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 가정: 미디어를 둘러싼 갈등과 협상, 조정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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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리포트
홍남희 서울시립대학교 도시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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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미디어를 둘러싼 갈등과 협상, 조정의 공간
가정과 기술에 대한 상상
미국 작가 래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는 SF 소설 『대초원(The Veldt)』에서 자동화 알고리즘이 내장된 사물인터넷과 로봇이 배치된 미래의 어느 가정 생활을 그린다. 이 책은 1950년에 처음 출간되었다. 그 당시에 작가가 상상한 미래의 집 은 ‘해피 라이프 홈’이라는 자동화 시스템에 의해 귀찮은 집안일에서 해방된 공간 이다. 예를 들어 로봇이 직접 계란을 깨어서 프라이 요리를 해주고 부부의 잡다한 가사노동을 덜어준다. 아이들 또한 상상한 대로 현실이 되는 ‘너서리(nursery)’라 는 방에서 부모의 돌봄이 없어도 마음껏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문제는 이 방에 대한 아이들의 집착이 심해지는 것이었다. 어느 순간, 너서리는 아프리카의 사나운 맹수들이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잔인한 ‘대초원(veldtland)’으 로 바뀌어 있다. 방에는 죽음과 피, 어둠의 공기가 흐른다. 부모는 전문가를 불러, 아이들이 점점 이상해지는 원인이 이 집을 잠식한 기계 시스템에 있다는 ‘진단’을 받는다. 전문가의 처방대로 집 안의 모든 전원을 끄고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떠 나기로 결정한다. ‘해피 라이프 홈’ 시스템 덕분에 고된 부모 역할과 일상적인 집안일로부터 해방 된다. 하지만 아이들과의 접촉을 기계가 모두 대체하면서 점점 무력해지는 기분 이 든다. 한편, 너서리의 ‘끊임없는 자극’과 ‘편향된 상상’을 반복하던 아이들은 이 제 기계 없이는 살지 못하는 강박 증세를 보인다. 1950년 당시, 이 소설은 먼 미래에 대한 상상과 은유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부모 세대가 우려할 만한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로 들린다. 기 계와 함께 자라난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기대와 불안감, 기계와 아이들, 부모와의 갈등과 협상이 집집마다 일상처럼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Ray Bradbury. The Veldt. Creative Co.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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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미디어 이용 우려에 대한 개별적 접근
01 한국언론진흥재단(2023), 「2023 어린이 미디어 이용 조사」 02 앞의 책, 95~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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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기술을 둘러싼 가정 내 갈등은 디지털 이주민 세대인 부모 및 양육자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인 자녀 간의 세대 차이를 드러낸다. 소니아 리빙스턴과 얼 리샤 블럼-로스(Sonia Livingstone & Alicia Blum-Ross)는 『디지털 세대의 아날 로그 양육자들(Parenting for Digital Future)』에서 부모 세대의 기술에 대한 희망 과 공포가 육아 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한다. 분명한 것은, 기술 활용에 대한 장려도, 기술 이용에 대한 일상적인 통제 관리도 모두 자녀에 대한 사랑이라 는 ‘선의’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수용자 조사인 「2023 어린이 미디어 이용 조사」의 결 과에 따르면, 많은 보호자들이 ‘아이의 스트레스 해소 혹은 기분 전환을 위해 서’(58.5%), ‘아이가 할 일을 다 했을 때의 보상으로’(41.4%) 자녀에게 유튜브 이용을 허용한다고 밝혔다. 유튜브는 ‘새로운 정보 이용과 학습에 도움’이 되기 도 하고(30.6%), ‘보호자가 자녀에게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수 단’(22.4%)으로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보호자는 대체로 미디어를 이용하는 시간 동안 아이 옆에 함께 있거나, 아이가 시청하는 콘텐츠를 주기적으로 확인하는 방
식으로 아이의 미디어 이용을 관리하고자 했다. 01
그러나 이런 방식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곧 한계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부모가 시간을 투자하는 일이 어려워지거나 자녀의 미디어 이용 수준이 부모의 수준을 능가하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따라서 기술은 육아 담론에서 “문제와 해결 책의 지위를 동시에 갖는다”02. ‘노 키즈 존’까지 생겨나는 등 어린아이에게 관대하 지 못한 한국의 사회적 맥락에서 자녀를 공공장소에서 조용히 시키는 가장 빠른 방법으로 스마트폰이 쓰인다. 그런가 하면, 자녀의 지나친 스마트폰 이용과 중독 을 우려한 보호자들은 비밀번호 설정, 콘텐츠 제한(필터링), 미디어 관리 프로그램· 앱 설치 등의 기술적 방법을 활용해 자녀의 미디어 이용을 관리한다. 이러한 사례 는 아주 흔하다. 그러나 자녀의 미디어리터러시는 늘 부모를 능가하기 때문에 이 러한 통제 중심의 접근법은 한계가 있다. 자녀의 미디어 이용에서 다소 문제적인 사례도 발견되고 있어 부모의 걱정은
한국언론진흥재단(2023), 「2023 어린이 미디어 이용 조사」
더 커진다. 보호자들은 자녀의 미디어 이용 시, ‘부적절한 언어’(54.7%)와 ‘무분별 한 광고에의 노출’(52.2%)을 가장 많이 걱정했다. 그러나 부모가 ‘미디어리터러 시(media literacy)에 대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경우’(58.2%)가 더 많은 것으 로 밝혀졌다. 보호자들은 인터넷상의 정보나,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유치원·학 교나, 가족 또는 친구에게서 미디어 이용 지도를 위한 정보를 얻고 있다고 답했다. 미디어 이용과 관련된 정보나 조언을 전혀 받지 않은 경우도 16.2%에 달하는 것 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보호자가 자녀의 미디어 이용은 물론, 그 에 대한 우려와 불안 또한 상당히 개별적인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한국 사회에 자녀 양육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채널A 프로그램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면, 보호자와 자녀 간에 미디어를 매개로 한 가정 내 갈 등이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미디어 이용 중독과 ADHD의 연관성, 게임 중독과 다 양한 폭력적 징후와의 관련성, 단순히 학업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게임 플레이를 ‘게임 중독’으로 비난하는 부모 등이 주요 사례이다. 다양한 가정 내 미디어 매개 갈등에 대해 많은 보호자들이 사용하는 스크린 타 임(이용 시간) 관리는 자녀의 미디어 이용 경험과 그 의미, 맥락에 대한 이해를 제 거하고 비민주적 관계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비판에 직면해 있다. <금쪽같은 내 새 끼>의 의뢰인 사례에서도 보듯이, 양육자와 자녀의 관계는 미디어 자체보다는 미 디어를 매개로 갈등으로 나타난다. 대다수 미디어 중독, 과몰입 등은 부모의 무지
나 무관심, 정서적 지지나 감독의 부재 등에서 비롯한 것으로 나타난다.03
03 김지윤(2024), 『아이들의 화면 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사이드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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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필요성과 미디어 공간의 상업성에 대한 이해
04 Livingstone, S. (2009). Children and the Internet. Polity.
아동과 미디어를 계속 연구해온 소니아 리빙스턴은 자녀 세대에게 디지털 환 경은 이들이 접하는 ‘콘텐츠의 내용(content) 특성’을 넘어, ‘어떤 접촉과 만남 (contact)을 만들어내고 어떤 행위(conduct)를 유발하는가?’의 수준으로 질문을 확장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국가의 규제가 어 려워졌고 광고와 콘텐츠의 경계도 불분명해졌다. 정보의 신뢰성을 늘 확인해야 하는 여러 상황에서 부모의 개별적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소비자’로 호명되 는 아동은 매체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상업적인 환경으로 휩쓸려 갈 수
있다.04
이러한 매체 환경에서 많은 보호자들의 고민은 자녀가 미디어 공간에서 어떻게 안전을 확보하고 긍정적인 경험을 강화할 수 있느냐에 있다. 실제로 디지털 환경 이 청소년기의 충동성과 즉흥성을 더 자극하고 산만함을 독려하면서 또래문화의 자극적인 실천들을 확장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05 소설 『대초원』의 아이들이 계속 잔인한 장면과 죽음의 초원, 맹수를 떠올리듯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보는 자 녀 또한 특정 관심사를 둘러싸고 끊임없는 ‘추천’과 극단화된 정보의 덫에 빠져들 게 된다. 실제로 2021년에 메타의 전 직원이었던 프란시스 하우젠(Francis Haugen)은 인스타그램의 작동방식이 청소년의 정신건강을 해친다는 사실을 사내 연구에서 확인하고서도 회사가 이를 무시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검색 알고리즘을 변경하 면 인스타그램 이용자들의 접속 시간이 감소하기 때문에 인스타그램의 유해성을 알면서도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전 직원의 폭로로 화제가 된 이후, 인스타그램은 십대 청소년이 한 가지 유형의 콘텐츠에 집착하지 않도록 다른 주제로 유도하는 기능을 도입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제한적이었으며, 여전히 많은 십대들이 나이를 속이는 방 식으로 인스타그램을 이용하고 있다. 미국 41개 주정부는 인스타그램이 과도한
중독성을 갖도록 설계되어 있어 십대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06
메타의 엔지니어링 디렉터이자 고문으로 일한 아르투로 베자(Arturo Bejar)는
05 니콜라스 카(2020),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The Shallows : What the Internet Is Doing to Our Brains)』, 최지향 역, 청림출판 06 김세민 기자(2024. 3. 26), “플로리다주, 내년부터 14세 미만은 ‘인스타’ 못한다”, 《한국경제》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403267097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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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 전 직원이자 컨설턴트인 아르투로 베자 * 출처 : Associated Press
2021년 미국 의회 상원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경영진이 의도적으로 청소년 정신건강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실제로 베자의 14세 딸이 인스타그 램에서 성적 메시지를 받은 사건을 계기로 베자는 이 문제를 연구하여 그 결과를 상부에 보고했지만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07 메타의 CEO 마 크 저커버그가 국회에 자주 불려오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아동 및 청소년의 신체 적·정신적 건강을 해치는 주요한 원인으로 인스타그램의 유해성이 지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인이 각자 미디어리터러시를 습득하고 변화하는 미디어 환 경에 발빠르게 적응하여 디지털 문맹을 탈출하는 것이 해법일 수 있을까? 이러한 각개전투를 넘어, 테크 기업이 디지털 공간을 더욱 안전하게 만들도록 책임을 부 과해야 한다는 논의가 부상하고 있다. 공공성을 상실한 미디어 환경에서 청소년 을 주요한 소비자로 포획한 테크 기업이 이들의 정신적·신체적 건강과 안전한 디 지털(Digital Safety) 공간 조성을 위해 다양한 방면의 노력과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07 민경환 기자(2023. 11. 8.) “딸 향한 성적 접근에 분노한 아버지의 고발…인스타그램, 청소년 문제에 손놨다”, 《세이프타임즈》 https://www.safetimes. 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9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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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경험에 대한 대화와 소통
영국과 호주는 ‘온라인 안전’에 대한 법안을 마련하여, 아동의 온라인 경험이 안 전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다양한 조치들을 시행하고 있다. 특히 영국의 ‘오프컴 (Ofcom: Office of Communications)’은 자녀의 온라인 안전을 위해 우려되는 부 분을 계속 말하고 경청하는 소통의 작업이 필수라고 주장한다. 스크린 타임이나 부적절한 웹사이트를 차단하는 부모의 기술적 활용 방안을 포함해, 아동의 실제 나이를 반영하는 프로필로 부적절한 콘텐츠 접촉을 막는 방법, 적절한 스크린 타 임 습관과 온라인 유해 콘텐츠 신고법 등을 교육하는 방식으로 건전한 디지털 롤
모델을 제안한다.08
호주의 ‘이세이프티 커미셔너(eSafety Commissioner)’는 양육 가이드로 보호자 와 자녀가 대화를 통해 디지털 공간에서 안전이 우려되는 경험을 함께 나누라고 제안한다. 온라인에서 걱정되는 내용의 콘텐츠를 본 적이 있는지, 다른 사람의 사 진을 온라인에 게시하기 전에 허락을 구했는지, 온라인의 내 사진을 다른 사람들 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어떻게 온라인에서 가짜를 구별할 수 있는지, 누 가 내게 접촉하고자 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온라인에서 친구가 못되게 굴 때 어 떻게 대응할지, 온라인에서 부당한 사건이 발생하면 누구를 찾아갈지 등이 여기 에 포함될 수 있다. 이렇듯 아동·청소년의 디지털 공간과 일상 경험에 대한 구체 적인 질문들은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게 해준다. 이세이프티 커미셔너는 온라인 게임, 아동에 대한 성적 접근, 사이버불링 등 자녀에게 벌어질 수 있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보호자 가이드를 제시한다. 09
영국과 호주 사례에서 공통된 점은 보호자와 자녀가 디지털 경험에 대해 ‘대화’ 하고 ‘소통’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디지털 기술은 다양한 색깔을 갖고 있다. 육아를 대체하는 파트너인 동시에 또한 자녀의 공부 시간과 심신의 건강을 해치는 ‘악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세대마다 다른 관심사, 각기 다른 상품의 소비자로서 우리의 디지털 경험은 매우 개별화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화와 소통은 사소해 보이 지만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상호이해의 수단이 된다.
08 Ofcom. “Tips for keeping your kids safer online.” How the Online Safety Act will help to protect children. 검색일 : 2024. 6. 19. https://www.ofcom.org.uk/online-safety/protecting-children/how-the-online-safety-act-will-help-to-protect-children/ 09 https://www.esafety.gov.au/parents/resources/online-safety-for-every-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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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호주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안전한 디지털 환경을 조성하는 직접 적인 주체는 테크 기업이라고 볼 수 있다. 대중의 미디어 이용을 특정 방식으로 유 도하는 테크 기업의 사회적 역할은 시민들 각자가 익혀야 할 미디어리터러시보다 더 근본적이다. 온라인 안전법을 마련한 국가들은 모두 민간 기업인 디지털 플랫 폼 사업자에게 안전한 기술 설계, 피해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과 구제 등 법 제도적 책임을 부과하려고 한다. 생성형 인공지능을 비롯해, 새로운 기술 작동방식을 스스로 배우고 익혀야 한다 는 이 각자도생의 미디어리터러시 너머 더 멀리 시선을 두어야 한다. 개별화된 매 체 환경에서 각자가 겪은 경험을 공유하고, 그것의 어려움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디지털 안전의 울타리를 넓혀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디지털 환경을 ‘안전하게’ 만 들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함께’ 찾기 위해 노력하는 작업이 요청된다. 그 방법 은 가정에서 대화와 소통과 함께 각자의 디지털 경험을 공유하고, 나아가 문제의 해결을 위해 테크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는 데 있다.
이슈 리포트 | 가정―미디어를 둘러싼 갈등과 협상, 조정의 공간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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