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육아는 행복해 함께 키우는 육아 이야기 수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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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안녕하십니까. 부산광역시육아종합지원센터 센터장 김정신입니다. 어느덧 2023년도 막바 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올 한해, 여러분의 육아는 안녕하셨나요? 흔히 육아는 불빛이 보이지 않는 끝없는 터널을 지나는 것과 같다고들 이야기합니다. 그길고긴 터널 속에서도 한줄기 빛을 찾아 하루하루 부단히 걷고 계실 부모님들의 안부를 여쭙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육아를 하며 겪게 되는 어려움은 무엇인지 부모님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 이고, 어떻게 그 어려움을 지원할 수 있을지 방법을 찾고 싶었습니다. 수많은 고민 끝에 저희가 찾은 것은 바로 ‘함께’의 힘과 가치였습니다.
사실 ‘라떼’만 해도 아이들은 대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정을 배우고, 주변 이웃들과 온기를 나 누며 자라왔습니다. 서로 정이 들어 사촌 형제나 다를 바 없이 가까운 이웃을 뜻하는 ‘이웃사 촌’이라는 단어만 봐도 알 수 있지요. 하지만 맞벌이부부 증가, 핵가족화 등 사회 구조의 변화와 함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이웃 간 소통과 교류는 점차 줄어들게 되었고, 그 어떤 세대보다도 많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는 반면 사회적 관계는 결핍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에 올해 센터에서는 ‘함께’하는 육아의 힘과 가치를 전하고자 부모 자조모임 기반의 ‘육아 는 행복해’ 육아공동체, 온라인 육아소통 채널 ‘육아공감 토크방’, 공동체 중심 육아 우수사례 발굴을 위한 ‘함께 키우는 육아 이야기’ 공모전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사업에 참여하신 부모님들께서는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운다는 것만으로도 서로 강한 유 대감을 느꼈고, 육아전쟁 속에서 다져진 끈끈한 전우애로 많은 위로와 용기를 주고받을 수 있 었다고 하셨습니다. 공모전 수상 덕분에 육아하며 집 나간 자존감이 되돌아온 것 같다고 하신 분도 계십니다. 센터에서 운영하는 사업을 통해 많은 부모님들께서 만족감과 자신감을 얻으셨 다면 그것보다 더 큰 성과가 어디 있을까요.
보다 많은 영유아 부모님들께서 ‘혼자’하는 외로운 육아에서 벗어나 ‘함께’하는 행복한 육아 를 경험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분 한분의 소중한 이야기를 엮어 「2023 ‘육아는 행복해’ 함께 키우는 육아 이야기 수기집」을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수기집을 통해, 혼자 걸어가면 쓸쓸한 터널길도 둘이서 셋이서 함께 걸어가면 꽃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 뒤에는 나와 함께 걸어줄 수많은 사람들과 기관들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부산시내 모든 영유아 부모님들께서 “육아는 행복해!”라고 외치게 되는 그 날까지 부산광역 시육아종합지원센터도 든든한 육아지원군이 되어 함께 걷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공동체 와 함께하는 육아의 가치를 실현하고 계신 모든 분들을 존경하고, 또 응원합니다.
2023. 12. 19. 부산광역시육아종합지원센터 센터장 김정신
Ⅰ
대상 최우수상
우수상
장려상
육아 이야기 수기집
공모전 수상작
2023년 ‘함께 키우는 육아 이야기’
꽃을 키우는 정원사들 … I 정미영 … … 07 온 마을이 키우는 아기 I 백희원 … … 11 내가 끄떡없는 이유 I 신정아 … 15 애둘이라 행복해♡ I 김민주 … … 18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 I 정지예 … … 22 워킹맘의 소중한 인연들 I 정차순 … … 26 초보엄마의 육아 나침반이 되어준 육아종합지원센터 I 한민아 … … 29 우리 아빠가 달라졌어요!! I 김하윤 … 33 어둠에 내린 한줄기의 빛, ‘공동육아’ I 박선영 … 36 그렇게 부모가 된다 I 박주언 … … 39 밀키카우마더스 - 나와 아이의 소중한 인연들 I 배지영 … 42 엄마는 이제 행복하단다 I 송인영 … … 46 둘, 셋, ‘함께’ I 이채원 … 50
Ⅱ
2023년 ‘육아는 행복해’
Ⅲ
부록
함께 키우는
육아공동체 우수 수기
자연과 아이들 I 강가에 살으리랏다(권슬기) … … 과거 혼자였던 육아, 현재는 함께 겪어가는 육아 I 그린시티 푸른마음이들 힐링타임(서민정) … 따뜻함, 환대, 위로, 맛있는 밥! 그리고 돌고 도는 사랑 I 맘편한 육아공동체(김지현) … … 난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에요 I 범양프린세스(이해림) … 육아에는 동지가 필요하다 I 블랙티거2(진문희) … 주말부부 독박육아러의 행복한 시간 I 슬기로운 육아탐구생활(이주현) … … 사랑하는 육아 동지들과 만들어 낸 나의 기적과 육아일기 I 시동아리(서연아) … … 초보 보호자들의 우당탕탕 공동육아 I 쌍용베이비(홍아림) … … 아.놀.자 이야기 I 아놀자(홍정이) … 함께라서 행복함이 늘어가는 육아공동체 모임 I 언니(김수경) … 엄마라서 행복해 I 이서센FC(최하영) … 초록이들의 고군분투기 I 초록동색(김광호) … 육아도 “함께하면” 행복할 수 있구나! I 치유의 숲(이유나) … … 찬란했던 육개월의 육아소설 I 티나핑(편서윤) … … 함께여서 가능했던 우리들의 육아 I 호형오제(이나리) … …
육아 이야기 수기집
• 중앙부처 및 부산시 육아지원서비스 … 102 • 부산광역시, 구·군 육아종합지원센터 … … 103
2023년 ‘함께 키우는 육아 이야기’
공모전 수상작
대상
꽃을 키우는 정원사들 …
정미영
외할머니의 저주 : “ 너랑 똑같은 아이 낳아라” 내 기억 속 우리 집은 반지하에 아주 가난한 집이었 다. 창문 너머를 보고 있으면 사람들 발이 휙휙 지나갔 다. 그곳이 반지하라는 것을 어른이 되고야 알았다. 내 기억 속 엄마는 과자를 사주지 않겠다며 나를 놔두고 떠 나는 뒷모습이었다. 어른이 된 후 ‘우리 집이 가난했어도 과자를 못 사줄 정도인가?’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하지 만 아이를 낳은 지금, 하루 종일 과자를 먹고도 또 사달 라는 아이를 달래며 “엄마 먼저 간다”하고 가는 내 모습을 보니 엄마는 가난해서가 아니 라, 밥을 안 먹는 나를 위해서 나를 두고 떠났던 것이었다. 나는 어릴 때 지독하게도 밥을 먹지 않는 아이였다. 마를대로 삐쩍 마른 몸이 엄마를 더욱 더 애타게 만들었다. 두시간 씩 밥을 먹는 내게 엄마는 “꼭 너랑 똑같은 아이 낳아라”하더니, 저주였던가 … 나에게 꼭 똑같은 아이가 태어났다. 그땐 몰랐던 엄마의 절절한 모습이 내게도 똑같이 박혀있었다.
아이를 낳다 아이가 태어나고 내게 육아를 알려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침대에서 몸을 추 스르며 알게 되었다. 남들은 천국이라는 산후조리원으로 이동 후 다른 질병이 발견된 나 는 아이를 두고 다시 대학병원 외래진료를 왔다갔다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며칠을 치료에 신경 쓰고 나니, 조리원 식당에서 나는 외딴 섬처럼 밥을 먹고 있었다. 모두가 하 하호호 웃으며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뻘쭘하다 못해 삼키는 밥이 내내 모래알 같은 식사
시간이었다. 대화 상대가 없는 조리원은 감옥 같았다. 우울했고 심심했고 외로웠다. 나는 조리원 기간 이틀을 남기고 조기퇴소를 결정했다. 그 흔한 조리원 동기도 없이 나는 집으 로 향했다.
잠이 간절한 순간 조리원 천국을 외치던 사람들이 왜 그랬는지, 첫날부터 알게 되었다. 나는 잠을 잘 수 가 없었고, 아이는 계속 배고프다 울어댔고, 예쁜데 눈물도 같이 났다. 새벽녘 출근하 는 남편에게 울고 있는 아이를 넘긴다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유달리 겨울을 싫어 하는 내게, 우는 아이와 새벽을 샌다는 것은 적막 속에 아이와 나 둘만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피 말라갔고, 앞으로의 육아가 두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내 가 손을 심하게 다쳐 기저귀를 제때 갈아주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나의 무지함으로 아 이가 요로감염에 걸려 입원하고 말았다. 아이의 손에 바늘을 찌를 땐 마치 내가 찔리듯 이 슬펐고, 내 탓인 것만 같아 나 자신을 질책했다. 그때부터 나는 열심히 육아 카페를 넘나들며 정보를 채집해갔다. 육아에 관한 모든 것을 끊임없이 검색하고, 정보화해서 머릿속에 담았다.
인터넷에서 구원받다 새벽수유로 깊게 잠들지 못하고 졸린 눈을 비비며 인터넷 카페를 보는데, ‘진구 연제구 19년생 10월 11월 12월생 소통하고 지내실 분’이라는 글을 보았고, 홀린 듯이 그 글에 댓글을 달았다. 그렇게 어색한 단톡방 생활이 시작되었고, 우리는 코로나로 인해 서로 만 나지 못한 채로 한동안 침묵이 흐르는 단톡방 생활을 했다. 얼굴을 보지 못하니 많은 이 야기를 주고받는 게 불가능했고, 코로나로 인해 만날 수 있는 장소도 마땅치 않았다. 그 러던 중 코로나가 잠시 완화되어 11명의 인원이 이제 만나자고 결심했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만날 장소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내가 큰 결심을 하고 “우리 집을 오픈하겠습니 다!”라고 말했다. 남편은 “인터넷에서 만난 사람들 뭘 믿고?”라고 반문했지만, 나는 너무 외로웠고,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너무도 절실했다. 드디어 만난 날, 11명의 아가와 11명 의 엄마가 모였고, 정신없었지만 우리는 아이들 이야기를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 었고, 공감했고, 그리고 행복했다.
인터넷에서 만나 절친이 되다 우린 제각기 직업이 달랐지만, 신기하게도 모두 첫째 아이 엄마들이었다. 너무나도 적 막해서 몸서리치던 새벽수유 시간, 내가 “자니?”를 외치면 다들 “아니!”를 외쳤고, 이 적 막한 새벽 나만 깨어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위로가 되었다. 그렇 게 우리는 문화센터와 매일 점심을 함께하며 공동육아를 했다. 혼자 아이를 볼 때는 시 간이 너무 안 가고 한숨이 났는데, 이제 우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밥을 먹는 요령도 터득 했다. 중국집을 시켜 먹는 날이면, 다들 한결같이 웃으며 “짬뽕밥이요”를 외쳤다. 이제는 아는 것이다. 짬뽕을 시키면 아이를 보다 불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
일 년이 흐른 뒤 … 그렇게 함께 육아하며 일 년이 흐른 뒤, 우리는 남편들에게 자유부인하고 오겠다고 선 언하고는 아이 없이 10명이 맥줏집에 모였다. 아이를 키우지 않는 내 친구가 지루해 할 까봐 하지 못했던 아이 이야기를 실컷 하며 우리는 한참을 깔깔거릴 수 있었다. 그동안 우리가 무슨 관계인지 묻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지만 일일이 설명을 하기에는 어려웠다. 아이가 없는 딩크족 친구도 내게 “자주 만나는 아이 엄마들은 어떻게 만난 거 야?”라고 물었고, 내가 “인터넷”이라고 답하자 그 친구는 놀라며 “에? 인터넷? 인터넷에 서 사람들을 만났다고? 그런데서 만난 사람을 어떻게 믿어?”라고 말했다. 물론 친구는 아 무 의도가 없었겠지만, 친구의 말은 곧 나의 폐부를 찌르는 듯 했고, 우리를 바라보는 시 선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서로 기대고 싶었던 간절한 마음, 이해받고 공감해 줄 곳이 필 요했던 애절함이 우리를 만나게 해주었다 생각했는데, 남들 보기엔 그저 인터넷에서 만 난 믿지 못할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게 마음 아팠다. 속상한 마음에 모임에서 이 이야기를 꺼내자, 모두 그 자리에서 펑펑 울고 말았다. 그동안 아이를 키우며 힘들었던 감정도 함께 터져 나왔던 거 같다. 우리는 서로의 등을 쓰다듬어주고 눈물을 닦아주며 말 했다. 그동안 고생 많았고, 앞으로도 서로 잘 뭉쳐서 헤쳐 나가자고. 어느 날 갑자기 엄마 가 되어 무척이나 외롭고 힘들었을 우리가 이렇게 만나게 돼서 나는 너무 행복하다고 …
다리가 부러지다 다리를 삐끗한 날, 나는 극심한 통증을 느꼈고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야 했지만 친정엄
마는 바로 오실 수가 없었다. 나는 걷지도 못하고 너무 아파서 울부짖었다. 남편이 아이 도 데리고 나도 부축하고 가긴 너무 힘든데 어떻게 하지 하고 난감해 하던 그때 같이 육 아하던 친구가 떠올랐다. 흔쾌히 아이를 봐주겠다고 해서, 나는 아이를 맡기고 병원으로 향했다. 결국 골절 진단을 받고, 급하게 깁스를 하였다. 아이는 다행히 친구와 잘 놀다 씻 고 밥까지 먹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훗날 남편이 말하길 연애할 때 그렇게 잘 업고 다니 던 나를 업을 자신이 없어 아이 유모차에 나를 태우고 갈까 혼자 엄청 고민했었다는 이야 기를 전해 들었다. 근데 남편아, 유모차에 내가 안 들어가 …
아이들 이제 유아가 되다 우리는 같은 어린이집을 보냈고, 토요일이면 아빠들과 문화센터 타임을 가졌다. 남편 은 아빠들 모임을 통해 부담 없이 떠들며 시간을 보내는 게 너무나도 큰 행복이라고 했 다. 시어머니가 매주 주시는 김치는 어떤 집의 부담이었는데, 그걸 우리 안에서 나눔하 자 큰 하사품이 되었고, 아이 반찬을 많이 해서 나누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큰 세상을 보 여주고자 벌써 몇 십번째의 여행을 함께했고, 아이들은 서로 절친이 되었다. 첫째만 있 는 집은 둘째 아이를 봐주며,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되고 있다. 우리 모임은 어느 덧 5년 차를 향해 간다. 여전히 우리는 함께 맛있는 걸 먹으러가고, 학생 때처럼 워터파 크, 놀이공원에도 가고, 때로는 남편이 속상하게 하면 드라이브도 하면서 그렇게 하루하 루 쌓아가고 있다. 어느새 우리는 누구 엄마가 아닌,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게 더 편해졌 고, 잃어버린 이름을 찾아주었다. 내게 육아란 무엇이냐 물어보면 “나를 희생시켜 예쁜 꽃을 가꾸는 일”이라고 말한다. 하 지만 그 꽃을 가꾸는 정원사가 여러 명이면 따가운 햇살도 노동요를 부르며 즐겁게 꽃을 가꾸는 놀이가 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온 마을이 키우는 아기
백희원
육아란 외로운 일이다. 나는 육아를 하고서야 누군가 곁에 있어도 외 로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신생아를 갓 졸업 한 아기는 하루 종일 자거나 먹거나 울었다. 때 로는 이유 없이 30분씩 귀가 울리도록 울어댔 다. 그럴 때면 헤드셋을 끼고 하염없이 아기를 안아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때로는 나도 같이 울었다. 우는 이유도 모르는 내가 너무 무 력해서, 앞으로의 날들이 막막해서 눈물이 났다. 이 조그만 아기를 키우기 위해 내려야 할 수많은 판단을 내가 해야 했다. 책임감과 압박감이 공기 중에 포자처럼 떠돌며 나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회사에서 쓰는 물건들을 가져와 정리해서 박스 안에 넣으며, 과장 백희원이라 적힌 명 패를 잠시 바라봤다. 이제 휴직 기간인 2년간 직급으로 불릴 일은 없을 것이다. 누군가의 엄마라 불리는 일이 더 많아지겠지. 부러웠고 그리웠다. SNS에서 마주하는 동기들의 회 사 생활이, 식당에서 밥을 먹고 커피를 들고 산책하던 점심시간이,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 하던 업무들이, 일하는 중간중간 직원들과 나누던 담소가, 일을 마무리하고 서류를 편철 해서 정리하며 느끼는 그 성취감이. 육아는 내 시간을 온전히 갖다 바쳐야 하는 일이었다. 화장실을 참아야 했고, 식사는 빵이나 냉동볶음밥 같은 것들을 몇 입 급하게 먹는 게 전부였다. 라면에 물을 부으면 아 기가 울었고, 겨우 달래고 다시 식탁에 앉으면 이미 라면은 퉁퉁 불어 있었다. 몇 번 젓가 락질하다 국물만 대충 들이켜고 개수대에 쏟아버리는 일이 잦았다.
남편은 저녁 내내 육아를 함께하고 아침 일찍 출근했지만 그 마저도 부러웠다. 문을 닫고 나갈 수 있다는 것. 이 공간에서 잠시나마 분리될 수 있다는 것. 문이 닫히며 삐리 릭-나는 도어락 소리가 나에게 선포하는 것 같았다. 이제부터 온전히 너의 책임이라고. 4kg가 채 안 되는 작은 아기가 주는 무게감이 엄청났다. 그러다 인터넷 카페를 통해 비슷한 시기의 아기들을 육아중인 엄마들의 카카오톡 대화 방에 참여하게 됐다. 얼굴 한번본적 없는 사람들이지만, 비슷한 월령의 아기를 키운다 는 것만으로도 할 이야기가 넘쳐났다. 아기를 잘 재우는 ‘꿀템’ 추천부터 육아용품 내돈 내산 후기, 고민과 질문과 답변과 공감이 하루 종일 대화방 안에서 오고 갔다. 하루 수유 량이 어떤지, 어린이집 대기는 어떻게 하는지, 기저귀는 뭘 쓰는지, 어떤 장난감이 잘 통 했는지… 2주쯤 지났을 때 “우리 한번 만나요”라며 서글서글한 성격의 엄마 한 사람이 대화방 멤버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백일 즈음 된 아기를 데리고 커다란 아기 짐가방을 든 채 초 면인 이의 집에 가게 됐다. 어색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초인종을 눌렀지만, 문이 열리고 아기띠를 매고 아기를 어르고 있는 엄마 여럿이 ”어서오세요!” 인사를 건네자마자 웃음 이 났다. 그 분들과 내가 꼭 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요즘 쓰는 기저귀와 먹이는 분 유에 대해, 임신과 출산 경험에 대해, 새벽수유의 어려움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했다. 시 간이 언제 흘렀는지 모르게 수다를 떨다 집으로 돌아왔고, 퇴근한 남편에게 주절주절 오늘 있었던 모임을 이야기했다. 늘 아기 이야기만 하다가 아주 오랜만에 하는 ‘내 이야 기’였다. 그쯤부터였다. 혼자 있는 것 같던 육아의 세계에서 인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만 아무것도 모르는 채 앞으로의 날들을 막막하게 느끼는 게 아니었다. 나만 아기를 달래다 같이 울어버린 게 아니었고, 수유량과 수유 간격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잠은 어떻게 재 워야 하는지 고민하는 게 아니었다. 쏟아지는 질문에 “저도 궁금해요!” 이어지는 푸념과 하소연에 “맞아요, 저도 그래요!”를 타이핑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났다. 모두가 그렇다 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완벽하게 아기를 케어하기 위해 동동거리던 발을 잠깐 멈추게 됐다. 아기에게 “너도 처음이겠지만 나도 처음이야, 엄마가 서툴러도 이해해 줘, 우리 잘 맞춰 나가보자” 말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뿌옇게 안개처럼 흐려져 있던 주변 이 보였다.
전화 한 통이면 바로 달려와 주시던 부모님. 엄마는 매일같이 들러 아기의 컨디션과 내 컨디션을 살폈다. 내가 밥을 먹고 씻는 시간동안 아기를 돌봐 주었고, 바람 좀 쐬고 와야 한다며 나를 억지로 집에서 밀어냈다.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느라 정신없는 내 입에 과일 을 넣어 주며, “너는 네 자식을 챙겨, 나는 내 자식을 챙길 테니” 말했다. 아빠는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아파트 단지를 산책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쉬거나 밀린 집안일을 할 수 있었다. 시부모님과 시누이도 전화로 내 건강은 어떤지 물어보시며 챙겨 주셨다. 조금 마 음의 여유가 생기자 늘 나를 향해 뻗어 있던 주변의 관심과 다정한 손길들이 보였다. 불 안함과 막막함에 눌려 채 보지 못했던 애정들이었다. 남편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는지도 점점 와 닿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쁘게 일 하고, 퇴근하자마자 달려와 나와 함께 아기를 돌봤다. 오늘 수유량은 어땠는지, 많이 울 지는 않았는지.. 같은 것들을 물었고 나의 컨디션도 세심하게 체크했다. 아침 일찍 출근 하는 탓에 더 자고 싶을 법도 한데, 새벽에 아기가 울면 나와 같이 일어나 기저귀를 갈아 주고 내가 분유를 타는 동안 아기를 안고 달랬다. 그러다 내가 수유를 시작하면 비몽사몽 다시 자러 들어가 몇 시간 못 자고 출근하는, 그런 나날들이었다. 나는 혼자 이 시간들을 버텨내고 있는 게 아니었다. 졸린 눈을 한 채 출근해서도 아내 가 밥은 먹었는지 챙기는 남편이, 아기를 대신 봐줄 테니 나가서 커피라도 마시고 오라며 등 떠미는 부모님들이, 물려줄 육아용품을 한아름 들고 집에 찾아와 같이 아기를 봐주며 수다를 떨던 친구들이 있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던 불안감은 점차 흐릿해졌고 마음은 좀 더 차분해졌다. 분명 육아의 과정에서 시행착오는 있을 것이고 내가 내리는 판단들이 늘 옳지는 않겠지만, 점차 익숙해지고 하루하루 더 나아질 것임을 알게 됐다. 사소하고 따뜻한 말들도 큰 버팀목이 되었다. 횡단보도에서 “아기 며칠 됐어요?” 묻더 니 “한참 힘드시겠다, 그래도 금방 지나가요!”하고 웃어보이던 세살쯤 된 아이의 엄마, 유모차 끌기가 익숙하지 않아 엘리베이터에서 낑낑대자 한참을 열림 버튼을 누른 채 기 다리며 “아기 먼저 내려야죠” 하시던 동네 주민분, 야심차게 등록해 놓고 아기를 돌보느 라 수업을 자주 빠지자 “저도 해봐서 아는데 육아 정말 힘들죠…”라며 편하게 오실 수있을때 오시라고 수업 시간표를 조정해 준 요가 선생님,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가족과 친구와 이웃으로 이루어진 마을이 나의 아기를 같이 키워 내고 있었고 아기는 쑥쑥 자라났다.
어느덧 7개월 가량이 흘렀고 나는 예전보다 많이 잘 수 있게 되었다. 허공을 보며 울어 대던 아기는 눈을 맞추고 까르르 웃고, 온 바닥을 밀고 다니며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물 론 아직도 모르는 것이 더 많지만 나는 예전보다는 덜 막막함을 느낀다. 나에게는 언제 든 손을 뻗어줄 사람들이 많음을 이제 알기 때문이다. 육아란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다는 것, 서투른 어른과 아기가 서로 맞춰 나가는 과정이라는 것, 아기가 크는 만큼 나도 더 나 은 어른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늘 변수는 있을 것이고 또 새로운 고민들이 생겨날 것이다. 아기의 8개월, 9개월, 돌, 그리고 그 이후.. 모든 시간이 나에게는 처음이니까. 그럼에도 든든히 내 곁을 지켜 주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오늘도 나는 잠든 아기를 한참 바라본다. 우리 내일도 잘 해 보자. 엄 마가 서툴러서 미안해. 그래도 잘 커주고 있어서 고마워. 잠에서 깬 네가 나에게 보내는 미소를 정말 많이 사랑해. 푹 자고 일어나면 내일은 좀 더 나은 엄마가 되어 있을 게. 잘 자. 사랑해 내 딸.
내가 끄떡없는 이유
신정아
달라고 하고 남편이 잠시만 휴대폰을 봐도 ‘나는 이러고 있는데 당신은 뭐하는 거야’하는 생각, 말로 마음에 날이 서는 날들도 있었습니다. 육아를 하는 실제 당사자이다 보니 육 아고민을 두고도 대립하기도 하고 한 발 짝 떨어져서 보지 못하니 나에게 생기는 모든 불 편함이 고민거리가 되고 쉽게 털어 내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양가 부모님께 걱정 을 끼칠까 말하기도 어렵고 외출도 어려우니 친구들을 만날 수도 없고 육아를 하지 않는 사람과의 대화는 그저 수박 겉핥기로 끝이 나곤 했습니다. 그렇게 눈 밑 다크서클이 턱 끝까지 내려온 지침 그 자체로 지내던 어느 날 평소처럼 첫째 아이 등원시키느라 차량시간에 맞춰 둘째 아이 이불에 꽁꽁 싸매고 나가서 첫째 아 이 손잡고 노래 부르고 있는데 둘째가 뱃속에 있던 만삭 시절 저와 비슷하게 만삭이었던 이웃이 출산했는지 배가 홀쭉해져서 분리수거를 하고 있었습니다. 늘 눈인사만 하다가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비슷하게 육아하는 사람을 만난 반가운 마음에 눈인사 후 “안녕하세요. 어디서 출산하셨어요?” 말 한 마디를 시작으로 30분을 서서 이 야기하고 “저희 집에 놀러오세요”를 마지막으로 헤어졌습니다. 집에 돌아와 마음이 두근 거리기까지 했습니다. 짧지만 우리의 처지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처음 대화한 사이가 맞 나 싶을 정도로 ‘육아’라는 주제는 우리를 하나로 만드는 단합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까요. 첫째 아이 등원길에 다시 마주쳐 “오늘 시간 되세요?” 물어 오는 이웃 덕분에 우리는 점심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이가 둘이지만 이웃은 첫 아이였고, 서로의 아이가 20일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 발달이 비슷했고 그렇다보니 이야 기는 정말 봇물 터지듯 줄줄 흘러나왔습니다. 우리 아이만 이런건지, 왜 이렇게 잠을 자 지 않는건지, 왜 자주 깨는건지, 울 때마다 분유를 줘도 되는건지 등등 너무나 닮은 서로 의 고민과 걱정거리를 나누었습니다. 사실 인터넷에 검색만 해봐도 줄줄 나오는 정보겠지만 요즘처럼 정보가 넘쳐나는 때 에 너무 정보가 많다보니 우리가 올바른 정보를 알아내거나 걸러내기도 힘들고, 아이들 마다 모두 다르다보니 어떤 것을 적용해야할지도 늘 물음표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도 나와 눈을 맞추고 내 말을 진심으로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이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 제가 사는 아파트에서 같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 몇 명을 더 만나 함께 모임 이 이루어졌습니다. 시간이 되는 날은 남편들까지도 함께 하여 서로가 육아하는 모습, 육
아로 인한 고충을 털어놓으며 여러 가지 방법을 알게 되기도 하고, 아이와 함께 가기 좋 은 곳, 먹이기 좋은 것 등 다양한 정보 공유까지 이루어졌습니다. 같이 아이를 키우는 부 모들이다보니 ‘아’하면 ‘어’로 돌아오고 우리가 함께 모이니 육아를 해나갈 큰 힘이 생겼 습니다. 말도 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짜증을 내기도 하고 힘든 마음을 퇴근한 남편에게 날 선 마음으로 표현하기도 했는데 어딘가 말할 곳이 생기고 공감해줄 사람이 생기니 육아 가 조금은 수월해졌고 시선을 돌릴 곳이 생겼고 육아가 즐거워지게 되었습니다. 서로의 육아를 보고 도움이 되다보니 “둘째는 없다!!” 강력하게 외치던 한 부부는 벌써 둘째를 임신했답니다. 지금은 여러 연령의 아이들과 부모들이 함께 모여 놀이도 하고 좋은 곳이 있으면 함께 놀러가거나 캠핑하기도 하며 너무나 잘 지내고 있습니다. 서로 사정이 있을 때 아이를 봐 주기도 하고 힘들 때 토닥여주기도 하며, 새로울 것이 없던 일상이 누군가 함께함으로 달 라질 수 있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함께한다는 가치가 이렇게 귀한 줄 이전에는 몰 랐거든요. 특히나 이웃과의 교류가 적고 사소한 말 한마디도 나누기 힘든 요즘, 작은 용 기로 이웃과 함께 육아를 나누게 된 것이 즐겁습니다. 짐을 한 보따리 챙기지 않아도 1분 이면 옆집에 놀러가 아이들이 함께 놀이하고 엄마, 아빠들도 서로 마음을 나누며 육아동 지가 생긴 것이 정말 든든합니다. 아이 키우느라 우리를 돌아볼 새 없고 육아에만 갇혀 다른 것을 보지 못하고 힘든 시간 가운데 있는 모든 부모들에게 육아 모임을 적극 권장합 니다. 숫기 없고 내성적인 저도 해냈습니다. 얼마 전 TV 프로그램에서 본 어떤 말이 생각납니다. 일에는 끝이 있고 박수를 받지만 육아에는 끝이 없고 마지막에 박수쳐주는 이가 없다고요. 육아를 하는 사람이라면 이 말 에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이웃 간 함께 육아하는 사람들끼리라도 서 로 박수쳐주며 잘하고 있다 격려하고 좋은 것이 있다면 나누며 지내면 어떨까요? 저출산 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이 시기에 육아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말을 들어주기만 해도 한 아이를 키우는데 힘이 되리라 생각이 듭니다. 힘들고 지칠 때 내 마음을 알아주 고 토닥여주고 함께 그 시기를 겪고 있고 혹은 그 시기를 이미 지나 조언해줄 수 있다는 것이 사소할지라도 우리 인간의, 엄마, 아빠의 지친 마음을 일으키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그게 바로 제가, 우리 가족이 끄떡없는 이유입니다.
애둘이라 행복해♡
김민주
“ 나는 육아 능력치가 에베레스트산쯤 되는 것 같아~! ” 순둥이 첫 아이를 키우며, 나름대로 차곡차곡 모인 육 아 지식과 육아 아이템을 적절히 활용하며 행복한 육아 를 하는 저 스스로를 칭찬하며 즐겁게 육아할 때가 있었 습니다. 그 당시 맘카페에서 인연이 닿아, 문화센터도 함께 다니며 친해진 친구 2명이 있었는데, 모두 아이가 둘인 육아 선배님이었습니다. 즉, 저는 첫 아이의 엄마였고 그 둘은 둘째 아이의 엄마였죠. 모든 것이 낯설고 처음이던 첫 아이를 키우느라 애쓰고 있던 저에게 현실감 있는 조언도 많이 해주고, 겪다 보면 큰일이 아니라며 안심시켜준 아이 둘 의 친구들은 육아 경험치로 단단해진 멋진 선배들이었습니다. 그들 덕분에 ‘나도 아이 두 명이 되더라도 즐겁게 키워볼 수 있겠다’ 확신을 얻을 수 있었고 남편을 설득하여 둘째 아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아이 둘의 엄마(이하 애둘맘)가 되고 나니, 1+1=2가 아니란 걸 참으로 느 꼈습니다. 아이 한 명이 더 생겼을 뿐인데, 매우 버거웠습니다. 첫째 아이(이하 첫째)가 끊임없이 저를 찾는 바람에 첫째까지 안고 둘째 아이(이하 둘째)에게 수유하다가 서러워 울고, 첫째가 아프더니 둘째까지 아픈 바람에 입원해서 막막하여 울고, 갑자기 첫째가 너 무 안쓰러워 미안해서 우는 등 참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당시 첫째의 친구들도 둘째를 아무도 낳지 않았었고, 둘째를 낳으며 랜선으로 만나게 된 집주변 육아 친구들도 모두 첫 아이 엄마들이라 공감대가 없어서 너무나도 외로웠습
니다. 나와 같은 상황을 겪고 있는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떤 육아용품이 좋을 지, 발달사항이 어떤지 등을 고민하는 첫째 엄마와는 다르게, 이미 한 번 겪어봐서 대략 은 알고 있었고, 육아용품도 그대로 사용 중인 저에겐 그들의 고민이 크게 공감 가는 주 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때 제 머릿속에는 첫째와 둘째가 어떻게 하면 잘 지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 첫째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는 방법, 둘째가 생기면서 늘어난 짐과 방 배치 방법, 둘째를 데리고 등·하원은 어떻게 할지, 첫째와 둘째의 육아 시간 배분 등 복잡한 상 황이 정말로 고민이었거든요. 그때, 저에게 정말 빛이 되어준 친구가 바로 조리원에서 만난 ‘수화’였습니다. 코로나 로 단절된 공간이었지만 같은 날 딱 둘만 입소했기에 안면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저처럼 둘째 아이의 엄마였고, 저랑 참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정말 같은 고민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안심되다니, 이렇게나 든든하다니. 저는 그때 생각했습니다. 애둘맘도 처음이기 때문에 잘 모르는 것이 당연해. 같이 뭉친다면 무엇이든 두렵지 않겠 다! 내 마음 알아주는 친구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그러던 어느 날 ‘육아는 행복해’ 육아공동체 모집 공고문을 보게 되었고, 저는 기꺼이 촌장이 되어 고립되어 있는 애둘맘들과 모여 육아 부담도 나누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자, 주변을 수소문하여 ‘애둘맘이라 행복해♡’라는 이름으로 저와 수화를 비롯해 총 5가 정이 모여 모임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촌장인 저를 제외하고는 서로 처음 만난 엄마들임에도, 애둘맘이라는 연대감은 생각보 다 끈끈했고, 그간 육아 스토리와 공감대로 똘똘 뭉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좋은 뜻으로 후원해주신 육아공동체 활동비 덕분에 그간 나보다는 아이를 위해 쓰느라 나의 즐거움에는 쓰지 못했던 엄마들이 모처럼 맛있는 밥을 모두가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었습 니다. 밥을 같이 먹는다는 건 삶을 같이한다는 것이기도 하죠. 힘든 육아 중에도 즐겁게 웃을 수 있는 친구가 생겨서 세상을 얻은 기분까지 들었습니다. 공동체를 시작하며 매월 정규모임을 1회 이상 가지게 되었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상시 교류를 하며 더욱 끈 끈해졌습니다. 엄마들의 로망이었던 키즈풀이 있는 키즈룸을 대관하여 아이들과 엄마 모두 힐링할 수 있는 시간을 보냈던 것이 정규모임 중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엄마 혼자 아이 두 명씩 데 리고 참여하기가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이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안전하게 수영하
고 각종 장난감이 가득한 공간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었고, 엄마도 아이들과 소중한 추 억을 만들었습니다. 키즈룸 단독대관은 비용이 상당한데 육아공동체 모임에서 지원받아 큰 부담 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당초 곧 출산 예정인 구성원의 베 이비샤워 파티도 함께 계획하였지만, 아이 둘을 케어하면서 파티하는 건 무리라고 판단 하여 다음번 모임으로 연기하였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계획대로 진행하는 건 정말 쉽 지 않다고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상시적으로는 카카오톡 단체방을 통해서 매일 아침 육아 팁을 보내주는가 하면, 경험 으로 쌓인 안목으로 알짜 육아 정보를 스크랩하여 공유해주면서 서로에게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주었습니다. 모여진 정보를 바탕으로 질의응답도 바로바로 이루어져 서 참으로 든든했습니다. 또한, 구성원 모두가 부모교육에 틈틈이 참여했고, 참여하지 못 한 친구들을 위해 배운 것을 나누어 모두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모임이 계속되다 보니, 개개인의 장점 살려 빛나게 할 기회도 여럿 있었습니다. 육아에 지쳐 잠시 잊고 지냈던 나의 장점을 재발견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라 고 생각하며 자기효능감을 절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 예로, 평소 요리를 좋아하는 아 라는 공동체 모임을 한다고 하면 맛있는 디저트를 만들어 선보였습니다. 바쁜 시간을 쪼 개어 만드느라 힘들지만, 친구들과 먹을 생각에 힘이 절로 났다고 합니다. 장기를 살려 ‘달달한 원데이 클래스’를 열었고, 육아에 지친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디저트를 함께 만들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혼자서는 어렵지만 잘하는 친구가 도와주니 우리 모두 파티쉐가 된 듯한 기분이었고, 집으로 돌아가 아이들과 남편에게 맛있는 디저트를 뽐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우리 공동체 구성원들은 계속 성장하고 있으며, 서로 다독여주는 든든한 동반 자가 되었습니다. 집에 혼자만 있는 것보다 공동체 친구들을 만나서 하루를 보내면 아이 도 심심하지 않고 저의 스트레스도 싹 날아갑니다. 육아는 절대 혼자 해선 안 된다고 새 삼 느껴집니다. 돌이켜보니, 저를 응원해주던 아이가 둘인 친구들은 저에게 첫 육아공동 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들이 없었다면 막연하고 두려워서 둘째 아이를 가지는 것을 포기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아이가 둘이어서 너무나도 행복합니다. 둘이라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팔 가득 안을 때마다 인생이 충만해짐을 느낍니다. 제가 없을 세상에도 피를 나눈 가
족이 있다는 건 아이들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 든든합니다. 이 아이 둘을 잘 키우려면 무엇보다 엄마인 제가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육아공동체 덕분에 지금의 저는 힘이 나고 행복하며 육아에 자신 있습니다. 앞으로 이 친구들과 어려움이 있더라도 매번 고민하면서 잘 헤쳐 나갈 자신이 있습니다. 지금의 육 아공동체 친구들이 없었더라면 둘째 육아가 정말 힘들다며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 니다.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주신 부산광역시육아종합지원센터와 뜻을 모아 후원해주신 분들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드립니다. 육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분이 저처럼 소중 한 인연을 만들고 공동체 울타리 안에서 든든하게 육아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
누군가 “ 세상에 태어나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이었 느냐? ” 라고 물으면 육아! 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 ”
정지예
또 누군가 “세상에 태어나 가장 잘한 일이 무엇 이냐?”하면 1초도 망설임 없이 “아이를 낳아 기 른 일, 육아!”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저의 육아는 38살에 시작되었습니다. 20대 후 반에 큰 병을 앓고 신체의 건강을 회복하고 나니 30대 초반이 지나가 있었고, 마음의 상 처까지 치유하고 나니 어느새 30대 중반이 지나있었습니다. 고맙게도 제 모든 상황을 이 해하고 품어주는 인연을 만났지만 임신과 출산은 제게 쉽지 않았습니다. 병을 치료하면 서 “여러 번의 방사선 치료 등으로 아기를 못 가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던 지라 임신이 된 것만으로도 고마웠지만 유산의 아픔에서까지 자유롭기는 쉽지 않았습니 다. 소중한 생명을 맞이하고 싶었기에 포기하지 않고 병원의 도움을 받아가며 다행히 늦 은 나이에 남자아이를 건강하게 낳았습니다. 임신과 출산 과정의 수많은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아이는 4kg가 넘는 건강한 아이였습니다. 임신하고 있을 때 “배에 있을 때가 좋을 때다!”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는데 출산 후 바 로 그것이 실감이 났습니다. 나이만 먹었지, 한 생명을 키우는 것에 대해 무지한 나는 커 다란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저는 부산, 남편은 충청도에서 일을 하고 있어 주말부부로 지내야 했기에 신생아와 단둘이 집에 있을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원래 체력도 좋지 않 은데다 노산이라 체력은 더욱 바닥을 찍었고, 아이도 잠을 자주 깨는데 무슨 이유로 계속 깨는지 알 수가 없어 막막했습니다. 홀로 육아는 제가 큰 병으로 병상에 있었을 때보다
더욱 두렵고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휴직하는 동안 친정 부모님 곁에 갔습니다. 친정 부모님께서는 말도 못 하는 신생아에게 옛날이야기도 들려주고 끊임없이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었습니다. 그 덕 분인지 남자아이지만 말문이 빨리 트였습니다. 저 또한 말할 대상이 있다는 것이 지치고 우울한 상태로 빠지지 않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친정 부모님 덕분에 저는 잠시라 도 눈을 좀 붙이며 체력을 회복할 수 있었고, 아이가 아플 때는 곁에 사는 여동생이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아이가 처음으로 고열이 난 날, 여동생이 밤새 함께 곁을 지켜준 것 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옛날 대가족 안에서 육아를 하는 것이 장점이 많 았겠구나’를 느낀 감사한 나날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복직의 날이 하루하루 다가왔습니다. 친정 부모님 댁을 떠나 다시 부산으로 돌 아와야 했습니다. 이제 가족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조건이 된 것입니다. 어린이집에서 7 시까지 봐준다 하지만, 아이가 아프거나 아이를 돌볼 수 없는 조건이 생길 때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공동육아’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육공동 체’이자 ‘육아공동체’인 곳이 부산 곳곳에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시설은 조그맣지만, 선생님들께서 다정해보이고, 숲에서 맘껏 뛰어노는 한 곳이 마음에 끌렸습니다. 아이가 비염과 아토피로 힘들어하고 있었기에 아이의 건강에도 도움이 될 것 같고, 돌봄 부재 시 조금이나마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하여 과감히 부산 남구의 공동육 아 어린이집을 선택하고 이사까지 감행하였습니다. 복직을 하고 처음엔 아이가 어리다고 직장에서도 배려를 받을 수 있었으나, 곧 일들이 쏟아졌습니다. 제 일은 깜깜한 밤이 되어도 끝나지 못했습니다. 주변에 도와줄 어른들도 안계시고 참으로 막막했습니다. 미안함을 무릎 쓰고, 공동육아 어린이집 엄마들이 모여 있는 단체톡방에 글을 올렸습니다. “오늘 제가 일이 많이 늦을 것 같습니다. 저희 아이를 하원하고 데리고 계셔줄 분이 계실까요? 죄송합니다” 어린이집의 엄마들과 아직 친해지 지 못한 터라 더욱 무거운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거의 동시에 여러 가정의 어 머니들께서 “제가 할게요”라는 메시지를 올렸습니다. 오히려 제가 여러 가정 중에 고를 수 있는 기회까지 주어졌습니다. “우리 집을 꼭 선택해 주세요”하는 우스갯소리도 올라 왔습니다. 직장에서 각종 민원 일을 마무리하고 부랴부랴 우리 아이를 맡아준 집에 갔습니다. 하
지만, 제가 급한 마음으로 간 것이 무색하게 우리 아이는 내가 와도 별 관심이 없었습니 다. 저 대신 하원해 준 엄마가 맛난 저녁과 간식을 먹여 배부른 데다, 그 집 아이들과 너 무나 재미있게 노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오히려 왜 이리 빨리 왔 냐며 더 놀고 가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심지어 제 저녁밥까지 차려주고, 덕분에 우리 아 이도 재미있게 논다고 나 귀찮게 안 해서 좋았다고 말해주는 따뜻한 공동육아 가족들이 었습니다. 그 후로도 저는 수없이 도움을 받아야 했는데, 그 때마다 우리 아이는 엄마가 늦게 오는 날은 다른 집에 놀러가는 날이라고 오히려 즐거워했습니다. 덕분에 저는 워킹 맘의 죄책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어린이집 선생님들에게도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이는 함께 키운다’는 귀한 가치 를 가진 선생님들께서는 제가 늦게 와도 인상 한 번 쓴 적이 없었습니다. 저희 아이가 제 일 늦게 하원하기에 항상 마음이 쓰이는데, 선생님들께서는 늘 괜찮다고 급하게 오지 말 고 안전하게 천천히 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한 번은 어린이집에서 펑펑 운 적이 있습니다. 그 날도 민원인에게 시달린 날이었습니 다. 퇴근하여 하원하러 오는 길에 ‘우리 아이는 버려져 있고,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 고 있는가? 최선을 다해 사는데 이런 말도 안 되는 말들을 들으며 살아야 하는건가..?’ 참 고된 날이었습니다. 어린이집 근처에 주차를 하고 어린이집 가까이 가는데 우리 아이의 웃는 소리가 담벼락을 넘어 들려왔습니다. 아이를 키워보신 분은 알 겁니다. 아이의 웃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노고가 다 녹아내리는 듯한 경험 말입니다. ‘뭐가 저렇게 즐겁지?’하고 궁금해 하는데 어린이집의 선생님 네 분과 우리 아이 한 명이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는 좋아하는 선생님 모두가 자기와 함께 노니 행복하여 “까르 르~ 까르르~” 넘어갔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뭉클했습니다. 거기에 “아직 놀이가 덜 끝났으니 조금 기다려주세요”하는 선생님 말씀을 듣는 순간 눈물이 펑펑 쏟아졌습니 다. 우리 아이는 버려져 있던 것이 아니라, 공동육아라는 테두리 안에서 또 다른 누군가 의 돌봄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4년을 다닌 어린이집을 올해를 끝으로 내년에 졸업을 한다니 너무나 아쉽습니 다. 공동육아로 아이를 키운 세월을 돌아보며 ‘나 혼자 아이를 키웠다면 어땠을까?’라고 돌아보면 정말 아찔합니다. 민원인들에 시달려 감정이 모두 소진되어 퇴근 후엔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받아 줄 마음의 그릇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는데, 우리 아이 곁에는
어떤 이야기도 들어주는 이모와 할머니 같은 다정한 선생님들이 계셔서 피폐해진 엄마의 영향을 덜 받았습니다. 공동육아 엄마들이 모여 함께 수다를 떨면서 직장에서 만난 이상 한 사람들 욕도 하고, 때론 남편 욕도 함께 하면서 저의 마음 속 나쁜 찌꺼기들을 치우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힘들었겠어요. 좀 쉬어요”하고 함께 아이를 봐주 는 엄마들의 응원 덕분에 한 숨 돌리며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선배 엄마들의 조언 을 들으며, 아이가 커가는 모습에서 가지는 괜스런 걱정들도 떨쳐낼 수 있었습니다. 주말에 시간이 맞는 가족들이 어울려 만나며 함께 돌봄을 하니, 주중의 직장 생활로 어 떤 육체활동도 하기 싫은 나 같은 부모 밑에서도, 우리 아이는 산으로 들로 바다로 나가 뛰어놀 수 있었습니다. 낯가림이 많던 우리 남편도 공동육아라는 울타리 안에서 다른 아 이들 무등까지 태워줄 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외동이라 자기 물건, 자기 것 밖에 모르던 우리 아이가 공동육아를 통해 형, 동생들과 어울리며 동생을 챙길 줄 알 고 형을 따를 줄 아는 사회성을 가진 아이로 자랐습니다. 내가 힘들게 출산하지 않고도 형제자매를 가진 이 기쁨과 든든함, 다른 분들도 함께 느끼면 좋겠습니다. 요즘 아이를 혼자 키운다고 생각하면 너무 부담스러운 것이 많기에 아예 아이 놓기를 포기하는 부부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직장을 가진 부모라면 더욱 그럴 것입니다. 부 산 곳곳에 공동육아가 뿌리내린다면 이웃이 함께 아이를 돌보니 부모도 아이도 참으로 행복할 것 같습니다. 서로 손 내밀고 손잡아 주는 곳이 있다는 것이 아이를 키우는데 얼 마나 든든한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누군가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다시 선택할 것입니까?” 묻는다면 “질문하신 분도 공동 육아 함께 해보세요. 얼마나 재미나게요. 얼마나 든든하게요”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부산 전체가 공동육아 공동체가 된다면 부산이 바로 ‘육아 천국’이지 않을까요?
워킹맘의 소중한 인연들
저희 부모님께서는 항상 일이 바쁘신 맞벌이 부부셨습니다.
정차순
학교에 가서 갑작스런 비가 오면 항상 그 비 를 맞으며 노래를 부르고 집에 가기도 하고, 매 년 하는 운동회에는 부모님 중 한분도 참석하기 도 어려워 나와 비슷한 친구들과 운동장 한켠에 서 엄마가 새벽에 싸놓고 가신 김밥을 나눠먹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릴 적 저 는 항상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과 추억들이 소중하게 여겨지고 항상 어른들의 보살핌이 그리운 아이였습니다. 그러던 제가 어느덧 성인이 되어 직장을 다니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었습 니다. 그리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최고로 사랑스런 첫 딸을 출산하면서 출산휴가, 육아 휴직 기간이 되었습니다. 저 혼자의 여자에서 한사람의 배우자 그리고 한가정의 엄마가 되는 과정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TV 속에서 봐왔던 가족의 모습, 그리고 엄마의 모습 은 행복하기만 하고 엄마들은 뭐든 척척 해내는 슈퍼우먼의 모습이었는데 … 막상 아이를 낳고 나니 저는 준비가 된 게 하나도 없는 초보엄마였습니다. 저도 슈퍼우먼 엄마가 되기 위해 기저귀 갈기, 분유 먹이기, 목욕 시키기, 젖병 소독하기 등 한걸음 두걸음 천천히 배 워가는 과정의 연속이었습니다. 아이라는 최고의 보물과 함께 하긴 하지만, 낯설고 서툴 기만 한 저의 모습들과 마주치는 순간순간마다 저는 점점 위축되기도 하고 뭔가 모를 우 울감에 끝나지 않는 터널을 지나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육아휴직 기간 정말 사랑하는 신랑과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혈투를 했던 것 같네요 … ^^
그렇게 육아 휴직 기간이 끝나갈 무렵 아이의 첫 돌을 무사히 치른 돌끝맘 이후 복직 을 위해 어린이집을 보내야 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복직까지 3개월이란 짧은 시간동안 어린이집을 알아봐야 했던 저는 놀이터에서 딸아이와 비슷한 또래아이 엄마들에게 어린 이집 정보를 얻기 위해 말을 걸기도 하고 인사도 하게 되었습니다. 평소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잘 거는 편이 아니었는데, 이런 저의 모습에 신랑은 자식일로 사람이 변한다며 놀라 기도 했습니다. 그중 저와 전혀 다른 성향의 활기차고 밝고 먼저 인사도 잘해주시는 엄마 와 인연이 닿게 되었고 그분의 도움을 받아 같은 어린이집에 저희 딸도 입소하게 되었고 같은 어린이집 학부형으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워킹맘 아이라 그런지 항상 어린이집에 1번으로 등원하고 마지막으로 나오는 딸의 모 습을 볼 때면 저의 어릴 적 모습이 생각나서 항상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다시 한 번 결단을 하고 육아기 단축근무를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육아기 단축근무를 하며 저희 아이는 1번 등원은 여전하지만 하원은 다른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린이집을 나오면서부터 달라진 아이의 표정, 그리고 어린이집 하원 후 놀이터라는 새로운 세계에서 친구들과 땀범벅이 되도록 뛰어 놀고 웃는 모습에 그동 안 제 마음속 아이에게 가졌던 미안한 마음이 눈 녹듯이 녹아내리며 안도감이 들었습니 다. 그러던 중 같은 학부형께서 부산시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운영 중인 육아공동체에 대 한 이야기를 해주셨고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 같은 공동체 멤버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어린이집을 다니는 엄마들 5가정으로 구성이 되었고, 한 달에 한 번 이상 5~6개월 정도 연속적으로 모임을 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동안 같은 아파트 단지 내, 같은 어린이집 학부형이긴 했지만 얼굴도 몰랐던 분들과 두근두근 떨리는 첫모임이 시작되었고 아이를 위한 모임이라 그랬는지 엄마들과 금방 친 해질 수 있었습니다. 얼굴을 알게 된 이후부터는 아이들 엄마들이 더 자주 마주치는 느낌 도 들게 되었고,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둔 엄마들과 정기적 모임을 가지게 되면서 육아하 며 생기는 문제와 고민도 나누고 서로의 육아정보도 교환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습니 다. 그러다 제가 잠깐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저의 아이가 없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 마 주한 상황이라 눈앞이 캄캄해지고 머리가 하얘졌고, 경황이 없어 그냥 이리저리 놀이터
주변을 찾은 지 5분정도 지났을 때, 육아공동체 엄마 중 한분께서 저에게 전화가 와서 저 희 딸아이가 서문 출입구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혼자 앉아 있어 놀라서 연락했다며 전화가 왔습니다. 순간 저도 눈물이 와르륵 흘러내렸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었습니 다. 그 엄마에게 감사하단 말과 함께 서문 출입구로 제 인생 최고의 속도로 전속력을 다 해 뛰어가 아이를 안아 주었습니다. 아이를 찾고 나니 만약 제가 단축근무 중 육아공동체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상 황이 생겼을 때 우리 아이는 얼마나 더 많은 시간동안 홀로 있었을까 하는 생각과 더 큰 일이 생길수도 있었는데 다행이라는 생각, 그리고 이웃에 대한 감사함이 교차 하였습니 다.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 말이 다시금 떠오르게 되는 순 간이었습니다. 지금은 단축근무가 끝나고 저는 다시 회사로 돌아갔지만 육아공동체에서 만난 인연들 이 가끔 저의 빈자리를 채워주기도 하고 정기적 모임을 이어가며, 아이들이 커가면서 겪 는 어려움에 대한 소통과 위로, 격려 등을 받는 소중한 모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촌이나 회사 동료 중 이제 막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후임들에게 항상 이야기 합니 다. 육아는 혼자 할 수 없다고, 아이에겐 온 마을이 필요하기에 좋은 주변 이웃을 만나라 고 그리고 그 인연들과 나라에서 지원하는 무료사업들에 적극 참여하라고 합니다. 예전 보다 더 많은 방법으로 육아정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 우리나라의 미래가 밝은 것 같습 니다. 감사합니다.
초보엄마의 육아 나침반이 되어준 육아종합지원센터
한민아
작되는 것이 떨리고 부담스러울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웃에게 우연히 ‘육아종합지원센터의 찾아가는 육아전문상담’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코로나 시기 아이와 외출이 조심스러웠던 저는 가정방문 상담을 신청해 받아보았어요. 신뢰가 가는 밝은 인상의 상담사님께 상담을 받으며 이야기를 하 다 보니, 저도 모르게 주르륵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그 순간, 엄마에게 다가와 어깨를 잡 고 제 얼굴을 보며 미소 짓는 7개월 아기를 보시고, 아기가 엄마를 위로해주는 것 같지 않냐며, 아기는 이렇게 잘 크고 있다, 걱정 마시라고 안심시켜주셨습니다. 구체적인 방 안도 이야기해주시며, 육아는 엄마 마음이 편안한 것이 중요하고, 이유식도 꼭 시간 맞 춰 정해진 양을 먹어야 하는 건 아니라고 하셨어요. 상담 이후, 저도 힘을 내서 아이와 즐겁게 이유식 시간을 맞이할 방법을 더 고민했고, 아이가 구강 내 감각이 예민하다면, 아이 입장에서도 무작정 처음 접하는 음식을 삼키기 어려웠지 않았을까 싶어, ‘아이 주 도 이유식’을 하면서 성황리에 이유식 시기를 보냈습니다. 어지르는 것처럼 보여도 아이 는 조금씩 음식을 집어먹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소근육도 많이 발달하였어요. 아이가 촉 감놀이 겸 식사를 하는 사이, 엄마인 저도 맘 편히 밥을 먹을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그 이후 불안한 마음이 생기는 의문이 있을 때마다, 상담 받았던 내용들을 떠올리며, 잘넘길수 있었습니다. 이후 또다시 닥친 최대의 난관은 바로 어린이집 적응 문제였습니다. 아이의 기질 자 체가 조심성이 많고, 낯도 많이 가리는데다 감각이 민감하다 보니, 아주 아기 때부터 조 리원 동기 모임만 가면 저희 아이 혼자 낯선 환경과 다른 아기들이 내는 소리에 울음을 터뜨렸고, 모임 내내 엄마 품에 안겨있었어요. 이런 아이였기에 가정보육을 더 오랫동 안 하면 좋았겠지만, 육아휴직이 끝난 후 퇴사를 하고 싶지 않았던 욕심에 저는 15개월 부터 어린이집을 보냈어요. 걱정하는 저에게 주변 선배 엄마들은 “일단 어린이집 적응 만 하면 어린이집 가는 걸 좋아할 거다~”라고 했고, 저는 내심 그 말을 믿고 싶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여러 군데 상담을 다녀보며, 그나마 아이가 편안해하고 우리 집과 분위기도 비슷한 근처 아파트 단지 안의 가정어린이집으로 입소했어요. 엄마와 헤어지기 싫다는 아이를 꾸역꾸역 보내며 노심초사 한지 9개월이 지나도, 도대체 적응이라는 게 있긴 한 건지 어린이집 적응은 멀기만 해 보였습니다. 어린이집 활동사진 중에는 웃는 모습도 찍 혀있고, 선생님은 걱정말고 보내라고 하시는데, 시간이 지나도 아침마다 울며 가고, 다
녀오면 넋이 나간 듯 멍한 표정의 아이를 보니 도저히 복직을 할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반 담임 선생님께 전화가 한 통 왔습니다. 집에선 말도 잘하고 표 현도 잘하는 아이인데, 감각에 민감한 모습이 우리 아이에게 문제가 있어 보인다며, 발달 센터 정밀검사를 권유하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 말을 듣고 나니 ‘우리 아이가 어린이 집에서 비정상적으로 보일 만큼 얼마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을까, 많이 힘들겠다 … ’ 는 생각이 들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습니다. 어쩌면, ‘적응하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니었 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이 어린이집과 우리 아이가 안 맞는 걸까? 다른 곳으로 옮겨 야 하나?’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가운데, ‘그래도 이곳이 여태 익숙해졌을 텐데 흔들리 지 말고 더 보내볼까?’ 등등 … 갈피를 못 잡겠더라고요. 그 와중에 떠오른 곳은 바로, 육아종합지원센터 육아전문상담! 이번에도 전문상담사님 의 자문을 꼭 받아보고 싶었고 코로나가 한창일 때였지만 멀리 이곳 영도까지 찾아오셨 고 성심성의껏 상담해주셨습니다. 우선 아이가 정상적으로 인지와 언어발달이 이루어지 고 있는 가운데, 애착형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어요. 또 아이가 왜 어린이집에 가 기 싫어할지 아이의 입장 에서 함께 생각해주셨어요. 이 월령 상, 기관에 다니며 사회생 활을 하는 것이 필수요소가 아니고, 아이가 기질 상 힘들고 어려운 것들을 스스로 이겨내 기 위해 힘써야하는 시기도 더더욱 아니라는 답변을 받았어요. 상담을 통해 아이에게는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가정에서, 주 양육자와 지내며 마음의 안정감과 자신감을 길러주 는 편이 더욱 좋겠다는 결론이 났고, 저도 확신이 들었습니다. 민감한 기질의 아이들 특 징이 인지발달이 빠르고 보다 더 깊은 생각을 하는 아이라며, 키울 땐 힘들어도 크고 나 면 공감 능력도 뛰어나고 리더십도 있는 보석 같은 아이라고, 힘내서 잘 키워보라는 응원 의 말도 해주셨습니다. 이 말이 정말 큰 위로와 힘이 되었고, 그동안의 침울하고 무거웠 던 마음들이 사르르 녹아내렸습니다. 밤잠 설치며 고민하고, 혼자 애쓰던 생각들이 정리 가 되고, 엄마로서 정말 잘하고 있다는 확신에 찬 말씀도 해주시니, 육아에 있어 자신감 이 붙었어요. 무엇보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더 사랑해 주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요. 그 래서 저는 복직 생각을 접었고, 대부분 기관 생활을 시작하는 25개월 무렵 겨울, 저희 아 이는 어린이집을 퇴소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을 해보아도 그때의 선택은 정말 잘 한 결정이었습니다.
유치원 가기 전까지 엄마와 육아종합지원센터의 문화강좌를 들으러 다니며 선생님, 또 래와의 활동을 이어나갔고, 공공형 키즈카페, 놀이터, 공원, 바다, 산 등.. 곳곳을 다니며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었어요. 집에서 하는 모든 일들을 함께 놀이처럼 하면서 아이와의 애착이 두터워지고 심리적 거리도 아주 가까워지는 걸 몸소 느꼈고, 돈으로 환산할 수 없 는 값진 경험을 하며 하루하루 소중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육아종합지원 센터가 없는 저희 영도구와 그 외 지역구를 위해 손수 장난감 배달을 해 주시는 동네방네 나눔육아도 3년째 정말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서비스들이 감사해 주변 지인들과 SNS를 통해 열심히 알렸는데, 그 덕인지 운 좋게 센터 서포터즈로 임명되어 한 기수 열 심히 활동도 하였네요. 애초부터 육아종합지원센터의 전문상담을 받지 않았다면, 이 모 든 것들이 초보엄마로서 확신을 가지고 해낼 수 없는 것들이었어요. 지금도 현재진행형 이지만, 당시의 상담들이 지금의 저와 아이를 있게 해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큰 도움을 받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변에 육아로 고민하시는 분들이 있 다면, 저는 강력 추천해 드리고 있어요. 핵가족화된 이 시대를 살아가며, 엄마 아빠에게 정말 절실한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손 내밀어주신 곳이 바로 육아종합지원센터였고, 전문가의 경험과 지식에서 우러나오는 현 명하고도 주옥같은 조언들이 터닝포인트가 되어, 오늘의 저희 가족이 안정되게 지낼 수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아이의 연령이 허락하는 한, 쭉 이용하고 싶고, 또 알리 고 싶은 그런 마음이에요. 저의 이야기가 육아종합지원센터를 운영하시고, 프로그램을 진행하시고, 종사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의미로 전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 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부모님들! 잘하고 계시고 모두 대단하십니다^^ 어려운 순간 이 오더라도 서로서로 마음을 모아, 함께 이겨 나가보아요. 응원합니다!!!
우리 아빠가 달라졌어요!!
김하윤
을 거 같다’ 등등의 반발이 있었지만, 언제까지 엄마없이 하루도 못 보내는 무능한(?) 아 빠로 둘 수 없다며, 일단 프로육아러인 유준이네 아빠가 나섰습니다. “한 번 재워보고 안 되면 모두 우리 집으로 모여서 공동육아하자! 엄마들 보내주자!”라고 해서 아빠들의 첫 독박육아와 함께 엄마들은 여름에 무사히 1박2일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육아지원 금 덕분에 비용 부담도 없이 너무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아빠들도 처음으로 독박육아를 성공했답니다. 그 뒤로 그 즐거움을 잊지 못한 엄마들은 호시탐탐 다음 1박2일 여행을 기다렸지만, 워킹맘이다 보니 시간내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9월 초에 북구의 소중한 보물인 대천천에서 올여름 마지막 물놀이를 하자 고 제가 당일 제안을 했는데, 일이 있었던 채아네 빼고는 모두가 모여서 저녁까지 놀고 헤어지게 되었지요. 아이들도 계곡 물놀이를 너무 즐거워했고 부모들도 너무 즐거운 시 간을 보내고 나서, 예주아빠가 문득 눈시울을 붉히며 말하기를 “아이들과 이렇게 놀아주 는 방법도 몰랐고, 우리 아이가 이렇게 물놀이를 좋아하는지도 몰랐다”라고 말했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느끼고, 너무 많이 반성한다는 말도 했습니다. 사실 예주네는 엄마 아빠 가 둘 다 선생님이라서 시간을 내는 것이 쉽지 않았고 아빠가 육아에 많이 소극적이었는 데, 이렇게 공동체를 하면서 다른 아빠들을 보고 배워서 육아에 많은 도움을 주게 되었다 고 합니다. 그리고 10월에는 처음에는 서먹했던 아빠들이 너무 친해져서 아빠들도 아빠들끼리 놀 시간을 달라고 요구(?)했고, 아빠들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빠들끼리 밤늦도록 즐겁게 놀고 돌아와서 엄마들에게 제안하기를, 다음 달에는 엄마들은 엄마들끼리 1박2 일 여행을 떠나고, 아빠들은 아빠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1박2일 여행을 가겠다고 하는 겁 니다! 세상에! 올레! 이렇게 즐거운 일이!! 호시탐탐 1박2일 여행을 노리고 있었던 엄마 들에겐 너무나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어요. 특히 유나네는 아이들이 밀양에 있는 시골 집에서 노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거기로 간다고 하니 너무나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리 고 먼저 아이들을 데리고 가주겠다는 아빠들이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11월 모임 은 아빠들은 ‘아빠! 어디가?!’ 엄마들은 ‘엄마만! 어디가?!’로 이루어졌답니다. 아빠들은 아이들을 재우고 이야기꽃을 피우며 새벽까지 놀았다고 합니다. 엄마들은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모든 음식을 포장해가서 먹으며, 누워서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며 푹 쉬고 스트 레스를 풀었답니다. 11월 모임이 끝나고 그 다음 주에도 시간이 되는 아빠들은 또 아이
들 데리고 1박2일 여행을 가서 놀았다는 사실!! 처음 만났을 때는 너무 어색했던 아빠들이 먼저 아이들만 데리고 1박2일 여행을 하러 갔다는 사실도, 너무 즐거워서 2주 연속으로 갔다는 사실도 너무 신기할 따름이지만, 그 무엇보다 아빠들끼리 친해져서 이렇게 모임이 지속되어가고 있고, 엄마들도 독박육아를 벗어나서 행복한 힐링타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너무나 감사할 따름입니다! 엄 마, 아빠들이 모두 모여도 즐겁지만, 육아를 하다보면 따로따로 힐링의 시간을 갖는 것도 너무나 간절하기에, 육아공동체가 만들어 지고 난 뒤에 무엇보다 그 부분이 너무나 감사 하고 좋은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빌어서, 항상 언제나 협조적인 우리 육아공동체 모든 구성원들에게 감사하고, 늘 시골집에 장소를 내어주는 유나네에게도 감사하고, 선뜻 아빠들 모임을 이끌어주는 우리 유준이아빠에게도 감사합니다. 그리고 바쁜 와중에도 일 마치고 꼭 참석해주는 예 주네, 채아네, 지한이네에게도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좋 은 육아공동체를 만들고,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신 부산시육아종합지원센터에도 감사드립니다. 내년에도 소중한 인연 꾸준히 이어가면서 행복한 공동육아를 할 예정입니 다. 무엇보다 건강한 가정생활을 위해서 이런 지원들이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감사합니다.
어둠에 내린 한줄기의 빛, ‘공동육아’
박선영
“ 딸칵 ” “어? 아빠 왔나보다” “휴 … 집 좀 치우고 있지 뭐했어?” “나 하루종일 아기 보느라 … ” “아니, 장난감 하나 쓰면 하나 치우고 다른 것 꺼내라고!” “네가 해봐! 육아며 집안일이며 내가 다하잖아! 힘들어죽겠다고 … ” 열 달을 기다려 만난 너무 예쁜 우리 아기, 이렇게나 소중한 아기가 우리에게 찾아왔 는데, 우린 왜 더 멀어졌을까 … 매일 아침 예쁜 옷에 화장을 하며 나를 꾸미고, 출근길에 달달한 바닐라라떼를 즐기던 내가 어느새 축 늘어진 옷에 못 씻어 꾀죄죄한 몰골을 한 아줌마가 되었다. 아이를 만나 벅차고 설레던 마음도 잠시, 처음 ‘엄마’가 된 나는 아이 울음 하나에도 발동동하며 어쩔 줄 몰랐고 내가 얼마나 피곤한지, 내 마음이 어떤지 모르는 것만 같은 남편에게 괜한 심 통이 났다. 남편과의 대화는 점점 줄어가고 나는 한없이 어두워져만 갔다. 그렇게 점점 세상에 아이와 나 둘만 남겨진 불안감이 나를 엄습할 때쯤 “딩동”하고 내내 잠잠하던 휴 대폰 알람이 울렸다. 조리원에 있을 때 번호를 교환했던 이른바 조동(조리원 동기)엄마들의 메시지였다. 특 별한 내용 없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었지만 그게 왜 이리 반가운지, 우리는 함께 ‘힘 듦’을 공유하면서 급속도로 친해졌다. 그렇게 아이들과 엄마가 처음 모인 날, 아이들을 보느라 차갑게 식어버린 김치찜을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일어선 채로 급하게 먹으면서도
함께 육아를 하니 우리는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다. 집에선 마음 편히 가지도 못하던 화 장실도 다른 엄마들이 있으니 여유롭게 다녀올 수 있었다. 혼자 육아할 땐 시간이 언제가 나 시계만 쳐다보며 남편 퇴근시간만 손꼽아 기다리곤 했는데, 엄마들과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공동육아를 하니 어느새 시간은 훌쩍 지나가고 아이의 울음소리 또한 더 이상 두 렵지 않았다. 마치 든든한 전우와 함께하는 기분이랄까? 그 이후에도 우리는 육아공동체를 만들어 공동육아를 이어나갔다. 평소에 육아용품 할 인정보, 아이가 잘 먹는 이유식 레시피 등의 정보공유는 물론이고 아이가 아플 때 병원 정 보나 경험담을 나누는 것은 초보엄마들에게 가뭄의 단비와 같은 일이었다. 때때로 엄마 들끼리 ‘자부(자유부인)타임’을 갖기도 했다. 아이가 태어나고는 외식도 잘 못하거니와 항 상 아이와 함께하다보니 연기가 나는 굽는 요리는 먹은 적이 없었는데, 아이들을 남편들 에게 맡기고 엄마들끼리 만나서는 조개구이도 먹고 고기도 먹을 수 있었다. ‘자부타임’에 우리는 연신 “아~ 기분 좋다”, “행복하다”라고 말했고, 그간 켜켜이 쌓인 육아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곤 했다. ‘자부타임’으로 재충전한 우리는 그 힘으로 육아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육아공동체는 점점 확대되어 아빠들까지 참여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아빠 들까지 모인 전체 육아공동체 모임의 날, 각자 아이들을 안고서 나타난 아빠들은 얼은 표 정으로 쭈뼛쭈뼛 인사를 나누었다. 엄마들이 식사하는 동안 아빠들은 아이들과 함께 놀 아주었고, 엄마들의 식사가 끝난 후 아빠들의 식사가 시작됨과 동시에 통성명, 육아 고충 토로 등이 줄줄이 이어졌다. 아빠들 또한 아빠 나름대로의 육아 고충을 나눌 동지를 만나 기뻤던 것인지 어색함도 잠시 하하호호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아빠들의 자유시간 또한 필요하다는 남편들은 그 자리에서 다음번 모임약속까지 단번에 뚝딱 정해버렸다.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 무뚝뚝한 성격에 아이와 놀아주기 낯부끄럽다던 남편 은 ‘다른 아이들은 아빠들에게 불쑥불쑥 찾아오는데 우리 아이는 본인에게 오지 않고 엄 마에게만 붙어있는 모습을 보고 느낀 바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어쩜 … 백문이 불여일견 이라더니, 아이와 교감하고 잘 놀아주라는 내 백번의 잔소리보다 공동육아의 현장에서 본인이 직접 본 모습들이 임팩트가 훨씬 컸던 것이다. 나는 내심 속으로 ‘아싸’를 외치며 더욱 더 자주 만남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했고 그렇게 남편은 더디지만 다정한 아빠로 꾸 준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엄마들의 복직, 아이들의 어린이집 입소 등으로 바쁜 와중에도 우리는 육아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최소 월 1회는 전체 모임을 가지고 틈이 나는 대로 육아종합지원센터, 키즈카 페, 시민공원 등에서 소규모의 모임을 가지곤 했다. 더위가 한풀 꺾인 선선한 가을이 되 자 우리는 바다뷰에 아이들이 뛰어놀 넓은 잔디밭과 모래사장이 있는 카페로 나들이를 떠나기도 했다. 아이들은 모래사장에 모여 모래놀이를 하고 엄마, 아빠는 함께 놀이에 참 여하거나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며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혼자 끙끙거리며 육아할 땐느낄수 없었던 여유와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공동육아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내 아이, 다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든 아이들을 함께 돌 보게 되었다. 세심한 성격의 우리 딸에게는 통하지 않던 남편의 장난에 다른 아이들은 깔 깔깔 웃었고, 나는 당돌하게 안아달라는 씩씩한 남자아이를 품에 안아주었다. 딸만 있는 나는 로봇을 가지고 오며 “도키”라고 말하는 남자아이에게 “토끼?”라며 되물었고(로봇에 있는 도끼를 말한 것이었다), 아들만 있는 아빠는 딸아이를 갑자기 훅 들어올려 엉엉 울 려버리는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 우리는 이 공동육아를 통해 다름을 인정하고 내 아 이에만 집중하는 편협한 관점에서 벗어나 시야를 넓혀나갈 수 있었다. 아이들은 서로를 신경쓰지 않는 듯 각자 놀다가도 서로서로 모방하고 배울 점을 찾았 고, 다른 아이들과 부대끼며 장난감과 간식을 나누는 법, 같이 노는 법 등을 자연스레 배 워나갔다. 이러다보니 처음엔 육아공동체에 굳이 자기도 참여해야 하냐, 안가면 안되냐던 남편은 다음에는 다같이 1박 2일로 여행을 가자며 여행 장소를 물색하고 있는 중이다. 난 여전히 부족한 초보엄마다. 그렇지만 단하나 바뀐 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내가 혼 자가 아니라는 걸 안다는 것! 육아공동체 엄마 아빠들과 힘을 모은다면 무슨 일이든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다는 믿음, 확신이 생긴 것이다. 어둠에 내린 한줄기 빛같은 공동육아! 그 럼 오늘도 다 같이 신나게 육아하러 가볼까!
그렇게 부모가 된다
박주언
시험관 아기, 조산하다. 만 31살의 난임 휴직, 임신성 당뇨, 조산, 니큐 입원, 육아 … 시작부터 어느 것 하나 쉬운 것 없는 임신, 출산이었다. 어릴 적부터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자라온 나는 정말 좋은 부모가 되고 싶었고 그렇게 딸아이를 임신하게 되었다. 임신성 당뇨가 있어 임신 기간 내내 조심하고 관리하며 지내온 나는 예상치 못하게 35주 조산을 하게 되었다. 아 기를 낳았지만 코로나로 면회조차 쉽지 않았고 집에서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출 산 후 23일 만에 아기를 집에 데려올 수 있었다. 아기만 퇴원해서 집에 오면 모든 게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다. 아기가 온 첫날, 모유수 유를 하면서 행복감을 느낀 것도 잠시였을 뿐 잠을 못 자게 되면서 하루하루가 너무 피곤 의 연속이었다. 임신 때부터 다짐했던 모유수유도 생각처럼 잘 되지 않으면서 심적으로 도 힘들기 시작했다. ‘엄마라면 당연히 모유수유 해야지!’라는 이상한 내 고집때문에 아 기가 잠만 자면 인터넷에 ‘아기가 먹다가 자요’, ‘5분만 먹고 안먹어요’ 등 글을 올리기도 하였으나 크게 도움을 받지 못했고, 조리원에 머무를 때 알게 된 모유수유 마사지 선생님 께 연락을 하게 되었다. 비용을 내야 만날 수 있는 선생님인데 내 연락에 너무나도 친절 히 응대해주셨고 연락하다보니 우리 아파트에 거주하시는 것 아닌가! 선생님께 정말 ‘완 모’하고 싶다고 하니, 집에 직접 오셔서 모유수유 하는 자세도 봐주시고 아픈 내 가슴 통 증도 해결해주셨다. 시간이 끝나고 나서 당연히 결제를 하려했는데 괜찮다며 황급히 가 시는 모습에 너무 죄송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다. 요즘 세대 중 완모하고 싶어하는 엄 마들 잘 없는데 내가 기특해서 종종 도와주고 싶다고 하셨다. 출산 전에는 이웃과 크게 대화를 할 일도 없던 나는 처음으로 아파트에서 이웃의 정이라는 걸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모든 게 초보엄마였던 나는 딸아이의 100일을 무사히 맞이할 수 있었다. 양가 가족들에게 처음으로 아기를 보여주고 그동안 고생했다며 위로를 받기도 했다.
끝없는 아기 걱정 그리고 소통의 시작 그리고 행복하게 육아를 계속 이어갔으면 좋았을 테지만, 아기가 6개월이 되던 시점부 터 나는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발달장애 관련 영상을 보게 되었다. 잘 웃지 않음, 눈 맞춤 잘 안됨, 뒤집기 느림, 엄마 안 찾음 등의 증상을 보면서 우리 아기가 여기에 해당되는 건 아닐까 하고 시작한 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내 머릿속이 아주 복잡한 상태가 되었다. 우리 아기는 아닐 거야 하면서 아무리 웃는 표정을 보려고 노래도 불러보고 웃긴 표정을 지어 봐도 우리 아기는 별 반응이 없었다. 이때부터 난 심각해져갔고 우리 아기가 다른 아기들과 다르다고 혼자 판단하고서 너무 마음이 힘들었다. 더 이상 아기와 있는 시간이 즐겁지 않고 괴로웠고 내 인생은 왜 하나같이 다 힘들고 어려울까 싶었다. 아마 이 때 산 후우울증도 같이 왔었던 것 같다. 그래도 내가 엄마인데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노력이라도 해보자 싶은 생각이 문득 들 었다. 일단 내가 너무 우울하니 같이 육아하는 엄마들과 소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 쩌다 아파트 안 중고거래 장터에서 기저귀를 사게 되었는데 마침 같은 사이즈의 기저귀 라 서로 아기가 몇 개월이냐고 물어보게 되었다. 그러니 아기 생일이 10일 차이밖에 나 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는 자연스레 연락처를 주고받게 되었고 집에 있는 과일 몇 개를 챙겨 아기엄마를 보러 가게 되었다. 나와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육아하는 모습을 보며 배 우기도 하고 서로 궁금한 것도 물어보면서 점점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아파트 엄마들을 사귀면서 아파트 내 육아 단체톡방에도 들어갈 수 있었다. 매일매일 육아 관 련 팁, 아기 머리 잘 자르는 동네 미용실, 어린이집 정보, 안 쓰는 육아용품 나눔까지! 엘 리베이터에서 “안녕하세요” 인사 정도 하던 내가 아파트 이웃들과 이렇게 소통하고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시간이 날 때면 아기엄마들과 연락하여 놀이터 근처를 산책하기도 하고 근처 전포어울 더울센터에 있는 키즈카페에 가기도 하였다. 집 근처에 육아종합센터가 있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었다. 장난감도 무료로 빌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키즈카페가 항상 열려있으니 아기와 심심하면 놀러가서 직원분들과 이야기도 하고, 아기랑 재밌게 놀다가 오곤 했다.
아기를 데리고 가기 힘든 어린이 도서관도 가서 책도 보여주고 센터에 가는 겸 나도 유모 차 산책을 할 수 있어 힐링이 되었다.
사막 속의 오아시스, 그 이름은 가족 또한, 주말이면 친정과 시댁을 오가며 바쁘게 지냈다. 내 고민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걱 정해 주는 사람은 역시 가족이 제일이었다. 자식 걱정을 하는 내 모습을 걱정하는 부모님 께 죄송하기도 했지만 아기가 괜찮은 것 같다 해주시고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 나를 다 독여주니 마음이 훨씬 든든했다. 가족들과 함께 있어 즐겁게 얘기하고 바쁘게 지내다 보 면 아기 걱정을 덜하곤 했다. 그래서 무조건 나가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동안 너무 힘 들었던 나는 아기가 점점 발달하는 모습을 보며 걱정을 하나씩 덜게 되었고 감격스러운 우리 딸의 첫 돌을 맞이하게 되었다. 15개월이 된 현재 우리 딸은 엄마만 졸졸 따라다니며 엄마랑 그네 타고 미끄럼틀 타는 게 제일 좋은 아주 귀여운 공주다. 자식 걱정은 끝이 없다고 여전히 아기에 대한 걱정은 항상 있지만 그때만큼의 어려움은 없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을까 싶지만 정말 많이 힘 들었고 그럴 때마다 내 돌파구는 주변에 함께 있는 이웃, 가족들이었던 것 같다.
평생하는 육아 행복하게! ‘아기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출산 전에는 딱히 몰랐던 이웃, 가족의 소중함을 내가 제일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놓이다 보니 깨닫게 되었 다. 모유수유 마사지 선생님의 따뜻한 배려, 이웃 엄마들과의 소통, 남편과 가족의 묵묵 한 응원, 육아종합지원센터라는 인프라 덕분에 이렇게 사랑스러운 우리 딸을 눈에 담을 수 있어 지금은 너무나 행복하다. 분명 지금도 나와 비슷한 걱정을 하는 엄마들이 많을 것이다. 겨우 15개월밖에 되지 않 은 초보엄마지만 힘들수록 세상 밖으로 나가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나 또한 앞으로 평생 해야 하는 육아 마라톤에서 힘들고 지치는 순간이 많겠지만 그럴 때마다 쉽게 판단하고 포기하지 말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겠노라고 다시 한 번 다짐해본다. 그리고 지 금 곤히 잠들어 있는 우리 딸에게 세상에서 제일 든든한 엄마가 되겠다고도 다짐해 본다.
밀키카우마더스 - 나와 아이의 소중한 인연들
배지영
아기를 갖고 몸이 무거워지는 임신의 기간을 겪고 나서 출산을 하고 나니 선배맘의 말대로 진짜 제대 로 된 육아 전쟁은 그때부터 시작이었습니다. 아기가 신생아일 때는 너무 작고 소중해서 어떻 게 다루어야 할지도 몰랐고, 새벽수유와 반복되지 만 나아지는 상황이 보이지 않는 일상으로 매우 지쳐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아이가 커갈수록 상호작용은 할 수 있었지만 성인 수준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황은 아닌지라 답답한 날들도 많았습니다. 이런 막막했던 육아 시간들에 있어서 동네 친구들은 제게 한 줄기 빛과 같았습니다. 동네 엄마가 아니라 동네 친구라고 칭할 만큼 돈독한 사이인 우 리의 인연은 신기한 순간에 찾아왔던 것 같습니다. 저와 제 첫째 아들의 소중한 인연들에 대해 한 명씩 소개와 자랑을 하고자 합니다. 저의 첫 번째 인연인 성우네는 남편 덕에 만날 수 있었습니다. 길 건너편에는 남편의 선배가 살고 있었고 저희와 결혼기념일도 하루 차이인데, 그 선배의 아기가 21년 2월생 이었습니다. 사실 만나기 전에는 저와 직접적으로 아는 사이는 아니기 때문에 ‘만나서 무 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하는 고민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직접 언니와 성우를 만나고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제가 만삭이고 성우가 기어 다닐 때쯤이 첫 만남이었던 것 같습니 다. 저는 그 당시 만삭이어서 출산 자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 두려움 들을 저보다 더 빨리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성우 엄마의 이야기와 경험담 덕에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꼬물거리며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성우를 보면서 내 아이를 빨리 만나고 싶다는 기대감과 긍정적인 생각들을 많이 할 수 있었답니다. 또한 수호가 태
어난 이후에도 자주 만나면서 공동육아를 하며 육아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힐링하는 시간 을 많이 가졌습니다. 지금 우리 아들은 가족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엄마, 아빠, 수호, 아 기, 성우”라고 대답할 만큼 성우를 무척이나 좋아한답니다. 우리 모임의 홍일점인 서인이는 제가 만삭일 때부터 뱃속 친구였습니다. 저와 서인이 엄마는 1살 차이지만 예정일도 같은 달이고 같은 병원에다가 같은 원장님인 것까지 비슷 한 점이 많았습니다. 만삭이어도 1만보는 걸어야 한다는 산부인과 원장님의 말씀에 따라 공원에서 자주 만나 걸어 다니면서 친분을 쌓았답니다. 그렇게 서인이가 먼저 태어나고 저의 아들인 수호가 태어났습니다. 신생아 때는 아기를 돌보느라 바빠서 실제로 만나는 날은 없었지만 SNS로 연락을 하며 서로 의지를 많이 했습니다. 앉아서 버틸 수 있는 200 일쯤에는 셀프 컨셉 사진도 찍으면서 서로의 성장을 축하해줬답니다. 서로의 집을 방문 하며 공동 육아도 하고 아이들이 스스로 앉을 수 있을 때쯤 문화센터도 같이 다니면서 더 욱 친해졌습니다. 세 번째 인연인 현빈이는 문화센터에서 만나게 됐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문화센터에 서 엄마들이랑 친하게 지내야 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서 다른 사람들과 친해지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수업을 듣는데 유독 눈에 띄 는 아기와 엄마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현빈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현빈이의 외모에 반했 는데, 볼살이 통통하면서 표정도 근엄진지한 매력이 있어서 유독 눈에 들어온 것 같습니 다. 수업 도중 저의 아들인 수호가 먼저 현빈이 근처에 가서 같이 활동을 하면서 처음 말 을 걸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현빈이 엄마와 대화도 잘 통하고 가치관도 잘 맞았습니다. 그렇게 서인이와 셋이서 삼총사처럼 친하게 되었고 문 화센터에서 두 번의 계절 동안 같은 수업들을 수강하고 공원 산책 및 나들이도 많이 다니 면서 공동육아를 하며 많은 추억들을 쌓았답니다. 마지막으로 21년 9월생인 우리 막내 동윤이와의 인연은 생각해보면 가장 신기하게 시 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인플루언서의 오픈 카톡방에서 정보를 공유하는 공간이 있 었습니다. 거기에서 ‘땅콩맘’이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같은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이 있었 습니다. 한 달 정도 뒤에 오픈 카톡방이 없어지고 이야기를 많이 나눈 것은 아니지만 저 는 ‘땅콩맘’이 계속 기억에 남았습니다. 마침 제가 SNS 아이디를 기억해내어서 연락을 먼저 했습니다. 알고 보니 우리는 같은 동에 살고 있었습니다. 제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집으로 놀러오라고 이야기하면서 첫 만남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동윤이와 동윤 엄마 를 처음 만난 날부터 낯설지 않고 저보다 세 살이나 어렸지만 몇 번 만났었던 것처럼 친 근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자주 연락을 하며 가끔씩 집에 초대하면서 함께 육아를 했 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다 같이 친구가 되어서 만나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 을 했습니다. 엄마들끼리는 서로 육아 고민도 공유하고, 아이들끼리도 서로 놀 수 있는 친구가 되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저의 소개로 인해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이긴 했지만, 모두 다 같이 만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부산시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육아 는 행복해’ 육아공동체 모임을 모집한다는 기쁜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최소 월 1회 이 상 만남을 갖도록 의무성을 가진 육아공동체 모임은 오히려 저희들이 더 잘 만날 수 있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육아공동체 모임에 부모 공동체와 부모-자녀 공동체 두 가지 중 하나도 놓치기가 싫어서 두 가지로 작성하여 지원하게 되었고, 최종적으로 선정되었 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월 1회 이상 아이들과도 물놀이, 물감놀이, 흙놀이, 신체놀이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부모공동체로서 엄마들끼리만 만나서 자유부인의 시 간을 가지며 육아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좋은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특히나 우리 공동체에게 고마웠던 일은 아이가 24개월쯤이었습니다. 그 때 저는 육아 인생에서 가장 큰 번아웃을 경험했습니다. 주변의 수호 또래 친구들은 두 단어 이상을 말 하던 때였으나 수호는 엄마, 아빠 등 기본적인 단어를 하지만 두 단어로 연결 하지 못하 고, 특정 단어를 다른 단어로 대체하여 말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너무 걱정이 된 나 머지, 영유아 검진을 할 때 꼼꼼히 봐주는 곳으로 갔습니다. 돌아오는 답변은 현재 수호 의 언어 발달에 있어서 주의가 필요하고 30개월까지도 언어와 관련하여 발전이 없으면 기다리지 말고 빨리 검진을 하러 오라는 답변을 전문가에게 들었습니다. 그 뒤로는 아이 의 발달과 관련하여 남편과 한동안 고민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가까운 발달센터로 가 서 테스트를 해보니 수용언어는 빠르지만 표현언어 중 다른 단어로 대체하는 것에 있어, 뇌에서 받아들이는 청신경 쪽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전문가의 입에서 그런 답변을 받으니 너무 충격적이었고, 세상이 무너지는 듯 한 기분이었습니다. 이러한 아이의 언어 발달에 관련한 고민들을 엄마들끼리 모임을 할 때 털어놓으며 상 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다들 자기 일처럼 공감을 해주며 저를 위로해주었습니다.
특히나 개월 수가 빨랐던 성우엄마의 경우에도 그런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아이가 30개 월을 기점으로 갑자기 단어와 문장이 폭발하면서 아무런 문제없이 언어가 발달했다며 위 로를 해주었습니다. 또한 동윤엄마의 지인이 유명한 언어치료사인데 수호의 언어 발달에 대해 듣더니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해주었습니다. 자세히 알고 보니 그 발달센터에서 상담해주신 분은 전반적인 발달과 관련하여 상담해주시는 분이셨고 언어와 관련해서는 전문적 지식이 부족했던 것이었습니다. 만약 이 엄마들이 그 때 제 곁에 없었더라면 어땠 을지 상상이 안될 만큼 심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저에게 많은 위로와 도움이 되었습니 다. 모임을 만들어준 저에게 늘 고맙다고 하지만 그들에게 가장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제 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28개월인 수호는 문장으로 말하기도 하고 하루가 다르게 새로 운 형용사나 동사를 말하는 등 문제없이 성장하고 있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용기도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먼저 엄마들에게 손을 내민 용기와 육아공동체 모임에 뽑히기 위해 지원서를 작성하는 등의 용기와 노력들이 모여서 우리의 인연이 시작되었고, 또한 꾸준히 지속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모두 첫 째가 소띠인 엄마들이자 비슷한 연령대와 공감대를 갖고 있는 우리의 인연이 계속 지속 되기를 바라며, 엄마들끼리 월 1회 이상의 만남을 갖기로 했답니다. 벌써부터 아이들과 함께 하기로 한 연말 파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명 한 명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아이도 오늘이 처음이듯이 오늘이 처음인 모든 엄마들과 아빠들을 응원하며 글 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엄마는 이제 행복하단다
송인영
가지 환청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내 머리 속을 어지럽혔고.. 그렇게 사랑스런 아이를 보 며 돌까지만 참아보자.. 조금만 더 버텨보자 하며 끌려가듯 시간을 이겨냈습니다. 그리고 아이 돌이 되던 시기에 제주는 메르스 등으로 관광산업에 피해가 끼쳐 회사가 어려워 졌고 구조조정에 의해 남편까지 퇴사하게 되었습니다. 제주에서의 직장생활을 끝 으로 모든 것을 정리하고 고향인 부산으로 다시 돌아오게 됐습니다. 이후 부산에서 시부 모님과 함께 생활하며 육아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고용노동부의 ‘취업성공패키지’ 를 통해 남편과 저는 열심히 각자의 재도약을 준비했습니다. 국비를 수령하며 학원을 다 니게 되고, 기관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인해 면접과 취업을 이룰 수 있게 됐습니다. 남편 은 중장비와 자동차 대형면허, 지게차 등의 자격증을 취득했고, 저는 피부미용 자격증을 취득하여 서로 다른 직장에서 새 출발을 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다보니 첫 출산 때의 우울증이 점점 나아졌고, 다시 안 정적인 생활을 하게 될 때쯤이었을까요.. 2022년 말, 결혼 7년 만에 둘째가 찾아왔고, 행 복과 동시에 첫 출산 후 제주에서 힘들었던 육아가 반복되지 않을까하는 잊혀지지 않은 두려운 마음 또한 들었습니다. 하지만 첫아이를 키우며 평생 알지 못했던 나의 강한 모습 과 조건 없이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대할 수밖에 없는 아이를 보며, 나 또한 아이와 함께 많은 성장을 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힘들게 찾아 와준 둘째는 첫 아이 때보다 성장한 엄마로 더욱 잘 키워보리라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둘째는 부산 연제구 보건소에서 임신등록을 하게 되었고, 2017년 첫아이 때보 다 훨씬 더 나아진 임산부 혜택과 진료 혜택 등을 안내받습니다. 보건소에서 소득에 맞춘 추천서를 발급해주셔서 인구보건복지협회를 통해 무료로 필요한 접종, 진료 및 검사 등 을 받게 되었고, 임신 기간 동안 무수히 많은 검사 비용을 아낄 수 있었습니다. 또 부산에 서 시행되는 서비스 중 가장 만족스러웠던 ‘생애초기건강관리사업’에도 신청할 수 있었 고, 출산 후 행정복지센터 안내와 도움으로 기저귀 바우처 또한 수령하고 있습니다. 출산율이 많이 감소한 현재, 아이들에 대한 젊은 또래 친구들의 ‘노키즈존, 금쪽이, 공 공장소에서 뛰어 다니냐, 벌써 핸드폰 하냐’ 등.. 부정적이고 너그럽지 않은 시선에서 아 이들을 키우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정부에서 주는 첫만남바우처 외에 부산시에서 제공하는 출산축하금, 연제구에서 지원받은 산후조리비 등 한결 부담을 덜 수 있는 혜택 들로 인해 아주 많은 힘이 됐습니다.
첫 출산이었던 제주에서와는 다르게, 부산에서의 출산 후 행정복지센터에서는 현재 제 가 받을 수 있는 혜택들을 안내하는 전화를 여러 번 주셨고, 신청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 습니다. 그리고 임신 때 신청한 ‘생애초기건강관리사업’으로, 간호사분이 직접 집으로 찾 아와 산모와 신생아 건강을 관리해주셨습니다. 집이 좁아 산후도우미를 불러 산후조리를 받을 여건이 되지 않았고, 차 없이 신생아를 데리고 병원을 혼자 다녀야 하는 제게 정말 필요한 도움이 되었습니다. 출산 후 많은 엄마들이 놓치는 1차 영유아검진도 집으로 오 셔서 1:1로 세심하게 진행해주셨고 백분위로 설명도 해주셨습니다. 엄마들이 바쁜 육아 로 인해 놓치고 있는 많은 혜택에 대해 안내되어있는 책자도 전달받았습니다. 저는 둘째를 키우고 있지만 2017년 과거의 저에게도 꼭 필요했을 모유수유, 신생아목 욕, 아이 울음, 수면, 외출 등.. 많은 정보를 모두 세심하게 알려주시며, 위로를 건네주셨 습니다. 그리고 가장 무서웠던 산후우울증에 대해서도 진단을 통해 안내해주셨고, 우울 증에 도움 되는 것과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관, 그리고 치료가 꼭 필요한 일이라는 것, 남편이 도와야 할 일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알려줬습니다. 현재 아이가 4개월이 지나가고 있지만 과거와는 다르게 그저 사랑으로만 행복하게 아 이를 키울 수 있음에 너무 감사합니다. 방문하셔서 제 육아와 출산 이야기까지 귀담아들 어주시며 감정교류도 해주시고, 잘하고 있다고 아낌없이 응원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계 단이 많고 좁은 주택이지만 아이 체중계까지 챙겨 오셔서 친절히 대응해주시는 모습에 더 감사하고, 감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퇴사로 인해 제주를 떠나야 했을 때는 마음이 무겁고 막막했는데, 고용노동부의 ‘취업 성공패키지’를 통해 부산에 무사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받았고, 전공이 아 닌 일에 도전하여 재취업에 성공 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임신을 하게 되고는 보건소 의 도움을 받아 임산부 생활에 부담을 덜었고, 출산 후 부산에서 시행되는 서비스 바우처 등으로 아이를 키우는데 있어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특히, ‘생애초기건강관리사업’을 경험하고 나서는 과거의 미숙한 엄마였던 나에게도 이런 혜택이 있었다면, 출산보다 무서웠던 산후우울증 없이 지나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과거의 나처럼 첫 아이를 임신하고 첫 육아를 하 게 되는 미숙한 엄마들에게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 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서비스들이 계속 진행되고 발전되어, 산모와 아이들의 몸과
정신까지 행복할 수 있는 부산에서의 생활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네 가족이 되기 까지 부산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던 기관 여러분에게 이 글을 통해 감사한 마음을 전해 봅 니다. 감사합니다.
둘, 셋, ‘함께’
이채원
나는 11개월의 딸아이를 둔 엄마이다. 남편은 평일 9시부터 18시까지 근무, 친정은 3시간 거리, 시부모님은 모두 일을 하고 계셔서 평일 육아는 오 롯이 나의 몫이다.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아이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맘카페에서 알게 된 조리원 동기 동생에게 메시지가 왔다. “언니, 뭐하세요? 저 오늘 육아종합지원센터에 가려고 하는데 관심 있으 면 같이 가실래요?” 육아종합지원센터… 주변 아이 엄마 들이나 맘카페에서 줄임말로 ‘육종지, 육종지’라고 해서 나중에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 했던 터라 조리원 동기 동생의 메시지가 무척 반가웠다. 그렇게 육아종합지원센터와 나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구 육아종 합지원센터에 방문하자 입구에 있는 직원 두 분이 아이와 나를 친절하고 편안하게 맞이 해주셨다. 안내에 따라 회원가입을 하고, 아이가 좋아할 만한 장난감을 빌려왔다. 아이가 장난감을 금방 싫증을 내기도 하고 제값을 주고 사기에는 비싼 것들이 많아서 중고를 알 아보기도 했지만 혼자서 육아를 하는 나에게는 중고거래를 하러 가는 것도 부담스러웠고 나중에 처분하는 것도 곤란했었는데 육아종합지원센터를 통해 아이 개월 수에 맞는 여러 가지 장난감을 다양하게 빌릴 수 있어서 편리하고 든든했다. 집 가까이에 육아종합지원 센터가 있는 것은 나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어느 날, 육아종합지원센터 SNS를 통해 부모-자녀 프로그램 신청 안내문을 보게 되었 다. ‘드디어, 우리 쪼꼬미가 생후 6개월이 되어 이런 프로그램 놀이에 참여할 수 있겠구
나!, 그것도 주말이라니!’ 그동안 독박육아에 지치기도 했고, 남편과 딸이 함께 보내는 시 간이 상대적으로 적어 고민이었던 우리 가족에게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첫 놀이시간이 되었다. 조금 놀랐던 광경은 생각보다 아빠가 아이를 데려온 가정이 많 았다는 것이다. 평일에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었다면 조금 다른 모습이었을 거라 생각하니 주말프로그램을 만들어 준 육아종합지원센터에 문득 감사했고, 아빠와 아이가 함께하는 모습에 보고 있던 나까지 설레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물론, 기대했던 만큼 강사님께서 아 이를 좋아해 주고 열정 가득 수업을 이끌어가는 모습에 또 한 번 감사했다. 덕분에 아이 가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늘어났고, 나도 그 시간동안 밀린 잠을 자기도 하 고, 육아서적을 읽는 등 주말다운 주말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육아생활에 있어서 어느새 육아종합지원센터와 함께하고 있었다. 나는 이 외에도 도서 대여, 키즈카페, 돌 촬영에 쓰기 위한 돌상 대여 등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추 진하는 여러 가지 사업을 활용하고 있다. 추후 아이를 돌보다가 급한 일이 생기거나 육아 종합지원센터에서 주최하는 부모교육에 참여할 때면 시간제 보육도 이용해 볼 생각이다. 사실 나와 육아종합지원센터와의 인연은 미혼일 때부터 시작되었다. 육아휴직 전, 내 가 맡은 업무는 부모가 아이를 잃어버렸을 때 쉽고, 빠르게 찾아주는 ‘사전지문등록’을 해주는 일이었다. 관내에 있는 아동복지시설,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등에 방문신청 을 의뢰하고, 직접 방문하여 아이의 지문을 등록해주는 것인데,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중간자의 역할로 아이를 둔 부모들에게 적극적으로 참여를 유도하고 홍보해주었던 기억 이 난다. 그때는 그냥 업무였을 뿐이고 ‘많이 참여해주었구나’하고 끝이었는데, 한 아이 의 엄마가 되어보니 ‘한 가정의 육아에 있어서 이 기관에서도 함께 노력하고 있었구나’라 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한 가정의 육아 활동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었다는 생각에 뿌 듯했다. 이렇듯 기관 하나하나의 노력이 모여 아이 키우기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 고 생각한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0.78명, 올해 2분기 출산율은 0.7명으로 역대 최저를 기 록했고, 통상적으로 연말로 갈수록 출생아 수가 줄어드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0.6명대까 지 떨어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물론 ‘아이를 많이 낳아라’라는 목적 하에 난임, 불임 등에 대한 사전적인 지원 대책과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를 낳고 난 후 키우는 일이야말로 정신적, 신체적, 금전적 등으로 힘들기 때문에 양육자가 행복하고 편
안하게 육아를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가 선행 되어야 한다 고 생각한다. 또 맞벌이 부부가 많기 때문에 부모가 일할 때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 는 육아 지원 시설과 서비스들이 더욱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세 아이를 두 명의 양육자가 함께 보는 것보다, 한 아이를 한 명의 양육자가 돌보는 것 이 더 힘들다고 한다. 그렇게 둘, 셋, ‘함께’라는 것은 강력한 힘이 있다. 하루빨리 아이 낳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가정과 지방자치단체, 사회가 함께 육아를 책임지는 사회 로 변화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육아, 그것이 첫걸음이 아닐까.
육아공동체 우수 수기
2023년 ‘육아는 행복해’
강가에 살으리랏다
자연과 아이들
권슬기
자연활동을 좋아하는 아이를 둔 엄마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이들에게 좀 더 좋은 자연체험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엄마들도 자연에서 힐링할 수 있는 방법을 구상하고 실행을 목적으로 하는 공동체 모임입니다.
올 초여름부터 시작된 ‘육아는 행복해’ 공동체 활동은 처음에는 단순히 지원금만 생각 하고 시작한 활동이었습니다. 4살, 5살, 6살, 7살을 데리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하였는데, 생각보다 아이들은 장난감과 미디어 없이도 아무것도 없는 환경에서도 놀이를 찾아내고 첫 만남에 서로 어색해하는 모습은 금세 없어지고 신나게 뛰어놀았습니 다. 채집통을 가지고 곤충들도 잡고 나무에 열린 열매들도 따면서 만져보고 관찰하며 자 연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밖에 나오니 조용히 해라, 뛰지 말라 소리도 안하게 되고 아이들이 노는 모습만 봐도 부모들은 힐링이 되었습니다. 평소라면 그러지 않았겠지만, 아이들의 그런 모습들을 보 니 옷이 더러워질 정도로 잔디밭을 구르고 뛰어놀아도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만 논다면 모든 것을 허락하였습니다. 육아가 편해지고 행복해지니 아이들 또한 더 편하게 해줄 수 있는 육아 방향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아쉽지만 성공적이었던 첫 모임도 끝이 나고 7월, 8월 무더운 여름을 맞이하였습니다. 여름에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물놀이를 하기 위해 계곡으로 아빠들도 함께 달려갔습니다. 큰 보트도 타고 물고기도 잡고 바위에 붙은 다슬 기도 떼면서 더운 것도 잊어버리고 놀았습니다. 물론 물놀이장의 미끄럼틀도 재밌어하지 만, 아이들은 평소에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고 또 물놀이 후 먹는 식사까지도 재밌어했습 니다. 첫 계곡 뒤로 아이들이 계속 계곡에 가고 싶어 하여 여러 번 다녀왔습니다. 계곡에 몇
번 다녀온 아이들은 직접 물고기 잡을 통도 미끼도 챙기며 평소에 보지 못한 스스로 챙겨 나가는 모습들을 보여주었습니다. 계곡에 가서도 서로서로 보트에 태워 끌어주고 밀어주 며 동생들을 위해 작은 수영장이라고 만들어 놀이도 해주었습니다. 그동안 쌓아온 실력 으로 계곡에서 많은 물고기와 개구리를 잡았는데 집에 돌아가기 전 “더 많이 커서 와! 잘 가!”라는 말과 함께 한 마리씩 사이좋게 돌려보내는 모습을 보면서 예전 같았으면 열 번 이고 더 울었을 아이들인데 아이들이 오늘 하루도 또 한 번 컸구나! 하며 기특한 마음으 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모임 전 아이들에게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어보곤 하는데 아이들은 추운 겨울인 지금 도 계곡에 가자는 말을 할 정도로 올 여름 계곡의 추억이 좋았나 봅니다. 또 가을이 되 어서는 한 구성원이 가본 곳인데, 여기가 우리 아이들에게 ‘딱’이라며 꼭 같이 가보자고 하여 콧바람도 쐴 겸 차를 타고 이동하여 갔습니다. 가는 동안 하늘도 보고 노래도 부르 면서 신났고 도착한 곳은 정말 넓은 잔디와 거위들, 또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 습니다. 자연에서 뛰어노는 것을 좋아하는 저희 아이들에겐 정말 안성맞춤인 공간이었 습니다. 관리자분께서 알려주신 대로 거위를 만지지 않고 지켜봐 주는 아이들의 모습은 정말 귀여웠습니다. 잔디를 보자마자 뛰어가고 공놀이하고 비눗방울까지 하는 모습들 은 부모들이 봐도 기분 좋을 정도로 신나 하였습니다. 허브, 열매 따기 체험도 하였는데 귀엽게 옷도 맞춰 입고 바구니 들고 가는 모습들은 정말 사진을 안 찍을 수 없는 모습들 이었습니다. 허브와 열매를 딸 때 각 이름 들도 알려주며 향기도 맡아주고 하였는데, 저 희가 아는 그것보다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은 나무의 이름을 알고 있어 놀랐습니다. 마 지막으로 에코백 색칠하기 시간 에는 각자의 개성을 살려 색칠하 였는데 그 시간 동안 깔깔거리며 행복하게 하는 아이들을 보니 이 런 시간을 만들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모임은 온라인으로 모 이게 되었는데 아이들과 뛰어노 는 시간도 좋지만, 엄마들은 집
안일까지 마무리한 뒤 앉아서 이야기하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온라인 모임을 하는 날 이면 육아가 힘들기도 하고 아이들 재우는 시간이 안 가기도 하지만 수다를 떨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 생각으로 하고 있다 보면 금세 또 힘이 나서 육아하게 됩니다. 같은 아이들 을 육아하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에 큰 도움이 됩니다. 육아 모임을 하면서 많은 정 보 공유하였었는데, 그중 하나가 유치원 정보였습니다. 정보 공유와 같이 알아보면서 찾 은 덕분에 내년부터는 같은 유치원에 가는 친구도 생기고 또 근처 집들로 이사 계획도 있 어 앞으로는 더더욱 자주 만날 것 같아 내년 계획을 세우는 엄마의 표정과 목소리에 설렘 이 가득하였습니다. 중간중간 정식 모임은 아니지만 2가구, 3가구씩 시간이 맞는 가족들은 만나고 있습니 다. 만나는 동안 늘 당하기만 하는 동생들도 이제는 형, 누나한테 맞서는 법도 알게 되고, 엄마들보다도 동생들의 마음을 더 잘 알아 동생들의 말을 통역해주는 형, 누나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항상 아이들에게 잘해주고 싶고 더 해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 육아를 힘들게 할 때도 있지만 이 모임을 통해 평범하게 내가 편하게 육아를 한다면 아이들 또한 더 즐 거워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커피 한잔의 여유를 알게 되었고 아이들이 자고 난 뒤의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는 눈이 생겼습니다. 아이들이 커가는 동안에도 많은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같이 육아를 하는 부모들과 함께 공유하고 고민하면서 부모와 아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육아를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 다. 육아는 행복합니다!
그린시티 푸른마음이들 힐링타임
과거 혼자였던 육아, 현재는 함께 겪어가는 육아
서민정
핵가족화 및 지역 사회와의 단절로 또래와의 교류가 부족한 요즘, 과거 공동체 육아방식을 공유하고 함께 놀이 함으로써 육아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자녀들에게는 좋은 사회화의 기회를 주기 위한 공동체 모임입니다.
태어나서 처음 엄마가 된 순간 그 조그마한 아이의 육아, 그리고 한없이 나를 내려놓을 줄 몰라서 힘들어했었던 때가 있었다. 아이가 첫 기관에 등록하여 다닐 때에도 주변을 살 펴볼 새가 없었고 오롯이 혼자 집안에서 혹은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서 공허한 육아의 날 들을 보냈다. 이후 코로나가 발생했고 태어난 아이와 뱃속에 있던 아이의 건강이 염려되 어 더욱 혼자 갇힌 생활을 해왔다. 둘째가 태어났고 첫째가 5살이 되던 해 첫째 아이에게 예상 되어져 왔던 수술을 겪어야만 하게 되었고 고작 5세 인생 내도록 집에서 견뎌내 온 아이에게 미안해 친구를 만들어주기 위하여 놀이터를 나가 노는 시간을 조금씩 가지게 되었다. 어느 날은 친구가 한 명, 어느 날은 친구가 두 명, 어느 날은 친구가 세 명. 하루하루 친 구들이 늘어나고 놀이터에서 약속한 듯 모여서 마음반의 놀이터라 지칭할 만큼 단지 내 의 놀이터에는 아이의 친구가 늘어났다. 그리고 모여서 같이 놀던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졸업하여 유치원으로 같이 가게 되었고 나에게 있어서 특별했던 아이라 그 친구들도 소 중했기에 졸업 꽃다발을 선물하게 되었는데 그걸 계기로 같은 반이었던 어린이집 친구 엄마들이 삼삼오오 만나고 연결되어 현재의 육아공동체 엄마들을 포함하여 12집의 친구 들이 만나게 되었다. 한 해 두 해, 반복하고 시간이 지나갈수록 서로 조금씩 소모임도 하고 서로 깊게 알아 가게 되고 또 여러 방면으로 여러 가지 사안으로 조금씩 마음을 쌓아가다가 어린이집의
권유로 조금 더 자주 만나는 엄마들로 구성해 현재의 육아공동체를 신청했고 약 반년 간 지속적으로 더 끈끈하게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다 보니 고민과 걱정이 비슷하고 육아의 스트레스라든지 아이들의 평소 생활, 행동 그들을 이해 하는 다양한 방식을 많이 알게 되었다. 주로 대화만으로 만나게 되었다면 지금은 아이들 뿐만 아니라 모든 가족이 참여하여 얼굴 보고 웃고 공감하고 … ‘먼 사촌보다 가까운 이웃 사촌이 낫다’라는 말을 인정할 정도로 서로 가까워졌다. 처음 의지를 다지며, 가족들끼리 캠핑을 가게 되었는데 아이들을 실컷 놀리고 저녁에 는 엄마 아빠들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엄마뿐만 아니라 아빠들도 육아를 하면서 의지할 곳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서로 육아 이야기에 공감하며 가족 관계가 원만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사실 육아공동체를 하면서 제일 걱정했던 부분은 가족마다 상황이 다르고, 환경도 다 르며, 부모들 성향, 가치관의 차이가 있다면 혹여라도 마음 상할 일이 발생할까 노심초사 했었는데, 다행히 지금까지 잘 지속되고 있고 오히려 더 단단해진 공동체 느낌이 든다. 아주 ‘어릴 적 순수하게 믿을 수 있는 친구만큼 잘 지낼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난 건 축 복이다’는 생각과 함께 앞으로 내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달에 한 번이 아닌, 더 자주 만나며 아이들도 어른들도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생각하면서 모임을 손꼽아 기 다리기도 하고 설렘으로 잠들기도 하였다. 마지막 옹기마을 체험을 신청하면서 반년이 물 흐르듯이 빨리 지나간 것 같아 마냥 아쉬웠다. 2023년 내가 제일 잘한 일은 보고서가 조금 귀찮아도 육아공동체를 지원해서 조금 더 의무적으로 자주 만나고, 연락하면서 의 지하고 믿을 내 사람들이 굳어졌 다는 것이다. 번외로 우리는 올해 10월, 공 동체에서 오사카 여행도 다녀왔 다. 어린 동생을 육아하는 한 집 을 제외하고는 전원이 참석해 4 가정이 다녀왔는데 하루 3만보 씩 걸으며 힘든 여행이었지만 그 누구도 힘들다고 탓하거나 인상
쓰지 않고 완벽한 3박 4일의 여정을 보내고 돌아왔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유니버셜의 추 억을 얘기하고 고베, 나라 투어하며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겪은 우리만의 스토리 그리고 즐거웠던 때를 회상하며 또 다른 여행도 기획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니, 우리 공동체는 앞 으로도 그.푸.마로 활동하게 될 거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제 공동체 활동은 끝났지만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육아는 혼자 할 때보다 함께 의지해서 나갈 때 즐겁고 행복한 것은 분명하다. 엄마, 아빠가 행복한 육아를 할 때 아이 들도 행복하다는 것을 믿고 우리는 앞으로도 다 같이 행복한 육아를 하기로 다짐했다. 지 원금을 지원해 주신 분도 이 모임을 기획해 주시 분께도 감사하다. 추후에도 가능하다면 더 많은 우리 마음이(12가정) 식구들과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이다.
맘편한 육아공동체
따뜻함, 환대, 위로, 맛있는 밥! 그리고 돌고 도는 사랑.
김지현
육아 정보의 홍수 속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혼자 외로이 고군부투하는 엄마들이 서로 연대하여, 나와 자녀를 위한 맞춤형 육아, 보다 건강한 육아를 하기 위한 공동체 모임입니다.
큰아이를 키울 때, 한 달에 한 번 있는 지역 모임에 꾸역꾸역 나갔던 기억이 있다. 벌써 10년도 넘은 일이다. 아이와 함께 하는 외출은 늘 준비할 게 많고, 이동하는 길에 변수도 참 많다. 아이가 잘 협조할 수 있도록 근근이 달래가며, 목적지에 도착하면, 또 끝이 아니 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아이를 보필하다보면, 엄마들의 이야기에 집중적으로 참여할 수도 없다. 귀동냥으로 조금이라도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어찌 보면, 나의 에너지 대비 비효율적인 모임에 나는 아이 키우는 동안 정말 꾸준히 나갔던 것 같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어떤 에너지로? 혹은 어떤 이유로? 가만히 생각해본다. 혼자서 아이를 키우며, 24시간 아이하고만 붙어있을 때는 어른사 람이 정말 그립다. 나와 비슷한 관심을 가지고, 또 조언도 해 줄 수 있는 사람들. 또 내가 아이를 데리고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조건 없이 환대해주는 사람들이 나 같이 독박 육아하는 처지에는 정말 고맙고 귀하다. 아이와 하루를 보내야 하므로, 어디서든 시간을 보내고, 어디든 비빌 곳이 필요했지만, 나와 아이를 더 반겨주고, 그리고 맛있는 점심까 지 얻어먹고 올 수 있는 기회! 그 따뜻함으로 나는 나의 긴 육아시절을 버텼고, 그렇게 바 깥공기 쐬고 오면 또 아이와 더 충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 시절 받았던 따뜻함, 환대, 위로, 맛있는 밥이 아직 내 안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 제 나의 아이는 곧 유년기를 지나, 학교에 들어 갈 테지만(막내가 7살이다), 아직은 아이 의 유년기에 발 담그고 있는 사람으로서,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싶은 마음이 계속 마음속
에 있었다. 내가 세 아이를 키우면서 느꼈던 좌충우돌 에피소드, 첫아이 때 알았으면 좋 았을 텐데 … 했던 것들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세상이 많이 변해서, 미디 어와 소비, 전시 육아가 과도해지는데, 건강한 유년기가 얼마나 중요하고, 단순한 육아가 엄마와 아이에게 한결 간결하지만, 더 진정성 있는 시기를 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굳건히 가지고 있는 나는, 요즘의 엄마들의 동동거림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탤 수 있으면 좋겠다 는 생각을 세 아이를 키우면서 계속하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내가 받았던 그 힘들과, 세상에 대한 특유의 오지랖으로 여기저기 온 라인상에 모집글을 올렸다. “ 건강한 육아를 하고 싶으신 분들, 자연에서 함께 아이들 키 우며, 함께 육아공부도 하고 싶은 분들을 모집합니다.” 라는 내용의 글이었다. 그리고 웹 포스터의 제목은 <함께 키우면 덜 힘들어요!>이었다. 이 말은 정말 사실이긴 하다. 그리고 두둥!! 여기저기서 몇 분들이 모이셨다. 6개월 아기를 아기띠 메고, 양손 한가 득 아이 짐을 가지고 오신 분, 4살인데 가정보육하고 계신 분, 부산에 이사와서 아이는 유치원에 잘 적응해서 다니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친구가 없어서 외로웠는데, 모집글을 보고 용기를 내어 오신 분, 둘째 임신 중이신 분 등 … 정말 다양한 분들이 오셨다. 다들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지만, 반가웠고, 오래전에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친구들 같았다. 우리에겐 모두 작은 공통점들이 있었다. 바로 홀로 육아하는 외로움과 소통의 욕구였 다. 아이가 너무 어려서 독박육아를 하시거나, 먹거리, 미디어에 대한 자신의 신념이 있 다 보니 주변에서 유별나다는 반응으로 점점 타인과의 만남을 줄이게 되었다거나, 36개 월까지 가정보육을 하고 싶은데, 주위에서 왜 어린이집 안 보내느냐는 시선에 스트레스 받으며 힘드신 분, 연고가 없다보니 어울릴 친구가 없거나 같은 유치원에 보내도 부모들 끼리 소통할 기회가 좀처럼 없는 … 저출산, 핵개인화 시대, 그 중에서도 나름 비주류의 길을 걷고 계시는 외로운 분들의 만남!!! 그렇게 우리의 육아공동체 생활은 시작되었다. 비슷한 처지에,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만남이라서 그런지 한 달에 한번 만나지만, 우리는 너무 즐겁고 애틋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모여서 함께 가치관을 나누고 소통하는 것 만으로도 외롭지 않았다. 나의 가치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로써, 더편안한 마음과 단단 한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 우리 공동체의 매력이었다. 어린아이를 동반하는 외출이기에 가져와야 할 아이 짐들도 많고, 늘 지각하기 일쑤인
우리들이었고, 매일 점심으로 똑같은 김밥을 먹었지만 출석률이 아주 좋았다. 아이들은 편안하게 놀고, 어른들은 수다를 나누는 평범하지만 귀한 시간!! 특히 아이들이 정말 자 유롭게 잘 놀았는데, 공간이 아름답고 편안해서였던 것 같다. 자연물 혹은 나무 장난감이 나, 그 장소의 원래 주인이셨던 발도르프 유치원 엄마들이 정성껏 만들어놓으신 엄마표 장난감들을 가지고 놀아서 엄마들도 안심할 수 있었다. 늘 모임 때 마다 같은 공간에서 만나서 그런지 평소에 예민하다고 하는 아기들도 어찌 그리 잘 놀고, 낮잠까지 자다니!!! 역시 환경이 중요하고, 엄마의 마음이 편해야, 아이의 맘도 편해진다!!는 것을 다시 알 수 있는 그런 날들이었다. 서로 육아의 고민도 나누었고, 먼저 키운 선배 엄마들의 소중한 육아팁도 전수받았다. 괜찮아. 그때는 원래 그래! 이 말 한마디가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또 엄마의 직감으로 알 았던 육아의 감각들을 뒷받침해줄 다양한 육아서들도 함께 읽고 나누려고 했다. 단순할 수록 더잘놀수 있다고 말하는 단순육아의 바이블 <맘이 편해졌습니다/킴존페인>, 요 즘 시대의 뇌과학자 엄마는 어떤 육아를 하는지 알게 된 <골든브레인 육아법/김보영>, 미디어 시대에 왜 아날로그 육아를 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우리의 생각을 확고하게 해준 <셧다운, 미디어 정글에서 우리아이 구하기/독일미디어진단>등의 책을 읽고 나누었고, 앞으로도 좋은 책을 읽고 나눌 생각이다. SNS상에 육아정보는 넘쳐나지만, 그 어느 때 보다 나와 우리 아이에게 맞는 육아철학이 부재하는 세상에서, 좋은 책을 통해 육아철학 을 정립해보려고 한다. 아이를 위해 무엇 무엇을 제공하고, 사주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건강한 육아를 위해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 어떤 부모가 되 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나를 되돌 아보게 되는 모임. 이런 메시지 가 우리 모임의 바탕이 되었다. 서로에게 위안뿐만 아니라 명확 한 가치관도 공유하고 바르게 세 울 수 있는 모임이 우리모임이 지향하는 모습인 것 같다.
촌장인 나는 세 아이들을 발도르프 교육기관에 보내고 있다. 내가 발도르프 교육을 접 하면서 느꼈던 보석 같은 깨우침도 아낌없이 나누려고 했다. 내가 그동안 받았던 영감들 과 깨달음, 혹은 후회에서부터 사소한 에피소드까지, 웃고 웃으며 먼저 길을 가보았던 사 람으로써의 경험을 나누었고, 그것을 경청해주시고 끄덕여주신 공동체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그 밖에 나의 장기간의 육아의 인맥으로, 아로마오일 셀프 마사지로 엄마들 힐링도 하시고, 악기를 들고 와 노래도 불러보고, 발도르프 수공예 체험도 해보았고, 공동체 멤 버의 재능기부로 맛있는 음식도 해먹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우리 정말 많은 활동을 했잖아!!! 그렇게 한 달에 한번 모이는 동안, 기어 다니던 아기 둘은 벌써 돌을 맞이했고, 소문을 듣고 온 새로운 친구들도 생겼다. 아기들의 쑥쑥 크는 모습에, 아기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는 모습에 마냥 웃음이 나오고, 감탄이 나온다. 엄마들도 안 보면 보고 싶고, 안부를 묻 고 싶어지고, 자꾸 내가 뭐를 더 해 줄것이 없나?? 궁리하게 된다. 그것이 나의 솔직한 마 음이다. 하나라도 좋은 것이 있으면 나누고 싶고, 함께 하고 싶은 마음. 내가 그동안 받았 던 사랑을 다시 전하고 싶은 마음.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옛날처럼 할머니, 고모, 삼 촌, 옆집 아주머니가 계시는 마을은 이제 만들 수는 없겠지만, 또 다른 공동체를 꿈꿔본 다. 지금 시대는 이렇게 또 다른 형태로, 혈연과 지연과는 상관없는, 비슷한 상황,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만나고, 연대하여, 더 건강한 육아, 교육, 사회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아이 하나만 잘 키우는 것이 아닌, 내 아이와 더불어 살 남의 아이 까지 함께 키우는 마음, 내가 힘들 때는 기꺼이 도움받고, 나중에 내가 또 힘이 생기면 또 누군가에게 베풀 수 있는, 그런 나눔과 연대의 공동체를 엄마들의 힘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작은 사랑이, 나와 사회, 인류를 위한 큰 사랑으 로 퍼져나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는 한 아이의 엄마로써, 뜨거운 사랑의 씨앗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렇게 사랑은 돌고 도는 것이니까!!
범양프린세스
난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에요
이해림
홀로 고군분투 육아중인 5가구의 엄마들이 모여 아이의 언어 성장 발달을 위한 정보공유 등 함께하는 육아를 통하여 스트레스 해소와 육아의 어려움을 같이 헤쳐나가고자 하는 공동체입니다.
나는 타지에서 결혼 때문에 부산에 와서 살게 되었다. 직장도 부산지역 부서로 부서이 동을 신청하여 새로운 부서에 와서 근무하게 되었고, 새로운 직무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업무와 조직에 적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사실 그것 보다 더 힘든 건 타지살이였다. 연고 없는 지역에 와서 사는 건 생각했던 것보다 쉽지 않았다. 나를 원 래 잘 알던 사람들이 아닌 새로 알게 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내 의도와는 다르게 받 아들여질 수도 있고, 오해를 살수도 있는 일이기에 조심스러웠다. 임신을 하고 직장생활을 해보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커지고, 향수병 때문에 많이 우울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임신을 하니 호르몬의 영향이 더 커져 감정적으로 컨트롤 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나에게 자연분만을 권하셨지만, 진통이 시작되었을 때, 일이 바 쁜 남편이나 타지에 사는 친정식구들이 갑자기 달려와 나의 옆자리를 지켜줄 수 없었기 에 제왕절개로 마음을 정했다. 자연분만을 해보고 싶었는데, 언제 나올지 모르는 아이를 불안한 상태로 기다려야 한다는 무서움과 내 옆에 아무도 없을 거라는 불안함은 나를 잠 못 이루게 했고, 결국 제왕절개로 출산을 했다. 출산 이후 펼쳐진 육아는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처음 해보는 육아는 마냥 새롭고, 어 렵고, 확신이 없는 하루하루의 연속이었다. 3시간마다 우유를 줘야하는 아기 때문에 잠 을 제대로 자본 적이 없고, 쉼없이 울어대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너무 막 막했다. 도와줄 가족이 없으니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었다.
어린 아기를 데리고 외출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아기가 5개월이 되었을 즈음 유모차를 끌고 아기랑 백화점 문화 센터에 가서 수업을 듣고 외출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아기랑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 고 아기는 빠르게 성장했다.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옆에서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경이 롭고,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었지만, 바쁜 남편 때문에 평일에는 무조건 독박 육아를 하 다 보니 내 몸은 점점 망가져갔고 이런 나의 상태로 인해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이 갈 수도 있어 육아에 대한 걱정도 많아졌다. 아기가 10개월이 되던 때 미리 대기를 걸어두었던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생 겼다. 돌도 되지 않은 아직은 너무 어리고 작은 아기를 기관에 보내기엔 마음에 준비가 되지 않았고, 가정보육을 시키며 돌보고 싶은 마음을 컸지만, 현실적으로 아이랑 나를 생 각했을 때 기관의 필요성을 느껴 아이를 보내게 되었다. 한 두 시간이라도 잠시라도 편하 게 누워 쉬고, 집안일을 하거나 육아서적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생기니 조금 숨통이 트였 던 것 같다. 육아를 하면서 고민이 많이 생기고, 누군가의 조언이 필요할 때 ‘육아 선배나 친구, 가족이 가까이 살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같은 어린이집 의 아이의 같은 반 친구 엄마가 육아공동체를 같이 신청해보지 않겠냐고 했고, 처음 듣는 생소한 단어였지만 함께 공동육아 하면서 유익한 시간을 보낸다는 것에 큰 매력을 느껴 바로 하겠다고 했다. 우리 육아공동체는 우리 아이 포함 5명으로 모두 함께 모이면 잘 어울려 논다. 같은 어 린이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친구들이랑 만나선지 사이좋게 더 잘 노는 것 같다. 아이들 이랑 놀아주면서 엄마들은 육아 고민도 털어놓고, 좋은 정보도 공유한다. 같은 원에 다녀 도 인사만 하고 이렇게 친하게 지내며 공동육아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은데 공통분모가 많은 엄마들과 유의미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우리 아이는 나랑 둘이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아무래도 가족이나 타인과의 만남이 잦은 아이들에 비해 엄마에 대한 의존도도 높았다. 분리불안이 있었고, 일정부분은 애착 형성 발달과정 중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으나, 걱정이 많이 되기도 했다. 육아공 동체가 모이는 시간이 거듭될수록 아이의 분리불안이 전보다는 좀 나아짐을 느꼈다. 놀 이터에서 놀던 우리 아이를 잠시 공동체 엄마에게 맡기고 잠시 집에 올라갔다 오기도 하 고, 커피를 사오기도 했다. 아이도 친근함을 느껴선지 내가 없어도 크게 불안해하지 않
았다. 잠시라도 맡길 사람이 없 어 아이와 항상 붙어있어야 했던 예전과는 너무 다른 그림이었다. 내가 걱정했던 육아 고민들이 긍 정적인 방향으로 해소됨을 느꼈 다. 이런 모든 것들이 육아공동 체의 순기능이 이런게 아닌가 싶 었다. 한 달에 두 번은 정기적으 로 만나 함께 공동육아를 하다 보니 아이랑 둘이 씨름하며 보냈던 시간이 좀 더 즐겁게 흘러갔다. 육아공동체를 하면서 단단해진 관계는 타지에서 온 나에게 지역 소속감을 만들어주었 다. 이제는 내가 육아로 힘들 때 도움을 받을 사람이 생겼고, 의지가 되는 육아동지가 생 겼다. 공식적인 공동체 활동은 올해로 마무리되지만, 앞으로도 계속 모임을 가지며 공동 육아를 하기로 했다. 아이 없이 엄마들끼리도 만나 좋은 시간도 가지며, 엄마도 행복한 육아를 함께 해나가고 싶다. 이 글을 적어 내려가면서 부산에 와서 보냈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고 아이 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혼자서 다 잘해 낼 수 있을거 야’라는 나의 생각은 육아에 있어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부산에 살면서 나에게 는 고향 친구들과 가족들보다 더 자주 만날 수 있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더 필 요했던 것 같다. 육아공동체가 없었다면, 아직도 육아를 하면서 막연하게 아이랑 둘이 시간을 보내고 독박육아로 힘들어 우울감을 많이 느꼈을 것 같다. 때로는 큰 위로보다, 내 마음을 알아 주는 누군가가 가까이 존재함만으로도 큰 힘이 될 수 있다. 나에게 육아공동체를 제안해 준 촌장님께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고, 나처럼 타지에서 와서 전전긍긍 독박육아로 고생 하고 있는 분들에게 육아공동체를 꼭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블랙티거2
육아에는 동지가 필요하다
진문희
임신기간 때부터 출산과 육아정보 앱에서 알게 된 엄마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독박육아로 지친 엄마들이 공동육아를 하며 서로 힘이 되어주기 위한 공동체 모임입니다.
뭐든 처음이 낯선 만큼 나에게 임신과 육아가 그랬다. 신기하면서도 낯설고 모든 게 조심스러운 그때 빌리라는 출산과 육아정보 앱에서 지금의 우리 블랙티거 모임의 엄마들 을 만나게 되었다. 워낙 세상이 흉흉하여 인터넷으로 사람을 알아간다는 게 조심스러울 때였다. 코로나로 인해 육아정보는 한정적이었고 나는 처음이라 궁금한 것도 많았고 함 께 으쌰으쌰 하며 의지하고 싶은 동지 같은 친구들도 필요했었다. 때에 맞춰 나타난 블랙 티거 모임에서 임신부터 출산까지 그리고 지금 육아와 일상 공유를 매일 할 만큼 우린 남 자들의 군대 동기 모임만큼 더 진하게 가까워졌다. 하지만 처음부터 바로 가까워진 것은 아니었다. 온라인에서 만나는 편안함과 인터넷 으로 알게 된 모임이라 그런지 묘한 경계심도 있었고 그래서 얼굴 보고 모이는 건 더욱 조심스러웠다. 온라인에서 많은 육아 이야기를 나누고 얼굴은 모른 체 그렇게 1년 남짓 흘러갔을 때 “육아는 행복해”라는 사업을 알게 되었다. 몇 번의 오프라인 만남을 통해 블 랙티거에 모인 사람들과 함께라면 정말 육아가 행복할 것 같았고 그렇게 나는 촌장이 되 어 “육아는 행복해” 사업을 지원하게 되었다. 대부분이 첫째로 이루어진 초보 엄마들 모임이라 20대 대학생부터 30대 후반 늦둥 이 엄마까지 연령부터 직업, 사는 곳도 다 달랐지만, 초보 엄마에게는 둘도 없는 육아 동 지들이었다.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현실은 남편들은 돈 벌러 엄마들은 육아휴 직이나 퇴사로 주 양육자가 되어 육아를 전담하고 있었고, 나도 그중 하나였다. 초보 엄
마로서 매일 달라지는 육아를 하며 이게 맞는지 저게 맞는지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매일 시험대에 올라가 있는 기분이었고, 책대로 유튜브 영상대로 해도 안 될 때는 좌절감에 혼 자서 모든 걸 감당하고 저녁엔 외로움과 공허함에 나의 육아는 멘붕 그 상태였다. 하지만 팀원들을 의지하면서 많은 게 달라졌다. 남편에게 말하면 이해 못 하는 육아용 품 고민과 아이 발달 그리고 아플 때 대처하는 법 등을 비롯해 시댁 얘기 남편 때문에 속 상했던 얘기부터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등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매일 카톡 대화를 통해 나누었고 온라인 대화방을 넘어 사업으로 인해 한 달에 한 번 많으면 두 번으로 정기적 만남을 통하여 수다와 공동육아로 스트레스를 해소하였다. 그러다 보 니 나를 비롯해 우리 팀원들 모두 육아는 행복해 사업의 취지에 맞게 힘들지만 행복하기 도 한 아이러니한 육아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우리 팀원들을 몰랐더라면 매일 막막했던 독박육아에서 남편의 퇴근시간만 기다리며 육아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대로, 외로움은 외 로움대로 커져갔을 거라고 생각하니 지금 얼마나 팀원들이 소중해졌는지 새삼 느껴지는 바이다. 우린 그렇게 아기들이 커가면서 겪는 희로애락을 함께 공유하고 때론 공동육아 를 하며 더욱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사업 때문이 아니더라도 시간 되면 틈틈이 만 나며 의지하는 우리들을 보니 육아 동지에서 인생 동지를 얻었다고 생각을 해본다. 지속 적으로 우리의 관계도 아기들이 커가는 만큼 함께 성장하길 바라본다. 끝으로 앞으로 출산을 앞둔 예비맘들에게 육아 동지는 꼭 필요하니 용기를 내서라도 적극적으로 모임에 참석하길 권장하는 바이다. 둘째를 임신한 지금 나 또한 또 다른 육아 동지를 찾고 있으니 말이다. 함께하는 것만큼 힘이 되는 건 없으니 육아가 행복해지길 원 한다면 나부터 행복해지는 길을 찾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슬기로운 육아 탐구생활
주말부부 독박육아러의 행복한 시간
이주현
4~6개월 월령의 아이들을 육아하는 가정의 모임으로써 독박육아에 지쳐 장난감만 돌리는 일방적 놀이보다 직접 놀아주는 다양한 방법을 공유하여 놀이 육아에 대한 어려움을 해소하고자 하는 공동체입니다.
초보맘의 소중한 인연이 공동체가 되기까지 ‘슬기로운 육아 탐구생활’ 팀의 촌장인 저는 임신 때부터 주말부부 생활로 현재까지 쭉 혼자 육아를 담당해왔습니다. 그렇다 보니 저희 공동체 팀원 간의 소중한 만남은 저에게 한 줄기 빛과도 같았어요. 작년 임신 기간 중, 막달까지 일을 하며 출산 준비마저 전혀 제 대로 하지 못했는데, 그때 오픈 카카오 채팅방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알게 된 같은 시기에 출산을 앞둔 엄마들의 모임이 있었어요. 그렇게 서로를 알아가다가 좋은 분들 덕분에 출 산 준비를 정말 잘할 수 있었습니다. 한 편으로 저는 일한다는 핑계로 그 당시 모임에 거 의 나가지 못했고, 자주 뵙지 못한 분들에게 미안함이 있었어요. 그런데 두둥!! 육아종합지원센터 홈페이지에서 ‘육아공동체’를 뽑는다는 눈이 번쩍 뜨 이는 게시글을 보게 되었죠~! 지원금을 받는다면 우리 엄마들에게 정말 큰 기쁨이 될 것 같아 얼른 신청서를 작성했습니다. 지원팀에 선정되어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예민맘의 예민걸 키우기 이를 바탕으로 원래도 자주 모였던 저희는 한 번이라도 더 얼굴을 볼 기회가 많아졌어 요. 특히 저희 아기는 신생아기부터 쭉 정말 많이 울어서 어디 밖에 나갈 생각을 못 했는 데, 이번 공동체 사업 덕분에 제가 아이를 데리고 밖에, 그리고 아기 엄마들 집에 나갈 좋 은 기회였습니다.
워낙 낯을 가리고 예민한 아기라 그런지 막상 어디를 나가려고 하면 두렵고 무섭기도 했어요. 하지만 공동체 모임을 통해, 우리 구성원의 집에 가면서 저희 아기가 다른 아기 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게 되었어요. 그렇게 점차 만나는 시간이 늘어나니 저희 아기도 다른 아기를 좋아하고 만지고 싶어하는 것이 보였어요. 그리고 용기를 내서 아기 들과 집이 아닌 밖에서도 조금씩 만날 수 있었어요. 돌이 지나지 않은 아기들과 카페를 가기도 했습니다. 공동체 모임이 아기의 낯가림이 조금씩 없어지는 데 큰 역할을 해준 것 이죠!!
우당탕탕 아기들의 大모임 모든 만남이 모두 소중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만남은 공동체 3팀의 연 합 만남이었습니다. 약 10명이 넘는 엄마들이 각자 아기들을 데리고 큰 카페에서 날을 잡고 만났어요. 다들 모처럼 많은 사람을 밖에서 만나는 재미에 한껏 들뜨기도 했고, 지 원금 덕분에 맛있는 것도 많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이유식 초기 시기라 그런지 밥 먹이는 것도 서툴렀던 저희 초보맘들은 휴대용 분 유포트, 범보의자, 캠핑매트 등을 들고 왔었어요. 아기들이 많다 보니 옆에서는 밥 먹이 고, 또 다른 옆에서는 기저귀 갈아주고 … 다들 놀러 나왔지만 웃지 못하는 상황의 연속이 었습니다. 게다가 커피는 엎어질까 조마조마 …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는 상황이었죠^^ … 시간이 어쩜 그렇게 빨리 지나가는지 정신없었지만 매일이 그날 같았다면 육아 스트레스 정돈 금방 날려버리겠다~ 싶은 하루였습니다. 육아공동체 지원 이 없었다면 저희 아가를 데리고 그렇게 많은 아가를 만나러 갈 수 있었을까요~~?!!
독박이 함께가 되는 육아 신청서상의 저희 공동체 6개 월 플랜은 매달 놀이에 관한 정 보를 공유하는 것이었는데, 도움 이 된 내용도 있지만, 너무 월령
이 어리다 보니 실질적으로 적용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육아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도 한 것 같아요. 하지만 육아공동체를 하면서 많은 아기 엄마 를 만나고, 다양한 유용한 육아 정보를 공유하는 값진 시간을 가졌습니다. 만약 이 공동 체가 없었다면 어떻게 아기를 지금까지 키웠을지 상상도 가지 않습니다. 이러한 기회를 주신 육아종합지원센터와 항상 도와주셨던 선생님들 모두 감사합니다.^^
시동아리(시험관 동아리)
사랑하는 육아동지들과 만들어 낸 나의 기적과 육아일기
서연아
시험관 준비부터 성공해서 출산을 하며 임신출산의 어려움, 헬육아를 함께 해 온 육아동지 엄마들과 소중 하고 사랑스러운 아기 친구들의 모임으로, 11가정 12명의 아이들로 구성된 공동체입니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참 힘들었습니다 … 결혼을 하면 곧 아기가 생길 거라는 평범한 이 야기는 저에겐 꿈이었습니다. 결혼한 지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반년이 지났지만 임신이 되지 않자 고민 끝에 난임병원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복용하던 약도 잠시 끊고 제 배에 주사를 놓으며 엄마라는 이름을 가지기 위해 난임 시술을 시작했습니다. 일을 하 며 시간에 맞춰서 자가 주사를 놓고 격일로 병원을 가기가 너무나 힘들어서 결국 오래 다 니던 직장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점점 지나고 반복되는 시술과 실패에 지쳐가던 중 난임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단톡방을 알게 되었습니다. 계속된 실패로 제 심신은 너무 지쳐있었고 다른 이들의 임신 소식만 들으며 이러다 저만 임신하지 못한 채 혼자 남을 것 같은 두려움에 고민하고 또 괴로워했습니다. 이제는 저의 마음을 누구에게라도 털어놓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고, 그렇게 시험관시술을 하는 언니, 동생들과 소통을 하게 되었습니다. 난임 3년 차인 저는 그들 중에선 햇병아리였습니다. 저보다 오랜 시간 온갖 고생을 다하며 산전수 전을 겪어낸 분들이 많았고 매번 실패에 혼자 눈물 흘리며 끙끙 앓기보단 서로 함께 독려 하며 힘을 얻어가는 따뜻한 모임이었습니다. 같은 난임 병원을 다니던 동지들과 서로 위로하며 지내던 추운 겨울, 시술 횟수로 10 번째 되는 저의 도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시술 후 언제나처럼 피가 마르는 시간이 흐르고 며칠이 지나 임신을 확인하는 피검사 날이 되었습니다. 수치가 100이라는 숫자를 뛰어
넘어야 엄마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24점이라는 낮은 수치로 저는 병원을 나와야 했 습니다. 그래도 임신이라는 말을 들었기에 계속 주사를 놓고 약을 먹으며 제발 아기가 무 사히 성장해주길 바라며 절박한 시간을 보냈고, 며칠 후 결과를 듣기위해 병원을 갔습니 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간 만큼 성장하지 못한 피검사 수치를 듣게 되었고 결국 유산판정 을 받게 되었습니다. 너무 우울했지만 시험관 동지들의 따뜻한 위로에 조금씩 힘을 내보 려 했습니다. 유산판정 후 슬픈 나날을 보내다 담당 간호사님의 연락이 왔습니다. 시험관 시술을 했 기에 피검사수치로 유산을 확인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다시 병원으로 향했고 마지 막 피검사를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피검사 결과가 300이 나왔습니다. 사라질 거라 했던 아기의 조그마한 손이 엄마 손을 꼭 붙잡고 있었던 겁니다. 유산판정을 받은 저에게 그렇 게 기적이 찾아왔고 난임 동지들 모두 자기 일처럼 매우 기뻐해 주었습니다. 임신이 된 후에도 여러 어려운 일들이 있었습니다. 아기 심장 소리가 약하기도 하고 피 고임도 있었고 입덧으로 장기를 다 토할 것 같이 힘들었던 밤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시험 관 동지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예정일도 비슷하고 만삭이었던 한 난임 동아리 언 니는 본인도 입덧으로 고생을 하는 중이었을 텐데 제가 주말 저녁에 구할 수 없었던 입덧 약을 선뜻 나눠주겠다고 했습니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약을 받으러 갔더니 그 힘든 몸으 로 약봉지를 들고 나와 있던 언니의 모습을 지금도 저는 잊을 수 없을 만큼 감사하게 생 각합니다. 뒤뚱뒤뚱 만삭일 때도 같이 만나서 아가들 물건을 하나둘씩 같이 준비하며 시 험관 동지에서 우린 육아동지로 성장해가고 있었습니다. 육아동지들의 응원을 받으며 저 는 오랜 기다림 끝에 우리 소중한 아기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출산 후 병원에서 케어를 받으며 조리원으로 갔던 날 … 저는 또 다른 고비를 맞았습니 다. 아기가 로타바이러스에 확진이 되었다며 조리원에서 받을 수 없다 하였고 병원에서 는 그럴 리 없다며 집에 가서 몸조리하라고 했습니다. 엄마가 된지 이제 4일 차가 된 저 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엉엉 울기만 했습니다. 그때도 우리 동지들 언니, 동생들 다 나 서서 서로 이것저것 알아봐 주며 기도와 응원을 보내줬고, 이제 세상에 나온 지 4일밖에 안 된 아기는 퇴원한 날 또다시 응급실을 통해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우여곡 절 끝에 저는 아기와 떨어져 눈물의 조리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기와 엄마는 이어져 있다며 울지 말고 힘내라고 했지만 모든 게 저의 탓인 것 같아 마
음이 찢어질 것 같았습니다. 아이를 입원시키고 난 후 젖몸살로 가슴이 아프고 수술 부위는 출혈이 생겨 온 몸이 만 신창이가 된 저를 시험관동아리 언니 동생들이 많이 위로해 주었고 기운을 조금씩 낼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 기다렸던 아이지만 막상 아이를 키우다 보니 육아는 책에서 본 내용 과는 너무 달랐고 내 맘처럼 안 되어서 새벽에 혼자 많이 울었습니다. 아기가 아프고 열 나고 울면 그 이유를 몰라서 전 우리 단톡방에 글을 남겼고 언니 동생들에게 연락해서 묻 기도 했습니다. 밤이고 새벽이고 톡을 보면 바로 답을 해주는 우리 육아동지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자기 일처럼 주변에 다 알아봐주고 찾아봐주고 나서주는 우리 육아 동지들 이 있어서 지금까지 우리 아이들 모두 이렇게 예쁘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었습니다. 산후우울증으로 죽고 싶은 날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 모임 언니 동생들이 걱정 하며 챙겨주었고 힘들 때마다 함께 고민하고 파이팅하며 서로 견뎌내고 제가 더 나은 엄 마가 되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아이를 낳고 봄이 찾아왔을 때 우리 육아동지들과 공원에서 첫 모임 을 했습니다. 이제 겨우 배밀이 하며 꼬물거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만나서 수다하며 소 박하게 햄버거 하나 먹었지만 하하호호 웃으며 그날의 수다와 만남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저에게는 너무 소중한 추억입니다. 집에서 육아하는 엄마, 또 직장 다니는 엄마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기 바쁘지만 그럼에도 모두 시간 내서 모임에 참석하여 함께 수다하며 또 소중한 우리 아가 들 잘 키 워내기 위해서 함께 힘을 모아봅니다. 한 달에 한번 하는 모임이 아쉽지만 하루도 조용할 날 없이 단톡방에서 수다하며 늘 함께하는 우리 소중한 시동아리 멤버들♥ 아직도 서툴고 부족한 게 많은 엄마들이지만 함께 으쌰 으쌰 하며 소중한 친구들 예쁘게 잘 키워요~ 시동아리 언니 동생 들 그대들이 있어 제가 더 나은 엄마가 될 수 있었어요. 늘 고맙고 사랑해요.
쌍용베이비
초보 보호자들의 우당탕탕 공동육아
같은 아파트 단지 내, 또래 영유아 및 부모가 모여 공동육아를 하는 공동체입니다.
홍아림
저희 모임은 같은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집 엄마들과 아이들의 모임입니다. 처음 ‘육아 는 행복해’에 지원하기 한 달여 전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1년 만에 처음으로 엄 마들과 모여 공동육아를 했습니다. 그 때 모두가 ‘주말이 이렇게 편안할 수 있다니..’를 느끼고 가끔 만나 아이들도 함께 놀고 엄마들도 공동육아로 주말 육아의 힘듦에서 벗어 날 수 있기를 이야기하며 다음 모임을 기약하였습니다. 하지만 맞벌이 가정이나 개인의 약속 등으로 인해 모임을 지속하기가 어렵겠다고 생각하던 중, 부산시육아종합지원센터 에서 주최하는 “육아는 행복해”라는 사업을 알게 되었고, 엄마들의 동의를 얻어 신청하 게 되었습니다. ‘육아는 행복해’ 사업의 취지에 부합하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은 꼭 미리 날짜 약속을 정 해 모임을 계획하였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매달 만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습니 다. 아이들은 매일 어린이집에서 만나는 사이라 만나기만 해도 좋아서 즐거워하는 시간 을 가질 수 있었고, 엄마들은 처음엔 약간 어색해하기도 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서로의 육아 방법, 육아 고충, 육아 정보에 대해 다양한 대화를 나누며 서로 아이디어를 공유하 기도 하고 평소 육아로 인해 사람들과 만나 하기 힘들었던 수다를 떨며 즐거운 시간을 보 내기도 하였습니다. 때로는 공원에 모여 넓은 장소에서 뛰어놀기도 하고, 때로는 키즈카 페와 같은 장소를 대관하여 친구들과 다양한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도 했고, 이와 같은 시 간을 보내며 아이들도 사회성이 점차 더 발전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언니, 누나, 형, 오빠들처럼 우는 친구들을 달래주기도 하고 장난감을 양보하기도 하고 친구에
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모습을 보며 엄마들 또한 ‘아이들이 정말 많이 컸구나 … ’를 느끼며 가슴이 뭉클할 때도 있었습니다. 또 여름에는 온 가족들이 함께 모여 여행을 가기도 했습니다. 아빠들도 처음엔 어색해 하고 쑥스러워했지만, 한편으로는 이야기로만 듣던 아이들을 직접 만나고 아이들이 친구 들과 노는 모습들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이후로도 아빠들의 추 진으로 주말에는 아이들과 부모님들 친구들 모두 저녁을 먹는 시간을 종종 가지기도 하 며, 아빠들도 엄마들도 오래된 친구들을 만난 것처럼 금방 적응을 하고 즐거운 시간을 갖 게 되었습니다. 이 모임을 시작할 때에는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이 모임이 계속 유지가 될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고, 혹시라도 모임이 중간에 끊어질까 걱정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부 모님들 모두 ‘육아는 행복해’ 사업이 끝난 이후에도 여전히 공동육아를 하고 싶어 하고, 매달 한 번은 꼭 모임을 통해 아이들도, 엄마 아빠들도 즐거운 시간을 가지며 힐링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우연히 알게 된 ‘육아는 행복 해’ 사업 덕분에 저희 모임이 지 속적인 모임으로 연결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의 엄마 들은 처음부터 알고 있던 사이들 도 아닌데 온 가족들이 모여 시 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에 놀라 기도 하시고 또 부러워하시는 부 모님들도 계셨습니다. 가끔은 쌍 용베이비 인원 외에도 다른 아이들과 부모님도 함께 모여 공동육아를 하는 시간을 가지 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다들 내년에도 이 사업이 진행된다면 함께 신청하고 싶다는 이야 기도 하셨습니다. 저희 모임은 ‘육아는 행복해’ 사업이 끝이 나더라도 계속해서 진행될 것입니다. 내년에 도 진행된다면 쌍용베이비에 새로운 멤버들도 추가돼서 더 많은 인원들이 공동육아의 도 움을 받고 조금 더 수월한 육아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신청해보려고 합니
다. 짧다면 짧은 시간, 또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육아는 행복해 덕분에 더욱 행복한 육아를 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놀.자(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놀자)
아. 놀. 자 이야기
홍정이
해군 자녀와 엄마들로 구성된 모임으로 공동 육아를 통한 아이들의 사회성 증진과 행복한 가정을 위한 육아, 살림법 등의 공유로 행복한 육아를 추구하는 공동체입니다.
저희 아. 놀. 자(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놀자)는 해군 가족과 다자녀 가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이 같은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기에 등·하원 시 만나면 인사하고, 놀이터 에서 놀다 만나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조금씩 친해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부산시육 아종합지원센터에서 이런 모임을 할 수 있게 기회를 주셔서 육아 정보도 공유하고, 서로 도와주고 도움받으며 육아에 큰 힘을 받고 친해져 지금은 둘도 없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저희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서준이네 이야기 서준이네는 초 5, 초 3, 5살 삼 남매 집이에요. 서준이 아빠는 장기 출장이 잦아 거의 집에 없어요. 2주나 3주에 한 번씩 딱 하루 집에 온답니다. 그래서 서준이 엄마는 늘 힘 들었어요. 혼자 아이들을 챙기려니 체력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아이들과의 대화로 채워지 지 않는 정신적인 외로움이 컸답니다. 또 첫째가 사춘기가 와 늘 예민해져 있어 딸과 다 툼이 자꾸 생겨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서준이 엄마는 또래보다 결혼을 일찍 한 편이라서 첫째보다 나이 많은 집이 주변에 없어 조언도 못 구하고 혼자 끙끙 앓으며 힘들었어요. 그런데 아. 놀. 자 모임을 통해 언니들과 얘기를 나누며 사춘기에 대한 정보도 받고 이런 저런 고민도 얘기하며 조언과 위로를 받았답니다. 늘 혼자라고 생각했던 날들을 언니들 과 함께하며 외롭지 않고 즐겁게 육아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연우네와 찬영이네 이야기 연우 아빠와 찬영이 아빠는 해군입니다. 그래서 집에 없는 날이 많아요. 배를 타면 6 개월 정도 떨어져서 집에 올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말 아침부터 연우 엄마의 위가 아프기 시작했어요. 약을 먹었음에도 더 아파져서 힘들어하며 혼자 연우를 돌보면서 놀아주고 있었어요. 그때 마침 이웃에 사는 찬영이의 엄마가 일이 있어서 전화 했다가 연우 엄마 목소리가 안 좋은 걸 눈치채고 어디 아프냐고 물어봐서 몸이 안 좋다고 하니 찬영이의 엄마가 “내가 연우 봐 줄 테니 푹 쉬어라”며 직접 연우네 집으로 와서 연 우를 데리고 갔어요. 덕분에 연우 엄마는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집에서 푹 쉬고 컨디 션을 회복했고 고마운 마음에 찬영이 집으로 과일을 사 들고 저녁에 갔더니 저녁밥까지 챙겨주었어요. 연우 엄마는 친정이 멀어 아플 때 혼자 버틸 수밖에 없었는데, 이 모임을 통해 이웃 찬영이 엄마의 도움을 받아 너무 고마웠다고 했습니다.
연서네 이야기 중1 초2 4살 삼 남매를 키우는 연서네는 주말에도 일을 하는 바쁜 아빠로 인해 주말이 면 늘 엄마 혼자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데, 아이들끼리도 노는 게 심심하다고 하던 찰나 아. 놀. 자 모임 가족들과 모임을 가지면서 주말이면 도시락을 싸 들고 뒷산인 금련산에 올라가서 놀기도 하고, 광안리 바닷가에 가서 모래 놀이와 물놀이도 하고, 금련산 수련원 에서 1박도 하는 잊지 못할 즐거운 시간을 많이 보냈습니다. 서준이네 딸들이 입던 작아 진 옷도 물려받아 예쁘게 입고, 우리 아이들의 옷도 동생들에게 물려주고 장난감도 서로 빌려주면서 아이들끼리도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모임을 통해 엄마들뿐 아니라 아이들이 서로 더욱더 친해지고 사이가 돈독해져서 너무 좋습니다.
지후네 이야기 지후의 아빠도 해군입니다. 그래서 주중에는 배를 타고 나가서 집에 못 들어오고, 주 말에는 당직이라서 못 들어오곤 합니다. 엄마는 외롭고, 형제가 없는 5살 남자아이 지후 는 심심한 날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형제가 없어서 사회성 발달이 제대로 되지 못할까 봐 엄마는 걱정이 앞서고 있었는데 아. 놀. 자를 만나게 되어서 너무나 기뻤 습니다. 엄마들 간의 소통도 위로와 격려가 되어 좋았고, 형제가 없는 지후에게 형제 같
은 누나와 형과 동생이 생기게 도와주어 양보하는 마음과 서로 보고 배우면서 같이 놀고, 간식도 나눠 먹으며 여러 가지 마음들이 성장하여 가는 모습도 그러했습니다. 사실, 지후 엄마는 43살에 지후를 나아서 너무 귀하게만 커서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 적인 아이가 될까 염려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간식을 친구들이나 누나, 형, 동생들과 함께 나눠 먹을 줄도 알고, 누가 넘어지면 괜찮은지 가서 살펴 주기도 하고, 소꿉놀이나 잡기 놀이 등등을 하 자며 누나 손을 먼저 잡아당기며 혼자 노는 것보다 여럿이서 노는 것이 즐겁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습 니다. 엄마들이 어렸을 때와는 많이 다른 세상에 지금 우리 아이들은 살고 있습니다. 이웃 인심도 그렇고 먹거리도 그렇고 아이를 키우는 가치관도 그렇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아이를 바르게 잘 키우는 것은 요즘 엄마들에게 예전 엄마들과는 또 다른 큰 숙제입니다. 이 큰 숙제를 해나가는 데 정말 큰 도움을 주신 관계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니(언제나 니편)
함께라서 행복함이 늘어가는 육아공동체 모임
김수경
상대방과의 소통의 부재가 커져가는 시대에 아이들이 서로 만나 소통하고 협력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더불어 아이와 부모가 함께 소통하는 공동체 모임입니다.
저는 지금 육아공동체 모임을 통해 감사함과 행복함으로 살아가고 있는 7세 여아
5세 남아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육아 공동체 모임을 통해서 지금은 성격이 많이 바뀌었지만, 공동체 모임을 하기 전의 저의 성격은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이었습니다. 이런 성격을 지닌 저는 고향은 타지 역, 아는 사람이라고는 저희 집 근처로 이사를 온 친정 식구와 직장에서 일한 직장동료들 신랑이 다였습니다. 이런 성격을 가진 제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 고 친해지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신랑은 일이 많다 보니 항상 늦게 퇴근하 고 늘 혼자서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혼자서 아이들을 보다 보니 모 르는 것 투성이에 물어볼 친구나 아이들 또래 엄마들과도 교류가 하나도 없었던지라 인 터넷 검색, 육아서적, 맘카페에 물어보기 등으로 나 혼자서도 충분히 아이들을 잘 키워나 갈 수 있다는 생각하며, 제 마음의 문을 굳게 닫은 채 나 홀로 육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아이들의 어린이집에서 부모 상담을 하는 날이 되어서 담임선생님과 이야기 를 나누는데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 모두 선생님들이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아이들 이 또래 친구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을 힘들어하고, 아이들과 놀이 할 때도 힘들 어한다는 이야기를 해주시는데, 가슴이 철렁한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싶었습니다. 내가 그동안 나 홀로 육아를 해서 아이들이 이렇게 되었나 싶은 생각이 들고 아이들에 게 미안한 마음과 양육에 대한 부담이 커졌고, 그런 마음들이 커질수록 제 마음이 너무
힘들어 지치니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것은 점점 더 회피하게 되는 악순환 반복이 되었습 니다. 아이들과 어린이집을 등원하면서 만나게 되는 아이들 친구 엄마에게도 다가가지 않고, 늘 고슴도치처럼 항상 ‘나는 이미 지쳐 있어. 날 건드리면 가시로 찔러버릴 거야’ 하는 모습과 마음의 벽을 쌓으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완전히 육아의 방향성을 잃어가고 있었는데, 옆에서 이런 모습을 안타깝 게 지켜보던 신랑이 기분 전환도 할 겸 오랜만에 교외로 나가자 하였고, 그때 정말 신기 하게도 그곳에서 첫째 아이의 어린이집 친구도 그곳에 놀러와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저 희 아이를 향해서 먼저 인사를 해주자 저희 아이도 쑥스러워했지만 인사를 건네면서 좋 아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 모습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내가 바라던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보아서 너무 기뻤고, ‘저렇게 아이들도 용기를 내서 하는데 나는 왜 그동안 혼자서 마음의 벽을 쌓고 가시돋친 고슴도치처럼 행동을 했을까?’ 하는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평소와 달린 ‘이번엔 정말 나도 달라질 수 있을 거야’ 하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서 첫째 아이의 친구 엄마에게 말을 건넸는데, 그때 저에게 친절하 고 다정하게 이야기도 해주시면서 앞으로도 서로 연락하며 지내자고 하면서 전화번호도 교환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인연으로 연락을 서로 주고받게 되었고, 늘 굳게 닫혀있던 제 마음도 조금씩 열 리게 되면서 서로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겪은 어려움을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과 이야기를 하다가 저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엄마들을 부산광역시 육아종합지원 센터에서 육아공동체 모임을 통해 지원해 준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분의 주변에도 육 아의 어려움으로 힘들어하는 분 들이 있었고, 이것을 계기로 함 께 모여서 육아공동체 모임을 해 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을 해주셨 습니다. 처음에 정말 다른 사람 과 함께 모여서 육아공동체를 한 다는 상상 자체를 안 해서, 내가 과연 공동체 모임을 할 수 있을 까 싶었지만, 그래도 조금 더 한
걸음 나아가보자 하는 생각과 아이를 위해서 엄마는 뭐든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었고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모임의 구성 가정들은 저희 가정을 포함해 총 5가 정이었습니다. 첫째 아이의 친구 엄마분을 주축으로 첫째 아이와 같은 어린이집을 다니는 7세 가정, 그리고 같은 동네에 사는 6세 두 가정으로 구성된 육아공동체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습니 다. 모두가 공통된 어려움을 겪고 있고 같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 다들 마음이 하나같 이 따뜻한 사람들이 모여서인지,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마음이 편안해 졌습니다. 그렇게 첫 만남을 시작으로 모두가 서로 시간이 될 때마다 보게 되었고, 저희 아이들 경우엔 어린이집 외에는 또래 친구들과 놀아본 경험이 적다 보니,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 면서 놀고 이야기 나누기를 어려워했는데, 다들 이런 어려움은 조금씩 있다며 모임을 하 는 구성원분들이 보드게임으로 아이들끼리 서로 소통할 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해보 자며 제안했습니다. 조금은 서먹했던 아이들은 게임을 하면 할수록 모두가 친밀해지고, 아이들끼리 게임을 통해서 배워가는 것들이 늘어가면서 아이들에게도 많은 변화가 찾아 왔습니다. 모임을 통해서 아이들도 변화되고, 그동안 엄마들이 가지고 있던 육아의 어려움도 서 로 소통을 통해서 해결해 나가니 모임을 진행할수록 더욱 친해졌고, 저희 모임은 지금은 서로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누구보다 먼저 나서주고, 도와주는 육아공동체가 되었습니 다. 또한, 나 혼자라면 아이들에게 시도를 해보기 어려워 포기한 체험과 활동들도 육아 공동체 활동을 하니 할 수 있었는데, 공동체 안에서도 엄마들의 재능기부를 통해서 함께 하는 활동들을 하다보니 지금은 아이들도 엄마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 뿌듯해하고 저희 들도 그동안 잃어버렸던 자신감도 다시 생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육아공동체를 통해서 저와 제 아이들은 많은 성장을 하게 되었고, 그리고 예전 의 생각과 달리 나 혼자보다는 같이 더불어 사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치 있는지 대해 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저와 같은 어려움으로 힘들어하는 분이 있다면 저 는 망설임 없이 육아공동체 모임을 통해서 극복해 내갈 수 있으니 꼭 해보라고 이야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이서센 FC
엄마라서 행복해
최하영
비슷한 시기에 이사를 하면서 모든 게 새롭고 낯선 곳에서 아이들이란 공통점으로 만나 나이에 상관없이 서로 가족들 간의 교류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육아 품앗이를 몸소 실천하는 공동체입니다.
“육아는 행복해” 라는 말에 모두 공감을 할까?’라는 현실적인 생각으로 살짝 갸우뚱했지만, 평소 육아지원센터에서 하는 모든 행사, 수업, 시설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두 아이를 키운 엄마로써 금전적인 지원을 받으며 아 이가 주체가 아닌 엄마의 육아, 자유시간을 응원해주는 취지의 사업은 지금까지 없었던 것 같다. 작년 여름 우리는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면서 서로 어색한 인사를 하고 지금까지 짧은 시간이지만 가족만큼 자주 보는 사이가 되었다. 매일 오전, 오후 아이들을 등·하원하면 서 자주 보다 보니 누군가 용기 있는 사람의 한마디 “점심 같이 먹을래요?” 라는 말로 번 호를 교환하고 그때부터 우리의 단톡방이 시작되었다. 모두 비슷한 시기에 입주를 하다 보니, 어른도 아이도 새 집과 새 환경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고 무엇보다 낯선 동네에서 발품을 팔아 직접 겪으면서 해결을 해야 하는 모든 일상이 고되긴 했지만, 함께 공유하면 서 서로가 힘이 돼주기도 하며 아이들은 금방 스며들고 친해졌다. 개인적으로 나는 결혼(출산) 후, 이사도 처음이고 특히 아이들의 어린이집 기관을 바꾸 는 건 마냥 겁이 나기도 했고 더욱 멀어진 출, 퇴근 거리와 함께 모든 것이 낯설게만 느껴 져서 이사 초반에는 더 쾌적한 환경임에도 마음엔 항상 울적한 게 남아있었던 것 같았다. (예전 동네의 그리움) 무엇보다 둘째는 어린이집으로 첫째는 유치원으로 각자의 새 환경 에 맞춰서 적응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초반에 아이들이 헤어질 때 “엄마~” 목놓아 외치
면서 울며 매달리던 날들은, 나의 출근길의 발걸음도 마음도 무겁 게만 만들어서 남몰래 눈물을 훔 치던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과정들을 모두 지 켜봤던 이서센FC 언니들이 있었 기에 더욱 의지가 되었다. 이사 오기 전엔 또래 엄마들만의 따로 만날 기회가 부족하여서 모임 형 성이 쉽지 않았는데, 이서센FC 멤버들과는 벌써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함께했던 쌓인 추 억들이 많아졌다. 날씨가 좋았던 봄, 여름쯤에는 5-6번 정도의 작고 큰(?) 등산을 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바로 출발하여 하원시간 촉박하게 다녀왔던 금정산은 결혼 후 첫 등산으로 너무 재밌었다. 평소 아팠던 무릎마저도 잊게 만 들었던 그 날의 뿌듯함은 멋지게 찍힌 사진으로나마 더욱 추억하게 되었다. 특히 5-6년 만에 하고 싶었던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갔다 올 수 있다니! 이후 6명의 완전체가 엄 궁산 둘레길을 걸으면서 몇 시간을 이야기하고, 2만보 가까이 걸으며 최종 목적지에 도 착! 막걸리 한잔과 파전에 오후 육아를 더욱 즐겁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다같이 시간을 맞추는 건 어렵지만, 3명/4명씩이라도 시간이 되는 멤버끼리 번개 자 유부인을 할 때도 있었고 여름 펜션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아빠들도 함께 모이기도 하 며, 서로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 특히 올해 첫째들 중, 초등학교 입학을 한 가정이 3가정 이다 보니 더욱 공감, 위로, 격려 등을할수 있어서 새로운 환경에서 겪는 시행착오들에 대한 고민도 함께 얘기하면서 더욱 함께 육아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육아는 행복해” 이전에 “엄마는 행복해”라는 말을 먼저 느낄 수 있게 엄마의 자유로운 시간이 주는 즐거움과 기쁨은 매우 크다는 것을 아이를 키우면서 더욱 느끼게 되었다. 엄 마가 행복해야 아이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말이 육아의 질을 결정하는 아주 합 리적인 말인 것 같다. 이번 육아공동체 모임을 통해서 돈독했던 우리 이서센FC 멤버들은 더욱 끈끈해지는 계기가 된 것 같아 뿌듯하고, 다가올 2024년에는 더욱 즐겁고 유익할 수 있는 엄마의 시
간, 아이들과의 시간, 전체가 함께하는 시간, 모든 순간들을 즐길 수 있는 진정한 “육아는 행복해”를 더욱 몸소 느껴봐야겠다.
초록동색
초록이들의 고군분투기
김광호
같은 어린이집, 같은 반 부모님들로 구성된 모임으로 서로 함께 육아에 대한 정보, 어려움을 공유하면서 더 끈끈한 유대가 생기길 바라는 공동체입니다.
어린이집 입소를 하던 그 날이 생각납니다. 군대를 보내는 것도 아닌데 안 떨어지려고 우는 아이를 보내며 혹여나 무슨 일이 일어 날까봐 두 시간여를 밖에서 배회하던 그 햇살 맑던 날을 … “아.. 안녕하세요?” 먼저 말을 걸어온 쪽은 같은 반 어린이집에 보내게 된 시예 엄마였 습니다. 그렇게 보니 제 주변에 저처럼 배회하던 묘령의 여인들이 보였습니다. 그네에 앉 아있는 시아엄마, 미끄럼틀 앞 의자에서 학생인 듯 앉아있는 연우엄마, 산책하는 주민인 줄 알았던 주안이 엄마 … 모두 처음 접하는 환경에 같은 곳을 바라보던 초보 첫째 부모들 이었습니다. 아빠가 육아를 전담하는 것에 걱정이 많았었는데, 그때부터 장점이 더 많다 는 것에 흥미로워지는 나날들이 펼쳐졌습니다. 그렇게 초록반 “큰 어린이”들은 등 하원 시간을 이용해 간단히 친목도 다지고 서로 힘들었던 일, 출처는 알 수 없지만 도움이 되 는 정보들을 교류하며 각자 서로에게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아빠들도 함께하는 가족들 모임으로 확대되었고, 아빠들을 처음 만난 그날을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분명 엄마들과 이야기할 때는 세상에 둘도 없는 가부장 적이고 수동적인 아빠이자 남편이었는데.. 그 날 제가 본 아빠들은 드라마에서 나올듯한 다정함과 세심함을 겸비한 일등 아빠들이었던 것입니다. 첫 만남의 강렬한 인상은 집에 와서 스스로 많은 반성을 하게 만들었을 정도였으니까요 … 다음날 하원시간에 만난 엄마 들에게 이제 힘들다고 하면 안 되겠다고 말하는 저에게 그날은 남편들이 잠시 가면을 쓴
것이라고 … 본인들도 당황했다 고 말하더군요. 두 번째 세 번째 만남으로 이 어지면서, 슬슬 남편들이 가면을 썼다는 엄마들의 말이 무슨 말인 지 알게 되었습니다. 육아전담이 아빠인 우리 가정의 특성상 본의 아니게 엄마 그룹과 아빠 그룹을 따로 만날 기회가 생겼었는데, 그 때 아빠들 모임에 나간 어느 날 기분 좋게 취중진담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겸이 아 빠, 내가 살면서 주적은 북한인줄 알았는데, 요즘은 겸이 아빠로 바뀐 것 같애 … ” 모두 웃 으며 넘겼지만, 현재의 아빠들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중 육아공동체 사업을 알게 되었고 어린이집 원장선생님의 도움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귀찮지는 않을까? 모임은 잘 이루어질까? 지금도 가끔 모이는데 … ’ 하는 이 런 생각들을 했지만, 모두 기우였습니다. 결과는 참여하기 너무 잘했다는 것인데, 우선 강제 아닌 강제적인 미션이 생기니깐 서로 의미 부여하는 동기가 생겼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아이들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고 다른 아이들의 성향도 많이 접하면 서 본받을 점, 고쳐야 할 점이 부모들을 통해 드러나게 되었고, 책이나 매체를 통해 접하 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아빠들의 태도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아이들이랑 둘이 남는 게 너무 무섭다고 말하는 아빠들에게 아이가 울어도 손잡고, 엄마 없이 키즈카페로 오라고 했습니다. 엄마가 없어 도 괜찮을지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생각보다 아빠들과 잘 노는 아이들을 보며 새로운 책 임감과 유대감이 생겼다고 … 육아할 용기가 생겼다며 회사에 육아 신청하고 겸이 아빠처 럼 육아전담 한번 해봐야겠다는 아빠도 나왔습니다. (엄마들이 볼 수 있기에 실명은 거론 하지 않겠습니다^^) 아빠들의 변화가 눈에 띈 건 이 시점 이후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이 어렵지 자신감이 붙으니 아이와 둘이서 보내는 시간을 오히려 즐기고 있는 아빠들을 발 견할 수 있었습니다. 저녁 산책을 다니다 마주치는 반가움과 엄마들의 큰 호응은 덤이었 습니다.
아이가 아플 때 서로 안부를 물어 주고, 우리 아이를 생각할 때 자연스레 초록반 친구 들을 생각하는 자신들을 보면서 모두가 서로를 많이 의지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빵 사 먹었는데 겸이 좋아하는 스티커 나왔다고 인증샷 보내는 시예 아빠, 장 보는 날은 어디가 제일 싸다고 항상 정보를 공유해주는 연우 아빠, 생각나서 반찬했다고 건네주시 는 시아 할머니. 공동체 모임이 마중물이 되어 작지만 소소한 행복들이 찾아왔습니다. 이러한 소소한 행복들이 비가 내리면 우산이 되어주고 추위가 닥쳐오면 따뜻한 난로가 되어 주는 것에 저 포함 우리 구성원들 모두가 의심치 않습니다. 지금도 힘들지만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모든 부모님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에 힘내서 아이랑 놀러 나가야겠습니다. 모 두 힘내세요!!!
치유의 숲
육아도 “함께하면” 행복할 수 있구나!
이유나
다양한 연령의 자녀를 가진 부모들이 모여 육아를 하면서 느끼는 여러 가지 고민과 문제에 관해 소통하면서 육아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더 나아가 치유를 경험하는 공동체 모임입니다.
23년 6월 초,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육아공동체 모집을 하는데 같이 해보지 않겠냐고. 코로나시기를 겪으면서 독박육아와 사람과의 단절에 힘들어하던 내게 참 따뜻한 소식이었다. 어릴 적 함께 시간을 보냈던, 비슷한 시기에 결혼하고 육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공동체원으로 모을 수 있었다. 그들 또한 힘든 육아에 마음 터놓을 상대가 필요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 쳐지나갔다. 함께 단톡방을 만들어 팀명부터 정하기 시작했다. 뭔가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학창시절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준비하는, 즐거운 조별 과제 같다고나 해야 하나. 아 이들 때문에 바로 바로 읽거나 답장은 할 수 없어도 모두가 같은 상황이고 이해하는 입장 이라 마음 또한 편했던 것 같다. 제일 어린 아이를 키우고 있는 한 친구가 총대를 메고 계 획서를 잘 제출해줘서 다행히 육아공동체에 최종 선정 되게 되었다. 일단 처음은 엄마들끼리의 시간을 갖도록 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하기 힘들었던 문 화생활. 마침 부산문화회관에서 에릭 요한슨 사진전을 연다고 해서 다 같이 보러가기로 했다. 사진을 한점한점 유심히 살펴보며 감상하는 게 얼마만인지. 얼마 전 아이들과 을 숙도 현대미술관 가서 뛰는 아이 붙잡고 마음대로 가는 아이 쫓아다니고 화장실 따라다 니다 지쳐서 돌아오던 모습과 오버랩이 되며 웃음이 나기도 했다. 사진을 보며 서로의 의 견을 나누며 학창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작은 것 하나에도 즐거워하는 엄마들을 보니 감
회가 새로웠다.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러 카페에 갔는데 이야기가 너무 즐거워 아이 하원 시간마저 놓칠 뻔했다. 너무 만족스런 첫 번째 모임을 마치고 다음 모임 약속을 잡으려는데 아이들이 돌아가 면서 수족구와 피부병으로 고생하고 있어서 약속 잡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7월 달은 줌 으로 만나야 했다. 그 시간도 쉽지 않아 아이들이 자고 있을 새벽시간에 만나기로 했다. 다들 자다 일어나 부은 얼굴로 줌으로 만나는데, 그 또한 서로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해야 하는 사이가 아니라 정말 편한 사이라는 게 느껴지며 더 친밀감이 들었다. 7월 만남은 8 월 15일 광복절 날 모든 가족들이 다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내자는 의견이 나와서 장소, 식 사, 놀이 등의 역할분담과 함께 그날을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얘기를 하는 도중 깨어 난 아이들 순서대로 줌으로 인사를 했는데 처음 보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우리 아이들처 럼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아름다운 사람들과 있으니 아름다운 마음이 든다는 사실을 오 랜만에 느껴본 것 같다. 8월 15일 광복절. 넓은 마당을 가진 촌장님 네 아버지 댁으로 출발. 도착하니 마당에 수영장을 설치하고 물을 받고 있었다. 얼른 수영복을 갈아입고 들어가겠다고 보채는 아 이들을 보며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물풍선, 물총, 낚시놀이, 모래놀이 등등으로 아이들 은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입술이 파래진 아이들은 바깥에 나와 햇볕을 쬐며 체온 유지를 하려고 노력해야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놀았다. 아침부터 시작된 물놀이는 오후 4시 정도에 수영장 물을 빼면서 마무리 되었는데 물이 빠지고 없는 수영장 바닥에 서 수영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정말 너무나도 귀여웠다. 오늘 서로 처음 보는 친구들 도 있었는데 하루 종일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며 한 번의 큰 소리도 안내고 잘 놀아준 것 에 엄마 아빠들은 뿌듯해 하며 아이들끼리도 하루 만에 얼마나 정이 많이 쌓였는지 … 언 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눈물의 헤어짐을 해야만 했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아이들은 다 기관으로 돌아가고 9월 달은 엄마들끼리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아이들로 인해 생겨난 인간관계가 아닌 나로 인한 인간관계는, 일을 그만두 고 육아를 시작하는 엄마들에게는 오랜만의 경험이 아닐까. 편한 자리에서 편한 사람들 과 편한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흔치 않은 경험이란 걸 또 느끼게 해준 모임이었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모든 아이들이 광복절의 추억을 잊지 못하고 계속 얘기 하고 있음을 알았다. 10월에 또 공휴일이 있으니 에어바운스를 빌려서 아이들을 신나게
놀자는 의견이 나와서 그에 따른 계획도 함께 짰다. 10월 9일 한글날. 새벽부터 일 어난 아이들이 얼른가자고 보챈 다. 광복절의 기억이 참 좋았나 보다. 벌써 기분이 좋아진 아이 들을 데리고 출발. 대여한 두 개 의 에어바운스를 연결하고 있으 니 아이들은 바람이 들어가는 짧 은 순간도 참지 못하고 에어바운스에 올라가고 있다. 꺄르르 꺄르르 자기들끼리 부딪히 고 같이 미끄럼타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설치한 부모님 얼굴에도 미소가 피어오른 다. 저번에 이어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너무 잘 놀아줘서 엄마아빠들의 시간을 가질 수 있 었다. 육아공동체 시작할 때 6번의 만남이 길 줄 알았는데 벌써 마지막 모임이 되었다. 아직 활동비가 남아있어서 활동비를 다 사용하자는 의미로 편백찜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따뜻 하고 푸짐한 음식에 좋은 사람들까지 더해 이날 식사는 더 맛있었던 것 같다. 내가 살면서 한 일 중에 제일 힘든 일은 육아였다. 육아의 삶이란, 너무 바쁘고, 계획 하는 대로 되지 않는, 너무나 많은 변수들이 존재한다. 아이들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고 나 또한 나의 한계점에 다다라서 많이 지치고 힘든 시기를 보내곤 한다. 물론 지나고 나 면 참 그립고 아련할 수 있는 추억이지만 지금 당장 겪고 있는 우리네 삶에서는 감정 조 절 또한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이 육아 공동체를 통해 그런 시기를 혼자만 겪는 게 아니 라 같이 겪고 있고, 그 와중에 내가 깨달은 노하우를 자연스럽게 공유하며 서로에게 도움 이 되며, 이해하며,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게 되어 참 감사하게 되었다.
같은 동네에서 자랐지만 지금은 다 다른 지역에 살고 있어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따로 도 보기 힘든 사람들이 이 육아공동체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한 번에 만나서 모임을 가지 고, 공감하고, 아이들끼리의 소중한 추억을 가질 수 있었을까? 참으로 귀한 계기가 되었 고 소중한 기회였다.
추후에도 육아공동체를 위한 지원 및 행사들로 육아에 지친 많은 부모님들이 위로받고 힘을 얻을 수 있게 도와주는 부산시육아종합지원센터가 되어주길 기대하며, 편안하고 따 뜻한 시간 보낼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티나핑(육아도 티나게 핑크빛이 될 수 없을까?)
찬란했던 육개월의 육아소설
편서윤
부모와 아이가 어울려 사회성과 유대감을 키워주고, 또래놀이를 통해 발견할 수 있는 아이의 기질과 특성을 파악하여 육아 고민해결 및 육아팁을 공유하는 공동체 모임입니다.
함께 라서 빛나는 것 전쟁터, 진퇴양난, 감정의 폭주, 참을 인. 나에게 육아는 현실이었다. ‘육아’의 사전적 의미(어린아이는 심신(心身)의 건전한 발달을 위하여 노력하는 일)는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내 아이를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나를 포함한 많은 엄마들은 나날 이 고군분투하며 육아 전쟁터를 경험하고 있다. 아이와 내 감정을 어르고 달래기도 하고 때로는 다그치기도 하면서 … 엄마라는 자리도, 육아 생활도 처음이다 보니 잘 해내고 싶 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자는 모습이 제일 예쁘다’라는 말을 격하게 공감하게 되고, 아이에 대한 변화무쌍한 감정 뒤섞인 나날들을 보내며,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잘하고 싶은데 … 어떻게 해야지? 하는 많은 고민들 앞에 한없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문득, 이 고민 … ‘나만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동지애를 느끼고, 때로는 감정 덜기를 하면서 힘나는 육아를 해보고 싶었다. 그러던 찰나에 해운대 구 육아종합지원센터 선생님이 건네준 홍보물 속 ‘육아공동체’ 라는 문구가 나의 눈과 마 음을 끌어당겼다. 그래! 이거야. 품앗이 육아! “힘든 일을 서로 거들어주면서 품을 지고 갚듯 우리의 육아 를 서로 거들어주자. 잘 할 수 있도록, 잘하고 있다고 응원하자. 아이들에게도 자연을 바 탕으로 난대로 결대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자”라는 가치지향 하에 모이기 시작했다. 몇 번 마주치고 인사로만 끝났을 법한 사이었지만, 같은 처지의
육아 전쟁터에 놓인 엄마이기에 모임이 절실했다. 켜켜이 쌓아두었던 연애세포를 흔들어 깨우 듯, ‘육아도 티나게 핑크빛이 될 수 없을까?’ 라는 생각으로 ‘티나핑’을 바라는 가정 이 모였다.
설레임으로 시작된 변화 한 배를 탄 육아동지라는 마음으로 모임에서의 아이들 모두는 너나 할 것 없이, ‘티나 핑’ 모임의 우리 아이였다. 아이들에게는 “○○엄마”로 8명의 엄마가 생긴 것이다. 첫 모 임에서 ‘내’ 엄마만 찾던 아이가 모임이 거듭될수록 8명의 엄마들에게 편안함을 느끼고, 11명의 아이들은 어울림을 배웠다. 다른 가정과 함께 놀이하고, 손을 잡는 것이 자연스 러웠다. 외동아이들은 어린 동생을 내 동생처럼 챙기고, 엄마, 아빠 곁이 아닌 친구들과 함께 하는 아이의 행동 변화를 보니 ‘티나핑’이라는 모임이 일상에 녹아듦을 알 수 있었 다. 엄마들 또한 각자 육아로 분명했던 선이 함께 육아라는 파도와 함께 옅어짐을 느꼈 다. 처음 만났을 때의 서먹함과 어색한 시간들이 무색하게 이 모임 자체가 감사했고, 서 로에게 녹아든 지난 시간들이었다.
‘오늘’이라는 선물 ‘나’ 때에는 흙과 나무작대기만 있으면 해가 질 때까지 놀았다. 자연과 함께 너와 내가 어울려 함께 하는 즐거움이 얼마나 풍부한 것인지 우리 아이들도 맛보았으면 했다. 그런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우리 아이들에게 ‘오늘’을 선물하기로 했다. 그래서 시간되는 사 람들끼리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을 겸, 공식모임 외 shot모임을 수시로 가졌다. 아이들에 게 행복한 ‘오늘’을 느낄 수 있게 해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했다. 집에 있는 물놀이 도구와 수영복을 챙겨 산으로 바다로 계곡으로 나서니, 돗자리 까는 곳이 우리의 놀이터 가 되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부모를 움직인다 했던가.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 내 어보자며 빈 공간 옥상에서 펼쳐진 워터파크! 이름하여 ‘옥터파크‘!! 더위가 여름만의 매 력임을 느껴지는 발상의 전환이 일어난 경험이었다.
결과보고서에는 미처 담지 못한 우리들의 ‘진짜’ 이야기 여름을 보내기 아쉬운 마음이 들 때 쯤 어느 엄마의 한 마디를 시작으로 물꼬를 틘 티
나핑 육아mom캠프. 아빠 없이 엄마와 아이들만 삼삼오오 모여 가는 1박2일 일정이라 “가능하 겠어?” 라는 물음표를 띄웠지만, 아이들, 엄마들 할 것 없이 손발 짝짜꿍이 맞아 “다음에 또 오자!” 라는 느낌표를 남겼다. 분명히 육아에 체력이 딸렸는데, 아이들 잠들고 나니 수다에는 체력이 필 요하지 않음을 몸소 느낀 새벽시간이었다. 각자 다른 곳에서 다른 경험을 해왔지만, 이곳 에서 만나 아이를 키우는 이야기로 마음을 나누고 공감했다. 함께 했기에 아이들은 나 중 심에서 더 큰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아가고, 엄마는 서툴지만, 어른을 역할을 해내어 가 고 있다. 공동육아를 하지 않았으면 감히 경험해 보지 못했을 일들이다.
함께 어우러지는 김밥 같은, 우리는 식구(食口) 입안에서 어우러져 먹을수록 그 맛에 반해 또 먹고 싶어지는 완벽한 행복감이 느껴지 는 김밥. 우리는 뜨거운 여름부터 코끝이 시린 찬바람 부는 겨울까지 김밥을 나눠 먹으 며 든든한 육아를 했다. 우리가 준비한 김밥은 아이들이라는 소스가 더해져 비빔밥이 되 기도 하고 주먹밥이 되기도 하면서 몸과 마음을 든든히 채웠다. 그 어떤 재료도 빠져서는 안 되는 ‘식구’가 된 것이다. 이 모임이 계기가 되어 또다시 쌀쌀함과 따스함, 그 어디쯤에서 차 한 잔에 수다의 꽃 이 필 것이다. 우리가 보냈던 계절이 또다시 오고 단단해진 우리는 더 이상 육아 전쟁터 가 아닌 함께 해서 즐거운 육아 놀이터로 추억을 또 쌓아갈 것이다.
호형오제
함께여서 가능했던 우리들의 육아
이나리
조리원에서 만난 인연으로 초산모의 육아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과 육아로 힘든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건강 한 육아를 하고자 모인 공동체입니다.
‘호형호제’ 육아 공동체는 태어난 시각은 각기 다르지만 2023년 1월 27일 금요일 같은 산부인과에서 출산한 여섯 명의 호랑띠 맘들이 모여 만 든 공동체이다. 조리원 수유실에서 처음 만나게 된 우리는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 만, 같은 날 태어난 아기들의 엄마라는 이유로 끈끈한 동지애로 뭉쳤다. 그런데 여섯 명 모두 초산인지라 육아에 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없었다고 해도 무방했달까 … 나도 처음 너도 처음이다 보니 모르는 것 투성이었던 우리 … 그러다 보니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이 모두에게 있었던 것 같다. 육아공동체를 형성하고 난 후 단톡방을 통해 활발하게 소통하기 시작했다. 원래 단톡 방이 있긴 했지만 그리 활발하게 운영되지는 않았었는데 공동체 활동을 계기로 적극적으 로 운영하게 되었다. 아기들의 발달 상태를 공유하고 육아하는 도중 아기의 상태나 발달 에 관련해 궁금하거나 어려운 부분들을 서로 질문하고 대답해주면서 모르는 것은 검색도 해가며 육아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며 점점 성장해갔다. 우리 공동체의 6월 첫 번째 모임은 온라인 구글미트 화상통화로 이루어졌다. 한두 명 씩은 개인적으로 만남을 가지기도 했고 영상통화도 했지만 여섯 명 모두가 다 같이 모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비록 화면이긴 했지만 거진 4개월 만에 만난 거라 다들 너무 반가 웠고 아기들도 함께 화면을 보면서 너무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여섯 명이 다 같이 모이 다 보니 중간에 아기가 똥을 싸서 치우러 가는 경우도 있고 수유 시간이라 자리를 비우는
경우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 부분이 더 좋았던 것 같다. 7월 모임부터는 대면 모임으로 진행했는데 날씨가 많이 덥기도 하고 아기들이 6개월 정도라 아직 어려서 각자 집에서 돌아가면서 모였다. 이즘 우리의 관심사는 온통 이유식 이었다. 모임원 중 1~2명 정도는 처음부터 시판 이유식으로 시작하려고 마음 먹었던 누 군가도 있었는데, 모임을 하면서 이유식 책을 함께 읽고 또 알고 있는 내용을 공유하면서 모두가 이유식을 만들어서 먹이기로 하였다. 8월에는 우리 아기들이 태어난 지 200일이라 함께 모여 200일 파티도 하고 기념촬영 도 하였고 배밀이 하는 아기, 네발 기기 하는 아기들이 생겨나면서 아기들의 성장을 함께 지켜보았다. 9월부터는 문화센터 수업을 같이 등록하며, 만날 기회가 더 많아졌는데 수업이 끝난 후 티타임을 가지거나 식사를 하면서 피드백 시간을 가졌다. 얼굴 볼 기회가 많아지니 서로 의 유대가 깊어지고 아기들도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아기들도 편하고 자연스러 워졌다. 함께 모여서 공동육아를 하다 보니 혼자 집에서 아기만 보고 있을 때보다 정말 훨 ~씬 시간이 빠르게 가는 것 같고, 모임에서 평소 육아하면서 아기들 먹는 것, 자는 것 등 힘들었던 부분들을 정말 토해내듯이 이야기하고 나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아..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 ’라는 생각에 위안이 되기도 했다. 힘든 육아의 숨쉴 구멍이라고나 할까 … 10월에는 정말 많이 친해져서 부부동반으로 주말에 모여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남 편들과 함께 만나면 불편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육아라는 공통의 관심사로 초면이 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남에도 불구하 고 다들 급속도로 친해져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마지막 11월 모임은 아기들도 많 이 자라, 집이 아닌 외부에서 만나기 로 했는데, 아무래도 날씨가 추워져 모두가 모이지 못했다. 많이 아쉽기 는 했지만 마지막으로 맛난 식사와 함께 활동을 마무리했다.
나의 육아에서 만일 육아공동체가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 아 이건 정말 상상도 하기 싫다. 다음 달이면 벌써 우리 아기들이 돌을 맞이하는데 내가 지금껏 잘 버텨온 8할은 우 리 육아공동체 친구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내 육아에 활력소라고나 할까 … 아기 재우고 나면 단톡으로 이야기하면서 미소 짓고 있는 내 모습 … 아기 잘 때 나도 자야 하는데 그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했던 시간들 … 만나면 사 소한 얘기에도 깔깔 웃고 아기들이 함께 노는 사랑스러운 모습에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우 리들 … 30만원의 귀한 예산으로 모임 때 맛있는 식사도 하고 다과도 먹고 또 우리 아기 들 200일 300일 파티도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 소중한 사람들도 얻을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육아 공동체가 아니었더라도 만났을 우리지만 우리의 모임을 더욱 빛나게 해 주었던 육아공동체!! 육아에 지쳐있는 누군가 있다면 육아 공동체를 강력 추천한다!!
• 중앙부처 및 부산시 육아지원서비스 • 부산광역시, 구·군 육아종합지원센터
부록
중앙부처 및 부산시 육아지원서비스
중앙부처 및 부산시에서는 영유아 가정의 양육 부담 경감과 안정적인 양육 환경 조성을 위해 아래와 같은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QR코드를 스캔하셔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신 후, 관련 기관을 통해 필요한 지원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중앙부처] 산모·신생아 건강관리 지원사업
전문교육을 받은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가 출산 가정을 방문해 산모의 건강회복을 돕고, 신생아를 보살펴 출산 가정의 경제적 부담 경감
[중앙부처] 시간제보육
가정 양육 시에도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 이용할 수 있는 보육 서비스를 제공하여 자녀 양육에 대한 부담을 경감하고 부모의 보육 서비스 선택권 보장
[중앙부처] 아동통합서비스지원(드림스타트사업)
취약계층 아동에게 맞춤형 통합서비스를 제공하 여 아동의 건강한 성장과 발달 도모
[중앙부처] 장애아가족양육지원
상시적인 돌봄이 요구되는 장애아 가정의 돌봄 부 담을 경감하여 가족안정성 강화
[부산시] 부산 공공형 키즈카페 운영
부산지역 영유아들이 비용 걱정 없이 안전하고 즐 거운 놀이를 할 수 있도록 꾸며진 실내 놀이체험 실과 장난감 도서관
[부산시] 동네방네 나눔육아 운영
구 육아종합지원센터 미설치 지역 내 영유아 자녀 를 둔 가정으로 직접 찾아가는 장난감·도서 대여 서비스
[부산시] 아가맘센터 운영
임신전-임신-출산, 육아건강관리까지 통합적으 로 연계하여 보건소 내 아가맘 센터에서 수요자 맞춤형 서비스 제공
[부산시] 등·하교(원) 돌봄서비스
부산지역 아동의 등·하교(원) 지원, 교통안전, 놀 이지원 등
맞벌이를 하거나 갑자기 아이를 돌볼 수 없는 일 이 생겼을 때 육아 도우미가 방문하여 만 12세 이 하 자녀의 양육 지원
육아 공간 및 돌봄 프로그램 제공, 이웃 간 자녀 돌봄 품앗이 활동 지원을 통해 양육 부담 경감 및 돌봄친화적 분위기 조성
다문화가정의 자녀가 건강한 사회구성원, 글로벌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언어발달 지원
15분 생활권 내 아동친화적 도서관, 실감형 체험, 미디어아트 전시 등 아날로그와 디지털 콘텐츠를 융합한 새로운 개념의 놀이형 학습공간
부산시 전역에 걸쳐 육아경험 및 관련 자격을 갖 춘 분들이 육아상담 및 양육정보를 제공해 주는 맞춤형 육아서비스
비슷한 연령대의 자녀를 둔 부산 아빠들끼리 모여 육아에 대한 고민과 노하우를 공유하는 아빠들의 모임
부산거주 임산부와 남편, 예비부부, 다문화가정, 엄마와 아기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행사
입원아동에 돌봄을 지원하여 양육부담 감소 및 일 가정 양립 실현
[중앙부처] 아이돌봄 서비스
[중앙부처] 공동육아나눔터 운영
[중앙부처] 다문화가족 자녀 언어발달지원서비스
[부산시] 어린이복합문화공간 들락날락 운영
[부산시] 우리아이 보육맘 운영
[부산시] 100인의 부산 아빠단 운영
[부산시] 가족건강센터 건강강좌 운영
[부산시] 입원아동 돌봄 서비스 지원
‧ 군육아종합지원센터
부산광역시, 구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는 부모교육 및 상담, 영유아 놀이 공간 및 체험프로그램, 시간제보육 서비스, 놀잇감 대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여 가정양육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QR코드를 스캔하셔서 거주지 근처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부산광역시육아종합지원센터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천로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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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구육아종합지원센터
부산광역시 사상구 낙동대로 1210번길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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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제구육아종합지원센터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대로 124번길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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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구육아종합지원센터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송로513번길 6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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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육아종합지원센터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로104번가길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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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1월 중 금정구육아종합지원센터 개소 예정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강로 584)
부산진구육아종합지원센터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가야대로 575-18
기장군육아종합지원센터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정관중앙로110
동래구육아종합지원센터
부산광역시 동래구 시실로 129
수영구육아종합지원센터
부산광역시 수영구 장대골로 20-14
강서구육아종합지원센터
부산광역시 강서구 명지국제 6로 318번길 58
발행연도 2023년 발행처 부산광역시육아종합지원센터 주 소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천로262 전 화 051) 866-0536 팩 스 051) 851-1855 이메일 bsscc56@hanmail.net 홈페이지 https://busan.childcare.go.kr https://www.bcs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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