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사람 2021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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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사람
와
2021 spring
Urban & Human
들과 소통할 계획입니다.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21년 3월
반갑습니다.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장 권응상입니다. 본 연구소는 이번 새학기 를 맞아 그간의 연구 및 교육성과를 공유하고자 e-저널 <도시와 사람>을 발간합니다.
1980년에 설립된 본 연구소는 대구대학교 인문대학 부설연구소로서, 인문학의 여러 분과학문을 유기적으로 연계하고 협업하여 인문학 분야의 연구역량을 강화해왔으며, 이를 기반으로 지역사회의 인문 문화발전에 기여해 왔습니다.
본 연구소는 지역 사회와 함께 하는 연구소로 거듭나기 위해 <인문교육지원센터>를 신설하였으며, 여러 지역 인문 단체와 협약을 통한 인문학 강의 콘텐츠 개발, 전문가 초청 강연 및 지역 도서관 특강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진행해온 지역연계 인문학 교육 활동들을 콘텐츠로 활용하여 e-저널과 유튜브 등 다양한 통로로 지역민
본 연구소의 사업들이 대학 혁신과 변화를 추동하고, 나아가 지역의 인문교육 생태계 를 활성화하기를 기대합니다. 앞으로 본 연구소의 연구와 활동에 많은 관심과 성원을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장 권응상
2021 spring
CONTENTS
02 소개말/인사말 03 목차 04 권응상의 도시기행 10 허영은의 일본 이야기 13 양진오의 ‘거리의 대학’ 16 연구소 개발 교과목 소개 1 18 연구소 개발 교과목 소개 2 20 시네마 기행 23 시민인문강좌 27 행사안내
도시 와 사람
발행일┃2021년 3월 2일 발행인┃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장 권응상 발행기관┃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경북 경산시 진량읍 대구대로 201 인문대학 교수연구동 인문과학연구소(3103호) Tel. 053) 850-5821 Fax. 053) 850-5824 http://ihs.daegu.ac.kr
권응상의 도시기행
고흐의 슬픈 예술혼이 깃든
프랑스 오베르 쉬르 우아즈
(Auvers-Sur-Oise)
‘오베르 쉬르 우아즈(이하 오베르)’라는 이 어렵고 긴 이름은 고흐가 아니었으면 절대 기억하지 못했을 도시이다. ‘Stary stary night∼’으로 시작되는 돈 맥클레인의 팝송 ‘Vicent’로 각인된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슬픈 삶의 종착 지가 이곳이라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늘 내 버킷리스트 제일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파리 여행길에 마침내 이 도시를 찾았다.
애니메이션 <러빙 빈센트> 포스터
이 도시는 고흐가 머물렀던 집에서부터 무덤까지 온통 고흐의 흔적이 묻 어 있는 도시였다. 그 기억을 다시 새록새록 되살려 준 것은 세계 최초의 유 화 에니메이션 <러빙 빈센트(Loving Vincent)>였다. 고흐 그림 속의 풍경과 인물을 고흐 풍의 유화로 재생한 이 애미메이션 영화를 나는 세 번이나 보았 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두 번째는 그림 때문에,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의 삶 때문에.
영화는 고흐의 최전성기로 평가받는 프랑스 아를(Arles)에서 시작된다. 그 의 그림 <우체부 조셉 롤랑의 초상>의 모델인 조셉 롤랑이 고흐가 남긴 편지 를 아들 아르망을 통해 고흐의 동생 테오에게 전달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고흐는 아를에서 같은 뜻을 가진 화가들과 예술 공동체를 꿈꾸며 함께 살 ‘노 란 집’을 마련하여 먼저 폴 고갱을 초청했다. 그러나 불화 끝에 고갱은 떠났 고, 고흐가 꿈꾸던 이상도 무참히 깨어졌다. 그 후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르는 등 정신병이 생겨 1년여 정신병원에 입원하였다가 결국 파리로 돌아오고 말 았다. 그리고 파리 근교의 이곳 오베르로 이주하였는데, 이곳 생활 70일 만 에 1890년 7월 29일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47년의 짧은 삶 속에서 고흐는 그림을 배운 적도 없었으며 본격적으로 활동한 기간도 겨우 8년이었다. 그리고 그가 남긴 800여 점의 작품 대부분이 마지막 4년간 아를과 오베르에서 그린 것이다. 특히 70일간의 짧은 오베르 생활에서 80여 점이 넘는 그림을 그리면서 최고 의 창작욕을 불태웠다.
오베르는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약 27km 정도 떨어져 있는 시골 도시이다. 나는 이 작은 도시의 어떤 매력이 고흐의 창작욕 을 일깨웠는지 몹시 궁금했다. 아를에서 파리로 다시 돌아온 고흐가 이 도시에 정착하기로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의학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폴 가셰 박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추어 화가이기도 했던 가셰 박사는 치료 뿐 아니라 예술적인 면 에서도 고흐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고, 이것이 고흐의 왕성한 창작의욕을 유지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다 오베르의 아 름다운 풍경이 그의 창작욕을 일깨웠을 것이다. 오베르에 머무는 동안, 고흐는 자연의 풍경에 젖어서 테오에게 오베르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았다. 고흐는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오베르는 매우 아름다운 마을이다. 전형적이고 그림과 같은 시골의 풍경이
한적한 오베르의 도심
사방에 펼쳐져 있다”고 적고 있다. 오베르의 풍경을 그린 그의 <오베르의 거리>에 보이는 화사한 색채감은 그의 들뜬 기분과 기대감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고흐에 앞서 폴 세잔, 샤를 프랑수아 도비니, 카미유 피사로, 아르망 기요맹 등 유명 화가들도 이곳에 정착하여 예술 활동을 했으니, 이 도시 자체가 예술가들에게 매우 매력적이었던 것 같다.
도시를 처음 방문했을 때의 내 느낌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특히 시간이 멈춘 듯 고흐 그림속의 풍경이 변함없이 유지되어 있 었다. 그의 그림 속 풍경을 따라가다 보면 문득 어깨에 이젤을 멘 고흐가 어디쯤에선가 툭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나는 먼저 도비니 박물관을 찾았다. 거기에 관광 안내 센터가 있어서 한글로 된 오베르 지도를 구할 수 있고, 교통편도 알아 볼 수도 있으며, 오베르 정보를 얻거나 영상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고흐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 유명 화가 도비니의 박 물관이므로 오베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이 박물관은 도비니의 그림을 아끼는 사람들에 의해 1984년에 설립되어 19 세기 인상파 화가를 비롯하여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들렀던 날은 휴관일이어서 그저 고흐의 <도 비니의 정원>을 떠올리며 정원 구경으로 만족해야 했다.
도비니 저택. 지금은 도비니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도비니 박물관 입구의 도비니 동상
향이었던 셈이다.
<도비니의 정원>은 고흐가 이 마을에서 추구했던 이상향, 즉 오베르의 ‘노란 집’이었는지 도 모르겠다. 샤를 도비니는 밀레와 더불어 바르비종파의 대부였고, 아틀리에를 벗어나 야 외에서 그림을 그리며, 살롱전의 엄격한 심사와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정신을 지켜야 한다 고 생각했던 예술가들의 정신적 지주였다. 뒤프레, 코로, 세잔, 피사로 등 풍경화의 새로운 장을 연 화가들에게 도비니는 큰 영감을 준 화가였다. 특히 도비니가 자신의 아름다운 저 택에서 절친한 벗이자 뛰어난 화가였던 오노레 도미에와 함께 살았었다는 사실은 고흐에 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것은 이러한 도비니의 삶이 고흐가 아를에서 이루고자 했던 고갱 과의 이상적인 공동체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고흐가 이곳에 왔을 때는 도비니가 세상을 떠 난 지 12년이 지난 뒤였지만 도비니의 부인이 지키고 있는 이 저택은 여전히 고흐의 이상
고흐의 당시 모습은 현재 작은 공원에 동상으로 서 있다. 이젤을 어깨에 둘러멘 채 스케치 북을 들고 있는 깡마른 모습은 쉽지 않았던 그의 삶의 무게를 보여준다. 동시에 온전히 작품 활동에 집중했던 이곳에서의 생활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반 고흐 공원에서 조금 걸어 가면 고흐의 <오베르 시청> 그림의 배경이 된 시청이 나온다. 표지판으로 붙어있는 고흐의 그림과 현재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아 마치 고흐 시대에 와 있는 듯하다.
고흐가 머물렀던 라부 여관
근처에는 고흐가 머물렀던 집이 있다. 지금은 고흐의 전시관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고흐의 집이라고는 하지 만 원래 이곳은 ‘라부 여관’이었다. 고흐는 이 여관방 3 층 다락방에 투숙했다. 이곳도 휴관을 해서 그 방을 구경 하지는 못했다. 그저 주위를 맴돌며 대문 안을 들여다보 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라부 여관 주인의 딸 <애들 린 라부> 초상화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옆 벽에는 또 주변 풍경을 그린 <오베르의 계단>도 붙어 있어서 한동안 그의 생각에 잠기게 했다.
이어서 방문한 곳은 가셰 박사의 집이었다. 고흐가 이 곳에서 편안하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동생 못 지않게 가셰 박사의 후원이 결정적이었다. 아를에서 파 리로 돌아온 고흐는 몇 번의 발작을 일으켰고 불면증과 환각 증세에 시달렸다. 이에 테오는 아마추어 화가이자 여러 화가들과 친분을 맺고 있는 오베르의 가셰 박사에 게 형을 돌봐줄 것을 부탁했다. 둘의 만남이 처음부터 순 조로웠던 건 아니었지만 고흐의 재능을 알아본 가셰 박 사는 진심으로 그를 후원했고 예술을 사랑하는 두 사람 은 빠르게 친해졌다. 가셰 박사는 고흐에게 그림 그리기가 그의 건강에 도 움을 줄 것이라 조언했고, 그는 매일 다섯 시에 일어나서 종일 그림을 그렸다. 고흐는 마음 내킬 때마다 가셰 박
라부 여관 주인의 딸 <애들린 라부> 초상화
라부 여관 옆의 고흐 박물관
사의 집을 방문했고, 가셰 박사는 물론 그의 딸과 아 내, 집의 정원까지도 화폭에 담았다. 가셰 박사는 자 신의 모습을 그린 이 작품을 매우 마음에 들어 했으 며, 같은 그림을 또 그려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오 르세 미술관에 소장된 이 작품과 매우 유사한 또 한 점의 <폴 가셰 박사> 초상화는 1990년 뉴욕 크리스 티 경매에서 8,250만 달러에 낙찰되어서 피카소의 <파이프를 든 소년>이 나타나기 전까지 최고 경매가 작품의 자리를 유지했다.
고흐의 또 다른 걸작 <오베르 교회>도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소박한 이 교회는 고흐의 화폭 속에 담 김으로써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아지랑이
가셰 박사의 집
속에 아른거리는 것처럼 삐뚤삐뚤 그려진 고흐의 그림이 이 교회의 안내판처럼 먼저 눈에 띤다. 목사 아버지의 영향 하에 한 때 선교사의 길을 걸었던 그의 의식 속에 비친 교회는 이처럼 비뚤어져 있었다. 이에 대해 후대 호사가들이 여러 해석들을 내놓았 지만 그의 정신병을 중요한 이유로 지목하고 있다. 하지만 나의 눈에는 현실의 차갑고 날카로운 교회의 직선을 부드럽고 따뜻 한 마음의 곡선으로 변형한 것처럼 보였다. 고흐의 흔적을 마주할수록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고흐의 명작 <오베르 교회>의 배경이 된 오베르 교회
고흐의 <까마귀 나는 밀밭>의 배경이 된 오베르 들판
오베르 교회를 지나 작은 오솔길을 오르니 이 마을의 공동묘지가 나타났다. 고흐와 동생 테오가 나란히 묻힌 곳이다. 묘지에 들르기 전에 보아야 할 곳이 있다. 그의 걸작 <까마귀 나는 밀밭>의 배경인 오베르 들판이다. 공동묘지 정문 쪽에 그곳을 안내 하는 입간판이 서 있었다. 휑한 들판과 공동묘지가 만들어내는 쓸쓸함은 고흐의 삶 같다. 그림의 배경이 된 밀밭에는 잡초만 무성하다. 그의 그림 간판만이 그의 흔적을 증거하고 있다. 그 때의 빛이 아니어서 그 때의 풍경은 아니겠지만 모사된 그림 간 판만으로도 그의 외로움을 잠작하게 한다.
마을과 사람들을 오브제로 택한 그의 그림은 폭넓은 붓놀림에 산뜻한 색조로 한결 풍부한 표현력을 보여준다. <러빙 빈센 트>에서 가셰 박사의 딸 마르그리트가 “햇살 아래 밝게 빛나는 초록 잔디 결 하나하나의 아름다움까지 느끼고 감사할 줄 아 는 사람”이라는 평가가 적절하다. 그것은 “내 그림을 보여주고 싶다. 이 보잘 것 없고 별볼 일 없는 내가 마음에 품은 것들을.” 이라는 내면의 열정이 만들어낸 것이리라. 허한 밀밭을 날아오르는 까마귀 떼를 화폭에 붙들어 놓은 것도 이러한 그의 창작 욕이리라. 그러나 그 속에 흐르는 외로움까지는 어쩌지 못했나보다. 볼수록 쓸쓸하다. 헤어 나올 수 없었던 현실의 궁핍과 외
고흐와 테오의 묘지
을 마감하였다.
날 줄을 모른다.
로움은 끝내 그를 나락으로 내몰았고, 결국 스스로 생
그가 묻혀 있는 묘역은 초라했다. 고흐가 죽은 지 6개월 만에 형을 따라간 동생 테오와 함께 담벼락에 나지막하게 자리를 잡았다. 크고 화려한 비석은 없지 만 고흐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비석처럼 둘러서서 떠
권응상 교수┃ 대구대학교 중국어중국학과
허영은의 일본 이야기
일본 최고의 미인 고마치와 교토
일본을 대표하는 미인은 누구일까? 일본인들은 단연 ‘고마치’라는 여성을 일본을 대표하는 미인으로 꼽고 있다. 심지어는 고마치를 클레오파트라, 양귀비와 함께 세계 3대 미녀라고 추켜세우면서 은근히 세계적인 미녀로 칭송하려 들기도 한다. 그 런 이유로 일본인들은 무엇이든 좋은 것에 ‘고마치’를 붙이고 싶어 한다. 일본의 대표적인 명품 쌀인 ‘아키타 고마치’를 비롯 하여 다양한 화장품은 물론이고 유명 관광지인 가마쿠라역 앞의 상점가에도 고마치의 이름을 넣어 부르고 있다. 심지어는 고 마치 댐까지 있을 정도이다.
아키타 고마치
그런데 실제로 고마치는 후대 사람들이 칭송할만한 절세미 인이었을까? 사실 그녀가 일본 최고의 미인으로 꼽히게 된 것 은 다음 노래 때문이다.
꽃도 용모도 / 속절없이 시드네 / 허무하게도 내가 시름에 잠겨 / 지내는 그 사이에
이 노래는 8세기 경에 만들어진 <고킨와카슈>라고 하는 노 래집에 실린 것으로, 자신의 아름다운 용모를 꽃에 빗대어 세 월의 무상함을 읊은 노래이다. 이 노래 이외에도 고마치는 애
가마쿠라의 고마치 상점가
고마치 화장품
오노노 고마치
절한 사랑 노래를 다수 읊었는데, 이런 요염한 노래들로 인해 고마치는 일본을 대표하는 미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고마치에 대한 기록은 노래를 제외하고는 거의 남아 있는 것이 없다. 그런 까닭으로 고마치는 신비한 베일에 싸인 미스테리 한 인물이 되었고, 덕분에 고마치에 대한 이미지는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 본 글에서는 고마치의 변화되는 모 습에서 각 시대별로 일본인들이, 아니 정확하게는 일본 남성들(지배층)이 여성을 어떤 시각으로 보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 한다.
교토에는 고마치와 관련된 유적이 다수 존재한다. 고마치는 아키타현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지지만 주된 활동무대는 당시 수 도였던 교토였다. 우선 교토 사이토인 부근에는 고마치가 사용했다고 하는 ‘고마치 화장수’라는 비석이 있다. 고마치의 별장 이 부근에 있었고 그녀가 사용한 우물이 있었던 자리에 세워진 비석인데,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고마치를 기리는 후대 사람들 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유적이다.
随 心院 )이라고 하는 절에도 고마치가 사용했다고 하는 ‘화장 우물(고마치 관련 유적’이어서 특별히 ’화장‘이 들
즈이신인(
즈이신인의 고마치 화장 우물
보인다.
화장용 고마치 종이
어감)’이 있다. 교토의 노포 화장품 가게 ‘가 타니’에서는 ‘고마치 종이’라고 하는 화장 용 종이를 비롯한 다양한 화장품을 판매하 고 있다. 이처럼 고마치의 이미지가 일본 최 고의 미인이라는 좋은 이미지로 일본 각 지 역에서는 어떻게든 고마치와 자신들의 고 장을 연결시켜 상품을 홍보하고자 노력하 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고마치에 대한 평가는 이와는 극명하게 대조되는 모습을
百夜通い伝説 )’이다. ‘모모요가요이’설화는 고마치가 자신을 흠모하는 후카쿠사 소 그 시작은 중세의 ‘모모요 가요이 전설( 장에게 100일 동안 자신을 찾아오면 만나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소장은 99일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매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신사이다.
일 고마치를 찾아오다 드디어 백 일째 되는 날 급사를 한다는 비극적 이야기이다. 교 菊野大明神 )’에는 후카쿠사소장이 고마치를 만나 토 시청 부근의 ‘기쿠노 다이묘진( 기 위해 찾아올 때마다 앉았다고 하는 돌을 신으로 모시고 있다. 100일 중 하룻밤이 모자라 고마치의 사랑을 얻지 못하고 억울하게 죽은 후카쿠사소장의 원한으로 세워 진 이 신사는 남녀관계 뿐 아니라 친구나 동료와의 악연, 스토커나 왕따와 같은 것을
이 이야기는 많은 파생문학을 낳으며 대중에게 확산되었고, 이 설화로 인해 고마 치는 남자의 순수한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 교만한 여성으로 이미지가 고착되었다. 이후 고마치는 젊은 시절 자신의 미모를 믿고 남자들을 업신여기다가 쇠락해져 결국 에는 들판을 헤매다 죽게 되고, 백골이 된 고마치 눈에 억새가 자라 바람이 불 때마다 あな眼、あな眼 )”하면서 괴로워한다는 ‘아나메 눈을 찔러 “아, 내 눈, 눈이 아파!( あな眼 ) 전설’까지 만들어지게 된다. 이 설화가 경고하는 바는 여자가 남자를 거부 (
하면 그 죄로 죽어서도 고통이 멈추지 않는 형벌을 받는다는 무시무시한 교훈이다.
이 ‘아나메 전설’을 시작으로 중세에는 고마치를 천 명이나 되는 남자를 만나는 호 색한 유녀로 그리기도 하고, 근세에는 고마치가 호색한 생활을 한 결과 성적 불구가 되었다고 풍자하는 하이쿠가 등장하기도 한다. 거기에서 나온 것이 ‘고마치 바늘’이 다. ‘고마치 바늘’이란 옷을 시침할 때 쓰는 바늘귀가 없는 시침용 핀을 말한다. 고마
아나메 전설
고마치 바늘
치가 성적으로 불구였다는 데서 붙은 매우 부적절한 이름이다.
普陀落寺、 오노 말년의 고마치는 일본 전국을 떠돌다 비참한 모습으로 죽었다고 하는데, 교토에 그녀를 모신 ‘후다라쿠지( 小野寺 )‘라고도 함)에도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본뜬 고마치 노쇠상이 있다. 노 고마치의 절이란 뜻에서 ’오노데라(
후다라쿠사의 고마치 노쇠상
고마치
다. 미시마 유키오가 쓴 『소토바 고마치』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데 근대에 들어 이런 병들고 초라한 고마치상에 반전이 일어난다. 갑자기 고마치를 ‘메이지 부인의 이상이고, 사람들에게 축복을 가져다 주는 여신(고마츠 히로다케의 <고마치 정숙 부인의 귀감>)’, 혹은 ‘두 남자를 섬기지 않은 정숙한 여인의 귀감 (구로이와 루이카의 <오노노고 마치론>)’으로 추앙하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근대국가 건설을 위한 도덕률로서 고마치와 같이 평생 남자를 거부해 온 정숙한 여성이야말로 ‘현모양처’의 귀감이라는 것이다. 정말 웃지 못 할 코미디가 아닐 수 없 다. 고마치가 살아 있었다면 아마 모두들 말도 안 되는 삼류 소설을 쓰고 있다고 코웃음 쳤을 일이다. 그런데 실제 근대 작가들은 고마치에 대해 여전히 다양한 소설을 쓰기도 했다. 엔치 후미코의 『고마치 변주』를 비 롯하여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의 『두사람의 고마치』, 미시마 유키오의 『 소토바 고마치』 등이 그것이다. 근대에 들어서도 고마치는 여전히 시대 를 초월해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지닌 ‘영원한 여성성’을 지닌 인물로 묘사되고 있고, 남성들은 여전히 그런 고마치를 목숨 바쳐 사랑하고 있
“나를 아름답다고 한 남자들은 모두 죽었어요. 나를 아름답다고 한 남자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죽었어요.” 후카쿠사 소장 - 미시마 유키오의 『소토바 고마치』 중에서 “뭔가가 아름다우면 아름답다고 이야기할 거야. 설령 죽는다 해도.”
후카쿠사 소장은 고마치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을 택한 대가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여전히 고마치는 자 신의 치명적인 아름다움 때문에 남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팜므 파탈이 된다. 시대가 변해도 아름다운 여성을 얻기 위해 기 꺼이 목숨을 바치는 남성들의 무모한 열정은 존중해줄 수 있다. 그런데 그 책임의 화살은 왜 변함없이 여성을 향하는 것일까?
고마치는 아마도 일본 문학사상 가장 오랜 세월 동안 다양한 버전으로 가장 많이 다뤄진 인물일 것이다. 그녀에 대한 이미지 는 시대별로 낙차가 너무 커서 과연 어느 것이 그녀의 진짜 모습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인물이기도 하다. 이 많은 고마치의 모 습 중에 과연 진정한 그녀의 모습이 담겨 있기는 한지조차 의문이 든다. 결국 이들 고마치상은 실은 아름다운 여성을 얻을 수 없는 남성들이, 혹은 그 시대사상이 고마치에게 덧씌운 메타언어가 아닐까 생각된다. 고마치의 노래에 ‘기다리지 않는’ 여성, ‘남성을 거부하는 여성’의 이미지를 입혀 그녀의 삶과 노래를 왜곡시키고 남성들의 이데올로기를 대입시키고자 했던 것, 그것
이 시대에 따라 다양한 버전으로 전해지는 고마치전설의 실체가 아닐까 생각된다.
허영은 교수┃ 대구대학교 일본어일본학과
양진오의 '거리의 대학'
지역대학의 미래, 지역 ‘안’에서 답을 구하라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공격이 전방위적이다. 그 공격이 2020년을 넘기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공격은 과거 시제로 마무리된 사건이 아니다. 현재 진행형 사건이다. 11월 말 현재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하고 있다. 미국 트 럼프 대통령까지 확진자 반열에 올린 코로나19 바이러스. 그 공격이 가히 전방위적이다. 그런데 코로나19의 진짜 파괴력은 다른 지점에 있다. 코로나19는 호모 사피엔스가 창안한 여러 제도와 관행마저 공격한다. 교육 제도도 예외가 아니다.
이 칼럼을 쓰는 11월의 주요 뉴스를 보더라도 그렇다. 서울의 여러 대학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뉴스가 인터넷 공간을 도 배하고 있다. 어떤 대학에서는 학생이, 또 어떤 대학에서는 교수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안타까운 뉴스가 연일 속보로 전해지 고 있다. 뉴스에 거론된 대학은 수업을 비대면으로 전환하거나 아예 학교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내일은 어떤 대학이 폐쇄 조 치를 단행할지 예측할 수 없다.
향촌동 골목 풍경. 향촌동 골목의 풍경은 대구 번화가와 다르다. 향촌동에는 지역 어르신들이 찾는 단골 식당과 카페가 골목마다 숨어 있다. 향촌동의 시간은 느리게 간다. 대구 번화가의 시간이 직선이라면 향촌동의 시간은 곡선이다.
방역 당국은 코로나19의 본격적인 3차 유행을 예고하고 있다. 아니 예고가 아니라 이미 3차 유행이 본격화하고 있다. 더는 감염에서 자유로운 안전지대가 없다고 한다. 지역대학은 어떨까. 이제 대구 이야기를 해야겠다. 올해 2월 18일의 일이다. 대 구시가 첫 코로나19 확진자를 발표했다. 추가 확진자 속출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2월 18일, 대구는 일시 혼란과 공포에 빠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사태였다. 지금도 그날의 스산함이 잊히지 않는다. 재난영 화의 한 장면에 이입된 기시감마저 들었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 시민들이 약국에 몰렸다. 귀가하는 발길이 빨랐다. 대구의 지 역대학들은 문을 닫았다. 폐쇄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다. 2월만 하더라도 코로나19는 전적으로 대구·경북의 지역 재난이었다. 국무총리가 대구에 상주하며 이 초유의 재난에 대응해야 할 만큼 코로나19의 대구 공격은 극심했다. 그 공격은 정확하게 지역 대학을 표적으로 삼았다. 지역대학의 위기를 앞당긴 건 학령인구 감소가 아니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였다.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었다는 뉴스가 반갑긴 하다. 치료제 뉴스 역시 반갑다. 그러나 백신 개발에도 불구하고 이 징글징글 한 바이러스가 사라지지 않을 거라 한다. 전문가들은 더 독한 바이러스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다. 팬데믹보다 더 큰 재앙이 10 년 내로 온다는 불길한 전망을 말씀하시는 전문가도 있다. 기후 위기가 진정 역대급 재앙이 될 거라는 경고다. 무시할 수 없는 예고이며 주장이다. 지역과 대학을 둘러싼 외부 환경이 이렇게나 불길하다. 지역대학을 포위한 불길한 외부 환경은 일회적인 사건이나 현상 같지 않다. 지역대학은 이 불길한 외부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까?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근본적으로 대학의 존재 방식에 시비를 건다. 그 존재 방식의 요체는 집적화된 규모의 경제로 요약되 는 근대적 방식이다. 대학의 하드웨어는 흔히 교문, 단과대학, 대학본부, 도서관, 기숙사, 식당 등으로 구성된다. 대학의 소프 트웨어는 흔히 학과, 전공, 부전공, 복수전공, 교육과정 등으로 구성된다. 대학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운영 주체는 학생, 직 원, 교수이다. 한국의 대학들은 저마다 캠퍼스로 불리는 분리된 장소에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작동시켜 왔다. 대학이 지 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작동하는 동력이 바로 규모의 경제이다. 지역대학도 그렇다. 그런데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근대 적 방식으로 작동하던 캠퍼스를 일시에 타격했다.
과연 지역대학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까? 이 질문은 바이러스 재난이 발발하면서 정말 어려운 질문이 되어 버렸다. 수도권 은 불문가지로 하고 학령인구 감소로부터 자유로운 지역은 한 군데도 없다. 대구, 부산도 그렇다. 대구, 부산의 학령인구 감소 도 시간이 문제다. 이 문제만도 지역대학이 감당하기 어렵다 싶은데 바이러스 재난이 터지고 말았다. 게다가 기후 위기를 준비 하라고 하니 지역대학의 위기가 첩첩산중이다. 이처럼 코로나19가 앞당긴 지역대학의 위기는 근본적이며 전방위적이다. 그렇
다면 지역대학의 미래에 대한 성찰도 근본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문제의식에 서서 필자는 지역대학의 미래를 지역 ‘안’ 에서 찾는 글쓰기의 여정을 본 칼럼에서 이어갈 계획이다.
지역 원도심 답사가 올해로 10여 년 되어간다. 시작은 대구 원도심이다. 대구 원도심 답사를 시작으로 서울, 인천, 대전, 부 산, 전주, 목포, 제주 원도심을 여러 차례 답사했다. 개인 관심으로 시작한 원도심 답사에서 배움의 화두를 생각하게 된건그리 오래지 않다. 미국의 미네르바 대학은 배움의 화두와 방법을 확장하는 데 괜찮은 참고 모델이었다. 원도심 답사를 하며 지 역대학의 교육내용과 과정이 지역의 광장과 거리, 골목으로 스며들면 어떨까 이런 궁리를 자연스레 하게 되었다. 지역의 원도 심 거리, 골목, 주택, 건물이 캠퍼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 지역 활동가와 전문가들이 지역 청년의 멘토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이런 궁리와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향촌동 골목 입구. 향촌동에는 식민지 시대부터 식민지 요정, 여관, 술집 한국전쟁기 구상 시인과 마해송 아동문학가가 자주 묵은 화월여관 입구 이 많았다. 한국전쟁 피난 시절 향촌동 골목에는 백록, 녹향, 르네상스, 이다. 식민지 시대, 화월여관(花月旅館, 가즈키 여관)은 일본식 다다미 호수, 모나미 다방이 있었다. 대구로 피난을 온 문인과 예술가들이 이 다 방 설비를 갖췄다. 이 건물은 현재 지역 어르신들이 애용하는 콜라텍으 방을 출입하며 교류했다.
로 쓰이고 있다.
이 궁리는 구상 시인과 이중섭 화가의 눈물겨운 우정이 베인 대구 원도심 향촌동 골목에서 시작되었다. 향촌동 골목은 한국 전시문학의 산실이다. 구상 시인과 이중섭 화가만이 향촌동을 출입한 게 아니다. 마해송, 박영준, 최정희, 양명문도 향촌동 골 목을 출입했다. 이들의 출입과 연대가 죽어가던 한국문학을 소생시킨다. 한국 전시문학은 강의실에서 이론으로 설명될 수 없 는 비참하면서도 거룩한 삶의 영역이 아닌가.
향촌동 골목은 전쟁의 비극과 우정의 깊이를 환기하는 강의실이었다. 원도심의 진실을 모른 채 학생들을 가르친 게 아닌가 하는 뜨거운 반성이 따라왔다. 강의실은 캠퍼스 경계 내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 경계 밖에서 강의실은 발견될 수 있다. 캠퍼 스 경계 밖에서, 달리 말해 지역 ‘안’에서 크고 깊은 배움을 보증할 강의실이 발견되기를 기대한다. 지역대학의 미래, 멀리서 찾 을 게 아니다. 우선 지역 ‘안’에서 찾아야 한다.
이 글은 <교수신문> 2020.12.08.에 게재되었습니다. 출처┃<교수신문>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58673
양진오 교수┃ 대구대학교 한국어문학과
이 란에서는 연구소에서 개발한 교과목을 소개합니다. 이번에는 첫 번째로
본 교과목의 개설 목표
연구소 개발 교과목 소개 1
동아시아 디아스포라 문학예술
<동아시아 디아스포라 문학예술> 교과목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본 교과목은 동아시아권 출신 디아스포라 작가들의 문학예술 작품들을 소개하고 감상함으로써 특정국가 혹은 민족에 국한되 지 않는 범 동아시아 차원의 ‘트랜스내셔널 비전(transnational vision)’을 함양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본 교과목은 미시적으로 분류, 편재된 기존의 학제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하고, 다학제적인 융합 학습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글로벌 시대에 걸맞는 국제적 관점을 지닐 수 있게 되고, 문화적 혼종성과 중층성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세계시민의 소 양을 함양할 수 있습니다. 근대적 사유의 근간인 ‘민족-국가적 패러다임(nation-state paradigm)’에서 벗어나 ‘탈식민적 사유(postcolonial thought)’를 학습함으로써 국제적으로 진행 중인 이동성(mobility), 혼종성(hybridity), 및 지배·권력관계 등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 교과목의 특징
PBL(Problem-Based Learning) 방식의 수업 : 주어진 이슈나 문제에 대한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태도를 함양하고 문제해결 능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체험을 제공합니다. 플립드 러닝, 조별 토론 및 발표, 질의응답 수업 : 본 수업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교수자와 학생, 학생과 학생 간의 소통과 협 력을 통해 주제에 접근하는 참여형 수업입니다. 문학을 중심으로 한 인문학 수업 : 한중일 출신의 디아스포라 문학 작품을 읽어볼 수 있고, 인문학과 사회학적 주제들에 대해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습니다.
누가 수강하면 좋을까
인문대 문학 관련 전공자들 중 다른 나라의 문학에 관심이 있는 학생 디아스포라 혹은 비주류 문학 작품에 관심이 있는 학생 근대 이후의 다민족적 역동성과 모빌리티 이론에 관심이 있는 학생 그밖에 인문학과 문학에 관심이 있는 모든 학생
제 1주 제 2주 제 3주 제 4주 제 5주 제 6주 제 7주 제 8주
중간고사
제 12주 맥신 홍 킹스턴 『여전사』 : 타국에서 뮬란이 되는 법 제 13주 차학경 『딕테』 : 영원한 이방인의 시선 제 14주 경계를 넘어, 간극을 사유하기 : 종합토론 제 15주 기말고사
Introduction : 강의 내용, 방법 및 일정 소개, 조편성 (탈)근대의 비극적 모빌리티 : 디아스포라 (I) (탈)근대의 비극적 모빌리티 : 디아스포라 (II) 에이미 탄 『조이럭 클럽』 : 전통가족의 붕괴 (I) 에이미 탄 『조이럭 클럽』 : 전통가족의 붕괴 (II) 가즈오 이시구로 『나를 보내지 마』 : 복제인간과 윤리 (I) 가즈오 이시구로 『나를 보내지 마』 : 복제인간과 윤리 (II)
슌하오 리우 『뉴욕좀비』 : 불안정한 이민자의 욕망 제 10주 호시노 도모유키 『오레오레』 : 사라진 신뢰와 배려 찾기 제 11주 재니스 리 『피아노 교사』 : 나라를 잃은 민족의 중첩되는 아픔
디즈니의 <뮬란>은 본 수업에서 다루는 맥심 홍 킹스턴의 『여전사』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다.
강의 및 질의 응답 강의 및 질의 응답 토론, 발표, 강의 토론, 발표, 강의 토론, 발표, 강의 토론, 발표, 강의
PBL 발표 강의 PBL 발표 강의 PBL 발표 강의 PBL 발표 강의 PBL 발표 강의 질의 응답 토론
강의담당 : 양종근 교수┃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연구소 개발 교과목 소개 2
실크로드와 동아시아 모빌리티
안녕하세요.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에서 개발한 교과 실크로드와 동아시아 모빌리티를 소개합니다.
모빌리티가 뭔데?
이 과목은 사실 ‘모빌리티(Mobility)’와 함께 ‘지역(Lo cal)’, 그리고 ‘인간(Human)’을 큰 개념으로 하고 있습니 다. ‘모빌리티’는 ‘세상은 움직인다’입니다. 즉 ‘이동’이 세 계의 전부이자 모두라는 의미인데, 이것은 문명의 성격과 관련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과거 문명은 유목보다는 농 경을 생산 수단으로 하는 문명에 의해 주도되었고, 따라서, ‘지역’과 긴밀한 관련이 맺고 있습니다. 즉, 정착해서 살아 가면서 만나게 되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 그 생활을 누리 는 방식이 문명을 이루는 줄기가 되었고, 우리가 사는 ‘지 역’은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하기까지 했죠. 이른바 ‘본관’이란 우리의 조상이 살아왔고, 내가 살아 가는 곳이자, 나의 후손이 살 곳이란 뜻이며, 이는 곧 자기 와 종족 아이덴티티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세계 는 이동이 큰 의미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세계 여 러 곳에서 흩어져 살게 되었으며, 또, 이동과 삶을 이어주 는 휴대폰이 없으면 생활할 수 없는 문화가 형성되고 있습 니다. 우리의 삶이 이로 인해 편리하고 풍요로워진 부분이
왜 하필 실크로드와 철도?
있지만, 훨씬 복잡해진 삶의 방식과 급변하는 사회 문화는 우리의 삶을 흔들고 있습니다.
EMW(EuropeanMobilityWeek, 유럽 이동성 주간)은 인간 중심의 이동 을 구현하기 위한 운동이다. 현재 대학에서 자주 보이는 ‘퀵보드’ 역시 이 개념과 통하는 부분이 있다.
실크로드는 낙타에 비단을 싣고 사막을 횡단하는 중앙아시아 상인을 떠올리게 되고, 철도라고 하면 KTX를 타고 여행을 다 니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동아시아 사회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 실크로드는 동양이 주도했던 고대 문명의 동서 교역로이고, 철도는 동아시아 사회가 고대에서 근대로 넘어오던 격변의 시기, 서양의 동양에 대한 침탈을 상징하 는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현상에 대해서 우리는 거대한 규모의 모빌리티가 동아시아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급격한 변화를 마주한 당시 사람들의 감정과 그 대응에 관한 우리의 관찰은 현재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삶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가는 우 리가 자신과 세계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거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이해할까
이 과목은 우선 실크로드와 철도를 중심으로 여러 관련 역사적·문화적 현상에 대한 지식을 습득합니다. 이런 과거 의 사실은 처음과 끝이 정해진 지도처럼 닫힌 구조를 형성 하는데, 이는 우리 생각의 획일성을 강요하는 부분이 있 습니다. 이 과목은 이런 점을 문학과 예술을 통해 열린 구조로 바 꾸고자 합니다. 즉, 이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은 이런 현상 에 대해 어떠한 감정을 느꼈을까? 이 사람들은 이런 변화 에 대해 어떤 대응을 했을까? 라는 부분을 이해함으로써 보다 세밀한 감각으로 이 사건들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우 리 함께 길을 떠나 보실까요
제 1주 제 2주
실크로드에 대한 이해 및 문화
제 3주
실크로드 미디어 시청 및 설명
제 4주
근대 기차의 탄생과 인간
중국의 실크 전설과 시
중간고사
청대 철도의 건설과 그 대응
동아시아 철도 영화와 그 감상
제 10주 제 11주 제 12주
철도와 한국의 현대성, 《부산행》
제 13주 제 14주
철도와 미래, 《은하철도 999》
제 15주
기말고사
강의 소개 및 강의 진행 방법, 일정 소개
강의 및 질의 응답 강의 및 질의 응답 강의 및 질의 응답 강의 및 질의 응답 강의 및 질의 응답
실크로드와 삼장법사, 그리고 『서유기』
강의 및 질의 응답
강의 및 질의 응답 강의 및 질의 응답
철도와 중국 근대화, 《오 시앙쉬에》
철도와 일본의 근대화, 《동경 이야기》
철도와 국가, 《가까이서 본 기차》
실크로드적 상상. 고대 중국의 실크로드는 사막의 오아시스 국가를 연결 했던 루트였기 때문에 다양한 길이 존재했다.
강의담당 : 서주영 교수┃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영화 <밀정> 포스터
경찰에 포위된 의열단원이 자결하는 <밀정>의 첫 장면은 1923년 1월에 있었던 종로경찰서(경성)에 폭탄을 던진 김상 옥 의사(극중 김장옥, 박희순 분) 사건이다. 실제로 의열단은 김상옥의 죽음 이후에 조선총독부 등 일제의 거점 시설을 파 괴할 2차 거사를 계획하고, 헝가리 폭탄제조 전문가와 함께 상해에서 폭탄을 대량 제조하여 경성으로 잠입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의열단원 김시현(극중 김우진, 공유 분)은 경 무국 경부 황옥(극중 이정출, 송강호 분)과 접촉하게 되고, 2 차 거사를 모의하게 된다. 폭탄을 경성에 반입했지만 거사 전 에 발각되어 황옥을 포함해 의거에 가담한 단원 모두 피검 된다. 황옥은 재판에서 자신은 일본 경찰로서 임부 수행 중
시네마 기행
그림자의 시대, 동아시아 도시를 가로지르다
영화 <밀정>
이 어두웠던 혼돈과 폭압의 시대였다.
조율하고 있다.
두고 있다.
<밀정> 송강호
영화 <밀정>은 일제의 극심한 탄압으로 항일 독립운동 세력 이 커다란 위기를 맞이한 1920년대를 다루고 있다. 영화의 영 문 제목(The Age of Shadows)이 의미하듯이, 3.1운동이 실 패하고 일제의 식민체제가 강고해지는 이 시기는 그림자와 같
<밀정>의 김지운 감독은 이러한 시대를 ‘밀정’이라는 존재를 통해 조명하고 있다. 주인공인 이정출(송강호 분)은 조선총독 부 경무국의 조선인 경부로서 항일운동세력을 색출하기 위해 의열단원과 접촉하고, 그 과정에서 총독부와 의열단 사이에 이 중첩자, 밀정의 위치에 서게 된다. <밀정>에는 이정출이라는 인 물의 설정뿐 아니라, 영화의 시작과 끝을 아우르며 의열단 내부 의 보이지 않는 밀정들의 존재를 부각함으로써 극적 긴장감을
<밀정>의 주요 서사는 일제의 주요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상 해에서 경성으로 폭탄을 들여오려는 의열단과 이를 쫓는 총독 부 경찰 사이의 암투를 따라 진행된다. 이러한 스토리 라인은 1923년에 있었던 실제 사건, 황옥 경부 폭탄 사건을 바탕에
이었음을 강조했지만, 황옥이 의열단원이었다는 증 언도 남아있어서 그가 일제가 심은 밀정인지, 경찰 을 가장한 의열단원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김지운 감독은 이처럼 적과 동지를 구분할 수 없 는 1920년대를 The Age of Shadows, 그림자의 시대로 명명한다. ‘그림자의 시대’는 당시 식민지 조 선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중국을 비롯하여 동아시 아 전역에 일본 제국주의적 침탈의 그림자가 드리 워졌고, 의열단 등의 대일무장투쟁 또한 동아시아 를 가로지르며 전개되었다. 일본을 비롯하여 미국, 영국 등 서구 열강의 각축장이 되어 버린 중국 상해 와 일제의 식민도시 경성을 오가는 <밀정>의 장면들 은 1920년대 동아시아의 동시대성을 부각하는 한 편, 동아시아에 걸쳐진 다양한 힘의 관계들을 재현 하고 있다.
특히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로 평가받는 기차 씬 (scene)은 제국주의의 조계지 상해에서 일제 식민 도시 경성으로 이어지는 동아시아 전역에 걸친 힘의 맥락, 그리고 월경(越境)과 이주(移住)의 서사를 보여준다. 총연장거리 2,469.4km인 상해-경성 간 철도는 국경을 넘어 서로 다른 관리주체에 의해 운영되었다. 상해에서 텐진, 산해관까지는 중국철도, 산해관에 봉천, 안동까지는 일본의 만주철도, 국경 을 넘어 신의주에서 평양, 경성까지는 조선총독부가 철도관리주체이다. 러일전쟁 이후 러시아 할양철도 및 부속지를 기반으로 한 만주철도는 이 시기 동아시아를 가로지르는 힘의 관계와 정세를 가시화하고 있다.
한편, 상해와 경성을 오가는 철도는 항일운동을 위한 월경(국경 넘기), 가난과 수탈을 피해 국경을 넘는 식민지 조선인들의 중국, 만주, 러시아 등지로의 이주의 통로가 되고 있다. <밀정>의 기차는 상해와 경성, 국경을 넘어서는 중국인, 조선인, 그리
<밀정> 기차 장면
고 일본에서 조선과 중국으로 이주한 일본인 식민자들이 혼종하는 1920 년대 동아시아의 단면을 압축적으로 재현한다. 이들의 이동은 단순한 물리적 이동 이 아니라 다양하고 복잡한 힘의 관 계를 담지한 사회적 이동(mobility) 이다. 물론 <밀정>은 스쳐가는 이들 의 이동에는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 다. 하지만 영화의 후경에 스치는 이 들의 이동을 또 다른 상상력으로 그
1920년대 경성
1920년대 상해
<밀정> 속 의열단
려고 노력했다.”
서게 될까?
의열단(항일무장독립운동단체)
려본다면 어떤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까?
김지운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시대가 사람을 어떻게 압박했는지, 어디로 몰고 가는지 시대의 가속을 받는 인물들의 감정적 과정 과 어두운 내면의 행로를 시대적 공기와 함께 다루
그는 황옥과 의열단을 둘러싼 역사적 사건을 소환 함으로써 1920년대 당대인들의 삶을 ‘지금-여기’ 로 현실화하고 있다. 일본 식민제국에 목숨을 걸고 저항하는 의열단과 이름 없이 스러져간 독립투사들, 그들을 뒤쫓아 처단하는 일제의 앞잡이들과 밀정들, 그리고 그들 곁을 오가는 사람들. 영화 속에 등장하 는 많은 이들 중에 나는 어떤 모습에 가까울까? 앞날 을 예측할 수 없는 오늘 또한 The Age of Shadows 라고 명명한다면, 과연 나는 어떤 얼굴로 현실 앞에
배지연 교수┃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시민인문강좌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동아시아 도시의 문학예술과 사랑'
대구대 인문과학연구소의 ‘동아시아 도시의 문학예술과 사랑’ 시민강좌는 동아시아 도시인문학에 기반한 지역 인문학 지식 의 확산 사업의 일환으로 6개의 강의로 기획되었다. ‘동아시아 도시의 문학예술과 사랑’을 주제로 2020년 09월 09일부터 11월 25일까지 대구 중구 삼덕동의 복합문화공간 JoyLab(중구 달구벌대로 443길 25-34)에서 시행되었다. 여섯 분의 강의 는 과거 도시에 덮힌 시간의 먼지를 흩어내면서 한국ㆍ중국ㆍ일본의 도시에서 펼쳐진 고대와 근대를 아우르는 문학가와 예술 가의 삶에 다시 빛을 비추었다. 고대와 근대를 아우르는 예술가의 삶을 통해, 그들이 삶의 기로에서 내린 선택,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을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에 새로운 시각을 전해주었다.
첫 번째 강의는 박현수 교수님이 맡아주셨는데, 시를 통해 근대 경성의 도시화를 시적으로 수용하는 과정과 정사(情死)에 대한 것을 전해주셨다. 1920 년대 서정시가 근대 도시화를 비판적으로 그렸다면, 1930년대의 시인들은 근대 문명의 냉정함을 모더 니즘적 언어로 수용하는 입장을 보였다. 이들의 사 랑 표현 양식도 달랐다. 1920년대의 문인은 전통에 대한 저항이자 새 시대의 가치로 사랑을 지고의 가 치로 두었고, 사랑을 위해 죽음도 불사했던 정사(情 死) 현상이 유행처럼 번졌다. 사회적ㆍ시대적 한계 는 분명하지만, 경제로 사랑을 가늠하는 우리 시대 가 자본 과잉의 모습이라는 또 하나의 극단적 경향 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두 번째 강의는 미(美)에 관한 질문으로 시작된 노 우정 교수님의 강의였는데, 중국 남송(南宋)의 저명 한 여성 문학가 이청조의 사랑과 삶을 읊은 문학에 관한 것이었다. 그녀의 작품은 남편과의 사랑과 사 별을 그린 사랑의 문학일 뿐만 아니라, 국가의 파괴 로 인한 고초를 담은 시대의 문학이자, 재혼과 이혼 이 가져온 상처를 진솔함하게 담은 여성 문학이었 다. 유교적 패러다임이 지배했던 송나라에서 그녀는 여성 문학가로서 당당히 그 천재적 재능을 동시대
김기림, [근대풍경], <조선일보>, 1931.02.21
이해조의 《강명화전》 (좌), 이미자의 노래 《강명화》 (우) 기생 강명화와 대구의 부호 장길상의 아들 장병천은 1923년 사랑 때문에 죽음 을 선택했고, 이 사건은 소설, 영화, 음악에서 중요한 소재로 다루어진다.
清明上可图 )》. ‘청명절에 강 위로 나들이하다.’라는 의미 이청조의 문학은 후대에 사문학의 송대 화가 장택단(張擇端)의 《청명상하도( 词宗 )으로 의 이 그림은 송대 번성했던 도시 문화를 나타내고 있는 풍속화에 속한다. 송대부터 ‘청명절’에는 일대종사란 의미의 사종( 추앙받는다. 조상의 사당을 보수하고, 휴식하는 날이 된다.
문학가로부터 인정받은 걸출한 여성이었다.
세 번째 강의인 박승주 교수님의 강의는 모리사키 가즈에(森崎和江, 1927. 4. 20. -)라는 식민지 일본인 2세 여성의 삶과 문학에 관한 것이었다. 1927년 대구에서 출생했던 그녀는 경주와 대구를 오가며 일제 식민지 시기 조선의 삶을 경험했고 이 것을 글로 남겼다. 자신의 체험에 대한 진실한 기록과 고백은 조선에 대한 감사와 사랑, 그리고 죄스러움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어머니’를 가타카나를 사용해 표기한 ‘오머니’가 이것을 집약하고 있는 단어였다. 이런 점에서 그녀의 삶과 문학은 일본의 조 선에 대한 뒤틀린 감정을 풀어내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모리사카 가즈에가 살았던 대구의 풍경
모리사키 가즈에(森崎和江)의 회고록 제목에 깃든 ‘오모니’는 한국어 ‘어머니’를 가타가나로 음역한 것으로, 그녀의 한국에 대한 감정을 짙게 전달하고 있다.
네 번째 강의자인 엄기영 교수님은 조선 시대 한양성에 대한 이해를 시작으로, 조선 후기 발생한 한양 사회의 변화를 여러 문헌을 통해 보여주셨다. 초기 유교적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정치 도시 한양은 점차 경제가 발달하면서 상업과 유흥의 기능 을 포용하는 도시가 되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곳이 되었다. 끼니를 걱정하는 양반, 거대한 부를 이룬자, 자존심을 지키며 삶의 고난을 받아들이는 예술가, 협의를 실천하는 호쾌한 협객, 그리고 소설을 읽어주는 전문 예인과 같은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다채롭게 펼쳐지는 도시가 되어 있었다.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은 조선 후기 문인 유재 건이 당시 하층민 인물의 행적을 기록한 인명록으 로, 이 시기 인물연구를 위한 문헌으로 간주된다.
조선시대 한양 도성도. 한양은 성리학적 정치 이념으로 도시를 구획한 계획도시였다.
이경하 교수의 강의는 중국 현대시인 쉬즈모(徐志摩, 1896-1931)의 삶과 사랑에 관한 것이었다. 쉬즈모는 《신월파(新月 派)》 시인으로 중국 현대시를 논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가 케임브리지에 유학하면서 만난 운명의 여인 린후이인( 林徽因, 1903-1955)과의 사랑, 그리고 베이징에서 만난 루샤오만(陸小曼, 1903-1965)과의 결혼은 개인의 자유와 이상을 추구하고, 중국 사회의 병폐와 봉건예교의 속박을 비판했던 쉬즈모의 문학을 그대로 재연하고 있었다.
쉬즈모(徐志摩)
린후이린(林徽因)
루샤오만( 陆小曼 )
마지막 김영 교수의 강의는 일본 최초의 소설이자 일본 왕조 시대의 문화와 귀족들의 생활 문화를 응축한 소설 《겐지 이야
기(源氏物語)》에 기록된 향(香)과 관련된 이야기를 통해 일본 향문화라는 특별한 세계로 인도했다. 향을 제조 대결과 같은 흥
미진진한 이야기에서부터, 의복에 향을 입히는 훈향 의식, 그리고 일본 건축 문화와 관련된 향의 기능, 그리고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향목인 란자타이(蘭奢待)와 일본 역대 권력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향이 평민과 구별되는 귀족의 고아함을 보여주는 상
징과도 같은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일본 문화에서 향은 평민과 구별되는 귀족들의 고아한 생활과 정신적 품격을 상징한다.
순번
1 경성 - 현대시에 나타난 근대도시 경성의 감각과 사랑
변경( 랑의 노래
대구대 인문과학연구소, ‘동아시아 도시의 문학예술과 사랑’시민강좌 강좌표
주제
汴京 )과 항주(杭州) - 이청조(李淸照)와 소울메이트, 달콤 쌉싸름한 사
황실의 권력을 상징했던 란자타이 향목(香木)에는 두 부분이 잘려있 다. 우측은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가, 왼쪽은 오다 노부나가( 織田信長)가 잘라갔다.
강사
일시
박현수(경북대)
노우정(대구대)
3 대구와 경주 - 모리사키가즈에(森崎和枝), 조선인 ‘오모니’와의 인연과 사랑 박승주(영남대)
4 한양 - 조선 후기 문학에 나타난 한양의 이모저모
6 교토(京都)와 나라(奈良) - 일본 문학과 향(香)
북경(北京)과 상해(上海) - 20세기 최고의 로맨티스트 쉬즈모[徐志摩]와 그 의 뮤즈들
엄기영(대구대)
이경하(서강대)
김영(대구한의대) 2020.11.25
서주영 교수┃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과학연구소 2021년도 1학기 행사 안내
동아시아 도시인문학 콜로키움
Colloquium
근대 도시 대구와 공회당
주제 : 강사 : 박승주(대구하루 대표) 일시 : 2021. 4. 8 (목) 오후 5시 장소 : 대구대 인문과학연구소 세미나(인 3102호)
트랜스 로컬 시네마 포럼
일시 : 2021. 5. 11 (목) 오후 5시 5. 25 (화) 오후 5시 장소 : 대구대 인문과학연구소 세미나(인 3102호) *상영 영화는 추후 홈페이지 공지
(2021봄)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 공동 국제학술대회
일시 : 2021. 7월 예정 장소 : 제주대학교 *주제 및 세부일정은 추후 홈페이지 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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