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역사 고려 1. 몽골의 간섭과 고려의 개혁 공민왕 세기 중반 중국 각지에서 한족의 반한이 일어나 원이 혼란에 빠짐 14 이 시기에 공민왕이 즉위 반원 개혁 정치 실시 , 몽골식 변발과 옷 금지 정방을 없애 인사권 장악 친원 세력 기철 숙청 정동행성의 일부 기능 폐지 격하되었던 관제 복구 쌍성총관부 공격하여 원에 빼앗겼던 영토 회복 신돈을 등용하여 전민변정도감 설치 전민변정도감을 통해 권문세족이 불법으로 취득한 토지를 원래 주인으로 돌려주고 농장의 , 노비를 양인으로 해방하여 권문세족의 경제적 기반 약화 하지만 신돈이 제거되고 공민왕이 시해당하면서 개혁은 실패 , 신진 사대부의 성장 공민왕이 국자감을 성균관으로 고쳐 재정비하고 국왕이 최종 면접을 주관하도록 과거제 개혁 이 과정에서 신진 사대부가 과거를 통해 관직에 진출하며 성장 신진 사대부는 성리학을 개혁의 사상적 기반으로 삼고 권문세족의 횡포를 비판 공민왕 사후 세력이 이축되었지만 고려 사회의 모순을 개혁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함 이 글에서도 전민변정도감의 설치 배경을 알 수 있음 전민변정도감을 통해 권문세족이 불법으로 취득한 토지를 원래 주인으로 돌려주고 농장의 , 노비를 양인으로 해방하여 권문세족의 경제적 기반 약화 토지와 세금 제도를 제정 성리학의 수용 2. 성리학과 신진 사대부 남송의 주희가 집대성한 성리학 충렬왕 때 안향에 의해 고려에 유입되었고 충렬왕의 서재였던 만권당에서 원의 유학자들과 , 고려의 학자들이 성리학에 대해 교류하며 성리학에 대한 이해를 높임 원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이색은 성균관을 정비하고 성리학 보급과 발달에 크게 기여함 고려 말 과거 시험 과목에 성리학이 반영되면서 성리학은 더욱 확산됨 신진 사대부는 성리학을 사상적 기반으로 삼아 권문세족과 불교의 폐단 비판하며 개혁 주장 조선 1. 조선의 건국 건국 과정 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와 신진 사대부는 토지 제도를 개혁하고 고려 말 권문세족에서 토지 가 집중되면서 어려워진 민생을 바로잡고 국가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과전법을 시행함 과전법의 시행으로 새 왕조 개창에 참여한 관료들의 경제적 기반이 마련됨 이성계는 신진 사대부들과 힘을 합쳐 조선을 건국함 이때 새 왕조 개창을 주장하던 급진파와 고려 왕조 유지를 유지하던 온건파로 나뉨 국가 기틀의 확립 2. 태종 태조의 아들 이방원은 정도전 등 개국 공신을 제거하고 왕위에 오름 공신들의 사병을 없애고 군사권을 장악 조에서 나랏일을 직접 국왕에게 보고하게 하여 의정부 기능 약화하고 국왕 중심 정치 강화 6 호구조사와 호패법 시행하여 인구 파악 및 세금 징수와 군역 부과와 기초 자료 마련 호패 세 이상의 남자가 가지고 다녔던 신분증 인적 사항 적혀있음 : 16 , 세종 태종 때 이룬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유교적 이상 정치를 추구 집현전 설치해 우수한 학자 양성 경연을 열어 신하들과 유교 경전을 공부 경연 왕과 신하가 모여 유교 경전과 역사를 공부하던 제도 학문과 국가 정책을 논의 : , 세조 단종을 내쫓고 왕위에 올라 집현전과 경연을 폐지하고 국왕에게 권력 집중 성종 집현전을 계승한 홍문관 설치 세조 때부터 편찬하기 시작한 경국대전 완성 경연에 힘씀 조선은 경국대전에 따라 중앙 및 지방 통치 제도를 마련하고 중앙 집권 체제 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