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북으로 보기

구술사로 만나는 당진포구Ⅰ - 신평, 송산편

이북 원문에서 글자만 옮긴 전체 텍스트입니다. 표·그림·사진과 원래 모양은 이북에서 확인하세요.

6쪽

오섬포구

지도로 보는 당진 포구 - 송산, 신평

시루지

섬돌매포구

도랑운포구

북창포구

성구미포구

7쪽

마항포구

행담포구

음섬포구

깔판포구

맷돌포구

운정포구

8쪽

글 싣는 순서

서문 일러두기

제1부 당진 해안 경관의 역사적 변천

1장 당진 해안 취락과 어민 1. 자연, 인문적 배경 2. 당진의 해안 취락 3. 당진의 어민 현황

3장 신평, 송산 지역의 포구들 1. 신평의 포구 2. 송산의 포구

2장 신평, 송산 해안 경관의 변천과 어민 1. 간척에 따른 경관의 변화 2. 해안 공단화 및 산업화로 인한 변화 3. 신평, 송산 어민들의 생활 문화 변천사

제2부 주민들이 들려주는 신평 포구 이야기

1장 음섬포구 2장 맷돌포구 신평 여성 어민들의 삶 1 – 김명현 씨 신평 여성 어민들의 삶 2 – 이입분 씨 연안어업 부부조업 – 박상진, 차준희 부부

… 009 … 015

… 019 … 024 … 028

… 031 … 039 … 042

… 047 … 050

… 055 … 068 … 084 … 093 … 099

9쪽

6장 마항포구

포구별 구술자 참고자료

3장 깔판포구 1. 깔판포구에 정착한 피난민 – 이강선, 김홍난 부부 2. 신평어촌계장 – 손기호 씨 4장 행담포구 5장 운정포구 1. 1950년대 선주 고 김수남 씨 일가 – 김영분, 김상래 씨

제3부 주민들이 들려주는 송산 포구 이야기 1장 성구미포구 1. 성구미에 마지막 남은 어부 – 우동기 씨 2. 가곡리 일대 염전에 대한 기억 – 조영덕, 유희준, 손국현, 정치웅 씨 3. 성구미 건어물 상회 할머니들 – 김태용, 이간난, 전병례 씨

2장 오섬포구 1. 최고령 주민을 통해 본 오섬의 산업경제상 – 고간난 씨 3장 가곡리와 동곡리의 나루터 : 두포, 은포, 칠성포, 은골 4장 서원포구(중선골) 5장 북창포구(굼벙골) 6장 도랑운포구 7장 섬돌매 8장 시루지 1. 초대 가곡어촌계장 – 유금준 씨

9장 기타 : 소산포, 함박포, 화포

… 110 … 116 … 121 … 129 … 140 … 154

… 162

… 169 … 182 … 198 … 209 … 220 … 234

… 242 … 249 … 256 … 264 … 267 … 270 … 277 … 286

… 288 … 295

11쪽

서문

이 책은 간척사업 등으로 인해 변모한 당진 지역 포구에 대한 관심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자연의 변화는 고스란히 인간의 삶에 영향을 끼치기 마 련이다. 바다가 막히면서 자연히 갯벌과 포구가 사라지고, 이는 곧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지역주민들의 이주 혹은 생업의 소실로 이어졌다. 십 수 년 전만해도 해안취락을 이루고 주민 대다수가 수산업에 종사했 던 마을은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럼 그곳에 살던 주민들은 어디로 갔을까. 50년 전 만해도 지금 흐르는 마을의 실개천을 따라 인천행 여객선 이 다녔다는데, 당시의 마을 풍경과 주민들의 삶은 어땠을까.

12쪽

구술사의 의미와 중요성 구술사란 개인이 기억하는 과거사건과 행위, 그에 대한 해석을 면접과 육성구술을 통해 기록으로 채록하는 사료수집방법이다. 나아가 구술기록 을 토대로 과거를 연구하는 역사학 방법론을 의미하기도 한다. 구술사는 주로 문서기록에만 의존하던 전통적인 역사사료의 범위를 일반 대중의 기 억으로 전면적으로 확대시킨다. 특히 스스로 문서기록을 남길 수 있는 능 력이나 기회를 갖지 못한 민중의 체험과 기억을 역사 담론의 장으로 끌어 낸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 『교육평가용어사전』 오성철, 2004, 학지사

다시 말해 구술사는 문자로 기록되어 공식화되지 않은 사건이나 소소 한 시민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억을 통해 남기는 작업이다. 이런 작업은 특히 국가의 역사물에 비해 협소한 지역 향 토사의 공백을 메워주기 위한 연구 방법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예컨대 향 토사 관련 서적을 찾아보면 1970년대 성구미포구에 대한 개략적인 규모 나 위치 등에 대해서는 알 수 있지만, 당시 성구미에 살던 주민들의 주요 소득원과 공동체문화 등 지역민들의 삶과 정서까지는 알기 어렵다. 그 부 족한 부분들을 채워갈 수 있는 것이 구술사의 역할이자 의미라 할 수 있다.

‘구술사’ 인문사회과학연구의 중요한 영역 국내에 구술사가 소개된 지는 약 30년 정도 되었다. 2000년 이후 구술 사 연구는 다양한 기관에서 주목하며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인문사회과학

13쪽

연구에서 중요한 연구영역으로 여겨지며 근현대사를 다루는 중요한 연구 방법으로 다뤄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지역사 연구에서 구술사가 많이 다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대현사에서 일어났던 지역의 역사적 사 건을 기록하기 위해 실제 현장에서 사건을 경험한 지역주민들이 구술증언 자로 나서는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문헌에 기록되지 않은 주민들의 진짜 포구 이야기 이 책의 토대가 된 ‘당진포구문화구술연구 – 신평, 송산편’ 은 포구를 중

심으로 주민들의 생활문화 변천사에 대한 조사로 이뤄졌다. 특히 주민들의 구술 인터뷰를 통해 연구 자료를 수집함으로써 문헌에 기록되지 않은 당진 포구 주민들의 실제 생활상을 기록한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그 첫 번째 연구 대상지역은 신평면과 송산면에 형성된 포구로 사라진 포구도 포함되었다. 연구진은 대상 지역 주민들을 중심으로 포구의 변천 과정을 면담하는 등 구술 자료를 조사, 수집하였다. 구술 인터뷰 대상자는 포구에 오랫동안 거주한 주민과 대를 이어 포구 에서 어업 활동을 해온 어민, 포구가 사라지기 전 거주했던 이주민 등을 포 함한다. 특히 마을 노인회를 중심으로 한 집단 인터뷰를 포함하여 당진 해 양지역 집단의 기억 및 사회상도 함께 수집하였다.

1 ‘송산 시루지, 신평 마항포구를 아시나요’, 당진시대 1280,1281호 사업명 : 당진포구문화구술연구 – 신평, 송산편, 발주처 : 당진시 문화관광과, 책임연구기관 : 당진시 2 대방송미디어협동조합, 용역기간 : 2019년4월-11월

14쪽

구술대상자는 대게가 산업화 이전과 이후 포구의 변화를 직접 경험한 지역민들이다. 이들의 생애사는 곧 당진의 생생한 현대사이자 해양문화 사였다. 연구진은 지역의 산업 발전을 위해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밀려난 주민 들, 그들이 일생 동안 삶을 일궈 온 포구를 중심으로 형성된 주민생활문 화의 변천사를 기록했다. 특히 해양문화와 관련해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 았으나, 주민들 사이에서 구전으로 이어져 오는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야 기를 담았다. 한편 구술사 연구의 특성상 연구 목적에 적합한 인물의 생존, 건강, 이 주 등 신변문제로 자료 수집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조사과정에서 주요 구술대상자로 지목된 주민이 사망했거나 타 지역으로 이주해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가 빈번했다. 이 같은 연구의 어려움은 곧 본 연구의 의미와 중요 성, 시급성을 동시에 말해준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당진포구문화구술연구용역 – 신평, 송산편’의 연구 성과를 대중들이 읽기 쉬운 텍스트로 재구성한 것이다. 당진시와 당진시 대방송미디어협동조합의 연구진은 무엇보다도 ‘당진포구문화구술연구용 역’이 종료된 이후, 그 결과물이 아무도 찾지 않는 공문서로 책장에만 꽂혀 있지 않길 바랐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듣던 옛날이야기’처럼 우리 지역의 역사가 오랫동안 잊히지 않고 전해지고 회자되길 바랐다. 더 많은 시민과 대중들이 공유할 수 있는 방법으로 찾은 것이 ‘스토리텔링 기

15쪽

법을 활용한 구술사’와 ‘대중 서적 발간’이었다. 이 책에 기술된 내용의 연구 범위나 대상은 ‘당진포구문화구술연구용 역’과 동일하다. ‘당진포구문화구술연구용역’은 구술 면접자의 기억을 토 대로 하는 연구인만큼 증언이 가능한 인물의 연령대를 고려해, 포구의 범 위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내로 제한했다. 더불어 포구로 통칭되는 포구, 항구, 나루 등을 모두 통틀어 집대성한다는 목표 아래 송산면과 신평면 두 개 지역의 총 20개 포구가 연구 대상지역으로 설정되었다. 나루 중에서는 운송 교통보다 어업이나 새우젓, 수산물의 교류가 있었던 곳을 위주로 선 정했다. 한편 송산지역의 경우 지명으로 남은 포구 이외에도 지형의 특성 상 배는 정박하지 않았으나 다양한 형태의 어업이 활발하게 이뤄진 해안 가, 문헌상 기록되었으나 이를 목격하여 구술할 수 있는 주민을 찾지 못한 포구 등이 존재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따라서 이 같은 지역은 기타 지역 으로 분류했다. 제1부 당진 해안 경관의 역사적 변천에서는 이 책의 연구 배경이 되는 정보로서 당진의 해안을 중심으로 형성된 취락과 어민들의 현황에 대해 간략히 다루고 있다. 특히 신평과 송산 지역의 간척사업과 공단화, 산업화 로 인한 해안 경관의 변화에 대해 적었다. 이는 신평과 송산 지역 어민들의 생활 문화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배경이다. 제2부와 제3부는 각각 주민들의 들려주는 신평과 송산의 포구 이야기 다. 포구의 시대별 어업 현황과 특징, 주민들의 생활 문화상을 구술자들의

16쪽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누구나 읽기 쉽게 풀어냈다. 기본적으로는 포구 를 중심으로 기술했으며, 일부 구술자 중 내용이 풍성하고 의미 있는 사연 을 간직하고 있는 경우에는 별도로 그 이야기를 다루었다. 당진의 풍경은 하루가 다르게 변모해 가고 있다. 전형적인 농어촌 도시 에서 산업화 도시로 변하면서 주민 구성도 끊임없이 바뀌었다. 하지만 여 전히 당진이란 도시의 주인은 시민이며, 그 역사의 주체 역시 시민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구술자 대부분은 수십 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당 진의 시민이다. 변화 속에서 지속하는 시민들의 삶은 곧 도시의 역사와 문 화를 구성하는 중요 요소라 할 수 있다. 얼핏 보면 시시콜콜한 이야기 같 은 이들의 지난 과거가 곧 ‘당진의 역사’인 이유다. 이들이 들려주는 당진 의 포구 이야기를 통해 해양도시 당진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미래 비전 확 립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더불어 들춰볼 때마다 쓰라린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사를 기록한다 는 연구 취지에 동의하여 카메라 앞에서 지나간 개인사를 가감 없이 구술 해 주신 74명의 구술자들에게 지면을 빌려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특히 옛 포구와 지역의 모습이 담긴 소중한 사진 자료를 내어주신 김용태

우동기, 이입분, 표선동님께 감사드린다.

우현선 (당진시대방송미디어협동조합)

2020년 10월 12일

17쪽

일러두기 1. 이 책은 2019년 당진시에서 진행한 ‘당진포구문화구술연구용역 신평, 송산편’ 결과를 바탕 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2. 구술채록문의 경우 독자가 읽을 때 난해하지 않을 범위 안에서 구어체, 사투리 등을 살려 현 장성을 전달하고자 하였습니다. 3. 구술 내용 중 사실을 재확인하거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괄호나 각주를 활용해 부연했습니다. 또한 일부 구술 내용을 이야기의 흐름에 맞게 생략하거나 중 략하기도 하였습니다. 대신 부록으로 전사본(처음 구술문을 그대로 채록한 초본)을 별도로 발간하였습니다. 4. 구술자의 구술 내용은 편집과 교정 과정에서 최대한 사실 관계를 확인하여 정리하였습니 다. 다만, 사진 자료의 연도, 개인의 생활사 등 일부 확인되지 않은 사항이 있을 수 있습니다.

21쪽

1. 자연, 인문적 배경

1장 당진 해안 취락과 어민

인간과 자연은 역사가 기록되기 전부터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 해 왔다. 이 같은 이유로 당진의 포구를 중심으로 변화해 온 주민들의 생 활문화를 살피기 전, 지역의 자연 조건과 인문 조건을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개략적인 자연 조건으로 당진의 기후조건을 살펴보면, 당진시는 북반구 중위도에 위치하여 냉대 기후와 온대 기후의 점이지대에 속한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에 위치하여 동계에는 대륙 기단의 영향을 크게 받 는다. 따라서 하계에는 남태평양 기단의 영향을 받아서 한서(寒暑)의 차가 큰 대륙성 기후를 보이며, 겨울에는 삼한 사온, 여름에 고온 다우의 기후특

22쪽

성을 이룬다. 또한 대륙과 해양의 영향이 계절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 때 문에 중위도 편서풍의 영향보다는 계절풍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당진시 는 충청남도 북서부 해안에 위치하여 한반도 북부와 남부 사이 점이적 기 후 특징이 나타나며, 중부 내륙 지방보다 바다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특히 대나무의 북한계선이 당진 지역을 통과하여 천안 북부를 지나고 있다. 기 온은 1월 평균 -0.8℃, 8월 평균 23.6℃로서 연평균 기온은 12.3℃이다. 기 온의 연교차는 25.9℃ 정도로서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 특성을 보인다. 바 람은 여름에는 남동, 남서 계절풍이 불어 장마와 태풍의 영향을 받으며, 겨 울철에는 차가운 북서 계절풍이 탁월하여 북서부 석문, 송산, 신평면 일대 의 해안에는 파도가 높이 칠 때가 있다. 평균 강수량은 1,000.1㎜로서 한 반도 평균보다 다소 낮은 편이다. 당진 지역은 여름이 대략 4개월 정도로 겨울과 비슷하다.

당진 해안지역이 속한 아산만은 우리나라에서 조수 간만의 차가 가장 큰 곳이다. 대조기 시 삽교호 지역은 8.31m이며, 소조기 시 삽교호 지역은 3.45m로 나타났다. 따라서 당진 북부 해안의 만조 시 최대 조차는 약 9m 내외로 추정된다. 이것은 부산 앞바다가 2~3m인 것에 비하면 굉장히 높 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의 조차는 아산만을 최고 기점으로 시작하 여 남쪽과 북쪽으로 가면서 낮아진다. 당진 신평면의 북부 해역 염분 농도

3 디지털당진문화대전, http://dangjin.grandculture.net/, 당진시, 2018

23쪽

는 해수역이 32.52~34.33‰인데 비해서, 담수의 영향을 받아서 겨울에는 평균 28.86‰, 가을에는 31‰로 다소 낮게 나타났다. 수소 이온 농도(pH) 는 약 7~8 정도, 투명도는 1m 내외, 용존 산소는 10㎎/ℓ 내외로 해역 수 질 등급인 Ⅱ등급 수질 기준을 유지하고 있다.

리아스식 해안의 특징이 두드러지는 아산만 일대는 너른 갯벌의 조성으 로 오래전부터 서해안의 대표적인 황금어장이었다. 이러한 자연 환경은 곧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주민들의 생활양식과 문화에도 영향을 끼쳤다. 충청해역은 출입이 심한 리아스식 해안이며 장항에서 아산만 사이에 이 르는 여러 섬들과 크고 작은 만으로 이루어져 침수해안의 특색을 나타낸 다. 충청남의 해안에는 아산만, 가로림만, 천수만, 비인만 등 여러 개의 만 이 있어 해안선의 변화가 크다. 경기만 남안의 남양만에 연이은 아산만의 만입과 그 서쪽에 연한 태안반도 등이 전형적인 리아스식 해안을 이룬다. 특히 경기도와 경계인 아산만은 한반도에서 내륙으로 가장 깊숙이 발달하 고 있다. 아산만으로 유입되는 삽교천, 곡교천, 무한천이 주요 하천들이다. 이들 강을 이용하여 만 깊숙이 들어온 배들이 내륙과 소통하였다. 그러나 간척으로 인하여 서해안 최대의 만이 사라지게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의 당진해역은 상전벽해 수준으로 변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 같은 지리적, 자연적 환경에 따라 나타나는 당진 해양지역의 가

디지털당진문화대전, http://dangjin.grandculture.net/, 당진시, 2018 4 5 주강현, 『해양민속을 통해 본 당진의 문화적 성격』, 2014. 15쪽

24쪽

장 대표적인 문화적 특징은 ‘개방성’이다. 이는 곧 내포의 해안지역에 공통 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하다. 당진이 속한 내포문화는 서해로 향해 열린 관문적 성격이 강하다. 지리 적으로 중국과 서울, 그리고 호남지역을 사이에 둔 삼각지대로 개방적인 문화교류를 해왔다. 서해안을 따라 발달한 ‘바닷길’이 일찍부터 내포만의 독특한 문화권을 형성하게 하였다. 내포의 서해안은 일찍부터 삼남의 조운 로가 형성되어 있어서 충청도 이남의 세곡을 경도로 운송하기 위해 반드시 경유해야만 했던 곳이다. 이 바닷길은 흡사 오늘날의 철도교통이나 고속 도로망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도 좋을 만큼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커다 란 역할을 하였다. 저 멀리 고대의 선사문화나 백제문화는 논외로 하더라 도 바다는 내포인들에게 내륙의 깊숙한 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다 줄수있는 문화전파 루트였다. 우리 역사에서 대외적으로 바닷길이 개방되어 있을

때, 내포는 바다를 통한 외국문물 수용의 창구 역할을 했다.

6 『내포의 역사와 문화』,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2015. 8쪽

25쪽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중 당진 지역 일부를 편집한 것이다. 당진의 복잡한 해안선이 눈에 띈다. (지도 제공 : 당진시 문화관광과)

26쪽

내포문화는 ‘열린 출구, 관문’으로서 새로운 변화에 매우 빠르게 대처한 개방과 선진, 다양성을 보인다. (중략) 내포지역 역사문화의 특성을 정리 하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으니, 1 개방성, 2 다양성, 3 자립성이 바로 그 것이다. 내포지역 역사문화의 특성은 첫째 ‘개방성’에 있다. 서해와 접하며 대외적으로 바닷길이 개방되어 있을 때에는 외국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 하는 창구역할을 하였으며, 이곳을 통해 고대 불교문화가 전래되었고 항, 포구가 발달하게 된다. 외부와의 교류가 빈번하였고 그 속에서 협력이 이 루어지며 내포로서의 지역적 정체성을 형성하였다.(중략) 서해안 지역에 개간과 간척을 통해 스스로 삶을 개척하는 자립적 특징이 민속에 나타나 며 이는 갯벌과 간척, 어염의 이익과 상업의 발달, 농업의 발달 등으로 나 타나게 된다.

2. 당진의 해안 취락

우리나라의 해안과 도서지방의 취락형태를 살펴보면 어업과 반농반어 를 생업으로 하는 임해촌이 많다. 특히 서해안의 경우에는 리아스식 해안 으로 만입은 많으나 간석지가 넓어 선박출입이 곤란하여 해안가에서도 어 업과 관계없는 순농촌이 많다. 어촌의 경우는 반도의 돌출부나 강어귀에

7 『내포의 역사와 문화』,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2015. 16쪽

27쪽

입지하며, 그마저도 주민들의 대다수가 어업에 종사는 순어촌의 경우는 많 지 않다. 당진의 경우에도 반도의 돌출부와 바다와 하천이 만나는 길목에 해안취락이 형성되어 있다. 해안취락에 거주하는 상당수가 직접 어선을 운 영하거나 어업에 종사하였으나 산업화로 도시의 개발이 확산되면서 전업 (專業) 어민의 수가 급격히 감소하였다. 한편 해안취락에서는 농업에 종사 하는 주민들이라도 농한기 등을 이용해 갯벌에서 조개, 굴 등을 채취하는 맨손어업을 겸하는 경우가 흔하다. 어촌의 수산물은 농촌의 농산물과 달리 내구성과 보존성이 떨어지기 때 문에 교환경제의 성격을 갖추고 있으며, 따라서 어촌에는 가공 및 유통산 업이 공존하고 있다. 어촌의 일반적인 구조는 해안, 선착장과의 접근성 및 공동작업의 필요성 때문에 가옥이 밀집하는 경향이 있어, 보통 가옥들은 해안선 또는 해안도로를 따라 열촌을 형성하며 가파른 고지대까지도 어가 로 점유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어촌에는 어업을 지원해 주는 선구상, 석유 상, 어획물을 취급하는 어물상 등 상점들과 식당, 주점, 여관 등 서비스업 소들이 들어서 있어 취락의 기능과 형태에서 도시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 으며, 규모가 큰 어촌에는 물양장은 물론 냉동공장과 어판장, 가공시설도 갖추고 있어서 어촌경관의 특징을 이루고 있다.

『 경기지역의 향토문화』 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461~464쪽 8 정치영, 경기지역의 촌락

28쪽

신평면 운정리에 위치한 맷돌포구와 해안취락.

29쪽

당진은 서해안에 위치하고 있는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일찍부터 해안 취락이 형성되었다. 당진은 동북서가 해안과 접하고 있어 비교적 교통을 이루고 수산업을 하기 위해 많은 포구가 형성되었으나 산업화 과정에서 포구의 어촌 형태 를 갖춘 곳이 점차 감소하고 있다. 우강면의 공포리, 신평면 매산리 맷돌포, 송악면 한진리, 내도리, 송산면 성구미, 고대면의 보덕포, 석문면의 웅포, 장고항, 교로리, 당진포리 등은 어촌 형태의 취락 분포를 형성하고 있다.

당진의 해안취락은 크게 아산만의 만입지역에 형성된 포구를 중심으로 형성된 곳과 각종 방조제 및 간척 사업 이전 현재의 하천을 따라 바닷물이 드나들던 내륙에 형성된 곳으로 나뉜다. 해안가에 형성된 당진의 포구 마 을은 서해안의 해안취락이 갖는 특징을 잘 보여준다. 반면 신평의 말목과 송산의 북창과 같이 내륙에 형성된 포구는 어선이 출입하고 일부 주민들 이 어업에 종사하였을 뿐, 사실상 촌락의 형태는 농촌에 가까웠다. 이들 포 구는 수산물과 농산물의 물물교환처 혹은 큰 도시의 항구로 나아가는 교

9 『당진군지』 상편, 1997년, 당진군, 169쪽

통의 요충지로서의 역할을 했다.

30쪽

3. 당진의 어민 현황

당진은 도시의 2/3가 바다에 접해 있으며 수산자원이 풍부하지만 도 시화와 산업화에 밀려서 일부지역을 제외하고는 수산업의 규모는 축소 되었다. 당진의 어가인구는 해수면어업의 경우 2005년 5,795명에서 2010년 4,602명으로, 내수면어업 어가종사자는 2008년 352명에서 2010년 69 명으로 감소했다. 2010년 기준 어가인구(해수면+내수면)는 같은 시기 당 진 전체 인구(62,076세대, 148,337명)의 3.14%에 불과하다. 전체 어선보 유 현황 역시, 2002년 당진시 전체 총 718척에서 2006년 627척으로 다시

2012년 587척, 2017년 543척으로 감소해왔다.

10 통계수치는 『당진통계연보』 2007, 2018, 당진시 참고

글이 없거나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쪽은 뺐습니다. 이북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