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니와 쓰리리더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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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어린나이에 김대중대통령을만났습니다. 그것이제인생의시계를 돌려놓으리라는것을 그때는미처몰랐습니다.”
( 2021. 8.13. 전남목포에서)
1970년여니는서울대법과대학신입생이었다. 40대의김대중은처음으로대통령선거에도전했다. 야당후보를결정하는마지막투표에서김영삼을제치는대역전극을펼친 김대중은연설에나섰다. 1971년4월18일장충단공원에서 박정희정권에날선비판을하며열변을토했다. 거리에가득메운백만인파가운데청년여니도있었다. 20대법대생은김대중의연설을들으며가슴이뜨거워졌고, 세상을어떻게봐야 할지눈떠갔다.
1987년, 두사람은대면했다. 김대중이대통령선거에두번째로도전장을냈을때동아일보의정치부기자 여니는전담기자가되어전국순회유세를함께다녔다. 승용차옆자리는여니의지정석이었다. 동교동서재에출입할수있는특권도갖고있었다. “왜그리이낙연기자를아끼시냐?” 는 참모진이묻자김대중총재말씀. “이기자는사실을왜곡하지않네! 진실한사람이지.”
2년뒤김대중총재는여니에게정치를해보라긴급제안했다. 그러나여니는내정된도쿄특파원을선택했고, 3년2개월간더큰세상을경험하고돌아왔다.
그로부터10여년뒤1998년제15대대선에서승리한 김대중대통령은여니에게재차정계입문을제안했다. 고심끝에2000년16대총선에출마해 전남함평·영광지역의국회의원이되었다.
여니는김대중대통령으로부터정치, 정책, 철학등을배웠다. 김대통령의‘서생적문제의식과상인적현실감각’을가슴에새기고, 판단의주요기준으로삼아왔다.
여니에게김대중은‘큰바위얼굴’이었다.
“
나는하나님께감사를드려야한다. 김대중대통령님처럼위대한인간을 내나이스무살부터가까이서뵐수있었던것은 하나님의축복이아니고서는불가능하다. 나는김대통령님께영원히감사를드려야한다. 그분이계셔서나는행복했고, 충실했다. 아직나는김대통령님의명복을빌준비가되어있지않다. 나에게 김대통령님은아직도살아계신다.
(2009년8월18일김대중대통령서거추도사)
”
우리가김대중대통령님처럼위대하지는않습니다. 그래도우리는당신의길을함께걸었고, 당신의꿈을함께꾸었으며, 당신의아픔을함께아파했습니다. 그것이우리의행운입니다.
(2017.12.7. 김대중대통령노벨평화상수상17주년기념식축사)
”
여니와노무현대통령과의인연은정치를하면서시작됐다. 2000년에정계입문한초선의원여니는새천년민주당대변인이었다. 노무현은2002년새천년민주당의제16대대통령후보로선출되었다.
대변인시절가장유명한논평은바로 “지름길을모르거든큰길로가라. 큰길도모르겠거든직진하라. 그것도어렵거든멈춰서서생각해보라.” 이는노무현대선후보교체를 요구하면서탈당하는의원들을겨냥하며노무현후보를엄호한말이었다.
2002년16대대선은하루전날밤까지반전을거듭했다. 이회창한나라당후보와의경쟁끝에승자가된 노무현대통령당선인은여니를계속대변인으로동행시켰다. 그의논평은노무현다운화법과의지를드러내는것으로유명했다.
“노전대통령은취임사를돌아가며쓰게하셨는데, 다마음에안들어하셨습니다. 결국은당시이낙연대변인이펜을들었는데, 한자도안고치고‘오케이’ 하셨어요. 그글을보니알수있었습니다. 대통령께서하고싶은말씀이무엇이었는지. 경이로운경험이었습니다. ‘보통사람이아니구나!’했습니다.”
( 참여정부연설비서관강원국씨의회고담. )
”
노무현대통령은여니를신뢰했다. 분당사태로창당된 열린우리당합류도권했고, 청와대에서함께일하자요청했다. 여니도고민했지만결국‘민주당’을지켰다.
대선과정에서생긴갈등은계속됐고, 야당이된민주당은다른야당들과공조해 대통령탄핵을추진했다. 탄핵소추안찬반투표에재적의원271명중195명 의원이참여한결과, 찬성이193명반대2명이나왔다. 반대표를던진두명 의원은자민련의김종호의원, 민주당의이낙연으로밝혀졌다. 당시분위기로 초선의원이당론을거스르기는쉽지않은일. 그러나여니는소신을지켰다. 후에총리가된뒤<노무현과바보들> 영화관람이후여니는당시탄핵 반대표를던진이유를이렇게밝혔다.
“특별한철학이라기보다는정치가그럴것까진아니라고생각했습니다.”
2017년노무현전대통령서거9주기에봉하마을을찾았다. 참배이후방명록에생전에털어놓지못한아픈고백을적었다.
“나라다운나라로사람사는세상이루겠습니다. 당신을사랑하는못난이낙연.”
노무현대통령과함께한시간을여니는 ‘인생에서가장충실하고치열했던기간’이었다면서 ‘행복한대변인’이었다고회고했다.
문재인대통령과여니는‘용광로’에서만났다. ‘용광로’는2012년문재인대통령선거대책위원회이름이다. ‘통합’을과제로두사람은정치적공감대를형성했고, 2017년에대통령과총리로만났다.
인수위원회없이시작되는만큼국정안정은시급했다. 문대통령은그적임자로여니를초대총리로지명했다. 여니는오래준비해온듯총리직을수행했다.
메르스·조류인플루엔자·아프리카돼지열병·산불·태풍·지진같은위기에 성공적으로대처했다. 총리퇴임때대통령이‘재난·재해대처경험을 책으로한번써보라’라고권유할정도였다. 28개국을다니며‘총리외교’를수행했다. 대통령이내주신전용기를대부분타고오갔다.
여니의조용하게일을성공시키는방식은 국정의안정감과신뢰를높였고 문재인정부최고의인사라는말까지나왔다. 2년7개월13일, 민주화이후의최장수총리. 40%를넘는높은국민지지를유지했다.
훗날총리를마치고나와여니는
누구에게도공개하지않았던사연을털어놓았다.
“
사실총리지명에대해서는발표1년전에들었어요. 당시저는그래서는안된다. 사람일은어찌될줄모르고인사는미리하면안된다했어요. 아내에게도내색을안했어요.
”
문재인대통령에게는의정활동중에봐왔던여니의실력, 대통령탄핵사태에서보여준소신이깊이각인됐을것이다.
총리를마친뒤로여니는2020년21대총선에종로에출마, 5선에성공했고당대표에올랐다. 문재인대통령과더불어민주당지도부는'원팀' 정신을되새기며 코로나19 위기극복에총력을기울였다. “지금당정간여러관계는환상적이라고할만큼좋은관계”라는 문대통령의말에여니는 “당·정·청은운명공동체”라며책임을다하겠다고화답했다.
대통령
다정한친구처럼, 그러나존경과정성으로서로를대하는모습은 우리정치사의새로운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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