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연구 창간호(1집)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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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2016년 8월에 발족한 「대행선연구원」은 대행선사의 생애와 사상을 통해 선사께서 증험한 수행과 깨달음의 길을 제대로 드러 내고 체계화하여 그것을 미래 세대에게 전하는 중요한 소임을 띠 고 결성되었습니다. 그 시작으로 두 번째 학술대회를 개최하였고
계절발표등 대행선연구 불교 진흥 사업을 통해 이루어지게 될 것 입니다. 또한 1회 학술대회의 논문에 2편의 논문을 더해 학술지 한마음 연구 창간호가 출간됐습니다. 좀 이른 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많은 대중이 함께 공부해나갈 수 있는 인연이 닿기를 발원하며 여러분 앞에 이렇게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대행선연구원」에서 매년 학술대회를 개최할 수 있는 밑거름 이 되는 것은 스님께서 걸으신 길과 그 가르침이 다각적인 방면에 서 학자들에 의해 조명됨으로써 이 세상이 한마음의 이치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임을 사람들에게 일깨워주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500여 년 전 석가세존의 깨달음이 마음과 마음으로 전승되어 왔다고 하지만 많은 사람이 만유불성의 진리를 믿지 못하고 그 본 질을 경전의 글자로써 익히려 하는 현실에, 스님께서는 일찍이 나
를 형성시킨 근본이 우주를 형성시킨 근본과 같으며 글자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맛보고 굴림으로써 자성 부처의 지혜로 드 러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마음이 본래 번뇌와 보리 의 차별이 없으며 번뇌 또한 보리를 밝히는 밑거름이 되어주는 것 이니 오직 자신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번뇌를 재료로 하여 자성에 따르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인
공 관법입니다.
또한 “불성은 오직 하나라는 의미에서 한마음이요, 너무나 커서 한마음이요, 전체라서 한마음”이라 하셨습니다. “나누어 둘로 본다 면 절대 한마음을 알 수도 볼 수도 없는 것이다. 자꾸만 나누는 데서 한마음을 구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포용하는 데서 한마음 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같은 진리가 관련 분야에
인연 맺은 많은 학자의 적극적인 참여로 학문적으로 잘 정립이 됨 으로써 더욱 빛을 낼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새롭게 간행되는 한마음연구 가 시대와 문명의 급격한 변화 속 에서 변치 않는 불법의 등불을 밝히고, 시대와 호흡하여 분열된 인류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연구서가 되길 바랍니다. 훌륭한 연구자들의 좋은 논문이 발표되어서, 공부하는 연구자들에게도 이
익이 되고 불교학계에도 이익이 되며 나아가 더불어 함께 살아가
는 모든 이들에게 참다운 이익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한마 음연구 의 발간을 위해 애쓰시고 도움 주신 모든 분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재)한마음선원 이사장 혜수 합장
목차
발 간 사 02
대행선이란 무엇인가?
•한마음을 요체로 한 대행선에 관하여 이평래(충남대) 10
특집논문
•대행의 행적에 나타난 혁신불교 김광식(동국대) 56 •대행선 형성의 사상적 배경 … 본래성불사상과 관련하여 … 김호귀(동국대) 94
•대행의 한마음사상에 나타난 교리적 근거 고찰 박소령(동국대) 132 •대행의 오공의식에 나타난 사상적 특징과 연원 고찰 차차석(동방문화대학원대) 174
기 •대행선에 관한 일고 … 『한마음 요전』을 중심으로 … 고 강문선(혜원, 동국대) 214 논 •대행 ‘주인공主人空’에 대한 일고찰 문 이덕진(전 창원문성대) 258
•묘공당 대행선사 생애와 연보 318 •대행선연구원 정관 334 •『한마음연구』 편집 규정 345 •『한마음연구』 논문 심사 및 게재 규정 347 •『한마음연구』 논문 및 각주 작성 요령 351 •대행선연구원 윤리 규정 및 규정 운영 359 •대행선연구원 활동 일지 367 •대행선연구원 운영진 370 •Contents 371
휘보彙報
특•집•논•문
대행선이란 무엇인가?
이평래 (충남대) 한마음을 요체로 한 대행선에 관하여 - 김광식 (동국대) 대행의 행적에 나타난 혁신불교 - 김호귀 (동국대) 대행선 형성의 사상적 배경 … 본래성불사상과 관련하여 … - 박소령 (동국대) 대행의 한마음사상에 대한 교리적 근거 고찰 - 차차석 (동방문화대학원대) 대행의 오공의식에 나타난 사상적 특징과 연원 고찰
Ⅳ. 나오는 글
한마음을 요체로 한 대행선에 관하여
이평래 (충남대)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이며, 한마음을 닦아 그것을 성취하여, 모 든 생명체를 이롭게 하는 삶을 삶으로써 평화로운 불국정토를 구 현함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무아이고, 공성을 특성으로 하는 철학/
종교인 불교는 실체의 존재를 부정하는 철저한 반형이상학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무아이며 공성이므로, 모든 존재는 변화를 특 성으로 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실체가 아닌 현상이므로 저 홀 로는 있을 수 없으며, 저 홀로는 있을 수 없으므로 남에게 의지해
야 존재할 수 있는 것이 현상의 실상이다. 샤끼야무니 붓다는 이 와 같은 실상을 연기의 법칙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한마음을 닦아 진리를 깨달은 대행은 한국이 낳은 진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태어남에 따라서 존귀한 사람이 되거나 비천한 사
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까르마(karma, 業)를 어떻게 짓는가에 따라 서, 존귀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비천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샤끼야무니 붓다의 말씀처럼, 대행은 그의 삶이 진인임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주창한 선을 대행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디아에는 수천 년 전부터 슈라마나의 길을 닦는 전통이 형성 되어 오늘날까지도 그와 같은 수행법이 이어지고 있다. 인류의 종 교사에 있어서 그 대표적인 슈라마나는 샤끼야무니 붓다이다. 현 대 한국에서 출현한 대행도 이와 같이 슈라마나의 길을 닦아 깨달 음을 얻은 수행자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중국 선종의 전통을 답습하는 재래의 배화사상인 사대주의 적 선풍이나, 스승으로부터 인가를 받아야 한다는 고루한 관습을
모두 거부해버린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재래의 법통계승이란 타율 적이고 수동적인 인습에 얽매이지 않고, 전통적인 수행의 작법을 뛰어넘어, 자신만의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수행법으로 깨달음을 성 취하여 독창적인 대행선풍을 정립한 것이다.
이와 같이 대행은 몸과 마음을 다 받쳐 진실하고 정직하게 슈라 마나의 길을 닦은 끝에 한마음을 깨닫고 드디어는 중생을 이롭게 하려는 발원을 한 것이다. 그 결과 가히 교단(gaṇa, 敎團)이라 하여 도 모자람이 없을 만큼 훌륭한 성전인 한마음선원을 구축한 것이 다.
[주제어]
깨달음, 슈라마나, 한마음, 샤끼야무니 붓다, 대행, 대행선, 진여, 법신
묘공당妙空堂 대행선사大行禪師가 깨달은 한마음(ekacitta, 一心)은 진 여 법신(tathatā dhamakāya, 眞如 法身)이다.1) 다시 말하면 한마음은 진 리이고, 불성⋅여래장이며, 법계이고, 진공묘유이며, 한우주이다. 한 마음은, 너무나 커서 겉이 없는가 하면, 너무나 작아서 속이 없다. 너무나 높아서 끝이 없는가 하면, 너무나 깊어서 밑이 없다. 한마음
은 유와 무, 유루와 무루, 유위법과 무위법, 속제와 진제, 윤회 (saṃsāra, 輪廻)2)와 니르와나(nirvāṇa, 涅槃)3), 번뇌(kleṣa, 煩惱)와 보디
1) 대행선사의 구체적인 생몰은 다음과 같다. (1927, 01, 02 [양력 02, 03] - 2012, 04, 02 [양력 05, 22]). 이하 묘공당妙空堂 대행선사大行禪師를 ‘대행’으로 표기. 2) [SED]p.1119b saṃsāra saṃ-√sṛi to flow together with; to go about; undergo transmigration; to cause to pass through a succession of states. saṃsāra m. going or wandering through, undergoing transmigration; circuit of mundane existence, metempsychosis. 영혼의 재생, 윤회
3) [SED]p.557b nirvāṇa nir-√vā to blow(as wind)(바람처럼 불다); to cease to blow(부는 것을 멈추다); to be blown out or extinguished; to put out(끄다). nirvāṇa n. extinction of the flame of life(생명의 불꽃을 끄는 것), dissolution (죽음), death or final emancipation from matter and reunion with the Suprime Spirit(최고의 신과의 재결합, 물질로부터의 해방, 이탈); (with Buddhists and Jainas) absolute extinction or annihilatioon (=śūnya) of individual existence or of all desires and passion(불교나 자이나교에서는, 개인 적인 존재의 소멸, 적멸, 또는 모든 욕망과 열정의 소멸); perfect calm or happiness, highest bliss.(평정이나 행복, 최고의 행복). 그러므로 nirvāṇa는 본디 사라져버리는 것, 생명의 빛이 꺼져버리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이 불교사 상을 드러내는 용어로 수용되면서 완전한 해탈을 의미하게 된 것이다. 한역경전에 서는 涅槃, 涅槃那, 泥洹이라고 음사하며, 滅, 寂滅, 度, 圓寂, 無爲, 無生, 無作 등 이라고 번역한다. 탐욕rāga⋅성냄dveṣa⋅어리석음mohā의 三毒tri-viṣaṃ을 소멸하 여 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진리를 체득한 경지를 의미한다.
(bodhi, 깨달음), 무명과 진여, 차안과 피안, 지옥과 극락을 걸림 없이 넘나드니,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무애자재이다. 불교가 목표로 하는 최고의 가치는 무엇인가? 깨달음이며, 한마
음으로 그것을 성취하여 홍익중생弘益衆生해서 모두 함께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자는 것이다. 불교는 실체의 존재를 부정하는 철학/종 교이므로, 반형이상학적이며, 무아無我이고, 공성空性을 특성으로 한다. 샤끼야무니 붓다(Śākyamuni-Buddha, 釋迦牟尼佛)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 무아이며 공성이므로, 존재하는 모든 것은 모두 변화하
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실체가 아닌 현상이므로 저 홀로는 있을 수 없으며, 저 홀로는 존재할 수 없으므로 남에게 의지해야 존재할 수 있으니, 이것이 현상의 실상實相이다. 샤끼야무니 붓다 는 이와 같은 실상을 연기의 법칙이라고 가르친 것이다.
불교처럼 고정된 실체를 부정하면, 다시 말해서 힌두교의 신인 데와(Deva, 神), 기독교의 신인 가드(God, 神) 또는 이슬람교의 신인 알라(Allah, 神)와 같은 신을 믿지 않으면서도, 인간을 어떻게 구제한 다는 말인가? 한마음을 주인공으로 삼아 니르와나(nirvāṇa, 涅槃)를
성취함으로서, 모든 중생을 제도하여 평화로운 세상을 구축한다는 평화사상을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샤끼야무니 붓다는 모든 중생에 게 깨달음의 문을 활짝 열어 놓으신다. “모든 중생은 모두 불성을
가지고 있느니라(一切衆生悉有佛性)!”4)
한마음으로 진리를 깨달은 대행은 한국이 낳은 진인眞人이다. 제 가 제 값을 매기는 것이 삶의 도리이다. 태어남에 따라서 귀한 사
4) 大般涅槃經 (T12-769a01) “一切衆生定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故. 是故, 我說一切衆生悉有佛性”
람이 되거나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까르마(karma, 業)를 어떻게 짓는 가에 따라서, 존귀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비천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샤끼야무니 붓다의 말씀처럼5) 대행은 그 의 삶이 진인임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주창한 선을 대행선
大行禪이라고 부른다. 위대한 생명체인 한우주6)의 모든 만물만생이 한마음으로 살기 때문 에, 한마음 마음은 주인공이며, 요체인 것이다. 이것은 거짓이 아니라
틀림없는 진실이라는 것을 샤끼야무니 붓다는 다음과 같이 읊으신다.
5) Sutta-nipāta (The Sacred Books Of The Edited. By F. Max Mŭller) “Not by birth does one become an outcast, not by birth does one become a Brâmana; by deeds one becomes an outcast, by deeds one becomes a Brâmana. (135)” 6) 阿毘達磨俱舍論 (T29-062a12) 제12권 제3 分別世品의 5에 의하면, 우주가 성립되었다가 파괴되었다가 하는 것 을 반복하여 순환하는 네 시기를 가리킨다. 우주가 성립하고, 유지하며, 파괴하 고, 완전히 분해되어 空漠으로 바뀌었다가, 다음의 우주가 다시 성립할 때까지 의 과정을 네 기간으로 나누어서 관찰한 것이다. 불교의 우주관은, 우주가 변함 없이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도 생명체이므로 끊임없이 변화의 길을 걷 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① 성겁(vivarta-kalpa, 成劫)은 우주가 성립하는 기간으로서, 산하⋅대지⋅초목⋅ 星群 등의 기세 간과 중생세간이 성립하는 시기이며, 그 기간은 20 小kalpa로 치고 있다. ② 주겁(sthiti-kalpa, 住劫)은 우주가 존속하는 기간으로서, 앞에서 성립한 우주 가 안온한 상태로 이어지는 시기이며, 그 기간은 20 小kalpa로 치고 있다. ③ 괴겁(saṃvarta-kalpa, 壞劫)은 우주가 파괴되는 기간으로서, 중생세계가 먼저 파괴되고 다음에 기세계도 모두 파괴되어 버리는 시기이며, 그 기간은 20 小 kalpa로 치고 있다. ④ 공겁(saṃvarta-sthāyin-kalpa, 空劫)은 우주가 완전히 분해된 空漠의 기간으 로서, 파괴가 완전히 모두 끝나버려 더 이상 파괴될 것이 없는 시기이며, 그 기간은 20 小kalpa로 치고 있다. 네 시기는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으므로, 이것을 근거로 하여 우주는 끊임없는 변화하는 것으로 보 며, 변화하기 때문에 생명체로 규정하는 것이다.
마음은 모든 것의 근본이다. 마음은 주인으로서 모든 일 시키나니, 나쁜 마음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면 괴로움이 그를 따르리라. 수레바퀴가 마소의 발자국을 따르듯이.(제1게송)
마음은 모든 것의 근본이다. 마음은 주인으로서 모든 일 시키나니, 청정한 마음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면 즐거움이 그를 따르리라.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듯이.(제2게송)7)
샤끼야무니 붓다와 같이 슈라마나의 길을 닦은 끝에 오도悟道하 여 대행선을 주창한 한마음선원의 대행도 「일체제불의 마음」에서
위와 같은 뜻의 노래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일체제불의 마음은 내 한마음이다. 일체제불의 법이 내 한마음의 법이며 생활이다. 일체제불의 몸은 일체중생의 몸이다. 일체제불의 자비와 사랑은 일체중생의 자비와 사랑이다.
선행하는 것도 악행하는 것도 다 내 한마음에 있다.8)
대행은 어떻게 슈라마나의 길을 닦아 이와 같은 도리를 깨닫게 되
8) 한마음요전 , p.849, 한마음선원, 2016.
7) Dhammapada( 法句經 ) 제1장 Manopubbangmā dhamma manosetthā manomayā manasā ce padutthena bhāsati va karoti va tato nam dukkamanveti cakkamva vahato padam.(1) 心爲法本 心尊心使 中心念惡 卽言卽行 罪苦自追 車轢于轍 Manopubbangmā dhamma manosetthā manomayā manasā ce pasannena bhāsati va karoti va tato nam sukhamanveti chāyāva anapāyini.(2) 心爲法本 心尊心使 中心念善 卽言卽行 福樂雌雛 如影隨形
었을까? 인간으로서는 가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목숨을 걸고 철저 한 수행을 한 결과임에 틀림없다. 인디아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와 같 은 길을 걷는 슈라마나의 전통이 형성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샤끼야무니 붓다는 그 대표적인 슈라마나인 것이 역사적 사실이지만
그밖에도 수많은 슈라마나를 배출한 역사성을 자랑하고 있다.9)
현대 한국에서 출현한 대행은 이와 같이 슈라마나의 길을 닦아 깨달음을 얻은 수행자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중국 선종의 전통을 답습하는 재래의 배화사상拜華思想인 사대주의적 선풍이나, 스승으로부터 인가를 받아야 한다는 고루한 관습을 모두 거부해버 린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재래의 법통계승이란 타율적이고 수동적
인 인습에 얽매이지 않고, 전통적인 수행의 작법을 뛰어넘어, 자 신만의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수행법으로 깨달음을 성취하였기 때 문에 그 독창성을 살려 대행선大行禪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Ⅱ. 정통 슈라마나의 길을 닦은 대행
샤끼야무니 붓다는 인디아에 있어서 슈라마나의 상징이며, 대명
9) 雲井昭善, 佛敎興起時代の思想硏究 p.25, 平樂寺書店, 1967. 그 대표적인 인물로 아지따 께싸깜발린Ajita Kesakambalin⋅싼자야 벨랏티뿟따 Sañjaya Belaṭṭhiputta⋅막칼리 고쌀라Makkhali Gosāla⋅빠꾸다 깟짜야나Pakudha Kaccāyana⋅뿌라나 깟싸빠Purāṇa Kassapa⋅니간타 나따뿟따Nigaṇṭha Nātaputta의 6사외도를 들 수 있다. 싼자야 벨랏티뿟따는 샤끼야무니 붓다의 2대 제자인 샤리뿌뜨 라(Śāriputra, 舍利弗)와 마하마우드갈리야야나(Mahāmaudgalyāyāna, 摩訶目乾 連)의 본디 스승이며, 뿌라나 깟싸빠, 막칼리 고쌀라 그리고 니간타 나따뿟따는 교단(gaṇa)을 운영할 정도로 높은 명성을 얻었으며, 니간타 나따뿟따의 Jaina교 는 오늘날까지도 교단을 운영하고 있다.
사이고, 진인(sappurisa, 眞人)이며, 가장 존경받는 위대한 성자(ārya
聖者)이다. 파키스탄Pakistan의 라호르Lahore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고행상(tapas image, 苦行像)처럼 피골이 상접하도록 혹독한 슈라마 나의 길을 닦아 불사(amṛta, 不死)⋅해탈(mokṣa, 解脫)을 성취한 진인
(sappurisa, 眞人)으로 인류의 스승이 된 것이다. 샤끼야무니 붓다가 깨달은 연기의 법칙은 과학적 합리성⋅종교성⋅실천성⋅윤리성⋅ 철학사상을 모두 아우르고 있기 때문에,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있어서 인류의 귀의처(śaraṇa-bhūta, 歸依處)로 삼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대행과 연령, 성장환경, 수행환경 그리고 종교적 품
성이 서로 비슷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는 초기 우빠니샤
드(Old-Upaniṣad) 시대에 등장하는 싸띠야까마 자발라(Satyakāma
Jābāla)10)를 비교하여 가면서, 그들이 어떻게 슈라마나의 길을 닦 아 진리에 도달하였는가를 고찰하기로 한다. 대행은 목숨을 걸만큼 혹독하고 외로운 길을 걸은 끝에 한마음 을 깨달은 진실한 슈라마나(ṡramaṇā, 沙門)11)이다. 그는 아홉 살 때
10) ウパニシヤト(Upaniṣad)全書 三, [テヤ-ンド-グヤ⋅ウパニシヤト, 第四篇⋅ 第四章-第九章(Chāndogya-Upaniṣad 4⋅4-9)] 이 글 속에서 싸띠야까마 자발라(Satyakāma Jābāla)의 수행에 관한 이야기를 통 하여, 고대 인디아에서 스승인 브라흐마나가 제자를 어떻게 교육을 시켜 진리를 깨닫게 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11) [SED]p.1096b ṡramaṇa √ṡram to make effort, exert one self(esp. in performing acts of austerity), to overcome. ṡramaṇa m, one who performs acts of mortification or austerity, an ascetic, monk ṡramaṇā 또는 ṡramaṇī f, a female mendicant or nun, 沙門尼, 尼沙門, 정진 하는 수행자, 眞人.
부터 벌써 종교적 심성을 드러내기 시작한다.12) 아버지의 학대에 다 가난과 굶주림까지 겪어야 하는 아주 비참하고 고난에 가득 찬 삶 속에서도 자신을 굽히지 않고, 아홉 살밖에 안 된 어린 나이에
생명의 실상을 인식하고 자연의 이치를 볼 수 있는 지혜의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나이 어린 소녀가 집을 나가 숲에서 밤을 새 는 동안 두려움과 공포가 아닌 안온하고 아름다우며 부드럽고 미 묘한 향기를 맛보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경전이라든가, 좌선이라
든가 그렇게 거창하고 고상하다는 데서 도리를 배운 것이 아니라
하찮은 데서 배웠다.”13)라는 회고담을 추론하면, 대행은 선가禪家
의 전통적인 선풍禪風을 따라서 수행을 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진 리를 찾을 수 있는 길이라면, 무엇이든 공중을 나는 새처럼 자유 로운 수행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인 수행법에 매달리지 않고 자유로운 수행법으로 진리를 찾 는 대행이지만, 그런 그에게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대단히 존경하고 몹시 흠모하는 스승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인물 이든 과거의 인물이든, 그와 관계없이, 자기가 섬기는 사람을 가슴
에 품고 사는 것을, 우리는 흔히 볼 수 있다. 누가 샤끼야무니 붓다 를 직접 만나본 일이 있는가! 그럼에도 우리는 목숨을 걸고 샤끼야 무니 붓다를 따르고 믿는 신행을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대행도 일 생동안 가슴에 품고 사는 정신적인 스승이라고 할까, 심주心柱가 있
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누구인가? 방한암이다. 대행은 14세 때 어머니를 따라서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상원사
12) 한마음요전 , p.26, 한마음선원, 2016. 13) 한마음요전 p.54, 한마음선원, 2016.
근처의 진부 마을에 사는 외삼촌댁에 갔을 때, 어머니의 인연으로 한암을 처음으로 친견할 수 있는 행운을 거머쥔 것이다.14) 아버 지의 사랑은커녕 학대만 받고 자라던 소녀 노점순(대행의 본명)에 게는 맹구우목盲龜遇木의 비유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왜냐 하면
“아빠처럼 아늑하고 따스하였다.15)”는 회고는, 부드럽고 인자한 말씀으로 맞아주는 한암에게서 ‘아버지상像’을 본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한암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장 존경하고 따르는 마음의 스
승으로 삼은 것을 여러 군데서 읽을 수 있다. 대행은, 가슴 속에 한암을 심어 놓고, 때로는 부드럽고 자상한 아빠, 때로는 학덕을 두루 갖춘 거룩한 스승으로 삼아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면서 자기
를 완성하는 수행을 한 것으로 보인다.16)
그런데다 노점순은 타고나기를 슈라마나의 성품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선승들과 함께 가부를 틀고 앉아 화두를 붙들고 있기 보 다는, 산과 들을 무대로 하여 세상의 모든 것을 화두로 삼아 수행 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 속에서 날마다 새로 발견한 세계는
어둠을 뚫고 솟아오르는 밝은 태양처럼 지혜가 번쩍이는 새롭고 창조적인 법열法悅이 넘치는 세계이었을 것이다. 지혜의 눈을 뜨면 이치를 보는 안목이 깊어지고 높아지며 넓어지고 커지므로 날마다 새롭다. 날마다 새로운 날이므로 삶이 긍정적이고 능동적이며 적
14) 한마음요전 p.37, 한마음선원, 2016. 15) 한마음요전 p.41, 한마음선원, 2016. 16) 한마음요전 p.48-56, 한마음선원, 2016.
극적이다. 즐겁고 재미가 있고 활기가 넘친다.
한마음은 번뇌와 망상이 떨어져나가 더욱 맑고 순수하며 청량하고 명석하게 되어, 보통사람은 볼 수 없는 우주를 꿰뚫을 수 있는 혜안이 열린다. 옳고 그른 것이 바로 보인다. 그것을 따라서 작위作爲하고 말 하며 생각한다. 선이냐 악이냐를 따지지 않고 살아도, 저절로 악의 그
물에 걸리지 않고 무애자재하게 삶을 산다.17) 이것이 무애행이다. 이치를 보는 눈이 자꾸 열려 보는 것마다 더욱 아름답고 듣는 것마다 더욱 가슴이 설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날마다
새로운 날로 사는 사람은 시간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부 리고 다스린다. 하루해가 지루하지 않고, 하는 일이 귀찮고 심심 하지 않으며, 만나는 것마다 반갑고 새로울 뿐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동무이고 스승이며, 새로 맺은 인연을 소중하고 고맙게 생각 한다.
대행이 걸은 수행의 길은 고대 인디아의 초기 우빠니샤드시대의 싸띠야까마 자발라가 걸은 수행의 길을 연상하게 한다.18) 인디아 에는 샤끼야무니 붓다가 출현하기 이전에 벌써 불사·해탈·진인의 길을 걷는 슈라마나의 전통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싸띠야까
마는 대행보다도 더 불운하여 아버지가 누구인지조차도 모르는 슈
17) 山口惠照⋅中村元, アジア佛敎史(全20卷)⋅インド編 Ⅰ古代インドの宗敎 , p.201, 日本 東京, 佼成出版社, 1973. 인디아의 우빠니샤드시대의 2대 철학자 가운데의 하나인 야갸왈끼야Yājñavalkya 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선⋅악의 모든 까르마를 초월한 진인은 선악의 피 안에 이른 사람이며, 진인으로서의 無上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무시할 수 없다. 어느 때 나는 죄를 저질렀다든가, 어느 때 나는 훌륭한 일을 했다든가, 라고 하는 두 가지 생각이 진인을 흩어뜨리는 일은 없다. 거꾸로 진인은 이두가지 생각을 이겨낸다. 작위⋅부작위의 둘은 진인을 괴롭힐 수 없다.”고 서술한다. 18) ウパニシヤト全書(Upaniṣad) 三, p.95-101; [テヤ-ンド-グヤ⋅ウパニシヤト, 第 四篇⋅第四章-第九章(Chāndogya-Upaniṣad 4⋅4-9)], 東方出版, 1980.
드라(ṡūdra, 隸民)19)이다. 그런 그가 아주 어린 나이에 나를 찾는 불사·해탈·진인의 길을 걷으려는 종교정신을 발휘한다. 어느 날 그 는 갑자기 어머니에게 자신의 출신에 대하여 당당하게 소신에 찬 질문을 한다.
어머님, 저는 범행학생(brahmacārin, 梵行者)으로 입문하고 싶습니
그녀는 아들에게 대답한다.
다. 저의 출신에 대하여 알려주십시오.20)
얘야, 나는 그것을 모른다. 젊었을 때, 나는 하녀로서 이집 저집 옮겨 다니면서 살았다. 그런 가운데에 네가 태어났기 때문에, 너 의 출신을 모르는 것이다. 나는 자발라이고, 너는 싸띠야까마이 다. 그래서 아버지의 이름을 계승하는 대신에, ‘자발라 여인의 아
들 싸띠야까마’라고 부른다.21)
19) [SED]p.1085c ṡūdra ṡūdra, m. a ṡūdra, a man of the fourth or lowest of the four original classes or castes. 천민, 노예, 隸民. 20) ウパニシヤト全書(Upaniṣad) 三, p.95; [テヤ-ンド-グヤ⋅ウパニシヤト, 第 四篇⋅第四章(Chāndogya-Upaniṣad 4⋅4)], 東方出版, 1980. 인디아에서는 출신을 묻는 것은 성(姓)을 묻는 것이며, 성(姓)을 묻는 것은 계 급을 묻는 관습으로 되어 있다. 싸띠야까마도 브라흐마나계급의 소년들처럼 범 행학생(brahmacārin, 梵行者)의 수행을 하려면, 자신의 출생을 알아야 한다. 왜 냐 하면 이끌어줄 스승은 신분을 먼저 확인하고, 범행학생으로서의 신분이어야 제자로 받아주기 때문이다.
21) ウパニシヤト全書(Upaniṣad) 三, [テヤ-ンド-グヤ⋅ウパニシヤト, 第四篇⋅第四章 (Chāndogya-Upaniṣad 4⋅4)], 東方出版, 1980. Satyakāma Jābāla는 자발라 여사의 아들 싸띠야까마라는 뜻이다. 예를 들면 샤 끼야무니 붓다의 10대 제자 가운데의 하나인 지혜제일 Śāriputra도 샤리 여사의 22
그런 처지에도 불구하고, 싸띠야까마는 그가 흠모하고 존경하는
스승이 있었던 것이다. 하리드루마따 가우따마Hāridrumata Gautama
이다. 어머니로부터 자신의 출신에 관한 것을 모두 들은 싸띠야까 마는 브라흐마나인 그를 찾아간다. 그리고 늠름하게 자기를 제자 로 받아주길 간청한다. 하리드루마따는 먼저 인디아의 사회적인 관습에 따라서 싸띠야까마의 출신부터 묻는다. 싸띠야까마는 어머
니로부터 들은 것을 조금도 숨김없이 사실 그대로 또박또박 대답 한다. 그는 소년의 숨김없는 솔직한 대답을 듣고 매우 흡족해 하 면서, 이렇게 대답한다.
참된 브라흐마나만이 그와 같이 당당하게 발언할 수 있다. 귀여운 꼬마야, 땔감을 가지고 오너라. 나는 너를 제자로 삼겠다. 왜냐하면
너는 진실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22)
싸띠야까마는 드디어 그렇게 간절하게 원하던 하리드루마따 가 우따마의 제자가 된 것이다. 그렇지만 제자가 된 것으로 모든 것 이 바로 성취되는 것은 아니다. 스승은 그에게 빼빼마른 400 마 리의 소를 골라주면서, 멀리 끌고 가서 토실토실 살이 찔 때까지 잘 기르라는 것이다. 싸띠야까마는 빼빼마른 400 마리의 소를
1000 마리로 늘릴 때까지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화답을 한다. 그
아들이라는 뜻이다. 인디아에는 지금까지도 모계사회의 전통을 계승하는 지역이 많이 남아 있다. 22) ウパニシヤト全書(Upaniṣad) 三,[テヤ-ンド-グヤ⋅ウパニシヤト,第四篇⋅第四章 (Chāndogya-Upaniṣad 4⋅4)], 東方出版, 1980. 자신을 숨기지 않고 거짓 없이 진실을 말한 싸띠야까마를 천민으로 취급하지 않 고 제자로 받아들인 브라흐마나 하리드루마따 가우따마야말로 참된 브라흐마나 이며, 眞人임에 틀림없는 것으로 보인다.
가 스승의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소를 치면서 오랜 세 월을 보내는 것이 어찌 소를 살찌우고 증식시킨다는 단순 목적뿐 이겠는가! 이것은 어디까지나 소를 스승으로 삼아 구도하는 생활이며, 소를
키워서 공덕을 쌓는 수행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두 마리도 아니고 400 마리나 되는 소가 뜯어먹을 풀밭을 찾아 배를 채워주어야 한다. 목이 마르면 물을 마셔야하고, 40℃를 오르내리는 혹서에는 목욕시킬 물도 필요한 것이다. 소도 생명체이므로 예방을 잘 해서 전염병을 막
아주어야 하고, 병이 들면 빨리 치료도 해주어야 한다. 위험한 맹수를 막아야 하고, 증식을 시켜야 하며, 순환하는 계절의 변화에도 대응해 야 하는 것이다. 어른도 감당하기 힘든 일을 어린 싸띠야까마가 감당 하기에는 가혹하리만큼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그는 그것을 포기하지 않고, 400 마리를 1000 마리로 늘리는 것이 자신을 완성시키는 유일한 수행법이라는 것을 굳게 믿는다. 그는 자신의 정신세계를 창의적·긍정적·낙천적으로 변혁시 켜버린다. 그 결과 새로운 세계의 발견을, 희망이 넘치는 커다란
기쁨으로 삼은 것이다. 자기의 변화를 희구希求하는 만큼, 자기를 철저하게 부정해야 성공할 수 있다. 이제까지 자기가 옳다고 믿고 있던 고정관념을 100% 깨뜨려버려야 한다. 싸띠야까마는 자기를 완전히 부정해버림으로써, 새롭게 태어난 것인 지도 모른다.
소년 싸띠야까마와 소녀 노점순은,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거의 비슷한 환경 속에서 성장하여, 유년 시절에 벌써 진리를 희 구하는 슈라마나의 길을 닦기 시작한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산과 들에서 자연을 벗이나 스승으로 삼아 수행생활을 하고, 그러한 가
운데에서 지혜의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을 엿볼 수 있다. 싸띠야까마도 단순하게 소를 키우는 것만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소를 키우는 과정을 통하여, 마음을 정화시키고, 정화된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모든 이치를 꿰뚫는 눈을 뜨게 된 것이다.
노점순도 산과 들을 수행의 도량道場으로 삼아 정진하는 과정 속에서 지혜의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경전이라든가, 좌 선이라든가 그렇게 거창하고 고상하다 하는 데서 도리를 배운 것 이 아니다.”23) 그럼 어디서 어떻게 배웠는가? 하찮은 데서 배웠
다. 한 포기의 풀, 하늘과 땅을 벗으로 삼고,24) 서리 맞은 고추 하 나 따는 데서도 인과법을 배우며,25) 개구리의 거동을 관찰,26) 개 미 떼의 이동을 관찰,27) 여우·늑대·살쾡이·뱀들과 같이 놀기도 하
고,28) 산중 수행에 몰두하기도 하였지만,29) 대중생활에는 적응하 지 못하여 여러 차례 산문 밖으로 쫓겨나기도 한 것이다.30) 싸띠야까마와 노점순은 슈라마나의 수행을 하면서 풀잎을 뜯어 먹기도 하고, 풀뿌리를 캐먹기도 하고, 때로는 나무열매를 따먹기
도 하고, 수확을 하고 난 들녘에서 흘린 곡식이나 땅속을 뒤져 풀
23) 한마음요전 p.54, 한마음선원, 2016. 24) 한마음요전 p.48, 한마음선원, 2016. 25) 한마음요전 p.54, 한마음선원, 2016. 26) 한마음요전 p.68, 한마음선원, 2016. 27) 한마음요전 p.71, 한마음선원, 2016. 28) 한마음요전 p.71, 한마음선원, 2016. 29) 한마음요전 p.53, 한마음선원, 2016. 30) 한마음요전 p.51-53, 한마음선원, 2016.
뿌리를 캐먹기도 하면서 목숨을 연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도 여 의치 않으면 굶는 것이 예사이었을 것이다. 그뿐이겠는가! 따뜻하 고 편히 쉴 잠자리가 마련된 것도 아니고, 몸이 불편하여도 의료 혜택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거친 숲속에서 스스로 해결해야 한 것이다.
그렇다면 고따마 씻다르타는 얼마나 혹독한 슈라마나의 수행을 했을까? 부족할 것이 거의 없는 황태자 고따마 씻다르타는, ‘인생 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짊어지고, 생명 있는 모든 존 재를 위하여, 생성과 소멸을 초월한 무상의 니르와나를 증득하려 고 스스로 슈라마나의 길을 닦는다.
더운 낮도 추운 밤도 오직 홀로 무시무시한 깊은 숲속에서 발가벗은 채로 모닥불도 피우지 않고 앉아 성자는 탐구를 결행했노라. 나는 묘지에서 시체의 해골을 깔아 침상으로 삼았다. 그때 목동 들이 다가와서 나에게 침을 뱉고, 오줌을 누고, 쓰레기를 흩뿌리 고, 두 귀구멍에 막대기를 쑤셔 넣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악한 마음을 내지 않은 것을 기억하고 있다. 나의 마음을 평정하
게 안주하는 수행에는 이와 같은 일이 있었다.31)
싸띠야까마와 노점순도 고따마 씻다르타와 같은 고난과 곤경, 무서운 야수와 거친 자연, 세상 사람의 멸시, 기약 없는 긴 세월 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역경과 난관을 견디어내면서 한결같이 슈라마나의 길을 닦았을 것이다.
31) 中部經典 1, pp.77-79.
저 멀리 지평선이 깔리는 인디아의 평원은 참으로 광활하고 기 름지며 풍요롭고 평화롭게 보인다. 싸띠야까마는 소들과의 생활을 즐거움 그 자체로 삼은 것이다. 소를 버리고 도망을 치지 않고, 그들과 고락을 함께 하며 사는 삶 속에서, 삶 그 자체를 자신의
보금자리로 삼고, 수행의 도량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송아지가 계 속 태어나서 점점 그 수가 불어나는 기쁨도 컸겠지만, 또한 늙어 나 병들어 죽어가는 소들을 보고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슬픔도 맛보 면서 말이다.
싸띠야까마는 빼빼마른 400 마리의 소들을 잘 길러 드디어 토실토 실 살찐 1000 마리의 소로 늘렸다.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그는 한 포기 목초가 소의 생명임을 인식하게 되고, 한 포기의 풀에서도 우주
의 이치를 보았을 것이다. 이와 같은 실상實相이 브라흐만(Brahman
梵)에 대한 깨달음의 원천이 된 것을 쉽게 추론할 수 있다.32) 결과 적으로 교육을 많이 받은 스승이나 수행을 많이 한 성자만 스승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주에 존재하는 것은 그 어느 것이라도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누구나 한마음을 잘 닦으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지만, 마음을 닦는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인간이 목숨을 걸고 안· 이·비·설·신·의의 육정(六情)을 다스려야 본디 그 자리인 한마음으
32) ウパニシヤト全書(Upaniṣad) 三, [テヤ-ンド-グヤ⋅ウパニシヤト, 第四篇⋅ 第五章-第九章 (Chāndogya-Upaniṣad 4⋅5-9)] 싸띠야까마는 스승인 하리드루마따 가우따마로부터 직접 배운 것이 아니라, 빼빼 마른 400 마리의 소를 토실토실 살찐 1000 마리의 소로 불리는 동안, 자연으 로부터 보고 배워 수행을 완성한 것이다. 황소bull, 불fire, 백조swan, 잠수조 diver bird로부터, 그가 찾는 진리인 Brahman을 깨달아 범아일여를 성취한 것이 다.
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대행이 체험한 수행의 여정도, 싸띠야까마와 샤끼야무니 붓다가 닦은 것처럼, 슈라마나의 길을 닦고, 그 길에서 한마음을 깨달은
것이다. 대행도 마침내 샤끼야무니 붓다처럼 자지(pratyātma-jñānatā
自知)·자증(pratyātma-vedya, 自證)·자등명自燈明·법등명法燈明을 성취한 것이다. 슈라마나 대행과 싸띠야까마 자발라의 수행생활을 상호 조명하 면서, 도를 닦는 데는 진실과 정직 밖에는 왕도가 없다는 것을 배
운다. 싸띠야까마 자발라는 하리드루마따 가우따마를 스승으로, 대행은 한암을 스승으로 섬겼지만, 그들은 모두 스승으로부터 직 접 지도를 받아 수행을 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 하는 스승 밑에서 수행을 한 것이 아니라, 우주 만물만생 가운데
에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무엇이나 스승으로 삼아 수행을 게을 리 하지 않은 끝에 진리와 계합한 점에서도 공통적인 요소를 갖는 다. 슈라마나의 종교는, 몸과 마음을 하나로 뭉쳐 진실로 실천하 여 진리를 깨닫는 데에 그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 관념적 수
행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일처부주一處不住하면서 주로 고행(tapas
苦行)을 수행의 정도로 삼는다. 인디아에서의 이와 같은 전통은 이 제까지도 계승되고 있으며, 인디아의 철학과 종교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다.
사문석자(ṡramaṇa ṡākyamuni-putra, 沙門釋子)인 대행도 몸과 마음 을 다하여 진실하고 정직하게 슈라마나의 길을 닦은 끝에 한마음 을 깨닫고, 가히 교단(gaṇa, 敎團)이라 하여도 모자람이 없을 만큼 훌륭한 성전인 한마음선원33)을 구축한 것이다. 그러므로 대행선
이라고 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을 두루 갖춘 것이 아닌가!
Ⅲ. 왜, 한마음인가?
1. 연기⋅공을 중심으로 한 한마음에 대하여
우주 만물만생이 돌고 도니 공이다. 샤끼야무니 붓다가 깨달은 연기의 법칙에 따르면 모든 존재가 잠시도 쉬지 않고 돌고 돌며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샤끼야무니 붓다를 출가까지 하도록 한
의혹은 어떻게 풀었을까?
참으로 깊은 명상에 들은 브라흐마나, 모든 이치를 깨달았을 때, 연기의 법을 통달하였기 때문에
모든 의혹은 씻은 듯 사라졌네,34)
샤끼야무니 붓다는 생·노·병·사에 관한 문제를 풀기 위하여 출가 하였는데, 연기의 법칙을 깨달음으로서 그에 대한 모든 의혹이 말
33) 빅슈니(bhikṣuṇī, 比丘尼) 제자 150명을 비롯하여, 새로운 선원청규의 전범이라 고 할 수 있는 빅슈(bhikṣu, 比丘) 법제자 50명, 그리고 한마음선원 안양본 원을 비롯하여 국내 15개 지원과 국외 10개 지원은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말해주고 있다. 34) 小部經典. Udana 1⋅1 ( 南傳藏 23-86) 實にも熱意ありて禪に入れる婆羅門の, 諸の法を悟る時, 彼の緣起の法を知れるが故に, かの諸の疑惑は消え失せたり.
끔히 사라졌다고 술회하고 있는 것이다. 샤끼야무니 붓다는 한우 주를 한 생명체로 인식하고, 그 존재방식을 연기의 법칙으로 해석 한다. 한우주를 한 생명체로 인식하는 까닭은 한우주에는 변화하 지 않는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현상이 우주의
실상인 것을 중생에게 알려 준 것이다. 샤끼야무니 붓다의 가르침은 스스로 존재하는 절대자인 유일신 을 부정하기 때문에, 저 홀로는 존재할 수 없으므로, 다른 것에 서로서로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정신적
원리나 물질적 원리를 배제함으로서 실체의 존재를 부정한 샤끼야 무니 붓다는, 세상에는 저 홀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선언한 것이다. 모든 것은 서로 의지하고 서로 받쳐주는 상호성·관계성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연기의 법칙의 내용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갈대 다발(蘆束) 의 비유를 들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를테면 여기에 두 개의 갈대 다발이 있다고 치자. 이 두 개의 갈대 다발은 서로 의지하고 있을 때 서 있을 수 있다. 그것과 마 찬가지로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는 것이며,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 두 개의 갈대 다발에서 어 느 하나를 떼어낸다면, 다른 한쪽도 넘어질 수밖에 없으리라. 그 것과 마찬가지로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고, 저것이 없으면 이
것도 없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35)
35) 相應部經典 12:67 갈대 다발(蘆束), ( 南傳藏 13-166) 一方に坐せる尊者摩訶拘絺羅は, 尊者舍利弗にこれをいえり. 「友, 舍利弗よ, 老死は自作なりや, 老死は他作なりや, 老死は自作にして他作な りや, 將に老死は自作にも非らず, 他作にも非らずや, 無因生なりや, 如何.」 と …
논리적으로든 이치적으로든 두 개의 갈대 다발이 서로 기대고 서 있는데, 한쪽의 갈대 다발을 떼어내면 다른 한쪽의 갈대 다발이 쓰러 지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진리이므로, 이것을 통하여 이치에서 조금 도 벗어나지 않는 불교의 과학성을 입증할 수 있다. 갈대 다발의 비유처럼 사람은 몸과 마음이 서로 기대어 형성된 것이므로 몸이 없는 마음이나 마음이 없는 몸은 있을 수 없다, 만
일 몸이 쓰러지고 마음만 남는다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 고, 마음이 쓰러지고 몸만 남는다면 그것도 사람이 아니라 송장이 다. 귀신이나 송장만으로는 수행을 할 수 없고, 수행을 할 수 없 으므로 성불할 수 없으며, 성불할 수 없으므로 니르와나를 성취할
수 없다. 몸과 마음이 모두 똑같이 소중하다는 것을 한 시라도 잊 어서는 안 되는 것이며, 극락이나 천당도 살아 있는 사람이 가는 것이지, 귀신이나 송장만 간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동물이나 식물을 중심으로 한 생물만을 생명체로 인식하는 인간 은 죽어서 갈 천국이나 지옥을 논하지만, 한우주를 한 생명체로 보는 인간은 천국이나 지옥, 차안이나 피안, 이 생이나 저 생을
분류할 까닭이 없다. 올 곳도 없고 갈 곳도 없으며, 오는 것도 아 니고 가는 것도 아니다. 존재하는 방식을 달리하면서 그냥 이 우
「友, 舍利弗よ, この所說の義は如何に知るべきや.」 「友よ, 然らば譬えを說かん.識者はここに譬えによりて, 所說の義を知るなり.」 「友よ, 譬えば二の蘆束, 互に相依りて立たん.友よ, それと同じく, 名色に緣りて 識あり, 識に緣りて名色あり, 名色に緣りて六處あり, 六處に緣りて觸あり‧‧‧‧‧‧‧‧‧‧‧‧‧‧‧‧‧‧‧‧ 是の如きは, こ れ全苦蘊の集なり. 「友よ, もしそれらの蘆束の中, 一を取り去らんか, 一はたおれん.他を取り去らん か, 他はたおれ ん.友よ, それと同じく, 名色の滅によりて識の滅あり.識の滅に よりて名色の滅あり, 名色の滅に よりて六處の滅あり, 六處の滅によりて觸の 滅あり‧‧‧‧‧‧‧‧‧‧‧‧‧‧‧‧‧‧‧ 是の如きは, これ全苦蘊の滅なり.」
주에 있는 것일 뿐이다.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하여 나가르주나는 중론 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연기를 우리는 공성이라고 말한다. 그 공성은 임시로 붙인 이름이며, 그것은 중도와 같은 것이다. 서로 의존하지 않고 생겨난 것은 아무 것도 없으므로
공이 아닌 것은 아무 것도 없다.36)
현상이 공空이라고 하는 것은, 삼천대천세계를 품고 있는 한우주가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원인과 조건에 의하여 생겨난 것이 라는 말이다. 어떤 사람은 공이라는 말은 무無라는 말과 통하므로, 공空은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
나 언어가 오해를 받는 것은 언어 자체가 실체를 갖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말하는 공성空性이란 실체가 아닌 삼천대천세계를 품고 있는 우주라는 말일 뿐이며, 삼천대천세계를 품고 있는 우주의
무無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37)
36) Madhyamaka-Śastra, 中論 24⋅18-19, (T24-33b11) 18) yaḥ pratītyasamutpādaḥ śūnyatāṁ tāṁ pracakṣmahe/ sā prajñaptirupādāya pratipatsaiva madhyamā// 19) aprtītya amutpanno dharmaḥ kaścinna vidyate/ yasmāttasmādaśūnyo hi dharmaḥ kaścinna vidyate// 衆因緣生法 我說卽是無 亦爲是假名 亦是中道義 未曾有一法 不從因緣生 是故一切法 無不是空者 37) 梶山雄一⋅上山春平, 空の論理 p.194, 角川書店, 日本 東京, 1997. “라뜨나까라쌴띠(Ratnākaraśāti, 10c-11c)는 바른 진리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4 가지 기준(4依)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① 진리(dharma, 法)에 의존해야 하며 사람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② 뜻에 의존해야 하며 문자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③ 요의경(붓다의 참 뜻이 명료하게 드러난 경전)에 의존해야 하며 미요의경에
한우주는 본디부터 있던 것이며, 또한 없어져서 무無로 되는 것 도 아니다. 한우주이기 때문에 더 이상 어디로 갈 곳도 없는 것이 다. 그러므로 샤끼야무니 붓다는 한우주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 것 이 아니라, 우주를 한생명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변화하면서 존
재한다고 말씀한 것이다. 예를 들면 태양은 생성된 지 137억년이 되었다면, 그 이전에는 없었다는 논리이며, 지구나 달은 생성된 지 46억년이 되었다면, 이전에는 그들도 없었다는 논리이다. 그리고 또 이것들이 언젠가는 또 없어진다는 것이다. 다만 그들
은 사라져도 형태를 바꾸어서 한우주에 존재하는 것이지, 한우주 를 벗어나서 어디론가 따로 갈 곳이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 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실체에 관한 믿음을 거부한 샤끼야무니 붓다는 반형이상학적인 논조38)로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민중에게 선언한 것이다. 샤끼야무니 붓다는 아주 겸손하고 신중하게, 자신이 말한 것일지라도 그것이 진리에 맞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꼭 확인하고
그것이 진리에 맞거든 믿고 따르며 실천하라고 가르친다.39)
사문석자인 대행도 연기의 법칙을 따르고 실천하는 것은 말할
의존해서는 안 된다. ④ 직관에 의존해야 하며 경험적인 인식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38) 中部經典 2.63 摩羅迦小經, ( 南傳藏 10-222, 또는 T1-804a 箭喩經 ) 世界は常住なりや, 無常なりや. 世界は有邊なりや, 無邊なりや. 靈卽身なりや, 靈と身と各別なりや. 如來は死後も存するや, 如來は死後存せざるや, 如來は死後存しまた存せざるや, 如來は死後存するにもあらず, また存せざる にもあらざるや.
39) 梶山雄一⋅上山春平, 空の論理 p.146, 角川書店, 日本 東京, 1997.
것도 없고, 더 나아가 중생의 삶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편으로 이와 같은 가르침을 자신의 언어로 전개하고 있다.
중생이 자나 깨나 평생을 두고 위해 온 ‘나’는 사실 가화합(假和 合)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하늘의 뜬 구름처럼 인연에 의해
일시에 지어진 것일 뿐 견고한 실체가 없는 것이다.40)
사람은 몸(rūpa, 色)·감수작용(vedanā, 受)·추상작용(saṃjñā, 想)·의지
작용(saṅskāra, 行)·인식작용(vijñāna, 識)의 다섯 가지 구성요소(pañca
-skandha, 五蘊)의 가화합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며, 인간 개체에는 고
정적이면서 불변적인 나(attan, 我)·나의 것(mama, 我所)·나의 자아(me
atta, 我體)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41) 그것은 마치 무화과나무 숲에서 아무리 꽃을 찾아도 찾을 수 없 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42) 실로 우리 중생들의 개체는 그와 같은 불변하는 실체가 아니다. “결국 고정된 실체가 없이 텅 빈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것”43)이라는 의미에서 보면 사람은 현상적 존재 現象的 存在에 지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현상적 존재이므로 생자 필멸生者必滅44)을 부정할 수 없다. 인간도 연기의 법칙에 따라서
40) 한마음요전 , p.376, 한마음선원, 2016. 41) 增谷文雄, 佛敎槪論 , p.68, 筑摩書房, 1965. 42) Sutta-nipāta (The Sacred Books Of The Edited. By F. Max Mŭller, Vol.10) “He who has not found any essence in the existences, like one that looks for flowers on fig-trees, that Bhikkhu leaves this and further shore, as a snake(quits its) old worn out skin.(5)”
43) 혜선, 한마음과 대행禪 , p.242, 운주사, 2013. 44) 샤끼야무니 붓다는 사기답四記答 가운데의 첫 번째인 일향기(ekaṃśa-vyākaraṇa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몸이든 마음이든 공성인 것은 당연한 논리 인 것이다.
육신은 사대가 뭉친 것이지만 육신이 있어야 불법을 알 수 있다. 육신이 없다면 더함도 덜함도 없으니 육신을 다만 허망하다고 하여 그 모습을 버리면서까지 불법을 알려 한다면 극히 잘 못된
생각이다.45)
몸과 마음이 서로 기대고 있을 때만 사람이므로, 육체적인 건 강과 정신적인 안락이 함께 할 때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을 발휘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샤끼야무니 붓다는 육체적으로는 32상 相·80종호種好를, 정신적으로는 지혜와 자비를 모두 갖추고 있으므
로, 탐독(rāga, 貪毒)·진독(dveṣa, 瞋毒)·치독(mohā, 痴毒)의 삼독三毒을
소멸하고 니르와나를 성취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46)
절대자인 신을 부정하는 종교인 불교는 자기가 자기를 구제하는 자력종교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수행에 의해서 스스로를 구제하는 것이 불교의 근본적인 가르침이다. 불교를 신행하는 목적은 이고 득락(duḥkha-hara sukha-lābha, 離苦得樂)이다. 누구나 다 함께 행복과
평화를 누리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는 정신이 기조로 되어있
다. 그래서 초기불교 때부터 우리의 마음을 심성본정(svacitta-śuddhi, 心
性本淨)⋅객진번뇌(āgantuka-kleśa, 客塵煩惱)47)라고 정의하고, 깨달음
一向記)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물음; “살아 있는 것은 모두 죽는가?” 대답; “반드시 죽는다.” 45) 한마음요전 , p.379, 한마음선원, 2016. 46) 增谷文雄, 佛敎槪論 , p.96, 筑摩書房, 1965. 47) 增支部經典 1-1集-5, ( 南傳藏 17-14)
을 성취할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대승 불교로 이어져 여래장사상을 형성하는 근본적인 이론을 제시하여 주고 있다. 깨달음의 종교인 불교는 한마음을 빼고는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대행선도 한마음을 빼고는 논의할 수 없다. 우리의 삶에서도 한마 음을 뺄 수 없는 까닭은, 우리는 한마음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신을 믿는 유신론자조차도, 믿는 것은 마음으로 믿는 것이기 때문 에, 마음을 빼고 무엇으로 신을 믿을 수 있겠는가!
한마음은 형상이 없어 붙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시작도 끝 도 없이 끊임없이 돌고 도는 우주를 끌고 다니는 주체이기 때문에 주인공主人空이라는 것이다. 사람 뿐 아니라 생명체인 모든 만물만생 은 한마음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한우주의 주인공을 한마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행이 한마음을 실체로 인식하는 것은 아니 며, 한우주 삼천대천세계가 무아이고 공이므로, 논리적으로든 실제적 으로든 현상계에는 고정불변의 실체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대행 의 한마음을 실체라고 비판하는 것은, 법신⋅보신⋅응신의 삼신설에
대한 이해의 부족인 것으로 보인다.48) 다음에 인용한 글에서도 대 행의 공사상에 대한 투철한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세상에 고정된 것은 없다. 오직 흐름이 있을 뿐이다. 시발접도
比丘衆よ, この心は極光淨なり, 而して其は客の隨煩惱に雜染せられたり, 比丘衆よ, この心は極光淨なり, 而して其は客の隨煩惱より解脫せり. 48) 한마음요전 p.405에서, “내 몸 속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모습들이 있지만 마 음이야말로 그 보다도 더 다양하게, 마치 항하사 모래알처럼 많은 나툼이 있어 끝 간 데가 없다. 그러니 어느 것을 했을 때의 마음을 내 마음이라 하겠는가.”라 고, 대행 스스로도 공성임을 말하고 있다.
종점도 없이, 온다 간다도 없이 그냥 여여하게 걸림 없이 흐르는 유수 같은 흐름이 있을 뿐이다.49)
2. 불교학적으로 본 한마음에 대하여
대행은 깨달음을 열 때의 선경禪境을 “하늘 문이 열리다”50)라고 술회하고 있는데, 이것은 깨달음으로서의 진리의 문이 열린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가 깨달은 진리는 한마음을 가리키는 것이며, 한마음은 진여(tathatā, 眞如) 법신(dharmakāya, 法身)이다.51)
진여(tathatā, 眞如)52)는 진리를 가리키는 말이며, 조금도 가공되지 않은 본디 있는 그대로의 실상이라는 뜻이다. 불교에서의 진리는 언제나 변함없는 보편자이면서 지혜와 대자대비를 본성으로 하여 세상을 구제하는 붓다님이기 때문에 진여라고 부르는 것이다. 법신
(dharmakāya, 法身)도 진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기독교나 이슬람교는 유일신을 믿기 때문에 인간은 절대로 신이 될 수 없다고 억지 주장 을 하지만, 불교는 수행을 하여 진리와 합일合一/계합契合하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깨달음을 성취함과 동시에 진리와
한 몸一體/한 덩어리一身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금강반
49) 한마음요전 , p.394, 한마음선원, 2016. 50) 한마음요전 , p.92, 한마음선원, 2016. 51) 한마음요전 p.336에서, “부처는 하나의 완성이 아니라 전체가 합쳐진 완성이 다. 영원불변의 진리인 법신이다.”라는 말속에 이러한 의취가 잘 드러나 있다.
52) [SED]p.433c tathatā tathā indeclinable so, thus, in that manner, also, true, 그냥 그대로, 있는 그대로, 참으로 그러한 tathatā f. true state of things, true nature, suchness, 眞如, 如, 如如, 본디 있던 그대로의 것, 본디 그대로의 것, 있는 그 대로의 것.
야바라밀경 에서의 가르침도 붓다⋅여래를 형상으로 믿는 것은 바 른 믿음이 아니라고 다음과 같이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다.
여래를 볼 수 없느니라.53)
색상으로 나를 보려고 하거나, 음성으로 나를 찾으려고 하면, 이런 사람은 사도를 닦는 것이니
이 글은 시송詩頌으로 읊은 것이기 때문에 글의 틀을 맞추기 위 하여 색상·음성만을 읊은 것이지만, 실제로는 색·성·향·미·촉·법의
육경六境, 그 어느 것으로도 붓다를 찾을 수 없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진리를 깨달아서, 진리와 합일/계합하는
것이 붓다·여래를 만나는 것임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방광불화엄경 에서도 법신은 형상을 가진 개체를 가리키는 것
몸이 또한 붓다 아니며 붓다 또한 몸이 아니니라. 다만 법으로 몸을 삼으면
모든 법을 통달한 것이니라.54)
이 아니라고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법신에서의 법(dharma, 法)은 진리라는 뜻이며, 신(kāya, 身)은 몸 또는 덩어리라는 뜻이므로, 법신(dharmakāya, 法身)이란 진리를 몸
53) 金剛般若波羅密經 (T8-725a)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54) 大方廣佛華嚴經 (T10-102a) “身亦非是佛 佛亦非是身 但以法爲身 通達一切法”
으로 삼는다는 의미일 뿐, 어떤 개체를 지칭하거나 실체를 의미하 는 것이 아니다. 법신은 진리 자체이므로 영원하며, 한우주가 그 냥 그대로 한 덩어리의 진리라는 말이다. 속세에 사는 범부 중생 은 세속적인 인연에 매달려 형상불形相佛에 복을 빌기도 하고 기도 를 하기도 하며 영험을 믿기도 하기 때문에 집착을 하고 애착을 하여 그로부터 벗어나지를 못한다. 그러므로 조주도 진짜 붓다를
만나야지, 그와 같은 형상불에 매달려서는 아무 것도 얻을 것이 없다고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금으로 만든 붓다는 용광로를 통과하지 못하고, 나무로 만든 붓다는 불속을 통과하지 못하며
진흙으로 빚은 붓다는 물을 통과하지 못한다.55)
유형의 형상불은 진짜 붓다가 아니라는 말이다. 오로지 진여 법 신을 만나야 진짜 붓다를 만나는 것이지, 가짜 붓다를 붙들고 아 무리 늘어져봐야 헛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원효 성사는, 기
신론소 의 귀명(namas, 歸命)56)을 해석함에 있어서, 목숨을 걸고 수행을 해서 깨달음을 얻어,57) 스스로가 진리와 한 몸이 될 때의
55) 윤창화, 당송시대 선종사원의 생활과 철학 , p.63, 민족사, 2017. “金佛不渡爐, 木佛不渡火, 泥佛不渡水” 56) [SED]p.528a namas √nam; to bend or bow, to bow to, subject or submit one's self, to take refuge in namas n. bow, obeisance, reverential salutation, adoration (by gesture or word.) 한문경전에서는 나무南無⋅나모曩謨⋅나막曩莫이라고 음역하며, 歸命⋅歸敬⋅歸 禮⋅敬禮⋅歸依⋅禮拜⋅信從이라고 번역한다.
57) 혜선, 한마음과 대행 禪 , p.299, 운주사, 2013, “3) 세 번 죽는 수행” 참조
한마음 법신을 발원하라고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존경하고 순종한다는 뜻, 이것은 돌아온다는 뜻이다. 진리를 향 하여 그쪽으로 간다는 뜻, 이것은 돌아간다는 뜻이다. 목숨은 생 명의 근원이며 통틀어 모든 감각기관을 다스린다. 한 몸의 요체 이며 다만 목숨을 주인으로 삼는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이 소 중히 여기는 것 가운데에서, 이것보다 앞서는 것이 없다. 이 둘 도 없는 목숨을 걸고 가장 거룩하신 세존을 섬김으로써 신심의 극치를 드러내기 때문에 귀명이라고 말한다. 또 귀명이란 본디 자리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그러한 까닭은, 중 생의 안·이·비·설·신·의의 육근六根은 일심으로부터 일어났지만 스스로의 근원을 배반하고 색·성·향·미·촉·법의 육진六塵을 찾아 헤맨다. 이제 목숨을 걸고 통틀어 안·이·비·설·신·의의 육정六情을 다스려서 다시 그 본디 한마음의 근원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귀
명이라고 말한다.58)
원효 성사의 귀명(namas, 歸命)이란 해석을 잘 통관通觀하여 보면, 그가 얼마나 종교적·철학적·실천적으로 진리와 한 몸이 되어 있는 가를 추론하고도 남음이 있다. 나마쓰Namas는 언어로는 표현하기
가 아주 힘들며, 우리의 분별적인 생각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거 룩한 정신과 종교적인 권능을 가지고 있는데, 그 함의를 두 가지 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둘도 없는 목숨을 바쳐서 거룩한 붓다, 바로 진리를 섬기겠
58) 起信論疏 (T44-203b12) “敬順義是歸義. 趣向義是歸義. 命謂命根. 總御諸根. 一身之要, 唯命爲主. 萬生所 重, 莫是爲先. 擧此無二之命. 以奉無上之尊. 表信心極. 故言歸命. 又復歸命者還 源義. 所以者, 衆生六根, 從一心起, 而背自原, 馳散六塵. 今擧命總攝六情, 還歸 其本一心之原, 故曰歸命”
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생각해 보면 목숨은 생명의 근원일뿐더러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의 감각기관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힘을 가지 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살아 있는 생명체는 목숨을 요체로 삼으며 또한 목숨을 주인으로 삼고 있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 가운데에서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이 둘도 없는 목숨을 걸고, 가장 거룩한 붓다를 섬김으로써 신심信心
의 극치를 드러내는 것이 귀명/예배이다. 누구를 거룩한 붓다로 섬길 것인가? 진리를 붓다로 섬기는 것 이다. 먼저 자기를 붓다로 섬겨야 한다. 붓다만이 붓다를 알기 때문이다. 자기를 진실로 붓다로 섬기는 이는 남도 붓다로 섬긴
다. 붓다로 섬김을 받으려면 스스로가 붓다가 되어야 한다는 것 은 공리이다. 붓다가 되어버린 이는 나와 남을 분별하지 않는다. 지혜를 바탕으로 하는 삶이고 자비를 본원으로 하는 삶이기 때 문에 도리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다. 이것이 첫 번째 Namas(귀
명/예배)의 뜻이다. 둘째, 내 스스로 몸과 마음을 갈고 닦아 깨달음을 성취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본디 자기 자리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안· 이·비·설·신·의의 육근은 어디서 생겨났는가? 한마음을 근원으로
하여 생겨났다. 그러나 지혜가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것을 모 르고 한마음을 배반하여 버린다. 그리고 그것을 밖에서 찾으려고
색·성·향·미·촉·법의 육진六塵을 찾아 이리저리 헤맴으로서, 세진世
塵으로 더럽혀져 탐욕의 그물에 갇혀버린다. 병 가운데에서 가장 큰 병은 무슨 병인가? 알면서도 못 고치는 병이 제일 큰 병이다. 붓다는 가장 가까운 내 속에 있는데, 육진 속에서 찾을 수 있겠
는가. 미혹에 미혹을 거듭 쌓아 주인인 나를 잃어버리고 밖에서 찾으려고 할뿐이다. 그러므로 목숨을 걸고 안·이·비·설·신·의의 육정六情을 잘 다스려야 한다. 육정은 들에서 자란 야생마와 같 아서 길들이는 것이 참으로 힘들지만 목숨을 걸고 선의지를 살 려서 수행을 거듭하면 야생마는 곧 주인을 따른다. 이 자리가 자 신의 본디 자리인 한마음 바로 그 자리이다. 바로 깨달음을 연
자리이다. 이것이 두 번째 Namas(귀명/예배)의 뜻이다.59)
대행은, 한마음을 주인공, 자성, 불성(buddhadhātu 佛性),60) 여래장 (tathāgatagarbha, 如來藏),61) 진여, 아빠, 엄마, 심주, 평상심, 청수, 생명수, 심봉, 물건, 본래면목, 한 놈도 없는 그놈, 아미타불, 본 존불, 하느님, 나의 님 등 여러 가지로 부르고 있지만,62) 이름이 무엇이든 그것은 가명무실假名無實63)일 뿐이며, 한마음 주인공이
59) 이평래, 대승기신론강설 , p.48, 민족사, 2017. 60) 高崎直道, 佛性とは何か , p.11, 法藏館, 日本 京都, 1985. 高崎直道 교수는, “개에게 불성이 있느냐 없느냐, 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 왜 문제가 되었는가? 그것은 경전에서 그와 같은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 은 <一切衆生悉有佛性>이라고 말씀하는 대승경전의 大般涅槃經 의 말씀이다. 모든 중생, 목숨이 있는 모든 생명체에는 佛性이 있다. 말씀 그대로 보면 붓다 의 性質, 붓다의 本性, 그에 따라서 더 나아가면 붓다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라 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와 같은 것을 <佛性>이라고 부르고 있으므로, 다른 말로 바꿔 말하면, 누구나 붓다가 될 수 있다.”고 해석한다.
61) 이평래, 대승기신론강설 , p.17, 민족사, 2017. “여래장이 번뇌의 굴레를 벗어버리면, 법신(dharmakāya, 法身)이라 부르고, 그 법신은 거룩한 붓다이며, 진여의 현성이라고 말한다.” 62) 한마음요전 , p.364, 한마음선원, 2016. 63) 이평래, 대승기신론강설 , p.120, 민족사, 2014. “가명무실이란 세간에서 쓰는 모든 말은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 실체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로서, 상대적으로 命名된 것을 가리키며, 오른쪽에 의 하여 왼쪽이 성립하며, 남편에 의하여 아내가 성립하고, 긴 것에 의하여 짧은
자신을 이끄는 ‘참 나’임을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믿는다.
주인공은 나의 근본이지만 동시에 모든 것의 근본이다. 주인공은 나의 주인이자 모두의 주인이요, 삼계의 주인이다. ‘주主’한 것은 근본자리를 말하고 ‘공(śūnyatā, 空)’64)한 것은 고정됨이 없이 돌 아가는 것을 말한다. 주인공 자리엔 무엇 하나를 고정되게 세워 서 ‘나’라고 할 수도 없고, 무엇 하나를 세워서 활용이라 할 수도 없고, 무엇 하나를 세워서 부처라 할 수도 없고, 무엇 하나를 세 워서 늙은이다 젊은이다, 여자다 남자다, 아비다 자식이다 할 수 것이 성립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악이 소실되면 선도 그 이름을 잃게 되므로 불변의 실체를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 모든 존재의 진실한 모습이다. 모든 말은 가명이며, 상대적 시설(施設)일 뿐이고, 실체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서쪽이 있으므로 동쪽이 있기 때문에, 북쪽에 의하여 남쪽이 결정된다. 이 와 같은 상대를 버리고 동·남·서·북이라고 하는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또 책 상이라고 하는 말에 의하여 모든 종류의 책상이 표시되는데, 하나하나의 책상은 모두 어딘가가 조금씩 다르다. 완전히 동일한 책상은 하나도 없다. 그와 같은 잡다한 것들을 책상이라고 하는 하나의 말로 표시하기 때문에, 책상이라고 하는 말에 대응하는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언설은 망념에서 생겨난 것이며, 말에 의해서는 진실한 것을 어느 것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면 Nirvāṇa라고 하는 말을 알고 있어도, 그것에 의하여 범부의 마음이 Buddha의 깨달은 Nirvāṇa의 진리를 맛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진여라고 말하더라도, 진여라고 하는 말이 진여의 사실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진여라고 하는 말로 한 정되는 것에 의하여, 진여라고 하는 전체적인 진리에서 벗어나 버리고 마는 모 순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말을 쓰지 않고는 진리를 상대방에게 전할 수 있는 길이 없다. 그러므로 진여라고 하는 이름을 쓰는 것은 언어의 궁극적인 종점終 點이며, 진리의 말씀으로 희론을 논파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64) [SED]p.1085a ṡūnya √ṡū 1. swell grow, increase; to swell much. ṡūnya mf(ā)n. empty, void, hollow, barren, vacant; absent, void of, free from, non-existence. ṡūnyatā f. emptiness, loneliness, desolateness, absence of mind, nothingness, non-existence, non-reality, illusory nature(of all worldly phenomena). 空性 인디아에서는 숫자 0을 <ṡūnyam>이라고 말한다. 43
도 없다.65)
주인공은 한마음의 다른 이름이지만, 이것은 글의 내용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다. 불교는 고정된 실체를 부정하기 때문 에, 인간은 말할 것도 없이 한우주가 연기의 법칙에 따라서 형성되는
것으로 본다. 한우주로 인식하면, 우주 밖에 또 다른 천국이니 지옥 이니 하는 것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한우주 안에 있는 만생만물이 인연에 따라서 끊임없이 서로 만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며, 결합 하기도 하고 분리하기도 하는 이합집산을 거듭거듭 하면서 존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은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당 연한 논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대행이 ‘주인공主人空’의 공을 ‘公/어른
공’이 아닌 ‘空/빌 공’이라고 말하는 것은, 불교에서의 공성(śūnyatā, 空
性)66)이란 진리를 굳게 믿고 있다는 신념을 드러낸 것이다. 무아 또는 공성은 실체적 존재를 부정하는 반형이상학적인 의 미이지, 한우주에 존재하는 만물만생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
다. 그것은 실체가 아니므로 한우주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돌 고 도는 것이다. 태어난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아니고, 죽은 내가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라는 논리이다. 한우주에 그냥 있으면서 인 연을 따라서 고정됨이 없이 돌고 도는 것일 뿐이다. 이것을 잘못
이해하여 영생이나 영구불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런 것은 아니다. 가령 우리가 죽은 다음에 정신이든 혼백이든 영혼이든 어
65) 한마음요전 , p.354, 한마음선원, 2016.
66) Madhyamaka-Śastra, 中論 22⋅16, (T22-31a06 ) 16) tathāgato yat svabhāvas tat svabhāvam idaṃ jagat/ tathāgato niḥsvabhāvo niḥsvabhāvam idaṃ jagat// 如來所有性 卽是世間性 如來無有性 世間亦無性
디로 간다고 가정할 때, 우주는 하나밖에 없는데 도대체 또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그러므로 대행이 한마음을 실체로 인식하고 있다는 비판은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 우리에게 친밀한 대방광불화엄경 의 삼계유심67) 및 일체유심조68)를 비롯하여 「야마천궁중게찬품」에
서의 한마음의 절대불가결성을 보더라도 그것을 알 수 있다.
마음속에 그림 있는 것 아니고, 그림 속에 마음 있는 것 아니노라. 그렇지만 마음을 떠나서는 그림을 볼 수 없느니라.69)
몸과 마음이 함께 하는 인간이 수행을 하는 주체이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가장 중심자리에 있는 것은 한마음이다. 세속적인 생활을 하던 출세간의 종교적인 수행을 하던, 인간의 한마음이 가
장 중심자리에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한마음이 없으면 인식할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삶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런 까닭에 초기불교에서부터 심성본정 (svacitta-śuddhi, 心性本淨)·객진번뇌(āgantuka-kleśa, 客塵煩惱)의 근본
67) 大方廣佛華嚴經 (T10-288c) “三界唯心” 68) 大方廣佛華嚴經 (T10-102b) “一切唯心造”
정신은 변함없이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70)
69) 大方廣佛華嚴經 (T10-102a) “心中無彩畵 彩畵中無心 然不離於心 有彩畵可得” 70) 이평래, 新羅佛敎如來藏思想硏究 , p,99, 민족사, 1996.
한마음을 사상적으로 가장 잘 드러낸 것이 여래장사상이며, 여 래장사상을 중심으로 한 경전經典이 많이 있지만71) 그 가운데에서 도 가장 논리적·조직적·체계적·철학적·종교적인 것을 들라면, 그것 은 단연코 대승기신론 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72) 대승기신론
은, 한마음(ekacitta, 一心)73)을 주체로 하여 구성되어 있으며, 중생
71) 이평래, 新羅佛敎如來藏思想硏究 , p,113, 민족사, 1996. 72) 柏木弘雄, 「心眞如と心生滅」, 佛敎學 第九⋅10號, p.227, 佛敎學硏究會, 日 本, 1980.
73) 이평래,「元曉の眞如觀」, 印度學佛敎學硏究 No.57, p.360, 日本印度學佛敎學 會, 1980.
의 본바탕을 진여 법신74)이란 전제 아래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 특징이다.75) 그것은 본원적으로 인간을 붓다로 보고 있기 때문에, 진여를 바탕에 깔고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 특징이며, 번뇌만 거두 어버리면 그냥 그대로 붓다라는 논리이다.76) 대승기신론 에서는
이와 같은 사상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거룩한 붓다의 맑고 깨끗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덕성은, 흔들림 이 없는 한마음(eka-citta, 一心)에서 성립하는 것이며, 거기에는 어떠한 망념도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본성에 헤아릴 수 없이 맑고 깨끗한 덕성을 두루 갖추고 있는 것을, 법신 (dharma-kāya, 法身)이라 부르고, ‘붓다의 마음자리(tathāgatagarbha
如來藏)’라고도 부른다.77)
인간의 본바탕을 진여·법신으로 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깨달음 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는 것이다. 본디 중생의 바탕이 붓다이 므로 밖에서 붓다를 찾을 것이 아니라, 자신이 붓다임을 굳게 믿
고, 자신의 내면을 관하라는 대행의 가르침도 이와 같은 흐름으로 볼 수 있다. 한마음을 주체로 구성한 대승기신론 에서는, 그것을 ‘마음 그 대로의 모습을 관찰하는 부문心眞如門’과 ‘마음의 현상적인 모습을
74) 大乘起信論 (T32-576a12) “唯是一心, 故名眞如” 75) 이평래, 대승기신론강설 , p.114, 민족사, 2014. 76) 이평래, 新羅佛敎如來藏思想硏究 , p,291, 민족사, 1996. 77) 大乘起信論 (T32-579b07) “是一心, 更無所念, 是故滿足, 名爲法身如來之藏”
관찰하는 부문心生滅門’의 두 부문으로 나누어 서술하는 것부터가 한마음의 다중성을 꿰뚫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78) 여기에 서 한마음(ekacitta, 一心)이란, 1·2·3·4에 대응하는 1이 아니라, 전 체를 하나로 보는 절대적 의미의 1이다. 그러므로 유심唯心과 같
은 의미이며,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을 말한다. 경험⋅체험이란 한마음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자아의식만 한마음이 아니라, 외계도 한마음에 인식되어야 비로소 외계일 수 있다. 신神도 한마 음에 인식되었을 때 비로소 신일 수 있는 것이다.
한마음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 명료한 사실이지만, 그 변화하여 가고 있는 한마음에 불변의 특질인 청정성淸淨性이 있다 고 보는 것이다. 그 변화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를 제시하여 주 려고 하는 것이 대승기신론 의 목표인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
는, 자아ātman는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있는 것은 자아의식뿐이며, 자아 그 자체는 아니다. 그러므로 자아에 대한 해석은 사람에 따라서 다르다. 그런데다 우리의 자아의식은 끊임 없이 변화하면서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대승기신론 에서는, 이
와 같은 자아의식을 초월한 영원한 진여 법신을 탐구한다. 영원한 것은 진리 하나뿐이므로, 사람에 따라서 나의 진리라느니, 너 의 진리라느니 하는 식으로 구별하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진리는 보편자이므로, 한마음에서의 영원한 모습은 분별을 일삼는 자아의식을
초월한 것이다. 이와 같은 한마음에, 영원한 모습과 생멸하는 모습의 두 얼굴이 있으며, 이 두 얼굴을 중심으로 하여 한마음을 해석하고 있
78) 大乘起信論 (T32-576a05) “依一心法, 有二種門. 云何爲二. 一者心眞如門, 二者心生滅門”
는 것이다. 한마음은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모두 통섭(consilience, 通攝)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주 미묘하고 심층적이어서 난지난해한 요소를 지니고 있다. ‘마음 그대로의 모습을 관찰하는 부문心眞如門’과 ‘마음 의 현상적인 모습을 관찰하는 부문心生滅門’에 관한 내용은 한정된 분 량으로 말미암아 졸저79)로 넘긴다. 중국불교의 문화권에 들어있는 한국불교는 소승불교를 인천교라 고 비판하고 대승불교의 전통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또
대승불교를 크게 법성종法性宗과 법상종法相宗의 두 가지로 분류하 여 담론을 전개하는 전통이 확립되어 있다. 전자는 인간의 본성을 법성·진여로 보는데 대하여, 후자는 인간을 현상적 존재로 보며, 전자는 공(śūnyatā, 空)을 중시하는데 대하여, 후자는 색(rūpa, 色)을 중시하며, 전자는 평등하고 진실한 성품을 강조하는데 대하여, 후
자는 모든 존재의 차별상을 강조하고, 전자는 우주만물은 동일한 법성에서 생겨난 것이므로 모든 중생은 성불할 수 있는 성품을 갖 추고 있다고 믿는 사상인데 대하여, 후자는 우주만물의 본체보다
는 현상의 차이를 수용하고 그에 따라서 성불할 수 있는가 없는가 를 논의하는 사상이며, 전자는 천태종, 삼론종, 화엄종, 선종 등을 들 수 있으며, 후자는 아비다르마의 소승불교와 유식을 들 수 있 다. 이러한 것을 중심으로 하여 판별하면, 대행선은 법성종을 기 반으로 하여 출발한 선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법성종을 기반으로 하여 출발한 대행선은 인간의 본바탕을 붓다 와 같은 한마음으로 본다. 한마음을 진여·불성과 같이 보기 때문 에 인간 자체가 붓다라는 논리이다. 자신이 붓다인데 붓다를 찾으
79) 이평래, 新羅佛敎如來藏思想硏究 , 민족사, 1996.
러 밖으로 헤맬 까닭이 없다는 것이다. 대행의 가르침은 붓다를 찾으러 떠돌아다니지 말고 네 안에서 붓다를 찾으라는 것이다. 네 가 붓다인데 왜 또 붓다를 찾으려고 헤매느냐? 네 안의 한마음, 바로 그것이 네가 찾는 붓다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행선이
다. 그러므로 한마음을 빼버리면 대행선이 어떻게 설 수 있을까! 대행은 자신이 창안한 ‘주인공 관법’·‘세 번 죽는 수행’·‘일상생활 속 에서의 한마음 수행’등의 여러 가지 수행법80)을 몸과 마음으로 실참 實參하여 독특한 경지를 개척한 선사禪師이며, 또한 선사의 삶과 수행 법에 감화되어 선사를 따라 출가하려는 빅슈(bhikṣu, 比丘) 법제자까지 도 껴안은 평등정신은 선원청규의 새로운 전범인 것이다. 이와 같이
지범개차持犯開遮가 자재한 선사는 한국 불교사뿐 아니라 세계 불교사 에 새로운 장을 연 선사상禪師像을 정립한 것이므로, 그 정신을 높이 평가 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대행 스스로가 갈고 닦아 성취한 참선의
Ⅳ. 나오는 글
수행체계이기 때문에 감히 “대행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수행은 정신혁명이며, 그 수단인 선은 철저한 자기 부정이다. 자기가 이제까지 옳다고 믿고 있던 것을 100% 깨뜨려버리는 것 이다. 선은 정신혁명의 변증법이며, 끊임없는 부정⋅역설의 논리 이다. 변화/변혁/혁신/혁명을 갈망하는 것은 지금의 나를 부정하는
것이다. 자신의 만족에 도취되어 있는 사람은 변화를 원하지 않을 뿐 아니라 변화를 두려워한다.
80) 혜선, 한마음과 대행禪 , p.281, 운주사, 2013. “1. 대행선사의 수증관” 참조
대행이 닦은 슈라마나의 길은 수행의 과정으로 볼 때 천금을 캘 수 있는 광맥의 발견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 하면 자기가 자기를 혁명시킨 진인眞人의 길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자기 형성 의 길을 걸어 자신의 인격을 보여 준 것이다. 그가 그 길을 걷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진리의 감미를 맛볼 수 있었을까! 그렇지만 그 길은 성난 파도처럼 사납고, 거친 황야를 가다가 굶주린 사자를 만난 것처럼 촌각에 달린 목숨이다. 소년 싸띠야 까마 자발라와 소녀 노점순은 그 길이야말로 길 가운데에서 최고최상의 길로 삼 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길을 유유히 걸어 통과한 것이다. 진리
에 목숨을 맡겨버리고 목숨 없는 목숨으로 슈라마나의 길을 닦는 것은 오히려 어둠을 쫓는 햇빛과 같은 것이다. 드디어 땡감이 홍시가 된 것처럼, 범부가 성인이 된 것이다. 그 래서 예로부터 사람들이 수행을 그렇게 예찬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확률은 너무나 낮아 0%에 가깝다. 세리는 말할 것도
없고,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수행자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이 더 어려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싸띠야 까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민들로부터 선인仙人으로 존경을 받고, 노점순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민들로부터 참된 수행자로
존경과 예배를 받는다. 이것은 두 슈라마나가 정녕 바늘구멍을 통 과한 것을 알려주는 징표가 아닐까!
- Sutta-nipāta(經集) - Majjhima-Nikāya(中部經典)
- Sanskrit-English Dictionary - 金剛般若波羅密經 - 大方廣佛華嚴經 - 大般涅槃經
- 阿毘達磨俱舍論 - 大乘起信論
* 단행본 및 논문
- Saṁyutta-Nikāya(相應部經典) - Aṅguttara-Nikāya(增支部經典) - Khunddaka-Nikāya(小部經典) - Madhyamaka-Śastra(中論)
- 起信論疏 - 한마음선원, 한마음요전 , 2017.
- 혜선, 한마음과 대행禪 , 운주사, 2013. - 이평래, 新羅佛敎如來藏思想硏究 , 민족사, 1996. - 이평래, 대승기신론강설 , 민족사, 2017.
- 윤창화, 당송시대 선종사원의 생활과 철학 , 민족사, 2017. - 增谷文雄, 佛敎槪論 , 筑摩書房, 1965. - 雲井昭善, 佛敎興起時代の思想硏究 , 平樂寺書店, 1967. - 高崎直道, 佛性とは何か , 法藏館, 日本 京都, 1985.
- 梶山雄一⋅上山春平, 空の論理 , 角川書店, 日本 東京, 1996. - 이평래,「元曉の眞如觀」, 印度學佛敎學硏究 No.57, 日本 印度學佛敎學會, 1980.
- 柏木弘雄, 「心眞如と心生滅」, 佛敎學 第九⋅10號, 佛敎 學硏究會, 日本, 1980.
Regarding Hanmaum, the Essense of Daehaeng Seon
Lee, Pyong-Rae
Buddhism is a religion of enlightenment that aims to realize a peaceful “Pure Land” Buddhism by living a life that benefits all living things. Buddhism, a religion and philosophy characterized
by selflessness and emptiness, is a completely anti-metaphysical religion that denies the existence of reality. Because everything that exists is inherently empty and ‘self is an illusion, all things are impermanent and subject to change. Everything that exists
is a phenomenon, not reality. Therefore everything can not exist alone. Accordingly, it is the reality of the phenomenon that can exist only by interaction with other phenomena. Śākyamuni Buddha declared that this is the law of ”interdependent arising“
(Skt. pratītya-samutpāda). He said that one can become honorable and humble depending on their karma, not by their circumstance at birth. Ven. Daehaeng, who was awakened to truth by practicing the philosophy of Hanameum (one mind)
was born in Korea, and the Seon (Zen/ Chan) philosophy she advocated is now called Daehaeng Seon.
In India, the tradition of cultivating the path of a śramaṇa has been practiced for thousands of years and continues to this day, and Śākyamuni Buddha was the preeminent śramaṇa. Ven. Dae haeng can also be regarded as an enlightened practitioner who
followed the path of a śramaṇa. Ven. Daehaeng rejected the traditional custom of having to be accredited by a so-called master and the sagacity of the traditional toadyism (or flunkyism) of Chinese Chan Buddhism. In other words, she was not bound by any passive traditional Zen tradition but sought enlightenment through her own subjective and independent method of practice. In the process she established her own creative Seon style. Ven. Daehaeng practiced the path of a śramaṇa with all her heart and soul, attaining enlightenment and vowing to save all sentient beings. Eventually, she founded the Hanmaum Seon Center, now considered the grand temple equivalent to a Buddhist order (gaṇa, 敎團).
[Key words]
Buddhism, enlightenment, śramaṇa, Hanameum (”one mind“), Śākyamuni Buddha, Daehaeng, Daehaeng Seon, Thusness (Skt.tathatā), Dharma-body (Skt. dharmakāya).
대행의 행적에 나타난 혁신불교
김광식 (동국대)
본 고찰은 한국 현대 비구니의 고승으로 지칭되고 있는 대행의 역사성을 살피려는 고찰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그의 행적을 혁신 불교라는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지금껏 대행에 대한 학술적인 접근은 충분하지 않았고, 기왕의 일부 연구도 문도, 제자 등에 의하여 시도되었다. 이런 현황은 접
근의 다양성, 심화성, 역사성 등에 있어서 문제점을 갖고 있다. 이 런 전제하에서 필자는 대행 및 한마음선원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시론으로서 대행의 행적을 혁신불교의 관점에서 정 리하고자 하였다.
혁신불교는 불교의 수행, 제도, 노선, 포교 방법 등을 새롭게 추 진한 노선을 말한다. 이에 반해 개혁불교는 기존의 제도, 관행 등 을 유지하려는 복고적인 노선으로 보았다. 지금껏 혁신불교와 개 혁불교를 혼용한 것을 필자는 구분하고자 하였다.
이런 취지에서 필자는 이 글에서 대행의 행적을 수행, 교화 및 사회 활동, 자료, 정체성 및 계승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고자 하였 다. 필자는 대행의 연구가 심화되기 위해서는 그를 설명해주는 역 사적인 기록, 증언, 보조 자료 등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절대 필
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대행이 수행하고 추진하였던 제반 행적은 그에 연관된 자료를 객관적, 학문적인 입장에서 분석을 거친 연후 에 서술, 이해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런 입장에서 본고는 적지 않 은 한계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대행 행적의 성격에 따
른 정체성을 추출하는 선에서 머물고자 한다. 추후에는 각 행적의
시기, 행적, 내용에 따른 세부적인 연구가 이어져야 할 것이다. 이 연구가 대행, 한마음선원, 현대의 비구니사, 혁신불교 등의
연구에 참고가 되길 기대한다.
[주제어]
대행, 한마음선원, 비구니, 혁신불교, 개혁불교, 조계종
한국 근대~현대기 에는 독특한 행보를 걸어간 고승, 큰스님들 이 적지 않다. 이와 같은 고승들의 연구를 위해서는 그에 연관된 자료수집, 분석, 해석 및 토론 등이 필요하다. 그래서 후학과 관련
문중·문도들은 이런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서 연구기관, 연구회 등 을 설립하고 공개적으로 학술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고승 연구를 위해서는 철저한 자료수집, 발굴, 정리, 자료집 및 전집의 발간 등이 요청된다. 이런 기초적인 작업, 토대 구축을 하
지 않고 진행되는 고승 탐구 작업은 보편적인 성과를 내지 못할 염려가 많다. 또한 고승 연구에서 유의할 측면은 특수성과 보편성 의 조화를 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승에 대한 선양, 우호성, 당위 성 등을 강조할 경우에는 많은 문제가 제기된다. 요컨대 고승이 갖
고 있는 보편성, 역사성의 추출에 유의해야 한다. 그러면서 해당 고승이 갖고 있는 정체성을 정립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본 고찰은 필자가 대행선사大行禪師(1927~2012)의 삶과 역사, 사상 등을 본격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기초적, 예비적인 탐색의 글
이다. 대행 및 한마음선원에 대해서는 그간 다양한 자료집이 나왔 다. 그래서 그에 걸맞는 학술적인 정리, 연구 작업은 가사화되어 가고 있다. 최근 대행에 대한 연구 성과물이 서서히 나오는 추세 에1)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연구는 아직은 문손 중심에 머물러 있
다. 한국 비구니계의 큰스님으로 지칭되어온 저간의 사정, 한마음 선원의 위상 등을 고려하면 연구의 본격화를 진일보 시킬 과제에
1) 청고(2004) ; 혜선(2004) ; 혜선(2013) ; 한자경(2016).
직면하고 있다. 더욱이 대행사상을 계승하고 있는 문손의 존재, 한마음선원들의 활동을 유의할 경우, 대행선연구원 출범에 즈음하 여 대행에 대한 연구는 보다 강화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필자는 20년간 한국의 근현대 고승에 대한 연구에 주력하였다.
그 결과 다양한 성과물을 학계에 보고한 바가 있다. 특히 불교 근 대화, 불교개혁 등에서 특별한 행적을 보인 백용성白龍城과 한용운 韓龍雲에 대한 연구에 뜻을 두었다.2) 이런 고승을 연구하였던 배 경 하에서 필자는 본 고찰에서 大行의 행적을 요약하고 그를 통
해 나타난 ‘혁신불교革新佛敎’의 정체성을3) 도출하고자 한다. 필자가 이렇게 대행의 정체성을 ‘혁신불교’라는 관점에서 살피려 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 첫 번째는 대행의 사상 및 유훈을 기 리는 문손들이 만든 재단법인의 불교 단체가 조계종 내부에 독자 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는 한마음선원(법인등록, 1992)이 다. 두 번째는 대행과 한마음 선원은 독자 거점을 출범시킨 이후
종단 주류와는 개별적인 독특한 노선을 갔기 때문이다. 또한 대행 은 제도권 승단 내부의 구도(시스템)에서 수행(강원, 선원)을 하 지 않았다. 그리고 조계종단 내부에서의 비구니문중 계보도 특별 하게 강조하지도 않았다.4) 비록 한마음선원을 조계종단에 1982
년에 등록시켰고 최근에는 법인관리법에 동의하였지만 일부 측면
2) 필자는 백용성의 논문과 평전의 집필, 자료집 발간( 백용성대종사 총서 , 전20 권) 등에 직접적으로 관련을 맺었다. 그리고 백담사 만해마을 연구실장의 역임, 만해학회 회장을 하면서 한용운의 논문 집필, 평전을 펴냈다. 3) 필자는 개혁불교는 전통적인 보수 노선으로, 혁신불교는 진보적인 미래 노선으로 구분하고자 한다. 이에 대한 개념은 추후에 정리, 보완을 하고자 한다.
4) 하춘생은 대행을 육화문중으로 서술하였다. 하춘생(2013), 217.
(수행 등)에서는 개별적, 개성적인 노선을 가지 않았는가 한다. 요컨대 홀로노선을 띈 행보를 갔다. 세 번째 연유는 대행은 생존· 활동 당시부터 독자성이라는 측면에서 견고한 기반을 구축하였다. 한마음 선원을 본부로 국내외에 수십 개 처의 지원을 설립, 운영
하였던 것이다. 즉 대행은 현실적인 기반 구축에서는 여타 사찰, 문중과는 독자성, 이질성을 노정하였다. 네 번째는 한마음선원에 소속된 문손들은 대행의 가르침에 철저한 것으로 이해된다. 즉 한 마음선원의 운영, 정체성, 수행론 등에서 조계종단의 주류적인 행
보와는 개별적인 측면이 있다고 이해된다. 다섯 번째는 대행이 지 향한 독자노선은 기존 불교(종단, 교단)의 관행을 모방, 답습하지 않은 ‘혁신불교’의 성격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비록 그가 제도권 불교의 대표적인 종단인 조계종에 등록은 하였지만 그의 노선은 기존 불교와는 다른 성격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것을 필자 는 불교개혁이라 보지 않고, 혁신불교라는 관점을 투영시키려고
한다. 그 성격을 더욱 강조하면 새로운 불교, 새로운 종교의 측면 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행의 행보를 한국 혁신불교 의 역사에서5) 적절한 위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초 작업을 하려 고 한다.
이와 같은 대행(한마음선원)의 행보, 역사에는 흥미로운 측면이 적지 않다. 이 같은 측면은 한국 현대불교사, 불교개혁사, 고승의 역사 등에서 주목할 내용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이런 관점에서 본 연구를 대행이라는 인물의 수행, 교화 및 사회활동, 저서 및
법어집에 보이는 사상, 정체성 및 계승 등의 측면으로 대별하여
5) 김경집(2006) 차차석(2012) ; 김광식(2014).
살펴보고자 한다. 이 연구가 대행의 정체성 연구, 한마음선원의 정체성 및 운영 그리고 노선 등의 연구에 참고가 되길 기대한다. 부족한 점은 지속적인 연구로 보완하겠다.
Ⅱ. 대행의 행적에 나타난 성격
대행의 행적을 수행, 교화 및 사회활동, 저서 및 연구, 정체성 및 계승 등으로 대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이렇듯이 각 항목의 내용의 요약을 통하여 대행, 한마음선원의 정체성의 본질에 가까
이 가고자 한다.
1. 수행
대행의 수행의 개요를 요약, 개조식의 내용으로 제시하면 다음 과 같다. 고승이라는 인물의 삶과 역사를 이해하고자 할 경우에는 수행, 교육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출생 1927년 출신 서울 입산 1950년, 24세 무사독오無師獨悟, 자득자해自得自解(홀로 체험, 수행) 연고사찰 오대산 상원사, 무량사(우진, 육화문중, 승적) 수행 산중고행(두타행)
깨침(내면의 대화, 관법) ‘주인공主人空’ 관법으로 정립 보림(은둔, 정진), 두타행
대행은 입산 이전에 신식교육을 받지 않았다. 대행은 서구문화 와 일본문화가 유입되었던 근대 시기이었지만 근대적인 교육을 이 수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6) 그러나 해방공간이 마무리되고
6·25전쟁이 발발하던 해인 1950년, 24세에 입산을 하였다. 그러 나 대행의 수행은 여타의 고승들과는 전연 이질적이다. 요컨대 그 는 일정한 사찰에서 은사를 모시고 행하는 출가라는 기존의 관행 을 거치지 않았으며, 특히 제도권의 강원, 선원 등을 일체 이수하
지 않았다. 거의 자학自學, 자습自習을 통한 수행이었다. 그리고 득 도 이전에 홀로 수행으로써 깨침을 경험하였다. 이런 과정은 독특 한 것이고, 독자성이 강열한 것이었다. 이는 대행 스스로가 밝힌 것이기도 하고, 그의 문손 연구에서도 재확인되는 내용이다.7) 그
러나 대행에 대한 구체적,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대행의 정체성을 정립하고자 할 경우에는 대행의 입산 출가 및 수행에 대한 보편적 인 설명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행의 수행체계, 한마음선
원의 역사 등에 문제가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입론에서 두 가 지 측면을 지적한다. 우선 대행의 수행, 깨침 등에 있어서 이를 어떤 교리 체계, 혹
은 근거에 의해서 보편적인 이해를 할 것인가의 문제가 제기된다. 요컨대 대행은 불법을 깨달았는가? 이다. 이에 대해서 선학 연구
7) 혜선(2013), 124-125.
6) 야학에서 산수를 배운 게 전부라 했다.
는 “불법의 정도를 터득하고 실천하였고”8), 혹은 “둘이 아닌 도리 [生佛不二]를 체험하고 점검하면서 증득했다”9), 또는 “산중고행을 통해 깨달음을 증득하고 산속의 자연과 뭇짐승들과 미생들에 이르 기까지 둘이 아님을 체험하고 점검하면서 보임을 하였다”10)고 서
술했다. 이는 일정한 고민, 근거에 의해서 나온 서술이기에 일단 은 신뢰를 할 수 있지만 보편적인 관점(논리)에서는 의아스런 측 면이 있다. 예컨대 터득, 증득, 체험은 불교계에서 일반적으로 말 하는 깨달음과 어떤 상관성을 갖는 것인가? 즉 대행은 깨달았는
가? 깨달았다면 그를 말해주는 오도송이 있는가이다. 오도송이 없 으면, 그에 대해 당신은 어떤 입장을 피력하였는가? 이다. 이에 대한 부연 설명이 있을 때 대행 역사의 기반이 탄탄해질 것이다. 여기에서 지적할 또 다른 측면은 대행의 수행에 영향을 준 인물 에 대한 문제이다. 지금껏 나온 대행의 자료에 의하면 대행은 출 가, 발심 등에 있어서 오대산의 도인이면서 근대의 선승으로 명망
이 높은 방한암에게서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온다.11) 그리고 1960~80년대에는 한암의 법제자인 탄허로부터 일정한 도 움을 받은 것으로 나온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암은 선사, 율사, 자비보살이었지만12) 그는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의 실천을 강조한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오대산 산중에 27년간 불출 산不出山하면서도 후학들에게는 승가오칙僧家五則을 가르쳤다. 승가
8) 위의 책, 124. 9) 위의 책, 161. 10) 위의 책, 173. 11) 한마음선원(1993), 102의 45번 서술 참조. 12) 김광식(2016)
오칙은 승단의 일원이면 참선, 염불, 간경, 의식, 가람수호를 반드 시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13) 그래서 오대산 출신의 승 려, 혹은 한암에게 배운 승려들은 이 가르침을 체득하였던 것이 다. 대행이 한암에게 영향 받은 것이 적지 않았다면 승가오칙과도
연결되는 내용이 있었지 않았을까 한다. 예컨대 대행은 다음과 같 이 한암의 가르침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였다.
한암 큰스님의 법문은 내게 큰 가르침이 되었다. 나는 도시 경전 을 알지 못했지만 큰스님의 가르침이 내게는 팔만 사천의 대장 경이나 같았다. 내가 들은 법어는 한 마디로 빼놓지 않고 나에게
진수성찬의 법반이 되었던 것이다.14)
즉, 위의 어록은 한암의 영향력을 대변한다. 요컨대 대행은 오 대산 불교문화에서 영향 받은 바가 많았다.15) 추후에는 이에 대
한 객관적인 영향, 사상성 등을 집중적으로 정리해야 한다.16)
또한 한암의 법제자인 탄허는 유불선儒彿仙 사상을 회통한 대강 백의 정체성을 가졌다. 그는 한암의 부촉을 받아 화엄경 을 비롯
13) 신규탁(2013), 708-723 ; 김광식(2015a), 506-508 ; 김호성(2016), 346-348. 14) 한마음선원(1993), 54. 15) 한마음요전 의 출가 수행기에는 한암스님 뿐만 아니라 대행에게 자상하게 대해 주는 고승으로 자주 나오는 ‘노스님’이 나온다. 이 노스님도 한암스님인지 아니 면 또 다른 승려인지가 애매하다. 다른 승려라면 그의 법명, 정체에 대한 탐구 가 요청된다.
16) 혜선은 한마음과 대행선 , 301에서 한암을 만나서 화두참구에 새롭게 눈을 뜨고, 오대산문과 기연이 되고 난 다음 불교적 수증관계를 정립하게 되었다고 서술했다.
한 수십여 경전을 번역하였다. 그의 번역 사업, 오대산수도원의 개설을 통한 교육사업은 결사라는 말을 들을 만큼 대단한 불사이 었다.17) 탄허는 제도권 교육을 일체 받지 않았지만 그의 안목과
시대인식은 당시 엘리트층을 지도할 정도로 탁월한 측면도 있었 다.18) 그런데 대행은 이런 탄허를 통하여 종교적 기반 정립, 종단 등록을 하였다. 예컨대 탄허는 1970년대 초창기 한마음선원에 와 서 3년간 대중들에게 화엄경 법문을 해주었으며, 한마음선원의 종단 등록도 탄허의 권유에서 나왔다.19) 그래서 대행은 탄허를
존경하였다고 한다.
탄허스님과 스님의 교분은 매우 자별하신 데가 있었다. 두 분께 서는 자주 법담을 나누곤 하셨는데 당대의 석학으로 손꼽히던 탄허스님께서는 특히 스님의 무위세계에 대한 말씀을 경청하셨
다.20)
이처럼 대행과 탄허는 자주 법담을 나누고, 서로 인정하였다. 대행과 탄허의 친근성을 전하는 기록은 그 밖에도 또 있다.21) 이 와 같은 여러 측면을 종합할 때에 대행은 탄허에게서도 일정한 영 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탄허는 1950년대 후반, 1960년대 초 반 무렵에는 강원도에서 오대산수도원, 영은사수도원을 개설하여
17) 김광식(2002) 참고. 18) 김광식(2013a) 참고. 19) 탄허문도회(2013), 61-62. 20) 한마음선원(1993), 219. 21) <한마음 저널> 72호(2013.11·12), 「연꽃향기 ; 자비로나투신 우리 부처님, 탄 허큰스님 탄신 100주년 기념」.
비구, 비구니, 재가자 등을 가리지 않고 개방적인 교육에 임하였 다. 이런 시절이었기에 대행과 연고를 가졌을 것이다. 그리고 1970년대에는 서울의 개운사에 주석하면서 그의 지성을 불교계 내외에 전파하였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 탄허는 불교지성의 대표
이었다. 때문에 대행의 포교, 한마음선원의 정착에는 탄허의 영향
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22)
이와 같이 한암 및 탄허의 영향을 받았지만, 대행은 고독스럽게 수행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정비하였다. 이와 같은 행보는 1980 년대 중반, 신도들에 의해 상원사(치악산) 에 세워졌던 탑비문에 서 찾을 수 있다.
대행 큰스님께서는 일찍이 아홉 살 어린 나이에 나는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가 하는 의증을 드시더니 결단코 본연의 소식을 알아내겠노라 하시며 산을 베개 삼고 하늘을 이불 삼고 달과 별 로 등촉을 밝히시어 철야로 정진을 거듭하시었다. 그러던 중 불기 이천사백구십 사년 스물 셋 되시던 해에 한 대 선사 앞으로 나아가시어 향 사르고 계를 받아 불문에 드시니 스 님께서는 그 대선사의 법맥을 잇는 마지막 법제자가 되시었다. 그로부터 스님께서는 물 한 모금, 열매 한 알로 연명하시며 설산 고행에 비견할 두타행으로 이름 모를 산야를 편력하시기를 사 년 여에 마침내 물바퀴 불바퀴를 넘어 생멸 진여의 문을 뚫으시니 천 지가 숨을 죽이고 일월이 빛을 잃는 대각을 이루셨도다. 이후 스님께서는 역대의 선사들의 선지식을 찾아가 법거량을 해 오심과는 달리 산천초목 일월성신을 상대하셨는바, 해와 달을 석 장에 꿰고 이산 저산 한 산 푸른 산을 한데 모아 상투 틀고 주장 자를 동곳 삼아 땅 길, 하늘 길, 길 없는 길을 발 없는 발로 다니
22) <현대불교> 2012.5.27, 「내가 본 대행스님」.
시었다. 스님께서는 그렇게 사년 여를 묵연히 대장부 살림을 사시던 중 에 발걸음이 이 치악산 상원에 이르매 비로소 걸망을 내리고 중 생제도의 길에 드시었다. 스님께서는 한동안 토굴에 머무르시며 인천의 도리를 살피시어 행주좌와 중에 자재로이 유생 무생을 두 루 건지셨는바 이때 스님의 유택을 입은 자, 제도받은 자가 인산인 해를 이루고도 남음이 있었다. 스님께서는 당시에 불연을 따라 상원사 중창 불사에도 힘을 기 울이시었으니 역사하심에 모든 물자는 마치 하늘에서 오는 것 같고 그 공용은 신장을 부리시는 것 같아 지혜로는 짐작하기조 차 어려웠다. 스님께서는 마흔 되시던 해에 이제 부처님의 은혜를 갚겠노라 하시며 자비의 그물을 들고 하산하시어 사바의 고기를 건져 올 리시더니 몇 해 지나지 아니하여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에 한마 음선원을 일으키시었다. 이로부터 스님께서는 한량없는 진리의 곳간을 여시어 유무생을 고루 먹이시었고, 맑고 밝은 구슬 굴리
시어 오가는 학인들을 남김없이 제접하시었다.(하략)23)
위의 비문은 대행의 출가, 수행, 오도, 초창기 교화를 전하는 문 장이다. 여기에 나오듯이 그는 제도권에서의 출가와 수행을 하지 않았다. 그는 홀로 수행, 산중고행이라고 하겠다. 지금껏 서술하면서 필자가 강조하려는 내용의 첫 번째 초점은 오대산의 도인이었던 한암과 현대불교의 대강백인 탄허의 영향을 어떻게 이해하고, 서술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초
점은 대행이 홀로 수행한 것의 정체성, 역사성을 정비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대행의 수행론, 한마음선원은 더욱 탄탄하지 않을까
23) 한마음선원(1993), 102-103. 추후, 이 비문과 연관된 역사적 사실은 비교 검 토되어야 한다.
한다. 세상의 일, 인간사는 특수성인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보 편성으로 설명이 되어야 한다. 예컨대, 한국 승가에서 전승된 대 표적인 화두인 ‘이뭣고’와 대행의 ‘주인공’의 화두와는 어떤 동이 점同異點이 있는가를 설명하는 것이 하나의 사례일 것이다. 우연과
필연이 교차하면서 생산해 낸 역사의 흐름을 설명하고, 그에 대한 적절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후학의 과제일 것이다.
2. 교화 및 사회활동
대행이 수행을 하고, 깨달음을 이룬 다음에 행한 교화 및 사회 활동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물론 본격적인 대행의 활동은 1970~2000년대이다. 즉 현대불교사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던 시
기이었기에 그 활동을 즉각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애매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대행의 정체성을 점검하기 위한 차원에서 제시 한다.
상원사(치악산) 불사(1963) 안양, 담선법회 개시(1971) 대한불교회관(안양) 건립(1972) 일원상一圓相 표방 한마음선원으로 개칭, 조계종에 등록 (1982) 음성에 지원 개원(개시) 국제불교학술회의 증명법사, 참가 선 수행의 독창성(주인공 관법 등) 선법가 포교 선법가禪法歌를 통한 포교, 합창단 창단(1984)
영탑공원 설립(1986) 정기적인(셋째, 일요일) 대중법회 개시 미국(갤리포니아), 국외 지원 개원(개시) 국외 초청법회 개시(1987) 거사법회 개시(1990) 전국청년법회 개시(1991) 현대불교 창간(1994) 한마음불교방송국 개설(1999) 장학사업 개시(2006) 한마음봉사단 발족(2008)
위에서 개조식으로 정리한 대행의 교화, 사회활동의 의미를 살 펴보고자 한다. 대행의 활동은 주로 포교 차원에서 이루어졌다는 특성이 나타난다. 종단, 사회, 국가 등과 연관된 불교 외부 차원의 활동은 찾아지지 않는다. 이는 대행이 처하였던 시대 상황과 무관
치 않다. 즉 대행이 주된 활동을 하였던 1970년대 이후는 해방으 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시점이고 국가권력과 대응적 관계를 맺으 면서 전개된 불교정화운동이 마감된 시점이었다. 이는 불교 및 종 단이 대국가적인 차원보다는 내적인 문제에 주력하였음을 말해주 는 것이다. 그런데 대행의 활동은 세단계로 나누어서 이해된다. 우선 첫 번째 단계는 1971년부터 대한불교회관을 한마음선원으
로 개칭하기 이전 단계이다. 이때는 원주 상원사의 불사(1960년 대)를 마감하고,24) 안양지방으로 이전하여 기반 조성을 한 단계 이다. 대행과 한마음선원이 초창기 단계로 불교 외곽에서 고독하
24) 이는 탄허스님이 지은 「雉岳山上院寺 事蹟碑記」에 나온다. 탄허문도회(2003), 366-369.
게 터전 확보의 작업을 추진하였던 시기로 이해된다. 다음 두 번째 단계는 1982년 즉 한마음선원으로 전환하고 조계 종에 등록을 하면서 본격적인 종단 중심부로 진입한 시기이다. 1982년부터 1994년 현대불교 창간 이전까지의 기간이다. 이
기간은 대행의 포교 활동과 한마음선원이 본격적으로 발전 단계로 진입한 단계이다. 이 기간에는 국내지원, 국외지원의 개설이 개시 되었으며, 대행의 활동이 국제적인 차원으로 전개되었다. 특히 선법가 활동, 영탑공원의 가시화는 여타 단체에서 볼 수 없는 특
이성이었다.25) 그런데 한마음선원의 일면에는 대행의 ‘신비성神秘
性’(治病)에 대한 지적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신종교, 신종단, 급성장하는 교단에는 이런 신비성이 늘상 있어왔다. 필자가 보건 대 한마음선원도 이런 측면을 적극적으로 수용, 해석을 하여서 그
를 보편적인 역사로 활용하였던 것도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행 역사에서 보편과 특수의 조화가 요청된다. 세 번째 단계는 1994년 현대불교 의 창간부터 입적하였던 2012년까지로 설정할 수 있다. 이 단계에서는 대행과 한마음선원
이 불교계 중심부에 완전 진입하여 정상에 섰던 기간이라 하겠다. 그 어떤 사찰, 단체도 행하지 못하였던 불교계의 신문을 설립, 경 영한 주제는 누구이었는가? 더욱이 비구니 스님이 신문사를 경영 한다는 것은 그 당시는 놀라움 그 자체이었다. 그리고 대행이 추
진한 거사법회, 청년법회, 불교방송국 등은 불교계에서는 감히 시 도할 생각을 할 수 없었던 신선한 불사이었다. 소외자, 방관자이 었던 거사와 청년을 주제로 법회를 하였음은 CEO적인 마인드라
25) 향후 이런 분야에 대한 집중적인 검토가 요청된다.
아니 할 수 없다. 그러면 여기에서 대행의 CEO적인 마인드의 사 례를 제시하겠다.
스님께서 1986년도에 충북 음성군 금왕 지원 경내에 영가를 모 시는 탑공원을 조성하셨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매장묘 방식 에는 시대에 뒤떨어진 점이 있어 이를 좀더 지혜롭게 바꾸는 것 이 좋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해당 관청이 법 규정에 얽매여 꺼 리더니 끝내는 납골탑이라는 이름으로 인정하였다. 스님께서는 이를 들으시고는 진실한 마음으로 나라를 위해 개발하고자 해도 이해하지 못하니 개탄스럽다고 하셨다. 이 탑공원은 국내 최초로 시도된 새로운 묘지 제도로서 스님께서 이를 직접 구상하셨는
데26)
스님께서는 또 불법의 생활화를 위해 10여 곡의 선법가를 직접 작사하시고는 전문 작곡자들에게 곡을 의뢰해 널리 부를 수 있 게 하였다. 스님께서는 이왕에 불리고 있는 찬불가 노래말이 대 부분 ‘진리를 자기 안으로 찬탄하고 찾기보다는 밖으로 대상화해 놓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진리와 더욱 멀어질 염려가 있다.’고 하시면서 직접 노래말을 지으셨다. 스님께서는 ‘그러므로 찬불가 라 하기보다 선법가라 이름 함이 좋고, 곡의 분위기도 밖으로 찾 는 서양의 악풍보다는 내면의 심성을 관조하는 동양의 악풍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27)
스님께서는 과학 문명의 급속한 발전에 상응하여 불교현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하시고는 1990년 봄에 연구원 설립을 지시 하셨다. 스님의 말씀에 따라 승단과 신도회가 협력하여 연구위원
26) 한마음선원(1993), 137.
27) 위의 책, 139.
을 선정하고 곧 이어 연구원을 개설했다. 연구원의 첫 번째 과업 으로는 스님께서 여러 해 동안 해 오신 설법의 내용을 정리하는
일이 선정되었다.28)
스님께서는 현대 과학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오직 마음법을
깨우치는데 있다고 강조하셨다.29)
이 같은 혁신적, 파격적, 특별한 시도는 그 자체가 혁신불교이 었다. 시대의 변화를 예견하고, 대중의 심성을 고려한 불법 생활 화의 구현이었던 것이다. 이런 혁신적인 노선, 실천하에서 거사와
청년층의 수희동참을 이끌어내었고, 그것이 한마음선원 발전의 강 한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이런 성격은 한마음봉사단 발족 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런 사업은 요컨대 발상의 전환과 다른 고 승이 행하지 않는 독특한 설명법을 통해 명실상부한 사부대중의 교단을 구축한 것이라 하겠다.
우리 선원의 가족은 승려만도 아니고 신도만도 아니니라. 초목과 금수, 미물까지도 오래 전부터 우리 선원의 가족이었거늘 어찌 그만한 일로 마음을 썩이는가. 억겁 전 이래로 모두 나와 여러분 들의 벗이었고, 스승이었고, 육친이었으며 억겁 미래까지도 또한
그럴 할 것이다.30)
남들이 “학술적으로 하지 않고, 경전으로 하지 않고 왜 그렇게 딴말을 하느냐?” 그래서 내가 이런 말을 했죠, 풀포기 하나도 생 28) 위의 책, 140. 29) 위의 책, 141. 30) 위의 책, 276.
명이고 이심전심으로 전달하고, 같이 공생共生을 하고, 공식共食 하고 있는데 무엇이 부처님 법이고 무엇이 부처님 법이 아니냐
고 그랬습니다.31)
필자는 위의 내용에서 사부대중을 벗어나 무정, 유정까지도 평 등하다는 사상의 폭을 주목한다. 불교사상에서 찾을 수 있는 이런 광폭성은 사상으로는 지적은 되었지만, 이를 포교 및 사찰 운영의
지침으로 삼았던 것은 놀라움 자체라 하겠다. 이런 행보는 중생과 더불어 가겠다는 의미이다.
스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아무리 오묘한 법을 깨친다 하더라도 중생과 더불어서가 아니면 도가 될 수 없고, 아무리 드높은 경지 를 체달한다고 해도 눈물이 없는 것이라면 나는 따르지 않겠다.
깨우친 목석보다는 자비심 있는 중생이 더 아름답다.”32)
그래서 결과적으로 서울 외곽에 시작된 대행의 활동은 사부대중과 함께하는 사찰 운영으로 열화와 같은 호응을 받아, 대작불사를 이루 어서 불교, 조계종단의 중심에 우뚝 섰다고 보고자 한다. 이와 같은 대행의 활동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즉 포교에 진력한 사업, 국내외를 망라한 전 세계적인 차원의 불사, 불교 사업의 소외 층(거사, 청년 등)을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은 발상의 대전환 등이었 다. 그래서 필자는 이 같은 사업을 주도한 대행은 불교 CEO라고 지 칭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 같은 대행의 노선은 종단 외곽에서 종단 중심부로 진입한 것이다, 즉 종단 비주류에서 주류로 이전한 것
31) 한마음선원(2001), 91. 32) 한마음선원(1993), 157.
이었기에 여타 본사 중심의 행보와는 완전 대비되는 노선이었다. 한편 여기에서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소외 자 층을 끌어안고 불사가 성공하게 된 그 당대(1970~1990 ; 30 년)의 일반사, 불교사 흐름에 대한 면밀한 검토 후에 대행의 불사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본다. 그 당대 불교와 종단은 마땅히 걸어 가야 할 행보, 노선을 가지 못하였는데 그 당위의 노선을 대행은 걸어갔고 성사시킨 것이 아닌가 한다. 산업사회에서 소외된, 불교 를 진정으로 필요한 계층에게 손을 내민 사업이 응답을 받았던 것 이다.33) 여기에서 필자는 한마음선원이 출범하여 성장하고, 독자
화에 성공한 것에는 그 당시 불교계가 처한 내외의 여건을 극복한 것이라고 보려고 한다. 그러면 그 당대 불교가 처한 고난의 과제는 무엇이었을까? 이에 대해서는 추후 종교사회학적인 접근, 분석이 요청되지만 시론으로 서 제시한다. 그 첫째는 1970년대의 시대적 성격에 대한 문제이
다. 1970년대에도 1950~60년대에 있었던 6·25전쟁 후유증의 지 속이 있었다. 그래서 민족 구성원들은 경제적, 이념적인 피해에 대한 상실감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산업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지방에서 서울 및 수도권으로 이주한 주민들은 근거지 박탈과 빈 부 격차에 따른 마음의 불안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마음의 공허감을 보충시켜줄 새로운 탈출구가 필요하였던 것이다.
요컨대 산업화 사회로 야기된 세속화, 금권화, 이기주의 등의 모
33) 향후 한마음선원의 신도층, 연고 대중들에 대한 입체적인 조사가 요망된다. 이 는 사회학적, 응용불교적인 차원에서 흥미로운 연구 과제이다. 그래서 한마음 신 도들이 한마음선원 및 대행과 인연을 맺은 동기, 시점, 변화상, 바램 및 비판 등 다양한 측면에서 조사가 요청된다.
순을 종교적으로 해소시켜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새로운 시대 적인 종교문화의 필요가 요청되었다. 이는 새로운 종교지형의 변 동으로 이어졌다. 이런 시대적 요청과 대행 및 한마음선원의 노선
은 부합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34)
두 번째로는 1980년 10·27법난에 따른 기존 종단, 본사, 고승 등에 대한 거부감에 대한 문제이다. 법난으로 불교의 모순에 불만 을 품었던 사부대중의 흡수, 유입이라는 문제를 거론할 수 있다. 신군부로 대변되는 군사정권의 등장 및 유지에 필요한 명분을 불 교계의 비리 척결에서 찾은 것이 법난의 외부 요인이었다. 그러나 법난을 유발케 한 불교 내부의 모순이 적지 않았다.35) 이런 양
측면이 결합되어 법난은 일어났는데, 문제는 그에 대한 후유증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 신자들은 불교의 거부, 이탈, 탈종 을 하였던 것이다. 이런 문제를 겪을 즈음에 한마음선원은 더욱 더 성장을 하였다고 이해된다. 이는 기존 종단, 사찰, 고승에서 찾
을 수 없는 사부대중의 운영, 재가자의 배려는 남다른 행보이었 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불교, 교리, 생활선 등을 간명하게 전달하 였던 대행의 교화력을 말한다. 이는 대행의 사상이 대중들에게 인 정을 받았음을 말한다. 필자가 주장한 이런 측면은 추후 객관적인
조사, 분석에 의해서 검증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배경하에서 대행과 한마음선원이 추구한 당위 노 선은 무엇인가? 그것은 불교대중화였다. 주인공 사상, 생활선을 통한 포교 전략이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추후에 별도의 고찰
35) 김광식(2013b) 참고.
34) 이원규(1993), 202 ; 윤승용(1997), 195-213.
로 분석해야 함은 당연하다. 한편, 대행은 안양 초창기에 일원상一
圓相을 표방하였다. 이는 아주 흥미로운 사실이거니와 불교혁신을 걸어갔던 근대 고승인 백용성과 원불교의 창시자인 소태산이 일원 상을 수용한 것은 참고할 역사이다. 이들은 혁신불교의 길을 걸어
가면서, 대각교大覺敎와 불법연구회佛法硏究會(圓佛敎)를 설립하여 기 존 교단과는 차별적인 노선을 걸어갔음을 유의해야 한다.36) 여기 에서도 대행의 혁신불교의 성격을 찾을 수 있다. 이렇듯 대행의 활동은 기존 주류, 종단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혁신불 교적인 흐름의 기조하에서 전개되었음을 유의해야 한다. 대행의 불교 혁신은 기복 및 경전 중심에서 참선중심으로 포교,37) 소외자 중심의
포교, 선법가로 지칭된 음악포교, 서적 및 미디어를 활용하는 적극적인 포교, 일원상 수용,38) 참선의 독창성(주인공 관법, 세 번 죽는 수행 단계 등)39) 등을 거론할 수 있다. 추후에는 이런 양상들에 대한 개별 적인 분석, 탐구, 의미 부여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3. 사상 ; 저서, 법어집 등
이제는 대행의 사상은 어떻게 볼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살피
36) 김광식(2015b), 67-71. 용성은 신도들의 이질감, 난색으로 인해 화과원(함양, 1927년 설립)에서만 일원상을 표방하였다. 37) 한마음선원(1993), 135, 166. 38) 대행도 일원상을 초창기에 걸어 놓았다가, 조계종 등록을 한 1980년대 초반 이 후에는 법당에 본존불만 모셨다. 한마음선원(1993), 135, 27~29항의 내용 참 고.
39) 혜선(2013), 302-318.
고자 한다. 즉 대행의 불교사상, 사회사상 등을 어떤 개념으로 부 를 수 있을까? 이다. 이에 대해서는 아직 정립에 이르지 못하였기 에 개념화에 이르기 위해서는 다각적, 치밀한 분석이 요청된다. 이런 개념적 시도를 위해서는 그의 저술, 자료집 등에 대한 총체
적, 종합적인 분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마음선원, 허공을 걷는 길 (정기법회, 4권)(한마음선원출판부, 1999) 한마음선원, 허공을 걷는 길 (법형제법회, 2권)(한마음선원 출판부, 2001) 한마음선원, 허공을 걷는 길 (국내지원법회, 3권)(한마음선원 출판부, 2005) 한마음선원, 건널 강이 어디 있으랴 (한마음선원 출판부, 2009) 한마음선원, 그냥 무조건이야 (한마음선원 출판부, 2009) 한마음선원, 허공을 걷는 길 (국외지원법회)(한마음선원 출판부, 2011) 김정빈, 道 (1985, 글수레) 김정빈, 無 (1986, 글수레) 서혜원, 영원한 나를 찾아서 (글수레, 1987) 한마음선원, 신행요전 (한마음선원 출판부, 1987) 불법 영원한 복락을 찾아서 (여시아문, 1988) 이제열, 한마음 ; 대행스님 대담집 (글수레, 1988) 김정빈, 영원의 오늘 (연꽃선실, 1989) 노 산, 죽어야 나를 보리라 (늘푸름, 1991) 한마음선원, 한마음요전 (한마음, 1993) 박진우, 발없는 발로 길없는 길을 (예성인쇄소, 1993) 한마음선원, 자유인의 길 (한마음선원 출판부, 1994) 신도회, 영원한 길의 시작 ; 신행담 (여시아문, 1996) 서혜원, 삶은 苦가 아니다 (여시아문, 1996) 현대불교, 생활 속의 불법수행 (여시아문, 1998) 한마음선원, 내마음은 금부처 (2009) 국제문화원, 건널 강이 어디 있으랴 (한마음, 2009) 외국어 법어판 다수(영어, 독일어, 중국어, 스페인어 등)
지금부터는 위에서 제시한 대행과 관련된 저술 작업의 특성을 도출하면서, 그 성격을 찾아보고자 한다. 대행과 관련된 저술은 다양하고, 그 폭이 넓다. 이와 같은 저술, 자료를 정독한 연후에야 그 대강의 흐름을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대행은 반야심
경 , 천수경 등을 뜻으로 풀어 한글화하였음을 유의할 수 있다. 이는 그가 시대 상황과 대중들의 정서에 기민하게 반응한 측면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전제에서 대행 저술의 첫 번째 특징은 대행 자신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직접 저술한 대상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 신의 법문, 어록, 발언 등을 모으고 정리한 것을 자료집 성격의 책으로 다수 남겼다. 그는 대행스님 법어집 시리즈와 죽어야 나 를 보리라 (한마음, 1991) 등 몇 권에 달한다. 두 번째 특징은
대행은 자신의 법어, 어록을 정리한 책을 펴내면서도 그의 주변에 있는 학자, 신도, 신문사, 한마음선원 등 다양한 주체들이 자신의 사상, 행적을 정리한 책을 펴내도록 허락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사상을 널리 보급하려는 적극적인 의지로 이해된다. 이는
한마음선원을 기반으로 한 적극적인 포교의식을 보여준다. 세 번 째 특징은 대행의 어록 및 법어집은 외국어로도 번역되어 전 세계 에 보급되었다는 광폭성이다. 이는 한마음선원이 해외로 나갔던 개척적인 현실에 부응하는 것을 말해준다. 네 번째 특징은 대행의
자료 중에서 1970년대와 그 이전의 자료가 부재하다는 것이다. 추후 한마음선원에서는 이 시기의 자료를 중점적으로 수집, 정리 해야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구술사 증언 채록이 요청된다. 그 래야만 대행사상, 한마음선원의 정체성과 역사를 정리할 수 있다.
다섯 번째 특징은 한마음선원이 주체가 되어 대행의 법어, 행장의 핵심을 정리하여 한마음요전 – 대행스님 행장기·법어집 (1993) 이라는 단행본으로 펴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1~3부,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부적인 내용은 수혜, 법연, 심인, 원리, 생활, 활
용, 게송 및 선시, 예화 편 등이다. 대행 및 한마음선원을 이해하 려는 초심자, 신도들을 위한 책자로 이해된다. 그러나 그 책의 일 러두기에 나오는 바와 같이 추후 대행의 본격적인 연구를 위해서 는 전집 형태로 나가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의 긍정성(효율
성, 집약성 등)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전집, 일화집 등등은 가급적으로 1차, 2차 자료에 의거하여 정리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본다. 편집자, 전문가 그룹에 의해서 정리는 되어야 하겠 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사료적 가치가 떨어진다. 추후, 연구의 추
진에 장애가 될 여지가 예상되기 때문이다.40) 또한 우려스러운 점은 한마음요전 의 발간 의도를 담백하게 수용하지 않을 경우
신흥종단을 지향한다는 오해를 유발할 가능성이다.41)
이런 대행의 책자에 나타난 성격은 적극성, 포교성, 현장성, 세 계성 등이 엿보인다 하겠다. 다만 현행 나와 있는 책자에서 6하 원칙, 불법 및 전통불교와의 연계성 등은 생경하다. 추후 이런 점
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의 문제가 놓여 있다. 이런 측면에서 대 행의 저서 및 법어집을 동 시대의 고승, 큰스님들의 저술과의 동
40) 대표적인 문제는 요전에 서술된 내용들이 언제, 어디에서 행한 것인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진실은 6하 원칙에서 설득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41) 이 점은 본 고찰의 연구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원불교의 원 불교요전 과 흡사한 느낌을 받았다. 이 책과 한마음선원(2008)을 함께 분석하 면 한마음선원의 정체성을 더욱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점同異點을 도출해야 한다. 이는 대행선의 사상적인 측면을 새롭 게 개척하기 위함이다. 즉 대행의 사상에서 전통성, 한국불교 및 동아시아적인 사상과의 동질적인 면도 찾으면서 동시에 대행만이 갖는 독창성, 개방성, 포교성. 생활성, 세계성을 도출하여야 한다.
4. 정체성 및 계승
대행은 한국의 현대불교 및 비구니계에서 일가를 이루었다. 그 일가는 다의적인 측면이 강하다. 본 장에서는 대행의 정체성과 계승이라는 측면에 한정하여 그 성격의 기초를 도출하고자 한다.
2012(86세) 비구니, 육화문중 단일적 그룹
입적 문중 문손 연고사찰상원사(오대산, 치악산), 지장암(월정사) 무량사(은사) 국내지원 15개 처, 국외지원 10개 처 한마음선원(2013) 비석 사르보다야 명예상(스리랑카, 2001) 유공 유엔, 위대한 불교여성상(2002) 조계종 포교대상(2010) 비구니회 공로상(2012) 한마음선원(재단법인, 1992) 계승 행사
자료집
추모법회 한마음선원, 각 지원 한마음요전 (1993)과 다수의 법어집
연구기관 한마음과학원(1996) 한마음국제문화원(1999) 대행선연구원(2016) 연구서, 논문 10여 건 이념·정체성 선사禪師 기복불교와 경전위주 불교의 배척 생활선, 대중선-선禪 중심주의 포교 ; 선禪의 생활화, 현대화, 세계화 비구니 큰스님 한마음 대행선 ; 자생 화두, 독자성, 기존 간화선과는 다름
지금부터는 필자가 위에 적시한 대행의 정체성과 계승을 유의하 면서 그 성격을 도출하고자 한다. 이 같은 성격 도출은 객관적인 연구에 의해서 더욱 심화되어야 하겠지만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에 의지하여 논지를 전개하겠다. 구체적인 서술은 대행의 계승 문제
에 유의하여 살펴보겠다. 필자는 본 고찰에서 대행의 정체성을 혁 신불교라는 관점에서 찾아보고자 하였다. 이제는 대행의 어록에서 그런 혁신성의 사례를 도출하고자 한다.
스님께서는 생활 불교의 구체적인 실천을 위해 신도회와 사찰의 조직 체계를 세우셨다. 그러나 포교 방법에 대해서는 따로 이르 시는 말씀이 없으셨는바, 재래식의 기복 불교나 경전 위주의 의 론을 원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스님께서는 선원 신축 초기에는 법당에다가 불상을 조성하지 않으시고 대신 일원상(一, ◯)과 촛 대 두 개, 향로 한 개만을 두셨다. (중략) 스님께서는 나중에 대
한불교 조계종 사찰 등록을 하실 때에 비로소 법당에 본존불 한 분의 상만을 모셨다. 말씀하시기를 “이 또한 믿음을 위한 방편 이다.” 하셨다.
스님께서는 경전의 구구한 해석이나 인용을 좋아하지 않으셨다. 더욱이 밖으로 찾는 기복 신앙은 철저히 경계하셨다. 스님께서는 간혹 “나는 학식이 없어서 경전을 잘 모른다.” 하셨지만 신도들 은 그 말씀의 의미가 다른데 있음을 감지하고 있었다. 스님께서 는 번다한 교학을 배제하시고 진실 된 실천적인 길만을 강조하 셨다.42)
선원 개원 때부터 처음 십수년 동안은 매일 오전 아홉시 또는 열 시 경에 시작하여 오후 네다섯 시까지 담선자리를 베푸셨다. 그후 공부하는 신도들이 늘어나 담선할 자리가 비좁아지자 좌석 을 법당으로 옮겨 일주일에 몇 번, 한달에 몇 번 하는 식으로 날 짜를 정해 놓고 하셨다. 그럼에도 수시로 선실에 나오셔서 침견 의 기회를 자주 만드셨다. 담선이나 친견의 자리에선 무릎을 맞 대다시피 하시면서 격의를 두지 않으셨으므로 분위기는 매우 자
연스럽고 소박하였다.43)
이처럼 그는 혁신불교의 지향을 분명하게 하였다. 기복불교의 배척, 구태의연한 경전 해석과 인용의 거부, 일원상의 채택, 신도 위주의 담선법회의 개최 등은 여타 사찰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실 천이었다. 그밖에도 그는 불교서적을 불사르기도 하였고, 산신각
을 부수기도 하였으며, 비구승에게 수행을 허락케 하는 등의 파격
42) 한마음선원(1993), 165. 43) 위의 책, 147.
적 행보를 보였다. 이런 제반 양상에 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성격 은 혁신불교, 혁신종교이었던 것이다. 이제부터는 계승의 문제를 통해 정체성을 조망하고자 한다. 우 선 첫 번째로 대행은 조계종단 내부에서44) 관련성, 연고가 미약
하다. 그래서 이 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한마음선원 본원을 중심으 로 한 지원 개설에 유의한 것이 아닌가 한다. 동시에 대행의 업 적, 활동은 국내보다도 외국에서 더욱 평가를 받았지 않았을까 한 다. 외국에서의 수상 경력이 그를 대변한다.
두 번째의 성격은 대행의 학술적 자료의 기반은 객관성에서 미 흡하다. 한마음요전 (1992)을 제외하고는 자료집 성격에서 일부 문제점이 제기되거니와, 추후 보편적인 자료집 발간이 요청된다. 1차, 2차 자료의 발굴은 물론이고, 편집자의 의도가 가미되지 않
은 생경한 자료를 찾아야 한다. 예컨대 안양을 비롯한 경지도 지 방에서의 보도, 초창기 조력자45) 및 신도들의 구술증언, 연고 있 는 조계종 승려들의 인연담 및 증언 등이다.46) 물론 기왕에 발간 된 다수의 법어집, 어록집을 참고하고, 활용할 수 있겠지만 아쉬
운 대목이 많다. 특히 대행 자료에는 시대성, 현장성을 보여주는 6하 원칙이 부재하다. 그러나 대행의 문손, 계승자들은 비교적 일 찍부터 대행을 학술적으로 정리, 분석하려는 의지를 내보였다. 다 만 1996년에 가시화된 한마음과학원의 경우 내부적인 차원에 머
문 것은 아쉬웠다. 1990년부터 대행은 불교 현대화를 위한 연구
44) 여기에서는 비구니 문중적인 개념도 포함된다. 45) 1970~80년대, 대행을 지근거리에서 대화하고, 한마음선원의 초창기에 조력한 재가자들의 증언이 절대적으로 요청된다.
46) 특히 월정사, 한암과 탄허 문도회 승려들의 증언이 중요하다.
원 설립을 검토하였지만, 그 연구원이 본 궤도에 오르지는 못하였 다.47) 이제 2016년에 출범한 대행선연구원을 중심으로 이념, 정 체성, 역사 및 문화 등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가 기대된다. 세 번째는 대행 정체성의 정립이 정착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전하는 자료, 연구 등에 의하면 대행의 정체성은 선사, 생활선, 한 마음 등으로 말할 수는 있다. 또한 대행선은 간화선 혹은 기존 조 계종의 선사로 널리 알려진 성철선, 경봉선 등과의 동이점을 어떻 게 설명할 것인가이다. 일면으로는 위대한 포교사인가, 아니면 새
로운 불교사상을 제창한 사상가인가, 혹은 불교 CEO인가라는 의 문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대행의 정체성에 대한 객관성을 담보한 단계까지는 도달하지 못하였다고 보인다. 최근 대행선, 주인공 사상, 오공개념 등을 분석하고는 있지만 그런 개
념이 불교사상 등과 어떤 관련을 갖고 있으며 그에 따라 어떤 위
상을 부여할 것인가는 명쾌하지 않다.48)
네 번째는 대행사상을 정점으로 하는 한마음선원의 응집력, 결 속력은 강력하다는 것이다. 한마음선원의 국내외의 설립 과정에서 자생성이 드러나고,49) 한마음선원에 연고가 있는 대중들은 대행 사상을 중심으로 단일 대오의 성격으로 수행하고 있다고 이해된 다. 이런 점은 추후 실질적, 다각적인 분석을 거친 후에 일반화가 되어야 하겠지만 필자가 느낀 점은 그렇다.
47) 한마음선원(1993), 140, 46-47 내용 참고. 48) 혜선은 위의 책(598)에서 대행선은 기존의 것과 차별되지만 현시대가 낳은 또 하나의 한국선의 수행체계라 보았다. 그러면서 역대 불교의 일심사상을 계승하 는 동시에 현대 한국사회라는 특수한 환경이 반영된 체계이다고 서술했다.
49) 한마음선원(1993), 137의 37항의 내용.
지금까지 대행의 정체성 및 계승에 대한 유의할 측면을 들추어 보았다. 이런 측면은 우열, 찬반의 문제가 아니다. 각 정황, 현실 에는 그럴만한 역사, 사정이 있는 것이다. 다만 각 성격의 분석과 비교를 통하여 선명하게 이해하고, 그 전제하에서 역사성, 미래성
을 어떻게 담보해 가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대행은 전통성, 역사 성, 정체성에서 미약, 부진, 아쉬움이 드러났다. 그에 반해 현대성, 개방성, 미래성, 결속력은 강점으로 드러났다. 대행과 한마음선원 의 역사에서 미흡한 것은 요컨대 역사 및 사상의 탐구를 통한 정 체성 재정비라 하겠다. 이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연구, 분석 작업 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Ⅲ. 나오는 글
지금까지 한국 현대기 비구니 고승高僧으로 유명한 대행선사大行
禪師의 행적에 나타난 혁신불교의 내용과 성격을 도출하여 제시하 였다. 이제 맺는말은 그 내용을 요약하면서, 그에 담긴 의미를 들 추어내고자 한다. 첫째, 대행의 수행은 제도권의 불교 및 승단에서 찾아볼 수 없
는, 독자적이면서 독창적인 수행이었다. 그는 홀로수행, 산중고행 이었다. 그러나 그는 오대산 상원사에서 한암이라는 고승에게 영 향을 받으면서, 종교성의 발현이라는 측면에서 자극을 받았다. 그 리고 한암의 법제자인 탄허에게도 종교성 증진에 영향을 받았다.
이렇듯이 대행의 수행에는 특수한 내용이 두드러진다. 추후 이에 대한 적절한 설명을 해야 할 것이다. 보편성과 특수성이 조화된
수행의 성격을 정리해야 한다. 둘째, 교화 및 사회활동에서는 활동을 몇 단계로 나누어 보았 고, 구체적인 활동에 나타난 혁신적인 내용을 제시하였다. 활동의 단계는 1966년, 1971년, 1982년, 1994년을 기점으로 나눌 수 있
다. 교화 및 사회 활동을 필자는 CEO라는 개념으로 살펴보았다. 그러면서 그의 노선은 사부대중과 함께 하는, 중생과 더불어 가려 는 의식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런 바탕, 노선에서 나온 것을 불교대중화로 보면서, 그 노선의 성공으로 현재의 한마음선
원이 존재한 것이라 하였다. 그런데 그런 불사佛事가 성공할 수 있 었던 저변에는 산업화, 10·27법난法難이라는 1970~1980년대의 사회 문제 및 불교계에서 나온 불만을 흡수할 수 있었던 사상적 원융성, 신도들을 운영의 중심에 두었던 탄력성에서도 찾을 수 있
는 것이다. 추후에는 1970년대, 1980년대의 대행의 법어와 함께 그 시절 한마음선원에 대한 변화상, 그리고 대행을 따랐던 신도들 의 역사를 더욱 구체적으로 살펴야 할 것이다. 셋째, 대행의 사상을 법어집을 통해 조망하여 보았다. 여기에서는 대행 사상의 구체성을 살피지는 못하였지만 사상의 적극성, 포교성, 현장성, 세계성을 도출하였다. 넷째, 대행의 정체성 및 계승에서는 대행과 한마음선원이 일가 를 이루게 된 배경을 찾아보았다. 그 성격을 필자는 혁신불교라고
피력하였다. 또한 대행의 사상적 정체성은 전통성, 역사성에서는 미약하지만 그에 반해 현대성, 개방성, 미래성, 결속력은 강점으로 보았다. 지금껏 필자가 본 고찰에서 살핀 핵심적인 내용, 유의할 측면
연구할 내용 등을 정리하여 보았다. 그러나 추후에는 더욱, 개별 적인 분석을 통해 일반화로 나가야 할 것이다. 대행 및 한마음
선원의 연구에 역사, 철학, 사상, 종교학, 사회학 등 다방면에서의 연구가 촉발되길 바라면서 이만 그친다.
- 한마음선원(1993), 한마음요전 안양; 한마음선원 출판부. - 한마음선원(2001), 허공을 걷는 길 , 안양 ; 한마음선원 출판부. - 한마음선원(2008), 신행요전 , 안양 ; 한마음선원 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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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novative Buddhism Shown in the Account of Conduct of the Seon Master Daehaeng
Kim, Gwang-sik
This study is to examine historicity of the Seon master Daehaeng called as a high priest amongst the modern Korean Bhiksunis. From perspective of innovative buddhism, I
explored her account of conduct in this paper. So far, there has been few academic approaches on the Seon master Daehaeng, even so some researches were made, those have been done by her disciples and members of her
school. These studies have some problems, such as, diversity of approach, intensivity, and historicity etc. Under this premise, as a trial discussion to access in earnest to history of Hanmaum Seon Center and the Seon
master Daehaeng, I sought to arrange her conducts in perspective of innovative buddhism. While innovative Buddhism refers to newly promoted lines with buddhist practices, system, routes, and ways of propagation, reformative buddhism may be seen as restorative lines to preserve existing systems and customs. For the confusion
between innovative buddhism and reformative buddhism, I tried to explicit what they exactly are. With such a purpose, I looked into the Seon master's conducts as dividing into practice, edification, social activity
related materials, identification and succession. To intensify the study for Daehaeng, there needs some sufficient reviews on historical records, testimonies, and ancillary data which can explain her.
Therefore, all of conducts the Seon master practiced and promoted should be described and understood after analyzing concerned information objectively, academically. In this respect, this paper has some limitations.
However, for this study, I just want to mention about identification of the account of conduct of the Seon master Daehaeng. Hereafter, detailed researches should be continued in accordance with the time of each conduct, conducts, and
its contents. I hope this study could be as a reference to researches for the Seon master Daehaeng, Hanmaum Seon Center, histories of modern Bhiksunis, and innovative buddhism.
Bhiksuni, Hanmaum Seon Center, Innovative Buddhism
Reformative Buddhism, the Jogye Order, the Seon master Daehaeng
대행선 형성의 사상적 배경
… 본래성불사상과 관련하여 …
김호귀 (동국대)
대행선大行禪은 묘공당妙空堂 대행大行의 선풍을 일컫는 개념으로 서 대행의 면모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바로 그 대행선은 대행의 숱한 법어에 근거하여 형성되고 전개되며 실천되고 있는 선풍으로
서, 그 구조는 한마음의 원리를 종지로 하여 자성본래불自性本來佛
을 보편적이고 근원적으로 지향하고, 주인공主人空의 편재를 본체 로 하여 개체적인 본래면목을 추구하며, 오공五共의 실천을 묘용으 로 하여 일체중생의 평등성을 실현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행선의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한마음과 주인공과 오공은 사상 적으로 자성본래불 곧 본래성불의 사상에 바탕하고 있다. 이로써
대행선은 선종의 달마達磨로부터 전승되어 온 조사선풍과 맥락이 닿아 있음을 고찰할 수가 있다. 본래성불의 개념은 여러 대승경전에 근거하고 있다. 또한 일체 중생의 본래성을 긍정한 달마의 조사선풍祖師禪風에서 더욱더 확장 되었는데, 달마의 이입二入을 비롯하여 혜가慧可와 승찬僧璨과 도신
道信과 홍인弘忍과 혜능慧能 및 이후 선종오가禪宗五家의 조사들에게 전승되면서 더욱더 보편적인 사상으로서 전개되었다. 본래성불의 사상이 대행에게는 자성불, 본래자성불, 자성본래불 등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되어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진여법계의 개
념인 한마음의 경우 무일물無一物과 위음왕불威音王佛 이전과 부모미 생전父母未生前의 근원성으로서 불성佛性과 법성法性과 자성自性의 원 리로 전개되었다. 또한 한마음의 구체화이고 개별화로서 출현해 있 는 주인공의 경우 무조건의 믿음을 바탕으로 하여 전개되는 관법수
행의 근거로 작용하였다. 나아가서 한마음의 원리를 공동체의 방식 으로 실현해가는 오공의 경우 부처와 중생의 본체가 다름이 없다는 동체대비의 근거로서 보살행으로 전개되었다.
이처럼 대행선의 사상적인 바탕을 구성하고 있는 본래성불의 사 상은 대행의 법어에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나 있다. 때로는 근원적 인 한마음의 원리로 설명되어 있는가 하면, 때로는 본래적인 주인 공의 관법으로 수행되고 있으며, 때로는 평등적인 오공의 공동체 의식으로서 일체중생의 기체로서 실현되고 있다. 따라서 대행선의
사상적인 배경인 본래성불은 한마음과 주인공과 오공의 유기적인 구조로서 일체중생이 수행하고 성불하는 바탕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대행선은 전통적인 조사선의 사상에 계합되어 일상생 활에서 개개인에 대한 철저한 긍정을 통하여 평상심으로 전개되었 던 보살행에 통한다.
[주제어]
본래성불, 한마음, 주인공, 오공, 조사선, 대행선, 보살행
본고는 대행선에 대한 연구의 일환으로서 대행선이 바탕하고 있 는 현금의 실천과 사상 가운데서 우선 사상적인 근거를 탐구하기 위한 일차적인 연구에 해당한다. 곧 대행선을 형성하고 있는 근원
적인 사상이 대행을 통하여 설파되고 정립되며 보급되고 실천되어 가는 현금에서 그것이 과연 어떤 색깔을 지니고 있고 선종의 어떤 사상에 밀착되어 있으며 어떤 과정을 통하여 연결되고 있는가, 그 리고 이를 근거로 하여 차후의 연구에서는 대행선이 바로 선종의 직전直傳으로서 전개되었다는 점을 구명하는 데 사상적인 바탕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한마음을 종지로 하고 있는 대행선의 사상적인 근원이 바로 본래성불本來成佛에 바탕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하고자 한 다. 이를 중심으로 하여 본고에서는 선종의 역사에서 본래성불사상의 근원과 그 형성 그리고 전승되는 모습을 탐구하자 한다. 그럼으로써
현재 실천되고 있는 대행선이 지니고 있는 본래성불사상이 전통의 선사상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고, 그것이 대행선에 어떻게 녹아있 는가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하여 대행선이 지니고 있는 근본적인 사상의 성격이 조사선의 정통성과 보편성에 근거하고 있음
Ⅱ. 대행선의 구조
을 이해하는 단초가 될 수가 있을 것이다.
대행선이란 대행의 선풍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그 선
풍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은 대행선 나아가서 대행을 이해하는 첫걸음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대행선에 대한 기본적인 구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 구조에 대해서는 묘공당 대행이 오랜 세월에 걸쳐서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하여 평생에 걸쳐서 반복 내지 강조하여 설했던 그 다양한 법어들을 통해서 생각해볼 수가 있다.
이제 그 법어들을 통하여 드러나 있는 대행선을 구조적인 측면 에서 살펴보면, 한마음의 원리를 종지宗旨로 삼고, 주인공主人空의 편재遍在를 본체本體로 삼으며, 오공법五共法의 실천을 묘용妙用으로 하여 각각 종과 체와 용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세 가지
요소를 일반적인 용어로 표현하자면, 한마음은 대행선의 종지에 해당하고, 주인공은 대행선의 존재방식에 해당하며, 오공법은 대 행선의 실천행위에 해당한다. 이에 근거하여 대행선은 어떤 구조 를 지니고 있는가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대행선의 근본적인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이들 한마음과 주인공 과 오공법의 근원에는 처음부터 모든 측면에 걸쳐서 항상 일관되 고 있는 공통적인 기반이 발견되고 있는데, 그것이 소위 자성본래 불自性本來佛 곧 본래성불本來成佛의 사상이다. 따라서 대행선을 논 의하는 자리에서 본래성불의 사상은 반드시 우선적으로 구명되어 야 할 주제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본래성불의 사상에 대하여 그
연원을 살펴보고, 그것이 조사선으로 전승되어 온 모습을 탐구하 며, 궁극적으로 대행선의 구조에 어떻게 근거하고 있는가를 살펴 보고자 한다. 한마음은 대행이 제시한 중심사상으로서 대행선의 요체임을 어
디에서나 확인할 수가 있다. 우선 한마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설명을 볼 수가 있다.
한마음은 누구의 것도 아니면서 모든 생명의 것이다. 한마음은 전체이다. 허공같이 원대하고 광활하다. 형상이 있기 전에 한마 음에서 수만, 수억의 부처가 나타날 수 있다. 마음은 온 만물의 시작 이전부터 있었고 만물의 끝남 이후에도 있다. 한마음에는 어제 오늘이 따로 없고 크고 작음이 따로 있지 않다. 한마음은 우주 전체의 힘이며 공덕이다. 이 세상 모든 생명의 마음은 하나 이다. 모든 생명들끼리는 사실 너와 내가 없다. 본래로 생명은 하나이다. 본래 생명은 부처이다. 그러므로 본래 생명의 마음을 일컬어 한마음이라고 한다.1)
이들 내용은 주로 한마음에 대한 속성을 피력한 것으로 불성사 상의 법신편만法身遍滿이라는 개념과 통한다. 또한 불생불멸의 영 원성을 지니고 있으며, 일체생명의 근원으로서 무소부재하며, 모 든 중생과 불보살의 근거이기도 하고, 모든 것을 포용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때문에 혜선은 이와 같은 한마음에 대하여 “대행의 핵심사상은 한마음이다.”2)고 말하면서 다양한 경론 및 저술을 통하여 근거를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은 한마음의 속성은 대행선의 바탕일 뿐만
아니라 이후에 전개되는 주인공 및 오공의 사상적인 원천으로 근
1) 한마음선원(2015), 한마음요전 원리편2, 312-314. 2) 혜선(2013), 한마음과 대행선 , 191. 여기에서 혜선은 한마음을 일심의 개념으 로 간주하고 傳心法要 의 일심법을 비롯하여 능가경 의 일심과 여래장, 열반 종요 의 불성, 법보단경 의 일념, 기신론소 의 일심법 등을 통해서 그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여 논의하고 있다.
거하고 있다. 한편 주인공의 속성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일체중생의 개체적 인 내재적 편재성을 바탕으로 설명되어 있다.
주인공이란 영원한 자기의 실상이다. 영원한 생명의 실상이다. 주인공은 생명의 근본이다. 주인공은 진리요, 빛이며 영원이요, 생명이요 부처요 보살이며 청정하며 긍정이다. 거기에는 어둠도 없고 죽음도 없고 더러움도 없고 부정도 없다. 주인공은 진리이 니 빛보다 밝고, 진리이니 행복보다 더 기쁘며, 진리이니 허공같
이 크고 영원하며, 진리이니 텅 비고 고요하여 자취도 없다.3)
여기에서 주인공은 자기이고 생명이면서 영원한 빛으로서 다름 아닌 한마음의 자기내적인 일물一物로서 제시되어 있다. 곧 주인공 은 보편적인 한마음의 개별적인 측면으로 나타나 있다. 때문에 “주인공은 밝고 영원하고 지극하다. 그 주인공은 천지가 생기기 이전에도 있었고 설사 우주가 무너지고 허공이 없어지는 한이 있 더라도 사라지거나 죽지 않는다.”4)고 말한다. 이것을 달리 불성이 라고도 부르고 자성이라고도 부른다.
바로 이와 같은 주인공을 근거로 해서 중생이 중생성을 벗어나 진 정한 자유인이 될 수가 있다고 말한다. 이에 주인공은 본디 태어나 는 일도 없고 죽는 일도 없으며, 육안으로 볼 수 없고 생각으로 잡 히지 않지만 영원하고 크나큰 나이기 때문에 자성불이라고 말한다.5)
3) 한마음선원(2015), 원리편2, 316-317. 4) 한마음선원(2015), 원리편2, 318. 5) 한마음선원(2015), 원리편2, 318.
이를 통해서 생각해보면 주인공은 정작 한마음의 개별적이고 주체적 인 측면을 일컬은 것으로 등장해 있다. 따라서 주인공은 자신의 근 원이지만 동시에 모든 것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나아가서 오공은 한마음이 공동으로 실현되는 원리이다. 따라서
숱한 생명체와 함께 하는 삶[共生]으로, 함께 하는 마음[共心]으로, 함께 하는 근원[共體]으로, 함께 하는 작용[共用]으로, 함께 하는 나눔[共食]으로서 오공五共은 달리 오공五空에도 통한다.6) 그래서 혜선은 “왜냐하면 더불어 그리고 함께하는 것은 크게 비워지지 않
고는 가능할 수가 없는 것이다. 선사가 말하는 공空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찰나 찰나 나투면서 돌아가는 삶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즉 자기라는 고정관념과 중생적인 가아假我가 쏙 빠진 자리이어야 만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선사의 오공에 대한 제시는 한마음으로
부터 비롯된 가장 커다란 실천논리이며, 선사의 독특한 선사상이 라고 할 수 있다.”7)고 말한다. 이것은 오공의 근본적인 성격을 말해주고 있는 것으로서 이 도 리를 모르기 때문에 실천할 수가 없고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 苦의 길을 간다고 말한다.8) 이것은 오공의 성격이 한마음의 구체
적인 실천으로서 개개인이 일상의 삶에서 보여주고 있는 보살도의 행위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것은 곧 오공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 이야말로 자신이 일체중생과 불이의 관계에 놓여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고, 일체중생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며, 일체중생과 동체대
6) 혜선(2013), 263-279. 7) 혜선(2013), 259. 8) 한마음선원(2015), 게송·선시편, 780.
비하는 한마음보살이 지향하고 추구하며 나아가는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공의 삶의 방식은 주인공에 대한 자기의 자각으로서 드러난 행위이기 때문에 자신과 타인을 분별하지 않는 공생이다.
오공의 행위는 한마음의 본체로서 드러난 주인공의 자기 확인이기 때문에 불성의 실현에 통하는 공심이다. 오공의 관념은 일체중생 과 공동체의 실현이기 때문에 자기의 것을 고집하지 않고 모든 것 을 믿고 맡겨버리는 공체이다. 오공의 도리는 만물만생과 일통하
는 까닭에 구류중생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용이다. 오공의 회향은 모든 생명체에 대한 평등공양이기 때문에 자타가 일시에 성불하여 열반으로 통하는 길로서 곧 공식이다. 이것은 오공이 한마음의 자
각을 바탕으로 한 주인공의 체험으로서 무조건적인 대비의 묘용임 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한마음과 주인공과 오공의 성격은 대행선을 구축하고 있는 근본적인 요소에 속한다. 이처럼 대행선에서 한마음이 보편 적인 원리가 되는 까닭은 근원적이기 때문이고, 주인공이 모든 사
람에게 편재한 주체의식으로 간주되는 것은 본래적이기 때문이며, 오공법이 일체 중생에 대한 보살행이 되는 것은 평등적이기 때문 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는 한마음요전 요전을 비롯하여 대행의 기타 수많은 법어를 통하여 살펴볼 수가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대행선의 구조의 근거에는 공통적으로 일체중 생은 본래부터 성불한 존재라는 본래성불의 사상이 자리하고 있 다. 대행선에서 본래성불에 대한 표현과 수행과 그 활용은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되어 있는데, 그와 같은 사상은 대행으로부터 불현
듯 드러난 것이 아니라 기존 선종사상의 역사에서 면면히 전승되 어 온 것이다. 이 점은 대행선이 대행선으로서 존립하는 당위성을 말해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대행선의 정체성을 담보해주는 근거이 기도 하다. 이제 대행선이 바탕하고 있는 본래성불의 사상적인 근
거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Ⅲ. 본래성불 사상의 원류와 전승
대행선의 구조가 한마음과 주인공과 오공법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위에서 언급하였다. 이러한 삼중구조를 지니고 있는 대행선의 근원에는 공통적으로 본래성불의 사상이 깔려 있다. 때문 에 본래성불의 사상에 대한 올바른 파악이야말로 대행선을 이해하 는 기본적인 장치이다.
또한 대행선이 형성되어 있는 근거에 대한 이해이고, 대행선이 현재 진행형으로서 지속적으로 나아가야 할 바탕에 대한 확인이며, 이후로 먼 미래에 이르기까지 전승시켜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그 런 만큼 본래성불의 사상과 대행선의 사상적인 관계는 밀접하다.
우선 대승경전에 보이는 본래성불의 사상적 연원에 대하여 고찰하 고, 나아가서 그것이 본격적으로 선어록을 통하여 선종의 역사에서 어떻게 전승되고 전개되었는가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1. 본래성불 사상의 연원
선dhyāna의 연원은 고타마 붓다Gotama buddha의 수행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그것은 고타마의 수행과정이 발심의 출가 – 수정 주의로 대변되는 요가수행 – 고행 – 선정수행으로 나타나는 가 운데서 좌선의 선정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9) 이로부터 시작된 선은 인도불교에서 그 수행방식 및 사상의 측면에서 크
게 발전되고 보급되었다. 특히 불교의 발생 이후 오백여 년부터 는 대승불교의 출현과 더불어 그에 상응하는 수행법과 사상의 발전이 수반되어 선수행이 사상적인 측면에서 큰 변화의 모습으 로 전개되었다. 그것은 대승경전에 근거하여 기존의 선법이 새로
운 사상의 패러다임을 수용하고 그것을 발전시킨 것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그 결과로 등장한 것이 바로 보리달마가 제시한 대승 선법에 근거한 조사선풍이었다. 조사선祖師禪이란 중국의 선종사에서 보리달마Bodhidharma의 사상
에 근거하여 형성되고 전승된 대승의 선법을 지칭하는데, 이후 혜 능과 마조 및 석두 시대에 크게 발전하였다. 그 조사라는 개념에 대하여 달마는 정법안장을 계승한 사람을 조사라 하여 불심의 종
지를 해명하여 이해와 실천이 상응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10)
바로 이와 같은 조사의 개념에 근거한 달마선풍은 분별이 없 고 조작이 없으며 이해 곧 깨침과 실천 곧 보살행이 상응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처럼 선악과 미오의 분별을 벗어난 조사의 개념에 근거한 조사선풍의 바탕에는 본래성불의 사상이 놓여 있
다. 그것은 달마 사상의 근간을 형성하고 있는 이종입二種入 에
9) 이 가운데 요가의 수정주의와 선정의 선정주의를 구별하는 기준 가운데 하나가 궁극적인 목표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보편적이고 명백하며 직관적 인 지혜를 터득하는 것으로서 소위 깨달음이었다.
10) 景德傳燈錄 卷3(T51, 220a) “明佛心宗行解相應 名之曰祖”
서 엿볼 수가 있다.11) 달마는 이입에 대하여 ‘중생이 부처와 동 일한 불성을 지니고 있음을 경전의 가르침을 통해서 심신深信하 는 것’이라고 말한다. 달마의 이 말은 이후 조사선을 전승한 선 종의 전개에서 본래성불의 사상적인 근거로서 널리 활용되었다.
이와 같은 본래성불의 사상은 주로 대승경전에 잘 나타나 있 다. 원각경Yuanjuejing 에서는 “그처럼 중생은 본래부터 부처였고, 생사와 열반은 지난밤의 꿈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12)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원각의 자성은 차별된 자성이 아니라 평등한 자 성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제성諸性을 따라서 일어나지만 취할 수 도 없고 깨칠 수도 없다. 실상 자체에는 실로 보살 및 제중생이 없기 때문이다.”13)고 말한다. 마치 실유불성悉有佛性의 의미가 부
처의 지혜가 유정들 가운데에 작용하고 있고, 본성으로서 무구無
垢인 저 진여가 불이평등하며, 부처의 종성에서 그 과果 곧 부처
가 가설되어 있다는 세 가지로 전개되어 있는 열반경Nirvana sūtra 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14)
이처럼 본래성불의 사상에서 깨침이라는 것은 이미 본래적인 것임과 함께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현실화시키는 자각을 기반으 로 하고 있다. 그 자각을 통해서 깨침이 비로소 완전한 자기의
11) 少室六門集 [二種入](T48, 396c) 12) 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 (T17, 915a) “始知眾生本來成佛 生死涅槃猶如昨夢” 13) 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 (T17, 917a) “圓覺自性 非性性有 循諸性起 無取無 證 於實相中實無菩薩及諸衆生”
14) 대반열반경 에서는 悉有佛性의 경우 有에도 未來有·現在有·過去有의 삼종으로 시설되어 있다. 大般涅槃經 卷27(T12, 524b-c)
것으로 현성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반경 에서는 “불성을 보고
자 하는가. 그러려면 반드시 시절과 형색의 인연을 관찰하라.”15)
고 말한다. 불성의 시절이 도래하는 인연이란 곧 자각에 해당한 다. 때문에 불성을 자각한 모습은 영가의 말16)처럼 걷는 행위 그대로가 선이고 좌선하는 그대로가 선이며 어·묵·동·정의 일체 가 모두 선 그대로의 행위 아님이 없다는 말이다.
이에 본래성불의 자각은 필연적으로 그것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때문에 화엄경 에서는 “만약 모든 보살이 본래의 그 마음을 잘 활용한다면 곧 일체의 승묘한 공덕 을 획득한다.”17)고 말한다. 여기에서 본래의 마음[其心]을 잘 활
용한다[善用]는 것이 곧 본래성불의 여법한 행위로서 구체적으로 는 이미 지수보살에게 구족되어 있는 본성이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제불법에 대하여 마음에 걸림이 없어서 과거 미래 현재 에도 제불의 도에 주하고, 중생을 따라서 주하되 항상 떠나지 않
으며, 제법상에 대하여 모두 통달하고, 일체의 악을 단절하고 모 든 선을 구족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래의 마음은 금강경Vajracchedikāprajñāpāmitā sūtra
에서 말한 이생기심而生其心의 기심其心이고, 잘 활용한다는 것은 응무소주應無所住에 대응한다.18) 기심이란 본래부터 응무소주할
15) 大般涅槃經 卷28(T12, 532a) “欲見佛性 應當觀察時節形色” 그 인연의 법칙 을 통해서 본래구비한 깨침이 현성한다. 아무리 시절인연이 다가온다 해도 이미 갖추어져 있지 않은 깨침은 알맹이 없는 씨앗일 뿐이다. 이와 같은 깨침을 추구 하는 행위가 곧 선정이다. 선정을 좌선으로 이루어가는 곳에 비로소 선의 성격 이 드러난다. 16) 證道歌 (T48, 396a) “行亦禪坐亦禪 語黙動靜體安然” 17) 大方廣佛華嚴經 卷14(T10, 69a) “若諸菩薩 善用其心 則獲一切勝妙功德”
수 있는 바로 그 마음으로서 일체중생에게 본유한 청정한 마음 을 가리킨다. 이미 본래성불의 입장이기 때문에 지혜의 완성을 추구하는 금강경 에서는 수보리가 처음에 제시한 질문도 바로
그것을 어떻게 발심해야 하는가의 문제로 나타나 있다.19)
그 발심의 이면에는 다름 아닌 신심信心이 자리하고 있다. 진실한 신심은 곧 발심으로서 모든 수행과 깨침의 바탕이 된다. 그것이 화 엄경Mahāvaipuiyabuddhāvataṃsaka sūtra 에서는 선용善用에 대한 구체적 인 행위로서 일상의 생활에서 이루어지는 위의威儀였는데 여기에
는 조사선이 지향하는 깨침의 일상화인 보살도의 실천으로서 정 행淨行의 네 가지 의미가 잘 드러나 있다. 한편 본래성불의 사상이 능가경Lańkāvatāra sūtra 에서는 청정 한 마음이 그대로 부처[心卽佛]라는 입장에서 여래장설을 통하여
전개되어 있다. 이에 여래가 성취한 지혜를 자각성지自覺聖智라고 표현하는데 그것은 바로 스스로 깨침을 성취한 부사의한 지혜를 가리킨다.20) 여기에서 부처는 일체중생을 제도하는 방법으로 오 법五法과 삼자성三自性과 팔식八識과 이무아二無我를 언급한다.21)
그 이면에는 일체중생의 경우에도 자내성지自內聖智 및 자각성지 는 불지佛智에서 터득되는 것으로 간주되어 있는데, 그것은 일체 법상에 집착함이 없으므로 자각성지의 구경상究竟相은 일체의 법 상法相에서 떠나 있고, 여환삼매如幻三昧의 몸을 성취하여 불지의
18) 金剛般若波羅蜜經 (T8, 749c) “應無所住而生其心” 19) 金剛般若波羅蜜經論 卷上(T25, 781c) “世尊 云何菩薩大乘中發阿耨多羅三藐 三菩提心 應云何住 云何修行 云何降伏其心”
20) 大乘入楞伽經 卷3(T16, 602b-c) 21) 楞伽阿跋多羅寶經 卷1(T16, 480a)
궁극적인 경지를 떠나지 않으므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 문과 연각과 보살과 여래가 스스로 깨친 거룩한 지혜 및 모든 불지위佛地位의 차제와 일체불법이 모두 그 가운데 포함되어 있 다.22) 곧 일체의 불법마저도 오법 가운데 들어가기 때문에 자각
성지의 모습마저도 오법을 잘 관찰하여 체득된다는 것이다. 이들 대승경전에 보이는 본래성불의 사상은 공통적으로 번뇌 에 대한 공성의 이해가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번뇌의 공성은 번 뇌의 청정을 자각하는 것으로서 이후에 중국의 조사선에서 무집
착과 무분별로 제시되는 수증일여修證一如의 수증론과 밀접하게 관련하여 발전하고 전승되면서 전개되었다.
2. 본래성불 사상의 전개
위에서 본래성불 사상의 연원에 대하여 대승경전을 통해서 고 찰하였다. 그것은 이타행위를 강조했던 대승불교의 이념에 부합 된 것으로서 중생을 제도하려는 행위에 대하여 보다 보편적인 사상의 근거를 제공해주기에 충분하였다. 이와 같은 대승불교에
뿌리를 두고서 중국에서 크게 개화한 선종도 그 예외가 아니었 다. 오히려 가장 대승적인 종파로서 정착하려는 까닭에 보리달마 Bodhidharma를 관음보살Avalokiteśvara bodhisattva의 화현으로 간주했 는가 하면, 포대화상을 미륵보살Maitreya bodhisattva의 화신으로
간주하였으며, 중생으로서 자신의 깨침이야말로 진정한 중생제도
22) 楞伽阿跋多羅寶經 卷4(T16, 511b) “聲聞緣覺菩薩如來 自覺聖智諸地相續次 第 一切佛法悉入其中”
의 첫걸음임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본래성불의 사상이 선종에서는 대부분 선어록을 통하여 전승 과 발전 그리고 전개되어 왔다. 특히 초기선종의 조사들에게는 본래성불의 사상에 기초한 전법의 계보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간주되었다.23) 이러한 본래성불에 기초하여 보리달마는 “걸어가 는 행위가 그대로 깨침의 도리이고, 누워 있는 행위가 그대로 깨 침의 도리이며, 앉아 있는 행위가 그대로 깨침의 도리이고, 서 있 는 행위가 그대로 깨침의 도리이다. 곧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깨침
의 도리이다.”24)고 말한다. 여기에서는 굳이 조작적이고 인위적이며 분별적인 수행이 불필 요하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때문에 수행을 통하여 번뇌를 단제 함이 없이 현재의 모습인 걷고 누우며 앉고 서 있는 그대로가 깨
침의 도리라는 것을 답변으로 제시하고 있다. 번뇌에 대한 이러한 달마의 공관사상의 흐름은 혜가에게로 계 승되었는데 그것이 곧 참회법문이었다. 혜가한테는 저술이 보이 지 않지만 달마어록 가운데 몇 대목이 혜가의 말씀으로 기록
되어 전한다.25) 그 가운데 참회법문은 죄의 성품이 어디에도 없 는 공관의 도리로서 본래청정한 본래성불 나아가서 본래불성이
라는 마음의 도리를 들어서 승찬을 일깨워주는 대목이다.26)
23) 그것은 달마의 선법을 누가 계승했는가 하는 점을 근거로 하여 소위 남종과 북 종의 경우처럼 정통의 문제로 전개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전등계보의 전승이 크게 작용하였다는 점은 물론이다. 24) 柳田聖山(1996), 222. “問 何處是菩提處 答 行處是菩提處 臥處是菩提處 坐處 是菩提處 立處是菩提處 擧足下足 一切皆是菩提處”
25) 柳田聖山(1996), 達摩の語錄 292-309. 제57단락부터 제63단락에 이르는 일곱 대목이 혜가의 말씀으로 수록되어 있다.
승찬은 신심명 을 통하여 분별과 대립과 조작과 계교를 초월 할 것을 강조하였다. 제목의 신·심에서 신은 심신深信이고 심은 본래심本來心이다. 따라서 승찬에게는 신과 심이 대등한 관계로서 본래성불의 자각이 신심일여信心一如의 입장으로 드러났다. 때문
에 승찬은 심신深信과 본심本心 다르지 않고 심신과 본심 둘이 아 니라고 표현하였다. 첫 구절의 지도至道는 대도大道로서 궁극의
도이고 본래청정의 도이며 본래성불의 도를 가리킨다.27)
이러한 본래불성 내지 본래청정에 대한 자각과 그 실천의 신· 심에 대한 승찬의 법문은 수일불이守一不移라는 도신의 가르침으 로 전승되었다. 도신이 제시한 본래성불의 사상은 “하나를 굳게
지켜 흔들림이 없이 동정에 상주하는 것이다. 이로써 납자들로 하여금 분명하게 견불성見佛性하여 신속히 선정문에 들어가도록 한다.”28)는 대목에 마음이 본래청정하다는 전제로부터 제시되어 있다.
도신의 수일불이는 홍인의 수심요론修心要論 으로 전승되면서 금강반야경 에 근거한 공적한 진심을 유지하는 수심守心 곧 수 일심守一心 내지 수본진심守本眞心의 참학으로 강조되었다. 본심을
유지하는[守心] 것으로 요약되는 홍인의 수심修心은 바로 정심定心
에 근거한 즉심즉불卽心卽佛의 도리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이처럼 본래적인 불성을 자각하는 홍인의 수심修心은 일상의 생 활에서 본래성불의 유지였다. 그것을 가장 잘 구현했던 인물은 바
26) 김호귀 역, 달마어록 (2012) 133-134. 27) 信心銘 (T48, 376b) “至道無難 唯嫌揀擇 但莫憎愛 洞然明白” 28) 楞伽師資記 (T85, 1286c-1289b) “守一不移 動靜常住 能令學者 明見佛性 早 入定門”
로 혜능이었다. 혜능은 “선지식들이여, 보리의 자성은 본래 청정하 다. 그러므로 무릇 그 청정한 마음을 활용하는 것이 곧 성불이다 .”29)는 대목이야말로 본래성불에 근거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 다. 깨침의 자성이 애초부터 완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믿고
자각하여 일상의 생활에서 자유롭게 활용하는 것이 다름 아닌 본 래성불의 실천이라는 것이다. 본래성불에 근거한 수증관의 모습은 청원계통과 남악계통으로 나뉘어 전승되었다. 전자의 경우 청원행사에게는 이 마음이 곧
부처이고, 미혹과 깨달음은 모두 일심에 있으며, 초목에 불성이 있는 것도 모두 그 일심이고, 밥을 먹는 것도 불사이고 옷을 입 는 것도 불사라고 말한다.30) 또한 석두희천의 “마음과 부처와 중생과 보리와 번뇌가 이름만 다르지 그 본체는 동일하다.”31)는
말에 잘 드러나 있다. 이와 같은 석두의 즉심시불의 사상은 이후 조동종의 근본적인 교의의 바탕을 형성하였고, 나아가서 남북 양 종의 조화를 도모하였다. 한편 후자의 경우 남악회양의 수증관에 대한 면모는 혜능과
주고받은 문답에서 “일물에 대한 수행과 깨침이 없지는 않지만 곧 염오되지 않도록 할 뿐입니다.”32)는 회양의 답변은 본래성불 의 작용에 대한 것으로서 그 본래성불에 대한 무집착을 강조했
29) 六祖大師法寶壇經 (T48, 347c) “善知識 菩提自性 本來淸淨 但用此心 直了成 佛” 30) 宗鏡錄 卷97(T48, 940b-c) “此心是佛 (중략) 迷悟總在一心 (중략) 草木有 佛性者 皆是一心 (중략) 飯食作佛事 衣服作佛事” 참조.
31) 景德傳燈錄 卷14(T51, 309b) “心佛眾生菩提煩惱 名異體一” 32) 六祖大師法寶壇經 (T48, 357b) “修證卽不無 汚染卽不得”
던 혜능의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의 돈교법문이 전승된 것이다. 이 것은 다시 마조도일을 통하여 막도작불莫圖作佛의 가르침으로 전
승된다.33)
마조의 ‘깨침은 분별심으로 닦을 필요가 없다’는 가르침은 본 디 청정한 마음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때문에 범부가 부처가 되 는 것이 아니라 부처가 그대로 부처가 되는 도리를 설파한 것이
다. 그것이야말로 현재 그 자리 누구에게서나 무분별로 작용하는 일체의 행위임을 말해주고 있다. 마조의 법사인 백장은 그것을 계승하여 깨침이 우리네 일상의 행위와 작용에 그대로 미치고 있다는 것을 체로진상體露眞常이라는 말로 표현하였다.34) 체로진
상은 깨침이 안전에 작용하고 있다는 것으로 일상의 삶을 그대 로 긍정한 달관이었다. 체로는 깨침의 당체가 현전에 성취되어 있다는 것인데, 나아가서 그것이 항상 작용하고 있다는 것까지
가리키는 말이다.35)
Ⅳ. 대행선과 본래성불의 사상
대행선에서 전통적인 본래성불의 개념에 해당하는 용어는 자 성불, 본래자성불, 자성본래불 기타 명칭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33) 景德傳燈錄 卷28(T51, 440a) “道不用修但莫汚染” 34) 景德傳燈錄 卷9(T51, 268a) “靈光獨耀逈脫根塵 體露眞常不拘文字 心性無染 本自圓成 但離妄緣卽如如佛”
35) 이하 黃檗希運의 無心 및 臨濟義玄의 無位 사상 등도 본래성불의 사상에 근거 한 개념으로서 그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가리켜서 황벽은 無心道人이라 하였고, 임제는 無位眞人이라 하였다.
들은 모두 본각적인 의미를 담고 있으면서, 때로는 한마음의 근 원성의 원리로 등장하는가 하면, 때로는 주인공의 본래성의 개념 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나아가서 오공법이 형성되고 전개되어가 는 평등성의 도리로서 작용하고 있다. 때문에 대행선에서 자성본
래불 내지 본래자성불의 의미를 드러내주고 있는 본래성불의 사 상을 이해하는 것은 대행선을 이해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되어 있다. 따라서 이것이야말로 대행선의 사상적인 근거 내지 배경에 대
한 이해에 통하며, 대행선이 전통적인 조사선의 그 맥락을 고스 란히 계승하고 있음을 파악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이에 이러한 본래성불의 개념이 대행의 법어에서 어떻게 드러나 있고 작용하 고 있는가를 고찰해보기로 한다.
1. 한마음과 자성본래불 – 근원성
대행의 수많은 법어는 각각 그에 상응하는 법문의 대상이 있 다. 따라서 법어만큼이나 다양하고 방대한 대상은 언제나 사람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 사람이란 다름 아닌 중생이면서 이미 깨달
아 있는 중생이고, 깨달음을 지향하는 중생이며, 깨달음으로 행 위하고 있는 중생이고, 깨달음 그 자체의 중생이라는 점이 엿보 인다. 이것은 사람으로서 중생을 상대하는 법어가 본디부터 성불 해 있다는 점을 믿는 바탕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
다. 가령 “왜냐하면 중생의 본래성품은 원만하고 공적하여 태어난다
든지 죽는다든지 하는 어느 한편에 기울어지는 법이 없으나 중생 의 실제생활을 보면 삼독심에 물들어 마침내 생사의 윤회를 벗어 나지 못하기 때문이다.”36)는 말에는 중생이면서도 단순한 중생이 아니라 불생불멸의 본성을 구비하고 있는 존재임이 잘 드러나 있 다. 그리고 “나의 불성이나 석가모니부처님의 불성이나 역대조사 님의 불성은 똑같다.”37)는 말은 중생과 부처와 조사의 본성에 대
한 크나큰 믿음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행의 이와 같은 가르침은 “오직 자기 자신이 본래로 성불되어 있음을 기쁜 마음으
로 믿어라. 자기 자신은 본래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존재이다.”38)
라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믿음은 분별과 시비와 조작의 믿음이 아니라 중생 에게 본유한 본래적이고 근원적인 믿음으로 작용하고 있다. 때문
에 대행은 “자성삼보에 귀의하는 것이 진정한 귀의이다. 자기의 청정법신불에 귀의하고 자기의 천백억화신불에 귀의하고 자기의 원만보신불에 귀의하는 것이지 어디 삼보가 따로 있어 귀의한다고 하는 게 아니다.”39)고 말한다. 이것은 대행의 본래성불의 사상이
자성삼보에 대한 본래의 믿음으로부터 출발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와 같은 자성삼보에 대한 가르침은 일찍이 혜능이 단경 에 서 말한 “이 삼신불은 자성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으로 밖에서 얻 는 것이 아니다.”40) 내지 “무릇 자성의 삼신불 깨치면 곧 자성
36) 한마음선원(2015), 원리편2, 329. 37) 한마음선원(2015), 원리편1, 308. 38) 한마음선원(2015), 수행편2, 456. 39) 한마음선원(2015), 수행편2, 459.
40) 六祖大師法寶壇經 (T48, 354c) “此三身佛 從自性生 不從外得”
불을 알게 된다.”41)는 대목에서 엿볼 수가 있다. 이것은 혜능이 깨달음을 체득하고 난 이후에 홍인조사에게 자신의 심경을 토로 한 내용이다. 곧 자성이 그대로 만법이라는 바탕에서 청정하고
불생불멸이며 원만하게 구족되어 있고 동요가 없으며 만법을 발 생시킨다는 도리를 설파한 것이다. 이것은 대행의 법어에도 마찬가지로 농후하게 전개되어 있다. 그것은 자신의 본래모습으로 작용하고 있는 주인공을 절실한 마음 으로 철저하게 믿고 모든 경계를 거기에다 되돌려 놓는 것이다.
자신의 육신을 끌고 다니는 그것이 무엇인가를 참구하는 까닭이 바로 이것이다. 이것은 모든 것이 나로부터 벌어졌고 나로 귀결되 는 자성에 계합되는 것이기도 하다. 때문에 대행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마음은 시공을 초월한다. 한마음은 온 만물의 시작 이전부터 있었고 만물의 끝남 이후에도 있다. 한마음에는 어제 오늘이 따 로 없고, 크고 작음이 따로 있지 않다. 모든 물줄기가 바다에 이 르러 하나가 되듯이 이 세계의 모든 것은 다 한마음에 포섭된다.
한마음은 바로 만물이 비롯된 근원이요 돌아갈 고향이다.42)
여기에 제시된 한마음은 법계의 진여로서 법신불의 개념에 닿아 있다. 때문에 공겁空劫 이전의 무일물이고, 위음왕불威音王佛 이전 의 근원으로 나타나 있다. 이것은 보다 구체적으로 시공의 초월과 주객의 미분과 자타의 일여와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의 소식으로 드
42) 한마음선원(2015), 원리편2, 314.
41) 六祖大師法寶壇經 (48, 354c) “但悟自性三身 即識自性佛”
러나 있다. 그것은 언설 이전의 언설로서 언어도단이지만 부득이 문자를 빌리자면 불성이요 법성이며 자성의 원리이다. 그리하여 대행은 한마음의 공능에 대하여 삼천대천세계 우주 전 체, 사생의 천차만별로 되어 있는 것을 다 포섭하고도 그것을 다
시 좁쌀 한 알갱이에 다 넣을 수 있으며, 그러고도 좁쌀 한 알갱 이가 작다 하지 않는다. 때문이 이것을 가리켜서 누구의 것도 아 니면서 모든 생명의 것이요, 일체중생의 마음이며 전체로서 허공
처럼 원대하다고 말한다.43)
그런데 바로 그 한마음이 일체중생에게 본래부터 구비되어 있는 까닭에 “모든 부처와 중생은 한마음이다. 한마음이기에 부처와 중 생에 차별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한마음으로 돌 아가면 부처가 스스로 나타나기에 중생이 곧 부처인 것이다.”44)고
말한다. 여기에는 한마음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 요구되는 그것이 다름 아닌 본래성불 곧 본증本證에 대한 자각으로 통하고 믿음의 자각으로 통한다.45) 바로 그 본증에 대한 자각의 원리가 대행에 게는 주인공의 관찰로 통한다.
2. 주인공과 본래면목의 자기 - 본래성
주인공은 한마음의 구체화이고 개별화로서 출현해 있지만 여
43) 한마음선원(2015), 원리편2, 312-313. 44) 한마음선원(2015), 원리편2, 316. 45) 본증에 대한 자각은 근본이래로 일체중생은 깨우쳐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행위 로서 여기에서는 한마음에 대한 자각으로 자신이 그대로 한마음이 되는 것을 가 리킨다.
전히 분별심이 발생하기 이전의 마음중심이고 나 자신의 기둥이 다. 이런 점에서 주인공은 진리요 빛이며 영원이요 생명이며 부 처이고 보살이며 청정이고 긍정이다. 다만 관찰의 방식으로 누구 나 인식이 가능하고 마음먹기에 따라서 언제나 작용할 수가 있
다. 이에 대행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태양 앞에서는 한 점의 허공도 용납되지 않는다. 본래의 나인 주 인공은 태양이며, 그러기에 주인공의 눈은 실상을 실상 그대로 볼 수가 있다. 주인공의 힘, 주인공의 빛, 주인공의 덕, 주인공의 눈을 그대로 믿어라. 믿으면서 안으로 깊게 주인공을 향하라. 대 상을 보되 대상에 말려들지 말고 놓으면서 주인공의 밝은 눈으
로 자기 자신을 관하라.46)
이 말씀은 주인공의 경우에도 그 믿음의 근거인 힘과 빛과 덕 과 눈이 청정한 본래면목의 존재를 근거로 전개되어 있음을 보 여준다. 때문에 그것은 자성의 구족이기 때문에 몽땅 믿고 맡길
수가 있다. 믿고 맡겨두는 도리야말로 주인공을 관찰할 수 있는 근거이다. 그리고 무조건 놓을 수가 있다. 거기에는 도망칠 곳이 나 회피할 곳이 없고, 속이는 길도 없으며, 꾀를 내서 될 일도 아니고, 분별심으로 터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직 진실하게
자기의 전체를 들이 부어 정진할 뿐이다. 여기에는 우리들 자신 이 본래 부처이므로 번뇌에 물들지 않는다는 것을 굳게 믿는 것 이 중요하다. 그 믿음의 크기만큼 본래부처로서의 광명이 우리의 내부에서 뿜어져 나오는데, 그 광명 앞에서는 어떤 어둠도 당해
46) 한마음선원(2015), 수행편2, 461.
내지 못하여 온갖 더러움과 욕심과 어리석음이 일시에 사라지고 만다. 여기에서 대행이 항상 강조하고 있는 믿고 맡기는 자세, 일체 를 놓는 도리, 무조건 놓음, 몰락 전부를 내려놓음의 가르침은
그 근저에 이와 같은 본래성불의 원리가 흐르고 있음을 엿볼 수 가 있다. 그렇다고 하여 아무런 것도 하지 않고 무기공無記空에 빠져서는 안 된다. 따라서 무조건 놓는 것이 그저 공견에 빠져 있어서는 결코 부처가 아님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47) 그것
은 주인공의 마음자리가 본래 청정하고 텅 비어 허공처럼 맑으 며 내가 절대공이기에 놓을 수가 있고 맡길 수가 있으며 대화할 수가 있는 것이기 때문인데, 그 근저에는 반드시 그러한 줄을 분 명하게 이해하고 있는 자각이 있어야 한다. 그 자리는 이미 본래
의 면목이 작용하고 있는 까닭이다. 따라서 대행이 제시하고 있는 주인공은 영원한 자기의 실상이 고, 영원한 생명의 실상이며, 생명의 근본으로서 우주와 직결되 어 있으며 이 세상 만물과도 가설이 되어 있다고 말한다.48) 그
래서 주인공은 일체중생의 개별적인 원리로서 밝고 영원하며 지 극하다. 한마음이 전 우주적인 원리로서 설정된 개념이라면 주인 공은 일체중생의 각각에 구비된 불성의 원리로서 그 자각을 통 하여 번뇌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대자유인 될 수 있는 근거로
등장해 있다. 이로써 주인공은 각자가 고정됨이 없는 공의 활용으로서 무심
47) 한마음선원(2015), 수행편4, 498-499. 48) 한마음선원(2015), 원리편2, 316-317.
하게 체험하고 터득하는 근거로 기능한다. 그러면서도 개개인에 대한 주인공의 영묘한 작용은 언제나 한마음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곧 주인공은 한마음의 원리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모습이 므로 이러한 까닭에 대행은 나무가 땅속의 뿌리를 근거로 하고
있듯이 중생은 본래성품인 주인공에 근거해서 존재한다고 말한 다.49) 그러므로 주인공은 본래성불의 중생이 현성성불의 중생으로 살아가는 근거이다. 주인공을 관찰하여 모든 것을 다 쉬고 맡김
으로써 노예에서 벗어나 참 자유인이 된 중생은 더 이상 미혹한 중생이 아니고 방편의 중생이 아니라 자각된 중생이다. 그러한 중생의 모습에 대하여 보리달마는 이입理入의 경지로 설명하여 부처와 동일한 진성을 심신深信하는 존재로 간주하였고, 조계혜
능은 깨달은 중생이라 하였으며, 마조도일은 시비와 분별과 조작 이 없는 평상심의 중생이라 하였다. 이에 대행은 주인공에 대하여 ‘마음의 근본과 마음 내는 것과 육신이 움죽거리는 것’이라 말하였다.50) 그 까닭은 주인공이라
는 것을 그대로 내놓을 수도 없고, 마음이라는 것을 내놓을 수도 없고, 내가 어떤 걸 했다고 내놓을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말에는 주인공의 본래성불의 성격이 잘 드러나 있다. 자신의 본래성을 가리킨 주인공이면서 정작 무엇이라고 내세울
수가 없는 도리이고, 자신의 마음에서 일으킨 주인공이면서 정작 어떤 것이라고 말할 수가 없는 원리이면서, 자신의 행위를 느끼
49) 한마음선원(2015), 원리편2, 319. 50) 한마음선원(2016), 허공을 걷는 길 1, 333.
는 주인공이면서 정작 왜 그렇게 해야만 했는지 정의할 수 없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주인공에 대하여 대행은 ‘무조건’이라고 말한다. 무 조건이니까 맡겨둘 수가 있고, 맡겨두니까 그대로 전체를 믿을
수가 있으며, 믿으니까 미련과 후회와 집착이 없고, 집착이 없으 니까 굴레로부터 해탈할 수가 있다. 이런 점에서 주인공은 철저 하게 본래부터 그렇게 구비되어 있는 까닭에 그것을 자각하고 그대로 그것을 부려먹으면서도 일상의 사위의四威儀에서 언제나
나 자신과 함께 하는 것이다.
3. 오공과 본래부처의 현성 - 평등성
대행이 제시한 오공五共이란 공동체로서 한마음의 원리를 실현 하는 방식으로 함께 하는 삶[共生], 함께 하는 마음[共心], 함께 하는 근원[共體], 함께 하는 작용[共用], 함께 하는 나눔[共食]을 가리킨다.51) 이처럼 오공은 대행의 한마음의 선풍이 만물만생에
게 직접적으로 실천되는 원리로서 작용하기 때문에 연기적인 관 계성이고 불이의 도리로서 불법의 대자대비의 관념이 성취되는 가르침이다. 때문에 오공은 보살행으로서 이타행의 모습으로 전 개되어 있다.
대행은 생명과 생명 우주전체가 사대의 원천이기에 지혜의 눈 으로 보면 함께 하는 생명 아님이 없다고 말한다.52) 이것은 오
51) 혜선(2013), 259. 다만 慧眼은 오공 가운데 共體에 대하여 공존하는 본체라고 해석하고 있다. 혜안, 「묘공대행의 전법 특성에 관한 연구」, (동국대 불교대학 원 석사학위논문. 2016) p.91.
공이야말로 한마음의 근원에 본래부터 구비되어 있는 원리로서 둘 아닌 도리임을 말해준 것이다. 때문에 한마음의 현현인 삼계 의 현상은 중생의 세계이면서도 중생에 머물지 않고 항상 그리 고 필연적으로 한마음으로 돌아가는 구조이다. 이에 그 출발과
과정과 성취는 보살행의 근본으로 통한다. 공생의 원리는 자타불이의 원리가 실현되는 근거이기 때문에 불보살이 일체중생과 더불어 공생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공생은 각자의 개인으로부터 추구하여 포괄적으로 우주 전체로 승화되
어 가는 공존적인 삶의 모습이다. 이것은 깨침을 통하여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닌 도리를 터득하는 도리로서 일찍이 영명연수永
明延壽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또한 이것은 고정된 자성이 없는 도리로서 일체를 성립하기도 하고 일체를 파괴하기도 하는데, 곧 하나가 성립되면 일체가 성 립되고 하나가 파괴되면 일체가 파괴된다. 하나가 성립되면 일체 가 성립된다는 것은 인因 과果가 서로 사무쳐 있는 것이다. 여기 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님을 설명한
다. (생략) 둘째는 주체와 객체가 둘이 아님을 설명한다.53)
이것은 곧 중생과 부처가 공생하는 원리로서 자타가 둘이 아님 을 설파한 것이다. 그것은 깨침을 통하여 드러나는 자비가 실현되 는 원리이기도 하다. 때문에 주관과 객관에 대하여 따로 분별이
52) 한마음선원(2015), 원리편4, 350-351. 53) 宗鏡錄 卷14(T48, 489a-b) “又此無性理 能成一切 能壞一切 則一成一切成 一壞一切壞 一成一切成者 即因果交徹 於中有二 一明生佛不二 (中略) 二明能所 不二”
없고 교화하는 부처와 교화되는 중생에 대하여 달리 분별이 없는 평등이 실현될 수가 있다. 공심의 경우는 본래 자타일여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대 행은 “주인공은 생명의 근본이다. 그 영원한 생명의 근본은 우주
와 직결되어 있고 이 세상 만물과도 가설이 되어 있어서 일체는 다 같이 공심으로 돌아간다.”54)고 말한다. 이처럼 중생과 부처가 공심인데도 불구하고 중생은 중생대로 살아가고 부처는 부처대로 살아가는 까닭은 아상과 인상과 중생상과 수자상과 같은 고정적인 관념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그 고정적인 관념을 벗어나서 주인공
의 청정하고 불생불멸의 영원한 생명이 그대로 자기의 생명인 줄 을 자각하면 공심의 작용은 그 자리에서 현성한다.
(의청이) 한 쌍의 부젓가락을 들고 말했다. “이 부젓가락에 마음 과 부처와 중생이 있는가. 만약 없다면 어째서 오직 일심뿐이라
고 말했을까. 그렇다면 이에 대하여 뭐라고 말해야 하겠는가.”55)
일체중생은 불조와 더불어 공심의 존재이기 때문에 중생과 부처 와 마음에는 분별이 없는 마음이고 차별이 없는 마음으로 기능하 고 있다. 그러나 그 공심은 반드시 자각이 수반되는 공심이어야
한다. 그 공심은 다름 아닌 마음과 중생과 부처의 본래성에 근거 한 자각이어야 비로소 가능한 것임을 투자의청投子義青은 경문을 들어서 단순히 너와 나와 부처가 동일하다는 도리가 아님을 일깨
54) 한마음선원(2015), 원리편2, 316-317. 55) 投子義青禪師語錄 (X71, 754a-b) “拈一雙火筯云 這箇还有心有佛有眾生耶 若 無 為什麼唯一心 於此如何道取”
워주고 있다. 더불어 공체는 자타가 존재하는 근원적인 바탕임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곧 내가 우주를 형성하는 근원이고 우주는 나를 현성시키 는 근원으로서 불이의 터전이기 때문에 공심의 터전이 된다.56)
이런 점에서 공체는 불체佛體와 중생체衆生體가 자성의 입장에서는 차별이 없이 평등하다는 실유불성悉有佛性의 도리에 통한다. 실유 불성은 근원적으로 법신이 우주법계에 편만하고 평등한 불성임을 표현한 말로서, 이것은 직접적으로 본래성불의 의의를 드러내주고
있다. 실유불성이기 때문에 만물만생은 궁극적으로 본원적인 깨달 음으로 향한다. 그것은 바로 보살행에서 동체대비가 실현되는 이 유이다. 이에 대행은 우리의 몸과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의 비 유를 들어서 몸이 그대로 세포이면서 세포가 그대로 몸이라고 말 한다.
한편 공용은 주인공이 공체도리가 지니고 있는 평등의 행위가 묘용의 도리로 작용하는 입장에 해당한다. 공용은 특히 일체가 둘 이면서 둘이 아닌 도리이고 걸림이 없는 도리이다. 따라서 찰나찰 나 변화하여 열린 관계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변화하는 가운데서 정체성을 잃지 않아 닫힌 관계를 유지해가는 모습이다. 이것은 조
사선에서 보살이 다른 부류와 함께 섞여 있으면서도 거기에 매몰 되지 않고 자성본래불의 원리에 충실하여 중생의 제도를 그치지 않는 이류중행異類中行의 작용이다.57) 이류중행이란 조사가 중생제 도하는 보살행을 실천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그러한 보살은 만물
56) 혜선(2013), 268. 57) 從容庵錄 卷5(T48, 270b) “今時沙門 須向異類中行始得” 참조.
의 중생을 제도하는 까닭에 인간 이외의 일체중생에까지 교화의 손길을 뻗쳐주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식은 한마음의 주인공이 일체중생에게 실천되고 적용되며 성 취되고 향유되는 기체基體로서 작용하는 터전이고 틀이다. 때문에
한마음 주인공이 근본적으로 본래성불의 도리로 작용하는 경우에 는 공생과 공심과 공체와 공용에 대한 공동의 틀에 해당하는 공식 을 통하여 전개되는데, 거기에는 내 몸과 내 마음을 일으키는 것 과 마음이 일어나기 이전의 자리라는 셋이 합일되어 생명의 실상
이 공전하는 까닭에 모두가 한마음으로 돌아간다.58)
이것은 동산양개洞山良价가 정正과 편偏을 중中의 원리로 승화시 킨 정편오위正偏五位의 선리에서 엿볼 수가 있다.59) 이런 점에서 공식은 오공이 각각 열린 관계와 닫힌 관계로 기능하면서 일체중 생에게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일체사一切事에 청정하게 현성 되어 있는 모습이다.
Ⅴ. 나오는 글
대행선은 묘공당 대행의 선풍을 일컫는 개념으로서 대행의 면모
58) 한마음선원(2015), 원리편3, 345. 59) 瑞州洞山良价禪師語錄 (T47, 526a) “重離六爻 偏正回互 疊而為三 變盡成五” 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여 형성된 禪理이다. 곧 正中偏은 수행으로부터 교화의 입장으로 향하는 것이고, 偏中正은 교화로부터 수행의 입장으로 향하는 것이며, 正中來는 순일한 수행의 입장이고 偏中至는 순일한 교화의 입장이며, 兼中到는 닫힌 관계와 열린 관계가 회호하는 입장으로서 보살행의 실천을 상징한다. 이 五位와 五共의 관계에 대해서는 추후 논의하기로 한다.
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바로 그 대행선은 대행의 숱한 법어에 근 거하여 형성되고 전개되며 실천되고 있는 선풍으로서, 그 구조는 한마음의 원리를 종지로 하여 자성본래불을 보편적이고 근원적으 로 지향하고, 주인공의 편재를 본체로 하여 개체적인 본래면목을
추구하며, 오공의 실천을 묘용으로 하여 일체중생의 평등성을 실 현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구조는 한마음과 주인공과 오공의 근원에 공통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자성본래불 곧 본래성불 의 사상에 근거함으로써 가능하였다. 이와 같은 대행선은 다름 아
닌 달마로부터 전승되어 온 조사선풍의 바탕인 본래성불의 사상에 닿아 있음을 고찰할 수가 있었다. 본래성불의 개념은 원각경 , 화엄경 , 능가경 , 열반경 등 여러 대승경전에 근거하고 있으며, 일체중생의 본래성을 긍정한
달마의 조사선풍에서 더욱더 확장되었다. 곧 달마의 이입으로부터 혜가와 승찬과 도신과 홍인과 혜능 및 이후 선종오가의 조사들에 게 전승되면서 보편적인 사상으로서 널리 전개되었다. 이와 같은 본래성불의 사상이 대행에게는 자성불, 본래자성불
자성본래불 등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되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법 계의 진여로서 법신불의 개념에 닿아 있는 한마음의 경우, 무일물 과 위음왕불 이전과 부모미생 이전의 근원성으로서 불성과 법성과 자성의 원리로 전개되었다. 그것은 곧 본래성에 대한 철저한 긍정
에 근거한 것이었다. 또한 한마음의 구체화이고 개별화로서 출현 해 있는 주인공의 경우, 진리이고 빛이며 영원이고 생명이며 부처 이고 보살이며 청정이고 긍정의 방식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주 인공에 대한 무조건의 믿음을 바탕으로 하여 전개되는 관법수행의
근거로 작용하였다. 나아가서 한마음의 원리를 공동체의 방식으로 실현해가는 오공의 경우, 부처와 중생의 본체가 다름이 없다는 동 체대비의 근거로서 본래성불의 조사선풍이 보살행으로 전개되었 다.
이처럼 대행선의 사상적인 바탕을 구성하고 있는 본래성불의 사 상은 대행의 법어 곳곳에서 설파되어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되어 있다. 때로는 근원적인 한마음의 원리로 설명되어 있는가 하면, 때로는 본래적인 주인공의 관법으로 수행되고 있으며, 때로는 평 등적인 오공의 공동체의식으로서 일체중생의 기체로서 실현되고 있다. 따라서 대행선에서 본래성불의 사상이야말로 이들 상호간의
유기적인 구조일 뿐만 아니라 중생 자신이 본래부터 부처였음을 확신토록 하는 수행법의 근거로서 기능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대 행선은 전통의 조사선이 근거하고 있던 본래성불의 사상에 계합되 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개개인에 대한 철저한 긍정을 통하여 평상심으로 전개되었던 보살행에 통한다.
- 金剛般若波羅蜜經 T8 - 大方廣佛華嚴經 T10 - 大般涅槃經 T12 - 大乘入楞伽經 T16
- 宗鏡錄 T48 - 證道歌 T48 - 從容庵錄 T48 - 少室六門集 T48
- 信心銘 T48 - 景德傳燈錄 T51 - 楞伽師資記 T85 - 投子義青禪師語錄 X71
(약호표 T : 대정신대장경 X : 만신찬속장경)
- 楞伽阿跋多羅寶經 T16 - 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 T17 - 金剛般若波羅蜜經論 T25 - 六祖大師法寶壇經 T48
- 한마음선원(2015), 한마음요전 , 경기도: 한마음선원출판부 - 한마음선원(2016), 허공을 걷는 길 1, 경기도: 한마음선원 출판부
* 단행본 및 논문
- 혜선(2013), 한마음과 대행禪 , 서울: 운주사 - 柳田聖山(1996), 達摩の語錄 , 東京: 筑摩書房 - 김호귀 역, 달마어록 (2012) 서울: 정우서적
The Philosophical Background of ‘Daehaeng Seon’ - Regarding the Thought of Inherent Buddhahood -
Kim, Ho-Gui
The term ‘Daehaeng Seon’ refers to the Seon (Zen/Chan) style of Ven. Daehaeng. The distinctive flavor seen in the teachings and practice of Ven. Daehaeng is based on her
many Dharma talks. The structure of Daehaeng Seon is centered on the principle of Hanmaum (One Mind). It teaches that the inherent Buddhahood within every individual, the Juingong or true self, is the basic substance that seeks
the true mind. The practice of the “Five Sharings” is the marvelous function that establishes equality between all sentient beings. Philosophically, the concepts of Hanmaum, Juingong and the Five Sharings are based on the concept of
“inherent Buddhahood,” meaning that all sentient beings are inherently buddhas just as they are. This concept is based on the Mahāyāna-sūtras. This concept was also developed and expanded by patriarchal Chan (Seon/Zen) which was
first transmitted from Bodhidharma to the sixth patriarch Huineng. Later it was transmitted to the “Five Houses (禪宗 五家)” during the late Tang dynasty in China. According to Ven. Daehaeng, the concept of inherent Buddhahood evolved
into various concepts such as: the Buddha of self-nature, the Buddha of inherent self-nature, the Dharma-realm of thusness, the Majestic Voice King Buddha (威音王佛), Not a single thing (無一物 referring to the empty character of
existence), and before your parents gave birth to you (父母 未生前). The philosophical foundation of Daehaeng Seon is explained in terms of the principle of Hanmaum. Sometimes it is practiced using the contemplation method of Juingong
and sometimes it is practiced using the Five Sharings to establish a spirit of community through the sharing of all things. Accordingly, the concept of inherent Buddhahood functions through the inter-related structure of the three
concepts of Hanmaum, Juingong and the Five Shareings as the foundation of Daehaeng Seon for the enlightenment of all sentient beings. In this regard, Daehaeng Seon is the practice of a bodhisattva combined with the concept of
inherent Buddhahood which originated in patriarchal Chan and is now applied in daily life through constant affirmation of the individual.
[Key words]
inherent Buddhahood, Hanmaun (One Mind), Juingong (true self), Five Shareings, patriarchal Chan, Daehaeng Seon, the
practice of the bodhisattva
대행의 한마음사상에 나타난 교리적 근거 고찰
박소령 (동국대)
불교의 원초적이면서 근본적인 표방은 ‘마음이 모든 법의 근본 이다[心爲法本]’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나를 비롯한 우주의 모든 생명의 근본이 바로 이 마음을 통해 직결되어 있음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마음은 주관적 자신을 비롯한 객관적 세계인 우주를 포 괄하는 모든 일체만상의 총괄적 주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마음 [心]에 관한 교리는 초기불교부터 부파불교, 대승불교에 이르기까
지 불교교리 전반에서 일관되게 설해진다. 특히 대승후기 논서에 해당하는 대승기신론 에서는 기존의 대 소승의 여러 경전들의 심사상心思想을 배경으로 하여 종합적인 ‘일 심一心’의 교리를 체계화 하였다. 기신론 은 ‘일심이문一心二門’ 또
는 ‘일심삼대一心三大’의 핵심적 교리체계를 갖추어 일심의 본체상 과 현상의 작용원리뿐만 아니라 ‘일심진여一心眞如’의 세계로 회귀 하는 대승의 실천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기신론 의 ‘일심사상一心思想’은 불교사상사에 있어 인도
불교의 종합수렴이며, 동아시아 대승불교권에 걸쳐 화엄, 천태, 정 토는 물론 선종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핵 심적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불교 전통적 중심교리인 ‘일심사상’에 근거를 두고 있는
묘공당妙空堂 대행大行(1927-2012)의 ‘한마음사상’은 전통적 교법 과 본질상 동일한 맥락을 가지면서도 그만의 독창적인 언설을 통 해 시대와 상황에 맞는 실천교리로서 전개되었다. 이 ‘한마음사상’ 에는 전통적인 ‘일심사상’의 현대적 해석이 담겨있을 뿐만 아니라
대행 자신만의 독특한 실천적 사상체계가 담겨있다. 대행은 한마음을 나와 우주의 근본적 총체로 삼고 이를 주체적 주인공으로 구체화시켜 나를 비롯한 일체제불과 우주의 모든 생명 이 근본적으로 직결되어 모두가 한마음인 공생共生・공심共心・공
체共體・공용共用・공식共食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하는 실천언어로 되살려내었다. 특히 그는 확고한 믿음을 바탕으로 무조건 놓고 지켜보는 실천 법인 주인공관을 제시하여 일상생활 속 언제어디서나 누구든 일체
가 한마음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쉽게 자각하고 바로 실천할 수 있 도록 하였다.
[주제어]
대승기신론 , 일심, 진여, 생멸, 연기, 무념無念, 대행, 한마음, 주인공, 주인공관법, 오공
붓다buddha는 약 2500년 전에 우리의 ‘마음이 모든 법의 근본[心爲
法本]’1)임을 설하였다. 이것은 나를 비롯한 우주의 모든 생명의 근본 이 바로 이 마음에 직결되어 있음을 가리킨다. 붓다는 제자들에게 색 신인 자신의 몸을 의지하지 말고 각자 자신이 갖추고 있는 마음에 의지하고 법dharma인 진리에 의지하라고 유언하였다.2) 여기서 말하
는 법法도 마음을 근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유심唯心적 원리가 드 러난 것이다. 이처럼 마음[心]에 관한 교리는 초기불교부터 부파불교, 대승불교에 이르기까지 불교교리 전반에서 일관되게 설해진다. 특히 대승불교 논서인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에서는 기존의 전
개된 심사상心思想을 일심一心체계로 종합하여 회통한다. 이러한 대승기신론 의 ‘일심사상一心思想’은 불교사상사에 있어 인도불교의 종합수렴이며, 동아시아 대승불교권에 걸쳐 화엄, 천태, 정토는 물 론 선종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핵심적 사 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불교 전통적 중심교리인 ‘일심사상’에 근거를 두고 있는 묘 공당妙空堂 대행大行(1927-2012)의 ‘한마음사상’은 전통적 교법과 본질상 동일한 맥락을 가지면서도 그만의 독창적인 언설을 통해 시 대와 상황에 맞는 실천교리로서 전개되었다. 대행은 불교의 당위적
1) 增壹阿含經 卷51(T2, 827b) 2) 雜阿含經 에서는 “아난아 마땅히 자기[自]를 섬으로 삼아 자기를 의지하고, 법 法을 섬으로 삼아 법을 의지하며, 다른 것을 섬으로 삼지 말고 다른 것을 의지 하지 말라(阿難當作自洲而自依 當作法洲而法依 當作不異洲不異依)”[ 雜阿含經 卷24(T2, 177a)]고 설한다.
실천중시의 입장에서 한국 전통적 사찰 중심의 수행이 아닌 일정한 처소를 두지 않고 산중 중심의 고독한 수행을 하였다. 이러한 점은 불교 전통적 두타행dhūta에 가깝다 하겠다. 그는 치열한 산중수행을 통해 자신만의 경험적 실증을 공고히 하였고 내면의 참구를 통해 일 체는 ‘한마음’으로 돌아간다는 원리를 체득하였다. 이러한 한마음 원 리를 대중들에게 일깨우기 위해 다양한 방편설을 구사하고 있지만
결국 그의 모든 교설은 ‘한마음’으로 포섭되고 귀결되어 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점에 초점을 맞춰 대행이 주창한 한마음사상 은 불교 전통적 교리인 일심사상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고, 이를 규명하기 위해 먼저 불교사상사적으로 일심사상의 전
개를 살펴볼 것이다. 이러한 작업들은 한마음사상의 교리적 근거 를 마련하는 토대가 될 것이다. 그리고 대행의 교설에 나타나는 ‘한마음’ 개념에 대한 의미파악을 통해 이 ‘한마음사상’에는 전통적인 ‘일심사상’의 현대적 해석이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대행 자신만의 독특한 수행적 논리체계를 수립하 고 있음도 조명할 것이다. 이를 통해 대행이 일관되게 말하고 있는 한마음의 사상적 원리와 그 특징은 무엇인지 밝혀보고자 한다.
Ⅱ. 일심사상의 전개
1. 일심사상의 연원과 전개
불교에서 말하는 마음[citta, 心]이란 광범위한 불교적 의미의 핵
심이며, 모든 불교학의 중심을 차지한다. 뿐만 아니라 일심 (eka-citta, 一心)은 ‘한마음’으로 해석되고 불교에서 집중적으로 논
의되고 있다.3)
초기불교 교리에서는 실천적 교설을 통하여 마음의 문제를 취급 하고 있기 때문에 심성心性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은 많지 않다. 그 럼에도 초기적 형태의 유심唯心적 교의가 초기불교 경전에 이미 나타나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증일아함경 권51에는 “마음은 모든 법의 근본이 되니 마음이
존귀한 주인이 되어 모든 것을 부린다[心為法本 心尊心使]”4)라고 설 하고, 잡아함경 권36에서는, “그 마음이 하나의 법이 되어 세간 을 능히 제어할 수 있다”5)고 설하였다. 이것은 하나의 총괄적 주 체로서 마음을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마음[心]은 우주
진리[法]의 근본으로서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주관의 심식心識작 용뿐만 아니라 객관대상의 모든 현상들이 마음에 모두 귀결된다고 할 수 있는 ‘심위법본설心爲法本說’이다. 그리고 잡아함경 권36에서는 “마음이 물들었기 때문에 중생 이 물들고 마음이 깨끗하기 때문에 중생이 깨끗하다”6)라고 하여, 심心을 중심으로 두 양상이 전개되는 ‘심양면설心兩面說’이 나타나
고 있다. 여기에서 나타난 ‘심정心淨’의 측면은 이후에 ‘심성본정
3) 혜선(2005), 한마음사상과 선수행체계 연구 , 동국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0 재인용. 4) 이 ‘心爲法本’의 교의는 增壹阿含經 卷51(T2, 827b) 외에 法句經 卷上 「雙 要品」(T4, 562a)에도 나타난다.
5) 雜阿含經 卷36 1009경(T2, 264a) “其心為一法 能制御世間” 6) 雜阿含經 卷10 267경(T2, 69c) “心惱故衆生惱 心淨故衆生淨”
(svacitta-śuddhi, 心性本淨)’사상으로 전개되는 바탕이 된다. 이러한 심의 두 측면으로 전개되는 작용원리로서 교설되는 것은 초기불교의 핵심교리인 ‘연기설’이다. 이를 구체적인 이론으로 체
계화시킨 것이 ‘12연기설’이다. 이 12연기는 현상적 유전연기流轉
緣起와 본체적 환멸연기還滅緣起로 설명되며 이를 모두 포괄하는 상 위개념은 마음[心]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초기불교는 아직 유심唯心이라는 표현까지는 하지 못한 사상이었지만 ‘심위법본心爲法本’ 즉 우리의 일심이 현상계 일체제
법의 중심이요, 또 그것을 현상화시키는 근본이며 주체라는 것을
주장하였던 것만은 충분히 증명된다.7)
부파불교시대에 이르러서는 초기불교의 실천을 위주로 한 ‘심본 설心本說’이었던 것이 ‘심성설心性說’과 ‘심식설心識說’8)로 더욱 세분 화되고 구체화된 이론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조금 더 발전된 ‘유심론’적인 이론체계를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설일체유부Sarvāsta-vādin 계통의 아비달마발지론 권19에 는 “모든 법은 마음을 따라서 일어나니 마음을 따르지 않음이 없 다[諸法由心起 非不由心]”9)라고 하였으며 대비바사론 권5에는 “마 음의 작용[心所法]을 나타내는 데는 비록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심
7) 김동화(2001), 불교유심사상의 발달 , 뢰허불교학술원 불교시대사, 45. 8) 초기불교 문허에는 마음[心]의 표현으로 심(citta; 集起) 의(manas; 思慮) 식 (vijñāna; 了別) 등의 3가지 명칭을 구별없이 혼용하였지만 부파불교 문헌인 구사론俱舍論 에 보면 “정淨과 부정不淨의 계界에 여러 가지의 차별이 있기 때 문에 ‘심心’이라고 이름하게 된 것이며……심의식心意識의 세 가지 명칭은 비록 그것이 드러내는 뜻은 다를지라도 그 본체는 하나이다(淨不淨界種種差別故名為 心……心意識三名所詮 義雖有異而體是一)”[ 阿毘達磨俱舍論 卷4(T49, 21c)] 고 하여 심의식心意識에 대해 하나의 심체에 3가지 의미일 뿐임을 설한다.
9) 阿毘達磨發智論 卷19(T26, 1025c)
心은 오직 하나이다”10)라고 하여 유심적 입장이 강조되고 있다. 그리고 부파불교에서 나타나는 특징의 하나로 대중부계의 ‘심성 본정설心性本淨說’이 있다.11) 이러한 ‘심성본정설’에 대하여 설일체유 부계는 비판하고 있는데 이것은 본질적 심성心性 측면보다 현상적 심식心識 측면에 더 치중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여러 부파에서는 육식심六識心 이외에 정신활동을 지속할
근본존재인 근원식을 설정하고 있다. 그 근원식에는 유분식有分識
(상좌부), 보특가라補特伽羅(독자부), 일미온一味蘊(경량부), 궁생사 온窮生死蘊(화지부), 과보식果報識(정량부), 근본식根本識(대중부) 등이 있다. 이는 초기불교에 나타나는 육식六識 이외에 근원식을
인정하여 윤회설과 조화시키려는 것으로 대승의 ‘아뢰야식사상阿賴
耶識思想’이 발전되기 이전의 사상이라 볼 수 있다. 대승불교시대에 와서는 초기에 성립된 반야경prajñāpāramitā sūtra
화엄경 Buddhāvataṃsakamahāvaipulya sūtra · 법화경saddharmapuṇḍarīka
sūtra · 유마경 Vimalakīrtinirdeaśa sūtra 등 여러 경전은 한결같이 ‘유심사상唯心思想’을 그 기본입장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반야경 에서는 공사상을 중심으로 제법의 실상의 측면이
강조되지만 여기서 공(śūnya, 空)의 함의는 망심연기에 의한 제법 과 그에 대한 집착심이 공무空無함을 의미한 것일 뿐 결코 절대 무無의 공空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점과 관련하여 본경
에는 ‘일체법공一切法空 시공역공是空亦空’12) 또는 ‘진여(tathatā, 眞如)
10) 阿毘達磨大毘婆沙論 卷5(T27, 20b) “顯心所法 雖有多種 而心唯一” 11) 異部宗輪論 卷1(T49, 15a) “心性本淨 客隨煩惱之所雜染 說為不淨”
와 법신(dharma-kāya, 法身)’13) 그리고 ‘열반(nirvāṇa, 涅槃)’14) 등의 개념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반야경 ‘공설空說’의 진의는 공空이 라는 소극적 표현을 통해 불공不空의 진여실상眞如實相을 확연히 들 어내려는 적극적 심성心性의 입장을 띤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반야경 의 해석서라 할 수 있는 대지도론 에는 “삼계의 현상적 존재는 모두 마음이 지은 것이다. …”15)라고 하듯이 유심의 교의 가 일부 들어나 있다. 이러한 일체유심사상을 드러낸 대표적 경전인 화엄경 에서는
초기불교의 ‘심위법본설心爲法本說’과 부파시대의 ‘심유일설心唯一說’
을 한층 더 발전시켜 “심불급중생心佛及衆生 시삼무차별是三無差
別”16),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17)라는 유심적 대승사상을 확립하였 다. 또한 화엄경 에서는 “삼계의 존재하는 바는 오직 일심으로 여래는 이것에 대하여 분별 연설하여 십이연기가 모두 일심에 의 지하여 이와 같이 건립한다.”18)고 설하였다. 이처럼 십이연기를
일심의 상관관계로 보려는 화엄경 의 교설은 초기불교의 ‘심위법
12) 摩訶般若波羅蜜經 卷5(T8, 250b) “何等為空空?一切法空 是空亦空” 13) 大般若波羅蜜多經 卷569(T7, 937c) “性不變異 故稱真如 … 諸法雖生 真如不 動 真如雖生諸法 而真如不生 是名法身”
14) 摩訶般若波羅蜜經 卷25(T8, 401b) “諸法畢竟空 即是涅槃” 15) 大智度論 卷29(T25, 276b) “三界所有 皆心所作 何以故 隨心所念 悉皆得見 以心見佛 以心 作佛 心即是佛 心卽我身”
16) 60華嚴經 卷10(T9, 465c) 17) 80華嚴經 卷19(T10, 102b)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 造”
18) 80華嚴經 卷37(T10, 194a) “三界所有 唯是一心 如來於此分別演說十二有支 皆依一心 如是而立”; 60華嚴經 卷25(T9, 558c) “三界虛妄 但是一心作 十二 緣分 是皆依心”
본설’과 ‘연기설’을 조화시킨 대승적 ‘일심연기설一心緣起說’이라 할 수 있다. 대승 중기의 경전에 해당하는 여래장경tathāgatagarbha sūtra · 부증 불감경Anūnatvāpūrṇatvanirdeśaparivarta sūtra · 승만경Śrīmālāsiṃhanāda sūtra 등에서는 중생의 본성적 입장에서 마음을 중시하여 이것을 ‘여래
장심如來藏心’이라 하였다. 여래장이라 함은 중생의 객진번뇌客塵煩
惱에 덮여 있는 여래 즉 자성청정自性淸淨의 의미로서, 아직 여래가 현현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여래장사상은 초기불교 내지 부파불교의 심성心性 측면 을 위주로 한 설명임에 반하여 이와는 달리 심상心相 측면을 위주
로 한 유식사상이 일어났으니 이는 해심밀경Saṃdhinirmocana sūtra 을 소의로 하여 미륵, 무착, 세친 등이 완성한 ‘아뢰야연기사상阿
賴耶緣起思想’을 말한다. 이 아뢰야연기설은 ‘마음 이외에 모든 경계가 없으며 모든 법은 오직 식識일뿐이다[心外無境 萬法唯識]’라는 이론적 기치아래 아我와 법法 등의 현상적 모든 법은 모두 중생의 근본 심식心識인 제8식
의 전변에 불과하다는 설이다. 그러므로 유식계통에서는 마음의 현실적인 문제에 입각하여 인간 자성의 정체를 밝히는데 주력하였 다. 이처럼 독자적인 사상체계로서 각각 발전해 오던 ‘여래장사상’과
‘아뢰야식사상’은 대승불교 후반에 이르러서 ‘아뢰야식과 여래장의 동이同異문제 및 상호관계’와 ‘아뢰야식의 진망眞妄문제’ 등이 쟁점 으로 되면서 두 사상의 통합이 시작된다. 이러한 배경 아래 등장 한 능가경Laṅkāvatāra sūtra 에서 마침내 여래장사상과 아뢰야식사
상이 종합된다.19) 능가경 에서는 “적멸(vyupaśama, 寂滅)은 일심이며, 일심은 곧 여래장이다”20)고 하였으며, 다시 “중생은 여래장에 의지하기 때문 에 오도五道에 생사유전하며 …… 아리야식(ālaya, 阿梨耶識)은 여래
장이다”21)라고 하여 일심의 절대적 본체에서 여래장과 아뢰야식 을 조합하여 생멸연기의 원리를 나타낸다. 하지만 아직 ‘일심여래 장연기一心如來藏緣起’의 체계적 설명이 이루어졌다고는 볼 수 없다.
2. 대승기신론 의 일심체계
초기불교의 ‘심위법본설心爲法本說’과 ‘심양면설心兩面說’ 그리고 작용원리로서 ‘연기설’을 시원으로 하여 부파시대에 심성과 심식 양면의 해석과 대승초기에 화엄의 유심사상과 반야의 공사상 등의 교리적 발전과정을 거쳐 대승중기에는 여래장계와 유식계의 두 계 통의 심사상이 대립·발전하였고 이어 후기에 와서는 이 두 계통의
심사상이 능가경 에서 종합되었다. 대승후기 논서에 해당하는 대승기신론 (이하 기신론이라 표 기)22)에서는 기존의 여러 경전들의 심사상을 배경으로 하여 체계
19) 노권용(1977), 起信論 一心思想의 成立史的 硏究 , 동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 위논문, 51. 20) 入楞伽經 卷1(T16, 518c) “寂滅者名為一心 一心者名為如來藏” 21) 入楞伽經 卷7(T16, 556b) “眾生依於如來藏故 五道生死……大慧!阿梨耶識者 名如來藏”
22) 인도 마명馬鳴에 의해 지어진 대승기신논 의 성립시기는 여러 이론이 있으나 중국에서 한역된 진제(眞諦, 499-569)의 구역본을 기준으로 볼 때 6세기 이전
적이고 종합적인 ‘일심진여연기설一心眞如緣起說’을 완성하였다. 따라서 기신론 에서는 “여래의 광대하고 깊은 법의 끝없는 이 치를 총섭하고자 한 것이다.”23)라고 논을 짓게 된 인연을 설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원효(617-686)는 “여러 경전의 핵심을 하
나로 꿰뚫은 것은 오직 이 기신론 뿐이다.”24)라고 격찬한 이유 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또한 기신론 은 하나의 거대한 불교사상사에서의 분수령으로서 그 이전의 사상의 발전적 귀취가 되었으며 그 이후, 중국의 법상
삼론, 화엄, 천태, 선종 등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25) 천태종의 개조인 지의智顗(538-597)는 법화현의法華玄義 에서
“마음은 모든 존재의 근본이고 마음은 모든 존재의 총상이다.”26)
라고 말하였고, 화엄종의 종밀宗密( 780-841)도 대방광불화엄경 보현행원품별행소초大方廣佛華嚴經普賢行願品別行疏鈔 에서 “모든 존재 를 다 총괄하는 것은 곧 일심一心이다.”27)라고 하여 일심을 제법
의 총상으로 하였다. 이 뿐만 아니라 중국 당대의 선사인 마조도 일馬祖道一(709-788)은 “이 마음이 바로 부처이다. 달마대사가 남
에 성립되었을 것으로 산정할 수 있으며, 또한 본 논서에 나타나는 사상적 경향 을 볼 때 무착(4-5세기), 세친(320?-400?) 이후의 성립으로 추정된다.[김동 화(1992), 대승불교사상 , 서울, 보련각, 648-650], 현재 기신론 의 산스크 리트어 원본이 발견되지 않고 진제와 실차난타(實叉難陀, 652-710) 한역의 2 종본이 남아 있을 뿐이다. 본고에서는 진제의 구역본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23) 大乘起信論 (T32, 575c) “如是此論 為欲總攝如來廣大深法無邊義故” 24) 起信論疏 卷1(T44, 202b) “衆典之肝心 一以貫之者 其唯此論乎” 25) 지운(1991), 「起信論 사상의 연원에 대한 고찰」, 한국불교학 제16집, 한국불 교학회 167 재인용.
26) 妙法蓮華經玄義 卷1(T33, 685c) “心是諸法之本 心卽總也” 27) 大方廣佛華嚴經普賢行願品別行疏鈔 卷2(X5, 245b) “總該萬有 即是一心”
천축국南天竺國에서 중국에 들어와 상승上乘인 일심법一心法을 전하 여 그대들을 깨닫게 하였다.”28)라고 하여 중국 선종의 초조인 달 마대사의 전승법도 일심법임을 곧바로 지적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인도 대승불교의 심사상을 종합 회통시킨 기신론 의
‘일심사상’은 인도 중국뿐 아니라 한국 등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 불교전통의 일관되어 있는 핵심교리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의미 에서 기신론 의 핵심체계라 할 수 있는 ‘일심삼대一心三大’를 중심 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기신론 에서는 “끝내 평등하여 변함도 없고 파괴될 수도 없는 것으로 오직 일심一心일 뿐이다.”29)라고 하여 일심을 절대적 본체로 설한다. 이는 다시 ‘한 법계를 크게 총괄한 모습인 법문의 본체[一法界大總相法門體]’30)라고 하여 일심을 총상으로 한 이른바
절대적 유심설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일심에 대해 원효는 “대승 법에는 오직 일심만이 있으니 일심 밖에는 다시 다른 법이 없다 .”31)라고 말하여 일심의 유일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와 같이 기신론 에서의 일심은 절대적 일심을 가리키고 있다.32)
28) 「馬祖道一禪師廣錄」 四家語錄 卷1(X69 2b) “祖示眾云 汝等諸人 各信自心是 佛 此心即佛 達磨大師 從南天竺國 來至中華 傳上乘一心之法 令汝等開悟”; 당대 의 황벽선사도 “부처님으로부터 역대 조사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다른 것은 말하 지 않으셨고 오직 一心만을 말했을 뿐이다(從佛至祖 並不論別事 唯論一心)” 黃 檗斷際禪師宛陵錄 (T48, 384b)라고 하여 一心이 불교전통의 핵심사상임을 증 명하고 있다. 29) 大乘起信論 (T32, 576a) “畢竟平等 無有變異 不可破壞 唯是一心故” 30) 大乘起信論 (T32, 576a) 31) 起信論疏 卷1(T44, 204b) “明大乘法唯有一心 一心之外更無別法” 32) 대승기신론 에서 一心은 절대적 일심을 가리키지만 또한 衆生心, 如來藏, 眞 如, 本覺, 法身 등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기신론 은 衆生心의 명칭을 중
다음 기신론 에서는 일심을 총상으로 다시 이문二門을 세우고 있다.
일심一心인 법에 의하여 두 가지 문이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 가? 첫째는 마음 그대로가 진여인 심진여문心眞如門이요, 둘째는 마음 그대로가 생멸인 심생멸문心生滅門이다. 이 두 문은 모두
제각기 일체법을 통틀어 포섭한다.33)
여기서 말하고 있는 심진여문은 곧 중생 심성의 본체적 측면을 말 한다. 또한 이 진여는 이언진여離言眞如와 의언진여依言眞如의 두 가 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먼저 ‘이언진여’는 원래 상대적 인식이나 언어로 파악할 수 없는
절대경지의 진여를 가리킨다. 이에 비해 ‘의언진여’는 절대경지인 진 여를 중생을 위한 상대적 분별언어로 설명한 것으로, 이에는 본래 분별망상이 발생한 적이 없는[不生] 평등실상으로서의 ‘여실공如實空’ 과 본래 무량공덕상이 소멸한 적이 없는[不滅] 일체 진실상으로서의 ‘여실불공如實不空’의 의미가 있다. 이것은 일심의 평등적 진공眞空 속 에 무한한 작용을 할 수 있는 묘유妙有의 공덕상을 갖춘 ‘일심진여연
기一心眞如緣起’의 원리를 설명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심생멸문 가운데는 곧 일심여래장연기一心如來藏緣起를 설
요시하여 이를 근거로 대승(Mahāyāna, 摩訶衍)의 진리와 의의를 설명하고 있 다. 여기서 중생심은 세간과 출세간 등 모든 법을 총섭한 하나의 총상으로 설명 된다. 이러한 점은 바로 중생심을 떠나 따로 一心이 없으므로 이 중생의 마음을 통해서 본래 갖추어 있는 자성을 밝히는데 그 핵심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33) 大乘起信論 (T32, 576a) “顯示正義者 依一心法 有二種門 云何為二?一者 心 真如門 二者 心生滅門 是二種門 皆各總攝一切法 此義云何?以是二門不相離故”
명하여 중생심성의 현상적 측면을 나타낸다. 이 생멸문에서는 생
멸현상의 근본을 여래장에 두고 아뢰야식을 설정하여 염정제법染
淨諸法의 연기를 설명한다.34) 아울러 진망화합의 아뢰야식은 각의
覺義와 불각의不覺義를 갖추어 염법훈습에 의한 삼세三細와 육추六
麤의 미계迷界로 유전함과 반대로 정법훈습에 의한 시각始覺과 본 각本覺의 진여계眞如界에 환입함을 설명한다. 이과 같이 기신론 은 진여와 생멸의 이문을 통하여 본체와 현상 을 밝히고, 있지만 결국 일심을 떠나 따로 논할 수 없는 일심의 두
측면에 불과한 것으로서 어느 문이나 모두 각각 일체법을 총섭하여 다함이 없는 것이다. 다음 기신론 에서는 일심이문에 바탕을 두어 체體·상相·용用 삼대 三大를 설명한다.
이 마음에 의하여 마하연의 이치를 드러내어 보이니, 무슨 까닭 인가? 이 마음 그대로가 진여인 모습[心眞如相]이 마하연의 본체 [體]를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요, 이 마음 그대로가 생멸의 인 연상[心生滅因緣相]이니, 능히 마하연 자체自體의 공덕상[相]과
작용[用]을 나타내기 때문이다.35)
여기서 체상용은 일심생멸의 측면에서 대승법을 말하고 있지만 이 생멸의 인연상에도 일심을 총상으로 하여 자체상[自體相]을 갖
34) 大乘起信論 (T32, 576b) “心生滅者 依如來藏故有生滅心 所謂不生不滅與生滅 和合 非一非異 名為阿梨耶識 此識有二種義 能攝一切法 生一切法” 35) 大乘起信論 (T32, 575c) “謂眾生心 是心則攝一切世間法 出世間法 依於此心 顯示摩訶衍義 何以故?是心真如相 即示摩訶衍體故 是心生滅因緣相 能示摩訶衍 自體相用故”
추고 있으므로 본체를 여의지 않고 전체가 둘이 아니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기신론 에서는 다시 일심삼대의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 하고 있는데, 여기서 증감이 없는 평등진여를 체대體大로 무량한
성공덕을 갖춘 여래장을 상대相大로, 모든 세간과 출세간의 선한 인과를 내는 것을 용대用大로 하고 있다.36) 이러한 기신론 의 일심삼대에 대한 설명은 정법훈습 또는 진여 훈습의 측면에서 중생들이 현상적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 본체적 일심진여의 세계로 회귀하는 대승의 원리를 제시하는 것이다. 왜
냐하면 기신론 에서 “일체 모든 부처님께서 본래 타셨던 바[所
乘]이며, 모든 보살이 모두 이 법을 타고서 여래의 지위에 이르는 것이다.”37)라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신론 에서는 체·상·용 가운데 여래법신如來法身을 체상體
相에 배대하고 보신(saṃbhoga-kāya, 報身)·응신(nirmāṇa-kāya, 應身)을 용用에 배대하여 일심삼대一心三大에 인격적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중생들이 이를 의지해 일심진여一心眞如로 향하는 그 종교적 의미 에서 정법훈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와 같이 일심삼대는 진여의 자체와 그 모습엔 불가사의한 작 용이 갖추어져 있어, 중생들이 발심을 하여 삼계생사의 괴로움에 서 염증을 내고, 열반의 도를 즐겨 구하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 도 이는 중생이 본구한 일심진여 자체상의 작용으로 외부의 세계 에서 구하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만일 자심의 진
36) 大乘起信論 (T32, 575c) “一者 體大 謂一切法真如平等不增減故 二者 相大 如來藏具足無量性功德故 三者 用大 能生一切世間 出世間善因果故” 37) 大乘起信論 (T32, 575c) “一切諸佛本所乘故 一切菩薩皆乘此法到如來地故”
여체와 공덕상에 훈습작용이 없다면 중생이 영원히 발심할 수 없 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기신론 에서는 일심진여법계로 환입하기 위한 실천
방법으로 4가지 믿음[眞如·佛·法·僧]과 5가지 실천[布施·持戒·忍辱·精進
止觀]을 설하고 있지만 그와 별개로 ‘무념관無念觀’을 설하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서 무념은 진여문에 바로 깨달아 들어가기 위한 관법38)으
로 기신론 에서는 “마음이 일어난다는 것은 알만한 처음 모습[初
相]이 없는 것이지만 처음 모습을 안다고 한 것은 곧 무념을 말한 다.”39)고 정의하고 있다. 이는 무명에 의해 요동된 망념이 본래 발생함이 없음을 아는 것이다. 법장法藏(643-712)은 무념에 대해 “처음 움직이는 망념이 곧 본
래 고요함을 알기 때문에 무념이라고 한다.”40)고 하였으며, 통윤通潤
(1565-1624)은 대승기신론속소大乘起信論續疏 에서 “무념을 얻은 자는 진여평등의 법계대총상법문체를 원만히 증득하기 때문에 하나 의 깨달음에 모든 깨달음을 얻는다.”41)라고 해석하고 있다.
감산憨山(1546-1623)은 기신론직해起信論直解 에서 무념에 대 해 “지금 참선하는 이들은 무념의 종지를 깨닫지 못하고 더구나 갖가지 현묘한 사량을 일으키니 어찌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을 알
38) 大乘起信論 (T32, 579c) “無明迷故謂心為念 心實不動 若能觀察知心無念 即 得隨順入真如門故” 39) 大乘起信論 (T32, 576b) “又心起者 無有初相可知 而言知初相者 即謂無念” 40) 大乘起信論義記 卷2(T44, 259a) “知初動念即本來靜 故云即無念也” 41) 大乘起信論續疏 卷1(T45, 412a) “以得無念者 圓證真如平等法界大總相法門 體 故得一覺一切覺”
겠는가. 이 기신론 뿐만 아니라 일대장경과 선종의 천칠백 공안 이 무념이란 한 단어에 총 귀결된다.”42)라고 하여 선·교에 일제히 통하는 관법으로 제시한다. 이상에서와 같이 기신론 은 대승적 일심의 이론과 실천 체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이러한 일심사상은 동아시아 불교전통에 일관되 어 있을 뿐 아니라 현재에도 대승 실천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핵 심사상일 것이다.
1. 한마음사상
Ⅲ. 대행의 한마음사상과 특징
불교에서는 일관되게 ‘모든 법의 근본이 마음에 있다’고 하였다. 이는 초기불교부터 부파, 대승, 심지어 선불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상사적으로 일관되게 이어져 온 핵심사상이다. 불교에서 이 마음
은 모든 것의 근본으로 곧 자신을 비롯한 우주를 포괄하고도 남는 모든 일체만상의 총괄적 주체라는 것을 도처에서 설하고 있다. 그러므로 불교전통 속에서 마음 외에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으 며 각자의 마음에서 구해야함을 공통적으로 주창하고 있는 바이다.
이처럼 대소승 모든 경론은 명실공히 유심 또는 일심을 총체로 또 는 총 귀결처로 일관해왔다.
42) 起信論直解 卷1(T45, 505b) “故今參禪 不了無念之旨 更起種種玄妙思量 豈 祖師西來意耶 不唯此論 即一大藏 千七百則 總歸無念一語 無剩法矣 學者識之”
불교전통에서 근본 진리를 ‘일심一心’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과 마 찬가지로 대행도 ‘한마음’을 요체로 하고 있다. 이 ‘한마음’은 대행 의 경험적 오도에 의하여 밝혀진 궁극적 진리의 상징이라 할 수 있 다. 그는 한마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한마음은 시공을 초월한다. 한마음은 온 만물의 시작이전부터 있 었고 만물의 끝남 이후에도 있다. 한마음에는 어제 오늘이 따로 없고 크고 작음이 따로 있지 않다. 모든 물줄기가 바다에 이르러 하나가 되듯이 이 세계의 모든 것은 다 한마음에 포섭된다. 한마
음은 바로 만물이 비롯된 근원이요 돌아갈 고향이다.43)
이와 같이 한마음은 우주 삼라만상에 모두 관통되어 있는 하나의 총상 또는 총 귀결처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한마음 은 우리 모두 갖추고 있는 하나의 총상으로서의 모든 존재의 시원
이며 귀결처이다. 기신론 에서 절대 일심을 ‘일법계대총상법문체一
法界大總相法門體’라고 한 것과 상통한다. 대행이 이와 같이 모든 존재의 귀결처로서 한마음을 내세운 점은 기복중심의 상대적 불교 인식이 아닌 자각과 실천중심의 절대적 불 교인식으로 돌아가자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그가 “부처님의 그 많은 장광설이란 오직 ‘마음’이 라는 한마디로 귀결되기 때문이다.”44)라고 하거나 “모든 부처와 중생은 한마음이다. 한마음이기에 부처와 중생에 차별이 없다고
43) 이 한마음을 모든 존재의 근본으로서 설한 내용은 한마음요전 수행편, 510; 원리편, 314; 심인편, 266; 원리편, 369; 게송・선시편, 771; 원리편, 312; 법 연편, 170; 허공을 걷는 길 법형제법회1, 4 등에서도 산견된다. 44) 한마음요전 법연편, 170.
하는 것이다.”45)라고 말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대행의 한마음을 요체로 한 교의는 절대적 불교전통 으로의 회귀이며 곧 일심사상에 그 근거를 둔다고 볼 수 있다.
2. 주인공사상
1). 주인공의 성격
대행은 ‘한마음’을 다시 ‘주인공主人空’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주 인공은 곧 한마음과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이는 총상인 한 마음에서 주체적 자각을 위해서 인격적 의미가 부여된 주인공이라 볼 수 있다. 대행은 “나의 마음은 한마음과 연결되어 있어 그 근본이 다르지
않으니 나의 근본이 곧 만법의 근본이라, 이름 하여 주인공이라 한다.”46)고 하여 우리 본연의 총상으로서 한마음을 주체적으로 구 체화시킨 것이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이 주인공은 우리들 본래 의 모습, 영원하고 무한한 진실의 ‘참나’로서 이는 한마음과 서로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에 ‘한마음’과 ‘주인공’은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47) 다시 말해 대행의 한마음이 총상으로 설
45) 한마음요전 원리편, 316. 46) 한마음요전 원리편, 317. 47) 대행은 또한 “일체의 모든 것, 즉 이 우주천지의 모든 것이 나온 근본은 바로 마음이요, 따라서 전체는 한 법망으로 직결되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모든 것이 직결되어 있는 마음의 주인공을 믿고 거기에 모든 것을 되 맡겨 놓으 라고 하는 것입니다.”(대행(2014), 생활 속의 불법수행 , 여시아문, 33.)라고
명된다면 주인공은 한마음의 내재성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주인공을 자성・본래면목・불성・여래장・진여・참나 등으로 언
급하고 있다.48)
기신론 에서는 만법의 근원이나 절대적 총상으로서 일심[한마 음]을 나타내고 이 일심은 다시 내재적 속성으로서 여래장[주인 공]를 통해 진여와 생멸의 두 문이 서로 분리될 수 없음을 나타내
고 있다.49)
결국 대행이 설한 주인공도 우리 한마음에 내재된 본성으로서의 진여나 불성과 같으며 또한 자성불의 의미를 갖는다.50) 그러므로 기신론 에서 말하는 ‘일심진여’와 대행이 말하는 ‘한마음주인공’ 은 서로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대행은 그의 교설에서 주인공의 의미를 다양하게 설하고 있지만 그 속성을 보면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곧 공성空性과 불 공성不空性이다. 먼저 주인공의 공성의 측면에서 보면
하였다. 이 내용에서도 한마음과 주인공이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48) 대행은 “주인공은 나의 진정한 면모로서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에 자재로운 나 의 참 주인이자 이 세계의 참 주인이다. <일컬어 자성이라고도 하고, 본래면목 이라고도 하고, 불성이라고도 하고, 여래장, 진여, 참나라고도 하며 주인공이라 고도 하는 이 나는 중생이 흔히 나라고 생각하는 그것과는 천양지차로 다른 것 이라 할 수 있다.>”( 한마음요전 원리편, 320.)라고 하여 주인공을 자성, 본래 면목, 불성, 여래장, 진여, 참나 등과 동일한 의미로 설명한다.
49) 大乘起信論 (T32, 576a) 50) 대행은 “나의 마음은 한마음과 연결되어 있어 그 근본이 다르지 않으니 나의 근 본이 곧 만법의 근본이라, 이름하여 주인공이라 한다. <그러나 주인공이라고 부 르지 않아도 생각하고 움직이고 말했을 때 벌써 근본 자리에서 알고 있으니 그 래서 참 부처요, 자성불이요, 참 보배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한마음요전 원리편, 316.)라고 하여 주인공을 자성불로도 설명한다.
혹자는 주인공이라고 하니까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을 연상하는데 마음엔 체가 없는 법, 따라서 주인공도 본래 공한 마음자리입니 다.” 따라서 ‘어디에다 놓느냐.’ 했을 때 ‘공에다 놓는다.’ ‘공은 어떤 것이냐.’ ‘모든 생명이 같이 돌아가는 곳(장소가 아님)이 공 이다.’ 그러면 ‘나는 빠졌느냐.’ ‘나까지 거기에 있다.’는 말이죠
.”51)
라고 하듯이, 대행은 우리 본연의 주인공을 자각하도록 강조하 지만 이 주인공은 본래 어떤 실체를 세울 수 없는 유·무를 떠난 공성의 측면에서 설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그가 사용한
‘주인공’ 용어에도 잘 드러난다. 여기서 ‘주인공’을 일반적인 ‘주인 공主人公’의 한자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주인공主人空’의 한자용어 를 사용하여 대상적 실체가 있는 주인공으로 간주하는 오류를 ‘공 空’자로 대치하고 있다. 그리고 다음에서는 주인공을 불공不空의
측면에서 말하고 있다.
근본의 주인공은 꺼지지 않는 영원한 불, 영원히 돌아가는 자가 발 전소와 같아서 항상 안으로 불이 켜져 있기 때문에 켜졌다, 꺼졌다
하는 말조차 붙지를 않는다.52)
여기서 주인공은 그대로 ‘꺼지지 않는 영원한 불’, ‘영원히 돌아
51) 대행(2014), 생활 속의 불법수행 , 여시아문, 33; 대행은 또한 “본래로 한 물 건도 없다 했으니 주인공 또한 이름일 뿐 공하다 하겠으나 그것을 문제 삼지 말 라.”( 한마음요전 원리편, 328)고 하여 주인공을 空性의 측면에서 설명한다. 52) 한마음요전 원리편, 317; 대행은 또한 “주인공은 누구에게나 있는 마음의 신 묘한 비밀이요, 모든 생명이 갖고 있는 불성으로서의 불가사의한 힘이다. 그것이 바로 주인공의 위덕이다.”( 한마음요전 원리편, 323)라고 하여 주인공의 不空 적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가는 자가 발전소’와 같은 자체적 공덕을 갖춘 주인공으로 말하고 있다. 이는 주인공을 절대 무의 공이 아닌 그 ‘공空도 공空’한 불 공성不空性의 측면에서 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주인공의 두 가지 속성인 공성과 불공성은 기신론 의
일심진여의 두 가지 내재성인 ‘여실공’과 ‘여실불공’의 교리와 정 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이 일심진여[한마음주인공]는 언어와 생각 으로 도달할 수 없는 언설의 극치이지만 언어에 의해 분별하면 진 실상인 공성과 공덕상인 불공성이 일심의 본체에 내재해 있다고 하는 것이다.53)
이와 같이 대행의 주인공도 한마음의 본체상本體相에서 설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대행은 주인공을 본체상의 불성佛性[眞
如]과 달리 표현하기도 한다.
불성이라는 것은 한 근본을 말하는 것이고 주인공이라는 것은 내 몸체와 마음 내는 것과 불성과 통합한 겁니다. 지금 주인이면 서도 공해서 시공을 초월해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 돌아가는 자
체를 바로 딱 집어서 주인공이라고 합니다.54)
여기서 설명하는 주인공은 ‘내 몸’과 ‘마음을 내는 것’ 그리고 근본 주체로서의 ‘불성’을 통합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55) 이것은
53) 大乘起信論 (T32, 576a) “復次真如者 依言說分別有二種義 云何為二? 一者 如實空 以能究竟顯實故 二者 如實不空 以有自體 具足無漏性功德故” 54) 대행 법어, 혜원 편(2004), 삶은 고가 아니다 , 여시아문, 75-76. 55) 대행은 세 가지 의미가 통합된 주인공을 “영원한 자기의 생명, 그 근본이 있기 에 마음을 낼 수가 있어서 법이고, 몸을 움죽거릴 수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활 용입니다. 그러니 이 세 가지, 바로 자기 自性三寶부터 알아야죠.”( 허공을 걷는 길 법형제법회1, 71)라고 하여 自性三寶로도 설명한다.
근본적 본체상과 현상적 작용[用]을 모두 포괄한 의미라 할 수 있 다. 그래서 대행은 “내 몸과 마음 내는 것과 마음 내기 이전이 삼 합이 되어 공전하기에 모두 한마음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것이다 .”56)라고 하였다.
이러한 주인공은 한마음을 총체로 하여 본체와 현상이 둘이 아 니게 원융하게 돌아가는 체體·용用 불이不二의 입장에서 설명되는 것이다.57) 그렇다면 이 주인공은 기신론 의 일심삼대一心三大인 진여의 자체상과 그 작용이 끊임없다고 하는 교리적 근거에서 벗
어나 있는 것은 아니다.58)
이상에서 주인공은 한마음의 주체적 의미가 부여된 주인공主人空으 로 기신론 의 ‘일심진여’와 교리적으로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 만 대행은 우리 본연의 총상으로서 한마음을 주체적 주인공으로 구체
화해 실천 상 쉽게 지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특징이 있다고 하겠다.
56) 한마음요전 원리편, 345. 57) 대행은 또한 “마음속에 마음이 있다. 본래 청정하여 물들지 않고 여여한 근본 마음이 있는가 하면 그러한 것이 있는 줄조차 모르고, 생멸하는 번뇌 망상을 나 의 마음인 줄로 알아 생사윤회의 근본인이 되는 그런 마음이 있다. 그러나 이치 가 그렇더라도 그것은 둘이 아니다. 본래 마음이란 생겨나지도 없어지지도 않는 것이면서 현재 의식 가운데 여러 가지 생각으로 말미암아 차원이 갖가지로 달라 지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마음 안에서 마음을 찾을 일이다.”( 한마음요전 원 리편, 386)라고 하여 한마음[一心] 속에 본래청정한 마음[眞如]과 생멸하는 망 상심[生滅]이 不二의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설명한다. 이러한 점은 기신론 의 一心二門 즉 ‘眞如’과 ‘生滅’은 一心을 근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不二의 관계 성을 갖는 것과 동일한 입장이다.
58) 大乘起信論 에서는 “진여의 법이 항상 훈습하기 때문에 허망한 마음이 멸하 고 法身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서 작용[用]을 일으켜 훈습하기 때문에 끊어짐이 없다. 다시 다음에 眞如自體相이라 함은 일체 범부・성문・연각・보살과 모든 부처님들은 더하거나 덜함이 없다는 것이다.”[ 大乘起信論 (T32, 576a)]라고 하여 一心眞如의 自體相은 끊임없는 훈습작용을 일으키고 있음을 설한다.
2). 주인공의 실천
대행이 말하는 주인공은 한마음을 주체적으로 구체화 한 것으로 실천수행의 핵심이 된다. 그는 “나는 일체 경계를 주인공 자리에 몰 락 놓으라는 것을 수행법의 요체로 삼는다.”59)라고 하였다. 이는 우리 삶의 근본 주체인 ‘한마음 주인공’을 확고히 믿고 일체를 거기
에 맡겨 놓고 관하는 것으로 바로 ‘주인공 관법觀法’을 말한다. 이 주인공 관법의 선결조건은 믿음이다. 대행은 “주인공, 본성에 대한 믿음이 참선의 근본이다.”60)라고 하여 그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주인공에 대한 믿음은 기신론 에서 네 종류의
믿음 중에서도 근본진여根本眞如[주인공]에 대한 믿음을 가장 상위
에 둔 점과 연관된다.61)
대행의 주인공관의 목적은 우리의 본성을 가리고 있는 무명을 거두어 내어 우리의 근본마음이 우주의 모든 생명의 근본과 직결 되어 모두가 한마음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자각하는데 있는 것이 다.
이러한 주인공관에서는 다시 ‘무심無心’이 강조된다. “일체 만법 을 주인공 자리에 맡겨두고 가라. 그리하여 무심이 되어야 한다 .”62)라고 하거나, “이미 무심이 되었다면 새삼스레 ‘주인공이다.’ ‘믿는다.’ ‘일임한다.’ ‘놓는다.’하는 말조차 붙을 수가 없다. 그대로
59) 한마음요전 심인편, 249. 60) 한마음요전 수행편, 570-571.
62) 한마음요전 심인편, 253.
61) 大乘起信論 (T32, 580c) “一者 信根本 所謂樂念真如法故”
‘즉卽’일 뿐이다.”63)라고 하여 주인공관을 통해 무심이 되면 곧바 로 본체와 상즉相卽함을 말하고 있다. 이처럼 대행이 주인공관에서 강조한 ‘무심’은 기신론 에서 설하 는 ‘무념사상’과 동일한 연관성을 지닌다. 기신론 에서는 무념에
대해 “만일 관찰해서 마음에 망념이 없는[無念] 줄 알면 곧바로 수 순하여 진여문에 들어간다.”64)고 하여 일심진여로 곧바로 깨달아 들어가는 실천법으로 무념관을 제시한다. 이러한 점은 대행이 제시 한 주인공 본체에 바로 상즉할 수 있는 ‘무심관’과 서로 관련이 있
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대행은 무심적 주인공관의 수행과정에서 일어나는 단계 를 “세 번 죽어야 나를 보리라”65)라는 죽음의 세 단계로 설명한 다. 혜안은 이러한 수행과정의 세 단계에 대해 “첫째는 참나를 발견
하는 단계[한 번 죽음]이며, 둘째는 일체가 둘이 아닌 도리를 알게 되는 단계[두 번 죽음]이며, 셋째는 일체 만물만생과 더불어 자재한
63) 한마음요전 수행편, 485. 64) 大乘起信論 (T32, 579c) “若能觀察知心無念 即得隨順入真如門故” 65) 대행은 “1. 우주 만유 크고 많으나 한마음의 그림자라 본래 공한 자리에서 공한 것이 나오고 공해 사라지는 것이니 나와 함께 들이고 내는 것 전부가 공함을 알면한번 죽음이라. 일체 만법 들이고 내는 내 한마음이 주인공이니 죽어야 살 리라 세 번 죽어야 나를 보리라. 2. 삼세의 부처님 조사님 선지식 풀 한 포기에 이르기까지 일체 만생 만물을 버리지 않고 공한 나와 더불어 함께 죽었으니 그 대로가 진리임을 안다면 두 번 죽음이라 일체 만법 들이고 내는 내 한마음이 주 인공이니 죽어야 살리라 세 번 죽어야 나를 보리라. 3. 일체 만물 유정 무정 나 아님 없으니 너와 나 우리 모두 한자리 한 몸일세 일체 만유 모두가 부처의 나 툼 아님 없으니 유생 무생 자재면 세 번 죽음이자 열반이라 일체 만법 들이고 내는 내 한마음이 주인공이니 죽어야 살리라 세 번 죽어야 나를 보리라.”( 한마 음요전 게송・선시편, 774-775)라고 하여 세 번 죽음을 통해 내 한마음 주인 공에 상즉하여 일체만물과 둘이 아닌 자재한 작용을 일으킬 수 있음을 말한다.
나툼을 할 수 있는 단계[세 번 죽음]이다.”66)고 말한다. 여기서 제시하는 죽음이란 궁극엔 아공我空, 법공法空을 통해 ‘한 마음주인공’ 곧 ‘일심진여’의 자체상에 상즉해서 자재한 작용을 나 투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상에서 본 대행의 주인공관은 확고한 믿음과 놓고 지켜보는 무심관법을 통해 ‘세 번 죽음’이라는 수행단계를 거쳐 나를 비롯 한 우주의 모든 생명이 근본적으로 직결되어 모두가 한마음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자각하는데 그 핵심이 있는 것이다.
3. 한마음의 오공
대행은 모든 것은 한마음을 근본으로 하여 그로부터 나왔다고 본다. 그러므로 일체 삼라만상이 나와 더불어 공생共生·공심共心·공 체共體·공용共用·공식共食하며 돌아가고 있음을 설한다. 이러한 한마 음을 근본으로 하여 원융무이圓融無二한 연기의 작용원리를 설명한 것이 대행의 ‘오공사상五共思想’이다. 대행은 이 오공의 원리는 자 심 속에서 발견되는 것임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누구나가 제각기 자기 모습 속에서 자기를 알게 되면 자기도 공 생이요, 공심이요, 바로 공체요, 공용이요, 공식화하고 우리 모두
가 같이 하나로 돌아간다는 걸 알게 됩니다.67)
66) 혜안(2016), 묘공대행의 전법 특성에 관한 연구-오공사상을 중심으로- , 동 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80 참조. 67) 허공을 걷는 길 법형제법회2, 833.
이와 같이 오공의 원리는 우리 마음 밖이 아닌 우리 마음 안에 서 파악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각각의 존재들이 독립된 개체 가 아닌 상의상관의 공통체적 존재로서 살아가는 것은 모두 한마 음을 총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68)
이 한마음을 바탕으로 한 오공은 바로 우주만유의 본체[體]와 현상[用]이 둘이 아니게 돌아가는 연기적 원리에 입각해 있음을 다음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마음은 광활한 우주를 다 싸안을 수 있는 마음입니다. 그렇기 에 이 마음은 자기 혼자가 아니라 전체와 같이 돌아가고 전체와 가설이 되어 있습니다. …… 그렇게 서로 나누면서 공생・공용・ 공식・공체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마음 주인공에 놓
으면 그대로 일체와 더불어 놓고 돌아가는 것입니다.69)
여기서 오공은 한마음을 바탕으로 하여 작용적 측면에서 설명된 다. 대행은 우리가 본래 갖춘 ‘한마음 주인공’에 놓고 맡기면 우주 법계의 모든 만물만생이 둘이 아니게 직결되어 함께 돌아가고 있 음을 알게 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오공사상은 기신론 에서 “이 마음의 생멸인연상은 능히
68) 대행의 오공은 철저히 한마음 속에서 관철된 원리임을 다음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개체는 하나인데 공생共生・공심共心・공체共體・공용共用・공식共食하 고 돌아가지 않습니까? 그래서 공양供養이라고 하고 공덕이라고 하죠. 공양은 한마음이신 부처님께서 공양을 받으신다 이런 겁니다. 한마음으로 둘이 아니게 반야줄을 쥔다면 그게 바로 공덕이 되느니라. 안에도 더불어 같이 한마음이요, 밖에도 더불어 같이 한마음이니 자리마저도 한자리이다 이겁니다.”( 허공을 걷 는 길 법형제법회2, 789) 69) 대행(2014), 생활속의 불법수행 , 여시아문, 36-37.
대승의 자체自體와 상相과 용用을 보인다.”70)고 한 일심삼대一心三
大 교리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이는 생멸인연의 모든 현상 적 차별상이 일심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에 차별되더라도 곧 일심 의 자체상과 불일불이한 관계에서 작용하고 있음을 말한다. 이러
한 점은 오공사상이 ‘한마음 주인공’을 자체상으로 하여 둘이 아 니게 돌아간다고 하는 원리와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한마음 오공五共은 화엄의 일심법계一心法界의 원리와도 상 통한다. 의상의 화엄일승법계도 에서는 한마음인 일심의 표현으
로 ‘일중일체一中一切 다중일多中一, 일즉일체一卽一切 다즉일多卽一’ 로 나타난다. 이는 하나 가운데 일체이며, 일체 가운데 하나다. 하 나가 곧 일체고 일체가 곧 하나라는 뜻으로 하나의 개체가 우주전 체를 함축하고 있으며 우주전체가 하나의 개체에 응집될 수 있다
는 교설이다.71)
이 ‘한마음’으로부터 나온 일체는 ‘공성共性’의 의미도 있지만 이 일체는 고정된 자성이 없어 다시 한마음으로 귀결될 수 있는 ‘공 성空性’의 의미도 지닌다. 그래서 대행은 공共과 공空을 유사한 의
미로 사용한다.
한 가지 마음만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정된 것이 아니다. 보는 것도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가고 오는 것도, 마음먹는 것 도 모두가 고정된 게 하나도 없으니까 공空했죠. 그래서 여러분 몸이 공체입니다. 내면에서도 공체요 외부에서도 공체입니다. 그
70) 大乘起信論 (T32, 575c) “是心生滅因緣相 能示摩訶衍自體相用故” 71) 혜교(2013), 묘공대행의 주인공사상과 관법 연구 , 동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 위논문, 53 재인용.
리고 공심이요 공용이요 공식하고 돌아가는 바로 그 자체인데 내가 있다고 하고 내가 했다고 하고 내가 줬다고 할 수 있겠습 니까?72)
이처럼 한마음을 바탕으로 한 오공사상은 ‘공성共性’과 ‘공성空性’ 의 두 속성을 지닌다. 그러므로 나와 일체중생이 동체임을 알아 무연자비無緣慈悲를 베풀 수 있는 불교전통의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정신과 연관된다. 대행은 이를 “일체 제불의 마음이 우리들의 한 마음과 공존 공용하니, 만생의 마음이 내가 되고 만물의 몸이 내 가 되어 일체가 둘이 아니다.”73)라고 하여 일체 제불과 우리의 한마음이 동일할 뿐만 아니라 나와 모든 중생이 모두 동체임을 설 한다. 그렇다면 둘이 아닌 평등자비가 일어남은 당연할 것이다.
대행의 이러한 일체제불과 만물만생이 나와 한마음 동체라는 ‘오공사상’은 대승적 자비정신에 바탕을 두어 한마음의 공동체적 실현을 위한 실천원리이자 참여원리로 제시되었다는 점에서 그 특 징을 찾을 수 있다.
4. 한마음사상의 특징
대행의 핵심사상은 ‘한마음’이다. 이것은 그의 경험적 오도에 의 하여 밝혀진 궁극적 진리의 표현이며 상징으로써 그 원리적 근거 는 불교전통의 일관된 ‘일심사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73) 한마음요전 게송・선시편, 700.
72) 허공을 걷는 길 국내지원법회2, 1076.
‘한마음’은 ‘일심’의 현대적 해석이 담겨있을 뿐만 아니라 대행 자 신만의 독특한 실천적 사상체계가 담겨있는 것이다. 대행은 한마음을 나와 우주의 근본적 총체로 삼고 이를 주체적 주 인공主人空으로 구체화시켜 나를 비롯한 일체제불一切諸佛과 우주의 모
든 생명이 근본적으로 직결되어 모두가 한마음인 공생・공심・공체・ 공용・공식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열어 보인다. 이는 그의 교설에 관 통되어 있는 핵심사상이면서 또한 그의 주요한 사상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대행은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자신의 근본 마음, 주인공을 철저히 믿고 그에 귀의하라. 나는 수십 년간 오로지 이 말만 되풀이해 왔고 앞으로도 여전히 이 말만 되풀이할 것이다. 나는 그 오랜 시간 이 말을 해 왔어도 조 금도 싫증을 내지 않았고 지치지도 않았고 이후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진실로 믿고 있으며 알고
있는 단 하나의 진리이기 때문이다.74)
이와 같이 그의 사상적 핵심은 ‘한마음 주인공’에 일관되어 있 다. 또한 대행은 이러한 자신의 일관된 핵심원리인 한마음을 자비 정신에 입각하여 현대의 대중들에 맞는 실천적 언어로써 되살려냈 다는데 큰 특징이 있다하겠다.
그는 “불교가 지향하는 것은 스스로 진리를 깨달아서 무와 유가 둘이 아닌 한마음으로 자유자재할 수 있는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는 살아서 깨닫고 살아서 부활하는 가르침이다.>”75)
라고 하여 이 한마음을 이론적 교리가 아닌 실천적 교리로서 살려
74) 한마음요전 심인편, 233. 75) 한마음요전 원리편, 300.
내어 대중들에게 자심의 효용성을 일깨운다. 이는 기복이나 교리 중심의 상대적 불교인식에서 탈피하여 자각과 실천중심의 절대적 불교인식으로 대중들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대행은 “이 공부하는 데는 승려가 따로 없고 속인이 따
로 없다. 여자가 따로 없고 남자가 따로 없고 부처가 따로 없고 중생이 따로 없다. 그저 내 근본을 그대로 손안에 쥐고 자재할 수 있게끔 하면 된다.”76)고 하여 누구나 쉽게 한마음을 실천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는 특히 그가 생활불교를 표방하고 있는 점에서도 잘 나타난 다. “생활과 불교가 둘이 아니라, 불은 영원한 생명의 근본이며 말 하고 돌아가는 자체가 교이니 생활이 그대로 불법이다. 결코 따로 따로 생각할 게 아니고 그대로 근본이며 진리요 인간들의 법인 줄 알라.”77) 이처럼 대행은 불교와 생활은 양립할 수 없는 둘이 아 닌 하나의 진리로 설명한다. 다시 말해 불교를 생활화하는 것이
아닌 생활이 곧 불교임을 지적한 것이다. 이러한 대행의 한마음사상은 현대의 대중들에게 불교가 어렵고 고원한 철학적 사유체계가 아니라 누구나 쉽게 생활 속에서 바로 실천할 수 있는 실천적 사유체계임을 새롭게 일깨우고 있다는데 큰 특징이 있다하겠다.
76) 한마음요전 수행편, 447-448. 77) 한마음요전 심인편, 246; 대행은 또한 “생활불교란 무엇이겠는가. 아침저녁으 로 염불・독경을 착실히 한다해서 생활불교는 아닐 것이니 불자라면 모름지기 자신의 하루를 부처님의 뜻 가운데서 편안히 엮어 나갈 수 있는 힘을 기르는게 바로 생활불교이다.”라고 하여 自心을 중심으로 한 생활불교 실천을 강조한다.( 한마음요전 심인편, 248.)
Ⅳ. 나오는 글
불교는 일관되게 모든 법의 근본을 마음에 귀결시킨다. 이러한 입장은 초기불교부터 부파, 대승, 심지어 선불교에 이르기까지 모 든 사상사적으로 일관되어져 있다. 이 마음은 곧 주관적 우리 자
신을 비롯한 객관적 세계인 우주를 포괄하는 모든 일체만상의 총 괄적 주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불교전통에서 마음 외에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으며 각자의 마음에서 구해야한다는 입장은 공통적으로 주창된 바이다.
대소승 여러 경론에서 명실공히 ‘유심’ 또는 ‘일심’을 총체로 또는 총 귀결처로 상정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행도 ‘한마음’을 요체로 하고 있다. 이 ‘한마음’은 대행의 경험적 오도에 의하여 밝혀진 궁극적 진리
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대행의 ‘한마음’을 요체로 한 교의는 기복중심의 상대적 불교인식에서 벗어나 자각과 실천중심 의 절대적 불교인식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그 교리적 근거는 ‘일심사상’에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먼저 본고 Ⅱ장에서는 일심사상의 연원과 전개 를 살펴보았다. 초기불교에서는 ‘심위법본설心爲法本說’과 ‘심양면설 心兩面說’ 그리고 작용원리로서 ‘연기설’이 설해진다. 이를 시원으로 하여 부파시대에 심성心性과 심식心識 양면의 해석과 대승초기에
화엄경 의 ‘유심사상’과 반야경 의 ‘공사상’ 등의 교리적 발전과 정을 거쳐 대승중기에는 여래장계와 유식계의 심사상이 대립・발 전하였고 이어 후기에 와서는 이 두 계통의 심사상이 능가경 에
서 종합되었다. 대승후기 논서에 해당하는 대승기신론 에서는 기 존의 대소승의 여러 경전들의 심사상을 배경으로 하여 종합적인 ‘일심’의 교리를 체계화 하였다. 기신론 은 ‘일심이문’ 또는 ‘일심 삼대’의 핵심적 교리체계를 갖추어 일심의 본체상과 현상의 작용
원리뿐만 아니라 ‘일심진여’의 세계로 회귀하는 대승의 실천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다음으로 본고 Ⅲ장에서는 대행의 한마음사상과 그 특징을 살펴 보았다. 먼저 대행은 ‘한마음’을 우주 삼라만상에 모두 관통되어
있는 하나의 절대적 총상 또는 총귀결처로 설명한다. 이는 기신론 에서 절대적 일심을 ‘일법계대총상법문체’라고 한 것과 상통한다고 보았다. 다음 한마음의 주체적 의미가 부여된 ‘주인공主人空’은 공성과
불공성의 두 측면에서 설명된다. 이는 기신론 의 ‘일심진여’의 내 재적 속성인 여실공과 여실불공의 교리와 상통한다고 보았다. 다음 한마음을 근본으로 하여 원융무이한 연기적 작용원리를 설명 한 ‘오공사상’은 기신론 에서 대승의 자체自體와 상相과 용用을 나타
내는 일심삼대一心三大의 교리와 일맥상통한다고 보았다. 마지막으로 이 ‘한마음’은 ‘일심’의 현대적 해석이 담겨있을 뿐 만 아니라 대행 자신만의 독특한 실천적 사상체계가 담겨있다고 보았다. 대행은 한마음을 나와 우주의 근본적 총체로 삼고 이를
주체적 주인공으로 구체화시켜 나를 비롯한 일체제불과 우주의 모 든 생명이 근본적으로 직결되어 모두가 한마음인 공생・공심・공 체・공용・공식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하는 실천언어로 되살려내었 다.
특히 그는 확고한 믿음을 바탕으로 무조건 놓고 지켜보는 실천 법인 주인공관을 제시하여 대중들이 일체가 한마음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용이하게 자각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대행의 한마음사상은 생활불교 강조로 이어져 현대의 대중들에게 불교가 어려운 이론사 상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생활 속에서 바로 실천할 수 있는 실천 사상임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 60華嚴經 (T9) - 80華嚴經 (T10) - 入楞伽經 (T16) - 大智度論 卷29(T25)
- 起信論直解 卷1(T45)
- 摩訶般若波羅蜜經 (T8) - 大般若波羅蜜多經 卷569(T7)
- 阿毘達磨發智論 卷19(T26) - 阿毘達磨大毘婆沙論 卷5(T27) - 阿毘達磨俱舍論 卷4(T29) - 異部宗輪論 卷1(T49)
- 大乘起信論 (T32) - 妙法蓮華經玄義 卷1(T33) - 大方廣佛華嚴經普賢行願品別行疏鈔 卷2(X5) - 四家語錄 卷1(X69)
- 黃檗斷際禪師宛陵錄 (T48) - 起信論疏 卷1(T44) - 大乘起信論義記 卷2(T44) - 大乘起信論續疏 卷1(T45)
- 한마음선원(2010), 한마음요전 , 경기도: 한마음선원출판부. - 한마음선원(2001), 허공을 걷는 길 법형제법회1, 경기도: 한마음선원출판부. - 한마음선원(2007), 허공을 걷는 길 국내지원법회2, 경기도: 한마음선원출판부. - 대행(2009), 그냥 무조건이야: 대행스님 법훈록 , 경기도
한마음선원출판부. - 대행 법어, 혜원 편(2004), 삶은 고가 아니다 , 경기도: 여시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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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n the Doctrinal Foundation of Ven. Daehaeng's Hanmaum Thought
Park, So-Ryung
The original and fundamental claim of Buddhism is that “the mind is the foundation of all truth”. This implies that the origin of all life in the universe, including myself, is directly connected
through the mind. In other words, the mind can be regarded as the totality of the entire universe including the subjective individual self. This doctrine of mind is consistently spoken of throughout Buddhist doctrine, from early Buddhism to Mahayana
Buddhism. In particular, the Awakening of Mahāyāna Faith, a text of later Mahāyāna Buddhism, systemized a comprehensive “One Mind” doctrine on the basis of various kinds of mind philosophy that provided the principle of practice for Mahāyāna
Buddhists. The text explains the “one mind” as having two aspects: a thusness aspect (眞如門) and an arising-and-ceasing aspect (生滅門). In addition, the one mind is also said to exhibit three kinds of greatness: greatness in essence, greatness in
aspects, and greatness in function. The “Hanmaum Thought” of Ven. Daehaeng (1927-2012) is
based on this Buddhist traditional central doctrine of “One Mind Thought”. It was developed as a doctrine of practice that fits the times and situations by virtue of its original expression, even though it has the same context as the traditional doctrine.
Ven. Daehaeng’s “One Mind Thought” not only includes a modern interpretation of the traditional “One Mind Thought” but also reveals her own unique thoughts on its system of practice. Ven. Daehaing takes the concept of “Hanmaum” (“One Mind”) as
the fundamental totality of the universe and embodies it as “Juningong” (“True Self”). She revived it as a practical doctrine in which all Buddhas and all life in the universe are fundamentally connected directly to the One Mind, the Five
Sharings. The Five Sharings are as follows: 1. Sharing the same mind, 2. Sharing the same life, 3. Sharing the same body, 4. Sharing working together, 5. Sharing all things together.
In particular, she presented her views on the True Self together with an unconditional practice based on firm belief, so that anyone can easily realize they can return to the One Mind.
the Awakening of Mahāyāna Faith, One Mind, thusness
arising-and-ceasing, dependent co-arising, free from (false) thought, Ven. Daehaeng, Hanmaum (“One Mind”), Juningong
(“True Self”), the contemplation method of Juningong , the Five Sharings
대행의 오공의식에 나타난 사상적 특징과 연원 고찰
차차석 (동방문화대학원대)
Ⅰ. 들어가는 말 Ⅱ. 오공의식의 내용과 사상적 특징 1. 오공의 전체 내용 2. 공의 개념과 사상적 근거 3. 오공의식의 구조와 사상적 연원 탐색 Ⅲ. 나가는 말 : 오공의식의 현대적 의의 1. 현실 중시의 수행관 정립 2. 상호관계성의 통찰과 비움의 철학 3. 근본정신의 중시와 사회화
이 논문은 대행선사의 오공의식이 지닌 사상적 특징과 그 역사 적 연원에 대한 탐구를 시도한 논문이다. 논의를 전개하는 과정은 전체적으로 네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오공의식의 구체적 인 내용을 한마음요전을 통해 적시하는 부분이다. 여기서 대행은
오공을 일심의 작용이라 설명한다. 그것은 공생, 공심, 공체, 공용, 공식이다. 둘째 오공의 사상적 특징을 공리共利개념으로 이해하고 자 하며, 그 사상적 유사성은 당나라 때의 고승인 길장이 이미 언 급하고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셋째는 오공의식의 구조와 사상적
특징, 사상적 연원을 이전의 사상가들 속에서 찾아보고자 했다. 넷째 과거의 역사성이나 사상성에 근거해 대행이 지니는 역사적, 종교적 의의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살펴보고자 했다. 이상의 네 단계를 거치면서 살펴보지만 내용의 핵심은 대행의 오 공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는 사상적 특징은, 이전의 불교적 영향
속에서도 독자적인 수행체계와 사회적 실천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 이다. 대승기신론 의 일심이문의 기본적인 영향 속에서도 심생멸 문에 주안점을 두면서 대중과 함께하고자 하는 의식이 오공의식으 로 구체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사상적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보리달마의 이입사행론 과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으며
천태종의 ‘명明과 무명無明을 둘로 보지 않는’ 정신과도 상통점을 찾을 수 있다. 이런 점은 남중국의 교의학에서 중시하는 ‘현실을 중시하는 가운데서도 이상을 추구하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 정 신’과 일맥상통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환기의 한국사회에서 한마음선원이 대 중의 지지를 받게 되는 원인이 오공의식 속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오공의식이 지니고 있는 현실을 중시하는 사상적 경향은 대중과의 소통이자 대중의 아픔을 공유하고자 하는 정신이다. 그 런 의식이 전환기의 한국사회에서 한마음선원이 성장하는 결과로 나타났다고 본다. 오공의식은 그런 점에서 본다면 사회적 요구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한 종교적 실천이며, 대중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자 하는 자비심의 발로이다. 물론 그러한 사상의 연원은 과거 수많은 불교사상가들에 의해 피력되었다고 하더라도, 대행처럼 구 체적인 실천방안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할 수 있다.
[주제어]
대행, 오공의식, 일심, 공리, 이입, 소통, 자비, 관계성, 통찰, 사 회화.
I. 들어가는 말
“전 세계의 잠자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깨우고, 갇혀 있는 사람 들의 문을 열어주고, 그렇게 해서 모두가 한마음으로 이어져 보살 의 행을 하는 일꾼이 되기를 바라는 것”1)이 수행자인 대행大行의
원력이라 느껴진다. 여기서 잠자는 사람, 갇혀 있는 사람이란 한 마음의 본질적 속성을 파악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한마음이 지니 고 있는 역동성, 본질적 생명성, 심층성과 초월성을 이해하지 못 하기 때문에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이해하는데 익숙한 사람들이 아 닐까 생각한다. 대행의 원력은 이들을 깨우는 것이며, 닫혀 있는 그들의 의식에
문을 열어주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세상은 모두 한마음이 되어 다툼이 사라질 것이며,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며 불신과 의심이 사 라질 것이다. 포용과 사랑 속에 지상 위에 인간들이 가장 살만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매우 역설적
이다. 돌이켜보면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으 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실 인간은 주객과 자타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데 익숙한 것 이 현실이다. 자기중심적인 사고 속에서 만물을 자기중심의 수단
적 가치로 판단하고자 한다. 그것은 표층에 들어난 현상에 의거해 사물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행은 한마음을 통해 그러한 고질병을 고치고자 한다. 나누고 나누는 데서 한마음을 구하지 않 고, 모든 것을 포용하면 한마음에 다가설 수 있으며2), 일체대상을
1) 한마음 한뜻이 되어 (2014), 한마음출판사, p.26.
내 몸처럼 평등하게 바라볼 때 한마음의 본질인 불심에 도달할 수 있다3)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대행은 인식 하고 있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앞면에 글씨 쓰여 있는 것만 알고 뒷면의 백지는 모르니 한 종이인데도 뒤집어쓸 줄 모른다.”4)고
하며 우리의 현실도 그렇다고 인식한다. 그것은 바로 한마음의 본 질과 작용을 모르기 때문이다. 본질과 작용을 이해하면 글씨와 종 이가 평등한 존재란 사실, 그렇기 때문에 둘 다 모두 소중한 것이 란 사실을 통찰할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본고는 대행의 사상 중에서 오공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는 사상 적 특징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 사상적 뿌리가 어디에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목적이다. 오공의식은 바로 대행이 세상을 깨우기 위해 고안한 가장 독창적인 실천의 방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미 오공의식에 대해서도 몇몇 연구자들의 연구보고서가 발표되 어 있다. 그렇지만 보다 심층적으로 오공의식을 분석하고, 그 사
상적 뿌리가 어디까지 닿아 있는가를 규명하고자 한 논문은 발표 된 바가 없다. 거듭 말하지만, 대행의 한마음 선사상에 대해서는 몇 편의 논문 이 발표되어 있다. 대행의 선사상이 지니는 사상적 특징을 종합적
으로 분석한 논문5)이 있는가 하면, 한마음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2) 한마음요전 – 원리편3 , p.313. 3) 한마음요전 – 원리편4 , p.352. 4) 한마음요전 – 원리편4 , p.353. 5) 혜선의 「한마음사상과 선수행 체계 연구」(2005년 동국대 박사논문)과 한마음 과 대행선 (운주사, 2013)이 있으며, 석사논문으로는 가온여울의 「한마음선원 과 대행스님의 ‘주인공’ 개념 연구」(2004년 서울대 석사논문), 김경자(혜안)의 「묘공대행의 전법 특성에 관한 연구」(2016년 동국대 석사논문)이 있다. 기타
분석한 논문 등이 있다. 특히 혜선과 혜안의 논문에서는 본고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오공에 관해 고찰한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선구 연구를 부정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연구를 활용하면서 보다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오공의식이 지니는 사상적 특징과 지향점을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 본고의 의도이다. 따라서 한마음요전 과 기존에 발표된 연구서, 기타 대행의 설법집 등을
기본 자료로 활용해 오공의식의 구조와 사상적 특징, 그리고 사상 적 뿌리가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는가를 심층적으로 분석해 보고자 한다.
II. 오공의식의 내용과 사상적 특징
본고가 추구하는 목적을 원만하게 달성하기 위해 먼저 오공의 전체적인 내용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 그 다음에 오공의식의 사 상적 특징이 무엇인가를 살펴볼 것이다. 사상적 특징을 분석하는 데는 공共이란 단어가 지니는 의미를 먼저 분석한 뒤에 오공의식 의 구조를 분석하면서 그 특징이 무엇인가를 밝혀보고자 한다.
1. 오공의 전체 내용
대행은 일심一心을 오공五共으로 설명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오공은 일심의 작용이라 볼 수 있다. 오공은 공생共生, 공심共心, 공체共體, 공용共用, 공식共食이다. 대행은 “사대가 원천이기에 생명
소논문으로 한자경의 「한마음이란 무엇인가」( 선학 44호, 2016년)이 있다.
과 생명, 우주 전체는 공생, 공체, 공용, 공식이라 할 수 있다”6)고 하거나 “모든 중생은 본래부터 공생, 공심, 공체, 공용, 공식하며, 고정됨이 없이 나투고 화하여 돌아가건만 그것을 몰라서 일체 苦 의 길을 걷느니라.”7)고 말한다. 한마음요전 에 의거해 이들 각각
의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공생共生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법하고 있다.
사람의 몸뚱이 하나에 수많은 중생들이 우글우글 공생하고 있으 니, 이 몸은 겉으로 보아 하나의 중생 같을지라도 실은 수많은 중생의 국토인 것이다. 그리고 그 중생들은 억겁을 거쳐 온 의식 으로 뭉쳐서 몸을 집 삼아 돌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이한몸깨 달으면 욕심 속의 수십 억 중생이 함께 제도되며, 그 중생이 그
대로 호법 신장도 되고 금강역사도 된다.8)
모두는 나를 위해 나는 모두를 위해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서로 가 서로를 살리고, 서로가 서로를 먹이고 있다.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것이 혼자 살고 혼자 먹고 혼자 입고 혼자 했다
고 할 수 없다. 공전, 공생이 있을 뿐이다.9)
내 육신, 내 자식, 내 사람, 내 재산, … 하면서 애지중지 하지만 육신 떨어질 때에 이르면 이 몸뚱이 끌고 갈 수도 없고 염전 한 푼 들고 갈 수도 없다. 그러기에 서로 가고 옴이 없이 에너지를 나누며 공생하고 공용할 수 있는 마음 도리부터 알아야 한다. 그
6) 한마음요전 – 원리편 , p.351. 7) 한마음요전 – 게송, 선시편 , p.780. 8) 한마음요전 – 원리편 , p.342. 9) 한마음요전 – 수행편 , p.522.
래야 위아래가 다 한 자리가 되는 것이다.10)
둘째, 공심共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법하고 있다. 주인공은 생명의 근본이다. 그 영원한 생명의 근본은 우주와 직 결되어 있고 이 세상 만물과도 가설이 되어 있어서 일체는 다
같이 공심으로 돌아가고 있다.11)
일체가 공심으로 돌아가고 있는데도 공심이 아니라 각자 자기가 한다는 고정관념에 빠져 있다. 그러므로 예컨대 만 명이 같이 하 면 쉬울 일을 항상 혼자서 하겠다는 격이니, 그 살림살이가 얼마
나 어렵고 힘겹겠는가?12)
셋째, 공체共體에 대한 설법은 다음과 같다. 내 몸이 못 중생들의 주둔지이듯 현상계도 그와 같이 공체로서 공심, 공용, 공식, 공생하고 있으니 벌레 한 마리, 풀 한 포기를 보더라도 남이 아니라 바로 ‘나 아닌 게 없다’고 생각해야 한
다.13)
우리 몸속에 있는 세포 하나하나가 상전이다. 먹고 싶은 것 대줘 야하고 춥고 더운 것 가려줘야 하고 가고 싶은 데로 데려다 줘 야 하니 내가 사는 게 아니라 수없이 많은 세포들을 살리고 있 는 것이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기를 때 그 자식들이 상전 노릇 은 다 하고 부모란 그저 윗사람이라는 꼬리표만 달고 있는 것과
10) 한마음요전 – 수행편 , p.442.
11) 한마음요전 – 원리편 , p.316.
12) 한마음요전 – 수행편5 , p.519.
13) 한마음요전 – 원리편3 , p.343.
같으니, 이 몸속의 중생들이 병이 나면 나도 병이 나고 죽으면 나도 죽는다. 그러기에 어찌 내가 산다고 하고 내가 먹는다 하고 내가 잠 잔다 할 것인가? 그 중생들이 바로 나와 둘이 아니라 내 육신은 공 체로 공생하고 공식하고 공용하는 것이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란 내 몸을 이끌고 다니는 근본이 무엇인지, 그 근본의 나부터 알아야 된다는 말이다. 나의 근본을 알면 내 육신을 제도하게 되는 뜻도, 내 육신을 이루고 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포의 마음까지도 알
수 있다. 이 육신도 마음이 만들었기 때문이다.14)
넷째, 공용共用에 대한 설법은 다음과 같다.
우주 만물의 근원은 만생만물의 근원이며, 만생만물의 근원은 만 인의 한마음이로다. 일체제불의 마음이 우리들의 한마음과 공존 공용하니, 만생의 마음이 내가 되고 만물의 몸이 내가 되어 일체 가 둘이 아니다. 이 소식 바로 알고 한마음 발현하여 색깔 없는
오색기둥 높이 세우고 평등하게 사시사철 푸르게 살라15)
미생물이나 식물이 우리에게 마실 공기를 공급해 주고 우리는 그들에게 이산화탄소를 제공한다. 숨 한번 들이쉬고 내쉬는 데에 벌써 모든 생명체들이 서로 주고받으며, 먹고 사는 이치가 있으 니 어찌 공생, 공심, 공용, 공체, 공식하고 있음을 모른다 할 것 인가! 나는 남을 위해, 남은 나를 위해 상대와 상대가 이렇게 연 결되어 들어가는 세상의 이치만 보아도 따로따로 산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입는 것, 먹는 것, 돈 버는 일 어느 것 하나 혼 자의 힘만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사생이 다 거들어야 이뤄
지는 것이니 모두가 한마음이라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16)
14) 한마음요전 – 원리편3 , pp.343-344. 15) 한마음요전 – 게송, 선시편 , p.700. 16) 한마음요전 – 수행편5 , pp.521-522. 182
다섯째, 공식共食에 대한 설법은 다음과 같다.
우주법계가 돌아갈 때는 항상 너와 내가 없이 돌아가게 되어 있 다. 일체가 하나의 법망 속에 있어서 상대성 원리 아닌 것이 하 나도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내가 무엇을 했다고 해서 자기 혼자 한 것이 아니라 우주 법계와 함께 한 것이다. 가령 내가 돈 한 푼을 벌었다고 할 때 혼자 번 것이 아니라 우주 법계와 함께 번 것이다. 만일 남이 없다면 어찌 한 푼인들 벌었겠는가? 모든 것 이 함께 작용하였기 때문에 비로소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남을 살리게 되어 있다. 혼자 살고 혼자 먹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더불어 살고 더
불어 먹으며 우주와 함께 살고 우주와 함께 먹는 것이다.17)
이 우주 전체가 생명이 다 똑같고요, 또 이 마음이 다 똑 같아 요. 생각 내는 데에, 어떤 차원에서 어떻게 생각을 내느냐에 달 려 있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그게 합쳐진 게 주인공이거든요. 우린 공식하고 있어요. 또 왜냐하면 사장이 있으면 직원이 있고 직원이 있으면 사장이 있는 거지. 사장이 없어도 안 되고 직원이 없어도 안 되거든. 이것이 공생이며 공체이며 공용이며 공식하는 데 어째서 주인공이 각각 있겠습니까?18)
2. 공의 개념과 사상적 근거
이상에서 오공의식의 구체적인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혜선19)
17) 한마음요전 – 수행편5 , p.520.
18) 허공을 걷는 길 – 국외지원법회 1권(2011), 한마음선원 출판부, p.584. 혜선 책, p.275에서 재인용
19) 혜선, 한마음과 대행선 (2013), 운주사, p.259.
은 오공의식을 설명하면서 공共을 ‘함께’란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
즉 함께 하는 삶(共生), 함께 하는 마음(共心), 함께 하는 근원(共
體), 함께 하는 작용(共用), 함께 하는 나눔(共食)이라 설명하면서, 또한 ‘여기서의 공共은 공空으로 대치해도 무방하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함께 하는 것은 비우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들고 있다. 물론 ‘함께 한다’는 이해나 공空이라 해석하는 주장이 결코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함께 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면, 그 것은 바로 한마음의 연속선상 위에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란 점 이다. 한마음의 원리에서 본다면 표층의식과 심층의식은 토대인
한마음, 즉 불성의 입장에서 볼 때 둘이 될 수 없다. 따라서 불성 을 바탕으로 그 위에서 전개된다는 점에서, ‘함께 한다’와 공空의 의미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의 해석에 더 해 근본적이면서도 심층적인 분석을 추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연기론과 무집착 공의 시각이다. 연기론은 초기불교 이래 불교를 대표하는 사상이란 점에서 공共의 개념과 결부해 해석하는 것은 당연한 듯이 생각할 수도 있다. 주지하다시피 연기론은 관계 성의 법칙 위에 성립한 사상이며, 상호의존의 관계 속에서 주객의
동일성을 통찰하라고 요구하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고에서 보다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공共의 개념을 공 空으로 해석할 때, 그것은 무집착 공의 정신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선사상은 반야사상과 유심사상이 결합하여 심화되고
완성되었다는 점이다. 선사상의 근본에 반야사상이 깔려 있으며, 대행이 선사로서 일대를 풍미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반야사상을
대표하는 공空사상의 영향을 언급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러한 사상적 모형을 당나라 때 활동한 삼 론종의 개창조사인 길장의 사상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오공의식의 사상적 특징과 연원을 상세하게 분석하는 것은 다음 장절에서 하 겠지만, 오공의식이란 한마음의 바탕 위에서 본질과 현상을 둘로 보지 않는 것이며, 더불어 삶의 미덕을 함께 추구하고 있다는 점
이다. 말하자면 공동의 이익을 이상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점은 약간의 유형은 다르지만 당나라 때 삼론종을 개창한 길장의 사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길장은 삼론현의 에서 자리이타와 공리共利를 강조한다. 이 경
우 공리란 공동의 이익, 함께 공유하는 이익을 의미한다. 길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남을 교화하는 공덕이 이제二諦에서 말미암는다는 것은 여래께서 설하신 법은 중생을 교화할 때 항상 이제에 의지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론 에서 말하길 ‘모든 부처님은 이제에 의지하여 중 생을 위해 법을 설하신다.’고 하신다. 묻기를 ‘어찌하여 자타의 두 공덕이 모두 이제로 말미암는 것을 압니까?’ 대답하길 ‘ 십이 문론 에선 이제를 알기 때문에 바로 자리와 타리, 그리고 공리共 利를 얻는다는 것이 바로 그 일이다.’ 이제는 자행과 화타의 근 본이기 때문이다. 이제를 밝히는 것을 논의의 핵심으로 삼으니 바로 중생들이 자리와 타리의 두 가지 이익을 얻게 하는 것이
다.20)
20) 吉藏, 三論玄義 (대정장45, 11하). 化他德由二諦者。如來有所說法教化眾生常 依二諦。故中論云。諸佛依二諦為眾生說法也。問何以知自他兩德並由二諦耶。答 十二門論云。以識二諦故。即得自利他利及以共利。即其事也。以二諦是自行化他 之本故。申明二諦以為論宗。即令一切眾生具得自他二利也.
두 가지 지혜는 과거, 현재, 미래 불법의 부모이다. 제일의제가 있기 때문에 반야가 생기며, 세속제가 있기 때문에 방편이 생긴 다. 진실한 지혜와 방편의 지혜를 구비해야 시방 삼세의 부처님 이 있다. 이 때문에 이제를 수립한다. 또한 제일의제를 아는 것 이 자리이며, 세속제를 알기 때문에 남을 이롭게 할 수 있다. 이
제를 갖추어 아는 것이 바로 공리共利를 얻는 것이다.21)
이상 길장의 삼론현의 에 의하면 이제를 아는 것이 자리自利와 이타他利, 그리고 공리共利를 얻게 된다고 말한다. 이제二諦란 제일 의제(승의제)와 세속제(세제)를 지칭한다. 제일의제가 분별의식을
초월한 무분별의 지혜를 지시한다면, 세속제는 분별과 개념, 논리 와 언어의 세계를 말한다. 따라서 편의적으로 구분한다면 표층세 계와 표층세계의 이면인 본질의 세계이다. 표층세계가 욕망과 자 기중심적인 의식이 지배하는 세계라면, 불성이나 무분별의 지혜로
표현되는 본질의 세계는 분별과 자기중심적인 욕망을 초탈할 때 도달이 가능한 세계이다. 그렇지만 이 두 세계는 동전의 양면처럼 이질적이거나 대립적인 세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앞에서 대행이 종이와 종이 위에 쓰인 글씨를 통해 불이不二의 세계를 설명하고 있다면, 길장은 제일의제와 세속제란 개념을 통 해 현상과 본질의 불이를 설명한다. 그런데 여기서 세속제는 제일
의제에 들어가는 징검다리이다. 이 징검다리를 설법이라 표현하거 나 부처님의 가르침이라 말하기도 한다. 만일 징검다리나 설법이 없다면 대다수의 무지한 중생들은 피안의 세계, 불성의 세계, 내
21) 상동, 又二慧是三世佛法身父母。以有第一義故生般若。以有世諦故生方便。具實 慧方便慧。有十方三世佛。是故立二諦。又知第一義是自利。知世諦故能利他。具 知二諦即得共利.
지 제일의제의 세계를 들어갈 수 없다. 그런데 그와 같은 이제가 진실한 수행자에겐 모두 구비되는 것이며, 그것을 통해 대승불교 의 가르침을 완성하고, 중생들을 교화한다는 점에서 공리라 표현 하고 있다. 이 경우 공리는 공통하는 이익 내지는 공유하는 이익
이라 해석할 수 있다. 길장의 다른 책인 이제의二諦義 에서 대승불교의 궁극은 공리를 얻는 것이란 점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만일 누군가 이제를 분별해 알 수 없다면 깊은 불법에서 진실한 의미의 지혜를 알 수 없다. 만일 이제를 이해하지 않으면 깊은 불법에서 진실을 알 수 없다. 만일 이제를 요해하면 깊은 불법에 서 바로 진실한 의미를 알게 된다. 그러므로 알아라. 이제를 설 하는 것은 커다란 이익이 있다. 두 가지는 십이문론 관성문에 서 말한다. 만일 사람이 이제를 모르면 자리, 타리, 공리를 얻지 못한다. 만일 이제를 알면 세 가지의 이익을 얻는다. … 그러나 이 두 가지의 이익은 일체의 이익을 수용한다. 중론 이 ‘깊은 불법을 아는 이익’을 밝히는 것이라면, 십이문론 은 ‘중생을 이 롭게 하는 이익’을 설명한다. 상구上求와 하화下化는 두 가지의
이익을 벗어나지 않는다.22)
이제를 통해 지혜를 증득하고, 닫힌 중생들의 의식의 문을 열고 자 하는 것이 반야사상이 추구하는 이제의 목적이라 인식하고 있 는 것이 길장이라면, 잠자고 있는 사람들의 의식을 깨우고 갇혀
22) 吉藏, 二諦義 (대정장45, 81하). 若人不能知分別於二諦。即於深佛法不知真實 義明。若不解二諦。於深佛法不知真實。若了二諦。於深佛法即知真實義。故知。 說二諦有大利益。二者十二門論觀性門云。若人不知二諦。則不得自利他利共利。 若知二諦則得三利。…然此二益攝一切益盡。中論明知深佛法益。十二門明利眾生 益。上求下化。不出二益也.
있는 사람들의 의식의 문을 열어주고자 하는 것은 대행의 방법이 다. 대행이 오공의식을 통해 구체적인 방법을 실행하고 있다면, 길장은 이제를 통해 거시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 할 수 있다. 굳이 양자를 구분하자면, 길장은 논리적이고 대행은
직관에 의지하는 경향이 보인다는 점이다. 이제의 에서 길장은 “진속이제를 함께 요달하면 두 가지의 지혜를 함께 발생하게 되는 데 그것을 공리라 이름 한다.”23)고 말한다. 깨달았으되 대중들의 의식을 깨우고자 하지 않는 수행자는 연각 이다. 진정한 대승보살은 수행을 통해 존재의 본질을 통찰하며, 주객이 둘이 아님을 통찰한다. 그런 통찰을 통해 너와 내가 하나
이며, 함께할 수밖에 없는 존재란 사실을 인식한다. 모두 한마음 의 현현이면서 주어진 역할이 다를 뿐이라는 인식 속에서 궁극적 으로는 불성이란 본질의 세계로 회귀한다는 사실도 알게 한다. 따 라서 남의 아픔이 나의 아픔으로 다가오며, 남의 기쁨이 나의 기
쁨으로 함께 할 수 있다. 길장은 그것을 공리라 표현하고 있다. 깨달음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를 분명하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 다. 이런 그의 의식의 단면은 법화통략法花統略 에서 보다 선명하 게 읽을 수 있다.
이상에서 상서로움을 나타내어 정예淨穢의 인연을 이롭게 했다. 이제 삼세의 부처님께서 함께 시방삼세에 인연 있는 중생을 모
23) 吉藏, 二諦義 (대정장45, 85하). 言自利他利共利者。了世諦第一義諦。發生方 便實智名自利。了第一義諦世諦。發生實方便智名他利。具了真俗二諦。具生二智 名共利也。二者菩薩自了真俗二諦。發生權實二智名自利。菩薩如實而悟。今還如 實而說。令眾生亦了真俗二諦發生權實二智名為他利。自他皆了二諦。皆生二智名 為共利也.
두 이롭게 하기 때문에 함께 신통력을 나타내고 법화를 설하게
된 것이다.24)
이상의 인용문에서 정예淨穢의 인연을 이롭게 한다는 것은 분별 의식을 초탈해 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시방삼세의 인연 있는 중생을 모두 이롭게 한다는 것은 무분별지혜와 방편의 지혜 를 통해 중생을 교화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부처님의 신
통력이란 바로 잠든 의식 내지 닫혀 있는 의식을 깨우거나 열기 위해 전개되는 다양한 방편지혜의 작용을 의미하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다만 인용문에서 사용된 공리共利란 단어에서 공共이란 글자를 필자는 모두라 해석했다. 함께 하는 모두를 말하지만 이 시간대를 함께 사는 모든 공업중생共業衆生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 경우의 공은 단순이 함께 하는 것이 아니다. 시공을 초월해 존재
하는 일체 중생을 의미한다. 바로 부처님이 이 사바세계에 존재하 는 이유는 바로 모든 존재를 깨우치기 위함 때문이다. 그럴 경우 의 공共의 개념은 함께하는 것보다도, 비움을 의미하는 공空 보다 도 더욱 포괄적이고 심오함을 알 수 있다.
3. 오공의식의 구조와 사상적 연원 탐색
이미 언급했듯이 대행의 사상 중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오공 의식이라 생각한다. 대강의 내용은 앞서 살펴보았으므로 여기서는 오공의 구조적 특징과 사상적 친연성이 어디에 있는가를 살펴보기
24) 吉藏, 法花統略 (속장경 27, 526상). 上來現瑞。利淨穢緣竟. 今三世佛共利十 方有緣眾生。故共現神力及說法華也.
로 한다. 친연성親緣性을 통해 오공의식이 내포하고 있는 사상적 근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살펴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 론 그것이 과거 특정한 어느 사상과 가깝다고 말하는 것은 쉽지 않으리라 본다. 사상적 영향이란 일방적이기 보다는 사회의 복합
물이라 인식할 수 있으며, 그러할 경우 문화적 환경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행의 경우도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다고 본다. 즉, 한국이란 사회, 대행이 태어나 학습하고 수행하던 당시의
문화적 환경, 그리고 수행과 성장과정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주게 되는 많은 선지식 등이 그것이다. 이렇게 전제를 하는 것은 한 인 물의 사상을 특정 사상의 영향을 직접, 강하게 받았다고 일방적으 로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정한 사상적 영향이 강하게 미쳤
다고 하더라도, 독자적인 사상을 형성하는 데는 다양한 요인이 작 용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렇기에 시대가 필요로 하는 특정한 인 물의 독창적인 사상이 출현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종교적 차원에 서 본다면 여기에는 시대성과 사회성이 강하게 전제되어 있는 것 이다. 시대상황이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것을 특정한 인물이 수용 해 그에 부응하는 구원론을 수립하면, 그에 상응하는 대중적 지지
가 따라온다는 점이다. 오공이란 공생, 공심, 공체, 공용, 공식이다. 이것을 구조적으로 분석하면 오공의 본질은 한마음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그럴 경우 한마음은 불성이며, 법신을 말한다. 그러나 그 불성이나 법신은
불변의 속성이나 아체我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개별적인 자아 가 무자성의 공, 즉 무아임이 체득될 때 드러나는 보편적인 마음
이자 생명의 본질적 가치이다. 따라서 불성은 공성이며, 무자성이 고 무아이다. 그러면서도 모든 것을 포용하는 포괄자로서의 성질 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한마음을 토대로 공심과 공용이 있다. 더하여 공용의 구체적인 현상이 바로 공생과 공식, 공체라
분석할 수 있다. 구조적으로는 그렇거니와, 이에 대해 처음으로 대행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은 혜선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공생이 내 몸이라면 공심은 내 마음이고, 공체는 내 마음자리의 근원이고
공용은 내 마음의 표현으로 나타나는 작용이다. 또한 공식은 한마 음의 현실이면서 그 원리로서 처음부터 그냥 그렇게 존재하는 것 이다.”25)라 분석하고 있다. 혜선의 해설에 의한다면 공생은 함께 하고자 하는 자신이고, 공
심은 함께 하고자 하는 의지이며, 공체는 한마음의 본질, 즉 불성 이나 여래성을 말한다. 그리고 공용은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이 행위로 옮겨진 것이며, 공식은 현실이자 더불어 살고자 하는 마음 이다. 따라서 오공을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의 작용과 표현, 함께
하고자 하는 현실이란 점으로 이해하고, 공共을 함께로 번역한 바 가 있다. 그러면서 “선사가 제창한 이 오공사상은 그 뿌리를 전통 적인 불교사상의 동체대비심과 동사섭의 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 .”26)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사상적 근원을 따지자면 초기불교의
동사섭정신이나 동체대비심과 연결된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런 주장은 너무 일방적이고 논리적 비약이라는 점에
25) 혜선, 한마음과 대행선 (2013), 운주사, p.275. 26) 혜선, 한마음과 대행선 (2013), 운주사, p.278.
문제가 있다. 좀 더 차분하게 사상적 근원을 살펴본 뒤에 결론을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혜선은 대행선의 사상적 근원을 대승기신론 에서 찾고 있다. 그는 “일심이 심진여문과 심생멸문의 공존으로 여래장이라
하는 것과 같은 뜻으로 기신론 의 본각本覺의 입장이며, 또한 한 마음으로부터 나타난 제불과 중생의 자비와 사랑이 다르지 않음은 그대로 동체대비와 유사하다.”27)고 하거나 직접 “ 기신론 에서 일 심의 작용과 일치하는 것이다.”28)라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
위에서 오공의식도 일심으로 돌아가며, 그렇기에 오공의식 역시 대승기신론 의 사상적 연장선상에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처럼 판단된다. 그렇게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혜선이 오공을 설명하면 서 “내 몸과 마음 내는 것과 마음 내기 이전이 삼합이 되어 공전
하기에 모두 한마음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것이다.”29)라는 구절을 인용하거나 “주인공이란 삼합이 공체로서 공존, 공용, 공식하는 진 면목이다. 주인공은 일체 만법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갖고 있다 .”30)는 구절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승기신론 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또 있다. 즉 “자기 마음속에 마음이 있다. 본래로 청정하여 물들지 않고 여여한 근본의 마음이 있는가 하면 그러한 것이 있는 줄조차 모르고, 생멸하는 번뇌 망상을 나의 마음인 줄로 알아 생사윤회의
28) 혜선, 앞의책, p.198. 29) 한마음요전 – 원리편3 , p.345. 30) 한마음요전 – 원리편3 , p.346.
27) 혜선, 한마음과 대행선 (2013), 운주사, p.196.
근본 인이 되는 그런 마음이 있다. 그러나 이치가 그렇더라도 그 것은 둘이 아니다.”31)라는 설법의 내용이다. 이 인용구는 대승기 신론 의 심진여문과 심생멸문에 관한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며, 그것이 일심 위에서 작용하는 것이란
점에서 둘이 아니라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생명의 근원 은 그렇게 크고 넓으면서 하나이다.”32)라 설법하고 있는데, 이러 한 설법 내용도 본체인 한마음으로부터 발현된 중생들의 삶, 그 자체가 바로 작용의 상태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 다. 기타 물과 파도의 비유를 활용하거나, 혹은 우주법계를 거대 한 한그루의 나무로 설명하는 것은 한마음을 비유한 것, 그 뿌리
에서 수많은 가지와 잎이 나타났다고 하는 것은 한마음의 작용으 로 인식할 수 있는 현실을 비유한 것으로 묘사33)하고 있다. 이상 여러 가지의 증거들에 의하면 대행이 주장하는 오공의식은 대승 기신론 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더라도 지나치지 않다.
이상에서 살펴보았지만 대행의 선사상이나 오공의식 속에 대승 기신론 의 사상적 영향이 농후하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 다면 그 이전 대승기신론 에 의지했던 사상가들과 다른 점은 무 엇일까? 우선 핵심 내용을 도시해 보는 것도 이해를 쉽게 할 수
있다.
32) 한마음요전 – 원리편4 , p.349.
31) 한마음요전 –원리편6 , pp.386-387.
33) 김시행, 침묵의 천둥 소리 2(2006), 김영사, p.171. 출전을 정확하게 명기하고 있지 않지만 동일한 나무는 주인공이나 부처의 당체로, 그 뿌리에서 나는 수많 은 가지와 잎은 현상계로 비유하면서 오공의식을 설명하고 있다.
일심 (포괄자) 심생멸문 공용(用)
심진여문 공심(體) (수심의 방법=주인공에게 맡기는 것)
공생, 공식, 공체
이상의 도표에 의하면 대승기신론 과의 상관성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물론 이상은 대승기신론 의 사상적 영향을 전제한 다음 의 분석이다. 하지만 이러한 분석이 설득력이 있다고 전제한다면
대행은 작용의 측면, 즉 현실적인 측면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기존의 대승기신론 사상가들은 작용의 측면보다는 수심修心의 측면에 가치의 비중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대행은 작 용의 측면을 보다 중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이유가 무엇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필자의 소견으로 보건데, 공 심共心은 마음을 닦아서 불성이나 공성空性을 통찰하는 것이다. 그런
데 그것을 대행은 주인공에게 맡기면 된다고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적인 방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렇게 본다면 중요한 것은 현실이다. 그렇다고 작용을 중시하는 전통이 대승기신론 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마음을 포괄적인 보편성의 마음으로 상정할 때, 그것의 토대 위에서 본질과 현상을 불이의 관계로 보는 것은 중국전통 철 학의 오랜 흐름이라 말할 수 있다. 즉, 도의 보편성, 도의 초월성, 만물의 공통분모인 도를 주장하는 삼현학의 사상적 전통이다. 이
러한 개념을 남북조시대에 활동한 승조는 불교의 세속제와 승의제 의 개념을 빌려서 불교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즉 중국 전통의 체용론體用論을 불교적으로 응용하여 불교가 중국에 토착화
될 수 있는 사상적 터전을 만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체용 론의 연장선상에서 작용의 측면인 현실을 중시하고자 하는 가풍 역시 남북조 이래 중국불교 전통에서 찾을 수도 있다. 때문에 단 지 대승기신론 에만 의거해서 대행의 사상을 분석하는 것은 일면
적 고찰에 그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대행의 선사상은 오히려 현실을 중시하고 있다 는 점에서 달마의 이입사행론 과 사상적 친근성을 지니고 있다. 즉 사회적 실천과 자비의 완성을 통해 깨달음을 완성하고자 하는 대행의 오공의식은, 달마의 이입사행론 에서 사상적인 친근성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이완에서 활동했던 고승 인순印順34)은
“이입理入은 오리悟理이고 행입行入은 수도修道이다. … ‘심신함생동 일진성深信含生同一眞性, 단위객진망부但爲客塵妄覆 불능현료不能顯了” 라는 이입사행론 에 나오는 문구는 여래장사상이며, 이 여래장설 의 교설에 의거해 철저하게 신해信解하고 함망귀진含妄歸眞할 수 있 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입사행론 에서 중시하는 벽관壁觀에 대해 서는 전등록 35)을 인용해 “외식제연外息諸緣 내심무천內心無喘 심
여장벽心如墻壁 가이입도可以入道”에서 내면의 마음에 헐떡거림이 없고 장벽과 같이 흔들림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즉 부 동심을 의미한다. 다만 중생은 누구나 동일한 진성을 내포하고 있 지만 객진번뇌 때문에 드러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은, 대행이나 인
순 양자가 동일하다. 또한 인순은 이입사행론 을 해설하면서
35) 전등록 (대정장51, 219하)
34) 印順, 中國禪宗史 (1999), 중국: 江西人民出版社, p.9.
이입理入은 견도見道이고 성성成聖이다. 대승의 가르침에 의하 면 성불이다. 그러나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아직 행입行入 즉 발 행發行(실천)이 필요하다. (사행 중) 앞의 3행은 중생에게 순응 하는 것(順物)이며, 칭법행은 방편이다. 이것은 모두 실제의 사 안 속에서 수행하는 것이다. 수도자도 사람이고, 사람 사이에서 생활한다. 개인이건 불교건 모두 사람과 사람의 화해를 중요하 게 생각해야만 하며, 그러므로 불교의 율제律制도 특별하게 ‘식 세기혐(息世譏嫌)’을 중시한다. 오도자悟道者는 광야에 몸을 두 어선 안 된다. … 스스로 깨달은 경지에 근본을 두어야하며, 무 원증無怨憎, 불교치不驕侈, 불탐착不貪着하되 자타에 걸림이 없 는데 이르러 모두 크게 기뻐하는 것이다. 이것이 기혐譏嫌을 막 는 순물順物이다. 바로 세속과 어긋나지 않고, 항상 중생들에게 순응하며, 자기를 극복하는 가운데서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칭법행은 방편이다. 무소득으로 방편을 삼아 6바라밀을 실행한 다. 보살의 위대한 행을 실행하되 행한 바가 없으며, 중생을 교 화하되 중생들의 모습(중생상)에 취착하지 않는다. … 남을 이 롭게 하는 가운데서 자기의 망상과 습기를 녹여버린다. 이러한 처세의 수행은 비로소 진정한 자리와 이타를 가능하게 하며, 무 상보리를 장엄할 수 있게 된다. … 중국의 선수행자들은 달마의 선법을 계승했지만 이입만을 중시하여 마침내 이오理悟만을 중
시하는 치우친 중국선종을 만들었다.36)
고 말한다. 이상 인용문의 내용에 의하면 이입과 행입이 있으 며, 이입과 행입을 동일하게 중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중국의 선사들은 이입만을 중시하고 행입을 중시하지 않았다는 점 을 비판한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은 오히려 대행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판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대행은 “도는 이
36) 印順, 中國禪宗史 (1999), 中國: 江西人民出版社, p.10.
루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루었으면 행해야 한다. 체體는 용用
이 뒤따르는 법이다.”37)라 하거나 “아무리 오묘한 법을 깨친다 해 도 중생과 더불어서가 아니면 도가 될 수 없고”38)하는 설법을 통 해 행입行入을 중시하는 인순과 사상적으로 상통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논리적으로 보더라도 한마음[一心]을 바탕으로 공심과 공용을 분 류한다면, 공심과 공용을 이입과 행입에 대비할 수 있다. 다만 이 행理行이 둘이 아니며, 둘 다 중요하지만 현실은 중생들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게 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행입行入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즉 수행과 현실을 둘로 보지 않고 현실에 참
여해 자비를 구현하는 것이 수행의 완성이며, 이입으로 가는 길임 을 밝히고 있는 것이 대행의 오공의식이라 인식할 수 있다. 또한 달마의 이입사행론 과 대행의 오공의식을 대비할 때 상통 점이 많은 것은 대행 역시 남종선의 사상적 연장선상에 서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시대성 이다. 남종선을 말할 때, 남종이란 남쪽의 종지 내지는 남쪽에서
전해진 종지, 혹은 가르침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용어 는 남쪽의 혜능과 북쪽의 신수를 의미하는 남능북수南能北秀란 용 어가 정착하기 이전에도 중국불교에서 남종南宗이란 단어를 사용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럴 경우 남종은 크게 두 가지의 의미를
지닌다.39) 즉 첫째 남인도에서 전래된 종지란 의미이며, 4권 능
37) 김정빈 편(1991), 대행스님법어집 · 無 . 글수레, p.57. 한마음요전 편집 이 전에 발간된 책이기에 인용. 38) 김정빈 편, 앞의 책, p.30. 39) 印順, 中國禪宗史 (1999), 中國: 江西人民出版社, pp.69-70.
가경 과 반야경 을 의미한다. 둘째 중국남쪽 지방의 불교학을 의 미한다. 이렇게 구분할 때의 남종은 반야사상과 삼현학三玄學이 융 합하여 전개되는 교의학을 말하며, 북종은 섭론과 지론에 의거해 발전하는 유심론적 사상을 의미한다. 여기서 남종에 해당되는 것
은 엄밀하게 말하면 천태종과 선종이다.40) 그렇지만 시간의 흐름은, 남종선을 특정한 선종의 일파를 의미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남종선의 사상적 근원을 살펴보면, 능가경 , 반야경 , 삼현학, 섭론학파나 지론학파에 의해 발전된 유심 론 사상 등이 융합되어 있다. 대행의 사상에 다양한 스펙트럼이 나타 나는 것은, 역시 특정한 경전이나 유파의 영향 보다는 동북아불교의 역사적 전개에 따라 배태되어 있는 사상적 다양성을 말하는 것이라 생 각된다. 남종을 의미하는 남중국정신의 특징은 현실을 중시하면서도 동 시에 항상 이상을 추구하는 경향이다. 번쇄하고 유한한 세계 속에
살고 있지만 이상적인 세계를 포기하지 않는다. 간결하면서도 무 한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초월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강남의 불교, 특히 남쪽에서 발전한 남종선은 이러한 경향이 더욱 풍부하다.41) 대행의 오공의식 속에는 이러한 남종사상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분석할 수 있다. 작용의 측면에 주안점을 두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본질인 한마음을 체득해야 한다고 강 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마음을 바탕으로 중생과 부처를 동일하게 인식하고
41) 印順, 앞의 책과 동일.
40) 印順, 中國禪宗史 (1999), 中國: 江西人民出版社, p.72.
그렇기에 아직 깨치지 못한 중생들을 사랑하고 포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남종의 하나인 천태종에서도 그 사상적 편린을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천태종은 선종 보다 그 연원이 오래되었으며, 중국 선종의 발달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들의 사상 속에서 대행과
사상적 친근성을 찾아볼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의미 있는 일이 아 닐 수 없다. 다행스러운 것은 천태와 그의 스승인 혜사를 통해 대 행과의 사상적 친근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천태종을 개창한 천태지의天台智顗의 스승으로 알려진 혜사慧思는 그의 안락행의安樂行義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일체중생을 관조하되 모두 부처와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상불 경보살품 가운데서 설하는 것과 같다. 부지런히 선정을 닦는다는 것은 안락행품 에서 처음 설한 것과 같다. 왜냐하면 일체중생은 법 신장法身藏을 갖추고 있어서 부처와 동일하며 다름이 없기 때문이 다. 마치 불장경 에서 설한 것과 같다. … 만일 좌선할 때 모든 존 재의 상常과 무상無常을 보지 않는다면 안락행 가운데서 설한 것과 같다. 보살은 모든 존재를 관조할 때 상주한다는 생각을 지니지 않 으며, (그렇다고) 단멸한다는 생각도 일으키지 않는다. 이것을 지혜
로운 사람이 친근할 곳이라 이름 한다.42)
중생을 부처와 같이 보고 공경하라는 내용은 대행이 한마음이 작용하는 측면을 강조하는 것과 동일하며, 일체중생은 법신을 구
42) 慧思, 法華經 安樂行義 (대정장 46, pp.697-698). “觀一切眾生皆如佛想者。 如常不輕菩薩品中說。勤修禪定者。如安樂行品初說。何以故。一切眾生具足法身 藏與佛一無異。如佛藏經中說。三十二相。八十種好。湛然清淨。眾生但以亂心惑 障。六情暗濁法身不現。如鏡塵垢面像不現。是故行人勤修禪定。淨惑障垢法身顯 現。是故經言。法師父母所生清淨常眼耳鼻舌身意亦復如是。若坐禪時不見諸法常 與無常。如安樂行中說。菩薩觀一切法。無有常住亦無起滅。是名智者所親近處.”
비하고 있기 때문에 부처와 동일하다고 보는 것은 오공의식의 근 원을 한마음으로 보는 것과 상통한다. 또한 혜사의 제자인 천태지의 역시 중생과 부처를 둘로 보지 않 는다. 그는 무명無明을 일념의 성질로 인식한다. 다만 이어서 무명
이 바로 명明이며, 명과 무명은 그 성질이 둘이 아니라 본다. 수행 의 핵심은 무명無明이 바로 법성임을 인식하는 것이라 본다는 점 에서 대행과 상통한다. 따라서 지의는 화엄경 의 “마음은 공화사 工畫師와 같아서 각종의 오음을 그린다. 모든 세상 속에서 만들지
않는 것이 없다”43)란 구절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화사畵師는 바로 무명無明의 마음이다. 일체의 세간은 바로 십법계요 임시적이 거나 진실한 국토 등이다.”44) 지의는 일념을 무명의 마음으로 해 석하지만 무명의 마음을 떠나 법신이 별도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일심삼관을 통해 무명과 명, 번뇌와 보리 의 평등무차별을 관조하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현실을 더욱 적극
적으로 포용할 수 있게 했다. 이런 천태의 사고는 법화경 의 영향도 있지만 화엄경 의 “마 음과 부처와 중생은 차별이 없다”45)는 설법이나 “하나의 미진 속 에도 무량한 부처님의 설법이 있으니, 중생들의 심상心相에 따라
미묘한 의미를 연설한다.”46)고 하는 사상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 로 평가한다.47) 또 이러한 사상은 불성에 관한 이론이나 여래장
43) 60華嚴經 (대정장9, 465하), “心如工畫師 畫種種五陰 一切世界中 無法而不造” 44) 天台, 法花玄義 (대정장33, 699하). “畵師卽無明心也, 一切世間卽是十法界, 假,實國土等也”
45) 60華嚴經 (대정장9, 465하), “心佛及眾生 是三無差別” 46) 60華嚴經 (대정장9, 570중). “於一微塵中 無量佛說法 隨眾生心相 演說於妙義“
사상의 영향 속에 전개되는 중국불교의 일단이지만 이상과 현실을 분리하지 않고, 현실 속에서 궁극적인 이상을 찾고자 하는 중국불 교사상의 일관된 흐름이라 말할 수 있다. 특히 유식사상의 중국 전래와 화엄사상의 전개는, 그 이전에 전개되는 반야사상 내지 삼
현학과의 결합에 의해 창출되는 남조시대의 교의학과 융합하여 현 실을 중시하는 중국불교의 기풍을 형성했다. 재미있는 것은 대행의 오공사상은 이러한 사상적 흐름의 연장선 상에서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치의 비중을 관념의 세계에
두고 거기에 침잠하지 않으며, 도리어 현실 속에서 불교사상을 구 현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대승불교의 본질에 충실하고자 하는 경향 을 읽을 수 있다. 특히 관념화, 교조화되어 있는 현대 한국의 선 불교 속에서 사회적 실천을 강조하는 점은, 이입과 행입의 조화
속에서도 행입의 중시를 통해 시대상황을 타개하고자 하는 무의식 적인 수행정신의 표출이 아닌가 생각된다. 설사 오공의식이 대승기신론 이나 화엄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고 하더라도 시대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사회적 실천과 수행을 동 일하게 보고자 했던 것은, 대행의 종교적 지향점이 시대적 요구 사항을 무의식적으로 수용한 결과라 볼 수 있다. 그것은 선의 본
질이 무엇인가를 천착한 결과이며, 중생과 부처의 관계에서 중생 이 존재하므로 부처가 존재할 수 있다는 의식의 결정이라 분석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도는 이루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 루었으면 행해야 한다. 체體는 용用이 뒤따르는 법이다.”48)라 하
47) 劉朝霞(2009), 早期天台學對唯識古學的吸收與決擇 , 中國: 巴蜀書社, p.40. 48) 김정빈 편(1991), 대행스님법어집 · 無 . 글수레, p.57. 한마음요전 편집 이 전에 발간된 책이기에 인용.
거나 “아무리 오묘한 법을 깨친다 해도 중생과 더불어서가 아니 면 도가 될 수 없고”49)라 강조한다. 이러한 점들은 바로 대행이 지향했던 수행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를 웅변한다. 즉 이입과 행입의 불이, 그렇지만 행입을 보다 중시하는 기풍을 무의식적으
로 중시하게 된 것이다.
III. 나가는 말 : 오공의식의 현대적 의의
이미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대행은 본체와 작용, 한마음의 세 계와 현실의 세계가 분리될 수 없다고 인식하고 있었다.50) 그런 정신은 결국 현실을 중시하는 사상적 경향을 강하게 보여주게 된 다. 또한 그런 의식이 전환기의 한국사회에서 수많은 대중들의 지 지를 받은 결과로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시대상황에 알맞은 대중
과의 소통, 대중의 아픔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종교적 감성의 배 양, 더불어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식의 제고 등이다. 한마음 선원이 발전할 수 있게 된 것은 철학적, 사상적인 것이 밑바탕이 되었지만 그것을 통해 대중과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한 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바로 대행의 오공의식이라 본다. 필자는 이상의 고찰을 토대로 대행의 오공의식이 지니는 몇 가지 의 현대적 의의를 살펴볼 수 있었다. 그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 다.
49) 김정빈 편, 앞의 책, p.30. 50) 한마음요전 – 활용편 , p.674. “체와 용이 본래 둘이 아니다. 그 본래면목과 생 각을 내는 나와는 둘이 아니다. 주인공 자리에는 체도 있고 용도 있다.”
1. 현실 중시의 수행관 정립
오공의식은 체용불이의 원리 위에서 현실을 중시하고 포용하는 수행관의 산물이라 말할 수 있다. 불교, 특히 선불교의 출발은 그 렇지 않았지만 타이완의 인순印順의 반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 입과 행입을 동시에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입에 치우친 수행가 풍을 형성했으며, 그런 가풍은 불교의 대중화를 가로막는 장애요 인의 하나가 되었다. 결국 선불교의 쇠퇴 내지는 불교에 대한 대
중들의 외면이라는 역사적 현상을 초래하게 되었다. 한국의 선불교 역시, 역사적 조건의 불합리와 그에 대한 불교계 의 대응 실패 속에서 선불교의 관념화라는 현상을 초래해 왔다. 이런 현상은 개화기의 전후시대나 해방 이전의 한국불교계, 그리
고 해방 이후 전개되는 불교계 내지 국가의 혼란 속에서도 지속되 었다. 근대적인 불교학을 도입하는 20세기 초엽을 중심으로 그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관성을 쉽게 벗어나 지 못했다. 그러나 6·70년대의 가난과 이농현상 등은 한국종교계
의 지형을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전통종교가 지니고 있던 대사 회의식의 변화 역시 요구받게 되었다. 또한 80년대 이후 경제적인 고속 성장은 빈부의 격차를 심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도시화를 가 중시켰다. 이러한 사회 현상은 현실을 중시하고, 그 속에서 사랑
과 포용의 정신을 강조하는 종교의 출현을 요구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종교를 통해 도시생활과 이농현상에서 오는 외로움 과 단절감을 위로받고자 했다는 것이 이 시대를 분석한 사회학 연 구자들의 중론이기도 하다.
대행의 오공의식은 그런 점에서 본다면 사회적 요구에 무의식적 으로 반응한 결과이며, 나약한 대중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자 하는 불교적인 자비심의 발로인 것이다. 물론 그러한 사상의 연원 은 과거 수많은 불교사상가들에 의해 피력되었다고 하더라도, 대
행처럼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 할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별도의 특별한 수행 을 위해 대중과 유리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 그 자체를 부정 한다. 따라서 곳곳에서 다음과 같이 설법한다.
살아가는 생활이 화두이자 참선이기에 누구에게서 화두를 받을 것도 줄 것도 없다. 자신의 존재가 바로 화두인데 따로 화두를 받아 가지고 들었다 놓았다 하다 보면 참 나를 생각해 볼 여지
가 없어지게 된다.51)
지금 여기가 그대로 도량이다. 자성이 그대로 사찰이다. 세속을 떨치고 입산해야만 입산이 아니고 몸을 움직여 집을 나가야만 출가가 아니다. 자기 마음의 산, 마음의 도량으로 입산하고 출가 하여야 한다. 밖으로 끄달리며 집착하는 마음을 거두어 내면으로
향하는 것이 그대로 귀의이다.52)
일하는 것도 참선, 먹는 것도 참선, 사랑하는 것도 참선, 모두 참선 아닌 게 없다.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게 바로 참선이요
종교이다.53)
51) 한마음요전 – 수행편 , p.548. 52) 한마음요전 – 수행편5 , p.569. 53) 한마음요전 – 수행편5 , p.570.
각자가 서 있는 자리, 그 자체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한마음의 원리 위에서 오공의식을 실천하면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특별한 방법을 강조하지 않는다. “생활을 떠나 종교가 있는 게 아 니다. 평상의 생활을 떠나 도가 있는 게 아니다.”54)라 강조한다.
기실 오공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각각 나누어 설명하고 있지 만 오공의식은 상호 융합 속에서 맞물려 운행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런데 먹는 것만이 공식이 아니라 이 모든 거, 돈 벌고 이렇게 하는 것이 모두 공식입니다. 그게 같이 움죽거리죠.”55)라
설법한다. 대행은 선의 형식보다는 본질을 추구하고 있다. 불교의 본질은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며, 그들의 의식을 제고시켜 존재의 본질을 올바르게 통찰하고 살 수 있게 인도하는 것이라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현실을 중시하는 수행정신의
강조는 매우 불교적이면서도 대중적이고 실용적이다. 이런 점은 오공의식을 통해 생명공동체의 의식을 함양하고자 하는 선사의 정 신과 가장 잘 상통하는 점들이다.
2. 상호관계성의 통찰과 비움의 철학
초기불교의 무아설에 근거해서 전개되는 연기론은 관계성을 중 시하는 철학이다. 그것이 반야사상에 오면 무아연기설로 발전한다. 대행의 오공의식은 관계성의 철학적 바탕 위에서 비움의 정신을 융합한 독특한 실천 방법이다. “내 몸이 뭇 중생들의 주둔지이듯
54) 한마음요전 – 생활편4 , p.639. 55) 허공을 걷는 길 –법형제법회 2권, p.1212. 혜선 책, p.276에서 재인용.
현상계도 그와 같이 공체로서 공심, 공용, 공식, 공생하고 있으니 벌레 한 마리, 풀 한 포기를 보더라도 남이 아니라 바로 ‘나 아닌 게 없다.’라고 생각해야 한다.”56)고 설법한다. 대표적인 구절을 인 용했지만 한마음 요전 을 읽어보면 전편을 통해 도처에서 관계성
의 철학과 비움의 정신을 융합하여 강조하고 있다. 이론적으로 자타불이의 정신이나 체용불이의 정신이 잘 용해된 결과라 말할 수도 있다. 기실 인간은 누구나 ‘완벽한 자가발전’이
불가능하다는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이 지니는 본능적이 면서도 고질적인 아상 때문에 관계성의 철학을 깊이 이해하는 것 과 비움의 철학이 중요함을 강조57)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분
석을 부정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비우지 않으면 일체를 타자화他者化하는 어리석음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오공의식 속에 관계성의 철학과 비움의 정신이 근간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은 또한, 사회학적인 시각에서 보아도 당시의 한국사회
에 절실한 종교적 실천방안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미 언급했지 만, 70년대나 80년대 이농과 도시집중화, 90년대의 경제적 고도 성장기에 나타나는 사회적 소외와 부의 편중화, 인간가치의 도구 화와 물신숭배의 풍조는 무엇인가 새로운 종교적 처방 내지 제도 적 치유책이 필요했다. 대행은 이러한 사회 현상 속에서 독자적인
처방전인 오공의식을 통해 대중들과 친근하게 소통할 수 있는 계 기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56) 한마음요전 – 원리편 , pp.343-344.
57) 김시행(2006), 침묵의 천둥소리 2, 김영사, pp.174-175 참조.
3. 근본정신의 중시와 사회화
남종, 즉 남중국정신의 특징은 현실적이고 인위적이며, 이상적 이고 자연적이며, 간이하고 무한한 세계를 향해 기울어지는 초월 적인 경향이 있다고 서술한 바 있다. 현상과 본질에 대한 정체가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와 사색은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기 이전부터 중국사회에 존재했다. 중국에 들어온 불교는 중국의 전통사상과 대립하며 갈등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상호영향과 융합 속에서 독
특한 중국 불교사상을 창출하게 된다. 남종이란 그러한 역사적 전 개의 결과로 등장하는 것이다. 한마음을 포괄자로 보고, 그 위에 심진여문과 심생멸문이 전개 된다고 보는 것은 대승기신론 의 이론이지만, 그 경우의 한마음
이나 일심은 노장철학에서 언급하고 있는 도의 개념과 상통한다는 점이다. 노장사상에서 언급하는 도의 개념이 불교에서 언급하고 있는 일심의 개념과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상호영향의 관계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규명되고 있다. 다만
불교는 일심, 혹은 한마음을 객관적으로 대상화하지 않는다. 실체 화를 부정하면서도 모든 것의 공통분모로 활용하거나 인식하고 있 다는 점은 본질과 현상을 이원적으로 보지 않으려는 의식의 반영 이다. 물론 이러한 것은 반야사상의 영향이라 평가할 수 있지만
반야사상과 노장사상의 융합이기도 하다. 그 결과 독특한 중국불 교의 즉사이진론卽事而眞論을 전개하는 것이다. 대행의 오공의식 속에는 바로 이러한 즉사이진론의 정신이 잘 표현되고 있다. 체용불이의 정신을 토대로 중생과 부처를 구분하
지 않으며58), 한마음으로 중생의 행복과 안녕이 중요함을 역설한 다. 물론 그 표현의 방식은 현대 한국의 현실에 잘 부응하고 있다 는 점이다. 이미 언급했듯이 시대적 상황이 대행에게 그렇게 요구 했던, 아니면 대행이 그러한 시대적 요청을 간파했던, 상응하는
가르침을 통해 중생을 어루만져주었다는 점이다. 이처럼 현실을 중시하면서도 초월적이고, 인위적이면서도 자연적인 정신이 공체 를 기반으로 공심, 공용, 공생, 공식의 다섯 가지 함께 하고자 하 는 마음으로 완성되고 있다. 이런 점은 대행의 의식이 본질을 중
시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며, 동시에 매우 동양적이란 점을 알 려주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대행의 오공의식은 남종의 정신을 잘 계승하여 자기 것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더 나아가 그런 정신 을 공유할 수 있도록 사회적 종교적 실천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 점은 불교적 수행을 관념의 세계에 가두지 않고 사회화하려 는 의식의 반영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58) 한마음 요전 – 원리편 , p.316. “모든 부처와 중생은 한마음이다. 한마음이기에 부처와 중생에 차별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 단행본 및 논문 - 김시행(2006), 침묵의 천둥 소리 2, 김영사 - 혜선(2013), 한마음과 대행선 , 운주사 - 이균희(혜선), 「한마음사상과 선수행 체계 연구」(2005년
동국대 박사논문) - 김경자(혜안), 「묘공대행의 전법 특성에 관한 연구」(2016년 동국대 석사논문) - 한자경, 「한마음이란 무엇인가」( 선학 44호, 2016년)
- 印順(1999), 中國禪宗史 , 中國: 江西人民出版社 - 劉朝霞(2009), 早期天台學對唯識古學的吸收與決擇 , 中國: 巴蜀書社
A Study on the Philosophical Features and Origin of Ven. Daehaeng's ‘Awareness of Five Sharings’
Cha, Cha-Seok
This paper tries to explore the philosophical features and historical origin of Ven. Daehaeng's teaching, the “Awareness of Five Sharings.” The process of developing the discussion
consists of four stages. Firstly, the specific content of the Awareness of Five Sharings is explained in Ven. Daehaeng’s book Essentials of the One Mind in which she explains the Five Sharings in terms of the function of the One Mind. Secondly, I
tried to understand the ideological characteristics of the Five Sharings as the concept of “sharing benefit,” a concept whose philosophical point is similar to that of the eminent Chinese monk Master Jizang (吉藏 549–623). Thirdly, I tried to identify
the structure, ideological features, and origin of the Awareness of Five Sharings in the ideas of Master Jizang. Fourthly, I tried to identify the historical and religious significance of Ven. Daehaeng on the basis of past historiography and ideology.
As I reviewed the above four stages, the ideological
characteristic inherent in her Awareness of Five Sharings is that it aims at an independent Buddhist practice system and social practice. The Awareness of Five Sharings as taught by Ven. Daehaeng is influenced by a trend to share with the public and
emphasizes the “arising-and-ceasing (生滅)” aspect, one of the two aspects of the One Mind as presented in Awakening of Mahāyāna Faith. Most importantly, the reason Hanmaum Seon Center is supported by the public in this transitional period of
Korean society can be found in the Awareness of Five Sharings. It is the ideological tendency that attaches importance to the reality derived from the spirit of communicating with the public and sharing the pain of the public. Awareness of the Five
Sharings is a religious practice that unconsciously responds to social demands in this respect. It is a step toward compassion to give hope and courage to the public. Even though many Buddhist thinkers in the past have tried to express it, they
provided no concrete action plan. However, Daehaeng's did practically in terms of Five Sharings.
[Key words]
Ven. Daehaeng, Awareness of the Five Sharings, One Mind, sharing benefit, two entrances to enlightenment, compassion, inter-relatedness, insight, socialization
기•고•논•문
강문선 (혜원, 동국대) 대행선에 관한 일고 … 『한마음 요전』을 중심으로 … - 이덕진 (전 창원문성대) 대행 ‘주인공主人空’에 대한 일고찰
I. 서언
V. 결어
대행선에 관한 일고
… 『한마음 요전』을 중심으로 …
강문선 (혜원, 동국대)
II. ‘자기존재’에 대한 의심과 ‘위안처’ 발견 1. 고난과 존재에 대한 의심 2. ‘그’와 ‘나’는 공존 III. 선지식의 만남과 만행 1. ‘그’와 ‘나’는 불이
2. 초관初關을 투득透得
IV. 삼매와 견성 1. 화두참구와 무심관 2. 주인공을 철견
본 논문은 ‘대행선’을 조사선, 공안선, 간화선, 본래성불론 등의 관점에서 바라보기보다는 그의 생애(1927-2012)에서 스스로 형 성된 구도의 과정과 증오證悟를 살펴보는 데에 목표를 둔다. 연구 의 범위는 유년기에서 제천 백련사에 당도하여 ‘화광동진和光同塵’
하는 시기이전까지로 하며, 한마음 요전 을 중심으로 고찰했다. 대행의 10대 전후는, 암울한 일제 강점기였으며 가세의 몰락과 부친의 학대 가출과 노숙으로 이어진 극히 어려운 시기였다. 이로 인해 ‘생명’, ‘불확실한 자기존재’, ‘도피처’, ‘실존’ 등에 대해 궁구
하게 되었으며 고난의 외부세계보다 내면에서 혹독한 아빠를 대신 할 수 있는 자애로운 ‘아빠’를 찾으려 한다. 대행의 선禪은 여기서 비롯된다. 대행의 나이 9세, ‘누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라는 간절한
물음은 현실이 분명 차별과 고난의 세계임을 직시한 것이지만, 이
를 벗어난 본래 평화롭고 위안처가 되는 내면의 세계, 즉 ‘그(渠=
아빠)’가 있음을 발견한다. 다시 말해서 ‘그’와 ‘나’가 둘이 공존함 을 알게 된다. 14세, 모친을 따라 선지식 한암을 만나게 되고 스님의 자비로운 성품이 기인이 되어 ‘아빠’의 현실의 모습을 보기를 갈망한다. 10
년 후, 현실의 ‘나’와 본래의 ‘그’가 불이임을 체득하게 된다. 그동 안 현실의 ‘나’가 내면의 ‘그[주인공]’ 를 따라다녔는데 이제 ‘그’ 와 ‘나’가 소통이 되고 경계가 없어진다. 말하자면 초관初關을 투득 透得한 것이다. 낙발落髮하기전의 일이다. 24세(1950) 대행은 사
미니가 되고, 한암은 대행과의 문답에서 대행의 법기法器를 알아보 고 이미 신심身心이 투탈透脫되었음을 안다. 법명을 청각靑覺으로 내리고 ‘이제 네 길을 가라’고 부촉付囑한다. 대행의 만행은 계속되고 무심관으로 편안한 마음에 와 닿는 것 에만 응주凝住할 뿐이었다. 어느 날 묘지에서, 또한 물에 비친 자 신의 모습에서 현실의 ‘나’와 본래성의 ‘그’가 불일불이不一不異임을
철견徹見하였다. 견자성見自性한 것이다. 이후 ‘자유인’으로서 자재 한 권능으로 ‘입전수수入鄽垂手’의 길로 나섰다. 대행은 이미 고된 현실[客]과 안정된 내면의 본래성[主]을 직시 하고 관찰하여 이 둘이 공존함을 알았고 객과 주가 불이임을 알았 다. 한암은 대행의 선지禪旨를 인가했을 뿐이다. 또한 대행은 중국 唐代의 선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선은 ‘평상무사’의 마조계
馬祖系 선禪보다 이를 비판하고 현실태와 본래성을 유지하면서 이 양자를 상즉시키는 ‘자기自己’를 중요시 하는 석두계石頭系 선禪에 상응됨을 살필 수 있었다. 이와 같이 대행선에서는 자연과 현실의 세계를 직시, 내면의 안
락처를 발견, 이를 상즉相卽시키는 ‘자기自己’를 투득하는 것 등이 전부 선禪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대행선의 특색이라고 본 다.
[주제어]
한마음요전 , 초관, 투득, 철견, 자유인, 한암, 불일불이, 자기
I. 서언
한마음 요전 (이하 요전 )에 나타난 대행선사(1927~2012) 의 생애에서 구도와 깨침의 양상은 근대기(1876~1945) 당시 다 른 비구니수행자와는 다름을 살필 수 있었다.1) 당시의 이승尼僧납
자들은 이력履歷과정을 마치면 선교후선先敎後禪 또는 선선후교先禪
後敎 등으로 공부했으며, 구도의 과정을 보면 사교입선捨敎入禪후, 혹은 바로 입선入禪하여 선지식을 찾아가 화두를 받고 참선에 몰 두하고 견처見處가 생기면 선지식과 접심接心하여 자신의 한 소식 을 밝히고, 깨침을 체득하였음이 인정되면 인가를 받았다. 이후 이러한 비구니는 후학을 지도하거나 제접提接, 또는 다시 보림 수
행을 하기도 하였다.2) 대행의 경우는 유년기부터 홀로 철저하게 자기 자신에 대한 의 문을 품고 결국 ‘내면의 소리’를 발견하였다. 대행에게 있어서 내 면의 소리는 ‘아빠’라고 상정된 자기 본래성의 소리다. 이로써 어
린 대행은 현실의 나와 내면의 주인을 왕래하며 세간의 괴로움을 넘어서고 또한 바라보기까지 한다. 대행은 10대에 선지식인 한암 을 만나 처음으로 불법공부가 무엇인지를 질문하고 문답에서 스스 로 의심을 갖는다. 의심은 자신의 화두가 되어 참구를 계속하였
다.
1) 대행선사를 이하 ‘대행’으로 호칭 2) 拙著 「근대 한국 비구니 선수행 양상과 인가에 대한 문제」 ( 대각사상 제23집 2015).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전형적인 수행을 한 비구니 11명만을 선정하여 고찰했다. (대한불교 조계종 韓國禪院總覽 불학연구소 참고)
대행이 20대 초반이었을 대, 한암은 대행과의 문답 끝에 그 법 기法器에 크게 만족하며 자신의 길을 갈 것을 부촉한다. 대행은 만 행에 나서며 미진함이 없는 자신의 실존을 통철通徹하기 위해 더 욱 깊은 참구를 계속하고 결국 ‘견본성見本性’한다. 말하자면 ‘모든
존재가 본래 있는 그대로의 공적한 모습’ 즉 ‘주인공’을 여실히 본 것이다. 본 논문은 이러한 대행의 구도과정에서 이루어진 ‘대행선’을 고 찰해 보고자 한다. 조사선, 공안선, 간화선, 본래성불론 등의 전통
적 관점에서 대행선을 바라보기보다, 그의 생애에서 형성된 구도 와 증오證悟, ‘반본환원返本還源’을 위한 관법제시觀法提示 등이 용해 된 ‘대행선’만의 특색을 살펴보는 것이다. 연구의 범위는 요전 에 보이는 구도과정 중 유년기에서 ‘관문을 뚫고’, 대자유인이 되어
제천 백련사에 당도하여 ‘화광동진’하는 시기이전까지로 한다.3)
연구방법으로는, 우선 대행의 신심의 고난과 고통 속에 있는 현 실의 자기존재와 이를 탈피하기 위한 모색과 노정에서 위안처[내 면의 소리]를 마음에서 발견한, 말하자면 ‘그’와 ‘나’가 공존’하는 이중구조에 대해 살핀다. 다음 내면의 소리의 주인공을 찾음과 동
시에 참구 끝에 ‘그’와 ‘나’가 불이’임을 체득하게 되는 과정을 고 찰하며, 계속되는 선정삼매로 결국 무문無門의 문門을 투탈透脫하여 ‘하나마저 없어진 자리’ 즉 주인공을 철견하는 ‘대행선’을 살펴보 도록 한다.
3) 한마음 요전 (7판 2017년) pp.17-100에 나타난 ‘대행의 생애’ 일부분.
II. ‘자기존재’에 대한 의심과 ‘위안처’발견
1. 고난과 존재에 대한 의심
대행이 출생할 때는 비교적 넉넉한 편이었지만 유년기, 청소년 기는 극도로 불우한 시절이었다. 외적으로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한민족 말살 작업으로 인해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내 적으로는 부친이 일제 폭거에 항거하다 투옥되고 재산을 몰수당하 여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가난의 고초를 겪었던 시기다. ‘7세였던 그해 겨울은 지독한 굶주림과 추위’를 겪어야 했는데4), 장녀인 대
행에게 가난보다 더욱 두려웠던 것은 ‘한 풀이의 대상으로 작정하 신 듯한’5) 부친의 혹독한 학대와 핍박이었다. 대행은, “부친은 다 른 사람의 어려운 사정을 잘 살피셨고 이웃을 위해서도 노고를 아 끼지 않는 분이셨다. 그런데 유독 내게만은 혹독하셨다. 나의 행
동거지 하나하나를 못마땅해 하셨다”고 회고한다. 딸로 인하여 부 부는 다투었고, 겁이 난 대행은 나가서 밤을 지새웠는데 그러한 날이 날로 늘어났다. 부친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 모친을 돕는 일 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 달이면 20일은 내쫓기다시피 하여 밖에서 보내는 일이 잦았 고 숲속에서 밤샘을 하는 날이 계속됨에 따라, ‘차디찬 한기와 대 자연의 부드러움 사이에서 생의 의미를 깨달아가고 있었다.’고 한 다.6) ‘무섭고 의지할 곳조차 없었으니까 자연히 산새 풀벌레, 짐
4) 위의 책 pp.18-20. 5) 위의 책 p.20.
승이나 초목을 친구로 삼게 되었다’고 하였다. 숲속의 모든 것들 이 대화의 친구가 된 것이 대행에게는 시련으로부터의 위안과 더 불어 만상의 존재들과 소통하는 체험의 계기가 되었다. ‘추운 산 중, 산짐승도 무섭지 않았다. 그냥 바위에 기대앉은 채 너도 아빠
가 없니? 나도 아빠가 없다’고 말을 걸었다고 한다. 유년기에 대 행은 밤낮으로 아무데서나 무심코 바라보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유년기의 순수한 무심관은 바로 안심과 평정심과 직 결되었고, 이러한 습관이 어린 대행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었다. ‘산에 가서도 무심히 앉아 있고 들에 가서도 앉아 있기 일쑤였다.’7), ‘집에서 야단맞고 내쫓기는 가혹함에서 나와 숲속 가 랑잎 부대 속으로 들어가면 뜨뜻한 기운이 감돌아, 가랑잎과 풀에 게 감사했다.’8)라는 술회를 통해서, 몸과 마음의 두려움과 공포
사무친 외로움이 ‘무심한 마음’에서 ‘신심탈락身心脫落’된 어린 대행 을 엿볼 수 있다. 현실의 가난, 공포, 슬픔, 고독을 묵연히 응시하
고, 또렷이 ‘자신만의 삶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도리어 ‘상상想
像의 보시’행까지 생각한다. “내게 도깨비감투 하나만 있다면 저 가난한 집집마다에 양식을 나눠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날이 새는 줄도 몰랐다.”는 것이다. 이는 일진一塵도 없는 순수한 무심에서
대비관의 작용이 일어난 것이다. 대행의 상상보시의 생각은 10대 이전에 일어났으며 이는 모친의 자애로운 언행을 보고 들은 데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본다.
6) 위의 책 p.22. 7) 위의 책 p.23. 8) 위의 책 p.23.
2. ‘그’와 ‘나’는 공존
대행은 숲속에서 바라본 자연의 세계에 생명의 실상이 있는 그 대로 드러나 있음을 깊게 인지하고, 숲 밖의 세상과 현저하게 다 름을 알게 된다. 추위와 배고픔의 현실은 차별과 고난의 세계이지 만 숲속 자연의 세계는 빈부, 시비, 선악, 우열 등의 차별의 세계
가 없이 오직 생명 하나 만으로 평등하게 구유한 존재임을 직시하 였다.9) 어린 대행[9세 즈음]에게는 왜 이러한 차별의 세계와 평 등의 세계가 공존하는지 의심되었다. 그 가운데서 더욱 의심이 된 것은 배고프고 고달프지만 부모가 무서워 집에도 못 들어가는 ‘나
를 누가 만들었을까’하는 의문이었다. ‘나를 만들어 놓고는 왜 이 렇게 굶기고 고달프게 만들었는가?’라는 의심이, 그동안 눈물이 솟아날 정도로 슬프고 한탄스럽고 비통했던 마음에 꽉 찬 것이다.
“어린 것이 그렇게 바위틈에 기대서 종일 궁리하다 보니 점차로 ‘나를 만든 네가 있다면 나와 보아라, 모습을 보고 싶다.’라는 궁 금증에 견디지 못했다”10)는 의심에 이른 것이다. “나를 형성시킨 네가 없다면 나는 이대로는 살 수 없다. 차라리 혀를 물고 죽어야
지 살지 못한다.”라고 할 정도로 간절하였다. 이런 모진 고난의 현 실 속에 살게 한 그 누군가가 있을 것이라는 집요한 의심은, 평화 로운 숲속이 더할 나위없는 안식처였기 때문에 일어났을 것이라고 대행은 회고하였다. 말하자면 적정의 숲이 어린 대행 자신의 존재
9) 위의 책 pp.26-27. 10) 위의 책 p.27.
를 스스로 직관하도록 유도하였고 그동안 잠재되었던 의심, 즉 나 를 형성한 그 무엇을 갈구하게 한 것이다. 어린 대행은 어느 날 홀연히 “마음의 심연으로부터 뜨거운 눈물 과 함께 ‘아빠’라는 소리가 울려 나옴”을 느낀다.11) “그 때 수없이
‘아빠’를 부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회고 했다. ‘내면의 소 리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아빠라는 이름이 그대로 위안처가 된 것이다. 고난의 실존에 대한 대분심이 대의정이 되고 의정이 타성 일편打成一片되어 ‘아빠’로 폭발한 것이다. 공포와 시련으로 얼어붙
은 어린 대행의 온 몸이 순간 찰나에 ‘내면의 소리’의 체體인 아빠 로 인하여 녹여져 청순한 ‘본래의 대행’으로 돌아 간 것이다. 그 때부터 어린 대행의 내면의 ‘주인공主人公’인 아빠는 언제나 위안과 힘이 되어 준다. “아빠!”하고 나직이 부를라치면 묘지의 망
부석, 나무 등걸, 바위 또는 이름 모를 뭇 생명까지도 나 자신과 친한 친구가 되어 숨결을 나누는 것처럼 여겨졌다.”라고 당시를 회고 했다.12) 유정이든 무정이든 현상으로 나타난 모든 것들이 아빠로 느꼈으며 동시에 ‘모두가 내 생명같이 여겨졌다’고 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내면의 위안처로 떠오른 아빠가 삼라만상 에 나투어 보이고, 따라서 지금까지 나와 타자로 나뉘어 보였던 세계가 모두 평등하고 원융하게 보였다는 말일 것이다. 이는 현실 의 ‘나’와 내안의 ‘아빠’가 공존하고 있음을 본 것이다. 대행은 이
에 대해 “의지할 데가 없으니까 붙잡은 것이 ‘아빠’였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 하면서 붙들었고, 그러다보니 차츰
11) 위의 책 p.28. 12) 위의 책 p.28.
‘아빠’와 내가 둘이 아니라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라고 술회하였다.13) 내면의 주인의 소리가 울려 나올 때 무심히 ‘아빠!’라고 호칭한 것에 대해 대행은 이렇게 회고했다. “아버님이 너무 완고하시고
못살게 구시니까 배겨 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차라리 저 아버지 를 아버지라고 그러느니보다 내 속에 있다고 느낀 이 아버지를 아 버지라고 그래야지.’하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라고. ‘낮 동안의
생활의 가혹에서 밤의 포근한 위안이 되어 준 숲속 대자연은 대화 의 친구가 되고’ 짐승들에게 조차 무서움이 없이 ‘아빠가 없음’을 토로한 어린 대행은14) 자연히 ‘자애로운 아빠’를 그리워하는 일이 빈번했을 것이다. 박해를 당하는 집보다 산야에서 지내는 것이 편 안하고 무심의 시간이 길면 길수록 내면에서는 평화로움이 확장되 고 ‘순수한 위안처’를 발견한 어린 대행은 이를 아빠라고 부르기 로 결정 한 것이다.
내면의 아빠를 만나 위안이 되었지만 어린 대행의 현실은 여전 히 가난과 공포로 힘겨웠다.15) 글공부는 모친에게서 배운 것과 야학당에서 셈본 공부를 받아 본 것뿐이었다고 한다. 어린 대행에 게는 자연의 윤회를 보고 생명을 알게 되고 유·무정들과의 대화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얻어진 공부가 전부였다. 대행은 잔심부름을 하며 성당에서 지내는 동안 신부에게 고해성 사를 한 일이 있었다. 이후 불현 듯, “내가 잘못 해 놓고 왜 저분
13) 위의 책 p.30. 14) 위의 책 p.22. 15) 위의 책 pp.30-36. 어린 대행의 남의집살이 등 부평초 같은 나날을 지낸 것을 회고한 내용을 참고
한테 고해함으로서 죄가 사해지는 것일까?” “자기가 잘못 해 놓고 는 누구한테 구원을 해 달라고 하느냐. 내가 잘못하지 않았으면 고해할 일도 없을 것이고 잘못했다면 내 마음속에서 고해야지 남 한테 고하면 없어지는가?”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16) 10대인 대
행은 이미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는 인과因果를 스스로 깨친 것이 다. 이러한 생각의 발로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숲속 자연의 세계에서 뭇 생명들과의 온후한 관계와 대화에서 얻어진 것이라고 본다. 현실은 차별의 세계이지만 동상同相과 이상異相으로 융화된
총상總相을 보았고 그 속에서 내면의 심성에서 우러나오는 자애로 운 주인과 공존하고 있음을 일찍이 꿰뚫어보았으므로 신과 인간의 종속從屬의 관계는 대행에게는 전혀 생소하였을 것이다. 10대 소녀 시절, 해방되기 전까지 부평초처럼 떠도는 생활이 계 속되고17) 의식이 제대로 해결이 안 되는 극빈의 생활에 밤마다 눈물로 지새웠다고 한다. “인생은 한 번 죽는 것인데 죽게 되면
죽고 살게 되면 산다는 생각에서 모든 것을 ‘아빠’에게 맡긴 채 걸어갔을 뿐이었다.”고 하였다.18) 현실의 나와 공존하고 있는 자 비로운 ‘아빠’에게 생과 사를 쏟아 버리고 살아가는 것이 마음 편 함을 알았고 그렇게 한 것이다. 대행선법의 주인공主人空에게 놓
기, 맡기기, 지켜보기 등의 일련의 과정은 이미 대행이 10대 때에 체득한 선법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대행은, 나와 내면의 주 인인 아빠와는 공존하지만 자의로 ‘떼고 붙이고가 될 수 있어서
16) 위의 책 p.34. 17) 위의 책 p.36. 18) 위의 책 p.36.
견뎌냈던 것’이라고 회고했다.19) 나와 아빠는 공존하니까 아빠에 게만 얽매이거나 현실의 나를 부정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는 것 이며, 또한 내면에 언제나 상주하는 아빠가 있음을 믿고 현실에 부딪치는 고난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의미라고 본다.
1. ‘그’와 ‘나’는 불이
III. 선지식의 만남과 만행
대행은 14세, 모친을 따라 상원사 한암스님(이하 한암으로 호 칭)을 만나게 된다. 스님들이 공부하는 모습과 생활을 보고 한암 에게 물었다. “불법이 무엇입니까?” “네가 사는 게 부처님 법이 다.” 또 어느 때는 공부를 해 보겠다는 대행의 말에 한암은 “공부
가 뭔지나 알고서 그러느냐? 곶감 꼭지가 떨어져야 공부라 할 수 있다.”고 했다. 대행은 한암의 이러한 말을 마음공부의 바탕으로 삼았다고 한다.20) 선지식으로부터 들은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았 지만 마음속에 간직하고 이에 대한 의문을 갖는 것이 공부가 되었 고, 이것이 실마리가 되어 자주 한암을 만나 마음공부에 익숙해졌 다. 이때 선지식의 자비로운 성품에서 ‘아빠’의 현실을 보아21) 어
린 대행과 선지식과의 접심接心이 쉽게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고 본다.
19) 위의 책 p.37. 20) 위의 책 p.38. 21) 위의 책 p.41.
대행은 18세가 되던 해에 해방을 맞이했고, 세간에 있었지만 세 속의 일보다 ‘내면으로의 귀로를 더듬으며 삶의 의미를 찾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고 한다.22) 인생의 참뜻을 구하면서 간절히 아빠 와의 대면을 갈망 한 것이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것이다.
갈망이 구극에 달했는지 대행은 아빠를 만나게 된다. 첫 번째는 동자가 키를 들고 나타났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다가 홀연히 알게 된다. ‘벼는 찧어 놓았지만 까불 줄 모르니까 키를 들려 보인 것’ 임을.23) 두 번째는 아빠의 모습이 그립다고 하니 ‘거울을 봐라!
거기에 있다’고 한 것이다. 거울을 보아도 대행 자신의 얼굴만 보 일 뿐이므로 보지 못함을 어리석게도 서운해 했다고 한다. 세 번 째는, 모습을 보일 수 없으면 이름을 알려 달라고 했다. 내면의 소리가 들리는데 서산, 원효, 무학, 육조, 유마힐이라는 이름이 들
렸다. 어떤 때는 ‘삼국통일 할 무렵에 내가 있었다.’고 하고 ‘나는 항상 없어 본 예가 없다’고 했다. 당시 아무것도 몰랐다고 대행은 회고 했다. 이러한 아빠와의 만남에서, 대행이 자신의 내면과 문 답하는 과정이 조사선에서 나오는 문답의 유형과 유사함을 알 수 있다. 다만 대행의 경우에는 문답이 자문자답이라는 특징이 있을 뿐이다. 내면의 소리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지만 ‘나’와 타자가 되
는 ‘아빠’가 10여 년간 둘이었다가 이제 하나로 되는 것을 스스로 직관直觀해 감을 볼 수 있다. 더구나 다음과 같은 문답은 ‘나’와 ‘타자[=내면의 주인]’가 불이 不二임을 깨닫는 내용이다.
22) 위의 책 p.42. 23) 위의 책 p.43.
스님께서 거듭 (모습) 보기를 원하니 이번에는 “거울을 보아라. 네가 손을 쳐들면 아빠도 손을 쳐들고 네가 찌푸리면 아빠도 찌 푸릴 것이고 네가 울면 아빠도 눈물을 흘리느니라.”라고 대답했 다. …… “네 마음이 언짢고 괴로우면 나도 언짢고 괴로울 것이 며 네가 울면 나도 따라 우니, 너와 내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24)
대행은 이 말을 듣고 여러 날을 울었다고 회고 한다. 그동안 ‘아빠’라는 모습이 ‘나’와 다르게 별도로 존재하는 줄 알았다가 홀 연히 ‘불이不二’임을 알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주객일여主客一如를
감득感得한 것이다. 대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 정진하였다. 정진은 세간에서 세상과 더불어 일을 하면서도 계속 되었다. 부산에서 군복 수선을 할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문둥병 환자가 대행의 가게로 들어와 피고름에 찌든 자신의 옷을 수선해 줄 것을 부탁했다. 새 옷으로 갈아입히고 헌 옷은 수선해 주었다. 그런데 이 일을 이미 내면의 소리를 통해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오늘
문둥이가 찾아 올 터인데 너는 그를 보통 사람과 똑같이 대할 수 있겠는가”라는 ‘아빠’의 목소리를 듣고 대행은 “나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라고 했다는 것이다.25) 20대가 되기 전 대행은 이렇게 ‘나’와 ‘타자’와 소통을 하고 있었으며 이는 이미 내면의 ‘밝은 주
인공主人公’이 ‘나’와 일편一片이 되어 상호작용한 것이라고 본다. 대행은 이 때 육신의 병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되고, 병을 구 제할 길이 무엇인지를 아빠에게 물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대
24) 위의 책 p.44. 25) 위의 책 p.46.
답은 “답은 네가 찾아라.”였다.26) 의문의 벽을 뚫지 못하고 있다 는 것은 아직도 대행에게 ‘나’와 분리된 ‘아빠’가 저쪽에 있다는 의미다. ‘주객일여’가 아직은 미진한 알음알이에 머물러, 주객이 공존하는데 그친 것이다. 십우도十牛圖 에 근거한다면 ‘득우得牛’
‘목우牧牛’에 이르렀지만 아직 ‘기우騎牛’에는 다다르지 못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27) 대행은 세간살이 1년여 지날 때에 육신으로 할 수 있는 일에 한계를 느끼고 구도의 길로 들어선다. “손 없는 손으로 함 없는
함을 할 수 있어야 대장부라고 할 수 있느니라.”라는 선지식 한암 의 말씀이 계기가 되어 ‘보이지 않는 손’을 얻기로 작정하고 상원 사로 향한다. 가는 도중 어느 날 꿈을 꾼다. ‘큰 기와집이 불타버 리고 큰 학이 나타났는데, 한 마리는 땅에 내려앉았고 다른 한 마
리는 삼베 감투를 쓴 채로 공중을 도는 것이다.’ 대행은 꿈이 이 상해서 ‘아빠’에게 그 의미를 캐고 맡겨버렸다. 며칠이 지난 후 내 면의 소리가 들렸다. ‘모든 것을 몽땅 아빠에게 맡겨 놓으니 이제 다 없어지고 아빠라는 이름만 남았구나. 그나마 빙글빙글 돌아가
니까 이젠 아빠라는 이름조차 없구나.’ 대행은 비로소 ‘있다고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고, ‘아빠’라는 말을 할 때
26) 위의 책 p.46. 27) 梶谷宗忍 柳田聖山 辻村公一 信心銘·證道歌·十牛圖·坐禪儀 ( 禪の語錄 16(東 京:.筑摩書房,1974)) p.124. 十牛圖 의 저자 廓庵은 벽암록 으로 알려진 원 오극근과 동문 大隨元淨의 제자다. 임제종양기파에 속한다. 십우도 의 특색은 牧牛를 10단계로 나눈 것이다. 곽암은 잃어버린 소를 찾는데서 시작하여 소를 발견하고 길들여 소도 사람도 그 모습을 잃은 후, 다시 당초의 일상생활로 돌아 간다는 것을 차례로 그렸다. 이는 唐代의 禪의 基調인 平常心과 그 自覺의 과정 을 분석한 것이다. 대행의 현실의 ‘나’와 내면의 주인, ‘아빠’와의 관계를 십우 도」의 깨침의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에서 참고하였음을 밝혀둔다.
그 한마디엔 아주 개미 새끼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전체가 담긴 그 런 이름이었다.’고 깨우친 것이다.28) 대행은 이상한 꿈을 자신의 분상에서 헤아려 보기를 노력하다가 몰록 ‘아빠’에게 맡기고 난 후, ‘나’가 빠진 ‘아빠’만의 이름이 남았
다가 ‘아빠’라는 이름조차 없어진 자리(空)를 보게(見) 되었고, 거 기서 ‘아빠’라는 말이 일체 모든 것이 담긴 이름임을 체득한 것이 다. 비록 꿈이지만 대행은 고난으로 얼룩진 ‘나’에 대한 집착을 아 빠에게 맡기고 이후 ‘아빠’라는 이름조차 없어져버리고 ‘아빠’라는
그 자리에는 우주 전체가 담긴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공空에서 불 공不空을 철견徹見한 것이다. 중국 선종사에서 혜능(638-713)을 육조로 정하고 맹렬히 신수 (606-706)의 선을 폄하한 하택신회(670-762)는, 자신의 어록
에서 처음으로 ‘견見’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자성청정심의 현현顯現
(깨침)’을 표현하였다. 또한 이를 ‘불공不空’이라고도 하였다. 신회 는 견見을 ‘대오大悟’로 보고, ‘법성이 본래 공적함을 보는 것’, ‘견 무념見無念’29), ‘견은 본래 생멸이 없는 것’30)이라고 설명했다. 신
회에 의하면 견은 불공不空이고 불생멸不生滅이며, ‘공空은 미견성未
見性의 경우이고 견성見性일 때 불공不空이다.’31) 즉 상대적인 생멸
28) 앞의 책 pp.47-48. 29) 神會 定是非論 (胡適 神會和尙遺集 p.309) 「自見法性本來空寂. 慧利明了. 通達無碍」, 「見無念者 名爲實相. 見無念者 中道第一義諦 … 」.
30) 神會 神會語錄 (胡適 神會和尙遺集 p.135) 「今言見者 本無生滅. 今言生滅 者 自是生滅人見. 若無(生)滅 卽是不生滅.」 31) 神會 神會語錄 (胡適 神會和尙遺集 p.123) 「遠法師問 云何爲空. 若道有 空. 還同質礙. 若說無空 卽何所歸依. 答曰 只爲未見性. 是以說空. 若見本性 空 亦不有 如此見者 是名歸依.」
의 이견二見, 유공有空의 이견二見을 벗어난 불생멸, 불공이 견見인 것이다. 대행의 선에서 신회의 이러한 견見사상을 살필 수 있다. 대행은 상원사에서 선지식 한암을 다시 만난다. 이미 현실의 ‘나’와 내면에 상주한 ‘아빠’가 사라진, ‘인우구망人牛俱忘’을 체득한
대행이다.
2. 초관初關을 투득透得
가출한 후 한 달 만이다.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대행을 한 암은 반겼고, 대행은 큰 스님에게 삭발을 요청했다. 대행은 스스 로 머리를 자르고 마지막 삭도로 밀어 달라고 하였다. 한암은 이 미 대행의 법기를 알고 있었기에 말을 건네었다. “하체는 없고 상
체만 있느니라. 지금 꽃으로 치면 봉오리도 안 진 게 어떻게 상체 만 갖고 살 수 있겠느냐.”32) 상체만이라고 좋다고 한 대행에게 한암은 “정작 그렇게 죽고 싶더냐?”고 물었다. 살고 싶지 않다는 대행에게 “죽으려면 몽땅 죽어야 너를 보느니라.”고 했다. 삭발
후, 삼배를 올리는 대행에게 “지금 누가 절했냐?”고 물었다. “큰스 님과 제가 둘이 아니기에 이렇게 경배 드렸습니다.”33) 불공不空을 체득한 대행은, 선지식과 자신이 불이임을 이렇게 말 한 것이다. 한암은 대행의 경계를 살피고 끈을 바짝 조일 것을 당부한다. “죽
어야 너를 보느니라.”, “어떻게 해야 죽습니까? 어디까지 가면 죽 습니까?” “눈을 뜨고 삼 년 잠을 푹 자면 죽느니라.” 대행은 이 말
32) 한마음 요전 (7판) p.49. 33) 위의 책 pp.48-49.
을 화두로 삼아 참구하는 나날을 보냈다.34) 대행이 상원사 암자 선방에서 3일째 되던 날, “흠, 달구지를 왜 망가뜨려? 가려는 소는 왜 안 끌고 달구지를?”하고 소리쳤다. 이 후 계속 참구하다가 무릎이 그냥 떨어져 나가는 듯 할 때 ‘달구지
를 이렇게 망가뜨리려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근본은 누구냐? 누가 이걸 가르치느냐?’ 했다고 한 다.35) 이렇게 화두를 참구하는 대행에게 이제 ‘아빠’라는 말은 사 라지고, 생각을 일으키는 근본에 대한 의심으로 전환되면서, ‘죽어
야 너를 볼 것’이라는 일념으로 참구한다. “몸은 그냥 죽는 것에 일임하고 마음은 무심이었다.” 행자신분, 계율 등이 대행에게는 안 중에 없이 ‘무심’ 만행을 했다.36) 이러한 대행은 어느 곳에 어디 에서나 자재한 언행을 했고 절집안의 전통적 고정된 개념과 관념 속에 있는 이들과는 상반되고 상치된 행동이었으므로 이단으로 내 몰리기도 했지만 대행은 개의치 않았다. 도리어 ‘자유인’이라고 생
각했다고 한다.37) 강원도 일대 산중을 돌아다니며 사람 같지도 않은 모습으로 만행을 하는 가운데 그래도 반겨주는 스님이 탄허 와 그 도반 스님이었다. 대행이 지나가는 걸 보고 급히 쫓아와 끌 고 들어가 푸짐하게 공양을 챙겨주고 하는 말이 ‘이 세상 푸른 잔
디밭에 바람 쐬러 나왔다면 같이 바람 쐬고 지내자’고 했다. 대행 은 즉시 ‘바람 쐬러 나왔다면 자갈밭이든 가시밭이든 물이 깊고
34) 위의 책 p.50. 35) 위의 책 p.50. 36) 위의 책 p.50. 37) 위의 책 pp.50-54.
얕든 내 앞에 붙을 게 없다’고 잘라 말했다고 한다.38) “그 때내가그 스님에게 붙들려 있었다면 참 도리를 모르고 말았을지도 모 른다.”고 회고 했다. 이미 바람이 된 ‘한도인閑道人’인39) 대행이므 로 함께 이 바람 저 바람을 쐴 일이 없는 것이다. 대행은 ‘경전
좌선 등에서 도리를 배운 것이 아니라 하찮은 데서 배웠다’고 한 다.40) 자연의 세계에서 대행은 진리를 보고, 내력이 보이고 대화 를 할 수 있었다. ‘다 거두고 난 밭의 찌그러진 고추 하나를 재료 삼아서도 며칠을 그렇게 배우고 다녔다’고 했다. 대행은 문자언교
文字言敎로 불교를 배운다든가 조사어록에서의 공안을 붙드는, 제 도적 장치 속에서의 납자가 아니었다. 우주법계에서 자기본래의 근원을 실증한 대행으로서는 소박한 행자로 있는 것이 더 나았다. 당시 대행의 수행은 무심한 경지에서 놀고 있을 뿐이었다.
하루해가 지는 줄도 몰랐고 먹는 것도 잊곤 했다. 남들이 보기에 는 그냥 앉아서 졸고 있는 듯이 보였던 모양이지만 나 자신은 무심한 경지에서 노닐고 있었다. 그때는 어떤 것을 보아도 그대 로 내력이 읽어지면서 마음속으로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이런저 런 얘기가 끝 간 데 없으니 몇 시간이든 한자리에 붙박이로 앉 아 있기가 일쑤였다. 그런 일이 종일 그렇게 지속되곤 했는데, 나로 인해 그가 있고 그가 있었기에 내가 있으니 모두가 하나이 다가도 비껴 서서 둘이 되어 얘기할 때면 장면 장면들이 역력했 으니 처음엔 놀라기도 했다. ‘야, 참으로 신기하다.’ 하고 웃기도
38) 위의 책 p.54. 39) 永嘉 玄覺 證道歌 ( 禪の語錄 16 (東京:筑摩書房,1974)), p.33 「君不見, 絶 學無爲閑道人.」
40) 위의 책 p.54.
했고. 또 세상천지가 아름답게만 보이기도 했다. 그러니 내가 절 마다 내쫓길 정도로 추한 몰골이라는 그걸 괘념치 않았던 것이
다.41)
여기서 대행의 ‘무심’은 ‘생각함이 없는 생각’ 즉 ‘비사량非思量’ 이라고 본다. 당대唐代 약산유엄藥山唯嚴선사가 좌선을 하고 있었을 때 한 승이 물었다. “무엇을 그렇게 골똘하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선사는 “생각하는 것이 없는 생각” 승은 “생각하는 것이 없는 생 각은 무엇인가요?” 선사는 “생각이 아니다.”라고 하였다.42) ‘비사 량’은 보통의 식정識情이나 생각하는 것이 아닌 생각이다. 약산의 좌선은 앉아서만 하는 선이 아니라 온 몸으로 깨어 있는 성성적적 惺惺寂寂한 무심·무념의 선이다. 대행 역시 식정의 사량이 아닌 ‘불 사량不思量의 사량思量’이었다. ‘나’와 사물이 각각 개체로만 존재하
는 것이 아니라, 개체를 초월한 ‘초개아超個体’와 공존하고 공생하 고 있음을 보았다[見]. ‘나로 인해 그가 있고 그가 있었기에 내가 있으니 모두가 하나이다가도 비껴 서서 둘이 되어’라고 하는 말에 서 살필 수 있다. 이러한 대행에게 수행자의 모습은, 자기의 너머
에 있는 절대적 존재와 일체화하려 하거나 현상을 떠난 본성의 세 계를 궁구하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물고기와 물, 새와 허공의 관 계, 즉 물고기는 물을 생명으로 새는 허공을 생명으로 삼는 것과
같이43) 물고기와 새[個], 물과 허공[超個]이 어울려진 사사무애事事
41) 위의 책 p.55. 42) 景德傳燈錄 卷14 ( 대정장 51 p.311c) 「師坐次, 有僧問, 兀兀地思量什麽. 師 曰, 思量箇不思量底. 曰, 不思量底如何思量. 師曰, 非思量.」
43) 竹村牧男 「脫落卽現成の哲學」(東京, 東洋大學校 ‘國際道元硏究 심포지움 基調講 演文 2018.7.21.-22.) p.9. 道元의 正法眼藏 第1 「現成公案」의 내용을 재인용.
無碍한 세상천지를 있는 그대로 본 것이다.44) 그래서 대행은 ‘참 으로 신기하다’고 웃고 ‘세상천지가 아름답게 보였다.’한 것이다. 대행이 상원사로 다시 갔을 때(1950. 24세), 선지식 한암은 정 식으로 삭발할 것을 종용하고 대행은 사미니가 되었다. 삭발을 하
는 도중, 대행과 한암의 ‘문답’은 독참獨參한 납자가 스승과의 법전 法戰으로 ‘줄탁동시啐啄同時’45)하는 광경의 모습으로 보인다.
노스님께서 스님께 물으셨다. “지금 누가 계를 받았는가?” 스님 께서 답하셨다. “스님께서 주신 사이가 없고 제가 받은 사이도 없습니다. 다만 한 마리 학이 청산에 훨훨 날 뿐입니다.” 다시 노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죽어야 너를 보리라.” 스님께서 말 씀하셨다. “죽어야 할 나는 어디에 있으며 죽여야 할 나는 어디 있습니까?” 노스님께서 다시 물으셨다. “네 마음은 어디 있느 냐?” 스님께서 답하셨다. “목마르실 텐데 물 한잔 드십시오.” 노 스님께서 거듭 물으셨다. “내가 자석이요 네가 못이라면 어찌 되 겠느냐?” 스님께서 답하시기를 “못도 자석이 됩니다.” 라고 하셨 다. 노스님께서는 무척 기뻐하시며 말씀하셨다. “오! 기특하다.
네 법명은 청각靑覺이니라. 이제 네 길을 가거라.46)
44) 竹村牧男 위의 책 p.9. 竹村은 ‘道元의 宗敎哲學’에 대한 연구를 도겐의 正法 眼藏 第1 「現成公案」에 있는 ‘脫落現成’을 중심으로 했다. 이를 설명하는 내용 가운데 「여기에 묘사된 세계는 水·空은 脫落, 魚·鳥는 現成으로서 바로 脫落와 現成의 一體不二의 세계이다. 이것을 탈락은 超個, 現成을 個라고 보면 魚·鳥와 水·空의 비유는 바로 個와 超個사이의 논리구조가 성립 된다. ..魚·鳥와 水·空의 관계에서 個는 個만으로 성립하지 않고 超個도 超個만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더 욱이 個와 超個는 하나이며 결코 個는 消失하지 않는다.」가 있다. 필자는 이 내 용을 보면서 대행의 ‘나’와 ‘그’가 공존 공생한다는 의미와 본질적으로 같다고 생 각되어 인용하였다. 45) 圜悟 克勤 碧巖錄 16則 「鏡淸啐啄機」( 대정장 48 p.156上) 評唱에 「大凡行 脚人 須具啐啄同時眼. 有啐啄同時用 方稱衲僧.」(행각인은 모름지기 줄탁동시의 눈을 가져야 하고 줄탁동시의 작용이 있어야 바로 납자라고 말할 수 있다.)
한암과의 선문답은, 대행이 오랫동안 좌선선정을 통하여 또는 화두참구를 해서 얻어진 득력得力에서가 아니라 스스로 삶과 존재 에 대한 의정과 무심관에 의해 체득된 안목으로, ‘견무념見無念’ ‘견법성본래공적見法性本來空寂’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앞에서 보
았듯, ‘무심의 경지’에서 ‘나로 인해 그가 있고 그가 있었기에 내 가 있으니 모두가 하나이다가도 비껴 서서 둘이 되는’ 사사무애의 법계를 체득한 대행이므로, 한암으로부터의 수계와 문답 등이 모
두 ‘한마음 불바퀴 속에서’의 일이었던 것이다.47) 스승 한암의 가 르침에 대하여 대행은 ‘팔만사천의 대장경’과 같다고 했다. ‘경전 이나 좌선으로 도리를 배운 것이 아니었던’48) 대행으로서는 진리 를 철견한 조사의 가르침이 바로 대장경이었다.
어느 날, 한암은 대중에게 묻기를
대장부라면 발목을 감는 거미줄을 왜 끊지 못하는가? 대장부라 면 왜 귀신 방귀 씨의 싹을 틔우지 못하는가? 더하고 덜함도 없
이 먹여서 싹을 틔워 보라.49)
라고 했다. 대행은 ‘귀신 방귀 씨란 무엇이냐를 놓고 혼신의 씨 름을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한 채로 파고들었다.’고 했다.50) 대행 에게는 대의단이 되는 화두였다.
46) 한마음 요전 p.56. 47) 위의 책 p.57. 48) 위의 책 p.54. 49) 위의 책 p.57. 50) 위의 책 p.57.
한 스님이 한암에게 ‘성품을 보고 나서도 보임을 잘해야 한다고 하시는데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한암은 “저 바닷물을 삼켰으면 토해 놓을 줄 알아야 한다. 토해 놓을 줄 안다 면 바로 그 바다에서 파도 이는 것이 네 성품의 작용인 줄 알 것 이니 그것이 보배요 보임이니라.”라고 하였다.51) 이것 역시 대행 에게는 화두가 되었다. 이러한 화두를 품고 다시 한암 곁을 떠나
만행을 하였다. 6.25동란이 일어났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가족들은 서로 흩어지는 전쟁의 참화를 보면서다.
IV. 삼매와 견성
1. 화두참구와 무심관
대행은 다시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고, 내면의 주인인 ‘아빠’에 게 ‘삶이 무엇인지’, ‘나는 누구인가’를 만나서 묻고 싶은 생각이 간 절해졌다. ‘식음을 전폐하고 정진’하였다. 내면의 소리는 ‘네가 죽어
야 나를 보리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말로 이 육신이 죽어서라 도 아빠를 만나야겠다고 결심했다.”52) 그래서 대행은 육신을 포기
51) 위의 책 p.57. 52) 위의 책 pp.60-61. 한마음 요전 에는 “정말로 이 육신이 죽어서라도 내가 오 랫동안 아빠라고 불러온 나를 만나야겠다고 결심했다”라고 되어 있다. 만약 이 구절이 바르다면, 바로 이후에 나오는 구절과 상치된다. 즉 “아빠를 만날 수 있 다면 차라리 육신을 포기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같은 페이지 마지막 줄 위에도 “나를 이끌어 온 나, 아빠를 만날 수 있게 만 된다면 서슴지 않고…”라고 되어있다. 그래서 필자는 요전 의 문구를 是正 해서 “죽어서라도 아빠를 만나야겠다고 결심했다.”라고 했다.
하기로 작정하고 수차례 죽으려고 시도한다.53) 마지막은 강 언덕 벼랑이었고 강물을 보는 순간 ‘죽는다는 생각을 잊어버리고 말았 다’(1953. 27세 여름). 육신을 죽여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일어났고 다시 만행을 시작했다.54) 형편없는 몰골로 여기저기 다니
면서 갖은 놀림의 수모를 당하지만 대행은 ‘너희들 탓이 아니라 내 탓’이라고 생각하고 자취를 감추기 위해 점점 산속으로 돌게 되었 다고 한다. 그 후 수년간, 산야로 떠돌며 고행을 했고 모습은 사람 의 모습이 아니었다고 한다. ‘내가 나를 파헤쳐 가는 길’이므로 옆
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았다고 한다.55)
대행의 만행은 정처 없었다. 묘지에서 영가들의 상태를 참구한 다든가, 영가와 대화를 한다든가, 망자와 생자의 연결과 그 능력 등을 가름해 보기도 하는 행로였다.56) 어느 때는 법당에 들어가
‘인간이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의정으로 7일간 철 야정진을 하며, 묘지 근처에서 3개월을 지내고 다시 산을 옮겨 다 니며 선정삼매 속에서 수 없는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57) 이후, 감 자 한 알을 무심히 간看하기도, 물이 마른 웅덩이에 있는 올챙이
를 물 있는 곳으로 옮기기도, 다람쥐가 쉬었다 간 바위에 얼굴을 대고 그 맥박을 느끼기도, 개구리가 알집을 논두렁가로 올려놓아 폭우에 휩쓸리지 않도록 하는 것을 보고 모친을 생각하기도 했다 는 것이다.58) 이처럼 대행이 자연의 세계를 유심히 관찰할 수 있
53) 위의 책 pp.61-62. 54) 위의 책 p.63. 55) 위의 책 p.65. 56) 위의 책 pp.66-67. 57) 위의 책 pp67-68.
었던 것은 신심이 몰록 ‘무심관’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 의 회고에서 살펴 볼 수 있다.
물 흐르는 것을 보고 하루를 보내는 때가 많았다. 그렇다고 무언 가를 골똘히 생각한 것도 아니다. 나는 물이 가로로 흐르든 세로 로 흐르든 그런 것은 상관하지 않고 한나절을 그냥 무심히 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내 주처 자리에 대한 믿음만 있었을 뿐 그냥 한번 앉으면 거기에 딱 들어붙은 듯이 무심으로 앉아 있었다. 그 게 무심관이었다. 나중엔 그 무심관까지 없어졌지만…59)
이 같은 ‘무심관’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약산의 ‘비사량非思量’ 관이다. 약산은 ‘비사량처非思量處’를 ‘천성千聖도 알지 못 한다’고 하였다.
약산이 법을 이은 석두가 어느 날, 앉아 있는 약산을 보고 “그대 는 여기서 무엇을 하는가.”라고 물었다. “어떤 것도 하지 않습니 다.”라고 답했다. 석두는 “그렇다면 한가로이 앉아 있구나.”라고 하니, “만약 한가로이 앉아 있다면 하는 것이 됩니다.”라고 했다. 석두는 “그대가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
이지?”라고 물었다. 약산은 “천성도 알지 못합니다.”라고 했다.60)
대행의 무심관의 수행은 ‘나를 형성시킨 근본에 집중’하는 것이
58) 위의 책 pp68-69. 59) 위의 책 p.69.
60) 景德傳燈錄 ( 대정장 51, p.311b) 「一日師坐次 石頭覩之問曰 汝在這裏作麽 曰 一切不爲 石頭曰 恁麽卽閑坐 曰若閑坐卽爲也 石頭曰汝道不爲且不爲箇什麽 曰 千聖亦不識」 238
고 ‘내면으로 내 마음에 닿는 것만을 응시’하며, ‘생각하는 일도 귀찮아서 의정이 나도 그걸 붙잡고 씨름하지도 않는 것’이다.61) 이러한 수행으로 제법의 조화를 알게 되었고 ‘세상 돌아가는 조화 가 바로 팔만대장경’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62) 대행은 무심관
으로 인하여 이류중생異類衆生과 친구가 되기도, 대화를 하기도, 서 로 생명의 귀중함을 알기도, ‘호법신장’이 어디에든 쫓아다닌다는 것까지 몸으로 알게 되기도 했다고 한다.63) 대행은 내면에 의단 이 떠오르면 그대로 선정삼매에 들었다가 알 때,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장소를 옮겼다고 한다. 대행의 무심삼매는 성성적적 惺惺寂寂했다. “묵묵히, 칼을 갈아 무엇인가를 베는 심정으로, 정신 만 초롱초롱하고 눈에서 불이 번쩍이는 그런 형국이었으며 …… 눈을 감고도 뜨고 있는 상태로 지내곤 했는데 어느 때는 며칠이 흘렀을까. 아예 손발이 굳어서 움직여지지 않을 때도 있었다.”고 한다.64) 이러한 삼매를 대행은
나는 그때 사량으로 보고 들으며 다닌 게 아니라 그냥 몸을 움직였 을 뿐이다. 그러면서 마음으로 내가 나를 가르치고 내가 나에게 배 우고 다녔다. 내 육신의 일거일동은 다 내 주장심이 끌고 다니는 대
로 따른 것이니 고개 한 번 돌릴 틈이 없었던 것이다.65)
라고 회고 했다. 사량을 벗어난 비사량으로 대행의 삼매는 육신
61) 앞의 책 p.70. 62) 위의 책 p.71. 63) 위의 책 pp.71-75. 64) 위의 책 p.76. 65) 위의 책 p.76.
과 주장심 즉 심신일등心身一等의 삼매였다. 공적空寂 즉 무심의 세 계에서 ‘내가 나를 가르치고 내가 나에게 배우기’도 했다. 여기서 ‘내’ 와 ‘나’는 ‘본래성本來性의 자기와 현실태現實態의 자기’다. 본래성의 자 기는 현실태와 등치等値하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현실태를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66) 즉 ‘불일불이’의 관계를 대행은 ‘서로가 가 르치고 배운다’고 하였다. 이후 ‘내가 날 불러서 묻고 점검하는’ 정진
이 계속되었다. 결국 ‘나와 주처가 둘이 아님’을 절감하고 나서 대행 은 세상의 모든 존재는 ‘어느 것 하나 생명 없는 게 없고, 어느 것하나말 안하는 게 없고, 뜻을 안 가지고 있는 게 없음’을 본다.67) 그 래서 ‘모든 게 마치 염주알처럼 하나하나가 진실이면서도 다 연결되 어 있다’고 하였다. 또한 이렇게 ‘포괄된 본체’는 한암의 공안, ‘왜 귀 신 방귀 씨의 싹을 틔우지 못하는가?’에서의 ‘귀신 방귀’ 뀌는 소리와
같다고 했다.68) 현실태와 본래성이 불일불이이지만 모든 본체가 공성 空性임을 대행은 투득透得한 것이다.
2. 주인공을 철견
대행이 주인공을 철견하는 순간이 요전 의 다음 두 문단에 적절 히 나타나 있다.
66) 중국당대 마조선이 현실태의 자기그대로를 긍정하는 基調라고 한다면 석두계의 선은 현실태와 등치하지 않으면서 현실태를 떠나 존재하지 않는, 본래성의 자기 를 지향하는 선이다. 마조선이 ‘平常無事’를 강조하는 반면 석두계선은 ‘揚眉動 目이전의 마음’을 중요시 했다.(姜文善(慧謜), 「당~송대선의 開悟에 대한 인식 변화」( 佛敎學報 63輯, pp.139-143. 참고) 67) 위의 책 p.79. 68) 위의 책 p.80.
대행이 묘지 한 쌍이 있는 곳에서 쉬려는데 불현 듯 하나는 아비 묘 이고 하나는 자식 묘라는 말이 떠오르더니, ‘거기 구멍이 뚫려 있는 데 아비가 이쪽으로 오면 자식이 되어 버리고 자식이 저쪽으로 가면 아비가 되니 이게 무슨 연고인고? 했다. … 그 의정을 들고 서리를 맞으면서도 자리를 뜨지 못하다가 결국 이리 나투고 저리 나투는 가 운데 ‘주인공이라는 이름 없는 참 자기와 내가 둘이 아니라 한 묘지 안에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69)
여기서의 ‘주인공이라는 이름 없는 참 자기’와 ‘나’는 불이이며 이것은 ‘한 묘지’에 있음을 깨쳤다는 것이다. 또한
어느 때 물을 마시려고 엎드렸다가 물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험하기도 한지라, 내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모습은 왜 이런가 하 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는데 홀연히 ‘그 또한 부처이니 그 속에 진짜 부처가 있느니라.’하는 내면의 소리가 들렸다. … 그때 거기 서 주인공의 모습, 그토록 찾고 불렀던 ‘아빠’, 참 나의 모습을
다시금 확연히 보았던 것이다.70)
여기서 ‘험한 모습’과 험한 모습을 보는 ‘내 마음은 험하지 않은 것’, ‘험한 모습, 그 또한 부처’이니 ‘그 속에 진짜 부처’라는 것, 여기에서 대행이 확연히 본 ‘주인공의 모습=참 나의 모습=‘아빠’
에 대한 구도가 그려진다. 이러한 대행의 ‘주인공’에 대한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 먼저 중국선종사의 흐름에서의 ‘주인공’ 즉 ‘본래 성’에 대한 입장을 살펴보도록 한다. 주지하다시피 중국 선종의 초조 보리달마 이래 6대가 될 때, 남
69) 위의 책 pp.84-85. 70) 위의 책 pp.85.
북종분기南北宗分岐를 하며 이후, 또다시 혜능문하에서 마조계와 석 두계로 나누어진다. 당대선唐代禪의 두 주류는, 현실태와 본래성을 같이 보는, 즉 ‘작용즉성作用卽性’ ‘평상무사平常無事’라고 하여 일상 적 행동이 그대로 본래성이라고 보는 마조선과, 이를 부정하고
‘양미동목이전揚眉動目以前의 그것’, ‘부즉불리不卽不離의 아我와 거渠’ 라고 보는 석두계 선이다. 당대선은 주로 ‘문답’을 통해 본래성의 깨침을 투득하게 하지만, 송대선은 문답이 공안이되고 ‘문자선’과 ‘간화선’으로 전개 발전한다.
여하간 양대선법은 인간 누구에게나 본래 가지고 있는 불성 즉 ‘본래성’ ‘주인공’을 어떻게 현현顯現[대오大悟]하느냐가 관건이었 다. 마조계의 선은 행주좌와가 그대로 본래성이 나타난 것이라고 보고 더구나 ‘도불용수道不用修’를 강조한다.71) 그러나 석두계의 선
은 현실태의 ‘나’와 본래성인 ‘거渠’로 분리하지만, 같지 않고 다르 지 않는 즉 불일불이한 이 양자를 대철대오大徹大悟해야 한다는 것 이다. 선록禪錄에 나타난 ‘주인공’의 의미가 담긴 선문답의 예문을 몇
가지 들어 보도록 한다. 왜냐하면 대행의 선은 그가 수행한 과정 을 살펴보았을 때, ‘참 자기’와 ‘나’를 관계 짓고 내면의 참 자기 즉 ‘아빠’의 소리를 듣고, 보고 싶어 하고, 대상의 유정·무정과 대 화를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일상작용이 그대로 주인공
이라고 인정하기보다, 주인공이 별도로 있음을 먼저 감득하고 나 아가 주인공을 찾는 고행이 비롯됐기 때문이다.
71) 入失義高編 馬祖の語錄 (京都:禪文化硏究所 1984) p.32. 「示衆云 道不用修 但莫汚染. …… 若欲直會其道 平常心是道.」
장사長沙 경잠景岑(생몰미상)은 마조계이지만 마조선에 그치지 않고 ‘주인공’을 대오할 것을 역력히 강조하는 선사였다. 문답은 다음과 같다.
남전南泉의 법을 이은 장사長沙 경잠景岑에게 한 승僧이 물었다. “지렁이를 자르면 양 쪽이 모두 움직입니다. 불성은 어느 쪽에 있는지요?” 스승(장사)은 “망상妄想해서 어쩌려구?” 승이 “움직이 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 않습니까?” 스승은 “그대는 어찌 화풍火風이 분산分散되지 않음을 모르느냐?”72)
화풍은 지수화풍의 사대를 뜻한다. 화와 풍은 불이이다. 승은 지렁이가 불성을 가졌다면 잘려진 어느 쪽에 불성이 있는가를 물 었다. 불성에 집착한 질문이다. 지렁이가 움직이는 것은 물체 자 체의 운동의 관성·타성일 뿐이다. 선종에서의 불성은 여래장이나
무루종자와 같은 성불의 인因이 아니라 부처의 본성, 부처의 핵심 을 뜻한다. 장사는 바로 응답해 주기보다 화풍에 근거하여 불성을 유도했다. 이와 유사한 문답은 동산洞山 알도록 (807-869)에게도 있다. 동산은 석두계 운암雲巖
양개良价 담성曇晟
(782-841)의 법을 이었다. 그는 스승 운암이 임종할 때 물었다.
“사람들이 스님 가신 후, 스승의 진면목을 그대가 여기서 체현해 보일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까요?” 운암은 잠자 코 있다가 “다만 이놈이 이것”이라 했다. 동산이 생각에 잠겨 있 으니 운암은 “도려闍黎여, 이 일을 깨치려면 최대한 신중을 다해
72) 景德傳燈錄 長沙景岑章( 대정장 51 p.275c.) 「又有僧問 蚯蚓斬爲兩段 兩頭俱 動. 未審佛性在阿那頭. 師云 妄想作麽. 僧云 爭奈動何. 師云 汝豈不知火風未散.」
야 하네.” 동산은 의심이 더했다. 후일 (3년 상을 지내려 담주에 도착하고) 계곡을 건너는데 물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앞 의 일을 깨달았다. 함께 간 사백師伯[신산승밀神山僧密]이 동산의 안색이 밝은 것을 보고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물었다. 동산은 스 승의 음덕을 받은 것 같다고 하니, 사백이 그렇다면 여기서 일구 를 말해보라고 해서 동산은 일수一首의 게를 읊은 것이 <과수게 過水揭>다. ‘절대 그[他]를 따라 구하지 말라, 아득히 나와 멀어져 버린다. 이제 나는 홀로 가니 어디에서나 그를 만나네. 그는 지금 바로 나이고 나는 지금 그가 아니다.
이처럼 만나니, 비로소 여여히 계합하네.’ 73)
거渠는 선록禪錄에서는 ‘본래인’ ‘주인공’을 말한다. ‘나’는 현실태 의 자기라고 하면 ‘그’는 본래성의 자기다. 동산은 거渠와 나의 단 절을 설하면서 양자는 불일불이이지만 수처隨處에 있는 그대로 계 합함을 설한다. 생전에 운암이 설한 ‘다만 이놈이 이것’도, 동산이
수면에 그림자로 비친 것도 바로 ‘다만 이놈’도 같은 ‘거渠’이다. 동산에게는 ‘그가 나이지만 나는 그가 아닌’ 주인공을 깨닫지 못 하는 납자를 한탄하는 문답도 있다.
동산이 승에게 물었다. “이름은?” 승이 말했다. “아무개입니다.” 동산은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그대의 주인공主人公은?” “지금 이 렇게 대답하고 있는 것이 그것입니다.” 동산은 깊이 탄식하면서
73) 瑞州洞山良价禪師語錄 ( 대정장 47 p.520a.) 「臨行又問 百年後 忽有人問 還 邈得師眞否 如何祇對. 雲巖良久云 只這是. 師沈吟. 雲巖云 价闍黎 承當箇事 大 須審細 師猶涉疑, 後因過水睹影 大悟前旨. 有偈云 切忌從他覓 迢迢與我疎. 我 今獨自往 處處得逢渠 渠今正是我 我今不是渠. 應須恁麽會 方得契如如.」( )안의 이야기는 조당집 雲巖章에 있는 것을 附言한 것임. 244
“요즈음의 무리들은 모두 다 이 모양이야. 이차적二次的인 작용 여전마후驢前馬後(나귀가 갔다고 생각했는데 뒤따라 말이 온다) 를 ’자기‘라고 하니. 불법이 침몰할 수밖에 없지. 주인공을 객(작 용)에서 구별하는 것조차 할 수 없으니. 주중主中의 주主를 식별 한다는 것은 도대체 바랄 수 없지!” 승이 물었다. “‘주중의 주’란 어떤 것입니까?” “그대 자신이 말하지 않으면 안 되네” “아니, 제 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객과 구별하는 ‘주’일 뿐입니다. ‘주중의 주’란 어떤 것입니까?” “그같이 말하는 것은 쉽지만 그것을 계속
유지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74)
동산은 승이 당시 유행하는 ‘현실태가 불성 즉 본래성’이라는 마조선에 물들어 있음을 알아챘다. 당시 몰려다니는 납자들의 생 각이 대개 이와 같았다. 동산은 기가 막힌 것이다. 동산은 승에게 ‘주중의 주’를 철견해야 한다고 다그친다. ‘주중의 주’라고 하면 주
의 심층에 또 하나의 참된 주가 숨어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일 는지 모른다. 이 문답을 살펴보면 객[작용·현실태]을 그대로 주 [불성·본래성]라고 보지 않는다. 그렇다고 객을 배제하고 주만을 취한다면 활발발한 인간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주와 객의 다름을
엄연히 유지하면서 그 양자를 살아있는 몸뚱아리 위에 상즉시키는 자기, 그것을 동산은 ‘주중의 주’라고 했음을 살필 수 있다. 동산 의 문답과 같은 주제로 볼 수 있는 또 다른 공안이 있다. 무문관 無門關 12칙 「암환주인巖喚主人」은 석두계 암두巖頭
전활全豁
74) 景德傳燈錄 권15 ( 대정장 48 p.300c.) 「師問僧 名什麽. 僧曰 某甲. 師曰 阿 那箇是闍黎主人公. 僧曰 見祗對次. 師曰 苦哉 苦哉 今時人例皆如此 只時認得驢 前馬後 將爲自己. 佛法平沈 此之是也. 客中辨主尙未分 如何辨得主中主. 僧便問 如何是主中主. 師曰 闍黎自道取. 僧曰 某甲道得卽是客中主. 如何是主中主. 師曰 恁麽道卽易 相續也大難.」
(828-887)의 법을 이은 서암사언瑞巖師彦(생몰미상)의 화두이다.
서암언瑞巖彦화상은 매일, 스스로 ‘주인공아!’라고 부르고, 다시 스스로 ‘예’라고 답한다. 그리고 말하기를, ‘확실히 깨어있어야
하네!’ ‘예.’ ‘이때 사람들에게 속아서는 안 된다.’ ‘예, 예.’75)
이 공안에서 중요한 것은 주인공이 아닌 것을 주인공이라고 오 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공안은 불성을 주인공이라는 말로 표현 하였다. 이 주인공은 자아가 아니다. 자아는 항상 환경의 노예가 되어 순경을 만나면 그것에 빠져 버리고 역경을 만나면 괴롭게 된 다. 순역의 환경을 자유자재로 선용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주인공
이다. 자아는 망상이고 관념이며 착각이고 실체가 없다. 그래서 이것을 무아無我라고 하는 것이다. 무아이므로 이원대립二元對立이 없으며 모든 것이 완전히 하나이다. 서암이 參參한 주인공은 바로 이런 주인공이다. 무문無門은 평評에서, “부르고, 응답하고, 깨어있
고, 속지 않는 것 등 어디에도 ‘이것’이라고 간정看定한다면 여전히 맞지 않다. 서암을 흉내 내는 날이면 모두 이것은 야호野狐의 견해 일 뿐”이라고 했다.76) 송頌에서 “학도인이 ‘진眞’을 알지 못하는 것은 다만 여전히 ‘식신識神’을 인정함에서다. 무량겁래 생사의 본
本을 어리석은 자들은 ‘본래인’이라고 한다.”77)라고 하여 주인공
75) 無門關 ( 대정장 48 p.294b.) 「瑞巖彦和尙 每日自喚主人公. 復自應諾. 乃云 惺惺著喏. 他時異日 莫受人瞞. 喏喏.」 76) 위의 책 ( 대정장 48 p.294c.) 「一箇喚底 一箇應底 一箇惺惺底 一箇不受人瞞 底 認著依前還不是 若也傚他 總是野狐見解」
77) 無門關 ( 대정장 48 p.294b.)「學道人不識眞 只爲從前認識神 無量劫來生死 本 癡人喚作本來人 이 말은 碧巖錄 60則 評唱에 있다.
본래인을 진정 알라고 일갈한 것이다. 각 본칙의 뜻은, 승이 잘린 지렁이의 어느 쪽에 불성이 있는지 묻는 것처럼, 부르는 서암과 대답하는 서암, 그 어디가 참된 주인 공인가 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부르는 것도 대답하는 것도
모두 ‘식신識神’의 작용, ‘화풍火風’의 운동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 에 서암의 자문자답을 흉내 낸다면 야호선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 고 해서 그 속에 감추어진 ‘깨어 있어라’ ‘속지 않는 것’을 주인공 이라고 해서도 맞지 않다. 그렇다면 그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무한정하고 완전무결한 본래의 ‘주인공’-동산이 말하는 ‘주 중의 주’-을 투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의 네 문답에서 본래성인 주인공은 불성이며, 무아이며, 본 래자기이며, 진실한 자기이다. 문답의 몇 가지 내용에서 주인공에
대한 의미를 정리해 본다면, 첫째, 장사長沙는 화풍이 분산되지 않 는 것처럼 양두兩頭가 된 지렁이지만 그대로 불성이라고 하였으며 둘째, 동산은 ‘그는 나이지만 나는 그가 아니다. 그와 나는 어디서 나 있는 그대로 계합한다.’고 했으며 셋째, 동산은 객과 주(불성)
가 다름을 유지하면서 객과 주를 상즉시키는 ‘자기’가 주인공, 즉 주중의 주라고 하였다. 넷째, 부르고 대답하고 하는 식신識神의 작 용을 넘어선 것이 주인공이라고 했다. 이와 같이 본래자신이라고 하는 주인공은 주체와 객체, 자와 타
를 전제로 한 주중의 주이다. 대행이 철견한 주인공78)은 이러한
78) 대행은 주인공을 主人空이라고 하였다. 요전 에는 「나의 참 주인이니까 주인공 이요, 텅비었기에 ‘빌 공 자’ 주인공이다」라고 하였다.(한자경 「한마음이란 무엇 인가」( 禪學 44호 2016) p.217. 재인용. 필자가 참고하는 한마음요전 은 7판 본(2017)이다.) 참 주인이라고 했을 때는 主人公이라고 쓰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요전 이 한글전용이기에 主人空이라고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는지는 알
주인공의 의미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본다. 구멍(묘지)은 본래 성(주체), 아비와 자식은 현실태(객체)라고 보면 본래성은 현실태 가 되어도 현실태는 본래성이 될 수 없는 말하자면 ‘불일불이’의 의미다. ‘바로 네가 나로구나!’라고 대행은 개오하지만 ‘내가 너로
구나!’라고 하지 않은 것을 보아도 이를 알 수 있다. 또한 대행은 물에 비친 험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있는 그대로 비친 ‘험한 모습’은 본래성이 며 험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는 현실태다. 그런데 대행은 ‘홀연
히 그[부처, 험한 모습=主]’속에 진짜 ‘그[부처]’가 있음을 보았다 [見]. 이 역시 본래성[主]과 현실태[客]를 상즉시키는 ‘자기自己’이 며 바로 ‘주중의 주’이다. 대행은 이를 험한 모습에서 ‘참 나의 모 습을 다시금 확연히 보았다’고 하였다.79)
대행은 ‘반본환원返本還源’ 이후, ‘자유인의 길’로 들어선다. 제천
백련사로 향하고 그때 질병으로 앓고 있는 체 장수를 만나 신력神
수 없다. 다만 요전 에 나타난 주인공’의 의미로 보면 두 한문이 반드시 구분 지어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한마음선원에서는 주인공을 主人空으로 쓰고 있는데, 이것 역시 대행선의 특색이라고 본다. 79) 한자경 「한마음이란 무엇인가?」 ( 禪學44호 2016.) p.215. 한자경은 ①「불성사상 은 개별적 자아의 공성을 주장하는 무아사상과 다르지 않다. 내 안에서 한마음을 발 견 하기 위해서는 내가 나라고 여기는 나의 무자성성 내지 공성을 통감해야 한다. 그래야 표층자아를 통과해서 심층의 한마음에 이를 수 있다. 따라서 요전 은 한마 음사상이 무아와 모순되는 것이 아니며 진정한 무아는 오히려 한마음을 통해 완성 된다고 논한다.」 또한 p.216 ②「불성 내지 한마음이 무아를 완성할 수 있는 것은 …… 불성은 모든 중생의 본성이고 한마음은 일체중생의 본심이다.」라고 했다. 필자 는 이 두 문장의 내용이 이해가 안 된다. ①‘한마음을 발견’한다고 했는데 한마음이 어느 장소에라도 있는 것인가? ‘발견하기 위해 내가 나라고 여기는 나의 무자성성 내지 공성을 통감해야 한다.’고 했다. 무자성성, 공성이 한마음인데, 공성이 되어야 한마음을 본다고 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②에서 불성=한마음=무아이지 않는가? 불성=한마음인데 본성과 본심으로 나눈 이유는 무엇일까? 등이다.
力으로 낫게 하는 등, 원력을 가지고 ‘입전수수入鄽垂手’가 시작되 었다. 오늘 날 ‘한마음선원’의 발아發芽는 이렇게 해서 시작되었음 을 살필 수 있다.80)
V. 결어
이상 대행의 선에 대한 고찰은 다음과 같이 정리 할 수 있을 것 이다. 대행의 선은, 전통의 선을 계승하거나 선종계의 한 부류에 속하 여 또 하나의 새로운 선사상과 수행을 주장하는 그런 선이 아니 다. ‘대행선’ 자체의 독특한 선법이라고 본다. 요전 에 나타난 ‘본
성을 본다.’ ‘자성이 드러난다.’ 등의 선구禪句는 대행의 수선修禪상 에서 체험된 어언語言이지 중국 선종계나 한국의 간화선의 일맥으 로서의 선지라고 볼 수 없다. 물론 용어의 사용에 있어서 선의 사 상과 수선의 행로를 말하는 데는 같을 수는 있지만, 대행이 중국
선종이나 한국선의 선지를 모르는 분상에서 말해 놓은 용어들이므 로 순수하게 대행이 체득한 선을 이렇게 말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 다. 선지식 한암을 만나 불법을 묻는 문답은 있지만 한암을 만나기 전, 이미 현실과 본래성이 공존함을 알았고 다시 불이임을 체득한 다. 그동안 현실의 ‘나’가 내면의 ‘그’(주인공)을 따라다녔는데 이제
‘그’와 ‘나’가 소통이 되고 경계가 없어진, 말하자면 초관을 투득한 것이다. 낙발하기 전의 일이다. 24세 사미니계를 받지만 한암은, 이
80) 한마음 요전 (7판, 2017) pp.98-100
미 대행이 신심이 투탈되었음을 알고 법명을 청각으로 정하고 ‘이 제 네 길을 가라’고 부촉한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불철주야 용맹정 진으로 만행한 대행은, 현실의 ‘나’와 본래성의 ‘그’가 불일불이임을 철견하였다. 대행의 나이 30세 전이다.
대행은 중국 당대 선종계의 선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선 은 ‘평상무사’의 마조선보다 이를 비판하고 현실태와 본래성을 유 지하면서 이 양자를 상즉시키는 ‘자기’를 중요시 하는 석두계 선 에 상응됨을 살필 수 있었다.
대행의 선은 자연과 현실의 세계를 직시, 내면의 안락처를 발 견, 이를 상즉시키는 ‘자기[주인공]’를 투득하는 것 등에 나타난 다. 이것이 바로 대행선의 특색이라고 본다. 대행이 주장하는 ‘주 인공’에 대한 믿음과 주인공에 놓기, 맡기기, 지켜보기 등은 사부
대중 수행자의 근기를 헤아려 교시한 것으로 생각한다. 이는 대행 이 유년기와 10~20대의 시기에 삶과 환경과 실존에 대해 처절하 게 겪은 고통과 ‘의심’과 철학에서 얻어진 종교적 심안心安의 방법 이며, 특히 중생 본래의 주인공에 대한 확고한 믿음의 강조는 삶
의 현장에서 ‘수처작주隨處作主’, ‘자유인’이 될 수 있는 지름길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연구는 다음 기회로 미루겠다.
* 원전류 - 한마음선원 한마음 요전 (7판 2017년) - 神會 定是非論 (胡適 神會和尙遺集 民國59) - 神會 神會語錄 (胡適 神會和尙遺集 民國59)
- 永嘉 玄覺 證道歌 ( 禪の語錄 16, 東京: 筑摩書房, 1974)) - 景德傳燈錄 卷14( 대정장 51) - 瑞州洞山良价禪師語錄 ( 대정장 47) - 無門關 ( 대정장 48)
- 圜悟 克勤( 碧巖錄 ) - 入失義高編 馬祖の語錄 (京都: 禪文化硏究所 1984) - 慧謜 역해 종용록 (서울: 김영사 2018) - 梶谷宗忍 柳田聖山 辻村公一 信心銘·證道歌·十牛圖·坐禪儀
* 단행본 및 논문
( 禪の語錄 16, 東京: 筑摩書房, 1974))
- 竹村牧男 「脫落卽現成の哲學」(東京, 東洋大學校 ‘國際道元 硏究 심포지움 基調講演文 2018.7.21.-22.) - 慧禪 한마음과 대행禪 (서울: 운주사 2013) - 한자경 「한마음이란 무엇인가」( 禪學 44호 2016)
- 拙著 「근대 한국 비구니 선수행 양상과 인가에 대한 문제」 ( 대각사상 제23집 2015) - 拙著 「당~송대선의 開悟에 대한 인식 변화」( 佛敎學報 63輯)
- 駒澤大 禪學大辭典 (東京: 大修館書店 1978)
An Investigation of Daehaeng Seon
Kang, Moon-Seon(Ven, Hye-Won)
This thesis aims at investigating the course of truth seeking Venerable Myogong Daehaeng (1927-2012) took by herself and at examining her full awakening to the truth, rather than
viewing Daehaeng Seon from the standpoint of patriarch Seon, gongan Seon, ganhwa Seon, or the theory of original buddhahood. The scope of my investigation is restricted to the period ranging from Daehaeng’s childhood to her arrival at Baengnyeonsa Temple in Jecheon City in order to ‘dim her radiance and mingle with the dust of the world’ 和光同塵 as recorded in the
Hanmaum yojeon: Daehaeng sunim haengjanggi, peobeojip. My thesis is generally based on this book. Before and after Daehaeng’s teen life, Korea was in the gloomy conditions under Japanese colonial rule. On account of
dire poverty and ill-treatment by her father, Daehaeng at that time had an extremely hard time: she frequently run away from home and slept in the open air. But on the contrary this situation allowed her to thoroughly investigate such things as
‘life’, ‘uncertain self-existence’, ‘refuge’, and ‘existence’. She
pursued to find out a compassionate ‘father’ in her inner world as a replacement of her cruel father in the troubled external world. This is the starting point of Daehaeng Seon. At the age of nine, Daehaeng came to the recognition of
life through the question of “Who led me to such a state?” She looked straight on the reality of the world full of discrimination and hardship, but discovered that there is an inner world, namely ‘he(father),’ in which people can find their inherent
peace and refuge beyond this troubled world. In other words, she understood that ‘he’ and ‘I’ are coexistent. At the age of fourteen, when she met Master Hanam, she longed for seeing the actual appearance of ‘father’ with Hanam’s
compassionate nature as condition. Ten years after that, she realized that the actual ‘I’ and inherent ‘he’ are non-dual. Before, the actual ‘I’ followed the inner ‘him’[master] but now she penetrated a basic spiritual barrier upon removing the
boundary between ‘he’ and ‘I’. In 1950 when she was twenty-four years of age, Daeng became a novice nun. Master Hanam noticed Daehaeng’s capability of following the buddha-way and acknowledged that she had been free from
affliction. Hanam gave her the dharma name Cheonggak 靑覺 and entrusted her with an order that she now go her own way. Daehaeng continued her traveling practice firmly abiding in the contemplation of no-thought in which she stayed only at
the things touching to her comfortable mind. One day both at a graveyard and from her reflection in water, she reached a thorough realization that the ‘I’ in the actual world and ‘he’ in the fundamental nature are neither the same nor different.
Thereafter, in her capacity as a free person, she set off to extend compassion to all sentient beings, manifesting unrestricted competency. Daehaeng had already realized that the troubled reality
[guest] and secured inner fundamental nature [master] are both coexistent and non-dual. All Hanam did was merely to approve Daehaeng’s intent of Seon. Furthermore, Daehaeng did not know about the Chinese Chan (Seon) in Tang China. However, rather
than being in the style of the ‘ordinary mind is free from troubles’ 平常無事 of Mazu Daoyi 馬祖道一, Daehaeng Seon corresponds to the lineage of Shitou Xiqian 石頭希遷 because Shitou Chan emphasizes the original self whose aspects in the
actual world and fundamental nature are not rejected but maintained as they are, and considered as non-different. Like this, we can find that Daehaeng Seon embraces in Seon all the activities such as looking straight on both the
nature and actual world; thereby finding out an inner refuge; and realizing one’s ‘original self’ in which one can reach the union of various phenomena. I think this features prominently in Daehaeng Seon.
[Keywords]
Venerable Myogong Daehaeng, Hanmaum yojeon, Master Hanam, Cheonggak, a free person, Shitou Xiqian
대행선연구원 운영진
고문 법산 스님(동국대 명예교수) 보광 스님(동국대 총장)
이사장 혜수 스님(한마음선원)
원장 이평래(충남대) 연구실장 혜선 스님(한마음선원) 편집장 이덕진(전 창원문성대) 객원연구원 이상호(한마음과학원) 객원연구원 이석환(동국대)
학술운영위원회
주지 혜솔 스님(한마음선원 안양본원)
이평래(원장,충남대)․강혜원(동국대)‧고영섭(동국대)‧권탄준(금강대)‧김 광식(동국대)‧김영덕(위덕대)‧김용표(동국대)‧김응철(중앙승가대)‧김현구 (전남대)‧송현주(순천향대)‧안성두(서울대)‧윤창화(민족사)‧이자랑(동국 대)‧정준영(서울불교대학원대)‧차차석(동방문화대학원대)‧최종남(중앙승 가대)‧황순일(동국대)
편집위원회 이덕진(위원장, 전 창원문성대)․강소연(중앙승가대)‧강혜원(동국대)‧고승 학(금강대)‧고영섭(동국대)‧김호귀(동국대)‧윤종갑(동아대)‧임승택(경북대)
l 휘보彙報 l
The Journal of Hanmaum Studies
[Vol.1 2018. 8]
The Center for Daehaeng-Seon Studies Hanmaum Seonwon Buddhist Temple 1282 Gyungsudae-ro, Manan-gu, Anyang-si, Gyeonggi-do, 13908, Korea
Lee, Pyong-Rae Regarding Hanmaum, the Essense of Daehaeng Seon Kim, Gwang-sik Innovative Buddhism Shown in the Account of Conduct of the Seon Master Daehaeng
Kim, Ho-Gui The Philosophical Background of ‘Daehaeng Seon’ -Regarding the Thought of Inherent Buddhahood- Park, So-Ryung A Study on the Doctrinal Foundation of Ven. Daehaeng's Hanmaum Thought
Cha, Cha-Seok A Study on the Philosophical Features and Origin of Ven. Daehaeng's ‘Awareness of Five Sharings’ Kang, Moon-Seon(Ven, Hye-Won) An Investigation of Daehaeng Seon
Lee, Duck-Jin A Study of Ven Daehaeng ‘Juingo
한마음연구 제1집
2018년 8월 31일 인쇄 2018년 8월 31일 발행 발행인 : 전희성(혜수) 편집인 : 대행선연구원 편집위원회 인 쇄 : 동신CNP 발행처 : (재)한마음선원 부설 대행선연구원 13908.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경수대로 1282 대행선연구원 TEL : 031)470-3276, 3277 / FAX : 031)470-3116 E-mail : ds7788@hanmaum.org Homepage : www.daehaeng.org
ISSN : 2635-683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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