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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문화놀이매거진 POT 33호

이북 원문에서 글자만 옮긴 전체 텍스트입니다. 표·그림·사진과 원래 모양은 이북에서 확인하세요.

2쪽

PLAY 문화로 같이 즐기다

POT에는 ‘(다양한 것을 담는)그릇, 솥’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춘천문화매거진 팟은 문화로 다 같이 즐기고 소통할 수 있도록 지역의 다양한 문화 콘텐츠와 트렌드,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슈 등 생동하는 춘천의 문화예술을 한 데 담아내는 그릇이 되겠습니다. POT이 이야기하는 춘천문화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춘천 시민의 삶 속에서 엿볼 수 있는 일상의 모습, 그 안에 담긴 보석 같은 이야기를 뜻합니다. 오랫동안 많은 예술가와 청춘들에게 영감을 주는 아지트로 자리매김해 온 춘천. POT은 춘천이라는 멋진 지역을 춘천 시민과 춘천을 찾은 사람들이 보다 즐겁게 향유할 수 있도록 다채롭게 펼쳐 보이겠습니다.

OPEN 문화로 마음을 활짝 열다

TALK 문화로 함께 이야기하다

표지 일러스트 「기다리던 순간」 새 책을 맞이하는 가장 기다리던 순간.

당신은 설렘의 순간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나요?

6쪽

편집장의 여는글 10

언제나 설레는 마음으로 12

1 세상 가장 솔직한 울림으로 나를 위한 변주를 하다 16 2 동시대를 기록하고 추억하는 작가 26 3 길게 눈길을 주며 세상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 36

시작하는 삶의 기술 46

시민들의 설렘과 목소리가 지켜지는 도시를 꿈꾸며 54

처음 뵙겠습니다 58

신중년이여 예술로 접속하라, 아트/플러그 62 한 그릇에 담은 춘천 미술 68

꿈꾸는 마음으로 74

7쪽

늦가을 단풍이 절정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이 단풍이 지면 곧 겨울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절정이 곧 추락이라는 사실을. 원로시인 정양은 저 늦가을 단풍을 보며 “막판이 저렇듯 타오른다면/ 사람살이 얼마나 아름다우랴”(「막판이 저렇듯 타오른다면」)라고 나직이 노래합니다. “막판”의 시간에 지금보다 조금 더 좋은 세상을 남기고 떠나고자 하는 시민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한 해가 저무는 막판의 시간에, ‘설렘’이라는 감정에 대해 생각하고자 합니다. 설렘이라는 말은 얼마나 설레는 말인가요? 당신은, 지금, 여기에서, 설렘의 삶과 설렘의 시간을 살고 있나요? 나와 당신이 사는 도시 춘천은 ‘설렘시티’라고 부를 수 있나요? 이러한 물음들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아일랜드 시인 브렌덴 케널리는 “지옥이란 경이(驚異)를 잃어버린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나날의

삶과 노동에서 경이로움을 느낄 줄 아는 마음과 감각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 자체가 벽돌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좋은 삶은 타인을 향해 쇠꼬챙이 같은 마음이 아니라, ‘말랑말랑한 힘’(함민복)을 발휘할 줄 아는 데에서 나옵니다. 이번호 ‹POT›에서 ‘설렘시티’ 춘천은 어떻게 가능한가 생각해보려는 이유입니다. 저마다의 설렘은 무엇이고, 나를 설레게 하는 것들의 목록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창작과정 지원사업 ‹생각의 탄생›에 참여한 작가 공혜진의 ‹틈새식물수집첩›을 비롯해 예술가 인터뷰는 흥미를 더합니다. 공혜진의 작업은 일상을 기록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허구의 식물을 창조하며 기후 위기 시대 ‘생태 슬픔(Ecological Grief)’의 감각으로 안내합니다. 또 춘천이라는 도시에서 무엇인가를 막 시작하려는 사람들을 조명했고, 신중년 예술 전환 프로그램 ‹아트/플러그›에 참여해 내 인생의 방향 전환을 고민하는 50+ 시민들을 만났습니다. 설렘의 마음이 가득한 공간들이 안전(安全)하고, 안심(安心)할 수 있으며, 서로의 안녕(安寧)을

물을 수 있는 오아시스 같은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범준과 김정배의 칼럼은 시민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행정의 철학과 태도는 어떠해야 하고, 일상이 이상이 되는 경이로운 순간은 어떻게 가능한지를 말합니다. 춘천문화도시센터와 강원대 문화도시학과가 ‘좋은 사람’을 남기기 위해 최근 업무협약을 맺고 협력한 것은 ‘설렘시티 춘천’을 향한 발걸음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설렘시티 춘천으로 가는 길은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또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 또한 아닙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시민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1인칭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살피려는 행정의 철학과 태도가 특히 중요합니다. 정치학자 제임스 C. 스콧은 2차대전 후 일본에서 삼나무 심기처럼 단일수종을 조림(造林)해 숲을 가꾼 사례를 들어 그렇게 조성된 숲을 ‘행정가의

숲’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는 숲의 생태계는 다양한 동식물들이 서식하고 자라는 ‘자연주의자의 숲’이 휠씬 더 건강하다고 강조합니다. 어쩌면 무엇인가를 함부로 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돌체 파 니엔테!(Dolce Far Niente, 아무것도 안하는 즐거움) 한 해의 막판에 당신의 안녕을 기원합니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 편집장

8쪽

에디터 권용식

언제 나

매년 겪는 겨울이지만, 눈이 펑펑 오는 날들을 기다린다. 깊은 물이 무섭지만 프리다이빙을 할 생각을 하면 마음이 들뜬다.

설레는

새롭고 흥미로운 일들에 설레고, 익숙한 일인데도 여전히 기다려지는 것들이 있다. 여전히 우리는 설레고, 또 설렐 수 있다.

마음으로

빈티지 물건을 모으는 걸 좋아해요. 오래된 것들을 좋아하기도 하고, 누군가의 애정 어린 손때가 묻은 물건들을 보면 사랑스럽거든요. 어제는 프랑스 파리에서 라이브 방송으로 빈티지 물건들을 판매하는 영상을 봤어요. 프랑스 파리의 풍경과 골목, 가게를 보는 것도 무척 두근거렸고, 방송을 보면서 푸른 꽃무늬 수가 놓인 천 2장을 실시간으로 살 수 있어서 기뻤어요. 배송까지 시간이 걸릴 텐데, 그 기다림마저 설렘으로 다가오네요.

회화작가, C

겨울이 오면, 철원에 두루미가 온다고 해요. 사람보다도 큰 새들이 무리 지어 있는 모습을 예전부터 보고 싶었어요. 연말·연초는 늘 바쁜 시간이라 매번 보러 가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는데, 이번 겨울에는 철원에 꼭 가려고요. 눈 덮인 너른 철원 평야에 두루미들이 한가롭게 먹이 먹는 모습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요? 직접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잘 모르겠지만 아마 추위마저 사라질 것 같아요.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중이에요.

디자이너, B

오래 보지 못했던 사람과의 만남을 상상할 때 가장 설레요. 그동안 상대방은 어떻게 변했나 궁금하기도 하고, 나는 얼마나 변했는지 돌아봐요. 연인과 10개월 만에 일본에서 재회한 적이 있어요. 저는 타국에서, 연인은 한국에 있다가 일본에서 만났는데, 만나기 직전이 가장 떨렸어요. 떨어져 지내는 동안에는 서로를 향한 마음과 외적인 모습이 얼마나 닮았고 또 다른지를 눈으로 보지 않았으니까요. 재회하는 순간, 웃음이 나면서 긴장이 풀렸어요. 오랜만에 만나 일본을 즐겁게 여행하고 한국에 돌아왔답니다.

프리랜서, S

설렘이라는 단어 자체만 들어도 설레네요. 일상적으로 잘 쓰지 않기 때문이겠죠. 저는 요즘 장구를 배우고 있는데 단계별로 배우는 게 정말 재밌어요. 9단계까지 있는데, 8단계까지 배웠답니다. 장구를 배우면서 상상해요. 장구를 통해 누군가를 만나고, 장구를 통해 누군가에게 공연하는 상상이요. 그런 상상을 하면 설레요.

주부, I

9쪽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있어요. 알파벳 발음을 외우고 있는데, 처음 글자를 하나부터 다시 배운다는 일이 꽤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알고 있는 알파벳 모양도 완전히 다른 발음으로 새로 읽어가니, 마치 또 다른 세상에서 새롭게 태어난 기분이에요. 프랑스어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배우는 건 아닌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동안 살아온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살아보고 싶었나 봐요. 삶이 익숙해지다 보니 낯섦을 그리워한 거 같습니다.

사진작가, K

어릴 때 아버지가 테니스를 치셨어요. 아버지께서 함께하자고 했을 때는 어린 마음에 집에서 만화나 보고 싶었는데요. 수년이 지나,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고 찾아보던 중 테니스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어린 날 기억 때문일까, 귀신에 홀린 것 마냥 등록하고 열심히 배우고 있어요. 우스갯소리로 윔블던에 가야지 하면서요. 정적인 삶을 추구했던 저로서는 동적인 활동이 굉장히 새로운 설렘을 선사했어요. 땀을 흘리고 난 후의 개운함을 깨닫고 있기 때문인가 봐요. 만약 테니스를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물 없이 천천히 메말라가는 식물 같은 삶을 계속 살고 있었을 거예요. 테니스 덕분에 도전하는 설렘을 가질 수 있게 되었어요.

안경사, O

요즘은 눈이 오길 기다리는 것처럼 설레는 일이 많아요. 겨울에 눈이 오면 산에 갈 생각에 설레고요. 또 동생이 조카를 출산했는데 조카를 보러 갈 생각에 설레요. 마지막으로 10년 타던 차를 보내주고, 새 차를 예약해 출고를 기다리고 있는데요. 받아볼 생각을 하니 설렙니다. 설렘과 늘 함께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편의점 점주, S

늘 바라왔지만 가지 못했던 길인 농사를 올해 시작했어요. 계절의 변화를 손으로 만지는 즐거움이 좋고, 저로 인해 누군가가 채워진다는 충족감이 제게 설렘을 가져다줘요. 끝이 선명히 보이는 길은 아니지만, 그저 농사를 지을 수 있어서 좋아요. 저를 이곳으로 이끌었던 설렘의 감각들을 잊지 않고 계속 걸어가고 싶어요.

조금 늦은 귀농인, Tong

설렘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저는 마냥 긍정적으로만 들리지 않아요. 오히려 기뻐서 설레기보다 두려움에 가깝죠. 저는 새로운 경험에 설렘을 느끼기보다 안정되고 편안한 상태를 찾고 싶어 하는 편이에요. 지금 이 시대도 제게는 다소 혼란스러워요. 그럼에도 언젠가 제게도 설레는 날이 찾아오길 바라고 있어요.

작가, D

설렘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오래전 선을 보러 가던 날이 떠올라요. 창밖으로 지금의 남편과 눈을 마주쳤는데, 어찌나 부끄럽던지요.

70대, 농부 H

열여덟 살이 되던 해 도자기 공방에서 일일 체험을 했어요. 흙을 만지던 순간, 짜릿한 단 한 번의 손짓이 제게 커다란 설렘을 안겨주었죠. 평생 흙을 만지며 살고 싶다고 다짐했던 소중한 순간이었어요. 도자기는 수줍고 겁이 많던 저를 용기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어요. 그 후부터 설레는 손짓과 그날의 느낌을 생각하며 꾸준히 제 길을 걸어보자고 다짐했답니다. 우연히 찾아온 설렘을 놓치지 않았으면 해요. 꼭 거창하고 멋진 사연이 담겨 있지 않아도 괜찮을 거예요. 아무 일도 없는 그저 평범하고 잔잔한 일상에도 설렘은 항상 여기, 우리 곁에 존재한다고 믿어요.

도예 작가, K

저는 직장에서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보통의 보편적인 공간을 만드는 일을 해요. 한 번쯤은 내 취향을 잔뜩 담은 공간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상상만 하던 순간이 곧 현실이 될 것 같아요. 종일 볕이 들고 앞이 시원하게 탁 트인 저만의 아지트를 갖게 되었거든요. 어떻게 공간을 나누고, 어떤 색과 질감을 써야 할지 기대되고 설레요. 내년 봄이 되면 제 취향으로 가득 찬 공간에 친구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 거예요!

직장인, 눈물 흘리는 계산기

엄마랑 데이트할 때요. 왜냐하면, 동생 없이 엄마랑 맛있는 케이크를 먹어서요.

7살, 김연두

소풍 가서 바이킹 탈 때요.

7살, 김토끼

10쪽

세상 가장 솔직한 울림으로

나를 위한 변주를 하다

조진희 춘천 출생. 강원대학교 음악교육과 졸업 후 리코더를 배우기 위해 오스트리아로 떠나 빈국립음대를 졸업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리코더 연주자로 활약했으며, 고향 춘천을 중심으로 한국에 리코더 음악을 뿌리내렸다. 현재는 춘천예술촌에 터를 잡고 한국 최초 리코더 마이스터의 삶을 살고 있다.

네모반듯한 잔디밭이 풀장처럼 뻗어있고, 붉은 벽돌의 낮은 건물들이 구역별 기지처럼 에워싸고 있다. 낮은 지붕 위로 익숙한 아파트들이 보인다. 도심을 휙휙 지나쳐 한 가운데로 왔는데도 이곳은 고요하다. 순식간에 바뀐 평온하고 이국적인 분위기가 생경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옛 기무부대 관사 8개동을 리모델링해 만든 춘천예술촌. 이곳에서 느낀 낮설고 생경한 기분은 ‘이 사람’을 만나고 경이로움으로 바뀌었다.

11쪽

“제가 음악을 좋아하고 사랑해서 괜찮아요. 음악을 통해 감동받고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기 때문에 오히려 당연하다고 여겨져요. 생각해보면 늘 호기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설렘과 막연한 기대감, 근거 없는 희망 이런 게 내재된 사람이기도 하고요.”

12쪽

한국 최고의 리코더 연주자의 이야기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봐왔습니다만, 매번 같지 않더라고요. 들을 때마다 새로운 리코더와의 운명같은 만남, 그 이야기를 해주세요. 제가 아마 춘천이 아닌 다른 도시에 있었다면 리코더를 못 만났을 것 같아요. 6학년이던 당시, 우리나라에서 리코더 교육을 처음 도입한 박재훈 교수님이 춘천교육대학교에 재직 중이셨는데 그 학교에 친형이 다니고 있었죠. 형님은 피아노를 쳤었는데 당시 교수님 제자들로 이루어진 리코더 합주단에도 소속되어 있었거든요. 형님이 집에 오면 리코더로 소나타를 연주하곤 했는데 저는 그 소리를 듣고 ‘아, 너무 좋다’ 하고 동경 같은 게 생겼죠.

그래도 본격적으로 리코더를 연주하게 된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을 것 같아요. 제가 리코더를 곧잘 따라부니까 어느 날 형님이 박재훈 교수님께 저를 데려갔어요. “제 동생인데 아주 잘해요!” 하면서요. 교수님 앞에서 리코더를 연주했더니 칭찬을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그렇게 교수님을 뵙고 1976년 리코더 합주단 창단 연주회에서 중학생 게스트로 첫 무대경험을 하게 됐죠. 그 이후 교육청에서 주최하는 학생 실기대회에 나갔는데, 리코더 분야가 따로 없어서 트럼프와 클라리넷 등 관악기 분야에서 경연을 치렀어요. 그때 입상을 계기로 어리지만 굉장한 꿈을 가질 수 있었어요. 리코더를 통해서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다는 행복감을 느꼈죠.

춘천에서 계속 리코더 연주자의 길을 개척해나갈 수 있으셨을텐데, 오스트리아로 유학길에 오르셨어요. 인생에서 어떤 의미의 결정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많이 갈등했어요. 제가 1989년에 유학을 떠났는데, 강원대학교 음악교육과(당시 사범대학교)를 졸업하고 정선교육청으로 발령이 난 상태였죠. 큰 결정을 해야 했어요. 교직에 있으면서 안정적으로 살아갈 것이냐, 아니면 유학길에 올라 내가 하고 싶은 걸 계속 탐구해 나갈 것이냐. 더 공부해보고 싶다는 말에 주변에선 다 반대했죠. 하지만 고등학생이 초등학교 수준의 연주를 하는 우리나라 리코더 음악의 현실, 리코더의 장래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 큰 동력이 됐어요. 무엇보다 그냥 리코더가 좋아서 갔던 거죠.

누구나 집에 하나씩 있는 악기가 리코더잖아요. 그런데 이 리코더로 인해 누군가는 인생에서 결정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이 참 인상적이에요. 도대체 어떤 매력이 있는 걸까요 리코더라는 악기는. 현재 4년제 대학 중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리코더 학과가 있고, 올해부턴 강원대학교에도 생기거든요. 그런데 제가 대학 진학할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없었어요. 그래서 플룻을 선택해 입시를 준비했는데 계속 ‘나한테 맞는 옷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지배해왔어요. 나한테 맞는 옷은 ‘리코더’뿐이었던 거죠. 서민적이기도 하고, 그 어떤 악기보다 순수한 음색이 정말 매력적이에요.

그렇게 오른 유학길도 만만치 않은 여정이었겠어요. 그때까지 제대로 된 레슨을 받아본 적이 없었어요. 그냥 독학이었죠. 그 상태로 오스트리아 빈국립음대 교수와 첫 만남을 가졌는데 제가 얼마나 가소로웠겠어요. 스물아홉살이나 된 사람의 연주가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실망한 표정이 역력하더라고요. 지금이 아니면 안되겠다 싶어서 통역사를 통해 마지막 멘트를 전했죠. “나는 리코더를 배우기 위해 음악교사라는 좋은 직업을 포기하고 왔다. 내가 나중에 고국으로 돌아가면 한국의 첫 리코더 스승이 될 것이다.” 그 말이 좀 먹힌 것 같아요. (웃음)

웬만한 확신과 용기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도전이었네요. 그렇게 유학을 다녀와서는 한국의 1세대 리코더 연주자로서 활동을 하셨잖아요. 당시 국내 음악계의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1994년에 한국에 왔는데 그땐 리코더에 대한 편견이 정말 말도 못했죠. 귀국 후 연주회를 열었더니 ‘리코더도 연주회를 해? 초등학생들이 부는 피리 아냐?’ 이런 반응들이었어요. 굉장히 서러웠어요.

이런 편견을 깨기 위해 많은 시도들을 하셨더라고요. 가장 많이 공을 들인 부분이기도 해요. 먼저 춘천에서 청소년 리코더 합주단을 만들었어요. 그 다음 성인들로 구성된 합주단도 만들고요. 그러다보니 리코더를 가르칠 전문가가 필요해지더라고요. 그런데 당시에 저 말고는 전문가가 없었어요. 그래서 리코더 세미나를 개최하기 시작했죠. 많게는 150명이 왔어요. 3박 4일 일정이었는데도요. 전국의 음악 선생님, 학생들이 춘천에 모여 리코더를 배우고 또 돌아가서 합주단을 만들었죠. 이러면서 리코더가 많이 보급된 것 같아요.

13쪽

그러다보니 축제나 경연도 필요해졌을테고요. 맞아요. 같이 어울릴만한 축제가 좀 필요하겠다 싶었죠. 그래서 리코더 콩쿠르도 만들고 1998년에 춘천 리코더 페스티벌을 열었어요. 이게 현재 춘천국제고음악제의 모태가 됐죠. 이제는 지역 아티스트들의 등용문이자 출향 아티스트들이 다시 돌아와 감동을 주는 축제가 됐어요. 춘천국제고음악제는 유럽에서도 다 알 정도로 유명해졌고요.

리코더의 메카 춘천에 대해 자부심을 느껴도 되겠네요. 춘천 출신의 국제적인 연주자들이 많아요. 리코더에 대한 편견 때문에 드러나지 않을 뿐이죠. 그래서 아쉬워요. 저보다 훌륭한 연주자들이 정말 많거든요. 예를 들면 신윤희, 이효원, 허영진 리코디스트들처럼요. 춘천이라는 중소도시에서 배출한 연주자들이 전체 연주자들 중 차지하는 비율이 커요. 자부심 가질만 하죠.

‘고(古)음악’이 오래된 음악이라는 뜻이잖아요.

리코더 역시 오래된 악기인가 봐요. 리코더하고 동시대에 있던 악기 챔발로, 트라베소 등이 바로크 시대의 악기에 속해요. 옛날 악기를 다른 말로 시대악기라고 하거든요. 바흐가 플룻 소나타를 작곡했을 땐 금속 플룻이 없었어요. 나무로 만든 악기밖에 없었죠. 시대악기는 당대 작곡가가 살았던 시절의 악기 그대로의 소리를 우리가 들을 수 있다는 데 큰 매력이 있어요.

현대 악기와 시대악기의 차이가 있다면 뭘까요? 현대의 금속 플룻은 너무 과학적으로 잘 만들어진 악기예요. 누가 불어도 편안한 음정을 낼 수가 있고 핑거링도 편하고요. 하지만 나무로 된 플루트의 원형 ‘트라베소’는 어떠한 장치에 의존하지 않고 연주자의 기량이나 음악성에 의해 연주가 되죠. 바흐의 곡을 현대 악기로 연주한다면 바로크 음악이라고 할 순 있으나 고음악은 아닌 거죠.

리코더에서 시작해 춘천국제고음악제까지. ‘개척’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새로운 무언갈 시작할 땐 그만큼 용기가 필요할텐데 원동력이 있을까요? 일종의 의무감과 책임감이 있는 것 같아요. 축제를 시작할 때 예산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거든요. 아무래도 연주자를 초청하거나 행사장소를 대관하려면 예산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럴 때마다 지역 곳곳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서울에 있는 악기점에서까지 지원을 해줬죠. 사업적으로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제가 음악만 할 수 있는 용기를 그 분들이 주신 것 같아요.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명맥있는 축제 하나가 도시의 분위기를 바꾸듯, 문화로운 삶의 그 중심에는 늘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뭔가를 기획하고 시도하려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저는 기획력이 참 없었어요. 주변에서 정말 많이 도와준거죠. 그런데 요즘 젊은 분들은 기획력이 잘 갖춰져 있더라고요. 그 기획력을 바탕으로 어떤 분야든 길게 보셨으면 좋겠어요. 위기를 잘 넘겨 세월을 흘려보내면 그게 역사가 되는 것 같거든요. 어떤 역사를 만드는데 10년이 필요했으면, 새로운 뭔가를 시작하는 데도 10년이 필요한 거죠.

선생님께서는 1세대 리코더 연주자와 교육자, 기획자를 지나 이제는 마이스터의 길을 걷고 계신데, 그 전환점이 궁금해요. 많은 일을 하면서 좀 무리했던 것 같아요. 공연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대학 출강도 나가고 또 춘천시립합창단 지휘까지 맡아 눈코뜰 새 없었죠. 그러던 2003년도에 오른쪽 귀에 난청이 왔어요.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매일 좌절감과 분노, 슬픔에 시달렸어요. 음악을 하는 사람의 귀가 망가지다니, 그 상실감이 참 컸어요. 그러다 나의 장점이 뭔지 되짚어보기 시작했어요. 어릴 적 손재주가 있었던 걸 떠올리고 리코더 제작을 시작하게 됐죠.

리코더 제작 역시 처음이셨을텐데, 결심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은 뭔가요? 일본에 있는 리코더 연주자이자 명장인 ‘야마오카 시게하루’를 찾아갔어요. 제 상황을 이야기하고 리코더 만드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요.

첫 오스트리아 유학길에 오르셨을 때가 떠오르네요. 기술부터 도구와 장비까지 또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기란 쉽지 않으셨을텐데요. 일본에 방문했을 때, 그 명장이 본인의 공방에서 묵으라고 권하시더라고요. 거기에 덧붙인 말씀이 ‘여기 있는 공구들 다 사진으로 찍어도 좋다’였어요. 얼마든지 좋으니까 모두가 퇴근한 후에 연구해보라고요. 그 때 공구들을 하나하나 다 찍었죠. 사이즈를 재고 스케치하고 밤새도록 도면을 그렸어요. 그리고 한국에 와서 그 공구들을 오랜 시간에 걸쳐 직접 만들었죠. 오롯이 저만의 공구가 갖춰지니 악기를 만들고 손보는 데 노하우가 생기더라고요.

14쪽

지금은 작업환경이 많이 달라졌나요? 컴퓨터에 데이터를 입력하면 정확한 위치에 구멍이 뚫리는 장비를 제작했어요. 직접 의뢰해서 만들었죠. 그러던 어느 날, 일본의 악기명장이신 ‘다케야마’ 선생이 방문해서 보더니 감탄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몇 년 뒤에 와서 고백하시길, 본인 공방에도 똑같은 장비를 들여놨다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사실 악기 명인의 길을 걷는다는 건 경제적인 것만 생각하면 절대 할 수 없어요. 그런데 이 일이 경제적인 부분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계속 탐구하는 거죠. 책임감도 있고요.

리코더 제작을 시작하고 나서도 꽤 시간이 흘렀어요. 이후 또 다른 도전이 있었다면요? 코로나19 유행 이후 연주회를 못하니까 리코더를 찾는 사람도 줄고, 또 배우러 오는 이들도 줄어들다보니 시간이 많아지더라고요. 그 때 플룻의 전신인 ‘트라베소’ 제작을 시작했어요. 사실 8년 전쯤 프랑스에서 배웠었는데 시작하진 못했었죠. 국내에서 트라베소 제작은 제가 처음이더라고요. 리코더보다도 수요가 적은 악기지만,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가치에 중점을 두고 있어요. 코로나19로 굉장히 힘든 시기였지만, 트라베소 제작으로 또 다른 터닝포인트를 만난 느낌이에요. 과거에는 기술적으로 자신감은 넘쳤지만 완성되었다는 느낌은 아니었거든요. 물론 지금도 완성될 만큼 성숙해졌다는 건 아니지만 다양한 삶을 누려왔다는 면에선 행복감을 느끼고 있죠.

그래도 직접 만든 악기가 연주자들의 손에 갔을 때, 가장 보람을 느끼실 것 같은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을까요? 덴마크에 ‘볼레테 뢰드’라는 리코더 연주자가 있어요. 이 분이 한국에 왔을 때, 제가 만든 악기를 한꺼번에 6개나 구입을 했던 적이 있어요. 그후몇년 뒤, 해마다 참석하는 유럽의 악기 전시회에서 그 분을 만난거에요. 저를 보고 CD 한 장을 주더니 ‘이거 네 악기로 연주한거야’라고 말하더라고요. 그 때 엄청 감격했어요. 제가 악기 메이커로서 유명한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좋은 악기임을 알아봐준 것이 감동이었죠.

매번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에는 남다른 뭔가가 필요할 것도 같아요. 제가 음악을 좋아하고 사랑해서 괜찮아요. 음악을 통해 감동받고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기 때문에 오히려 당연하다고 여겨져요. 생각해보면 늘 저는 호기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설렘과 막연한 기대감, 근거 없는 희망 이런 게 내재된 사람이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앞으로의 계획이 또 있으신가요? 생각하면 가슴 설레는 일 같은 거요. 어느새 저도 이제 환갑이 훨씬 넘었고 젊었을 때처럼 동분서주하진 못할 것 같아요. 단, 고령화 시대를 맞아 어르신들의 문화적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으로 리코더를 추천하고 싶어요. 리코더라는 악기는 조금만 배워도 금방 앙상블 연주가 가능하거든요. 또 리코더는 특정한 장소가 필요없고 가격도 저렴하고요. 리코더야 말로 고령화 시대에 맞는 악기가 아닐까 해요. 앞으로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리코더 앙상블 연주를 체험하는 기회를 만들어드리고 싶어요. 음악을 통해 사회에서 조화롭고 건강한 삶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고 싶습니다. 문화의 즐거움을 아는 시민들이 점점 늘어나게 되면 분명히 삶과 도시는 풍요로워질 거예요.

철학, 즉 지혜의 추구는 경이로움으로부터 출발한다. 이해의 범위를 벗어나 있는 것과 맞닥뜨렸을 때 느끼는 경이감, 그것은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과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하는 욕구를 동시에 유발한다. –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해제), 2006. 전헌상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이 자유로운 사람’ 아리스토텔레스의 문장이 잘 어울리는 사람. 가깝게 마주앉은 한 사람의 삶이, 사소하게 여겼던 저마다의 욕구에 불을 당긴다. 조진희 마이스터의 삶 역시 그러하다. 삶의 순간순간 우리를 놀라게 하는 이웃의 자세에 잠시 주목한다는 것, 설렘은 늘 일상에 있다.

15쪽

포토그래퍼 에디터 권용식

동시대를 기록하고

추억하는 작가

김수영 1995년생. 동국대 서양화를 전공했고, 동 대학원 서양화 전공으로 석사과정 중이다. 개인전으로는 2021, ‘오늘밤 이곳은 불이 꺼지지 않는다’, ‘The first Village’, 2019, ‘아무튼 맑음’이 있다. 올해 12월, 2인전 ‘빤따지아’을 준비 중이다.

올해 초 개나리미술관에서 작가의 작품을 본 적이 있다. 그림 속 사람들과 동물들이 롤지에서 풀려나와 살아있는 듯했다. 밤이 되고 전시장 불이 꺼지면, 마치 마법처럼 그림 밖으로 튀어나와 춤이라도 출 것 같았다. 수집광인 작가는 일상에서 단종된 프링글스 치즈버거 껍데기, 쓰지 않는 색채의 잉크병, 일본 비행기 티켓, 엘사 피규어 등을 수집한다. 작업을 위해서는 SNS에서 등장하는 패턴화된 일상을 수집한다. 그의 작업은 동시대를 기록하는 동시에 추억하는 셈이다.

16쪽

“SNS를 보다 보면, 우리의 일상이 비슷하고 반복된 패턴으로 범벅이 되고 있단 생각을 해요. 패턴들은 온라인 안에서만 머물지 않고 현실의 공간과 우리 일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고요. 초기에는 특별한 공간과 다양한 연출이 등장했던 것 같은데, 언젠가부터 어디서 본 것 같은 공간과 연출들이 도장 찍듯 계속해서 양산되는 것 같더라고요.”

17쪽

작가 김수영을 한 줄로 소개해주세요. SNS 속 패턴화된 일상을 드로잉하는 작가 김수영입니다.

어떤 패턴들이 드로잉 되는지 궁금한데요. 작가님 일상도 패턴으로 소개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대학원에 다니고 있어서 누구보다 패턴화된 일상을 살고 있다고 자부해요. 보통 평일에는 아침에 일어나서 천천히 정신을 차려요. 아침밥을 먹으며 점심 도시락을 싸고요. 10시 반쯤 실기실에 출근해서 작업하다가 6시쯤 퇴근합니다. 작업시간이 긴 편은 아니에요. 스케치 없이 순간순간 오롯이 작업에 집중하다 보니 몸이 금방 피곤해져서요. 저녁밥을 먹고는 주로 공모전이나 전시계획서 서류 작업을 하고요.

드로잉과 SNS는 왠지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저는 스케치 없이 드로잉 해요. 수집한 이미지들을 즉흥적으로 조합하고 구성하기 때문이에요. 에스키스*를 하고, 유화나 아크릴로 옮기는 작업은 저와 잘 맞지 않더라고요. 다소 가벼워 보일 수 있는 드로잉이라는 작업방식이 오늘날 SNS 모습과 비슷한 지점이 있다고 생각해서 이런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드로잉을 할 때 주로 수집하는 주제나 소재가 있나요? 생일파티, 호캉스, 축제, 여행 같은 화려한 일상과 인위적으로 연출되고 만들어진 장면들을 작업 소재로 활용해요. 유행처럼 소비되는 이미지들, 밈, 촬영 구도들을 사용하죠. 예를 들면, 제주 이호테우 해변에 말 모양 등대가 있는데 이곳에서 꼭 찍는 사진 포즈 같은 거요. SNS를 보다 보면, 우리의 일상이 비슷하고 반복된 패턴으로 범벅이 되고 있단 생각을 해요. 패턴들은 온라인 안에서만 머물지 않고 현실의 공간과 우리 일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고요. 예전에는 공간마다 특색있고 다양한 연출이 존재했던 것 같은데, 언젠가부터 어디서 본 듯한 공간들이 도장 찍듯 계속해서 양산되는 것 같더라고요. 식당, 카페, 축제 모두에서요. 어디선가 봤던 기획, 연출, 오브제들이 넘쳐나는 것 같아요.

HINA, 롤지에 잉크, 45명의 쪽지, 가변크기, 2019

* 에스키스(esquisse) 작품구상을 정리하기 위해 행하는 각종 시작, 초고, 밑그림을 의미한다. 작품을 제작하기 위한 준비 단계로, 작은 종이나 천에 간단히 구도나 색채 및 명암, 필요한 세부를 그려보고 그 효과를 가늠하는 것.

어쩌면 현대사회의 부정적인 단면을 포착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이런 현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건 아니에요. 누군가는 이런 모습이 우리 세대가 온라인에서 관계를 형성하고 대화하기 위한 시도라고 하더라고요. 문화현상이 나아가는 방향은 가치를 평가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중립적이기 힘들잖아요. 지금은 좋아 보여도 미래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고, 그 반대가 될 수 있어서 당장 구분짓기보다는 기록 중이에요.

주로 롤지에 펜으로 작업하시는데요. 작업 도구에 대해서도 소개해주세요. 작업 재료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평소 드로잉을 할 때, 시그노 볼펜 0.28을 주로 사용했는데 작업에서도 계속 사용하고 싶단 생각이 들더군요. 볼펜 자체도 SNS의 가벼움과 잘 맞는 것 같고요. 롤지의 경우, SNS를 할 때 핸드폰 화면을 엄지로 밑으로 내리면서 보게 되는데 쭉 내려가는 화면이 마치 하나로 이어진 파노라마 형식처럼 느껴져서, 롤지처럼 얇고 길게 풀어지는 매체 위에 드로잉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선택했어요. 그리고 롤지는 끝까지 펴지 않고 전시하는 편이에요. 관객들이 롤지 안에 어떤 그림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갖게 하는 장치로 써요.

수집광이라고 들었어요. 어떤 것들을 수집하나요? 최근까지 식물에 빠져 있다가 요즘은 텍스트를 모으고 있어요. 일본어 중에 ‘유라유라(ゆらゆら)’라는 단어를 좋아해요.

‘흔들흔들’이라는 한국어 뜻과 닮아 있는 글씨의 생김새도 좋고, 발음이 부드러워서 좋아요. 이렇게 애착이 가는 단어와 문장들을 수집하고 있어요. 이외에도 여행이나 특별한 사람들과 함께했던 순간들을 꾸준히 모으고 있어요. 제가 수집한 것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모습에 설레요. 우연히 수집품들을 만날 때, 추억 속으로 여행하는 기분이거든요. 그 당시 기억과 냄새들이 생생하게 떠오르고, 그날을 추억할 수 있어서 좋아요.

18쪽

작업실 벽에 지푸라기가 붙어 있는데, 어떤 추억이 담긴 물건인가요? 일본 아키타 현에서 한 달 정도 레지던시 생활을 한 적이 있어요. 그 당시 지역 축제가 열렸는데, 나마하게*라는 도깨비 의상을 한 사람들이 길에서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그때의 순간을 기억하려고 의상에서 떨어진 지푸라기를 가져왔어요. 저걸 볼 때면, 그때의 냄새와 추억들이 떠올라요.

아키타 레지던시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주세요. 아키타 현은 강원도와 많이 닮아 있어요. 제가 간 곳은 온천이 있는 시골 마을이었는데요. 산이 울창하고, 반딧불이가 많았어요. 오전 오후 내내 작업하고 하루 마무리로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보거나, 비를 맞으며 노천온천을 했던 기억이 나요. 레지던시에서는 평소 궁금했던 내용으로 작업을 진행했어요. SNS를 보며 행복하지 않아도 행복한 척하는 ‘척’들이 무척 많다고 느꼈어요. ‘혼네와 다테마에*’라는 말이 있듯이, 일본 만큼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많은 나라가 또 있을까 싶더군요. 그래서 ‘당신의 척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라는 질문을 온천마을에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물었어요. 그리고 답장으로 받은 쪽지를 이미지화하는 HINA라는 첫 롤지 작업을 했어요. ‘좋은 아이인 척’을 했다는 뻔한 이야기부터 ‘사냥꾼이 되었던 것처럼 행동했었다’는 쪽지까지 다양한 답변이 많았어요. 번역이 잘못된 건지, 엉뚱한 답장도 종종 있었고요. 작품 제목은 한 아이의 쪽지에서 가져왔어요. 본인의 얼굴을 그려놓고 아래에 히나(ひな)라고 적어놓았는데, 그 쪽지를 보자마자 이 작업의

이름이 되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의 얼굴 그림이 그렇게 말하는 것도 같았고요. 날씨연작도 그때 진행했던 작업이에요.

‹날씨연작›은 어떤 작업이었나요? 아키타 현에 있을 때 날씨를 온라인 일기예보로만 확인해야 했어요. 일기예보도 잘 맞지 않았고요. 비가 종일 내린다고 해서 작업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너무 화창해서 산책하고, 날씨가 좋다고 해서 소풍 준비를 했더니 비가 쏟아지더군요. 처음에는 정확히 날씨를 적어놓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글로는 기록하기 싫어서 그림으로 기록했던 게 작업으로 이어졌어요. 날씨 그림들을 연작으로 모아놓으니 또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게 재밌어서 제가 애정을 갖는 작업 중 하나예요.

* 나마하게(なまはげ)

일본 아키타 현을 대표하는 도깨비로 오가(男鹿) 지역의 민속문화이다. 매년 12월

31일 밤에 마을 곳곳에 나타나 나태하거나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을 혼내주고 마을의 불행을 막아준다고 여겨진다.

* 혼네와 다테마에(本音と建前)

진심에서 나오는 말과 상대를 불쾌하지 않게 보이는 겉모습을 뜻하는 일본어로 흔히 본심과 배려, 속마음과 겉마음으로 불린다.

비교적 최근에 전시한 ‹가상의 식물원›은 어떤 내용일까요? 코로나가 한창일 때 서울에 있는 전시공간 옥상팩토리에서 진행된 전시예요. 학교 동기이자 해방촌 작업실 친구들과 함께했어요. 코로나로 야외 활동이 제한되면서 사람들이 외부의 것들을 실내로 들여오기 시작했다고 생각했어요. 저희는 그 대상을 식물과의 접촉으로 상정시켰죠. 작가 세 명이 식물에 대한 생각과 그 의미를 각각 작업에 담아 오늘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담아보고자 기획한 전시예요. 저는 플랜테리어라는 명분으로 소비되는 식물들을 보며, 원형과 상품의 차이에서 느낀 점들을 작업으로 풀었어요. 집에서 키우던 드라세나가 자생지에서는 건물 한 채보다 더 크게 자란 걸 사진을 통해 보았을 때, 무척 낯선 기분이 들었어요. 또 플렌테리어에서 주로 쓰이는 식물들이 상품화되어 추려지고 패턴화되고, 획일화된다 생각했어요.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원통형 드로잉 작업을 했죠. 자생지에서 식물들이 최대로 자란 모습을 실제 크기로 그려 넣었어요. 어떤 식물은 온전히 담기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식물들은 형태가 잘리고 단면만 담겨 원형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었어요. 제가 느꼈던 감정을 관객들도 작업을 통해 느꼈길 바라요.

19쪽

다양한 관심사에서 시작해 작업들이 오늘날을 반영하는 것 같아요.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작가님의 작업이 시대를 기록한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가요? 21세기를 잘 담아낸 작가요. 일본에는 우키요에라는 목판화가 있어요. 우키요에는 에도시대 중후반의 일상 속 모습인 가부키 배우, 여인들, 명소 풍경 등을 담고 있는 작품이에요. 사람들은 지금도 당시 모습을 상상하고 느끼기 위해 우키요에를 찾아봐요. 재가공하기도 하고요. 그런 모습을 보면, 저도 지금의 모습을 잘 담아낸 작가로 기억되고 계속해서 제 그림을 사람들이 찾았으면 좋겠어요. 누군가에게 어떤 영감을 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네요.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춘천 예술촌에 입주해있는 전영진 작가와 함께 전시 ‹빤따지아›*를 준비하고 있어요. 저는 오늘날 흔히 보이는 이미지들을 분해하고 재조합하여 새로운 판타지를 보여줄 예정이고요. 전영진 작가는 어릴 적 상상을 바탕으로 주변의 것들을 ‘또 다른 행성’이라는 프레임으로 보고 만든 이미지들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소소한 상상의 즐거움을 잊은 우리에게 쉬어갈 틈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준비했어요. 저는 종이 롤 대신 캔버스를 풀어가는 세로 형식의 작업을, 영진 작가는 설치와 다양한 캔버스 작업을 선보일 예정이에요.

* 빤따지아 김수영, 전영진 2인전으로 오늘날의 판타지 동화를 콘셉트로 열리는 빤따지아는 올해 12월 21일부터 31일까지 KT&G 상상마당 춘천에서 열릴 예정이다.

작가와 인터뷰하던 순간을 기억한다. 쌀쌀한 날씨에도 극성이었던 모기들과 공동작업실인 탓에 났던 동료 작가의 유화 물감 냄새, 작가가 준 초록색 포도, 걸려 있던 지푸라기와 벽 한편을 채우고 있던 캔버스의 작업. 그리고 좋아하는 것들을 이야기하며 설레하던 작가의 소년 같은 모습까지. 그의 작업을 계속 보고 싶다.

20쪽

김효주

공혜진 일상기록공작가. 건국대학교 공예과를 전공했고, 동 대학원 도자공예전공으로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수집하고, 사진 찍고, 그림 그리고, 글을 쓴다. 『광릉수목원 사진일기』, 『감성에 물주기』, 『오늘, 작은 발견』 등을 집필하였다.

길게 눈길을 주며

세상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

공혜진 작가의 작품에는 귀여운 그림체로 그린 잎그림과 기발한 상상이 들어간 가짜 식물도감, 편안한 표정의 인형이 있다. 공혜진 작가의 작품세계에선 작고, 병들고, 버려지고, 틈에 피어난 것이 주인공이다. 그는 뒤에 숨어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앞세우기보다 응시한다. 말을 걸어주기를, 자신을 알아봐 주기를 기다리며 누구보다 오래, 자주 바라본다.

21쪽

“삐뚤빼뚤이 뭐 어때서요. 그건 재봉틀이 할 수 없는 거예요. 저는 바느질로 만든 것을 집 곳곳에 놓아요. 내가 보낸 시간을 주변에 놓으면 그것들이 다시 나에게 힘을 줘요. 어른들이 집에 상장이나 사진을 붙여놓잖아요. 다 이런 마음인 것 같아요. ”

22쪽

오래, 자세히 들여다보는 사람 ‘일상기록공작가’라는 별명을 쓰고 계시죠. 그림 그리고 글 쓰는 사람이지만, 매일 기록하고 손으로 만들어요. 공작가는 이름에 공이 들어가기도 하지만, 공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도 있어요.

매일 기록하는 게 가장 어렵잖아요. 비결이 뭘까요? 매일 하면 달라지니까요. 쉽게 멈출 수가 없어요.

책 『광릉수목원 사진일기』*를 비롯한 작가님의 책은 매일 성실하게 쌓은 기록이 많아요. 매일 쌓는 걸 좋아해요. 숲에 가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이야기하고 싶어서 『광릉수목원 사진일기』를 냈어요. 그때 자세히 바라보면서 사진을 찍고, 그림 그리고, 글을 쓰는 습관이 깊어지게 됐고요.

식물 세밀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궁금해요. 도예를 공부했는데 학교에서 공고문을 우연히 봤어요. 수목원에서 세밀화 그릴 사람을 구한다는 거였죠. 식물을 좋아했기에 식물 그림을 그려서 준비한 후에 광릉 수목원에서 일하게 됐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광릉 수목원에서 일했을 때요? 식물 세밀화를 그리는 사람을 채용한 적이 처음이라 환경이 잘 갖춰지지 않았을 때였어요. 그 점이 어렵기도 했지만, 수목원의 자연이 좋았어요. 출근 시간보다 일찍 가서 사람 없는 수목원을 걸을 수 있었고, 그림을 그린다는 명목으로 자연 속에 오랫동안 머무를 수도 있었고요.

식물 세밀화를 그리려면 식물에 관해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하겠어요. 아는 것도 당연히 중요한데 오래 보는 게 더 좋아요. 꽃 하나를 그리려면 오래 보고 계속 보는 게 좋아요. 처음 싹 났을 때 보고, 꽃 피었을 때 또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고요. 식물과 시간을 오래 보내면 늘 새로운 것을 얻게 돼요. 저는 많이 볼수록 점점 더 잘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 공혜진, 『광릉수목원 사진일기』, 안그라픽스, 2007, 절판

오래 보고, 자세히 들여다보는 게 작업의 중요한 과정이네요. 식물을 계속 보면 좋고 나쁜 게 없어져요. 벌레 먹거나 병들어도 ‘이게 어때서?’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게 돼요. 예쁘고 안 예쁘고의 경계가 사라져요. 자연이 좋은 이유는 모든 모습을 다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에요. 그럴 때 자연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잘 가꿔진 꽃과 벌레 먹은 잎이 있다면 저는 아마 잎을 볼 거예요. 가꾼 것보다는 자연스러운 것이 더 좋아요. 저를 대입하는 것 같기도 해요. 뭔가 사연이 있어서 이렇게 됐구나, 하면서요. 잘 가꿔진 꽃은 보는 사람이 많기도 하고요.

작품에 식물이 자주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겠네요. 식물과 나무에 가장 끌렸던 건 늘 같은 자리에 있어서예요. 찾아가기만 하면 만날 수 있잖아요. 그곳에 늘 있어 주고요. 어쩌면 외로워서 사람보다 식물을 보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23쪽

발견의 순간 책 『오늘, 작은 발견』*은 길에서 주운 물건들을 기록한 책이에요. 잘 만든 멋진 물건이 아닌 길바닥에서 주운 것들이요. 저는 자연만 계속 바라보면 좋아지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길거리에 떨어진 쓰레기도 계속 보면 이야기가 생기고 좋아져요. 뭐든지 내가 시간을 주고 바라보면 다 이야기가 생기더라고요. 자연만 그런 게 아니라 생명이 없는 것들도요.

그건 왜 그럴까요? 그 너머를 상상하기 때문일까요? 누가 이걸 흘렸을까, 왜 떨어져 있을까, 어떤 사연으로 여기 왔을까 하고 그 너머를 생각하는 거죠. 그런 것 같아요. 길에 떨어진 일회용 라이터 버튼을 처음 주운 적이 있어요. 처음엔 이게 뭔지 몰랐던 거예요. 부품이라서요. 하나 줍고 나니까 그 이후에 계속 보이더라고요. 무엇이든 잘 보다 보면 이야기가 자꾸 생겨나요.

수목원에 다니기 전 식물과 가까워진 계기가 있을까요? 식물은 꾸준히 관심이 있었어요. 한 20년 전, 산 위에 핀 꽃을 보기 위해 사람들과 산을 올랐던 기억이 있어요. 모임에 잘 참여하는 성격이 아닌데 말이에요. 아. 냉이꽃을 처음 봤을 때가 생각나네요.

냉이꽃이요? 대학에 다닐 때 뭔가를 줍기 위해 몸을 수그렸는데 그곳에 꽃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무엇인지 몰랐어요. 위에는 꽃이 있고, 밑에는 열매가 있고 열매를 햇빛에 비추니까 투명하게 씨앗까지 다 보였어요. 그게 너무 놀라워서 도서관에 가서 도감을 찾아봤어요. 그때 처음 식물 도감을 봤어요.

제비꽃도 작품에 많이 등장해요. 수목원에 다녔을 때 수목원 뒤편에 제비꽃이 있었어요. 뒷마당 자갈밭에 혼자 있었거든요. 겨울에 봤는데 그다음 겨울까지 봤어요. 한번 본 제비꽃으로 모든 제비꽃은 저와 친구가 돼요. 어딜 가도 제비꽃이 보여요. 내년에는 제비꽃을 주제로 한 그림책이 나올 예정이에요.

* 공혜진 저, 『오늘, 작은 발견』, 글담출판, 2016

최근 작업인 잎그림도 궁금해요. 잎을 먼저 수집하고 그림을 그린 걸까요? 그러기보다 떨어진 잎에서 그림이 먼저 보일 때가 많아요. 주로 벌레 먹은 잎에 무슨 얼굴이 있다고 딱 보이는 거예요. 그런 잎을 가지고 와서 잘 말린 다음 보였던 모양을 그려요. 숨은 그림 찾기처럼요.

24쪽

만들어가는 설렘 요즘은 어떤 것들을 기록하고 있나요? 가짜 식물도감 만들기요. ‹예술이 없는 도시에서 단 하루만이라도 살아봐›* 전시에 보여드렸던 것인데요. 조합식물을 상상해서 만들고 이야기를 지은 거예요. 요즘 이것에 빠져 있어요.

작가님의 언어로 쓴 실제 도감인 줄 알았는데, 상상해서 만든 가짜 식물도감이라는 걸 알고 놀랐어요. 어떻게 가짜 식물도감을 만들 생각을 했어요? 길에서 식물들을 계속 보다 보면 안타깝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물이나 해가 있는 곳으로 오면 좋겠고, 사람들에게 밟히지 않는 곳으로 움직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식물에게 안타깝거나 혹은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더 확대해서 이야기로 만들어보게 됐어요. 매일 눈길을 주면 우리집 쪽으로 한 걸음씩 다가오는 식물이 있다, 이런 식이죠.

직접 만든 인형들은 편안해 보여요. 기도하는 것 같기도 하고, 명상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두고두고 봐야 하는데 편안한 느낌으로 보고 싶어서 그래요. 무엇보다 편안한 상태로 작업해야 그 표정이 나와요.

그럼 바느질할 때는 마음이 편한 거네요. 사실 제 책들을 보면 알겠지만, 책을 꾸준히 냈었어요. 그런데 한 3, 4년 전부터 지금까지 책을 못 내고 있어요. 저도 이런 시기가 처음이에요. 하고 있기는 한데 아직 결과물이 나오지는 않은 시기. 공책에 ‘천천히 천천히’를 가득 썼던 즈음에 바느질을 시작해 인형을 만들었어요. 바느질이 좋은 이유는 과정을 다 보여줘요. 얼마만큼 했는지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어요. 결과물이 꼭 나오고, 두고두고 쓸 수도 있어요. 혼자 힘으로 완성할 수 있고요.

저는 바느질을 생각하면 삐뚤빼뚤할까 봐 걱정부터 들어요. 삐뚤빼뚤이 뭐 어때서요. 그건 재봉틀이 할 수 없는 거예요. 저는 바느질로 만든 것을 집 곳곳에 놓아요. 내가 보낸 시간을 주변에 놓으면 그것들이 다시 나에게 힘을 줘요. 어른들이 집에 상장이나 사진을 붙여놓잖아요. 다 같은 마음인 것 같아요.

* 춘천문화재단 창작과정 지원사업 ‘생각의 탄생’ 참여 예술가 16인의 기획전시. 2022년 10월 21일부터 11월 6일까지 근화동 720번지에서 진행되었다. 공혜진 작가는 ‹틈새식물수집첩, 2022›으로 참여했다.

작가님을 설레게 하는 것이 궁금해요. 집에 조그마한 마당이 있는데 마당 틈에서 자라는 예쁜 식물들이 있어요. 저는 틈꽃이라고 부르는데요, 틈꽃을 계속 보고 기록하고 있어요. 요즘은 오후 두 세시만 되면 햇빛이 정말 예뻐서 2시에서 4시를 마당 틈꽃 보는 시간으로 정했어요. 그리고 바다에 갈 때마다 조개를 수집해요. 이른 아침, 바다에 아무도 없을 때 파도를 기다려요. 파도가 한 번 왔다 갈 때마다 새로운 조개들이 오거든요. 햇빛을 받아서 물에 젖은 채 반짝거리는 조개가 참 예뻐요. 그럴 때는 지구가 하나씩 선물을 주는 것 같아요. 바다와 연결되어있는 느낌도 들고요.

설렘을 일상에 초대하는 방법엔 무엇이 있을까요? 길에서 나는 식물 하나를 정해서 매일 보는 거예요. 그것만 해도 일상이 많이 바뀌어요. 보면 알게 될 거예요. 근데 계속 봐야 해요. 매일 보면 알 수 있어요.

곳곳에 나무와 꽃, 다양한 식물이 있는 숲속 카페에서 대화를 나눴다. 낙엽으로 바스락 소리가 나는 늦가을 숲길을 함께 산책했다. 그는 내가 모르는 여러 식물과 씨앗을 발견하고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제비꽃과 풍선덩굴, 작은 새 깃털, 고사리잎을 보며 감탄하는 그의 옆에서 잠시 그 시선을 따라갔다. 덩달아 나도 값진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해가 지기 직전 햇빛이 땅과 나무를 가로질러 비출 때도 나란히 멈춰 서서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알게 되었다. 이런 거구나. 잠시 나의 시간을 내어주는 것. 바라보고 응시하는 것. 사랑의 다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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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삶의 기술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하는 것을 꼽으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수단’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부와 지위 같은 것들. 하지만 행복한 삶을 구성하는 건 ‘인생의 목적’을 대하는 평정한 자세가 아닐까. 외부가 아닌, 나를 표현하는 힘에 의해 의지가 작용하는 사람들. 그렇기에 내가 추구하는 삶에 기꺼이 봉사하는 사람들. 후평동에 있는 복합문화공간에서 공간운영자와 함께 본격적인 자세를 취한 덕후, 창조적인 습관을 직업으로 끌어올린 기획자를 만났다. 불확실한 세상 속 내면의 확실함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삶의 기술’. 이제 막 무언갈 시작한, 시작하려 하는 이들로부터 일렁이는 순간을 빌려본다.

이제 막 시작한 사람들 최옥선 연두씨플랜트 안정적인 미용인의 삶에서 식물덕후로, 나아가 사람 만나기 좋아하는 커뮤니티형 가드너가 되기 위해 삶을 또다시 ‘분갈이’ 하고 있다.

최보윤 복합문화공간 ‹737Point› 기획자 낡은 집을 손수 개조해 만든 복합문화공간. 이곳에서 막 시작한 예술공부와 함께 내일이 기대되는 삶을 살고 있다. 이경하 기획자 퇴사 후 진짜 하고 싶었던 일들을 ‘사부작사부작’ 시작하고 있다. 독창적인 영상 콘텐츠를 통해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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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옥 먼저 각자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옥선 저는 18년간 미용 일을 쭉 해오다가 춘천으로 이사 오기 전부터 가드닝과 플랜테리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보윤 춘천 오기 전까지는 해외에서 마케팅 일을 해왔고요. 올가을 737 point를 오픈하면서 공간 마케팅을 해보려고 해요. 좋은 아티스트들에게 전시 기회도 제공하고 싶고요. 1층은 전시공간으로 2층은 스테이로 운영하고 있어요. 경하 저는 작년 12월까지 중간지원조직에서 근무를 했어요. 퇴사를 결정하고 개인적으로 하고 싶던 기획을 본격적으로 시도해보려고 해요. 준비하던 콘텐츠를 실행하려고 하는데 마침 춘천문화재단에서 ‘도시편집자’를 한다고 해서 참여하게 되었어요.

인옥 다들 새로운 시작을 하셨네요. 이전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궁금해요.

인옥 보윤 님이 운영하는 이 공간은 어떤 개념인가요?

옥선 저는 손재주가 타고났어요. 미용 일을 하면서도 너무 당연하듯 남들보다 쉽게 무언갈 이루게 되더라고요. 그 부분이 스스로 찝찝하고 괴로웠어요. 그럼에도 방송과 웨딩, 개인 숍 운영까지 미용 쪽에서 할 수 있는 건 거의 다 했죠. 그 정도로 제 자신을 채찍질하고 괴롭히던 사람이었어요. 보윤 회사 다닐 때도 무언갈 활용하고 창조하는 걸 잘했던 것 같아요. 아이템을 믹스 매치하고 컬래버레이션 하는 것에 대한 아이디어가 많았죠. 그러던 제가 이곳에 와서 내내 작업복만 입고 지냈네요. 공간을 직접 인테리어를 했거든요. 경하 어릴 때 유튜브에서 인터뷰 콘텐츠가 한창 나오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걸 보며 인터뷰 콘텐츠를 만드는 것에 매료된 적이 있어요. 그래서 대학생 시절 문화 거점을 돌아다니며 인터뷰 콘텐츠를 만들어 본 적이 있어요. 일을 하면서 좀 지치기도 했고 독립을 결심한 후 장소나 사람을 조명하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어요.

인옥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계획하고 있나요?

경하 지역 내에서 기획일을 하다 보면 반짝이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요. 그 사람들이 제 파트너라고 생각하고요. 그들을 위해 인터뷰라는 하나의 수단을 통해 ‘로컬 중계자’의 역할을 하고 싶어요.

인옥 타인을 홍보, 마케팅 해주는 거네요. 운영하시는 유튜브 채널을 보니 지역에 있는 공간을 배경으로한 플레이리스트 콘텐츠를 올리셨더라고요.

경하 맞아요. 그런 형태를 찾아가려고 인터뷰가 아닌 다른 형식을 계속 시도하려고 해요. 그래서 시도한 게 공간과 플레이리스트였죠. 요즘은 콘텐츠가 너무 쏟아져 나와요. 설명적인 경우가 많다보니 오히려 저는 직접적으로 의미를 강요하는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면서 공간을 받아들이고, 공간에 대해서 궁금할 때 정보를 선택해서 볼 수 있는 방향으로 고민을 했어요.

인옥 경하 님의 ‘시작’에 불을 지핀 계기는 뭔가요?

경하 오래전부터 개인 SNS에서 사진을 올릴 때 항상 어울리거나 제가 그 당시 듣던 음악을 함께 적어서 올렸었어요. 아무래도 일곱살 터울의 누나가 있어서 초등학생때부터 음악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 노래방에 가면 발라드를 불렀으니까요. 중학교 때는 대중음악보다는 록이나 힙합을 찾아 듣기도 했고요.

보윤 1층은 전시와 레지던시 공간으로 쓰고요. 2층은 작업하는 아티스트, 또는 방문객들을 위한 스테이로 활용하고 있어요. 일반 스테이와는 개념이 조금 다르죠. ‘숙박업소에서 갤러리가 있네?’가 아닌, ‘갤러리에서 하룻밤을 묵는구나?’의 느낌이에요. 그래서 ‘아트스테이’라고 부르기도 해요.

인옥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은 큰 용기가 필요하잖아요.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요?

옥선 사람은 초록을 본다는 것만으로 힐링이 된다고 하잖아요. 저 역시 일하다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식물을 하나씩 사 왔어요. 전에 살던 곳 근처에 양주화훼단지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식물이 계속 죽어버리니, 이렇게 할 바에는 차라리 가드닝 공부를 해보자 다짐했죠. 또 제가 인테리어에도 관심이 많아요. 주택과 식물이 함께 있을 때의 인테리어 효과를 기대했는데, 정형화된 아파트에서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없었죠.

연두씨가 되는 순간, 최옥선님의 집 한 켠에 마련된 가드닝 작업실

그래서 춘천으로 오면서 주택을 선택했어요. 보윤 저 같은 경우는 주변 아티스트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제일 컸어요. 첫 전시 콘셉트가 ‘90년대생’이거든요. MZ세대와 80년대생 과장, 부장님들 사이에 끼어있는 세대. 예술을 전공한 친구들이 생계가 힘들어 다른 일을 하는 걸 보면서 다짐했어요. ‘굳이 국내에서 경쟁을 할 필요가 있을까?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보고 싶다.’ 그래서 이 공간에서 해외와 국내 옥선 내가 잘하는 일이 곧 좋아하는 일이라고 아티스트들의 공동창작과 연계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었죠.

지금도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듣는 편이에요. 예전부터 쭉 음악을 좋아하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음악과 연결해서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기획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인옥 새로운 무언갈 시작하면서 예전에 비해 삶을 대하는 마음가짐도 좀 달라졌을 것 같아요.

생각했어요.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아도 그냥 ‘내가 잘하니까, 좋아하니까’ 하며 참고 살아왔죠. 가드닝을 시작하고 10년이 됐잖아요. 내가 좋아하는 일은 그냥 ‘진짜 좋아하는’ 일이더라고요. 스트레스 받는 것도 좋아요. (웃음) 이제는 제가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을 구분 지을 수 있게 됐어요. 얼마 전 ‘덕후살롱’ 전시에 참여하면서 더 확실하게 느끼게 됐죠.

인옥 전문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보면 옥선 님은 삶을 되게 여유있게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게 느껴져요. 이 또한 자존감이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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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보윤 님께선 공간을 옥선 당장의 결과보다는 몇 년 후의 결과를 생각했어요. 운영하면서 달라진 마음가짐이 있을까요? 당장 결과를 내려고 하면 욕심이 생기고, 자꾸 일을 벌이니까요. 그래서 10년 후의 내 모습을 생각했던 보윤 처음엔 제가 하고 싶은 걸 한다고 시작했지만, 수익성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되더군요. 앞으로 나를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처음에 이걸 시작했을 땐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못했어요. 제대로 준비되기 전까지는 얘기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이렇게 시작해서 문 닫는 친구들도 많고 그러다 보니 잘 돼야한다는 부담이 됐죠. 그래서 오히려 마음을 가볍게 먹고, 다음 버전을 위해서라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보려 해요. 저에겐 이곳이 끝이 아니거든요. 여긴 인옥 내가 선택한 삶이 과연 나에게 이로운 걸까? 1호점이에요. (웃음) 의심이 생길 때가 있어요. 이럴 땐 어떻게 경하 저는 퇴사한 지 이제 1년 정도 됐는데, 프리랜서로서 견뎌내시나요. 일을 좀 더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웃음) 아무래도 고정 수입이 있던 직장인이었잖아요. 그래서 사실 경제적인 부분 때문에 콘텐츠를 많이 못 만들진 않을까 걱정도 했어요. 다행히 ‘도시편집자’ 사업에 참여하면서 하고 싶던 걸 풀어낼 수 있는 기회가 된 거 같아요. 인옥 뭔가 그 길을 헤매긴 헤매는데 손에 나침판이 인옥 경제적인 부분은 공감이 되네요. 저 역시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커뮤니티 공간을 운영하고 있거든요. 수익이 되는 부분에 집중하다 보면, 좋아하는 가치적인 활동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옥선 저는 후기요. 저의 수업을 들은 분들이 커뮤니티 카페나 SNS를 통해 수업 후기를 올려주실 때 옥선 저 같은 경우는 진짜 심하게 한 가지에 몰두하면 딱 그것만 해요. 그래서 아예 날짜를 정해놓죠. 그 날이 되면 다른 걸 다 포기해요. 그렇게 ‘수익적인 일’과 ‘하고 싶은 일’을 구분해 온 거죠. 그 경험이 차곡차곡 쌓이니까 병행이 되는 것 같아요. 처음엔 저도 힘들었어요. 그러다 약간의 노하우가 생긴 거죠. 또 다른 일들을 줄이고 내가 목표로 하는 하나만 하는 것에만 집중했어요.

인옥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면 동시다발적으로 빨리 뭔가 벌이고 싶은 욕구가 되게 큰데, 시간 관리에 대한 진짜 좋은 팁이네요.

것 같아요. 경하 일을 할때는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씩 해보고 있어요. 사진 모임도 운영하고 있는데 ‘봄과 여름’시즌과 ‘가을부터 겨울까지’시즌, 6개월 단위로 운영하고 했어요. 모이는 횟수도 한달에 한 번씩 만나서 한 시즌에 6번 만났어요. 조급함을 가지고 빠르게 실행해나가기보다는, 제 선에서 관리할 수 있도록 속도를 천천히 가져갈 수 있는 방식을 택했어요.

옥선 책을 읽어요. 식물과 관련된 책이 아닌 다른 책을요. 그러다 다시 식물 관련 책을 읽었을 때 책이 재미있으면 ‘아, 이게 내 일이구나’ 다시 마음을 잡죠.

올려져 있는 느낌이에요. 내가 나를 잘 안다는 느낌이요. 여전히 가슴이 뛴다면 하는 게 맞는 거겠죠? 가슴을 뛰게하는 요소들은 뭔가요?

가슴이 뛰어요. ‘내가 진짜 잘했구나, 잘한 일이구나’ 생각이 들죠. 그리고 춘천이 저를 발견해줬을 때, 도시와 연결되어 있다는 기분이 정말 좋고 즐거워요. 경하 저는 기획의 이면이나 찬찬히 봐야만 알 수 있는 디테일을 발견했을 때요. 인터뷰하면서 좋았던 것도 그런 이면과 디테일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공간이나 브랜드, 사람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하는 부분을 발견해서 조명해줄 수 있다는게 가슴뛰는 일인 것 같아요. 보윤 저에겐 스트레인저(stranger, 이방인)요. 이 공간을 기획할 때 일부러 진입이 쉽지 않고, 분위기를 무겁게 만든 부분이 있어요. 쉽게

인옥 그런데도 가끔은 힘들고 또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런 순간은 언제인가요?

옥선 저를 힘들게 했던 건 당연히 시선이죠. ‘돈 잘 벌고 있는데 굳이 왜 다른 걸 해?’ 그런 말들이 저를 힘들게 했죠. 잘 되는 가게를 접고 춘천에 왔는데, 이곳에 저는 아무런 연고가 없거든요.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용기를 준 것도 시선이에요. 저를 미용인이 아닌 가드너로 봐주는 사람들의 시선. 어떻게 보면

최보윤님의 감각과 열정이 돋보이는 아트 라운지 ‹737point›

평가되기를 원하지 않거든요. 또 공간이 다른 곳과 비교되는 걸 원하지 않았고요. 그래야 아티스트들의

춘천에 계신 분들은 저를 ‘가드너’로 바라봐 주신 거잖아요. 작품이나 분위기가 훼손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경하 퇴사 전과 후 일하는 형태가 달라졌지 사실 제가 일부러 어둡고 평범하지 않은 분위기를 조성했죠.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유니크함. 그 낯섦이 제 가슴을 뛰게 합니다.

하는 일은 똑같다고 생각하거든요. 소속이 없다보니까 지인 중에도 함부로 구는 경우가 있었어요. 저도 스케줄이 있어서 바빴던 날인데 자꾸 백수가 무슨 스케줄이 있냐고 비아냥거리더라구요. 사실 프리랜서로 제가 바로 증명해낼 순 없잖아요. 비숙련의 시간을 거쳐야 저를 쌓아서 보여줄텐데, 소속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쓸모없는 사람 취급을 당하니까 억울하더라구요.

인옥 맞아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 부분이죠, 전환되기까지.

경하 이미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숙련된 사람들이다 보니, 이런 비숙련의 시간에 대한 이해가 떨어져요. 설득시키는 게 피곤하고 힘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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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윤 레지던스를 운영하려면 아티스트의 눈높이에 맞춰야 하는데, 내 편견만으로 그들의 진짜를 보지 못할까 걱정이 될 때 고민이 많이 됐어요. 회사 다닐 때의 관성이 남아 있을까 봐요. 그래서 예술공부를 제대로 해보려고 대학원에 입학원서를 냈는데 얼마 전 합격통지서를 받았어요. 정말 기대가 됩니다.

인옥 축하드려요! 그렇다면 반대로 나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것, 뭐가 있을까요?

보윤 이 공간이요. 원래 출근이라는 개념이 없는데, 눈 뜨면 그냥 여기에 와요. 빨리 가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싶어지는 곳이죠. 옥선 저는 누군가 저에게 질문해줄 때, 그리고 질문에 답해줄 때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 같아요. 나의 쓸모를 인정받는 기분이죠. 경하 올해 모두의살롱 후평에서 덕후와 관련해서 일을 했어요. 제가 여러 분야에 덕후기질이 있거든요. 그러다보니 자신감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제가 좋아하는 것의 힘을 믿는 편이에요. 애정하는 그런 부분에서 자존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감 혹은 신뢰가 있는 것 같아요.

기획자로서의 첫 활보. 이경하님의 춘천플레이리스트 전시

여전히 많은 이들은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다. 완벽하지 않아서? 혹은 바보처럼 보일까봐? 실패할까봐? 물러서는 이유는 다양하다. 하지만 완벽주의는 결국 미화된 두려움이라 했다. 남이 정한 기준에 따라 완벽하고 성공한 삶을 재단해온 삶에서 벗어나, 이제는 그 기준을 스스로 개척해나가려는 이들. 개인의 취향과 기호를 바탕으로 결국 자신만의 작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만났다. 이웃으로서 이들의 일상을 엿보는 것이 무척 흥미진진하면서도 안심이 된다. 저마다 내면의 울림에 귀를 기울여 스스로 비판적인 자세를 취해보자. 조금씩 일렁이는 것이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또 한 번 설레보는 건 어떨까. 그 원인이 그 어떤 것이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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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범준 (문화도시 춘천 시민협의체 봄바람 운영위원장)

저는 2018년 대학원을 졸업하고, 춘천의 한 농촌에서 창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지금의 농촌은 다수가 외면하는 상황이지만, 저는 농촌이 변화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2019년 춘천시 4-H 연합회의 회장, 2020년 강원도 4-H 연합회*의 정책국장을 역임하면서 춘천과 강원도의 농업과 농촌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농촌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농업 외에 다양한 분야에서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지역은 쉽게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시민과 행정의 소통 구조는 아직 자리 잡지 못한 느낌이었고, 농업계에서 저는 그저 어리고 배움이 부족한 䢮새내기 농업인䢯일 뿐이었습니다.

* 청년 농업인 단체

농촌에 있으면서 가장 많이 고민했던 것은 䢬왜 청년들은 농촌을 찾지 않는가?䢭였습니다. ‹삼시세끼›, ‹효리네 민박›, ‹리틀 포레스트›와 같은 TV프로그램과 영화가 청년들의 인기를 끄는 것을 보며 농촌에 대한 청년들의 관심도가 높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농촌은 농업이라는 䢮일䢯에만 집중하고 있고 정작 중요한 䢮삶䢯은 놓치고 있었습니다. 저는 청년들이 농촌의 䢮일䢯뿐만 아닌 䢮삶䢯을 경험하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고, 2020년 10월 처음 문화도시 사업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문화도시 사업 중에 䢮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자䢯라는 프로그램으로 춘천 도심에 거주하는 시민들을 농촌으로 초대하는 공동체 䢮시골하루䢯에 대한 내용을 제안했습니다. 그렇게 운이 좋게 문화도시 사업에 참여하는 기회가 제게 주어졌습니다. 첫 번째 도전이 끝난 후에도 䢮시골하루䢯에 참여했던 구성원들이 계속해서 공동체가 지속되길 바랐고, 䢮도시가살롱䢯이라는 문화도시 사업을 통해서 그 공동체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8명으로 시작했던 작은 공동체는 어느덧 2주년을 맞이하여 지금은 30명이 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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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농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후에 䢮문화도시란 무엇인가䢯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문화도시춘천의 시민협의체를 구성하기 위한 추진단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추진단 활동에 참여하였습니다. 추진단에는 소방관, 주부, 농부, 퇴직자 등 다양한 직종과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모여서 함께 시민협의체에 대한 고민을 이어갔습니다. 2021년 1년간 지속적인 회의를 통해서 다양한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䢮문화도시춘천 시민협의체 봄바람䢯의 틀을 만들었습니다.

2022년 문화도시 시민협의체 봄바람의 운영위원을 새롭게 선출했고, 저 역시 운영위원 활동에 지원하여 운영위원으로, 나아가 운영위원장으로 선출되면서 문화도시춘천 속에서 더욱 성장해 나아갔습니다. 봄바람에서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점은 매달 정기회의를 진행한다는 것이었습니다. 2시간으로 정해져 있는 회의 시간은 항상 그 시간을 넘길 정도로 모두 의욕적이었고, 시민뿐만 아니라 춘천문화재단(춘천문화도시센터)에서 함께 회의에 참여하며 실무적인 협의까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꿈꿔왔던 소통과 협의를 경험한 순간이었습니다. 䢮지금까지 왜 이런 기회가 없었을까?䢯라는 생각과 함께 평생을 춘천에서 살았지만, 이제야 춘천을 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1년에 몇 번 소집되지 않는 위원회의 경우 제대로 된 소통과 협의를 이끌어낼 수 없습니다. 그런 회의에 나가면 늘 회의감이 느껴졌고, 이런 방식이 최선인지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누군가 결정한 일방적인 방식을 따르는 것. 시민은 어느 순간 전문가와 일반 시민으로 구분되어 전문가가 결정하고, 일반 시민은 수동적으로 따르는 것이 익숙해졌습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항상 궁금했습니다. 䢬전문가와 일반 시민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가?䢭, 䢬시민의 이야기는 누가 들어주는 것인가?䢭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소통할 수 있는 시대에 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소통이 익숙하지 않습니다. 시민과 행정은 서로 믿고 의지하는 동반자라고 하기보다는 서로 의심하고 미워하는 대립자가 되었고, 협력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 조금씩 바꿔나가야 합니다.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서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고, 우리 지역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함께 결정해야 합니다. 소통하고, 협의하고, 실행하고, 보완하는 과정에서 시민은 스스로 역할을 고민하며 지역 내에서 설렘을 찾을 것이고, 행정은 든든한 동반자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문화도시춘천은 일반적으로 문화와 크게 관련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 농부에게도 기회를 주며 함께 성장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첫 번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저의 활동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고, 지속적인 소통이 아니었다면 저는 성장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가 농촌에 계속해서 남아있을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은 농업이 아니라 문화였습니다. 문화도시춘천이 저에게 농촌의 설렘을 지켜준 것처럼, 더욱 많은 곳에서 시민들의 설렘이 지켜지길 바랍니다. 시민들을 믿고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서 함께 도시를 만들어 나아간다면, 분명 춘천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활기찬 도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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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정배 (글마음조각가, 원광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

처음

뵙

겠습니다

한 지역 청소년 문화의 집에서 ‘오른손잡이지만 왼손으로 그릴 거야’ 왼손 그림 작가로 몇 주간 활 동한 일이 있습니다. 마지막 수업 때였지요. 아이들과 낯이 익어 제법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한 아이가 내게 다가와 불쑥 이상한 인사를 건넵니다. 그 인사는 다름 아닌 ‘처음 뵙겠습니다’였지요. 몇 주 동안 반복해서 얼굴을 마주했는데, 처음 뵙는다니…. 처음에는 그 아이의 인사가 무척 당황 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내 그 아이의 인사 방식을 내심 반가워하고 있었습니다.

한때 나도 ‘처음 뵙겠습니다’라는 말을 의도적으로 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자주 만나는 사 람에게 ‘처음 뵙겠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네면, 무슨 실없는 농담을 그렇게 하느냐고 나무라는 사 람도 있었지요. 그냥 농담 반 진단 반으로 던진 인사말 같지만, 그 말속에는 나만의 설렘이 함의되 어 있었습니다. 처음 뵙는 설렘을 통해 상대를 나만의 편견에 가두지 않고, 매번 새롭게 보려고 노 력하는 마음 말입니다. 그 당시 내게는 ‘처음 뵙는 마음의 설렘’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살다 보면, 내 고집과 편견에 상대를 가두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나는 누군가 ‘내가 그 사람 좀 아는데’라고 말하면, 성격상 쉽게 친해지지 못합니다.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내 편견과 사유의 끝을 확인하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일부러라도 늘 처음 뵙는 마음으로 상 대를 바라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상대에 대한 미지(未知)를 조금 남겨놓고, 누구라도

처음 만난 사람처럼 대하다 보면 매일 반복해서 보는 사람조차도 처음 본 사람처럼 반가울 테니 까요. 어쨌든 청소년 문화의 집에서 그 인사를 다시 듣고 보니, 기분이 새로워졌습니다. 늘 보았지 만, 늘 처음 뵙는 마음. 그 설렘. 요즘 들어서도 그 처음의 마음이 담긴 인사가 너무나도 그립고 좋 습니다.

최근 들어 그 인사말을 다시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2020년 초 전 세계적으로 팬데믹 현상이 유행하자, 예술가의 활동은 크게 위축되었지요. 공연도 사라지고 전시의 기회도 대폭 줄어들었습 니다. 나는 그때 전주 한옥마을 근처에 있는 카페 기린토월에 자주 놀러 갔습니다. 그 공간은 오래 된 목욕탕을 개조해 만든 이색 카페 중 하나였지요. 어느 날 내 눈에 들어온 공간 하나가 있었습 니다. 목욕탕의 물탱크를 드러낸 자리였습니다. 1.3평 정도의 아주 작은 크기였지요. 나는 고민도 하지 않고, 곧장 카페 주인을 만나 그 공간을 거의 무료로 임대하였습니다. 나도 모르게 찾아드는 설렘 때문이었지요.

2020년 10월, 그렇게 목욕탕 물탱크가 있던 자리에는 작은 미술관 하나가 생깁니다. 사실 미술관 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정도의 크기였지요. 하지만 나는 한 평 남짓한 그 작은 공간에 ‘글마음조각가의 한 뼘 미술관 월간 그리움’이라는 명패를 붙이게 됩니다. 이후 그 공 간의 한쪽 벽에 매월 한 작가를 섭외하여, 그 작가의 그림 한 점을 걸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림이 전시되는 한 달 동안 시 쓰는 작가를 섭외하여 전시되는 그림을 보고 느낀 점을 시 가사로 청탁합 니다. 청탁한 기한 내에 시 가사가 도착하면 다시 음악을 하는 뮤지션에게 시 가사를 보내 그림과 시에 어울리는 노래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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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첫 전시를 시작했으니, 2022년 10월까지 총 24점의 그림이 전시되었고, 24편의 시가 완성되었습니다. 이에 발맞춰 24곡의 노래가 서로를 향한 그리움을 통해 새롭게 탄생하였습니다. 물론 서로 장르가 다른 화가와 시인 그리고 뮤지션이 함께하다 보니, 소소한 오해가 발생하기도 하였습니다. 대부분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 얼마의 대가가 주어지는지에 대한 물음이었지요. 하지만 나는 이 모든 프로젝트가 순수한 예술가의 자발적 의지와 설렘의 감정으로만 이루어진다 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말장난 같지만, 나는 그때 예술가들에게 ‘설렘’이란 단어를 가 장 큰 설득의 도구로 삼았습니다. 화가에게는 그림을 통해 시와 음악을 선물하고, 시인에게는 한 편의 시를 통해 그림과 음악이 스미는 일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당연히 뮤지션에게는 하나의 노 래에 시와 그림이 함께 하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놀랍게도 모든 예술가는 그 ‘설렘’이라는 단어에 설득되고 매료되었습니다. 사실 프리랜서 예술가 처지에서는 프로젝트에 대한 손익계산을 따지는 게 당연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런 예술가들을 보면서 1910년부터 1945년 일제강점기 시절에 예술 하나로 암흑의 시대를 관통 했던 선배 예술가의 멋진 신세계를 다시 떠올렸습니다. 그들은 당시 경성이라는 시공간을 중심으 로, ‘문학’과 ‘예술’에 헌신하면서, 한 시대의 역설을 견뎌냈지요. 작은 물탱크가 있던 자리에서 매 월 한 작가의 그림 한 점을 걸고, 시를 짓고, 음악을 만듦으로써 그 옛날 프랑스의 에꼴 드 파리의 정취를 한국으로 옮겨온 것만 같은 놀라운 느낌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며칠 전에는 지역의 한 미술관 갤러리를 통째로 빌려 지난 2년 동안 전시되었던 한 뼘 미술관 월 간 그리움의 전시 작품을 한데 모아 2주년 기념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한 점 한 점의 작품이 한 갤 러리에 모두 모이니, 큰 전시장이 금세 가득 찼습니다. 나는 2주년 기념 기획전시를 하면서 그동안 함께 했던 70여 명의 예술가 모두에게 초대장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2년 만에 처음 만나 반갑게 서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모두 ‘처음 뵙겠습니다’라고요. 그렇습니다. 예술가들은 2년 동 안 코로나로 인해 서로의 얼굴을 마주 한 일이 거의 없습니다. 온라인상으로만 서로의 소식을 주 고받았던 것이지요. 그렇게 서로 모르는 사이 그림마다 시가 새겨지고, 시에 음악이 스며들면서, 그들의 삶은 예술이 되었습니다. 나는 그날 예술가가 서로 주고받던 ‘처음 뵙겠습니다’라는 인사 가 나에게 얼마나 큰 설렘을 선물하는지 직접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처음 뵙겠습니다’라는 말은 스페인어로 ‘엔칸타도(Encantado)’라고 합니다. ‘참 멋지다’, ‘훌륭하다’, ‘굉장하다’라는 뜻을 함께 내포하고 있지요. 프랑스어로는 ‘앙샹떼(Enchanté)’입니다. ‘마법의’, ‘마력을 지닌’, ‘매우 기쁜’, ‘매혹적인’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처음 뵙는 설렘 속에 상대 에 대한 얼마나 놀라운 존중과 호기심 가득한 예의가 담겨있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대목입 니다. 그러니 모든 이에게 이 칼럼의 형식을 빌려 다시 한번 다정하고 설렘 가득한 인사를 전합니 다. “여러분, 처음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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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년이여 예술로 접속하라, 아트/플러그

2022년 가을의 문턱에서 시작한 신중년 예술 전환 프로젝트 ‹아트/플러그›는 50세에서 64세 사이의 춘천 시민을 대상으로 진행한 예술 활동 사업이다. 이번 프로젝트의 주제는 ‘소리’로, 참여자들은 듣기와 노래하기, 말하기 과정을 통해 자신도 미처 알지 못했던 예술적 감각을 발견하며 가을날을 보냈다. 과거 경제 주역으로 바삐 달려온 신중년이 각자의 예술성을 감각하고, 새롭게 정의된 자신의 역할을 다시 사회에 환원하기까지. 이렇게 신중년 시민들이 예술로써 사회에 다시 연결된다는 점에서 프로젝트의 이름인 ‘아트/플러그’가 반짝하고 탄생하였다.

11월 9일 오후 3시.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은 날씨였다. 잿빛 하늘 아래 아르숲 생활문화센터 1층의 불이 반짝 들어왔다. 말간 얼굴을 한 이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그날은 신중년 예술 전환 프로젝트 ‹아트/플러그›의 마지막 프로그램이 예정된 날이었다. 제법 두꺼운 외투를 여미고서 참여자들은 각자 자리에 앉았다. 며칠 전에도 만난 그들이지만 오랜만에 마주한 듯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아트/플러그› 마지막 회차의 화두는 ‘나눔’이었다. 함께한 가을의 시간을 톺아보며 지금까지 사회와 나누었던 것,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나눔인 자기돌봄에 대한 경험을 자연스레 공유하는 자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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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는 숨과 나아가는 것이더라고요. 내 숨이 편안해야 소리도 편안해지는 걸 깨달았어요. 감정에 따라 나의 소리가 달라지는 것을 알게 된 후로 매일 목소리를 체크하고 있어요. 저는 이게 일종의 자기 돌봄이라고 생각해요.”

바다소리반 안순영

“사운드테라피 수업 때, 다 같이 담요를 덮고 누워있던 적이 있었어요. 누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여기저기서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오더라고요. 저도 까무룩 잠이 들었죠. 사실 저는 매일 밤 깊게 잠들지 못하고 새벽 3시와 6시마다 깨곤 했어요. 그날도 어김없이 저는 자다 깼고요. 새벽 3시겠거니 하며 시계를 확인해봤는데 글쎄 새벽 5시더군요! 저의 사이클이 처음으로 깨진 거예요. 진짜 행복했어요.”

바다소리반 홍정화

소나무반 신복순

바다소리반 신애경

꼿꼿했던 참여자들의 허리가 조금씩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함께 보낸 가을 안에서 자신을 찾아온 변화의 순간과 전환점을 공유하며 점처럼 흩어져 있던 그들은 조금씩 간격을 좁혀 앉았다.

“저는 언제나 듣는 역할이었어요. 발화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 말을 해야 하는 자리는 항상 긴장되고 떨렸죠. 프로그램을 시작한 이후로는 성격이 밝아진 것 같아요. 항상 기뻐요. 그리고 앞으로는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봉사를 해보고 싶어요.”

“나눔 봉사에도 나이 제한이 있더라고요. 우리는 봉사를 하려면 나이 제한이 없는 걸 직접 찾아서 활동해야 해요.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저는 평생을 나누며 살고 싶어요.”

누군가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목소리에 담고, 누군가는 시를 낭독해 담았다. 오디오북 안 그들의 음성은 편안했다. 오디오북의 마지막 장이 넘어가자 ‹아트/플러그›의 마지막 회차를 마무리할 시간이었다. 참여자들은 앞으로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들의 목소리에 아쉬운 듯 자리에서 일어나 다 함께 손을 서려 있는 것은 기대감만이 아니었다. 확신이 잡았다. 취재 차 참석한 이방인이던 나의 있었다. 프로젝트는 그날로 마치지만

손까지 잡고서 둥글게 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펼쳐질 이야기는 이제 겨우 첫 장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의 만남은 넘길 뿐이었다. 서로의 가을을 되짚어본 후엔 우연이 아니야…’. 우연도 인연으로 해석하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만든 오디오북을 함께 사람들. 그들의 목소리는 같은 곳을 향해 감상했다.

퍼져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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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년 예술 전환 프로젝트 ‹아트/플러그› 이번 프로젝트의 주제는 ‘소리’. 과거 경제 주역이었던 신중년에게 내재되어 있는 예술적 감각을 깨워 문화적 주역으로서의 역할을 새롭게 일구고자 했다.

발견

신중년의 전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새로운 ‘나’를 스스로 정의해본다. 나눔 공동체로서 공동체의 감각을 함께 느껴본다.

채움

듣기, 노래하기, 말하기 워크숍을 통해 잘 듣고 잘 말하는 법을 배우고, 성우와 함께하는 오디오북 제작 실습을 통해 ‘소리’를 활용한 새로운 매체를 활용해본다.

듣기

소리에 몸을 맡기고 내 몸의 불필요한 긴장감을 푸는 시간 ‘사운드 바스’ 나 다움에 대해 그림으로 표현해보는 ‘내 안의 자화상’ 자연의 소리와 싱잉볼을 이용한 소리 명상 ‘사운드 메디테이션’ 소리의 숲, 미완의 정원, 철학자의 길을 걸으며 주변의 소리를 듣고 기록하는 ‘소리 채집’ 여러 가지 방식으로 싱잉볼을 연주하며 소리와 파동을 느끼는 ‘촉각으로 듣기’

노래하기 나의 목소리에 대한 인식과 생각을 나누고, 목소리를 시적인 언어로 인지해본다. 요가와 소마틱 움직임을 통해 호흡과 마음의 연결을 확인하며 몸의 감각을 확장해본다. 다른 사람의 몸에서 목소리의 울림을 느끼며 소리 에너지의 확장을 경험해본다.

말하기

나의 매력을 스스로 말해보고, 나의 이야기를 작성하여 내 목소리와 감정을 담아 오디오북을 녹음한다.

환원

‘나눔’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며 예술을 통해 새롭게 발견한 자신과 재능을 사회에 환원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본다.

신중년 예술 전환 프로젝트 ‹아트/플러그› 프로그램 참여자 신복순 님의 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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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릇에 담은 춘천 미술 2022 춘천 모두의 미술 상+생

‘춘천 모두의 미술’이라는 주제로 책을

333명이 참여했다. 예술작품 분야 또한 회화, 만든다면 어떨까. 아주 두꺼운 책이 될 것이 서예, 도예, 공예, 사진, 설치작품 등 다양한 분명하다. 춘천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와 표현 방식의 작품을 아울렀다. 그들의 작품, 춘천의 미술이 있기까지 크고 작은 역할을 한 사람들과 협회, 그리고 시대별 색깔이 뚜렷한 각각의 작품들은 ‘자연과 변화까지 다 담기 위해서는 수많은 지면이 필요하다. 이번 ‘2022 춘천 모두의 미술

인간의 상+생’부터 시작하여 ‘작고 미술인의 과거와 현재’까지 주제에 따라 구역을 나눠 상+생’ 전시에서는 춘천의 미술을 한 그릇에 전시하였고, ‘아이와 더 큰 아이’라는 이름으로 담기 위한 시도를 했다. 이런 시도를 한 이유는 아이들의 작품은 따로 전시하였다. 그리하여 홀로 고립되지 않고, 경력과 나이로 차이를

전시를 보는 동안 과거부터 현재, 미래의 춘천 두지 않고, 서로 응원하고, 힘이 되어주며 다 미술을 주제에 따라 한 권의 책을 읽는 듯 같이 상생하기 위함이었다.

느껴졌다. 작품의 표현 방식이나 경력 등으로 분류하지 않아 작품 하나하나 깊게 감상할 수 이번 전시의 방점이 ‘모두’에 찍혀있다는 걸 있었다. 참여 예술가와 작품에서 알 수 있었다. 신진작가, 중견작가, 원로 작가, 작고 작가, 미술동호인을 포함한 춘천시각예술작가 225명과 어린이작가 108명이 함께해 전체

‹2022 춘천 모두의 미술 상+생› 김윤선 예술 감독과 이야기를 나눴다.

2022 춘천 모두의 미술 상+생 2022년 11월 18일부터 2022년 12월 4일까지 춘천문화예술회관 전시장에서 열렸다. 춘천시각예술작가 225명이 참여하였으며 춘천문화재단이 주최하고 춘천미술연합회 ‘아우름’이 주관하였다. 김윤선 도예 작가가 예술 감독을, 이수현 회화작가와 신정민 동화작가가 전시 기획을 맡았다.

지난해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전시 ‹요람에서 무덤까지›와 연장선상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지난 전시와 어떤 점이 맞닿아 있고, 이번 전시에 중점을 둔 점은 무엇인지 근원입니다. 상상력과 생명력 그 둘이 모두 조화를 이룰 때 더욱 풍성한 예술 활동이 듣고 싶습니다. 두 전시 모두 춘천미술연합회 아우름에서 주관하였는데요, 춘천지역 미술인이 연합한 전시라는 점에서 결이 맞닿아 있어요.

전시 제목 ‘상+생’은 상상력과 생명력을 더한 이름이에요. 상상력과 생명력은 모든 예술 활동의

이루어지죠. 상상력과 생명력은 갈등을 푸는 중요한 요소이므로 더해질 때 상생이 됩니다. 이번 전시로 우리 춘천 미술인들이 상생할 수 세세하게는 작고 작가의 작품을 소개한 점과 있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담았습니다. 지난해 전시 ‘천 개의 달’ 행사에 이어 올해에는 ‘천 개의 꿈 천 개의 씨앗’이라는 전시행사를 한 아이들의 작품을 전시 마지막에 볼 수 있어서 점입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전시에서는 작고 좋았어요. 작가 8명과 신진작가 8명을 조명하였다면 이번 아이들은 가능성을 품고 있는 씨앗이죠. 춘천 전시는 춘천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를 한 미술의 미래를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에요. 분이라도 더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번엔 ‘천 개의 꿈’이라는 작품의 주제로 그림을 그렸어요. 어린이작가 전시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범위를 좁히는 것이었어요. 춘천 시내 미술학원에 공문을 보내고 답변을 준 학원 아이들의 작품을 모았어요. 나이도 5~ 7세로 정했고요. 100개의 작품을 계획했지만 딱 잘라낼 수 없어서 108개의 작품 모두 전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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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감독을 맡게 된 소감과 신정민, 이수현 전시를 준비하면서 춘천시립미술관 건립의 기획자와 함께한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필요성을 더욱 느꼈다고요. 이번 전시에는 수백 명의 작가가 참여했어요. 한 원로 작가께서 작품 기증 의사를 남겼어요. 사이에서 조율하는 사람이 필요했고, 제가 추천받아 감독을 맡게 되었습니다. 제 일은

그렇지만 기증하고 싶어도 기증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작가로서 역량이 있느냐가 첫 불협화음이 나지 않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번째이고, 두 번째는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것이었어요. 신정민 작가님은 동화작가라 글이 있어야 해요. 춘천에는 작품을 보관할 수 있는 필요한 부분을 작성하고 다듬어주었고, 이번 공간이 없어요. 시립미술관이 필요한 전시 주제 아이디어를 내어주었습니다. 이수현 이유이지만, 그전에 기증 서약서와 자료를 미리 작가님은 전체적인 기획과 구역별 기획을

받고, 인터뷰하며 아카이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도와주었고요. 춘천에는 크게 ‘한국미술협회 생각합니다. 시립미술관은 박물관이 하는 춘천지부’와 ‘민족미술인협회 춘천지부’ 두 미술 역할과 같아요. 단지 전시만 하지 않아요. 협회가 있는데, 지난해 ‹요람에서 무덤까지› 전시에 이어 올해의 전시도 두 협회가 힘을

자료화하고, 보관하고, 연구하고, 기획하고, 교육하고, 보여주기도 하는 모든 활동이 합쳤습니다. 각 협회에서 추천한 두 분이 기획에 미술관에서 이루어져요. 그 모든 건 시민들이 참여했는데 이 또한 상생의 방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누려야 하고요. 박물관이 학예연구사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듯이 미술관도 시민들의 정서적 충족을 위해 필요해요. 지금은 미술인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시민이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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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을 천천히 돌고 난 이후에 도달한 곳은 아이들의 전시인 ‘아이와 더 큰 아이’. 벽면을 가득 채운 아이들의 작품은 손잡고 걸어가는 모양으로 전시하였다. 어린이작가가 가족과 함께 와서 자신의 그림을 보고 간 모습을 몇 번 보았다. 자신의 그림이 전시장에 걸려있는 어린이의 마음을 상상하니 환해졌다. 바로 옆에서는 형형색색의 다양한 씨앗으로 자기만의 엽서 액자를 만들어 볼 수도 있는 체험 공간도 있었다. 아이들과 관람객은 예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춘천 미술을 밝히는 씨앗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전시장을 나오며 다음이 기대되었다. 2023년, 그 이후의 춘천 미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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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꾸는 마음 으로*

어린 시절 나는 꿈이 많은 아이였다.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많은 아이. 학년이 ‘나의 꿈’에서 “얼룩말 똥 정도는 맨손으로 집는” 바뀔 때마다 장래 희망 칸을 새롭게 채우는 사육사가 되고 싶은 아이를 통해 동심을 붙잡고 아이. 매일 밤 닿지 못할 꿈을 그리다 겨우 잠에 있지만, 김세홍 시인은 행동하지 않는 꿈은 드는 아이. 아침이 찾아오면 꿈이 내게 조금은 악몽이라며 술자리에서 일갈하더라.** 다가와 있을 것만 같았고, 내 마음대로 그려내는 꿈의 세상이 달콤하여 옅은 꿈을 더듬어가며 밤을 지새웠다.

꿈이 많던 아이는 그대로 꿈만 많은 어른으로 자랐다. 침대맡에서 무한하게 그려내던 꿈의 세계는 머리만 대면 곯아떨어져 숨겨놓은 일기장을 꺼냈다. 나는 하고 싶은 좀체 이어지질 못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꿈을 그렸다. 장래에 희망하는 일을 여럿 꿈꾸고, 하이힐을 신은 근사한 어른의

일들을 해보기로 했다.

첫 번째, 한국무용 배우기. 곧장 지도 모습을 꿈꾸고, 아직 만나지 못한 나의 백마 탄 앱을 켜고 근처 한국무용 학원을 둘러봤다. 왕자를 꿈꾸고…. 일기장에는 항상 오늘의 한 취미용 강좌가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일보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로 가득 찼다.

당시 서울에 살던 나는 한국무용을 배우기 위해 고양까지 갔다. 미리 주문한 순백색의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좋아하던 선생님의 코슈즈를 가방에 담고, 국악으로 가득 채운 산문집에서 아래의 구절을 발견한다.

이름부터 재미있는 김개미 시인은 동시

행동하지 않는 꿈은 악몽…. 행동하지 않는 꿈은 악몽…. 입 안에서 몇 번이나 발음해보았는지 모른다. 방구석에 앉아 그려내기 바빴던 나의 꿈들이 온통 악몽이었다니. 책장을 덮고 책꽂이 뒤편에

플레이리스트와 함께 버스에 올랐다.

*** 이광국, ‹꿈보다 해몽›, 2015 ** 현택훈, ‹기억에서 들리는 소리는 녹슬지 않는다›, 2017, 한그루 * 우주소녀의 ‘꿈꾸는 마음으로’에서 빌렸습니다.

첫날은 기초 동작인 ‘굴신’을 배웠다. 쉽게 스토리를 들으며 나는 2시간이 걸려 돌아가야 말해 다리를 접었다 펴는 동작인데, 걸을

하는 길을 떠올렸다. 그러고 반년이 지났을까. 때마다 무릎을 굽혔다 펴며 동작에 리듬감을 오랜만에 찾은 영화관에 그의 새로운 영화 주는 것이다. 나이에 비해 좋지 않은 무릎을 포스터가 걸려있었다. 나는 그 작품을 보지 연신 삐걱이며 ‘굴신’을 했다. 무릎에 진짜 안 않았다. 좋겠다…는 생각은 애써 외면하면서. 수강생들은 저마다 한국무용의 정서를 일구며 ‹꿈보다 해몽›***이라 그랬던가. 나는 부드럽게 무릎을 굽혔다 폈고, 나는 겨우 그냥 나의 꿈들을 마음대로 해석하기로 했다. 무릎을 구겼다가 폈다. 고개를 돌리니 그런 내 행동하지 않는 꿈이라고 죄다 악몽은 아닌 것 모습이 거울에 비쳤는데… 그 모습은 애를 같았다. 그리고 더는 일기장의 꿈들을 꺼내지 써도 결코 외면할 수가 없었다. 나의 꿈은 ‘굴신’에서 막을 내렸다.

않기로 했다. 오래되어 낡고 빛이 바래도 꿈은 꿈이니까. 꿈을 그릴 때만큼은 꿈만 많은 어른이 아닌 언제나 꿈이 많은 아이가 두 번째, 좋아하던 감독의 시나리오 수업 되었으니까. 듣기. 나는 그의 작품을 다 본 은근한 팬이었다. 수강생 모집 기회를 몇 번 놓쳐 보냈던지라 이참에 수업을 받아보기로 했다. 감독의

먼지 쌓인 엄마의 장식장처럼 나는 나의 꿈들을 차곡차곡 일기장에 담았다. 꿈에 번뜩이는 영감의 지점이라든지, 영화에 대한 내려앉은 먼지는 이따금 후 불어내면 될 테지. 철학을 기대하며 지하철로 2시간이 걸리는 오늘도 나는 침대에 누워 밀려오는 잠을 길을 매주 오갔다. 그렇지만 감독은 수업

밀어내며 또 다른 꿈을 그린다. 내 꿈의 유일한 시간마다 새로 만나기 시작한 애인의 이야기를 주인공이 되어, 꿈이 많은 아이의 마음으로. 늘어놓을 뿐이었다. 영화 같은 그들의 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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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유독 내가 겪어보지 않은 많은 일들이 찾아왔다. 䢮완벽하지 않을까 봐䢯, 䢮실패할까 봐䢯, 혹은 䢮누가 뭐라고 할까 봐䢯 깊이 망설였지만, 안전하고 밋밋한 삶을 사는 것보다 끊임없이 역동적인 일상을 선택했다. 겨울호를 취재하면서 그럴 때마다 힘을 불어 넣어준 동료들 생각이 많이 났다. 무언가에 도전하고 또 시도할 때, 가장 큰 위안이 됐던 건 주변에 있는 동료들의 존재였다. 리코더 마이스터 조진희 님, 그리고 투게더에서 함께 해준 기획자분들에게서 많은 에너지를 얻었고, 우리는 또 연결이 되었음을 느낀다.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연결된 안전그물 위에서 우리 모두가 서커스의 주인공이다!

공혜진 작가님 전시에서 풍선덩굴 씨앗을 처음 보았다. 인터뷰할 때 숲에서 그 씨앗을 다시 만났다. 작가님은 걷다가 다양한 씨앗을 먼저 발견했고, 고개를 올려다보거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면 어김없이 열매가 있었다. ‹2022 춘천 모두의 미술 상+생› 전시 체험 공간에서 여러 씨앗 틈에서 풍선덩굴 씨앗을 마주했다. 직접 몇 달 동안 주운 씨앗들이라고 하였다. 겨울호를 준비하면서 씨앗을 생각했다. 아직 피지 않은, 열매에서 떨어진 씨앗을. 모든 씨앗이 다 피어나지도, 같은 시기에 피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모든 씨앗에는 가능성이 있다. 언제든 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 손가락으로 동글동글한 풍선덩굴 씨앗을 굴리면서 그 사실을 곱씹었다.

올해 희로애락의 네 감정을 다뤘다. 취재를 하고 사람들의 감정과 마주하면서 모든 감정이 연결되어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어떤 슬픔은 분노가 되고 분노는 용기로서 기쁨이 되며, 기쁨은 다시 또 설렘으로 느껴지니 말이다. 살면서 기쁨과 설렘이 자연스럽듯, 분노와 슬픔도 피해 갈 수 없을 테다. 계획을 세우고 과거에 연연하기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오늘의 감정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기로 했다.

䢮두려움과 불안감은 평생 내 곁에 머물겠지만 이젠 그 감정이 온통 나를 삼키게만 두지 않는다. 그럴 수 있는 요령을 배웠다. 앞으로도 무너지는 마음에 이따금 괴롭겠지만 나를 옭아매던 일에는 때로 의젓한 모습을 보이겠지. 나는 내년의 내가, 내후년의 내가 궁금해졌다.䢯 2021년 12월 10일의 일기를 꺼내보았습니다. 해가 지날수록 조금씩 의연해지는 제가 저는 꽤 마음에 들어요. 머지않아 내년의 나를 만나게 될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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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R 발행인 최연호

EDITOR IN CHIEF 편집장 고영직

EDITOR 취재 권용식, 박인옥, 정승희

PHOTOGRAPHER 사진 강승원, 김효주, 이종희

ILLUSTRATOR 삽화 한선주

DESIGN & COVER ILLUST 디자인 & 표지 일러스트 이건하

ADMINISTRATION 기획총괄 김희정

MANAGEMENT 운영 김태경, 유주연, 최수현, 홍경문

CONTRIBUTING WRITER 기고 이범준, 김정배

THANKS TO 고마운 분 임주호, 김선문, 전재희, 이성희, 오규민, 한동국, 최승호, 변애리, 최덕화, 김준희, 조진희, 공혜진, 김수영, 최보윤, 최옥선, 이경하, 이수경, 신복순, 박민화, 설유정 그리고 한혜진

춘천문화매거진 POT 제33호 「기다리던 순간」 2022년 12월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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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쪽

춘천문화매거진

ISSN 2508 6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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