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걸어온 장애인 교육의 길
<내가 걸어온 장애인교육의 길> 지난 15년이라는 시간동안 장애청소년들을 지도하면서 항상 품어온 것이 있다. 바로 중증 장애 청소년이라도 그 속에는 무한한 잠재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사회복지사나 교사 들이 잠재능력을 밖으로 표출시키는 것보다는 그저 보호하기에 바쁜 실정인 것 같아 매우 안타 까웠다. 내가 중증 장애인이라 그들의 잠재능력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 안타까울 수도 있겠지만, 난 그들 의 능력이 세상에 표출되어 빛을 환하게 비추게 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하여 꾸준히 지도한 결과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비장애청소년들의 능력이 각기각색인 것처럼 장애청소년들의 능력도 각기각색이다. 그 말의 뜻이 무엇이라면, 절대음감을 가진 장애청소년, 노래잘하는 장애청소년만 예술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 라 중증장애 청소년들에게도 인내와 사랑을 갖고 예술교육하면 그들 속에 잠재능력이 언젠가 표 출되어 빛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기적이라 말할 수 있고 일곱 색깔 무지개처럼 아름 다운 일로 나타나지 아니겠는가! 그들의 잠재능력이 표출되어 빛이 되기까지는 물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교사가 포기하지 않는 인내를 갖고 그들의 수준에 맞는 교수법으로 가르치며 무엇보다 사랑으로 함께 한다면, 반드시 작은 변화가 생긴다. 교사는 그 변화에 감사하며, 그 변화를 토대로 더욱 장애청소년의 능력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 학교에 그런 장애청소년이 있기 때문이다. 그 장애청소년은 자폐성장애 1급이라서 처음 학교에 왔을 때 눈 맞춤도 되지 않은 학생이었다. 처음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난타였고 쉬운 리듬으로 계속 눈 맞춤을 유도하면서 교육하였는데 중증장애인을 지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3년 후에 눈 맞춤이 되고 곧잘 난타리듬을 따라했으며, 심지어 스스로 암기할 정도가 되었다. 놀랍고 감사하였다. 난타가 될 무렴, 그 학생에게 핸드벨 수업에 참여시켰다. 그러나 난타보다 더 쉽지 않았다. 그 이유가 난타는 다 함께 치는 것이나 핸드벨은 자기가 맡은 음의 순서에만 흔들어야 하는 것이었 다. 그래서 처음에는 같이 손을 잡고 학생이 맡은 음의 순서에 흔들도록 시도하였다. 그렇게 한 1년 을 가까이 하니 그 학생이 혼자 자기 음의 순서에 흔들렸고 핸드벨도 난타리듬처럼 자기 음의 순서를 알아 스스로 흔드는 모습을 보였다. 그 학생이 현재 우리 공연팀인 예인 핸드벨팀에서 함 께 연주하고 있다. 나는 가르치면서 때론 힘들 때, 어려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자부심을 가지면서 장애청소년들을 가르치고 있고 우리 학생들이 자랑스럽다. 그 이유는 잠재능력이 표출되려면 학생의 노력과 땀이 필요하며, 힘들어도 교사를 잘 따라 교육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는 중증장애인이 무한한 잠재능력을 표출되어 예술의 환한 빛을 나타내도록 노력할 것 이다. 그들이 세상 속에서 예술의 빛이 되고자 하는 기대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