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_서울산악연감14호
이북 원문에서 글자만 옮긴 전체 텍스트입니다. 표·그림·사진과 원래 모양은 이북에서 확인하세요.
FEB. 2024 VOL.14
SEOUL MOUNTAINEERING ANNUAL
제호 : 김승태
•대한민국 아카데미미수협회 초대작가 •한국서화협회 초대작가 •한국등산학교총동문회 상임이사
표지사진 : 기르기스스탄 레닌봉(7,134m) 표지•본문디자인 : 이인복(LEE INBOX 대표)
*
한 편의 시를 위한 길 위에서
김기섭
여기가 어디냐고 묻지 마시라. 내가 서 있는 곳은 노적봉 정수리. 수직을 부르며 나락으로 내리꽂 는 토왕폭과 해마다 이맘때면 관절 마디마디 푸 른 파도가 쿨럭이는 바다가 보이는 곳. 유월 눈부 신 신록 위에 있어 눈이 멀 거 같나니.
벗이여, 모든 걸 버리고 알몸으로 오시라. 이곳은 푸른 별빛으로 멱 감은 바윗덩어리와 봄여름을 노래하는 굴참나무 잎사귀들이 넘실대다 안락암 종소리에 부딪쳐 깨우침에 이르나니. 오, 신이시 여. 저를 배려해주신다면 스스로 멸하기를 허락 하소서.
김기섭ㅣ 1962년 강원도 화천출생. 경원대졸. 열여덟살에 암벽등반을 시작하여 1989년 설악산 노적봉 '한편의 시를 위한 길'을 낸 이후 북한산 백운대 '시인 신동 엽길' 등 총 23개의 암릉길과 암벽등반 코스를 개척했다. 월간 <사람과산>, <마운 틴> 기자 역임. 2021년시집'달빛등반 출간. 현 서울특별시 산악연맹 명예이사. '경원대학교 OB산악회', '백운산장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활동.
*1989년 경원대OB산악회가 개척한 설악산 노적봉에 있는 암릉길이다.
사
발간
석채언
서울특별시산악연맹회장
성대하고 탄탄한 행사진행으로 안전하고 유익한 등산문화 넓혀
산을 사랑하시는 산악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코로나19가 물러간 2023년은 활발한 산악활동으로 등반대회와 교육 등 많은 행사가 있었습니 다. 여러 가지 산악행사를 빛내고 의미 있는 진행을 위해 우리 연맹의 임원 및 회원님들께서 바 쁘신 시간임에도 많은 분들이 참여하고 성원하여 주셔서 성공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전국체전을 비롯하여 여러 등산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함에 따라 많은 축하 인 사와 함께 서울시체육회로부터 포상금도 받는 기쁨까지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 연맹에 소 속된 지자체 산악연맹의 등산대회 및 행사들까지 성대하고 탄탄하게 진행하였습니다.
전문산악 등반인 해외원정 고산등반은 키르기스스탄의 레닌봉( 7,134m)으로 선정하여 우 리 연맹 가맹 산악회의 회원을 대상으로 대원을 선발하고 훈련을 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설 악산에서 훈련 중 김의열 대원이 영면하여 모두가 슬퍼하였지만, 등반대는 산으로 향하는 것 으로 결정되어 최선을 다해 원정등반을 하였습니다. 장세종 대장이 이끈 등반대는 성공적 으로 2명이 정상에 올랐으며, 김의열 대원의 명복을 빌며 유품을 정상에 남겼습니다.
산악발전을 목적으로 하며 봉사정신을 최선으로 하는 서울특별시산악연맹은 산악인의 성 지인 북한산 산악인 추모비를 정성껏 다듬어 유족과 산악동지들이 언제든지 기억과 추모 를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서울시민의 건강한 일상과 좀 더 안전하고 유익한 여가 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범국민 등산교육을 수준별로 진행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전문등 산인을 위한 심판강습, 자격취득과정교육과 안전대책 합동 세미나 등을 주최하였습니다. 한국을 대표하고 우리 연맹의 심장인 한국등산학교는 정규반, 암벽반, 동계 과정까 지 모든 과정을 순조롭고 안전하게 교육과정을 수료시켰으며, 2024년에는 창립 50 주년을 맞이하게 되면서 100회 정규반과 특별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산악인의 정통성과 최고의 산악활동으로 명예로운 서울특별시산악연맹은 2023년 을 힘차게 최선을 다해 보냈으며, 이러한 모든 산악활동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서울산 악연감’을 발행합니다. 서울산악연감은 산악발전을 위한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입니 다. 발간에 애써주신 김창성 학술정보위원장과 위원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윤지영
(학술정보부위원장, 늦뫼산악회)
머리글
늘 같은 곳에서 댓가를 요구하지 않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다가오는 산
“등산은 댓가를 요구하지 않는 인간의 순수한 의식과 행동이며 자연에 대한 가장 순수하고 가혹하며 신중한 도전이다.”
오래전 4월 어느 봄날. 랑탕 국립공원을 다녀와 지인과 우연히 가게 된 EBC 트레킹을 마치고 남체바자르를 향해 걷는 나에게 가이드가 불쑥 “임자체에 갈래?” 한다. 트레킹 마지막 날이라 아쉬워하던 나는 귀가 번쩍 뜨였다. 임자체 그곳은 암벽 등반과 빙벽 등반을 하는 이에게는 그야말로 꿈에 그리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나는 40대로 혈기왕성해 철없고 겁 없던 때였다. 무모하게 준비 없이 오른 피크 내내 대자연 아래서 체념과 도전을 반복하며 어렵게 등반에 이르렀었지만 지금도 그 때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 한번을 시작으로 여러 번의 기회가 나에게 찾아오게 되었고, 그 도전의 결과가 또 다른 도전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평생을 산에서 살다 산에서 생을 마감한 등반가이자 등산 가이드였던 리오넬 테레이의 말 중에 “등산은 댓가를 요구하지 않는 인간의 순수한 의식과 행동이며 자연에 대한 가장 순수하고 가혹하며 신중한 도전이다."라고 하였다. 「무상의 정복자」 중
산은 능력을 갖춘 등반가도 평범한 내 이웃에게도 그 어떤 댓가를 요구하지 않고 평등하다. 늘 같은 곳에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를 대해준다. 이런 산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SEOULMOUNTAINEERINGANNUAL
CONTENT · 1
SEOULMOUNTAINEERINGANNUAL2024VOL.14 원정대상지 개요 25 원정일정 26 등반 · 카라반루트도 27 발대식 · 패킹 28 원정대원 · 훈련모음 32 원정기록 · 에세이 41 분야별 보고 113 원정화보 122
005 권두시 008 발간사 011 머리글 016 신년인사회 017 두무산설제
131 원로의 길을 걷다. 김병준 산악동우회 부회장
018 정기총회
139 특별대담 한필석 한국등산학교교장
019 각종 위원회 합동 세미나 020 산악인 합동추모식
147 이사람 전영래 서울특별시산악연맹 등산교육 위원장
022 제58주년 창립기념식 023 해외원정특집- 레닌봉 원정개요 24
CONTENT · 2
156 우수가맹단체소개 요델산악회 162 산악에세이 나의 삶, 나의 산이야기 · Ⅲ
175 2023 서울시산악연맹 현황 임원현황 시·구연맹조직 각 위원회 현황 등산학교강사 현황 187 2023 서울시산악연맹 활동보고 회의운영 188 2024 사업계획 192
2024년 2월 20일 발행
SEOULMOUNTAINEERINGANNUAL2024VOL.14 2023 사업실적 194 199 위원회활동 등산교육위원회 199 전문등산위원회 210 생활체육위원회 212 안전대책위원회 214 환경보전위원회 219 스포츠클라이밍위원회 220 한국등산학교 225
230 산서소개 Fallen Giant 외
발행처: 서울특별시산악연맹 ㅣ 발행인: 석채언 ㅣ 편집위원장: 김창성 ㅣ 편집위원: 윤지영, 김기섭, 이인복, 박진영 주소: 서울시 중랑구 망우로 182 서울시체육회 207호 ㅣ 전화: 02-2207-8848 ㅣ 팩스: 02-2207-8847 E-mail: safkorea@daum.net ㅣ 홈페이지: www.safk.or.kr
신년인사회
서울특별시산악연맹은 2023년 신년인사회를 1월 11일(수) 19:00시 p.j호텔에서 진행하였다. 금년 신년인사회에서는 모범산악단체상에 산울림산악회, 모범산악인에 윤지영, 황수진, 여정훈, 김경식, 김성자, 강인철, 김성철, 남은경, 김민수, 황우식, 김자하, 정진언, 최중숙, 엄다경 이상 14 명과 특별 공로상에 '2022 한국푸캉(6,6694m)원정대' 단장 조좌진, '2022 한국힘룽히말(7,126M) 원정대' 단장 정택준 두 명이 수상하였고, 이어서 (주)강원N.T.S , (주)부토라, (주)동인기연(인수스), ( 주)훠리스트(이리지스), (주)스미스코리아, (주)트랑고, (주)가야미, 솔베이아웃도어 등 푸캉 원정대와 힘룽히말 원정대에 많은 후원을 한 기업체 대표에 감사패를 증정하였다. 또한 이날 연맹 제570호 가맹단체로 승인된 클라임산악회에 가맹증 및 연맹기가 전달되었다.
제52회 두무산 설제
서울특별시산악연맹은 펜데믹 기간 개최하지 못했던 설제를 엔데믹을 맞아 3년만인 2023년 2월 12일(일) 충북 제천시 두무산(472.2m) 일원에서 가맹단체 회원 3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무사 안전 산행을 기원하는 제52회 설제를 정성 껏 올렸다. 석채언 회장을 비롯한 23대 집행부와 김인배 명예회장, 조규배 고문, 강태선 서울특별시체육회장, 전직 임원 모임인 서울산악동우회원, 중구산악연맹 최교수 회장 등이 참석하였으며, 산행 코스에는 전문등산위원회 위원들이 산행 안내 및 각 포인트에서 회원 단체의 안전 산행을 위해 진행을 도왔고, 마지막 막걸리 봉사도 해 주었으며, 환경보전위원회에서는 산행 길과 산제 장소를 흔적 없이 깨끗하게 정리하는 등 모범적인 행사로 이끌어주었다.
정기총회
2023년 2월 28일(화) 서울특별시체육회관1층 대강당에서 서울특별시산악연맹 정기총회를 성황리에 진행하였다. 재적대의원 40명 중 참석 대의원 26명과 위임장을 제출한 대의원 5명으로 총 31명의 대의원이 참석 한 가운데 진행된 정기총회는 회장 인사말에 이어 조직이사의 성원보고 - 전차회의록(승인) - 보고사 항(2022년도 서울특별시산악연맹 각종 현황 / 2022년도 서울특별시산악연맹 사업 실적 요약 / 2023 년도 사업 계획 / 2023년도 예산계획 / 감사 보고)이 승인되었으며, 심의사항으로(2022년 사업 실적 (안)/ 2022년도 결산서(안) / 서울특별시산악연맹 규약 변경(안) / 회원단체 제명(안) / 임원해임(안) / 감사선임(안))이 승인되었다. 기타 사항으로(스포츠공정위원회 위원 및 임원 선임(안)이 회장에게 위임 되었으며, 연맹기금 활용안 이 이사회에 위임되었다. 또한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건으로 이에 대한 서울특별시산악연맹 입장은 3 월18일 진행될 이사회 및 각종위원회 합동세미나에서 찬성단체와 반대단 체의 의견을 듣고 최종 결정하기로 하였다. 이어서 앞으로 2년 간 수고해 줄 감사에 거리산악회의 송정두 대의원이 행정 감사로, 윤택세무소 대표 세무사 박윤희 님이 회계 감사로 선출되었다.
각종위원회 합동세미나
2023년 각종위원회 합동세미나를 3월18일(토)~19일(일) 의정부 YMCA 다락원 캠프에서 진행하였 다. 각종위원회 합동세미나에 앞서 3월 이사회를 진행하여 최교수(중구연맹회장) 님을 연맹 부회장으 로 임명하고 강정국 님을 신임이사로 임명하였다. 각종위원회 합동세미나에서는 학술정보 이인복 위 원이 "특강" 으로 '아웃도어 촬영의 이해' 동영상 촬영 기법에 대한 강의를 해주었고, 쟁점 사항인 "설악 산 케이블카 설치" 찬성 / 반대 단체에 참석 요청을 하여 찬성측(양양군 삭도설치추진단)에서는 자료 로 대체하였고, 반대측 단체(국립공원을 사랑하는 모임)에서는 자료와 집행위원인 배성우 님께서 반대 의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질의 시간을 가졌다. 이어서 한국등산학교 교장 한필석 님과 동작산악연맹, 양천구산악연맹, 마포구산악연맹 등 구산악연 맹 회장에게 명예부회장 임명장 수여식이 진행되었으며, 이어서 각종위원회 위원장 임명장과 위원 위 촉장이 수여되었다. 또한 한국등산학교에서는 전임 교장이었던 송정두 연맹감사에게 감사패를 전달하 였다. 간단한 뒷풀이에 이어 각종 위원회별로 분임 토의를 통해 올해 진행될 각종 사업에 대해 논의하 는 시간을 가졌다.
행사
산악인 합동 추모식
2023년 4월 22일 북한산 산악인 추모공원에서 서울특별시산악연맹, 한국대학산악연맹, 한국산악회, 대한산악연맹, 북한산국립공원 등이 합동으로 먼저 가신 산악인들에 대한 합동 추모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강태선 서울시체육회장과 이인정 아시아산악연맹회장, 석채언 서울특별시산악연맹회장 등 많은 산악계의 인사들과 산악 원로, 산악 단체 등이 참가하여 추모식을 가졌고, 금년에 새로 추모공 원에 안장하는 산악인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갖는 등 고인들의 뜻을 기렸다.
▲추모사
우리는 오늘 이곳 산악인 추모탑 앞에서 산이 좋아 산에 살다 영원한 안식처 ( 安息處)
로 가신 이백 칠십 여섯 분께 우리 모두의 마음을 모아 추모의 뜻을 전해 드리고자 합니다.
육신은 비록 배낭을 벗고 그토록 즐기시던 산을 떠났지만, 설악산, 지리산, 인수봉, 선인봉…. 나아가 만년 동안 눈 덮힌 저 산정을 오르는 님들의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그곳에서 숙연하게 등정의 세계를 들려주시고, 산 노래를 부르시던 당신들을 향한 그리움과 깊은 울림이 여전히 귀에 생생합니다.
배낭을 꾸려 함께 자일을 묶고, 은빛 피켈을 높게 쳐들며,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오르던
<추모공원 설명>
출범문
파란 얼음기둥과 하얀 설산, 나뭇잎들이 바람에 흩날리고 구름이 산자락을 가리며, 모진 비바람과 살을 에는 혹한 속에서 님들께선 강렬한 눈빛과 하얀 입김을 내쉬며, 온화한 웃음과 함께 피안의 세계로 고스란히 스며들었습니다.
한 열정을 따를 수가 있겠습니까!
살아 있어 어느 누가 님들께서 가지신 그 순연 ( 純然) 저 수직의 세계를 향한 당신들의 그 뜨거운 몸짓은 이미 산과 동화되어 구분이 없습니다.
산을 닮은 님들께선 피안의 언덕을 넘어 우뚝 선 커다란 산이 되셨습니다. 그 산은 고귀한 영혼의 산이 되었고, 봄 날의 화사한 꽃이 되어 살아있는 우리들 가슴에 깃들입니다.
해마다 당신들을 만날 때면 함께 했던 그 아련한 추억들을 기억하면서도 함께 할 수 없음에 아픔과 슬픔이 겹치곤 합니다. 님들이 안 계신 이 큰 산은 너무나 허전하고 적막하며 우리들의 마음까지 먹먹하니 그저 눈물만 훔치곤 합니다. 누군가를 떠나 보내는 일이 이처럼 아프고, 당신의 그 빈 자리가 이토록 큰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당신들을 떠나보내지 않고 마음 깊숙히 담아 놓으렵니다. 해마다 이곳에서 님들을 만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고 슬픔을 가눌 수 없지만 우리는 결코 당신들의 산을 잊지 않겠습니다.
이제는 님들께서 보여 주신 그 뜨겁던 열정을 내려놓으시고 이 곳 수려한 북한산 자락에 평안히 영면하시길 빕니다. 함께 했던 소중한 기억들을 잊지 않기 위해 이 추모탑을 우리의 손으로 하나 하나 정성으로 쌓았으며, 봄꽃 활짝 핀 좋은 날에 님들을 그리워하는 악우들이 모두 모여 두 손 모아 추모를 드립니다.
2023년 4월 22일 산을 사랑하는 합장
1. 북한산 산악인 추모탑은 우리가 늘 지키고 가꾸어야 합니다. 산악인 추모탑은 우리 모두의 손으로 정성껏 쌓아 올렸기에 주인은 산악단체도 아니고 국립공원도 아닌 산악인들 모두입니다.
2. 이 곳은 산악인들의 높은 기상과 품위를 상징하는 숭고한 장소입 니다. 이곳에 우리 산악인들이 자주 모여 산악 행사도 하고, 차를 한잔 마시며 멋진 등반을 꿈꾸기도 하고, 쉬기도 하는, 우리의 정겨운 마당으로 승화시켜야합니다. 검정 옷에 검정 넥타이를 메고 슬퍼만 하기 보다, 추모탑 앞마당에서 산악계의 좋은 일이 있으면 함께 기뻐하고, 슬픈 일이 생긴다면 함께 슬픔을 나누는 것이 산악인 추모탑에 모셔진 동지들의 바람일 것입니다. 최근 이 곳에서 시산제 등 산악회 행사가 자주 거행되고 있음은 무척 좋은 일입니다. 더욱 많은 산악계 행사가 이곳에서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3. 이 지역 명칭은 '북한산 산악인 추모공원'입니다. 그리고 이 곳은 산악인들의 추모비를 모아 함께 봉안하였으므로 북한산 추모공원의 산악인 추모탑 또는 추모비로 불리는 것이 옳습니다. 앞으로는 이 곳을 무당골이라고 불리는 오류는 없어야겠습니다.
제58주년 창립기념식
2023년 7월 8일(토) 서울특별시산악연맹 창립 58주년을 맞아 코리아나 호텔에서 기념식을 가졌다. 이 번 기념식은 2023 한국기르기스스탄 레닌봉(7,134m) 원정대 발대식을 겸해 진행되었다. 이번 창립 제58주년 기념식은 외부 초청 없이 내부 인원(전•현직 임원, 한국등산학교 관계자, 자치구 연맹 회장, 원정대 대원)만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으며, 이번 레닌봉 원정대는 한 대원이 훈련 중 심정 지로 사망하여 무산될 위기를 맞아하기도 하였으나 고인의 뜻과 산악인 정신을 기리고, 침체된 알파인 등반 영역을 활성화하는데 기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판단되어 중단 없이 추진하게 되었다. 추후 2024년 부터 연맹은 송년회와 신년인사회는 자체 행사로 축소하여 간소하게 진행하고, 뜻깊은 창립기 념식을 대내외적으로 홍보하여 성대하게 진행하기로 하였다.
2023 해외원정특집
▵화보
2023 KOREAN KYRGYZSTAN LENIN PEAK EXPEDITION
▵원정개 요
▵원정대상지개요
▵원정일정
▵등반· 카라반 루트도
▵발대식, 패킹
▵원정대원, 훈련
▵원정기록, 에세이
▵분야별보고
주최·주관 서울특별시산악연맹 후 원 아시아산악연맹, 대한산악스키협회, 엄홍길휴먼재단, 혜초여행개발㈜, 서울산악동우회, SAF jj club, 경복산악회, 중동산악회, 검악산악회 협 찬 훠리스트㈜-이리지스, 클라임코리아㈜, ㈜부토라, ㈜트랑고, ㈜비와이엔블랙야크, ㈜동인기연-인수스
원정개 요
EXPEDITION OVERVIEW
원정대 명칭 원정대 명칭
2023 한국 키르기스스탄 레닌봉(7,134m) 원정대
2023 KOREAN KYRGYZSTAN LENIN PEAK(7,134m) EXPEDITION
원정 대상지
키르기스스탄 파미르 고원 레닌봉 Lenin Peak, Pamir Plateau, Kyrgyzstan
원정 기간
2023년 7월 22일 ~ 2023년 8월 16일 July 22, 2023 ~ August 16, 2023
원정 대원
장세종 원정대장, 김미곤 등반대장, 곽노성 대원, 김성은 대원, 성년수 대원, 엄재원 대원, 이상국 대원
원정 목적
침체되는 알파인 등반(해외원정)을 부흥하고 다양한 산악문화의 참여 보다 폭 넓은 전문 산악인 양성과 알피니즘의 저변 확대 알파인 등반을 통한 정보 및 기술 축적
국명 : 키르기즈공화국 수도 : 비쉬켁(Bishkek) 언어 : 키르기즈어, 러시아어 종교 : 이슬람교
지리적 위치
민족과 역사
원정 대상지 - 레닌봉
원정대상지 개요
EXPEDITION DESTINATION OVERVIEW
공식 국가 명칭은 키르기즈 공화국(키르기스어: Кыргыз Республикасы 크르그스 레스푸블리카스, 러시아어: Кыргызская Республика 키르기스스카야 레스푸블리카)이며, 키르기스스탄은 동 국가의 약칭이다. 수도는 비쉬켁(Bishkek)이다. 키르기즈 공화국은 중앙아시아 내륙,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부는 중화인민공화국, 서부는 우즈베키스탄, 남서부는 타지키스탄, 북부는 카자흐스탄과 마주하고 있다. 국토 면적은 199,951㎢ 이다.
1876년 러시아에 병합된 후, 러시아연방사회주의 공화국의 구성 공화국이었다가 1991년 독립하였다. 민족 구성은 키르기스족들이 69.5% 정도 차지하고, 기타 소수민족은 러시아인 9.0%, 남부의 우즈벡족 14.5%이다. 소수그룹을 차지하는 위구르족 1.1%, 타지크족 1.1%, 카자흐족 0.7%, 둥간족 1.2%와 터키인 0.9%, 고려인 0.3%, 우크라이나인 0.5%이다. 키르기즈 공화국은 씨족·부족 공동체가 매우 공고하게 유지되어 있고, 특정 지역 및 지방에서 유래하기 때문에 남과 북으로 대변되는 지역주의가 중요한 사회·정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레닌봉은 타지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의 국경에 뻗은 파미르산계의 트란살라이산맥의 최고봉이다.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우는 파미르고원은 전장 250Km에 달하는 대 산악의 체인으로 “눈과 산”의 바다라고도 불린다. 지리적으로 좌측에 힌두쿠쉬 산맥과 우측에 천산 산맥을 두고 실크로드 상의 천마의 고향 페르가나, 양귀비의 대단위 경작지 오쉬에서 접근을 하며, 1800년대 러시아 왕국에 복속된 이래, 산으로 둘러싸인 지정학적 특징 때문에, 어느 구소련 공화국보다도 고산의 특징을 잘 보존하고 있다. 레닌봉의 산허리는 빙하로 덮여 있으며, 첫 등정은 1934년 소련 등반대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한국인으로는 1991년 8월 11일 여성 1인을 포함한 4인이 첫 등정하였다.
원정일정
EXPEDITION SCHEDULE
본 원정의 총 기간은 26일을 기준으로 하고, 7월 29일부터 8월 9일까지 본격적인 등반을 진행 할 예정이다.
일수
날짜
장소
D1
Incheon 출국, Bishkek 입국 Bishkek 출발, Osh 도착
D2
Osh 출발, BC 도착 D3~D4 07-24~07-25 BC D5
C1 등반 D6~D7 07-27~07-28 C1 D8~D19 07-29~08-09 등반 D20~D21 08-10~08-11 BC 정리 D22
BC 출발, Osh 도착
D23
Osh 출발, Bishkek 도착
D24
Bishkek D25~D26 08-15~08-16 Bishkek 출국, Incheon 입국
고도
비고 airplane airplane 3,600m vehicle 3,600m 고소 적응 4,400m 4,400m 고소 적응 C1,C2,C3, Summit 7,134m 3,600m BC 철수 airplane
airplane
등반•카라반 루트도
CLIMBING & CARAVAN ROUTE MAP
발대식, 패킹
OPENING CEREMONY & PAKING
2023년 7월 8일(토) 코리아나 호텔에서 서울특별시산악연맹 창립 58주년 기념식 겸 2023 한국기르 기스스탄 레닌봉(7,134m) 원정대 발대식을 가졌다. 훈련 중 불의의 사고로 대원 한 명이 유명을 달리 하였지만 대원들은 슬픔을 딛고 더욱 철저한 패킹 준비로 안전 등정을 다짐하였다.
석채언
발대식 l 인사말
서울특별시산악연맹 회장 인사말
서울특별시산악연맹은 산을 향한 뜨거운 열정으로 2023년 여름 파미르 고원의 최고봉인 레닌 봉을 원정 등반합니다. 우리 연맹은 산악인들의 염원 (念願) 을 담아 지난해 히말라야를 등반하며 코로나19로 위축된 사회 분위기에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었고, 2023년 레닌봉 등반은 수직의 세계를 오르며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꿈을 이루는 것에 의미를 두고자 합니다.
지난 5월 27일 레닌 봉 등반을 앞두고 설악산에서 훈련 중 안타깝게 순명 (殞命) 한 김의열 대원의 명복을 빌면서, 원정대는 이번 등반을 숙연 (肅然) 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정상을 오를 것입니다. 우리는 산악인이 되는 길을 선택함에 따라 고인이 된 대원의 바람과 함께 신성한 산을 오르겠습니다. 등반대는 모두가 마음을 함께 하며 더욱 강한 훈련을 하였고 등반 준비에 소홀함이 없도록 노력하였습니다. 우리는 레닌봉(7,134m) 원정 등반이 마무리될 때까지 산악인의 자세가 흐트러짐이 없도록 할 것이며 또한 고 (故) 김의열 대원의 못다한 등반을 함께 마무리할 것입니다.
산악인의 도전 정신은 모두에게 희망과 용기를 안겨줍니다. 험준한 산을 오르며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등반 행위는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이러한 힘과 용기는 우리 모두를 위한 행복한 삶과 발전된 사회를 이루게 합니다.
산악인들의 중심체 (中心體)
인 서울특별시산악연맹은 희망과 용기를 가슴에 안고 끝없는 열정으로 산을 향하는 우리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불굴의 도전정신과 기상은 산악계 본연의 역사와 전통으로 계승될 것이며, 나아가 새로운 산악문화의 창조까지 기여할 것으로 믿습니다. 훈련부터 등반 그리고 귀국까지 건강하고 멋있는 원정대가 되기를 마음 다하여 기원드리겠습니다.
레닌봉 원정대를 위한 많은 분들의 성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장세종
원정대장 인사말
하얀 산. 우리 산악계도 시대 흐름인 고령화 사회를 피해 갈 수 없는지 이 삼십대 젊은이들을 보기 드물게 되어 산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나 패기, 도전 정신도 시대 흐름에 따라 변색되어 가는 때 우리 서울특별시산악연맹은 그래도 산을 대하는 정신 즉 알피니즘을 최소한의 명맥이라도 이어 나가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작년 히말라야 힘룽히말(7,126m)에 이어 올해도 파미르고원 레닌 봉에 원정대를 파견하기로 결정하였고 제가 원정대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히말라야 보다 접근성이 용이하고 비교적 비용도 많이 들지 않아 등반이 수월하다는 세평이 있지만 그래도 7천미터급 산인데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더구나 훈련 도중 체력이 가장 뛰어났던 대원이 불의의 사고로 하늘의 별이 되어 좌초될 위기에 대원들의 산에 대한 열정과 도전정신, “배가 항구에 있으면 안전하겠지만 그래도 폭풍우, 높은 파도 거친 물살을 헤치며 앞으로 나갈 때 가치가 있다”는 석채언 회장님의 결단으로 이번 등반이 성사되었습니다.
이제 참여 대원들은 우여곡절 끝에 가게 된 등반이라 도전과 열정으로 가치를 추구하는 등반, 산행의 종료는 무사 귀가까지라는 금언을 마음에 새기며 재미있는 등반, 즐거운 산행을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원정대에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신 산악계 선, 후배님께 감사드립니다.
추도사
언젠가 그 어느 날 산에서 눈감으면 내 오랜 산친구여 전해 주오, <중략> 아~ 행복한 산사나이 포근한 흙 냄새여~
추도사
김의열동지(同志) 영전(靈前)에
오래전 젊은날 산행을 마치고 내려와 소주 한잔 걸치고 읊조리던 산 노래 한 소절, 이제 가사의 일부만 기억할 정도로 나에겐 퇴색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잊지는 못하지요. 의열 동지(同志). 우리가 함께 추구했던 산은 문자(文字), 음성(音聲), 기호(記號)로 설명하기 어려운 형이상학(形而上學적) 정신세계(精神世界)라 나와 가장 가까운 처, 자식 부모형제에게 고통일 수도 있었지만 말린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았기에 가슴앓이만 했겠지요.
의열 동지(同志). 당신은 행복한 산사나이 입니다. 다만 조금 일찍 헤어지는 것이 아쉽지만 좋아하는 산에서 눈감으셨으니 무슨 여한이 있겠습니까. 살아 숨쉬는 자는 숨쉬는 그 날까지 하여야 할 일은 또 하여야겠지요. 의열 동지(同志). 이제 하늘의 별이 되셨으니 이 곳의 모든 걸 내려 놓으시고 그곳에서 새로운 길을 가시길 빕니다.
2023.5.31. 서울특별시산악연맹 레닌봉원정대장 장세종 배상(再拜).
원정대원
EXPEDITION CLIMBER
체력과 기술
원정대원은 등반에 필요한 체력과 기술을 갖추어야 한다. 산악 경험과 기술적 능력을 평가하여, 고산 환경에서의 위험 등에 대비할 수 있는 인원을 선택한다.
커뮤니케이션
원정대원은 팀워크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신뢰성과 책임감
원정대원은 팀원들의 안전과 원활한 등반을 위해 신뢰성과 책임감이 강한 사람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문제 해결 능력
고산 등반은 등반 도중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나고 유연한 사고력을 갖추어야 한다.(창의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
안전 마인드셋
등반 대원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준비헤야 한다. 안전 규정을 따르고, 위험 상황을 예방하고 대처하는 데 적극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
원정대장
등반대장
원정대원 선발은 등반의 성공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므로 서울특별시산악연맹 T.F Team은 5가지 기준을 바탕으로 대원을 선발하였다.
장세종(B형) 1978. 중동고산악부 입회 1981. 인수봉검악B코스 개척등반 1988. 뉴질랜드 Mt.CooK 캐로라인벽 등정 1990. 남미파타고니아 쎄로또레,피츠로이등반 1990~1994 대산련산악구조대활동 2016. 유럽알프스 마터호른 등정 2019. 뉴질랜드Mt.CooK 등반 2022. 유럽알프스 몽블랑 등정 소 속: 검악산악회 현: 서울시 산악연맹 부회장
김미곤(B형) 2000. 초오유 등정 2001. 마칼루 등정 2006. 가셔브룸 2봉등정 2007. 에베레스트,로체 연속 등정 2009. 다울라기리 등정 2011. 마나슬루, 시샤팡마 등정 2012. K2 등정 2013. 가셔브룸 1봉 등정 2014. 칸첸중가, 브로드피크 등정 2016. 안나푸르나 등정 2018. 낭가파르밧 등정 2022. 힘룽히말 등정 히말라야 8,000m급 14개봉 등정 소 속: 블랙야크 현: 서울시 산악연맹 부회장
곽노성(A형) 2006. 네팔 임자체 등반 2011. 네팔 임자체 등정 2012. 키르기스스탄 레닌봉 등반 2014. 티베트 초오유 등반 2018. 프랑스 그랑조라스 북벽 등반 2018. 페루 알파마요 등정 2022. 네팔 출루 파이스트 등정 소 속: 7급산악회
대원 | 행정
이상국(B형) 2016. 정승권등산학교 대암벽반 13기 수료 2016. 일본 북알프스 종주 2017. 요세미티 엘캐피탄 텐저린트립 등정 2018. 코오롱등산학교 설상반 33기 수료 2022. 네팔 히말라야 아마다블람(6,812m) 등정 소 속: 연산지우산악회
대원 | 장비 · 수송
김성은(O형) 2018. 포천시 산악연맹 백두대간 완주 2018. 키나바루 정상등정(4,095m) 2020. 용인 호습다산악회 백두대간 완주 2021~2022. 한국등산학교 정규 · 암벽 · 동계반 수료 2021~2022. 코오롱등산학교 정규 · 암벽 · 암벽연수반 수료 소 속: 산울림산악회 현: 한국등산학교 총동문회 총무위원
대원 | 회계
대원 | 식량
대원 | 기록 · 의약
대원
성년수(B형) 1995. 토왕폭 등반 2002. 요세미테 조디악 등반 2011. 백두대간 단독 일시종주 2017. 일본 북알프스 등반 소 속: 경송산악회
엄재원(O형) 2012. 정승권등산학교 암벽반 졸업 (인수 · 선인 기술 등반) 2015.~2021. 동계 설악산 토왕성폭포 빙벽등반 2016.~2023. 동아마라톤 풀코스 완주 2016. DMZ 산악마라톤 100km 완주 2022. SEOUL100K 울트라(100km) 산악마라톤 완주 소 속: 바름산악회
故 김의열 1994. 서울교통공사암벽부 입문 2007. 알프스원정 등반대장(고양시산악연맹) 2009. 노적봉 아미고스(8피치). 코바위 영의정길(5피치) 개척 2009. 고양시산악연맹일본북알프스동계개척 등반 등반대장 2017. 제천세계소방선수권대회(산악자전거부문) 2위 소 속: 서울교통공사산악회
대원 훈련
일시
2023.04.02. AM 9:00
집결지
북한산 산악문화허브
날씨
육모정-영봉-위문-용암문-대동문-대남문-비봉-향로봉-족두리봉-장미공원
상비군 9명, TFT. 6명 이동거리: 16km, 누적상승고도: 1,243m, 경과시간: 6시간 50분, 평균페이스: 25:32/km
△ 영봉 정상에서 장비 점검
△ 북한산 산악문화허브 앞
2023.04.09. AM 8:00
회룡역 3번 출구
훈련 종류 [사패산-도봉산-북한산]하중
경로 참석자
상비군 9명, TFT. 4명 이동거리: 21km, 누적상승고도: 1,552m, 경과시간: 9시간 42분, 평균페이스: 27:42/km
△ 회룡사 앞 단체 사진 촬영
△ 영봉으로 가는 바위 길
일시 집결지
장암역 1번 출구
훈련 종류 [수락산-불암산] 하중+기술
10kg
경로 참석자 내용
△ 육모정 고개로 오르는 대원들
상계역 2번 출구
12kg
훈련 종류 [불수사도] 하중 경로 참석자 내용
△ 불암산 정상
△ 훈련 종료 후 상비군 대원들
2023.04.23. AM 9:00
날씨
상비군 9명, TFT. 5명(기술위원2명) 이동거리: 13km, 누적상승고도: 1,143m, 경과시간: 8시간 9분, 평균페이스: 37:37/ km
△ 3차 훈련 종료 후 대원들
△ 석림사로 이동하는 원정대 상비군 △ 영신바위에서 주마링 훈련
2023.04.30. AM 8:00
15kg 상계역-불암산-수락산-사패산-포대능선-도봉산(신선대)-칼바위-우이암-우이동 원정대 7명, TFT. 3명 이동거리: 29km, 누적상승고도: 2,163m, 경과시간: 11시간 47분, 평균페이스: 24:16/km
△ 수락산으로 이동하는 원정대
△ 우이동으로 하산 완료
일시
2023.05.13. PM 10(무박2일)
집결지
상계역2번출구
날씨
원정대 7명, TFT. 3명 이동거리: 40km, 누적상승고도: 2,952m, 경과시간: 17시간 54분, 평균페이스: 26:20/km
△ 동막골 지하도
△ 대동문에서 재회
일시
2023.05.2. AM 8:30
불광동 장미공원
훈련 종류 [북한산-도봉산]하중
원정대 7명, TFT. 2명 이동거리: 22km, 누적상승고도: 1,333m, 경과시간: 9시간 25분, 평균페이스: 25:06/km
내용
△ 족두리봉으로 향하는 대원들 △ 삼중화 착용 후 도봉산으로 이동
일시
흐림, 온도 15℃, 풍속 3.8km/h, 습도 63%
집결지
인제 남교리
△ 남교리에서 출발
△ 장미공원 도착 후 단체 사진 촬영
흐림, 온도 16℃, 풍속 9.8km/h, 습도 85%
15kg
훈련 종류 고소식 및 장비 점검 경로 참석자
원정대 4명
△ 하남 검단산역 앞에서 출발
△ 한국등산학교 졸업식 참석
2023.05.27~29.(2박 3일)
흐리고 비, 온도 15℃, 풍속 5.9km/h, 습도 77%
날씨 훈련 종류 [설악산 종주]고소식 점검+야영(비박) 하중
훈련 식량 및장비로 대체 남교리-12선녀탕-[설악11-9]-원점회귀(대원 불의의 사고로 훈련 중단) 원정대 8명, TFT. 4명 이동거리: 17km, 누적상승고도: 920m, 경과시간: 10시간 27분, 평균페이스: 36:33/km
△ 훈련 방식을 설명하는 등반대장님 △ 복숭아탕으로 이동하는 대원들
2023.06.11. AM 9:00
부분적 흐림, 온도 19℃, 풍 속 2.9km/h, 습도 81%
하남 검단산역(5호선) 3번 출구
훈련 식량 및 장비로 대체 검단산등산로 입구(베트남참전기념탑)-유길준묘-전망바위-검단산 정상-곱돌약수 터-현충탑-검단산등산로 입구(베트남참전기념탑)
이동거리: 9km, 누적상승고도: 658m, 경과시간: 4시간 8분, 평균페이스: 27:36/km
△ 정상 전 팔각정에서 휴식
△ 고소식 테스트
원정기록
EXPEDITION RECORD
■ 원정준비
일자기간
내용
기 타 1
2023년 해외원정대 대원 모집 공고
서울특별시산악연맹
대면 면접
서울특별시산악연맹
상비군 9명 선발
서울특별시산악연맹
4/2~23 3회 상비군 하중 및 기술 훈련 실시
총 3회 훈련 실시
원정대 6명 대원 확정
3명 탈락
4/30~6/25 11회 원정대 하중, 기술, 고소식 훈련
총 11회 훈련 실시
1차 원정대 및 TF Team 대면 회의
코리아나호텔
2차 원정대 및 TF Team 대면 회의
역삼역사무실
원정대 장비점검, 등반 성공 기원 단합대회 홍천
발대식
서울특별시산악연맹
1차 원정대 및 TF Team 장비 등 패킹
담쟁이집
2차 원정대 및 TF Team 장비 등 패킹
담쟁이집
해단 해단식
서울특별시산악연맹
■ 원정일정(2023.07.22~2023.08.26 / 총 26일
일자기간
내용
기 타 1 7/22~26 5일 출국(인천~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BC) 비슈케크 1박, 오시 1박, BC3박 출국 및 상행 카라반 상승과 하강 훈련 및 7/27~8/3 8일 상승(BC~C1~C2~C3~C2~C1~BC) 캠프 구축 8/4~5 2일 휴식(BC) C1 5박, C2 2박, BC 1박 BC 2박 8/6~9 4일 상승(BC~C1~C2~C3)
C1 2박, C2 1박, C3 1박
1일 정상(C3~정상~C3)
C3 1박
1일 철수(C3~C2~C1~BC)
BC 1박
8/12~13 2일 휴식(BC)
BC 2박 BC 1박, 비슈케크 1박, 알마티 1박
8/14~16 3일 귀국(BC~오시~비슈케크~알마티~인천) 원정기간 6일
■ 숙영지통계
장소기간 알마티 1박 공항 비박 비슈케크 2박 호텔 오시
1박 호텔
기 타 2
BC
10박 목조건물
C1
7박 텐트
C2
3박 텐트
C3
2박 텐트
계
26박
(비공식 2회 포함)
들어가며
정택준 부회장 지원 이상군 대원 지원 정균일 부회장 지원 코리아나호텔 성연수 대원 지원 성연수 대원 지원
기 타 2
장비 점검과 패킹 정상 공격을 위한 상승 정상 공격 캠프 철수 장비 점검과 패킹 BC 철수 및 귀국
내용
기 타 1
기 타 2
카자흐스탄공항
경유지
키르기스스탄
수도
키르기스스탄
도시(제2의 수도)
3,600m 4,400m 5,400m
캠프 철수
6,100
장비 점검과 패킹 BC 철수 및 귀국
본 기록 및 일기에는 ‘한국 키르기스스탄 레닌봉 원정대의 이야기’만을 그대로 옮기려고 노력했고, 기록 방법은 매일 매일 이슈별 키워드를 휴대폰에 기재해 두었다가 한국에 돌아와 살을 붙였다. 필요시에는 휴대폰에 녹음한 내용을 활용하기도 했고, 대원들이 촬영한 사진을 참고하기도 했으며, 운행 기록은 ‘가민스마트워치(GARMIN)’를 활용했다. 때로는 고산병 증세로 인해 키워드를 입력하는 것조차 힘이 들어 귀국해서 기억을 더듬었고, 현지에서의 기록은 숙소나 텐트에서 취침 전 기록하였는데, 침낭 안에서 기록하다가 핸드폰을 들고 잠든 적도 있었다. 개인적인 등반 성과로는 첫 원정에 해발 6,100m에 도달했다는 점이고, 정상에 서지 못한 점은 아쉽고 후회도 되지만, 훌륭한 대원들과 값진 경험을 한 것과 신체 건강하게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한다. 마지막으로 정상 공격에 나서던 날 새벽, 뒤처진 나를 C3로 돌아설 수 있게 지도해주신 김미곤 대장님과 함께 정상에 오른 상국 형에게 경의를 표한다.
PS. 가이드 후세인(Hussain Askoli)에게도 깊이 감사한다. <엄재원 대원>
원정기록 ▲7월 22일(1일차) •대한민국 인천(ICN)→카자흐스탄 알마티(ALA)→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FRU )
05:30 기상→08:30 공항 도착→10:40 항공기 탑승→11:30 탑승 후 대기 중 전날은 김미곤 대장님 지인의 배려로 공항 인근 단독주택에서 마지막 패킹을 준비하면서 숙박과 출국을 준비할 수 있었다. 주택에서는 백두대간과 블랙야크 100명산을 완주하신 산악인께서 손수 만들어주신
능이백숙과 산나물로 든든하고 건강한 저녁을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리 간단하지 않은 전야를 마치고 늦은 밤 취침을 준비한다. 약간의 긴장과 설레는 마음으로 공항에 도착한 후 개인 배낭과 카고백를 김대장님의 지시 하에 가지런히 정렬하고 손님 맞이를 준비한다. 예상대로 여러 관계자 분이 공항에 오셔서 환송해주신다. 수많은 분과 기념사진을 촬영하다 보니 어느덧 항공기 탑승 시간이 임박한다.
12:25 항공기 이동→12:45 이륙(항공기 출발 지연) 떠나는 항공기 자리 배치는 미리 인터넷으로 지정해 두었다. 두 대장님은 약간의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자리의 여유가 있는 비상구 좌석으로 배치하고, 대원들은 오가기 편한 통로 쪽으로 배치했다. 모두 기분이 좋아 보인다, 나도 좋고…. 기내식을 기다리면서 앞으로 펼쳐질 설산 등반을 상상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기내식은 생각보다 괜찮았고, 앞으로 BC부터는 금지될 기내식 주류가 가장 기대되었다. 기대한 바와 같이 맥주는 무제한 보충에 위스키 & 와인도 추가해서 먹을 수 있었다. 연수 형의 지도에 상국 형과 나는 위스키에 맥주를 섞어 2~3잔을 들이킨다. 전일 먹은 해장술이라 생각하니 나름대로의 명분도 생긴 것 같다. 거기에다 설렘 때문인지 잠도 오지 않는다. 맛있는 기내식에 약간의(?) 음주를 곁들여 각자 영화 또는 게임을 즐긴다(상국 형은 이 와중에도 스도쿠를 한다).
18:00 카자흐스탄 알마티(ALA) 공항 도착(경유지, 현지 시각 16:00) 항공기에 내려 환승(Transfer) 공간에서 대기해야 하는데 초반에는 어수선하다. 여기서 대기하는 것이 맞는지, 행렬을 따라 줄을 서야 하는지 등…. 잠시 대기하니 공항 직원의 안내에 따라 대기 공간으로 이동한다(이하 현지 시각으로 기재함_알마티 -2시간, 비슈케크 -3시간).
17:30 비슈케크행 항공기 탑승→17:45 항공기 출발→18:25 비슈케크 공항 도착 날이 밝다. 한국시간이라면 21:25이지만, 키르기스스탄은 한국보다 3시간이 느리다. 멀리 설산이 보여서 아름다운 풍경이란 생각에 고도계를 보니 약 700m 정도로 표시된다. 장비 담당자와 대원들은 카고를 정리하고, 회계는 현지 화폐로 환전을 한다. 현지 화폐는 솜(COM)이라 부른다. 환율 차이는 100 솜=1,500원(100 솜이면 현지에서 수박 7통을 살 수 있는 돈이다). 대원들은 카고백 등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하며 주차장으로 카고백을 옮긴다(대원 카고백 7개, 공동장비 카고백 4개 합 11개). 공항 주차장에는 로컬 대행사에서 준비한 벤츠 18인승 흰색 밴이 기다리고 있다.
19:35 숙소 도착. 아뿔싸, 모두 같은 색의 배낭과 같은 크기의 카고백이 원인이라고 핑계를 대지만, 실수로 내 배낭을 밴에 놓고 내려버렸다. 다행히 밴 기사가 다시 갖다주었지만, 만약 찾지 못했다면 시작부터 난처한 상황이 펼쳐질 뻔했다. 호텔 방 배정은 자연스럽게 알아서 정해진다. * 원정대장 장세종 * 등반대장 김미곤 & 기록 엄재원 * 행정 곽노성 & 회계 김성은
* 식량 성연수 & 장비 이상국
*****
20:30 '아르주(ARZU)'라는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우리는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적절한(음주도 가능한) 저녁을 먹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나갔지만, 적당한 식당을 찾기는 어려웠다. 또한 간판 등에는 영어가 아닌 '키르기스어'로만 표시되어 어떤 메뉴를 판매하는지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결국 우리가 선택한 레스토랑에서는 술은 팔지 않았고,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대부분의 키르기스스탄 레스토랑에서는 종교적인 이유로 술을 판매하지 않는다고 한다. 비슈케크의 첫 이미지는 깨끗한 중소도시의 이미지였다. 다만 오래된 경유차가 많은 원인이었는지 공항을 나서자마자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기온은 영상 40도 정도 되었지만, 습하지 않고 건조한 기후와 높은 고도 때문인지 후텁지근한 한국 날씨와 다르게 그리 덥지 않고 저녁엔 시원했다(한국의 깊은 가을 느낌). <엄재원 대원>
12:25 항공기 이동→12:45 이륙(항공기 출발 지연)→18:00 카자흐스탄 알마티(ALA) 공항 도착(경유지, 현지 시각 16:00) 알마티 공항에서 도착해 환승을 위한 공간(Transfer)으로 이동했다. 환승 대기 장소를 찾느라 초반에는 헤맸으나 입구의 대기 공간에서 잠시 대기한 후 공항 직원의 안내에 따라 공항 셔틀을 타고 바로 옆 동에 있는 환승 장소로 이동했다. (이하 현지 시각으로 기재함_알마티 시차 2시간, 비슈케크 - 시차 3시간)
인천공항-출국전-원정대원들
17:30 비슈케크행 항공기 탑승→17:45 항공기 출발→18:25 비슈케크 공항 도착 장비 담당자와 대원들은 카고백을 정리하고, 김성은 대원은 공항 환전소에서 환전을 한다. 공항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던 18인승 흰색 밴에 짐을 싣고 30여분 정도 떨어져 있는 비슈케크 숙소로 이동했다.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었고 멀리 흰 산들도 눈에 들어왔다. 20여분 지나 진입한 도시의 도로는 예상외로 깨끗하게 관리되어 깔끔한 도시 느낌을 주었다. 네팔의 흙먼지가 날리고 수많은 오토바이들로 북적이는 느낌과는 너무 달랐다. 키르기스스탄의 첫 느낌이 좋다.
19:35 숙소 도착→20:30 저녁 식사 모두 같은 색의 배낭과 같은 크기의 카고백이 원인이었는지 실수로 엄재원 대원이 배낭을 밴에 놓고 내려버렸다. 다행히 밴 기사가 다시 갖다 주었지만, 만약 찾지 못했다면 시작부터 난처한 상황이 펼쳐질 뻔했다. 그 덕분인지 밴 기사가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알려준다. 'ARZU'라는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우리는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적절한(음주도 가능한) 저녁을 먹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나갔지만, 적당한 식당을 찾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간판 등에는 영어가 아닌 '키르기스어'로만 표시되어
어떤 메뉴를 판매하는지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결국 우리가 선택한 레스토랑에서는 술은 팔지 않았고,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키르기스스탄 레스토랑에서는 이슬람 문화로 인해 술을 판매하지 않으며, 술을 판매하는 전용바를 이용해야 한다고 한다. 비슈케크의 첫 이미지는 깨끗한 중소도시의 이미지였다. 다만, 오래된 경유차가 많은 탓인지 공항을 나서자마자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기온은 영상 40도 정도였지만, 습하지 않고 건조한 기후와 높은 고도 때문인지 후덥지근한 한국 날씨와 다르게 그리 덥지 않고 저녁엔 한국의 깊은 가을 느낌처럼 시원했다. <이상국 대원>
▲7/23(2일차) •비슈케크(Bishkek) - 오시(Osh)
04:50 기상→05:00 조식→05:30 밴 도착 카고백 상차→05:45 비슈케크 공항으로 출발→ 06:15 비슈케크 공항 도착→07:50 항공기 탑승, 08시 이륙 예정→08:45 오시(Osh) 공항 착륙→ 09:20 밴 도착. 오시 호텔로 이동 오시 시내는 비슈케크와 마찬가지로 차량은 에어컨을 켜지 않는다. 이곳의 차량은 대한민국에서 수출한 차량이 많다. 1톤 트럭의 대부분은 현대 포터가 주를 이뤘고, 승용차는 모닝, 마티즈 등 국산 스틱 차량이 많이 보였다. 우리는 장비 및 식량을 구매하기 위해 걸어다니며 재래시장을 찾아보았으나 위치를 찾기 어려웠다. 오시에 도착하면 대행사에서 밴으로 시장까지 픽업을 해주는 것이 기본일텐데 기대만큼 서비스가 이뤄지지 않았다. 몇 시간의 장을 보고 현지식 식사를 마쳤다. 어렵게 샤슬릭(Shashlik) 집을 찾아 들어갔지만, 이곳 역시 술을 팔지 않았다. 중식을 마치고 대원 중 일부는 숙소로 일부는 이발소에 들러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바버 같은 느낌인데 커트가 200솜(COM) 밖에 하지 않는다(한화로 약 3천 원 정도). 엄청 저렴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공산품 단가는 한국과 별 차이 없어 보였다. 저녁은 우연히 만난 한국분의 소개로 가성비 좋은 곳에서 볶음국수 같은 메뉴의 저녁을 먹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요리명은 '라그만'이었다. 그분들께 어떻게 감사의 인사를 해야 할지 고민도 하면서 호텔에 돌아와 호텔 앞 파라솔에서 간단한 다과와 회의를 마친 후 모두 잠자리에 들었다. <엄재원 대원>
*****
키르기스스탄 국내선을 타고 오시로 이동해서 오시에서 장을 보고 1박을 할 예정이다. 비행기가 오전 8시 출발이라 아침 5시에 일어나 호텔에서 준비해준 간단한 빵과 요거트를 먹고 5시 30분에 밴으로 오시
▲7/24(3일차) •오시(Osh)-Base Camp : 자동차로 이동한 기록 •거리 266.38km, 시간 7시간 53분(중식 포함), 상승고도 5,023m, 하강고도 2,369m •최저해발 : 966m, 최고해발 : 3,621m •경로 링크 : Garmin Connect
오시로 이동 위한 비슈케크 국내선 입구
공항으로 이동했다. 국내선은 1층에서 수속을 진행했으며, 셔틀버스로 비행기 탑승구로 이동했다. 국내선은 화물이 수화물과 기내 화물이 20kg을 기준으로 초과 비용을 지불했다. 40여분의 비행 후 오시 공항에 도착했다. 한적한 시골 공항 느낌으로 노인분들의 전통 복장과 행동들이 친근함을 더해줬다. 수화물을 찾아 대기중인 밴에 짐을 싣고 선라이즈 호텔로 이동했다. 비슈케크 보다는 더 시골 냄새가 나는 정감 가는 도시 느낌이다. 호텔에 도착한 후 짐을 풀고 필요한 식량과 장비를 사기 위해 이동했다. 걸어서 20여분 쯤에 대형 마켓(globes )을 찾아 들어갔다. 소금, 설탕, 식용유 등 필요한 양념류와 배추, 양파 등의 야채를 구매했다. 그리고 식기류, 물티슈, 화장지, 치약, 후라이팬 등의 용품을 구매했다. 그런데 세로형의 부탄 가스는 판매를 하는데 가장 필요했던 이소(EPI )가스를 판매하지 않아 구하지 못했다. 3명 한 팀씩 먼저 구매한 물건들을 호텔에 가져다 놓고 오시 시장 입구에서 만나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호텔로 택시를 타고 우여곡절 끝에 약속 장소로 돌아왔다. 점심은 로컬 식당을 찾아 들어가서 여러가지 요리를 시켜서 같이 나눠 먹었다. 샤슬릭, 치킨 등 여러 요리를 주문했으며 특별히 먹지 못하는 음식은 없는 듯하다. 향신료가 조금 독한 요리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입맛에 좋았다. 오전에 장봤던 마트에서 사온 맥주와 함께 맛있게 점심 시간을 보냈다. 로컬 식당에서는 이슬람 영향으로 술을 판매하지 않아 술을 파는 바에서만 술을 먹을 수 있다.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분과 인연이 되어 음식이나 술 주문 방법에 대해 도움을 받게 되었다. 한국분은 키르기스스탄 현지 여성과 결혼한 젊은 부부였다. 점심 식사 후 일부는 호텔로 복귀하고 나머지는 구매하지 못한 슬리퍼, 식료품, 가스 등을 구매하기로 했다. 시장 보기 전 김미곤 대장, 성년수 대원, 김재원 대원은 결의(?) 차원에서 머리를 단정히 깍기로 했다. 식당 거리 옆 바버샵에서 머리를 단장하게 정리했다. 커트가 200솜(COM)인데 한화로 약 3천 원 정도다. 오시 시장이 굉장히 넓게 형성되어 있었는데 오전에는 시장의 일부분으로 잘못 인지를 했던거 같다. 수저세트, 슬리퍼, 벌꿀, 건과일 등을 구매한 후 가스를 찾아서 큰 시장을 물어 물어 돌아보았지만 가스는 구매하지 못했다. 결국 가스 외에 물건만 구매해서 늦은 시간에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 7시 정도 숙소에 도착해서 곧바로 저녁을 먹기 위해서 호텔 밖으로 나섰다. 피곤해서 호텔 레스토랑에서 가볍게 먹고 싶었으나 많은 분들의 의견에 따라 식당을 찾아 이동했다. 식당을 찾아 헤매던 중 거리에서 낮에 만났던 한국 남자분을 만나게 되었고 거리에서 유명한 식당을 소개해 주었다. 전통 국수집인데 국물이 자작한 볶음국수 비슷한 요리였는데 맛이 괜찮았다. 요리명은 '라그만'이었다. 또 한 번 부부에게 신세를 지게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베이스캠프로 이동 전 마지막 파티를 하기로 하며 맥주와 보드카 한 병을 구매해서 숙소로 돌아왔다. 베이스캠프 전 마지막 만찬의 저녁 시간이 그렇게 지나갔다. <이상국 대원>
06:00 기상 오늘은 레닌봉 베이스캠프로 떠나는 날이다. 긴장한 탓인지 쉽게 잠에서 깨어난다. 조식을 위해 서둘러 채비를 하고 1층 식당으로 내려간다. 이미 다른 대원들은 조식을 시작하거나 마치는 중이었고, 조식의 품질은 비슈케크 호텔보다는 나았다.
09:58 밴 도착 행정에서 전달한 일정은 09:00 밴이 오기로 했으나 10시로 착각한 것으로 보인다. 전날 행정에서 밴 도착시간을 조율한 후 대원들에게 알려 주었는데 대행사 측과 시간의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 한바탕 소란을 벌이고 못이기는 척 밴에 탑승했다. 나름의 괜찮은 전략이었다고 생각했는데 큰 효과는 없는 것 같았다, 오히려 밴 기사의 볼록한 배꼽만 감상했다. 밴에는 앞으로 원정대의 등반에 길잡이가 되어줄 가이드도 함께 있었다. 이름은 ‘후세인(Hussain Askoli)’이고, 나이는 40세라고 한다. 스키를 잘 탄다고 하는데 관련된 자격증도 있다는 것 같다. 아무튼 1시간이나 지연되면서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다. 게다가 대행사 ㅔ베이스캠프(BC)에 전달할 식료품을 구매해서 차에 싣는 바람에 원정대가 앉을 공간이 부족해서 만원버스에 앉은 모양으로 카라반이 시작된다.
10:30 약간의 실랑이 후 카고를 싣고 BC로 출발한다.→11:20 계곡에서 5분 휴식(노상 방뇨 시간) → 12:20 지방도로 같은 느낌 한계령 또는 대관령 같은 곳을 한참 오른 후 고도 3,600m 지점에서 휴식과 포토타임을 가졌다(나에게는 매일이 새로운 고도 기록이다). 공기가 차다. 춥다. 손이 시릴 정도로…. 휴식 중 김대장님을 따라 살짝 뛰어보았다. 고산병 증세가 어떤 것일까 하는 호기심이었는데 괜한 짓을 했다. 반바지 차림이라 추웠고, 손이 저릿한 걸 보니 고상병 증세가 살짝 오는 것 같았다.
12:50 유르트 도착 점심을 먹기 위해 유목민들의 전통가옥인 유르트가 있는 게스트하우스 같은 곳에 도착했다. 멀리 하얗게 눈이 덮인 톈산산맥이 보이며 광활한 초원이 펼쳐진 곳이었다. 유르트 내부는 붉은색 계열의 천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고, 큰 좌식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빵과 홍차가 기본적으로 나오고 주 메뉴는 양고기 볶음밥에 오이와 토마토를 버무린 샐러드였다. 현지식으로는 처음 접하는 음식이었다. 쌀이 약간 설익었지만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15:30 BC 도착 베이스캠프의 명칭은[IMC "Pamir" Asia Outdoor Club BC] 이고, 앞으로는 그냥 ‘BC'라고만 표시하겠다. 내가 예상하기로 BC에서는 텐트를 사용할 것이라고 상상했지만, 숙소는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단층 목조 건물이었다. BC의 모습은 상단 건물이 주방과 식당이고, 우측 옆으로 숙소가 있다. 방에는 보통 2~3개의 목조 침대가 놓여 있고, 왼쪽 아래 끝 건물도 원정대 숙소 등으로 사용된다. 식당 운영시간은 아침 08:00
BC 가는 길-점심식사 장소인 유르트 전경
점심 13:00, 저녁 19:00부터 식사를 시작한다, 이는 캠프1(이하 C1)에서도 같다. 또한 인근에는 비슷한 레닌봉 로컬 대행사가 몇 있다. 그 중 '악사이 트레블(AKSAI TRAVEL)'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들은 우리가 사용하는 BC보다 원정대 인원이 많고, 텐트를 사용하고 있다. BC 주방에는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자매였다. 이름은 '노라이(Nuraiy)’와 ‘아스작(Asylzat)'이고, 언니는 대학생, 동생은 고등학생인데 방학이라 BC에서 주방 보조 일을 한다고 했다. 사는 곳은 BC와 오시(Osh) 중간 정도에 있는 소도시로 '촌알라이(Chon-Alay)'라고 했다. 자매 중 언니가 언어 관련 학과에 다니다 보니 한국어도 쉽게 배우고 따라 했다(우리에겐 젊어 보이는 한국 사람은 '오빠', 나이가 조금 있어 보이면 '아빠'라고 불렀다. 무조건 그렇게 부르는 것은 아니고 그래도 이름 정도는 터 줘야 친근함을 그렇게 표시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기다리던? 고산병 증세가 시작되었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움직이면 어질하면서 약한 두통이 동반됐다. 김대장님의 말씀으로는 짧게는 3일에서 길게는 7일 정도 지속될 수 있다고 했다. 적응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고산병 증세가 지속된다면 고도가 낮은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최대한 보온에 신경을 쓰면서 천천히 움직이려고 노력한다. 도착 때 날씨는 맑았으나, 약 3시간 후 천둥과 비를 뿌리더니 이내 맑게 갠 후 무지개까지 떠올랐다. 신기한 날씨였다.
19:00 석식 BC 캠프식 식사 메뉴는 양고기 볶음밥, 과일, 토마토, 오이, 샐러드, 빵. 석식은 BC 입성 전 유르트에서 먹었던 점심 메뉴와 비슷했다. 적당히 먹을 만했다.
21:30 악사이 클럽 방문. BC에서 만난 조선이공대 원정팀과 미팅을 했다. 우리측 IMC BC보다 환경도 좋고 분위기가 좋아 보였다. 다만 사람이 조금 많아 보였다. 지금이 등반하기에 적합한 시기인가 보다. 조선이공대 대원분들과 차를 마시며 나누는 원정 얘기에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늦은 밤 우리의 BC인 IMC로 넘어온다. 캠프에 도착하니 23:30 도착 후 간단한 소지 후 취침에 든다. <엄재원 대원>
오늘은 레닌봉 베이스캠프로 이동하는 날이다. 오전 9시에 대행사 밴으로 이동할 계획이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조식을 먹고 개인짐들을 정리했다. 9시 전에 호텔 앞에 모든 짐들을 정리해 놓고 대행사 밴을 기다렸다. 하지만 대행사는 약속을 어기고 한 시간 정도 늦게 도착했다. 도착한 차량에는 다른 팀의 식량인지 대행사 식량인지 모를 짐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우리팀의 짐을 채우고 대원들이 모두 타기에는 자리가 너무 비좁았다. 이런 문제에 대해 다른 대안을 제시해 줄 것에 대해 등반 대장님이 아시아아웃도어 측에 요구하였으며, 대행사 측에서는 난감한 기색이었다. 약속 시간도 늦고 차량에는 다른 팀의 짐들로 가득하고 이런 방식의 운행은 당연히 고객 입장에서 불만을 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대행사 측에 따끔하게 일침을 가하는 것이 앞으로의 일 처리에 있어 귀감이 될 것이라고 생각됐다. 이는 등반대장님의 경험에서 나온 지시였으며, 행정에 있어서 중요한 사항이었다. 차량 이동 문제에 대해 대행사에 강하게 어필한 이후 모든 대원들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못이기는 척하며
밴에 탑승했다. 운전기사와 가이드도 이어 밴에 탑승을 하고 오늘 목적지로 출발했다. 가이드는 오늘 시간에 맞춰 이란에서 왔으며, 아무런 사정도 모르고 많이 황당했을 것이다. 가이드 이름은 ‘후세인(Hussain Askoli)’이고, 나이는 40세라고 한다. 산악 스키 전문가이고 국제산악가이드협회(International Federation of Mountain Guides Associations)를 통해 대행사에서 선발하였다고 한다.
10:30 BC로 출발→11:20 계곡에서 5분 휴식→12:20 지방도로 같은 느낌→12:50 유르트 도착(점심) 베이스캠프까지는 250여 킬로미터 정도 거리이며, 비포장도로를 감안해 6시간 정도 예상됐다. 도심에서 얼마 나오지 않아 운전기사가 빠른 속도로 차를 몰았다. 클레임 때문에 화가 난 것인지 차를 난폭하게 운전했다. 그런 것보다는 운전 습관인 것 같다. 도로 주변은 넓은 초원과 민둥산들이 펼쳐져 있다. 목가적인 풍경이 계속되었다. 2시간쯤 지나서 한적한 마을에 도착했으며, 자주 들르는 휴게소 같았다. 우리팀은 물 7병을 사서 나눠 마셨고 다시 차량 이동을 시작했다. 한계령 같은 굽은 도로를 따라 3,000m 이상의 고개를 넘어 3,600m 정상 지점에서 휴식을 취했다. 가끔씩 빗방울이 떨어졌으며, 손이 시릴 정도로 공기가 차가웠다. 30분을 더 이동해서 타지기스탄과 이븐시나봉으로 가는 갈림길 마을에 도착했다. 늦은 점심 식사를 유목민 마을에서 로컬 음식을 먹었다. 멀리 하얗게 눈이 덮인 톈산산맥이 보이며 광활한 초원이 펼쳐진 곳이었다. 유르트 내부는 붉은색 계열의 천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고, 큰 좌식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빵과 홍차를 기본적으로 나오고 주 메뉴는 양고기 볶음밥에 오이와 토마토를 버무린 샐러드였다. 현지식으로 처음 접하는 음식이었다. 쌀이 약간 설익었지만, 모든 대원들이 음식을 잘 먹었다.
15:30 BC 도착19:00 석식 BC 캠프식 식사→21:30 악사이 트래블 캠프 방문 점심 후 밴으로 2시간 30분 정도 이동을 했으며, 마지막 1시간 정도를 비포장 길이었다. 하지만 차량 이동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으며, 베이스캠프에 안전하게 도착했다. 지도상 BC의 모습은 아래와 같다. 사진에 보이는 상단 건물이 주방과 식당이고, 우측 옆으로 숙소가 있다. 방에는 보통 2~3개의 목조 침대가 놓여 있고, 왼쪽 아래 끝 건물도 원정대 숙소 등으로 사용된다. 식당 운영시간은 아침 08:00, 점심 13:00, 저녁 19:00부터 식사를 시작하며, 식당 운영 시간은 C1에서도 같았다. 또한 인근에는 대행사가 여러 곳 분산되어 있다. 그 중 '악사이 트래블(AKSAI TRAVEL)'이라는 곳이 가장 크고 최신식 건물로 지어졌으며, 숙소는 천막 텐트를 사용하고 있다. 악사이 트래블, 센트럴 아시아, 아시아아웃도어가 대표적인 대행사다. BC는 해발 3,600m로 도착 후 엄재원 대원이 고소 증세를 보였다. 조금 빠르게 이동할 때 어지러우면서 약한 두통을 동반한 고소 증세였다. BC에 있는 동안 고소에 안정될 수 있도록 최대한 보온에 신경 쓰고 천천히 산책을 하면서 적응해야 했다. 롯지식의 숙소가 배정됐으며, 각자 짐정리를 시작했다. 도착 때 날씨는 맑았으나, 약 3시간 후 천둥과 비를
▲7/25(4일차) •BC 개인 및 팀 정비 : 고도적응 훈련 •거리 5.5km, 시간 3시간 59분, 상승고도 398m, 하강고도 473m •최저해발 : 3,610m, 최고해발 : 4,009m •경로 링크 : Garmin Connect
BC로 이동 중 물을 구매한 간이 휴게소
1안 : 26일 C1으로 출발하자는 의견
뿌리더니 이내 맑게 갠 후 무지개까지 떠올랐다. 숙소는 사전에 이야기되었던 2인 1실이 아니었고 3인 1실이었다. 부득이 대원 한 명의 숙소가 떨어져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숙소는 네팔 롯지처럼 침대로 되어있었으며, 이불 및 전기가 공급되었다. 저녁 메뉴는 양고기 볶음밥, 과일, 토마토, 오이, 샐러드, 빵. 석식은 BC 입성 전 유르트에서 먹었던 점심 메뉴와 비슷했다. 모든 대원들이 저녁을 먹고 다음날 고소적응을 위해 주위 산에 오르기로 계획했으며, 간단한 음료, 커피와 빵을 준비하기로 했다. 저녁 미팅을 마친 후 김미곤 대장, 엄재원 대원과 이상국 대원이 악사이 캠프에 오늘 들어온 조선이공대팀을 만나러 이동했고 나머지 대원들은 숙소로 복귀했다. 악사이 캠프 다이닝룸은 많은 사람들이 차와 식사를 하고 있었으며, 유명 카페에 온 듯했다. 조선이공대팀의 대장님 및 대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차 한 잔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중3인 학생은 아빠를 따라 이번 원정에 트레킹팀으로 왔고 원정대 막내는 20대 젊은 친구였다. 조선이공대 대원분들과 차를 마시며 나누는 원정 얘기에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다음날 저녁 초대를 받고 우리 캠프에 돌아오니 밤 11시 반이 되었다. 도착 후 간단한 소지 후 취침에 든다. <이상국 대원>
06:30 기상, 날씨 맑음, 기온 오전 8도, 오후 24도 개인 정비 및 조식 후 첫 번째 고도적응 훈련을 위해 BC옆 우측 우뚝 솟은 능선으로 향한다. 능선 끝은 만년설로 덮여 있고, 지도에는 최고고도 4,800m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표시된다. 연수 형은 영상 촬영, 상국 형과 나는 스틸 촬영을 하면서 능선에 올라서니 반대편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온다. 고도가 높아 공기가 차다는 것이 예상하고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흐름이었다. 우리는 큰 어려움 없이 고도 3,600~4,000m까지 적응 훈련을 마치고 13:50 BC에 되돌아왔다. 다만, 일부 대원의 하산이 지연되어 식사 시간을 놓칠 뻔했으나, 아르바이트생 자매들의 배려로 식사를 완료할 수 있었다.
17:30 조선이공대팀의 저녁 초청으로 악사이 BC 방문 조선이공대 팀의 초청으로 돼지고기 수육과 김치 및 고추, 피망 그리고, 된장국까지 한국식으로 든든한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사실 현지식은 향신료 때문에 먹기가 불편한게 사실이었다. 거기에다 고도가 높다 보니 밥이 설익어서 먹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식을 그것도 돼지고기 수육을 준비해 주시기 너무나 감사했고, 힘들게 따라다니던 고산병 증세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든든하게 저녁식사를 마치고 돌아와 우리는 일정 회의를 진행했다.
2안 : 하루를 더 BC에서 휴식하고 27일 C1으로 출발하자는 의견 3안 : 고도적응 훈련을 더 하고 28일 C1으로 출발하자는 의견 회의 끝에 2안으로 확정했다.
고산병 증세는 이렇다. 대원 중에서는 기록인 나의 상태가 가장 좋지 않다. BC에 상주하는 의사가 있어서 고도 적응 훈련 전 혈압과 산소포화도를 측정했는데 혈압은 정상이지만 산소포화도가 낮았다(80% 정도). BC 입성한 후부터는 호흡 조절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어지러움이 따라오면서 두통을 동반하더니 오늘에서야 심각한 두통과 몸살 증세까지 생겨났다(두통은 정말 심했다, 후두신경통 이라고 해야 하나. 양쪽 후두부 통증이 정말 심하다, 심각한 숙취를 앓고 있는 느낌이다). 오늘은 고도 적응 훈련을 마치고 내려오니 증세가 더 심해져서 체온을 측정하니 체온계는 38도를 가리키고, 척추 주변에도 근육통이 발생했다. 고산병 증세에 몸살감기 증상이 겹친 것 같았다, 고산병이 제대로 온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소염, 진통, 해열제를 사용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목조 침대에 누워 하루를 정리했다. 게다 건조하다 보니 코도 마르고, 코가 막혀 코를 풀면 약한 코피가 보였다, 아마 건조해서 실핏줄이 터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게 카라반 이동 때 설치지 말아야 했다. <엄재원 대원>
*****
06:30 기상, 날씨 맑음, 기온 오전 8도, 오후 24도 베이스캠프 2일차. 오늘은 베이스캠프 우측 우뚝 솟은 봉우리(Petrovsky Peak. 4,830m)를 오를 계획이다. 훈련 높이는 대략 4,000m 정도이며, 가볍게 고소 적응을 위한 산행이다. 아침 8시에 캠프식을 먹고 물과 커피류, 행동식을 챙겼다. 9시 반쯤 지나서 능선으로 향했다. 첫 고소 적응을 위한 산행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10여분 걷다 보니 추모 사진과 추모 비석이 있는 언덕에 도착했다. 레닌피크 등반 중 사고를 당한 여성대원들의 추모 공간으로 추모비가 있었다. 걸음은 최대한 천천히 걸으면서 키르기스스탄의 산소를 내 몸에 채울 수 있도록 호흡을 깊게 했다. 호흡을 깊게 하는 것이 고소 적응에 도움이 된다는 김미곤 대장의 권유에 따른 행동이었다. 성연수 대원은 영상 촬영, 엄재원 대원은 스틸 촬영을 하면서 능선에 올라서니 반대편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온다. 고도가 높아 공기가 차다는 것이 예상하고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흐름이었다. 언덕에서 가볍게 커피와 행동식을 먹고 능선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능선길 고도는 3,800m에서 4,000m였다. 모든 대원들이 무리 없이 능선길을 따라 이동했으며, 페트로브스키 피크 가기 전 하산 지점에서 모든 대원들이 잠깐 휴식을 취한 후 하산하기로 결정했다. 곽노성 대원, 김성은 대원은 4천 미터에서 고소 적응을 위해 15분 정도 더 머문 후에 후세인 가이드와 함께 하산을 했으며, 나머지 대원들은 일찍 하산해서
▲7/26(5일차) •BC 대기_휴식
패트로브스키 피크 고소순화훈련
대원들을 기다리며 휴식을 취했다. 대원들 모두 큰 어려움 없이 고도 3,600m~4,000m까지 적응 훈련을 마치고 13:50 BC에 도착했다. BC에서 제공하는 점심 시간보다 늦게 도착했지만 다이닝룸의 아르바이트생 자매들의 배려로 점심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점심 식사 후 개별 휴식을 취했다.
17:30 조선이공대팀의 저녁 초청으로 악사이 BC 방문 조선이공대 팀의 초청으로 돼지고기 수육과 김치 및 고추, 피망 그리고, 된장국까지 한국식으로 든든한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현지식은 향신료 때문에 먹기가 불편했다. 게다 고도가 높다 보니 밥이 설익어서 먹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식을 그것도 돼지고기 수육을 준비해 주시기 너무나 감사했고, 힘들게 따라다니던 고산병 증세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든든하게 저녁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대원들은 일정 회의를 진행했다. 고소 적응 상태에 따라 C1으로 이동할 계획을 논의했다. 하루를 더 BC에서 휴식하고 27일 C1으로 출발하자는 의견으로 확정되었다. 원정대 회의는 매일 저녁 식사 후 30분 정도 티타임과 함께 진행하기로 했다. <이상국 대원>
05:00 기상(고산병 증세로 인한 신체적인 불편함으로 늦잠을 잘 수가 없었다)→08:00 조식을 마치고 오전 회의 진행 각자 맡은 직무에 집중하자는 의견과 내일 C1으로 오를 준비와 관련한 의견 공유함(비 예보 있음, 많은 비가 온다면 하루를 더 쉬어야….), 카고백은 말로 운송. 행정팀(행정, 식량)은 대행사 회의에 들어가고 나머지 대원들은 내일 C1으로 가져갈 개인 및 공동장비를 패킹했다. 불용품은 제외하고 고산에서 사용할 장비와 식량을 위주로 패킹하고, 카고백은 25kg 넘지 않게 맞췄다. 개인 및 공동장비를 패킹하면서 매트리스 때문에 재밌는 해프닝이 있었다(다들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장비 담당의 수고가 많았다. 공동장비 패킹에다가 공동식량까지 챙겨주고, 행동식은 지퍼락에 개별포장까지 해서 대원별로 가져갈 수 있게 준비해 주었다. 고산병 증세가 가라앉지 않는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은 후 13:00 고도 적응을 위해 3,500m까지 고도를 내리는 개인 훈련을 진행했다. 그래봐야 아랫동네에 잠깐 다녀오는 것인데, 느리게 걷다 보니 시간이 꽤 걸렸다, 거리는 왕복 3km에 시간은 휴식 시간 포함 1시간 2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다행히 상국 형이 동행해 주어 편안함이 있었다. 다녀오니 컨디션이 훨씬 좋아진 기분이고, 실제로도 두통이 많이 완화되었다. <엄재원 대원>
*****
오늘은 베이스캠프에서 각자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휴식을 취했다. 휴식과 함께 내일 캠프로 떠나기 위한 준비 작업도 병행되었다. C1으로 출발하기 위해서 필요한 카고백 운송, 식재료 배송, 가스 등 점검을 위해서 행정을 담당하는 대원들이 BC 매니저와 미팅을 진행했다. 다음날 출발을 위해서 말을
준비하고 식자재 등을 운송에 대해서는 매니저와 협의를 끝냈지만 비용이나 처리 방식 등에 대해서는 애매하게 답변을 받았다. 일단은 다음날 오전에 말을 대기시켜 주기로 했으며, 무게를 측정해서 비용을 지불하는 것으로 이야기했다. 또한 식자재와 필요한 가스는 C1에서 구할 수 있으며, BC에서 필요분을 캠프1으로 보내 주는 것으로 논의되었다. 내일 비 예보가 있었으나 오전에 비가 안 올 경우 C1으로 출발하기로 결정되었으며, 대원들의 짐 점검을 진행했다. 개인 카고백은 대략 25Kg을 넘지 않게 짐을 패킹하고 나머지 공동 식량 및 장비를 준비했다. 김미곤 대장의 점검하에 개인 등반 장비 점검을 진행했으며, 불필요한 짐들은 빼서 BC 창고에 보관했다. 대원들 개인의 짐들이 너무 많은 상태였으며, 짐을 최소화해야만 했다.
BC 키친룸에서 닭죽 요리로 식사 공동 식량과 행동식을 재패킹을 하고 장비 또한 재패킹을 했다. 100미터 자일을 50미터씩 나눠서 2개로 준비하고 불필요한 피켈은 창고에 보관시켰다. 식량 3개, 장비 1개의 카고백으로 패킹되었다. 캠프1으로 이동 시 필요한 행동식을 개별 지퍼백에 포장해서 각 대원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준비했다. 패킹을 마친 후 점심 식사를 준비했다. 연수 대원이 매니저로부터 닭과 마늘 등을 구입했다. 닭은 한 마리 통닭이 아닌 뼈를 발라낸 살코기 덩어리로 받았다. 아쉽지만 닭 살코기 만으로 닭죽을 끓였다. 마늘을 듬뿍 넣은 닭 죽을 점심으로 먹었다. 우리 원정대의 첫 한식 요리였다. 닭 죽을 끓이는데 너무 많은 대원들이 고생을 한 듯하다. 점심 식사 후 개별 휴식 시간을 가졌다. 엄재원 대원, 이상국 대원은 BC 주위 산보를 했으며, 나머지 대원들은 숙소에서 휴식을 취했다. 잠깐의 휴식 중 간간히 빗방울이 떨어졌지만 다행히 많은 양르로 내리지는 않았다. 휴식 후 영상을 담당하는 성년수 대원이 인터뷰 촬영을 진행했다. 대원 개별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원정대에 참여한 동기 그리고 앞으로 등반 계획 등에 대한 인터뷰를 녹화했다. 대원 전체를 인터뷰했으며, 귀국 후 영상 제작에 어떻게 반영될지 궁금하다. 인터뷰가 끝나고 나니 어느덧 저녁이 되었고 저녁 식사 후 캠프1으로 이동하는 내일을 위해 일찍 취침을 시작했다. 드디어 내일이면 C1으로 원정이 시작된다. 레닌피크와 더 가까운 곳으로. <이상국 대원>
▲7/27(6일차) •BC-C1 : 상승 •거리 12.79Km, 시간 5시간 46분, 상승고도 1,052m, 하강고도 245m •최저해발 3,610m, 최고해발 4,422m •경로 링크 : Garmin Connect
오늘은 C1으로 진출하는 날이다. 아침 6시 기상에서 카고백을 패킹했다. 8개의 카고백(대원별 7개+가이드 1개)과 공동장비 카고백 4개, 다들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서 30분 만에 패킹을 마치고 짐을 말에 싣기 위한 장소로 옮겼다. BC 관계자는 중량 체크를 하고 약 300kg 정도의 카고를 옮기기 위한 운송료를 지급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두통이 심했다(자고 일어나면 더 심해진다). 누워있는 것이 신체 회복에는 도움이 되지만 고산병 증세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른 증상은 물갈이 때문인지 묽은 변이 지속되었다. 두통 완화를 위해 07:00경 어제와 같은 코스로 산책을 다녀온다. 어제 고도를 내려 3,500m 지점까지 내려갔다 오니 두통 등 컨디션이 괜찮아서 오늘도 다시 내려왔다. 어제는 상국형이 도와줘서 같이 나왔지만, 오늘은 차마 같이 가자는 말은 못 하고 혼자 천천히 초원을 걸었다. 7시 45분 고도 적응을 마치고 BC에 도착했다, 역시 컨디션이 좋아지고, 아침 밥맛도 좋았다.
08:30 C1으로 출발 카고백 운송은 말(Horse)이 했고, 대원들은 고도 3,800m 지점까지 대행사 밴으로 이동했다(09:00 3,800m 도착, 약 3.7km), 이후 C1까지 약 10km 거리를 도보로 이동했다(소요 시간 : 약 5시간 16분 소요, 각자 백팩을 메고). 초반에는 녹색의 잡초와 야생화들이 보이더니 이내 검붉은 돌과 흙뿐이었다. 올라갈수록 길은 좁아져서 1명이 오갈 수 있는 폭으로 좁아졌다. 오르는 중간에는 말들의 행렬을 피해주어야 했고, 그 말의 똥을 피해 걸어야 했다. 나중에는 흙인지 똥인지 몰라 그냥 밟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그거려니 하게 되고 걷다 보면 그렇게 된다. 처음 고산등반에 도전하는 나는 모든 것이 신기했고, 오르는 곳은 모두 개인적으로 새로운 기록이다. 또한 이동하는 동안에는 두통도 많이 잦아들었다. C1까지 이동하는 길은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후반부에는 조금 지쳐있었다. 흙산을 넘고, 빙하 계곡을 건너기를 여러 번 하다 보니 어느덧 노랑 텐트가 보였다. IMC C1에는 14:30 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C1 도착 C1의 풍경은 BC와 매우 달랐다. C1에 오르니 내가 설산에 오르기 위해 원정을 왔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눈앞에는 흐르는지 멈춰있는지 모를 빙하가 이어져 있고, 그 너머에는 설산의 톈산산맥의 능선과 레닌봉 정상이 이어지고 있었다. 장관이었다. 다들 한참을 바라보며 앞으로 오를 C2의 루트를 살펴보았다. 예상한 대로 C1부터는 노란색 텐트에서 숙영한다. 2인 1동의 텐트에서 함께 지내야 한다. 호텔에서 정한 것처럼 룸메이트는 그렇게 알아서 또 정해진다. 그리고 대행사에서 우리 팀 전용 작은 키친 텐트를 제공해주었다. C1 키친 옆 작은 텐트 1동인데 2구짜리 가스레인지도 제공해주어 식량 보관 및 조리가 BC보다 편해졌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노성 형님의 컨디션이 안 좋은 것 같다. 3,800m 워킹을 시작하면서 약 1km 지난 지점부터 뒤로 처지시더니 결국 우리가 도착하고 약 1시간이 훌쩍 넘어서야 C1에 도착하셨다. 다행히 가이드가 뒤에서 따라오면서 잘 챙겨주어 무사히 올라오긴 했지만,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텐트로 들어가 쉬셨다. C1 관리자는 BC 관리자의 아들이었고, 그 아들의 배우자도 주방을 함께 운영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IMC BC의 토지 주인은 따로 있었고, 이들이 IMC 전체를 임대해서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엄재원 대원>
6시 00분 짐 정리(카고백, 개인 배낭) 오늘은 C1으로 진출하는 날이다. 아침 6시 기상에서 카고백을 패킹했다. 8개의 카고백(대원별 7개+가이드 1개)과 공동 식량, 장비 카고백 4개이며, 모두들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서 30분 만에 패킹을 마치고 말에 싣기 위한 장소로 옮겼다. 7시 전에 모든 짐을 준비 완료해 놓고 아침 식사 시간 전까지 개인 배낭을 패킹하거나 산책 시간을 가졌다. C1으로 이동 시 개별 배낭은 무게를 최소화했으며, 4~5kg 미만으로 조정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개별 배낭은 보통 8~10kg 무게로 패킹했다. 배낭 무게가 2~3kg 정도이며, 보온 옷과 행동식, 식수, 카메라 등으로 패킹했다.
8시 00분 아침식사9시 00분 카고백 싣기(말) 모든 대원들의 컨디션은 양호했다. 아침 식사 후 BC 매니저들이 캠프1으로 이동할 준비에 분주해졌다. 카고백에 이름 표식을 했으며, 개별 무게를 측정했다. 1kg 당 $3 금액이 부과되었다. 사전에 알던 금액은 1kg당 $1이었는데 너무 금액 차이가 컸다. 우리팀의 무게는 약 300kg 정도 측정되었다. 측정이 끝난 후 말 1마리에 카고백 4개씩(약 100kg) 짐을 실었다. 모두 4마리의 말에 짐을 싣고 캠프1으로 먼저 출발했다.
9시 30분 지프로 이동(4km)→10시 00분 카라반 시작 대원들은 고도 3,800m 지점까지 대행사 지프로 이동했다. 약 3.7km 거리를 지프로 30여분 이동했으며, 도착지점은 해발 3,800m 지점이었다. 이곳부터 본격적인 C1으로의 카라반이 시작되었다. 베이스캠프부터 이곳까지 트레킹으로 걸어오는 팀들도 있다. 출발지에서 캠프1까지는 약 10km 정도이며, 대략 5시간 30분 정도 소요되었다. 초입에는 레닌피크 관련 사고자들의 추모 동판들이 걸려있으며, 추모 동판을 지나 본격적인 등산 코스로 접어들었다. 언덕 위에는 빙하수 폭포가 멀리 떨어지고 있으며, 푸르른 초목 들판길이 펼쳐졌다. 원정대 7명과 가이드 1명 그리고 상비군이었던 동료 1명으로 구성된 팀으로 이동하였다. 먹구름이 있긴 했으나 오전에는 비교적 날씨가 양호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빗방울이 한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대원들이 열을 맞춰 카라반을 시작한지 한 시간여 쯤 후 선두와 후미 그룹으로 나뉘게 되었다. 후미 그룹은 체력 저하로 인해 잦은 휴식을 취하고 천천히 이동하다 보니 이후 캠프1에서 다시 재회했다. 선두 그룹은 4,150m 언덕을(Puteshestvennikov pass, 4,150m) 넘어 초원이 끝나는 지점에서 행동식과 음료로 보충했다. 그곳에서 조선이공대 트레킹팀과 조우했다. 유힌피크(5,100m)를 목표로 구성된 트레킹팀이었다. 조선이공대 레닌원정대 본대는 일찍 C1으로 이동한 것 같으며, 트레킹팀이 천천히 이동 중에 만나게 된 것이다. 간단하게 행동식도 나눠 먹으며, 휴식을 취한 후 C1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연세가
C1 다이닝룸에서 식사 후 촬영한 동영상 감상 중
많이 든 분들이 많았지만 꿋꿋이 걸어가시는 트레킹팀 대원들이 듬직한 산처럼 느껴진다. 초원이 끝나고 흙과 돌로 된 트레킹 길을 얼마간 걸었을 때 빙하 계곡물을 넘어가는 구간에 도착했다. 원정대원들은 빙하 물살이 쎄고 깊어서 이 구간은 우회길을 선택해서 넘어갔다. 이때 오전에 짐을 싣고 떠났던 마부들이 빙하를 건너고 있었다. 빙하 물살이 쎄서 말도 힘겹게 계곡을 건너갔다. 계곡 구간을 지나 4,300m 이정표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C1까지는 대략 1km 거리로 곧 C1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정표가 있던 지점은 각 대행사들의 C1으로 가는 길이 나뉘는 곳이었다. 좌측으로 센트럴아시아, 우측으로 악사이와 아시아아웃도어 캠프가 있었다. 처음에는 분기지점임을 몰라서 센트럴 아시아쪽으로 갔다가 아시아아웃도어 캠프로 넘어가는 바람에 조금 더 걷는 수고를 해야 했다. 그렇게 선두 그룹(장세종 대장, 김미곤 대장, 성년수 대원, 김성은 대원, 엄재원 대원, 이상국 대원)이 3시 30분쯤 C1에 도착했다.
15시 30분 캠프1 도착, 점심 식사, 눈 시작→19시 00분 저녁식사 C1의 풍경은 BC와 매우 달랐다. C1에 오르니 설산에 오르기 위해 원정을 왔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눈앞에는 흐르는지 멈춰 있는지 모를 빙하가 이어져 있고, 그 너머에는 설산의 톈산산맥의 능선과 레닌봉 정상이 이어지고 있었다. 장관이었다. 다들 한참을 바라보며 앞으로 오를 C2의 루트를 살펴보았다. 예상한 대로 C1부터는 노란색 텐트에서 취침을 했다. 2인 1동의 텐트에서 함께 지내야 한다. C1까지는 대행사 다이닝룸에서 식사가 제공된다. 점심 식사 시간이 지났지만 BC에서 이동해왔기에 늦었지만 대원들에게 점심 식사를 제공해주었다. 식사와 함께 눈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싸라기 눈이 날리고 기온도 많이 떨어졌다. 아직 후미 그룹(곽노성 대원, 황경섭님, 후세인)이 도착하지 않은 상태여서 걱정되었다. 후미 그룹은 그로부터 1시간 반쯤 후 C1에 도착했다. 곽노성 대원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체력이 많이 방전된 상태였으며,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점심 식사 후 텐트를 배정했으며, 성년수-이상국, 김미곤-엄재원, 김성은-장세종, 곽노성-황경섭 팀으로 배정했다. 곽노성 대원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황경섭님(상비군)이 같이 간호 해주시기로 했다. BC에서 같이 올라온 의사도 곽노성 대원의 건강 상태를 많이 걱정하고 있었다. 각자 배정 받은 텐트로 개인 카고백을 옮겨 정리하고 대행사에서 팀 전용으로 제공해준 키친 텐트에 식량 카고백을 정리했다. 다이닝룸 옆에 위치한 전용 키친은 가스레인지도 겸비(?)된 우리만의 공간으로 식량 보관과 조리에 적합한 최고의 공간이었다. C1 관리자는 BC 매니저의 아들이었고, 그 아들의 배우자도 주방에서 함께 일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아시아아웃도어 BC의 주인은 따로 있었고, 이들이 BC 전체를 임대해서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캠프1에서 첫 저녁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며 내일 일정에 대해 간략한 이야기를 한 후 9시가 넘어서야 각자의 텐트로 돌아갔다.
C1으로 이동 중인 대원들
▲7/28(7일차) •C1 : 대기[개인 및 팀 장비 정비]
07:30 식당 집결→08:00 조식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 저녁부터 내린 눈이 하얗게 깔려 있었다. C1 풍경은 텐트 문을 열면 레닌봉 정상 부근을 감상할 수 있었다. 다시 볼 수 없는 풍경이라 감상하고 싶지만, 나에겐 고소가 있다. 머리가 뽀…. 아니 쪼개지는 느낌이다. C1의 날씨는 BC보다 더 변화무쌍하다, 공기는 차가워서 고산용 우모복을 착용하고 다니지만, 햇살은 뜨거워서 텐트 안은 건식 찜질방 수준이다. 거기에다가 아침엔 대부분 맑지만, 오후가 되면서부터는 싸라기눈이나 진눈깨비가 쏟아진다. 기상 후 아침 기온은 보통 영하 5도 정도를 기록하다가 낮에는 영상으로 올라간다. 오전 식사를 마친 후 간단한 회의를 준비한다. 등정 계획은 C2 및 C3 상태가 확인되지 않아 등정(SUMMIT) 계획을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려본다. 김대장님은 아래와 같은 안을 제시한다. 1안 : D8 C2 식량 등 장비 데포(DEPOT) 2안 : D8 C2 상승 후 C1 하강 후 휴식 후 바로 C3로 진출 그리고, 노성 형님은 오늘 BC로 하산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되었다. 컨디션이 돌아오지 않는 모양이다(다행히 말을 타고 내려갈 수 있어 조금이나마 안심된다). 오전 식량 등 장비 점검을 마쳤다.
12:00 C1에 설치된 케른에서 고 의열 형 제를 지내고, 원정대 무사 등정을 기원했다. 슬프기도 하고, 먹먹하기도 하고 그렇다. 의열 형 혼이 여기까지 와서 우리와 함께 해주길 바라본다. 그가 여기까지 함께 왔다면 많은 의지가 되고 든든했을 터이다.
13:00 한국식 식단으로 처음 점심을 먹었다. 연수 형이 준비한 한국식 식자재와 현지에서 공수한 마늘 등으로 겉절이를 담가 주셨는데 김장철 가족들과 함께 정성스레 만든 김장처럼 상쾌한 맛이었고, 고산병 증세도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묵은지로 김치찌개까지 끓여 주셔서 더할 나위 없었다. 맛있는 한국식으로 중식을 해결하니 잠이 솔솔 왔다. 낮잠을 1시간이나 자버렸다(자면 고소가 온다고 김대장님이 말씀하셨는데…).
14:00 장비 점검을 진행하고, 저녁도 한국식으로 해결했다. 저녁은 라면, 한국식은 다 맛있다. 이제 더 이상 현지식을 먹지 못할 지경이다. C1 키친에서는 기름에 볶아 양고기를 얹어 쌀밥을 해주기는 하는데 쌀이 설익었고, 대부분 요리에는 고수와 고수보다 더 강한 소나무 잎 같게 들어가는데 도저히 더는 못 먹을 지경이었다. <엄재원 대원>
C1 첫날 아침에 레닌봉을 바라보는 대원들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 저녁부터 내린 눈이 하얗게 깔려 있었다. C1 풍경은 텐트 문을 열면 레닌봉 정상을 감상할 수 있었다. C1의 날씨는 BC보다 더 변화무쌍하다. 공기는 차가워서 고산용 우모복을 착용하고 다니지만, 햇살은 뜨거워서 텐트 안은 건식 찜질방 수준이다. 게다가 아침엔 대부분 맑지만, 오후가 되면서 싸라기눈이나 진눈깨비가 쏟아진다. 기상 후 아침 기온은 보통 영하 5도 정도를 기록하다가 낮에는 영상으로 올라간다. 아침 일찍 대원들이 모여서 레닌봉을 바라보며, 캠프2로 올라가고 있는 타 대원들의 위치를 가리키고 있다. 우리팀도 곧 저 대열에 합류할 것이다. 시원한 아침 바람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다이닝룸에 모였다. 오트밀, 빵, 과일의 아침 식사를 마친 후 간단한 회의를 진행했다. 앞으로의 등정 계획에 대해 논의했다. 등정 계획은 C2 및 C3 상태가 확인되지 않아 등정(SUMMIT) 계획을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려본다. 김미곤 대장은 2가지 안을 제시했다. C2에 식량 및 장비를 보관해둘 예정이며, C2에서 C3에서 잠시 고소 적응 후 C1으로 돌아오는 일정과 C2에서 C3로 진출 후 C3에서 일박 후 곧바로 C1 또는 BC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선택은 대원들의 고소 적응 상태에서 따라 결정하기로 했으며, 고소에서 보다 빠른 회복을 위해서는 C1보다는 BC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더 좋은 점 등을 고민해야 했다. 일단은 고소 적응 상태 및 날씨의 상태를 지켜봐야 했으며, 조선이공대팀과도 협의를 진행했다.
키친텐트에서 식사 준비 중인 이상국 대원 (위)과 겉절이를 담고 있는 성년수 대원
아침 식사 후 곽노성 대원의 체력 상태가 좋지 않아 BC 복귀를 권유했다. 원정대장, 등반대장, 대행사 닥터 등 주위 분들이 곽대원의 상태에 대해 걱정했으며, BC에서 체력을 회복한 후 향후 등반에 참여할 것을 권유했다. 결국 아침 식사 후 말을 타고 BC로 복귀를 결정했으며, 대행사 닥터도 같이 BC로 하산했다. 나머지 대원들의 체력 상태는 거의 양호했지만 엄재원 대원이 두통에 시달리며 고소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태이다. 전체적인 상태가 좋지 않을 경우 BC로 복귀시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키친에 던져 두었던 카고백을 정리했다. 식자재, 행동식 등을 정리하고 코펠, 버너 등 장비를 정리하니 식당의 모습이 갖춰졌다. 가스는 1개당 10달러 정도의 가격으로 6개를 먼저 받았다. 비싼 가격이었지만 오시 시내에서도 구하기 힘들었던 가스를 충분히 수급 받아 다행이었다. 그리고 필요한 식자재는 C1 매니저가 친절하게 챙겨주었다. 오늘은 배추와 마늘 등을 구입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양념으로 김치를 담을 예정이다. 상국 대원은 식량, 장비 정리를 하는 동안 연수 대원과 성은 대원은 김치 겉절이를 담기 시작했다. C1 다이닝룸의 요리사들이 한국 김치 겉절이 담그는 것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으며, 겉절이를 시식해줬을
때는 그 맛에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 김치와 비슷하게 백김치 식으로 절여 먹는 러시아식 김치가 있었지만 갖은 양념을 넣은 겉절이는 처음일 것이다.
12:00 고 김의열 대원 추모제, 산신제 C1에 설치된 케른에서 김의열 대원 추모제와 원정대 무사 등정을 위한 레닌봉 산신제를 올렸다. 원정대 플랭카드와 김의열 대원 추모 깃발을 걸고 위패를 올린 후 제를 올렸다. 함께 했으면 든든했을 의열 대원을 생각하며, 모든 대원들이 숙연하다. 이후 레닌 산신님께 무사 등정을 기원하며 제를 올렸고 모두가 안전하게 이 산을 내려가기를 바랐다. 함께 자리를 했던 이란 가이드 후세인은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었으며, 제를 지내는 것에 거부감 없이 함께 해주었다. 제를 지낸 후 드디어 한국 식단으로 점심 식사를 준비했다. 한국에서 공수해온 묵은지로 김치찌개를 끓이고 오전에 담근 겉절이로 식사를 했다. 김장철 가족들과 함께 정성스레 만든 김장처럼 상쾌한 맛이었고, 고산병 증세도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13:30 - 조선이공대 캠프 방문→14:30 - 삼중화, 크램폰 체크 오후 2시에 삼중화 장비 체크를 진행하기로 하고 대원들은 개인 휴식 시간을 가졌다. 김미곤 대장을 비롯한 성년수 대원, 이상국 대원은 조선이공대 캠프를 방문했다. 향후 등반 계획 등에 대한 협의도 하고 친목도 다지기 위해 찾아갔다. 악사이 캠프는 그리 멀지 않은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조선이공대팀도 C1에서 하루를 보낸 상태였는데 젊은 대원들이 고소에 적응을 못해 힘들어하고 있었다. 한 명의 대원은 BC로 내려가는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었다. 이날 오전 조선이공대팀은 고소 적응을 위해 유힌피크(5,100m) 등반을 하고 왔으며, 트래킹팀은 다음날 BC로 하산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팀 보다 하루 빠르게 일정을 진행해하고 있었다. 조선이공대 캠프에서 돌아온 후 삼중화와 크램폰 장비 체크를 진행했다. 한 30분 정도 늦게 도착했는데 이미 대원들이 고소화와 크램폰을 착용해보고 있었다. 김미곤 대장이 직접 고소화 착용에 대해서 일일이 점검해주었으며, 크램폰을 개인 고소화에 맞게 직접 장비 조정을 해주었다. 고소화가 가장 컸던 성년수 대원은 크램폰 착용에 애를 먹었다. 장비 점검을 마치고 저녁 준비를 했다. 저녁은 라면 그리고 단무지 무침이다. 한국에서 사온 짠지 단무지를 고추가루에 버물려서 무침을 만들었다. 성년수 대원의 요리 실력으로 다행히 다들 맛있는 한국식을 먹을 수 있었다. 신라면과 단무지 무침 그리고 캠프1 키친에서 제공하는 양고기 볶음밥(설익은 쌀)을 곁들여서 식사를 했다. 키르기스스탄 음식은 대부분 고수와 고수보다 더 강한 향신료가 들어가서 음식에 호불호가 갈렸다. 저녁 식사 후 티타임과 함께 원정대 미팅을 진행했다. 내일은 고소 적응 훈련을 위해 유힌피크를 등반할 계획이다. 아침 식사 후 등반을 진행할 예정이며, 아침 일찍 행동식을 준비할 예정이다. 오후에는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가 싸라기눈이 날렸다.
▲7/29(8일차) •C1 : 고도 적응훈련(5,100m) •거리 6.12km, 시간 3시간 48분, 상승고도 702m, 하강고도 706m •최저해발 4,415m, 최고해발 5,094m •경로 링크 : Garmin Connect
김의열 대원추모 및 레닌봉 안전등정 기원제
08:00 조식→08:50 아침 회의 시작 09:30 유힌봉(Yuhin Peak, 5,100m, C1 우측에 있는 봉우리) 고도적응 훈련 후 컨디션 좋으면 다음 날 C2 다녀오기로 하고, C2로의 출발은 새벽 04시로 한다. 유힌봉은 흙산이었다, 낮엔 햇살이 좋아서 내린 눈이 녹아 약간 퍽퍽한 상태다. 역시 움직이면 고산병 증세가 완화되었다. 늘 처음이지만, 오늘도 인생 최고 고도 5,100m를 찍고 내려왔다. 단순히 C1에서부터 계산하면 700m 정도의 고도를 올린 것이지만 산소가 부족한 곳이다 보니 한 걸음 한 걸음이 너무 힘들고 다리가 무거웠다. 배낭에는 고작 5kg 정도의 물 및 식량을 패킹했지만 느껴지는 하중은 15kg 이상의 배낭을 메고 오르는 느낌이다. 대원 중 고산병 증세는 내가 제일 심하다. 두통은 기본이고, 약간의 매스꺼움, 근무력증세, 졸음, 묽은 변, 코피 등 올 수 있는 건 다 온 듯하다. 맡은 직무가 기록과 스틸 촬영인데 촬영은 상국형이 맡아서 하고 있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대장님 이하 대원들 대부분이 3,000m 이상의 클라임 경험이 있다 보니 호흡이 달리는 것을 제외하고는 정상인 듯하다. 그나마 어제 점심부터 연수형이 한국식 음식으로 준비해 주어서 힘이 난다. 한국식을 먹다 보니 이젠 현지식은 못 먹을 정도다. 김대장님도 말씀하셨지만, 대원 중 음식 때문에 애를 먹는게 나일 줄은 몰랐다. 내일은 오늘보다 컨디션이 좋길 바란다. <엄재원 대원>
*****
오늘은 캠프1 근처의 유힌봉으로 고소 적응 훈련을 진행할 예정이며, 고소적응 컨디션에 따라 다음날 캠프2로 진출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캠프2로 출발하게 되면, 새벽 4시 출발할 예정이다. 개별 행동식과 보온통에 물을 채우고 배낭을 가볍게 했다. 5,100m 고소 적응을 위해 아침 9시 반 대원들이 유힌봉으로 출발했다. 대략 3시간 정도 소요될 예정이었다. 유힌봉은 흙산으로 오전에는 햇살이 좋아서 밤새 내렸던 눈이 녹아 약간 질퍽했다. 대원들이 열을 맞춰 오르기 시작한지 1시간여 후 작은 봉우리에 도착해서 잠깐 정비를 한 후 정상을 향해 다시 출발했다. 정상까지는 된비알이었지만 등산로가 잘되 있었다. 산을 오르는 외국 등산객도 많이 눈에 띄었다. 단순히 C1에서부터 계산하면 700m 정도의 고도를 올린 것이지만 산소가 부족한 곳이다 보니 고소 증세를 호소하는 대원도 생겨났다. 배낭은 대략 5kg 정도의 물과 행동식으로 패킹했지만 느껴지는 하중은 15kg 이상의 배낭을 메고 오르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대원 중 고산병 증세는 엄재원 대원이 가장 심하게 겪고 있었다. 두통은 기본이고, 약간의 매스꺼움, 근무력증세, 졸음, 묽은 변, 코피 등 올 수 있는 건 경험하고 있었다. 초기 고소 증세에서 많이 회복을 하고 있긴 한데 좀더 빠른 시간내에 컨디션이 정상적으로 돌아오기를 바래 본다.
유힌봉(5,100m) 정상은 눈으로 덮여 있었으며, 트레킹 또는 고소 훈련 중인 등반 대원들로 북적거렸다. 드론으로 촬영하는 팀, 정상 인증 사진을 찍는 팀 등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다. 우리팀은 모든 대원이 유힌봉 정상에 올랐으며, 건강 상태는 크게 이상이 없어서 다행이다. 정상은 구름과 눈이 날려서 오랫동안 머무르지 못했다. 단체 사진을 촬영한 후 곧바로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길은 자갈길을 플런지 스텝으로 빠른 속도로 내려왔다. 대원들 모두 안전하게 하산을 했으며, 점심식사는 짜파게티와 홍어탕을 준비하기로 했다.
14:00 점심 식사→19:00 저녁 식사 유힌봉에서 하산을 하자마자 김성은 대원이 배낭을 던져 놓고 짜파게티를 끓이기 시작했다. 산행으로 인해 모두들 허기진 상태였다. 짜파게티를 한가득 끊여서 캠프 식당 식구들에게도 나눠주고 맛있게 점심 식사를 했다. 해외 원정에서 짜파게티 맛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근사한 한끼가 되어주었다. 점심 식사 후 대원들은 개별 휴식을 취했으며, 김미곤 대장과 성년수 대원은 한국에서 공수(?)해온 홍어로 탕을 끓이기 위해 분주했다. 김미곤 대장이 직접 홍어를 씻었고 성년수 대원이 홍어를 썰어 넣고 탕을 끓였다. 하지만 끓인 홍어탕은 상해서 먹기에는 위험하다고 판단했으며, 결국 홍어탕은 땅에 묻어서 버려야만 했다. 홍어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너무도 아까운 한 끼 식사가 눈 앞에서 사라져버렸다. 점심 후 개별 휴식 중에 조선이공대팀에서 캠프로 방문해 주셨다. 토하 새우젓을 선물로 가져다주었다. 저녁을 준비할 시간이 되었다. 점심 때 베이스캠프에서 닭과 야채를 공수 받았다. 닭고기는 한국에서 생각하는 생닭을 토막 낸 닭이 아니고 닭고기 살만 손질한 것으로 kg단위로 판매를 했다. 저녁 메뉴로는 닭볶음탕을 준비했다. 역시 날이 저물어가면서 싸라기 눈과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닭볶음탕과 캠프 식당에서 제공하는 음식을 같이 해서 저녁 식사를 했다. 하지만 고소 증세로 인해서 몇몇 대원들이 닭볶음탕을 먹지 못하고 누릉지 등을 따로 먹어야 했다. 고소 증세에 매운 음식을 먹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음식을 준비하면서 고소를 겪고 있는 대원들을 배려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에 대장님의 질책이 있었으며, 이후 고소를 겪는 대원들의 컨디션에 맞출 수 있도록 배려가 필요했다. <이상국 대원>
▲ 7/30(9일차) •C1 대기
07:30 한국식 조식 후 회의 30일 휴식. 31일 C2 진출 1박 후 C3 터치, C1 하강, 장비 및 식량 리스트 만들 것(상승을 위한 준비). 노성 형님께서 BC로 하산하면서 7명이던 대원이 6명으로 줄었다. 장비 및 식량을 준비하다 보니 노성 형님 생각이 많이 났다. 빠르게 회복하고 올라오시길 바란다. 점심 전 장비 및 식량을 준비를 마치고 조선이공대 팀에서 귀한 돼지 삼겹살 3~4kg을 갖다주셨다. 그걸로 맛있는 한국식을 준비해 주겠다고 연수형이
유힌봉 고소적응 훈련
말씀하신다. 돼지고기의 대가는 갖은 양념으로 만든 겉절이, 다들 나의 컨디션에 신경을 써 주셔서 너무 감사한 마음이다. 연수형이 삼겹살로 김치찜을 추천하고, 연수형 지시 하에 성은 형이 조리를 맡았다. C1에 퍼지는 묵은지 김치찜 끓는 냄새가 기가 막혔다. 컨디션이 확 살아나는 느낌이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내일 올라갈 배낭을 꾸리고 나니 갑자기 컨디션이 확 살아났다. 두통은 있었지만 몸 움직임이 좋아졌다. 한국식의 힘인가, 놀랍다. 내일 새벽 4시 기상해야 하므로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김대장님 특명 : 대원들 컨디션 체크할 것, 대답은 시원하게 했지만 사실 내가 제일 위험했다. <엄재원 대원>
오늘은 고소로 고생하는 대원 및 모든 대원들의 컨디션 조절을 위해서 휴식 및 원정 장비 준비 시간을 가졌다. 이른 아침 준비해온 스폰서들의 깃발을 캠프 텐트에 걸어 두었다. 많은 회사들의 도움으로 이곳에 서 있는 것이다. 스폰 해 주신 모든 회사에 감사드립니다. 깃발을 나열해서 걸어두니 근사한 캠프에 와있는 듯한 느낌도 드는 것이 지원군처럼 든든했다. 오전 캠프식을 마친 후 내일부터 사용할 행동식, 고소식, 장비 등의 준비를 시작했다. 준비해온 행동식과 고소식을 펼쳐 놓고 C2, C3에 사용할 양만큼 소분하여 준비했다. 또한 코펠 3조와 버너 6개를 준비해서 C2와 C3에 데포(Deposit)할 예정이다. 개별 행동식과 공용 장비는 디팩에 비슷한 무게로 분배하여 각 대원에게 지급했다. 식량, 장비 점검을 하는 동안 조선이공대팀에서 감사하게도 구하기 힘든 돼지고기를 가져오셨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구하기 힘든 귀한 돼지고기를 비슈케크에서 공수해 왔다고 한다. 조선이공대팀 식량 준비는 양과 질적으로 모두 최고 수준인 듯했다. 돼지고기 답례로 우리팀에서는 겉절이를 담아 드렸다. 점심 식사는 조선이공대팀이 가져온 삼겹살과 한국에서 공수해온 묵은지로 찜을 준비했다. 고소로 고생하는 대원들도 묵은지찜에는 입맛이 도는지 모두 맛있게 한끼 식사를 했으며, 모든 대원이 만족했다. 한식의 영향인지 몰라도 모든 대원들 컨디션이 좋아 보인다.
확보줄과 주마 점검 중인 김미곤 등반대장
16:00 확보줄 및 주마 점검→19:00 저녁식사 내일 드디어 C2캠프로 첫 진출을 하게 된다. 오후 시간에는 내일 사용할 확보줄과 주마를 미리 점검했다. 6mm 자일을 잘라서 확보줄을 만들어서 주마와 확보 비너를 연결할 수 있도록 제작을 했다. 기존 확보줄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6mm 슬링을 잘라서 직접 만들어 준비했다. 고소 등반용 안전벨트에 심플한 확보줄까지 최소 중량으로 완벽하게 준비됐다. 그리고 각자 분배 받은 식량과 공동 장비 그리고 개인 장비로 C2, C3 진출을 위한 패킹을 했다. 침낭, 우모복, 고어자켓, 경량 패딩, 등반 장비, 식량, 공동 식량을 패킹했으며, 10kg 미만으로 무게를 최소화해야 했다. 캠프식으로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내일 새벽 출발을 위해서 이른 잠자리에 들었다. 조선이공대팀은 내일 새벽 3시 30분 출발 예정이며, 우리팀은 5시 출발 예정이다. <이상국 대원>
▲7/31(10일차) •C1-C2 :상승 •거리 8.29km, 시간 9시간 16분, 상승고도 1,089m, 하강고도 107m •최저해발 4,381m, 최고해발 5,406m •경로 링크 : Garmin Connect
04:00 기상→04:20 부엌 집결 후 조식→05:00 C2로 출발 C1 스탭들의 배려로 간단하게라도 조식을 먹을 수 있었다. 각자 향후 등반을 위해 C2에 데포할 장비 등을 챙기고 설사면 아래까지 약 2km를 삼중화를 신고 걷는다. 상태가 좋지 않은 날 배려해 공동 식량은 빼주었다. (날씨 맑고 화창, 고산병 증세로 걷기 힘듦. 졸음과 시야흐림 동반, 총 걸린시간 약 10시간 소요, 고소 식으로 식사, 텐트 2인 1동, 화장실은 보이는 곳 어디든 가능) 고산병 증세로 인해 C2까지 약 9시간 20분이 걸려서야 도착했다(거리 8km, 총상승 1,090m). 처음으로 안자일렌으로 운행했고, 선두는 가이드가 맡았다. 초반에는 김대장님을 제외한 모든 대원이 줄지어 안자일렌으로 오르다가, 오전 9시를 넘기면서 내가 너무 처지자 조를 나눴다. 1조는 김대장님이 맡아 출발했고, 가이드가 2조 선두를 맡고 내가 그 뒤를 따라 운행했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크램폰을 착용한 후부터 발에 살짝 쥐가 올라오는 것이었다. 원래 그렇다. 유연성 평발이다 보니 안 신던 삼중화가 불편했나보다. 그래도 걸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가파른 설사면을 오르면서부터 컨디션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전 9시 부터 이미 나는 퍼져있었다. 제일 후미에서 따라 오르다 결국 주저앉아 버렸다. 김대장님은 일어나라고 하지만 일어날 힘이 없었다. 이것에 대한 조치로 조를 나눠 운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0보를 걸으면 멈춰야 했다. 참고 20보만 더 걸어보자 했지만, 10보를 넘기지는 못했다. 졸려서 눈이 감기는데 시야도 흐려지면서 앞도 잘 안 보였다. 숨을 크게 쉬어 보지만, 들어오는 산소의 양은 평지의 3분의 1도 안되는 느낌이었다. 거기에 하도 크게 숨을 쉬며 걸어서 그런지 양쪽 횡격막 쪽 통증도 동반됐다. 내가 너무 처지니까 가이드가 배낭도 들어주었음에도 속도가 크게 오르지 못했다. 급기야 C2가 멀리 보이는 지점(약 1km 전?)에서 가이드가 내 배낭을 달라고 하더니 눈 위에 내려놓고 김대장님께 무전을 친다. '미곤, 내려와서 엄 배낭 좀 가져가 줘'라고…. 하…. 형들 볼 면이 안 서지만 배낭을 내려놓자 몸이 너무 가볍게 느껴져서 널브러진 배낭을 외면하고 C2로 향했다. 더 치명적인 것은 눈(snow)에 반사된 자외선에 얼굴이 익어버렸다는 것이다. C2 올라와 텐트에 누워있는데 코와 양 볼에선 진물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콧물인 줄 알았는데 콧등에서 진물이 흘러 떨어졌다. 완전히 익어버렸다. C2는 빙하 위에 파쇄석이 깔려 그 위에 4인용 텐트를 펼쳐 놓은 곳이다. 풍광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 이라고 쓰지만, 실제 높이는 6,500m~7,100m 부근이다. 능선에는 정상으로 연결된 암부와 암석들이 보였고, 눈이 바람에 날려 날아가고 있었다. 설사면은 반짝반짝 빛났고, C1과 마찬가지로 햇살이 뜨거웠다(이날 정오 즈음 가민이 기록한 최고 온도는 영상 42도였다). <엄재원 대원>
새벽 4시 기상. 다이닝룸에서 누룽지를 끓여서 빵과 함께 간단히 먹을 수 있도록 준비했다. 가볍게 음식을 먹고 캠프 매니저가 준비해준 따뜻한 물을 각자 보온통에 챙겼다. 4시 20분쯤 드디어 헤드랜턴을 켜고 C2로 출발을 시작했다. 본격적인 C2 설사면 입구까지는 대략 3km 정도 거리로 아시아아웃도어 캠프에서 센트럴아시아 캠프를 지나 평평한 빙판길을 걸어야 했다. 1시간 30분여 정도의 시간이 소요됐다. 빙판길이 시작되기 전 평평한 곳에서 안전벨트와 등반장비를 착용했다. 대원들의 건강 상태는 아직까지는 모두 양호한 상태이다. 장비를 착용한 후 본격적으로 설사면을 오르기 시작했다.
06:30 설사면 등반 시작 설사면의 짧은 주마링 구간이 나타났으며, 대략 60m 정도 길이었다. 고정 로프가 2줄로 나눠져 있으며, 대원들은 주마를 이용해서 쉽게 구간을 통과했다. 이후 가파른 설사면을 오르기 전 모든 대원이 안자일렌으로 이동했다. 대원들간에 안자일렌 훈련을 한 경험이 없어 스텝이 잘 맞지 않았으며, 불편한 상태로 등반에 많은 방해를 주었다. 선두에서 후세인 가이드가 리드를 했으며, 김미곤 대장은 후미에서 출발을 했다. 첫 크레바스를 지난 후 등반 속도도 나지 않고 체력적인 차이가 발생하게 되어 결국 안자일렌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등반길이 잘 되어있어 히든 크레바스의 위험성도 떨어지고 안자일렌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유럽에서는 안자일렌 등반 자체를 하지 않는 추세라고 한다. 안자일렌 등반으로 인해 더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고 해서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안자일렌을 해제한 후 등반 조를 2개로 나누어서 이동했다. 체력 소모가 많아지고 고도가 높아지면서 체력 저하로 인해 원정대장님과 엄재원 대원이 뒤쳐지기 시작했다. 선두조에는 김미곤 대장과 이상국 대원, 김성은 대원, 성년수 대원이 등반을 진행하고 후미조에는 후세인 가이드와 장세종 원정대장, 엄재원 대원이 등반을 진행했다.
선두조는 김미곤 대장이 리딩을 했으며, 김성은 대원의 등반을 지속적으로 코치하며 등반했다.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천천히 꾸준하게 걸을 것을 요구했다. 김성은 대원과 성년수 대원의 체력을 올려주기 위해서 후미에서 지속적으로 코치하며, C2로 가는 트레버스 구간까지 쉼 없이 등반했다. 11시쯤 설사면의 급경사 구간을 벗어나 트레버스 구간으로 접어 들었으며, 조선이공대팀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C2에 거의 도달하기 전 대원들의 체력이 저하되어 30분여 정도를 앉거나 누워서 휴식을 취했다. 김미곤 대장과 이상국 대원은 먼저 C2로 이동했으며, 아시아아웃도어 캠프(카일라스 텐트, 2인용)에 도착해서 다른 대원을 기다리며 휴식을 취했다. 12시 30분 정도 도착을 했으며, 보통 6시간 정도 걸리는 코스를 7시간에 걸려 도착했다. 후미 그룹은 후세인 가이드가 장세종 대장과 엄재원 대원을 이끌고 등반했다. 오전 9시 정도가 되면서 대원들의 체력 저하와 고소 증세로 인해 걷는 속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걷고 주저앉고를 반복하며 어렵게 트레버스 구간에 도착했으며, 김미곤 대장에게 무전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김미곤 대장과 이상국 대원은
C1→C2 본격적인 설사면 등반 시작
텐트에서 휴식을 취하다 급하게 무전을 받게 되었고 김미곤 대장이 급하게 지원을 나갔다. 다행히 사고 발생이 아니고 고소로 인해 등반이 불가한 상태로 배낭을 옮겨달라는 요청이었다. 엄재원 대원의 배낭을 김미곤 대장이 매고 힘겹게 걸어 후미조도 C2 텐트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모든 대원들이 각자 텐트로 들어가서 잠을 청했다. 점심으로 라면을 끓였다. 5,400m 고도의 C2에서 소화를 잘 시키기 위해 라면은 면이 퍼질 때 까지 끓였다. 면발이 불더라도 라면 맛은 역시 최고인 듯하다. 매콤하게 국물도 마시고 든든한 점심 식사를 한 후 식수를 끓였다. C2의 식수는 빙하수가 흐르는 곳에서 받을 수 있었다. 눈을 녹이지 않아도 되어 가스를 절약할 수 있어 다행이다. 빙하수를 떠다 코펠 가득히 물을 끓였다. 각자 보온통에 물을 채워주고 커피 등 각자가 원하는 차를 마셨다. 고소로 인해 계속 텐트에서 고생을 하는 대원들에게 따뜻한 물을 주었으며 고소에 빠른 시간내에 적응할 수 있길 바랄 뿐이었다. 텐트 쉘터 공간에서 이상국 대원이 가스불을 잘못 다뤄서 텐트 쉘터 부분을 태워버리는 실수도 저질렀다. 이후 바깥 공간에 가스불을 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으며, 야외에서 요리나 물을 끓였다. 잠깐 휴식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저녁은 고소식으로 누룽지를 끓였다. 누룽지가 많이 불어나지 않아서 거의 생쌀 느낌으로 먹기에 불편했다. 누룽지를 물에 많이 불린 후에 끓여야 했을 듯하다. 누룽지, 오징어젓갈, 김 등으로 저녁 식사를 한 후 내일 C3 진출을 위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상국 대원>
▲8/1(11일차) •C2-C3-C2 : 상승 및 다운 •거리 7.27km, 시간 6시간 36분, 상승고도 537m, 하강고도 563m •최저해발 5,409m, 최고해발 5,974m •경로 링크 : Garmin Connect
기록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힘들었고 정신도 내 것이 아니었다. 11일차, 12일차의 2일간 기록은 D12일에 기록한 것이다. 아침에 무거운 머릴 들기도 어려웠다. 김대장님의 ’재원 씨 괜찮아요?’라는 물음에 고민하다가 사실대로 대답한다. ‘두통이 심합니다, C1 초기 증상과 비슷합니다’. 그렇다 오시(Osh)에서 BC에 첫 입성했을 때, BC에서 C1에 처음 입성했을 때, C1에서 C2에 처음 입성했을 때 모두 같은 고산병 증상이 반복됐다. 고도를 약 1,000m 올릴 때마다 같은 증상이 나타났다. 오늘은 C3를 터치하고 내려오기로 한 날이다. 전일과 같이 내가 제일 후미에서 형들을 따른다. D10, D11 날씨는 최상이었다. 하지만 내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고소식 누룽지는 맛이 너무 없었고, 동결건조식도 짜기만 했지, 나에겐 별로였다. 오로지 내가 믿을 수 있는 식량은 에너지젤과 에너지바뿐이었다. 시작 초반에는 그럭저럭 따라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형들과 거리가 멀어지고, 어제와 똑같이 나에겐 졸음과 후부두 두통이 몰려왔다. 졸음이 몰려올 때는 어김없이 시야가 흐려지는 현상이 동반됐다. C2~C3 거리가 불과 3km밖에 되지 않지만 나는 10보마다 30초는 쉬어야 했다. 결국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 먼저
올라가서 기다리다 지친 형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난 C3(6,100m) 약 126m 못 미친 지점에서 C2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고, 나만 C3를 밟아보지 못한 것이다 나중에 형들에게 물어보니 2시간 정도를 기다렸다고 한다. C2에 도착했지만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누워서 귀만 열고 있었다. 조식과 석식은 연수 형과 상국 형이 맡아 준비해 주었고, 난 그저 누웠던 자리에 그대로 앉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빨리 C1으로 내려가고 싶은 맘뿐이었다. <엄재원 대원>
C2텐트에서 바라 본 개인 텐트 사이트
06:30 아침 식사→07:00 C3로 출발 오늘은 C3까지 진출해서 장비를 보관해 둔 후에 C1까지 하산할 계획이다. C3까지는 3km가 조금 넘는 거리로 그렇게 멀지 않은 코스지만 해발 고도를 700m 이상 올려야 하고 경사가 급한 설산 언덕이라 쉽지 않은 코스이다. 경사가 급한 봉우리 정상에 오늘의 목적지인 C3가 위치해 있다. 아침 일찍 기상한 후 어제 미리 준비해둔 물로 누룽지를 끓였다. 오전 고소식은 누룽지와 김자반이다. 고소 증상으로 인해 입맛들이 없었지만 등반을 위해서는 든든하게 먹을 수밖에 없었다. 누룽지 식사 후 보온통에 물을 채우고 출발 준비를 했다. 오전 7시에 C2를 출발해서 캠프사이트를 지나서 능선 위로 올라섰다. 엄재원 대원이 고소로 인해 등반에 어려움을 겪었다. 출발은 모든 대원들이 같이 했으나 각자 컨디션에 따라 대열이 분산되었다. 이상국 대원, 성년수 대원, 김미곤 대장이 선두 그룹으로 이동했으며, 나머지 대원들은 후세인 가이드와 함께 이동을 했다. C3가 위치한 봉우리는 경사가 급했으며, 고정 로프가 설치되어야 할 구간이었으나 고정 로프는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다행히 이른 시간의 등반이라 눈이 녹지 않아 발이 눈 속으로 빠지지 않아 조금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설산 이동 시 이른 새벽, 오전을 선택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이후 오후 시간에 올라온 조선이공대팀은 고산용 등산화가 눈속으로 푹푹 빠지면서 상당한 체력 소모를 겪었다.
C3로 가는 봉우리에서 많은 시간이 소모되었다. 길의 구간 구간에는 빨간 깃발을 꽃은 이정표가 꽃혀 있다. 급경사 구간을 벗어나 완만한 구간이 나타나며 C3 텐트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완만한 구간도 꽤 거리가 있어 지루한 등반을 계속 이어가야 했다. C3에 도착한 후 아시아아웃도어 캠프 매니저를 만났으며, 짐을 보관해 둘 수 있는 텐트를 배정받았다. 김미곤 대장, 성년수 대원, 이상국 대원이 캠프에 먼저 도착한 후 C3 주위를 돌며 고소 적응도하고 주위 경관을 살폈다. C3에서는 레니봉 정상이 더 가깝게 눈에 들어왔다. 봉우리 두개 넘어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처럼 느껴져 금방이라도 정상에 오를 수 있을 듯했다. 사람의 눈이 참으로 요망해서인지 정상에 대한 욕심인지 모르겠지만 9시간 이상을 가야 하는 거리가 단 3~4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C3가 있는 봉우리는 정상 공간이 꽤 넓게 퍼져 있다. 20여 개가 넘을 듯한 텐트가 설치되어 있고 한 쪽으로 화장실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는 깨끗한 공간이 있었으며, 그곳의 눈을 식수로 사용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후세인 가이드가 도착했고 그 이후 장세종 대장이 힘들어하며 올라왔다. C2로 올라올 때는 체력 저하로 많이 힘들어 했는데 다른 대원들 보다 먼저 올라와서 다들 깜짝 놀라는 눈치다. 장세종 대장은 C3(6,100m)가 자신의 레닌 정상이라는 생각으로 꾸준히 올라오셨다고 한다. 준비해온 산악회 깃발을 들고 김미곤 대장과 함께 기념 사진을 촬영한다. 봉우리 아래로 펼쳐진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니 이곳이 정상이라 해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중에 김성은 대원이 도착을 한다. 지친 상태가 역력하다. 김성은 대원은 원정 기간이 지날 수록 체력이 떨어지는 듯 보였다. 김성은 대원 역시 레닌의 풍광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한다.
10시 반 정도에 선두 그룹이 도착했으며 도착해서 기다린 지 한 시간이 지났다. 마지막 남은 엄재원 대원을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12시 전에는 하산을 해야지 C2에서 점심을 먹고 C1으로 이동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가이드와 대원들이 C2로 하산을 시작했다. C2에는 개인 우모복, 개인 침낭, 코펠 2조, 버너 2조 등을 데포했다. C2로 30분여 정도 내려갔을 때 C3로 올라가는 조선이공대팀을 만났다. 가이드와 윤중현 대장이 선두로 해서 그 뒤를 대원들이 오르고 있었다. 햇빛에 눈이 많이 녹아서 고산용 등산화가 푹푹 빠져서 이른 아침에 이동한 우리팀 보다 체력 소모가 더 많은 듯 보인다. 조선이공대팀은 C3에서 1박을 하며 고소 적응을 할 계획이다. 조선이공대팀과 헤어지고 나서 바로 힘겹게 오르고 있는 엄재원 대원을 만났다. 고소로 인해 걸음이 많이 불편해 보인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걸어오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하지만 C2로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김미곤 대장, 성년수 대원이 먼저 C2로 하산을 하고 뒤를 이어 장세종 대장과 김성은 대원이 하산을 한다. 엄재원 대원과 이상국 대원이 마지막으로 같이 움직였으며 선두 보다 30여분 후쯤 캠프에 도착했다. 체력 소모가 많아서인지 비탈길에서 미끄러지고 넘어지는 대원도 있었다. C2에 도착 후 행동식으로 요기를 하고 C1으로 이동하려고 했다. 하지만 텐트에 들어간 대원들이 잠들거나 고소증세로 통증을 호소하는 고성을 내기도 했다. 장세종 대장은 C3를 목표로 모든 체력을 소모하신 듯 아픈 신음 소리를 많이 내신다. 문제는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오후 2시에 출발할 계획을 변경해야 했다. 오늘은 C2에서 1박을 하고 내일 C1으로 이동한다. 저녁은 누룽지, 오니시 2개, 건조국, 김자반, 젓갈이다. 오후부터 잠자리에 든 대원들을 깨워서 저녁을 먹었다. 엄재원 대원과 장세종 대장은 고소와 체력 고갈로 인해 먹지를 못한다. 나머지 대원들은 성년수 대원 텐트에 둘러 앉아 식사를 했다. 김자반과 젓갈이 인기 상품이다. 누룽지는 역시나 제대로 불어나지 않아서 먹기에 불편했다. 물을 끓여 따뜻한 차 한잔을 하고 장비를 정리한다. 내일 오전에는 날씨도 좋아지고 대원들 체력도 회복하길 기대해본다. <이상국 대원>
C3로 오르는 급경사 설릉을 등반대들이 오르고 있다.
▲8/2(12일차) •C2-C1 : 하강 •거리 6.91km, 시간 3시간 51분, 상승고도 100m, 하강고도 1,085m •최저해발 4,388m, 최고해발 5,409m •경로 링크 : Garmin Connect
원래대로라면 전일 C1으로 내려갔어야 했는데 내 컨디션 때문에 12일차에 C1으로 하산했다. 민폐로 미안한 마음이다. C2에 있는 동안 식량은 상국 형이 맡아 끓이고 삶았다. 가장 컨디션이 좋다는 이유에서 아무도 그를 말리거나 제대로 돕지 못했다(연수 형을 제외하고). 그저 지켜보며 감사할 뿐이다. 며칠 후 다시 올라와야 하므로 그때 사용할 장비 등은 대행사 직원 텐트에 보관하고 서둘러 하강 준비를 마친다. C1으로 내려갈 생각 때문인지 아침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고도 적응이 어느 정도 된 원인도 있는 것 같지만, 힘든 C2 생활이 끝난다는 심리적인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하산길은 그리 힘들이지 않고 내려갈 수 있었고, C1에 도달하니 전에 있던 고산병 증세도 사라졌다. 안심과 희한함을 동시에 느꼈다. 다음날 BC로 내려간다고 생각하니 살짝 들뜨기도 한다. 김대장님이 컨디션이 좋지 않은 대원들을 배려한 결정이었다(원래는 C1에서 계속 상주할 계획되었으므로). <엄재원 대원>
*****
08:00 C2 출발 아침내 바람이 불고 눈이 흩날린다. 시야가 좋지 않아 7시 출발 계획을 8시 출발로 변경했다. 비록 일정에는 차질이 생겼지만 산 전체가 흰 눈으로 장관을 이룬 경치를 볼 수 있었다. 한 시간쯤 지나자 눈이 좀 잦아 들었고 C1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고소로 일찍 쉬었던 대원들의 컨디션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힘들어 보인다. 아침은 보노스프와 커피로 대체했다. C1으로 가는 하산 길은 아직 눈이 녹지 않은 상태이고 내리막길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이동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날 C3를 다녀온 장세종 원정대장의 체력이 급격하게 저하되어 김미곤 대장과 후미 그룹을 이루며 뒤따라 하산을 했다. 오늘은 대원들의 체력 회복을 위해서 C1이 아닌 베이스캠프까지 이동하는 것도 고려 대상이었다. 좀 더 낮은 고도에서 체력 회복이 더 잘 되기에 3,600m까지 내려가는 것이 대원들에게 더 좋을 수도 있다는 판단이었다. C1으로 내려가는 크레바스 구간 전에서 반가운 일행을 만났다. 지난 밤 C3에서 1박을 하고 고소 적응 후에 하산을 하고 있던 조선이공대팀이다. 지난 밤 강풍과 추위로 인해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조선이공대팀 등반 대장님은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어서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아 보였다. 이후 C1에서 우리가 준비해온 수면유도제를 드시고 겨우 한 숨 푹 주무시고 체력을 회복하셨다. 조선이공팀을 지나 먼저 하강 구간을 지나 C1으로 돌아왔다. 11시 30분 정도에 도착했다. 개인 짐을 풀고 다이닝룸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오후 2시부터 베이스캠프로 전 대원 하산하는 것으로 지시가 전달됐다. 하지만 오후 들어 눈이 더 많이 흩날리고 강풍이 불기 시작했다. 체력이 떨어진 대원들이 움직이기에는 너무 날씨가 좋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이동 계획을 철회하고 C1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이동하기로 변경했다.
모든 대원들이 각자의 텐트에서 밖으로 나오질 않는다. 베이스캠프에서 C1으로 올라올 때 대부분의 음식을 가져왔다. 베이스캠프로 다시 복귀하지 않고 C1에서 생활하며 정상 공격을 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일 베이스캠프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식자재를 정리해서 가지고 하산해야 했다. 연수 대원이 저번에 삶았던 닭고기로 닭장조림을 만들었다. 그리고 백김치, 황태포 등 가져갈 식자재와 장비를 챙겼다. 카고백 1개 분량으로 짐을 포장했다. 내일 조선이공대팀이 내려가는 짐칸에 같이 보낼 계획이다. 오후 눈보라를 뚫고 경섭 형님이 C1으로 올라오셨다. 베이스캠프에서 체력 회복 후 혼자 C1으로 올라오셨다. 곽노성 대원도 올라오려 했으나 컨디션 난조로 내일 올라올 계획이라고 했다. 하지만 원정대 대원들은 내일 모두 하산하는 일정이라 뭔가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되지 않은 듯하다. C1에서 와이파이 사용을 하지말라는 지시로 인해 대화 채널이 없었으며, 캠프 매니저와 베이스캠프의 무전 연락에 의존해야 했다. 체력 저하로 인해 먼저 베이스캠프로 이동했던 곽노성 대원을 누구도 제대로 챙기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같은 원정대원으로서 매일 원정대 상황도 공유하고 곽노성 대원의 건강 상태도 체크를 했어야 했는데 누구도 챙기질 못했다. 어찌되었건 내일 베이스캠프로 이동한다는 사항을 알리고 모든 하산 준비를 완료했다. <이상국 대원>
▲8/3(13일차) •C1-BC : 하강 •거리 11.57km, 시간 2시간 44분, 상승고도 183m, 하강고도 860m •최저해발 3,608m, 최고해발 4,413m •경로 링크 : Garmin Connect
회복을 위해 BC로 내려간다. 수일 뒤 다시 올라와야 하지만 지금은 어서 빨리 내려가서 하루라도 편하게 있고 싶은 마음이다. 내려가서 먹을 식량 일부는 말(horse)에 실려 보내고 우린 모두 걸어서 하산한다. 이곳에서는 포터 역할을 말이 맡아 하고 있다. 운임은 1kg당 3달러를 받는다. 사람도 BC ~C1 구간을 말을 타고 이동할 수 있다. 가격은 100~300달러까지 천차만별이다. 운 좋으면 100달러에 배낭 1개까지 C1에 갈 수 있다. C1에서 3,800m 지점까지 약 8km를 걸어서 내려가면 대행사 차가 기다리고 있다. 다시 대행사 차를 타고 약 4km 더 내려가면 BC에 도착한다. <엄재원 대원>
*****
화창한 아침이었다. 어제와는 달리 깨끗한 하늘에 따뜻한 햇살이 비춘다. 성년수 대원, 이상국 대원이 아침 일찍 내려 보낼 공동 장비와 식량을 조선이공대팀이 있는 악사이캠프 화물 운송 장소로 이동했다. 조선이공대팀원들도 캠프에서 잘 쉬었는지 밝은 모습들이다. 말이 출발하는 장소에 짐을 내려놓고 조선이공대팀과 아침 인사를 나눴다. 레닌봉 정상을 바라보며 C3의 하루를 추억한다. 오전 8시 캠프식으로 아침 식사를 한 후 9시 하산을 시작하기로 했다. 하산은 조선이공대팀과
▲8/4(14일차) •BC : 개인 정비
동행했다. 악사이캠프 앞에서 만난 후 같이 하산을 시작했으며, 15명 정도의 대원이 대열을 맞춰 이동했다. 날씨가 호창해서 이동하는데 무리가 없었으며, 모두들 고도가 낮아져서 인지 걷는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4,300m 패스에서 한국팀을 만났다. ER소속이라고 하는데 정확한 소속은 모르겠다. 반갑게 인사한 후 헤어지고 지프 탑승 위치까지 이동했다. 생각 보다 일찍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곽노성 대원은 근처 산행을 가셔서 늦게 만나게 되었다. 컨디션을 많이 회복하신 듯했다. 베이스캠프 식당의 아르바이트 친구들이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점심식사를 한 후 여유롭게 차 한 잔 하면서 휴식을 취했다. 고도가 낮아져서 인지 엄재원 대원도 생기를 되찾은 듯하다.
오후 시간에 엄재원 대원과 이상국 대원이 악사이캠프로 짐을 찾으러 갔다. 식자재와 장비 카고백을 찾으러 갔다. 1kg당 3달러. 악사이캠프의 조선이공대 대원들도 여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온수샤워를 한 후 여유롭게 담배를 태우거나 차를 마시고 있다. 커피 한 잔 같이 마신 후 짐을 찾았다. 짐 속에서 닭장조림, 황태포, 백김치를 나눠주고 베이스캠프로 돌아왔다. 대원들 모두 숙소에서 나오질 않는다. 내일은 양고기로 보신을 해야 한다며 대원들간에 이야기가 뜨겁다. 다이닝룸 한구석에 마련된 우리들만의 키친은 다시 우리 장비와 재료들을 늘어놓고 요리로 분주했다. 베이스캠프에서 C1으로 이동 계획은 아직 미정이다. 날씨 예보가 좋지 않다. <이상국 대원>
조선이공대팀과 함께 BC로 하산 중인 대 원들
아침이 편안하다. 편안함의 정도는 고산병 증세가 없을 뿐이지 집과 같은 편안함은 절대 아니다. 여전히 코감기 증상은 가시지 않고 코를 풀면 피가 보인다. 날씨는 맑고 햇볕은 따뜻하다. 어김없이 오후엔 흐리더니 비가 내린다. 조식 후 빨래와 온수 샤워를 알아본다. 키친이 있는 장소는 대행사 직원들이 사용하는 사무실과 세탁실 등 운영에 필요한 공간들이 나뉘어 있다. 세탁실에는 작은 드럼 세탁기가 한 대가 있는데 한 번 돌리는데 5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다들 빨랫감을 모아 세탁실로 옮기니 양이 꽤 된다. 드럼세탁기 3회를 돌려 빨래를 완료하고 따뜻한 햇볕에 하나하나 널어놓았다. 개운함이 느껴졌다. 세탁비는 김대장님이 지불해 주었다. 역시 이날의 최고 선물은 온수샤워였다. 2주 만에 씻는 몸, 최대한 불려 묵은 때를 없애보려 노력한다. 근데 문제는 얼굴이다. C1-C2를 올라가면서 눈에 반사된 자외선에 표피가 부분적으로 물집이 생긴 후 터져 진물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화상연고를 발라주어 아물고는 있었지만, 상처가 완전히 나은 상황은
아니었다. 그래도 개운하게 씻는 게 우선이었기에 쓰라림을 감수하고 살살 닦아 낸다.
오늘은 김대장님의 추천으로 양(sheep)을 잡아먹기로 한다(표현이 야만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달리 표현을 못 하겠다). 대행사를 통하는 것보다는 BC 아래 원주민에게 직접 알아보기로 한다(가격 차이가 날 듯해서). 몇 차례의 접촉과 딜(deal) 끝에 그 집 아들이 1톤트럭에 검은색 암양 한 마리를 묶어 선보인다. 냄새가 걱정되어 더 어린양을 원했지만, 말이 안 통하니 그냥 넘어간다. 우리가 '포터 보이'라고 부르는 그 집 아들의 이름은 '하지무라드'라고 한다. 나이는 18세에 말도 잘 타고, 운전도 잘한다. 또 친화력도 좋다. 양도 잘 잡고…. 양 1마리는 150달러를 지불했다. 대원들을 위한 기력 회복 차원에서 모두 긍정이다. 조리는 연수형이 조선이공대팀 전용 주방에서 압력솥에 조리를 해오셨다. 소갈비 양념으로 가진 과일과 채소를 추가한 후 양고기 찜을 해주셨는데 냄새도 안 나고 야들야들하니 맛있었다(대원 모두 대만족). 양고기 절반을 조선이공대 팀에게 나눠드렸는데 남은 절반으로도 우리 팀 및 BC 다른 팀들과도 조금씩 나눠 먹기에 충분했다.
BC 도착 후 인근 원주민에게 양을 한마리 구매하여 조선이공대팀이 가져온 압력밥솥으로 조리를 하 였다.
08:00 아침식사→10:00 온수샤워 베이스캠프로 돌아 온지 이틀째. 침대 잠자리가 포근해서인지 해발이 낮어서인지 어찌되었건 모두들 건강한 아침이다. 소세지, 빵, 계란후라이 등을 아침으로 먹고 차를 마시며 일정을 논의했다. 역시나 아직 날씨 예보가 좋지 않았다. 비가 가끔씩 쏟아졌다. 오늘 오후에는 양고기 한 마리를 요리해보기로 했다. 엄재원 대원과 성년수 대원, 곽노성 대원이 양고기를 사기 위해 캠프매니저와 이야기를 나눴으며, 오후에 양고기 농장 주인을 만나기로 했다. 오전 시간에 엄재원 대원, 김성은 대원, 이상국 대원이 드디어 베이스캠프로 온 후 처음으로 샤워를 했다. 온수샤워 건물이 따로 있으며, 온수샤워와 사우나를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사우나는 30달러, 온수샤워는 공짜다. 오전 10시부터 샤워장이 오픈했으며, 개운하게 샤워를 마쳤다.
한국을 떠난지 2주가 지났다. 고도적응을 위해 BC(3,600)-C1(4,400)-C2(5,400)-C3(6,100)를 올랐다 내려오는 훈련이 이어졌고, 회복을 위해 B로 내려왔다. 한라산보다 높은 곳이 처음인 나, 고산병 증세가 이렇게 사람을 나약하게 만들 줄은 몰랐고, 그 고산병 증세는 결국 C3 126m를 앞두고 돌아서게 했다. 만년 설산의 무경험은 가녀린 내 얼굴을 내어 줄 수밖에 없었지만, 수일 뒤 써밋 도전을 위해 다시 같은 구간을 반복해야 한다. 좀 더 차분하게, 흔들리지 말고, 나와 형들을 믿어보기로 한다. <엄재원 대원>
▲8/5(15일차) •BC : 개인 정비 및 고도 적응훈련(개인) •거리 8km, 시간 3시간 12분, 상승고도 355m, 하강고도 352m •최저해발 3,491m, 최고해발 3,623m •경로 링크 : Garmin Connect
캠프 주위에는 농장과 유루트 캠프 들이 있었다. 캠프 옆에 있는 농장에서 양 한 마리를 150달러에 구매했다. 양을 잡아 고기 덩어리채로 배달해 주었다. 칼로 양고기를 손질하기에는 역부족이었으며 결국 농장 주인 아들에게 도움을 받아 양 손질을 할 수 있었다. 반 마리는 캠프 식당에 보관해두고 반 마리로 조선이공대팀과 나눠서 요리했으며, 양이 충분했다. 조선이공대팀은 압력밥솥을 2개나 한국에서부터 준비해왔다. 고소에서 요리를 할 때 필수 아이템인 것 같다. 압력밥솥 2개에 양고가를 나눠서 넣고 마늘, 사과, 된장 등을 넣고 1시간여 이상을 끓였다. 양고기가 부드럽게 익어서 먹기에 안성맞춤이다. 삶은 양고기를 압력밥솥 통째로 우리 캠프로 들고 와서 대원들과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오랫만에 모든 대원이 모여 저녁 식사를 한다. 알파미 밥을 하고 푹 삶은 양고기가 모두의 입맛을 만족시켰다. 즐거운 저녁과는 달리 오후 날씨가 심사치 않았다. 강풍이 불고 비를 뿌렸다. 레닌봉 쪽에는 먹구름이 잔뜩 앉아 있다. 아마도 C1쪽은 눈이 날리고 있을 듯하다. 내일 C1으로 떠날 계획을 바꿔 하루 더 베이스캠프에 머물기로 했다. 악천후로 인해 하루 늦어지지만 고소 증세로 고생했던 대원들이 체력 화복 시간을 갖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체류일이 하루 더 늘어나며 저녁 이후에 준비해온 빔프로젝터로 영화를 보기로 했다. 피곤한 대원들은 일찍 숙소로 복귀하고 나머지 대원들이 모여서 한국영화 한 편을 감상했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영화가 끝나고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 <이상국 대원>
08:00 조식 후 간단한 회의에 들어간다. 본래 원정계획서상 정상 등정일은 8일 또는 9일이었는데, 날씨 예보를 보니 바람이 심하게 불 것으로 예상되어 하루 미뤄야 할 것으로 보인다, 8일 또는 9일 자정 즈음 등정을 시작하기로 말씀 하신다. 고산등반은 대원들의 컨디션도 중요하지만 날씨가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수시로 일기 예보를 지켜보면서 등정 일자를 살펴야 한다.
10:30 각자 장비 등을 점검한 후 자유시간이다. 난 고도 적응을 위해 상국 형과 노성 형님께 인근에 산책을 제안한다. 형들도 큰 이견 없이 동의하고, 고도 적응을 위해 BC 남서쪽이 있는 계곡을 따라 내려간 후 계곡 건너편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오기로 한다. 그런데 가도 가도 계곡을 건널만한 곳이 보이지 않는다. 짙은 회색빛의 계곡은 빙하가 녹은 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어서 깊이도 가늠이 안 되고 마땅히 건널만한 바위가 연결된 곳을 찾을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BC에서 약 2.5km를 내려간 지점에 놓인 철 다리를 이용해서 건널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내려갈 때 계곡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꾸역꾸역 계곡 너머로 가다가 다시 건널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계곡을 또 건너보려다가 흘러내리는 흙 경사면을 만나는 등 자칫 레닌봉(Lenin Peak) 등정도 못 해보고 빙하 계곡에 빠져 다치거나
사고가 날 뻔했다. 다행히 다시 돌아가 온 길을 이용해서 BC까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나의 고집 때문에 피해를 줄 뻔했다. 13:50 BC에 도착했다. 점심은 간단히 해결하고, 오후 따듯한 햇살에 텐트가 놓였던 빈 데크에 앉아 황태채를 간식으로 먹으며 편안한 오후를 보낸다. 사실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간식은 황태채였다. 황태채는 조선이공대팀에게도 한봉지 드렸는데 거기서도 인기가 좋아 금세 한봉지를 비웠다고 했다. 물론 가이드도 맛있게 잘 먹었다(FISH? 라고 물으면서). 저녁은 어제 먹고 남은 양고기에 소갈비찜 소스로 만든 양고기 찜을 메인으로 섞박지, 통마늘, 쌀밥 등 퓨전 한국식으로 맛있는 석식을 해결했다. 내일 C1으로 출발해야 하므로 든든한 저녁을 먹어둬야 했다. <엄재원 대원>
어제 걱정했던 날씨가 오전에는 쾌청하다. 이곳의 날씨 패턴이 오전에는 맑았다가 오후 들어 바람과 함께 비나 눈이 오기를 반복하고 있다. 오전 날씨가 좋아서 엄재원 대원, 이상국 대원, 곽노성 대원이 체력 회복을 위해 가볍게 트레킹을 나섰으며, 나머지 대원들은 각자 개인 휴식 시간을 가졌다. 트레킹팀은 오전에 악사이캠프 옆쪽에 있는 봉우리로 다녀오기로 하며 서둘러 출발했다. 거대한 빙하 계곡을 건너서 트레킹 길이 레닌봉 입구 전망대까지 뻗어 있다. 하지만 캠프가 있는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다리가 초입 이외에는 없어서 원점 회기를 해야 했다. 빙하 계곡을 건너보려고 했으나 쎈 물살로 인해 결국 실패했다. 예정보다 늦게 엄재원 대원과 이상국 대원이 캠프에 복귀했으며, 모든 대원들이 점심 식사를 같이 하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 약속을 지켰어야 하는데 미안한 마음이었다. 점심 식사는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식자재로 라면이다. 라면과 짜파게티를 반반 끓였다. 언제나 맛있는 라면을 든든히 먹고 쉬었다가 각자 내일 출발할 배낭을 패킹했다. 내일은 C1으로 출발할 예정이다. 정상 등정을 위한 베이스캠프에서의 마지막 출발일이다. 오후에 전북산악구조대팀이 악사이 캠프로 입성했다. 김미곤 대장이 악사이캠프를 찾아 인사를 했다. 전북산악구조대팀도 9명 정도로 많은 인원이 원정을 왔다.
개인 배낭을 패킹하고 반 마리 남은 양고기를 저녁으로 먹기로 했다. 마지막 몸 보신이 될 것이다. 성년수 대원이 준비해온 소갈비 양념과 사과 등을 압력솥에 넣고 삶기 시작했다. 달작지근한 냄새가 다이닝룸 전체에 퍼졌고 타원정대 대원들이 신기한 듯 우리팀의 식사에 관심을 보였다. 소갈비 양념으로 삶은 양고기와 오시쌀로 한 밥을 조금 나눠줬더니 양념맛에 반한 듯 최고의 리액션을 보여줬다. 모든 대원들이 맛있는 저녁을 먹고 내일 아침 출발 일정을 공유했다. 그리고 곽노성 대원이 있다는 소식에 전북산악구조대장 이성윤 대장님이 친히 캠프로 방문해서 인사를 나눴다. 내일은 오전에 비가 오지 않는 이상 C1으로 출발하기로 결정했다. 장세종 원정대장은 베이스캠프에서 가려움증으로 고생을 했으며 체력 등의 문제로
고소적응 훈련을 떠나는 대원들
베이스캠프에 계속 남기로 결정했다. 베이스캠프에서 오랫동안 체력 회복 노력을 했던 곽노성 대원은 C1으로 같이 이동하기로 했다. 최대한 갈 수 있는 곳까지 도전해볼 계획이다. <이상국 대원>
▲8/6(16일차) •BC-C1 : 상승 •거리 12.26km, 시간 3시간 57분, 상승고도 1,013m, 하강고도 211m •최저해발 3,615m, 최고해발 4,426m •경로 링크 : Garmin Connect
다시 C1으로 올라간다. 장대장님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 BC에 남으셨고, 노성 형님은 컨디션이 좋아져서 함께 이동한다. 등정 일자는 8일 또는 9일이다(8 또는 9일 C3에서 23:00 정상으로 출발). 불필요한 짐들을 보관하고 꼭 필요한 의류 및 장비들을 챙겨 차에 싣는다. 말을 타고 올라가 보려고 나름대로 은밀하게 포터 보이와 딜을 해서 성공했지만 남 좋은 일만 시켰다(100달러에 C1까지 백팩 1개 가능했다. 조선이공대팀에게 양도). 내 생각엔 한번 다녀온 길이고 해발 3,600m부터 4,400m까지 푸석한 흙길을 꾸준히 오르는 길이라 오름에 큰 의미는 없고, 체력도 아낄 수 있을 거란 생각이었는데 무산됐다. C1까지는 약 4시간가량이 걸렸다(거리 약 12km). 처음 상승 때보다 시간도 빨랐고, 컨디션도 좋다(첫 상승 약 5시간 30분 소요), C1에서 고산병 증세도 없었다. 몸이 기억하는 것인지, 고산등반이 처음인 난 신기할 뿐이다. <엄재원 대원>
*****
08:00 아침식사→09:00 C1으로 출발 C1으로 이동하는 날이다. 이제 정상을 향한 마지막 여정의 시작이다. 압력솥에 누룽지를 끓이고 어제 먹다 남은 양고기와 황태국으로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황태국에 맛술을 너무 많이 넣어서 텁텁해져 국물 맛 내기에 실패했다. 그래도 모든 대원들이 불평하지 않고 맛있게 먹어줘서 다행이다. 아침식사 후 우리만의 키친을 정리한 후 C1으로 출발 준비를 했다. 개인 배낭을 최소화하고 불필요한 짐은 창고에 보관시켰다. 지프로 20여분을 이동해 레닌봉으로 가는 입구에 도착했다. 이제 두번째 길이여서 모두들 여유가 느껴진다. 조선이공대팀은 체력을 아끼기 위해 몇몇 대원들이 말을 타고 C1까지 이동을 한다. 김미곤 대장, 성년수 대원, 엄재원 대원, 이상국 대원이 선두 그룹을 유지하고 후세인 가이드, 곽노성 대원, 김성은 대원이 뒤를 따랐다. 엄재원 대원은 고소 적응을 잘해서 체력이 많이 회복되었다. 첫 등반과는 다르게 움직임이 좋아 보인다. 곽노성 대원도 처음 카라반 이동 때와는 다르게 뒤쳐지지 않고 대열에 맞춰 이동했다. 이동 중에 말을 타고 이동하는 조선이공대팀이 우리 일행을 앞질러갔다. 이후 조선이공대팀의 김상수 대원, 여성 가이드와 함께 일행이 되어 C1까지 이동을 같이했다. 오후 한 시 정도 C1 악사이캠프에 도착했다. 김성은 대원이 후미 그룹으로 뒤쳐진 것이 많이 지쳐 보인다.
악사이캠프 조선이공대팀에서 수박과 콜라를 내주었다. 과일이 풍부한 나라인데 특히 수박 생산량이 많은 듯하다. 시원하게 수박으로 갈증을 해소하고 우리팀 캠프로 이동했다. 악사이캠프와는 걸어서 15분 정도의 거리에 있다. 캠프 식당에서 만두와 빵이 제공되었다. 뒤쳐진 대원 없이 모두들 같이 요기를 하고 각자 텐트에서 휴식을 취했다. 저녁은 남아 있는 식재료로 김치찜을 준비했다. 고소증세로 힘들어하는 대원이 없어서 묵은지찜으로 매콤하게 준비 했다. 식사 후 내일 일정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눈과 강풍 예보로 인해 C1에 하루 더 머무는 것으로 일정을 변경했다. 날씨가 좋지 않아 일찍 해산 후 저녁 취침에 들었다.
▲8/7(17일차) •C1 : 대기
새벽부터 날씨가 좋지 않다(정상 부근). C1의 날씨는 지난주와 다름없이 정오까지는 맑다가 오후에 싸래기눈이 내린다. 온도도 비슷하다. C2로 올라가는 설사면부터는 눈구름이 하얗게 끼어 시야가 막혀있다. 구름의 흐름도 빨라서 정상 부근에는 엄청난 바람과 눈이 몰아치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내일 C2로 상승하는 일정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정상 등정 일이 9일에서 10일로 변경됐다. 상국 형과 나는 C2부터 먹을 원정대 고소식 및 행동식을 패킹했다. 공동장비 및 식량을 대원 숫자만큼 나누고, 개인 행동식을 지퍼백에 담아 분배한다. 그런데 대원별로 배분한 식량을 가이드에게 들어달라고 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그러나 가이드가 부담할 일이 아니었기에 말 그대로 해프닝으로 그쳤다. 노성 형님은 C1까지는 무사히 올라오셨지만, C2까지 갈 수 없는 몸 상태였기에 오늘 가이드와 유힌봉(5,100m) 등반에 나서셨다. 조식 후 10시경 출발하셨고 13시 중식 즈음 도착하셨다, 안전하게 돌아오셨지만, 피곤해 보이셨고, 돌아온 시간 C1에는 무거운 눈이 내리고 있었다. <엄재원 대원>
*****
C1에서 하루를 더 대기를 해야 하는 날이다. 정상 등정을 위한 개인 장비와 공동 식량 등을 정비할 예정이다. 아침 공기가 많이 차가웠다. 역시나 오후에는 눈이 흩날릴 듯했다. 어제 내린 눈이 쌓여서 레닌봉이 더욱 새하얗다. 날씨와는 무관하게 오늘도 레닌봉을 오르는 타 대원들이 오르고 있다. 반복적인 날씨 패턴으로 오전에 일찍 이동해서 오후 눈이 내리기 전에 캠프에 도착하는 방식이다. 우리팀도 그렇게 할 수 있었지만 일단 날씨 예보에 따라 판단하고 주의하며 계획을 세웠다.
08:00 아침식사 오트밀과 파르페 캠프식으로 아침 식사를 간단하게 먹고 우리 키친 텐트에서 공동 식량을 정리했다. 파워젤과 행동식이 너무 많이 남는 상황이어서 일부를 조선이공대팀에 전달했다.
BC를 출발 C1으로 가는 길
▲8/8(18일차) •C1-C2 : 상승 •거리 7.59km, 시간 6시간 10분, 상승고도 1,091m, 하강고도 110m •최저해발 4,382m, 최고해발 5,408m •경로 링크 : Garmin Connect
오전에 곽노성 대원과 후세인 가이드는 유힌피크(5,100m )로 고소 적응 훈련 등반을 했다. 오후가 되면서 눈과 바람이 심해졌다. 눈보라를 뚫고 다행이 정상 등정 후 안전하게 캠프로 돌아왔다. 점심으로 감자, 수제비, 라면을 섞어서 끊였다. 추운 날씨에 따뜻한 국물이 일품이었다. 내일 등반을 위해서 개인 배낭 및 공동식량, 장비를 패킹했다. 행동식과 공동식량은 C2, C3, 정상 등반에 맞춰서 준비하고 보니 양이 많았다. 건조국, 카레밥, 스프, 행동식, 누룽지, 알파미, 커피류 그리고 예비 가스 3개 정도를 챙겼다. 개인 배낭의 무게를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불필요한 의류, 장비 등은 텐트에 남겨두었다.
19:00 저녁 식사 소고기를 얹은 면류 캠프식으로 저녁을 먹고 일정 논의를 진행했다. 내일 오전 3시에 아침을 가볍게 먹고 3시 30분 C2로 출발할 계획이다. 오전에 일찍 준비를 해야 해서 모든 대원들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 아침 식사를 위해 미역을 물에 담궈 준비해 놓았다. 모든 대원들의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실제 곽노성 대원은 C2로 가는 설사면 전까지 같이 이동한 후 C1으로 복귀 할 계획이다. 김미곤 대장, 성년수 대원, 김성은 대원, 이상국 대원, 엄재원 대원, 후세인 가이드 총 6명이 정상 등정을 시도할 예정이다. <이상국 대원>
03:30 출발 원정대 7인 중 두 명이 빠진 5명이 정상 등정을 위해 C2에 올라왔다(장대장님은 BC에 남으셨고, 노성 형님은 C1에 남으셨다). 며칠간 기상이 좋지 않았고, 체력회복을 위해 BC 및 C1에 대기하다가 드디어 정상 등정 일이 정해진 것이다. 개인적으로 지난 1차 고도 적응 때와 비교하면 C2에는 약 4시간 정도 빠르게 올라온 것이다. 고도 적응이 잘 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늘 따라다니던 두통(후두부), 매스꺼움, 졸음, 근무력 등 고산병과 관련된 증상이 싹 사라진 상태에서 5,400m까지 올라온 것이다. 내일은 C3까지 상승해야 한다. 지난번 약 126m를 남기고 돌아서야 했지만, 이번엔 각오와 컨디션이 다르다. 가볍게 올라서 다음날 정상까지 안전하게 오를 수 있도록 집중할 것이다. 내 페이스를 유지하자. <엄재원 대원> .*****
02:00 기상. 알파미와 건조미역국 아침→03:00 아침식사→03:30 캠프2로 출발. C2로 출발하는 새벽이다. 바람도 없고 많이 춥지 않다. 이동에는 큰 지장이 없는 좋은 날씨다. 아침 준비를
위해서 오전 2시에 성년수 대원과 이상국 대원이 기상을 한다. 어제 담궈 두었던 미역국을 끓이고 코펠에 알파미로 밥을 지었다. 다이닝룸에는 지난번처럼 캠프 매니저가 따뜻한 물을 준비해주었다. 다이닝룸 주방 안쪽에서 따뜻한 물을 떠올 수도 있다. 새벽 3시에 다이닝룸으로 대원들이 모여서 아침식사를 하고 출발 준비를 한다. 저번과 마찬가지로 악사이캠프를 지나 C2 설사면을 오르기 전까지는 고산화만 신고 이동하고 그곳 근처에서 안전벨트, 크램폰 등을 착용했다.
C2 가는 길(위). C2캠프 근처 휴식 중인 대원들(오른쪽 위). 후세인 가이드와 함께(옆)
안정적으로 등반을 이어갔다.
05:30 상단 도착. 조선이공대팀과 조우 이번 등반 시에는 안자일렌을 하지 않고 개별 등반을 했다. 이전 보다 등반 속도도 더 빨라졌다. 3개 정도의 크레바스 구간을 지나 본격적인 설사면 경사로를 오르는 구간에서 먼저 올라갔던 조선이공대팀 대원 1명과 만났다. 등반 중 햄스트링 부상으로 인해 등반을 포기하고 캠프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C3까지 오르셨던 분인데 너무 안타깝지만 건강이 먼저이기에 안전하게 내려 가길 바랐다. 인사를 나눈 후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뒤처짐 없이 모든 대원들이 함께 이동했으며, 설사면 상단 부분에서 조선이공대팀을 만났다. 우리팀의 이동 속도가 빠른 것이 아니고 조선이공대팀은 안자일렌으로 이동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늦을 수밖에 없었다.
09:30 C2 도착→12:30 점심 식사 안자일렌으로 이동하고 있는 조선이공대팀을 추월해서 평탄한 트레버스 구간을 지나 마지막 된비알을 통과했다. C2 텐트가 보이는 구간에서 행동식으로 요기를 했다. 마지막 구간에는 뚜렸했던 길이 눈에 덮여져 있었으며, 크레바스를 피해 직선이었던 길을 S코스로 돌아서 등반했다. 6시간에 걸쳐 드디어 C2 텐트에 도착했다. 낙오자 없이 모든 팀원들이 텐트에 도착했으며, 각자 텐트에서 짐 정리를 했다. 후세인 가이드는 매니저 텐트를 사용했고 대원들은 3개 텐트를 나눠서 사용했다. 어제 C3를 혼자 다녀온 황경섭님이 텐트를 하나 사용하고 계셨는데 하산을 시키고 그 텐트를 김미곤 대장이 혼자 사용했다. 황경섭
오전 3시 반. 드디어 C2로 이동을 시작했다. 악사이캠프를 지나 빙하 계곡 옆 빙판길을 50여분 걸어 설사면이 시작되는 구간에 도착했다. 대원들이 장비를 착용하고 사진 촬영을 하고 본격적인 등반을 준비했다. 곽노성 대원은 십여분 늦게 도착했으며, 인사를 나눈 후 C1으로 복귀했다. 설사면을 올라 주마링으로 가볍게 크레바스 구간으로 진입했다. 처음 왔을 때 고소로 고생했던 엄재원 대원은 이제 고소를 극복한 듯 편하게 등반을 이어갔다. 의외로 김성은 대원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듯 걸음이 많이 느려졌다. 성년수 대원은 여느 때처럼
▲8/9(19일차) •C2-C3 : 상승 •고도 5,400m~6,100m, 거리 3.3km, 시간 3시간 30분, 상승고도 711m, 하강고도 44m •최저해발 5,414m, 최고해발 6,101m •경로 링크 : Garmin Connect
"식량은 강한자의 몫"
님은 C1으로 하산했으며 이후 곽노성 대원과 같이 C2의 설사면 상단까지 같이 등반을 했다고 한다. 점심을 준비하기 전 식수를 받기 위해 후세인 가이드와 함께 코펠을 가지고 캠프 사이트 위쪽으로 이동했다. C2텐트 상단에서 좌측으로 20여 미터쯤 떨어진 곳에 빙하수를 받을 수 있는 샘터가 있다. 빙하수를 받을 수 있도록 움푹하게 만들어 두었다. 물 표면이 얼어서 피켈로 얼음을 걷어냈다. 물 뜨는 입구가 좁아서 컵으로 떠서 통에 옮겨야 했다. 후세인이 피켈로 PET병을 잘라 겨우 물컵을 만들어 코펠에 퍼 담았다. 다른 팀 여자대원들도 물을 받으려고 대기했는데 역시 컵이 없어서 코펠에 채운 물로 먼저 채워주고 우리는 맨 나중에 물을 받아 캠프로 돌아왔다. 코펠에 물을 채우고 라면을 끓이고 다른 한 쪽에는 알파미 2개를 끓였다. 점심 메뉴는 라면이다. 라면과 무말랭이, 젓갈 등으로 식사를 마무리하고 물을 더 끓여서 차를 마시거나 숭늉을 만들어 마셨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체력 관리가 필요하다. 내일은 C3 그리고 저녁 늦게 정상(Summit)을 향해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도도 하루에 700~1,000m씩 올려야 한다. 차를 마시며 건너편 레닌피크를 감상해본다. 구름도 없이 깨끗한 파란 하늘 밑 거대한 흰 산 봉우리가 우릴 바라보고 있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에서 단잠을 자거나 텐트 안에서 잠을 청했다. 조선이공대팀에서 우리 텐트에 잠깐 왔다가 차 한잔 마신 후 돌아갔다. 오늘 오전부터 캐논 카메라가 작동되지 않았다. 처음엔 배터리가 얼어서 안되는 줄 알았는데 렌즈 접합 부분에 습기가 계속 차서 본체가 작동이 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엄재원 대원의 카메라를 이상국 대원이 착용해서 사진 촬영을 하기로 했다. 시간이 흘러서 벌써 저녁시간이다. 저녁은 건조 김치찌게, 일파미, 고추장아찌, 무말랭이, 오징어젓갈이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총 동원됐다. 해발 5,400m 정도에서는 식욕이 떨어질 수 있는데 거의 알파미를 1인 1개 먹을 정도로 다들 컨디션이 좋다. 거의 고산에서 알파미 1인분짜리를 2명이 거의 다 먹지 못 할 정도라고 한다. 숭늉을 끓여서 따뜻하게 마시고 각자 보온통을 채웠다. 내일은 이동 거리가 비교적 짧아서 천천히 이동할 예정이다. 날씨가 좋기 만을 바래 본다. <이상국 대원>
09:00 출발 아침 기온 -10도(바람이 심하게 분다. 체감은 더 떨어질 듯). 연수형 텐트에서는 아침 준비에 분주하다. 물 떠오랴, 식량 챙기랴, 먹고나면 치우랴…. 늘 바쁘다.
우리는 1동의 텐트에서 2명이 생활하기로 했고, 조리는 식량 담당자가 있는 텐트에 모여 다 같이 식사하는 것으로 정했다. 이유는 대원별 에너지 절약, 연료 절감, 장비 간소화 등이 이유라고 생각된다, 다들 큰 이견은 없었다. 근데 막상 현지에 와보니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아 보였다. 텐트 1동에서 준비하는 것은 식량 담당자들에게는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대원 전체가 운행 시 먹을 물을 데워서 나눠줘야 했고(그 물은 떠 오기도 해야 했다), 조리도 전체를 한 번에 끓이고 치우는 작업이 반복됐다. 한국 사람들이라 쌀밥과 국은 조식과 석식에 무조건 먹어야 했다. 중식만 행동식으로 대체됐다. 그래도 이번엔 5명뿐이라 그나마 양을 줄여 준비할 수 있었지만, 열외 되는 인원 없이 7명이 한 텐트에서 식사를 해야 했다면 쉽지 않은 일일 것 같았다. "최대심박수 갱신"
C3까지 오르는 길은 역시 쉽지 않았다. 기록을 보니 시간당 약 1km를 운행했다(평지라면 가볍게 걸어도 10분이면 도착할 거리인데 한 시간이 걸리다니…). 전날까지는 컨디션이 괜찮았다. 그래서 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중후반 약 2.5km를 지난 지점에서부터(이 지점의 경사도는 각도로 약 70도 정도다)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하더니 150bpm이던 심박이 180bpm으로 올라간 후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더니 3km 지점에서는 최대심박 204bpm을 가리켰다.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고산에서 느껴보지 못한 심박수가 측정됐다. 불안한 마 음에 운행을 멈출 수밖에 없었고, 아니 멈추지 않으면 쓰러질 것만 같았다. 오름을 멈춘 후 가슴을 두드리면서 한참이 안정되길 기다렸다. 운행을 종료한 후 가민(Garmin) 기록을 확인하니 약 300m 남은 구간에서 평균 심박수가 190bpm에 육박했다. 2차 상승부터 설상면에서 스텝은 크램폰을 신고 설벽을 따라 비스듬하게 오르며 발을 바꾸는 플랫 풋팅(flat-footing)방법이 가장 편했다. 1차 상승에서는 이 자세를 제대로 취하지 못하고 호흡도 안정적이지 못해서 체력 소모가 심했다. 요령도 없었지만, 호흡도 거칠었다. 플랫 풋팅(flat-footing) 자세로 스틱을 집고 설상면에 난 길을 따라 방향을 바꿔가며 오르는데 하체 데미지가 1차 때 보다 훨씬 덜했고, 발과 발목 통증도 없었다.
C3로 오르는 길
"고도 적응을 위해서 움직여라!"
김대장님이 수시로 알려주신 고도 적응에 도움 되는 행동 중 하나는 ‘움직여라’이다. C3에 올라온 것이 나름대로 대견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슬슬 고산병 증세가 오는 것 같다. 손발이 저린 것은 이미 시작되어 있었고, 중식 후에는 얼굴과 두피까지 저릿했다. 이게 또 웃긴 게 고산병 증세가 온 것 같으면 멘탈도 살짝씩 나가주신다. 희한하다(난 더 안될 것 같아…. 라는). 주문이라도 걸듯 머릿속이 나약한 단어로 차오른다. 낮잠은 독이라는 김대장님의 지침으로 C3에서 정상 방향 반대쪽으로 이어진 능선의 끝(그리 멀지 않다) 라즈델라야(Razdelraya 6,148m) 언덕까지 고도 적응 산책에 나선다. 약 1시간 정도 걸려 다녀왔지만, 조금
나아지는 것 같다가도 텐트 안으로 들어오면 눕고만 싶어진다. C3에서는 가이드와 같은 텐트를 사용했다. 또 텐트 안 수납 주머니에는 누가 놓고 갔는지 알 수 없는 유용한 식량과 휴지 등이 들어 있었다(라면, 과자, 커피, 차 등). 가이드와 같은 텐트를 사용한 것은 내겐 행운이었다. 식사를 위해 연수 형과 상국 형이 머무는 텐트로 넘어가지 않아도 가이드가 눈을 퍼와 물과 차를 끓여주고, 식사 때에는 라면도 끓여주는 등 상태가 좋지 않은 날 옆에서 챙겨줬기 때문이었다. 고산병 증세로 눕고만 싶기도 했지만, 오늘 밤 정상 등정을 위해 조금 일찍 잠을 청한다(18:30 취침 시작). <엄재원 대원>
06:30 기상→07:30 아침 식사→08:30 정리 후 등반 준비 새벽부터 바람이 심하게 분다. 구름도 많다. 아침 일찍 기상했다. 식수가 많이 필요하다. 어제 저녁 코펠에 남아 있던 물이 얼었다. 코펠, 컵을 들고 샘터로 향했다. 가는 길에 조선이공대팀에서 피켈을 빌렸다. 살짝 얼어 있는 얼음을 깨고 물을 받았다. 많은 양의 물을 계속 끓이다 보니 가스가 많이 사용됐다. 여유분을 많이 가지고 와서 다행이다. 혹시 부족하더라도 캠프 매니저가 가지고 있는 쓰던 가스를 얻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오니시로 밥을 하고 된장찌개를 끓여다. 건조 된장찌개의 건더기들이 잘 풀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최대한 끓인 후 오니시 밥과 함께 먹었다. 맛보다는 체력. 5명의 대원들이 한 텐트 안에서 식사를 했다. 비좁았지만 둘러 앉아 먹기에는 괜찮았다. 식사를 마친 후 개인 장비 및 공용 장비를 정리했다. C3에서 사용할 짐 이외는 C2에 보관했다. C2 캠프 마스터 텐트에 데포할 수 있었다. 침낭, 매트, 우모복 그리고 등반 장비가 전부였고 나머지는 공용 식량과 행동식이다. C3에서 1박을 하고 정상 등정 후에는 바로 C2또는 C1으로 복귀할 계획이었다. 버너, 코펠, 가스는 저번 고소적응 때 C3에 데포 시켜 놓았다. 침낭이나 우모복을 보관해 놓은 대원들도 있다.
09:00 C3로 출발→12:00 C3 도착→12:30 식사 준비→14:00 점심 장비를 캠프 마스터 텐트에 데포를 하고 오전 9시쯤 C3로 대원들이 출발했다. 컨디션 조절을 위해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오르기 시작했다. 능선까지 오르는 동안은 큰 무리 없이 모두가 쉽게 올랐으며, 능선 길 쉼터에서 쉬고 있는 조선이공대팀을 만났다. 우리팀 보다 조금 일찍 출발을 했다고 한다. C3 경사면 봉우리를 바라보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같이 사진도 찍으면서 우리팀도 같이 휴식을 취했다. 처음 힘들어서 올라오지 못했던 엄재원 대원의 상태가 많이 좋아 보인다. 처음과 다르게 이탈없이 잘 걷고 있다. 쉼터에서 C3 텐트까지는 60~70도에 가까운 경사로 설사면이다. 이상국 대원과 김미곤 대장이 먼저 오르기 시작하고 성년수 대원, 엄재원 대원, 김성은 대원이 그 뒤를 따랐다.
12:00 C3 도착→12:30 눈을 떠와서 식사 준비→14:00 점심 식사 팀원 6명 모두 안전하게 C3에 도착했다. 봉우리로 올라서는 길에는 아직도 행렬이 늘어서 있다. 이전 보다는 더 짧은 시간에 모든 대원들이 도착했다. 일부 대원들이 체력 소모로 조금 힘들어 했지만 양호한
상태였다. 김미곤 대장, 김성은 대원이 한 조, 성년수 대원, 이상국 대원이 한 조 그리고 엄재원 대원과 후세인 가이드가 한 조로 나눠 텐트를 배정했다. C3 텐트는 눈 위에 설치되어 있어 녹은 눈이 텐트를 적셔서 침낭을 적시기도 했다. 성년수 대원, 이상국 대원 텐트를 식당으로 정하고 음식 준비 및 식사를 그곳에서 모두 진행했다. C3는 따로 빙하수를 구할 수 없으며, 눈을 녹여서 식수를 만들어야 했다. 침낭 등이 젖지 않게 쌓던 비닐과 코펠을 챙겨 눈을 뜨기 위해 봉우리 정상으로 향했다. 후세인 가이드도 물이 필요해서 후세인과 이상국 대원이 눈을 뜨러 갔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비교적 깨끗한 공간의 눈을 코펠과 삽으로 한가득 담아 텐트로 돌아갔다. 대원들은 개인 짐을 풀어 잠자리를 준비하거나 잠깐 취침을 하고 있다. 김성은 대원은 매트를 챙기지 못해 김미곤 대장이 조선이공대팀에서 하나 빌려 오기도 했다.
점심 식사와 차를 마시기 위해서 대략 2리터 이상의 물을 만들어야 했다. 눈을 코펠에 넣고 숟가락으로 계속 저어주며 물을 만들었다. 30여분 정도 지나자 어느 정도 식사를 위한 식수를 만들 수 있었다. 오니시로 밥을 하고 콩비지를 끓였다. 김미곤 대장을 제외하고는 대원들이 제대로 먹지를 못했다. 먹는 둥 마는 둥 식사 자리를 치우고 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우리 텐트위에 C2에서 만난 다른 팀들도 속속 도착했고 서로의 정상 출발 일정을 물었다. 김미곤 대장도 조선이공대팀의 일정과 상태를 체크했다. 우리팀은 오늘 저녁 11시 30분 정상을 향해 출발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출발 시간에 맞추기 위해 물과 식사를 미리 준비해 두어야 했다. 잠도 좀 자야 한다. 물과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대원들은 시간이 많이 촉박했다.
15:00 식수 만들기→16:00 휴식 대원들이 식수용으로 사용할 눈을 퍼와서 녹이기 시작했다. 버너를 2개를 사용해서 1시간여 동안 5리터 정도의 물을 만들었다. 식사 전에 끓여서 사용할 수 있게 여유 있게 만들었다. 물을 끓인 후 장비를 정리하고 잠깐의 수면을 취했다. C3에서는 우모복을 모두 착용하고 취침을 해서 무게를 줄이기 위해 침낭을 2인 1조로 준비했다. 1인 1개씩 준비한 대원도 있었지만 성년수 대원, 이상국 대원 조는 침낭 1개로 펼쳐서 같이 사용했다.
21:00 기상→22:30 식사→23:30 정상으로 출발 저녁 9시 식당 텐트의 이상국 대원은 다른 대원들 보다 1시간 반 전에 기상해서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좀 더 휴식을 취할 시간인데 성년수 대원이 피해를 봤다.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깼다. 알파미를 끓인 죽, 콩비지, 보노스프가 준비되었다. 식사를 하기 위해 한 두 명씩 텐트로 모였으며, 일부 대원은 스프만으로 저녁 식사를 대체했다. 6,100m의 고지대이고 저녁 늦은 시간이다 보니 음식 섭취가 어려웠다. 대신 물처럼 쉽게 마실 수 있는 스프가 그나마 먹기 편했다. 개인별 600m 보온통에 따뜻한 물을 챙기고 출발 준비를 했다. 저녁 11시 30분에 출발을 하기로 하고 우모복과 등반 장비를 점검했다. 후세인 가이드, 엄재원 대원, 김성은 대원, 성년수 대원, 이상국 대원 그리고 김미곤 대장 순서로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밤 12시 C3 텐트 밖은 강한 바람과 눈이 흩날렸다. 영하 20도의 추위를 뚫고 원정대가 정상으로 떠났다. 강추위를 조금이라도 피하기 위해 조선이공대 팀은 10일 새벽 3시에 출발을 한다. 우리팀 보다 3시간 늦은 출발이다. 모든 출발의 결정은 등반 대장의 몫이다. <이상국 대원>
▲ 8/10(20일차) •C3-SUMMIT-C3 : 정상 등정일 •거리 2.08km, 시간 2시간 12분, 상승고도 222m, 하강고도 217m •최저해발 6,022m, 최고해발 6,121m •경로 링크 : Garmin Connect
8/9. 23:45 전 대원 정상을 향해 출발 → 09:20 정상 등정(사진촬영시각 09:50~10:00) → 16:30 하산 완료(아쉽지만 기록이 정상엘 가지 못해 이동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정상 등정"
"우리는 원정대다."
"핑곗거리가 많다."
8/9일 자정이 다 된 시각 원정대 5인과 가이드 1인은 정상을 향해 출발한다. 텐트 벤틸에 걸어둔 아날로그 온도계는 -18도를 가리키고 있다. 바람도 강하게 불고 있어서 체감온도는 -30도 이하라고 얘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대원별 각자 가진 장비 중 가장 든든한 장비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장하고, 뜨겁게 데운 물을 보온병에 채운다. 김대장님이 대원들 상태를 점검하고, 출발 순서를 정해주신다. 선두부터 [가이드-엄재원-김성은-성연수-이상국-김미곤] 순이다(컨디션이 안 좋은 순서 같다). C3 능선을 출발한 후 약 10분 정도를 걸으면 다운이 시작되는데, 고도 약 6,000m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오기를 두 번 반복한 후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내 기록은 여기까지다. 출발한 후 약 1km 지점부터 돌아서야 했으니까…. (분하다, 정상에 도달하는 GPX 운행기록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한 번 더 오리라)
우리는 과정과 결과를 남겨야 하는 원정대다. 따라서 모든 행동은 그에 대한 책임이 따르고, 시작부터 일정이 종료될 때까지의 모든 기록엔 왜곡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정상 등정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등정에 성공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전에 정한 룰을 지키고 대장의 지시를 따라야 하며, 팀원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출발 후 두 번째 오르막부터 컨디션이 떨어졌다. 고작 30분을 운행한 지점이었다(거리 약 1km). 아니다 한마디로 ‘쫄았다’가 맞다. 눈에 보이는 건 앞서가는 가이드와 형들의 헤드랜턴 불빛뿐이었고, 느껴지는 건 몸을 휘청이게 만드는 강력 한 바람과 얼굴을 때리는 싸라기눈뿐이었다(추위는 덤). 거기에다 배낭 웨빙이 바람에 날려 눈을 때리는 바람에 눈도 제대로 뜰 수가 없었고, 타지키스탄과 레닌봉 정상 사이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정말 강력했다(남동쪽에서 불어오는). 가이드 뒤를 쫓아 오르던 나는 그의 페이스를 맞추기 어려워져 형들에게 먼저 가시라 손짓하고 나니 내 뒤엔 김대장님만 남아 있었다. 속도가 안 난다. 다리는 무겁기만 하고 햄스트링에서는 쥐가 올라오는 느낌이다
속도가 느린 탓인지 발가락도 시려온다. 김대장님이 '재원아 이 속도로는 정상에 못 가던가 가도 못 돌아온다. 좀 더 빨라 가보자' 말씀하신다. 알겠다고 대답은 하지만 5보를 걸으면 10초는 쉬어야 했다.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걸어보지만 2번의 깊은 호흡에 1보의 걸음밖에 걷질 못했다. 얼마 못 가 다시 김대장님이 뒤에서 말씀하신다 "재원아, 내려가야겠다, 이 속도로는 위험하다." 그렇게 두 번의 거절과 두 번의 회유(?) 끝에 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돌아 내려오면서 몇 번을 뒤돌아보았다. 형들이 비추는 랜턴 불빛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 희미해지고, 들리는 건 바람 소리뿐이다. 가끔 정상을 향해 출발하는 불빛과 교차하지만, 인사를 나누거나 눈을 마주칠 기분은 아니었다. 돌아오는 길에서도 배낭의 웨빙은 내 얼굴과 눈을 때리고 있었고, 난 몇 번을 쉬어야 했다. 기분이 더러웠다. 모든 게 싫어졌고 비뚤어지는 배낭 어깨끈도 짜증이 났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적어도 6,300m 정도는 올라갔다고 생각했지만, 기록을 보니 가민 최고고도는 해발 6,121m였다. C3 텐트로 돌아와 그대로 뻗어버렸다. 얼굴 저림은 더 심해지고, 졸음도 쏟아진다. 그런데, 새벽 4~5시 즈음이었을까? 갑자기 가이드가 텐트 안으로 들어온다. 연수형을 데리고 내려온 것이다. 추후 연수 형에게 들은 얘기지만 연수 형은 스스로 이번엔 여기까지라고 생각하고 돌아섰다고 한다. 뭔가 질척이지 않고 멋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텐트 안으로 들어온 가이드는 추위에 덜덜 떨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인지 침낭, 우모다운, 우모바지을 갖고 올라오지 않았다. 그나마 오버미트를 준비하긴 했지만, 정상 등정 중 바람에 날려 잃어버렸다고 한다. 덜덜 떨고 있는 가이드에게 내 우모다운과 우모바지, 오버미트를 건네주고, 오버미트는 발에 신어도 된다고 알려주었다. 가이드는 연신 고맙고 따뜻하다며 감사를 표하더니 모자까지 푹 덮어쓰고 이내 잠이 들어버렸다.
정상에서 바라본 레닌봉의 스카이 라인들
그렇게 아침이 된 것 같다. 사실 이때는 고산병 증세와 잠에 취해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김대장님의 무전 시각은 09:20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 깨어보니 연수 형이 김대장님과 무전을 주고 받고 있었다. 경이었다. 상국 형과 정상에 올랐다는 무전이었다. 순간 상국 형이라도 정상에 서서 너무나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후 상국 형 눈이 좋지 않다는 무전이 이어졌다. 설맹이 온 것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국 형을 하산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가이드가 다시 올라가야 했다. 가이드는 혼잣말로 '두번이나 올라가다니 이건 정말 이상한 일이야'라며 한숨을 쉬며 중얼거린다. 수고가 많다고 짧은 영어로 한마디 하고 가이드를 보낸다. 이후 추가로 들어온 소식은 성은 형이 발목을 접질려서 정상에 서지 못했고 부축할 가이드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무전이었다. 결국 우리 대원들을 위해 대행사의 C3 직원까지 동원되고, 연수 형도 덩달아 잠들지 못하고 대원들을 마중 나가야 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이 와중에도 나는 잠에 취해 비몽사몽 하며 텐트를 지키고 있었다.
두번째 봉우리를 넘어서 평탄한 능선길에 들어섰다. 저 멀리 일출이 보이기 시작했다. 5시쯤 되었다. 김성은 대원의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인다. 쏟아지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걷는 속도도 현저하게 느려졌다. 잠깐 바람을 피하며 쉬기 위해 설동 비슷한 곳에서 휴식을 취했다. 6,500m 정도의 고지에서 30분 정도의 긴 휴식
16:30 정상으로 출발했던 대원들이 C3로 복귀했다. 상국 형은 설맹이 와서 가이드와 안자일렌으로 내려왔고, 성은 형은 김대장님과 대행사 셀파의 부축으로 절뚝이며 C3로 내려왔다. 다들 지쳐있었고, 제대로 먹지도 못한채 각자 텐트에 들어가 쓰러져 잠이 들 수밖에 없었다. 고산등 반, 누구도 그 결과를 예상할 수 없는 곳인 것 같다. <엄재원 대원>
바람이 불고 눈이 날리는 영하 20도 정도의 날씨 속에 원정대가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우모복을 착용하고 고소화와 장갑에 오버미트까지 덮어썼다. C3 봉우리에서 다음 봉우리로 오르기 위해 한참을 내려갔다. 다시 설산 비탈을 오르기 시작했다. 첫 봉우리를 오르는 구간이다. 대원들이 눈보라와 추위이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대열을 맞춰 이동하고 있던 중 후세인 가이드가 오버미트를 떨어트리는 실수를 범했다. 장갑을 찾기 위해 쏜살같이 설사면을 내려가 봤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그냥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가지 않아 엄재원 대원이 고소로 인해 걷는데 고통을 많이 느끼면서 뒤쳐지기 시작했다. 결국 엄재원 대원은 C3로 혼자 이동을 하기로하고 아쉽지만 정상 등반을 포기해야 했다.
등반 중 대열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상국 대원, 김성은 대원, 김미곤 대장, 성년수 대원, 후세인 가이드 순으로 두번째 봉우리로 이동해갔다. 두번째 봉우리를 오르는 중에도 바람이 잦아들지 않았다. 강추위에 성년수 대원이 등반 포기 의사를 밝혔다. 동상과 체력 고갈 등으로 인해 등반을 멈추기로 결정하고 후세인 가이드와 함께 C3로 돌아갔다. 이제 3명이 남았다. 김미곤 대장, 김성은 대원, 이상국 대원. 바람도 불고 눈발이 날려 등반선을 찾기가 힘들었다. 우리팀이 오늘 첫 등반을 나선 팀인 것 같다. 설사면을 계속 오르다 급경사와 마주쳤을 때 그곳엔 자일이 늘어져 있었다. 약 10여미터 정도 구간을 주마링으로 올라야 했다. 이상국 대원은 설사면 비탈에서 안전벨트를 착용 후 주마로 이동했고 아래 대원들에게 장비 착용을 전달했다. 김미곤 대장은 피켈을 찍으며 쉽게 설사면을 올라섰고 김성은 대원이 힘들게 주마로 봉우리 정상으로 올라섰다. 이 구간에서 김성은 대원은 많은 체력 소모를 했고 손가락 동상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마침내 정상에 도착한 대원들이 등정 기념 깃발을 꺼내고 있다.
시간이었다. 따뜻한 물과 행동식으로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야 했다. 김성은 대원은 계속 뒤로 눕기 만을 반복하고 체력 회복을 못하고 있었다. 30분의 오랜 시간을 쉬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이상국 대원이 선두에 그리고 김미곤 대장이 김성은 대원과 같이 천천히 이동을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정상까지는 끝없이 지루한 능선 길이다. 지구력이 필요한 구간이다. 정상이 보이는 능선 구간부터는 경사가 급하지 않은 능선으로 체력과 지구력으로 버텨야 했다. 호흡에 맞춰 한 걸음 한 걸음 페이스를 유지하며 걸었다. 그런데 점점 김성은 대원과 거리가 멀어지며 보이지 않았다. 30여분 정도를 천천히 걸으며 기다려 보았지만 결국 김성은 대원은 오지 않았고 C3로 복귀를 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이미 해가 떠서 밝아지고 햇살이 비추기 시작해서 복귀하기에는 크게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기다림을 뒤로하고 김미곤 대장과 이상국 대원이 정상을 향해 등반을 시작했다. 이상국 대원이 앞서 걷고 뒤에서 김미곤 대장이 등반 길 등을 알려주며 이동했다. 해를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이동을 하다 보니 눈에 부담이 엄청나게 됐다. 결국 정상을 얼마 남겨 놓지 않고 이상국 대원이 설맹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8시쯤 무전으로 곧 정상에 도착할 것이라고 김미곤 대장이 캠프에 전달했다. 이후 김미곤 대장이 먼저 정상에 도착했다. 이상국 대원은 등반길을 제대로 찾지 못해서 걷는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으며, 김미곤 대장과 많이 멀어지게 되었다. 등반길을 찾기 보다는 정상 봉우리를 바라보며 조금씩 걸으며 다시 속도를 냈다. 이후 뒤에 오던 프랑스 등반가를 따라 정상으로 이동했다. 정상에서 김미곤 대장은 30여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미곤 대장은 8시 50분, 이상국 대원은 9시 20분경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10시간여 만에 정상에 오른 것이다. 무전으로 정상 소식을 캠프에 전했다. "정상이다." 30여분 동안 사진 촬영과 정상 주위를 둘러본다. 이곳에 오르기까지 지난 훈련과 기다림의 시간을 뒤돌아본다. 정상에는 서울시연맹팀 두 명과 프랑스인 한 명이 전부다. 김미곤 대장 정상 사진을 몇 컷 촬영하고 프랑스에서 온 등반가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스폰서, 산악회 등의 깃발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엄재원 대원의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촬영했다. 하지만 하산 후에 확인한 결과 프랑스 친구가 촬영 모드를 조리개 모드로 놓고 촬영하는 바람에 아쉽지만 제대로 된 정상 사진을 얻지 못했다.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 또한 엉망이었다. 사진 촬영을 한 후 하산 준비를 했다. 짧은 하강 구간이 있기에 안전벨트와 장비를 착용하고 하산을 시작했다. 강한 햇살로 인해 핸드폰 액정도 제대로 보지 못한터라 안전벨트 고리에 끈을 끼우는 것마저 김미곤 대장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C3로 하산 중인 김미곤 대장과 김성은 대원
10시경 하산을 시작했다. 김미곤 대장이 선두에 서고 이상국 대원이 뒤를 따랐다. 한 시간여쯤 하산했을 때 정상 등반을 하고 있는 윤중현 대장
김천 대원을 만났다. 두 분은 곧 정상에 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조선이공대팀은 그곳에서 거의 2시간 후 12시쯤 정상 등정에 성공했다. 조선이공대팀과 헤어진 후 김미곤 대장은 김성은 대원을 지원하기 위해서 속보로 내려갔으며, 이상국 대원은 설맹이 심해져 하산길을 헤매기 시작했다. 1시간여 쯤 하산을 못하고 정상 등정 후 하산하는 팀을 기다렸다. 악사이캠프에 머무는 외국팀을 만났고 그들 뒤를 따라 30여분을 이동했다. 외국팀에게 아시아아웃도어 캠프로 무전을 요청했으며, 가이드를 보내 줄 것을 부탁했다. 하지만 무전 교신이 원활하지 않아 마음만 답답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조선이공대팀 윤중현 대장, 김천 대원이 나타났다. 정상 등정 후 하산을 하고 있었고 2봉 봉우리 하강 전 지점에서 만났다. 조선이공대팀이 같이 하산을 할 수 있도록 이상국 대원을 도와줬다. 6,700m 이상의 고산에서 누군가를 부축해서 내려간다는 것이 왠만한 체력으로는 하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윤중현 대장이 확보줄을 연결해서 팔짱을 끼우고 길을 안내했다. 좌측, 우측 번갈아 지시를 하며 힘겹게 하산을 했다. 윤중현 대장도 체력 소모가 많은 상태에서 가이드에게 부탁하지 않고 직접 리딩을 해줘서 너무 감사한 마음과 죄송한 마음이 교차한다. 위험 구간을 벗어나 완만한 구간에서 휴식을 취했다. 이상국 대원은 어제 저녁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다. 이에 윤중현 대장이 파워젤을 하나 뜯어 이상국 대원 입에 넣어줬다. 본인도 많이 힘든 상태인데 끝까지 챙겨 주는 것이 진정한 산악인의 동료애인 듯하다. 다행히 아시아아웃도어 캠프와 무전 연락이 되어 후세인 가이드가 이상국 대원 마중을 나오기로 했다.
김성은 대원을 챙기기 위해서 먼저 하산했던 김미곤 대장은 혼자서 김성은 대원을 데리고 힘겹게 하산을 했다. 잠에 취해 주저 앉고 힘들어 하는 대원을 어렵게 데리고 C3로 복귀했다. 김성은 대원 체력이 고갈된 상태여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후세인 가이드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이상국 대원 또한 도움이 필요해서 후세인 가이드는 이상국 대원 하산을 돕도록 했다. 봉우리를 내려와 능선길에서 후세인 가이드를 만났으며, 등정 축하 콜라 한 병을 내민다. 당 회복을 위한 최고의 음료이며 약이었다. 조선이공대팀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후세인 가이드와 확보줄을 연결하고 C3로 이동했다.
오후 4시쯤 C3 봉우리 아래에 도착했다. 조선이공대팀이 쉬고 있었다. 오늘의 마지막 오름 구간이다. 멀리서 성년수 대원이 마중을 나와 커피와 물을 준다. 시원하게 물을 한 잔 마시고 후세인 가이드 부축을 받아 30여분쯤 후 텐트에 도착했다. 김미곤 대장과 김성은 대원은 먼저 도착해 있었다. 김성은 대원은 텐트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발목을 접지르고 약간의 설맹 증상으로 어렵게 C3로 복귀했다. 정상으로 출발한지 17시간만에 모두 안전하게 C3로 복귀했다. 저녁은 각자 행동식 등으로 대체하고 휴식을 취했다. 계획대로라면 C2나 C1에서 1박을 해야 했으나 역시 계획대로 진행되기는 어려웠다. C3에서 1박을 한 후 내일은 BC까지 이동할 예정이다. 설맹 치료를 위해서 독일 의사분이 C2에서 C3까지 방문을 했다. 눈에 설맹 치료를 위해 약을 묻힌 거즈로 눈을 덮어주었고 거즈위로 비니를 뒤집어쓰고 잠을 청했다. 치료를 위해 먼 길을 찾아와준 의사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이상국 대원>
▲8/11(21일차) •C3-C2-C1-BC : 하강 •거리 21.75km, 시간 9시간 37분, 상승고도 325m, 하강고도 2,790m •최저해발 3,617m, 최고해발 6,107m •경로 링크 : Garmin Connect
06:00 이른 아침 C3에서 BC까지 하산하기로 한다. 아침 기온이 낮아(-10도) 우모복 상의를 입고 출발한다.
07:20 출발 성은 형 컨디션이 좋지 않다. 김대장님이 앞뒤를 지켜보며 케어를 하고 있지만, 발목 부상과 체력 소진으로 속도가 나지 않고 제대로 걷기도 어려워 보였다. 그리고 C1에서야 알게 된 것인데 정상 등반 중 성은 형 손가락 8개에 동상에 걸렸다는 사실이다. 설상가상으로 그중 몇 개는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왜 어제 대원들에게 얘기하지 않았는지 안타까웠다. 의료 장비에는 동상연고와 소염진통제 등이 있어서 미리 치료했다면 향후 치료가 더욱 쉬웠을 것인데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검은색 손가락장갑을 벗기자 손가락 6개 정도는 끝이 검게 변해있었고, 살이 벗겨진 부분도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C1에 간호사로 보이는 외국인이 있어서 간단하게 응급조치와 주사 치료를 한 후 C1~BC 까지 최대한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말(horse)을 타고 이동하기로 한다. 덩달아 보호자(?) 의 자격으로 내가 함께 타고 내려간다. 2차 상승부터 말(horse) 좀 타보겠다고 원주민과 딜(deal)까지 하면서 노래를 불러서였는지 형들이 배려해준 눈치였다.
16:50 BC 도착 하산 후 장대장님께 성은 형 상태를 보고 드리고, 장대장님과 같은 숙소 침대에 눕게 했다. 난 BC 관계자에게 응급치료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등 이리저리 분주하기만 하다.
17:10 후발대 도착 C1에서 걸어 내려오는 형들이 의외로 빠르게 하산했다. 혼자 어리벙벙하게 분주해 하다가 형들이 오니 안심이 된다. 김대장님은 전라도 광주에 있는 한의사에게 상태를 고지하고, BC 관계자는 인근 '악사이 트레블'로 성은 형을 치료하기 위해 장대장님, 김대장님이 동행한다. 몇 시간이 지난 후 BC로 돌아와 치료와 관련하여 들은 얘기로는 정맥 주사를 맞았고, 아스피린을 처방받아 왔다고 했다. 그리고 BC에 머무는 동안에는 매일 '악사이 트레블'로 넘어와서 치료받길 권고했다고 했다. '말(horse)을 타고 내려오니까 편하다?'
말(?) 생각한 그것만큼 편하지 않았다. 걸어서 내려가야 하는 다리 근육과 관절을 쓰지 않을 뿐이었다. 말을 통한 이동은 말 한 마리에 마부까지 2명이 타야 하므로 안장은 좁았고, 앞으로 당겨 앉아야 하므로 무릎 각도가 많이 접힌 상태에서 약 2시간을 내려와야 했기에 무릎에 손상이 컸다. 게다가 말 앞다리 관절이 계속 신발에 닿는 바람에 말(horse)님이 불편할까봐 뒤꿈치를 더 당겨 앉다 보니
무릎에 하중이 많이 실렸다. 그러다보니 편하게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말 다리는 자동차 또는 이륜차와 같은 서스펜션이 전혀 없고, 사람처럼 관절을 통한 충격 흡수가 전혀 되지 않았기에 말의 움직임에 따라 엉덩이를 들썩 들썩 해야 했으므로 무릎과 허벅지 안쪽 근육에 상당한 데미지가 쌓였다. 다음 날 아침 허벅지 안쪽에는 근육통이 생길 정도였다. <엄재원 대원>
아침 일찍 기상을 했다. 이상국 대원은 고소로 인한 설맹에서 회복되어 다행히 혼자서 이동이 가능했다. 엄재원 대원, 성년수 대원은 6,100m에서 고소에 완전 적응을 한 듯 가벼워 보인다. 어제 하산 중 고생을 한 김성은 대원이 아직 체력 회복을 하지 못한 듯 힘들어한다. 아침 식사 없이 각자 행동식과 물로 요기를 하고 7시 20분 C2로 출발했다.
C3 봉우리 아래로 산 밑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엄청나게 큰 규모의 운무가 펼쳐졌다. 온통 흰 세상에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설사면을 천천히 내려간다. 모두들 사진 촬영에 바쁘다. 레닌봉 원정 일정의 끝이 다가오면서 대원들 마음이 홀가분할 것 같다. 1시간 30분쯤 후 C2에 도착해서 매니저 텐트에 보관해두었던 짐을 찾았다. 꽤 많은 양의 짐이다. 개인 짐을 더 채워서 이동하기에는 부담이 될 수 있어 포터를 고용해서 짐을 내리기로 했다. 1kg 당 10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C2에 도착한지 30여분이 지나서야 마지막으로 김성은 대원이 도착을 한다. 체력이 회복되지 않아 힘들어 한다. 하지만 여기서 더 지체할 수 없고 곧바로 C1으로 이동을 해야 했다. C1에서 점심을 먹고 베이스캠프로 복귀할 예정이다. 20kg 정도의 짐을 포터에 맡긴 후 각자 배낭을 최소화해서 C1으로 이동했다.
레닌봉 정상을 뒤로하고 마지막 하산길이다. 구름도 없고 바람도 불지 않고 하산길 원정대원들을 위로라도 하듯이 아침 햇살이 따사로웠다. 김미곤 대장, 성년수 대원, 엄재원 대원이 선두 그룹으로 이동하고 후세인 가이드와 김성은 대원이 뒤를 이었다. 하강기 하강 구간을 지나며 전북산악구조대팀의 한 대원을 만났다. 고소로 인해 C1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김미곤 대장, 성년수 대원, 엄재원 대원이 먼저 C1에 도착을 하고 점심을 먹었다. 얼마 후 후세인 가이드와 김성은 대원이 도착을 했고 나쁜 소식이 전파되었다. 김성은 대원의 손가락 동상이 심한 상태였다. 설사면 하강지점에서 후세인 가이드에게 처음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하강하기에 손이 너무 불편했던 것이다. 손가락 동상은 11일 새벽 주마링 구간 이후에 온 것 같다고 김성은 대원이 말한다. 너무 늦게 이야기를 해서 모든 대원들이 할말을 잃었다. 일찍 이야기했으면 그나마 그에 맞는 조치를 취했을 텐데 일찍 대처하지 못 한 것이 끝내 아쉽다. C1에서 머무르던 간호사 자격이 있는 외국인을 통해 응급처치를 하고 김미곤 대장은 한국의 동상 전문가에게 상태 확인 등의 도움 요청을 했다. 점심식사 후 2시에 베이스캠프로 출발하기로 했으나 동상 치료로 인해 한 시간 늦췄다. 김성은 대원과 엄재원 대원은 말을 타고 하산하기로 하고 나머지 대원들이 대원들의 카고백을 정리한 후 출발하기로 했다.
모든 대원들의 짐을 말이 출발하는 곳으로 옮긴 후 악사이 캠프 쪽으로 오후 3시에 하산을 시작했다. 악사이 캠프에 들러 콜라 한 잔을 마신 후 여유 있게 걷기 시작했다. 김미곤 대장, 성년수 대원, 이상국 대원 모두 상태가 양호해서인지 그렇게 무리 없이 지프가 있는 입구까지 일찍 도착했다. 지프가 오기로 한 시간보다
30여분 더 일찍 도착을 한 듯하다. 지프를 타고 베이스캠프에 도착을 했고 원정대 팀원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게 됐다. 베이스캠프에서는 김성은 대원 동상 치료로 분주했다. 악사이캠프에는 치료가 가능한 의사가 상주하고 있었다. 다행히 악사이캠프에 있는 의사의 도움을 받아 응급 치료를 할 수 있었다. 소독과 수액을 맞고 캠프로 돌아왔다. 장세종 대장, 김미곤 대장, 곽노성 대원이 치료를 위해 동행해 주었다. 매일 1회씩 치료를 받으러 악사이캠프로 이동을 했다. 동상 진행 상태는 조금 더 두고 봐야 할 듯하다. 캠프식으로 저녁을 먹고 캠프 바에서 가볍게 맥주와 럼주로 회포를 풀고 잠자리에 들었다. 동상으로 인해 분위기는 어수선하지만 원정이 끝나가고 있었다. <이상국 대원>
▲8/12(22일차) •BC : 휴식
08:00 조식 대행사에서 조식 시간에 정상 등정 인증서를 발급했다. 정상 인증서는 김대장님과 상국 형이 받았고, 더불어 C3에 올라간 대원들에게도 라즈델라야(Razdelnaya 6,148m) 등정 인증서를 발급했다. C3 인증서는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라서 다들 기분이 좋았다(이거라도 건져가는구나!). 그랬다, 2차 상승 전까지 BC에 머무는 동안 조식때마다 외국팀들이 인증서라며 여러 명이 받길래 '정상 등정이 쉬운가? 했는데 이제 보니 C3 인증서를 함께 지급했던 것이었다.
12:00 정오 분위기가 좋지 않다. 성은 형 상태를 제대로 알 수 없었기에 다들 예민해진다. 먼저 귀국을 시켜야 하는지, 남은 일정을 같이 소화하고 다 같이 귀국 해야 하는지…. 회의가 다소 격앙되었지만, 함께 귀국하기로 결정되었고, 당사자도 그걸 원했다. 저녁엔 에너지 보충 차원에서 양(Sheep)을 또 잡기로 했다. 이번엔 BC 인근에 있는 현지인들에게 요리와 장소 제공까지 받기로 하고 연수 형이 가격 등 딜을 한다(조리 비용이 포함되어 지난번보다는 비용을 더 지불했지만 품질 및 장소가 좋아 모두 만족했다). 저녁을 먹으며 모두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이번 원정에 대한 간단한 리뷰의 시간도 가졌다.
'등반 리뷰' 그중 가이드의 이야기가 가장 객관적이었는데 리뷰의 주된 내용은 '우리와 만난 초반에는 걱정을 많이 했고, 팀원들의 등반 수준 및 기술이 천차만별이어서 어떻게 끌고 갈까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다행히 큰 사고 없이 하산을 완료하기는 했지만, 이런 산에 올 때는 더 많은 준비를 하는게 좋다'라는 리뷰였다. 가이드다운 리뷰였다.
BC 바에서 휴식 중인 이상국 대원(위)과 성년수, 엄재원 대원(아래)
나는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조금 더 힘을 냈더라면, 그 힘으로 조금 더 올라갔더라면, 더 고집을 부려 꾸역꾸역 올라갔더라면…. 그렇게 몇 차례의 건배를 나누며 밤은 깊어 간다. 23시가 되어서야 저녁 만찬은 종료되었고, 모두 든든하게 양고기로 배를 채웠지만 고기가 많이 남아 현지인들에게 나눠주고, 그래도 남아 고기와 간 등을 숙소로 가져왔다. <엄재원 대원>
*****
휴식일이지만 대원들이 아침 일찍 기상을 한다. 같이 등반을 했던 조선이공대팀이 오늘 아침 일찍 캠프를 떠나는 날이다. 김성은 대원, 엄재원 대원을 제외한 팀원들이 캠프 앞에 모여서 악사이트래블 캠프로 향했다. 밤새 김성은 대원도 잘 쉬었는지 모두들 동상 상태를 걱정해본다. 조선이공대팀은 7시 캠프를 떠날 예정이었으나 밴 준비가 늦어져서 조금 늦게 출발했다. 모든 등반 일정을 끝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나서인지 밝은 표정에 활기찬 모습이다. 출국 일정 때문에 일찍 캠프를 떠나야 해서 같이 회포도 풀지 못 한 게 못내 아쉽다. 단체 사진 촬영을 하고 서로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오시를 향해 밴이 출발했다. 현지 악사이 트래블 캠프에서 근무하는 몇 명의 어린 여학생들은 헤어짐에 눈물을 흘리는 그 마음이 너무 순수하다.
아시아아웃도어 다이닝룸으로 돌아와서 캠프식으로 아침을 먹었다. 소시지, 빵, 스프 등의 간편식이다. 캠프 손님들의 등반 복귀 후 아침 식사 시간에 간단한 세레모니를 열었다. 등반 인증서와 기념품을 전달하는 시간이다. 캠프 매니저가 전날 성년수 대원, 엄재원 대원과 함께 인증서에 기입할 등정자들의 이름을 열심히 작성했다. C2, C3, 정상에 등정한 이들 모두에게 인증서를 주었다. 처음 캠프에 와서 본 세레모니에서 너무 많은 이들이 인증서를 받아서 정상 등정자가 엄청 많은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C2, C3 등정자 모두에게 전달해서 많았던 것이다. 김미곤 대장과 이상국 대원이 정상 인증서와 기념품을 받았다. 그렇게 등정의 마지막 세레모니가 끝났다.
BC에서 등정 축하 세레모니
아침을 먹고 차를 마시며 햇살을 즐기며 휴식을 취했다. 김성은 대원이 오전 중에 악사이 캠프에 치료를 받으러 가야 하는 일정 때문에 혼선이 빚어졌다. 오전인지 오후인지 캠프 매니저가 횡설수설이다. 일단은 미지근한 물에 손을 담그고 붕대를 다시 감는다. 식사하기도 불편한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 성년수 대원, 이상국 대원이 동상 치료를 위해 먼저 한국으로 귀국시켜야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으며, 귀국 비행기까지 알아보는 상황으로 번졌다. 김미곤 대장과 장세종 대장은 최대한 캠프에서 치료를 하면서 같이
귀국하는 것이 더 환자에게는 심적으로 안정되고 팀 전체에게 좋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결국 전체 회의를 열었고 대장의 직함까지 버리겠다는 격한 의견까지 오고 갔다. 많은 경험과 주위 의견에 따라 김미곤 대장과 장세종 대장의 의견대로 현재 예정된 일정대로 움직이는 것으로 결정했고 김성은 대원 또한 찬성 의견이었다. 동상이 더 깊어지지 않게 치료를 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이제 남은 대원들의 몫이었다.
내일까지 베이스캠프에서 휴식이다. 분위기 전환도 필요하고 원기 회복도 필요한 상황이다. 이번에는 양을 한 마리 사서 키르기스스탄 식으로 먹기로 했다. 베이스캠프에는 아시아아웃도어 지주 마담이 방문해 있었다. 점검을 위해서 비슈케크에서 왔다고 한다. 굉장히 짙은 화장을 하고 풍채가 후덕한 것이 귀부인 스타일이다. 성년수 대원, 곽노성 대원이 캠프 떠나는 일정과 정산 때문에 캠프 매니저를 바쁘게 찾아다녔다. 그리고 양 구매를 문의했고 지주 마담을 통해 캠프 아래에 있는 농장을 소개받았다. 유르트 4개 정도와 2층 컨테이너로 된 숙소가 있는 꽤 큰 규모의 농장이었다. 양을 잡아서 요리까지 해주는데 200달러 정도 비용이 지출되었다. 성년수 대원과 이상국 대원이 양을 잡는데 왔다갔다하며 도움도 주고 확인을 했다.
술과 콜라를 잔뜩 사 들고 저녁 파티를 위해 모든 팀원들이 유르트로 이동했다. 유르트 안에는 식사 상차림이 준비되어 있었고 넓고 포근했다. 양고기 살을 먼저 먹고 이어 내장, 간을 먹고 이후 현지인이 양머리 살을 발라주었다. 양이 너무 많아 고기의 반 이상을 농장에 나눠주고도 배불리 먹었다. 유르트 벽에는 농장 주인이 직접 잡은 여우 목도리가 전시되어 있었고 농장 안주인이 직접 만든 방석, 옷가지 등이 걸려있었다. 가죽으로 만든 방석은 꽤 따뜻하고 푹신했다. 술을 기울이며 어느덧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캠프로 돌아왔다. 남은 양고기는 포장을 해서 숙소로 가져왔다. <이상국 대원>
▲ 8/13(23일차) •BC : 휴식
여유가 있는 아침을 맞는다. 등반이 종료되어 마음이 편해서인지 BC 전경, 공기, 바람 등 모든 것이 여유롭고 평화롭다. BC에 내려와서부터는 다들 개인 정비의 시간을 갖는다. 샤워, 면도, 사진 및 자료 정리 등 13:00 어제 먹고 남은 양고기로 점심에 양고기 찜을 준비했다. 이번엔 소갈비 양념 소스에 매운 소스를 더해 칼칼한 양갈비 찜 요리가 완성되었다.
17:00 저녁엔 ‘악사이 트레블’에 베이스캠프를 구축한 ‘전북 산악구조대’ 원정팀의 초대로 어제와 같은 장소에서 또 양고기로 저녁을 대접받았다. 늘 그렇듯 우리는 사정없이 먹어 치운다.
21:00 숙소에 돌아와 연수형, 상국형과 가볍게 알코올 뒤풀이 하고 깊은 얘기를 나눈 후 뜨겁게 취침한다. <엄재원 대원>
저녁 만찬으로 인해 아침 기상이 늦어질 듯했으나 그렇지 않다. 다들 일찍 기상해서 아침 식사를 했다. 성년수 대원은 역시 새벽에 일찍 기상해서 주변 산책을 다녀왔다. 며칠 새 친해진 망아지 영상을 보여주며 자랑을 한다. 행정과 회계를 처리하는 대원들은 오전내 분주하다. 내일이면 이곳을 떠나게 되기 때문에 마지막 정산과 정리 작업들을 캠프 매니저와 처리해야 했다. 하지만 캠프매니저가 매번 취해 있어서 대화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술이 깨어 있는 오전 시간이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구매한 식량, 가스 등 정산 처리를 위해 성년수 대원과 곽노성 대원이 고생을 했다.
한가롭고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캠프 앞 텐트에 가이드와 몇몇의 대원이 온수샤워 후에 널부러졌다. 엄재원 대원은 이제 체력이 회복된 듯하다. 점심 식사 준비를 하겠다며 다이닝룸 안의 전용 키친으로 움직인다. 어제 먹다 남은 양고기와 소고기 양념소스로 식사를 준비할 계획이다. 엄재원 대원이 냄비에 양고기와 소고기 양념소스 그리고 사과를 잘라서 듬뿍 넣었다. 내일이면 이곳을 떠나기에 저녁까지 모든 음식들을 정리해야 했다. 엄재원 대원이 요리한 양고기 조림과 캠프식을 섞어서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모두들 만족한다. 그리고 전북산악구조대로부터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았다. 이른 아침에 전북산악구조대팀 단장님이 직접 양고기를 구하기 위해 수소문하던 중 성년수 대원을 만났고 어제 먹었던 농장을 소개했던 것이다. 전북산악구조대팀은 내일 C1으로 출발 전에 보양을 하려고 했으며, 기꺼이 우리팀도 만찬에 초대해 주셨다.
오후 시간에는 개별 짐들을 모두 패킹해야했다. 또한 다이닝룸에 있는 남은 식량과 장비를 정리해야 했다. 성년수 대원과 이상국 대원이 공동 식량과 장비 정리를 맡아 했다. 남은 장류와 조미료들 중 사용 가능한 것들은 박스에 담아 전북산악구조대팀에게 전달해주었다. 초콜렛, 단백질바 등의 행동식과 누룽지, 김 등을 다이닝룸에서 일하는 자매에게 모두 전달했다. 감사해하며 웃는 모습들이 천진난만하다. K-드라마에 빠져 한국에 대한 호감이 많고 대학에서 한국어를 배운다고 한다. 너무 많은 양의 행동식을 준비해온 것 같다. 손실이다. 적당한 양에 대한 계산이 필요할 듯하다. 내일이면 헤어져야 한다. 이것저것 부엌 살림도 빌려주고 설거지도 해주고 정말 고마운 자매다.
아침 햇살 속에 가이드, 지주마담과 함께
맥주, 럼주를 몇 병 사 들고 저녁 초대를 받은 유르트로 이동했다. 전북산악구조대팀 인원 9명과 우리팀 7명해서 전체 13명이 모였다. 푸짐한 양고기와 술로 양껏 먹고 마셨다. 전북산악구조대팀에서는 한국에서 공수해 오신 귀한 소주도 가져오셔서 나눠주셨다. 부디 정상 등정에 성공하시고 안전 등반하시기를 바라며 저녁 만찬을 마쳤다. 13명이 먹어도 부족하지 않은 넉넉한 저녁이었다.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악수를 나눈 후 각자 캠프로 복귀 했다. 이제 베이스캠프의 마지막 밤이 지나고 있다. 언제 다시 레닌봉을 오르기 위해 이곳에 올 수 있을지
모르기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 밤이었다. 숙소에서 마지막 술 잔을 기울이며 다음의 원정을 꿈꿔본다. <이상국 대원>
▲8/14(24일차) •BC-Osh(OSS)-비슈케크(FRU) : 이동
오늘은 BC를 떠나 다시 도시로 돌아간다. 등반 시즌 막바지라서 그런 것이겠지만, 초반 각국의 원정대원들로 북적북적하던 BC가 한산하다. 우리가 떠난 뒤 BC에 남은 팀은 한 팀 정도가 남은 것 같다. 긴장하며 상승을 기다리던 20일 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이곳에 공기와 바람 그리고 풍경 너무나 아름답고 그리울 것이다. 다시 올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최대한 몸으로 느끼며 담아 보려고 노력한다. 07:00 밴이 도착한다고 전달받았으나, 밴은 1시간 30분 뒤에나 도착했다. 각자 카고백과 개인 백팩을 챙겨 밖으로 내온 후 밴을 기다리며 관계자들과 기념사진도 찍고, 대원들과도 기념사진을 찍는다. 난 정상에서 펼쳐보지 못한 산악회 깃발도 펼쳐 김대장님과 상국 형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뭐 BC에서 찍은 사진도 나쁘지 않다.
08:30 BC-Osh(OSS)로 출발. 밴으로 5시간 걸려 오시 공항 도착. 처음 도착했던 7월 24일 오시(Osh)에서 BC로 들어가는 길은 중식 시간까지 포함해서 약 8시간이 걸렸는데, 되돌아가는 시간은 6시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BC로 들어가는 길엔 이것저것 구경도 하면서 높은 고도와 넓은 고원을 보며 신기해하기도 했는데, 돌아가는 길은 소변을 보기 위해 잠깐 멈춰 깨어 있을 뿐, 다들 녹초가 되어 잠들었다.
14:00 오시 공항에 도착해서야 공항 매점에서 패스트푸드 등으로 점심 해결했다. 역시 오시에 도착하니 한여름이었다. 출발 전 겨울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기에 백팩에 넣어둔 공항 패션으로 옷을 갈아입고, 세수도 한 번 하고 시원하게 비슈케크행 항공기를 기다린다.
16:40 비슈케크(BISHKEK)행 항공기 탑승, 올 때와 다르게 오시에서 1박을 하지 않고, 비슈케크로 향한다. 17:40 귀국을 위해 비슈케크 샤펠리스(Shah Palace) 호텔로 이동했다. 호텔까지는 약 30분 소요되었고, 도착하자마자 짐 풀고 호텔 매니저에게 안내받은 PUB 집에서 바비큐 세트로 식사를 마쳤는데 오래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약 40분 기다림), 음식점명은 'Pinta_PUB'이었는데 그간 비슈케크에서 먹은 식사 중 최고였다. 주요리는 양고기와 양의 내장으로 만든 순대(?), 소고기, 닭고기 등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꼬치에 끼워 숯불 향이 가득하게 구워서 내왔는데 향이 기가 막혔다. 거기에 호박, 토마토, 양파, 빵과 난(?) 같은 것을 곁들여 함께 구워 나와 느끼함도 없애주는 좋은 식사 겸 안주였다. 다들 오래 기다려서였는지 제대로 된 음식을 오랜만에 먹어서였는지 맛있게 즐겼다. 당연히 술도 곁들여서 즐거운 저녁을 보냈다.
22:00 돌아와서는 술이 부족했는지 어김없이 호텔 앞마당에 놓인 파라솔에서 끝나지 않는 원정 이야기를 나눈다. 뜨거웠던 햇살은 사라지고, 시원한 밤바람과 호텔 불빛이 평온하기만 하다. <엄재원 대원>
*****
06:30 아침식사→08:30 Osh로 출발→14:00 Osh공항 도착 오시로 떠나는 날이다. 후세인 가이드는 스키를 타기 위해 C1으로 출발을 하는 날이다. 후세인은 레닌봉 C3까지 등반 후 스키를 타고 내려올 계획이다. 이제 후세인과 작별을 고하는 날이다. 다이닝룸에서 스키 장비를 점검하고 출발을 서두른다. 성년수 대원, 엄재원 대원, 이상국 대원과 인사를 나누고 이른 새벽녘 맑은 아침 공기를 마시며 C1으로 떠났다. 산악 스키 전문가인 후세인의 뒷모습이 무척 가벼워 보였고 안전하게 스키를 즐기길 빌어본다.
롯지 앞에 까지 풀을 먹으러 온 야크
7시 오시로 출발을 하기 위해 캠프에서 이른 시간에 아침을 준비해주었다. 소시지, 계란, 빵 등으로 아침을 먹고 개인 카고백과 공동 장비를 캠프 앞 공터에 모아 두었다. 7시에 오기로 한 밴은 약속 시간 보다 1시간 30분 늦게 도착했다. 올 때 처럼 갈 때도 역시 시간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키르기스스탄에서 대행사 이용 시는 여유가 많이 필요한 듯하다. 밴을 운전하는 기사는 아들과 같이 왔으며 한국에서 몇년간 일을 해서인지 한국말을 유창하게 했다. 다행히 의사소통은 원활히 할 수 있었다. 원정대 일행 7명과 외국인 2명이 같이 이동을 했으며, 캠프 스텝들과 인사를 나눈 후 오시로 출발했다.
베이스 캠프에서 2시간여 비포장 도로를 지났을 때 쯤 레닌피크로 가는 입구 상징물이 나타났고 빙하천의 다를 건너 포장 도로로 진입했다. 점심을 따로 먹고 않고 공항으로 직행했다. 5시간쯤 걸려 오시공항에 도착하고 밴에서 짐을 내려 공항 내부로 들어갔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으려 했으나 식당 찾기가 힘들어서 공항내 패스트푸드로 식사를 대신했다. 버거와 콜라 등으로 식사를 하고 탑승 수속을 기다렸다. 지루한 기다림 끝에 수속을 마치고 비슈케크로 이동한다. 모든 배낭과 카고백을 수화물로 보내고 오버 차지를 지불했다.
17:40 Bishkek 공항 도착→18:30 Shah palace 호텔 도착→19:30 Pub 저녁 식사 1시간쯤 지나 비슈케크 공항에 도착했다. 두번째 방문이라 조금은 익숙하게 짐을 찾아 주차장에 대기 중인 밴에 짐을 실었다. 30여분을 이동해 호텔 숙소에 도착했다. 호텔 인포데스크에는 저번과 다른 직원이 안내를 해줬다. 카고백을 회의실에 차곡차곡 정돈해두고 개인 짐은 각자의 방에 옮긴 후 로비로 모였다. 하루 동안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모두들 배가 고픈 상태였다. 지난번과 다르게 이번 프론트 직원은 맛집을 제대로 소개시켜줬다. 동네에서 가장 인기있는 펍을 추천해주었다. 10여분을 걸어서 겨우 펍을 찾을 수 있었다. 핫플레이스 답게 큰 규모에 많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키르기스스탄의 마지막 저녁 식사인 만큼 다양한 안주와 술을 주문해 넉넉한 저녁을 즐겼다. 샤슬릭 세트를 시켜 맥주와 함께 먹었으며, 치킨과 감자튀김 등 많은 안주와 술로 만찬을 즐겼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펍을 나와 숙소로 이동했다. 술이
아쉬웠던 몇 명이서 호텔 앞 파라솔에 앉아 늦은 시간까지 술잔을 기울였다. 엄재원 대원이 호텔 식당에서 어렵게 과일안주와 와인을 구해왔다. 이렇게 키르기스스탄에서의 마지막 밤이 지나갔다. <이상국 대원>
▲ 8/15(25일차) •Bishkek(FRU)-Almaty(ALA) : 도시 투어 및 공항 이동
08:30 조식을 마치고 개인 정비 후 09:00 밴에 다시 카고백을 싣고 공항으로 이동한다. 그런데 호텔 앞에는 현지 가이드가 2명이 와있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대행사 '아시아 아웃도어 클럽'에서 가이드를 무료로 불러준 것이다. 우린 이것도 모르고 전일 수소문해서 미리 한국어가 가능한 현지인 가이드를 섭외해 둔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대행사 가이드를 기분 나쁘지 않게 돌려보내고, 우리가 섭외한 가이드와 함께 비슈케크 도시 투어에 나선다. 원정대는 가이드와 함께 비슈케크 박물관 및 대통령궁, 놀이동산 등을 관람했다.
12:00 한국식당 '청기와'에서 한국식으로 점심을 먹는다. 한국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고, 특별히 메뉴를 정하기 어려울 때 '그냥 찌개나 먹죠?' 하며 늘 차선으로 선택했던 흔하디 흔한 점심 메뉴 돼지고기 김치찌개, 돼지고기볶음 등이었는데 하하하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늘 기름지고, 쌀은 설익고, 고수 같은 것들이 잔뜩 들어간 키르기스 음식을 주식으로 먹다 보니 한식이 이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긴 점심을 마친 후 일부는 백화점에 방문해서 기념품 등을 구매하고, 일부는 마사지 샵에 들러 피로를 풀었다(건전 마사지이고, 비용은 김대장님이 내줬다, 감사하게도).
16:00 비슈케크 마나스(MANAS) 공항으로 이동 → 19:25 알마티행 항공기 탑승 20:35 알마티 도착 <엄재원 대원>
*****
08:00 아침식사→09:00 비슈케크 관광 어제 저녁 과음으로 인해 늦은 아침 식사를 했지만 여전히 부지런한 성년수 대원은 새벽에 나가 동네를 구석두석 산책을 하고 돌아왔다. 호텔 1층에 부페 식당에서 아침이 제공됐으며 다양한 종류의 음식이 제공되었다. 가벼운 아침 식사를 마치고 대원들의 짐들을 밴에 실었다. 밴에 짐을 여러 번 상하차 하다보니 이제는 제법 빠르게 처리했다.
오전에는 관광을 하고 오후에 공항으로 이동할 계획이다. 오전 관광을 위해 한국어를 공부하는 대학생을 가이드로 추천 받았다. 여학생 가이드는 밝은 성격에 한국말을 능숙하게 했다. 내년에 연세대 교환학생으로 방문할 계획이라고 한다. 부디 좋은 성과가 있기를 기대해본다. 밴을 타고 한 5분여 거리의 시가지로 들어섰다. 우라나라 국립박물관과 같은 키르기스스탄 국립역사박물관을 관람하는 일정이다. 박물관으로 가는 광장에는 마나스 장군 동상이 위용 있게 서서 멀리 알라투 산맥의 흰 산을 바라보고 있다. 알라투
→
산맥의 멋진 광경을 바라볼 수 있어서 알라투 광장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박물관은 1인당 200솜 정도의 입장료를 내고 입구로 들어갔다. 구석기 유물 부터 현대 정치 및 연예인까지 총망라하여 전시되어있다. 키르기스스탄의 역사를 한 눈에 경험하기에는 아주 좋은 장소인 듯하다. 박물관을 나와 옆 편의 대통령 집무실로 이동을 했다. 집무실은 경비도 없고 오픈 공간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집무실 근처도 한가로울 뿐 경찰이나 경비대원은 보이지도 않는다. 대통령 집무실을 구경하고 뒤편의 놀이동산으로 이동했다. 뜬금없는 장소에 놀이동산이 자리잡고 있는 게 꽤나 특이하다. 김성은 대원이 업무 때문에 뒤떨어져서 따라온다. 대원들이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놀이동산에서 아이스크림과 콜라로 요기를 하며, 놀이동산 풍경을 즐겼다. 회전목마, 텀블링 매트 등 크게 다름없는 유원지 놀이공원이었다.
12:00 청기와 점심식사→13:00 기념품 구매, 마사지샵 놀이동산에서 20여분을 걸어서 한국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김성은 대원, 곽노성 대원의 요청으로 청기와라는 유명 한식당으로 이동했다. 비빔밥, 된장찌게, 제육볶음, 김밥 등 푸짐하게 한상차림으로 점심을 먹었다. 공기밥 3그릇으로 비빔밥을 먹는 대원도 있었다. 체력 회복에는 한식이 최고인 듯하다. 샤슬릭과 같은 현지식을 못 먹어 아쉬워하는 대원들도 있었지만 만족스러운 점심 시간이었다. 공항으로 이동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의 여유시간이 있다. 여유시간 동안 일부는 마시지샵 나머지는 기념품을 사는 것으로 했다. 마사지 시간이 길어지는 바람에 기념품을 사러갔던 팀이 30분 이상을 밴에서 기다리게되어 원성을 샀다. 공항 이동하는 길이 정체가 없기를 바랄 뿐이다.
16:00 비슈케크 공항 도착→19:25 비슈케크 출발→20:25 알미티 공항 도착 도로 정체 없이 정시에 공항에 도착을 했다. 짐을 붙이기 위해 항공사 티켓팅 대기열에 섰다. 카고백에 선물용 술을 넣다 보니 25kg을 초과하는 짐들이 발생했고 여행사 직원은 오버 차지를 요구했다. 카고백의 짐들을 개인 배낭과 무게가 덜한 곳으로 넣어 무게를 조정했다. 까다롭게 무게 측정을 계속했으며 결국 카고백 2개를 오버 차지하면서 짐 붙이기를 마무리 지었다. 개인 배낭도 측정할 것을 요구했으며 다행히 1kg 정도 초과된 무게는 통과시켜주었다. 이미 카고백에서 오버 차지를 부과해서 미안해서인지 더 이상 시비를 걸지 않는다. 어렵게 짐을 붙이고 가이드와 단체와 사진 좔영을 하고 헤어져 보안대를 통과했다.
탑승 대기실에서 커피와 맥주를 마시며 비행기를 기다렸다. 일부 대원들은 면세점을 돌아다니며 기념품을 구매하기도 했다. 알마티 공항까지는 1시간쯤 소요된다. 바로 옆 카자흐스탄으로 넘어간다. 8시 반쯤 알마티 공항에 도착해서 환승을 위해 환승 대기실에서 대기를 한 후 셔틀 버스를 타고 탑승 대기실로 이동했다. 1층 탑승 구역을 벗어나 2층 대합실로 올라갔다. 많은 인파로 넓은 대합실이 북적인다. 환승을 하기 위해서는 5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올 해 6월부터 인천에서 비슈케크를 운항하는 직행 노선이 개설되었다. 조금 비용의 차이는 있겠지만 조금 서둘러서 직항으로 구매했으면 대원들에게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비슈케크 호텔 로비에서
면세점에서 술과 초콜렛도 구매한다. 저녁시간이 되어 식사를 위해 푸드 코트에서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했다. 컵라면, 샌드위치, 도시락 등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대신 비용이 저렴하지는 않다. 음식이 비싸서인지 매장 앞 식사 테이블이 텅 비어 있다. 넓게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여유로운 저녁을 즐겼다. 면세점에서 저렴하게 구입한 양주도 한 잔 하면서 알마티에서 지루함을 달랬다.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다. 어느덧 비행기 탑승 시간이 되어 탑승장으로 이동해 셔틀을 타고 비행기 올랐다. <이상국 대원>
▲ 8/16. D26 •Almaty(ALA)-Seoul(ICN) : 이동
마나스(MANAS) 공항에서 항공기 탑승 후 약 1시간 운행 후 카자흐스탄 알마티 공항에서 환승을 해야 한다. 게다 대기시간이 약 5시간이다. 장시간 대기로 인해 알마티 공항에서 무엇을 할까 고민…. 여기서 면세점을 이용하기로 했다. 공항이 그렇게 크지 않아서 별로 돌아볼 곳은 없었다. 1층 항공기에서 타고 내리는 입구를 나오면 환승지점에서 대기할 수밖에 없다. 올 때와 같이 조금 기다리다 보면 직원이 출국장으로 안내한다. 짐 검사를 간단하게 마친 후 1층 크지 않은 공간으로 이동한다. 2층에 무엇이 있는지 몰랐던 우리는 슬슬 배가 고파온다. 2층으로 이동하자는 의견을 듣고 다 같이 2층으로 이동한다. 2층에는 면세점이 있고, 카페, 패스트푸드 매점들이 있다. 우리는 여기서 저녁 식사를 해결하기로 하고, 매점 몇 곳을 탐색해본다. 그중 가장 적합해 보이는 '시바스(CHIVAS)'라는 매점에서 샌드위치, 라면 등으로 식사를 마쳤는데 가격이 엄청났다. 너무 비쌌다(도시락 사발면이 8,000원…. 헐!). 그래도 어쩔 수 없어 다들 각자 원하는 메뉴를 선택하고, 면세점에서 저렴하게 구매한 발렌타인 1명을 매점에서 몰래 다 같이 나눠 먹었다(비싼 매점을 이용한 것에 대한 보상?). 시간이 흐르고 인천행 항공기에 탑승할 시간이 왔다. 항공기 탑승 후 나는 기절해서 기내식도 못 먹고 도착할 때까지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점심부터 들이킨 폭탄주(보드카+맥주)와 공항 매점에서 몰래 들이킨 발렌타인 1리터 용량의 힘이다.
09:20(한국시간) 인천공항 도착. 한국은 뜨겁고 습한 여름이 한창이었다. 입국 절차를 마치고 공항 로비에 나오니 연맹 회장님과 이사님들께서 마중을 나와계셨다. 현수막도 제작해 주시고, 반갑게 맞이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했다. 그래도 다들 얼른 집에 귀가하고 싶은 눈치다. 아니 나만 그랬는지도 모른다.
11:00 인천공항 리무진 탑승 원래는 담쟁이집에서 집결해서 짐정리도 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는데 어쩌다보니 흩어지는 분위기다, 수원(동수원 호텔캐슬)행 리무진에 올라 26일간의 원정을 되짚어보며 집으로 향한다. <엄재원 대원>
*****
01:30 알마티 출발→06:20(09:20 한국 시간) 인천 공항 도착
알마티 공항에 출발 후 대원들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저녁에 마신 술과 대기 중에 쌓인 피로가 몰려왔을 것이다. 그 와중에도 성년수 대원과 이상국 대원은 기내 맥주와 와인으로 배를 채우고 잠깐의 휴식을 취한다. 눈 깜짝할 사이에 어느덧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모든 대원들이 이제 한국 땅으로 돌아왔다.
아침 9시 30분쯤 짐을 찾아 공항 검색대를 통과했다. 서울시산악연맹 회장, 사무국장 등 귀국 환영을 위해 공항에 오셨다. 한국등산학교 동문회, 연산지우산악회 회원들도 공항에 나와 환영해주었다. 등정 축하 플랜카드를 펼쳐 들고 기념 사진을 촬영한다. 이제 모든 원정이 끝났다. 손가락 동상으로 고생하는 대원이 있지만 모두들 안전하게 한국 땅을 밟아 감사하다. 기념 사진 촬영 후 대원들은 카고백 공동 장비를 점검하고 각자의 짐을 챙겼다. 비슈케크 공항에서 급하게 무게를 맞추기 위해 섞었던 짐들을 정리했다. 장세종 대장 카고백에 들어 있던 술 병이 깨져 있기도 했다. 장비를 정리한 후 대원들은 각자의 방향으로 해산했다. 김미곤 대장은 영종도로 차량을 회수하러 가고 장세종 대장은 환영나온 분들과 이동한다. 곽노성 대원, 엄재원 대원은 공항버스를 이용해서 귀가하고 이상국 대원은 마중 나온 산악회 회원들과 공항에서 식사를 하러 갔다. 김성은 대원은 손가락 동상 치료를 위해 광주로 곧바로 이동했다. 마지막으로 성년수 대원은 차량을 회수해온 김미곤 대장 차로 같이 공항을 떠났다.
26일간의 키르기스스탄 레닌피크 원정이 마무리되었다. 검게 그을린 피부, 동상, 피로 등으로 지친 심신을 빠른 시일내에 회복하기를 기원한다. 장세종 원정대장, 김미곤 등반대장, 곽노성 대원, 성년수 대원, 김성은 대원, 이상국 대원, 엄재원 대원. 7명의 키르기스스탄 레닌봉(7,134m) 원정대 모든 분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상국 대원>
원정에세이 EXPEDITION ESSAY-1
고산등반의 성공과 실패가 훌륭한 등반대장의 자질을 성장시킨다.
김 미 곤 대장(서울시산악연맹 부회장 / 블랙야크)
레닌 피크!
출국을 얼마 남겨놓지 않고 팀에 합류를 하였다. 그래서 대원들의 성향과 팀웍, 대원들의 능력이나 성격을 만족할만큼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원이 많지 않아 팀웍과 개인의 성향은 금방 알 수 있었다. 팀웍은 평균 이하에 개인 성향도 마음이 썩 내키지는 않았다. 내가 다시 이런 대원들과 등반을 가야 한다는 점에서 대원들이 아닌 서울시산악연맹에 화가 난다. 한편으로는 서울시산악연맹 임원으로서 대원들에게 미안하고 측은지심이 든다. 발대식은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행사를 정균일 부회장님의 배려로 힘룽히말대원들과 함께 홍천에서 행사를 치뤘다.
키리기스탄. 나도 이곳은 처음이다. 비쉬캣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현지 항공을 이용하여 오쉬에서 식량 등을 정비하며 하루를 보낸다. 그러면서 대원들의 성향을 파악을 어느정도 마쳤다. 다음날 다시 15인승 밴을 타고 베이스캠프(이하 B.C/3,600m)까지 8시간 정도 이동한다. 우리팀의 가이드는 이란에서 온 친구이다. 러시아 가이드처럼 권위적이지 않고 친절하고 정적인 사람이었다.
B.C에서 이틀 동안 머무르며 주위의 구릉을 오르내리며 고소적응을 하였다. 이번 우리 원정대 B.C는 숙소가 텐트가 아닌 롯지였다. 옛날 구소련군의 막사를 다시 개조해서 만든 것이다. B.C 환경은 지금까지 원정으로 겪어본 곳 중 최상이었다. 현지 유목민들이 주위에 같이 머물고 목초지가 펼쳐져 있어 심리적으로 모든 것이 안정되었다. 특히 이곳에 전기까지 들어와 문명사회의 도움을 받는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전기를 풍족하게 사용할 수는 없고 통신이 잘 되지 않는 점은 조금 아쉬웠다. 숙식은 C1까지 현지 대행사에서 준비해주는 시스템이다.
B.C에서 이틀을 쉬면서 한국에서 가지고 온 짐을 정리하고 C1으로 이동할 채비를 한다. 이곳 레닌도 히말라야와 별반 차이 없이 오후만 되면 날씨가 좋지 않고 바람이 많이 분다. C1으로 가기 위해 아침을 먹고 차량을 이용하여 3Km 떨어진 등산로 초입까지 이동을 한다. 우리의 짐은 현지의 목동들이 말을 이용하여 C1까지 올리기로 하였다.
C1으로 내려오면서 많은 고민을 하였다. 장세종 대장님은 체력 회복이 어려울 것 같고 김성은 대원은 등반 기술이 많이 부족하다. 엄재원 대원은 고소적응만 잘 하면 정상은 문제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원래 계획은 C1에서 휴식을 취하고자 하였는데 대원들의 체력 회복을 위하여 B.C까지
차량에서 내려 바로 급격하게 고도를 올리기 시작한다. C1까지는 일반 등산화를 싣고 이동할 수가 있다. C1으로 오르면서 대원들의 상태를 관찰해 보았다. 보폭, 발걸음 그리고 몸 상태들 … . 예상했던 대로 눈여겨 본 곽노성 대원이 속도가 처지기 시작한다. 그나마 나머지 대원들은 모두 비슷하게 움직였다. 곽노성 대원은 가이드와 함께 움직이라고 하고 난 대원들과 선두에서 그들의 속도에 맞춰 걷기 시작했다. 오후가 되면서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고소적응이 덜 된 대원들에게는 좋지않는 날씨이다. 오후 4시 C1에 도착하니 다른 나라 여러 상업등반대들이 거리를 두고 캠프(Camp)를 설치해 놓았다. 히말라야의 B.C와 비슷했다. 우리팀이 C1에 도착했을 때 먹거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현지 대행사에서 준비해 놓은 음식인데 대부분 러시아식이다. 생각보다는 우리의 입맛과 비슷하였다. 다른 대원들은 모두 비슷한 시각에 C1 도착을 완료하였는데 곽노성 대원만 가이드 소속 현지인 팀 닥터와 늦게 도착을 하였다. 저녁식사를 다른 대원들은 모두 잘 먹었지만 곽노성 대원은 제대로 먹지 못한 채 개인 텐트로 들어갔다. 동료 대원들이 따뜻한 물과 간식거리를 챙겨서 텐트에 넣어준다. 현지인 팀 닥터가 와서 곽노성 씨는 B.C 이상 올라가면 안된다고 한다. 빨리 내려보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다음날 말을 태워 내려보기로 원정대장님과 합의하였다.
C1에서 3일간의 휴식을 맞치고 05:00 C2을 향해 원정대장님 포함 6명(곽노성 씨는 B.C로 하산)이 이동을 한다. 정말 지금부터 등반이다. 삼중화를 싣고 아이젠을 착용하고 움직인다. C2까지 오르는데 다른 팀은 모두 안자일을 하고 간다. 난 안자일을 풀라고 하였다. 고정로프도 있으니 고정로프에 자기 확보를 잘 걸어서 이동하라고 하였다. 이번에도 두 구룹으로 나눠서 이동을 한다. 그런데 체력이 좋고 제일 젊은 엄재원 대원이 뒤로 쳐진다. 고소 때문에이다. 고소 적응이 다른 대원에 비하여 더딘 것 같다. C2에 도착하여 식사 준비를 하는데 히말라야 경험이 있는 이상국 대원이 많이 움직인다. 체력 성격 모두 괜찮아 보인다. 장세종 대장님은 많이 지쳐있고 김성은 대원은 체력 안배에 실패한 듯 보인다.
07시 30분 C3를 이동한다. C3까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처음 400m 정도 급경사를 오르다 완만한 평지처럼 보이는 곳을 1Km 정도 이동 후 약 600m 정도 다시 급경사를 오르면 C3가 능선 위에 자리잡고 있다. C3 역시 예상했던대로 이상국 대원이 맨 앞에 오르고 그 다음은 성년수 대원 순으로 오른다. 선두는 10시 20분 정도에 도착하여 휴식을 취한다. 장세종 대장님도 C3까지 올라 왔다. C3에서 어느정도 휴식을 취한 후 C2로 향한다. C2에 도착하니 대장님과 몇몇 대원들이 많이 지쳐보였다. 원 계획은 C3를 찍고 C1까지 내려가기로 했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C2에서 자고 다음날 C1으로 내려가기로 하였다.
내려가서 휴식을 취하기로 마음 먹었다.
C1에서 하룻밤을 자고 BC로 내려가는데 고도가 낮아질수록 다리에 힘이 붙는다. B.C에 도착하니 곽노성 대원이 반가히 맞아주었다. 그동안 혼자 지내던 영향인지 많이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이곳에 등반을 하러 왔는데 B.C 이상 못 올라가게 하니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저녁 미팅시간에 불만이 표출되었다. 곽노성 대원에게 등반을 못하게 하니 그에 대한 원망(?)이 생겼을 것이다. 현지인 B.C 닥터가 곽노성 대원은 B.C 이상 올라가지 말라고 하여 B.C에 묶어놓은 것이었는데 저녁 미팅에서 곽노성 대원 상태를 보고 조금 회복된 듯 하여 C1까지 등반을 허락하였다. 곽노성 대원에게는 정말이지 미안했다. 쉽지 않은 시간과 열정, 기회를 만들어 이곳까지 온 이유가 명확한데 B.C에 주저앉혔으니 … . 그럴 것 같았으면 대원으로 선발하는 과정에 더욱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
B.C에서 이틀을 쉬고 대장님은 B.C에 남아 있기로 하고 나와 대원 5명이 C1으로 향한다. 대원들 마음은 가벼워 보인다. 고소적응도 되어있고 정상을 향하는 발걸음이니 당연히 가벼울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은 무겁다. 대원 1명은 C1까지만 오르고 나머지 네 명의 대원과 정상을 가야하는데 과연 여기서 몇 명이 포기를 할까? C1에 도착 후 날씨가 좋지 않아 C1에서 하루를 쉬고 C2로 오르는데 저멀리 C1으로 복귀하는 불빛이 보인다. 곽노성 대원이다. 미안하다. 시간이 많이 있다면 C2까지도 가능한데. 김성은 대원이 등반자세가 자꾸만 눈에 들어온다. 등반 경험부족이다. 그리고 지시에 응하지 않는다. 고집을 피운다. 김성은 대원에게 화를 낸다. C2에 오르면서 엄재원 대원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고소적응이 되어 있어 본인의 기량이 나오는 것이다. C2를 거쳐 C3를 오른다. 김성은 대원과 엄재원 대원의 속도가 늦어진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온다. C3 도착 후 잠깐 휴식을 취한 후 우리팀은 밤12시에 정상을 향해 출발하기로 한다. 늦게까지 이상국 대원과 성년수 대원이 물을 끓여놓고 휴식을 취한다. C3에서 고민을 한다. 김성은 대원과 엄재원 대원을 그냥 C3에서 대기를 시켜야 하나 고민이 되었지만 다시 생각해 본다. 이들은 모두 다음에 원정대를 꾸려서 갈 대장감들이다. 그렇다면 정상을 가지 못하더라도 정상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지 직접 겪어보아야 추후 유능한 대장이 될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우선 모두 함께 정상을 향해 출발하기로 하였다.
밤 10시, 출발 준비하는 소리가 들린다. 12시 반쯤 되어 선두에 가이드가 이끌고 마지막은 내가 따라붙었다. 혹시 모를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오르면서 대원 한명 한명을 관찰하였다. 발걸음은 나쁘지 않았다. 가파른 오르막에서 두 명의 대원이 눈에 들어온다. 고소적응이 안되어 있고, 등반 경험이 부족한 대원 둘이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등정 성공율을 높이려면 감수해야 하나 하는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얼마를 올랐을까? 점점 뒤쳐지는 엄재원 대원에게 C3로 내려가라 명령한다. 내심 미안하다. 정상을 향해 반절 정도 갔을까 성년수 대원이 손이 시려워 내려가겠다고 한다. 내가 판단하기에는 가능해 보인다. 이 정도 추위는 등반 가능한데 동상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설득을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다. 그래서 가이드와 함께 내려가라고 하였다. 남은 사람은 이상국, 김성은 두 대원이다. 그럼데 김성은 대원이 불안해보인다. 체력은 괜찮지만 등반경험이
부족하여 위험이 따른다. 하지만 정상에 대한 그의 집념이 무척 커서 내려가라고 할 수가 없었다. 레닌은 상업등반대가 로프를 설치하는데 정말 위험하지 않으면 설치하지 않는다. 그래서 등반경험이 부족한 대원들에게는 체력소모가 심하다.
새벽 4시 반 저멀리 붉은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1시간 가량 있으면 날이 밝아 오리라. 급경사인 로프구간을 통과하니 김성은 대원이 많이 지쳐있다. 그도 그럴 것이다. 전문등반도 많이 안해보고 이 고도는 태어나서 처음이니 당연히 힘들 것이다. 작은 설동을 파서 약 30분 가량 휴식을 취하며 렌턴을 벗고 고글로 바꿨다. 다시 이상국 대원이 선두에 서고 그 뒤를 김성은 대원이 오르는데 다리가 점점 무거워 보인다. 고소 때문일 것이다. 김성은 대원이 뒤로 쳐지길래 힘을 내라 했다. 자신은 좀 쉬었다 천천히 따라 갈테니 먼저 가라고 한다. 한 걸음 한 걸음 쉬다 가다를 반복하다 보니 햇볕이 우리를 따뜻하게 비춰주었다. 이상국 대원의 발걸음은 변함이 없다. 꾸준하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속도가 조금씩 늦춰질뿐 걷는 자세는 똑같다.
마침내 정상에 선다, 정상에는 네팔 셀파들이 룽다를 걸쳐놨다. 그리고 레닌 동상이 있다. 정상에서 촬영을 하고 어느정도 내려오니 조선이공대팀이 올라 오고 있다. 그들도 대원 두 명이 오르고 있다. 그 중 한 명의 손이 안전하지 않아보여 내 장갑을 벗어줬다. 이상국 대원이 본인은 천천히 내려가다 조선이공대팀이랑 같이 갈테니 먼저 가라 한다. 이는 김성은 대원의 걱정 때문일 것이다. 조금씩 내려가고 있는데 외국팀이 나에게 동양인 한 명이 저 아래 누워있다 말해준다. 나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아 빠르게 내려가 봤다. 김성은 대원이 눈 위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컨디션 괜찮냐고 물으니 괜찮다고 하여 내가 앞장을 서고 그를 뒤따르게 한다. 다리에 힘이 많이 빠져있다. 체력 소모가 심했을 것이다. 이 고도도 처음이고 음식을 제대로 먹지도 않고 이렇게 오랜 시간 추위와 떨면서 산행도 처음 이었을 것이다. 그는 내려오면서 구르기도 하고 작은 크레바스에 빠지기도 하였다. 후미에 뒤따르던 이상국 대원은 설맹에 걸린 채 조선이공대팀의 대원의 도움을 받아 C3까지 무사히 내려올수 있었다.
전대원이 B.C로 무사히 내려왔을 때 이제 등반이 끝나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성은 대원은 6개의 손가락에 동상에 걸렸다.
원정에세이 EXPEDITION ESSAY-2
내 생에 최고봉, 내 생애 최고 위험했던 순간 레닌피크(7,134m)
이 상 국 대원 (연산지우산악회)
레닌피크(7,134m)를 오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원정을 준비하고 출국하기까지가 가장 힘든 싸움이었다.
9명의 상비군으로 출발해서 6명의 원정대 구성까지 1달여 시간이 걸렸다. 원정대원으로 훈련할 수 있는 기간이 짧았다. 원정을 위해서는 개인별로 꾸준히 훈련을 해야만 했다. 아침 일찍 남한산성을 오르기도 하고 40km 정도의 5산 종주 등을 하며 체력과 지구력 훈련을 중점적으로 했다. 짧은 기간 안에 좋아지기 보다는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했다.
6명의 원정대원의 훈련은 힘든 과정의 연속이었다. 몸이 아닌 마음이 힘든 나날이었다. 가장 강인했던 의열 형님이 설악산 훈련 도중 심정지로 갑작스럽게 생을 마감하셨다. 너무 강하면 쉽게 부러지는 것일까? 그렇게 단단하셨던 분이 쓰러지신 후로 원정대는 해산의 위기를 맞았다. 원정대가 해산될 것이라는 추측과 함께 2주일이 시간이 지났고 남은 대원들은 서로 뭉쳐 연맹과 별도로 원정을 꾸리자고까지 다짐도 했다. 고산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동료의 죽음 후에도 포기를 하지 않는 것일까?
연맹에서는 정택준 단장님이 사의를 표하셨고 장세종 원정대장 중심으로 원정을 재개하는 결정이 내려졌다. 원정 단장님의 원정 반대와 원정대에 대한 걱정이 이해가 된다. 한번 더 원정대에 사고가 발생할 경우 향후 연맹의 원정활동에 심각한 타격을 주게 될 것이다. 더욱 단단한 마음으로 원정을 준비해야 했다. 원정 훈련 재개 후 훈련 보다는 발대식과 원정 짐을 챙기는 시간이 전부였다. 출국 전까지 체력 유지를 위해서는 시간이 날때마다 산행과 암장 운동을 지속했다. 출국까지 너무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이제는 모두 잊고 비행기만 타면 된다. 드디어 7월 22일 키르기스스탄 레닌피크로 떠났다.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의 공항을 나오자 뜨거운 햇살이 비춘다. 공기는 건조했고 햇살은 따가웠다.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 벤을 타고 호텔로 이동했다. 비슈케크 시가지는 의외로 깨끗하고 많이 번잡하지 않았다. 비슈케크에서 하루 쉰 후 국내선을 타고 오시로 이동했다. 하루에 이동할 수 있는 일정이었지만
C3에서 보는 정상은 코 앞이다. 두 개의 봉우리 너머로 우뚝 솟아 있다. 3~4시간이면 도착할 듯 가깝게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9~10시간을 걸어야 한다. C3로 복귀하는 외국 등반대들도 보인다. C3
필요한 물품 구매를 위해 여유롭게 이동을 했다. 오시는 비슈케크와 조금은 도시 느낌이 달랐다. 오시는 이슬람 문화권의 인구가 더 많아서인지 터번을 두른 사람들이 더 많이 보인다. 식당에서는 술도 판매를 하지 않았다. 장을 보고 점심에 술 한잔하기 위해 1시간 여에 걸쳐 술을 구하러 다녀야 했다. 주위 가게를 찾다 실패하고 처음 장을 봤던 대형 마트에서 결국 구매를 했다. 술을 쉽게 구할 수 있는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리고 가스를 구하기 위해 오시시장을 3시간 넘게 돌아다녔지만 결국 구하지 못했다. 결국 캠프에 가서 비싸게 주고 사야 했다. 캠프에서 구하지 못하면 낭패이기에 기를 쓰고 찾아다녔던 것이다. 장비를 담당하는 나로서는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인데 결국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캠프 가이드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오시에서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좋은 인상으로 남았다.
대행사는 항상 약속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항상 기다리고 짜증나는 일이 일상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베이스캠프에 입성했다. 차로 3,600m 고지로 바로 이동을 했지만 고소가 오진 않았다. 캠프에 있는 건물, 사람과 동물 모두가 반가울 뿐이었다. 넓은 초원 한가운데 예쁜 롯지가 지어져서 목가적이다. 캠프에서 레닌피크가 한 눈에 들어왔다. 흰 산의 풍채가 듬직하다. 저 곳을 오를 것이다.
C1은 4,300m 정도에 위치해 있다. 이곳이 실제 베이스캠프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다이닝룸에서 식사도 제공해주고 텐트도 매트까지 깔린 호텔급이다. 상업 등반대와 별반 차이가 없다. C1에서의 고소 적응 기간을 길게 보내고 C2로 진출을 했다. C2로 가는 길은 주마링 구간과 크레바스를 지나면 크게 어려움이 없는 구간이다. 아무런 생각없이 쉼 없이 걷기만 하면 된다. 뒤를 따라오는 대원들이 힘들어한다. 고소에 힘들어 한다. 텐트에 도착해서는 다들 꼼짝도 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혼자서 물도 끓이고 라면도 끓인다. 모두들 지쳐 쓰러지고 움직일 수 있는 대원이 나 혼자였다. 그런 상황은 등반 기간 내내 동일했다. 잘 먹고 버텨 주기만을 바랐다. 내 고생으로 모든 대원들이 같이 정상으로 갈 수만 있다면.
C2에서는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로웠다. 대원들도 많이 먹고 소화도 잘 시키는 편이었다. 고소식은 알파미, 누룽지, 김자반, 건조국, 젓갈 정도로 준비했다. C2에서 바라본 레닌피크는 코 앞에 있는 듯 가까이 보인다. 독수리가 날개를 크게 펼치고 비상을 준비하는 것처럼 웅장해 보인다. 오전에는 멋진 풍채를 자랑하지만 오후 들면 구름 속으로 숨어버린다. 그리고 눈을 흩날린다. C2에서 강한 추위는 없었다. C2에서 C3까지는 4km 정도의 짧은 구간이다. 운행은 3~4시간 정도이다. 봉우리 정상에 C3캠프가 있는데 봉우리의 급경사면을 오르는게 관건이다. 힘들고 지루한 구간이다. 꾸준히 걸어야 했다. 아무런 생각없이 등반로에 꽂혀 있는 빨간 깃발만을 바라보며 걷고 또 걸었다. 완만한 경사가 나타나면 이제 곧 C3 캠프다. 하지만 완만한 경사조차 쉽지 않다. 숨이 차오르고 체력은 바닥을 느낀다.
캠프를 현재 위치보다 조금 피크와 가까운 곳에 설치하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등정성공율이 높아지고 등반이 용이해지면 상업적인 가치가 떨어질 수도 있어 캠프가 멀리 자리잡고 있다. C3에서 정상까지의 거리가 멀고 고도차가 1,000m에 달한다. C3는 한적했다. C2보다 인원도 적지만 무엇보다 정상 등정 준비를 위해서 오후에도 텐트에서 쉬어야 했기 때문이다. 눈을 떠서 물을 만들고 식사를 준비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지만 새벽 출발 전에 어느정도 체력 안배를 하는게 신경 쓰였다. 쉴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부족했다. 하지만 이곳에 쉬려고 온 것이 아니다. 투정부리고 짜증낼 일은 없다. 단지 내가 정상 등정을 위해 하나씩 일을 해 나갈 뿐이다. 영하 20도. 눈이 흩날리는 강풍. 밤 11시 반 등정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마지막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이 싸움을 이기는 자만이 정상에 설 수 있을 것이다. 새벽녘 바람은 너무도 차가워 손가락 발가락을 얼리기에 충분했다. 등반 장갑 위 오버미트를 덮어쓰고도 모자라 겨드랑이에 손을 넘고 꼼지락 거리기를 반복한다.
해가 뜨기만 기다리며, 터벅터벅 걸을 뿐이다. 왜 이 눈보라를 맞으면서 걷고 있는 것인지, 따뜻한 침낭 속에서 커피 한 잔이 생각나게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대원이 등정을 포기하고 복귀한다. 한 명은 고소로 인해 걷기가 불편하고 한 명은 추위로 인해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그들의 판단이 옳은 것이다. 나 또한 그런 상황이면 그렇게 결정했을 것이다.
어느덧 여명이 밝아온다. 캠프를 떠 난지 5시간쯤 된듯하다. 두번째 봉우리를 넘어 능선에 도달해서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았다. 3명만이 남았다. 김미곤 대장, 김성은 대원, 그리고 나. 김성은 대원의 상태가 좋지 않다. 걸음걸이도 늦고 계속 졸려 한다. 김성은 대원을 가운데 앉힌 후 물을 먹인다. 그러나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뒤로 눕기 만을 반복한다. 김성은 대원의 회복을 위해 30분을 쉬었다. 이제 출발할 수밖에 없다. 더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 내가 선두로 나가고 김미곤 대장과 김성은 대원이 뒤를 따랐다. 그러나 30여분도 채 못 가 김성은 대원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김미곤 대장과 나는 계속 가야만 했고 김성은 대원이 무사히 캠프로 복귀하기 만을 바랄 뿐이다. 다행히 해가 뜬 시각이라 추위가 덜하고 바람도 잦아 들어 복귀하는 데는 괜찮을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했다. 김성은 대원은 하산 중에 졸음을 참지 못하고 설상 위에서 잠을 자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강렬한 해가 머리 위에서 뜨거운 햇살을 쏘다붓는다. 춥지 않아 좋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길이 잘 보이질 않는다. 설맹이 오기 시작했나보다. 고소인지 내가 가져온 고글이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시력이 좋지 않아 초고도렌즈 안경을 쓰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정상까지의 능선길을 3시간 동안 걸었다. 눈 앞이 바로 정상인 듯 보였으나 오르고 나면 그 너머에 또 정상이 있다. 해발 7,000m에서 걷는 속도는 아무래도 C2에서 C3로 걷는 것보다 더 늦어질 수 밖에 없었다. 지루함도 배가 더했다.
약간의 설맹으로 인해 30여분 늦게 정상에 도착했다. 김미곤 대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정상이다. 힘들게 오른 정상은 무척 시원했다. 정상에 오른 기쁨보다는 설맹으로 인한 걱정이 가득했다. 제발 조금만 더 버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상에 같이 있던 프랑스 산악인이 정상 사진을 찍어줬다. 하지만 카메라 조작 실수로 나에게는 제대로 된 정상 사진이 없다. 어쩔 수 없지만 너무 아쉬움이 많다. 정상에 오른 것만으로
그리고 설맹으로 부터 안전하게 복귀한 것만으로 감사해야했다. C3로 하산하는 길은 길고도 험난했다. 하산 중 조선이공대팀을 만났고 헤어진 후 김성은 대원이 길 위에 누워있다는 소식을 듣게되었다. 어쩔 수 없이 김미곤 대장이 먼저 김성은 대원을 보살피기 위해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설맹이 많이 오기 전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설맹이 심해져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한 시간여를 쉬고 헤매기를 반복하다 구사일생으로 외국인 등반대를 만났다. 그들의 도움을 받아 30여분 이동을 했고 위험 구간 전에 조선이공대팀을 만나게 되었다. 윤중현 대장과 김천 대원의 도움을 받아 천신만고 끝내 C3로 복귀 할 수 있었다. 내 생애 생명의 은인이다. 해발 6~7천 고산에서 누군가를 부축해서 내려온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자신의 동료처럼 안전하게 하산을 도와주었다. 조선이공대팀과 후세인 가이드 덕분에 안전하게 C3에 도착을 했고 C3의 마지막 밤을 지샜다. 다음날 너무도 감사하게 눈은 정상으로 돌아왔고 베이스캠프까지 안전하게 하산할 수 있었다. 조선이공대팀이 베이스캠프를 떠나는 날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감사합니다.
내 생의 최고봉을 올랐지만 내 생애 최고의 위험한 순간이었다. 그 속에 많은 도움을 주신 고마운 분들이 있었다. 내가 다시 고산을 오르게 되면 잊지 않고 다른 분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산악인이고 싶다. 원정을 준비하고, 떠나 많은 일들과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이 나의 삶이었고 앞으로 인생의 거름이 될 것이다. 키르기스스탄 원정대를 위해 고생하신 TF팀과 원정대원들 모두 고생하셨고 감사합니다.
원정에세이 EXPEDITION ESSAY-3
누구나 인생에서 작전상 후퇴가 있다.
성년수 대원(경송산악회)
조금전부터 스틱을 움켜쥔 장갑속의 곱은 손가락을 연신 꼼지락거려 보지만 점점 감각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얼음덩어리 같은 무겁고 차거운 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가쁘게 몰아쉬는 숨은 리듬을 타지 못하고 휘몰아치는 눈보라에 턱턱 막히고 만다. 정상으로 가는 첫번째 봉우리를 힘겹게 넘어섰지만 결국 몇걸음 못가고 멈춰서고 만다. 눈보라속 칠흑같은 어둠은 새벽이 오기에는 너무 멀리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더 이상 갈 수 없다. 아니 더 이상 가서는 안될 것 같다. 이렇게 계속 가다간 많은 것을 잃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조금 전 부터 내곁을 바짝 뒤따르면서 조금만 더 버티고 올라가면 된다는 등반대장님의 목소리가 나에게 더 이상 희망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대장님 더 이상은 안되겠어요. 너무 힘들어요. 죄송하지만 내려 가야겠습니다 “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 흔들리는 랜턴불 사이로 안타깝게 나를 바라보는 등반대장님의 진한 아쉬움을 선명하게 느낄수 있었다. 이내 나의 발걸음은 저멀리 능선아래에 웅크리고 있는 캠프3를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레닌봉 정상을 향한 나의 작전은 수포로 돌아갔고 나의 긴 수고로움은 끝을 맺었다.
[원정대원이 되기 ]
개나리의 노란 꽃물결과 목련의 하얀 봉우리가 꽃망울 막 터트리기 시작했다는 봄 소식이 멀리 남쪽으로부터 들리기 시작할 즈음 우연히 보게 된 산악회 공지란에 서울시산악연맹 레닌봉 원정대원 모집 소식이 올라와 있었다. 봄날 아득하게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마냥 싱숭생숭한 기분으로 뭔가 재미있는 일을 찾고 있는 오십대 후반의 남자에겐 꽤나 유혹이 되는 소식이었다. 어쩌면 나와 인연이 영영 없을 줄 알았던 흰 산에 대한 꿈을 이런 우연한 기회에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신청서를 냈는데 덜컥 1차 상비군에 선발이 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봄에는 시제며 어머니 생신, 어버이의 날 등 집안 일들이 많은지라 빠듯한 훈련일정으로 챙기지 못할 것 같아서 시골 아버지에게 전화로 말씀을 드렸더니 열심히 해서 원정대에 뽑혀 정상에 꼭 오르라는 말씀하신다. 뭐 할라고 그런 위험한 일을 꾸미느냐고 걱정하실 것을 예상했던 나로서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마도 당신의 아들이 오래전 에베레스트 한국 초등을 하고 귀국 카퍼레이드를 했던 고상돈 선배님처럼
그런 거창한 일을 하게 된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닌지 ?
[훈련병 시절]
[짐꾸리기 ]
[레닌봉 오르기]
헐렁한 나의 정신력과 준비되지 못한 저질 체력에 비례하여 원정을 향한 훈련 과정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일단 정식 원정대 대원이 되는 것이 급선무였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가파른 오르막을 쉼 없이 올라가기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함께 훈련을 받는 동료들은 힘든 기색도 별로 없이 잘만 따라가는데 나는 가랭이가 찢어질 지경이다. 훈련 첫째날, 북한산 능선이 끝나는 족두리봉을 비틀거리며 내려오는 길에 멀리 한강을 따라 펼쳐져 있는 저녘 노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지만 내마음은 다음 주 훈련부터는 스스로 물러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서글퍼졌다. 두 번째주 훈련날이 다가오고 포기할까 고민하다가 70대 중반을 넘어가는 형님도 열심히 하고 있는데 한참 젊은 내가 포기하는 것이 쪽팔리다는 생각이 들어 하는데까지 해보기로 하고 일단 배낭을 챙겨 집결장소로 향했다. 예상대로 역시 쉽지가 않았다. 없던 체력이 갑자기 올라올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도 훈련일정이 진행될수록 참고 견디다 보니 급격히 체력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혹시 원정을 떠나지 못하더라도 7월까지 대원들과 훈련을 성실하게 마칠 수 있으면 최소한 전보다 훨씬 건강해진 몸 하나는 건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생겼다. 그래서 뒤처진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주중에 출근시간을 조정해서 틈틈히 집뒤 석상산( 471m )를 오르며 개인 훈련을 했는데 훈련의 마지막까지 낙오하지 않고 버티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한번은 서울 불수사도북 종주 중에 체력고갈로 운행을 포기하려 할 때 동료들이 언제 약속이나 한듯 나의 배낭을 풀어 짐을 나눠가져서 나머지 구간을 무사히 끝내도록 도와준 기억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뭉클한 기억으로 남아었다.
고산원정이 처음인지라 개인 장비를 어떻게 얼마나 준비해야 할 지 몰라 고민이 많았다. 장비담당인 이상국 대원이 고산 경험도 있고 장비에 대해 지식과 정보수집력이 방대하여 조언을 들어가며 준비했다. 무엇보다도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추위에 견딜 수 있는 장비들로 새로 사야해서 경제적인 부담이 컸다. 산악회 선후배들이 흔쾌히 후원을 해주어서 많은 부담을 덜게되었다. 개인의류 중 동상을 방지할수 있는 고소화와 장갑에 신경을 써서 많은 투자를 했는데 현지에서 나름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나중에 우리의 등반을 도와준 가이드 후세인은 내가 준비한 장비를 보고는 “등반장비점을 가져왔냐며" 농담을 했다. 사실 좀 과하게 준비한 점도 있는듯 하다.
하얀 만년 설산을 배경으로 끝 없이 펼쳐진 초원. 산자락을 따라 느리게 움직이며 풀을 뜯고 있는 양떼들. 그 사이로 분주하게 양을 몰아가는 양몰이개들과 말을 탄 목동들. 오쉬에서 6시간을 달려온 우리들을 맞이하는
베이스캠프(BC)의 목가적인 풍경이었다. 부푼 꿈을 안고 도착한 베이스캠프의 첫날 밤. 차량으로 급격히 고도를 올린 탓인지 호흡도 편안하지 않고 속도 울렁거려 밤새 뒤척였다. 이튿날부터 대행사 식당에서 제공하는 음식으로 식사를 하면서 짐을 정리하고 캠프지 근처의 산봉우리를 오르고 초원을 산책하면서 고소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고산 등반 경험이 있는 이상국 대원을 제외하고 대원들 대부분은 고소라는 낯선 환경에 쉽게 적응이 안된 분위기였다. 다행히 원래 출발하기로 한 날짜에 짓눈개비가 내리면서 캠프1으로 가는 일정이 하루 지연되어 고소에 적응하는 시간을 벌수 있었다.
캠프1로 가는날. 대부분의 짐은 말에 실어 올리고 최대한 간단하게 배낭을 꾸려 움직이기로 했다. 현지 대행사에서 제공하는 차량을 이용하여 푸른 평원이 끝나는 지점에 도착하자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말과 사람이 함께 엉켜다니는 오솔길 곁으로 이름 모를 야생화가 제철을 맞이한듯 한창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바람에 가늘게 떨고 있는 작고 단단한 야생화의 자태에서 강인한 파미르고원의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캠프1로 가는 길의 하일라이트는 4,100m의 푸체트니코프스키 고개 넘기였다. 경사가 심해서 고개마루를 지그제그로 넘어가야 하는데 가파른 길이 산자락에 살짝 걸려있다. 나는 힘이 들어 조금 돌아가더라도 쉬워 보이는 길을 택해서 걸었다. 등반대장님은 사람이 다니는 길로 가겠다고 정상으로 이어진 가파른 길을 택해서 성큼성큼 걸어간다. 뒤를 돌아보니 짐을 실은 말의 행렬이 나를 따르고 있다. 말들에게 길을 양보한다는 핑개로 잠시 쉬면서 천천히 올랐지만 고개마루에 도착할 즈음에는 숨이 턱까지 차 있었다. 고개마루를 넘어서자 레닌봉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캠프1까지는 빙하계곡의 사면을 따라 순탄하게 이어졌고 모두 들뜬 마음으로 눈발이 간간히 날리는 캠프1에 도착했다. 시간 여유가 있어 짐 정리를 하고 오쉬시장에서 사가지고 올라온 배추를 다듬고 소금에 절여서 겉절이를 담궈서 먹기로 했다.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맛이 있었고 캠프식당 주방에서 일하는 현지인들도 김치 담그는 과정을 신기한듯 유심히 바라보더니 갓 담근 겉절이김치를 맛보게 해주자 맵고 자극적인 한국맛에 연신 깔깔댄다. 김치를 가지고 인근 캠프지로 들어온 조선이공대팀을 방문해 전달해 주었다. 다음날은 캠프지 근처에 있는 유힌봉(5,100m)를 고소적응차 오른 후 내려왔다. 캠프1에서는 우리가 오르게 될 레닌봉 북사면의 전체루트를 바라볼 수 있는데 오전이면 구름이 걷혀서 캠프2로 가는 루트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개미떼처럼 줄지어 오르내리는 등반팀들을 바라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였다.
캠프2로 가는 길. 새벽 4시 캄캄한 식당에서 대행사에서 마련해준 간단한 음식으로 아침을 해결한 후 운행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빙하의 빙퇴석지대를 걷다가 동이 터오를 즈음 얼음 구간에 도착해서 크램폰을 착용하고 운행을 이어간다. 드디어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었다는 생각과 발밑으로 착착 박히는 크램폰 소리와 얼음의 느낌이 좋았다. 짧은 주마링구간을 지나 크레바스 구간에 들어서자
다들 긴장한 분위기다. 미로처럼 이어진 크레바스 길에는 다행이 사다리와 로프가 고정되어 있었다. 무사히 크레바스구간을 지나자 드넓은 설사면 구간이 나타났고 태양은 머리 위로 올라와 우리를 정면에서 비추기 시작했다. 새벽녘 추위와의 싸움은 이제 더위와의 싸움으로 바뀌었다. 설맹을 방지하기 위해 착용한 고글 안으로 김이 서려서 자주 벗어 닦아야했고 설사면은 강렬한 태양에 녹기 시작해서 크램폰에 눈이 조금씩 붙기 시작했다. 그나마 스노볼 방지 기능이 있는 설상용 크램폰을 착용해서 다행이었다. 등반대장님의 지시에 따라 안자일렌을 풀고 운행을 하는데 캠프2를 향해 설사면을 따라 활처럼 이어지는 루트는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캠프1에서 보았을 때 설사면 트레버스 횡단구간은 식은죽 먹기라고 생각했는데 영 딴판이다. 캠프2를 2km 정도 남겨 놓은 지점에서 결국 털썩 주저 앉았다. 맨 앞에서 이끌던 이상국 대원은 벌써 캠프2에 도착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뒤따르는 김성은 대원도 중간에 가다가 쉬기를 반복하면서 캠프2를 향하고 있다. 해가 레닌봉 서쪽능선에 노을을 드리우기 시작할 즈음에서야 무거워진 발걸음을 질질 끌며 캠프에 도착했다. 텐트 밖에서 쉬고 있던 이상국 대원이 수고했다며 반갑게 맞이해준다. 저 멀리 아래로는 맨 후미에서 엄재원 대원이 가이드 후세인의 도움을 받으며 오고 있는데 힘겨워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내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데 누구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 ? 캠프2의 캠프지는 캠프1과는 영 딴판이다. 빙퇴석 위 자갈밭에 텐트가 설치되었는데 낮에 기온이 오르면 텐트 밑으로 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텐트 자리도 경사면에 기울게 설치되어 있어서 자는 동안 계속 뒤척이며 자세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고소도 몰려오고 지쳤다는 핑계로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데 물을 구하는 귀찮은 일은 이상국 대원에게 미루었다.
이튿날 캠프3으로 오르는 구간. 지금까지와는 달리 출발부터 급격한 경사구간이 시작된다. 그래도 간밤에 눈이 잘 굳어있어 오르는데 크게 불편함이 없다. 고도는 점차 6천미터를 향해가고 있고 이제 호흡도 많이 가빠졌다. 캠프3을 앞둔 설사면 직선구간은 그야말로 전쟁터 같은 느낌이었다.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을 헤쳐나가는데 쌓인 눈이 얼어붙지않아 아이젠을 착용한 신발은 고정되지 못하고 계속 흘러내려 제자리 걸음이다. 하는 수 없이 지그제그로 돌아서 올랐는데 금방이면 오를 수 있을 것 같은 가파른 경사면 1km 정도의 구간을 두 시간 가량 용을 쓴 후 겨우 올랐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오늘 저녘 정상 등반을 위해 물을 만들어야 했다. 이상국 대원이 밖에서 비닐에 눈을 담아오고 나는 힘들다는 핑계로 텐트 안에서 눈을 녹인다. 산에서는 착하고 쎈 놈이 항상 고생하는 구조다. 정상을 향해 갈 대원 5명이 마실 10리터 가량 물을 만들자니 시간도 많이 걸리고 보통 수고스러운게 아니다. 뜨거운 물을 챙겨서 대원들 각자의 보온병에 담아 나누어주고 몸을 뉘우니 해가 뉘엇뉘엇 저물기 시작한다. 한밤 중에 출발해야 하기에 미리 우모복 상하의를 미리 챙겨 입고 잠시 잠을 청하는데 이런 저런 생각에 잠이 오질 않는다. 이리저리 뒤척이며 선잠을 자다가 12시가 못 되어서 일어났다. 렌턴 불빛 아래서 곱은 손으로 힘겹게 빙벽화를 착용하고 베낭을 메고 나니 얼굴에 강한 눈보라가 부딪친다.
이제 마지막 정상구간만 남았다. 최선을 다해 반드시 정상을 찍고 내려오자고 다짐하면서 발걸음을 옮겼지만 결국 정상을 포기하고 가파른 사면을 내려와 텐트로 돌아온 뒤 신발을 내동댕이치고 곧바로 쓰러졌다. 정상에 가지못했다는 아쉬움보다 안전한 곳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몰려왔다.
이튿날 아침. 텐트 밖이 무전기 소리로 시끄럽다. 무전기를 통해 김대장님의 호출이 들리고 이상국 대원과 함께 정상에 올랐다는 기쁜소식을 전해준다. 김성은 대원은 정상을 앞두고 힘들어서 잠시 쉬고 있는데 올라 오면 같이 하산하겠다고 하시며 오늘 중으로 대원 전원이 캠프2까지 내려간다고 철수 준비를 해두라고 한다. 상국이가 대장님과 함께 정상에 올라 너무 고마웠다.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는 들뜬 기분으로 짐을 챙기며 하산 준비를 시작했다. 한가로이 눈을 녹여 물을 만들며 잠시 뒤 하산할 대원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사이 무전기에서 대장님의 콜이 들어온다. 이상국 대원이 설맹에 걸려서 데리고 내려 와야한다는 것이었다. 기나긴 하산길을 설맹상태로 내려온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위험할지 걱정이 앞섰다. 그렇게 걱정스런 마음으로 추가 소식을 기다리는 사이 대장님에게 날라온 무전은 설상가상이었다. 김성은 대원이 발목를 삐어 데리고 내려오는데 탈진해서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대원 한 명은 설맹이고 한 사람은 다리가 삐었고 탈진상태…. 누군가 올라가서 데리고 내려와야 할 상황인 것이다. 서둘러 가이드 후세인을 올려 보내고 부랴부랴 따듯한 커피와 물을 챙겨 마중을 나갔다. 먼발치로 정상에서 내려오는 가파른 능선을 따라 대원들이 내려오는 모습이 힘겨워 보인다. 머지않아 등반대장님이 김성은 대원을 앞세우고 내려오는데 아무 말이 없다. 굳어 있는 대장님의 얼굴에서 오늘 하루 겪은 마음 고생이 진하게 느껴졌다. 잠시 뒤 가이드 후세인이 로프로 이상국 대원을 연결해서 안부로 내려선다. 상국이에게 다가서는데 알아보지 못한다. 제대로 설맹에 걸린 듯하다. 그 눈을 하고 정상에서 여기까지 자기 발로 걸어 내려오다니 참 대단한 체력이다. 차 한잔 마시라고 보온병을 내미니 그제서야 떨리는 목소리로 “연수형“하고 부른다. 서둘러 이상국 대원의 배낭을 메고 캠프3로 돌아왔다. 저녘을 준비해 주려는데 다들 그냥 잔다고 손사래을 친다. 다들 뭘 먹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닌 듯하다. 상국이도 눈에 설맹 치료 연고를 바르고 안대를 한 뒤에 내 텐트 안에서 잠을 청한다. 그동안 힘 좋은 후배라고 마구 부려먹었던 것을 오늘 밤에는 내가 보상해야 할 처지다. “밤중에 오줌 마렵다고 하면 소변을 받아줘야지~ 상국이 물통에. ㅋㅎㅎ"
지나간 시간은 모두 아름답다고 했던가? 캠프3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다음날 짐을 챙겨내려올 때 이 춥고 배고픈 곳에서 벗어나 따듯한 집으로 돌아간다는 기쁨에 발걸음이 너무 가벼웠다. 하지만 모든 것이 안전하고 편안해진 지금 정상을 앞두고 캠프3 텐트 안에서 바람에 펄럭이는 텐트 소리를 들으며 눈을 녹여 물을 만들고 있는 그때의 나의 모습이 가끔씩 그리워진다. [식량 담당 보고]
잘 먹지 않으면 정상에 결코 설 수 없다. 고소에서는 대원들의 식욕이 급격히 떨어지는데 입맛을 돋구워줄 식단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사람 입맛에 맞는 김치는 많이 준비할 수록 좋다. 고산 원정의 베테랑인 김미곤 등반대장님의 식량에 대한 지시사항이었다. 우리 레닌봉 원정대는 베이스캠프에서 캠프1까지는 현지의 대행사가 공동식당에서 부페식으로 음식을 제공하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식량 담당 입장에서 보면 식량 준비 부담을 많이 덜 수 있었던 원정대였다.
원정대장님도 원정 비용이 빠듯한 점을 감안해서 가급적 캠프2 이후의 고소식만 우리가 준비하고 나머지는 대행사가 제공하는 식사를 최대한 이용하자고 했다. 대행사가 제공하는 식단을 살펴보니 대부분 낫설은 메뉴였지만 레닌봉 원정을 다녀온 선배님들의 경험과 타원정대의 등반 후기를 살펴보니 그런대로 먹을만 하다는 의견이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대행사 식단을 최대한 활용하되 등반대장님의 의견을 반영해서 한국스타일 별식을 만들어서 가끔씩 대원들에게 제공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키르기스스탄 여행 자료를 살펴보니 시장에서 신선한 야채와 육류를 값 싸게 구매할 수 있어서 양념류를 대원들이 가장 선호할 만한 묵은 충분하게 챙겨가서 현지에서 조리한다면 크게 문제가 없을 듯했다. 김치는 전라도쪽 김치공장에 주문하여 15kg 정도를 준비했고 나머지는 부족한 김치는 현지에서 배추를 구매하여 준비해간 양념류로 겉절이를 담궈서 먹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이는 예상보다 대원들에게 인기가 아주 좋았다. 그래서 캠프1에 올라가서도 대행사를 통해 배추나 마늘을 추가로 올려달라고 했고 배추겉절이를 담궈서 함께온 조선이공대 원정대에도 나눠주었는데 역시 반응이 좋았다. 등반대장님이 원정을 떠나기 전에 식량담당은 원정 가서 양 몇마리 잡아줄거냐고 농담을 던지곤 했는데 때마침 레닌봉 베이스캠프지 곁에는 여름철 한때 양들을 방목해서 키우면서 양젖으로 치즈를 만들고 있는 유목민들이 군데 군데 유루트(돔형 천막집)를 치고 살고 있었다. 양치기에게 이야기해보니 우리돈으로 15만원 정도면 양 한마리를 구할수 있었다. 한국에서 고기요리를 위해 고추장양념, 간장갈비양념을 준비해 갔는데 시장에서 구매한 감자와 마늘을 넉넉히 넣고 압력밥솥으로 조리를 해서 제공해보니 외국원정대들도 칭찬 할 만큼 맛이 훌륭했다. 양고기는 그후에도 2번 정도 더 먹었다. 계약한 고기값에 5만원 정도를 더주고 현지식으로 요리를 해달라고 했는데 무엇보다 직접 요리를 준비하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고 특별한 양념 없이 소금간만 한 듯한 수육 형태로 제공되는 요리가 훌륭했다. 15~20명의 원정대는 양한마리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양인 듯했다. 현지에서 닭고기를 구해서 맛있는 닭도리탕 요리를 하려고 계획하고 닭고기를 현재 대행사에 구해 달라고 했는데 배달해온 닭고기는 전부가 냉동된 닭가슴살 이었다. 하는 수 없이 일부는 고추장양념으로 요리를 해서 먹었고 나머지는 삶은 뒤 살을 발라서 간장 장조림을 만들었다. 고소캠프에 가지고 올라가서 쓸 수 있는 유용한 요리인 듯 하다. 대다수 원정대들처럼 준비해간 즉석 미역국, 북어국, 육계장 등 동결건조식품은 고소에서 떨어진 대원들의 입맛을 끌어올리기에는 역시 역부족 이었다. 식사시간에 표정을 보면 다들 살기 위해 억지로 입에 쑤셔넣는 분위기였다. 그나마 낙지, 오징어젓갈, 고추장아찌 등 고추장 양념베이스의 반찬이 주효했고 모든 원정대의 대표식량인 라면과
짜피게티는 운행 후에 바로 조리할 수 있는 좋은 메뉴였다. 식량 중 한가지 생각나는게 단무지였는데. 물을 꼭 짠 꼬들 단무지를 준비해가서 현지에서 고추가루와 마늘 등으로 양념해서 먹어보니 꽤 먹을만 했다. 식량 담당으로 돌이켜보면 부족한 것도 많았다. 준비해 간 식량 중 상당한 것들을 가지고 내려와야 했다. 운행식으로 큰 돈을 들여 준비한 파워젤은 고소의 추위에 별로 먹히지 않았고 사탕류 등 간식들도 고소에서는 다들 손이 가질 않았다. 커피, 녹차, 보리차, 밀크티를 차류로 준비해갔는데 커피는 많이 남았고 달달한 밀크티는 인기가 있어 금방 동이 났는데 좀 더 준비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캠프3에서 옥수수스프를 식량으로 썼는데 그나마 먹을만 했다. 조금 더 충분히 준비를 해야 했다. 식량을 준비할 때 대원들 각자의 기호와 화물 무게, 항공 배송 과정에서의 문제점 고소에서의 조리의 편리성 등 고려할 것이 많았다. 결국 모든 것은 식량 담당의 선택의 문제였다. 초보 식량담당으로서 이번 원정을 위해 집에서 집사람의 조언을 받아가면서 김치 겉절이를 담궈도보고 닭계장도 끓여보면서 준비한 것은 행복한 기억으로 남는다. “낫선땅~ 고소와 추위에 지친 대원들에게 입에 착착 붙는 따듯한 음식을 배불리 먹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모든 식량 담당의 고민일 것이다. 멀리 우리를 가이드하기 위해 이란에서 날아온 후세인은 캠프2 이후의 고소 식량으로 분말로 된 선식같은 것만 이용했던 것 같다. 한국원정대들은 그걸로 과연 견딜 수 있을지 궁금했다.
[고 의열 형님에게]
“아미고스”라는 단어를 좋아했던 형님은 우리들에게 그 의미처럼 참 편안한 친구같은 산쟁이었습니다. 호리호리하고 다부진 몸매, 맑은 눈빛, 오랜 등반경험에서 뭍어나는 자신감. 형님을 처음 보고 “세상에 이런 멋진 산쟁이가 있었구나” 라고 속으로 놀라면서 레닌봉 원정을 통해 좋은 산 인연이 만들어질 수 있으리라 내심 기대했었습니다. 함께 했던 훈련 일정 내내 항상 밝은 모습으로 앞장서가며 선후배들을 챙겨주시면서 용기를 주셨는데 그렇게 쉽게 가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 마지막이 우리와 함께였다는 것이 지금도 가슴 아프고 죄송하고 한없이 아쉽기만 합니다. 그날 그 빗속에서의 하산길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그래도 형의 보살핌이 있었기에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레닌봉 원정을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봄에서 계절이 3번 바뀌어 어느덧 겨울이 되었습니다. 형님이 떠나신 자리를 잊지않기 위해 쌓아놓은 십이선녀탕 산길가 케른에도 지금쯤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겠지요. 형님처럼 맑고 포근하게 세상을 덮어주면서 ~ 문득 형님이 그리워 질 때 막걸리 한 병 들고 십이선녀탕으로 만나러 가겠습니다. 비가 되고 눈이 되고 바람이 되어 한달음에 마중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원정 계획서
Lelin Peak Schedule( 1st)
Camp 고도(m) 정상 7,134
C3 6,100
5,300
C2
5,100 C1 4,825 4,400 Base 3,600 도시
고소
C1 진출
B.C 도착고소 Bishkek Osh 일정◁ D1 D1 D2 D3 D4 D5 D6 D7 D8 일시
Plan A
Lelin Peak Schedule(Actual) Camp 고도(m) 정상 7,134
C3 6,100
5,300
C2
5,100 C1 4,825
고소적응 C1진출고소적응 B.C 도착고소적응 Bishkek Osh Osh
4,400 Base 3,600 도시 일정◁ D1 D1 D2 D3 D4 D5 D6 D7 D8 일시
분야별 보고
BY FILD RECORD
Event
정상
C3 진출
C3 진출 C3 복귀
C2 진출
C2 진출
고소적응
C1 진출
C1 복귀 B.C 복귀정비 예비 BC철수
정비
B.C복귀
귀국 Osh Bis Bis 인천 D9 D10 D11 D12 D13 D14 D15 D16 D17 D18 D19 D20 D21 D22~D24D25 D26 29 30 31 12345678
9 10 11 12~14 15 16
전대원 고소 적응 훈련기간 참고용
A,B,C 조 A,B 조
Event
정상
C3 진출 C2 C2 진출 복귀
C3 진출 C3복귀
C2진출
고소적응
고소적응
C1복귀
C1진출정비
BC복귀정비 정비
BC복귀 BC철수 귀국 Bis Bis 인천 D9 D10 D11 D12 D13 D14 D15 D16 D17 D18 D19 D20 D21~D23D24 D25 D26 29 30 31 12345678
9 10 11~13
이 쪽은 글자로 옮기지 못했습니다. 이북에서 보기
■식량운용
★ 레닌원정대 일정별 식량 운영계획
일수
날짜
장소
중식
D1
7월 22일 18:25 Bishkek 입국
매식(국내공항)
(기내식)
매식(현지식당)
D2
7월 23일 Bishkek ~ Osh ~ BC
호텔조식(대행사) 매식(현지식당)
BC(캠프식)
D3
7월 24일 BC
BC(캠프식)
BC(캠프식)
BC(캠프식)
D4
7월 25일 BC
행동식(대행사)
D5
7월 26일 BC ~ C1
BC(캠프식)
행동식(대행사)
C1(캠프식)
D6
7월 27일 C1
C1(캠프식)
행동식(대행사)
C1(캠프식)
D7
7월 28일 C1
C1(캠프식)
행동식(대행사)
C1(캠프식)
D8
7월 29일 C1 ~ C2
행동식(대행사)
C2(고소식)
D9
7월 30일 C2(예비일)
C2(고소식)
C2(고소식)
C2(고소식)
D10
7월 31일 C2 ~ C3
C2(고소식)
고소행동식
C3(고소식)
D11
8월 01일 C3 ~ C1
C3(고소식)
고소행동식
C1(캠프식)
D12
8월 02일 C1 ~ BC
행동식(대행사)
BC(캠프식)
D13
8월 03일 BC
BC(캠프식)
BC(캠프식)
BC(캠프식)
D14
8월 04일 BC
BC(캠프식)
BC(캠프식)
BC(캠프식)
D15
8월 05일 BC ~ C1
BC(캠프식)
행동식(대행사)
C1(캠프식)
D16
8월 06일 C1 ~ C2
C1(캠프식)
행동식(대행사)
D17
8월 07일 C2 ~ C3
C2(고소식)
고소행동식
C3(고소식)
D18
8월 08일 C3 ~ Summit ~ C3
C3(고소식)
고소행동식
C3(고소식)
D19
8월 09일 C3 ~ C1
C3(고소식)
고소행동식
C1(캠프식)
D20
8월 10일 C1 ~ BC
C1(캠프식)
행동식(대행사)
D21
8월 11일 BC ~ Osh
BC(캠프식)
BC(캠프식)
매식(현지식당)
D22
8월 12일 Osh ~ Bishkek
호텔조식(대행사) 매식(현지식당)
매식(현지식당)
D23
8월 13일 Bishkek
호텔조식(대행사) 매식(현지식당)
매식(현지식당)
D24
8월 14일 Bishkek(예비일)
호텔조식(원정대) 매식(현지식당)
매식(현지식당)
D25
8월 15일 Bishkek ~ Almaty
호텔조식(원정대) 매식(현지식당)
매식(현지식당)
D26
8월 16일 09:45 Incheon 입국
(기내식)
매식(국내공항)
* 오쉬 식당 : - 파노라마 : 오쉬시내를 바라볼수 있는 스카이 라운지식당 * 비쉬켁 식당
■식단운용
★ 고소캠프 ( C2,C3 ) 식단운영
보조식
D8 7월 29일 C1 ~ C2
보조식 보조식 보조식
D9 7월 30일 C2(예비일)
보조식 보조식
D10 7월 31일 C2 ~ C3
보조식 보조식 보조식 보조식 보조식
D11 8월 01일 C3 ~ C1
보조식
D16 8월 06일 C1 ~ C2
보조식
BC 철수
D17 8월 07일 C2 ~ C3
C3 ~ Summit ~ C3
D18 8월 08일
D19 8월 09일 C3 ~ C1
고도
5,300m
C2(고소식 A)
C2(고소식 C) 알파미(국내산) 건조육개장 단무지 마늘장아찌 벌꿀차(보온병) 고소 행동식 파워젤 에너지바 비타드롭스 찰떡파이 초코바 벌꿀차(보온병) 고소 행동식 파워젤 에너지바 비타드롭스 찰떡파이 초코바 벌꿀차(보온병) 행동식(대행사)
누룽지 건조된장찌개 볶음김치 김자반 믹스커피 C2(고소식 B) 누룽지 주문건조국 6,100m 낙지젓갈 김자반 믹스커피
5,300m
C3(고소식 A)
C1(캠프식)
누룽지 주문건조국 5,100m 볶음김치 김자반 믹스커피
C1( 캠프식 )
C2(고소식 C) 알파미(국내산) 건조육개장 단무지 고추장아찌 밀크티 C3(고소식 D) 알파미(오니시) 주문건조국 낙지젓갈 김자반 밀크티
5,300m
C2(고소식 B)
고소 행동식
누룽지 건조미역국 6,100m 낙지젓갈 김자반 믹스커피
파워젤 에너지바 비타드롭스 찰떡파이 초코바 벌꿀차(보온병) 고소 행동식 파워젤 에너지바 비타드롭스 찰떡파이 초코바 벌꿀차(보온병) 고소 행동식 파워젤 에너지바 비타드롭스 찰떡파이 초코바 벌꿀차(보온병)
C3(고소식 A)
C3(고소식 E) 알파미(오니시) 주문건조국 단무지 고추장아찌 밀크티
누룽지 주문건조국 7,134m 볶음김치 김자반 믹스커피
C3(고소식 A)
C1(캠프식)
누룽지 주문건조국 4,400m 볶음김치 김자반 믹스커피
ㅇ 고소캠프식은 위 메뉴에 분말스프와 구운김을 추가하여 개인 기호에 맞게 운영한다. ㅇ 고소행동식은 위 기본메뉴에 개인취향을 반영하여 대원개인이 준비하여 운영할수 있다.
■식량예산
★ 식량예산 계획
내역
끼니 수 (합계)
항목
인원 합계
단가
조식 중식 석식 보조식
Camp 3
685,345
Camp 2
329,935
고소식
고소행동식
324,430
소계
BC
Camp 1
캠프식 (대행사) 행동식(대행사)
138,400
소계
602,470
소계
대행사 제공
매식 원정대 현지 매식
15,000
기타
국내공항(출국, 입국)
15,000
소계
예산 합계
★1. 개인 기호품은 총 중량에 영항을 끼치지 않는 범위에서 개인이 준비 바람.
2. 식량은 BC.Camp 1까지는 대행사 프로그램을 활용(고소식은 우리가 준비)
■알파미 건조국 비교
★ 알파미-건조국 가격 비교
준비 단위 중 단위 칼로리 량(g) (kcal) 국내 현지
구분
식품명
필요 수량
판매 단위 구매수량
알파미(국내산)
5kg
1.5팩
건조 육개장
192.00 15개/1box
2box
●
알파미(국내산)+ 일반 건조국
건조 된장찌개
35.00 15개/1box
3box
●
건조 미역국
33.00 15개/1box
3box
알파미(오니시) *1
366.00 50개/1box
알파미(오니시) *2
366.00 15개/1box
건조 육개장
192.00 15개/1box
2box
알파미(오니시)+ 일반 건조국 건조 된장찌개
35.00 15개/1box
3box
●
건조 미역국
33.00 15개/1box
3box
●
알파미(오니시)
366.00 50개/1box
●
알파미(오니시)
366.00 15개/1box
●
알파미(오니시)+ 주문 건조국 주문 건조국
1개
105개
●
*1: https://www.coupang.com/vp/products/6828894871?itemId=16205215203 *2: https://www.coupang.com/vp/products/6828893967?itemId=16205211491 (2개 남음)
■식량패킹구분
★ 식량 패킹 구분1
금액
패킹 항목
329,935 알파미(국내산), 일반건조국 사용
D팩(1개) + 파워젤 120개
324,430
D팩(1개) + 찰떡파이 60개 + 에너지바 15개
1,339,710 -
D팩(1개) + 초코바 60개 + 에너지바 30개
D팩(1개) + 초코파이 48개
138,400 대행사 행동식 대체 준비
D팩(2개) + 카스타드 48개 + 에이스 15개 소계
138,400 602,470 대행사 캠프식 보조 식사 602,470 -
★ 식량 패킹 구분3
조식은 무료(호텔 제공) 예비일2일포함(+210 000원/1일/2
1,155,000 210,000
패킹 항목
1,365,000
고추가루 1봉 + 고추장 2개 + 소갈비양념 1개 2,925
3,445,580
쌈장 1개 + 진간장 1개 + 오징어젓갈 1개 참기름 1개 + 된장 1개 + 맛소금 2개 육수가루 1개 + 고추가루 1개 + 육수가루 1개 1,446
소계
★ 식량 패킹 구분5
계산 구매중량 판매단가 식 (g)
구매 합계(원)
(원)
패킹 항목
7,500
71,250
106,875
1,500
17,900
35,800
신라면 30개
2,250
17,900
53,700
짜파게티 30개
2,250
15,300
45,900
242,275
짜짜로니 40개
5,000 207,500
207,500
삼양라면 40개
1,300
99,200
99,200
1,500
17,900
35,800
2,250
17,900
53,700
소계
2,250
15,300
45,900
442,100
5,000 207,500
207,500
1,300
99,200
99,200
7,000
735,000
1,041,700
★ 식량 패킹 구분2
중량(g)
패킹 항목
중량(g)
6,560
육개장 30개 + 우거지된장 15개 + 미역국 30개
2,890
알파미 국내산 2.5kg + 오니시 50개
4,800
주문 건조국 49인분 + 카레밥 2개
1,860
콘스프 18개
2,520 18,630
소계
1,200
★ 식량 패킹 구분4
패킹 항목
중량(g)
중량(g)
누룽지 6개
6,000
황태채 2개
1,000
3,770
단무지 2개
1,400
2,097
미역 3개
김자반 1개
500 9,515
소계
10,238
중량(g) 4,000 4,800 6,000 6,000
20,800
■식량 현지 구매 목록
★ 식량 구매 항목 (현지/오쉬)
준비 국내 현지 ●
단위 칼로리 (kcal)
필요 수량
벌꿀
1kg/병
고소식 건과일 식용유(대두유/올리브) 밀가루 계란 배추 감자 무우 가지 보조식 오이
●●●●●●●●●●●●●●●●
1kg/팩 1리터/병 1kg 30개/판 포기 kg 개
마늘 설탕 소금 양고기 소고기 말고기 닭고기
개 봉 봉 1kg 1kg 1kg 마리
벌꿀 계란 감자
● ● ●
1kg/병 30개/판 kg
행동식
합계
■식량 후원 목록
■행동식 목록
★ 대행사 행동식을 자체 준비로 대체
판매 단위 구매수량 구매중량(g) 판매단가(원) 구매합계(원) 1,000 1,000 2,000 2,000 5,000 4,800 6,000 5,000 3,000 1,000 2,000 600 1,000 1,000 10,000 10,000 10,000 18,000 81,400 1,000 1,920 5,000 7,920 90,320
10,000 10,000 20,000 20,000
D4 7월 25일
BC
10,000 5,000 5,000 5,000 5,000 10,000 3,000 3,000 3,000 100,000 100,000 100,000 100,000 489,000 10,000 4,000 5,000 19,000 518,000
D5 7월 26일
BC ~ C1
D6 7월 27일
C1
D7 7월 28일
C1
D8 7월 29일
C1 ~ C2
D12 8월 02일
C1 ~ BC
D15 8월 05일
BC ~ C1
D16 8월 06일
C1 ~ C2
D20 8월 10일
C1 ~ BC
C1(캠프식)
C1( 캠프식 )
C1( 캠프식 )
BC(캠프식)
C1(캠프식)
C1(캠프식)
C2(고소식)
C1(캠프식)
BC(캠프식)
ㅇ 고소캠프식은 위 메뉴에 분말스프와 구운김을 추가하여 개인 기호에 맞게 운영한다. ㅇ 고소행동식은 위 기본메뉴에 개인취향을 반영하여 대원개인이 준비하여 운영할수 있다.
화보
PHOTO
07.22. 인천공항 출국 전 TF팀과 함께
07.21. 출국전야 TF팀과 함께 저녁 식사
07.22. 알마티에서 베슈케크 공항으로 환승 중인 대원들
07.22. 베슈케크 공항 도착
07.23. 오시 선라이즈호텔 입구에서
07.23. 오시공항 도착
07.24. BC 캠프 사이트와 레닌봉의 위용
07.25. BC에서 조선이공대팀과 함께
07.22. 인천공항 출국 전 대원들
07.22. 베슈케크 펠리스호텔 1박
07.26. C1으로 옮길 연료와 식량들
07.23. 글로버스 시장에서 야채 구매
07.27. C1 출발 입구 산악인 추모 동판들
07.24. BC 가는 길에 설산을 배경으로
07.28. C1 원정대 전용 키친텐트
07.24. BC 가는 길에 유르트에서 점심
07.25. BC 휴식 중 패트로보스키봉 고소순화훈련
07.26. BC 휴식 중 장비 정리
07.26. BC 식사 후 일정 회의
07.26. 아이사아웃도어 BC캠프 전경
07.27. C1으로 옮길 카고백들
07.27. C1 식사 후 회의0
07.27. C1으로 오르고 있는 대원들
07.28. 안전등정 성공 기원제
07.29. C1 전경
07.29. C1 유힌봉 정상에서
07.29. C1 유힌봉 하산길
07.30. 행동식 정비
07.30. C1 텐트에서 바라본 레닌봉 전경
07.31. C2 설사면 출발 전
07.31. C2 설사면을 오르는 대원들
08.01. C3 김미곤 등반대장. 성년수 대원
07.29. C1 유힌봉 고소 적응 훈련 중인 대원들
08.01. C3 장세종 원정대장
07.29. 홍어탕을 끓이는 김미곤 대장
7.30. 공용장비 정비
08.01. C2~C3 구간 오가는 원정대들
08.1. C2 전경
08.02. C1 복귀하는 원정대원들
08.02. C1 복귀 중 크레바스 통과
08.01. C3와 레닌봉 전경
08.01. C2로 복귀하는 대원들
08.01. C3 도착 후 장비 정리
08.01. C2 복귀 후 식사
08.01. C1 북귀 준비 중인 대원들
08.03. C1 조선이공대팀 조우
08.02. C1복귀 설벽구간 하강
08.03. C1에서 BC로 하산 중인 대원들과 조선이공대팀
08.06. 고소순화를 마치고 C1으로 재출발
08.07. C1에 마련된 사우나실(운영 안함)
08.08. C2로 출발 전 새벽 식사
08.08. C2 도착
08.09. C3 급경사 설사면 오름길
08.04. BC 휴식 중 체력단련
08.07. C1에서 바라본 신비로운 자태의 레닌봉
08. 08. C2 가는 길 설벽 구간
08.10. C3로 하산 중인 김미곤 대장과 김성은 대원
08.09. C3 식수용 눈 채취
08.12. BC 등정 성공 세레모니
08.10. 정상에 우뚝 선 김미곤 대장과 이상국 대원
08.10. 정상에서 바라본 주변의 풍광
08.10. C3로 하산 중인 후세인 가이드와 이상국 대원
08.11. BC 바에서 휴식
08.15. 인천공항 도착. 마무리
08.14. 정들었던 BC를 떠나며
경복산악부OB
since 1948
경복고산악부OB(복악회)
100년의 역사를 가진 경복고등학교 산악 부 출신이 주축이 된 클럽으로 40년 이상 연륜 차이의 선후배들이 한마음으로 국내 외 암빙벽 기술등반, 해외트레킹, 고산등반 등 다양한 전문등반활동을 펼치며 정통 알 피니즘의 정신을 추구하는 산악등반 모임 입니다. ▲연락: 총무 박호상 ㅣ 010-****-5394
2022.5.4. 세계 최초 푸캉봉 정상 등정
원로의 길을 걷다·3ㅣ김 병 준 산악동우회 부회장
대 담 ㅣ 원로의 길을 걷다.
진화해가는 오늘날 등반문화 알파인(Alpine) 보다는 마운티어링 (Mountaineering) 으로 포용하고 저변 넓혀가야
해가 바뀔수록 소집단주의 개인주의가 팽배해져 가는 요즈음이다. 산악계도 선후배의 아름다운 전통적 가치가 흐려지고 있으며, 젊은 층들의 전문등반 참여가 갈수록 저조해져 이제는 한국산악계를 이끌어왔던 명망 있고 유서 깊은 클럽들조차 후진들의 발길이 끊어져 근근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편집실에서는 우리 산악계 원로들과의 대담을 통해 지나온 큰 발자취를 돌아보고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그 세번째 순서로 김병준 산악동우회 부회장과 자리를 함께 했다. <편집자주> 바쁘신 와중에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산악인들은 부회장님과 K2와의 인연을 우선 떠올리게 되는데 직접 집필하신 저서 “죽음을 부르는 산” 책에 대해 소개해 주십시오? 대한산악연맹에서 1977년 에베레스트 원정 이후 9년 만인 1986년에 제2위 고봉인 K2(8,611m)로 원정대를 파견했으며, 그때 저는 원정대장을 맡았었고, 대원 셋이 정상에 섰습니다. 당시 우리팀을 포함 전세계에서 10개 팀이 K2에 도전했는데 사고가 많이 발생하였던 파란만장한 등반이었기에 보고서 외 책으로도 남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그 당시 대부분의 출판사에서 거절하여 전액 제 개인 돈으로 3,000권을 출판했습니다. 이후 평화출판사에서 3판까지 발간됐고, 수문출판 사에서 제호를 <K2 하늘의 절대 군주>로 바꿔 다시 출판했습니다.
K2 원정대의 총 대장님으로서 모든 책임을 맡으시고, 국내 최초로 등정 성공까지 하셨는데 당시 감 회를 여쭙고 싶습니다. 당시 저는 30대의 젊은 나이였으며, 전국에서 선출된 정예(Best)급 산악인들을 모아 3년간 훈련까 지 거친 후 최종 선발된 우수한 대원들이었기에 등반에 별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K2 특유의 날씨 변 덕이 잦고, 수시로 등반 사고가 발생하는 바람에 우울해지기도 했으나, 우리는 기필코 성공한다는 각오까지 더해져 등반이 잘 이루어졌지요. 대원들이 워낙 늠름하니 대장은 한마디로 행운이었습니다.
당시 원정에 참가했던 모든 대원들이 다 소중하시고 특별하실텐데 그래도 유난히 기억에 남는 대원 들이 있으신지요? 정상에 올랐던 김창선 씨는 퀄리티가 대단히 우수한 산악인이었습니다. 예전에 대한산악연맹 등반 기술위원회에 몸을 담고 있을 때 우리나라에서도 히말라야 8천 미터 고봉 14개 완등자가 나올 수 있다 해서 당시 누가 가능할지 추천했을 때 김창선하고 김재수를 뽑았는데 그 둘이면 가능하다고 판 단했었습니다. 그런데 김창선 씨는 자기가 8천 미터 고봉 등반을 이후 계속 나아갔으면 죽었을 것이라고 했 지요. 김재수는 워낙 탁월한 친구였요고.
Q A
1986 대한민국 K2원정대와 폴란드 원정대의 예지 쿠쿠츠카 구조 인연도 지나치기 힘든데 당시 상 황이 기억나시는지요? 예지 쿠쿠츠카는 국제팀의 일원으로 폴란드의 타데우스 표트로프스키와 2인조로 4번의 비박 끝에 남벽 직상루트로 K2 정상에 섰고, 하산할 때 2번의 비박 후 동료가 죽고 홀로 매우 지친 상태에서 천 행으로 우리 팀을 만나 원기를 회복하고 무사히 내려왔지요. 아직까지도 그 루트는 재등정이 안됐습 니다. 쿠쿠츠카는 BC에 도착한 다음날 대장과 함께 우리 본부텐트로 고맙다는 인사차 찾아왔어요. K2는 그 의 11번째 8,000m 등정이었고, 우리는 그가 나머지 3개 봉을 무사히 완등하기를 바란다고 말해주었습니 다. 어지간한 산악인들은 다 알겠지만 후에 그는 안타깝게도 이태리 출신 라인홀트 매스너(1970~1986년 14개봉 42세에 완등)와 1년여 차이로 8,000m 14개 거봉 등정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완등(1979~1987년 14개봉 39세 완등)한 전설적인 산악인이 되었습니다.
86년 K2 원정 당시 폴란드팀의 대장 '야누스 마이어'를 25년 86년 K2를 등정한 전설적인 산악인 '쿠르트 디엠베르거'가 2019년 울주산악영화제 초청을 받고 내한 때 만났다. 후 UIAA 총회에서 만났다.
저서에서도 기술하셨지만 당시 원정대를 이끌면서 가장 기억에 남을 이야기가 있다면 후배들을 위 해 들려주십시오. 매우 모범적인 원정대였어요. 마치 교과서 같은. 우리는 BC에 모인 10개 원정대의 중간지점에 자리 를 잡았는데 아시아 팀은 우리뿐이라 매일 외국팀들이 놀러왔지요. 우리 캠프에는 음악이 흐르는 분 위기도 좋고, 따뜻한 난로 위에 항시 더운물이 있고, 10여 종류의 다양한 차( 茶 )가 풍족하게 마련되 어 있어 모든 산악인들의 휴식처가 되었습니다. 공짜 카페라고 할까요? 또 무슨 사건이 발생하면 우리 본부 가 K2 전체의 본부 역할도 했어요. 당시 K2에는 전설적인 산악인 헤르리히코퍼 박사 등 기라성 같은 등반가 들이 엄청 많았는데 그들 모두에게 한국 산악인의 좋은 이미지를 심어줬지요. 놀랐을 겁니다. 수십 년이 지 나 한국인들이 전 세계의 고봉에서 이름을 떨치는 것을 보고 이들은 당연한 듯 고개를 끄덕였을 겁니다. 우 리는 당시 브로드피크(8,047m)도 등반하려고 했기에 식량과 장비들에 여유가 있어 주위의 여러 팀을 도와 줄 수 있었고, 안타까운 사고로 죽은 우리 고소포터의 집에도 위로 방문하고 최선으로 보상했지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소중한 추억일텐데 원정대에 참가했 던 멤버들과 등정 이후 지속적인 OB모임은 해오고 계시는 지요 ? 등정 후 몇 번 했었는데 장봉완이나 윤대표나 한 사람이 어 디에 가 있으면 다른 사람은 또 어디에 가 있고 해서 다 모이 기가 힘들었지요. 지금이야 한가해졌지만 원정 이후 오랜 기간 동안 모두 개인 일정이 있는 데다가 나도 지방에서 한창 일하고 있던 때라 서로 통화하기도 어려웠고. 그렇게 세월이 흐르다 보니 등 반 20주년 기념 등의 행사 때나 잠깐 보고 간혹 안부 정도는 묻는 정 도지만 따로 정례 모임은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고산 등반은 80년대 당시처럼 대규모 카라반을 운영하지 않고 최소한의 팀을 구성하거나, 단독 등정과 같은 알피니즘을 추구하고 있는데 그 특장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해가 거듭할수록 보다 소수로, 빠르게, 개인 위주로 변하는 추세는 당연지사입니다. 이른바 머메리 즘+알파인스타일이지요. 80년대는 개인보다 팀이 우선이었어요. 그리고 나이가 들어보니 등반 못 지않게 카라반이 추억에 남아요. 77년 에베레스트의 경우 BC까지 근 25일간 걸어갔는데 이때의 추 억이 더 강해요. 요즈음 빨리 가서 빠르게 등반하고 바로 하산하는데 개인적으로 조금도 부럽지 않습니다. 여유로운 인생이 아름답지요.
평소 생각하시는 알피니스트는 어떤 사람인지요? 또한 국내나 해외에 젊은 산악인들이 롤모델로 삼을만한 산악인이 있다면 추천해주시고 그 이유를 말씀해주십시오 . 저는 운 좋게도 세계적인 훌륭한 산악인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좌절하지 않는 신념, 용기, 투지가 강 하고, 신의와 예의가 몸에 배었으며, 멋과 낭만이 있으면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난 분 중에 선 크리스 보닝턴, 안드레이 자바다, 예지 쿠쿠츠카, 보누아 샤무, 데니스 우룹코 등을 손꼽을만하며, 동서고금을 통해 최고로 훌륭한 산악인 딱 한 분을 뽑으라면 저는 단연코 한국의 ‘김창호’를 뽑겠습니다. 김 창호의 산악인으로의 삶은 경이로움 그 자체입니다.
서울시연맹에서도 지난 22년부터 코로나 펜데믹으로 중단되었던 해외원정등반을 재개하고 있는데 22년 네팔 힘룽히말 원정의 경우 비경험자를 대상으로 1년여 기간 동안 훈련을 시키다 보니까 연맹 이 너무 피곤한 겁니다. 훈련 내내 지원하고 쫓아다니다 보니까요. 그래서 금년 레닌팀은 규제를 뒀 어요. 등반 경력 10년에 해외 원정 경험 등, 그러다 보니까 나이가 많은 사람들만 신청하였는데 전부 다 50대들이 오는 겁니다. 홍보가 미흡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6,000m 이상 보내려면 나이가 50대 이상이면 안되고 40대 도 곤란합니다. 금년 레닌봉 원정팀도 나이들이 많아 보였는데 연맹에서 원정대를 보낼 때는 그 경 험치를 바탕으로 앞으로 산악계에서 여러모로 활용해 보려는 목적이 가장 클 것입니다. 따라서 젊 은 산악인들을 보내야 합니다. 특히 서울시연맹에서 추진할 때는 특별한 경우라면 40대까지 가능하겠지만 원칙적으로는 30대 이하로 해야 한다고 봅니다. 장년은 순발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장비 정도 지원해주고 자 비로 트래킹 일정을 잡는 것이 좋습니다.
A
부회장님 활동 당시에 비해 해외 원정 등반문화도 적지 않은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규모, 예산, 루 트 등 한국 산악계에서 앞으로 무엇을 더 준비하고 어떤 목표로 나아가야 할지요?
현재의 마운틴니어링(Mountaineering)과 클라이밍(Climbing)의 의미는 옛날의 알피니즘(Alpinism)이 다양하게 변화, 발전된 형태입니다. 여기에는 기술과 장비 의 발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국내는 물론 국제적인 교류가 필요합니다.
외국산악단체와 보다 많은 정보교류와 친선 활동이 국내 교류 못지않게 중요하지요. 한국은 경제적으론 선 진국 대열에 들어갔으나, 문화적으로도 선진국이 되려면 실로 생각의 대전환과 개발은 물론 엄청난 노력이 요구됩니다. 등산 세계도 희망의 미래를 향해 국제화에 발맞춰야지요. 지구촌 곳곳에 산재한 명산들을 찾아 힘차게 뻗어나가길 기대합니다.
갈수록 젊은 층에서 산악인구 감소로 명망 높은 클럽들조차 존폐를 고민할 정도로 위기 상황입니다. 산악계 원로로서 어떻게 보고 계신지요? 어느 분야이던 흥망성쇠는 당연합니다. 등산의 세계도 마찬가지겠지요. 옛날 명망 높던 산악회들이 후배가 없어 온통 늙은이들뿐이지요. 안타깝습니다. 반면에 새롭고 젊은 클럽들이 생겨납니다. 요 즘은 알피니즘의 가치관도 변해 어느 것이 더 좋다 말하기 어려워요. 스포츠클라이밍은 발전 일로 에 있고, 여성 산악인 수가 엄청 늘어났습니다. 이제 산악인들은 남녀노소 관계 없이 서로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겠지요.
대담
Q A
Q A
김 병 준 서울산악동우회 부회장 서 우 석 서울시산악연맹 사무국장 김 창 성 서울시산악연맹 학술이사 차 미 숙 서울시산악연맹 생활체육 이사
산악계의 소집단화 개인주의화가 심회되고 있는 작금 시대상황에서 대한산악연맹, 서울시산악연 맹 등 법인 연맹체가 무엇을 준비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좋을까요? 수십 년 전에는 히말라야 등 고산과 거벽을 향한 알피니즘 실현과 도전이 지상과제였습니다. 지금 은 많이 달라졌어요. 스포츠클라이밍, 아이스클라이밍, 산악스키 등은 이미 정식 엘리트스포츠로서 세계적으로 전문화되었지요. 이 외에도 다양해졌어요. 고산과 거벽에 도전하는 알피니스트들 숫자 는 줄었지만 꾸준히 그들만의 길을 가고 있고, 산과 산을 넘는 트레킹, 산악환경보존, 각종 산악문화, 안전산 행, 구조훈련, 등산교육 등 다양해졌기 때문에 분야별로 전문성 추구와 꾸준한 시청각교육이 절실합니다. 이 러한 각 분야의 전문화에 맞춰 서울시산악연맹의 필요성이 부각됩니다. 지역 산악인들의 전문교육 등 제반 활동을 선도하고 이끌어 나가야지요.
생활체육등반 단체들과의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가에서 강제 통합을 시키다 보 니까 전문등반과 일반 등반문화의 충돌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초창기에 비해 연 맹에 강연이나 자료 요청도 늘고 있는 등 많이 나아지고 있지만 연령층이 대부분 높다는 것이 문제 입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과거 경험으로는 생활체육등반대회라는 것이 먹고 마시는 것이 주였고, 아무래도 각 구청 산하라서 지원을 받다 보니 전문 등반에 대한 지식이 일천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 국 우리 연맹이나 전문 산악인들도 생활체육등반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 나가야 하겠지만 생활체육단체들과 끊임없는 교류를 통해 산악활동은 이렇게 해야되는구나 하는 표본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 으로 교육기회를 만들어 이론과 실습도 병행하는 등 정보교류가 활성화되면 화학적 결합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정 부분 성과가 나타나리라고 보여집니다.
오랜 세월 동안 산악인으로서 활동을 해오시면서 개인적으로 손꼽을만한 등반 활동이 적지 않으실 텐데 소개 부탁드립니다. 개인과 소속단체로 구분해주셔도 좋습니다. 저는 초등 4학년부터 보이스카우트 단원으로서 캠핑 등 야외활동을 즐겼으며, 고3 때 영예의 ‘모범 스카우트상’을 받았습니다, 록클라이밍은 고1 때 시작했습니다. 은벽산악회 창립회원으로 활동했 으며, 한국외대 재학 중엔 대학산악회 활동도 열심히 했고, 사회에 나와서도 주말이면 산에 갔지요. 또 기회만 생기면 히말라야 등 외국산에 제법 다녀왔습니다. 저에게 산은 종교와 신앙입니다. 그동안 보람과 만족의 산행은 수없이 많았지만 나이를 먹었는지 새삼 손꼽을 만한 등반은…. 글쎄요. 반면에 지금도 지난 시절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던 제 실수들이 문득 생각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감사기도를 하곤 합니다.
부회장님께서 산악활동의 출발이 고등학교이시니 아무래도 모교이신 사대부고 재학 당시 이야기를 듣지 않을 수 없는데요. 보이스카웃과 별개로 산악부 등에서 따로 활동을 하셨는지요? 산악부는 따로 없었고 개인적으로 보이스카웃 활동을 대단히 열심히 하였는데 당시에는 "대한소년 단"이라고 불리우다가 5.16 이후 "보이스카웃 한국연맹"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무렵 전국에서 우수 단원 1명을 매년 선정하여 모범스카웃상을 주었는데 그때 제1회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소 속 단체의 여러 상중 그저 그런 가벼운 상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청와대 초청까지 받는 상이어서 놀랐던 기억 이 납니다.
예전에는 고등학교 산악부들이 젊은 산악인 양성소가 되어 대학산악부, 일반 산악단체에 산악인력 을 공급해주는 역할도 했었는데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습니다. 당시 보이스카웃 활동을 하시면서 클라이밍을 하셨는데 환경은 어떠셨는지요? 어느 일요일에 선생님이 보이스카웃 말고 일반 학생들을 데리고 산행을 갔는데 부모들이 일요일에 영어 단어 하나라도 더 외워야 하는데 산에 데리고 갔다면서 엄청 항의를 했다고 하더군요. 아침 7시 등교해서 저녁까지 먹여 주고 10시나 돼야 하교하는 겁니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청소년 시절인 데 교육정책이 정말 안 좋은 거지요. 우리 때만 해도 일요일에는 놀았지요. 내가 그래서 도봉산 등고선 지도 를 그리기도 했는데 등산을 할 때마다 일정 부분을 그려서 이어지게 만들었지요. 그러니까 그때만 해도 충분 히 가능한 일이었지요. 유럽의 프랑스나 독일 같은데는 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대학 수가 비슷해서 정말 공부할 학생들만 대학에 가고 나머지 학생들은 기능직 학교에 가는데 우리는 모두가 똑같은 대학교만을 바라보니 문제입니다. 가뜩 이나 신생아가 1명도 안되는 인구절벽 시대에 지방 대학들은 외국 학생들 때문에 근근히 유지하고 있는 상 황이 안타깝습니다.
보이스카웃 이야기를 하다보니 문득 드는 생각입니다만 현재 거의 모든 고등학교의 산악부 활동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보이스카웃의 경우 잼버리 등 활동도 활발하고 산하 조직도 잘 짜여져 있어 야영이나 교외 활동에 부모들의 반대도 심하지 않은 편이니 산악활동에 관심이 많은 단원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산악연맹과의 접점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보시는지요? 좋은 생각입니다. 한번 다듬어 볼 필요가 있는 생각인데, 무엇보다도 대학산악회 등에서 그런 친구 들을 흡수하여 등산학교 같은데 보내야 합니다. 과거에는 자체교육을 선호해서 등산학교 등에 보내 교육을 따로 받게 하는 것을 무척 싫어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좋은 대학 선배들도 점점 줄어들고, 활 동도 많이 축소되어 있는 상태라 기회가 열릴 것 같기도 한데 우선은 젊은 친구들을 흡인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야겠죠. 더불어 스포츠클라이밍도 키워야 할 테고. 이제는 알피니즘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물론 극소 수 스포츠클라이밍 선수 중에 히말라야를 꿈꾸는 친구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경기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거 기에 맞는 대책도 필요할 것입니다.
A
구체적인 방법이 있을까요? 스포츠클라이밍 저변이 넓어지면 전문 선수로 나아가는 친구들이야 상관 없겠지만 일반 동호인들 중에 알피니스트로 끌어들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 테고 겨울에는 산악스키 등과 같은 활동을 통 해 흡인할 수도 있겠지요. 산악스키도 2026년 부터 동계올림픽 정식종목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알 고 있는데 동계, 하계 동시에 출전하는 분야는 스포츠클라이밍, 산악스키를 관장하는 대한산악연맹 이 유일하죠. 서울시연맹도 알피니즘은 그대로 명맥을 유지하면서 두 경기종목을 바탕으로 한 청소년 육성 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겠죠.
Q
스포츠클라이밍의 경우 학원스포츠화 되어서 별도 분리하려는 움직임도 있는데 아예 독립시키든 지 연맹차원의 대책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2000년대 초반인가로 기억하는데 그런 움직임이 있어서 대한산악연맹에서도 독립시켜주려고 한
A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경기장이나 시설 등 모두 각 시도 산악연맹이 가지고 있는 데다 운영이나 교육도 마찬가지여서 본인들이 다시 독립의사를 철회하였지요. 과거 국제산악연맹(이하 UIAA)에서 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는데 산악스키 선수들이 가입을 요청해왔다고 합니다. 당시 UIAA에서 당신들 은 스키협회로 가입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겠느냐 하니까 자신들은 스키를 장비로 활용하는 등산이 주목적 이라고 해서 산악스키가 산악연맹 산하로 들어오게 된 것이죠. 대한산악연맹을 비롯한 각 연맹들도 체질을 바꾸어서 스포츠클라이밍 위원장은 부회장급 등으로 상향시키는 것도 한 방법일 것입니다
외국의 사례가 있을까요? 세계적 조류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데 당장 UIAA만 하더라도 2000년대 이후 공식 명칭이 "Union International Alpine Assassinstion"에서 "International Climbing and Mountaineering Federation" 을 공식문서에 병기하고 있습니다. 즉 스포츠클라이밍 경기가 많아지고 대회가 커지면서 과거 자연 암장대회 위주의 서브단체에서 등산, 스포츠 클라이밍, 산악스키 등이 동등해지는 보드멤버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도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일전에 대한산악연맹에서도 한글표기의 대한산악연맹 로고는 유지하더라 고 영문은 "Korea Alpine Federation(KAF)"에서 "Korea Climbing and Mountaineering Federation(KCMF)" 로 바꾸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한 적이 있었습니다. 대학산악연맹도 마찬가지입니다. 올림픽종목 스포츠 는 어느 대학교든 부로 요청할 수 있는데 그럴 경우 대학산악부와는 별도로 스포츠클라이밍부로 신설되게 되면 대학산악부는 더욱 쪼그라들게 됩니다. 따라서 대학산악부도 영문명이라도 "클라이밍(Climbing)"을 반드시 넣어 주도권을 잡고 나아가야 합니다.
실제 현장에서는 융합 보다는 갈등 구조가 도드라저 보이는 현실입니다. 그렇죠. 아직도 잘 이해들을 못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전 세계 150여 개국 산악연맹 영문 명칭을 조 사했는데 거의 모두 UIAA처럼 변경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은 곳은 스포츠클라이밍협회가 따로 생겨 분리되었죠. 물론 일반 클럽들은 기존 명칭 그대로 사용해도 상관이 없겠지요. 당장 일본만 하더라도 "Japan Mountaineering Assassinstion(일본등산협회)"에서 "Japan Mountaineering Climbing Assassinstion"으로 바꾸었습니다. 원래는 'Sports Climbing'을 다 넣어야 하나 줄여서 'Climbing'만 넣은 것입니다. 우리 서울시산악연맹도 한글과 마크는 그대로 두더라도 시급히 "Seoul Climbing and Mountaineering Federation(SCMF)"로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Alpine'이란 용어는 죽어가는
35살 젊은 나이에 8,000m 14개봉 완등한 카자흐스탄 산악인 '데니스 우룹코(1973년생)와 함께
용어인데 2차세계대전 이후 탄생한 단체들은 거의 모두 'Mountaineering'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스포츠클 라이밍을 분리하는 것보다 연맹 안에 품어서 함께 가는 방향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Q A
스포츠클라이밍 등 학원스포츠와 생활체육으로서의 등산, 전통적인 전문등반의 동반성장이 가능하 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긍정적으로 보신다면 바람직한 방향길에 대해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오늘날의 등산 활동은 ‘다양화’와 ‘전문화’입니다. 산( 山 )이라는 자연이 또 그러하고. 서울시산악연 맹의 ‘한국등산학교’야말로 이러한 다양화의 기초를 가르치는 곳이지요. 역사적으로도 긍지를 가질 만해요. 다양화는 서로 간의 이해와 교류를 통해 동반발전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이 다양한 산악문화를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곳이 바로 산악연맹이지요. 또한 무엇보다 청소년 산악인 육성이 가장 중 요하고 시급합니다. 바로 우리의 미래로 이어지니까요. 서울시산악연맹도 청소년 교육에 지대한 애정으로 최선을 다해 나가야 합니다.
Q A
개인적인 질문입니다만 은벽산악회를 창립하셨는데 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1964년도 고등학교 1학년 때 선배들 몇 사람과 시작을 했는데 고2, 고3 선배들이 있었고, 대학 선배 들도 몇 있었습니다. 당시 창립 멤버 중에는 대부분 돌아가시거나 해서 현재 산에 다니는 것은 저 혼 자인 것 같습니다. 당시 클라이밍에 미쳐 살다시피 했는데 대학 들어가서는 또 대학산악부 나름의 매력이 있어 두 개 활동을 병행하였습니다. 아무래도 사회에 나와 여러 곳에서 활동을 하다 보니 은벽과 함께 활동하는 기회가 점점 줄어들어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나이 먹어서는 젊은 후배들에게 간섭하는 느낌도 있다 보니 더욱 멀어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끝으로 산악계 발전과 후배들에게 남겨주실 이야기가 적지 않으실 듯합니다. 그 중 몇 가지만 당부 의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요즘 산이나 둘레길 가는 시민들은 무척 많은데 서로 좀 삭막해진 듯해요. 무관심은 최대의 적입니 다. 그래서 산에서 만나는 또 마주치는 산악인들이 서로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풍토를 만드는데 서울시산악연맹에서 앞장섰으면 좋겠습니다. 대자연인 산속에서는 서로 추구하는 목표가 다르다 하더라도 겸허한 자세로 서로 존중하고 서로 도와주는 분위기가 아쉽습니다.
김병준 부회장
1948년 서울 생. 수송초등학교, 서울사대부고, 한국외국어대학 무역학과 졸업. 1975년 에베레스트 정찰을 시작으로 에베레스트, 바룬체히말, K2, 낭가파르바트, 아마다블람, 얄룽캉, 루글라 등 원정에 참여했다. 또 틈틈이 히말라야, 카라코람 등 산악지대 트레킹을 다녀왔고, 지구촌 곳곳의 산악지대를 많이 다녔다. 1986년 서울시산악연맹 해외이사를 시작으로 오랫동안 산악행정에 몸담았다. 대한산악연맹 전무이사와 감사를 거쳐 현재 자문위원으로 있다. 저서로 <K2 하늘의 절대군주>, <산의 품안에>, 전국등산학교 교재 <등산>의 공저, <대한산악연맹 50년사> 편찬위원장을 맡았다. 체육훈장 맹호장, 대통령표창, 대한체육회 공로상, 대한민국산악상 공로상을 수상했다.
특별대담ㅣ한필석 교장
Q A
지나간 50년 , 다가올 50년
우리가 함께 걸어온 길
모든 동문들이 자랑스럽고 감사합니다.
2024년이면 한국등산학교가 개교한 지 50년이 되는 해이다. 한국등산학교는 대한민국 전문산악인 양성교육의 첫 걸음을 뗀 곳이자 뛰어난 산악인들을 다수 배출하여 대한민국 산악역사와 동고동락을 함께 해온 소중한 산악문화유산이기도 하다. 한필석 교장은 한국등산학교 1회 졸업생이자 50주년을 맞이하는 등산학교의 교장으로서 2023년에 부임하여 50년사 발간 등 굵직한 기념행사들을 꾸려나가야 하는 한편, 반세기를 지나는 등산학교의 미래를 새롭게 모색해야 하는 무거운 짐도 지게 되었다. 평생 산악인으로 살아오면서 모교 교장으로 부임한 소회가 남다를 한필석 교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편집자주>
금년에 한국등산학교 1회 졸업생으로서 모교인 등산학교 신임 교장선생님으로 취임하셨는데 감회 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소회 부탁드립니다.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죠. 49년 전 까까머리 시절 나온 등산학교 교장을 맡게 됐으니까요. 이제 제 머리카락도 희끗희끗해요. 교장으로서 학교에 첫발 디딘 날 감회가 컸습니다. 옛 선배들 모습이 싹 사라지고 제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짠했어요.
1회 교육생으로서 몸담을 당시 등산학교 교육 여건은 어떠셨는지요? (교육 시간, 교육 장소, 교육 여건, 교육 장구, 등산 복장 등)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총 교육 기간은 8주간이었죠. 강의실은 지금 취사장 자리였으니 형편없었지요. 교과목도 엄청 많았고, 이숭녕, 백경호, 이우형 선생님 등 평소 접하기 어려운 분들이 당시 강사였어요. 지금은 상상도 못할 경찰 치안본부 대공과 직원이 반공교육도 했던 시절이었으니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었지요. 소슬랩이니 대슬랩이니 이름 붙은 교육장은 이끼를 거둬가면서 교육했던 것 같습니다. 천축사 암장도 비슷했고요. 확보 체험은 충격이었어요. 산장 뒤편 바위에 올라가서 자기 확보 후 옆에서 던진 자동차 타이어를 잡아내는 식이었어요. 충격에 몸이 바위 아래쪽으로 휘청했으니까요. 누군가 잡아주셨던 것 같아요. 장비와 복장이라야 특별할 게 있었겠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군용카라비너와 군용자일을 사용하고, 슬링으로 허리벨트를 만들어 썼으니까요. 스웨터나 남방에 니커보커 입은 사람도 있었고요. 암벽화는 크레터슈즈였고, 헬멧은 귀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최초의 등산학교 설립이었는데 1회 입학생으로서 가졌던 소감과 등산학교에 대한 당시 산악계의 분위기나 주변 반응 등이 기억나시면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산에 다니는 데 교육이 왜 필요하지’ 하는 분위기였어요. 산에 가면 으레 밥 지어 먹고 삼겹살 구워 소주 한잔하다가 노래 부르던 시절이었거든요. 저 역시 등산학교에서 뭘 가르치는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들어갔지요. 학교설립위원이셨던 고 김인섭 선배님이 같은 산악회였어요. 1974년 1월 한국산악회 등산아카데미 동계반 때 인연으로 김 선배님이 창립한 고산회( 高山會 )에 들어갔거든요. 만년설산 도전을 목표로 만든 산악회예요. 그 직후 등산학교가 만들어졌고, 고산회 회원 세 명인가 네 명이 현재 정규반인 기초반을 채운 거지요. 강의 하나하나 새롭게 받아들여졌어요. 입학 전 명동에 있는 외국 서적 책방에서 컷으로 만들어진 등반기술서를 통해 매듭법 크랙등반법을 보긴 했지만 경험 많은 산악인들에게 배운 건 한산 동계 아카데미 이후 처음이었으니까요. 이숭녕 박사님 같은 분은 말로만 듣던 학자셨으니 정말 진지했습니다.
현재 교장선생님으로서, 그리고 1회 선배로서 바라보는 현 등산학교의 특장점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교육 과정이나 내용은 다른 등산학교와 큰 차이가 없는 듯해요. 다만 지원조 문화는 여러 면에서 기여하는 바가 매우 컸습니다. 사실 학교라는 곳이 졸업하면 그만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토요일마다 올라와 강사들 저녁과 이튿날 아침 그리고 점심 행동식까지 준비해준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요. 저 역시 처음에는 무척 어색하기만 했어요. 봄가을 정규반 지원도 감사하지만 추운 겨울날 동계반 때 자발적으로 도와주는 지원조는 정말 고맙지요. 졸업생 김성은 씨의 경우 트럭에 대형 버너와 들통을 싣고 교육현장에 옵니다. 오뎅탕 끓여주고 떡볶이도 만들어줘요. 덕분에 강사뿐 아니라 수강생들까지 그만큼 시간을 아끼게 되니 자연스럽게 소중한 교육 시간이 늘어나게 되었지요. 지원조 여러분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지원조 활동을 통해 강사들과의 관계뿐 아니라 동기들끼리 관계가 돈독해지고, 후배 기수 교육받는 모습을 보면서 등산학교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가는 시간을 얻게 되었지요. 결국 지원조 활동이 동문들을 끈끈하게
Q A
Q A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교장 취임 전 아침 구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를 들었어요. “한국등산학교는 보수적이고 군대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얘기도 들었고요. 아니더라고요. 아침 구보는 새벽잠을 깨울 뿐 아니라 자신의 체력을 점검해보는 좋은 기회예요. 수강생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기도 하고요. 보수적이란 평도 아니더라고요. 요즘 강사들은 예의가 바르고 매우 친절합니다.
금년 1년 등산학교를 처음 맡으시면서 기억에 남으시는 교육 일정이 있으시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제가 교육을 받을 때는 도봉산 오봉 교육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북한산 인수봉 등반도 없었고요. 물론 남선우 선배께서 교장 맡고 계실 때 오봉에도 가보고, 인수봉은 보조 역할로 동참하긴 했어요. 강의 내용이 생소하진 않아요. 월간 ‘산’지 근무 시절 다뤄보았던 내용이고 또 정년 전 2급 등산강사 교육 때 배웠던 내용들이니까요. 동계반 첫날 교육인 프랑스식 빙벽등반 내용은 제가 한산 등산아카데미 때 배운 내용이랑 거의 같았습니다.
24년이면 영광스러운 등산학교 개교 50주년이 되는데 기념행사, 50년사 편찬 등 다양한 행사들을 준비하고 계시는 것으로 압니다. 현재 진행 상황을 여쭤봐도 되겠는지요? 50년사는 8개월 전부터 준비하고 있어요. 제가 평생 잡지 만들던 사람이라 좀 달리, 충실하게 만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강사 중에 국문학 전공자인 김영주 씨가 편집위원장을 맡고, 전영래 교육위원장이 자료 찾아주는 일을 하고 있어요. 원고도 쓰고요. 전 서울시연맹 이사이자 서울시청산악회 회원인 최인섭 씨도 많이 도와줘요. 정규반 98기인 김선영, 김은솔, 조은아, 채여현 씨가 원고 작성뿐만 아니라 영상, 디자인까지 잘해주고 있어요. 2월 디자인 시안 작업을 거친 다음 3월부터 본격적으로 본책 디자인에 들어가면 5월 중순엔 책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대해주세요.
한국등산학교 50년은 우리 산악계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할 수밖에 없는데 학교 출신 중 자랑스러운 동문들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특별히 소개해 주실 분들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글쎄요, 물론 등반활동을 통해 잘 알려진 동문들이 꽤 있겠지만 그보다는 동문 모두가 자랑스럽습니다. 학교 운영진과 강사들만으로 학교가 존속될 순 없기 때문입니다. 수강생이 적든
많든 기수가 계속 이어져 왔기 때문에 학교가 50년 동안 존속되어 온 것이죠. 그래서 모든 동문이 자랑스럽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Q A
한국등산학교가 50년을 지나오면서 대내외 행사 중 두드러진 업적들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1974년 대한민국 최초로 여성 산악인들을 위한 강좌를 개최했어요. 특전사, 소방구조대, 국립공원공단 직원들을 대상으로 산악 교육을 했습니다. 경찰구조대는 창설에 지대한 역할을 했어요. 권효섭 선생님의 창설 제안 덕분에 생긴 겁니다. 교육도 학교에서 했고요. 금강산 동계반은 산악사에 길이 남을 일이 아닌가 싶어요. 2005년 1월, 2007년 2월 두 차례 했어요. 엄청 인기가 좋아 수강하고자 하는 산악인이 줄을 섰으니까요. 분단 이후 산악인들의 첫 금강산 방문이란 점에도 의미가 있지만 민간외교로서도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고요. 도봉산장이 다른 산장처럼 사라지지 않은 것 역시 한국등산학교 교육장이기 때문일 겁니다.
갈수록 젊은 층에서 산악인구 감소로 명망 높은 클럽들조차 존폐를 고민할 정도로 위기상황입니다. 한국등산학교도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평소 생각하신 해법이 있을까요? 낙관까지는 아니더라도 비관적으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등산 교육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50년 동안 그래왔듯이 계속 생겨날 테니까요. 특히 안전하고 올바른 산행을 하려는 사람들이 뜻밖에 많아요. 단지 말씀드리기 쑥스럽지만 재정적인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예전엔 아웃도어업체 후원으로 넉넉했던 적도 있었다지만 그건 몇 년에 불과할 겁니다. 1985년 부설교육기관으로 서울시연맹과 인연 맺게 된 것 역시 재정자립 때문이기도 하고. 잠자다가도 생각해요, 묘수가 없나 하고요. 누군가 좋은 해법이 있다면 알려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소집단화 개인주의화 된 작금 시대상황에서 대한산악연맹, 서울시산악연맹 등 법인연합체를 비롯 한국등산학교가 무엇을 준비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좋을까요? 교육 내용과 방향을 현실에 맞춰 개선하려고 계속 노력해야 할 겁니다. 물론 지금도 강사들이 부단히 노력하고 있어요. 강사들의 강의 스킬, 태도 등에 관한 교육도 필요할 테지요. 예전처럼 위압적이거나 억압적인 교육을 받아들일 수강생은 거의 없을 테니까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재정자립이 중요해요. 장비 교체도 돈 때문에 고민에 고민을 한 다음 결정합니다. 공단과 산장관리인과의 복잡한 문제가 정리되면 강의실도 수리를 해야하는데 그 역시 다 돈이 해결해주는 일이잖아요. 일반적인 학교 운영은 수강료 현실화로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쉽지 않더군요. 수강생이 줄어들까 걱정도 되고, 상대 등산학교들 상황도 고려해야 하니까요. 누군가의 꾸준한 후원이 꼭 필요하다 싶어요. 동문들이든 업체든 다 좋아요. 열 분, 스무 분이 십시일반 도와준다면 해결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Q A
한국등산학교에서 전문 등반 외에 스포츠클라이밍 등 학원스포츠와 생활체육으로서의 등산 교육 프로그램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긍정적으로 보신다면 바람직한 방향길에 대해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스포츠클라이밍은 강의 프로그램에 잡혀 있어요. 생활체육은 일반등산 교과목에서 일정 부분은 해결되지 않을까 싶고요. 백패킹 과목도 생각하고 있는데 5박10일이란 짧은 교육일정에
Q A
Q A
집어넣자니 자리가 없어요. 게다가 정규반 경우도 암벽등반 같은 전문 등반을 배우고자 하는 생각으로 입교하는 수강생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이론이든 실기든 암벽등반에 맞출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지요.
개인적인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산악인으로서 첫 걸음을 시작하게 된 계기나 특별한 동기가 있으셨는지요? 그리고 첫 걸음을 내딛은 시기는 언제쯤이신지요? 보이스카웃에 발을 들여놓았던 중학교 1학년 때로 기억합니다. 제가 좀 엉뚱했지요. 어린 나이에 캠핑 다닐 욕심으로 동대문시장에서 침낭과 텐트, 버너 등 군용제품을 구입했어요. 그 가게 주인이 넝쿨산악회 회장이셨는데, 함께 다닐 사람 없으면 들어오라고 하시지 뭐예요. 그게 첫 산악회가 되었습니다. 당시는 먹고사는 게 바쁜 시절이었죠. 한 6개월 산악회 생활을 하고 나니까 함께 다닐 사람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선인봉이나 인수봉 기슭에서 서성거리다 모르는 등반팀이라도 만나게 되면 “같이 등반해도 되나요?” 해서 “오케이~”, 하면 같이 등반하곤 했어요. 이용대 코오롱등산학교 명예교장님도 그런 인연으로 만났구요. 홀로 산행도 자주 즐겼어요. 중2 여름방학 때 대청봉 오를 욕심에 묵직한 배낭을 메고 대청봉을 향했는데 양폭 위에서 돌아섰어요. 당시 나무사다리가 절벽을 타고 이어졌는데 깨져나간 게 너무 많았습니다. 그해 유류파동이 나서 겨울방학이 당겨져서 여유가 생겨 또 갔지요, 이번엔 용대리에서 백담사로 들어섰는데 오세암에서 폭설을 만났어요. 혼자서 뭘 하겠어요. 암자에서 이틀 머문 뒤 허리까지 빠지는 깊은 눈 헤치며 또 하산했습니다. 이듬해 1월 세 번째 도전했어요. 한국산악회 아카데미 동계반 커리큘럼에 죽음의 계곡을 통한 대청봉 등정이 있었습니다. 이거다 싶었죠. 1974년 1월이었죠. 그때 만난 분들이 김인섭 선배님이시고, 김병준 전 대산련 고문, 전완근 선배님, 허정식 전 ‘사람과 산’ 이사 같은 분들이에요. 그분들과의 인연이 지금의 저를 만든 것이나 다름없어요.
평소 생각하시는 알피니스트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또한 국내나 해외에 젊은 산악인들이 롤모델로 삼을만한 산악인이 있다면 추천해주시고 그 이유를 말씀해주십시오. 박영석, 김창호가 아닌가 싶어요. 박영석은 이런 평 저런 평을 듣긴 하지만 어쨌든 히말라야 등반과 극지 도보 탐험을 통해 산악인뿐 아니라 전 국민에게 산, 험난한 자연을 대상으로 도전적인 행위를
펼치는 산악인의 도전정신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김창호는 ‘박영석 시대’를 뛰어넘어선 산악인입니다. 김창호는 대학시절 가셔브룸 등반때 눈에 들어온 카라코룸히말라야의 빙하에 대해 궁금증을 가진 뒤 1,700일 넘게 카라코룸 빙하 곳곳을 탐사했어요. 책도 정말 많이 읽었고요. 그 친구는 40kg 안팎 무게의 배낭을 메고 빙하 탐사를 마친 뒤 귀국할 땐 이슬라마바드의 헌책방에서 찾아낸 등반 탐사 책으로 빈 배낭을 꽉 채워오곤 했어요. 그래서 ‘공부하는 산악인’이란 평을 들은 겁니다. 박영석이 산악 그랜드슬램이나 14좌 무산소 등정 같은 산악인으로선 할 만큼 했음에도 등반을 계속한 것은 후배들을 위해서였지요. 박영석은 오희준 이현조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안나푸르나 남벽을 등반하다 사고를 당했고, 김창호는 6,000m대 미등봉이나 미등벽 도전 프로그램을 진행하다가 구르자히말에서 사고당한 거고요. 이렇게 남다른 활동과 꿈을 향해 도전해나갔던 산악인들이었기에 지금도 이들의 죽음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겁니다.
지금까지 해오셨던 개인 산악 관련 활동 중 산행이나 등반 이외 가장 보람 있었던 활동이 적지 않으실 텐데 대표적인 몇 개만 소개 부탁드립니다. 산악 활동이라야 별것 없습니다. 젊은 날 남들과 다름없이 등반에 몰입해 지냈고, “월간 산”지에서 정년까지 지내면서 산에 다녔습니다. 보람이라면 많은 독자들에게 좋은 정보를 제공했다는 거겠지요. 정보도 제대로 없던 시절 히말라야 오지 트레킹한 게 저로서는 의미있는 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2012년 아이거 북벽 등반은 경험 많은 허욱 선배님과 등반력 뛰어난 진명식 씨 선등 덕분에 올라간 거지만요. 1993년 박영석 대장과 함께한 데날리 등반을 시작으로 한왕용, 김창호와의 아콩카구아 등반, 김영미와의 킬리만자로 트레킹, 엘브루즈 등 5대륙 최고봉 완등을 노렸는데 에베레스트에서 연패했어요. 2007년 때는 한국산악회 실버원정대 취재기자로 나섰는데 사우스콜 캠프에서 박영석 남서벽 원정대의 추락사고 소식을 듣고 바로 하산했습니다. 2013년에 또 갔어요. 마음만 있었지 준비가 부족했어요. 8,500m 에서 또 내려섰으니까요. 거의 탈진 상태로 사우스콜에 내려섰을 때 김창호 팀의 서성호가 숨져있더군요. 2007년 오희준 이현조 두 사람의 시신과 함께 아이스폴을 내려설 때 정말 많이 울었어요. 2013년엔 사우스콜에서 캠프2까지 혼자 내려오면서 툭하면 설사면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지요….
Q A
지금 한국등산학교장으로 활동하는 게 가장 보람된 일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산 덕분에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어요. “월간 산”에서 정년을 마쳤고, 정년퇴임 하자마자 트레킹 전문여행사에서 일하고 있으니까요. 학교장 제안이 왔을 때 많이 망설였지요. 무엇보다 자질이 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교육에 대해 아는 거나 교육 경험이 전혀 없으니까요. 그러다 ‘산악인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란 얘기에 마음이 흔들린 겁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많더군요. 특히 50주년을 준비하는 게 쉽지 않아요. 행사비용 마련도 쉽지 않아요. 그래도 앞만 보고 밀어붙이고 있어요. 간혹 내가 좀 도와줄까 하는 고마운 분들도 계시고, 그런 분들이 계속 나타나리라 믿고 있습니다.
교장선생님 이전에 산악인으로서의 대외적인 모습은 많이 알려지셨는데 사적이지만 가족 구성원은 어떠신지요? 그리고, 대외활동을 하시면서 가족들에게 고마웠던 점이나 미안했던 점이 또는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아내, 딸 둘, 아들 하나예요. 막내는 다니던 대학 중퇴하고 신학대학 다니고 있어요. 올해 신학대학원 입학하니까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말은 안하지만 가족한텐 늘 미안하죠. 집 비운 날이 많아요. 제가 ‘월간산’에 근무할 때 해외 산 가느라 해외 나가 지낸 시간만 해도 2년 7개월 정도 되니까요. 정년 후 2018년부터 혜초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또 집 비우는 날이 많아졌지요. 1년에 석 달 정도는 집에 없으니까요. 요즘엔 정규반 때 봄가을 5주씩 토· 일요일 집을 비우고, 암벽반 때 6일, 그리고 동계반 한답시고 토·일요일 2번, 설악산 2박3일 동안 산에서 지내자니 가장도 아닌 셈이죠. 그래서 늘 미안해합니다.
끝으로 한국등산학교 발전을 위해 강사 포함 후배들에게 남겨주실 이야기가 있으실 듯합니다. 그 중 몇 가지 당부의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한국등산학교 50년사>를 만들기 시작한 게 벌써 6개월이 지났습니다. 편집위원장을 맡은 김영주 강사가 연초에 원고가 80% 이상 들어왔으니까 염려 마시라 하는데 저는 걱정이 많아요. 월간지는 30년 가까이 만들어봤지만 <한국등산학교 50년사>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잖아요.
책 만들면서 자료 뒤지고 인터뷰하다 보니 우리 학교를 만들고 현재까지 이끌어 모든 분들이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권효섭 초대 교장님은 국회의원도 하시고 모 방송사 전무를 하셨고, 안광옥 선생님은 산악계 원로셨지만 다른 세 분은 나이가 서른 살 안팎의 젊은이들이셨지요. 요즘 같으면 돈과 무관한 등산학교를 만든다는 일은 꿈도 꾸지 못할 나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분들이 정말 산악계의 앞날을 위해 만든 게 한국등산학교라 생각해요. 그분들 외에 학교 발전을 위해 불쏘시개가 돼준 분들은 정말 많아요. 그래서 50년사 제목을 <우리 함께 걸어온 길>이라 지을까 합니다. 어제 서울시연맹 사무국에서 편집회의 마치고 집에 오면서 생각해낸 것입니다. 그런 선배님들을 떠올릴 때마다 힘들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지, 학교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지 다짐하게 됩니다. 그래서 1월 말 자리를 만들 등산학교 발전을 위한 간담회 타이틀을 ‘지나간 50년, 다가올 50년’ 이라고 지었어요. 강사들도 50년 뒤 앞날을 위해 노력한다는 마음으로 애써줬으면 합니다.
한국등산학교 약사
연혁
1974년 6월15일 개교(제1회 기초반 개강) 1974~1999년 권효섭 교장 1985년 서울시산악연맹 부설 교육기관으로 개편 2001~2008년 이인정 2대 교장 2008년~2011년 이종범 3대 교장 2011~2016년 장봉완 4대 교장 2016~2020년 남선우 5대 교장 2021~2022년 송정두 6대 교장 2023~현재 한필석 7대 교장 2024년 6월 15일 개교50주년 기념식 및 정규반 100회 수료식(예정)
조직도
교장 : 한필석 교감 : 이연희 대표강사 : 허선무 사무국장 : 김용태 운영위원회 : 한필석 이연희 허선무 임현주 김용태 강사 : 허선무, 김영주, 박명렬, 박민구, 박상천. 이명희, 이성혁, 임갑승, 임현주, 전영래, 전용학, 조성일, 주진형, 차호은, 최오순, 강태원, 이병주, 정택현, 최승연 * 정규반 99회 4,897명, 암벽반 52회 1,564명, 동계반 48회 1,636명, 초빙강사 : 안치영, 최석문, 손정준, 김미곤
한필석 한국등산학교 교장
1990~2017 조선일보 기자 / 2013~2017 월간산 편집장 소속 산악회: 넝쿨산악회, 동양산악회, 시니어알파인클럽, 바우산악회 1974년 한국산악회 등산아카데미 동계반 수료 / 1974년 한국등산학교 정규반 1기 수료 / 1992년 일본 북알프스 트레킹 / 1993년 러시아 엘브루즈 등반 / 1994년 북미 데날리 등반 / 1995년 여름 유럽 알프스 몽블랑 종주산행 / 1996년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 1996년 하라모시 ~훈자 트레킹 / 1997-98년 남미 아콩카구아 등반 / 1998-99년 남미 아콩카구아 등반 / 1999년 마칼루 베이스캠프 트레킹 / 2001년 파키스탄 초고룽마, 발토로-K2-곤도고로패스-후세 트레킹 / 2003년 네팔 셰르파니패스 트레킹 / 2004년 파키스탄 히스파르패스 트레킹 / 2005 년 알프스 몽블랑 등반, 오트 루트 트레킹 / 2006년 유럽 엘브루즈 등반 / 06-07년 페루 안데스 우아이우아시 트레킹 & 아콩카구아 등반 / 2007년 에베레스트 등반 / 2007년 킬리만자로 트레킹 / 2008년 데날리 원정 / 2009년 네팔 히말라야 가네시히말 팔도로 , 타르푸출리 등반 / 2010년 네팔 히말라야 롤왈링 패스 트레킹 / 2011년 알프스 아이거 북벽 등반 / 2012년 알프스 아이거 북벽 등반 / 2013년 에베레스트 등반 / 2016년 알프스 그랑드조라스 & 몽블랑 등반 / 2017년 그랑드조라스 & 몽블랑 등반
이사람 · 1ㅣ전 영 래 서울시산악연맹교육위원장
정규심화반 1회 9명, 특별반 98회 3,445명 총 298회 11,547명 졸업.
사회 전영
이사람 · 1 ㅣ 서울시산악연맹교육위원장
펜데믹 장벽을 넘어
포기 없는 열정으로
사업 정착의 기틀 다져
서울특별시시산악연맹 산하에는 여러 분과위원회가 매년 각자 맡은 영역에서 재능기부를 통해 활발한 활동을 펼쳐가고 있다. 금번 14호 부터 연맹의 기둥이자 근간을 이루는 각 분과위원회의 활동과 사업내용을 해당 위원장과 대담을 통해 소개하고 문제점들을 짚어보는 지면을 마련하였다. 안으로는 같은 연맹 구성원들끼리 서로의 업무 이해도를 높여 동참을 유도하고 밖으로는 연맹 분과위원회의 사업들이 널리 알려지기를 기대하면서 그 첫 순서로 2023년 한 해 동안 가장 활발하고 다양한 사업들을 성공리에 마친 교육위원회 전영래 위원장과 자리를 함께 했다. <편집자주>
등산교육위원장으로 취임하신지 얼마나 되었고, 그동안 위원장직을 맡으면서 겪어온 소회가 있다 면 들려주십시오. 제가 위원장으로 위촉받은 해는 2021년, 그러니까 현 석채언 회장님이 취임하면서 저도 같이 위원 회 일을 시작하게 되었죠. 이전에는 1990년부터 한국등산학교 강사로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다 송정두 교 장선생님이 취임하시고 21년에 코로나가 가장 극성을 부릴 때 서울시산악연맹으로 옮기게 되어 등산교육
위원회를 맡게 되었지요. 당시 전임으로는 지금 등산학교 대표 강사로 있는 허선무 이사가 위원회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임 때에는 코로나 팬데믹 영향으로 시연맹의 행사는 물론 전국적으로 모든 행사가 중지된 상황이 었죠. 참 어려운 시기였지만, 그래도 맥을 놓을 수는 없고 무언가 헤쳐나가야 할 텐데 답답했죠. 그때는 마스 크를 쓰고 술자리에서도 네 명 이내로 앉아서 서로 모른 척하며 지냈으니까요. 등산도 마찬가지였죠. 옴짝달 싹할 수가 없었어요. 사람들과의 만남은 고사하고 아예 실내·외 행사 장소조차 대관이 안 되었죠. 그러다 보 니 21년은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었는데, 일단 추진하고 보자는 생각에 국가 위탁 사업인 '오르락 내리락' 프 로그램을 다 진행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사회 전영
오르락 내리락 사업은 취임하기 전부터 해오던 행사였나요? 제가 부임할 때는 사업이 시작된 지 3년 정도 되었을 겁니다. 예산 항목이 있었어요. 20년도에는 팬 데믹 때문에 실내·외 집회나 모임, 행사가 전면 금지된 상태여서 서울산악시연맹에서도 행사를 할 수 없다고 했어요. 특히 서울 같은 경우 수도권이어서 지방보다 규제가 더 심했죠.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은 서울보다 규제가 덜 해 조금씩 진행을 했지만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는 어림없었습니다. 그런데 21년에 제가 와서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하면 되지” 하며 ‘오르락 내리락’을 하자고 했습니다. 이전부 터 활동하던 소속 위원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한 두 사람만 정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교육을 하지 못해 담당 위원들이 교육시스템을 잊었거나 몰라 더욱 답답했었습니다.
사회 전영
여기서 잠깐 이름부터 독특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오르락 내리락' 사업에 대해 설명해주시죠. 국가(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진행하는 사업으로, 대산련에서 기획하고 서울시산악연맹에서 주관하는 연령대별 프로그램입니다. 10대를 대상으로 하는 <꿀잼 등산교실>, 20~30대는 <도전산악스포츠>, 40~50 대는 <솔선수범 산악회>, 60대 이상 시니어들을 위한 <장년 산행교실 알뜰산잡> 등 4개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추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면서 일정을 최대한 늦추다 보니 위원장에 취임한 후, 전반기는 그냥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무렵 우리나라에도 백신이 보급되기 시작해서 1차 백신 맞고 2차 백신 맞 고 3차 백신까지 나와 하반기부터는 행사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물론 하반기에도 쉽지 않았지만 방역 수칙 을 철저하게 지킨다면 못 할 것도 없다고 담당 위원들을 설득하며 진행하였습니다.
사회
행사 진행은 어찌어찌 시작한다 해도 진행하는 데는 경비가 필요할 텐데 당시 여건도 그렇고 경비조
전영
전영
사회
전영
달은 원활했는지요? 그 점이 참 어려웠던 것이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는 인원이 많이 필요한데 대한산악연맹에서 지급되 는 인건비는 단 2명분뿐이었습니다. 1개 교육 분야 당 최소한 4명이 필요한데 그중 2명은 교육을 전담하지 만 나머지 2명은 교육 내용 홍보하고 교육생들 모으러 다니면서 서류 정리까지 해야 합니다. 공적 사업이다 보니 전산 등록은 물론 회계감사까지 받아야 하는 등 업무처리가 장난 아니어서 우리 서울시연맹 사무국에 서도 달가워할 수가 없었죠. 수익은 고사하고 투입해야 하는 노동력은 과부하 상태이니 안 받고 안 하는 것 이 옳다는 지적까지 나왔습니다.
그런데도 결국 진행을 하셨는데 어떻게 그 고비들을 넘겼는지 궁금하군요 . 물론 불만도 많고 다들 하지 말자라는 분위기가 팽배했지만 당시 그 사업을 하지 않으면 우리위원회 존재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고, 그런 난관을 돌파해보고 싶은 의지도 있어 위원들을 설득했습니다. 다행스럽 게도 등산학교 졸업생 중에 모 지자체 위원회 책임자가 있는 것을 보고 설득하여 신규 위원으로 임명하고, 그 소속 지자체와 MOU도 맺어 행사 장소 등 간접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 해당 지자체에서 인원 이 필요한 경우 우리 위원회에서 지원해주기도 하면서 서로 상부상조할 수 있었습니다.
경비지원도 문제지만 행사를 추진하다 보면 항상 참가인원 확보라는 벽에 부닥치게 됩니다. 팬데믹 상황까지 겹쳐 여건이 최악이었을 텐데 각 과정별로 교육생 모집은 어떻게 하셨는지요?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수도권 지자체에 청소년 프로그램이 잘 되어있어 교육생들이 적지 않았는 데 그 청소년들 중 일부를 참가시켜 10대 교육프로그램을 할 수 있었죠, 20~30대의 경우 팬데믹으로 영화 관 등 즐길 수 있는 곳이 거의 폐쇄되자 등산이나 스포츠 클라이밍장으로 대거 유입되던 시기였습니다. 더욱 이 실내 암장을 렌트할 경우 비용이 적지 않아, 고민 끝에 최소한의 비용을 지불하고 산악계 후배들이 운영 하는 실내 암장 신세를 지게 되었죠. 자연 암장은 도봉산을 이용하였습니다.
대산련 지원 경비도 턱없이 부족하고 교육생 모집 여건도 만만치 않은데 예전에는 형식적이나마 참 가비가 있지 않았나요? 더구나 무료일 경우 교육이 이어지지 않고 당일치기 교육에 참여 열의가 없어 노쇼( 불참 인원)도 적지 않았을 것 같군요. 일단 전부 무료교육이고, 부족하든 풍족하든 국가 예산을 지원받는 형식이기 때문에 소액이라도 교 육비를 받게 되면 문제가 됩니다. 물론 교육생들에게는 식사와 간식 등이 제공되었지만 강사들은 2명분 교 육비에 모두 포함되어 있어 4~5명이 투입되면 그 비용을 나누어서 사용하다 보니 교통비 정도 수준이었습
니다. 어떻게 보면 재능 기부가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그런데 지적하신 바와 같이 가장 큰 문제가 노쇼였는데 장년부와 10대는 의외로 노쇼가 거의 없었습니다. 청 소년들은 팬데믹 때문에 갈 곳이 없는 데다 식사 제공까지 해주니 부모들이 더욱 좋아했습니다. 문제는 20 대들인데 교육받는 중에도 수시로 빠져나가거나 도망가기 일쑤였죠.
위원장이 되신 후 기존 교육프로그램 외에 릿지교육을 새로 시작하셨는데요? 그 일 때문에 등산학교와 사소한 트러블도 있었지만 등산학교에서 제가 30년 정도 있었기 때문에 그곳 커리큘럼에 지장을 주려는 의도는 아니었죠. 등산학교는 고정된 프로그램이 있기도 해서, 우리 위원회 는 성수기 즉 봄, 여름, 초가을 시기를 피하였습니다. 늦가을에서 동절기에 접어드는 시기에는 릿지등반 위 험도가 급속히 높아지는데 적절한 교육프로그램이 없었기 때문에 그 시기에 한정해서 프로그램을 계획했습 니다. 그리고 교육 대상은 하절기 릿지등반 경험을 했으나 동절기 등반을 시작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 로 잡았고요. 우여곡절 끝에, 참가인원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 도봉산장에서 테스트를 거친 후 릿지등반 이론 교육을 마친 다음 북한산 만경대에서 첫 교육을 시작했죠. 토, 일요일 2주간 4번의 교육으로 노적봉과 만장 봉 일원에서 진행하였습니다.
교육프로그램을 넓히다 보면 타 위원회의 참여나 협조가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오르락 내리락> 사업의 경우 20~30대는 전문등산위원회, 10대는 청소년 위원회의 참여가 전제되 어야 한다고 판단했어요. 지원이 부실하다 보니 아직은 원활하게 분담이 되지 않은 상태지만 계속 함께 참여 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 중에 있습니다. 어쨌든 본격적인 사업을 진행하다보니까 자신감도 붙고 우리 위원들 의 로테이션도 원활해졌습니다. 교육사업 1개당 5~6명의 위원들이 참여하였는데, 20명 정도 교육생들을 관 리하기 위해서는 4~5명의 위원들이 필요한 만큼 한 팀을 만들어 진행하였습니다. 지금은 우리 위원들 개개인에게도 자신감이 많이 생겨 부족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원활하게 진행하고 있는 데 내실 있는 신규 교육사업으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타 위원회의 동참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사회 전영
각종 사업을 알리기 위한 홍보활동은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요? 처음에 그런 부분이 취약해서 고민이 많이 되더군요. 그래서 우선 블로그, 밴드, 페이스북, 인스타그 램 등 SNS에 교육위원회 전용방을 개설하고 유튜브 채널도 만들어 각종 교육 관련 동영상을 올리기 시작하 였습니다. 2년 정도 지나다보니 자료도 많이 쌓이고 해서 눈에 보이는 성과물로 축적되어 우리 위원회 홍보 외에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거나 제안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사회 전영
지금까지 축적된 자료를 바탕으로 추진하고 있는 신규사업 프로젝트가 있다면 소개해 주시지요. 서울시가 출연한 공공법인인 『50+(플러스)재단』이 있는데요, 이 재단에서 ‘서울둘레길’ 관리를 하 고 있습니다. 관리와 안전을 위한 직원들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그간 국립공원공단(산악안전교육원)에서 국립공원 둘레길 등 단기 계약직 관리 인원들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습니다. 하지만 공단 내 자체 교육 일정이 늘어나면서 다른 교육기관을 물색 중에 있었는데, 22년도에 우리 위원회 강인철 팀장과 연결되 었고 우리에게 기회가 주어져 과감하게 받아들였습니다.
23년도 들어서는 각 구청 문화센터 등을 통해 신규 사업 수주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23년 초 동작구와 접 촉해 노르딕 등산교실 개설해 교육을 진행하였는데 24년부터 상·하반기로 정례화 하기로 하였습니다. 광진구에서도 등산 프로그램 의뢰가 와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하는 스포츠 클라이밍 사업을 신규로 제안하여 진행하였고, 30대 직장인을 대상으로 퇴근 후 아차산 야간 산행 프로그램도 시행하여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직장인 중에는 구청 소속 사람들이 많이 참가했고 반응도 좋았습니다. 이런 프로그램들이 더 알려지면 내년에는 타 구청들에서도 등산 프로그램을 운영해 달라는 의뢰가 적지않 게 오리라고 내심 기대하고 있습니다.
교육위원회의 구체적인 사업내용을 다시 정리해볼까요? 2021년에는 팬데믹으로 ‘오르락 내리락’ 사업만 진행하였고요, 8월에 시작해서 10월에 마쳤습니 다. 22년 들어서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일단 상반기에 실시하는 ‘오르락 내리 락’ 사업이 메인이었고요. 국립공원공단에서 주관해 <산악전문지도사>라는 민간자격증을 교부하는데, 서울 시산악연맹이 이 자격을 위한 양성교육기관으로 위탁을 받아, 비록 부족한 예산이었지만 상·하반기에 교육 을 진행하였습니다. 23년 들어와서는 지난 2년간의 경험을 살려 총 80회차 규모의 교육 일정을 준비했는데 기존 <오르락 내리 락>, <생활체육지도자 2급>, <동절기 릿지교육> 프로그램에 더해 각 구청 요청 <등산교육 프로그램>, <한 부모 가정을 위한 또박이 사업>, <탈북민, 다문화 자녀 1일 캠핑학교> 등을 진행하였습니다. 그중 <다문화 자녀 캠핑학교>는 24년도부터 서울시청, 강북구청 가족문화센터, 강태선 나눔센터, BAC 등 4 개 단체에서 모두 진행하는데 그 행사를 전부 우리 위원회에서 맡기로 했습니다.
등산교육위원회의 설립취지라고 할까요. 주요한 지향점이 있을텐데요? 우리 위원회의 설립 취지는 연맹 정관에 잘 나타나 있는데 등산학교 육성, 등산강사 관리, 일반 시민 들을 위한 등산 교육 등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보통 일반인이 산에 오를 경우 그냥 올라갔다 내려오면 되지 무슨 교육이 필요하냐고 반문하곤 하는데 안전 과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등산은 과학이다”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음식 섭취는 물론 장비 준비, 장비 사용, 배낭 싸고 매기, 워킹, 스틱 사용 등 등산 관련 제반 활동에서 과학적 접근이 중요합니다. 등산이
라는 여가생활을 영위하는데 몸이 피곤하지 않고 건강을 증진시키며 즐거움을 느끼고 집에 와야 하지 않을 까요? 개인적으로 등산의 분류를 트레킹, 하이킹, 캠핑, 일반등산, 고산등산이냐 구분할 수 있는데 각 목적에 맞는 장비와 식량 계획이 필요하기 때문에 각 과정별 교육 때마다 교육생들에게 강조하곤 합니다.樂
교육위원회의 주요 조직 구성은 어떻게 되어있나요? 위원장 산하에 부위원장이 2명, 기획팀장 1명, 홍보미디어 총괄팀장 1명, 교육팀장 1명, 그리고 총 무가 있고, 교육위원들은 청소년담당, 클라이밍, 일반등산 등등 각 파트별로 다수 포진해 있으며, 전 위원들 이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습니다. 지원자 포함 총 26명 정도로 구성했습니다. 개인 강사로 교육을 전업으로 삼고 있는 위원은 3명 정도 되고 나머지 위원들은 각자 직업들을 가지고 있어 재능기부 형태로 봉사하고 있 습니다.
사회 전영
지금까지 각종 교육을 진행해 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은 행사가 있을까요? 아무래도 처음 부임하던 21년도 <오르樂 내리樂> 사업 중 ‘꿀잼’ 교육이 기억에 남습니다. 앞에서도 언 급했지만 팬데믹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일단 밀어붙여서 추진한 사업이었죠. 그 때 전부 마스크 쓰고 손 소독하고 1m씩 떨어져서 교육한 모습을 동영상 촬영까지 해서 증거를 남기느라 정 신없었던 시간이었지만, 청소년들과 함께 즐겁고 유쾌하게 보낸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참여 위원들 모두 흐 뭇해했어요.
교육위원회도 시급한 현안이 있을 텐데요. 내부적이든 외부적이든 말씀해주시지요. 내부적으로는 훌륭한 인원보강이 중요하고 각 자격증을 지닌 위원들을 장단점에 맞게 지도자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시켜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외부적으로는 어차피 충분한 지원은 바라지도 않지만 기존 또는 신규교육 진행 시 우리 연맹 내 해당 분야 분과위원들의 적극적인 동참이 필요합니다. 지방 연맹들의 경우만 해도 각 분과위에서 맡아서 진행하고 있 는데 서울시연맹만 우리 위원회가 전담하고 있어 과부하가 걸릴 우려가 높습니다. 좋은 프로젝트들도 있는 데 포기하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입니다.
사회
전영
개인적인 질문으로 들어가 산악인으로 첫걸음을 시작하게 된 계기나 첫 등반, 기억에 남은 등반활동 이 적지 않을 텐데요 ? 저는 1980년 거리산악회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인맥이 있어서라기 보다 는 고등학교 때부터 그냥 취미 삼아 등산을 하곤 했죠. 하루는 산악부 친구들하고 교련복 차림으로 우이암에 서 스토브로 밥을 해 먹고 있는데 거리산악회 선배들이 암벽등반을 하러 왔다가 우리를 발견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코를 꿰게 되었습니다. 소풍 때도 담임선생님을 설득하여 북한산성으로 갔고, 졸업여행 도 청계산에서 야영하자고 설득하여 실행하기도 했습니다. 등산학교와는 1990년에 교장 선생님을 만나 첫 강사생활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인연을 맺어오고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등반활동으로는 1995년 남미 최고봉 아콩카구와(6,961m)를 등정하였는데 등반이 예정보다 일찍 끝나 따로 후배와 남아서 카드 한 장 달랑 들고 파타고니아 일주를 했습니다. 이후 등산학교의 배려로 강사 일원으로서 일본 문부성 산하 등산연수원에 1주일 교육시스템 연수를 마쳤습 니다. 1997년 미국 레이니어(4,392m), 네팔 히말라야는 2000년 아마다블람(6,812m), 2002년 등산학교 졸업생과 임자체(6,169m), 2005년 등산학교 재학생들과 메라피크(6,476m) 등정을 하였는데 당시 그 지역 은 네팔왕국이 무너진 후 공산 반군이 장악하고 있던 지역이어서 입산료를 뜯기고 차용증을 받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끝으로 동고동락해오고 있는 등산교육위원회 위원들에게 남겨주실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제가 일단 일을 벌이고 보는 타입이라 위원들이 참 힘들 겁니다. 그렇지만, 아이디어를 내면 거부하 기보다는 우선 받아주는 마음 씀씀이에 감동을 받곤 합니다. 그 아이디어의 실행이 안 돼 보여도 이런저런 안들을 덧붙여 실행이 될 수 있게끔 정리해준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각자 직업들을 가지고 있어서 본인들의 업무가 바쁠 텐데도 빠지지 않고 참가해준다는 점입니다. 이 지면을 빌려 다시 한번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전영래 이사(교육위원장)
현직] 서울시산악연맹 등산교육이사 약력] 1980년 거리산악회 입회 / 1989년 대만 옥산 등반 / 1990년 일본 다니가와다께 등반 / 1993년 일본 문부성 등산연수소 수료 / 1996년 아콩가구아 등반 / 1997년 미국 레이니어 등반 / 2000년 네팔히말라야 아마다블람 등반 / 2002년 네팔히말라야 임자체봉 (아일랜드 피크) 등반 / 2003년 일본 다테야마 산악스키 훈련 / 2004년 일본 도야마 / 유럽 엘부르즈 산악스키 훈련 참가 / 2005년 네팔 메라피크 등정 / 2015년 유럽알프스등반 / 2016~2019년 유럽알프스 등반 / 1990~2023년 현재 한국등산학교 강사 / 前 국립공원공단 재난안전처 자문위원 수상] 2012년 산악인의날 "고상돈상" 수상 / 2022년 서울특별시장 표창 수상 자격] 1999년 경기지도자(산악2급) 취득 / 2006년 생활체육지도자(산악3급) 취득 / 2006년 대한산악연맹 2급 등산강사 취득 2023년 산림레포츠지도사 취득
우수가맹단체 소개
우수가맹단체소개 ㅣ 요델산악회
“60년”
선후배들과 흘린 우정과 땀의 발자취
안녕하세요? 요델산악회 회장 김한경입니다.
먼저 서울시 산악연맹 연감 14호 발간을 축하합니다. 우리 요델산악회는 1963년 설립된 이래 60년대, 70년대, 80년대 선인봉 과 설악 등 여러곳의 루트 개척과 초등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저는 1976 년 산악회에 입회하여 존경하는 선후배들과 산을 다녔습니다. 돌이켜보면 깎아지른 절벽을 오르며 선후배의 우정이 싹 텄고 또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 러한 정신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세월이 흐르면서 체력 이 예전 같지 않고, 하나 둘 선후배님들을 멀리 떠나보내면서 더 이상 이전 과 같이 함께 등반할 수 없는 사실이 서글픕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산 을 사랑하고 높고 험한 곳에 오르려는 열정은 식지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가맹단체 산악인 여러분 안전산행하시고 서울시특별시산악연맹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겠습니다.
김한경 회장
Yodel 창립 취지
-창립 일시: 1963년 5월 7일 -창립 장소: 도봉산 선인봉 기슭 -창립 발기인: 백인섭, 강길건, 임청규, 조상규 -창립 취지 1963년 5월 7일 본 산악회는 독일의 슈미트 형제로부터 이룩된 슈미티즘을 숭배하는 젊은이들이 오로지 산을 위해 존재한다는 이념 아래 설립되었으며 그 취지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 등산에 뜻을 같이 하는 회원 상호간에 친목을 도모하고 보다 의욕적인 산악활동을 통하여 지성인의 건실한 생활에 이바지 한다..
2. 개척등반 및 후배 등반자를 위한 자료 제공 3. 초행 산악인을 위한 기술 지도 4. 회지 발간으로 산악인 계몽
Yodel 1963~1967
Yodel 1968
Yodel 1969
1969. 01/25 ~ 02/08 동계 한라산 어승생 계곡 개척 등반 (백인섭, 채영세, 한상진, 나경봉, 송준호, 엄홍석 등) 1969. 05/27 ~ 06/04 설악산 범봉 연봉 개척 (백인섭, 임청규, 송준호, 오세진 등) 1969. 08/07 하계 설악산 등반 중 2명 사망
요델산악회
1963. 05/07 요델산악회 창립 (백인섭, 강길건, 조상규, 정지혜, 강보항, 김두삼) 1964. 10/01 도봉산 선인봉 낭만길 개척 (백인섭, 강길건, 조상규) 도봉산 자운봉 측면 및 전면 코스 개척 (백인섭, 강길건, 조상규) 1965. 04/02 도봉산 선인봉 서면 양지길 1, 2단 개척 (백인섭, 조상규, 강길건, 강보항) 1965. 11/12 도봉산 선인봉 허리길 개척 (백인섭, 조상규, 강길건) 1966. 05/22~1967. 05/07 도봉산 선인봉 표범길 개척 (백인섭, 조상규, 강길건, 이희구, 홍종만, 김우수, 백인상, 한덕정, 정지혜) 1967. 05/27~06/04 설악산 표범골(잦은바위골) 정찰 및 범봉 초등 (백인섭, 유충길, 장승길)
1968. 01/20 ~ 02/05 설악산 동계 표범골 개척 (백인섭, 임청규, 송준호, 나경봉 등) 1968. 05. 설악산 칼날능선 개척 및 초등 (백인섭, 송준호, 오세진) 1년 뒤 별다른 명칭이 없던 칼날능선의 상하단을 연결해 석주길로 명명 1968. 08. 설악산 칠형제봉 개척 및 초등 (백인섭, 채영세, 이형삼 등) 1968. 09/26 도봉산 만장봉 그림길 개척 (백인섭, 채영세, 이형삼 등) 도봉산 선인봉 측면 양지길 3단 개척 (백인섭, 조상규, 강길건 등) 1968. 10. 도봉산 선인봉 양지길 3단 오버행코스 개척 (백인상, 김우수, 성주현 등) 1968. 11/10 도봉산 선인봉 측면 Y 코스 개척 (백인섭, 이형삼 등)
지상전시
(엄홍석, 신현주) 1969. 10/03 ~ 10/07 석주길 완성 1968년 5월 개척된 칼날능선을 바탕으로 하단의 설악골 삼거리와 상단(희야봉)의 V안부를 연결하는 릿지등반 코스로 완성하고, 칼날능선의 붉은색벽 병풍암의 의미와 함께 고 엄홍석과 신현주의 추모 코스로서 두 분의 이름 끝자를 따서 "석주길"로 명명함: 석주길 탄생 -등반대장: 임청규, 대원: 권한섭, 김인철, 홍창식, 김양수, 박창희, 전명호(외대 OB), 백인택 -석주길 추모개척 공격대장: 송준호, 부대장: 오세진, 대원 정택주 (외대 OB, 은벽산악회)
Yodel 1970~1972
1970. 01/11 ~ 01/23 설악산 토왕성 폭포 빙벽 도전(백인섭, 최영준, 오세진) 1970. 10/01 ~ 10/11 설악산 봉정연봉(용아장성) 종주 개척 및 초등 (유충길, 송준호, 조용민, 홍경의 등) 1971. 02/04 ~ 02/15 설악산 잦은바위골 100미폭 빙벽 초등(송준호, 오세진 등) 1971. 10/30 백인섭(초대회장) 프랑스 국립스키등산학교 출발 1971. 10/30 ~ 11/04 설악산 봉정연봉(용아장성) 등반 중 2명 부상 1972. 01/31 ~ 02/10 설악산 용아장성 동계 초등 (유충길, 송준호, 홍경의, 조용민, 정준봉, 김형원, 윤영길, 김택순)
Yodel 1973~1975
1973. 01/02 설악산 토왕성 폭포 상단 단독등반 중 송준호 추락사 1973. 07. 하계 설악산 등반 및 고 송준호 추모 개척코스 정찰 1973~1975. 06/12. 도봉산 선인봉 요델바트레스 개척 (고 송준호에게 헌정 코스) (송준호, 나경봉, 이범훈, 조홍식, 박경식, 박경립, 김영호, 강구영 등) 1974. 08. 설악산 석주길 좌측암릉(고 송준호 추모 흑범길로 명명) 개척 ~1975. 11. (조홍식, 이범훈, 홍경의, 박경식, 김영호, 강구영 등) 1973~1974. 도봉산 선인봉 막내길 및 다람쥐길 개척 (이희구, 최두영 등) 1975. 07. 설악산 염라길 개척 (조홍식, 강구영, 이은숙) 1975. 11. 설악산 흑범길 완등 (홍경의, 강구영)
Yodel 1980~
1980. 01. ~ 02. 설악산 범봉 정면벽 동계 초등
Yodel ~2023
Yodel members
윤영기 사진전
(강구영, 심영섭, 김영욱, 김광언) 1980. 09/26~10/26. 요세미테 North face 등반 (이영식, 강구영, 은벽 허정식) 1982. 08. 하계 설악산 용아장성 등반 중 김문한 대원 추락사 1985. 02/08 ~ 02/14. 설악산 토왕성 폭포 등반 (최두영 외) 1990. 01/25 ~ 03/01. 마카루 등반 (신흥수)
1990년대 이후 특기할만한 개척 및 초등 등반은 없었으나 2000년대 초까지 정기적으로 하계 및 동계 장기등반과 주말 근교 산행, 기존 개척코스의 정비 등을 진행해 왔다. 또한 1970년대 초부터 최근까지 40여년간 진행한 은벽, 크로니, 요델 3개 산악회 친선체육대회를 통해 타 산악회와의 교류 및 친목을 다져왔으며, 산악회의 평균 연령이 고령화 되고 기존 회원들마저 감소하는 최근에는 부정기적으로 등산과 스키 활동을 중심으로 모임을 지속하고 있다.
요델산악회의 창립 60주년을 맞아 지난 세월의 등반 활동을 정리하고 자축하는 한편, 젊은 시절 각자의 마음 속에 가졌던 내일의 안나푸르나 또한 회상하고 등산의 가치와 삶의 이유를 되새기고자 한다.
백인섭, 강길건, 조상규, 곽흑룡, 정지혜, 신만, 이무일, 한상진, 임청규, 김두삼, 강보항, 홍승일, 이희구, 김방원, 정일주, 채영세, 백인상, 성주현, 김진성, 김우수,홍창식, 나경봉, 엄홍석, 전철민, 유충길, 송준호, 윤영길, 김택순, 이형삼, 박성옥,박성녀, 박창희, 이범훈, 조홍식, 조용민, 안종섭, 오세진, 심재룡, 홍경의, 김형원,박경립, 정준봉, 권임희, 김미아, 이영식, 박경식, 김영호, 박선암, 최두영, 박만식,신흥수, 유정호, 김혜숙, 이은숙, 강구영, 전광용, 심영섭, 김한경, 김영욱, 김광언,이태호, 김석진, 이민호, 류신희, 조명혜, 남기원, 고무경, 김재중, 양유찬, 최거영,경규홍, 신경미, 박상준, 이정희, 노명희, 고경희, 서수경, 이헌주, 홍석원, 김문한,김기호, 박점숙, 한보학 외
역사와 전통의 광운OB산악회는 다양 한 연령들의 회원으로 구성된 클럽으 로서 선, 후배들의 꾸준한 소통과 주 기적인 암·빙벽, 해외원정을 진행하 며 쌓아온 끈끈한 자일의 정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모교인 광운인공지능고 등학교 재학생들에게 다양한 방면으 로 지원하여 미래의 산악회를 이끌 인 재들을 양성하고 있는 미래 지향적인 클럽입니다.
나의 삶, 나의 산 이야기·Ⅲ
서 우 석 (서울시산악연맹 사무국장, 광운OB산악회)
구조하러 갔다가 구조 당해
내 일상은 너무 단조로웠다. 자신만만하게 사표를 내고 등반 여행을 선택했지만, 어디 오라는데도 없고, 막상 일자리를 찾으려 했으나 만만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엄청 노력을 했던 것도 아닌 것 같다. IMF의 후폭풍이 사회의 많은 것을 바뀌 놓았다. 다행이 큰돈을 벌 필요는 없었고, 내가 쓸 용돈 수준의 돈만 벌면 되는 시기였던 것 같았다. 이때 선배들이 인공암장 관리해보지 않을래? 하며 담배 값 벌이도하고 용돈도 벌라며 권하였으나 나는 당시 발목 부상으로 병원 신세를 지고 일주일에 두차례 이상 병원을 다녀야 했던 시기였다. 수년 전 설악 양폭산장 뒤편 암벽에 루트를 개척할 때였는데 산장은 비어있었고 일찍 등반이 끝나 휴식 중에 설악동 구조대 사무실로부터 무전이 날라 왔다. 마등령 쪽에서 사고가 나서 서울구조대가 양폭이 있으니 구조작업을 도와달라는 취지였다. 당시 내가 제일 선임이었기에 대원들은 먼저 내려보내고 나니 비어있는 산장과 매장을 돌봐주어야 활 상황이었다. 그런데 바로 아래 후배가 머리를 극적이며 몸이 안좋다고 하길래 알았다고 대답하고 앞선 간 후배들을 뒤따라 급하게 내려가다가 지금의 귀면암 직전 마사토 지역에서 미끄러지며 발목이 돌아가는 바람에 구조하러 갔다가 되레 구조를 당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얼마나 아픈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뒤따라오던 선배가 내려오지 않자 덩치가 작은 후배가 올라오더니 내 모습을 보고 사람을 부르러 오던 길을 되짚어 내려갔다. 한참을 통증과 싸우며 엉덩이로100여 미터 정도를 내려오니 후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후배들 등에 엎혀 내려오는데 너덜거리는 발목이 얼마나 아픈지 창피해할 겨를조차 없었다. 병원에서 다행히 골절은 아닌데 인대 등이 손상된 것 같다고 하였다. 반 깁스를 하고 후배 집에서 운영하는 여관방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업친데 덮친격으로 계단을 내려오다 목발 사용을 잘못해 목발이 지렛대 역할이 되어 다시한번 “쿵” 본능적으로 안다친 발을 내딪자 엄청 아팠다. 다시 병원행, 큰 문제는 없다고 하였다. 진통제 처방 받고 설악구조대장의 집에서 며칠 신세를 지다가 통증약을 한움큼 먹고 계곡의 차가운 물에 찜질하면 좋다고 하길래 양폭으로 올라갔었다.
초창기 인공암벽장 관리 노하우 쌓아
이후 걸을 만하여 집으로 돌아 왔는데 일당 일조차 할 수 없는 지경이었던 차에 당고개암장
2002년 브리그판스 원정대 대장의 숙명
안전관리원으로 다행히 일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 몸 상태가 부담이 되어 거부했으나 함께 일하는 후배가 본인이 알아서 다 할테니 형은 출근만하라는 뜻으로 얘기하길래 마지못해 승낙하고 암장을 개장하게 되었다. 암장에서의 근무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내 모교에도 규모는 작지만 설치된 인공암벽에서 매달려보고 운동도 하였지만 딱히 마음에 다가오지는 않았다. 다만 산, 그리고 등반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었는데 밥 벌이가 될 줄이야 ! 처음으로 이 동네에 인공암벽 시설이 생기니 호기심에 많은 분들이 메달리다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해 아침 저녁으로 2m~3m 구간의 홀드를 제거하고 부착하기를 반복하였다. 어느날 아침 출근하여 홀드를 부착하다가 추락하였다. 그때 사용하던 사다리가 나무로 만든 것이었는데 발판이 빠지면서 그대로 매트에 나둥그러졌다. 아픈 발목이 한 번 더 충격이 왔다. 눈물이 핑 돌았다. 냉찜질을 하고 통증이 조금 줄어들자 일을 마무리하고 한의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았다. 한 참을 치료 받은 것으로 기억된다. 시설을 살피고 부족한 시설을 보완하고 어떻게 하면 이용하는 분들에게 쾌적하고 안전하며 다양한 오름짓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까? 하는 고민이 따랐다. 이때부터 나무를 가공하기 위해 망치, 끌 등 목공구와 쇠를 가공하기 위해 쇠톱과 드릴, 그라인드 등을 준비해 하나씩 해결해 나갔다. 이용 실태를 살펴보니 스포츠클라이밍을 주 운동으로하는 사람들의 전유물로 인식되어 일반 등반객이 이용할라치면 잦은 마찰도 발생했다. 그러자 내가 근무하는 동안엔 모든 등반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하겠다는 신념이 생겼다. 이를 위해 나무와 쇠 등을 이용 인공등반을 할 수 있도록 너트와 캠을 설치하며 등반할 수 있는 루트를 만들고, 계절적인 요소로 늦가을엔 빙벽등반 훈련을 할 수 있는 루트도 개설했다. 처음엔 혼자 미친놈 같이 했는데, 점차 호응을 얻어 도움도 받고 이용하는 분들도 늘어났다. 덕분에 최초의 에이드(인공) 등반대회를 내가 근무하는 곳에서 진행하였고, 드라이툴링(아이스클라이밍) 대회도 처음으로 열렸다. 그렇게 암장이 자리를 잡아 갔다.
구조대에서 추진하는 원정에 내가 대장이 되어 원정을 추진하게 되었다. 길동에 큰 매장이 있는 곳에서 우리 한국-2002년 브리그판스 원정대-을 후원하여 주었고 큰 돈이 들어가지 않고, 내심 잘 알고 있는 인도 가르왈지역 탈레이샤가르 옆이라는데 흥미롭고 즐거운 등반 여행이 될 것 같았다. 먼저 직장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고민이 들었지만 함께 근무하는 후배가 걱정 말고 다녀 오란다. 그 후배 덕분에 원정을 다녀와서도 일할 곳이 남아 있게 되었다. 함께 할 대원을 추려 시간이 날 때 마다 산으로 또 산으로 돌아다녔고, 산행이 불가 할 때는 내가 근무하는 암장에서 어센딩(쥬마링) 훈련 등을 빡세게 하였다. 그렇게 훈련을 마치고 또 다시 인도로 출국한다. 세 번째 인도행이어서 낮설지가 않고, 인도등산협회 도미트리도 친근했다. 행정 절차를 마치고 버스 카라반과 도보 카라반을 통해 베이스에 도착, 본격 등반을 진행하였다. 우리 원정대는 매일 탈레이샤가르 사면을 지나다니며 우리가 목표한 봉보다 이곳 탈레이를 등반하는 것이 더 쉽겠다는 말들을 주고 받았다. 당시에도 내 발목 상태는 아이젠을 착용하고 설벽을 오르고, 눈밭을 걷고 좀 운행을 했다 싶으면 저녁에는 발이 퉁퉁 부어 올랐다. 전진 C1 캠프 그 이상을 오르지 못하는 처지가 되어 낙담을 했다. 다른 때 같으면
저 눈덮인 설릉에서 설벽에서 빙벽에서 어렵게 깍은 비좁은 캠프지에서 동료 대원들과 희희낙락 거리며 내일의 운행을 고민하고 있을텐데…. BC에서 망원경과 무전기를 통해 대원들의 움직임과 운행을 보고 받아야하는 씁쓸한 마음이었지만, 원정을 책임졌으니 무사히 원정이 마무리 되기만을 기대했다. 이번 원정은 많은 우여곡절 끝에 완성되었다. 물론 다른 원정도 사연이 많았지만 개인적으론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순간들이 몇 번에 걸쳐 발생했다. 운행 중 빙사면에서 미끄러져 대퇴부 타박상을 입은 대원, 등반중 낙석에 허벅지를 맞은 대원 등…. 대원들의 부상으로 전력이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모든 대원을 베이스로 내려 휴식과 인근에 방목하는 양을 구입하여 한국식 불고기 양념에 잘 먹이고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마지막 공격을 위한 정비를 하고 대원들을 올려 보냈다. C1캠프에 도착 소식이 들리고, 다시 또 C2캠프에 도착, 다음날 새벽에 정상 공격을 하겠으니 기상 무전을 달라는 소리에 밤을 지새우고 약속된 시간에 대원들을 깨웠다. 이곳에선 캠프2의 움직임이 관측되지 않아 무전을 통해서만 그들의 움직임을 알 수 있었다. 깨우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운행 개시를 알리는 무전이 날라온다. 가끔 등반대원들끼리의 무전 소리가 잡혔다 안잡혔다 한다. 답답하기만 하다. 시간이 한참 흘러 어두워 지는데 아직 감감 무소식이다. 속절없이 기다림에 내 무전기 배터리를 교체하고 하염없이 대원들을 불러 보아도 대답이 없으니 막막하던 차에 무전기에 잡음과 함께 신호가 잡히며 등정에 실패하였으며, 마지막 캠프로 돌아왔다는 소식과 내일 재 도전하겠다는 소식이 날라온다. 무전기는 습기를 머금어 작동 불능상테여서 캠프에 돌아와 버너불을 이용하여 무전기를 말려 겨우 통신을 연결했다는 설명이다. 휴~ 한 숨이 절로 나온다. 다시 다음날 새벽 콜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다시 침묵 모드에 들어간다.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아마 내일은 하산 때문에 포터들이 올라올 것이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욕심을 내야 하나? 캠프로 내가 갈 수도 없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둠이 가시기 전 대원들을 콜하고 아래 쪽 전진캠프에 대기 중인 대원을 마지막 캠프로 이동시켜 정상 도전 중인 대원을 지원하고 철수를 책임지라는 지시를 내렸다. 무전기와 커피, 베이스 캠프 대원들이 가져다준 누릉지 탕으로 늦은 식사를 한다. 온 몸의 모든 신경이 날씨의 변화와 무전기에 쏠린다. 어느덧 오후다. 포터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하고, 모닥불을 피워 짜파티 빵을 굽는 등 부산하다. 베이스의 대원들 중 일부가 타는 쓰레기를 소각하고 나머지는 밑으로 내릴 쓰레기를 분류하는 등 베이스는 베이스대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늦은 저녁 지친 목소리로 정상 공격에 성공했다는 낭보가 날라온다. 이젠 하산이 문제다. 무사히 마지막 캠프까지만 와주면 큰 위험은 없을 것이다. 마지막 캠프에 안전하게 도착했다는 무전이 날라오고, 조금 시간이 지나 아래 캠프에 도착, 뜨거운 차를 마시고 다시 하산 중이라는 소식이다. 베이스의 대원들이 물을 끓이고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 마중을 나간다. 이때가 새벽 시간이다. 저 멀리 헤드렌턴 불빛이 휘척거리며 내려오는게 보인다. 몹시 지쳐 초췌한 몰골을 한 대원이 보인다. 너무 반갑다. 반갑게 악수를 하는데 눈물이 왈칵거린다. 꾹 참아 내자 두 번째 세 번째 대원들의 모습이 보이고 이후 한참 후 마지막 대원이 내려오는데 워낙 체구도 좋은 친구지만 그 몸에 엄청난 짐을 지고 내려오는 모양이 마치 커다란 곰이 서 있는 듯한 모습이다. 아무말 없이 손을 꽉 잡았다 - 이후 그 후배는 다음 원정에서 히밀라야의 별이 되었다. 수고했다. 그렇게 우리는 새벽 4시가 넘어서야 전 대원이 베이스에 모일 수 있었다. 숨겨두었던 위스키를 한잔씩 마시고 짧은 잠을 청하고자 해산시킨 후 자는 둥 마는 둥 하는 동안에 날이 밝아 온다. 아침 식사를 최대한
인기 높았던 실내 암벽교실
흉흉했던 미지의 조포아 원정길
간단히 하고 부상 당한 대원들을 먼저 하산시킨다. 3일에 걸쳐 올라온 길을 하루만에 내려왔다. 그나마 등반 성과가 나서 다행이고, 부상당한 대원들의 상처도 대단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마을에 내려와 하행카라반용 버스를 타고 하루에 걸쳐 시내에 도착하니 부자연스럽지만 부상을 당한 대원들도 잘 걷고 낄낄거리며 떠들고 팀 전체의 분위기가 밝아졌다. 그렇게 또 하나의 원정이 마무리 되었다.
짧은 휴식 후 다시 출근해서 근무를 시작했다. 암벽교실을 개설했는데 인기가 너무 좋다. 처음에는 이곳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의 확보나 장비 사용 등이 너무 부실해서 개선해 보고자 시작한 것인데 서서히 효과를 보는 듯 했다. 함께 근무하는 후배가 어느날 형 저 미국으로 등반간다 길래 그래 잘 다녀와라! 근데 등반 기간은 얼마나 되지? 예, 한달이면 충분해요! 그래 장비 잘 챙기고 안전 등반해라! 그렇게 두달이 지났다. 연락이 안 된다. 그 이후 소소한 문제들이 튀어나오고 금전 문제 등으로 시끄러웠다. 세달째야 되어서야 모든 상황이 파악이 되었다. 후배는 그대로 미국에 눌러 앉았던 것이었다. 일단 후배의 남아있던 3개월치 임금으로 빛 잔치를 했다. 그리고 나서 새로 두 번째 파트너를 맞이했다. 등반 실력도 우수하고 젊고 착실한 후배였다. 다른 친구로부터 도미한 후배 소식을 들었다. 열심히 살고 있다고. 미국에 무슨 꿀단지가 있었는지 주변 몇몇 후배나 선배들이 미국으로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날 중국의 고산 사진들이 펼쳐진 책 한권이 우리 구조대로 들어 왔다. 당시 우리들의 묵계는 선배(고참) 들이 돌아가면서 원정대를 이끈다는 것이었다. 멋진 사진 한 장 달랑 들고 그 산에 대한 정보를 찾았으나 우리가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지역과 산 이름만 파악했을 뿐이었다. 나는 지난번 원정을 책임졌으니 이번에는 나보다 한 해 후배가 이번 원정대인 2004 티벳 로부제쿵(죠포아)팀을 꾸려 나갈 차례였다. 그런데 어느날 함께 지방을 다녀오는 길에 형!~ 내가 사업 중인데 이번 원정 도저히 할 수가 없다고 대신 형이 맡아 달라는 부탁을 해온다. 많은 고민도 없이 그래 알았다고 대답했다. 어짜피 산에 가는 것인데…. 살짝 직장 등 이런저런 걱정도 되었지만. 이렇게 원정대가 꾸려지고 대원들이 확정되고 자금이 마련되고 훈련이 시작되었다. 네팔로 입국 후 티벳으로 들어가 등반을 해야했다. 그 지역에 도착해서야 여길 왜 왔지? 바로 옆 인근에 8천미터대 봉우리 두 개가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한참 이슬람IS 테러로 흉흉할 때였다. 우리 원정대는 네팔로 입국하여 국경 마을로 이동하였다. 지프차로 국경을 넘어 티벳 고원을 3일에 걸쳐 이동한 끝에 우리가 등반할 산 인근 마을에 도착 캠프를 구축하고 티벳등산협회 정부연락관도 만나고 정보도 교환했다. 문제는 우리가 가야 할 산이 어디있는지 베이스는 어디로 들어가야 하는지 정부연락관도 모른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몇 년전 이곳을 등반한 유럽쪽 원정대 포터로 일했던 노인을 찾아 겨우 베이스캠프 가는 길을 알아 낼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야크를 이용해 짐을 수송한다. 선발대가 먼저 출발하고 다음날 우리가 출발했다. 넓은 계곡 빙하가 흐르는 사면 평지에 베이스캠프를 구축했는대 딱 봐도 캠프자리가 확실했다. 이곳의 물
사정은 극히 나빴다. 탁한 빙하물을 길어 드럼통에 받아 이삼일 정도 침전시킨 뒤 식수로 사용했는대, 많은 대원들이 설사로 고생했다. 원정 때 관심을 가지고 실펴보면 물 사정이 좋은 곳에서는 대원들이 커피를 선호했는데 이곳에선 그렇지 않고 티백에 들어있는 차들을 더 선호했다. 몸이 그것을 원하는 것 같았다. 베이스에 도착하여 베이스 캠프를 구축했지만 우리가 올라야 할 산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비슷한 몇 개의 산이 있었지만 사진을 이리저리 대조해 보아도 아리송했다. 이때 처음으로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했는데 정찰대를 구축해 이곳저곳 정찰한 사진을 대조해 봐도 똑 떨어지는게 없다. 시간을 허비할 수 없어 베이스에서 비교적 가깝게 보이고 뾰족한,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진과 비슷한 봉을 대상으로 등반해 나갔다. 모레인 지대을 지나 빙하 옆 너덜을 정리해 C1을 구축하고 C2는 빙하 눈밭에 구축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고도를 높인 후에야 우리가 정했던 피크를 확인 할 수 있었다. 애당초 베이스캠프가 이 자리가 아닌 빙하 저 건너편에 구축했어야 했었고, 어지럽게 펼치진 빙하 위의 빙탑 등을 돌아 돌아 나가야 할 곳이 우리의 길이었던 것이었다. 우리는 등정할 봉우리를 향해 어렵고 위험한 등반을 이어갔다. 정상은 매우 비좁아 정상 사진을 마치 증명 사진을 찍듯 찍어야 했다. 우리는 정상에 우리 국내 기업이 만든 아이스바일 한 자루를 깊이 박아 놓았다. 철수가 시작되고 캐러반을 마치고 국경마을에서 국내에서 들어온 2진을 만날 수 있었고,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가이드로 활동한 어떤 노인으로부터 우리가 오른 봉이 조포아 “신의 아들”이라는 지명을 갖고있는 7,000m대 피크로 확인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역으로 카라반을 하여 국경 마을을 거쳐 네팔로 다시 입국했는데 마치 무슨 전쟁터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IS에 의해 네팔인이 처단되었다는 소식으로 카투만두 시내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고, 어렵게 호텔에 들어온 우리는 호텔 밖 출입을 못했다. 귀국시에도 경찰의 호위을 받아 공항에 도착한 후 네팔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악천후를 뚫고 새 루트로 오른 탈에이샤가르 원정
앞에도 언급 했듯 2년마다 진행되는 원정대 파견으로 대원들의 기량이 향상되고, 98년 원정 때 우리 원정대와 어긋나 만나지 못하고 히말라야의 별이 된 세 친구의 한이 서린 봉우리에 도전할 준비를 했다. 사고 후 몇 번의 원정대가 꾸려지고 원정을 하였으나 아직도 숙제로 남아있는 탈레이샤가르&죠긴을 목표로 2006 탈에이샤가르&죠긴 원정대 계획이 수립되었다. 먼저 원한이 있는 팀과 고인의 부인을 만나 우리가 등반을 해도 되겠느냐는 의사를 표명하자 형들이 끝내주면 고맙다라는 답변을 받고 본격 훈련을 시작하였다. 1년여의 훈련은 실전 같은 매우 위험한 훈련을 마치고 대원들의 사기도 충전해 있었다. 매주 진행되는 힘든 산행 및 훈련을 이겨내고 주중에는 암장에 모여 밤새 훈련하다가 각자 출근하는 일이 허다했으며, 훈련 기간 중 한 번도 텐트를 설치하지 않았다. 그 추운 설악에서 인수, 선인봉 등 북한산 자락에서 훈련하다 부상을 당해 결국 원정에 참여하지 못하는 대원도 발생했다. 우리는 비장한 각오로 원정에 임했다. 후배가 원정 대장을 맡고 나는 테크니컬 매니저로 원정에 참여했다. 이번 원정에는 지난 원정
때 이곳에서 함께 등반한 대원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 친구는 당시 마지막 철수를 도왔던 선배 대원이 히말라야의 별이 된 후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지방 생활을 하던 중 소속팀이 파키스탄 8,000m봉 원정에 참여 후 인도로 건너온 후배였다. 선발대로 두 명의 대원을 먼저 보내고 며칠 후 본대가 출국하였다. 이젠 너무 익숙한 인도 등산협회이다. 사무국에서 근무하는 직원과 친분도 쌓여 집에 초대받기도 했다. 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원정대의 규모가 제밥 커 위성 인말 셋트와 프라스틱 테이블과 의자, 노트북에 발전기까지 갖춘 대규모 원정대였다. 본대 출발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합류할 2차 팀이 있었는데 계획대로라면 함께 귀국하는 계획이었다. 우리는 본 등반에 앞서 옆의 다른 봉을 등반했다. 선배들이 오면 등반할 봉이라 많은 장비들이 투입되었다. 무사히 목적한 봉 등반을 마치고 메인 봉에 전력을 투구했다. 하나씩 전진 캠프가 구축되고 벽 중간에 아주 위태스럽게 형성된 곳의 얼음을 깍아 내어 어렵사리 텐트 두동을 밀어 넣었다. 조금씩 고도가 올라간다. 눈이 내리면 이내 쏟아져 내려 눈사태도 아닌 스노우 샤워가 우리 팀을 자꾸 밀어내는 기분이 든다. 시간이 지나 2진이 합류했다. 베이스캠프는 마치 산중 마을이 형성된 것 같이 어수선하다. 2진은 우리가 구축한 전진캠프와 제2전진캠프 사이의 만년빙에서 빙벽등반도하고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어느날 하늘에 구멍이 났는지 폭설에 모든 것이 망가져 버렸다. 어렵게 구축한 전진 캠프들이 다 무너져 내렸고, 베이스캠프 또한 장난이 아니다. 밤새 잠 못자고 후라이 팬과 온갖 식기와 삽을 동원해 눈을 치워야 했다. 또한, 전진 캠프에서 등반중이던 대원들도 모두 산에서 쫓겨 내려왔다. 분위기는 폐허 속에 지친 폐잔병들의 모습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얼마 후 2진은 계획과 다르게 먼저 하산을 실행했다. 우리는 2진에게 우리의 귀국 일정을 5일 뒤로 미뤄달라는 부탁을 했다. 2진 배웅 후 본격적인 복구에 돌입했다. 식량과 장비를 체크하고 무너진 전진 캠프들을 하나씩 복구, 복원해 나갔다. 각 전진 캠프마다 대원들이 오르내리며 고도를 높여 나아갔고 할 수 있다는 희망도 생겼다. 등반벽에서는직전 마지막 캠프를 떠나면 텐트가 없다. 벽에 메달려 비박을 감행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 원정에서 세 친구가 히말리야의 별이 되었던 지점을 거의 돌파 직전이다. 그러나 두 명의 대원이 몹시 지쳐 있었다. 고도 6,000m 중반의 고도에 메달려 이틀을 비박해 온 탓이라 대장에게 교체를 원한다는 무전 통신이 들어온다. 무전기는 비밀 보장이 안된다. 전체 대원들이 상황을 파악하면서 대장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데 답변이 없다. 바로 밑 캠프에서도 대기중인 대원들이 초긴장 상태로 답변을 기다린다. 어려운 결정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긴 시간이 흐르는 듯 했다. 결국은 제일 선배인 내가 무전기를 잡았다. 여러 가지를 고려하고 파악하여 힘들더라도 지금 조가 끝내라는 지시를 했다. 포기하겠다는 말대신 고맙게도 알았다는 회신이 온다. 오늘 3일차 비박을 마치면 내일이면 마의 지대로 들어간다. 다음날 정상조는 어렵게 스프를 끊여 먹고 등반을 개시하는 모습이 망원경을 통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하나도 빠짐 없이 체크하고 방향을 알려주는 라이더 역할을 하였다. 아예 침낭과 매트리스를 밖에 내놓고 커피가 든 보온병과 담배 몇 갑, 그리고 망원경과 무전기를 곁에 두고 정상부 하얀 분설 지역을 한점으로 보이는 마디를 끊으며 정상으로 느리지만 아주 천천히 고도를 높여 나아가는 모습을 체크했다. 얼마 후 정상이라는 무전통신이 온다. 축하 보다는 촬영 후 안전하게 내려오는 것이 급선무다. 자일을 이용해
하강 할 수 있는 구간이 아니고 다운 클라이밍을 해야하는 구간이므로 피가 마르고 속이 타들어 간다. 당장 기쁜 소식을 한국으로 타전하고 싶었으나 정상조가 고정 로프가 설치된 지점까지 클라이밍 다운을 해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얼마 후 일명 고속도로(고정로프 설치 구간)라 부르던 구간에 도착했다는 통신을 받고 축하를 건냈다. 그리고 위성전화를 이용 한국에 정상 성공을 알렸다. 그때 한국 산악계는 아주 뒤집어 졌다고 하는 후문을 들을 수 있었고, 먼저 하산한 2진들도 덩실덩실 춤을 추웠다는 얘기를 들었다. 우리는 그렇게 새로운 루트를 뚫었고, 먼저 별이 된 세 명의 친구들을 위해 “친구를 위한 마침표” 라고 루트 이름을 명명 했다. 귀국 당시 대한산악연맹에서 버스를 임대해 바로 대전에 내려가 산악인의 날 행사에 참여하여 대대적인 환영을 받은 기억이 난다.
86일간의 일정을 접어야했던 로체 남벽 루트 원정
이렇게 또 하나의 원정이 마무리 되었고, 거듭된 성과를 밑바탕으로 다시 8,000m대의 미완의 벽 로체 남벽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2009년 본 원정(2009 로체남벽)에 앞서 2008년 로체 남벽이 제일 잘 조망되는 아일랜드피크를 정찰 등반하게 되었다. 등반선이 보인다. 문제는 올라간 루트로 내려오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정상 부분에서 8천미터대 능선을 통과 후 메인 피크에 도달해야 하는데, 이를 되짚어 내려 오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귀국 후 차근차근 원정대가 준비 되었다. 다행히 대형 후원사가 붙어 원정 자금 모금은 어렵지 않게 해결되었다. 원정대을 모집하고 일부는 영입을 해 전력을 강화했다. 이번 원정은 구조대 원정에서 처음으로 클라이밍 셀파를 고용했다. 지금까지 진행된 원정에서는 극소수의 고용인 즉, 쿡과 쿡보조가 전부이고, 루트 개척이나 짐 수송 등 모든 것을 자력으로 했었다. 하지만 8,000m대인 로체 남벽은 그렇지 않았다. 출발 전 네팔 에이전트에게서 들어 온 셀파 이력서를 파악하고 선별해서 계약을 했고, 메인쿡과 보조쿡 및 셀파 3명도 고용 계약을 했다. 클라이밍 셀파는 우리와 계약을 했지만 피고용인 보다는 등반파트너라는 관점으로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대규모 원정대인만큼 대원도 많고 클라이밍 셀파와 고용인도 많았다. 베이스캠프에는 세 개의 화장실 텐트가 설치될 정도였고, 300m나 되는 호스를 이용하여 물을 끌어 왔다. 멤버 중에는 닥터도 있었다. 5,400m에 설치된 베이스캠프는 말 그대로 삭막하다. 까만 돌과 얼음 그리고 이끼류의 식물이 있을 뿐이다. 제단이 마련되고 승려가 올라와 무사 등반을 기원해 줌으로서 등반이 시작되었다. 베이스 캠프를 벗어나면 마치 커다른 뚝방을 내려가 빙하를 이리저리 돌아나가 전진 캠프가 설치되었다. 로체 남벽과 로체사르 쪽에선 가끔 엄청난 눈사태가 발생하곤 했다. 전진 캠프 구축을 위해선 벽 등반을 하고 가로 질러나가야 하는데 항상 폭포수 같은 얼음과 돌이 쏟아지는 구간을 지나야 했다. 로체 남벽은 공포스러운 낙석이 빈번하여 매우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곤 했다. 안전을 위해 공격용 텐트 위에 나이론 그물을 이중으로 설치 했지만 그물과 천막을 뚫고 돌이 날아 들어왔다. 마치 헬기의 프로펠러 소리가 들리면서 낙석이 떨어졌다. 나는 로체가 아니고 돌체라고 했다. 우리가 수없이 건너다닌 이 빙하 어디쯤에 폴란드의 등산 영웅 예지쿠쿠츠카의 시신이 고히 잠들어 있을 것이다. 또한 로체 사르를 볼 때마다 얼마 전 히말야의 별이 된 후배가 이곳 샤르에서 판상 눈사태에 밀려 시신도 찾지 못하였는데…. 이렇게 만날줄이야. 후배가 여기 있는데 나는 등반 여행을 하고 있다는 자책감이 들어 잠 못 이룰 때가 많았다. 등반은 계속 진행되어 서서히 고도를 높여 나갔다. 또한 등반 중에 셀파가 낙석에 맞아 카투만두로 후송되는 일도 발생했는데 그 친구는 그 후 다시 올라오지 않았고 카투만두에서 볼 수 있었다. 전진 캠프에서 운행
중 눈사태를 피하느라 아주 크게 놀란 적이 있었는데 이 때문에 카메라 감독이 하산 귀국하는 일도 발생 했다. 원정 중간에 트레킹단이 베이스에 도착하였고, 며칠 머물다가 하산하였다. 예지쿠쿠츠카의 아들과 여자친구가 베이스를 방문하기도 했다. 원정 중간에 나는 부단장인 선배 대원을 모시고 하산 루트로 이용할 에베레스트 로체 노멀 루트를 확인하고, 인도국경수비대 에베레스트 원정대에 우리 원정대 대원 하산 시 도움을 요청 할 겸 베이스를 떠나 3박4일간 쿰부빙하 상단에 위치한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방문하게 되었다. 커다란 배낭에 모든 장비와 식량을 가지고 느리지만 천천히 선배를 모시고 이동했다. 트레킹 도중 각국의 많은 트레커들을 만날 수 있었고 우연히 동행도 하게 되었는데, 이들 중에 중국 국적의 여성 두 명이 있었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운행을 하는데 갈림길에서 우리는 일반 트레킹 루트를 버리고 희미한 흔적만 남아있는 지역민이 다니는 곳으로 방향을 잡고 계속 진행하였는데 그 끝은 빙하를 내려서서 횡단하는 구간이었다. 우리 일행은 별 걱정이 없었지만 쫓아오는 중국 두 여성이 걱정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두명 중 한 여성이 뒤처졌는지 보이지 않는다. 서로 헤어져서 각자 갈 길을 가야했지만 사람을 잃어버린 것이 마음에 걸려 결국 뒤따르던 여성을 데리고 거꾸로 내려와야 했다. 실종된 여성을 찾느라 바위 밑을 뒤지고 소리를 질러봐도 대답이 없다. 어쩔 수 없이 한 명만이라도 데리고 밤새 걸어 롯지에 들어가 눈을 붙 일수 있었다. 그 여성도 겁에 질려는지 바싹 붙어 떨어지지 않고 잘 따라와 주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라고 거듭 당부한 뒤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다음날 조식 후 여성과 헤어진 후 인도 에베레스트 원정대 베이스에 도착하여 그 들이 내어주는 차를 마시면서 혹시 남은 연료가 있으면 우리측에 넘겨달라는 약속도 받았다. 그들은 등반에 실패하고 철수를 준비중이라 했다. 베이스캠프에는 그 어떤 원정대도 없이 황량하였다. 인사를 한 후 헤어져 하행을 하는데 한 여자가 올라온다. 어제 그 중국여자다. 실종신고는 했느냐니까 했다고 한다. 근데 혼자서 에베레스트 베이스를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아마, 일반 여성분이었으면 울고불고 난리가 나고 꼼짝도 못했을텐데….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하는데 하행 때 어느 롯지에 묶을 것이야고 하길래 오늘은 바로 아래 롯지에 하루 묵을 거라고 하고 가던 길 재촉한다. 고소에서 비를 맞는 것은 좋지 않은데 구질구질 비가 내린다. 나무가 타는 매케한 냄새가 나는 롯지에 들어와 짐을 풀고 저녁을 먹는데 그 여자가 도착했다. 그것도 둘이나. 헛것을 보는 것 같았다. 그들은 작은 배낭을 메고 다녔는데 어떻게 살아서 귀환했는지 유령을 보는 듯했다. 당신 혹시 고스트 아니냐며 농담을 하고 다시 만나 반갑다고 인사를 했다. 우리 방 앞에 그녀들 방으로 가서 짐 좀 보자고 했다. 작은 배낭에는
고가의 카메라 장비와 아주 좋은 우모복 한 벌에 고어택스 의류 한 벌 등을 갖추고 있었고, 낱개로 포장된 식량과 보온병 등이 준비 되어 있었다. 아! 그래서 살아남았구나! 그때 날씨도 안좋고 고도도 5,000m대라서 상당히 위험할 것이라고 판단 했었는데…. 어쨌든 천만다행이었다. 주소를 주고 받고 중국에 오실 때 꼭 연락하라고 한다. 이렇게 다시 로체 남벽 베이스캠프에 귀환했다. 7,200~300m대에서 더 이상 진전이 없다. 위성 인말 셋트를 이용해 날씨 정보를 받아 체크해 보지만 날씨가 받쳐주질 않는다. 그래서 인도 원정대도 철수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베이스켐프의 기온도 영하 17도까지 떨어지니 전진 캠프의 기온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북풍이 로체 남벽 정상쪽 능선을 타고 휘몰아쳐 내려온다. 아래로 보이는 아일랜드 피크와 아마다블람 피크는 아직 한 여름처럼 하얀 눈이 눈부시게 아름답게 보이는데 여기만 한 겨울이다. 날씨 좋은 날엔 망원경으로 아일랜드피크 정상 부위를 오르는 사람들을 관측할 수 있었고, 우리 무전기 주파수를 통해 우리 원정대와 교신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점점 대원들의 사기와 기력도 떨어지고 날씨도 험악해진다. 회의를 통해 장장 86일 동안의 원정을 접기로 결정한다. 아쉽고 많은 추억이 남을 것이다. 내려오면서 돌아보니 눕체에서 로체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장벽이 경이롭다. 언제 기회가 다시 온다면 등반은 말고 며칠 캠핑하다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원정 후 천식을 얻어 지금도 치료중이다. 로체남벽 이후 네팔히말라야 쪽으로 등반여행이 없었다.
IMF 이후 등반문화 급속하게 변화
2000년대에 들어서 등반환경이 너무 많이 변했다. 1998년 IMF때 크게 바뀌고 2000년대 들어와선 장기 등반원정이 많이 없어졌다. 사회경제적인 침체와 간간이 히말라야에서 들려오는 사고 소식과 이에 따른 법적 분쟁 등으로 후원사들이 사라졌다. 원정에 참여하는 젊은 친구들의 수도 줄었고 직장 등의 문제로 장기 원정이 불가능한 세상으로 변했다. 처음 원정 때는 기본 45일~55일 정도 소요되었고 8,000m대 로체 남벽 때는 거의 3개월을 떠나 있기도 했다. 큰 원정 없이 미국 시애틀에 있는 마운틴 레이니어에 갔었다. 첫 번째는 큰 홍수로 길이 끊겨 관광하다 오고, 두 번째에는 정상 직하에서 고소증에 시달리는 두분을 안전하게 하산시켜야하는 임무로 정상 200여 미터를 남기고 내려왔다. 세 번째 미국을 방문하고서야 정상 등정을 하였다. 정상은 매케한 냄새가 나는 분화구를 건너야 했다. 그 이후 미국의 시애틀과 로스엔젤레스 인근의 이곳 저곳을 등반여행을 했다. 요세미티 쪽은 여름과 겨울 두 번 방문했었는데 겨울에 호텔을 빌려 푹 살다 왔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봤다. 그 밖에 동부쪽 아팔레치아 산맥이 걸쳐 있는 여러 길들을 트레킹 했고, 서부의 스미스락 몽키페이스 등반과 요세미티 그레이드가 완성되겠끔, 그레이드 적용의 척도가 된 오픈북 루트가 있는 타퀴즈 록을 등반했었는데 꼭 인수봉 같이 생겼다. 정상부위에서 꼬리가 더 높은 능선으로 이어져 있고, 슬랩 루트를
모교 산악부 50주년 기념등반
제외한 크랙 루트에는 볼트가 하나도 없었다. 콜로라도 덴버의 록키마운틴도 기억이 남는다. 미국등산협회에 방문하여 도서관을 가보았는데, 우리나라 산 잡지도 잘 정돈되어 있었다. 이곳의 베일 구조협회 초청을 받아 그들과 합동 훈련을 하고 유서 깊은 아스펜 리조트 호텔에 묶고 스키산장을 올라가 봤다. 비수기때라 사람은 없었지만 시설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록키 마운틴은 3,000m와 4,000m대의 고봉들이 연이어 큰 산맥을 이루고 있는데, 산 입구까지 아스팔트 길은 아니지만 잘 정비된 길이 인상적이다. 미국의 구조대 조직 구성도 알 수 있었고 그들과 훈련을 하면서 그들이 추구하는 구조훈련에 대해서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귀국때 항공편은 덴버에서 시애틀 국내선을 이용하고 시애틀~인천 국제노선을 이용하는데, 시애틀에서 이틀을 후배집에서 지내다 귀국했다. 미국이 넓기는 정말 넓었다. 사막 한가운데 뻥 뚫려있는 길을 달리다 보면 쭉 이어진 철조망과 말뚝이 박혀구획이 되어있었는데 그걸 보면서 이렇게 넓은 땅을 가지고 있는 그들이 왜 남의 나라 땅을 탐낼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었다.
어느날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짧게 등반 여행을 가자고. 21일을 계획한 원정이었다. 키르기스스탄 악사이 산군에 위치한 프리코리아라는 루트를 한국 초등하러 간단다. 나보고 루트 라이더를 해달라는 것이다. 흔쾌히 허락을 했다. 대원이 단촐하였다. 악사히 산군은 3천에서 4천대에 이르는 봉으로 산군을 이루는 곳으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이곳으로 이후 세 번의 등반여행을 다녀 왔다. 첫번째 원정 때는 그곳에서 등반 중이던 익스트림라이더의 아는 후배들을 만나 조우하였는데 양고기가 그렇게 맛있는지 몰랐었으나 정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인천~우즈베키스탄~키즈기스스탄 항공편과 인천-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 항공편이 있으며, 1주일에 1 회 운행을 한다. 이곳은 수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하루면 3,200m의 베이스캠프로 진입이 가능하며, 만년빙과 설벽, 암벽 등 다양한 등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동양의 알프스라고나 할까? 이곳에서 등반활동을 한 산악인이 황금피켈상을 수상한 적이 있었고, 지금도 미지의 벽이 즐비하다. 베이스캠프에는 유럽인, 러시아인 등 다양한 등반객을 만날 수 있었다. 현지 등산학교 교육도 하고 있는 곳이다. 두번째 원정등반 때는 구조협회를 통해 나갔었고, 세 번째에는 모교 광운OB산악회 50주년 기념등반으로 10대 재학생부터 60대 선배까지 다양한 연령대를 가진 선·후배가 함께 등반을 했다. 재학생 3명을 포함한 이 원정은 성과도 좋아 이지역의 최고봉을 등반하고 남는 일정을 이용 북쪽 벽을 등반할 수 있어서 좋았다. 모든 원정등반이 순조롭게 끝나고 하산하여 호텔에 투숙했을 때 한국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당시 서울시산악연맹에서는 신임회장 선출과 생활체육연합회간의 통합으로 어수선 하였다. 물론 원정 출발 전 연맹의 조직이사로서 생활체육연합회와 몇 번의 통합회합이 있었지만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었다. 똑같이 등산 활동을 하는 분들인데 이렇게 생각이 다를까? 많은 고민을 했었다. 서울에서의 연락은 귀국하면 연맹으로 들어와 상임 전무를 맡으라는 얘기여서 일단 고민하겠노라고 말씀을 드리고 귀국 후 여러 지인들과 거취 문제에 대해 논의하였으나 쉽게 결정하기가 어려웠었다. 그냥 계속해서 내 자리를 지키는게 좋겠다는 분들과 연맹으로 들어가 산악계를 위해서 일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의견이 있어 한참을 고민하였지만, 대세는 연맹에서 일을 하겠끔 벌써 스커드를 다 짜놓은 형태여서 연맹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부상을 당한 이후 십 여년을 암장에서 근무하며 인공암장 관리에 대한 일정부분 노하우를 갖추게 되었고, 인공암장을 이용한 에이드클라이밍, 드라이툴링, 등·하강교육, 등반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며 나름 보람찬 활동을 해 왔는데 정든 곳을 떠나려니 많이 서운했다. 서울산악연맹은 통합된 서울특별시산악협회라는(얼마 후 다시 산악연맹으로 명칭이 변경됨) 더 큰 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상대인 생활체육을 배우고 알려고 많은 노력을 했었다. 자치구연맹 산행 때 참가해 그들의 산행과 방법 등을 공부하고 그들을 이해하려 하였다. 우리는 평소 산행시 자기가 먹어야 할 식량 장비 등 모든 것을 스스로 지고 다녀야 했는데 말로만 듣던 식사 제공, 산행 후 뒷풀이, 버스 내 음주, 가무 등을 보았고, 행사 때에는 지역 내 정치권 인사들이 총동원된 듯한 행사장 분위기가 이해하기 어려웠다. 여지껏 산악연맹 행사 때 정치인이 동원된 것은 대한산악연맹 행사 때나 몇몇 분들의 정치인이 참가한 것 이외는 별로 없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꿈을 꾸었다. 서울시 자치구 연맹에 있는 국회의원수가 50여 명은 되는데, 이들을 규합해 산악당 하나 만들어서 온 국민이 등산을 하게 만들고, 어린시절부터 야영도 하고, 밥도 해먹게 하고, 등반도 시키고 하는 프로그램을 초등학교 교과 과목에 집어 넣어 세계 최강의 산악강국, 아웃도어 선진국을 만들 수 있겠다는 허황 된 꿈도 꾸었다. 물론 현실은 그 반대였지만…. 통합한지 2년~3년이 지나서야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 대부분인데 고맙게도 자치구 산악연맹에서 각 동네산악회(클럽)에 봄, 가을 등에 정기산행이라도 진행하여 뒷방 노인네처럼 계실 분들을 모시고 이렇게 야외라도 나오고 가벼운 등산이라도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에 대한 이해와 고마움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분들 중 한국등산학교에 입교해 등산의 신세계를 접하게 하고, 산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하게끔 하였다. 조금 더 자유분방한 등산 활동이 연맹과의 결합으로 등산시 행동이 많이 개선되는 점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서울시산악연맹에 새 둥지 마련
그렇게 산악연맹 상임이사회를 이끌고 자치구 연맹과 협업하고자 많은 노력을 했었고, 연맹의 각종 사업에도 더 다양한 성과를 내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했다. 북한산 우이동 백운대를 올라가는 초입에 세워진 산악인추모비는 서울시산악연맹 환경보전위원회에서 관리를 했었는데 그동안은 봄에 위패 봉안과 정비, 가을 추석전 벌초와 환경정비 등의 업무가 다였으나, 전무이사로 임기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정비사업을 진행했다. 항상 어둡고 축축한 곳의 잡목 제거와 전지 작업 등을 통해 바닥을 넓혀 햇볕이 잘 들고 화사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산악인추모비 입구부터 추모비를 가로지르는 전깃줄과 전기줄에 닿아 있는 나무가 위험하다는 핑계로 4년 여에 걸쳐 정비해 나갔더니 제법 그럴싸한 추모공원으로 변모하기 시작했고, 눈에 가시같은 전봇대 이설과 추모공원 입구 비석 설치, 추모공원을 돌아나가는 계곡 정비, 추모공원 오르는 마지막 계단 정비 및 확대, 기초 축대를 공단으로 하여금 정비 요청을 한 지금 제법 번듯한 추모공원의 모습이 갖춰졌다. 일은 계속하면서 느끼는 것은 제도권 내에서의 산악 행정은 스포츠와 생활체육 이외의 본류인 산악(알파인) 이 소멸되는 것 같아 항상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많지 않은 예산이지만 지원도 이 부분에만 지원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예전에 구조대원으로 활동 할 때 서울시산악연맹은 대학로에 사무국이 있었고, 이후 잠실운동장에, 그리고 청계천 시설관리공단 빌딩 등으로 전전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권효섭, 김인식 회장님을 모셨고, 이후 강태선 회장님 때는 4년을 이사로 봉사를 시작해 조규배 회장님 8년, 그리고 연맹 사무국으로 나를 이끈 김인배 회장님, 지금의 석채언 회장님을 모시게 되었다. 연맹의 회장님들은 개개인 고유의 특성이 있으신 것 같다. 내가 모신 세 분은 공교롭게 자수성가 하신 분들이다.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고 일하는 방식도 틀려 어떨 때는 부딪히는 일도 있었다. 특히 연맹 속으로 나를 이끈 김인배 회장님과 현재의 회장님은 일하는 성격이 극명한 것 같다.
구르자히말 사고와 이어진 코로나19 전염병 사태로 그나마 소수이지만 해외원정(알파인) 등반이 절멸 상태에 이르고 있었던 차에, 서울시산악연맹과 일부 산악 단체가 코로나19와 구르자히말 이전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운동에 힘입어 조금씩 해외 원정 등반이 정상화되고 있다. 이에 산악구조협회의 마리앙피크를 시작으로 각, 시도 연맹에서도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해외원정이 시작되었으며, 무엇 보다도 대학산악연맹의 대학생 신입 회원들이 대거 입단해 산악 활동이 왕성해 짐을 지켜보고 있다. 여기에 발맞춰 서울시산악연맹에서는 2022 네팔 힘룽히말원정대와 2023 키르기스스탄 레닌봉 원정을 진행하였고 2024년에도 진행할 예정이다.
[ 연재를 마치며~] 사실 이 글은 잊혀져가는 산행(등반여행)에 대한 기억을 회상하고자 정리했다. 어느때 후배들이 형 그때 등반할 때 있잖아 라고 시작하면서 이야기 하는데 기억이 잘 안나고, 함께 한 원정 대원인데 언제 같이한 대원이었는지 깜박 할 때도 있고. 그동안 생사를 걸고 함께 한 각 원정대의 대원 이름도 기억이 잘 안나던 차에 대강이라도 정리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큰 틀을 대강 정리하고 나중에 조금씩 보완해 나가면 대단하지는 않지만 기록이 될 수 있고, 스스로에 대한 추억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글을 적었다. 워낙 졸필이라 맞춤법도 틀리고 문맥도 맞지않아 학술위원님 한태 한번 봐 달라고 부탁한 것이 인연이 되어, 산악연감에 3회에 걸쳐 연재가 되었다. 사실 이때 코로나19가 성행하던 때라 산악 단체의 활동이 위축되어 활동을 전혀 못할 때이니, 서울산악연감에 실을 원고도 광고도 부족해 난감할 때 몇 페이지 채우려니 했다. 이글을 정리하면서 새롭게 기억나는 부분도 있고,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되는 기억도 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더 멋진 등반과 산행 그리고 꼼꼼한 기록을 했을 것이라는 다짐도 해 본다.
2023 서울특별시산악연맹 임원현황
임원 현황 시•구연맹조직 각위원회 현황 등산학교강사 현황 서울산악구조대현황
2023년도 임원현황
번호 직위성명
소속
번호 직위성명
양정 산악회
재무 이사
1 회 장 석채언
7급 산악회
조직 이사
2 부회장 정택준
친구 산악회
생활체육 이사
3 부회장 김영윤
블랙야크 산악회
대외협력 이사
4 부회장 김미곤
쎄로또래 클라이밍 14 클럽
등산교육 이사
5 부회장 박경희
등반기술 이사
검악 산악회
6 부회장 장세종
설우암 산악회
국제교류 이사
7 부회장 정균일
산악스포츠 의학 이사
8 부회장 최교수
중앙대 OB 산악회
산악스키 이사
기획 이사
등반경기 이사
한정희
소속
청화 산악회
장선혜
안전대책 이사
신현택
전문등산 클럽
최현우
전문등산 이사
신원범
산사랑 통신 산악회
차미숙
청소년 이사
윤영기
학술정보 이사
김창성
거리 산악회
전영래
환경보전 이사
김상철
바름 산악회
최기련
산악트레일 이사
양걸석
26 이 사 김진석
경희대 교수
김경호
27 이 사 김연옥
28 이 사 허선무
알피엠 클라이 29 이 사 김주남 밍팀
한등83 동기회
은벽 산악회
7급 산악회
30 이 사 장대부
양천구 연맹
아기발 산악회
31 이사 임안수
설우암 산악회
악우회 32 이 사 오현숙
노스페이스 클라이밍 클럽
경복 산악부OB
33 이 사 김인경
세레또레 클라이밍 클럽
산울림 산악회
34 이 사 최성일
중동 산악회
산악문화 지킴이
35 이 사 김용욱
청맥 산악회
7급 산악회
36 이 사 이앵란
노무법인 나무 대표
시청산악회 37 이 사 강정국
산빛 산악회
연산지우 산악회
38 이 사 이상국
전문 등산클럽
39 이사 송춘경
41 명예이사 김기섭
늦뫼 산악회
40 이사 윤지영
43 명예이사 김대규
고문/명예회장
번호 직위성명
소속
블랙야크 산악회
1 고문 강태선
서울문리대 OB산악회
2 고문 조규배
산비둘기 산우회
3 명예회장 김인배
번호 직위성명
소속
번호 직위성명
거리 산악회
1 감 사 송정두
1 사무국장 서우석
윤택 세무회계 2 사무과장 권선영 대표
2 감 사 박윤희
연번 직위
성명
경원대 OB산악회
회 장 임종학
사무장 박재철
변호사
회 장 엄주대
사무장 김영권 회 장 김상수
사무장 이한선 회 장 임문주
사무장 정용범 회 장 이용희
사무장 김미숙 회 장 황진수
사무장 한진영 회 장
사무장 회 장
사무장 회 장 오덕환
사무장 임승덕
소속
회 장 주영곤
광운OB 산악회
사무장 박선옥 회 장 마화식
사무장 김진회 회 장 정장필
사무장 박호문
구연맹 임원현황
소속구
연번 직위
성명
소속구
회 장 최종남
강남구
서초구
사무장 양경희 회 장 조철현
강동구
성동구
사무장 추교남 회 장 김갑중
관악구
성북구
사무장 추교남 회 장 강태운
송파구
강서구
사무장 전혜정 회 장 김용욱
양천구
강북구
사무장 황정남 회 장 이현희
영등포구
광진구
사무장 황기문 회 장
용산구
구로구
사무장 회 장
은평구
금천구
사무장 회 장 최칠성
종로구
노원구
사무장 손진현 회 장 최교수
동작구
사무장 김정수 회 장 최근영
중랑구
마포구
사무장 선문규
서대문구
2023년도 각위원회 위원 현황
기획위원회(3)
등산교육위원회(26)
연번 직책이름1 위원장 임현주 2 부위원장 이앵란 3 부위원장 이상국
소속산악회
연번 직책이름1위원장전영래2 부위원장 최인섭3 부위원장 오인복4 기획팀장 강인철5총무장준상6위원김규희7위원이상록8위원장홍용9 홍보팀장 나 보 영 10 위원민경화 11 위원김용태 12 위원김길원 13 위원김윤희 14 위원김미정 15 위원김낙현 16 위원김성철 17 위원방재형 18 위원구윤모 19 위원조상일 20 위원황수진 21 위원황우식 22 위원이은영 23 위원함수현 24 위원안은주 25 위원류승완 26 위원권홍택
조직위원회(1)
연번 직책이름
소속산악회
1 위원장 최현우
산악스포츠의학위원회(1)
연번 직책이름
소속산악회
1 위원장 김경호
학술정보위원회(5)
연번 직책이름
소속산악회
1 위원장 김창성 2 부위원장 윤지영 3 위원 김기섭 4 위원 이인복 5 위원 박진영
등반기술위원회(9)
연번 직책이름1위원장최기련2부위원 장김 지성3총무김미진4위원김문섭5위원박상천6위원박성민7위원이태옥8위원박혜정9위원이지은
소속산악회
청소년위원회(13)
소속산악회
환경보전위원회(19)
연번 직책이름1위원장김상철2부위원 장윤 정필3부위원 장윤 주훈4총무최안숙5위원임기혁6위원이재희7위원이동재8위원오세훈9위원이찬일 10 팀장남영우 11 위원임현숙 12 위원유순정 13 위원김성희 14 위원윤찬수 15 위원이억만 16 위원권홍택 17 위원이건진 18 위원김태건 19 위원심기석
안전대책위원회(15)
1위원장신현택2 부위 원장조효연3위원이경령4위원전순주5위원안혜정6위원황성호7위원심윤민8위원박준영9위원이종철 10 위원정성은 11 대원공정미 12 대원이해진 13 대원최강남 14 대원김성완 15 대원송재화
소속산악회
산악트레일위원회(16)
연번 직책이름
소속산악회
1위원장양걸석2부위원장김주남3부위원장임안수4총무백혜선5위원김성자6위원차상윤7위원노민호8위원강영숙9위원강성복 10 위원이영준 11 위원이해영 12 위원이인주 13 위원이규호 14 위원안희준 15 위원박금옥 16 위원박옥순
등반경기위원회(20)
전문등산위원회(23)
9위원신동철 10 선수위원장 조 성 호 11 위원김태인 12 위원이범희 13 위원이주용
11 위원박경하 12 위원박두례 13 위원박인영 14 위원신수자 15 위원유연수 16 위원이은희 17 위원이재영
14 심판위원장 정 진 언 15 위원김재형 16 위원서다정
18 위원이채윤 19 위원정주영 20 위원조재윤 21 위원조현선 22 위원차금호 23 위원최승규
루트세터 조 규 복 17 위원장 18 위원조경아 19 위원백승룡 20 위원정승교
생활체육위원회(8)
연번 직책이름1위원장차미숙2위원조혜원3위원정영자4위원이동환5위원김계환6위원황정남
소속산악회
7위원정용범8위원이원숙
▲회장: 조규배
서울산악동우회는 서울특별시산악연맹에서 임원활동을 한 전직 임원들의 모임 으로 1983년부터 "우리가 현직에서 물러났어도 연맹의 발전을 위해 돕자"라는 취 지로 1984년 4월 첫 모임을 시작하여 친목 도모와 연맹 발전에 기여해 오고 있다. 동우회는 매달 가벼운 산행과 분기별로 1박2일의 여행을 통해 건강을 다지고 전 직 임원으로서의 경험과 연륜을 활용하여 연맹의 행사에 적극 참여하고 후원에도 동참하고 있다. 현재 50여명의 회원이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서울특별시산악연맹에서 활동을 하 고 있는 임원들은 퇴임 후에 가입자격이 된다. ▲부회장: 김병준, 이연희 ▲고문: 이용규, 이치호 ▲자문위원: 정원수, 김무용, 정대식, 변무현 ▲감사: 김종순 ▲회원(가나다순) 강태선, 강신원, 김 정, 김대균, 김만수, 김명수, 김병균, 김진용, 김성찬, 김세환, 김영 오, 김인배, 김원동, 김재봉, 민경태, 박원종, 박정헌, 박한성, 백하연, 송정두, 유영열, 이근모, 이상윤, 이상학, 이용주, 이용희, 이재남, 이재옥, 이창호, 이철주, 이형근, 임덕 신, 이명선, 임정섭, 임홍순, 장귀용, 장태호, 전백진, 정운택, 정호진, 조대행, 천성구, 최교수, 한상철 ▲총무이사: 안일수
▲부총무: 박민열
한국등산학교 강사현황 23년
한필석
이연희
교장 한국등산학교 정규반 1기 동양산악회 입회, 러시아 엘브루즈, 북미 데날리, 유럽 알프스 몽블랑 종주, 아콩카구아, 에베레스트, 킬리만자로, 히말라야 팔도로, 히말라야 타르푸출리, 히말라야 롤왈링 패스 횡단, 알프스 아이거 북벽, 알프스 그랑드조라스 북벽 & 몽블랑 등반 서울특별시산악연맹 자문위원
교감 한국영성 매킨리원정대 참가 등정 일본 북알프스 동계 등반 서울시산악연맹이사, 교육기술상임이사 부회장 역임 국민생활체육회 트레킹학교 책임강사 등산강사및 전임강사 (사)(대한산악연맹 등산교육원)
허선무
김용태
대표강사 선운산 쎈드월 13a / 때로는 힘들지만 13b 완등 몽블랑, 마터호른, 크랑조라스 워커스퍼 등정 중국 쓰찬성 쓰꾸낭 남벽 원정 등반 토왕성폭포, 소승폭포, 대승폭포 등반 대산련 2급 등산강사 서울시산악연맹 교육 및 기술위원장 역임
전영래
임현주
강사 아콩카구아, 레이니어 등반 / 아마다블람, 임자체봉 네팔 메라피크, 유럽알프스 등반 경기지도자 2급, 생활체육지도자 3급 대한산악연맹 2급 등산강사 서울특별시산악연맹 등산교육위원회 위원장
전용학
강사 설악산(산빛JK), (자유2836) 루트 개척 중국 쓰구낭 야오메이봉(6,250m) 남벽 신루트 개척 파키스탄 유스사르 서벽 초등 알프스 그랑드조라스 북벽 완등 대한산악연맹 등산강사 2급
이명희
임갑승
강사 요세미티(노즈, 조디악), 파키스탄 카라코람 멀티4 몽블랑, 그랑드조라스 북벽, 파타고니아 파이네 중앙봉, 파타고니아 피츠로이, 파타고니아 세로토레 등정 생활스포츠 지도사 1급, 전문스포츠지도사 2급
박상천
박민구
강사 14년 15년 1월 토왕폭 등반 / 15년 2월 크라비 등반 16년 3월 산악스키 아시안컵 출전 마테호른, 몽블랑 등반, 이태리 아르코, 트리레치 등반 대한산악연맹 2급 등산강사 응급처치 강사, 스포츠클라이밍 3급심판
박명렬
김영주
강사 18년 한국등산학교 암벽반 47회 수료 16년 코오롱등산학교 정규반 63기 수료 한국등산학교 50년사 편찬위원장 대한산악연맹 등산강사 2급
황우식
강사 한국등산학교 정규반 86회 수료 한국등산학교 암벽반 47회 수료 ER 43기 수료 대한산악연맹 등산강사 2급
주진형
강사 대한산악연맹 등산강사 2급 17년 정승권 등산학교 암벽반, 대암벽반 동계암벽반, 빙벽반 수료 17년 코오롱등산학교 암벽반 빙벽반 수료
사무국장 서울특별시 산악연맹 등산교육위원회 위원 서울특별시 산악연맹 스포츠클라이밍 3급심판 한국등산학교 정규반,암벽반,동계반 수료
강태원
강사 한국대학산악연맹 등산아카데미 부원장 국민생활체육회 트레킹학교 강사 대한산악연맹 등산강사 서울특별시산악연맹 기획이사
정택현
강사 93 한국 여성 에베레스트 원정대 등정 데날리, 엘브루즈, 아콩카구아 등정 킬리만자로 등정 오지탐험대, 존뮤어트레일 대장 대한산악연맹 2급 등산가이드, 등산강사
손정준
강사 전문스포츠 지도사 2급(산악) 생황스포츠 지도사 1급(등산) 경남산악연맹 지리산등산학교 강사 대한산악연맹 등산강사(2급), 등산교육위원장 등산교육원 전임강사
강사 태국 프라낭 해벽 등반(한국 최초 5.14등반) 설악산 적벽 최초 자유등반 경희대학교 체육학 박사, 을지대학교 겸임교수 전문스포츠지도사 1급, 생활스포츠지도사 1급 손정준클라이밍연구소 소장
안치영
강사 16년 요세미티 원정 14년 중국 쓰촨성 라마봉 원정 10년 캐나다 부가부 스노우패치 스파이어 등정 08년 몽블랑 등정 대한산악연맹 등산강사 2급 / 등산안내인 2급
초빙강사 암푸1봉 세계초등정 가셔브럼 5봉 세계초등정 오호스 델 살라도 아시아 최초 자전거 등정 춤부 미등봉 등반 7th, 9th Piolet D’Or 황금피켈 아시아상 수상
강사 20년 킬리만자로 등정 19년 타이완 Dragon Caves Area 등반 18년 엘브루즈 등정 / 17년 동계 야츠가다께 등반 12년 마테호른, 몽블랑 등정 11년 동계 일본 북알프스 오쿠호다카다케 등반 대한산악연맹 등산강사 2급 생활스포츠지도사 1급
조상일
강사 19년 수상구조사 / 18년 인명구조요원 14년 생활스포츠지도사 2급 산악 12년 생활스포츠지도사 2급 보디빌딩 10년 생활스포츠지도사 2급 수영 한국등산학교 정규반 92회 수료 대한산악연맹 등산강사 2급
이성혁
강사 19년 남아공 락랜즈 등반 17년 일본 조가사키 등반 14년 인도 함피 등반 대한산악연맹 2급 루트세터
이병주
강사 2003년 수암봉 전면 셋 개척 2014년 제천 저승봉 개척 파키스탄 히스파르 산군 카니바사샤르 주변 무명봉 등반 울산바위, 적벽, 장군봉, 인수봉, 선인봉, 선운산, 간현암 등반 동계 : 토왕폭, 소승폭 등반 현) 한국등산학교 강사
강사 2010년 코오롱등산학교 정규반 52회 수료 인수봉(빌라길 외), 선인봉(설우,현암,하늘,푸른 등), 조비산(마이웨이 13C) 다수의 인공폭 등반 2003년 태권도 사범증, 태권도 심판3급
최승연
강사 구로남체육센터 클라이밍 강사 포천 도시관광공사 국민체육센터 안전관리자 현)은평 인공암벽장 클라이밍 강사, 한국등산학교 강사 2급 생활스포츠지도사(등산) 코오롱등산학교 정규반, 암벽반, 빙벽반, 설상반 수료 익스트림라이더 등산학교 빅월 마스터과정 수료
강사 2022년 대둔산 그리움길, 오미크론, 오지여행 개척 2022년 대둔산 누가바 개척 2023년 대둔산 고맙고 개척
김미곤
초빙 강사 알프스 3대 북벽 등정 에베레스트-로체 등정(한국최초, 세계6번째 동시등정) 다울라기리, 마나슬루, 시샤팡마, K2 등정 가셔브롬1, 캉첸중가, 브로드피크, 안나푸르나 등정 8,000m급 14좌 등정 서울특별시산악연맹 부회장
최석문
강사 파키스탄 카라코람 바투라2봉(7,762m) 세계 초등 마운트 헌터 등정, 북벽 변형 루트 개척 등정 도봉산 강적크랙(5.13a) 완등 강가푸르나 남벽 코리안웨이 개척 등정 대한산악연맹 루트세터 1급, 등산강사 2급
2023 서울특별시산악연맹 위원회 활동보고
2023년 회의운영 2024년 사업계획 2023년 사업실적 2023년 위원회 활동
2023년 회의운영
1) 총회
월 일 참석
주요심의 안건
•감사보고 •2022년 사업실적 및 결산승인(안) 2 28 36명 •서울특별시산악연맹 규약 변경(안) •회원단체 제명(안) •기타사항
2) 이사회
월 일 참석
주요 심의안건
•등산교육기관 운영에 관한 규정 개정(안) 1 11 29명 •신규단체 가입 NO.570(안) •2023년 예산(안)
•2023년 정기 총회(안) •총회 회의안 상정(안) 2 8 27명 •2023년 결산(안) •신규가맹단체 가입 NO.571(안) •2023년 해외원정 추진(안)
•산악훈련장 정비(안) •북한산 산악인추모탑 정비(안) •산악인합동추모제(안) •명산트레킹 클린 친선 산행 개최(안) •제55회 대통령기 전국등산대회 참가(안) •제43회 전국스포츠클라이밍 선수권 대회 (2023년도 스포츠클라이밍 국가대표 선발전) 참가(안) •2023년도 생활체육 대축전 참가(안) •2023 IFSC 서울 스포츠클라이밍 대회(안) •규약 개정(안) •각종위원회 운영규정 및 구조대설치 규정 개정(안) •운영위원회 운영 규정 개정(안)
3 18 21명
장소
서울시체육회
장소
PJ호텔
서울시체육회
YMCA 다락원 캠프장
•제104회 전국체전 볼더종목 서울시대표 선발전 개최(안) •제1회 서울시 유소년 스포츠클라이밍 트레이닝 캠프 개최(안) •제26회 서울특별시장기 스포츠클라이밍 개최(안) (제104회 전국체전 리드.스피드 서울시 대표 선발전) •2023년도 서울특별시장기 생활체육 등산대회 개최(안) •서울시연맹 파견 “2023 한국키르기스스탄 레닌 원정대” 지원(안) 5 8 22명 •2023 오르락 내리락 건강한 산악문화 교육사업(안) •2023 어르신 노르딕 워킹 교실(안) •2023 국립공원 산악안전지도자 교육(안) •2023 생활체육지도자 2차 시험대비 연수반 실시(안) •2024 서울시민 참여예산 사업 공모(안) •자치구 인공암벽장 수수료 제도 개선 요청 및 계약 & 협약해지(안) •개인회원 가맹 신청(안)
서울시 체육회 대회의실
•창립58주년 기념식(안) •서울,경기,인천 산악연맹 친선산행(안) 7 8 26명 •전문등산 심판3급 자격취득 및 보수교육 강습회(안) •2023 국제교류 친선산행(안) •2023 한국 키르기스스탄 레인 원정대 지원(안)
코리아나 호텔
•북한산산악인 추모탑 2차 정비(안) •제54회 대통령기 전국 등산대회(안) 9 6 25명 •제21회 서울특별시산악연맹 회장기 등산대회(안) •2024년 해외 원정등반(안) •한국-네팔 수교 50주년 기념등반(안)
중구 동화동 주민센터 회의실
•북한산산악인추모탑 2차 정비(안) •한국-네팔 수교 50주년 기념등반 T.F.Team 구성(안) •제14호 산악연감 발행(안) •서울,경기,인천 산악연맹 친선 산행(안) 11 7 24명 •2023 동계 릿지등반 교실 개최안) •2023 아이스.스포츠클라이밍 심판강습회(3급 취득과정 및 보수교육)(안) •2023 환경조전캠페인(안) •등산교육기관 운영에 관한 규정 개정(안)
서울시 체육회 대회의실
3) 운영회의
월 일 참석
주요 심의안건
•2023 정기총회 건 •2023 각종위원회 합동세미나 건 •총회회의안 상정 건 •2023 해외원정 추진 건
1 26 12명
•선인산악훈련장 정비 건 •북한산산악인추모탑 정비 건 •산악인합동추모제 건 •4.19기념 등산대회 건 •명산트레킹 클린 친선 산행 건 •제55회 대통령기 전국 등산대회 건
2 23 13명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찬성 / 반대 세미나 결과에 따른 후속 조치 건 •제1회 서울시 유소년 스포츠클라이밍 트레이닝 캠프 건 •제104회 전국체전 볼더링종목 서울시대표 선발전 개최 건 •제26회 서울특별시장기 스포츠클라이밍대회 개최 건 •2023년도 서울특별시장기 생활체육 등산대회 개최 건
3 23 10명
•제104회 전국체전 볼더링종목 서울시대표 선발전 개최 건 •제1회 서울시 유소년 스포츠클라이밍 트레이닝 캠프 건 •제26회 서울특별시장기 스포츠클라이밍대회 개최 건 •2023년도 서울특별시장기 생활체육 등산대회 개최 건 •서울시산악연 파견 “ 2023 한국 키르기스스탄 레닌봉 원정대 지원 건 4 27 10명 •2023 오르락 내리락 건강한 산악문화 교육사업 건 •2023 어르신 노르딕 워킹 교실 건 • 2023 국립공원 산악안전지도사 교육사업 건 •2023 생활체육지도자 2차 시험대비 연수반 교육 사업 건 •2024 서울시민 참여예산 사업 공모 건 •자치구ㅡ 인공암벽장 수수료제도 개선 요청 및 계약 & 해지 건 •개인회원 가맹 신청 건
•창립58주년 시념식 건 •전문등산 심판3급 자격취득 및 보수교육 강습 건
5 25 8명
•창립58주년 시념식 건 •서울,경기,인천산악연맹 친선 산행 건 6 22 10명 •전문등산 심판3급 자격취득 및 보수교육 강습 건 •2023 국제교류 친선 산행 건 •2023한국 키르기스스탄 레닌 원정대 지원 건
장소
7 27 12명
서울시 산악연맹 사무국
8 24 10명
서울시 산악연맹 사무국
9 21 10명
서울시 산악연맹 사무국
10 26 9명
서울시 산악연맹 사무국
11 23 12명
서울시 산악연맹 사무국
서울시 산악연맹 사무국
•제13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기 생활체육 등산대회 건 •산악인 추모비 벌초 및 정비 사업 건 •제54회 전국 대통령기 등산대회 건 •제21회 서울특별시산악여맹 회장배 등산대회 건 •명산트레킹 친선산행 행사 건 •2024년 해외 원정 등반 건
서울시 산악연맹 사무국
•제13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기 생활체육 등산대회 건 • 산악인 추모비 벌초 및 정비 사업 건 •제54회 전국 대통령기 등산대회 건 •제21회 서울특별시산악여맹 회장배 등산대회 건 •2024년 해외 원정 등반 건 •한국-네팔 수교 50주년 기념 등반 건
서울시 산악연맹 사무국
•북한산산악인추모탑 2차 정비 건 •2023 하반기 산악전문지도사 교육 건 •한국-네팔 수교50주년 기념등반 T.F.Team 구성 건 •2024 각종위원회 사업계획 및 예산 건
서울시 산악연맹 사무국
•북한산산악인추모탑 2차 정비 건 •한국-네팔 수교50주년 기념등반 T.F.Team 구성 건 •2024년 각종위원회 사업계획 및 예산 건 •제14호 산악연감 발행 건 •서울,경기,인천산악연맹 친선 산행 건 •2023 동계 릿지등반 교실 건 •2023아이스.스포츠클라이밍 심판 강습회(3급 자격취득과정 및 보수교육 건
서울시 산악연맹 사무국
•서울시체육회장배 등산대회 건 •2023 서울특별시산악연맹 송년회 개최 건 •제53회 설제 개최 건 •2024 사업게획 건
서울시 산악연맹 사무국
•2024년도 사업계획 및 예산(안) 확정 건 12 28 7명 •2024 청송 아이스클라이밍 선수권 대회 건 •2024 청송 아이스월드컵 관람 및 신년 특별 산행 건
서울시 산악연맹 사무국
신규가입단체 승인현황
가입번호 570 571
산악회명 클라임산악회 오루세산악회
회장 김기범 정준영엽
회원수 명 명
2024년도 사업계획(요약)
월주관
사업명
시행일자
등반경기 아이스클라이밍 선수권대회 등산학교 제48회 동계반(1차) - 프렌치테크닉 등산학교 제48회 동계반(2차) - 빙벽등반 등반경기 2024 UIAA 청송월드컵 기획기획
2024 청송월드컵기념 특별산앵 주왕산 신년인사회(이사회/현직임원) 산악스키 제19회 강원도지사배 전국산악스키대회 2024 산림청장배 산악스키대회&제2회 SKIMO 코리아챔피언쉽 등산학교 제48회 동계반(3차) - 설상 및 등반 종합 전문등산 제53회 설제 등반경기 제105회 전국동계체육대회(지도자파견) 기 획
2023 정기총회 학술정보 산악연감제14호 발간 기 획
각종위원회 합동세미나 등기/환경 훈련장 정비 전문등산 2024 제1차 수도권(서울,경기,인천)산악 연맹 친선 합동 산행 환경보전 환경보전캠페인 사무국
시.도연맹 사무국 실무자 합동 연수 등반경기 제44회 전국 스포츠클라이밍선수권대회(지도자파견) 미정 미정 등반경기 2024 루트세터 3급 자격 취득 및 보수 교육 미정 미정 생활체육 2024 생활체육 대축전 등산대회(선수, 지도자파견) 27~28 울산 환경보전 산악인추모비 정비 기 획 위
산악인합동추모식 등산학교 제100회 정규반 입학식(특별반) 전문등산 전문등산3급 심판강습회 생활체육 제15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기 생활체육 등산대회 산악트레일 2024 명산 트레킹 친선 클린산행 행사(1차)
미정 미정 등반경기 제105회 전국체전 볼더 종목 서울시 대표 선발전 미정 미정
가입일 1월 11일 2월 8일
기획
장소
비고
6 경북.청송 6~7 수락산. 무지개빙폭 13~14 광치련.용소빙폭 12~14 경북.청송 13~14 경북.청송.주왕산 11 시체육회
원정T.F.Team
등산학교 제101회 정규반 환경보전 산악인추모비 벌초
8~10 강원.모나파크용평 25 강원. 모나파크용평 23~25 설악산.건폭골 25 이천.도드람산 24~25 경북.청송 27 서울시체육회 2월중 사무국
10 미정 23~24 인수야영훈련장 정비 31 불암산일원
17 미정 미정 미정
등반경기 2024 아이스.스포츠클라이밍 심판강습회 12 기 획
송년회(전,현직임원 및 자치구 임원) 산악스키 2024 산악스키 일반강습회
13 북한산.산악인추모비 27 북한산.산악인추모비 도봉산.도봉대피소 13~5/19 미정 미정 미정 미정
연중사업
등산교육 산악전문지도사 양성교육 전문등산 제56회 대통령기 전국등산대회(선수, 지도자 파견) 5 등반경기 제25회 서울시장기 스포츠클라이밍대회 생활체육 2024년 서울시장기 생활체육 등반대회 등반경기 제53회 전국소년체육대회
미정 미정 미정 은평인공암벽장 미정 미정 25~26 전라남도 등반경기 제2회 서울시 유소년 스포츠클라이밍 트레이닝 미정 미정 캠프 등반경기 제15회 고미영컵 전국 스포츠클라이밍 대회 미정 전북 군산 (지도자파견)
제59주년 창립기념식 7 전문등산 2024 제2차 수도권(서울, 경기, 인천)산악연맹 친선산행
6 or 7 미정 미정 미정
미정 설악산일원 미정 미정
등산학교 제53회 암벽반 2024 한국-네팔 수교 50주년 기념등반 미정 도봉산 일원 7 북한산산악인추모탑 생활체육 제18회 대한산악연맹 회장배 생활체육 등산대회 미정 미정 사무국 산악인의 날 기념식 및 대한민국산악상시상식 14 미정
3~15 경남,김해 2~6 서울코엑스 특설경기장 미정 미정 미정 미정(일반부볼더링) 미정 미정
등반경기 제105회 전국체육대회(선수,지도자 파견) 등반경기 2024 IFSC 서울 스포츠클라이밍월드컵 대회 10 등반경기 제33회 회장배 전국청소년스포츠클라이밍대회 등반경기 제29회 노스페이스컵 전국 스포츠클라이밍 대회 산악트레일 2024 서울 국제 울트라 트레일 런닝 대회
미정 일본 & 중국 미정 미정 미정 미정
산악트레일 명산 트레킹 친선 클린산행(2차)(해외) 안전대책 산악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대책세미나 생활체육 제22회 서울시산악연맹회장기 등산대회 전문등산 2024 3차 수도권(서울,경기,인천)산악연맹 친선산행 미정 미정 미정 미정 생활체육 제14회 대한체육회장배 전국생활체육 등산대회 미정 미정 전문등산 2024 서울시체육회 회장배 등산대회 미정 미정 안전대책 안전대책 세미나 미정 경북.청송 등반경기 전국드라이 툴링대회 미정 미정 미정 미정 미정 미정
구 조 대-암벽, 암릉시설 점검 및 해빙기 안전 점검 / 험지 환경 보전 / 동, 하계 훈련 학술정보-산악연감 제14호 발행 / 연맹 유트브 개설 및 운영 등산교육-오르락내리락 사업(대산련/문체부), 산악안전지도사(국립공원공단), 지자체교육사업 등반경기-심판.루트세터3급 신규 및 보수교육,유소년스포츠클라이밍캠프 ※ 상기 일정은 변경될 수 있습니다.
2023년도 사업실적
◎ 각종 교육 및 세미나 ▶ 한국등산학교
구분
일 시 빙벽과정 - 제47회 동계반 23.1.7~8/1.14.~ 15 설악산일원 설상과정 - 2.10~12
장소
제98회 정규반 23.04.15~23.05.21 도봉산일원
북한산일원 도봉산일원 28명 입교 / 28명 수료 강사 19명 제99회 정규반 23.09.09~ 23.10.15 도봉산일원 40명 입교 / 40명 수료
제52회 암벽반 23.08.12~ 23.08.17
▶ 2022년 수상자 우수산악인 모범산악인 학술정보위원회 환경보전위원회 구조대 산악트레일위원회 등산교육위원회 모범산악단체
대상자없음
윤지영 황수진
대외협력위원회 전문등산위원회 한국등산학교 암장관리
산울림산악회
㈜강원NTS, ㈜부토라, ㈜동인기연, ㈜훠리스트, ㈜스미스코리아, ㈜트랑고, ㈜솔베이아웃도어, ㈜ 가야미
감사패
송정두(한국등산학교 교장), 강신원(이사), 김형수(이사), 2022한국힘룽히말원정대 단장 정택준, 2022 한국푸캉원정대 단장 조좌진
공로패
광운인공지능고등학교(강규민, 김지성), 중동고등학교(국채우, 최성빈), 한양공업고등학교(강문성, 김훈, 심인선, 우태석, 정민서), 양정고등학교( 김민찬, 정우석), 서울신정고등학교(성한아름, 윤다솜), 숭문중학교(최은우, 김채우)
모범상(중,고생)
▶ 2023 신년인사회
□일시 : 23.1.11. □장소 : PJ호텔 □인원 : 250명 ▶ 2023 청송아이스 월드컵 관람 및 신년 특별산행
인원
참여인원
강사 10명 14명 입교/14명 수료
□일시 : 23.1.14. ~ 15. □장소 : 경상북도 청송 □인원 : 35명
24명
강사 21명 37명 입교 / 37명 수료 강사15명
58명
▶ 제52회 설제
43명
□일 시 : 23.2.12. □장소 : 충북 제천시 두무산 □인원 : 300명
59명
▶ 2023 정기총회
□일시 : 2.28. □장소 : 서울특별시 체육회관 □인원 : 대의원 26명 / 임원 12명
김민수 최중숙 황우식 남은경
▶ 2023 각종위원회 합동세미나
□일시 : 23.3.18. ~ 19. □장소 : YMCA 다락원캠프장 □인원 : 180명 ▶ 2023 북한산국립공원 선인산악훈련장 정비
□일시 : 23.3.26. □장소 : 북한산국립공원 도봉산 선인산악훈련장 □인원 : 22명 ▶ 북한산산악인추모공원 정비
□일시 : 23.4.8. □장소 : 북한산산악인추모탑 □인원 : 50명
▶ 2023년 스포츠클라이밍 루트세터 자격3급, 보수교육
□일시 : 23.4.15. ~ 16. / 4.22. ~ 23. □장소 : 우이동 산악문화허브 □인원 : 7명 ▶ 2023년 산악인합동추모식
□일시 : 23.4.22. □장소 : 북한산산악인추모공원 □장소 : 200명 ▶ 2023 IFSC 스포츠클라이밍 서울 월드컵 대회(볼더, 스피드) □일시 : 23.4.28. ~ 30. □장소 : 중랑스포츠클라이밍 경기장 □인원 : 45개국 354명 (선수 289명, 지도자 65명)
▶ 2023 생활체육 대축전[산악] □일시 : 23.4.29. □장소 : 경북 문경 대야산 □인원 : 42명 ▶ 제114회 명산트레킹 친선산행 □일시 : 23.5.13. □장소 : 경북 문경 대야산 □인원 : 44명
▶ 2023 산악전문지도사 교육 □일시 : 23.5.20/5.27~29. □장소 : 도봉대피소, 강서인공암벽장 □인원 : 8명 ▶ 제104회 전국체육대회 스포츠클라이밍 볼더종목 선발전 □일시 : 23.5.27 □장소 : 서울볼더스컴파니 □인원 : 남17명. 여13명
▶ 제1회 전국 유소년 스포츠클라이밍 트레이닝 캠프 □일시 : 23.6.3. ~4. □장소 : 타이거볼더짐, 은평인공암벽장 □인원 : 18명
▶ 제13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기 전국생활체육 등산대회 □일시 : 23.9.3 □장소 : 전라남도 고흥군 운암산 □인원 : 80명 □종합준우승
▶ 2023 서울특별시장기 생활체육 등산대회 □일시 : 23.6.18 □장소 : 송파구 마천초등학교, 남한산성일원 □인원 : 900명
▶ 2023 생활스포츠지도사 2급 실기/구술 대비반 강습회 □일시 : 1회차 6.24.25 / 2회차 6.30~7.1 □장소 : 우이동산악문화허브, 북한산국제클라이밍센터 □인원 : 56명
▶ 제55회 대통령기 전국등산대회 □일시 : 23.9.23. ~ 24. □장소 : 경상북도 포항시 송라면 내연산 □인원 : 40명 □종합준우승
▶ 제26회 서울특별시장기 스포츠클라이밍대회( 제104회 전국체전 서울시대표 선발전(리드, 스피드) □일시 : 23.6.24. ~ 25. □장소 : 은평인공암벽장 □인원 : 252명
▶ 제104회 전국체육대회[산악] □일시 : 23.10.13. ~ 15. □장소 : 전라남도 목포 국제클라이밍센터 □인원 : 선수 13명, 지도자 6명 □종합우승
▶ 2023년도 가맹단체 해외 친선 산행 □일시 : 23.11.4 ~ 7. □장소 : 중국 연태 천고산 □인원 : 87명
▶ 제58주년 창립기념식 □일시 : 23.7.8. □장소 : 코리아나호텔 □인원 : 80명
▶ 2023 서울, 경기, 인천산악연맹 친선 산행 □일시 : 23.7.9 □장소 : 인천무의도 호룡곡산 □인원 : 24명
▶ 제21회 서울특별시산악연맹 회장기 등산대회
□일시 : 23.11.12. □장소 : 강서구 방화근린공원 개화산 □장소 : 800명
▶ 제2차 산악인추모공원 정비사업 □일시 : 123.11.18. □장소 : 북한산산악인추모공원 □인원 : 40명
▶ 추석맞이 북한산 추모탑 벌초 및 환경정비 사업 □일시 : 23.9.17. □장소 : 북한산산악인추모공원 □인원 : 36명
▶ 제2차 서울, 경기, 인천산악연맹 친선산행 □일시 : 23.11.19. □장소 : 삼성산 □인원 : 30명
▶ 2023 스포츠테이핑 강습회 □일시 : 23.11.25. □장소 : 삼각산 시민청 □인원 : 31명
▶ 2023 서울시체육회 회장배 등산대회 □일시 : 23.11.25. □장소 : 우이동만남의 광장, 북한산 □인원 : 500명
▶ 인공암벽장 운영관리 ▲노원구 당고개인공암벽 : 연중 ▲성동구 응봉인공암벽장 : 연중 ▲중랑구 중랑스포츠클라이밍경기장 : 연중 ▲동대문구 배봉산인공암벽장 : 5월~11월
▶ 2023 산악사고 예방을 위한 합동세미나 □일시 : 23.11.11. □장소 : 우이동BAC센터 □인원 : 100명
과정) □일시 : 23.12.2. ~3. □장소 : 우이동산악문화허브 □인원 : 37명 ▶ 2023 서울특별시산악연맹 환경보전캠페인 □일시 : 23.12.16. □장소 : 북한산국립공원 도봉산 □인원 : 60명
▶ 2023 서울특별시산악연맹 전,현직 임원 및 자치구 회장 송년회 □일시 : 23.12.26. □장소 : 코리아나호텔 □인원 : 82명
▶ 2023 오르락내리락 사업 □일시 : 년중 □장소 : 서울시 일원 □인원 : 250명
▶ 서울연감 123호 발간 □일 시 : 2023.03 ▶ 2023 아이스·스포츠클라이밍 심판강습회 □장 소 : 학술정보위원회 (3급심판 신규 자격 취득 및 보수교육 □주 관 : 500부
▲한강사업본부 뚝섬 강서인공암벽장 : 5월~11월 ▲서부여가센터 보라매인공암벽장 : 10월~12월 ▲은평구 은평인공암벽장 : 연중 ▲북한산 국제클라이밍센터 : 연중
국가사업, 자체개발사업 「오르樂 내리樂」-국가 사업
등산교육위원회
2023 등산교육위원회
현대인의 삶이 행복한 삶의 질 조건으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등산문화의 소비가 증가하고 있는 반면에 등산의 역기능(등산 사고 등)도 늘어나고 있다. 이에 대한산악연맹과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최하고 우리 서울시산악연맹에서 주관, 서울시민의 건강한 일상과 좀 더 안전하고 유익한 여가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범국민 등산 교육을 실시한 바, 등산교육위원회가 이 프로그램을 추진하였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사업의 효율성과 연계성 측면에서 볼 때, 우리 위원회가 지속적으로 진행하며 쌓은 역량과 노하우로 지난해보다 목표치나 완성도가 한층 높아졌다고 판단한다, 금년 사업은 2022년과 마찬가지로 연령대별로 청소년 꿀잼 등산 교실, 2030세대 도전 산악 스포츠 교실, 솔선수범 산악회, 활동적 장년 산행교실 알쓸 山 잡(만55세 이상의 시니어들과 함께〈서울숲〉에서 노르딕 워킹을 이용한 올바른 보행과 산행문화 만들기) 등 네 가지 프로그램으로 나눠 진행하였다. 워원 20명이 골고루 참여할 수 있도록 3개월에 걸쳐 일정을 소화하였다. 이 과정은 프로그램에 대한 철저한 사전 준비를 위해 대면 및 비대면 회의(Zoom)를 통해 역할을 분담하고, 일정별 중복을 최소화하며 운영의 효율성을 도모하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프로그램별 세부 진행을 위해 주강사를 선정해 구성토록 하였고, 인원 모집, 홍보, 미디어 제작을 위한 전담 위원을 선발해 상호 유기적으로 논의하여 차질이 없도록 준비하였다.
PART 1. 청소년 꿀잼 등산 교실(미래 세대 신체 발달 프로그램)
이 프로그램은 서울시산악연맹과 부천시 산울림청소년센터가 함께 진행하였다. 업무협약에 따라 센터에서 대상 청소년을 모집하고 진행 장소를 제공하며 진행 인력을 지원하였다.‘미래 세대 신체 발달’이라는 주제로 위원들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방식을 택했다. 총 4회에
걸쳐 80여 명의 초·중학생들이 참가하였고, 모마일 앱(스탬프 플레이)을 이용한 오리엔티어링, 숲 밧줄 놀이, 트리 클라이밍 등 4개 과목으로 진행했다. 참가자들 모두 즐겁고 유쾌한 표정들이었고 참가자들을 동반한 부모들 또한 흥미 있게 프로그램을 관찰했다. 진행 위원들 또한 열과 성의와 정성을 다해 진행에 임했다.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임을 반영하여, 진행 시 마다 날씨와 참가자를 고려한 간식과 충분한 음료를 준비하여 참가 청소년들이 즐겁게 뛰고 놀며 아웃도어를 체험하는 교육의 장이 되도록 하였다. 특히, 진행에 참여하는 위원들은 프로그램 시작 2시간 전에 모여 안전 교육과 청소년 교육에 대한 유의사항을 매번 반복적으로 확인한 후, 각자의 임무를 시뮬레이션하는 등 빈틈없이 준비하였다. 또한 행사 종료 후 참여한 위원들은 물론, 운영지원팀까지 한 자리에 모여 진행 결과를 되돌아보고 개선 발전시킬 방안 등을 논의함으로써 프로그램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였다.
회차일자장소 참석인원
교육내용
진행위원
텐트 설치와 철수, 장비 정리, 텐트 이용시 주의사항, 트리 클라이밍 등
8.26(토)
20명
멀티스카프 사용법, 기초매듭법, 20명 타잔 슬랙가인 걷기, 나무 오르기, 강인철, 조진용 팀장, 위원 작대기 짚고 걷기 밧줄 놀이, 숲 활동 시 해충이나
2 8.27(일) 부천 산울림 청소년 3 9.2(토)
여학생 다수로 체력 고려, 온열 센터 20명 넘어짐, 쓸림과 추락 예방, 약식 강인철, 조진용 팀장, 위원 예방, 청소년 지도사에게 집라인 등 트리클라이밍, 실내 팀 단위 밧줄 오후 우천과 온열 예방으로 실내 20명 놀이를 통해 협동심과 리더십 강인철, 조진용 팀장, 위원 교육 진행 고양 등
4 9.3(일)
PART 2. 2030 도전 산악 스포츠(생애주기별 맞춤형 산악 스포츠 활동)
청년 세대를 위해 자연에 몸과 맘을 맡기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주자는 취지하에 만든 프로그램이다. 도봉산장을 거점으로 해서 총 4회에 걸쳐 운영했다. 이 시대에 삶을 가장 고단하게 사는 2030 청년들에게 산악 활동 전반을 맛보게 해 주는 차림으로 꾸며 청년들이 맘껏 자연을 즐길 수 있도록 섬세하게 진행하였다. 특별히 주 강사들은 참가자들로 하여금 최대한 관심을 이끌어 내고자 지속적인 연락과 안부를 묻는 등 지대한 노력을 기울였다. 과목은 일반 등산, 암벽 등반, 스포츠 클라이밍, 응급처지, 스마트폰 지도 읽기, 스포츠 테이핑, 트레일 러닝, 실내 암장 훈련, 실전 연습 등 참가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도록 다채롭고 흥미진진한 과목을 선택해 진행하였다. 프로그램 특성상 횟수별로 과목을 달리해 청년 참가자들의 관심을 유도했으며, 참가자들의 편에서 자유롭게 운영함을 원칙으로 했다. 위원들은 참가자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했으며, 각 회차마다 10여 명의 위원들이
회차일자장소 참석인원 상계동 1
특이사항 해충 피해와 오열, 질환 예방 조 강인철 팀장, 김윤희 위원 치, 야외 활동 시 안전 사고 예 방 지도 등
북한산
식사 전 손 씻기, 음식 남기지 않기, 식기 정리 지도 등
불암산 3 9.2(토) 산마루산 22명 다래암장 북한산 4 9.3(일) 백운대 대 20명 슬랩
아웃도어 교육 멘토링 실시
참여했다. 우리 위원회에서는 각별히 청년 참가자들에게 많은 신경을 쓰면서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젊은 세대들이 산을 바라보는 시선을 넓고 깊게 해주기 위함이었고 또, 이들을 통해 우리 연맹의 2030 세대를 위한 여러 가지 사업의 홍보를 겸하기 위함이었다. 특별히, 올해 이 프로그램엔 매 회차마다 20~30여명의 청년들이 참여하여 지난해보다 거의 두 배 이상의 참석률을 보였다. 2022년엔 횟수가 거듭되면서 참가가 저조하였다. 심지어는 프로그램 진행 도중에 이탈하는 경우도 있었다. 2023년 이 프로그램이 청년들의 관심이 컸던 만큼 2024년엔 더욱 짜임새 있고 알차게 구성하여 청년들의 관심을 유도하면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정착시켜 나갈 수 있으리라 본다.
교육내용 부상 방지를 위한 운동 전 스트레칭, 8.20(일) 볼더클라 20명 스포츠 크라이밍 기초, 홀드 잡는 법, 이밍짐
진행위원
특이사항 참석자 모두 스포츠 클라이밍에 지대한 관심. 실내 암벽 등반 유경 험자 다수 참석자 모두 스포츠 클라이밍에 지대한 관심. 실내 암벽 등반 유경 험자 다수. 교육 종료 후에도 외벽 등반 연습 암벽 등반 경험 유 · 무로 A · B팀 나 눠 교육. 1인당 수차례 되풀이하 여 익힘 열의 대단, 특히 젊은 여성이 많 았고, 한번이라도 더 하려는 노 력 보임
전영래 위원장, 장준상 위 원, 장흥용 위원 외 5명
발 쓰는 요령 등
등반 시 필요한 각종 매듭 연습, 등반 전영래 위원장, 장준상 위 2 8.27(일) 국제클라 23명 시 사용하는 여러 확보물 교육, 실내 · 원, 장흥용, 임세훈, 김윤희 위원 등 10명 이밍센터
외 인공 암벽 오르기, 선등자 확보
톱로핑, 선등자 확보, 자기 확보, 하강 전영래 위원장, 장흥용 위 연습, 오버행 하강 등
원 등 8명
톱로핑 슬랩 등반, 선등자 확보, 대슬 전영래 위원장, 김길원 위 랩 등반, 주마링과 하강 연습
원 등 5명
PART 3. 솔선수범 산악회(등산리더 역량 강화 프로그램)
이 프로그램은, 산악 활동 인구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4050 세대를 대상으로 했다. 우리 위원회는 산행과 교육을 함께 진행했는데, 도봉산을 천천히 오르는 동안 건강하게 오랫동안 등산을 즐길 수 있는 내 몸을 지키는 노하우( 보행 방법, 레이어링 시스템 등)를 배우고 직접 해보는데 그 특징이 있다. 참가자들은 산행을 하며 몸에 익숙하게 체험을 해보고 산행 중 위급 시 대처할 수 있는 응급처치 방법, 산행 중에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상황들에 대처하는 방법을 보고 배웠다. 이 세대에 등산 인구가 많은 점을 고려하여 매회 20명씩 하루에 마치는 방식으로 운영을 했다. 참가자들이 중년임을 고려해 난이도 있는 활동보다는 비교적 깊이 있는 일반 등산에 중점을 두고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보행 방법, 알파인 스틱 사용 방법, 응급처치, 옷 입고 벗기(레이어링 시스템), 체온 관리 등 산행 중 소홀히 하거나 놓치기 쉬운 과목을 골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각 과목에서 조진용·김성철·장홍용 강사의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통한 강의는 참가자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참가자들은 나름대로 오랫동안 산에 다녔지만 올바르지 않은 산행 행태에 익숙한 경우가 있어, 강사들은 이에 중점을 두고 이론과 실전을 통해 바람직한 산행 방법을 심어주기 위해 공을 들였다. 참가자들은 하나라도 더 알려는 듯 열심히 배우며 호응을 했다. 관심도나 호응도를 고려했을 때, 『2030 도전 산악스포츠』와『솔선수번 산악회』에 참여한 이들이 제일 높았다.
회차일자장소 참석인원
교육내용 등산 이론(보행법, 스틱사용법, 배낭 20명 꾸리기, 레이어링 시스템, LNT), 동 상 예방, 응급처치, 스포츠 테이핑 등산 이론(보행법, 스틱사용법, 배낭 22명 꾸리기, 레이어링 시스템, LNT), 동 상 예방, 응급처치, 스포츠 테이핑 등산 이론(보행법, 스틱사용법, 배낭 20명 꾸리기, 레이어링 시스템, LNT), 동 상 예방, 응급처치, 스포츠 테이핑 산악사고와 응급처치, 심폐소생술, 20명 염좌와 예방, 스틱을 사용한 목발 만 들기, 저체온증 증상과 예방 등
진행위원
조진용 팀장, 김윤희, 김미 정 위원 등 5명
8.19(토)
조진용 팀장, 장흥용, 김길 원 위원 등 6명
2 8.26(토)
삼각산 시민청
조진용 팀장, 장흥용 위 원 등 6명
3 9.16(토)
조진용 팀장, 장흥용, 김윤 희 위원 등 6명
4 9.23(토)
PART 4. 5060 시니어 ‘알뜰 山잡’
‘등산․산악 스포츠로 생동감 넘치는 액티브 시니어’란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 몸과 맘이 예전 같지 않아 위축되기 쉬운, 이른바 시니어들을 대상으로 안전하고 편안하게 산행할 수 있도록 하는데 목적을 둔 프로그램. 총 3회 진행하였고, 매회 날짜별로 모집을 했다. 총 60 여명의 인원이 참가하였고, 참가자 모두 색다른 워킹 방식에 대체로 관심을 보였다. 조진용 강사가 연령별 스트레칭, 산행 시 유의사항과 안전, 기초적 노르딕 워킹 방법 등에 관해 설명을 했고, 교육 후 ‘숲해설가’와 ‘숲길등산지도사’‘노르딕워킹 강사’ 자격을 가진 김윤희 위원의 숲 해설 설명을 겸한 노르딕 워킹 시간은 참가자들에게 아주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참가자들의 관심도나 호응도도 수준 이상이어서, 앞으로 우리 위원회의 역량을 집중해 관심도와 호응도를 더 한층 높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 교육을 통해 등산행위는 단순한 걷기만이 아닌 안전과 건강, 인문학적 요소들이 결합한 종합 행위임을 참가자들에게 인식시켰다.
회차일자장소 참석인원
교육내용
진행위원
강북구 솔 밭공원
노르딕 운동의 유래와 스틱 착용방 조진용 팀장, 김윤희 위원, 법, 숲 생태 알기와 숲에 어린 역사 등 김길원 위원 외 5명
9.10(일)
15명
광진구 2 9.17(일) 아차산 12명 대공원 성동구
특이사항 교육생 참여도 높음. 등산은 이론 과 실전 중요함을 인식한 계기. 둘 레골 실전 걷기 여성 참여자가 스포츠 테이핑 에 특히 관심. 실습에 열심. 질문 을 많이 함 교육생 참여도 높음. 등산은 이론 과 실전 중요함을 인식한 계기. 둘 레골 실전 걷기 여성 참여자가 스포츠 테이핑 에 특히 관심. 실습에 열심. 질문 을 많이 함
국립공원공단 위탁사업
산악전문지도사 양성 교육」
회차일자장소 참석인원
1 5.20(토) 도봉산장
2 5.27(토) 도봉산장
12명
3 5.28(일) 도봉산장
강서구 암장
4 5.29(월)
서울시 자치구 등산 관련 체육 사업
동작구 등산학교
특이사항 새로운 방식의 산행 스타일이어서 인지 관심도와 참여도가 매우 높 았다. 북한산 둘레길 1코스 운행
노르딕 운동의 유래와 스틱 착용방 조진용 팀장, 김윤희 위원, 참여자의 관심도와 적극성이 돋보 법, 숲 생태 알기와 숲에 어린 역사 등 장홍용 위원 외 4명
였다. 새로운 산행 스타
노르딕 운동 유래, 노르딕스틱 착용 3 9.24(일) 서울숲 19명 방법, 탈착, 길이 조절, 노르딕 워킹 일원
암벽 등반 경험 유·무로 A·B 로 나눠 교육. 일인당 수차례 되풀 이해 익힘
조진용 탐장, 김윤희 위원 외 위원 10명
방법, 서울숲의 유래와 생태 등
국립공원공단에서 서울시산악연맹에 위탁한 이 프로그램은 등산교육위원회의 종합적 역량을 드러낸 교육이었다. 교육생들은 이구동성으로 필기 과목인 산악구조와 실기 과목인 암벽구조가 난이도가 높다는 데 공감하였고, 위원들은 이 부분에 보다 집중하여 교육생들의 이해를 돕는데 노력했다.
교육내용
진행위원 전영래 위원장과 조상일 위원 외 5명 전영래 위원장, 강인철 위 응급처치, 알피니즘, 독도법과 GPS 원, 김성철 위원, 조진용 위원회 역량 총 동원 위원 외 전영래 위원장과 유기환 위 암벽구조 원 외 4명 전영래 위원장과 유기완 위 암벽구조 및 구조 매듭 원 외 6명명
특이사항
국립공원 특강, 일반등산, 암벽 등반
위원회 역량 총 동원
위원회 역량 총 동원
위원회 역량 총 동원
광진구에 이어 우리 위원회의 역량이 빛을 본 자치구 위탁사업이다. 상반기 2회, 하반기 4회에 걸친 등산교실과 스포츠 클라이밍 강습은 동작구민의 열렬한 반응과 호응으로 빛났다. 특히, 한 교육 참여자는 동작구 홈페이지 「 칭찬합시다」코너에 장문을 글을 올렸다, ‘등산은 그냥 오르면 되는 운동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가졌지만, 수강 후 산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낮은 산이건 높은 산이건 다양한 변수에 노출되기에 늘 안전과 바른 등산법, 독도범, 에너지 보존과 절역, 스틱 사용법 등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등산을 이렇게 다체롭고 체계적으로 가르쳐 준 강사님들께 감사하며 명품 강사님들과 계속해 다시 만나면 좋겠다. 내년엔 각 자치구에서도 이 등산교실에 관심을 보이리라 예상해, 차치구 관련 부서와 활발하게 접촉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서울시산악연맹의 활동 영역 또한 점차 늘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회차일자장소 참석인원 동작구 1 5.30(화)) 문화센터
교육내용
진행위원
특이사항 김성철 위원, 강인철 팀장, 등산 중 일어날 수 있는 위험 요소 김윤희 위원 외 3명 들에 대처 능력 향상에 큰 관심 등산은 산을 걷는 일뿐만이 아 등산이론에 따른 실전 강인철 팀장, 김윤희 위원, 닌 에너지 보존과 절약에 관심 황수진 위원 외 3명 산행 교육 과 흥미 등산은 산을 걷는 일뿐만이 아 강인철 팀장, 김윤희 위원, 등산 이론 외 황수진 위원 외 3명
15명
심폐소생술과 응급처치
관악산 일원
2 6.10(토)
13명
동작구 청 3 10.28(토) 년 일자리 15명 센터 삼성산 일원
강인철 팀장, 나보영, 김길원, 황수진 위원
4 11.4(토)
15명
등산 이론 및 실전 산행
보라매 11.11(토) 공원 암 15명 벽장 보라매 6 11.18(토) 공원 암 15명 벽장
스포츠 클리이밍, 운동 전 스트레칭, 전영래 위원장, 이상록 위 홀드 잡는 법, 등반 장비 설명
원 외 3명
스포츠 클리이밍, 운동 전 스트레칭, 전영래 위원장, 이상록, 홀드 잡는 법, 등반 장비 설명 황우식, 박민구 위원
광진구 노르딕워킹 체험 프로그램
지역 여러 매체에서 홍보 노출이 많았던 만큼 처음 열리는 수업에도 관심도가 높았다. 홍보가 거의 없었음에도 첫 회엔 예상보다 참여자들이 많았고, 3차 구내 문자 홍보 후에는 대기예약도 생길 정도였다. 지역주민이다 보니 교육 장소가 평소 익숙한 곳이라 수업에 집중도가 더욱 높았다. 아차산에서는 데크길을 따라 간단한 숲해설도 함께 진행하여 참여자들 모두 지루할 틈이 없었다. 참여자들 모두 ‘노르딕워킹뿐만 아니라 바른 걷기까지 배워가는 좋은 수업이었다’라는 평을 했다. 나이 든 참여자들은, 노르딕워킹은 간단하게 배워서 바로 적용 할 수 있는 방식인줄로 알았다가 마음과 몸이 따로 노는 바람에 몸에 많이 당황하기도 했다. 노르딕워킹을 통하여 평소보다 많은 근육을 사용하게 되어 운동이 많이 된다고 모두 이구동성으로 평가를 했다. 참여자들 모두 시작부터 끝나는 시간까지 집중해서 수업에 적극적이었다.
회차일자장소 참석인원
광진구 아 차찬 일원
1 10.11(일)
아차산 일원
2 10.18(수)
닌 에너지 보존과 절약에 관심 과 흥미 등산은 산을 걷는 일뿐만이 아 닌 에너지 보존과 절약에 관심 과 흥미
2030 청년들이 큰 관심을 보임
광진구 스포츠 클라이밍 교실
`2030 청년들이 큰 관심을 보임
자치구에 적극 홍보하여 관심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 날은 수업이 끝난다는 사실에 아쉬움이 크다며 다음에 꼭 다시 추가 수업을 해달라는 요구(?)까지 했다. 열과 성을 보인 위원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시간이었다. 후기고는, 참여자들이 구청 홈페이지와 전화문의로 수업진행에 대한 칭찬과 추가 수업을 개설해달라는 요청까지 했다고 한다.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고 판단한다.
교육내용 노르딕워킹의 이해와 원리, 노르딕스 틱 사용법, 법과 ALFA 자세 및
진행위원
특이사항
김윤희 위원, 관심이 많은 구민들의 적극적인 스트레칭 교육, 바른 걸음걸이 교육, 황수진 위원 외 2명 참여도가 높았다 주변 생태 교육 노르딕스틱 사용법과 기본 동작, 김윤희 위원, 황수진 위 첫 번째 수업 후 꾸준한 연습을 12명 ALFA 자세 및 스트레칭 교육, 바른 원 외 2명 걷기, 주변 생태 교육 기본자세 반복교육, 호핑 자세 티 김윤희 위원, 황수진 위 이전 수업에 만족도가 높아 주변 원 외 3명 른 방향 등 기본자세 반복교육, 원스텝부터 김윤희 위원, 황수진 위 참여자들이 추가 수업에 대한 원 외 3명 사용해 올바른 팔의 자세 정립
12명
해온 참여자가 많았음
어린이 대 3 10.25(수) 공원 16명 칭, 어깨 운영 교육, 손바닥의 올바 일원 어린이 4 11.1(수) 대공원 18명 3스텝까지 고급화 과정 교육, 자일을 일원
지인과 함께 참여한 이들이 여럿
요청이 많았음
광진구에서 우리 위원회에 위탁한 리드클라이밍 교실은 수업의 예약이 열리자마자 한시간만에 대기 예약까지 생길 정도의 인기가 많았다. 같은 지역 구민이다 보니 수업의 참여도와 호응도가 높았다. 더욱이 참여자들 서로 간 금세 친밀한 관계가 형성돼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계속되었다. 클라이밍 기초를 배운 참여자들은 1회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참여해 재미있게 교육에 임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위원들은 이들을 위해 조금 더 진전된 방식의 기술을 전수해 주었다. 홀드 잡기부터 시작해 중심이동의 자세와 퀵드로 클립 방법까지 알려주니 어느덧 클라이밍에 익숙해지며 더욱 열심히 하려는 자세가 역력하였다. 총 4회 수업중 3회가 비가 왔음에도 오히려 이런 날은 오는 사람이 적다며 전세내고 교육받는 기분이라며 더욱 적극 참여하시는 모습도 보였다. 등산교육위원회에 대한 안내를 들은 수강생들이 직접 검색하여 등산교육위원회의 다른 수업을 찾아서 참여 할 정도로 관심을 보이고 교육의 질에 큰 만족도를 느끼며 이후 클라이밍과 종주등산에 입문하게 되었다는 후기를 위원에게 전해주기도 했다. 우리 위원회는 광진구 사례를 정리해 2024년엔 이 사업들이 널리 확산되도록 각
회차일자장소 참석인원
교육내용
1 9.6(수)
20명 클라이밍 스트레칭, 등반 장비 15명 착용 지도, 클라이밍 기초교육, 야외활동 안전지도, 톱로핑 교육 및 체험, 위급 시 안전체크, 퀵드로 클립 이상록 위원, 황수진 위 방법, 클라이밍 손가락 테이핑교육, 원 외 2명 사진 촬영 등 광진구 뚝섬 유원지 인공 13명 암벽장
2 10.18(수)
3 10.25(수)
4 11.1(수)
14명
위원회 자체 사업
2023년 위원회 신규 위원 역량 강화를 위한 등반 교육
등산교육과 관련해 역량 있는 위원들을 더 충원해 질적 교육을 도모하기 위해 진행한 위원회 자체 연수 프로그램이다. 10월 중 SNS와 구글폼을 이용해 ‘서울시산악연맹 등산교육위원회’에서 함꼐 일할 신규 위원을 모집한다는 홍보를 했다. 총 7명이 응모를 하였고, 11.18(토) 위원장을 포함, 6명의 위원들과 신규 대상 위원들의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위원장의 인사로 시작해, 강인철 팀장이 위원회 사업을 설명하였다. 이어 질문과 답변을 통해 7명의 응모 취지 등을 듣고 전원 신규 위원으로 위촉하겠다는 결론를 내렸다. 말하자면, 등산교육위원회가 위촉하는 ‘공채 1기’위원들인 셈이었다. 이들은 외국어를 탁월하게 구사한다거나 스킬등산 지도사, 숲해설 전문가, 유아지도사, 자연환경해설사, 영상 촬영 전문가, 국내 여행 가이드, 중국철학 전공자 등 우리 위원회의 빈 공간을 채워 줄 역량들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 위원회는 이들과 함께 4회(12.2~3, 12.9~10)에 걸쳐 도봉산과 북한산 릿지 등반을 진행하였다. 등반의 가장 기초적인 부분들을 복습하면서 자칫 소홀하기 쉬운 부분들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등 위원 개개인의 역량을 높이고, 나아가 매듭과 등반 시스템, 확보와 하강 이론 등 이론적 지식과 기술적 경험을 다지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생활스포츠지도사 등산 실기/구술 교육
회차일자장소 참석인원 북한산 국 6.24(토) 제클라이 1 ~25(일) 밍센터 북한산 국 6.30(금) 제클리이 2 ~7.1(토) 밍센터
교육내용 등산 에너지 관리와 사고예방 보행법, 스 포츠 클라이밍 및 빌레이, 응급처치, 모 전영래 위원장과 위원 4명 의 테스트 등 등반 시 필요한 각종 매듭 연습, 등반 시 사용하는 여러 확보물 교육, 실내 · 외 인공 전영래 위원장과 위원 3명 암벽 오르기, 선등자 확보
안전산행지원단 교육」 - 50+북부캠퍼스
진행위원 이상록 위원, 황수진 위 원 외 3명 이상록 위원, 황수진 위 비로 인해 진행에 우려. 이용자들 원 외 3명
특이사항 신청자 20명 정원 100% 참석률
이 적어 수업에 용이
프로그램으로 진행하였다.
중복 참여자들을 위한 퀵드로 클 립방법 교육, 톱로핑으로 퀵드로 클립연습 이상록 위원, 황수진 위 외벽 상단에서 클라이밍 하는 모 원 외 2명
역량강화 교육」 - 스포츠 테이핑 강습
습 촬영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테이핑 방법을 익히는 데 열심이었다.
누구나 대처가 가능한 CPR 교육」 - 50+북부캠퍼스
23년도 사업 평가 및 향후 설계 방안
□ 등산 활동 다변화에 따른 교육 방법 모색
진행위원
특이사항
더 세심하게 챙길 필요가 있다
서울시 50플러스재단 산하 북부 캠퍼스와 업무협약으로 추진한 사업이다. 북부 캠퍼스에서 이뤄진 이 교육엔 총 37명이 참여했고, 강인철 팀장의 주도하에‘산악에서의 환자이송법’‘산이 더욱 재밌어지는 핸트 크래프트’와 같은
11.25(토) 삼각산 시민청 강의실에서 진행했다. 총 37명이 참여했고, 이 분야 전문가답게 장홍용 강사의 강의엔 참여자 모두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의욕과 지대한 관심들을 엿볼 수 있었다. 10여명의 위원들도 함께 참여해
서울시 50플러스재단 산하 북부 캠퍼스와 업무협약으로 추진한 사업이다. 11.28(화)북부 캠퍼스에 총 27명이 참여했다. 등산 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심정지 사고시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면 고귀한 목숨을 구할 수 있는 만큼 참여자들의 호응도가 매우 놓았다. 김성철 강사는 각각의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실습을 통해 이를 익히는 방식으로 강의를 진행했는데, 참여자 모두 만족해하는 표정들이었다.
◦등산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요즘, 누구나 체계적인 등산 교육을 통해 안전을 위주로 즐겁고 재미있는 산행을 원한다. 더욱이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렸고 이젠 생활 속에 코로나를 받아들면서 전 연령층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산을 찾는 이때, 서울시산악연맹뿐만 아니라 우리 위원회의 역할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등산 교육이야말로 안전하게 사고 없이 산을 오르내릴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매개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등산교육의 중요성을 고려한다면, 등산교육위원회뿐만 아니라 서울시산악연맹 소속 각종 위원회와 긴밀한 협조로 보다 내실 있고 실질적인 등산교육 추진해야 함이 바람직하다. 각종 위원회엔 능력과 역량이 있는 위원들이 많다. 이제 등산은 도전과 모험을 넘어 레저, 교육, 복지 분야로 그 폭이 넓어지고 있고 다양한 아웃도어 활동을 아우르고 있으니 연맹 측면에서도 변화하는 추세에 적극 부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별히, 『오르樂내리樂』사업에 관해서는, 3년간 진행해 온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또 위원들 또한 이 사업에 대한 방향과 취지 등을 잘 알고 있어 더욱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확보했다. 앞으로도 이 사업을 보다 내실 있게 가져갈 수 있는 노하우가 위원 내부에서도 충분히 마련됐다고 자평한다. 앞으론 질적 부분들에 좀
□ 내실 있는 등산 교육을 위한 위원 역량 강화 및 충원
◦지난 해에 이어 2023년에도‘건전한 등산문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라는 모토아래 우리 위원회가 추진했던 사업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위원들의 역량이 더 한층 풍부해졌다는 점이다. 등산강사, 숲길등산지도사, 숲해설가, 마운틴리더, 산악안전지도사, 응급처치강사 외에 로프 테크니션, 생활체육지도사, GPS 전문가, 아마추어 무선 자격 등 우리 위원회가 담당해야 할 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여러 자격 조건들을 갖춤은 물론 이외의 전문가도 있어 교육 내용을 내실 있게 운영할 수 있었다. 한편, 각 위원별로 휴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자발적으로, 능동적으로 교육에 참여함으로써 등산교육의 질적 도모를 다질 수 있었다. ◦우리 위원회는 앞으로 등산교육과 관련해 역량 있는 위원들을 더 충원해 교육의 내적 역량 및 질적 샹상을 도모하는 한편, 요즘 등산 추세에 맞춰, 단순하게 산을 오르내리는 행위를 넘어서 인문적인 요소를 가미한 인문 산행에도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외연을 확장할 계획이다.
2023 전문등산위원회
전문등산위원회, 전문등산심판, 대통령기 등산대회 선수들의 모임을 결성하여 상호 정보와 소식을 소통하고 친목을 도모한다. 또한 전문등산 3급심판 강습회, 대통령기 등산대회 선수 선발과 교육, 훈련 과정을 마친 후 대회에 직접 참가하여 산악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독도법, 암벽과 매듭, 응급처치 등의 실력을 배양함으로써 타 산악인들의 모범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제52회 서울특별시산악연맹 설제
▲일시: 2023년 2월 12일 ▲장소: 제천 두무산 일원 서울특별시산악연맹 가맹단체 및 각 회원들의 무사고 산행을 기원하고 회원간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설제를 치르기 위해 대형버스 5 대에 분산 탑승한 후 설제 장소인 충북 제천으로 향했다. 청풍호를 조망하며 두무산 산행을 마치고 설제 장소에 도착 후 석채언 회장과 부회장단, 이사들, 각 위원회 위원을 비롯, 가맹산악회원단체들이 모두 재집결한 가운데 정성을 다하여 준비해 온 제물을 진설하고 2023년 한해 동안 안전산행을 기원하는 제를 올렸다.
제55회 대통령기등산대회 선수선발 및 교육훈련 실시
건설기술인협회 한마음 등반대회 지원
▲일시: 2023년 5월 20일 ▲장소: 서울둘레길 낙성대~사당역 구간 일원
▲일시: 2023년 8월 19일~9월 17일 ▲장소: 우이동산악문화허브 교육장 및 불암산 일원
서울둘레길 구간 중 낙성대와 사당구간에서 실시된 전국 건설 기술인들의 한마음등반대회 주최측으로 부터 등반 안내와 안전을 위한 지원을 요청받아 서울특별시산악연맹에서는 김영윤 부회장을 포함한 전문등산위원회 위원 20을
대통령기등산대회를 앞두고 남고등부, 여대부, 남일반, 여일반, 남장년, 여장년부 참가자 총 12팀(36명)을 대상으로 7일 동안 훈련을 마치고 대회 출전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파견하여 행사 전 준비운동 부터 12개팀 선두에 위원들을 배치, 산행 안내와 응급상황 발생시 대처, 주택가와 도로변의 횡단 안내 등을 지원하였다.
서울특별시장기 생활체육등산대회
▲일시: 2023년 6월 18일 ▲장소: 송파구 마천초등학교 남한산성 일원 서울 송파구 마천초등학교와 남한산성 일원에서 자치구 산악연맹 소속 생활체육인들이 함께 한 등산대회에 전문등산위원회 전문등산3 급 심판들이 참여하여 등산 상식, 매듭법, 응급처치, 장비 점검, 독도법 등을 지도하고 실습 후 시험을 통하여 생활체육인들의 산행 전반에 걸친 지식을 습득시켰으며, 마천초등학교 운동장에 도착 후 입상자들에게 시상식을 거행하였다.
전문등산 3급심판 신규, 보수 교육
▲일시: 2023년 7월22일~23일 ▲장소: 우이동산악문화허브 교육장 및 북한산 일원 우이동산악문화허브에서 신규 심판 13명과 보수교육참가자 2명을 대상으로 전문등산 3급심판 강습회를
개최하였다. 이날 강습회에서는 독도법, 응급처치, 매듭법, 등산 상식 등 2일간에 걸쳐 이론 및 실습시간을 가짐으로써 3 급 심판시험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하였다.
2023 생활체육위원회
요원할 것만 같았던 전문등산인들과 생활체육인들 화합의 장이 2023년의 시작과 더불어 본격화 되었다. 음으로 양으로 터를 마련하신 석채언 회장과 열과 성의를 다한 적극적인 활동으로 거리를 좁히고자 애썼던 김영윤 부회장의 노력이 적극적인 행사 참여의 결과로 나타났다. 생활체육위원회의 위원 구성은 각 구 산악연맹 회장의 추천을 받은 사람으로 구성되어 서울특별시산악연맹과 각 구 산악연맹과의 가교역할을 담당함으로써 향후 전문등산인들과 생활체육인들 상호간의 화합에 청신호를 밝히고 있다.
2023년 생활체육 대축전[산악]
서울특별시산악연맹 내의 생활체육으로서 활동의 포문을 연 2023년 생활체육 대축전[산악] 종목이 2023 년 4월 29일 토요일 경북 문경 대야산 일원에서 개최되었고 우리 서울특별시산악연맹은 임원으로 석채언 회장과 김영윤 부회장, 감독으로 차미숙 생활체육이사, 코치로 사무국 권선영 과장이 선수 38명과 함께 참가하여 남자50세이하 부문에서 1위, 66세이상~70세이하 부문 3위, 여자 45세이하 부문 3위, 56세이상 60세이하 부문에서 2위의 성적을 거뒀다.
서울특별시장기 생활체육등산대회
6월 18일 남한산성 일원에서 진행되었고 이번 대회에서 송파구선수단, 중구선수단, 양천구선수단, 광진구선수단, 노원구선수단, 강서구선수단, 동작구선수단, 강남구선수단 등이 참가한 가운데 아무런 사고 없이 종료할 수 있었다. 1위는 송파구선수단, 2위는 강서구선수단, 동작구선수단이 3위는 노원구선수단이 각각 수상했다. 대회 이후 심판으로 참여한 봉사자들이 뒤처리(쓰레기 분리청소, 화장실 청소)를 하고 중앙건물 화장실 청소 등 송파구산악연맹에서도 별도의 수고를 하였다. 행사장이 초등학교임을 감안하여 각별히 신경 써야
제21회 서울특별시산악연맹회장기 등산대회
생활체육위원회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의 배려 정신이 다소 부족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올바른 산행문화의 전파에 서울특별시산악연맹이 더욱 힘을 써야겠다는 피드백을 가져온 행사였다.
제13회 문화체육관광부장관기 전국생활체육등산대회
2023.9.3.일요일 전라남도 고흥군 운암산(487m) 일원에서 진행된 제13회 문화체육관광부장관기 전국생활체육등산대회에는 송파구산악연맹과 동작구산악연맹 소속 회원들과 전문등산위원회 위원들이 참여한 가운데 시, 도 대항 종합 2위 / 시, 군, 구 대항 2위라는 성적을 거두었다. 대회를 주관한 전남산악연맹의 지역적 출전 선수단을 감안하면 우승에 버금가는 성과였다고 자평했다.
2023년 생활체육인들의 마지막 행사라고 할 수 있는 제21회 서울특별시산악연맹회장기 등산대회는 강서구 개화근린공원에서 강서구청산악연맹 주관으로 열렸다. 25개 자치구중 7개 자치구 500명의 선수단이 참가한 가운데 송파구산악연맹에서 2022년에 이어 2023년도에도 1등의 영예를 안았으며, 강서구산악연맹과 노원구산악연맹이 각각 2위와 3위의 영광을 차지했다. 이날 대회는 생활등산상식과 운행질서, 독도, 매듭법 실기, 응급처치 등의 공정한 평가가 산행 중 진행되었고 이에 참가자들은 뜨거운 열기로 호응하여 성숙된 산행질서와 의식이 돋보인 등산대회였다. 여러 대회를 통해 익힌 등산 상식이나 운행 질서, 응급처치, 매듭법 등이 각 자치구 등산인들에 전파됨으로써 서울특별시산악연맹의 올바른 등산문화 전파에 힘쓴 결과로의 연대감이 돋보인 뜻깊은 하루였다.
2023 안전대책위원회
제1회 2023년 안전대책세미나
산은 도전의 대상 입니다. 동반자와 한 곳을 바라보고 호흡과 마음을 맞춰 산을 오르고, 등반을 마친 후 다시 출발지에 내려서기까지 산과 우리는 동행이고 하나의 산이 됩니다.
기존의 생채계와 다르게 Covid-19는 모이면 위험한 사회로 만들었고, 우리의 등산문화 역시 이러한 흐름을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등반 형태가 바뀌고 산악사고의 상황도 전과 다르게 전개되어, 우리는 그 원인을 알아야 했고, 나아가 근본적으로 최근의 등산 문화는 어떤 방향성을 띄는지 찾아야 했습니다.
서울특별시산악연맹 안전대책위원회에서는 처음으로 산악인의 등반 구조를 설문 조사하여 유의미한 자료를 도출해 내었고, 본 연맹 위원장들과 함께 네이버 폼을 활용한 전국단위의 관계 자료를 만들었습니다.
안전산행은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명제입니다!
서울특별시산악연맹은 산을 향한 마음이 같은 모든 분들의 안전산행을 위하여 언제나 노력할 것이며, 이번 기획에 열정으로 참여하여 큰 힘을 실어준 악우들과 보고서 발가에 수고하신 안전대위원회에 감사의 인사와 아낌없는 성원을 보냅니다.
들어가는 글 & 제1부 설문조사를 통한 산악인의 구조
들어가는 글
2023년 9월까지 북한산 국립공원(북한산, 도봉산)을 찾은 등산객은 총 471만6천명이다. 년 도
북한산
3,900,688
4,026,604
3,346,679
조사시기는 산악활동에 제약을 가져온 Covid-19의 한정된 기간의 사고를 중심으로 범위를 정했고, 조사년도의 사고는 목숨을 잃은 등산객이 5명, 중경상등의 국립공원 특수산악 구조대의 도움을 받은 등산객은 172명이다. 전체 등산객 수에 비하면 사고비율은 미미하지만 반복되는 사고의 공통된 점을 분석하여 대책을 찾아보고자 한다. 현재 등산인 중에서 수직의 암벽등반 체험을 즐기는 비중이 늘어나면서 사고가 늘어나는 것이 가장 큰 원인 으로 꼽을 수 있다.
제1부 설문조사를 통한 산악인의 구조
1 목적 및 통계분석
CONTENTS
가. 목적 : 현재 등산인의 기초자료 생성
[ 1차 대면조사 설문지 작성 ]기간: 2023년 9월 2일 ~ 9월 17일
발간사 … 6
장 소 : 대형 종합 장비점(자료비치) 전문 장비점(자료비치) 한국산악회 사무국 서울 지역 암장 및 인수봉, 선인봉 산행 시작지점
들어가는 글 … 7
결 과 : 77명 응답 [ 2차 네이버 폼을 활용한 인터넷 조사 ]기간: 2023년 9월 22일 ~ 10월 10일
제 1 부 설문조사를 통한 산악인의 구조 1. 목적 및 통계분석 … 7
결 과 : 92명 응답
제 2 부 산악사고 백서 산악사고 백서 1. 2020년 북한산, 도봉산 지역 … 17 2. 2021년 북한산, 도봉산 지역 … 18 3. 2022년 북한산, 도봉산 지역 … 19 4. 2023년 9월 북한산, 도봉산 지역 … 20 5. 통계분석 … 21 6. 설악산 사망사고 현황 … 22
10대
60대
20대
제 3 부 현대사회에서 산의 역할 1. 현대 등산인의 이해 … 23 2. 맺음말 … 24
30대
50대
%
5 ~ 8년
2023년 11월 11일
40대
[발행처] 서울특별시 산악연맹 [발행인]석채언[ 조사, 편집 ] 안전대책위원장 신 현 택
4 암벽등반을 처음 접한 연령대
[주소]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로 182 서울특별시체육회 207호 [전화] 02-2207-8848
구분
명
10대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
15년 이상
1 ~ 2년
%
5 ~ 10년
3 ~ 5년
나 - 1. 1차 설문조사 자료의 분석
여
1 기초조사 참여자 성별
도봉산
3,620,000
%
남
남
3,336,000
여
3,354,000
(자료제공 : 국립공원 재난안전처 )
40대
40대
50대
50대
30대
30대
20대
20대
10대
60대
2 현재의 연령대
3 산행시작 연령대
구분
명
구분
명
20대
10대
30대
20대
40대
30대
50대
40대
60대
50대
60대
15년
[ 암장 ]
7 암벽등반 횟수 (월 평균)
1 ~ 2년
5회
10년
1 ~ 2회
1 ~ 2회
%
%
3 ~ 4회
5회
3 ~ 4회
3 ~ 4년 5 하이킹(캠핑) 산행을 몇 년 경험 후 암벽등반으로 전환했는가?
구분
명
[ 인공외벽 ]
1 ~ 2년
1 ~ 2회
3 ~ 4년
5회
구분
명
5 ~ 8년
1 ~ 2회
10년
3 ~ 4회
15년
5회
3 ~ 4회
[ 멀티 ]
6 암벽(암릉)등반 경력은?
5회
구분
명
구분
명
1 ~ 2년
1 ~ 2회
3 ~ 5년
3 ~ 4회
5 ~ 10년
5회
10년
3 ~ 4회
있음
10 동계 빙벽등반 현황
전혀없음
수료
미수료
%
전혀없음
있음
희망
미희망
10-1 빙벽등반 경력
2년
구분
명
10년
2년
5년
10년
1주 2회
5년
%
3주 6회
10-2 동계 빙벽등반 빈도 (연평균)
1 ~ 4회
구분
명
8회
1 ~ 4회
%
5 ~ 7회
8회
5 ~ 7회
제2부 산악사고 백서
제2부 산악사고 백서
나 - 2. 분석
서울 지역의 여러산, 암장(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암장, 불암산 암장)에서 3주간의 대면 조사중에서 특이점은
1 2020년 북한산, 도봉산 지역
중.장년층의 암벽등반에 대한 열기였다.
가. 도봉산 지역
가족 부양 의무가 어느 정도 끝난 시점에 새로운 동기 부여로 여가활동을 하는 방법으로 수직의 암벽등반이 자신에게 "재미(Fun)"를 주고 짜릿함, 긴장, 흥분, 두려움 등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며 암벽등반 체험에는 분명
성별
연령대
정서적 상태가 충분히 안정되어 간다는 점을 강조, 표현하였다.
월
나 - 3. 성별분석
성비가 동일하게 나왔다는 점이 특징이다.
현대 사회에서 남과 여의 역할 구분이 없어지고 남성전용이던 군사, 치안 부분 등에서도 여성의 참여도가 높은 것 만큼 등산인의 성비도 구분이 무의미 할 지점에 도달했다.
도봉산 지역에서는 여성 참여가 약간 적었으나 그 밖의 암장 및 북한산 지역에서는 여성 비율이 더 높았다는
점이다. 도봉산 지역의 특성(북한산 지역보다 코스의 힘듦)을 예로 들었다.
나. 북한산 지역
성별
연령대
월
2 2021년 북한산, 도봉산 지역
11 동계 등산학교 수료여부
가. 도봉산 지역
구분
명
수료
성별
연령대
월
미수료
남 여 10 20 30 40 50 60 암벽 암릉 일반등산 사망 부상 기타 1-1----1---212---2-1-1
12 전문 강사로 구성된 무료 등산(암벽빙벽) 학교에 교육 참여 희망여부
구분
명
희망
미희망
나. 북한산 지역
성별
연령대
12-1 무료교육 차수당 희망교육 횟수
월
남 여 10 20 30 40 50 60 암벽 암릉 일반등산 사망 부상 기타
구분
명
2주 4회
1주 2회
2주 4회
3주 6회
동호회
해당없음
%
유형
사고현황
남 여 10 20 30 40 50 60 암벽 암릉 일반등산 사망 부상 기타
등산학교
무
유
유형
사고현황 남 여 10 20 30 40 50 60 암벽 암릉 일반등산 사망 부상 기타 3
무
3 ~ 4회
(부상의 경우 골절과 골절치료 이상의 사고자 : 국립공원 재난처 자료제공)
제2부 산악사고 백서
제2부 산악사고 백서
3 2022년 북한산, 도봉산 지역
가. 도봉산 지역
사고현황
유형
성별
연령대
유형
사고현황
월
남 여 10 20 30 40 50 60 암벽 암릉 일반등산 사망 부상 기타
(부상은 골절 이상의 사고자)
나. 북한산 지역
성별
연령대
유형
사고현황
(부상은 골절 이상의 사고자)
월
남 여 10 20 30 40 50 60 암벽 암릉 일반등산 사망 부상 기타
유형
사고현황
11-* 심장마비
121* 추락사
(부상은 골절 이상의 사고자)
(부상은 골절 이상의 사고자)
제2부 산악사고 백서
제2부 산악사고 백서
4 2023년 9월까지 북한산, 도봉산 지역
8 등반교육 수료 여부 (등산학교, 등산교실-클럽자체 교육)
가. 도봉산 지역
성별
연령대
유형
사고현황
월
남 여 10 20 30 40 50 60 암벽 암릉 일반등산 사망 부상 기타
등산학교
동호회
해당없음
(부상은 골절 이상의 사고자)
나. 북한산 지역
성별
연령대
유형
사고현황
월
남 여 10 20 30 40 50 60 암벽 암릉 일반등산 사망 부상 기타 211----2-11
9 산행 중 사고 경험 (경중불문, 인대손상 등)
구분
명
무
1--* 추락사
유
(부상은 골절 이상의 사고자)
9-1 사고 원인 (본인 판단) 구 분
명
체력,실력 부족
경험 부족
파트너 협력 부족
본인 부주의
? ? ?
? ? ?
? ? ?
? ? ?
2023 환경보전위원회
야영장 정비
▲일시: 2023년 3월26일 ▲장소: 도봉산 선인야영장 일원 ▲참석: 정균일, 남영우, 김태건, 윤주훈, 임기혁, 이찬일, 심기석, 이억만
추모공원 정비(1차)
▲일시: 2023년 4월 8일 ▲장소: 북한산 추모공원 일원 ▲참석: 권홍택 김성희 남영우 심시석 윤정필 이동재 이억만 임기혁 임현숙 정균일
추모공원 정비(2차)
▲일시: 2023년 4월 8일 ▲장소: 북한산 추모공원 일원 ▲참석: 김상철, 강동혁, 남영우, 박정수, 심기석, 윤정필, 이건진, 이찬일, 최안숙
환경보전캠페인
▲일시: 2023년 12월 16일 ▲장소: 도봉산 등산로 ▲참석: 석채언 회장 외 60명
2023 스포츠클라이밍위원회
제104회 전국동계체육대회「산악」아이스클라이밍
▲기간: 2023년 2월 18일 ▲참가: 지도자- 김자하, 정진언, 조성호, 손종석 / 선수-이창현 외 4명 ▲결과: 남자(리드) 2위 이창현
2023 노스페이스컵 청송 전국 아이스클라이밍 선수권대회)
▲기간: 2023년 1월 7일~8일 ▲참가: 지도자-김자하,조성호 / 선수-신운선 외18명 ▲결과: 남자(리드) 3위 이창현 / 여자(리드) 1위 신운선 / 여자(스피드) 1위 신운선
제43회 전국 스포츠클라이밍 선수권대회(2023년 스포츠 클라이밍 국가대표 선발전)
▲기간: 2023년 4월 7일~9일 ▲참가: 지도자-김자하, 조성호 외2명 / 선수-서채현 외 33명 ▲결과: 여자(컴바인) 1위 서채현 / 여자(스피드) 2위 정지민
2023년 스포츠클라이밍 루트세터 자격3급 신규 & 보수교육강습회
▲기간: 2023년 4월 22일~23일 ▲장소: 은평인공암벽장 ▲참가: : 등반경기위원회 위원장 한정희 / 트세터위원장: 조규복 / 루트세터위원: 백승용,조경아, 정승교 / 등반경기위원-정진언, 서다정, 김재형 등 참가자 12명
2023 서울특별시산악연맹 볼더 서울시대표 선발전 (제104회 전국체육대회 볼더 서울대표 선발)
▲기간: 2023년 5월 27일 ▲참가: 등반경기위원회 / 선수-서채현 외 26명 ▲결과: 여자 1위 서채현, 2위 김승현, 3위 성한아름 / 남자 1위 김태인, 2위 신준하, 3위 권기범
스포츠클라이밍위원회
제1회 전국 유소년 스포츠클라이밍 트레이닝 캠프
▲기간: 2023년 6월 3일~4일 ▲장소: 은평인공암벽장 ▲참가: : 등반경기위원회 위원장 및 위원, 경기력향상위원회위원장 및 위원, 선수위원회위원장 및 위원 / 선수 20명
제26회 서울특별시장기 스포츠클라이밍대회(제104회 전국체육대회 서울시 대표 선발전)
▲기간: 2023년 6월 24일~25일 ▲참가: 등반경기위원회 / 선수 서채현외 248명 ▲결과: 여자(리드) 1위:서채현 2위 김채영 3위 성한아름 / 여자(스피드) 1위 정지민, 2위 성한아름, 3위 양희수 남자(리드) 1위 권기범, 2위 신준하, 3위 이성규 / 남자(스피드) 1위 김영현, 2위 문태웅, 3위 손종석
제14회 고미영컵 전국 청소년 스포츠클라이밍 대회 (2023년도 스포츠클라이밍 청소년 국가대표 선발전)
▲기간: 2023년 6월 17일~18일 ▲참가: 지도자-김자하, 정진언 외 1명 / 선수-성한아름 외 38명 ▲결과: <스피드> 여자주니어-1위 성한아름, 2위 윤다솜 <볼 더> 여자 유스B-2위 이승아/여자 유스A 1위 서예주, 2위 김채영, 3위 홍유빈 여자 주니어-2위 성한아름, 3위 윤다솜 남자 유스B-2위 정찬진 남자 유스A-3위 권기범 <리 드> 여자 유스C-2위 이서연 여자 유스A-1위 서예주, 2위 김채영, 3위 임지현 여자 주니어-1위 성한아름, 3위 윤다솜 남자 유스C-3위 이건우 남자 유스B-2위 박태성 남자 유스A-2위 권기범
제26회 서울특별시장기 스포츠클라이밍대회(제104회 전국체육대회 서울시 대표 선발전)
▲기간: 2023년 6월 24일~25일 ▲참가: 등반경기위원회 / 선수 서채현외 248명 ▲결과: 여자(리드) 1위:서채현 2위 김채영 3위 성한아름 / 여자(스피드) 1위 정지민, 2위 성한아름
3위 양희수 남자(리드) 1위 권기범, 2위 신준하, 3위 이성규 / 남자(스피드) 1위 김영현, 2위 문태웅, 3위 손종석
제104회 전국체육대회「산악」스포츠클라이밍
▲기간: 2023년 10월 13일~15일 ▲참가: 지도자 -김자하 조성호, 정진언, 이민우 주무, 최성일 부위원장 / 선수-서채현 외 13명 ▲결과: 여자(리드) 1위 서채현 / 여자(볼더) 1위:서채현 3위 김승현 / 여자(스피드) 2위 성한아름 산악종목 종합우승
제32회 회장배 전국 청소년 스포츠클라이밍 대회
▲기간: 2023년 10월 29일 ▲참가: 지도자 -김자하 정진언 / 선수-권기범 외 46명 ▲결과: <스피드> 여자고등부-1위 윤다솜, 2위 성한아름 <리 드> 여자 초등부(고학년)-3위 윤봄 여자 중등부-3위 이서연 여자 고등부-1위 김채영, 2위 김주하 남자 중등부-3위 박태성 남자 고등부-1위 권기범
2023 한국등산학교
-성실, 인내, 안전-
2023년 한국등산학교정규반
▲1주차 실기교육(9월 10일/일요일)
조별
배치강사
최오순, 주진형 이성혁, 강태원
A조 기초슬랩 1~13번
임현주, 박상천 B조 소슬랩 14~27번 정택현, 황우식 최승현
박민구, 박명렬 조상일, 이병주
C조 대슬랩 28~40번
▲2주차 실기교육(9월 17일/일요일)
2주차 교육목표
교육장소
배치강사
A조 대슬랩 침니크랙랩
B조 천축사 암장
1주차 교육목표 1. 등반시스템의 이해 2. 올바른 장비 착용 3. 기본 매듭 익히기 4. 후등자 · 선등자확보 익히기 5. 안전한 하강방법 익히기 교육장소
공통사항
장비착용
매듭,확보,하강
확보, 하강
9시~9시 30분 9시 30분~12시
1시~4시
8시~8시 40분 등반시스템 동영상 오전교육 9~12시 조별교육 중식:12~1시 오후교육 1시~4시 암벽등반시스템 반복교육 4시 교육종료
옭매듭 되감기8자매듭 자기 확보 확보줄 빌레이 고리8자매듭 후등자 확보 루프에 하강기 장착, 오토블럭매듭 등반시스템 오토블럭매듭
헬멧 착용 하네스 착용 확보줄 및 클로브히치매듭 선등자 확보 장비착용 (확보, 하강) 4시 30분 학교집합, *A조, B조, C조 이동 없이 교육(1시~4시: 암벽에서 등반시스템 반복 교육) 종례: 5시 *각 조 담당 강사-배치된 교육장의 실기교육 총괄 -그 조에 배치된 강사들 역할 배정
*본부: 교장, 교감, 사무국장 *기록담당: 사무국장 *대표강사는 각 조의 실기교육 진행사항을 파악한다. *실기장소에 배치된 강사들은 교육상황에 따라 다른 교육장으로 이동 할 수 있다. *장비담당: 박민구 강사 *아침체조: 박명렬 05시 30분 기상 *의료담당: 담임강사~실기교육 중 상황 대처가 여려울 경우 본부이관
1. 등반 시스템의 이해 2. 암벽기본•밸런스 클라이밍 균형+중심이동•마찰(스미어링)과짝힘•3지점자세를 배운다. 3. 자기확보•후등자•선등자확보 등을 확실히 알게 한다. 4. 하강시스템을 익힌다. 조별
공통사항
확보
하강
8시조회 후 조별 교육장 이동 8시30분 ~ 12시
임갑승, 최오순 홀수조 박민구, 황우식 중식 및 교육장 이동12시 ~오후 1시 강태원, 이병주 A조 <=> B조 (로테이션 교육 ) 암벽실기교육 후 오후교육 이동 수시로 매듭, 자일사리기 교육 임현주, 박상천 1시 ~ 4시 박명렬, 주진형 4시 교육종료 짝수조 조상일 , 정택현 4시30분 학교집합 최승현 종례: 5시
자기 확보 후등자 간접확보 선등자 직접확보
확보줄에 하강기 장착. 빌레이루프에 오토블럭 매듭
*A조 <=> B조 로 이동 점심 식사 후 이병주, 정택현 인솔. *각조 담당강사 배치된 교육장의 실기교육 총괄~조에 배치된 강사들 역할 배정 *교육장 이동시 강사 1명이 학생 인솔한다.
*본부 : 교장, 교감, 사무국장 *기록담당 : *대표강사는 각 조의 실기교육 진행사항을 파악한다. *장비담당 : 박민구 강사 *실기장소에 배치된 강사들은 교육상황에 따라 다른 교육장으로 이동 할 수 있다. *아침체조 : 박명렬 05시 30분 기상 *의료담당 : 담임강사~실기교육 중 상황 대처가 여려울 경우 본부 이관 *토요일 참여강사 : 박명렬 , 박민구 , 황우식 , 주진형 토요일 실기교육
▲3주차 오봉 등반 교육(9월 24일/일요일)
1. 멀티 피치 기본교육 2. 등반시스템 반복 교육(선등자 확보 /후등자 확보/톱로핑 확보/하강) 3. 암벽기본•밸런스 클라이밍 균형+중심이동•마찰(스미어링)과 짝힘•3지점 자세를 배운다 조 담임강사 학생명단
3주차 교육목표 코스
코스
조 담임강사 학생명단
김운봉, 박정현 윤희성, 이승철 이수아, 이신우
박민구 박명렬
최오순 이병주
1조
4조
이연희 , 김병일 박홍영 , 김지현 김민구 , 박경아
임갑승 주진형
대표강사 정택현
2조
5조 조영일, 곽금연 권준영, 송주헌 양승혁, 오수련샘 송수웅, 이형원 * 본부 : 교장 , 교감 , 사무국장 * 대표강사는 실기교육 진행상황 변화에 따라 교육 진행을 김윤경, 장혁재 돕는다. * 조별 담임강사로 등반과 교육을 실시한다.(무전기 지참) 김 윤, 박지민 * 장비담당 : 박민구강사 * 의료담당 : 담임강사
임현주 최승연
박상천 조상일
3조
6조
교 감 강태원
7조 * 오봉 교육 출발은 1. 학교에서 7시 조별 출발 2. 오봉 도착 후 바로 조별 등반 3. 14시 45분 전체 모임 및 기념사진, 4. 오봉에서 15시 조별 출발, 5. 학교 도착 후 전체 종례 후 국립공원까지 이동 해산
▲4주차 인수봉 등반 교육(10월 8일/일요일)
1. 인수봉 등반으로 멀티 피치 개념을 확실히 알게 한다. 2. 확보•하강 로프 정리 등 자신의 역할이 원활한 등반시스템과 안전에 직결 된다는 걸 알게 한다. 3. 자연과의 동화와 등반 행위를 통해 동료애를 고취시킨다. 4. 인수봉 정상 등정 후 하강과 하산까지 집중력을 유지한다. 코스 조 담임강사
4주차 교육목표
학생명단
코스 조 담임강사 학생명단
김운봉, 박정현 윤희성, 이승철 이수아, 이신우
박민구 황우식
인수 서면 슬랩
인수B변형 1조
4조 이연희, 김병일 박홍영, 김지현 인수C 5조 김민구, 박경아
임갑승 주진형
대표강사 정택현
비둘기 2조
조영일, 곽금연 권준영, 송주헌 고독의길 6조 양승혁, 오수련샘 송수웅, 이형원 * 조별 담임 강사로 등반과 교육을 시행한다.(무전기 지참) * 장비 담당 : 박민구 강사 , 김윤경, 장혁재 * 의료담당 : 담임 강사 지정 * 본부 교장 , 교감 , 사무국장 김 윤 , 박지민 * 위의 내용은 변경될 수 있습니다.
임현주 최승연
박상천 조상일
인수A변형 3조
교 감 강태원
인수B 7조 ❈* 인수봉 실전 등반 출발. 1. 야영장 오전 7시 전에 조별 출발 2. 인수봉 각 코스 도착 후 바로 조별 등반 3. 정상 도착 기념사진 촬영 후 하강 및 하산 시작 4. 도선사 5시 집합 단체 사진 및 종례산
▲5주차 선인봉 등반 교육(10월 15일/일요일)
1. 실전 등반시스템에서 자신의 할 일을 파악한다. 2. 선등자•후등자확보와 로프정리 등 등반자가 해야 할 역할의 중요성을 알게 한다. 3. 여러 형태의 암벽을 등반하면서 중심이동과 암벽기술을 적용한다. 4. 자연과 동화, 등반 행위를 통해 동료애를 고취한다. 5. 선인봉 등반으로 성취감을 얻는다. 6. 등반을 끝내고 하산 할 때가지 집중력을 유지한다. 코스 조 담임강사
5주차 교육목표
학생명단
코스 조 담임강사 학생명단 김운봉, 박정현 윤희성, 이승철 박쥐 4조 이수아, 이신우
이성림, 윤진선 오상훈, 박민정 김건이, 신지운
박민구 황우식
최오순 이병주
만장봉 1조
이연희, 김병일 박홍영, 김지현 알피니즘 5조 김민구, 박경아
민정옥, 신상호 유세규, 장성순 심민균
임갑승 주진형
대표강사 정택현
낭만길 2조
조영일, 곽금연 권준영, 송주헌 은벽 6조 양승혁, 오수련샘 송수웅, 이형원 * 조별 담임 강사로 등반과 교육을 시행한다.(무전기 지참) * 장비 담당 : 박민구 강사 김윤경, 장혁재 * 의료담당 : 담임 강사 지정 *본부: 교장 , 사무국장 김 윤 , 박지민 * 위의 내용은 변경될 수 있습니다.
박상천 김영주
남측 3조 선인 정상 & 7조 하강
교 감 강태원 ❈*등반 종료 시간은 오후13시 00분 종료. 13시 30분 하 강시작=> 등산학교 도착 14시 30분. 졸업식 16 시30분
2023년 52회 한국등산학교 암벽반
공통사항 이성림, 윤진선 1. 오전7시 학교에서 오봉 조별 출발 오상훈, 박민정 2. 보행법, 스틱 사용법을 조별 담임 김건이, 신지운 강사가 운행 중 실기 지도 3. 선배기수 중식 제공 민정옥, 신상호 4. 조별로 소요 등반로프, 장비, 유세규, 장성순 무전기,약품 준비 심민균 5. 조별 도착 교육실시 6. 2시45분 전체 집합, 단체 사진 김경애, 박준석 7. 오봉 3시 조별 출발 학교 전체 한영, 김영현 도착 후 종례 고혁준
▲조별 예상 코스(안)
조/코스 1일차 2일차 3일차 4일차 5일차
1조 전용학 이성혁
미륵장군봉 코락
적벽 2836
2조 임현주 정택현
4인의 미륵장군봉 우정길 코락
3조 아갈바위 이명희 황우식 테스트
몽유도원도 장군봉 & 타이탄
4조 최오순 박상천
미륵장군봉
유선대 그리움 둘 체게바라
및
공통사항
시스템교육
5조 허선무 입교식 강태원
미륵장군봉 유선대 4인의 장군봉 체게바라 그리움 둘
이성림, 윤진선 오상훈, 박민정 1.야영장 김건이, 신지운 오전7시 00분 인수봉 출발, 조별 진행 민정옥, 신상호 2. 조별 소요 유세규, 장성순 등반 로프, 장비 무전기, 약품준비 심민균 3. 인수봉 정상 사진 4. 조별 하강 및 하산 시작 김경애, 박준석 5. 도선사 5시 도착, 단체사진 촬영 한영환, 김영현 고혁준
6조 교 감 김영주
한편의 미륵장군봉 시를 위한 길
예상 코스
예비 코스
비고
▲일자별 교육 일정[8월 12일(토) 1일차]
공통사항
1. 오전07시00분 학교 테크. 단체사진 촬영 후 조별로 선인봉 출발 . 2. 조별 소요등반로프,장비,무전기,약품준비 3. 선인봉도착한 조별로 등반실시 4. 14시30분까지 학교 도착 5 .선배기수가 준비한 수료 국수 식사 김경애, 박준석 6. 수료식 후 하산 한영환, 김영현 고혁준
설악 파크 리조트 집결
내용
속소근처
*일시 2023년 8월12일(토) ~8월17일(목) 5박6일 *장소 : 설악산 일원 *교육방식 : 조별 담임제 / *참석자명단(14명): 한필석 교장, 이연희 교감, 허선무 대표강사, 김용태 사무국장(교무), 김영주, 박상천, 이명희, 이성혁, 임현주, 전용학, 최오순, 황우식, 강태원, 정택현(이상 강사)
▲조별 코스 현황
6일차
조/코스 1일차 2일차 3일차 4일차 5일차 6일차
1조 전용학 이성혁
울산바위 문리대길 4번
울산바위 미륵장군봉 장군봉 문리대길 청원길 기존길
강촌 전망대릿지
미륵장군봉 장군봉 적벽 청원길 기존길 자유2836
2조 임현주 정택현
노적봉 한편의시를 위하여’
4인의 적벽 유선대 미륵장군봉 우정길 삼형제길
울산바위 미륵장군봉 문리대길 청원길
국립등산 학교 & 3조 아갈바위 이명희 황우식 테스트
적벽 2836
그리움 둘 청원길
대명슬랩 장군봉 & 수바위
적벽 채송화
미륵장군봉 울산바위 울산바위 기존길 청원길 안다미로 문리대길 수
미륵장군봉 울산바위 기존길 타이탄 문리대길 향기
4조 최오순 박상천
한편의 시를 위한 길
토왕골 미륵장군봉 울산바위 장군봉 미륵 2009 악우길 기존길
유선대 그리움 둘 솜다리 추억
미륵장군봉 울산바위 료 코락 악우길
및
시스템교육
식
5조 허선무 입교식 강태원
대명슬랩 유선대 & 그리움 둘 수바위
미륵장군봉 체게바라
장군봉 기존길
산빛jk
산빛jk
우정길 기존길
6조 교 감 김영주
토왕골 미륵장군봉 유선대 무명봉
국립등산 학교 4인의 우정 코락 그리움 둘 돌아온 GP
별을 따는 미륵장군봉 유선대 몽유도원도 소년들 체게바라 그리움 둘
울산바위 유선대 울산바위 적벽
담임강사님은 가실 코스를 적어주십시오.(위부문 참조) 비고 A => 1, 3, 5조 미륵장군봉 B => 2, 4, 6조 외설악군 울산바위, 장군봉 등 2, 3 일차는 교대한다
울산바위 사선크랙 악우길 이륙공천 계단슬랩 채송화향기
타이탄, 청원길, 미륵2009, 노총각, 코락, 체게바라, 스카이, 장군봉 기존길, 장군봉 히말라야 방랑자, 장군봉 장군97, 에코독주, 무명봉, 울산바위 문리대길, 울산바위 사선크랙, 울산바위 계단 슬랩, 막크랙, 번개길, 안다미로,악우길, 비너스, 적벽 채송화 향기, 적벽 2836, 이륙공천, 한편의 시를 위한 길, 유선대 그리움 둘, 솜다리 추억, 4 인의 우정길, 몽유도원도 등
몽유도원도, 형제봉 릿지, 경원대 릿지, 별을따는 소년들, 4인의 우정길, 솜다리의 추억, 삼형제봉 릿지, 천화대, 유선대 그리움 둘, 한편의 시를 위한길, 울산바위 릿지 정상~ 하나 되는 길, 1P~ 정상 등
우천시 일정 변경은 강사회의에서 결정함. 외설악일원/국립등산학교, 산악박물관, 실내암장 등
시간 10 11 11시 30분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13:00 내설악 아갈바위 집합 입 식사 (장비착용 외) 학 후 14:00 등반 test 시작. 식 이동 암벽등반 톱로핑, 확보법, 하강 식 (학생 test 상,중,하 ) 석
암벽 등반 기술 강사 회의
조별 미팅 취침
OT
● 교육장소==> 내설악 아갈바위 ● 실력테스트 ● 등반시스템 (선등자 및 후등자 확보) ● 하강기는 튜브를 위주로 하고 확보 줄과 카라비너 사용 등은 정규반 내용과 동일하게 교육시킬 것 ● 학생이 그리그리 사용시 인정 , 단 신지는 제외함.
▲일자별 교육 일정[8월 13~14일(2~3일차)]
시간
5678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조 이론 별 교육 미 (확보물 팅 설치/ 및 암벽 강 등반 사 기술) 회의숙소석이식동 5:00~5:30 기상 및 체조 05:30~06:30 조식 07:00 각 조별로 담당 강사의 책임하에 출발
내용
취침
● 몽유도원도, *** 붉은벽코스 *** ● 체게바라 ● 스카이 ▶환영● 코락길 ▶ 하얀마음 ● 미륵 2009 ▶노을이● 노총각 ▶ 바기리티 ● 청원길 ▶ 레인댄스 ● 타이탄 *A 1, 3, 5조 미륵장군봉 B 2, 4, 6조 외설악군 울산바위,장군봉 등 나뉘어서 한다. 다음날 서로 교대한다.
미륵장군봉
▲일자별 교육 일정[8월 15~16일(4~5일차)]
시간
5678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조 별 강사들 미 과의 팅 대화/ 및 친교의 강 시간 사회의● 한편의 시를 위한 길/ 그리움 둘 (유선대) / ● 이륙공천/형제봉릿지 / 별을 따는 소년들 / 외 ● 경원대 릿지 설 ● 삼형제봉 릿지/솜다리 추억 악 일 ● 계단슬랩/막크랙 ● 사선크랙/번개길 원 ● 안다미로 / 우길 ● 문리대/ 너스 ● 예비: 울산바위 리지 정상~ 하나 되는 길, 1P~ 정상 숙소석이식동 5:00~5:30 기상 및 체조 05:30~06:30 조식 07:00 각 조별로 담당 강사의 책임하에 출발 내 용
취침
*책임강사님의 코스 선택 하에 교육을 진행합니다. 안전에 최우선을 둔다.
▲일자별 교육 일정[8월 17일(6일차)]
시간
숙소이동
5:00~5:30 기상 및 체조 05:30~06:30 조식 07:00 각 조별로 담당 강사의 책임하에 출발
내용
16:00 암벽반 졸업식
● 무명봉 ● 삼형제봉리지 ● 2830 ● 채송아 향기 ● 에코 독주 ● 장군봉 장군97 ● 장군봉 히말라야 방랑자 ● 장군봉 기존길 ● 국립등산학교 산악박물관 방문 적 벽 ( 책임강사님의 코스 선택 하에 교육을 진행합니다. 안전에 최우선을 둔다. ) ( 암벽반에서 적벽 , 장군봉 , 울산바위 , 미륵장군봉 정상 등정을 목표로 삼았으면 합니다. ) ( 책임강사님이 암벽반에 꼭 전수해주고 싶은것을 마지막날 해주면 좋겠습니다. )
*** 코스 변경시 꼭 본부로 연락한다. ***
*코스에 사람이 있을 경우를 대비함.
2023년 47회 한국등산학교 동계반
▲기초 수직빙벽 교육 *일자 : 2023년 01월 07일~01월 08일 ( 토, 일 1박 2일 ) 2023년 01월 14일~01월 15일 ( 토 ,일 1박 2일 )*참가인원 : 한필석 교장, 이연희 교감, 허선무 대표강사, 김용태 사무국장, 임현주,박민구,박상천, 박명렬(이상 강사)
▲기초 설상 교육 *일자 : 2023년 02월 10일~02월 12일( 금,토,일 2박3일 ) *참가인원 : 한필석 교장, 이연희 교감, 허선무 대표강사, 김용태 사무국장, 임현주,박민구,박명렬 김영주(이상 강사), 주진영(지원강사)
이 쪽은 글자로 옮기지 못했습니다. 이북에서 보기
ASCENT
알피니즘의 살아 있는 전설 크리스 보닝턴의 등반과 삶!
영국의 위대한 산악인 크리스 보닝턴은 세계에서 가장 높고 거친 산들을 오르며 일생을 보냈다. 1962년 영국인 최초로 아이거 북벽을 올라 유명인사가 된 그는 히말라야로 눈을 돌려 안나푸르나2봉과 눕체를 오르고, 안나푸르나 남벽(1970년)과 에베레스트 남서벽(1975년) 원정대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등반역사 를 새롭게 썼다. 보닝턴은 새로운 자서전인 이 책에서 자신의 특별한 삶을 회고한다. 숨김없이 솔직하고 정직하며, 힘들게 얻은 지혜가 담긴 이 책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더불어 사선을 넘나들며 불굴의 정신 으로 등반에 바쳐온 그의 삶과 놀라운 모험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지은이ㆍ크리스 보닝턴(Chris Bonington) ㅣ옮긴이ㆍ오세인
에베레스트 정복
에베레스트 전설적인 초등 당시의 오리지널 사진집!
1953년 5월 29일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가이는 인류 최초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 섰다. 이 책은 에베레스트 등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면서 사진까지 찍었던 조지 로우가, 세계에서 가 장 장엄한 산에서 거둔 승리의 순간들을 찍은 뛰어난 독점 사진들과 개인 소장의 사진들을 모아 에베레 스트 초등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펴낸 책이다. 지은이ㆍ조지 로우(George Lowe), 휴 루이스 존스(Huw Lewis-Jones) ㅣ옮긴이ㆍ조금희
M4
산 - 그 4차원의 세계, 과학과 극한등반의 절묘한 콤비네이션
이 책에는 압축된 등반 역사를 제공하는 세계 최고의 산 13개가 등장하며, 이 산들의 역사적인 등반과 새로운 루트, 비극적인 실패, 기억에 남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이곳에는 에베레스트와 K2 같은 ‘8천 미터급 고봉’, 북미와 남미의 최고봉인 데날리와 아콩카과, 알프스의 마터호른과 몽블랑, ‘ 사람 잡아먹는 산’으로 악명 높은 낭가파르바트, 우슈바와 마셔브룸같이 덜 알려졌지만 도전적인 산이 등장한다. 산을 탐험해나가는 이정표는 산의 특성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지도, 인포그래픽, 프로필과 함 께 제공되며, 위치 사진과 과거 및 현재의 세계 최고 산악인들이 직접 쓴 보고서는 눈부신 자료를 완성한 다. 지은이ㆍ슈테판 데흐(Stefan Dech), 라인홀드 메스너(Reinhold Messner), 닐스 슈파르바서(Nils Sparwasser) ㅣ옮긴이ㆍ김동수
북조선의 산
일제강점기(1927~1942년) 한반도 등산 기록 사진집
이 책은 이야마 다쓰오가 현재 북한 쪽에 있는 산들을 대상으로 1927년 부터 1942년까지 산악 활동을 하면서 촬영한 사진들과 등반기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1993년 작고한 이야마 다쓰오의 사후 2년 뒤에 발간되었다. 이 책의 출간은 이야마의 숙원이었다. 고심해서 사진을 선정하고 정성을 들여 글을 다듬었 다. 수차에 걸쳐 책의 체제를 수정, 변경하여 그의 생전에 9할 정도는 진척시켜 놓았다. 이야마 사후 출 판사에서 그의 의도를 이어받아 남겨진 메모 등을 기초로 마무리하여 출판하였다. 엮은이ㆍ이야마 다쓰오(飯山達雄) ㅣ옮긴이ㆍ김장욱
해외 山冊을 전문적으로 번역 출판하는 하루재클럽은 북클럽의 운영을 통하여 열악한 山冊 번역서 발행여건을 주도적 으로 개선하여 좋은 번역서가 넘쳐나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북클럽 회원 가입으로 산악문화를 바꿀 수 있습니다.
하루재클럽에서 준비중인 책들
Pilgrims of the Vertical 『
( Joseph E. Taylor III Harvard University Press 2010
by Publisher 오세인
_
역자 _
Patagonia Vertical 『
Rolando & Dörte Pietron, Edited by Lindsay Griffin Garibotti(Author) Pata Climb; 1st edition 2013
by Publisher 권오웅
_
역자 _
『 Gary Hemming. Il ribelle delle cime
Mirella Tenderini(Author) Sentinel Rock Press (영어판) 2015
by Publisher 박명원
_
역자 _
The Calling 『
(A Life Rocked by Mountains)
Barry Blanchard 오승훈
by
역자 _
『臺灣登山史 』
(2013 )
년
by 대만등산협회 최유정
역자 _
북한산 하루재에서 인수봉을 바라보며 가진 산과 등반에 대한 경외심을 잊지 않는 산악인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하루재 북클럽 가입 신청 방법
(CMS 자동이체)
신청인 성명: 소속: 도서수령지 주소: E-Mail: 은행명: 예금주: 계좌번호: 예금주 휴대전화번호: 예금주 생년월일
』
)
요세미티 등반사
』
(Chalten Massif Climbing Guide)
』
(The Beatnik of the Alps)
(주민등록상의 앞6자리)
납부금액: 10,000원 납부일: 1일 25일 택일
매월 또는 중
』
위 내용을 문자(010-****-8005)로 보내주시면 간편하게 회원가입이 가능합니다. 감사합니다. 변기태
하루재 북클럽
배상
하루재 북클럽 회원가입 및 CMS 자동이체 신청서 235 자동 연결 QR code
글이 없거나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쪽은 뺐습니다. 이북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