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북으로 보기

26-1 감정, 공론장, 그리고 미디어 : 미디어리터러시의 또 다른 영역

이북 원문에서 글자만 옮긴 전체 텍스트입니다. 표·그림·사진과 원래 모양은 이북에서 확인하세요.

1쪽

이슈 리포트

감정, 공론장, 그리고 미디어 : 미디어리터러시의 또 다른 영역

박진우 건국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4 MEdiary

2쪽

감정과 미디어가 구현한 새로운 삶의 방식

‘감정’ 혹은 ‘정동(情動, affect)’은 최근 미디어 연구에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개념이다. 학계에서는 이러한 변화에 대해 미디어 연구의 ‘감정적 전환(emotional turn)’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이다. 이는 미디어 문화연구는 물론, 사회과학 전 반의 전체적인 좌표를 새롭게 설정하는 이론적 계기로 작동하고 있다. 이 문제를 미디어와 공론장이라는 관점과 결부시키는 일은 단순히 학술적 차원 의 관심사에 그치지 않는다. 미디어는 감정을 표출하고 실어 나르는 현대 사회의 불가피한 요소로서 기능하며, 이른바 미디어를 통해 감정을 교류하는 ‘감정 공론 장’의 존재 방식에 대한 우려 또한 나날이 커지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벌 어지고 있는 무수한 형태의 감정 표출 양상이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디지 털 미디어를 통해 관찰되는 일상적 소통 과정에서 뚜렷이 나타나는 감정 응어리 들이 그러하다. 한층 친밀한 감정 교류가 일어나는 비슷한 사람들 맞은편에는 타 자, 소수자, 정치적 반대 진영을 향한 적대적 증오의 언어들이 감정의 밀도를 높여 가고 있다. 어쩌면 우리 시대의 공론장으로서의 미디어는 생각의 교류 이전에 누구와 의견 을 교환할 것인지를 이미 느낌으로 알 수 있는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그리고 느낌 의 밀도는 극적으로 고조되고 있다. 나아가 미디어 스스로 이러한 느낌의 형성과 표출에 상당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미디어리터러시 차원에서 감정 공론장으로 서의 미디어에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중요한 관점의 전환이 요구 된다. 첫째, ‘감정’ 혹은 ‘정동’이라는 단어를 그 자체로 우리의 일상적, 사회적 삶을 이 해하는 중요한 키워드로 인식해야 한다. 감정은 이제 이성, 합리성과 나란히 사회 적 공론장을 작동시키는 또 다른 핵심 구성 요소이다. 둘째, 감정 표출은 그 자체 로 결코 수동적이고 개인적인 반응이 아니다. 감정에 대해 적절한 방식의 사회적 통제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멀리 서구 중심의 자본주의적 현대성(modernity)이 작동한 이래, 근대적 주체에게 꾸준히 요구되어 온 윤리적 덕목이었다. 이 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변함이 없다. 이러한 사실을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 시대의 디지털 감정 공론장과 그것의 일상적 표출 수단인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새로운 자세를 확립할 수 있다. 지금 떠오르고 있는 새로운 미디어리터러시는 이 같은 중요한 과제를 우리에게 제기하고 있다.

이슈 리포트 | 감정, 공론장, 그리고 미디어 : 미디어리터러시의 또 다른 영역 5

3쪽

감정과 사회, 감정과 공론장

01 마사 누스바움, 『감정의 격동 : 1. 인정과 욕망』, 조형준 옮김, 새물결, 2015, 69쪽.

‘감정’은 오랫동안 역사적으로, 또한 철학적으로 ‘공론장’이라는 용어와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다. 스토아학파 이래로 여전히, 감정이란 ‘생각(이성)과는 무관한 마 음의 움직임’이라는 지적 전통이 지배적이라는 이유와 관계있다. 감정은 흔히 매 우 개인적이고, 심지어 외로운 체험으로 이해된다.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도 느낄 수도, 가질 수도 없는 성질의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일반적으 로 감정 앞에서 지극히 수동적인 존재라고 생각하게 된다. 어떤 내적 충동이나 절 박함, 혹은 자아를 향한 무시무시한 강도의 충동이 일어나더라도 우리 대부분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인내하거나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왔다.01 20세기를 경과하면서 이러한 감정 표출은 자연스럽고, 때로는 창조적 영감의 원 천일 수 있다는 생각이 퍼져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창조성을 교육하고 심 지어 규율할 수 있다고 여기는 새로운 ‘미학 자본주의(aesthetic capitalism)’의 또 다른 장치라는 반론을 고려해야 한다.02 요컨대 감정이란 파도는 우리 일상에서 지극히 까다로운 윤리의 방파제를 넘어서기 어렵다. 그럼에도 현대 사회는 감정을 대중의 일상을 구성하는 사회성(sociality)의 요소 이자 미디어를 중심으로 구축되는 네트워크화된 공론장의 주요 요소로 인식하고 있다. 오늘날 감정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수의 연구들은 몇 가지 조건을 공유하 고 있다. 첫째, 감정이란 항상 어떤 대상과 관련되지만 그것이 자아에 항상 수동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감정의 대상은 ‘지향적 (intentional)’인 대상이다. 대상은 그것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진 사람이 바라보거 나 해석하는 바대로 감정 속에 나타난다. 그렇기에 감정은 어떤 형태로든 대상을 향한 믿음(belief)을 구성한다. 둘째, 감정과 정동의 문제는 이러한 대상 지향성의 관점에서, 주체나 대상을 넘어선 순환의 효과로 생산된다는 점이다. 사라 아메드 (Sara Ahmed)는 이를 ‘정동 경제(affective economies)’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곧 감정이 기호를 통해 순환하는 과정을 체계화된 사회적 단위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여기서 감정은 주체와 대상 간의 순환구조에서 도출되는 것이며, 따

02 Andreas Rechwitz. The Invention of Creativity : Modern Society and the Culture of the New, Polity(창의성의 발명 : 현대 사회와 새로운 정치의 문화). Polity. 2017.

6 MEdiary

4쪽

사라 아메드의 정동 경제. “사라 아메드의 감정 경제 이론은 기술 이 감정적 연결을 어떻게 촉진하는지 이해하는 데 중요한 렌즈를 제공한다. 감정이 내부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이 아 니라 오히려 감정 경제 내의 사람, 사 물, 공간의 노드 사이를 순환한다. 감정 은 이러한 개체에 붙어 우리의 지각과 관계를 형성하는 교환 네트워크를 만 든다.” 출처 : https://www.linkedin.com/ posts/mariam-menteshashvili_ sara-ahmeds-affective- economies-rethinking-activity- 7261685480730095616-SQsj

라서 본질적으로 사회성을 가진다는 점을 인식하는 일이 중요하다.03

감정 공론장, 혹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네트워크화된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의 일상적인 감정 교류와 그에 따른 ‘정동의 순환’ 전체가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그 체계는 우리의 예상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현대 사회, 혹은 현대성에서 이처럼 순환하는 감정의 기호들은 개인의 자발적인 조절 혹은 통제의 의도나 결과와는 무관하게 사회적 차원에서 산출되는 결과물로 서 존재한다. 이것은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고 통제하려는 개인의 노력이 반드시 의도에 부합하는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의미이다. 미디어는 분명히 우리의 행동을 이끄는 촉매제이지만, 오늘날 다양한 감정 기호 들이 표출되는 공론장으로서의 미디어는 감정의 사회성을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안내하지 않는다. 이 공간이 단지 극단적인 감정이 ‘여과 없이’ 표출되는 곳으로 받 아들여져서 문제인 것은 아니다. 미디어가 표출하는 감정 기호들은 오늘날 수많 은 일상적인 감정의 스펙트럼 대신에 훨씬 단순하고 집약된 감정, 즉 ‘최고예요’와 ‘극혐’이라는 양극단을 오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훨씬 문제적이다. 혐오와 증오의 언어는 디지털 미디어 공간에서 이미 ‘평범성(banality)’을 획득 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널리 확산되어 있다. 이를 단지 ‘사유하지 않는 시민 들’에게서 나타나는 지적·정신적 게으름의 징표쯤으로 여겨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그와 반대이다. 지성의 소유자일지라도 일단 디지털 공간에 들어서면 따르지 않

03 사라 아메드, 『감정의 문화정치 : 감정은 세계를 바꿀 수 있을까』, 시우 옮김, 오월의봄, 2023, 38쪽.

이슈 리포트 | 감정, 공론장, 그리고 미디어 : 미디어리터러시의 또 다른 영역 7

5쪽

지금 미디어 이용자에게 필요한 역량은 무엇인가?

8 MEdiary

을 수 없는 공간 내 지배 논리에 가깝다. 그것은 물결에 휩싸이는 것과 흡사하다. 그 과정에서 혐오와 증오로 집약되는 감정이 점차 이를 실현하는 폭력적 행동으 로 장차 나아갈 수 있게 한다. 디지털 공간이 양심의 망설임과 주저를 무화시키고 무감각하게 만드는 언어적 실행 장치(practical device)로 변모하고 있다. 이러한 장치는 감정 공론장의 작동을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물들인다. 이런 식 으로 이미 전 세계 많은 나라에서 혐오와 증오의 감정이 정치적인 측면에서 자신 들의 정체성은 물론, 사회적·국가적 정당성까지 구성해 낼 수 있는 주요한 이데올 로기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 역시 디지털 미디어리터러시 현장에서 일상적으 로 목격되는 무수한 폭력적이고 증오에 찬 언어와 기호들이 보이는 공통된 정치 속성이다. 그와 반대로 감정 공론장의 또 다른 한편에는 힐링, 위로, 치유의 기호들이 넘쳐 흐른다. 우리는 사실 ‘좋다’는 감정은 그 표현이 조금 지나치더라도 별달리 문제 되 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힐링이란 결국 마음의 상처나 고통, 삶의 힘겨 움을 현실로 인정하고, 이의 사후적 해소를 호소하는 것이다. 20세기 이래, 우리가 심리학의 학문적 장치나 여기에서 파생된 감정관리산업의 영향하에 그 해소 방안 을 찾아내는 공학적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 과정은 ‘좋다’라는 감정을 무매개적으로 적극 표출하는 것을 관습화시키는 데 에서 시작한다. 각종 팬덤 문화에서 보이는 적극적인 애정 발언, 애호와 애착의 정 서는 그런 면에서 힐링과 행복을 추구하는 또 다른 극단적인 미디어 이용 방식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증오와 혐오의 감정을 폭력적으로 표 출하는 정반대편에서 이루어지는 극단적인 감정적 기호의 표출 양상에 해당한다.

여기에서 하나의 질문이 생성된다. 사실상 극단화된 감정에 지배된 감정 공론장 으로서의 미디어에 대해 우리가 어떤 역량을 어떻게 키워나가야 할 것이냐의 문 제이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다종다양한 소셜 미디어 서비 스가 갖는 속성이 인간의 지성이나 이성보다는 느낌과 감성에 훨씬 잘 맞는 측면 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우리의 일상적 감정을 수십, 수백 개 아이콘으로 기호화시키고 이를 전면적으로

6쪽

다양한 감정 기호가 표출되는 공론장으로서의 미디어는 감정의 사회성을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안내하지 않는다. 극단적인 감정이 ‘여과 없이’ 표출되어서 문제인 건 아니다. 미디어가 표출하는 감정 기호들이 수많은 일상적인 감정 스펙트럼 대신에 훨씬 단순하고 집약된 감정, 즉 ‘최고예요’와 ‘극혐’이라는 양극단을 오가고 있기 때문이다.

순환시키는 이모티콘의 작동, 나날이 짧아지고 이미지화되고 있는 생각 표현 도 구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좋아요’, ‘싫어요’의 이분법을 통해 데이터화되고 축 적되는 감정 공론장의 표현 방식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인간 존재 전체를 미디어 가 지배하는 신체라는 틀 속에 집어넣고 있다. 이러한 인식으로부터 길어 올린 우리의 과제는 결국, 디지털 미디어를 통한 감정 표출 행위가 현대 사회의 양극화된 감정 구조를 작동시키는 실행 장치로서 변모 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성찰적으로 들여다보는 일이 될 것이다. 미디어는 어떤 형태로든 이러한 생각을 이끄는 행동의 도구, 감정 기호들을 표출하고 작동 시키는 ‘행위의 지휘자(conductor of conducts)’로서의 속성을 뚜렷하게 보여주 고 있다. 우리는 이 과정을 냉철하게 관찰해야 한다. 그 속에서 네트워크화된 디지털 미디어가 제시하는 감정의 이분법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 좀 더 구체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소셜 미디어를 통한 이분화된 감정 표출과 그 ‘비대화’는 팬덤 문화와 혐오 표현을 궁극적인 귀결 점으로 삼고 있다. 그러한 비대화와 양극화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새로운 미학적 자본주의를 구현하고 그 속에서 창조적 주체들을 양산해 나가는 시대적 변화와 직결되어 있다. 이러한 사정과 맥락을 고려할 때 소셜 미디어상의 행동을 과거와 같은 윤리 교육 이나, 혹은 이들 모두를 잠재적 범죄자로 상정하고 더 강력한 규제와 제도를 도입 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 모두 이 사실에 동의할 것이다. 규제와 억압은 그 효과도 불분명하지만 그것을 심리적 알리바이로 삼아 우리가 지금 아 무것도 하지 않고 손 놓고 있다는 사실을 은폐하게 되기에 더욱 문제적이다. 이런 알리바이 속에서 무수한 백래시 현상이 예기치 못한 모습으로 영화 속 주인공 ‘조 커’처럼 우리 삶의 영역에 지속적인 충격을 가할지 모른다.

이슈 리포트 | 감정, 공론장, 그리고 미디어 : 미디어리터러시의 또 다른 영역 9

7쪽

10 MEdiary

디지털 시대의 미디어리터러시는 이러한 과제와 도전에 직면해 있다. 리터러시 의 새로운 과제는 혼돈 상황에 처한 영화 속 주인공들이 그러했듯이 우리도 ‘조커 따위에게 결코 질 수는 없다’는 의식을 지속적으로 쌓아가는 일이다. 리터러시의 첫걸음이 그러한 감정 표현의 기호를 생산하는 소셜 미디어의 새로운 장치 작동 방식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감정과 그것의 극단적 표출, 이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을 결코 인류의 오랜 관습 이라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시대적이고 정치적인 차원에서 자리매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디지털 미디어리터러시는 감정을 표출하는 공간이자 감정을 이끄는(conduct) 기호들의 총체가 될 것이다. 미디어에 대해 한층 날카로 운 이해를 조성하고 시민들의 필수적인 역량으로 축적할 수 있도록 관련 도구들 을 준비해나가야 할 것이다.

글이 없거나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쪽은 뺐습니다. 이북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