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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문화놀이매거진 POT 35호

이북 원문에서 글자만 옮긴 전체 텍스트입니다. 표·그림·사진과 원래 모양은 이북에서 확인하세요.

1쪽

N.35 이마엔 땀방울

ISSN 2508 6316

2023 여름

춘천문화매거진

2쪽

지옥이란 경이를 잃어버린 우리에게 익숙한 모든 것 브렌든 캐널리

3쪽

PLAY 문화로 같이 즐기다

OPEN 문화로 마음을 활짝 열다

TALK 문화로 함께 이야기하다

매거진 ‹pot›에는 ‘(다양한 것을 담는)그릇, 솥’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문화로 함께 즐기고, 소통하며, 이야기할 수 있도록 지역의 다양한 문화 콘텐츠와 이슈, 생동감 넘치는 춘천의 문화예술을 담아내는 그릇이 되고자 합니다.

‹pot›에서 이야기하는 춘천문화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시민의 삶 속에서 엿볼 수 있는 일상의 순간, 그 안에 담긴 보석 같은 이야기를 말합니다. ‹pot›은 춘천 시민과 많은 관계인구가 춘천이라는 지역을 즐겁게 바라보고 깊이 알아갈 수 있도록 다채로운 이야기를 펼쳐 보이겠습니다.

장승근 作 ‹딱밤 때리기›, 2023, oil on canvas, 37.9 × 37.9cm

‘딱밤 때리기’ 놀이는 뒤로 가야지만 앞으로 갈 수 있다는 속성을 담고 있는 점에서 이번 호의 주제와 공명한다. 이마를 ‘탁-’ 하고 가격당하는 순간은 아프지만,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든다. 그것은 마치 사유의 순간이 괴로운 것과 같다. 뒤로 가야지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유의 순간은 언제나 괴로운 순간에 찾아온다.

CONTENTS

LETTER

편집장의 여는 글

POST BOX

아~ 잘 놀면 기분이 좋잖아요!

THEME PIECES

우연과 상상

TOOLS

불안정한 세상에서 유쾌함과 사랑으로 겹겹이

INTERVIEW 1

음악을 넘어선 삶의 놀이터, 모두의 음악공간 하이하바

INTERVIEW 2

회색 지면 위의 오아시스, 시사만화가 유환석

POT-PEDIA

감각이 솟아오르는 터, Site of Chuncheon

WALK

청춘이 일렁이는 거리를 따라

PLAYGROUND

어쩐지 근사한 소도시에서의 삶 #02 5일마다 찾아오는 놀이터

COLUMN

어린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여 주십시오

WIDE

놀이하는 인간이 행복하다

SCENE 1

소양호에 풍덩 빠져볼까?

SCENE 2

우리들은 계속 자란다

MOOD

강물에 내놓은 아이처럼

EDITOR’S NOTE

4쪽

LETTER

우리는 잘 놀고 있나요?

재미를 더할 것이다.

있으리라.

䢬송아지의 눈은/ 맑다 아름답다 슬프다/ 그런데 쇠고기 국물은 맛있다/ 어떡하지?䢭 어느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가 쓴 䢮어린이시䢯 작품이다. 생애 최초로 송아지를 직접 눈으로 보고 느낀 시적 충격을 표현한 것이리라. 䢮눈 맞춤䢯이야말로 깊은 무언의 교감일 수 있다는 점을 위 시는 말하고 있다. 䢬어떡하지?䢭라는 마지막 시행의 물음이야말로 스스로에게 䢮어떻게 살아야 하는가?䢯를 묻는 이른바 빅 퀘스천(big question)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대로 잘 놀 줄 아는 사람이 뜨는 시대가 되었다. 더이상 나이로 세대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방식으로 구분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최근 하나의 문화현상이 된 䢮네버랜드 신드롬䢯 현상을 풀이한다. 하지만 잘 놀 줄 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놀 시간, 놀 공간, 놀 인간이라는 놀이의 세 가지 요소가 잘 겸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䢮사이䢯를 의미하는 한자[間]가 세 요소 모두에 포함된 것이 퍽 인상적이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䢮놀 인간䢯이라는 점은 말할 나위 없다. 하지만 코로나 3년을 겪으며 누구랄 것 없이 먹고 자고 소비하고 즐기는 것 등을 모두 혼자서 하는 䢮얼로너(aloner)䢯가 급증했다. 사회학자 김찬호는 『대면 비대면 외면』(2022)에서 䢬대면의 반대말은 비대면이 아니라 䢮외면䢯이다䢭라고 강조한다.

문화매거진 《pot》 여름호에서는 䢮놀이䢯에 주목하고자 한다. 특히 ‹어린이해방선언›(1923) 100주년을 맞아 춘천 사람으로 소파 방정환 선생 곁에서 묵묵히 잡지 『어린이』와 『개벽』을 발행하는데 크게 힘쓴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청오(靑吾) 차상찬(1887-1946) 선생의 뜻을 새기고자 했다. 䢬조선 사람은 무엇보다도 먼저 조선을 잘 알아야 한다䢭는 선생의 뜻은 시간의 풍화작용에 의해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제대로 잘 놀 줄 아는 사람들이 사는 춘천으로 만드는 것이 선생의 뜻과 정신을 잘 잇는 것이라고 믿는다.

춘천의 놀이문화 브랜드로 급부상하고 있는 예술놀이축제 䢮물 좋은 도시, 물 만난 춘천䢯을 비롯해 어린이, 청소년, 어른들의 재미있는 놀이문화 현장과 놀이-터, 그리고 춘천의 명동 거리 산책까지 다양한 시각을 지면에 담고자 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우리 모두가 호모 루덴스(Homo Ludens)적 인간으로 변신할 줄 알아야 한다는 메시지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시사만화가 유환석 작가, 예술소통공간 곳 입주작가 신민 작가 인터뷰를 비롯해 음악 애호가들의 사랑방 역할을 해온 䢮하이하바䢯 공간에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 또한 소소한

우리는 놀이를 통해 䢮생생한 배움䢯을 배울 수 있다. 어린이들은 어린 미적 인간으로 성장하며, 䢮어린 시민䢯으로 탄생하게 된다. 최근 아이들의 아동기가 䢮탈(脫)䢯자연화하는 현상은 우려스럽다. 어른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놀이를 통해 삶을 위한 리터러시를 터득하고, 䢮돌보는 공동체䢯에 대해 생각하며, 나 바깥으로 관계의 감각을 확장할 수 있다. 그런 시민들이 사는 도시는 문화적 삶과 문화사회에 대한 지향을 추구할 줄 아는 멋진 설렘시티라고 감히 말할 수

고영직 문학평론가, 편집장

5쪽

POST BOX

아~

사진 김소영, 하정은, 한지호 에디터 이인혜

잘

놀 면 기분 이

좋잖 아 요!

*post box는 시민들로부터 받은 필름카메라 사진과 이야기를 기사에 담았습니다.

인생이라는 놀이판에서

놀이의 순간, 여덟 살 어린이와 중년의 어른 그리고 일흔이 훌쩍 넘은 어르신의 경계가 흐려진다.

나이와 상관없이 솟아나는 용기 일터에서 삶의 보람을 찾아가는 순간 사사로운 질문에 스치듯 답변하는 재잘거림까지

내가 지금, 이 놀이를 하는 이유 그 속에 가장 나다운 내가 숨어있다.

김소영 KBS 전국노래자랑 춘천편 대상 수상자 스무 살의 마음으로 인생을 즐기고 있는 78세 청춘

어려운 형편으로 눈치싸움하기 바빴던 10대. 가수의 꿈을 포기하며 일찍 결혼했지만 순탄하지 않았던 20대와 30대. 홀로서기 위해 생업에 몰두했던 40대. 벼랑 끝의 경치가 더 아름답다는 걸 깨달은 50대. 내 인생의 가장 즐거운 놀이, 음악과 사랑을 다시 찾은 60대. 노래하고, 춤추고, 연기하며 살고 있는 행복한 70대.

인생이 하나의 놀이판이라면 나는 한순간도 뒤로 빼지 않고 열심히 놀고 있다. 그 오기와 열정이 일흔이 넘어 나를 䢮별을 잡은 여자䢯로 만들어 주었다. 즐겁게 기타를 치고 스무 살처럼 노래하는 나는 지금 내 놀이판의 주인공으로 빛나고 있다.

6쪽

오늘은 어떤 䢮놀이䢯를 제공해드릴까요?

하정은 춘천시육아종합지원센터 놀잇감대여실 직원 아이들에겐 놀잇감을 안겨 주는 천사, 부모들에겐 지출을 줄여주는 은인

놀잇감 대여 기간에 맞춰, 한 번도 빠지지 않고 3년째 찾아오는 아이가 있다. 아장아장 걸으며 아빠가 골라주는 놀잇감을 순순히 받아들던 아이는 3년 사이 대나무처럼 자라, 이제는 마음에 드는 놀잇감을 직접 고른다. 이 아이에게 놀잇감대여실은 어떤 곳일까. 반짝이는 눈을 보고 짐작건대 별천지쯤 되는 것 같다.

아이는 놀이로 자란다. 놀이라는 영양이 부족하면 아이의 정서에 결핍이 생기고 그 결핍은 어른이 돼서도 해소할 방법이 없다. 아이들에게 시기적절한 영양소를 나누어주는 것. 그것이 놀잇감대여실의 역할이라고 나는 믿는다.

오늘도 문을 열자마자 아이들이 줄지어 찾아온다. 장난감 후보들을 늘어놓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을 하듯 신중을 기하며 검지를 펼쳐 보이는 아이들. 이토록 심각하게 귀여운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 역시 진심으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䢮어떤 장난감이 아이들의 지목을 받을 수 있을까. 어떤 놀이가 아이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줄까.䢯 틈만 나면 신상 장난감을 찾아보는 것이 나의 䢮놀이䢯가 된 이유다.

7쪽

인생 8년 차, 꼬마 일상수집가의 답변

Q. 왜 그렇게 사진을 열심히 찍나요? 䢬아~ 못 볼 때 보고 싶어서요.䢭

Q. 어떻게 그렇게 사진을 잘 찍게 됐나요? 䢬아~ 작고 귀여운 것부터 찍기 시작해서 점점 잘 찍게 됐어요.䢭

Q. 찍어 놓은 사진을 다시 볼 때는 어떤 기분이죠? 䢬아~ 잘 찍혀 있으면 기분이 좋아요.䢭

Q. 그럼 잘 못 나온 사진도 있나요? 䢬내가 찍고 싶은 게 전부 다 안 찍히거나 흔들린 거요.䢭

Q. 그럴 땐 기분이 어떤가요? 䢬속상해요. 언제 그 장면을 다시 찍을 수 있을지 모르잖아요.䢭

Q. 왜 그런 것들을 꼭 찍고 싶죠? 䢬아아~ 예쁘잖아요!䢭

한지호 카메라가 있는 태블릿이 보물 1호인 8세 어린이 시간과 행복을 사진으로 잡아두는 능력을 무럭무럭 키우고 있다

Q. 지금부터 딱 한 장의 사진만 찍을 수 있다면, 무엇을 찍을래요? 䢬가족사진! 근데 … 그건 너무 아쉽다~! 무지개, 오로라, 노을, 꽃도요!䢭

8쪽

THEME PIECES

사진 김효주

우연과 상상

찰나로 쌓아올린 순간들

12쪽

TOOLS

포토그래퍼 이종희 에디터 정승희

불안정한 세상에서 유쾌함과 사랑으로 겹겹이

조소 작가 신민의 도구

종이는 위태위태하지만 가장 생생하기도 하고, 여러 겹이 쌓이면 어마어마한 힘을 갖는 것.

13쪽

䢮예술소통공간 곳䢯에 입주해있는 신민 작가의 작업실은 알록달록한 종이로 뒤덮였다. 작업을 위한 아이디어와 생각을 적어놓은 포스트잇이 벽면에 빼곡하고, 다른 벽면에는 전국에서 날아온 편지가 붙어있다. 작업실 곳곳에는 종이에 그려진 작품과 흉상 작품이 있는데 익살스럽고, 화내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작가의 말을 들으니 그의 작품이 다시 보인다. 그가 만든 신민 작가는 홍익대학교 공과대학에서 공부할 때 회화과 수업을 청강했는데, 회화과 학생들과 함께

완성될수록 아기가 태어나고 커가는 모습과 닮은 것 같아요. 양수에 부었던 얼굴이 점점 콧대도 나오고, 자신이 되어가는 것처럼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사랑스럽죠.䢭

사람들은 세상이 정해놓은 아름다움, 비너스의 곡선과는 거리가 멀다. 존재감을 올려주고 싶은 수업을 듣고, 특이하고 재밌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사람들을 애써 반듯하게 꾸미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예술작업에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이후 그는 사람들이 모습을 고스란히 담는다. 노동자와 여성의 문제에 관심 가져 주기를 바라며 종이와 연필로 강렬한 표정의 사람 조형물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䢬 제가 만드는 사람들은 대체로 덩치가 크고, 여드름과 블랙헤드가 있어요. 똥배는 물론이고 겨드랑이와 다리엔 털이 씩씩하게 자라나 있죠. 제가 그렇게 생겼어요. 저와 같은 사람을 만들어서 보고 있으면 스스로 위안을 받아요. 제 작품을 보는 사람들도 위안 받는다고 느껴요.䢭

그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때, 흔한 재료인 종이와 연필로 이렇게나 인상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둥글둥글 가지각색의 사람들은 내가 자주 만나는 이들의 얼굴과 비슷해 마음이 쓰이고, 당당한 표정엔 힘을 얻기도 했다. 처음 마주한 신민

작품은 작가의 외형만 닮지 않았다. 신민 작가는 여성과 작가도 그의 작품과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노동자로 살아오면서 자신이 경험하고, 전하고 싶은 매번 인터뷰할 때마다 잔뜩 긴장하는 나를 무장 해제시켜 버렸다. 거침없고, 솔직하고, 자신을

바를 조형물로 만들었다. 작품에 10시 10분으로 향한 눈썹이 많은 이유는 우연이 아니라 작가가 분노하는 의심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가진 매력이 그의 지점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주문하신 소프트 콘 두 작품 크기만큼 크게 다가왔다.

개›와 ‹견상犬狀 자세 중인 알바생› 두 작품엔 햄버거 체인점에서 파트타이머로 일했을 때의 경험이 녹아있다. 왜 사람일까? 그리고 왜 여성일까? 크게 부푼 사람들을 햄버거 체인점에서 버려지는 감자튀김 포대를 활용한 만드는 작업이 작가에게 어떤 의미인지, 또 작업할 때

점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의 기도-나는 동료를 미워하지 어떤 감정을 가장 많이 느끼는지 궁금했다. 노동자와 않는다 나는 껴안는다 나는 사랑한다 나는 연대한다› 여성이라는 어렵고, 무거운 주제에 짓눌리지는 않는지도. 䢬 20대 초반이 아닌 여성이 구직하다 보면 대기업 䢬 사람들을 만드는 게 제가 잘할 수 있고, 재밌는 거라서 계속 작업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만들고 싶은 사람들은 존재감을 올려주고 싶은 사람들이에요. 자존감이 아니라 존재감이요. 권력과 힘이 없는 사람들, 소수자나 약자들을 시각적으로 올려주는 일은 제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저는 작품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줘요. 매일 인사도 하고, 포옹해요. 작품이

작품은 커피전문점에서 일했을 때 느낀 점을 담았다.

프랜차이즈에 문을 두드리게 돼요. 최소한의 노동법을 지켜주고, 성희롱 예방 교육이라도 하거든요. 커피전문점에서 일했을 때 다양한 동료들을 봤어요. 특히 서로를 미워하고 감시하면서도 누군가 생리대가 필요하다고 하면 나서서 빌려주는 자매애를 경험했어요. 우리의 기도 작품 제목은 제가 일할 때 동료를 미워하지 않고 싶어 계속 되풀이했던 기도문이었어요.䢭

14쪽

신민 작가는 동료를 미워하기보다 서로를 감시하고, 트집을 잡을 수밖에 없는 노동환경에 시선을 두었다.

종이만 사용되는 건 아니다. 다른 재료로는 마네킹, 포일, 비닐, 풀, 가위, 종이테이프, 연필, 색연필, 유토 등이 있다. 부족한 인력배치, 덥고 습한 노동환경을 문제로 짚었다. 강하고 분명한 색을 띠는 재료이기보다 재활용할 수 동료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읊은 기도문은 머리망을 한 있고, 부드럽고 유연한 재료들이다. 다섯 사람의 모양으로 작품이 되었다. 신민 작가의 작품의 중심을 잡아주는 건 중고 마네킹이다. 마네킹이 없을 때는 사람 형상을 종이에 그린 * 그녀의 작품 색色은 모두 갈색. 흔하디흔한 크라프트 종이다. 학교와 회사, 집에서도 쉽게 볼 수 있고, 활용

후 재활용 상자와 같이 두께가 있는 재료로 형태를 만든다. 그리고 비닐 등을 돌려 입체적으로 만들고, 또한 무궁무진하다. 종이접기하여 놀이의 도구로 사용할 유토1)로 세부적인 형태를 잡은 뒤에 바셀린을 바른다. 수도 있고, 문서를 작성하여 필요한 정보를 한눈에 볼 바셀린 위에 종이를 스무 겹 정도 붙여서 말린 후, 칼로 수도 있다. 손편지를 써서 마음을 전할 수도 있다. 다양한 절개해서 틀을 뜬 뒤 다시 봉합한다. 종이를 붙이고, 역할을 하는 종이지만, 종이로 조소 작품을 만든다고 할 형태를 다듬고, 말리는 이 과정을 반복한다. 어느 정도 때는 의아했다. 종이로 만들기에는 너무 연약한 재료라 작품이 완성된 후에는 타카로 작품을 고정하고, 생각했다.

머리카락과 같은 세부사항은 쓰고 남은 포일을 이용해 표현한다. 마지막으로 연필과 색연필로 얼굴과 옷 등을 䢬 종이는 잘 찢어지고, 좀먹고, 불에 잘 타고, 물에도 그려 완성한다. 약하고, 잘 지워져요. 이러한 종이의 특성이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대변하기에 가장 적합한 이러한 과정을 거쳐 완성된 작품에는 작가만이 아는 재료라고 생각해요. 한 번 쓰고 버려지는 노동자들, 비밀이 있다. 바로 작품 안쪽에 기도문이 여러 장 소외되고 지워지는 사람들이요. 종이는 위태위태하지만 가장 생생하기도 하고, 여러 겹이 쌓이면 힘이 있기도 하죠.䢭

붙어있다는 것. 기도문의 역사는 학창시절까지 올라간다.

䢬 어릴 때 친구들에게 부적을 많이 만들어줬어요. 시험 기간에도 써주고, 멀리 이민 간다고 하면 써주고요. 돌이켜보니 제게 부적을 만드는 행위는 기도와

신민 작가의 말에 나도 모르게 종이는 필요하다고, 없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삶을 꾸리는 평범한 다르지 않더라고요. 친구를 위하는 마음이 부적에 사람들이 모여 우리 사회를 이루는 것처럼, 종이 또한 우리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되니까. 작가는 종이의 불안정성을 이해하면서도 꼭 껴안는다. 종이로 작업하여 만든 작품은 단단해진다. 여러 장의 종이가 모이면 단단한 책이 되는 것처럼.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십 년이 지나도 모양이 잘 변형되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작품에

녹아든 거죠. 그 정신이 계승되어서 작업할 때도 작품 안쪽에 기도문을 붙여둬요. 작은 작품은 안에다가 넣고 봉하고, 큰 작품은 주로 안을 비워두어서 안쪽 면에 붙여둬요. 겹겹이 반복해서 붙이며 작업하는 과정이 기도와 다르지 않다고 느끼거든요.䢭

1) 기름을 섞어 굳지 않게 만든 찰흙. 재활용이 가능하고, 경도가 강하다. 불에 약하다는 단점도 있다.

15쪽

펜 안에 소원을 적어 잉크가 다 소진될 때까지 쓰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걸 믿는 신민 작가는 생활 속의

수밖에. 신민 작가는 기도하며 종이를 붙인다. 존재감을 높여주고 싶은 사람들을 만든다. 그리고 전국에서 오는 미신을 좋아한다. 종교가 없지만 자주 기도한다. 최근 편지에 답장을 보내며, 소셜 미디어로는 사람들과 그가 작업하는 주제는 䢮기도의 달인䢯. 소설 «죽음의 미로»2)에서 영감을 받았다. 소설 속 배경으로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미래에 지구를 떠나 살아가는 사람들이 신민 작가와 여러 주제를 넘나드는 대화를 하며 그와 나온다. 그곳에서도 사람들은 기도하며 살아간다.

활발하게 소통한다.

그의 작품은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작가는 인간은 왜 기도하는가를 고민하며 작업하고 있다. 유쾌함과 진지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진지하게 세상의 문제를 마주하고, 유쾌하게 작품으로 풀어내고 기도에는 바람이 있다. 신이나 운명, 우연에 기댈 수밖에 있었다. 그가 세상에 바라는 기도는 작품에 켜켜이 없을 때 우리는 간절히 기도한다. 어떤 기도는 이뤄지기도 새겨진다. 문제를 외면하지 않되 유쾌함과 사랑으로 하고, 어떤 기도는 영영 이뤄지지 않는다. 그럴 때 우리는 중무장한 작가의 모습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무얼 할 수 있는가. 기도하며 그저 할 수 있는 걸 하는

2) 필립 K. 딕, «죽음의 미로», 폴라북스, 2011

견상(犬 狀)자세 중인 알바생 / 맥도날드 프렌치프라이포대, 연필, 상자, 스티로폼 / 308×200×153cm / 2014

우리의 기도-나는 동료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나는 사랑한다 나는 껴안는다 나는 연대한다 / 맥도날드 프렌치프라이포대, 연필 / 132×136×77cm, 140×120×72cm, 155×135×60cm, 130×118×62cm, 125×120×76cm / 2022

16쪽

INTERVIEW 1

포토그래퍼 김효주 에디터 정승희

음악을 넘어선

삶의 놀이터

모두의 음악공간

하이하바

왼쪽부터 태성, 소라, 원혜, 종현

태성 별명은 라브리. 2021년 9월에 춘천으로 이주하였다. 믹싱 엔지니어, 사운드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다재다능 능력자.

소라 별명은 솨루. 작년 3월에 춘천으로 이주했다. 하이하바에서 파이팅과 승부욕을 담당하고 있다. 하이하바의 아름다운 순간을 사진으로 담는다.

원혜 춘천으로 자주 여행 왔다가 남편인 종현과 하이하바를 열면서 이곳에서 살고 있다. 하이하바에서 2년간 피아노를 가르쳤다. 지금은 하이하바의 위급 상황이나 불편한 얘기가 필요할 때 적극적으로 나서는 하이하바 부원장님.

종현 대학 졸업 후 기타와 보컬 레슨을 꾸준히 해오다가 2020년 11월 모두의 음악공간 하이하바를 열었다. 하이하바 선생님들의 䢮멘탈 관리䢯를 담당하는 하이하바 원장님.

모두의 음악공간 하이하바는 기타와 우쿨렐레를 중심으로 음악을 배우는 음악교습소다. 하이하바의 선생님들은 매달 수강생에게 함께한 시간을 담은 일지를 적어 건네기도 하고, 매년 수강생 연주회를 개최하고, 함께 놀 궁리를 하며 특별활동을 연다. 단순한 교습소가 아닌 삶의 놀이터를 만드는 하이하바의 선생님 네 명을 만났다.

17쪽

하이하바 사람들

안녕하세요, 따뜻한 공간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분씩 소개 부탁드립니다. 종현 하이하바는 제가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는 이름인데, 공간에도 하이하바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하이하바 원장님으로 불리고 있고, 기타와 우쿨렐레를 가르치고 있어요.

원혜 작년까지 하이하바에서 피아노를 가르쳤는데 정리한 후 하이하바의 부원장을 맡고 있어요. 䢮새의 전부䢯라는 듀오 밴드로도 활동하는데, 올해 EP 앨범과 제 개인 솔로 앨범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이하바의 인스타그램과 블로그 계정도 관리하고 있어요.

태성 저는 라브리라는 별명을 사용하고 있는데요, 䢮라브리䢯는 프랑스 말로 안식처라는 뜻이에요. 우연히 책장에 꽂혀 있는 책 제목을 보고 예뻐서 별명으로 쓰고 있어요. 기타와 우쿨렐레, MIDI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소라 저는 작년 3월에 춘천에 왔어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이하바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 올라오는 사진들은 주로 제가 찍고 있어요. 하이하바에서는 기타를 가르치고요.

모두 춘천으로 이주했다고 들었는데요, 춘천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원혜 여행으로 춘천에 자주 왔었어요. 제가 살던 서울과 그리 멀지 않아서 기차 타면 쉽게 올 수 있었거든요. 멀리 가기엔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너무 가까운 곳은 내키지 않을 때 도피처같이 떠날 수 있는 곳이었죠. 종현 님과 결혼하고도 춘천에서 살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는데, 4년 차쯤에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오갔어요. 오랫동안 계획했다기보다 부싯돌로 부딪쳐 타오른 불씨처럼 갑자기 속도가 붙으면서 이주하게 됐어요.

종현 저희가 여행 때 머물던 숙소가 옥천동에 있었어요. 저녁을 먹으려고 옥천동과 요선동을 걷는데 직장인들이 퇴근할 무렵이 되니 문을 닫는 가게가 많았어요. 대신 조용하고, 오래된 간판들이 보였어요. 골목길 앞 작은 횡단보도 앞에 자동차들이 멈춰 있고요. 그 분위기가 정말 좋았어요. 한적한 동네의 저녁에 하이하바는 열려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하이하바를 이 동네에 열게 되었어요.

태성 제게 사는 지역이 어디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가 더 중요했죠. 만약 이 세 분이 다른 지역에서 제게 같이 해보자고 했다면 저는 그곳으로 갔을 것 같아요. 장소보다는 사람이 중요하니까요.

18쪽

틀려도 웃을 수 있는

저는 음악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배울수록 어렵게 느껴져요. 부족한 점이 더 잘 보이고, 잘하고 싶은 욕심에 즐거움이 사라진다고 느끼는데요, 하이하바는 그 즐거움을 잃지 않게 도와주는 것 같아요. 종현 레슨할 때 두려움에 관해 이야기해요. 틀려도 괜찮다고, 잘하지 못해도 된다고요. 그렇지만 말만으로 되는 게 아니고, 분위기가 있어야 하죠. 䢮음악 안에서는 무엇이든 괜찮다䢯는 것이 하이하바의 분위기인 것 같아요. 틀린다는 두려움 없이, 틀려도 웃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숨통이 트이니까요.

원혜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다 보면 스스로 가혹하게 대하는 느낌을 자주 받아요. 자신이 가진 기준도 너무 높고요. 어느 날은 한 어린이와 피아노를 치다가 제가 칭찬을 했더니 䢬선생님, 잘한다고 말하지 마세요.䢭 하는 거예요. 이유를 물으니 그렇게 얘기하면 더 잘해야 할 것 같아서 부담된다고요. 하이하바에서는 조금 편안하게 계셨으면 좋겠어요. 수강생에게 䢮괜찮다, 잘하고 있다, 천천히 해도 된다.䢯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어쩌면 사실 제가 듣고 싶은 얘기라는 생각도 들어요. 저는 오랫동안 䢮난 부족하고, 더 잘해야 한다䢯는 저만의 평가 속에 살았거든요. 제가 수강생에게 괜찮다는 말을 할 때 저 또한 위로를 받곤 해요.

어린이 수강생부터 어른 수강생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하이하바에 오는데요, 기억에 남는 수강생이 있을 것 같아요. 소라 그룹 잔나비를 좋아하는 중년 여성분이 계세요. 제가 하이하바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무렵부터 지금까지 저와 공부하고 계신데, 정말 소녀같으세요. 살갗이 여리다보니 처음엔 기타 줄을 잡을 때마다 아파서 못 견디셨는데 지금은 좋아하는 잔나비의 곡을 연주할 수 있을 만큼 잘하고 계시답니다. 처음엔 오히려 제가 조급한 마음을 가졌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각자의 속도가 있고, 수강생분께서 자신만의 속도로 천천히 즐기고 있는 게 느껴지니 어느 순간 조급함을 내려놓고 같이 즐기게 되더라고요.

태성 중년의 여자 수강생 두 분과 오랜 시간 우쿨렐레를 연주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어요. 음악이란 뭘까, 삶이란 뭘까 이런 얘기들이요. 그게 저는 참 재밌더라고요. 음악으로 뭐든지 다 이야기할 수 있고, 음악이 진짜 우리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재밌으니까 같이 놀래?

하이하바에는 재미난 특별활동들이 있어요. 첫 번째 특별활동으로 풋살모임을 진행했다고 들었어요. 태성 제가 춘천에 오기 전에는 고등학교 동창들이랑 매주 풋살을 했어요. 춘천에 온 이후로 풋살을 안 하니까 허전하더라고요. 그래서 원혜 님에게 같이 해보자고 제안을 했죠.

원혜 태성 님의 풋살 공으로 놀다가 여자 수강생 몇 분과 이야기하게 됐어요. 풋살을 해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막상 시작하려고 하니 잘 안되는 거예요. 그러다 춘천문화재단에서 도시가살롱 모집 공고를 보고 신청해봤는데 마침 선정이 되었어요. 䢮호호호FC䢯라는 이름으로 6주 동안 수업을 받으면서 공놀이를 했는데 엄청 재밌었어요. 물론 잘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축구나 풋살을 할 수 있구나,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죠.

종현 하이하바에는 䢮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자䢯라는 모토가 있는 같아요. 하기 싫은 걸 너무도 많이 하며 사는데, 한 번 정도는 좋아하는 걸 찾아서 마음껏 해보자는 마음이 있거든요. 그래서 호호호FC도 해봤고, 두 번째 특별활동으로는 䢮반지의 제왕 감상회䢯가 열렸죠.

태성 춘천에서 처음 맞이한 겨울에 ‹반지의 제왕› 세 편을 종현 님, 원혜 님과 연달아 봤어요. 한 편 끝나고 밥 먹고, 다시 한 편 보면 하루가 지나 있어요. 다음날 마지막 한 편까지 보는 일정이었어요. 저는 물론 좋았고, 두 분도 좋았나 봐요. 그때 영화 중간에 제가 해설을 했거든요. 궁금해할 것 같은 지점이 있으면 잠깐 멈추어 얘기하니까 이해가 잘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감상회에선 배경 설명을 미리 준비해서 설명한 후에 영화를 같이 보고, 감상을 나누었어요. 8명 정도가 모였는데, 정말 재밌었어요. 이틀 동안 한 분도 안 빠지고 그 세계관에 푹 빠져 있는 게 느껴졌거든요. 감상회에 함께한 수강생 세 분이 이번 수강생 연주회 때 반지의 제왕 OST를 치기로 했으니 말 다 했죠.

하이하바의 특별활동은 내가 좋아하는 걸 공유해보는 경험이네요. 같이 해보니 다른 사람들도 좋아하게 되고요. 저는 요즘 어떻게 하면 잘 노는 것일까를 고민하는데 잘 논다는 게 제겐 어렵더라고요. 종현 저희는 공원에 가서 술래잡기도 하고 䢮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䢯도 하면서 놀아요.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필요하지만, 마음만 있어서 가능한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보다 분위기가 더 중요하죠. 우선 저는 놀이에 열려있는 사람들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원혜 쉽게 비웃지 않는 마음을 갖는 것도 중요해요. 어린아이들은 잘 비웃지 않잖아요. 생각보다 진지해요. 이해되지 않으면 절대 고개를 끄덕이지 않고, 웃기지 않으면 웃지 않거든요. 내가 어린이처럼 살아야겠다는 것보다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지키는 힘을 가진 어른이 돼야겠다고 생각할 때, 정말 재밌게 놀 수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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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분 모두 스스로 잘 노는 사람들이라 하이하바를 더 멋진 놀이터로 만들 수 있는 것 같아요. 춘천에서 자주 가는 놀이터가 있나요? 태성 저는 하이하바요. 직장이기 전에 놀이터거든요. 노래라는 단어의 어원이 䢮놀다䢯에 䢮ㅐ䢯가 붙었다고 하더라고요. 저희는 새로운 곡을 만들면 하이하바에서 노래 부르면서 놀아요. 요즘에는 하이하바 선생님들과 수업 끝나고 밤 9시가 넘은 시간에 다 같이 게임 하며 즐기고 있어요. 원래 저는 혼자 하는 게임을 주로 했어요. 겨루는 게임은 못 하면 친구인데도 핀잔을 주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하이하바에 게임기도 여러 대 생기고, 선생님들과 다 같이 게임 하는 게 너무 재밌어요.

종현 그리고 저희 넷 모두가 수영에 빠졌어요. 아침마다 수영하는데, 오늘도 자유 수영을 하고 왔어요. 지난 5월에는 춘천에서 수영대회가 있어서 구경했는데, 언젠가 출전도 해보고 싶어요.

원혜 저는 놀이터가 정말 많아요. 봉의산도, 수영장도 좋아해요. 하이하바도 제게는 놀이터고요. 여기 오면 제가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고,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최근에는 䢮새의 전부䢯로 같이 활동하는 소리 언니가 아파트 옆 동으로 이사를 왔어요. 언니네 집에 자주 놀러 가는데 제겐 완전 놀이터에요.

모두의 음악공간 하이하바, 앞으로는 어떤 공간이었으면 좋겠나요? 원혜 요즘 다 같이 수영 다니는데 두근거리는 게 있어요. 좋고 설레서요. 어릴 때 친구들이랑 䢬우리 이따가 학교 끝나고 놀이터에서 만나.䢭 약속하곤 했잖아요. 그때는 삐삐도 없고, 핸드폰도 없는데도 만나서 놀았죠. 학교 끝나면 놀이터에 친구가 있다고 생각할 때의 그 설렘이 있어요. 집에 오자마자 책가방 던져 놓고 헐레벌떡 밖에 나가는 그 마음이, 아직 제 안에 살아있더라고요. 저의 욕심일지도 모르겠지만 하이하바에 오시는 분들도 그런 마음이면 좋겠어요. 䢮나 내일 기타 레슨 받으러 가는데 너무 좋아.䢯 이런 마음을 안고 아침에 기타 챙겨서 출근했으면 좋겠어요. 하이하바 가면 좋은 선생님들도 있고, 알게 모르게 인사 나누는 사람들도 있는 그런 설렘이 있는 공간이면 좋겠어요.

돌이켜보면 놀이터에서 많이 성장한 것 같다.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고, 싸우고, 화해하고, 탐험하고, 새로운 걸 만들어내면서. 놀이터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갈 때 어떤 날은 피가 나고, 모래를 잔뜩 묻히기도 했지만 즐거웠다. 그럴 수 있었던 건 놀이터에선 얼마든지 시도와 실패를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다 큰 어른이 된 지금, 우리에게도 놀 수 있는 터와 성장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음악 안에서 틀려도 괜찮다고, 이 공간에서 편안하게 쉬어가도 좋다고, 재미난 놀이를 함께 해보자고 제안하는 하이하바에서는 마음껏 놀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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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2

포토그래퍼 이종희 에디터 권용식

회색 지면

위의

오아시스

시사만화가 유환석

카투니스트, 일러스트레이터 강원대 미술학 석사 졸업 《레이디경향》 신인만화 당선으로 데뷔 《스포츠조선》 창간 멤버. 시사만화 〈헹가래〉를 비롯하여 스포츠 만평 5,000회, 17년간 연재 《강원일보》시사만화 〈공수래〉 2,000회, 7년간 연재 등 현재 한국시사만화가협회장으로 활동 중

신문을 보고 있으면 괜히 기분이 상할 때가 있다. 주로 나쁜 일들이 기사화되기 때문일 테다. 그런 기사들 틈에서 만나는 시사만화는 언제나 가뭄 속 단비 같았다. 회색 종이 빛 사이에 숨은 보물을 만난 기분. 이 보물은 어떤 사람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걸까. 오랫동안 시사만화를 그려온 유환석 작가를 비밀기지 같은 그의 작업공간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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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반갑습니다, 춘천에 내려오신 지는 3년쯤 되었다고 들었어요. 현재는 어떤 작업을 하세요? 인터넷신문에 시사만화를 주 1회 연재하고 있어요. 요즘은 정치보다 기후변화와 관련 하여 환경문제를 다루는 편이에요. 또, 만화와 미술을 접목해 거리미술과 대형 일러스트 작업을 해요.

오랫동안 시사만화를 연재한다는 게 대단해요. ‹헹가래›는 17년이나 연재하셨잖아요. 매일 마감한다는 게 녹록하지만은 않았어요. 옛날에 어머니들이 아침을 먹고 나면, 점심은 뭘 해 먹나 걱정하던 것과 비슷할까요? 마감 시간이 임박했을 때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정말 피가 마르죠. 다급해지면 새로운 소재로 주제를 바꿔 보기도 하고, 예전에 그린 만화를 뒤져보기도 하고요. 말 그대로 머리를 쥐어짜며 그렸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휴가라도 가게 되면 10회분 정도를 미리 그리고 가야 했으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5,000회를, 17년간 연재했는지. 스스로 기특할 때가 있어요.(웃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회차가 있을 것 같아요. 독자들이 칭찬해주는 만화가 기억에 많이 남죠. 그중에서도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 현지에서 그려 보냈던 만화들과 2002년 월드컵 때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현장에서 직접 䢮짝짝~짝짝짝䢯 응원의 함성을 들으며 그린 만화들이 생각나요. 또 역대 대통령들의 만화를 보며 세대별, 지지자 별로 독자 반응이 천차만별이었던 것도 재밌었어요.

오랫동안 작업을 할 수 있던 힘이나 신념 같은 게 있었을까요? 독자들의 관심과 격려의 힘으로 작업했던 것 같아요. 한때는 시사만화 때문에 신문을 살 정도로 시사만화가 인기 였으니까요. 만화 마감은 스트레스 쌓이는 일이었지만 독자를 만나는 기쁨이 있었어요. 신념은 따로 없어요. 다만 시사만화라는 게 사회 전반의 이슈를 갖고 작업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편부당(不偏不黨)*한 중립의 입장에서 만화를 그리려고 해요. 역지사지해보자는 의미에서 그리고, 비판을 위한 비판이나 인신공격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해요. 만화는 만화로 봐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매일 한 편의 만화를 그리셨다보니 규칙적인 작업 루틴이 있을 것 같아요. 아침에 신문을 읽고, TV 뉴스도 보며 각종 미디어를 훑는 시간을 가져요. 작은 방에 조용히 앉아 눈을 감고 상상을 하며 주제와 아이디어를 구체화하죠. 보통 한 시간 반 정도면 작업이 완료되고, 오전에 끝나는 편이에요. 신문사를 다닐 때는 마감 시간에 눈을 감고 있다가 바쁜데 졸고 있다는 소문이 나서 눈총 받았던 적도 있어요.(웃음)

* 불편부당(不偏不黨):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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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형과 유형› 展: 춘천문화예술회관 2층 로비 갤러리문에서 2023년 4월부터 6월까지

진행된 전시로, 마임 동작과 메시지를 드로잉, 텍스트, 미디어 등으로 표현했다.

유형과 유형, 3×7m, 일러스트레이션, 2022

작업에서 가장 마음을 다하는 부분이 있나요? 우선 시사만화는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심각한 이슈라도 풍자와 해학이 있는 만화를 그리고 싶거든요. 쓰윽 보고 넘길 수 있지만, 숨은 의미가 있고 반전이 있는 만화를 그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재밌는 만화를 그리려면 그리는 작가부터 재밌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아요. 요즘 즐겁고 신나는 일이 있다면요? 매일 시사만화를 그리던 직장을 그만두고, 일러스트 강의를 하던 대학교도 종강을 해서 조금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요. 요즘은 새로운 작가 친구들을 만나는 게 즐겁고, 미술 하는 친구들과 새롭게 기획하고 작업하는 일이 무척 재밌어요. 최근에는 춘천문화예술회관 䢮갤러리문䢯에서 ‹유형과 유형›*이라는 전시 작업을 진행했어요. 유진규 마임이스트의 자전적 이야기인 䢮내가 가면 그게 길이지䢯와 무언극 䢮빈손䢯을 주제로 7×3m 크기의 대형 그림을 두 점 그렸답니다.

어린 시절에는 무엇을 하며 놀았는지도 궁금해지네요. 혼자 노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땅바닥이나 공책 뒷장에 그림을 그리며 놀았던 기억이 나요. 아버지께서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고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요. 초등학교 때는 간단한 만화를 그려 친구들에게 보여주면, 친구들이 재미있어했거든요. 미술대회에 나가서 가끔은 상을 받기도 하고, 중학교 때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어 팔며 놀았어요. 크리스마스 카드 교본을 보고 만들었는데 새가 입체적으로 움직이고 눈가루가 뿌려져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들이 신기해하며 사 갔었죠. 이런 경험들이 제가 시사만화가가 되는 데 영향을 끼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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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좋아해도 시사만화가는 특별한 길처럼 보여요. 처음부터 한길만 걸으셨고요. 시사만화가가 된 건, 아버지께서 보셨던 여러 신문 때문이에요. 신문에 실린 만화가 재밌고 신기했거든요. 그림과 만화에 대한 관심으로 중학교 때는 외국잡지에 나온 카툰을 따라 그리기도 했었고, ‹선데이서울›이나 ‹주간한국› 등에 독자 투고 만화를 그려 소액환*으로 원고료를 받기도 했어요. 생각해보니 중학생 때 이미 데뷔를 한 셈이네요.(웃음) 친구들에게 짜장면을 사주며 어깨가 으쓱했던 기억도 나요. 또 당시 미술 선생님이 만화도 인정받는 시대가 올 거란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에도 영향을 받았던 것 같아요.

중학교 때부터 시사만화가의 길이 시작된 거군요. 첫 작업의 순간도 궁금한데 기억나시나요? 그럼요. 첫 만화는 몇 개를 그렸는지 몰라요. 내 이름이 신문에 나간다는 게 신기하고 흥분됐죠. 중학교 때 전교생 앞에서 처음 상을 받을 때보다 더 떨렸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앞으로 독자들에게 심판을 받겠구나 같은 생각에 두렵기도 했답니다.

반대로 작가님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제 만화주인공처럼 살고 싶어요. 똑똑하고 까칠해 보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눌하고 꺼벙해 보여 친근감이 가는 사람이요. 저는 아주 유명한 히트작이 없는 평범한 작가입니다. 오랫동안 시사만화를 연재하며 하루하루 소명으로 살았던, 즐거움을 주는 평범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 소액환: 우편으로 현금을 보낼 때 사용하는 우편환 중 하나. 우체국에서 증서를 현금으로 바꿀 수 있다.

‹호반의 즐거움 ›

인터뷰 내내 작가는 ‘유쾌함’ 그 자체였다. 스스로도 ‘유쾌, 환석’이라고 소개하던 그였다. 작업실로 알고 갔던 곳은 작가의 집이었고, 인터뷰는 시원한 수박과 함께 자꾸만 즐거운 수다로 빠졌다. 그를 보며 만화를 재밌게 그리려면 먼저 작가 본인이 즐거운 사람이 되어야겠구나 생각했다. 오랫동안 한 길을 걸으며 사람들 마음에 작은 기쁨을 준 ‘유쾌, 환석’을 위해 나는 마음속으로 헹가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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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T-PEDIA

일러스트 한선주 에디터 이인혜, 박인옥

감각이 솟아오르는 터 Site of Chuncheon

터 [site, lot: (땅) ground] [명사] 1 집이나 건물을 지었거나 지을 자리 2 집이나 밭 따위가 없는 비어있는 땅 3 활동의 토대나 일이 이루어지는 밑바탕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우두산(충열탑)과 흥겨운 농악단

* 우두농악보존회, 뒤뚜루농악보존회, 사암리농악보존회, 신북농악보존회 등에서 춘천농악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 봉의산 동쪽기슭에 위치한 신석기 시대의 인공동굴(강원도기념물 제1호)

* 봉의산 능선에 쌓은 산성으로, 연대는 고려시대로 추정 (강원도기념물 제26호)

신명나는 시민성과 춘천의 터

마임축제와 인형극제 등 춘천 대표 축제의 원형은 외부에서 들여왔지만 축제를 즐기는 춘천시민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춘천의 흥 DNA가 따로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정답은 놀랍게도 ‘YES’. 우리들의 몸에 밴 놀이문화, 신명나는 환대로 외부에서 들여온 축제가 춘천 고유의 축제로 자리 잡았다는 거다. 가히 ‘흥부심’을 가질만하지 않은가. 1 춘천의 봄 춘(春)은 ‘싹이 솟아오른다’는 의미가 담겼다. 솟아오르는 춘천의 영성과 기운은 ‘해가 솟아오르는 산’이라는 뜻의 소슬뫼(현 우두산)로 이어지는데, 이 소슬뫼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천단으로 신성한 장소였다고 한다. 제를 지내는 행위는 흥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놀이, 축제의 시작이 되었다고.

2 춘천 고유의 흥, 시민성은 농악놀이, 놀이패* 등의 형태로 이어져 마을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또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것이 춘천의 놀이와 축제를 솟아나게 하는 원형의 모습이라고 추측한다. 어쩌면 우리가 밟고 있는 이 ‘터’에서 살아온 조상들이야말로 ‘제대로 놀 줄 아는’ 힙함의 최고봉이 아니었을까? 3 흥이 넘치는 터, 춘천에서 옛 어르신들은 무얼 하며 놀았을까. 춘천시청 홈페이지에 춘천의 민속놀이들을 소개해 놓았는데 제궁동 산제(쟁골 산제 거북놀이), 춘천 외바퀴수레 싸움놀이, 봉의산 산성쌓기 놀이, 소양강 뗏목, 춘천의병놀이, 우두산 소슬뫼놀이 등이 눈에 띈다. 이름만 들어도 궁금해지는 옛 조상들의 ‘놀이 콘텐츠’. 오늘날 축제의 기획자처럼, 당시에 놀이를 이끄는 ‘기획자’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놀이의 흥을 복돋우는 ‘마을 인싸’는 누구였을까? 별생각이 다 들기 시작한다. 춘천 민속놀이에 대해 보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춘천시청 홈페이지를 방문해보면 좋을 듯하다.

4 도청을 감싸 안으며 춘천의 중심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산, 바로 봉의산이다. 산세가 봉황과 비슷하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추측하건대 춘천에 있는 학교 교가에 ‘소양강’과 함께 가장 많이 등장하는 지명이 아닐까 싶다. 해발 301m의 아담한 산이지만, 남다른 기운으로 말미암아 산자락에 많은 절이 생기고, 지금의 소양로 1가, 후사면 쪽으로는 역술인들이 모여 100여 년 넘게 점성촌이 자리해왔다고 한다. 현재에도 몇몇 점집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삶이 퍽퍽하고 어려울 때 서민들은 마음을 달래고자 봉의산 자락으로 모였을 것이다. 신점을 보거나 기도를 올리지 않더라도, 마음이 울적할 때 ‘소양정’에 올라보자. 혈거유지*부터 봉의산성*, 그리고 많은 절과 점성촌으로 이어오는 신성한 터의 기운이 느껴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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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또는 여럿이 조용하거나 혹은 왁자지껄하거나

1 감나무골 할머니들의 ‘수다 놀이터’ 죽림동성당 뒤쪽 언덕을 끝까지 올라가면 커다란 감나무 아래 널찍한 평상이 하나 있다. 약사동 제2 경로당 앞 그늘 자리다. 이 감나무 평상은 오랜 시간 약사동 어르신들의 시원한 수다 놀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 막 태어난 어느 집 손주의 이야기부터 60년 전 춘천의 이야기까지 어르신들의 추억과 근황이 순서 없이 오가는 곳. 몇 년 전, TV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정겨운 감나무골 할머니들의 예능감 넘치는 입담이 소개되기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알콩달콩 사이가 좋은 감나무골 어르신들. 평상에 엉덩이를 대는 순간 나이와 지역 상관없이 어르신들의 말동무가 될 각오를 해야 한다. “여기는 나오면 전부 한집안 식구 같아요. 이웃이 가까워서” 길을 걷다 마주치는 공유의 터, 앉는 순간 무선 충전되듯 평상으로부터 따뜻한 감각이 전달된다. 2 낡은 평화가 숨어있는 ‘사색 놀이터’ 침묵과 사색을 즐기고 싶다면 인적이 드문 놀이터로 찾아가는 건 어떨까? 온의동에 있는 춘천시립청소년도서관 옆으로 작은 숲길이 나 있다. 산길을 조금만 올라가면 하늘을 받치고 선 멋들어진 종각이 하나 보인다. 88올림픽을 기념하여 1989년 5월 5일 준공된 ‘평화의 종’이다. 강원도의 힘찬 기상을 나타내는 쌍용과 무궁화가 어우러진 거대한 종은 평화 그 자체를 품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찾는 진짜 마음의 평화는 낡은 종각 뒤 전망대에 숨어있다. 데크로 만들어진 전망대에 오르면 호반의 도시의 아름다움이 온몸으로 청량하게 느껴진다. 흐르는 듯, 흐르지 않는 듯 춘천에 머무는 모든 것들에서 도시의 경이로운 평화를 발견할 수 있다. 야트막한 도심 속 언덕에 숨겨진 사색의 터, 낡은 종각 뒤에 숨어 평화로운 도시의 영성에 몸을 맡겨보자.

3 가깝지만 비밀스럽게 ‘숲속 놀이터’ 위생의 이유로, 관리의 이유로 아이들의 놀이터에서 흙과 돌이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자연만큼 창의적인 놀이가 가능한 것이 있을까. 자연에서 깨우치는 교훈만큼 값진 것도 찾기 힘들 텐데 말이다. 삼천동 상상마당 야외공연장 뒤편 숲으로 조금 올라가보자. 마음껏 뛰어놀고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춘천유아숲체험원’이 조성되어 있다. 나뭇잎이 소복이 쌓인 자연 속에서 흙을 만지고, 돌멩이로 그림을 그리며 놀 수 있는 체험장이다. 터널, 흔들 다리 등 놀이시설도 대부분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이곳에서 한바탕 놀고 난 아이들은 여기저기가 흙투성이. 걱정하는 부모들과 달리 자연의 품에 안긴 아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인다.

4 과거에서 놀다, 추억 속 ‘비석군 놀이터’ 봉의산 자락, 소양1교가 바라보이는 터에 26개의 비석이 모여 있다. 동네마다 놀이터가 없던 시절. 이 비석군은 아이들의 술래잡기 장소이자 정글짐이었다. 누구의 비석인지, 왜 여기에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나란히 서 있는 비석 사이사이를 누비며 친구를 쫓아가기 바빴을 뿐. 중학생쯤 되어서야 비석군의 정체를 알고 엄청난 역사 속에서 놀았음을 깨달았다. 이 비석들은 관찰사, 부사와 같은 고을 수령의 공덕을 기리는 비석들로 춘천 곳곳에 흩어져 있던 것을 1983년 봉의산 자락 아래 한곳에 모은 것이다. 지금으로 따지면 도지사, 시장, 군수 등의 공덕을 기리는 비석이라는 건데 … 그 위를 밟고 올라서서 놀았다니. 새삼 문화재를 훼손한 못난 시민이 된 기분이다. 하지만 이 비석을 밟고 놀았던 추억이 지금 도시를 누비는 시민성의 자양분이 되지 않았을까. 요즘은 어린 친구들이 잘 찾지 않아 쓸쓸히 서 있는 비석군이 왠지 애처롭게 느껴진다. 5 여름밤 달빛 아래 ‘밤 놀이터’ 여름부터 초가을까지 밝은 달빛에만 문이 열리는 놀이터도 있다.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시민들을 위한 밤 놀이터 ‘야시장’이다. 풍물시장 자리에서 열리는 꼬꼬야시장은 매주 금, 토, 일 3일간 열린다. 숯불닭꼬치, 홍새우튀김, 묵사발 등 푸드 트럭에 파는 간단한 먹거리와 함께 시원한 생맥주를 즐길 수 있다. 소양강처녀상 인근에 위치한 번개시장에서는 플리마켓과 미니 공연이 함께 진행된다. 작은 무대에서 펼쳐지는 수준 높은 버스킹 공연이 이 도시의 밤을 예술로 만들어준다. 봉의산의 밤기운과 사람 냄새를 함께 들이마실 수 있는 시간이다. 10월까지 매주 금요일, 토요일만 문을 여는 후평야시장은 셀 수 없는 종류의 먹거리 천국으로 사랑받고 있다. 육회, 생선구이, 컵과일, 우삼겹숙주볶음 등 한 접시씩 맛보다 보면 여름밤이 짧게만 느껴진다. 화려하진 않지만, 가까운 곳에 소곤소곤 놀이의 정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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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K

포토그래퍼 이종희 에디터 이인혜

청춘이 일렁이는 거리를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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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늘 설레는 약속을 잡던 곳. 휘황찬란한 불빛과 영화관만 남았다. 철거되지 않은 옛 극장의 간판을 보며 거리를 가득 채운 사람들. 쇼윈도마다 멋지게 서 있는 마네킹들과 열 걸음 간격으로 늘어선 거리의 음식들. 보통 영화를 본 후엔 명동의 뒤편에 있는 ‘닭갈비 여학생들의 방앗간 대형 팬시점과 남학생들의 아지트 골목’으로 향했다. 그땐 스무 개 정도의 닭갈비 가게가 오락실까지. 가게마다 흘러나오는 최신 가요를 들으며 화려한 거리를 걷다 보면 이 시대 유행의 중심에 내가 서 있었는데 사장님은 유독 학생들에게 친절했다. 우산 두 있는 것 같았다. 춘천 청춘들의 놀이터이자 멋이 흐르는 개가 나란히 지나가기도 어려운 그 골목을 걸으며 괜히 곳, 명동*이다.

이따금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보기만 했다.

추적추적 비가 오는 주말, 오랜만에 설레는 마음으로 명동으로 나가보았다. 명동 입구에서 시청 쪽으로 골목을 시작했다. 비를 피할 겸 명동의 지하로 내려갔다. 하나 빠져나가니 여전히 간판만 달고 있는 극장 두 개가 ‘춘천지하상가’는 오래전부터 강원도 전역의 젊은이들이 보인다. 어린 시절 명동에는 브로드웨이, 아카데미

찾아와 쇼핑을 하는 곳이었다. 1999년에 문을 열자마자 육림극장, 피카디리 4개의 극장이 있었다. 모두 사람이 단번에 춘천의 중심지로 떠오르며, 강원도 최대 규모의 직접 그린 수제 간판이 걸려 있던 기억이 난다. 영화를 보려면 건물 밖 매표소에서 티켓을 사야 했는데, 버스표 같은 티켓이 어찌나 작은지 잃어버릴까 늘 노심초사했다. 명동에서 옷을 사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 있다. 표를 잘 간수해 상영관으로 들어와도 문제였다. 지정석이 옷가게 사이에 자리 잡은 ‘콧구멍 수선집’. 방금 구매한 없었던 2000년대 초반 영화관은 그저 먼저 앉은 사람이 바지를 쇼핑백 채 맡기고 한 바퀴 돌고 오면 전문가의 그 자리의 주인이었다. 친구와 같이 앉고 싶어 빈자리를 손길로 나에게 꼭 들어맞는 옷이 완성되곤 했다. 20년이 넘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는 ‘불개미 수선집’도 있다. 찾다 결국 통행로 계단에서 영화를 보기도 했다. 같은 금액을 내고서 바닥행이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있을 수 오랜만에 들르니 궁서체의 문구가 눈에 띈다. ‘옷은 고치는 없는 일이다. 언제부터인가 그 거리의 영화관들은 하나둘 것이 아니라 새롭게 만드는 것’. 어린 시절엔 몰라봤던 문을 닫기 시작했다. 이제는 겨우 단 하나의 신식

쇼핑센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사장님의 소신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 춘천 명동은 시장으로부터 탄생했다. 1954년 중앙시장이 세워졌고 주변으로 농수산물 도매시장이 이어졌다. 1956년 춘천 최초, 건물형 시장인 요선시장이 만들어지면서 중앙시장과 요선시장, 제일시장 사이에 위치한 명동은 자연스럽게 춘천 제1의 번화가가 되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렇게 골목이 조그마했던가. 어쩌면 골목은 그대로인데 나만 훌쩍 자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산을 때리는 빗방울의 소리가 조금씩 커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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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상가 골목 중 하나인 중앙로를 걷다 보니 쿵쾅거리는 오늘은 마임축제의 시작날이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음악 소리가 조금씩 크게 들렸다. 서울 명동이 부럽지 않았던 지하상가는 문을 열었을 때부터 청춘들의 집합소였다. 특히 중앙로 끝에 비어있던 작은 광장은

아수라장 한가운데로 들어섰다. 저마다 개성이 담긴 하얀색 드레스를 입은 중년들이 차례로 무대에 올랐다. 그들은 자신만의 포즈를 취하며 드랙 퍼포먼스를 청소년 댄스팀들의 놀이터였다. 눈이 와도 비가 와도 걱정 선보였다.* 오랫동안 억눌러왔던 끼를 펼치며 희열을 없이 춤을 출 수 있는 곳. 음악을 크게 틀어 놓아도 눈치 볼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군가의 부모, 과장 같은 속세의 일이 없고, 오가는 사람들의 박수까지 얻을 수 있는 곳. 이름과 옷은 던져 버리고 숨어있던 진짜 자신을 찾은 듯한 지하상가는 청소년들에게 최고의 무대이자 최고의

얼굴과 몸짓. 자유로운 움직임에 치마가 뒤집혀도 연습실이었다. 지난 20년간 이곳도 시대에 맞춰 진화했다.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대 위 중년들은 공식적인 ‘청소년 생활문화공간’으로 거듭난 것이다. 댄스,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알록달록 아름답게 해방과 놀고 연극, 밴드 등 용도에 따라 나눠진 여러 개의 연습실에서 있었다. 청소년들은 꿈을 키우고, 우정을 쌓고 있었다. 그리고 방음시설, 음향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진 곳에서 놀고 있는 춘천에서 최고의 번화가를 꼽으라면 청소년들은 물론 많은 기성세대가 ‘명동’을 외치지 않을까. 명동은 춘천에서 학생들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이곳이 이렇게 멋진 공간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청춘들이 맨바닥에서 뜨거운 춤을 췄는지 말이다.

청춘을 살아낸 모두의 1번가다. 문화와 낭만의 상징. 그리고 춘천인들의 첫 번째 핫플레이스. 누군가는 한물간 곳, 구도심이라 부를지라도,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세월이 지하상가 산책을 마치고 다시 지상으로 올라왔다. 거리에 지나도 ‘명동’은 영원히 우리들의 청춘 놀이터다. 그곳엔 홀딱 젖은 사람들이 물총을 하나씩 들고 다닌다. 춘천의 아직도 청년과 신중년들의 청춘과 낭만이 일렁이고 있다. 많은 축제가 이곳 명동에서 ‘놀이판’을 벌이곤 하는데

* 춘천문화재단에서 진행한 본격 해방 ‹내 모양이 어때서›는 워크숍을 통해 신중년 세대가 자신의 개성과 색깔을 찾고, ‹물의 도시:아!수水라장› 개막식 런웨이 무대에서 드랙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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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GROUND

글 · 그림· 사진 공혜진(일상기록공작가)

어쩐지 근사한 소도시에서의 삶 # 02

5일마다 찾아오는 놀이터

달력의 끝자리에 2와 7이 붙은 날이 오면 몸이 먼저 들썩거린다. 5일마다 열리는 장날이 찾아온 거다. 어른들이 주로 나오시기에 늦게 나서면 물건이 많이 빠져 제대로 구경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시장은 물건도 신선하고 값도 좋지만, 무엇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사람 물결 따라 사람 구경을, 좌판에 가지런히 놓인 물건 구경을 하는 맛이 있다. 엄마와 나는 옥수수나 호떡을 입에 물고서 시장 이곳저곳을 기웃대는 재미에 푹 빠졌다.

시장을 빙 둘러 보면 그즈음에 많이 나는 작물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저절로 제철 음식의 흐름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지난 장에는 고사리가 놓인 좌판들이 여기저기 보였지만, 이번 주는 취나물이 더 많이 보인다. 그렇다면 이제 고사리의 계절을 지나 취나물의 계절이 온다는 걸 깨닫는 식이다. 취나물의 계절이면 시장에서 유난히 자주 보이는 생선은 대구다. 그럼 취나물과 함께 계절을 넘기는 식재료는 대구가 된다. 식탁에서 만나던 엄마 요리의 고급 비밀을 시장 구경하며 알게 되는 것도 숨은 맛이다.

장을 보면 엄마는 집에 돌아와 장 본 것들을 바닥에 쭉 펼치고 가계부를 기록하신다. 까만 비닐봉지가 바닥에 무심히 놓여있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아련한 안정감이 든다. 어느 날 문득 나도 다른 방식으로 엄마의 기록에 내 기록을 더 하고 싶단 생각을 했다. 좌판에 가지런히 물건을 진열하던 상인들처럼 나는 나름대로 그날 시장에서 산 것들을 바닥에 배치하여 사진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찍은 사진을 보면 시장에서 먹었던 수수부꾸미의 슴슴한 맛이나 자신의 요리법을 몽땅 알려주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함께 떠오르곤 한다.

거실 바닥에 펼치는 좌판의 횟수가 늘어 갈수록 사진기록에도 하나둘 노하우가 생기기 시작했다. 전용 보자기를 깔고, 자세히 봐야 하는 형태를 가진 채소들은 공을 들여 하나씩 배치하고, 전체적인 색의 조화를 고민하며 그 시기에만 나오는 제철 채소가 눈에 띄도록 중앙에 놓는다.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집에 돌아오면 나만의 또 다른 장이 서는 상황이 되었다. 여기에 덤으로 시장 구경을 할 틈도 없이 바쁜 친구들이나 혼자 지내는 친구들에게 잘 나온 사진을 보낸다. 시장의 먹거리 정보를 공유하며 친구들의 영양을 책임지겠다는 명분까지 챙기게 되었다.

단지 5일 장터에 갔을 뿐인데 살림살이의 중요 정보를 많이 배운다. 무엇보다, 먹고 사는 일에 대해, 사람 사는 일에 대해 마음을 쏟게 되었다. 계절에 맞춰 바다와 들에서 나오는 작물들을, 그를 위해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먼저 눈길을 주게 되었다. 유독 주름이 많이 진 비닐봉지에 담긴 땅콩을 앞에 둔 할머니의 손에 시선이 가고, 버섯을 판매하는 아저씨에게 요리법을 배우며 그 눈망울의 반짝임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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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글 정현숙 (강원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어린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여주십시오

강원도가 춘천을 어린이 수도로 공식 선포하고 나서, 명실공히 어린이를 위한 도시브랜드 구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이와 함께 100년 전, ‘어린이날 제정’과 『어린이』 발간에 깊이 관여하였던 차상찬(1888-1946)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요즘도 “차상찬? 처음 듣는데요. 춘천 출신이라고요?”, “공지천 조각 공원에 동상이 있다고요?”라는 말을 종종 듣곤 한다. 그럴 때마다 차상찬의 성과를 정확하게 알고 해석하는 작업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다시금 절감하게 된다. 춘천의 문화적 자산에 주목하는 지금, 언론인으로서, 사회문화운동가로서, 문필가로서 일제강점기를 열성껏 살아낸 차상찬은 춘천의 큰 자산이기 때문이다.

차상찬은 춘천 송암리 자라우 마을에서 성장했다. 아홉 살 때의 두 가지 일화는 그가 얼마나 호기심이 넘치고 당돌한 아이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당시는 일본인들이 산이나 묘에 칼을 꽂아 마을과 사람들을 멸망시킨다는 소문이 난무하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동네 사람들이 처음 본 일본인 사진사 때문에 놀라 우왕좌왕하는 일이 생겼다. 어린 그가 나섰고, 당당하게 한문으로 필담을 나누어 오해를 해결하였다. 또한 의병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글공부를 팽개치고 매일 춘천 읍내까지 7리 길을 걸어가서 곳곳에서 벌어지는 참사 현장을 따라다니며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았다. 이 역사적인 과정을 생생하게 담아낸 「관동병란 치르던 이야기」는 ‘춘천 의병’에 대한 최초의 글이다. 열여섯 살 무렵엔 두 형과 함께 춘천에서 제일 먼저 머리를 깎고 천도교에 입교하였고, 본격적으로 민족운동의 길로 들어선다.

상경 후, 차상찬은 고향에서 받은 풍성한 정신적 토양을 바탕으로 언론,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그중 하나가 ‘천도교 청년회’가 추진한 어린이 운동이다. 차상찬은 1921년 3월 천도교 청년회의 실무를 맡기 시작하였고, 5월 1일 ‘천도교 소년회’를 설립하였다. 이듬해 소년회 지도위원을 맡고, 천도교 소년회 설립 1주년을 기념하여 1922년 5월 1일을 ‘어린이의 날’로 제정하고, 선포식, 거리 행진, 선전지 배포 등 다양한 기념행사를 기획하였다. ‘어린 사람을 헛말로 속이지 말아 주십시오’, ‘장가와 시집 보낼 생각 마시고 사람답게 살게 하여 주십시오’ 등을 담은 ‘어린이 권리 7가지 당부’를 채택하는 데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또한 1923년부터 ‘어린이날’ 행사를 천도교 소년회 등이 결성한 조선소년운동연합회 주최로 확대하고, 9개 항의 어린이 해방선언을 선포하는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방정환이 동경 유학 중이던 어린이 운동 초기에는 천도교 소년회가 실무를 도맡았고, 차상찬이 깊이 관여하였다. 방정환은 1920년 9월 일본으로 건너가 1923년 9월 귀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틈틈이 귀국하여 어린이 운동과 『어린이』 창간에 대해 논의하고, 행사에 참석하고, 동료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의견을 교환하기도 하였지만, 국내에서 그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1922년 11월 21일 동경에서 방정환이 차상찬 앞으로 보낸 엽서는 소년회와 청년회의 일에 대해 얼마나 궁금해하고 있었는지를 잘 말해준다. 방정환이 귀국한 후에는 그와 함께 다양한 방식으로 어린이 운동에 참여하였다. 방정환은 1925년부터 준비하여 1928년 우리나라 최초로 ‘세계아동예술전람회’ 개최를 주도하였는데, 차상찬도 3년 동안 준비위원으로 참여하였으며, 1929년 어린이날 행사 준비위원회에 방정환과 함께 특별위원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어린이 운동에서 차상찬이 차지하는 비중은 가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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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차상찬은 전국의 어린이를 가장 많이 만난 사람일 것이다. 그는 개벽 특집기획‘조선문화의 기본조사’를 주도하며 2년 9개월에 걸쳐 전국을 답사하였는데, 그때 곳곳에서 어린이들을 만나 생활상을 직접 확인하고, 과자도 나누어 주었다. 「어린이」에 실린 다음 기사는 차상찬이 얼마나 어린이를 사랑하였는지를 잘 전해준다.

“차 선생님, 늙으신 그 얼굴에 애정의 웃음이 넘치십니다. 흰 수염을 잡고 싶습니다. 온 조선 땅을 다니면서 수 없는 어린이들에게 달콤한 과자도 나누어주시는 선생님은 친절한 늙은 노인과 같으십니다.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친절하게 생각된다는 말씀입니다.”

어린아이 눈에는 객지를 전전하는 30대 중반 차상찬이 노인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의 뛰어난 풍자정신과 유머 감각은 세간에 유명하였는데, 아이들에게도 장끼를 유감없이 표출하였던 것 같다. 그에게 재치와 재미는 암울한 식민지 시기를 견디는 힘이기도 하였다. 그가 세시풍속 놀이, 괴풍속 놀이, 관혼상제 놀이 등 민속놀이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어린이」에 발표한 50편이 넘는 역사 동화도 기이한 환상과 놀라운 상상으로 역사적 인물들의 비범함을 재미있게 전달하고 있다.

당시 차상찬은 천도교 청년회가 설립한 개벽사의 잡지 발간을 주도하였다. 개벽사는 「개벽」, 「어린이」, 「신여성」, 「별건곤」 등 무려 9종의 잡지를 발간하였으며, 100만 독자 운운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그는 불철주야 바쁜 일정에도 시간을 내어 어린이들과 함께하였다. 어린이 교통량을 조사하는 현장에 나가 인원수를 직접 확인하고, 개벽사를 방문하는 어린이들과 함께 사진도 찍고, 소풍날에는 어린이들과 나란히 서서 구령하며 시내를 활보하였다. 무엇보다 1931년 7월 23일 방정환이 사망한 후, 개벽사 대표였던 차상찬의 분투가 없었다면, 『어린이』 발행은 불가능했다. 자금난, 인력난, 검열난에 허덕이면서도 『어린이』는 포기하지 않고 매월 발행하였다. 『어린이』가 사회, 문화, 문학 등 다방면에 끼친 영향은 새삼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1935년 3월 개벽사가 문을 닫을 때, 『어린이』도 122호로 종간되었다. 차상찬은 『어린이』를 지키겠다는 방정환과의 마지막 약속을 끝까지 지켜낸 것이다.

차상찬은 어린이가 봉건사회의 윤리적 억압과 식민지 치하의 폭력에서 벗어나 독립된 하나의 인간으로 존중받기를 바랐다. 폭력은 시대에 따라 다른 얼굴을 하고 어린이를 억압해 왔다. 지금은 어떤 얼굴로 다가오는지를 세세히 살피고, 재미있는 상상력으로 아이들을 활짝 웃게 하는 것이야말로 차상찬의 정신을 해석하는 출발점일 것이다. 춘천이 그러한 역할을 선도하는 어린이 수도가 되기를, 차상찬 선생의 100년 전 신심을 소환하며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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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놀이 하는

글 노명우 (아주대학교 교수, 니은서점 마스터 북텐더)

인간이

오죽하면 䢬목구멍이 포도청䢭이라는 속담이 다 있겠는가. 그렇다. 먹고 사는 문제 해결은 만인의 절실한 과제이다. 먹어야만 인간은 생존할 수 있기에 돈을 벌어야 하지만 돈만 번다고 만족하지 못하는 게 인간이다. 죽지 않았기에 이어지는 삶, 만족감도 없이 죽지 못해 살아내는 삶을 연명이라 표현한다면, 인간은 연명 넘어서의 삶을 꿈꾼다.

행복 하다

연명을 넘어선 삶의 가능성을 경제 영역에서의 성공에서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호구지책의 세계는 제로 섬(zero sum) 게임의 법칙을 따른다. 호구지책의 세계에서는 모두가 승자가 되는 법이 없다. 어떤 사람은 승자가 되지만 어떤 사람은 패자가 된다. 승자는 모든 것을 가져간다. 승자가 된다면 호구지책의 세계에서 연명 너머의 삶에 근접할 수도 있지만 패자는 연명하는 삶조차도 위협받을 수 있다. 호구지책의 세계에서는 이긴 사람만 살아남을 수 있다. 호구지책의 세계에서는 생존을 위해 서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에 상호 신뢰는 싹틀 수 없다. 호구지책의 영역에서 사람들은 서로 믿지 않는다. 이 세계에서 일시적인 성공을 거둔 사람조차도 승리의 결실이 신기루일 수도 있음을 알고 있기에 부와 행복은 늘 일치하지 않는다.

경제학자 이스터린(Richard A. Easterlin)이 발견한 부와 행복 사이의 상관성에 대한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계속 늘어났음에도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늘어나지 않음을 이스터린은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국민소득의 증대와 행복의 증가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여 시사적인 사실을 발견했다. 국민소득이 2만 달러 미만의 사회에서는 소득이 증가하면 대부분 행복도도 높아졌다. 하지만 국민소득 2만 달러 이상의 사회에서는 행복도와 소득 사이의 정비례 관계가 나타나지 않았다.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돈이 필요하지만, 일정한 돈을 확보한 이후엔 돈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함을 발견한 것이다.

하위징아(Huizinga)는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금전적 이득 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노동과 경제의 영역이 아니라 노동과 경제의 원리와 정반대되는 논리에 의해 지배되는 다른 영역에서 찾았다. 우리는 놀이를 발달단계에 있는 어린아이의 행동이라고만 생각하지만 하위징아는 놀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했다. 그는 경제적 관계에서 벗어난 인간의 관계, 승자독식을 향한 호구책의 활동인 노동과는 구별되는 인간의 활동을 놀이라 불렀고, 䢮놀이하는 사람䢯 즉 호모 루덴스(homo ludens)를 경제 성장의 끝자락에서 만족 불감증에 놓인 우리들을 위한 치유 모델로 제시했다.

경제가 이윤(price)을 지향한다면, 놀이는 명예심이라는 내적 만족(prize)을 지향하는 활동이다. 경제가 제로섬 게임의 법칙을 따르는 영역이라면, 놀이는 화수분의 법칙을 따르는 영역이다. 경제에서 내가 승자가 되려면 타인이 패자가 되어야 하기에 다함께 승자가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놀이에서는 상대가 즐거워야 나도 즐거울 수 있다. 그래서 경제에서와 달리 놀이하는 인간은 䢮독점䢯이 아니라 䢮다함께䢯를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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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우리는 놀이를 일 하지 않음과 동일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놀이는 䢮놀고 있는 것䢯과는 다르다. 놀이는 경제적 값어치가 아니라 다른 원리를 지향하는 인간의 행위를 뜻한다. 놀이는 䢮향락䢯과도 다르다. 䢮향락䢯은 노동으로부터 도피하는 행위라면, 놀이는 노동으로부터 도피하는 행위가 아니라 노동만으로는 이룩할 수 없는 만족을 제공하여 인간을 완성시켜 주는 행위이다.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은 경제적 이윤을 기대하지 않았다. 마라톤에서 우승해도 우승자는 고작 경제적 값어치(price)는 보잘 것 없는 월계관을 받았지만 우승자의 명예는 그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드높았다. 우승자는 마라톤의 고통과 놀이한 대가로 월계관으로 상징되는 명예를 상(prize)으로 받았다. 놀이하는 사람은 경제적 동물처럼 오로지 이윤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놀이하는 사람은 자신만의 월계관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그냥 돈만 많은 사람은 배부른 돼지이다. 배부른 돼지에서는 품격이 엿보이지 않는다. 배부른 돼지는 경제적 이윤만을 지향할 뿐 내적 만족을 위한 명예에 대한 욕구가 없다. 배부른 돼지는 올림픽 선수의 금메달조차도 경제적 값어치로 환산하여 그 메달에 담긴 우승자의 명예를 증발시킨다. 그래서 배부른 돼지는 배가 불러도 행복할 수 없는 것이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우리의 배를 채우는 동안 우리가 잊고 있었던 놀이의 원리들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윤에 대한 욕심과 명예에 대한 욕심이 균형을 이룬 사람, 그 사람이 䢮놀이하는 사람䢯이다. 배부른 돼지는 그냥 졸부로 보이지만, 이윤과 명예에 대한 예민한 촉수를 동시에 지닌 사람에게선 품격이 느껴진다.

䢮놀이하는 사람䢯은 개인기가 뛰어난 사람, 웃기는 사람이 아니다. 䢮놀이하는 사람䢯은 이윤 대신 명예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䢮놀이하는 사람䢯은 날라리가 아니라 품격을 지닌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자기만족의 불감증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최선의 길은 䢮놀이하는 인간䢯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놀줄 알아야 한다. 놀지 못하는 사람의 삶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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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1

소양호에 풍덩 빠져볼까?

포토그래퍼 김효주 에디터 권용식

나무와 수풀이 우거지고, 발엔 흙이 묻는, 에어컨 하나 없는 자연 속. 어른들은 불편할 수 있지만, 아이들은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도심 속 소외됐던 작은 원시림을 웃음소리로 장악했다.

물 좋은 도시, 물 만난 춘천

자연에서 성장하는

눈으로만 보던 소양호에 물놀이터가 생겼다. 2023년 6월 24일부터 7월 2일까지 9일간 우두교 수변공원에서 ‘물 좋은 도시, 물 만난 춘천’*이 진행됐다. 축제는 춘천문화재단이 2020년 노리숲 축제를 기점으로 매년 진행된 자연 놀이의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2023 호수자원특성화 사업의 일환으로도 진행되었다.

축제는 물 좋은 도시답게 소양호의 맑은 강물을 사용했는데, 서울의 수돗물보다 더 맑은 수준이라고 한다. 발을 담가 보니 무더운 날씨에도 차가웠고, 강물 바닥이 다 비칠 정도로 맑았다. 모든 프로그램은 영유아와 어린이가 참여할 수 있게 만들어졌으며, 세 명의 예술가와 어린이로 꾸려진 놀이기획단*이 직접 물놀이터를 디자인했다. 바로 ‹다리건너숲›, ‹물실험숲›, ‹물순환숲›이다.

* 2023 물 좋은 도시, 물 만난 축제 자연 그대로의 생태 물놀이터에서 물놀이, 체험, 공연 등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축제. 다가오는 가을에도 호수자원을 즐기는 축제로 시민들의 일상 공간을 찾아갈 예정이다.

*놀이기획단 (축제를 함께 만든 아이와 부모) 이가인, 이성범, 이의선, 박시윤, 박성환, 한지후, 정채원, 정예원, 정호영 , 김민정, 김진주, 한정훈, 안효진, 이시호, 선현우, 신미숙, 박꽃향기, 연재민, 박강솔, 우수아, 김수환, 이희정, 조유솔, 조예솔, 조한솔, 김은영, 정인화, 이종민, 우수한, 박수길 , 박소연, 박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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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만들고, 아이들이 노는

먼저, ‹다리건너숲›은 물놀이터가 ‘섬’에 있는 특징을 십분 활용했다. 이덕용 작가와 아이들의 아빠가 직접 배를 만들고 아이들이 배를 꾸몄다. 물놀이터로 들어가는 방법부터 놀이로 만들어 준 셈이다. 각각의 배는 어른들이 보기에 조금 위험해 보일 수 있었지만, 아이들의 모험심을 자극하고 성장하는 데 도움을 주기 충분했다. 아이들은 배를 타거나 다리를 건너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물놀이터로 건너간다.

두 번째로 ‹물실험숲›은 박종혁 작가와 아이들이 기후변화로 인한 물 부족 현상에 대해 알아보고, 정수기의 원리를 이용한 물 실험 놀이를 구상했다. 빗물 욕조에 물이 담기면, 자갈과 모래, 숯이 들어있는 여과 장치를 통해 물이 정화되는 방식이다. 단순히 빗물 욕조에 물을 붓는 게 아닌 물풍선을 던져 터뜨리는 놀이로 또한 디자인됐다.

마지막으로 ‹물순환숲›은 작가 한동국과 아이들의 작품이다. 물순환숲은 구름, 비, 바다의 3가지 구조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먼저 ‘구름’의 경우 아이들이 빗방울이 되어 터널을 통과하며 물방울이 되는 콘셉트고, ‘비’의 경우 매달려 있는 빗방울 모양의 광목천 뭉치를 나무 물총으로 맞추는 놀이다. 천 주머니가 흔들리고 색이 변하는 모습이 비가 내리는 느낌을 줬다. 물방울이 된 어린이들이 배를 타고 바다로 흘러가는 순환에 대한 이야기다. 보트가 강 쪽으로 놓여 있었다.

현장을 방문했을 때 한창 비눗방울 쇼가 진행되고 있었다. 아이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렇게 많은 아이를 한곳에서 보는 게 쉬운 일도 아니었거니와, 마술사의 비눗방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또 비눗방울 모자를 쓰기 위해 작은 손을 높이 들고, 손뼉을 열심히 치는 아이들을 보니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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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공존하는 놀이문화를 만들어 주는 일

폭염주의보 속에도 아이들은 찡그리는 법 없이 마음껏 뛰고 소리 지르며 놀았다. 커다란 비눗방울을 보고 황홀해하고, 마술 앞에 얼어붙기도 하며, 시원한 강물에서 물장구치고 있었다.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하는 건 어른의 역할이란 생각이 들었다. 춘천문화재단과 함께 물놀이터를 만들어간 나누스페이스 사람들, 그리고 아이 부모가 땡볕에 구슬땀을 흘리며 함께 하고 있었다. 춘천의 놀이는 앞으로도 소양강의 윤슬처럼 계속 반짝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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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2

글 유주연

우리 들은 속계자란다

어른들의 예술 감상 놀이터 봄내

어린 시절엔 얼른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을

이른 저녁 시간, 기대감이 서린 얼굴을 한 어른들이 일기장에 가득 적었다. 왜 그렇게 하루빨리 어른이 문예회관 지하 다목적실로 하나둘 모이기 되고 싶었는지. 어른의 삶이 얼마나 따분한 줄도 시작했다. 두 번째 만남이라 그런지 그들은 모르고! 본 것도, 아는 것도 많아지니 커져 버린 키와 반대로 마음은 자꾸만 콩알만 해지는데.

익숙하게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그네도, 미끄럼틀도 없는 놀이터 풍경에 다소 시무룩해질 어른이란 게 이토록 별 볼 일 없을 줄 알았다면 계속 즈음 오늘 놀이터의 총책임자이자, 뮤지컬에 대해 어린이로 남게 해달라고 적을 걸 그랬다. 게다가 모든 걸 알려줄 선생님 정인화 배우가 우렁차게 지루한 어른에게는 마땅한 놀이터도 없다! 어린 인사를 건넸다. 그리곤 그의 지도에 따라 다양한 시절 뛰놀던 놀이터는 어찌나 작은지. 아무리 엉덩이를 욱여넣어도 그네 하나 타기도 어려워졌다. 괜히 서러운 마음이 솟구치던 어느 유월, 옆자리

연령대의 어른들이 손을 머리 위로 든 채 능숙하게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흔들어요 흔들어요 엉덩이를 흔들어” 동요 같은 노래에 그들은 동료로부터 어른들을 위한 놀이터가 있단 이야기를 위풍당당 고개까지 까닥이며 율동을 해냈다. 어떤 듣게 된다.

근심도 시름도 없는 투명한 얼굴로 환히 웃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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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지난 시간에 배운 뮤지컬 ‹신과 함께› 넘버

전, 네모반듯한 다목적실에 기분 좋은 긴장감이 ‘돌고 도는 인생’을 함께 불렀다. 어른들은 악보에 일렁였다. 뮤지컬 ‹신과 함께› 속 배우처럼 진지한 손을 짚어가며, 손가락으로 작게 지휘를 해가며 표정으로 대기하는 그들을 보며 나는 괜히 숨을 멜로디를 따라나섰다. 호흡을 한번 맞추곤 책상과 죽였다. 어떤 팀은 선생님이 정해준 안무 대신 직접 의자를 뒤로 쭉 밀어 지난번 정해둔 안무와도

가사에 맞춰 창작한 안무를 선보이고, 새롭게 맞춰봤다. 짧은 휴식 시간이 끝나자 책상 위에 놓인 연기가 더해지기도 했다. 공연을 마친 그들의 것은 신문지와 가위, 테이프, 그리고 사인펜 여러 얼굴에는 뿌듯함이, 꾸준한 관객이었던 내 마음에는 반짝이는 감동이 일었다. ‘어른들의 개. 선생님은 책상 위에 놓인 재료로 뮤지컬 의상을 예술감상 놀이터’에서는 모두가 순수한 아이였다. 만들면 된다고 했다. 초등학교에서나 보았던 단순한 재료들로 의상을 만든다니, 내심 걱정이 그 놀이터에는 색종이 대신, 신문지에 여러 일었다. 반면 책상 위에 둥그렇게 앉은 어른들은 사인펜을 칠해가며 그들만의 색종이를 만드는 걱정 대신 고민을 시작했다. 어떤 의상을 만들

어른들이 있었다. 따분한 어른에게 필요한 것은 것인가 하는, 진지하고 심각한 고민을. 어떤 어른은 구색이 갖추어진 놀이공원이 아니라, 무엇이든 신문지 위에 연필로 도면을 그리고, 어떤 어른은 이름 붙이며 놀 수 있는 공(空)의 놀이터였다. 멋진 일단 가위질부터 시작했다. 그들에게 지금 신문지는 비단보다도 소중한 재료였다.

공중그네 대신, 커져 버린 엉덩이에 딱 맞는 플라스틱 그네 하나면 사실 충분했다. 우리는 다 자란 어른이 아니라 계속 자라고 있는 어린이일지도 모르겠다. 몸도 마음도 이미 커버렸지만, 앞으로도

의상과 분장까지 마쳤으니 이제 공연을 선보일 차례. 신문지로 만든 두루마기와 갓을 쓴 그들은 계속계속 자라날 어린이. 그런 어린이에게도 이미 준비를 끝낸 것처럼 보였다. 음악이 시작되기 마땅히 뛰어놀 놀이터는 언제나 필요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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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 도전 발레리나, 발레리노 신청일정 : 8월 중 진행내용

1 8월 30일(수)

2 9월 6일(수)

14:00~17:00

3 9월 13일(수)

4 9월 20일(수)

4기 창극의 세계 속으로 신청일정 : 9월 중 진행내용

1 11월 1일(수)

2 11월 8일(수)

3 11월 15일(수)

4 11월 22일(수)

어른들의 예술감상 놀이터 봄내 바쁜 일상에 지친 시민들이 뮤지컬과 콘서트, 발레 등 다양한 문화예술의 안과 밖을 경험하며 문화예술을 만끽하고, 삶의 즐거운 환기가 되는 시간을 준비했습니다. 올해는 뮤지컬 ‹신과 함께›를 시작으로 포크 콘서트 ‹비밀의 정원›, ‹세비야의 이발사›, 창극 ‹내 이름은 사방지›를 연계로 다양한 예술감상 놀이터가 펼쳐질 예정입니다.

1기 뮤지컬 스타를 꿈꾸며 뮤지컬 ‹신과 함께› 넘버 ‘돌고 도는 인생’을 노래하고, 안무를 창작해봅니다. 뮤지컬 속 장면을 만들기 위해 의상과 소품을 만들고, 무대 디자인에 대한 강연도 듣습니다. 공연 용어와 관람예절을 함께 숙지하고 뮤지컬 ‹신과 함께›를 함께 봅니다.

2기 기타와 비밀의 정원 시대별 큰 사랑을 받았던 포크 음악을 감상하고 불러봅니다. 작곡과 작사를 배우고, ‹비밀의 정원› 출연하는 가수의 포크 노래도 함께 부릅니다. 간단한 버스킹 공연을 하고, 포크 콘서트 ‹비밀의 정원›을 다 같이 관람합니다.

· 발레 제대로 알기

· 발레와 음악 이야기

· 특강 ‹발레 제대로 즐기기›

· ‹세비야의 이발사› 관람

· 너 창극이 뭔지 아니?

18:30~21:30 · 판소리와 민요 격파하기

· ‹내 이름은 사방지› 따라잡기

19:30~21:30 · ‹내 이름은 사방지›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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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D

에디터 권용식

강물에 내놓은 아이처럼

거두리에 있는 작업실에서 일한다. 점심은 혼자 먹을 때가 많다. 요즘은 날이 좋아서 도시락을 싸서 야외에서 먹곤 한다. 오늘은 춘천교도소 뒤 숲에서 먹 을까 했는데, 숲에 들어가 벤치 앞에 걸음을 멈추자마자, 모기 수십 마리가 나 를 에워쌌다. 바로 도망 나왔고 잼잼놀이터 벤치에 앉았다. 놀이터에 있으면 해 맑은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얼굴과 기쁨을 주체 못하는 강아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놀이터에는 모험심을 자극하는 정글짐이 있는데 가끔 이십 대 청년들도 올라가는 걸 본다. 우리는 모두 노는 게 좋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도 노는 걸 좋아한다. 특히 강에서 노는 게 좋다. 어릴 때 부터 좋아했고 올해만 벌써 아내와 홍천강에 두 번 갔을 정도다. 흘러가는 강 물을 가만히 바라보는 게 좋고, 물속에서 노는 것도 좋다. 이런 생각이 들면, 몸은 작업실 의자에 앉아 있지만 마음은 어릴 적 자주 갔던 길안천 금소다리 밑에 있다. 푸른 수초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빛나는 물고기들과 함께했던 추억 이 가득한 곳이다.

그 강에는 수많은 친구가 살았다. 피라미, 쉬리, 돌고기, 납자루, 각시붕어, 모래 무지, 꺽지, 뚜구리, 퉁거리가 살았다. 골부리도 살고, 쌀미꾸라지도 살았다. 돌 을 들추면 뚜구리가 눈치를 보다 쏜살같이 도망갔다. 또 어떤 돌 밑에는 태어 난 지 얼마 안 된 새끼 물고기들이 우주의 별처럼 반짝였다. 피라미와 각시붕 어의 푸르른 혼인색을 보는 게 좋았고, 갈색으로 빛나는 꺽지의 얼룩무늬가 좋 았다. 보통 혼자 다니는 쌀미꾸라지들이 번식 철을 맞아 떼 지어 다니는 모습 도 기억에 남아 있다. 나는 무엇 때문에 매번 족대를 들고 입술이 푸르딩딩할

것 같다.

을 보았단 게 떠올랐다.

럼, 강을 돌보고 강에서 즐겁게 놀려고 한다.

정도로 물고기를 잡았을까. 잡고 다시 살려 보내는 무용한 행위였음에도 그 자 체가 참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어릴 때부터 물고기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점점 강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애써 외면하며 살았던 것 같다. 춘천의 호수에는 버들붕어와 송사리 대신 베스와 블루길이 살고, 소양강댐 콧구멍 다 리 밑에는 양식장에서 풀려난 브라운 송어와 누군가 마음대로 풀어 놓은 잔 가시고기가 산다. 몇 해 전 찾았던 길안천에는 기억만큼 물고기가 많지 않았다. 피라미, 돌고기들만 볼 수 있었고, 한쪽에는 죽은 제첩 껍데기도 수북했다. 아 버지께 여쭤보니 상류에 댐이 생겼다고 했다. 부끄럽게도 소중한 친구들을 지 켜주지 못했다는 생각과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러다 최근, 영화〈수라〉를 봤 다. 새만금 간척사업 이후 마지막 갯벌, 수라에 사는 소중한 생명에 대한 이야 기였다. 수라의 생태를 기록하고 있는 오동필 씨가 했던 말이 기억에 가장 남 았다. “아름다움을 본 게 죄인가요?” 그는 도요새 군무의 아름다움을 보았기 에 수라 갯벌을 지키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나 또한 물고기로부터 아름다움

나도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보고 실천하려 한다. 강이 자연스럽게 흐르길 바라고 물속 물고기 친구들이 행복하길 바란다. 어쩌면 흐르는 강물처럼 멈출 수 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강물에 내놓은 아이처

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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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희

혼자 노는 것을 좋아했다. 혼자가 편하다는 생각을 했다. 친구들에게조차 마음을 나누는 것도, 시간을 함께하는 것도 점점 어려워졌다. 내가 언제 재밌게 놀았더라, 떠올리니 마땅한 순간이

내서, 마음을 내서, 시간을 내서 놀고 싶다.

용식

평소에 잘 놀고 있는지 자문했다. 일의 특성상, 한가할 때는 마음이

마음을 한가득 안고 있었던 것 같았다. 변화가 필요하단 생각을 계속했고, 아침마다 조깅을 시작했다. 30분 정도 뛰면 마음가짐이 달라지고, 하루가 새로워지는 걸 느낀다. 삶이 좀 더 아름답게 느껴지고, 생각도 더 긍정적으로 하게 되는 것 같다. 특히 운동 후

놀이처럼 살려고 노는 중이다.

인혜

‘잘 노는 사람은 뭐든지 잘한다.’ 어릴 적 어른들에게 종종 들었던 말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는 ‘잘 노는 애’라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잘 노는 것이 무엇일까? 30년 넘게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고민을 여름호를 만드는 내내 떠안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엉뚱한 결론에 닿았다. ‘내팽개칠 줄 아는 것’이 잘 노는 것 아닐까? 체면이든 일이든 고민이든 완벽히 내려놓아야 ‘놀이’가 ‘놀이’로 느껴질 것이 아닌가. 일단 내팽개쳐 봐야겠다. 오늘은 그냥 나가 놀아야겠다. 잘 노는 법을 고민하고 있다가는 평생 제대로 놀지 못할 테니까.

주연

기획회의를 하며 우리가 ‘잘’ 놀았다고 느낀 순간은 언제였는지를 함께 떠올려봤다. 번뜩 생각나지 않아 놀랐고, 장고 끝에 끄집어낸 순간은 아주 소박한 것이라 또 한번 놀랐다. 좋아하는 놀이를 밤새 말할 수 떠오르지 않았다. 재미와 놀이를 잃어버린 삶이라니. pot 여름호를 있는 꼬마 때는 잘 노는 게 어려운 어른으로 자랄 줄 몰랐겠지? 놀이에 준비하면서 잘 노는 사람들을 만났다. 이번 여름에는 조금 더 용기를 대해 한바탕 고민하고 나니 얼른 ‘잘’ 놀고 싶어진다.

인옥

이번 호는 정말 어려웠다. 개인적으로 잘 놀고 싶은 인간 중 하나인데 … ‘가뜩이나 먹고 살기 힘든 데, 노는 게 뭐가 중요하다고!’ 불안하고, 일이 많을 때는 더 불안했던 것 같다. 그래서 놀 때도 불안한 내면에서 부정적인 애가 툭 튀어나와 외쳤다. ‘놀이’에 대한 다양한 철학적 견해들을 대할수록 머리가 점점 아파져 왔다. 그래, 놀고 싶지 않은 인간이 어디 있을까? 조금 단순해져 보기로 한다. 그게 어쩌면 나와 우리에게 또 다른 ‘전환’의 순간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짧은 명상처럼 순간 마음이 편안해지는 ‘감각의 발견’이다. 그러고 보니 샤워는 정말 개운하다. 그렇게 시작하는 하루는 완전히 다르다. 삶을 나의 놀이 감각은 ‘위기’에서 오는 것 같다. 마감을 앞두고 “나는 놈 위에 노는 놈”을 외쳐본다!

42쪽

Pot Back Issues

N. 01 춘천PLAY

N. 02 낭만PLAY

N. 03 공감PLAY

N. 04 시작팟팟

N. 05 함께팟팟

N. 08 화음팟팟

N. 09 도움팟팟

N. 10 봄봄팟팟

N. 11 배움팟팟

N. 12 무한팟팟

N. 15 시작팟팟

N. 16 변화팟팟

N. 17 기대팟팟

1N. 18 환경

N. 19 여성

N. 22 나의 안부

N. 23 너의 둘레

N. 24 마주보는 우리

N. 25 걷다가 문득

N. 26 환상과 낭만

N. 29 친애하는 나에게

N. 30 시작하는 기쁨

N. 31 솟구치는 용기

N. 32 흩어지는 마음

N. 33 기다리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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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06 열정팟팟

N. 07 잇다팟팟

N. 13 온기팟팟

N. 14 기억팟팟

N. 20 문화도시

N. 21 평화

N. 27 떠오르는 환대

N. 28 멀고도 가까운

N. 34 우리는 매일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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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엔 땀방울 마음엔 꽃방울’ 산울림의 ‹개구쟁이›(1984)에서 인용

PUBLISHER 발행인 최연호

EDITOR IN CHIEF 편집장 고영직

CONTENTS & EDITORIAL DIRECTOR 부편집장 박인옥

EDITOR 에디터 권용식, 정승희, 이인혜

PHOTOGRAPHER 사진 이종희, 김효주

ART DIRECTOR 디자이너 이건하

COVER ARTWORK 표지 작품 장승근

ILLUSTRATOR 일러스트 한선주

ADMINISTRATION 기획총괄 지보권

MANAGEMENT 운영 김태경, 유주연

CONTRIBUTING WRITER 기고 공혜진, 정현숙, 노명우

THANKS TO 고마운 분 김소영, 하정은, 한지호

춘천문화매거진 POT 제35호 「이마엔 땀방울*」 2023년 7월 발행

발행처 춘천문화재단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효자상길 5번길 13

인쇄 강원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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