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온 길, 남은 길
- 1 - 걸어온 길, 남은 길 뒤돌아보니, 모두가 소중 했다. 심 훈 구 1. 나의 어린 시절 나의 어린 시절은 울산 큰집에서 자랐다. 어머니께서 몸이 아프셔서 외갓집에서 요양을 하고 나와 동생은 큰집에 맡겨졌다. 큰집은 울산에서 큰 과수원(배)을 했다. 큰 기와집 본채와 왼편에 사랑채가 있었고 오른쪽에는 큰 창고가 있었으며, 사랑채의 왼편에는 농사에 필요한 물을 공급하는 작은 연못이 있었다 집 뒤편으로는 꽤 규모가 큰 과수원이 있었고, 그 당시 그 지역에서 비교적 부유한 편이었다. 학교(초등)에서 친구들과 함께 점심 도시락을 먹는데 친구들은 대 부분 꽁보리밥에 그 속에 고구마를 섞은 밥이었는데 나는 보리밥 이 조금 섞인 쌀밥에 멸치볶음 반찬 이였다. 그 당시 학교 교실이 부족해서 오전 오후반으로 교대로 다닌 것 - 2 - 이 기억난다. 오후반 일 때는 학교 가는 길에 친구들과 놀다가 양지바른 논두렁에 앉아 도시락 먹었다. 정말 꿀맛 이였다. 그리고 등에 맨 책 보따리 속 빈 도시락의 숟 가락 부딪치는 소리가 “철거덕 철거덕” 거리며 학교로 뛰어갔다. 미국 원조 분유로 학교에서 큰 가마솥에 우유를 끓여 나누어 주 었고. 방과 후에는 줄을 서서 빈 도시락에 분유를 나누어 받았다. 그 분유를 밥할 때 밥 위에 계란 찌듯이 찌면 돌 처름 딱딱한 우 유덩어리가 되는데, 당시 별다른 간식이 없던 터라 그것을 깨어 서 사탕 처름 빨아먹었던 기억이 난다. 겨울에는 교실 난방을 위한 땔감(솔방울, 나무)을 구하려고 전교 생이 산에 갔는데 그때 산토끼도 잡고 눈밭에서 눈싸움을 하면서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았다. 1. 어린시절 (맨왼쪽 나) 2. 나와 동생 3. 확대 사진 나 - 3 - 2. 나의 부모님 아버지는 울산이 고향으로 할아버지는 농사를 지어셨고 아들만 5 명중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형제 중 유일하게 공부를 잘한 아버 지는 일제강점기 때 울산농고를 졸업하고 현 서울법대 전신인 경 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이어서 해방 후 신설된 현 경찰대학 전신인 경찰전문학교에 입학하여 1회 수석으로 졸업하고 경위로 임관하여 경찰전문학교 조교로 근무를 시작 하였고, 26세에 경감 이 되었다. 요즈음으로 치면 사법고시에 합격한 젊은 판검사 처 름 그 당시 장래가 촉망되는 엘리트 신랑감 이였다 1. 아버지 2. 어머니 3. 맨오른쪽 어머니 어머니는 부산에서 부잣집 딸로 태어났다. 부산남성여고를 졸업 하고 시집 갈 생각이 없었는데, 외할아버지께서 좋은 실랑 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