하면서
(그렇게 맛있는 과일을 왜 호텔에서는 못 먹게 하는 걸까)
, 몰려드는 비둘기 떼와 오고가는 행인들을 구경한다. 빅토리아 공원에 갔다면, 정문 바로 앞에 있는 홍콩중앙도서관 내부를 꼭 한번 둘러보기를 권한다. 도심에 왜 도서관이 필요한지, 도서관이 시민들에게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지를 볼 수 있다. 나는 도심 그것도 시민들이 접근하기 가장 편안한 곳에 공원을 만들고, 도서관을 지었다는 사실이 홍콩식 근대화의 장 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국의 모든 먹자골목에 도서관이 생기는 날을 꿈꾼다. 우리와는 다른 도서관 문화를 느낄 수 있다. 한국의 도서관이 무겁고 엄숙한 분위기를 연출한다면, 홍콩의 도서관은 무언가 조금 더 가벼운듯한 매력을 보여 준다. 나는 도서관에는 책을 들고 편하게 뒹굴뒹굴할 수 있는 방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도서관은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홍콩중앙도서관의 도
서 분류방식도 재미있다. 지나가면서 홍콩시민들이 무슨 책을 보고 있는지에 주목하기도 한다. 그들의 취미와 관심사를 알 수 있고, 젊은이들의 취업 고민도 엿볼 수 있다.
모든 신의 미팅 포인트, 문무묘 (文武廟)
그렇다면 홍콩인이 중국인이라는 문화적인 증거는 무엇일까?
홍콩인의 대다수는 혈통적인 측면에서는 물론 문화적으로도 중국인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그것을 홍콩의 전통 사원에서 본다. 종교를 보면 홍콩인은 중국인이 분명하다. 홍콩인의 대 다수는 불교와 도교 신자이다. 홍콩 사이드의 골동품 거리로 유명한 할리우드 로드(荷李活道)로 가보자. 홍콩의 대표적 인 전통 사찰인 문무묘가 그곳에 있다.
문무묘(文武廟)는 글자 그대로 문신(文 神)과 무신(武神) 즉 문창제(文昌帝)와 관 성제(關聖帝)를 모시는 사원이다. 문제는 붓을 잡고 있고, 무제는 큰 칼을 쥐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신들의 전공 분야를 알 수 있다. 문제는 시험, 학문, 승진 등을 관장하 는 신이고, 무제는 정의와 재물을 관장하는 신이다. 문제는 원래 문창성(文昌星)이라는 문운과 공명 그리고 관록을 주관하는 별자 리를 말하고. 무제는 이 세상에서 싸움을 제 일 잘하는 전쟁의 신 관우(關羽)를 말한다. 그러니까 시험을 앞둔 수험생이나 학부 모들이 매달리는 신이 문제이고, 전쟁 같은
문무묘
사회생활 특히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무제인 관우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 알다시피 관우의 상은 사업하는 사람들의 방 이나, 회사 로비에 이미 모셔져 있기에 반드시 문무묘까지 와서 인사를 드릴 필요는 없다. 문무묘에 발 디딜 틈이 없다 면, 아마도 수능 같은 대학 입시가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이 무섭고 치열한 경쟁은 언제쯤 끝날까)
할리우드 로드에 있는 문무묘
을수록 또 짙을수록 좋은 것이다.
무엇 말이다.
라는 것이다.
인 것을 볼 수 있다.
실히 증명해준다.
를 발견한다.
처 없이 어슬렁거리는 것조차 상품 판매에 이용한다고.
는 역사와 전통으로 볼 때, 영험하다고 소문이 나서 특히 인기가 많다. 중국인들의 사원에 가면 그들이 사용하는 향의 크기가 한국인의 상상 을 초월한다. 중국인들은 그 향의 연기가 기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하 늘로 데리고 올라가서 신들에게 전달한다고 생각한다. 향의 연기가 많
이런 점이 한국과는 다른 문화 차이 아닐까? 틀린 것이 아닌 다른 그
중국 사원의 특징은 모든 신들을 모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로 다양한 신들이 모셔져 있다. 대다수 사원에는 동아시아에서 언급 되는 모든 신이 한 자리에 모여져 있다. 어떤 학자들은 중국에는 종교
가 없다고 한다. 서양의 종교가 매우 분명한 정체성을 나타내고 또 요 구한다면, 중국의 종교는 더할 나위 없이 느슨한 하나의 문화 현상이
실제로 중국이나 대만의 사원에 가보면, 바다의 안녕을 다스리는 마 媽祖 )부터 불교의 관세음보살, 도교의 중요한 신인 관우, 유교의 교 조( 주 공자(孔子), 충신 악비(岳飛), 대대로 돈을 잘 번 투자의 귀재들을 재물 신으로 모시고 있고, 심지어 토지 신에 용왕 신까지 한 자리에 모
푸코는 고전주의 시대를 대감금의 시대로 규정했는데, 그 말은 중국 사원에서는 적용될 수 없을 듯하다. 다름 아닌 대해방의 공간이다. 그 런 점에서 홍콩의 사원은 홍콩의 문화적 뿌리가 중국과 닿아 있음을 여
아름다운 쇼핑의 본보기, 퍼시픽 플레이스(太古廣場)
아마도 홍콩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산책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들 어서게 되는 곳이 쇼핑센터일 것이다. 그것은 소비자의 요구에 응하 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도시 홍콩의 뚜렷한 특징이다. 쇼핑센터가 매 우 많다. 도시 면적과 도로 면적이 좁아 공간 효율성을 극대화하다 보 니 건물들이 거의 연결되어 있는데, 대부분이 지하철에서부터 자동으 로 연결된다. 지하철에서 내려 아무 생각 없이 따라 걷다가, 진동하는 향수의 향에 정신을 번쩍 차려보면, 어느새 백화점 로비에 서 있는 나
홍콩식 첨단 자본주의의 결과일 것이고, 또 도시 홍콩이라는 특수성 이 만들어 낸 결과이겠다. 나도 모르게 쇼핑 공간으로 연결된다. 벤야민 은 19세기 파리라는 대도시의 비인간적 성격을 비판했다. 백화점은 정
퍼시픽 플레이스
문제는 내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자꾸 쇼핑 공간에 노출된다는 점이다. 소비를 조장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화려한 공간 에 전시되어 있는 좋은 제품을 보면 내 소유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리라. 명품을 파는 것만큼 효과적면서 수월한 수입원도 드물 테니까. 하지만 그것을 매일 바라보는 우리는 어떤가? 좋은 구경도 한 두 번이지, 하루에 몇 번 씩 쇼핑 공간을 지나게 되면, 나의 두뇌는 나 를 자극하게 된다. 그것을 소유하지 못한 나 는 상대적으로 더욱 초라하게 되고, 꼭 필요 하지는 않는데, 그냥 사야만 할 것 같은 욕 구가 나도 모르게 솟구치게 되는 구조라고 나 할까.
게다가 세일(SALE)의 힘은 또 어떤가? 한국에서는 쳐다보지도 못할 가격의 물건 이 홍콩에서는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안 그래도 관세가 없는 지역이라 저렴한데, 1년 에 두 번씩 정기 세일은 착실하게 한다. 90% 까지 세일하는 그 정성 그리고 정품을 세일 하는 그 정직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기도 한다. 좋은 제품 싸게 파는 곳이 어디 그렇게 많은가?
사실 홍콩은 무관세 지역으로서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상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최선의 지역이다. 홍콩정부는 관세를 일찌감치 포기함으로써, 가격적으로 우위를 차지하는 동시에 거래의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었다. 알다시피 영국 이 일치감치 홍콩에 주목한 이유는 그것의 지리적 위치 때문이다. 지도를 보면 중국과 동남아 그리고 한반도와 일본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나아가서 태평양으로 바로 진입할 수 있는 교통 장점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게다가 홍콩에서 생산되는 자원은 전무 하다시피 하니까, 지리적 우세를 최대한 살리는 중계무역만이 살길이라 여기 고, 수출입에 관세와 일체의 부가세를 부과하지 않는 정책을 채택한 것이다. 무관세 정책이야말로 오늘날의 홍콩을 탄생 시킨 주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술, 담배, 메틸알코올, 생물 연료(바이오 디젤) 등 네 가지는 관세를 내야 한다. 지금 생각해보더라도 태어나서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한국산만 강요받아 온 젊은이의 눈에 홍콩은 놀라웠다. 다양 한 상품을 처음 보았을 때의 경외감을 잊을 수가 없다. 아, 이곳은 사람에게 이렇게 많은 선택의 기회를 주는구나. 이렇게 많은 물건 중에서 내가 직접 고를 수 있구나 하는 마음이 오 히려 어색하게 다가왔다.
침사추이 ‘하버시티(海港城)’는 규모면에서 전 세계 최대 라고 한다. 침사추이에서 사람들 로 따라가다 보면 ‘하버시티’나 ‘오션터미널’로 들어가게 된다. 아니 침사추이 지역 전체가 쇼핑센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의 모든 명품 브랜드가 총출동하여 열띤 경 쟁을 펼치고 있는 경기장 같다. 쇼핑하면서 길을 잃어버리는 경험을 ‘하버시티’에서 할 수 있다. 인파에 묻혀서 왔다갔다
이 흘러가는 대
(사실 중국인들)
침사추이 전철역 표지
하다보면, 그저 한시바삐 탈출하고 싶은데, 그때부 터 미로에서 출구 찾기를 해야 한다.
홍콩 냄새가 풀풀 나는 거리를 걷고 싶다면? 몽 콕(旺角)으로 가야한다. 홍콩이 왜 세계 최고의 인구밀도라는 악명으로 유명한 지 알 수 있다. 밀물처럼 다가오고, 썰물처 럼 멀어지는 사람들과 사람들의 질서가 잘 유지되 고 있는 것도 신기하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는 무슨 장사를 해야 하는지도, 한국의 화장품이나 의 류 회사가 왜 반드시 이 곳에서 론칭 행사를 하는
지도 알 수 있다. 또 홍콩의 서민들이 왜 이 동네를 좋아하는지를 알게 된다. 深水埗 ) 지역과 연결된 몽콕은 사실 삼수이포(
홍콩의 빈민가로 통하는데, 낡고 오래된 건물들이 즐비하다. 임대료가 가장 싼 최악의 거주 공간 즉 시신이 들어가는 관처럼 생긴 방 또는 새장처럼 철 조망으로 만든 방 등 홍콩식 첨단 자본주의의 부끄 러운 일면을 보여주는 곳이다. 몽콕은 번잡하다. 하지만 편하다. 서민들의 해방 구라는 느낌이 든다. 2014년에 일어난 ‘우산 운동’ 당시 시민들은 홍콩섬의 센트럴(中環)과 구룡 반도의 몽콕(旺角)
몽콕거리 서점, 한국화장품 가게 광고 등
간선도로를 점령했다. 그런데 당국이 시위 지도자들의 보석 조건으로 몽콕 지역에 대한 출입금지를 지시한 것만 보아도 이 지역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홍콩을 대표하는 야시장인 여인가(女人街)가 몽콕에 있다.
조금 더 여유 있는 쇼핑을 즐기고 싶다면, 애드미럴티(金鐘)의 퍼시픽 플레이스(太古廣場)를 추천한다. 1988년 오픈 된 그 곳에서의 쇼핑은 마치 아름다운 공원을 산책하는 느낌이다. 벌써 40년 전에 이런 쇼핑센터를 지을 수 있었다는 점 이 세계 쇼핑문화를 주도한다는 홍콩의 저력이 아닐까? 지금까지도 전 세계를 통틀어 이렇게 쾌적한 쇼핑센터를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홍콩의 퍼시픽 플레이스는 쇼핑센터 의 모범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을 최대한 배려한 공간 배치와 편안한 동선은 홍콩이 왜 쇼핑의 천국인지 알게 해 준다. 고객을 왕으로 대우한다는 서비스정신의 구현은 어디에서 시작되어야 할까? 나는 고객들을 위한 넉넉한 공간이라고 생각하는데, 퍼시픽 플레이스의 넓은 복도를 보면 그 답이 보인다. 주위의 사무 빌딩들과 자연스러운 연결이 돋보이고 특 히 도심의 홍콩공원과 에스컬레이트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좀 새롭고 특이한 쇼핑 공간을 보고 싶다면? 그럼 PMQ(元創方)로 가야 한다. 볼거리가 다양하다. 쇼핑센터라기보다는 그냥 아기자기한 작품이 전시된 전시 공간으로 보인다. PMQ는 독창적인 문화 예술 공간이라는
부제가 붙는 곳이다. 센트럴 소호 거리에 위치 하고 있는데, 홍콩의 디자이너를 양성하기 위 한 그리고 창조적인 기업인을 위한 공간이다. 1백 명이 넘는 창업자들이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다고 한다. 자신의 작품을 자랑하면서 판매 하는 공간인데, 홍보 팸플릿에는 역사문화유 산, 쇼핑, 음식, 창조성을 전시하는 무대 등으 로 소개되고 있다. 미래 홍콩 디자인의 방향이나 수준을 가늠 해 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쇼핑 공간이기에 내 가 친구들에게 자주 추천하는 공간이다.
홍콩 문화산업의 대표적인 자랑거리이다. 오래된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리모델링한 것
PMQ
만해도 존경할만한데다, 다시 문화 창의 산업을 선도하는 공간으로 거듭난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홍콩 재래시장 한 곳 정도는 가보는 것이 좋겠다. 어디서나 마찬가지로 재래시장은 현지인의 생활상을 보여준다. 나는 여행하면서 재래시장을
먹는 것과 입는 것을 보면 다 보는 것 아닌가?
반드시 찾아가보는 편인데, 그곳에서 현지인의 생생한 삶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계 다른 곳의 재래시장이 여러 가지 이유로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홍콩도 마찬가지다. 홍콩의 재래시장은 1950년대부터 위생문제를 이유로 폐쇄되기 시작했고, 실내 시장으로 바뀌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筲箕灣 )의 동대가(東大街), 코즈웨이 홍콩의 대표적인 큰 시장으로는 노스포인트(北角)의 춘앙가(春秧街)와 소기만( 銅鑼灣 )의 백덕신가(百德新街)를 들 수 있다. 물론 전문 시장도 있는데, 센트럴(中環)의 린드허스트 테라스( 베이( 街 )는 성탄절이나 설날 파티용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고, 상환(上環)의 해미가(海味街)는 녹용인삼 등의 약재와 건어물
摆花
로 유명하다. 꽃 시장인 플라워 마켓 로드(旺角花墟), 금붕어 시장인 금어가(金魚街), 여자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있 다는 여인가(女人街), 세계적으로 유명한 야시장인 템플 스트리트(廟街)도 있다.
끝으로 재래시장도 있고, 쇼핑센터도 있고, 바다도 보이고, 카페도 있고, 맛집도 있는 곳을 원한다면? 스탠리 마켓(赤 柱市場)으로 가야 한다. 스탠리는 홍콩에서 가장 경비가 삼엄한 감옥이 있는 곳이다. 아름다운 경치는 인성을 순화시키
있다. 1991년에 센트럴에서 이 곳으로 옮겨졌다.
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해할만하다. 해변에 150 여 개의 가게와 카페가 예쁘게 줄지어 있다. 특히 볼만한 것은 1884년 영국군 숙소 용도로 시내 요지인 센 트럴에 건축된 머레이 하우스(Murray House, 美利樓)이다. 홍콩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건물이다. 이제 센트럴에서는 볼 수 없고, 스탠리 마켓에서 관광객을 부르고
류영하 교수┃백석대학교 중국어학 전공 *이 글은 『홍콩 산책』 (류영하, 산지니, 2019)에서 수정, 발췌했습니다.
권상구의 도시관상학
장소의 영혼
우리가 사는 도시에는 아주 많은 장소들이 있다. 우리가 즐겨가는 카페에서 시작해 도서관, 학교, 시내, 오래된 상점 등 은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시간이 교차하여 중첩되는 곳이다. 나의 기억도 있지만 너가 이곳에 오지 않은 기억도 함께 존재한다.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구분 속에서 이 장소들에서 누군가와는 엇갈리거나 맞닥뜨리게 된다. 교차 하고 중첩되고 복합되어 앞으로, 뒤로 흘러가게 된다. 영화 ‘컨텐트’에서 시간은 직선이 아니고 순환하고 있다고 말한다.
장소는 인간에게 시간이라는 독특한 변수로 감응을 생성한다. 사진속의 날이 바로 이 날이다. 아주 오래된 병원, 정소 아과 앞에서 1950년대 본인의 기억을 이야기하는 김원일의 그 순간이다. 2010년, 즉 13년 전의 나는 그 순간 옆에서 듣 고 있었다. 「마당깊은집」 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본인이 죽을 뻔 했는데 정소아과 원장님이 살려주셨다는 이야기를 정필 수 원장의 아들과 나누고 있었다. 그날부터 정소아과 아담한 병원건물은 나에게 감정의 공간이 된다. 이 건물 앞을 지나 가면 이런 기억들이 피어오르며 나만의 감응을 하게 된다.
장소에 대한 감응은 고유한 나만의 것이다 낡은 건물이나 오래된 장소는 우리에게 감정을 준다. 구닥다리 불편한 느낌도 주며, ‘아 오래되었지만 기품이 있구나’ 라는 감정도 준다. 모두 ‘나’라고 하는 관찰자와 이 ‘장소’와의 1:1 감응이다. 그렇다고 타인도 다 동일하게 느끼지 않는 다. 본인이 특정 장소에 대해 느끼는 감응을 친구와 이야기하는 순간, 나는 이 친구와 같음을, 다름을 느끼게 된다. 장소
에 대한 감응은 고유한 나만의 것이라는 이야기다. 2001년 나는 이 건물을 그냥 외관으로 봤을 때, 뭔가 아우라가 보였다. 빛나는 순간들. 사람들이 얼마나 들락날락했으 면 저 사진속의 대문 문지방 돌이 뺀질뺀질했다. 고풍스러우면서도 낡아보이지 않는 이 느낌. 아 이곳은 사람이 사는 곳이 구나. 그것도 옛날 사람이 살겠구나. 사람이 안 살면 저렇게 부서진 곳 하나 없이 예쁠 수가 없는 건데 … 하면서 나혼자 생
각했다. 나는 골목투어를 만들어 시민들에게 이야기하고 다녔다. 내가 이 장소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을.
토포필리아, 장소에 대한 사랑 이푸투안은 바로 이 감정을 토포필리아
(Topophilia, 장소애)
라고 말한다. 장소에 대한 감정, 감응, 정서, 기억 등이라고 부 연설명할 수 있다. 이 주장의 전제 조건은 있다. 누구나 태어났기 때문에, 자신이 태어난 도시를 사랑하지는 않는다는 것 이다. 감정이 생기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지만 어머니와 바로 헤어졌다면,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제 로이며 어머니에 대한 감정도 제로다. 낳으신 어머니를 너무나 보고 싶기도 하고 또한 원수처럼 여길 수 도 있겠지만 만 나자마자 바로 사랑은 할 수 없다. 기억이 없기 때문에. 이러하듯 장소애도 ‘장소에 대한 기초적 지식’이 제공되어야, 이 곳이 어떤 곳인지 알아야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다. 유홍준 선생의 ‘아는 만큼 보인다, 아는 만큼 사랑한다’ 이 말도 같 은 말이다.
꾸부정한 원장님이 나오실 때 여쭤봤다. 시민들도 이 장소를 사랑해도 될까요? 원장님이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이 장 소에 대한 나의 사랑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이 순간. 이 순간은 내가 태어난 도시, 대구에 대한, 오래된 건축물에 대한, 꾸불꾸불 골목길에 대한 ‘기초적 지식’을 시민들과 공유하는 순간이다. 이 장소를 함께 사랑하자는 말이였다. 우리는 태
2010년 대구근대건축물 오픈하우스 정소아과
어난 지역과 또한 졸업한 학교에 대한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고 어른들한테 늘 잔소리를 많이 듣는다. 시대가 바뀌었다. 이제 21세기의 언어로, 더욱더 직관적인 언어로 우리의 세상을, 역사를, 도시를 이야기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넉넉지 않은 조건 속에서도 꾸준히 지역을 연구해오는 향토사학회의 고생이 있었다고 해서, 우리가 태어난 지역을 우리가 사랑 하게 되지는 않는다.
장소에 대한 시간여행은 가능하다
우리가 졸업한 초등학교를 방문하면 바로 이해된다. 학교가 변하지 않았으면, 학교가 작아졌다고 느낄 것이다. 학교가 운동장도 줄이고 신축건물로 변했다면, 우리는 흔적만 느낄 수 있다. 학교신축을 한 최근의 시간이, 사건이 공간감, 공감 감응, 장소감응이라고 하는 감응에 훼방을 놓게 된다. 우리의 유년기억을 지우고 새로운 그림이 그 위에 올라서있다는 말 이다.
그래서 이 장소에 대한 시간감응은 우리의 본능이자 과학이다. 우리를 과거의 시간으로 보내는 장치가 바로 장소다. 그 래서 문화재법의 가장 중요한 보존룰은 ‘형상유지’인데, 얼굴이 바뀌지 않아야 우리가 알아볼 수 있다는 말이다. 그 시간 을. 오래되었다는 그 역사를 알아볼 수 있도록 말이다. 2023년 우린 이렇게 매일 매일 시간여행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도시는 이 도시의 시간을 경영하여야 하며 이 도시의 기억을 잘 보존해야 한다. 너무 자주 간판이 바뀌고 너무 자주 땅의 무늬가 바뀐다는 것은 사실 이 도시의 속도를 말한다. 상대성 이론에서 말하듯 공간을 시간으로 나누면 속도가 나오듯, 이 도시를 시간이라는 안경으로 들여다보면 이 도시의 속도가 나온다. 도시의 역사를 가르친다는 것은 바로 이 도시의 속도 컨트럴이였다. 천천히 모두를 잘 보듬고 함께 살아가는 도시는 모두 그러하기 때문이다.
권상구 ┃사)시간과공간연구소 이사
도시답사기
여름만큼 뜨거웠던 타이베이의 포용력
국제 워크숍에 참석하기 위해 대만을 찾았다. 중국 대륙의 남부에 위치해 있어 위도가 상당히 낮다. 서울에서 제주도까 지의 비행을 두 번이나 더 해야 할 만큼 거리가 멀다. 그나마 수도 타이베이(臺北)는 대만의 가장 북쪽에 위치해서 다행 이다. 두 시간 반의 여정으로 닿을 수 있다.
타이베이의 여름은 한국만큼 뜨겁다. 습도가 우리보다 높으니 그에 맞춰 불쾌지수도 올라가게 마련일 터. 그러나 시내 에서 걸어다닐 때는 예상 밖으로 쾌적했다. 어디서든 그늘이 반겨주기 때문이다. 트인 길에는 커다란 가로수가 제 크기 를 온전히 자랑한다. 서울은 횡단보도 앞에 일부러 파라솔을 설치해야 하지만, 타이베이에서는 수십 년 된 나무들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빌딩숲에 들어서도 인도가 1층 아케이드 안에 있어 햇볕에 상관없이 편하게 걸어다니도록 해놨다. 행 인을 문전박대하는 우리나라 대도시의 얌체 같은 빌딩들이 배워야 할 정책이다. 구도심이라 건물이 상당히 낡았지만 겉 모습만 화려하고 태도가 야멸찬 것보다는 느슨하고 푸근한 배려가 훨씬 낫지 않을까. 이런 느낌은 타이베이에 머무는 내 내 계속되었다.
여러 민족이 직조해온 대만의 역사 낡아 보이는 타이베이도 그 역사는 별로 오래되 지 않았다. 대만 섬에 중국인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 한 것은 명나라 때부터이며, 타이베이 구도심이 본 격 개발된 것은 1879년 성벽을 쌓으면서부터다. 그
러나 중국인이 아닌 다른 민족을 포함한다면 이야기 가 달라진다. 수천 년 전부터 살아온 원주민이 그 주 인공이다. ‘타이완(臺灣)’이라는 한자도 원주민 문 화가 기원이다. 대(臺)는 땅을 돋구었다는 뜻이고 만 (灣)은 내륙으로 움푹 들어온 바다다. ‘가까운 바다 에 솟은 섬’이라고 번역된다. 어울리는 이름이다. 그 런데 ‘타이완’은 원래 한자가 아니었다. 원주민 언 어를 중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남방 해양민족은 수만년 전 에 마다가스카르와 남인도를 거쳐 대만으로 이주해 왔다. 태평양 일대의 폴리네시아인들은 원래의 고 향을 ‘하와이’나 ‘하와이키’라 불렀다. 여기서 현
거리 곳곳의 아케이드
재 하와이 의 이름이 유래되었다. 그
(Hawaii)
런데 언어학과 고고학 연구자들이 파헤친 결과, 기원지로 여겨지는 고향 ‘하와이’는 타이완 섬이었다는 게 밝혀졌다. 대만 원주
민이 태평양 전체 민족의 선조격인 셈이다.
대만 전역의 높은 산속에 살기에 고산족 (高山族)이라 불리는 이들 원주민은 대만 섬의 남쪽에 있는 타이난(臺南) 지역을 중 심으로 삼았다.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이라 는 뜻으로 ‘타이(tay, 사람들)’+‘안(an, 장 소)’이라는 원주민 명칭을 붙였다. 이후 중
타이완에서의 다민족 이동경로
국 남부에서 넘어온 사람들은 사투리로 ‘타이(大, 많다)’+‘완(員, 사람)’이라 기록했다. 그러다 현재의 한자 ‘타이완(臺 灣, 台灣)’이 된 것이다. 대만은 중국인들만의 섬이 아니라 ‘폴리네시안(Polynesian)’이라 불리는 태평양 전체 원주민 들의 성지인 셈이다.
타이완 지형
태도가 나뉘게 되었다.
대만 섬의 원주민과 중국인은 평화롭게 지내는 것일까. 여기 얽힌 이야기는 복잡하다. 중국인들이 대만에 본격적 으로 진출한 것은 명나라 때 정부에 반기를 든 정성공(鄭成 功) 왕을 따라 본거지를 옮기면서다. 이들을 ‘내성인(內省 人)’이라 부른다. 내성인은 고산족 원주민과 사이좋게 지 내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1895년부터 50년 동안 이어 진 일제강점기 때 고산족은 무차별적인 학살을 당했다. 일 본 제국에 항거해 독립운동을 펼쳤다는 것이 이유다. 한편 平 으로 산에서 내려와 도시에서 동화되며 살았던 평포족( 埔族 ) 원주민은 크게 박해하지 않았다. 여기서 일본에 대한
원주민을 제외한 중국인 간의 차별도 존재한다. 일제에 서 해방된 후 중국 본토에서 공산당과 접전을 벌이던 국민 당 정부가 패퇴해 1949년 대만으로 근거지를 옮겼다. 이 를 따라 수십 만의 중국인들이 섬으로 밀려들었다. 이들을 ‘외성인(外省人)’이라 한다. 외성인은 자신들보다 몇 배나 많 은 내성인을 심하게 차별했다. 1947년 2월 27일에는 외성인 출신 경찰이 내성인 노점상을 단속하면서 폭력을 행사했고 이에 분개한 내성인들이 다음날인 2월 28일부터 전국적인 봉기를 일으켰다. 이것이 ‘얼얼바 사건(二二八事件)’이다.
이후 5월 16일까지 세 달도 안 되는 기간 동안 1만명 가량의 내성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래도 내성인들의 저항이 거 세지자 국민당 정부는 사과는커녕 1949년부터 1987년까지 무려 38년이나 계엄령을 이어갔다. 내성인들에 대한 차별 도 계속됐다. 영화 ‘비정성시(悲情城市)’의 어둡고 무기력한 분위기는 얼얼바 이후 내성인 마을의 상황을 보여주기도 했
다. 계엄령이 풀리고도 9년이나 더 지난 1996 년 2월 28일에야 타이베이 시내에 ‘얼얼바 평 화기념공원’이 만들어졌다. 가슴 아픈 역사를 돌아보는 대만 다크투어
(dark tour)
가 되었다.
적극적인 포용도시로 거듭나는 타이베이 이번 타이베이 답사의 목적은 ‘동아시아 포 용도시 네트워크
(EA-ICN)
숍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한국, 일본, 대만, 홍콩 등 4개국의 기관과 연구자와 활동가가 모인 시 민단체다. 도시 내 취약계층의 소외와 차별 문 제를 주거, 복지, 문화 등 다양한 시각으로 살펴
의 단골 코스
’가 마련한 국제 워크
얼얼바 평화기념공원
보는 국제 워크숍을 매년 개최한다. 4개국이 매년 돌아가면서 국제 워크샵을 여는데, 시민단체가 자발적으로 모인 느슨 한 조직임에도 12년째 지치지 않고 서로의 노하우를 소개하며 네트워킹을 강화해왔다. 모두를 품에 안는다는 의미로 유 네스코가 제안한 ‘포용도시
(inclusive city)
포용도시 워크숍
’는 선진국을 판가름하는 척도로 쓰이는 추세다. 내 집, 내 물건을 위해서라면
기를 북돋아주는 멋진 행사다.
공동체의 누구든 내치려 하는 우리나라는 어느 정 도의 포용성을 지니고 있을까. 매년 반성이 되고 용
3일에 걸쳐서 각국의 주택정책, 복지상황, 취약 계층 보호 노력 등의 사례를 공유했다. 오전에는 활동가들의 발표가 이어졌고 오후에는 현장답사를 진행했다. 첫 번째 답사지는 시내 중정기념관 바로 앞에 있는 ‘신룽(新隆)’ 아파트 단지의 재건축 사 무실이었다. 정부기관이 근처에 많으니 서울로 치 면 효자동쯤 되는 곳이다. 낡은 아파트 단지가 여 럿 있는데 오래 살아온 주민들이 많아서 끈끈한 공 동체를 유지해왔다. 그러다 건물 노후가 심각해서 2019년 검사를 했는데 바닷모래로 지었다는 사실 이 밝혀졌다. 재건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많은 상가가 영업을 포기했고 이사 나가는 사람 도 늘어났다. 여러 건설사가 재건축을 시도했으나 정부의 고도제한으로 진척이 부진했다. 인근 단지 는 강제 퇴거가 실시되기도 했다. 궁지에 몰리면서 지역 커뮤니티도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했다. 단지 의 명패가 부서졌는데도 고치질 않는 상태다. 그래
고온다습한 타이페이 시내
도 희망을 잃지 않고 협의를 계속하고 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하니 “앞으로 나와서 조언을 해달라” 한다. 그래 서 몇 가지 주의사항과 격려의 말을 전했다. 개인적으로 와서 “말씀 너무 감사하다”는 사람이 몇 있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인생은 풍랑을 헤치고 나가는 돛단배와 같다. 어디서든 연대
가 필요한 이유다.
(solidarity)
두 번째 답사지는 주택 위주의 도시개혁 시민단체인 ‘아워스(OURS)’의 본부다. 대만의 부동산 정책이 어떠한 허점을 가지고 있는지, 청년 주거를 위해 어떠한 시도가 필요가 있는지를 잘 알고 실천하는 조직이다. 4년 전 대만에 왔을 때도 열정적인 활동에 감탄했더랬다. 이번에는 타이베이 동남쪽 기슭으로 본부를 옮겨서 더욱 가열차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 다. ‘아워스’는 '도시재활조직
(The Organization of Urban Re-s)
'의 약자로, 현대 도시가 당면한 문제들을 재정의하고 재정 립하려는 시민단체다. 아워스는 ‘달팽이 활동(Snail Movement)’으로도 유명하다. 자기 집을 지고 다니는 달팽이처럼 “모든 이들이 최소 한 평의 공간을 가져야 한다“는 사회운동이다. 우리의 도시에는 자기 몸 하나 누일 공간도 없는 이들 이 얼마나 많은가.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우리나라에서 ‘민달팽이 유니온’이 창설되었다. 그만큼 오래 되었고 활발한 조직이다. 타이베 이 국회의원도 배출했기에 대만 내무부 관료들도 쩔쩔 맨다. 요즘은 '민관연계(合作)'를 통한 '공동주거(互住)' 프로젝트 를 시행 중이다. 서울도시주택공사(SH)처럼 아파트 단지의 일부를 확보해 청년임대주택으로 책임 운영한다. 공공에 해당 하는 제1섹터와 시민단체에 해당하는 제3섹터를 아우르는 거버넌스의 훌륭한 사례다.
‘아워스’와 함께 활동하는 또 다른 시민단체로 ‘대만푸드뱅크연합(ATF)’이 있다. “나눠 먹는 게 좋아요(愛分享)”라는 구호 아래 여러 곳에서 음식을 기부 받아 사회적 약자들에게 나눠준다. 농장, 마트, 가공공장에서 유통기한이 임박한 식 재료를 받아다가 도시락 수백 개를 만들어 도시 곳곳에 보급하고 있다. 약자도 보살피고, 정책의 빈틈도 채워주며, 동시 에 음식물쓰레기도 줄이는 복합적인 효과가 있다. 현대 도시에 꼭 필요한 시민단체다.
재소자들도 도시락 만들기 봉사에 참여해 매일 6백 개의 도시락을 만든다. 멤버들 간에 정이 넘쳐서 참여자들의 교화 효과가 굉장하다고 한다. 답사를 온 손님들에게 푸짐한 음식으로 환대해주었다. 거의 결혼식 수준이다. 너그럽고 풍족한
아워스(OURS)
환대에 다들 마음이 풀어지고 신이 났다. 자리마다 대화와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잔치집에 초대받은 기분이다. 영화 ‘바
민족과 계층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평화롭게 섞여 지내 는 나라 대만. 타이베이 시내에서도 이들의 포용성에 몇 번 놀란 경험이 있다. 대중교통에서 우왕좌왕하는 외국인 관광객을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기는커녕 혹시 불편한
것이 없나 살피고 배려해주는 시민들, 식탁에서 살짝 큰 목소리를 내자 주의를 주기보다는 탁자를 붙여서 편하게 대화하도록 도와주는 점원들, 말이 통하지 않음에도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손짓발짓으로 대화를 이어가려 노력 한 상점 주인과 숙소 담당자들 … 빠른 걸음걸이에 성마른 태도로 무장한 한국 사람들의 오랜 습관은 며칠 만에 무장 해제 당하고 말았다. 배려와 포용의 힘이다. 대만이 잃지 말아야 할 느슨하면서도 강력한 무기다.
임동욱 교수┃대구대학교 문화예술학부 겸임교수
베트의 만찬’에서도 그러지 않았나. 맛있고 배부른 식탁에서는 싸움이 나지 않는다고.
대만푸드뱅크연합(ATF)
1강 : 4차 산업혁명인가, 도시혁명인가
반에 밀려올 것임 을 직감한다.
기 어렵다.
연구소 성과 1-1
"산업혁명 관점서 볼 수 없었던 도시 노동자 삶을 시민이 논의"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사이버물리시스템(CPS), 빅데이 터, 메타 버스, 플랫폼과 같은 단어들 이 대중매체를 통해 쏟아지고 있다. 최근 대화형 로봇(GPT)이 호기심을 북돋웠던 것을 보면, 조만간 이러한 기술들이 생활전
그동안 코로나 팬데믹으로 위축되 었던 사회활동이 다시 활발해지면서 당 면한 경제침체에 대응할 대안이 필 요하게 되었고, 인공지능기술혁신이 그 대안이라는 점은 대체로 인정된 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과연 경제와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될지는 의문스 럽고, 인간의 삶의 질을 높여 줄지도 확신하
2016년 스위스 다보스포럼은 4차산 업혁명을 공식화하면서 일련의 기술 발전을 통해 극도의 자동화와 연결성 강화가 이루어지고 이에 따라 '모든것 이 연결되고자동화된 사회로의 진화' 를 예견했다. 이러한 4차 산업혁명 도 시공간에서 구현하기 위한 '스마트 도시' 계획이 촉진되고 있다. 스마트시 티는 '도시에 ICT, 빅데이터 등 신기 술을 접목 하여 각종 도시문제를 해결 하고,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도시 모델'로 정의된다. 하지만 초자동화 와 연결성의 인공지 능기술이 지배하 는 상황에서 '미래가치 지향의 사람 중심 도시'의 구현을 믿을수 있을까? 미래사회에 대한 진정한 믿음 을위 해 산업혁명이 아니라 도시혁명의 관 점이 요구된다. 도시혁명이란 프랑스 철학자, 도시학자인 르페브르가 제안 한 것으로 '성장과 산업화에 대한 이 슈가 지배적이었던 때부터 도시적 문제의식이 지배적이게 된 시기에 이르 는 변화과정' 을 의미한다. 도시혁명 이란 기존 사회의 급격한 전복이 아니 라 산업혁명처럼 우리의 삶과 사회공 간 전반에 걸친 장기 적 변화 과정을 뜻한다. 산업혁명 관점이 기술-에너지-산업의 고도화에 관심을 둔다면, 도시 혁명 관점은 인간의 삶도시자연의 변화에 관심을 둔다. 삶의 터전으로 서 도시는 역사적으로 기술혁신의원 동력이며 산업화의 묘판이었다. 도시 혁명의 관점에서 보면 산 업혁명의 관 점에서는 볼수없었던 도시 노동자의 삶과 자연환경의 황폐화과정이 눈에 들어온다. 4차 산업혁명에서 불명 확 한부분은산업구조 변화와 생산성 증 대 여부가 아니라 도시인의 삶과 자연 환경의 변화이다. 이러한 불확실성에 접근하기 위해 우리는 인공지능기술의 발전에 따라 작동할 사회공간적 모멘텀들이 도시 사회의 발
전에 미칠 영향을 이원적으 로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사회적 행위 와작동의 자동화 양식이 기능적 자율 인가, 인간적 자율 인가를 판단해야 한다. 또한 의사소통과 교류의 방식 이 단순한 사이버 기능적 소통인가, 인간적 대면적 소통인가를 살펴 보아 야 한다. 생산성의 증대에 따른 경제 부의 분배와 이용 방식이 대기업과 고기술노동자중심의 사적 유인 가, 아니면 사회적 공유인가를 논의 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 중심 미래사회 구현 위해 도시혁명 관점서도 방향 모색 인간 삶ㆍ도시ㆍ자연 변화 집중
이에 더하여 도시에서 삶의 양식과 도시인의 정체성이 인공지능기술에 획일적으로 예속될 것인가, 개인의 고유한 정체 성을 함양할 것인가도 숙 고해 볼 문제이다. 정보통신망의 초 연결성에 따른 도시 내부 및 도시 간 체계가 위계적으로 연 결될 것인가, 수평적 네트워크로 연결될 것인가도 고려해야 한다. 또한 도시의 자연환 경 이용과 관계에서 고밀도 이용과 자 연 지배로 나아갈지, 저밀도 이용과 공생적 관계로 나아갈지도 다시 검토 해 보아야할 과제다. 우리는 도시혁명을 통해 도시사회 로 나아가는 갈림길에 서 있다. 어느 쪽을 택할것인가는 우리가 도시를 어 떻게 이 해하고, 도시에 대해 권리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도시는 개발업자, 기업 또는 정부가 아니라 그곳에서 살 아가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도시인은 삶 의 터전인 도시의 발전 방향에 대해 논의하고 이를 실천할 권리를 가진 다. 도시사회에 자율, 소통, 공유, 차 이, 연결, 생태 등의 가치를 실현해야 할 주체는 인공지능기술이 아니라도 시에 서 살아가는 우리 자신이다.
*이 글은 공동시민강좌(2023. 3. 9) 강의 내용으로, 영남일보에 게재되었습니다.
최병두 교수┃대구대학교 명예교수
2강 : 국가주의 너머: 도시혁명과 지역학
선이다.
되었고 서울이야말로 국가 주의가 남겨놓은 '증상 고 할 수 있다.
연구소 성과 1-2
"지역학, 국가주의에 대항해야 동아시아 도시 연대 매개 필요"
도시혁명은 탈국가주의를 지향한 다. 20세기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 한 이데올로기는 국가주의였다. 한국 사회의 국가주의는 파시즘의 광기를 머금 었다. 도시혁명은 20세기 한국 사회의 국가주의를 가로질러 뛰어넘 는 탈주
20세기 한국사회가경험한 국가주 의는 도시적 직조와 '도시적인 것'을 파 시즘적 폭력을 통해 억압한 예외적인 상황의 결과물이다. 20세기에 달 성한 한국사회의 높은 경제적 성취는 '도시적인 것'의 유동성을 단단하게 응고시 켜서 획득한 편집병적인 성과 이다. 한국 사회에서 도시에서의 만 남과 마 주침을 가로막고 있는 다양한 분리와 장벽은 국가주의에서 비롯되 는 것이 다. 한국 사회에서 '도시적인 것'은 국가주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 한한 허용 '적 잔여물이라
(symptom)
국가주의에 대항하는 지역학은 국 가주의는 물론이고 그 증상으로서의 서울을 통해 억압된 '도시적인 것'을 복원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야한 다. 이를 위해서 한국 사회의 도시에 서 만남과 마주침을 통해 생성되는 일상을 복원시켜야한다. 도시혁명은 일상의 만남과 마주침을 가로막는 분 리와 장벽에 저항하는 새로운 주체를 형성하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가능 해 진다. 지역학은 탈국가주의의 임계지 점
(critical zone)
을 가로질러 관통 하는 욕망의 흐름을 생성하는 주체의 행위이다. 지역학연구는 향후 도래할 미래를 위한 학문의 성격이 강하다. 20세기 의 유산인 강고한 국가주의를 뛰어넘 어 21세기 도시혁명을 완수하기 위한 목적에 지역학이 기여해야 한다. 모 든 혁명은 도래할 미래를 나름의 방 식으로 설계한다. 지 역학이 설계하는 도시의 미래는 활발한 만남과 마주침 을 통해 순환적 생명의 리듬이 회복된 장소이다. 지역학이 퇴행적 부족주의의 강화 와 공동체의 집단적 기억에 대한 회 고를 통해 복고주의 방식으로 진행 되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20세기의 국가주의에 봉사하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지역학이 동원되거 나 활용되는 상황을 거부 해야 한다. 지역학이 국가주의에 대항하고 21세 기의 도시혁명을 통해 도래할 미래를 설계하고 전망하는 역할을 담당해 야 한다. 20세기 동아시아의 역사는 유럽 제 국주의의 동아시아 침략과 제2차 세 계대전 이후의 전 지구적 냉전의 스 케줄과 일
치한다. 20세기 방식의 제 국주의와 냉전은 후퇴하고 있지만 21세기 들어 새로운 형태의 국가주의 가 동아시아 지역에 서 강화되고 있 다. 20세기 방식의 허구적 이념이 동 아시아에 기형적으로 강화되는 현실 을 지역학은 비판적인 입장에 서 주목 해야한다.
21세기 새로운 형태 국가주의 동아시아 지역에서 특히 강화 일상적 만남 막는 장벽에 저항
지역학이 추구하는 리적 체계는 열린 체계이자 가변적인 체계이다. 리즘적 체계에서는 작고 부분적인 연 결이 이전과 는 전혀 다른 새로운 진화 의 방향으로 변화하도록 관계된 모든 주체들을 유도해낼 수 있다. 동아시 아도시 연대의 매개 로 지역학을 활용 할 필요가 있다. 21세기의 동아시아 에서 나타나고 있는 반역사적인 국가 주의의 부활에 대하여 동아 시아도시 연대를 구상하는 역할을 지역학이 시 대적 과제로 떠맡아야 한다. 지역학연구의 미래는 학제간연구 의 가능성에 달려 있다. 국가의 리듬 과 도시의 리듬은 다르다. 국가의 리 듬에 맞추 어 생산된 학문적 구획을 그 대로 차용하여 도시의 리듬을 연구하 적용하는 것은 성립 불가능한 일 는데 이다. 지역학 연 구는 기존의 학문체 계가 세워놓은분리와 장벽을 과감하 게 뚫고 가로지를 때 새로운 방법론으 로 주체적 성격을 내세 울 수 있다. 해러웨이가 선언하고 있는 것들 이, 즉 사람이 기계와 교섭하고 반려 종과 신체를 섞는 일이, 지역학 연구 의 차원에서 일어날 수 없을까. 도시 적 직조의 본질인 만남과 마주침을 기 존의 학문 경계를 넘어서 학제 간 방 식의 연구를 통해 실 현하는 일은 지역 학이 향후풀어나가야할 중요한 숙제 하나이다.
*이 글은 공동시민강좌(2023. 3. 16) 강의 내용으로, 영남일보에 게재되었습니다.
김영철 교수┃계명대학교 경제금융학과
시간성과 함께 장소성으로 되살아난다.
시, 대구는 얼마나 다양한 장소를 품고 있는가?
연구소 성과 1-3
"다양한 도시인프라 갖춘 대구… 도심 폐허는 미래도시 자양분"
3강 : 대구! 새로운 하이브리드 도시공간을 열다
도시는 일찍이 혁명의 시대를 거치면서 과거를 부정하고 새로움을 지향했 던 국가 주도의 개혁의 시대를 거쳐 여전히 미래를 좇아 달려가기를 강요받 고 있다. 도시발전의 허상을 좇아 개발의 칼날을 주저하지 않았기에 도시민 개인의 기억은 도시에서 사라지고 있다. 도시의 장소성은 개인이 장소에서 가지는 경험과 기억을 통하여 형성된다. 도시 삶의 기억이 저장된 공간에서
도시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노력은 오래전부터 도시별로 경주하고 있으며, 도시 이미지로서 단일한 이미지로 표현하기보다 도시의 다양성을 표출하기 위한 하이브리드한 정책들이 펼쳐지고 있다. 하이브리드 도시를 지향함에 있 어 선제적 조건이 도시가 지녀온 시간과 공간의 다양한 장소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전통의 역사성 위에 근대, 산업사회를 거쳐 현대도시를 사는 우리의 도
대구의 도시형성과정을 살펴보면, 1907년 대구 군수 박중양에 의해 강제철거되기까지 전통도시로서의 대구는 경상도 중앙의 지리적·전략적 요충지인 경상감영 주둔지로서 정치·행정의 도시, 관리와 상인 중심도시였으며 대구읍성을 중 심으로 감영의 관리들과 서문시장 및 약령시 등의 상인도시로서 읍성을 중심으로 서문으로는 성주, 고령, 현풍을 동문으 로는 영천, 팔공산 그리고 남문으로는 경산, 각북을 연결하는 교통과 교류의 거점 역할을 담당했던 도시이다.
읍성 철폐·대구역 건설 이후 전통도시 위에 근대도시 성장 차별화된 이중결합 구조 형성 기존 공간에 새 장소 만들어야
근대도시로서의 대구는 1894년의 동학운동과 청일전쟁이 몰고 온 일본군의 달성토성 주둔과 함께 1904년 한일의정 서에 따른 이사청이 설립되고, 경부선 철도 건설이 시작되면서 건설관계자 및 농민의 도시 유입으로 급격한 도시화가 시
게 된다.
(경북 김천)
양주)
의 내륙도시로 발전하게 된다.
작되었다. 1907년 대구읍성 철거를 기폭제로 일본인에 의해 대구역 과 북성로에 신흥상권이 형성되었으며, 서문시장과 읍성 남측에 조 선인이 상권을 이루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1899 년 4만4천801명에서 1912년 13만9천615명으로 급속도로 증가하
읍성 철폐와 대구역 건설은 전통도시에서 근대도시로의 대전환의 기폭제가 되었으며, 도시화에 따른 인구증가는 새로운 지도층을 형성 하게 된다. 새로운 문물과 신문화가 받아들여지면서 근대도시로서 교 역과 변화, 혁신의 도시로 탈바꿈하게 된다. 새로운 지도층으로서 외 부에서 유입된 서상돈 , 김광제
, 친일파 박중양
(충남 보령)
(경기
등의 정치지도층만이 아닌 종교, 예술, 문화인의 외부유입은 문 화적 역량의 척도가 된다. 근대도시 대구는 타 지역 사람의 이주를 수 용함으로써 타협과 변화를 통해 물류와 교류의 거점으로서 영남 최대
대구는 읍성이 철폐되고 인접하여 대구역이 건설되면서 경상감영을 중심으로 근대도시계획이 도심에 실현되면서 기존 의 전통도시구조 위에 근대도시가 계획되는 특징을 가진다. 신작로인 십자대로가 개설되면서 1909년 경상감영에 이사 청, 대구경찰서, 대구공소원, 대구우편국, 은행 등의 주요 시설이 도심에 건설됨으로써 다른 도시들과는 차별화된 이종결 합의 특이한 도시구조가 형성된다. 1900년 이전의 관리·교역중심도시 위에 근대철도와 근대도시가로가 형성되었으며, 이후 전쟁기에도 유일하게 도시 원형을 보존하였고, 1980년대까지 근대산업을 이끈 산업도시로 성장하였다.
새로운 도시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현재에 있어 대구는 역사성과 시간성의 축적에 따른 다양한 도시공간의 장소성을 지 닌 하이브리드한 도시 인프라를 갖춘 유일한 도시라 할 수 있다. 대구는 전통과 근대의 이종교합과 함께 근대도시 형성 과정에서 하이브리드로 태동된 도시였으며, 산업도시로의 성장과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인 이종교합과 함께 새로운 도시장소성을 만들어왔던 도시이다. 미래의 대구 도시는 어디로 갈 것인가? 새로운 도시혁명을 이룰 수 있는 대구의 정 체성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한 때이다. 도시혁명은 기억을 없애고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존재의 바탕 위 에 이종교배에 따른 새로운 장소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사라져가는 대구 도심의 폐허는 미래의 대구 도시를 만 들기 위한 자양분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은 공동시민강좌(2023. 3. 23) 강의 내용으로, 영남일보에 게재되었습니다.
도현학 교수┃영남대 건축학부
4강 : 도시와 대학-해외사례를 중심으로
로봇 뇌
(뉴로 컴퓨터)
지역대학이 맡도록 한 것이다.
연구소 성과 1-4
"고등교육 재정 늘려 지역 혁신… 시민들에 국제화·사회화 교육"
현재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 독일, 이스라엘, 일본 등 4개 국 가들은 대학을 혁신체계의 중심에 두고 있다. 사람의 뇌와 같은 기능을 하는 , 암 정복, 치매극복, 장애극복, 인간 생명연장, 바이오
(생체)
장기 복제, 개인 맞춤형 의약 개발, 컴퓨터 과학과 인공지능 , 데이터 사이
(AI)
언스, 양자 컴퓨터, 신재생에너지 연구, 디지털 인문학 연구 등을 대학을 중 심으로 진행하면서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대학을 중 요한 지역혁신기관으로 인식하고 있다. 전 세계가 네트워크로 연결되면서 도 시 간의 관계가 밀접해져 시민들에게 예전과는 다른 국제화와 사회화 교육을
미국대학이 세계 일류의 경쟁력을 가지게 된 것은 불과 50년 남짓하다. 100년 전만 해도 미국대학 졸업장으로는 유럽의 대학원에 입학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 미국이 1·2차 세계대전과 냉전체제에서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대학을 중심으로 한 실용적인 과학연구의 승리이기도 하다. 공과대학 가운데 세계 1위인 MIT, 미국 내 랭킹 5위 안에 드는 예일대와 컬럼비아대의 경 쟁력 원천은 인문, 사회, 예술 등 기본에 충실한 교육이다. 컬럼비아대는 지역사회 공헌을 위해 학교 인근 뉴욕 할렘가에 21세기형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불과 개교 20여 년 만에 미국 내에서 가장 혁신적인 공과대학으로 평가받
獨, 첨단연구·융합교육 강화 이스라엘은 고등교육위 주목 독립기관 운영 정책 안정성↑ 日 교토대 자유학풍 전통 눈길
고 있는 매사추세츠주 올린공대는 미래대학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대학교육 시스템에 대한 독일의 자부심은 30여 년 전 처참하게 무너졌다.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의 유수 대학들 이 미국은 물론 영국, 아시아권 대학에 추격을 허용해 경쟁력을 상실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에 연방정부와 지방 정부는 독일 대학 부흥을 위해 고등교육재정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20년이 넘는 장기 프로젝트에 착수해 오늘날에 이르 고 있다. 독일은 10여 개 엘리트대학을 통해 미국을 제치고 4차 산업을 선도한다는 야심 찬 구상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최고의 역사를 가진 하이델베르크대, 독일 공대 중 정상급인 뮌헨공대, 전통을 자랑하는 튀빙겐대 등은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첨단연구와 융합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지방정부는 지역 기업에 필요한 연구를 수행하고 고급 인력을 공급하기 위해 지역대학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특히 대구경북과 비슷한 정서를 가진 바이에른주가 고등교육에 대한 투 자를 늘리며 교육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것은 인상적이다.
이스라엘은 세계 제1의 창업국가로 불린다. 대학과 연구소를 중심으로 창업교육과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으며, 국가 차원에서 전국민 창업지원 체계를 구축했다. 명문 히브리대, 최고의 공대인 테크니온공대, 국제화된 텔아비브대 등의 창 업시스템과 4차 산업 첨단연구는 세계 정상급을 자랑한다. 첨단연구를 창업으로 연결해 세계적 플랫폼 기업에 매각하는 시스템은 이스라엘이 앞으로도 자주권이 강한 나라로 발전하는 원동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스라엘은 고등교육 정책을 혼란한 정치로부터 분리해 안정적 정책 유지가 가능하도록 고등교육위원회를 두고 있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고등교육위원회는 위원 3분의 2 이상이 대학교수 출신이고, 이들은 정부와 정치권으로부터 독립해 고등교육(대학)정책을 책임지고 있다. 고등교육정책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도록 6년 단위로 예산을 편성하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계 3대 기초과학연구소의 하나인 이스라엘 와이즈만연구소는 첨단과학 연구를 선도할 수 있도록 완벽한 연구·교육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10년 정도 앞서서 사회현상을 경험한다는 측면에서 현재 일본대학의 움직임은 중요하다. 도쿄 대와 쌍벽을 이루는 교토대의 자유학풍 전통과 문·이과 균형 교육 및 융합연구는 우리나라 대학에 던지는 메시지가 가 볍지 않다. 또 사립명문인 리츠메이칸대의 국제화 전략 및 지역사회와의 협력 강화 현장은 우리나라 대학이 나아갈 미래 이기도 하다. 일본은 4차 산업혁명을 맞아 대학이 지역의 평생교육 및 재교육을 담당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도록 대학 장 기발전 계획을 수립했다.
*이 글은 공동시민강좌(2023. 3. 30) 강의 내용으로, 영남일보에 게재되었습니다.
박종문 ┃영남일보 부국장
5강 : 이상하고 낯선, 만남과 마주침의 도시
거가 되거나 삶을 구성한다. 더욱이 '행성적 도시화
실정치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보들레르, 짐멜, 벤야민 같은 근대 초기 메트로폴리스
풀이한 것도 도시에 대한 정치적 상상력이다. 하이데거가 '숲길
연구소 성과 1-5
"미학적 기준까지 자본 구조화… 다양한 정체성 기반 연대 필요"
직장과 술집, 카페와 마켓, 공공기관과 문화센터, 학교 등 일상의 곳곳에 서 우리는 도시와 연결된다. 도시를 에워싼 모든 물질과 움직임이 내 삶의 근 '로
(planetary urbanization)
명명되는 지구적 규모의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도시의 삶은 모두의 삶이 되 고 있다. 이데올로기와 정치, 문화와 자본, 욕망이 응축된 도시는 모두 것들 이 교차하고 해후한 결과들이다. 특히 도시는 정치적 상상과 이를 둘러싼 현
를 경험한
(metropolis)
유럽의 지식인들이 근대도시의 일상을 자본주의적 근대성이란 알레고리로 '에
(Holzwege)
서 말한 '존재에서 분리된 존재자들의 경악'이란 깊은 통찰은 그 결과이기도 하다. 지리학자이자 사회이론가인 데이비드 하비는 도시와 인간의 삶에 대해 질문한다. '우리가 어떤 도시를 원하는가 하 는 문제는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려고 하는가,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가와 관련된다.' 질문은 삶의 형태와 공 동체, 존재론적 가치와 미적 기준의 실체로서 도시를 의미한다. 그래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도시는 어떤 곳인가'란 질문 은 지금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할 질문 중 하나이다.
도시=상상 둘러싼 정치 결정체 이데올로기·자본·욕망 등 응축 산업혁명이 초래한 비극 여전 르페브르 "방안은 도시혁명뿐"
보들레르는 최초로 근대도시 파리를 서정시의 주제로 삼았다. 우울과 알레고리의 시인 보들레르에게 파리는 상품과 자 본으로 응축된 우울과 이상이 뒤섞인 이중 도시였다. 도시의 이면은 상품과 화려한 아케이드의 환영(幻影)으로 대체되며
파리를 묘사했다.
죽음과 뒤섞인 파리의 환상은 그렇게 탄생하였 다. 발터 벤야민은 '파리의 원풍경'에서 상품과 패션과 근대자본, 즉 금융에 가려진 매춘과 가 난을 도시의 저승적 요소라 표현한다. '고리오 영감'에서 발자크는 '지옥과 매춘의 도시'라고 파리를 직격했으며, 에밀 졸라는 소설 '목로주 점'에서 '알코올과 반윤리와 비극의 결정체'로
한편 1852년 오스망은 파리 대개조를 통해 근대도시의 모형을 제시했다. 직선으로 뻗은 대도(大道), 상품으로 가득한 아케이드, 하수 도와 관청과 금융건물을 중심으로 근대도시 파리를 구현했다. 그러나 이스트 엔드와 같은 노동자들의 주거 공간은 도시 건설을 이유로 정부에 수용되거나 파괴되었다. 벤야민이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이제 도시는 집 대신에 도로가 중심이 된, 판매자이자 상품인 매춘부의 모습'이 되었다고 일갈한 것도 도시 개조와 관련된다. 보들레르의 감각적 알레고리, '악 의 꽃'도 그렇게 탄생하였다.
산업혁명 이후 도시의 비극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기술·경제, 자본·상품의 단단한 결합 심지어 감정과 미학적 기준 조차 자본으로 구조화되는 도시는 미래가 없다. 어쩌면 도시의 지속가능성은 도시학자 르페브르의 말처럼 '도시혁명'뿐 일지 모른다. 그는 산업혁명이 초래한 노동과 삶의 해체에 대한 '절규이자 요구'로서 도시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다. 그리 고 도시이론가 메리필드는 기존의 도시관념에서 벗어나 '뭔가 새로운 것, 뭔가 미래적이고, 생성 과정 중에 있는 도시를 포용'하는 도시혁명을 제안하며, 르페브르의 도시혁명을 새롭게 해석한다. 구체적으로 무력하고 추상적인 개념으로 전락 한 시민권 대신 무한히 다양한 정체성을 기반으로 하는 일상생활 속 연합적 연대와 감정의 연대 구조와 같은 새로운 주체 성을 강조한다. 특정한 내용이나 형태도 없이 도시에 내재하는 실천적 역동성을 도시혁명의 동력으로 보고, 도시 내부에 서의 만남과 마주침을 주창한다. 그는 "도시가 보내는 표시는 모임의 신호"이며 "순수한 형태로서의 도시는 마주침, 모임, 동시성의 장소"라는 르페브르의 말을 인용하면서, 도시를 만남과 마주침의 장소로 규정한다.
*이 글은 공동시민강좌(2023. 4. 6) 강의 내용으로, 영남일보에 게재되었습니다.
박승희 교수┃대구경북학회장·영남대 국어국문학과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는 2023년 5월 12일 리츠메이 칸 대학 문학부 교수 다나카 사토시를 초청하여 ‘아주 특별한 지역학-리츠메이칸 대학 교토학’ 강연를 듣는 자리를 마련하 였다. 다나카 교수는 교토학 전문가로서 리츠메이칸 대학에서 다년간 교토학 관련 강좌를 개설하여 현재까지 학생들을 교육 하고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다. 강연의 소제목은 “정해진 고도 (古都) 이미지를 넘어서 새로운 교토학의 추구”이며, 이하는 다나카 교수가 강연의 핵심 내용을 요약한 글이다. 일본에서 교토는 '고도', '문화수도' 등으로 평가받는 관광도 시이다. 2023년 4월 현재 코로나19 이전을 연상케 하는 국 내외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또 교토의 각 대학에는 '교토 학' 강좌가 설치되어 다수의 학생이 배운다. 나는 2006년부 터 교토학 수업을 담당하며 연구와 교육 현장에 관여해 왔다. 일반적으로 이미지화되는 '교토학'은 교토의 전통예능·전 통공예, 의식문화의 성립, 사찰이나 시가지가 즐비한 독특한 경관, 혹은 기온마쓰리(祇園祭)나 아오이마쓰리(葵祭) 등 오 랜 역사를 지닌 제례 등 독특한 지역 문화에 대한 문화사적 연
연구소 성과 2
아주 특별한 지역학
리츠메이칸 대학의 교토학
구이다. 한편으로는 근현대 교토의 정치운동이나 사회문제의 실태를 해명하고 장래의 거리 조성을 전망하는 연구도 많다. 역사학, 지리학, 사회학, 건축학, 문학, 미술사, 인류학과 같은 연구 방법이 확립된 인문학 분야의 기법에 따라 연구자가 각 각의 문제의식에서 자료를 수집하여 구체적 대상에 접근하는 연구 등이며, 단일적인 '교토학'이라는 것은 아직 없다. 이외 江戸学 ), '도호쿠학'( ) 에도 '에도학'(
東北学 이라는 지역학도 있지만, 독자적인 방법론을 구축하려는 의지가 명료한 것은 많지 않다. 한 문학 연구자는 '교토학'을 '생활의 일부', '역사지식', '지역봉사', '독자적 학문영역' 등 4가지로 분류했다. 학생들은 교토학이 자유 로우며, 교토라는 역사의 장에 관한 소박하고 다양한 흥미를 살린 연구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교토학' 연구는 학생들 이 지역사회를 마주하며 하루하루 느끼는 감
정과 그것의 역사적 의미에 대한 설명을 연결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단순히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단편적인 지식 을 익히는 것만으로는 현대사회에 넘쳐나는 '교토'를 둘러싼 불확실한 언설의 바다로 흘러갈 뿐이다. 나는 대학 강의에서 도시로서의 긴 역사, 기온마쓰리 등의 제례나 전통 산업, 하나마치(花街)의 화려한 '문화의 수도' 라고 하는 일반적인 교토 이미지와 역사학이 실증적으로 밝히고 있는 실상과의 격차를 다룬다. 고아와 들개가 서성거리 清水焼 )를 지탱하는 다수의 외국인 직공, 난징 고 시취가 감도는 헤이안쿄(平安京), 니시진오리(西陣織)와 시미즈야키(
을 침공해 필리핀에서 전멸한 교토 출신 육군 병사 등 실제 역사를 알 때 관광도시 '고도'의 이미지는 교토의 극히 일부를 강조한 허상임을 실감할 수 있다. 현대사회에 공유되어 소비되는 '교토의 역사'란 후세의 역사관에 기초한 사료해석을 집성하여 만들어진 이미지로 사료 를 남긴 주체, 시대나 연구자, 학문 분야가 다르면 역사상 자체도 바뀐다. 1천 200년 동안 수도였던 교토에는 다양한 이 미지가 쌓여 지금에 이르고 있으므로 이를 자각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비로소 일견 자료로 보이지 않는 신문기사 스크 友禅染 )의 종이본 랩, 사찰 범종이나 길가 초석에 적힌 명문, 수백 년 지속되는 지역 풍습, 전쟁 중 체험 증언, 유젠염색(
이나 대장 등 지역에 오래 존재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지역의 역사자료'의 가치를 알 수 있다. 이러한 생생한 역사의 기억 을 어떻게 발굴해 공공재로 만들어 나갈 것인가. 지역사회가 걸어온 역사에 대해 연구자와 주민이 함께 살펴보고 이야기 를 듣고 기억하며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일상적인 문화운동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 실천적 지역학이야말로 폐색된 현 재의 인문학을 다시 사회로 연결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
다나카 사토시 교수(일본 리츠메이칸대학 문학부) 약력 △일본고대사, 일본사학사, 교토지역자료론 전공 △리츠메이칸대학 국제평화뮤지엄부관장 역임 △공저 '논점 일 본사학'(2022), '고대 일본의 민족, 국가, 사상'(2021), '일본서기 1300년사를 묻는다'(2020), '일본고대의 자타인 식'(2015) 등 다수. △논문 '교토지역자료의 아카이브구축'(2019), '대학에서의 교토학연구, 교육의 현상'(2019), '교 토학 연구자료로서의 전후교육자료'(2017) 등 다수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는 2023년 5월 22 일 영화감독이자 우석대 미디어영상학교 교수 박 문칠 감독을 초청하여 ‘트랜스로컬 시네마 포럼’ 을 개최하였다. 박문칠 감독은 2013년 사적다큐 멘터리 ‘마이플레이스’로 주목받기 시작하였으며, 이후 성주 사드배치 반대투쟁을 그린 ‘파란나비효 과’(2017), 대구퀴어문화축제의 과정을 담은 ‘퀴어 053’(2019), 경북 경산에서 태어나 16살에 만주 위 안소로 끌려간 김순악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룬 ‘보 드랍게’(2020) 등의 작품을 통해 대구, 경북지역 도 시의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이야기 속에서 풀어내는
연구소 성과 3
시네마포럼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이번 강연회에서는 “대중문화 속 위안부 재현과 〈보드랍게〉” 라는 제목으로 진행되었다. 박문칠 감독은 “‘보드랍게’는 대구 경북지역에서 ‘위안부’ 관련 활동을 해온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의 의 뢰로 작품을 만들게 되었으며, 지금은 계시지 않지만 작품을 만드는 과정 동안 김순악 할머니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할 머니가 가장 원했던 것은 그녀의 이야기를 ‘보드랍게’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것이며, 참여한 학생들도 영화를 보고 살아 가는데 힘이 되거나 교훈이 되길 바란다”고 강연소감을 밝혔다. 권응상 인문과학연구소 소장은 “대구대학교는 2017년 대학 최초로 캠퍼스내에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하였다. 일방
적인 지식 전달 방식이 아니라 학생들이 영화를 보고 감독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함으로써 소통과 협력하는 과정을 배우게
된다. 대구, 경북지역에 밀착되고 실습과 체험 에 기반하는 인문교육의 강화는 연구소가 지 향하는 목표이며, 이번 행사는 이러한 목적에 부합한다”며, 향후에도 콘텐츠 제작 전문가와 학생들이 소통하는 기회를 자주 만들어 대구, 경북지역이 도시와 영화 이야기 속에서 어떻 게 소비되고 재현되고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살펴볼 예정임을 밝혔다.
연구소 성과 4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학술대회 개최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는 연구 아젠다 ‘LMS-ACE 교육과정 개발 및 인문교육 시스템 구축-철길로 이야기하는 동 아시아 도시인문학’을 바탕으로 다양한 학술 활동을 전개해나가기 위해 국내 학술대회를 기획했다. 2023년 6월 10일 개최된 2단계 1차년도 학술대회는 연구소의 연구 주제인 동아시아, 도시, 인문학을 키워드로 하여 공동 주최·주관하는 인문콘텐츠학회와의 공통의 학술 주제를 추출해내고 이를 바탕으로 ‘도시 인문학의 확장과 문화
온라인 과 오프라인
(ZOOM) OCW강의실)
을 가졌다.
콘텐츠적 변용’이라는 학술대회 주제를 선정하고
(대구대학교 교수학습지원관
동시에 학술대회를 진행하였다. ‘도시 인문학’을 큰 주제로 하여 1부는 ‘해외 도시인문학의 활용과 의미’, 2부는 ‘한국 도시인 문학의 현재와 가능성’으로 나누어 부산, 울산, 세 종 등 국내 사례와 일본 도쿄, 오카사, 중국 베이 징, 캐나다 토론토 등 해외 도시인문학을 소개하 고 각각의 활용 사례들을 소개함으로써 도시인문 학이 나아갈 방향을 함께 고민하고 모색하는 시간
김상헌 인문콘텐츠학회 회장은 인사말에서 '지역콘텐츠와 산학연 연계를 통한 다각적인 콘텐츠 연구'의 중요성을 언급 했고, 특히 '경상북도와 대구의 협조와 연계'를 강조했다. 이어 권응상 대구대 인문과학연구소 소장은 "대구대학교가 대 경문화권의 대표적인 지역콘텐츠 거점 연구기관으로 발전하고 있다"면서, 국내는 물론 동아시아를 아우르는 도시인문학 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로드맵을 제시했다.
기조발표를 맡은 김준한 대표는 ‘상상하라 그리고 창조하라’라는 주제로
장)
인문학적 역발상의 사례들과 경상북도 지역의 문화 자원을 활용한 문화콘텐츠들의 성공사례, 그리고 지 역의 이야기를 찾아 이를 문화콘텐츠로 제작하는 창 조 인력을 대학에서 적극적으로 양성해야 한다는 내 용의 강연을 통해 학계의 역할에 대해 한 번 더 고민 해볼 수 있는 과제를 남겼다. 이어 진행된 1부에서는 ‘해외 도시인문학의 활 용과 의미’라는 주제로 태지호 교수 , 권지혁
(前 경상북도콘텐츠진흥원 원
(안동대)
(인하대)
구대 인문과학연구소)
학연구소)
건웅 교수
(글로벌사이버대)
대해 논의하였다.
라는 주제로 이재민 박사
(경성대)
박사 는 일본의 2k540이라는 사이공간이 젊 은 장인들의 공간으로 탈바꿈된 의의를 기호학적으 로 분석하고 그 의미를 고찰했으며, 조소연 교수
(대
는 드라마 ‘이자카야신칸센’을 통 해 현대 도시의 등장과 철도와 기차의 역할, 그리고 기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에 대해 모빌리티 이론을 통 해 분석하고 이를 관광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는 방 안에 대한 제안을 했으며, 지영임 교수
(대구대 인문과
는 영화 ‘야키니쿠 드래곤
’에
(용길이네 곱창집)
서 그려진 일본의 고도경제성장기 오사카의 재일조 선인 공통체의 탄생과 해체에 대해 분석하였다. 이 , 동연 교수
는베
(산둥이공대)
이징 798 예술구와 토론토 디스털러리 디스트릭트 의 사례를 통해 각각 중국과 캐나다의 도시재생에
2부에서는 ‘한국 도시인문학의 현재와 가능성’이 는 한글을 활
(대전세종연구원)
용한 세종시의 지역 브랜딩 사례를 발표하고, 김주 현 교수 는 지역의 공동체 예술활동이 지역 인 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부산시 남구에서 진행된 실제 사례와 참여자들의 설문을 바탕으로 한 인식변화를 소개했다. 이상호 연구원
(한국국학진흥원)
은 ‘소프트파워 개념을 적용한 도시 브랜드 창출 방향’을 주제로 현재 경상북도 콘텐츠진흥 원과 작업중인 ‘소프트파워 창출 프레임워크’를 소개하고 지역에 맞춰 어떻게 변용하여 도시 브랜드를 창출해 낼 것인지 를 고찰했다. 김세종 박사과정생 에 대해 울산의 처용문화제 시민문화마당 사례를 통해 소개했다.
은 ‘도시공동체 주민의 지역문화콘텐츠 활동을 통한 트랜스아이덴티티’
(한국외국어대학교)
이번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와 인문콘텐츠학회 공동 학술대회는 두 기관 공동의 학술 활동 키워드를 통해 공동의 주제를 찾아내고 그 안에서 서로의 연구 성과들을 공유하는 자리로, 앞으로도 다 양한 협력을 통해 더 넓은 학문적 스펙트 럼을 보여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금 번 학술대회를 시작으로 학술적 교류의 계기는 물론 인문학의 다양한 연구 방법 과 활용, 확산의 측면에서도 앞으로의 인 문과학연구소 활동의 확장에 디딤돌 역 할을 할 것이라 기대한다.
1. K-Contents의 이해에서는 무엇을 배우나요?
교과목 소개 1
K-Contents의 이해
더이상 K-Contents란 말은 낯설지 않습니다. 한류(韓流)란 말은 더더욱 그러하지요. K-Contents의 효과나 부가가치 에 대한 희망적인 기대는 물론 그 위기나 문제에 대한 진단조차 식상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본 강의는 드라마와 K-pop으 로 대표되던 시기를 넘어 다방면으로 유무형의 가치 창출을 목표로 하는 한류 3.0 이후 K-Culture 시대의 현황과 전망 등을 문화산업과 콘텐츠론(論) 관점에서 사례를 통해 분석하고 그 마중물로서 K-Contents의 지속적 역할과 사회문화 적 함의에 대해 학습하게 됩니다.
2. 어떤 특징이 있나요? • K-Contents를 통한 사회문화 전반에 대한 이해 문화예술학부 학생들이라면 알아야 할 기본적인 콘텐츠 개 념을 바탕으로 단순한 오락물로서의 K-Contents를 넘어 우 리가 살고 있는 일상과 현실의 반영으로서의 콘텐츠 사례와 그 함의를 통해 해당 사회에 대해 분석할 수 있는 안목을 기 를 수 있습니다.
• PBL(Project-Based Learning) 방식의 수업 : 콘텐츠 관련 현재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이슈나 최신 트렌드 에 대해 자신만의 생각을 투영해 강의소재인 K-Contents를 바탕으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훈련합니다.
• 조별 토론 및 발표, 질의응답 수업 : 본 수업은 이론강의를 바탕으로 해당 분야(장르) 및 산업에 관해 교수자와 학생, 학생과 학생 간의 소통과 협력을 통해 주 제에 접근하는 참여형 수업입니다.
3. 누가 수강하면 좋을까요? •문화예술에 관심이 있는 학생 •한류, K-Contents 등 대중문화에 대해 관심이 있는 학생 •사회변화에 따른 콘텐츠 트렌드에 관심이 있는 학생 •문화산업의 역할과 그 위상 등에 관심이 있는 학생
K-Contents와 한국
2) 시기별 원인분석 3) 지역별 원인분석
K-Contents와 한류의 원인분석 방법
원인분석의 다양한 분류기준 1) 장르(분야)별 원인분석
4) 정성 적 원인분석 - 민족적 원인 5) 정량 적 원인분석 - 환경, 역사적 원인
4. 주차별 강의 내용 주 차 1주 2주 3주 4주 5주 6주 7주 8주
중간고사
9주 10주 11주 12주 13주
14주
15주
기말고사
K-Contents와 창의성
수업의 주제 및 내용 수업 오리엔테이션 (교과목에 관한 상호 소통) 콘텐츠 이해의 기초 : K-Contents의 개념과 범위 및 현황 K-Contents 이론의 기초 : K-Contents 성장의 정량적, 정성적 원인분석 K-Contents 이론의 기초 : 한류의 원류, 한국 대중문화의 사회문화적 함의 K-Contents와 콘텐츠 기획 1 : K-Contents와 창의성, 독창성 K-Contents와 콘텐츠 기획 2 : K-Contents와 모방, 표절 K-Contents의 주체 : K-Contents와 대중/수신자의 관심
K-Contents와 글로벌 문화산업 : 국가별(문화권별) K-Contents 현황 K-Contents의 변화 : 한류의 위기? 한국의 위기? K-Contents 비즈니스의 이해 : K-Contents 기획 전략수립 - OSMU와 한류 K-Contents의 실제 1 : K-Contents 분야별 분석 및 신규 기획안 발표 1 K-Contents의 실제 2 : K-Contents 분야별 분석 및 신규 기획안 발표 2 K-Contents의 방향성 : 한류의 사회문화적 함의 - BTS, 오징어게임 이후의 K-contents
활동 상세 내역 수업 소개 및 관심사 공유 토론 및 PBL 강의 및 토론 강의 및 토론 강의 및 토론 강의 및 토론 강의 및 토론
강의 및 토론 강의 및 토론 강의 및 토론 강의 및 토론 강의 및 토론
강의 및 토론
K-Contents의 방향성(뉴미디어 시대의 수신자)
노창현 ┃대구대학교 문화예술학부 겸임교수 담당교수
교과목 소개 2
동아시아 항도 인문기행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는 학생들에게 인문학 이론과 문화적 체험이 접목된 콘텐츠로서 유익한 지식과 체험을 제 공하고자 지리적·역사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있는 동아시아 3국의 대표적인 도시들의 역사·문화의 형성과정을 통해 현대 문화의 특징과 의의를 탐구하는 교과목을 DU-MOOC의 형태로 개발하였습니다. 이번 동아시아 항도 인문기행 교과목은 이러한 동아시아 도시 기행 시리즈의 4번째 교과목입니다.
주차별 강의 내용
주 차 1주 수업 오리엔테이션 / 동아시아 항도 도시와 근대 2주 한국_부산 역사 지리 기행1 3주 한국 _부산 역사 지리 기행2 4주 중국_상하이 역사 지리 기행1 5주 중국 _상하이 역사 지리 기행2 6주 일본_오사카 역사 지리 기행1
8주 중간고사 9주 한국_부산 문화 예술 기행1 10주 한국_부산 문화 예술 기행2 11주 중국_상하이 문화 예술 기행1 12주 중국_상하이 문화 예술 기행2 13주 일본_오사카 문화 예술 기행1 14주 일본_오사카 문화 예술 기행2 15주 기말고사
수업의 주제 및 내용
7주 일본_오사카 역사 지리 기행2│오사카 전통문화와 종교
활동 상세 내역 수업 소개 / 강의 토론 및 PBL 강의 및 토론 강의 및 토론 강의 및 토론 강의 및 토론 강의 및 토론
강의 및 토론 강의 및 토론 강의 및 토론 강의 및 토론 강의 및 토론 강의 및 토론
배지연, 서주영, 지영임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담당교수
결국 식당, 상점 등 상업 건물로 변화했다.
교과 연계 활동-도시 영화 보고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추억 영화
'화양연화'
영화의 배경은 1960년 홍콩이다. 이 시기는 충칭 맨션, 치파오 등이 한 창이었다. 충칭 맨션은 영화 속 주인공들이 살던 주상복합 맨션인데, 홍 콩에서 가장 번화한 구룡반도의 한복판인 침사추이에 있었고 중국인 부 호들과 영국계 백인들이 살았다. 이후 홍콩의 주요 산업이었던 전자 산업, 주석·법랑 제품 제조업 등이 한국과 대만에게 따라 잡히며 경제가 나빠 졌고, 맨션에 살고 있던 중국인 부호들과 영국인, 그리고 그 외의 외국인 들이 이민 혹은 귀국하게 되면서 빈집이 늘어났다가 1960년대 후반에는
영화에서 여주인공 첸 부인이 당시 유행하던 패션이자 부유의 상징인 치파오를 입고 나오는 장면들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치파오는 청나라 만 주족 귀족인 기인들의 옷이다. 순치제 원년(1644)에 청나라의 수도가 베 이징으로 이전하면서 치파오 역시 중원에 보급되었다. 그 후 시대와 유행 에 따라서 그 길이와 형태가 변화하였는데 1960년대 민소매 형식의 치파오가 등장하여 국제 패션 대회를 휩쓸기도 했 다. 치파오는 홍콩·타이완·화교 등을 중심으로 계속해서 변화와 발전을 거듭했고 현재에는 중국 결혼식 예복으로 사 용된다.
영화는 1960년, 홍콩의 한 아파트에 같은 날 이사 온 첸씨 부부와 차우씨 부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남편의 잦은 출 장으로 첸 부인은 홀로 외롭게 노점에서 국수를 먹으며 집으로 돌아오고, 옆집에 사는 차우는 아내를 위해 여행계획을 세 우는 등 나름 화목한 가정처럼 보이지만 부부 사이는 좋지 못하다. 그러다 두 사람은 각자의 배우자가 불륜 사이를 의심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서로를 위로해 주면서 점차 유대감을 쌓는다. 차우는 그동안 쓰고 싶었지만 쓸 수 없었던 무협 소 설을 쓰게 되고, 무협 소설을 좋아하던 첸 부인은 그의 원고를 읽어준다. 하지만 서로의 감정(사랑)을 알게 되면서 두 사 람은 관계를 이어갈 수 없다. 싱가포르로 떠나게 된 첸 부인에게 같이 떠나자는 말을 하지만 두 사람은 만나지 못한다. 이 후 3년, 또 3년이 지나며 차우와 첸 부인은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의 흔적을 느끼기도 한다. 홍콩으로 돌아온 차우는 옛 아파트를 찾아가지만, 아는 이들은 모두 이미 이사를 떠난 뒤였다. 그는 자신의 화양연화가 끝났음을, 그리고 여전히 그 녀를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느낀다.
'그 시절은 지나갔고 그때의 모든 것은 사라졌지만' - 화양연화
처음에는 이들의 사랑이 불륜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서로를 보듬어 주면서 자기 발전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육체적 욕
망에 사로잡힌 불륜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불륜의 끝은 보통 서로의 파멸이지만,〈화양연화〉속의 사랑은 맺어지 지 않고 결국 이별한다는 점에서 서로를 지키고픈 진정한 사랑의 배려처럼 보였다. 만약 마지막에 첸 부인이 차우를 따 라 싱가포르로 가게 되었다면 두 사람 역시 자신들의 배우자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며, 혹은 그 끝이 파멸로 이어졌을 수 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배경이 몽환 적으로 표현된 것 역시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에 대한 애틋한 기억을 마치 꿈처럼 표현 하고 있다.
영화는 인물들의 감정을 물건으로써 세심 하게 표현한다. 첸 부인은 처음에는 주로 초 록색을 입고 차우를 만나지만, 조금씩 사랑을
느끼면서 점차 초록색과 붉은색의 무늬가 있 는 치파오를 입고 나타나며, 이후 사랑에 완 전히 빠졌을 때는 붉은색을 입는다. 차우 또 한 항상 담배를 피우고 있으며 이는 첸 부인을 사랑하는 감정에 대한 불안감과 죄책감으로 보인다. 인상 깊었던 점은 첸 부인과 차우의 배우자들이 실루엣으로 희미하 게 표현됨으로써 혼란한 막장 드라마의 모습에서 벗어나 첸 부인과 차우의 사랑에 더욱 몰입도를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꽃잎 같은 시간이라는 뜻인 “화양연화”는 싱가포르에서 홍콩으로 돌아온 차우가 자신 의 옆집 첸 부인의 집을 바라보며 흐르는 나레이션 속에 나오는 말로서 이 작품의 주제를 표현하는 말이다. 배우자들의 불륜으로 배신감과 상실감을 느낀 두 사람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며 느끼는 연민이 어느 순간부터 사랑으로 발전하
로 가슴 속에 살아있다.
지만, 결국 서로를 위해 이별을 선택하는 것이 옳았다는 믿음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들의 사랑을 가장 아름다운 추억으로 존 재하게 하고 있다. 꽃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지게 되지만, 피어 있을 때 아름답고 찬란했기에 영원한 기억으로 존재할 수 있다. 사랑이란 아름답고 행복하기에 그 끝을 잊고 최선을 다해 서로 를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영원을 약속하지만, 서로를 위해 그리 고 자신을 위해 슬프고 괴로운 이별을 선택하는 것 역시 현실 에서 이루지 못했던 사랑을 더욱 찬란한 화양연화라는 추억으
정소연 ┃경영학부 23학번
인문과학연구소 국외 전문가 초청 콜로키움
일본인 교수의 일본인 교수의 한국 근대 도시 답사기 한국 근대 도시 답사기
•일시 : 2023. 9. 5.(화) 16:30~18:30 •장소 :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세미나실 •강사 : 안자코 유카(리츠메이칸대 교수) •주최 : 대구대학교인문과학연구소 •후원 : 한국연구재단 •문의 : 053) 850-5821│http://ihs.daeg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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