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옛길 소식지(2023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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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온라인 소식지
가을
경기옛길 평해길 제8길 고래산 임도 풍경
소식 경기옛길 ‘유산의 전당’ 신설 추진 등 05 코스소개 의주길 제5길 ‘임진나루길’ 탐방객 인터뷰 경기옛길 탐방객 김태연 작가 09 기고문 연행의 시작과 끝, 의주대로(義州大路) 문화유산 통진향교 <강화길 제4길> 23 28
10 15 이야기 의주길의 밥할머니 웹툰 경기옛길 탐방기 26
경기옛길 ‘유산의 전당’ 신설 추진
경기옛길에서는 문화유산을 방문 인증하는 ‘경기옛길 문화유산 탐험가’ 사업을 진행 중에 있 는데요, 소중한 문화유산 현장을 직접 찾아가는 문화유산 방문 인증 사업의 확대를 위해 ‘유 산의 전당’을 신설할 예정입니다. 유산의 전당은 오는 10월(예정) 경기옛길 홈페이지에 개설될 예정이며 경기옛길 6대로에 대 한 문화유산 방문 인증을 완료하면 유산의 전당에 자동 등재되도록 구 축 중에 있습니다. 내년에는 문화유산 방문 인증 지점을 더욱 확대할 예정입니다. 경기옛 길을 통해 건강은 물론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와 소중함을 생각해보는 시 간이 됐으면 합니다. 탐방객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김동현 연구원>
<경기옛길 가족 탐방 프로그램> 10월, 평해길서 진행
경기옛길 평해길에서 오는 10월 14일과 21일에 가족 탐방 프로 그램이 진행됩니다. 도내 초등학생을 둔 가족을 대상으로 양평군 지평면 일원에서 걷 기와 다양한 체험활동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지평역에서부터 시 작해 지평향교, 지평리 전투기념관, 지평양조장 등을 경유하며 지 평역으로 다시 돌아오는 코스로, 작지만 알차고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마을입니다. 이번 탐방에서는 전문 문화유산 해설사의 설명과 함께 경기옛길 을 직접 걸어보고, 길 위에 어떤 역사와 문화가 담겨있는지 그 가 치와 의미를 배우게 됩니다. 탐방 프로그램에 참여하고자 하는 분들께서는 경기문화재단 예약 플랫폼인 지지씨멤버스 (members.ggcf.kr)에서 신청 가능하니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백서진 연구원>
경기옛길 노후 시설물 교체 진행
올 해는 경기옛길 삼남길, 의주길, 영남길에 설치되어 있는 노후·훼손 시설물 등을 전면적으 로 교체하는 사업을 추진중에 있습니다. 진행경과를 말씀드리면 7월에 착수하여 8월까지 디 자인을 확정하고 9월부터는 기존 시설 철거, 10월말까지 신규 제작된 시설 설치가 마무리됩 니다. 기존에 설치되어 있는 이정표, 보조 안내시설들이 전면 철수되는 관계로 탐방 안내가 일부 미흡해질 수 있는 점 양해 바라오며 불편한 점이 없도록 추가 안내에 만전을 기하겠습 니다. 대표적인 철거 시설은 사진을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철거시설
<정용균 연구원>
신규설치
경기옛길 탐방로 변경 안내
경기옛길 소식지 가을호를 빌어 최근 변경된 옛길 탐방로를 안내드립니다. 경기옛길 홈페이지와 공식 네이버 카페에 기 공지한 사항이오니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를 참고하셔도 되겠습니다.
경흥길 6길
경흥길 6길 통합노선 운영 – 2023.07.15. 시행 경흥길 6-1길의 하천범람, 수풀번성 구간과, 6-2길 아트밸리 탐방불편 구간을 6-2 중심의 통 합노선으로 변경하였습니다. 6-2길 등산로 구간이 다소 힘들어도 자연 산림속 탐방길이 심 신 힐링의 휴식 공간을 제공하는 구간이 되겠습니다.
영남길 10길 원형노선 복원 – 2023.07.22. 시행 영남길 10길 이천옛길은 일부 구간이 인도없는 찻길로 진행하여 많은 불편함과 위험이 상존 한 구간인데 영남길 개통시의 원형노선으로 복구한 구간입니다. 농경 풍경과 가을 정취를 만끽할수 있는 구간이 되겠습니다.
영남길 10길
평해길 5길
평해길 5길 자전거길 활용 운영 – 2023.08.19. 시행 평해길 5길 도곡터널 출구부터 하천구간의 잡초, 공사로 인한 민원이 발생하여 예정없이 긴 급하게 변경한 구간입니다. 도곡터널부터 국수역 거쳐 복포9교까지 자건거길을 활용한 구간 인데 도중에 쉼터와 화장실, 남한강 풍경을 감상하실 수 있는 구간입니다.
<탐방로 일시 폐쇄> 영남길 6길 문수봉~농촌테마파크 구간이 등산로 개선사업으로 탐방로 가 일시 폐쇄되었으니 안전 감안하시어 탐방 자제를 안내드리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정용균 연구원>
경기옛길 | 코스소개
화석정과 장산전망대를 품은 가을 길 <의주길 제5길 임진나루길>
의주길 제5길 임진나루길은 파주 선유4리부터 시작하여 율곡리, 장산마을을 지나 임진각에 이르는 13.8Km의 중거리 코스입니다. 율곡리는 이름그대로 밤나무가 많아 생긴 지명이기 도 하고 율곡 이이선생의 고향마을 이기도 한 곳이지요. 율곡리 마을길을 지나 임진강이 내 려다 보이는 화석정에 이르면 임진강이 말발굽처럼 굽이쳐 흐르는 멋진 풍경과 과거 이이선 생이 제자들과 함께 담론을 즐긴 역사의 현장을 느끼실 수도 있겠습니다. 화석정과 더불어 장산 전망대는 풀이많고 평평하다는 의미의 초평도와 저 멀리 북녘땅이 바라다 보이는 명소 로서 또다른 임진8경의 하나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곳입니다. 가을을 맞이하여 단풍과 함께 고즈넉한 정취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정용균 연구원> 사진출처 : 파주시 네이버 블로그
INTERVIEW
“화폭에 담는 옛길의 풍경”
김태연 작가는 홍익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미술계와 영화계에서 다양한 활동을 해 왔다. 특히 지금까지도 대만 미술계 인사들과 정기적인 교류 전시회를 열고 있다. 영화제작에도 참여했는데 '연애의 목적', '해바라기', '인사동스캔들' 등 수많은 영화의 미술담당 및 조감독으로 일했다. 현재 서울에서 화실을 운영하며 후학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김태연 작가 브런치 스토리 https://brunch.co.kr/@2691999
경기옛길 탐방객 김태연 작가
먼저 간단한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길을 걷고 멈춰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 입니다. 현재는 화실을 운영하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동안 미술 전공자로서 꾸준히 활동해 오셨는데 조금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개인전을 비롯해서 많은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특히 한국의 신묵회에 소속되어 대만의 원묵회와 함께 꾸 준한 교류로 전시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또 경기옛길을 비롯한 다양한 길을 걸으며 스케치를 하고 그 작업을 개인 작업으로 연결하는 활동도 하 고 있습니다.
걷기 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원래 여행에 관심이 많아 30여개국 이상의 많은 나 라를 다녔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시작하면서 장기간 여행을 떠나기 힘든 상황이라 제주도 여행을 갔다가 ‘제주 올레길’을 걷게 됐습니 다. 그곳에서 느낀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잊을 수 없 어 계속 걷는 길을 찾게 되었습니다.
경기옛길은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스케치를 하러 ‘문산’을 갔다가 산길에서 경기옛길 스템프 함을 발견하고 안내책자를 하나 가져왔습니다. 집에 한참을 묵혀 두었다가 어느 날 호기심이 생겨 걷기 시작했네요.
경기옛길 포함해 많은 길을 걸으셨는데 어떤 길을 걸으셨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경기옛길은 6대로를 다 마쳤고, ‘제주 올레길’, ‘대부도 해솔길’, ‘강화도 나들길’ 등을 걸어 봤습니다. 무엇이 더 나은지는 무의미하고, 각 길마다의 아름다움과 의미들로 잊을 수 없는 기억들과 그림의 소재들이 되어 준 곳입니다.
경기옛길이 가진 특색이나 매력 같은 게 있을까요?
경기도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아름다운 동네와 자연유산, 문화유산들이 가득하다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경기옛길을 걷는 것, 그 자체로 아름다운 여행이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경기옛길의 원래 의미도 중요합니다. 과거 여러 지역에서 한양으로 올라오던 길의 원형이 경기옛길의 원래 의미입니다. 따라서 그 길에는 사람들의 만들어낸 문화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교육의 공간 향교도 그 중 하나일 테고 궐리사와 절, 그리고 산성들이 그 증거입니다. 그 길 을 걸으며 옛 사람들이 느꼈을 희망과 아름다운 자연에서 받은 위로에 대해 생각합니다.
걷기의 장점,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걷다보면 느껴지는 마음의 여유와 그 여유에서 따라오는 건강 인 것 같습니다.
걷기를 생활화 하신 후에 개인적 생활의 변화가 있었는지요?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알게 되는 것 같네요. 물론 그림을 같이 하 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에는 대상과 내가 하나 되어 아무런 사회적 약속으로부터 방해받지 않기 때문 입니다. 그 시간의 만족스런 감정은 천금을 얻는 것보다 더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도보길을 걸으시면서 그림으로 남기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그림은 또 하나의 언어입니다. 길을 걸으며 제가 느낀 아름다운 공간에 대한 감탄사를 표현하는 것이 그림이라 생각합니다. 모두들 그 아름다웠던 순간의 감정과 뿌듯함들을 남기고 싶어 사진을 찍고 일기를 쓰고 기록 을 남기려 합니다. 그 기록을 위한 언어의 하나로 제가 가지고 있는 장점인 그림을 택하게 됐 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장소는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세요?
길을 걷다보면 이쯤에서 오늘 최고의 공간이 나오겠다는 예상이 되곤 합니다. 길에는 드라마 가 있습니다. 발단과 전개, 위기, 절정 그리고 결말. 그 드라마의 최고점을 찾는데는 10여 년 영화일을 했던 경험에서 동물적으로 찾게 되기도 합니다. 물론 어떤 곳에선 예상과 다른 반 전의 공간도 있긴 하지만요.
의주길 5코스
의주길 1코스
그림 작업은 보통 어느 정도 걸리세요? 그림을 그리는 시간 때문에 같이 걷게 되는 동 료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게 됩니다. 계속 걷고 싶은 분들에겐 큰 실례니까요. 제가 양해를 구 하고 제 자신의 걷는 페이스를 유지하기 가능한 시간은 한 시간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 시간이 가까워지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그림을 정리 하는 편입니다.
그림을 그리고 계시면 다른 탐방객 분들의 관심도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영남길 8코스
평해길 1코스
많은 분들이 그림을 그리는 것에 관심을 가져 주시고 또 뵈었던 분을 또 뵙기도 합니다. 그리 는 제 모습을 보시고 대리만족을 느끼신다면 그것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탐방 중에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한참 코로나가 심했던 때 평해길 마지막 구간을 걸었는데요, 그곳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 가 낮 3시경에 끝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망연자실해 있었죠. 택시도 오지 않는 그 곳에서 지나가는 차에게 구원의 손길을 보냈지만 아무도 차를 멈춰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부부 내외분이 차를 멈추고 태워주셔서 서울로 올 수 있었습니다. 제게 건네주 신 천혜향 하나와 문막터미널까지 바래다 주신 그 친절에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인사를 다 시 한번 드립니다.
영남길 6코스
경기옛길 운영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평해길 4코스
경기옛길이 많이 유명해졌습니다. 그건 이 길이 가지고 있는 힘과 그 길을 유지해 오신 분들 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 이 길의 홍보의 한계는 경기도에 있다는 것 입니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오는 길이기에 서울에 구심이 되는 공간을 만들어 주신다면 교류나 홍보 에 큰 힘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길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우리 민족의 과거가 쌓이고 쌓여서 켜켜이 만들어져 온 자연스런 물줄기입니다. 하지만 그 물줄기 같은 길은 관심을 갖지 않으면 어느 순간 사라지기도 합니다. 앞으로 살아갈 미래의 사람들에게도 주어질 이 길을 잘 보전하고 아껴서 이어주어야 할 유산입니다. 우리는 그 길 에 보탬이 되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義州大路) 연행의 시작과 끝, 의주대로
조선 제1 대로, 의주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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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호 문화콘텐츠학 박사, 방송대학TV PD
조선은 한양 천도 후 1410년(태종14) 도로제도를 정비하였다. 도성의 도로망과 지방 을 연결하는 도로망이 형성되었는데, 국가의 주요도로망은 증보문헌비고 의 9대로, 『 』
』 대동지지 의 10대로, 도로고 의 6대로 등으로 운영되었다. 각 대로의 제1대로는 의 『 주대로였다. 국가도로망의 핵심이 바로 의주대로였던 셈이다. 의주대로는 다양한 별칭
『 』
이 있다. 한양의 서북지역으로 향하는 교통로라 하여 서북로(西北路), 관서지역을 관 통하므로 관서로(關西路), 의주까지 향하므로 의주로(義州路), 중국을 오가는 사행들 이 빈번하게 넘나들었으므로 사행로(使行路 또는 燕行路)라고도 불렸다. 한양을 기점 으로 종착지인 의주까지 총 연장 약 1,050리~1,080리의 교통·통신로였다.
연행의 시작과 끝은 한양(漢陽)이었다. 한양에서 출발한 사신은 조선 제1대로인 의주 대로(義州大路)를 기본 노선으로 삼아 이동하였다. 신경준이 구분한 6대 간선로 체계 도 모든 출발점은 경도(한양), 즉 서울이다. 제1로인 <京城西北抵義州路第一>은 경 성, 홍제원, 고양, 파주, 장단, 개성, 평산, 서흥, 봉산, 황주, 평양, 안주, 가산, 정주, 철 산, 의주에 이르는 길이다. 이러한 구분은 당시 서울인 한양을 중심으로 각 방면의 극단 지역을 방사상으로 연결하여 국토를 포괄하는 도로교통망이라고 할 수 있다.
< 그림 6. 의주대로 (지도제작Ⓒ신춘호.2015) >
<서북쪽 의주대로, 기발(騎撥)>
도로고의 6대로 체계는 19세기 후반 김정호가 편찬한 대동지지 「정리고」에서는 10대로 체계 『 』
』 로 확충되었다. 대동지지 (권28)「발참」조에 따 『 르면 당시 한양에서 의주까지 약 41개의 역참이 운영되었으며, 거리는 약 1,050여리에 이르렀 다. 서북쪽의 역참과 거리 개념이 명확히 서술되 어 있다. 의주대로의 종착지인 ‘의주’로 향하던 기발의 여정을 보면 아래와 같다.
경도·기영참 돈화문 밖·검암참 23리 양주·벽제참 22 리 고양·분수원참 20리 파주·마산참 20리 파주·동파 참 20리 장단·조현참 30리 장단·청교참 25리 개성· 청석동참 25리 개성, 또는 자론참이라고도 한다·병 전기참 25리 금천·관문참 20리 금주·관문참 30리 평산·석우참 25리 평산·안성참 25리 평산·관문참 30리 서흥·서산참 23리 서흥·산수원참 22리 봉산·관문참 25리 봉산·동선참 20리 봉산·관문참 20리 황주·저복참 20리 황주·관문참 25리 중화·대정참 25리 평양, 혹은 지려참이다·관문참 25리 평양· 부산참 25리 평양·관문참 25리 순안·냉정참 30리 영유·관문참 30리 보천·운암참 30리 안주·관문참 30리 안주·광통원참 25리 박천·관문참 25리 가산·구정참 30리 정주·관문참 30리 정주·운흥참 30리 곽산·임반참 30리 선천·청강참 30리 선천·차련참 30리 철산·양책참 20리 용천, 어떤 이는 포원이라 한다·소곶참 30리 의주·관문참 30리 의주·모두 41참, 1천5십리
위와 같은 의주대로의 원형을 참고하여 국내지역 의주대로의 옛길을 현장답사 할 수 있는 여 정을 살펴보면 매우 한정적이다. 그러나 문헌의 옛길 여정은 현재의 ‘의주길’에 남아있다.
[남한지역 의주대로] 한양-돈의문(敦義門)-병전거리(餠廛巨理)-녹번현(녹번峴)-양철평(梁鐵平)-관기(館基)-박석현(薄 石峴)-검암참(黔巖站.구파발)-덕수천(德水川)-여현(礪峴)-신원(新院)-(신원천,덕명천)-고양(高陽)- 벽제역(碧蹄驛)-혜음령(惠陰嶺)-세류점(細柳店)-쌍불현(雙佛峴)-(쌍미륵)-분수원(焚修院)-신점(新
店)-광탄천(廣灘川)-파주(坡州)-이천(梨川)-(화석정)-(이후민간인통제구역)-임진도(臨津渡)-동파 역(東坡驛)-유현(柳峴)-장단(長湍)-오목리(吾木里)-견양암(見樣巖)-조현발소(調絃撥所)-판적천교 (板積川橋) 연행의 목적이나 연행참여자의 관심사에 따라 해외에서 견문하는 내용과 활동영역은 많은 차이가 있겠지만, 연행노정이라는 공간(길)은 중국에서 정해준 제도에 따라 운용되었기 때 문에 조선 조정이나 사신들이 마음대로 노정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 압록강을 건너 중국에 들어서면 북경까지 반드시 정해진 노선을 걸어야만했다.
연행노정의 삼절육처( 三節六處)
< 그림 7 . 연행노정의 삼절과 주요 명산 위치(入燕程途圖 Ⓒ신춘호재구.2020 ) >
옛사람들은 연행노정의 전체여정을 삼절(三節), 육처(六處)로 편의상 구분해서 왕래에 참고 하기도 했다. 지리공간과 경유지(도시)의 중요도를 기준으로 구분해 왔다. 삼절은 크게 초절 (初節:압록강-심양), 중절(中節:심양-산해관), 종절(終節:산해관-북경)을 말한다. 압록강에서 북경까지는 약 2,050여리가 되는데, 십삼산(十三山)이 딱 중간에 위치하여 연행단 전체 여정 의 이정표 역할을 했다. 육처는 삼절 구간의 큰 역참이 있었던 도시인 책문·봉황성·요동·심양· 광녕·금주를 말한다. 그 도시들이 차지하는 상징성과 중요성 때문에 조선 조정에서는 육처의 지방관에게 편지와 선물을 보내는 것이 관례였다고 한다. 특히 육처의 관아에서는 조선 사신 들의 중국지역 연행노정을 구간별로 분담하여 책임 호송 및 관리하고 이동기간에 먹을 양식 과 필요한 물품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들이 제공하는 물품을 하정(下程)이라고 불렀다.
이 밖에도 사신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지리개념을 인식하였는데,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 『
』 에서 전체 노정을 이동경로를 중심으로 <도강록>, <성경잡지>, <일신수필>, <관내정사>, <막북행정록>, <환연도중록> 등으로 구분하기도 했다. 본 연재에서는 연행의 삼절육처와 더 불어 열하일기 의 이동경로를 기본 지리개념으로 삼아 연행노정 전체 구간을 살펴볼 것이다. 『
』
자 그럼 앞서 언급한대로 한양에서 사행이 선발되는 과정과 출발에 앞서 임금에게 하직 후 동료들로부터 전별연을 받고 연행노정에 오르는 장면들의 일단을 살펴보자.
도목정사( 都目政事) , 사신을 선발하다.
사행(使行)은 정사(正使), 부사(副使), 서장관(書狀官)을 사신단의 책임자인 삼사(三使)로 삼아 사행임무를 책임지게 하였고, 통역관, 압물관, 화원, 의원 등 약35~40여 명의 수행원으 로 구성하였다. 이들을 공식사절단인 정관(正官)이라고 한다. 이 밖에도 말몰이꾼, 상인, 군 인 등 약200~500여명이 사행에 참여하였다. 사행단 구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 있 다. 바로 자제군관(子弟軍官)이다. 주로 삼사의 자제나 지인, 문하의 지식인들로 구성되었 다. 이들은 정식수행원이 아니었기에 비교적 사행단의 공식일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유람 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김창업(金昌業), 홍대용(洪大容), 박지원(朴趾源), 박제가(朴齊 家), 이덕무(李德懋), 유득공(柳得恭), 김정희(金正喜) 등 많은 지식인들이 연행의 자제군관 으로 참여하여 중국을 견문한 이들이었다. 사신의 선발은 조정의 인사를 결정하는 도목정사 (都目政事)를 통해 선발하였다. 1777년 사은진주겸동지사의 부사로 참여한 이압의 연행록 『 (燕行錄) 에 그 과정이 잘 드러난다. 』
1777년(정조 1) 7월 11일 벼슬아치들의 성적을 평가하여 승진시키거나 면직을 결정하는 도목정사 (都目政事)가 열리고 이날 겨울에 출발하는 동지 겸 사은사의 삼사를 결정하였는데, 부사에 1순위 垙 로 올라 낙점을 받았다. 정사로 뽑힌 하은군 광( )과 서장관에 뽑힌 이재학(李在學)과 함께 혜민서 (惠民署)에서 회동좌를 열어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10월에는 호조(戶曹)에 나아가 방물(세폐)을 포 장하고, 외교문서인 국서를 점검하는 사대(査對)에 참여하였다. 이날 사대에는 의정부의 삼정승과 육조의 판서, 애초에 문서를 만들었던 승문원(承文院)의 제조가 참여하여 꼼꼼하게 살폈다.( 『 연행 록(燕行錄)』, 이압, 1777년)
< 그림 8. 조선에서 중국에 보낸 외교문서 표문(表文)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사대(査對)란 황제에게 바치는 표문(表文)과 6부에 바치는 자문(咨文)을 살펴 틀린 글자가 있는지 나중에 외교적인 문제가 될 표현은 없는지 확인하는 일로, 서울에서 떠나기 전에 3 번, 도중에 3번 이상 할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다. 사행의 삼사(정사·부사·서장관)가 창덕궁에 서 임금께 하직을 고하면 곧장 종로통을 거쳐 숭례문이나 돈의문으로 나가 의주대로로 들어 서게 되는데, 서대문 밖 경기감영이나 모화관(慕華館)에서 사행 출발 전에 다시 한 번 사대 (査對)를 행하였다. 그만큼 외교문서의 내용과 형식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사대를 행했던 경 기감영은 현재 적십자병원일대이고, 모화관은 우리은행독립문지점이 들어서 있다. 표석만 이 남아 있을 뿐이다.
임금에게 하직하고 친지들의 전별을 받다.
사신이 한양에서 출발하는 과정을 1662년 진하겸진주사 정태화(鄭太和)의 임인음빙록 과 『 』
』 1777년 사은진주겸동지사의 부사로 참여한 이압의 연행록(燕行錄) 을 참고해서 살펴보자. 『
1662년 7월 26일, 진하겸진주사로 선정되어 청나라에 가게 되었다. 오늘은 대궐에 들어가 임금께
하직 인사를 드리러 갔다. 부사인 허적과 함께 대궐에 들어갔는데, 서장관은 함께 갈 수 없었다. 임 .
. 금은 초피(豹皮) 단목(丹木) 납약(臘藥) 선자(扇子) 등의 물건을 하사하시면서 이번 사행의 임무를
잘 수행해 달라 당부하였다. 정태화와 허적은 임금 앞에서 사례하며 절을 올리니, 임금이 먼 길의
고생을 미리 위로하고 전송하였다.
(『임인음빙록』, 정태화, 1662년)
< 그림 9. 창덕궁 정전인 인정전(중앙)과 희정당(우측) >
한양(서울)은 사신들이 출발에 앞서 임금께 하직하고, 사행에서 돌아와 복명했던 궁궐이 있는 곳이다. 연행 길을 떠나는 사신은 출발하는 당일아 침 궁궐에 나아가 임금에게 하직하는 숙배(肅拜)를 행하는 것으로 임무를 시작하였다.
임금이 사신의 접견을 받은 곳으로는 임진왜란 당시 경복궁이 소실되고 나서는 창덕궁 인정전(仁政殿)이나 희정당(熙政堂)등이 자주 이용되었다. 이압은 정조에게 희정당에서 인사를 했다. 정조는 무사히 다녀오라는 격려 와 함께 담비 가죽으로 된 귀싸개(耳掩) 2개와 쥐 가죽으로 만든 귀싸개 1개를 가져오게 하 여 하나씩 나누어 주었는데, 겨울철 사행을 떠나는 이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방한도구였다. 청나라에 보낼 문서를 받아 확인을 마친 후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되었다. 임금이 친히 내린 술을 받아 마신 이후 길을 떠나는데, 동생인 호조판서와 경기감사가 친히 나왔고, 부사의 아우인 허질 역시 전 송하는 자리에 참석하였다. 사현 고 갯길을 넘으니 시장의 사람들이 끼 리끼리 옆에 모여서 절하고 서로 이 별하였는데, 이런 광경은 전에는 보 지 못했던 것이었다. ( 임인음빙록 , 『 정태화, 1662년)
』
< 그림 10. 모화관의 건축양식을 옮긴 독립관 >
사대를 마치면 모화관과 홍제원에서는 사신을 전송하는 전별연이 열렸다. 모화관과 영은문 일대에서는 삼사신과 조정의 고위 관료들이, 무악재 너머에 있는 홍제원에서는 해당 관아의 관리들이나 가족, 친지들의 전송이 이어졌다. 모화관 옛 터는 현재 독립문공원에 있는 독립 관이 그 형태를 유지한 채 옮겨져 있다. 서대문 독립문공원에는 영은문 주초석이 남아 있어 사신왕래의 일면을 파악할 수 있는 공간이다.
< 그림 11. 서교전의도(국립중앙박물관) >
< 그림 12. 서교전별도(이혜옥 소장) >
<서교전의도(西郊餞儀圖)>는 1731년, 겸재 정선(1676-1759)이 중국 사행 떠나는 친구 이 춘제(사행의 副使)를 송별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그림 하단에 모화관과 영은문이 보이 며, 말을 탄 이들이 영은문을 지나는 장면이다. <서교전별도(西郊餞別圖)>는 사행단이 서교 에 전송 나온 이들과 작별하는 장면이 잘 묘사되어 있다. 그림에는 두 사람이 메는 가마(轎) 가 보이고, 오른쪽 하단에는 초헌(바퀴가 하나인 수레)이 대기하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사행은 모화관과 홍제원에서 전별연을 마친 후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해가 뉘엿거릴 때쯤 고 양 땅으로 향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사행단의 행렬은 약 30여리를 가 어둔 녘에 고양 관아 의 별관인 벽제관(碧蹄館)에 들었다. 대부분의 연행록은 “이날 30리를 가서 벽제관에 들었 다.”라고 소략하게 기술하고 있다.
조선의 임금은 중국의 칙사가 오거나 특별한 일이 아니면 모화관까지 나가 자국의 사신을 맞 이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 왕실의 오랜 숙원 과제인 ‘종계변무(宗系辨誣)’를 처리하고 돌 아온 사신들을 맞이하기 위해 임금이 직접 모화관에 나간 경우가 있었다. 종계변무는 왕실의 법통을 바로잡는 일이었기 때문에 수십 차례의 사신을 보내 처리하고자 했던 가장 중요한 외 교현안이었다. 이를 잘 처리하고 돌아온 사신들에 대해 국왕의 기쁨이 매우 컸던 것이다.
1584년 9월 12일, 우리(배삼익과 원사안)는 영서역(迎曙驛)에서 유숙하였다. 주상(선조)께서 직접
내려준 서찰을 받았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번 사신 길에 하인들 중에 병으로 죽은 사람이 많
았다. 그러나 만리밖먼 곳을 무사하게 갔다가 돌아와 황제의 칙서를 가지고 왔고 또 『회전(會典)』
을 베껴 와서 나에게 그 내용을 알게 해 주었다. 이것은 모두 충심으로 일을 처리하고 외교업무를
수행한 결과이니 진실로 기쁘기 한량없다. 그대에게는 내구마(內廐馬) 1필을 내리고, 서장관 원사 안(元士安)에게는 망아지 1필을 내리노니 사양하지 말라." 다음날 삼가 주상께서 직접 모화관(慕華 館)으로 마중을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황공하고 두려워 몸 둘 곳을 몰랐다. 한밤에 모화관으로 말을 蟒 달려가서 그간에 있었던 일을 주상께 아뢰고 하사 받은 물건인 망룡금( 龍錦)으로 만든 옷감과 여 러 색단(色段) 등의 물건을 바쳤다. (『朝天錄』, 배삼익, 1584년)
사행임무를 마친 사신들의 귀국 경로 역시 의주대로를 이용하였으며, 사신들은 한양으로 돌 아와 임금께 복명(復命)함으로써 사행의 임무를 종결하게 된다.
< 그림 13. 경복궁 근정전 >
지금까지 사행의 출발이 시작되는 궁궐에서부터 전별하는 공간을 중심으로 사행의 출발과 복명의 한 일면을 살펴보았다. 지면 관계상 소소한 사행 에피소드를 일일이 소개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본격적인 사행 노정의 현장을 소개하는 다음 여정에 궁금증을 키워보는 것 도 좋겠다. 다음 회에는 본격적으로 한양을 출발하여 고양-파주-임진나루를 건너는 조선 사 신들의 뒷모습을 상상해보기로 한다.
겨울호에 계속 연재
강화길에서 만난 문화유산 - 통진향교
향교는 지방의 학교라고 단편적으로 정의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지방교육은 삼국시대에 중국에서 유교가 들어와 제도화되기 시작을 하였다. 지방교육은 통일신라시대에 들어오면 서 시작을 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 태조가 평양에 향교를 설치하여 6부생을 가르치 고 문묘를 세워 제사를 지내기 시작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성종때에는 전국 12목에 학교를 설치하고 경학박사를 배치하였으며, 주군(州郡)에 학사를 세워 지방교육의 기틀을 다져나갔 다. 뒤이어 충숙왕 이후로 향교가 각 지방으로 설치가 되면서 지방교육이 전국적으로 확대되 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성리학을 건국이념으로 삼아 향교의 본격적인 발전과 체제가 완비 되기 시작을 한다. 향교가 지방의 학교라는 피상적인 정의를 넘어서 사회의 교화이념으로서 유교를 보급하는 창구기관으로 보면, 유교적 가치를 보편화하기 위한 사회교화의 기능과 국 가적 인재 양성이라는 기능을 했던 관학기관이었다. 또한 향교는 지방에 있는 양반들의 주요 활동처로서 양반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구이기도 하였다. 다시 말해 향교는 단순히 학생들 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방 양반들의 이해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양반들의 향촌기구라는 것이다.
』
우리나라 향교의 건물 배치는 문묘공간과 강학공간의 위치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구별되는 데 두 공간의 상대적 위치에 따라 전학후묘(前學後廟)와 전묘후학(前廟後學)으로 구별된 다. 전학후묘의 배치는 강학공간(명륜당)이 전면에 배치되고 그 뒤에 제향공간(대성전)이 배 치되는 형식이고, 전묘후학은 제향공간이 전면에 강학공간이 후면에 놓이는 것을 말한다. 즉 대성전과 명륜당의 위치에 따른 분류로서 대부분의 향교와 서원에서는 들어서는 초입에 문 루가 있고 그 다음에 강당(명륜당)과 사당(대성전)이 있는 전학후묘의 형식을 취한다. 이는 경사지형이 많은 우리나라 지형에 맞게 건립되어진 것으로 대부분의 향교가 이런 배치형식 을 취하고 있다.
』
강당은 다시 전재후당(前齋後堂)과 전당후재(前堂後齋)로 세분되는데, 이는 강당이 전면에 배치되느냐 또는 동재와 서재가 전면에 배치가 되느냐에 따른 것으로 지역적으로 보면 경상 도 지역에서는 전자의 유형을, 후자의 형식은 익산향교를 제외한 전라도 지역의 모든 향교가 ‘전당후재’ 형식으로 되어 있다. 또 하나 우리가 눈여겨 볼 대목은 향교가 동무 서무와 동재 서재 등을 반드시 갖춘 정형적인 건축물이라면 서원은 향교처럼 반드시 정형적인 형식을 따르지는 않는다. 통진향교는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30호로 고려 말인 1127년에 처음으로 지어졌다고 전해진 다. 통진은 ‘나루를 통한다’라는 뜻으로 조선 시대 한강 입구를 지키는 중요한 장소였다고 한 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맞배집으로 기단은 장대석으로 바른층쌓기를 하였 고, 정면 퇴주의 초석은 8각형의 장주형 건물이다.
통진향교 대성전(출처: 위의 책 p15)
공포부는 쇠서형의 초익공식 건물이다. 이에 비해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 지붕집이다. 향교 건축물로 매우 이례적인 팔작 지붕집인 것이다. 1994년에 동재와 풍화루 를 복원하였다고 한다.
<고영창 연구원>
의주길의 밥할머니
의주길에는 임진왜란과 얽힌 많은 역사적 사실들과 전설들이 남아있는데요, 밥할머 니 이야기 역시 임진왜란과 관계가 깊습니다. 실제 인물과 관계있는 부분도 있고 가공되어 전승된 이야기가 첨가되어 있기도 하지 요. 조선을 위기에서 구한 밥할머니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지역전승에 의하면 밥할머니는 북한산 부근의 대부호 문 씨 집안의 며느리인 해주 오 씨입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바다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활약하였지만 육지에서 는 패배의 연속이었습니다. 1593년 1월 27일 벽제관 전투에서 명군과 조선의 연합 군은 왜군에게 참패하면서 오히려 왜군에게 포위당합니다. 조명 연합군이 고립되어 있는 상황에서 드디어 해주 오 씨, 밥할머니가 나서게 됩니다. 밥할머니는 조명연합 군 진지에 들어서 왜군을 물리칠 방도를 알려줍니다. 연합군은 할머니의 계책에 크게 기뻐하며 덕수천(지금의 창릉천)에 일종의 독인 횟가루를 뿌립니다. 그리고 밥할머 니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북한산 노적봉에 볏짚을 쌓아 군량미처럼 보이게 위장하도 록 하지요. 이후 밥할머니는 일반인인 척 왜군 진영을 지나며 거짓 정보를 흘립니다. 왜군이 보
기에는 군량미가 높이 쌓여있고, 그 군량미로 밥을 지은 쌀뜨물이 덕수천에 흐르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었지요. 왜군은 긴 포위로 지친 상황에 비축된 많은 군량미 를 보고 사기가 꺾였고 밥할머니가 흘린 거짓 정보로 인해 횟가루가 섞인 물을 마셔 설상가상 복통과 설사까지 일으키게 됩니다. 밥할머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연합군 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고립되었던 연합군은 역공격을 감행하여 결국 왜군을 물리쳐 포위를 풀고 철수하도록 만듭니다. 이후 밥할머니는 행주산성 전투에도 참전하여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끌기까지 합니 다. 이런 할머니의 공로로 선조는 할머니를 정경부인에 봉하고, 후세 사람들이 이곳 에 할머니의 석상을 세워 할머니의 호국정신을 기렸다고 합니다. 지금도 고양 밥할머 니 보존위원회가 주관하여 해마다 밥할머니 추향제를 드리고 있습니다. 다만 밥할머니의 전승은 자세하게 지역전승으로 남아있지만 실제 기록은 명확하지 는 않습니다. 행주산성 전투에 활약한 여성이 ‘징비록’이나 ‘실록’에 남아있기는 하지만 전설처럼 해주 오 씨가 아닌 밀양 박 씨이며 남평 문 씨 집안으로 출가한 인물이라는 기록 정도 가 남아있지요. 또한 해당 인물이 밥할머니인지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존 인물이든 가공 인 물이든 임진왜란의 극복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전쟁을 극복하고자 노력한 사람들이 일반 백 성들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이지요.
경기옛길 탐방기
글‧그림 박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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