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똑똑한 사람
적당히 똑똑한 사람 ‘적당히 똑똑했다.’ 나를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초·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적 당히 똑똑한 편이었다. 성적으로 치면 중상위권이었고 수학만 조금 더 잘했다. 고작 수학 조금 더 잘한다고 동네에서는 공부 잘하는 아이 중 한 명으로 여겨졌다. 공부를 좀 한다는 아이들처 럼 나도 선행학습을 했다. 항상 학원에서는 한 학년 위의 진도를 나갔고 나 또한 그 진도에 맞 추기 위해 노력했다. 노력의 결과는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도 영향을 끼쳤다. 부모님을 비롯하여 주변 친척들도 나 는 당연히 좋은 대학교에 갈 것이라고 여겼다. 그 기대는 고등학교에 올라가던 나에게 큰 부담 이었다. 사실 수학조차 진짜 잘하는 친구들에 비하면 비교 상대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계획이지만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한 가지 계획을 세웠다. 공부 못하는 이미지를 심어 기대를 낮추는 계획이었다. 학원에서 내주는 숙제는 고등학교 이후 로 한 번도 해간 적이 없었고, 학교에서는 체육시간에만 눈을 떴다. 3년의 시간이 누적되는 동 안 성적은 떨어졌지만 주변의 기대는 떨어지지 않았다. 수능 역시 3년의 게으름이 결실을 보였 고 당연하듯 재수를 하게 되었다. 재수를 하면서도 절박하지 않았다. 나는 똑똑하니까. 공부 대충 하면서 시간이 조금 흐르면 성적이 오를 줄 알았다. 모든 것을 시간이 해결해줄 줄 알았다. 실제로 6월 모의고사에서 성적 이 수직 상승하여 더 자만하게 되었다. 자만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믿음을 더욱 굳게 했고, 6월 이후엔 공부를 거의 하지 않으며 지루한 시간만 보냈다. 재수 결과 역시 참담했다. 제삼자가 보았을 때는 당연한 결과였지만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 았다. 1년을 더 할 자신은 없어서 성적에 맞춰 대학교에 입학했다. 대학교에 입학해서는 더 가 관이었다. 내가 있을 수준의 학교가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반수를 준비했다. 가진 것 하나 없이 남을 깔보았던 최악의 시기였다. 반수 역시 이도저도 아닌 생활에 실패했다. 어두운 1학년을 보내고 군대에 입대하기 전에 인터넷에서 ‘가능성에 중독된 상태’라는 댓글을 봤다. 그 댓글은 덤프트럭에 치인 것 같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가진 것 하나 없으면서 어렸을 적 성적이 조금 좋았던 것을 가지고 시간에 기대면서 살았던 것’을 깨닫게 해준 댓글이었다. 댓글을 마음에 담은 상태로 입대했다. 나에게 군대는 사회로부터 도피처였다. 과거, 학벌에 상관없이 입대 이후만 중요했기 때문에 나를 증명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또 사회에서의 나와 군대 안에서의 내가 달라도 아무도 알 수 없는 공간이었다. 1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변 할 수 있었다. 입대 전 나에게 실망했던 기대들을 제대 후 다시 쌓는 재미는 나를 더 발전시켰 다. 심지어 낮아진 기대치에서는 어떤 것도 도전할 수 있었다. 실패해도 조금 더 뻔뻔하게 대응 할 수 있었고 많은 도전은 가끔가다 성공도 불러왔다. 사실은 지금도 스스로 적당히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다른 점은 똑똑함의 기준이 학교 성적에서 벗어난 것과 적당함의 범주를 어느 정도 가늠하는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발전하려 는 모습 또한 스스로 마음에 든다. 입대 전 부끄러웠던 학교는 제대 후 자랑스러운 학교를 만 들자는 목표가 생겼고 학교 내에서도 진짜 똑똑한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언젠가는 이런 모습들이 ‘자기 합리화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 적 있지만, 굳이 나쁘게 생각할 필요 없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