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문화놀이매거진 POT 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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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 문화로 같이 즐기다
POT에는 ‘(다양한 것을 담는)그릇, 솥’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춘천문화매거진 팟은 문화로 다 같이 즐기고 소통할 수 있도록 지역의 다양한 문화 콘텐츠와 트렌드,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슈 등 생동하는 춘천의 문화예술을 한 데 담아내는 그릇이 되겠습니다. POT이 이야기하는 춘천문화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춘천 시민의 삶 속에서 엿볼 수 있는 일상의 모습, 그 안에 담긴 보석 같은 이야기를 뜻합니다. 오랫동안 많은 예술가와 청춘들에게 영감을 주는 아지트로 자리매김해 온 춘천. POT은 춘천이라는 멋진 지역을 춘천 시민과 춘천을 찾은 사람들이 보다 즐겁게 향유할 수 있도록 다채롭게 펼쳐 보이겠습니다.
OPEN 문화로 마음을 활짝 열다
TALK 문화로 함께 이야기하다
표지 일러스트 「솟구치는 용기」 분노와 용기 사이, 한 꺼풀씩 벗겨지는 나의 조각들
우리에게는 정당한 분노가 필요할까요?
편집장의 여는글 10
분노는 나의 힘 12
1 부조리한 세상을 비추는 거울, 오세경 16 2 공간, 도시의 깊숙한 지층을 들추어내다, 한대희 26 3 터져 나오는 시, 붙잡는 시인, 전윤호 36
당신의 인사 58
낙화(落火) 74
우리를 화나게 한 그 날의 이야기 46
함께하는 분노는 창조의 에너지가 된다 54
생각의 탄생, 시인—시민의 탄생 62 여름방학에 공연장에서 만나! 68
여름은 ‘열매’가 익어가는 계절입니다. 열매는 여름이라는 자기 단련의 시간을 갖지 않으면 제대로 결실을 맺을 수 없습니다. 한 도시의 라이프스타일도 그러합니다. 도시에서의 삶 또한 언제나 항상 유쾌하고 재미있는 일만 있을 수 없습니다. 문화도시 정책에서 시민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헤아려 들을 줄 아는 ‘인내자본patient capital’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나와 도시의 변화를 위해서는 거룩한 분노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어느 시인이 1960년대에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라고 장탄식한 것은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라는 내 안의 소시민의식을 비판했기 때문입니다. 하루아침에 누구나 참여하는 시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봄 오픈한 ‘모두의살롱’ 같은 시민공유공간들이 도시에서 ‘숨구멍’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빗장을 잠근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가 아니라, 내가 사는 도시 문제는 내가 직접 참여해 같이 해결한다는
주인의식을 기르는 ‘시민 양성소’가 될 것입니다. 나와 우리가 사는 도시에는 장애인 이동권, 노키즈존, 연령 차별주의ageism, 성소수자 차별, 가난포비아 등등 여전히 사회적 성원권成員權을 가로막는 장벽들이 적지 않으니까요. 인류학자 김현경이 『사람, 장소, 환대』2015에서 “사람이라는 말은 사회 안에 자기 자리가 있다는 말과 같다”라고 강조한 뜻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번호 «pot»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나와 도시를 바꾸는 ‘화火’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화를 찾는 과정은 결국 인간이 만든 모든 상황은 인간이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의 순환고리를 찾는 과정입니다. 일상에서 얻어낸 ‘작은 승리’의 기억이 중요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겠지요. 저마다의 음색音色으로 작업하는 오세경 · 전윤호 · 한대희 작가의 목소리를
경청했으며, 유현옥 · 유해정의 칼럼에서 춘천이라는 도시에는 과연 있어야 할 것들이 제 자리에 있는 것인지를 점검하고자 했습니다. 철학자 파커 J. 파머가 역설했듯이,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마음이 부서져 흩어지는 것broken apart이 아니라, 깨어져 열리는broken open 시민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벌써부터 유쾌한 변화의 징후가 감지됩니다. ‹도시비틀즈›와 ‹생각의 탄생› 프로젝트에 참여한 시민과 예술가들의 변신이 특히 눈에 띕니다. 최근 오픈한 ‘아트살롱’과 ‘모두의살롱’은 도시의 숨구멍 노릇을 본격적으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춘천형 예술교육 거점 공간이 될 기초센터 건립 또한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시민 누구나 자신의 재능과 취미를 만끽하며, 마음껏 ‘활보闊步’할
수 있는 전환도시로 변신할 수 있다는 기대를 품는 춘천시민들이 늘고 있습니다. 사람의 자리를 생각한다는 것은 누구나 활보할 수 있는 삶터를 만든다는 말과 같은 의미일 것입니다. 활보하라, 당신의 새로운 발걸음이 당신의 새로운 이력履歷이 될 것입니다. 이력이란 신발履의 역사歷입니다. 자연을 더 생각하고, 인간중심주의 너머를 생각하며, ‘정의로운 전환’을 추구하려는 각성한 시민들이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 편집장
*삽화설명: 거리예술 그래피티로 인류 공통의 문제를 날카롭게 다루는 뱅크시 작품을 인용했다. 낙서된 글자와 드로잉을 더해,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표현하는 예술 방식을 담았다.
에디터 권용식
분노는 나의 힘
엉뚱한 일에 휘말리는 나에게 화가 나요
고향인 춘천으로 얼마 전에 다시 돌아왔어요. 춘천의 작업 환경이 괜찮아 보였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본업보다 다른 일들이 더 많아져서 작업할 시간이 오히려 부족해요. 무리한 부탁에도 거절 못 하는 저 자신에게 화가 났어요. 어차피 제가 하기로 약속한 상황이라 참아야 하는 게 맞는데도요. 이런 감정을 표출하기 어렵다 보니 답답해요.
관계는 결국 파국, 손절이 가져다 준 평온
정말 친한 친구였어요. 10년 넘는 시간 동안. 오랜 시간 동안 저는 그 친구에게 화나는 일이 있어도 화를 내지 않았어요. 그냥 내가 참으면 된다는 바보 같은 생각이었죠. 그렇게 사소한 사건들이 쌓이고 쌓여서 어느 순간, 한 사건이 기폭제가 되어 버렸어요. 둘 다 그동안 참은 화를 냈던것 같아요.
상사를 설득할 수 없어 답답해요
분노는 불현듯 일상에서 온다. 우리는 분노를 통해 해방되고 승리하기도 하지만, 또 패배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어떤 결과를 낳든 분노라는 감정은 그만큼 솔직해서, 우리 자신을 투명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분노는 힘이 세다. 춘천 시민들이 느낀 분노를 소개한다.
저는 이 일을 반드시 하고 싶은데 상사를 설득할 수 없어서 화가 났어요. 상사는 오히려 저를 설득하더라고요. 상사라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도 없고, 화난 마음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어 삭이느라 힘들었네요.
패배의 경험
이제는 저 자신에게 집중하려고 해요. 멀리 보고 작업하려고요. 사람들 간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저 자신과 본업에 좀 더 집중하려고 합니다.
예술가 K
정말 친했는데, 오히려 서로 연락을 끊은 후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저도 모르게 많이 감내하고 지냈던 거죠. 사실 20대에 함께한 추억이 많아서 문득 자주, 생각은 나요. 제 표현 방식의 미숙이 가져온 실패한 관계 같아요.
학생 A
저는 화가 나면 얼굴에 티가 나는 편이에요. 상사가 제 얼굴을 보고 알게 되어 관계 자체에서는 서로 해소하는 시간을 가졌지만, 원하는 방향대로 일할 수 없어 답답한 마음은 여전해요.
직장인 H
승리의 기쁨
분노를 통해 실력이 늘어났어요
직장생활에서 관성적으로 업무가 이뤄지는 회사 분위기 때문에 화가 났어요. 저는 일을 치열하게 하고 싶고 열정도 가득한데 조직은 점점 관성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조직이 내게 맞지 않나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더라고요.
진실을 밝히는 분노를 표출해요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사건 당시, 저는 고등학생이었어요. 강대국의 뻔뻔한 태도와 우리나라 언론의 침묵에 화가 났었어요. 이건 다 같이 분노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함께 목소리를 내고 싶어 A4 용지에 글을 써서 춘천 명동 버스정류장과 지하상가 곳곳에 붙였어요.
퇴사를 성취했어요
결혼하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회사에서는 퇴사하는 사람을 배신자로 생각하더라고요. 마치 이상한 교육으로 직원을 세뇌하는 것 같았어요. 평소 이런 문제에 대해 불만이 많았고 화가 쌓여 있었던 편이라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퇴사했답니다.
분노는 변화를 만들어줘요
시키지도 않았는데 매일 야근을 했어요. 일을 더 잘 하고 싶었고 ‘내가 보여주겠다’ 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시간이 흐르자 업무에서 성장이 있었고 결과도 좋았어요. 분노가 에너지가 된 셈이네요.
세밀한 표현을 주로 하고 있어서 작업 속도가 더딘 편이에요. 이번에 작업 속도를 올려 보려고 재료를 바꿔봤는데, 오히려 오래 걸려서 답답하고 화가 났어요. 이왕 시작한 거니까 끝을 맺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직장인 B
저는 사람들에게 화를 잘 못 내는 사람이에요
고등학교 1학년 때라, 제가 아는 사실의 폭이 좁았을 거예요. 어렸음에도 제 나름대로 분노를 표출하고 진실을 알릴 수 있어 뿌듯했어요. 또 제가 쓴 글이 당시 유명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왔었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분노에 공감해줘서 기뻤어요.
저는 화를 내는 게 불편해요. 그래서 저는 분노를 느껴도 표현하지 않는 편이에요. 불편한 마음을 좋게 이야기하면 말이 잘 안 통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만나지 않게 돼요. 그래서 인간관계가 좁아진 것 같고요.
프리랜서 Z
분리수거 시스템 때문에 화가 나요
일전에 환경 교육을 받은 적이 있어요. 나라에서는 분리수거하라고 하는데 분리수거를 해서 잘 버려도, 플라스틱 대부분이 재활용되지 않고 매장되거나 소각된다고 하더라고요. 시스템 문제가 더 시급해 보이는데, 환경오염의 책임을 일반 시민들에게 돌리는 것 같아 화가 났어요.
말을 하고 나니 사람들의 시선은 오히려 신경이 쓰이지 않았어요. 저 혼자 신경을 썼던 것 같아요. 의외로 이해해주시는 분들도 많았고요. 화를 제대로 표현해야 쌓이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죠.
직장인 T
자기성찰의 시간
화가 나는 지점을 돌아보면, 제가 부족한 점이나 변화가 필요한 지점을 알게 돼요. 짜증이 나고 답답하긴 하지만, 감정은 제 본 모습을 보여 주는 것 같아요. 재료를 바꾼 작업의 경우 속도는 더디지만, 오히려 더 대비가 선명해지고 더 생동감이 느껴지게 되었답니다.
작가 M
이제는 마음을 편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들만 주변에 남았어요. 그래서 더 자유롭고 더 즐거워요. 타인의 기준대로 따라가지 않고 내 방식대로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거든요.
시민 O
분리수거와 관련된 민원을 넣었어요. 당장 시스템이 바뀌진 않겠지만 목소리를 내고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면 조금씩 바뀐다는 걸 알거든요.
시민 J
포토그래퍼 에디터 권용식
부조 부조리한 세상 세상을 비추 비추는 거울 거울
회화작가 오세경
작가 오세경은 우리 사회의 단면을 연출하고 그린다. 그는 3D 프로그래밍, 모델 섭외, 촬영, 미니어쳐 등 기술을 통해 이미지를 연출하고 장지*에 천천히 담는다. 그의 그림은 무척이나 극사실적이라서 실제로 존재하는 세상 같지만 그 안에는 익숙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그의 세상이 있다. 약자들이 희생당하는 시대에 분노하는 작가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어쩌면 다음은, 이제는 나인가?”
오세경 부여 출신의 평면 회화작가. 작가는 사회적 문제, 부조리한 시스템 등을 작가 특유의 회화적 장치를 통해 작업한다. 세종대 회화과 및 동 대학원 동양학과 졸업하였다.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2016 OCI YOUNG CREATIVES 작가, 2022 종근당 예술지상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었다. 현재는 예술소통공간 곳 입주작가로 활동 중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짝꿍›, ‹사생아›, ‹믿음의 선›, ‹아수라› 등이 있다.
의미한다. 현재는 얇은 순지를 겹쳐 만든 합지를 길게 뽑아 만들어 내구성을 높힌 한지. * 한지의 종류 중 하나. 닥나무 줄기를
“지금 한국 사회는 개인의 자아와 권리가 성숙함을 바라보고 있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성숙한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많은 갈등과 분노들이 표면적으로 올라오는데요. 그런 사회적인 문제들이 저에게도 닥칠 것 같은 불안함과 그에 대한 분노가 있어요.”
반가워요. 오세경 작가님,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평면 회화작가 오세경입니다. 한국화를 중심으로 작업하고 있고 기법이나 재료 활용, 연출 방식은 서양화 기반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요즘은 레지던시 활동도 하고 개인 작업도 하면서 연출된 회화 작업을 자연스럽게 해나가고 있답니다.
연출된 회화 작업이란 단어가 생소해요. 영화의 언어를 빌렸는데요. 제 작업의 과정을 생각해보면, 전체 일정을 산정하고, 등장인물을 섭외하고 사진 촬영을 의뢰하는 디렉팅 과정을 거치거든요. 촬영을 통해 원하는 결과물을 얻으면 3D 프로그래밍, 미니어처 작업 등을 통해 이미지를 구체화하고 화면에 다시 옮기는데 그 일련의 과정이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과 비슷해서 그렇게 표현했어요.
예술소통공간 곳에 입주한 지 얼마 안 되셨다고 들었어요. 춘천 생활은 어떠세요? 춘천은 제게 군 입대에 대한 추억이 있는 곳이에요. 이렇게 다시 오게 되었네요. 예술소통공간 곳은 춘천에 사는 친한 후배 덕분에 알게 되었는데, 조건이 잘 맞아 오게 되었어요. 서울에서 일하고 있어서 처음엔 고민했는데, 교통편이 잘 정돈되어 있어서 잘 다니고 있고요. 이 공간이 비교적 신생 공간인 만큼, 활기찬 기운을 받아 즐겁게 활동하고 있고, 입주작가분들과 함께 기획전도 준비하고 있어요.
기획전을 준비하고 계시는군요. *에서는 한선주 작가님과 함께 작업하게 되었어요. 네. 이번 전시 코로나 상황에서 ‘관계’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한선주 작가님은 슬픔에 대해 이야기할 거고, 저는 분노와 욕망에 대해 이야기할 예정이에요. 감정은 생겼다가도 소멸하고, 사라졌다가 다시 생기기도 하는데요. 이런 특성이 마치 무한히 돌아가는 톱니바퀴 같다고 생각했고, 우리가 감정의 주인이라는 의미에서 ‘무한의 주인’이란 소주제를 갖고 준비하고 있어요. 전시 공간 안에 현실과 다른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준비한 내용을 어떻게 이미지화할지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 전시 ‹세계와 나, 그 사이›는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바탕으로 단절의 시대에 ‘연결’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예술소통공간 곳 작가 5인과 지역 신진작가 5인이 각각 매칭되어 7월 14일부터 30일까지 춘천문화예술회관 전시장에서 열린다.
불꽃송이 Little fire , Acrylic on Korea paper(Hanji), 194×130㎝, 2022
서울에서는 어떤 일을 하시나요? 고등학교에서 미술 입시를 꽤 오랫동안 가르치고 있어요. 학원에서도 있었고요.
작업 소재로 여고생을 자주 사용하시는데요. 입시미술과도 많이 연결되어 있겠어요. 이미지 작업에는 표현 대상이 있어야 해요. 표현 대상에 대한 이해도 어느 정도 필요하고요. 입시미술을 오랫동안 가르치면서 학생들을 이해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요. 그래서 학생들도 모델 제안에 거부감이 없었던 것 같고요. 또 미대생이 될 아이들이라서 일반 모델분들보다 이미지가 어떻게 연출되고 변용되는지에 대해 설명하기 수월했고, 학생들도 호의적이었어요.
‹짝꿍›, ‹몰락› 등 작가님 작품이 한국 사회의 맥락과 밀접하게 맞닿아있단 느낌이 들어요. 지금 한국 사회는 개인의 자아와 권리가 성숙함을 바라보고 있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성숙한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많은 갈등과 분노들이 표면적으로 올라오는데요. 그런 사회적인 문제들이 저에게도 닥칠 것 같은 불안함과 그에 대한 분노가 있어요. 그런 마음이 제 그림에 전반적인 분위기로 깔려 있는 듯 해요. 예전에는 ‘이걸 알려야 해’라는 마음으로 보도 형식의 작업을 했다면 요즘은 분위기를 전달하자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짝꿍›은 세월호 사건을 그렸던 거고, ‹몰락›은 그때 당시 우리나라 남녀갈등을 그렸어요.
*과도 연결되겠네요.
지금 작업하는 작품 그렇죠. 불이라는 게 위협을 상징한다고 하면, 불을 마주하는 저 대상은 화면 안에서 가장 약한 존재인 거예요. 어떤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이고, 또 저 사람에게 합리적이거나 상식적인 모습을 기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림에서는 긍정적인 상황으로 가지 않을 거란 예상을 암시하고 싶었어요. 이렇게 계속 내몰리다 보면 결국 언젠가 모두가 무너질 거예요. 결국, 저에게 불은 리셋의 의미를 가진 셈이에요.
* 괴물(Monster), 162x130cm, 장지에 아크릴, 2022
저는 어떤 일이 있으면 자꾸 이후 상황을 생각하게 되는데요. 사실 그게 좋은 방향이긴 하죠. 긍정적이고 행복한 주제가 아니다 보니까 내면의 어떤 침울한 기분을 계속 바라보다 보니 저 자신도 에너지 소모가 많아요. 필요한 줄 알면서도 완전히 대면하기 힘든 일이고, 제 작업이 대중들에게도 명확한 한계선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이런 지점을 생각 안 할 수 없긴 해요.
이 작업 같은 경우에는 어떤 준비과정이 있었나요? 기자 사진을 토대로 참고하고 진행했고요. 직접 공간에 가서 사진을 찍기도 했어요. 불 표현을 위해 미니어처에 직접 불을 내봤는데, 크기가 작다 보니 건물이 타들어 가는 느낌이 안 들더라고요. 그래서 대신에 3D로 빛의 방향과 불의 난반사를 가늠하는 방식으로 합성을 한 후, 공간의 배경을 찍은 사진에 연출하며 작업을 했어요. 그리는 시간만큼 준비하는 시간이 걸려요. 모든 걸 준비해 놓고 작업하면 금방 하겠지만, 작업하면서 필요한 것들을 알게 되고, 기다려야 하고 배워야 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에요. 서서히 모든 게 준비되면 자신감을 갖고 본격적으로 그림 작업을 해요.
장지에 아크릴, 에어브러시 작업이 특별하게 느껴져요. 이런 방식으로 작업하는 이유가 궁금해요. 서양화는 물감층을 덧입히는 방식이라면, 장지는 물감을 흡수하다 보니 칠한 후에 번짐도 계산해야 하고 물감이 마를 때 채도나 명도의 변화를 고려해야 해요. 저는 시간을 두고 재료와 번갈아 가며 작업하는데 시간을 두면 장지도 답을 줘요. 이런 여유있는 작업 방식이 장지로 구현이 되어 즐겨 작업하고 있어요. 아크릴은 완성된 물감이 아니다 보니 보조제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저만의 방식으로 튜닝이 가능해 자유로운 느낌이 좋아요. 또 아크릴이라는 물성 자체가 종이와 크게 이질적이지 않아서 재료적인 특성을 잘 활용할 수 있고요. 에어브러시는 극사실을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했는데요. 처음에는 장지의 한계를 느껴서 에어브러시로 극복하려고 했는데 그도 단점이 있더라고요. 에어브러시는 구름이나 불 같은 걸 그릴 때 사용하는 편이고 많이 사용하진 않아요. 주로 명확한 대상을 표현할 때 붓으로 작업을 하고요. 손이 느린 편이라 처음에는 효율에 최대한 집중했는데 결국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괴물 Monster, Acrylic on Korea paper(Hanji), 162×130㎝, 2022
아수라 Asura, Acrylic on Korean Paper(Hanji), 130×97㎝, 2018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기꺼이 속는 삶› 같은 전시 제목이 인상적이에요. 어떤 방식으로 구상하는지 궁금해요. 학교 수업 중에 “예전에는 그림과 글이 하나였다.”라는 말이 제게 울림이 있었어요. 아시아에서는 시서화라고 해서 글과 그림이 하나의 예술 형태로 자리를 잡았고, 서양에서도 글과 그림의 흔적으로 남아있는 게 전시와 그림의 제목들이거든요. 시나 소설을 쓰진 않지만 한 문장에 그림의 핵심적인 가치를 압축시킬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늘 있었어요. 처음에는 무척 간단했어요. 좋아하는 게임의 유닛들을 넣기도 했고요. ‘제목 짓기가 이런 식으로도 가능하구나’ 생각했죠. 나중에는 제목 짓기가 재밌어서 어떤 그림은 제목을 지으려고 그린 적도 있어요.
작품 관람을 한 관객 중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 있었다면 공유해주세요. 한번은 전시를 본 관객분이 작품 하나하나에 대한 본인이 느낀 감정과 지식을 개인의 SNS에 장문의 글로 정리해서 올려 주셨어요. 자신이 겪은 일을 위로받고 간다는 표현을 해 주셨는데요. 그 말에 저 또한 위로를 받았고, 정성스러운 긴 글에 깊이 감동 받았던 기억이 나요. 또 어느날 친한 선배가 학교 작업실에서 제 작업을 쭉 보시고는 저를 살포시 안아주었던 기억이 나네요. 심적으로 힘든 상황이었는데 선배에게 감동했죠.
처음 그림을 어떻게 그리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어릴 때 유치원이 끝나고 집에 가면 아무도 없었어요. 그때 아버지께서 항상 아침에 점으로 된 그림들을 많이 만들고 가셨어요. 그 점들 잇는 게 그림이 되고 제게 놀이였어요. 그게 제 첫 그림의 기억이에요. 시골에 살아서 동네에 꼬마애가 없다 보니까 동네 어르신들이 제가 하는 걸 모두 신기해하셨거든요. 의미부여도 많이 해 주시고요. 그림 그리는 게 낯설 수도 있었을 텐데 주변 분들의 호의로 계속 그리게 되었던 것 같아요.
가장 아끼는 작품이 있나요? 대학 3학년 때 처음으로 작은 캔버스에 아버지 얼굴을 그려서 보여 드렸어요. 그전까진 그림을 그리면서도 누군가를 위해 그려본 적이 없었더라고요. 그걸 보시고 아버지가 그렇게 좋아하실 줄 몰랐어요. 그때 참 잘했다고 생각해요. 아버지가 병이 있으셔서 그 시기에 그리지 않았다면 못 그렸을 거예요. 그 그림이 가장 마음에 남는 그림이에요.
앞으로의 작업은 어떻게 진행될까요? 이미지화하는 작업을 많이 하다 보니 원작을 기반으로 한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저는 제 작업의 기원이 있었으면 좋겠거든요. 설계도 같은 거죠. 작업할 때 설계도가 있으면 연출을 할 때 더 심도 있게 작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하는 일이 어느 정도 끝나면 좋아하는 음악을 기반으로 작업해 볼 계획이에요.
몰락 Downfall, Acrylic on Korean Paper(Hanji), 162×227㎝, 2017
분노는 고통을 수반한다. 고통을 직면하며 작업해 온 작가의 삶을 생각했다. 작가의 말들을 들으며 때로는 슬펐고 때로는 화가 났다. 작가에게 불이 리셋을 의미한다는 말이 마음에 남았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더 속아야 하고 더 분노해야 할까. 막막해졌다.
포토그래퍼 에디터 박인욱
공간, ( ) 도시의 ( ) 깊숙한 ( ) 지층을 ( ) 들추어내다
한대희 춘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강원대학교 미술학과 졸업 후, 타지에서 본격적으로 설치미술을 시작했다. 2013년 아르숲 4기 입주작가로 선정됐으며 개인전 ‹스스로 구하라(2014)›, ‹지리멸렬(2015)›, ‹혜가의 팔(2018)›, ‹788번의 인사(2019)›, ‹25- 9(2021)› 등을 선보였다. 2014년엔 지역예술가 학습공동체 ‘이음’을 결성했고 ‹망대, 닫혀진 문(2015)›, ‹소요유 춘천(2019› 등 프로젝트를 통해 기획 분야까지 폭을 넓혀, 춘천에서 예술가적인 삶을 살고 있다.
재개발로 인해 사라질 뻔했던 오래된 망대, 오랜 시간 흉물로 방치된 폐건물 고층 아파트에 둘러싸인 구도심의 오래된 주택. 모두 춘천에 있는 장소로, 한대희 작가가 설치미술 전시공간으로 활용했던 곳이다. 깔끔하게 정비되는 자본주의 도시화에서 일명 걸림돌로 치부되는 외로운 곳들. 흥미로운 한대희 작가의 전시회 도록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옛 기억이 떠올랐다. 재개발로 폐허가 된 동네는 어린 시절 모험심을 자극하기 딱 좋은 곳이었다. 발을 들이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했던 금단의 공간. 담이 큰 친구는 반쯤 부서진 집에서 뭔가를 주워 오기도 했다. 예를 들면 그 집에 살던 사람들의 사진첩이나 반짇고리 같은 것들. 곧 파헤쳐질 운명이란 걸 알았지만 떠난 사람이 야속했고 서글픔이 밀려왔었다. 겁이 없었던 그 친구에 대한 기억과 다시 끌어올린 그때의 감정에 한대희 작가의 작품이 더욱 진하게 오버 랩 됐다. 나와 우리는 잊어버렸지만, 예술가 한대희는 기록하고 있다. 애써 외면하고 싶은 도시의 불편한 공간에서 그만의 유니크한 방식으로 소시민들의 삶과 내재적 욕구를 담대하게 쏟아내는 작가. 누구보다 고된 길을 걷는 것처럼 보이는 그가 점점 궁금해졌다.
설치미술가 한대희
“주제의식은 가지고 있지만, 그 자체를 목적으로 두진 않았어요. 사회적인 시선이 드러나지만 그게 제 작품의 목표는 아닌 거죠. 예술가가 뭔가 가르쳐주거나 일침을 날리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현실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을 제시해줄 순 있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그런 게 예술의 매력일 수도 있고요.”
안녕하세요 작가님, 먼저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2013년 아르숲 입주작가로 선정되면서 춘천에서 예술가로서 새 삶을 시작했어요. 그 전부터 타지에서 작업을 해오고 있었지만, 삶의 뿌리가 있는 이곳 춘천에 오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죠. 다른 분야의 지역예술가들과 교류하면서 2014년엔 학습공동체 ‘이음’을 결성하기도 했고요. 각자의 작업과 기획 등을 소개하고, 심화시키고 공유하는 활동을 함께 했었어요.
작가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게, 약사동 ‹망대, 닫혀진 문› 전시였던 것 같아요. 알고 보니 예술공동체 ‘이음’의 프로젝트였더라고요. 어떤 전시였나요? 제가 사실 약사동에서 40년을 살았는데도 망대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어요. 그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왔구나 싶더라고요. ‹망대, 닫혀진 문› 전시는 2015년에 했던 프로젝트로 저는 ‘이음’의 책임기획자로 참여했어요. 당시 약사동 재개발 조합이 결성되면서 망대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었죠. 사라질 망대의 건축학적, 역사적인 부분을 조명하고, 주변 주민들의 삶을 수집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했어요. 문학과 연극, 시각예술까지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함께 작업을 한 건 참 좋은 경험이었어요. 망대 근처 개인의 차고를 빌려 전시공간으로 만들고 아카이브와 망대를 주제로 한 작업들을 선보였는데,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이 처음 시도해보는 시각예술 형식의 아카이빙을 해야 해서 쉽진 않았지만 재미있었어요.
‹망대, 닫혀진 문› 전시를 준비하면서 느낀 감정은? 처음엔 춘천 시내의 화재를 감시하기 위한 초소였다가 이후엔 민방위 사이렌을 울리는 시설로 이용되기까지 꼭 지역민의 삶의 변모 과정을 닮았더라고요. 망대 주변에 살던 주민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빈집이 많아졌는데 그 모습이 참 씁쓸했죠. 사실 이주를 하거나 삶의 모습이 바뀌는 데는 역사적인 이유가 많잖아요. 예를 들어 전쟁이나 정치적인 상황 같은. 그런데 최근에는 행정과 자본 때문에 뿌리 깊게 내리고 있었던 삶이 흔들리는 게 안타까웠어요. 기획자로서 주민들의 삶을 보다 정성스럽게 기록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망대, 닫혀진 문› 2015. 약사동 망대 근처 차고 5인의 지역예술가가 참여해 약사동 망대와 주변을 리서치하고 아카이브했으며 망대를 주제로 한 작업들을 선보였다.
‹garden› 2019. 춘천 옛 조달청 차고 바닥에 그린 정원도식의 카펫에 관객의 접근에 반응한 스모그가 공간을 채운다. 창으로 새어든 빛이 프리즘을 통해 양탄자에 무지개가 드러난다.
‹스스로 구하라› 2014. 춘천 아르숲갤러리 1층과 4층을 연결하는 스위치의 수직구조로 구성되었다. 소금을 끌어올리는 행위는 바다를 끌어올린다는 논리적 비약을 전제로 한다.
작가님께서 느낀 그런 감정들을 작품을 통해 전달하려고 하는 편인가요?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과 분노 같은 것들이요. 감정을 가지고 작품에 임하진 않아요. 작업할 때는 오히려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보려고 해요. 예를 들어, ‹garden›이란 작품에서는 춘천이란 하나의 장소로서 바라보려고 시도해봤어요. 자본주의에 밀려 자신의 경작지에서 내몰리는 현상을 바라봤어요. 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많은 이들이 정성스럽게 지키고 가꾸던 울타리 안의 이상적 장소에서 내쫓기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것이 춘천을 덮어버린 안개의 기억과 오버랩됐어요. 저에게 춘천은 일시적이고 기화되는 장소 같았어요. 안개가 사라지면 잠시 드러나는 섬처럼 우리 현재의 삶도 순간적으로 흩어지고 모양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어요. 내가 그려내는 조형언어를 통해 그것의 좋고 나쁨을 따지고 계도하려는 목적이 없다. 사회적인 시선이 드러나지만 그게 제 작품의 전부는 아닌 거죠. 예술가가 뭔가 가르쳐주거나 일침을 날리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현실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을 제시해줄 순 있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그런 게 예술의 매력일 수도 있고요.
작품에 ‘주제는 있으나, 의도는 없다’로 이해해도 될까요? 작품에 대한 해석이 ‘작가의 의도’ 안에 갇혀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저의 작품은 익숙하지 않은 개념적 설치물들이라 관객들이 자주 물어보시거든요. ‘작품의 의도가 뭐예요?’라고 물으시면 저는 대답을 하지 않아요. 제가 설명해주면 제시된 언어 안에 갇히기 때문이에요. 저의 작품은 사회적인 소통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전시를 통해서 관객을 만나고 사회를 만나는. 그 때는 이미 작품이 제 것이 아닌 게 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엔 사회문제를 발굴하는 데 있어, 예술가적 시선에 많이 주목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시나요? 예술가적 시선은 곧 ‘다르게 보기’ 같아요. 아르숲 입주작가로서 1년 마감 전시를 앞두고 있을 때였어요. 어린 학생과 세월호 참사에 대해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가족도 아닌데 왜 슬퍼해야 하죠?’라고 묻더라고요. 유족들에 대한 사회적 비용이 부담된다는 얘기도 하고요. 그때 저는 ‘왜 그렇게 생각할까?’ 궁금해지더라고요. ‘그 사고와 나는 별개의 문제일까? 연결되지 않고 떨어져 있는 걸까?’ 그런 인과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스스로 구하라› 전시를 통해 구현했고요. 작품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오로지 원인 행위와 결과의 연결이라는 인과관계로만 바라봤죠.
‹스스로 구하라›는 어떤 작품인가요? 아르숲 1층과 4층이 연결되어있는 작업으로, 1층에 소금자루를 도르레에 매달아 설치했어요. 받침에 스위치가 있어서 소금자루를 끌어올리면 4층에 불이 꺼지도록 구성했고요. 1층과 4층의 인과관계를 관객들 모르게 설계해 놓는 거죠. 어른들은 이미 사회적 이야기에 학습되어 있어서 오히려 저에게 설명해달라고 요청해요. 하지만 아이들은 굉장히 직관적이라 저에게 묻지 않고 그 인과성을 체험으로 알아내더라고요. 1층에서 소금자루를 끌어올리고 재빠르게 4층으로 올라가 발품을 팔아 알아내죠. 그리고 본인이 체험하고 느낀 점을 이야기해요. 그래서 아이들 관객이 참 흥미로워요.
공사가 중단된 채 방치된 소양강변의 폐건물에서도 전시를 하셨어요. 그때 큰 화제가 됐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그 장소를 선택하게 된 건지? 작품활동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바로 전시공간을 찾는 일이었어요. 자유롭게 설치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거든요. 그래서 직접 공간을 찾아다니며 부딪히는 편이에요. 행정기관에 문의하고 소유주를 찾고. 그러던 어느 날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데 이 건물 중간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더라고요. 그때 ‘저 건물이 완전히 죽어있는 공간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계획했던 전시의 이미지와 딱 맞아 떨어졌죠. 짓다 만 건물이라 그런지 닫혀있지도 열려있지도 않은 반(半)공간. 더욱이
소양강을 바라보고 있어 연출적인 면에서 굉장히 훌륭한 장소였죠. 폐허미(美)로부터 오는 미적 쾌감도 상당했고요. 전시 내내 추위와
강바람에 고생하긴 했지만요. 장소를 결정하고 나서부터는 정말 고난의 연속이었어요. 전시공간으로 빌리기 위해 권리자를 수소문하고 또 거절당하기도 하고, 무모하고 용감했죠.
도시의 예쁘고 좋은 것만이 문화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 같아요. ‹지리멸렬›은 어떤 전시였나요? 작품 제목처럼 복잡했던 전시에요. 폐건물에 대한 터부와 거부감. 토막살인 사건과 창조신화에 등장하는 신체 해체와 조합, 전체와 부분 이런 것들을 작업의 요소로 삼았어요. 이런 복잡한 이야기들을 공간을 활용해 다층적이고 다면적으로 엮었죠. 폐건물로 향하는 관객의 기분까지 전시의 일부가 됐어요. 작가는 작품 전체를 하나로 보지만, 관객들은 이 공간에서 파편화된 서로 다른 경험을 하게 되죠. 2층과 3층에 설치된 작품들 중 그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업이 살해범의 얼굴을 구성하는 304장의 엽서예요. 화소 조각으로 나뉜 엽서를 초대장으로 발송했는데 관객들은 그 엽서가 살해범 얼굴의 한 조각인지는 모르죠.
‹소요유 춘천› 2019 춘천사회혁신센터 지역 내 작가 3인과 타지역 작가 3인이 모여 춘천을 탐방하고 작업한 전시기획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전시장소와 도시공간에 대해 생각이 많으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2019년에 ‹소요유 춘천›이라는 전시를 진행했어요. 6명의 작가가 3개월간 춘천을 탐방하고 작업하는 전시기획이었는데, 공간 섭외하기가 정말 만만치 않더라고요. 그러다 어렵사리 춘천사회혁신센터에서 전시를 하게 됐죠. 리모델링하기 전이라 공간이 비어있기에 가능했어요. 사실 설치미술가로서 오랫동안 공간을 활용하고 싶은 욕구가 있어요. 춘천에 유휴공간은 많은데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보니, 원치 않게 전시를 짧게 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전시를 계획할 때마다 유휴공간을 조사하다 보니 지역유휴공간 활용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25-9› 2021 춘천 약사동 작가가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 사적 공간은 개인 내면의 반영이라 생각했고 팽창하는 내면적 욕구를 세월의 무게를 견디는 벽 안에 표현했다.
‹지리멸렬› 2015 춘천 부성타운 흩어져있는 진실, 파편으로 전체를 가늠하려는 세태에 대한 의문 폐건물이라는 반(半)공간이 던지는 불협화음과 불통, 단절의 메시지.
*지리멸렬: 흩어지고 찢기어 갈피를 잡을 수 없음
특히 설치미술 분야는 공간에 대한 욕구가 더 클 것 같아요. 물리적인 조건들로 인해 작업이 만들어지기도 해요. 공간이 먼저 주어지면 채우는 식이죠. 현대미술에서 ‘스케일’은 큰 의미가 있어요. 다양한 형식과 실험적인 방법으로 작업을 할 수 있어야 하죠. 현대미술이 발전하는 속도에 비해 지역은 매우 소극적으로 반응하고, 창작은 모더니즘에 머물러있는 것 같아요. 예술가들의 의지가 있어야 하고, 지역사회나 정치인들에 대해 요구를 해야 하는 부분 역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번듯하게 새로 짓는 것보다 유휴공간을 활용해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예술공간을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죠. 무엇보다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작가님의 작품에는 파이프 구조물이 많이 쓰이는 데, 이 역시 공간의 영향이 있는 건가요? 같이 활동하는 작가들 역시 공간에 대한 목마름이 있어요. 꾸준히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보니 작품이나 재료, 공구들을 보관하는데도 제약이 크죠. 그래서 작가들이 제안한 게 가변성과 유동성 있는 재료로 공간을 창출하자는 거였죠. ‘선’으로 입체를 구상할 수 있는 가장 미니멀한 재료. 그래서 아시바(파이프) 구조물을 많이 쓰게 된 거죠.
도시의 아름다운 면이 아닌, ‘불편한 진실’을 작품에 담는 이유가 있다면? ‘아름답다’는 기준에 대한 고민이 있어요. 더디게 발전하거나 오래된 폐허조차도 ‘미’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생각해요. 예쁘지 않고 불편한 것도 미적인 쾌감이 될 수 있어요. 예술가들의 역할은 그런 부분을 건드리는 것이고요. 불편한 건 오히려 행정이나 권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도시의 파사드라고 생각해요.
예술가로서 느끼는 불편함은 뭘까요? 자유로운 예술가조차도 공적인 영역에 들어가면 무기력해지는 것 같아요. 오히려 예술은 그 자체가 공공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공공미술이라는 타이틀로 행정에서 강요를 하다보면, 예술성의 고려보다는 주문자의 눈치를 보게 돼 질적인 면이 하락할 수 밖에 없어요. 그리고 공간에 대해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긴 한데, 공유지에 대한 가치가 훼손되는 듯해 아쉬워요. 마을공동체적 삶을 유지해주는 공간들. 예를 들면 나물을 말리거나 빨래도 널 수 있도록 공유된 빈 공간으로, 저녁무렵 아이들이 뛰어놀고 할머니들이 나란히 앉아 담화하는 진정한 커뮤니티 공간이 필요하다고 봐요. 모두의 동의 없이 도시재생이라는 이름으로 그 자리에 새 건물이 들어서거나
주차장으로 변해버리죠. 공동체를 지향하는 우리 사회에 이율배반적인 모습이 아닐까요. 땅의 권리형태에 따라 사용권에 대한 고민도 함께 이루어지면 좋겠어요.
도시구성원으로서 예술가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좋은 작업을 지역에서 선보이는 거요. 지역에 관한 문제는 ‘기획’을 통해 이야기할 수 있죠. 춘천에 은근히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많아요. 분위기 자체도 낭만적이라 삼삼오오 모여 술과 음식을 나누고, 노래하고 춤도 추고, 흥이 있는 문화를 가지고 있죠. 그런 문화적 바탕 위에 새로운 예술적 실험들이 다양하게 일어나면 시민들은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될 거예요. 많은 이들이 외적으로 풍요로움을 쫓고 있는 요즘,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이 하나의 가치전환의 역할을 하길 바라요. 또 ‘미술의 중심은 내가 기반을 두고 있는 이 지역에 있다’라는 게 제 생각이에요. 이것이야말로 예술가들이 공동체적인 삶을 지향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요.
작품의 스케일과는 다르게 자그마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 단숨에 그가 큰 힘을 품고 있는 예술가라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한대희 작가는 있는 힘을 다해 분노하지 않는다. 다만 공간을 통해 분노할 틈을 내어주고, 예술가적 시선으로 시민들의 눈이 되어주고 있다. 도시에 켜켜이 쌓인 시간의 지층을 파헤치며 예술을 매개로 사회적인 소통을 시도하는 작가. 모두가 외면할 때, 이면 도시의 폐부 깊숙한 곳을 건드리는 한대희 작가의 시선에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포토그래퍼 에디터 정승희
터져 나오는
시, 붙잡는
‘시인은 어떤 사람인가요 네가 물었지’라고 시작하는 전윤호 시인의 시 ‹시인›은 ‘네 걱정에 밤을 지새우는 사람이 시인이야’라는 문장으로 끝이 난다. 마음이 복잡하고, 우울할 때 시집을 꺼내 읽는다. 긴 문장을 읽을 여력이 되지 않지만, 무언가에 기대고 싶을 때 꺼내 읽는 시집은 다른 것보다 힘이 된다. 전윤호 시인의 시선에는 사회에 휩쓸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 고민하는 사람이, 잘못된 부분에 화를 내는 사람이,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람이 있다.
시인
전윤호 강원 정선 출생. 춘천 강원고를 나와 동국대 사학과 졸업. 1991년 월간 현대문학으로 등단하였다. 2017년 제13회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 2020년 제30회 편운문학상 시부문을 수상하였다. 출간한 시집으로는 «세상의 모든 연애», «정선», «슬픔도 깊으면 힘이 세진다», «늦은 인사», 등이 있다. 현재 춘천에서 시를 가르치고, 시를 쓰고 있으며, ‹시 뿌리는 곰›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있다.
시인 전윤호
“슬픈 땐 슬픈 노래를 듣고 슬픈 시를 씁니다. 슬플 땐 슬퍼하고 실컷 울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엔 웃을 수 있겠지요.”
전윤호 시인의 시 쓰는 삶
1991년 현대문학에서 등단 후, 벌써 30년이 지났습니다. 언제부터 시에 관심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한글을 배웠을 때부터 독서와 글쓰기가 취미였습니다. 사실은 그 외에는 잘하는 일이 없습니다. 고향인 정선에서 강원고등학교가 있는 춘천으로 고등학교 유학을 왔습니다. 두 명의 소설가와 한 명의 시인이 문예부를 가르치고 있었지요. 문예부에 들어가서 본격적 시 쓰기를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 문예부에서 처음으로 시를 쓰신 건가요? 그전부터 혼자서 썼지요. 그러다가 교지에 제가 쓴 시를 한 편 실었어요. 그때 최돈선 선생님이 대뜸 저를 부르더니 누구 시를 가져왔냐고 묻더라고요. 저는 전윤호요. 대답했지요. 선생님이 직접 쓴 시라면 문예부에 들어오라 하셔서 들어가게 되었지요.
대학에서 국어국문이나 문예창작이 아닌 사학을 전공 하셨는데요. 역사를 공부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그것도 선생님이 개입하셨어요. 저는 동국대 국문과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선생님이 국문과에 가면 국어 문법과 어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글쓰기에 좋지 않다고 하셨어요. 차라리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는 곳으로 가라고 해서 사학과에 가게 되었지요. 사학과에 가게 된 걸 잘했다고 생각해요. 저는 지금도 고어나 문법을 보면 짜증이 나거든요. 시를 쓸 때도 한자나 외래어 없이 우리 말로만 쓰려고 해요.
‹사직서 쓰는 아침›
상기 본인은 일신상의 사정으로 인하여 이처럼 화창한 아침 사직코자 하오니 그간 볶아댄 정을 생각하여 재가해주시기 바랍니다 머슴도 감정이 있어 걸핏하면 자해를 하고 산 채 잡혀먹기 싫은 심정에 마지막엔 사직서를 쓰는 법 오늘 오후부터는 배가 고프더라도 내 맘대로 떠들고 가고픈 곳으로 가려 하오니 평소처럼 돌대가리 같은 놈이라 생각하시고 뒤통수를 치진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시집 «연애소설». 저자 전윤호. 출판사 다시. 2005년 발행. 2017년 동아기획에서 재출간.
대학에서도 시를 쓰셨나요? 그럼요, 시는 계속 썼지요. 대학을 졸업하고는 1991년에 등단했어요. 그때 당시에 여성 속옷을 판매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등단 이후 출판사로 회사를 옮겼어요. 출판사도 열 번 넘게 옮겼죠. 그때 쓴 시 중에 ‹사직서 쓰는 아침›이 한겨레신문에 소개되어 많은 호응을 받았지요.
지금은 시인으로서 시 쓰는 삶에 전념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출판사에서 일하시다가 그만두게 된 이유가 있나요? 꽤 알려진 출판사에서 기획과 편집을 했어요. 그러다 큰 병이 나서 직장생활을 못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못 한다고 스스로 통보했지요. 시에 전념하고 싶었으니까요. 지금은 시를 배우려는 사람들을 가르치고 시를 쓰는 일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시를 가르치고 계시는데요. 시를 쓰고 있는 사람과 쓰고자 하는 사람에게 한마디 해 주세요. 특별한 재능이 있어야 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시를 못 씁니다. 생각을 시로 옮기는 연습을 하면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를 수 있습니다. 누구나 이백이나 랭보 같은 천재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나를 위로하는 시를 쓴다면 성공했다 생각해야지요.
시를 쓰는 시인님만의 방식이 있다면 궁금합니다. 시를 쓰기 위한 루틴이나 방법이 있나요? 아침에 눈을 뜨고, 보고 듣는 모든 것이 시가 됩니다. 그러니까 생활 밀착형 시라 할 수 있겠네요. 버릇이라면 주로 이른 아침에 시를 씁니다. 밤에 쓰는 시는 아침에 읽으면 간지럽지요.
저는 유독 마음이 지친 날, 시집으로 위로받았던 적이 많아요. 시인님도 시를 통해 위로를 받을 때가 있나요? 시를 향한 마음에 관해 듣고 싶어요. 내가 쓰는 시는 나와 소통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나의 외로움, 고통 등을 꺼내고 닦고 제 자리에 넣어두게 되지요. 시 쓰기가 곧 위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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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뿌리는 곰› 뉴스레터
올해 3월부터 ‹시 뿌리는 곰›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있는데요, 뉴스레터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조금 더 듣고 싶어요. 문학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레터가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기술적인 문제가 걸려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제게 시를 배우는 학생 두 사람이 제가 글만 쓰면 나머지는 자신들이 알아서 하겠다고 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글을 쓰고, 다른 두 사람이 디자인과 편집, 교정 교열 후 메일을 보냅니다.
‹천사들의 나라›
‹시 뿌리는 곰› 뉴스레터에서는 기존에 시집을 내는 방식과 다른 형태로 시를 소개하고, 독자들과 소통을 하고 있는데요. 뉴스레터를 발행하면서 느끼는 감각도 궁금해요. 지금까지 시인은 문학 잡지를 통하거나 시집을 통해 독자들과 교감했습니다. 그런데 방금 막 쓴 시를 독자에게 바로 배달한다는 점에서 또 반응을 빨리 받는다는 점에서 큰 장점이 있습니다. 반면 원고 마감해 달라는 독촉을 심심찮게 받는 것은 스트레스지요. 출판사에 다닐 땐 그 일을 제가 주로 했는데 말이에요.
* ‹시 뿌리는 곰› 뉴스레터: 2022년 03월 15일 첫 발행. 구독료 월 1만 원으로 일주일에 2번 전윤호 시인이 쓴 글을 메일로 구독자분들에게 보낸다. 뉴스레터 내용은 미발표 신작, 에세이, 추천작품, 독자 참여 코너, 그 외 영감을 주는 글 등 다양한 콘텐츠로 구성하고 있다.
지금까지 글을 발행하면서 받은 독자의 의견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의견은 무엇인가요? 세월호가 가라앉았을 때, 저는 안산시 단원구에 있는 아파트에 살고 있었어요. 그때 밤이면 동네 아파트 여기저기에서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고, 잠을 잘 수가 없어 불면증에 걸렸지요. 그래서 ‹천사들의 나라›라는 시를 썼어요. 이 시는 전체가 반어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시와 시를 쓰게 된 이야기를 보냈을 때 독자분들에게 가장 많은 답변을 받았습니다.
저는 ‹시 뿌리는 곰› 중 ‘염주를 굴리며’ 글을 인상 깊게 읽었어요. 염주를 굴리며 마음이 차분해지고, 양보하게 되는 일을 경험했다고요. 또한, 타인의 손에 걸려 있는 염주도 보였고요. 마음이 불편할 때 염주를 굴리는 일 말고도 다른 방법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인터넷에 접속해 바둑을 둡니다. 급수는 같은데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과 바둑을 둬요. 바둑을 둘 때는 여러 수를 계산해야 해요. 돌 하나 놓을 때 변화가 몇십 가지가 생기니까요. 하나둘 돌을 놓다 보면 바둑보다는 내 사정에 다시 귀를 기울이게 되지요.
우리는 이제 걱정 없을 거다 삼백 명 아이들이 천국으로 가 천사가 되었으니 두고 온 나라를 보살펴 주겠지 책임 있는 자들이 침묵하고 예수 팔아먹는 목사들이 망언을 해도 우리는 이제 잘나갈 거다 심청이처럼 바다로 뛰어든 아이들 남겨진 부모를 생각할 터이니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다
시집 «천사들의 나라». 저자 전윤호. 출판사 파란. 2016년 발행.
살아가는 공간과 느끼는 감정이 시가 되다
시집 «늦은 인사»는 정선을 중심으로, 시집 «슬픔도 깊으면 힘이 세진다»는 춘천을 중심으로 묶은 시집이에요. 고향인 정선과 제2의 고향인 춘천은 시인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정선은 고향이면서 제 시의 원천입니다. 춘천은 고등학교를 다닌 곳이고 시를 쓰는 방법을 처음 배운 곳입니다. 그러니 제 시의 고향인 셈이지요. 저는 지금 사는 곳에 대한 시를 잘 쓰는 편입니다. 공간이 곧 시로 녹여집니다.
지난해 절판되었던 시집 «늦은 인사»가 복간되어 출간되었어요. 2017년에는 «연애소설»과 «순수의 시대»도 다시 출간되었고요. 시집이 새 옷을 입고 다시 나왔을 때 소감이 어떠신가요? 복간된다는 것은 그 시집이 다시 출판될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기 때문에 기분이 좋습니다. 제 시집은 그간 열 권 정도인데 지금은 절판이 없는 셈이지요.
저는 시인님의 시를 읽으며 솔직하고, 거리낌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시를 쓸 때 마음가짐이 궁금해요. 그런 준비도 없이 시가 터져 나옵니다. 그래서 일단 쓴 뒤에 시간을 두었다가 신중하게 여러 번 고칩니다. 혹 잘못 받아 적는 오류를 범할까 두렵기 때문이에요.
어떤 분노는 슬픔과 함께 옵니다. 너무 슬프기에 화가 나는데요, 시인님은 이럴 때 해소하는 방법이 있나요? 슬픈 땐 슬픈 노래를 듣고 슬픈 시를 씁니다. 슬플 땐 슬퍼하고 실컷 울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엔 웃을 수 있겠지요.
마지막으로 시인님이 생각하는 시인은 어떤 사람인가요? 시인은 아웃사이더입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에 휩쓸리지 않고 조금 비켜서서 사람들을 관찰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부분과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지요. 그러므로 시인이 사회 부적응자 이라 해서 부끄러운 일은 아닙니다. 다 자기만의 역할이 있는 것이니까요.
시 쓰기란 자신의 고통과 외로움을 꺼내 닦고 제자리에 두는 것이라 말한 시인의 말처럼, 시를 쓰는 사람은 자신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다. 자신의 아픔을 직면하는 사람이 타인의 아픔을 들여다볼 수 있다. 시인의 시를 읽으며 우리는 솟구치는 마음과 못난 마음, 여리고 상처 입은 마음을 마주한다. 다만 읽는 것만으로 위로가 된다. 그가 뿌린 시와 그의 시선이 독자의 마음에 심어져 시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가지게 된다. 시인의 마음으로 고민하고, 화를 내고,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삶에 가까워진다.
에디터 박인옥
우리를 화나게 한
함께한 화를 낸 사람들
권순석 문화컨설팅 바라 대표 51세, 춘천에 서식하며 전국에 출몰, 27년째 문화 관련 연구 교육 컨설팅 기획 일을 하고 있다.
정현경 개나리미술관 관장 제주가 고향, 10년 전 강원도 춘천으로 이주한 후 시각예술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전시 공간 개나리미술관 운영 중.
그 날의 이야기
박용선 춘천문화재단 예술지원팀장 42세. 춘천문화재단에 몸 담은지 13년차. 많은 담당자들과 호흡을 맞추며 중심을 잡고 있다.
정당한 변화變化를 위해선 지난 화火를 돌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볼드모트 해리포터 시리즈의 등장인물로 악역이며 최종 보스. 이름을 부르는 것마저 매우 위험한 금기로 여겨져 ‘그 사람’으로 불린다.
문화예술종사자 3인이 말하는 춘천 문화예술씬 비하인드. 지금까지 이들을 분노하게 한 건 무엇이었을까? 입 밖으로 내뱉기엔 다소 불편했던, 마치 볼드모트*와도 같았던 그날의 이야기들을 용기 내 꺼내봤다. 그리고 당시 사건의 키워드였던 공공재로서의 문화공간과 신념표출, 자기검열 등에 대해 도시 구성원으로서 솔직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디아스포라 본토를 떠나 타지에서 살아가는 공동체 집단
# 문화공간이 사라진다는 것 인옥 춘천 문화예술의 중심을 지키고 있던 ‘춘천시민회관’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요. ‘춘천시민회관’이 지어진 지 36년만인 2007년에 철거가 됐어요. ‘아,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잊고 계셨던 분들도 많으실 것 같은데, 한 문화예술계 원로께서는 당시 춘천시의 고민 없는 철거에 굉장히 아쉬웠다고 회상하시더라고요. 문화공간이 사라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춘천시민회관 철거 1971년 건립 이후 오랜시간 춘천 문화예술의 중심이었던 ‘춘천시민회관’이 시설 노후와 낮은 활용도를 이유로 철거가 결정. 3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02년 춘천시민회관 (사진제공 : 문화통신)
용선 제가 중학생이었을 때 기억으로는 춘천시민회관이 강원도청 앞에 있었고, 문화예술 공연보다는 청소년 관련 행사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인옥 맞아요, 아마 그 때 청소년문화의집이었을 거예요. 그 전에는 뮤지컬이나 인형극 등을 보러 아빠 손 잡고 갔던 기억이 있고요. 춘천시민회관에서 열린 동요제에 참가하기도 했었고요. 그런데 당시 문화예술 쪽 이슈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순석 일단 춘천시민회관은 당시 공연, 전시가 가능한 유일한 문화공간이었고, 많은 예술 단체들이 입주해 있었죠. 개인적으로는 제가 나이 50이 넘도록 문화 쪽 일을 하는 게 어쨌든 그 시절이 동력이 됐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흔적이 없어지니까 약간 실향민이 된 것 같더라고요. 지금 다양한 공간이 생겼지만, 왠지 저는 떠도는 디아스포라* 같은 거죠.
인옥 철거가 결정되고 굉장히 아쉬웠을 것 같아요. 당시를 회상한다면?
순석 철거의 이유는 단순했던 것 같아요. 오래됐고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이유였죠. 철거된다고 통보받은 셈이죠. 춘천시민들의 문화적 삶에 대한 추억들이 없어지는 건데 … 당시 저는 춘천시민회관이 춘천 문화예술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 공간이니까 자료를 정리하거나 회고하는 작업은 좀 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었어요.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데이터로
남기자고요. 그런데 철거된 부지에 팻말 하나 남기는 걸로 결국 끝나버렸죠. 박동일 선생님(문화커뮤니티 금토 운영위원장)이 개인적으로 기록하신 것 외에 도시적인 차원에서의 기록이나 의미 부여는 지금도 없어요.
현경 지역에서 예술이라는 것은 세월이 지나도 계속 중심 맥락이 이어져야 한다고 보는데, 거기서 공간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거든요. 기능적 쓰임이 없어도 공간을 기억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그 맥락을 잇는 작업이 될 텐데, 정말 아쉽네요.
순석 도시에 예술적 영감 자원이 없어지는 거죠. 지금에야 아카이빙이 흔해졌는데 과거의 기록, 이런 것들이 되게 중요해요. 이번 인터뷰 주제가 불편한 사건들이잖아요. 어쩌다 보니 저는 그 사건들을 다 기억하고 있는데, 당시에는 확 불붙었다가 사그라든 것 같지만, 결국 이게 축적되어야 도시의 영감 자원들이 보존된다고 봐요. 그래야 끊임없이 예술 활동도 하고 문화적인 도시가 되는 거죠.
용선 공감합니다. 춘천문화재단에서는 문화예술회관 등 관련 시설을 운영하고 있어요. 공공시설은 일단 기본 안전망이라고 봐요. 예술가에게 있어 공간이 주는 안정감이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기본 안전망이 되는 공공시설이 사라지면 춘천시민회관이 사라졌을 때처럼 허탈감이 크겠죠.
1989년, 연극 ‘금관의예수’ 관람을 위해 춘천시민들이 줄서서 입장하는 모습 (사진제공: 문화통신 )
인옥 미술관을 운영하시는 정현경 관장님은 ‘문화공간’에 있어 현재 어떤 부분이 가장 아쉬우세요?
현경 작가들이 제대로 어떤 전시를 하고 싶은 공공의 공간이 없다는 게 가장 아쉬워요. 예전엔 아르숲이 레지던시 공간으로서 춘천 내 작가들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생활문화센터로 기능이 바뀌고 공간이 사라지면서 명맥이 단절됐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어요. 실제로 그렇게 체감하고 있고요.
순석 처음 아르숲은 예술가들과 함께 만든 공간이었어요. 행정과 예술가들이 함께 일궈낸 보기 드물지만 좋은 사례였죠. 내부 디자인부터 ‘아르숲’이라는 명칭까지 예술가들이 직접 참여했죠. 그런데 그렇게 돼서 아쉽죠.
용선 사실 지금의 아르숲 생활문화센터(정부사업)에 대해 논의할 때, 아르숲 레지던스는 그대로
두고 다른 장소에서 하자고 제안했었어요. 하지만 대체 공간이 없다는 이유로 잘 안 됐죠.
순석 그 이후 ‘예술소통공간 곳’ 조성사업에 참여했거든요. 공간을 잃은 예술가들을 다시 품을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 공간을 직접 쓸 사람들의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지역의 작가들과 여섯 차례 계속 토론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현경 맞아요. 당시에 꽤 파격적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작가들과 함께 자문회의도 하고 그 과정이 훌륭했어요. ‘예술소통공간 곳’은 작가 한 명, 한 명의 작업에 집중되어 있는 느낌이에요. 전국에서 많은 작가들이 오고 싶어하고요. 작가에게 최고의 작업공간이긴 한데, 사랑방의 역할로는 그래도 아르숲 만한 곳이 아직은 없어요.
순석 대체 공간은 생겼으나 아르숲의 장소성이 없다는 거죠. 아르숲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장소성이요.
# 문화공간, 그리고 공공의 역할 인옥 행정적으로도 노력을 많이 하고 있을 텐데 아직 어려운 점이 많을 것 같아요.
용선 행정적인 조직개편이나 이런 부분이 아쉽긴 하죠. 문화예술 쪽 스토리를 아는 사람이 한 명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그게 자꾸 끊기는 거예요. 또 예술가들 입장에서도 갑자기 새로운 사람을 만나 했던 이야기를 다시 풀어내는 것도 굉장히 부담스러울 거고요.
순석 공공의 역할은 계속 바뀌어요. 행정에서는 그 흐름을 잘 파악해야 한다고 봐요. 과거 행정에서 해야 했던 일들이 여전히 유효한지 질문을 계속 던져야 하죠. 이제는 민간에서 공공을 기획하고, 민간의 공간에서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조로 바뀌었다고 봐요. 이런 사람들이 일 할 수 있도록 행정에서 지원하는 구조로요.
인옥 개나리미술관 이야기를 해볼까요?
순석 개나리미술관은 공공의 공간입니까? 라고 질문하면 제 대답은 ‘예스’ 예요.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사립 미술관이라는 개인의 공간, 사적 영역으로 볼 수도 있죠. 민간이 만들었다 하더라도 그 공간의 역할이 공적이면 공공의 공간인 거죠.
현경 작가들이 전시할 수 있는 공간도 부족하고, 저 역시 일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개나리미술관을 만든 건데요. 생각보다 이 공간에 대한 수요가 많아서 놀랐어요. 대신 공간을 유지하는 데 있어 공공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동에 있는 갤러리 ‘공간공일’이 사라지게 됐다고 들었거든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 ‘남의 일 같지 않구나’ 걱정이 엄습해오는 거예요.
용선 맞아요. 여러 가지 이유로, 특히 임대계약 연장이 안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죠.
현경 그런 부분에 있어 행정적으로 조금 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인옥 보통 민간에서 극장, 미술관을 만들면 ‘저게 될까?’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이제는 행정의 변화가 요구될 만큼 시대가 많이 바뀌긴 한 것 같아요.
현경 좋은 전시가 생기면 저절로 향유층이 생기더라고요. 작가나 수요자에게 있어 지역이 중요하지 않아졌고요. 시골이든 어디든 전시를 하러 오는 사람과 보러 오는 사람이 생기는 거죠. 여기서 중요한 건, 공간을 운영하고 거점이 되게 만드는 건 결국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 공간이 지속되어야 예술가들의 유입이 끊기질 않고 또 그 향유층도 유지가 되요.
# 문화예술, 신념표출과 검열에 대해 인옥 장소가 아닌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볼까 해요. 2019년 김원근 작가의 ‘프로포즈’라는 작품이 조폭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논란이 됐었죠. 공공조형물이라는 이유로 더 이슈가 됐던 것 같아요. 이 부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원근 작가 ‘프로포즈’ 작품 논란 약사천 공원에 공공조형물로 설치된 김원근 작가의 작품으로, 조폭을 연상시킨다는 누리꾼들의 갑론을박이 다수의 언론사를 통해 보도됐다.
순석 이 논란을 두고 대중이 공공미술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 도시가 예술을 수용하는 현재의 모습이라고 그냥 봐야죠.
현경 기존 춘천시민들은 그런 공공미술을 못 봤던 거죠. 그런 사람들한테 갑자기 ‘이런 게 예술이다’ 라면서 함부로 이해했다고 말하면 안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춘천시 행정과 예술가, 기획자들이 지금까지 동시대의 흐름이나 이런 다양성에 있어서의 공공예술을 못 보여줬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논란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져요. 끊임없이 이러한 시도들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순석 이런 것들을 오히려 더 쟁점화해서 격하게 토론해보는 게 중요하죠. 꼭 답을 하나로 내릴 필요는 없다고 봐요. 그런 과정이 도시에 축적됐을 때 수용력도 커지는 건데, 아무튼 반성합니다.
인옥 2013년 마임축제 때, 행위 예술가 ‘오키드 레드’의 출연금지 논란도 있었고요. 표현의 자유와 검열이 충돌되는 상황이 몇 번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세요?
courage to take out discomfort
예술적 표현과 성 인지 감수성
글 POT 편집팀 사진 김형철
진행 유현옥 l 한국여성수련원 원장
* 성명 가나다 순
좌담자 이원재 l 문화연대 시민자치문화센터 소장 이형석 l 춘천미술협회 사무국장, 정윤경 l 춘천여성민우회 대표 지은희 l 춘천여성회 대표 한승태 l 시인
좌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는 매거진 19호에 자세히 기록해 두었다.
행위 예술가 ‘오키드 레드’ 출연금지 논란 2013년 춘천마임축제 운영위원회가 고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서 ‘손가락 욕’으로 논란을 빚은 작가 ‘오키드 레드’의 출연 불허 결정을 내려 논란이 됐었다.
용선 정치적인 성향 등 신념을 표출함에 있어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게 공적인 영역에 오면 늘 논란이 되는 것 같아요.
순석 당시 마임축제 때도 행정이 공문의 형태로 출연을 금지하는 게 과연 옳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유와 과정이 어떻든 간에 도시가 어떻게 대응을 하는지가 중요하죠.
용선 2019년인가 시사만화 전시회에서도 한 작품이 여성비하 논란에 휩싸였었죠. 결국엔 시민단체의 항의로 그 작품을 철수했고요. 이 사건을 통해서 저 역시 공공이나 기관이 어떤 태도를 가지고 대응해야 하는지, 얼마나 성숙해지는지에 주목했어요.
시사만화 전시회 일부작품 여성비하 논란 ‘2019 세대교감 카툰으로 본 세상’ 전시회의 특정 작품이 여성비하 논란에 휩싸여 여러 시민단체가 반발, 행사를 주최한 한국미술협회 춘천지부는 해당 작품을 철거했다.
순석 당시 시민단체에서는 주최 측의 ‘사전 필터링’ 문제를 제기했는데 이건 또다시 ‘검열’의 문제로 돌아가게 되거든요. 대안이 될 수 없어요. 예를 들면 예전에 공연을 한 번 올리려면 대본을 가지고 시청에 가서 검사를 받았어야 했어요. ‘오케이’가 나야 공연을 하는 거죠.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잖아요. 시대가 바뀌면서 성숙해져 가는 과정도 필요합니다.
현경 맞아요. 시민단체는 논란에 대해 행동으로 맞섰죠. 반면 예술계는 움직임이 없었어요. 지역의 한 예술단체가 주최한 전시였지만, 춘천문화재단이 지원했다는 이유로 '왜 사전검열을 하지 않았냐'는 여론이 펴졌고요.
용선 그래서 당시 재단에서 좌담회를 열었었어요. '예술적 표현과 성 인지 감수성'이란 주제로 다양한 입장을 서로 나눴었죠. 예술계에서도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재단에서 자리를 만들어 여러가지 방법을 찾으려 했던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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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 이형석 국장
예술적 가치의 모색
ㅣ 유현옥 원장
문화연대 시민자치문화센터 이원재 소장은 예술자체가 추상성과 모호성을 가지고 있어 해석의 여지가 다양한데 불 쾌했다는 작품의 감상이 과연 혐오의 기준이 될 수 있는가를 질문하며 작가의 의도가 예술적 가치를 갖고 있는지를 쟁점으로 날 선 비판과 토론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덧붙여 예술적 표현과 성 인지 감수성은 상호보완적인 관 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승태 시인은 ‘혐오’든 ‘비하’든 작품을 소비하는 관객이나 독자가 판단할 일이므로 예술작품을 규제하고 처벌하는 방안은 옳지 않다는 의견을 피력하였고 춘천미협 또한 ‘작품을 제도적으로 규제하거나 감시하는 시스템은 자칫 또 다른 검열이 될 수도 있어 조심스럽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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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춘천여성민우회 정윤경 대표는 “지금까지 지역에서 문제가 터질 때면 겉으로 드러나지 못하는 한계를 겪어
‘성 인지 감수성’이 사회 전반에서 중요한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영화, 드라마, 노래 가사와 같은 문
왔다”라며 문제를 공론화하고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가 어렵다는 고민과 함께 예술가 또한 사회적 책임을
화콘텐츠에서 쓴 혐오적인 표현이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경우가 많다. 변화하는 사회를 고려하지 않은 작품, 시대착오적인 요소들 때문에 불편한 작품도 있고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특정 대상을 조롱하거나 차별을 조
지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는 기대와 아쉬움을 밝혔다. 지은희 대표 역시 “여러 관계가 이리저리 얽혀있는 지
장하려는 작품도 존재한다. 그래서 대중들은 차별과 혐오를 함의하고 있는 작품이 혹시 예술적 표현이라는
ㅣ 한승태 시인
ㅣ 지은희 대표
역에서 다수가 불편해하는 문제를 꺼내기가 쉽지 않지만 이처럼 공론화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한 걸음도 나아가지
이름으로 둔갑하고 있지 않은지 의심의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못할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덧붙여 ‘변화에는 불편함이나 어려움이 따르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지역사회
실제 최근 춘천미술관 제2전시실에서 열렸던 전시작품이 여성 혐오 문제가 불거지며 거센 논란의 대상이
가 변화에 발걸음이 시작되길 바란다’며 일부 기관이나 단체 뿐 아니라 모든 공동체가 함께 해결해 나가야할 문제라
되는 일이 있었다. 올해 재단 지원사업으로 선정된 (사)한국미술협회 춘천지부의 기획전시 ‘2019 세대교감
표현의 자유 VS 혐오의 표현
고 지적했다.
카툰으로 본 세상’ 중 일부 작품이 심각하게 낮은 성 평등 인식을 보여준다며 성 인지 감수성 논란의 중심에 선 것.
여성 비하 및 혐오 논란을 불러 온 한국미술협회 춘천지부(이하 춘천미협)의 ‘2019 세대교감 카툰으로 본 세상’은 올해 3
이에 강원여성연대를 포함한 13개의 여성단체와 시민단체는 즉각 성명서를 내고 성 평등 시대에 역행하는
ㅣ 이원재 소장
한국미술협회 춘천지부의 전시 철수와 춘천시문화재단의 공식적인 사과를 촉구했다. 재단은 입장문을 통
년차 전시로, 본래 세대가 다른 사람들이 문화의 다양성 속에서 서로를 이해해보자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특히 올해 처
해 다수 관람객의 불쾌감을 유발한 전시에 유감을 표시하고, 한국미술협회 춘천지부는 “예술가의 창작과장
음으로 시사성 있는 카툰 전시를 기획하여 작가 스스로가 느끼는 사회현상에 대한 생각을 담아보고자 했다. 이 중 시사
에서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지만 관객의 시선 또한 신중하게 고려해 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만화가 심민섭 작가의 카툰 <남자들이 이젠..힘들다>, <소양강 처녀> 두 작품이 특정 성을 비하하고 대상화하는 뉘앙스
해당 작가의 작품 철수를 결정하였다.
의 표현을 여과없이 사용하면서 여성 혐오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재단은 춘천시문화재단이 지원하고 있는 전시회에서 몇 작품이 여성혐오 등의 논란이 불거지자 가감없는
춘천미협의 이형석 사무국장은 ‘세대교감이라는 전시기획 의도처럼 해당 세대에서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을
대화의 장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으는 좌담회를 개최하였다. 논의 초기이
보여주려던 것’ 이라면서 논란이 된 작품에 대해서도 고령의 시사만화가 생각이 거칠게 표현된 부분이 있는데 작가와
기 때문에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부분도 있었지만 서로의 입장차를 확인하면서도 함께 적립해 나간 의 미있는 이야기들을 요약해 보았다.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서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전체적인 기획의도 안에서 작품을 이해해 주었으
지역성의 한계를 넘어서
면 하는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해당 작품이 개인의 창작활동이 아닌,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지원사업이고 공적인 공간에 전시되는 작품이
이원재 소장은 ‘춘천미협은 조금 불편했을지 모르지만, 오히려 작품을 내리지 않고 토론을 주도했어야 한다’는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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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점에서 여성비하 표현이 삽입된 작품에 대해서는 반드시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뒤따랐다. 춘천여성회 지은희
를 밝혔다. 어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규제하거나 봉합하려는 방식으로 문제를 수습하기보다 지역 시민과 함께 공
ㅣ 정윤경 대표
대표는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부터 그것을 받아들이는 관객에게 넘어가기 때문에 전시를 연 기관은 사회적
개적으로 토론하고 문제점을 인지하는 과정이 훨씬 현명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춘천미협 이형석 사무국장은 지역이
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과연 작가만을 위한 표현의 자유를 관객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여성비하 작
가지고 있는 한계에 대해 토로했는데, 지역내 시민들의 밀접한 관계 때문에 사건을 공론화하고 토론하기 어려운 분 위기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성 평등 감수성이 지역 안에서 점차 확장돼야 한다는 의견에는 많은 이들이 공감했다.
품을 본 관객이 이미 불쾌함을 느낀 상태로 창작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은 매우 폭력적’이라고 지적했다. 한승태
토론을 통해 보았듯이 성 인지 관점에서 표현의 자유냐, 혐오냐 하는 생각의 차이는 아직까지 개개인이 처한 환경과
시인은 기관의 책임과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서 ‘세대가 서로 다른 생각과 시선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데
경험에 따라 해석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이번 일을 지켜보던 대중이 올린 SNS 댓글 등을 보면 그 차이를 보다 가
세상을 보는 시선이 미숙하다고해서 규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공감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밝혔다.
까이서 확인할 수 있다. 문제가 된 작품은 여성을 비하하는 시대착오적 작품이라는 의견에 다수가 공감하였으나 그 또한 예술이 가진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재단은 어떻게 해야 할까? 토론자들은 지원기관으로서의 특성과 역할을 더 명확히 하되, 제기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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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에 대해서 함께 헤쳐나가는 파트너십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일례로 지원사업을 시작하기 전, 예술가 대상 으로 성 인지 감수성 향상에 필요한 사전 워크숍 및 관련 메뉴얼 구축을 통해 예술활동 안에서 성 인지 감수성을 확
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토론 내내 각 단체와 개인의 입장과 생각 차이를 전하고 조율하며 공감의 소통을 이끌었던 한국여성수련원 유현옥 원장은 “오늘 같은 좌담회 자리가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후속적인 자리를 마련할 수 있도록 재단 및 각 단체들과 계속 소통하겠다”는 말로 지속가능한 연대와 실천을 예고하였다. 서 로 다른 입장 차이로 인해 다소 불편함을 안고 시작한 토론이었지만 이를 계기로 예술활동에서 성 인지 감수성이 보 다 성숙하게 녹아들기를 기대해 본다.
순석 저는 오히려 이 논란이 사회적 쟁점으로 드러났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시민사회 영역에서도 문화예술계의 입장을 들어볼 수 있고요. 이후에 유사한 상황에 대처하는 도시의 능력이 커지게 되겠죠.
인옥 목소리를 내지 않으니 또다시 문제가 ‘검열’로 돌아오네요, 자꾸.
순석 논란이 된 부분에 대해서 이게 왜 문제가 되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의 자정 시스템이 필요한지 계속 부딪혀야죠. 그걸 이 사회가 잘 수용하고 그 단계를 넘어 발전하는데 (아쉽죠) 아젠다(의제)를 세팅하는 건 공공기관일 수 있어도 아젠다 키핑(의제 지키기)을 통해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부분은 사실 민간의 영역에서 해야 하거든요. 그런 활동이 왜 지역사회엔 없냐는 거죠.
# 문화예술인, 그리고 목소리 인옥 이런 이슈가 있을 때마다 문화예술인으로서 목소리를 내고 부딪혀 토론하는 과정들이 계속 필요했던 것 같은데요. 왜 그러지 못했을까요?
현경 제가 춘천에서 10년을 살았는데, 이곳 분위기가 외부로 저항하고 표출하는 것보다는 체면과 관계를 되게 중요시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뭔가 이슈가 있어도 묻히고 삭제되고 그랬죠.
용선 어떻게 보면 그런 면으로 인해, 춘천의 문화예술이 오랜 시간 한결같이 이어져 왔다는 게 춘천의 장점이기도 하죠. 하지만 예술에 있어서 새로운 것을 발현하기에는 조금 힘든 구조라고 저는 생각해요.
인옥 그렇다면 예술가 스스로가 힘을 키워야 할까요? 이런 고민도 드네요.
순석 중요한 문제 중에 하나로 지역전시에는 대부분 작가만 있다는 점을 꼽고 싶어요. 그래서 저는 춘천 문화예술씬에 ‘기획자가 적다’라는 것에 굉장히 주목하고 있어요. 춘천에 오는 작가들이 많아지고 활동도 다양해지는데, 이 도시에서 그들의 활동이나 작품이 갖는 의미를 누군가는 해석하고 그것이 확장되게끔 역할을 해야 해요. 그 게 기획자거든요 사실.
현경 예술가는 기본적으로 창작활동과 작품을 통해서 세상과 만나는 거잖아요. 작가의 의도가 훼손되지 않게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건 사실 기획자가 개입했을 때 그 효과가 더 크다는 것에 공감해요.
용선 행정기관에서도 기획자들의 역할에 주목하고, 양성이나 이런 부분에 대한 포지션이 필요해진 것 같아요.
인옥 예술가들이 정치적으로 영향을 받는 것도 배제할 순 없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보시나요?
용선 이번에 아트라운지 사업을 하면서 지역 작가들을 많이 만나고 있는데요. 나왔던 이야기 중에 하나가 정치적으로 영향력 있는 예술가도 필요하다는 거였어요. 꼭 정치를 해야 예술가로서
힘이 세지는 게 아니라, 예술적으로 힘이 세져야 정치적인 힘에 대한 방어력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당론을 배제하고도 내 예술을 할 수 있는 판이 생기는 거니까요.
현경 그래서 어떤 이슈가 생기면 포럼이나 토론, 이런 것들이 좀 활발해졌으면 좋겠어요.
순석 개인적으로는 예술가가 정치력을 갖는 것보다 그런 예술가들이 정치적 표현을 하는 것에 대해 시민들이 정치력을 발휘해줬으면 해요. 이런 사건들은 끊임없이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거거든요. 우리는 불합리한 구조들이 변할 때까지 끌고 가 본 경험이 아직 없다고 생각해요. 거기에 나는 기획자들의 역할이 중요하고, 도시민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는 거죠.
현경 그렇죠, 예술가들은 창작활동을 해야지 정치를 하라고 할 순 없죠.
인옥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순석 문화예술씬 종사자들이 목소리를 못 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아까도 이야기했다시피 사회적 이슈에 대한 의제화, 공론화 과정을 충분히 겪지 못했다는 게 아쉬운 거예요. 그건 이 도시가 못나서가 아니에요. 우리가 겪은 이 과정들을 통해서 다음 스텝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어요.
용선 예전에 많은 이슈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상황이 온 거라고 생각해요. 미래의 세대에서도 ‘그때 그런 일이 있었지’ 라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충분히 다뤄야 하지 않을까요? 다만 뭔가 특정 계층에 대한 혐오 이런 방식이 아닌, 우리가 같이 상생할 수 있는 방식의 분노는 꼭 필요할 것 같아요.
현경 화내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저는 오히려 화를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불협화음이 생기겠지만, 용기 있게 화를 내고 다른 의견을 조율해 나가는 것을 통해서 뭔가 다른 스텝을 밟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비판을 받아도 좋아요. 문화예술씬에서 어떤 인식 전환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분노함으로써 또 생길 수 있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순석 오늘도 이렇게 지나간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사건에 대한 정확한 팩트는 기억이 안 나요. ‘그런 일이 있었지’ 정도의 기억은 나지만요. 기록하지 않으면 언젠간 이 기억들이 흐려질 거란 말이죠. 민감한 문제에 대해 조금은 집요하게 파고들 수 있는 기회가 끊임없이 이어졌으면 합니다.
지난 상처와 분노 위에 세월이 겹겹이 쌓였다. 그렇게 모두에게 잊혀 가는 이슈들을 다시 꺼냈고, 모두가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터부가 심할수록 계속 이야기하는 사람. 볼드모트라는 이름을 대놓고 부른 해리포터는 결국 그 세계관을 변화시켰다. 어쩌면 이들이 겪은 크고 작은 ‘분노’가 춘천 문화예술씬에 있어 즐거운 변화의 마중물이 되어주진 않을까? 작은 기대를 걸어본다. 이제는 도시민들이 마음껏 마법 같은 주문의 목소리를 내며, 계속 변해가는 도시를 활보할 수 있기를.
함께하는 분노는 창조의 에너지가 된다
글 유현옥 (공간제로 대표)
82년생 김지영을 생각하며
‹82년생 김지영›, 영화로도 제작되어 화제가 되었던 조남주 작가의 이 소설에서 주인공 지영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다른 사람으로 빙의해 분위기를 깨는 이야기를 한다. 때로는 친정엄마가 되고, 남편의 결혼 전 애인이 되기도 한다. 이 소설에는 여성이 태어나고 성장하여 독립된 인간으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경험하게 되는 편견과 차별이 담겼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일상에서 자주 마음을 다치게 하는 성차별을 세밀하게 담은 것에 순간순간 감탄했다. 소설 속 82년생 지영이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은 나로서는 차마 드러낼 수 없는 더 극적인 사건들을 수없이 경험하며 살았지만 표현하지 못했다. 그저 꾹꾹 누르고, 옥상에 올라가 혼자 우는 것으로 삭였다. 소설은 일상에서 가볍게 지나칠 수도 있는 상황들을 예민하게 그렸다. 지영은 그럴 때마다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고 가슴에 차곡차곡 쌓이는 억울함과 답답함을 경험했을 것이다. 이런 억압은 급기야 이상증세로 표출되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빌려 억압된 것을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아주 특별한 상황도 아니고, 별나지도 않은 여자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소설은 회자되고 다른 버전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가보다. 우리도 그녀에 못지않게 일상에서 성별 편견을 비롯해 수없는 억압과 분노를 경험하며 그것을 제대로 분출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어떤 이는 자신의 분노를 적절하게 표출하지 못하는 분노조절장애를 경험하기도 한다. 현대사회는 이런 감정들을 더욱 커지게 한다. 공동체의 약화, 관계의 미숙, 자존감 부족 등 다양한 요인이 있다고 심리학자들은 분석한다. 벼랑 끝을 걸어가는 심정으로 팍팍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만큼 부정적 감정도 커지고 있다. 그 가운데 분노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감정이 깊숙이 배어있다.
분노, 그 함께 나누는 다양한 분노가 갖는 부정의 감정 긍정의 힘
분노란 무엇일까? 새삼 생각하게 되는 의미. 분노와 함께 연상되는 단어들-화냄, 노여움, 공포, 불안, 속상함, 억눌림, 비상식, 불의 … 쓰다 보니 자꾸 늘어난다. 온갖 부정의 언어들이다. 한꺼번에 날려버리고 싶은 단어들이지만 찐득하니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며 떠나지 않는 것들이기도 하다. 평소 경험하는 개인적인 감정의 분노도 적지는 않지만 나를 자주 괴롭히는 또 다른 분노가 많다는 게 고민스러울 때가 있다. 영 이상하게 흘러가는 사회현상이나 불균형을 보면 종종 나의 분노가 폭발한다. 그 분노의 표출로 서명을 하고, 거리 시위도 한다. 그것은 여성운동으로, 문화운동으로 확장되었다. 게다가 정치가 내 삶을 좌우하고 있으니 그것도 자주 기웃거리면서 화내고, 내 힘닿는 대로 바로잡으려는 움직임을 한다. 명분 있는 분노, 개인적이지 않은, 공분公憤이라고 위안하지만 왜 그런 것들이 눈에 거슬리고 자주 화나야 하는지 속상하다.
개인의 일상을 좌우하고 감정을 돋우는 분노는 자세히 보면 그 뿌리가 깊을 때가 많다. 단순한 감정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전에는 먼 외국의 전쟁쯤으로 여겼을 사건도 요즘은 바로 우리의 삶과 직결되어 물가가 오르고 생활용품의 품귀로 이어지기도 하니 말이다. 하나의 파장이 일어날 때 그 파장이 어디에서 오고 그것이 어떻게 더 널리 확산되는가를 들여다보면 분노의 감정은 더 깊어지고 끝없는 슬픔이 찾아온다. 하지만 그것을 외면할 수는 없다. 나 하나의 감정 안에 갇힌 분노가 아니라, 우리의 분노를 토로하고 그것을 고치려고 노력할 때라야만 세상이 바뀌고 분노의 근본이 사라진다.
내가 경험하는 분노는 무엇일까? 나의 자존심을 다치게 하는 그 무엇의 실체, 그리고 나와 직접적인 이해관계는 없지만 어떤 상황과 경험이 나를 화나게 하거나 슬프게 하는 것들 … 찬찬히 새겨보면 분노의 내용과 느끼는 감정도 여러 갈래이다. 그 깊이나 진폭도 다양하다. 한 순간 불쾌함으로 털어낼 것도 있지만, 많은 이들이 경험하고 부조리한 것들은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 노력은 각자의 달란트에 따라 여러 방식으로 구현할 수 있다.
피카소의 작품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전 참상을 표현한 작품이다. ‘게르니카’를 보면 전쟁은 그것을 벌인 자나 피해를 입는 사람들 모두를 소나 말 등의 동물로 전락시킨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렇게 ‘게르니카’는 전쟁의 비극을 많은 이들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피카소뿐만 아니라 전쟁의 참혹함이나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자신들의 언어로 표현해내는 예술가들이 많다. 민중의 관점에서 사물이나 상황을 보고, 억울한 사람의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진 사람들은 마음이 따뜻하다. 누군가와 함께하려는 마음이다.
가만히 돌아본다. 나는 얼마나 분노하고 있을까? 무엇에 대해 분노할까? 그 분노 이후에 무엇을 했을까? 한 사람의 분노를 넘어서, ‘우리’의 분노가 되면 그것은 사회 문제가 된다. 함께 풀어야 할 과제가 되는 것이다. 분노를 다른 사람과 공감하고 함께 대처하자고 했을 때, 그것과 싸움을 하기로 마음먹고 그 다음 단계를 생각하고 있다면 이 상황은 분노의 시간이면서 충전의 시간도 된다. 그래서 외롭지 않게 한걸음 더 나아간다. 분노는 때때로 창조의 에너지가 된다.
유해정 (인권기록활동가 / 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
십년 전, 메일 한 통을 받았다. 친하지는 않지만 알고 지내던 잡지 편집자가 원고 청탁차 보낸 것이었는데, 메일은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라는 인사로 시작됐다. 의례적이고 상투적인 인사라는 걸 모르지 않았지만, 그때 나는 무슨 마음이었는지 안녕하지 못하다고 썼다. 갑자기 아버지가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고, 그로 인해 일상이 흔들리고 있다고, 아마도 그렇게 적었다. 답신은 며칠 후에나 도착했는데, 그가 적잖이 당황했다는 것을 눈치채기엔 충분한 시간과 내용이었다. 그때 나는 두 가지를 깨달았다.
일상적인 안부 인사에조차 뭐라 답할지 망설임을 느낄 때 삶은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서 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사치레에는 인사치레로 답할 때 사회생활이 안전하다는 것이었다. 그 뒤 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네”라고 답하기 시작했다. 부담스럽지 않은 존재로서의 사회성을 발휘하기 위한 행동이자, 상처받지 않기 위한 방편이었다. 나를 둘러싼 세계가 달라지자 당연하고 사소한 것들이 특별해졌지만, 나는 한 발 나아가기보단 움츠러들었다. “몇 학년?/ 학번이?” “나이가?” “남자/여자 친구는?” “결혼은?” “아이는?” “어디 사세요?” “무슨 일 하세요?”….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라는 인사부터 일명 호구조사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일상은 수많은 안부와 물음으로 가득차 있다. 직장과 학교는 물론이고 마트에서, 미용실에서, 또는 목욕탕에서 스치는 사람들조차 묻고 또 묻는다. 누군가에겐 아무 의미 없는 일상의 인사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호기심 또는 친밀함의 표현일 수도 있다. 대부분 선의에서 물어진 안부지만, 사소한 것이 특별한 누군가에겐 타자의 질문은 불편하고 때론 곤욕스럽기도 하다. 나를 어느 정도 내보일 것인가, 순간 순간의 결정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솔직해진다면 나는 편견없이 ‘인정’되어질까, 소외되어질까 셈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인구가 적은 도시, 지방일수록 망설임은 커진다. 혈연과 학연 등으로 촘촘히 얽힌 공동체에서 오랫동안 유지되는 비밀이란 많지 않다. 그렇다고 마냥 솔직할 수도 없다. 소문과 편견은 힘이 세다. 일상적인 인사에 답하기 위해 누군가에겐 용기가, 또 때론 인생 전체가 필요하다. 선의가 오히려 곤욕이 되는 건 자신의 경험과 세계를 기준으로 타인을 대하기 때문이다. 고백하건대, 나 역시 수도 없이 내 세계를 중심으로 안부를 물음으로써 타자를 난처하게 하곤 했다. 부모가 이혼 한 뒤 고모와 사는 아이 친구에게 “엄마는?”하고 묻거나, 간호학원에 다니는 20대 청년에게 “방학이죠?”라고 묻곤 이내 건네진 답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적잖아 당황한 그이들의 삶의 사정을 알게 되면서 서서히 깨달았다. ‘정상’으로 간주되는 생애경로에서 이탈하지 않은
사람들일수록 생각없이 묻기 쉽다는 걸. 일반적이라 말해지는 ‘안전한’ 삶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갈수록 다른 삶에 대한 감수성이 없다는 걸. 세상은 ‘정상’ 혹은 ‘상식’- 학교, 결혼과 육아, 취업, 정상가족, 이성애, 비장애 등등으로 구성된다 믿기 때문이다. 또 때론 묻지 않음으로서 존재를 사회와 세상에서 밀어내기도 한다. 중증 장애를 가진 성인에게 결혼여부나 자녀를 묻지 않음으로서 그를 무성적 혹은 중성적 존재로 간주하거나 그래야한다고 내비치는 것이 대표적이다. 당연히 ‘이러 저러할 것’이라고 예단하고, 대화를 잇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일상적인 안부, 질문은 구성원들이 매일 함께 써내려가는 사회의, 도시의, 공동체의 이정표다. 경계선을 긋고, 다른 답들을 상상하지 않음으로써, 다른 삶들의 자리를, 그리하여 존재를 밀어낸다. 선량한 안부가 차별을 재생산하고 공고히 한다는 건, 슬프지만 사실이다. 사회는, 도시는, 공동체는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그러나 공공연하고 노골적으로 누군가를 차별하고 배제한다. 다른 존재, 삶들에 대한 배려와 수용은 답이 아니다. 선의와 선량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마음을 먹을 수 있는 것조차 특권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삶이 누군가의 착한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은 언제든지 선의가 회수될 수 있음의 가능성 또한 열어놓는다. 필요한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존중만큼이나 다양한 삶의 권리를 확신하는 것이다. 말을 익힘과 함께 배웠던 인사를, 질문을 바꾸는 데는 매우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부단히 다른 삶을 상상하고, 당연하다 믿었던 것들을 의심해야 한다. 삶은 조금 더 불편해지고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만큼 누군가는 더 자유롭고 평온해질 것이다. 불편을 탓하기보단 자유를 좀 더 앞당기지 못했음을 성찰할 때, 살만한 사회가, 도시가, 공동체가 만들어진다. 얼마 전 나는 한 청소년과 헤어지며 “집으로 가요?”라고 물었다. 부모와의 다툼 끝에 집을 나와 매일 오늘의 잘 곳을 걱정하는 탈가정 청소년임을 알았을 때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부끄러움으로, 다짐으로, 오늘도 다시 안부를 묻는다.
사진 이원일, 춘천문화재단 글 김월식 (예술가, 시민, 아빠)
생각의 탄생, 시인—시민의 탄생
삼각관계
이 불가분의 관계에 대해서 새삼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만큼 익숙하면서도 잘 모르겠는 ‘예술’이라는 본질에 대한 질문이면서, 문화가 아니면 다 소외되고 불필요하다고 대우받을 것 같은 ‘문화도시’라는 강력한 공공 아젠다의 절대성에 대한 질문 때문이기도 하다. 이른바 ‘비문화’라든가 문화도시 ‘바깥의 도시’를 상상하는 나 같은 불온한 사람에게는 ‘문화도시와 예술’은 늘 탈주하고 싶은 완고한 프레임이면서 벌써부터 이미 클리셰가 되어 버린 탄로 난 문화의 정체 같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렇게 열광하면서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 ‘문화도시’는 누군가에게는 처음부터 조금의 매력도 어필하지 못한, 또는 이미 그 실체에 질려 이별을 선언한 지난 추억의 사건일 수 있다. 찌질하게, ‘쿨’하지 못하게, 질척거릴 이유가 하나도 없는 이 이별의 상상은 사실 ‘문화도시’와 ‘시민’과 ‘예술’의 삼각관계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 관계의 키를 누가 갖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모든 ‘밀당’의 컨텍스트에서 ‘예술’이 문제일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이 밀당의 텐션에 달려 있는 것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야만 결국 ‘문화도시’는 심장의 박동수를 듣고 뛰는 가슴을 달래는 황송함도 경험할 것이다.
뉴월드—신세계
이 예술이라는 또라이는 문화도시와는 또 다른 별개의 신세계다. 효자동 남부시장 스카이라인의 깜빡이에 모여들던 이른바 ‘뉴월드 나이트클럽’의 불나방들처럼, 신세계라는 영토에 죽자고 뛰어든다. ‹도시비틀즈›와 ‹생각의 탄생›에 참여한 몇 몇의 참여자들은 어느 날 뉴월드 나이트에 함께 모여 잠재적 또라이의 기세를 뿜어낸다. 디제이가 틀어주는 음악과 무관한, 춤인지 몸짓인지 알 수 없는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무대는 있으나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음악을 몸으로 쪼개서 만들어낸 황당한 비트의 불확정성, 상식적 기대감을 부수고 윤리적 민망함으로 긴장의 텐션을 유지하는 최고의 경지를 만들어낸다. 즐겁게도 ‘뉴월드—신세계’는 이런 망극한 카타르시스를 만들어 준다.
플레이백—‘도시 비틀즈’
조금 더 되감기를 해 보자면, ‹도시비틀즈›의 여파가 ‹생각의 탄생›이라는 동일 유전자의 프로젝트를 만들었으니 둘이 가야 할 길은 다르나 하는 짓은 닮아 있기 마련이다. 올곧게 살아가는, 실천하는 개인의 삶을 정치적이라고 믿는 나로서는,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삶의 가치를 위해, 늘 깨어 있기 위해, 스스로의 내면을 마주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개인을 예술가로 부르기도 한다. 시민과 예술가의 동일시는 예술하는 시민이 아니라 시민의 예술적 삶이 답을 갖고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도시비틀즈›는 자신의 삶을 비틀어 보려는, 조금이라도 바꾸어 보려는 실천적 프로젝트다. 우리는 안다. 삶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 팔도 ‘문화도시’ 안에서의 수많은 프로젝트와 프로그램들은 모두 삶의 전환과 변화를 목 놓아 외치고, 또 그것을 통해 도시와 타자를 구원하자고 외친다. 관계 지향성이 지나칠 정도로 긍정 편향적이고, 선한 영향력이 차고 넘쳐 ‘젖과 꿀이 흐르는’ 은혜로운 땅과 견줄 만한 이 ‘문화도시’는 도대체가 불편하고 불안하고 보기 안 좋은 것을 그냥 놔두지 않는다. 이런 풍토 속에서 고작 자신의 삶을, 아주 아주 조금이라도 바꾸어 보자는 이 시도는 ‘시작도 미약하고 그 끝도 미약한’ 프로젝트다. 미약을 미덕으로 타자의 삶에 개입하지 말자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비-관계지향적 프로젝트이면서 비-목적지향적이다. ‹도시비틀즈›는 그래서 아이디어 중심적이지 않다. 선동적이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캠페인이나 프로파간다와 가장 먼 프로젝트가 되길 바랐던 것 같다. 칸트의 ‘목적 없는 합목적성’처럼, 도시지역 안에서 개인이 적어도 윤리적으로 타자도시를 마주하고 있는 방식에 대한 비판적 실천으로써, 또 타자(도시 혹은 지역)를 도구적으로 소비하는 무감각 정책과 소비자(?)들에게 이런 쓸모없음의 빅Big엿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결국 ‹도시비틀즈›는 쓸모와 효용성에 ‘기스’흠의 비표준어를 내는 방식으로 ‘지난한 실천’을 선택했다. 우리는 ‘보여줌’의 방식에서 일단 타자를 지웠다. 스스로만 보면 족하는 자기 만족의 프로젝트는 혼자만의 선택과 실천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바꾸거나 중단해도 남의 비방이나 핀잔을 듣지 않는다. 또 거짓으로 남에게 이런저런 실천을 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변덕을 용인하고 거짓을 나무라지 않는 이 프로젝트는 그래서 ‘예술’의 지난한 과정을 닮았다. 스스로 어떤 경지를 향해 가는 진실의 모습을 갖추었을 때만 그 에찌edge에 다다를 수가 있다. 시민의 지난한 삶에서 ‘예술’적 가치를 획득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아주 ‘미약’하게 움직이는 것이 ‹도시비틀즈›가 지난 겨울 고작 해 낸 일이라면, ‹도시비틀즈›라는 이름도 우리에게는 너무 황송하고 무거운 왕관 같은 이름이다. ‘미약’한 아이의 이름을 ‘창대’로 짓는다고 그 아이가 ‘창대’하게 자라지 않는다는 것쯤은 우리 모두 너무 잘 안다. 하지만 첨예하게 ‘미약’한 삶을 살아내는 것이 한 사람의 ‘시민’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치적 행위임을 또한 알아야 한다. 그 ‘시민’이야 말로 독립적이고 고유한 개인의 언어와 철학, 실천을 갖춘 ‘시인’인 것이다.‹도시비틀즈›는 그런 ‘시인’이어도 좋고 ‘시민’이어도 좋은 ‘문화도시’에서 살고 있다.
생각의 탄생
‹도시비틀즈›와 동일 유전자인 ‹생각의 탄생›은 예술을 위한, 예술에 의한, 예술만의 프로젝트다. 이 편협하고 이기적인 특정 집단을 위한 프로젝트가 ‘문화도시’ 안에서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춘천이라는 도시의 놀랍고 관대한 수용 능력을 보여 준다. ‘시민’을 밀어 놓고 오로지 ‘시인’만을 위한 프로젝트를 한다는 것은 일종의 첨예한 고유성의 수행적 가치를, 연대를 배반하는 일과 같으니 이 동일 유전자의 다른 행보로 말미암은 둘의 관계가 과연 배반의 관계로 끝이 날지는 우선 지켜보기로 하고, 하여간 그런 부조리함에서 ‹생각의 탄생›은 탄생했다. 예술의 고유한 상상력, 창작의 전 과정, 그와 연관된 시그널들을 어떻게 감지하고 포획하고 그 정체를 밝혀내는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 프로젝트는 때문에 다양한 층위에 뻗어 있는 예술가 개인의 섬세한 촉수에 주목한다. 읽기와 보기를 식스센스, 육감의 차원에서 다루는 이 기술은 촉수를 다루는 기술이다. 마치 무당의 언어처럼 시각적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을 읽어내고 불러내고 만지고 달래고 맛보는 기술인 셈이다. 그래서 이 기술의 촉수는 혀의 끝에, 손지문의 주름에, 귓밥을 가로질러, 콧물의 점막에 기생하며 존재한다. 그래서 ‹생각의 탄생›은 삶의 전 과정에 늘 함께하면서도 감각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일종의 접신trans상태의 정체를 밝히는 불경한 프로젝트다. 처음은 창작의 전 과정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시작된다. 생각이 만들어지는 처음의 시작을 알기란 어렵고 막막한 일이지 않은가. 그 과정이 궁금하고 흥미로운 자들의 호기심이 이 생각을 찾아내는 고고학적, 인류학적, 사회학적, 민속학적, 그리고 예술적 접근을 기꺼이 함께한다. 이들은 이 과정을 공기에 바람에 강물에 그림자에, 그리고 자신의 몸에 기록하고 공유한다. 마치 사랑의 느낌처럼 매우 다양한 층위로 전달되는 이 소통의 방식은 때로는 명징하게, 애틋하게, 황홀하게, 혹은 냉정하게 말을 건네고 화답한다. ‹생각의 탄생›은 바로 이런 과정의 플랫폼이다. 이 플랫폼은 내밀하면서도 커먼즈Commons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이 즈음에서
‹생각의 탄생›이 다시 ‘시민’과 동일한 유전자를 가졌음이 환기된다. 커먼즈는 자원을 장기간 돌보기 위한 사회 체계로서
공유된 가치들과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보존한다. 필요한 자원을 관리하기 위해 그 공동체가 고안해내는 프로토콜들, 가치들, 규범들이다. ‹생각의 탄생›은 내밀하기 시작한, ‘미약’한 커먼즈를 표방한다. 이른바 예술의 탄생과 성장에 대한 느닷없고 뜬금없는 것만 같은 인과성을 공공재로 다루는 플랫폼을 만든다. 각자의 예술에 관한 경험과 그 창작의 과정들이 어떻게 공공재가 될 수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윤리적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철학으로는, 예술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고 가르칠 수도 없다. 여기까지가 오늘까지의 일이다. ‹생각의 탄생›은 이제 막 탄생되었고, 이 생태적인 플랫폼은 심한 질풍노도의 과정을 거쳐 자기 멋대로의 간지{일본어}kanjiru를 갖게 될 수도 있다. 그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틀 탈주의 유전자를 갖고 있는
예술(가)가 세상을 바꾸는 것은 분명하다. 늘 그런 것은 예상 밖에 존재한다.
생각의 탄생 도시비틀즈 도시를 바꾸기 위해 춘천에 살고 창작의 소재를 찾고 구체화하는 기획, 생각의 있는 예술가, 활동가 20명을 꼬리를 실체화하는 실행, 시민과 소통하는 모집했다. 1월부터 3월까지 개인의 쇼케이스까지 3단계에 걸친 예술가의 창작 과정을 삶을 비틀어 보는 다양한 원칙들을 지원한다. 5월부터 11월까지 2명의 컨설턴트(김월식, 수행했다. 모더레이터 2명(김월식, 옥정호)와 함께 17명의 예술가들이 춘천을 옥정호)이 함께 참여했다. 예민하게 들여다보고 문제의식을 찾아가는 중.
여름방학에 공연장에서 만나!
그림 에디터 정승희
한선주
춘천문화예술회관
리모델링 판타지아
#무대는 살아있다Ⅲ
춘천문화예술회관 리모델링 판타지아 ‹#무대는 살아있다›는 2020년부터 3년간 이어지는 기술 입은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 청소년들이 공연장에서 문화예술에 최신 기술을 접목시킨 교육을 받는다. 10번의 프로그램 동안 공연장을 이해하고, 최신 기술을 배우고, 무대를 기획하여 마지막 쇼케이스에 직접 만든 작품을 올린다. 초등학생 5학년, 초등학생 6학년, 중학교 1학년 각 20명을 모집한다. 여름방학에 진행되는 프로그램으로 참여한 청소년들과 학부모들에게 커다란 호응을 얻고 있다.
빛, 소리, 공간이 전해주는 〈#무대는 살아있다〉 교육 프로그램
빛 난 공연장에 없어서는 안 될 빛이라고 해. 쉿! 조용! 공연장이 암전됐어. 친구들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연장을 탐색하고 있네. 이렇게 보니까 꼭 동굴 속에 있는 것 같다. 옛날 옛적에는 캄캄한 동굴에서 생활했잖아. 동굴이 인류 최초의 무대였을 때를 상상해봐. 어둠에 빛이 짠! 나타나면 무대가 생기고, 시선이 집중돼. 암전된 공연장에 빛이 떨어지고 공연이 시작되는 것처럼. 무대를 살아있게 하는 건 빛이야. 친구들이 가상공간을 볼 수 있는 VR기기를 눈에 썼어. VR 드로잉 브러쉬 펜으로 친구들이 직접 가상공간을 꾸며보고, 디자인도 해.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 친구들이 상상하고, 창작한 것이 나타나다니. 정말 멋지다!
소리 난 공연에 몰입을 더하는 소리야. 공연을 관람할 때 눈으로도 보지만, 귀로도 듣잖아. 공연 음악이 좋으면 무대에 몰입이 잘 되는 효과가 있어. 공연장 안에는 각종 소음이 있는데, 친구들이 소리를 수집하고, 조합해 효과음을 만드는 작업을 했어. 쇼케이스에서 친구들이 수집하고 만든 소리를 관객들도 암전 상태에서 들어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어. 공연 음악도 직접 만들 수 있다는 점 알고 있니? 공연 음악(BGM)을 만드는 조는 비교적 쉽게 다룰 수 있는 프로그램(music maker jam)을 활용하여 음악을 직접 만들었어. 이미지와 영상에 직접 만든 음원을 더하니 제법 멋진 작업이야!
공간 난 친구들이 무대에 섰던 공간이야. 무대에 기술을 입히면 관객들이 경험할 수 있는 감동이 넓어져. 친구들이 지금 다양한 기술을 배우고 있어. 움직이는 햄스터 로봇을 만들고, 초음파 센서, 서브모터, 아두이노 등 무대 구성 요소가 되는 기술을 익히고 무대에 어떻게 연출할 수 있는지 고민해. 또 잉크스케이프를 통해 무대에 필요한 캐릭터, 소품을 설계하고 미니어처 무대를 직접 만들었어. 처음엔 어려워하더니 하나둘 배우니 제법 능숙해졌어. 친구들이 어떤 무대를 만들지 정말 기대돼.
공연 감독님이 선생님이 되어
〈#무대는 살아있다〉 참여한 친구들의 이야기
빛 ‹#무대는 살아있다› 프로그램을 하면서 공연장에 관해 많이 알게 되었을 것 같아. 공연장에 관해 새로 알게 된 사실이 있어? 남의진: 분장실과 무대 뒤 공간이 넓어서 신기했어. 조윤혁: 맞아. 무대 뒤에 공간이 넓었어. 분장실이나 연습실이 많이 있었다는 걸 새로 알게 됐어.
소리 처음 배운 기술이 어렵지는 않았어? 어떤 걸 배웠을 때 가장 재밌었어? 남의진: VR로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어서 재밌었어. VR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게 신기했어. 또 하고 싶어! 조윤혁: 쇼케이스 때 인어공주를 각색하여 내용을 바꾸고, 대사도 바꿔서 만들었어. 직접 대사를 만들어서 무대에 올리는 게 가장 재밌었어.
공간 쇼케이스에서 직접 무대를 연출하고, 무대에도 서보았는데 어땠어? 남의진: 작품을 부모님과 다른 관객분들에게 보여주기 전에 떨렸는데 하고 나니까 후련했어. 조윤혁: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처음 경험해봐서 좋았어. 또 무대에 서고 싶어. 프로그램이 너무 재밌어서 다른 친구들도 경험해봤으면 좋겠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이끈 춘천문화재단 무대운영팀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을 책임지는 감독님들이 ‹#무대는 살아있다› 프로그램을 위해 직접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 교육에 참여했다. 감독님이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만난 소감을 들어보았다.
‹#무대는 살아있다› 프로그램은 춘천문화재단 무대운영팀이 한마음이 되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이끌어왔다. 무대운영팀의 음향, 조명, 무대, 시설 감독님들과 하우스매니저, 안선영 과장님과 황운학 팀장님이 기획, 아이디어 회의, 커리큘럼, 교육, 리허설 등 프로그램 전반에 참여하였다.
이정민 조명 감독님: 함께한 시간이 즐거웠어요. 아이들도 같은 마음이었나 봐요. 아이들의 자주 만나자는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올해가 3년 차인데, 3년 동안 신청해준 친구들도 있어서 신기합니다.
김희삼 음향 감독님: 아이들한테 소리를 만지고, 가지고 놀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어요. 음향은 무대, 조명과 다르게 눈에 보이지 않아 아이들이 초반에 어려워했지만, 나중에는 직접 소리를 만들며 재미있어해 뿌듯했습니다.
시간을 만들었어요. 저 또한 또래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이어서 아이들 안전에도 신경을 썼어요. 공연장에 위험한 곳이 없는지 점검하고, 아이들이 입는 단체복도 더 잘 보이기 위해 원색으로 준비했습니다.
‹#무대는 살아있다› 프로그램이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에게 ‹#무대는 살아있다› 프로그램을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는지 많은 호응을 받고 있어요. 이렇게 많은 호응을 받는 이유는 궁금합니다.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안선영 과장님: 프로그램 기획 당시 춘천문화예술회관 황운학 팀장님: 아이들이 무대에 서보는 경험이 매력적인 것 공연장이 리모델링을 앞두고 있었어요. 같아요. 무대에서 주인공이 되어보고, 직접 리모델링을 한다고 해서 공연장 전체를 하는 무대를 만들어보는 것이 아이들에게 색다른 게 아니기에 로비, 주차장, 광장 등은 유휴 경험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또한, 이런 공간을 교육 프로그램에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공연장 구석구석을 탐방하고, 기술을 배우면서 문화예술을 가까이할 수 있고요. 또한, 아이들이 무대 예술 감독님이나, 기획자, VR 아티스트 같은 ‹#무대는 살아있다› 올해 세 번째를 맞이했는데요, 올해 직업도 다양하게 접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교육이 1, 2차와 다른 차별점은 무엇인가요? 안선영 과장님: 시즌Ⅰ 때는 미디어아트를 중심으로, 시즌Ⅱ 기획했습니다. 때는 VR아트와 로봇아트를 중점으로 했어요. 올해 시즌Ⅲ 에서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특별히 신경 쓴 점은 무엇일까요? 춘천문화예술회관의 과거-현재-미래를 안선영 과장님: 아이들끼리 친밀감을 가지는 게 중요했어요. 주제로 잡았어요. 춘천문화예술회관을 친해져야 다음 수업도 빠지지 않고, 수업도 주제로 마지막 쇼케이스를 꾸밀 예정입니다. 더 즐겁게 하거든요. 그래서 수업 중간에 아이스 브레이킹 시간을 가져 친해지는
경험을 통해 예술과 기술 분야에 관심을 질 수 있어서 많은 호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춘천문화예술회관 리모델링 판타지아!
춘천문화예술회관 공연장이 친구들에게 전하는 편지
To. ‹#무대는 살아있다› 프로그램으로 공연장을 빛낸 친구들에게.
안녕 친구들! 난 ‹#무대는 살아있다› 프로그램의 주인공이었던 공연장이야. 친구들을 만난 지 벌써 1년이 지났네! 작년 여름에 10회에 걸쳐 춘천문화예술회관 공연장에 와줘서 고마웠어. 코로나로 인해 공연을 쉬기도 했고, 리모델링도 하느라 사람들이 공연장에 많이 오지 않았거든. 각색하여 ‘인어공주’, ‘선녀와 나무꾼’, ‘견우직녀, ’해님 달님‘, 친구들이 공연장을 방문하고, 배우고, 멋진 공연도 보여준 ’백설왕자‘, ’헨젤과 그레텔’, ‘신데렐라’를 공연으로 만들었어. 덕분에 즐거운 여름을 보낼 수 있었어. 친구들도 공연장에서 아주 아주 멋졌어. 쇼케이스를 보러 온 관객들도 힘껏 여러 활동도 하며 새로운 경험한 것 같아 기뻐.
친구들이 공연장에 처음 왔을 때를 기억해. 공연장 곳곳을 둘러보았잖아. 음향실과 조명제어실, 분장실 등을 탐방하고, 무대 뒤는 어떻게 생겼는지도 봤지. 공연장을 공연장과 친구가 되어주고, 공연장을 빛내줘서 고마워. 이번 여름에도 ‹#무대는 살아있다Ⅲ› 프로그램이 있으니, 직접 눈으로 보면서 공연장을 파악했어. 공연을 올리기 위해서는 공연장을 이해하는 게 꼭 필요한 일이니까.
뜨거운 여름 즐겁게 보내자!
그리고 공연장에서 여러 기술을 배웠지. VR, 아두이노, 3D 펜 드로잉, 미니어처 무대 제작 등. 처음 배우는 기술도
From. 친구들이 보고 싶은 공연장 씀.
있었을 텐데 금방 익히는 모습을 봤어. 친구들이 새로운 기술을 경험하고 감탄하고, 어떻게 하면 무대에서 응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정말 멋졌어. 또, 연극 선생님께 연기도 배우면서 기술 교육뿐만 아니라 예술 교육도 받아 공연의 완성도를 높였어. 직접 공연을 기획하고 연출, 연기까지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팀을 이루어서 무대에 공연을 올리다니 대단해. 마지막 날에 쇼케이스를 열었어. 관객들도 있었기에 무척 긴장했지? 1부에서는 중학생 친구들이 ‘햄스터의 이중생활’, ’2030 그리스 월드컵’, ’트롤의 축제’, ’행복한 왕자’를 멋지게 공연했고, 2부에서는 초등학생 5, 6학년 친구들이 동화를
감탄했어. 친구들이 무대에서 주인공도 되어보고, 무대 밖에서 연출도 하며 살아있는 무대를 직접 경험해봤다고 생각해.
2022년 기술 입은 문화예술교육
‹춘천문화예술회관 리모델링 판타지아 #무대는 살아있다Ⅲ› 프로그램 일정 ▪일정: 7월 23일 – 8월 14일 (총 10회차) ▪대상: 1기-초등 5학년 20명 / 2기– 초등 6학년 20명 / 3기– 중학생 20명 ▪장소: 춘천문화예술회관, 축제극장 몸짓 등 ▪교육내용
- 공연예술에 사용되는 (조명, 음향, 무대) 제어 기술을 바탕으로 VR아트, 미디어파사드 등을 활용한 창의 융합형 프로젝트형 수업 - 마지막 차시(8/14) 수업을 쇼케이스로 구성, 참여 학생에게는 무대 경험과 관람객에게도 기술과 예술의 융합 작품을 공연 형태로 만나볼 수 있는 기회 제공
‹융복합 XR 미술관› 교육 프로그램 일정 ▪일정: 8월 중 (총 10회차 예정)
▪대상: 관내 청소년 ▪장소: 춘천문화예술회관 전시장 ▪교육내용
-예술인 중심의 티칭그룹 매칭을 통한 예술적 감수성 습득 중심의 기술/예술 융복합 교육 -교육 중 완성한 작품으로 전시회 개최까지 연계 예정 ▪문의: 033-259-5849
에디터 정승희
너는 그렇게 태어났다. 심통 난 얼굴. 매섭게 흘기는 눈빛. 어떤 이는 너의 힘을 숭배한다. 신이시여. 대다수는 너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방울.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온몸을 두려워한다. 불이야! 몇몇은 용기 있게 너를 쫓는다. 너는 아무렇게나 흔들다 이내 제풀에 지쳐 털썩 주저앉는다.
멈추는 법을 모르고,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점점 더 주저앉은 얼굴은 큰불이 한 번 지나가고 남은 재해의 현장 타오르는 자신을 보며 이성을 잃는다. 같다. 어떠한 기력도 없는. 스스로 타버리고 만 흔적. 회색빛의 재. 어떠한 희망도 없는.
안녕. 불아.
이 화는 어디서 온 걸까. 너는 하얀 마음으로 묻는다. 불씨를 목소리에 고개를 드니 너의 눈앞에 눈망울이 있다. 투명하고 가지고 태어난 걸까. 불씨를 물려받은 걸까. 들판에 바람 한 깨끗한 눈망울엔 한바탕 타오른 뒤 보잘것없는 네 모습이 줄기 불어오고 너의 물음과 상관없이 네 안의 불이 빛을 비친다. 이렇게 끝날 거면서 왜 그토록 타올랐던 건지. 너는 낸다. 저절로. 타오른다. 한 세계가 순식간에 불에 휩싸이고 투명하게 비추는 눈망울이 싫다. 가. 아주 멀리서 보면 그 모습이 꼭 축제 같다. 네가 필요해, 나는. 눈망울이 말한다. 불은 그 자체로 힘이어서 너는 타오르는 힘으로 나아간다. 아무도 내 주변엔 올 수 없어. 가. 너는 고개를 떨군다. 네가 지날 때마다 소용돌이치고, 박살이 나고, 무너지는 게 네가 필요해. 모두가 너를 기다리고 있어. 눈망울의 목소리엔 너는 무섭다. 누구도 너를 가까이하지 않지만, 가까이 있다면 단단한 힘이 있다. 너는 눈망울의 말에 다시 고개를 든다. 보게 되겠지. 기세등등한 얼굴이 아닌 울상짓는 얼굴을.
불아. 날 꼭 만나러 와줘. 눈망울이 생긋 웃으며 말한다.
눈앞에 보이는 투명한 눈망울. 조금 있으면 난 또 불타오를 거야. 그럼 넌 살아있지 못해.
*이 글은 2022 춘천마임축제 불의 도시: 도깨비 난장 ‹낙화놀이›에 영감을 받아 썼습니다.
너를 부른다. 너는 앞으로 더 가지 못한 채 멈춰서 광경을 바라본다. 갈 수가 없어. 내가 가면 다 망쳐버릴 거야. 너는 금방이라도 뜨거운 눈물을 흘릴 것만 같다. 웃음을 터뜨리는
눈망울이 멀어짐과 동시에 바람이 불고 너는 안에서부터 뜨거워진다. 뜨거움이 네 안에서 바깥으로 옮겨지고, 불씨는 사람들, 밤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 공연을 관람하는 점점 커진다. 너는 두리번거리며 눈망울을 찾는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눈망울이 지나간 자리에 한기를 느낀다.
사람들이 뿜어내는 빛은 따뜻하다. 내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야. 너는 두려움에 뒤를 돈다. 다시 뜨거워진다. 어쩔 줄 모르는 불이 타오르고, 이성을 잃을 것 같은 찰나 너의 시리도록 차가움이 선명하다. 너는 생전 느끼지 못한 차가운 눈에서 불방울이 떨어진다. 감각을 온몸으로 느낀다. 눈망울을 찾는 길은 어렵지 않다. 팔과 다리 하나를 한기에 걸친 채 움직인다. 예전의 네가 와아아 불이다! 환호성이 들린다. 너는 눈물이 떨어진 곳을 아니다. 반은 냉정하고, 차갑고, 무엇도 부수지 않는다. 너는 따라 낙하하고 몸을 맡긴다. 화르르 위로 타오르던 너는 처음으로 세상의 모습을 똑바로 본다. 별이 총총 박혀있는 아래로 옆으로 타오른다. 타닥타닥. 환호성이 잠잠해졌다. 밤하늘과 사람들이 사는 집 창가에 비치는 빛, 거리의 가로등. 너의 눈엔 화는 사라지고, 감탄만 남는다. 세상은 이토록 아름다운 곳이구나.
눈을 뜨니 수많은 눈망울이 있다. 투명한 눈망울엔 낙화落火하고 있는 너의 모습이 방울방울 비춘다. 너는
처음으로 너의 모습을 본다. 눈망울 하나하나에 아름다움을 보는 이의 감탄이 있다. 조금 전 네가 세상을 바라보았던 한기가 사라진 곳에 멈추니 저 아래 수많은 사람이 모여있다. 것과 같은 표정으로. 작은 불빛이 주변을 감싸고 있고, 눈망울이 사람들 가운데서
것에 화가 난다. 돌아보면 화가 나는 일들 투성이다. 장마가 온다. 그것을 버려야 함에 화가 난다. 베어지는 나무에 화가 나고, 여름이 너무 덥다는 생명들이 차에 치여 죽음에 화가 난다. 무엇을 사도 불필요한 쓰레기가 많고 건물 안에 갇혀 죽는 게 화가 난다. 도로에서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어떤 있었다. 해소되지 않고 계속해서 화가 나는 일들을 생각했다. 나는 작은 생물들이 분노를 생각한 시간이었다. 돌아보니 나는 가장 가깝고 편한 사람들에게만 화내고
⸺ 권용식
⸺ 정승희
내고 싶어졌다. 용기를 내야지. 조심스럽게 지면에 옮기며 나도 세상을 향해, 사람을 향해 바르고 정제된 화를 여름호를 준비하며 만난 사람과 이야기는 단단하고 불편하고 화끈거렸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읽는 분들의 마음에 이야기가 가닿을까 고민하며. 누리자마자, 마음 속 솟구치는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발견해 독자 앞에 내 놓는다. 우리는 늘 매거진 주제 안에서 몇 달을 보낸다. 봄호에서 시작하는 기쁨을
⸺ 한혜진
타오르고, 솟구치는 마음으로 작은 변화를 만들고 싶다. 했다. 활활 타오르는 마음은 다루기 어렵지만, 변화의 시발점이 된다. 올여름엔 이유를 곰곰 살펴보고, 화를 냈거나, 내지 않았던 기억에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나를 돌아보고, 화가 많이 난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기도 했다. 내가 분노하는 여름호를 준비하면서 솟구치는 마음에 관해 생각했다. 분노가 많았던 예전의
주눅들지 말아야지! 건강하게 정당하게 '화' 내는 법을 안 것 같아 뿌듯하다. 이젠 내 목소리에 있는 것처럼 스스로를 진정시키기 바빴다. 하지만 이번 여름호를 준비하면서 더 ‘화가 왜 이렇게 늘었어’라는 말을 자주 듣던 시기였다. 그때마다 내가 잘못하고
⸺ 박인옥
이제는 그 시의 화자가 꼭 나처럼 느껴진다. 작으냐’고 묻는 어른 말이다. 고작 모래에게, 바람에게, 먼지에게, 풀에게 ‘내가 얼마큼 작으냐고, 정말 얼마큼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나 ‘옹졸하게 반항’하고선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는 사람.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고, 비겁한 고백에 분노하는 학생이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읽으며, 나는 김수영의
⸺ 최수현
그래서 분노를 떠올리면 한없이 슬퍼진다. 무관하지 않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분노의 기저에는 서열과 억울함이 있다. 랩의 탄생이 흑인 빈민가에서 비롯된 것을 보면 분노와 하위문화는 결코 그렇게 분노는 나를 랩퍼로 만든다 안 그러면 구멍 나요. 마 음 에. 안 그러면 꽃 꽂아요. 머 리 에. 안 그러면 화석돼요 안 그러면 화병돼요 참지 말고 울어요 참지 말고 풀어요 한국사람들에게만 있다는 화병(火病)
⸺ 홍경문
PUBLISHER 발행인 최돈선
EDITOR IN CHIEF 편집장 고영직
CONTENTS & EDITORIAL DIRECTOR 부편집장 한혜진
EDITOR 취재 권용식, 박인옥, 정승희
PHOTOGRAPHER 사진 강승원, 김효주, 이종희, 이원일
ILLUSTRATOR 삽화 한선주
DESIGN & COVER ILLUST 디자인 & 표지 일러스트 이건하
ADMINISTRATION 기획총괄 김희정
MANAGEMENT 운영 김태경, 홍경문, 최수현
춘천문화매거진 POT 제31호 2022 여름 「솟구치는 용기」 2022년 7월 발행
발행처 춘천문화재단 강원도 춘천시 효자상길 5번길 13
정기구독 033-259-5800 WWW.CCCF.OR.KR
인쇄 강원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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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문화매거진
ISSN 2508 6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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