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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문화놀이매거진 POT 34호

이북 원문에서 글자만 옮긴 전체 텍스트입니다. 표·그림·사진과 원래 모양은 이북에서 확인하세요.

1쪽

N.34 우리는 매일매일

ISSN 2508 6316

2023 봄

춘천문화매거진

2쪽

© 김효주

노동을 하지 않으면 삶은 부패한다. 하지만 영혼 없는 노동은 삶을 질식시킨다. 알베르 까뮈

3쪽

PLAY 문화로 같이 즐기다

OPEN 문화로 마음을 활짝 열다

TALK 문화로 함께 이야기하다

매거진 ‹pot›에는 ‘(다양한 것을 담는)그릇, 솥’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문화로 함께 즐기고, 소통하며, 이야기할 수 있도록 지역의 다양한 문화 콘텐츠와 이슈, 생동감 넘치는 춘천의 문화예술을 담아내는 그릇이 되고자 합니다.

‹pot›에서 이야기하는 춘천문화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시민의 삶 속에서 엿볼 수 있는 일상의 순간, 그 안에 담긴 보석 같은 이야기를 말합니다. ‹pot›은 춘천 시민과 많은 관계인구가 춘천이라는 지역을 즐겁게 바라보고 깊이 알아갈 수 있도록 다채로운 이야기를 펼쳐 보이겠습니다.

장승근 作 ‹좌표 고정하기›, 2023, oil on canvas, 97×97cm

우리는 끊임없이 표류하는 삶 속에서 균형 잡기 위해 가치관을 정하고 그것에 삶을 적용한다. 그 과정에서 실패를 덮지 않고 다시 일어서기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 그것이 삶을 버틸 수 있는 근간이 된다. 그것은 무언가를 고정하기 위해 선을 긋고 못질을 다시 하는 어수룩한 노동자의 행위와 맞닿아 있다.

CONTENTS

LETTER

편집장의 여는 글

POST BOX

삶일지, 업무일지

THEME PIECES

움직임으로 피어나는 꽃

TOOLS

어둡고 검은 밤의 빛 속으로

INTERVIEW 1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풀, 나풀나풀

INTERVIEW 2

이곳 어디엔가 있을 이상향을 읊어주는 화가, 이광택

POT-PEDIA

LOVE YOUR WORK, WORK YOUR MAGIC!

WALK

조용하고 말이 없는 것들 사이에서

PLAYGROUND

어쩐지 근사한 소도시에서의 삶 #1. 봄날의 골목친구

COLUMN

노동을 혐오할 것인가, 찬미할 것인가?

WIDE

백 년 동안의 자유

SCENE 1

HAPPY 30th BIRTHDAY! 춘천문화예술회관 개관 30주년

SCENE 2

사람을 키우는 문화, 문화가 만드는 도시

MOOD

돌봄과 작업

EDITOR’S NOTE

4쪽

LETTER

당신에게 일은 어떤 의미인가요?

다시, 봄의 도시 춘천에 봄이 왔습니다. 춘천문화재단 또한 문화도시 춘천 사업설명회 〈봄 내려온다 봄내로 온다〉를 비롯해 본격적인 봄맞이에 분주합니다. 2023년, 새봄을 맞아 문화매거진 《pot》은 䢮조금 다른䢯 변신을 시도했습니다. 한 해 동안 䢮소도시에 사는 기쁨과 즐거움䢯을 주제로 계절마다 테마를 정해 집중 조명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편집 의도는 일본의 지성 우치다 다쓰루가 강조했듯이 䢮인구감소사회는 위험하다는 착각䢯이라는 명제에 십분 공감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인구 감소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 순식간에 폐허가 되듯이, 집은 그 안에 사는 인간의 䢮생기䢯를 자양분 삼아 서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䢮사물(死物)䢯이 된다고 말합니다. 도시 또한 䢮생기䢯가 필요합니다. 특히 젊은 여성에게 인기가 없는 도시는 사라진다는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한 도시가 인구감소 시대에 생기를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생태교통으로 하나가 되는 도시 전략이 필요하고, 주거 · 교육 · 공원 같은 인프라가 충분히 확충되어야 하며, 자유롭고 열린 마을을 만들어야 합니다. 䢮모두를 위한 도시䢯를 위하여 문화·지식·테크놀로지가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박용남의 『기적의 도시 메데진』(2023)에는 시(詩)가 도시를 되살리고, 기후위기 시대 䢮건강도시䢯를 추구하며 마약의 수도에서 전 세계 도시의 롤모델이 된 콜롬비아의 메데진 이야기가 퍽 흥미진진합니다. 이번호 테마는 䢮일䢯입니다. 좋은 노동(good work)은 䢮생존䢯을 넘어 䢮생활䢯로, 그리고 䢮생활䢯에서 온전한 䢮생명䢯으로 가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합니다. 영국 시인 D.H.로렌스가 말한 것처럼 䢬일은 재미일 수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일을 즐길 수 있다䢭라고 한 시적 선언은 아직은 먼 미래일까요? 䢮시간마름병䢯 환자가 넘쳐나는 도시와 사회가 지금 여기 우리의 䢮나우토피아(nowtopia, 여기-천국)䢯는 아닌지 돌아봅니다. 포스트박스에서는 일에 대한 춘천 시민들의 일상을 글과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모두가 조금씩 농부가 되는 세상을 꿈꾸는 여성농부 3인 인터뷰를 비롯해, 춘천예술촌 입주작가 이광택 작가와 시각장애인 화가 박환 작가 인터뷰 또한 업(業)과 재미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게 합니다. 노동(labor)-작업(work)-행위(action)로서의 일에 대한 문제의식 또한 놓치지 않고자 했습니다. 연재 코너인 공혜진 작가의 플레이그라운드에서는 䢮산책 드로잉䢯 형식으로 춘천 사는 소소한 재미와 긍지를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박정환 춘천사회혁신센터장과 노지영 문학평론가의 칼럼에서는 실제 영역과 문학 작품에서 재현되는 일과 행복의 함수 관계에 대해 다양한 모색과 고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고용이 증가하는 유일한 분야는 섬세한 대인 서비스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돌봄 노동이 䢮그림자노동䢯이 되지 않고, 자기를 배려하고 타자를 배려할 수 있는 좋은 노동이야말로 돌봄전환사회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편집장

5쪽

POST BOX

에디터 이인혜

삶

일지

업무 일지

자신이 선택한 ‘일’로

오늘을 한해를 인생을 꾸리고 있는 사람들

나를 위한 일

‘일’은 본능이 아닌 의지로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일’로 삶을 채워나가고 있을까.

필름 카메라에 담겨 온 누군가의 일과 삶의 순간들.

권강현 효자동 디저트 가게 ‘티라미수’ 사장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 내어주는 일을 삶의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

오늘도 새벽부터 빵을 굽는다. 일을 시작하기 전, 갓 내린 커피를 마시는 것은 오래된 나만의 루틴. 커피 한 모금에 빵을 좋아하시는 복지관 어르신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䢬선생님, 빵 맛있어요.䢭 하며 웃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물에 젖은 솜처럼 몸이 무거운 날에도 몸을 일으키게 되는 이유다. 갓 구워진 폭신한 카스테라가 마치 보름달같이 정겹다.

복지관과 쉼터 등에 디저트를 후원한 지 11년째. 이 일을 하는 이유는 䢮내가 행복해지고 싶어서䢯. 가득히 채우는 삶보다 조금은 비우는 삶. 내가 스스로 선택한 삶의 방식이다.

그래서 나에게 빵을 만드는 일은 䢮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䢯이다. 잘할 수 있는 일로 나눔을 실천하며, 오히려 나의 행복까지 채우고 있으니까. 나의 새벽으로 인해, 나의 이웃의 하루가 고소하고 폭신하고, 또 달콤하길.

6쪽

오늘도 잘 지나갔다

최수현 춘천문화재단 도시문화브랜딩팀 무형의 문서 작업 속에서 유형의 무엇을 발견하고 만드는 사람

앉아서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뿐인데 일은 쌓이고, 해결되고, 추진된다. 어떤 날은 갈 길이 한참인데 화면 속 커서는 길을 잃고 오랫동안 헤매기도 한다. 그럴 땐 고개를 돌려 식물들을 바라본다.

캐비닛 위에 하나둘 키우기 시작한 화분이 어느새 예닐곱 개까지 늘어났다. 몇 해째 바뀌는 계절을 함께 나니 동료들만큼이나 든든한 동반자처럼 느껴진다. 퇴사한 사람이 맡기고 간 것, 승진할 때 받은 것, 프로그램 운영 때 시범으로 쓰이고 남은 것, 충동구매한 것 … 화분 모양만큼 사연도 제각각이다.

오래된 건물이라 추운 사무실이지만 날이 조금만 따뜻해져도 식물들은 금방 싹을 올리고 잎을 키운다. 어느새 자라난 새잎을 발견하면 기특하기도, 뭉클하기도, 벅차오르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별 시답잖은 일에 감동하는 것 같아 혼자 머쓱해진다.

회의와 문서의 늪에서 헤어 나와 잠시 살아 있는 것들을 만질 때, 물을 주고 죽은 가지들을 솎을 때 이야기한다. 䢮오늘도 지나갔다. 다들 이렇게 힘내자.䢯 아무도 듣지 않을 조용한 응원을 잠깐의 손길로 보낸다. 그렇게 하면 어쩐지 바쁜 일과 중 조금의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7쪽

새로운 일을 통해 만난 새로운 일상

김영준 열정 가득한 콘텐츠 기획자 늘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그 도전에서 다음으로 갈 에너지를 얻는 사람

표류하는 듯 보이지만, 날 뿌리 내리게 하는 일들이 분명히 이곳에 있다. 생활문화매개자와 시민협의체 봄바람 운영위원(춘천문화재단), 명예청년청장(춘천시청년청) 䢮활동가䢯라 불리는 나의 또 다른 이름들. 나는 이 이름으로 주로 이웃과 동료 청년들을 만나고 또 이야기하며 함께할 수 있는 무언갈 계획한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나는 이 도시에 흠뻑 빠져든다.

대학 입학으로 춘천과 인연을 맺은 지 어느덧 20년. 졸업 후엔 해외 이곳저곳을 누비며 정말 䢮일䢯만 했다. 그땐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고민할 틈조차 없었다. 작은 스타트업 회사에 근무를 시작하면서 4년 전 다시 춘천으로 돌아왔고, 로컬 콘텐츠를 기획하는 일을 하면서 난 인생의 전환을 경험하는 중이다.

이 도시는 나에게 시간적, 공간적 여유를 되찾아 주었고, 덕분에 주위를 더 둘러보게 됐다. 주변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더 샘솟는다. 노동이 아닌 다른 일에 대한 흥미.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한 䢮나䢯. 지금까지 시도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며 내가 좋아하는 일을 발견하는 시간들. 새로운 일상을 맞이하는 오늘이 나는 아직도 설렌다.

8쪽

THEME PIECES

사진 김효주

움직임으로 피어나는 꽃

활보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저마다의 색채가 활짝 피어나는 도시

12쪽

TOOLS

포토그래퍼 강승원 에디터 정승희

어둡고 검은 밤의 빛 속으로

화가 박환의 도구

캔버스 위에 날아다니는 화가 박환의 손은 한 마리의 새 같다. 자유롭고 노래하는 새.

13쪽

박환 화가의 자택이자 작업실에서 그는 환한 미소로 맞이해주었다. 거실을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않았다. 혼자 애쓰며 긴 시간 그림에 몰두할 때 진실함이 그대로 전해진다고 생각했다. 그가 앉은 자리 옆에는 커다란 창 앞에는 이젤과 의자가 있었다. 의자에는 그의 작업할 때 사용하는 도구와 재료가 상자에 담겨있다. 앞치마가 얼룩덜룩한 그대로 걸려 있었고 오른쪽에는 실과 핀, 목공풀과 청바지 조각, 나무껍질과 나뭇가지. 물감과 팔레트, 붓들이 자유로이 놓여있었다. 작업대 원래의 자리에서 벗어난 각 재료는 캔버스 위에 새로운 뒤로는 나무껍질과 청바지 조각, 무명실과 목공풀 등이 쓰임으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박환 화가가 작업 과정을 상자에 따로 담겨있었다. 그에겐 도구를 사용하는 몇 천천히 설명해주었다. 가지 규칙이 있다. 이젤을 절대 옮기지 않고, 각 재료를 섞이지 않게 하는 것. 앞이 보이지 않는 그에게는 꼭 필요한 규칙이다. 그의 작품은 작업실 곳곳에 있었다. 나는 작품 하나하나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오돌토돌 질감을 그대로 살린 나무줄기, 눈이 부시도록 노란 은행잎, 물이 떨어지는 시원한 물레방아의 폭포수까지. 그림들은 툭 튀어나와 입체감이 선명했다.

䢬먼저 실로 스케치해요. 연필 대신 얇은 실로 머릿속에 구상한 이미지를 캔버스에 옮기는 거예요. 그리고 입체감을 살리기 위해 두꺼운 실을 붙여요. 어머니가 꼬아준 무명실은 굵기가 다 다르거든요. 그리고 제 나름대로 핀을 꽂아서 위치와 두께 등을 표시해요. 그 다음엔 청바지를 붙여야 해요. 청바지 위에 미술용 흙으로 땅, 바위, 집 벽 등을 표현하고요. 마지막으로 나무껍질을 붙여 나무의 생생함을 표현해요. 시간이 정말 오래 걸려요. 하나의 작품을 작업하는 데 대략 7, 8개월이 소요되죠.䢭

䢬언론을 통해 소개되는 제 작품은 사람들에게 크게 와닿지 않는 것 같아요. 작품이 입체적인데 사진을 찍으면 아무래도 평면적으로 나오니까요. 전시회를 하면 사람들이 물어요. 정말 시각 장애인의 작품이 맞냐고요. 그럼 전 빛도 못 느낀다고 말하는데 사람들이 보고도 안 믿긴다고 하죠.䢭

박환 화가는 시력을 잃기 전에도 입체감이 느껴지는 작업을 했다. 25년간 그리던 동양화를 서양화로 전환하며, 사용하던 도구도 먹물과 수채물감에서 박환 화가는 커다란 거실 창 앞에 이젤을 두고 작업한다. 아크릴물감과 유화로 바뀌었다. 당시 그는 도시 풍경을 커다란 창으로 햇빛이 그에게 비치지만 그는 빛을 인식할 주제로 판잣집, 골목길, 전봇대 등을 작업하고 있었는데 수 없다. 다만 온기로 느낄 뿐이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도구를 찾지 못했다. 돌멩이와 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생계를 위해 톱밥을 캔버스에 시도하기도 했지만, 원하는 질감이 그림을 그렸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려 팔았다. 아니었다. 그러다 찾은 게 폐가구의 얇은 합판. 합판을 그림장수라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자신에게 자르고 색을 붙이니 그만의 독특한 표현 방식이 묻고 답하는 시간을 거쳐 생각하고, 느낀 바를 표현하기 생겨났다. 2012년 6월, 그의 이런 독특한 작품을 개인전 시작했다. 1982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대전에 출품하였고 입선하였다. 자신감이 생기고 스스로

《빈자(貧者)에게 바치는 헌사》를 통해 선보였다. 호평을 많이 받은 전시였다. 이듬해 2013년 10월, 작가라고 생각한 시점이었다. 그는 2006년 다시 한번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에도 초청받아 세계적인 커다란 결정을 내린다. 25년간 그리던 동양화를 그만두고 서양화로 전환하는 것. 수묵화를 넘어서

작가들과 함께 자신의 작품을 선보였다. 그 전시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가 났다. 그는 다양한 재료와 낯선 색감으로 자신만의 새롭고 독특한 조수석에 앉아 있었고, 당시의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림을 그리고 싶은 열망이 생겼다.

시간이 지나 깼을 때는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가 이젤 앞에서 작업할 때 걸레를 빨고, 나무가 떨어지면 쓸어주고, 무명실을 꼬아주는 정도가 가족들이 도와주는 일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누군가의 도움으로 완성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그의 손은 상처가 많고, 투박하고, 거칠다. 핀으로 자기만의 암호를 만들며 표시하는데, 수백 번 찔리기도 한다. 붓 대신 손가락으로 물감의 농도를 맞추고 색을 칠하기에 손은 얼룩덜룩하다. 손끝으로 실과 핀

나무껍질: 주로 봄에 산에서 가져온다. 다른 계절에는 나무껍질이 젖기도 하고, 잎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나무껍질은 구하기가 어려워 아껴 사용한다.

무명실: 한 줄로 된 얇은 무명실은 스케치할 때 사용한다. 두께감이 필요할 때는 꼬아서 두껍게 만든 무명실을 이용한다. 각기 다른 두께의 무명실은 작가의 어머니께서 꼬아 놓는다.

청바지: 무명실 위에 목공풀을 이용해 청바지를 붙인다. 청바지 위에 흙과 나무껍질이 잘 붙는다.

핀: 위치뿐만 아니라 방향, 물감의 농도, 색깔, 각도 등을 표시하기 위해 이용한다. 한 작품에 핀 백 개가 꽂히기도 하지만 작가는 모든 핀의 자리를 다 외운다.

14쪽

청바지와 나무껍질을 붙이고, 문지르며 그는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스스로 다독이고, 아름답고 편안한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그림에 생각과 감정이 그대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작업실에서는 䢬시각 장애인이 되고 엄청 답답했어요. 한동안 삶을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덕분에 편안한 정리하려고 애를 쓰기도 했고요. 그러다 그림을 그리기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시작했는데 제가 봄을 그리고 있더라고요. 봄은 모든 생명에게 새로운 시작이잖아요. 새싹도 나고, 꽃도 피어나고, 생동감도 있고요. 그래서 제가 봄을 좋아하고 찾나 봐요. 희망인 거죠. 저도 장애인이지만 더 힘든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에게 희망을

䢬동양화로 그림을 시작할 때 화실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클래식을 들었어요. 음악을 좀 더 잘 듣고 싶어 좋은 스피커를 찾기 시작했고요. 아주 비싼 스피커를 구매해, 클래식 곡들을 거의 외우다시피 전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봄을 택하게 자주 들었어요. 좋은 스피커를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된 거죠.䢭

사고 난 이후로 팔아버렸어요. 이제는 그저 음악을 들을 수 있음에 감사해요. 지금 제게 욕심이라면 그림뿐이죠.䢭

자연은 무엇이든 그대로 받아들인다. 햇살이 내리쬐면 햇살을, 비가 내리면 비를 온전히 맞이한다. 그리고 내려놓을 때가 되면 내려놓는다. 자연의 받아들임과 내려놓음, 매 순간 찬란함을 그는 전하고 싶다.

긴 시간을 내어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준 박환 화가에게서 여러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음악과 스피커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명랑한 청년의 모습이, 작업과 작업 방식에 䢬작년에 방송 촬영으로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가 있는 관해 설명할 때는 진지한 예술가였다. 삶에 관해 곳에 갔어요. 천연기념물이라 사람들이 들어가지

이야기할 때는 무엇이 중요한지 아는 사람의 진심이 못하도록 막아두었는데, 방송 촬영으로 들어갈 수 느껴졌다. 그리고 한 마리의 검은 새가 그려졌다. 상처 있게 관계자 허락을 받았어요. 들어가서 만져보니까 입은 날개와 심연의 눈을 가지고 어둡고 검은 밤의 빛 여러 그루인 줄 알았는데 한 그루에서 가지와 줄기가 속으로 자유롭게 날아가는 새*. 그에게 빛은 그림이었다. 갈라진 거더라고요. 땅에 은행잎이 얼마나 많이 떨어졌는지 푹신푹신했어요. 그때 나무를 만지고 바닥을 밟으면서 䢮아, 그래 이거야!䢯 하고 가슴이

박환 화가는 어떻게 표현할지, 무엇을 전할지를 고민하며 이젤 앞에 앉는다. 보이는 게 전부인 시각 미술에서 찌릿한 느낌을 받았어요. 가을이 되면 은행나무는 시력을 잃고 절망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볼 수 노랗게 물들며 최고의 시절을 맞이하죠. 그런데 그때 없지만, 사람들에게 자신이 찾은 희망을 보여주기를 잎을 땅에 떨어트리지 않으면 얼어 죽어요. 봄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다 내려놓는 거예요.䢭

선택했다. 어둠 속에서 자신만의 작업에 몰두했고, 그만의 방법을 찾았다. 쉽지 않았다. 우는 날도, 화가 나는 날도 많았다. 그럴 때 그는 자연을 생각한다. 한 그는 예전보다는 덜 힘들지만, 여전히 절망감이 이따금씩 자리에 버티며 서 있는 은행나무와 고목나무를. 봄을 밀려온다고 고백했다. 그럼에도 견뎌낼 수 있는 건 그림 위해 자기 자신을 내려놓는 나뭇잎을. 모든게 떨어지면 덕분이라고. 그림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보다 자신의 비로소 꽃을 피워내는 계절을. 작품으로 희망을 보는 사람들을 더 생각한다. 그는

‹경이로운 삶›, 2022, 117×91cm

* The Beatles, blackbird, 1968

15쪽

이 쪽은 글자로 옮기지 못했습니다. 이북에서 보기

16쪽

INTERVIEW 1

포토그래퍼 이종희 에디터 권용식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풀

나풀나풀

도라 최유라 플로리스트로 활동하다 현재는 꽃채락 농원을 운영 중이다. 청년 농부 모임인 ‘봄내농부’ 회장으로

데이 김소현 맞벌이 농부 채널을 운영 중인

서로 이성희 사회복지 관련 분야에서 오래 일했고 유튜버(구독자 3천명)이며 시루에 춘천사회혁신센터에서 시민참여 농원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팀장으로 근무하다가 귀농하여 활동 중이며 좋아하는 풀은 꽃마리. 좋아하는 풀은 토끼풀. 어릴 적 자주 서로농원을 운영 중이다. 생명력이 끈질긴 게 자신을 닮아서다.

보던 풀이고, 추억이 많은 풀이라 좋아한다.

좋아하는 풀은 쇠비름. 풀의 쓸모를 처음 발견한 풀이라 특별하다.

인터뷰 전날 비가 왔다. 밤까지 비가 그치지 않아 걱정이었다. 유리창에 부딪히는 빗방울을 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농부들에게 봄비는 반가운 손님이라는 걸. 도라의 농원에서 만난 농부들에게 인사했다. “반가운 봄비가 왔네요.” 세 사람이 활짝 웃었다.

17쪽

풀의 높이에서 바라보기

나풀나풀이란 이름이 인상적이에요. 이름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져요. 데이 이름 자체가 산뜻해서 좋아요. 나풀나풀에는 저희의 슬로건인 䢮더 나은 세상을 위한 풀䢯이란 의미도 있고, 나물과 풀의 합성어이기도 해요.

나풀나풀은 어떻게 시작했나요? 도라 밭에서 풀을 뽑다가 우연히 풀 인형을 만든 적이 있어요. 풀을 이용해 무언가를 할 수 있겠다 생각이 들었고, 나풀나풀에 대한 힌트를 얻었던 것 같아요. 서로 저희 모두 풀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퍼머컬처*를 배우기도 했고 환경에도 관심이 많았고요. 특히, 춘천사회혁신센터의 비영리스타트업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대화를 조금만 나눠봐도 세 분의 합이 무척 좋다고 느껴져요. 서로 어떻게 만났나요? 서로 저와 데이는 퍼머컬처 네트워크 강릉 출범식에서 만났어요. 데이와 도라는 이미 봄내농부에서 활동하고 있었고요. 농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혼자 농사를 지으면 외롭고 쳐질 것 같아 봄내농부에 가입하게 되었어요. 커뮤니티 첫날, 도라가 마늘 꽃다발을 들고 온 게 인상 깊었어요. 보통 장미나 튤립 같은 꽃만 눈으로 보고, 채소나 과일은 단순히 먹는 것으로만 생각하잖아요. 마늘의 꽃으로 만든 다발이라니, 너무 신선했죠.

나풀나풀은 어떤 일을 하는 단체인가요? 데이 나풀나풀은 들풀의 가치와 쓰임을 찾는 비영리스타트업이에요. 풀을 중심으로 기후 위기에 대항하여 대안적인 활동을 제안해요. 서로 시민들이 일상에서 풀을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요. 시민들과 함께 풀 산책을 하고 풀차를 마시며 풀로 압화와 책갈피를 만드는 과정을 함께 하는 䢮풀 가이드 투어䢯도 진행하고요. 지난겨울에는 공지천 강변에 있는 들풀을 채취하고 압화해서 들풀 타로카드도 만들었답니다. 또 들풀을 이용해 레시피 개발도 해요. 도라 로컬 중의 로컬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저는 춘천에서 잘 자라는 들풀 중 소리쟁이를 즐겨 사용해요. 소리쟁이로 시민들과 풀 샴푸를 만들기도 했어요.

소리쟁이라는 풀이 있는지도 몰랐어요. 풀의 활용은 무궁무진한 것 같아요. 도라 풀은 직접 제가 쓸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소리쟁이를 만병통치약처럼 쓰고 있어요. 제가 먹어보고 효과를 보니 그만큼 확실한 게 없더라고요. 아이에게 염증이 생겼을 때도 사용했답니다. 얼마 전에는 들에서 곰보배추를 뜯어와서 먹어봤는데 쌉쌀하면서도 맛있더라고요. 몸에도 좋다니까 금상첨화죠.

나풀나풀의 프로그램이 무척 다양해요.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는지 궁금해요. 서로 아무래도 풀에 대한 관심이 많다 보니 식물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접하게 돼요. 또 SNS에 들어가면, 알고리즘 탓에 꽃과 관련된 콘텐츠가 많이 보이더라고요. 풀에 바로 접목이 가능하다 보니, 도움을 많이 얻는 편이에요. 도라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분들의 피드백을 참고하여 실험적으로 운영하면서 보완하고 개선해가는 중이에요. 프로그램 참가자분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시는 경우도 왕왕 있고요.

* 퍼머컬처(permaculture)

땅에서 몇십 년을 농사를 지으며 자연과 함께 공존하는 농업 방식을 의미. 모리슨은 퍼머컬처의 기원을 한국으로 보고 있다. 연작장해 없이 같은 삶 전반에서 지속가능한 문화를 만드는 캠페인. 이 개념을 처음 정립한 빌 지속가능한(permanent) +농업(agriculture)의 합성어. 농업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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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풀나풀에서 일하면서 기뻤던 순간이 있나요?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공유해주세요. 데이 일하면서 점점 자존감이 높아져요. 저희 활동을 알아보시고 주변에서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거든요. 저희 활동이 환경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더 기쁘고요. 서로 사람들이 풀에 대해 알아가는 게 좋아요. 특히 아이들도 배울 수 있어 좋고요. 얼마 전에는 䢮풀레이 탐사대䢯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도라 활동하면서 점점 많은 사람을 알게 되어 좋아요. 많은 사람이 풀과 연결되어 새로운 일이 만들어지는 게 신기하고 즐거워요.

한편으로는 일이 즐거울 수만은 없잖아요. 반대의 감정이 들었던 적이 있나요? 도라 저는 요즘 밭에서 풀을 뽑는 게 마음이 쓰여요. 모든 게 생명이고 저희가 추구하는 게 또 풀이니까요. 원래도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영영 못 쓸 것 같아요. 데이 나풀나풀에서만 일하는 게 아니라서 힘에 부치긴 해요. 하지만 예전보다 훨씬 즐겁게 일하고 있어요.

풀의 세계가 무궁무진한 만큼, 나풀나풀이 어떻게 성장할지 기대돼요. 도라 䢮풀 전문가䢯로 거듭나고 싶어요. 풀에 대해 배울 곳이 거의 없는데 저희가 더 배우고 연구해서, 전문적인 지식을 원하는 분들에게도 교육을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데이 나풀나풀이 시민과 농장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농부들이 시민들을 대상으로 풀 가이드 투어를 할 수 있게요.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서로 현대사회는 서로 이해하기보다 차별하는 분위기가 만연한 것 같아요. 풀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인데요. 䢮잡초䢯라고 부르며 뽑아내야 할 것으로 생각하죠. 사람들이 나풀나풀을 통해 다양한 풀의 존재를 알아 간다면 좋겠어요. 풀에 대해 이해하는 과정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더 다양하고, 알록달록하게 만들어주길 바라요. 기후변화 위기에 대해서도 대안적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고 싶고요. 이런 것들을 아우르는 단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스타트업 구성원들은 직책을 넘어서서 무척 다양한 일을 공유한다고 들었어요. 각자 나풀나풀 안에서 어떤 일을 하시나요? 도라 주로 䢮서로䢯가 아이디어를 내면, 제가 실행하고 세부적인 계획을 짜고요. 홍보와 디자인은 䢮데이䢯가 합니다. 수직적인 관계를 좋아하지 않아서 실질적인 대표를 두지 않고, 기간별로 돌아가면서 하고 있어요. 저희를 소개할 때, 재미로 나풀나풀이라는 나라를 만들었다고 이야기하곤 해요. 그래서 저는 문화관광부 장관, 䢮서로䢯는 기획재정부 장관, 䢮데이䢯는 외교부 장관이라고 부릅니다. 데이 다음 달에 제가 대표가 되는데 없애버리려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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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에서 시작한 마음

구성원들의 활동명도 특별해요.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도라 꽃을 좋아해서 꽃 농사를 짓고 있는 도라라고 합니다. 주머니에서 이것저것 나온다고 해서 만화 캐릭터 䢮도라에몽䢯의 이름을 따와 구성원들이 지어준 활동명이에요. 서로 서로서로 도움을 주는 농사를 짓고, 앞으로도 짓고 싶은 서로라고 해요. 상생 식물들이 함께 사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고 농사를 시작해서 서로라고 지었답니다. 데이 조경수를 기르고 있는 데이라고 합니다. 기후 위기에 대응해서 밭의 일부 면적을 생태 텃밭으로 만들고 있고 앞으로도 늘려갈 예정이에요. 데이는 풀네임은 홀리데이예요. 지구에게 휴식을 주자는 의미로 지었어요.

구성원 모두 각각의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농사를 선택하는 일이 개인적으로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처음 이 일에 관심을 두고, 일을 결심한 계기가 있을까요? 도라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5남매 중 농사를 물려받을 사람이 저밖에 없었어요. 또 직접 기른 농작물을 먹고 싶기도 했고요. 서로 부모님이 농사를 계속 지으셔서 어릴 때부터 친근하게 다가왔어요. 서울에서 일할 때도, 봄이 시작되는 싱그러움에 마음이 밭에 있었던 것 같아요. 늘 귀농하고 싶었고 작년에 드디어 원대한 꿈을 이뤘어요. 데이 카페에서 일을 오래 하면서 스트레스가 심했고 주말에 아이들과 놀아줄 수 없다는 게 늘 마음에 걸렸어요. 코로나를 겪으면서 카페가 어렵기도 했고, 영농지원금을 준다는 이야기에 시댁 아버지 밭을 물려받아 조경수 농사를 짓게 되었어요.

어떤 농사를 짓고 작물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해요. 서로 저는 토마토와 바질 농사를 지어요. 퍼머컬처 수업에서 상생 식물에 대해 배웠는데 서로 도움을 주며, 살아가는 게 인상 깊더라고요. 토마토랑 바질이 함께 잘 산다고 해서 심었는데 생각보단 잘 안 자랐어요. 맛만 좋아요.(웃음) 도라 저는 수십 가지 꽃을 길러요. 꽃을 좋아하고 플로리스트로 일한 경험으로 꽃을 선택했어요. 제 농장에서 어떤 꽃이 잘 자라고 예쁜지, 실험적으로 심어보고 키우고 있어요. 데이 저는 조경수 농사를 짓고 있어요. 처음에는 손이 많이 안 갈 것 같아서 선택했죠. (웃음)

농사의 즐거움과 보람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도라 아이에게 䢮이거 엄마가 농사지은 거야䢯라고 말하며, 직접 기른 농산물을 먹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껴요. 서로 맞아요. 저도 제가 키운 농작물로 저를 채우는 게 좋아서 시작했는데 제가 정성껏 기른 작물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눌 때 무척 기뻐요. 예전에 허브 가격이 좋을 때, 䢮온라인 쇼핑몰에 입점해야겠다䢯 같은 생각도 한 적이 있는데, 이제는 멀리 보내는 것보다 내가 키운 농산물이 지역을 먹여 살리는 마음으로 이 안에서 소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데이 저도 덧붙이면, 아버님이 기르신 단풍나무들이 오래되어 농장이 숲처럼 조성되어 있어요. 예전에도 고양이나 새들이 찾아왔었는데 얼마 전에는 고라니, 너구리도 놀러 오더라고요. 동물들이 먹을 게 없어서 숲에서 내려오는 건 안타깝지만, 제가 만든 농장에 동물들이 찾아오는 게 반갑고 돌보고 있단 마음에 기뻤어요.

함께 일하는 분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데이 이분들과 헤어질 생각이 없어서 기억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모두 와- (웃음) 용식 우문현답이네요.

‘풀로 풀(full). 풀로 세상을 채우자’는 이야기를 하며 행복해하는 그들을 보니 나도 풀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봄이 마중 나온 요즘, 길에 자라는 작은 풀들이 허투루 보이지 않고, 소중해 보인다. 이름을 알고 싶고, 어떤 쓰임이 있는지 궁금하다. 풀과 만나고 싶다. 풀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나풀나풀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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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2

포토그래퍼 이종희 에디터 이인혜

이곳

어디엔가 있을 이상향을

읊어주는 화가

이광택

이광택 1961년 강원도 춘천 출생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서양화 전공 중국 사천 미술학원 유화과 대학원 졸업 40회 이상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 참여 저서『내 마음속의 이상향』, 『주는 즐거움, 받는 기쁨』등 고향 춘천의 자연을 평생의 벗으로, 영원한 영감으로 삼아 안빈낙도의 삶을 그림으로 옮기는 화가

부와 명예, 성공보다는 나만의 세계를 아름답게 그려내는 것이 목표인 화가가 있다. 어린 시절 마음속에 저장해 둔 고향의 풍경을 그리는 화가. 위로의 편지를 그림으로 써내는 화가. 황폐한 어딘가를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화가, 이광택이다. 봄 햇살로 반짝이는 춘천예술촌에서 오늘도 삶의 이상향을 일상으로 그리고 있는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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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소년 이광택이 ‘그림을 그려야겠다’라고 마음먹었던 순간을 기억하시나요? 저는 어린 시절 삼천동, 현재 빙상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았어요. 당시 6살, 7살 때인 것 같은데 아버지가 저를 리어카에 태워서 밭으로 데리고 다니셨죠. 새벽녘 밭으로 출근하며 보았던 몽환적인 경치와 퇴근길 리어카에 앉아서 보았던 석양이 잊히질 않아요. 에메랄드빛 강물은 부드럽게 흘러가고, 깨끗한 강변 모래사장에 토끼풀이 자라있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았거든요. 그토록 아름다운 풍경을 어떻게 안 그리겠어요?

직업으로 ‘화가’를 선택한 건 언제였나요. 고등학교 때 잠시 고고학자, 역사학도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어요. 그러나 곧 마음을 굳히고 서울대 미대로 진학했습니다. 공부를 마치고는 바로 고향으로 돌아왔어요. 춘천에서 그림을 그리고 싶었거든요. 당시 대학교 동창들은 모두 반대했어요. 미술 활동에 대한 정보도, 기회도 서울에 많은데 굳이 시골로 가겠다는 저를 이해하지 못했거든요. 1년 안에 서울로 돌아올 거라고 장담하던 친구도 있었고요. 그런데 참 역설적이죠? 대학 동기 25명 중에 제가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어요.

‘예술은 가난하다’라는 생각이 팽배했던 80년대, 그럼에도 전업 작가의 길을 선택하셨어요. 돈이 되지 않는다는 건 알았어요. 그럼에도 이 길을 가기로 했고 스스로와 약속했죠. 내 명함에 䢮화가䢯라는 직업 외에 다른 단어는 넣지 않겠다. 그 약속은 지금까지도 지키고 있어요. 태백산맥 저자 조정래 선생님이 문학도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죠. 䢬두 가지만 각오해라. 평생 가난하게 살 각오와 최선을 다했다면 실패해도 좋을 각오. 이 두 가지 각오가 있다면 문학계에 뛰어들어도 좋다.䢭 저 역시 비슷한 각오를 했던 것 같습니다. 예술을 선택하면서 인생은 담보로 걸고 대신 다른 것에 의미를 두었어요. 육체는 사라져도 제 작품이 남아,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다면, 예술가로의 삶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요.

공모전에 한 번도 참여한 적이 없다고 들었거든요. 이유가 궁금했는데, 방금 말씀해주신 작가님의 각오와도 연결이 되는 것 같아요. 대학교 때 선배, 후배들이 공모전에 참여하는 걸 보면서 느낀 점이 많았어요. 공모전의 특성, 심사위원의 취향에 맞추려고 노력하다가 나의 화풍이 바뀌진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고요. 미술은 경쟁이 아니거든요. 순수하게 오로지 나의 정신 하나로만 예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의 개성을 지키고 싶었달까요.

대학 졸업 후, 유학기간을 제외하고는 줄곧 고향인 춘천에서 작품활동을 해오셨다고요. 그래서인지 작가님의 작품에서 춘천이 더 잘 보이는 것 같아요. 다른 지역에서 전시회를 할 때 한 관객이 묻더라고요. 혹시 䢬강원도 화가세요?䢭 하고요. 어떻게 아셨냐고 했더니 제 그림 속에 산이 많아서 물어봤다고 하더라고요. 그림이란 건 환경이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제가 춘천에서 어린 시절 봤던 뭉게구름 같은 안개, 가로등 불빛에 그림자가 엉켜있던 플라타너스 길, 공지천에서 바라봤던 중도 마을의 반짝임. 그 모든 풍경이 제 작품에 녹아 있는 것 같아요. 특히 곡선이 많았던 춘천의 옛 골목들을 그릴 때에는 고향에 대한 사랑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불과 10여 년 전에 〈골목풍경전〉을 했는데 그때와 지금은 또 70% 이상 다르거든요. 발전 속도는 엄청나게 빠르고, 붙잡고 싶은 향수는 많고, 그래서 춘천의 정취를 조금이라도 더 그림에 담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작가님의 그림은 자세히 보면 볼수록 재미가 있어요. 작은 집과 안락한 모습의 가족을 찾는 재미요. 유독 이런 그림이 많은데 이유가 있을까요? 중학생 때 비가 오는 날에는 공지천으로 낚시를 나갔어요. 우산을 들고 홀로 서서 빗방울이 강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죠. 물안개가 펼쳐지는 풍경을 감상하면서요. 그때부터 䢬이렇게 평화로운 곳에 집을 한 채 짓고 여생을 살았으면 좋겠다.䢭라는 꿈을 꾸게 되었어요.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고 시골에서 평화롭고 안락하게 사는 삶. 그런 삶을 동경하기 때문에 제 그림에도 표현되는 것 같아요. 안빈낙도의 삶을 그림으로 그리고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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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그림처럼 춘천사람들에게도 이 도시가 안빈낙도, 유토피아였으면 좋겠어요. 그렇다면 ‘춘천화가’로서 갖고 있는 사명감이랄까요. 남다른 마음도 있으신가요? 고향에 보은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내가 그린 그림을 춘천 시민에게 가장 먼저 보여드리고 싶어요. 고향에서, 고향의 영감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좋은 작품을 서울에 먼저 선보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좋은 작품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그 작품을 이웃과 나누는 것. 지역 화가라면 해야 하는 일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소시민의 삶을 함께 살아가면서 그들의 삶과 시간, 공간을 펼쳐내는 거죠. 누구보다 가장 치열하게요.

작가님은 그림 그리는 일을 통해 세상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가요. 젊었을 때는 저도 䢮분노䢯라는 감정으로 그림을 많이 그렸어요. 현실의 비합리성, 정치 사회적 문제, 분단 현실 같은 시대의 영향을 받아 䢮분노䢯에 공감하고 그걸 작품에 활용했죠.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다른 감정들이 커지더라고요. 슬픔보다는 기쁨, 분노보다는 연민이요. 웃으면서 살기에도 짧은 인생인데 행복한 감정을 더 많이 가지는 게 좋지 않겠어요? 그래서 그림에 긍정적인 감정들을 표현하고 있어요. 세상이 제 그림으로 조금이라도 아름다워지길, 힘든 사람들에겐 위로가 되길 바라면서요.

만약 그림이 ‘일’이 아닌, ‘취미’였다면 지금과 무엇이 가장 달랐을까요. 취미로 했다면 마음가짐이 달랐을 거예요. 치열함이 덜했겠죠. 그런 마음이 몇십 년 동안 쌓였다면 화풍에도 영향을 미쳤을 거고요. 직업으로 선택했기 때문에 생겨난 절실함이 지금의 화풍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가의 생애는 매일이 절실한 전투거든요.

삶이 전투라고 하셨는데, 삶에 있어 ‘그림을 그리는 일’은 어떤 의미인가요? 나에게 일이란 䢮생명䢯 그 자체예요. 붓을 더 이상 잡지 못한다면 살아 있는 식물인간과 다를 게 없을 거 같아요. 독립운동가이자 소설가 김학철 작가가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하게 되자 곡기를 끊었다죠. 그 심정을 이해할 정도로 저에게 일은 䢮생명䢯 그 자체입니다.

작업실 곳곳에 작은 그림들이 눈에 띕니다. 작가님만의 작업 방식이 있을까요? 드로잉 연습을 위해 15년 간 매일 그림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대부분 일기에 첨가되는 그림이 되는데요. 그 이유는 화가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드로잉 실력이 부족한 것 같아서죠. 그리고 책 읽는 것을 무척 좋아해 일기를 쓰듯 작품에 대한 글도 씁니다. 이것을 엮어서 신문사에 연재도 하고 직접 책을 내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문학작품을 캔버스에 옮기는 회화 작업을 했죠. 소설가 김유정 작품을 모티브로 한 그림전시 〈내 사랑 김유정 展〉을 열기도 했고요. 앞으로도 김유정과 이효석 등 토속적 정서가 담긴 작품들을 화폭으로 옮기는 작업들을 이어갈 예정이에요. 그 분들의 섬세한 문체와 표현, 감성들을 대형 화폭 위에 회화로 나타내는 거죠. 언젠간 이어서 다시 작업 할 예정이에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2023년 5월 8일부터 20일까지 서울 북촌에 있는 갤러리 담에서 개인전을 개최할 예정이에요. 전시회가 끝나면 대작을 다시 진행할 예정입니다. 춘천예술촌에 들어온 이유는 널찍한 작업실에서 큰 작품을 그리기 위해서예요. 그래서 이곳에 머무는 동안 최대한 대작에 집중해 보려고 합니다. 기존과 다른 의미가 담긴 작품도 그려볼까 구상하고 있고요.

〈꽃향기 흐르는날〉, 2022, 61×7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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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 시골집〉, 2020, 50×61cm

이광택 작가의 작품은 읽는 재미가 있다. 지독하리만큼 강한 지역에 대한 애착과 문학적 탐구. 작가는 끊임없이 붓으로 이야기를 집필한다. 화려한 색감과 풍부한 터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처럼 그가 지키고자 하는 생명은, 그가 늘 그리워한 고향의 아름다움은 이토록 눈이 부시다.

작가의 그림을 통해 우리는 안도할 수 있다. 안빈낙도의 삶은 멀리 있지 않다는 걸 깨닫거나, 깨알같이 이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는 너와 나를 발견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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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T-PEDIA

일러스트 한선주 에디터 이인혜

Love your work, Work your magic!

일 [명사] 1 무엇을 이루거나 적절한 대가를 받기 위하여 어떤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몸을 움직이거나 머리를 쓰는 활동. 또는 그 활동의 대상. (일을 마치다) 2 어떤 계획과 의도에 따라 이루려고 하는 대상. (일을 꾸미다) 3 어떤 내용을 가진 상황이나 장면. (지난 일을 돌이켜 보다)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지금, 일 하고 있어!’라고 대답하는 상황의 대부분은 아마 국어사전 속 첫 번째 의미의 ‘일’이지 싶다. 대가를 받기 위해 움직인다는 건, 결국 생계를 꾸려 나갈 수 있는 수단으로써의 직업을 갖는다는 것이다. 비슷한 우리말로 밥그릇, 밥벌이, 일자리가 많이 쓰인다. 이 일자리는 일정기간 계속 유지해야 하는 ‘직업’이 될 수도 수익을 위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만족하는 포인트도 저마다 다르다. 일의 형태, 보수, 삶과의 균형 등 좋은 일자리의 기준 역시 제각각이다. 그렇다면, 이 도시의 일자리는 어떤 모습일까? 때로는 예민하기도 한 소도시의 일자리에 대한 이야기. 객관적인 춘천시의 지표와 사람을 구하는 곳, 자리를 구하는 사람에 대한 정보를 통해 소도시에서의 삶을 천천히 계획해보는 것도 방법이지 않을까?

*상용근로자: 안정적으로 고용되어 있는 근로자

* 시간 선택제 일자리: 육아와 퇴직준비, 돌봄, 학업 등으로 인해 근로시간을 줄여 시간 선택제로 일하는 것

일하고 싶은 당신을 위해

춘천시의 고용률은 65.8%이며, 남성 > 여성 > 청년 > 65세 이상 1 순이다. (2022년 기준)

2 상용근로자* 수는 8만 3,800여 명으로 코로나19가 심했던 2020년 이후 계속 증가하고 있다. 아르바이트 포함 임시 일용 근로자 수는 2만 7,900여 명. 최근 2년간 3만 명까지 증가하는 등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다. (2022년 기준) 3 춘천시 ‘일자리지원센터’에선 워크-넷(고용노동부 취업정보사이트)과 연계해 일자리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 온라인 사이트에 등록된 춘천시 채용공고는 약 640건 정도다. (2023년 3월 말 기준)

4 등록된 채용공고 중 시간 선택제 일자리*는 약 30건 정도로, 주로 요양보호사 또는 복지관 조리사, 운전기사, 보육교사, 미화원 등의 노동 형태가 대부분이다. 5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춘천시는 ‘서비스업’과 ‘중소기업’ 근로자 비중이 높은 편이다.

6 청년 일자리 정보를 제공해주는 ‘춘천시 청년취업포털’ 사이트가 있었으나, 현재 리뉴얼을 이유로 운영을 중단한 상태다. 시니어 일자리 정보는 ‘(재)춘천지혜의숲’ 사이트에서 제공하고 있다. 7 매달 19일, 춘천시청에서 ‹일구데이› 행사가 열린다. 구인업체와 구직자간 현장면접이 진행되며, 일자리 상담 또는 취업기회를 제공해준다고 한다.

8 프리랜서의 형태로는 글을 쓰는 작가, 디자이너, 문화기획자, 전문 진행자, 영상 제작자 등 다양하다. 지역에선 대부분 ‘아는 사람’을 통해 일자리를 구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엔 협업 팀을 구성하거나 다양한 전문가 매칭 플랫폼을 통해 일을 하기도 한다. 9 단기 일자리를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한 유서 깊은 플랫폼.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춘천 인력사무소’를 검색하면 약 40개 정도의 인력사무소가 검색된다. 대부분 ‹OO인력›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으며 인력공급, 고용알선이라는 설명이 덧붙여져있고, 건설현장, 가정부, 파출부, 간병인 등 분야별로 사무실이 존재하기도 한다. 이처럼 다양한 현장에서 꼭 필요한 인력들이 도시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다.

10 무료로 배포되는 생활정보신문 ‹교차로›, ‹벼룩시장›에선 여전히 부동산과 자동차 매매, 구인/구직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아기돌봄’, ‘대학생 공부지도’, ‘모든 것 알려드림’, ‘배우면서 일할 분’ 등의 단어가 정겹다. 길지 않은 짧은 구인구직 문장이 때로는 궁금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신문에 밑줄 그으며 일을 구하는 장면이 낯설어진 요즘, 다시 들여다본 신문엔 사람을 원하는 이들의 메시지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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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에서 생긴 일

통계와 수치로는 담아 낼 수 없는 ‘일(job)’에 얽힌 사소한 이야기들. 춘천이기에 더욱 소중하고 매력있는 직업들이 생각보다 꽤 가까운 곳에 있다.

2. 전국 10명 미만의 ‘카누 크래프터’

1. 영서지역 유일한 호랑이를 돌보는 ‘사육사’

1 춘천에도 사육사가 있다. 1975년 개장한 육림랜드는 놀이동산과 동물원을 함께 운영해 왔다. 영서지역의 유일한 호랑이 ‘대호’도 육림랜드에 살고 있는데 3명의 사육사가 돌보는 중이다. 육림랜드는 강원대학병원 야생동물구조센터와 협약을 맺고, 장애가 있어 자연방생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수리부엉이와 삵, 독수리 등의 동물도 함께 보호하고 있다. 사육사 꿈나무들이 찾아오면 다정한 진로상담도 가능하다고 하니, 동물들의 아빠가 궁금하다면 봄날의 육림랜드로 나들이 떠나보는 건 어떨까? 2 소양강 물길을 따라 산책하는 카누를 보고 있노라면, 춘천은 레저조차 낭만과 우아함이 넘친다는 걸 알게된다. 이 우아한 배를 만드는 사람은 과연 누굴까? 바로 ‘카누 크래프터’라 불리는 이들로, 전국에서 10명 미만으로 존재한다고 한다. 운이 좋게도 호반의 도시 춘천에는 카누 크래프터가 있다. 향기로운 나무로 아름다운 배를 만들어 춘천에 띄우고 있는 사람들. 해외에서 카누를 사러 찾아올 정도로 그 실력도 뛰어나다. 대한민국 카누 제작을 이끌고 있는 귀한 전문가를 만나고 싶다면 춘천의 카누제작학교 또는 카누 제작공방 〈KANOA〉를 두드려보자. 3 중앙시장 끝자락, 아주 유명한 경양식집 옆에 그 만큼 오래된 공구가게가 있다. 간판 한 켠에 ‘닭갈비 다이 제작’이라고 쓰여져 있는 〈보성종합공구〉이다. 사장님은 38년간 닭갈비 전용 철판을 손수 만들어 온 ‘철판 전문가’다. 원하는 사이즈, 형태를 주문하면 직접 만들어 주기도 하고, 공장과 협력해 대량 생산을 진행해 주기도 한다. 특별한 점은 또 있다. 외관상 평범한 철물점으로 보이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보면 별천지가 따로 없다. 입구에서부터 즐비한 피규어와 장난감들이 가게 안 가득이다. 닭갈비 철판 전문가의 피규어 매장이라니, 이 도시엔 흥미로운 사람들이 참 많다.

4. 정원도시 식물들의 의사 ‘시민정원사’

3. 춘천의 또 다른 명물 ‘닭갈비 철판 전문가’

5. 꿈의 직업 ‘레고디자이너’

6. 24시간 댐을 지키는 ‘댐 안전감시단’

4 ‘찾아가는 반려식물병원’이라고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지난해 봄, 신중년과 노년층으로 구성된 ‘시민정원사’들이 이 동네, 저 동네에 모습을 드러냈다. 춘천지혜의숲 시민정원사들은 주로 주민들이 키우는 반려식물의 상태를 점검해주고, 식물 특성에 맞게 흙을 배합해 분갈이도 해준다. 시민정원사들은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설렘으로 가득했고, 생기를 잃은 식물은 활력을 되찾았으며 조용했던 동네가 북적였다. ‘시민정원사’라니, 정원도시 춘천에 어울리는 얼마나 멋진 직업인가. 게다가 요즘엔 ‘가드닝’, ‘반려식물’, ‘식집사(식물+집사)’라는 단어가 익숙할 정도이니. 올해에도 시민정원사 양성 과정이 운영된다고 하니, 춘천시 홈페이지를 통해 정보를 얻으면 좋겠다. 5 2022년 레고랜드가 문을 열며 춘천의 새로운 일자리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그중 레고랜드의 레고 제작, 유지, 보수를 담당하는 ‘레고 디자이너’는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꿈의 직업이다. 레고랜드의 아기자기한 작품을 제 손으로 만드는 것이 출근해서 하는 ‘일’이라고 하니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레고 디자이너 외에도 레고랜드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채용을 주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채용 홈페이지에 적힌 문구가 인상적이다. ‘Love Your Work, Work Your Magic’ 6 어릴 적 우리를 불안에 떨게 했던 소문이 떠오른다. ‘소양강댐이 무너지면 춘천이 잠긴다’였던가. 소양강댐, 춘천댐, 의암댐 3개의 댐이 자리하고 있는 춘천시엔 이 댐과 관련된 직업이 있다. 바로 ‘댐 안전감시단’이다. 밤낮으로 댐을 지키는 사람들. 기상에 따라, 수량에 따라, 혹은 홍수나 지진에 따라 달라지는 댐의 상황을 상시 지켜보고 비상상황 발생 시 즉각적인 조치에 나선다. 커다란 수문 뒤 숨어있는 그림자처럼 보이진 않지만 항상 그곳에 있는 사람들 덕분에 호반의 도시 춘천은 오늘도 안전하고 아름답게 지켜지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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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K

포토그래퍼 김효주 에디터 정승희

조용하고 말이 없는 것들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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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면 마음이 들뜨고, 설렌다. 동시에 괜스레 움츠려지기도 한다. 모든 게 다 피어나고 밝아지는데 나만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오색찬란한 세상에서 나만 흑백인 기분. 이럴 때는 숨고 싶다. 어릴 때부터 스스로 사라지는 방법엔 자신 있었는데 그건 바로 도서관에 가는 것이다. 책을 읽을 때만큼은 누구도 말을 걸지 않고, 그곳엔 각자만의 여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서관이 크면 클수록 숨기에 좋은데, 춘천에서는 춘천시립도서관*이 가장 컸다.

따스한 봄날 오후, 문을 열고 들어선 춘천시립도서관은 환한 빛이 가득하다. 천장에 뚫려 있는 커다란 유리창을 통과한 빛이 안을 환하게 비춘다. 도서관 1층 중앙에는 나무계단이 있고, 한쪽에는 도서관 큐레이션 책들이 전시되어있다. 어린이 도서관에는 가장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는 어린이들이 있다.

장난감 도서관과 어린이 도서관 사이에서 만난 ‘다정한 말, 단단한 말’ 보드. 이용객들이 나비엽서에 다정한 말과 단단한 말을 적고 붙일 수 있다. 커다란 보드에 붙여진 글들을 찬찬히 읽는데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쓴 문장들에 뭉클해진다. 어린이들이 작성한 다정하고, 단단한 말을 내 마음에 담아둔다.

“과정만이 있을 뿐이야.”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어.” “너의 날개를 펼쳐.”

도서관 2층과 3층으로 올라가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조용하고, 정적인 공기가 깔리고 책장을 넘기는 소리, 사각사각 적는 소리가 들린다. 서가에서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은 신착도서 코너. 새로 들어온 도서는 어떤 책들이 있는지 살펴본다. 신간 도서 사이에는 출간한 지 오래된 책도 간혹 꽂혀있는데, 누군가 주문한 책이 아닐까 생각하며 괜스레 한 번 더 살펴본다. 그리고는 도서관 서가 사이를 설렁설렁 걷는다. 아무런 목적 없이 걷는 산책처럼 가뿐하다. 오늘은 어떤 책을 만날지 기대감을 품으며 서가와 서가 사이를 걷는다.

도서관의 책은 서점의 새 책과 달리 책 겉표지와 띠지가 모두 벗겨져 있다. 본모습만 드러난 셈인데, 그렇기에 더 신비롭다. 세로로 꽂혀있는 책등의 제목과 저자 이름, 폰트와 얼핏 보이는 디자인, 판형과 굵기만으로 어떤 책인지를 가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얼마나 유명하고 좋은 책인지 알리는 광고가 없다. 누렇게 바랜 오래된 책들과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책이 나란히 놓여있을 때 기분 좋은 편안함을 느낀다. 도서관의 책은 오래되었다고 내쳐지지 않으며 모든 책이 서가에서 동등하게 읽는 이를 기다린다. 책등을 읽으며 걷는 길은 내가 가장 안도할 수 있는 길이다. 나는 혼자지만, 혼자가 아니다. 세상에 이토록 다양한 이야기들이 어서 자기를 읽어달라고 조용히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서가를 돌아다니며 고른 책들을 가지고 자리에 앉아 읽기 시작한다. 이 순간 나는 완벽히 사라진다. 사라진 나를 대신한 자리에 다채로운 이야기가 있다. 그 안에서 웃고, 빠져들고, 공감하고, 찡그린다. 마음에 쏙 드는 문장은 따로 적어두기도 한다.

책을 읽고 실내와 이어진 문으로 나가니 초록의 나무 우듬지가 바람에 살랑살랑 움직인다. 그 풍경을 보면서 스트레칭하는 이가 있다. 나도 뒤에서 몸을 길게 늘여본다. 팔을 늘리고, 다리를 늘린다. 몸을 이리저리 움직인다. 내친김에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과 있을 때도 나는 쉽게

사라질 수 있으니까. 가방을 메고 도서관 주변을 천천히 걷는다. 시립도서관 정문 반대편에는 반원으로 된 공터와 숲속 길이 있다. 숲속 길로 걸어 올라간다. 키가 커다란 나무와 나무 사이에 벤치가 있다. 숲속 벤치에 앉아 있으니 새소리가 더 선명하고, 바람이 더 따스하게 느껴진다. 춘천의 도서관은 자연과 가깝게 있다. 자연 속에 있으니 웅크린 마음이 가벼워진다.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숲길을 따라 높이가 제각각인 계단을 걷고, 부드러운 흙길을 밟는다. 그러다 누군가 만들어놓은 나무 새장과 귀여운 인형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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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시립도서관 주소 강원도 춘천시 우석로 100 운영시간 자료실 09:00-22:00 어린이 도서관 09:00-18:00 휴관일 매주 금요일 휴관

숲길을 따라 도서관 입구로 나오니 국립춘천박물관*으로 향하는 표시판이 보인다. 철제문을 통과하면 박물관 산책로로 이어지는데, 다른 세상에 와있는 기분이다. 과거의 시간이 머문 곳이라 그런 걸까. 도서관 근처보다 조금 더 조용하다. 박물관 입구 기억의 정원엔 무덤 곁에 있던 비석들이 모여있다. 무덤 옆에 불을 두어 빛을 밝혔던 장명등, 죽은 주인의 곁에서 영혼의 벗이 되어준 동자석을 보며 죽음을 기리던 사람들의 마음을 엿본다. 무덤 곁에 있던 석물들 사이 돌길을 걷는데 멀리서 오카리나 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으니 나무 한 그루가 중앙에 있는 작은 공터가 보인다. 작은 공터에는 강아지와 산책하는 가족, 벤치에 앉아 쉬는 연인이 있다. 그리고 중년의 여자 두 분이 자리를 잡고 오카리나를 연주한다. 잠시 오카리나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오랜만에 들은 오카리나 소리는 맑고 청아했다.

그리고 향한 곳은 국립춘천박물관 2층 《창령사 터 오백나한-나에게로 가는 길》 전시실. 관람할 때마다 마음이 편안해져 자주 들른다. 전시실을 걸으며 2001년 영월 창령사 터에서 발굴된 나한상 표정 하나하나를 읽는다. 바위 뒤에 숨고, 이야기를 나누고, 두루마기를 감싼 나한상을 보며 그 미소를 닮고 싶다고 생각한다.

차분해진 마음으로 박물관에서 나와 맞은편 어린이박물관에 있는 뮤지엄카페에 들어간다. 왼쪽 창으로는 춘천 석사동 동네의 지붕 풍경이 한눈에 보인다. 고개를 올리지 않고 같은 높이에서 지붕들의 갖가지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게 생경하다. 맑은 하늘 아래 펄럭이던 빨래, 그리고 화분을 모아둔 집에 시선이 머문다.

시선을 내게 돌려 오늘의 산책을 돌아본다. 숨고 싶어 찾아간 도서관. 그곳에서 만난 다정하고 단단한 말들. 서가를 걷고, 책 속에 숨어 잠시 다른 세계에 빠진 시간. 도서관 숲길과 박물관의 돌길. 우연히 들은 오카리나 연주. 정원의 석물과 미소짓던 나한상들. 춘천의 동네가 한눈에 보이는 풍경. 조용하고 말이 없는 것들과 명랑하고 맑게 들리던 소리 사이를 걸었다. 내가 보고 들은 풍경이 내 안에 스며들며 무채색의 내게 약간의 색을 더한 것 같다.

* 국립춘천박물관 주소 강원도 춘천시 우석로 70 운영시간 09:00-18:00 휴관일 매주 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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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GROUND

글 · 그림· 사진 공혜진(일상기록공작가)

어쩐지 근사한 소도시에서의 삶

#1. 봄날의 골목친구

남쪽 지역에서 봄꽃 소식이 들려올 무렵이면 머릿속에서

우리는 사람하고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것이 숨죽이고 있던 어떤 부분이 움직이는 게 느껴진다. 그 아니다. 우리가 시간을 들이고 눈길만 주면 그들도 움직임은 어느 날 아침 눈 떴을 때, 어떤 스위치가 켜진 기꺼이 곁을 내주고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 준다. 마음을 것처럼 별안간 작동한다. 눈을 감고 그것이 무엇인가

열면 그만큼 친구의 범위가 확장된다. 슈퍼를 다녀오는 따라가 보면 거기에 제비꽃이 있다. 내가 3년째 곁에서 길 무심코 제비꽃과 눈을 맞췄는데, 마침 새로 피어난 지켜보며 응원하는 대상이다.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의 작은 제비꽃들이 반짝이며 일제히 작은 꽃잎을 담장 아래 난 틈을 따라 자라는 제비꽃. 낡긴 했지만 오래된 담장이 뒤에서 버티고 있어 바람을 막아주고

흔들었다. 순간 그 모습이 꽃술을 흔들며 응원하는 모습으로 보였다. 그냥 내 자리에서 담담하게 오늘을 앞에는 주차장이 있어 햇빛이 막힐 염려도 없다. 게다가 살아가는 것이 때론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 응원이 되는 막다른 골목이라 유동인구가 적어 손 탈 위험도 적다. 것 같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의 모습들을 보면서 동네 친구가 없어 외롭다 이야기하곤 했지만, 사실

서로가 힘을 주고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굳이 서로 말로 하루에도 여러 번 그 앞을 오가며 안부를 살피고 서로의 하지 않아도 나의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같은 길을 걷는 하루를 곁눈질로 지켜보는 대상이 있었던 것이다. 동네 이들에게는 힘이 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겠다. 친구보다도 가까운 골목 친구가. 경칩 무렵부터 제비꽃과 함께 기록할 인형의 바닥에 낮게 고개를 붙이고 그들과 같이 바람을 디자인을 생각하며 천을 고르고 바느질을 준비한다. 맞다 보면, 어느 순간 몸에 닿는 햇볕이 따뜻하게 느껴져 봄의 식물들이 대부분 작으니까 크기는 일단 작게 하고, 나도 광합성이 될 것 같고, 앞을 지나는 개미도 커다랗게 식물의 초록색과 어울리는 색을 바느질해서 인형을 보인다. 나와 제비꽃과의 구분이 없어지는 마음도 든다. 준비한다. 볕 좋은 봄날 무작정 거리로 나섰는데 어디로 그런 시간들을 보내면 더이상 제비꽃과 나는 남이 아니다. 가야 할지 모를 때, 오랜만에 집을 나섰는데 눈길을 오래된 주택가에는 세월만큼 인공물과 땅 사이의 틈이 어디에 둬야할지 모를 때, 처음 가는 길에 접어 들었을 때, 유독 많고, 그 사이에서 자라는 식물들의 종류도 다양하다. 집을 나서서 길을 걸을 때, 틈에서 나오는

사람들로 꽉찬 공간에 아는 이가 아무도 없을 때, 동네에 눈길 나눌 곳 하나 없을 때. 그런 상황에선 어김없이 초록 작은 식물 하나를 정해서 오늘 보고, 내일 보고, 또 그 식물들을 찾는다. 그렇게 잠깐이라도 작은 생명들과 다음날 보면… 그 식물은 내일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나와 가까운 동네 친구가 된다.

눈을 맞추면, 가던 길을 씩씩하게 계속 걸을 수 있게 된다.

*틈꽃: 인공물과 땅 사이의 여러 틈에서 사람들의 개입없이 제 힘으로 자라는 식물을 䢮틈꽃䢯이라 부르기로 했다. 틈꽃에게는 화단에서 자란 식물들의 생명력과는 다른 자유로움과 특유의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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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글 박정환 (춘천사회혁신센터 센터장)

노동을 혐오할 것인가, 찬미할 것인가?

함께 일하는 젊은 동료가 무심하게 얇은 책 하나 건넨다. 『번아웃 세대』, ‘MZ세대 번아웃, 누구의 책임인가’란 소제목까지 달고 있다. 오피스 꼰대에게 넌지시 던지는 경고인가 싶어 뜨끔하다. 따가운 눈흘김을 무릅쓰고 꼰대력을 잠깐 더 발휘해 MZ에게 되돌려 질문해 본다(인내해 달라!). 선사와 유사를 막론하고 노동과 일상에서 기운을 뽑아 먹히는 사람들이야 늘 있었을 것이고 새로 태어난 세대의 생각과 습성은 먼저 태어난 세대들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을 텐데 왜 2022년에는 책이 발간될 정도로 ‘번아웃’은 요즘 세대의 키워드가 되고 있는 것인가? 지금의 노동과 일은 과거보다 얼마나 더 어렵고 고되기에 젊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이유도 모른채 번져나가는 인체발화 미스터리를 만들어 내는가?

고대 그리스의 이름난 철학자들은 노동이 정신을 야비하게 만들고 인간으로서 당연 행해야 하는 ‘덕(virtue)’을 가로막는 것으로 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 존재인 시민들은 가능하다면 노동으로부터 벗어나 영원과 불변의 진리를 추구하는 교육과 훈련에 전념하고 불가피한 물질적 생산활동은 비인간 존재인 노예에게 전담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에서 태어난 성현이자 유교의 알맹이라 칭송받는 맹자도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 자는 남을 먹여 살리고, 남을 다스리는 자는 남에 의해 먹고 사는 것이 천하의 보편적 원리라고 했다. 먹고 다스리는 자 그리고 다스림을 받고 먹이는 자 모두 자기의 역할을 의심하지 말고 본분을 다하라는 ‘정명(正名)’까지 덧붙이면서 누군가에게 노동은 벗어날 수 없는 원죄 같은 것이 되어 버린다. 노동과 일하는 자에 대한 태도는 아주 오래전에 동쪽 세상과 서쪽 세상이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번아웃’은 요즘 세대의 키워드가 되고 있는 것인가?

시대가 흘러 천상과 제단 위에 자리한 신보다 지상과 일상 위에서 움직이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정신문명이 융성한 시절이 되자 노동은 새로운 개념이 되었다. 노동은 신과 자연의 섭리에 다가가는 데 방해되는 불가피한 조건이기보다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본질에 다다르는 데 자극이자 원천이 된다고 했다. 인간은 신이 아니지만 스스로의 노동을 통해 세상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 무엇인가를 성취하는 창조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창조적 노동을 보라. 인간의 진수는 노동에 달려 있고(Homo Laborans) 역사와 문명은 노동을 통해 진보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노동이 가진 존엄과 인간성이 인정되지 않는 작업장에서는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폭력적 구호까지 외치게 되니 플라톤과 맹자가 기함할 지경에 이른 것이 아닌가.

지상과 일상 위에서 움직이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정신문명이 융성한 시절이 되자 노동은 새로운 개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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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해야 하는가? 찬미해야 하는가? 지금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에게 아주 오래전 철학자들의 노동혐오나 조금 오래전 사상가들의 노동찬미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지금 우리가 어떻게 노동하고 있는지 따져볼 필요는 있다. 다 타버리기 전에 말이다. ‘민지(MZ)’뿐이 아니다. ‘베이비붐’도, ‘386’도, ‘X’와 ‘알파’도 몇몇을 빼면 거의 다 계약을 통해 노동을 유지한다. 하루에 몇 시간동안 어디에서 무엇을 손에 쥐고 일하는지, 약정하고 한달동안 이를 어기지 않고 지켰을 때 보상을 얻게 된다. 이제는 핸드폰에 깔린 은행 어플에 매달 새롭게 도착하는 숫자가 내가 노동했음을 알린다. 오래 걸리지 않는다. 몇 달만 이 숫자 알림을 받다보면 더 이상 내 노동으로 성취하고자 했던 영향과 창조물이 뭐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왜 노동하는지에 대한 인간다운 물음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이런 상황을 자본주의 노동의 ‘소외’라고도 하고, 사회적 필요가 강제하는 ‘타율노동’이라고 비판하던데, 핵심은 내 노동과 일을 스스로 통제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자기의 노동활동을 통제할 자유가 없다면 결국 외부의 강제를 따르게 되며 그래서 자유롭게 행동하고자 바랄 경우에는 노동 이외의 생활영역에서 그 같은 욕구를 충족시키려 할 것이다.

왜 노동하는지에 대한 인간다운 물음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노동과 유희가 분리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며 노동 이외의 것에서 참된 생활을 이루어 보려고 노력한다. 노동은 참되지 않은 벗어나야 할 상태가 되고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이자 불씨가 된다. 현대의 작업장이 불타는 새로운 번아웃의 조건이 완성된다. 세상은 언제나 인간이 원하는 것과 무관하게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내 노동과 일을 통해 내 뜻대로 흘러가도록 영향력을 만드는 외부 세계에 대한 반작용일 때 노동과 삶이 하나가 된다. 노동을 찬미한다. 그러나 당면한 실존에서는 조직이 효율적으로 작동시키고 성과를 최대화하기 위해 내 노동과 일이 무력화되는 것을 감수하도록 약정된다. 외부 세계에 대한 순작용일 때 노동과 삶이 분리된다. 노동을 혐오한다.

먼저 세대로서 젊은 동료들이 일터에서 소진되고 조용히 퇴사를 선언하는 것이 무슨 캠페인 영상이나 챌린지 카드뉴스처럼 유행한다는 것은 낯선 일이긴 하다. 그런데 어쩌면 이것이 아직도 노동의 진짜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의 억압과 강제를 감당하지 못하는 부조리에 대한 MZ들의 부지불식간 저항인 것은 아닐까? 찬미와 혐오가 동시에 작용하고 청년은 행동한다. 언제나 모순에 민감하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데 가장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보니 ‘번아웃’ 세대와 노동법을 준수하라던 전태일의 타오름이 겹쳐져 보이기도 한다.

찬미와 혐오가 동시에 작용하고 청년은 행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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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백 년 동안의 자유

백 년 전의 예언이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라는 경제학자는 「우리 후손을 위한 경제적 가능성(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grand children)」(1930)이라는 유명한 논문에서 자본주의가 노동을 해방시킬 가능성에 대해 훈훈하게 예측한 바 있다. 백 년이 지나 2030년 무렵이 되면 인류는 경제적 근심에서 벗어나서 일주일에 15시간만 일하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기술의 진보로 시간당 생산량이 증가한다면 생계를 위한 필수 노동시간도 줄어들 것이므로, 노동시간 외에 주어지는 나머지 여가시간 동안 자유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가 인류의 보편 관심사가 될 것이라는 낙관적 견해였다. 인간 스스로는 진정하고도 영원한 문제를 돌아보는 시간들을 만날 것이며, 인류는 인생을 지혜로운 방향으로 즐기게 될 것이라 그는 전망했다.

글 노지영 (문학평론가)

그러나 2030년이 되기까지 채 몇 년이 남지 않은 오늘날, 케인스의 예언은 케인스의 오류로 공식화된지 오래다. 과학기술이 진일보하고, AI까지 선전하고 있지만 주당 15시간, 하루 3시간 정도만 일하면 충분하다고 느끼는 사회를 자본주의 지대에서는 만나보기 어렵다. 최근 들어 한국사회의 분위기는 특히 그러하다. 주 52시간제도 노동시간이 엿가락처럼 늘어나기 일쑤인데, 현 정부는 주 69시간제로 노동시간 개편을 추진한다. 산재 인정 기준이 경고되고, 몰아서 일하다 보면 주당 최대 노동시간이 90시간까지 넘을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케인스가 관 속에서 기함할 일이다.

개미처럼 일하다가 베짱이처럼 여가시간을 쓰는 자로 변신할 수 있을까. 생태적 사이클이 다른 개미와 베짱이의 삶을 하나로 겹쳐놓은 노동자의 이미지는 우리 시대 새로운 䢮일 괴물䢯이라는 크리처를 탄생시키지 않겠는가 생각해본다. 한쪽에서는 시간 주권과 휴식으로써의 건강권을 노동자에게 돌려주겠다지만 사용자들이 이상화한 䢮제주 한 달 살기䢯의 라이프스타일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장시간의 일개미 노동을 감수해야 한다. 특정 구간으로 몰아주기한 휴식기간이 심적 불안을 동반할 것은 자명하다. 한 청년 시인의 시에서처럼, 䢮일하고 일䢯해야 하는 현대인의 일상은 물리적인 컨베이어는 물론 심리적인 컨베이어에 지배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지인 시인은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라는 시집에서 일과 일 䢮사이䢯의 온전한 䢮사랑䢯의 시간이 오늘날 얼마나 확보하기 어려운 이상인지를 노래한다. 상당수의 노동자들에게 일과 일의 사이의 시간은 오롯이 쉬는 시간이 될 수 없다. 마치 䢬대기발령䢭된 상황과 같이 감정 노동이 지속되는 시간일 따름이다. 정기적인 일이 보장되지 않는 이들에게는 틈틈이 자기계발을 해나가야 하는 시간이 되며, 정규직으로서의 일거리가 보장된 성과주체들에게도 수없이 생겨나는 새로운 욕구에 쫓기면서 자기 스스로를 태우는 시간이 된다. 이렇게 영구적 자기관리라는 대사회적 가스라이팅에 압사당하며, 䢮일䢯과 䢮일䢯 사이에서 착즙해내는 여가시간이 노동자들에게 생생한 회복력을 부여할 수 있을까. 과로사회를 지향하고 워크홀릭을 예찬하는 분위기 속에서 진정한 자아 찾기를 하겠다고 몰빵(!) 휴식을 한다면 어설픈 도피나 요양이 되기 쉬울뿐더러 강렬한 보복 소비를 동반할 것이다. 감정의 탕진이 잔고의 탕진으로 이어지면서, 인간은 䢮플렉스䢯로 상징되는 소비문화의 쳇바퀴 속에 갇혀버릴지 모른다.

그래서 이 시집의 「컨베이어」라는 시 속에서 청년 화자가 곱씹는 말들은 유독 서글프게 들린다. 䢬나는 곧 잘릴 것이다/해야 할 일을 완수하지 못했기 때문에䢭라는 독백은 기성의 물리적 노동현장을 넘어서 청년 세대가 자기성장 서사 속에서 구축한 심리적 성과기계 시스템까지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이 시는 일하고 또 일하면서도 또다시 䢬해야 할 일䢭들에 쫓겨서 영원히 완수 불가능한 영역이 되어버린 노동의 속성을 여실히 드러내며, 인간을 선택 불능으로 만드는 대사회적 시스템으로 의해 사랑이라는 것을 꿈꿔나갈 여가시간이라는 것이 더욱 척박해지는 현실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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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사랑의 난경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일하고 일하지만, 사랑이 벅차다. 꿈꾸고 꿈꾸는 일은 자기 고갈로 향하므로 타인을 향한 방향을 모른다. 그런 감정의 혹사 속에서도 일하고 일할 수밖에 없는 후속 세대의 시인은 䢬그동안 무얼 했는데?䢭라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 조심스레 말해본다. 䢬사실 저는 일 말고 다른 것을 좋아했습니다䢭라고, 다소 되바라지게 들릴만한 대답을 던져보는 것이다. 얼핏 이 대답은 사회성의 부족처럼 보이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사회성이라는 것은 조직 내 순응을 강제하는 위력과 다름없다. 그래서 한 시인의 이러한 대답은 동시대의 젊은 세대가 노동을 위해, 세상의 성장을 위해, 시대를 위해 䢮무얼 했냐䢯는 기성세대의 뻔한 질문들 앞에 진솔하게 내놓은 현답의 용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䢮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䢯는 기성의 강령은 우리 모두를 효율의 컨베이어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시인은 컨베이어라는 트랙 위에서 달리고 달리면서도, 정해진 䢮일 말고䢯 다른 것들이 꿈틀거리는 외부의 세계에 지속적으로 눈을 돌린다. 그 다른 것들은 「컨베이어」라는 시에서는 음악으로 표현되고, 그의 또 다른 시에서는 일상의 무수한 약자들과의 만남들로 제시된다. 사랑이란 강도가 아니라 빈도를 통해 더 단단해진다는 걸 증명해가듯이, 시인은 노동과 노동 사이에 주어지는 여가의 시간을 또 다른 사랑을 발견하는 시간으로 사용한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를 탈진시켜서 얻은 전리품으로서의 여가시간이 아니라 진정한 자유의 시간에 발견할 수 있는 일상 그 자체다.

백 년 전 케인스는 말했다. 우리에게 자유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䢮시간과 일상을 멋지게 구성하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들, 사물을 직접적으로 즐길 수 있는 즐거운 사람들, 그리고 노력하지 않고 다시 피어오른 들판의 백합들을 존경䢯할 것이라고. 케인스의 진심 어린 바람을 기억하듯이, 시라는 것은 자본주의의 총공세 속에서도 이러한 자유의 시간들을 존속시켜왔다. 그것은

노동과 노동 사이에서 일상의 의미를 재배치하고, 사물 그 자체가 부르는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며, 컨베이어의 논리를 벗어난 들꽃들에서 섭리를 발견하게 만든다. 그러한 시간을 만나온 한 젊은 시인은 직업노동과 생활노동을 하고, 컨베이어 밖으로 튕겨나간 약자와 소수자와 장애인을 꾸준히 만나오고, 틈틈이 사랑을 훈련하면서, 다음과 같이 시집의 서문을 써내려가기도 하였다.

하늘과 바다가 노랗게 물들어 있다. 노랑은 히아신스 꽃잎 같고, 평온하고 잔잔한 목소리 같다. 해의 흔적이 오른쪽 위부터 화폭을 가로질러 왼쪽 아래까지 포물선을 그린다. 파도가 밀려온다. 어쩔 수 없는 일들처럼 조용하고 담담하게. 바람결에 바다 냄새가 실려 있다. 파도가 부서진다. 하늘에서는 삶의 파편인 듯 붉고 노란 빛줄기가 터져 나온다. 뜨거운 것에 닿은 듯이, 빛의 자국들 사이 푸른 빛을 띤 구름이 떠다닌다. (중략) 이 시집이 오디오북 혹은 점자 도서로 만들어질 때 표지 디자인을 전하고자 부족하지만 짧은 설명을 이 면에 적는다. 최지인,「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시집 서문

이것은 언젠가 만났던 시각장애인에게 시집의 표지디자인을 보여주고자, 아니 언어로 들려주고자, 시인이 직접 시집의 서문을 대신하여 쓴 글이다. 일과 일 사이, 타인을 사랑하려는 마음이 있기에, 다수만 보던 시집의 표지 하나가 또 다른 소수를 䢮존경䢯해나가는 방식으로 변신하게 되었다. 나의 불안을 넘어서 타인에의 사랑을 발견해나가는 䢮시의 시간䢯들이 우리의 䢮일䢯과 䢮일䢯 사이에서 발견되어야 할 이유를 보여주면서 말이다.

䢮일䢯과 䢮일䢯 사이에서 타자를 사랑할 자유가 없다면, 화폐화되지 않은 일상에서 사랑의 빈도를 경험할 수 없다면, 여가는 여가가 아니고, 일이란 그냥 일일 뿐이다.

35쪽

SCENE 1

참고 ‹창조의 공간, 공감의 시간 춘천문화예술회관 20년› 일러스트 한선주 에디터 유주연

HAPPY 30TH BIRTHDAY!

춘천문화예술회관 개관 30주년

시민들의 손을 잡고 무럭무럭 자라온 춘천문화예술회관의 서른 번째 생일을 기념하며. 1993년 봄부터 오늘날까지 소담스럽게 나눠온 이야기들.

36쪽

1993년 4월 10일, 춘천문화예술회관의 문이 시민들에게 활짝 문예회관 개관 이전, 춘천에는 마땅한 공연장이 없었다. 열렸다. 착공한 지 5년 만의 일이었다. 몇 채의 가옥과 묘지가 이따금 시민회관에서 공연이 이뤄지긴 했으나, 시민회관은 덩그러니 모여있던 효자동 일대가 이제 예술이 움트고

공연장이 아닌 다목적 시설이었다. 정당 회의나 단체행사를 시민들의 꿈이 실현되는 공간이 된 것이다. 개관식에는 당시 위해 운영하는 것이 본래 공간의 목적이었다. 춘천문예회관은 재임 중이던 김영삼 대통령을 비롯해 많은 초대인사와

1984년 정부의 지방문화시설 확충계획으로부터 시작됐다. 시민들이 자리를 빛냈다. 오전 11시 40분, 2군단 군악대의 힘찬 6~70년대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룬 정부는 장기적인 문화예술 팡파르와 함께 개관식 개회가 선언되었다. 대통령의 치사가 정책을 고안했고, 전국의 균형 있는 문화예술발전을 위한 이어졌다. “자랑스러운 이 문화의 전당을 만들게 된 여러분들, 지방문화육성계획을 세운 것이다. 1987년 기본 설계를 시작한 문예회관은 1990년 ‘문예회관 건설사업소’를 설치하여 내부 춘천뿐 아니라 강원도의 문화생활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대통령의 찬사에 문예회관 개관을 손꼽아 기다려온 설비 및 운영 조례 등 체계적인 관리 감독 시스템을 시민들의 마음이 둥글게 부풀어 올랐다.

구축해나갔다.

춘천문화예술회관은 당시 도내 문예회관 중 가장 큰 규모였다. 문예회관의 개관과 함께 지역 문화예술 활동이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 ‘봄내극장’과 ‘춘천인형극장’ 등 많은 문화예술 1천석이 넘는 공연장과 760㎡ 크기의 전시장을 보유한 이곳은 춘천의 자랑이었다. 부지확보와 설계, 건축까지 9년이 넘게 공간이 잇따라 탄생하였고, 무엇보다 예술에 대한 시민들의 걸렸고, 1992년 완공 이후에도 완벽한 운영 시스템을 갖추기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물수제비가 만든 호수의 파장처럼, 위해 1년을 더 준비했다. 개관 기념행사는 4월 9일부터 30일까지, 총 22일간 문예회관과 공지천 야외 음악당에서

문예회관은 조금씩 이 도시를 변화시켜 나갔다. 문예회관에게 서른이란 어떤 의미일까. 성장이란 단어보다는 열렸다. 춘천시립교향악단부터 김덕수 사물놀이패 등 다양한 성숙이란 단어가 어울리는 시기. 시민들의 손을 잡고 무럭무럭 문화행사가 끊이지 않았다. 넉넉지 않은 예산에도 흔쾌히 손을 잡아준 예술인들과 밤낮을 지새우며 열정을 쏟은 개관기념행사 추진단의 덕이었다. 그해 봄, 춘천은 음악과 박수 소리로 매일 반짝였다.

자라온 문예회관은 이제 시민들과 함께 성숙할 내일을 기다린다. 서른, 잔치는 끝나지 않았다.

1996년 문예회관 전경 ©춘천문화원

1993년 문예회관 로비

37쪽

춘천문화예술회관 박운철 초대 관장 인터뷰

춘천문예회관 초대 관장님을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원래 시청의 행정공무원이었어요. 당시 문예회관 건립을 위해 건설사업부서가 별도로 설치되었고, 건설사업소가 구축되었어요. 그때 문예회관

부지를 선정하는 것이 어려우니, 미술관으로 계획 중인 자리에 체육시설을 건설하는 것으로 계획이 수정된 거죠. 그래서 급하게 문예회관 지하에 전시장이 들어서게 된 거예요. 사실 공연장이 하나만 있는 문예회관은 드물어요. 건설사업소장을 맡았고, 개관을 앞두며 약 3개월간 초대 보통 대공연장과 소공연장을 갖추고 있거든요. 그래야 관장으로 지냈어요.

3개월만 근무하신 이유가 있나요? 개관 이후, 문예회관 관련 감사에서 파면을 요구받았어요. 5개의 지적 사항이 아직도 기억나요. 성급한 감사였죠. 근거 서류를 모아 이의 신청을 했고, 결국 파면 무효 처리를 받았습니다.

전반적인 관리 감독은 물론 조례까지 직접 손보셨다고요. 피아노 구매에도 공을 들였어요. 다른 문예회관을 보니 독일제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갖추고 있더라고요. 국내외 유수 연주자들은 그 피아노로만 연주한다는 거예요. 스타인웨이 피아노는 한 대에 1억이 넘었고, 당시 문예회관은 1,700만원의 예산으로 피아노를 구매할 계획이었죠. 그런데 앞으로 좋은 공연을 하려면 좋은 피아노가 있어야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예산 심사를 앞두고 시의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자료를 만들었어요. 서울대와 강원대 음대 교수들의 자문을 받고, 다른 문예회관의 자료를 참고해 문서를 작성했죠. 시의원을 개별적으로 만나 설득도 하고요. 그렇게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구매했어요.

때론 피아노와 같은 장비가 공연장의 품격을 대변하는 것 같아요. 문예회관 건립을 진행하며 아쉬운 점은 없었나요? 처음 문예회관은 대극장과 소극장을 본관에 두고, 현재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국민생활관이 있는 부지에 미술관을 세울 계획이었어요. 오랜 공직 생활을 마치고 서예와 한국화를 그리며 지내요. 그런데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정부에서 잉여금 30억을 사는 곳이 문예회관 근처라 오며 가며 자주 봅니다. 멀리서 교부하며 체육시설 확충을 권유한 거예요. 정해진 일정 안에 외관만 봐도 그 내부가 아직도 눈에 훤해요.

개관기념 행사 안내 Upcoming Events 이번 춘천문화예술회관 개관기념 공연은 문예회관의 광장과 로비, 무대, 전시장 등 곳곳에서 진행됩니다. 문예회관의 면면을 더욱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사진 역사에 묵직한 이랑을 일구는 구본창, 김녕만 등 5명의 사진작가가 함께한 기획 사진전과 춘천시립예술단의 공연까지. 문예회관과 함께 올봄도 춘천은 매일 축제입니다.

소공연장에서 대공연을 위한 연습도 하고, 작은 규모로 공연도 하죠. 그런데 춘천문예회관은 대공연장 하나뿐이잖아요. 저는 그게 아직도 참 아쉬워요.

춘천문화예술회관 개관 30주년 기념 ‹우리 여기에› 첫째날 춘천문화예술회관 30년 광장으로 일정장소 4. 10.(월) 19:30, 춘천문화예술회관 광장 출연 지휘 이한돈, 김윤식, 이종진 예술감독 이유라, 백영태, 백형민 안무 박기현 연주 춘천문화예술회관 개관기념 페스티벌

선생님 존함을 인터넷에 검색하니 춘천시 야외 공연장 관련 조례가 함께 검색되더라고요. 지금 문예회관 뒤쪽에 게이트볼장이 있잖아요. 예전엔 그 자리가 작은 야외 공연장이었어요. 그런데 너무 작아 제구실을 못 했죠. 그래서 내가 동부건설(문예회관 건설사)에 야외 공연장 좀 지어달라 부탁을 했어요. 대규모의 문예회관 공사를 수주한 동부건설은 야외무대를 지어 춘천시에 기부했고요.

개관을 준비하며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개관식을 앞두고 문예회관이 도둑이 들었어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어요. 당직을 섰던 두 명이 손전등을 켜고 순찰을 하는데 바닥에 흙이 범벅인 발자국이 보이는 거예요. 급히 쫓아가니 건물 밖에 대기하고 있던 차가 황급히 출발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무대의 영사기와 음향시설을 훔쳐 가려던 도둑이었어요. 장비는 시가로 7억이 넘는 큰 금액이기도 했고, 개관식을 앞두고 이미 안내장을 다 보낸 상태였는데… 큰일 날 뻔했죠.

춘천문화예술회관 개관 30주년 기획 사진 전시 ‹Five by Five› 일정장소 4. 5.(수) ~ 4. 27.(목) / 춘천문화예술회관 전시장 10:00~18:00 ※매주 월요일 휴관 운영시간 참여작가 구본창, 김녕만, 박형렬, 방병상, 심상만

춘천문화예술회관 개관 30주년 기념 춘천시립합창단 어린이 음악회 ‹흥부 놀부› 오케스트라, 춘천시립국악단, 춘천시립합창단, 일정장소 4. 5.(수) 11:00, 4. 6.(목) 11:00, 19:30 / 춘천문화예술회관 공연장 춘천시립청소년합창단 둘째날 춘천문화예술회관 30년 무대로 일정장소 4. 11.(화) 12:00 / 춘천문화예술회관 무대 출연 트럼펫 성재창 셋째날 춘천문화예술회관 30년 로비로 일정장소 4. 12.(수) 12:00 / 춘천문화예술회관 로비 출연 쏘아베앙상블 넷째날 춘천문화예술회관 30년 공연장으로 일정장소 4. 13.(목) 19:30 / 춘천문화예술회관 공연장 출연 김덕수사물놀이패 다섯째날 춘천문화예술회관 30년 전시장으로 일정장소 4. 14.(금) 19:30 / 춘천문화예술회관 전시장 출연 첼로 홍진호

출연 지휘 임창은, 연출 양홍주, 안무 김영주, 타악기 고동현, 춘천시립합창단

춘천시립교향악단 특별연주회 ‹춘천문화예술회관 개관 30주년 기념음악회› 일정장소 4. 15.(토) 17:00 / 춘천문화예술회관 공연장 출연 지휘 송유진, 춘천시립교향악단, 춘천시립합창단, 춘천청춘합창단, 소프라노 석현수, 메조소프라노 김선정, 테너 김세일, 베이스 심기복 베토벤 - 교향곡 제9번 “합창” 프로그램 L. v. Beethoven - Symphony No.9 in d minor, Op. 125 “Choral”

38쪽

SCENE 2

에디터 권용식

사람을 키우는 문화 문화가 만드는 도시

문화는 사람이 만든다. 사람들이 모여 문화가 만들어지고 교류하고 배우며 성장한다. 문화 속에서 우리는 일상을 살아갈 활력을 얻고 영감을 받는다. 한편, 어떤 이들은 일의 영역에서 삶의 전환까지 이뤄낸다.

청년문화가 만들어지다

2013년부터 진행된 ‘일당백 프로젝트’, ‘무한청춘페스티벌’, 지역문화인력양성과정 ‘뛸, 힘’ 등 다양한 지원사업과 함께 청년문화기획자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청년들은 마음속 꿈을 펼쳤고 문화를 경험하는 시간을 보냈다. 일과 삶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진 청년들이 모여 청년문화를 만들었다. 그렇게 성장한 청년들은 지역에서 문화기업을 운영하거나, 독립문화기획자가 되었으며, 문화재단 내 실무자로 활동한다. 또한 어떤 이들은 문화예술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가로서 종사하며 춘천의 다양한 문화 현장 전반에서 활동한다.

현장에서 빛나는 사람들

문화인력에는 문화기획자를 비롯해서 공간을 꾸미고 연출하는 사람, 글을 쓰는 사람, 홍보하는 사람 등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들이 있다. 춘천문화재단은 전문 영역에서 전문가로서 역량을 기르고 경험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특히 2020년부터 이어진 공연 전문 스태프 아카데미 ‘막’에서는 수료생 3명이 공연예술 전문스태프 단체에 취업했고, 2022 전시기획자 양성사업 ‘큐레이터 아카데미’의 경우, 세 명의 큐레이터가 각각 전시를 기획해 지역 미술관에서 전시를 개최했다. 그 밖에도 예술가와 기획자를 위한 역량 강화 프로그램 ‘도시비틀즈’, 디자이너를 위한 ‘디자인 패스파인더’, 출판인을 위한 ‘로컬에-딛터’, 문화기업을 위한 ‘내일도 춘천 아카데미’ 등이 진행됐다.

올해 2월, 큐레이터 아카데미 우수 수료자 3인이 직접 기획한 전시회가 세 곳의 전시장에서 개최됐다. 전시 기획자로서의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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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문화인인 도시

문화도시 선정 이후, 춘천문화재단은 남녀노소 상관없이 춘천 사람들이 문화 활동을 통해 일상 문화의 주체로 성장하도록 도왔다. 마을과 가게 곳곳에서 크고 작은 잔치와 모임이 열렸고, 마음을 나누며 이웃이 되었다. 사람들은 문화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길 기대하고 있다. 또한 재단은 사람들이 문화 활동에서 직업 활동으로 전환하길 바라는 이들을 위해 직업 활동과 연계된 지원 체계를 마련하고자 한다.

출판인을 꿈꾸는 청년들의 첫발 딛기 프로젝트 ‹로컬에-딛터› 결과공유회가 있던 날

지역문화전문인력 양성 기관 선정

춘천문화재단은 올해 문화체육관광부와 지역문화진흥원이 지정하는 지역문화전문인력 양성 기관으로 선정되었다. 이에 따라 사람들이 각자의 방향성과 전문성으로 지역문화를 살펴보고 문화 현장에서 활동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성장지원 체계를 마련할 계획이다. 자신이 마주한 문제를 문화롭게 해결하고, 일과 삶의 영역에서 적용해 보고자 하는 사람들을 교육 대상으로 한다.

나 또한 지역의 다양한 문화 사업을 경험한 덕에 에디터와 디자이너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일당백 프로젝트를 통해 평소 꿈꿨던 일을 경험하고, 인문학 카페 글쓰기 수업에서 단편 소설을 썼고, 디자인 패스파인더 수업을 들으며 많은 자양분을 얻었으니까. 좋아하는 일을 하며, 좋아하는 지역에서 산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문화와 문화교육으로 가득한 춘천은 앞으로 3년, 5년, 10년 후에는 어떤 모습일까? 앞으로도 문화 속에서 사람 냄새 나는 이웃들이 있고, 문화예술로 인해 즐거운 사람들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현장실무 중심의 공연예술 전문인력 양성 프로그램 ‹2023 공연예술 전문 스태프 아카데미 막› 수료식은 실제 공연을 진행하듯 치러졌다.

40쪽

MOOD

에디터 정승희

돌봄과 작업

결혼할 때 배우자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를 잃어버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결혼은 두 사람이 만나서 한 가족이 되는 일이지만, 결혼으로 내가 사라지는 일을 경계 했다. 결혼으로 누군가, 혹은 서로가 희생하는 삶을 원치 않았다.

결혼한 지 3년 차. 각자 원하는 일을 하며 우리의 세계를 잘 구축할 수 있었다. 나의 삶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이 바로 옆에 있다는 건 커다란 축복이었다. 사사로운 시간을 함께하는 것도 행복했다. 같이 밥을 먹고, 산책하고, 놀러 가고, 집안일을 나눠서 하고, 함께 영화를 보고. 결혼이 나에게는 잔잔한 파도 같았다. 나른하고, 느긋하고, 아주 가 끔 속상할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잔잔한 기쁨의 물결로 넘실댔다. 영영 이렇게 살 수 있 기를 바랐다.

이렇게 평생 살면 좋겠다고 생각할 즈음 배우자가 아이를 키우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출산과 육아를 주제로 많이 의논했지만, 그때마다 낳지 않는 것으로 대화가 기울었다. 불안정한 주거, 일자리, 양육환경 등을 생각하면 아이를 낳는 게 커다란 산처럼 느껴졌 다. 또한, 아이를 돌보며 일을 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나를 희생하며 온몸 과 마음, 시간을 아이에게 쏟을 자신이 없었다. 숱하게 보아왔던 대로 누군가의 엄마라 는 이름으로 내가 지워지고, 일하지 못하고, 자유롭게 살지 못하는 삶이 눈에 훤히 보였 다. 아이는 선택지에 없었다. 지금의 삶이 무탈하고, 행복한데 애써 힘든 길을 걷고 싶지 않았다.

배우자도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의 어려움을 모르지 않았다. 그는 나의 몸과 마음의 균 형이 깨질 것을 알고 염려했다.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인지에 회의를 하였다. 그럼 에도 배우자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여정을 함께하고 싶어 했다. 아이는 혼자 가질 수 없 으므로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 배우자의 진심 어린 마음이 느껴졌다. 내 인생에 새로 운 선택지가 생긴 순간이었다.

나도 출산과 육아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만난 책이 ‹돌봄과 작업*›. ‘나를 잃 지 않고 엄마가 되려는 여자들’이라는 부제가 적혀있었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반신반

의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시나리오 작가, 소설가, 연구자, 인터뷰어 등 열한 명의 여자들 이 출산과 육아, 그리고 자기 작업에 관해 직접 쓴 글을 모아 엮은 책이었다.

책을 읽으며 돌봄의 어려움과 기쁨은 물론, 어떻게 그 과정에서 시간을 내어 자신의 작 업을 포기하지 않았는지 들을 수 있었다.

* 정서경 외, 『돌봄과 작업』, 돌고래, 2022

서유미 소설가는 아이를 키우는 행복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아이와 누워서 장난치며 웃을 때, 아이가 통통한 손으로 내 목을 끌어안으며 ‘엄마가 참 좋아.’라고 말하는 순간, 이 감정을 모르던 때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정서경 시나리오 작가는 아이를 돌보고 기진맥진해진 밤에 느낀 텅 빈 가슴에 관해 이야기한다. “돌아보면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사랑이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중요하지 않은 시나리오는 쓰고 싶지 않 았다. 진짜 사랑이 아닌 것은 쓰고 싶지 않았다.”

전유진 아티스트는 스스로 돌봄이 가장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사실 내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롤모델도 아니고 타인의 위로도 아니고 스스로 와 연대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었다. 비록 조금은 자기기만적일지라도 스스로와 연대하고 스스로를 돌보는 마음이 다른 무엇보다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엄지혜 인터뷰어는 돌봄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식물을 키우든, 반려동물과 함께 살든, 아이를 양육하든 모든 일은 돌봄의 영역 안에 있다. 오로지 내 입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닌, 타인을 위해 밥을 짓고 빨래 를 하고 청소를 하는 사람은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다를 수밖에 없다. 염려와 책임 속에 살아가는 만큼 성숙할 기회는 배가 됐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성공담이 아니라 각자가 고군분투한 이야기임을 알 수 있었다. 누군 가를 돌보고, 자신의 작업을 하는 것은 성공의 문제가 아니라 과정이었고, 그 과정에는 시도와 실패, 성장과 기쁨이 있었다. 다른 사람을 돌보는 어마어마한 시간과 노동으로 나를 잃지 않기란 어렵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계속 변화한다. 돌봄의 경험으로 작업에 다른 시선을 부여한다. 나 자신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기만 한 내게 힘이 되어준 책이었다.

얼마 전 육아휴직을 끝내고 일터로 돌아간 친구는 회사에서 자신을 반기지 않았다는 말 을 하며 속상함을 털어놓았다. 그를 위로하며 나도 출산을 고민한다고 이야기하니 친구 의 반응이 뜻밖이었다. 마냥 말리기만 할 것 같았는데 진심으로 격려하고 축하해주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분명히 힘들지만, 행복하다고.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라고. 방금까지 축 처져있던 친구 목소리에 생기가 돌았고, 활력이 돌았다. 내가 쌍둥이를 낳 아도 기꺼이 도와주겠다는 할 때 어찌나 힘이 되던지.

조금 더 많은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출산과 돌봄의 과정은 인류가 이어져 오면서 여자들이 해온 일이지만, 언제나 축소되고 등한시되었다. 아이를 돌보는 일보다 사회에 서의 경험과 경력을 더 중요시하는 세상에서 나의 일과 작업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고 생각한다. 돌봄이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하고, 중요한 가치임을 인정하고 존중할 때 아이를 더 행복하게 키울 수 있지 않을까. 나를 잃지 않을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 아이를 낳고, 돌보게 된다면 아이에게 몸으로 느끼게 해주고 싶 다. 너와 엄마의 성장을 수많은 어른이 지지하고, 힘을 보탰다고.

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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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희 요즘 집 앞에 있는 목련을 매일 바라본다.

용식 올해 pot 주제처럼, 나는 언제 소도시에서

인혜 누군가를 만나 취재하고 그 이야기를 정리하는 것이 에디터의 일. 편견 없이 상대방의 생각을 흡수할 마음과 한마디도 놓치지 않을 귀. 답변을 기록할 잽싼 손가락을 준비하여 䢮일䢯에 나선다. 그러나 잠시 뒤 … 일인 건 망각하고 웃고 떠들며 수다 삼매경. 취재를 하는 건지 친구를 만난 건지 상대에게 반해버린 나는 늘 신나게 놀다가 돌아오는 길에야 䢮아차䢯싶다. 이번 호를 준비하며 만난 사람들과도 마찬가지. 일보단 호기심이, 일보단 소통이 앞서는 감정적인 에디터에게 만남으로, 전화로 아낌없이 시간을 내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주연 제주에서 태어나 서울은 잠깐, 그리고 날이 따뜻해질수록 작은 꽃눈이 점점 커지고, 꽃눈의 춘천으로. 아무래도 저는 소도시 삶이 적성에 맞는 것 수도 많아진다. 부드러운 솜털의 꽃눈이 언제쯤 꽃봉오리가 되고, 꽃이 필지 기다리는 게 요즘 나의 즐거움이다. 봄호를 준비하면서 좋아하는 일을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지 고민했다. 선택지에 없던 커다란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두려움과 불안과 설렘으로 간지러운 봄. 뒤돌아보면 하얀 목련이 핀만큼 나도 앞으로 조금 나아갔으면 좋겠다.

같아요.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면서 주변 물결에 휩쓸리는 일은 그만두고 싶었거든요. 춘천살이도 어느덧 8개월이 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한적한 길을 슬렁슬렁 산책하고, 해 질 무렵이면 호수 위로 떨어지는 햇빛 조각의 수를 헤아리며 지내요. 출퇴근은 걸어서 하고 있고요. 노래 두 곡이면 끝나버리는 출근길이 조금 아쉬울 정도랄까요?

인옥 문화로운 삶이란, 결국 미워할 수 없는 사는 즐거움을 느낄까 생각해봤다. 개성 있는 막국수 허세가 있는 삶인듯하다.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가게가 많아서 좋고, 이따금 의암호를 바라보며

과시하는 허세가 아닌, 내가 정한 바운더리 안에서 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다. 퇴근시간이 짧아서 좋고, 가꿔진 화초처럼 빛나는 삶 말이다. 내가 사랑하는 땅을 빌려 농사를 지을 수 있어서 좋다. 친구들이 가까이 있어서 좋고, 삶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다. 내가 사는 동네를 속속들이 다 알고 있고 그 안에 추억이 가득해서 좋다.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도시 춘천, 그리고 반짝반짝 생기 넘치는 저마다의 삶들. 올해 pot에선 일하고 사랑하며, 또 놀면서 보내는 각자의 시간들을 큐레이션하려고 한다. 세상에 하찮은 일이란 없다. 소도시에선 우리가 지역을 알아가며 pot를 만드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도 교환하는 눈빛조차 나비효과를 일으키는 중요한 없을테다. 내가 사는 춘천이 당신에게도 즐거운 도시였으면.

행위가 된다. 䢮사는 게 일䢯이란 말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자. 우리 모두가 꽃을 피워내는 멋진 유발자이다.

42쪽

Pot Back Issues

N. 01 춘천PLAY

N. 02 낭만PLAY

N. 03 공감PLAY

N. 04 시작팟팟

N. 05 함께팟팟

N. 08 화음팟팟

N. 09 도움팟팟

N. 10 봄봄팟팟

N. 11 배움팟팟

N. 12 무한팟팟

N. 15 시작팟팟

N. 16 변화팟팟

N. 17 기대팟팟

1N. 18 환경

N. 19 여성

N. 22 나의 안부

N. 23 너의 둘레

N. 24 마주보는 우리

N. 25 걷다가 문득

N. 26 환상과 낭만

N. 29 친애하는 나에게

N. 30 시작하는 기쁨

N. 31 솟구치는 용기

N. 32 흩어지는 마음

N. 33 기다리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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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06 열정팟팟

N. 07 잇다팟팟

N. 13 온기팟팟

N. 14 기억팟팟

N. 20 문화도시

N. 21 평화

N. 27 떠오르는 환대

N. 28 멀고도 가까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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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은영 시인의 『우리는 매일매일』, (문학과 지성사, 2008)을 인용하였습니다.

PUBLISHER 발행인 최연호

EDITOR IN CHIEF 편집장 고영직

CONTENTS & EDITORIAL DIRECTOR 부편집장 박인옥

EDITOR 에디터 권용식, 정승희, 이인혜

PHOTOGRAPHER 사진 이종희, 강승원, 김효주

ART DIRECTOR 디자이너 이건하

COVER ARTWORK 표지 작품 장승근

ILLUSTRATOR 일러스트 한선주

ADMINISTRATION 기획총괄 지보권

MANAGEMENT 운영 김태경, 유주연

CONTRIBUTING WRITER 기고 공혜진, 노지영, 박정환

THANKS TO 고마운 분 권강현, 김영준, 최수현, 박운철

춘천문화매거진 POT 제34호 「우리는 매일매일*」 2023년 4월 발행

발행처 춘천문화재단 강원도 춘천시 효자상길 5번길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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