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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조광페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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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kwangpaint

조광페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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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군포 ‘조광페인트 이노센터’ 1층 로비에 마련된 역사홍보관, 우리나라 도료 산업 발전을 이끌어 온 ‘조광페인트’의 70년 역사와 역대 회장의 성과를 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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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여 년 역사 위에 깊이 새겨온 탄탄한 기술력을 토대로 도료 부문을 넘어 세계 일류 화학기업으로 도약하겠습니다.

양성아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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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류 화학기업을 향해!

조광페인트, 빛을 던져 세상에 색을 입히다

별빛을 삼킨 네온의 휘광도 스러졌다. 어두운 담벼락은 멀리 홀로 선 가로 등의 도움을 받아 부연 몸체를 힘겹게 드러낸다. 스프레이 페인트를 쥔 손 아귀에 힘을 줄 때, 돌연 그 눈동자에는 섬광이 스쳤을까. 휘모리로 거칠게 헤쳐 나가는 몸짓조차 붙들기 어려운 칠흑 같은 밤이다. 언젠가 마침내 다 가올, 붉은 태양의 아침을 품었다. 색으로 세상을 밝힌다. 아직은 회색이던 해방 공간, 1947년 3월 부산에 서 자그마한 빛과 색이 대한민국 희망의 징후로 모습을 드러냈다. ‘조광페 인트’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표 도료 전문기업, 연매출 1,982억 원, 직원 수 480명의 건실한 중견기업이다. 70여 년 간 수많은 마을과 도시의 색을 바꾸고, 지구별의 푸른빛을 더욱 다채롭게 진화시키고 있다. 목공용 도료, 공업용 도료, 분체 도료, 플랜트 도료, UV·EB(자외선·전자선) 경화형 도료, 건축·바닥방수용 도료, 플라스 틱용 도료, 자동차 보수용 도료 부문의 발전을 이끌었다. 차열·단열·방열 코팅제, 자동차·연포장·산업용 필름 점·접착제, 디스플레이 분야 코팅제 등 정밀 화학 분야로 사업 영역을 크게 넓히면서, 2000년 중국, 2008년 베트 남, 2018년 몽골 등 해외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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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00만 불 수출의 탑, 2019년 2,000만 불 수출의 탑 수상의 영 예를 안았다. 품질경영시스템 ISO 9001, 환경경영시스템 ISO 14001 등 국 제표준 인증을 획득하고, 2006년 환경윤리경영대상 환경친화부문 대상, 2013년 상공의 날 대통령표창, 2016년 공정거래의 날 대통령표창 등을 받 았다.

페인트 산업 모태를 지킨 유일한 기업

1945년 해방과 함께 미군이 주둔하면서 부산항을 통해 다양한 군수물자가 들어왔다. 군수물자 유통 사업은 무질서와 혼란, 혹은 무한한 가능성의 시 절을 돌파할 지름길로 보였다. 패기만만한 젊은 사업가들이 몰려들었다. 양복윤 회장이 붙든 아이템은 페인트였다. 색을 입힐 건물조차 별로 없었 지만 해방된 나라의 미래는 형형색색으로 빛날 것이라 확신했다. 국가 발 전과 페인트 산업의 성장이 함께 갈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조광페인트’의 전신 ‘조광페인트공업사’가 잉태된 순간이다. 재가공한 수입 페인트를 팔면서 자체적으로 개발 실험을 지속했다. 남의 물건을 거간하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자기만의 색으로서 독자 브 랜드조차 갖지 못한 페인트 회사는 일종의 형용모순이기도 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호마이카’, ‘아미노졸’ 등 페인트를 출시하자 시장은 기다렸 다는 듯이 반응했다. 주문이 쏟아졌고, 신명이 붙었다. 전시 수도였던 부산이 한숨을 돌리고 서울이 다시 나라의 중심으로 자리 잡으면서 인근 페인트 회사들이 하나둘씩 상경하기 시작했지만 양 회장은 “부산에서 시작해 성공한 만큼, 부산을 버리는 건 도리가 아니다”라면서 부 산에 남았다. ‘조광페인트’는 대한민국 페인트 산업의 모태인 부산을 지킨 유일한 기업이다. 1967년 법인으로 전환했다. 1976년엔 부산 사상구 삼락동에 5,200여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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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3월 부산 부산진구 가양동에 문을 연 ‘조광페인트공업사’ 전경

규모의 공장을 준공하고, 코스피 상장에 성공한다. 새마을 운동으로 정부 주도 주택 개량 사업이 급속하게 추진되면서 슬레이트 지붕용 ‘스레졸’ 등 페인트가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주택 부문의 성장에 필연적으로 수반될 목재·가구 산업의 확대를 전망 하고 목공용 도료 시장에 서둘러 진출해 오랜 기간 1위 업체로 이름을 날 렸다. 1981년에는 불소 도료 등 공업용 도료 개발에 성공하고, 1985년 양 산 제2공장, 1996년 음성 제3공장을 준공하면서 종합 도료 전문기업의 진 용을 갖췄다. 벼락처럼 찾아 온 1997년의 IMF 위기도 ‘조광페인트’의 행군을 무너뜨리 진 못했다. 수많은 가구, 건설 회사가 잇따라 파산하면서 자금 회수가 막 힌 데다, 300억 원을 투자한 음성 제3공장이 가동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라 고통이 더했지만, 애당초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양산 제2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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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4월 준공 이후 2018년 증축한 충북 음성 공장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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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를 팔아 부채를 줄이고, 뼈를 깎는 심정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제 품 다변화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직원의 20%를 기술 부서로 배치하고, 연 구개발비는 오히려 크게 늘렸다. 회사는 1년 만에 정상을 되찾았다. 임직 원 모두 한마음으로 인고의 시간을 버텨낸 결과다.

기술에의 천착, 성장의 핵심 동력

1985년 양성민 회장이 취임하면서 선박, 중방식, 분체 도료 시장을 사정 권에 포함시켰다. 독일 바스프Basf, 이탈리아 실카Sirca, 벨기에 리베르트 Libert, 캐나다 프로테크Protech, 일본 후지쿠라Fujikura 등 세계적인 페인트 기업과의 기술 제휴로 체력을 다지고, 1988년 굴지의 도료 전문기업인 노르 웨이의 요턴과 ‘조광요턴’을 공동 설립, 글로벌 시장에 포문을 열었다. 세계 에서 유일하게 선박용 도료와 전기방식보호시스템을 동시에 제공한다. ‘조광페인트’ 직원의 35%는 연구 인력이다. 매년 매출의 5% 이상을 연구 개발에 투자한다. 지속적으로 기술을 혁신해 90개의 특허 등록을 완료했 다. 2020년 현재 61개의 특허권 외에 KS·KC·친환경·HB 등 다양한 인증을 보유하고 있다. 2012년에는 도료교육센터를 설립하고 도료 기술자 육성에 나섰다. 국내 유일의 도료·도장 전문 교육기관인 ‘센터’는 같은 해 고용노 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주관하는 국가인적자원개발 컨소시엄 운영기 관으로 선정됐다. 2019년 기준 1만 2,491명의 기술인력을 배출했다.

세계 일류 화학기업으로 도약

양성아 대표의 목표는 세계 일류 화학기업으로의 도약이다. 2018년 취임 하면서 경기도 군포에 지하2층~지상10층, 연면적 1만 2,500㎡ 규모의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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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4월 세계적인 도료 전문기업 노르웨이의 요턴과 합작해 설립한 ‘조광요턴’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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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조광페인트 이노센터’ 준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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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페인트 이노센터’를 준공했다. UV 경화형 도료 및 고기능성·고부가가치 제품 개발과 미래 기술 확보, 글로벌 전문기업을 향한 전진기지다. ‘조광페인트’의 노하우와 첨단 기술력에 대한 해외의 높은 평가도 이어 지고 있다. 만리장성의 문을 연 2000년 이후, 동남아시아 시장의 돌파구로 2008년 베트남에 설립된 ‘조광비나’의 성장세가 또렷하다. 2019년 몽골 진 출 1년 만에 대리점을 다섯 개로 확장하고, 주요 가구 기업과의 기술개발 협약, 프리미엄아파트 건설사인 LBH와 공급 계약 체결에도 성공한다. ‘조광페인트’의 오늘은 새로운 빛, 혹은 보이지 않던 색이 드러나는 방식 으로 짜였다. 무너진 조국의 회색 건물에 색을 입히자는 작은 소망에서 기 초 소재와 안전, 에너지 부문에 이르는 산업적 성취로 나아갔다. 태양광백 시트·핫멜트·자동차용 접착제, 페이스트전극·고굴절프리즘·센서용 전자재 료, 촉매재·전도성 고분자 등 신소재는 ‘조광페인트’의 미래를 결정할 새로 운 스펙트럼이다. 어둠을 밀어내고 마침내 약속처럼 밝아온 아침, 홀로 어둠을 휘저은 뱅 크시의 춤이 빚어낸 장관은 모두가 아는 바다. 무채색의 시공에 더해진 색 과 빛은 파격의 생명력, 미래다. 하늘과 물의 경계를 지우며 찬란하게 떠오 르는 아침의 빛, ‘조광페인트’의 100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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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아 대표이사

1977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2011년 미국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2003년 ‘조광 페인트’에 입사해 2012년 기획조정실 부장, 2014년 영업 본부장, 2016년 영업·기술본부 총괄 전무이사, 2017년 부 사장을 거쳐 2018년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세계 일류 화 학기업으로의 도약을 목표로 기술 혁신과 신소재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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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 조광페인트공업사 설립

1976 코스피 상장

1985 양산 제2공장 준공

주생산품 UV 경화형 도료, 친환경 분체 도료, 차열·단열·방열 코팅제 등 ckpc.co.kr 전화 051-304-7701 051-304-7744~5 홈페이지 www.

팩스

HISTORY

1988 조광요턴 설립

1996 음성 제3공장 준공

2006 환경윤리경영대상 환경친화부문 대상 수상

2007 베트남 조광비나 설립

2012 조광페인트 도료교육센터 설립

2013 상공의 날 대통령표창 수상

2016 공정거래의 날 대통령표창 수상

2018 조광페인트 이노센터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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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조광페인트 홈페이지 , www.ckpc.co.kr ● 조광페인트(2020) , 조광페인트 도료교육센터 브로슈어 ● 조광페인트(2019) , 조광페인트 브로슈어 ● 아주경제 , ‘[창 간기획 M+ 레볼루션] 여성 리더 5인, 양성아 조광페인트 대표’, https://www.ajunews.com/view/2019-****-093147921, 2019. 11. 21. ● 한국경제 , ‘조광페인트, 몽골 넘 어 중앙亞 시장 넘본다’,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19-****-91921, 2019. 7. 3. ● 더벨 , ‘‘조광페인트 3세’ 양성아 사장, 어려울때 홀로섰다’, http://www. thebell.co.kr/free/content/ArticleView.asp?key=2019-****-0100032290002060, 2019. 6. 21. ● 한국경제 , ‘‘3세 경영’ 시대 연 조광페인트, 첨단 연구센터 본격 가동한 다’,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18-****-45941, 2018. 3. 29. ● 이데일리 , ‘조광페인트, 오너 3세 양성아 신임 대표이사 선임’, https://www.edaily.co.kr/ news/read?newsId=03368566619146272&mediaCodeNo=257&OutLnkChk=Y, 2018. 3. 23. ● 부산일보 , ‘[부산 기업 100년 프로젝트] 3. 조광페인트’, http://www. 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17-****-000279, 2017. 2. 9. ● 일요서울 , ‘[여풍당당 여성시대] 조광페인트 숨은 보석 ‘양성아 전무’’, http://www.ilyoseoul. 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5228, 2016. 6. 3. ● 국제신문 , ‘지역 장수기업 열전 <11> 조광페인트’,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 asp?code=0200&key=2016-****-22019192003, 2016. 5. 1. ● 부산일보 , ‘[CEO 라운지] 조광페인트㈜ 이대은 대표이사’, http://www.busan.com/view/busan/view. php?code=20130828000079, 2013. 8. 27. ● 머니투데이 , ‘“문재인株 아닌데…” 조광페인트 왜 상한가 행진?’,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201300849 0085145&outlink=1&ref=http%3A%2F%2Fsearch.naver.com, 2012. 1. 31. ● 한국경제 , ‘[주목! 지역리더기업] ‘부산 조광페인트’…無오염 親환경 페인트’, https://www. hankyung.com/society/article/200402-*******, 2004.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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