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옛길 소식지 2021 가을
이북 원문에서 글자만 옮긴 전체 텍스트입니다. 표·그림·사진과 원래 모양은 이북에서 확인하세요.
경기옛길 콘텐츠 공모전 사진부문 대상
contents
온라인 소식지
가을
박경식 作
소식 ‘완주인증’ 신청했다면 인증 진행상황 확인하기! / 경기옛길 자율형 테마탐방 <경기옛길 더하기> 05 경기옛길 비대면 자원봉사 프로그램 <줍킹JUBKING> / ‘경기옛길 가꿈이’를 소개합니다! / 뒤돌아보면 볼 수 있는 돌부처의 배웅 노면 스티커를 추가했습니다! / 경흥길 이야기 / 경흥길 조성 소식 사람 경기옛길 구독자 투고 쉼, 표 - 권지영 11 경기옛길 탐방객 인터뷰 미즈에
칼럼 왕들의 흔적이 배어있는 삼남길 유산 고려시대 국립숙박시설 ‘혜음원’ <의주길 제2길> 17 이야기 할미산성 이야기 <경기옛길 영남길> 18 웹툰 경기옛길과 함께하는 별세음공주 공덕연 - 장정윤 20
자세한 내용은 경기옛길 홈페이지 참고(www.ggcr.kr)
‘경기옛길 소식지’ 원고모집
‘경기옛길 소식지’의 원고를 모집합니다. ‘경기옛길’에 관심 있는 누구나 지원할 수 있으며 채택되신 분에게는 소정의 기념품을 보내드립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지원 바랍니다.
경기옛길 관련 자유주제 제한없음(시, 소설, 수필, 칼럼 등) 200자 원고지 10매 내외 없음(수시접수) 채택 원고는 소식지에 게재하고 소정의 기념품 지급
주제 분야 분량 마감 혜택 응모방법 이메일 또는 우편 중에서 선택 이메일 ggcr@ggcf.or.kr (우16488)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인계로 178, 우편 4층 문화유산팀(경기옛길센터) 경기옛길 소식지 담당자 앞 경기옛길 소식지 담당자(031-231-8576) 문의
경기옛길 소식지를 스마트폰으로 받아 보시려면 경기옛길 홈페이지에서 ‘문자알림 신청’ 하세요.
경기옛길 소식지는 온라인으로 발행되는 계간 소식지로
문자알림, 뉴스레터 수신 동의자에게 발송됩니다.
관련문의 및 수신거부 요청 : 031-231-8576
‘완주인증’ 신청했다면 인증 진행상황 확인하기!
탐방객에게 배지는 신성한 물건이다. 그것은 자랑스런 훈장이자 땀방울의 대가이다. 일명 ‘배지 컬렉터’는 배지를 받기 위해 완주에 도전하기도 한다. 그만큼 배지를 향한 탐방객의 마음은 간절 하다 못해 절박하다. 가끔 경기옛길센터에는 완주인증 진행 상황을 확인하려는 탐방객들의 전화가 걸려 온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전화로 확인할 필요가 없다. 경기옛길 홈페이지에서 인증 진행 상황을 확인할 수 있 기 때문이다. 먼저 경기옛길 홈페이지(www.ggcr.kr)에서 로그인을 진행한다. 완주인증 메뉴를 보려면 로그 인이 꼭 필요하다. 로그인 후에 ‘완주인증’ 메뉴를 클릭하면 인증 현황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모 바일 앱 사용자는 동일한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로그인하면 된다.
홈페이지 메뉴
인증 신청 현황
완주진행상황
주의) 우편으로 완주인증 접수를 진행하신 분은 진행상황 정보가 제공되지 않습니다.
인증 대기 정상적으로 신청 되었으며, 관리자의 승인을 대기 중인 상태
보류
관리자가 인증을 보류한 상태(보류 사유 확인 후 재신청 필요)
인증 승인 내역
인증 완료 관리자가 승인하여 정상적으로 인증처리 됨
발급 완료 관리자가 인증서를 발급한 상태로 곧 인증서가 발송됨
‘발급 완료’ 상태는 인증서의 발급이 완료된 상태다. 발급된 인증서는 포장 작업을 거쳐 우체국을 통해 발송되기 때문에 ‘발급 완료’ 상태에서 일주일 정도 후면 인증서를 받아 볼 수 있다. '경기옛 길 모바일 앱'을 통해 완주인증 신청을 했다면 곧바로 '인증 완료' 상태가 된다. 완주인증 현황은 현재 홈페이지에서만 확인할 수 있으나 향후 모바일 앱에서도 확인할 수 있도 록 개선할 예정이다.
경기옛길 자율형 테마탐방 <경기옛길 더하기>
<김동현 연구원>
다같이 삼삼오오 모여 경기옛길을 걸었던 것도 오래전 일처럼 느껴집니다. 경기옛길센터에서는 코로나 시대에도 경기옛길을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경기옛길 더하기>는 경기옛길 앱을 활용하여 개별적으로 경기옛길을 도보하고 도보 후기를 홈 페이지에 업로드하여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자율형 프로그램입니다. 매회 프로그램 주제는 달 라지며, 지금까지 ‘출발’, ‘건강’, ‘가족’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앞으로 ‘역사’, ‘자연’, ‘휴 식’ 등 다양한 주제로 진행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자세한 정보는 경기옛길 홈페이지(ggcr.kr)내 ‘경기옛길 더하기’ 게시판을 참고해 주세요.
<신지원 연구원>
경기옛길 비대면 자원봉사 프로그램 <줍킹JUBKING>
최근 인기예능에서도 진행하여 그 인기를 실감하게 된 캠페인 활동이 있죠. 바로 도보하며 환경 정화 활동을 하는 줍킹(‘줍’다+워‘킹’)입니다. 경기옛길센터에서는 비대면 자원봉사 프로그램인 <줍킹JUBKING>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남녀노소 상관없이 경기옛길의 아름다운 풍광을 느끼 며 환경정화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아보세요!
참여방법 경기옛길 홈페이지 공고 확인 후, 1365 자원봉사포털로 개인별 접수
※ 프로그램 참가자 대상 봉사시간 부여
‘경기옛길 가꿈이’를 소개합니다!
<신지원 연구원>
올 7월 중순부터 ‘경기옛길 가꿈이’ 활동이 시작됐습니다. ‘경기 옛길 가꿈이’는 경기옛길을 걸으며 리본 설치나 스티커 교체 등 길안내 표시를 관리하고, 대규모 공사로 인한 우회 노선을 찾아보기도 합니다. 또 간단한 시설물 수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여름 땡볕에서도 묵묵히 소임을 다하고 계신 ‘경기옛길 가꿈이’ 분 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박정화 연구원>
뒤돌아보면 볼 수 있는 돌부처의 배웅
의주길 제3길 노선 중에는 ‘별 모양’을 닮은 구간이 있습니다. 용미리 마애이불입상도 별 모양 노 선 안에 있는데요, 용암사 뒤로 계단을 올라가면 높이 17.4m의 커다란 두 바위 불상을 웅장하게 올려다 볼 수 있습니다. 전체 모습을 사진에 담기 위해선 몸을 최대한 뒤 로 하고서 각도를 잘 잡아야 하지요. 동그란 모자와 네모난 모자를 쓴 두 불상에는 내려오는 전설도 있고, 총 탄자국도 찾을 수 있습니다. 또 근래 에는 대규모 채석 계획이 심의 중으 로 문화유산과 생태 훼손 논란이 되 고 있지요. 의주길 제3길을 정방향으로 걸어 용 암사와 돌부처를 탐방한 후, 계속해 서 걷다가 별 모양 노선을 벗어나기 전에 파주행복요양원 부근에서 뒤를 돌아보면 저 멀리 산 중턱에 희게 서 있는 용미리 마애이불입상을 다시 볼 수 있습니다. 앞만 보고 나아가면 미처 보지 못하고 의주길 탐방을 마치게 될 테지요. 길을 걸을 때는 조금 더 천천히 여 유를 가지고 주변을 둘러보면 무심코 지나칠 뻔 한 새로운 발 견을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별을 닮은 의주길 제3길의 일부 구간
<박정화 연구원>
멀리서 바라본 마애이불입상
노면 스티커를 추가했습니다!
경기옛길 길안내 표시에 노면 스티커가 추가되었습니다. 2020년부터 시범적으로 도입되었는데 요. 이정표·리본 설치가 어려운 곳을 우선으로 점차 확대하여 설치하고 있습니다. 경기옛길을 탐 방할 때 귀여운 디자인의 노면 스티커를 찾아보세요!
경흥길 이야기
<박정화 연구원>
1770년 여암 신경준이 편찬한 도로고(道路考)에는 한양에서 전국으로 뻗어가는 6개의 대로망 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당시 중국으로 가는 한양-의주 간 길이 중요하였으므로 이를 첫 번째로 하여 시계 방향으로 번호가 매겨졌는데, 이 중 두 번째가 바로 경흥길입니다. 경흥로는 관북대로(關北大路)라고도 불렸는데, ‘관북으로 가는 큰 길’의 의미입니다. 여기서 의 미하는 관(關)은 철령 고개에 위치한 철령관을 말합니다. 철령관은 고려시대 함경도 지역이 영토 에 포함되지 않았을 때 국경 관문의 역할을 한 지역입니다. 한국인의 전통적인 지역인식에는 바 로 이 철령관의 존재가 있습니다. 철령관을 기준으로 서쪽은 관서, 북쪽은 관북, 동쪽은 관동이라 칭합니다. 따라서 의주로는 관서대로, 경흥로는 관북대로, 평해로는 관동대로라고 불렸습니다.
<박부원 연구원>
경기옛길 경흥길 전체구간
경흥길 8코스 12 km
경흥길 6코스 6-2: 11.3 km
경흥길 5코스 10.6 km
경흥길 원형노선
경흥길 4코스 11 km
경흥길 3코스 8.5 km
경흥길 2코스 9km
경흥길 1코스 8.6km
경흥길 조성 소식
경흥길 7코스 18.2 km
경흥길 6코스 6-2: 10.2 km
경흥길에서 볼 수 있는 간이안내표식
(정방향) 간이안내패널 (역방향) 간이안내패널
금년 개통이 예정된 경흥길은 조선시대 한양 에서 의정부와 포천을 지나 김화, 함흥, 북청 을 거쳐 경흥까지 가는 2,444리의 길입니다. 경기도와 경기옛길센터(경기문화재단)는 역 사적 고증과 의정부시, 포천시와의 협의를 통 해 원형노선에 기반한 걷기 좋을 길을 조성하 고 있습니다. 특히, 경흥길 각 구간의 시종점 은 탐방객의 교통편의를 제공하고자 하였고, 정확한 길안내를 위해 새로운 안내표식도 도 입하였습니다.
<박부원 연구원>
경기옛길 구독자 투고
쉼, 표
권지영
여름 한낮 나무 그늘 아래 바람이 분다.
바람은 나무를 읽으려고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가 다시 가만히 들여다본다.
바람의 호흡이 나무 아래 한 자락 낮잠을 불러오고
나뭇잎들이 사이 사이 쉼표를 찍는다.
INTERVIEW
경기옛길 탐방객 인터뷰
미즈에씨는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인 남편과 결혼하면서 한국에 살게 됐다. 벌써 13년이 되었다.
한국의 골목길과 자연 풍경을 좋아한다는 미즈에씨는
미즈에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Q 저는 미즈에라고 합니다. 한국인 남편과 결혼하면서 한국에 살 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온지 13년째입니다.
13년이면 꽤 오래 됐네요. 한국에 살면서 힘든 점은 없으셨나요? Q 문화나 생활 습관들은 큰 차이가 없어서 크게 힘들진 않았습니 다. 아무래도 언어 때문에 고생했습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한국어를 잘 못했기 때문에 말도 통하지 않고, 특히 시부모님이 랑 같이 있을 때 대화가 안 되어서 저도 시부모님도 힘들었던 기 억이 있습니다.
좋아하는 한국 문화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Q 우선 음식은 간장게장, 두부김치를 너무 좋아합니다. 가수로는 벤, 아이유, 로이김, 원슈타인의 노래를 즐겨 듣습니다. 또 손예 진씨 주연의 ‘클래식’이라는 영화를 무척 좋아합니다.
걷기여행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Q 예전부터 트레킹 코스에 관심이 많았었는데 일이 바쁘다 보니 항상 집 근처만 걷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시간적 여유가 생겨 가까운 경기옛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걷기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Q 예전부터 트레킹에 관심이 많았고 ‘오늘은 여기까지 걷자’라는 목표를 세우고 완주하였을 때의 성 최근 경기옛길을 걷기 시작했다. 취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걸으면서 자연을 느끼고 깨끗한 공 기를 마시면 평소에 쌓였던 피로나 스트레스가 풀리고 정신적으 로도 힐링이 되어 좋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걷자’라는
목표를 세우고 완주하였을 때의
걷기여행 중에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Q 평해길 7코스부터 점점 인적이 드물어 좀 무섭다고 느꼈는데 지나는 사람들이 인사해 주시거나 가끔 만나는 마을 분들이 평소에 쌓였던 피로나 스트레스가 안부의 말을 걸어주셨습니다. 짧은 대화였지만 마음이 따뜻
성취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걸으면서 자연을 느끼고
깨끗한 공기를 마시면
풀리고 정신적으로도
힐링이 되어 좋습니다.
했습니다.
경기옛길 추천 코스가 있나요? Q 제일 인상적인 코스는 의주길 제2길 고양관청길입니다. 예쁜 골목길과 함께 한국문화도 느낄 수 있고 아름다운 풍경도 볼 수 있어 추천합니다.(아름다운 포토존도 많습니다)
경기옛길에 바라는 점이 있나요? Q 새로운 코스 경흥길, 강화길이 기대 됩니다. 힘드시겠지만 앞 으로도 많은 코스가 생기면 좋겠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요? Q 여름이 지나면 아직 걷지 못한 경기옛길 다른 코스를 걸을 생 각입니다. 그리고 제주 올레길이나 해파랑길도 도전하고 싶 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Q 한국의 음식이나 음악이 해외에 많이 알려지고 있지만 저는 한국의 트레킹 코스도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로 힘든 시기에 유서 깊고 아름다운 경기옛길을 걸어 서 많은 힐링이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인터뷰 진행 : 김동현 연구원>
칼럼
삼남길
왕들의 흔적이 배어있는
●
서울신문 (jrlee@seoul.co.kr) 이종락 논설위원
서울 남대문에서 출발해 경기도를 거쳐 전남 해남 이진항에 이르는 380km, 950리에 이르는 삼 남 대로에는 예부터 왕과 얽힌 얘기들이 전해오고 있다. 일명 ‘왕의 길’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 을 정도다. 조선시대 22대 왕 정조는 뒤주에 갇혀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이 대단했다. 할아버지 영조에 이어 왕이 되자 현재 서울시립대 뒷산인 배봉산에 있던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의 화산 기 슭으로 옮겨 왕릉의 면모를 갖춘 현륭원으로 단장했다. 정조는 현륭원까지 능행차를 자주 했는 데 동작나루와 남태령을 넘어 과천과 의왕 사근행궁을 지나 화성으로 향하는 삼남로를 이용했 다. 현륭원 참배를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올 때 고개만 넘으면 부친의 능이 보이지 않게 된다며 하염없이 능을 바라봐 행렬이 지체됐다고 해 의왕시 왕곡동에 ‘지지(遲遲)대 고개’라는 이름이 생길 정도였다. 그런데 정조는 능 참배를 갈 때마다 의왕과 과천에서 사도세자 탄핵을 주도한 청풍 김씨 묘지들을 거쳐야 했다. 노론의 핵심 세력으로 6명의 정승을 배출한 청풍 김 씨의 거두 김징의 묘는 의왕 IC, 손자 김익로의 묘는 과천 가자우물 근처에 있었 다. 마음이 불편했던 정조는 아버지 원수들의 묘를 파묘(破墓)하거나 이장(移 葬)을 명할 힘과 권력을 가졌음에도 본인이 행선지를 바꿨다. 동작나 루 대신 노량나루를 지나 금천과 안양을 거쳐 현륭원에 참 배를 가는 금천로를 개척한 것이다. 금천이라는 지명도 ‘새로운 흥성’을 뜻하는 시흥(始興)으로 바꿨다. 이후 일
제강점기를 거치며 시흥을 중심으로 한 금천로는 파주~서울~목포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대표 길 인 1번 국도가 됐고, 원래의 삼남대로는 중요도가 떨어졌다. 정조의 효심이 우리나라 길의 운명 까지 바꾼 것이다. 충남 성환읍에 있는 남서울 대학교를 지나면 수헐원(愁歇院)‘이라고 불리는 시름세 마 을이 나온다. 고려 태조 왕건의 일화가 서린 곳이다. 후백제를 치러 가던 중이곳에 머물있던 왕건이 성거산 쪽을 바로 보니 그곳에 오색구름이 엉기어 있었다 고 한다. 태조는 성거산에 신선이 산다고 생각해 제사를 지냈는데 그때부터 일이 잘 풀리고 근심이 해소됐다고 해 ‘시름세’ 또는 ‘수헐’이라고 이름을 지 었다. 서울에서 1호선 전철을 타고 천안 방향으로 가다보면 천안역 두 정거장 전인 직산역이 있는데 이 곳의 옛 이름은 위례성(慰禮城)이다. 백제 온조왕이 졸 본 부여에서 남쪽으로 와서 나라를 열고 이곳에 도읍을 세웠다는 사실이 동국여지승람 등 옛 문헌에 기록돼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주장은 힘을 얻지 못하고 서울의 풍납토성이 위례성으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직산역에서 남쪽으 로 3.5km쯤 더 내려가면 천안시 부대동 사거리를 만난다. 왕건이 이 부근의 왕자성에 있을 때 북 을 달고 훈령을 내렸던 군사 훈련장으로 사용해 부대동이라는 이름이 지금도 전해져 오고 있다. 천안시를 지나면 공주시다. 두 도시의 경계에 차령 고개가 버티고 있다. 왕건은 943년(고려 태조 26년) 4월 고려 왕조의 자손들에게 귀감으로 삼아서 지키게 할 열 가지 유훈인 ‘훈요십조’를 친 히 전했다. 여기에는 “차현(車峴-차령) 이남 공주강(금강) 밖의 산형 지세가 배역(背逆) 해 인심 도 그와 같으므로 조정에 등용치 말라”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실제로 고려 시대에 차령 고개 남 쪽인 지금의 충남 남부와 호남 사람들은 벼슬길에 오르지 못했다. 왕건이 지역감정 폐해의 원조 인 셈이다. 공주의 옛 이름은 ‘고마나루’라고 하며, 한자로 웅진(熊津)이다. 웅진은 백제의 도읍 위례성이 고구려에 함락되면서 새로운 도읍이 됐다. 웅진 도읍 60년(475~538년) 동안 문주왕과 무령왕 등 4명의 왕이 이 성에서 지냈다. 공산성은 조선시대에도 왕과의 인연이 이어진다. 1623 년에는 인조가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이곳으로 피난 왔다. 인조는 공주로 내려오던 중 보물리에 서 4km쯤 떨어진 지금의 23번 국도변에 있는 석송정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이때 지방 유림 들이 백성의 어려움을 호소하자 세금 감면을 해줬다고 한다. 정자 주변에 인조가 ‘석송동천(石松 洞天)’이라고 새긴 바위가 아직도 있다. 논산시 부적면 부인2리에는 계룡산 무당 할머니를 모신 ‘부인당’이라고 불리는 당집이 있다. 무
당 할머니는 후백제를 멸망시키려 왔던 왕건의 꿈을 해몽해 줘 왕건이 이를 믿고 공격해 끝내 후백제를 멸망시켰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왕건은 임금 자리에 오른 뒤 이곳에 당집을 짓고 그 무당 할머니를 제사 지내도록 했는데 지금도 마을 주민들은 매년 음력 정월 14일 밤중에 제사를 지낸다 고 한다. 마을 이름도 부인리가 된 것이다. 논산시 연무읍 사무소를 지나 우회전해 왕릉로 방향으로 1.8km쯤 가면 금곡리에 견훤 왕 릉이 나온다. 견훤은 본래 성은 이씨로 신라 장군 아자개(阿慈介)의 아들이다. 견훤은 900 년 후백제를 세워 완산(전주)에 도읍을 정해 36여 년간 다스릴 때 후삼국 중 가장 큰 세력을 가졌다. 660년에 멸망한 백제를 240년 만에 되살린 것이다. 그러나 아들 신검과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내분을 빚으면서 왕건에게 멸망했다. 그는 죽으면서 “완산이 보이는 곳에 묻어 달라” 고 유언해 연무에 묻혔다. 전북 익산은 고조선의 준왕이 마한을 세우고 도읍으로 삼았다고 알려진 곳이다. 백제의 시조 온 조(溫祚)도 마한을 병합하고 이곳을 ‘금마저’라고 했으며, 무왕은 이곳을 사비성과 함께 도읍으 로 삼았다. 이런 이유로 익산시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왕궁리 유적지가 있다. 왕 궁리 유적은 마한의 도읍지설, 백제 무왕의 천도설, 안승의 보덕국설, 후백제 견훤의 도읍지설이 전해오고 있다. 삼남 대로는 익산과 완주군 삼례읍을 거쳐 내려오지만 전주 시내는 지나지 않는다. 지금의 호남 고속도로를 따라 서쪽 변두리를 잠깐 지나다가 다시 완주군 이서면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전주 에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조상이 살았다고 해서 문화유산들이 많이 있다. 풍남동 한옥 마을에 위치한 경기전은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한 곳으로 전주가 나라의 발상지라는 뜻에서 세운 전각이다. 삼남로는 전주 시내를 통과하지 않지만 수많은 관리들이 조선의 발상지인 전주를 오 가기 위해 삼남 대로를 무시로 거쳤을 것이다. 나주시청 앞 완사천(浣絲泉)에는 왕건과 둘째 부인 장화왕후(莊和王后)의 얘기가 깃들 어 있다. 궁예의 부하였던 왕건은 수군을 이끌고 서해안을 돌아 나주에 들어왔는데 무 지개가 피어올라 따라가 보니 한 처녀가 샘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나주 지방의 토호인 오다련의 딸이었는데 물을 얻어 마신 왕건은 그녀를 아내로 맞 이했고, 이 여인은 왕건의 뒤를 이은 혜종을 낳았다. 이처럼 삼남길은 삼국 시대부터 우리 선조들이 즐겨 이용했으며, 정권을 창출하고 빼앗기는 역사의 현장이었던 셈이다.
고려시대 국립숙박시설
‘혜음원’
<의주길 제2길>
경기옛길 | 유산
경기옛길 의주길 제2길 인근에는 파주 혜음원지(坡州 惠蔭院址)라는 유적지가 있습니다. 이곳 은 고려 예종 때 남경(지금의 서울)과 개성을 오가는 관료 및 백성의 안전을 위해 설치한 국립숙 박시설 ‘혜음원(惠蔭院)’이 있던 곳으로 고려 예종 15년인 1120년에 착공하여 1122년 2월에 완 공이 되었습니다. 사찰과 함께 국왕이 사용할 수 있는 별원(별궁)까지 갖추어 규모가 매우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출처 : 국가문화유산포털>
2001년 이후 지속적인 발굴조사 결과 건물지, 연못지, 배수로 등의 유구와 금동여래상, 기와류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어 고려 시대 각 계층의 생활양식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되는 중요 한 유적입니다.
<김동현 연구원>
할미산성 이야기
진산(鎭山)이란 국가, 도읍 또는 각 고을을 뒤에서 진 호(鎭護)하는 큰 산을 일컫지만 일반적으로 고을의 중 심이 되는 산을 말한다. 용인의 진산(鎭山)은 포곡읍 과 동백동에 걸쳐 있는 해발 471m의 석성산(石城山)이 다. 석성산은 영남길 제4길에 자리 잡고 있다. 그 석성산 정상에서 북쪽 약 1.7Km 지점에 해발 349m의 선장산(禪長山)이란 이름의 산이 있고 정상 주위에 석성이 남아 있는데, 그게 바로 할 미산성(老姑城)이다. 할미산성은 용인시 동백동, 가실리, 마성리의 경계 에 있다. 선장산의 북쪽 봉우리와 남쪽의 경사면을 감싸며 축조되었으며, 평면 형태는 장타원형이다. 성벽의 둘레는 661m로 서울·경기지역의 삼국시 대 성곽 중에서는 소규모에 속한다. 할미산성의 성벽은 내벽과 외벽, 적심부를 모두 돌 로 쌓았다. 돌을 곧게 오려 축조한 자연석 외축과 그 안쪽으로 잔돌을 다져 넣고 마지막 안쪽 마무 리는 산의 자연지형을 의지함으로써 튼튼하게 유지토록 했다. 돌의 두께는 20~30 cm이며 폭은 30~70cm 정도로 다양하다. 외벽에는 성벽이 무너지지 않도록 덧대어 쌓은 보축 성벽도 확인된 다. 성문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현문식 성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내에서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세웠던 망루와 집수시설, 병사들의 숙소로 사용된 수혈 건물지 와 땅에 구덩이를 파서 만든 다수의 저장시설이 확인되었다. 성의 내부 남쪽은 비교적 넓은 평지 가 있고 여기서 몇 점의 토기편 등이 발견되기도 했다. 특히 산성의 위계 를 보여주는 장방형 건물지 3기와 8 각 초석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할미산성은 출토되는 유물과 축성 법의 특징으로 볼 때 신라가 쌓은 성
<경기옛길 영남길>
할미산성 성벽
석상산 정상서 바라본 산장산과 할미산성
으로 보인다. 신라는 553년, 백제가 차지하고 있던 한강 하류 유역 등 경기도 일대를 장악했다. 할미산성은 신라의 이러한 한강 유역 진출 과정을 입증하고 있다. 대중국 교역항인 당성으로 이 어지는 교통로 확보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 성의 축성 목적이다. 한편, 마고(麻姑)할미가 하룻밤 사이에 성을 쌓은 것이 할미산성이라는 설화가 전해진다. 마고 할미는 한국 신화에 전해져 내려오는 여신 또는 창세신으로 할미산성이 있는 석성산 일대는 토 속신앙의 중심지 구실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로 근래까지 동제(마을 공동의 제례 행사)가 행해지는 마성 마가실, 포곡면 가마실, 둔전, 구성읍 동백리, 초당곡 등의 마을은 석성산과 할미 산성이 중심이 된다.
할미산성 정상
영동고속도로 위를 지나는 선상교(정면 선장산 할미산 성)
할미산성은 영남길 제4길의 석성산 갈림길에서 할미산성 방향으로 가는 방법과 동백 주공7단지 아파트에서 영동고속도로 아래 터널 을 지나 밀양박씨재실을 경유하여 오 르는 방법, 동백저수지 기점으로 향린 동산 코스로 오르는 방법이 있다. 석성산에서 할미산성으로 가는 경우 고속도로 위의 구름다리(성산교)를 지 나게 되는데 영동고속도로, 마성IC, 에 버랜드, 동백지구 등 멋진 주위 경관을 둘러볼 수 있다.
<정용균 연구원>
할미산성 탐방코스
장정윤
경기옛길 콘텐츠 공모전 웹툰 부문 우수상 수상작
안전한 도보 여행을 위한 안내
- 너무 이르거나 늦은 시간의 도보여행은 삼가주세요. - 혼자 도보여행을 할 경우에는 주변 사람에게 행선지를 꼭 알리세요. - 가급적이면 2명 이상이 함께 도보해주세요. - 긴급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비상 연락처를 미리 알아두세요. - 물, 간식, 응급약은 꼭 가지고 다니세요. - 찻길을 걸을 때는 길가에 붙어서 한 줄로 걸어가세요. - 도보에 불필요한 귀중품, 장신구 등은 가지고 다니지 마세요. - 태풍, 폭우, 공사 등으로 위험지역이 생길 수 있으니 주의 깊게 살피며 걸으세요. - 안전은 결국 본인에게 달려 있습니다. 도보 여행 중에는 항상 안전에 유의해주세요.
www.ggcr.kr
경기옛길 홈페이지 경기문화재단 경기옛길센터 031-231-8524 (16488)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인계로 178, 경기옛길센터(4층)
온라인 소식지
가을
(우)16488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인계로 178, 4층 문화유산팀 경기옛길 홈페이지 : www.ggcr.kr 대표전화 : 031-231-8524 / 대표 이메일 : ggcr@ggcf.or.kr
글이 없거나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쪽은 뺐습니다. 이북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