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문화놀이매거진 POT 32호
이북 원문에서 글자만 옮긴 전체 텍스트입니다. 표·그림·사진과 원래 모양은 이북에서 확인하세요.
PLAY 문화로 같이 즐기다
POT에는 ‘(다양한 것을 담는)그릇, 솥’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춘천문화매거진 팟은 문화로 다 같이 즐기고 소통할 수 있도록 지역의 다양한 문화 콘텐츠와 트렌드,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슈 등 생동하는 춘천의 문화예술을 한 데 담아내는 그릇이 되겠습니다. POT이 이야기하는 춘천문화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춘천 시민의 삶 속에서 엿볼 수 있는 일상의 모습, 그 안에 담긴 보석 같은 이야기를 뜻합니다. 오랫동안 많은 예술가와 청춘들에게 영감을 주는 아지트로 자리매김해 온 춘천. POT은 춘천이라는 멋진 지역을 춘천 시민과 춘천을 찾은 사람들이 보다 즐겁게 향유할 수 있도록 다채롭게 펼쳐 보이겠습니다.
OPEN 문화로 마음을 활짝 열다
TALK 문화로 함께 이야기하다
표지 일러스트 「흩어지는 마음」 반짝이는 연기 속 흩어져 가는 내 마음
당신의 슬픔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나요
편집장의 여는글 10
우리는 모두 슬픈 존재 12
1 비가 오는 풍경, 나무를 동경하는 삶 16 2 날것의 순수함, 모두의 치유를 갈망하는 몸짓 26 3 순간은 성실하게 인생은 흐르는 대로 36
고독력 마스터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46
슬픔의 미학 54
건강한 생활 리듬과 도시 58
다정한 생존이 문화도시를 만드는 방법 62 강원 소리는 길이길이 갈 거예요 66
슬픔에서 시작한 여행 74
아침, 저녁에 부는 바람에서 가을 냄새가 물씬 납니다.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았던 불볕 더위도 한풀 겪였습니다. 가을이 되면 저절로 떠오르는 구절이 있습니다. 시인 김수영이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거미」, 1954.10.5.)라고 한 표현입니다. 한국전쟁 중 의용군으로 끌려가 죽을 고비를 넘긴 이후의 심중을 표현한 구절입니다.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는 자신의 ‘설움’을 표현한 것이겠지만, 고독할 수 있는 힘을 예찬한 구절로도 읽힙니다. 우리는 누구나 고독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우리 삶이 고립된 삶이어서는 안됩니다. 고독과 고립은 전혀 다른 말입니다. 누구나 고독할 수 있는 힘을 의미하는 ‘고독력(孤獨力)’을 갖추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14세기 페르시아 시인 하피즈가
“네 고독을/ 너무 쉽게 놓지 말라/ 더 깊이 베어라”라고 노래한 것 또한 고독력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독’할 줄 아는 사람은 ‘우정’의 힘을 전적으로 신뢰할 줄 아는 사람일 것이라는 믿음이 행간에서 감지됩니다. 이번호 «pot» 주제는 ‘고독’입니다. 한 글자로 표현하자면 ‘멋’입니다. 지난 여름 춘천이 낳은 마임이스트 유진규 선생의 마임인생 50년을 기념하는 축하 행사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행사를 준비하고 참여한 시민들은 누군가가 ‘태초에 멋이 있었다’(조지훈)라고 한 말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예술가가 어떻게 탄생하고 성장하는가를 생각하는 시간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힘은 바로 ‘축적’의 힘이었습니다. 나를 위한 고독한 시간을 끝없이 축적한 결과가 한 예술가의 위대한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한 도시의 문화적 저력(底力) 또한 그런 축적의 시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20-30대 젊은이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모은 ‹로컬에-딛터›와 ‹도시편집자› 사업 그리고 ‹교차와 횡단›(7.27) 포럼을 비롯한 문화예술교육 주간행사 등에 각별한 기대와 희망을 갖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편집자로서, 디자이너로서, 예술교육실천가로서 춘천이라는 도시의 광맥(鑛脈)을 캐는
광부(Miner) 노릇을 하는 ‘도시 에디터’로 성장하고 활동하기를 희망합니다. 깨지고 부서진 세계를 연결하는 커넥터(Connector)로서 활동했으면 합니다. 이번호 성기현·오길영의 칼럼에서 예술(가) 및 문화가 주는 힘, 다시 말해 카타르시스와 미메시스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조짐은 보입니다. 개인의 취미활동으로 시작했지만, 사회적 이슈를 점차 생각하며 도시에서 ‘다정한 생활’을 모색하려는 ‹도시가 살롱›이 그렇습니다. 춘천시 문화도시사업을 대표하는 브랜드로서 ‘커뮤니티는 없고, 소사이어티만 남은’ 지역문화의 흐름을 바꾸는 물꼬 역할을 하기를 희망합니다. 문제는 있습니다. 고금리, 고환율, 고물가 등 ‘3고 시대’를 맞아 여전히 소리 없는 외로움이 확산되는가 하면, 기후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들 또한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민들이 저마다 고립된 시민이 아니라, 진짜 고독과 진짜 고독력의 의미를 생각하며 ‘당당한 겸손함’을 갖춘 시민들로 탄생했으면 합니다. 혼자 살다 혼자 죽는 무연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닙니다. 가을바람이 솔솔 붑니다. 당신의 마음에도 이 바람이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 편집장
에디터 권용식
우리는
어떤 슬픔은 분노가 된다. 어떤 슬픔은 머물다 옅어진다. 어떤 슬픔은 다른 슬픔을 만나 사라진다.
모두
슬픈
어떤 슬픔은 옅게 머문다. 수많은 슬픔이 있고, 우리는 그 슬픔을 차곡차곡 쌓고 풀며 살아간다.
존
다양한 슬픔의 감정을 느낀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재
참담한
방글라데시에 업무차 간 적이 있어요. 어떤 지역을 방문했는데, 가이드분이 불법 증축한 공장이 붕괴한 장소라고 알려주더군요. 현장에는 사람이 죽었다는 어떤 표시나 기념비 하나 없었고 그 공간에 물이 가득 차 있었어요.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고 누군가 오줌을 싸고 있는 걸 보고 있으니 참담했어요. 사람들의 죽음이 너무도 쉽게 잊힌다는 건 슬픈 일이에요.
측은지심
제주도로 여행을 간 적이 있어요. 해녀박물관에 갔었는데, 그 작은 손에 굳은살이 박이고 얼굴에 주름이 잡힐 때까지 물질하는 분들이 무척 안쓰러웠어요. 그분들의 삶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났어요. 전시를 보고 밤이 늦어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는데 무척 피곤하더군요. 내릴 때쯤, 이 어둡고 꾸불꾸불한 길을 기사님 홀로 종점까지 운전해야 한다는 사실이 신경 쓰이더라고요. 고단한 시간이 될 것 같아 왠지 마음이 아팠어요.
자책
촬영하다가 고가의 렌즈를 떨어뜨렸어요. 떨어뜨렸을 때는 렌즈가 멀쩡했어요. 그런데 차츰 시간이 지난 뒤 그 렌즈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데 영상 초점이 안 맞더라고요. 나중에 확인해 보니 열심히 찍은 인터뷰가 날아가 있었어요. 인터뷰를 다시 요청하기도 해야 하고, 함께 일한 사람들에게 미안했어요.
A, 스타트업 근무
렌즈가 제 것이 아니라 회사 물건이라서 더 신경이 쓰였고요. 대표님은 괜찮다고 말씀하셨는데, 자책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자신을 책망하게 돼요
J, 영화감독
외로운
아이를 낳아 육아 중이에요. 육아를 도맡아서 하고 있는데 쉽지 않네요. 아이는 너무 예쁘지만 잠에서 깨면 악마로 돌변하거든요. 마치 장거리 마라톤을 쉬지 못하고 계속 뛰고 있는 기분이랄까요. 시골에 살다 보니 주변에
다람쥐, 유치원 교사
육아하는 분들이 없어서 외로워요. 그래서 조금 멀더라도 최대한 근처에 있는 육아하는 분들을 찾아 함께 이 시간을 잘 보내려고 해요.
P, 농부
좌절
연구소에 근무하고 있어요. 교수님과 함께 일하고 있는데 실망스러운 일들이 많아요. 직원을 대하는 태도라든지, 연구소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쉬쉬하는 분위기 같은 게
무척 실망스러워요. 현실적인 문제로 계속 다니고 있는데,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어요. 이직을 준비하고 있답니다.
실망한
B, 대학 연구소 근무
낙심한
나이 터울 많은 누나와 함께 살고 있어요. 누나는 강아지를 좋아해서 애견숍에서 일하고
무기력한
있고, 애견숍을 차리는 게 목표예요. 그런데,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에 강아지를 한두 마리 계속 데려오더니, 이제는 강아지를 6마리나 키우고 있어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강아지가 두 마리 있는데요. 한 번씩 교복이나 문제지에 오줌을 싸면 정말 미치겠어요. 저도 강아지가 귀엽고 예쁘지만, 누나가 관리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 모습에 분노해요. 가족 모두가 스트레스받는 상황에서 무척이나 많이
멀리 떨어져 있는 동생의 방에 놀러 갔다가 깜짝 놀랐어요. 동생의 유일한 취미는 게임인데요. 강도 센 업무와 외롭고 힘든 상황에 방을 치우고 청소를 제때 할 수 있는 마음의 근력이 다 사라진 것 같았어요. 책상 밑에는 쓰레기가 가득하고, 이불은 다 터져서 솜이 튀어나오도록 자신을 돌볼 수가 없었나 봐요. 나 자신을 위한 돌봄 노동에 손끝 하나 까딱할 힘이 남지 않은, 기력이 다 빠진
불편함과 누나의 책임에 관해 이야기했지만
무기력한 상태. 저는 동생이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아요. 우리는 같이 낡고 무너진 침대를 끄집어내 버리고 방을 치웠어요. 동생이 슬픔의
전혀 듣지 않아 체념했네요. 누나가 강아지들을 데리고 얼른 독립했으면 좋겠어요.
중3, 남학생
무기력에서 벗어나기를 마음속으로 응원해요.
애통한
요즘은 뉴스를 볼 때 자주 슬퍼요. 고통이 오래 지속되기도 해요. 예전에는 괴로운 마음에 나쁜 소식을 피하곤 했는데, 지금은 힘들더라도 들으려 하고, 보려고 해요. 우리
투자하고 있어요. 나름대로 공부도 많이 하고, 시장을 잘 읽어서 성공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데요. ‘더 많은 돈이 있었다면 더 투자해서 더 많이 벌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자꾸
사회에 일어나는 나쁜 일들이 무관심이나 외면에서 일어나기도 한다고 느끼거든요. 뉴스를 보며 커다란 슬픔과 함께 분노와 무기력함도 오기도 하는데요, 그럴 때일수록
들어요. 현실적으로 투자금이 부족하다는 게 자꾸 떠올라서 슬펐어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나 봐요.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요. 무력함에 지지 않으려 해요. 보이는
나쁜 일들보다 보이지 않는 선(善)을 믿고
지키는 사람들을 상상하면서요.
G, 농업 관련 중간조직 근무
허탈
여행 도중에 거래처에서 급하게 자료를 요청받았어요. 당시 부산으로 여행을 간 상태였어요. 택배는 집에 와있었고, 누군가 가져다주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는데요. 차가 있던 친구에게 급하게 전화로 부탁했는데 바로 거절당했어요. 딱 잘라서 말하는 태도가 무척 서운하고 마음이 허탈했어요. 마음이 안 좋아서 한동안 친구에게 연락하지 않았어요. 나중에 만나 자초지종을 듣고 오해를 풀었고, 친구도 사과했네요. 서운한 마음이 들면 바로바로 말하는 게 좋은 듯해요.
C, 요리사 동생을 둔 누나
쓸쓸한
시골에 내려가 할머니와 일 년 정도 지낸 적이 있어요. 할머니는 매일 아침 경로당에 들렀다 집으로 일찍 돌아오시곤 했죠. 아무도 없는 집에서는 오직 텔레비전만이 무거운 적막을 깼어요. 유난히 캄캄했던 어느 밤, 텔레비전 앞에 덩그러니 앉아 계신 할머니의 뒷모습을 처음 보았어요. 텔레비전은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지만, 그 뒷모습은 공허하고 적막했어요. 다 큰 어른이 되어 들여다본 할머니의 삶에는
쓸쓸함이 있더군요. 할머니는 제게 언제나 할머니셨기에, 어떤 초월적인 존재라 생각했나 봐요. 한 번도 할머니의 삶을 헤아리려 하지 않았거든요. 비록 지금은 다시 할머니와 떨어져 지내지만, 일부러 시간 내어 찾아뵙고
전화도 자주 드리고 있어요.
유자, 직장인
Q, 프리랜서
후회
평소에 지인들에게 연락을 잘 안 하는 편이에요. 마음으로는 생각하지만, 연락은 의무처럼 느껴져서 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말이 많지 않은 것도 있고요. 청첩장을 돌리느라 모처럼 반가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평소 왜 연락을 안 했냐는 말을 줄곧 들었어요. 저도 인지하고 있었지만 자꾸 같은 이야기를 듣다 보니 진작 연락을 좀 할 걸 하고 후회가 되었어요. 상대를 생각하고 아끼는 마음은 결국 행동과 연락으로 전달되는 거니까요. 이번 계기를 통해 오랜 지인들을 더 잘 챙겨야겠다고 다짐했답니다.
강황, 결혼을 앞둔 직장인
B, 디자이너
포토그래퍼 에디터 권용식
비가 오는 풍경, 나무를 동경하는 삶
정착을 노래하는 작가, 회화작가 김민지
김민지 1995년생. 덕성여대 동양화과를 전공했고, 동 대학원 동양화전공으로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2021년, ‘나 더하기 나’, 2020년 ‘10그루의 나무’, 2019년, ‘비 오는 139km의 풍경’이 있다. 매년 꾸준히 개인전을 열고 있으며 올해 10월, 개인전 ‘○●나무에 부는 바람’을 준비 중이다.
고향에 갈 때면 유독 비가 내렸다. 차창 밖으로 비 오는 풍경을 바라보며, 그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생각한다. 그는 정착하는 삶을 원하고, 한 자리에서 평생을 사는 나무를 동경한다.
“비는 배경으로 등장하는 소재일 뿐인데, 오히려 보는 분들이 비에 대해 눈물이라든지, 그리움으로 해석하시더라고요. 저는 제가 정해놓는 것보다 보는 분들이 해석해주는 게 더 재밌고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안녕하세요. 작가님. 네, 안녕하세요. 춘천에 정착하게 된 김민지입니다.
타지 생활을 오래 하셨다고 들었어요. 정착이라는 단어가 반가워요. 작년 겨울, 예술소통공간 곳 입주와 함께 춘천으로 이사 왔어요. 부모님도 퇴직 후 내년에 춘천으로 오신다고 해서 내년부터 같이 살 예정이에요. 고등학생 때부터 타지 생활을 하면서 20번 정도 이사를 한 것 같아요. 그래서 늘 한곳에 정착하며 살아가고 싶었어요. 안정적인 공간 자체에 대한 갈망이 컸어요. 춘천은 고향 인제와 가까워서 왠지 마음이 편해요. 다만 물리적으로 고향과 가까운 춘천에 온 걸 정착이라고 할지, 부모님과 오랫동안 떨어져 살았다가 다시 함께 살게 되어 정서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정착이라고 해야 할지 살피고 있어요.
춘천에 살아보니 어떠세요? 춘천은 생각했던 것보다 넓고, 알면 알수록 즐길 게 풍성한 지역 같아요. 문화시설과 교통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고, 공지천이 있어서 좋아요. 춘천에 산다고 말하는 게 아직 어색하지만, 친구들에게 살기 좋은 동네에 왔다고 자랑하고 있어요.
고향이 그립진 않으세요? ‹139km의 풍경›에 나오는 집은 작가님 댁인가요? 저희 고향 집은 아니에요. 전혀 다르게 생겼어요. 왠지 안정적인 공간을 상상하면 세모 지붕을 한 주택이 떠올랐어요. 안정에 대한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등장시키는 소재에요. 고향이 그립다기보다 한곳에 정착해 살았던 게 좋았던 거 같아요. 고향이 낯설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데요. 집에 가는 길에 자연이 낯설더라고요. 마치 도시에서 시골로 떠나는 여행자가 된 기분이었어요.
그림에 등장하는 빗방울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인 줄 알았어요. 비 같은 경우에는 단지 집에 갈 때 자주 접했던 날씨였고, 자연스럽게 상황을 포착해서 그렸던 거예요. 비는 배경으로 등장하는 소재일 뿐인데, 오히려 보는 분들이 비에 대해 눈물이라든지, 그리움으로 해석하시더라고요. 저는 제가 정해놓는 것보다 보는 분들이 해석해주는 게 더 재밌고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작가님 작품에는 비와 집 말고도 나무가 많이 등장하는데요. 정착과 관련되어 있을 것 같아요. 길에서 만난 어떤 나무를 그린 적이 있어요. 그런데 한 번씩 다니는 길이라 계속 그 나무를 마주치게 되었어요. 나무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저는 계속 이동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나무는 한곳에 뿌리내리고 살아간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때부터 나무는 동경하는 대상이 되었고 정착하고 싶은 제 마음을 투영한 그림의 소재로 사용하고 있어요.
그럼 ‹열 번째 나무›는 어떤 의미인가요? ‹나.무›라는 작품도 궁금해요. 작업 당시 저는 대구 레지던시에 있었고 타지 생활 10년 차였어요. 전시 제목에 타지 생활 햇수를 넣으면 기록이 될 것 같아 ‹열 그루의 나무›라고 전시 제목을 지었는데요. ‹열 번째 나무›는 그때 전시했던 작품 이름이에요. ‹열 번째 나무›는 10년째 봐왔던 나무였고, 고향을 오가면서 비 오는 상황에 있는 저를 나무에 투영하고자 나무 주위에만 빗방울을 그려봤어요. ‹나.무›는 제가 풍경이라는 대상을 보기까지 유리창, 빗방울, 나무 이렇게 레이어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층위를 분리해서 그려보면 새로운 풍경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같은 나무인데 그림 사이에 떨어져 있는 공간을 의미하는 점을 찍게 되었어요.
*‹나.무› 한지에 먹, 33.4×21.2cm, 2020 똑같은 크기의 한지에 먹으로 그린 똑같은 2장의 나무 작품. 한 개의 작품에는 나무 주위에 빗방울이 맺혀 있고, 한 개의 작품에는 빗방울이 없다.
‹비 오는 139km의 풍경 34› 한지에 먹, 116.8×97cm, 2020
작가님 작품은 점점 변화하고 다양한 시도를 하는 느낌이 들어요. ‹나 더하기 나›* 작품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세요. 한동안 쉽게 읽히는 그림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좀 더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제 그림에 있었으면 좋겠더라고요. 예술이 재밌는 이유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요. 기존 작품들이 어떤 의미에서 친절했다면 ‹나 더하기 나›에게서는 기존 나무 풍경들을 확대해 쉽게 읽히는 이미지를 깨트리는 시도를 했어요. 내 감정과 동경이 담긴 나무 하나하나가 ‘나’이기에 작업이 모이는 특성에 따라 나 더하기 나가 되고요. 또 모이는 순서에 따라 다양한 형상을 띠는 나 더하기 나가 된 거죠.
작품을 직접 보니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한지에 먹으로만 작업하는 이유가 있나요? 작업방식을 소개하면, 저는 한 가지 색을 다루는 게 비교적 쉬웠고, 채색화처럼 쌓아가는 방식이 적성에 맞았어요. 그래서 먹물을 물과 희석해 쌓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진한 부분 같은 경우 열 번 이상도 쌓고 말리는데요. 제 마음에 들 때까지 계속해서 쌓는 편이에요. 먹이라는 게 단순히 검게 보이지만 어떻게 다루냐에 따라 무수히 많은 빛을 표현하거나 물체가 갖고 있던 고유색을 없앨 수도 있어서 작업할 때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 재밌어요.
‹열 번째 나무› 한지에 먹, 130.3×97cm, 2020
혼자 오랜 시간 작업하다 보면, 고독한 시간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작가에게 고독은 숙명 같은 존재와도 같은데요. 작가님은 어떻게 고독을 마주하는지 궁금해요. 저는 사실 혼자 작업하는 시간이 좋아요. 고독할 수도 있지만 온전히 저를 위해 쓰는 시간이니까요. 작업이란 건 작가의 이야기를 하는 건데요. 저는 고독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제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아가는 편이에요. 육체적으로 피곤할 수 있지만 사람에게 겪는 스트레스는 없어서 좋아요. 오히려 고독한 시간을 계속 갖고 싶네요.
그렇다면 작가로서 느끼는 슬픔이 있나요? 저는 작가로서 작업하는 움직임이 만족스러워요. 굳이 슬픔을 이야기하자면, 주변 시선들이겠죠. 주변에 작가라고 소개했을 때 밥벌이가 어려울 거란 걱정하는 시선들이 느껴져요. 저는 괜찮은데 말이죠. 제 작업시간이 월급으로 환산되지 않지만 제가 충분히 인지하고 선택한 일이니까요. 아버지가 전시에 오셔서 방명록에 적어주신 문구가 생각나요. ‘작은 빗방울 하나하나가 모여 거대한 호수가 되기를.’ 나중에 이 시간이 더 가치 있는 날이 올 것 같아요.
‹작은 숲› 한지에 먹, 200×140cm, 2020
앞으로 새롭게 준비하는 전시가 있나요? 10월에 개인전을 앞두고 있어요. 이번 전시에서는 기존에 비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과 해석을 조금 말랑하게 풀고자 비를 동그라미로 그리게 되었어요. 그릴 때 저는 이 동그라미를 하나의 공간으로 남겨두고 그렸지만, 이 동그라미가 누군가에게 하얀 점으로 보일 수도 있고, 뚫려있는 공간으로 보일 수도 있겠더라고요. 비에서 시작했지만, 빗방울로만 읽히지 않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작품으로 보여지길 바랐어요. 진정한 정착에 대한 사유와 바람을 담아서 전시명을 ‹○●나무에 부는 바람›으로 정했답니다.
*‹나 더하기 나› 정형화된 크기(50호 116.8×91cm)의 반복이란 규칙 속에서 각각의 작업이 떨어져 있을 때 개별성을 띠고, 모이는 개수에 따라 또 하나의 새로운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인터뷰를 위해 그의 작업실에 갔었다. 뻥 뚫린 창밖에 녹음이 우거진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올해는 유독 비가 많이 왔는데, 왠지 그는 창밖 비 오는 풍경을 보며 고향 가는 풍경을 생각했을 것 같다. 그는 그 나무를 그리고 동경하고 있을 것 같았다. 춘천에 정착한 그는 앞으로 어떤 작업을 보여줄까. 계속해서 풍경을 탐구하고 다양한 시도를 하는 그의 작업이 기대된다.
포토그래퍼 에디터 박인욱
날것의 순수함, 모두의 치유를 갈망하는 몸짓
그의 춤은 한(恨)의 신체화다. 근육과 뼈의 섬세한 움직임 그리고 짧고 긴 호흡을
통해 삶의 희로애락을 처연하게 그려낸다. 춤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주저하지 않고 ‘아름다운 몸’이라 대답하는 사람. 삶의 무게를 지탱하는 중심 ‘몸’을 통해 춤의 본질을 찾아가고 있는 무용수 안형국. 탐구를 통해 축적된 디테일에, 그만의 강한 에너지가 더해진 무브먼트에 관객들은 홀린 듯 빠져든다. 하지만 뼈저린 탈피의 과정을 다시 갈망하는 한 마리의 ‘붉은 나비’처럼, 그는 아직도 진화하고 싶다.
안형국 경기도 광주 출신. 강원대학교 무용학과 졸업 후 전국을 무대로 활동해왔다. ‹댄스컴퍼니 틀› 창단 이후 춘천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안무 창작뿐만 아니라 연출까지 다방면으로 활동 중이다. 2022년 춘천문화재단 전문예술지원사업으로 ‹자유일기›를 선보였으며, 대표작으로는 ‹붉은나비›, ‹THE UNIQUE› 등이 있다. 현재 보훈무용예술협회 강원지회 이사, 대한무용협회 춘천지부 이사를 맡고 있다.
탐구하는 무용수 안형국
“사랑과 슬픔, 분노의 경험도 중요하지만 저에겐 경험이 작품이었어요. 많은 작품들을 하면서 감정을 찾았어요. 이런 경험이 쌓이면서 감정들이 축적되었고요. 축적된 감정을 바탕으로 같은 동작에서 수백 가지 감정이 나올 수 있죠.”
‘무용수 안형국’을 소개해주세요. 평범한 시민입니다, 그저 춤을 추는 시민이요. 하지만 많은 분들이 저를 평범하게 보지 않는 것 같아요. 예술가라고 해서 편견도 있는 것 같고요. 또 얼마 전에는 ‘춤밖에 모르는 바보’라는 소리도 들었어요.
너무 많은 일을 하셔서 그런 건 아닐까요? 네, 공연을 준비하면서 안무도 짜야 하고, 글도 써야 하고 또 아이디어도 내야 하고 이것저것 다 하다 보니 그렇게 보인 것 같아요. 이번에 공연 포스터도 제가 끄적여서 디자이너에게 보내드렸거든요. 저의 발상에서 시작한 데다 시간이 좀 촉박하다 보니 이렇게 제시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작품에 대한 욕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욕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늘 욕심만큼 잘 안 돼서 속상해요. ‘혹시 완벽주의자냐’ 그런 얘기도 듣는데 사실 그런 건 아니고 사연이 좀 있어요. 제가 몇 년 전만 해도 너무 쉽게 예술을 했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 느낀 계기가 있었죠. 많은 작품, 공연을 보면서 자극을 받았고, 특히 코로나19 이후의 시간이 터닝 포인트가 됐어요. 공연이 줄어서 고향에 내려가 어머니 일을 도와드렸거든요. 그동안 몰랐는데 어머니께서 힘들게 일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그때 제가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춤을 출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했고요. 이후로 좋은 작품에 대한 욕심이 생긴 것 같아요.
무용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좀 남다르다고 들었어요. 비교적 늦게 시작하기도 했고요. 제 고향은 경기도 광주에요. 강원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춘천과의 인연이 시작됐죠. 원래 저는 고등학교 때 사물놀이를 했었는데 선생님께서 무용과를 추천해주셨어요. 그래서 강원대학교 무용과에 진학하게 됐고요.
선생님께서 재능을 알아보신 거네요? 이게 스토리가 좀 재밌어요. 고등학교 때 특별활동을 하는데 얼떨결에 농악반에 들어가게 됐거든요.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농악반이 특별활동의 개념이 아니더라고요. 전공 수준으로 매일 서너 시간씩 연습하고 상모 돌리고 몸도 가꿔야 하고 … 알고 보니 농악반 담당 선생님이 ‘농악의 대부’라 불리는 ‘정인삼’ 명인이시더라고요. 제대로 걸려들었죠. 대학 진학 이후에도 농악에 필요한 것들을 발전시켜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3학년부터 춤 그 자체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어요.
춤을 늦게 시작했지만 금방 주목을 받으신 것 같아요. 타고 난 걸까요? 운 좋게 농악을 하면서 트레이닝이 된 것 같아요. 한국무용을 하는 데 있어 많은 도움이 됐죠. 장단을 알고 박자감을 정확하게 짚고 가는 부분들이 안무 디테일에 좋은 영향을 줬어요. 그리고 저는 진짜 엄하게 배웠거든요. 선생님이 옛날 분이다 보니, 자세히 알려주기보다 알아서 찾아내란 식으로 가르치셨어요. 소림사처럼요.(웃음) 그렇게 섬세한 것들을 찾으려 하다 보니 모방하는 능력이 저절로 생기더라고요. 사람의 동작을 볼 때, 그 사람의 질감이나 미세한 특징을 잘 흡수하는 편이에요. 사람마다 말투와 목소리, 움직임이 다 다르잖아요. 그런 것을 저는 몸으로 받아들여요. 움직임의 각도를 추출할 수 있고, 특유의 걸음걸이를 캐치해서 바로 흉내를 낼 수 있는 거죠. 그런 것들이 합쳐져 저만의 움직임이 만들어져요.
한국무용에는 한의 정서가 가장 맞닿아 있는 것 같아요. ‘한(恨)’이라는 게 결국 살아온 삶의 농도를 무시할 수 없을 것
같거든요. 비교적 젊은 안형국 무용수의 감정표현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이게 굉장히 어려운 이야기에요. ‘한’에도 종류가 너무 많고요. 어떤 감정으로 춤을 춘다기보다, 몸으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부터 생각을 해요. 저에게 있어 감정표현은 심장을 쥐어 짜는 것, ‘한’이라는 감정은 진짜 고통보다 더 깊은 것이라는 생각을 해요. 그렇기 때문에 신체적으로 최대한 느낄 수 있는 고통, 내 발끝부터 심장으로 모여지는 그런 아픔을 최대한 몸으로 표현하려고 하죠. 그게 저의 ‘한’입니다.
대개 ‘한’에 대한 질문에는 본인이 가진 슬픔이 나오기 마련인데 신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주시네요. 보통 감정은 경험에서 나온다고 하잖아요. 사랑과 슬픔, 분노의 경험도 중요하지만 저에겐 경험이 작품이었어요. 많은 작품들을 하면서 감정을 찾았어요. 이런 경험이 쌓이면서 감정들이 축적되었고요. 축적된 감정을 바탕으로 같은 동작에서 수백 가지 감정이 나올 수 있죠. 그동안 정말 좋은 무용수, 안무가들을 많이 만난 것 역시 도움이 됐어요.
춤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부분 역시 다를 것 같아요. 춤, 무용의 본질을 알리고 싶은 부분이 많아요. 사실 안무가들마다 생각이 다 다르기 때문에 제 말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요. 대부분의 공연에는 연극적인 요소가 있거든요. 설명하려고 하는 장치들이 많아요. 그래서 저는 무용만이 가진 본질을 알려줘야 춤 자체를 즐기는 관객이 점점 늘어나지 않을까 생각해요. 춤 자체도 자세히 보면 굉장히 재미있거든요. 춤의 본질이 주는 쾌락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어요.
무용수 안형국이 정의하는 ‘춤의 본질’은 무엇인가요?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면 ‘몸’이에요. 몸이 예쁘면 좋죠. 기본적으로 무용수들은 아름다운 신체를 만들기 위해 계속 연습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신체적으로 굉장히 불리한 조건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민첩하게 움직이고 완급 조절을 하려고 노력하죠.
춤의 본질을 관객들에게 선사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하고 싶은 작품에 대한 애로사항도 뒤따를 것 같아요. 어떤가요? 모든 자리에서 다 그렇게 하지 않아요. 기획자의 취지에 따라 융통성 있게 안무를 짜고 움직이죠. 제가 할 수 있는 자리에서 표현하고 싶어요. 지금도 계속 연구하고 있고요.
어떤 연구를 하고 계시나요? 예전에는 작품에 모든 음악을 빼본 적이 있어요. 육성으로 노래를 부르고 거기에 맞춰 힘을 쓰고. 춤의 본질이 몸이라고 이야기했듯이 몸에 모든 초점을 맞추는 거죠. 바디퍼커션*이라고 신체를 활용해 소리를 넣는 작업도 했었거든요. 녹음까지 했었죠. 그리고 또 영감을 받은 부분이 춤의 기본인 ‘호흡’이에요. 호흡을 통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거친 호흡으로 화나는 걸 표현하고 짧게 웃는 호흡도 하고요. 그런 신체적인 치밀함, 재미있는 요소들에 초점을 두고 연구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런 즐거움을 알리고 싶어요. 충분히 그것만 해도 재미가 있거든요.
* 바디 퍼커션 신체 일부를 타악기처럼 두드려 리듬을 만드는 연주
나만의 연구를 비롯해 안무 창작의 과정 역시 홀로 하게 되는 부분이잖아요. 예술가로서 고독과 외로움도 많이 느끼는지 궁금해요. 처음에 ‘이건 내가 꼭 안무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무언가 머리에 꽂히는 기분이 들어요. 안무 창작은 대부분 그렇게 시작이 돼요. 영화나 사물, 지인과의 대화로부터 영감을 많이 받는 편이죠. 어제도 지인과 드라마 ‹작은 아씨들›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한복을 입혀서 한국적인 작품으로 만들어도 재밌겠다’, ‘작은 아씨들 주인공을 남자로 바꾸면 어떨까?’ 이렇게 툭툭 질문들을 던지며 상상해 봐요. 사실 대화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작품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희박하지만요.
그래도 누군가와 함께라면 그 과정이 고독하진 않겠어요. 혼자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있어야 춤을 추는 거고요. 그리고 저는 동료들과 뭐든 많이 공유하는 편이에요. 아이디어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은 중요하거든요. 제가 모방을 잘 한다고 했잖아요. 누군가를 만나 반영되는 내 모습 역시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죠. 솔직히 고독해요. 저는 그 고독함을 싫어하는 것 같고요.
무용수라는 직업이 고독과 군중 사이에 있는 조금은 특별한 직업 같아요. 특별한 직업이라 생각하진 않아요. 관객을 만나기 전까지 우리는 전부 똑같아요.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처럼 우리는 이게 직업이니까 일을 하는 거죠. 조금 다르다면 우리를 통해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정도. 우리는 오랜 시간 연습한 결실을 단 한 번에 보여줘야 하죠. 그래서 만족감과 성취감은 큰 편이에요. 사회생활도 노력과 성과라는 측면에선 비슷하지 않을까요.
2017년엔 ‘댄스컴퍼니 틀’을 창단하고 공연 기획까지 하느라 바쁘신 것 같은데, 놀랐어요. 소속 단원들 없이 혼자 운영하고 계시다고요. 일단 강원도에 무용인이 너무 없어요. 그리고 조심스러운 부분이긴 하지만 젊은 무용수들 대부분 졸업 후 생계를 위해 예술 강사 등 여러 방면에서 활동을 하고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순수하게 무용단원으로만 활동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죠. 생계를 위한 일이 먼저다 보니, 연습할 시간을 최대한 조율해서 맞춰야 하고요. 원주에서 수업이 끝나면 춘천으로 와서 7시부터 10시까지 연습을 하고, 다시 막차를 타고 돌아가는 친구도 있어요. 이런 부분들은 아직도 고민하게 만드는 것들이에요.
최근에도 작품을 올리셨죠? ‹자유일기›에 대한 소개 부탁드려요. 난민들에 대한 이야기에요. 우크라이나 난민 이야기를 접하면서 이런 역사의 아픔을 가슴 깊이 새기려면 우리 역사를 먼저 되짚어보는 게 좋겠더라고요. 우리가 경험한 아픔을 너무 쉽게 지나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 생각으로 ‹자유일기›를 만들게 됐어요. 작품 구상할 때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을 상상하며 일기 쓰듯 줄거리를 쭉 써놨거든요. 당시의 슬픔을 어떻게 예술적으로 관객들에게 전달할지 많이 고민 했는데 작중 소녀가 동경하는 ‘별’에 포커스를 맞춰 동요 ‘작은 별’을 편곡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끌어내고자 했어요. 또 한국무용으로 표현되는 ‘한’을 더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음악을 틀지 않고 무대에서 국악을 직접 연주했어요. 소리꾼 소녀를 주인공으로 과거와 미래, 장소를 넘나드는 이야기를 무용의 시선으로 전개했죠.
사실 안형국, 하면 떠오르는 작품이 있어요. ‹붉은나비›요. 이 작품은 저에게 의미가 큰 작품이에요. 대학원 졸업작품이기도 하고요. 한국무용이 굿, 무속으로부터 시작한 것들이 많아요. 그래서 한국의 아름다움을 샤머니즘으로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신내림을 받고 무당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나비에 비유해 창작했는데 작품에 애정을 가지고 집중하다 보니 생각보다 작품이 잘 됐어요. 춘천 청소년극단 ‘무하’가 이 안무를 재해석 해주었는데 원주 다이내믹 댄싱카니발에서 금상을 거머쥐었죠. 이 작품으로 일본 무대에 서기도 했고요. 이 사연 많은 작품을 개인 솔로 작품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한 거죠.
무당과 같은 화려한 차림새로 펼치는 몸짓이 아주 인상적이에요. 독특한 콘셉트의 시작은 어땠나요? 부산에 계시는 무용과 교수님과 ‘창작 산실’이라는 큰 공연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어요. 그때 교수님께서 부산에서 열리는 무용 콩쿠르에 제자를 참가시켜 보라고 권유를 하셨어요. 그런데 어쩌다 보니 제가 그 콩쿠르에 참여하게 됐고 교수님의 추천으로 승복을 만들어 입게 됐죠. 그런데 그 작품이 또 큰 상을 받게 됐고요.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화려한 무당의 모습, 그리고 빨간 부채요. 이젠 저의 시그니처 무드라고 해야 할까요. 올해 춘천마임축제 도깨비난장에서 이 콘셉트로 솔로 공연을 선보였는데 호응이 정말 좋았어요. 제가 움직이는 공간에 있는 모두가 순간의 에너지를 공유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100명 중의 1명이 되더라도요.
강렬한 기운이 공기를 휘감는 중인데, 한 마리 붉은나비는 슬픔을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무용수 안형국은 신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남들보다 강한 움직임을 만들어 냈고 그렇게 스스로 그의 시그니처 무드인 무당이 되었다. 그의 단련된 신체로부터 뿜어지는 에너지는 현장을 휘어 감는다. 그저 평범하고 싶은 무용수도 분장을 하는 순간 날것의 순수함으로 날아오른다. 굿이 신과 소통하는 과정의 서사라면 안형국의 춤은 순간을 공유하고 있는 공동체의 치유이다. 따로 또 같이, 우리는 그의 춤을 통해 최면에 걸린 듯 슬픔을 치유하고 다시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 무당 차림과 안형국 만의 움직임이 정말 잘 맞아떨어지는 느낌이에요. 사실 무속 콘셉트의 작품은 굉장히 흔해요. 저의 강한 이미지랑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제가 다른 무용수들에 비해 신체적인 조건이 좋은 편이 아니에요. 키가 작다 보니 남들보다 더 빠르게 움직여야 하고 더 높이 뛰어야 하죠. 완급 조절을 심하게 해서 그런지 역동적이고 강한 이미지가 생겼어요. 무당 역시 그런 강한 에너지가 있잖아요. 무속신앙에서 나오는 기운과 저의 움직임이 주는 에너지, 그게 서로 잘 맞아 떨어진 것 같아요.
의상은 한국적인데 막상 작품을 보면 한국무용과 현대무용 중간쯤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의상을 이렇게 안 입으면 관객들은 잘 몰라요. 왜냐하면 제가 추는 춤은 창작인데, 창작을 전통만 가지고 하기에는 한계가 있어요. 한국무용의 기본이 호흡인데 호흡을 기반으로 춤을 추긴 하지만 새로운 동작들을 많이 하다 보니까 경계가 사라진 것 같아요. 그래서 한국무용이라고 정해놓지 않으려고 해요. 창작이 콘셉트이기 때문에 춤의 장르를 정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것 같아요. 우리가 움직이고 있다는 게 중요한 거죠. 다만 전통에 대해서는 분리를 명확하게 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이것이 바로 한국전통이다, 이렇게요.
예술가가 진화하는 힘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경험과 연륜이 아닐까요? 끝이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지금도 제가 탐구하는 만큼 춤이 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연륜이 없으면 결코 깊이가 나오지 않죠. 제 자신에게 가장 많이 건네는 말이 ‘지금 안 하면 늦어, 빨리 연습해!’거든요. 스스로 게으르다고 생각하는데 옆에 누군가 함께 있으면 추진력을 받아요. ‘춤밖에 모르는 바보’도 평범한 사람이고 동료와 이웃이 옆에 있기에 계속 진화하죠.
변유정 춘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강원도와 서울, 일본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활동하고 있다. 속초 극단 파람불 객원 연출. 일본극단 SCOT(Suzuki Company Of Toga) 인터내셔널 아티스트. 2020 오늘의 젊은예술가상_연극부분, ‹그날, 그날에›로 ‘제13회 대한민국 연극대상’대상과 베스트 작품상, ‹전명출평전›으로 제33회 전국연극제 연출상을 수상하였다.
순간은 성실하게 인생은 흐르는 대로
지금을 살아가는 연출가 변유정
종종 연극을 보러 간다. 연극은 자주 들여다보지 않는 삶의 면면을 바로 눈앞에서 보여준다. 어떠한 막(膜) 없이. 배우의 주름이 보이고, 내뱉는 침이
보인다. 애써 참는 마음이 보이고, 화를 낼 때의 핏대가 보인다. 주름진 치마가 보이고, 뒤축을 꺾어 신은 운동화가 보인다. 변유정 연출가의 연극 작품을 본 적이 있다. 역시나 조금 외롭고, 조금 웃기고, 조금 슬펐다. 지역과 서울, 해외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연극을 해온 변유정 연출가를 만났다.
“배우의 상태를 잘 살펴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최대한 작품을 잘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하죠.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좋은 것을 보여주고 싶고, 좋은 곳에 데려가고 싶고, 좋은 음식을 함께 먹고 싶어요. 최고로 좋은 공간에서 공연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커요. ”
연극을 향한 마음 연출가님이 연극을 어떻게 시작하셨는지 궁금해요. 초등학교 3학년 학예회 때 연극 무대에 처음 선 이후 중, 고등학교에서도 연극을 했어요.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객석에 앉게 되었어요. 객석에서 무대를 보고 있는데 심장이 막 뛰는 거예요. 내가 있어야 하는 자리는 관객석이 아니라 저기 무대라는 걸 알았어요. 고등학교 3학년에 다시 연극을 했고 친구와 둘이서 연극반을 만들었어요. 저희 기수 아래 연극반 친구들을 뽑고 졸업을 했죠.
무대가 아니라 관객석에서 하고 싶은 일을 알게 되었네요. 졸업 후에도 연극을 하셨나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춘천에 있는 극단에 있다가 서울에 에이콤(ACOM)이라는 뮤지컬 프로덕션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춤과 노래를 배우고 싶었는데 그때만 해도 춘천에는 일반인을 위한 학원이 없었어요. 에이콤에 가면 춤, 노래를 알려준다고 들었는데 신문에서 3기를 모집한다는 기사를 접하고 오디션을 보게 됐어요.
변유정 연출가가 주인공을 맡은 한·일 합작극 ‹엘렉트라›
오디션은 어떠셨어요? 제가 스무 살 때였는데 오디션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몰라서 책을 샀어요. 책에는 온몸이 드러나는 옷을 입어야 하고 화장도 하면 안 된다고 적혀 있었죠. 그래서 검은색 전신 타이츠를 사서 입고, 민낯을 한 채 오디션장에 갔어요. 다른 배우들은 화장하고 예쁜 옷을 입고 있었고요. 저만 까마귀 같았어요. (웃음) 몇 명 안 떨어지는 오디션이어서 붙은 후에 3개월 동안 춤과 노래를 배웠어요.
서울에서 배운 뒤에는 춘천으로 내려오셨나요? 네. 저는 연극에 필요한 걸 배웠으니까 춘천에서 연극을 하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내려왔어요. 그때만 해도 서울에서 연극을 하겠다는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같이 배웠던 오빠가 뮤지컬 ‹명성황후›에 자리가 생겼는데 제가 오디션을 봤으면 좋겠다고 말하더라고요. 에이콤에서 박칼린 선생님이 저를 가르쳤는데, ‹명성황후› 음악감독을 선생님이 맡으셨어요. 그래서 박칼린 선생님에게 전화했어요. 오디션을 보게 되었고 팀에 합류하게 되었어요. 2년 정도 뮤지컬을 하고 대학로로 가서 연극을 했고요. 그리고 지금까지 쉬지 않고 연극을 했네요.
1) 트로이 전쟁에서 돌아온 아버지(아가멤논)를 죽인 어머니(클리템네스트라)에게 복수하는 딸 엘렉트라의 이야기. 스즈키 타다시는 현대사회의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재구성하였다.
2) Toga Festival. 1982년 시작하여 올해 40주년을 맞은 국제적인 연극제. 일본 도야마현 토가 예술촌에서 열린다.
꾸준히 연극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작품이 저에게 들어오면 웬만해선 다 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기준이 있었어요. 좋은 배우가 나오는가. 좋은 스태프가 있는가. 극장이 괜찮은가. 그리고 한 연출가를 만나면 최소한 두 작품 이상을 했어요. 한 작품 가지고는 서로 알 수가 없으니까요.
일본의 극단 SCOT(Suzuki Company Of Toga) 인터내셔널 아티스트로도 속해 있는데요, 스즈키 타다시(Suzuki Tadashi) 연출가와의 만남도 궁금해요. 2008년에 스즈키 타다시 컴퍼니 오디션이 있었어요. 오디션 지원서를 넣으면서 왠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죠. 이 오디션을 3일 동안 봤어요. 스즈키 트레이닝이라고 선생님이 만든 신체적인 트레이닝이 있는데 그걸 했죠. 한국 배우 16명 중 한 명으로 선발되었어요.
그리고 ‹엘렉트라›1)의 주인공을 맡게 되셨죠!
처음에는 주인공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어요. 연극은 같이 잘 만들면 된다고 생각해서 잠깐 나오는 역할을 해도 상관없었어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출가가 어떻게 작품을 만드는지 보고 작품 속에서 함께하는 경험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한국 배우 16명 중에 몇 명만 먼저 일본에 가서 훈련을 시작했는데 저는 이 훈련이 주인공을 뽑기 위한 또 다른 오디션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했죠. 한창 훈련을 하는 와중에 스즈키 타다시 선생님이 주인공 오디션에 최선을 다하란 이야기를 했고,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정신이 확 들었어요. 내가 언제 세계적인 연출가의 작품에 주인공을 할 수 있을까. 지금이라는 생각이 든 거예요. 그 순간 최선을 다해 이루고 싶은 마음을 삶에서 처음 경험했어요. 그렇게 ‹엘렉트라›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어 6년간 역할을 맡았어요. 그 후 15년 동안 선생님과 함께 작업하게 되었죠.
며칠 전에도 일본에 다녀오셨다고요. 2008년 이후로 여름마다 토가 연극제2) 참여가 제 일정에 고정되어
있었어요. 올해는 제가 일정이 많아 배우로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토가 연극제에 방문해서 선생님도 뵙고 공연도 보고 왔어요. 앞으로는 제가 배우뿐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요. 직접 연출한 작품을 가지고 가서 선보이면 선생님이 좋아하시지 않을까요.
생각보다 몸이 먼저 앞서는 순간 10월에 ‹금 따는 콩밭›3) 연극 공연을 선보이죠.
이 작품이 첫 연출 작품이라고요. 맞아요. 2008년은 김유정 탄생 100주년이었는데 ‹금 따는 콩밭› 각색이 필요하다고 들었을 때 제가 한다고 말이 나왔어요. 생각도 하기 전에 말이 먼저 튀어나와서 저도 깜짝 놀랐어요. ‹금 따는 콩밭›이라는 작품으로 처음 각색을 했고 자연스럽게 연출도 하게 되었어요.
연극 ‹금 따는 콩밭›을 설명해주세요. 올해 공연은 2008년도 초연과 비슷하게 할 예정이에요. 최종남 선생님이 쓰셨던 각본과 김유정 소설가의 「금 따는 콩밭」을 기본으로 뒷이야기를 덧붙였어요. 김유정 소설가의 「금 따는 콩밭」은 짧은 이야기예요. 내용도 유쾌하지 않고 인물들이 화가 많이 나 있어요. 제가 각색하여 연극으로 만든 ‹금 따는 콩밭›은 그것보다는 조금 더 밝고 희망적인 이야기에요. 그럼에도 보고 나면 조금 씁쓸함을 느낄 수도 있고요. 소설 속에 그려진 광산업이 지금의 비트코인이나 주식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는 것처럼요.
김유정 소설가의 작품 중에는 ‹산골›, ‹금 따는 콩밭›, ‹총각과 맹꽁이› 세 작품을 각색하였는데요. 연출가님이 바라보는 김유정 소설가는 어떤가요? 저는 너무나 자랑스러워요. 춘천에 탄생 100주년을 기념할 수 있는 예술가가 있다는 자체만으로 멋지죠. 그리고 그의 이름과 작품이 살아 있는 ‘실레 마을’도 있고요. 김유정 소설가의 다른 작품들도 짤막한 이야기들이 많잖아요. 짧지만 그 안에 사이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상상하게 되고 작품으로도 다양하게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난 8월에는 연극 ‹그날, 그날에›4)가 예술의전당에 초청받아 공연도 하셨다고요. 강원도의 생활상과 언어, 문학이 있는 작품을 서울에서 선보였다는 것이 의미 있었어요. 가끔은 망각하고 있는 모든 일들, 가령 실향민과 전쟁 그리고 너무 오래되어서 뒤돌아보지 않는 이야기를 다시 함으로써 많은 사람을 위로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해요. 관객들도 많이 찾아주셨어요. 고향을 떠나와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 모두가 실향민이죠. 실향민이 가장 많은 서울에서 가장 강원도적인 작품인 ‹그날, 그날에›를 계속 공연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연출을 맡은 작품 ‹그날, 그날에›
3) 김유정 프로젝트 제3탄. 공연장: 아트팩토리 봄. 2022.10.14.-2022.11.6 (매주 금, 토, 일 공연). 주최주관: 문화프로덕션 도모.
4) 2022 예술의전당 지역우수공연 초청 선정작. 공연장: 예술의 전당 CJ 토월극장. 2022.8.12.- 2022.8.14. 이반 作.
변유정 연출. 극단 파람불.
연극을 만드는 일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만드는 일인데요, 연출가로서 연극을 만들 때 마음이 궁금해요. 일단 저는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집중해요. 후배, 선배보다 동료로 생각하고요. 배우의 상태를 잘 살펴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최대한 작품을 잘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하죠.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좋은 것을 보여주고 싶고, 좋은 곳에 데려가고 싶고, 좋은 음식을 함께 먹고 싶어요. 최고로 좋은 공간에서 공연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커요.
작년 «예술섬, 중도 ‘다시 숲’» 축제에 이어 올해도 예술섬 중도 예술감독을 맡으셨어요. 이번 가을에 진행되는 축제에 관해 이야기 해주세요. 중도 숲에서 다양한 공연예술이 진행돼요. 공연한다고 뭔가를 설치하기보다 들어왔을 때와 나갔을 때가 변화 없이, 예술이 풀밭에 살짝 놓여있는 게 콘셉트예요. 3일간 중도 숲을 빌려 쓰고 다시 자연으로 돌려주는 거죠. 하중도 생태공원이 남겨지고,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축제에 담겨있어요.
예술섬 중도 축제에 바라는 점이 있나요? 올해에도 작년에 함께한 예술가 대부분이 참여해요. 예술가들이 1년에 한 번 중도를 책임지고, 공연하는 감각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지속성이 중요하죠. 가을에 중도에 오면 만날 수 있는 공연예술이 이어졌으면 해요. 작년과 비교했을 때 중도의 나무가 많이 잘려나갔어요. 작년에는 숲길이 골목처럼 있어서 그다음 무슨 공연이 있는지 궁금해 했는데 올해는 그 나무 골목이 사라졌어요. 이 점이 개인적으로 슬퍼요.
연극은 지금 내가 하는 것, 그뿐이에요 30년간 연극을 하면서 체감하는 변화가 있을 것 같아요. 공연이라는 건 순간을 나누는 일이죠. 그런데 영상이 발달하면서 작품의 노출이 많아졌어요. 영상에서의 구도나 각도는 공연장에서 내가 보는 시선과 다르거든요. 너무 많이 기록된다는 게 맞는 건가 싶어요. 공연을 보러 와서 경험해야 하는 감각이 영상으로 인해 옅어지는 것 같아 아쉬워요.
연극을 생각하면 어떠세요? 그렇게 특별한 생각이 들지 않아요. 지금 내가 하는 것이죠. 그리고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기도 하고요. 지금 저의 마음 중심엔 연극이 있어서 연극을 하고 있어요. 만약 제가 오늘부터 나무를 기른다고 하면 나무를 기를 거예요. 그만큼 연극은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기에 자유로워요.
그럼 연출가님의 마음에는 지난 30년간 연극이 있었네요. 연극을 하다 보니까 다른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어요. 할 때는 그것에만 집중해요. 지금 순간에 우리의 대화에만 집중하는 것처럼요. 늘 지금이 가장 중요하죠.
앞으로의 계획이 있을까요? 계획은 없는데 다음 작품이 하나 있어요. 2023년 6월 공연 예정인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에 연출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올해 11월부터는 이 작품에 시간을 많이 쓸 것 같아요.
언제든지 연극을 그만둘 수 있다는 그의 말에서 단단함이 느껴졌다. 성실하게 켜켜이 쌓은 순간들이 안내하는 곳은 후회나 집착이 아닌 자유였다. 연극이라는 장르에서 그는 순간을 살았다. 지금 하는 작품, 함께하는 사람, 만나는 관객들. 그래서 그런 걸까. 삶의 희로애락을 보여주는 그의 연극 앞에서 외롭기도, 슬프기도 했지만 동시에 충만해졌다.
포토그래퍼 에디터 박인옥
고독력 마스터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손기주 / 배우 출신의 극작가, 연출가 고독의 땔감으로 불을 지펴 동력을 얻는 사람. 얼마 전 강원도립극단의 신진연출가 공모에 당선돼 12월 공연을 목표로 열심히 작품을 준비 중이다.
최승옥 / 신중년 활동가 고독을 즐길 수 있는 적당한 때를 맞이한 중년. 4형제 중 둘째로 태어나 고독하고 자존감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오랜 교직 생활을 마치고, 고독의 해법을 ‘이웃’에서 찾고 있다.
윤 현 / 인문학 카페 매니저 일상을 여행하는 연구자. 공연이나 전시를 즐길 때 ‘혼자’를 선호한다. 혼자의 시간을 자유롭게 유영하며, 뜻밖의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늘 자신에게 중심을 두고 부르기로 했다. 그리고 아주 도시를 즐길 수 있는 자세. 사소한 그들의 대화에 귀를 고독에 끌려다니지 않고 기울여보았다. ‘고독’ 오히려 그 고독을 선택할 수 누군가에겐 불치병이 될 수도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 나는 있지만, 감기처럼 가볍게 이들을 ‘고독력 마스터’라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인옥 불현듯 삶에 찾아오는 고독을 어떻게 이겨내는 것이 좋을까 생각하다가 개인의 힘에 집중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주변에서 추천받은 ‘고독력 마스터’분들과 함께 수다의 자리를 만들게 됐습니다. 먼저, 어떨 때 가장 고독하다고 느껴지나요?
스트레스를 쌓아놓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 대해 스스로 정리하고 치유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늘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에게 고독의 시간은 사람들과 만나는 곳에서 오는 나의 데미지를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에요.
승옥 어떤 어려움이 있는 시기에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해줄 수 있는 주변인이 없다고 느낄 때 고독감을 느껴요. 저 역시 힘든 상실의 시간을 보냈어요. 몇 년 전, 동생을 암으로 잃었거든요. 바쁘게 살았기에 이제야 소통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생각했는데 그즈음 우린 이별했죠. 그때의 고독감이 참 컸어요.
현 예전에 큰 상실을 겪고 분노와 우울, 허무함을 느꼈었어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 최근 다시 상실을 경험하게 됐죠. 오랜 시간을 함께한 친구와 이별했는데 이번 상실에서는 뭔가 시원하고 통쾌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고독의 시간을 좀 가져야겠다 생각했죠. 그래서 혼자 하는 걸 많이 시도하고 있어요. 같은 상실이지만 다른 고독의 시간을 보내고 있더라고요. 올해는 심리적인 인옥 이번 ‘투게더’를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떠올랐던 성장, 단단해지는 나를 겪고 있는 것 같아요. 키워드도 슬픔과 상실이었어요. 누구나 이런 감정들을 안고 살아가죠. 그렇기에 우리는 개인의 기주 작품을 준비할 때 누군가와 계속 부딪히고 서로를 힘에 집중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고독력’이 결국은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시간들이 참 많아요. 제가 몸 ‘혼자의 시간’인 것 같은데, 언제 가장 혼자이고 담고 있는 연극 분야뿐만 아니라 모든 일들이 다 싶나요? 그렇겠지요. 그런 과정 속에서 얻은 많은 상처와
손기주님의 고독 스팟
현 밤 11시 이후는 혼자 있으려고 노력해요. 제 기준에서 하루의 시작은 문을 열고 나가는 것부터예요. 일정이 끝나면 다시 문을 닫아 마무리를 해야 하는데, 혼자만의 시간이 없으면 밤에 문을 열어놓고 잠 드는 기분이에요. 11시 이후의 시간은 오로지 저만을 위해 써요. 상처를 받거나 실수한 날에는 돌이켜 보면서 다짐도 하고요. 저한테 고독은 분위기, 순간, 시간이에요. 감정으로 무언가 느끼는 게 아니라 주어진 시간을 홀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나에게 꼭 있어야 하는 그런 분위기요.
승옥 저는 매일 자정 넘어 일기를 쓰고 있어요. 감정을 적을 때도 있지만 단순히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무엇무엇을 했다 이렇게만 써놔도 굉장히 뿌듯해요. 잠자리에 들 때 비로소 내가 하루를 정리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일기를 쓰는 것이 일상이 됐어요.
기주 저도 비슷해요. 스스로 정리가 안 된다고 느낄 때 혼자이고 싶죠. 그리고 사람들에게 치였을 때요. 그럴 때마다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으로 가요. 아무도
없는 곳으로 캠핑을 간다거나 아주 조용한 산책로를 걸어요.
인옥 이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결국 ‘고독이 가진 힘’ 때문인 것 같네요.
기주 사람들과 소통하다 보면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습득하게 되잖아요. 그걸 내 것으로 만들고 정리하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고독의 힘이라고 생각하고요.
인옥 고독의 시간은 결국 사회 속의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승옥님은 지난해 낭만 오벤저스 활동도 하시고, 현재 커뮤니티 활동을 많이 하신다고 들었어요.
승옥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에요. 여러 사람과 있을 때 드러내지 못했던 내면의 욕구와 감정들을 나 스스로 발견해줘야죠. 누군가와 문제가 있었다면 ‘내일은 이렇게 접근해보는 건 어때?’ 하고 내면의 나에게 질문하고 답하면서 해결방법을 찾아요.
승옥 교단에서 가르치는 일만 하다가 발랄한 커뮤니티에 섞이려니 어색한 것보다 신기하더라고요. 나를 드러내는 것에 소극적인 편이라 처음엔 부담스러웠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당시 참여했던 분들과 함께 ‘멋진 하루’라는 커뮤니티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퇴직 후 만난 사람들과도 순수하게 진심을 나눌 수 있는 것에 큰 기쁨을 느꼈어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잖아요. 정기적인 고독력의 시간도 필요하지만 사회 속에서
현 오기 전에 ‘고독’이란 단어를 검색해 봤어요. 내가 알고 있는 고독이 이게 맞나 싶어서요. 고독은 순간과 분위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분위기 안에서 내가 얼마나 자유롭게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가 고독력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는 타인의 심리에 집중하게 돼요. 내 말이나 행동도 거의 대부분 타인에게 맞춰지게 되고요. 그런데 이 고독이라는 시간 속에서는 나를 위해 얼마나 어디까지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에 집중할 수 있어요.
이 고독력을 다시 풀어낼 수 있는 자리도 필요하다고 느끼죠.
인옥 기주님은 집필을 할 때, 이 고독력이 발휘될 것 같은데, 어떤가요?
기주 작년에 좀 힘든 일이 있어서 상담을 받았어요. 상담사 분이 말씀하시기를 상처를 받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거기서 끝을 내야 하는데, 저는 자꾸 땔감을 집어넣는다고 그러더라고요. 특히 작품을 준비할 때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예술가들이 힘든 것 중에 하나가 스스로에 대한 가학성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원래 예술의 시작은 스스로에 대한 치료라고 하잖아요. 남들이 상상하지 못하는 걸 나는 해야 된다는 압박도 있고요.
인옥 어떻게 보면 고독의 시간이 재능과 장점을 꺼내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네요. 그 과정은 많이 힘들지만요. 이런 경험이 있으신가요?
윤현님의 고독 스팟
승옥 제가 워낙 혼자 끄적이는 걸 좋아하다보니, 어느 날 승옥 고독은 우리 스스로 그런 분위기나 상황을 만들 수 친정 어머니가 자서전을 써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출간까지 1년이 걸렸어요. 이후 몇 년은 당신 자서전에서 힘을 얻어 지내셨고요. 그리고는 어느 날 ‘내가 너를 사랑받게끔 키우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고 말씀해주셨어요. 모든 일의 원인은 나에게 있다고 생각했는데 엄마의 사과로 긴 세월 쌓였던 감정이 풀리면서 위로가 되더라고요. 시작은 낯선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었는데 이 일을 계기로 현 의도한 것이냐 아니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냐 자신감도 생겼어요.
인옥 물리적인 고립과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고독력은 다르잖아요. 그 차이에 대해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 이야기 나눠 볼까요?
기주 고립과 우울감은 고통이 동반되는 것. 고독력은 기쁨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것. 이렇게 정리가 되네요. 그래서 고립이나 우울의 범주에 들어가지 현 사쿠라기 시노 작가의 「별이 총총」이라는 책을 않도록 건강한 고독력을 발휘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했죠.
살아가죠. 지독할 정도로 덤덤하게 묘사되는 3인칭의 시점이 오히려 지하루의 삶을 돋보이게 만들더라고요.
있는 개념이라고 생각을 해요. 하지만 고립이나 우울은 어떤 사건이나 아픔을 통해 나온 결과라고 생각하고요. 고독이 개인의 성장이나 휴식을 위해 보장되어야 하는 시간이라면, 고립과 우울은 사회적으로 치료나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확실히 다른 개념이지 않을까요.
인옥 덤덤하게 비극을 묘사하는 것이 오히려 더 공감을 끌어내는 것 같네요. 현실은 정말 그렇잖아요.
현 네 맞아요. 우리가 갖고 있는 고독한 삶이 비극적으로 과장되지 않을 때, 물 흐르듯 묵묵히 삶을 살아간다면 오히려 다른 사람이 봤을 때 내 삶이 더 빛나지 않을까 해서 ‘지하루’를 데려왔어요.
아니냐의 차이인 것 같아요. 지금 우리가 고독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 누군가와 더불어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있잖아요. 함께 살아가는 건 필수적인 거니까요.
기주 저는 농구만화 〈슬램덩크〉를 좋아해요. ‘서태웅’이라는 캐릭터는 늘 자신을 고립시키는 인물인데요. 청춘만화다 보니 다들 극적으로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 ‘서태웅’은 묵묵하게 혼자 그 세계관의 정상에 서죠. 제가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진짜 크거든요. 항상 강박을 느끼는 편인데 반대 캐릭터를 보고 많은 것을 느꼈던 것 같아요.
인옥 혹시 영화나 소설, 만화 속 캐릭터 중에 기억에 남는 ‘고독한 캐릭터’가 있나요?
좋아해요. 겨울만 되면 항상 읽는 책인데, 주인공 ‘지하루’의 삶은 늘 슬프고 비극적이며 어두워요. 그런데 한탄을 하거나 분노하지 않고 묵묵히 삶을
승옥 제가 생각하는 정의를 표현했을 때 아무도 호응해주지 않으면 고독하다고 이야기 했었는데요. 그런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낸 인물들이 떠올랐어요. 소설 「82년생 김지영」 속 ‘김지영’과 실제 인물인 ‘전태일’ 열사요. ‘김지영’ 캐릭터는 그저 ‘굉장히 고독했겠구나’하고 여자와 엄마로서 공감을 많이 했거든요. 노동 운동가로서 큰 획을 긋고 외롭게 떠난 ‘전태일’이라는 인물은 울음을 일으켰고요. 그 고독감은 상상할 수 없기에 더 생각이 나요.
인옥 그렇다면 나의 고독력에 불을 지피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 살짝 공개를 해주실 수 있나요?
현 제 공간은 상상마당 건물에 숨어있어요. 어린이회관이라는 옛 이름처럼 어린이들이 숨바꼭질하듯 숨겨진 비밀의 공간이 많아요. 제가 항상 혼자 가는 공간이 있는데 논문작업 할 때 자주 갔어요. 테이블 하나, 의자 하나가 있고요. 노트북을 펴고 앉으면 강과 산이 보이고 하늘도 보이고 나 혼자만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죠. 신기하게
최승옥님의 고독 스팟
주말에도 그 공간에는 사람이 없어요. 정말 나만을 위한 공간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요. 지치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혼자 앉아있으면 그 공간으로부터 위로 받는 기분이 들어요.
승옥 내 안에 무언가 팽팽하게 긴장감이 터질 것 같을 때 단순 노동이 도움이 돼요. 그럴 때 ‘웰빙 놀이터’라고 부르는 농장(텃밭)으로 향해요. 작물도 심고, 꽃도 인옥 고독력을 땔감 삼아 불을 지피시더니, 그걸로 심어요. 테이블에서 책도 읽고 차도 마시죠. 흙에서 부족하신가 봐요.(웃음) 고독을 두려워하는 정직하게 자라 꽃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식물을 이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려요. 보면서 많이 위로받아요. 소리 나는 대화는 아니지만 마음으로 대화를 많이 나눠요.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마음의 평화가 와요. 이 밖에 친정엄마 아파트 1층 화단에 만들어 드린 ‘엄마의 꽃밭’, 강아지 시월이와 함께하는 아침 산책코스 석사천, 잠시 몸을 뉘일 수 있는 햇살 가득한 거실 마루,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는 커뮤니티 공간인 꽃차 카페도 있어요.
기주 저는 불멍을 좋아해요. 그래서 주로 머무르는 장소 곳곳에서 불을 볼 수 있게 늘 세팅해 놓고 살고
있어요. 집, 작업실, 서면에 있는 아버지의 작은 농막 옆 등. 특히 야외에서 자유롭게 불을 지필 수 있는 서면 텃밭을 좋아해요. 밤에 벌레 소리밖에 안 들릴 정도로 외진 곳에 있거든요. 언제 한번은 제 발에 불이 붙은 적도 있어요. 병원에 치료를 다니면서도 다시 혼자 불멍하러 가고 …
기주 정말 온전하게 혼자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없어요. 보통 혼자 있으면 지루해서 스마트폰을 보잖아요. SNS를 통해 누군가의 소식을 확인하고 그러면서 타인과 연결되어 있고요. 의도적으로라도 혼자 고독한 시간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물리적인 것에서 나아가 정서적으로도 혼자가 될 수 있는 용기죠.
인옥 개인의 고독력을 위해 도시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현 요즘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가면 그곳에 있는 책방에서 책을 사는 게 재밌어요. 친구와 이별을 하고 동해 여행을 갔다가 책을 하나 구매했는데, 이 책에 나오는 구절을 소개할게요. ‘단어 하나를 곱씹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위로 받을 수 있고, 결코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마음 속 깊숙한 곳을 잠시나마 들여다볼 수 있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또 다시 나아갈 수 있다 … ’ 이 문장처럼 우리의 일상에서 한 번쯤 고독이라는 단어를 깊이 신중하게 꼭 곱씹어봤으면 좋겠어요.
승옥 도시의 역할 역시 굉장히 중요하다고 봐요. 산책할 수 있는 시간이 보장된 도시,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이 당연하듯 주어지는 도시. 혼자 보내는 시간은 개인을 성장시키고 결국 도시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정신적,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어떤 고독의 공간을 찾게 되는 것 같기도 해요. 특히 젊은이들에겐 경제적으로 고독력을 쌓을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으면 좋겠어요.
고독력 마스터들의 즐거운 수다가 끝나갈 무렵, 최승옥 활동가는 정호승의 시 한 편을 읊어주었다. 경청하는 우리도 그리고 제법 차가워진 계절도 더 외로워질 준비를 한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중략)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글 성기현 (한림대학교 철학 및 글로컬융합인문학 전공 교수)
어린 시절에는 어머니가 왜 연속극만 보면 우시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자기 일도 아니고, 아는 사람의 일도 아니고, 따져보면 실제로 벌어진 일도 아닌데, 도대체 왜 우시는 걸까?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어머니가 딱히 유별난 것도 아니긴 하다. 연인의 손을 잡고 웃으며 극장에 들어서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라. 이내 표정이 굳어져 팝콘을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선 어느새 그렁그렁 눈물을 달고 그곳을 떠나지 않는가. 즐겁고 행복하던 애초의 감정은 어디로 간 걸까? 사람들은 왜 그걸 스크린의 비친 타인의 감정과 맞바꾸는 걸까?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타인의 슬픔을 자기 안에 품으려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이 비극을 보는 이유를 카타르시스(katharsis)에서 찾았다. 식사를 앞둔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일상적인 의미에서 카타르시스는 ‘배설’이라는 뜻이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배설에는 쾌락이 있다. 그리고 그 쾌락은 배설의 욕구를 더 크게, 더 오래 참을수록 더 커진다. 예술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기승전결로 켜켜이 쌓아 올린 감정들이 일거에 해소될 때 우리가 느끼는 쾌락이다. “다행이다.” “잘 됐어.” “그래, 괜찮아.” 그때 우리가 흘리는 눈물은 과연 비극의 주인공을 위한 걸까? 솔직히 말하자면, 그것은 그를 바라보는 나를 위한 것이고, 한동안 비밀스레 쌓아 올린 내 버거운 감정들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거울에다 말을 걸기가 수줍어, 우리는 극장을 찾아가 주인공의 이름을 잠시 빌리는 셈이다. 그의 이름을 주어 삼아, 터지기 직전의 내 감정을 비워내기 위해서 말이다. 생각해보면, 어머니도 그렇게 살아오셨던 것 같다. 비우고 채우고 다시 비우면서. 비워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채워져 가는 감정들을 견뎌내면서. 앞서 제기된 물음으로 잠시 돌아가 보자. 우리는 왜 연속극이나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 슬프면 보지 않으면 될 것을. 그러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고통과 쾌락 사이의 거리, 그것이야말로 내 영혼의 깊이다. 더 깊게 빠져들고 더 높게 솟구치는 감정의 운동은 우리의 영혼을 건강하게 만든다. 태어나 살아가면서, 고통이 찾아들지 않기를 기도하는 건 헛된 일이 아닐까? 어차피 찾아들 고통이기에, 우리는 예술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단련하는 것이다.
우리가 비극을 보는 이유를 아리스토텔레스가 가르쳐준다면, 비극을 볼 때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독일의 철학자 벤야민이 설명해준다. 미메시스(mimesis). 그리스어로 미메시스는 모방한다는 뜻이고, 그래서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을 ‘인간 행위의 모방’으로 정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벤야민이 말하는 미메시스가 단순히 겉모습을 흉내 내는 것은 아니다. 그에 따르면, 그것은 ‘대상에 동화(同化)되는 일’이다. 카멜레온이
주위의 색에 동화되듯, 전쟁을 앞둔 원시 부족은 주술을 통해 사나운 짐승에 동화되고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만화 주인공에 동화된다. 냉소적인 태도로 핀잔주기를 즐기는 우리도 한때는 아이였다. 그때는 우리도 친구들의 아픔과 눈물에 쉽게 동화되지 않았던가? 미메시스, 그것은 나의 생각과 행동과 감정에서 벗어나 타인의 생각과 행동과 감정에 다가가는 일이다. 베를린 시내, 브란덴부르크 문과 포츠담 광장 사이에는 홀로코스트 추모공원이 있다. 추모공원이라고는 하지만, 꽃이나 나무도 없고 희생자의 모습을 조각한 인물상 하나 없다. 축구장 3개 넓이의 광활한 공간에 3천 개에 가까운 직사각형 석관들을 흩어져 있을 뿐이다. 무릎 높이의 석관들을 지나 천천히 걸어 들어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그 석관들이 자신의 키보다 훨씬 높아져 있음을 알게 된다. 사방을 가득 메운 석관들. 하늘이 네모나게 조각나 보이는 그 익명의 공간에서 우리는 길을 잃는다. 어디선가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 오더라도, 우리는 찾아가지도 도와주지도 못할 것이다. 찾아가거나 도와주기는커녕, 어쩌면 우리도 머지않아 그렇게 비명을 지르게 될 것이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 그것은 희망 없는 이들에 대한 미메시스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는 유대인들에게 무슨 짓을 했던 것일까’라는 물음에 대한 독일인들의 답변이기도 하다.
다시 한번, 앞서 제기된 물음으로 돌아가 보자. 눈물을 흘리며 주인공의 마음에 가닿을 때, 우리에게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그것은 때로는 잊었던 감정의 부활이고, 때로는 다가올 감정의 예고다. 내가 경험하는 갖가지 감정들의 스펙트럼. 그것이야말로 내 영혼의 넓이다. 일일이 이름 붙이지 못할 온갖 섬세한 감정들을 가로지르면서, 우리의 영혼은 이러저러한 빛깔들로 채색된다. 열 손가락도 다 채우지 못하는 빈약한 감정들로 한평생을 살아간다면, 그건 너무나 가여운 일이 아닐까? 미지의 감정들을 향해 자신을 개방할 용기가 있다면, 거기서 오는 해방감을 ‘나’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한 번뿐인 인생이기에, 우리는 예술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다채롭게 채색하는 것이다. 예술이 가져다주는 슬픔과 마주하기. 그것은 결코 헛되거나 무의미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한번 밖에 주어지지 않은 내 삶을 위한 연습으로서, 내 영혼에 깊이와 넓이를 더하는 일이다.
글 오길영 (충남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내가 청탁받은 주제는 “건강한 슬픔과 고독을 가진 도시”이다. 여기에서 세 가지 키워드를 읽는다. 도 시, 슬픔, 고독. 먼저 도시에 대해. 이 글의 발행 주체인 춘천문화재단의 도시, 춘천은 인구 28만 명 정 도의 도시다. 내가 알고 있는 춘천의 예전 인구는 20만 명인데, 그 사이 인구가 늘었다. 대도시로 인구 가 집중되는, 특히 서울을 핵으로 한 수도권이 블랙홀처럼 인구와 재물을 끌어들이는 서울/수도권 공 화국에서는 이례적이다. 그 이유가 궁금해진다. 나는 오랫동안 서울에서 살았지만 서울과 재직 중인 대학이 있는 대전을 오가며 생활한다. 천만 명에 육박하는 초거대도시 서울과 140만 명 정도의 지역 거점 도시인 대전은 많은 차이가 있다. 도시전문가가 아닌 나로서는 두 도시를 심층적으로 비교할 수 없다. 하지만 도시 규모의 차이, 인구의 차이는 다른 무엇보다 일상생활 속도와 리듬에 차이를 가져온다는 걸 느끼게 된다. 한마디로 말해 도시 규모가 커질수록 생활의 속도는 빨라진다. 그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사람들의 마음도 바빠진다. 생활을 돌아볼 여유를 잃는다. 얼마 전에 『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 이란 책을 읽었다. 오랫동안 일본에 살면서 일본 사회와 문화를 관찰해온 미국 출신 영화평론가, 저널 리스트인 저자의 사려 깊은 관찰과 성찰이 돋보인다.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데 특히 일본인들이 좋아 하는 파친코를 다룬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파친코는 당신의 주의력을 사로잡고 그 결과 당신의 마음 을 사로잡는다.
두 눈과 머리는 시끄럽고 번쩍거리는 기계의 겉모습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고, 생각하는 능력은 다행 히 잠잠해져 있다. (중략) 소음에 잠식되고 번쩍임에 사로잡힌 당신은 혼자다. 그렇게 특이점에 도달 한 사람들의 무리 속에서, 갈등에 시달리던 당신의 익숙한 자아는 휴식을 취해도 된다. 그런 면에서 파친코는 음주뿐 아니라 마약, 섹스, 과속 운전이나 종교와도 닮았다. 제한적이고 동원된 삶을 살고 있음에도 안전과 확실성에 대한 보장이 없던 자아가 이제 소외라고 부를 수 있는 상태에 도달하면서 자아로부터의 구원이 일어난다. 그렇다면 파친코가 습관성 중독이 되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파 친코는 삶으로부터의 유예다. (중략) 파친코는 고요함이 마땅히 찾아온 뒤에도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는다. 좌선은 진정한 치료약이고, 파친코는 단지 임시처방일 뿐이다.” (『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 글항아리, 2022, 70면) 이 대목에 눈길이 간 이유는 읽으면서 대도시의 삶, 고독과 슬픔을 차분하게 관조할 여유를 잃어버린 삶을 느꼈기 때문이다. 대도시의 삶은 “주의력을 사로잡고” 그 결과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시끄 럽고 번쩍거리는” 이미지로 유혹한다. 파친코는 그런 삶에서 도피하려는 방식이다. 생활의 번잡함을 잊기 위해, 아무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파친코를 하고, 다양한 오락물을 즐기고, 자신의 자 아를 잊는다. 역설적으로 말해 “자아로부터의 구원이 일어난다.” 결론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은 잠잠 해져 있다.” 여기서 “구원”은 참된 구원이 아니라 “삶으로부터의 유예다.”
자신이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회피하기 위한, 그렇게 해서 삶으로부터 도망 치기 위한 구원이다. 글의 주제와 다소 관련이 없어 보이는 파친코 얘기를 한 이유는 서울 같은 대도시의 삶이 제공하는 수많은 “소음”과 “번쩍임”이 제공하는 쾌락이 사람들을 유혹하는 만 큼 자신의 생활과 삶을 돌아볼 차분한 관조의 시간을 빼앗아간다는 점에서다. 도시사회학자가 아닌 나로서는 사람이 삶의 근원적인 문제들, 예컨대 고독과 슬픔을 사유하는 데 적당한 도시 의 규모와 형태가 무엇인지 설득력 있는 분석과 대안을 내놓을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잠시 살 았던 소도시의 경험을 통해 나름의 견해를 내놓을 수는 있다. 재직 중인 대학의 배려로 두 차례 미국 서부 오리건(Oregon)주에 위치한 대학 도시 유진(Eugene)에서 생활했다. 인구 15만 정도 도시다. 춘천 인구의 절반 정도이고 미국에서는 매우 작은 도시다. 미국에서 가장 자연 친화적 인 도시로 뽑히기도 하고 산과 바다가 가까운, 한국과 비슷한 지형이 주는 편안함도 있었지만 나는 이 정도 규모의 도시가 주는 장점과 매력을 체감했다. 유진에서 만난 현지 대학교수 중에 는 미국 대도시의 삶을 그리워하면서 유진의 생활이 심심하고 따분하다고 불평을 토로한 이도 있었다. 나는 생각이 달랐다. 물론 거기에는 잠시 방문했던 국외자의 독특한 처지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유진 생활을 통해 한국에서도 대학을 중심으로 형성된 소도시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되었다. 이런 소도시가 주는 생활의 리듬에서만 비로소 고독과 슬픔을 사유할 여유를 갖게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춘천 정도 규모의 도시는 어떤가? 이런 주장을 한다고 해서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식의 도시 탈출론을 주장하는 건 아니다. 좋 든 싫든 현대인의 생활은 도시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문제는 그 도시가 어떤 생활 감각을 제공 하는가에 있다. 사람들은 외로움(loneliness)을 싫어한다.
대도시에서 사람들과 번잡하게 어울리면 그런 외로움을 잊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위에서 인용한 파친코 등 자아를 잠시 잊게 해줄 오락거리를 찾는다. 하지만 외로움은 고독(solitude)과 다르다. 외로움이 외부로부터 강요된 것이라면 고독은 자발 적으로 주체가 추구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철학자 중 한 명인 시몬 베유(Simone Weil)는 어디선가 “집단은 사유하지 못한다. 오직 개인만이 사유한다”고 적었는데, 이때 사유하는 개인 이 바로 스스로 고독을 선택한 개인이다. 대도시의 삶은 근원적으로 자발적 고독을 억압한다. 그런데 그런 고독에서만 사유가 꽃핀다. 사람들은 수도권에서 가까운 휴양도시로서 춘천을 좋 아한다. 나도 그렇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춘천의 매력은 그것만이 아니다. 나는 전부터 수도 권에 있는 모든 대학을 전국 곳곳으로 옮겨서 대학을 중심으로 한, 앞서 언급한 유진 같은 대학 도시를 만드는 게 지역균형발전의 요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럴 때 좀 더 여유 있고 적절한 생활 리듬을 지닌 삶이 가능해진다고 믿는다. 춘천은 그런 여건을 갖춘 도시다. 좋은 대학들이 위치 해 있고 적당한 인구, 아름다운 자연요건을 갖고 있다. 관건은 어느 소규모 지역 도시나 그렇듯 이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얻을 기회를 충분히 제공할 수 있느냐이다. 적당한 의료 기관과 편의 시설도 갖춰야 한다. 하지만 그런 사회 구조적 노력과는 별개로 몰아치는 생활의 빠른 리듬 속 에서 자신이 왜 그렇게 바쁘게 생활해야 하는지조차 돌아보지 못한 채 생활하는 대도시의 삶, 그래서 고독과 슬픔 같은,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삶의 정서들을 차분히 성찰하지도 못하게 만 드는 삶과는 다른 삶의 가능성을 춘천 같은 도시가 제공해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사람이 도시를 세우지만 그렇게 만든 도시가 지닌 성격과 색채에 따라 거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새롭게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런 매력을 지닌 도시의 가능성을 춘천이 더 많이 보여주길 춘천을 아끼 는 사람으로서 바란다.
글 박효경 (사회적협동조합 빠띠 활동가)
다정한 생존이 문화도시를 만드는 방법
아침마다 들르는 빵집에서는 따로 포장을 해 주지 않는다. 처음에 몇 번 그냥 들고 가겠다는 내 말을 기억해주는 것이다. 자주 가는 과일가게는 장바구니에 담아 갈 때마다 훌륭하다는 칭찬과 함께 과일을 몇 개 더 넣어준다. 칭찬을 바라고 하는 행동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다. 나에게 이것은 단순히 단골손님에게 하는 서비스가 아니다. 이런 행동과 말은 나를 지지하고 지속하게 한다. 함께 환경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정한 생존’에 대해 알게 되고 프로젝트 심사를 요청 받았을 때 들었던 생각도 비슷했다. ‘다정한 생존’은 공간을 운영하고 있는 주인장과 구성원들이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생존에 관한 문제를 고민하고 행동하는 프로젝트이다. 커뮤니티 활동은 함께하는 사람간의 지지와 연대가 바탕이 되고 서로의 지속가능성을 돌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에서 ‘다정한 생존’은 서로를 지지하고 지속하게 하는 힘을 키우는 일이겠구나 싶었다.
우리는 많은 커뮤니티의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커뮤니티는 쉬운 활동이 아니다. 어떤 이해관계나 특정한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닌 마을과 지역, 사회문제와 이슈를 기반으로 하는 커뮤니티는 더욱 그렇다. 지역과 마을,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해 해결방안을 고민하고 행동하기 위해 어떻게 협력하고 방향을 결정할지 모든 길을 구성원들이 주도적으로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 잘 모르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다른 생각들에서 합의점을 찾아가는 일은 타자에 대한 상상력을 키운다. 협력이 성공적이든 그렇지 않든 어쩌면 커뮤니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난한 과정을 통해*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는’ 경험이다.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경험은 일상을 사는 평범한 우리를 토론의 장에 모여 앉게 한다. 무기력하고 외면하고 싶은 마음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를 우리가 대처할 수 있다고 믿음을 갖게 한다. 결과가 좋지 않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시도해 볼 권리가 있다는 믿음을 말이다. ‘다정한 생존’ 프로젝트로 선정된 활동의 결과물은 무수히 작은 성공들로 채워 있을 것이다. 마음이 맞는 구성원들이 모였다는 성공, 함께할 방향을 이야기 나누고 계획서를 작성한 성공, 첫 모임을 안전하고 즐겁게 진행한 성공 … 서툰 걸음을 서로에게 기대어 한발한발 내딛으며 만든 결과는 결과 그 이상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당부가 있다면, 작은 성공을 돌탑처럼 쌓아가는 그 과정에 충분히 함께 축하하고 기뻐했으면 좋겠다. 사소한 것이라도 커뮤니티에서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하며 서로의 작은 성장과 변화를 얘기하고 알아차려주면 좋겠다. 결과를 위해 동료를, 과정을 희생시키지 않고 프로젝트의 이름처럼 서로의 다정함을 통해 커뮤니티의 건강성을 잘 돌보기를 바란다.
*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다』(2022, 은행나무, 브래디마카코)
지역과 마을을 변화시키는 것은 결국 나를 변화시키는 데서부터 시작되고, 커뮤니티에서 서로의 작은 성공을 축하하며 안전하게 이야기 나누고 시도한 경험은 그 변화를 단단하게 하기 때문이다. 작년에 나는 ‘커뮤니티 실험실’이라는 프로젝트로 시민들과 다양한 이슈로 커뮤니티 활동을 했었는데, 그때 만났던 한 참가자의 말이 떠오른다. “이렇게 우리가 모여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한번 경험해보니 이전의 삶과는 달라진 것 같아요.” 그렇다. 서로를 지지하며 안전함 속에서 협력한 경험으로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된 사람들은 더 나은 변화를 계속 모색해 갈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어지고 결국 마을을, 지역을 바꿀 것이다. 거창하고 어려운 문제가 아니어도 된다. 일상에서 유쾌하고 즐겁게 시작하자. 내가 관심 있는, 시도해보고 대안을 찾아보고 싶은, 다양한 문제 혹은 일상의 소소한 주제라도 혼자가 아니라 함께 이야기를 하자. 아는 사람들, 잘 모르는 사람들, 모여보자. 다양한 사람들의 경험과 생각, 의견을 통해 뭐가 됐든 해결책을 찾아보고 시도해보자. 작은 성공을 쌓아보자. 특별한 누군가가 나서서 해결해 줄 거라고 이런 이야기들을 우리 대화의 주제에서 배제해버린 사이 혐오와 갈등은 점점 우리를 병들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프로젝트 소개
상영회: 11월 중
축제개최: 10월 중
추모제 진행: 9월~11월
도시가 살롱 행동 프로젝트 ‘다정한 생존’
‘다정한 생존’은 지구적 차원의 생존문제를 고민하는 행동 프로젝트를 지원합니다. ‘도시가 살롱’의 심화사업으로, 공간 주인장 중심으로 형성된 공동체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서로에게 곁을 내어주는 다정한 관계를 통해 ‘더 나은 생존’을 고민하고 행동합니다.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지구적 차원의 다큐멘터리 제작기 진행공간 길몽(인물전문스튜디오) / 춘천시 중앙로77번길 28 3층 주요내용 동물권, 환경, 기후와 관련된 미디어의 메시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작지만 지속가능한 실천을 일상에서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제작 및 상영
다정한 정원 진행공간 녹색시간(브런치카페&그린문화공간) / 춘천시 낙원길33번길 4-3 주요내용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해 식물집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축제
길고양이 배웅길 120 진행공간 고양이책방파피루스(책방) / 춘천시 안마산로 21 주요내용 길고양이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돌아보고, 길고양이의 죽음을 함께 애도하는 추모제 진행
김효주
강원 소리는
길이길이 갈 거예요
춘천시립국악단 특별기획공연 ‹변화(變,花)—변하여 꽃이 되다›
먼저 부른 이를 알 수가 없고, 따로 배우지 않아도 익히는 노래, 민요. 가사 하나하나를 짚으며 부르다 보면 그때의 생활상과 삶이 눈앞에서 그려진다. 조상들의 삶에는 노래가 빠지지 않았다. 노동하며 부르는 노래는 힘 나게 했고, 장례나 결혼 등 중요한 의례가 있을 때는 노래를 부르며 슬픔과 기쁨을 함께했다. 아낙네들이 개천에서 빨래하며
춘천시립국악단 춘천시립국악단은 춘천과 강원의 토속민요를 선보이고, 한국음악의 전통을 계승하는 것을 목표로 2022년 1월 창단되었다. 이유라 예술감독은 2000년부터 춘천과 강원의 소리를 채록 및 채보하여 강원의 소리를 보존하였다. 민요단원으로 류지선, 최은영, 박희린, 이현진이 있으며, 기획단원으로는 최병훈이 있다. 지난 3월 27일 창단 및 제1회 정기공연 ‹시작(See,作)›을, 9월 16일 특별기획공연 ‹변화(變,花)—변하여 꽃이 되다›를 선보였다.
민요는 이제 소수만이 즐겨듣고 부른다. 이 시대의 노래 장르는 다양해졌다. 우리의 민요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국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른들만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예상이 빗나갔다. 내가 앉은 좌석 옆자리에는 여덟 살 어린이가 앉았다. 앉은키가 낮은 터라 키높이 방석에 부르던 노래는 삶의 고단함을 옅게 만들고 웃게 했다. 언제나 올라앉아 관람하였는데 그 모습이 야무졌다. 어린이는 노래는 삶의 곁에 서 있었다.
추임새를 아끼지 않았고, 손뼉을 힘껏 쳤다. 덕분에 옆에 앉은 시간이 흐르며 삶의 형태가 바뀌었다. 마을 단위의 삶은 개인 번째 기획공연 ‹변화(變,花)—변하여 꽃이 되다›였다. 나는 더욱 즐겁게 공연을 관람했다. 춘천시립국악단의 첫 위주의 삶이 되었고, 일의 형태가 달라졌다. 민중의 노래였던
반갑소– 반갑구려– 반갑지 않소- 춘천시립국악단의 대표곡인 ‘춘천별곡’으로 공연의 문을 열었다. 춘천 민요동호회인 여음천하(餘音天下)와
국악단원들이 ‘반갑소– 반갑구려– 반갑지 않소-’ 부르며 관객들에게 환영의 인사를 건네었다. 여음천하와 이유라 예술감독의 ‘정선 아라리’, ‘한오백년’, ‘강원도 아리랑’이 이어졌다. 관객들은 얼씨구! 좋다! 추임새를 외쳤다.
횡성 회다지 소리 공연 스크린 속 나무가 스산하게 흔들리고, 바람이 분다. 흰색 상여 옷을 입고 맨발로 나와 박희린 단원이 횡성 회다지 소리를 부른다. 회다지 소리는 장례식에서 하관을 마치고 관 변화 둘. 주변에 흙을 넣고 다질 때 부르는 소리이다. 장례요인 동시에 민요 단원 한 명 한 명이 선보이는 단독공연 노동요인 회다지 소리는 메기고 받는 형식으로 장구와 소리를 ‘뱃노래’, ‘노 젓는 소리’, ‘춘천메들리’, ‘양류가’ 등의 노래를 하는 박범태가 함께 불렀다. 인생 마지막에 부르는 소리인 민요단원 각각이 단독공연을 선보였다. 단원 개개인의 회다지 소리 공연에는 엄숙함과 슬픔이 표현되었다.
변화 하나. 서로 다른 음악의 조화 이번 공연은 기존 국악단의 공연과 다르게 여러 변화를 주었다. 한웅원 음악감독은 우리의 소리가 노래방에서 불렸으면 하는 소망을 담아 공연을 준비했다고 했다. 우리의 생활에 가깝고, 친근하게 느껴지기를 바랐던 마음이 공연으로 발현되었다. 반주단으로 밴드 세션이 공연 내내 라이브로 연주하였다. 우리의 소리에 전자음악과 록, 레게, 힙합 리듬 등을 요즘 시대의 음악을 입혔다. 서로 다른 음악이 조화롭게 흥을 돋웠다.
특색이 잘 보였다. 무엇보다 단원들의 의상이 파격적이었는데 검은 슬립 원피스와 하와이풍의 초록색 원피스, 분홍색 정장 등 멋진 의상을 입었다. 한복을 주로 입는 국악단에서 자주 보지 못한 의상이 공연의 몰입을 더 했다.
공연은 관객과의 호흡을 놓치지 않았다. 관객석에 마이크를 건네며 주거니 받거니 하며 호응을 끌어내고 함께 불렀다. 우리나라 민요는 사람들이 어우러져 부르던 노래여서 그런지 관객들도 함께 부르기에 좋았다. 공연을 보는 내내 눈과 귀가 흥겨웠다. 소리를 하는 단원들의 추임새는 얼쑤! 얼씨구! 가 나오다가 Come on! Hey! 로 시시각각 바뀌었다. 다른 추임새에도 흥이 나고 신명 났다. 기본이 우리의 소리이기 때문이었다. 소리는 변하지 않되, 소리의 주변부는 변화하는 공연을 보면서 남녀노소 모두가 우리의 소리를 즐길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춘천별곡’은 공연의 문을 여는 곡인데요, 어떤 곡인가요? 춘천시립예술단 이유라 예술감독 점순이, 호반의 도시, 봉의산, 청춘 열차 등 춘천을 상징하는 단어를 가사에 넣어서 신명 나게 만든 곡이에요. ‘반갑소- 반갑구려- 반갑지 않소-’라는 가사로 노래가 시작되는데요, 춘천을 방문하는 이들을 환영하고 맞이해요. 저희 공연에 오신 분들에게 환영하는 마음으로 가장 먼저 부르는 곡입니다. 춘천시립국악단의 대표곡이자 주제곡이에요.
감독님께서는 2000년부터 강원도 전역을 돌아다니며 강원 소리를 채집하셨는데요, 그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랬죠. 제가 서울에서 활동하다가 춘천으로 왔어요. 묻혀있는 강원 소리가 있다고 들었는데 CD에 녹음된 소리들이 수백 개 있었어요. 거기서부터 찾기 시작했죠. 좋은 소리를 발견하면 전화를 했어요. 노래가 너무 좋아서 녹음도 하고, 저희도 배우려고 하니 찾아가고 싶다고요. 그런데 노래라는 게 흥이 나야지 되잖아요. 갑자기 마이크를 주면 하던 것도 안 나와요. 분위기를 잡아야 해요. 막걸리를 사가서 어르신들께 한 잔 따라드리면서 ‘저희 먼저 할까요?’ 하며 노래를 했어요. 어르신들은 아는 노래니까 얼쑤, 얼씨구 하며 신명이 나셔요. 그제야 어르신들이 노래를 불러주세요. 그때부터 녹음하죠. 그걸 채록하고, 채집한 후 돌아와서 공부해요.
그냥 따라부를 수 있는 게 아니었군요. 예전에는 모두가 알고, 부르던 노래였지만 지금은 공부하면서 익혀야 해요. 녹음한 소리를 백 번이면 백 번 공부하고 반복해서 저의 소리로 만들어요. 이후에 악보로 만들어서 제자들에게 가르치고요. 강원도 지역을 돌아다니며 녹음하고, 소리를 익히고, 악보를 만들고, 가르치는 과정이 오래 걸렸어요. 채집한 소리를 무대화시켜서 공연한지도 20년 됐지요. 지금은 강원 소리가 제자리를 찾았다고 말할 수 있어요. 이걸 제가 안 했으면 누가 했었을까 싶어요. 사라져 가는 강원 소리를 끌어내 기록했기에 평생에 정말 중요한 일 하나는 해놨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제자들과 많은 동호인이 배우고 익혀서 살아 움직이게 됐으니까요. 이제는 강원 소리가 길이길이 갈 거예요.
춘천시립국악단은 어떤 팀인지 소개해주세요. 우리는 외부에서 볼 때도 정말 독특한 팀이라고 하더라고요. 춘천시립국악단은 짧지만 굵고, 뭐라도 해낼 수 있는 팀이라고 자부해요. 저는 자신 있어요. 저희 단원들이 어려서부터 소리를 하고 국악 공부를 오래 했어요. 또 소리만 하는 게 아니라 악기도 다루고, 춤도 추니까 다재다능한 팀이라고 생각해요. 특별히 잘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열심히, 재미있게 하자고 단원들에게 자주 이야기해요.
춘천시립국악단 공연은 어떻게 즐기는 것이 좋을까요? 아무래도 민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오실 거로 생각해요. 뱃노래나 태평가와 같이 아는 노래가 나오면 함께 불러주면 좋아요. 얼쑤, 얼씨구 추임새를 넣으면 더 좋겠죠. 일어나서 춤도 추셔도 됩니다. 이렇게 해야 살아있는 공연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우리의 조상들은 노래가 나오면 절로 어깨를 들썩였어요. 신명이 나면 일어나서 춤을 추고 노는 게 우리의 전통이에요. 그게 우리의 멋이고요. 신나게 즐기다가 가셨으면 좋겠어요.
오랜 시간을 건너온 우리 민요를 생각한다. 노래는 노래로 세월을 건넜다. 목소리와 목소리로 이어진 노래는 우리 조상들의 삶을 위로하고, 웃음 짓게 하고, 배웅했다. 지금도 노래는 노래로 세월을 건넌다. 공연장을 찾고 우리의 소리를 찾아 들을 때 소리는 길이길이 간다.
글
권용식
슬픔에서 시작한 여행
스물하나가 되었을 때, 삼촌이 돌아가셨다. 원래는 작은아버지가 맞겠지만 삼촌이라 부르는 게 편했던 것 같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안동을 떠났다. 고향을 떠나고 싶었고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도전이라고 생각했지만 도피였던 것 같다.
삼촌과 함께 강에서 낚시했고 영덕 바다에 가서 텐트를 치고 캠핑했다. 주말이면 삼촌 집에 자주 놀러 갔고 삼촌과 장기를 두고 삼촌이 수집한 우표들을 구경했다. 유년 시절을 떠올리면 삼촌이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삼촌은 술을 많이 마신 탓에 몸이 아팠고, 그렇게 돌아가셨다.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해보면 시골 반찬을 내어주던 할머니는 어려서 슬퍼할 마음도 없이 돌아가셨고, 그 나물 반찬들을 먹을 줄 아냐고 말씀하시던 할아버지도 돌아가셨다. 월전에 사시던 마음씨 푸근한 작은 할머니도 돌아가셨다. 내 인도 여행 이야기를 눈이 초롱초롱하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
슬픔은 어릴 적부터 존재했다. 어떤 해에는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저항했고 그 일이 부끄러웠으며 철저히 가족에게 숨겼다. 혼자 있기를 좋아했고,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던 반변천에 앉아 강을 바라봤다. 갈대밭이 우거지고 인적이 드물어 그 속에 혼자 있기 좋았다. 흘러가는 강물을 보며 자주 시간을 보냈다.
내 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 그 위의 아버지들은 대대로 고향에 살았다. 나는 그곳을 떠나 춘천에 왔다. 온 가족이 이사 때문에 춘천에 왔지만 이내 안동으로 돌아갔다. 홀로 자취방에 누워 보낸 첫 밤이 생생하다. 대학을 추가 합격해서 학부 O.T 참석이 어려웠는데 이미 O.T에서 친해진 동기들은 끼리끼리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친구 하나 없이 온 춘천에서 생일을 혼자 보냈고, 도서관에 앉아 시간을 보냈고, 혼자 학식을 먹었다. 결국 동아리를 여럿 가입했고 친구, 선배들이 생겼다. 사람들을 만나 술을 마시고 노는 게 즐거웠지만 내향적인 성격 탓에 혼자 있는 걸 좋아하면서도 외로워했다. 가족과 고향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커졌고 그만큼 안동과 춘천을 오가는 시간이 많아졌다. 안동을 가기 위해 원주까지 버스를 탔고 원주역에서 청량리 발 열차를 타고 천천히, 천천히 안동으로 미끄러졌다. 안동에서의 시간은 짧았고, 늘 아쉽고 애틋했다.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면 나이 든 부모님이 생각난다. 춘천에서 좋은 찻집을 발견하면 안동에 계신 부모님을 데려가고 싶어도 대개 생각에만 머물고, 가족여행을 하더라도 결혼한 여동생과 청주에서 대학을 다니는 남동생이 매번 함께 할 수 없어 아쉽다.
그럼에도 슬픔에만 집중하면 슬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는다는 상상보다,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없다고 생각하기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더 보내야겠다고 다짐한다.
많은 결혼식에 가서 춤을 추면 많은 장례식에 가서 울게 된다고는 하지만, 그만큼 사람들을 만나고 사랑한 것이니 불행한 게 아닐 테다. 상실이 큰 만큼 사랑한 것이니 나는 그런 슬픔과 고독이라면 기꺼이 맞이하려고 한다. 류시화가 말했듯 슬픔의 유일한 치료제는 웃음이라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이 웃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일 테니까.
슬픔이 친근하게 여겨졌던 시절도 있었다. 그때는 밤새 라디오를 듣고 끝없이 걸었다. 시간이 지나 슬픔이 짐처럼 느껴졌다. 삶의 많은 시간을 삼켜 무언가를 하지 못하게 막았다. 슬픔이 나를 집어삼키지 못하도록 경계했다. 몸을 움직이고, 일찍 잠들었다. 그렇게 흩어진 슬픔도 있었지만 어떤 슬픔은 깊이 가라앉기도 했다. 이제는 슬픔에 빠지지도, 애써 회피하지 않고 슬픔에 자리를 내어준다. 올해 POT 매거진을 만들면서 여러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어 좋다. 독자들도 이번 호 ‹흩어지는 마음›을 읽으면서 자신의 감정을 살펴보고 안아주었으면 좋겠다. 정승희 슬픔에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걸 알았다. 원하지 않아도 찾아오는 슬픔과 내 발로 찾아나서는 슬픔. 두 번째는 축적된 슬픔의 경험으로 더욱 무르익고 숙성된다는 것 역시 알게 됐다. 애써 상처를 건드리면서 느끼는 건, 지난 슬픔에 안부를 묻는 내 자신을 향한 위로가 아닐까. 때마침 코끝을 스치는 바람조차 고독의 냄새가 짙은 계절이 찾아왔다. 또 다시 고독을 견디는 힘을 발휘할 때가 온 것이다. 누군가는 몸짓으로, 이웃과의 만남으로, 글쓰기로 저마다의 고독력을 발휘한다. 나는 서글프고 아팠던 작년 가을을 되짚어보며, 올 가을엔 굴을 파고 들어가 혼자만의 숙성된 시간을 누리고 싶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허세를 누군가가 봐주고 응원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박인옥
결혼을 일주일 앞두고 슬픔에 대해 생각했다. 며칠 전에는 서울로 청첩장을 주러 가는 길에 ITX 안에서 가을호 mood
원고를 썼는데,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하다 나도 모르게 울었다. 친구들을 만나 청첩장을 주었고, 저녁에는 결혼식 축무를 위해 즐겁게 연습했다. 기쁨과 슬픔은 늘 공존하고, 나는 계속해서 살아가야 한다. 권용식 기획회의를 하며 에디터들과 각자 무엇이 가장 슬픈지 나누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이유로 슬픔을 경험하고 있었다.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슬픔을 묻고 이야기를 수집하다 보니, 서글픈 가을을 보내고 있을 pot 독자들의 손을 꼭 잡고 싶어졌다. 흩어지는 마음의 조각들이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에 잘 뿌리내려 다음을 살아가는 힘이 될 거라 말하며. 한혜진
슬픔을 안고도 무던하게 살아갈 수 있지만, 슬픔을 안고 있는 사람들의 슬픔을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많은 도시에 살고 싶다. 어떨 때는 서럽게 엉엉 울고, 소리도 지르고, 머리도 풀어헤치고, 뜨겁게 끌어안았으면 좋겠다. 성공보다는 실패, 달리기보다는 아주 뜨거운 포옹. 최수현 감정을 뭉뚱그려 표현할 때마다 내 삶이 조금씩 납작해지는 것만 같았다. 계절의 문턱에서 어김없이 찾아오는 무수한 감정들의 얼굴을 들여다본 시간. 뒤죽박죽 내 마음의 모양에 따라 알맞은 이름을 붙여가며 이 계절을 날 채비를 한다. 유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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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문화매거진 POT 제32호 「흩어지는 마음」 2022년 10월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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