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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사람 2023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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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spring

도시 사람

와

Urban & Human

2쪽

수년 간의 코로나 팬데믹에서 벗어나 바야흐로 일상으로 복귀하는 시간입니다. 본 연구소는 지난 3년간 한국 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소 사업의 1단계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2022년 9월부터 2단계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간의 성과를 공유하는 e-저널 <도시와 사람> 2023년 봄호를 발간합니다.

이번 호에는 ‘라만차의 기사 돈키호테’의 고향인 스페인의 톨레도 도시 기행을 시작으로, 오다 노부나가와 아쓰 모리를 통해 사무라이 정신을 살펴보는 일본 문화 여행을 떠나봅니다. 대구 북성로의 지층과 시간의 흔적을 따 라 우리가 잘 아는, 그렇지만 실제로는 전혀 몰랐던 대구라는 도시의 얼굴-관상을 살펴보고, 음식과 건축 문화로 대만의 역사와 정체성을 탐색해봅니다.

이밖에도 연구소에서 진행한 다양한 행사와 함께 연구소에서 개발 및 운영하는 교과목 등을 소개합니다. 2022 년 2학기에 진행되었던 일본 오사카 문화답사와 리츠메이칸 대학 간담회를 비롯하여 대구한의대와의 MOU체결, 문화예술학부의 현장실습 및 교과목 개발 교수-학생 세미나를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그리고 2023년 1학기에 개 설되는 교과목 <동아시아 항도 인문기행>, <문화예술과 테크놀로지>, <대중음악의 이론과 실제>과 함께, 대구경 북학회 및 영남일보와 공동주관하는 시민강좌에 대해 알아봅니다.

본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활동들은 우리가 살고있는 지역과 도시를 비롯하여 그 너머, 다양한 도시와 삶 터를 탐색하고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는 작업입니다. 모쪼록 동아시아 인문교육 혁신, 지역 인문 생태계 활성화를

지향하는 본 연구소의 활동에 많은 관심과 성원을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23년 3월 1일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장 권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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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spring

CONTENTS

02 소개말/인사말 03 목차 스페인 톨레도 04 권응상의 도시기행┃ 사무라이, 그들은 누구인가 11 허영은의 일본 이야기┃ 시간의 켜 16 권상구의 도시관상학┃ 만두와 대나무의 나라, 대만 19 류영하의 대만 산책┃ 일본 오사카 문화답사 26 연구소 행사 1┃ 상호협력을 위한 업무협약 체결 31 연구소 행사 2┃ 현장실습 및 교과목 개발 교수-학생 공동 세미나 32 연구소 행사 3┃ 동아시아 항도 인문기행 34 교과목 소개 1┃ 문화예술과 테크놀로지 36 교과목 소개 2┃ 대중음악의 이론과 실제 38 교과목 소개 3┃ 대구경북 새로운 모색, 시민과 함께하는 도시학 강좌 40 행사 안내┃ 42 인문과학연구소 2023년도 상반기 행사 안내

도시와 사람

발행일┃2023년 3월 1일 발행인┃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장 권응상 발행기관┃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경북 경산시 진량읍 대구대로 201 인문대학 교수연구동 인문과학연구소(3103호) Tel. 053) 850-5821 Fax. 053) 850-5824 http://ihs.daeg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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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응상의 도시기행

스페인 톨레도

(Toledo)

스페인 여행의 첫 도착지는 보통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가운데 하나이다. 스페인을 일주할 계획이라면 ‘마드리드 인, 바 르셀로나 아웃’을 추천한다. 그 이유는 바르셀로나를 먼저 보고나면 마드리드는 시시해지기 때문이다. 사실 마드리드는 마 드리드 왕궁이나 프라도 미술관 정도를 제외하면 상대적으로 볼만한 것이 많지 않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하루 만에 다녀올 수 있는 톨레도, 세고비야, 아빌라 등 마드리드 근교의 아름답고 황홀한 고대 도시들이 있기 때문이다. ‘라만차의 기사 돈키호테’의 고향인 톨레도는 특히 그러하다. “톨레도를 보기 전에는 스페인을 말하지 말라” 거나 “톨레 도는 스페인 역사의 나이테” 로 불리는 것에서 짐작하듯이 이 도시는 스페인이라는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가장 좋은 여행지이다. 톨레도는 카스티야 라만차 지방 톨레도 주의 주도로서, 마드리드 남쪽 약 70Km 지점에 있다. 1,500년의 역사를 가진 이 도시는 유대 문화와 가톨릭 문화, 그리고 이슬람 문화가 공존하며 조화를 이룬 역사적 공간으로서, 구시가 지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 도시는 안동의 하회마을처럼 도시를 감돌아 흐르는 타호 강

과암

(Rio Tajo)

석 위에 쌓은 둥근 성곽으로 인해 견고한 요새 도시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러한 입지 덕분에 역사적으로 서고트 왕국부터 이슬람 시대를 지나 에스파냐 왕국의 수도로써 천 년 이상의 긴 세월 동안 영화를 누렸다. 기원전 2세기 로마의 지배에 들어간 톨레도는 6세기에 이르러 서고트족의 왕궁 소재지로 성장했고, 711년 이슬람 세력 이 이베리아 반도에 진출한 이후 본격적으로 발전하여 라만차 지역의 중심도시가 되었다. 1085년 가톨릭의 알폰소 6세가

소코트랜을 타고 남쪽 전망대에서 바라본 톨레도 구시가지. 굽이진 타호 강과 함께 우뚝 솟은 알카사르(왼쪽)와 대성당(오른쪽)이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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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을 축출하고, 이곳을 카스티야 왕국 의 수도로 정하면서 ‘레콘키스타’의 거점 이 되었고, 이후 정치, 종교, 사회의 모든 분 야를 선도하는 도시로 성장했다. 레콘키스 타는 8세기 초부터 이베리아 반도 대부분 을 점령한 이슬람교도들을 몰아내고 영토 를 되찾는다는 기독교도의 소위 국토회복 운동을 말한다. 톨레도는 또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 유 대인들이 대거 유입되어 찬란한 유대 문화 를 꽃피웠다. 예루살렘 멸망 후, 세계를 유 랑하던 유대인들은 톨레도의 유대교회당

세르반테스 동상이 서 있는 골목길

을 ‘서양의 예루살렘’ 이라 불렀다. 알폰소 10세는 이 시기에 이슬람, 유대, 가톨릭의 세 문화를 융합하여 독창적

(Sinagoga)

인 스페인 문화를 육성한다. 톨레도에 번역학교를 세워 가톨릭은 물론 유대와 이슬람의 최고 학자들까지 동원하여 아랍어 문학작품과 천문학, 점성술 등을 라틴어로 번역시켰다. 이처럼 가톨릭과 이슬람, 유대 사회가 공존하면서 13세기까지 성장 을 거듭하던 톨레도는 1492년 상권을 주도하던 유대인들이 추방되자 도시의 위상도 따라서 위축되었다. 그 후 1561년 펠 리페 2세가 수도를 마드리드로 이전함으로써 정치적 중심에서 비켜서게 된다. 그러나 로마 교황청이 이곳을 스페인 교회의 중심으로 인정한 이래 지금까지도 종교, 문화, 예술적 측면에서는 여전히 중

사회

(mosaic society)

심도시로서의 위상과 면모를 유지하고 있다. 톨레도가 흔히 다문화주의를 일컫는 ‘샐러드 볼 ’로 불리는 것은 이러한 역사에 기인한다.

’ 혹은 ‘모자이크

(salad bowl)

마드리드에서 톨레도까지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수월하게 오갈 수 있다. 아침 7시 톨레도 행 첫 버스를 탔는데, 8시를 갓 넘긴 시간에 톨레도 버스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었다. 톨레도 관광의 출발지는 보통 소코도베르

광장에서 시

(Zocodover)

작한다. 이 광장은 이슬람 시대에 가축시장이자 축제와 투우 등이 열려 도시 중심지 역할을 한 곳이다. 오전 9시가 가까워지 자 광장에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먼저 꼬마열차라는 뜻을 가진 소코트렌

을 타기로 했다. 소코트랜

(Zocotren)

은 도시를 한 바퀴 도는 관광열차인데, 오른쪽 자리에 앉아야 시내 경관 관람에 편하다. 소코트랜 첫차를 타고 톨레도의 아 침 풍경에 빠져들었다. 둥글게 굽이진 강줄 기를 따라 이어진 도시의 모습이 오롯이 눈 에 들어왔다. 특히 타호 강 너머의 남쪽 전 망대는 톨레도의 전체 모습을 조망할 수 있 는 뷰포인트여서 도시의 전체 모습을 한눈 에 담을 수 있었다. 도시를 한 바퀴 돈 열차 는 다시 출발했던 광장으로 들어왔다. 겉을 봤으니 이제 속살을 들여다볼 차례 이다. 알칸타라 다리를 건너 골목길을 따라 가면 알카사르, 산토 토메 성당, 성 일데폰 소 성당, 산타마리아 시나고가, 톨레도 대성 당, 타베라 추기경 병원, 비사그라 문, 엘 그 레코의 집 등이 이어진다. 어느 것 하나 역

소코도베르 광장의 소코트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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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아닌 곳이 없다. 이곳 관광안내소에서 관 광 팁을 달라고 하면 “길을 잃어보라”고 한단 다. 발길 닿는 곳마다 모두 유적지라는 자부 심일 텐데, 과연 허언이 아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우뚝 솟은 건물은 톨 레도 알카사르

(Alcazar de Toledo)

는 아랍어로 ‘성채’ 또는 ‘요새’라는 의미인 데, 11세기경 알폰소 6세에 의해 세워졌고, 이후 500년간 카스티야 왕국의 군사 요새로 사용되었다. 이곳은 또 1936년에서 1939년 까지 계속된 스페인 내전의 비극을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당시 프랑코 장군 측과 인민 전선 측이 서로 뺏고 뺏기는 격전장이었던 이

다. 알카사르

타호 강을 가로지르는 알칸타라 다리. 알칸타라는 아랍어로 ‘다리’라는 뜻으로, 톨레도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이다.

곳은 현재 군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정도의 알카사르는 어지간한 중세 도시에는 대부분 존재하지만 톨레도의 알 카사르가 특별한 것은 무데하르 양식

(이슬람풍의 그리스도교 건축양식)

과 고딕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고대 로마시대부터 시작하여 서고트인, 이슬람교도인, 기독교인들에 의해서 여러 번 재건축되었는데, 이로 인해 만들어진 시기 와 양식이 다른 문화의 총합을 보여준다. 산토 토메 성당

(Iglesia de Santo Tome)

은 오직 엘 그레코

(El Greco)

의 명화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을 보기 위해 찾는 곳이 다. ‘천지창조’, ‘최후의 만찬’ 등과 함께 세계 3대 성화 중의 하나로 평가받는 이 그림은 16세기 톨레도의 예술을 대표하는 걸작이다. 엘 그레코라는 이름자체가 ‘그리스 사람’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그리스의 크레타 섬 출신이었으나 38년 동안 톨레도에 머물면서 작품 활동을 했다. 이 그림은 이 교회의 후원자였던 돈 곤살로 루이스 오르가스 백작을 매장할 때

알칸타라 다리와 알카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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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도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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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도대성당의 ‘엘 트란스파렌테(El Transparente)’

스테파노와 아우구스티노 두 성인이 나타 나 백작의 시신을 입관했다는 기적의 장 면을 묘사한 것이다. 4.8×3.6m 크기의 그림은 상하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 데, 아래는 현실세계, 위는 승천한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하늘나라다. 예수가 앉 아있는 중앙 발밑에는 마리아와 요한, 베 드로, 하프를 든 다윗, 십계명 석판을 든 모세, 그리고 방주 앞의 노아를 비롯한 많 은 성인들이 있다. 이 그림에서 재미있는 부분은 수많은 인물 중 두 사람만 감상자 를 정면으로 쳐다보고 있는 것인데, 바로 엘 그레코 본인과 그의 여덟 살 아들이다. 아들의 옷 주머니에 꽂혀있는 손수건에 아들의 출생 연도인 1578이라는 숫자를 써넣었다. 예술가의 이 소박한 특권이 그 림에 대한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만든다. 톨레도를 대표하는 관광지는 아무래도 톨레도 대성당

(Santa Iglesia Catedral Primada de Toledo)

이다. 이 성당은 페르난도 3세 통치 시기인 1227년 대주교였던 돈 로드리고 히메네스가 이슬람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건축하였다. 그러나 이 성당은 226년이 지난 1493년에야 완공했다. 톨레도 대성당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것은 나르시스 토메 의 ‘엘 트란스파렌테

(El Transparente)

테

’나 엘 그레코의 걸작 ‘엘 엑스폴리오

(El Expolio)

(Narciso Tome)

’에 힘입은 바 크다. ‘엘 트란스파렌 ’는 중앙제대 뒤편의 벽 상단을 뚫어 만든 채광창을 말한다. 이곳으로 들어오는 자연의 빛이 마치 조명

(El Transparente)

처럼 성당을 환하게 밝히는 것은 물론 투명한 대리석 조각들을 통하여 중앙제대까지 빛이 들어와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 어 낸다. 채광창 주변은 금색으로 장식된 수많은 조각상들과 라파엘, 가브리엘, 미카엘, 우리엘 등 4대 천사가 조각되어 있

톨레도 대성당의 ‘백색의 성모상’

톨레도대성당의 ‘중앙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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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도대성당 성물실의 엘 그레코의 ‘엘 엑스폴리오’

톨레도대성당의 성체현시대

다. 맨 윗부분은 최후의 만찬을 상징하는 대리석 조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이 채광창은 마치 하늘로 승천하는 천국 의 문 같은 느낌을 준다. 중앙제대

의 장식벽도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든다. 상하 5단 좌우 7열로 예수 탄생부터 죽음, 부활 그리고

(Capilla Mayor)

영광에 이르기까지 섬세하고 사실적인 채색 조각으로 묘사되어 있다. 또 14세기 프랑스에서 기증했다는 ‘백색의 성모상 ’도 특이하다. 주로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성모 마리아와 달리 미소를 띤 채 아기 예수를 바라보고 있다. ‘에

(Virgen blanca)

스파냐의 모나리자’라는 별명은 이러한 온화한 모습 때문에 붙은 듯하다. ‘백색’이라고 했지만 실제 얼굴빛은 연갈색을 띠

대성당의 성물실

(聖物室, Sacristia)

고 있는데, 이것조차도 이곳 톨레도의 문화적 융합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에는 고야, 반다이크, 루벤스 등의 작품도 있지만 백미는 단연 엘 그레코의 성화 ‘엘 엑 스폴리오’이다. ‘그리스도의 옷을 벗긴다’는 뜻의 이 성화는 십자가에 못 박히기 직전 로마 병사가 예수의 옷을 벗기는 장 면이 담겨있다. 이 그림은 엘 그레코가 톨레도에서 그린 첫 작품이자 그의 특징이 나타나기 시작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대 성당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는 또 보물실이다. 특히 이곳에 전시된 성체현시대

는 단연 인기다. 원래

(聖體顯示臺, Custodia)

180kg의 은으로 만들었다가 16세기 말 18kg의 순금으로 도금을 했는데, 받침대에는 4대 천사가 조각되어 있다. 이곳에 소장된 황금성서도 중요 보물로 꼽힌다. 황금성서는 프랑스 왕 생 루이가 페르난도 3세에게 보낸 것으로 종이처럼 얇은 양 피지에 성서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려 금박을 입혔다. “톨레도의 좁은 미로 같은 길은 나무뿌리처럼 서로 얽혀서 대성당으로 모아진다. 모든 길이 대성당을 정점으로 이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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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골목길 사이로 보이는 톨레도 대성당

는 톨레도는 하늘과 맞닿은 거대한 가톨릭의 나무다. 톨레도는 중세의 두 가지 무기인 칼과 성경을 품고 있는 산성도시다. 칼은 알카사르, 성경은 톨레도 대성당이다. 어느 골목에서나 성당의 첨탑을 볼 수 있도록 길과 건물은 좁은 길에 면해 살 짝 얼굴만 들이대고는 이내 달아나 버린다.”

(『스페인은 건축이다』, 오브제, 2014.)

고 한 김희곤 교수의 말은 매우 적절해 보인다. 대성당까지 구경했으니 이제 길을 잃어볼 차례이다. 김 교수의 말대로 어느 골목에서나 성당의 첨탑이 보이므로 길을 잃 기도 쉽지 않지만 발길이 끄는 데로 마음이 닿는 데로 휘적휘적 다녀본다. 눈길 닿는 곳마다 서로 다른 색깔의 조각들인데, 만지고 기대고 말 걸고 싶은 것들이다. 이런 골목의 조각조각이 빠진다면 톨레도의 모자이크는 참 살벌했을 것이다. 길을 잃고 싶게 만드는 톨레도의 골목길은 알카사르와 대성당이라는 ‘칼과 성경’의 위압감을 어루만져 주며, 따뜻한 차한잔을 권한다.

권응상 교수┃대구대학교 인문대학 문화예술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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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은의 일본 이야기

사무라이, 그들은 누구인가

일본 하면 떠오르는 여러 이미지 중 하나가 사무라이, 혹은 사무라이 정신이다. 특히 서양 사람들은 자신의 명예를 위해 할복을 하고 주군에 충성하는 의리를 중시하고 절도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무라이들의 전통에서 일본인들과 일본 문화를 높 이 평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생사를 초월하여 죽음도 불사하는 사무라이 정신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혹은 그들이 정 말 그런 고도의 정신세계 속에서 살았는가, 이번 글에서는 일본 사무라이들의 실체에 접근해 보고자 한다.

개혁적 지도자 오다 노부나가

일본의 사무라이 하면 우선 떠오르는 인물은 전국시대

(戦国時代)

의 세 장수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일 것이다. 이 세 사람을 평가할 때 자주 회자되는 이야기가 있다. 흔히 “오다가 쌀을 찧어 도요토미가 반죽한 떡 을 도쿠가와가 먹었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오다 노부나가 는 전국 통일을 목전에 두고 부하인 아케치 미쓰히데에게 배신 당해 교토의 혼노지에서 자결로 생을 마쳤다. 노부나 가의 뒤를 이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제패했으나 전 국통일의 위업을 완성한 것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던 데에 서 나온 이야기이다. 오다 노부나가는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역사적 인물 중 하 나이다. 그는 혁신적이고 행동력 있는 지배자, 화승총이나 기독교와 같은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개혁자로서 일본의 중 세를 종식시키고 근세 사회의 토대를 구축한 창조적 지도자 로 평가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상당히 포악한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거대해진 불교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교 토 엔랴쿠지에 불을 질러 수 천 명에 이르는 승려를 죽이거

<그림 1> 오다 노부나가

나 농민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칼로 베거나 불에 태워 죽이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이렇게 피도 눈물도 없는 강인한 노부나도 전투를 앞두고 죽음을 두려워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노부나가의 이름을

인생 50년, 덧없는 꿈이로다

천하에 알리게 된 오케하자마전투에 앞서 춤을 추고 노래를 했다는 내용이다.

오다 노부나가가 천하에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는 1560년 오케하자마 전투였다. 1560년 스루가

의이

(현재의 시즈오카현)

마가와 요시모토가 3만의 군대를 이끌고 오와리를 침공했다. 이마가와 군대는 오케하자마 협곡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 데, 노부나가는 자신이 어려서부터 잘 알고 있는 이곳 지형을 이용해서 2천의 군사를 이끌고 기습 공격을 감행한다. 갑작스 런 공격에 우왕좌왕하던 요시모토의 군대는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노부나가는 엄청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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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아쓰모리'를 노래하는 노부나가

두게 된다. (能) <아 그런데 노부나가가 이 전투에 나가기 전에 일본의 전통예능 노

(敦盛)

쓰모리 > 의 곡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후대 사람들은 열세가 분명한 전투를 뛰어난 전략으로 승리했다는 것보다는 일 생일대의 중요한 전투에 임하기 전에 여유롭게 가무를 즐기는 노부나가 의 모습에 더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현재까지도 이 일화는 노부나가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소재이다. 노래의 내용 은 다음과 같다.

생각하면 이 세상은 영원한 은신처는 아니다 풀잎에 맺힌 이슬 물에 잠긴 달보다도 허망하구나 금곡원 에서 꽃을 노래하던 영화는 가고 없어

(金谷園)

덧없는 바람에 흩날리고

1)

남루 의 달을 희롱하던 이들도 달보다 먼저 사라져

(南樓)

무심한 구름에 가리었구나

인생 50년 화천 에 비하면 덧없는 꿈과 같다

(化天)

한 번 태어나 죽지 않는 자 있으랴 이것을 깨우침의 근본으로 삼지 않음이 애석할 따름이다

절체절명의 전투를 앞둔 두려움, 인생무상, 허무함 등이 배어나는 노래이다. 그러면 전투를 앞둔 노부나가가 죽음을 담담 하게 받아들이고자 소환한 아쓰모리는 누구인가? 다음으로 아쓰모리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용맹한 미소년 아쓰모리

아쓰모리는 고시라카와천황의 신뢰를 얻어 무사로서는 최초로 태정대신

太政大臣 , 신하로서 최고의 지위) (

이 된 기요모리의 조카이다. 일본의 무사가문의 양대 산맥인 겐지 와 헤이시 의 싸움을 그린 일본 최고의 전쟁소설인 『헤이케이야 기

(源氏)

(平氏)

』에 실린 아쓰모리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 후에 가부키나 노와 같은 연극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

(平家物語)

는 테마가 되었다.

1) 금곡원 (金谷園) 은 중국의 서진시대 석숭 (石崇) 이라는 부자가 낙양 북쪽에 지은 호화 별장이다. 그는 백여 명의 애첩들을 두었다고 하는데, ​어느 날 서진의 권력자 손수란 인물이 찾아와 그가 가장 아끼는 여인을 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 여인은 누각에서 몸을 던 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석숭도 손수에게 사로 잡혀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오백여 년이 지난 후 시인 두목 (杜牧) 이 낙 양을 찾았을 때 황혼의 금곡원에 봄꽃이 만발하고 새들이 지저귀며 꽃잎이 흩날리는 모습을 보며 <금곡원>이란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고 한다. 繁華事散逐香塵 / 화려했던 옛 시절은 향 가루 따라 흩어졌나니 ​流水無情草自春 / ​유수는 무정한데 풀빛은 절로 봄이로다 日暮東風怨啼鳥 / ​날 저물어 동풍 부니 새소리 처량한데​ 落花猶似墜樓人 / ​낙화는 옛날 누대에서 몸을 던진 사람을 닮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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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쓰모리가 참가했던 이치노타니 전투는 상대방 겐지 쪽 장수인 요시쓰네가 가파른 산기슭을 말을 타고 내려와 헤이시를 기습한 전투였다. 전세가 불리해진 헤이시 쪽 장수인 아쓰모리는 배를 타고 도망가기 위해 바다로 말을 달렸다. 그것을 보고 쫓아간 구마가이 나오자네가 “적에게 뒤를 보이는 것은 비겁합니다. 돌아오시오.”라 소리친다. 아쓰모리가 뒤를 돌아보자 구마가이는 말에서 아쓰모리를 확 낚아챘고, 아쓰모리는 말에서 떨어졌다. 구마가이가 아쓰모리를 붙잡아 목을 베려고 투구

2)

를 벗겨 보니, 나이는 열 예닐곱 정도로 엷은 화장을 하고 이를 검게 칠하고 있었다. 구마가이는 자신의 아들 고지로 나이 정도로, 용모가 정말 수려해 어디에 칼을 대야할지도 모를 지경인 아쓰모리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아쓰모리) “너는 누구냐?”

(구마가이) “대체 누구십니까? 신분을 밝혀 주십시오. 도와드리겠습니다.”

3)

(구마가이) “미천한 신분입니다만, 무사시에 사는 구마가이지로 나오자네입니다.” (아쓰모리) “그렇다면 네게 이름을 밝히지는 않겠다. 너에게는 좋은 적이 될 것이다. 내 신분을 밝히지 않더라도 목을

<그림 3> 전통예능 노(能) '아쓰모리'

쳐서 사람들에게 물어보도록 하여라. 분명 알아볼 것이다.”

<그림 4> 가부키 '아쓰모리'

구마가이는 ‘아, 정말 훌륭한 장수이다. 이 사람 하나를 친다고 해서 질 전쟁에 이길 것도 아니고, 또 목을 베지 않아도 이길 전 쟁을 질 리도 없을 것이다. 아, 살려드리고 싶다.’고 생각하며 뒤

쪽의 같은 편을 슬쩍 돌아보았더니, 군사들 50명 정도가 늘어서서 오고 있었다. 구마가이는 눈물을 삼키며, “도와드리고 는 싶지만 아군 병사들이 운하처럼 많습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 손에 죽음을 당하시는 것 보다는 어차피 당하실 일이라면 이 나오자네 손으로 목을 베어 사후 공양이라도 드리겠습니다.”하고 울면서 목을 베고는 “ 아, 칼을 다루는 이 신세가 원망스럽다. 무가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어찌 이런 슬픈 일을 당했겠는가.” 하면서 이 일을 계기 로 출가하게 된다.

歯黒 ) ’라고 하는데, 당시 귀족들의 풍습을 헤이케의 무사들도 흉내 냈다. 2) 이를 검게 칠하는 것을 ‘하구로 ( 3) ‘이름 밝히기’는 전쟁에서 무사들이 적에게 자시의 이름이나 신분, 가계를 밝히며 전쟁에 있어서의 자신의 정당성을 고하는 행위 를 말한다. 이름을 밝히는 동안은 공격하지 않는 것이 무사들의 도리였다.

14쪽

열일곱의 나이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쓰모리의 용맹함과 그런 아쓰모리를 구해주지 못해 괴로워하는 구마가이의 이 이야기는 상대를 죽여야 하는 무사들의 비정한 숙명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이야기로 회자된다.

쓰마 해변과 아쓰모리의 묘

몇 년 전 가족과 함께 간 오사카여행에서 우리는 아쓰모리의 묘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얼마 전부터 일본사 공부를 시작 한 남편이 아쓰모리 이야기에 감동을 받아 그의 묘소를 꼭 가보고 싶다고 해서였다. 아쓰모리의 묘는 오사카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고베의 쓰마 해변 부근에 있다고 하는 정보 정도만 가지고 출발했는데, 아쓰모리의 일화가 워낙 유명하

(須磨)

다고 생각해서 그곳에 가면 쉽게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쓰마 역에 도착해 보니 간판도 없고 지나가는 사람들 을 붙잡고 물어봐도 의외로 아는 사람이 없어서 적지 않게 당황했다. 일본에서는 이럴 때 파출소에 들어가서 물어보는 것 이 제일 빠른 길이어서, 마지막으로 파출소에 있는 경찰들에게 물어봤지만 그런 묘가 있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정도면 우리의 정보에 오류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고 낙담하며 허탈하게 다시 오사카로 돌아가는 기차를 탔 는데, 평소 이런 역사 여행에 전혀 관심이 없던 아들이 갑자기 “이렇게 돌아갈 수는 없다, 아쓰모리의 묘를 꼭 보고 싶은 생 각이 든다.”고 하며 다시 쓰마로 가자고 하는 것이었다. 날은 이미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고, 다시 돌아간다고 딱히 아쓰모 리의 묘소를 찾을 방법이 나올지 기대가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우리 세 식구는 무언가에 홀린 듯 다시 쓰마로 돌아갔다. 그 리고 이번에는 역 앞에서 다짜고짜 택시를 타고 아쓰모리의 묘로 가자고 했더니 이게 웬일인가, 택시 운전수가 “오케이~” 하면서 바로 근처에 있는 아쓰모리의 묘에 떡하니 데려다 주는 게 아닌가! 아쓰모리의 묘를 찾는 이렇게 간단한 방법이 있 었다니, 우리가 지금까지 했던 고생은 뭐였지? 하는 허탈함도 있었지만 역시 다시 돌아간 보람이 있었다는 기쁨이 더 컸다. 아쓰모리의 묘는 그리 크지 않았다. 쓰마라고 하는 지역의 쓸쓸함과 해질 무렵의 저녁노을 때문인지 그의 묘는 스산하고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 아이보다 어린 나이의 장수의 죽음을 마주하면서, 일본인은 아니지만 죽음에 늘 직면해야 하는

<그림 5> 쓰마 역

무사의 허망하고 슬픈 숙명을 느꼈던 터라 기억에 많이 남는 여행이었다.

15쪽

무사의 실체와 니토베 이나조의 무사도(武士道)

마지막으로 전세계적으로 상당히 미화된 측면이 있는 일본 무사의 실체에 대해 잠깐 언급하고자 한다. 일본의 무사는 고 대 농민을 병사로 징발했던 ‘쓰와모노 ’에서 유래한다. 그 후 10세기 중엽 귀족의 개인 병사였던 무사들이 그 공을 인정

(兵)

받아 교토에서 궁정의 경비나 귀족의 호위를 담당하게 되면서 이들을 ‘사무라이

’라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侍, 호위한다는 뜻)

사실 이런 사무라이들은 실은 거의 폭력배와 같은 조직이었다. 이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주군에 대한 충성 따위 는 없었고, 전국시대에는 조건이 좋은 쪽 으로 늘 주군을 바꾸곤 했다. 중세, 근세 에 게릴라 전법을 구사했던 ‘아시가루

軽 , 발이 가볍다는 뜻)

’는 방화, 약탈을 일삼 고 이익을 좇아 쉽게 배신하는 새로운 형 태의 무사였고, 12~13세기에 살림이 궁 핍해지면서 약탈이나 도적질을 하는 ‘악 당 ’이라는 무사들도 등장한다. 결국

(惡黨)

악당의 난립은 가마쿠라 막부가 붕괴하 는 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면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높은 도덕심을 가지고 있고 주군에 충 성하는 무사의 이미지는 언제 구축되게

足 (

<그림 6> 아쓰모리의 묘

된 것일까? 사상으로서의 무사도는 일본의 교육자이자 사상가인 니토베 이나조

(新渡戸稲造)

가 1900년 미국에서 간행한 『Bushido : The Soul of Japan』 이래 형성되었다. 이 책이 출간되자 루즈벨트, 케네디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해외 독자들 이 일본 무사들의 생활태도나 신조에 감동했고, 무사에 대한 서양인들의 이러한 평가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최근 일본 역사학계에서 니토베 이나조로 대표되는 일본의 무사도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들은 사료 분석 을 통해 고결하고 충의를 중시한다고 하는 무사가 실은 ‘정치사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왜소한 폭력단적 성격의 사회집단 ’ ‘야쿠자 그 자체

(다카하시 마사아키)

울리고 있다. 이루마다 노부오는 다음과 같이 일갈하기도 한다.

’ ‘직업적인 살인청부업자

(오다치 미치히사)

(도다 요시자네)

’라 평하며 무사 미화론에 경종을

무사정권의 탄생이 일본 역사에 미친 부정적 영향은 한없이 크다. 문 보다는 무 를 존중하는 이 나라의

(文)

(武)

기풍이 근대에 이르기까지도 불식되지 않아 저 침략전쟁의 촉매가 되어 오늘날에 있어서도 또한 소생의 낌새 가 있음을 보라. (野口 実 『武家の棟梁の 件』 中公新書、1944) 条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군부는 일본 국민들의 정신무장을 위해 사무라이 정신을 이용한다. 이 사무라이 정신과 천황을 향 한 절대 충성과 같은 이데올로기로 일본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우리는 이미지에 지배당하는 오류가 얼 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종종 목도한다. 따라서 일본의 사무라이나 사무라이정신에 대해서도 좀 더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하 리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전쟁이 사라져 허울만 남은 사무라이 이데올로기의 허상을 비판한 영화 <할복 : 사무라이의 죽 음>(2011)을 추천하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허영은 교수┃대구대학교 글로벌문화학부 일본어일본학전공

16쪽

권상구의 도시관상학

시간의 켜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 사람의 성격과 기질, 그리고 살아온 내력을 보는 관상가가 있다. ‘조선의 운명, 이 얼굴안에 있소 이다’라는 슬로건의 영화 ‘관상

’이 떠오른다. 얼굴 관상가는 사람의 눈, 코, 입, 귀, 점, 인중, 이마 등 멈

(Face Reader, 2013)

춰있는 요소를 보기도 하지만 대화중에 흐르는 미묘한 얼굴의 변화도 놓치지 않는다. 또한 이 모든 것들의 총합으로서의 인 상 도 해석해 낸다. 또한 어느 초감각인들은 얼굴 이외에 사람의 ‘등 ’이란 신체요소나 비언어적 몸짓에서, 그 사

(人相)

(back)

람의 감정상태를 읽기도 한다. 관상가는 이런 의미에서 신체라는 암호를 디코딩

(decoding)

하는 해독가다.

나는 도시관상학자다. 도시의 건물, 도로, 한옥, 나무 등 고정되고 어느 특정 인상을 가지며 멈춰있는 점들도 분석하지만, 골목이나 거리를 걸으며 ‘걷기 좋다’, ‘시간이 멈춘 것 같다’ 등의 느낌을 표현해 내기도 한다. 도로에 나열된 건물들의 높

기도 한다. 또한 도로의 곡선미 라고 추측할 수 있는 경험

이에서 나에게 ‘위압적이다’ 혹은 ‘편안하게 느껴진다’ 등의 감각으로 휴먼스케일 나 맨홀 두껑의 디자인만 봐도, 이곳은 수십 년 전에는 하천이었을것이다

(자연성 : naturality)

체계를 가지고 있다. 또한 근대지도를 찾아 문헌적으로도 검증하기도 한다.

(experience, 수많은 사례)

을 평가하

(human scale, 인간에 적절한 크기)

나는 모든 도시요소들의 총합속에 담겨진 시간의 흔적과 사회적 성질을 구성하여 도시정체성, 즉 도시관상

을말

(都市觀相)

하는 발언자이다. 또한 도시를 문제적 요소를 변화시키고 새롭게 디자인하여 도시의 얼굴을 바꾸고자하는 기획자이다. 나

요소 점 선 면 통합

<표 1> 얼굴관상사와 도시관상가 분석요소 비교

는 이 저널에서 몇편에 걸친 시리즈로 내가 도시관상학자가 된 과정과 경험, 인사이트

얼굴관상학 눈, 코, 입, 점

건물, 나무, 터

이마주름, 인중주름, 시선, 흉터 흉터, 비율, 대칭성 얼굴인상-사람정체성

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insight, 깨닫음)

도시관상학

길, 골목, 하천, 경계, 중첩 동네, 마을, 구역, 성곽, 도시 도시인상-도시정체성

17쪽

고고학을 하시는 어느 대학의 명예교수님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자네 조선시대가 어디 있는지 아는가?”

“살아가는 것은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발터 벤야민, Giloch, 1996>

아! 역사가 어디에 있었지? 잠시 말문이 막힌다. ‘유적지에요’라고 하려다 ‘역사책이요’라고 뱉었다. 사실 책으로 배웠으니 역사는 책에 적힌 텍스트 덩어리들이 아니었던가. “1m 밑에 조선시대가 있네” 노교수님의 말은 나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그래 그 생각을 못했다. 역사는 땅 밑에 있었다. 땅을 파든 책을 파든 뭔가를 파내어야 역사가 발굴된다는 말도 있듯이. 600년 조선왕조의 시작이 땅 밑 1m에서 시작된다면 삼국시대 유적은 보도 저 아래 2~3m즈음에서 시작됨이 분명하다. 역 사라는 ‘시간의 켜’는 우리가 걷는 골목길 저 아래 정말 묻혀 있을까? 역사는 땅 밑에 있다는 가설은 그날부터 나의 마음속 에 무거운 ‘질문하나’로 자리잡게 된다.

북성로 30cm밑에 100년전 성곽의 역사가 있었다

2014년 봄 재미난 일이 있었다. 대구읍성상징거리조성사업의 일환으로 북성로의 보도를 개선하기 위해 아스팔트 터파 기를 하고 있었다. 대구읍성 축조에 사용된 보라색 돌들이 무더기로 나왔고 덤프트럭에 버려지고 있었다. 바로 공사를 중지 시켰고 직접 확인해보니 과연 대구읍성 북쪽 성곽의 기초석들이었다. 1906년 북성곽이 철거되었으니 백여 년 전의 역사는 불과 30미터 밑에 묻혀있었다.

2014년 북성로 대구읍성 발굴현장 (구 미나까이 백화점 앞)

18쪽

2014년 북성로 대구읍성 발굴현장 (구 미나까이 백화점 앞)

‘시간의 켜’ 이런 표현이 인문학적 수사라고만 생각해왔는데 이건 과학이고 사실이었다. 시간은 공간의 켜를 남기는 것 이며 공간은 시간을 담는 그릇인 셈이다. 시간은 과연 공간이라는 그릇 속에서 수천 년 동안 땅 밑에 차곡차곡 쌓여왔던 것 이다.

대구 중구청은 북성로에 대한 전면발굴을 결정하였고 그 결과 대구읍성의 북측 성곽은 4m 정도의 두께를 가졌으며, 중 간에 흙이나 돌을 넣고 안팎에서 돌을 쌓는 협축 성곽이었음이 최초로 밝혀졌다. 또한 우리가 눈으로 보는 현재의 북

(夾築)

성로는 1906년 성벽철거후 남북 양방향으로 4m정도 후퇴하여 대구 최초의 12칸 신작로가 되었던 것이 증명되었다.

(間)

북성로는 독특한 도시인상, 도시관상을 만들어 내는 곳이다. 공구상, 공업사들이 많아 번잡한 곳이면서도 젊은 커플, 사 진기를 들고 다니는 젊은 산책자들도 많다. 이들이 북성로에 오는 이유는 바로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식민지 대구라는 도시의 흔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고학을 공부하신 어느 노교수님의 명제처럼 역사는 땅속에만 파묻혀 있는 게 아니었다. 30cm 밑에 있었던 조선시대 성곽의 역사는 묻혀 있지만,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건물들은 묻히지 않았다는 말이다. 나는 바로 이 현재의 자리에 눌러앉 은 뜬금없는 과거의 시간을 변화시키고자 하였다. 북성로의 근대건축물이라는 식민지의 흉터를 새롭게 디자인하고자 2011 년부터 2017년까지 북성로근대건축물 리노베이션 사업을 벌여 이곳에 입주하고자 하는 재능있는 시민들을 지원하였다. 도시의 흉터는 늘 새롭게 펴줘야 한다. 도시가 해맑게 보이려면, 그 흉터에 머물러 있는 과거의 시간을 쫙쫙 펴줘야 한 다. 나는 이런 의미에서 책상머리에 걸터앉아 관상만 보는 나약한 도시관상학자는 아니었다. 나에게 ‘읽기’와 ‘행동하기’ 는 늘 하나였다.

권상구 ┃사)시간과공간연구소 이사

19쪽

나와 대만

류영하의 대만 산책

만두와 대나무의 나라, 대만

대만에 체류하는 동안 나는 이렇게 보고 듣고 생각했다. 순전히 내 기준으로 목차를 만들고 내 기준으로 써내려갔다. 나로 서는 대만에게 보답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었다. 한국과 대만의 우의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현재의 나는 수많은 선택의 결과물이다. 마흔이 넘으면 본인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에 동의 한다면, 지금 그 사회 나 국가의 모습은 그 사회나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사회의 구성원이나 국민이 선택한 결과의 다름 아니다. 대만의 현 재 모습은 대만인들이 선택해 온 결과물이다.

대만산책을 쓴 책상

음식과 문화

(Meme)

상호 작용으로 탄생한 것이다.

는 국화와 칼로서 일본인의 이중성을 분석해냈다.

인정과 원칙이 공존한다. 사람들은 넉넉하면서 치밀하다.

와 넓이를 더했으면 좋겠다.

국가나 지역의 문화도 유전자와 환경이 만들어낸 것이다. 문화 적 유전자 ‘밈 ’이 환경을 만들고, 환경이 다시 문화적 유전 자를 만든다. 대만을 관찰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또 글이 늘어날 수록 나는 점점 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대만의 문화는 역사와의

일찍이 이어령 선생은 가나 문자, 하이쿠와 분재, 문고판 책, 쥘 부채 등으로 일본문화를 ‘축소지향’으로 정의했다. 루스 베네딕트

대만문화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무엇일까? 나는 만두와 대나 무를 떠올렸다. 모든 재료를 포용하는 만두와 절도를 상징하는 대 나무로 이 아름다운 ‘보물섬 ’을 정의하고 싶었다. 대만에는

(寶島)

2019년 세상에 내놓은 『홍콩 산책』의 반응이 좋았기에, 내친김 에 『대만 산책』이라는 제목을 달기로 했다. 다만 염원하는 것은 앞 으로 대만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대만과의 교류가 깊이

대만인들의 만두 사랑은 남다르다. 그 종류가 무한대라는 생각이다. 한국에는 집집마다 나름대로의 김치가 있고 지방에 따라 특색의 김치가 있다. 그것처럼 대만에는 동네마다 그 동네의 만두가 있고, 지방마다 그 지방 특색의 만두가 있다. 따라 서 누구라도 대만의 만두를 잘 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양한 재료를 밀가루로 감싸는 만두는 포용과 화해를 상징한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만두를 빚는 장면이 설날의 행사에 서 빠질 수 없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한 해를 보내는 시점에서 섭섭한 점이 있더라도 화해하고, 잘못한 점이 있더라도 포용 하자는 의미인 것이다.

20쪽

앞에 나타났다.

다가왔다.

산하육 이란 무엇일까?

대만의 정신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뇌리에 끊임없이 만두가 떠올랐다. 포용하는 정신이 강하다고 해서 잣대나 기준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일하거 나 공부하는 데에는 서릿발 같은 기준이 보였다. 그 기준은 시시각각 내 눈

대만의 정신이 무엇일까 내내 고민하던 내 눈에 또 청화대학 정문 벽을 따 라서 이어진 울창한 대나무 숲이 보였다. 그 순간 대나무가 대만인들의 절도 를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타이베이의 랜드 마크인 101빌딩이 왜 굳이 대나 무를 형상화했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포용과 절도 내게 대만은 그렇게

(山河肉) 대만이 정말 가난했을 당시 농촌에서 자란 연구생이 들려준 이야기다. 그

만두

연구생에게는 도시락에 관한 슬픈 추억과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매일 똑같은 반찬 즉 무나 감자말랭이에 질 렸던 기억이 있단다. 슬픈 추억이다. 그런데 그것을 눈치 챈 짝꿍 여학생이 슬쩍슬쩍 집어주던 맛난 반찬에 대한 기억이 있 단다. 아름다운 추억이다.

101빌딩

산하

(Bandicoot rat)

하는 사람이 많다.

시골의 아이들이 자라는 장면은 한국이나 대만이 나 비슷하다. 들판에는 먹거리가 많았다. 메뚜기, 개 구리, 물고기 등을 수시로 잡으러 다녔다. 참새가 우 리의 별미가 되기도 했다. 좀 더 별난 아이들은 뱀 을 잡아 먹기도 했다. 대만의 아이들도 들판에 나가 먹거리를 찾아 영양보충을 했다. 여기까지는 한국 과 대만의 아이들은 비슷하다. 그런데 대만의 아이 들은 한 가지를 더 먹었다. 바로 산하육 이다.

(山河肉)

는 큰 들쥐를 가리킨다. 산하 육이란 큰 들쥐 고기를 말한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 을 보냈던 세 명의 연구생이 모두 이구동성으로 맛 있다고 말했다. 예나 지금이나 사탕수수는 대만의 특산품 중 하나다. 사탕수수밭은 대만 시골 어디에 서나 쉽게 볼 수 있다. 사탕수수밭에서 그 사탕수수 를 먹고 통통하게 자란 ‘달달한’ 쥐라고 했다. 끼니도 때우고 영양보충도 할 겸, 덫을 놓아서 수 시로 잡아먹었다. 반신반의하는 내게 지금도 남부 의 시골 식당에서 ‘산하육’이라는 메뉴가 있다고 했다. 사다 주겠다는 말에 기겁을 했다. 쥐고기는 조 림, 구이, 데침 등의 방식으로 즐기는데, 닭고기 보 다 부드럽고 새 고기처럼 맛있다고 했다. 물론 대만 에서도 산하육은 대중적인 음식이 아니다. 기겁을

21쪽

단자이면

식당 이름에 담긴 철학

(擔仔)

팔았다.

중국어로 ‘단자이 ’는 들것을 말한다. 타이난 사

(台南)

람들은 면을 들것에 넣고 다니면서 팔았다. 단자이면이라는 이름의 유래이다. 단자이면의 역사는 1895년으로 거슬러 올 라가야 한다. 당시 수도라고 할 수 있는 타이난 지역은 폭우 도 폭풍도 자주 몰아쳤다. 바다로 조업을 나갈 수 없는 날이 많았다. 마냥 놀고 있을 수가 없기에 어떤 어민이 국수를 들 것에 싣고 타이난의 수선궁 에 나가서 참배객들에게

(水仙宮)

콩나물, 향채, 마늘, 새우, 다진 고기 등의 고명이 들어가는 작은 그릇의 단자이면은 요기 거리로 안성맞춤이었다. 1950 년대 미국의 원조로 밀가루가 대량으로 수입되면서 단자이면은 대만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대만인들은 단자이면을 국보라 고 자랑한다. 총통부에서는 국빈 대접용으로 내놓기도 한다. 2017년 국제 미식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원조 맛집들이 타이 난의 중정로 에 밀집해 있다.

(中正路)

埕 ) (大稻

1895년부터 영업을 시작했다는 ‘도소월 ’의 다다오청 의 분점에 갔다. 지금도 처음 영업 시작할 때와 마찬 가지로 ‘도소월 단자이면

(度小月擔仔麵)

(度小月)

’이라고 쓴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친구가 도소월이라는 식당 이름의 의미를 알겠느 냐고 했다. 나는 우선 작은 달 을 보내자 그래야 큰달이 온다는 의미가 아니냐고 해보았다.

(小月)

친구의 답변은 이랬다.

(度)

- 바닷가 사람들은 파도가 크게 왔을 때를 작은 달이라고 한다. 수확량이 적은 달이라는 것이다. - 작은 달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 찹쌀떡을 해먹으면서 큰 달을 기다린다. 사실 파도가 큰 달은 집에서 그냥 떡을 해먹으면서 그것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동양의 최고 경전인 역경의 핵심

총통부

22쪽

일제시기 우체국

설계자의 손자를 초청했다. 그 손자가 이렇게 말했다.

(易)

(總統府)

“할아버지도 본인이 가장 행복한 설계사라고 자랑스럽게 생각하실 겁니다.”

사상이다. 역 은 바뀐다는 뜻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변화한다는 뜻이다. 파도가 큰 날이 있으면 파도가 작 은 날도 있다. 큰 파도는 언젠가는 지나간다. 작은 파도 가 지나가면 큰 파도가 반드시 온다. 오라고 해서 오는 것도 아니고, 오지 말라고 해서 안 오는 것은 아니다.

대만인들은 일본을 어떻게 생각할까?

대만의 대통령인 총통 이 업무를 보는 곳을 총

(總統)

통부 라고 한다. 이 건물은 일본 식민지 시절인 1919년에 완공이 되었으니, 2019년이 정확하게 1백 주년이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대만정부는 총통부

만약에 어떤 일본인이 한국에 와서 이런 말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니 우선 정부가 초청했을까? 신문에 보도는 되 었을까? 대만의 부총통이 그를 접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 총통부는 오랜 시간동안 권위의 상징이었지만, - 대만의 민주화 이후 멀리서 바라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 국민들과 매우 친근하게 되어서 이제 국민의 총통부가 되었다. 총통부 설계자의 손자는 나와 똑같은 경이로운 시각으로 총통부를 바라보았다. 완벽하게 보존되 고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 는 대만의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는 와중에도 옛날 건축물을 아끼는 태도에 감명을 받았다고 했 다. 총통부 뿐만이 아니라 그의 조부가 설계한 타 이베이 시청 건물과 타이베이 호텔이 그대로 남 아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일본인이 설계한 건축물이 어떻게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대만인들의 리모델링 내공

송산 문창 원구

(松山文創園區)

리모델링으로 이미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곳이다. 송산은 담배 공장이었다. 원래 일본 통치 시기인 1937년에 설립된 ‘대만 총독부 전매국 송산 연 초 공장’이었다. 1945년 대만 해방 후에도 잘 운 영되다가 1998년에 이르러 담배 인구의 급감으 로 공장의 문을 닫았다. 건물이나 내부 공간의 구 조로 볼 때, 처음부터 얼마나 공을 들여서 지었는

는 도시 재생 또는

열락서점

23쪽

화산시계 가게

지 알 수 있다.

서점

(열락서점)

꼽히고 있다.

링의 최선 아닐까? 화산 예문 특구

(文創園區)

당시 노동자들의 근무 환경까지 최대한 고려하여 지었다 는 자랑이 거짓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지금 예쁜 으로 거듭난 당시의 탁아소는 2천 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의 복지를 생각했다는 당당한 증거가 되고 있다. 타이베이시가 2001년에 유적으로 지정하였고, 10년간 의 노력을 쏟아 부어 2011년에 정식으로 오픈했다. 지금까 지 타이베이 나아가서 대만 문화 창의 산업의 상징으로 손

송산을 둘러보면 전통과 현대의 내공 모두를 쏟아 부었다 는 느낌이다. 촌티도 없고, 억지도 없다. 안전에 문제가 없 는 이상 원래 모습을 건드리지 않았다. 원래의 분위기를 훼 손하지 않고 다시 살리는 것이야말로 도시 재생이나 리모델

역시 문화 창의 지구

(華山藝文特區, 1914)

의 대표로 손꼽힌다. 나는 화산의 시계 가게 입구 에 있는 나무와 건물을 보고 대만인들을 더욱 높이 평가하게 되었다. 건물의 현관문을 파고든 나무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그것을 튼튼하게 유지하기 위한 쇠기둥만을 더했을 뿐이다.

대만인들의 정명의식

이 중국인의 특징 중 하나이다. 중국인들은 첫 만남에서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간다. 하기야 예전 한국에서도 호칭을 집고 넘어가 는 어른들이 많이 있었다. 인사하는 자리에서 아저씨라고 불러라 거나 너한테는 할아버지뻘이라고 하는 등의 정리가 반드시 있었 다. 안동 반가에만 내려오는 전통이 하나 더 있다. 양반끼리 만나 면 바로

(일곱 살 정도를 기준으로)

게 투의 말을 쓴다. 이렇게 호칭을 정리되면서 사회로 진입하게 되 는 것이다.

지고 있다. 아니 한국사회에서 호칭이 엉망이 되고 있다. 종업원 복장을 하고 일하는 사람에게도 사장님이라고 부르거나, 같은 병 원이나 학원에 여러 명의 원장이 있으며, 형님뻘의 손님에게 아버 님이라고 부르는 식이다.

만대학역이 아니라 공관역 이다. 지하철에서 내리면 대만대

(公館站)

학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역이름은 공관역이다. 대만사범대학역 이 아니고, 구팅역 이다. 대만사범대학은 구팅역 바로 옆에

(古亭站)

중국인들은 호칭을 중시한다. 어떻게 보면 호칭을 중시하는 것

허교를 하는 전통이 있다. 해라나 하

박애좌

합리적인 사회를 위한 선결조건이 아닐까, 하지만 점점 드물어

대만 지하철 역 이름에서도 대만의 절도 즉 원칙이 보인다. 대

공관역

24쪽

마조묘

있다. 사범대학역이라고 이름 붙여도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구팅역이라는 이름 을 붙였다.

대만인들의 종교

현실과 이상, 전통과 현대의 조화이다. 대만인들은 그렇게 많은 신화와 고사 속의 귀신들과 협객들을 의식하면서 하루하 루 살아간다. 성황묘를 비롯한 마조묘 등에는 언제나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사람이 산다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고통일 수 있다. 종교를 떠나서 기도하고 반성할 일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성황묘에서 대만인들처럼 빨간 색의 반달처럼 생긴 나무조각으로 점을 쳐보는 시늉을 했다. 결과가 무엇이든 그 과정에서 이미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대 만의 종교는 그런 기능을 하고 있었다. 그것으로 족하다. 고향 하회에서 평생 종가를 지키다가 돌아가신 종부는 우리가 조상 덕분에 잘 살고 있다는 말씀을 입에 달고 살았다. 대 만의 사원 주변에서 장사하는 사람들도 신령 덕분에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대만은 그렇게 현실과 낭만의 통합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신령 덕분에 장사를 하고, 장사를 위해 신령을 모시는 것 같다. 대만 어디나 사당이 없는 곳이 없으니 대만은 신령과 인간의 경계가 무너진 곳이다. 그런 차원에서 신령 세계와 인간 세

세계 최고의 박물관

상의 구분이 있겠는가! 이승과 저승, 차안와 피안의 구분이 필요하겠는가!

국립대만역사박물관을 둘러보면서 나는 감탄했다. 현재까지의 대만 역사를 있는 그대로 전시하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 서술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내눈에 대만역사박물관을 불가능한 영역에 도전했고 상당부분 이루어 낸 것으 로 보였다. 현재 대만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스토리텔링이다. 일본의 통치 시기는 물론 원주민족까지 복잡한 대만의 역사를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보여주고 있다. 공평하고 공정한 서술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할 듯한 역사를 재현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대만역사박물관은 소수와 약세를 무시하지 않았다.

25쪽

박물관 이야기가 나올 때 마다 나는 타이 난의 국립대만역사박물관을 추천한다. 박물관 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물론, 박물관에 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한다. 뿐만 아니 라 타이난 쪽을 관광하는 사람들에게도, 아니 대만을 한 번에 정리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추천한다. 박물관의 전범이면서, 내가 아는 한 최고의 박물관이다.

통일할까? 독립할까?

나는 대만인들에게 양안관계가 부럽다는 말 을 자주 했다. 왕래에 문제가 없고, 투자할 수

대만역사박물관

있고, 유학을 할 수 있다. 중국과 대만은 단일 경제 체제가 완성된 것처럼 보인다. 중국의 오픈 마켓 타오바오 가 통일

(淘寶)

을 선도하고, 모바일 결제 시스템인 즈푸바오 가 뒤를 바치고 있다. 단일 경제 체제는 이미 대만 사람들의 의식 세계

(支付寶)

의 깊숙이 들어와 있다. 상호 주식거래도 직접 할 수 있게 된단다. 더 이상의 통일 이 필요할까?

(통합)

대만인은 대륙에서 거주증만 받으면 대륙인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 궁극적으로 대륙은 대만인들을 중화인민공화국 국민으로 대우하는 것이 목표이다. 대륙에 거주하는 대만인은 2백만 명으로 추산되고, 상하이에서만 4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우리 한국인의 입장에서 볼 때 해협 양안은 이미 통일된 상태와 다름이 없다. 중국과 통일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독립하는 것이 좋을까? 급진적인 독립을 뜻하는 ‘억지 독립 ’과 점진적인 독

(硬獨)

립을 뜻하는 ‘부드러운 독립 ’ 등의 단어도 재미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2019년 3월 타이베이시의 대변인이 통일과 독

(軟獨)

립은 가짜 의제라는 말을 해서 통일파와 독립파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했다는 것이다. 통일이나 독립은 단기 내 결과 가 나올 수 없기 때문에 불필요 소모전이라는 의미이다.

양안평화

이다. 보수와 진보

(통일과 독립파)

하는 것이다.

어서는 안 된다.

통일이나 독립이라는 거대 이슈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는 목소리 와 더불어 이도저도 아닌 중간지대 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사회 내 회색지대라고 할 수 있는 제3지대 또는 제3의 공간은 매우 중요하다. 제3의 공간이야말로 건강한 사 회의 척도라고 주장하는 학자가 많다. 강요받지 않을 권리를 강조

나는 현재의 ‘유럽연합’이 너무 부러워서 늘 ‘아시아공동체’나 ‘아시아연합’의 결성을 꿈꾼다.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 이다. 중 국처럼 다수는 자신이 주체가 되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대만처럼 소수는 소수가 먼저 보호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따 로 같이 사는’ 정신이 소중하다. 아무리 작은 정체성이라도 무시되

류영하 교수┃백석대학교 중국어학과

*이 글은 『대만 산책』 (류영하, 이숲, 2022)에서 일부 발췌하였습니다.

26쪽

연구소 행사 1

일본 오사카 문화답사

2019년 말부터 시작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일본은 2020년 3월 한국인의 무비자 입국 조치를 중단했고 68개국으로 확 대하였다. 이에 따라 일본으로의 여행이나 학술교류가 거의 중단된 상황에서 일본 정부는 2년 7개월만에 2022년 10월 11 일부터 일일 입국자 수 상한을 폐지하고 일본을 방문하는 여행객의 개인 여행과 무비자 단기

체류를 허용하였다.

(최대 90일)

2019년 9월부터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으로 동아시아 도시인문학 교과과정 설계 및 인문교육 과정을 재구축하는 사업을 수 행해온 인문과학연구소는 코로나19로 인해 이루어지지 못했던 중국, 일본 등과의 학술교류를 위한 MOU체결과 ‘항도

(港都)

인문기행’ 교과목 개발을 위해 일본 오사카(大阪)지역을 다녀왔다. 오사카지역 일정은 2022년 12월 20일부터 24일까지 4박 5일의 일정으로 이루어졌으며 12월 20일은 텐노지구

区 ) (天王寺

, 12월 21일은 오사카지역 극장문화, 오사카성, 아파치 부락, 츠루하시 코리아타운, 12월 22일은 MOU체결을 위한 교토 리쓰메이칸대학 사전간담회, 12월 23일은 고베 아와지섬 에서 안도다다오의 건축물 유메부타이, 혼푸쿠지 미즈미도 등을 답사하였다.

2022년 12월 20일 1일차 답사지역은 텐노지구의 통국사와 시텐노지이다. 재일코리안의 절이라고 불리는 통국사로 와

気 山統 国 寺) (和

케야마통국사

통국사 입구

済 寺 : 難波百 大別王寺) (百

済

라고도 하며, 난바 의 백제사

(難波)

徳 太子) (聖

쇼토쿠태자

명을 들을 수 있었다.

시텐노지

(四天王寺)

라고 추정하는 설도 있다. 통국사의 가 창건하였으며, 백제의 승려 관륵이 초대주지가 되어 스이코천황

의후

(推古天皇)

의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1969년 재일불교도협회 의 산하에 들어가 통국사로 명명되어 재흥되었으 며, 초대 김성해, 2대 장태성, 3대 서태식, 현재 최 무애가 계승하고 있다. 납골당에는 재일코리안들의 유해와 식민지기 강제동원된 사람들의 유해가 봉 안되어 있다. 이중 강제징용 피해자 유해 74구가 2019년에 제주 선운정사에 봉환되었으며, 피해자 4명의 유가족을 찾아냈다. 통국사 경내에 2018년 제주4.3위령비가 건립되었으며, 2019년 제주4.3 위령제가 처음으로 개최되기도 하였다. 최무애 주 지스님 자부에게 강제동원된 분들의 유해가 한국으 로 송환된 경위와 4.3위령비의 설립경위에 대해 설

는 쇼토쿠 태자가 건립한 7대 사찰 중 하나이자 현존하고 있는 일본 최초의 사찰

27쪽

시텐노지 경내 무대강

로 스이코 천황 원년에 설립되었다. 시텐노지는 도래인에 의해 백제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한국인에게도 역사적 인 의미가 있는 곳이다. 시텐노지 경내에는 ‘무대강’ 이라는 이름의 돌로 만든 무대가 있는데 백제인 음악무용가 미

(舞臺講)

마지 가 기악무 를 제자들에게 가르치거나 공연을 했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무대강에선 시텐노지를 건

(味摩之)

(伎樂舞)

립한 쇼토쿠 태자의 추모 행사가 열리고 있다. 시텐노지에서 열리는 ‘왓소 마쓰리’는 한반도에서 온 손님들을 맞이하던 환 영의 모습을 재현한 것으로 한국어의 ‘왔소’에서 유래됐다. 1990년부터 해마다 11월에 쇼토쿠 태자 등 4,000여 명이 옛날 의 복식을 한 채 가장행렬을 펼친다. 답사 당일 시텐노지에서 한달에 두 번 열리는 장이 열려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였다.

2022년 12월 21일 2일차는 오사카지역 전통극장들을 답사하였다. 관서지역은 노, 쿄켄, 분라쿠, 카부키, 락쿠고 등의 전 통예능발상지이다. 독자적인 극장문화를 만들어낸 역사적인 축적과 진취적인 정신력을 지역의 자산으로 하여 독창성을 지 닌 다카라즈카 가극과 요시모토 신희극를 탄생시킨 지역이기도 하다. 오사카에서 극장문화가 만들어진 배경에는 17세기 중 엽 오사카 상인들의 자금력으로 수준 높은 문화가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상인들은 자택에 노무대를 설치하기도 하고 교토 에서 이에모토 를 불러 노를 익히는 대상인 도 있었다. 극장문화 외에도 꽃꽂이와 센차도, 스모 등의 예능도 오

(家元)

사카지역에서 발전하였다. 경제가 발달한 시기 에 다양한 문화도 형성되어 다른 도시와 비교해 서 화려한 문화가 집적될 수 있었던 것이다. 따 라서 상인의 도시라고 일컬어지는 오사카의 특 징을 ‘극장문화’라는 관점에서 답사하였으며, 이러한 관점의 연구는 현재까지 거의 이루어지 지 않았기 때문에, 오사카지역의 문화예술분야 의 교과목 작성은 물론 향후 한,중,일 비교연구 가 기대되는 지점이다.

오사카성에서는 『오사카성 부근에 남겨진 근 대 한일 관계의 상흔』

(역사비평사, 2008)

(大商人)

의 저자

국립분라쿠극장

28쪽

재일조선인사연구자 塚崎昌之 씨와 답사하였다. 한국의 역사와 재일코리안

키)

의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와타리 사

毎 日放送 記者)

와코씨

(亘佐和子

아키씨

도 동행하였다. 오사카

(朝日新聞社 記者)

성은 한국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지만 한국 과 깊은 역사적 관련성을 나타내는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오사카성은 조선을 침략했던 도요토 미 히데요시가 만든 성으로 알려져 있지만 임진 왜란, 정유재란 시대가 끝나고 조선과 에도막 부사이에는 우호적인 관계가 이어지기도 하였 다. 그러나 1873년 정한론, 1875년 강화도 사 건을 시작으로 오사카에는 동양 최대의 오사카 포병공창, 제4사단 사령부, 오사카육군 위수형 무소가 건립되었으며, 이러한 시설의 건립과 무 기제조에 다수의 조선인이 동원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미군에 의한 공습으로 많은 건 물이 폭파되어 현재는 비석만 남아 그 역사터를 보존하고 있지만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피해를 입은 조선인들의 기록은 거의 없다. 답사 후 워 크숍을 통해 공습으로 인한 일본인들과 조선인 들의 피해, 그리고 전후 일본인들의 역사인식의

2022년 12월 22일은 리츠메이칸대학

리쓰메이칸 코리아연구센터 간담회1

(츠카사키 마사유

와 오타키테츠

오사카성 일대 답사 및 워크숍

문제, 일본에 남은 재일코리안의 사회, 경제적차별에 대한 논의를 하였다.

学 ) (立命館大

에서 MOU체결을 위한 사전 간담회를 가졌다. 리츠메이칸대학

(Rit­

29쪽

sumeikan University)

은 1869년 교토 황궁 내에 ‘리츠메이칸’을 세운 것을 시작으로 1900년 교토 법정학교

学 校) (京都法政

, 1913년 사립 리츠메이칸 대학으로 개칭하면서 1922년 리츠메이칸 대학으로 승격하였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군국주의 에 앞장 선 학교로 미군정은 학교를 폐쇄하려고 하였으나. 법학자인 스에카와 히로시 가 전쟁에 대한 깊은 반성으로

(末川博)

헌법과 교육기본법을 기반으로 한 평화와 민주주의를 교육이념으로 정하여 리츠메이칸을 민주적인 대학으로 개혁. 리츠메 이칸 대학은 지금도 전쟁에 대한 역사교육과 국제평화를 위한 국제평화 뮤지엄을 운영하고 있다. 리츠메이칸대학과 대구대 학교는 자매결연대학으로 특히, 리쓰메이칸대학내 코리아연구센터는 한국의 연구자들과 공동연구를 계속하고 있으며 한일 학생교류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이에 인문과학연구소는 코리아연구센터의 MOU체결을 계획하고 있으며 향후 학술교류와 한일 학생교류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2022년 12월 23일은 아와지섬의 안도타타오 건축물을 답사하였다. 아와지 섬은 일본신화에서 국가탄생의 섬으로 등장한다. 고대 일본의 역사서 ‘고사기 ’와 ‘일본서기 이자나미

(淡路)

’는 남매지간인 ‘이자나기

(古事記)

(日本書記)

弉 諾) (伊邪那岐 또는 伊

’와 ‘ ’가 하늘에서 내려와 결합해 일본의 여러 섬을 하나씩 출산했다고 기록한다. 그때 맨 처음 만들어진 섬

(伊邪那美)

이 아와지 섬이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신사 ‘이자나기진구

弉 諾神宮) (伊

’도 아와지섬에 있다

(공동연구원 임동욱 페이스북 참조

. 이와 같은 ‘신성한 섬’이 훼손된 것은 관서국제공항을 건설하기 위해 대량의 토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와

2022.12.27)

지유메부타이

의 부지가 된 나다야마 도 관서국제공항을 비롯한 오사카만주변 매립을 위한 토사채취장 중

(淡路夢舞台)

(灘山)

한 곳이었다. 1963년부터 시작된 토사채취는 관서국제공항을 개항한 1994년까지 계속되었다. 채취된 토사의 양은 약 1 억㎥, 자연이 소실된 면적은 139헥타르

(고시엔구장 36개분)

에 달했다. 토사가 채굴된 곳은 바다로 토사가 유출이 되기 때문 에 바다에 생물이 살 수 없게 된다. 소멸된 생물들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종합적인 관점에서 자연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필요 하지만, 근대 이후 개발 중시의 일본의 역사 속에서 그러한 사례는 거의 없었다. 인간이 황폐화한 자연을 사람의 손으로 회 복시키려는 시도가 아와지에서 시작된 것이다. 1994년부터 시작된 녹지공사는 암반의 사면지 에 틀을 만들고 묘목

(斜面地)

을 심어 식물을 보다 자연에 가까운 상태로 뿌리내리게 하는 새로운 공사공법을 시도하여 가능한한 자연환경에 가깝게 하 려고 노력하였다. 이렇게 유메부타이는 ‘사람과 자연이 공생하는 무대’로 재탄생되었다. 1998년 오픈예정이었으나 1995 년 한신대지진으로 프로젝트가 중단되었다. 그러나 다시 프로젝트를 재개하여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2000년에

리쓰메이칸 코리아연구센터 간담회2

30쪽

혼푸쿠지 미즈미도 본당 입구

완성되었다. 100개의 화단으로 이루어진 백단원

真 言宗御室派) (

진언종오무로파

(햐쿠단엔, 百段苑)

‘유메부타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안도 타다오의 또 다른 작품이 있다. 혼푸쿠지 미즈미도 의 총본산 인화사 의 말사 이다. 헤이안시대 후기에 창건된 고찰로 진언밀교 사원

(仁和寺)

(末寺)

은 백개의 꽃이 피어있는 단으로 이루어진 추모공간이다.

이다. 혼푸쿠지는

(本福寺水御堂)

이다. 미즈미도는 혼푸쿠지의 본당으로 1991년 안도에 의해 건립되었다. 혼푸쿠지 미즈미도는 지붕이 인공으로 만든 연지 로 되어 있으며, 본당은 지하에 있다. 본당에는 아와지시 지정중요문화재 본존약사여래상이 안치되어 있다. 아와지섬

(蓮池)

의 안도다다오 건축물에는 도시건설과 자연파괴, 생태문제가 포함되어 있어 일본뿐만 아니라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 게 사람과 자연의 공생을 생각할 좋은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지영임 전임연구교수┃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31쪽

연구소 행사 2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대구한의대학교 인문도시사업단

상호협력을 위한 업무협약 체결

지난 2022년 11월 2일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와 대구한의대학교 인문도시지원사업단은 유기적 협력 체계를 구축 하고, 두 기관의 인문학 교류와 그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상호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은 인문학 교육의 대 중화를 위해 교내외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는 두 기관의 활발한 협력을 통해 앞으로의 인문학 교육 활성화를 기대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는 철길을 따라 지역 의 경계를 넘나드는 동아시아 도시인문학을 재조명 하여 교육 콘텐츠 및 교육과정 개발, 그리고 인문교 육 시스템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 교내 강의 개발은 물론 교외에서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인 문학 강좌 및 도서관과 연계한 특강을 통해 인문학

대구한의대학교 인문도시지원사업단은 지자체와 지역 대학의 네트워크를 통해 시민들에게 인문학을 접할 기회를 제공하는 교육 활동을 추진하고 있으며 지역의 인문 자산을 발굴해 대중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2022년 10월 두 번째를 맞이한 ‘인문주간’을 운영하여 인 문 강좌는 물론 시민들과 함께하는 답사, 각종 공연까지 기획하며 다양한 방식을 통해 시민들에게 다가가는 인문학을 실천 하고 있다. 이렇듯 지향점이 같은 두 기관은 이번 업무협약을 통해 인문 학술 교류 및 교육 콘텐츠 개발 연구 등에 관한 전반적인 협 력을 진행한다. 동시에 공동 연구 활동, 인문학 프로그램 개발 및 운영 등에도 협력하기로 하여 두 기관의 협력을 통한 새 로운 교육 프로그램 개발이 기대되며 프로그램 운 영을 통한 연구의 실천과 성과의 확산도 예상된다. 앞으로 두 기관의 상호 협력을 통해 인문학의 확 산과 대중화를 위해 다양한 방식의 인문학 교육 프 로그램을 기획하고 인문교육 콘텐츠 개발 연구를 도 모함으로써 선도적 방식의 인문학 교육 환경을 마련 하는 의미 있는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32쪽

지난 2022년 11월 9일부터 11월 11일까지 대구 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와 대구대학교 문화예술학부 는 문화콘텐츠 개발 제주도 현장실습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

(To Infinity and Beyond)

목 개발 교수-학생 공동세미나’를 개최했다. 한국연 구재단의 지원을 통해 'LMS-ACE 교육과정 개발 및 인문교육 시스템 구축 : 철길로 이야기하는 동아시아 도시인문학'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이번 현장실습

연구소 행사 3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대구대학교 문화예술학부

현장실습 및 교과목 개발

교수-학생 공동 세미나

’ 프로그램 및 ‘교과

은 인문과학연구소에서 개발된 교과목이 강의실 내의 학습에서 벗어나 구체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현장 학습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구성해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냈다. 이번 현장실습에 참여한 37명의 학생들은 11개 조로 나뉘어 제주도 일대에서 조별 주제와 관련된 콘텐츠 창작 활동을 하며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현장실습에 참여한 학생들은 강의실 밖에서 이론으로 배운 것들을 실습해 볼 수 있는 좋은 기

었다.

회가 되었다며 현장실습 참여에 높은 호응을 보였다. 현장실습과 함께 진행된 교과목 개발 교수-학생 공동세미나는 대구대학교 문화예술학부 교수들과 학 생들이 참석하여 인문과학연구소에서 개발·운영 중 인 ‘도시와 문화예술학’ 관련 교과목에 대한 교수자 와 수강자의 인식과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로 마련되

문화예술학부 정인호, 이규환 교수는 각각 담당하 고 있는 ‘콘텐츠와 사투리’, ‘드라마를 통해 본 근대’ 등 현재 개발·운영 중인 교과목에 대한 발표를 진행 하였다. 토론을 담당한 영남대학교 박승희 교수는 “ 문화예술학 또한 중요한 도시 인문콘텐츠가 될 수 있 다”며 “방송콘텐츠를 활용한 수업 제안이나 사투리 를 활용한 콘텐츠 수업은 의미가 있는 수업이 될 수 있지만 수강자의 입장에서 어떤 내용을 다룰지는 고 민해봐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어 문화

33쪽

예술학부 학생들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수업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세미나를 통해 나온 의견들은 앞으로의 과목 개발과 운영에 반영될 예정이다. 인문과학연구소는 이번 현장실습과 세미나를 통해 인문과학연구소에서 개발·운영하고 있는 강의 내용을 학생들이 직접 실습할 수 있는 학습 기회를 제공하고 교수자와 수강자 양쪽의 의견을 청취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프로그램들을 지속적으로 실행할 예정이다.

34쪽

교과목 소개 1

동아시아 항도 인문기행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는 학생들에게 인문학 이론과 문화적 체험이 접목된 콘텐츠로서 유익한 지식과 체험을 제공 하고자 지리적·역사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있는 동아시아 3국의 대표적인 도시들의 역사·문화의 형성과정을 통해 현대 문화의 특징과 의의를 탐구하는 교과목을 DU-MOOC의 형태로 개발하였습니다. 이번 동아시아 항도 인문기행 교과목은 이 러한 동아시아 도시 기행 시리즈의 4번째 교과목입니다.

동아시아 항도 인문기행에서는 무엇을 배우나요? 동아시아 항도 인문기행은 도시 시리즈 가운데 4번째로 서 항도 , 즉 항구도시에 관한 것입니다. 본 교과목을

(港都)

통해 학생 여러분은 동아시아 항도가 가지는 근대적 특색 과 역사적 굴기, 역사와 문화의 응집을 통해 배태된 도시 문 학과 도시 스토리텔링, 그리고 도시의 비즈니스 현황 등을 살펴봄으로써 동아시아 항도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넓 히고 각 도시를 비교·체험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습니다.

어떤 특징이 있나요? •동아시아 항구도시의 특수성과 보편성 이해 본 교과목은 항도라는 특수한 위치로 인해 근대 사회로 의 전환에서 발생한 특수한 지역적 상황을 이해할 수 있으 며, 이러한 현상을 드러내는 도시 역사와 문화 예술을 살 펴볼 수 있습니다.

•PBL

(Project-Based Learning)

주어진 이슈나 문제에 대한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태도 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교실 체 험을 제공합니다.

•조별 토론 및 발표, 질의응답 수업 본 수업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교수자와 학생, 학생과 학생 간의 소통과 협력을 통해 주제에 접근하는 참여형 수 업입니다.

한국 부산 신항 터미널 야경

중국 상하이 황푸취(黃浦區)와 푸둥신구(浦東新區)

방식의 수업

일본 오사카 도톤보리강(道頓堀川)

35쪽

•그 밖에 도시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모든 학생 주차별 강의 내용 주 차 1주 수업 오리엔테이션 / 동아시아 항도 도시와 근대

•동아시아 항구도시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 관심이 있는 학생 •동아시아 도시가 가진 문화적 역량과 그 현대적 재현에 관심이 있는 학생

수업의 주제 및 내용

활동 상세 내역 수업 소개 / 강의 한국_부산 역사 지리 기행1 2주 1. 부산의 자연지리: 삼포지향의 도시 / 2. 부산의 경관지리: 해안에 깃든 삶터와 문화 / 3. 토론 및 PBL 부산의 주거지리: 거주의 양극화와 틈새의 문화

한국 _부산 역사 지리 기행2 3주 1. 부산의 역사 : 고대에서 조선시대까지, 한일교류의 관문 / 2. 부산의 역사 : 개항과 근대 식 강의 및 토론 민도시 / 3. 부산의 역사 : 피란수도에서 해양 글로벌시티로 4주 5주

중국_상하이 역사 지리 기행1 1. 상하이 자연지리 / 2. 상하이 행정구역 / 3. 상하이 고대 역사 중국 _상하이 역사 지리 기행2 1. 상하이의 조계지 형성 / 2. 상하이와 신중국의 성립 / 3. 상하이와 개혁개방

강의 및 토론 강의 및 토론 일본_오사카 역사 지리 기행1 6주 1. 고대도시 오사카 / 2. 근세도시 오사카 / 3. 메이지유신과 오사카성 / 4. 오사카 역사 유 강의 및 토론 적과 인물

일본_오사카 역사 지리 기행2 : 오사카 전통문화와 종교 7주 1. 오사카의 상인문화 / 2. 오사카의 종교문화 / 3. 오사카의 신사와 마쓰리 / 4. 오사카의 강의 및 토론 불교문화 8주 중간고사 9주

한국_부산 문화 예술 기행1 1. 부산의 축제 문화 / 2. 부산의 시장과 거리 문화 / 3. 부산의 음식 문화

11주

중국_상하이 문화 예술 기행1 1. 중국 문화의 남과 북 / 2. 상하이의 해파와 베이징의 경파 / 3. 상하이 사람과 베이징 사람

13주

일본_오사카 문화 예술 기행1 1. 오사카의 예술문화 / 2. 오사카의 음식문화 / 3. 오사카의 건축문화

강의 및 토론 일본_오사카 문화 예술 기행2 14주 1. 오사카 재일코리안의 이주와 정주의 역사 / 2. 오사카지역의 의식주 생활과 정체성 / 3. 강의 및 토론 오사카 지역의 코리아타운과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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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과 테크놀로지’에서는 무엇을 배우나요? 오늘날 서로 관련이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예술’과 ‘기술’ 은 원래 동일한 근원에서 출발했습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 테크네 ’라는 용어는 예술과 기술을 구분하지 않고 지

(techne)

칭하던 표현이었습니다. 이후로는 최근까지 서로 분리된 채 평 행선을 그리며 각자 발전해왔습니다. 그러나 융복합과 창의성 이 중요해진 지금 시대에는 예술과 기술이 다시금 하나로 합쳐 져 다양한 문화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사회 각 분야에 서는 최신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 고 있으며, 기술에 대한 찬양과 더불어 기술중심적 태도에 대 한 비판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이 강의는 인문예술 분야에서의 과학기술 이용과 발전 과정을 분석하고 오늘날 테크놀로지라 불리는 거대 첨단기술의 활용 사례를 살펴볼 것입니다. 이로써 최신 동향을 파악함과 동시에 현대 사회의 다면성에 대해 이해 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어떤 특징이 있나요? •분야별 사례를 통한 문화예술 이해력 증진 : 음악, 미술, 공

교과목 소개 2

문화예술과 테크놀로지

인문예술과 기술의 결합을 이야기하는 스티브 잡스

시각장애인도 회화를 감상할 수 있게 도와주는 최신 기술

연, 행사, 역사 등 인문예술 분야에서 과학기술이 이용된 과정과 그 사례를 종합적으로 살펴봄으로써, 현대 사회의 필 수요소인 테크놀로지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입체적 수업 : 문화예술 각 분야의 사례를 소개할 때 사진, 영상, VR 등 멀티미디어 자료를 적극

기술 개념의 발전과 융합 트렌드

활용할 것이며, 테크놀로지의 활용에 대 한 다방면의 지식을 넓힐 수 있습니다.

•개인별 관심 주제에 대한 심층조사 실시 : 수강생이 졸업 후 진출하고자 하는 관 심 분야를 추가로 조사함으로써 향후 취 업 및 실무활동의 기본이 될 지식을 쌓 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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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미술, 영상, 공연, 행사 등 문화예술 전반에 관심이

있는 학생

•최신 테크놀로지의 원리와 그 활용에 흥미가 많은 학생

•국내 및 해외의 융합기술 동향을 알고자 하는 학생

주차별 강의 내용

주차

2주

기술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들 인간 중심주의인가 기술 중심주의인가

3주

융합 시대의 창의적 인재 기술예찬론과 기술혐오론의 대립

4주

음악 분야의 발전과 테크놀로지 활용 녹음 기술의 시작부터 인공지능의 창작까지

5주

미술 분야의 발전과 테크놀로지 활용 제작, 분석, 복원에 쓰이는 최신 기술

6주

7주

8주 중간고사

공연 분야의 발전과 테크놀로지 활용 프로젝션과 로봇을 이용한 최신 공연기술

9주

전시 분야의 발전과 테크놀로지 활용 뮤지엄의 변천과 몰입형 전시의 탄생

10주

야외행사 분야의 발전과 테크놀로지 활용 미디어파사드를 가능케 한 기술 사례들

11주

12주

역사 분야의 발전과 테크놀로지 활용 역사 속 인물을 추적하는 최신 기술의 사례

13주

관심주제 발표 개인별로 관심주제를 심층조사 후 발표

14주

수업의 주제 및 내용

1주 수업 오리엔테이션 / 현대 사회에서 테크놀로지의 역할

인문예술과 과학기술의 발전사 고대 그리스의 ‘테크네’에서 오늘날의 ‘테크놀로지’까지

영상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활용 사진에서 탄생한 영상이 시각예술을 점령하기까지

메가이벤트 분야의 발전과 테크놀로지 활용 올림픽과 월드컵의 개막식으로 살펴본 최신 기술

프랑스의 밤하늘을 수놓는 미디어 파사드 쇼

활동 상세 내역

수업 소개 및 관심사 공유

토론 및 PBL

강의 및 토론

강의 및 토론

강의 및 토론

강의 및 토론

강의 및 토론

강의 및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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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의 이론과 실제에서는 무엇을 배우나요?

교과목 소개 3

대중음악의 이론과 실제

오늘날 대중음악은 단순히 문화콘텐츠 영역 하나에만 영향을 주는 분야가 아닙니다. 한류 의 중심으로서 문화적 가치

(韓流)

는 물론이고, 문화산업적 가치, 나아가 해당 문화 전체에 대한 다양한 인식 변화의 마중물로 역할하고 있습니다. 이런 배경 을 바탕으로 본 강의를 통해 학생들은 대중음악의 이 론과 실제의 다양한 사례를 분석하고, 이 분석이 단순 한 음악, 콘텐츠로서의 역할을 넘어 한국, 나아가 세 계의 다양한 사회문화 현상을 파악하는 중요한 기회 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떤 특징이 있나요? •대중음악 사례를 통한 사회현실에 대한 이해 : 본 교과목은 단순히 대중음악에 관한 이해를 넘어, 현실

한국 대중음악의 시초

반영의 최전선에 위치한 대중음악의 사례와 그 함의를 통해 해당 시대를 분석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를 수 있습니다.

•PBL

(Project-Based Learning)

업 : 주어진 이슈나 트렌드에 대해 자신만 의 생각을 투영해 강의소재인 콘텐츠를 바 탕으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 을 훈련합니다.

뉴미디어와 대중음악 향유변화(리액션 비디오-유튜브)

방식의 수

세계의 대중음악 향유 플랫폼 이용현황

한류의 발전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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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별 토론 및 발표, 질의응답 수업 : 본 수업은 음악적 인물이나 사례분석을 통해 강의자와 학생, 학생과 학생 간

(개인별)

의 소통과 협력을 통해 주제에 접근하는 참여형 수업입니다.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에 따른 주요 장르

누가 수강하면 좋을까요? •대중음악에 관심이 있는 학생 •한류, K-Contents 등 대중문화에 대해 관심이 있는 학생 •미디어 변화에 따른 콘텐츠 트렌드에 관심이 있는 학생 •공연예술에 대해 관심이 있는 학생

주차별 강의 내용

주차

1주 수업 오리엔테이션 (교과목에 관한 상호 소통)

5주 대중음악 역사와 음악적 상징 2 : 1970년대 대중음악

8주 중간고사

11주 대중음악의 실제 1 : 미디어 혁신과 대중음악의 변화 12주 대중음악의 실제 2 : 한류와 K-Pop, 그리고 콘서트

14주 대중음악의 실제 4 : 대중음악의 방향성과 전망 15주 기말고사

수업의 주제 및 내용

2주 대중음악의 기초 : 대중, 대중문화, 대중음악에 대한 개념 및 범주 3주 대중음악 이론의 기초 : 대중음악 분석의 방법들 (사회, 문화, 예술 등) 4주 대중음악 역사와 음악적 상징 1 : 대중음악의 태동기~1960년대의 한국과 해외의 대중음악

6주 대중음악 역사와 음악적 상징 3 : 1980년대 대중음악의 한국과 해외의 대중음악 7주 대중음악 역사와 음악적 상징 4 : 1990년대 대중음악의 한국과 해외의 대중음악

9주 대중음악 역사와 음악적 상징 5 : 2000년대 이후의 대중음악 1 10주 대중음악 역사와 음악적 상징 6 : 2000년대 이후의 대중음악 2

13주 대중음악의 실제 3 : 대중음악 트렌드 변화의 사회문화적 함의

활동 상세 내역 수업 소개 및 관심사 공유

토론 및 PBL 강의 및 토론 강의 및 토론 강의 및 토론 강의 및 토론 강의 및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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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안내

대구경북 새로운 모색

시민과 함께하는 도시학 강좌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영남일보, 대구경북학회 공동 주최 전문가에게 듣는 도시이야기 / 일본 교토, 중국 시안 도시 탐방도 예정 시민 누구나 참여 가능, 3월부터 10주간 무료 강좌

윗줄 왼쪽부터 최병두 대구대 명예교수, 김영철 계명대 교수, 도원학 영남대 교수, 박종문 영남일보 부국장, 박승희 영 남대 교수. 아래쪽 왼쪽부터 김상수 사진작가, 김정학 대구교육박물관 관장, 최경호 영남대 학예연구원, 다나카 사토시 일본 리츠메이칸대 교수, 권응상 대구대 교수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는 대구경북학회, 영남일보와 공동으로 '대구경북의 모색, 동아시아 도시와 접속하다'라는 주 제로 시민강좌를 마련했다. 이번 시민강좌는 대구경북학회 '대구경북학 강좌'와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획 프로그램이다.

(회장 박승희 영남대 교수) (소장 권응상 교수)

가 지난 2019년부터 지역대학에서 시작한 가 추진 중인 동아시아 도시인문학 프로젝트를 결합한 기

대구경북학 강좌는 지역대학생들에게 지역문제해결을 위한 기획과 지역 사회에 대한 전반적 이해 교육의 필요성에 따라 지난 2019년부터 경북대학교와 계명대학교에 시작했다. 2022년 2학기 현재 대구경북 10개 대학에서 강좌를 진행해 4천 500여명이 수강했다. 대구경북학 강좌는 대구경북학회와 대구경북연구원이 공동으로 교육을 추진했으며, 대구경북지역 각 분야 전문가들이 강좌를 통해 지역 대학생 들의 정체성 제고와 지역사회 참여 의식을 높이고 지역에 관한 정보 를 공유하고 있다.

리, 사회문화, 활동, 지원정책)

(청년)

(일자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는 한국연구재단에서 지원하는 'LMS-ACE 교육과정 개발 및 인문교육 시스템 구축 : 철길로 이야기하는 동아시아 도시인문학'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시민강좌는 독창적인 도시성을 기반으로 동아시아에서 도시혁명을 진행 중인 도시에 대한 탐색을 통해 대구경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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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도시 모델을 찾는 것이 목적이다. 또한, 동아시아 도시들의 다양한 경험과 문화적 독창성을 현장 탐방을 통해 살펴 보는 기회도 함께 가질 계획이다. 이번 강좌는 시민과 지역학 전문가들이 캡스톤 디자인 방식으로 특강과 토론, 의제를 함께하는 각별한 과정으로 구성되 었다. 강사진은 관련분야 지역학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특강 이후에는 동아시아 도시들을 직접 탐방하는 기획 을 통해 동아시아 도시의 가능성을 직접 현장에서 확인할 예정이다. 강좌는 크게 세 영역, 10강으로 구성되었다. 우선 도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공할 5개 특강이다. 국가로부터 분리된 탈위계적인 도시가 주제이다. 다종적인 문화접촉과 장소로서의 도시를 현재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강좌들이다. 도시의 장 소성에 대한 새로운 관점, 탈국가적 도시혁명, 혁신도시와 대학, 하이브리드 도시 공간, 도시의 독특한 문화 접속 등이 주 요 내용이다. 두번째 영역은 동아시아 도시들에 대한 구체적인 탐색이다. 동아시아의 도시 문화와 전통문화, 박물관과 문화콘텐츠, 개 별 도시들의 공간 가치 등 내용은 다양하다. 베이징의 공간문화와 교토의 도시 정체성과 콘텐츠, 동아시아의 박물관, 사진 으로 만나는 동남아시아의 민속, 그리고 스토리로 떠나는 동아시아 여행 등 동아시아 도시들에 대한 속깊은 읽기가 두번째 특강의 핵심 내용이다. 이번 강좌의 가장 매력적인 기획은 세번째다. 동아시아 도시 탐방이다. 전문가와 함께 동아시아 도시들을 내부를 탐방하 는 특별한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대한민국 경주, 일본 교토, 중국 시안이 예정지이다. 강좌는 대구생활문화센터에서 3월 9일부터 매주 저녁 6시 30분에 시작된다. 영남일보에서는 특강에 앞서 주요 내용을 지면에 담아 시민들과 공유한다. 탐방 이후 대구경북의 새로운 모색 과정에도 참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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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콜로키움

일시 : 2023년 2월 27일 강사 : 권상구(시간과공간연구소 상임이사) 장소 : 시간과공간연구소(대구지역학자료관) 주제 : 시간 산책자 - 도시를 관상하다

2. 학술대회

일시 : 2023년 6월 10일 장소 : 대구대 인문대학 1층 ACE라운지 예정 주제 : 도시 인문학의 확장과 문화콘텐츠적 변용 *주제 및 세부 일정은 추후 홈페이지 공지

3. 시민강좌

4. 시네마 포럼

일시 : 2023년 5월 중 예정 장소 : 대구 고산도서관 *주제 및 세부 일정은 추후 홈페이지 공지

인문과학연구소 2023년도 상반기 행사 안내

일시 : 2023년 3월 9일~5월 18일 (매주 목요일, 오후 6:30~8:00) 장소 : 대구생활문화센터(수성도서관 옆) *주제 및 세부 일정은 홈페이지 공지

일시 : 2023년 3월~5월, 6월 중 예정 강사 : 박문칠(영화감독, 우석대 교수), 백정우(영화평론가) 장소 :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세미나실(인3102호) 예정 *주제 및 세부 일정은 추후 홈페이지 공지

5. 고산도서관 인문학 아카데미

도시 사람

와

2023 spring

Urban & Human

Colloquium

SYMPOSIUM

CIVIL LECTURE

CINEMA FORUM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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