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하라, 베네치아여!
1786년 9월 28일 저녁, 브렌타 강에서 갯벌로 진입하면서 처음으로 베네치아의 마을을 멀리서 바라보고, 계속하여 이 놀라운 섬의 도시에 발을 들여놓고 구경을 하게 된 것은 내 운명의 책 한쪽에 쓰여 있던 바다. 그리하여 다행스럽게도 베네치아라는 도시는 이제 나에게 결코 하나의 단어, 공허한 이름이 아니게 되었다. -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중에서 영원하라 베네치아여! Be Forever Venezia! 피렌체를 출발한 인터시티 열차가 이탈리아 북동쪽으로 향 하는 내내 차창 밖으로는 우중충한 시골 풍경이 펼쳐졌다. 빗 줄기가 창문에 부딪쳐 우두둑 떨어지고, 내가 있는 6인용 객실 에는 두 손을 배 위에 가지런히 모으고 잠든 아주머니와 내 옆 에서 졸고 있는 이스탄불 여자, 그리고 머리에 한껏 힘을 주어 멋을 낸 이탈리아 소년 셋이 과자를 먹거나 키득거리며 장난 을 치고 있었다. 복도로 나가니 대부분의 객실 안 승객들은 서 로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 시끌시끌하던 소년들이 파도바에서 우르르 내리고, 나는 그들이 떠난 왼쪽 창가로 자리를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창밖으로 바다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흐릿 한 안개 속에서 바닷물 위로 말뚝이 하나 둘씩 나타났다가 다 시 열차 뒤편으로 사라졌다. 영화 <여정>에서 캐서린 헵번이 차창 밖에 몸을 내밀고 8mm 카메라를 돌리며 설렘과 흥분으 로 가득 찼던 첫 장면처럼, 바다를 가로지르며 나아가는 열차 속에서 내 가슴도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산타루치아 역에 내리니 거센 폭우와 함께 뿌연 풍광 속에 펼쳐진 베네치아의 첫인상과 마주했다. 역 정면의 에메랄드 빛 성당 돔과 굽이치는 녹청색 물, 그 위에서 위태롭게 흔들리 는 배들과 우산을 쓰고 뛰어가는 관광객들…. 베네치아의 첫 공기를 깊숙이 들이마신 뒤, 숙소를 찾아 바삐 발걸음을 옮겼 다. 운하와 다리를 지나는데, 물이 옆에서 철썩거린다. 여기도 물, 저기도 물이다! 그토록 꿈꿨던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 도 착한 것이다. 밤새 호스텔 창밖으로 몰아치는 폭풍우 소리가 매섭게 들 리더니, 새벽녘 어디에선가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지며 곤히 잠들어 있는 도시를 깨웠다. 같은 도미토리 룸에서 잠을 자고 있던 태국 청년들도 깜짝 놀라 “이게 무슨 소리야?” 하며 깨어 났다. 아침에 나가보니 광장과 거리는 밤새 내린 비로 홍수가 나 있었다. 물에 잠긴 거리 위로 임시 도로가 설치되어 여행자 들은 그 위로 줄을 지어 조심스레 움직였다. 상점이나 호텔 입 구에는 무릎보다 조금 높은 방수벽이 세워졌다. 미처 방수벽 을 세우지 못한 어느 호텔에는 1층 로비까지 물이 차서 발을 동 동 구르는 손님들의 모습도 보였다. 베네치아 사람들은 허벅 지까지 오는 노란 장화를 신고, 늘 있는 일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물살을 가로지르며 임시 도로 설치와 물 빼기 작업을 계속 했다. 물의 도시에서 만난 예상치 못한 진짜 ‘물난리’에 흥분하 는 것은 여행자의 몫이었다. 그 흥분이 누군가에게는 짜증으 로, 누군가에게는 이색적 경험이 주는 즐거움으로 바뀌는 것 이 다르긴 했지만. 산타루치아 역 앞에서 수상 버스인 바포레토를 타러 선착 장에 들어섰다. 바포레토가 다가오자 바다에 떠 있는 선착장 전체가 파도로 뒤흔들렸다. 선원이 “페로비아!ferrovia(선착장 이름) Be Forever, Venezia! 페로비아!” 하고 외치며 능숙 한 손놀림으로 밧줄을 말뚝 에 묶어 바포레토를 고정시 켰다. 밀려드는 관광객으로 나는 선실 중앙에 꼼짝없이 갇혔고, 보고 싶었던 대운하 풍경은 사 람들에게 가려 일찌감치 포기해버렸다. 바포레토에 함께 오른 관 광객들은 한껏 들뜬 목소리로 서로에게 어디서 왔느냐며 인사를 건네곤 했다. 베네치아를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마음 가는 대로 골목과 운하를 따라 걸으며 길을 잃는 것이다. 미로처럼 얽힌 골목들 사이 에서 지도를 보는 일은 곧 무의미하다는 걸 깨닫고 큰 명소를 가리 키는 화살표나 방향 감각에만 의지해서 이리저리 걸었다. 두 팔을 뻗으며 벽이 닿을 듯한 좁은 골목을 홀로 고요히 걷다 보니, 세상 과는 잠시 멀어진 듯 베네치아 골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