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복지재단 7월 소식지
샘복지재단은 사랑으로 생명을 치료하는 국제보건의료 NGO입니다 Vol.2023.07 SAMcare┃SAM Newsletter 샘복지재단 소식지 우수리스크 민들레 교실 현명한 인도적 지원 대 표 서 신 내가 평양제3병원을 완성하고 외국인 의사로는 처음 개복 수술을 마치고 나서 다시 5번째 출입 금지 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다시 오라고 불러도 용기가 나지 않지만, 병들어 고생하는 우리 동포들을 위 하여 사랑의 의료봉사와 우리에게 맡겨 주신 확실하고 현명한 인도적인 지원을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하 였습니다. 그러나 받는 사람들은 항상 우리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은 뒤로 미루었습니다. 매번 자기들의 입장만 내세우는 그들의 행동은 우리를 지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나는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할 것 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후 그들은 나를 다시 불렀고 이번에는 나를 평양제3병원 명예 원장으로 임명하였습니다. 그때는 이미 우리가 압록강 건너 근처와 연해주 우수리스크를 놓고 저울질하고 있었습 니다. 이 두 곳을 같이 열었으면 좋을 것 같은데, 두 곳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함께 하기에는 대단히 어려울 것 같다는 결정을 내리고 우선 우수리스크로 먼저 갔습니다. 결국은 우수리스크와 그 외 압록강과 두만강가에 진료실들을 열어서 기초 치료와 어려운 사람들을 돕 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우리 사역자들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단동에 정식 병원을 세워 우리를 찾아 오는 춥고 배고픈 자들과 병든 자들을 치료하는 인도적인 지원을 20년 동안 완성하였습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지역으로 우리가 러시아(당시 소련) 블라디보스톡으로 들어가 그 환경을 살폈습니다. 북한에서 정기적으로 오 는 열차가 벌목공들을 실어 나르는데 긴 시간을 타고 오면서 집에서 떠나올 때 가지고 온 음식이 며칠 동 안을 오다 보면 상하여 먹지 못하게 됩니다. 하지만 다른 먹을 것이 없어서 상한 음식을 그대로 먹으니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할 때는 대부분이 설사가 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미처 화장실을 찾지 못하여 아무 데서나 설사하는 모습들을 보니 너무 불쌍하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소련 헌병들이 회초리를 들고 휘두르 면 아픔을 이기지 못하여 소리를 질렀습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가여워 그들도 울고 우리 도 같이 많이 울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우리가 준비한 따뜻한 밥과 국물을 주면 그들은 눈물을 흘렸고, 어떤 사람들은 소리 내 어 엉엉 울었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소련 의사들을 모집하여 우리 팀들과 함께 블라디보스톡에 진료실을 열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2-3명의 의사들을 모집하는 날에 50명이 넘는 젊은 의사들이 몰려들어 깜짝 놀랐습니다. 후에 그들의 형편을 알게 되어 더 이상 추진하지 못하였습니 다. 3 당시 블라디보스톡 시내를 운행하는 버스와 자동차들이 모두 한국 자동차들이었고, ○○ ○교회, ○○○학교 등 한국에서 쓰던 마크를 그대로 달고 다니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한국 사람들임을 알고는 한국 중고 자동차를 사게 해 달라며 우리를 통하여 돈을 벌 궁리를 하는 것을 알고는 “여기는 아니구나.”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때 우수리스크에 사는 한 사람이 우리 소식을 듣고 나를 찾아왔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 집 작은방에서 매주 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마침 우리 소식을 듣고 만나러 찾아왔고, 우수 리스크로 와서 자기를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병원과 연결해 줘 서 그들과 함께 의료봉사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 같았습니다. 러시아, 고려인 동포들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우리민족은 총 30만 명이었습니다. 소련 스탈린 시절 그것도 추운 겨 울, 시베리아 화물열차에 실어 지금의 키르키스스탄 등 5개 지역에 풀어 놓아 강제 이주시켰 습니다. 극한의 추위에 기차를 타고 머나먼 땅으로 끌려가면서 10만 명이나 얼어 죽었다 합니 다. 나머지의 사람들은 그래도 살아남아 5개의 지역에 흩어져 소련과 중국 사이에 살고 있는 데 이들이 바로 고려인들입니다. 우리가 우수리스크에 갔을 때